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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통일부 존속을 거듭 요구한다

    통일부·여성부 등 몇몇 부처를 통폐합하는 차기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안이 발표된 뒤 해당 부서의 존폐 여부를 두고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통일부 폐지에 대해서는 대통합민주신당·민주노동당·민주당 등 각 정당은 물론 관련학계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드높다. 통일부를 독립부서로 유지하지 못하면 남북관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논리이다. 대북 문제를 외교부에서 다루는 것은 민족공동체인 북한을 외국으로 간주하는 게 아니냐는 부정적 시각 또한 만만찮다. 우리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차기정부의 조직 개편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미 ‘통일부를 폐지하려는 시도는 단견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조직 개편안 발표 후에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라는 목적에 맞게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고 평가하고, 정치권이 새 정부 출범에 지장 없게끔 협조할 것을 당부하면서도 통일부 폐지 문제에 한해서는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제 우리는 통일부를 반드시 존속시켜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한다. 우리가 이처럼 통일부 존속을 거듭 요구하는 까닭은, 민족통일이 여전히 이 시대의 지상과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관계를 전담하는 통일부라는 존재를 효율성의 측면에서만 평가하는 것은 지극히 옳지 않다. 가령 그동안 통일부 행태에 문제점이 있었다면 이는 정책 수립이 잘못되고 집행이 미숙한 데서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 새 정부가 운영만 잘하면 바로 해결될 문제인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는 통일부 폐지를 더이상 고집하지 말기 바란다. 오히려 통일부를 더욱 활성화해, 남북이 평화공존을 다지고 통일의 길로 함께 나아가는 데 어떻게 활용할지를 두고 고민해야 한다.
  • [씨줄날줄] 통일신발/황성기 논설위원

    부산이 신발산업으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계기는 6·25전쟁이었다. 포화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인 데다 항구가 있어 천연고무를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이점 때문에 전시 수요를 등에 업고 신발공장이 부산에 자리잡는다. 해방 전 경성고무라는 초기 신발 공장을 갖추었던 군산은 전쟁 이후 생산기지를 부산에 넘긴다. 내수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하던 부산의 신발산업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의 기술과 생산 설비들을 이전받으면서 수출입국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일본이 경험했던 경쟁력 하락에 따른 퇴출의 길을 한국도 80년대 들어 걷는다. 산업합리화 업종 지정을 전후로 부산의 대표적인 신발 기업들이 문을 닫거나 생산 기지를 중국이나 동남아로 옮겼다.‘신발산업의 메카’라는 부산의 명성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듯했다. 회생의 돌파구가 개성공단이었다.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을 결합하면 승산이 있다고 본 부산의 삼덕통상이 승부수를 던진다. 개성에서 신발을 생산한 것은 2005년 5월. 대부분은 유명 브랜드의 주문자상표부착(OEM)으로 완제품이나 반제품으로 생산되는 것들이다. 딱히 ‘통일신발’이란 브랜드가 있는 게 아니어서 국내에서 개성산 완제품 통일신발을 사 신으려면 이들 OEM 제품을 골라야 한다. 삼덕통상 자체 브랜드로 나가는 신발은 개성산 부품 일부로 제조한 것이다. 수출용 통일신발은 관세문제 때문에 개성산 소재나 반제품을 부산에서 가공해 완제품으로 만든 뒤 해외로 나간다. 경의선 화물열차가 그제부터 상시로 남북을 오가고 있다. 통일신발 완제품과 반제품이 경기도 의왕역과 부산진역에 도착했다. 지금까지는 컨테이너 화물차가 통일신발을 날랐다. 철도라면 운송비를 20∼30%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원가가 줄어 통일신발의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냄비에 이어 시계, 신발, 의류 등 개성산 물건이 우리 생활에 자리잡고 있다. 남북경협의 열매가 풍성해지는 만큼 한반도의 평화공존도 단단해질 것이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남북총리회담] 정치권 엇갈린 반응

    16일 마무리된 남북총리회담에 대해 범여권은 일제히 환영했지만, 한나라당은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끄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대선 전 총리회담에 절차상·내용상 문제가 있다며 맹비난했다. 대통합민주신당 최재성 공보부대표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북 경협의 획기적인 발전을 위한 시동을 걸었고 오늘 총리회담에서 에너지를 충전시켰다.”고 평가했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남북관계를 평화공존 단계에서 평화공영 단계로 끌어 올리는 데 실무적으로 진일보한 성과를 담고 있다. 특히 총리회담을 상·하반기 연 2회로 정례화한 것은 큰 성과”라고 밝혔다. 민주노동당 황선 부대변인도 “남북정상선언이 이제 본격적인 실천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나라당 박형준 대변인은 “총리회담이 경제협력과 관련된 여러 합의를 내놓았다.”고 평가하면서도 “6자회담 틀 속에서 진행되는 북핵문제 해결이 선행되지 않는 성급한 경제협력은 실천되기도 어렵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남북 간 총리회담은 정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안보 문제와 이산가족·납북자 문제 등이 안건에 포함되지 않은 점을 한계로 지적했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청주 한민족문화연구회 초청 강연에서 “대선을 앞두고 이렇게 하는 것은 정치적 행위”라면서 “회담에 따른 어떤 사업도 대선 전에 어떤 형태로도 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박창규 구동회기자 nada@seoul.co.kr
  • [2007 대선 릴레이 시론 (5)] 통일문제의 대선 정략 이용을 경계한다/서보혁 이대 이화학술원 평화학연구센터 연구위원

    [2007 대선 릴레이 시론 (5)] 통일문제의 대선 정략 이용을 경계한다/서보혁 이대 이화학술원 평화학연구센터 연구위원

    대통령 선거를 한 달 남짓 앞둔 상태인데도 정치세력간 합종연횡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 여론조사에 나타나는 대통령 후보 지지율은 20% 정도의 낮은 설문결과에 바탕으로 두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모든 후보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차별화해서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후보차별화 경쟁이 심해지면서 지역이나 이념을 중심으로 한 소모적이고 갈등지향적인 양상이 되살아나고 있다. 통일문제도 후보 진영내 정책 개발과 후보 진영간 정책 경쟁으로 나아가지 않고 편가르기식 이념 논쟁의 대상으로 다뤄지고 있다. 다른 관심사와 마찬가지로 통일문제 역시 유권자의 판단기준은 후보의 통일관과 관련 상황 인식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통일관은 통일, 북한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 하는 문제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북한을 붕괴 혹은 흡수하여 현 남한체제가 북한지역까지 통치권을 갖는 것을 통일이라 볼 수도 있다. 또 남북한 두 체제의 장점을 살펴 새로운 통일코리아를 전망하되 평화공존을 거치며 점진적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질 수 있다. 유력 대선 주자들의 통일 관련 발언을 볼 때 통일관은 뚜렷한 소신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와 그 소신의 타당성 문제를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통일문제와 관련한 현 상황인식에 있어서 후보들의 입장 차이는 뚜렷해 보인다.2007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둘러싸고 여당은 한반도 평화정착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반면, 제1야당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재조정 문제와 남북경협 확대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거론하며 비판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여권 후보는 평화경제론을 제시하며 정상회담 후속조치를 통해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한 공동번영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제1야당의 후보는 정상회담 직후 남북정상이 “차기정부에서도 만나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북핵 완전 폐기를 전제로만 평화체제 협상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입장 변화는 자신의 대북정책이 오락가락한다고 비판한 이회창씨의 대선 무소속 출마 선언 이후 나온 반응이다. 이회창 후보는 대선 출마의 변으로 ‘대북정책 및 외교정책의 근본적 재정립’을 제기하고 있는데 대선 3수의 명분을 냉전적 안보논리에서 찾고 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이밖에 진보성향의 대선 후보 중에는 정상회담을 지지하는 쪽과 경제문제에 치중한 나머지 통일문제를 소홀히 다루는 후보도 있다. 그러나 어느 후보이든 북핵 불능화 진전과 남북관계 진전 등을 반영하여 통일지향적 평화체제 혹은 평화와 함께하는 통일 실현의 청사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치란 최선의 길이 아니라 차악의 선택이라는 말을 상기하면서 상대적으로 평화지향적, 통일지향적 후보를 골라야 할지도 모른다. 분단 이후 통일문제는 늘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왔다. 경제가 어렵다고 남북관계 혹은 통일문제를 뒷전으로 미루는 것은 근시안적인 생각이다. 언제까지 통일문제가 정치적 무기력 혹은 경제만능주의에 빠져 소외당할 것인지 안타깝다. 우리 현대사는 1987년 정치 민주화의 성과에 기반하여 경제 민주화와 함께 통일을 실질적으로 준비할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의 대통령 후보에 대한 판단기준의 하나가 통일문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보혁 이대 이화학술원 평화학연구센터 연구위원
  • [2007 남북정상회담] 아리랑공연 관람후 찬양땐 문제 될수도

    남북정상이 평양에서 만나 평화공존을 논의하는 ‘현실’ 속에서 국가보안법 적용이 또다시 도마위에 올랐다.2000년 6월 1차 정상회담 때와 달리 이번에는 훈풍이 아닌 역풍이 불 것이란 전망도 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2차 남북정상회담도 국보법 적용에 대해 향후 치열한 법리논쟁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1차 회담 직후에는 보안사범들의 기대심리가 폭증해 검찰 공안부가 “예방주사를 맞기 전 전염병에 걸린 느낌”이라고 하소연할 정도였다. 정상회담 직전 대학가의 인공기 게양사건에 대해 전원 사법처리하려다 일부 사법처리로 한발 물러선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2차회담에선 남측 대표단의 아리랑공연 관람이 한차례 역풍을 맞는 등 여론이 돌아섰다.“누가 어떤 목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적용 여부가 달라진다.”는 검찰의 유권해석이 이를 가라앉혔지만 여전히 대검과 서울지검 공안부의 고위 검사들은 “현 시점에서 법 적용과 향후 전망을 논하는 건 적절치 않다. 법의 취지가 변하지는 않는다.”며 유보적 판단을 하고 있다. 안태근 법무부 공공형사과장은 “무엇보다 행위자의 ‘의사’가 중요하며 국보법 적용의 도식화는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안 과장은 방북단의 단순관람은 법에 저촉되지 않지만 이를 보고 돌아와 찬양·고무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는 의견이다. 안 과장은 “97년 이후 국보법은 단 한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개정문제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법무부에 따르면 1차 정상회담이 열린 2000년 국보법 위반 구속자는 286명에 달했지만 지난해 62명, 올해는 8월말까지 45명으로 줄었다. 법원은 최근 판결에 유연성을 가했지만 여전히 ‘시대상황’보다 ‘법적 안정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대법원측이 “사회환경에 따라 법관의 판결이 쉽게 변하는 것도 아니고 개별 법관이 판단할 문제”라고 못박은 것과 궤를 같이한다. 법원은 앞서 8월 ‘일심회’사건 피의자들에게 간첩죄에선 무죄를 선고했지만 국보법 위반은 그대로 적용했다.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시론] 남북 두 정상이 맞잡은 손/ 이수훈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장

    [시론] 남북 두 정상이 맞잡은 손/ 이수훈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장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일 정오 평양 모란봉구역 4·25 문화회관에서 두 손을 굳게 잡았다. 남북 정상의 만남은 2000년 첫 정상회담이후 7년만이다. 회담 성사만큼, 이루어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기대도 있고 다소 염려도 있다. 그래서였을까, 두 정상은 7년전에 비해선 조금 굳어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지금 한반도 주변을 둘러싼 정세 변화는 두드러진다. 북핵 비핵화 프로세스가 진전되고 있고 북·미관계 정상화 논의도 급진전중이다. 일본에선 아시아를 중시하며 북한에 대해 상대적으로 온건한 후쿠다내각이 출범했다. 납치문제 해결과 북·일관계 정상화 논의도 이전과 다른 국면으로 한발을 내디뎠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동북아 안보협력 메커니즘 형성 관련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반도 주변 정세 급변은 냉전질서의 해체와 평화공존의 새 질서 수립에 대한 요청으로 요약된다. 동북아의 새 질서는 한반도 분단구조의 완전 극복을 요구한다. 이번 회담에서 남북의 두 정상은 이런 변화에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해 민족의 이익을 지켜내기 위해 의견을 교환하고 성과를 내놓으려고 애쓸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2000년 정상회담이 화해협력 시대를 열었다면 2007년 정상회담은 평화정착 시대를 여는 돌파구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를 가져다 줄 체제 구축에 의견을 접근하는 일이다. 비핵화, 군사적 신뢰구축, 평화체제 구축 등이 포함된다. 평화가 중요한 만큼 북한은 경제문제가 한층 절박하다. 북측 당면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하겠지만 중장기적 해법에도 남북이 의견을 모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남북경제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기본 방향에 대해 깊은 대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진전중인 경협사업들을 확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과제도 있다. 이를 토대로 남북간 경제적 연계를 한층 강화해 나가는 데 대한 방안들이 검토될 것이다.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라 경협이 남북 모두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방향에서 추진될 수 있도록 새 틀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북측의 절박한 요구를 수용하되 남측이 투자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안들이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북측이 이들 사업을 통해 경협이 가져다준 실질적 혜택에 대해 점검하고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측이 이런 과정을 통해 개방에 대해 얼마나 자신감을 얻었고, 남측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높아졌는가 하는 점도 평가되어야 한다. 유럽통합 사례에서 참고해야 할 교훈은 경제공동체 형성이 평화를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장치라는 점이다. 이번 회담을 관통하는 화두는 신뢰의 문제다. 남북이 진정한 동반자관계가 될 수 있다는 상호이해를 마련하는 것은 향후 남북관계 발전의 단단한 초석이 될 것이다. 이번 회담은 노무현 대통령이 하는 일이지만 그 성과는 다음 정부로 넘어간다. 이번 회담이 국민과 함께하는 회담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면 결과를 냉정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정부가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 평양까지 가는 데에는 4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남북공동체 건설의 길에 많은 장애물이 있지만 화해협력을 향한 강한 동력을 이번 정상회담에서 확인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수훈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장
  • [2007 남북정상회담] “평화공존 계기” “북핵폐기 먼저”

    “평화 공존과 번영의 길로….” “북핵 폐기와 납북자 석방 우선돼야….” 2일 노무현 대통령과 방북단이 지나간 서울 종로구 세종로와 경기 파주시 자유의다리 일대에서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진보·보수 단체들의 찬반 집회가 잇따랐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와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등 진보단체 회원 50여명은 오전 7시쯤 서울 광화문 주변에서 ‘남북정상회담 환송대회’를 열고 방북을 축하하는 환송행사를 가졌다. 이들은 “정상회담은 만남 자체에 의미가 있다. 남북이 번영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한국진보연대는 지난 1일 기자회견을 통해 “한반도 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여는 중대한 계기”라면서 “회담을 통해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 등 냉전의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민주평통 자문위원들과 통일촌 주민 400여명은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통일대교 앞에서 풍선과 태극기를 흔들며 노 대통령 일행의 평양행을 반겼다. 통일촌 주민들은 “남북정상회담이 잘돼 한민족이 함께 사는 기틀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반겼다. 반면 선진화국민회의와 자유시민연대 회원 100여명은 오전 8시쯤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대선전략용 남북정상회담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정상회담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 보수단체 회원들은 집회 과정에서 노 대통령이 탄 차량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북핵 전면 폐기와 인권문제를 남북정상회담에서 제기하라.’는 플래카드를 치켜들다가 제지하는 경찰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집회에 참가한 회원들은 “북핵의 완전 폐기, 북방한계선(NLL) 유지, 납북자·포로 석방, 천문학적 대북 지원 중지 등에 대한 논의가 반드시 있어야 수긍할 수 있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라이트 코리아 회원 20여명도 서울역 앞에서 남북정상회담 규탄 기자회견을 연 데 이어 파주시 임진각 관광지 자유의다리에서 ‘북핵 폐기, 국군포로·납북자 송환, 북한인권 개선’이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손으로 인공기를 찢는 등 남북정상회담을 반대했다. 임일영 강국진기자 argus@seoul.co.kr
  • [홍순영칼럼] 바른 정치,바른 지도자

    [홍순영칼럼] 바른 정치,바른 지도자

    1.왜 어떤 선진국들은 계속하여 선진국으로 성장·발전하고 있고, 왜 어떤 후진국들은 계속하여 후진국으로 남아서 혼란과 절망 속에 있는가. 생태환경의 탓인가, 인종 탓인가, 종교 탓인가, 지도자 탓인가. 나라의 성장과 발전의 기준은 그 나라 백성이 얼마나 자유롭게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가지고 살고 있는가이다. 그 나라 국민의 행복지수라는 수치 속에 나라의 선진도가 반영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이라는 엄숙한 목표를 향하여 역사는 끊임없이 발전하여 왔다. 현대사만을 보더라도 흑인노예 해방과 흑백평등, 제국주의 식민지로부터의 독립, 프롤레타리아 공산주의 독재의 퇴장, 자유민주주의 사상과 제도의 확산, 여성권익 신장 등이 있다. 그러므로 후진국이 후진성의 탈을 벗고 선진화로 나가는 큰 길은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관을 분명히 나라의 목표로 삼고 그를 지향하는 바른정치를 하는 데 있다. 이는 자연환경이나 인종·종교의 문제라기보다는 나라의 지도자들이, 그 나라의 선구자들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느냐의 문제로 보인다. 역사 발전 과정을 보면 한단계 높은 발전에의 동력은 대개 그 나라 지도자의 이름과 연계되어 있음을 본다. 2. 오늘날 나라의 지도자들은 임기 너머를 보고 역사의 흐름을 보는 안목과 비전을 가져야 한다. 교육과 정치, 외교와 국방, 경제와 문화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이라는 큰 가치에 연계되어 있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의 큰 원칙을 파괴하고자 하는 세력에 대하여는 단호한 응징을 하여야 하고 사회적 약자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확실한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기회 균등과 공정한 경쟁 그리고 중산층 사회를 지향하는 경제성장을 추구하여야 한다. 지도자들은 전문가들을 존중하여야 한다. 전문가는 피고용인이 아니다. 나라 전체가 전문가 사회를 지향하여야 한다. 전문가 사회는 다원화사회로 연결된다. 활발한 토론이 있고 경쟁과 시합이 있는 사회가 발전하는 법이다. 외국인을 환영하고 영입하여야 하고 외국에 진출하고 투자하는 것을 지원하고 권장하여야 한다.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는 것을 권장하고 그를 위한 제도와 복지 여건을 갖추어야 한다. 다원화사회는 다른 외국인을 영입하는 것뿐이 아니고 다른 종교를 수용하고 그 선택을 개인에게 맡기는 다종교사회를 지향한다. 종교간 충돌이 아니라 종교간 공존을 선도하는 자유국가를 지향하여야 한다. 종교간 공존에는 상호존중이라는 엄중한 규범이 있어야 한다. 종교간 공존을 선도하는 것은 문명 충돌을 해결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그러한 나라는 자유의 나라이면서 관용과 지혜의 나라로 번창할 것이다. 종교도 역사와 더불어 발전하고 진화한다는 학설이 있다.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인식과 해석이 역사에 따라 새로워져서 역사는 많은 새로운 종파와 교파를 낳는다. 여기에도 큰 지향점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이다. 한국 그리고 나아가서 아시아는 긴 역사의 힘으로 종교간 공존을 실천할 유력한 후보지역이 될 것이다. 칭기즈칸이 그의 번창기에 소집하였다는 세계종교회의를 생각하여 본다. 그래서, 바른 지도자는 부족이나 패거리 그리고 한 종파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3. 우리나라가 의롭고 비전 있는 지도자·선구자들을 만나 그들의 지도력 밑에서 광복 후 60년의 격동기를 뒤로하고 자유민주주의의 큰 가치관을 국시로 재천명하고 좋은 정치(good governance)에 성공하는 모범국가로 세상에 등장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로써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것이요, 남은 후진국들에 희망의 등불이 될 것이다. 남북한 평화공존 시대는 이 맥락에서 올 것이다. 한국은 세계 속에 있는 중간 규모의 선진국가로서 활기찬 성장을 계속할 것이다. 바른 지도자의 등장을 기대한다. 홍순영 전 외교부·통일부 장관
  • [2007 대선 매니페스토] 역대 외교·안보정책 파괴력은

    [2007 대선 매니페스토] 역대 외교·안보정책 파괴력은

    역대 대선에서 외교·안보·통일정책은 어느 정도 파괴력을 발휘했을까. 외교정책을 둘러싼 주요쟁점이 대선의 핵심 어젠다로 부상한 적은 없었고, 통일정책 가운데 북핵문제와 대북지원은 2002년 16대 대선에서 쟁점으로 부상했다. 국방정책에서 사병복무기간 단축 같은 표를 의식한 인기영합 공약이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은 장밋빛이었고, 후보별 차별성은 찾아 보기 어려웠다. ●통일정책 통일정책은 남북관계의 변화와 발전에 따라 다양한 통일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고, 중장기 추진과제들이 제시됐다.13대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는 남북기본관계에 관한 잠정협정 체결을 공약으로 내세워 7·7선언을 이끌어 냈다. 김대중 후보는 13대 대선에서 평화공존, 평화교류, 평화통일의 3단계 통일론을 제시하면서, 미·일·중·소의 남북한 동시 교차승인,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 등의 어젠다를 제시했다.14대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는 남북핵 상호사찰 실시, 남북협력기금 확충 등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15대 대선에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이회창·김대중 후보는 각각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기본합의서 정신을 살리는 과정에서’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인제 후보는 ‘조건없는 추진’을 주장했다.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을 거치자 16대 대선에서는 북한 핵문제와 대북지원이 쟁점으로 등장했으며, 노무현 후보는 ‘대북지원 및 경협과 일괄타결안’을 제시했다. 반면 이회창 후보는 ‘핵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현금지원을 중단하고, 핵개발을 대북지원과 경협과 연계해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외교·국방정책 외교정책 분야에서 한미행정협정 개정, 작전지휘권 환수문제 등이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13대 대선이었다. 외교정책이 선거의 핵심 어젠다로 부상한 것은 처음이었다.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직속 동북아 중심국 프로젝트 전담기구 설치, 동북아 철도공사 설립, 동북아 평화 및 경제협력체, 동북아 개발은행, 동북아 에너지 협력기구 창설 등의 공약을 제시했다. 국방정책 공약에서는 표를 의식한 인기영합식의 공약과 실현성이 뒷받침되지 못한 장밋빛 공약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주한미군 주둔을 비롯한 한·미 안보문제, 방위비 규모, 병력감축을 비롯한 군축문제 등 민감하고 굵직한 현안에 대해 후보 사이에서 뚜렷한 이견은 찾아 보기 어려웠다. 예비군 복무기간 단축, 사병 복무기간 단축, 민방위 복무연령 인하 등 실리적 공약들이 등장했다.13대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예비군 의무훈련기간 8년으로 축소, 사병복무기간의 축소, 민방위 복무연령인하, 보충역 대상 확대 등의 공약을 내세웠다. 다른 후보들은 예비군 5년제, 사병복무기간 2년으로 단축, 민방공훈련의 폐지 등을 경쟁적으로 제시했다. 14대 대선에서는 군복무기간과 예비군 훈련시간 단축, 직업군인 복지 등 표를 의식한 공약들이 앞다퉈 제시됐으나 전력보충방안이나 예산구상 검토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15대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5년간 GNP 3.2% 이상 국방예산 확보 등을, 김대중 후보는 직업군인 보수 대기업 90%로 개선, 계급별 정년 점진적 연장 등을 약속했다.16대 대선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국방개혁위원회 설치, 사병봉급의 현실화 등을 제시했으며, 노무현 후보는 예비군 편입기간과 편성연령 3년씩 단축, 예비군 동원훈련일수 3일 축소 등의 공약을 제시했다.
  • [한나라당 경선후보 정책 검증] 외교·안보·통일

    [한나라당 경선후보 정책 검증] 외교·안보·통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오는 28일 평양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선 경선 후보의 외교·안보·통일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의 외교·안보·통일 분야 공약은 기본적으로 DJ정부와 참여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 ‘원칙 없는 퍼주기로 인한 실패’라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때문에 두 후보 모두 한·미 안보협력체제를 강화·발전시켜 ‘힘에 바탕을 둔 대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두 후보는 북핵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북방한계선(NLL) 양보는 절대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이 후보는 지난 11일 열린 3차 TV토론회에서 “주한미군 철수 등을 양보한다면 차기 정권에 굉장한 부담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후보 역시 “헌법에 위배되는 통일방안에는 합의하면 안 된다.”면서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장병들까지 언급했다. 하지만 힘에 바탕을 둔 대북정책은 여전히 냉전과 남북대결구도라는 보수적인 관점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다.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이철기 교수는 “정전체제 종식과 북·미 간의 대사급 수교가 논의되고 있는 시점에 두 후보의 통일분야 공약과 정세 인식은 뭔가 한참 부족해 보인다.”면서 “보수적 지지층의 눈치를 봐야 하고 햇볕정책의 성과를 인정할 수도 없는 양 후보의 딜레마가 공약에 그대로 베어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보수적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 ‘냉전적 정체성’을 고집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명박의 안보·통일 공약 이명박 후보가 내세우고 있는 대북 정책의 기본 골자는 ‘경제 줄게, 평화 다오’식의 경제와 평화 교환 전략이다.‘비핵·개방·3000’ 공약은 북핵을 제거하고 북한의 경제를 수출 주도형으로 전환해 현재 500달러 수준인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10년 뒤 3000달러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이 후보 측은 ▲300만달러 이상 수출기업 100개 육성 ▲30만 산업인력 양성 ▲400억달러 상당 국제협력자금 조성 ▲신경의고속도로 건설 ▲인간다운 삶을 위한 복지지원 등 ‘5대 분야 패키지 지원’을 수단으로 제시한다. 한강 하구의 하중도에 여의도 10배 크기인 900만평 규모의 남북경제협력단지를 조성하겠다는 ‘나들섬’ 구상도 북한에 제시할 당근 중 하나이다. 남측의 기술·자본과 북측의 노동력이 결합된 신도시 형태로 해외이탈 중소기업도 유턴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후보의 ‘북한 부흥안’은 통일을 위해 북한 경제를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얘기다. 차영구 전 국방부 정책실장은 “이 후보의 대북 정책은 한국판 ‘마셜 플랜(2차대전 이후 유럽에 대한 미국의 원조 정책)’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비판-“남한에 흡수통일 되지 않으면 불가능”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이철기 교수는 “국민소득 3000달러 달성을 위해 필요한 북한의 연간 17% 고도성장의 현실성도 의문이지만, 더 큰 문제점은 남한식의 개발독재형 경제정책을 북한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것”이라면서 “이 구상은 북한이 남한에 흡수통일돼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지 않는 한 불가능해 보인다.”고 비판했다.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은 제시하면서도 북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구체적인 정책은 없다.”면서 “개발지상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고, 북한을 경제 식민지화하려 든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후보측 재반박-협상 테이블 유인책 이 후보 측은 “비핵·개방·3000 공약은 북한이 체제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협상 테이블에 나오도록 하는 당근 내지는 미끼”라면서 “북한에서도 공약 내용에 관심을 보이며 자세한 자료를 보내달라고 비공식 제안했다.”고 밝혔다. ■박근혜의 안보·통일 공약 이명박·박근혜 후보의 대북 정책은 기본적으로 ‘북핵 폐기 뒤 지원’이라는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 후보는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박 후보는 ‘북핵 폐기’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박 후보는 ▲평화 정착 ▲경제 통일(작은 통일) ▲정치 통일(큰 통일)이라는 ‘3단계 평화통일론’을 내세운다. 전제조건은 북핵 제거와 군사적 대립구조 해소다. 박 후보 측은 “정치적 통일에 성급하게 매달린다면 혼란을 초래하고 통일 비용만 커질 뿐”이라며 남북 경제공동체 건설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박 후보 측은 한반도 문제의 핵심은 북한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선군정치를 폐기하고 선민정치로 나와야 대화와 협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북한이 약속을 이행하면 보상하고, 합의를 깨면 불이익을 주는 ‘변화의 인센티브’를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6자회담 당사국들과의 철저한 공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 후보 측은 “시간을 끌 수록 북한의 핵보유는 기정사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비판-“당근과 채찍 조화 쉽지 않다” 차영구 전 국방부 정책실장은 “박 후보의 대북정책은 소신과 힘이 있어 보이지만, 북한이 그 뜻을 전혀 따라주지 않을 것이라는 과거의 사실이 이런 대북정책의 성공을 의심스럽게 한다.”면서 “당근과 채찍 정책을 조화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실제로 부시 행정부의 힘있는 초기 대북정책도 결국 북한의 핵무기 수준만 더 높여줬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는 “박 후보의 공약은 당근과 채찍론, 국제공조를 통한 대북 압박, 핵을 가진 북한과 공존 불가 등의 내용에 있어 ‘실패한 부시의 대북정책론’과 거의 같다.”면서 “이는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갔고, 부시가 결국 북·미 양자 대화와 확실한 인센티브 제시를 통해 2·13 합의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후보측 재반박-행동바탕 신뢰 구축해야 박 후보 측은 “2·13 합의의 핵심은 ‘행동 대 행동’의 원칙으로 국제사회가 북측의 행동을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신뢰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궁극적으로 북핵을 폐기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면서 “핵을 가진 북한과는 결코 평화공존할 수 없으며, 의구심이 남는 결과는 수용 불가”라고 밝혔다. ■홍준표·원희룡의 외교·통일 공약 홍준표·원희룡 후보는 햇볕정책의 수정을 주장하는 이명박·박근혜 후보와 달리 ‘햇볕정책 계승’을 외교·안보정책의 큰 틀로 잡고 있다. 홍 후보는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통한 통일’을 지향한다.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들어야 핵문제를 해결하고 통일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남북 경제공동체를 구성하고, 남북 상주대표부를 교환설치해 민족동질성 회복을 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 후보는 남북 정상회담 정례화, 남북 경협에 정부예산 1% 지원 등의 공약을 내세웠다. 북한이 핵폐기를 완료하면 북한 경제재건 프로그램을 가동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한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두 후보 모두 ‘실용주의적 노선’을 표방한다. 하지만 각론에서는 차이가 난다. 홍 후보는 대미 자주노선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원 후보는 국익을 실현하기 위해 오히려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념 중심의 친미-반미 논쟁을 털고 서로 이기는 ‘윈윈(Win-Win)’관계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후보 모두 동북아 중심의 다자적 외교관계가 강화돼야 한다는 데는 입장을 같이 한다. 눈에 띄는 공약은 홍 후보의 ‘무장 평화’와 원 후보의 ‘한민족 공동체 네트워크’공약이다. 홍 후보는 통일이 될 때까지 ‘무장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 후보의 ‘한민족 공동체 네트워크’는 재외국민의 온·오프라인 공동체를 강화하고, 약 300만명의 재외국민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겠다는 공약이다. 재외국민과 동포의 원어민교사 임용 확대도 약속했다. 두 후보 모두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구체성 부족’이다. 홍 후보의 ‘남북경제공동체’ 건설 공약은 추상적이다. 개성공단·금강산 관광특구 등 기존 정책과의 차별성도 모호하다. 원 후보도 핵 폐기 후의 북한경제 재건 프로그램의 방향이나 규모, 시행 시기 등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 특별취재팀 이창구 유지혜 김민희기자 window2@seoul.co.kr
  • [정종욱 월드포커스] 남북 정상회담이 역사에 남으려면/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정종욱 월드포커스] 남북 정상회담이 역사에 남으려면/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남북 정상회담이 18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선 이벤트니 한반도 평화 이벤트니 하면서 정치권이 떠들고 있지만 국민 반응은 대체로 차분한 편이다. 너무 오래 기다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1차 정상회담 이후 지난 7년 동안 남북관계에 실망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번 정상회담의 이면에 숨어 있을지도 모를 정치적 계산이나 ‘음모’에 대한 의구심 때문일까? 그러나 이에 대한 정답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끝내고 8월30일 돌아오는 대통령 일행을 맞이하는 서울의 분위기가, 평양의 분위기 못지않게 따뜻하고 고무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만남을 위한 만남이 갖는 상징성은 첫번으로 끝났다. 이 회담이 한반도에서 핵의 망령을 말끔히 걷어내고, 분단의 고통을 해소하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정전체제를 항구적 평화구도로 바꾸는 착실한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을 때 비로소 2차 남북 정상회담이 대한민국 역사의 값진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쉽지 않기 때문에 차분한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개인의 역할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승부사적 기질이 강한 대통령이나 통 큰 지도자도 마찬가지이다.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간다지만 이번 회담의 결과는 대부분 이미 결정되어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회담의 구조가 그렇고 회담에 나서는 양측의 계산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객관적 한계를 무시하고 무언가 만들어내기 위해 무리한 합의를 추진한다면 이는 상대가 파놓은 덫에 빠지는 결과가 되기 쉽다. 이번 회담에서 다루어질 큰 의제는 핵문제와 평화정착과 경제협력이다. 남측의 입장에서는 핵과 평화에, 북측의 입장에서는 경제협력에 더 비중을 두고 싶어할 것이다. 결국 핵과 평화가 경제와 절충해서 타협하는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이 많다. 민족의 공멸을 초래할 핵무기는 만들지도 않고 보유하지도 않겠다는 합의가 나오기를 기대해 보지만, 북측이 핵문제를 풀어갈 상대가 미국이라는 기존의 전략을 바꿀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9·19 성명과 2·13 합의를 존중하겠다는 분명한 약속을 받아내는 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가 될 것이다. 여기에 한반도 평화선언이라고 포장할 수 있는 불가침과 평화공존의 약속이 더해진다면 이번 회담은 역사적 사건이 될 수도 있다. 다음 정권의 몫이긴 하지만, 이런 합의가 나올 수 있다면 웬만한 규모의 대북지원 약속도 국민은 수용할 수 있다고 본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대한민국 국민이 갖고 있는 몇가지 작은 기대가 있다. 첫째 ‘우리 민족끼리’의 원칙이 국제공조를 배제하는 협의의 자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남측을 민족공조의 틀에 묶어둔 북한만의 일방적 국제공조는 더욱 안 될 것이다. 둘째 강한 힘보다 부드러운 힘의 중요성이다. 선군정치의 기치를 내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북한 동포들의 기본 생활은 보장되는 민생경제 정책을 고대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합의될 민족공영이 그런 점에서 새로운 출발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7년 전에 약속한 서울 답방을 지키지 못한 점에 대한 해명이다. 사과나 변명이 필요한 게 아니라 가까운 시일 내로 서울 답방을 실현시키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평양에서의 남북 정상회담은 이번으로 끝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뿐만 아니라 이런 국민적 기대가 허무한 실망으로 변한다면 차후의 남북관계는 그야말로 예측불능의 혼란 속에 빠질 것이라는 점을 꼭 기억해 주기 바란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 [홍순영 칼럼] 평화공존과 통일

    1.남북한은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는 통일되지 아니한다. 공산주의·일인평생독재의 나라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의 나라는 그 이념과 체제를 그대로 두고 통일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김일성은 1950년에 공산주의하의 통일을 위하여 남한을 침공한 것이었다. 이념과 체제가 다르면 서로 다른 나라이다. 남북한은 서로 다른 나라로서 통일을 노래하였지만 적대관계 속에서 휴전선을 가운데 둔 냉전상태에 있어왔다. 6·25전쟁 이후 남북한은 수없이 많은 도발, 침투, 경쟁을 겪었으며 1991년 유엔 회원국이 되어 공존의 외형을 갖추고 국제규범의 준수를 약속한바 있다. 남한의 역대정부는 끊임없이 남북평화공존 규범을 향하여 노력하여 왔다. 박정희 정부하의 이후락 평양 방문, 노태우 정부에서의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김영삼 정부때의 방북합의와 김일성 사망, 김대중 정부의 2000년 6·15 남북공동 선언 등의 사례가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 중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는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남북 간 평화공존의 거의 완벽한 규범으로 남아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남북 간의 접촉과 교류를 촉진하는 데 기여하였다. 2. 남북한 사이에 이뤄진 평화공존 규범의 내용을 성실히 실천한다는 내적 결심이 있었으면 남북 간에는 이미 상당한 교류와 협력이 이뤄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 시장을 개방하고 나라를 개방할 용의도, 준비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통일과 민족을 외침으로써 나라의 개방과 개혁을 늦추고 공산주의 주체사상을 오히려 남측에 전파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 근저에는 개방이 가져올 자유와 풍요의 바람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고민이 있다. 공존의 규범에 따라 남북한이 상호방문, 교역과 투자를 자유로이 한다는 경지에 이르면, 즉 남북 간에 경제공동체가 형성되면 남북은 정치적 통일을 크게 외칠 필요를 느끼지 아니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공존과 통일의 차이요, 간격이다. 퍼준다고 북한이 나라를 속히 개방하고 공존의 규범을 더욱 정직하게 지켜갈 것인가, 이 논쟁이 남한사회를 민족·통일주의자와 자유·공존주의자의 두 진영으로 나누어가고 있음을 본다. 북한은 핵개발을 공언하고 핵실험을 감행함으로써 공존보다는 핵공갈을 통한 남한제압을 추구하고 있다. 남한은 북한의 이러한 공존거부 신호에 당연히 긴장·경계하고 있다. 3. 시대의 흐름은 인간의 자유와 인권 그리고 시장경제의 힘찬 동력 쪽에 있다. 공산주의 소련이 해체되었고 중국이 시장경제 그리고 자유화의 길에 서있다.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북한은 그들의 핵무기를 폐기하게 되고 결국은 시장경제와 자유화의 길에 서게 될 것이다. 북한정권 내부에서 군사제일주의로부터 경제제일주의로 방향을 바꾸는 연착륙 개혁이 있을 것인지 아니면 정권교체의 혁명적 과정을 거쳐 시장경제·자유화의 길로 갈 것인지를 예측하기 어렵다. 남북한은 남북경제공동체의 오랜 기간을 가진 후에 통일한국을 향한 협의를 하게 될 것이다. 통일한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반 위에 서있을 것이다. 통일한국은 핵무기를 소유하지 아니하고 재래식 무기만으로 무장된 중간규모의 군대를 가질 것이다. 통일한국은 7000만의 인구와 두배로 커진 시장을 가지고 동부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크게 기여하는 중간국가가 될 것이다. 그동안에 남한은 안으로는 남북의 경제발전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메우고 북한 주민들에게 시장경제의 원칙과 자유민주주의의 가치관을 가르치는 엄숙한 과제를 가지고 있다. 밖으로는 미국과 중국 등 열강을 향하여 통일한국의 위상을 선포하고 지지·지원을 구하여야 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에 관하여 우리는 지금 생각하고 계획하고 실천하여야 한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통일한국을 내다보고 거기에 투자하여야 한다. 전 외교부·통일부 장관
  • [국방硏 한반도 안보전략 보고서] “군비감축은 남북연합 단계에 추진”

    [국방硏 한반도 안보전략 보고서] “군비감축은 남북연합 단계에 추진”

    서울신문이 단독 입수한 국방연구원의 ‘한반도 안보상황 진전 대비 군사분야 추진전략’이란 보고서는 북한의 핵폐기 이행조치와 연계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한다는 기조 아래 ‘4단계 로드맵’을 제시한 것이 특징이다. 핵 폐기 과정을 세부단계로 쪼개 협상력을 높이려는 북한의 ‘분할 전술’에 맞선 일종의 ‘역(逆)분할 전술’인 셈이다. 구체적으로 보고서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준비단계(현재∼종전선언) ▲진입단계(종전선언∼평화협정) ▲전환단계(평화협정∼평화공존) ▲정착단계(평화공존∼남북연합)로 나눠 제시하고 있다. ●종전선언, 미국에 ‘선수’치기? 준비단계는 북한이 2·13합의 이행을 완료하기로 돼 있는 2007년 말까지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주도하기 위해 우리가 먼저 종전선언을 제안해야 한다는 것도 이 시기의 전략이다. 보고서가 우려하는 것은 미국이 먼저 종전선언을 제안함으로써 논의의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가는 상황이다. 평화프로세스의 주역이 미국과 북한이 되고 한국은 들러리에 머무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6년 하노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당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종전선언과 평화조약을 체결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북한도 1996년 외무성 담화를 통해 평화협정 체결 전까지 정전협정을 대신해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잠정협정’체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보고서는 “미국이 북한의 2·13합의 이행을 유도하기 위해 먼저 제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만약 우리측의 종전선언 제안에 북한과 미·중이 화답한다면 다음 수순은 남북 정상회담이나 남·북·미·중 4자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보고서의 관측이다. ●평화협정 ‘2+2´ 형태 제시 종전선언 이후 체결될 평화협정에 대해서는 남북이 주체가 되고 미·중이 보장하는 ‘2+2’형태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가 완료된 뒤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북핵폐기가 가시화되는 단계에서 비핵화와 냉전구조 해체를 촉진하기 위한 수단으로 협정이 체결될 가능성도 있다.”며 평화협정 역시 우리 정부 주도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평화협정 추진단계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유엔사령부의 기능전환 문제다. 일단 종전선언에 서명하게 되면 유엔사의 존폐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엔사는 1950년 한국전쟁 직후 유엔 안보리 결의로 탄생,1953년 정전협정 체결 땐 참전 16개국을 대표해 유엔군 사령관이 서명함으로써 정전협정의 유지·관리를 책임지게 됐다. 정전협정을 대체해 평화협정이 맺어지면 유엔사는 창설목적을 달성하고 해체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보고서는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북한에 적대적인 기능보다는 종전선언 이행을 감시하기 위한 국제적 감시기구로 기능을 전환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문제는 평화협정 체결 이후에도 유엔사를 존치시키려는 구상이 함께 담겨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유엔사령부가 해체된다면 새로운 유엔결의 없이는 (유사시)국제사회의 군사지원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된다.”면서 “유엔 결의를 통해 유엔사를 한반도 국제평화보장기구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북한이 유엔사를 정전체제와 북·미 적대관계의 상징으로 간주하고 즉각 해체를 요구해온 사실을 고려할 때 유엔사 문제가 평화협정 체결의 발목을 잡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더라도 군비증강 기조를 유지한다는 내용도 주목된다. 보고서는 “평화공존기에도 한반도 안정을 위한 군비증강과 현존장비 정예화 등의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며 실질적인 군축을 남북 연합군사령부가 창설되는 남북연합 추진 단계로 미뤘다. ●군비증강 기조는 유지 논란이 예고되는 부분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사이인 ‘진입단계’의 군사 전략이다.“북한을 제압하고 군비통제 협상 테이블로 유도하기 위해 군사력 증강을 지속 추진한다.”는 내용은 북한의 강한 반발을 부를 수 있다. 평화협정 체결의 2대 난제인 유엔사와 군축문제에 있어 군과 국방부의 보수적 기조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종전선언 이후에도 평화협정 체결을 둘러싸고 지루한 밀고당기기가 이어질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홍순영 칼럼] 나라의 성장과 발전

    [홍순영 칼럼] 나라의 성장과 발전

    1945년 광복 이후 60여년간의 나라의 성장과 발전을 회고하여 본다. 이승만 시대에 이룩한 자유민주주의 가치관에 입각한 정부수립 그리고 북한의 남침에 저항하여 나라의 자유를 지킨 국가정체성 확립의 시대. 이승만은 그때에 이미 스탈린 소련이 주도하는 국제공산주의의 팽창정책을 예견하였으니 우리는 역사를 내다보고 자유민주주의의 가치관을 수호한 훌륭한 건국의 지도자를 가졌었다. 그후 박정희 시대의 경제개발과 새마을운동. 박정희는 한국을 수천년의 빈곤으로부터 구출하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기백을 가지고 동아시아의 네 마리 용의 등장을 선도한 선각자이었다. 그 이후 문민대통령 시대의 민주화운동과 민주주의 제도와 관행의 정착, 그리고 현재의 노무현 정부에 의한 세계화 흐름에의 동참, 미국과의 FTA 체결로 세계화의 큰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이것이 광복 후 나라의 성장과 발전의 큰 4단계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시대가 다 큰 혼란과 동요를 수반하면서 그러나 줄기차고 분명하게 건국, 경제입국, 민주화, 세계화의 큰 단계적 성취를 이룩하여 왔다. 지난 60여년의 성장과정에 있었던 혼란과 동요 속에서 어느 편에 서 있었든지 간에 많은 희생과 희생자가 있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어느 지도자에게도 그를 매도하고 거부해야 할 압도적 이유가 있다고 판단되지는 아니한다. 이러한 모든 성장과정이 역사의 큰 흐름과 맞았기 때문이다. 나라가 오늘날의 발전수준에 와있다는 점을 평가하고 싶다. 또 한가지 이러한 발전의 4단계가 모두 한·미 맹방관계를 그 기반으로 하고 가능하였다는 점이다. 한·미관계는 큰 틀로 보면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지향한다는 가치관의 공유로 인하여 확고하게 유지·강화되어 왔다는 점을 인정하여야 한다.6·25 전쟁 중에 유엔군의 전사자가 5만여명이나 있었다는 점, 그리고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 있어서도 미국의 권장과 ‘압력’이 일관되게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음 다섯번째 나라의 발전단계는 무엇인가. 그것은 남북간의 평화공존 그리고 자유와 풍요의 북한땅에의 확산이다. 평화공존은 남북간에 투명한 협력과 교류를 증진하고 그리고 종당에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이라는 가치관의 공유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 기간의 길이와 절차를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다섯번째의 발전은 일본의 지배에서 독립한 것에 비교할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다. 자유통일한국의 시작이다. 이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이것이 오늘의 나라의 과제이다. 자유통일한국의 성취를 위한 기초작업은 우리가 표방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관을 거듭 확인하고 강화하는 일이다. 평화공존의 기준과 목표가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증진함에 있다는 엄숙한 진리, 그래서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이 자주나 통일보다 우선하는 가치라는 점을 재확인하는 일이다. 미국은 다만 군사력이나 과학기술력으로만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자유정신을 건국의 기본이념으로 삼고 있고 링컨의 노예해방, 마틴 루터 킹의 흑인 인권운동을 선도한 나라이다. 개인의 창의와 자유를 존중하는 시장경제를 선도하는 나라이다. 러시아가 주도해온 공산주의 국가들은 이제 모두 자유와 인권의 큰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자유화·세계화로의 큰 역사적 행보를 우리는 북한에 보여주어야 한다. 북한에 간청하거나 협박하지 아니하고 역사의 흐름을 가르치고 보게 하는 당당한 지도력을 발휘하여야 한다(leadership by example). 통일한국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아니하는 평화지향의 자유민주주의의 나라임을 거듭 천명하여야 한다. 통일한국의 날을 앞당기는 일에 조급하지 아니하다고 선언하여야 한다. 통일은 한국의 과제이면서 국제공동체의 과제이다. 우리나라는 이 과제를 과거의 성장과 발전을 기반으로 하여 분명히 여유있게 달성할 것이다. 이 과제가 다음 정부, 아니면 그 다음 정부에서 성취되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홍순영 전 외교부·통일부 장관
  • [서울광장] 인권위가 北인권 챙겨야 할 이유/황성기 논설위원

    [서울광장] 인권위가 北인권 챙겨야 할 이유/황성기 논설위원

    보수 진영의 전유물로 인식돼 온 북한 인권문제가 진보 진영에서 조심스럽게 거론되기 시작한 것을 보니 세상이 좀 변했다 싶다. 진보 진영은 남북대화가 진행 중인 한반도의 특수 상황을 들어 북한 인권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를 극력 꺼려왔다. 보수쪽의 집요한 북인권 공세에도 정부와 암묵적인 공동 보조를 취하며 꿋꿋이 버텨온 이들이다. 평화공존이라는 대명제를 위해 북인권을 하위개념으로 두고 금칙어처럼 지켜온 진보쪽조차 비켜갈 수 없게 한 것은 북한의 핵실험과 정부의 유엔 대북인권결의안 찬성 결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좁혀 말하면 4차례의 유엔 결의안 투표에 불참 혹은 기권해 온 정부가 찬성으로 돌아선 것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북인권의 지형을 확장했다. 진보 진영의 좌장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23일 ‘한반도식 통일과 북의 핵실험’이라는 특별강연회에서 눈길을 끄는 언급을 했다.“민주지향적 시민사회에서 북한을 판단하는 이중잣대가 심각하게 존재하지만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북 인권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어느 토론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였다. 백 교수는 “누구나 북한의 인권을 얘기하지만 역할분담을 해야 한다.”면서 “북한과 상대해야 하는 통일부 장관이 인권문제를 제기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인권을 얘기해야 할 시점이라면 북한 정부를 상대로 하는 정부가 나서기는 껄끄러우니 다른 주체가 나서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 주체가 남북교류를 수행하고 있는 진보 단체인지, 제3의 기구인지는 분명치 않다. 반전·반핵을 외쳐온 평화통일 세력이 북한의 핵실험 이후 침묵하면서 보수 진영에 빼앗긴 반핵을 되찾아 오기 위해서라도 핵폐기를 북측에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고 백 교수는 강조했다. 그 연장선상에 북인권도 놓여있는 듯하다. 금주 초 국가인권위원회가 전원위원회를 열어 북한인권 초안을 논의했다. 안경환 위원장의 취임 일성대로라면 인권위는 연내로 북인권에 대해 의견을 표명한다. 정부의 유엔 대북 인권결의안 찬성이 결정되기 전에 내놓았더라면 훨씬 수월했을 터이다. 인권위가 정부에 선수를 빼앗긴 꼴이 됐다. 이제 인권위 입장 표명은 유엔 결의안이라는 가이드라인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가 관심의 초점이다. 그러나 지난 회의를 거치면서 “기대할 것이 없다.”“실망스러운 수준”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인권위는 ‘대한민국 국민과 대한민국의 영역 안에 있는 외국인에 대하여 적용한다.’는 국가인권위법 제4조를 들어 북한 내 인권침해를 조사 대상에서 제외시켰다고 한다. 국군포로, 납북피해자, 이산가족, 탈북자 같은 대상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북 인권유린이 북녘땅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에서 권고는 남한땅을 넘어서야 옳다. 그래야 정부의 유엔 결의안 찬성과도 정합성이 있고 북인권의 실질적인 개선 방안을 짜는 데도 안팎으로 떳떳하다. 중단된 인도지원을 재개하는 명분도 된다. 격론을 벌인 그날 회의에서 안경환 위원장은 의견 표명에 관해 직접 챙기기로 했다고 한다. 오는 11일에는 전원위원회 최종의결이 예정돼 있다. 북인권을 통일부가 얘기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더라도 비교적 자유로운 입장에 있는 인권위는 말 못할 이유가 없다. 안 위원장이 어떤 지혜를 짜낼지 궁금하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 Out] 전직 대통령의 품위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 Out] 전직 대통령의 품위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현역 정치인 못지않은 왕성한 활동력을 과시하고 있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역시 현역 시절과 별반 차이가 없다. 어제는 부산을 찾아 국제 교통·물류 박람회(ESCAP)에서 기조연설을 했고,14일에는 충남 공주를 방문해 ‘민족의 운명과 우리 교육’을 주제로 특강할 예정이라고 한다.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문을 무색케 할 정도다. 여권의 정계개편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DJ는 아예 현실 정치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달 고도의 정치적 발언(여당의 비극은 분당에서 비롯됐다)과 정치적 고향인 목포 방문(28∼29일)을 통해 현실 정치 참여의 사전 정지작업을 끝낸 DJ는 현직 대통령과의 동교동 사저 회동이란 헌정 사상 초유의 이벤트로 정가, 특히 여권을 확 뒤집어 놓았다. 자연히 정계개편의 주도권은 DJ에게 쏠릴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정계개편 동력은 김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나올 것”이라는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의 발언은 이를 여실히 방증한다. 김 의원은 여야를 넘나드는 다양한 인맥으로 정치권 기류 읽기에 능한 정치인이다. 그렇다면 DJ는 왜 전직 대통령이란 울타리를 뛰어넘어 현실 정치에 참여하려는 것일까. 우선 북한 핵실험 이후 존폐 위기에 처한 햇볕정책의 존속이 1차적 과제일 것이다. 만약 햇볕정책이 용도폐기될 경우 ‘남북 평화공존 시대’를 연 자신의 업적이 크게 훼손되는 것은 불문가지다. 햇볕정책의 과실인 남북정상회담으로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DJ다. 이는 곧 정권 재창출 논리의 근거가 된다. 한나라당으로 정권이 바뀔 경우 햇볕정책은 상당부분 수정되거나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그에 따른 공과(功過)도 심층 해부될 게 뻔하다. 보수진영으로의 정권 교체만은 막아야 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해와도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다음으론 자신이 결단코 지켜내야 할 햇볕정책의 또다른 과실이 있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국민의 정부 당시 대북 지원의 세세한 항목과 곁가지는 ‘통치행위’라는 이유로 완전히 드러나 있지 않다.2007년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돼 이 대목까지 낱낱이 까발려질 경우 그 후폭풍은 매머드급일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것이 도덕성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DJ로서도 이런 것들을 지켜내야만 하는 절박성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아직도 여전한 호남의 절대적 영향력을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국민들은 “대통령까지 지낸 분이 현실 정치에 지나치게 발을 담그고 있다.”며 고개를 갸웃거린다.‘언제까지 DJ인가.’에 다름아니다. 더욱이 상당수 국민들은 내일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전직 대통령은 국가 원로 중에 원로다. 현실 정치 개입보다는 국민통합과 민초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할 일이 많을 것이다. 그것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품위’를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전직 대통령이 ‘상왕(上王)’ 역할을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여전히 ‘DJ의 우산’ 속에 안주하려는 정치인들도 문제다.DJ를 극복하지 않고는 더 나은 발전이 없다는 점을 정치권의 구성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jthan@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북한실상을 잘 알 수 있도록/심재철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북한은 대한민국의 일부인가 아니면 독립된 이웃국가인가? 최근 국가인권위원장에 취임한 안경환 서울대 법대 교수에 따르면, 국내법상으로 북한의 정체성은 우리 일부일 수도, 또는 아닐 수도 있다는 양극단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일반인에겐 일본보다 더 가깝고도 먼 나라가 북한이다. 광복 이후 우리 삶에 끊임없이 큰 영향을 미쳐왔지만 일반인이 북한 사람을 실제로 만날 기회는 거의 없다. 필자도 북한사람을 직접 본 적은 두 번에 지나지 않는다. 첫번째는 15년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세계커뮤니케이션학회에서 북한 외교관을 만났었다. 우리 외교관처럼 말쑥했으며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두번째는 5년전인가 중국을 거쳐 백두산에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본 50대 북한 아주머니였다. 북-중 경계선을 넘어온 그녀의 모습은 남루했으며, 영양실조에 걸린 듯 몸이 마르고 파리했다. 분단 이후 우리는 평화공존을 위한 대규모 남북한 정치 이벤트와 일촉즉발 전면전을 연상케 하는 북한 도발행위를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접해왔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필자에겐 북한하면 이들 두 사람의 상반된 모습이 떠오른다. 북한이 대한민국 일부인지, 아니면 이웃 독립국가인지 정체성 논쟁은 계속되겠지만, 최근 북한 핵실험 사태를 보면서 이제 북한 체제가 무너질 날이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심을 하게 됐다. 핵폭탄을 가질 수도 없고, 가져서도 안 되며, 가질 필요도 없는 북한이 기어이 그것을 가졌다니 과연 그 체제가 얼마나 더 존속할 수 있을까. 서울신문을 포함해 우리 언론은 북한을 크게 두가지 뉴스 프레임을 가지고 보도해왔다. 첫번째는 “공산주의를 이긴다.”는 승공식 프레임이다. 점심은 평양,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는 북진통일식 보도가 여기에 해당된다. 두번째는 “공산주의를 막아내야 한다.”는 반공식 프레임이다.6·25를 거치면서 북한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며, 이번 핵실험 보도에서 보듯 여전히 레드 콤플렉스가 남아있다. 반공이나 승공식 보도프레임은 북한이 우리 일부라는 가정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을 독립된 정치체제로 간주하면서 미국처럼 북한을 ‘악의 축’ 혹은 ‘햇볕정책’ 대상으로 보도해 왔다. 최근 ‘일심회’ 사건보도에서 보듯 북한관련 이슈는 여전히 혼란스럽게 보도되며, 독자는 북한 정체가 무엇인지 헷갈린다. 안경환 위원장 주장처럼, 북한은 가난한 이웃인 동시에 위력적인 무기 체제를 갖춘 ‘중간적 존재’로 보는 게 현실적이다. 햇볕정책이나 포용정책은 북한체제 붕괴를 연착륙시킨다는 발상에서 나왔다. 그런 점에선 오히려 승공 뉴스프레임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최근 서울신문에서 보듯, 북한 핵실험 위협에 대해선 지금도 반공 뉴스프레임으로 보도한다. 앞으로는 북한체제가 붕괴됐을 때를 가상해 북한 주민을 어떻게 자본주의 체제에 흡수 통합, 적응시켜 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제3의 뉴스보도 프레임을 준비해야겠다. 북한주민이 밑으로부터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이 일상생활에서 어떤 사고를 하며,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보다 생생한 뉴스를 좀 더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북한관련 보도에서 심각하게 생략된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서울신문이 야심차게 꾸려나가는 자치행정 지면에 북한지역을 포함하면 어떨까. 기존 북한기사와는 달리 발로 뛰면서 취재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기사를 기대해본다. 또한 정치권력에 의해 북한주민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한다고 한다. 이에 대한 감시기능을 높여야 하겠다. 국내 보안법 위반사건 보도에서도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무죄원칙을 적용해 피의자 인권을 존중해야 마땅하다. 심재철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 [염주영 칼럼] 실용의 눈으로 본 작통권 논란

    [염주영 칼럼] 실용의 눈으로 본 작통권 논란

    또 하나의 이념 전쟁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보수진영이 총공세를 펼치는 중이다. 주제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반대다. 지난 두주 사이에만 전시작통권 환수에 반대하는 집단성명이 8건이나 나왔다. 보수진영의 연쇄 집단성명은 안보불안심리를 가중시킴으로써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일 새벽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도 염두에 둔 것 같다. 그런 가운데 보수진영은 그제 500만명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일부 단체들은 대규모 집회도 계획중이라고 한다. 이 문제를 둘러싼 국론분열은 점차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국가안보문제를 이처럼 집단적인 서명운동과 집회를 통한 세 과시나 여론몰이 식으로 접근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어디서부터 일이 이처럼 꼬이게 된 것일까.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격한 이념전쟁의 포로가 됐다. 이념적으로 조금이라도 민감한 주제가 던져지기만 하면 어김 없이 한바탕 난리가 난다. 국민적 중지를 모아 차분하게 대응해야 할 국가적 중대사안들이 너무 쉽게 극단화된 이념과 정치와 감정에 오염되곤 한다. 세계는 오래 전에 이념대결의 시대를 마감하고 실리추구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구시대의 유물인 낡은 이념틀 안에 갇혀 있다. 그래서 보수가 자주를 말하면 사기꾼이 되고, 진보가 자주를 말하면 빨갱이가 된다. 자주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지금 우리 사회를 심각한 국론분열로 몰아가고 있는 전시작통권 논란도 그 뿌리를 파보면 이념 문제와 연결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자주노선’을 주장한다. 보수진영은 그의 ‘자주노선’을 의혹과 불신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를 ‘친북세력’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자주는 반미이고 친북이라는 등식의 이념틀을 고수하고 있다. 이 때의 친북은 북한과의 평화공존을 의미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북의 앞잡이로 남의 체제전복을 기도하는 세력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진보진영의 이념틀도 문제다. 노 대통령이 ‘자주노선’을 너무 성급하게, 그리고 지나치게 강조한 것이 화근이다. 자주의 이념틀을 제거하면 전시작통권 환수 문제는 노 대통령 스스로 언급했듯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상적인 상황으로 돌려놓는 것’에 불과하다. 보수나 진보가 모두 그 이념틀을 벗어 버린다면 논란의 매듭이 쉽게 풀릴 수도 있지 않을까. 온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작통권 환수 문제도 이념을 걷어내고 실용의 눈으로 본다면 논란의 쟁점은 명료해진다. 첫째, 전시작통권을 환수하면 미군은 철수하는가. 둘째,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 한·미동맹도 해체되는가. 셋째, 안보공백이 생기는가. 넷째, 안보공백이 생긴다면 그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이 가운데 앞의 두 쟁점은 이미 답이 나와 있다. 작통권을 환수해도 미군은 철수하지 않는다. 한·미동맹도 해체되지 않는다.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정치공세가 아니라면 기우일 것이다. 마지막 두 쟁점이 문제다. 여기에 국민적 중지를 모아야 한다. 안보환경은 변화한다. 국가의 안보전략도 그에 따라 능동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미국의 전략이 바뀌면 한국의 전략도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한·미간에는 이같은 인식의 공감대 아래 미래 한·미동맹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작통권 환수문제도 그 일환이다. 논설실장 yeomjs@seoul.co.kr
  • 北 “美금융제재 모든 대응 강구”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26일 담화를 통해 “부시 행정부가 금융제재 확대를 통한 압력 도수를 높이고 있는 조건에서 우리는 사상과 제도, 자주권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대응조치를 다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북측은 대응조치의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핵실험을 준비 중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관련 여부가 주목된다. 그는 “미 재무성은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나라에 차관을 파견해 우리와의 일체 금융거래 중지를 호소하는 한편 동남아시아 나라와 몽골, 러시아 등 10여개 나라 은행들에 개설된 우리 계좌에 대한 추적놀음을 벌이고 있다.”며 “우리의 대외경제 거래를 차단해 보려는 데 목적을 둔 것으로 대화 상대방의 자주권과 존엄을 침해하는 날강도적 행위”라고 비난했다. 그는 6자회담과 관련,“2005년 9월19일 6자회담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핵계획 포기를, 미국은 평화공존을 공약했고 이 합의가 이행되면 우리가 얻을 것이 더 많으므로 6자회담을 더 하고 싶다.”며 “다만 미국이 회담에 나갈 수 없게 금융제재를 가하고 있는 것이 결정적인 장애”라고 지적했다.북한 당국이 9.19공동성명 이행시 자신들이 얻을 것이 더 많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한국인인 나는…태극이요… 무궁화요… DMZ이다

    ● 고종이 태극 고안…본지 특종 세계 모든 나라가 자국을 상징하는 국기를 갖고 있으나, 우리나라처럼 그 상징에 우주만물과 철학을 담고 있는 예는 찾기 힘들다. 바로 태극(太極)과 괘(卦)가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청홍으로 이루어진 태극은 음(청색)과 양(홍색)의 상호 작용에 우주만물이 생성·발전하는 대자연의 영원한 진리를 형상화한 것으로 창조와 발전을 의미한다. 태극은 우주자연의 생성근본원리이며, 창조적 우주관을 담고 있다. 이러한 태극기는 1882년 8월9일 박영효(朴泳孝)가 특명전권대사 겸 수신사로 일본에 갈 때, 배 위에서 만들었고, 이를 8월14일 고베의 숙소 니시무라야에 게양한 것이 효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97년 10월9일 서울신문사에서 발행한 ‘뉴스피플’ 제288호에 실린 특종 기사에 따르면, 태극기를 직접 도안하고 색깔까지 지정한 인물은 고종(高宗) 임금이라고 한다. 박영효는 고종의 지시에 따라 일본으로 가면서 단순히 그림만 그리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태극 문양을 사용한 연원은 매우 오래 되었다. 우선 선사시대 때의 고령과 울산 암각화에서도 발견되며, 고구려의 고분벽화 사신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울러 682년(신라 신문왕 2년) 경주 감포에 세운 감은사의 기단석에도 태극 문양이 뚜렷이 새겨져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태극 문양은 종묘와 궁궐 및 왕릉, 사찰 등 도처에서 다양하게 발견된다. 특히 서울대 규장각도서관에 소장된 어기(御旗) 채색도를 보면, 중앙에 4개의 동심원을 수직으로 나눈 태극과 그 주위에 8괘를 배치한 그림을 조선시대의 임금을 표상하는 깃발로 사용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굳이 의미를 달자면 태극기의 시조쯤 되지 않나 생각된다. 2002년에도 그랬지만, 석 달 전 밤잠을 설치게 했던 2006년 월드컵 때에도 변함없이 태극 문양은 붉은색과 함께 하나의 패션이 되었다. 상하와 좌우가 융합하지 못하고 커다란 장막에 꽉 막힌 듯한 세상, 태극 창제의 정신으로 극복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여겨진다. ● 산해경에도 ‘훈화초가 아침에 피고… ’ 기록 애국가를 보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 후렴의 첫 구절을 장식하고 있다. 매사 따지기를 좋아하는 혹자는 이 구절이 잘못됐다고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노랫말처럼 무궁화가 우리 강산 삼천리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지 못한 까닭이겠다. 그런데 옛 기록들을 보면 한반도가 무궁화 자생지였고, 한반도의 특징으로 인식될 만큼 도처에 만발했음을 알려준다. 무궁화가 한반도와 관련된 사실을 알려주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의 ‘산해경(山海經)’이다. 이 책의 ‘해외동경’편에 “군자의 나라가 북방에 있는데…훈화초가 아침에 피고 저녁에는 시든다.”고 하였다. 북방에 있는 군자의 나라는 한반도이며, 훈화초(薰花草)는 무궁화를 일컫는 중국의 옛 명칭이라 한다. 또한 신라의 효공왕이 897년 7월 당나라의 광종에게 국서를 보낸 일이 있는데 그 국서 가운데 신라를 자칭하여 근화향(槿花鄕)이라고 한 사실도 확인된다.‘근화’ 또한 무궁화의 또다른 이름이다. ● 한국인 뿌리 밝혀주는 단서 역사상징 가운데 선사시대의 것은 빗살무늬토기와 고인돌을 우리의 민족문화상징으로 삼기에 가장 적합할 듯하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출토·발굴된 수많은 선사 유물과 유적 중 이들만큼은 한반도가 주인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 우리나라 전역에서 만들어 쓴 토기에 대한 통칭으로, 한국인의 뿌리를 밝혀주는 단서가 된다는 데서 그 중요성을 더한다. 빗살무늬토기 발견 분포도를 보면, 바이칼호 일대가 빗살무늬토기 문화의 중심지이며 빗살무늬토기는 여기로부터 동으로는 만주를 거쳐 한반도까지, 서로는 볼가강 유역을 거쳐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반도까지 전해졌다는 것이 세계 고대사 학계의 정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고대 문명의 발상지를 바이칼호 일대로 보는 근거가 된다. 발굴 현장에서 깨진 토기 조각들이 출토되고, 그 파편들을 하나하나 정성껏 맞추어 원래의 형체를 되살린 빗살무늬토기가 이처럼 장구한 민족의 비밀을 풀어주는 열쇠가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파편 어느 것 하나조차 조상의 신주 모시듯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민족상징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사회구조와 문화를 단적으로 대변해 주는 거석(巨石) 문화유산이다. 한자로 지석묘(支石墓:일본), 석붕(石棚:중국)으로 표현되는 고인돌은 아시아를 비롯하여 유럽·아프리카 등에서 약 5만 5000여 기가 확인되는데, 그 중 약 3만여 기가 우리나라에 분포하고 있어 우리나라가 전세계 고인돌의 중심국가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말해준다. 이처럼 한반도에 그 분포가 집중되어 있는 고인돌의 기원에 관해서는 동남아시아 또는 중국 동북부지역에서 바다를 통해 전해졌다는 전파설과 함께, 주변지역과 관련 없이 자체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자생설이 맞서고 있다. 자생설은 한반도가 동남아시아나 중국 동북부지역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고인돌이 많다는 점, 그리고 축조 연대가 이들 지역의 것보다 앞선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고인돌은 선돌(立石)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거석문화의 요체이며, 조상들의 정신세계가 구현된 귀중한 민족상징이다. 이에 2000년 11월 29일 호주 케언스에서 열린 제24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우리나라의 고창·화순·강화 등 3개 지역의 고인돌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 민족의 상처…지금은 희귀동물 서식지로 비무장지대(DMZ)와 길거리응원은 어찌 보면 우리 민족의 상처와 냄비 기질을, 또 어찌 보면 우리민족의 기회와 가능성을 지니고 있어 마치 야누스와 같다고 하겠다. 비무장지대는 민족의 아픔인 ‘한국전쟁’에 직접 참여한 유엔군과 북한·중공군이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에 합의하면서 한반도 중앙의 동서 248㎞ 길이를 군사분계선으로 삼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만 본다면 비무장지대는 우리 민족이 입은 커다란 상처덩어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이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자유로운 출입이 막힌 결과 비무장지대는 희귀동식물들의 주요서식지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생태를 조사하기 위한 남북학술조사단의 구성과 활동이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비무장지대는 민족분단의 아픔은 물론, 자연 생태의 보고(寶庫)와 민족화합, 평화공존의 현장성을 함께 간직하고 있는 주요 문화상징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 문화국민으로서 성숙된 질서의식 표출 2002년뿐 아니라 2006년에도 세계를 놀라게 한 길거리응원은 남녀노소가 너나할 것 없이 공간과 시간에서 동질화되고 균일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문화행위였다. 서울 광화문과 시청을 비롯하여, 부산·대구·광주·인천·대전·울산·전주·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적게는 수만명에서 많게는 수십만명이 ‘애국’으로 하나 되어 우리 축구대표팀을 함성과 율동으로 응원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길거리응원은 오직 신기록 수립과 문화국민으로서의 성숙된 질서의식만이 관심사였지 이를 가능케 한 ‘변화’에 대한 인식은 가려져 있었던 듯하다. 예전 같으면 수십만명이 한 곳에 모이는 사건(?)이 어찌 가능했을까. 우리의 기억에는 ‘집시법’이라는 반(反)민주적 잣대를 들이댄 강제해산만이 남아 있다. 한국 정치사에서 이보다 더 큰 변화는 아마도 찾기 힘들지 않나 생각된다. 길거리응원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또 내후년, 또 그 다음해에도 계속될 것이다. 이에 더해 자부심을 갖게 되는 점은 이번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나타났듯이 우리의 길거리응원이 세계 각지에서 벤치마킹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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