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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포토] 이 곳이 과연 평양?

    [서울포토] 이 곳이 과연 평양?

    지난 4일 북한 평양에서 열린 남북통일농구대회를 취재한 사진공동취재단이 촬영한 평양시내의 모습이 추가 공개되었다. 사진은 북한의 출근길 모습들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아이를 업고 출근하는 워킹맘의 모습, 북한식 전기자전거의 모습, 줄지어 버스를 기다리는 평양시민들의 모습들이 남한과 다를게 없어 보인다.
  • 3·1운동 100주년사업 공동개최 제안…북한의 3·1운동은 어땠을까

    3·1운동 100주년사업 공동개최 제안…북한의 3·1운동은 어땠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북한과 공동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성사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은 남한처럼 3·1절을 공휴일로 지정해 대대적으로 기념하지는 않는다. 주로 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에 기념행사를 한다. 2009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3·1절 90돌 기념 평양시 보고회가 열렸고, 1999년 80돌 때 같은 행사가 개최됐다. 북한은 3·1운동을 ‘실패한 운동’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그래도 매년 북한 언론매체를 통해 3·1절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6일 사견을 전제로 “북한이 3·1운동에 의미 부여는 크게 하지 않아도 어떤 형식으로든 매년 기념해왔고, 북한 지역에서 3·1운동이 격렬하게 벌어져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만큼 이를 기리는 공동 사업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실제 북측에선 1919년 당시 남측 지역 못지않은 시위가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서울과 경기, 충청 등 중부 지역에서 벌어진 3·1운동이 ‘비폭력 평화시위’ 양상을 띠며 지구적 항쟁으로 전개된 반면 북쪽에서는 시위대가 일본 헌병대와 관공서를 습격하는 등 격렬한 무장 투쟁으로 전개됐다. 남북의 3·1운동 양상이 달랐던 이유는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국경지역인 북부 지역에 일본은 더 많은 헌병과 군대를 배치했고, 이는 더 큰 저항을 불러왔다.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역사서 ‘국내 3·1운동’을 보면 황해도에서는 20회 이상의 현장 발포가 있었고, 그 중 17개 지역에서 시위대가 헌병대에게 총살됐다. 사망자와 부상자가 각각 서울·경기 다음으로 많다. 경성 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은 이들의 절반 이상인 1318명이 황해도를 본적으로 갖고 있었다. 평안남도의 3·1운동은 전국에서 가장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특히 맹산에선 참극이 발생했다. 3월 10일 맹산 시위는 비교적 평온하게 끝났으나 일본 헌병들은 책임자를 색출하겠다면서 교사 1명을 체포했다. 맹산 주민들은 교사 석방을 요구하며 분견소로 몰려갔다. 헌병 분견소장은 주민들을 분견소 안으로 끌어들여 문을 잠그고 발포 명령을 내렸다. 분견소에 들어간 56명 중 54명이 학살됐다. 이는 3·1운동사에서 단일 시간, 단일 장소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사망한 사례다. 3·1운동에 참여한 평안남도 거주민 1093명(한국 측 기록)이 사망했다. 평안북도에선 서울 다음으로 많은 33만 8400명이 3·1운동에 나섰다. 인구 대비 참여도는 전국에서 가장 높다. 현장 피살자 수 역시 19.2%로 전국 최고 수치다. 평안북도가 이토록 피해를 본 이유는 이 지역 강계·의주·선천에 대대 규모 병력이 주둔한 탓이다. 일제는 정규 병력 외에도 경찰과 압록강 연변의 국경수비대를 동원해 시위를 진압했다. 함경북도는 헌병과 국경수비대의 감시가 심해 활발한 시위가 벌어지지 않았다. 당시 헌병 1명당 조선인 수는 평균 1874명이었는데, 함경북도는 1대 598명으로 전국에서 수치가 가장 높았다. 1만 7400명이 참여한 소규모 시위가 벌어졌는데도 일본은 밀정을 들여보내 주모자를 체포하는 등 치밀하고도 가혹하게 탄압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서울포토] 휴대전화 체크하며 아침을 시작하는 평양 여성

    [서울포토] 휴대전화 체크하며 아침을 시작하는 평양 여성

    남북통일농구대회를 위해 지난 3일 방북한 우리 취재진의 눈에 평양시민들의 일상 단면이 포착됐다. 5일 공동취재단이 보낸 사진을 보면 이날 아침 한 평양 여성은 손에 든 휴대폰을 체크하면서 길을 갔다. 핸드백을 손에 든 여성들이 출근길을 재촉하는가하면 아이를 안고 가거나 손을 잡고 가는 모습도 보였다. 평양 곳곳에 설치된 선전 간판 등에서는 반미구호를 거의 찾아볼 수 없어 6·12 북미정상회담 이후 분위기가 바뀐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선전 간판 숫자도 과거보다 상당히 줄었으며 그 내용도 ‘일심단결’, ‘계속혁신, 계속전진’, ‘만리마 속도 창조’, ‘인민생활에서 결정적 전환을’ 등 내부결속과 4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정 관철을 독려하는 구호가 대부분이었다. 평양 방문 경험이 있는 당국자는 “북한 선전물의 숫자도 크게 줄었지만, 반미 관련 내용도 거의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차량으로 시내를 이동할 때 바깥 풍경을 촬영하는 데도 과거보다 제지가 덜했다.과거엔 외부 촬영을 아예 금지하는 수준이었지만 이번엔 자제를 요청하는 수준이었다. 북측 관계자는 “예전에는 불비한 모습이 나갈 수 있고 해서 막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초상이 찍힌 상황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했다.북측은 ‘혹시라도 최고존엄 초상이 걸려있는 장면이 삐뚤어지게 잡혔거나, 초상이 한 귀퉁이라도 잘린 채 나가는 건 굉장히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며 양해를 구하고 남측 기자들이 찍은 영상과 사진을 체크했다. 고려호텔 프레스센터에는 서울로 연결되는 별도의 전화가 설치됐다. 여타 외국에서 걸 때와 마찬가지로 ‘0082’를 먼저 누르고 국내 번호를 누르는 방식으로 통화가 가능했다.취재진 중 1명이 서울의 가족과 깨끗한 음질로 통화가 가능했다. 사진공동취재단
  • 통일농구 남측 대표단 맞은 북측 “왜 수송기를, 짐 싣는건데”

    통일농구 남측 대표단 맞은 북측 “왜 수송기를, 짐 싣는건데”

    “왜 수송기를 타고 온 겁니까? 수송기는 원래 짐을 싣는건데?.” 3일 오전 10시 성남 서울공항을 출발해 서해 직항로를 경유해 오전 11시 10분쯤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남북 통일농구 대표단을 마중 나온 북측 인사들이 이런 반응을 보였다. 북측 관계자들은 미국의 제재 등에 저촉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 때문에 수송기 두 대를 이용해 방북한 남측 대표단을 맞고는 “수송기 타고 와서 깜짝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군 수송기가 남북을 오간 것은 결코 작지 않은 의미가 있다. 민항기를 이용할 경우 미국의 대북제재로 인해 해당 민항기가 6개월 동안 미국에 착륙할 수 없다. 미국으로부터 예외 사례로 인정 받아야 하지만 남북 통일농구 경기까지 시간이 촉박하기에 공군 수송기를 이용하게 됐다. 북측 당국자는 수송기에서 내리는 남쪽 대표단 인사의 얼굴을 명단 사진과 일일이 대조하기도 했다.단장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 안문현 국무총리실 국장, 이주태 통일부 교류협력국장 등 정부 대표단 5명은 원길우 체육성 부상과 공항 귀빈실에서 환담했다. 원길우 부상은 귀빈실에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앞서 조 단장과 나눴던 인삿말을 다시 들려달라는 취재진의 주문에 “속도 빠른 게 기자선생들인데 오늘 왜 속도가 이렇게 늦었느냐”고 농을 건네기도 했다. 조명균 단장은 “지난번에 북측에서 오신 분들이 평양이 ‘어제가 옛날 같다’고 할 정도로 아주 많이 변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순안공항에서부터 그런 흐름을 느끼기 시작한다. 평양시내 들어가면서 그런 것을 많이 느낄 것이고 저희가 선수단, 대표단만 오는 게 아니라 남측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 또 화해협력을 바라는 마음을 같이 저희가 안고 왔기 때문에 그런 것을 우리 평양 주민들, 북측 주민들에게 잘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원길우 부상은 “북과 남이 다같이 독도 병기된 깃발을 아시아 경기 때 띄우는 게 겨레의 한결같은 소망이고 온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통일 의지를 담아서 민족의 염원을 담아서 통일의 열기를 담아서”라고 말하자 조 단장이 “현재 협의 중이고 계속해서 협의해 나가자는 뜻”이라고 중간에 잘라 정리하기도 했다. 원 부상은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의 직접적 발기와 북남 수뇌분들의 깊은 관심 속에 평양에서진행되는 북남통일농구경기에 남측 농구선수단을 이끌고 통일부 조명균 장관이 대표해서 여러 일행분들이 평양에 온 데 대해서 열렬히 축하한다”며 “남측 성원들을 여러 번 만났는데 만나볼수록 만나볼수록 정이 통하고 통일에 대한 열망도 강렬해지는 걸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북남 화해협력, 평화번영의 대통로를 열어나가는 데 체육이 앞장선 데 대해 긍지스럽게 생각한다”며 “오늘 통일농구선수단을 원래 체육장관이나 체육 관계자뿐 아니라 통일부 장관 선생이 이끌고 온데 대해서 좀더 의의가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날 이문규 감독이 이끄는 여자농구 대표팀 선수들은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50분 정도 가볍게 훈련을 진행했고 오후 7시부터 평양 옥류관에서 김일국 북한 체육상이 주재하는 환영 만찬에 남북 선수들이 한데 어울려 스스럼 없이 대화를 나누고 베란다 밖에서 사진을 촬영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편 4일 오전 9시부터 2시간 훈련한 뒤 오후 3시부터 기념행사가 열리고 3시 40분부터 남북 대표팀 선수들이 ‘평화’와 ‘번영’ 팀에 뒤섞여 여자와 남자 한 경기씩 치르고 5일에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오전 훈련을 진행하고 오후 3시부터 여자 대표팀끼리 대결한 뒤 남자 대표팀끼리 친선경기를 벌인다. 평양공동취재단·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북한 고려항공 시진핑 주석 고향 첫 운항

    북한 고려항공 시진핑 주석 고향 첫 운항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세 차례 방중 끝에 북한 유일의 항공사인 고려항공이 다음 달 7월부터 평양과 산시성 구간을 운행한다. 이에 따라 북한 고려항공은 베이징, 선양, 상하이, 청두에 이어 시안까지 총 5개 중국 노선을 확보하게 됐다. 북한과 중국의 본격적인 경제협력 전에 대북 관광부터 물꼬가 트인 것이다. 산시성 시안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고향으로 그의 부친 시중쉰 전 국무원 부총리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따라서 시안이 북한과 정기 항공노선을 열고 북한 관광을 활성화하기로 한 것은 북중 관계의 밀착을 보여주는 상징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안은 지난 5월 김 위원장의 측근인 박태성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이끄는 노동당 친선 참관단이 방문했던 곳이기도 하다. 북한 참관단은 당시 시안에서 후허핑 산시성 서기 등 당 고위급 인사들을 대거 면담했다. 당시 회동에는 후 서기뿐만 아니라 산시성 부서기, 성 상무위원, 부성장, 시안시 서기 등 고위급 인사들이 총출동해 북한 노동당 참관단의 환심을 사는 데 노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안~평양 노선이 내달 개설됨에 따라 중국 시안 여행사들은 북한 단체관광 상품을 조만간 대거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대형 국유 인터넷 여행사인 씨트립(攜程)을 비롯해 취날왕(去哪兒網) 투뉴(途牛) 등 주요 온라인 여행사들은 경쟁적으로 다양한 북한 여행상품을 쏟아내고 있다. 6개월여 간 중단 또는 제한됐던 중국 유커들의 북한 여행이 본격적으로 재개되는 움직임이다.  씨트립은 북한의 신의주∙개성∙평양 상품을 대거 출시했다. 400위안(약 7만원)의 당일치기 코스부터 2400위안(약 41만원)의 3박 4일 코스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오전 8시에 단둥 세관 입구에서 만나 버스를 타고 신의주로 이동해 약 4시간 정도 구경한 이후 오후 1시에 다시 중국으로 돌아오는 코스도 있다. 씨트립이 운영하는 북한 여행 상품은 총 7개로 모두 단둥에서 육로로 이동하는 코스인데, 베이징에서 비행기로 이동하는 여행상품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취날왕은 평양 지하철, 만경대 김일성 생가, 당 창건 기념탑 등 평양시는 물론 금강산 등산 코스와 같은 다양한 북한 여행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취날왕에는 베이징에서 비행기로 이동하는 북한 여행 상품도 판매되고 있다. 북한 단체관광 상품을 대거 출시했던 취날왕은 21일 오전 갑자기 관련 상품들을 이 사이트에서 모두 삭제했다. 하지만 전화를 통한 오프라인 북한 단체관광 상품 판매는 변함없다. 이번 온라인 북한 상품 삭제 조치는 미국의 시선을 의식한 중국 당국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씨줄날줄] 북한군 수뇌부 교체/이종락 논설위원

    [씨줄날줄] 북한군 수뇌부 교체/이종락 논설위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빈번하게 군 수뇌부를 물갈이해 왔다. 북한군 내 서열 1, 2, 3위인 총정치국장, 인민무력상, 총참모장을 수시로 바꿨다. 우리의 국방장관 격인 인민무력상에는 2011년 김 위원장 집권 이후 무려 7명(김영춘·김정각·김격식·장정남·현영철·박영식·노광철)이 재임했다. 인민무력상의 평균 임기는 1년이 채 안 된다. 집권 17년 동안 인민무력상을 거쳐 간 사람이 4명으로, 평균 임기 4년 이상이던 김정일 시대와 비교된다.최근 김 위원장은 놀라운 인사를 했다. 군 수뇌부 3인방을 한꺼번에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정치국장은 김정각에서 김수길 평양시 당위원장으로 교체했다.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인민무력상은 박영식에서 노광철 인민무력성 제1부상, 합참의장급인 총참모장은 리명수에서 리영길 제1부참모장으로 각각 바뀐 것으로 전해졌다. 군 수뇌부를 한꺼번에 교체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시기가 더 예사롭지 않다. 북한의 미래를 결정할 절체절명의 기회인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기 때문이다. 남북 관계 및 한반도 정세의 변화에 따라 ‘매파’ 군부의 불만을 제어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인사라는 게 북한군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북한 군부는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 덕분에 승승장구해 왔다. 군부는 김정은 시대에도 ‘핵ㆍ경제 병진노선’에 따라 힘을 과시해 왔다. 다만 김 위원장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경제노선을 선택할 경우 군부가 반발하지 않고 김 위원장에게 충성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였다. 김 위원장은 이번 인사로 군부 원로 세력의 불만을 원천 봉쇄한 셈이다. 리명수는 지난 4월 김 위원장 주재로 열린 회의에서 졸고 있는 모습이 포착돼 이미 ‘찍힌’ 상태였다.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로 출발해 평양을 비울 경우를 상정했다는 해석도 있다. 쿠데타 등을 방지하려고 김 위원장이 100% 통제할 수 있는 군부내 온건파들로 교체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평양을 비워도 군사정변이 일어날 가능성을 거의 ‘제로’로 보고 있다. 김 위원장의 군부에 대한 통제가 그만큼 잘되고 있다는 시각이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은 군 수뇌부 3인을 왜 교체했을까. 정영태 북한연구소 소장은 “김정각-박영식-리명수도 믿을 만하지만, 김 위원장이 다루기가 훨씬 수월한 사람들로 교체했다”고 분석했다. 북·미 회담에서 핵 폐기를 합의한다면 약 110만명의 북한군 축소도 불가피한데, 이럴 때 반기를 들지 않고 이를 실행할 인물들로 미리 바꿨다는 얘기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뉴스를부탁해]남북정상의 진한 인사는 ‘형제의 포옹’이었다

    [뉴스를부탁해]남북정상의 진한 인사는 ‘형제의 포옹’이었다

    스위스 유학파라서 볼 뽀뽀 ‘비쥬’?동지애·우정 상징하는 ‘형제의 포옹’김정은, 2번 만난 시진핑과는 포옹 안 해김정일은 2000년 남북회담 때 DJ와 포옹‘40년 우정’ 김일성과 덩샤오핑도… 누구도 예상 못 했던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지난 26일 토요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렸습니다.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개최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핫라인(직통전화) 통화도 건너뛰고 한 달 만에 다시 성사된 남북 정상의 만남에 전 세계가 놀라워했습니다.인상적인 장면이 있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2시간가량 회담이 끝난 뒤 남측으로 돌아가는 문 대통령을 환송했습니다. 온 얼굴에 환한 웃음을 피운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손을 잡았다가 그것만으론 안 되겠다는 듯 와락 문 대통령을 안았습니다. 한 번이 아니었습니다.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 번갈아가며 3번을 포옹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미처 예상치 못한 김 위원장의 인사에 당황한 듯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따뜻한 포옹을 나눴습니다. 언론들은 이를 두고 김 위원장이 프랑스에서 유래한 인사법인 비쥬(Bisous·볼 뽀뽀)로 문 대통령에 친근함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비쥬는 상대방과 양쪽 볼을 번갈아 맞대는 인사법입니다. 뺨에다 입을 맞추진 않고 입으로만 ‘쪽’ 소리를 내는 것이 예의입니다. 처음 만나는 사이에서 비쥬를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혈연관계나 친한 친구 사이에서 주로 하는 친밀함의 표현입니다. 남자들끼리는 비쥬를 거의 하지 않지만, 격의 없이 친한 사이에서는 하기도 한답니다.오른쪽 볼부터 시작해 왼쪽 볼까지 각 1번씩 2번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비쥬이지만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스위스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3번 이상 볼 키스를 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3번 포옹하는 비쥬 인사를 한 것은 김 위원장이 어릴 때 스위스 베른 국제학교에서 공부한 유학파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지난 기사와 사진, 동영상 자료를 뒤적여봤습니다. 그 결과 김 위원장이 스위스 유학파여서 포옹 인사를 한 것은 아니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하나씩 차근히 설명해보겠습니다. 김 위원장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베일에 싸인 은둔의 지도자였습니다. 2012년 공식 집권 이후 6년간 북한 밖을 벗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가 만난 외국 정상은 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2명뿐입니다.올 들어 2번 북·중 정상회담을 가진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은 공식석상에서 악수만 했을 뿐 포옹하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3월 26일 김 위원장이 특별열차 편으로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그리고 지난 7~8일 중국 랴오닝성 다롄에서 2차 북·중 회담을 가졌을 때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방송이 공개한 편집 영상에서 두 정상은 여러 차례 만나 3~5초간 양손을 포개어 잡고 있긴 했지만 그 이상의 스킨십은 없었습니다. 김 위원장이 중국을 떠날 때에도 담백하게 악수만 하고 손을 흔들며 헤어졌습니다. 김 위원장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 2일 방북했을 때, 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두 차례 평양을 찾았을 때에도 악수로 맞이하고 배웅한 바 있습니다. 볼 키스나 포옹 등의 친밀한 표현은 조선중앙TV 영상 속에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그런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잇달아 세 번 껴안았으니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지나친 해석은 아닐 겁니다. 일부에서는 남북 정상의 별명을 들어 ‘이니(문 대통령의 애칭) 삼촌’과 ‘으니(김 위원장을 지칭) 조카’의 애정표현이라고 하더군요. 실제 삼촌과 조카뻘만큼 나이 차(31세)가 나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비쥬식 포옹을 나눴습니다. 판문점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기념 촬영을 위해 잡은 손을 위로 들어 올렸던 남북 정상은 문 대통령의 제의로 2번 연달아 포옹했습니다.역대 북한 최고지도자들의 포옹 인사는 자주 있었던 일입니다. 김 위원장의 선친인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조부인 김일성 국가주석도 동맹국가 정상들과 만날 때 진한 포옹으로 우정을 과시했습니다. 김정일 전 위원장을 먼저 예로 들어볼까요. 2000년 6월 13일,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됐습니다.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김정일 전 위원장이 직접 맞이했습니다. 붉은색 꽃 장식을 흔드는 평양시민들과 도열한 북한군 의장대를 배경으로 두 정상이 환한 얼굴로 손을 마주 잡고 오랫동안 흔들었던 장면이 아마 가장 먼저 떠올리실 겁니다.2박 3일의 방북 일정을 마치고 김 전 대통령이 서울로 돌아갈 때, 두 남북 정상은 세 번 연속 포옹 했습니다. 김정일 전 위원장은 “또 만납시다”라며 김 전 대통령을 떠나 보냈습니다. 김 전 위원장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세 번 껴안으며 뺨을 맞대는 인사로 친밀함을 과시했고,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도 포옹으로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김일성 전 주석은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덩샤오핑 등 중국 최고지도자와 교류했는데 역시 진한 세 번 포옹으로 우정을 쌓았습니다. 특히 김 전 주석과 덩샤오핑 전 주석과의 관계는 조선중앙TV가 제작한 기록영화를 보면 매우 특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1953년 이후 1991년까지 수십 차례 만날 때마다 포옹 인사를 나눴습니다. 김 전 주석은 41차례 중국을 방문했고, 덩 전 주석은 5차례 이상 북한을 방문했습니다.중국의 시사주간지 ‘세계지식’ 보도에 따르면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은 1991년 10월 5일이었는데 구순을 앞두고 공직을 떠난 덩 전 주석은 만나자마자 김 전 주석을 뜨겁게 포옹하며 오랜 친구를 반갑게 맞이했다고 합니다. 특히 두 사람은 그냥 포옹만 하지 않고 뺨과 뺨을 맞대는 비쥬식 인사도 했습니다. 김 전 주석이 1994년 7월 사망하고 덩 전 주석이 2년 뒤인 1997년 2월 세상을 떠나면서 두 사람의 각별한 우정도 끝을 맺었습니다. 이전에도 북한 지도자들이 포옹이라는 외교적 인사를 통해 다른 국가 정상과 우애를 표현한 점에 미뤄볼 때 김정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껴안은 것은 스위스 유학파여서라기보다는 선대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론이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한 장의 그림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독일 베를린의 동쪽에 있는 벽화 말입니다. 중년의 서양남성 두 사람이 진하게 입을 맞추는 모습을 그래피티로 표현한 ‘신이시여, 이 치명적인 사랑에서 저를 구원하소서’(My God, Help Me to Survive This Deadly Love)라는 제목의 그림입니다.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1979년 10월 초 동독 정권 수립 30주년을 맞아 동독을 방문한 뒤 에리히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과 반가운 나머지 키스로 인사한 장면을 그린 것이지요. 볼 키스와 포옹은 사회주의 국가권의 독특한 인사입니다. ‘형제의 키스’(fraternal kiss) 또는 ‘형제의 포옹’(fraternal embrace)이라고 부릅니다. 공산주의 국가 정상들이 특별한 유대관계를 드러내고 상대방에 대한 호감과 동지애를 표현할 때 쓰는 인사법입니다. 형제의 키스는 양쪽 뺨을 번갈아가며 3번 맞대는 행동입니다. 볼에 입을 맞추지는 않지만 아주 예외적으로 정말 가까운 사이라면 볼에 입을 맞추기도 한답니다. 형제의 포옹은 3번의 진한 포옹을 뜻하는데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가며 하되 볼을 맞대지는 않습니다. 이 방법은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 정상들이 주로 쓰는 인사법입니다. 냉전기간 중국, 북한 등 아시아 사회주의권 국가 정상들이 유럽, 쿠바처럼 스킨십 문화가 있는 정상들과 교류하면서 형제의 포옹은 받아들이되 볼 키스는 뺐다는 게 대체적인 추측입니다. 1990년대 들어 구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에서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하면서 형제의 키스 문화는 사라졌지만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에는 이런 풍습이 남은 것으로 보입니다. 형제의 키스 또는 형제의 포옹은 19세기 중반 노동자 계급의 투쟁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유산계급을 상대로 벌인 험난하고 외로운 투쟁과정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동지애를 표현하는 특별한 의미를 담은 인사였던 것입니다. 평등과 형제애, 연대와 결속의 상징을 뜻하는 형제의 포옹은 유럽식 인사법인 비쥬와는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김 위원장이 ‘형제의 포옹’을 문 대통령과 나눴다는 것은 남북이 그만큼 이념을 뛰어넘을 만큼 가까운 사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어쩌면 ‘혈맹’ 관계인 중국의 시진핑 주석보다 더 친밀한 사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이루어진 이번 회담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남북은 이렇게 만나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고 했던 문 대통령의 담화가 ‘형제의 포옹’으로 한껏 더 와 닿습니다. 우리는 세계 평화와 한반도 비핵화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역사적인 만남을 앞두고 있습니다. 예정대로 다음 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인사를 나누게 될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북한군 서열 1위 총정치국장, 김정각→김수길 교체

    북한군 서열 1위 총정치국장, 김정각→김수길 교체

    북한군 서열 1위인 총정치국장이 김정각에서 김수길 평양시 당위원장으로 교체된 것으로 확인됐다.황병서 후임으로 지난 2월 김정각이 총정치국장에 올랐는데 4개월 만에 다시 군 서열 1위가 바뀐 것이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강원도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장 현지 지도 소식을 보도하면서 김수길을 ‘총정치국장’이라고 소개했다. 군 총정치국은 군의 당 정치사업, 군 인사·간부 선발, 군사작전 명령서에 대한 당적 통제 등의 역할을 담당하는 북한군의 핵심 기관이다. 김수길 총정치국장은 군 출신으로 2013년 10월 중장(소장)에 올랐고, 2014년 4월 평양시를 총괄하는 평양시 당위원회 책임비서가 됐다. 그는 현재 북한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당 선전선동부 제1부위원장 다음 권력으로 부상한 최룡해 당 부위원장의 측근으로도 알려졌다. 지난 14일에는 박태성 당 중앙위 부위원장 등 노동당 친선참관단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평양시 당위원장 자격으로 동행했다. 이로 미뤄 이번 인사는 지난 17일 열린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1차 확대회의에서 단행된 것으로 추측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토] ‘평양시민들의 쇼핑 잇템은?’…제21차 평양 봄철 국제상품전람회

    [포토] ‘평양시민들의 쇼핑 잇템은?’…제21차 평양 봄철 국제상품전람회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제21차 평양 봄철 국제상품전람회가 21일 3대혁명전시관에서 개막했다고 22일 보도했다. 25일까지 열리는 국제상품박람회에는 중국, 이란 등 여러 나라의 260여 개 회사가 참가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태영호 “김정은 성격, 급하고 즉흥적이며 거칠다”

    태영호 “김정은 성격, 급하고 즉흥적이며 거칠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가 자서전을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성격을 “대단히 급하고 즉흥적이며 거칠다”고 표현했다.태 전 공사는 14일 펴낸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태영호 증언’(기파랑, 544쪽)에서 북한 외교관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의 대외정책 기조와 북한의 내부 모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과 일화 등을 소개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성격에 대해 태 전 공사는 “대단히 급하고 즉흥적이며 거칠다”고 소개했다. 2013년 7월 재개관을 앞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전쟁기념관)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보고를 받은 김 위원장은 물바다인 지하에 구둣발로 들어간 뒤 “내가 그렇게 불조심하라고 했는데 주의 안 하고 무엇을 했느냐”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욕을 했다고 저자는 소개했다. 또 2015년 5월 김 위원장이 자라양식공장을 현지지도했을 때 새끼 자라가 죽어있는 것을 보고 공장 지배인을 심하게 질책한 뒤 처형을 지시해 즉시 총살이 이뤄졌다고 저자는 전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개성공단에 대해 “개성공단이 조선 체제에 장기적으로 위협이 되지 않겠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다. 하지만 얻은 게 더 많다. 우선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돈을 벌었다”고 말한 것으로 저서에 소개됐다. 김 위원장은 또 “개성 시민에 대한 자연스러운 통제와 관리가 용이해졌다. 다른 지역은 장마당 때문에 주민 통제가 얼마나 힘들어졌나. 개성 시민 5만 명이 매일 한곳에 모여 일하고 퇴근하는데 따로 무슨 관리가 필요한가. 총체적으로 우리가 훨씬 이익이다. 이런 경제특구를 내륙으로 확대해야 한다. 개성공단 같은 곳을 14개 더 만들라”고 말했다고 태 전 공사는 전했다. 또 2014년 영국의 ‘채널4’가 북핵 문제를 다룬 연속극 ‘오퍼짓 넘버’(Opposite Number) 제작 계획을 밝히자 김영철 당시 국방위 정책총국장이 평양 주재 영국대사를 소환해 ‘영국 정부가 반북 드라마 제작을 중지하지 않으면 영국 내에서 상상할 수 없는 보복행위가 일어날 것이고 그 책임은 영국 총리가 져야 할 것’이라는 요지의 말을 전달했다고 태 전 공사는 전했다. 태 전 공사는 ‘말하자면 채널4 청사를 폭파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5년 9·19공동성명 체결 이후 북한 전력공업성 전문가들이 합의에 변전소 건설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며 ‘외무성이 합의를 잘못했다’고 비난했고, 외무성은 ‘시간을 벌기 위해 사기를 치고 있으니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고 대응했다고 태 전 공사는 주장했다. 아울러 태 전 공사는 저서에서 평양시에 위치한 3층짜리 건물인 노동당 본청사 3층 서기실의 역할에 주목했다. 노동당 본청사는 지난 3월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별사절대표단을 맞이한 곳으로, 당시 남측 고위인사에게 처음으로 공개됐다. 일반적으로 본청사가 우리 ‘청와대’ 격이라면 서기실은 ‘비서실’ 역할을 한다고 분석되는 곳이다. 태 전 공사는 “3층 서기실은 기본적으로 김정일·김정은 부자를 신격화하고 세습 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조직”이라며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가 주민들이 김씨 부자의 실체를 알게 되면 3층 서기실은 와해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3층 서기실’은 대통령 비서실에 가깝다. 이곳은 중앙당 일꾼들도 마음대로 접근할 수 없는 완전한 금지구역으로 김정은 부자를 신격화하고 세습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조직”이라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동서발전, 남북 접경지역에 평화발전소 건설 구상 중

    동서발전, 남북 접경지역에 평화발전소 건설 구상 중

    공기업인 동서발전이 현재 평양에서 사용 중인 전력의 두 배에 해당하는 전력을 생산하는 평화발전소 건설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8일 전해졌다. 또한 북한의 주요 공업지구에 인접한 해주·원산·김책시 등지에 북한의 산업성장을 견인하기 위해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도 추진한다.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일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인 한국동서발전에서 제출받은 ‘발전 분야 대북 협력사업안’에 따르면 정부는 북한의 전력난 해소를 위해 중장기 협력방안을 수립했다. 협력방안 가운데 접경지역인 경기 연천군 또는 비무장지대(DMZ)에 복합화력발전소인 평화발전소를 건설하는 안이 제시됐다. 이는 액화천연가스(LNG)를 연료로 사용하는 500㎿급 발전소로 북한 내 산업 인프라 구축용 전력 공급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평화발전소 건설 사업은 2013년 10월 연천군과 동서발전 사이에 업무협약이 체결된 상태여서 사업 진척이 수월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동서발전은 발전소 구축 시 효과에 대해 “평양시 인구 260만명 기준으로 평양시 두 배의 전력공급이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정부는 또 장기적인 과제로 북한의 경제성장을 위해 주요 공업지구 중심의 신규 화력발전소 건설도 추진한다. 대표적인 화력발전소 건설 후보지로는 황해남도 해주시와 강원도 원산시, 함경북도 김책시가 거론됐다. 해주시의 경우 개성공단과 해주공업단지 개발 목적으로, 원산시는 원산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 개발 목적으로 각각 무연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300㎿급 화력발전소를 2기씩 지을 계획이며 김책시는 광공업과 수산업, 관광업을 고려해 갈탄을 연료로 쓰는 500㎿급 화력발전소 2기를 건설한다는 방침이다. 한국동서발전은 또 분야별 협력사업으로 △동해화력용 북한산 무연탄 도입 및 사용 △북한 노후 화력발전소 운영·유지 및 성능개선 사업 지원 △북한 화력발전소 엔지니어 교육 및 발전소 운영 기술 지원 △활용도가 낮아진 노후복합화력 설비의 북한 이전설치 및 운영 △북한지역 전원 개발 등도 구상중이다. 권칠승 의원은 “북한은 엔지니어들의 기술력 향상을 통해 안정적 전력운영 기반을 마련하고 남한은 북한의 중국·러시아 의존도를 낮춤으로써 새로운 시장 개척이라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2000년간 아무도 못 본 ‘평양 신사비’…하루 만에 찾은 조선총독부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2000년간 아무도 못 본 ‘평양 신사비’…하루 만에 찾은 조선총독부

    위당 정인보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 1월부터 동아일보에 ‘오천년간 조선의 얼’을 연재했다. 광복 직후인 1946년 서울신문사에서 이를 ‘조선사연구’라는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했는데, 그 서문 격인 ‘부언’(附言)에서 위당은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고적도보’와 ‘점제현 신사비’를 보고 “일본학자들의 조선사에 대한 고증이라는 것이 저들의 총독 정책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비판했다.●조선총독부의 낙랑군 유적·유물 조작 정인보가 말한 ‘점제현 신사비’는 1914년 조선총독부의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평남 용강군 해운면 운평동 평야지대에서 발견했다는 비석이다. 낙랑군 산하 점제현의 현령이 만든 비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산속도 아닌 평야지대에 2000년 동안 서 있던 신사비를 아무도 못 보았는데 이마니시가 하루 만에 발견했다는 것이다.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1892~1960)는 ‘조선고고학연구’(1948년)에서 이마니시는 면장으로부터 ‘고비(古碑)가 하나 있는데 이를 해독(解讀)할 수 있으면 비 아래에 있는 황금을 얻을 수 있다는 설이 내려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았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증언을 해 준 면장의 이름도 못 대고 사진도 10살 전후의 동네 아이와 찍었다. 북한은 해방 후 이 화강암의 재질과 조성 연대를 분석한 결과 평안도가 아니라, ‘요하지방의 화강석’과 비슷하다고 발표했다. 또한 “발굴 과정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기초에는 시멘트를 썼다”(‘물성 분석을 통하여 본 점제비와 봉니의 진면모’·1995)고 발표했다. 2000년 전에 시멘트를 사용해 세운 희한한 비석이다. 그러나 남한 학계는 이런 숱한 의문은 모른 체하고 무조건 진품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가는 곳마다 한사군 유적, 유물을 발견했던 ‘신의 손’ 세키노 다다시는 1911년에 황해도 봉산군에서 대방태수 장무이의 묘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세키노는 이왕가(李王家)박물관 소장품 중 봉산군에서 채집됐다는 문자가 새겨진 벽돌 ‘전’(塼)을 ‘우연히’ 발견하고 달려갔다가 기차 안에서 또 ‘우연히’ 철로 연변의 큰 고분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①‘태세무 어양 장무이전’(太歲戊 漁陽 張撫夷塼), ②‘대세신(大歲申) 어양 장무이전’ 등의 전돌들을 발견했는데, ①전돌의 무(戊)자는 60갑자에서 무(戊)년을 뜻하고, ②전돌의 신(申)자는 신(申)년을 뜻한다면서 무신년에 만든 무덤이라고 주장했다. 서진(西晉) 무제(武帝)의 연호인 태강(太康) 9년 무신년(288년)에 만든 대방태수 장무이의 무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문성재 박사가 ‘한국고대사와 한·중·일의 역사왜곡’(2018)에서 중국의 황제나 태수는 대부분 외자 이름을 썼고, 특히 ‘오랑캐를 달랜다’는 뜻의 무이(撫夷)라는 두 글자 이름을 쓴 경우는 전무후무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60갑자 중 ‘갑·을·병·정…‘(甲乙丙丁…) 순서인 천간(天干) 10자 중에서 무(戊)자를 취하고, ‘자·축·인·묘…’(子丑寅卯…) 하는 지지(地支) 12자 중 신(申)자를 조합하는 경우도 전무하다는 것이다. 한 문서에 1자가 있고, 다른 문서에 8자가 있는데 이를 조합하니 18이라면서 2018년에 만든 것이라고 해석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일본학계에서도 이 무덤을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벌어졌지만 정작 남한 학계는 일체의 논쟁 없이 ‘대방군=황해도설’이 ‘정설’이다. 그런데 중국의 ‘후한서’(後漢書)는 주석에 “군국지(郡國志)에는 서안평현과 대방현은 모두 요동군에 속한다”(西安平, 帶方縣, 屬遼東郡)라고 써서 대방군도 고대 요동에 있었다고 말했지 황해도에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다.●답사 전에 낙랑군으로 결정된 토성 1913년 세키노 다다시 등은 평남 대동군 대동면 토성리가 낙랑군을 다스리던 낙랑군 치지(治址)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1913년 9월 이마니시 류 등은 대동강을 건너는 배 위에서 마을 사람으로부터 토성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낙랑군 유적임을 직감하고 성공을 예감했다고 말하고 있다. 가 보기도 전에 ‘낙랑군 유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니 가는 곳마다 우연히 낙랑군 유적·유물을 발견한 ‘신의 손’을 넘어서는 ‘신통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낙랑태수장’(樂浪太守長)이 새겨진 봉니 등을 발견했다면서 낙랑군 치지라고 우겼지만 후지타 료사쿠가 ‘조선고고학연구’에서 “이 땅을 낙랑군 치지라고 보는 데는 많은 역사학자가 의문을 가졌다”고 말한 것처럼 일본인 학자들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곳은 도시락 싸 들고 놀러 갈 장소지 도저히 한나라 5만 7000 대군과 1년 이상 맞서 싸운 자리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키노 다다시도 ‘조선고적도보’의 ‘낙랑군 치지(治址)’에 물음표(?)를 달아 놓았는지도 모른다.●中 요령성서 ‘임둔태수장 봉니’ 발견 일제가 ‘낙랑군=평양설’의 근거로 주장한 것 중에 봉니(封泥)도 있다. 봉니란 공문을 쓴 죽간·목간 등을 끈으로 묶은 후 점토로 봉하고 인장을 찍은 것이다. 일제강점기 갑자기 봉니가 쏟아져 위조설이 팽배했지만 조선총독부 박물관은 150원 등의 거금으로 구입했다. 그런데 북한학자 박진욱은 “해방 전에 봉니가 가장 많이 나왔다는 곳을 300㎡나 발굴하여 보았는데 단 1개의 봉니도 발견되지 않았다”(‘낙랑유적에서 드러난 글자 있는 유물에 대하여’·1995)고 말한 것을 비롯해여러 토성을 다 발굴했지만 단 한 개의 봉니도 찾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1997년 중국 요령성(遼寧省) 금서시(錦西市) 연산구(連山區) 여아가(女兒街) 옛 성터에서 ‘임둔태수장’(臨屯太守章) 봉니가 수습되었다. 조작설이 일지 않은 유일한 봉니다. 그간 남한 학계는 임둔군을 함남·강원도 등지라고 주장했는데, 요령성 서쪽에서 임둔태수장 봉니가 발견되자 일제히 침묵으로 외면하고 있다. ●남한 사학계, 北 연구결과 거꾸로 전달 조선총독부의 고고학이라는 것이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그간 북한과 관계가 단절된 것을 이용해 남한 사학계와 일부 언론이 북한의 연구결과를 180도 거꾸로 뒤집어 발표한 사례가 적지 않다. 조선일보로부터 ‘무서운 아이들’이란 칭찬을 받은 소장 사학자 중 한 명인 안정준은 “일제 시기에 발굴한 낙랑 지역 고분의 수는 70여기에 불과한 반면, 해방 이후 북한에서 발굴한 낙랑 고분의 수는 1900년대 중반까지 무려 3000기에 달한다. 현재 우리가 아는 낙랑군 관련 유적의 대다수는 일제 시기가 아닌 해방 이후에 발굴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한국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역사비평사·2017)라고 말했다. 북한도 마치 ‘낙랑군=평양설’을 주장한다는 식이었다. ‘한겨레 21’의 전 편집장 길윤형은 ‘국뽕 3각연대’라는 칼럼에서 “지금까지 북한 지역에서 진행된 고고학 발굴 결과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에 2600여기의 낙랑고분이 확인됩니다. 옛 사서의 기록과 이 성과를 근거로 한국의 고대 사학자들은 대부분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 인근으로 비정합니다”라면서 북한에서 2600여기의 낙랑군 고분을 발굴한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북한 학자 리순진은 ‘지난 시기 일제 어용사가들과 봉건 사대주의 사가들의 역사 위조 행위로 만들어진 것이 ‘한나라 낙랑군 재평양설’이라면서 “해방 후 우리 고고학자들은 평양 일대에서 일제가 파본 것의 30배인 근 3000기에 달하는 낙랑 무덤을 발굴 정리했다”고 말했다. 리진순은 “이것들은 한식(漢式) 유적 유물이 아니라 고조선 문화의 전통을 계승한 낙랑국의 유적 유물임을 실증해 준다”(‘평양 일대 낙랑무덤에 대한 연구’)는 것이다. 북한은 한나라 행정관청인 낙랑‘군’(郡)이 아니라 ‘삼국사기’ 고구려 대무신왕 조에 나오는 낙랑‘국’(國)의 유적·유물이라고 발표했는데, ‘나라 국(國)’ 자를 ‘고을 군(郡)’ 자로 바꿔 속인 것이다. 지난 정권 시절 간첩 조작 사건이 연상되는 역사조작 사례들인데, 왜 사료 조작까지 해 가면서 조선총독부가 날조한 ‘낙랑군=평양설’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평양서 발견된 ‘中낙랑목간’…메이지 일본식 한자로 기록? 1993년 평양시 정백동에서 이른바 ‘낙랑목간’을 발견했다는 발표가 나오자 남한 학계는 ‘낙랑=평양설’는 증거라고 환호했다. 그러나 정작 북한 학자들은 이를 낙랑군이 요동에 있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는데, 목간을 구경도 못한 남한 학자들은 평양에서 나왔다는 사실에만 주목해서 ‘낙랑=평양설’의 물증이라고 거꾸로 해석했다. 낙랑목간의 이름은 ‘낙랑군 초원(初元) 4년 현별(縣別) 호구부’로서 낙랑군 산하 각 현의 인구를 적은 것이다. 문성재 박사는 ‘한사군은 중국에 있었다’에서 중국은 산하 현을 표시할 때 속현(屬縣) 등의 용어를 쓰지 ‘현별’(縣別)이라고 쓰지 않았다고 밝혔다. ‘별(別)자’는 메이지 시대 일본인들이 쓰던 일본식 한자라는 것이다. 일제가 파묻어 놓고 언젠가 써먹으려고 하다가 그전에 쫓겨 간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 장성급회담·풍계리 폐쇄…줄 잇는 이벤트

    우발적 충돌 예방 ‘핫라인’ 논의 北 핵실험장 폐쇄 공개 임박 관측 22일 한·미 정상회담 전후 유력 남북 정상 간 ‘판문점 선언’ 등을 통해 약속된 각종 이벤트가 줄줄이 이어질 전망이다. 남북은 지난 1일부터 대북·대남 확성기 방송시설을 모두 철거한 데다 평양시간을 서울시간에 맞춰 30분 당기는 ‘시간통일’까지 5일 이뤘다. 또한 이달 중 장성급 군사회담과 북측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행사가 예정돼 있다. 양측은 이달 중순 장성급 군사회담 개최를 목표로 서해 군통신선 등을 이용해 날짜와 의제 등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소식통은 7일 “사실 장성급 회담은 이미 판문점 선언에 의제 등이 대략 포함돼 있어 협의를 통해 날짜만 정하면 언제든 개최할 수 있다”면서 “다만 고위급 회담을 통해 한 번 더 일정 등을 조정할 여지는 있다”고 말했다. 남측 대표로 유력한 김도균 국방부 대북정책관은 연휴 내내 출근해 실무진과 회의 대응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성급 회담이 열리면 우선 우발적 군사충돌을 막기 위한 다양한 채널을 만드는 방안을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 국방장관과 인민무력상 간 또는 합참의장과 총참모장 간 핫라인(직통전화) 개설은 물론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의 충돌을 막기 위한 우리 측 2함대와 북측 서해함대사령부 간 채널 복원 등이 예상된다. 화재로 소실된 동해 군통신선 3회선과 서해선의 불통선 2회선을 복구하는 문제도 신속히 처리될 수 있다. 북측이 풍계리 핵실험장의 각종 설비와 전선 등을 철거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핵실험장 폐쇄 대외 공개가 임박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5월 중 공개 폐쇄를 언급한 만큼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대외에 과시할 수 있는 극적인 시기를 택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날짜가 공개되지 않은 북·미 정상회담의 일종의 ‘식전행사’ 성격으로 성대하게 실시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는 오는 22일 한·미 정상회담 전후가 유력한 날짜로 꼽힌다. 풍계리 핵실험장은 해발 2000m가 넘는 함경북도의 험준한 만탑산 상부 능선에 있어 접근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전문가와 취재진을 초청한다면 평양이나 원산에서 헬기를 이용해 현장을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 남북 확성기 ‘0’… 판문점 선언 이행 착착

    北 예정대로 남측과 ‘시간 통일’…北매체 30분 앞당겨 보도 시작 대결의 상징이었던 대남·대북 확성기 80여대가 모두 철거됐다. 남과 북의 ‘시간 통일’도 예정대로 이뤄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판문점 선언’ 후속조치들이 순조롭게 이행되고 있다. 북한 매체들은 지난 5일부터 달라진 평양시간에 맞춰 종전보다 30분 앞당겨 보도를 시작했다. 조선중앙방송은 이날 오전 6시 ‘그리스도교 국제기구 대표단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선물을 드렸다’는 뉴스로 방송을 시작했고, 조선중앙통신도 같은 시간 ‘김일성 동지의 노작을 브라질 단체 인터넷에 게재’라는 기사로 첫 뉴스를 내보냈다. 북한 매체들은 전날까지 서울시간으로 오전 6시 30분에 첫 보도를 시작했었다. 북한 매체들은 이 같은 첫 보도에 앞서 같은 날 0시 서울보다 30분 느렸던 평양시간을 서울시간에 맞춰 남북한 표준시간이 다시 같아졌음을 알렸다. 이들 매체는 “평양시간을 동경 135도를 기준자오선으로 하는 9경대시(종전보다 30분 앞선 시간)로 고침에 따라 4일 23시 30분이 5일 0시로 되었다”며 “이로써 북과 남의 표준시간이 통일되었다”고 밝혔다. 한편 판문점 선언의 첫 이행사례는 대표적 적대행위 수단으로 활용됐던 대북·대남 확성기 철거로 기록됐다. 6일 군 등에 따르면 남측이 최전방 지역에서 운용했던 고정식 및 이동식 확성기 40여대의 철거를 지난 4일 마쳤고, 북측도 남측보다 약간 앞서 같은 날 철거를 완료했다. 북측도 지금까지 최전방지역 40여곳에 대남 확성기를 설치해 운용해 왔다. 앞서 양측은 지난 1일부터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후속조치의 하나로 군사분계선(MDL) 일대 확성기와 방송시설 철거를 시작했다. 우리 측은 철거한 대북 확성기와 방송시설을 일단 관할 부대인 국군심리전단이 보관하면서 추후 다른 목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963년부터 시작된 대북·대남 확성기 방송은 남북관계 부침에 따라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에도 양측은 확성기와 방송시설을 한 차례 모두 철거했지만 남북관계가 악화하면서 양측이 고성능 확성기를 재설치해 운용해 오다가 이번에 또다시 완전히 철거하게 된 것이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평양시간 30분 앞당겨 남북 표준시 ‘통일’

    평양시간 30분 앞당겨 남북 표준시 ‘통일’

    서울보다 30분 느렸던 평양시간이 5일부터 서울시간에 맞춰 통일됐다. 한 북한 남성이 지난 5일 평양역 옥탑시계에 맞춰 자신의 시계를 조정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서울 마포구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직원이 6일 북한에 맞춰져 있던 사무실 시계를 조정하고 있는 모습이다. 평양 AP 연합뉴스·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서울포토] ‘북한 표준시 조정’ 같아진 남북 시계

    [서울포토] ‘북한 표준시 조정’ 같아진 남북 시계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직원이 북한에 맞춰져있던 시간을 조정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남북정상회담의 합의로 5일 0시를 기해 한국보다 30분 느린 자체 표준시 ‘평양시간’을 한국시간에 맞췄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판문점 선언 돋보기] “김정은 핵실험장 폐쇄·공개 선언 카드 비핵화 의지 표출이자 대미협상 전략”

    [판문점 선언 돋보기] “김정은 핵실험장 폐쇄·공개 선언 카드 비핵화 의지 표출이자 대미협상 전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실험을 중단하겠다더니 핵실험장 폐쇄 및 공개도 선언했습니다. 미국인 억류자 석방 가능성도 나와요. (북한이) 중요한 협상 카드를 소진한 게 아닙니다.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니 보여 주는 거죠. 동시에 상대가 원하는 것을 먼저 내주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이기도 합니다. 북·미 정상회담은 이미 시작됐습니다.”이관세(66)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은 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연구소장실에서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의 해법은 결국 “신뢰”라고 했다. 한국 정부의 중재 노력이나 비핵화와 관련한 김 위원장의 파격 행보 등은 북·미 간 불신의 골을 좁히려는 노력으로 봤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로드맵이 타결된다면 뒤따를 북핵 사찰·검증 과정에서 ‘디테일에 숨어 있는 악마’를 넘어서는 비결도 ‘신뢰’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 위원장이 북·미 간 주요 협상 카드인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을 지난달 먼저 선언했다. -북한이 지난해 말까지 핵·미사일 고도화를 해 왔으니 비핵화 진정성이 의심받는다는 걸 그들도 안다. 이를 불식시키려는 신뢰 조치로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등을 전격적, 선제적으로 선언했다고 본다.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봐야 미국도 진지하게 협상에 임한다. 또 북·미 정상회담을 주도하려는 전략의 일환일 수도 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줘 자신이 원하는 최대의 이익을 상대가 들어줄 수밖에 없도록 하는 협상 전략의 한 부분이란 의미다. →북·미 간 ‘비핵화’ 정의에 차이가 있어 북·미 정상회담에서 쟁점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남·북·미 간 비핵화 개념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의 비핵화가 ‘이미 완성해 둔 핵’(과거 핵)을 제외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용어가 비핵화든, 완전한 비핵화든 ‘가진 모든 핵과 관련 시설을 폐기하는 것’이다. 핵심 쟁점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인정하는 완전한 비핵화 시한을 언제로 잡을 것인지, 이에 대해 북한이 받을 보상이 무엇인지 등이 될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로드맵이 타결돼도 실행 단계에서 어그러질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나온다. -합의는 잘해 두고 이행 검증 단계에서 이견으로 난항을 겪을 수 있다. 그 고비를 넘을 수 있는 건 결국 ‘신뢰’다. 1998년 미국에서 북한 금창리 지하 시설에 또 다른 핵시설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50만t의 식량을 제공하고 조사했지만 핵시설이 아니었다. 의심하자면 끝이 없다. 이미 과거 경험이 있으니 이번에는 남·북·미와 주변국들이 자세하게 준비하고 논의할 것으로 기대한다. →‘판문점 선언’에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언급됐다. 어떻게 진행해야 할까. -북·미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주체와 시기에 대한 윤곽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정치적 선언은 한반도 안정과 평화협정 논의의 신호탄이자 모멘텀(추진력)이다. 평화협정의 경우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비핵화 종결 시점)보다 앞에, 미국은 그 후에 체결하고 싶을 것이다. 평화협정은 군사뿐 아니라 정치·경제적 내용도 포함되는 포괄적인 것이어야 한다. 군사적 긴장 완화뿐 아니라 경제공동체나 경제협력도 잘돼야 평화가 보장되지 않겠나. →대북 경제제재 완화 시점은 언제가 될까. -판문점 선언 1조 6항(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이나 북한이 평양시를 서울시에 맞춘 것도 향후 남북 협력 등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보상 없는 선제적 조치를 했기 때문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이 방북하는 시점에 경제제재 완화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 또 올해 11월 미 중간선거 이전에 북한이 불능화 조치를 시작한다면 제재 해제 문제가 본격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통일부 차관이었던 2007년 남북 정상회담과 비교해 제언한다면. -당시는 화해·협력 분위기가 지속됐지만 이번 정상회담은 전쟁 위기설에서 정세가 급격히 변하는 과정에서 열렸다. 당시는 남북 관계 진전이 주된 의제였지만 지금은 비핵화, 군사적 긴장 완화를 포함한 평화체제 정착 등도 제시됐다.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했고, 북·미 정상회담이 이어 열리는 것도 차이점이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 정착 및 북핵 해결 의지는 늘 같았다. 정권 말에 열린 2007년 정상회담이 정권 교체로 이행되지 못했다면 집권 초에 열린 이번 회담은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이관세 소장 2007년 8월부터 17대 통일부 차관으로 재임하며 2007년 남북 정상회담 준비접촉 수석대표를 맡았고, 정상회담 준비 선발대 단장으로 방북해 일정, 동선, 행사 등을 북측과 협의했다. 1981년 통일부 사무관으로 입부해 28년간 근무하며 대변인, 정세분석국장, 남북회담본부장, 통일정책실장 등을 거쳤다. 또 경남대 북한대학원(현 북한대학원대)의 북한학 박사 1호다. 퇴임 이후 10여년간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강의하는 등 학계에 몸담고 있으며, 지난 3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했다.
  • “한반도 평화는 먼 길… 시작이 전부가 아니다”

    “한반도 평화는 먼 길… 시작이 전부가 아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74) 전 독일 총리가 남북 관계에 대해 “평화조약이 마침내 체결되고 한반도가 평화롭게 되는 날에 이르기까지는 하나의 과정(프로세스)이자 먼 길”이라며 “시작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슈뢰더 전 총리는 2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열린 남북교류 현안 간담회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 초청으로 간담회에 참석한 그는 “(평화로 가기 위한 길에서) 많은 어려움을 헤쳐가기 위해서는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면서 “협력할 것은 서로 협력하는 큰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기까지 많은 걸림돌과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남과 북이 평화로 가는 첫발을 뗐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독일에 ‘길이 곧 도착지와 같다’는 말이 있다”며 “목적지로 가는 길에서 한 걸음을 뗀 것은 목적지에 도착한 것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정치인의 삶을 살아왔고,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이 시점이 한반도에 얼마나 중요한 역사적 시점인지 잘 알 것”이라며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축하했다. 그는 서울시에도 조언을 남겼다. 슈뢰더 전 총리는 “서울시가 평양시와 자매결연을 추진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발걸음이자 프로세스가 될 것”이라며 “중앙정부 못지않게 지방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도 밝혔다. 박 시장은 “중앙정부가 열고 있는 큰길을 지방정부, 시민사회, 민간이 따라가서 이른 시일 안에 평화가 정착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시 간담회에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원로자문단장을 맡은 임동원 한반도포럼 명예이사장, 김연철 통일연구원장 등 서울시 남북교류협력위원회 자문위원들도 참석해 향후 남북교류 방안을 논의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트럼프 흥행몰이·김정은 실용주의, 달라진 두 정상… 북미회담 청신호

    트럼프 흥행몰이·김정은 실용주의, 달라진 두 정상… 북미회담 청신호

    상호비방서 칭찬으로 언행 변화지난해에 이어 올해 초까지도 ‘책상 위 핵단추’ 경쟁에 열을 올렸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예측 불가능한 ‘통 큰 행보’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북·미 정상회담이 비핵화 로드맵 담판보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회담 장소나 노벨상 수상 여부 등 흥행에 집중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두 정상의 행보가 물밑 협상의 진전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비핵화 로드맵 합의에 있어 상당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는 ‘청신호’로 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 후보로 5곳을 언급하고, 이어 2곳으로 줄였다. 30일에는 판문점을 고려 중이라고 했고, 지난 1일에는 며칠 안에 구체적 회담 장소와 날짜가 공개될 거라고 밝혔다. 일명 ‘개봉 박두’식 흥행몰이 전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9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방문한 자리에서 곧바로 5월 북·미 정상회담을 못박으면서 노련한 승부사의 모습을 보였다. 최근에는 남북 정상회담의 종전 논의를 “축복”하면서도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를 위한 압박과 으름장도 잊지 않는다. 상대를 흔들면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스타일로 분석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회담으로 ‘은둔의 지도자’에서 ‘노련한 실용주의자’로 거듭났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김 위원장이 시원한 돌파력과 꼼꼼함을 겸비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평양시를 한국 표준시로 맞추는 결정은 즉흥적이었던 것으로 봤다. 이와 함께 핵실험·미사일 발사 중지 발표에 이어 핵실험장 폐쇄를 전 세계에 공개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 주고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의 관심을 높이는 리얼리티쇼 기획자와 같지만 결국 회담 준비가 완벽히 끝났다는 자신감을 보여 주는 것”이라며 “김 위원장은 과감함, 실용주의, 세계 트렌드 동행 등으로 고립이 아니라 개방의 이미지를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김 위원장을 ‘작은 뚱보’, ‘미치광이’, ‘로켓맨’ 등으로 불렀고, 북한 매체는 이에 ‘늙다리 미치광이의 망발’이라고 받아쳤다. 올 초에는 김 위원장이 “내 책상 위에 핵단추가 있다”고 공언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난 더 크고 강력한 단추가 있다”고 응수했다. 이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충동적인 두 정상 중 한쪽이 박차고 나갈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김 위원장에 대해 “매우 열려 있고 정직하다”, “정상회담을 고대한다” 등 유화적 발언을 이어 가고 있다. 김 위원장도 최근 만난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 대해 “나와 배짱이 맞는다”고 표현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두 정상이 기싸움을 끝내고 상호 합의에 접근한 것으로 이해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북·미 정상회담 일정이 5월 하순으로 정해지고 개최지도 몽골, 싱가포르, 판문점 등으로 점점 좁혀진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만족할 만한 합의로 나아가고 있다는 뜻”이리며 “CVID 등을 포함한 쟁점들이 정상회담 전에 대부분 합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정상회담 훈풍에 가까워진 남·북] 강원, 北 대학과 교류 맺을까

    [정상회담 훈풍에 가까워진 남·북] 강원, 北 대학과 교류 맺을까

    4·27 남북 정상회담 이후 강원대와 북한 평양과학기술대 간 교류협력사업이 빠르게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1일 알려졌다.강원대 김헌영 총장과 조준형 부총장은 전날 강원대 총장실에서 최근 방한한 북한 평양과학기술대 고동훈 교무부총장, 김필주 농업생명과학부 학장 등과 두 대학 간 교류협력 방안을 협의했다. 평양과기대는 미국 시민권자인 한인 과학자들이 기부금을 모아 설립한 중국 옌볜과학기술대가 북한의 요청을 받아 평양시 낙랑구역 보성리 승리동에 설립한 특수대학이다. 이번에 강원대를 방문한 고 부총장과 김 학장도 한인 미국 시민권자들로, 남북 정상회담 이전부터 미국과 중국, 서울 등을 오가며 대학 간 교류협력사업에 적극성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협의에서 양측은 농업기술뿐 아니라 산림, 축산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자는 데 공감했다. 이를 위해 우선 교수 교류를 시작으로 실험 실습 지원과 대학 간 컨소시엄 공동 프로젝트 등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물론 이런 사업들은 남북 관계 진전에 따른 정부의 승인이 전제돼야 한다. 강원대에 따르면 고 부총장은 “평양과기대는 교수가 많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학생 교류는 아직 어려운 부분이 있는 만큼 강원대와 교수 교류를 시작으로 농업, 교육, 스포츠, 문화 교류부터 활발히 진행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김 학장은 “강원도는 철원부터 동해안까지 연결돼 북강원도와 남강원도가 함께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갖고 있다”며 “북한이 2012년 스위스 축산업을 모방해 강원도 세포군 일대 고원지대에 대규모 축산기지를 착공한 만큼 농업과 축산업 분야가 특화된 강원대와 함께한다면 다양한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조 부총장은 “농업 분야뿐만 아니라 산림, 축산 등 폭넓은 교류를 추진할 것”이라며 “강원대를 시작으로 남북 대학 간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서울신문에 밝혔다.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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