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평안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혼전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총선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청각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뉴캐슬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638
  • 北 옥수수 풍작

    올해 북한의 옥수수 생산량이 지난해에 비해 30% 증산될것으로 예상돼 주민들의 식량난이 크게 해소될 전망이다. 지난 15일부터 10일간 북한의 옥수수 수확 현황을 둘러보고 귀국한 경북대 김순권(金順權)교수는 27일 “평안남도,황해남북도 등의 9개 협동농장에서 옥수수 수확 현황을 관찰한 결과 수확량이 지난해에 비해 30% 가량 늘어난 것으로 보였다”면서 “올해 작황은 98년 남북 옥수수협력사업을 시작한 이래 가장 큰 풍작”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지난 봄 극심한 가뭄으로 흉작이 우려됐지만7월 이후 태풍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등 날씨가 좋았고 지난 겨울 맹추위로 병충해가 크게 줄어 생장 상태가 양호했다”면서 “옥수수와 함께 벼농사와 콩농사도 풍작이어서식량난이 다소 완화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이산상봉 후보자 분석·면면

    제4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북측이 26일 대한적십자사에 보낸 후보자 200명은 컴퓨터 추첨으로 새로 선발한 우리측과 달리 지난 2,3차 상봉때 탈락한 인사들로 짜여져 있다.2차 방문단 탈락자가 34명,3차 방문단 탈락자가 166명이다. ◆북측 후보자 분석=연령별로 80대가 5명(2.5%),70대가 94명(47%),60대가 101명(50.5%)이다.성별로는 남자 172명(86%),여자 28명(14%)이다.최고령자는 충남 당진 출신의 한인기씨(83)로,아들 정구씨(56·서울 구로구)와 딸 정자씨(60·인천시 남구)를 찾는다. 남한 거주 형제·자매를 찾는다는 후보자가 166명,부모나배우자를 찾는다는 사람이 각각 12명이다. 출신지역별로는 경기도가 45명으로 가장 많고 충남(30명),경북(30명),충북(21명)등이 뒤를 이었다. ◆남측 후보자 분석=고령자 우선 원칙을 적용한 결과 북측과 달리 80세 이상이 66명(33%)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이어 70대 96명(48%),60대 38명(19%)이다.성별로는 남자가 136명(68%),여자가 64명(32%)이다. 출신지역별로는 황해도 출신이 54명으로 가장 많고 평안남도(34명),함경남도(21명)가 뒤를 이었다. ◆후보자 면면=북측 방문단 후보자 명단에는 김민하(金玟河·67) 민주평통수석부의장의 형인 김성하(金成河·74) 김일성 종합대 철학부교수가 포함돼 있다.그는 지난 3차 상봉때도 후보명단에 들었다 탈락했다.북한의 영재학교인 평양제1고등중학교 교장 배재인씨(65)도 형 재진(68),고모 배현순씨를 찾는다.박태원(朴泰源·75) 한국과학기술원 이사장의동생이자 박태종(朴泰淙·56) 전주지검장의 형인 박태윤씨(69)도 북측 명단에 포함됐다. 공훈예술가 황영준 화백(82)도 3차때 떨어졌으나 다시 후보에 올라 딸 혜숙(54·대전시 대덕구)·명숙씨(53·충북청주시) 등 가족들과의 해후를 고대하고 있다. 진경호기자 jade@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 (8) 궁핍했던 시인 이용악

    “북쪽은 고향/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다시 풀릴 때/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마음은 눈감을 줄 모르다” 절창 이용악(李庸岳·1914∼1971)의 시 ‘북쪽’이다.같은 고향을 노래하는 데도 곰살스럽지 않게 식민지의 비애가 묻어나면서도 기개와 투지가 넘친다.민족정서를 노래한 시인 중 드물게 건장한 구리빛 얼굴의 농투사니 심경에 바탕한 남성적 세계를 형상화한 이용악은 여성적인 김소월과 대조를 이뤄 오히려 이 시인이야말로 우리의 민족시인이라는 주장이 확산되어갈 지경이다.그가 노래한 ‘북쪽’은 바로 함경북도 경성(鏡城),파인 김동환과 같은 곳이다.지연만으로도 이용악은 충분히 삼천리사와 가까울 수 있는 처지인데 거기에다 그 특유의 마당발식 사람됨까지 겹쳐 북도 출신 문학인의 재경(在京) 친목회장 격이었다. 누구나 서울 오면 그를 앞세워 고향 선배에게 찾아 다녔음이 여러 편지에서 드러난다.꼿꼿하기로 소문난 황순원조차도 평양에서 상경하면 최정희를 직접 만나지 않고 “이용악형과 함께 찾아 뵈올까 했으나 그날 사와 댁에 계실 것같지 않다는 이형의 개의(改意)”로 만나기를 포기하고 하향했다고 전한다. 황순원의 발신지는 평양시 무림리 156-6.숭덕학교 교사로3.1운동에 관련되어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아버지의 기개를 이은 듯한 고결한 시인이자 작가였던 황순원은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뒤 평양에 머물다가 1943년고향인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로 낙향하여 학대받던 한글로창작에 전념하며 상처 없이 8·15를 맞은 깨끗한 문사였다. 평양에서 낙향 직전에 보낸 이 편지로 이용악은 최정희의일정을 꿰고 있다는 것과 황순원을 비롯한 서도(평안도)와북도 문인들을 연계지어 주는 중개역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것도 잡지사와 작가를 연계시켜 주는 단순한 뚜쟁이가 아니라 집필 상담도 해주는 자문역을 수행하고 있다. 장사꾼이었던 아버지가 객사한 뒤 어머니의 국수 떡 계란을 팔아 연명했다니 이용악 집안의 어려움은 알만하다.일본 유학시절에는 온갖 품팔이를 다 해본 이 시인은 가난의무서움을 알기에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에 민망할만큼 애절하게 취업을 청탁하고 있다.“매신(每日新報) 건(件) 지금으로부터 잘 운동하면 될 것 같은데 김선생(파인)께서힘써 주셨으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아무튼 수일 내로이력서 다시 써서 김선생께로 보내 볼 작정이 올시다”고이용악은 숫제 사정조다. 다른 한 편지에서는 “김동진(金東進)씨”를 언급하면서 “김선생께선 그후 만나실 기회가있으셨는지” 구체적으로 묻는데, 김은 바로 평양출신 언론인으로 1940년 11월부터 매일신보 상무로 있었던 인물이다.입사하기만 하면 친일파로 낙인찍혔던 매일신보에 그렇게 기를 쓰고 들어가려 했던 이용악의 소망은 좌절당했는데,대체 그가 얼마나 호구지책이 어려웠기에 이 지경이었을까.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1939)한 이용악은 물 불 가릴 틈새 없이 생활난에 허덕이며 ‘인문평론’같은 별로 평판이좋지 않던 잡지에 몸담았다가 서울 생활이 어려워져 귀향한 것이 1942년이었고,그가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는 다 이때 쓴 것들이다. 바로 이 해에 최정희 주변에는 어떤 일이있었던가. 편지에 보면 우선 김동환과 신원혜 부부의 장남영사(英士·1926년생)가 죽었는데,파인은 매우 침통해 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용악은 최정희에게 “최선생 조차곁에 없다면 김선생께선 도저히 이번 슬픔에서 헤어나지못할 것입니다.잘 위로해 주시길 바랍니다”고 했는데,신원혜의 존재를 거의 의식하지 않은 천진스런 시인의 눈치가 엿보인다. 이용악 서간문의 발신지는 청진시 신암동이나,잠시 “극히가난한 월급 봉투를 받고 있던” 청진일보사였다. 그러나이 시인이 아이를 가지고도 “내지인(일본인)이 아니면 배급도 주지 않는다”는 가난 속에서 “입고 있던 와이셔츠등속이랑 뜯어서 기저귀를 만들었답니다.그러나 댁(최정희)에서 애기 낳을 때 쯤에는 혹은 얻을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란 구절은 너무 서럽다. 콩트처럼 이런 가난한 시인의 집에 도둑이 들어 단 한 컬레뿐인 ‘백화(白靴)를 훔쳐 가버렸는데,“용악이 보다도더 비참한 사람이겠습니다.덕분에 며칠이고 들어앉아 독서나 해야 밑지지 않겠습니다.취직되면 구두 한 켤레야 사겠죠”란 구절에 이르면 이용악의 인간됨을 느끼게 해준다. 이런 판세에 최정희에게 아기(지원)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봐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그의 설래발은 여전히 널리 펼쳐져 있었던 것 같다. 이 각박한 시대에 우리의 민족시인이용악이 가난과 병마와 싸우며 ‘채근담(菜根譚)’과 헤세의 ‘데미안’을 탐독했었다는 삽화는 그의 문학론 이해에 새 조명을 쏘게 해준다. 이 고난의 시기에 이용악이 쓴 시 ‘길’(‘국민문학’ 1942.3)은 자칫하면 “싱가포르 함락이라는 ‘지극히 복된기별’을 듣고 별을 우러러 ‘즐거운 백성’된 것을 노래함으로써 일제의 침략 전쟁을 합리화했다는 엉뚱한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실은 “고통스런 시대를 살아가는 식민지 지식인의 부끄러운 자기 확인의 사회적 의미”(윤영천,‘이용악론;민족시의 전진과 좌절’)로 보기도 한다.사족이지만 이용악은 이 혹독한 가난의 체험 때문에 8.15직후상경하여 ‘조선총독부 도서관(국립도서관의 전신)’ 일본인 관장 관저가 적산가옥으로 접수된 걸 불하받는 민첩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조선문학가동맹에 적극 가담,활동했으나,정부수립 전후해서는 정인택(鄭人澤) 등과 정릉 이웃에 살다가 6.25 직전에는 서대문형무소에 수감,전쟁중 현덕·설정식 등과 월북한 그에 대해서는 북한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관계는 얽히고 설키기 마련이어서 이용악이 그토록 들어가고자 했던 매일신보사의 ‘사진순보(寫眞旬報)’에 근무했던 작가 정인택은 직장 관계로 꽤나 친일작품을 지저분하게 남긴 심리주의적 경향의 작가로 이상·안회남(安懷南) 등 서울내기 중 몰락한 집안 출신들과 가까웠다.안회남은 ‘금수회의록’의 작가 안국선의 외아들로 우국지사인 아버지 때문에 불우한 성장기를 보낸 고독한 작가로 술을 즐겼다.진도로 유배당한 안국선이 현지 처녀와 결혼,방면 후 서울에서 얻은 아들이 바로 회남이다.지사 기질을이어받은 회남에게 식민지 교육은 배포가 안 맞아 아버지의 타계와 비슷한 시기인 고교 4학년 때 등록금을 유용한채 자퇴,문학과 술과 연애라는 일제 통치 아래서의 전형적인 절망의 문학병에 빠져들었다. 최정희에게 언제나 술타령 구절이 들어있는 편지를 보냈던곳은 종로구 체부동 시절로 안회남이 1940년대 초반 충남연기군 전의면으로 낙향하기 직전에 쓴 글들이다. 편지에는 친하게 지냈던 작가 현덕(玄德),이석훈(李石薰)이 등장하고,원고료를 받으면 “아내가 월여를 두고 조르던 전기다리미를 하나 사고는 최정희에게 점심을 사겠다”는데 그메뉴가 “정식을 취하시든지 또는 50전 영화 구경 50전 맥주 50전 런치를 취하시든지”하라는 제안은 당시 문인들의취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엽서는 오히려 노골적인 사과내용을 담아낸다. “저녁에 댁에 간 것은 저의 잘못이올시다.용서해 주시옵소서.술이 대취했습니다”고 정중히 사과하는 안회남의 자세는 다른 문인들과는 달리 지사형 작가로서의 풍모가 드러나 있다. 이용악을 중심축에 둘 때 그 양쪽에 배치되어야 할 인물은당연히 같은 고향인 재주꾼 김종한과 문단에 별 기반을 못잡은 박찬모(朴贊謨)일 것이다. 원산 북선매일신보를 발신지로 한 박찬모의 편지에 등장하는 인물은 단연 ‘용악형’이 제일 많고, 그 다음이 현덕인데,작품 경향으로 볼때 용악과 현덕은 어떤 의미에서는 상통한다.“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이번 삼독째 덤벼 중권을 읽는 참에 독소전단(獨蘇戰端)의 보(報)를 받았다는 것이 요즈음 마치 살아나게 되는 것 같은 자극입니다”는 구절은 이 젊은 작가가시골에 몸은 두고서도 세계정세를 정확히 독파하고 있구나싶은 대목이다.세계사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라면 독일의패배는 예견된 필연이었다. “딱 엎드려 동면을 하고 싶은가 하면 느닷없이 어디 부딪쳐 보고 싶어 못 견디겠고”라고 이어지는 구절은 심상찮은 암시다. 아들 자랑과 가정을들먹이는 대목은 역사의 격랑 속으로 뛰어들지 못하는 자괴감을 달래려는 속내를 드러낸다. 임헌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여성 선언] 행 복

    며칠전 지방에 갈 일이 있어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우연히 오후 1시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얼마전까지만 해도같은 직장의 동료였던 한 여자 아나운서가 또박또박한 말솜씨로 뉴스를 했다.감회가 새로웠다.몇달전까지 나에게뉴스란 ‘듣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었는데 이제는나도 뉴스를 ‘듣고’만 있으니 말이다. 그 여자 아나운서와는 수년을 같은 사무실에서 얼굴을 마주하며 안부를 묻고 격려하던 사이였는데 지금은 텔레비전을 통해 서로를 지켜보며 지난날을 회상하는 처지가 되었다.그러고 보면 ‘있을 때 잘 하라’는 말은 어떤 인간관계에 있어서나 통용되는 진리인 것 같다. 운전을 하며 이렇게 추억을 되새기다 보니 문득 같은 여자로서 동료였던 그 아나운서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대학 때 꿈이 아나운서였고,대학 4학년때 언론고시를 치러서 단번에 합격했으며 반듯한 마스크에 굵직한 음성으로 한동안 뉴스앵커로 이름을 날리다가 너무 늦지 않은 나이에 세상이 부러워 하는 결혼을 하고 이제는 아줌마아나운서가 되었다. 아나운서를 천직이라고 생각하며 자부심을 갖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남편을 내조하며,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집안일과 직장을 병행하며 만족해 하며 산다.그녀의 표정을 보면 마음을 읽을 수 있는데 무척이나 행복해 보인다. 자신의 꿈을 완벽하게 이루었으니까.하지만 ‘평안감사도저 싫으면 그만’이라고,나는 같이 근무하면서도 그녀와같은 마음은 아니었던 것 같다.물론 아나운서는 좋은 직업이고 여대생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마치 남의 옷을 입은 듯 불편하고 어색할 때가 많았다.내꿈은 그곳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이렇듯 특정부류의 사람에게 가치 있는 것이 어느 누구에게나 일반적가치를 가진 것은 아니다. 나는 얼마전 대형 매니지먼트사와 계약을 하고 본격적으로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뛰어 들었다.방송 스케줄이 있는날에는 아침 일찍 집으로 매니저가 차를 몰고 데리러 와서미장원이며 방송사며 일정대로 같이 다니며 나를 도와준다.작년 이맘때쯤만 하더라도 전혀 상상하지 못한 생활이다.나의 주변은 너무도 많이달라졌다.직장인에서 프리랜서로,아나운서에서 방송인으로,그밖에도 연극배우·탤런트·칼럼니스트·대학원생 등 여러 가지 다른 이름이 따라다닌다. 나는 행복을 찾아서 거친 세상에 나왔다.10대에 이루고싶었던 꿈들을 훨씬 세월이 지난 지금 남들은 늦었다고 포기할 수도 있는 나이에 감히 이루어 나가려고 한다.안해서못하는 것이지 못해서 안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인생의 기로에 서서 혹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구체화시키지 못해서 고민하고 있는 여성이 있다면 하고싶은 말이 있다.실패가 두려워 안주하는 사람은 되지 말라고.적어도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하기 싫은 일은 ‘NO’라고 말 할 수있는 힘을 가진 당당한 여성이 되기를 바란다.스스로에게질문을 던져본다.“행복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하고싶어 원하던 일인가?”[임성민 방송인]
  • 철원군, 北에 벼재배시험장 운영

    강원도 철원군이 북한 강원도의 철원·김화·평강군 등지에서 벼 재배 시험포와 시험농장을 운영하게 된다. 철원군은 최근 이수환(李壽煥) 군수를 단장으로 한 방북단이 북한을 다녀온 뒤 성과보고회를 갖고 북측과 농업교류등 4개항의 내용을 담은 의향서를 교환했다고 2일 밝혔다. 철원군은 북측의 민족화해협의회와 6차례의 논의 및 협의를 갖고 내년에 북한 강원도(북강원도)의 철원·김화·평강군 등지에 벼 재배 시범포와 시험농장을 설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군은 농자재와 농업기계,비료,농약 등은 내년 3월까지 지원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남북 양측은 직접 연락망을 확보,10월쯤 2차 방북 등 지속적인 실무협의를 통해 벼 재배 시험농장 규모를포함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기로 했다. 북측과는 또 옛 태봉국의 궁예도성에 대한 공동학술조사등 고려건국에 관한 학술회의도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아울러 경원선 금강산선의 조기 복원에 대해서도 쌍방 중앙정부에 건의하기로 합의했다. 방북단은 이번 방북 기간동안 평양 농업과학원을 비롯해황해남도 신천군과 남포시,평안북도 평야지대를 돌며 벼 재배상황과 농업 관개시설을 돌아보았다. 철원 조한종기자 bell21@
  • 고충처리위 신임위원 백남진씨

    국민고충처리위원회는 19일 신임위원에 백남진(白南辰·63·행정고시 10회) 전 한국법제연구원 원장을 임명했다. 평남 강동 출신으로 서울 보성고,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한 백 위원은 법제처 법제조사과장,법제조정실장,이북5도위원회 평안남도 도지사를 역임했다.
  • 2대째 항일운동 박영창옹/ “”교과서 왜곡 日 자해행위””

    “역사는 정사(正史)가 아니면 가치가 없습니다.허위로 만든 역사는 결국 망국행위지요.그런 점에서 지금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은 결국 일본인 자신들에게 크나큰 자해행위가 될 것입니다.” 최근 한·중·일 동양3국간에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사건과 관련,1개월간 일본을 항의방문한 ‘80대 청년’이 있다.올해 86세로 미국 LA에 거주하는 박영창(朴永昌·86·미주 광복회 원로회장·사진)목사가 그주인공.박목사는 지난 5월 3일부터 30일간 일본에 머물면서 다카코 외상,도이 일본의회 외무위원장,도이 전 중의원의장 등 일본 정계인사와 최상룡 주일 한국대사를 비롯해 일본 기독교 지도자,언론관계자 등 100여명을 방문,교과서 왜곡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따끔한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90이 멀지않은 박목사가 노구를 이끌고 태평양을 건너 일본을 ‘항의방문’한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박목사는 일제당시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옥고를 치른 항일운동가의후손이다..박목사는 대를 이어 항일운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평양에서 개업의로 활동하던 그의 부친인 박관준(朴寬俊)장로는 일제가 황국신민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신사참배를강요하자 당시 평안남도 지사와 조선총독을 찾아가 이의 부당성을 경고하였다.그러나 별 소용이 없자 1939년 3월 도쿄로 건너가 일본제국주의의 심장인 제국의회(현 중의원)회의장에 잠입,‘한국내에서 신사참배 강요를 즉각 중단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뿌리고는 현장에서 일경에 체포돼 옥고를 치뤘다.석방후에도 다시 신사참배·궁성요배 반대운동을 펴다 재차 수감된 그의 부친은 해방 5개월을 앞두고 병보석으로 석방됐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70세로 순국했다.이른바 ‘제국의회진정서 투하사건’ 당시 25세로 일본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던 그는 부친의 ‘의거’를 돕다가 이 사건에 연루돼 1개월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그의 ‘항일운동’은 해방후에도 계속됐다.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사건으로 나라 안팎이 떠들썩하던 지난 82년 7월 그는 미국에서 한국신문을 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역사교과서 왜곡의 주무당국자인 일본 문부성 관계자가 “한국인에게 신사참배를 ‘강제’한 증거가 없어 교과서에 ‘장려’로 기록했다”고 주장한 대목을 신문에서 보고는 그 길로 그는 일본으로 향했다. 박 목사의 손에는 일제하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순교한 한국인 50명의 명단,사건관계기록,부친의 재판기록 등이 들려 있었다.그는 이 자료들을 일본 언론에 폭로,대대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아사히,요미우리 등 일본의 주요신문들은‘신사참배는 역시 강제’라는 제목으로 이를 대서특필했다.지난 89년 일황 히로히토 일황이 사망하자 그는 다시 단신 ‘경고사절’로 일본을 방문,일본 언론에 ‘일본이여 대답하라’는 자작시를 공개해 다시 주목을 받았다.그는 “‘전범1호’인 히로히토를 국장(國葬)으로 장례 치르는 것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방일까지 합치면 그의 항의방문은 모두 네번째인 셈이다.그는 “한국정부가 모처럼 정면대응을 하는 것이 다행스럽다”며 “일본을 탓하기 앞서 우리역사를 후손에게 제대로 가르치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5월 한달간 일본을 돌아다니느라 퉁퉁부어오른 발을 두고 “일본에서 받은 선물”이라고 했다.8·15 광복절에 다시 오겠다며 박목사는 17일 미국으로 향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기고] 무령왕릉 발굴 30주년

    1971년 7월 5일은 백제사 연구의 신기원을 연 무령왕릉(武寧王陵)이 발견된 날이다.따라서 5일은 왕릉 발굴 30주년이되는 뜻깊은 날이다.때마침 이날은 무령왕이 즉위한 지 1,500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무령왕릉은 학술적 가치와 역사적인 의미가 너무도 커서 발굴 당시 국내외 학계를 긴장시켰다.특히 장엄하면서도 연꽃무늬로 치장한 완전한 유구의 정교한 벽돌무덤과 묘지석 (墓誌石)을 비롯한 다종 다양한 부장품들은 그 질과 양에 있어서 백제미술의 정수만을 집대성한 보물들이다.백제미술의 아름다움을 확인한 국민들은 감동과 경탄으로 흥분했다.잊혀진 웅진(熊津)시대 백제문화의 화려한 부활이기도 했다. 무령왕릉의 첫번째 공헌은 학술적으로 유형·무형의 발견자료가 묘지석을 동반함에 있다고 할 것이다.묘지석의 발현은삼국시대 고분 중에서 유일한 금석문(金石文) 자료로서 무덤의 주인공을 밝힌 보물적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둘째로 무령왕릉은 이미 알려진 벽화 전축분인 6호분과 함께 중국 남조 제(齊)·양(梁)의 전축묘제를 수용해 조영한것임을 알 수 있고,원상대로 남아 있는 부장품은 그 배치와장법(葬法)을 명확하게 밝힐 수 있었다. 셋째,풍부한 내용의 미술공예품은 자료 부족에서 오는 백제미술의 빈곤성을 일신케 했을 뿐 아니라,출토지와 발견상태,그리고 연대가 뚜렷한 국보급 유물이다. 넷째,무령왕릉의 발굴은 그동안 백제고분에서 제기됐던 여러 문제 해결의 기초가 될 것이다.동시에 이를 계기로 백제문화의 고고학·미술사적 연구가 확고한 기준 아래 활발하게 전개될 것이다. 다섯째,무령왕릉의 발굴은 백제문화 연구의 기준 설정뿐 아니라 5∼6세기 한·중·일간의 국제적인 문화교류와 상호 영향관계를 규명하고 이해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나 무령왕릉의 발굴은 분명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것이아니었기에 아쉬운 점도 많았다.학술적 가치와 비중이 높은사적13호 백제고분군의 6호분과 5호분의 내부에 스며드는 습기를 제거하기 위한 배수시설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긴급 발굴의 형식으로 이뤄진 것이다.우선 파괴되지 않은 처녀분으로 확인된 왕릉에 교란된 채로 내장된 막중한보물들이 행여 장맛비로 더욱 부식되지 않을까 염려됐다.이같은 상황은 발굴단으로 하여금 유물 수습을 서두르게 했고 수습과정의 신중성 결여로 이어져 비판의 대상이 됐다.이같은 사례는 그후 고고학계가 학술적이고 체계적인 발굴 체제로 전환하는계기가 됐다. 오늘날 무령왕릉의 사후의 평안한 능침(陵寢·왕의 무덤)이 발굴돼,영원한 안침(安枕·편안한 잠자리)을 깨웠다.온몸에 화려하게 치장된 장신구들은 각각 분류돼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정말 송구스러운 일이다.그러나 왕릉까지 송두리째내놓고 찬란했던 한국 고대문물을 온누리에 빛내주고 있으니 이 또한 참으로 위대한 민족의 대왕이 아닐 수 없다.우리모두 머리숙여 경건한 마음으로 예의를 갖추고,문화민족이란 긍지를 가지고 민족문화의 창조적 계승·발전을 다짐할 일이다. △박용진 충청매장문화재연구원장
  • ‘반공검사’ 오제도씨 별세

    ‘반공검사’로 유명한 오제도(吳制道) 변호사가 1일 새벽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향년 84세. 지난해 초부터 폐렴 증세를 보이던 오 변호사는 올들어 몸이 약해져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1917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난 오 변호사는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46년 제1회 판·검사 특별임용고시에 합격,법조계에 첫발을 디뎠다. 서울지검에서 정보부 검사로 일하면서 남조선노동당 김삼룡·이주하 사건,성시백 사건,국회 프락치 사건,여간첩 김수임 사건,학원내 적색교원 사건 등 굵직한 대공사건을 모두 도맡아 ‘반공검사’‘사상검사’로 이름을 날렸다.국회프락치 사건으로는 국회의원 15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60년 변호사로 개업한 뒤에도 신의주학생의거기념회장,한국반공연맹이사,북한탈출동포돕기운동본부 부회장,무궁화회 회장,월간 ‘사상 21세기’ 회장 등 대표적인 보수우익인사로 활동했다.유신과 5공 시절 9대와 11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97년 ‘노조에 불순세력’ 등의 발언으로 법정에 선 박홍전 서강대 총장과 ‘북풍사건’의 권영해 전 안기부장 등의변론을 맡아 화제가 됐다.이날 빈소가 차려진 서울 송파구풍납동 서울중앙병원에는 고인과 의형제를 맺은 황장엽 전북한노동당 비서 등 각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유족은부인 한석주(韓錫珠·82)여사와 장남 영찬(永璨·53)씨 등 3남3녀가 있다.발인은 5일 오전7시.(02)3010-2270. 전영우기자 anselmus@
  • 日장애작가 호시노 자서전등 번역출간

    호시노 토미히로(星野富弘·55).그는 ‘꽃의 시화전’이란 이름으로 일본 전역에서 200여 차례나 전시를 연 중견 화가다.지난 91년 고향인 군마현 세타군 아즈마무라 쿠사키댐 부근에 건립된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에는 해마다 10만명의 관람객이 찾아온다.그의 그림은 소박하다.지인들이 가져다 준 화분이나 꽃다발,뜰에 핀 꽃나무,산책길에서 만난들꽃을 붓가는대로 그린다.그리고 시를 곁들인다. 그의 작품이 유달리 가슴에 와닿는 것은 그가 목 아래를전혀 쓸 수 없는 장애인이기 때문이다.20대 초반 대학을 졸업하고 중학교 교사가 된 지 두 달만에 사고를 당했다.체조수업도중 공중제비를 돌다 떨어진 것.하지만 기독교에 귀의하고 시와 그림에서 삶의 기쁨과 보람을 찾으면서 그는 다시 태어났다.그 고난의 터널을 뚫고 작가로 우뚝 서기까지의 생활을 그린 자서전 ‘극한의 고통이 피워 낸 생명의 꽃’(김유곤 옮김)과 시화집 ‘내 꿈은 언젠가 바람이 되어’(이윤정 옮김)가 문학사상사에서 나란히 번역돼 나왔다.20년 전에 초판이 나온 이래 지금까지 일본에서 각각 140만권과 200만권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만목수참(滿目愁慘).졸지에 장애의 늪에 빠진 그의 눈에잡히는 모든 것은 시름겹고 참혹했다.그러나 부조리해 보이는 세상의 온갖 현상들이 하나님의 의지 안에서 질서지워져 있음을 깨달으면서 그는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마침내 우주 만물 속에 구현된 신의 섭리를 볼 수 있는 혜안이 열리고 장애마저 자신의 삶의 조건으로 겸허히 받아들이게 된것이다.그 마음결에 꽃이 어리어 그림이 되고 시가 됐다. 그의 그림과 시는 이제 온갖 삶의 질곡을 털어버리고 바람과 함께 훨훨 하늘로 날아오른다.“들판을 지나는 바람이뺨을 스치고,내 상념은 언제나 바람이 됩니다.나는 꽃잎을어루만지고 민들레 홀씨와 함께 하늘을 날아올라 옥수수 잎사귀를 사각이다가,나뭇잎을 한 잎 한 잎 뒤적이며 초록빛산을 오릅니다.” 투명한 서정이 감도는 그의 글에는 삶에대한 반듯하고 서늘한 시선이 스며 있다. 그의 시는 시라기 보다는 차라리 일상의 단상처럼 읽힌다. 어찌 보면 사물에 대한 즉물적 심상을간결한 시형 속에 담아내는 하이쿠(俳句)같기도 하다.하지만 상징시의 난해함과는 거리가 멀다.담담함 속에서 배어나는 풍성한 속뜻이 구절구절을 곱씹어 보게 만든다.우리에게 재앙이 도둑처럼 찾아온다면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조그만 일에도 쉽게 좌절하고 비관으로 치닫는 나약한 현대인들에게 그의 글은 조용한 성찰의 시간을 마련해준다. 김종면기자
  • 北도 ‘1,000년에 한번 있을’ 왕가뭄

    유례없는 봄 가뭄과 이상고온으로 북한 전역이 타들어가고있다.중국 신화통신이 지난 5일 “1727년 대한해(大旱害)이후 300년 만의 가뭄”이라고 보도한데 이어 북한 기상당국도 이날 “1,000년에 한번 있을 ‘왕가뭄’”이라고 심각성을 전했다.98년을 방불하는 최악의 식량난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북한 기상당국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지난달말까지 북한지역의 평균 강수량은 22㎜로 평년의 14%에 불과하다.한달 이상 비가 오지 않은 지역도 평양과 황해남도신천,평남 숙천군 등 수두룩하다.기상수문국 중앙예보연구소의 정영호 부소장은 5일 조선중앙텔레비전에 출연,“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역사적으로 있어보지 못한 현상으로,천년에 한번 있을 왕가뭄”이라고 말했다. 가뭄과 함께 이상고온 현상도 빈발하고 있다.지난 3일 평양 33.2도를 비롯,사리원(33.1도),개성(30.1도),자강도 강계(33도),함북 청진(30.4도),함흥(36.7도),원산(35.6도) 등 대부분 지역이 30도를 웃돌았다.특히 5일 함흥은 기상관측 이래 최고기온인 36.8도를 기록했다. 가뭄과 고온현상이 겹치면서 상당수 농경지가 땅속 20㎝정도까지 메말라 농작물 피해가 극심한 실정이다.황해도와 평안남도,강원도,남포시 일대의 피해가 심각해 황해도의 6만정보,강원도 13만정보 등 전국적으로 20만정보 이상의 농경지가 가뭄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특히 이모작 곡창지대인 황해도 재령평야와 미루벌,평남 열두삼천리벌 등의 피해가 커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피해작물은밀 보리 감자 옥수수 과일 등으로,중앙통신은 5일 농업성자료를 인용,“감자와 밀 보리 강냉이의 80∼90%가 말라 죽었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각종 언론매체들은 연일 각 지역의 가뭄극복 노력을 보도하며 주민들을 독려하고 있다.남한지역의 가뭄실태도 자주 보도하면서 이번 가뭄이 한반도 기상상황에 따른 것임을 강조,농민들의 좌절감을 달래고 있다. 북한 당국은 가뭄 극복을 위해 군 병력과 공무원,회사원까지 대거 동원하고 있다.중앙통신은 “모든 양수설비와 노력을 가뭄피해 방지에 동원하고 있으나 피해상황은 여전하다”며 “농작물의 싹트기와 생장을 거의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전했다. 진경호기자 jade@
  • 인터넷에 김치바람 분다

    인터넷에 김치바람이 불고 있다. 오는 7월 열리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총회에서 한국 김치가 국제 표준규격으로 확정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한국 김치 알리기’가 한창이다. 농수산물유통공사가 최근 개설한 ‘김치이야기’(www.kimchi. or.kr)는 김치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다.김치의 효능·김장·저장법은 물론,계절별·재료별·지역별 김치종류와김치요리 등을 소개하고 있다. 김치피아(www.kimchipia.com)는 북한의 김장김치 담그는방법과 황해도·함경도·평안도 등에서 만드는 김치종류를소개하고 있다.김치박물관(www.kimchimuseum.com)은 김치의유래·변천사 등 김치의 역사를 비롯, 각 시·도별 독특한김치종류와 김치의 효능·김치요리법을 알려준다.전문가 코너는 김치의 과학성과 발효원리를 소개해준다. 김미경기자
  • [김삼웅 칼럼] 순전히 옛날이야기(?)

    “신이 생각하건대 나라에 인재가 부족한 지가 실로 오래되었습니다.전국의 인재를 모조리 등용한다 하더라도 오히려그 부족을 느낄 것인데 열에 아홉은 버리고 있으며 전국의인재를 모두 다 간부로 양성한다 해도 오히려 넉넉하지 않을 것인데 도리어 열에 아홉은 버리고 있습니다.평민과 천민은 전부 버림을 받은자들이며 서관(평안도)과 북관(함경도)지방의 백성들도 버림을 받은자들이며 해서(황해도),송경(개성),강동(강화도)지방의 백성들도 그 버림을 받은자들이며 관동(강원도)과 호남지방의 백성들은 각각 그 절반씩 버림을받은자들입니다.뿐만 아니라 서얼자손들이 버림을 받은자들이며 북인·남인들은 일부 등용된다 하나 역시 버림받은 것에 가까울 뿐이며 오직 그 버림을 받지 않은 자라고는 소위명문벌족이라고 일컫는 수십가문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약용이 ‘통색의(通塞議)’에서 인재등용과 관련해 밝힌 글이다.사색당파로 갈려 싸운 시대에 ‘인재난’을 걱정하는 내용이다. 개화사상가 오감(吳鑑)은 “옛날에 정치를 잘하던 사람들은 오로지 어진 사람을 뽑아쓰는 데 힘썼습니다.은나라 탕임금은 이윤(伊尹)을 초야에서 맞고 주나라 문왕은 여상(呂商:강태공)을 반계에서 맞고 진나라 목공은 백리해(百里奚)를 소먹이는 데서 뽑아썼으니 인재준걸이란 반드시 세록(世祿)의집에서 나지 않고 초야에서 나는 법입니다”라고,지나치게문벌이나 간판만을 중시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자신의 묘비명에 “여기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쓸 줄 알던 사람이 잠들었다”고 생전에 묘비명을 남겼다.문명비평가 헌팅턴은 “독재정부의 실패는 3류인사들을 요직에 기용하기 때문”이라 분석한 바 있다. 정통성이 없는 정부에 제대로 된 인물이 참여할 리 없는 것이다. 갑신정변의 실패로 일본에 망명한 박영효가 고종황제에게장문의 상소를 올렸다.핵심은 ①정치의 만기(萬機)를 독재하지 말고 각기 주무관에게 맡길 것 ②정치하는 고관은 정무만을 담당하고 작은 사무를 맡아보지 말 것 ③훈공이 있는 사람에겐 작위와 재보로서 상줄 것이요 관직으로서 상주지 말것 ④사색당파의 사람들로 하여금 예전의 혐의를 버리고 서로 혼인케 하고 인사에도 사색을 가리지 말 것 등을 건의했다. 공자가 노나라 재상에 취임하여 당대의 실력자 소정묘(少正卯)를 처형하자 덕치를 주장하면서 그러느냐는 제자들에게‘오악(五惡)인물론’을 제시했다.사람에게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오악의 인물이 있다는 것이다.①만사에 빈틈이 없이 음흉하게 나쁜짓하는 관리 ②하는 일이 조금도 공정하지않으면서 겉으로는 공정한 체 하는 고위직 ③거짓투성이면서도 주변이 좋아 그럴싸하게 사탕발림하는 인물 ④성품은 흉악한데 기억력이 좋고 박학다식하여 지도자를 속이는 신하⑤독직과 부정을 일삼으면서 한편으로 여러사람에게 은혜를베풀고 너그러운 체 하는 교활한 인물. 중국의 4대성군으로 꼽히는 은나라 탕임금은 7년 가뭄의 큰 재앙을 당하여 하늘에 기도하면서 ‘육사자책(六事自責)’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했다.①정치에 절제가 없었는가 ②많은 백성이 직업을 잃었는가 ③궁궐이 지나치게 사치했는가 ④부인의 청탁이 많았는가 ⑤뇌물이 성행했는가 ⑥아첨하는 자가 번창하였는가. 중국고전에 ‘성지시자(聖之時者)’의 가르침이 전한다.유능한 군주라도 성스러운 정의의 힘,대경대도의 힘만으로 모든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여기에다가 반드시 때를 알아보고 시기를 잘맞추어 융통성 있게 일을 처리해나가는 지혜와 기교를 겸비해야 한다는 말이다.한마디로타이밍을 잘 맞추는 지도력의 뜻이라 하겠다. 전국시대의 인물 노중연(魯仲連)이 진나라 군대를 물리쳐조나라를 크게 부흥시키고도 옛날의 신분으로 살아가고자 함을 보고 좌사(左思)는 ‘영사(詠史)’에서 다음과 같은 절구를 썼다. 功成不受爵(공성불수작) 長揖歸田廬(장즙귀전려) 공훈을 세우고도 관직을 받지 않고 조용히 전원으로 돌아가 산다. 김삼웅 주필 kimsu@
  • [먹거리 축제를 찾아서] (36)평창군 청옥산 산나물축제

    “쌉싸름하고 향기로운 청정 산나물을 맛보러 오세요” 나른하고 입맛이 없는 계절,강원도 깊은 산에서 나는 산나물로 초여름 원기를 되찾아보자. 해발 1,255m의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육백마지기에서 27일 ‘해피 700 육백마지기 산나물축제’가 열려 미식가들을 유혹한다. 청정지역인 육백마지기 일대는 취나물,참나물,곰취,곤드레,삽주,딱죽이 등 각종 토종 산나물이 지천이다.평지에서는 오래전에 산나물이 시장에 나와 있지만 고산지대인 육백마지기 일대는 요즘이 제철이다. 오염되지 않고 높은 산 청정지역에서 자란 청옥산 산나물은 씹는 맛이 연하고 향기가 진해 최고의 산나물로 인정받아오고 있다. 육백마지기는 미탄면 회동2리와 평안2리 사이의 청옥산 정상 일대로 600마지기(1마지기 150∼200평) 정도의 농사를 지을 수 있을 만큼 넓다는 데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더구나 이곳은 생체리듬에 가장 좋다는 700m의 넓은 고원지대라 휴양지로도 유명하다.축제이름에 ‘해피 700’이 들어간 것은 이 때문이다. 축제는 청옥산 아래 미탄면 미탄중학교에서 펼쳐지지만 ‘산나물 뜯기’는 임도를 따라 차량으로 30분정도 올라가는육백마지기 정상과 산아래 앞골과 장재터(해발 700∼900m)등에서 펼쳐진다.산나물뜯기는 이날 오전 5시부터 오후 2시까지며 입장료는 무료.임도라 소형차량이나 화물트럭만이 올라갈 수 있다.등산을 겸해 걸어서 정상까지 오르려면 2시간가량 걸리기 때문에 새벽시간부터 서둘러야 한다.육백마지기 정상에는 축구장 3배 넓이의 주차공간이 있어 주차는 가능하다.지난해에는 서울 등 외지에서 4,000여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이밖에 산신제를 비롯해 산나물 보물찾기,산나물 요리경연대회,송어 맨손잡기,토종닭 잡기,통나무 자르기 등이 펼쳐진다.학교 운동장에서는 농산물특판장과 먹거리 난전도 열린다.문의는 전화(033-332-3817,330-2602)나 인터넷(www.happy700.or.kr). 평창 조한종기자 bell21@
  • [대한광장] 왕과 국회의원의 하루

    대의 민주주의란 국민의 권한을 의원에게 대신 사용하게하는 제도로서 의회민주주의라고도 불리는데 민주주의 실현의 한 척도이다.그러나 현재 우리 국회의 모습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게 할 정도로 국민들의 신뢰를 잃고 있다. 활동성적표라 할 의안처리율은 60%정도로 역대 국회 중최악의 성적이다.상시 국회를 표방하면서 국회문은 늘상열어놓고 있지만 사실은 회기내 의원불체포특권을 이용해범법 의원들을 보호하자는 속셈일 뿐이다.각종 개혁입법은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상황에서 의원들은 국회가 아니라 골프장에서 1,000만원 내기 운운하며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여당의 실책에 대변인 성명을 남발하던 야당이 이번 ‘골프 소동’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도 기이하지만야당도 다를 바 없는 그 속사정을 왜 모르랴. 정치가 다른 분야를 선도해나가야 하는데 오히려 여타 분야의 발목을 잡고 있으니 나라가 평안할 리 없다.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론이 나오지 않으면 이상할 것이다. 정확한 비유는 못되겠지만 대의제도는 왕조국가 시절에도 있었다.차이가 있다면 지금의 대의제는 국민을 대신하는것이지만 과거의 대의제는 하늘을 대신하는 것이라는 점이다.임금을 천자(天子)라고 부르는 이유는 하늘로부터 정치를 위임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정치는 하늘로부터 위임받은 신성한 과업으로서 그 수행은 일종의 고행 같은 것이었다. 조선 국왕의 하루 일과는 놀기 좋아하는 우리 국회의원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임금의 기상시간은 해가 뜨기 전이므로 대략 5시쯤이 된다.첫 일과는 대비와 왕대비 등 웃어른에 대한 문안인사로시작된다.문안을 마치면 아침 경연인 조강(朝講)에 참석한다.경연이란 신료들과 더불어 경전에 대해 토론하면서 국사도 논의하는 자리로서 일종의 정치 토론장이다. 조강이 끝나면 비로소 아침식사를 하고 조회를 한다.조회에는 백관이 모두 참여하는 정식 조회인 조참(朝參)과 매일 시행하는 약식 조회인 상참(常參)이 있다.조회가 끝나면 신료들로부터 각종 업무보고가 이어지는데 이를 조계(朝啓)라 한다.조계가 끝나면 각 행정부서에서 파견한 윤대관(輪對官)들을 만나 정사를 논의한다.정오가 가까워오면간단한 점심을 들고 점심 경연인 주강(晝講)에 참석한다. 주강 이후에는 경향 각지에서 올라오는 상소문을 읽고 대신이나 승지들에게 그 대책을 논의하게 하고,지방으로 떠나는 신료나 중앙으로 올라오는 지방관들을 만나 지역 민원의 해결책 등을 논의한다. 다시 저녁 경연인 석강(夕講)에 참석해 학문과 정사를 토론하고 저녁을 든다.저녁식사가 끝났다고 곧바로 휴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낮에 밀린 업무가 있으면 야간업무를 보는데,왕의 야간업무를 밤 9시에서 11시 사이인 을야(乙夜)에 책을 열람한다는 의미의 을람(乙覽)이라 했다.결국 임금이 중전이나 후궁이 거처하는 처소로 들어가는 시간은 대개 밤 11시 넘어서였다.오후에 잠깐 짬이 나면 말을 타고 후원을 산책하거나 격구(擊毬)를 하는 것이 휴식의 전부였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이런 고된 업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것은 정치란 하늘이 위임한 신성한 것으로서 항상 하늘이 내려다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그만큼 하늘을 두렵게여겼기에 가뭄이 들거나 흉년이 들면 하늘에 죄를 빌기 위해 사면령을 내렸던 것이다. 정치를 하늘로부터 위임받은 것으로 생각했던 과거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는 지금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옛 임금들이 정치를 위임한 하늘을 두려워하던 마음의 반의 반만국민들을 두려워한다면 노는 국회니 방탄국회니 골프국회니 하는 용어들은 설 땅을 잃을 것이다. 이 덕 일 역사평론가
  • 민간개발 방식 택지 조성

    경기도 고양시 덕이 식사 동천 일대에 산재해 있는 가구공단이 택지지구로 개발된다. 75만여평에 이르는 이들 가구공단은 도시개발법에 따른민간 개발방식으로 택지개발이 추진된다.이 지역이 개발되면 대략 2만여가구의 아파트가 건설될 전망이다. ■어떻게 개발되나 고양시가 도시재정비 계획 차원에서 105만평에 대한 용도변경을 추진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지난달 9일 주민공청회도 거쳤다. 이 계획에 따라 70여만평 이상이 주거지역으로 바뀐다.덕이동 경성공단,식사동 일산공단,동천리 영광농원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들 가구공단은 용도변경을 전제로 도시개발법에 따른민간택지개발을 추진중이다.주민들 80%의 동의를 받으면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컨설팅업체인 GSP와 인허가,시행 등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택지개발 추진을 서두르고 있다. 경성공단,일산공단이 각각 30만평,영광농원은 15만평 규모다. 이 가운데 덕이동 경성공단은 5,000여가구 안팎의 아파트를 건립한다는 계획아래 30여개 건설업체들과 접촉중이다. 이를 위해 한국토지신탁과처분신탁도 추진 중이다. 부대시설로 초등학교 2곳,중·고등학교 각 1곳,동사무소,파출소,소방서,우체국 등이 들어서고 용적률 250∼286%를적용할 계획이다. 그러나 감보율 27.5%를 적용,실제 가용면적은 20여만평안팎이 될 전망이다. 일산공단과 영광농원 역시 같은 방식으로 택지개발을 추진중이다. ■개발시기는 고양시의 용도변경안이 언제 결정되느냐에달려있다.공청회를 마치고 시의회 등을 거쳐 건설교통부가최종 결정한다. 이르면 내년초쯤 확정될 것으로 예상된다.가구공단의 개발은 이 때쯤이나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변수도 많다.이 일대의 용도변경에 대해 일부에서 특혜시비가 제기되고 있으며 또 건교부가 고양시 안대로 용도변경안을 승인해줄 지도 미지수다. 김성곤기자sunggone@
  • [21세기 담론-생명을 말한다](8)풀무원 원경선 원장

    △ 풀무원 원경선 원장의 생명·평화·전도운동. “신 김치 먹고 살래?안 먹고 죽을래?” 이 질문은 원경선원장이 인류에게 던지는 양자택일의 메시지다.여기서 신김치는 무공해,그리고 정직한 재래식 식품의 상징이라고 할수 있다. ●산성체질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지만 현대인의 삶이 구조적으로 신김치와 거리가 멉니다. 그게 본말의 전도 아니오? 모두 부와 편리를 추구 하지만생명을 무시한 부와 편리는 결국 위기를 맞이했거든. ●어떤 위기인가요?세계 인구가 60억인 지금도 기아에서 허덕이는 사람이 몇억입니다.유엔 통계에 의하면 30년 후면 80억이 된다고 해요. 그 때 가면 어떻게 되지요.얼마 전에 전경련 환경위원회의초청을 받아 강연을 했는데 그 때 대놓고 그랬어요.“당신들 공장 자꾸 짓지 말라”고.6·25 때 내가 직접 겪었어요. 쌀 한말 하고 피아노 한 대 하고 맞바꿔요.먹거리가 그렇게 무서운 겁니다.식량위기가 오면 공산품 먹고 살 수 있나요.지구 환경 감시기구인 ‘월드워치’가 ‘21세기는 기아의세기’라고 경고했어요.예사로 들을 얘기가 아닙니다. ●처음 장만 할 때 밤잠을 설치던 논을 묵히고 있는 것이농촌 실정입니다.경작지를 늘리려면 농업인구가 늘어야 하고 그래 봐야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농업인구가 늘면 우선 실업문제가 해결됩니다.그러면 농촌문제 해결됩니다.그 다음에 더 중요한 것은 땅의 생명력이회복된다는 사실입니다. ●땅이 생명력을 잃는 것은 문제이긴 합니다.사람을 흙으로빚었으니 말입니다. 1994년 덴마크에서 열린 어떤 국제회의 발표인데 정상적인 남자의 정자수가 1억 내지 1억3천만 마리인데 항공사 직원은 5천만 마리,공무원은 7천만 마리라는 겁니다.이는 뭘 말하느냐.항공사 승무원이 인스턴트 식품을 많이 먹거든요.또 1996년 일본 데이교 대학에서 일본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정자수가 40대,30대,20대로 내려 올수록 적다는 겁니다.현대 문명에 많이 접한 사람일수록 정자 수가 적다는건데 바꿔 말하면 화학비료와 농약에 더 많이 노출됐다는말이고,맛있는 음식 즉 가공식품을 더 많이 먹었다는 말이지요.또 있어요.1998년도에 나온 ‘도둑 맞은 미래’라는책에 보면 플로리다주 늪지대 독수리의 80%가 사라지고 악어는 아예 전멸했다는 거요.알아 봤더니 합성세제 등으로인한 환경호르몬 영향이라는 거요.이쯤 됐으면 뭔가 삶의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각성이 올만도 하지요?●미국인들이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기 위해 사료로 들어가는 곡물이면 제3세계 1억 인구가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료가 있습니다.식량의 절대량 보다 분배 문제에 초점을 맞춘 자료지요. 일리 있어요.세계적으로 비만이 원인이 된 성인병 환자와기아에 허덕이는 사람 숫자가 공교롭게 비슷하다는 통계도있지요.교회 주기도문에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라는대목이 있어요.이는 무슨 말이냐.쌓아 놓지 말라는 뜻입니다.그런데 잔뜩 쌓아 놓고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는사람들이 많아요.그러면 가만히 앉아서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하면 될까요? 그것도 안돼요.일해야 합니다.생명이 본시부단히 움직이는 건데 가만히 있으면 죽음이오.운동하는 것은 삶인데 그게 바로 노동이 아닌가요? 아무도 쌓아 놓지 않고 아무도 놀지 않고,그러면 해결 됩니다. ●옛날 어른들이 “벼가 주인 발자국 소리 듣고 자란다”는말을 하더군요.벼 자라는 것이 새끼 크는 것처럼 재미가 나야 진짜 농사꾼이 된 거라는 말도 하고요.꼭 일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농사도 체질에 맞아야지 아무나 못 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귀농자들이 고비를 못 넘겨 실패하는데 어떤 일이나고비는 있어요.아까 말대로 아침 나절에 돌아 볼 때 다르고 저녁 나절에 돌아 보면 또달라요.그러다 보면 힘든 줄 모르고 애착이 가죠.애착이 가니까 정성이 들어 가고.옛날 어떤 사람이 똑 같이 농사를 짖는데 소출이 많아,그 비결을물었더니 ‘나는 하얀 새를 본다.그런데 그 하얀 새는 꼭두새벽에만 나온다’고 하더래요.어떤 일이나 같아요. ●‘벌레도 같이 살아야 한다’든가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해야 한다’는 윤리만으로는 일손이 부족하고 생산성도높여야 하는 지금의 농촌 현실에 별로 설득력이 없을 것 같습니다. 농약,비료 안쓰고 화학비료 대신 퇴비 쓰면 감자는 세배,화본과(禾本科)는 50%까지 더 나와요.물론 과학영농을해야지요.그리고 먹거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얘기해 볼까요.우리풀무원은 항상 들어오는 사람, 나가는 사람이 있어요.아이들 세계에서는 새로 이사온 아이가 있으면 텃세를 하지요?그런데 풀무원에서는 그게 거꾸로 돼요.새로 온 아이들이기왕에 있던 아이들을 휘둘러러요.왜냐,사납고 거칠거든.그원인을 살펴 봤더니 음식이 원인이라.딴 데서 온 아이는 산성체질이라 조급하고 공격적인 반면 이곳에 오래 산 아이들은 온순하고 평화적이거든.대부분 성인병이 고지방, 고단백질에서 오는 식원병이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됐어요. 미상원 영양특위 맥거번 위원장은 ‘사회문제를 환경이 아닌 영양에서 찾아야 한다’는 보고서를 낸 일이 있습니다. 결손가정 아이보다 산성체질의 아이에게서 문제아가 더 많더라는 것이지요.대표적인 예가 백미와 현미의 차이입니다.현미를 먹으면 체질이 바뀌고 가벼운 노이로제까지 해결됩니다. 식품이 신체는 물론 정신건강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이 위험 하니까 미생물과 잡초를 멸종 시키는 농법은 안된다” 차원을 넘어 유기농 식품이 평화를 가져다 준다는 논리로 확대되는 군요. 맞아요.지금 우리가 흙 1그램에 미생물이 5천만 내지1억마리가 있는데 이것을 죽이면 안된다고 하잖아요? 요새는그 말에 많이들 공감 합니다.그런데 흙 속의 미생물 죽이면안된다고 하면서 사람은 마구 살상해도 괸찮은가. 군대라는게 그거 아니오. 군대가 말이요,연원을 따져보면 청동기 시대에 처음 생긴거라.먹고 쓰고 남는 것을 창고에 쌓아 두고그것을 지키기 위해 생긴 것이거든. 예수님 말씀대로 자기곳간에 쌓지 않고 하늘 곳간(이웃)에 쌓으면 지킬 필요가없겠지,거기다 현대의 가공식품이 사람을 공격적이고 조급하게 만들어요. ●원장님의 생명운동이 건강한 농업에서 평화운동으로 바뀐셈이군요. 내 일생은 오직 전도요.처음 풀무원을 시작할 때는 오갈데 없는 사람들 데려다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고 2단계는 생명있는 농산물 생산과 유통,그리고 마지막에는 평화운동이라.이것이 생명운동의 귀결이라 보는데 사실은 시종일관 전도라고 보면 됩니다. 대담 김재성 논설위원. △원경선 원장▲1914년 평안남도 중화군 출생 ▲16세 누에치기로 농사 시작 ▲1938년 지명희 여사와 혼인 ▲1955년 경기도 부천에서풀무원 시작 ▲1976년 경기도 양주군으로 풀무원 이전, 유기농 시작 ▲1960년 거창고등학교 재단이사장(현재) ▲1992년 녹색인상 1955년 글로벌 500인상 1997년 국민훈장 동백장 ▲현재 경제정의 실천시민연합 이사장,한국 국제기아대책기구 이사. *55년 자립 신앙공동체로 출발한 '풀무원 농장'. 원경선(元敬善) 원장은 1955년 경기도 부천에서 ‘풀무원’농장을 시작했다. 가난하고,병들고,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자립의 길을 마련해주기 위한 신앙 공동체였다. [누구든지일하면 먹을 수 있다.다만 쌓아 두지는 못한다. 열심히 일하면 쌓을 수 있다.그러나 자기 곳간이 아닌 하늘에 쌓아야한다.이웃을 위해 베푸는 것이 바로 하늘에 쌓는 것이다]원경선 원장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풀무원 농장의청지기 정신이다. 풀무원이라는 이름은 버려진 쇳 조각들을 모아 유용한 도구로 만들듯 생명을 풀무질 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그 이름에 걸맞게 이곳에는 전쟁고아,행려병자,알코올 중독자,전과자 등 무수한 ‘버려진 돌’들이 모여 들었다.그중에 더러는 다시 태어나는 담금질을 견디지 못해 뛰쳐 나갔지만 대부분은 나름대로 요긴한 ‘모퉁이 돌’이 되어 열심히 살아 가고 있다.풀무원이 문을 연 50년대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던 시절이었다. 어떻게 하면 허기를 면하느냐가문제였으므로 너나 없이 질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오로지 ‘증산(增産)만이 살 길’이었다.자연히 농사는 농약과비료에 의존했고 풀무원도 예외는 아니었다.그러나 정직을일생의 신조로 삼고 살아온 원경선 원장에게 이 농법은 맞지 않았다.농약과 화학 비료 때문에 땅이 죽고 땅 속의 미생물이 죽고 결국 사람도 죽는다는 생태계 이치는 차치하고먹어서 해로운 것을 생산한다는 것은 정직이라는 그의 신조가 허락치 않았다.그래서 그는 유기농법을 시작했다.네사람분의 사료를 먹여 한 사람이 먹을수 있는 계란이나 우유를 생산할 뿐이라는 로마 클럽의 보고서를 읽은 후 양계장도 폐쇄했다. 1976년 4월,경기도 양주군 회천읍 옥정리로 농장을 이전한풀무원은 그 안에 ‘한삶회’라는 생활 공동체를 결성했다. 생태계 이치가 그러하듯 사람 사회도 서로 도와가며 힘을합쳐야 보람이 있고 신명이 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아울러생명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농법으로 정직한 농산물을 생산하자는 취지의 ‘정농회’(正農會)도 만들었다.그리고 바른 농사법을 널리 펴는 데 힘을 쏟았다. 풀무원 농장에서는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배운 사람과못 배운 사람 구별이 없다.다만 정직한 사람과 정직하지 못한 사람의 구별이 있을 뿐이다.그래서 누구든지 열심히 일하면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보장된다. ‘㈜풀무원 식품’은 20년 전에 풀무원 정신을 바탕으로 시작한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보급하는 회사다.
  • 금강산관광선 절반 축소

    북한측이 지난 8일 금강산 관광길에 오른 실향민 단체 회원들이 자신들과 동일한 직함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입북을 거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10일 “평안남도 도민회 회원 67명이지난 8일 동해항에서 오후 5시30분에 출항하는 봉래호의탑승 수속을 밟으려 했으나 북측이 이들이 ‘평남도지사’ 등 북한에 있는 단체장과 똑같은 직함을 사용하고 있다며 입북을 거부해 승선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상선측은 육로관광 등에 대한 기대감으로 관광객수가 전년에 비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자 12∼27일 출항 예정이었던 21편의 금강산 유람선 및 쾌속관광선 중 10편의 운항 일정을 취소했다. 현대아산은 또 북한측에 지불하겠다고 일방적으로 공식통보했던 2월분 관광대가 600만달러 가운데 400만달러를지불하지 못하고 있다. 주병철기자 bcjoo@
  • [여성 선언] 여자가 눈물을 흘릴 때

    여자든 남자든 요즘 눈물을 흘리는 광경을 보기 어렵다. 그만큼 더 냉정해지고 그만큼 더 감정을 억제할 수 있게된 것이라고 생각한다.아니 이런 정도가 아니라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경쟁에서 진 사람,혹은 조금 모자라는 사람으로 보는 경향은 없는 것일까. 얼마전 재개발사업과 관련하여 혐의를 받는 여성 시의원이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펑펑 눈물을 쏟는 것을 본 적이 있다.눈물만 흘리는 것이 아니라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짖듯이 결백을 주장하고 있었다.나는 그 거침없는 감정토로 앞에 모골이 송연하였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저 여성은 자신의 결백을 눈물로써 대변하는구나’ 그런데 이어지는 보도들은 그녀의 혐의가 대부분 사실임을 적시하는 것이 아닌가.명백한 위법사실들 앞에서도 결백을 주장하는 눈물이라니.나는 아연실색하였다.눈물이 참편리하게도 나와주는구나하는 점과 눈물을 흘리는 순정도믿을 수가 없구나 하는 두가지 점 때문이었다. 세상에는 많은 거짓과 부패가 횡행한다는 사실은 별반 새로울 것도 없는 지적이지만 그래도나는 한갓 눈물의 진실을 믿고 있었구나 하는 소회도 연이어 일어났다.거짓말과눈물은 나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케 했던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눈물의 의미를 가볍게 보지 않았다. 저 18세기의 효전 심노승은 눈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있다. “눈물은 눈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심상)에 있는것인가? 눈에 있다고 하면 마치 물이 웅덩이에 고여 있는듯한 것인가? 마음에 있다면 마치 피가 맥을 타고 다니는것과 같은 것인가? 눈에 있지 않다면,눈물이 나오는 것은다른 신체 부위와는 무관하게 오직 눈만이 주관하니 눈에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마음에 있지 않다면,마음의 움직임 없이 눈 그 자체로 눈물이 나오는 일은 없으니 마음에있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김영진 옮김) 이처럼 눈물은 심상의 정직한 대변인으로서 그 의미가 숭고하기까지 했던 것이다.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흔치 않은눈물조차 변질되어 그저 자신의 감정을 배설하는 구실밖에는 하지 않는 듯하다.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눈물은 사라지고 있다.사회적 자리에서도 개인적인 자리에서도 눈물은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마음놓고 운다는 것은 생각하기어렵다. 홀로 자신의 속으로 침잠하면서,타자에 대한 깊은배려까지는 꿈꿀 수 없다고 해도 바로 나 자신을 위해 진정한 눈물을 흘리고 싶다.그저 한순간의 값싼 감정이 아니라,울고불고 매달리는 그런 울음이 아니라 진정 많은 욕망으로부터 일탈하는 울음을 울고 싶다. 예컨대 우리 문화가 반성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괄호를 묶는 것은 바로 이런 눈물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눈물의 참된 의미를 알면 시간 앞에,타자 앞에 방자한 행동을 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 아닐까.결국 인간이란 진실앞에 눈물을 흘리고 절대자 앞에 나아가 눈물을 보이는 그런 지순한 행동으로 조금씩 조금씩 세속에서부터 벗어나평안한 삶을 설계할 수 있지 않을까.황사바람이 맹렬하다. 저 거리에서 일고 있는 바람은 또 누군가의 눈에서 눈물을흘리게 하리라. 정은숙 시인·마음산책 주간
  • 4월의 문화인물 함석헌 선생

    독립운동과 민주·인권운동에 공헌하고 ‘씨알사상’을 정립한 함석헌(咸錫憲·1901∼1989) 선생이 4월의 문화인물로선정됐다. 함석헌 선생은 개신교가 한국에 전래된 이후 주체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소화해 동양의 고전과 조화시키면서 독창적인기독교 사상을 이룩한 종교사상가이자 역사를 가르친 교육자이며 민주·인권운동가. 평북 용천 출신으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함석헌은 1919년 3.1만세 사건에 적극 참여한 후 평안도 정주의 오산학교에 편입,남강 이승훈과 다석 유영모를 스승으로 모시고 민족과 역사을 배웠다. 1947년 남하한 뒤 6.25 전쟁을 겪으면서 사상의 깊이를 더해 간 함석헌은 자유당정권과 군사정부 치하에서 민주화와인권운동을 하며 재야의 중심인물로 활동했고,월간 ‘사상계’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등의 글을 쓰는 등 문필 활동을 펼쳤다. 1970년 월간 ‘씨알의 소리’를 창간해 독특한 ‘씨알 사상’을 본격적으로 전파했고,말년에 퀘이커에 가입하여 평화운동에 진력하다 89년 세상을 떠났다. 서동철기자 dcsuh@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