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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 제3의 ‘청년 노회찬’ 키워내는 게 과제”

    “제2, 제3의 ‘청년 노회찬’ 키워내는 게 과제”

    “노회찬 의원이 바란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의 뜻이 불가피하게 멈췄는데 우리가 그 뜻을 이어 나가야겠다는 생각입니다.”서울 마포구의 노회찬재단 준비위원회 사무실에서 24일 만난 조승수(전 통합진보당 의원) 공동실행위원장은 “내년 1월 24일 재단을 정식으로 창립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7월 세상을 떠난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뜻을 기리기 위해 장례식 직후 노 의원이 각별한 도움을 줬던 김영숙 국회 청소노동조합 위원장 등이 재단 설립을 제안했다. 여성학자인 오한숙희씨를 비롯해 영화감독 김조광수씨 등이 재단이사로 참여했다. 조 위원장은 “내년 초까지 노력하면 5000명 후원 회원은 모집할 것 같고 1주기에 1만명까지 모집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재단의 정식 명칭은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 재단’이다. 약자의 인권을 위해 살아 온 노 의원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앞다퉈 후원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다. 조 위원장은 “사무실이 있는 건물의 경비 노동자 분도 가입했고 박창진 대한항공 사무장도 직접 현금을 들고 와서 평생 회원으로 가입하기도 했다”며 “10월에는 연변한인회장이 행사 참석차 귀국한 김에 비 오는 날 택시를 타고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조 위원장은 인터뷰 중 최근 노 의원에게 수여된 최고등급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꺼내 보여 주면서 뿌듯함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드러냈다. 그는 “훈장을 수여할 때 기쁘면서도 착잡하기도 했다”며 “한평생 약자에 대한 인권 보호를 위해 노력해 온 분이기 때문에 국민이 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조 위원장은 제2, 제3의 노회찬을 키워내는 게 노회찬재단의 과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노 의원의 평전과 문집 작업은 기본이며 시민정치학교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분이 국민과의 소통 속에서 진보·보수를 아울러 사랑받았던 것처럼 끊임없이 젊고 새로운 정치인을 키워야 한다”고 밝혔다. 글 사진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SNS 시대에 좋은 평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SNS 시대에 좋은 평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올해가 한 달 남짓 남은 지금 ‘올해의 책’을 단 한 권 선택한다면 기꺼이 하워드 아일런드, 마이클 제닝스가 쓴 ‘발터 벤야민 평전’을 고르고 싶다. 20세기 전반의 문화사에서 가장 뛰어난 비평가로 손꼽히는 발터 벤야민(1892~1940)의 파란만장한 삶과 외로운 죽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고 마음이 아리다.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다. ‘베를린의 유년 시절’, ‘일방통행로’,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같은 벤야민의 글을 읽으며 늘 매력적인 문체와 빛나는 사유, 충만한 영감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이 두꺼운 평전이 번역되자마자 완독했다. 지금까지 출간된 벤야민 평전의 결정판이다. 48년에 걸친 벤야민의 인생을 마치 다시 사는 느낌이었다.이 흥미로운 평전을 통해 벤야민의 고뇌, 일상, 지성, 우정, 망명, 희망, 여행, 성(性), 글쓰기, 죽음 등 벤야민을 둘러싼 모든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여러 가지 대목이 인상적이었는데, 특히 “벤야민은 모순적인 인물이다. 고독을 원하면서도 외롭다고 하소연했으며, 종종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자 했고 심지어 공동체를 조직하는 일에 직접 나섰지만 하나의 집단에 투신하는 것은 마다했다”는 구절은 고독과 우정의 공동체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갔던 그의 성정을 잘 보여 준다. 생활의 안정을 위해 교수가 되기를 강렬하게 열망했다는 사실도 먹먹하게 다가왔다. 역설적으로 그가 교수가 되지 못했던 사실이 벤야민으로 하여금 한층 치열한 글쓰기와 깊은 사유로 이끈 게 아닐까. 대학과 지성이 몰락하는 이 시대에 자유로운 지식인의 면모에 대해 생각해 본다. 평전은 인문 저술의 꽃이다.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따뜻한 이해 없이는 결코 쓸 수 없는 유형의 글이다. 좋은 평전은 인간을 섬세하고 복합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좋은 평전은 그 인간의 결핍과 상처, 어두운 마음, 내면의 균열, 콤플렉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좋은 평전은 인간을 겸허하게 만든다. 깊이 있는 평전을 읽다 보면 한 사람을 마녀사냥하거나 한 사람을 지나치게 숭상하는 것, 그 둘 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의 부족에서 생기는 현상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한국어로 간행된 읽을 만한 평전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비운의 시인이자 식민지 시대 최고의 비평가인 임화(林和·1908~1953)처럼 꼭 필요한 문제적 인물의 평전도 아직 출간되지 못한 경우가 꽤 있다. 무엇보다 전쟁과 분단으로 일기, 편지 등의 사적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조차도 검열과 낙인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때로 이념적 편 가름의 증거로 활용됐기 때문이리라. 스스로 편지를 불태운 경우도 많지 않을까. 임화에게는 가족에 대한 정보와 증언, 편지를 포함한 사적 기록, 월북 이후의 행적 및 죽음에 관한 정확한 기록(증언)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임화에 대한 매력적인 평전을 집필하는 작업은 원천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이 땅 근대의 슬픔이다. 그토록 섬세한 ‘발터 벤야민 평전’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 벤야민이 숄렘이나 아도르노 등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 때문이다. 특히 2000년에 완간된 6권에 달하는 편지 전집은 벤야민의 내면과 일상, 고뇌를 생생하게 복원하는 데 결정적인 보탬이 됐으리라. 이에 비해 평전을 쓰기 위한 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 송우혜 작가의 ‘윤동주 평전’과 같은 탁월한 성과가 발간될 수 있었던 것은 작은 기적이 아닐까 싶다. 의미 깊은 평전을 읽으면 읽을수록 인간이 얼마나 모순적인 존재이며 다양한 내면을 지니고 있는지를 새삼 절감한다. 그렇다면 한 인간을 쉽게 매장하고 쉽게 추켜세우는 SNS 시대일수록 좋은 평전을 읽을 필요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급한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신간 ‘베토벤 평전’을 읽어 봐야겠다.
  • “애니 속 전태일, 형·오빠·친구처럼 그리고 싶어”

    “애니 속 전태일, 형·오빠·친구처럼 그리고 싶어”

    2020년 개봉 목표… 크라우드펀딩도 “불합리한 노동 문제 제기, 지금도 유효 마지막 순간 회화적·추상적 표현할 것”“전태일을 열사라기보다는 형, 오빠, 친구, 동생으로 그리고 싶습니다.”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을 바꾸어내고자 자신의 몸을 불사른 전태일(1948~1970) 열사의 삶이 애니메이션으로 옮겨진다. 전 열사 50주기를 맞는 오는 2020년 개봉을 목표로 명필름과 전태일재단이 공동제작한다. 국민이 함께 만드는 작품으로 남기기 위해 범국민 크라우드펀딩도 진행할 예정이다. 고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1983), 박광수 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최호철 작가의 ‘태일이’(2007~2009) 등 책과 영화, 출판 만화로 전태일의 삶이 다뤄진 적이 있으나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처음이다. 신진 애니메이션 작가 홍준표(33)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3D 작업으로 섬세하게 재현하고, 이를 다시 손으로 매만져 온기를 불어 넣는 공간 표현과 감성적인 연출로 정평이 났다. 장편은 첫 도전이다. 20일 서울신문과 만난 홍 감독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털어놨다. “처음 연출 제안을 받았을 때 거절했어요. 잘못하면 전태일 열사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겁부터 났죠. 하지만 전태일의 삶을 깊게 공부하면 할수록 자신이 생기는 거에요. 저의 강점을 살리면 지금은 쇼핑의 메카이지만, 당시에는 노동의 메카였던 평화시장이라는 공간을 생동감 있게 표현해서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간 꾸준히 청년 노동자의 삶과 일상을 그려온 것도 작품을 만들기로 결심한 계기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전적인 단편 ‘바람을 가르는’(2012), 연작 단편 ‘요일마다:프롤로그’(2017) 등에서 좀처럼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애니메이션 지망생과 조용한 골목에서 푸드트럭을 꾸리는 청춘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은 노동집약적인 창작 분야 중 하나에요. 한국에선 스스로를 혹사해 가며 단편, 중편을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삶이 주는 어려움이 어디에서 오는가 고민을 하다 보니 사회 이슈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전태일의 외침은 5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다. “시대적으로 반세기 전의 평화시장 안에서 펼쳐지는 노동자들의 삶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특히 어린 여공들이 놓인 불평등한 상황, 불합리한 환경 등은 우리 시대와의 접점이 될 것으로 봅니다.” 사실 열사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소재와 대중적인 장르의 만남이 다소 어색해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홍 감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태일의 마지막 순간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아요. 장르 특성에 맞게 상상력을 동원해 회화적, 추상적으로 표현할 생각입니다. ‘전태일’ 하면 무거운 느낌인데, ‘태일이’ 하면 그게 아닌 것처럼, 열사보다는 형, 오빠, 동생, 친구로서 전태일의 삶에 다가가려고 합니다.” 캐릭터 디자인은 대체로 마무리됐다. 시나리오는 한창 작업 중이다. 한미사 재단보조공으로 일하던 시점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4~5년의 이야기가 주로 담긴다. 곧 30여명의 스태프가 투입되어 지난한 애니메이션 작업에 돌입한다. 욕심 같아서는 만드는 과정 또한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하늘에 있는 22살 태일이에게 선물 같은 작품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시대의 모든 태일이들에게도요.” 글 사진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먹방에 그릇 담론이 빠진 건 민망한 일이죠”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먹방에 그릇 담론이 빠진 건 민망한 일이죠”

    박영봉 법기도자 사무총장이 말하는 그릇이 빠진 ‘먹방’이란텔레비전을 틀면 언제든지 ‘먹는 방송(먹방)’이 나온다. 한밤중이고, 새벽이라도 먹는 프로그램이 흐른다. 종편이든 지상파 방송이든 마찬가지다. 유명 요리사를 스튜디오로 불러 음식을 급하게 만들어 먹거나, 연예인 몇 명이 식당을 찾아가 둘러앉아 음식을 먹어 ‘치운다’. 그저 많은 양을 먹는 것으로,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웃음을 주는 그런 먹방이 ‘시청률 승부’에 안간힘을 쏟는 것 같아 측은하게 보이기도 한다. 이런 먹방에 쓴소리를 하며 “음식은 종합 예술이니 그릇에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푸드 칼럼니스트’ 박영봉 씨를 만났다.그는 비영리 민간단체(NPO) 법기도자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경남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서 생산된 도자기 가치를 재조명하고 있다. 옛 가마터의 사금파리 하나에서 가치를 찾고 있다. 법기리는 1611년부터 수십 년간 일본에 차 사발을 만들어 수출했던 곳이다. 1963년 전남 강진의 고려청자 가마터와 함께 국가사적(100호)으로 지정돼 있다.  ●“살아있는 요리와 죽은 음식을 결정하는 건 그릇” - 먹방이 대세이지만 그릇의 비중이 너무 낮다. ☞ 네. 먹방 쿡방은 프로그램 제작비도 저렴하고 혼자 살거나 다이어트 하는 시청자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구미를 당겨 시청률도 담보가 되지요. 먹는다는 것이 인간의 욕망 내지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행위이면서 국가 경제에서 내수를 떠받치는 기둥이니 정부에서 ‘건강한 방향으로’ 장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먹방이 단순히 먹어치우는 차원을 넘어 스토리텔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지 못한 현실을 보면 허기진 우리 사회의 단면을 반영하는 것 같아 좀 씁쓸하기도 합니다. 일본 요리책에는 요리 이름과 함께 그릇의 이름이 같이 적혀 있습니다. 그릇의 역할을 얼마나 중요하게 받아들이는지 보여주지요. 일본의 유명한 도예가이자 미식가였던 ‘기타오지 로산진’(北大路 魯山人·1883~1959)이란 사람은 ‘그릇은 요리의 기모노’라고 했습니다. 살아있는 요리와 죽은 음식의 경계를 짓는 것이 그릇이라고 할 정도로 그릇을 중요시했죠. ●“유명 요리사들, 그릇에 대한 자신 만의 철학 갖춰야” - 먹방 제작자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예전에 일본 교토에서 갔을 때 충격적인 일을 겪었습니다. 1000엔도 안 되는 라멘을 주문했는데 ‘맘에 드는 사발을 선택해 달라’고 하더라구요. 요리는 음식 그 자체 뿐만 아니라 이를 둘러싼 모든 것이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죠. 음식에 비해 그릇 담론은 너무 초라해 언급하기가 민망합니다. ‘요리와 그릇은 한 축의 두 바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일상 식생활까지는 아니더라도 TV에 나오는 유명 요리사나 먹방 프로그램에서는 그릇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음식의 차림멋을 완성하는 것도 실상은 그릇이지요. 방송 제작자들이 이런 인식이 없으니 슬프게도 우리에겐 ‘그릇론’이 생소한 분야이지요. 맛있게 먹자면서도 미학이 빠졌으니 철학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도자기는 어렵다고 피하는 건 고객 아닌 주인 중심” - 우리 도자기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런데 멜라민 수지 그릇을 많이 쓴다.☞ 속리산에 간 적이 있었데, 제법 알려진 한식당에 갔죠. 관광지치고는 만만찮은 가격이었지만 홍어에 인삼튀김, 산나물 등 어마어마한 반찬 가짓수에 가격 불만이 없어졌습니다. 그 집 음식을 안주 삼아 칼럼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내용이 멜라민수지 그릇이나 음식 특성에 따른 제공방법, 상차림에 대한 무개념 등이었다. 주인이 보면 항의가 거셀 것 같아서 지명이나 상호를 밝히지 않았지요. 칼럼이 나오자 제 시각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 식당이 어디냐고 묻는 전화들만 왔다고 합니다. 식당 주인들에게 물어보면 당연히 자기들도 도자기 그릇에 음식을 내놓고 싶다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도자기 그릇은 무겁고 다루기 조심스러워 멜라민 수지를 선택한다고 해요. 식당은 본질적으로 서비스를 파는 직종인데, 식당들이 그릇을 손님이 아니라 주인 중심으로 선택한 것이지요. 그건 서비스 첫 단추부터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요즘엔 다행히 좋은 그릇을 쓰는 집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지만 요리를 보는 시각을 돌아보거나 반성해야 할 일입니다. 수많은 음식 블로거도 이런 부분에서도 관심을 주문합니다.   ●“양은냄비 라면에 낭만타령은 그만···그릇 담론 절실” - 멜라민 수지 그릇은 편리한데 비판이 너무 거셉니다.☞ 멜라민 수지가 아니라 그릇에 대한 시각을 말합니다. 멜라민 수지가 보통은 안전하지만 일정한 온도 이상에서는 나쁜 성분이 침출됩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주의사항이기도 합니다. 고온에서 튀기는 조리 기구를 멜라민 소재로 만든 것은 본 적이 있나요? 결이 좀 다른 이야기지만 이참에 양은냄비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습니다. 양은냄비란 알루미늄에 산화알루미늄 피막을 입힌 냄비이죠. 일반 냄비보다 가볍고 열전도율이 높아 음식이 빨리 익으며 쉽게 녹이 슬지 않는다는 게 장점이지요. 근데 방송을 보다 보면 새 냄비를 사다가 일부러 찌그러트려 오래된 느낌을 내는 가게를 본 적이 있습니다. 놀라운 일이죠. 피막이 벗겨지면 교체를 권고합니다. 알루미늄은 인체에 축적되면 배출이 어려운 금속이니깐요. 그런데 ‘낭만적이네’, ‘서민적이네’, ‘라면은 이래야 되네’하는 이 찌그러진 인식은 왜 바뀌지 않는 걸까요? ‘몇십 년간 먹어보았는데 괜찮더라’ 등의 경험치로 합리화되는 현실 속에서 ‘그릇 담론’이 더 절실합니다. - 도자기 그릇만 좋은 건 아니잖아요.☞ 음식에 어울리는 그릇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죠. 시골에 가다 보면 이제 할머니들도 커피를 마시는데 밥그릇에 내줍니다. 이분들은 그릇 크기나 색상에는 관심 없죠. 이분들에게 그릇 이야기를 할 것은 못 되지만 상황의 느낌은 알겠지요. 요리에 따라, 계절에 따라 그릇 선택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요리인이 갈고 닦아야 할 감각입니다. 군대나 급식소에서는 식판이 어울리고, 들에서 일할 때는 바가지에 나물과 고추장으로 비빔밥을 해 먹어도 좋습니다. 야외에서 많은 사람이 먹는 도시락을 도자기 그릇으로 사용하라고? 그건 아닙니다. 유리그릇이나 은제, 칠기 또한 품격있는 그릇입니다.-그릇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가지게 됐나요.☞ 우연한 기회에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1891~1931)’라는 일본인을 접하게 됐지요. 조선총독부 산림과에 근무한 평범한 사람인데 조선옷을 입고 조선말을 쓰다 마흔 살에 죽었지요. ‘이 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은 이 사람이 특이해 그를 연구하면서 일본을 드나들었습니다.(그의 무덤은 서울 망우리에 있다) 일본을 드나들면서 느낀 점이 음식점에서 멜라민 수지 그릇을 거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게 신기해 다쿠미를 미뤄두고 계속 파보니 그 뿌리에 ‘기타오지 로산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한국에 전하고 싶어서 책도 냈습니다. ‘로산진 평전’ ‘요리 그릇으로 살아나다’ ‘요리의 길을 묻다’ 등을 내면서 도자기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미뤘던 다쿠미는 지난해 소설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으로 출판했습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전설의 여기자, 마지막 인터뷰이는 ‘나’

    전설의 여기자, 마지막 인터뷰이는 ‘나’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오리아나 팔라치 지음/김희정 옮김/행성B/288쪽/2만 2000원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면서 ‘오리아나 팔라치’를 알게 됐다. 인터뷰 관련 수업으로 기억한다. 교수는 파워포인트로 그의 사진을 띄워 놓고, 유명한 인터뷰 몇 개를 사례로 들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공격적으로 인터뷰해 “베트남전은 어리석은 전쟁”이라는 자백을 받아낸 일, 이슬람 원리주의자이자 이란 지도자인 아야톨라 호메이니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상징인 차도르를 벗어 찢어버린 일 등이었다.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은 그의 질문이 너무 공격적이어서 “무례하다”며 뺨을 때리려 했고, 그는 “날 때리면 바로 기사를 쓰겠다”며 맞서기도 했다. 흑백 사진 속 그의 얼굴을 보며 그런 용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궁금했다.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는 전설적인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그가 남긴 각종 미공개 원고를 비롯해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 그리고 그가 했던 말을 모아 자서전 형식으로 구성했다. 오리아나의 어린 시절부터 그가 암으로 죽을 때까지를 그의 입을 빌려 생생하게 엮었다. 1929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난 오리아나는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레지스탕스 부모 아래에서 자랐다. 어린 나이 때부터 독재의 위협과 전쟁의 공포를 겪어야 했다. 어린 시절의 환경이 그를 강하게 만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열두 살 무렵 오리아나의 아버지가 폭격에 두려워 우는 그의 뺨을 때리고는 “용감한 소녀는 울지 않는다”고 한 일화는 익히 알려졌다. 오리아나는 그 일을 두고 “그날 이후로 난 울지 않았다. 그렇지만,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울었다”고 속내를 밝혔다.오리아나는 다른 학생들보다 2년 일찍 학교를 졸업하고 삼촌의 권유로 의대에 들어갔지만, 학비가 부족해 돈을 벌고자 신문기자가 된다. 1967년엔 브루노 삼촌의 권유로 베트남전 종군기자로 참전한다. 첫날 저녁 포화 소리를 듣고서야 그는 전쟁터 한복판에 온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세상의 다른 쪽에서 사람들은 생명이 10개월 남은 환자를 살리려 10분 남은 환자의 심장을 떼어내는 게 정당한가를 묻 는데, 이곳에서는 튼튼한 심장을 가진 젊고 건강한 전 국민의 일생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것이 정당한가를 묻지 않는다”고 말한다. 1968년 멕시코 학생 운동에서 등과 다리에 3발의 총알을 맞고 시체 더미에 버려졌다가 극적으로 살아난 일은 소설을 읽는 느낌마저 든다. 자신의 총상에 관해 서술하는 부분은 시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만약 이 세 군데 흉터가 없었더라면 나는 스스로 끊임없이 불행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태어나고 죽는 것은 무슨 소용이 있는지 여전히 자문했을 것이다”라고 술회한다. 전쟁 취재 이후 오리아나의 펜은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향한다. 그의 인터뷰로 많은 유명 인사가 무장해제당했다. 20세기 중·후반 지구 곳곳을 넘나들며 진행한 인터뷰 하나하나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전설의 여기자’란 명칭도 이때 생겨났다. 심지어 “오리아나 팔라치가 인터뷰를 하지 않는 사람은 세계적 인물이 아니다”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특히 그가 인터뷰에 관해 남긴 말은 언론인이라면 곱씹어 봐야 할 부분이다. 그는 “인터뷰를 잘하려면 인터뷰이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빠져들어야 한다”면서 “이 점은 항상 불편했다. 그 안에서 폭력성과 잔인함을 항상 봐 왔다”고 토로했다. 가장 유명한 인터뷰로 거론되는 키신저와의 인터뷰가 이런 사례일 것이다. 그는 키신저를 가리켜 “가장 냉혈한 뱀, 얼음같이 차디찬 남자였다”며 서슴지 않고 독설을 내뱉는다. 연인이었던 그리스 혁명가 알렉산드로스 파나굴리스와의 사랑과 그의 의문사에 관한 법정 증언, 그리고 이를 소재로 한 소설을 쓰는 과정 등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 은둔과 고립, 창작의 고통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출판사 측은 원서에 관해 “그의 저서 대부분을 출간한 리촐리 출판사가 작업한 결과물이어서 의미가 있고 믿음이 간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글과 인터뷰만으로 구성한 책만으론 그의 생애를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를 다룬 평전과 함께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전설적인 기자의 내면 깊은 곳에서 전해온 목소리가 주는 울림은 크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손예진♥정해인 해피엔딩, 시청률 6.8% 기록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손예진♥정해인 해피엔딩, 시청률 6.8% 기록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손예진, 정해인의 진짜 연애가 노란 우산 아래에서 다시 시작됐다. 시청률은 전국 6.8%, 수도권 7.7%(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를 기록하며 해피엔딩을 맞이했다.지난 19일 방송된 최종회에서 다시 만난 진아와 준희는 계속 어긋났다. 하지만 “우리 인연은 거기까지였던 거다”라며 애써 최면을 걸어 봐도 서로를 향한 마음을 멈출 수 없었다. 진아는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제주도로 갔고, 준희가 그녀를 찾아가며 이들의 인연은 다시 시작됐다.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아픈 기억을 빗속에 흘려보내고, 서로를 그리워했던 긴 시간을 지나 진짜 사랑을 다시 찾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우리에게 연애의 기승전결을 체험하게 한 지난 8주간의 여정을 되짚어 봤다. #1. 안판석 감독, 그리고 손예진X정해진 완벽 케미 디테일한 연기를 통해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시청자를 사로잡은 손예진과 정해인. 그동안 다양한 작품에서 멜로 여신의 입지를 다져온 손예진의 현실 연기는 ‘예쁜 누나’에서도 빛을 발했고, 기대를 역시나로 바꿔놓았다. 정해인 또한 한층 성숙해진 연기와 남자다운 눈빛으로 준희의 매력을 100% 소화해내며 연하남의 새로운 정석을 만들었다. 특히 두 사람의 완벽했던 호흡은 진아와 준희의 예쁜 케미를 더욱 빛나게 했고, 시청자들이 연애를 하고 있는 남녀의 감정선을 완벽하게 따라갈 수 있었던 이유였다. 방영 전부터 “영혼이 흔들리는 연애를 경험한 것 같은 작품을 만들겠다”고 했던 안판석 감독은 그만의 현실적 감성 연출로 사랑에 대한 남다른 식견을 보여줬다. 이전 작품과 결이 다른 사랑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새로운 인생 작을 완성한 것이다. #2. ‘체험 멜로’, 매우 현실적인 연애드라마의 탄생 ‘예쁜 누나’의 8주간의 여정에서 현실을 빼놓을 수 없다. 마치 내가 연애를 하고 있는 듯 연애의 기승전결을 현실적으로 담아내며, ‘하이퍼리얼리즘 체험 멜로’라는 수식어를 탄생시켰다. 시청자들은 진아, 준희가 달콤한 순간을 즐길 때엔 함께 미소를 지었고 사랑의 위기를 겪을 땐 함께 눈물을 흘렸다. 같이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거리를 걷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남녀의 연애였기에 현실과 맞닿아 있는 그 연애드라마가 더욱 특별했다. 뿐만아니라 30대 여성 직장인으로서 진아가 겪어야 했던 회사의 문제 역시 현실에 발닿은 드라마를 완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피해자가 한순간에 가해자로 몰리고 회사가 등을 돌리는 상황은 현실에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고, 남일 같지 않은 이야기는 극중 인물들과 더욱 깊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3. 서로에 대한 평전, ‘진짜 연애’ ‘예쁜 누나’는 진아와 준희를 통해 온전히 사랑에만 집중하는 남녀의 모습을 그렸다. “누군가에게는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전쟁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전화 한 통이 더 다이내믹하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연애”라는 안판석 감독의 설명처럼 진아와 준희는 연애를 하는 동안 어떤 난관 앞에서도 사랑에 더욱 집중했고, 이별의 아픔을 겪은 뒤에도 다시 사랑을 찾아 서로의 곁으로 돌아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애를 하고 사랑을 빠지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이 사랑이 진짜 사랑이었는지, 그 상대가 진짜 인연이었는지 확신이 없어진다. 영혼이 뒤흔들릴 만큼 상대에게 집중하는 ‘진짜 연애’가 흔한 경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관심으로 타인을 오래도록 꼼꼼하게 바라보는 일은 서로 아주 많이 사랑할 때만 이루어진다. ‘예쁜 누나’는 우리가 상대의 기쁨과 슬픔, 희열과 고통을, 가감 없이 그대로 느끼는 연애를 해봤는지, 사랑의 본질에 대해 다시 되돌아보게 했다. 사랑은 모든 수고로움을 기꺼이 자처하여 쓰는 서로를 향한 평전이기 때문이다. 사진제공 = 드라마하우스, 콘텐츠케이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병마 앞에서도, 죽음 앞에서도… 동화처럼, 사랑을 쓰다

    병마 앞에서도, 죽음 앞에서도… 동화처럼, 사랑을 쓰다

    평생 병마와 싸웠지만 정작 다가온 죽음 앞에서 태연했던 사람. 한 줄의 문장이라도 더 쓰기 위해 하루를 더 살고 싶었던 사람. 생의 흔적을 동화로 남기기 위해 평생을 바친 아동문학가 권정생(1937~2007)이다.그의 삶과 문학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본 전기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산처럼)이 오는 17일 11주기를 맞아 출간됐다. 책을 집필한 이충렬 전기 작가는 2년여에 걸쳐 권정생이 생전에 교류한 지인 30여명을 인터뷰하고 그의 발자취를 좇았다. 책에는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배운 것도 없었던” 권정생이 힘겹게 습작을 하며 100여편의 동화를 써 내려간 인고의 세월이 생생히 담겼다.이 작가는 14일 “보통 권정생에 대해 알려진 건 가난과 병고 속 교회 종지기로서의 삶, 아동문학가 이오덕과의 오래된 관계였다”면서 “이도 중요하지만 권정생이 죽을 듯 아픈 와중에서도 어린이들에게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신념과 내면 세계가 궁금했다”고 밝혔다. 권정생은 기존 한국 창작 동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분단과 전쟁의 그림자, 일제강점기의 수탈, 삶과 죽음 등 현실적인 소재를 많이 다뤘다. 가난과 폭력 속에서 희생된 시골의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며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자 애쓴 과정이 책에도 자세히 묘사돼 있다. “권정생이 살았던 경북 안동은 6·25 전쟁 당시 격전지로 피해가 많았고, 가난한 농촌 아이들은 학교가 아닌 공장에 가거나 식모살이를 하던 시절이었어요. 권정생은 농촌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했죠. 가난이 부모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전쟁과 이념 때문이라는 사실을요. 아무도 다루지 않은 주제를 파고든 덕분에 그가 독창적인 작가로 존재할 수 있었어요.” 천사나 무지개가 등장할 법한 동화의 전면에 시대의 고통을 내세웠지만 권정생 작품의 주제는 결국 사랑과 평화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권정생은 인생의 근본이 더불어 사는 것에 있다는 걸 깨달은 듯해요. 민들레꽃을 피운 강아지 똥의 희생을 다룬 ‘강아지똥’, 전쟁과 가난 속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소녀를 그린 ‘몽실언니’가 ‘더불어 사랑하며 살자’는 그의 신념이 담긴 작품이에요. 가난한 어린이들에 대한 애정이 많았던 그가 ‘키다리 아저씨’처럼 막연한 희망보다는 ‘서로 뭉치면 힘이 되고 밥벌이도 할 수 있다’는 식의 구체적인 사랑을 보여 주려고 애썼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가는 권정생의 삶을 취재하면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최초의 발표작 ‘여선생’을 1955년 청소년 월간지 ‘학원’ 5월호에서 발굴해 소개했다. 그 밖에도 늘 죽음을 의식하며 독신으로 지낸 그가 청혼하길 원했지만 포기해야 했던 한 여인과의 사연과 그에게 동화책 출판의 길을 열어 준 이오덕과의 인연, ‘삼형제’로 불릴 만큼 가까웠던 이현주 목사, 이철수 화백과의 교유도 세세하게 복원했다. “평전이 한 사람에 대한 평가만 하고 그치는 것과 달리 전기는 그 사람이 추구했던 삶을 통해 또 다른 길로 나아가게 하는 관문 같은 것입니다. 권정생이 어떤 길을 걸어왔고, 자신의 작가적 능력을 문학으로 어떻게 승화시켰는지 이해하면 그의 작품이 읽고 싶어질 겁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울릉도 산나물 채취꾼 안전에 비상

    울릉도 특산물인 명이(산마늘) 등 산나물 채취꾼들의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달부터 산나물 채취가 허용된 이후 험준한 산악에 자생하는 산나물 채취꾼들의 추락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9일 울릉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 8일 오전 10시 35분쯤 경북 울릉군 서면 남양리 계곡에서 A(70·여)씨가 추락해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전날 오전 나물을 캐러 간다며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119구조대원은 신고를 받고 출동해 계곡 주위를 수색한 끝에 A씨를 발견했다. 경찰은 A씨가 40여m 높이 계곡에서 떨어져 숨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앞서 지난달 19일 오전 9시 20분쯤 울릉군 사동 안평전 등산로 근처에서 산나물을 뜯다가 추락한 B(53·여) 씨가 울릉의료원으로 옮겼지만 숨졌다. 같은 달 3일엔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해도사 인근에서 산나물을 채취하던 C(72)씨가 20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올들어 지금까지 울릉도에서 산나물을 캐다 부상을 입은 4명은 육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매년 봄 울릉도에선 명이 채취로 인한 인명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 동안 15명(2011년 3명, 2012년 4명, 2013년 3명, 2014년 4명, 2016년 1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사망 사고가 잦은 것은 해마다 명이가 비싸게 팔리면서 채취에 나선 주민들이 급경사의 험준한 곳까지 진출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명이는 ㎏당 가격이 1만 8000원선으로 성인이 하루 30만~100만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울릉경찰서 관계자는 “해마다 안전교육을 이수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산나물 채취를 허가하지 않고 있으며, 실제 채취에 나설 경우 위치 확인에 도움이 되는 노란색 조끼와 호루라기를 갖고 2인 이상 다니도록 당부한다”면서 “안전 수칙을 철저히 지켜 줄 것을 거듭 당부한다“고 말했다. 울릉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씨줄날줄] 은밀한 대화/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은밀한 대화/최광숙 논설위원

    1985년 미국 망명에서 돌아온 김대중 전 대통령 부부는 동교동 자택 연금을 당했다. 그것도 괴로운데 안기부 요원들이 집 주위에서 고성능 기기로 모든 대화를 엿들었다. 이희호 여사는 안기부의 도·감청을 피하기 위해 “집안에서 늘 라디오 볼륨을 높이고, 중요한 이야기는 필담으로 했어요. 책받침만 한 판에다 글씨를 쓰고 지웠지요”라고 당시를 회고했다.(이희호 평전) 인터넷,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수시로 다양한 메신저를 사용하는 오늘의 시점에서 보면 그야말로 옛날 얘기다.일반인들이야 사사로운 대화용으로 메신저를 이용하지만 정치인들의 메신저 사용은 때로는 그 내용과 형식이 논란이 돼 정치 쟁점이 되기도 한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이메일 게이트’가 대표적이다. 힐러리가 국무장관 시절 정부의 공식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고 개인 이메일을 사용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미 연방기록법에 따르면 공직자가 개인 이메일을 사용할 경우 정부 서버에 기록을 보존하는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데, 힐러리는 하지 않았다. 요즘 우리 정치권에 힐러리의 이메일은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텔레그램, 시그널 등 생소한 메신저들이 속속 등장해 정치인들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다. 여권 핵심 인사인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과 댓글을 조작한 혐의로 구속된 드루킹 김동원씨가 텔레그램과 시그널을 이용해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시그널은 미국 국가안보국 감청프로그램을 세상에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이 쓰는 메신저로 알려지면서 유명해진 최고 보안을 자랑하는 미국 메신저다. 텔레그램은 얼마 전 성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자신의 수행비서와 은밀한 내용을 주고받을 때 사용한 메신저다. 이들 두 메신저 모두 전송 내용이 암호화되어 있어 대화 내용의 흔적이 남지 않아 정보 보호에 탁월하다. 사실 우리 정치인들이 보안성이 높은 메신저를 사용하게 된 배경은 박근혜 정부가 유언비어를 단속한다는 이유로 ‘국민 메신저’인 카카오톡에 대한 검열의지를 나타내면서다. 물론 박 정부 이전인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의원 등은 일찍이 도ㆍ감청을 우려해 미국의 카카오톡인 바이버를 이용했다. 보통 사람들은 메신저로 서로 생각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눈다. 하지만 보안성이 높은 메신저를 선호하는 정치인들은 많은 사람과 공감하는 소통 수단이 아니라 은밀하고 감추고 싶은 이야기를 몰래 전달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 같다. 정보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다. bori@seoul.co.kr
  • 고맙습니다… 제주가 된 신부님

    고맙습니다… 제주가 된 신부님

    제주도와 제주도민을 너무나 사랑해 평생을 헌신했던 ‘돼지 신부님’의 죽음에 제주도 전체가 슬픔에 잠겼다.24일 패트릭 J 맥그린치 신부의 빈소가 마련된 제주 한림성당에는 하루 종일 제주도민들의 애도 행렬이 이어졌다. 맥그린치 신부는 전날 90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도민들은 “누구보다 제주와 제주도민을 사랑하고 한평생을 바쳤던 신부님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맥그린치 신부는 60여년 전 ‘4·3 사건’의 소용돌이와 한국전쟁으로 가난에 허덕이던 제주에 들어와 목축업 기반을 다지고 사회복지시설을 설립하는 등 제주 근대화에 큰 공헌을 했다. 1928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그는 1954년 4월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사로 제주 한림본당에 부임, 제주와의 인연을 시작했다. 그가 제주에 도착했을 당시 도민들의 삶은 가난 그 자체였다. ‘가난을 벗어나지 않으면 하느님께 다가설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진 그는 인천에서 새끼를 밴 요크셔 돼지 한 마리를 구입해 한림까지 가져왔다. 이 돼지는 훗날 연간 3만 마리를 생산하는 동양 최대 양돈목장의 기초이자 제주 근대 목축업의 기반이 됐고, 맥그린치 신부는 ‘돼지 신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또 4-H 클럽을 조직하고 가축은행을 만들어 주민들과 함께 축산업을 시작했고, 1961년 축산업 교육을 목적으로 성이시돌 목장을 세웠다. 목초를 개발해 소도 기르기 시작했고 농민들에게 사료를 저렴하게 공급하는 사료공장도 만들었다. 한림수직이란 봉제공장도 만들어 1300여명의 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한림에 은행이 없어서 농민들이 계를 들었다가 돈을 떼이거나 높은 사채 이자에 허덕이는 것을 지켜보던 그는 1962년 제주도 최초이자 국내 농촌 지역 1호인 한림신용협동조합도 만들었다. 또 목장사업으로 생긴 수익금으로 병원·양로원·요양원·유치원·노인대학·청소년수련시설 등 사회복지시설을 속속 설립했다. 제주도민이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선 이후엔 호스피스 사업에 집중했다. 2002년 3월 성이시돌 병원을 호스피스 중심의 성이시돌 복지의원으로 재개원했다. 성이시돌 복지의원은 후원 회원들의 도움과 이시돌농촌사업개발협회 지원 덕에 전액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 맥그린치 신부는 지난해 2월 그의 업적을 기록한 평전 발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도민들이 협동심과 성실성이 뛰어났기 때문에 가난을 벗어나고 한국의 축산업을 선도하는 기적이 가능했다”고 도민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예수는 신부님께 어떤 분입니까’라는 질문에 ‘저는 누구를 가르치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답할 정도로 겸손한 사람이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아프고 고통받고 가난한 사람의 편에 늘 함께 하셨던 맥그린치 신부의 사랑과 나눔은 오래도록 제주도민의 가슴에 온기로 남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조전에서 “파란 눈의 아일랜드 신부님은 그렇게 제주의 아픔을 보듬고 치유하며 우리 국민의 가슴속에 하느님의 사랑과 평안을 깊이 새겨 주셨다”면서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맥그린치 신부는 27일 오전 10시 성이시돌목장 삼위일체대성당에서 열리는 장례미사를 거쳐 이시돌 글라라 수녀원 묘지에, 즉 제주도에 영원히 묻힌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씨줄날줄] 경평 축구 부활/박건승 논설위원

    [씨줄날줄] 경평 축구 부활/박건승 논설위원

    축구 발상지가 그리스인지, 중국인지 확실치 않지만 근대 축구의 영국 기원설은 맞는 것 같다. 덴마크의 폭정에 시달렸던 영국인들이 15세기 초 덴마크군을 격퇴한 후 전쟁터에서 패잔병들의 두개골을 차며 승전을 축하했던 하패스톤 경기가 축구로 발전했다는 것이다.축구는 일제 식민통치 아래에서 가슴에 쌓인 민족의 울분을 풀어줄 수 있는 청량제였고, 대한 독립의 희망을 키울 수 있는 싹이었다. 1929년에 경평 축구전이 시작된 것도 영국과 덴마크의 당시 처지와 하등 다를 바 없다. 경평 축구의 공식 명칭은 ‘경평 축구대항전’. 일제강점기 조선의 양대 도시인 경성과 평양을 대표하는 축구단이 봄, 가을 두 차례 장소를 번갈아 경기를 벌였다. 10월 8일 정기전이 처음 열린 곳은 서울 원서동 휘문고. 경성팀은 축구 명문 경신중학 위주로, 평양팀은 북한의 축구 강호 숭실학교 중심으로 꾸렸다고 한다. 1946년엔 해방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서울에서 대회가 열렸다. 평양 선수들은 38선 탓에 경비망을 뚫고 어렵게 내려왔고, 돌아갈 때는 육로가 위험해 뱃길을 택해야 했다. 이듬해 서울 선수들을 평양으로 초청하겠다는 그들의 약속은 아직 지켜지지 못했다. 1990년 통일축구대회란 이름의 경기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두 차례 열렸을 뿐이다. 경평 축구가 72년 만에 부활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달 초 예술단을 이끌고 평양에 머물렀던 도종환 문화체육부 장관이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에게 경평축구 부활을 제안해 “아주 좋다”는 반응을 얻어냈다는 소식이다. 지난 2월엔 박원순 서울시장이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에게 경평전을 제안한 바 있다. 소식을 들은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매우 긍정적으로 수용의 뜻을 밝혔다. 판이 이미 깔려진 셈이니 큰 날개 펼칠 날이 머잖았음을 느낀다. 경평전이 일제 치하에서 극일의 저항정신을 키운 본보기였다면, 72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민족 화해와 대동단결을 위한 마당이어야 한다. 일각에서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라고 했던 것처럼 정색하고 ‘평양 축구전’이라고 딴죽을 걸까 봐 걱정이다. 경평이라는 이름이 시대에 맞지 않아 바꿔야 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다소 명칭이 진부하더라도 그냥 경평 축구로 하는 것이 낫겠다. 우리 민족의 동질성을 찾고자 했던 조상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생각해서라도 말이다. ‘경평 축구’ 하면 왠지 민족의 결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89년 전 첫 경평전이 서울에서 열렸기에 부활전은 평양에서 가졌으면 좋겠다. 순진한 바람일 뿐이다. ksp@seoul.co.kr
  • “진짜 연애요?” 손예진-정해인, 곤란한 질문에도 ‘현답’

    “진짜 연애요?” 손예진-정해인, 곤란한 질문에도 ‘현답’

    배우 손예진 정해인은 ‘진짜 연애’를 해봤을까?28일 서울 영등포구 아모리스 타임스퀘어점에서 열린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극본 김은, 연출 안판석) 제작발표회에는 손예진, 정해인과 안판석 감독이 참석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그냥 아는 사이’에서 사랑에 빠지게 되는 남녀의 ‘진짜 연애’를 그린다. 손예진은 커피 전문 기업의 가맹운영팀 소속 슈퍼바이저 윤진아 역을 맡았다. 진아는 해외 파견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서준희(정해인)와 3년 만에 재회하며 전과는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안판석 감독은 제작발표회에서 그가 그릴 ‘진짜 연애’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사랑이 뭘까. 연애란 뭘까. 늘 고민하는 주제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하고 있다’ ‘졸업했다’ 등의 대답이 돌아오는데 의심 가는 대목이 많았다. 진짜 연애 맞았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내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인생을 돌이켜 봤을 때 나의 진면목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내 진짜 매력과 장점을 어느 누구도 모르고 죽는다면 억울한 마음이 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며 “남들은 모르는 나의 숨겨진 오묘한 매력, 장점을 완전하게 알아주는 것. 그게 연애라고 생각한다. 쉬운 게 아니다. 상대를 끝없이, 지겹도록 관찰하고 머릿속에 간직해야 하는 것이다. 연애란 결국, 서로에 대한 평전을 쓰는 것이다”고 생각을 밝혔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심오한 대답에 “손예진, 정해인은 ‘진짜 연애’를 해봤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정해인은 “감독님께서 말씀하신 진짜 연애 감정들에 대해서 촬영하면서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연애했던 순간들이 촬영에 도움을 준다기보다는 촬영장에서는 준희로 집중했던 순간일 뿐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을 끌어와서 도움이 되는 건 없었다. 촬영장에서는 감독님과 손예진 누나에게만 집중했다”고 답했다. 이를 듣던 손예진은 “그래서 진짜 연애 해봤냐고”라고 정곡을 찔렀고 정해인은 당황하며 “해본 적 있죠. 지금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손예진은 해당 질문에 대해 “저는 그동안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면서 그 순간엔 진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진짜였나? 진짜 사랑했나?’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극중 진아가 ‘그동안 내가 만나고 헤어졌던 것들이 다 사랑이 아니었던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하는데 공감했다. 그 때는 진짜 사랑하고 그게 영원할 거 같았는데 헤어진 후에 과거를 떠올려보면 ‘내가 정말 사랑한건가’ 그런 생각이 든다. 진짜 사랑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답을 내놨다. 실제 연하남과의 연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이번 드라마를 통해 연하와 연애를 해보고 있는데 해인씨가 해서 그런지 몰라도 보호해주고 싶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런 모습도 있지만 의외로 기대고 싶은 부분도 있더라. 누나인척 하지만 어리광부리고 싶어지는 그런 모습들이 나온다”며 “기회가 된다면”이라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손예진과 정해인의 설레는 ‘진짜 연애’를 그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오는 30일 금요일 오후 10시 45분 첫 전파를 탄다.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세계 1위 부자’ 알고보니 푸틴 대통령?…최대 212조

    ‘세계 1위 부자’ 알고보니 푸틴 대통령?…최대 212조

    “세계 최고의 부자가 누구냐”고 물으면 “아마존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조스(54)다”고 답할 것이다. 포브스 세계 부호 순위에서는 그가 현재(14일 기준) 순자산 1315억 달러(약 140조 2800억 원)로 1위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많은 사람이 ‘실질적’인 세계 최고 부자로 블라디미르 푸틴(65) 러시아 대통령을 꼽을지도 모르겠다. 미국 경제전문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최근 ‘뉴스위크’와 ‘디 애틀랜틱’ 등을 인용해 왜 푸틴 대통령이 현재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인지를 소개했다.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푸틴 대통령의 6년간(2011~2016) 수입은 약 3850만 루블(약 7억1800만 원). 가장 최근인 2016년에만 885만8432루블(약 1억6574만 원)을 벌어들였다. 여기에는 급여와 군인보조금, 은행예금 등이 포함됐다. 예금은 총 13개의 계좌에 약 1380만4389루블(약 2억5700만 원)이 예치돼 있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은행에는 주식 230주도 있다. 부동산은 본인 명의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면적 77㎡(23평)짜리 아파트와 18㎡(5평)의 주차장, 그리고 교외에 1500㎡(453평)짜리 토지를 갖고 있다. 푸틴은 주로 크렘린궁에서 지내지만 모스크바 시내에 153.7㎡(46평)짜리 임대 아파트도 빌려쓰고 있다. 이밖에도 그는 빈티지 자동차 2대, 오프로더 1대, 차량용 트레일러 1대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그동안 드러난 푸틴의 호화로운 일상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푸틴의 실제 자산을 러시아 정치분석가 스타니슬라프 벨코프스키는 700억 달러(약 74조4900억 원), 러시아 금융인 출신 빌 브라우더는 2000억 달러(약 212조 8400억 원)가 넘는다고 주장한다. 이는 제프 베조스마저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그럼 왜 푸틴의 정확한 순자산을 밝혀낼 수 없는 것일까? 2015년 공개된 ‘파나마 문서’는 푸틴이 대리인을 통해 자산을 숨기거나 늘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비즈니스인사이더가 푸틴이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임을 보여주는 단서를 목록으로 정리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의 공식 거주지는 모스크바 크렘린궁이지만, 그는 대부분 시간을 노보오가리오보 시 외곽에 있는 관저에서 보낸다. 그가 사용할 수 있는 궁전과 별장의 수는 20채로 알려졌다. 또 최근에는 그에게 다른 재산이 있다는 주장이 거론됐다. 그중 가장 큰 논란은 ‘비밀 궁전’으로, 정부의 불법 자금으로 지어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웅장한 저택을 짓는 데 10억 달러가 들었다. 여기에는 개인 극장을 비롯해 헬리콥터 3대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착륙장도 있다. 침실은 호화스럽고 벽 장식도 화려하다. 이 저택의 존재는 2011년 당시 공사 중에 찍은 사진이 유출되면서 밝혀졌다. 이듬해인 2012년 야당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는 푸틴 대통령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담은 32쪽짜리 보고서 ‘갤리선 노예의 삶’을 공개했다. 그는 “푸틴이 여러 대의 전용기와 헬리콥터, 요트를 소유하고 있다”면서 “푸틴의 주거지 20곳 중 9곳이 그의 재임 중에 지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푸틴은 19명까지 탑승하는 다쏘사의 팰컨 전용기 등 58종의 항공기를 갖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보석업체를 통해 1100만 달러짜리 객실 인테리어를 갖춘 비행기도 있는데 화장실 변기만 10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최대 186명이 탈 수 있는 이 비행기를 5대나 소유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또 보고서는 푸틴이 요트 4척 보유하고 있으며, 각각 몇천 달러의 유지비가 든다고 주장한다. 이중 ‘로시야’(Rossiya)호(號)는 2005년 업그레이드 과정에서 12억 달러가 들었다. 사진 속 ‘그레이스풀’(Graceful)호는 14인승으로 침실 6개를 갖추고 있다. 푸틴에게는 ‘올림피아’(Olympia)라는 요트도 있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3500만 달러짜리로, 길이 57m짜리 초호화 요트를 프리미어 리그 ‘첼시’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51)에게 선물 받았다. 러시아 국영 선박회사의 한 전직 대표에 따르면, 푸틴은 이 요트에 정부 자금을 사용해 타고 있다. 푸틴은 패션에도 신경을 쓰는 듯싶다. ‘갤리선 노예의 삶’에 따르면, 그는 시계 11개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 가치는 68만 7000달러로 추정된다. 러시아 국영신문 ‘러시아 비욘드 더 헤드라인’도 푸틴이 소유한 아 랑에 운트 죄네(A. Lange & Söhne) 시계는 가격이 50만 달러라고 보도한 바 있다. 2017년 7월 경매에 나왔던 100만 달러짜리 파텍필립 시계도 푸틴이 소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함께 제공된 문서가 푸틴이 소유자였음을 보여줬지만, 크렘린은 이를 부인했다. 과거 푸틴은 본인 시계를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한 적도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푸틴은 한때 블랑팡 시계 5개를 갖고 있었지만, 휴가 중에 시베리아 소년에게 1개, 그리고 기념품을 달라고 말한 공장 노동자에게 1개를 줬다. 이들 시계는 각각 1만 500달러의 가치가 있다. 푸틴의 의복 역시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뉴스위크의 벤 유다는 3년간 푸틴을 취재해 낸 책에서 푸틴은 맞춤 양복만 입고 넥타이는 무엇보다 발렌티노 넥타이를 좋아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비욘드 더 헤드라인도 푸틴은 몸에 꼭 맞는 맞춤 양복을 선택하는 취향을 지녔다고 밝혔다. 2015년에는 그가 선호하는 양복 브랜드로는 ‘키톤’과 ‘브리오니’가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거기에는 “이런 정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1명의 재단사가 제작부터 완성까지 오랜 시간 공을 들이며 가격은 5500달러가 넘는다”고 쓰였다. 이 신문에 따르면 푸틴에게는 담당 경력만 10년이 넘는 스타일리스트가 있다. 스타일리스트가 옷의 라벨을 모두 제거해 어떤 브랜드를 입고 있는지 드러난 적이 없다고 한다. 2015년에는 디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와 함께 운동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쿼츠에 따르면, 푸틴이 입었던 ‘로로피아나’의 실크 캐시미어 혼방 운동복 바지는 1425달러. 함께 입고 있던 상의까지 더하면 3200달러다. 2007년 러시아 전 고위 공무원 스타니슬라프 벨코프스키는 푸틴이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에 총액 400억 달러의 자산을 은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말이 사실이면 당시 세계 부호 순위 목록에서 푸틴이 멕시코 통신재벌 카를로스 슬림과 이케아의 창업자 고 잉그바르 캄프라드 사이에 들어 4위를 차지하던 것이다. 당시 벨코프스키는 푸틴이 러시아 양대 석유회사인 수르구트네프테가스에서 37%, 가스프롬에서 4.5%의 지분을 비밀리에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벨코프스키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푸틴이 스위스 석유회사 ‘군보르’의 “최소 75%”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밖에도 내가 모르는 사업 분야가 있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군보르 측은 “푸틴 대통령에게 군보르의 소유권이나 어떤 혜택도 있지 않다”면서 “그는 군보르와 그 활동의 수혜자가 아니다”고 해명했다. 푸틴 대통령의 순자산 추정치는 시간이 흐르면서 높아질 뿐이다. 허미티지 자산운용 CEO였던 빌 브라우더는 푸틴의 숨겨진 재산이 2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브라우더는 1990년대 러시아에 투자했었지만, 궁극적으로 푸틴과 마찰을 빚었다. 자신의 변호사 세르게이 마그니츠키가 러시아 관리들의 부패를 폭로한 뒤 오히려 탈세 방조 죄목으로 체포돼 감옥에서 옥사한 뒤 브라우더는 2012년 ‘마그니츠키법’의 통과를 주장하며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재벌)에 대한 제재를 이끌었다. 푸틴 추종자들의 존재야말로 그 정확한 자산을 알아낼 수 없는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디언은 2010년 “미국의 외교 문서는 푸틴이 대리인을 통해 자산을 보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보도했다. 푸틴의 대리인으로는 친구이자 첼로 연주자인 세르게이 롤두긴과 방크로시야 최대주주 유리 코발추크도 포함돼 있다. 이런 인간 관계의 일부도 2015년 파나마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유출된 방대한 데이터 중에는 푸틴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것은 없었지만, “푸틴의 친구들이 푸틴의 도움 없이 안전하게 할 수 없는 거래로 몇백만 달러를 버는 것은 분명하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러시아의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안드레이 솔다토프와 이리나 보로간은 파나마 문서의 내용은 결국 “푸틴이 개인적으로 친한 친구들에 대한 공격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푸틴과 크렘린은 그가 자신과 그 친구들을 위해 지위를 이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모스크바 지국장을 지낸 스티븐 리 마이어스는 저서 ‘뉴 차르: 블라디미르 푸틴 평전’에서 푸틴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밝혔다. “난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 난 감정을 수집한다. 난 러시아 사람들이 러시아와 같은 위대한 국가의 지도력을 내게 두 번이나 맡겼다는 점에서 부유하다. 난 이것이 내게 가장 큰 부라고 믿는다” 반복되는 반박은 푸틴의 재산에 대한 감시를 멈추게 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푸틴을 강하게 비판한 러시아 정치인으로 2015년 암살된 보리스 넴초프는 2012년 보고서에서 “2000만명의 국민이 하루하루 간신히 먹고사는 나라의 대통령이 이토록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는 것은 뻔뻔함을 넘어선 나쁜 짓”이라고 기록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문화마당] 내 방을 둘러보며/김소연 시인

    [문화마당] 내 방을 둘러보며/김소연 시인

    내 방은 사면이 책으로 빼곡하게 둘러싸여 있다. 한쪽에는 사전과 도감들이 꽂혀 있고, 그 옆에는 평전과 음악, 미술, 과학 책들이 자리잡았다. 중앙에는 역사, 철학 서적들이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모서리를 꺾어 다른 면은 소설책들이, 또 모서리를 꺾어 다른 면에는 시집과 문학이론서들이 있다. 내가 책상에 앉아 있는 오른쪽 벽은 커다란 창문이 있고, 창문을 뺀 나머지 벽은 사랑에 관한 책들만을 수집해서 꽂아 놓았다. 사랑에 대해서 오래전부터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랭 바디우, 울리히 베크와 엘리자베트 벡 게른샤임, 지그문트 바우만, 김영민, 플라톤, 조르주 바타유, 이성복, 파스칼 키냐르 등등. 아무리 읽고 밑줄을 쳐도 허기가 가셔지질 않는 세계였다. 최근 몇 년 전부터는 벨 훅스, 에바 일루즈를 알게 됐는데 그나마 내가 알고자 했던 것들을 조금은 알게 되는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재미 삼아 읽어 보려 며칠 전에 구입한 정희진의 영화 에세이 ‘혼자서 본 영화’에서 사랑에 대해 누군가에게 꼭 듣고 싶었던 걸 듣는 느낌이 강했다. 모두 여성이 썼다. 나는 여성으로부터 사랑을 배우려 했던 것일까? 그러려고 작정한 적은 없지만 그랬을지도 모른다. 왜 여성으로부터 사랑을 배우려 했던 것일까? 질문을 바꿔 놓고 생각하자 여성이 여성으로부터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반문을 스스로에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참으로 많은 남성 학자들로부터, 남성 예술가들로부터 사랑에 대해 나는 배워 왔다. 그들이 제시하는 사랑을 사랑이라고 믿었고 그들이 바라보는 인간을 인간이라고 믿었고 그들이 그려 내는 타자(여성)를 여성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겪을수록 사랑을 더 모르겠는 사람이 돼 갔던 것은 아닐까. 유년기에 읽었던 동화들에서부터 청소년기에 읽었던 소설들, 대학 시절에 읽었던 시집들을 비롯한 숱한 문학서적들, 철학책과 역사책들. 그때그때 나를 바꿔 놓았던 명저들의 저자들은 거의 전부가 남성들이었다. 나는 아마 생물학적으로만 여성일 뿐 사고구조 자체가 남성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사면의 빼곡한 내 책들을 둘러보며, 새삼스럽게 경악해 본 적이 있다. 2016년 초겨울 이 집으로 이사해 텅 빈 책꽂이에 다시 책을 꽂을 때였을 것이다. SNS에서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에 대한 고발을 쏟아내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 이후 1년 남짓 동안은 일부러 여성이 쓴 책들만을 골라 읽었다. 리베카 솔닛, 주디스 버틀러, 게일 루빈 같은 페미니스트의 저서들이 철학책들을 모아 둔 자리에 꽂혀 있다. 보들레르나 랭보보다는 쉼보르스카와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집을 읽었다. 독서를 통해 더이상 낯선 시선이 만나지지 않는다는 시큰둥함이 어리석음과 무지에 기반한 것임을 이 저자들을 통해 알게 됐다. 이 새로운 저자들과 다르지만 같은 시각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다. 서지현 검사와 최영미 시인으로부터 그리고 김지은 정무비서의 증언까지. 들어야만 하고 배워야만 하는, 생생히 살아 있는 역사적인 증언들이다. 무지가 곧 폭력이라는 말은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이 증언들이야말로 고통스럽게 알아 가야 하는 이 세계의 진실이다. 무지할 권리와 외면할 권리가 아무에게도 없다는 걸, 그 권리 자체가 폭력이라는 걸 이제는 모를 수 없게 됐다. 내 방에서 함께 기거해 온 남성 저자들에게서는 거의 배워 본 적 없는 세계다.
  • [유성호의 문학의 길목] 윤동주와 정병욱과 광양시

    [유성호의 문학의 길목] 윤동주와 정병욱과 광양시

    지난 27일 전남 광양시에서는 윤동주 문학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윤동주 문학 왜 광양인가?’라는 주제 아래 경상대 강희근 교수, 일본의 교토여자대학 우에노 준 교수, 그리고 필자가 발표자로 나서 윤동주 문학에 대한 재해석 과정과 결과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더불어 광양과 윤동주가 결속해 갈 생성적 가치에 대해 하루종일 열띤 논의를 이어 갔다. 윤동주 시의 연원과 특성 그리고 새로운 콘텐츠로의 확장 가능성이 진지하게 모색된 자리였다. 아직까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할 윤동주와 광양의 연관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 맥락은 이러하다. 1941년 말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졸업 기념으로 친필 원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3부 작성해 한 부는 자신이 가지고, 한 부는 은사인 이양하 교수께 드리고, 나머지 한 부는 문과 2년 후배 정병욱에게 건넸다. 윤동주가 타계했을 때 자신과 이양하 교수가 가지고 있던 것은 일실됐으나, 정병욱이 보관했던 원고가 해방 후에 세상에 알려지면서 우리는 윤동주라는 보석 같은 존재를 알 수 있었다. 정병욱은 1943년 학병으로 끌려가면서 윤동주 시집 원고를 어머니께 맡기고 떠났는데, 어머니는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마루 널을 뜯어 그 아래에 원고를 보관했던 것이다. 일찍이 정병욱은 이 원고를 어머니가 명주 보자기에 겹겹이 싸서 보관했었다고 기록한 바 있다. 그 후 정병욱의 누이동생 정덕희가 새로운 증언을 하게 되어 사실이 바로잡히게 됐는데, 정병욱이 학병 나가느라 집에 없어서 잘 몰랐을 거라고 하면서 정덕희는 그 원고가 마루 밑에 있었다고 기억해 주었다. 마루 널 아래 땅을 깊이 파서 그 속에 짚을 깐 다음 큰 독을 들여놓고, 그 안에 원고를 넣어 보관했다는 것이다. 깊이 숨겼을 뿐만 아니라 짚으로 건조 상태가 유지되도록 한 것이다. 이 과정은 정덕희 여사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를 ‘윤동주 평전’의 작가 송우혜 선생이 소상하게 기록해 놓은 바 있다. 정병욱은 집에 돌아와 이 원고를 다시 받아들고 뛸 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이 원고는 ?1948년 1월 한 권의 시집으로 빛을 보게 됐는데, 이 원고가 망실됐다면 우리는 최소한 윤동주의 ‘서시’나 ‘별 헤는 밤’, ‘길’, ‘십자가’, ‘또 다른 고향’ 등을 전혀 만나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우리 문학사에 윤동주라는 빛(光)과 볕(陽)을 한꺼번에 쏘아 준 사건이 광양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정병욱 가옥에 보존됐던 윤동주 유고 원본은 지금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원래 정병욱은 경남 남해 출신이고 하동에서 어린 시절을 살았는데, 부친의 사업차 일가가 광양으로 옮겨 가 살게 됐다. 고택이 있는 망덕포구는 옛날분들이 섬진강을 거슬러서 구례나 광양으로 나아가는 길목이었다. 섬진강물이 남해 바다와 합수하는 곳이기도 하다. 1925년 건물인 이 고택의 공식 이름은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이고, 현재 등록문화재 제341호로 지정돼 있다. 이제 이 고택은 두 사람의 우정과 믿음을 문학사의 아름다운 후경(後景)으로 두른 채 맑은 섬진강물처럼 광양 밤바다에 뜬 밝은 별빛처럼 반짝거리고 있다. 매천 황현 선생의 고향이기도 한 광양은 이러한 윤동주·정병욱으로 이어지는 상징 가치에 눈을 뜨고, 한편으로는 정병욱 고택을 명소로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윤동주를 가능하게 했던 이곳의 문화적 브랜드를 차근차근 만들어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윤동주와 정병욱과 광양의 세 꼭짓점을 잇는 커다란 문화적, 학문적 기념비가 될 것이다. 이제 윤동주와 다섯 살 차이였던 정병욱도 얼마 있으면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자신의 호(號)를 윤동주의 시 ‘흰 그림자’에서 가져와 ‘백영’(白影)이라고 지었을 만큼 윤동주를 사랑했던 정병욱. 윤동주와 그가 맺었던 생전의 인연과 사후에도 지속되는 아름다운 관계를 광양시가 잘 이어 가기를 마음 깊이 소망해 본다.
  • ‘박종철출판사’ 들어보셨나요

    ‘박종철출판사’ 들어보셨나요

    18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의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에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다룬 영화 ‘1987’이 한창 상영 중이었다. 영화를 보러 온 이들 가운데 이 건물 7층에 박종철 열사 이름을 딴 ‘박종철출판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었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고인의 삶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출판사는 그 관심을 비켜나 29년째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박종철출판사는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생이었던 고인과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동아리 선후배들이 주축이 돼 1989년 설립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사무실을 얻었다가 여러 곳을 거쳐 현재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대표는 박종철 열사 1년 선배였던 김태호씨다. 애초 출판사를 세운 뒤 출판사 이름을 정하지 못했는데, 1987년 사건 이후 출판사 상호 이름도 정해졌다. 김 대표는 “‘종철이의 이름을 한번이라도 더 돌아볼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에서 출판사 이름으로 지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판사 대표 서적으로 1997년 출간한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전 6권)을 들 수 있다. 김 대표는 “출판사를 연 뒤 동독 공산당이 6권짜리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대한 연구가 부실해, 우리가 이를 체계적으로 번역해 보급하고자 만들었다”고 했다. 출판사를 대표하는 다른 책으로 1998년 김 대표와 고인의 동기인 최인호씨가 함께 낸 ‘박종철 평전’을 들 수 있다. 고인에 대한 최초 평전은 출판사 소나무가 고인의 2주기를 맞아 낸 ‘그대 온몸 깃발 되어’다. 당시 책은 ‘박종철 기념사업회’ 이름으로 나왔지만, 실제 저자는 김 대표와 최씨다. 1987년 박종철 기념사업회가 세워진 뒤 정치색을 띤 이들이 참여하면서 1990년대 중반 무렵 기념사업회도 유명무실해졌다. 절판 이후 책도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김 대표는 “기념사업회 활동이 미미해 연락할 곳이 사라지자 한동안 매년 1월 기일 때면 각종 추모 행사 문의를 비롯해 언론사의 취재 요청이 출판사로 왔다. 그런 추모 열기에 맞게 우리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다시 펴낸 게 ‘박종철 평전’”이라고 말했다. “이전 책보다 격정적인 감정을 빼고 차분하게 썼다”는 게 김 대표 설명이다.  출판사는 2013년 5월부터 월간 ‘좌파’를 내는데, 지난해 6월 제호를 ‘시대’로 바꿨다. 김 대표는 “‘좌파’라는 단어가 언제부터인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과 추종자들을 가리키는 단어로 바뀌어 버렸다”면서 “우리 사회의 진보 정치와 노동에 대한 목소리를 내려던 우리 의도와 달라 제호를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1987년 이후 사회는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출판사는 예나 지금이나 정치적인 휘둘림을 경계한다. 김 대표가 영화 ‘1987’에서 시작한 최근의 갑작스러운 고인 추모 열기를 크게 반기지 않는 이유다. 김 대표는 “2008년 박종철의 형인 박종부씨가 세운 사단법인 박종철 기념사업회 이전의 기념사업회가 일부 정치꾼들에 의해 빛이 바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면서 “출판사는 앞으로 박종철과 관련한 정치적인 흔들림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양 날개 따로 움직이는 드론 개발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기술 중 하나가 바로 무인항공기 ‘드론’이다. 현재는 촬영이나 간단한 물건 배송 용도로만 드론이 이용되고 있지만 산업계에서는 소형 항공택시로 이용할 수 있는 드론까지 구상되고 있다. 카이스트 조천식녹색교통대학원 하동수 교수팀은 다양한 형태의 비행이 가능하도록 양 날개를 개별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무인항공기(드론)을 개발했다고 4일 밝혔다. 드론은 일반 비행기처럼 고정 날개가 달린 것이나 헬리콥터처럼 프로펠러가 있는 회전날개 방식 두 종류가 있다. 고정 날개를 가진 드론은 에너지 효율은 높지만 회전반경이 커 좁은 지역에서 기민하게 움직이기가 어렵다. 또 회전날개 방식 드론은 자유로운 형태의 비행이 가능하지만 에너지 효율이 낮다는 단점이 있다. 이런 단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연구팀은 고정형 날개와 회전날개가 결합된 드론을 만들었다. 특히 양 날개를 따로 제어하는 동시에 꼬리에 달린 회전날개의 추진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도록 한 기술을 개발했다. 이번에 개발된 기술을 적용하면 기존 비행기나 드론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수직 비행과 수평 비행 전환, 좁은 공간에서 빠른 방향전환 등이 가능해진다. 이를 통해 지난해 미국 우버사에서 발표한 도심 근거리 항공택시처럼 중·단거리 지역의 항공교통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윤동주를 추억하며… 은평 ‘별헤는 밤’

    서울 은평구는 28일 윤동주의 모교인 숭실학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연다고 26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문학적 업적과 삶을 재조명하고자 마련됐다. 1부 문학토크 콘서트는 윤동주 시인의 중학교 동창이자 철학자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와 윤동주 시인의 평전가로 저명한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가 시문학 세계와 그의 삶을 재조명하는 토크 콘서트로 진행된다. 2부에서는 윤동주의 6촌 동생 가수 윤형주씨를 중심으로 한 세시봉 콘서트가 펼쳐질 예정이다. 이번 콘서트는 문학과 대중음악이 어우러져 가족단위 관객이 함께 즐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공연은 무료관람으로 사전 예약을 받아 진행된다. 공연예약 및 자세한 사항은 은평구청 문화관광과(02-351-6516)로 문의하면 된다. 이와 함께 내년 4월에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를 기리고자 그의 모교인 숭실학교 인근 은평구 신사근린공원 내에 ‘구립도서관’을 개관할 계획이다. 이 도서관에서는 윤동주를 비롯해 지역 문학인들의 작품전시 등이 이뤄질 예정이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이주의 어린이 책] 개구지고 해맑은 자화상 윤동주·일주 형제의 동시

    [이주의 어린이 책] 개구지고 해맑은 자화상 윤동주·일주 형제의 동시

    민들레 피리/윤동주·윤일주 지음/조안빈 그림/창비/112쪽/1만 1000원 ‘누나!/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흰 봉투에/눈을 한 줌 넣고/글씨도 쓰지 말고/우표도 붙이지 말고/말쑥하게 그대로/편지를 부칠까요.//누나 가신 나라엔/눈이 아니 온다기에.’(편지)서설(瑞雪)처럼 티 없는 동심의 이야기가 닮은 듯 다른 형제의 시편에 담겼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윤동주(1917~1945)와 그의 동생 윤일주(1927~1985) 성균관대 건축공학과 교수의 동시를 모은 시집이 나왔다. 1935~1938년 윤동주가 쓴 동시 34편과 1955년 ‘문학예술’로 등단한 윤일주의 동시 31편을 모은 ‘민들레 피리’다. 윤동주 시인은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전인 평양 숭실중학교 시절부터 연희전문학교 문과 1학년까지 동시를 썼다. ‘윤동주 평전’을 쓴 송우혜 작가는 “한국문학사의 보석 상자인 윤동주 시집에 가만히 숨어 있는 존재들이 그의 동시들”이라며 “그의 시에는 그가 겪은 인생 자체가 들어 있다고 한다면, 그의 동시에는 그가 겪은 삶의 행복이 담겨 있다”고 서문에 썼다. 그 말대로 윤동주의 동시에는 개구지고 해맑은 소년의 얼굴이 들어 있다. ‘서시’, ‘자화상’ 등에서 나타나는 염결한 청년 이미지만 생각해 온 독자라면 새로운 발견이랄 만하다. 엄마에게 빗자루로 볼기짝을 맞고 빗자루를 숨겼다 또 야단맞는 모습(빗자루)이나 동생이 이불에 싸 놓은 오줌 자국을 보고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만주 땅 지돈가’ 갸우뚱하는 모습(오줌싸개 지도)이 담백하고 맑은 언어로 시가 됐다. 형의 시심을 이으면서도 자신만의 시 세계를 구축한 윤일주의 작품에서는 형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이 읽힌다. ‘눈 감고 불어 보는 민들레 피리/언니 얼굴 환하게 떠오릅니다./날아간 꽃씨는/봄이면 넓은 들에/다시 피겠지./언니여, 그때엔/우리도 만나겠지요.’(민들레 피리)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원본·어록·소설… 70살 백범일지 한눈에

    원본·어록·소설… 70살 백범일지 한눈에

    관련 책 380여권·출판물 전시 윤봉길·美피치 부부 등도 만나 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 ‘백범일지’ 출간 70주년을 맞아 ‘백범일지 70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특별전이 개최된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는 백범일지 출간 70돌 특별전 ‘백범일지, 70년간의 대화’를 오는 15~30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연다고 12일 밝혔다.백범일지는 독립운동가였던 백범 김구 선생이 육필로 쓴 자서전으로 1947년 12월 15일 출판사 ‘국사원’에서 처음 활자화된 뒤 각 출판사에 의해 지금까지 출간되고 있다. 이번 특별전에는 백범일지 원본(보물 제 1245호)을 비롯해 백범일지를 모태로 나온 380여권의 책들이 한자리에 전시된다. 국한문 혼용체인 백범일지 원본의 ‘영인본’(원본을 사진 등을 이용해 그대로 복제한 책) 백범 어록·평전·연구서·논문집·소설 등의 출판물이 모두 선보인다. 백범일지의 국사원판 초판·재판·3판본과 김구 선생이 윤봉길 의사의 아들(윤종)에게 준 친필 서명본도 전시된다. 윤봉길·이봉창·이재명·나석주 의사를 비롯한 한인애국단원들, 백범의 피신을 도운 중국 여인들,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도움을 준 중국 요인들, 윤봉길 의거 직후 백범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미국인 피치 부부 등도 이번 특별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형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장은 “백범일지는 첫 출간 이후 70년 동안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하며 청소년 필독서, 국민 교양서로 자리매김했다”면서 “백범일지는 영화, 드라마, 판소리, 창무극(唱舞劇) 등으로 장르를 넓혀 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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