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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용사를 기억합니다”… 제2연평해전 19주년 기념식

    “6용사를 기억합니다”… 제2연평해전 19주년 기념식

    제2연평해전 19주년을 맞아 기념식이 29일 경기 평택시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열렸다. 기념식에는 교전 중 전사한 6용사의 유가족과 생존 참전용사, 서욱 국방부장관, 부석종 해군참모총장, 김태성 해병대사령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등이 참석했다. 서욱 국방부장관은 기념사에서 “오늘 우리는 제2연평해전 19주년을 맞아 6용사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승전의 역사를 이어가려 한다”며 산화한 6용사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기념식에 참석한 고(故) 한상국 상사의 모친 등은 아들의 이름이 호명되자 고개 숙여 눈물을 닦기도 했다. 고 황도현 중사의 부친 황은태 유족은 격려사를 통해 “벌써 19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이곳 2함대에서 자식과 같은 여러분의 모습을 보니 6용사가 더 그립다”며 “여러분이 서해와 NLL을 지키고 있는 덕분에 국민들은 생업에 종사하면서 평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2함대 전우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유족과 참전용사들은 기념식이 끝나자 제2연평해전 전적비를 찾아 묵념한 후 산화한 6용사 부조상을 어루만지며 전사자를 추억한 뒤 부대 밖으로 나갔다. 유족들은 오후에 대전 현충원에 들러 묘역을 참배할 예정이다. 이날 송영길 대표는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으로,민주당 대표 자격으로는 6년 만에 기념식에 참석했다. 양당 두 대표는 기념식에서 별도의 발언 기회는 얻지 못했으나 부대 관계자들로부터 제2연평해전에 대한 설명을 경청하며 6용사의 넋을 기렸다. 제2연평해전은 한일 월드컵 3·4위전이 열린 2002년 6월 29일 오전 9시 54분 북한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우리 해군의 참수리 357호정에 기습공격을 가하면서 발생했다. 당시 참수리 357호정 장병들은 적의 기습공격에도 즉각적인 대응으로 단호히 적을 응징해 서해 NLL을 사수했다. 이 전투에서 당시 참수리 357호정 정장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 등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했으며,북한군은 3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연지곤지와 가락지의 유래/전 국립고궁박물관장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연지곤지와 가락지의 유래/전 국립고궁박물관장

    보통 혼인 증표로 신랑 신부가 반지를 주고받는다. 혼례를 치르는 신부는 이마와 볼에 붉은 점으로 화장을 하는데, 이를 연지곤지라 한다. 연지는 붉은 물감으로 여자들이 입술과 뺨, 미간 등에 바르거나 찍는 것이고, 곤지는 이마 가운데에 연지로 찍는 붉은 점이다. 이런 연지곤지의 유래가 사뭇 재미있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후세 부인들은 모두 얼굴에는 붉은 연지(丹注)를 찍고 손가락에는 가락지를 낀다. 연지라는 것은 옛날 천자의 여러 첩이 월경이 있을 때 월경이 있다는 것을 표시해 임금을 모시지 않았던 데서 유래한 것이라 했다. 월경을 하면 모시기가 어렵고, 이를 스스로 말하기도 어려워 얼굴에 붉은색으로 점을 찍어 표시한 것이다. 사마천도 ‘사기’에서 “정희가 월경을 하므로 임금 모시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정희는 한나라 경제의 네 번째 부인으로, 월경이 있어 황제나 제후를 모시지 못하는 것을 정희의 이름을 따 ‘정희의 병’이라 했다. 당나라 때는 얼굴에 연지를 찍은 모습이 예쁘게 보여 부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또 중국 오나라의 손화라는 부인 뺨의 상처 치료에 흰 수달피 가루에 옥가루와 호박가루를 섞어 발랐는데 흉터가 아름다운 것을 보고 부인들이 모방했다고도 한다. 우리 전통 혼례 때 신부 화장의 대명사인 연지곤지는 그 역사가 오래됐다. 신라의 여인들이 처음으로 연지 화장을 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5~6세기경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평안남도 강서구역 수산리 고구려 무용총 벽화 여인상과 쌍영총 벽화의 ‘차마행렬도’에서 볼과 입술에 연지를 바른 여인들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은 흉노의 고유 습속이 중국에 전래됐다가 다시 우리나라로 넘어온 것이라 했고, 육당 최남선은 몽고족의 습속이 고려 시대에 전래된 것이라고 했다. 또 붉은색은 잡귀와 부정을 쫓는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하여 새 신부의 연지곤지 풍속이 생겨났다고 보기도 한다. 특히 단옷날 비녀 끝에 연지를 발라 재액을 물리치거나, 일부 산간 지방에서 전염병이 돌 때 예방 수단으로 이마에 연지를 칠하거나 붉은색 종이를 오려 붙이는 행위도 이를 잘 말해 준다. 후궁이 임금의 사랑을 받아 동침한 것을 승은이라 한다. 한나라 위광이 서한(西漢)의 전례를 기록한 ‘한관구의’에 의하면 궁녀들이 임금을 모시게 되면 은반지를 하사해 당번되는 달을 따지도록 했다. 또 ‘시경’ 정녀(靜女ㆍ얌전한 아가씨) 모형전(毛亨傳)에는 “옛날 후비와 후궁들이 예법에 따라 임금의 처소에 나아갈 때 여사가 그 달과 그 날짜를 적고 반지를 주어서 나아가게도 하고 물러가게도 했다. 그리고 임신을 하면 금반지를 주어 물러가도록 하고 마땅히 모시게 된 자에게는 은반지를 주어 나아가도록 했다”고 돼 있다. 중국의 호속전(胡俗傳)에서도 “남녀가 처음 혼인 때 서로 한평생을 굳게 약속한다는 뜻으로 금으로 만든 반지를 주었다”고 했다. 그럼 반지는 어느 손에 끼어야 할까. 승은을 입기 위해 나아갈 때는 반드시 왼손에 끼고, 왕과 동침하고 나면 오른손에 낀다. 왜일까. ‘오경요의’(五經要義)에 따르면 음양으로 볼 때 “왼손은 양(陽)인 까닭에 여자가 남자에게 나아갈 때 반지를 왼손에 끼게 되고, 오른손은 음(陰)이기 때문에 이미 모신 후에는 바꿔 오른손에 끼게 된다”는 것이다. 조선에서는 궁녀가 왕의 승은을 입으면 아침에 치마를 뒤집어 입고 나와 은혜를 표시했다. 이에 대해 조재삼은 1885년 쓴 ‘송남잡지’에서 왕의 잠자리를 모시고 나서 은가락지를 오른손에 낀 것과 같은 뜻이라 했다. 한편 이익은 새 신부의 연지곤지와 가락지를 끼는 풍속에 대해 그 유래가 아름답지 못한 것이라며 혁파를 펴기도 했다.
  • 미 법원, 조지 플로이드 질식사 시킨 데릭 쇼빈 경관에 징역 22년 6개월형

    미 법원, 조지 플로이드 질식사 시킨 데릭 쇼빈 경관에 징역 22년 6개월형

    지난해 5월 25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위조지폐 혐의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하려다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백인 경관 데릭 쇼빈에게 징역 22년 6개월형이 선고됐다. 피터 캐힐 판사는 “아주 잔인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고 영국 BBC가 문자 중계로 전했다. 검찰은 최소 징역 30년형을 선고해달라고 했고, 쇼빈의 변호인단은 더 이상 구금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판사는 검찰의 구형에 조금 더 가깝게 판결한 셈이다. 캐힐 판사는 특히 검찰의 구형량보다 모자란 선고 양형에 대해 “결코 감정이나 동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법정에는 플로이드의 딸 지아나가 화상으로 연결돼 “언젠가 아빠를 다시 만나길 바란다”고 말해 법정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쇼빈도 유가족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의 어머니 캐롤린 파울렌티는 법정에 나와 아들은 좋은 사람이며 인종주의자가 아니라면서 선처해달라고 호소했다.  쇼빈은 최후변론에 나서 “여러 부차적인 법률 문제들이 있어 오늘 이 자리에서 완벽한 공식 입장을 설명드리지 못한다”면서 “아주 짧긴 하지만 플로이드 유족에게 제 유감을 전해드리고 싶다. 장차 흥미로운 몇 가지 부차적인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아무튼 유족 여러분이 마음의 평안을 찾으시길 바란다. 감사하다”고 알듯 모를듯한 말을 늘어놓았다.  변호인들은 그가 비번이었다며 동료들의 호출 요청을 무시했더라면 이런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변호했다.  플로이드의 죽음을 방조하거나 제지하기 위해 다가오는 주민들을 접근하지 못하게 막은 동료 세 경관에 대한 재판은 내년 3월에 시작한다.
  • [홍태경의 지구 이야기] 원자력발전 활용의 선결조건/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홍태경의 지구 이야기] 원자력발전 활용의 선결조건/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많은 양의 오염수 처리 문제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새삼 원전 효용성에 대한 논쟁도 커졌다. 원전을 둘러싼 오래된 논쟁은 효율성과 위험성의 대립으로 요약된다. 원전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원자력발전은 청정에너지 발전 방식이고, 에너지 자원 부족 국가에서 많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값싸게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 측에서는 원자력발전 소요 비용에는 방사능 폐기물 처리 비용, 원자로 폐로 비용과 환경 복구 비용이 추가돼야 하고, 사고 발생 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까지 있어 결코 싸지도 안전하지도 않은 에너지 생산방식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원전 효용성의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과학적ㆍ사회적ㆍ경제적 요소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각 요소의 사실관계부터 올바르게 정리돼야 한다.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폭발사고는 지진 같은 자연재해에 대한 원전의 취약성을 설명하는 사례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 사전 대비를 할 수 없었던 이유와 피해 원인 분석은 중요하다. 원인을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해당 지역에 동일본 대지진 같은 큰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했고, 이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 특정 지역에 발생 가능한 지진 규모 평가는 불가능한 일일까. 그렇지 않다. 지진은 단층의 크기, 응력 누적량 등을 통해 발생 가능한 최대 지진 산정이 가능하다. 활동성 단층에 대한 완전한 조사만 이뤄진다면, 발생 가능한 최대 지진과 그 재래주기를 판단할 수 있다. 동일본 대지진은 해저 침강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유사한 크기의 지진이 1100여년 전에 발생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869년에 발생한 규모 8.6의 ‘조간지진’이 그것이다. 이 지진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던 까닭에, 조간지진은 일본의 지진재해도 작성과 원전 안전성 설정에 필요한 설계지진으로 고려되지 못했다. 이처럼 충분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을 경우 안전한 원전 설계가 어렵다. 원전 운용 국가들은 지역별 지진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내진 성능 기준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동부와 중부 지역에서는 0.2~0.25g(중력가속도)의 지진동에 견디도록 설계된 데 반해 큰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서부 지역은 0.5g에 이르는 내진성능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지진이 더욱 많은 일본은 최대 0.8g 내진성능 기준을 적용한다. 한국은 신고리 원전 건설 전후로 내진 성능이 0.2g에서 0.3g로 상향 설계되고 있다. 현재의 내진 성능은 이탈리아, 프랑스 원전과 같은 수준이다. 원전은 청와대와 같이 ‘가’급 국가중요시설로 관리되고 있다. 원전부지도 엄격한 조건을 만족하도록 법제화돼 있다. 한국은 과거 3만 5000년 이내에 한 차례 이상 혹은 50만년 이내에 두 차례 이상 지표 변위를 만든 단층을 활동성 단층으로 규정하고, 원전 부지로부터 320㎞ 이내 지역의 활동성 단층을 내진 성능 결정에 고려토록 돼 있다. 이 규정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내륙과 해역의 활동성 단층에 대한 자세한 정보의 축적이 선행돼야 한다. 1978년 고리원전 1호기가 첫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로 원전 건설과 운영에 밀려 필요 정보 축적은 뒷전으로 밀려나곤 했다. 이제라도 필요한 정보의 축적에 힘써야 할 때다. 국가의 미래 성장과 후손의 평안한 삶이 오늘 우리의 결정에 달렸다.
  • 고개 숙인 쿠팡, 여야 정치권 애도 물결…“대책 마련 최선”(종합)

    고개 숙인 쿠팡, 여야 정치권 애도 물결…“대책 마련 최선”(종합)

    쿠팡 “유가족에 모든 노력·지원 다할 것” 쿠팡 물류센터 화재현장에서 구조 작업 중 끝내 순직한 고(故) 김동식(52) 119구조대 구조대장의 비보에 쿠팡 임직원, 여야 정치권의 애도가 이어졌다. 쿠팡은 19일 임직원 명의로 낸 입장문에서 “덕평물류센터 화재 진압 과정에서 고귀한 생명을 잃으신 고 김동식 구조대장님의 숭고한 헌신에 모든 쿠팡 구성원의 마음을 담아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유가족분들께도 진심 어린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쿠팡은 “회사는 순직하신 소방관과 슬픔에 잠긴 유가족분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노력과 지원을 다하겠다”며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역량을 동원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강조했다. 앞서 강한승 쿠팡 대표는 지난 18일 화재사고와 관련해 “많은 분께 심려를 끼쳐 몹시 송구하다. 피해를 입은 분들께 사과한다”며 “화재 원인 조사는 물론 사고를 수습하는 모든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 당국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여야 정치권 애도 물결…“대책 마련 최선” 김진욱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며 “화재현장에서 순직하신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동료 소방관 여러분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인에게 예를 표했다. 김 대변인은 “6월 국회에서 (화재 안전대책의 현실화를 위한) 법안을 반드시 처리해서 더 이상 후진국형 화재 사고로 인해 국민과 소방관이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여야가 함께할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이어 “민주당은 이번 화재 사고와 관련하여 순직하신 구조대장과 유가족에 대한 예우를 아끼지 않을 것이며, 더 이상 소방관의 희생이 없도록 근본적 대책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야권에서도 추모가 이어졌다. 황보승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유가족분들께 진심어린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꼭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했던 국민의 바람이 무너져 비통하고 슬프다”고 밝혔다. 황보 대변인은 “화재를 미연에 방지했다면 대장님이 목숨을 잃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며 “철저한 원인조사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오현주 정의당 대변인도 “화마와 사투를 벌이며 동료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한 김 소방경의 사명감을 시민들은 가슴 깊이 기억할 것”이라며 “정의당은 김 소방경의 안타까운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소방관들의 노동환경을 두루 살피고 화재사건의 진상규명과 사후대책 마련에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다. 홍경희 국민의당 수석부대변인은 “인명 수색을 위해 화마의 현장에 투신한 고인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며 “정부는 돌아가신 김 대장님에 대한 장례를 최대한의 예우로 모셔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함께 추모”…대권주자들도 순직 애도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고 김동식 구조대장님의 숭고한 희생을 국민과 함께 추모한다”며 “국가 예산은 국민을 위해 써야 한다. 국민 생명에 관한 예산을 대폭 늘려 안전하고 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평소에도 위험한 상황에는 앞장서서 행동으로 솔선수범하셔서 후배들이 존경하고 따르던 분이라 슬픔과 안타까움이 더 크다”며 “평생 헌신하고 희생해 오신 고 김 대장님이 저세상에서는 평안하게 영면하기를 기도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근본 원인을 비켜가는 해결책을 내놓으면 더 많은 문제가 일어날 뿐”이라며 “중대재해 ‘불처벌법’을 강력한 처벌법으로 고쳐야 한다”고 법개정을 주장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안전보다 모두의 안전을 살피며 임무에 온 몸을 던져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분들의 희생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숙연해진다”면서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더 노력하겠다”고 추모했다.원희룡 제주도지사는 “평소 성실함과 능력을 인정받아 소방행정 유공상 등을 받았으며, 항상 솔선수범하고 모범적인 ‘진짜 대장’이라고 소개하던 동료들의 증언에 더욱 가슴이 먹먹해진다”며 “유가족분들과 동료 대원들께도 진심어린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시민과 동료 구조대원들의 무사 탈출을 돕고 마지막까지 뜨거운 불길과 싸우신 김 대장님의 뒷모습을 생각하니 너무나 죄송하고 억장이 무너진다”며 “화재 전날에도 훈련에 매진하며 동료에게 미소를 보이셨다는 김 대장님이 남긴 삶의 향기를 기억하는 것은 세상에 남아있는 우리의 몫”이라고 전했다.앞서 소방당국은 이날 오전 10시49분쯤 물류센터 지하 2층 입구에서 50m 지점에 숨져 있는 김모 구조대장을 발견했다. 김 대장은 지난 17일 인명수색을 위해 현장에 투입됐다고 고립, 실종된 지 47시간 만에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소방경은 1994년 경기도 고양소방서에서 소방관으로 일을 시작했다. 이후 27년 동안 하남과 양평, 용인소방서에서 구조대와 예방팀, 화재조사 등 주요 부서를 두루 거쳤다. 응급구조사2급 자격증, 육상무전통신사, 위험물기능사 등 각종 자격증도 두루 보유해 남다른 학구열을 가진 베테랑 소방관이었다. 한편 소방당국은 오는 21일 오전 9시30분 경기 광주시 시민체육공원에서 경기도청장으로 김 소방경에 대한 영결식을 엄수할 예정이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기획]북한산 최고 전망대 경기 양주 ‘노고산’- 바로 옆 선경(仙境) 품어 유명

    [기획]북한산 최고 전망대 경기 양주 ‘노고산’- 바로 옆 선경(仙境) 품어 유명

    “자신의 편견과 주관을 모두 내려놓고 진솔하고 겸허하게 자연을 ‘관조’할 때 비로소 깨달음의 희열을 맛볼 수 있다.” 엷었던 연녹색 나무 이파리와 여린 풀이 한껏 물이 올라 우거질 때로 우거진 유월의 산행은 어느 계절보다 산객의 마음과 정신을 맑고 건강하게 한다. 앙상했던 나뭇가지는 어느덧 잎사귀가 빼곡해 드넓은 하늘을 뒤덮었다. 대지를 겨우 뚫고 나온 여린 풀들은 훌쩍 자라 억세지고 제법 시야를 가릴 정도가 됐다. 울창한 숲은 동식물, 곤충에게 안락한 서식처로 생명의 공간이다. 극성기인 성하(盛夏)를 앞두고 온갖 식물은 화려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준비에 여념이 없다. 다양한 야생동물과 곤충도 짝짓기, 먹이 사냥을 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는 시기다. 유월은 인생으로 치면 청춘이라 여겨지는 연중 최고의 계절이다. -평범한 노고산의 재발견‥북한산 조망 독보적 장소 경기 양주 노고산(487m)은 야트막한 보통의 산이지만 북한산(837m) 조망에 최적의 장소다. 창릉천을 사이에 두고 지척에 서로 마주하고 있어 다른 어느 곳보다 뛰어난 전망을 자랑한다. 정상에 서면 마치 코앞에 북한산이 우뚝 솟아 있는 듯 가깝다. 서울 노원과 경기 의정부에 걸쳐 있는 수락산(638m)에서 본 북한, 도봉산(740m) 전망도 뛰어나지만 제법 거리가 있어 아득하다. 북한산 지척에서 바라본 모습과 비교하면 감동은 크게 떨어진다. 평이한 노고산은 바위(골산)가 아닌 흙(육산)으로 이뤄져 등산로는 마치 양탄자 위를 걷는 듯 부드럽고 편안하다. 물론 일부 구간 너덜길이 있지만 일단 능선에 오르면 흙길이 잘 나있어 정상까지 이어진다. 흥국사 기준, 정상까지 어림잡아 1시간 정도다. 산 규모가 아담해 가장 긴 등산로도 3시간 정도로 부담이 적다. 특별히 돋보이진 않지만 나름대로 그만의 장점을 가진 매력적인 산임은 분명하다. 한미산으로도 불리며 북한산의 여맥으로 공릉천과 창릉천 분수령을 이룬다. -천년사찰서 평안 기원‥애견 돌무지무덤 사연은?본격적인 등산길에 오르기 전 노고산 첫 기착지인 흥국사에 잠시 들러 마음의 평화를 기원해 본다. 주불전인 약사전 뒤편 전망대에서면 우뚝 솟은 북한산 암봉과 주능선 일부가 아스란히 다가온다. 정상에서의 감동을 예고하는 듯하다. 천년 전통사찰 흥덕사는 특이하게 주 불전이 석가나 미륵불을 모신 대웅, 무량수전이 아닌 약사전이며 그 현판은 영조 친필로 알려졌다. 주 등산로는 아니지만 흥국사 뒤편으로 10여분 오르다 보면 살아생전 누군가에 사랑받았을 개의 돌무지무덤이 사진과 함께 제법 규모 있게 조성돼 있다. 애견 추모공원 외에는 개 무덤을 제대로 본적이 별로 없다. 개와 주인의 깊고 애틋한 인연은 어떤 것 이었을까?. 흥국사에서 오르는 등산로 주변에도 묘지 서너 기가 조성돼 있지만, 돌무지로 동물 무덤을 정성스레 쌓은 것은 이채롭다. 아마도 사찰 뒤에 무덤을 써 사랑했던 아니 가족처럼 여겼을지도 모를 애견이 극락왕생하기를 빌지 않았을까?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북한산‥정상 무한 감동 감소 우려북한, 도봉 최고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노고산 산행 길은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독보적인 전망을 자랑하지만 등산길 내내 그 위용을 쉽사리 보여주진 않는다. 무성한 숲이 하늘을 뒤덮은 등산로가 정상까지 이어지는 동안 그 사이로 살짝, 살짝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정상에 섰을 때 극적인 장면에 대한 무한 감동이 감소할 것을 염려한 배려일까? 그렇다고 정상에서의 감동만이 다는 아니다. 하눌님을 뒤덮은 숲길이 정상까지 지속돼, 지루할 것 같지만 이는 큰 오산이다. 정상에 오르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유익함 또한 만만치 않다. 사물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산객이라면 숲의 은밀한 부분을 살펴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맥을 놓고 ‘멍 때리는 것’도 때에 따라 필요하지만, 항상 사물에 대한 관심을 갖고 분석 하는 태도는 인생을 사는 데 매우 유익하다. 참나무과 수종이 전체 숲의 상당 부분을 장악한 노고산 정상에 이르는 길에는 신갈, 떡갈, 졸참. 갈참, 상수리, 굴참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하지만 정작 참나무는 없다. 닮은 듯 틀린 참나무과 ‘도토리 육형제’로 불리는 나무를 구분하며 오르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손가락으로 누르면 표피가 쑥 들어가는 코르크를 생산하는 굴참나무, 한 가지에 일곱 개의 이파리가 빼곡히 매달린 칠엽수(일명 마로니에), 열매가 팥을 닮은 팥배나무 등 만나는 나무마다 정겹다. -서어나무, 소나무 군락지 조우, 또 하나의 즐거움등산로 중턱에서 만나는 서어나무와 소나무 군락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인간 시간 개념으론 상상할 수 없을 정도 오랜 세월을 거쳐 숲의 ‘천이’가 이뤄지면, 맨 마지막 단계 극상림을 구성하는 수종 중 하나가 서어나무다. 전국적으로 군락이 많지 않고 귀하다. 마치 나무줄기가 잘 발달한 인체의 근육 같아 머슬트리(근육나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나무줄기는 회색빛을 띤다. 지척에 있는 송림(松林) 또한 볼만하다. 참나무과 수종과 풀들이 주를 이루던 등산길 분위기는 여기서부터 돌변한다. 참나무와 키 작은 수목, 온갖 풀들이 빽빽해 사방이 막힌 듯했던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다. 소나무에서 내뿜는 피톤치드가 너무 강한 나머지 근처에서 다른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해 주변은 마치 청소를 한 듯 깔끔하다. 깊은 숲 속으로의 산행은 전체를 파악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대신 자연의 신비와 마주하고 속살을 살펴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한 치 떨어져 보면 산의 규모나 계곡 모양 등 전체 형세를 읽을 순 있지만 정작 그 내면은 볼 수 없다. 고달픈 인생 이치도 이와 같지 않겠는가? -노고산 정상은 선계‥북한, 도봉 절경 무한 감동‥숨은벽도 윤곽 또렷이런저런 생각에 울창한 숲속 흙길을 따라 오르길 한 시간여, 홀연 하늘이 열리고 시야가 탁 트인다. 마치 깊은 터널을 겨우 벗어나 눈부신 세상과 갑작스레 마주한 듯 당혹스럽다. 내가 최고라며 우뚝 솟은 백운대, 인수봉의 수려하고 장엄한 모습이 시야를 떡하니 막아선다. 대자연의 웅장함에 감동이 밀려온다. 절정의 감동을 제공한 노고산은 북한산 최고 조망지라는 등호(=)가 설마에서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한 시간여 산책하듯 올라온 노고에 비하면 그 대가가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넘치는 보상을 받으니 무안한 감정마저 든다. 아니 횡재한 느낌이 더 정확하다고 할까? 조금만 노력해도 큰 선물을 주는 자연에 감사할 따름이다. 백운대와 인수봉 뒤에 살짝 숨어 있는 숨은벽도 전체 윤곽을 또렷이 드러냈다. 정상부는 769m로 북한산에서 4번째로 높다. 좀처럼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암봉으로 유명하다. 노고산에 오른다고 무조건 볼 수 있는 쉬운 존재는 아니다. 미세먼지나 안개가 없어야만 볼 수 있다. 또 하나,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빛이 이곳에 숨어들어야 비로소 온전한 모습을 내보인다. -장장 20여km 주 능선 지척에‥하늘에 그려낸 우아한 곡선미노고산 정상의 수많은 혜택(?)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맨 왼쪽 사패산(551m)을 시작으로 도봉산 포대능선, 두 산의 경계 우이령길, 북한산 상장·의상·비봉능선은 맑고 투명한 하늘에 또렷하게 아름다운 선을 그려 낸다. 그 능선 위로 우뚝 솟은 거대한 암봉들, 물결치는 우아한 곡선, 이곳은 속세가 아닌 선계임이 분명하다. 시간도 속세와 차원이 다르다. 절경에 팔려 잠시인가 했더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마냥 이곳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머리에 맴돈다. 하산길이 부담 없어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기도 하다. 이런 절경과 접근성 때문에 백패킹 장소로도 이름이 높다. 실제 정상은 군부대 내주고 바로 아래 헬기장이 실질적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노고산은 이렇다 할 절경은 없지만 바로 건너 북한산 최고 경치를 품어 명산이 됐다. 고달픈 인생도 자연의 이치를 배우면 삶이 새롭게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글·사진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쓰촨 지진 때 36일을 버틴 ‘영웅 돼지 주젠창’ 죽자 추모 열기

    쓰촨 지진 때 36일을 버틴 ‘영웅 돼지 주젠창’ 죽자 추모 열기

    중국의 수퇘지 한 마리가 어제 세상을 떠났다. 여느 돼지가 아니다. 2008년 쓰촨성에 규모 7.9의 강진이 엄습했을 때 잔해 더미에서 36일을 견뎌 살아남은 영웅 돼지다. 당시 중국에선 “강인한 의지의 돼지”라며 ‘주젠창(猪堅强)’이란 이름까지 지어줬다. 지금까지 청두에 있는 젠촨(建川) 박물관에서 지내왔는데 16일 밤 열네 살로 기력이 다해 숨을 거뒀다고 박물관 측이 밝히자 많은 누리꾼들이 추모의 글을 잇따라 올리고 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해시태그 ‘강인한의지의돼지가죽다’가 웨이보에서만 4억 3000만회 공유됐다. 한 이용자는 “너만의 강인함으로 삶의 위대함을 보여줘 감사해”라고 적었다. 다른 누리꾼은 “RIP(평안한 안식을), 넌 삶의 기적이었으며 강인함의 상징이었어”라고 적었다. 쓰촨성 대지진은 9만명 가까이 숨지거나 실종될 정도로 피해가 컸다. 하지만 주젠창은 잔해 더미에 깔린 상태에서 한 포대의 숯을 씹어 먹고 빗물을 마시면서 한달 넘게 버텨 마침내 구출됐다. 구조대원들이 처음 발견했을 때 돼지는 삐쩍 말라 염소처럼 보일 정도였고, 갇혔을 때 몹시 두려워했던 듯 트라우마 같은 것을 겪는 것처럼 보였다. 중국인들은 돼지의 빠른 회복과 적응을 기원했다. 지진이 덮친 날, 도축될 예정이었는데 오히려 지진 때문에 목숨을 구했다는 사연까지 더해졌다. 주젠창이 원기를 회복하자 인민의 희망과 피해 복구 의지를 북돋기 위해 영웅으로 떠받드는 움직임이 일었다. 수백만명이 웨이보 등에 돼지의 강인한 의지를 본받자며 장수를 기원하는 글을 올렸다. 주젠창이 구조된 날인 6월 17일을 생일이라며 정성껏 차린 음식으로 잔치를 열어주기도 했다. 그 뒤 박물관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그의 유명세를 이용해 관람객들을 유치하려는 뜻도 있었다. 박물관 측은 연초에 주장장이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고 미리 알렸다고 방송은 전했다. 2011년에는 주젠창의 강인한 의지를 닮은 새끼들을 낳게 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유전자를 복제해 여섯 마리가 태어났다. 주젠창은 지진이 발생하기 얼마 전에 거세를 해 2세를 볼 수 없어 유전자 복제를 했다. 새끼돼지들이 눈 사이에 모반 등 아빠돼지를 빼닮았다고 누리꾼들이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친정 찾은 그날처럼 시름마저 품어주네

    친정 찾은 그날처럼 시름마저 품어주네

    전남 장흥은 맑은 물의 도시다. 광주 등 이웃 도시 사람들에게 식수가 되어 주는 물이 도시를 휘감아 흐른다. 그 물줄기가 이름도 예쁜 탐진강이다. ‘자응’(장흥) 사람들에게 이 강은 ‘어머니의 강’이다. 대지를 살찌우고 바다를 풍요롭게 하면서도 공치사 한마디 하는 법이 없다. 강변은 늘 적요하다. 수많은 상념들이 수평의 세계 아래 침잠한 듯하다. 코로나19 탓에 그 유명한 탐진강 물축제는 두 해 연속 못 보게 됐지만 강이 주는 평안과 위로는 늘 그대로다. 장흥과 영암의 경계인 국사봉에서 발원한 탐진강 물줄기는 장흥을 적신 뒤 강진 가우도를 거쳐 남해로 흘러든다. 거리는 51㎞ 정도로 짧지만 섬진강, 영산강과 더불어 남도 3대강으로 대접받는다. ●원형 그대로 간직한 채 남해로 흘러드는 남도 3대강 탐진강의 가장 큰 매력은 강의 원형이 잘 살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참 많은 강을 잃었다. 치수 등에 활용하느라 원형을 훼손한 강들이 수없이 많다. 그런 점에서 보면 탐진강은 시쳇말로 ‘청정지역’이라 할 수 있겠다. 게다가 탐진강 주변엔 수질 오염 운운할 만한 시설이 거의 없다. 그 흔한 ‘매운탕집’도 찾아볼 수 없다. 탐진강을 돌아보는 방법은 여럿이다. 첫손에 꼽히는 건 정자 여행이다.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정자가 들어선 곳은 대체로 물과 가까우면서 경치도 좋다. ‘자응’ 사람들은 이를 탐진강 8정자라고 부른다. 다만 잘 가꿔진 관광지를 염두에 둬서는 안 된다. 정자 대부분이 이정표도 없고 찾아가기도 쉽지 않다. 그저 사람들 곁에 있는 듯 없는 듯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장흥 토박이인 김상찬 한들문화 이사장이 가장 먼저 손을 잡아끈 곳은 용호정이다. 정확한 명칭은 용호정원림(龍湖亭園林)이다. 용호정에 깃든 정신은 ‘효’다. 정자를 지은 이는 최영택의 네 아들이다. 맏아들 규문이 쓴 ‘용호정서’에 저간의 사정이 담겨 있다. 최영택은 대단한 효자였던 듯하다. 돌아가신 부모를 용호 건너편 기산 자락에 모신 그는 첫 3년은 매일 세 차례, 그 뒤 3년은 하루 한 차례 묘를 살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그의 아들들이 아버지에겐 “아버지를 뵙기 위한 누정”이자 자신들에겐 “아버지를 위로하는 누정”으로 용호정을 세웠다. 그게 1289년의 일이다. 효자 최영택은 복받은 ‘사랑꾼’이기도 했다. ‘용호정서’에 그와 아내에 대해 “젖니를 갈 어린 나이에 함께 하”였고 “세상에 태어난 해(1759)도 같고, 돌아가신 날(7월 6일)도 같다”고 적혀 있다. 비록 돌아간 시점에 다소 차이는 있다지만, 같은 해 같은 날에 나고 돌아가는 인연이 어디 흔한가. 하늘이 맺어 준 짝이 아니었다면 아마 80세를 훌쩍 넘긴 나이까지 해로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선비의 숨결과 함께 흐르는 ‘8정자’ 밖에서는 용호정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주변 숲이 완벽하게 감싸고 있어서다. 규모는 작아도 원림 안에 들면 퍽 안온한 느낌을 받게 된다. 정자는 삼면이 트이고 가운데에 방 한 칸이 있는 소박한 구조다. 마루는 반질반질하다. 누군가 열심히 관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세월이 앉았다 간 마루 위로 수많은 이들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 듯하다.동백정은 ‘인증샷’ 찍기 맞춤한 정자다. 누마루와 대청마루 등 쉴 공간이 넉넉하고 건물을 둘러친 토담과 노송들의 자태도 빼어나다. ‘동백정서’에 따르면 동백을 정자의 이름으로 정한 건 “한겨울 추위도 뚫고 나오는 (동백의) 뜻을 숭상했기 때문”이다. 김 이사장은 “정자 주변에 토종 동백이 아닌 꽃동백이 식재된 게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8정자 중 유일하게 지류인 호계천변에 있다. 경호정도 ‘잘생긴 정자’로 꼽힌다. 특히 ‘눈썹처마’로 멋을 낸 외형이 독특하다. 장흥 위씨 집성촌인 기동마을에 있다. 낙향한 선비가 정자 뒤 바위에 매일 단종의 얼굴을 그렸다는 사인정, 장흥 출신 문장가인 백광훈의 ‘龍湖’(용호) 글씨가 각자된 부춘정, 허물어지기 직전인 독취정, 수몰지에서 옮겨 온 영귀정, 창랑정 등도 차분하게 돌아볼 만하다. 드라이브로 탐진강을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부산면에서 유치자연휴양림까지 가는 탐진호 호반도로가 제격이다. 거리는 6㎞ 정도. 장흥 내 ‘龍湖’ 문화의 모티브가 된 중국 동강 ‘칠리탄’(七里灘)에 비유해 ‘십리탄(十里灘)길’이라 불러도 좋겠다. 장흥 읍내 탐진강둔치공원에도 지압로, 생태관찰로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다. ‘향기숲 공원’도 둘러볼 만하다. 산책로와 수변 데크 등 조성 작업이 거의 마무리 단계다. 둔치 위쪽에 있다. 글 사진 장흥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우드랜드 산림 치유프로그램 참가비는 5000원이다. 프로그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2~3시간 정도 소요된다. 우드랜드 누리집(www.jhwoodland.co.kr) 참조. →이즈음 장흥의 대표 먹거리는 여름 보양식인 갯장어(하모) 샤부샤부다. 표고버섯, 전복 등으로 맛을 낸 육수에 살짝 담갔다 먹는다. 현지인들이 강추하는 곳은 ‘여다지 회마을’이다. 갯장어의 주요 산지인 안양면 여다지 해변 바로 앞에 있다. 장평면 ‘국일관’은 50년 동안 3대를 이어 ‘양탕’을 내고 있는 집이다. ‘양탕’은 현지인들이 흑염소탕을 이르는 이름이다. 잡내가 없는 담백한 고기와 진한 국물이 보양식으로 제격이다. 장평면 소재지에 있다.
  • 中 역사미화 본격화…“마오쩌둥 아들 죽음, 볶음밥 때문 아냐”

    中 역사미화 본격화…“마오쩌둥 아들 죽음, 볶음밥 때문 아냐”

    중국이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앞두고 과거사 미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현지시간) 공산당 역사에 대한 허무주의 시각에 대응하라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지시를 받은 중국역사연구원이 과거사 미화의 전면에 나섰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오쩌둥(1893~1976)의 장남 마오안잉(1922~1950)이다. 그는 한국전쟁 때인 1950년 11월 25일 평안북도 동창군 대유동에서 미군 전투기 폭격으로 숨졌다. 전날 두대의 미군 정찰기가 중국군의 위치를 탐지한 뒤 다음 날 정오에 4개의 네이팜탄을 투하했는데, 그 중 하나가 마오안잉이 있는 곳에 떨어졌다. 지금까지의 정설은 마오안잉이 막사에서 계란 볶음밥을 만들다가 위치가 노출돼 폭사했다는 것이다. 방공수칙을 어기고 불을 피웠다가 연합군 폭격기의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계란 볶음밥은 지금도 중국인들에게 ‘마오안잉의 음식’으로 여겨진다. 지난 2003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공식 발간한 비망록에도 이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러나 중국역사연구원은 지난해 11월 소셜미디어를 통해 “계란 볶음밥을 만들다가 폭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마오안잉의 죽음을 희화화는 헛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마오안잉의 위치가 알려진 것은 부대 사령부의 무전이 노출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마오안잉과 함께 사망한 가오루이신의 딸 양옌쿤도 현장 목격자인 작전실 주임 청푸에게 문의해 “당시 작전실에는 달걀이나 프라이팬이 없었다”는 답을 받았다. 마오안잉이 계란 볶음밥을 만들어 먹다가 사망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공산당은 역사를 비판하는 세력에 대한 단속도 강화한 상태다. 중국의 사이버 감독기관인 중국 국가사이버정보판공실은 “일부 저의를 품은 이들이 온라인에서 역사적 허무주의와 관련한 유해한 정보를 퍼뜨리고 당의 역사를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산당의 역사나 지도부를 비판하다가 단속되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WSJ는 전했다. 중국 내부에서도 정치적인 목적을 위한 역사 왜곡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분위기다. 베이징의 한 역사 교수는 역사 미화 작업의 전면에 나선 중국역사연구원에 대해 “공산당 지도부에게 아부하고 승진하고자 학문의 길을 따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따듯한 우유 목소리” 84세 英할아버지 ASMR에 ‘홀딱’ 빠진 이들

    “따듯한 우유 목소리” 84세 英할아버지 ASMR에 ‘홀딱’ 빠진 이들

    “젊은 사람이 이런 걸 했으면 더 재미있었을텐데. 난 유튜브란 게 뭔지, 인터넷이 어떤 건지도 모른단 말이요.” 올해 84세로 영국 더비셔주 베이크웰에 사는 전직 농부 존 버틀러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ASMR이 묘한 울림과 감동을 선사해 유튜브의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고 BBC가 14일(한국시간) 전했다. 자율 감각 쾌락 반응(ASMR,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줄임말인 ASMR은 다양한 자극을 통해 심리적 안정이나 쾌감을 느끼는 감각적 경험을 뜻한다. 사실 그의 동영상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덮치기 전의 인터뷰인데 이 적막하고도 막막한 세태를 위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게 여겨진다. 500만명 이상이 시청했으며 할아버지의 정기 구독자는 12만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사람들의 반응은 뜨겁다.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 등장하는 스승 제다이를 현실에서 만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이 할아버지일 것이란 반응부터 “할아버지 목소리가 따듯하게 데운 우유 한잔 같다”고 소감을 적은 이도 있었다. ‘침대 곁에서 얘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는 이도 있었다. 영국인 재스민 부처는 “내 생각에 존의 동영상은 우리 모두가 신체적으로 속박돼 있다고 느끼는 시대에 정말 많은 자유를 가져다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버틀러 할아버지는 평생 명상을 해왔다고 했다. “사람들은 화가 나 있고 안식을 찾지 못해 안절부절하고 있다. 하느님이나 절대자가 왜 이런 세상을 만들었는지 이유를 알지 못해 분해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마음의 균형을 찾고 평안해지고자 한다.” 오스트리아 빈에 사는 남성, 미국 조지아주에 사는 여성이 동영상으로 올린 댓글을 보며 할아버지는 눈시울이 붉어진다. “살아오면서 난 늘 불운한 사람이며, 사람들은 내게 관심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공유할 수 있어 가만히 감사하며 살고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여기는 남미] 칠레 매몰 광부 33인 10년 후…국가상대 소송서 승소

    [여기는 남미] 칠레 매몰 광부 33인 10년 후…국가상대 소송서 승소

    10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칠레의 매몰 광부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피해배상 청구심에서 부분 승소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칠레 고등법원은 11일(현지시간) 매몰 광부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국가는 원고에 각각 5만5000달러(약 5580만원)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소송을 낸 지 8년 만이다. 칠레 법원은 판결에서 국가의 과실을 인정했다. 2010년 코피아포에서 발생한 광산 붕괴사고는 국가의 관리감독 소홀에서 비롯됐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국가 기관들이 제대로 의무를 이행했더라면 광산 붕괴로 광부 33인이 산 채로 매몰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국가 기관의 과실, 피해 발생이 확인됐고, 이들 간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국가에 배상 책임을 물었다. 33인 매몰 광부 중 한 명인 마리오 세풀베다는 "(배상 판결이 내려졌지만) 피해자인 우리가 겪는 고통은 그 어떤 배상으로도 회복될 수 없을 것"이라며 "(지금 원하는 건 배상이 아니라) 평안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고가 난 후 (심리적 후유증으로) 다시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사람도 있다"면서 "구조된 동료들 중에는 지금도 매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2010년 8월 5일 칠레 산호세 코피아포에서 발생한 광산 붕괴사고는 광산이 무너지면서 채굴작업 중이던 33명 광부가 지하에 매몰된 사고다. 지하 600m 지점에 매몰된 광부들은 69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칠레 정부는 매몰 지점까지 터널을 뚫고 특수 제작한 구조캡슐을 투입, 광부 33명을 1명씩 구조했다. 당시 구조작업은 CNN 등을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매몰 광부들은 정신적 피해를 배상하라며 피해배상 2013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에선 2018년 매몰 광부들에게 1인당 10만 달러(약 1억1165만원)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지만 칠레 정부는 즉시 항소했다. 33인 광부들에게 이미 매월 550달러의 종신 연금을 지급하고 있어 배상금이 과도하다는 게 항소한 칠레 정부 측 주장이었다. 항소심에서 배상금이 절반으로 깎인 만큼 칠레 정부로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지만 근본적으로 국가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게 됐다는 게 현지 법조계의 시각이다. 현지 언론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관리감독이 부실했고, 사고 후 대응도 신속하지 못했다는 점을 법원이 모두 인정했다"며 "사고 전후로 국가의 과실이 있었다는 점이 명백해졌다"고 보도했다. 사진=자료사진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유성은♥긱스 루이, 7월 결혼 “잘 살겠습니다” 환한 미소 [EN스타]

    유성은♥긱스 루이, 7월 결혼 “잘 살겠습니다” 환한 미소 [EN스타]

    가수 유성은과 긱스 루이의 결혼 소식이 전해져 화제다. 13일 유성은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금 제 옆에 있는 긱스의 루이 황문섭씨와 2년의 열애 끝에 2021년 7월 11일 한곳을 바라보며 평생을 함께 걸어가기로 약속했습니다”라며 결혼 소식을 직접 전했다. 유성은은 “부족한 저에게 언제나 아낌없는 애정과 신뢰로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고 채워주는 이 친구에게 저 또한 포근한 쉴 곳이 되어주려 합니다. 여러분들께서 저희 두 사람을 마음으로 축복해 주신다면 인생에서 결혼이라는 큰 걸음을 내딛는 순간에 더 없는 기쁨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앞으로도 항상 좋은 음악 들려드릴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할 테니 지켜봐 주시구요, 모두 어려운 시기이지만 언제나 웃음 잃지 마시고 건강과 평안이 여러분들 곁에 항상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유성은은 글과 루이와 찍은 웨딩 사진도 공개했다. 화이트 수트를 입은 루이와 심플하면서도 러블리한 드레스를 입은 유성은의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루이 또한 인스타그램에 같은 사진을 올리며 “저희 결혼합니다! 잘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결혼 소식과 함께 소감을 전했다.두 사람은 이날 방송된 MBC ‘복면가왕’에 출연해 결혼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MC 김성주가 “방송 최초로 공개할 것이 있다”고 운을 떼자, 루이는 “저희 결혼합니다”라고 말했다. 유성은은 “저희가 옷도 커플룩으로 입었는데, 조장혁씨도 비슷한 옷을 입으셨더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에 조장혁은 “나도 좀 미안했다”고 말하며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웃음을 자아냈다. 유성은과 긱스 루이는 2년째 열애 중이다. 지난 1월 루이는 인스타그램에 유성은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하며 열애 사실을 알린 바 있다. 한편, 유성은은 지난 2012년 Mnet ‘보이스 코리아’ 시즌1에 출연해 준우승에 오른 이후 활발한 가수 활동을 해 왔다. 루이는 지난 2011년 긱스로 데뷔해 ‘오피셜리 미씽 유’(Officially Missing You), ‘전화 받지 마’, ‘아침에’ 등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여기는 남미] 개 2000마리 돌보던 ‘유기견 천사’, 코로나로 사망

    [여기는 남미] 개 2000마리 돌보던 ‘유기견 천사’, 코로나로 사망

    잘 나가던 사업을 뒤로하고 수천 마리 유기견을 돌보던 볼리비아의 활동가가 코로나19를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사망했다. 현지 언론은 "코로나9에 걸려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온 '유기견들의 천사' 페르난도 쿠시너가 끝내 사망했다"고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볼리비아 라파스의 시장 이반 아리아스는 "유기견을 위해 몸을 바친 쿠시너가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이겨내지 못했다"며 "평안하게 영면하길 기도드린다"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는 "쿠시너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유기견을 향한 사랑의 유산을 남겼다"면서 "그의 유지를 이어 유기견 돌보기에 애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류업체를 이끌며 승승장구하던 쿠시너는 호화로운 생활과 세계여행을 즐기던 기업인이었다. 생전 인터뷰에서 그는 "세계여행을 너무 자주 하다 보니 비자와 출입국 도장이 가득해 유효기간이 남아 있지만 바꾼 여권 10권이나 된다"면서 "하지만 호화로운 생활을 할 때보다 (유기견을 돌보는) 지금이 더 보람차고 행복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에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건 기업가 시절인 2015년 우연히 만난 유기견이었다. 요가를 하고 나오던 그는 유기견 한 마리에게 손에 들고 있던 간식거리를 줬다. 먹을 걸 받은 유기견은 그의 손에 코를 비비고 혀로 핥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쿠시너는 "생전 처음 보는 유기견이 고마움을 표시는 순간 마음이 울컥하고 뭉클했다"면서 "세상에서 받은 게 많은데 이제 유기견들에게 돌려주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실천력이 강한 그는 당장 이튿날부터 유기견 돌보기에 나섰다. 자신이 살고 있는 라파스에서 아침저녁으로 유기견들에게 먹을 걸 나눠주고 중성화수술을 시켜주는 게 그의 일이 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유기견 돌보미로 변신한 그가 돌본 유기견은 약 500마리였지만 최근엔 2000여 마리로 그 수가 불어났다. 라파스 당국에 따르면 라파스 길거리를 배회하는 유기견은 약 50만 마리로 추정된다. 생전에 그는 도시 전체의 유기견 250마리 중 1마리꼴로 유기견을 먹여 살리며 돌본 셈이다. 책임지는 유기견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먹을 걸 줄이거나 소홀하지 않았다. 사비를 털던 그는 기업가 실력을 발휘, 외식업체들의 후원을 받아 매일 유기견 1마리에게 사료나 음식 1kg, 소뼈 1개꼴로 먹을거리를 제공했다. 라파스의 시장 아리아스는 "쿠시너는 유기견을 위해 생명을 바쳤다"면서 "그가 있었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사진=자료사진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포토] 노동신문 “안주시 인민병원, 먼거리 의료 봉사 잘 진행”

    [포토] 노동신문 “안주시 인민병원, 먼거리 의료 봉사 잘 진행”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5일 “인민들의 건강 증진을 위한 먼거리 의료 봉사가 잘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평안남도 안주시 인민병원 의료진.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영변 핵시설 가동 정황 포착…굴뚝서 연기 피어올라”

    “북한 영변 핵시설 가동 정황 포착…굴뚝서 연기 피어올라”

    북한이 평안북도 영변 핵시설 단지를 계속 가동 중인 정황이 29일 포착됐다고 북한전문매체가 전했다. 28일(현지 시간) 미국 38노스에 따르면 이달 22일 영변 핵시설 일대를 촬영한 상업용 인공위성 사진을 분석한 결과, 시설 내 석탄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재차 확인됐다. 이 발전소는 핵시설 내 방사화학실험실(RCL)에 증기를 공급하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지난 2월 25일과 3월 2일·10일·30일에 찍힌 위성사진에서도 역시 굴뚝 연기가 관측됐다. RCL은 사용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할 때 가동된다. 상당수 국내외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렇게 추출한 플루토늄을 핵무기 제조에 쓰는 것으로 보고 있다. 38노스는 이번 위성사진 분석에서 “석탄화력발전소는 3월 초부터 계속 운영되고 있다”면서 “최근 연기 기둥이 다소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달 9일부터 영변 핵시설 내 우라늄농축공장(UEP)의 이산화우라늄(UO2) 생산 건물에서 증기가 계속 배출되고 있다며 “공장이 계속 운영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전했다. UO2 또한 핵무기 제조에 쓰이는 고농축우라늄의 원료가 된다. 다만 38노스는 “이런 활동에도 불구하고 실제 플루토늄 추출을 위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등의 작업이 진행 중인지를 판별하긴 이르다”고 덧붙였다. 이날 군 관계자는 “한미 정보당국간 긴밀한 협조체계를 유지한 가운데 관련 동향에 대해서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현재까지 추가로 설명할 만한 사항은 없다”고 전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北 내각 총리, 시멘트·비료공장 현장 찾아 경제 회복에 총력

    北 내각 총리, 시멘트·비료공장 현장 찾아 경제 회복에 총력

    일주일 새 3차례 경제현장 시찰 비료공장 독려...식량 생산 강조 북한의 ‘경제사령탑’인 김덕훈 내각 총리가 최근 비료공장과 시멘트공장 등을 잇따라 시찰하며 경제 회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는 21일 한미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 대북정책의 내용이 더욱 확실하게 드러나기 전까지 최대한 내치에 집중하려는 모습이다.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9일 김 총리가 순천시멘트연합기업소와 평리협동농장 등 순천지구의 여러 사업장을 둘러 보고 사업 목표와 전망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김 총리가) 평양시 1만세대 살림집(주택) 건설이 가지는 중요성을 명심하고 건설에 필요한 시멘트를 원만히 보장하기 위한 광물증산 목표와 수행 방도를 현실성 있게 세우며 능률적인 작업 방법들을 적극 받아들이고 채굴 계단 형성과 운반 능력 제고를 비롯한 사업을 전망적으로, 입체적으로 전개할 것에 대해 언급했다”고 전했다. 김 총리의 경제 현장 시찰 보도는 최근 일주일 사이에만 세 번째다. 지난 13일에는 삼지연시를 방문해 3단계 공사현장 작업자들을 독려했고, 16일에는 단천 5호발전소와 흥남비료연합기업소, 함주·정평·고원군 유기질 복합비료공장 등 동부지역 경제 현장을 방문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북한 최북단에 위치한 양강도 삼지연부터 함경남도 동해안 지역, 중부 내륙의 평안남도 순천까지 차례로 돌며 현장을 챙긴 것이다.김 총리가 방문한 지역은 북한이 제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달성하는 데 중요한 거점 지역이기도 하다. 최근에 자주 찾은 순천은 북한의 대표적인 석회석 산지로, 경제발전 목표로 내세운 주택 5만세대 건설을 위해서는 이곳의 석회와 시멘트 수급이 중요하다. 흥남비료연합기업소 등 비료공장을 둘러본 것은 농번기를 맞아 농업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수해 등으로 곡물 생산에 차질을 빚으며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은 최근 “모내기에 수단을 총동원하라”며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삼지연시의 경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주 관심사로 ‘산간 문화도시의 이상적인 본보기’ 지역으로 개발중이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포토] 북한 평안북도 관개수로 건설

    [포토] 북한 평안북도 관개수로 건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9일 평안북도 동래강저수지에서 홍건도간석지까지 물길통수식이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도 안의 일꾼들과 근로자들의 헌신적 노력에 의하여 농업 생산에 크게 이바지하게 될 새 관개수로가 건설되었다”라고 전했다. 평양 노동신문 뉴스1
  • [포토] 북한 평안도의 살림집 새집들이

    [포토] 북한 평안도의 살림집 새집들이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8일 김정은 총비서의 지시로 추진된 평안북도 살림집(주택) 500세대 건설 결과 “수십 동에 수백 세대에 달하는 살림집들이 훌륭히 일떠서게 됐다”며 “며칠전부터 새로 일떠선 살림집들에 대한 새집들이가 진행됐다”라고 전했다. 평양 노동신문 뉴스1
  • 현금 135만원 내밀며 “북한까지 태워주세요”[이슈픽]

    현금 135만원 내밀며 “북한까지 태워주세요”[이슈픽]

    사회 부적응에 월북 결심“북한에 아픈 가족이…” 거짓말도구명조끼까지 챙겨 월북 시도한 40대다시 월북 시도한 탈북민 ‘징역 1년’“북한에 있는 가족이 아파요. 북한으로 태워주면 사례하겠습니다” A(41)씨는 지난해 9월 4일 오후 3시 24분 강원 고성군 거진항에서 B호 선장에게 자신을 북한으로 데려다 달라며 접근했다. 약 2시간 전, A씨는 속초시 동명항에서 C호 선장에게 “북쪽으로 태워달라, 사례하겠다”고 권유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에 북한에 아픈 가족이 있다는 거짓말까지 지어냈다. 벌건 대낮에 느닷없이 북한에 데려달라는 제안을 받은 선장들은 모두 거절했다. 월북을 포기하지 않은 A씨는 이튿날 오전 2시 12분쯤 속초시 동명항에서 D호 선장에게 또다시 사례를 대가로 북한까지 태워달라고 요청했으나 역시 거절당했다. A씨는 국가보안법상 잠입·탈출 혐의에 같은 법상 화합·통신 등 혐의로 기소됐고, 춘천지법 형사3단독 정수영 부장판사는 16일 A씨에게 징역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정 판사는 “반국가단체의 지배 아래에 있는 지역으로 탈출을 계속 예비한 점, 구성원과 통신하려는 시도를 반복한 점, 범행이 예비와 미수에 그친 점, 초본인 점 등을 참작했다”고 말했다. 그가 월북을 겸심하게 된 이유 A씨는 울산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는 사회와 직장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잦은 이직으로 지인, 가족들과 멀어지게 된 그는 2018년 북한 사회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 체제에 동조했다. 북한 공산집단이 반국가단체라는 사실과 월북을 하면 대남공작과 체제선전에 이용될 수 있다는 사정을 알면서도 A씨는 월북을 결심했다. 선장에게 줄 현금 135만원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마련한 A씨는 수영하게 될 경우를 대비한 구명조끼는 물론 비상식량으로 즉석밥과 생수까지 사서 강원 동해안을 찾았다. 월북에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온 A씨는 포기하지 않고, 같은 달 18일 월북 조력을 구하고자 중국 심양에 있는 북한 총영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북한 총영사관 직원과 약 12초 동안 통화하는 등 그는 엿새 동안 7차례에 걸쳐 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생활고·향수병에…다시 월북 시도한 탈북민 ‘징역 1년’ 지난 4월, 생활고와 향수병 등으로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려 시도한 30대 탈북민도 있었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5단독 고소영 판사는 국가보안법 위반(잠입·탈출) 미수·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B씨(36)에게 징역 1년과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1985년 북한 평안남도에서 태어난 B씨는 지난 2016년 국군 포로의 손녀 C씨와 결혼한 뒤 탈북을 결심하고 아내와 함께 2018년 3월 압록강을 건너 중국에 도착한 뒤 몇몇 국가를 거쳐 한국에 정착했다. 하지만 B씨는 한국에서 마땅한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환각 증상을 앓는 등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이혼까지 했다. 결국 B씨는 생활고와 북한에 남겨둔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인해 북한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중국을 거쳐 월북하려 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비자 발급이 여의치 않자 강원도 군사분계선을 넘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후 B씨는 지난해 9월 강원도 철원군의 DMZ 남방한계선을 넘어 월북을 시도하다가 군 당국에 붙잡혔다. 재판부는 B씨가 범행을 인정하고 자백하고 있는 점, 부인과 장모의 권유로 탈북 했으나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에 쉽게 정착하지 못했고, 부인과도 이혼한 점 등을 고려해 형량을 정했다고 밝혔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나 국군포로인데…” 그들은 왜 유령이 됐나 [밀리터리 인사이드]

    “나 국군포로인데…” 그들은 왜 유령이 됐나 [밀리터리 인사이드]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주중 한국대사관 직원) “나 국군포로인데 한국대사관 아닙니까?”(장무환) “맞는데요.”(주중 한국대사관 직원) “내가 지금 중국에 와 있는데 좀 도와줄 수 없는가. 이래서 묻습니다.”(장무환) “(한숨 내쉬며) 하…없죠.”(주중 한국대사관 직원) “내가…”(장무환) “아 없어요.”(주중 한국대사관 직원) “국군 포론데…”(장무환) “뚜뚜…”(전화 끊어짐)1998년 한 방송에서 보도돼 큰 파문을 일으켰던 ‘대사관 직원 전화 사건’입니다. 최근 이 내용이 방송에서 다시 다뤄지면서 국군포로 문제가 여론의 조명을 받았습니다. 국군포로는 당시나 지금이나 ‘잊혀진 역사’입니다. 어렵게 탈출해 남한으로 온 극히 일부 인원을 제외하면 남북한 양쪽에서 ‘유령’ 취급을 받았습니다. 정부는 1999년 대사관 사건 영향으로 ‘국군포로대우법’을 만들었고, 2006년에는 ‘국군포로송환법’을 제정해 국군포로와 가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군포로의 안전한 송환을 방해할 때 처벌하는 조항이 만들어진 건 불과 10년 전인 2010년입니다. ●‘강제억류’ 인정하지 않는 北 북한은 지금도 국군포로 강제억류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남북한 정상이 여러차례 만났지만, 극히 일부 국군포로 직계가족이 이산가족 행사장에 나왔을 뿐, 포로들은 여전히 북한 국민으로 분류됩니다. 국군포로 장무환(1926~2015)씨는 23세에 국방경비대에 입대했다가 소집 만료로 고향 경북 울진으로 돌아왔습니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뒤엔 북한 인민군에 강제 징집됐습니다. 후퇴하는 인민군에서 천신만고 끝에 탈출해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이번엔 국군에 징집됩니다. 기구한 운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3사단에 배치된 그는 정전 협정을 불과 일주일 앞둔 1953년 7월 20일 강원 철원 금화지구 전투에서 중공군에 포로로 잡혔습니다. 북한의 ‘적’이었던 장씨는 북한 최북단 함경북도의 탄광으로 끌려갔습니다.그곳에서 45년을 살다 72세였던 1998년, 죽음을 각오하고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왔습니다. 한국의 가족들은 당시 거액인 1만 달러(한화 1129만원)를 밀고를 빌미로 협박하는 중국인에게 주고 중국 국경을 탈출합니다. 또 외교당국의 외면에 천신만고 끝에 여권을 한국에서 만들어 고향 울진으로 돌아왔습니다. 영화보다 기구한 이런 운명은 왜 만들어졌을까. 16일 통일연구원에서 발간한 ‘2020년 북한인권백서’에 따르면 1953년 정전 당시 유엔군 사령부가 집계한 국군실종자는 8만 2000명에 이릅니다. 그렇지만 1954년 1월까지 포로교환으로 남한에 돌아온 인원은 8343명에 불과했습니다. 남한은 북한군 7만 5000명을 돌려보냈습니다. ●포로교환 송환자 불과 ‘8343명’ 북한은 “강제억류한 국군포로는 단 1명도 없다”고 합니다. 북한에 있는 국군포로들은 모두 귀순해 정착했다는 것이 그들의 일관된 주장입니다. ‘제네바 협약’은 북한 정권엔 휴짓조각에 불과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유족에게 보훈혜택을 주기 위해, 전투 중 행방불명자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전사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군 인사법’에 근거해 모든 미귀환 국군포로를 ‘전사자’로 처리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령’이 됐습니다. 그러나 조창호 중위(1930~2006)가 1994년 귀환하면서 처음으로 국군포로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됩니다. 2019년 기준으로 귀환한 군군 포로는 80명. 이 가운데 56명이 이미 사망했습니다. 북한 인권단체에 따르면 국군포로 대부분이 85세를 넘긴 고령이어서, 현재 생존자는 200명도 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됩니다.2011년 이후엔 귀환한 국군포로가 없습니다. 그 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고 권력자에 오르면서 국경지역 탈북 경계가 강화됐고, 국군포로들이 연로해지면서 자력으로 국경을 넘기 어렵게 됐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습니다. 국군포로 한만택(1932~2009)씨는 1953년 6월 금화지구 전투에서 실종됐습니다. 그러다 2004년 12월 극적으로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탈북, 가족을 만나려다 중국 공안에 체포됐습니다. 한씨는 북한 평안남도의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됐고 2009년 한 많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가족들은 외교부 등 정부가 탈북 계획을 전달받고도 묵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부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했으나, 2심에선 ‘5년’인 민법상 소멸시효가 지나 패소했습니다. 지난해엔 국군포로 한모씨가 북한과 김 위원장을 상대로 낸 손배 소송에서 2100만원을 지급하라는 승소 판결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국군포로 가족들이 분노하는 건 남북의 외면 속에 그들 대부분이 강제노역에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북한인권백서에 따르면 국군포로들은 휴전 이후 1954년부터 1956년 사이에 탄광, 농촌, 기업 등에 배치돼 ‘전후복구’라는 명목으로 강제노동을 하게 됩니다. ●잊혀지는 것이 고통…늘 기억해야특히 북한 최북단 함경북도와 함경남도에서 하루 12시간씩 2교대로 탄광일을 하는 포로가 대부분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956년 전후로 집단수용소에서 나온 뒤 ‘공민증’을 받고 사회로 복귀했지만, 출신성분 때문에 억압과 차별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아내와 자녀는 남편, 아버지의 출신을 꼭꼭 숨기며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이 국군포로 억류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아직도 체계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평화무드’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외면한 사례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귀환 국군포로에 대한 지원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남북관계,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우리는 늘 그들을 기억하고 예우하며, 귀환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올해 2월에는 54년간 강제노역을 하다 귀환한 카투사 출신 이기춘(1931~2021)씨가 90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2004년 고령인 73세의 나이로 무려 3번의 시도 끝에 북한을 탈출했다고 합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6·25 전쟁 70주년’이라는 거창한 타이틀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입니다. 이 글이 그들을 조금이라도 더 기억하고 조사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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