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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마지막 수업/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마지막 수업/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중일전쟁(1937)은 일제강점기의 중대한 변곡점이었다. 일제는 제3차 조선교육령을 선포해 1938년부터 각급 학교 수업을 국어(일본어)로 할 것을 강요하며 철저한 황국신민 교육을 시행하려 했다. 한국사학자 이기백(1924~2004)은 1938년 당시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그때까지 오산학교에는 일본어를 가르치는 일본인 교사 두 명을 제외하면 일본어로 강의하는 교사가 없었다. 한국인 교사들은 일본어 수업 강요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교사들은 교실에서 학생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강의하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조선인 교사가 조선인 학생들에게 일본어로 수업하도록 강요당했으니 얼마나 민망하고 참담했을까. 그런 중에도 수신(修身)을 가르치던 교사 함석헌(1901~1989)만은 꿋꿋이 조선말로 강의를 계속했다. 학생들도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 도중 일본인 시학관(視學官)이 교장과 함께 그 반에 들이닥쳤다. 이기백은 교실 문을 급히 여느라고 시끌벅적 요란하게 소리가 나던 광경을 또렷이 기억한다. 함석헌의 조선말 수업 현장을 덮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이기백은 선생들 가운데 일본 경찰과 내통하는 이가 있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다. 누군가 경찰에 함석헌이 조선말로 강의를 한다고 고발한 것이다. 급박한 상황이었다. 조선말 수업 도중 느닷없는 일본인 관리의 난입이었다. 함석헌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침착하게 일본말로 강의를 이어 갔다. 학생들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일본말에 능숙한 함석헌의 강의를 들으면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뒤 얼마 안 돼 함석헌은 학교를 떠난다. 이기백은 이 수업 시간을 함석헌의 ‘마지막 수업’으로 기억한다. 이기백의 여섯 살 아래 동생인 국어학자 이기문(1930~2020)은 당시 소학교 4학년이었다. 이기문의 담임교사는 매우 엄격한 인물이었는데, 그날만은 학생들이 숙제해 오지 않은 것을 책망도 하지 않고, 두어 시간 남짓 우리말로 편지 쓰는 법을 자세히 가르치고, 시조도 몇 수 가르치더니 “이것으로 조선어는 마지막이다”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소년들은 나직하게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선생의 눈에서 눈물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교실은 한동안 울음바다가 됐다. 나라 잃고 말까지 잃었던 세월, 불과 80년 전 일이다.
  • [씨줄날줄] 홍범도 장군의 귀환/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홍범도 장군의 귀환/박록삼 논설위원

    홍범도(1868~1943)는 머슴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를 낳은 직후 세상을 떴고, 젖동냥으로 자신을 키우던 아버지 역시 아홉 살 때 잃었다. 민란이 일상이었던 조선 후기 천애고아의 삶에는 가난과 역경뿐이었다. 홍범도는 머슴살이로 연명해야 했다. 일자무식이었고 혈기방장했다. 수틀리면 주먹이 먼저 나가기 일쑤였다. 임오군란이 일어난 1882년 평양 지역방위군인 진위대에 입대했지만 부정부패와 폭력을 일삼는 군 상관을 두들겨 팬 뒤 탈영했고, 황해도의 한 제지소 막일꾼 시절에는 일곱 달 품삯을 주기는커녕 잠 재워 준 값을 받아야겠다는 어이없는 고용주를 메다꽂아 버리기도 했다. 좌충우돌 천방지축 홍범도의 삶은 승려로서 잠시 몸을 의탁한 금강산 신계사에서 대전환기를 맞았다. 글을 깨쳤고, 역사를 배웠으며, 세상에 대한 이치를 배우게 됐다. 그리고 1894년 갑오농민전쟁과 이듬해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홍범도 삶의 형식과 방향을 완전히 바꿨다. 백발백중의 호랑이 사냥꾼으로 강원도 산속에 칩거하던 홍범도는 일제의 침략 및 만행에 울분을 터뜨렸고, 항일 의지를 불태웠다. 정의로웠지만 철저히 개인적 차원에 머물던 홍범도가 민족의 모순을 자신의 과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포수들을 중심으로 의병대를 조직한 홍범도는 함경남도 일대에서 일제 군경과 수십 차례나 처절한 격전을 벌여서 모두 승리로 이끌었고, 1919년에는 대한독립군을 만들어 항일무장투쟁을 더욱 치열하게 전개했다. 그해 평안북도 강계 만포진을 공략해 일본군과 3일간 격전을 치르면서 70여명을 살상하는 등 백전백승의 장군으로 우러름을 받게 됐다. 백미는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였다. 천문과 지리를 활용한 신묘한 전술로 일본군 157명을 사살한 독립군 연합부대의 쾌승이었다. 그 직후인 10월 청산리대첩 역시 북로군정서군 김좌진 총사령관과 함께 대승을 이끌어 냈다. 안타까운 것은 항일독립운동이 당대 소비에트 공산주의 이념 흐름 및 상하이파와 이르쿠츠크파 사이 갈등과 대립 속에 홍범도 역시 1921년 ‘자유시 참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점이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한 홍범도는 말년 고려극장의 경비로 일하다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1943년 눈을 감았다. 봉오동 전투 101주년이자 만리타향에서 맞은 쓸쓸한 죽음 이후 78년 만에 홍범도의 유해가 15일 고국으로 봉환됐다. 2019년 이후 카자흐스탄에 대한 지속적 협력과 이해를 구했던 우리 정부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장군 홍범도의 빛났던 의기와 신념도 함께 조국의 품으로 돌아와 영면하길 바란다.
  • [데스크 시각] 왜 대한민국 대통령이 ‘평양시장’을 임명하나/강국진 정책뉴스부 차장

    [데스크 시각] 왜 대한민국 대통령이 ‘평양시장’을 임명하나/강국진 정책뉴스부 차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오늘 오새훈을 서울시장으로, 이제명을 경기도지사로 임명했다고 조선중앙방송이 보도했다.” 이 보도를 접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십중팔구 극도로 분노하거나 가슴이 턱 막힐 만큼 어처구니없어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저것들이 아직도 적화통일 야욕을 못 버렸다’고 생각할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저러고도 제대로 된 나라인가’라며 혀를 끌끌 찰 것이다. 물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결의안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다. 오해는 하지 말자. 오새훈·이제명 얘기는 100% 허구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엄연한 국가인데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일이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선진국인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제부터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 황해도 등 5곳의 도지사를 임명한다. 물론 정식 임명장도 준다. 심지어 차관급이다. 이들 도지사 5명은 1억원이 넘는 연봉과 2000만원이 넘는 업무추진비를 포함해 차관급으로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의전을 누린다. 이북5도지사들로 구성된 이북5도위원회는 엄연한 행정안전부 산하 정부 조직이다. 이북5도위원회는 이북5도에 대한 정보 수집, ‘수복 시 실시할 제반 정책 연구’와 관련 단체 지원·관리 등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이런 게 실제로 이뤄질 턱이 없다. 이북5도지사는 차관급 의전을 받으며 하는 일 없이 소일하는 경로당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실 이북5도위원회가 조직 목표로 내세운 활동을 정말로 한다면 오히려 그게 더 문제 아닐까 싶다. 만약 중국 정부가 ‘국토 관념을 명확히 하고 언젠가는 기필코 달성하고야 말 실지 회복에 대한 통일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 차관급 타이베이시장을 임명한다면 이해하고 납득할 외국인이 몇 명이나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정작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70년 넘게 하고 있다. 북한이 유엔에 정식으로 항의하면 우리 정부는 뭐라고 변명할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까지도 최근 황해도지사와 함남도지사를 임명했다고 하니 창피한 노릇이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평양시장과 신의주시장, 원산시장도 임명한다. 1945년 해방 당시 이북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도지사, 시장, 군수, 거기다 읍면동장까지 임명한다. 그렇게 임명장을 받는 사람이 얼추 1000명가량 된다. 도지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명예 시장·군수는 도지사가 임명한다. 명예 시장·군수·읍면동장들은 임기 3년 동안 정부로부터 수십만원씩의 수당까지 받는다. 자격 조건은 이북에서 태어난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남쪽으로 넘어왔다고 해도 최소 68세다. 읍면동장을 채우기 힘들어지자 요즘은 ‘이북에서 태어난 사람의 자녀’에게도 자격을 부여한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금하는 ‘사회적 특수계급’을 행안부가 운영하고 있다. 이북5도위원회의 뿌리는 1949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이북5도지사를 임명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에는 실향민 원적 발급을 보증해 주는 등 정부 기능도 일부 수행했지만 법적 근거는 없었다. 1962년 이북5도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생기면서 법적 근거를 갖게 됐다. 1967년부터는 명예 시장·군수에게, 1970년부터는 명예 읍면동장에게도 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는 일 없고, 일을 해서도 안 되는 조직으로 70년 넘게 이어 왔다. 이북5도위원회 폐지는 평화통일을 원하는 사람, 작은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 공무원 숫자를 줄이고 싶어 하는 사람, 정부혁신을 강조하는 사람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문제다. 이북5도위원회 문을 닫아 주자. 이제는 없앨 때다.
  • 구한말 선교사 알렌이 남긴 문서 3800여 점 공개

    구한말 선교사 알렌이 남긴 문서 3800여 점 공개

    한국학중앙연구원은 구한말 선교사 호러스 알렌(1858∼1932)이 조선에서 활동하면서 기록한 문서 3869여 건을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해 공개한다고 10일 밝혔다.이 자료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건양대학교 김현숙 교수 연구팀에 3년간 연구비를 지원해 정리한 것으로, 의료 선교사로 알려진 알렌의 활동이 의료분야를 넘어 문학, 경제, 외교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이뤄졌다는 것을 보여준다.미국인 의료 선교사 알렌은 개항 초기인 1884년 9월부터 1905년 6월까지 조선에 체류했다. 그는 조선에서 의사, 선교사, 경제인, 외교관, 정부 고용인, 고종의 참모, 번역가, 작가 등 여러 직업을 거쳤으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에 관여했다. 이때 생성된 다수 문서를 ‘알렌 문서’라고 부른다. 알렌은 주한 미국공사관의 전권공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고종의 최측근으로 정권핵심에 있으면서 주미한국공사관 설치, 춘생문 사건, 아관파천, 독립협회, 하와이 이민 등 한국 근대사의 핵심적인 사건에 관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했다.이번에 공개하는 문서는 알렌이 1924년 뉴욕 공립도서관에 기증한 자료를 전량 수집해 연구자나 일반인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DB로 만든 것이다. 주한미국공사관 서류, 각종 공문서와 지도, 사진, 신문 기사 등을 비롯해 알렌의 일기와 서신, 메모, 원고 등 개인 문서도 포함돼 있다. 백두산 천지와 동암금광 사진, 평안도 운산광산 채굴권 수정 계약서, 미국 테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고종에게 알렌의 귀국을 지시한 사실을 알리는 서신, 저서 ‘한국에 대한 기록(Notes on Korea)’ 등을 볼 수 있다.한국학중앙연구원 측은 “그가 남긴 방대하고 세세한 자료는 한국 근대사의 사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동시대 서양인이 남긴 자료 중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또한 주제의 다양성 측면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우수한 컬렉션이다”라고 평가했다. 해당 자료는 한국학진흥사업 성과포털 누리집(waks.aks.ac.kr)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 “나의 직업은 독립운동”… 18년 5개월 수감 생활 최장기 복역수

    “나의 직업은 독립운동”… 18년 5개월 수감 생활 최장기 복역수

    “많은 죄수가 앉아 있을 때엔 마치 콩나물 대가리 나오듯이 되었다가 잘 때에는 한 사람은 머리를 동쪽, 한 사람은 서쪽으로 해서 모로 눕는다. 그러고도 더 누울 자리가 없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일어서고, 좌우에 한 사람씩 힘이 센 사람이 판자벽에 등을 붙이고 두 발로 먼저 누운 자의 가슴을 힘껏 민다. 그러면 누운 자들은 ‘아이고, 가슴뼈 부러진다’라고 야단이다.”(김구 ‘백범일지’) “어머니!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 보지 못하는데, 빈대 벼룩이 다투어 가며 진물을 살살 뜯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새웠습니다. 그렇건만 대단히 이상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하나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나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심훈 ‘옥중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글월’) 열악하다 못해 인격을 말살하는 감옥 생활은 그 자체로 고문의 수단이라고 할 만큼 혹독했다. 지옥 같은 감옥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유관순, 이육사, 윤동주, 김동삼, 오동진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감옥에서 순국했다. 그런 감옥 생활을 18년 5개월이나 견뎌낸 독립운동가가 정이형 선생이다. 독립운동가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옥고를 치른 사람은 일왕 암살을 기도한 박열로 22년이나 갇혀 있었는데 일본에서 재판을 받고 일본 감옥에서 복역했다. 정이형은 더 악명 높은 국내 형무소에서 수감 생활을 한 최장기 복역수다.“비로소 인정풍속이 다른 만리타국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나서 장탄일호(長嘆一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나는 이렇게 쓸쓸한 곳을 급급히 찾아왔을까. 집에 있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처자들은 다 어찌 될까.”(선생의 회고록 중에서)●평북 의주 출신… 장성에서 ‘3·1운동’ 시위 선생은 1897년 9월 16일(음력) 평북 의주 월화면에서 태어났다. 김평식에게서 한학을 배웠는데 그는 복벽주의(復主義·대한제국의 회복을 목표로 하는 독립운동의 이념) 독립군 단체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했던 인물이다. 친형 정원익도 독립군에 군자금을 제공한 독립운동가였다. 형과 스승의 항일 정신을 이어받은 선생은 1919년 1월 독립운동가 김계순, 서상연을 만나 의기투합해 전남 장성으로 내려갔다. 이주 직후 3·1운동이 발발하고 장성에서도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선생은 동지들과 함께 시위에 앞장섰다. 친형의 지원을 받아 1921년 장성 북하면에 4년제 선룡사립보통학교를 세우고 민족교육 운동에 뛰어들었다. 일제의 감시 대상이 된 선생은 체포돼 취조를 받았고 다행히 풀려났지만, 장성에서 더 활동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고향으로 돌아온 선생은 임시정부의 국내 연락 조직인 연통제에 참여해 의주 군감으로 활동하다가 1922년 11월 만주 망명길에 올랐다. 일경에 체포된 형 원익이 고문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자 그 길로 떠난 것이다. 총을 들고 싸우고 싶었다. 선생은 관전현에 있던 대한통의부에 들어가 오동진, 김창환을 만났다. 1923년 12월 대한통의부가 군사 체제로 개편되면서 선생은 의용군 사령관 신팔균의 부관을 거쳐 이듬해 가을 의용군 제6중대 제1소대장이 됐다. 첫 임무는 부하 10여명과 봉천성 환인현에서 반(反)통의부 분자를 처단하는 일이었다. 만주 지역 독립운동 단체들의 분열과 반목 속에 일어난 통합 운동으로 대한통의부는 그해 11월 10여개 독립운동 단체와 더불어 군정기관인 정의부로 확대 개편됐고 선생도 참여했다. ●조선인 밀정·친일파 처단 등 임무 수행 정의부는 정부 형태를 갖추고 서간도 한인 동포들을 통치하면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일본 육사 출신인 이청천이 군사위원장, 만주의 광복군 총영장을 지낸 오동진이 사령장을 맡아 군사조직을 지휘했다. 선생과 양세봉·문학빈 등 주로 평안도 출신이 중대장과 소대장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1925년 3월 18일 선생은 정의부 의용군 제6중대장으로서 제8중대장 김석하, 제6중대 제3소대장 김정호 등과 압록강 건너편에 있는 일제 경찰서 습격 계획을 세웠다. 그날 자정,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선생은 부하 6명과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넜다. 새벽 5시쯤. 목표로 삼은 벽동경찰서 여해경찰관출장소에 접근했다. 안에는 일경 5명이 있었다. 대원들은 건물 안으로 총을 난사했다. 순식간에 니시카와 류키치와 임무, 신현택 등 순사 3명은 절명했고 일본인 순사 1명은 크게 다쳤다. 선생은 대원들과 출장소 건물을 불태우고 총기류 등 군수품을 노획했다. 1926년 3월 정의부 의용군 제1중대장으로 부하 병사 20여명과 지린성 한인 동포들을 상대로 군자금 모금 활동도 하면서 조선인 밀정과 친일파들을 처단했다. 선생은 독립군을 정탐하는 밀정 처단을 일제와 싸우는 일만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미쓰야협정’(조선 총독과 중국 측이 독립군 탄압을 목적으로 맺은 협정)으로 군사 활동이 더 어려워지자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복벽주의도 수용하면서 진보주의를 표방한 좌우합작 정당인 고려혁명당이다. “이념 없는 혁명, 이데올로기 없는 독립투쟁은 오히려 무자비한 반동밖에는 초래하지 못한다.” 고려혁명당은 이런 기치를 내세웠다. 천도교 교주 최시형의 아들 최동희도 동참해 1926년 4월 지린성에서 고려혁명당이 출범했다. 만주를 중심으로 100여명의 당원을 확보하고 10여곳에 세포조직을 만들며 세를 키워 나갔다. 그러다 1926년 12월 중앙집행위원 이동락과 당원들이 일제에 체포돼 당의 세력이 위축되고 말았다. 선생은 하얼빈으로 이동해 조직 재건을 꾀했지만 1927년 3월 11일 동지 6명과 하얼빈 일본 영사관 경찰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선생은 1차 공판에서 “나의 직업은 독립운동이다. 하고자 하는 바를 했을 뿐이다”라고 당당히 말하고는 더 입을 열지 않았다. 검사는 사형을 구형했다. 선생은 빙그레 웃으며 조금의 공포의 빛도 없이 태연자약하게 서 있었다. 1928년 4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서대문·마포·대전형무소를 전전하며 옥고를 치르다가 광복을 맞아 출옥했다. ●최시형 아들 최동희 동참해 세 키워나가 “공부하는 이상은 글자만을 배우는 것 아니요. 자기 인격을 향상하기 위하여 하는 것이니 절대로 악습관에 감염되지 말고 오풍속(汚風俗)에 타락하지 말기를 바란다.” 1941년 당시 이화여고보 3학년에 다니던 맏딸 문경씨에게 보낸 옥중 편지에 선생은 이렇게 적었다. 여느 아버지와 다름없이 딸의 앞날을 걱정하고 올바른 품행을 당부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문경씨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선생과 같이 옥살이를 한 독립운동가 이규창(독립운동가 이회영의 아들)과 결혼했다. 광복 후 선생은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의 관선 의원으로 선임됐다. 1947년에는 친일파를 처벌하기 위한 특별법률조례 제정 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돼 남다른 의지를 갖고 활동했다. 일제와의 투쟁과 친일파 엄단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생각이었다.●맏딸 정문경씨 독립운동가 이규창과 결혼 “애국자들은 (조선인) 순사들에 의해 죽음에 가까운 고문과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남한 과도정부는 그런 왜놈 앞잡이와 매국노 편을 드는 듯합니다.” 선생은 미군정사령관 하지 중장에게 편지를 보내 친일파 중용을 비난했다. 하지만 미군정은 친일파 척결 조례를 폐기하며 무시했다. 좌우합작 운동과 남북협상에 참여한 것도 고려혁명당 때부터 지녀온 신념 때문이었다. 이 또한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승만의 눈 밖에 난 선생은 감시 속에 서울 장교동 집에서 유폐와 같은 생활을 하다가 1956년 12월 10일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1963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김연경 묘목’에 “한국 친구 감사해요” 터키단체 한글로 감사글

    ‘김연경 묘목’에 “한국 친구 감사해요” 터키단체 한글로 감사글

    ‘배구 여제’ 김연경, 브라질 전 패배 후“산불 난 터키에 묘목 캠페인 해줘 감사”터키선수들, 8강서 한국에 패배 후 눈물김연경 팬들 터키에 수천 그루 묘목 전달터키단체 “아낌없는 기부 지지 진심 감사”“묘목 오랜 우정처럼 지키고 가꾸겠다”‘배구 여제’ 김연경(33·상하이)의 팬들이 최악의 산불이 난 터키를 위해 묘목 수천 그루를 선물해준 데 대해 현지 환경단체가 한글 감사 인사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터키 선수들은 당초 산불이 나 고통 받는 고국을 위해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8강전에서 승리해 기쁨을 안겨 주겠다고 밝혔지만 한국에 패배하자 코트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김연경은 올림픽 경기 후 공개적으로 터키 산불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며 묘목 보내기 캠페인을 해준 팬들에게 감사하다고 거듭 밝혔다. SNS 해시태그로 ‘pray for turkey’韓네티즌들 터키 묘목 제안 동참 행렬 터키의 비영리단체 환경단체연대협회(CEKUD)는 홈페이지에 묘목을 선물해준 김연경 팬들에게 한글과 영문으로 감사의 메시지를 올렸다. 이 단체는 “한국의 친애하는 친구 여러분, 생명의 원천인 삼림이 터키와 세계 여러 곳에서 일주일 동안 불타고 있습니다”라면서 “당신은 우리와 함께 서서 수천 그루의 묘목을 아낌없이 기부함으로써 지지를 보여주었습니다”고 말했다. 또 이 단체는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맡겨주신 묘목을 오랜 우정처럼 지켜주고 가꾸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배구 팬들의 묘목 기부가 시작된 것은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한국과 터키의 8강전이 끝난 뒤부터다. 당시 한국은 세계랭킹 4위의 강호 터키를 3-2로 꺾고 9년만에 올림픽 4강 진출의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패한 터키 선수들은 경기장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다. 올림픽 메달을 따서 최근 최악의 산불 피해로 고통받는 자국민에게 용기를 주고자 했던 노력이 수포가 되었기 때문이다. 터키, 열흘 넘게 산불… 막대한 삼림 훼손8명 사망·860명 이상 부상 터키 남부에서는 열흘 넘게 대규모 산불이 이어지면서 막대한 규모의 삼림이 훼손됐다. 12일 동안 전국 47개 지역 234곳에서 발생했던 산불은 이날 현재 남서부 무을라주의 2곳에서 여전히 진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현지 정부 당국자가 밝혔다. 지난달 28일 남부 안탈리아주에서 발생한 산불은 남서부 무을라주, 아이든주 등으로 확산하면서 대규모 산림을 불태웠다. 소방용 항공기조차 갖추지 못한 터키 정부는 외국으로부터 소방 항공기와 헬기를 긴급 지원받는 등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산불로 터키 내 10만㏊ 이상의 숲이 파괴됐다고 추산했다. 현지 보건부에 따르면 지금까지 산불로 8명이 숨지고 860여명이 부상했다.이런 사정을 알게 된 한국 배구 팬들은 터키 리그에서 활동했던 배구 여제 김연경 또는 팀 코리아 등의 이름으로 묘목을 기부했다. 당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해시태그 ‘pray for turkey’(터키를 위해 기도)와 함께 대규모 산불 피해가 난 터키를 응원하는 글이 봇물을 이뤘다. 한 네티즌은 ‘김연경’ ‘팀코리아’ 이름으로 터키에 묘목을 기부하자고 제안했고 해당 트윗은 2만회 이상 리트윗되며 수많은 이들이 기부에 동참했다. 기부 안내 방법과 함께 인증샷도 쏟아졌다. 네티즌들은 “김연경 선수 이름으로 나무 20그루를 기부했다” “김연경 이름으로 묘목 5그루 기부했다. 형제의 나라 터키를 응원한다”고 올렸다. 또 “경기 승패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한 터키 선수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터키 산불이 빠르게 진압 돼 모두가 평안할 수 있기를 바란다” “6·25 전쟁 때 터키가 한국을 도와줬다. 그 계기로 터키에서는 아직도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른다. 이제는 한국이 도와줘야 할 때다” 등 터키에 대한 응원과 애정을 표시했다.터키 리그서 활약했던 김연경 “터키 산불 소식 안타까워”“내가 살았던 나라, 마음 아팠다” 김연경도 지난 6일 브라질전에 패한 뒤 취재진과 만나 “터키 산불 소식을 접하고 안타까웠는데 팬들이 묘목 보내기 캠페인을 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연경과 상대 팀 선수들 간의 우정은 화합의 정신으로 거듭났고, 이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상대 팀 국민들에게도 많은 감동을 안겼다. 김연경은 ‘배구 강국’인 터키 리그에서 오랜 기간 활약하기도 했다. 김연경은 2020-2021시즌 V리그 흥국생명에서 뛰기 전에 페네르바체, 엑자시바시 등 터키 팀에서 뛰었다. 김연경은 이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에도 터키에 묘목 보내기 캠페인을 벌인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김연경은 “소식을 듣고 놀랐다. 팬분들이 기부를 해주셨는데, (공항을 가득 메운 환영 인파를 가리키며) 여기 계신 분들이 해주신 것 같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선뜻 나서서 내 이름으로 해주는 게 쉽지 않은데 그렇게 해준 것에 대해서 감사드린다”면서 “터키는 내가 살았던 나라이기도 해서 마음이 아팠다.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김연경, 도쿄올림픽 득점 2위 한편 김연경은 국가대표로서 뛴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인 도쿄올림픽에서 득점 2위를 차지했다.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부문별 랭킹을 보면, 레프트 공격수 김연경은 총 136득점으로 득점 2위에 올랐다. 득점 1위는 192득점을 퍼부은 라이트 공격수이자 ‘김연경의 친구’ 티야나 보스코비치(세르비아)다. 지난 8일 열린 한국과 세르비아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김연경은 11점, 보스코비치는 33점을 폭발했다. 세트 스코어 3-0으로 승리한 세르비아는 동메달을 가져갔다. 김연경은 공격 효율 31.99%로 공격 부문 4위를 차지했다. 수비에서도 김연경은 디그 4위(세트당 평균 2.77개), 리시브 9위(성공률 57.14%)로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리베로 오지영(33·GS칼텍스)은 세트당 평균 3.10개의 디그로 이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부문별 최고 선수에 오른 한국 선수는 오지영이 유일하다.
  • 올림픽 메달 11개 펠릭스 “모성애 때문에 경기력 망친다고 하더군요”

    올림픽 메달 11개 펠릭스 “모성애 때문에 경기력 망친다고 하더군요”

    8일 막을 내린 2020 도쿄올림픽에서 미국의 여자 육상 스타 앨리슨 펠릭스(36)는 일곱 번째 금메달과 11번째 메달을 수확해 트랙과 필드를 통틀어 최고의 미국 육상선수로 우뚝 올라섰다. 그녀가 이런 영광을 안을 수 있었던 것은 2018년 11월 첫 딸 캠린 출산을 앞두고 선수 경력을 망칠 것이란 우려를 슬기롭게 이겨냈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그녀의 모성애가 경기력에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며 대놓고 말리기도 했다. 이제 펠릭스는 당당하게 딸아이가 레이스에 나설 용기를 안겨줬다고 말했다고 인사이더 닷컴이 전했다. 그녀의 올림픽 메달은 칼 루이스의 10개를 넘어서는 미국 육상 선수 최다 금메달이자 파보 누르미(핀란드)의 올림픽 최다 메달(12개)에 바짝 따라붙은 기록이다. 그녀는 전날 여자 4X400m 결선에서 폴란드에 3초5 이상 앞선 압도적인 레이스를 펼친 끝에 우승을 확정한 뒤 기자회견 도중 가장 큰 어려움이 모성애가 좋은 성적에 걸림돌이 될 것이란 우려를 잠재우는 일이었다고 돌아봤다. 피플 닷컴이 전한 그녀의 발언이다. “난 이런 걸림돌을 싸워 이겨내야 했다. 난 절대 있어야 할 곳에 있다. 모두 알듯 때때로 싸워 이겨내야 하는데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곤 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그리고 내 생각에 그게 가장 큰 일이다. 딸은 내가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이유 중의 하나다. 내 앞의 많은 여성들은 스스로의 싸움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나설 수 있게 만든 것은 딸이 용기를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런 일이 너무 오랫동안 이어져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로 일들을 바꾸길 바라고 있다.” 펠릭스는 부모가 된 선수들의 육아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앞장서 내왔다. 그녀는 임신 중독증의 일종인 자간전증(子癎前症)이 심해 32주 만에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캠린을 출산했다. 오랜 동안 자신을 후원한 나이키와 이듬해 계약을 끝냈다. 출산을 이유로 그 전에 지급했던 것보다 후원액을 70% 삭감 당하고 계약서에 명시돼 있던 육아 권리를 보호해달라고 했는데 이를 어겼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갈등을 빚는 와중에 나이키가 여권 신장 캠페인에 나와달라고 요청하는 상식 밖의 일도 있었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지난해 3월 그녀는 임신한 뒤 “톱 레벨”에서 밀려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아기를 낳고 불과 10개월 만에 도하 세계육상선수권에 출전해 메달을 18개로 늘려 우사인 볼트(자메이카)가 갖고 있던 대회 최다 메달(16개)을 고쳐 썼다. 펠릭스는 AP 통신 인터뷰를 통해 “평안하다. 난 대회에 출전해 이렇게 대단한 여성들 사이에서 확신을 갖고 임했다. 내 마지막 대회다 싶은 때 이 모든 걸 이뤘다. 그게 각별하다”고 말했다.
  • [금요칼럼] 가짜뉴스의 오래된 족보/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금요칼럼] 가짜뉴스의 오래된 족보/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영조 1년 4월 19일의 실록을 읽다가 흠칫 놀랐다. 사간원은 이태화가 전라도 옥구현감 시절에 저지른 비행을 고발했다. 그는 관청의 여종이 된 이술지의 아내를 점고하면서 “입은 옷을 벗기고 강제로 뜰 아래에 무릎을 꿇린 다음 갖가지 곤욕을” 주었다고 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끔찍했던지 고을의 아전들조차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하게 된 것은 페이스북 친구 덕분이었다. 그는 ‘승정원일기’에 이 사건이 좀더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고 했다. 과연 그러했다. 사간원은 이태화를 비난하면서 그 여성은 “아마 목매어 죽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동정했다. “만약 그가 사대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졌더라면 차마 어찌 이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사간원은 이 몹쓸 사람을 변방으로 귀양 보내라고 요구했다. 영조는 그 말을 따랐다(승정원일기, 영조 1년 4월 19일). 그 후 이태화는 어떻게 됐을까. 그는 평안도 위원으로 유배됐다가 2년 만에 풀려났다. 그러고는 30년 넘게 고향인 인천에 숨어 지냈다. 채제공의 ‘번암선생집’(제42권)과 정범조의 ‘해좌선생문집’(제36권)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런데 영조는 이태화를 잘 알고 있었다. “이태화는 젊은 나이에 급제하여 유명했다.”(승정원일기, 영조 6년 11월 24일) 그를 파렴치범으로 몰아 귀양까지 보냈으나 그것이 왕의 본심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태화가 당쟁에 워낙 깊숙이 개입돼 있어서 마지못해 처벌했을 것이다. 놀랍게도, 채제공과 정범조는 이태화의 비행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사실무근”, 여성의 옷을 벗기고 모욕한 일은 결코 없었다고 했다. 왕은 고향에서 근신하고 있던 이태화를 다시 조정으로 불렀다. “그대는 나와 동갑이 아니던가. 그대가 18세에 급제하자 선왕께서 기이한 인재라며 승정원 주서를 시키셨지.” 영조의 이런 말을 채제공이 기록했다. 동갑내기 이태화를 영조는 승지로 삼았다(실록, 영조 35년 8월 23일). 이태화가 사망하자 영조는 매우 슬퍼했고, 높은 벼슬도 추증하고 영민(榮敏)이란 시호를 내렸다. 이태화는 특히 행실이 고왔다. 형제간에도 우애가 깊어, 한 잔의 술이라도 형제가 나누어 마셨다. 어머니가 작고한 뒤로는 형수를 어머니처럼 섬겨, 작은 일도 반드시 형수에게 여쭈어 결정했다. 게다가 그는 누구보다 검소하고 청렴했다. 채제공과 정범조는 이태화가 극히 모범적인 선비였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맨 앞에서 읽은 ‘실록’과 ‘승정원일기’는 어찌 된 것인가.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고 싶어서 나는 여러 문헌을 검토했다. 알고 보니, 이태화에게 모욕을 당했다는 여성은 대단한 인물이었다. 추사 김정희의 고조부요, 영의정을 지낸 김흥경의 딸이었다. 그 남편 이술지는 좌의정 이건명의 아들이었다. 영조를 경종의 ‘세제’로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운 ‘노론 4대신’의 하나가 이건명이었다. 이건명의 며느리가 한때 관청의 여종이 된 것은 ‘신임사화’(경종 1년)의 여파였다. 그때는 이건명의 가족이 모두 벌을 받았다. 그러나 영조가 즉위하자 그들은 모두 복권됐다. 이제는 노론의 반대파인 소론과 남인이 숙청됐다. 이태화는 남인의 소장파로 처벌된 것이었다. 그가 김흥경의 딸을 정말 모욕했는지는 따질 일도 아니었다. 당쟁이 격심할 때면 가짜뉴스가 횡행했다. ‘실록’도 ‘승정원일기’도 오염된 기록으로 가득하다. 21세기 한국 사회는 유감스럽게도 당쟁이 극심하던 그 시절과 닮은 듯하다. 날마다 혼란스러운 뉴스를 읽고 들으면서 나는 때로 슬픔을 느낀다. 모두가 그토록 바랐던 민주화가 기껏해야 이런 가짜뉴스나 마음껏 만들자는 준비운동이었던가.
  • 김춘례 서울시의원, 독립운동가 김익상 의사 의거 100주년 준비 촉구

    김춘례 서울시의원, 독립운동가 김익상 의사 의거 100주년 준비 촉구

    서울시의회 김춘례 의원(더불어민주당, 성북1)은 지난 3일 독립운동가 김익상 의사의 의거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준비를 위해 조선의열단 기념사업회 박우섭 회장과 함께 서울시에 역할을 강력히 요청했다. 서울특별시 미디어콘텐츠산업과, 역사문화재가 만난 이번 자리에서 김 의원은 서울애니메이션센터 건립지가 독립운동의 역사적 장소임을 강조하며 조선의열단 김익상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이해 서울시는 의사의 의거를 시민들에게 알리는 콘텐츠를 만들 것을 요청했다. 평안남도 강서 출생한 김익상 의사는 1921년 9월 12일 현재의 중구 소파로 126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 있었던 조선총독부 청사를 향해 폭탄을 투하하였고 1922년 상하이 세관부두에서 일본 육군 대장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현장에서 체포, 21년간의 투옥생활을 한 후 출옥했으나 일본형사에 의해 유명을 달리한 독립투사이다. 김 의원은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 의열투쟁의 역사를 기록한 김익상 의사 의거 터 표석이 있었으나 지금은 센터건립 공사로 서울시가 보관 중이다”라고 말하며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모든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후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 의원은 “지금 공사 중인 서울 애니메이션센터에 김익상 의사의 기록이 전시되어 시민들이 의사의 독립투쟁을 기억하도록 해주시길 당부 한다”고 말하며 우리나라 독립운동 역사를 일깨워주시는 박우섭 회장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 전북도, 남북 협력사업 재개 움직임 관심

    전북도, 남북 협력사업 재개 움직임 관심

    전북도가 남북 협력사업을 재개할 움직임을 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3일 전북도에 따르면 이달 중순 우범기 정무부지사 주재로 남북교류협력위원회를 열어 사업안을 확정짓고 통일부에 승인을 요청할 방침이다. 통일부의 승인을 받으면 후속절차를 밟아 내년 1월부터 본사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현재 사업안은 농축산과 문화예술 분야 2~3개 사업이다. 앞서 전북도는 남북 화해시대에 대비해 다양한 협력사업안을 마련해 주목받아왔다. 지난해 10월 확정된 사업안은 모두 57건에 달한다. 대표적인 사업은 2023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를 겨냥한 남북 청소년 단일팀 구성, 전주 비빔밥과 평양 냉면을 주제로 한 남북 푸드축제 공동 개최, 지구 온난화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진안 인삼과 장수 사과 등 전북산 농특산품을 생산할 전용농장 조성, 농도 전북의 선진기술이 축약된 자원 순환형 낙농단지 조성 등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전북이 가진 강점이면서 북한측의 수요가 있는 분야부터 우선 교류한 뒤 상호 신뢰가 형성된다면 의료, 사회문화, 체육을 비롯해 인도적 대북 지원사업까지 교류를 확대할 계획”이라며 “그 첫 사업안은 관련 지자체와 남북교류협력위 등의 의견을 모아 이달 안에 선정해 통일부에 사업승인을 신청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전북도내 지자체와 교육청은 지난 2004년부터 4년간 다양한 대북 지원사업을 펼쳐왔다. 지원 규모는 39억원대으로 황해남도 신천군 백서리에는 전북산 농기계 570여 대를 지원하고 정비공장도 세워줬다. 평안남도 남포시 대대리에는 남포·전북우리민족돼지공장을 짓고 진안산 돼지 260마리와 사료 150톤 등을 보냈다. 전북산 종이 700톤도 교과서 제작용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잇단 북핵 실험과 미사일 도발, 특히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과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까지 겹치면서 대북 지원은 퍼주기 논란 끝에 전면 중단됐다. 덩달아 군산항과 남포항간 서해 직항로도 폐쇄됐다. 현재 전북도에 남아있는 남북협력기금은 105억 원에 이른다.
  • 부귀영화를 부르는 모란, 과연 ‘왕의 꽃’이로구나

    부귀영화를 부르는 모란, 과연 ‘왕의 꽃’이로구나

    풍성하고 화려한 자태로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는 꽃, 모란. 봄의 절정인 5월에 짧게 피었다 지는 모란이 때아닌 한여름에 활짝 피었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안녕, 모란’ 전에서다. ‘꽃의 왕’으로 불리는 모란이 ‘왕의 꽃’으로 사랑받으며 조선왕실 일상 곳곳에 스며들었던 흔적들을 모란도 병풍, 혼례복, 그릇, 가구 등 120여점의 유물로 만날 수 있다. 모란은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전래했다. 신라 진평왕(579~632) 시기 당나라 태종이 모란 그림과 모란씨 석 되를 보내왔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당나라에서 크게 유행했던 모란 무늬는 고려시대 도자와 직물 등에 장식적인 기능과 길상의 의미로 쓰였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궁중 안팎에서 풍요와 평안의 상징으로 각별히 애용됐다.전시는 모란을 가꾸며 글과 그림으로 즐겼던 문인들의 전통과 조선왕실 생활공간 및 혼례·흉례 등 각종 의례에 깃든 모란 무늬의 의미를 다채롭게 살핀다. 가장 먼저 마주하는 풍경은 모란이 핀 정원이다. 전시장 옆에 위치한 별도 공간을 정원처럼 꾸며 꽃과 수풀 사이에 모란 그림들을 배치했다. 모란 그림을 많이 그려 ‘허모란’으로 불렸던 허련(1809~1892)의 모란 화첩을 비롯해 심사정, 강세황, 신명연 등 18~19세기 문인화가들의 모란 그림을 모았다. 전시장 안에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는 모란향이다. 올봄 창덕궁 낙선재에 모란이 만개했을 때 향을 포집해 향수로 제작한 것이다. 김충배 국립고궁박물관 전시홍보과장은 “관람객에게 위안과 휴식을 주는 힐링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왕실의 바람은 나전 가구, 화각함, 청화백자, 자수 등 다양한 궁중 공예품에 새겨진 모란 무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봉황, 나비, 공작, 괴석, 복숭아 등 다른 무늬들과 어우러져 한층 풍성한 의미를 전달하는 모란 무늬 유물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그중에서도 왕실 혼례복에 깃든 모란은 압도적인 화려함으로 시선을 끈다. 이번 전시에는 순조의 둘째딸 복온 공주가 입었던 활옷과 창덕궁에서 전해 내려오는 궁중 활옷 등 혼례복 두 벌이 나왔다. 창덕궁 활옷은 장기간 보존 처리를 거쳐 처음 공개되는 유물이다. 활옷 안에 1880년대 과거시험 답안지가 심지로 사용된 사실이 밝혀져 제작 연대 추정이 가능해졌다. 혼례복을 배치한 전시장 삼면에 미디어아트로 모란 무늬가 꽃비처럼 내리는 장면을 연출해 몰입감을 높였다. 왕실은 흉례에도 모란을 활용했다. 흉례의 모든 절차마다 모란도 병풍을 둘러 망자의 평안과 왕실의 번영을 염원했다. 전시에 소개된 모란도 병풍들은 국립고궁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이기도 하다. 왕의 어진을 모시는 선원전을 재현한 마지막 공간은 왕실과 모란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사전 예약과 현장 접수로 시간당 60명, 하루 630명까지 관람할 수 있다. 10월 31일까지.
  • 안무가 장현수, 11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서 패강가(浿江歌) 공연

    안무가 장현수, 11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서 패강가(浿江歌) 공연

    들숨 무용단이 장현수 안무가와 함께 당대 연인들의 춘심 (春心)을 아름답게 담아낸 ‘패강가(浿江歌)를 선보인다.패강(浿江)은 대동강의 옛 이름으로, 패강가(浿江歌)는 대동강 강가에서 부르는 노래를 의미하고 있다. 16세기 중반 조선시대 문인이었던 임제(林悌)의 시조에 한국 춤과 한국음악이 만나 사랑하는 임을 떠나보내는 여인의 애틋한 정(情)과 한(恨)이 서린 이별의 마음을 ‘패강가’에 담았다. ‘패강가’는 자연과 하나 되어 사랑의 이치를 달관한 듯한 임제 선생의 낭만적 인생관도 담겨있다. 임제의 시조를 원작으로 한국 춤을 정가(正歌)와 결합시켜 임을 떠나보낸 여인의 정과 한이 서린 슬프고 아름다운 이별가라는 평가받는 ‘패강가’는 상처 입은 모든 이들의 이별을 슬픔을 위로해주는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공연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들숨 무용단은 ‘청안’, ‘여행’, ‘둥글게둥글게’, ‘상상력’, ‘생수’, ‘목멱산59’ 등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소재로 관객과 소통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장현수 안무가는 한국 음악과 한국 무용, 클래식 음악과 한국 무용, 한국적 이야기의 현대적 표현 그리고 파격적이며 몽환적인 무대와 조명으로 이목을 끄는 한국 무용계의 대표 안무가로 높은 인지도를 축적하고 있다. 5세 때부터 한국무용을 하며 국립무용단에서 주역, 수석무용수, 훈련장까지 여전히 활발히 활동해오고 있는 장현수 안무가는 2018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올해의 최우수 예술가상, 대한민국창조문화예술대상-대상, 국회문화체육관광 위원장상, 2017 국립무용단 표창장-문화체육부장관 표창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목멱산59’, ‘둥글게둥글게’, ‘상상력’, ‘만남’ 등의 작품을 통해 한국 무용을 어려워하는 관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등 다양한 시도로 한국 무용의 대중화에 앞장서는 그녀가 이번에는 ‘패강가’를 통해 대동강을 소재로 사랑하는 임을 떠나보내는 여인의 애틋한 정(情)과 한(恨)을 표현할 예정이다. 패강가 1막은 층층이 쌓인 성곽 위로 푸른 나무들이 무성하고, 자연을 벗 삼아 즐기는 풍류 소리는 강 언덕을 넘어 멀리 퍼져 간다. 일체의 구속과 고뇌 등을 초월하고 영원함과 무한을 향해 절대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백호를 엿보며 평안하면서 온화한 분위기를 전달한다. 2막에서는 꿈결 같은 상상 속에서 환상적인 사랑 이야기를 조용히 펼쳐가는 설화적 감동을 주며 아기자기한 동선을 갖고 물의 무게를 다리 위에서 흩뿌리며 기쁨과 무거움을 전달한다. 3막에서는 생활과 생계의 전부인 농업을 통해 백성들의 배고픈 현실을 걱정하며, 한편으론 힘과 열정을 표현하는 자연적 숨결로 노동의 힘으로 태평성대를 이뤄낸 그 시절을 그려본다. 4막에서는 백성들의 권리가 침해하는 외국세력의 무모함, 나라걱정이 앞서는 아픔을 그려낸다. 5막에서는 헤어져야 하는 님과 여인의 애타는 심정을 그려낸다. 6막에서는 대동강에 놀러나간 아가씨가 버들을 보며 임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애틋함에 젖었던 시간을 그리며 애끊는 슬픔에 빠져든다. 패강가 전반에 등장하는 버들은 사랑하는 임과의 이별을 상징한다. 7막에서는 이별의 장소 대동강 나루터에서 떠나는 임에게 가는 길 평안하고 빨리 돌아오길 바라는 소망을 담아 버들가지를 꺾어주던 일을 회상한다. 8막에서는 헤어질 때가 되어도 차마 헤어지지 못하고 다시 만날 다짐하며 나누던 버들가지를 보며 그녀들은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녀들이 흘리는 눈물과 한숨은 안개가 되어 대동강을 자욱하게 만든다. 9막에서는 이별을 전제로 한 사랑에서 남자는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여인은 비련을 품고 남게 된다. 애틋한 사랑과 이별의 사연을 낳은 대동강은 이별의 노래로 남는다. 마지막으로 10막에서는 대동강, 미련 없이 떠나는 님을 그리며 사랑의 무게를 0으로 맞춘다. 장현수 안무가는 “패강가는 나에게 상징적 춤이 아닌 예술의 춤을 출 수 없을까는 의문에 대답을 주는 작품이자, 많은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강을 통해 표현의 자유와 영역을 확장시킨 공연이다”라며 “한이 서린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별가를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패강가(浿江歌)는 오는 11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전 수(10수) 공연을 진행한다.
  • 27번 업어치기에 식물인간 된 대만 7살…결국 눈감다

    27번 업어치기에 식물인간 된 대만 7살…결국 눈감다

    대만의 한 유도학원에서 사고를 당해 병실에 누워있던 일곱살 소년 황(Hwang)이 결국 숨을 거뒀다. 30일 현지언론에 따르면 대만 타이중(臺中)시 펑위안병원에 입원했던 황군이 이날 숨을 거뒀다. 대만 타이중시 펑의안구 난양 초등학교의 1학년생 황군은 지난 4월 21일 삼촌과 함께 루의 수이 초등학교 체육관 지하에서 진행된 유도 수업에 참여했다. 이날이 두 번째 유도 수업이었던 황군에게 관장은 상급생들에게 업어치기 연습을 하라고 시켰고, 황군이 고통을 호소하자 엄살을 부린다며 계속 훈련을 강행했다. 아무런 보호 장비도 없이 황군을 바닥에 메치고 또 메쳤다. 상급생들에게 20번, 관장에게 7번의 업어치기를 당한 황군은 결국 의식을 잃어 병원에서 응급수술을 받았지만 혼수상태에 빠졌다. 심각한 상황에도 관장은 삼촌에게 “수년간의 경험으로 볼 때 조카는 기절한 척했을 뿐”이라고 했다. 병원 측은 황군이 뇌손상을 입었다며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관장은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안전하게 수업을 진행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사건 당시 유도장 내 폐쇄회로(CC)TV 영상이 공개되면서 시인했다. 대만 유도 연맹 측은 “문제의 관장은 유도 코칭 면허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그의 가족들은 SNS를 통해 “여러분들의 응원과 기도가 아들에게 닿아 꼭 다시 눈을 뜰 수 있게 도와주세요. 아이가 제발 다시 눈을 뜰 수 있게 축복을 빌어주시길 바랍니다”라며 아이의 상황을 알렸다. 황군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대만의 시민들은 꽃다발과 선물, 편지 등을 병실로 보냈다. 반복된 업어치기로 인해 황군은 뇌출혈과 다발성장기손상을 겪었고, 입원 후 70일 가까이 생명유지장치에 의존해 생을 이어왔다. 부모는 전날 황군의 상태가 악화하자 생명유지장치 제거에 동의했다. 황군을 사망케 한 코치는 이달 초 폭행치상과 미성년자를 이용해 범죄를 저지른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10만 대만달러(약 405만원)를 내고 보석을 허가받았다. 루슈옌 타이중시장은 후앙군 사망 이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명복을 빌며 “사법 시스템이 유족에게 평안을 가져다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 윤영하·한상국·황도현… 서해 NLL 지킨 6용사 그립습니다

    윤영하·한상국·황도현… 서해 NLL 지킨 6용사 그립습니다

    제2연평해전 19주년을 맞아 기념식이 29일 경기 평택시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열렸다. 기념식에는 교전 중 전사한 6용사의 유가족과 생존 참전용사, 서욱 국방부 장관, 부석종 해군참모총장, 김태성 해병대사령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등이 참석했다. 서 장관은 기념사에서 “오늘 우리는 제2연평해전 19주년을 맞아 6용사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승전의 역사를 이어 가려 한다”며 산화한 6용사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기념식에 참석한 한상국 상사의 모친 등은 아들의 이름이 호명되자 고개 숙여 눈물을 닦기도 했다. 황도현 중사의 부친 황은태 유족은 격려사에서 “벌써 19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이곳 2함대에서 자식과 같은 여러분의 모습을 보니 6용사가 더 그립다”며 “여러분이 서해와 NLL을 지키는 덕분에 국민들은 생업에 종사하면서 평안한 생활을 하고 있어 2함대 전우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유족과 참전용사들은 기념식이 끝나자 제2연평해전 전적비를 찾아 묵념한 후 산화한 6용사 부조상을 어루만지며 전사자를 추억했다. 이어 유족들은 대전 현충원에 들러 묘역을 참배했다. 송 대표는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으로, 민주당 대표로서는 6년 만에 기념식에 참석했다. 제2연평해전은 한일 축구월드컵 3·4위전이 열린 2002년 6월 29일 오전 9시 54분 북한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해군의 참수리 357호정에 기습공격을 가하면서 발생했다. 당시 장병들은 적의 기습공격에도 즉각적으로 대응해 서해 NLL을 사수했다. 이 전투에서 당시 정장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 등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했으며, 북한군은 3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 “6용사를 기억합니다”… 제2연평해전 19주년 기념식

    “6용사를 기억합니다”… 제2연평해전 19주년 기념식

    제2연평해전 19주년을 맞아 기념식이 29일 경기 평택시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열렸다. 기념식에는 교전 중 전사한 6용사의 유가족과 생존 참전용사, 서욱 국방부장관, 부석종 해군참모총장, 김태성 해병대사령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등이 참석했다. 서욱 국방부장관은 기념사에서 “오늘 우리는 제2연평해전 19주년을 맞아 6용사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승전의 역사를 이어가려 한다”며 산화한 6용사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기념식에 참석한 고(故) 한상국 상사의 모친 등은 아들의 이름이 호명되자 고개 숙여 눈물을 닦기도 했다. 고 황도현 중사의 부친 황은태 유족은 격려사를 통해 “벌써 19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이곳 2함대에서 자식과 같은 여러분의 모습을 보니 6용사가 더 그립다”며 “여러분이 서해와 NLL을 지키고 있는 덕분에 국민들은 생업에 종사하면서 평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2함대 전우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유족과 참전용사들은 기념식이 끝나자 제2연평해전 전적비를 찾아 묵념한 후 산화한 6용사 부조상을 어루만지며 전사자를 추억한 뒤 부대 밖으로 나갔다. 유족들은 오후에 대전 현충원에 들러 묘역을 참배할 예정이다. 이날 송영길 대표는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으로,민주당 대표 자격으로는 6년 만에 기념식에 참석했다. 양당 두 대표는 기념식에서 별도의 발언 기회는 얻지 못했으나 부대 관계자들로부터 제2연평해전에 대한 설명을 경청하며 6용사의 넋을 기렸다. 제2연평해전은 한일 월드컵 3·4위전이 열린 2002년 6월 29일 오전 9시 54분 북한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우리 해군의 참수리 357호정에 기습공격을 가하면서 발생했다. 당시 참수리 357호정 장병들은 적의 기습공격에도 즉각적인 대응으로 단호히 적을 응징해 서해 NLL을 사수했다. 이 전투에서 당시 참수리 357호정 정장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 등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했으며,북한군은 3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연지곤지와 가락지의 유래/전 국립고궁박물관장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연지곤지와 가락지의 유래/전 국립고궁박물관장

    보통 혼인 증표로 신랑 신부가 반지를 주고받는다. 혼례를 치르는 신부는 이마와 볼에 붉은 점으로 화장을 하는데, 이를 연지곤지라 한다. 연지는 붉은 물감으로 여자들이 입술과 뺨, 미간 등에 바르거나 찍는 것이고, 곤지는 이마 가운데에 연지로 찍는 붉은 점이다. 이런 연지곤지의 유래가 사뭇 재미있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후세 부인들은 모두 얼굴에는 붉은 연지(丹注)를 찍고 손가락에는 가락지를 낀다. 연지라는 것은 옛날 천자의 여러 첩이 월경이 있을 때 월경이 있다는 것을 표시해 임금을 모시지 않았던 데서 유래한 것이라 했다. 월경을 하면 모시기가 어렵고, 이를 스스로 말하기도 어려워 얼굴에 붉은색으로 점을 찍어 표시한 것이다. 사마천도 ‘사기’에서 “정희가 월경을 하므로 임금 모시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정희는 한나라 경제의 네 번째 부인으로, 월경이 있어 황제나 제후를 모시지 못하는 것을 정희의 이름을 따 ‘정희의 병’이라 했다. 당나라 때는 얼굴에 연지를 찍은 모습이 예쁘게 보여 부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또 중국 오나라의 손화라는 부인 뺨의 상처 치료에 흰 수달피 가루에 옥가루와 호박가루를 섞어 발랐는데 흉터가 아름다운 것을 보고 부인들이 모방했다고도 한다. 우리 전통 혼례 때 신부 화장의 대명사인 연지곤지는 그 역사가 오래됐다. 신라의 여인들이 처음으로 연지 화장을 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5~6세기경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평안남도 강서구역 수산리 고구려 무용총 벽화 여인상과 쌍영총 벽화의 ‘차마행렬도’에서 볼과 입술에 연지를 바른 여인들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은 흉노의 고유 습속이 중국에 전래됐다가 다시 우리나라로 넘어온 것이라 했고, 육당 최남선은 몽고족의 습속이 고려 시대에 전래된 것이라고 했다. 또 붉은색은 잡귀와 부정을 쫓는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하여 새 신부의 연지곤지 풍속이 생겨났다고 보기도 한다. 특히 단옷날 비녀 끝에 연지를 발라 재액을 물리치거나, 일부 산간 지방에서 전염병이 돌 때 예방 수단으로 이마에 연지를 칠하거나 붉은색 종이를 오려 붙이는 행위도 이를 잘 말해 준다. 후궁이 임금의 사랑을 받아 동침한 것을 승은이라 한다. 한나라 위광이 서한(西漢)의 전례를 기록한 ‘한관구의’에 의하면 궁녀들이 임금을 모시게 되면 은반지를 하사해 당번되는 달을 따지도록 했다. 또 ‘시경’ 정녀(靜女ㆍ얌전한 아가씨) 모형전(毛亨傳)에는 “옛날 후비와 후궁들이 예법에 따라 임금의 처소에 나아갈 때 여사가 그 달과 그 날짜를 적고 반지를 주어서 나아가게도 하고 물러가게도 했다. 그리고 임신을 하면 금반지를 주어 물러가도록 하고 마땅히 모시게 된 자에게는 은반지를 주어 나아가도록 했다”고 돼 있다. 중국의 호속전(胡俗傳)에서도 “남녀가 처음 혼인 때 서로 한평생을 굳게 약속한다는 뜻으로 금으로 만든 반지를 주었다”고 했다. 그럼 반지는 어느 손에 끼어야 할까. 승은을 입기 위해 나아갈 때는 반드시 왼손에 끼고, 왕과 동침하고 나면 오른손에 낀다. 왜일까. ‘오경요의’(五經要義)에 따르면 음양으로 볼 때 “왼손은 양(陽)인 까닭에 여자가 남자에게 나아갈 때 반지를 왼손에 끼게 되고, 오른손은 음(陰)이기 때문에 이미 모신 후에는 바꿔 오른손에 끼게 된다”는 것이다. 조선에서는 궁녀가 왕의 승은을 입으면 아침에 치마를 뒤집어 입고 나와 은혜를 표시했다. 이에 대해 조재삼은 1885년 쓴 ‘송남잡지’에서 왕의 잠자리를 모시고 나서 은가락지를 오른손에 낀 것과 같은 뜻이라 했다. 한편 이익은 새 신부의 연지곤지와 가락지를 끼는 풍속에 대해 그 유래가 아름답지 못한 것이라며 혁파를 펴기도 했다.
  • 미 법원, 조지 플로이드 질식사 시킨 데릭 쇼빈 경관에 징역 22년 6개월형

    미 법원, 조지 플로이드 질식사 시킨 데릭 쇼빈 경관에 징역 22년 6개월형

    지난해 5월 25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위조지폐 혐의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하려다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백인 경관 데릭 쇼빈에게 징역 22년 6개월형이 선고됐다. 피터 캐힐 판사는 “아주 잔인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고 영국 BBC가 문자 중계로 전했다. 검찰은 최소 징역 30년형을 선고해달라고 했고, 쇼빈의 변호인단은 더 이상 구금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판사는 검찰의 구형에 조금 더 가깝게 판결한 셈이다. 캐힐 판사는 특히 검찰의 구형량보다 모자란 선고 양형에 대해 “결코 감정이나 동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법정에는 플로이드의 딸 지아나가 화상으로 연결돼 “언젠가 아빠를 다시 만나길 바란다”고 말해 법정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쇼빈도 유가족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의 어머니 캐롤린 파울렌티는 법정에 나와 아들은 좋은 사람이며 인종주의자가 아니라면서 선처해달라고 호소했다.  쇼빈은 최후변론에 나서 “여러 부차적인 법률 문제들이 있어 오늘 이 자리에서 완벽한 공식 입장을 설명드리지 못한다”면서 “아주 짧긴 하지만 플로이드 유족에게 제 유감을 전해드리고 싶다. 장차 흥미로운 몇 가지 부차적인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아무튼 유족 여러분이 마음의 평안을 찾으시길 바란다. 감사하다”고 알듯 모를듯한 말을 늘어놓았다.  변호인들은 그가 비번이었다며 동료들의 호출 요청을 무시했더라면 이런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변호했다.  플로이드의 죽음을 방조하거나 제지하기 위해 다가오는 주민들을 접근하지 못하게 막은 동료 세 경관에 대한 재판은 내년 3월에 시작한다.
  • [홍태경의 지구 이야기] 원자력발전 활용의 선결조건/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홍태경의 지구 이야기] 원자력발전 활용의 선결조건/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많은 양의 오염수 처리 문제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새삼 원전 효용성에 대한 논쟁도 커졌다. 원전을 둘러싼 오래된 논쟁은 효율성과 위험성의 대립으로 요약된다. 원전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원자력발전은 청정에너지 발전 방식이고, 에너지 자원 부족 국가에서 많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값싸게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 측에서는 원자력발전 소요 비용에는 방사능 폐기물 처리 비용, 원자로 폐로 비용과 환경 복구 비용이 추가돼야 하고, 사고 발생 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까지 있어 결코 싸지도 안전하지도 않은 에너지 생산방식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원전 효용성의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과학적ㆍ사회적ㆍ경제적 요소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각 요소의 사실관계부터 올바르게 정리돼야 한다.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폭발사고는 지진 같은 자연재해에 대한 원전의 취약성을 설명하는 사례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 사전 대비를 할 수 없었던 이유와 피해 원인 분석은 중요하다. 원인을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해당 지역에 동일본 대지진 같은 큰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했고, 이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 특정 지역에 발생 가능한 지진 규모 평가는 불가능한 일일까. 그렇지 않다. 지진은 단층의 크기, 응력 누적량 등을 통해 발생 가능한 최대 지진 산정이 가능하다. 활동성 단층에 대한 완전한 조사만 이뤄진다면, 발생 가능한 최대 지진과 그 재래주기를 판단할 수 있다. 동일본 대지진은 해저 침강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유사한 크기의 지진이 1100여년 전에 발생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869년에 발생한 규모 8.6의 ‘조간지진’이 그것이다. 이 지진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던 까닭에, 조간지진은 일본의 지진재해도 작성과 원전 안전성 설정에 필요한 설계지진으로 고려되지 못했다. 이처럼 충분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을 경우 안전한 원전 설계가 어렵다. 원전 운용 국가들은 지역별 지진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내진 성능 기준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동부와 중부 지역에서는 0.2~0.25g(중력가속도)의 지진동에 견디도록 설계된 데 반해 큰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서부 지역은 0.5g에 이르는 내진성능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지진이 더욱 많은 일본은 최대 0.8g 내진성능 기준을 적용한다. 한국은 신고리 원전 건설 전후로 내진 성능이 0.2g에서 0.3g로 상향 설계되고 있다. 현재의 내진 성능은 이탈리아, 프랑스 원전과 같은 수준이다. 원전은 청와대와 같이 ‘가’급 국가중요시설로 관리되고 있다. 원전부지도 엄격한 조건을 만족하도록 법제화돼 있다. 한국은 과거 3만 5000년 이내에 한 차례 이상 혹은 50만년 이내에 두 차례 이상 지표 변위를 만든 단층을 활동성 단층으로 규정하고, 원전 부지로부터 320㎞ 이내 지역의 활동성 단층을 내진 성능 결정에 고려토록 돼 있다. 이 규정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내륙과 해역의 활동성 단층에 대한 자세한 정보의 축적이 선행돼야 한다. 1978년 고리원전 1호기가 첫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로 원전 건설과 운영에 밀려 필요 정보 축적은 뒷전으로 밀려나곤 했다. 이제라도 필요한 정보의 축적에 힘써야 할 때다. 국가의 미래 성장과 후손의 평안한 삶이 오늘 우리의 결정에 달렸다.
  • 고개 숙인 쿠팡, 여야 정치권 애도 물결…“대책 마련 최선”(종합)

    고개 숙인 쿠팡, 여야 정치권 애도 물결…“대책 마련 최선”(종합)

    쿠팡 “유가족에 모든 노력·지원 다할 것” 쿠팡 물류센터 화재현장에서 구조 작업 중 끝내 순직한 고(故) 김동식(52) 119구조대 구조대장의 비보에 쿠팡 임직원, 여야 정치권의 애도가 이어졌다. 쿠팡은 19일 임직원 명의로 낸 입장문에서 “덕평물류센터 화재 진압 과정에서 고귀한 생명을 잃으신 고 김동식 구조대장님의 숭고한 헌신에 모든 쿠팡 구성원의 마음을 담아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유가족분들께도 진심 어린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쿠팡은 “회사는 순직하신 소방관과 슬픔에 잠긴 유가족분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노력과 지원을 다하겠다”며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역량을 동원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강조했다. 앞서 강한승 쿠팡 대표는 지난 18일 화재사고와 관련해 “많은 분께 심려를 끼쳐 몹시 송구하다. 피해를 입은 분들께 사과한다”며 “화재 원인 조사는 물론 사고를 수습하는 모든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 당국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여야 정치권 애도 물결…“대책 마련 최선” 김진욱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며 “화재현장에서 순직하신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동료 소방관 여러분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인에게 예를 표했다. 김 대변인은 “6월 국회에서 (화재 안전대책의 현실화를 위한) 법안을 반드시 처리해서 더 이상 후진국형 화재 사고로 인해 국민과 소방관이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여야가 함께할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이어 “민주당은 이번 화재 사고와 관련하여 순직하신 구조대장과 유가족에 대한 예우를 아끼지 않을 것이며, 더 이상 소방관의 희생이 없도록 근본적 대책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야권에서도 추모가 이어졌다. 황보승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유가족분들께 진심어린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꼭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했던 국민의 바람이 무너져 비통하고 슬프다”고 밝혔다. 황보 대변인은 “화재를 미연에 방지했다면 대장님이 목숨을 잃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며 “철저한 원인조사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오현주 정의당 대변인도 “화마와 사투를 벌이며 동료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한 김 소방경의 사명감을 시민들은 가슴 깊이 기억할 것”이라며 “정의당은 김 소방경의 안타까운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소방관들의 노동환경을 두루 살피고 화재사건의 진상규명과 사후대책 마련에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다. 홍경희 국민의당 수석부대변인은 “인명 수색을 위해 화마의 현장에 투신한 고인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며 “정부는 돌아가신 김 대장님에 대한 장례를 최대한의 예우로 모셔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함께 추모”…대권주자들도 순직 애도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고 김동식 구조대장님의 숭고한 희생을 국민과 함께 추모한다”며 “국가 예산은 국민을 위해 써야 한다. 국민 생명에 관한 예산을 대폭 늘려 안전하고 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평소에도 위험한 상황에는 앞장서서 행동으로 솔선수범하셔서 후배들이 존경하고 따르던 분이라 슬픔과 안타까움이 더 크다”며 “평생 헌신하고 희생해 오신 고 김 대장님이 저세상에서는 평안하게 영면하기를 기도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근본 원인을 비켜가는 해결책을 내놓으면 더 많은 문제가 일어날 뿐”이라며 “중대재해 ‘불처벌법’을 강력한 처벌법으로 고쳐야 한다”고 법개정을 주장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안전보다 모두의 안전을 살피며 임무에 온 몸을 던져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분들의 희생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숙연해진다”면서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더 노력하겠다”고 추모했다.원희룡 제주도지사는 “평소 성실함과 능력을 인정받아 소방행정 유공상 등을 받았으며, 항상 솔선수범하고 모범적인 ‘진짜 대장’이라고 소개하던 동료들의 증언에 더욱 가슴이 먹먹해진다”며 “유가족분들과 동료 대원들께도 진심어린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시민과 동료 구조대원들의 무사 탈출을 돕고 마지막까지 뜨거운 불길과 싸우신 김 대장님의 뒷모습을 생각하니 너무나 죄송하고 억장이 무너진다”며 “화재 전날에도 훈련에 매진하며 동료에게 미소를 보이셨다는 김 대장님이 남긴 삶의 향기를 기억하는 것은 세상에 남아있는 우리의 몫”이라고 전했다.앞서 소방당국은 이날 오전 10시49분쯤 물류센터 지하 2층 입구에서 50m 지점에 숨져 있는 김모 구조대장을 발견했다. 김 대장은 지난 17일 인명수색을 위해 현장에 투입됐다고 고립, 실종된 지 47시간 만에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소방경은 1994년 경기도 고양소방서에서 소방관으로 일을 시작했다. 이후 27년 동안 하남과 양평, 용인소방서에서 구조대와 예방팀, 화재조사 등 주요 부서를 두루 거쳤다. 응급구조사2급 자격증, 육상무전통신사, 위험물기능사 등 각종 자격증도 두루 보유해 남다른 학구열을 가진 베테랑 소방관이었다. 한편 소방당국은 오는 21일 오전 9시30분 경기 광주시 시민체육공원에서 경기도청장으로 김 소방경에 대한 영결식을 엄수할 예정이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기획]북한산 최고 전망대 경기 양주 ‘노고산’- 바로 옆 선경(仙境) 품어 유명

    [기획]북한산 최고 전망대 경기 양주 ‘노고산’- 바로 옆 선경(仙境) 품어 유명

    “자신의 편견과 주관을 모두 내려놓고 진솔하고 겸허하게 자연을 ‘관조’할 때 비로소 깨달음의 희열을 맛볼 수 있다.” 엷었던 연녹색 나무 이파리와 여린 풀이 한껏 물이 올라 우거질 때로 우거진 유월의 산행은 어느 계절보다 산객의 마음과 정신을 맑고 건강하게 한다. 앙상했던 나뭇가지는 어느덧 잎사귀가 빼곡해 드넓은 하늘을 뒤덮었다. 대지를 겨우 뚫고 나온 여린 풀들은 훌쩍 자라 억세지고 제법 시야를 가릴 정도가 됐다. 울창한 숲은 동식물, 곤충에게 안락한 서식처로 생명의 공간이다. 극성기인 성하(盛夏)를 앞두고 온갖 식물은 화려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준비에 여념이 없다. 다양한 야생동물과 곤충도 짝짓기, 먹이 사냥을 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는 시기다. 유월은 인생으로 치면 청춘이라 여겨지는 연중 최고의 계절이다. -평범한 노고산의 재발견‥북한산 조망 독보적 장소 경기 양주 노고산(487m)은 야트막한 보통의 산이지만 북한산(837m) 조망에 최적의 장소다. 창릉천을 사이에 두고 지척에 서로 마주하고 있어 다른 어느 곳보다 뛰어난 전망을 자랑한다. 정상에 서면 마치 코앞에 북한산이 우뚝 솟아 있는 듯 가깝다. 서울 노원과 경기 의정부에 걸쳐 있는 수락산(638m)에서 본 북한, 도봉산(740m) 전망도 뛰어나지만 제법 거리가 있어 아득하다. 북한산 지척에서 바라본 모습과 비교하면 감동은 크게 떨어진다. 평이한 노고산은 바위(골산)가 아닌 흙(육산)으로 이뤄져 등산로는 마치 양탄자 위를 걷는 듯 부드럽고 편안하다. 물론 일부 구간 너덜길이 있지만 일단 능선에 오르면 흙길이 잘 나있어 정상까지 이어진다. 흥국사 기준, 정상까지 어림잡아 1시간 정도다. 산 규모가 아담해 가장 긴 등산로도 3시간 정도로 부담이 적다. 특별히 돋보이진 않지만 나름대로 그만의 장점을 가진 매력적인 산임은 분명하다. 한미산으로도 불리며 북한산의 여맥으로 공릉천과 창릉천 분수령을 이룬다. -천년사찰서 평안 기원‥애견 돌무지무덤 사연은?본격적인 등산길에 오르기 전 노고산 첫 기착지인 흥국사에 잠시 들러 마음의 평화를 기원해 본다. 주불전인 약사전 뒤편 전망대에서면 우뚝 솟은 북한산 암봉과 주능선 일부가 아스란히 다가온다. 정상에서의 감동을 예고하는 듯하다. 천년 전통사찰 흥덕사는 특이하게 주 불전이 석가나 미륵불을 모신 대웅, 무량수전이 아닌 약사전이며 그 현판은 영조 친필로 알려졌다. 주 등산로는 아니지만 흥국사 뒤편으로 10여분 오르다 보면 살아생전 누군가에 사랑받았을 개의 돌무지무덤이 사진과 함께 제법 규모 있게 조성돼 있다. 애견 추모공원 외에는 개 무덤을 제대로 본적이 별로 없다. 개와 주인의 깊고 애틋한 인연은 어떤 것 이었을까?. 흥국사에서 오르는 등산로 주변에도 묘지 서너 기가 조성돼 있지만, 돌무지로 동물 무덤을 정성스레 쌓은 것은 이채롭다. 아마도 사찰 뒤에 무덤을 써 사랑했던 아니 가족처럼 여겼을지도 모를 애견이 극락왕생하기를 빌지 않았을까?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북한산‥정상 무한 감동 감소 우려북한, 도봉 최고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노고산 산행 길은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독보적인 전망을 자랑하지만 등산길 내내 그 위용을 쉽사리 보여주진 않는다. 무성한 숲이 하늘을 뒤덮은 등산로가 정상까지 이어지는 동안 그 사이로 살짝, 살짝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정상에 섰을 때 극적인 장면에 대한 무한 감동이 감소할 것을 염려한 배려일까? 그렇다고 정상에서의 감동만이 다는 아니다. 하눌님을 뒤덮은 숲길이 정상까지 지속돼, 지루할 것 같지만 이는 큰 오산이다. 정상에 오르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유익함 또한 만만치 않다. 사물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산객이라면 숲의 은밀한 부분을 살펴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맥을 놓고 ‘멍 때리는 것’도 때에 따라 필요하지만, 항상 사물에 대한 관심을 갖고 분석 하는 태도는 인생을 사는 데 매우 유익하다. 참나무과 수종이 전체 숲의 상당 부분을 장악한 노고산 정상에 이르는 길에는 신갈, 떡갈, 졸참. 갈참, 상수리, 굴참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하지만 정작 참나무는 없다. 닮은 듯 틀린 참나무과 ‘도토리 육형제’로 불리는 나무를 구분하며 오르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손가락으로 누르면 표피가 쑥 들어가는 코르크를 생산하는 굴참나무, 한 가지에 일곱 개의 이파리가 빼곡히 매달린 칠엽수(일명 마로니에), 열매가 팥을 닮은 팥배나무 등 만나는 나무마다 정겹다. -서어나무, 소나무 군락지 조우, 또 하나의 즐거움등산로 중턱에서 만나는 서어나무와 소나무 군락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인간 시간 개념으론 상상할 수 없을 정도 오랜 세월을 거쳐 숲의 ‘천이’가 이뤄지면, 맨 마지막 단계 극상림을 구성하는 수종 중 하나가 서어나무다. 전국적으로 군락이 많지 않고 귀하다. 마치 나무줄기가 잘 발달한 인체의 근육 같아 머슬트리(근육나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나무줄기는 회색빛을 띤다. 지척에 있는 송림(松林) 또한 볼만하다. 참나무과 수종과 풀들이 주를 이루던 등산길 분위기는 여기서부터 돌변한다. 참나무와 키 작은 수목, 온갖 풀들이 빽빽해 사방이 막힌 듯했던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다. 소나무에서 내뿜는 피톤치드가 너무 강한 나머지 근처에서 다른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해 주변은 마치 청소를 한 듯 깔끔하다. 깊은 숲 속으로의 산행은 전체를 파악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대신 자연의 신비와 마주하고 속살을 살펴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한 치 떨어져 보면 산의 규모나 계곡 모양 등 전체 형세를 읽을 순 있지만 정작 그 내면은 볼 수 없다. 고달픈 인생 이치도 이와 같지 않겠는가? -노고산 정상은 선계‥북한, 도봉 절경 무한 감동‥숨은벽도 윤곽 또렷이런저런 생각에 울창한 숲속 흙길을 따라 오르길 한 시간여, 홀연 하늘이 열리고 시야가 탁 트인다. 마치 깊은 터널을 겨우 벗어나 눈부신 세상과 갑작스레 마주한 듯 당혹스럽다. 내가 최고라며 우뚝 솟은 백운대, 인수봉의 수려하고 장엄한 모습이 시야를 떡하니 막아선다. 대자연의 웅장함에 감동이 밀려온다. 절정의 감동을 제공한 노고산은 북한산 최고 조망지라는 등호(=)가 설마에서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한 시간여 산책하듯 올라온 노고에 비하면 그 대가가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넘치는 보상을 받으니 무안한 감정마저 든다. 아니 횡재한 느낌이 더 정확하다고 할까? 조금만 노력해도 큰 선물을 주는 자연에 감사할 따름이다. 백운대와 인수봉 뒤에 살짝 숨어 있는 숨은벽도 전체 윤곽을 또렷이 드러냈다. 정상부는 769m로 북한산에서 4번째로 높다. 좀처럼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암봉으로 유명하다. 노고산에 오른다고 무조건 볼 수 있는 쉬운 존재는 아니다. 미세먼지나 안개가 없어야만 볼 수 있다. 또 하나,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빛이 이곳에 숨어들어야 비로소 온전한 모습을 내보인다. -장장 20여km 주 능선 지척에‥하늘에 그려낸 우아한 곡선미노고산 정상의 수많은 혜택(?)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맨 왼쪽 사패산(551m)을 시작으로 도봉산 포대능선, 두 산의 경계 우이령길, 북한산 상장·의상·비봉능선은 맑고 투명한 하늘에 또렷하게 아름다운 선을 그려 낸다. 그 능선 위로 우뚝 솟은 거대한 암봉들, 물결치는 우아한 곡선, 이곳은 속세가 아닌 선계임이 분명하다. 시간도 속세와 차원이 다르다. 절경에 팔려 잠시인가 했더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마냥 이곳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머리에 맴돈다. 하산길이 부담 없어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기도 하다. 이런 절경과 접근성 때문에 백패킹 장소로도 이름이 높다. 실제 정상은 군부대 내주고 바로 아래 헬기장이 실질적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노고산은 이렇다 할 절경은 없지만 바로 건너 북한산 최고 경치를 품어 명산이 됐다. 고달픈 인생도 자연의 이치를 배우면 삶이 새롭게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글·사진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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