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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다리 아저씨 대 이어 이웃 사랑…아들·딸 4600만원 상당 쌀 전달

    대구 키다리 아저씨가 대를 이어 이웃 사랑을 전하고 있다. 대구 키다리 아저씨는 2003년 추석을 앞두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20㎏들이 쌀 500포대를 어려운 이웃에 전해달라며 보내왔다. 이후 매년 추석을 앞두고 쌀을 기증했다. 쌀을 전달한 키다리 아저씨는 2014년 5월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키다리 아저씨의 아들(68)과 딸(70)이 지난 6일 쌀 10㎏짜리 2000포(4600만원 상당)를 트럭에 실어 수성구청에 전달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5t 트럭 두대에 쌀을 싣고 수성구 벙어동 수성구민운동장에서 구청 측에 전달했다. 아들은 아버지와 같이 아무런 말을 남기지 않았다. 성이 박씨로 알려진 작고한 키다리 아저씨는 평안남도 출신으로 6·25 때 월남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서문시장에서 포목상을 하며 돈을 꽤 모았다고 한다. 자신의 가게가 몇 차례 불이 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지인들의 도움으로 재기했다. 키다리 아저씨는 자신이 받은 사랑을 어려운 이웃에게 주겠다고 결심하고 쌀 기부를 해왔다고 한다. 박씨와 그의 아들이 2003년부터 올해까지 보낸 쌀은 모두 2만 6000포(시가 6억원 상당)에 이른다. 수성구는 키다리 아저씨 자녀가 보낸 쌀을 동 주민센터와 사회복지시설 등 77곳에 보내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수성구 관계자는 “어려운 사람을 돕고 자녀에게도 그렇게 살라고 가르친 고인 정신은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큰 울림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빈대떡은 물에 불린 녹두를 맷돌에 갈아 김치, 돼지고기, 숙주나물, 고사리 등을 섞어 반죽한 다음 팬에 기름을 두르고 부쳐 먹는 음식이다. 옛날에는 가난한 이들의 음식이라고 해서 빈자(貧者)떡이라 했으나, 이제는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음식이 되어 빈대(貧待)떡이 되어 버렸다. 원래 평안도, 황해도 등 이북에서 손님을 대접하던 전통음식이었으나 지금은 전국 어디서나 즐겨 먹는 국민 음식이 됐다. 지역에 따라 녹두전 또는 녹두지짐이라 불리기도 한다. “양복 입은 신~사가 요릿집 문 앞에서 매를 맞는데…돈~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엽전 열닷냥’ 등 여러 히트곡을 만들고 불렀던 가수 한복남의 데뷔곡 ‘빈대떡 신사’(1943년)의 가사다. 이렇듯 빈대떡은 어느 집에서나 쉽게 해먹는 음식으로 명절이나 잔치 때면 빠지지 않는 기본 메뉴였다. 그러나 이제는 집에서 직접 해먹는 경우가 흔치 않게 되면서 식당의 전문 메뉴로 자리잡았고, 자연히 맛집들이 등장하게 됐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종로 피맛골의 빈대떡집인 ‘열차집’을 즐겨 찾았다. 1950년대에 문을 열어 이제 환갑이 훌쩍 넘은 서민 맛집인 이 집을 1970년대 학창시절부터 다녔다. 공직에 발을 들여 놓은 후에도 퇴근길에 동료들과 자주 찾던 아지트였다. 피맛골 재개발로 2007년 문을 닫게 되었는데, 우리 부부는 신문 기사를 보고 마지막 영업날에 찾아가 오랜 친구와 헤어지는 기분으로 그 집에 이별을 고했다. 그런데 몇 년 전 종각역 옛 제일은행 뒤편 골목에서 ‘열차집’이란 낯익은 간판이 보여 달려가 봤더니 바로 그 집이었다. 옛날 주인아저씨를 만나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장소만 바뀌었지 돼지기름으로 부치는 빈대떡 맛은 지금도 일품이다. 거기에 굴과 조개젓, 양파를 곁들이면 찰떡궁합이요 금상첨화다. 게다가 전국의 유명한 막걸리를 두루 비치하고 있어 입맛대로 즐길 수 있다. 소주파라면 국물이 시원한 조개탕을 시키면 된다. 이제 아들이 맡아 하는 이 집은 작은 방 1개, 테이블 몇 개의 조그만 가게지만 필자에게는 옛 추억이 떠오르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 지금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주인아저씨에게 선물로 받은 오래되고 찌그러진 조개탕 냄비 속에는 종로통에서 마음껏 발산했던 내 젊은 날의 호연지기가 아직도 그대로 담겨 있는 듯하다. 빈대떡 맛집은 시장통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종로4가와 5가 사이에 있는 1905년에 개설한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시장인 광장시장에는 맛집이 즐비하다. 시장 골목 어귀에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는 곳이 ‘순희네 빈대떡’이다. 녹두를 맷돌로 직접 갈아 빈대떡을 부쳐내는데, 기름에 튀겨내듯이 부쳐 바삭하고 고소하다. ‘배트맨’, ‘가위손’, ‘비틀쥬스’ 등을 연출한 유명한 팀 버튼 감독이 직접 찾아 먹어 보고 극찬하기도 했다. 세종문화회관 옆 골목에도 40년 된 ‘종로빈대떡’이 있다. 가게 입구 창가에 맷돌과 큰 팬을 두고 빈대떡을 부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발길을 멈추게 한다. 고기, 해물, 굴 등 세 종류의 빈대떡이 있는데 기본이 2인분이다. 잔치국수가 싸면서도 식사로 먹을 만하다. 빈대떡은 누구나 즐기는 음식이어서 전문 가게는 물론 냉면집, 막국수집, 한식집 등에서도 메뉴로 내고 있어 주변에서 쉽게 찾아 옛 맛을 즐길 수 있다. 또 레시피를 참고하여 조금만 수고하면 집에서도 맛깔스러운 빈대떡을 맛볼 수 있다. 빈대떡과 막걸리의 소박한 상차림으로 이번 가을을 맞아볼까나.
  • [데스크 시각] 규제 ‘장벽’… 지금 누군가 울고 있다/송한수 정책뉴스부 차장

    [데스크 시각] 규제 ‘장벽’… 지금 누군가 울고 있다/송한수 정책뉴스부 차장

    ‘해와 하늘 빛이/문둥이는 서러워/보리밭에 달 뜨면/애기 하나 먹고/꽃처럼 붉은 울음을/밤새 울었다’ 서정주(1915~2000)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친일 행적이 생전 그를 옥죄었다. 작품 ‘문둥이’는 그렇지 않다. 새파랗게 젊은 20대 일제강점기 전에 탄생했다. 풀이가 여러 갈래다. 누군가는 “같잖은 속설처럼 아이 간을 빼먹은 뒤 서럽게 울었다는 표현”이라고 썼다. 어떤 이는 “처지를 한탄하며 자신을 뜯어 먹었다는 얘기로 들린다”고 한다. 그토록 큰 절망에 휩싸였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애기’에 머물렀다. 그래서 “희망(달)도 떴다가 금세 사그라졌다”고 덧붙인다. 살고자 하는 바람은 누구나 같다. 자살하려다 구조된 사람이 “살려줘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다지 않은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격언은 틀림없다. ‘자살’이 다시 화두다. 기업체를 꾸리다 장애물에 부딪혀 자살하는 숫자도 적잖다. 재도전 여지가 있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태도다. 되물을 수도 있다. 그런 용기로 세상을 살아가지 왜 그랬을까. 그러나 이런 의문은 성립하지 않는다. 절망의 크기가 솟구쳐 오르는 희망을 짓누른 게다. 보통 용기론 제 풀에 목숨을 버리지 못한다. 쉽게 놓치는 게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길목에서 느끼는 절망이 크다는 점이다. 예컨대 평소 믿었던 주변 지인의 말에서, 마지막 동아줄로 여겼던 국가 기관에서 만나는 절망은 영 다르다. 그런 장애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규제다. 오죽하면 ‘손톱 밑 가시’로 불릴까. 손톱을 해코지당하면 글자 그대로 단말마(斷末魔)라고 부를 만하다. 필자는 대학 때 겪어서 안다. 이제 ‘갈라파고스 규제’라는 말이 그만 들렸으면 좋겠다. 따지고 보면 정책도 ‘규제하느냐, 풀어 놓느냐’ 하는 문제로 줄일 수 있다. 우리나라는 남들을 앞질러 규제를 철폐한 역사를 지녔다. 백성의 아픔을 헤아린 ‘위민 정신’ 덕택이다. 이미 590년 전인 1426년 남성 공노비에게 출산휴가를 한 달이나 줬다. 숨막힐 듯 견고한 신분제에도 숨통은 터졌다는 반증으로 여겨도 괜찮다. 뒷간에 가서나 달을 올려다보며 목놓아 울었을 법한 노비들이다. 1756년엔 나무를 엮어 무겁게 얹는 ‘큰머리’를 금지했다. ‘금수저’로 태어난 덕분에 권세를 한껏 누리던 양반 계층들에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요즈음 용어를 빌리자면 적극행정의 결실이다. 130년 전인 1886년엔 노비 세습제를 아예 폐지했다. 규제란 게 없애고 나면 “여태껏 왜 그랬나”라고 의문을 품을 만큼 도드라지게 효과를 낳는 분야다. 지난해 강원 동해안에 철갑처럼 둘러쳐졌던 군 경계철책을 걷어낸 게 대표적이다. 행정자치부와 국방부 등 부처들의 협업에 힘입었다. 안보 걱정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우리 정보통신 기술로 메우고도 남았다. ‘시작이 반’이란 격언 역시 들어맞는다. 60여년에 걸친 주민들의 숙원이 거짓말처럼 시원하게 풀렸다. 규제 개혁에 100% 완성이란 없다. 따라서 시한도 없다. 규제의 그늘에 가려 억울하거나 불편한 국민은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국민들의 생채기를 보듬어 평안을 안기는 일은 국가에 주어진 책무다. 단, 개혁은 빠를수록 좋다. 누렇게 곪아 손톱이 빠지기 전에 단행하는 게 최선이다. 손톱 밑 가시를 뽑은 뒤 얼마나 후련할 것인가. onekor@seoul.co.kr
  • 없어진 줄 알았던 콜레라… 60년대 이후 치사율은 ‘뚝’

    없어진 줄 알았던 콜레라… 60년대 이후 치사율은 ‘뚝’

    감염자 80% 무증상… 주된 감염원으로 오염 식수 피하고 도마·칼 깨끗이 해야 국내에선 없어진 줄로만 알았던 콜레라균이 15년 만에 다시 나타나면서 불안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나 지카바이러스 등 신종 감염병과 달리 콜레라는 인류가 일찌감치 접해 정복한 질병이고, 적절히 치료하면 치사율이 현저히 낮아지기 때문에 그리 두려워할 일만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결핵균과 오랜 세월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선천성 면역이 생기기도 하고 치명률도 떨어졌다. 수백만 년간 공존하며 공생관계를 터득한 셈이다. 콜레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500년대 포르투갈 탐험가의 저서 ‘인도의 전설’에 등장한다. 인도 캘리컷 지역의 군대에서 심한 구토, 설사, 복통을 일으키는 질병이 유행해 2만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다. 첫 번째 대유행은 1817년 인도 벵골만 상류에 주둔하던 영국 군대에서 발생했다. 콜레라는 금세 인도 전역으로 확산했으며, 동남아시아를 거쳐 중앙아시아, 이집트, 카스피해 연안까지 전파됐다. 전 세계적인 콜레라 유행은 1817년 이후 200여년간 일곱 차례 있었다. 대륙 간 교류가 증가하며 콜레라균 확산 속도도 빨라졌다. 콜레라가 오염된 물을 통해 감염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사람은 영국의 의사 존 스노(1813~1858)다. 그전까지 콜레라는 공기로 전염되는 감염병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선 1817~1824년 콜레라가 1차 대유행을 맞았다. 1821년 ‘토하지 못하고 소변이 나오지 않는 증상인 관격을 앓거나 설사와 구토를 동반한 괴질이 발생해 열흘 사이에 1000여명이 사망했다’는 평안감사 김이교의 보고가 콜레라에 대한 조선 최초의 기록이다. 당시 조선왕조실록은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10명 중 1~2명도 살아남지 못했다”고 기록했다. 치명률이 매우 높았던 것이다. 1859년 콜레라가 두 번째 유행했을 때는 수십만 명이 사망했다. 치명률이 50%나 됐던 콜레라는 1960년대 들어오며 기세가 한풀 꺾인다. 기존의 콜레라보다 치명률이 낮은 ‘엘토르’ 콜레라균이 등장했고, 이후에는 엘토르 콜레라균이 반복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콜레라도 엘토르 콜레라다. 삼성서울병원이 발간한 ‘주간 감염병 정보’를 보면 콜레라균이 체내에 들어와 병을 일으키려면 1억~1000억 마리의 균이 필요하다. 면역력에 따라 감염 여부가 달라진다. 콜레라 감염자 중 80%는 무증상이며, 이런 무증상자들이 콜레라의 주된 감염원이 될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도 경남 거제에서 발생한 두 건의 콜레라 감염과 관련해 무증상자를 찾고 있다. 증상이 있는 사람의 80~90%는 가벼운 설사 질환을 앓고 10% 정도만 중증 증상을 보인다. 하루에 10~20ℓ가량의 수양성 설사를 하는데 생선 썩은 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난다. 수분과 전해질만 신속히 보충하면 증상이 가라앉고 항생제 치료는 중증 탈수 환자에게만 한다. 콜레라 예방법은 식중독 예방법과 똑같다. 요즘같이 더운 날에는 해산물을 날것으로 먹지 말고, 오염된 식수를 피한다. 물과 음식물은 끓이거나 익혀서 먹는 게 가장 좋다. 손 씻기도 철저히 해야 한다. 생선의 아가미 등에 묻은 균이 도마를 통해 전파될 수 있기 때문에 날 생선을 요리하는 데 쓴 도마와 칼은 깨끗이 닦아야 한다. 설사 증상이 있는 사람은 음식 조리를 해선 안 된다. 한번 콜레라에 걸린 환자도 콜레라균에 다시 노출되면 재감염될 수 있다. 콜레라균은 백신이 있지만 면역 효과가 낮아 권장하지는 않는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웃으면 복이와요” 코미디언 구봉서, 노환으로 별세…향년 90세

    “웃으면 복이와요” 코미디언 구봉서, 노환으로 별세…향년 90세

    ‘웃으면 복이 와요’로 잘 알려진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 씨가 27일 오전 1시59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고인의 막내아들은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폐렴기가 있으셔서 광복절 이후 병원에 입원하셨다. 금세 호전됐다가 다시 갑자기 혈압이 내려가면서 중환자실에서 돌아가셨다”면서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다”고 밝혔다. 평안남도 평양 출신인 구봉서는 코미디계 대부로 영화와 방송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했다. 1945년 대동상고를 졸업한 후 태평양가극단에서 악사생활을 하며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고인은 배삼룡, 곽규석, 이기동, 남철, 남성남 등과 함께 1960∼70년대 한국 코미디 전성기를 이끌며 고단한 삶에 지친 서민들을 위로했다. 특히 ‘비실이’ 배삼룡, ‘후라이보이’ 곽규석과 찰떡 콤비를 이뤄 슬랩스틱 코미디가 무엇인지 보여줬고, 악극단 시절을 거쳐 방송 시대가 열린 후에는 MBC TV ‘웃으면 복이 와요’를 통해 큰 인기를 누렸다. 방송사와 쇼무대에서 구봉서를 끌어오기 위해 막후 벌인 납치 혈투가 전설로 남아있다. 그는 인기 영화배우이기도 했다. 1956년 ‘애정파도’를 시작으로 ‘오부자’(1958), ‘부전자전’(1959), ‘오형제’(1960), ‘맹진사댁 경사’(1962),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등 4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영화배우로서도 전성기를 구가했다. 특히 대히트작인 ‘오부자’에 막둥이로 출연한 것이 계기가 돼 평생 ‘막둥이’라는 애칭으로 사랑받았다. 과거 영화 촬영 중 부상한 후유증으로 척추 질환을 앓아왔으며, 지난 2009년 1월 중순 자택 욕실에서 넘어져 뇌출혈로 의식을 잃은 뒤 뇌수술을 받았다. 6년 전부터는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했지만 나이에 비해 정정한 모습으로 매주 교회 예배에 참석했고, 지난해 3월에는 KBS 1TV ‘인순이의 토크드라마 그대가 꽃’에 출연해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기도 했다. 전성기를 함께 구가했던 동료들을 하나둘 먼저 떠나보낸 그는 2010년 2월 평생지기 배삼룡도 세상을 뜨자 “이젠 내 차례인가 싶고 너무 슬프다. 두 사람밖에 안 남았는데 한 사람이 갔으니 이젠 내 차례 아닌가”라며 눈물을 흘렸다. 2000년 MBC코미디언부문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2006년 제13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연예예술발전상, 2013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네 아들이 있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32호실에 마련됐으며, 장지는 모란공원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열린세상] 대한민국은 언제 건국되었나/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열린세상] 대한민국은 언제 건국되었나/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대한민국 건국 시기를 두고 논쟁이 일고 있다. 단순히 시기를 둘러싼 논쟁이 아니라 독립운동사에 대한 인식 문제가 바탕에 깔려 있는 문제다. 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 임시헌장(법)’을 반포했다. 전문격인 ‘선포문’은 “한성(漢城·서울)에 기의(起義)한 지 삼십유일(三十有日)에 평화적 독립을 300여주(州)에 광복하고…임시헌장을 선포하노라”라고 밝혔다. 1919년 3·1혁명이 일어난 지 30여일 후에 상하이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했다는 것이다. 이때 ‘선서문’도 발표했는데 “(대한)민국 원년(1919) 3월 1일 아(我) 대한민족(大韓民族)이 독립을 선언”했다고 천명했다. 1919년 3월 1일 대한민국은 독립을 선언했고, 그에 따라 4월 11일 정부를 수립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서문’은 “국토광복과 방기확국(邦基確國·나라의 토대를 확실히 세움)의 대사명을 과(果·달성)하기를 자(玆·이)에 선서하노라”라고 해서 국토를 되찾아 나라의 기초를 확실히 세우는 것이 ‘대사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함으로써 이 대사명은 완성됐다. 그래서 1948년 7월 17일 제정한 제헌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했다고 규정했다.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이 아니라 1919년 3·1혁명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고, 1948년에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했다는 것이다. 1987년 개정한 현행 헌법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이를 명시했다. 일제강점기 일왕 척살에 나섰던 이봉창 의사의 ‘선서문’ 날짜는 “대한민국 13년(1931년) 12월 30일”이고, 윤봉길 의사의 선서문 날짜도 “대한민국 14년(1932년) 4월 26일”이다. 이런 독립전쟁을 계승해 1948년 8월 15일 드디어 ‘망명’의 딱지를 떼고 ‘환국정부’를 수립했던 것이다. 1948년 6월 26일 제헌국회에서 진헌식 의원은 “대한민국은 3·1혁명 투쟁을 통하여 조성된 국호이며 이 역사적 광영을 가진 국호야말로 대내적으로는 민족 통일의 기초가 되고, 대외적으로는 민족 투쟁의 긍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복 후 초대 법무장관 이인도 “(1948년) 8월 15일 이전에도 대한민국이 있었다”고 말한 것처럼 1919년 대한민국을 건국했다는 것은 모든 독립운동가들이 동의하는 개념이었다. 이를 미국과 비교해 보자. 미국은 1776년 7월 4일 필라델피아에 13개 주 대표들이 모여서 토머스 제퍼슨이 기초한 ‘독립선언서’를 선포했다. 그 후 1783년 9월 3일 파리조약에서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승인받았고, 연방의회를 구성한 후 1789년 4월 30일 조지 워싱턴을 대통령으로 하는 연방정부를 수립했다. 미국의 건국절은 언제일까? 독립을 선언한 1776년 7월 4일이다. 1919년의 임시의정원은 각 지방 인민의 대표의원으로 조직됐는데, 인구 30만명에 1인의 의원을 선출했다. 경기·경상·충청·전라·함경·평안도는 6인씩이었고, 강원·황해는 3인씩이었다. 중국·러시아·미국 교포들에게도 3명씩의 의원을 배정했다. 임시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고, 2조는 “대한민국은 임시정부가 임시의정원의 결의에 의하여 차(此)를 통치함”이었다. 임시헌장 1, 2조는 왕정이었던 ‘대한제국’이 민주공화정인 ‘대한민국’으로 발전했음을 선포한 것이었다. 1948년의 제헌국회 개회사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라고 두 차례나 ‘국가’가 아니라 ‘정부’를 수립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여타 신생독립국들처럼 1948년 건국된 것이 아니다. 수천 년 유구한 역사를 지닌 나라를 잠시 일제에 빼앗겼다가 되찾은 것이다. 작금의 건국절 운운은 독립운동사를 말살하고 친일파들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1948년 건국절 제정 시도는 대한민국 헌법과 독립운동사를 부정하고, 선열을 모독하며 국론을 분열시키는 것으로 백해무익하다. 즉각 중단돼야 마땅하다.
  • “김정은, SLBM 2~3발 쏠 잠수함 지시”

    “김정은, SLBM 2~3발 쏠 잠수함 지시”

    北 동창리 로켓발사장 경비 강화 정황 “핵무기 고도화 위한 추가 도발 가능성” 최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에 성공한 북한이 SLBM 2~3발을 탑재할 수 있는 신형 잠수함 개발에 나서는 한편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있는 서해 로켓 발사장에 대한 경비를 강화하는 등 추가 도발을 준비하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북한의 SLBM 시험 발사 성공 이후 핵무기 고도화를 위한 후속작업에 나설 경우 한반도 안보 위협은 더욱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26일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옛 소련으로부터 3000t급 수준의 잠수함을 들여와 신포급 잠수함(2000t급)으로 개조해 SLBM을 한 발 장착했다. 하지만 북한은 SLBM 기술 개발에 성공함에 따라 2~3발 이상을 장착할 수 있는 신형 잠수함 개발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도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인 2018년 9월 9일까지 SLBM 발사관을 2~3개 갖춘 신형 잠수함을 만들라는 지시를 했다고 도쿄신문이 이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해 6월 22일 중거리탄도미사일 무수단 발사 직후 과학자들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 개최한 연회에서 2018년까지 신형 잠수함을 개발하도록 지시했다. 또 김 위원장은 리만건 당 부위원장(군수공업부장)에게 “(신형 잠수함 개발에) 성공하면 (리 부위원장의) 동상을 세워 주겠다”는 발언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미국의 북한 전문가 조지프 버뮤데스는 25일(현지시간) 북한전문매체 38노스를 통해 “북한이 동창리 로켓 발사장과 주변 지역에 대한 경비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버뮤데스는 “경비 강화가 발사장 시설 건축 계획과 연관돼 있으며 조만간 국가우주개발국(NADA)과 보위사령부(KPA) 소속 과학자, 엔지니어들이 더 배치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발사장 주변 지역 출신 탈북자 등을 통해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군 관계자는 “동창리의 여러 변화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북한이 신포급보다 규모가 큰 잠수함을 만든다는 정보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20대 北청년 연평도 앞 표류···구조한 선장 “팬티만 입은 채 손 흔들어”

    20대 北청년 연평도 앞 표류···구조한 선장 “팬티만 입은 채 손 흔들어”

    24일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스티로폼을 붙잡은 채 표류하던 북한 주민을 처음 구조한 이는 조업 준비를 하던 연평도 어민이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연평도 어민 A(53)씨는 다음달 1일부터 시작될 꽃게 조업을 위한 어구를 설치하려고 이날 아침 인천 옹진군 소연평도 인근 해상으로 배를 몰았다. 선장인 A씨 외에도 선원 3명이 어선에 함께 타고 있었다. 오전 7시 10분쯤 소연평도에서 서쪽으로 2㎞가량 떨어진 해상으로 배를 모는데, 약 200m 떨어진 바다에 수상한 물체가 떠 있었다. 어선의 속도를 줄이며 다가가니 한 남성이 스티로폼을 붙잡은 채 손을 흔들었다. 다급한 마음에 A씨는 일단 바다에 빠진 사람부터 살리고 보자 싶어 선원들과 함께 남성을 어선으로 끌어올렸다. A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연평도가 북한과 가깝다 보니 구조한 다음에 곧바로 남성에게 ‘북에서 왔소’라고 물었다”면서 “처음에는 입을 딱 닫고 아무 말도 안 했다”고 말했다. 이어 A씨가 재차 물어보자 이 남성은 다소 알아듣기 힘든 북한 사투리로 대답했다. A씨는 어선을 몰고 연평도로 귀항해 이 남성을 군 당국에 인계했다. 그는 “이북 사투리를 쓰는 것을 보고 북한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면서 “팬티만 입은 차림에 비쩍 말랐다”고 기억했다. A씨가 이날 구조한 남성은 북한 주민 B(27)씨로 확인됐다. 보안당국은 B씨가 스스로 탈북했는지, 해양조난사고를 당한 것인지 등을 조사하며 귀순 의사가 있는지도 확인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연평도에서 북한과 가까운 곳은 불과 10여㎞ 떨어져 있다”며 “조류를 타고 오는 것도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7일에도 북한 주민 3명이 어선을 타고 인천 해역을 지나다가 해양경찰에 발견됐다. 평안북도에서 출발한 북한 주민들은 당시 곧바로 귀순 의사를 밝혔고, 국가정보원 합동신문센터로 넘겨져 귀순 경로 등을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co.kr
  • 피렌체 산마르코 국립미술관: 프라 안젤리코의 프로스코화가 가득

    피렌체 산마르코 국립미술관: 프라 안젤리코의 프로스코화가 가득

     갈릴리 북쪽 산악지대에 있는 나사렛 마을에서 사는 마리아는 같은 지역에서 목수로 일하는 요셉과 곧 결혼하기로 돼 있었다. 어느 날 마리아가 조용히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을 때 낯선 빛이 무릎 위에 내려 앉았다. 깜짝 놀라 올려다 보니 하나님의 사자인 대천사 가브리엘이 서 있었다.  가브리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 마리아, 하나님이 그대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너를 크게 축복하셨으니 두려워 마라. 너는 이제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다. 그는 오래 기다려 온 왕이고, 다윗 왕의 후손이며, 그의 나라는 영원하리라.”  신약성서에 기록된 예수 탄생의 일화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를 예고하는 부분이다. ‘알리다’는 뜻의 라틴어 동사 ‘아눈티아레(annuntiare)’에서 유래한 고유명사 ‘수태고지(受胎告知,Annunciation)’의 순간은 그리스도교가 정착한 5세기 이래 서구 미술의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 졌다. 날개달린 천사가 한 여인에게 무언가 말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 있다면 그 그림의 제목은 열이면 열, ‘수태고지’라고 보면 된다. 15세기 르네상스 미술에서는 특히 산드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걸출한 화가들이 ‘수태고지’를 주제로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개인적 취향의 차이는 있겠으나 지금까지 본 모든 수태고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꼽으라면 서슴치 않고 피렌체의 산마르코 수도원에 있는 프라 안젤리코(1387~1455)의 ‘수태고지’라고 답하겠다.  프라(Fra)는 수도사들의 이름 앞에 붙이는 호칭으로 ‘형제’라는 뜻이고, 안젤리코는 ‘천사같은’이라는 뜻이다. 본명이 구이도 디 피에트로인 그는 청년기에 채색 삽화가로 도제수업을 받고 화가로 활동하다가 23세에 도미니크회 수도원에 들어갔다. 깊은 신앙심을 지닌 그는 기도의 행위로서 그림을 그렸다. 채색 필사본과 제단화로 이름을 알리던 중 도미니크회가 1436년 인수한 피렌체의 산마르코 수도원의 장식화를 맡게 됐다.  산마르코 수도원은 본래 실바네스트리 수도회 소유였던 것을 코시모 데 메디치의 후원으로 재건축한 것이다. 메디치 궁을 지은 건축가 미켈레초가 1437년부터 재건축 공사를 시작해 16년만인 1452년 지금의 수도원 건물이 완성됐다. 프라 안젤리코는 1436년부터 1445년까지 이 곳에 머물며 벽화와 회랑의 프레스코화, 수도사들의 독방 프레스코화를 완성했다. 현재는 산마르코 국립박물관으로 불리지만 프라 안젤리코 미술관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수도원은 광장 쪽으로 1층에 성당이 있고 그 왼쪽으로 들어가면 큰 정원과 아치가 이어지는 성안토니오 회랑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회랑을 따라 걷다가 2층으로 올라가면 첼라(Cella)라고 하는 수사들의 독방이 42개가 있다. 프라 안젤리코는 원근법과 같은 당대의 기술과 수도사로서의 경건함과 신실함, 신학적 지식을 담아 수도원을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로 장식했다.  2층으로 가기위해 계단을 오르면 맞은 편 벽면에 ‘수태고지’가 그려져 있다. 생각보다 꽤 크고,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매혹적이고 섬세한 작품을 보는 순간 온 몸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이다.  회화의 주제로서 수태고지 장면에서 마리아의 모습은 시간적 순서에 따라 5가지 미덕의 상태로 표현된다. 천사의 출현으로 경이로워 하는 당혹한 상태, 천사의 말씀을 듣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심사숙고의 상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의 상태, 말씀을 받아들이는 순종의 상태, 마지막으로 예수를 잉태하게 되는 공로의 상태다.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는 ‘반문하고’ ‘순종하는’ 단계를 담고 있다. 조심스럽게 사실을 알리는 가브리엘의 자상한 표정과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저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습니다”라며 반문하다가 말씀을 따르겠다고 받아들이는 마리아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황금 빛이 은은하게 공간을 비치는 가운데 천사와 마리아 모두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있다. 고요하고 명상적인 분위기의 이 그림 속에 프라 안젤리코는 원죄없이 잉태가 이뤄지는 기독교 교리의 본질을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했다.  그리스도교에서 수태고지는 예수가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동시에 지닌 존재임을 나타내는 중요한 기록이었다. 또한 ‘신을 탄생하게 한 여자’로서의 마리아를 예고하는 중요한 순간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를 그림에 쓰거나 백합, 흰 수건 등으로 그려 넣어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지만 프라 안젤리코는 그런 직접적인 상징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화면에서 가브리엘과 마리아가 있는 장소로 수도원의 로지아를 그렸다. 로지아의 아치는 마리아를 상징하는 ‘M’자형이다. 프라 안젤리코는 이런 기적이 수도원에서 일어났을 것이라 상상하며 이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프라 안젤리코는 2층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수도사들의 방에 각기 다른 성서의 이야기를 프레스코화로 남겼다. 각 방에는 번호가 적혀있지만 프레스코화에 담긴 그림은 성서의 순서대로 그려져 있지는 않다. 1번 방에는 부활한 예수를 처음 발견한 마리아가 손을 잡으려 하자 예수가 “나를 잡지 마라”고 말하는 장면, 2번 방에는 죽은 예수의 시신을 가운데 두고 슬퍼하는 장면을 그린 ‘애도’, 3번 방에는 또 다른 ‘수태고지’가 그려져 있다.  어두운 복도의 양쪽으로 무거운 문이 있고 그 문을 열면 창문 하나가 외부 세계와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인 두 평 남짓한 독방이다. 이곳에서 수도사들은 성서에 나타난 수많은 기적들과 도미니크회 순교자들의 모습을 그린 프라 안젤리코의 프레스코화를 보면서 고요하게 신을 생각하고 묵상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방마다 다른 일화를 표현한 프레스코화가 있는 2층은 수도원이 폐쇄된 19세기가 되어서야 대중에게 공개됐다.  프라 안젤리코의 프레스코화 외에도 산마르코 수도원에는 유명한 그림들과 중세 수도원의 유물들이 많다. 수도원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코시모 데 메디치를 위해 북쪽 회랑 끝에 마련한 특별 기도실(39번방)에는 베노초 고촐리의 ‘동방박사의 경배’가 있다. 동방박사는 피렌체에서 선택받은 가문, 존경받는 가문, 선지자적인 가문이고 싶었던 메디치 가문의 수호성인이었다. ‘동방박사의 경배’ 속에는 피렌체의 아버지로 불리는 코시모 데 메디치와 그의 아들 피에로, 손주 로렌초 데 메디치가 그림에 등장한다. 피렌체의 인문학 아카데미에 참여하는 지식인들이 자주 모였던 아래층 수도사들의 식당(레페르토리오)에는 미켈란젤로의 스승으로 유명한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최후의 만찬’이 있다.  수도원장이었던 지롤라노 사보나롤라의 유품도 볼 수 있다. 사보나롤라는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 역사에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다. 15세기 후반은 르네상스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다. 도시는 부유했고 정치적으로도 안정되면서 사람들은 사치와 향락에 빠졌고 예술과 종교도 세속적으로 흘러갔다. 이때 산마르코 수도원장이 되어 피렌체에 입성한 사보나롤라는 광기어린 설교로 “지금 당장 청빈한 삶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죗값을 치를 것”이라고 사람들을 선동했다.  놀랍게도 로렌초 데 메디치가 사망하던 해에 프랑스의 샤를 8세가 피렌체를 침공했고 1494년 로렌초의 아들 피에로 데 메디치는 패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 도시에서 추방됐다. 사보나롤라의 추종자들은 피렌체를 장악하고 신의 이름으로 독재정치를 펼쳤고 사보나롤라는 온갖 사치스러운 것들을 시뇨리아 광장에 모아놓고 ‘허영심의 화형식’을 거행하고 성직자들의 타락을 비난하며 교황청의 개혁을 요구한다. 과격함이 극에 달하자 결국 교황청은 1497년 그를 파문하기에 이르렀다. 사보나롤라는 허영심의 화형식이 있었던 시뇨리아 광장에서 1498년 공개화형된다. 산마르코 수도원에는 사보나롤라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프라 바르톨로메오가 1508년에 그린 사보나롤라의 초상화 2점이 남아있다. 아직 사보나롤라의 이름을 올리는 것이 죄악시되던 때라 바르톨로메오는 그림에 ‘순교자 베드로’라는 제목을 붙였다.  수도원 2층 복도에는 아름다운 도서관도 있다. 아름답기만 할 뿐 아니라 세계최초의 공공도서관이라는 명예까지 안고 있는 이곳에는 수도사들이 직접 쓰고 그린 수백년 된 필사본들이 진열장을 채우고 있다. 산마르코 수도원은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연평도 해상 ‘스티로폼 표류’ 北주민 구조…탈북 여부, 귀순 의사 등 조사

    연평도 해상 ‘스티로폼 표류’ 北주민 구조…탈북 여부, 귀순 의사 등 조사

    최근 서해상으로 북한 주민 3명이 귀순한 데 이어 연평도에서도 북한 주민이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구조됐다. 2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10분쯤 인천 옹진군 소연평도 해상에서 북한 주민 A(27)씨가 스티로폼을 잡고 표류하는 것을 군 관측병이 발견했다. 때마침 이 해역을 지나던 어선이 A씨를 발견하고 약 5분 만인 오전 7시 15분쯤 A씨를 구조했다. 어선 선장 이모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침에 어구를 설치하러 배를 몰고 가는데 사람이 스티로폼을 잡고 표류하고 있어 끌어올렸다”고 구조 경위를 전했다. 이씨는 “북에서 왔느냐고 묻자 말을 안 했다”면서 “나중에 몇 마디 할 때 북한 사투리를 쓰는 것을 보고 북한 사람인 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선장은 연평도로 귀항해 군 당국에 A씨 신병을 인계했다. 보안당국은 A씨가 스스로 탈북했는지, 해양조난사고를 당한 것인지를 조사하며 귀순 의사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지난 7일에는 북한 주민 3명이 어선을 타고 인천 해역을 지나다가 해양경찰에 발견됐다. 평안북도에서 출발한 북한 주민들은 당시 곧바로 귀순 의사를 밝혔고, 국가정보원 합동신문센터로 송치돼 귀순 경로 등을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래 수년간 서해에서는 북한 주민의 귀순이 이어져 왔다. 2011년 2월 북한 주민 31명이 어선을 타고 연평도 해상으로 남하했다가 이 중 4명이 귀순하고 27명은 북한으로 돌아갔다. 또 같은 해 11월에도 북한 주민 21명이 목선을 타고 남하해 전원 귀순했다. 2014년 8월에는 북한 주민 2명이 강화군 교동도로 헤엄쳐 넘어와 귀순했고, 지난해 10월에도 북한 주민 1명이 비슷한 방식으로 교동도로 와 귀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軍, 현무 탄도미사일 대폭 보강 계획…“北 미사일 기지 대량 파괴”

    軍, 현무 탄도미사일 대폭 보강 계획…“北 미사일 기지 대량 파괴”

    군이 ‘현무’ 계열의 탄도미사일 수량을 대폭 늘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킬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에 이어 다량의 현무 탄도미사일로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무력화하는 ‘한국형 3축 체계’ 구축 작업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14일 “우리 군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고자 소위 ‘한국형 3축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면서 “3축 체계는 킬체인과 KAMD를 구축하면서 다량의 현무 계열의 탄도미사일을 확보해 대응하는 개념”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 군의 지대지 탄도미사일인 현무-2A(사거리 300㎞)와 현무-2B(사거리 500㎞), 순항미사일 현무-3(사거리 1천㎞)의 실전 배치량과 예비량을 모두 대폭 늘리게 될 것”이라며 “현무 계열의 탄도미사일을 대폭 늘리는 것은 유사시 일거에 북한 미사일 기지를 무력화시키는 차원”이라고 전했다. 즉 유사시 북한지역에 3개 벨트로 구축된 미사일 기지(수량 1천여기)를 동시에 다량의 현무 계열의 탄도미사일로 공격해 대량 파괴의 효과를 거둔다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우리 군은 내년에는 사거리 800㎞의 탄도미사일을 개발해 실전 배치할 계획이다. 2012년 10월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에 따라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연장한 데 따른 것으로, 사거리 800㎞의 탄도미사일이 실전 배치되면 경북 포항 남쪽에서 쏴도 북한의 동북쪽 끝 두만강 일대까지 타격할 수 있다. 북한 전역이 우리 군의 탄도미사일 사정권에 들어온다는 얘기다. 우리 군의 3축 체계 구축 계획은 지난달 11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처음 언급했다. 한 장관은 당시 북한의 원점을 타격할 강력한 공격무기 보유 필요성을 제기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의 질의에 대해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소위 북한의 미사일에 대한 한국형 3축 체계, 이런 개념을 발전시키고 내부적으로 그러한 계획들이 상당히 구체화되어 발전되고 있다고 말씀드린다”고 답변했다. 군이 현무 탄도미사일 수량을 대폭 늘려 대응하겠다는 것은 북한이 전역에 다량의 미사일을 배치해 놓아 유사시 한꺼번에 남쪽으로 쏠 가능성이 커 이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대비책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국형 3축 제제와 관련해 국방부는 입장 자료를 내고 “전력 증강과 군사작전에 관한 세부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우리 군은 독자적 가용 능력과 한미동맹의 능력을 총합해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한미동맹의 맞춤형 억제전략과 미사일대응작전(4D 작전개념)을 토대로 한미 연합 억제·대응태세를 강화하고 우리 군의 독자적 킬체인·KAMD 능력을 확충하는 등 다양한 대응책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북한은 전역에 3개 미사일 벨트(축선)를 구축해 놓고 있다. 비무장지대(DMZ)에서 북쪽으로 50~90㎞ 떨어진 지역에 구축된 제1 벨트는 남한 전역을 타격하는 스커드(사거리 300~700㎞) 미사일이 자리 잡고 있다. 현재 500~600여 기가 배치됐고 이동식 발사대(TEL)도 40대 안팎이다. DMZ 북방 90~120㎞에 구축된 제2 벨트에는 노동미사일(사거리 1천300㎞)이 배치됐다. 200~300기가량의 노동미사일의 TEL은 30대 가량이다. 제3 벨트는 평안북도 철산에서 함경남도 검덕산과 자강도 중강을 기준으로 한 후방지역이다. DMZ에서 175㎞ 북쪽인 이곳에는 30~50여 기로 추정되는 무수단 미사일이 배치돼 있다. 30대 안팎의 TEL에 의해 이동하면서 발사하면 괌 미군기지까지 타격할 수 있다. 최근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인 KN-08도 제3 벨트에 실전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원하는 임종장소는 집인데 대부분 병원서 죽음 맞아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은 자신의 집에서 임종을 맞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는 사망자 10명 중 7명꼴로 병원에서 숨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호스피스-연명의료법 시행에 따른 보험자의 역할’ 자료를 보면, 2013년 기준 우리나라 연간 전체 사망자수는 26만8천88명이며, 이 가운데 71.5%인 19만1천682명이 의료기관에서 숨졌다. 자택에서 숨진 경우는 17.7%인 4만7천451명이었고, 각종 시설 1만187명(3.8%), 기타 1만8천768명(7.0%) 등이었다. 실제 사망장소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생을 마무리하기를 원하는 임종 희망장소와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2014년 8월 19~30일 제주도를 뺀 전국의 만 20세 이상 남녀 1천500명(남자 762명, 여자 738명)을 대상으로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한 국민 인식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본인이 죽기 원하는 장소로 57.2%가 가정(자택)을 골랐다. 이어 호스피스 완화의료 기관(19.5%), 병원(16.3%), 요양원(5.2%), 자연/산/바다(0.5%), 조용한 곳/편안한 곳(0.3%), 아무도 없는 곳(0.2%), 교회/성당(0.1%), 모르겠음(0.8%) 등이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과정에서 임종 직전까지 심폐소생술과 고가항암제 등의 연명치료를 받으면서 막대한 치료비용으로 남은 가족들은 경제적 부담을 안고 있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2009~2013년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 44곳을 이용한 건강보험 암질환 사망자를 조사해 보니, 숨지기 전에 대형병원에 한 달간 입원해 검사·약물·수술 등 각종 항암치료를 적극적으로 받다가 사망한 말기 암 환자는 1인당 평균 약 1천400만원의 건강보험 진료비를 쓴 것으로 추산됐다. 보건복지부는 임종기에 접어든 말기 환자가 통증이나 고통 없이 평안하고 존엄하게 ‘웰다잉(well-dying)’을 할 수 있게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힘쓰고 있다. 2015년 7월부터 완치할 수 없는 말기암 환자와 그 가족을 위한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해 환자와 가족의 부담을 크게 줄였다. 이에 따라 말기암 환자가 병원급 호스피스 병동에서 5인실을 이용하면 하루 평균 총 진료비 22만1천원 중 1만5천원(간병 급여화 경우 30만1천원 중 1만9천원)만 내면 된다. 복지부는 나아가 말기암 환자가 자신의 집에서도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지난 3월부터 가정 호스피스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다. 말기 암환자는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17개 의료기관을 통해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이 정기적으로 가정을 방문해 관리해주는 가정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비용은 1회 방문당 5천원(간호사 단독 방문)~1만3천원(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모두 방문)이다. 복지부는 1년간 시범사업을 하고서 제도를 보완해 내년 8월부터 확대, 시행할 계획이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거의 모든 국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서비스다. 서울대 의과대학이 여론조사기관(월드리서치, 마켓링크)과 함께 전국의 20~69세 국민 500명 대상으로 ‘호스피스 및 연명의료에 대한 국민의 태도’ 주제로 패널 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95.5%가 호스피스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연합뉴스
  • 軍, 현무탄도미사일 대폭 늘린다…“北 미사일기지 동시파괴”

    우리 군이 유사시 북한 여러 지역의 미사일 기지를 동시에 대량 파괴하도록 ‘현무’ 계열의 탄도미사일 수량을 대폭 늘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킬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에 이어 다량의 현무 탄도미사일로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무력화하는 ‘한국형 3축 체계’ 구축 작업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14일 “우리 군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고자 소위 ‘한국형 3축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면서 “3축 체계는 킬체인과 KAMD를 구축하면서 다량의 현무 계열의 탄도미사일을 확보해 대응하는 개념”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 군의 지대지 탄도미사일인 현무-2A(사거리 300㎞)와 현무-2B(사거리 500㎞), 순항미사일 현무-3(사거리 1천㎞)의 실전 배치량과 예비량을 모두 대폭 늘리게 될 것”이라며 “현무 계열의 탄도미사일을 대폭 늘리는 것은 유사시 일거에 북한 미사일 기지를 무력화시키는 차원”이라고 전했다. 즉 유사시 북한지역에 3개 벨트로 구축된 미사일 기지(수량 1천여기)를 동시에 다량의 현무 계열의 탄도미사일로 공격해 대량 파괴의 효과를 거둔다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우리 군은 내년에는 사거리 800㎞의 탄도미사일을 개발해 실전 배치할 계획이다. 2012년 10월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에 따라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연장한 데 따른 것으로, 사거리 800㎞의 탄도미사일이 실전 배치되면 경북 포항 남쪽에서 쏴도 북한의 동북쪽 끝 두만강 일대까지 타격할 수 있다. 북한 전역이 우리 군의 탄도미사일 사정권에 들어온다는 얘기다. 우리 군의 3축 체계 구축 계획은 지난달 11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처음 언급했다. 한 장관은 당시 북한의 원점을 타격할 강력한 공격무기 보유 필요성을 제기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의 질의에 대해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소위 북한의 미사일에 대한 한국형 3축 체계, 이런 개념을 발전시키고 내부적으로 그러한 계획들이 상당히 구체화되어 발전되고 있다고 말씀드린다”고 답변했다. 군이 현무 탄도미사일 수량을 대폭 늘려 대응하겠다는 것은 북한이 전역에 다량의 미사일을 배치해 놓아 유사시 한꺼번에 남쪽으로 쏠 가능성이 커 이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대비책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국형 3축 제제와 관련해 국방부는 입장 자료를 내고 “전력 증강과 군사작전에 관한 세부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우리 군은 독자적 가용 능력과 한미동맹의 능력을 총합해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한미동맹의 맞춤형 억제전략과 미사일대응작전(4D 작전개념)을 토대로 한미 연합 억제·대응태세를 강화하고 우리 군의 독자적 킬체인·KAMD 능력을 확충하는 등 다양한 대응책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북한은 전역에 3개 미사일 벨트(축선)를 구축해 놓고 있다. 비무장지대(DMZ)에서 북쪽으로 50~90㎞ 떨어진 지역에 구축된 제1 벨트는 남한 전역을 타격하는 스커드(사거리 300~700㎞) 미사일이 자리 잡고 있다. 현재 500~600여 기가 배치됐고 이동식 발사대(TEL)도 40대 안팎이다. DMZ 북방 90~120㎞에 구축된 제2 벨트에는 노동미사일(사거리 1천300㎞)이 배치됐다. 200~300기가량의 노동미사일의 TEL은 30대 가량이다. 제3 벨트는 평안북도 철산에서 함경남도 검덕산과 자강도 중강을 기준으로 한 후방지역이다. DMZ에서 175㎞ 북쪽인 이곳에는 30~50여 기로 추정되는 무수단 미사일이 배치돼 있다. 30대 안팎의 TEL에 의해 이동하면서 발사하면 괌 미군기지까지 타격할 수 있다. 최근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인 KN-08도 제3 벨트에 실전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 [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원조를 뛰어넘은 한국형 판메밀국수

    [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원조를 뛰어넘은 한국형 판메밀국수

    메밀은 추운 지방,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라는 곡식으로 바이칼 호수 일대와 중국 동북부가 원산지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평안도, 강원도 등지에서 많이 생산되었던 곡식이다. 척박한 곳에서 쉽게 재배되어 구황식품으로도 역할을 했던 메밀은 칼로리가 낮고 좋은 단백질이 많아 혈관을 맑게 유지해 주는 식품으로 알려지면서 갈수록 인기를 끌고 있다. 메밀을 이용한 면의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각종 메밀국수, 냉면, 막국수 등 다양한 향토 음식들이 특색 있는 먹을거리로 등장했다. 이 중 판메밀국수는 메밀가루로 만든 면을 차갑게 하여 장국에 찍어 먹는 일본식 요리 ‘소바’에서 유래했다. 한국형은 일본 소바에 비해 면의 식감이나 장국 맛 등에서 전혀 다른 새로운 맛의 국수다. 차가운 물에 갓 씻어낸 싱싱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면과 심심하고 약간 달짝지근한 장국이 그 특성이다. 장국에 간 무와 잘게 썬 파를 넣고 겨자를 가미한 후 면을 장국에 담그거나 듬뿍 찍어 먹는다. 이에 비해 일본식은 메밀향은 진하지만 다소 건조한 느낌의 면에 짠 ‘쓰유’(간장)를 살짝 묻혀 먹는 스타일이다. 필자에게는 한국형 메밀국수가 훨씬 입맛에 맞다. 오랜 입맛 때문인가? 어린 시절 서울에서 공부하던 형이나 누나들이 방학 때 집에 오면 기분 내며 쏘던 귀한 메뉴가 메밀국수였다. 메밀국수를 잘하는 식당들이 도처에 있으나 습관적으로 찾게 되는 집들이 있다. 예전에 서울 서초동 옛 제일생명 뒷골목에 70년 전통의 ‘제남’이라는 조그만 집이 있었다. 몇 년 전 주인아주머니가 돌아가셔서 없어졌지만 지금도 그 동네를 지날 때마다 생각난다. 일제 강점기에 개업해 1990년쯤 서초동으로 옮겨 온 집으로, 거의 하얀색의 면에 멸치만 쓰는 장국맛이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우리 부부가 ‘외식’하면 가장 많이 갔던 곳이다. 얘기를 즐기시던 주인아주머니의 메밀면과 장국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장국을 그렇게 아껴서, 남기면 우동이라도 찍어 먹으라고 권할 정도였다. 오랜 단골들 때문에 문을 못 닫고 어려운 장사를 한다고 했다. 1954년 개업한 ‘미진’이란 곳이 있다. 학창시절에 돈 생기면 가던 곳으로, 얼마 전 피맛골 재개발로 인근 오피스텔로 이전했다. 부드러운 면발과 장국맛이 자랑으로, 점심때면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지금도 볼 수 있다. 남대문시장 인근 북창동에도 ‘송옥’이라는 메밀전문집이 있다. 1961년 광화문에서 창업해 1970년 지금 이곳으로 옮겨 왔다. 면발이 굵어 식감이 좋고 장국은 약간 달큼하면서 진한 맛이다. 점심때 줄 서고 합석하는 것은 기본이다. 서소문 덕수궁 옆에도 1962년 문을 연 ‘유림면’이라는 집이 있다. 깨끗하게 단장한 집이다. 면발이 가늘고 쫄깃해 특별한 식감을 자랑한다. 여의도에도 주인장이 직접 면을 뽑고 직장인들이 줄 서서 먹는 ‘청수’라는 곳이 있다. 판메밀국수는 이제 일본의 ‘소바’를 넘어선 고유의 한국형 메뉴가 됐다. 애호가가 나날이 늘고 있고 역사와 맛을 자랑하는 식당들이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뜨거운 여름을 나면서 음미해 보기를 권한다.
  • [부고] 애국지사 전상엽 선생 별세

    [부고] 애국지사 전상엽 선생 별세

    일제에 강제 징집된 상황에서도 항일운동을 했던 애국지사 전상엽 선생이 지난 5일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평안남도 평원에서 출생한 선생은 1943년 평양 대동 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1월 일본군 ‘조선인 학도 육군특별지원병제도’의 이름 아래 평양사단 내 42부대로 강제 징병됐다. 평양사단은 그해 7월, 훈련병 과정을 마치고 42부대를 중심으로 집단항쟁을 계획했다. 선생은 김완룡, 최정수, 김윤영, 박성화 등과 모의해 8월부터 동지 포섭 등의 항쟁 준비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평양사단 내 각 부대 학병들은 긴밀한 연락망을 구축했고, 선생은 학병 항쟁 조직의 작전참모로 활약했다. 평양사단 병영폭파 등을 계획했지만, 폭약과 탄약 입수가 어렵게 되자 부대를 탈출해 만주 접경지대 등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때를 기다려 평양사단을 폭파하기로 했다. 그는 1944년 11월로 날을 택해 거사를 준비하던 중 발각돼 일본군 헌병대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감시하던 일본 헌병을 때려눕히고 탈옥했지만 2개월 만에 체포됐다. 1945년 6월 징역 8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으로 출옥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인정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등을 수여했다. 유족으로 2남 3녀가 있다. 발인은 8일 오전 9시, 장지는 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 빈소 강남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층 특실. (02)2258-5940.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순교’ 주기철 목사 77년 만에 명예 찾았다

    ‘순교’ 주기철 목사 77년 만에 명예 찾았다

    신사 참배 거부해 면직… 끝내 옥사 “일사각오 정신으로 복음 지킨 증인” “주기철 목사의 복권 복적을 선언합니다.” 일제 치하 신사 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면직된 소양 주기철(1897~1944) 목사가 77년 만에 완전히 복권 복직됐다. 4일 주기철목사기념사업회에 따르면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 총회는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산정현교회에서 주기철 목사의 복권과 복적을 선언하고 이를 감사하는 예배를 드렸다. 주기철 목사가 소속됐던 조선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에 뿌리를 둔 7개 노회 노회장들은 선언문을 통해 “평양노회가 신사 참배를 강요하는 총회 결의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산정현교회 주기철 목사를 면직 결의한 것은 성경과 신앙의 근본 원리에 어긋난 잘못된 결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주 목사의 성명을 노회원 명부에 원상태로 복적, 목사직을 복권할 것을 선언했다. 선언에는 경평노회와 남평양노회, 동평양노회, 서평양노회, 평양노회, 평양제일노회, (가칭)북평양노회 등이 참여했다. 경남 창원 출생인 주기철 목사는 평안북도 오산중학교와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마산, 평양에서 목사로 활동했지만 1939년 12월 19일 조선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 임시노회에서 목사 면직과 함께 노회원 명부에서 이름이 삭제되는 불운을 겪었다. 끝내 신사 참배를 거부하다 일본 경찰에 검거돼 옥사한 한국 개신교계의 대표적 ‘순교 신앙’으로 꼽힌다. 주 목사는 특히 조선의 민족주의와 일본제국주의가 지향했던 민족주의를 모두 거부한 채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분명한 자기 결단에 따른 순교를 택했다는 측면에서 ‘외로운 단독자’이자 ‘진정한 순교자’로 불린다. 그의 신앙을 그린 영화 ‘일사각오’가 제작, 개봉됐는가 하면 경남 창원시는 주 목사 기념관과 손양원 목사 기념관을 잇는 주기철 목사 성지순례길 탐방 코스를 개발하기도 했다. 주기철 목사의 복권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지난해 열린 예장합동 제100회 총회 때였다. 일부 노회들이 주기철 목사의 복권 복적을 안건으로 총회에 상정해 만장일치와 기립박수로 복권, 복적이 결정됐었다. 예장합동 총회는 이후 복권 복적 상설역사위원회를 설치했으며 올해 초부터 평양노회의 전통을 이어받은 노회들이 노회 차원에서 주 목사의 복권 복적을 선언하며 총회 결의를 실행에 옮겨 왔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 평양노회가 2006년 주기철 목사 복권 예배를 드린 바 있지만 조선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에 뿌리를 둔 노회가 모두 동참해 선언한 만큼 주 목사의 완전 복권 복적이 이뤄진 셈이다. 박무용 예장합동 총회장은 이와 관련, “주 목사는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십자가의 복음을 지켜낸 앞서 가신 증인”이라며 “현재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세상의 염려와 욕심을 벗고, 고통 속에도 인내하며, 우리의 푯대인 예수님을 바라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족 대표로 참가한 주 목사의 손자 주승중 목사(주안장로교회)는 “늦은 감이 있지만 다음 세대에 바른 신앙의 유산을 물려줘야 한다는 점에서 (주 목사의 복권 복적이) 꼭 필요한 행사”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북한 간부들 사이에서 ‘참이슬’ 인기

    북한 간부들 사이에서 ‘참이슬’ 인기

     북한 간부들과 돈주(신흥부유층)들 사이에서 한국산 소주 ‘참이슬’이 인기라는 증언이 나왔다. 평안북도 소식통은 3일 북한 전문매체인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최근 중간급 간부와 돈주들 사이에 한국산 ‘참이슬’이 희귀 상품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기념파티나 선물용으로 쓰이고 있다”면서 “이는 참이슬이 도수가 약해 간에 지장이 없는 술이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보통 북한 간부들은 30도 이상의 독한 술을 좋아했지만 음주로 인한 위병과 간염이 확산하면서 점차 도수가 낮은 한국산 참이슬을 좋아하게 됐다고 소식통은 설명했다. 이 소식통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결혼식을 비롯한 일반 대사에는 개성인삼술이나 평양술, 대평술과 같은 국내산 술이 오르지만, 가까운 친구 생일파티에는 참이슬이 올라 저마다 맛을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제품은 국경세관에서 철저히 통제하기 때문에 몰래 감추어 밀반입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주민들 사이에 남조선(한국) 제품은 선진적이고 문명한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21살에 기저귀 차고 아기 흉내내는 여성의 슬픈 사연

    21살에 기저귀 차고 아기 흉내내는 여성의 슬픈 사연

    21살의 나이에 아기처럼 살아가는 여성의 독특한 삶이 소개됐다. 지난 29일(현지 시간) 영국 바크로프트TV는 일명 ‘어른 아기’(adult baby)라 불리는 제스(21)의 사연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플로리다주 레이크랜드에 사는 제스는 거대한 아기용 침대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제스는 기저귀를 차거나 음료를 젖병에 담아 마시는 등 아기 흉내를 내는 것을 즐겨 한다. 4년간 함께 동거해온 남자친구 데이비드(24)와의 시간은 아빠와 딸의 역할놀이로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역할 놀이 도중에는 성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철칙도 있다. 제스는 아기로 살아가는 모습을 유튜브에 올려 3만 명에 가까운 구독자를 확보한 유튜버이기도 하다. 왜 아기 흉내를 내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제스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치료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제스는 “두 살 때 성적 학대로 트라우마가 생겼지만, 기저귀를 차고 젖병을 무는 등 아기처럼 생활하며 자존감을 많이 회복했다”고 말했다. 보통의 아이들처럼 쾌활하고 귀엽게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 정서적 평안과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이 제스의 설명이다. 사진·영상= Bacroft TV/유튜브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위안부재단 10억엔, 피해자 명예회복·상처 치유”

    “위안부재단 10억엔, 피해자 명예회복·상처 치유”

    “日정부, 법적 책임·사과해야” 일부 재단 무효화·재협상 요구 한국과 일본 정부 간 ‘12·28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화해·치유재단’이 28일 서울 중구 순화동 사무실에서 첫 이사회를 열고 재단 운영 방안을 논의했으며 이어 현판식을 갖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이사장은 김태현 성신여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가 맡았으며 이사진은 김 이사장을 포함해 김교식 아시아신탁 회장, 진창수 세종연구소장, 이원덕 국민대 교수,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대표, 조희용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소장 등 준비위원회에 참여한 각계 인사 10명으로 꾸려졌다. 정병원 외교부 동북아국장과 이정심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은 당연직 이사다. 고문으로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이 위촉됐다. 재단은 정관상 이사를 최대 15명까지 둘 수 있어 추가 선임도 검토하기로 했다. 김태현 이사장은 이날 “치유의 등불을 만들 것”이라며 “재단의 목적은 위안부 피해자의 상처 치유와 존엄의 회복”이라고 말했다. 재단은 “피해자분들이 한 분이라도 더 생존해 계신 동안 한을 풀어 드리고 마음의 평안을 되찾아 드릴 수 있도록 필요한 사업을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으며, 정부 당국자는 “일본 정부 출연금은 ‘피해자 명예 회복과 상처 치유’라는 합의 취지를 반영하고, 당사자 우선 원칙을 고려해 순수 사업에 쓸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피해자와 피해자 지원단체는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과 사과를 요구하며 ‘12.28 합의’ 무효화와 재협상을 주장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현판식 후 내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재단 출범의 의미 등을 설명한 뒤 퇴장하다가 30대로 추정되는 남성으로부터 캡사이신(고추에서 추출된 무색의 휘발성 화합물) 세례를 받았다. 김 이사장은 곧바로 119구급차량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다. 한편 지난해 12월 양국 정부 간 합의 이후 재단 출연금으로 10억엔을 내는 조건으로 일본이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의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최근 일본 내부에서 이러한 목소리는 잦아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정부는 자금 운용 세부 계획을 요구하기보다는 전반적인 사업의 방향성, 자금 운용 계획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견이 없으면 10억엔을 출연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금 출연 시점은 8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지금, 이 영화] 비거 스플래쉬

    [지금, 이 영화] 비거 스플래쉬

    수영장 딸린 미국 주택을 그린 ‘비거 스플래쉬’.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가 1967년 발표한 작품(그림)이다. 먼저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커다랗게 치솟은 물보라다. 화면에는 아무도 없지만 관객은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장면을 상상한다. 누군가 다이빙대에서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파란 수면 아래 바로 그(녀)가 있을 것이라고. 그렇지만 아무리 애써도 그(녀)에 대해서는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다. 미지는 그냥 미지인 채로 놓아두자. 우리는 보이는 것―커다랗게 치솟은 물보라에 집중한다. 이것은 정적인 풍경에 담긴 유일한 동적인 순간이다. 어떤 큰 충격이 가해지면서 물면은 요동친다. 호크니의 회화와 같은 제목의 영화(8월 3일 개봉)를 만든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안온한 균형을 깨는 힘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사랑을 발견하겠다’(김수영 ‘사랑의 변주곡’ 중에서)는 시구처럼, 그것은 사랑에 바탕을 둔 욕망의 다양한 얼굴이다. 영화 ‘비거 스플래쉬’는 헤어진 연인과의 재회를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이다. 가수인 마리안(틸다 스윈튼)은 성대를 다쳐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한다. 그녀는 남자친구 폴(마티아츠 쇼에나에츠)과 함께 이탈리아 판텔렐리아 섬에서 휴양하기로 하고 여유로운 한때를 즐긴다. 그런데 갑자기 그곳에 마리안의 옛 애인이자, 폴의 친구이기도 한 음악 프로듀서 해리(랄프 파인즈)가 찾아온다. 장성한 딸 페넬로페(다코타 존슨)가 그의 동행이다. 그리고 짐작하는 그대로, 네 사람의 관계는 기묘하게 얽히고설킨다. 예전에 해리는 마리안과의 만남을 정리하고, 폴에게 그녀를 만나보라고 해서 두 사람을 이어주었다. 그랬던 그가 이제 마리안을 되찾고 싶어 한다. 폴은 해리의 꿍꿍이를 눈치채고 그를 경계한다. 한편 페넬로페는 폴에게 이성으로서의 관심을 보인다. 그 점이 마리안은 적잖이 신경 쓰인다. 해리-페넬로페 부녀의 등장으로 마리안-폴 커플의 결합에 균열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고요하던 일상에 중대한 파문이 발생했다. 평화롭던 휴양지는 집착과 질투, 의심과 흑심이 가득한 장소로 바뀌어 간다. 전부 사랑과 연결된 욕망이 야기한 사건들이다. 네 사람은 도무지 어쩔 수 없는 감정의 격랑에 자신을 내맡긴다. 다시 호크니의 그림으로 돌아간다. 수영장에 솟구치는 물결은 과연 다이빙대에서 물속으로 뛰어든 사람에 의한 것일까. 그렇다고 한다면 평안을 뒤흔든 장본인은 해리-페넬로페 부녀일 것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할 여지도 있다. 예컨대 물 밖에서 물 안으로 어떤 큰 충격이 가해져 그런 것이 아니라, 물 안에서 부글거리던 어떤 큰 힘이 물 밖으로 분출된 것이라고 말이다. 겉으로 잠잠해 보이지만 속으로 소용돌이치는 것은 수영장 물이나 사람 마음이나 마찬가지다. 마리안-폴 커플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호크니는 특정한 인물을 그리지 않고, 포말이 퍼져 나가는 찰나만 그렸는지도 모른다. 구아다니노가 포착한 ‘결정적 순간’(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역시 그렇다. 청소년관람불가.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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