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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양에 「김일성 장수연구소」/생리ㆍ생물학자등 3천여명 동원

    ◎체질닮은 노인 선발,임상실험도 북한은 평양시 형제산 구역 산기슭에 김일성 개인의 건강과 장수를 전문연구하는 「장수문제연구소」를 설치ㆍ운영해오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14일 정부관계 당국자에 따르면 이 연구소에는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을 주축으로 북한내의 가장 권위있는 의사와 생리학자 생물학자 농학자등 3천여명이 동원되어 전립선염 난청등 노인성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김일성의 폐ㆍ위ㆍ간ㆍ뇌등 주요 신체부위를 세부구분하고 각 부위별로 조직의 기능과 신진대사관계를 중점 분석해 김일성의 노쇠화및 돌발적 신체기능변화에 대비하는 예방의학적 연구업무를 체계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최근들어서는 김정일에 대한 건강관리임무도 수행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소는 또 평남 영원등 전국 여러곳의 산수좋은 곳에 분소를 두고 있으며 각 분소는 김일성과 체질이 비슷한 80세이상 노인 남ㆍ녀 20∼30명씩을 엄선,1∼2년간 집단수용해 연구원들이 개발한 여러종류의 음식물과 조제약물을 투여,장수효과를 측정하는임상실험을 하고 그 결과를 중앙연구소에 정기적으로 보고해 김일성의 장수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이 연구소는 환경과 김일성체질과의 상관관계를 집중적으로 연구,계절과 건강상태에 따라 거주지를 바꾸도록 권유하고 있으며 이에따라 김일성은 평소 「주석궁」에서 여름에는 삼지연,겨울에는 주을온천,운동을 위해서는 태성호 연풍호등 특별별장과 각도의 수중별장 등으로 거처를 옮기고 있다는 것. 이 연구소는 설립당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만수무강연구위원회」라고 불렀으나 최근 대내외의 이목을 의식,「장수문제연구소」로 명칭을 바꾸었고 일반인들에게 건강문제를 연구하는 평범한 연구소로 위장하기 위해 「기초과학연구소」로 불리고 있다. 한편 북한은 최근들어 일본과 서독으로 부터 최첨단 고가의료기기를 수입하여 주석궁내에 김일성전문클리닉을 설치하고 이곳에서 체크되는 김일성의 일일 건강검진내용을 연구원들에게 제공하여 김일성장수연구에 필요한 기초의ㆍ생리학적 자료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또 김일성장수에 필요한 무공해 자연식품공급을 위해 평양시 용성구역안에 중앙당이 직접 관장하는 이른바 「1호농장」이 운영되고 있는데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1호농장구룹빠」라고 불리며 이들에게는 최고 수준의 의사로 구성된 특수검진대가 월 1회씩 정밀검진을 실시,조금이라도 이상이 발견될 경우 즉시 다른 곳으로 전출시키는 등 엄격한 인원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또 「1호농장」은 화학비료와 농약사용이 일체 금지되고 있으며 생산소요자재는 「8ㆍ9호 물자담당」부서에서 책임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1호농장」의 주요생산품은 사과 배 버섯등 특작물이 주를 이루며 북한주민들은 이곳 생산품을 「8호사과」「8호배」등으로 부른다.
  • 부산 미 문화원 방화/북한,기념 군중집회

    【도쿄 AFP 연합】 북한은 17일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8주년을 맞아 평양시내에서 대규모 군중집회를 개최했다. 도쿄에서 수신된 북한관영 중앙통신(KCNA)는 이날 집회에 연사로 참석한 최수일 조선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부위원장이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은 미제국주의 침략자들에 대한 남한국민들의 적의와 억압된 분노의 표현이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도했다.
  • 40년만의 「전화상봉」30분/한필성씨,북의 노모와 감격의 통화

    ◎“오마니”ㆍ“필성아”외치곤 목메인 울음만/귀 어두운 어머니에“평양 갈께요”다짐 【삿포로(일본)=동계아시안게임 특별취재반】 『오마니』『필성아』 40년만에 처음으로 서로를 확인한 어머니와 아들은 목이메여 울음만 삼켰다. 살아 생전에 다시는 불러보지 못할줄 알았던 어머니를 부르는 아들의 음성은 기쁨과 회한으로 떨리기만 했다. 『네가 정말 필성이냐. 40년전 홀로 떠난 필성이가 틀림없느냐』 『예,오마니. 석선(아명)입니다』 14일 상오8시30분.일본 삿포로 뉴오타니 호텔. 40년전 16세 홍안의 소년으로 어머니 곁을 떠났던 한필성씨(56ㆍ경기도 파주군 문하면 동패리)가 평양에있는 어머니 최원화씨(85)와 극적으로 전화통화에 성공,비록 육성으로나마 감격적인 해후를 나누는 순간이었다. 『혼자 타향에 떨어져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필화가 갖고온 사진으로 어마니 모습을 뵙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지난8일 40년만에 처음 누이동생 한필화씨(48ㆍ북한 빙상연맹서기장)와 상봉한 한필성씨는 아직도 어린자식으로 생각하고 걱정부터 하는 노모의 목소리에 가슴이 찢어지는듯 했다. 이들 모자의 전화상봉은 필성ㆍ필화씨 남매 내외가 13일 삿포로의 뉴오타니호텔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함께 머물고 있을때 평양에서 노모가 직접 국제전화를 걸어와 이루어졌다. 상오9시까지 30분간 계속된 이날 통화에서 필성씨는 어머니의 귀가 고령으로 잘 들리지 않아 큰소리로 말해 의사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필성씨는 『이곳에서 잘살고 있으니 걱정마세요. 귀국하면 적십자사를 통해 고향방문을 신청해 하루 빨리 달려 가겠습니다』라고 흥분된 어조로 인사를 했으며 어머니 최씨는 안부를 묻는 아들의 질문에 『김일성수령님이 우리 가족들을 돌봐줘서 잘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필화씨는 오빠와 어머니의 통화를 눈시울을 붉히며 지켜본 뒤 『북한에 돌아가는 대로 오빠를 초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필성씨는 어머니 이외에도 8살위의 누나 필녀씨(64)와 두살아래 동생 필환씨(54) 조카 종국씨(27ㆍ필환씨의 아들) 등과 번갈아가며 통화를 했다. 노모 최원화씨가 살고 있는 평양의 집은 김일성대학체육교수로 있는 필화씨의 남편 임세준씨가 세대주로 되어 있는 아파트로 주소는 평양시 중구역 창광거리 연화2동 13반 13층 2호이며 전화번호는 평양 23672. 한필성씨 부부는 13일밤 어머니와의 통화를 시도했으나 어머니가 안계셔서 성사되지 못했으나 14일아침 뉴오타니호텔로 국제전화를 해달라고 부탁해 노모가 평양­중국­삿포로라인을 이용해 전화를 걸어와 이루어 졌다. 한편 한필성씨 내외는 14일 하오1시15분 전일본항공편으로 삿포로를 출발,도쿄에서 이틀밤을 보낸뒤 17일 귀국할 예정이다. ◎“6일간의 만남 너무 짧아요/기약없는 이별 안타까움만”/필성ㆍ필화씨 남매 고별 기자회견 한필성ㆍ필화 남매는 14일 상오11시45분 삿포로 지토세공항 2층 대기실 아카시아룸에서 6일간의 극적상봉을 마치고 이별에 즈음한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이별소감과 앞으로의 일정 등을 밝혔다. ­오늘 아침 통화내용은. ▲필성=40년만에 북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했다. 어릴때처럼 「오마니」라고 불렀고 어머니의 목소리는 40년전과 마찬가지로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삿포로에서의 1주일은. ▲필성=삿포로는 동생을 만난 곳으로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이 평생 잊을 수 없는 곳이다. ▲필화=오빠의 사랑을 받으며 즐겁게 지냈다. 만나기전까지는 오빠의 따뜻한 정을 깊게 느끼지 못했으나 오빠를 만나고 보니 혈육은 헤어져 살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40년간 다른 체제에서 생활했는데. ▲필성=삿포로에 와보니 민단ㆍ조총련의 구분이 없더라. 가족얘기만 했다. ▲필화=40년만에 만나 알아보지 못할까 우려했으나 첫눈에 알아 보았다. 아무리 오래 떨어져 있어도 혈육은 혈육이다. 잊을 수가 없었다. ­지금 심정은. ▲필성=그립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보니 더욱 어머니를 뵙고 싶다. ▲필호=만날때는 기쁘고 헤어질땐 쓰라리기만 하다. 이날 회견은 하오12시20분까지 35분간 계속되었고 한필성ㆍ필화 남매는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지 못한채 6일간의 아쉬움을 남기고 헤어졌다.
  • 제주 새 국제공항 96년 건설/2백만∼3백만평 규모

    ◎후보지 2∼3곳 새달까지 조사/「탐라」를 하와이형 관광지로/정부 민자 유치할 임시 조치법 검토/일ㆍ홍콩과 직항로 개설 노대통령 지시 정부는 오는 2001년까지 제주도를 관광사업 중심의 하와이형으로 개발,국제적 관광지로 조성하기로 하고 각종 관광ㆍ위락시설은 물론 신국제공항건설,항만시설 및 도로시설확충작업을 대대적으로 벌이기로 했다. 국무총리실은 5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용역 결과를 토대로 마련한 「제주도 종합개발의 기본방향」을 노태우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 종합개발의 기본방향에 따르면 정부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1차개발(85∼91년) 모형과는 달리 앞으로 민간자본을 적극 유치,제주도를 관광사업 주축으로 개발해 아시아ㆍ태평양시대의 국제관광 명소로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 정부는 특히 이를 위해 96년까지 연간 1천2백만명의 수용능력을 갖춘 2백만∼3백만평 규모의 신국제공항을 제주도에 건설하기로 하고 후보지 2∼3곳을 대상으로 오는 4월까지 타당성 조사를 끝내며 기본및 실시설계를 92년 12월에 완료할 계획이다.정부는 제주도의 관광산업을 획기적으로 유치하기 위해 종합스포츠레저시설,레크리에시션공원,영화촬영 전문지역,대단위 전문쇼핑타운 등을 건설하고 한라산의 일정지역을 야생자연동물원으로 개발하며 야시장및 외국인전용카지노를 세우기로 했다. 이와함께 국제회의 중심개최지로 육성,관광비수요기에 대처해 나가기로 했다. 정부는 이와관련,관광 여건을 개선하는 방안의 하나로 일본ㆍ대만ㆍ홍콩ㆍ싱가포르ㆍ태국 등 동남아의 주요도시및 하와이ㆍ발리 등 주요 관광지와의 직항로 개설을 추진하기로 했으며 세계유명유람선의 제주도 경유와 함께 해상교통 수단도 확충해 나가기로 했다. 정부는 제주도에 관광유인기능이 확충될 경우 2001년의 총관광객은 6백만명 이상에 이르러 숙박시설도 89년의 1만3천여 객실에서 4만9천여 객실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는 민간자본을 적극 유치하기 위해 특정지역 종합개발 촉진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개정하거나 제주도개발 임시조치법을 제정,개발 재원을 조성시켜 나가며 도시지역에서 발생하는 개발부담금및 토지초과이득세는 가급적 제주도 개발에만 투자되도록 할 방침이다.
  • 한ㆍ중 본격적「경협의 길」트인다/홍콩 스탠더드지,「양국관계」특집

    ◎수출촉진ㆍ북한견제 노려 한국/고도의 기술ㆍ자본등 필요 중국/대사교환등 정치성 수교는 “시기상조” 최근의 한중관계개선 움직임은 멀지않아 두나라가 준정부 또는 완벽한 정부차원의 공식적인 경제협력 관계를 맺게될 것이란 점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라고 홍콩 스탠더드지가 분석,전망했다. 이 신문은 2일자의 한 페이지에 걸친 한중관계특집 기사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두나라는 21세기 아시아ㆍ태평양시대 개막에 앞서 상호협력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고 풀이했다. 스텐더드지는 동구ㆍ소련에서 민주개혁이 진행되는 현 상황에서 중국은 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해 북한과 유대강화를 꾀할 것이고 특히 6ㆍ25동란 등을 통해 김일성과 혈맹관계를 맺었던 중국 군부 원로들은 북한과 소원해지는 데 크게 반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등소평이 경제개방ㆍ개혁을 추진하고 중국외교정책이 실용주의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겨냥한 공리주의를 지향함에 따라 북한과의 이념적인 유대의식은 전반적으로 약화될 수 밖에 없다고 내다보았다. 게다가중국은 북한측이 한국과 정식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동구 여러나라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크게 낮추고 있는 점을 중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북한은 한중관계 개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동구국가에 대한 비난을 삼가고 있으며 중국도 이같은 사실을 알아차리고 조심스럽지만 보다 긍정적인 자세로 한국에 접근한다는 것이다. 이에더해 동구권의 개방이 서구 선진공업국의 관심을 끌고 있는 사실도 한중관계개선을 가속화하는 요인인 것으로 꼽히고 있다. 스탠더드지는 미국등 서방국가들의 자본과 기술이 동구쪽으로 쏠리고 있기 때문에 중국으로선 그들의 현대화계획 추진을 일방적으로 서방국가에만 의존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6ㆍ4천안문 사건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경제교류를 계속 강화하고 있고 중국도 신흥공업국인 한국이 아ㆍ태지역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깊이 인식,한국의 개발경험과 그동안 축적된 경제적 능력이 자국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보다 가까운 관계정립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도 수출부진 등의 경제난국에서 벗어나고 북한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을 분쇄하기 위해 중국과 수교하길 바라고 있음을 이 신문은 강조했다. 스탠더드지는 그러나 한중 두나라가 서로 가까워지고 싶은 열망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가시돋친 난제들 때문에 한계선에 부딪힐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예를 들어 6.25동란때 북한과 동맹국이었던 중국은 한국에 대한 정치ㆍ군사적 적대관계를 공식적으로 완전히 청산치 못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중국지도층은 한국과 정식외교를 하기 이전에 중국 군부와 북한측을 설득할 수 있는 당위론을 선뜻 내세울 수 없다는 얘기다. 이와함께 한국과 대만이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점,중국이 두개의 한반도국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 등이 한중 두나라의 접근에 쐐기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탠더드지는 양국이 정부차원의 경제 외교관계를 맺게 될 것으로 확신하지만 상호 대사교환등과 같은 정치성 수교는 현실적으로 상당기간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 북한의 3ㆍ1절 이모저모/“전쟁 터질 긴장의 정세 한미서 조성”

    ◎김일성,「보고대회」 통해 책임 전가/당 기관지 사설 “김일성 투쟁으로 광복” 강변 【내외】 북한은 지난달 28일 한반도 정세의 긴장고조 책임을 한미양국에 전가하면서 남북최고위급이 참가하는 당국과 정당수뇌협상회의 소집을 거듭 주장했다. 북한은 이날 평양에서 「3ㆍ1 인민봉기 71돌 기념보고회」를 개최하고 팀스피리트 훈련을 내세워 한미양국이 한반도에서 『임의의 시각에 전쟁이 터질 수 있는 긴장한 정세를 조성하고 있다』고 모략ㆍ비방하면서 콘크리트 장벽 철거를 전제로 남북한 자유왕래와 전면 개방을 실현하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최고위급이 참가하는 당국ㆍ정당수뇌협상회의 소집 제의에 호응할 것을 촉구한 것으로 평양방송이 1일 보도했다. 정무원부총리 강희원을 비롯해 어용정당ㆍ대남통일전선조직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집회에서 북한은 또 3당통합에 의한 정계개편을 집중적으로 비난하면서 한국민들에 대해 반미ㆍ반정부투쟁을 선동하기도 했다. 한편 북한은 1일 당기관지 노동신문에 기념사설을 게재,『3ㆍ1인민봉기는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인 김형직(김일성의 부)의 지도 아래 벌어진 평양시민들의 대중적 반일시위투쟁을 도화선으로 하여 타오르기 시작했다』고 주장하고 김일성의 「항일투쟁」의 결과로 광복이 실현됐다고 강변,김일성가계 우상화를 위한 역사 왜곡을 자행했다.
  • 6공화국 2년… 경제적 과제/송기철 고대교수ㆍ경제학(특별기고)

    ◎경쟁력ㆍ저축ㆍ투자ㆍ노동의 「4고정책」 긴요/「제2도약」으로 통일ㆍ민주화 기반 조성/국민ㆍ기업에 용기와 자신감 부축해야 지난 2월 25일은 노태우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이제 제6공화국도 3년째로 접어들고 앞으로 3년은 열심히 일하면서 무엇인가를 보여 주어야 할 중요한 잔여임기일 뿐만 아니라 90년대를 이어 21세기 범태평양시대의 한 주인공으로서 선진국으로의 재도약을 위한 기반다짐을 해야 할 아주 중요한 고비의 시기로 생각된다. ○앞으로 3년이 고비 돌이켜 보건대 지난 2년은 여러가지 어려운 사정이 있기는 했지만 정말로 지루한 5공청산의 시기였었다. 사람에 따라서 미진한 느낌을 갖는 경우도 없지 않겠으나 일단은 끝난 일,이제야말로 과거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고 앞으로 3년 평화통일의 큰 길을 위해서 안팎으로 외교ㆍ안보체제를 구축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며 우리의 각종 문화를 높이고 균형잡힌 복지 경제사회를 건설하는 일이야말로 6공 잔여기간 사이에 정열적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90년대에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통일,민주주의 정착,외교안보체제 강화,균형적 사회발전과 각종문화 향상 이들 모두는 경제의 뒷받침없이는 원활하게 추진할 수 없으며 그 기반이 취약화되므로 경제의 제2도약에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경제는 62년이후 국민 모두가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자」는 국민적 합의하에 눈물겨운 피와 땀의 노력으로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경제도약을 이루어 86년이후 88년까지 우리 경제는 「마의 삼각선」이란 12%이상의 고도성장,1백42억달러까지 이른 경상수지 흑자,그리고 1∼4%이내의 물가안정과 고용증대등을 균형있게 풀어 나가 「한국인이 몰려온다」 또는 「제2의 일본」이라든가 「일본을 뛰어넘는다」든가 하는 찬사와 질시까지 받게끔 되었고 우리 국민들에게도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것이 현실이었다. 그리 좋던 우리 경제가 민주화 선언 이후의 무궤도적인 정치혼란과 사회불안 등으로 국민들의 기강이 해이해져서 어렵게 이루어 놓은 경제기반이 흔들려89년에는 반감된 경제성장,경상수지 흑자의 대폭적인 감소 그리고 피부물가의 앙등등 우리경제는 또다시 마의 삼각선에 휘말려 저성장하의 고물가란 스태그플레이션 징후하에 자칫하면 경상수지 적자의 재발이란 축소재생산 마저 보이고 있는 안타까운 국면을 보이고 있어 「대한민국은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다」는 야유까지 받고있다. 왜 우리가 이런 꼴이 되었는가하고 서글픔을 느끼게 한다. ○모두가 “우리때문” 문제는 이제 90년대에 들어 이 서글픔을 타파하고 또다시 경제의 재도약을 이룩하며 범태평양시대를 맞아 평화통일과 진정한 민주화의 기반을 굳건히 하는 일이 긴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를 위해선 각계각층의 국민들에게 자신감과 용기 그리고 신바람을 불어넣는 일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세계대전 패망후 실의에 빠져 엉망이 된 독일 국민들에게 『건물이나 기계가 파괴된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영토와 사람을 잃은 것 또한 아무것도 아니다. 국민들이 자신감과 용기를 잃는 것이 가장 큰 손실이고 문제』라면서 독일 국민들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으려고 힘쓴 역사상의 선례에서 제2경제 도약의 기본을 찾아야 한다. 우리 국민은 고래로 「신바람」이 나야 제대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것이 제1경제 도약의 바탕이 되었고 또 88 올림픽에서의 놀라운 성과가 바로 신바람적 용기와 자신감에서 이룩된 것이었음을 회상할 수 있다. 국민에게는 앞으로의 밝고 보람된 비전을,기업가에게는 투자의욕을,공무원에게는 공복으로서의 시대적 사명감을 불어넣어 주는 일이 앞으로 제6공화국이 해야할 근본적 과제로 생각된다. 지금 우리는 모두 「너 때문이야」일색이다. 우리가 어려워진 것이 왜 「너 때문이야」만이겠는가. 차라리 「나 때문이야」 「우리 때문이야」로 보는 것이 옳은 것으로 보여진다. 미국에서도 미국경제가 어려워진 것이 미국 자신때문이 아니라 한국때문이요 일본 때문이며 대만 때문으로,「너 때문이야」로 돌리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미국을 걱정하는 진짜 지성은 그 원인을 미국인 자신에게서 찾고 그 회생책으로 4고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는 고경쟁력,둘째는 고저축,셋째는 고투자,넷째는 고노동의 4고정책을 들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우리 한국에도 그대로 해당이 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우리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인류에 꼭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우리나라만이 생산하면서 그것도 값이 싸면서도 좋은 것으로 유리한 조건으로 제공해야 할 우리국가,우리산업,우리기업,우리상품의 경쟁력이 최근 몇년 사이에 뚝 떨어져 수출이 많이 줄어들었고 이에따라 일자리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경쟁력이 떨어졌는가. 신제품 개발과 기술개발이 소홀했으며 종전의 상품이 노임상승 등으로 비싼 상품이 되었고 상승된 상품가격에 상응할만큼 품질이 좋아지지 않아 「값비싸고 나쁜」물건으로 전락해 해외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왕성한 생산투자를 해야 하는데 투자 분위기가 식어가고 있으며 투자를 하더라도 비생산적인 재테크나 부동산투자만 하니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일부 사장들 사이에 나도는 유행어 『아직도 제조기업의사장을 하고 계십니까』라는 자조적 분위기가 불식되어야 함이 긴요한 것으로 보여진다. ○사회분위기 전환을 투자를 활발히 하기 위해선 투자자금 원천으로서의 높은 저축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과소비로 저축률이 떨어지고 있음을 한탄해야 하며 그 방지책에 부심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 기본은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 급격한 노동 기피현상 특히 위험한 일,더러운 일,힘드는 일 그리고 사회적으로 「스타일 구기는」일의 기피현상이 두드러지고 노동기강이 해이해져 가고 있는 사회 분위기를 돌리는 4고정책의 촉구가 제6공화국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 평양에 민주화 시위설/일지 “미확인”보도/무장부대,주민여행 통제

    【도쿄 연합】 북한은 지난달 15일께부터 국내의 외국인 뿐만 아니라 지방거주민에 대해 평양출입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고 산케이(산경)신문이 15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도쿄의 관계소식통을 인용,최근 평양시내에서 「민주화요구데모」가 발생했다는 미확인보도가 나도는 가운데 북한은 소련 및 동유럽의 대변혁에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주민통제를 한층 강화중이라고 말했다. 평양역에서는 총을 든 군인이 지방으로부터 도착하는 승객들의 여행 증명서를 철저히 조사하고 외국인에 대해서도 입국에 필요한 초청장이 늦는 경우가 최근 두드러지고 있다고 산케이는 밝혔다.
  • 한ㆍ일 분업적 대외합작 진출 바람직(해외기고)

    ◎90년대 양국 경협의 향방/「제휴형」 원조로 후발국 성장 도와야/중국ㆍ아세안 제국엔 직접투자 확대/기술ㆍ자금 상호보완… 공동 프로젝트 개발 서둘러야 아시아가 급속한 성장과정에서 개발도상 단계에 있으면서 원조공여국이 될 의사를 굳힌 NIES를 탄생시킴으로써 일본이 아시아에 있어서 유일한 원조국이던 시대가 종언을 고하려 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일본은 우선은 NIES와,이어서 ASEAN의 전략국과 제휴,후발국가의 개발에 협력한다는­우리들이 「제휴형 원조」라고 이름붙인­새로운 형태의 원조에 나설 여건이 마련된 것으로 보이며 이미 그 개념정립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제휴형 원조는 NIES 및 아세안 제국의 기술ㆍ조직ㆍ제도의 특성으로 보아 후발국에 보다 알맞은 것이며 그 보급ㆍ확대가 순조로울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성이 높은 원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NIES 및 몇몇 아세안제국을 부축,그들을 새로운 원조제공자로 육성해 간다는 과제에 비추어 보더라도 제휴형 원조는 풍부한 가능성을 지닌 협력형태이며 그 때문에우리들은 제휴형 원조를 폭넓은 논의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하 제휴형 원조가 가능성을 갖게된 배경,그 개념,상정될 수 있는 사례등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경쟁의 격차 줄어 오늘날에 와서는 일본ㆍNIESㆍ아세안 제국의 공업발전단계 사이에는 지나날과 같은 넘기 어려운 깊은 도랑은 없다. 오히려 아시아는 선발국에서 후발국으로 「연속적」인 차이를 갖고 원활히 이어지는 특유한 경제공간으로서 특징을 갖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과 아시아 사이에 NIES라는 중간적인 「성장핵」이 형성된 의미는 대단히 크다. 아시아는 NIES가 일본을 좇고 그 NIES를 아시아제국이 좇는다는 「중층적 추적」 관계를 가진 동태적 지역이 되었다. NIES가 일본과의 국제경쟁력 격차를 현저한 속도로 축소해온 것,더욱이 아세안 제국이 NIES 와의 경쟁격차를 좁히고 있는 것은 최근의 두드러진 현상이다. 한국은 저부가가치제품의 국제경쟁력을 낮추는 한편 고부가가치 제품을 꽤 빠른 속도로 고도화시켰다. NIES에 의한 선진국 추적과정이 점차고도의 자본ㆍ기술 집약재 분야에서도 전개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태국은 한국이 국제경쟁력을 잃은 저부가가치제품 쪽에서 경쟁력을 현저하게 상승시키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아세안제국의 NIES 추적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NIES와 아세안 제국간의 비교우위 구조의 다이내믹한 변화 아래 NIES의 생산ㆍ무역구조의 고도화가 추진됨과 동시에 양자 사이에는 강한 보완적 관계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NIES와 아세안 제국에 있어서 최근의 두드러진 무역증가는 바로 이를 반영한 것이다. NIES와 아세안제국과의 보완적 관계를 추진시켜 온 것은 무역뿐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배후에서 보완적 관계를 강화하는 역할을 달성한 것은 NIES의 대아세안 제국 직접투자였다. NIES의 직접투자는 최근들어 급격한 확대를 계속하고 있고 멀지않은 장래에 아세안 제국과 대중국 투자국으로 확고한 지위를 굳힐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 대미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NIES는 미국으로 부터 강력한 환율조정 요청을 받고 있으며,이에 응해 플라자합의(1985년 뉴욕에서 선진경제 5개국이 합의한 달러화의 가치 안전조치)후 4년간 대만 원(元)은 40% 이상,한국 원도 20% 이상의 절상을 시도했다. 그러나 미국의 환율정상 요청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양국은 오랜 기간 계속된 고도경제성장의 결과 노동공급의 제약이 심화돼 임금상승 경향이 높아졌다. 결국 통화절상과 임금상승의 두가지 요인이 NIES 기업의 해외진출을 촉진시킨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경우 이제까지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축적된 경제자원과 수출지향적 공업화 과정에서 얻은 풍부한 해외거래 경험 등으로 해외진출 조건은 충분히 갖춘 것으로 여겨진다. 1988년에 이르러 NIES의 대아시안 제국 직접투자는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필리핀에서 일본과 미국을 상회했다. 또하나 주목할만한 현상은 최근들어서의 NIES와 중국간의 무역ㆍ투자관계의 긴밀화이다. ○제2 「성장축」으로 NIES는 아세안 제국,중국과의 이러한 밀도깊은 무역ㆍ투자관계를 통해 후발국의 성장을 재촉하고 있다. 일본과 어깨를 견줄수 있는 또하나의 「성장축」으로 등장한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위에서 한국이 「대외경제협력기금」을 대만이 「해외경제협력발전기금」을 창설하고 새로운 원조공여자로서의 지위를 굳혀가고 있는 것이다. NIES가 활발하고 효율적인 원조공여자로 등장한 것은 아시아에 있어서 후발국의 개발을 위해 극히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NIES는 10여년간 저위의 발전단계를 거쳐 중위의 발전단계의 국가로 올라섰고 후진국의 단계 이행에 도움이 되는 직접적이고도 유효적절한 기술과 조직ㆍ제도를 갖게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NIES는 원조세계의 신참이며 후발국에의 협력경험도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게다가 협력의 노하우 축적도 불충분하며 협력조직ㆍ제도 역시 미비하다. 또 NIES라고 하지만 아직은 개발도상국 단계에 있고 경제협력에 쏟아부을 자금 역시 넉넉하다고 볼수는 없다. 바로 여기에 일본이 NIES와 손잡고 후발국을 개발하는 이른바 제휴형 원조 방법이 제기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협력에 있어서도 NIES와 일본이 각자의 비교우위를 발휘하고 그 비교우위를 기초로 해 양자간에 협력적 보완관계를 만들어내는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타입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NIES의 기술ㆍ조직ㆍ제도가 후발국의 개발에 있어서 보다 적정한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제휴형 원조는 일본으로서도 매력있는 방식이라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일본의 원조액은 근래 급속한 증가를 계속,엔고의 효과를 포함시켜 지난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공여국이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거액의 원조를 효율적으로 소화할 능력이 지금의 일본에게는 퍽 적다는 것이다. 특히 원조사업에 관계하는 인재의 부족은 상당히 심각하다. 원조액은 확대되는 반면 담당직원 총수는 1천6백명에 머물고 있는데 이 숫자는 10년전에 비해 별로 변함이 없는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이 상태가 개선될 가능성 역시 적다. 또 일본의 원조는 도로ㆍ항만ㆍ댐 등 시설에 집중되어 있고 기술협력과 인재양성등 소프트 지원분야에 있어서는 협력이 미미하다. 이 점에 관해서는이미 국제적 비판을 받은지 오래이다. 그러나 NIES와의 제후형 원조를 통해 그들의 인재협력을 얻을 수 있다면 일본의 원조가 보다 효율적이고 섬세하고 치밀한 것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면 NIES와 일본과의 제휴형 원조는 어떠한 구체적 내용을 가진 것으로 설정될 수 있는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이제까지의 일본경제협력의 중심분야는 도로 항만 댐 등 시설부문이었다. 그러나 NIES는 이러한 부문에 있어서 지금까지 괄목할 속도로 자체역략을 키워왔고 실제 건설분야의 국제입찰에 있어서 일본기업이 NIES기업에 패한 사례도 적지 않다. 시설재 부문의 건설기술은 일본보다 NIES쪽이 보다 노동집약적이고 코스트도 싸기 때문에 강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앞서 든 NIES 성공사례의 배후요인으로 지적될 수 있다. 즉 후발국에 있어서 NIES의 건설기술이 일본의 그것에 비해 보다 적절한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 시설재 부문의 건설을 NIES가 담당하고 일본이 자금면에서 보완적 지원을 하며,더 나아가 프로잭트의 가동을 함께하는 원조 수입국 내화분(로컬 코스트)의 융자를 시도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것이다. 또 시설재 프로젝트 건설과정 자체에 대해서도 NIES가 건설기술을 담당하고 일본이 컨설팅 서비스 및 어드바이스 서비스를 담당하는 등의 분업적 협력도 가능할 것이다. ○인재 교류등 긴요 제휴형 원조가 효율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원천적으로 원조 프로젝트의 발굴 및 사업화 가능성 조사 단계에서의 공동작업이 필수적이다. 그러한 공동작업을 위해서는 예컨대 필요인원의 25%를 외국인에게 개방하고 있는 국제협력사업단(JICA)의 개발조사 사업에 있어서 이 범위를 더욱 확대함과 동시에 JICA 이외의 개발협력기관의 개발조사에 있어서도 이와같은 시도를 적극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범위에 NIES의 스태프들이 많이 참가하고 더 나아가서는 NIES의 개발조사 계획속에 같은 범위를 설정,여기에 일본인 스태프가 참가할 수 있도록 한다면 더욱더 바람직할 것이다. NIES와 일본과의 제휴형 원조는 시설재 부문에 국한되지 않는다. 역대 농업기술,역대 의료기술에 있어서도 일본보다 풍부한 기술축적을 가진 대만ㆍ싱가포르에 의한 후발국에의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일본이 두나라에 자금을 지원하고 협력안건 발굴과 사업화 가능성조사를 일본과 공동으로 행하는 방식도 유효한 제휴형 원조의 하나의 예가 될수 있다. 더욱이 후발국의 인재양성을 위해서 시도하고 있는 연수사업도 일본보다는 NIES에서 행하는 쪽이 효율적일 경우가 적지 않다. 일본은 이러한 제3국 연수가 활발해질 수 있도록 NIES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만 한다. JICA는 이러한 제3국 연수제도를 이미 갖고 있지만 이것이 더 확충된다면 제휴형 원조의 하나의 모델로서 높은 가치를 갖게될 것이다. 제휴형 원조는 가능성이 많은 협력방식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아이디어 단계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이것은 제휴형 원조의 개발 여지가 아직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래에 전개될 제휴형 원조를 위해 NIESㆍ일본간에 인재를 긴밀히 교류하고,제휴형 원조의 안건발굴을 위한 공동연구ㆍ조사체제를 정비하며 그 연구조사를 기초로 제휴형원조의 파일로트 프로젝트를 공동 운영한다는 계획의 착수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NIES는 현재 직접투자를 통해 아세안 제국,중국등 후발국의 성장을 공급면에서 지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다. 일본보다 후발인 NIES가 산업기술등 경영의 노하우를 아세안 제국 및 중국에 이전시키기는 훨씬 쉽다. 직접투자의 경험과 자원면에서 NIES보다 풍부한 일본이 전자의 직접투자를 적극화시키기 위해서는 응분의 노력을 할 필요가 있으며 그것을 위한 구체적 계획의 수립이 기대된다. 지난 7월 일본국제포럼에서 나온 제언,「일본의 경제력을 세계경제의 발전을 위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이점에 관한 구체적 조치는 일고의 가치가 있다. 거기에서는 다음 3가지가 제창되었다. ▲해외경제협력기금과 일본 수출입은행의 대출등 출자를 일본계 합병기업뿐만 아니라 NIES계 현지기업인에게도 적용한다 ▲개발도상국의 NIES에 합치되는 투자기업의 조사ㆍ발굴에 힘을 쏟는 일본무역진흥회의 활동대상을 NIES 기업에까지 넓힌다 ▲NIES중에는 한국이 해외 직접투자보험제도를 갖고 있으며,일본의 금융기관이 한국의 해외투자보험기관과 재보험을 체결함으로써 한국의 직접투자 촉진을 측면으로부터 지원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일본과 협력,개발도상국 진출의 길을 개척해야할 새로운 시대의 개막앞에 서있는 것이다. □와타나베 도시오 ▲1939년 산리현 출생 ▲1963년 경응대 경제학부졸 ▲1975년 축파대학원 지역연구소 조교수 ▲1988년 이후 동경공업대 교수,아시아 정경학회 상무이사 ▲저서 「성장의 아시아,정체의 아시아」 「서태평양시대」등.
  • 북한에도 변화조짐 보인다/홍콩리뷰지,최근정세 전망

    ◎사회주의 모순 인정ㆍ개인찬양 줄어/동구식 개혁ㆍ쿠데타 가능성은 희박 세계에서 최장수 집권하고 있는 북한의 김일성정권은 「병영공산주의」로 외부소식을 완전,차단,철저한 통제정책을 실시하고 있어 당분간 동구에서와 같은 변혁가능성은 희박하지만 50년대 소련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변화의 징표가 고개들고 있다고 4일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가 보도했다. 리뷰지는 또 북한에 군사 쿠데타가 발생할 가능성보다는 김일성 사후 김정일로 정권이 평화적 승계를 할 것으로 많은 소련의 북한전문가들은 보고 있다고 밝히면서 비록 북한집권세력들이 교체된다 하더라도 남한과의 전쟁위험을 빙자로 한 집권자들의 체제고수자세가 유지될 것 같다고 말했다. 리뷰지는 모스크바 특파원이 소련의 북한문제 전문가들을 회견하여 게재한 이 북한정세분석기사에서 그러나 북한에는 종전과 다른 변화의 징조들 즉 사회주의의 모순을 인정하거나 지도자찬양문구를 적게 사용하는 것 등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같은 변화는 1950년대 소련에서 나타났던 것과 같은 현상들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89년 9월 평양에서 사회주의 국가들간의 합작투자문제를 토론하는 심포지엄을 개최하는등 근래 소련학자들과의 접촉을 빈번히 하고 있으며 북한 사회과학원 등이 소련측과 장기 협력계약을 체결하여 공동연구나 학술토론을 하고 있어 소련학자들의 북한방문이 늘어난 북한사회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을 방문하는 소련언론인들조차 특별허가 없이는 평양시 외곽을 여행할 수 없으며 일반 노동자들과의 자유인터뷰도 허용되지 않는데 이같은 상황은 흡사 30,40년전의 소련을 방불케 하는 것이라고 최근 평양을 방문한 소련언론인이 전했다고 한다. 특히 김일성은 한국의 유엔가입에 대해 소련이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련학자들의 발언에 신경을 쓰고 있으며 소련학자들의 최근 북한에 대한 원조를 삭감하라는 주장에 상당한 우려를 하고 있는데 북한과 소련의 현 관계는 지난 11월말 김영남 북한외교부장이 동베를린과 부쿠레슈티를 방문하고 귀로에 모스크바에 기착했으나 공항에 몇시간 머물면서 로가체프 소련외무차관과 잠깐 면담했을 정도로 냉담해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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