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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해찬 대표, JSA 현장 최고위서 “북한 돼지열병 철저히 대비”

    이해찬 대표, JSA 현장 최고위서 “북한 돼지열병 철저히 대비”

    31일 판문점에서 현장 최고위원 회의를 개최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북한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데 대해 “우리 군과 통일부가 우리 쪽으로 전파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하고 우리가 지원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북과도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판문점 남측지역 자유의집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백신이 없기 때문에 발병하면 100% 죽게 되는 아주 어려운 병이라고 들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는 “어제 북한 자강도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돼 WHO(세계보건기구)에 공식 보고됐다고 한다”며 “모두 99마리가 발병했는데 이 중 77마리는 폐사했고, 나머지는 살처분했다고 한다”고 부연했다. 그는 판문점 방문에 대해 “평양도 가고 개성공단까지 여러 번 가봤는데 판문점은 저도 처음 와본다”며 “4·27 남북정상회담 기념식수, 도보다리를 쭉 둘러봤는데 감회가 새롭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해 4월 27일 이곳 판문점에서 시작된 한반도 평화는 70년 분단 역사를 뒤로하고 새로운 평화공존의 시대를 열어가기 시작했다”며 “현재 북미대화 재개를 위한 모멘텀을 찾는 중이지만, 평양공동선언 등을 통한 협의가 차분히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요즘 판문점에 하루 400명쯤 방문한다고 하고, 앞으로 유엔사령부와 협의해 2∼3배 늘려 많은 사람이 방문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들었다”며 “민간 개방은 국민이 진전된 평화를 체감하고, 평화의 중요성을 전하고, 평화를 견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영욕의 71년 북러 관계… 김정은·푸틴 다시 꽃 피울까

    영욕의 71년 북러 관계… 김정은·푸틴 다시 꽃 피울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이 이번 달 말 러시아에서 열릴 예정이다. 두 정상이 70여년 간 부침을 거듭한 북러 관계를 전면 복원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북한은 1948년 9월 정권 수립 후 10월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과 국교를 수립했다. 김일성 주석은 이오시프 스탈린 공산당 서기장의 지원을 받아 1950년 한국전쟁을 일으키면서 북한과 소련은 혈맹 관계를 맺게 된다. 1953년 7월 정전되기 4개월 전 스탈린 서기장이 사망하고 니키타 흐루쇼프가 집권하면서 북소 관계는 악화된다. 흐루쇼프 서기장은 1956년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비판하고 서구와의 평화공존정책을 추진하자 북한은 흐루쇼프 서기장을 ‘수정주의자’라고 비판하면서 두 국가는 갈등을 빚었다. 그러면서도 북한과 소련은 1961년 자동군사개입 조항이 포함된 ‘조·소 우호 협력 및 호상 원조 조약’(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해 혈맹 관계의 명맥은 유지했다. 1964년 흐루쇼프 서기장이 실각하고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집권하자 북소 관계는 개선되는 듯했다. 두 국가는 1965년 군사원조협정을 체결했고, 이듬해 김일성 주석과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정상회담을 했다. 1967년에는 경제기술협력협정 체결, 경제공동위원회 설치 등 관계 개선 조치가 잇따랐다. 하지만 1960년대 소련과 중국이 국경 분쟁을 빚고 1970년대 들어와 중국이 미국과 관계 개선에 나서면서 북한은 ‘자주노선’을 견지하며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폈다. 1984년 콘스탄틴 체르넨코가 서기장에 오르고 서구 강경노선을 견지하자 북한과 소련의 관계가 강화된다. 1984년 김일성 주석은 23년 만에 모스크바를 방문해 정상회담을 했고, 이듬해 양국은 군사지원협정과 경제협력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1985년 집권하고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자 북소 관계는 냉각된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1986년 블라디보스토크 선언과 1988년 크라스노야르스크 선언을 통해 ‘신아시아주의’ 노선을 발표하며 30여 년 간 국경분쟁을 벌인 중국은 물론 자본주의 진영에 속한 한국과도 관계 개선에 나선다. 소련은 1988년 공산당 정치국회의에서 한국과 소련의 수교를 비공식적으로 결정했다. 이를 설명하고자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을 북한에 파견하지만, 김영남 당시 외교부장은 “달러를 위해 사회주의를 포기하는 행위”라며 비난했다. 그럼에도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1990년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그해 9월 한국과 소련은 수교를 맺으면서 북소 관계는 해체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가 들어선 이후에도 북러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러시아는 1992년 북한에 1961년 체결된 상호원조조약 중 자동군사개입 조항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으나 북한이 협상을 거부하면서 조약 만료 기한인 1996년에 조약 연장이 중단됐다. 35년간 이어온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동맹이 해체된 것이다. 이후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1996년 재선되고 친한(親韓) 정책에서 남북한 등거리 외교 정책으로 전환하면서 북러 관계는 점차 회복된다. 북러는 1999년 3월 새로운 조약을 체결하기로 하고 폐기된 상호원조조약 중 문제가 된 자동군사개입 조항을 ‘조약의 한 당사국이 긴박한 침입 위협 또는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경우에 상호 협의’하는 걸로 대체했다. 이러한 내용의 ‘조·러 우호 선린 협조 조약’은 2000년 2월 정식 서명돼 발효됐다. 옐친 대통령의 후임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00년 5월 취임하고 2개월 후 러시아 최고지도자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했다. 두 정상은 양국 간 협조와 상호 협력, 북한 미사일 문제 등을 내용으로 하는 ‘북러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이듬해 7~8월 김정일 위원장은 답방 형식으로 러시아 모스크바를 공식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북러 관계는 복원 단계에 접어든다. 양국 정상은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연결 사업, 대미 공동보조 등에 합의한 ‘북러 모스크바 선언’을 발표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2002년에도 러시아 하바롭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 푸틴 대통령과 3차 북러정상회담을 하면서 북러 간 친선을 과시했다. 북러 관계는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북핵 위기가 고조되며 잠시 조정기를 거쳤으나, 2011년 김정일 위원장의 방러로 다시 강화된다. 김정일 위원장은 러시아 울란우데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6자회담 재개와 북러 경협 문제를 논의했고,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러 경협이 재추진됐다. 러시아는 2012년 북한의 대러 채무를 탕감하기로 했으며, 북러는 2014년 경제공동위원회를 개최했다. 하지만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따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에 러시아가 동참하고, 북한이 2016년 4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북러 관계는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다. 그럼에도 북러 간 교역과 인적 교류, 러시아의 대북 지원은 지속됐으며, 2018년 5월에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평양을 방문, 푸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공식 요청했다. 이후 남북, 북미정상회담 등 한반도 정치 일정이 급하게 돌아가면서 북러정상회담은 순연됐지만, 지난 2월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북러정상회담이 급물살을 타게 돼 이번 달 말 열리게 됐다.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이자 8년만의 북러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북러 관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최장집 교수 ‘한국민족주의의 여러 울림에 관하여’ 전문

    최장집 교수 ‘한국민족주의의 여러 울림에 관하여’ 전문

    한국국제정치학회(KAIS)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 15일 개최한 특별학술대회의 라운드테이블에 초대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발표문 ‘한국 민족주의의 다성적(polyphonic/多聲的) 성격에 관하여’ 전문을 소개한다. A4 용지에 적은 활자체로 10쪽 분량이라 PDF 파일을 링크한다. ☞ 최장집 교수 발표문 PDF 파일 다운로드 최 교수는 발표문을 통해 “최근 년에 이르러 민족주의 문제가 정치의 중심 언술로서 큰 정치적 역할을 하고 있는 현상을 소재로 몇가지 핵심만을 비판적으로 말하려 한다”면서 “네 가지 테제로 나누어 토론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1. 역사는 청산될 수 없고, ‘역사 해석의 정치화’는 민주주의 발전을 낳지 못한다. 2. 민족주의를 통한 일제식민지배 역사청산은 사실적이지도, 가능한 일도 아니다. 3. 남북한 평화공존을 위해서는 민족주의 그 이상이 필요하다. 4. ‘민족주의의 상대화’를 통한 현실주의적 접근이 중요하다. 네 가지 테제다. 보수 매체들이 최 교수의 발표문에 주목한 것은 당연했다. “문대통령 3·1절 기념사는 이념 대립 부추긴 관제 민족주의”라고 입맛에 맞게 소개한 신문도 있었고, 토론 패널이었던 문정인 청와대 안보특보가 최 교수와 ‘부딪혔다’고 보도한 신문도 있었다. 그런데 발표문 전문을 보면 신문들이 너무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들여다 보고 입맛에 맞게 인용해 최 교수가 진정 말하고 싶었던 바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사실 최 교수가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말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는, 일본을 평화공존과 동아시아 집단안전 보장 체제를 중첩되게 만드는 데 활용하자는 제안에는 주목조차 하지 못했다. 최 교수가 이론과 현실을 함께 고민하는 내용을 진지하게 깊이 성찰했으면 한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서울광장] 민족주의는 어떻게 여러 목소리를 얻는가/이두걸 논설위원

    [서울광장] 민족주의는 어떻게 여러 목소리를 얻는가/이두걸 논설위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난 15일 한국국제정치학회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학술회의에서 발표한 소논문 ‘한국 민족주의의 다성적(多聲的) 성격에 관하여’가 파장을 낳고 있다. 역사학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민족주의에 대한 과도한 편향성을 경계하고 남북한 평화공존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등을 담은 후반부도 논쟁거리지만 논문의 첫 머리에서 “현 정부의 친일 잔재 청산 움직임은 관제 민족주의(official nationalism)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밝힌 게 보수 진영의 주목을 받고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오죽했으면 진보 정치학계의 큰 어른인 최 교수가 비판했겠냐”며 최 교수의 지적에 반색할 정도다. 최 교수가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문제 삼은 부분은 “‘친일 잔재 청산’은 친일은 반성해야 할 일이고 독립운동은 예우받아야 할 일이라는 가장 단순한 가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는 대목이다. 최 교수의 논지는 △잘못된 과거와 개혁된 미래를 구분하는 기준은 자의적이며 △적폐 청산을 주도할 정부가 역사 해석의 주역이 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관제 캠페인은 보수층을 몰역사적 집단으로 매도하는 문화투쟁이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촛불시위라는 ‘좌우합작’을 통해 집권한 현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은 한국의 좌우 이념 갈등이 더 격렬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한때의 승자가 정치 지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변화시키려 한다면 조정과 타협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는 민주주의가 위협받게 된다”고 우려한다. 최 교수의 지적은 경청할 지점이 적지 않다. 실제로 문 대통령의 언급은 단순한 듯하면서도 모호하다. ‘친일과 잔재의 정의는 무엇인가, 어디까지가 청산의 대상인가’라는 지극히 논쟁적인 의문들을 내포하고 있어서다. 박근혜 정권 당시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와 유사한 ‘관변 역사’의 행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안고 있다. ‘내가 아닌 타자를 배제한다’는 배타성이 똬리를 틀고 있는 민족주의를 통한 역사 청산은 논란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역사 해석을 잣대로 대대적인 청산 작업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역사 청산의 부정은 자칫 누구나 동의하는 그릇된 과거의 유산을 끊는 작업에 장애물이 될 여지가 농후하다. 시민사회 주도의 역사 해석과 이를 통한 최소화된 청산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기준이 모호하다고 해서 적극적 부역 행위에까지 면벌부를 지급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족해방 투쟁을 지상 과제로 여기는 ‘원리주의적 민족주의’ 못지않게 일제의 폭력을 탈역사화하려는 시도 역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최 교수는 친일 잔재 청산이 보수에 대한 낙인과 배제의 결과를 낳고, 이는 그의 평소 지론인 ‘양손잡이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있다고 본다. 양손잡이 민주주의는 새가 양 날개로 날 듯 오른손(보수)과 왼손(진보)이 국회 안에서 서로 경쟁하면서 협력과 타협을 이룰 때 대의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그의 이론에서의 보수와 우리 정치 지형에서의 보수는 마치 서구에서의 보수와 진보의 간극보다 더 크다는 게 우리의 비극적인 현실이다. “반민특위로 국민이 분열했다”고 주장했다가 “제가 비판한 것은 ‘반민특위’가 아니라 ‘반문특위’”라고 말장난을 하고, 이에 대해 지적하자 “국어 실력들이 왜 이렇게 없는지 모르겠다”고 되묻는 이를 원내대표로 앉힌 한국당을 전통과 명분을 중시하는 보수주의 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5·18 민주화운동 폄훼 발언을 한 의원 징계는 미루면서 ‘역사 해석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는 발언이 공공연하게 오가는 정당마저 대의민주주의의 주역으로 대접해야 할지 의문이다. 최 교수가 ‘과잉 민족주의’로 비판한 ‘태극기 부대’가 오히려 최 교수의 주장을 유튜브 등에서 높게 평가하는 게 우리의 민낯이다. 그의 이론은 선명하나 공허하다고 느껴지는 까닭이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인류 역사는 특권계층에 맞서 제 목소리를 찾기 위한 시민계급과 노동자, 여성 등의 투쟁의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목소리를 갖는다는 건 빼앗겼던 자신의 권리를 회복한다는 뜻이다. 독백과 침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몸부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다성성은 독립된 주체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최 교수가 말한 한국 민족주의의 다성성은, 보수 기득권 위주의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맞추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douzirl@seoul.co.kr
  • [현장 행정] 순균씨, 통장과 행복한 데이트… 4년 후 강남지도 변화 보여주다

    [현장 행정] 순균씨, 통장과 행복한 데이트… 4년 후 강남지도 변화 보여주다

    “4~5년 뒤 영동대로 복합개발을 마치면 철도 중심이 서울·용산역에서 강남으로 바뀔 겁니다. 핵 문제가 잘 해결돼 북·미, 남북 평화공존 체제가 뿌리를 내리면, 강남이 북한을 거쳐 유럽까지 가는 출발점이 될 겁니다.”정순균 서울 강남구청장이 구정 청사진을 제시했다. 취임 100일을 맞아 지난 16일 오후 4시, 구청 3층 회의실에서 열린 ‘순균C와 통장과의 행복한 데이트’에서다. 지난 7월 1일 취임 이후 가진 ‘주민과의 현장 데이트’ 이후 두 번째 현장소통 시간이다. 정 구청장은 “앞으로 4~5년 사이에 천지개벽하는 대형 프로젝트가 즐비하다”며 사업비 17조 3130억원을 투입하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립’, 작은 신도시를 만들 ‘수서발고속열차(SR) 역세권 복합개발’, ‘구룡마을 도시개발’ 등도 예로 들었다. 이번 미래상 제시는 첫 번째와 비슷한 내용인데도 취임 초보다 더 강한 설득력을 앞세워 주민들에게 다가갔다. 취임 뒤 100일간 이뤄낸 ‘기분 좋은 변화’가 그의 말에 신빙성을 더한 덕분이다. 정 구청장은 취임 이후 “강남은 대한민국 얼굴”이라며, ‘강남답지 않은 강남 모습’ 개선에 주력했다. 22개 동 주민센터 민원실·주차장·창고에 쌓인 쓰레기, 흉물스럽게 패인 가로수, 지저분한 플래카드와 공사장 가림막, 훼손된 자전거보관함 등 강남의 깨끗한 이미지를 해치는 것들부터 말끔하게 새로 단장했다. 전문가들과 함께 관광 선진 도시와 거리와 먼 간선·이면도로 하수구 악취 해소에도 힘을 쏟고 있다. 잘못된 구시대적 근무 행태도 바로잡았다. 주민들에게 위압감을 주는 청원경찰 제복, 직원들을 몰래 감시하는 암행감찰, 구청장 의전을 없앴다. 나아가 형식적 보고 지양, 종이 없는 회의 도입 등 내부 혁신을 단행했다. 정 구청장은 “2016년 기준 강남구 지역 국세 분담률이 6.2%(14조 6300억원)로, 서울·경기·부산 다음으로 많다. 경제적으로도 큰 역할을 차지하는데, 1등 도시에 걸맞지 않은 모습이 너무 많다. ‘기분 좋은 변화, 품격 있는 강남’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강남다운 강남을 만들어 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데이트엔 대치4동, 개포1·2·4동, 일원1동 등 통장 100여명이 참석했다. 한 통장은 “주민들 입장에 지난 100일은 앞으로 4년간 일을 잘할 수 있을지 구청장 간 보는 기간이었는데, ‘100일의 기적’을 이뤄냈다”며 “기분 좋은 작은 변화들이 구정에 대한 신뢰를 다졌다”고 활짝 웃었다. 통장과의 대화는 다음달 6일까지 권역별로 돌아가며 진행된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글로벌 In&Out] ‘트럼프 리스크’와 문재인 정부의 과제/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

    [글로벌 In&Out] ‘트럼프 리스크’와 문재인 정부의 과제/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

    9월 남북 평양 정상회담은 4월 판문점 회담만큼이나 역사적 회담이었다. 판문점 회담에서 한국이 북·미 정상회담의 중개자 역할을 했다면, 평양 회담은 한발 더 나아가 비핵화라는 남북 공동 프로젝트를 미국에 세일즈한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좋은 기회에 거는 문재인 정권의 남다른 의욕이 보였고, 김정은 정권도 남북 협조를 최대한 연출했다. 그리고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문’에 의해 실질적으로 남북은 ‘종전선언’뿐 아니라 ‘부전(不戰) 선언’까지 내디딘 형국이 됐다. 남북 평화공존의 제도화는 비약적으로 진행됐다고 할 수 있다. ‘종전선언’에 대해서도 남북이 주도하고 미국과 중국이 따라오는 구도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북한이 개발해 둔 핵과 미사일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김정은 자신이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명언한 의미는 크다. 미래의 핵개발 중단 자세도 명확히 했다. 그러나 북한의 현재 핵무기 리스트의 신고, 폐기 일정에 관해서는 이번에도 언급이 없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볼 때 진전은 없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어떻게 판단하고 그 대가를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는 북·미 협상에 맡기게 됐다. 일본에선 납치 문제에 관한 북·일 상호 불신 등으로 비핵화를 회의적으로 본다. 또 한국 외교에 대한 과소 평가와 북한 외교에 대한 과대 평가가 존재한다. “북한은 한국을 이용해 트럼프에게 접근하고, 나아가 트럼프를 이용해 이익 극대화를 노리고 있다”는 시각, 다시 말하면 “한국과 미국은 북한에 이용되고 있을 뿐”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이루어짐으로써 일본도 그런 흐름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여론도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일본이 초조해져서 북한과의 협상을 서두르면 안 된다”는 신중론이 강하다. 트럼프 정권에 대한 평가도 대북 정책에 관해서는 비판적 견해로 기울은 것처럼 보인다. 다만 한국의 보도를 보면 일본의 신중론에는 주목하지 않고 일본도 한국 정책을 지지한다는 논조가 지배적인 것 같다. 나는 외국의 비판적 견해가 한국에서 소개되지 않는 점을 우려한다. 문재인 정권이 북·미 군사 충돌의 위험성이 높아진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 북·미를 설득한 것은 합당하다. 그런데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관찰하는 일본의 시선은 상대적으로 냉담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불명확한데도 마치 기정사실인 것처럼 앞질러 간 인상을 주었다. 남북 협조의 연출도 중요하지만 그런 것들이 주변국에 어떤 인상을 주는지도 감안해야 한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트럼프 개인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점이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은 미국 내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강하다. 트럼프 정권의 집권 기반이 견고하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 집권 기간 내에 비핵화 목표를 이뤄내야 한다는 한국의 절박한 심정을 모르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포스트 트럼프 정권을 염두에 두고 비핵화를 지속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도 생각을 해 봐야 한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아베 신조 총리가 북·일 관계에 적극적 자세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원래 아베를 지지하는 우파 보수층들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이며 아베에게도 서두르지 말라고 권고한다. 오히려 아베의 비판세력이 과감한 대북 정책을 바라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비핵화 이후를 내다보고 대북 정책에 관한 정치적 입장과는 관계없이 일본 사회의 폭넓은 지지를 얻는 게 중요하다. 남북 공동의 비핵화 프로젝트를 얼마나 광범위하게 국제사회가 받아들이도록 할 것인지, 문재인 정권의 과제는 산적해 있다.
  • ‘트럼프 리스크’와 문재인 정부의 과제

    9월 남북 평양 정상회담은 4월 판문점 회담만큼이나 역사적 회담이었다. 판문점 회담에서 한국이 북·미 정상회담의 중개자 역할을 했다면, 평양 회담은 한발 더 나아가 비핵화라는 남북 공동 프로젝트를 미국에 세일즈한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좋은 기회에 거는 문재인 정권의 남다른 의욕이 보였고, 김정은 정권도 남북 협조를 최대한 연출했다. 그리고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문’에 의해 실질적으로 남북은 ‘종전선언’뿐 아니라 ‘부전(不戰) 선언’까지 내디딘 형국이 됐다. 남북 평화공존의 제도화는 비약적으로 진행됐다고 할 수 있다. ‘종전선언’에 대해서도 남북이 주도하고 미국과 중국이 따라오는 구도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한이 개발해 둔 핵과 미사일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김정은 자신이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명언한 의미는 크다. 미래의 핵개발 중단 자세도 명확히 했다. 그러나 북한의 현재 핵무기 리스트의 신고, 폐기 일정에 관해서는 이번에도 언급이 없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볼 때 진전은 없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어떻게 판단하고 그 대가를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는 북·미 협상에 맡기게 됐다. 일본에선 납치 문제에 관한 북·일 상호 불신 등으로 비핵화를 회의적으로 본다. 또 한국 외교에 대한 과소 평가와 북한 외교에 대한 과대 평가가 존재한다. “북한은 한국을 이용해 트럼프에게 접근하고, 나아가 트럼프를 이용해 이익 극대화를 노리고 있다”는 시각, 다시 말하면 “한국과 미국은 북한에 이용되고 있을 뿐”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이루어짐으로써 일본도 그런 흐름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여론도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일본이 초조해져서 북한과의 협상을 서두르면 안 된다”는 신중론이 강하다. 트럼프 정권에 대한 평가도 대북 정책에 관해서는 비판적 견해로 기울은 것처럼 보인다. 다만 한국의 보도를 보면 일본의 신중론에는 주목하지 않고 일본도 한국 정책을 지지한다는 논조가 지배적인 것 같다. 나는 외국의 비판적 견해가 한국에서 소개되지 않는 점을 우려한다. 문재인 정권이 북·미 군사 충돌의 위험성이 높아진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 북·미를 설득한 것은 합당하다. 그런데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관찰하는 일본의 시선은 상대적으로 냉담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불명확한데도 마치 기정사실인 것처럼 앞질러 간 인상을 주었다. 남북 협조의 연출도 중요하지만 그런 것들이 주변국에 어떤 인상을 주는지도 감안해야 한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트럼프 개인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점이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은 미국 내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강하다. 트럼프 정권의 집권 기반이 견고하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 집권 기간 내에 비핵화 목표를 이뤄내야 한다는 한국의 절박한 심정을 모르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포스트 트럼프 정권을 염두에 두고 비핵화를 지속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도 생각을 해 봐야 한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아베 신조 총리가 북·일 관계에 적극적 자세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원래 아베를 지지하는 우파 보수층들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이며 아베에게도 서두르지 말라고 권고한다. 오히려 아베의 비판세력이 과감한 대북 정책을 바라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비핵화 이후를 내다보고 대북 정책에 관한 정치적 입장과는 관계없이 일본 사회의 폭넓은 지지를 얻는 게 중요하다. 남북 공동의 비핵화 프로젝트를 얼마나 광범위하게 국제사회가 받아들이도록 할 것인지, 문재인 정권의 과제는 산적해 있다.
  • 부천서 가와사키-부천 청소년들 평화공존 역사포럼행사

    부천서 가와사키-부천 청소년들 평화공존 역사포럼행사

    경기 부천시와 일본 가와사키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청소년포럼 ‘하나’ 행사가 부천에서 개최된다. 이번이 37번째로 정기교류회(이하‘하나’)는 지난 29일부터 2일까지 4박5일간 이어진다. 1일 부천시에 따르면 고리울청소년문화의집이 지원하고 부천시가 후원하는 ‘하나’ 행사는 2000년부터 시작됐다. 한국인과 재일코리안·일본인의 3자교류로 여름에는 부천시에서, 겨울에는 가와사키 시에서 열린다. 17~18세 청소년들이 상대방 지역을 방문해 한·일 역사에 대해 학습하고 토론한다. 이번 포럼에는 부천 청소년 20명과 가와사키 청소년 13명이 참여했다. 최근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통일과 북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통일과 북한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평화 공존방향을 모색할 예정이다. 지난 31일 하나 청소년들이 부천시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김용익 행정국장은 “청소년들이 토론을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포괄적이고 입체적으로 역사를 인식하고 미래의 꿈과 희망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고 환영했다. 이틀간 부천 가정홈스테이를 시작으로 강화평화전망대 방문과 서대문형무소 견학, 자유탐방, 역사포럼 등 일정으로 진행된다. 부천시와 가와사키 시는 1996년 우호교류도시를 체결해 경제·문화·행정·교육·스포츠 등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국민 10명 중 7명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해야”

    국민 10명 중 7명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해야”

    61.8% “남북 교류 지속해야” 스포츠·금강산관광 재개 순국민 10명 중 7명꼴로 휴전 중인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내기 위해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도 같은 비율로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통일연구원은 지난 4월 5일부터 25일까지 진행한 ‘2018년 통일의식조사’에서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23일 밝혔다. 조사에서 응답자(만 19세 이상 1002명)들은 북한과의 교류 재개 방식을 묻는 질문에 스포츠교류, 금강산 등 관광 및 방문, 개성공단 순으로 선호했다. 우선 통일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70.6%가 긍정적(=매우 필요+약간 필요)으로 응답해 최근 5년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매우 필요하다는 응답만 볼 때도 27.3%로 역시 최근 5년간 가장 높았다. 특히 절반 수준인 51.4%(보통 31.9%·반대 16.7%)가 통일비용이 분단으로 인한 손해보다 적을 것으로 예상했다.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에서도 경제 교류·협력이 필요하다고 답한 비율이 61.8%로 통일대박론이 나왔던 2015년(68.7%) 이후 최대치였다. 이상신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 정서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이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남북 정상이 지난 4월 27일 판문점 선언에서 언급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에 대해서는 72%가 찬성했다. 다만 대북정책은 통일보다 평화공존을 추구해야 한다는 답변이 66.4%로 절반을 넘었다. 교류 부분에서는 스포츠·문화·인적 교류 확대에 찬성하는 응답률(76%)이 금강산 관광 재개(58.3%), 개성공단 재개(44.3%)보다 높았다. 또 직접적인 대북 적대행위는 줄이는 쪽을 선호했지만 국제공조를 통한 북한 제재는 확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이 많았다. 대북 전단 풍선 보내기, 대북 확성기 등을 적극 활용해야 하냐는 질문에 38.8%만이 찬성해 2015년(61.6%)보다 크게 낮아졌다. 반면 국제공조를 통한 대북 제재 이행에는 66.2%가 찬성했다. 지난해 핵무기 완성을 선언했던 북한이 올해 들어 돌연 태도를 바꾼 이유에 대해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 셈이다. 이 외에도 북한에 조건 없는 식량 원조를 해야 하냐는 질문에 23.6%만 찬성해 ‘퍼주기식의 대북 지원’에 대한 경계도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해서는 49.7%가 도입돼야 한다고 답해 2016년(62.4%), 2017년(62.1%)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끈끈한 물밑협상, 냉전종식 이끈 산책…세기의 담판에 ‘답’ 있다

    끈끈한 물밑협상, 냉전종식 이끈 산책…세기의 담판에 ‘답’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여는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냉전의 섬’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킬 세기의 담판이 될지 주목된다. 2차 세계대전의 산물이자 한반도 분단을 초래한 냉전 체제는 그 시작부터 종식까지 사실상 정상회담의 역사로 이어진다. 현대사의 주요 길목마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주요 회담을 돌아보고 한 달 남은 북·미 회담의 성공을 가늠해 본다.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2월 4일부터 11일까지 미국, 영국, 소련 등 3대 연합국 수뇌부는 러시아 크림반도의 휴양도시 얄타에 모여 종전과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이 회담에서 당시 패전을 앞둔 독일을 분할 점령할 것과 소련의 대일본 전쟁 참전 문제 등을 논의했다. ●마지막 남은 ‘냉전의 섬’ 한반도 루스벨트 대통령은 당시 개발 중이던 원자폭탄의 효능을 확신하지 못했던 만큼 스탈린 서기장에게 일본과의 전쟁에 참전해 줄 것을 요청했고, 스탈린 서기장은 독일이 항복한 뒤 2~3개월 내 대일전에 참전할 것을 약속했다. 결국 이 회담을 바탕으로 소련군이 같은 해 8월 일본을 공격하고 한반도로 남하하면서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경계로 남북한을 분할 점령하는 계기가 조성된 셈이다. 남북 분단을 초래한 얄타회담은 소련이 동유럽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서방세계와의 냉전이 시작된 계기로 평가된다.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毛澤東) 전 중국 국가주석 간의 첫 미·중 정상회담은 폐쇄적 공산국가였던 중국을 국제사회의 주요 구성원으로 이끌어 이번 북·미 정상회담과 유사하다. 이를 계기로 6·25전쟁 이후 냉랭했던 미국과 중국 관계가 개선되고 미국은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임으로써 1979년 미·중 수교로까지 이어졌다. 북한 지도자와 처음으로 만나는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중국을 처음으로 방문한 닉슨 전 대통령과 비교되기도 한다. 두 정상의 만남은 당시 중국과 손잡고 소련을 견제하려던 닉슨 대통령과 당시 소련과의 영토 분쟁에서 패하고 문화대혁명 여파로 국내외적 비난에 직면한 마오 주석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물이나 실무진의 끈끈한 물밑 협상 덕에 가능했다. 회담 전년도(1971년)에 미국 탁구팀이 중국을 방문해 경기를 가진 것(핑퐁 외교)을 계기로 헨리 키신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중국을 극비 방문해 양국의 물밑 접촉이 개시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을 두 차례 방문해 김 위원장과 만난 것과 비슷한 흐름이다. ●키신저 물밑접촉, 폼페이오·김정은 만남과 닮은꼴 김 위원장의 경우 당시 마오 주석처럼 정상 국가의 지도자로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있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완전히 핵포기라는 결단을 내릴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반면 핵 포기 없이는 ‘비이성적 독재자’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기 때문에 일종의 딜레마에 봉착했다. 1985년 11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제네바 미·소 정상회담’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미·소 정상회담은 소련이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미국은 1984년부터 소련 핵미사일을 우주에서 요격하겠다는 전략방위구상(SDI)을 발표해 언제 핵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정세 속에서 6년 만에 이뤄졌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난 양국 정상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산책이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도착하자마자 “신선한 공기를 좀 마시자”며 산책을 제안했고, 두 정상은 통역사만 대동한 채 한 시간 반 동안 제네바 호숫가를 따라 걸었다.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도보다리 산책’이 떠오른다. 양국 정상은 당시 군비통제 협상을 촉진시키고 후속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이듬해인 1986년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전략 핵무기 50% 감축 등에 합의하고, 1987년에는 ‘중거리핵무기 폐기협정’을 맺는 등 냉전 종식의 기반을 마련한 계기가 됐다. 이 밖에 1989년 12월 ‘몰타 미·소 정상회담’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 종식에 쐐기를 박고 미·소 양극 체제의 종언을 알린 회담으로 평가된다.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1989년 12월 지중해의 몰타 해역 선상에서 만나 1945년 얄타회담 이후 지속된 냉전 체제를 종식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수립한다고 역사적인 선언을 했다. 양국 정상은 동유럽의 민주화와 시장경제 체제로의 이행에 대해 소련이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합의했고, 전략핵무기와 화학무기 감축에 동의했다. 이 회담은 여러 현안에 대해 원칙적 의견을 교환했고 구체적 협의는 다음으로 미뤘으나 냉전을 종식시킨 상징적 의미가 있다. 그해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로 동독 공산 정권이 위기에 처하고 서독의 헬무트 콜 총리가 동독에 자유 총선을 제의하면서 이듬해인 1990년 10월 동·서독이 통일됐다. 1991년에는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개혁·개방에 대한 반발로 인한 쿠데타가 실패한 뒤 경제 실패와 군비 경쟁으로 가뜩이나 구심력이 약화됐던 소련 체제가 붕괴해 미국은 단일 패권국가로 올라서게 된다. ●‘통일 독일’ 되기까지 美·소련 합의 결정적 주목할 만한 것은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분단국가였던 서독과 동독이 통일 이전까지 모두 7차례의 공식 정상회담과 6차례의 비공식 정상 간 접촉을 실시해 상호 신뢰를 다졌다는 점이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와 빌리 슈토프 동독 총리가 1970년 만난 이래 양측은 1972년 12월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해 평화공존의 발판을 마련했다. 통일 독일이 되기까지 미국과 소련의 합의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한반도에서도 종전선언의 당사자가 되는 미국과 중국의 조율이 필요하다는 점과 양상이 비슷하다. 다음달 12일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로드맵과 북한 체제 안전 보장의 수준 등 구체적 실행계획과 시점에 대한 합의가 도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외교 문법보다 거래의 본능에 충실한 트럼프 대통령,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달리 과감하고 실용적인 스타일의 김 위원장, 그리고 적극적인 중재 노력을 펼치는 문재인 대통령 등 3자 간 ‘궁합’에 의해 열리는 회담인 만큼 73년에 걸친 한반도 냉전체제가 해체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사설] 핵 없는 평화공존의 새 한반도 시대 열다

    남북 정상 비핵화에 원칙적 합의해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위한 첫발 떼 북ㆍ미 회담서 완전한 로드맵 만들길 남북이 70년 분단과 대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평화 공존의 새 시대를 향한 첫발을 뗐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어제 판문점 우리 측 평화의집에서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갖고 완전한 비핵화 원칙에 원론적으로 합의했다. 남북 정상은 또 올해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등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남북 관계 개선 등을 담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서명, 발표했다. 또 오는 8월 광복절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복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남북 정상이 11년 만에 ‘분단의 선’을 넘어 ‘평화의 손’을 잡고 핵 없는 한반도 평화라는 대장정을 함께 시작한 것이다. 북한 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남쪽 땅을 밟은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의 통 큰 합의로 지난 25년간 한반도를 짓눌러 온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함께 발표한 ‘판문점 선언’에는 비핵화와 종전선언, 적대행위 금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에 평화수역을 만들어 군사적 충돌방지 등이 담겼다. 또 문 대통령이 올 가을 평양을 방문하고 개성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10·4선언에서 합의한 사업을 적극 추진하며 1차적으로 동해선과 경의선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기로 하는 등 남북 관계 개선과 관련된 다양한 내용들이 포함됐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어제 군사분계선(MDL)을 사이에 두고 반갑게 악수를 하며 역사적인 회담을 시작했다. 판문점 북측 판문각에서 200m를 걸어온 김 위원장은 활짝 웃었고 문 대통령의 손을 잡으며 첫 인사를 나눴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오갈 수 있는데 65년간 꽉 막혔던 분단의 아픔과 평화 공존의 필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줘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됐다. 김 위원장은 한국군 의장대 사열에 이어 회담장인 평화의집으로 옮겨 방명록에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역사의 출발점에서”라고 적은 뒤 문 대통령과의 오전 회담에 돌입했다. 오전 회담은 남쪽에서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북쪽에서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배석한 가운데 100분간 진행됐다. 핵심 의제에 대한 충분한 사전 조율을 마친 상태에서 남북 정상이 담판을 짓는 자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오전 회담 마무리 발언을 통해 “아주 좋은 논의가 많이 이뤄져 남북의 국민에게, 전 세계 사람에게 아주 큰 선물이 될 것 같다”며 비핵화 합의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오후 회담 전 우리 측에서 남북 정상이 공동선언문을 함께 발표하고,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가 만찬에 참석한다고 밝히면서 오전 회담에서 상당한 성과가 있었음을 일찌감치 예고했다. 두 정상이 첫 만남에서 비핵화 합의를 비롯해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관계 개선에 대해 역사적인 합의를 도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원칙주의자 문 대통령의 북핵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신중함에 30대 김 위원장의 과감함이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분석이 많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밝힌 배경을 놓고 여전히 궁금증이 남아 있지만, 계속 옥죄어 오는 국제 제재 등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제 안보 상황이 남북 정상의 과감한 결단을 이끌어 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비핵화 방향은 미국이 요구하듯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CVID)’ 방식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판문점 선언에는 비핵화 원칙만 밝혔을 뿐 구체적으로 방법과 시기가 빠져 있고, 주체도 모호해 논란의 여지를 남겨놓았다. 평화체제 정착을 위한 종전선언에 합의한 것은 의미가 크다. 정전협정체결 65주년인 올해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회담을 적극 추진하기로 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또한 남북 정상이 합의 내용을 이행하고 남북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올 가을 문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고 개성에 연락사무소를 두기로 한 것은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5월 1일부터 상호 비방 등 적대행위를 금지하기로 하는 한편 각 분야 후속 실무회담으로 회담 결과를 구체화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11년 만에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거둔 정부의 협상력과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성과에 들떠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모두 강조했듯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합의한 내용의 성실한 이행이 중요하다. 첫 번째 단추는 잘 끼웠다. 김 위원장과의 첫 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직접 이끌어 낸 문 대통령은 다음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로드맵에 합의할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내야 한다. 북한의 완전화 비핵화는 북·미 회담에서의 담판 결과에 달려 있다. 도보다리에서의 벤치회담 등을 통해 확인한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와 구체적 방식 등을 트럼프 대통령과 공유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북핵 문제는 북한과 미국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문제다. 더이상 단순 중재자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다. 70년 분단의 역사 현장인 한반도가 핵무장에서 비핵화로, 대결에서 대화로 역사의 큰 흐름이 바뀌고 있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한 번의 만남으로 평화가 오지는 않는다. 핵 없는 평화공존의 한반도 시대를 향한 매우 중요한 첫 관문을 통과했을 뿐이다.
  • [시론] ‘남북 경제공동체’ 시대를 맞이하려면/이승환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장

    [시론] ‘남북 경제공동체’ 시대를 맞이하려면/이승환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장

    북한의 제7기 3차 노동당 전원회의 결과는 매우 파격적이다. 핵·미사일 시험 중단과 풍계리 핵시험장 폐기 선언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북한이 이른바 ‘핵·경제 병진노선’ 대신 국가의 모든 사업에서 경제를 우선시하는 ‘경제건설총력집중노선’을 제기한 것이다. 북한 건국 이래 3대에 걸쳐 고수해 왔던 국방·경제 혹은 핵·경제 ‘병진노선’의 폐기는 북한 역사상 가장 큰 노선 변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민경제 활성화, 자립적·현대적 사회주의 경제, 과학기술과 교육 중시 등을 강조한 김정은의 경제총집중노선은 내용과 의미에서 중국 개혁개방의 전환점이 됐던 1978년 중국공산당 11기 3중전회에서 덩샤오핑(鄧小平)이 제시한 ‘4개 현대화 노선’과 능히 비견될 만하다. 북한의 이런 변화에 따라 남북 경협에 대한 기대도 현실화되고 관련된 논의들도 크게 활성화되고 있다. 물론 실질적인 남북 경협 활성화는 국제 대북 제재 시스템의 해제 없이 불가능하다. 현재로서는 한·미 양국의 ‘핵 폐기 없이 제재 해제 불가’ 입장도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북한의 안전보장 문제가 일정한 진전이 이뤄진다면 북한의 빠른 비핵화와 빠른 발전 국가 진입에 대한 한·미와 북 사이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에 핵 폐기와 대북 제재 시스템 해체가 빠르면 2019년 안에 실현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반면 이런 낙관적 전망과 별개로 남북 경협과 관련된 현재 환경은 매우 참혹한 수준이다. 5·24조치와 개성공단 폐쇄 이후 남북 경협에 참가한 기업의 절반 이상이 도산 혹은 그에 준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한반도신경제지도’ 구상과 같은 남북 경협 종합 설계도의 구체화도 중요하지만, 남북 경협이 또다시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남북 경협 생태계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법제도적 환경 정비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행정 조치 하나만으로 개성공단이 폐쇄되는 환경에서는 남북 경협이 발전하기 어렵다. 대북 제재의 요건과 절차를 법에 의해 엄격하게 규정하고, 만에 하나 남북 경협이 중단될 경우에는 정부가 시혜를 베푸는 방식이 아니라 법률로 손실 보상의 근거를 분명히 해 대북 투자와 경협의 안전성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또 3통(통행·통신·통관) 문제 해결 등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고려한 남북협력기금 운용 방식의 개선, 자원 개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성공불 융자지원제도 도입 등 투자환경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남북 경협의 안정적 환경 마련은 정부가, 수익성은 기업이 책임지는 환경을 정착시켜야 남북 경협의 생태계가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남북 경협의 비전을 확립하는 일이다. 남북 경협의 방향과 목표에 대한 우리 사회 내부의 합의는 매우 부족하다. 남북 경협을 둘러싼 ‘퍼주기’ 논란도 이런 사회적 합의의 부재와 무관하지 않다. 단순한 북한 발전이 목표가 되기 어렵고, 또 북한의 자본주의화와 결과적 남한 흡수에 북한이 결코 협력할 리가 없다. 결국 남한 내부의 정부와 기업 및 시민사회, 그리고 남북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비전은 남북의 경제공동체를 지향하되 북한의 체제를 보장하는 ‘평화공존’을 병행하는 방식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이는 이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통해 합의돼 있는 사항이기도 하다. 압도적 경제력을 가진 남한의 존재 자체가 북에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는 ‘낮은 수준의 국가연합’을 추구하는 것이 북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하는 유력한 방안의 하나가 되듯이 경제공동체 형성과 평화 공존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남북 경협을 둘러싼 각 이해관계자 간의 최대공약수다. 이는 향후 미·중·일은 물론 러시아와 유럽 등 세계 각국의 북한 진출 러시가 이뤄질 경우 북한이 남북 경협을 중심으로 각국과의 협력을 추구하도록 하는 확실한 근거가 된다. 이런 합의된 비전이 정착돼야 정권과 무관하게 남북 경협의 안정성과 지속성도 강화될 수 있다.
  • [사설] 정상 간 핫라인 개통, 남북이 한발 더 다가섰다

    남북 정상을 잇는 직통전화인 핫라인이 어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책상과 북한 국무위원회에 설치돼 실무자들이 4분 19초간 시험 통화를 했다. 분단 73년 만의 역사적인 순간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직후 핫라인이 처음으로 설치됐으나 당시 우리 측에서는 직통전화를 국가정보원에 두고 북측 정보기관과 교신했다. 정상의 뜻이 이 직통전화를 통해 오갔다. 이런 간접 핫라인은 노무현 정부 때도 운용됐다가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 끊겼다. 핫라인 설치로 판문점 연락 채널 외에 서해와 동해 지구의 군 통신선, 국정원과 북한 통일전선부 사이의 핫라인까지 포함해 다각적인 남북 채널이 구축되게 됐다. 청와대와 국무위원회 간 핫라인은 지난 3월 5, 6일 평양을 방문한 대북 특사단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합의한 사항이다. 남북 정상은 4·27 판문점 정상회담 전 통화를 하기로 했는데 첫 통화는 다음주 초 이뤄질 전망이다. 정상 간 핫라인 개통의 의미는 적지 않다. 1953년 정전 이후에도 군사적 대치를 이어 가는 현실에서 우발적 군사충돌이 언제라도 전면전으로 번질 위험을 내포한 한반도다. 핫라인은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정상이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향후 한반도에서 전개될 비핵화와 평화체제, 남북 관계 개선에 따른 각 분야의 협력과 교류에서 고위급이나 실무자 선에서 막히는 제반 문제들을 톱다운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최고위 연락 채널이기도 하다. 정상 간 핫라인은 남북 화해, 평화공존, 경제공동체로의 이행을 열어 갈 상징이자 보증서인 것이다. 문 대통령은 그제 언론사 사장단과의 간담회에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으며, 비핵화 합의도 어렵지 않다”고 밝혔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남북 정상이 엿새 뒤면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만나 비핵화와 평화체제에 관한 큰 틀의 합의를 전 세계에 발신할 것이다. 어제 북한 노동당은 김정은 위원장 주재로 중앙위원회 제7기 3차 전원회의를 열었다. 회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선중앙통신이 “당 중앙위 정치국은 혁명 발전의 중대한 역사적 시기의 요구에 맞게 새로운 단계의 정책적 문제들을 토의 결정하기 위하여 회의를 소집했다”고 밝힌 만큼 남북, 북ㆍ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핵·미사일과 대남, 대미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기 위한 정책 변화가 예상된다. 2013년 3월 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핵 개발과 경제건설의 ‘병진노선’을 채택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병진노선을 수정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비핵화와 더불어 한반도 평화체제 대전환이 시작됐다. 지난해까지 전쟁 위기에 몰렸던 한반도 정세를 생각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남북 정상이 길잡이 역할을 해서 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으로 이끄는 그날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 北 오늘 노동당 전원회의… 핵·경제 병진노선 수정 가능성 촉각

    북한이 20일 노동당 제7기 3차 전원회의를 개최한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북한 내부에 알리는 것을 넘어서 그동안 강조해 온 핵무력과 경제건설의 ‘병진노선’까지 수정할지 관심이 쏠린다. 북한이 전원회의를 계기로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핵 지우기’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혁명 발전의 중대한 역사적 시기의 요구에 맞게 새로운 단계의 정책적 문제들을 토의, 결정하기 위하여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20일에 소집할 것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노동당 당대회가 5~10년간 지속할 당 비전을 결정하고 이전 사업 내용을 결산하는 자리라면, 전원회의는 다음 당대회 전에 당의 주요 정책노선을 수정 및 결정할 필요가 있을 때 열린다. 특히 오는 27일 남북 정상회담과 5월 또는 6월 초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리는 만큼 비핵화 언급이 나올지가 관건이다. 북한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보도에서 현재를 ‘중대한 역사적 시기’로 규정하고 ‘새로운 단계의 정책적 문제’를 결정한다고 밝혔다. 지난 부활절 주말(3월 31일~4월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미국 국무장관 지명자인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만남으로 북·미 간 신뢰가 쌓이는 가운데, 향후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내부에 알릴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비핵화 의지’까지 표명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핵무력과 경제건설의 병진노선 대신 북한의 적극적인 비핵화 협상 의지, 평화공존 노력, 경제발전 집중 등의 내용을 담은 새 노선을 선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비핵화가 북·미 정상회담의 카드인 만큼 먼저 비핵화 의지를 공식화할 필요는 없다는 시각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아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병진노선 수정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며 “핵무력 완성 주장으로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변국들의 관계 개선 요청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평화체제 구축에 집중하겠다는 수준의 언급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강명구의 문화로 세상읽기] 통일을 100년만 늦춰 보면 어떨까

    [강명구의 문화로 세상읽기] 통일을 100년만 늦춰 보면 어떨까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가 전쟁의 위기를 벗어나 평화공존의 서광이 조금씩 움트고 있다. 봄이 어느새 다가왔듯 한반도의 평화가 싹트고 있다. 비핵화를 거쳐 평화적 공존에 이르기까지 양쪽은 수많은 장애를 넘어서 조금씩 신뢰를 쌓아 나가야 한다. 신뢰를 구축하는 출발점으로 새로운 제안을 하나 하고 싶다.남북한 통일을 100년 동안 유보하고 둘이 독립된 국가로 살아볼 수는 없을까. 물론 100년이란 상당한 시간이란 상징일 뿐이다. 그리고 독립된 국가란, 양쪽이 통일을 일정 기간 유보하고 침략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서로 외국으로서 전략적 동반자 관계 정도로 살아 보면 어떨까. 통일을 할 것인지, 계속 따로 살 것인지는 100년 후에 남북한 주민들이 결정하면 어떨까. 현재 한반도 주민은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기 때문에 21세기 초엽의 이해관계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황당한’ 꿈을 생각한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전쟁보다는 따로 사는 게 낫다는 판단. 한반도에 크든 작든 전쟁이 나면 상상할 수 없는 인명의 살상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후에 일구어 낸 대한민국의 경제도 붕괴하거나 1세기 이상 후퇴한다. 둘째는 남북한 사회경제적 격차를 줄이면서 신뢰를 쌓는 시간으로 1세기 정도 기다려 볼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 적대적 공존을 우호적 공존으로 바꾸는 데 이 정도의 시간은 필요한 것 아닐까. 지구를 보기 위해서는 지구를 벗어나야 하듯 한반도를 벗어나서 남북한을 바라다볼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를 아시아로 펼쳐보면 북쪽으로는 중국 동북 3성(인구 1억5000만명), 러시아 동부(인구 1000만명 미만), 몽골(인구 500만명)에 닿는다. 동쪽으로는 일본의 홋카이도와 서부연안, 태평양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오키나와와 타이완, 이어 필리핀과 베트남 (이들 두 나라는 각각 1억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남중국해가 펼쳐져 있다. 이렇게 광대한 지역을 국가단위로 사고하면서 국가의 이해관계(한국의 이해관계)로만 바라다볼 게 아니라 이 지역에 사는 주민, 기업과 시장, 여행자, 이주 등 사람을 중심으로 사고하면 다른 지리적 상상이 가능해진다. 이를 ‘초국적 삶의 공간’이라 부를 수 있다. 지난 50여년간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등 아시아 지역에서 수많은 한국의 기업인과 노동자들이 회사를 위해, 가족을 위해 땀을 흘렸다. 결혼 이주와 이주노동을 통해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이주자들이 100만명을 넘어섰다. 바깥으로 나간 한국인이건 한국으로 이주한 외국 사람이건, 모두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국경을 넘은 사람들이다. 중국 동북 3성의 많은 중국인이 시베리아 동쪽 러시아 지역으로 진출해서 연해주의 소규모 상권은 중국인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따리 무역부터 중소 규모 슈퍼마켓까지. 블라디보스토크 60만명의 인구 중 일본 중고자동차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인구가 10만명에 이른다(재팬타임스). 러시아는 일본 중고자동차를 수입하는 가장 큰 시장이고 블라디보스토크는 중고 일본 차가 들어오는 관문이다. 이렇게 북쪽부터 남쪽까지 아시아 내부의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사람과 경제의 도도한 흐름은 한반도와 한민족을 뛰어넘어 우리의 미래를 그려 볼 수도 있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통일을 100년간 미루고 따로 살자는 것은 냉전이 배태한 한반도 전쟁과 분단의 역사와 현실을 21세기에 아시아의 한반도라는 새로운 지리적 상상(geographical imagination)으로 넘어 보자는 제안이다. 한반도를 아시아로 ‘펼치고’ 아시아를 한반도에 ‘겹치기’ 위해서 분단과 통일을 국경, 시민권, 민족, 이주를 넘어 상상할 필요가 있다. 남한과 북한 사이 국경의 벽은 인정하면서 상호존중과 평화에 기반한 상생적 관계를 꿈꾸어 본다. 그렇지만 아시아의 어떤 나라보다도 국경의 벽이 낮은 나라를(물론 남쪽이 먼저 시행해야겠지만).
  • 정부, 1987년 외교문서 1420권 공개

    미국이 88서울올림픽을 앞둔 1987년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이른바 ‘시거 구상’을 내놨지만 북한의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사건에 의해 무산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북한은 ‘연방제 중립국 제안’으로 북·미 간 직접 대화를 노렸지만 한·미는 남북 대화가 먼저라며 거부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국내에선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으로 6월 항쟁이 발생했고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현재와 같이 지각변동이 일었던 ‘격동의 시대’였다. 외교부는 29일 이런 내용을 담은 ‘30년 이상 경과 외교문서’ 1420권(23만여쪽)을 공개했다. 문서 대부분은 1987년에 작성됐다.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당시 미국이 직접 남북 및 북·미 대화를 견인하려 했다는 점이다. 1986년 11월 7일 방한한 레이건 정부의 개스턴 시거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최광수 외무장관 등을 만나 ‘시거 구상’을 제안했다. 북한 인사와의 접촉을 일절 금지한 미국의 외교 지침을 ‘제3국 공관 주최 행사에서 미국 관리에게 북한 관리와 인사 교환을 허용한다’는 내용이었다. 88올림픽을 앞둔 상황에서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을 줄이고 남북 대화를 이끌어 내려는 의도였다. 실제 미국은 1987년 2월 말 재외공관에 ‘대북한 관리 접촉에 관한 개정 지침’을 하달했다. 이에 북한은 북·미 양자회담 또는 남·북·미 3자회담 개최, 5월 중 북·미 외교 당국자 회담 개최, 올림픽 남북 공동주최 등을 미국에 공식 제안하며 북·미 직접 대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한국이 ‘남북 간 회담만이 한반도 문제의 해결 방안’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의미 있는 북·미 접촉은 없었다. 결국 북한이 1987년 11월 29일 KAL 858기를 폭파하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미국은 88년 1월 ‘시거 구상’을 철회했다. 북한은 이 시기에 미국에 ‘한반도 완충지대 및 중립국 창설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 방안은 1987년 12월 미·소 정상회담에 나선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통해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이 방안에서 북측은 남북이 각각 10만명 미만의 병력을 유지하고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외국 군대를 철수하자고 주장했다. 또 남북이 불가침 선언에 서명하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고 했다. 남북의 군(軍)을 ‘민족군’으로 통합하자는 제의도 들어 있었다. 이 외 남북이 연방공화국을 창설하고 이 공화국이 중립국가 및 완충지대임을 선언하는 헌법을 채택한 뒤 단일 국호로 유엔에 가입토록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한국 정부가 다뤄야 할 문제”라며 “남북 대화 재개가 한반도의 평화공존을 향한 선결 조건이라고 믿는다”고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한국도 “거창하고 현실성이 없으며, 구체적인 내용에서 새로운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지난달 9일 평창동계올림픽 특별사절단으로 방남했던 김영남 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87년 12월 11~15일에 88올림픽 보이콧을 요청하기 위해 우간다 특사로 파견됐다. 그는 당시 외교부장으로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을 면담했다. 당시 외교 문서에는 “(김영남이) 서울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 문제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및 한국의 비협조로 실현이 어렵게 되었음을 설명하고 올림픽 보이콧을 종용했다고 보고했다. 이에 대해 무세베니 대통령은 올림픽 참가 문제는 관계 부처 간 협의를 거쳐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의 보조를 맞추어 결정하겠다고 말하고 참가 여부에 대해 직접적인 회답을 회피하였다고 함”이라고 기술돼 있다. 1987년 1월 14일 국내에선 박종철 열사 고문 치사 사건이 벌어졌다. 최장수 당시 외무장관은 5일 뒤인 19일 방한 중인 존 포터 미 의원에게 “금번 학생 변사 사건은 무척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이번 사건은 하나의 고립된 우발적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날은 당초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고 주장했던 경찰이 박 열사의 사망 원인이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라며 박 열사에 대한 가혹 행위를 시인한 날이었다. 이 외 1986년 5월 21일 부산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이 한국 정부에 기물 파손을 이유로 1만 2034 달러(약 1280만원)를 변상하라고 요구한 사실도 파악됐다. 이 사건으로 대학생 20여명이 연행됐는데 대사관 측이 카펫, 문, 소파 등의 교체 비용을 청구한 것이다. 외교부는 초기에는 전액 배상을 검토했지만 결국 ‘국가 배상은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 등으로 손해를 끼친 때로 한정된다’며 배상 책임이 없다고 봤다. 이날 공개된 외교 문서의 원문은 서울 서초구 외교사료관의 외교문서열람실에서 열람이 가능하고, 원문 요약 내용은 외교사료관 홈페이지(http://diplomaticarchives.mofa.go.kr)에서 검색할 수 있다. 외교부는 매년 자체 심사를 거쳐 1994년부터 25차에 걸쳐 총 2만 5000여권(340만여쪽)의 외교 문서를 공개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정부, 1987년 외교문서 1420권 공개

    미국이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시거 구상’을 내놨지만 북한의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사건으로 무산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북한은 ‘연방제 중립국 제안’으로 북·미 간 직접 대화를 노렸지만 한·미는 남북 대화가 먼저라며 거부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외교부가 29일 격동의 1987년을 담은 외교 문서를 중심으로 30년 이상 경과한 외교문서 1420권(23만여쪽)을 공개하면서 확인됐다. 외교부가 공개한 문서에서 평창동계올림픽에 특별사절단으로 왔던 김영남 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88올림픽 보이콧을 요청하기 위해 우간다 특사로 파견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현재와 같이 지각변동이 일었던 시대였던 셈이다.  국내적으로는 외교 당국이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우발적 사건”이라고 외빈에게 주장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북한은 1987년 12월 미·소 정상회담에 나선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통해 ‘한반도 완충지대 및 중립국 창설 방안’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남북이 각각 10만명 미만의 병력을 유지하고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외국 군대를 철수하자는 게 주요 내용이다. 또 남북이 불가침 선언에 서명하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고 했다. 남북의 군(軍)을 ‘민족군’으로 통합하자는 제의도 들어 있었다. 북한은 남북 연방공화국을 창설하고 이 공화국이 중립국가 및 완충지대임을 선언하는 헌법을 채택한 뒤 단일 국호로 유엔에 가입토록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한국 정부가 다뤄야 할 문제”라며 “남북한 대화 재개가 한반도의 평화공존을 향한 선결 조건이라고 믿는다”고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한국도 “거창하고 현실성이 없으며,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 새로운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보다 앞선 1986년 11월 7일 방한했던 레이건 정부의 개스턴 시거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최광수 외무장관 등을 만나 소위 ‘시거 구상’을 제안했다. 북한 인사와의 접촉을 일절 금지한 미국의 외교 지침을 ‘제3국 공관 주최 행사에서 미국 관리에게 북한 관리와 인사 교환을 허용한다’는 내용이었다. 88올림픽을 앞두고 북한이 초조한 나머지 무력도발을 자행할 가능성을 줄이고 남북 대화를 이끌어 내려는 의도였다. 미국은 실제 1987년 2월 말 재외공관에 ‘대북한 관리 접촉에 관한 개정 지침’을 하달했다. 이에 북한은 북·미 양자회담 또는 남·북·미 3자회담, 5월 중 북·미 외교 당국자 회담 개최, 올림픽 남북 공동주최 등을 미국에 공식 제안했다. 하지만 한국은 ‘남북한 당사자 간 회담만이 한반도 문제의 해결 방안’이라며 미국이 이에 응하지 않도록 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북한도 한국보다 미국과 직접 대화를 고수하며 출구는 마련되지 않았다. 결국 북한이 1987년 11월 29일 KAL 858기를 폭파하는 만행을 저지르자 미국은 88년 1월 ‘시거 구상’을 철회했다. 이 시기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88올림픽 참가국에 대회 보이콧을 요청하는 특사로 나섰다. 당시 외교부장이던 그는 1987년 12월 11~15일 ‘김일성 특사’로 우간다를 방문해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을 면담했다.  당시 외교 문서에는 “(김영남이) 서울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 문제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및 한국의 비협조로 실현이 어렵게 되었음을 설명하고 올림픽 보이콧을 종용했다고 보고했다. 이에 대해 무세베니 대통령은 올림픽 참가 문제는 관계부처 간 협의를 거쳐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의 보조를 맞추어 결정하겠다고 말하고 참가 여부에 대해 직접적인 회답을 회피하였다고 함”이라고 기술돼 있다.  1987년 1월 14일 국내에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 벌어졌다. 최장수 당시 외무장관은 5일 뒤인 19일 방한 중인 존 포터 미 의원에게 “금번 학생 변사 사건은 무척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이번 사건은 하나의 고립된 우발적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날은 당초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고 주장했던 경찰이 박 열사의 사망 원인이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라며 박 열사에 대한 가혹 행위를 시인한 날이었다. 이 외 1986년 5월 21일 부산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이 한국 정부에 기물 파손을 이유로 1만 2000여 달러를 변상하라고 요구한 사실도 파악됐다. 이 사건으로 대학생 20여명이 연행됐는데 대사관 측이 카펫, 문, 소파 등의 교체 비용을 청구한 것이다.  외교부는 초기에는 전액 배상을 검토했지만 결국 ‘국가 배상은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 등으로 손해를 끼친 때로 한정된다’며 배상 책임이 없다고 봤다. 이날 공개된 외교 문서의 원문은 서울 서초구 외교사료관의 외교문서열람실에서 열람이 가능하고 원문 요약 내용은 외교사료관 홈페이지(http://diplomaticarchives.mofa.go.kr)에서 검색할 수 있다. 외교부는 매년 자체 심사를 거쳐 1994년부터 25차에 걸쳐 총 2만 5000여권(340만여쪽)의 외교 문서를 공개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서해수호의 날과 국가보훈 <서울남부보훈지청 보훈과장 김성민>

    서해수호의 날과 국가보훈 <서울남부보훈지청 보훈과장 김성민>

    모든 국가에는 그 공동체의 존립을 위해 헌신한 사람을 기억하고 기리는 기념일이 있다. 추모와 기념은 곧 국가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제로부터의 민족독립에 이어 6.25전쟁이란 참혹한 시련을 거쳐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해 왔다. 대한민국에 광복절과 6.25전쟁 기념일이 있는 이유이다. 6.25전쟁 이후에도 60여 년간 남북 간에 수많은 군사적 충돌이 있었다. 현재가 6.25전쟁의 종전이 아니라 휴전임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군사적 충돌 역시 당연히 기억되어야 할 역사이다. 그러나 북한의 지속적이고 국지적인 도발과 남북한 충돌은 도리어 우리의 기억을 무디게 한다. 불안을 견디기 어려워 불안을 잊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남북의 무장한 군인들이 마주보고 있는 상태이다. 남북한의 해상 경계를 가르는 NLL 중 도서로 이루어진 서해에서도 북한의 도발이 있었다. 함정을 이용한 전투와 일방적 공격, 민간지역에의 포격 등 도발의 양상도 다양하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주권과 영해를 지키기 위해 55명의 군인들이 순국하였다. 정부는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등 서해를 지키기 위한 우리 군의 활동과 희생을 기려 2016년 국가기념일로 서해수호의 날을 제정하였다. 천안함 피격일에 맞추어 매년 3월 넷째 금요일로 정하였으며 금년 제3회 기념일은 오는 3월 23일이다.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55명의 순국 장병들이 영면해있는 대전현충원에서 중앙기념식이 거행될 예정이다. 서울에서는 서울지방청과 남부‧북부보훈지청이 공동으로 광화문광장에서 별도의 기념식을 거행한다. 서해수호의 날은 비단 서해만이 아니라 6.25전쟁 이후 지속된, 북한의 도발과 무력충돌을 기억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남북한의 무력충돌을 억제하고 평화공존으로 가는 미래지향적 관계는 국가수호에 헌신한 분들에 대한 예우에서 출발해야 한다. 국가보훈은 대한민국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를 비추는 거울인 것이다. 대한민국에 자유민주주의는 특정한 정권이나 시기를 초월하는 공통된 국가정체성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개인의 헌신과 희생을 강요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위한 공헌과 희생이 더욱 기억되어야 한다. 국가 존립을 위해 공헌,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지만, 국민의 도리이기도 할 것이다.
  • [유성호의 문학의 길목] 인류 보편의 가치를 담은 문학적 에너지

    [유성호의 문학의 길목] 인류 보편의 가치를 담은 문학적 에너지

    지난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최근 평창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그동안 적대적 무한대치 상황을 견고하게 유지해 오던 남북 관계가 여러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해방 이후 물리적, 이념적으로 남북을 강하게 규율하고 억압했던 분단체제는 그동안 갈등과 상쟁으로 우리 현대사를 숨 가쁘게 몰아왔던 터였다. 그러다가 우리는 6·15와 10·4공동선언을 통해 커다란 이행기를 맞이한 바 있고, 다시 이러저러한 맥락에 따라 관계가 경색됐다가 최근 새로운 해빙(解氷)의 전환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 분단체제를 허물어뜨리고 민족 통합을 앞당기기 위한 노력은 매우 지속적으로 우리 현대사를 채워 왔다. 휴전 후 내내 분출됐던 평화통일의 열망이나 민족 동질성 회복 요구, 점증된 통일운동의 가속화와 그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간헐적인 정치적, 문화적 교류 등은 저마다 굵은 줄기를 형성하면서 분단체제를 허물어 가는 데 일조했다. 이러한 흔적들이 쌓여 이산가족 방문단 상호교류, 남북 단일팀 구성, 문화예술 상호교류 등을 통해 이른바 탈(脫)분단의 분위기를 그 정점에 올려놓은 바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70년이 넘는 시간을 두루 관통해 왔던 뚜렷한 적의(敵意), 그리고 일상생활과 잠재의식까지 점령해 버린 레드 콤플렉스 같은 것들을 말끔히 씻어 내고 단시간에 새로운 상생적 제도와 관행을 구축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의 의식이 일정한 시간의 흐름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형성된다는 사실에 비추더라도 이러한 과정은 적지 않은 시간의 경과 후에나 얻어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특유의 냄비 기질을 반성하면서 이번에는 결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합리적으로 우리가 망각했던 유산들을 복원하고 평가해 새로운 남북 관계에 대비하는 의식과 관행을 마련해 가야 할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남북 간의 화해와 상생은 역사적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분단은 휴전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 깊은 무의식의 심연에 가라앉아 있다. 따라서 우리의 무의식까지 철저하게 검열했던 냉전의식을 떨치고 탈분단의 도정을 지속해 가는 것이 우리 시대에 지워진 역사적 몫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분단에서 통일로 도약하는 급진적 관념보다는 ‘평화공존-상호교류’를 통한 오랜 점진적 화해라는 신중하고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요구된다는 사실을 망각하면 안 된다. 현대문학사에서 제국주의에 맞서 존재값을 지켰던 ‘저항문학’을 소중한 유산으로 기억하고 있듯이 이제 우리는 분단 극복의 정신을 형상화한 작품들을 기념비적으로 간직해야 한다. 물론 우리 현대문학사는 거대한 분단의 벽과 씨름해 온 흔적으로 충일하다. 해방 후 펼쳐진 분단 극복의 문학적 성과들은 그 목록만으로도 이 지면을 채우고 남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남북한을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관찰한 최인훈의 소설 ‘광장’이 발표 60년을 앞둔 시점에서 분단의 비극성을 증언하고, 나아가 분단체제의 벽을 무너뜨리는 작업을 지속해 온 작가나 작품들에 대한 비평적 해석과 평가를 꼼꼼하고 열린 마음으로 진행해 가야 한다. 그 사례로 우리는 이번에 70주년을 맞는 제주 4·3사건을 형상화한 것들을 우선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작년에 제1회 이호철 통일로문학상을 수상한 김석범의 대하소설 ‘화산도’나 현기영의 ‘순이삼촌’ 이후의 지속적 성취 등은 일차적으로는 제주 역사의 사실 복원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류 보편의 가치인 화해와 상생을 통해 분단 극복을 추구하려 했던 문학적 에너지의 소산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순이삼촌’ 발표 40주년이 되기도 한다. 제주의 아름다운 봄 풍경처럼 어둑했던 상처의 기억을 건너 우리 역사에도 화해와 상생이라는 봄의 길목이 다가오기를 마음 깊이 소망해 본다.
  • 삼일절, 문 대통령 “가해자 일본, 위안부문제 ‘끝났다’ 해선 안돼”

    삼일절, 문 대통령 “가해자 일본, 위안부문제 ‘끝났다’ 해선 안돼”

    문재인 대통령이 3·1절(삼일절) 행사를 맞아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 “가해자인 일본은 위안부 문제가 ‘끝났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또 일본의 노골적인 독도 도발에 대해서도 “일본의 독도침탈 부정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문 대통령은 1일 이날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제99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전쟁 시기에 있었던 반인륜적 인권범죄 행위는 끝났다는 말로 덮어지지 않는다”며 일본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불행한 역사일수록 그 역사를 기억하고 그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만이 진정한 해결”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은 인류 보편의 양심으로 역사의 진실과 정의를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이 고통을 가한 이웃 나라들과 진정으로 화해하고 평화공존과 번영의 길을 함께 걸어가길 바란다”며 “일본에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답게 진실한 반성과 화해 위에서 함께 미래로 나아가길 바랄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또 독도 문제를 거론하며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강점당한 우리 땅”이라며 “지금 일본이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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