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평양냉면
    2026-02-02
    검색기록 지우기
  • 삼성증권
    2026-02-02
    검색기록 지우기
  • 개발수요
    2026-02-02
    검색기록 지우기
  • 면접 교섭
    2026-02-0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93
  • [길섶에서] 겨울 냉면

    영하의 날씨에 ‘일부러’ 냉면집을 찾았다.꽤 알려진 집이었는데도 손님들이 뜸했다.동료들은 “겨울에 무슨 냉면이냐.”며 핀잔을 준다.모르시는 말씀.냉면은 원래 겨울음식이다.꿩육수나 동치미에 말아낸 평양냉면은 더욱 그렇다.평안도 실향민들은 어릴 적 솜이불 뒤집어쓰고 먹던 그 냉면 맛을 아직도 못 잊어한다. 방구들이 뜨거워 엉덩이를 들썩이면서도 어깨는 으슬으슬 한기를 느끼고,국수를 삶아낸 메밀 육수를 호호 불어 마시며,시린 이를 녹여낸다.평양냉면만이 만들어내는 진풍경이랄까.냉기(冷氣)와 열기가 한꺼번에 어울려,추위로 잔뜩 움츠렸던 몸속의 기운을 단시간내에 충전시키기 위함인가.이한치한(以寒治寒)보다 한 수 위다. 옛 문헌 ‘동국세시기’에도 냉면을 겨울음식으로 기록하고 관서지방(평안도) 것을 최고로 쳤다.하지만 평양냉면도 겨자와 식초를 적당히 쳐야 제맛이 난다.어느 때부터 양념을 쳤는지는 모르겠으나 지나치면 오히려 냉면 맛을 버린다.과유불급(過猶不及).뭐든지 적당한 것이 좋다.인생살이도 마찬가지다. 이건영 논설위원
  • 두 노장 성악가 ‘50년 우정의 하모니’

    오현명·안형일 두 노장 성악가의 ‘50년 우정 콘서트’가 태어난 곳은 냉면집이다. 오현명(78) 한양대 명예교수는 잘 알려진 대로 냉면광.“냉면이야말로 맛이 있고 없음이 너무나도 뚜렷한 음식”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안형일(75) 서울대 명예교수는 냉면을 좋아하지 않았다.그러나 오현명에게 50년 넘게 ‘끌려다니다’보니 좋아하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 4월 말 두 사람은 두 시간 가까이 차를 몰아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경기도 송추의 단골 면옥(麵屋)을 찾았다.안형일이 “독창회를 한번 하려는데….”라고 하자 오현명은 “그러지 말고 둘이 같이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불쑥 제안했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처음 한 무대에 선 것이 부산 피란 시절 해군정훈음악대에서 함께 활동하던 1951년 아닌가.오현명은 냉면을 먹으며 ‘50년 우정 콘서트’라는 제목을 떠올렸다.‘영원한 테너 안형일’과 ‘노래 나그네 오현명’이라는,공연 홍보를 위한 인쇄물의 카피도 그 자리에서 나왔다.공연날짜는 11월1일 오후 7시30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으로 잡아놓았다. 그로부터 6개월,공연을 열흘 남짓 남겨둔 두 사람은 연습에 한창이었다.지하에 소극장 ‘오퍼스홀’이 들어 있는 서울 신사동의 한 건물 5층.정진우(74) 서울대 명예교수의 연구실에서는 베르디의 ‘운명의 힘’ 가운데 ‘내 마지막 부탁일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피아노 반주를 하던 정진우는 안형일이 이중창의 고음부분을 멋들어지게 처리하자,기자 둘이 지켜본다는 사실을 의식한 듯 농담삼아 “손님이 와서 긴장을 하니까 좀 제대로 되는 것 같구먼.”이라며 흡족해했다. ‘한국 피아노계의 대부’정진우는 “반주를 흔쾌히 맡으셨느냐.”는 물음에 평안도 사투리로 “1956년부터 오현명의 독창회 반주는 모조리 내가 했수다.”라며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하긴 세 사람에 비하면 ‘젊은이’에속하는 이성균(67) 서울대 명예교수 역시 안형일과 ‘일생을 같이한’반주자였다. 정진우와 이성균은 “네 분의 50년 우정이 아니라,두 분의 50년 우정만 내세워 섭섭지 않으셨느냐.”는 말에 “그렇치,그럴 수도 있었겠구먼.”이라고 말하곤 그만이었다.그러면서 “사실 50년 우정이라지만,이 대목은 이렇게해야 하느니 저 대목은 저렇게 해야 하느니 음악의 표현방법을 놓고 평생을 다투기도 어지간히 다투면서 쌓아온 우정”이라면서 웃었다. 음악평론가 한상우에 따르면 오현명과 안형일을 빼고는 한국의 오페라를 말할 수 없다.두 사람을 제외하면 한국 성악연주사에서 196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는 30년에 큰 구멍이 뚫린다는 것이다.두 사람이 그동안 함께 무대에선 것은 자신들 말마따나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이다. 지금도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30곡은 될 것이라고 했다.이번 연주회에서 두 사람은 평생 호흡을 맞춰온 반주자들과 짝을 이뤄,역시 평생을 즐겨부른 한국가곡과 아리아들을 들려줄 예정이다.‘내 마지막 부탁일세’는 유일한 이중창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두 사람은 이날 “친구여 내 약속 믿고 맘 편하게 떠나가게.”라는 ‘내 마지막…’의 마지막 부분을 연습하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손을 꽉잡았다.(02)497-1973. 서동철기자 dcsuh@
  • 서초구, 터미널등 5000여곳 5개국어 음식메뉴판 배부

    서초구(구청장 조남호)가 월드컵축구대회를 맞아 5개 국어로 표기된 음식 메뉴판 ‘Korean Food’를 제작해 호텔·공항·여행사·터미널·관내 음식점 등 5000여곳에 배부했다. 이 메뉴판은 비빔밥·불고기·삼계탕·돌솥밥·평양냉면·함흥냉면·해물전골·녹두전·신선로·생갈비 등 10가지 맛깔스러운 음식을 영어·일어·중국어·프랑스어·스페인어 등 5개국어로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특히 음식마다 재료 및 특징,요리방법,칼로리량,사진 등도 담아 우리 음식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이 쉽게 이해할수 있도록 했다. 메뉴판은 민병철 어학교육연구소장,칼 더스티머 한남대영문과 교수 등 10여명으로 구성된 ‘서초구 국제화 자문위원회’의 자문과 검증으로 제작됐다. 최용규기자 ykchoi@
  • [씨줄날줄] 전주 비빔밥

    20년 전쯤 전남 일대 출장을 마치고 귀경하는 길에 차(車)머리를 예정에 없던 전주로 돌렸다.‘전주 ○○㎞’라는 이정표를 보자 원조 전주비빔밥을 먹어 보자는 욕심이 불현듯생겨났기 때문이다.전주길 초입에는 ‘호남제일문’이 우뚝서 있었고 시내에 들어서자 “아,이 예향(藝鄕)에,맛의 고장에 첫발을 딛는구나.”하고 괜히 마음이 설??다.그날 전주에서 먹은 비빔밥 맛을 새삼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갖가지 음식재료를 한데 섞어 비벼 먹는 음식문화는 세계적으로 비슷한 예를 찾기 힘든 우리 고유의 것이라고 한다.그유래를 두고 농번기 바쁜 철에 빨리,편하게 먹기 위해 밥·반찬을 뒤섞었다는 설이 있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단지그 이유만이라면 전주비빔밥이 조선시대에 이미 평양냉면·개성탕반과 함께 3대 음식으로 꼽히지 않았을 테고,이 시대에 세계적인 팝스타 마이클 잭슨의 입맛을 당기지도 못했을테니까 말이다. 비빔밥의 비밀은 오히려 갖은 재료가 가진 풍미가 서로 어우러지면서,그것이 각각의 맛을 더욱 끌어내 한 차원 높은새 맛을만들어 내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그래서 비빔밥을 대하면 풍부함과 균형·조화·포용력 같은 이미지를 느끼게 된다.전국적으로 유명한 비빔밥이 많지만 그 가운데 전주 것이 가장 높은 점수를 얻는 까닭도 전북의 풍부한 물산과넉넉한 인심,예술을 사랑하는 마음들이 배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달 31일 열린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전북대회에서 노무현·정동영·이인제 세 후보는 2.1%포인트 내에서 순위가갈리는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이를 두고 항간에서는 세 후보 모두에게 명분과 힘을 실어주는 절묘한 ‘황금 분할’이라고 평했다.노 후보는 1위를 함으로써 전국적인 지지를 받고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고,정 후보는 ‘용기 있는 꼴찌’에게 쏟아진 성원을 듬뿍 받았다.또 이 후보는 중간집계 1위를 고수해 남은 일정을 이어나갈 힘을 얻었다. 한 정치인이 “전주비빔밥식 배분”이라고 표현한 것처럼전북 경선에서는 넉넉함과 조화로움,그리고 포용의 정신이묻어난다.이같은 분위기가 이어져 정치사적 실험인 국민경선이 성공을거둔다면 우리 정치문화는 한 단계 성숙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
  • 고려호텔 냉면 옥류관보다 인기

    [도쿄 황성기특파원] 요즘 평양의 젊은이들에게는 ‘평양냉면’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보통강변의 옥류관보다 창광거리에 있는 고려호텔 2층 음식점의 냉면이 인기를 끌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평양을 다녀 온 재일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의 한관계자는 “고려호텔 2층 냉면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역시 맛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냉면 사리의 맛은 옥류관이나 고려호텔이나 거의 비슷하지만 냉면의 맛을 좌우하는 육수가 틀리다는 것.평양 냉면의 육수는 보통 꿩고기로 만든다. 그는 “두 곳의 육수를 비교해 보면 역시 고려호텔 2층쪽이 진하고 깊은 맛이 있다”면서 “육수가 진한 이유는고려호텔 냉면 집에서는 고기 판매도 겸하고 있어 유통되는 고기의 회전이 빠르고 육수에 고기도 많이 넣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풀이했다. 가격은 한 그릇에 6원하는 옥류관보다 고려호텔 쪽이 조금 비싼 8원을 받지만 ‘호주머니 사정보다는 맛’을 추구해 고려호텔 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그는최근 평양 젊은이들의 입맛 추세를 설명했다. 한 북한 관계자는 “맛도 맛이지만 기왕 외식하는 김에호텔에서 먹는 기분도 고려호텔의 인기에 한 몫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평양의 보통 가정에서도 일본식 초밥을 만들어 먹는다고 지난 7월 평양을 다녀온 다른 재일 조선인은 전했다. 평양의 친지집에 들른 그는 “맛은 일본 초밥과는 다소틀리지만 일본에서 온 손님이라고 대접하는 걸 보면 초밥을 만드는 방법 등이 이미 평양에서도 알려지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marry01@
  • [Drive & Shopping] 경기도 양평 용문산·용문사

    서울 근교엔 살만한 물건도 많지만 입맛을 돋우는 먹거리도 적지 않다.도토리묵과 잡곡밥,버섯무침 등 토속음식에서부터 근사한 양식까지 다양하다. 이때쯤이면 동네 아줌마들이 들고나온 산나물이며 과일들도 풍성하다.싸고 싱싱한데다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맑은공기를 심호흡하며 장보는 재미가 여간 아니다. 이제 한낮은 여름이 연상될 만큼 제법 더운 날씨.더위와찰떡궁합인 매력적인 음식이 있다.요번 주말엔 제철만난더덕의 향기를 따라 냉면을 먹으러 떠나보자. [용문산·용문사] 웅장한 산세와 오밀조밀한 볼거리들을 두루 갖춘 수도권의 명소 용문산(해발 1157m)과 용문사.양평군 용문면에 위치한 용문사는 수령 1,00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장관이고주위엔 유명산과 중미산 등이 우뚝 솟아 있다.특히 봄이면 온 산에 더덕향이 진동한다. 때맞춰 5월 20일까지 이곳에서는 지역특산물인 ‘용문산산더덕캐기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지난 6일 시작된 축제는 서종면 정배리 용문산 해발 300m 부근 10만여평의 산기슭에서 열리며 참가자들이 괭이와 삽 등을이용,5∼6년생산더덕을 직접 캘 수 있다. 산더덕 영농조합법인이 장갑과 봉투 등을 무료제공하고더덕 채취요령과 조리방법 등도 소개한다.캔 더덕은 ㎏당1만7,000원을 지불해야 하지만 시중가보다 40%가량은 싸다. 산 입구에는 지난해 양평 전역을 수놓았던 허수아비들이전시돼 있고 할머니들이 산에서 뜯어와 파는 즉석 나물시장도 열린다.값도 값이지만 돌아다니며 흥정하는 맛에 종일 북적인다. [옥천냉면촌(村)] 이곳에서 멀지않은 옥천마을(옥천면 옥천2리)에 반세기전통을 자랑하는 냉면집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10여년전만 해도 1∼2곳에 불과했던 옥천냉면집은 이제 12곳이나 되며 지금도 계속 늘고 있어 단골들조차 헛갈릴 정도지만 옥천마을은 냉면하나로 마을을 일으키고 있다.대부분 업소가 메밀을 직접 사다 가루를 내 면을 만든다.차가운 샘물에 헹궈낸 메밀면의 맛은 쫄깃하고 시원하기 이를데 없다.일반 냉면과는 달리 면발이 2∼3배 굵고 거칠지만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은 담백한 육수맛에 메밀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이 특징. 가장 먼저 생긴곳은 ‘40년전통 옥천냉면’.4대째 이어오는 냉면 명가로 6·25때 처음 생겼다니까 이제 50년이넘은 셈이다. 입맛에 따라 물냉면,비빔냉면을 선택한뒤 육수물에 삶아낸 편육과 도톰한 완자를 곁들이면 배도 부르고 입도 즐겁다.반찬은 단 한가지.아무렇게나 썰어 내놓은 무짠지가 토속의 맛을 더한다. 냉면 3,500원에 편육과 완자는 접시당 7,000원.4명이 냉면에 완자 1접시면 충분하다. 인근에는 원조옥천냉면,옥천고읍냉면,30년전통옥천냉면,옛할머니냉면 등 비슷한 집들이 많다.옛할머니 냉면집은과일과 배즙을 내 만든 냉면다대기를,원조옥천냉면집은 생강과 감초를 우려낸 냉면육수를 자랑한다. 최근에는 면발이 굵은 옥천함흥냉면집도 자리잡았고 옥천냉면에 물린 고객들을 끄는 평양냉면집도 생겨났다.냉면집이 늘다보니 한켠엔 오장동 함흥냉면집까지 등장했다. 양평 윤상돈기자 yoonsang@
  • 식품에 공업용 알코올

    식품의약품안전청은 22일 유통기한을 연장할 목적으로 공업용 알코올을 사용하거나,유통기한을 허위로 표시하는 방식으로 32억8,000만원 상당의 생면류나 떡류를 불법 제조·유통시킨 14개 업체를 적발,관련제품을 폐기토록하고 고발 등 행정조치를 취했다. 식약청은 유통기한을 연장할 목적으로 공업용 알코올 등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사용하는 업체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집중 단속을 벌일방침이다. 식약청에 따르면 경기도 소재 ‘대륙유통식품’은 공업용 에틸알코올 2,000ℓ를 시중 화공약품상에서 구입,유통 기한을 늘리기 위해 생칼국수·평양냉면·감자수제비 등 자사 제품에 분무하는 형태로 사용,4,400여만원어치의 제품을 유통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강동형기자 yunbin@
  • [북한에서 만난 사람](4)평양옥류관 의뢰원 조장 김영희씨

    평양의 대동강변에 자리잡은 옥류관.지난 60년 8월13일 문을 연 북한 최초의 대규모 음식점이다.이곳에서 의뢰원(안내원) 조장으로 일하는 김영희씨(35). “겨자 식초 간장만으로 훌륭한 맛을 냅니다”. 남측 손님을 만나자 평양냉면(찬국수)의 특징은 순메밀로 만든 쫄깃한 면발과 깔끔하고 산뜻한 맛이라고 평양냉면 자랑부터 시작했다. 평양냉면을 맛있게 먹는 데는 비결이 따로 있다고 말을 이어갔다.일단 고명을 옆으로 젖혀놓고 면발에 식초를 치고 잘 섞은 후 전체를휘젓는다.그런 다음 기호에 맞게 간장 겨자 식초를 곁들여야 본래의진미를 느낄 수있다고 했다. 기본반찬은 삶은 낙지(북한에서는 오징어를 낙지로 부른다),청포깨정무침,녹두지짐,닭강냉이볶음 등.육수는 꿩·소·돼지·닭고기를 쓰고 꿩완자를 동동 띄운다. “귀한 음식이기 때문에 왕앞에 내던 놋그릇을 사용합니다” 한그릇은 200g.이곳에서는 냉면을 그램단위로 판매한다.가격은 15원.우리돈으로 8,000원정도.면을 추가를 원할 때도 200g,100g 등으로주문한다. “남측 손님들이 맛있다고 칭찬할 때 가장 기쁩니다” 김씨는 그동안 방문했던 남측 손님 중 한자리에서 무려 10그릇까지먹은 사람도 있다고 귀띔해줬다.유럽쪽 사람들도 신기해 하며 맛있어 한단다.특히 프랑스인들은 ‘원더풀’을 연발한다고. 옥류관은 300석 규모의 연회석 1개를 비롯해 30여개의 방으로 손님을 맞는다.주로 당 간부들의 연회나 외국인 접대장소로 사용된다.지난 6월 이곳을 방문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의 전용방을 사용했다고 했다. 94년 김일성 사망한 후 한번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던 방이었다. 그러나 귀한 손님들이기 때문에 특별히 이 방으로 모셨다는 것. 평양의 옥류관에는 의뢰원만 100여명이며 공훈 요리사 30여명 등 300여명이 일하고 있었다. 최희주 기자 pearl@sportsseoul.com
  • 일산에 ‘옥류관’들어선다

    올해 안에 남북 합영 형태의 평양냉면집 ‘옥류관’이 일산에 세워질 전망이다. 15일 현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은 최근 북한측과 실무 협의에서 판문점 인근 남쪽 지역인 일산에 평양 ‘옥류관’을 그대로 본뜬 냉면 집을 세우기로 합의했다. 이 냉면 집은 육로를 이용해 북한으로 관광가는 남한 주민들을 겨냥한 것으로 현대와 북한이 올해 안에 개성 관광 시기를 확정하는 대로설립된다. 현대 관계자는 “개성 관광객이 주 대상이지만 차츰 일반인에게도 개방할 것”이라며 “사업 방식은 남북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합영 형태를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는 냉면 맛을 살리기 위해 냉면 사리를 북한에서 들여오고 종업원도 북한 사람들을 고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주병철기자 bcjoo@
  • 남북이산상봉/ 평양만남 이모저모

    ◇ 평양 단체상봉■평양 방문단은 15일 오후 5시 숙소인 고려호텔에서 북녘의 가족·친지들과 50여년 만의 감격스런 ‘단체상봉’을 가졌다. 호텔 2·3층에 마련된 상봉장은 남북 가족이 만나는 순간 울음바다를 이뤘다.서로 부둥켜안고 떨어질 줄 몰랐다.2층의 상봉장에는 방북단 60명이,그리고 3층 상봉장에는 40명이 자리했다. ■20년 전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휠체어를 타고 상봉장에 나온김금자(金今子·69·서울 강동구 둔촌동)씨는 사촌 김금도(72)·금년(69)씨를 만났다.금자씨가 “허리는 아프지만 이를 악물고 만나러 왔어”라고 말하자 이들은 “이렇게 아픈데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냐”며 함께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그러나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오빠 어후씨(71)가 고혈압 때문에 나오지 못했다는 말을듣고 다시 오열을 터뜨렸다. ■한때 고혈압으로 여행불가 판정을 받았다가 우여곡절 끝에 방문단에 포함된 김상현씨(62·서울 송파구 마천2동)는 누나 상월씨(70)와조카 이예숙씨(50)를 만나 50년 응어리진 한을 풀었다.2남2녀의막내로 태어나 누나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김씨는 “누님에게 안겨보는 것이 희망이었는데 이제야 소원을 풀었다”고 기뻐했다. ■남한에서 올라온 아버지 이재경씨(80·경기 부천시 원미구)를 만난딸 경애씨(52)는 “결혼식을 앞두고 왼쪽 뺨에 난 점을 빼려고도 했지만 아버지가 내 얼굴을 몰라볼까 점을 빼지 못했다”며 울먹였다. 개성 출신의 이윤용씨(82·경기 성남시)는 처남 김홍규씨(63)를 왈칵 껴안으며 “다 컸네.걱정 안해도 되겠네”라고 말했다.홍규씨는“돌아가신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은 다들 매형이 폭격을 맞아 죽은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아계시다니 기쁘다”고 매형을 얼싸안고 흐느꼈다. ■남동생 후열씨를 만난 황해 사리원 출신의 양영애씨(70·강원 동해시 부곡동)는 “엄마가 어떻게 돌아가신 줄 아느냐.평생 너를 가슴에묻고 한에 사무쳐 돌아가셨다”며 울부짖다 땅에 쓰러져 주위 안내원들의 부축을 받고 가까스로 몸을 추슬렀다. 또 평양방문단 가운데 최고령자인 김정호씨(91·서울 강서구 가양동)는 1·4후퇴 때 눈보라때문에두고 와 평생 한이 됐던 외동아들 덕순씨를 만나 기쁨의 눈물을흘렸다. ■평북 박천 출신의 김사용씨(74·서울 문래동)는 지난 51년 헤어진아내 이옥녀씨(72)와 당시 1년 6개월 된 딸 현실씨(51)를 보자 왈칵껴안으며 “살아줘서 고맙다”고 울음을 터뜨렸다.김씨는 지난 51년평양에서 징집돼 전쟁포로가 되면서 헤어지게 된 상황을 되뇌며 “당신이 애(현실) 고사리 손을 쥐어 올리며 ‘잘 다녀오세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이번 상봉에는 북측 기자들이 치열한 취재 경쟁을 벌여 관심을 모았다.노동신문,조선중앙TV,조선중앙통신,민주조선,평양신문,통일신보,청년전위,조선기록영화촬영소,내나라 비디오,중앙방송,금성청년출판사 등 20여개사 100여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중국의 신화사,인민일보와 러시아의 이타르타스 등 외신들도 취재팀을 파견했다. ◇ 인민문화궁전 만찬■오후 8시부터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조선적십자회 초청 만찬은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방북단 일행은 조금전 북쪽 가족들과의 해후에대한 흥분과 감격으로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그러나 가족들이 빠지고 북측 안내원들이 함께 자리에 앉게 되자 못내 아쉬워하기도했다.저녁식사로는 고기종합보쌈,생선묵과 감자무침,김치,쉬움떡(술떡),메추리알국,볶음밥,닭강냉이즙,칠색송이구이,버섯완자볶음,수박,과줄,인삼차 등이 나왔다. ■1층 만찬장에는 헤드테이블 1개와 30개의 원탁테이블이 놓였다.식사가 계속되는 동안 만찬장에는 ‘반갑습니다’‘아리랑’‘나의 살던 고향은’ 등 우리 귀에 익은 음악들이 연주됐다. ■장재언(張在彦)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장은 환영사를 통해 “우리모두는 오늘의 이 뜻깊은 자리가 가족적 범위를 벗어나 분열의 비극을 끝장내고 화해와 통일의 새 전기를 마련하는 민족사적 대업을 성취해 나가는 데 기여하게 되도록 뜻과 마음을 합쳐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북단장인 장충식(張忠植)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답사에서 “우리적십자 성원들은 더 늦기 전에 한명의 이산가족들이라도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고 편지를 교환하며 다시 만나 함께 여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고려항공 기내표정■이날 낮 12시쯤 남측의 평양 방문단이 탑승을 시작한 북한 국적 고려항공 비행기 내부는 장식이나 시설이 다소 떨어지는 수준이었으나스피커에서 귀에 익은 민요가락이 흘러나오는 등 친근한 느낌을 주었다.비행기내 모든 표지는 우리말과 영어가 함께 기재돼 있었는데 이중 ‘안전벨트’를 ‘박띠’로 표기하는 등 재미있는 우리말 표현도눈에 띄었다. 비행기 이륙후에는 “이제부터 청량제를 봉사하겠습니다”란 안내방송과 함께 6명의 승무원들이 룡성맥주,오미자단물,금강산 샘물 등을제공했다.‘가공물고기’란 이름의 명태포도 인기를 끌었다. ◇ 순안공항 도착■방북단 일행을 태운 고려항공 IL62기는 예정보다 5분 빠른 오후 1시45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비행기가 도착하자 마중나온 30여명의 환영객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고 손을 흔들며 환영했다. 순안공항에는 소나기가 내린 듯 활주로 곳곳이 젖어있었고,일행이평양 시내로 이동하는 도중에도 간간이 소나기가 내렸다. ■장재언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장과 최윤식 평양시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조춘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허해룡 조선적십자회사무총장, 허혁필 민화협 부회장 등이 영접을 나왔다.장충식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북측 장 위원장에게 “반갑습니다.좋은 날 이렇게 공항까지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말을 건넸다.북측 장 위원장은 “잘 오셨습니다.보고 싶었습니다”라고 답했다. ◇ 고려호텔 도착■광복절 휴일을 맞은 평양거리는 차분했다.이산가족 방북을 환영하는 현수막이나 지난 정상회담 때의 시민들의 열광적 환영은 찾아보기힘들었다. 다만 간간이 지나는 시민들이 멈춰서서 손을 흔들거나 박수를 치면서 이들을 환영했다. 방북단은 지난 6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방문 당시 취재단이 지나온 길을 따라 평양 시내를 거쳐 오후 3시5분쯤 상봉장소인 고려호텔에 도착했다.고려호텔 정문에는 곱게 단장한 한복과 유니폼을 입은 호텔 여직원들이 양쪽에 늘어서 ‘환영합니다’라며 박수로 반갑게맞았다. ■호텔에 도착한 이산가족들은 1층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들었다.점심메뉴로는 녹두지짐,평양냉면,김치 등이 나왔고 후식으로 얼음보숭이와 신덕샘물이 마련됐다.식당 중앙뒤편에 마련된 대형TV에서는 왕재산경음악단의 ‘기쁨만을 드리고 싶어라’등 각종 경쾌한 음악이연주됐다. ◇ 서울 출발■이산가족 100명과 수행원,취재기자단 등 151명으로 이뤄진 우리측평양 방문단은 오전 9시30분 버스 10대에 나눠 타고 숙소인 쉐라톤워커힐 호텔을 출발,역사적인 평양 방문길에 올랐다. 10시30분 김포공항 국제선 2청사에 도착한 방북단은 대합실에서 배웅나온 가족과 친지들의 환송 속에 출국장으로 들어섰다.여객라운지에 모인 방북단 일행은 준비한 선물꾸러미를 거듭 살피며 탑승시간을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뒤 만날 북녘 가족들의 옛 얼굴을 더듬기도 했다. 고려항공기는 당초 예정시간보다 1시간 늦은 오후 1시 활주로를 이륙,반세기의 세월을 거슬러 평양으로 힘차게 날아 올랐다. 특별취재단
  • [마음은 북녘 고향에] (1)평양 경제리 출신

    ‘몸과 마음은 이미 고향에.’북녘의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에 55년이라는 긴 세월을 기다려온 응어리는 한순간에 녹아내린다.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산가족 상봉 등 5개항에 합의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실향민들은 대동강변에서 멱감던 시절부터 떠올리며 흥분된 가슴을 억누르지 못한다.고향땅을 눈앞에 둔 실향민들의 벅찬 감회를시리즈로 싣는다. “이곳이 바로 내가 놀던 을밀대(乙密臺)야.지금도 그 모습은 변함이 없을게야.” 실향민 최선익(崔善翌·83·경기도 일산시 장항동)씨와 나용호(羅容浩·70)씨는 15일 한 글자라도 놓칠세라 신문을 읽고 또 읽었다. 지난 세월 고향 방문에 대한 열망과 가슴이 찢어지는 실망이 수없이 오갔으나 이번처럼 마음이 설렌 적은 없었다.남북의 두 정상이 맞잡은 손을 번쩍들고 감격에 겨워하는 모습은 ‘이제는 고향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줬다. 이날 서울 마포구 염리동 평양냉면집 ‘을밀대’에서 만난 최씨와 나씨의고향은 평양시 대동강변에 자리잡은 경제리.마을어귀에는 대동강이 흐르고뒤편에는 모란봉이 우뚝 서 있다. 두 사람은 13살 차이로 월남하기 전에는 모르는 사이였다.하지만 월남한 뒤 이북도민회 평양시민회 사무실에서 만나 20여년을 형·아우로 지내며 의지하고 있다. 어릴적 대동강가에서 ‘동무’들과 멱을 감고 모래찜질을 하며 모란봉 입구에서 ‘헤이따이 고꼬’(병정놀이)를 하던 추억도 함께 간직하고 있다.두 사람은 모란봉 입구로 향하는 신작로를 건너 평안남도 도청 옆에 있던 평의고등중학교를 다닌 선후배 사이다.나씨는 “일전에 TV에서 동문인 천문학자 조경철 박사가 나왔는데 북한을 방문,학교를 찾았으나 학교는 흔적도 없고 교정에 있던 아름드리 느티나무만 길가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고 하더라”면서먼산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최씨는 “그래도 대동강과 모란봉은 옛 모습 그대로 일 것”이라고 나씨를 달랬다. 최씨는 건축기사로 일하던 지난 46년 29살의 나이로 단신 월남했다.나씨는김일성대학 영문과를 다니다 51년 1·4후퇴때 남쪽으로 넘어왔다.두사람 모두 ‘평양에서 살 수 없는지주의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평양시민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나씨는 북에 남았던 부모와 형제들의 생사조차 모른다.그러나 부모 형제보다는 시민회 일을 더 걱정한다.나씨는 “시민회에 등록된 실향민은 10만3,000여명”이라면서 “이번 광복절까지 미등록된 평양시민을 모두 찾겠다”고 말했다. 최씨는 “해질 녘 대동강변에서 모란봉을 바라보는 것이 죽기전 마지막 소원이었는데 이제야 꿈이 이뤄질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경운기자 kkwoon@
  • [외언내언] 평양온반

    북한의 김일성(金日成)주석이 생존했을 때인 90년대 초 평양을 다녀온 인사가 전해준 이야기다.김주석은 남한의 주요인사와 식사를 할 때는 ‘언감자깨국수’라는 ‘특식’을 대접했다.그리고 만주 등지에서 항일 빨치산 투쟁을할 때 먹던 음식이라는 설명을 반드시 곁들였다.“식량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보니 들판에 널려 있는 감자가 주식이었다.그러나 추운 날씨 때문에감자가 얼어 먹기에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궁리 끝에 언 감자를 으깨 가루를내 국수로 만들었다. 여기에 깨를 뿌려 맛을 냈고 이를 언감자깨국수라고 불렀다.옛 생각이 날 때는 간혹 먹는다”이같은 설명에는 빨지산 투쟁 경력을내세워 ‘정통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방북인사는 말했다. 음식에는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습관이나 생각이 담겨 있다.김주석의 설명처럼 사연 있는 음식도 많다.무엇보다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남한의 음식은 북한 음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짜다.더운 날씨에 음식이 쉽게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평양 방문 이틀째인 14일에는 평양냉면으로 유명한옥류관에서 오찬을 하는 등 다양한 북한음식을 맛보고 있다. 평양음식은 담백한 편이다.대표적인 것으로는 평양냉면과 더불어 대동강숭어국,평양온반과평양어죽 등이 꼽힌다. 평양어죽은 이름만 그럴 뿐,물고기가 아닌 닭고기를끓여 만든다.김대통령은 지난 13일 오찬 때에는 닭고기로 만든 평양온반을들었다.평양온반은 쇠고기나 닭고기를 삶아 만든다.한마디로 곰탕과 비슷하다.그러나 삶은 고기를 건져내 손으로 찢어 양념으로 버무린 뒤 국물에 넣어먹는다는 점에서 다르다.녹두지짐과 버섯볶음, 다진 파와 실계란 등을 꾸미로 넣는다.평양온반에 대한 김대통령의 소감은 “담백하고 좋았다”였다. 정원식(鄭元植)적십자사총재가 92년 국무총리 시절 남북고위급회담 참석을위해 평양을 방문,김주석과 식사를 할 때도 평양온반은 화제가 됐었다.평양이 고향인 정총리는 당시 평양온반을 쇠고기로도 만드는 것으로 기억한다고했지만 김주석은 닭고기로 만든 평양온반만을 얘기했다고 한다.북한에서는이제 평양온반하면 닭고기로 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남한의 평양 출신 실향민들은 쇠고기 온반도 집에서 만들어 즐겨 먹는다. 남한에서 평양온반을 취급하는 음식점은 서울 강남의 옥류관이다.김대통령이 맛있어 했다는 보도에 14일 낮부터 찾는 사람이 부쩍 늘어 100그릇 이상이 팔렸다는 소식이다.남북정상회담 바람을 타고 ‘북한특수’도 봇물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모두에게 즐거운 일이다. 김명서 논설위원. @
  • 금강산 관광객 점심은 평양냉면

    5월부터 금강산을 찾는 관광객들은 점심을 전통 평양냉면이나 해주 비빔밥등 ‘북한식단’으로 즐길 수 있다. 현대상선은 다음달 10일 금강산으로 출항하는 봉래호 승선객들을 시작으로현대가 새로 지은 북한 온정각 식당에서 북한음식을 점심으로 제공할 계획이라고 28일 밝혔다. 금광산 관광객들은 그동안 현지 주차장이나 노상에서 현대측이 마련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다. 북한식단의 기본메뉴는 순모밀 평양냉면,해주 비빔밥,우미(牛尾·쇠꼬리)탕 등 3가지.추가 요금을 부담해야 하는 특별메뉴로는 메밀콩떡 녹두전 개성순만두가 준비돼 있다. 현대상선은 5월 한달간 무료로 북한음식을 제공하고 6월부터는 현대아산 등과 협의해 요금을 산정할 계획이다. 육철수기자 ycs@
  • [음악 리뷰] 백혜선 피아노 연주회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지난 13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가졌던 ‘즉흥과 변주’연주회는 음악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시도로 화제를 모았다.그러나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연주회가 끝난 뒤의 기분은 유명한 평양냉면집에 가서냉면(물냉면이라고 부르면 평안도 출신들은 화를 내기도 한다)대신 비빔을먹고 났을 때의 그것이었다. 물론 그 냉면집은 여름이 되어야 붉은 바탕에 흰글씨의 깃발을 내걸거나,귀순동포가 고용한 주방장이 만든 ‘기분만 평양식’이 아니라 이제 몇 남지않은 본포(本鋪)를 말한다.오늘날 전통 평양식 냉면을 만드는 주방장은 훌륭한 피아니스트의 숫자만큼이나 적은 것이 현실이 아닌가. 백혜선을 평양냉면집 주방장에 비유하는 무례를 용서해준다면,이날 연주회는 장기인 냉면 대신 ‘냉면 초보자’와 아이들을 위해 평양식 만두와 빈대떡 등을 한상 가득 차린 자리였다고 할 수 있다.그런 만큼 연주회 결과는 냉면을 좋아하는 어른이 아이들을 데리고 냉면집에 갔을 때 나타나는 반응과꼭 같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환호했다.슈베르트의 아름답기 그지없는 즉흥곡들,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과의 베토벤 ‘터키 행진곡’듀오,바이올린 이경선과 비올라최은식,첼로 양성원과 함께 꾸민 ‘사랑의 인사’‘아 목동아’,앵코르곡으로는 ‘아침이슬’에 ‘젓가락행진곡’까지 등장했다.연주회장을 나오는 얼굴엔 만족감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기자도 환호하고 싶었다.“우리 음악계가 너무 닫혀 있어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는 백혜선의 생각에 적극 공감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음악회를 즐기기는 했지만,‘아이’들처럼 환호작약할 수는 없었다.왜 그랬을까.빈대떡도,만두도,비빔도 모두 맛있었다.그러나 오랜만에 ‘진짜냉면집’에 갔는데도막상 냉면은 맛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작은 아쉬움조차도 백혜선의 잘못은 아니다.잘못은 커녕 이번 연주회를 기획한 그녀의 뜻은 찬사를 받아 마땅할 것이다.대신 그녀의 뜻처럼닫혀 있는 음악인들의 마음이 열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새로운 시도도의미가 있지만,백혜선처럼 ‘큰 피아니스트’는 ‘큰 음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연주회를 통해 증명됐기 때문이다. 서동철기자 dcsuh@
  • 북한음식, 호기심아닌 맛으로 승부

    북한음식,‘재현’이냐, ‘맛’이냐. 지난 96년 귀순가수 김용씨가 ‘모란각’을 개점한 이래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가던 북한음식점들이 ‘호기심’을 주무기로 한 난립상태를 벗어나 ‘전통’과 ‘맛’의 경쟁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탈북 귀순자들이 중심이 돼 개점한 북한음식점들은 ‘모란각’을 비롯해 ‘고향냉면’‘봉학관’‘옥류관’‘통일의 집’ 등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이들중 일부는 “유행이 지났다”“손님들이 찾지 않는다”는 등의이유로 이미 평범한 한식으로 메뉴를 바꾼 상태. 하지만 ‘모란각’과 독일 유학중 귀순한 전철우씨가 개점했던 ‘전철우 고향랭면’,북한 만수대무용단출신 신영희씨와 남편 최세웅씨가 지난해 문을연 ‘진달래각’등은 지속적인 성장세로 외식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의 성공 비결은 철저한 ‘북한음식의 재현’,혹은 ‘남한 사람들의 기호에 맞춘 맛’으로 압축된다. ‘모란각’은 ‘북한음식재현’에,‘전철우…’와 ‘진달래각’은 ‘맛’에중점을 둔 쪽이다. 물론 어느곳에서도 평양냉면 고유의맛을 찾아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실향민을 포함,직접 북한에서 평양냉면을 맛본 사람들의 이야기다. ‘모란각’의 이석훈대리는 “평양냉면은 면발이 굵고 끈기가 없다.쫄깃한면발과 육수,양념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말한다.그러나 몇차례 먹은 다음에는 익숙해져 다시 찾는다”며 “북한 음식 맛을 90% 정도는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모란각’은 현재 점포수가 국내 64개와 지난 5월 미국 LA에 낸 분점을 포함,65개.9월 중순에는 일본 도쿄(東京) 아카사카에 직영점을 내고 현지에 공장도 세울 계획이다. 이와 달리 ‘진달래각’에서는 손님들 입맛에 맞는 냉면과 북한 고위층에서 즐기는 음식,즉 ‘건강식’에 승부를 걸고 있다.서울과 전국에 5개 점포가있다. “처음에는 평양 옥류관 조리장 할머니에게 배운대로 면이며 육수를 만들었습니다.실향민들은 그래,이 맛이라고 좋아했지만 대다수의 손님들은 그렇지않았습니다” 직접 메뉴를 개발,요리를 하는 최씨는 예상치 않던 난관에 부딪쳤다.그래서 손님들의 의견을듣고 유명한 냉면집을 찾아다니며 남한 사람 취향에 맞는맛을 개발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맛있다며 찾는 사람들이 많지만 지금도 음식에 대한 손님들의 이야기를귀담아 듣습니다” 이밖에도 최씨는 북한 고위층들이 즐기는 일품요리 ‘평양 장 수육’‘평양 영양만두국’ ‘창강포도불고기’등을 내놓았으며 앞으로도 몇가지 더 선보일 계획이라고 전했다. ‘전철우 고향랭면’도 서울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메뉴를 다양화했으며 현재 체인점 숫자만도 40개가 넘는다. 북한 음식점들에 대해선 논란도 많다.음식을 통해 남북이 서로 이해폭을 넓혀가는 디딤돌이 된다는 긍정적인 해석이 있는 반면 ‘남한화’하여 북한음식 특성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최세웅씨는 “귀순자들 중에는 돈도 벌고 음식을 통해 남북한의 간격을 좁혀 보자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그러나 손님들이 맛없다고 외면한다면 의미가 없다”며 “맛은 달라도 이를 통해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선임기자 sunnyk@
  • [외언내언] 옥류관 서울분점

    북한 최대 냉면음식점인 평양 옥류관(玉流館) 서울분점이 3일 서울 역삼동에서 문을 열었다.서울분점은 평양냉면 맛을 내기 위해 사리·육수·양념은물론 냉면그릇과 수저 등 일체를 북한에서 계속 들여온다고 한다.냉면 관련재료를 모두 북한에서 공수해 오고 평양냉면의 비법을 전수받은 조총련 소속 재일동포 조리사가 서울에 상주하며 직접 조리한다고 하니 마침내 냉면 본고장 평양의 옥류관 냉면맛을 보게 됐다.92년 9월 제8차 총리회담 지원단원으로 평양을 방문했을 때 옥류관 냉면맛을 잊지 못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남다른 감회가 크다. 이번 서울분점 개설은 남북교역업체인 ㈜옥류관과 조선옥류무역의 독점계약 체결에 따른 것이며 서울분점은 북한측에 상표이용과 기술을 제공받는 대가로 매출액의 1.5%를 로열티로 지불하기로 했다.또한 북한당국은 상호(商號)이용 권리를 명백히 하기 위해 우리 특허청에 상표등록까지 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비록 냉면분점 개설이라는 작은 부분이지만 남북경제협력의 형식과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성과로 여겨진다.서울에 북한 영업점이 들어서는 것은 이번 옥류관 서울분점이 처음으로 남북교류 활성화에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더욱이 아무런 협의채널이 없는 상황에서‘남북간 지적재산권 보호’ 문제에 대한 돌파구를 열게 됐다는점을 고려하면 서울분점 개설은 값진 의미로 평가된다.냉면 사리와 육수의원활한 공급을 위해 평양에 식품공장을 설립하고 양강도에 메밀 계약재배 농장을 만드는 방안까지 북측과 협의하고 있어 단순한 냉면분점 이상의 남북교류 효과도 갖는다.이번 옥류관 냉면분점 개설은 민족음식인 냉면을 분단민족이 같이 맛봄으로써 단일민족의 공감대를 다지고 남북한 음식문화 교류의 물꼬를 트게 됐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특히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이 반세기 전에 먹었던 평양냉면을 직접 먹어볼 수 있어 망향의 그리움을 덜어주는 정서적 효과도 기대된다.고향은 갈수없어도 고향냉면을 먹으면서 향수를 달랠 수 있기 때문에 실향민들에게 인기가 대단할 것으로 예상된다.우리의 전통혼례에서 국수가락을먹는 것은 국수가 갖는 화합동류(同類) 의식의 친밀성 때문이다.지난 69년 미·중 관계를작은 탁구공으로 뚫었듯이 냉면가락에 남북관계 개선과 화합을 위한 한가닥기대를 거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평양 옥류관 냉면의 서울 등장이 민족정서 복원과 화해와 화합의 상징적 이정표가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평양 옥류관 냉면 서울서 맛본다

    평양냉면 전문점으로 북한 최고의 음식점으로 평가받는 평양옥류관의 냉면맛을 서울에서도 맛볼 수 있게 됐다. 조총련계 기업의 중개를 통해 평양옥류관과 분점개설 계약을 체결한 주식회사 옥류관(대표이사 김영백)은 3일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823번지에 옥류관서울점 개점식을 갖고 4일부터 정상영업을 시작한다. 옥류관 서울점에서는 평양냉면을 비롯해 평양온반,평양불고기 등 약 20여종의 메뉴가 제공된다.메밀을 비롯한 식자재와 식당운영에 필요한 수저,냉면그릇 등 집기류,비품,소모품 등은 모두 북한에서 직반입했다.평양옥류관에서수차례 조리기술을 연수받은 재일교포 박수남(43)씨가 주방고문역을 맡아 평양옥류관 냉면의 진수를 선보인다. 구본영기자 kby7@
  • 평양상업동문/황씨 서울도착 축하모임

    ◎30여명은 격려 비디오테이프·편지 보내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서울에 안착한지 이틀째인 21일 황씨의 평양상업 동문 6명은 낮 1시쯤 서울 중구 광희동 평안면옥 식당에 모여 평양냉면을 들며 황씨의 67일간에 걸친 숨막히는 여정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을 축하했다. 이들은 동기·선배·스승이었던 인간 「황장엽」을 곧 만날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뜬 표정이었다. 동문들은 이 모임에서 평상 동창회를 오는 5월17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기로 결정했다. 다만 황씨를 동창회에 어떻게 참석시키느냐는 것이 문제였다. 황씨의 1년 후배인 평상동창회장 임노춘씨(73·8회)는 『황선배와 소주잔이라도 한번 기울여야 수십년 간의 회포가 풀릴 것이라는 게 200여 국내 거주 동문들의 한결같은 생각』이라고 전했다.임회장은 이어 『관계당국으로부터도 황선배를 이번 동창회에 참석시키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귀띔했다. 동창회는 황씨의 망명신청에 따른 인간적인 고독을 달래주기 위해 동창회 앨범과 졸업생 명부를 황씨가머물고 있던 중국주재 한국대사관에 보냈었다.황씨는 이를 보고 50∼60년만에 보는 동창들의 얼굴을 전부 기억해 냈다고 한다. 동창 20여명은 동창회 부회장 최재경씨(67·15회)를 통해 안부편지를 한국대사관에 보냈으며 지난달 말에는 김재순 전 국회의장 등 동창 14명의 안부인사 한마디씩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전하기도 했다. 한편 동창회는 황씨가 필리핀으로 가는 바람에 전달되지 못한 편지 5통을 이날 공개했다.편지는 대부분 평양상업시절을 회상하거나 황씨의 건강을 염려하는 애틋한 내용들로 채워졌다.
  • 이씨 승강기 내리자 괴한들 덮쳐/이한영 피격­피습 순간

    ◎소음권총 쏘고 도주… 이씨 쓰러지며 “간첩”/아파트 옆집주민 비디오폰 통해 피격순간 목격/머리·가슴에 총상… 구급차 도착땐 이미 의식불명 북한 김정일의 전 동거녀 성혜림의 조카 이한영씨는 15일 하오 서울에서 손윗 동서 오주성씨(33)와 저녁식사를 한 뒤 임시로 머물던 경기도 분당의 선배 김장현씨(44) 아파트로 돌아오다 현관 문앞에서 습격을 당했다. 이씨가 아파트 14층에 도착한 시간은 하오 9시50분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오른쪽 김씨의 1402호 문으로 향하는 순간,복도에서 대기하던 건장한 체격의 괴한 2명이 쏜살같이 달려들었다.미처 초인종을 누를 시간도 없었다. 범인들 중 한명은 바바리 코트 안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이씨의 머리를 겨누었다.소음기가 달린 권총이었다.이씨는 순간적으로 북에서 내려온 간첩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한명은 이씨를 엘리베이터 왼쪽 벽쪽으로 거세게 밀어붙이며 머리 등을 내리쳤다.이씨는 『여기서 당하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격렬히 저항했지만 살상무기를 갖춘 고도로 훈련된 범인들의 상대가 못됐다.단지 몇초간 실랑이했을 뿐 이씨는 곧 콘크리트 바닥에 내던져졌고 그의 머리와 가슴에는 권총 2발이 발사됐다.소음기 탓에 총소리는 없었지만 이씨는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 쓰러졌다.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괴한들은 계단을 타고 1층으로 내려가 지하주차장에서 승용차에 시동을 건채 대기하고 있던 다른 공범 1명과 함께 범행현장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시끄러운 소리에 1402호 김씨의 부인 남상화씨(42)와 맞은 편 1401호 주인 박종은씨(46)는 각각 비디오폰을 통해 이씨의 피격 순간을 지켜보았다.하지만 두려워 즉각 밖으로 뛰쳐나오지 못했다. 범인들이 계단 아래로 내려간 뒤 남씨와 박씨는 문밖으로 달려나왔다.이씨는 『누가 이랬느냐』는 남씨의 물음에 손가락 두개를 펴보이며 『간첩,간첩』이라고 말했다.구급차가 도착했을때는 이미 의식불명 상태였다. 지난해 11월부터 김씨의 집에서 지내온 이씨는 이날 하오 9시쯤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남씨에게 『지금 막 집으로 출발했다』고 핸드폰으로 알려왔다.그 무렵 남씨에게는 『예전에 이씨와 함께 근무했던 「모 여성지」 기자』라며 이씨의 귀가시간을 확인하는 괴전화가 걸려왔다.10일전에도 전화국 직원이라며 가입자와 설치장소를 묻는 수상한 전화가 걸려왔다. 이날 상오에는 수화기를 들면 응답없는 전화가 여러차례 걸려왔다. 이씨는 이에 앞서 이날 하오 7시쯤 서울 강남구 논현동 노보텔앰베서더 호텔 커피숍에서 동서 오씨를 만났다.이들은 평양냉면과 이북만두로 저녁식사를 한 뒤 하오 9시쯤 식당을 나왔다.식사중 황장엽비서의 망명과 관련해 어머니와 이모(성혜림씨) 이야기를 많이 했던 이씨는 여흥이 남았던지 『소주나 한잔 더 하자』고 청했으나 오씨는 『몸이 피곤하다』며 거절,헤어졌다. □테러·피습 일지 ▲78년 1·7월=최은희·신상옥 부부 홍콩서 납치. ▲79년=전 수도여고 교사 고상문씨 유럽연수중 노르웨이서 북에 납치. ▲82년2월=최재근 주 우간다 대사관 서기관 무장괴한으로부터 총격받아 부상. ▲86년1월=도재승 주 레바논 대사관 서기관 무장괴한에게 피랍. ▲94년10월=대우 강대현씨 알제리에서 회교원리주의자들에게 피살. ▲94년10월=한국전자계산 강상보씨 홍콩에서 강도와 경찰의 총격전 도중 경찰의 총탄에 맞아 사망. ▲95년3월=이수존 주 대만대표부 서기관 괴한으로부터 피습받아 목에 자상 입음. ▲95년7월=순복음교회 목사 안승운씨 중국 연길서 북한요원으로 보이는 청년들에게 납북. ▲96년8월=기아자동차 기술훈련원 원장 박병현씨 중국 연길서 괴한에게 테러당해 사망. ▲96년10월=최덕근 주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 영사 피살. ▲97년2월=김정일 전 동거녀 성혜림씨 조카 이한영씨 권총 피격.
  • 황 선생님 무사히 오시길/평양상업 14회 동창회 “서울안착”기원

    『황선생님이 무사히 서울에 오시길 기원하며 건배』 14일 하오 1시 서울 중구 을지로3가 평양냉면으로 잘 알려진 을지면옥 2층.북한 황장엽 비서가 교편을 잡았던 평양상업학교의 제자이자 후배인 14회 졸업생 1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두달에 한번 열리는 동창회의 화제는 단연 황선생님 얘기였다. 이 학교 7회 졸업생인 황비서는 일본 중앙대학을 졸업한 뒤 지난 46년부터 48년까지 모교에서 14·15회 졸업생들에게 주산과 경제학을 가르쳤다.현재 남한에는 제자 36명이 살고 있다. 김호균씨(69)는 『황선생님은 말수가 적었고 수업시간 외엔 항상 숙직실에서 기거하며 책과 씨름했던 전형적인 학자였다』고 회고했다.이현섭씨(70·한양대 재단이사)는 『철학을 공부했던 황선생님은 일본 유학 이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인정하기 시작했지만 전형적이 민족주의자였다』고 말했다. 제자들은 학창시절의 앨범을 들추며 어렴풋한 옛 추억을 떠올렸다. 평양상업에서 황비서와 함께 교사생활을 한 박리석씨(79)는 황비서를 대단한 독서광으로 기억했다.기숙사에서 하루에 서너시간밖에 잠을 자지 않으면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나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소주잔이 몇 순배 돌았을때 누구의 입에선가 「까꾸로(거꾸로) 참외」이야기가 나오자 한바탕 웃음이 쏟아졌다.이마가 넓고 턱부분이 좁은 황비서의 얼굴이 마치 참외를 거꾸로 세워 놓은 모습이어서 지은 별명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무사히 서울에 오셔야 할텐테…』라며 한결같이 걱정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