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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ㆍ20 남북자유왕래 선언」의 뜻(긴급대담)

    ◎“이념보다 민족 우선”… 가장 현실적 통일 접근/중국­대만간의 「협약없는 교류」 배울만/4강엔 「한반도 데탕트」 지원 유도 계기/북측 강온싸움 가속화 예상…보안법 철폐등 내세워 시간벌기 펼칠지도 「민족대교류」를 제의한 노태우대통령의 특별발표는 우리정부가 북한의 주장을 전향적으로 수용,민족교류를 통해 통일을 앞당기자는 획기적인 선언으로 북한의 대응여하에 따라서는 분단극복을 위한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낳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흐름과 북한의 변화를 예의주시해온 최평길교수(연세대)와 도흥렬교수(충북대)의 대담을 통해 이번 특별발표의 의의와 배경 그리고 이 발표 앞으로 남북관계에 미칠 장단기적인 영향 등을 들어본다. □참석자 ▲최평길교수 연세대 ▲도흥렬교수 충북대 사회=이동화 편집부국장 ­노태우대통령의 특별발표는 일차적으로 선언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앞으로 이를 어떻게 구체화하느냐에 따라서 남북분단의 벽을 허물수도 있으며 남북간의 교류를 촉진시키는 중대한 계기가 되리라고 봅니다. 노대통령의 특별발표의 전반적인 의미와 그 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요. ▲최평길교수=노태우대통령의 제의는 분단이후 4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사회가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북한의 모든 제의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이 원한다면 모든 왕래와 교류를 허용하겠다는 이번 제의는 분단이후 민족사에 일대 획을 긋는 쾌거인 동시에 세계사적인 흐름으로 볼때 「당연한」조치라고 봅니다. 다만 70년대에 7ㆍ4남북공동성명이 있었다면 오늘의 이같은 제의는 88년 서울올림픽 이전에 나왔어야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번 특별발표는 전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북한이 실질적인 통합의 길로 나아가는데 있어 진일보한 조치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되는 한편 간접적으로는 미ㆍ일ㆍ중ㆍ소 등 주변 4대강국에 대해 남북한의 실질적인 통일을 위한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분위기를 조성할수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경제교류부터 시작 이번 제의가 구체적인 결실을 거둘 수 있는가 하는 점은 우리측이 어떤 후속조치를 취하느냐와 북한이 과연 이를 수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도흥렬교수=특별발표의 의미나 배경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우선 우리 정부가 우리체제에 대한 자신감을 가시적이고 구체적으로 표명했으며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남북교류의 실체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김일성의 올 신년사에 대응,북한이 제의하고 있는 통일정책을 전향적이고 포괄적으로 수용하면서 이를 실천하기 위한 현실적인 선언으로 볼 수 있으며 세번째는 독일통일에 크게 고무받아 우리도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명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 선언은 한ㆍ소 정상회담의 성사에 이은 양국간의 관계진전,7ㆍ7선언이후 계속된 우리측의 각종 대북제의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나온 것으로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혁명적인 거보가 될 것으로 봅니다. ­이번 제의가 갖는 의미를 여러 면에서 지적하셨는데 이 제의를 앞으로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판문점공동경비구역내 북측지역의 개방선언,8ㆍ15범민족대회,남북고위급회담 등과 관련해 이번 제의가 남북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말씀해 주십시요. ▲최=북한의 정치ㆍ경제ㆍ사회적인 여건을 종합해 볼 때 우리가 추진하는 방향으로 보조를 같이 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가령 북한은 소련으로부터는 정치ㆍ경제적인 개방압력을,중국으로부터는 단계적인 경제적 개혁이나 대외경제적 개방을 종용받고 있지만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실정입니다. 동구식의 개혁ㆍ개방정책을 추진할 경우 북한체제의 근저를 뒤흔들 것이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현재 북한내부에서는 개방과 개혁을 추구하는 경제ㆍ행정관료 중심의 진보파와 혁명1세대라는 수구파 사이에 정책적 갈등이 노출되고 있고 이에 따라 대내적 정책방향은 물론 대남정책에 있어서도 뚜렷한 방침이 정립돼 있지 못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따라서 북한은 고위급회담등 정치선언적 의미가 큰 남북회담에는 응할 것으로 보이지만 실질대화는 기피하면서 여러가지 조건을 붙여 한국정부에 그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를 당분간 견지하리라고 봅니다. 또한 남북고위급회담도 범민족대회의 진행을 지켜보면서 거부하든지 아니면 7ㆍ4공동성명당시 서명자인 김영주대신 박성철이 나왔듯이 연형묵총리를 내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전총리등 실세가 아닌 제3자를 내세울 가능성도 높습니다. ▲도=북한이 보일 반응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봅니다.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우리의 이번 제의를 받아들일만한 준비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현재 북한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입장에 처해있습니다. 북한경제를 연구하는 소련학자들에 따르면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4백달러를 넘지 않으며 더 놀라운 일은 공장ㆍ기업소의 가동률이 40∼50%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72년 남북적십자회담이 서울과 평양에서 열린후 85년 남북고향방문단이 다시 남과 북을 오가는데는 13년이 걸렸습니다. 즉 남북간의 비교열세를 확인했던북한이 평양시가지를 대대적으로 정비,자신있게 공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까지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계획적이고 치밀한 판단이 서야만 북한사회를 공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북한의 권력층이 그들의 체제열세를 대내외에 노출시킬 수밖에 없는 자유왕래를 허용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또한 북한은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창조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식을 모색하는 과도기의 단계에 있고 김정일 후계체제의 구축에도 많은 걸림돌을 안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북한이 과연 우리의 의도대로 따라오겠느냐는 것은 역시 의문입니다. 따라서 북한은 직접적인 거부가 아니라 국가보안법의 철폐라든가 임수경ㆍ문익환목사의 석방,미군철수 등 여러가지 전제조건의 해결을 강력히 주장하면서 나름대로의 대응방식을 찾기까지 시간벌기작전을 펼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번 제의가 남북한에 미칠 장기적인 영향이나 파급효과 등은 어떻습니까. ▲최=직접적으로는 우리 국민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며 더 나아가 우리의 통일정책을 미ㆍ일ㆍ중ㆍ소 4대강국은 물론 세계에 알리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간접적이고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북한에도 상당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북한의 권력 핵심부에 큰 영향을 미쳐 개혁성향을 가진 계층과 세습체제를 고수하려는 수구계층과의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북한의 권력핵심부를 어느 쪽이 차지하느냐에 달렸는데 이번 제의는 개혁파의 세력부상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북한은 김일성의 연령(78)등을 고려,오는 92년이나 가까운 시일내에 정권교체의 혼란이 빚어질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데 이번 제의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지요. ▲정=그렇습니다. 북한에서의 이념투쟁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분석에는 저도 동감입니다. 북한은 그동안 선동적 통일전선차원의 각종 제안을 내놓았으나 이번에 우리정부가 북한의 제안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앞으로는 섣부른 선동이나 선전적인 제안을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중ㆍ소서도 교류지원 ­민족교류가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고 할 수 있겠는데 민족교류에서 통일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한지,또한 동서독과 중국ㆍ대만등 외국의 경우와 비교,어떻게 민족교류를 전개해야할지 말씀해 주십시오. ▲최=북한의 수용여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주변 4대강국의 지지여부도 중요합니다. 남북한을 포함한 6자가 수용할 수 있는 것은 동서독과 비슷한 경제교류입니다. 경제교류는 중국과 소련도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에 사회주의경제의 최대 약점인 생산관리기법이나 기술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군비축소와 관련된 실질적인 결실이 있어야 하며 북한도 이를 진심으로 원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우리측은 선 군비축소통제,후 신뢰구축을 주장하는 북한의 제의를 전향적으로 수용,이를 동시에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도=남북관계에서 우리는 대화와 접촉ㆍ교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을,북한은 선 군비축소주장을 펴왔습니다만 앞으로는 전제조건이 없어야 하며 이점에서 대만의 방식을 참고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만의 행정원은 지난 87년 10월 대만인들이 대륙의 가족을 방문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규정을 마련했습니다. 이에 따라 대만인들은 가족방문을 시작했고 이어 관광ㆍ비즈니스방문 등으로 대륙방문을 확대해오고 있습니다. 이렇듯 중국과 대만간에는 거창한 공식적 협약도 없이 왕래가 이뤄지고 이를 통해 동질성과 전통성을 회복,신뢰구축을 이루어 나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대만식의 방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으며 북한도 제한된 기간이지만 조건없는 왕래를 허용함으로써 오해와 불신을 조금씩 씻어내야할 것입니다. ▲최=독일은 동서독분단이후 즉시 매년 4백∼5백여명씩 크리스마스가 되면 서로를 방문할 수 있었고 점차 그 수를 늘려나갔습니다. 우리는 6ㆍ25전쟁으로 이것마저 없었는데 이번 제의를 계기로 이제부터라도 제한된 수,제한된 기간이나마 서로 오가는 일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북한은 지난 60년대는 조총련을 통해,80년대는 재미교포를 통해 경제적인 도움을 추구했는데 90년대에는 북한출신 한국기업인들을 불러들여 부분적인 경제적 도움을 이끌어내는 방안을 찾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또 순수한 관광객유치를 통해 제한적이나마 북한을 개방한다고 과시하면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정부가 통일을 이루기위해 앞으로 취해야할 조치들을 말씀해 주십시요. ▲도=대만의 예처럼 구체적인 후속조치를 취해야할 것이며 관계법에 따른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를 조속히 구성,활동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선언앞서 제도 마련” 또한 북한의 입장을 고려,정책추진의 완급을 조정해야하며 냉전적 사고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일부 국민들의 반응도 생각해 현실과 동떨어진 급진적인 조치는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의 분배구조를 개혁,7.7%에 이르는 3백30만명의 절대빈곤계층의 불만을 해소하는 것도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입니다. ▲최=첫째 정치적 선언에 앞서 법적 제도적 조치를 먼저 취해야합니다. 국가보안법 개정을 서둘러야 하고 냉전시대의 법규ㆍ정책을 과감히 정비해야 합니다. 둘째 통일과 민족교류의 문제를 정권적 차원에서 이용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정부는 내부결속을 위해 야당 및 재야 등 각계각층과 충분한 협의과정을 마련해야 합니다.
  • 미 미래학자 다니엘 벨 내한

    미국의 사회학자이며 미래학분야의 석학인 다니엘 벨박사(71)가 8일 낮 통신공사의 초청으로 내한했다. 벨박사는 공항귀빈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그동안 거듭된 경제발전과 높은 교육수준의 인적자원 및 근면성을 바탕으로 앞으로 태평양시대의 주역이 될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1919년 뉴욕에서 태어나 50여년동안 언론계와 학계에서 활동하면서 「이데올로기의 종언」 등 수많은 명저를 남긴 벨박사는 오는 15일까지 한국에 머물면서 각종 강연회 등을 갖는다.
  • 외언내언

    김일성이 언제 어떻게 북한땅에 들어왔는지,그리고 해방전 수년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에 관해 북한 공식문서는 아직도 밝히지 않고 있다. 그가 대중앞에 나타난 것은 45년 10월14일 소위 김일성장군 환영 평양시 민중대회. 본명 김성주,만 33살의 청년이었다. ◆소련군 장교복장의 그는 주둔소련군 당국의 완전무결한 지원아래 난마처럼 얽혀있던 평양정국을 헤치고 전면에 등장한다. 그가 손쉽게 정권을 창출할 수 있었던 배경은 다음 4가지로 꼽힌다. ①뛰어난 공산주의자들은 모두 서울에 있었다 ②다른 당파들은 분열돼 있었다 ③소련진주군이 그를 한가닥으로 밀었다 ④군과 정보를 장악했다. ◆6ㆍ25동족 전쟁은 김일성이 남한내 무장봉기와 미군개입 가능성을 오판한 스탈린의 승인을 얻어 도발했던 사실은 이제 세계적으로 검증된 진실이다. 정권을 잡은 그는 곧 2개년경제계획을 실시했으나 곧바로 실패했다. 그의 정적들과 주민들의 비난이 들끓었다. 한반도를 군사적으로 적화통일하겠다는 집념을 가졌던 그는 이 공격과 비난을 외부로 돌려야 했다. 남한에서는 미군이 철수했다. 호기였다. ◆전쟁을 일으켰을 때 그의 나이가 38살. 치기와 오만과 저돌성으로 형성된 그는 이른바 「남조선해방전쟁」에 있어 서울및 대전지역의 점령작전을 직접 지휘했다고 엊그제 그들 중앙방송은 밝혔다. 김은 서울함락 하루전인 27일 전투보고서를 받고는 「서울을 해방할 데 대한 전투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결국 또한번 남침을 시인한 셈이 됐다. ◆그의 나이 지금 78살. 고희를 넘겨도 한참이나 넘겼다. 그 엄청난 민족적 비극을 초래한 장본인으로서,그는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번도 6ㆍ25도발에 대한 시인과 사과를 한 적이 없다. 그런데 그도 이제 노쇠했다. 지난 4월 그 자신의 생일행사에 참석하고 계단을 내려오는데도 경호원의 부축을 받을 정도였다. 며칠전엔 그의 아들 김정일의 6ㆍ25당시 어린시절 벌거숭이 사진이 소개되기도 했다. 그 두장의 사진이 새삼 민족의 비애를 되새기게 한다.
  • 외언내언

    「귀축미영」(기치쿠베이에이). 태평양전쟁 때 일제가 미국·영국을 저주하면서 쓴 말이다. 이때의 국민학생들은 미군·영군을 그리는 그림에서 머리에 난 뿔을 잊지 않았다. 「귀축」이니 뿔이 났을 밖에. ◆「언어에 의한 공격」은 심리학에서도 다룬다. 첫째 배설물이나 성행위에 관계되는 표현은 세계가 공통된다. 우리도 금방 떠올릴 수 있는 욕설. 둘째는 벌받거나 죽거나 지옥에 가라는 식의 저주를 담은 표현이다. 셋째가 정당한 행위를 못하는 저능에 빗대거나 사람이 아닌 동물·괴물 등에 빗대는 표현. 물리적인 공격과 형태는 다르지만 그 또한 공격임으로 해서 가격자는 쾌감을 맛보고 피격자는 모욕·고통을 느낀다. ◆그렇긴 해도 언어에 의한 공격은 단어 선택이 저급할때 가격자가 야비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한동안 우리가 써온 「북괴」라는 표현도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북녘에서 우리한테 대고 쓰는 용어에 비하자면 「양반」. 그들은 교과서에까지 『미제의 각을 뜬다』같은 끔찍한 용어를 서슴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얼마전 한 홍콩지도 지적한 바가 있다. 평양시내 호텔에서 한국어 소개서를 살 경우 그 예문이 살벌하다는 것. 예컨대 『양키는 사람 탈을 쓴 늑대』같은 구절이 그것이다. ◆언어생활에서 그 용어 선택은 품위의 정도를 나타낸다. 그것은 용어뿐 아니라 말 전체가 풍기는 분위기 문제를 두고도 똑같이 얘기할 수 있는 것.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68년 이승복어린이가 무장공비한테 죽으면서 한 이 말은 사실이고 거기 공산당의 잔학성이 집약되어 생생한 반공교재로 쓰여오고도 있다. 물론 용어에 「원쑤」 「각을 뜬다」같은 살벌함은 없다. 그러나 그 표현의 분위기에는 증오심 섞인 반공에의 절규가 함축된다. 살벌한 용어보다 더 무서울 수도 있다. ◆국민학교 5학년 교과서에서 이 말을 없애기로 했다 한다. 잘하는 일이다. 이건 우리의 성숙성. 점철된 원한을 안아 삭인다는 관용성이기도 하다.
  • 세계과학장관회의 정기적 개최를 제안/방미 정 과기처

    방미중인 정근모장관은 15일 상오 미국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새로운 범세계적 과학기술 협력전략에 관한 조찬 연설을 했다. 이 연설에서 정장관은 21세기의 과학 기술 전망과 국제 공동연구 협력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고 지구 환경보호를 위한 깨끗한 에너지 개발및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공동 협력할 것을 제안하는 한편 다가오는 태평양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한미간 과학기술협력 증진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정장관은 또한 과학기술 현안을 다루기 위해 정기적인 세계과학장관회의 개최를 제안하였으며 북한의 IAEA 핵안전협력협정 조기체결을 촉구했다.
  • 미래를 위한 동반자관계 필요(사설)

    한일간의 우호협력관계를 보다 긴밀히 만드는 것이야말로 현안의 해결을 위해서나 아시아·태평양시대를 열어 나가려는 공동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두나라 모두에 꼭 필요한 일이다. 노태우대통령의 이번 일본방문은 이같은 인식을 양국 국민들에게 확산시켰을 뿐 아니라 가시적이고도 실질적인 양국 협력방안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믿는다. 우리가 노대통령의 방일을 통해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과를 요구했던 것은 일제의 한반도 강점과 식민통치라는 과거가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에 응어리져 양국관계의 차원높은 개선을 제약하는 요인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징적으로나마 과거청산이 필요했고 그럼으로써 양국간 새로운 협력관계도 보다 밀도있게 진전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 계기를 잡은 것이 노대통령의 방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진정한 사과는 양국간에 보이지 않게 가로놓인 감정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노대통령을 맞는 만찬사에서 「통석의 염」이란 말로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했다. 그 어의를 놓고 해석이 구구하지만 양국 정부가 이 말속에 사과와 반성의 뜻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의 발전이 더욱 중요하기에 더 이상 일왕의 말뜻을 갖고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번 사과가 지난 84년 당시의 전두환 전대통령 방일때 고 히로히토 일왕이 표시한 사과에 비하면 한단계 진전된 표현이고 일본정부를 대표한 가이후총리가 노대통령과의 1차 정상회담에서 「겸허히 반성」 「솔직한 사과」 등 구체적 표현을 썼기에 일본이 사과한 것은 틀림없다고 본다. 따라서 사과의 심도에 대한 논란 보다는 이 사과를 기초로 하여 일본이 해야 할 일을 촉구하고 실질적으로 양국의 우호에 도움이 되는 진정한 협력을 늘려 나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노대통령의 방일 목적과도 부합되는 것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의 안보와 통일에 대한 일본의 역할이다. 남북분단이 일제 강점통치의 후유증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일본은 한반도의 안정과 나아가 통일을 도와야 할 응분의 도덕적 책임이있다. 과거를 반성한다면 행여 분단을 악용하여 혼자만의 잇속을 챙기려는 어떤 기도도 있어서는 안되며 통일을 돕는 가시적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우리는 또 이것을 요구해야 한다. 보다 현실적인 문제로 과거청산과 관련하여 일본의 성의가 요구되는 사안들이 적지 않다. 특히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에 관한 문제는 개서되어야 마땅하다. 지문날인등 이른바 4대 악의 철폐는 물론 각종 차별대우가 하나하나 시정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밖에 원폭피해자와 사할린동포를 돕는 문제에도 보다 적극성을 보여야 사과문제가 실질적으로 일단락되고 보다 가까운 이웃이 될 것이다. 우리가 노대통령의 이번 방일을 계기로 특히 주목하는 것은 양국이 과연 미래지향적 동반자관계를 제대로 맺어나갈 것이냐 하는 점이다. 이를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무역역조의 시정과 첨단기술 이전이다. 한일간의 진정한 우호를 위해 이 부문에 대한 양국의 지속적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노대통령 방일의 참뜻이 제대로 구현되기를 기대한다.
  • 한ㆍ일 정상외교… 이렇게 생각한다

    ◎동북아 평화에 도움… 경협실천이 숙제로/한반도문제 새로운 변화 관심/윤정석 노태우대통령의 방일 성과중 가장 주목할 부분은 남북한관계를 포함한 동북아 안정문제가 심도있게 논의됐다는 점이다. 우리측은 그동안 추진해온 북방정책에 대한 설명을 했을 것이며 일본측은 북한과의 관계설정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히 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노대통령의 이번 방일을 계기로 남북한 또는 일본·북한간 관계를 포함해 한반도문제에 대한 새로운 변화가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기존의 한일관계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방일이 양국간 첨단기술이전이나 무역역조개선 등을 촉진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주었을 수는 있으나 이러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사기업간에 이루어지는 것들이므로 정부차원에서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일본의 경우 군사과학기술개발을 정부가 하지 못하고 사기업에서 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정부는 한일 양국 공동기술연구소 설치나 기술이전을 위한 자금지원을 할 수 있을 뿐이며 실질적인 기술이전이 가능키 위해서는 일본의 첨단기술업체가 우리의 재일교포나 유학생들을 취업시키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신기술 이전을/이수빈 한일 관계는 진실한 동반자관계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볼때 이번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은 만족스러운 결실을 맺지 않았나 본다.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볼때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정의 체결과 원자력협력협정을 통한 정부간 원자력협력협의회 구성은 물론 복수비자발급등은 한일 양국의 경제협력증진에 진일보한 것이다. 현재 양국 경제의 최대 현안으로 돼있는 무역불균형문제도 일본이 이번 회담을 계기로 대규모 구매사절단을 파한키로 한 데 따라 우리의 대일 무역적자의 완화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구매사절단의 성과에 기대를 걸어 보면서도 이같은 일본의 약속이 과거 여러차례 있어 왔으나 결과는 언제나 별무 성과였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불균형 시정노력이 더욱 요청되고 있다. 무역역조문제와 더불어 일본기업의 첨단기술이전문제도 조속히 해결돼야 할 과제이나 일본은 이번에 앞으로 5년간 1천명 수준의 우리 기술자를 초청,연수시키고 일본 기술자가 우리나라에 와 기술향상을 지원키로 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이왕 일본이 기술이전을 하려면 지나간 기술이 아닌 우리가 원하는 신기술의 이전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양국의 교역증대추세에서 보아왔듯이 한국의 발전은 일본에 나쁜 결과를 주기보다는 무역의 확대등 긍정적 효과가 컸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 교류방법등 제시해야/김문환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은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노력해 태평양시대를 열어 나가자고 선언한 데 의의가 있으나 상호주의원칙이란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우리측의 교류방법이나 원칙을 제시하지 못해 미흡했던 것으로 본다. 노대통령이 일본 국회에서 연설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얘기를 완곡하게 표현하기는 했으나 일본 국회의원들은 일반적인 말을 할 때는 박수소리가 컸지만 재일교포지위문제나 일본의 과오에 대해 발언할 때는 의외로 박수소리가 적었다는 점에서 일본인들이 진심으로 대한관계를 청산하려는 것이 아니라 소극적으로 국제적인 추세에 따라가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앞으로 우리 각료들은 이번 노대통령의 방일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상호교류의 원칙이나 공동투자 방식을 모색해야 할 것이며 위성통신에 의한 대중문화의 압력,문화교류에 대한 원칙등 현안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이다. ◎속은 역사 허다… 행동이 문제/박성수 한국이 일본에 속은 역사로 말하자면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사기는 임진왜란때였다. 그때 일본이 패전하고 나서 국교재개를 요구해 왔다. 번번이 퇴짜를 맞고서 8년만에야 성공했는데 그때 수교문서의 중요한 한 구절이 거간꾼인 대마도주에 의해 개서되어 있었다. 순진한 한국정부는 그것도 모르고 국교정상화에 도장을 찍었다. 그러나 한국측은 중대한 단서를 붙였다. 앞으로 통신사가 왕래하게 되겠지만 조선통신사는 일본 동경(강호)까지 가고 일본 통신사는 부산 동래까지로 제한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은 그때 무조건 이 단서조항을 받아들이고친선우호를 굳게 약속했다. 우리는 진정한 한일문린을 희망했고 더 이상의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바랐다면 그들이 강제 납치해 갔던 도공들의 송환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가엾은 조선도공들을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뿐인가. 그 뒤 다시 그들은 일제 침략전쟁을 감행함으로써 임란때 보다 몇십 몇백갑절이나 모진 고통을 이 착하디 착한 이웃에 「맛보게」했다. 오늘의 가이후총리가 그때 그 시절의 일본인의 후손인 이상 그가 언약한 소위 「언필신 행필과」란 말을 믿어도 될까. 노대통령의 방일성과는 오로지 일본측의 이 「행필과」에 달려있다고 믿는다.
  • 노대통령 만찬답사

    ◎지난일이 두나라 관계의 족쇄라면 우리함께 신념과 용기로 단절해야 나는 우리 두나라가 20세기의 마지막 연대를 맞고 있는 이제 진정한 우호선린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겠다는 확신을 갖고 일본을 방문하였습니다. 우리 두나라는 긴 역사를 통해 선린우호의 관계를 지속해 왔습니다. 근대에 들어와 불행한 역사가 있었으나 그것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이었습니다. 지난날의 일이 두나라 관계의 현재와 미래를 속박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면 우리는 신념과 용기로 그것을 단절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세계는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와 행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지난 시대의 벽,이념과 국경의 벽마저 허물면서 자유와 번영에의 열망을 실현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 한일 두나라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영원한 미래에도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살도록 신이 섭리하였습니다. 이 세계에 넘치는 새로운 화해와 협력의 물결 위에 우리 두나라는 이제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한일 두나라는 지난 1백년간 다섯차례의 큰 전쟁을 치른이 동북아시아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기 위해,21세기 아시아ㆍ태평양시대를 열기 위해 가장 긴밀한 동반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계의 진보와 인류의 복리를 위해 우리 두나라가 해야 할 일도 막중합니다. 오늘 이 자리가 새로운 차원에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여는 뜻깊은 시발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역사의 진실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과거를 씻고 국경을 허물며 하나가 되고 있는 유럽을 봅니다. 우리 두나라도 참다운 역사인식위에서 지난날의 그늘을 지우고 한 단계 더 높은 선린우호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 “한ㆍ일,아태시대 동반자로 새 출발”/노대통령 일 국회연설

    ◎무역불균형 시정 촉구/70만 재일한국인 차별철폐를/기술이전ㆍ기초과학협력 촉진도 강조 【도쿄=강수웅ㆍ이경형특파원】 노태우대통령은 25일 『지난날의 일이 한일 두나라 관계의 현재와 미래를 속박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면 우리는 신념과 용기로 그것을 단절해야 한다』고 말하고 『이 세계에 넘치는 새로운 화해와 협력의 물결위에 우리 두나라는 이제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노대통령은 방일 이틀째인 이날 저녁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총리가 주최한 만찬석상에서 답사를 통해 이같이 말하고 『한일 두나라는 동북아에 평화를 가져오고 21세기 아시아ㆍ태평양시대를 열기 위해 가장 긴밀한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한일 두나라는 과거에도,현재에도,영원한 미래에도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살도록 신이 섭리했다면서 『오늘 이 자리가 새로운 차원에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여는 뜻깊은 시발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가이후 총리는 만찬사를 통해 『과거의 한 시기에 한반도의 국민들이일본의 행위로 인하여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겪으신 데 대하여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하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24일 노대통령과의 1차 정상회담에서 언급한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다시 공개적으로 표명한 뒤 『일한 양국의 유구한 선린우호관계도 먼저 일본의 이러한 반성노력이 한국국민에게 납득되고서야 비로소 확고부동한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앞서 노대통령은 이날 상오 일본 국회의사당을 방문,중ㆍ참의원 7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변화하는 세계속의 새 한ㆍ일관계」라는 주제의 국회연설을 통해 『이제 두나라 관계는 정치ㆍ경제적 협력의 차원을 넘어 각 분야에서 모든 국민이 교류하며 협력하는 포괄적인 선린우호의 시대로 이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또 자신이 지난 88년 유엔총회에서 남북한,미ㆍ소ㆍ중ㆍ일 6개국으로 「동북아 평화협의회의」 설립을 제의한 사실을 상기시킨 뒤 『이 협의체의 실현에는 북한의 태도변화등 정치적 여건의 성숙에 시일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가능한 나라,가능한 분야부터 공동이익을 실현할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30분간 계속된 연설에서 한일간의 과거사 청산을 거듭 강조하면서 『70만 재일한국인은 일본국민과 함께 전쟁의 고통을 겪었으며 일본의 재건과 발전에 참여해왔다』고 말하고 『이들이 이곳에서 불편없이 살게 될 때 양국 국민은 한일우호를 가슴으로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새로운 한일협력관계 발전과 관련,▲일본의 대한무역불균형 시정을 위한 실질조치 ▲기술이전과 기초과학협력의 촉진을 촉구하고 『한국의 발전은 일본의 국가이익에도 합치될 것이며 동아시아 경제권의 지위를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이어 이날 낮 일본경제5단체가 공동주최한 오찬에 참석,연설을 통해 양국 경제관계 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해 정부와 민간부문이 함께 참여하는 산업기술협력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의한 뒤 일본의 대형프로젝트에 한국기업이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하오 한일 친선단체간부들을 숙소인 영빈관에서 접견하고 이원경주일대사가 주최하는 교민리셉션에 참석했다. 한편 노대통령은 26일 상오 가이후 일 총리와 2차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및 동북아 정세평가와 이에따른 공동협력방안,무역불균형 시정,첨단기술이전 등 양국간 실질협력문제를 광범위하게 논의할 예정이다. 노대통령은 이어 영빈관에서 아키히토 일왕과 작별인사를 나눈 후 일본 기자클럽에서 오찬회견을 가질 예정이며 귀로에 오사카에서 교민리셉션에 참석,교포들을 격려하는 일정을 끝으로 2박3일간에 걸친 방일일정을 모두 마치고 이날 하오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할 예정이다.
  • 노대통령 일 국회 연설 요지

    ◎가까운 이웃으로,믿음 나누는 친구로 평화와 번영,자유와 행복이 넘치는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나는 한일 양국이 상호존중과 이해에 기초하여 이제 가깝고도 가까운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45년전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한국국민의 기쁨은 하루아침 국토분단의 슬픔으로 표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한 세대에 걸친 피땀어린 노력으로 한국은 이제 신흥산업국가로 발돋움 했습니다. 우리 국민은 서울올림픽을 12년만에 동서세계가 함께 모인 훌륭한 평화의 축제로 치렀습니다. 우리 국민이 이룬 또하나의 보람은 민주주의의 시대를 연 것입니다. 근40년간 안팎의 숱한 파란속에서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우리 국민의 뜨거운 염원과 투쟁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3년전 「6ㆍ29민주화선언」을 시발로 한국의 새로운 시대는 언론과 정치적 자유를 제한없이 열어 놓았습니다. 한국의 민주화는 헌법과 제도는 물론,사회의 가치체계와 국민의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민주화는 큰 대가를 치르고 있으나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이 오게하는 것은 우리 국민의 지상과업일 뿐만 아니라 세계와 이 지역에 우리가 기여할 으뜸가는 과제일 것입니다. 지난 한 세기동안 한국처럼 침략과 전쟁ㆍ대결체제로 고통받아온 나라는 이 지상에서 드물 것입니다. 평화는 한국민의 절실한 소망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이룸으로써 이 세계가 우리에게 준 시련에 답하려 합니다.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이 세기안에 반드시 이루려합니다. 냉전체제의 타율에 의한 민족의 분단상황은 다음 세기로까지 이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어렵다고 여겨온 동서 독일의 통일이 이제 현실이 되고 있듯이 전쟁의 위험이 도사린 분단된 땅에서 인류화합의 올림픽이 열렸듯이,한반도에 통일의 날은 올 것입니다. 이제부터 한일 양국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본격적으로 펼쳐가야 할 것입니다. 나는 1988년 유엔총회에서 「동북아 평화협의회의」를 제안한 바 있습니다. 이 협의체의 실현에는 북한의 태도변화등 정치적 여건의 성숙에 시일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가능한 나라,가능한 분야부터 공동 이익을 실현할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 동북아시아 국가들간의 협력은 아시아ㆍ태평양시대의 밝은 미래를 여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일본과 한국의 21세기도 아시아ㆍ태평양의 평화와 번영과 직결되어 있을 것입니다. 한일 두 나라는 동반자로서 태평양시대를 앞장서 열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를위해 우리는 이 지역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모든 나라에 도움을 주는 효율적인 협력의 틀을 이루어야 합니다. 한일 양국은 이제 서로 미국 다음가는 두번째의 교역국이 되었습니다. 세계10대 교역국에 들어선 한국은 일본 기업에 연간 1백70억달러의 시장이 되었습니다. 25년전 일본의 대한 수출이 불과 2억달러였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의 발전은 일본의 번영에도 도움을 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번영하는 나라가 가까이 있는 것은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것입니다. 한일간에는 만성적인 무역불균형의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은 미국과 유럽에 대해 시장개방과 무역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도 이처럼 정책적 의지를 갖고 불균형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조처를 취해주기 바랍니다. 일본이 경쟁을 꺼려하여 기술이전에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국의 수출증대가 해외시장에서 일본기업에 다소의 경쟁을 불러오는 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견일 뿐 그것은 일본으로부터 더 많은 우리의 수입을 유발해 왔습니다. 한국의 경제발전이 일본의 국가이익에 합치한다는 인식하에서 일본의 기술이전과 기초과학 협력을 촉진하여 주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변화하고 많은 것이 발전하였음에도 우리 두 나라 국민간에 진정한 우정을 가로막는 마음의 벽이 남아 있습니다. 전후 45년이 지난 이제 세계대전을 치렀던 유럽 각국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이 시점까지,우리 두 나라 국민간에는 잘못된 과거에 대한 인식과 감정이 정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대의 잔재가 두 나라 관계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국민학교에 갓 들어간 한국 어린이가 일본식 이름 아닌 자기 이름을 썼다하여 어머니로부터 익힌 자기 나라말을 했다하여 선생님의 회초리를 맞아야 했던 아픔을 여러분이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지난날 어두웠던 시대,우리 민족이 겪은 더 큰 고통과 시련,그 엄청난 비극을 지금 이 자리에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나라를 지키지 못한 스스로를 자성할 뿐,지난 일을 되새겨 그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려 하지 않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진실에 바탕한 두 나라 국민의 참된 이해이며 그것을 바탕으로 밝은 미래를 열자는 것입니다. 프랑스인 독일인 영국인이 이제 하나의 유럽인이 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진실의 힘으로 잘못된 과거를 분명히 씻음으로써 새로운 역사의 창조에 함께 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일은 신도 바꿀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오늘의 우리가 지난 일을 어떻게 보고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하기에 따라 지난날의 속박을 끊고 과거의 잔재는 치울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용기와 노력이 필요할 뿐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내가 특히 이 자리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지난날의 역사로 인해 일본에 살게 된 70만 재일 한국인의 문제입니다. 이들은 일본국민과 함께 전쟁의 고통을 겪었으며 전후 일본의 재건과 발전에 참여하였습니다. 이들이 사이좋게 이웃으로 이곳에서 불편없이 살게 될 때 우리 두 나라 국민은 한일 우호를 가슴으로 느낄 것입니다. 일본은 지난날의 일본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일본이 되었습니다. 역사와 세계에 대해 열린 일본은 아시아와 세계의 인식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공통의 이상을 나누고 있는 우리 두 나라는 이러한 관계위에 세계로,미래로 손잡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으로,믿음을 나누는 친구로 더욱 평화롭고 번영하며 자유와 행복이 넘치는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 일왕 사과 기대 미흡/야권 논평

    평민ㆍ민주당(가칭)등 야권은 25일 아키히토 일왕의 사과발언과 관련한 논평을 각각 발표했다. ▲평민당 김태식대변인=통석이란 표현은 과거에 비하면 진일보한 내용이지만 한일간의 진정한 과거청산과 새로운 태평양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한 일본측의 성의로서는 미흡하기 짝이 없다. ▲민주당(가칭) 장석화대변인=일본측이 「통석의 염」이라는 미흡하고도 애매한 표현으로 과거역사에 대한 사죄를 끝낸 것은 지난날에 대한 엄숙한 사죄표현의 기반위에서 새롭게 개척돼야 할 한일관계의 앞날에 바람직스럽지 못한 일로 매우 유감이다.
  • 외언내언

    지난 82년 한일간 최대현안이었던 경제협력문제 타결을 위해 일본의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당시 총리가 한국을 전격 방문했을때 일본인들은 그의 발빠른 행보에 감탄했었다. 역시 나카소네다운 행동력을 보였다는 칭찬을 받았고 그의 이런 외교스타일이 그의 재임기간중 각광을 받았다. 그때 나카소네총리의 방한은 세지마 류조(뇌도용삼)가 밀사로 한국에서 벌인 막후접촉의 결과라는 것이 뒤이어 밝혀지자 많은 일본인들은 「과연 세지마」라고 말했었다. 그 세지마가 노대통령 방일을 바로 앞둔 중요한 시점에 한국에 왔다갔다. ◆일본의 밀사외교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유럽이나 미국등의 선진각국들과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무역마찰에 대한 무마용 또는 설득용으로 걸핏하면 밀사 또는 특사외교를 이용하고 있다. 아시아각국들로부터 지난달 일본의 만행에 대한 비난,반발이 있거나 현안을 해결하려 할때는 밀사가 동원됐다. ◆밀사외교는 나카소네집권때 절정을 이뤘다. 그 이후도 계속돼오고 있으나 나카소네총리때 가장 성행한 것으로 일본의정치평론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그는 유명학자,교수들로 주요문제별위원회를 만들어 자신의 개인브레인으로 활용하고 이들 위원회의 회원가운데 특출한 전문가를 밀사로 뽑았다. 이래서 대중국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마다 학습원대학교수이며 교육개혁위원회의 한 멤버인 고야마교수(향산건일)을 파견했다. ◆외국에 밀사를 파견하거나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일본정부가 내세우는 말이 있다. 「태평양시대를 맞아」 「21세기를 앞두고」 「동반자로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럴때 저들은 경제협력 문제를 들먹인다. 우선 듣기에는 좋은 소리다. 이번의 노대통령 방일을 두고 일본정부지도자,자민당간부들은 어느 누구건 이것을 말했다. ◆일본의 밀사나 특사들은 귀국해서는 함부로 발설하지 않는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총리관서로 직행,보고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다. 이것은 어느 국회의원이나 정부관계자 모두가 똑같다. 소련을 방문하고 돌아온 일본공산당수뇌도,북한에서 돌아온 사회당위원장도 이렇게 하고있다. 그래서 외교에 관한한,국익에 대해서는 일본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것이 우리와 다르다.
  • 84년 「유감」보다 진전… 대승적 차원서 수용

    ◎일왕 「사과문안」 최종절충 안팎/가ㆍ피해자 명시됐지만 「책임」은 약해/일왕ㆍ총리 사과 합치면 우리측 요구수준 될듯 노태우대통령 방일시 아키히토(명인) 일왕이 궁정만찬석장에서 밝히게 될 대한사과문안에 대한 한일 양국간 협상은 방일 하루전인 23일 일단 마감됐다. 야나기 겐이치(유건일) 주한일본대사가 이날 하오 최호중외무장관을 예방,일본측이 과거사에 대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시하고 사과의 주체를 밝히는 내용의 최종적인 일왕사과문안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최장관도 이날 야나기 주한일본대사를 만난 뒤 기자들에게 『일본측이 노대통령을 정중하게 맞이하는 자세를 견지,신중하고도 많은 고심을 한 결과라고 일단 평가한다』며 일본측이 제시한 최종사과문안에 대한 소감을 피력한 데 이어 『이번 방일에서 아키히토 일왕이 밝힐 사과수준은 84년 전두환 전대통령 방일당시 히로히토(유인) 일왕이 말한 「유감표명」보다는 진전된 것』이라고 강조,우리측 요구가 상당부분 수용됐음을 시사했다. 일본측이 제시한 최종문안은 ▲한일 양국간 과거사에 있어 가해자및 피해자 명시 ▲사과주체의 표시 ▲84년 당시의 「유감」보다는 더 강도가 높은 사과표현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초 우리정부가 요구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적시,식민지배에 대한 「책임」과 「반성」을 분명히해야 한다는 수준에는 못미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같은 수준을 토대로 일왕사과문안을 정리해본다면 『본인(일왕)은 금세기 한 시기에 있어서 우리나라(일본)가 한국에 끼친 불행했던 과거가 있었던 데 대해 고통과 슬픔을 통절히 느끼며 다시는 이같은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로 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양국간의 이번 협상은 우리측의 강력한 입장개진과 일본측의 양보가 어우러져 마무리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번에야말로 완전한 과거청산을 희망했던 국민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미지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일본측은 84년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정식외교경로 전달방식을 선택,이날 하오 야나기 대사가 최장관을 예방하는 자리에서 일왕의 최종사과문안을 한국측에 전달. 일본측은 이에앞서 22일 밤 고위특사인 세지마 류조(뇌도용삼)씨의 보고를 토대로 가이후(해부) 총리 주재로 나카야마 외상,사카모토 관방장관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책회의를 열고 최종문안을 23일 제시키로 결정했다는 후문. 일본측은 이 자리서 일왕발언의 헌법상 허용문제를 감안,일왕의 사과표명을 한국측의 요구수준보다는 낮추되 대신 가이후 총리가 한국측의 요구를 대폭 수용,깊은 반성과 책임을 밝힌다는 기존의 방침을 재확인했다고. ○…야나기 대사는 당초 예정시간보다 35분가량 늦은 이날 하오 2시35분쯤 외무장관접견실로 최장관을 예방,최종문안 전달과 함께 일본측의 전반적인 상황을 설명했다고 한 배석자가 전언. 40여분간 계속된 이 면담에서 최장관은 『양국관계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도 일왕의 사과문안이 우리국민의 기대를 상당한 정도 담기를 희망한다』면서 일본측의 성의있는 자세를 재차 강조했으며 야나기 대사는 이에대해 어려운 일본 국내사정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고. 일본대사관측은 야나기 대사가늦게 도착한 이유에 대해 『본국정부로부터 텔렉스 도착이 늦었기 때문』이라고 밝혀 일본측이 우리측에 공식통보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진통을 겪었음을 시사. 최장관은 특히 야나기 대사가 『늦어서 미안하다』며 인사말을 건네자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일왕의 최종사과문안 제시가 온 국민의 관심사항이 되고 있다』고 답변,일본측이 우리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과문안을 갖고 왔음을 의식한 듯한 발언을 하기도. 최장관은 또 야나기 대사와 악수하는 포즈를 잡아달라는 사진기자들의 요청에 『그냥 앉아서 얘기하는 표정을 찍는 것이 낫지 않느냐』며 신중한 자세를 견지. 최장관은 면담을 끝낸 뒤 청와대로 직행,노대통령에게 최종사과문안및 일본측 정황등을 상세히 보고. ○…최외무장관은 이날 노대통령에게 일측 사과문안을 보고한 뒤 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과 만나 한동안 문안내용을 놓고 숙의. 노실장은 이어 삼청동에서 외무부관계자들과 대책을 논의,청와대로 돌아와 이수정공보수석비서관을 급히 찾았는데 주변에서는 『일측의 사과문안과관련한 우리측 대응입장을 다시 수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들. 노실장은 기자들이 『일왕사과문안은 절충이 모두 끝났느냐』는 물음에 직접적인 답변은 회피하면서 『비행기 타는 일만 남은 것 아니냐』고 말해 양국간의 절충이 사실상 마무리됐음을 시사. 노실장은 일왕의 사과수준을 캐묻자 『일왕과 총리의 사과내용을 합치면 우리가 요구하는 수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다소 미흡함이 있음을 우회적으로 답변. 노실장은 이날 전달된 일본의 사과내용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에는 『당장 문안을 펼쳐보일 수는 없으나 긍정적일 것으로 본다』고 조심스레 피력.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일측 사과문안과 관련,『노대통령의 일왕주최 만찬답사ㆍ국회연설ㆍ일총리주최 만찬답사 등을 일부러 다시 손댈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일본측의 사과수준과 외교적으로는 정상적인 것 같다』고 피력해 다소 우리의 당초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84년 사과수준」보다는 강도가 있는 것임을 시사. 이 관계자는 『일측의 사과문안이 일본내에서는 많은 반대견해가 있을 수도 있는 것으로 일본정부로서는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언급. ◎노대통령 맞는 동경의 기류/「침략국」인상 씻고 “평화지향 일본” 부각 겨냥/“한ㆍ일 신협력시대”들어 실리 치중 말은 안해도,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에 대해 일본측이 전례없이 중점을 두고 배려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사정」에 기인한다. 물론 표면상으로는 미래지향적 우호ㆍ협력관계의 구축을 노대통령 방일실현의 첫번째 목적으로 꼽는다. 앞으로 다가올 아시아ㆍ태평양시대의 이니셔티브를 잡기 위한 두나라 공동전선을 구축하며,세계경제 블록화에 대처하기 위해 보조를 맞춘다는 명분론을 들고 있으나 그 「필요성」은 더욱 현실적인 데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선 국내의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가이후(해부)정권의 장기안정화를 꾀하기 위해 외교에 치중할 필요가 있다. 오는 8월이면 발족 1년을 맞는 가이후내각으로서는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 방일실현,한국과의 유대강화,동구제국과의 관계개선등 외교실적을 통해 국제적 지위를 부상시킴과 동시에 「본격정권」으로서의 이미지를 내외에 인식시켜줄 필요가 절실하다. 두번째는 일왕의 방한실현 타진이다. 침략군국주의의 대명사 쇼와(소화) 일본의 인상을 씻고 평화지향의 헤세(평성) 일본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아키히토(명인) 일왕의 한국방문이 필요하다. 일왕의 한국방문이 갖는 상징성은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경쟁상대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원활히 함으로써 세계적 경제마찰의 초점을 분산시키자는 등의 계산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신칸센(신간선)같은 대형 프로젝트의 판매등을 통해 기존시장을 확대하려는 의도도 없지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의 이같은 외교목표 설정은 한국의 그것과는 일치하지 않음으로써 지금까지도 불협화음을 빚고 있다. 지난 3월 일본의 학자ㆍ변호사ㆍ종교인등 58명은 『의회는 36년간의 식민지지배를 통해 일본이 한민족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준 데 대해 반성하고 국민의 이름으로 사과한다』는 결의를 채택하도록 일본 중ㆍ참의원및 각 당에 요구했다. 와다 하루키(화전춘수) 동경대교수,다카키 겐이치(고목건일),변호사 다케우치 겐타로(죽내겸태랑) 일본기독교협의회장 등을 대표로 하는 이들은 「한국병합조약 80주년을 맞아 조선식민지 지배 반성의 국회결의를 요구하는 성명」을 통해 이같이 촉구했다. 이것은 진정한 인식전환만이 우호의 바탕이라는 사실을 일본인 스스로가 자각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평화ㆍ안전보장연구소 회장인 이노키 마사미치(저목정도)씨는 최근 산케이(산경)신문에의 기고를 통해 일왕은 일본의 책임소재를 명쾌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국의 상징으로서,일본을 대표하고 있는 것은 천황이다. 노일전쟁으로부터 종전까지 일본은 가해자였으며 한국은 피해자였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기 때문에 천황의 사죄내용에 「일본의 책임에 의해」라는 의미가 명시되어야 한다. 총리가 제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한국민은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간파했다. 그러나 이같은 식자들의 우려와는 달리 평소 일본의 대한관에서는 불과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일제의 침략과 수탈에 대한 뉘우침과 반성의 뚜렷한 기미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오히려 최근의 오사카(대판) 나고야(명고옥)등지에서의 극우국수주의자들에 의한 폭발테러사건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같이 일제당시의 의식과 시각을 그대로 갖고 있는 언행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과거 일본교과서의 역사왜곡도 그 좋은 예의 하나이다. 일본법원은 일본군의 「침략」과 「대학살」표현을 완화토록 지시한 문부성의 수정지시가 합법적이라는 판결까지 내렸었다. 역사적 사실을 수정하도록 강요하는 정부,또 이를 마땅한 것으로 판단하는 법조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일부 지배층의 기본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한ㆍ일우호관계는 수립될 수 없다. 일본의 잘못된 대한인식과 태도는 지난번 재일한국인의 법적 지위보장ㆍ처우개선 협의에서도 잘 드러났다. 우여곡절끝에 「3세문제」에 대해서는 최소한도의 합의를 보았으나 1ㆍ2세문제는 거론되지도 않았다. 70여만명에 달하는 재일동포들의 법적 지위문제는 바로 인간의 기본권인인권과 생존권의 문제이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교육울 받으며 일본사회에서 살고 있는 재일동포와 그 자손들의 법적 안정성 보장및 차별철폐,원폭피해자문제,사할린거주 한국인문제등 일본이 역사적 책임을 져야만 하는 문제는 많다.
  • 동북아 협력기구 창설/노대통령,방일중 제의/25일 국회 연설때

    【도쿄 외신 종합】 24일 방일하는 노태우대통령은 한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인 25일의 일본 중의원연설에서 다가오는 21세기 아시아ㆍ태평양시대에 대비,한국ㆍ일본ㆍ중국 3국을 주축으로 한 동북아시아 협력기구의 창설을 제안할 예정이라고 산케이(산경)신문이 22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노대통령이 동북아시아 국가간의 정치ㆍ경제ㆍ문화 등 각 분야에 걸친 보다 긴밀한 상호협력체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북한이 이 기구 참여를 희망할 경우 이를 환영하겠다는 뜻을 밝힐 것이라고 전했다.
  • “외교는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종합”/한영구 외교안보연 교수

    ◎한일관계의 마찰음을 듣고… 5월24일에서 26일까지로 예정되어 있는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은 일왕의 사과발언문제를 둘러싼 찬반양론의 여론속에서 그 필요성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진지 25년이 경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일 양국은 65년 국교정상화 당시로 되돌아간 인상을 짙게 하고 있다. 65년 한일기본조약과 함께 4개의 협정(청구권 및 경제협력협정 ㆍ문화재반환협정ㆍ어업협정ㆍ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한일병합에 이르는 모든 조약 및 협정은 무효임을 선언하고 양국간 국교를 정상화 했으며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이라는 의미에서 청구권 자금이 설정되고 문화재 반환에 합의했다. 그리고 당시 한일간의 현안이었던 어업문제,재일한국인의 법적 지위문제 등에 있어 정부간 협의에 의한 해결방식이 도입되었으며 양국간 경제협력관계가 공식화되었다. 이러한 기본적 틀의 설정하에 한일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이 일본의 안전에도 긴요하다는 기본인식하에서 우호,협력 관계를 추구하여 왔으며 무역역조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긴밀한 경제 협력관계를 모색하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간에 있어서 상호이해와 신뢰관계가 의문시되고 있는 것은 과거의 역사적 관계로 인한 국민감정이 처리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25년간의 한일협력관계가 다른 국가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것이라면 그 우호관계의 긴밀성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일관계에 있어서는 과거의 역사적 관계에 근거를 두는 대일 불신의 태도가 뿌리깊게 작용하는 관계로 실제의 협력관계 조차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크다. 이러한 대일 불신의 태도는 일본측의 사과발언이 어떤 수준의 내용을 담고 있는가 하는 문제보다 그동안 일본정부가 과거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의식을 명백히 구체화하지 못한 측면이 강했던 점에 보다 근본적인 유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측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4협정의 체결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은 일단 끝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법적인 측면에서 65년의 조약과 협정의 체결로 한일간 과거의 역사적 관계가 해결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나,한일간의 관계는 법적인 것 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특수한 상황하에 있다. 그런 점에서 법적인 측면에서의 기본관계의 설정은 정치ㆍ경제ㆍ사회적으로 제반후속조치가 동반될 것이 요청된다. 일본측은 이러한 후속조치를 취함에 있어서 (결국은 그 후속조치를 강구하지 않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색한 태도를 보여 왔으며 게다가 일본정부 각료 또는 고위관료에 의한 일본의 과거 침략행위 정당화발언이 심심찮게 나옴으로써 일본의 의도가 의문시되어 왔으며 이러한 점들이 한국민의 대일 불신태도를 증폭시켜 왔다고 볼 수 있다. 국가간의 관계는 과거의 역사적 문제만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관계를 명백히 규정하지 않고 현실을 뛰어넘을 수도 없다. 현재 과거의 역사적 관계로 파생된 문제로서 아직도 미해결상태로 남아 있는 문제도 많다. 재일한국인의 거주권문제ㆍ사할린교포 귀환문제ㆍ원폭피해자에 대한 치료 및 보상문제 등등 앞으로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일왕의 사과발언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일왕은 일본의 상징적 존재로서 일왕의 발언은 상징적 의미를 띠는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하겠으나 이와함께 실질적으로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가 하는 점을 검토할 필요도 있다. 동시에 실질적인 사죄의 방법으로서 앞의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현실적 방안에 대한 고려가 결여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또한 한일간의 미래지향적 협조관계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협력문제ㆍ과학기술이전문제 등 현안의 해결도 시급하며 21세기 아시아ㆍ태평양시대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공동의 번영과 계속적인 발전을 위한 동반자관계의 구축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의 외교는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금번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이 명분 또는 실리 그 어느 것에만 중점을 두는 것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명분없는 실리는 굴욕적이 될 가능성이 크며 실리없는 명분은 공허한 것이 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1984년 전두환 전대통령의 방일시 일왕은 양국간의 불행했던 과거를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그 발언은 분명히 미흡한 것이었으나 이번에 그 이상의 발언을 하느냐 안하느냐는 일본측이 결정할 문제이며 국제국가를 지향하는 일본정부의 양식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오히려 과거의 침략행위를 시인하고 역사의 책임을 통감하는 일본국회의 결의를 촉구하고 일본정부로 하여금 과거의 역사적 관계로 인하여 발생한 미해결의 문제를 개선하도록 요구하는 현실적 방안에 대한 고려를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와함께 21세기 아시아ㆍ태평양시대의 도래에 대비하는 한일간의 진정한 선린우호관계의 정립에 대해서도 깊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점에서 노대통령의 방일이 명분이나 실리 어느 쪽에만 치우치지 않고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추구하는 포괄적 차원에서 한일관계를 주시하는 냉정한 시각이 형성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후지산호 선장 등 9월 석방/북한,일에 통보

    ◎스파이죄 형기 만료따라 【도쿄 연합】 스파이 혐의로 지난 7년동안 북한에 억류되어 온 일본화물선 제 18 후지산호의 선장 등 2명이 형기만료로 오는 9월쯤 석방될 가능성이 높다고 교도(공동)통신이 15일 보도했다. 교도는 북한이 최근 비공식으로 일본측에 이같은 사실을 알려왔다면서 베니코(홍분용ㆍ60)선장과 구리우라(율포호웅ㆍ59)기관장은 15년간의 형기가 끝나는 금년 9월경 풀려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당시 북한군 하사 민홍구씨의 일본 밀항을 도왔다는 이유로 지난 83년 11월 후지산호의 남포입항과 함께 북한측에 억류돼 4년후인 87년 12월 간첩죄로 15년 교화노동형을 선고받고 평양시내의 건설현장에서 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는 미결 구치기간 하루를 교화노동 3일로 계산한다는데 이들이 실제판결을 받기까지 4년 1개월간 미결상태에 있어 실제 복역기간 2년 9개월을 합하면 15년 형기를 마치게 된다는 것이다. 일본은 그동안 후지산호 선원 석방문제를 최대현안으로 삼아 각 방면에 걸쳐 북한과의 접촉을 진행해왔고 금년 중가네마루(김환신)전부총리 등 거물급 정치인을 평양에 파견,본격적인 교섭을 벌일 예정이다.
  • 국군조직법 개정안 세미나… 이석복준장 주제발표

    ◎“현대전 수행위해 군제개선 불가피”/3군 통합전력 향상… 국방자원 관리에 효율적 국방부는 10일 하오 서울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여야정치인ㆍ언론인ㆍ학자 그리고 현역 및 예비역 장성 등 관련 인사 6백여명을 초청,「한반도 안보환경 전망 및 국군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상우교수(서강대)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세미나에서 차영구박사(국방연구원)는 『90년대 안보환경변화와 군구조개선』,이석복준장(국방부)이 『군구조개선의 필요성과 주요내용』 유재갑박사(국방대학원)가 『국군조직법 개정과 문민통제』,이승우교수(경원대)와 강경근교수(숭실대)가 『국군조직법개정과 합헌론』등의 주제로 발표를 했다. 합참 전략기획국 이석복준장의 주제발표내용을 요약한다. 국방부가 장기국방태세 발전방향의 연구에 착수,한국의 장기적인 안보환경을 분석하고 우리환경에 맞는 군구조개편작업에 착수한 것은 88년 8월18일부터이다. 국방부는 「한국방위의 한국화」라는 대명제를 달성하기 위해 현대전이 요구하고 있는 지휘반응의즉시성과 육ㆍ해ㆍ공군의 통합전력발휘를 보장하고 2천년대 태평양시대의 중심국가로 부상하고 통일위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른바 「8ㆍ18계획」을 입안하기 시작했다. 현재 세계 각국의 군구조는 대략 자문형합참의장제ㆍ통제형합참의장제ㆍ합동군제ㆍ통합군제ㆍ단일군제 등 5개의 대표적 유형으로 구분되어 있다. 각 국의 군제는 문화적ㆍ정치적ㆍ역사적 배경과 전략환경ㆍ가상적군ㆍ국경의 형태ㆍ무기체계에 따라 해양국형과 대륙국형으로 나눌 수 있다. 대체로 서양문화권은 한 지휘관에게 권한을 집중시키지 않는 합동군제로 발전하고 동양문화권은 능률성을 추구하는 통합군제를 채택해 왔다. 현재 한국군이 채택하고 있는 자문형 합참의장제는 1924년 영국에서 수상을 자문하기 위한 제도로 미국은 2차대전이 끝난 47년 채택했다가 58년 통제형 합참의장제로 개선하고 영국은 64년 육ㆍ해ㆍ공군 합동문제인 국방참모총장제로 발전시켰다. 공군이 독립하고 항공모함전단이 구성된 40년도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 밖에 없으며 대부분의 공산국가와 이스라엘ㆍ터키ㆍ대만 등의 나라에서는 지휘관 한 사람에게 군정ㆍ군령권이 모두 주어진 강력한 국방참모총장제도나 단일 참모총장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군장성과 학자ㆍ교수 등 40여명의 「8ㆍ18」 연구위원들은 전세계의 군구조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수집,조사 연구한 결과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반도국가인 우리의 현실에 맞는 군제로 육ㆍ해ㆍ공군 3군본부는 그대로 둔 통제형 합참의장제와 합동군제가 타당할 것으로 판단했다. 모델로서 이스라엘 서독 영국 미국 군제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한국적 여건에 맞는 군제를 마련했다. 첫째,북한의 군사전력인 기습전과 우리의 짧은 전장을 고려할 때 전ㆍ평등체제를 별도로 유지했을때 전환기의 혼란은 전쟁의 승패와 직결됨으로 이스라엘과 미국과 같은 전ㆍ평시단일체제를 선택하고,둘째 국방비의 효율적인 사용을 위해 영국ㆍ서독과 같이 합참주도의 군사력 건설소요제기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자원이 없는 우리현실에 유리하다고 보고,셋째 작전의 즉응성과 권력집중방지를 위해서는 미국처럼 3군의 작전부대를 합참에서 직접 지휘하되 군정권은 각 군총장이 행사케 함으로써 상호균형과 조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최종 완성된 군제를 개괄해 보면 대통령과 국회에 책임을 지고 있는 국방장관이 군정ㆍ군령을 통괄하되 군정은 각군 총장을 통하여 행사하고 군령은 장관에게 군령분야를 보좌하는 합참의장을 통하여 행사하는 체제이다. 군구조가 개선되면 현대전이 요구하는 육ㆍ해ㆍ공군 통합전력이 발휘되며 국방자원관리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주한미군이 철수한 이후 한국방위의 한국화를 이룰 수 있는 요체가 된다. 1차대전까지의 전쟁양상은 지상군이 비교적 단순한 전력으로 승리하면 전략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고 해상전도 병참선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지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항공기의 출현과 유도탄개발ㆍ전자수단의 무기화,원폭ㆍ수폭 등 무기체계의 발달로 육ㆍ해ㆍ공군 3군이 병립하고 각군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한편 전시에는 상호의존적ㆍ간섭적 형태로 변화하게 되었다. 현대전에서는지상군ㆍ해군ㆍ공군은 단일작전지휘관의 강력한 지휘통솔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장기국방태세 발전방향연구는 국력의 신장과 함께 안보환경변화에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2천년대 태평양시대 중심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민족사적 위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주국방태세를 확립하는 데 있다.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과 감축이 가시화되고 있는 현재 새로운 군제도의 정착 소요기간을 4∼5년으로 고려할 때 한ㆍ미연합사령부 지휘체제안에 안정적으로 개편하는 것이 국방자원관리의 효율화와 3군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시급한 일이다.
  • 노대통령 24일 방일/공식발표/두차례 정상회담… 회의서 연설

    노태우대통령 내외는 오는 24일부터 26일까지 2박3일간 국빈으로 일본을 공식 방문한다고 8일 이수정 청와대대변인이 발표했다. 노대통령의 이번 일본방문은 21세기를 앞두고 급변하는 국세정세 속에서 아시아ㆍ태평양시대를 함께 이끌어갈 한국과 일본 두나라의 미래지향적인 협력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대변인이 설명했다. 노대통령은 방일기간중 아키히토(명인) 일왕과 3차례 면담하고 가이후(해부)일본 총리와 2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며 방문 이틀째인 25일 일본국회에서 연설,한일 우호관계 구축과 아태시대를 맞는 새로운 동반자 관계를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통령은 지난 88년11월과 89년5월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일본측의 사정으로 두차례나 연기된 바 있다. 노대통령은 이번 방문에서 가이후총리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동북아와 아ㆍ태 지역평화ㆍ안정을 위한 협력체제및 경제협력문제 등을 논의하고 한반도의 주변정세 변화에 능동적인 대처를 위해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노대통령은 또 과거 불행했던 양국관계의 발전적인 해소를 위한 계기를 마련하고 재일교포의 법적지위문제등 한일간 현안의 핵심부분인 재일교포 3세의 영주권부여및 외국인등록증 휴대 등 법제도상의 4개 제도를 개선하는 문제를 집중 논의,상당한 성과를 거둘 것으로 보이고 있다. 이번 노대통령의 일본방문에는 최호중외무ㆍ이종남법무ㆍ박필수상공ㆍ정근모과기처장관과 노재봉비서실장ㆍ이현우경호실장ㆍ노창희의전수석ㆍ김종인경제수석ㆍ이수정공보수석ㆍ김종휘외교ㆍ안보보좌관 등이 공식 수행한다.
  • 강총리,청소년의 달 담화

    강영훈국무총리는 30일 「5월 청소년의 달」을 맞아 담화문을 발표,『21세기는 태평양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제하고 『태평양시대의 당당한 주역국가의 일원이 될 우리나라를 이끌고 나갈 청소년 여러분의 사명은 과거 어느 때보다 중대하다』고 강조했다. 강총리는 『청소년은 사회를 우리 모두의 생활공동체로 만드는 데 언제나 새로운 활력소를 보태주는 귀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하고 『정부로서도 청소년 여러분이 건강하게 성장,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국가의 기본과제로 생각하고 교육환경의 개선과 각종 문화시설의 확대에 계속 힘써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최근 망명한 북한 유학생 회견

    ◎“소 거주 북한인,본업보다 외화벌이 급급”/물건 「되팔기」 성행… “장사 잘됩니까” 인사/소련 제품 북한 반입땐 뇌물만 주면 통과/김책공대 컴퓨터 대부분 재일동포가 작동 소련에 유학중 지난 2일 한국으로 망명한 남명철씨(25ㆍ레닌그라드대학 자동계산기술학과)와 박철진씨(25ㆍ〃)는 23일 연합통신과의 회견에서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 때문에 소련에 있는 북한의 유학생이나 외교관들은 거의 외교업무나 공부보다는 「장사」를 해서 외화를 버는데 급급하다고 밝혔다. 남군 등은 북한의 경제현실에 대해 김정일이 집권한 지난 70년대초부터 경제상황이 나빠졌다는 얘기가 주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으며 이같은 경제난때문에 북한 인민들은 김정일의 지도력을 의심하기 조차 한다고 밝혔다. 외교관들이나 유학생들은 인삼제품등 북한의 특산물이나 제3국의 물건들을 싸게 구입해 소련 국내로 들여와 비싸게 판 뒤 그 돈으로 북한에서 필요한 소련물건을 사서 이를 다시 북한에서 수십배의 이익을 남기고 파는 「장사」로 돈을 벌고 있으며 소련에 있는북한사람들끼리 만나면 「장사 잘 되십니까」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는 것이다. 남군 등은 동구공산권 국가들의 개혁물결에 대한 북한의 대응에 대해 소련 등지의 유학생이나 외교관들이 북한에 들어가서 외국사조와 민주화 소식이나 남한의 경제발전에 대한 전파행위를 못하도록 김정일은 『말을 막하고 돌아다니는 자들은 용서치 말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이들은 소련에는 모스크바 2백∼3백명,레닌그라드와 키예프에 각각 1백명,오데사에 40명등 약 5백명의 유학생들이 있으며 여기에 연구생ㆍ실습생 등의 자격으로 소련내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모두 1천여명의 북한사람들이 소련에 거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는 유학생자격으로 소련에 와서 북한유학생 조직을 관장하는 전문조직사원이 파견돼 있으며 이들은 학생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소련에 있는 북한사람들의 모임을 주도한다는 것이다. ­한국에 도착한뒤 21일 지났는데 한국에 대한 인상이 어떤가. ▲소련 중앙제1TV방송 기자들이 지난해말 한국에 다녀온 뒤 제작한 프로그램 「내가 몰랐던 조선」과 88년도 레닌그라드에서 열렸던 한국전자제품전시회 등을 보고 남한의 공업수준에 관해 대략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수원의 삼성전자등을 돌아보면서 첨단기술이 결집된 제품이 대량생산되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 ­최근 소련과 북한과의 관계는. ▲소련출판물이 너무 노골적으로 북한을 비판해 북한사람의 입장에서 난처할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소련사람들이 북한체제에 관해 물어오면 『정치문제는 그만두자』며 얼버무리곤 했다. 김정일은 최근 국제사회의 급변과 관련한 북한의 외교정책에 대한 발언에서 『중국과의 관계는 순치의 관계이고 소련과는 1대1관계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대사관직원들은 유학생들을 모아놓고 강연회를 실시하면서 동구권의 자유선거에 대해 『일하기 쉽게 선거하면 되지 뭣하러 자유선거를 실시하는가』『소련은 명백히 자본주의 길로 나가고 있다』는 등으로 최근 소련의 개혁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도 역시 자신들의 직책상 그렇게 얘기하지만 소련사회 개방에 대해서는 내심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소련주재 북한대사관의 분위기는 어떤가. ▲완전히 장사판이다. 대사관내에는 영접부여관이라는 곳이 있어 소련에 들르는 북한사람들을 재워주는데 이곳에서 북한사람들이 외국물품을 사들여 와서 대사관직원들에게 팔면 대사관직원들은 유학생이나 연구생들에게 다시 얼마쯤 이득을 남기고 판다. 유학생들은 이것을 또다시 소련사람들에게 이익을 남기고 파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판다」는 뜻의 「되거래」로 통한다. 지난 87∼88년에는 제13차 평양청년학생축전 준비를 하던 북한이 준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정무원 무역부직원들을 제3국에 보내 시계를 몇만개쯤 사다가 소련에서 북한유학생들에게 배당을 주면서 팔아오도록 했다. 나(남명철)는 대사관에서 이 시계를 1개에 25루블씩 4개를 사다가 레닌그라드에서 소련사람들에게 개당 35루블씩 팔았다. 30루블은 대사관에 주고 5루블씩 남겼다. 이밖에도 소련에 있는 북한사람들은 대부분 특권층이므로 보통사람들이구입하기 어려운 인삼등 북한특산물들을 싼값으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북한 가족들이 소련에 이같은 물건을 사서 보내주면 유학생이나 대사관직원들은 그것을 소련에서 비싼값에 팔고 그 돈으로 사진 인화지등 북한에서 구하기 어려운 물건들을 사서 북한에 보내 되팔게 한다. 예컨대 북한에서 70전에 살 수 있는 인삼은단은 소련에서 대개 1루블 65카페이카를 받을 수 있는데 그것으로 인화지 한장을 살 수 있다. 그 인화지를 북한에 있는 사진관에 팔면 50원을 받을 수 있어 70전이 50원을 낳는 셈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소련에 3년동안 있으면서 이같은 장사로 대략 2천∼3천루블(미화 약3천2백96∼4천9백44달러)정도를 벌었다. 그러나 대사관직원들은 이보다 훨씬 더 큰 장사를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한 액수를 벌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 세관에서는 이같은 소련 물건을 가지고 들어가면 어떻게 하는가. ▲물건 운반에 가장 편리한 교통편은 일주일에 2회 왕복하는 열차이다. 모스크바에서 기차를 타고 북한과의 국경지대를 지나면 보위부원들이 열차에 올라와 검사를 하는데 대개 카셋1개등 뇌물을 주면 그대로 통과시킨다. ­현재 북한의 컴퓨터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교수들은 대개 북한이 소련보다 10여년 정도 떨어져 있다고 보며 소련은 또 일본보다 10여년 정도 떨어진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북한에서 전자계산기학과에 다닐때 3학년까지 배운것이라고는 컴퓨터의 기초언어인 「포트란」정도였다. 김책공대에는 대형 컴퓨터 1대와 퍼스널 컴퓨터 20대정도가 있고 중앙무역은행,철도부계산실,국가계획위원회,평양시설계사업소 등지에 1∼2대씩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않아 그냥 서있는 컴퓨터들이 많고 나머지는 재일동포들이 대부분 컴퓨터운용이나 작동을 맡고 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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