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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은 희소병 앓다가…5일 차로 남편 따라 세상 떠난 아내

    같은 희소병 앓다가…5일 차로 남편 따라 세상 떠난 아내

    낭포성 섬유증이라는 치명적인 유전성 폐질환에 시달려온 한 젊은 여성이 최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같은 유전병을 앓고 있던 동갑 남편을 잃은 지 불과 5일 만의 일이어서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 같은 사연의 주인공은 미국 켄터키주(州) 플레밍스버그에 살았던 케이티 프레이저(26)다. 부부의 죽음은 너무 이른 것이었다. 낭포성 섬유증 환자의 ‘중앙 생존 기간’(100명의 환자가 있으면 생존 순위 50번째 환자 생존 기간)이 40세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직도 십수 년을 충분히 더 살 수 있었다. 케이티와 남편 돌턴은 2011년 결혼했다. 이후 남편은 2014년 폐 이식 수술을 받게 되면서 간호를 받기 위해 친부모가 있는 세인트루이스 교외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생이별을 하게 된 것. 그렇게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은 지난 7월 결혼 5주년을 맞이하게 됐다. 이때 이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영상 통화로 결혼 기념일을 축하할 수밖에 없었다. 돌턴은 지난 주말 사망 전까지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아내를 만나길 원했다. 하지만 지난해 폐 이식 수술을 받은 케이티 역시 림프종이 생겨 플레밍스버그에 있는 한 호스피스 병원에서 지내야만 했다. 이때 케이티의 첫 번째 소원은 결코 이뤄질 수 없었던 남편의 방문이었다. 가족은 그런 케이티를 위해 17일 이른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돌턴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전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고 한다. 케이티 역시 자기 죽음을 직감한 듯 “곧 그를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케이티의 어머니 데브라 도너번은 페이스북에 “22일 이른 아침, 그녀는 자신이 원하던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 우리 가족과 반려견이 보는 가운데 평안하게 잠들었다”고 밝혔다. 또한 “돌턴은 물론 먼저 세상을 떠난 두 할머니와 여러 가족과 친구들이 두 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케이티는 남편이 떠나는 날 페이스타임을 통해 작별 인사를 했다. 이때 그녀는 자기 죽음 역시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집에서 간호를 받고 있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케이티의 어머니는 내 딸은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그녀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생전에 케이티는 자신의 남편에 대해 오랫동안 힘든 싸움을 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질병과 용감하게 싸웠고 그의 사전에 포기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돌턴의 병세는 악화됐고 사망하기 2주 전부터 산소호흡기에 배치된 중환자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케이티의 가족들은 돌턴이 켄터키로 날아와 케이티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회복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의 병세는 너무 심각해 이송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해서 부부는 지난 7월 16일 서로 다른 장소에서 영상 통화로 결혼 5주년을 기념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지난 2011년 페이스북을 통해 만나 결혼에 골인한 사연으로 미국 내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케이티는 낭포성 섬유증뿐만 아니라 ‘버크홀더리아 세파시아’라고 불리는 치명적인 세균에 감염돼 있었다. 이 세균은 폐에 부작용을 일으켜 심지어 치료했다고 해도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그녀와 만나게 된 또 다른 낭포성 섬유증 환자인 돌턴 역시 이 세균에 감염됐다. 사실, 의사들은 케이티가 그 세균에 감염된 것을 진단한 뒤부터 줄곧 다른 낭포성 섬유증 환자들과 접촉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녀는 의사들의 권고를 무시했다. 그리고 연인 사이가 된 돌턴에게 켄터키에 살고 있는 자신에게 와달라고 말했다. 과거 케이티는 “돌턴에게 앞으로 20년 더 살면서 그저 그런 행복을 얻는 것보다 5년을 살더다도 정말로 행복하게 산 뒤 죽길 원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2011년 두 사람이 결혼할 당시 모두 20세였다. 의사들은 케이티에게 세균이 남편에게 옮을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두 사람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돌턴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급기야 2014년 11월 폐 이식 수술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림프종까지 생겼고 이를 치료한 뒤에는 그동안 우려했던 세균에 감염돼 결국 폐렴이 생겨 입원해야만 했다. 또한 케이티 역시 건강 문제가 악화돼 폐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켄터키주에서는 이식 수술이 가능한 병원의 수가 제한적이었다. 가까스로 피츠버그대 의료센터에서 이식 수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메디케어나 메디케이드와 같은 보험이 되지 않는 커다란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이때 케이티의 건강은 지속해서 나빠졌다. 결국 그녀는 돌턴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돌턴은 병원 측에 “아내를 잃을 수 없다”면서 “이 때문에 우리의 사랑 이야기가 끝이 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는 모두 계속 싸워갈 준비가 돼 있지만 지금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제발 내 아내를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결국, 피츠버그대 의료센터는 케이티의 사례에 한해서 폐 이식 수술을 승인했다. 그리고 지난해 7월 마침내 수술이 진행됐다. 그런데 불행히도 수술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의사들은 더는 그녀를 도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급기야 케이티는 신부전으로 인해 꼭 해야 하는 투석을 제외하고는 모든 의학적 치료를 거부했다. 그녀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단지 자연스럽게 죽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제 케이티는 자기 죽음 뒤 필요한 장례 비용을 모으기 위해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유케어링’(youcaring)을 통해 모금을 시작했다. 그녀는 “단지 남겨진 모두가 걱정 없이 살길 원한다”면서 “내가 떠나더라도 가족들은 빚 걱정 없이 행복하게 지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페이스북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제주의 ‘물방울’ 시나브로 스며들다

    제주의 ‘물방울’ 시나브로 스며들다

    곶은 숲, 자왈은 가시덤불을 의미하는 제주방언이다. 숲과 가시덤불, 돌밖에 없어 쓸모없게 여겨졌던 제주의 곶자왈에 미술관이 들어서고, 예술인들이 하나둘씩 둥지를 틀면서 제주의 명소가 됐다.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에 또 하나의 특별한 미술관이 개관했다. ‘물방울 화가’ 김창열(87) 화백의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이다. 김 화백이 6·25전쟁 당시 제주에 머물렀던 인연으로 자신의 대표 작품 220점을 기증하면서 탄생한 미술관이 지난 24일 개관했다. 김 화백은 개관식에 앞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45년간 미국과 프랑스 등 여기저기 흘러다니며 살았다. 이국생활은 유배생활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어 정착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제주도가 받아줬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제주도는 풍광이 남프랑스와 비슷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 또한 흡사하다”면서 “김창열을 대변할 수 있는 작품들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시기별 대표작품들을 선별해 기증했다”고 말했다. 김 화백은 1950년대 앵포르멜 작업을 시작으로 1960년대에는 두꺼운 질감을 지닌 기하학적인 회화 작업에 전념했다가 1970년대 초부터 물방을 시리즈를 시작했다. 극사실주의 기법의 물방울 시리즈는 1972년 5월 열린 파리의 ‘살롱드메’에서 처음 선보인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 그에게 ‘물방울 작가’라는 별명을 안겼다. 화백은 “달마대사가 10년 동안 면벽 수행을 한 뒤 득도를 했지만 나는 40년을 넘게 물방울을 그렸음에도 보통 사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서 “그래도 내 이름을 가진 미술관을 지어 받았으니 달마대사 못지않은 보상을 받은 것 같다”고 감회를 밝혔다. 총사업비 92억원이 투입된 미술관은 지상 1층에 연면적 1587㎡ 규모로 기획전시실, 상설전시실과 특별전시실, 수장고 외에 교육실과 야외무대, 아트숍 등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 홍재승은 “‘신전’ 같은 모양이었으면 좋겠다는 김 화백의 생각과 대표작인 물방울, 그리고 빛을 매개로 곶자왈에 분출한 화산섬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현무암처럼 검은색의 노출콘크리트 외벽을 지닌 7개의 큰 공간이 주변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미술관은 물방울 화가의 조형세계를 상징하듯 물의 중정을 가운데에 두고 경사진 복도를 따라 올라가는 구조다. 물의 중정에는 크기가 다른 세 개의 유리 구슬로 이뤄진 김 화백의 신작 조형작품 ‘삼신’이 설치됐다. 미술관에서는 25일부터 개관 전시로 김 화백의 전반적인 작품세계를 간명하고 핵심적으로 살필 수 있도록 1964년부터 2007년까지의 작품 30여점을 소개하는 ‘존재의 흔적들’전이 열리고 있다. 1960년대 초의 앵포르멜 시기부터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까지 물방울이 형성되어온 과정을 보여주는 ‘물방울의 기원’,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회귀’연작을 중심으로 대형 작품들이 전시되는 ‘존재의 흔적들’, 한자 및 천자문 등 화면의 주제와 배경의 관계에서 더욱 풍성하고 깊이 있는 시도들을 보여주는 ‘물방울의 변주’로 구성됐다. 전시는 내년 1월 22일까지 계속된다. 초대관장을 맡은 김선희 관장은 “개관을 기념해 3개월 동안 무료로 운영된다. 이후엔 상설전시와 함께 김 선생님이 연결되는 작가들의 작품을 기획전으로 소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24일 미술관 야외특설무대에서 열린 개막식에는 김 화백과 부인 마르틴 질롱, 원희룡 제주지사,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 박서보 화백 등 국내외 문화예술관계자들과 지역 주민 등 500여명이 참석해 개관을 축하했다. 글 사진 제주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백은 6·25전쟁 후 한때 경찰직 몸담아… 60년대 비엔날레로 세계무대 입성… 1970년 파리 정착하며 창작 매진 김창열 화백은 1929년 평안남도 맹산군에서 태어났다. 붓글씨를 통해 회화를 접했고 외삼촌으로부터 데생을 배우면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해방 시기의 혼란 속에서 이쾌대 선생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워 1949년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6·25전쟁 발발로 학업을 중단하고 경찰학교에 지원해 1955년 교사자격 검정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경찰 생활을 했다. 1957년 박서보, 정창섭 등과 한국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해 앵포르멜 미술운동을 이끌면서 세계무대로 눈을 돌려 1961년 파리비엔날레, 1965년 상파울로비엔날레에 출품했다. 1966년부터 68년까지 미국아트스튜던트리그에서 판화를 공부하고 1969년 백남준의 도움으로 파리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파리에 정착하게 된다. 1970년 파리 교외의 마구간에 아틀리에와 숙소를 마련하고 창작에 매진했다. 한순간에 사라지는 삶의 본질을 물방울로 은유한 ‘밤의 행사’를 1972년 살롱드메에 출품하며 유럽 화단에 데뷔했으며 2004년 파리 주드폼 미술관에서 물방울 예술 30년을 결산하는 전시회를 가졌다.
  • ‘우결’ 출연 연예인, ‘변태 성관계 도중 사망’ 루머

    ‘우결’ 출연 연예인, ‘변태 성관계 도중 사망’ 루머

    중화권 연예계에 또 다시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가수이자 연기자인 차오런량(喬任梁)이 중추절(中秋節·추석) 연휴 기간이었던 지난 16일 오후 자신의 상하이(上海)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19일 중국 매체가 보도했다. 중국 공안은 타살 가능성은 없다는 법의학 소견과 차오런량 몸에 자해 흔적도 남아있었던 것에 비춰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 전국 높이뛰기 우승자였던 차오런량은 2005년 스타 발굴 프로그램에 참가해 우승하며 연예계에 데뷔한 이후 여러 음반과 함께 드라마에 출연해왔다. 지난해엔 중국판 ‘우리 결혼했어요’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소식이 커져나온 후, 잘 알려진 파워블로거는 “팔괴(八卦)_저는 진실만 얘기합니다”며, “차오런량은 알려진 것처럼 성 가피학증으로 죽은 것이 아니고 우울증으로 자살한 것이라며, 그것도 머린엔 비닐봉지를 쓰고 스스로 답답한 죽음을 택한 것”이라고 재차 폭로했다. 차오런량의 매니저는 웨이신의 메신저를 통해서 이 소식을 사실로 전하며 “이 세상에서 매일 사람들이 떠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떠나가는 방법은 같지 않습니다. 이렇게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드릴 말씀은 편안히 쉬시기 바랍니다”고 했고, 차오런량의 소속사 사장도 웨이신 메신저를 통해 “가시는 길 평안하시기를”이라고 애도의 글을 남겼다. 반전 실제 차오런량의 자살 소식에 중국 네티즌들은 여자친구, 소속사, 연예계 동료들이 냉담한 태도를 보인다며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심지어 차오가 변태 성관계 도중 사망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北, 새달 10일 ICBM 발사 촉각… 워싱턴DC까지 타격 가능

    北, 새달 10일 ICBM 발사 촉각… 워싱턴DC까지 타격 가능

    북한이 20일 신형 정지위성 운반 로켓 엔진 지상 분출 시험 성공으로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한은 우주개발계획을 위한 장거리 로켓 실험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상 핵탄두를 탑재한 ICBM을 확보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대응하고 미국을 상대로 핵공격 위협을 가하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북한이 오는 10월 10일 노동당 창당 기념일을 전후해 ICBM 발사를 통한 무력시위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날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을 직접 방문해 엔진 지상 분출 시험 현지지도에 나섰다고 전했다. 김정은의 이번 시찰은 지난 9일 제5차 핵실험 이후 첫 군사 행보다. 이번 엔진 시험은 5차 핵실험 성공과 함께 ICBM 완성을 최대한 앞당기면서 대내외적으로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로 분석된다. 특히 이날 북한이 공개한 사진에는 김정은 앞 책상에 신형 로켓 엔진을 ‘백두산 계열 80tf(톤포스)급 액체로케트’라고 명명한 도면이 놓여 있었다. 조선중앙TV도 “새로 개발한 대출력 발동기(엔진)는 단일 발동기로서 추진력은 80tf”라고 발표했다. 1단 로켓 추진체가 4개의 엔진으로 구성되는 점을 감안하면 추력이 320tf임을 의미한다. 지난 2월 7일 쏘아 올린 ‘광명성 4호’ 1단 로켓 추진체의 파워는 30tf 규모의 엔진 4개를 묶은 120tf였다. 1단 로켓 추진체의 추력이 7개월 만에 2.7배 정도 향상된 것이다. 광명성 4호 사거리가 1만 2000㎞ 정도로 추정되는 것을 감안하면 미국 워싱턴DC까지 타격이 가능하다. 북한의 ICBM용 장거리 로켓은 3단 로켓으로, 1단은 엔진 4개를 묶어 추력을 높이고, 2단은 엔진 1개, 3단은 그보다 추력이 낮은 엔진을 사용한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80tf짜리 엔진 4개를 엮어 320tf 출력의 엔진을 단다면 미국 본토 어디로든 날릴 수 있는 충분한 위력의 ICBM을 개발할 수 있게 된다”면서 “이 정도의 출력이면 1t 이상의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어 소형화할 필요도 없으며 복수의 탄두를 넣은 다탄두도 탑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도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에 사용될 수 있는 고출력 신형 엔진을 성능 실험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조동빈 애국지사 숨진 채 발견…아파트서 투신 추정

    조동빈 애국지사 숨진 채 발견…아파트서 투신 추정

    광복군에서 활동했던 애국지사 조동빈(92)옹이 거주하던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조 옹이 투신한 것으로 보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20일 충남 천안동남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55분쯤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조동빈 옹이 거주하는 아파트 화단에서 조 옹이 쓰러진 채 발견됐다. 조 옹은 천안지역의 유일한 생존 독립운동가다.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원이 조 옹을 병원으로 옮겼으나 결국 숨졌다. 경찰은 조 옹이 숨지기 전 아파트 10층 복도 난간에 걸터 앉아 있었다는 주민의 진술을 토대로 조 옹이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주민이 조 옹이 아파트 난간에 걸터앉아있다고 119에 신고했으나, 구급대가 도착하기 전 몸을 던진 것으로 보인다”며 “가족 등을 상대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천안시 관계자는 “조 옹은 평소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크셨던 분으로 공로 대부분이 인정돼 월 250만원 가량의 연금을 받으며 부인과 함께 지내며 경제적으로 어렵게 생활하지는 않으셨다”면서 “다만, 주위 분들이 모르는 개인적인 고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만 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안타까워 했다. 조옹은 1924년 평안남도 평양 출생으로 일본 도쿄에서 중학교에 다니다 강제징용을 거부하고 1945년 상하이로 건너 가 광복군에 입대해 대한독립애국단 결성과 임시정부 선전, 재정자금 조달,게릴라 임무 수행 등을 했다. 조 옹은 이같은 공훈을 인정받아 1963년 대통령표창과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92세 애국지사의 투신, 왜?

    천안지역의 유일한 생존 애국지사인 조동빈옹(92)이 20일 오후 3시 55분쯤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소재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조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조 옹은 이날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화단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주민의 신고를 받은 119 구급대원이 조 옹을 인근 병원으로 옮겨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경찰은 조 옹이 숨지기 전 아파트 10층 복도 난간에 걸터 앉아 있었다는 주민의 신고내용을 토대로 조옹이 119 구급대가 도착하기 전 스스로 뛰어내려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천안동남경찰서 관계자는 이와 관련,“유서 등 투신의 정황을 파악 할 수 있는내용은 발견 되지 않았다”며 “주변인과 가족들을 상대로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천안시 관계자는 “조 옹은 평소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크셨던 분으로 공로 대부분이 인정돼 월 250만원 가량의 연금을 받으며 부인과 함께 지내며 경제적으로 어렵게 생활하지는 않으셨다”면서 “다만, 주위 분들이 모르는 개인적인 고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만 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안타까워 했다. 한편 조옹은 1924년 평안남도 평양 출생으로 일본 도쿄에서 중학교에 다니다 강제징용을 거부하고 1945년 상하이로 건너 가 광복군에 입대해 대한독립애국단 결성과 임시정부 선전, 재정자금 조달,게릴라 임무 수행 등을 했다. 조 옹은 이같은 공훈을 인정받아 1963년 대통령표창과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우결’ 출연 연예인, ‘변태 성관계 도중 사망’ 루머까지..

    ‘우결’ 출연 연예인, ‘변태 성관계 도중 사망’ 루머까지..

    중화권 연예계에 또 다시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가수이자 연기자인 차오런량(喬任梁)이 중추절(中秋節·추석) 연휴 기간이었던 지난 16일 오후 자신의 상하이(上海)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19일 중국 매체가 보도했다. 중국 공안은 타살 가능성은 없다는 법의학 소견과 차오런량 몸에 자해 흔적도 남아있었던 것에 비춰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 전국 높이뛰기 우승자였던 차오런량은 2005년 스타 발굴 프로그램에 참가해 우승하며 연예계에 데뷔한 이후 여러 음반과 함께 드라마에 출연해왔다. 지난해엔 중국판 ‘우리 결혼했어요’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소식이 커져나온 후, 잘 알려진 파워블로거는 “팔괴(八卦)_저는 진실만 얘기합니다”며, “차오런량은 알려진 것처럼 성 가피학증으로 죽은 것이 아니고 우울증으로 자살한 것이라며, 그것도 머린엔 비닐봉지를 쓰고 스스로 답답한 죽음을 택한 것”이라고 재차 폭로했다. 차오런량의 매니저는 웨이신의 메신저를 통해서 이 소식을 사실로 전하며 “이 세상에서 매일 사람들이 떠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떠나가는 방법은 같지 않습니다. 이렇게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드릴 말씀은 편안히 쉬시기 바랍니다”고 했고, 차오런량의 소속사 사장도 웨이신 메신저를 통해 “가시는 길 평안하시기를”이라고 애도의 글을 남겼다. 반전 실제 차오런량의 자살 소식에 중국 네티즌들은 여자친구, 소속사, 연예계 동료들이 냉담한 태도를 보인다며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심지어 차오가 변태 성관계 도중 사망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구르미그린달빛, ‘홍경래의 난’ 여식 김유정이었다 ‘박보검과 원수지간’

    구르미그린달빛, ‘홍경래의 난’ 여식 김유정이었다 ‘박보검과 원수지간’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홍경래의 난이 등장해 화제다. 홍라온(김유정 분)은 바로 효명세자 이영(박보검 분)의 모친 죽음과 연관된 홍경래의 딸이었다. 13일 방송된 KBS2 ‘구르미 그린 달빛’ 8회에에서는 이영이 호위무사인 김병연(곽동연)에게 홍경래의 여식을 찾으라고 지시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구르미 그린 닻빛’에서 이영은 김병연에게 “홍경래의 여식이 살아 있다는 소식이 떠돈다. 아버님의 불안증세가 더욱 심해졌다. 그를 먼저 찾아야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병연은 홍경래의 여식을 찾아 나섰고 결국 그는 홍경래 여식의 정체를 듣게 됐다. 바로 홍라온이었던 것. 실제 역사적 사건인 ‘홍경래의 난’은 조선 후기에 발생한 민란으로, 평안북도 출신의 홍경래가 중심이 돼 1811년(순조 11)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약 5개월간에 걸쳐 일어난 농민항쟁이다. 한편 홍라온이 역적의 딸인 것을 모르는 이영은 “내 앞에 있는 어여쁜 여인을 연모한다. 이젠 세상에서 가장 귀한 여인으로 대할 것이다”며 홍라온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며 두 사람의 사랑이 순탄치 않을 것이 예고돼 다음 전개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매주 월,화요일 밤 10시 방송. 사진=KBS2TV ‘구르미 그린 달빛’ 캡처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경주 역대최강 5.8 지진… 전국 공포

    경주 역대최강 5.8 지진… 전국 공포

    경북 경주 남남서쪽 8㎞ 지역에서 규모 5.8 지진이 발생했다. 기상청은 “오후 7시 44분 32초에 경북 경주시에서 규모 5.1의 지진이 발생했으며 오후 8시 32분쯤에도 같은 위치의 8㎞ 지역에서 규모 5.8 지진이 추가로 발생해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진동이 감지됐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지진으로 인해 현재까지 규모 2.0~3.0 정도의 여진이 110회 이상 발생했다. 특히 이번 지진은 1978년 기상청의 계기지진관측 이래 가장 큰 규모로 남북한 지역 통틀어 역대 가장 강한 지진이었다. 경주 지진 발생 이전 가장 강했던 지진은 1980년 1월 8일 평안북도 삭주 남서 20㎞ 지점에서 일어난 규모 5.3 지진이었다. 두 번째 발생한 규모 5.8 지진은 서울 대부분 지역에서도 감지됐다. 바다 건너에 있는 제주도 전 지역에서도 흔들림이 감지돼 소방본부에 문의가 쇄도했다. 원자력발전소를 운용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은 지진이 연속적으로 발생하자 전국 원전 가동 상태를 파악하고, 월성원전 1~4호기를 안전점검을 위해 수동 정지했다. 수동 정지는 지진 규모와 관련한 매뉴얼에 따른 것이다. 월성원전과 부지 특성이 다른 신월성 원전은 가동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국민안전처 등 관련 부처와 수석실을 통해 긴급 보고를 받은 뒤 “국민불안 해소와 피해규모 파악 등 대책에 만전을 기하라”며 “원자력발전소 등 주요 시설의 안전 확인에 만반의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내년부터 8000명 폐암 무료 검진

    내년부터 8000명 폐암 무료 검진

    암 사망률 1위… 국가 검진 포함 가정·자문형 호스피스 사업 추진 30년간 매일 한 갑씩 또는 15년간 매일 두 갑씩 담배를 피워 온 55세 이상 74세 이하 고위험 흡연자는 앞으로 폐암검진을 무료로 받을 수 있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12일 열린 국가암관리위원회에서 이런 내용의 제3차 국가 암관리 종합계획(2016~2020)을 확정했다. 정부는 우선 내년부터 8000명을 선정해 무료 폐암 검진을 먼저 받게 하고 시범사업 결과를 기반으로 폐암 검진 대상 기준과 절차를 확정해 폐암 검진을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폐암 환자 중 절반 정도인 47.3%는 암이 다른 장기에 전이된 뒤에야 암을 발견했다. 폐암이 위암·간암·대장암·유방암·자궁경부암 등 5대암처럼 국가 암 검진 대상이 아니다 보니 정기 검진을 소홀히 한 탓이다. 암이 전이되면 치료가 힘들고 재발 위험이 클 수밖에 없다. ●검진에 저선량 흉부 CT 활용 보건복지부는 55~74세 고위험흡연자 8000명을 대상으로 내년부터 무료 폐암검진을 시범 실시하고, 본 사업이 시작되면 연령대를 더 올리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복지부 중앙암등록본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3년 폐암 발생현황’에 따르면 75~79세 폐암 환자는 10만명 당 326명으로 전 연령대를 통틀어 두 번째로 많다. 다만 폐암 검진 대상 연령을 55세 미만으로 낮추진 않기로 했다. 김열 국립암센터 암관리사업부장은 “2012년 미국에서 하루에 1갑씩 30년 이상 담배를 피운 55~74세를 무작위로 선정해 저선량 흉부 컴퓨터단층촬영(CT)검진을 받게 한 결과 흉부 엑스레이로 검진을 받은 사람보다 폐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20% 낮아졌다”며 “미국 모델을 참고해 우선 연령대를 선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도 폐암 검진에 흉부 엑스레이 대신 저선량 흉부 CT를 활용하기로 했다. 저선량 흉부 CT는 일반적으로 방사선량이 10분의1 정도 낮아 해상도가 떨어지지만, 종양 같은 결절을 발견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복지부는 이번 시범사업에 드는 예산 29억원을 확보했다. 저소득층 암 환자에 대한 의료비 지원 제도를 개편하겠다는 방침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월 1만원 이하의 건강보험료를 내는 저소득층의 일반 건강검진 수검률은 2014년 기준으로 매달 10만원 이상 보험료를 내는 고소득층보다 무려 22.4% 포인트 낮다. 암 검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 암 검진을 통해 암을 발견해야만 국가가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권준욱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일반 검진을 받아 암을 발견하면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없어 불합리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며 “국가 암 검진 수검 여부와 무관하게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2018년에는 제도를 개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암 환자 지리정보시스템도 마련 시·군·구별 암 발생률을 산출해 ‘암 지도’를 만들고, 이를 통해 암 발생 군집 지역을 분석하는 암 환자 지리정보시스템도 마련한다. 암 발생의 원인을 파악하고 위험 요인을 발굴하기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치료가 어려운 말기 암 환자가 평안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호스피스 서비스 유형도 다양화한다. 현재 시범사업 중인 가정형·자문형 호스피스를 본 사업으로 추진한다. 호스피스 전문기관이 아닌 가정이나 입원 중인 일반 병원을 호스피스팀이 방문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경주 5.8 지진… 한국이 흔들렸다] 80년 평안북도 의주서 5.3 규모… 78년 이후 5.0 이상 9차례 발생

    [경주 5.8 지진… 한국이 흔들렸다] 80년 평안북도 의주서 5.3 규모… 78년 이후 5.0 이상 9차례 발생

    경북 경주에서 12일 오후 7시 44분과 오후 8시 32분에 규모 5.1과 5.8 규모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한 것은 한반도도 더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 줬다. 특히 규모 5.8의 지진은 한반도에서 발생한 지진 중 역대 가장 강력한 규모다. 지금까지는 1980년 1월 평안북도 의주에서 발생한 규모 5.3이 가장 강한 것이었다. 뒤를 잇는 지진은 2004년 5월 29일 경북 울진 남동쪽 74㎞ 해역에서 발생한 규모 5.2의 지진이다. 앞서 1978년 9월 16일에도 경북 상주 북서쪽 32㎞ 지역에서 이와 같은 5.2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2014년 4월 1일 충남 태안 서격렬비도 북서쪽 100㎞ 해역에서 발생한 규모 5.1 지진의 순위는 4위였지만 5위가 됐다. 이날 규모 5.8 지진이 나기 직전인 오후 7시 44분 경주 인근에서 1차로 발생한 지진도 규모 5.1로 역대 5위인 ‘역대급’인 셈이다. 이 때문에 두 차례 지진은 경북은 물론 경남과 충남, 충북, 대전, 제주, 부산, 강원, 서울 등 전국에서 강한 진동이 감지됐다. 앞서 7월 5일 오후 8시 33분쯤에는 울산 동구 동쪽 52㎞ 해상에서도 규모 5.0의 지진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발생한 지진의 위력은 우리나라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1978년 이후 역대 5위급 규모의 강진이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환태평양 조산대에서 벗어나 유라시아판 내부에 있어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지진의 빈도와 강도는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지진 관측이 시작된 1978년부터 지난해까지 발생한 지진 횟수는 총 1212차례다. 이 중 1978년부터 1999년까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규모 2.0 이상 지진은 연평균 19.2회였지만 2000년대 들어 평균 47.8회로 늘었다. 특히 2013년에는 급격히 늘어 한 해에만 93회가 발생하기도 했다. 2010년 이후 통계만 보면 규모 3.0 이상 지진만 해도 59회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10번은 규모 3.0 이상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규모 5.0 이상은 지난 7월 울산 해역에서 발생한 지진을 포함해 모두 7차례나 된다. 이번 두 차례 지진을 포함하면 모두 9차례다. 2000년 이후부터 보면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이번을 포함해 4차례나 발생했다. 2년 전인 2014년 4월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규모 5.1의 지진이 일어났다. 전국 지진 발생 횟수는 1980년대 157회, 1990년대 255회, 2000년부터 2015년까지는 772회로 발생률이 급격히 늘고 있다. 울산의 경우 1990년대에는 12회, 2000년부터 2010년까지는 6번 지진이 발생했지만 2011년부터 올해까지 6년간은 23회나 된다.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역사 지진기록과 계기 지진기록을 이용해 계산한 결과, 한반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지진 규모는 최대 7.5로 추정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단층에 비해 작지만 그렇다고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장담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경주 역대최강 5.8 지진… 전국 공포

    경주 역대최강 5.8 지진… 전국 공포

    서울·제주도서 진동, 불안에 떨어 월성 원전 1~4호기 수동 정지 朴대통령 “국민불안 해소 만전을” 경북 경주 남남서쪽 8㎞ 지역에서 규모 5.8 지진이 발생했다. 기상청은 “오후 7시 44분 32초에 경북 경주시에서 규모 5.1의 지진이 발생했으며 오후 8시 32분쯤에도 같은 위치의 8㎞ 지역에서 규모 5.8 지진이 추가로 발생해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진동이 감지됐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지진으로 인해 현재까지 규모 2.0~3.0 정도의 여진이 110회 이상 발생했다. 특히 이번 지진은 1978년 기상청의 계기지진관측 이래 가장 큰 규모로 남북한 지역 통틀어 역대 가장 강한 지진이었다. 경주 지진 발생 이전 가장 강했던 지진은 1980년 1월 8일 평안북도 삭주 남서 20㎞ 지점에서 일어난 규모 5.3 지진이었다. 두 번째 발생한 규모 5.8 지진은 서울 대부분 지역에서도 감지됐다. 바다 건너에 있는 제주도 전 지역에서도 흔들림이 감지돼 소방본부에 문의가 쇄도했다. 원자력발전소를 운용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은 지진이 연속적으로 발생하자 전국 원전 가동 상태를 파악하고, 월성원전 1~4호기를 안전점검을 위해 수동 정지했다. 수동 정지는 지진 규모와 관련한 매뉴얼에 따른 것이다. 월성원전과 부지 특성이 다른 신월성 원전은 가동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국민안전처 등 관련 부처와 수석실을 통해 긴급 보고를 받은 뒤 “국민불안 해소와 피해규모 파악 등 대책에 만전을 기하라”며 “원자력발전소 등 주요 시설의 안전 확인에 만반의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이주의 어린이 책] 조선 선비들이 풀어낸 이야기 보따리

    [이주의 어린이 책] 조선 선비들이 풀어낸 이야기 보따리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한국고전번역원의 우리 고전 이야기책 6권이 출간됐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쓴 원작을 쉽고 간결하게 풀어 쓴 이야기에다 한국적인 묘사와 채색을 더했다. ‘암행어사를 따라간 복남이’(정혜원 지음)는 조선 순조 때 박내겸이 평안남도에 암행어사로 파견돼 겪은 경험을 적은 ‘서수일기’(西繡日記)가 근간이다. 서수일기에 한 차례 등장하는 복남이를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유몽인이 이야기 580편을 모은 우리나라 최초의 야담집 ‘어우야담’(於于野譚)과 성호학파의 거두인 이익이 자연을 관찰하면서 깨달은 점을 적은 ‘관물편’(觀物編)은 각각 ‘나는야, 이야기 먹는 도깨비!’(박이담 지음)와 ‘아하! 자연에서 찾은 비밀’(조경구 지음)로 새롭게 쓰였다. ‘운명아, 덤벼라!’(강민경 지음)는 두 실학자 이덕무와 박제가의 우정을 다룬 책이다. 두 사람은 모두 양반가의 서얼로 태어났으나 정조가 규장각 검서관으로 임명하면서 벼슬을 했다. ‘궁금증 풍선과 떠나는 금강산 여행’(박은정 지음)은 조선 후기 문장가인 도곡 이의현의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를 바탕으로 쓴 기행문이다. 개구쟁이 서민과 말썽꾸러기 궁금증 풍선이 도곡 할아버지와 금강산을 여행한다는 내용이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주변에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을 살핀 ‘역사 속을 달리는 서울 지하철’(김용인 지음)도 간행됐다. 종각역 근처에는 조선시대의 대표적 시장 거리인 운종가가 있었고, 종로5가역 부근에는 효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살았던 어의궁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각권 116∼206쪽. 8000원.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키다리 아저씨 대 이어 이웃 사랑…아들·딸 4600만원 상당 쌀 전달

    대구 키다리 아저씨가 대를 이어 이웃 사랑을 전하고 있다. 대구 키다리 아저씨는 2003년 추석을 앞두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20㎏들이 쌀 500포대를 어려운 이웃에 전해달라며 보내왔다. 이후 매년 추석을 앞두고 쌀을 기증했다. 쌀을 전달한 키다리 아저씨는 2014년 5월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키다리 아저씨의 아들(68)과 딸(70)이 지난 6일 쌀 10㎏짜리 2000포(4600만원 상당)를 트럭에 실어 수성구청에 전달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5t 트럭 두대에 쌀을 싣고 수성구 벙어동 수성구민운동장에서 구청 측에 전달했다. 아들은 아버지와 같이 아무런 말을 남기지 않았다. 성이 박씨로 알려진 작고한 키다리 아저씨는 평안남도 출신으로 6·25 때 월남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서문시장에서 포목상을 하며 돈을 꽤 모았다고 한다. 자신의 가게가 몇 차례 불이 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지인들의 도움으로 재기했다. 키다리 아저씨는 자신이 받은 사랑을 어려운 이웃에게 주겠다고 결심하고 쌀 기부를 해왔다고 한다. 박씨와 그의 아들이 2003년부터 올해까지 보낸 쌀은 모두 2만 6000포(시가 6억원 상당)에 이른다. 수성구는 키다리 아저씨 자녀가 보낸 쌀을 동 주민센터와 사회복지시설 등 77곳에 보내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수성구 관계자는 “어려운 사람을 돕고 자녀에게도 그렇게 살라고 가르친 고인 정신은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큰 울림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빈대떡은 물에 불린 녹두를 맷돌에 갈아 김치, 돼지고기, 숙주나물, 고사리 등을 섞어 반죽한 다음 팬에 기름을 두르고 부쳐 먹는 음식이다. 옛날에는 가난한 이들의 음식이라고 해서 빈자(貧者)떡이라 했으나, 이제는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음식이 되어 빈대(貧待)떡이 되어 버렸다. 원래 평안도, 황해도 등 이북에서 손님을 대접하던 전통음식이었으나 지금은 전국 어디서나 즐겨 먹는 국민 음식이 됐다. 지역에 따라 녹두전 또는 녹두지짐이라 불리기도 한다. “양복 입은 신~사가 요릿집 문 앞에서 매를 맞는데…돈~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엽전 열닷냥’ 등 여러 히트곡을 만들고 불렀던 가수 한복남의 데뷔곡 ‘빈대떡 신사’(1943년)의 가사다. 이렇듯 빈대떡은 어느 집에서나 쉽게 해먹는 음식으로 명절이나 잔치 때면 빠지지 않는 기본 메뉴였다. 그러나 이제는 집에서 직접 해먹는 경우가 흔치 않게 되면서 식당의 전문 메뉴로 자리잡았고, 자연히 맛집들이 등장하게 됐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종로 피맛골의 빈대떡집인 ‘열차집’을 즐겨 찾았다. 1950년대에 문을 열어 이제 환갑이 훌쩍 넘은 서민 맛집인 이 집을 1970년대 학창시절부터 다녔다. 공직에 발을 들여 놓은 후에도 퇴근길에 동료들과 자주 찾던 아지트였다. 피맛골 재개발로 2007년 문을 닫게 되었는데, 우리 부부는 신문 기사를 보고 마지막 영업날에 찾아가 오랜 친구와 헤어지는 기분으로 그 집에 이별을 고했다. 그런데 몇 년 전 종각역 옛 제일은행 뒤편 골목에서 ‘열차집’이란 낯익은 간판이 보여 달려가 봤더니 바로 그 집이었다. 옛날 주인아저씨를 만나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장소만 바뀌었지 돼지기름으로 부치는 빈대떡 맛은 지금도 일품이다. 거기에 굴과 조개젓, 양파를 곁들이면 찰떡궁합이요 금상첨화다. 게다가 전국의 유명한 막걸리를 두루 비치하고 있어 입맛대로 즐길 수 있다. 소주파라면 국물이 시원한 조개탕을 시키면 된다. 이제 아들이 맡아 하는 이 집은 작은 방 1개, 테이블 몇 개의 조그만 가게지만 필자에게는 옛 추억이 떠오르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 지금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주인아저씨에게 선물로 받은 오래되고 찌그러진 조개탕 냄비 속에는 종로통에서 마음껏 발산했던 내 젊은 날의 호연지기가 아직도 그대로 담겨 있는 듯하다. 빈대떡 맛집은 시장통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종로4가와 5가 사이에 있는 1905년에 개설한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시장인 광장시장에는 맛집이 즐비하다. 시장 골목 어귀에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는 곳이 ‘순희네 빈대떡’이다. 녹두를 맷돌로 직접 갈아 빈대떡을 부쳐내는데, 기름에 튀겨내듯이 부쳐 바삭하고 고소하다. ‘배트맨’, ‘가위손’, ‘비틀쥬스’ 등을 연출한 유명한 팀 버튼 감독이 직접 찾아 먹어 보고 극찬하기도 했다. 세종문화회관 옆 골목에도 40년 된 ‘종로빈대떡’이 있다. 가게 입구 창가에 맷돌과 큰 팬을 두고 빈대떡을 부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발길을 멈추게 한다. 고기, 해물, 굴 등 세 종류의 빈대떡이 있는데 기본이 2인분이다. 잔치국수가 싸면서도 식사로 먹을 만하다. 빈대떡은 누구나 즐기는 음식이어서 전문 가게는 물론 냉면집, 막국수집, 한식집 등에서도 메뉴로 내고 있어 주변에서 쉽게 찾아 옛 맛을 즐길 수 있다. 또 레시피를 참고하여 조금만 수고하면 집에서도 맛깔스러운 빈대떡을 맛볼 수 있다. 빈대떡과 막걸리의 소박한 상차림으로 이번 가을을 맞아볼까나.
  • [데스크 시각] 규제 ‘장벽’… 지금 누군가 울고 있다/송한수 정책뉴스부 차장

    [데스크 시각] 규제 ‘장벽’… 지금 누군가 울고 있다/송한수 정책뉴스부 차장

    ‘해와 하늘 빛이/문둥이는 서러워/보리밭에 달 뜨면/애기 하나 먹고/꽃처럼 붉은 울음을/밤새 울었다’ 서정주(1915~2000)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친일 행적이 생전 그를 옥죄었다. 작품 ‘문둥이’는 그렇지 않다. 새파랗게 젊은 20대 일제강점기 전에 탄생했다. 풀이가 여러 갈래다. 누군가는 “같잖은 속설처럼 아이 간을 빼먹은 뒤 서럽게 울었다는 표현”이라고 썼다. 어떤 이는 “처지를 한탄하며 자신을 뜯어 먹었다는 얘기로 들린다”고 한다. 그토록 큰 절망에 휩싸였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애기’에 머물렀다. 그래서 “희망(달)도 떴다가 금세 사그라졌다”고 덧붙인다. 살고자 하는 바람은 누구나 같다. 자살하려다 구조된 사람이 “살려줘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다지 않은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격언은 틀림없다. ‘자살’이 다시 화두다. 기업체를 꾸리다 장애물에 부딪혀 자살하는 숫자도 적잖다. 재도전 여지가 있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태도다. 되물을 수도 있다. 그런 용기로 세상을 살아가지 왜 그랬을까. 그러나 이런 의문은 성립하지 않는다. 절망의 크기가 솟구쳐 오르는 희망을 짓누른 게다. 보통 용기론 제 풀에 목숨을 버리지 못한다. 쉽게 놓치는 게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길목에서 느끼는 절망이 크다는 점이다. 예컨대 평소 믿었던 주변 지인의 말에서, 마지막 동아줄로 여겼던 국가 기관에서 만나는 절망은 영 다르다. 그런 장애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규제다. 오죽하면 ‘손톱 밑 가시’로 불릴까. 손톱을 해코지당하면 글자 그대로 단말마(斷末魔)라고 부를 만하다. 필자는 대학 때 겪어서 안다. 이제 ‘갈라파고스 규제’라는 말이 그만 들렸으면 좋겠다. 따지고 보면 정책도 ‘규제하느냐, 풀어 놓느냐’ 하는 문제로 줄일 수 있다. 우리나라는 남들을 앞질러 규제를 철폐한 역사를 지녔다. 백성의 아픔을 헤아린 ‘위민 정신’ 덕택이다. 이미 590년 전인 1426년 남성 공노비에게 출산휴가를 한 달이나 줬다. 숨막힐 듯 견고한 신분제에도 숨통은 터졌다는 반증으로 여겨도 괜찮다. 뒷간에 가서나 달을 올려다보며 목놓아 울었을 법한 노비들이다. 1756년엔 나무를 엮어 무겁게 얹는 ‘큰머리’를 금지했다. ‘금수저’로 태어난 덕분에 권세를 한껏 누리던 양반 계층들에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요즈음 용어를 빌리자면 적극행정의 결실이다. 130년 전인 1886년엔 노비 세습제를 아예 폐지했다. 규제란 게 없애고 나면 “여태껏 왜 그랬나”라고 의문을 품을 만큼 도드라지게 효과를 낳는 분야다. 지난해 강원 동해안에 철갑처럼 둘러쳐졌던 군 경계철책을 걷어낸 게 대표적이다. 행정자치부와 국방부 등 부처들의 협업에 힘입었다. 안보 걱정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우리 정보통신 기술로 메우고도 남았다. ‘시작이 반’이란 격언 역시 들어맞는다. 60여년에 걸친 주민들의 숙원이 거짓말처럼 시원하게 풀렸다. 규제 개혁에 100% 완성이란 없다. 따라서 시한도 없다. 규제의 그늘에 가려 억울하거나 불편한 국민은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국민들의 생채기를 보듬어 평안을 안기는 일은 국가에 주어진 책무다. 단, 개혁은 빠를수록 좋다. 누렇게 곪아 손톱이 빠지기 전에 단행하는 게 최선이다. 손톱 밑 가시를 뽑은 뒤 얼마나 후련할 것인가. onekor@seoul.co.kr
  • 없어진 줄 알았던 콜레라… 60년대 이후 치사율은 ‘뚝’

    없어진 줄 알았던 콜레라… 60년대 이후 치사율은 ‘뚝’

    감염자 80% 무증상… 주된 감염원으로 오염 식수 피하고 도마·칼 깨끗이 해야 국내에선 없어진 줄로만 알았던 콜레라균이 15년 만에 다시 나타나면서 불안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나 지카바이러스 등 신종 감염병과 달리 콜레라는 인류가 일찌감치 접해 정복한 질병이고, 적절히 치료하면 치사율이 현저히 낮아지기 때문에 그리 두려워할 일만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결핵균과 오랜 세월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선천성 면역이 생기기도 하고 치명률도 떨어졌다. 수백만 년간 공존하며 공생관계를 터득한 셈이다. 콜레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500년대 포르투갈 탐험가의 저서 ‘인도의 전설’에 등장한다. 인도 캘리컷 지역의 군대에서 심한 구토, 설사, 복통을 일으키는 질병이 유행해 2만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다. 첫 번째 대유행은 1817년 인도 벵골만 상류에 주둔하던 영국 군대에서 발생했다. 콜레라는 금세 인도 전역으로 확산했으며, 동남아시아를 거쳐 중앙아시아, 이집트, 카스피해 연안까지 전파됐다. 전 세계적인 콜레라 유행은 1817년 이후 200여년간 일곱 차례 있었다. 대륙 간 교류가 증가하며 콜레라균 확산 속도도 빨라졌다. 콜레라가 오염된 물을 통해 감염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사람은 영국의 의사 존 스노(1813~1858)다. 그전까지 콜레라는 공기로 전염되는 감염병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선 1817~1824년 콜레라가 1차 대유행을 맞았다. 1821년 ‘토하지 못하고 소변이 나오지 않는 증상인 관격을 앓거나 설사와 구토를 동반한 괴질이 발생해 열흘 사이에 1000여명이 사망했다’는 평안감사 김이교의 보고가 콜레라에 대한 조선 최초의 기록이다. 당시 조선왕조실록은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10명 중 1~2명도 살아남지 못했다”고 기록했다. 치명률이 매우 높았던 것이다. 1859년 콜레라가 두 번째 유행했을 때는 수십만 명이 사망했다. 치명률이 50%나 됐던 콜레라는 1960년대 들어오며 기세가 한풀 꺾인다. 기존의 콜레라보다 치명률이 낮은 ‘엘토르’ 콜레라균이 등장했고, 이후에는 엘토르 콜레라균이 반복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콜레라도 엘토르 콜레라다. 삼성서울병원이 발간한 ‘주간 감염병 정보’를 보면 콜레라균이 체내에 들어와 병을 일으키려면 1억~1000억 마리의 균이 필요하다. 면역력에 따라 감염 여부가 달라진다. 콜레라 감염자 중 80%는 무증상이며, 이런 무증상자들이 콜레라의 주된 감염원이 될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도 경남 거제에서 발생한 두 건의 콜레라 감염과 관련해 무증상자를 찾고 있다. 증상이 있는 사람의 80~90%는 가벼운 설사 질환을 앓고 10% 정도만 중증 증상을 보인다. 하루에 10~20ℓ가량의 수양성 설사를 하는데 생선 썩은 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난다. 수분과 전해질만 신속히 보충하면 증상이 가라앉고 항생제 치료는 중증 탈수 환자에게만 한다. 콜레라 예방법은 식중독 예방법과 똑같다. 요즘같이 더운 날에는 해산물을 날것으로 먹지 말고, 오염된 식수를 피한다. 물과 음식물은 끓이거나 익혀서 먹는 게 가장 좋다. 손 씻기도 철저히 해야 한다. 생선의 아가미 등에 묻은 균이 도마를 통해 전파될 수 있기 때문에 날 생선을 요리하는 데 쓴 도마와 칼은 깨끗이 닦아야 한다. 설사 증상이 있는 사람은 음식 조리를 해선 안 된다. 한번 콜레라에 걸린 환자도 콜레라균에 다시 노출되면 재감염될 수 있다. 콜레라균은 백신이 있지만 면역 효과가 낮아 권장하지는 않는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웃으면 복이와요” 코미디언 구봉서, 노환으로 별세…향년 90세

    “웃으면 복이와요” 코미디언 구봉서, 노환으로 별세…향년 90세

    ‘웃으면 복이 와요’로 잘 알려진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 씨가 27일 오전 1시59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고인의 막내아들은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폐렴기가 있으셔서 광복절 이후 병원에 입원하셨다. 금세 호전됐다가 다시 갑자기 혈압이 내려가면서 중환자실에서 돌아가셨다”면서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다”고 밝혔다. 평안남도 평양 출신인 구봉서는 코미디계 대부로 영화와 방송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했다. 1945년 대동상고를 졸업한 후 태평양가극단에서 악사생활을 하며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고인은 배삼룡, 곽규석, 이기동, 남철, 남성남 등과 함께 1960∼70년대 한국 코미디 전성기를 이끌며 고단한 삶에 지친 서민들을 위로했다. 특히 ‘비실이’ 배삼룡, ‘후라이보이’ 곽규석과 찰떡 콤비를 이뤄 슬랩스틱 코미디가 무엇인지 보여줬고, 악극단 시절을 거쳐 방송 시대가 열린 후에는 MBC TV ‘웃으면 복이 와요’를 통해 큰 인기를 누렸다. 방송사와 쇼무대에서 구봉서를 끌어오기 위해 막후 벌인 납치 혈투가 전설로 남아있다. 그는 인기 영화배우이기도 했다. 1956년 ‘애정파도’를 시작으로 ‘오부자’(1958), ‘부전자전’(1959), ‘오형제’(1960), ‘맹진사댁 경사’(1962),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등 4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영화배우로서도 전성기를 구가했다. 특히 대히트작인 ‘오부자’에 막둥이로 출연한 것이 계기가 돼 평생 ‘막둥이’라는 애칭으로 사랑받았다. 과거 영화 촬영 중 부상한 후유증으로 척추 질환을 앓아왔으며, 지난 2009년 1월 중순 자택 욕실에서 넘어져 뇌출혈로 의식을 잃은 뒤 뇌수술을 받았다. 6년 전부터는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했지만 나이에 비해 정정한 모습으로 매주 교회 예배에 참석했고, 지난해 3월에는 KBS 1TV ‘인순이의 토크드라마 그대가 꽃’에 출연해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기도 했다. 전성기를 함께 구가했던 동료들을 하나둘 먼저 떠나보낸 그는 2010년 2월 평생지기 배삼룡도 세상을 뜨자 “이젠 내 차례인가 싶고 너무 슬프다. 두 사람밖에 안 남았는데 한 사람이 갔으니 이젠 내 차례 아닌가”라며 눈물을 흘렸다. 2000년 MBC코미디언부문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2006년 제13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연예예술발전상, 2013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네 아들이 있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32호실에 마련됐으며, 장지는 모란공원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열린세상] 대한민국은 언제 건국되었나/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열린세상] 대한민국은 언제 건국되었나/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대한민국 건국 시기를 두고 논쟁이 일고 있다. 단순히 시기를 둘러싼 논쟁이 아니라 독립운동사에 대한 인식 문제가 바탕에 깔려 있는 문제다. 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 임시헌장(법)’을 반포했다. 전문격인 ‘선포문’은 “한성(漢城·서울)에 기의(起義)한 지 삼십유일(三十有日)에 평화적 독립을 300여주(州)에 광복하고…임시헌장을 선포하노라”라고 밝혔다. 1919년 3·1혁명이 일어난 지 30여일 후에 상하이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했다는 것이다. 이때 ‘선서문’도 발표했는데 “(대한)민국 원년(1919) 3월 1일 아(我) 대한민족(大韓民族)이 독립을 선언”했다고 천명했다. 1919년 3월 1일 대한민국은 독립을 선언했고, 그에 따라 4월 11일 정부를 수립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서문’은 “국토광복과 방기확국(邦基確國·나라의 토대를 확실히 세움)의 대사명을 과(果·달성)하기를 자(玆·이)에 선서하노라”라고 해서 국토를 되찾아 나라의 기초를 확실히 세우는 것이 ‘대사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함으로써 이 대사명은 완성됐다. 그래서 1948년 7월 17일 제정한 제헌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했다고 규정했다.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이 아니라 1919년 3·1혁명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고, 1948년에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했다는 것이다. 1987년 개정한 현행 헌법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이를 명시했다. 일제강점기 일왕 척살에 나섰던 이봉창 의사의 ‘선서문’ 날짜는 “대한민국 13년(1931년) 12월 30일”이고, 윤봉길 의사의 선서문 날짜도 “대한민국 14년(1932년) 4월 26일”이다. 이런 독립전쟁을 계승해 1948년 8월 15일 드디어 ‘망명’의 딱지를 떼고 ‘환국정부’를 수립했던 것이다. 1948년 6월 26일 제헌국회에서 진헌식 의원은 “대한민국은 3·1혁명 투쟁을 통하여 조성된 국호이며 이 역사적 광영을 가진 국호야말로 대내적으로는 민족 통일의 기초가 되고, 대외적으로는 민족 투쟁의 긍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복 후 초대 법무장관 이인도 “(1948년) 8월 15일 이전에도 대한민국이 있었다”고 말한 것처럼 1919년 대한민국을 건국했다는 것은 모든 독립운동가들이 동의하는 개념이었다. 이를 미국과 비교해 보자. 미국은 1776년 7월 4일 필라델피아에 13개 주 대표들이 모여서 토머스 제퍼슨이 기초한 ‘독립선언서’를 선포했다. 그 후 1783년 9월 3일 파리조약에서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승인받았고, 연방의회를 구성한 후 1789년 4월 30일 조지 워싱턴을 대통령으로 하는 연방정부를 수립했다. 미국의 건국절은 언제일까? 독립을 선언한 1776년 7월 4일이다. 1919년의 임시의정원은 각 지방 인민의 대표의원으로 조직됐는데, 인구 30만명에 1인의 의원을 선출했다. 경기·경상·충청·전라·함경·평안도는 6인씩이었고, 강원·황해는 3인씩이었다. 중국·러시아·미국 교포들에게도 3명씩의 의원을 배정했다. 임시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고, 2조는 “대한민국은 임시정부가 임시의정원의 결의에 의하여 차(此)를 통치함”이었다. 임시헌장 1, 2조는 왕정이었던 ‘대한제국’이 민주공화정인 ‘대한민국’으로 발전했음을 선포한 것이었다. 1948년의 제헌국회 개회사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라고 두 차례나 ‘국가’가 아니라 ‘정부’를 수립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여타 신생독립국들처럼 1948년 건국된 것이 아니다. 수천 년 유구한 역사를 지닌 나라를 잠시 일제에 빼앗겼다가 되찾은 것이다. 작금의 건국절 운운은 독립운동사를 말살하고 친일파들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1948년 건국절 제정 시도는 대한민국 헌법과 독립운동사를 부정하고, 선열을 모독하며 국론을 분열시키는 것으로 백해무익하다. 즉각 중단돼야 마땅하다.
  • “김정은, SLBM 2~3발 쏠 잠수함 지시”

    “김정은, SLBM 2~3발 쏠 잠수함 지시”

    北 동창리 로켓발사장 경비 강화 정황 “핵무기 고도화 위한 추가 도발 가능성” 최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에 성공한 북한이 SLBM 2~3발을 탑재할 수 있는 신형 잠수함 개발에 나서는 한편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있는 서해 로켓 발사장에 대한 경비를 강화하는 등 추가 도발을 준비하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북한의 SLBM 시험 발사 성공 이후 핵무기 고도화를 위한 후속작업에 나설 경우 한반도 안보 위협은 더욱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26일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옛 소련으로부터 3000t급 수준의 잠수함을 들여와 신포급 잠수함(2000t급)으로 개조해 SLBM을 한 발 장착했다. 하지만 북한은 SLBM 기술 개발에 성공함에 따라 2~3발 이상을 장착할 수 있는 신형 잠수함 개발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도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인 2018년 9월 9일까지 SLBM 발사관을 2~3개 갖춘 신형 잠수함을 만들라는 지시를 했다고 도쿄신문이 이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해 6월 22일 중거리탄도미사일 무수단 발사 직후 과학자들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 개최한 연회에서 2018년까지 신형 잠수함을 개발하도록 지시했다. 또 김 위원장은 리만건 당 부위원장(군수공업부장)에게 “(신형 잠수함 개발에) 성공하면 (리 부위원장의) 동상을 세워 주겠다”는 발언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미국의 북한 전문가 조지프 버뮤데스는 25일(현지시간) 북한전문매체 38노스를 통해 “북한이 동창리 로켓 발사장과 주변 지역에 대한 경비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버뮤데스는 “경비 강화가 발사장 시설 건축 계획과 연관돼 있으며 조만간 국가우주개발국(NADA)과 보위사령부(KPA) 소속 과학자, 엔지니어들이 더 배치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발사장 주변 지역 출신 탈북자 등을 통해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군 관계자는 “동창리의 여러 변화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북한이 신포급보다 규모가 큰 잠수함을 만든다는 정보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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