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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지왕’ 김춘삼 힘겨운 투병

    TV 드라마 ‘왕초’의 실제 주인공인 ‘거지왕’ 김춘삼(78)씨가 고령과 폐질환으로 힘겹게 투병하고 있다. 27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달 13일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으로 응급실에 실려온 뒤 지금까지 40일이 넘도록 중환자실과 일반병실을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고령인 데다 만성 폐색성 폐질환, 기흉, 만성 신부전증 등 6∼7개 질환이 겹쳐 신체기능이 매우 약해져 있다. 현재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고 있으며 거동도 전혀 못해 코에 연결된 호스로 미음식을 주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1928년 평안남도 덕천에서 태어난 김씨는 8세 때 대전으로 개가한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가 사냥꾼들에게 붙잡혀 짐승을 유혹하는 미끼 노릇을 하면서 ‘거지 세계’에 들어섰다.20대에 전국의 거지를 통솔하는 ‘거지왕’이 된 뒤 거지 구제사업에 앞장서면서 전설적 인물이 됐다. 1950년대에는 전쟁고아를 수용하는 합심원을 전국 10여곳에 세웠으며 20여차례에 걸쳐 거지 합동결혼식을 마련하기도 했다. 현재 아내 남윤자(63)씨와 서울 마포구 망원동 다세대 주택에서 살고 있는 김씨는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정부보조금과 한국전쟁 참전에 따른 국가유공자 지원금으로 생계를 이어오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보험급여 항목을 제외하고 현재 김씨가 부담해야 할 병원비가 600만원 정도 된다. 김씨의 사정을 감안해 병원 복지기금으로 일부는 충당할 예정이지만 지원 손길이 없으면 딱히 대책이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 굴속의 곰 노인 부부

    굴속의 곰 노인 부부

    멧돼지와 호랑이만 지나다니는 산중턱에 6순의 두 노인이 살고있다. 20년 가까이 생식을 하며 살아온 6순의 이 부부는 구천동(九千洞) 의 「로빈슨·크루소」. 그러나 길을 잃고 헤매는 사냥꾼들 30여명을 구하기도 했다. 해발 1천5백m의 덕유산 중턱에 자리잡은 통나무 굴집-이 집이 「구천동(九千洞) 곰노인 부부」라 불리는 길관수(吉寬洙)씨(65)와 이대길(李大吉)노파(63)의 보금자리다. 吉노인의 고향은 평안북도, 공산당이 싫어서 해방되던해 단신 남하한 吉씨는 강원도 경기도로 떠돌아 다녔다. 6·25동란 다음해인 51년 吉씨는 벌채 인부들 틈에 끼어 처음으로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 에 발을 디뎠다. 벌채가 끝나고 동료 인부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떴다. 그러나 웬일인지 吉씨는 구천동(九千洞) 을 떠나고 싶지가 않았다.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 병풍속의 한폭 그림같은 대자연, 바람과 산새 소리뿐인 고요, 이런 것들이 길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의 모략, 배신, 속임수 들이 없는 이런 곳에서 한평생을 보내기로 吉씨는 굳게 마음먹었다. 길씨는 양지바른 바위 틈에 움막을 치고 그해 여름을 났다. 한길이 넘는 산풀을 깎아 말려 이불과 요를 만들고 동료들이 주고 간 식량과 부식으로 배를 채웠다. 낮에는 펀펀한 산 비탈을 파고 갈아 오는 봄의 파종에 대비했고 밤이면 관솔불 아래서 말린 풀을 엮어 겨우살이 준비를 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됐다. 길씨는 우선 이웃 동굴속으로 집을 옮기고 생식을 시작했다. 처음 한달 동안은 소화가 안되고 이가 시리는등 부작용이 있었으나 곧 괜찮아졌다. 눈이 쌓였다. 동굴앞과 뒤로 수많은 짐승의 발자국이 지나갔다. 길씨는 짐승의 왕래가 잦은 곳에 땅을 파서 함정을 만들고 칡덩굴을 끊어 덫을 만들었다. 첫 수확이 좋았다. 1백 20근짜리 멧돼지가 걸려들었다. 약 6km 떨어진 마을로 끌고 내려가 5천원에 팔았다. 한 겨울동안 토끼와 노루 너구리 여우 멧돼지등 수많은 산짐승을 잡았다. 일부는 팔고 일부는 털을 베어 옷과 이불로 대용했다. 새봄이 왔다. 마을에 내려가 옥수수와 조 그리고 수수씨등을 구해 파종을 했다. 그리고는 낮이면 약초와 고사리 도라지 등을 채집하고, 밤이면 동굴속에서 관솔불을 밝힌채 날을 보냈다. 이듬해 여름 산골짜기를 지나가다 꿀벌집을 발견, 산대나무로 엮은 둥우리속에 담아와 동굴앞에 놓았다. 늦가을까지 꿀 세 사발을 떠 한 그릇에 3천원씩 사냥 나왔던 포수에게 팔았다. 또 겨울이 오고 그 해 눈이 무척 많이도 내린 겨울밤 吉씨가 파놓은 함정 근처에서 으르렁거리는 호랑이 소리에 몸을 떨었다. 밤을 지내고 아침에 가보니 멧돼지를 잡으려고 쳐놓은 덫에 호랑이가 죽어있었다. 소식을 듣고 한달만에 찾아온 무주(茂朱)군 설천면 李모씨에게 2만원에 팔았다. 구천동(九千洞)의 「로빈슨·크루소」吉씨의 생활은 이렇게 해가 바뀌어 갔다. 63년 덕유산 꼭대기에서 약초를 캐던 吉씨는 인기척에 까무러치도록 놀랐다. 웬 여인이 산나물을 캐고 있었다. 덕유산 너머 경상북도 어느 마을에서 산나물을 캐러 온 여인이었다. 두사람은 이렇게 해서 쉽사리 만났고(그때 나물 캐던 여인이 현재의 吉씨 부인 李노파이다) 곧 이어 신세가 비슷한 둘은 동거생활로 들어갔다. 그런데 한가지 난점이 생겼다. 吉씨는 생식을 하는데 李여인은 생식을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吉씨는 생식을 중단키로 했다. 집도 동굴에서 나와 양지바른 산비탈에 통나무를 엮고 흙을 발라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동안 모아놨던 돈으로 옷가지와 이불도 장만하고 마을에서 암탉 1마리와 수탉 1마리를 사 길렀다.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무주(茂朱)군 당국에서도 이들을 돕기로 하고 매월 약간의 밀가루와 보리쌀을 보내줬다. 이제 이들 부부는 더 부러울 것이 없는 행복한 새 살림을 꾸려 나간다. 밭도 더 넓히고 씨도 뿌리고 가을이면 호박과 박도 거두었다. 비록 옥수수와 고구마 그리고 조밥을 먹을 망정 떳떳한 자급자족 생활이었다. 더우기 마음이 편해 더 바랄게 없었다. 이 늙은 신혼부부(?)는 낮이면 밭은 갈고 밤이면 옛날 애기로 꽃을 피웠다. 지난 65년부터는 경찰에서도 자주 吉노인의 통나무 굴집을 찾아 모든 걱정을 해주는가 하면 이 두노인을 상대로 반공 교육과 계몽을 실시, 지리산으로 통하는 덕유산 일대에 나타나는 낮선 사람을 신고토록 하고 조난자를 구하는 역할을 도맡게 했다. 오늘까지 이들은 길 잃은 포수와 등산객의 유일한 구세주가 됐고 무려 30여명의 인명을 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가지 큰일이 생겼다. 어두운 곳에서만 지내다 보니 눈이 이상하게 변했다. 좀 나쁜 표현으로 짐승의 눈과 같아져 갔다. 광채가 나고 고양이의 눈을 닮아갔다. 그밖에 건강은 말할 수 없이 좋았다. 비록 고기는 못 먹고 호의호식은 못할망정 마음이 편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데다 산채와 약초를 먹고 여름철이면 뱀까지 먹으니 건강이야 좋을 수밖에 없다. 아름드리 통나무를 젊은 사람들 보다 더 많이 짊어지고 산에서 내려오던 吉노인은 빙그레 웃으면서 『앞으로 30년은 더 살테니 자주 만납시다. 허허…』 [선데이서울 70년 2월 1일호 제3권 5호 통권 제 70호]
  • [스포츠 라운지] 내년 시즌 준비에 구슬땀 LG 봉중근

    [스포츠 라운지] 내년 시즌 준비에 구슬땀 LG 봉중근

    메이저리그 생활을 접고 국내 프로야구에 입단한 봉중근(26·LG). 요즘 경기도 구리의 팀 연습장에서 비지땀을 쏟고있다. 오후 연습 시간이 되자 하나 둘씩 선수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안녕하세요.”라고 씩씩하게 인사하는 봉중근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잔뜩 배어있었다. ●얻은 자신감, 버린 자존심 신인 신분이라 2군경기에도 나갈 수 없어 그저 내년 시즌을 위해 열심히 몸을 만들고 있다. 오전 웨이트트레이닝 시작이 9시30분이지만 1시간 전에 나와 몸을 푼다.2시간 정도 땀을 쏟고 나면 그야말로 파김치가 된다. 자신이 선택해서 돌아온 만큼 누구보다 열심이다. 오후 1시부터는 필드연습이다. 러닝과 스트레칭, 그리고 멀리 공던지는 연습을 한다. 재활훈련 중에는 일체 공을 만지지 못하게 하지만 얼마전 코칭스태프로부터 공을 던져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최근에는 하프 피칭도 병행한다. 합류한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100% 팀에 적응했다. 낙천적인 성격 때문에 오랜 미국생활이 전혀 걸림돌이 되지않았다. 메이저리거로서의 자신감을 갖고 있되 자존심은 버렸다. 선배들이 물을 떠오라면 두말없이 따른다. 그리고 훈련하는 동안에는 메이저리그 생활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욕심도 있지만 조심스럽다. 한국보다 한 두 수위인 메이저리그를 경험했지만 일단 내년 목표를 선발 30차례 등판에 10승 이상으로 잡았다. 하지만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뛴 만큼 첫 해에 15승 이상을 올려야 하지 않느냐는 주변의 말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올림픽 출전이 목표 봉중근은 손민한(롯데)과 구대성(한화)을 좋아한다.“빠르지 않는 공을 갖고도 여유있게 상대타자를 압도하는 게 인상적”이라고 말한다. 틈만나면 타자 분석에 여념이 없다. 특히 자신과 비슷한 투구폼인 ‘괴물 루키’ 류현진(한화)의 경기를 보면서 타자 요리법을 연구한다. 봉중근은 “2군으로 내려가지 않고 부상없이 매 시즌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일단 앞으로 5년 동안 야구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다짐이다.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해 태극마크를 달았다. 고교 이후 처음 달아본 것이어서 아직도 기억이 새롭단다. 이번 도하아시안게임엔 출전하지 못하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 출전에 욕심을 낸다. 그는 미국생활을 접은 것에 후회는 없단다. 무엇보다 마음이 편하다. 자신의 심정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와 동료가 있어 더욱 야구가 즐거워졌다. 하지만 다소 아쉬움이 남은 것 또한 감출 수 없다. ●은퇴 후에는 가족 여행 지금 서울 동부이촌동에서 부인 박경은(28)씨와 단 둘이 산다.2세 계획도 있다. 그는 “아이 둘을 낳고 싶은데 아내는 셋을 원한다.”며 웃었다. 투병 중인 아버지의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외아들이라 부모님을 모시지 못한 것이 그동안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는 홀가분하게 야구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은퇴한 뒤에는 미국으로 건너갈 생각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단다. 처음엔 한국행에 아내가 반대했다. 그는 “그렇지만 나의 의지가 강한 것을 보고 아내가 양보했기 때문에 다음엔 내가 아내에게 양보할 차례”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아내와 함께 무작정 밖으로 나간다. 둘 모두 영화를 좋아해 최근 ‘괴물’과 ‘한반도’를 함께 봤다. 노래방도 자주간다.“아내가 성악과 출신”이라면서 은근히 아내의 노래 실력을 자랑했다. 자신감에 마음의 평안까지 찾은 봉중근은 내년 시즌이 더욱 기다려진다. 글 사진 구리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김형효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37) 희망이라는 것

    [김형효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37) 희망이라는 것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희망을 걸고 살아간다. 어떤 희망도 없는 경우를 우리는 절망이라 부른다. 절망은 삶의 에너지가 소진된 경우와 같다. 절망의 극치가 곧 자살로 이어진다. 희망은 삶을 지탱시켜 주는 에너지와 같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 ‘판도라의 상자’라는 이야기가 있다. 판도라는 그녀가 가져온 상자를 열어 인간 세상에 모든 재앙들을 다 퍼뜨려 놓고 뚜껑을 닫았기에 마지막 남은 희망이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이 신화는 인간이 고통스러운 세상에 실존하면서 희망만을 아직도 기다리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상징한다 하겠다. 누구나 다 희망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싶어한다. 보통 사람들은 인생에서 대개 어떤 것을 갖고 싶은 소유욕을 희망으로 삼는다. 돈을 벌고 싶은 희망, 출세하고픈 희망, 시험에 합격하고픈 희망 등등 다양한 희망을 갖고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살아간다. 이런 희망을 단적으로 소유론적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희망의 철학적 의미를 화두로 삼은 20세기 가톨릭 실존철학자 마르셀은 저 소유론적 희망을 ‘나는 …을 희망한다.’(I hope that…)라는 구절로 간략하게 묘사했다. 이것은 희망의 내용이 객관적으로 서술되는 구조다. 객관적으로 서술되는 (…)의 희망은 내가 소유하고픈 내용과 같다. 그런 희망이 달성되는 경우에 나는 만족을 느낀다. 만족의 현상은 배고픈 사람이 음식을 충분히 먹어서 포만상태에 이른 것과 유사하다. 포만상태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게걸스러운 기분에 젖은 식곤증처럼, 생각하기 싫고 일하기 싫은 판단공백의 상태를 동반한다. 거기에 비하여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에 대하여 시기와 원한의 감정을 표출한다. 그래서 이들은 식곤증에 취해 있는 만족계층과 달리 더욱 또렷하게 의식이 깨어 있어서 복수의 기회를 노리면서 계급전복을 준비한다. 이것이 헤겔이 말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적 투쟁’의 모습이다. 만족의 게걸스러움과 불만의 분노는 다 소유론적 희망의 취득여부와 직결된다. 소유론적 희망은 결국 인생에서 만족을 누리려는 욕심과 직결되어 있다. 이 욕심을 불교에서 오욕(五欲=재욕, 색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이라 부른다. 세상살이는 예나 이제나 이 오욕을 쟁취하기 위한 모든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것을 얻지 못하면 화가 나고, 화의 분노가 이기적인 것이 아님을 명분화하기 위하여 그럴싸한 이론을 다 끌어들인다. 인간의 사회적 투쟁은 거의 대개 이 오욕의 쟁취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벌이는 소유론적 불만이나 절망을 분노의 명분으로 표시한다. 아집(我執)에 찬 분노의 명분이 진리의지와 만나면, 그 분노는 진리의 투쟁이란 법집(法執)으로 돌변한다. 그래서 아집과 법집이 뒤엉키면, 소유론적 욕심이 결국 결사항전의 어리석은 고집으로 바뀐다. 그런데 한 사회의 정신문화가 일반적으로 속물적인 소유론적 희망만을 삶의 동력으로 여기면, 그 사회는 그만큼 만족과 불만의 양극단에서 늘 요동친다. 속물적 희망은 오욕의 소유만을 인생에서 성공의 척도로 보는 태도를 말한다. 속물적 사회일수록 그 사회는 소유적 지배층의 거만떨기와 상대적 박탈감으로 원한의 심리를 품고 있는 소외층의 대등 질투심리와의 양극사이에서 출렁거린다. 평소에 속물이 아닌 것처럼 도덕적으로 온갖 좋은 말씀을 내놓던 분이 일단 자기의 출세와 직결되는 순간에 벼슬을 놓칠까봐 명예욕에 추하게 매달리는 탐욕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지배층의 게걸스러움을 싫어하던 소외층의 가열찬 투사가 하루아침에 지배층에 오르자마자 자기가 그토록 미워한 그 오욕의 탐욕에 정신을 못 차린다. 이제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한다. 생각이 깊지 않은 인간은 그가 투사이든 지배층이든 소외층이든 도덕적 설교자이든 다 속물적 소유욕을 인생의 희망으로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사회의 부정부패는 모두가 다 속물적 탐욕의 근성을 희망으로 갖고 있는 한 어떤 방식으로든지 지속된다. 우리는 생각이 깊은 정신문화를 가꾸어야 한다. 악을 박살내려고 흥분하지 말고 속물근성에 빠지지 않는 깊이 있는 사회를 일구자. 그러기 위하여 인생의 동력인 희망을 소유론적인 것에서 존재론적인 것으로 바꾸는 마음의 혁명이 필요하다. 인생의 희망을 소유론적인 만족으로 채우려 하지 말고, 존재론적 기쁨으로 인생을 승화시키려는 마음의 전환에서 마음의 혁명이 가능해진다. 불만의 심리는 늘 복수의 심리를 속으로 감추고 있다. 역전의 상황이 오면, 불만의 심리는 복수한다. 만족의 심리는 남들에게 으쓱대면서 과시하려는 충동을 띠고 있고, 불만의 심리는 속으로 응어리를 품고 있어서 비뚤어진 공격성을 감추고 있다. 과시적이든, 열등의식으로 비뚤어졌든 다 공격적이다. 이런 사회에서 어찌 서로서로 존재하도록 친절을 베푸는 열린 마음의 기쁨이 삶의 희망으로 등록되겠는가? 나는 우리가 서로서로 사랑하는 법을 잘 알지 못한다고 늘 생각해 왔다. 비록 TV 드라마에 사랑 극이 너무 넘쳐나고, 사랑 때문에 울고 웃는 일상의 깊지 않은 희비극이 화면에 벌어져도, 우리는 진실로 서로서로 존재하도록 친절을 베푸는 법을 모른다. 그래서 안이나 바깥에서나 서로 모래알처럼 살면서 “제까짓 것” 한다. 속물적 욕망만이 인생의 희망으로 여겨지는 곳에 절대로 서로 화합하고 서로 융결(融結)하는 사회적 인간관계가 자라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족한 자나 불만스러운 자나 다 속으로 타자에 대하여 “제까짓 것” 하는 심리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족과 기쁨, 불만과 괴로움은 다르다. 만족의 포만감은 꽉 차서 더 이상의 여백이 없는 닫힌 마음의 상태를 함축하고 있으나, 기쁨은 5세기 말 신플라톤주의자로서 익명의 철학자인 가짜(Pseudo)-디오니시오스의 말처럼 ‘자기의 확산’(self-diffusion)과 같다. 만족은 자아위주로 닫힌 느낌이지만, 기쁨은 우주로 자기가 확산되는 열림의 느낌을 준다. 불만은 외부로 향하는 공격성을 띠고 있지만, 괴로움은 내적 평안을 찾으려는 긴장완화의 요구를 품고 있다. 소유적 만족보다 존재의 기쁨을 찾으려는 희망은 단순한 낙관적 계산과는 무관하다. 낙관적 계산은 속물적 욕심의 취득이 계산적으로 명백할 때에 생긴다. 그러나 존재의 희망은 오히려 속물적 인생의 무상함과 괴로움의 자각에서부터 움튼다. 내 인생의 의미가 속물적 오욕(五欲)의 소유적 다과로 평가되기를 거부하는 ‘존재론적 요구’가 마음에서 싹틀 때에, 존재론적 희망의 의미가 절실히 다가온다. 속물은 소유나 적어도 허영의 과시에 사로잡힌 수인(囚人)과 같다. 짝퉁으로도 자기를 과시하고자 하는 속물은 인생의 동력인 희망을 가짜 소유로 채우려는 자기체면에 걸린 수인이다. 희망을 소유에서 존재로 돌리는 마음의 혁명은 죽음의 응시에서 가능하다. 죽음은 소유의 수인상태에서 인간을 해방시켜주는 약이다. 속물들은 죽음이 없는 세상에 살아가는 것처럼 산다. 그들은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생물학적 죽음이 있음을 그들도 알지만, 그들의 지금 생활과는 전혀 무관한 것처럼 죽음의 생각을 그들은 유예한다. 속물들은 세상에 가장 친사회적으로 사는 것처럼 분주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지만, 그들은 사실상 가장 고독한 인생을 산다. 소유적 만족만을 추구하는 인생은 열린 기쁨의 마음을 모른다. 속물사회에서는 다 고독하다. 지옥은 사람들이 우글거리나 모두 고독한 곳이다. 존재론적 희망은 괴로운 번뇌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인생의 요구에서 싹튼다. 모든 번뇌는 소유의식에서 생기고, 그 소유의식은 집착을 낳고 나의 마음을 뇌쇄시켜 거기에 중독되게 한다. 앞에서 본 마르셀이 그의 저서 ‘편력하는 인간’에서 희망의 철학을 가르친다. 희망의 가장 바람직한 형태는 ‘나는 우리를 위하여 그대 안에서 희망한다.’(I hope in you for us.)는 것이다. 소유의식을 지우는 것이 번뇌에서 해방되는 첩경이다. 소유의식은 잘난 척하거나 으쓱대는 자만심과 같이 간다. 불만도 역설적인 소유의식에 다름 아니다. 마음의 존재론적 혁명은 마르셀이 언명하였듯이 겸허하며 요란스럽지 않고 수줍은 듯한 마음의 전환에서 시작한다. 마르셀이 말한 ‘그대’의 이인칭은 고요하고 정결한 자기 마음의 본성과 같다 하겠다. 소유로 들뜬 속물들은 수줍고 정결한 자기 마음의 본성이 마치 없는 것처럼 무시하면서 살아 왔다. 오욕을 사냥하는 소유론적 속물근성을 떠나서 자기 마음에 늘, 그리고 이미 있어 온 그 고요한 본성에 인사드리고 그 본성의 요구에 성실하게 살 것을 마음이 약속하는 순간에, 존재론적 희망은 문득 솟아오른다. 내가 그 본성의 요구에 성실하게 살 것을 희망하는 그 순간은 동시에 만족과 불만이라는 소유적 삶의 수인(囚人)상태를 벗어나 나의 존재와 인연이 있는 모든 존재들을 함께 기쁘게 해주려는 열린 마음의 상태로 변하는 마음의 비약이 생기는 순간과 같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의 이웃이 된다. 이것이 마르셀이 말한 ‘우리를 위하여’라는 말이겠다. 존재론적 희망은 나의 본성인 ‘그대’와 나의 일상적 마음이 일치하기를 희망하는 것이요, 그런 일치는 이웃들과 존재론적으로 ‘우리’가 되는 융결의 띠를 형성한다. 이 ‘우리’는 소유론적 폐쇄적 집단으로서의 ‘우리’가 아니라, 네가 존재하도록 도와주는 자타불이(自他不二=자기와 타인이 둘이 아님)의 ‘우리’다. 마르셀의 용어를 빌리면, 우리가 ‘코러스’(chorus)를 들었을 때에 느끼는 마음의 환희가 바로 존재론적 희망에 아주 가깝다고 하겠다. 코러스의 감동이 식지 않는 한, 우리는 아직도 열려 있고 서로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의 기쁨을 맛본다. 우리 사회가 속물근성의 자기 감옥을 부술 때에, 우리는 상호주관적으로 그리고 존재론적으로 서로서로 친절하게 대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그와 동시에 아무 콘텐츠가 없는 공허한 추상적 구호로서의 같은 민족끼리의 감상을 넘어서, 우리는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경계하는 모래알이 아니라, 상호주관적으로 기쁨을 주고 서로서로 친절한 이웃이 될 것이다. 속물적 희망을 존재론적 희망으로 돌리는 마음의 혁명은 곧바로 우리가 전대미문의 도약판을 밟고 비상하는 순간이 될 것이고, 각자의 좁은 감옥을 벗어나는 해방의 날이 될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토요일 아침에] 산다는 것의 의미/길자연 왕성교회 당회장·목사

    산다는 것은 생명의 연장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먹고 마시고 자고 깨는 것의 반복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산다는 것은 주어진 자신의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이고 또 그 목적하는 바를 이루는 것입니다. 여기에 인생의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고 보람이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도 바울만큼 행복하고 보람된 삶을 살았던 사람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만큼 자신의 삶의 목표에 충실했던 사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듯 충실했던 자신의 삶을 두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삶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삶의 목표를 달성한 사람들은 이렇듯 자신감에 넘치는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삶의 목표를 향하여 역주하지만 누구나 행복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새뮤얼 존슨은 “인생의 본무는 전진”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목적한 바를 이루는 방법은 무엇일까요?우리는 풍랑이는 갈릴리 바다를 건너 자신들이 가려던 가버나움에 이르렀던 제자들의 삶을 통하여 이를 배우게 됩니다. 이를 두고 요한복음 6장21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배는 곧 저희의 가려는 땅에 이르렀더라.” 그렇습니다! 누구나 목적하는 바를 이룰 책무가 있습니다. 목적하는 바를 이루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늦었다고 생각할 때 도전하십시오. 예수님과 제자들 일행은 해가 저물어 가고 있던 황혼녘 모든 사람들이 일손을 쉴 때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향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때가 늦다고 현실에 도전 못할 이유가 없음을 깨우치게 됩니다. 늙고 병들고 한두번 실패하고 또 가진 것이 없다고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은 올바른 삶의 태도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람들이 인생의 황혼기를 인생의 마감시간으로 생각하고, 한번의 실패를 영원한 실패로 생각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인생의 황혼기는 결코 인생의 마감시간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란을 떠나 가나안을 향하여 새로운 출발을 했습니다. 이처럼 늙고 병들고 실패했을 때는 주저앉을 때가 아니라 새롭게 시작할 때입니다. 늦었다고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창세기가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두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말씀을 반복 기록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인생의 황혼기는 은퇴의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병들고 실패했을 때는 주저앉을 때가 아니라 새롭게 시작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를 기뻐하지 실망과 좌절의 마음을 안고 주저앉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쇠절구를 갈아 바늘을 만들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손만대를 위하여 사과나무를 심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먼 미래를 내다보고 시도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가버나움으로 향하여 노를 젓던 갈릴리 바다에서 큰 바람을 만난 것처럼 도전의 길목에는 반드시 역경의 바람을 만나기 마련입니다. 새로운 도전은 힘겨워도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풍랑 속에서 노를 젓던 제자들처럼 우리는 새로운 도전에 임해야 합니다. 문제는 인생의 항해 중에 찾아오는 역경의 파도를 홀로 견딜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제자들이 풍랑이는 바다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모실 때 노도하던 역경의 풍랑을 헤치고 비로소 자신들이 가려던 곳에 이를 수 있었던 것처럼 내 삶에 예수님을 모실 때 비로소 모든 인생 역경과 고난을 헤치고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 없는 인생은 곤고하지만 예수 있는 인생은 기쁨과 평안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는 우리 인생의 영원한 구세주이시기 때문이며 우리의 영원한 동반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길자연 왕성교회 당회장·목사
  • 서울서 휘발유 가장 싼 구는 중랑구

    서울서 휘발유 가장 싼 구는 중랑구

    서울시내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휘발유 가격이 ℓ당 최고 240원 차이가 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시가 지난달 24∼28일 서울시내 699개 모든 주유소를 대상으로 휘발유와 경유 판매가격을 조사한 결과 휘발유 평균가격은 1ℓ당 1586원, 경유는 1362원으로 나타났다고 3일 밝혔다. 비싼 곳과 싼 곳의 차이는 휘발유는 1ℓ당 240원, 경유는 229원이었다. 자가운전 차량(연비 10㎞/ℓ) 한 대가 연간 2만㎞ 운행한다고 가정하면 가장 싼 곳에서 휘발유를 넣으면 1년에 50만원 남짓 절약할 수 있다. 휘발유가 가장 비싼 주유소는 영등포구 여의도동 17의2 경일 SK주유소(1723원)이며, 가장 싼 곳은 광진구 능동 255의2 평안 현대주유소(1483원)로 조사됐다. 특히 휘발유 가격이 저렴한 주유소 1∼5위가 모두 광진구에서 나왔다. 경유가 가장 비싼 곳은 강남구 신사동 638에 자리한 한양 SK주유소(1475원)이며, 가장 싼 곳은 구로구 온수동 9의12 삼한 GS주유소(1246원)였다. 경유에서도 저렴한 곳은 광진구에 몰려 있었다. 도심과 강남지역이 비싼 반면, 강북 북부지역이 비교적 저렴했다. 구별로 살펴보면 중랑구가 휘발유 1537원, 경유 1316원으로 가장 저렴한 지역이고, 강남구는 휘발유 1626원, 경유 1404원으로 가장 비싼 지역으로 꼽혔다. 저렴한 자치구는 강북·도봉·광진구, 비싼 자치구는 마포·중구·서초 등이었다. 정유사별로는 SK(1595원)가 비싸고,GS(1586원), 현대(1577원),S-오일(1547원)이 뒤를 이었다. 서울시는 정기적으로 서울시내 주유소 가격을 조사해 제공하고, 주유소의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 석유류 품질 조사도 병행할 방침이다. 자세한 조사 결과는 서울시 홈페이지(www.seoul.go.kr) 소비자정보를 참고하면 된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中, 김정일 초청 추진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서울 김수정기자|중국 지도부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베이징 방문을 적극 추진중인 것으로 3일 알려졌다. 베이징과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중국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 등 추가 도발로 인한 파국을 방지하기 위해 김 위원장을 초청하기로 하고, 오는 8일쯤 부임하는 류사오밍 평양 주재 대사를 통해 초청의사를 북측에 전달할 것”이라고 전했다. 북한을 방문했던 중국 고위인사들이 김 위원장에게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친서조차 전달하지 못하던 중국이 내부 격론 끝에 김정일 위원장을 초청하기로 한 것은 어떤 배경일까. 정부 소식통들은 단순히 과거처럼 북한을 달래고 어르는 측면보다는, 북한에 대한 압박의 성격이 강하다고 진단한다. 북한으로선 후진타오 주석의 초청을 외면하는 것도 어렵고 북·중 정상회담에 선뜻 응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북한이 금융제재를 풀어야 6자회담에 나갈 수 있다거나, 중국 은행의 대북 금융계좌 단속 분위기에 항의하러 가는 차원에서 초청을 받아들인다면 득보다 실이 크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5일부터 10일까지 중국을 방문, 집중적으로 북핵문제의 중국 역할론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방중설이 나돌았던 김정일 위원장의 행적에 대해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이날 “김정일 위원장이 (평안북도 구성군의) 구성공작기계공장과 구성 닭공장을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crystal@seoul.co.kr
  • [한민족 문화유전자를 찾아서] 솟대-장승

    [한민족 문화유전자를 찾아서] 솟대-장승

    우리나라 대부분의 마을 뒷산에는 수호신을 모신 산신당이 있고, 마을 입구에는 장승과 솟대가 있다. 장승과 솟대는 마을 공동체 신앙을 구성하는 요소이며 촌락의 역사와 민중의 생활상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오랜 비바람의 풍파에도 아랑곳없이 오직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고, 나그네에게는 이정표를, 사찰에서는 경계표를 자임한 장승. 민초들의 소박한 정서가 담긴 장승은 무섭기도 하지만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감을 주며 해학적이다. 마치 선량한 서민의 자화상을 보는 듯해 더욱 정겹다. 툭 튀어 나온 퉁방울 눈, 무뚝뚝한 코, 약간 삐뚤어진 듯한 얼굴, 거기에 살짝 벙거지를 올려 쓴 제주도의 돌하르방. 영락없이 불끈 솟은 남근이다. 살짝 비껴 보노라면 탄성이 절로 난다. 어느 조각가가 이만큼 깎을 수 있을까. 그것은 비록 이름 없는 석수장이의 솜씨지만 하나의 예술품이다. 거기에 빌면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속신이 보태지면 그것은 단순한 석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체로 다가온다. 솟대는 장승과 함께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비는 신앙의 대상물이었다. 짐대, 기러기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 솟대는 그 자체가 우주목(Worl Tree)으로 성역의 표시였다. 또 과거급제자의 표시와 가문의 행운을 비는 기념물로, 솟대 위에 앉혀진 물새로 화마를 막는 상징물이었다. 그야말로 다양한 형태와 의미를 지닌 솟대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 종교, 민속 등이 종합적으로 녹아있는 중요한 상징물이다. 지역에 따라 다르긴 하나 대개 정월 대보름이 되면 전국곳곳에서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산신제나 장승제를 지내고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 우리네 풍속이다. 중요무형문화재인 영산줄다리기는 원래 정월 대보름에 행했으나 현재는 3·1 문화제 행사의 하나로 하고 있다. 길이가 100m가 넘고 지름이 1m가 넘어 줄을 타고 앉아도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거대한 줄은 10여일에 걸쳐 만든다. 평소 농사일에 묻혀 흩어져 살던 농민들이 요란한 풍물소리와 함께 풍물패를 앞세우고 결집하는 모습,1만명이 넘는 남녀노소가 일제히 우렁찬 목소리로 ‘으∼샤, 으∼샤’하며 흙먼지를 부옇게 일으키며 당기는 모습. 놀이와 제의, 화합과 축제가 어우러진 줄다리기. 상상만 해도 신이 난다. 줄다리기는 놀이 자체로서도 재미있지만 미리 풍흉을 점치거나 풍년을 기원하는, 즉 다산을 위한 성교를 상징하듯 암줄과 숫줄을 결합하여 풍년에 대한 염원과 화합을 기원한다. 여자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 하여 편을 가를 때도 남자, 여자로 가른다. 때문에 남자편이 일부러 져주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깊고 가장 규모가 큰 민속축제는 단연 강릉단오제이다. 단오는 음력 5월5일로 일명 수릿날, 중오절이라고도 불리는데 일년 중 양기가 가장 강한 날이다. 단오의 ‘단(端)’자는 처음 곧 첫 번째를 뜻하고,‘오(午’)자는 오(五), 곧 다섯의 뜻인 초닷새를 이른다. 음력 4월15일 대관령 산신제로 시작된 강릉단오제는 대관령 성황신을 모셔와 강릉시내의 여성황사에 봉안하고 5월5일까지 계속된다. 본격적인 행사는 5월1일부터 대관령에서 흘러내린 물이 지나가는 남대천변 단오장에서 닷새간 열린다. 아침, 저녁으로 제를 올리고 굿을 하며 한마음으로 풍년과 풍어, 마을의 평안을 기원한다. 행사기간동안에는 그네타기, 씨름, 농악, 무언극인 관노가면극 등 각종행사가 벌어져 수많은 예능인과 군중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긴 행렬의 난장이 이어진다. 강릉단오제는 무속과 신화, 유불선이 습합된 우리 고유의 향토축제다. 주민의 화합과 단결은 물론이고 나아가 이제 관광 상품으로도 손색이 없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이바지한다. 한마디로 현대축제가 갖추어야 할 전형을 보여준다. 강릉단오제는 이제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축제로 새로 태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농촌에서는 항시 서로 돕고 돕는 다양한 형태의 조직을 만들어 생활하였다. 두레는 상부상조하는 미풍양속 중에서도 으뜸이다. 동제가 동심결취적 성격을 지닌 신앙적 결합이라면, 두레는 노동을 제공하거나 상호협력을 바탕으로 촌락사회의 결속을 다져온 협동체이다. 두레는 농작물의 생장기인 농번기에 구체화되어 모내기에서 김매기를 마칠 때까지 시행된다. 두레는 고통스럽고 힘든 일을 협동과 신명으로 풀어내는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체계였다. 일명 ‘농악’이라 하는 것도 바로 두레에서 이루어졌다. 한마디로 두레는 일과 놀이를 겸비한 상부상조 문화의 상징이요, 풀뿌리 민주주의가 관철되는 현장이다. 우리 고향 모습은 어떤 것일까. 야트막한 동산아래 앞으로는 내가 흐르고 마을 동구를 가로질러 서 있는 정자나무, 그것이 고향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자나무는 마을의 역사를 대변해준다. 여름철에는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로써,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장으로 함께 해왔다. 정자나무 밑에는 들돌이 놓여져 있어,7월 백중엔 마을 청년들이 시원한 나무 밑에 모여 들돌을 들어 힘을 겨루고 장사를 뽑았다. 이를 ‘들돌들기’라 하였다. 양반 자제들의 성년식이 관례라면,‘들돌들기’는 서민들의 성년식으로 들돌을 들어 체력을 인정받아 당당히 어른의 품삯을 받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이렇듯 마을의 정자나무는 휴식과 신앙과 회합이 이루어지는 공동의 문화공간이었다. 우리 선조들은 산이 높으면 건물은 낮게, 반면 산이 낮으면 건물은 높게 지어 음양의 조화를 꾀하였다. 자연에 순응하며 조화를 이룬 것이 우리네 건축 정서이다. 양지바른 산자락에 마치 암탉 둥지처럼 옹기종기 모여 하나의 선을 자아내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초가와 기와집들은 현대적 건물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한옥은 구조에서부터 만드는 재료에 이르기까지 자연적이다. 마루를 중심으로 그 둘레에 방이 있고, 부엌과 화장실은 마루를 통과하여 갈 수 있거나 별채를 따로 두었다. 방이 개인을 위한 닫힌 공간이라면, 서양엔 없는 대청은 모두를 위한 열린 공간이고, 마당은 큰일을 치르는 공간이다. 서양 가옥이 바람을 막는 닫힌 집이라면 한옥은 지나는 바람을 막지 않는 열린 공간이다. 때문에 우리네 집은 자연과 하나 되어 바람소리, 물소리, 흙냄새, 나무냄새를 느낄 수 있다. 흔히 한국의 미는 선(線)에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용마루나 처마 끝선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 동양 삼국의 기와집을 보면 금세 구별이 된다. 중국은 처마와 추녀 끝이 너무 올라가 왠지 방정맞고, 일본은 처마가 직선으로 마치 무를 잘라낸 듯 보여 아쉬움이 남는다. 이와 달리 한국의 처마는 부드러운 곡선을 이룬다. 마치 여인네의 살짝 올라간 버선코처럼 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다. 부챗살 모양으로 배치한 서까래의 처마 곡선은 장중한 모양의 지붕을 사뿐히 나는 듯 보이게 하며 우아한 자태를 느끼게 한다. 우리네 대문은 밖에서 안으로 밀도록 되어 있는데 반해 서양의 문은 안에서 밖으로 열도록 되어 있다. 밖에서 안으로 밀어 열도록 한 것은 바깥으로부터 복이 들어오도록 한 것이다. 반면 방문을 대문과는 달리 안에서 밖으로 열도록 한 것은 들어온 복을 나가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어찌 서양의 기능적 면만 강조한 문과 비교되겠는가. 집의 얼굴이 문이라면, 창문은 집의 눈이요 표정이라 할 수 있다. 서양의 창은 유리로 막아 안과 밖의 공기 유통을 막을 뿐만 아니라 소리도 차단시킨다. 어디 그뿐인가 속내를 훤히 드러내어 은근한 멋이 없다. 하지만 우리네의 창은 창살에 한지를 발라 숨을 쉬도록 하였다. 우리의 창은 마음을 담아낸다. 밤늦도록 다듬이질을 하는 아낙의 정겨운 방망이 소리와 창가에 비친 모습, 이제나 저제나 오실까 숨죽여 애타게 님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는 여인의 설렘도 창가에 서린다. 한옥 마을이 평화로운 느낌을 주는 것은 소박한 곡선과 우아한 돌담이 사이사이 이어주기 때문이다. 담은 한옥의 완결체이다. 제주도는 한마디로 돌담의 세계이다. 산과 들에는 산담, 집에는 집담, 바다에는 바당빌레, 고기를 잡는 원담, 심지어 무덤에도 담을 쌓았다. 제주사람들의 문화와 정서, 애환이 녹아있는 돌담은 무한한 관광자원 가치와 함께 미학적 아름다움으로 ‘재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100대 상징 작업은 우리 것에 대한 재발견이요 혼을 불어 넣는 작업이다. 정종수 국립춘천박물관장
  • [이사람] 제주 ‘생각하는 정원’ 성범영 원장

    [이사람] 제주 ‘생각하는 정원’ 성범영 원장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등 전현직 중국 국가주석과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도 감동시킨 ‘농부 외교관’. 제주도 북제주군 현경면 저지리에 ‘생각하는 정원’이라는 분재예술원을 운영하는 성범영(67) 원장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행복한 농부다. ●세계 정상을 감동시킨 ‘농부 외교관´ 정원을 다녀간 세계 지도자들은 수없이 많다. 최근 10년 동안 각국의 정상, 공무원, 군인, 언론인 등이 다녀갔다. 이들이 남긴 감탄의 글과 그림만도 300여점에 이른다. 성 원장은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한국적인 정원을 소개하면서 민간 외교관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가 민간 외교관 역할을 맡게 된 계기는 1995년 11월 장쩌민 전 중국 국가 주석의 방문이다. 예정 관람시간을 넘기면서까지 정원을 샅샅이 돌아본 장 주석은 귀국한 뒤 “한국 제주도에 있는 분재예술원은 일개 농민이 정부의 지원 없이 세계적인 작품으로 만들었다. 가서 보고 개척정신을 배우라.”고 간부들에게 지시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생각하는 정원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98년에는 후진타오 당시 국가 부주석이 찾았다. 이후 중국 당과 정부, 지방 정부, 군인 등 엘리트 공무원들이 성 원장의 정원 조성·운영 노하우와 철학을 배우기 위해 찾는 필수 관광코스가 됐다. 제임스 레이니·버시바우 전현직 주한 미국대사, 장 폴레오 전 주한 프랑스 대사도 다녀갔다. 뉴욕타임스 편집국장, 중국 인민일보 총편집인 등도 찾았다.CNN에 정원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나간 뒤 미국·캐나다 등에서도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성 원장은 “오직 분재원을 보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브라질에서 20시간을 걸려 찾아온 관광객도 있으며, 독일의 한 관광객은 무려 열 번이나 찾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미국 관광 전문기자 15명이 3시간 동안 분재원을 취재하고 돌아갔다. ●“두루외! 낭이 밥멕여주나” 성 원장의 거친 손에는 늘 전지 가위가 들려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무에 물을 주고 돌을 쌓는 억척스러운 농민이다. 세계적인 관광농원을 조성한 성 원장은 그러나 관광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다. 제주 토박이도 아니다. 그저 나무가 좋아서, 제주도 돌이 소중해서 분재원을 가꾼 농민이다.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중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 2학년 때 군에 입대했다. 그가 척박하기로 소문난 제주도에 발길을 내디딘 것은 1963년 말. 군대 친구를 만나기 위해 목포에서 연락선을 탔다.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타고 겨우 찾아온 곳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나지막한 가시덤불 언덕이었다. 초겨울인 데도 파릇파릇 자라는 채소와 열대 과일, 구멍이 숭숭 뚫린 제주돌이 신기해 막연하게 농사를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돌아갔다. 성 원장은 서울에 올라와 와이셔츠 공장을 운영하면서 꽤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사업을 확장하지 않고 모두 제주 돌밭을 구입하는 데 투자했다. 전국을 돌면서 나무를 사들였다. 분재 정원에 관한 전문지식을 별도로 배운 적도 없고 정원 조성 설계도도 그리지 않았다. 다만 가장 한국적이고 제주도의 자연에 맞추겠다는 생각으로 농장을 가꾸고 돌담을 쌓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두루외! 낭이 밥멕여주나(미친 놈, 나무가 밥먹여주나).”며 손가락질을 했다. 그는 제주 돌을 아낄 줄 안다. 돌에 미친 ‘돌챙이’(돌담 쌓는 사람) 소리를 들을 정도다. 정원은 나무와 돌담으로 어우러진 자연 그대로다. ●분재는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사랑으로 완성 성 원장의 분재관은 남다르다. 분재야말로 살아 있는 나무를 소재로 삼아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사랑으로 완성하는 ‘생명예술’로 본다. 오랜 세월을 바쳐 완성하고, 계절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시간예술’이기도 하다. 기르는 사람이나 감상하는 사람의 마음을 모두 아름답게 완성하는 ‘인격예술’로 정의한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의 기술과 정성을 더하여 자연보다 더 아름답게 만드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땔감에 불과한 나무(우리만 갖고 있는 자연이란다)도 그의 손을 거치면 아름다운 분재가 된다. 성 원장은 “분재는 나무를 괴롭히는 일이 아니라 교정하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그는 “나무를 사랑하다보면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고, 순리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진리를 깨닫는다.”며 정원 조성과 그의 철학이 담긴 책 ‘생각하는 정원’을 내놓았다. 이 책은 중국어·영어로 번역됐고, 일본어·독일어판도 나올 계획이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여행·레저 단신]

    ● 제11회 공주 아시아 1인극제 역사와 문화의 고장 공주에서 ‘제11회 아시아 1인극제’가 열린다. 일본(연극), 타이완(경극), 중국(인형극, 변검), 말레이시아(연극), 네팔(연극)등의 다양한 1인극을 통해 아시아 각국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줄타기, 평산소놀음굿, 서산박첨지놀이, 백제기악탈 등과 인형극 등 우리나라 전통문화도 체험할 수 있다.9월22∼24일까지 공주민속극박물관에서 열린다. 관람료는 일반 1만원, 청소년 6000원. 충남사랑티켓도 사용가능하다. 사랑티켓은 50%할인.4∼7세 어린이는 무료.(041)855-4933.www.kfdm.net● 해외입양가족들과 신나는 한마당 경주한화리조트에서는 프랑스 해외입양가족의 모국방문을 기념하여 우리의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무형문화재 3호로 지정된 남사당놀이 공연을 진행한다. 25일과 26일,2회 진행되는 이번 공연은 30여명의 대규모 남사당놀이패가 우리의 전통 놀이공연의 진수를 보여주게 된다. 특히, 이번 공연에는 한얼민속예술단에서 준비한 국악한마당이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게 되는데 남도의 재미있는 가락을 모아서 연주하는 ‘삼도설장고’,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의 민요인 ‘서도민요’, 그리고 대북울림 등의 우리 가락과 함께 늦 여름밤의 추억을 선사한다. www.hanwharesort.co.kr● 이열치열이 최고 늦더위 사냥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가 기다리는 스파그린랜드로 가보자. 다양한 수(水)치료 시스템을 도입한 버블탕은 물론, 아로마탕을 비롯한 정종탕, 한방탕, 와인탕, 녹차탕 등의 다양한 이벤트 탕은 목욕과 휴식의 재미를 더한다. 또한 키즈워터랜드와 어린이 놀이탕은 끝나가는 방학이 아쉬운 아이들의 마지막 물놀이터로 그만이다.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퇴촌스파그린랜드 별관 허브그린랜드에서 진행되는 요리 체험 이벤트와 허브비누만들기 등 다양한 행사에 참가한다면 즐거움이 배가 될 것이다.(031)760-5700,www.spagreenland.co.kr
  • 北, WFP 수해 지원 식량 받기로

    세계식량계획(WFP)은 18일 북한이 당초 방침을 바꿔 홍수 피해 주민들을 위한 식량 제공 제의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WFP는 피해가 큰 평안남도 성천군 주민 1만 3000여명에게 30일 분량의 밀가루와 식용유 150t을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지난달 수해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으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며 WFP를 비롯한 국제기구의 식량 지원 의사를 거부한 바 있다. 북한은 지난달 3차례 물난리로 올해 수확량이 약 9만t 줄어 기근에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연합뉴스
  • [한민족 문화유전자를 찾아서] (2) 민족·역사상징(하)

    [한민족 문화유전자를 찾아서] (2) 민족·역사상징(하)

    수도(首都)는 나라의 상징이기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당대 최고의 길지(吉地)에 자리잡았고, 그 땅의 기운이 쇠했다고 여겨지면 또 다른 길지로 옮기기도 했다. 한반도 역사상 가장 긴 세월 동안 수도였던 지역은 신라의 경주(慶州)였는데, 이곳이 세운 ‘천년’ 기록은 세계사에서도 그 유사한 경우를 찾기 어렵다. 그 덕이었을까. 경주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도 여럿 있거니와, 눈에 스치는 그 어느 것 하나 소중한 민족문화유산이 아닌 것이 없다. 평양(平壤) 또한 길지를 거론하는 자리라면 결코 빠질 수 없는 곳이다. 아직은 명확한 역사적 사실이 입증되지 못했으나, 개국시조 단군(檀君)이 처음 나라를 연 곳으로 전해지는 성지(聖地)일 뿐 아니라, 고구려 장수왕이 천도하여(427년) 오래 전에 잃어버린 생기를 되살렸던 곳이기도 하다. 광복 직후, 분단된 국가의 한쪽 수도가 되어 또 다시 그 명맥을 이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실로 평양은 질긴 생명줄을 안고 태어난 것 같다. 정치적 논리와 이유를 떠나 단순히 땅의 기운으로만 볼 때….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다.’. 이러한 문장이 주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헌법 조문에 나오는 듯 착각할 정도로 당연시한다. 사실 사전적으로 보거나 논리적으로 볼 때, 이는 당연한 명제이다. 서울이란 말의 어원은 높고 신령하다는 우리말 ‘솔’에 벌판·큰 마을을 의미하는 우리말 ‘벌’이 합쳐져 변한 것이라 한다. 따라서 이 말은 나라의 ‘가장 높고 신령한 벌판’, 즉 수도를 일컫는 보통명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는 서울을 특별시 ‘서울’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즉 보통명사가 고유명사로 변질된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우리는 변질된 것을 당연시하고 있는 셈이라 하겠다. 우리가 ‘서울’로 부르고 있는 곳의 원래 이름은 한강(漢江)의 북쪽이라는 뜻을 지닌 ‘한양’(漢陽)이었다. 이 땅의 역사 또한 평양과 마찬가지로 부침이 잦았다. 일찍이 온조가 남하하여 이 일대에 백제를 세웠다가(BC18년) 고구려에 빼앗겨(475년) ‘남(南)평양’으로 불렸고, 그로부터 900여년이 지난 1394년에 이르러 다시 조선의 수도로 정해졌던 것이다. 이후 일제 강점기가 끝난 1945년에 비로소 ‘서울’로 불리며 대한민국의 수도가 되어 오늘 날까지 그 영화를 이어 오고 있는 중이다. 그러고 보면 ‘서울’ 역시 보기 드문 길지임에 틀림없다. 이곳에서 벌어진 수많은 영욕을 간직한 채 굳건히 맏형으로서의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앞으로 ‘서울’을 서울로 되돌리는 과감한 결단도 생각해 볼 일이다. 경주로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석굴암(石窟庵)의 아름다움과 정교함, 그리고 역학적 구조에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석굴암 창건과 관련한 김대성(金大城)의 효행과 인연도 잊지 못할 감동으로 자리잡았을 것이다.‘삼국유사’에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석굴암은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는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설이 말해주듯이 석굴암과 불국사는 과거와 현재라는 시공간을 잇는 타임머신이다. 그래서 일까. 석굴암과 불국사 관람 중 하나를 놓치면 아쉬움과 허전함이 오래 남는다. 시간 여행이 끊긴 탓이겠다. 실제 불국사를 둘러 본 후 석굴암에 오르는 산행은 현생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주는 코스이기도 하다. 인도나 중국의 웅장한 석굴 사원을 보고 와서 석굴암의 초라함을 빗대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인류 유산의 가치 판단이 꼭 규모로만 기준 되는가를 묻고 싶다. 비록 석굴암은 상대적 규모가 작으나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인공 석굴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더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더군다나 석굴암 안에 질서있게 배치된 38구의 석불들은 그 어느 것 하나 눈 여겨 보지 않을 수 없는 각각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어릴 적 즐겨 부르던 노래 중에 ‘단군의 자손’이라는 가사가 들어있는 것이 기억난다. 노랫말처럼 한민족은 동질성과 혈통성을 지닌다. 물론 상징체계에서 볼 때 그러하다는 것이다. 곰이 여인으로 변하여 단군(檀君)을 낳았다는 신화를 그대로 믿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단군할아버지는 우리 민족이 수난을 당하고 위기에 처할 때마다 늘 자리를 같이하여 민족의 단합을 요구하였다. 그런 점에서 단군이 지닌 민족적 상징성은 역사적 가치가 충분하다. 세계 대부분의 민족·국가마다 개국신화가 구심체 역할을 하듯이, 우리도 단군할아버지를 그렇게 활용(?)하고 대접해 드리면 될 일이다. 근래, 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진 단군상(像)의 목이 훼손당하는 사건으로 민족화합이 분열되면 큰 일 이라는 기우에서 덧붙이는 말이다. 단군에 비하면 광개토대왕(재위 391∼413)에 대한 시비는 없는 듯하고, 또 없을 것이다. 앞으로 10만원 권 지폐가 발행된다면 그 모델로 광개토대왕을 넣어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인 것을 보더라도 그러하다. 과연 광개토대왕의 인기 비결은 무엇인가 생각해 봤다. 아무래도 그 이름이 말해주듯이 우리 강토를 크게 넓힌 업적이 첫째 이유가 되겠다. 반만년 우리 역사상 주변국을 상대로 이런 호기(浩氣)를 부렸던 적이 어디 있었는가. 간혹 호기를 부리자면 주위를 평안(平安)치 못하게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런데 광개토대왕은 두 가지를 모두 이룬 성군(聖君)이었다. 이에 사후, 그 업적을 기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으로 불렸던 것이다. 후대에까지 성군으로 길이 추앙되는 왕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점에서 세종대왕(재위:1418∼1450)은 이루 형언하기 힘들 만한 성군 중의 성군이었다.31년의 재위 기간 동안 한글 창제, 측우기와 해시계, 물시계의 발명,‘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농사직설(農事直說)’ 및 지리지(地理志)의 편찬,4군 6진의 개척, 대마도 정벌, 아악(雅樂)의 부흥과 제정 등, 어느 왕이 평생 이루기 어려운 업적을 수없이 이루어 냈기 때문이다. 앞에서 지폐의 모델 이야기를 언급했는데, 아직까지는 세종대왕이 최고의 영위를 누리고 있다. 돈의 액수 차이가 모델의 평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아무래도 국민 정서상 세종대왕을 누르고 1위 자리에 오를 역사적 인물을 찾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원효와 이황, 정약용은 각기 그 시대를 달리했지만 종교와 철학, 사상으로 민족문화를 살찌우고 꽃피운 인물들이다. 원효(617∼686년)는 불교로써, 퇴계 이황(1501∼1570년)은 성리학으로써, 그리고 다산 정약용(1762∼1836년)은 실학(實學)으로써 최고를 이루어냈던 것이다.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도중 오래된 무덤에서 진리를 체득했다는 유명한 일화를 만든 원효는 우리 역사상 최고의 불교사상가로 평가된다. 더욱이 귀족보다 일반 백성을 위한 설법·교화에 치중한 그의 행적은 친근감마저 더 해 준다. 퇴계는 조선 성리학의 태두로 칭송될 만한 인물이다. 비록 그가 평생을 바쳐 궁구(窮究)한 학문은 중국에서 들여온 성리학이지만, 오히려 중국의 어느 학자보다 성리학을 발전시켰다고 이해된다. 한 점 흐트러짐 없이 꼿꼿하게 살다 간 퇴계 선생!그 자세와 사상은 대대손손 흠모되고 존숭될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웅지와 실기의 파란을 겪은 인물이다. 어찌 보면 그 스스로 편함에 안주하지 않은 때문이겠다.‘실용지학’(實用之學)과 ‘이용후생’(利用厚生)의 학문인 실학을 집대성한 그는 성리학의 공리공담을 배격하고 조선 사회의 각종 폐단을 개혁하는 여러 개혁안을 제시했던 것이다. 정조 임금의 사후, 그에게 닥친 17년 간(1801∼1818년)의 유배 생활은 고난의 세월이었지만, 오늘 날 그가 민족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잘못을 쉽게 고칠 수 없는 작금, 다산 선생의 시대는 여전히 지속되는 것 같다. 이번 민족문화의 100대 상징 중에는 일본에 맞서 나라를 지키고, 평화와 독립을 외친 인물들이 들어 있다. 이순신(1545∼1598년) 장군과 안중근(1879∼1910년) 의사, 유관순(1902∼1920년) 열사이다. 이들 선각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을 요하지 않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이야기나 드라마는 아무리 보고, 들어도 지겹지 않다. 민족 정서의 코드(?)가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겠다. 임진왜란 때 필승의 전략으로 왜적을 물리치고 장렬히 순국한 충무공. 한말, 제국주의 식민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함으로써, 애국을 넘어 만국의 평화를 지키려 한 안중근. 어린 여학생의 몸으로 일제에 항거하다 꽃으로 승화한 ‘아우내’(병천 竝川)의 상징 유관순. 숙연한 마음으로 함축적 의미만을 적어 본다. 임학성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 ‘만삭 위안부’ 北 박영심할머니 별세

    힘겹고 절망적인 표정으로 산비탈에 만삭의 몸을 부린 채 고개를 떨군 여인…. 처참하다 못해 차라리 슬픈 그 모습으로 온 국민의 가슴을 아리게 했던 사진 속 일본군 위안부 여성이 광복 61주년에 즈음한 며칠 전 한 많은 인생을 접은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북한의 ‘조선 일본군 위안부 및 강제연행 피해자 보상대책위원회’는 태평양전쟁 중 연합군이 촬영한 사진 속에 있던 일본군 위안부 여성 4명 중 유일한 임신부이자 생존자였던 박영심(85) 할머니가 지난 7일 사망했다고 이날 밝혔다.보상대책위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평안남도 강서군에 살고 있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박영심이 일제에 대한 피맺힌 원한을 풀지 못한 채 8월7일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보상대책위는 “사람들은 아마 여러 출판물을 통해 만삭이 된 몸을 산비탈에 기대고 맥없이 서 있는 여성을 비롯해 땀과 먼지에 전 4명의 조선인 위안부들이 찍힌 사진을 많이 봐왔을 것”이라며 “이 사진 중에서 임신한 위안부가 박영심 피해자”라고 했다. 태평양전쟁 중인 1944년 중국-미얀마 국경지대에서 포로가 된 박 할머니는 당시 연합군이 찍은 사진 속에 있던 위안부 여성 4명 중 유일하게 임신한 모습을 하고 있어 유난히 눈길을 끈 여성으로,2000년 5월 방북했던 일본인 자유기고가 니시노 루미코씨의 추적에 힘입어 생존 사실이 극적으로 확인됐으며 이후 일본과 남한에도 널리 소개됐다.보상대책위는 “박영심의 피해사실은 논박할 수 없는 증빙자료와 증인들로 입증된 일본군 성노예범죄의 가장 전형적인 사례”라면서 “그러나 일본정부는 6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에게 단 한마디의 사죄도, 한푼의 보상도 하지 않았고 이것은 그대로 피해자에게 고뇌와 울분을 더해줘 건강의 파괴를 초래했으며 그의 생명을 앗아간 근본요인이 됐다.”고 강조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40년만에 햇빛 본 독립투사 김두화선생

    한 대학교수의 노력으로 잊혀졌던 독립투사의 항일운동이 40여년 만에 햇빛을 보게 됐다. 새롭게 조명된 애국지사는 일제 시절 신민회 구국운동에 참여하고 ‘105인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른 해암(海庵) 김두화(金斗和) 선생으로 작고한 지 40년 만인 지난해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평안남도 평양 출신인 김 선생은 1908년 숭실중학교 대학과를 졸업한 뒤 도산 안창호 선생 등과 함께 평양 대성학교를 설립, 교사로 활동했으며 항일구국단체인 신민회에도 반장(班長)으로 참여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1911년 9월에 발생한 ‘105인 사건’으로 투옥돼 징역 6년형을 선고받고 1년여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는데, 김 선생은 이때 고문을 받아 오른팔이 심하게 골절돼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했다. 석방된 김 선생은 만주로 망명해 이시영 등과 대종교 활동에 참여하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귀국길에 올랐다. 하지만 많은 항일독립투사들처럼 그 역시 정치권 등에 편입하지 못한 채 대전의 평안도 실향민 집성촌 등에 기거하며 명멸해갔다. 한때 충남대 명예교수인 충남 연기군 남면의 성주탁 교수의 집에서 살면서 학생 계몽활동을 펼치기도 했으나 이 역시 오래 가지 못했다. 결국 김 선생은 1957년 상경해 서울 영락교회 경로원에서 말년을 보내다 1967년 쓸쓸히 작고해 영락교회 공원묘지에 묻혔다. 김 선생의 항일독립운동이 새롭게 빛을 보게 된 것은 충남대 국사학과 김상기 교수의 남다른 노력 덕분이다. 지난 2002년 4월 성 명예교수로부터 김두화 선생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을 접하게 된 김 교수가 김 선생이 졸업한 숭실중학교 대학과의 후신인 숭실대와 영락교회 등을 직접 방문해 증언을 확보하는 등 1년이 넘도록 사료추적 작업을 벌인 것. 김 교수는 모은 사료를 토대로 2003년 국가에 독립유공자 지정 신청을 냈다. 결국 2년여 만인 지난해 8월, 김 선생은 어렵사리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훈했다. 남한에 유가족이 없는 김 선생의 묘소는 다음달 21일 대전 국립묘지 현충원으로 옮겨지게 됐다. 김 교수는 “김 선생의 사진이 남한 내에는 수십년전 숭실대 대학신문에 실린 흑백사진이 전부일 정도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한 분”이라면서 “이 같은 분이 더 이상 없도록 국가와 사회가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씨줄날줄] 하얄리아 부대/이목희 논설위원

    해방 직후 전라도에서 이승만보다 김구의 인기가 높았다. 이승만은 하와이 망명 시절 박용만을 더 지지했던 교민들을 빗대 “하와이 놈들 같으니….”라고 욕을 했다. 그로부터 하와이는 호남 사람들을 비하하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창군 초기 함경도와 만주군 출신이 군 요직을 장악했다.5·16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이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했다. 이른바 ‘알래스카 토벌작전’이었다. 알래스카는 함경도를 일컫게 되었고,‘알래스카 순대’라는 음식명이 생겼다. 당시 일부 인사들은 평안도를 텍사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우리 국토가 미국의 지명으로 이렇듯 찢어지게 된 배경과 관련해 다른 설도 있다. 미 군정 시절 미군 첩보부대의 작명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동서 끝에 있는 지역은 플로리다와 하와이다. 그와 비슷하게 한반도 동서쪽을 플로리다와 하와이의 지명을 따서 부르고, 주둔부대 이름을 지었다는 주장이다. 미국으로 건너온 영국인들은 개척한 땅에 고향 지명을 쓰거나 정복자의 이름을 붙였다. 서부개척시대 영토욕이 담겨 있는 작명법이었다. 주한미군이 기지명칭을 붙이는 방법도 비슷했다. 대표적인 것이 부산의 하얄리아 부대.1950년부터 미군전투지원부대가 주둔하기 시작했다. 당시 부대장의 고향이 마침 플로리다 하얄리아였다. 하얄리아 부대터는 1930년대 일본에 의해 경마장으로 운영되던 곳이었다. 플로리다 하얄리아에도 경마장이 있었다고 한다. 부대장은 자연스레 부대 명칭을 하얄리아라고 지었다. 캠프 레드 클라우드, 캠프 케이시, 캠프 워커 등 많은 미군기지 명칭은 미군 장병들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한국전쟁 등에서 전공을 세운 이들이다. 하얄리아 미군부대가 오늘 폐쇄식을 갖는다. 일제가 경마장과 군사훈련장으로 강탈했던 역사까지 생각하면 한세기 만에 시민품으로 돌아오게 된다.16만 2000평의 땅이 시민공원으로 탈바꿈을 준비하고 있다. 맹목적인 반미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은 자제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제1, 제2 도시 한복판에 미국의 일개 군인이 붙인 명칭을 쓰는 부대가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은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스스로 미국 지명을 차용해 특정 지역을 깎아내리는 일도 삼가야 할 것이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대동강 범람 옥류관도 잠겨”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북한이 심각한 홍수 후유증을 겪고 있으며 전염병이 만연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최근 북한을 다녀온 인사들이 1일 전했다. 특히 최근 1개월간 북한에 체류했다가 지난 31일 중국으로 돌아온 한 중국인은 “황해도, 평안남도, 함경남도 지역의 피해가 한국전쟁 때보다 더 안좋을 정도”라고 전했다. 북한내 중국 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한 조선족 인사는 “홍수로 산이 무너지고 철도가 끊기고 숨진 사람도 많지만, 무엇보다 식량 걱정이 심각하다.”면서 “민심이 극도로 흉흉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TV를 통해 이같은 소식을 접해보지 못했으며, 미사일 발사에 대한 얘기도 현지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정보 소식통들은 “수해도 수해지만, 헌재 북한에 복구 기능이 전무하다는 게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피해지역은 올 겨울까지 방치될 가능성이 높으며, 평안남도 곡창지대가 수해 피해를 입어 극심한 식량난을 겪게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대북인권단체인 ‘좋은 벗들’은 최근 소식지를 통해 “이번 수재로 3000여명이 실종되거나 사망했다는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다.”면서 “북한 당국은 수재민들의 이동을 통제하기 위해 국내 통행증 발급을 일시 중지했으며 평양에서 밖으로 나가는 버스는 단 한 대만 운행되고 있다.”고 전했다.특히 “16년 만에 대동강이 넘쳐 평양 옥류관까지 물이 들어찰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베이징의 군사소식통들은 “북한군의 대규모 야외훈련 모습도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소식통들은 1일 “지난 달 중순 집중호우 이후 북한군의 훈련 횟수가 눈에 띄게 주는 등 여름철 훈련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북한군이 피해복구에 동원되고 상당 수의 군사시설이 비 피해를 당해 훈련을 할 여건이 되지 못한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북한군은 매년 실시되는 남측의 을지포커스렌즈(UFL)연습 기간 전후에 ‘특별경비근무 기간’으로 설정하고 특수전 부대 중심의 야외훈련을 해왔으나 올해는 아직까지 이런 훈련을 하지 않고 있다.jj@seoul.co.kr
  • [데스크시각] 우리 시대의 ‘백석’/김종면 문화부 부장급

    ‘북에는 소월, 남에는 목월’ 한국 근대문학사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우리는 흔히 김소월과 박목월을 꼽는다. 그러나 이제 소월의 자리에 백석을 올려놔야 할 것 같다.1980년대 후반 해금된 재북(在北)시인 백석에 대한 평론가들의 찬사는 가히 최상급이다.“가장 한국적인 시”(유종호) “한국시가 낳은 가장 아름다운 시”(김현) “우리 문학의 북극성”(김윤식)…. 우리 시인들은 또한 백석의 첫시집 ‘사슴’을 한국 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집으로 간주한다. 우리에게 이런 엄청난 시인이 있었던가. 최근 ‘백석 시 바로 읽기’‘원본 백석 시집’‘백석우화’‘백석 시의 원전비평’ 등 백석 관련 책들이 또 쏟아져 나왔다. 후끈 달아오른 ‘백석 열풍’을 접하며 그의 시편들을 되뇌어 본다. 백석의 시는 읽기가 그리 녹록지 않다.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관서지방 방언은 그렇다 치고, 그의 시에는 일부러 맞춤법을 어긴 듯한 표현이 예사로 나온다. 생경한 조어들이 어지럽게 춤춘다. 김춘수 시인의 지적대로 백석의 시는 “번역이 불가능한 시”요 “토속을 위한 토속의 시”다. 백석이 물론 ‘소화불량의 시’만 쓴 것은 아니다. 편안하게 읽히는 작품도 없지 않다.“별 많은 밤/하누바람이 불어서/푸른감이 떨어진다 개가 는다” ‘청시(靑枾, 푸른 감)’라는 제목만큼이나 고향의 서정이 흠씬 묻어나는 시다. 사람들이 소월을 좋아하듯 백석을 좋아하는 것은 바로 이런 풋풋한 시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하지만 평론가들은 제목조차 기이한 ‘여우난골족’이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같은 과도한 방언체 시들을 백석의 절창으로 내세운다. 일제의 문화침탈에 맞서 의식적으로 방언을 사용, 민족 언어를 지키려 한 백석의 노력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백석 특유의 방언주의 혹은 토속 시어의 마력에 무작정 빠져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백석의 시를 위해서도 민족어의 장래를 위해서도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어가 아무리 눈부셔도 오문(誤文)과 비문(非文)의 허물까지 덮어주지는 못한다. 엄정한 잣대로 백석의 텍스트를 분석하고 연구해야 한다. 백석과 동시대 시인인 오장환이 일찍이 백석을 “스타일만을 찾는 모더니스트”로 규정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백석의 시어에 대해서는 해석이 갈린다. 문제작 ‘여우난골족’에 나오는 홍게닭이 그 한 예다. 홍게닭은 보통 새벽닭으로 풀이되지만 한 편에서는 홍계(紅鷄)라는 한자어에 닭이라는 고유어가 붙은, 붉은 빛의 토종닭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견해도 내놓고 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개인의 조어가 아니라 어느 한 지역의 방언이라면 그렇게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을까. 이 지점에서 기자는 방언과 개인어(idiolect)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언어학에서는 개인이 어느 한 시기에 쓰는 말을 총칭해 개인어 혹은 개인 방언이라고 한다. 백석이 남긴 시어 중에는 이런 개인어도 적지 않을 것이다. 백석의 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시에서 먼저 지역 방언과 개인어를 가려내야 한다. 소월과 마찬가지로 평북 정주가 고향인 백석은 선배 시인 소월보다 훨씬 더 진한 관서방언으로 마천령 서쪽 평안도의 정서를 담아냈다. 곱새담(풀이나 짚으로 엮어 만든 담), 날기멍석(곡식을 널어 말리는 멍석), 니차떡(인절미)…. 백석이 사용한 평북 방언들은 그 의미를 헤아리기 어렵지만 왠지 정겹게 다가온다. 백석의 시가 오랜 단절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는 것은 이처럼 풍부한 우리 방언을 시어로 적절히 승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백석 시의 토속어와 방언들을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남북의 언어분단을 극복하고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국적 불명의 말들이 판치는 시대이기에 백석이 구사한 살가운 탯말들이 더욱 그립다. 이제 모국어의 속살을 살려 내야 한다. 당당한 문학언어로서의 자리를 되찾아 줘야 한다. 최근의 ‘백석 붐’은 그런 점에서 퍽 반가운 일이다. 김종면 문화부 부장급 jmkim@seoul.co.kr
  • 이길로 가면…여름잊고 심신 살찌우고

    이길로 가면…여름잊고 심신 살찌우고

    서울 근교 산으로 숲속여행을 떠나보자. 싱그러운 나무 향기에 취해 야생화와 곤충, 새들을 관찰하다 보면 아이들은 금세 숲속을 탐험하는 재미에 빠져든다. 서울시와 각 자치구는 매주 일요일에 자연탐방 프로그램 ‘숲속 여행’을 서울 근교 산 17곳에서 운영한다. 탐방코스에는 전문 숲 해설가가 동행한다. 코스가 완만해 가족 나들이에 제격이다. 참가비는 없지만 인기가 많아 인터넷 예약(san.seoul.go.kr)을 서둘러야 한다. 지난주 강남지역의 산에 이어 이번 주에는 앵봉산, 안산, 인왕산, 남산, 개운산, 오패산, 초안산, 아차산, 봉화산, 수락산 등 강북지역 10곳을 소개한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앵봉산 꾀꼬리가 많아 앵봉(鶯峯)이란 이름을 얻었다. 해발 230m로 높지 않지만 정상 인근은 경사가 급한 편이다. 온대림 숲의 마지막 천이단계에서 나타나는 서어나무를 비롯한 100여종의 수종과 각종 초본류, 지의류, 버섯 같은 균류가 살고 있다. 다양한 식물 덕에 곤충과 조류, 다람쥐, 청설모 등 야생동물이 터전을 잡았다. 특히 천연기념물 제323호인 황조롱과 맹금류인 말똥가리도 관찰되고 있다. ●탐방코스 3호선 구파발역 4번출구에서 만나 출발한다.7단계로 나뉘어 국수나무, 도토리, 아까시나무, 진달래, 소나무, 팥배나무, 서어나무 등 다양한 수종을 만난다. 정상에 자리한 서어나무 군락지에는 서울에서 보기 힘든 서어나무와 작살나무, 담쟁이덩굴, 물갬나무, 다릅나무 등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코스는 총 연장 2㎞로 3시간 정도 걸린다. 둘째·넷째주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1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변 볼거리 서오릉은 사적 제198호로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있다. 창릉 익릉 명릉 홍릉으로 구성돼 있는데 구리시의 공구릉 다음가는 조선왕실의 왕릉이다. 주변에는 먹을거리도 풍부하다. 통일로변에 위치한 구파발 인공폭포는 통일로의 이정표로 상징적인 공간이라 유명하다. ●가는길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내려 4번출구로 나오면 집결지가 보인다. 버스는 7023,7723,7724,7731∼5,9703,9709,9710∼2번 등이 오간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강동구청 공원녹지과(350-1395). ■ 안산 무악(毋岳)이라고도 부른다. 산의 모양이 말안장, 즉 길마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쪽에 있는 현저동에서 홍제동을 넘는 고개를 길마재, 즉 안현이라고 했다. 안산은 인왕산에서 서쪽으로 비스듬히 뻗어 무악재를 이루고 솟은 산이다. 해발 295.9m. 조선왕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면서 무악은 궁궐의 주산으로 주목받았다. ●탐방코스 서대문구청에서 출발한 탐방팀은 연흥약수터에서 안산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받는다. 조선시대 기록인 ‘용재총화’에는 무악재 주변에 밤나무와 소나무가 무성했다고 하나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1960년대에 난립한 무허가 집을 철거하고,1970년대부터 인공 수림을 조성하여 지금은 메타세쿼이어, 왕벚나무, 산수유, 모감주나무, 소나무, 당단풍나무, 잣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자연림으로 보존된 북쪽 비탈에는 진달래, 물오리나무, 노린재나무, 산초나무, 산벚나무 등이 드문드문 자리잡았다. 꿩, 메추라기, 박새, 딱따구리 등도 자주 눈에 띈다. 코스는 총 연장 2㎞로 3시간 정도 걸린다. 둘째 넷째 일요일에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주변 볼거리 안산 정상의 무악봉수대(서울시 기념물 제 13호)는 평안도와 황해도의 육로 봉화를 남산봉수대로 최종 보고하던 곳이다. 연희동에 있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2003년 7월에 개원했다.1층은 인간과 자연관,2층은 생명진화관,3층은 지구환경관으로 구성돼 있다. 서대문형무소도 독특한 볼거리다.1908년 경성감옥으로 문을 연 이후 우리의 항일 독립투사들이 옥고를 치른 곳이다. ●가는 길 지하철 3호선 홍제역 3번출구에서 7713,7738,7739번 버스를 타고 서대문구청 앞에 도착. 탐방신청 및 문의는 서대문구청 공원녹지과(330-1395) ■ 인왕산 해발 338.2m. 화강암으로 이뤄져 암반이 유난히 노출된 것이 특징이다. 북악산이나 남산보다 산세가 웅장하고 풍치가 아름답다. 광복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던 산이었는데, 서울이 팽창하면서 중심부로 들어왔다. 인왕산에는 실제 사물과 닮은 기묘한 괴석들이 많다. 둥근 모자 모양의 모자바위, 돼지가 코를 들고 있는 듯한 돼지 바위 등이 유명하다. 산을 오르며 바위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탐방코스 사직공원에서 출발해 단군성전, 황학정, 쉼터, 약수터를 돌아온다. 바위산이라 중턱 이상에는 수목이 별로 없지만, 산등성이에는 때죽나무, 국수나무, 팥배나무, 소나무 등이 오밀조밀 들어차 있다. 쉼터에 앉아 각종 나무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야생 조수와 계곡생태계 등을 배운다. 코스는 총연장 2㎞로 2시간 정도 걸린다. 둘째 넷째주 일요일에 운영한다. ●주변 볼거리 국사당(서울시 중요민속자료 제28호)은 서울을 수호하는 신당으로 무학동 인왕산 기슭에 있다. 원래는 남산 정상에 있다가 1925년 현 위치로 이전됐다. 일본인들이 남산 기슭에 신사인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더 높은 곳에 국사당이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전을 강요당했다. 선바위(서울시 중요민속자료 제4호)는 인왕산 서쪽 기슭에 있는 두 개의 거석이다. 마치 중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 같다고 ‘선(禪)’자를 따서 선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 태조와 무학대사의 상이라거나, 이성계 부부의 상이라는 전설이 있다. 자식 없는 사람이 바위에 빌면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가는 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내려 사직공원까지 도보로 5분 걸린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종로구청 공원녹지관(731-1459). ■ 남산 해발 265m로 서울의 중심부에 자리한 서울의 상징이다. 본래 이름은 인경산이었으나 조선왕조 태조가 1394년 도읍지를 개성에서 서울로 옮긴 뒤 궁궐 남쪽에 있다고 해 자연스럽게 남산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풍수지리상 남주작, 안산에 해당하는 중요한 산으로 태조는 나라의 평안을 비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지금의 팔각정 자리에 국사당을 세웠다. 서울시가 1991년부터 ‘남산 제모습 가꾸기’사업을 실시하여 훼손된 시설물을 철거한 후 야외식물원, 한옥마을 등을 조성했다. ●탐방코스 남산전시관에서 출발하는 탐방코스는 볼거리가 풍성하다. 양생화단지, 팔도소나무림, 야외식물원, 숲속길, 서울성곽, 봉수대 등 숲속여행의 총 결정판이라 부를 만한다. 애국가 2절에 나오는 것처럼 ‘철갑을 두른 듯’ 소나무가 울창했던 곳이지만, 일제 시대와 광복 이후 크게 훼손돼 지금은 아까시나무와 신갈나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행히도 소나무 탐방로가 있어 아쉬움을 달랜다. 코스는 총 연장 4㎞로 3시간 정도 걸린다. 첫째 셋째 일요일, 둘째 넷째 토요일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변 볼거리 1975년에 설치된 서울 N타워(옛 남산타워)는 방송송신탑이다. 최근 리모델링을 끝내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안중근 의사의 유품과 유물이 전시된 안중근의사기념관(771-4195)과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몸으로 막은 충신들을 기리는 장충단비가 놓인 장충공원도 구경할 만하다. 남산골 한옥마을에는 물이 흐르는 골짜기에 정자를 짓고, 전통한옥 5채를 옮겨 놓아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가는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4호선 서울역·회현역에서 15분 걸어가면 전시관 뒤편 맨발보드 앞에 야외식물원이 나온다. 이곳이 집결지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남산공원관리사무소(753-7060∼2). ■ 개운산 ‘나라의 운명을 새롭게 열었다.’는 뜻을 담은 개운사라는 절이 있는 곳이어서 개운산이라고 부른다. 동쪽으로는 정릉천과 월곡산이, 서쪽으로는 성북천과 북악산이 뻗어 있다. 두 물줄기는 용두동에서 만나 청계천에 합류한다. 성북구 중심에 위치한 자연산지형 공원이어서 쾌적한 주거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탐방코스 “대화 없이 힘들게 하는 산행은 어린 두 딸에게 무리지만, 숲 해설가 선생님과 더불어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산책을 하듯 탐방을 마쳤습니다. 집에서 가까워 탐방 후에는 개운산을 둘러보며 휴일 오후를 보냈습니다.” 개운산을 다녀온 정옥씨 가족이 홈페이지에 남긴 글이다. 도심에 있어 수목이 울창하지 않지만, 산책로와 자연생태학습장이 잘 조성돼 있어 가족나들이에 제격이다. 때죽나무, 산딸나무, 국수나무 등 수목과 복수초, 비비추, 옥잠화 등 초화류를 자연학습장에 심어 놓았다. 산책로 주변에는 활엽수림과 침엽수림이 자리하고, 민들레, 제비꽃, 복수초 등이 자란다. 코스는 총 연장 1.5㎞로 약 3시간 소요된다. 첫째, 셋째 일요일에 탐방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주변 볼거리 서울성곽(사적 제10호)은 서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 석축 성곽. 높이 40척(12m)의 돌로 쌓았고 둘레가 5만 9500척으로 서울 장안을 지키던 울타리다. 돌 틈에 노송이 뿌리를 내리고, 이끼와 넝쿨이 뒤덮여 있어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성락원(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378호)은 조선 말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이던 것을 의친왕 이강이 별궁으로 사용하다가 그의 아들 이건이 살았다고 한다.6만여 평의 저택에는 소나무·참나무·다래나무·등나무 등 우리 고유의 조경수가 연못가와 산비탈에 우거져 있고 암벽과 폭포, 수석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는 길 지하철 4호선 길음역 2번출구에서 도보로 5분 걸으면 집결지인 개운초등학교를 만난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성북구청 공원녹지과 920-3395∼7. ■ 초안산 도봉구 창동, 노원구 월계동에 자리한다. 해발 114.1m로 아담하다. 이곳에는 1000여기에 달하는 조선시대 무덤이 밀집해 있다. 흔히 ‘내시묘’라 부르는데 실제로는 내시의 무덤와 더불어 단장이 잘된 이름 있는 문중의 선산도 있다. 조선시대 ‘공동묘지’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 전쟁 때 국군이 이곳에 ‘청동 저지선’을 치고 북한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여 지금도 당시의 방공호가 곳곳에 남아 있다. ●탐방코스 창골어린이공원에서 출발해 초안산 정상에 도착한 뒤 궁인 분묘군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주요 수종은 참나무류이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식생으로 보이지만 노박덩굴, 노린재, 누리장, 물푸레, 참싸리, 굴참, 산사, 산초, 오리, 단풍, 소나무, 상수리 등 다양한 수종이 자라고 있다. 생태육교에선 생태계의 파괴와 복원에 관한 설명이 이어져 자연보호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갖는다. 코스는 총 연장 2㎞로 소요시간은 약 2시간. 둘째·넷째주 일요일에 운영된다. ●주변 볼거리 초안산은 생태육교와 약수터 4곳, 배드민턴장 3곳, 인조잔디 축구장 1곳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방학사거리에 있는 방학사계광장에는 환경조형물과 분수 등 수경시설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조선시대 제10대 임금인 연산군(1476∼1506)과 왕비였던 거창군부인 신씨의 묘가 주변에 있다. ●가는 길 지하철 1호선 녹천역 2번 출구로 나와 주공 4단지쪽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창골어린이공원, 만남의 광장을 찾을 수 있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도봉구청 공원녹지과 2289-1396. ■ 아차산 해발 300m로 서울과 구리시에 걸쳐 있는 야트막한 산이다. 그러나 산 위에 서면 서울시를 둘러싼 모든 산과 시가지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특히 굽이치는 한강의 푸른 물과 강변의 풍광이 장관이다. 삼국시대 전략 요충지로, 특히 고구려 온달장군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학문적 고증과 상관없이 주민들은 온달장군이 신라에 빼앗긴 한강유역을 되찾고자 이곳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고 믿는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아차산에는 ‘온달샘’이란 약수터와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고 전해지는 지름 3m의 거대한 공기돌 바위가 있다. ●탐방코스 만남의 광장에서 출발해 생태공원, 소나무숲, 목본·초본식물 관찰대를 거쳐 아차산성에 도착하는 코스다. 총 연장 2㎞로 약 3시간 걸린다. 아차산은 화강암으로 이뤄져 주요 수종은 소나무다. 동부와 북부 산지에는 상수리나무가 많지만, 산의 높이가 낮아 다양한 나무의 경관보다는 아까시나무·물오리나무 등 인공림이 대부분이다. 대체로 멧비둘기·박새·붉은머리오목눈이·뻐꾸기 등이 관찰되고 천연기념물인 새매와 소쩍새도 볼 수 있다. 한여름 숲속에선 참매미의 울음소리가 귀청을 울린다. 첫째·셋째주 일요일 오전 10시 집결지에서 탐방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주변 볼거리 워커힐 호텔 뒤편에 자리한 아차산성(사적 제234호)은 백제의 유산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책계왕(286년) 때 쌓은 성으로 삼국시대에는 중요한 요새였다. 용마폭포공원에 자리한 용마폭포는 청룡폭과 백마폭포 등 세 갈래 폭포줄기로 구분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가는 길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 1번출구로 나와 광장중학교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만남의 광장과 만난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광진구청 공원녹지과(450-1395). ■ 봉화산 중랑구 상봉동, 중화동, 묵동, 신내동에 접해 있으며 일명 ‘봉우재’라고 불린다.1963년에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에서 서울시에 편입됐다. 봉화산이란 이름만으로도 봉화와 관련이 있는 지역임을 알 수 있다. 북쪽의 한이산(汗伊山)으로부터 연락을 받아 남산으로 전달하는 아차산봉수대가 있던 곳이다. 봉수대 모형은 1994년 11월7일에 설치됐다. 해발 160m로 평지에 돌출된 독립구릉지역이다. 동쪽에 아차산 주능선을 제외하고는 북쪽으로 불암산과 도봉산, 양주 일대까지 조망할 수 있다. 서쪽과 남쪽으로도 높은 산이 없어 한강 이남까지 보인다. ●탐방코스 중랑구청에서 출발해 소나무 숲을 지나 봉수대(서울시 기념물 제15호)에 오른다. 중랑구 전경을 조망한 뒤 참나무숲을 거쳐 초본류 관찰대로 돌아오는 코스다. 총연장 1.5㎞로 길이가 짧고 산이 높지 않아 산책로로 그만이다. 주요 수종은 소나무지만, 태릉중학교로 내려가는 길에는 잣나무 군락이 조성돼 있다. 팥배나무, 국수나무 관찰대가 있고, 박새, 직바구리, 어치 등 텃새가 서식한다. 첫째·셋째주 일요일에 탐방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주변 볼거리 아차산봉수대(서울시 기념물 제15호)는 조선시대 통신 시설이면서 군사 시설이다. 평시에는 횃불 한 번, 적이 나타나면 횃불 두 번, 적이 가까이 오면 횃불 세 번, 지경을 침범하면 횃불 네 번, 적과 접전하면 다섯 번의 횃불을 올렸다.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불을 올린다. 정상에서 약간 남쪽에 봉화산 도당인 산신각이 있다. 이곳은 400년 전에 주민들이 도당굿과 산신제를 지내던 곳이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 34호로 주민의 안녕과 결속을 위하고 대동의식을 고취시킨 마을 굿이다. 지금도 매년 음력 3월3일(삼월 삼짇날) 도당제를 지낸다. ●가는 길 지하철 1호선 신이문역이나 지하철 6호선 봉화산역에서 내려 지선버스 1223,2216번을 타고 중량구청 앞에 내린다. 구청 뒤 공원이 집결지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중랑구청 공원녹지과(490-3395). ■ 오패산 강북구 미아동과 번동, 성북구 장위동, 월곡동에 위치해 있다. 도심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자연이 잘 보존된 편이다. 일명 빡빡산·벽오산·매봉짜 등으로 불린다. 남북으로 뻗어 동쪽으로 속칭 공주릉과 드림랜드를, 남쪽으로 동덕여대를 품고 있다. 해발 123m 오패산과 115m 봉우리,135m 벽오산 봉우리로 이루어져 나지막한 구릉지 형태다. 산기슭에는 예부터 자두나무가 많이 자생해 봄이 되면 수려한 꽃이 만발한다. 특히 수정 등 보석이 많이 나오고, 맞은편 초안산은 명당이라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고려의 중신들이 자주 다녀갔단다. ●탐방코스 강북구민운동장을 출발해 제1코스,2코스로 나뉜다.1코스는 벌리약수터, 대왕참나무숲, 복자기나무길, 꽃샘길, 참나무숲을 거쳐 정자와 율곡놀이터로 이어진다.2코스는 벌리약수터에서 군수나무 군락지, 야생화단지, 기념식수지, 소나무숲을 거쳐 정자에 닿는다. 아까시나무, 소나무, 참나무류, 팥배나무, 산벚나무 등 중부지방 자연상태의 수림에다 자작나무, 잣나무, 산딸나무 등을 꾸준히 식재해 숲이 울창하다. 산이 낮아 계곡은 없지만, 약수터가 있어 탐방객들이 즐겨 이용한다. 첫째·셋째주 일요일에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주변 볼거리 1987년에 개장한 드림랜드는 수영장, 골프연습장과 같은 운동시설과 문화시설을 갖추고 있다. 구민운동장은 각종 체육·문화행사를 개최하는 장소. 지난 4월 조깅트랙을 설치했다. 강북문화정보센터는 지하1층, 지상 4층 규모로 2001년 5월에 문을 열었다. 열람실, 정보실, 시청각실, 문화교실 등을 개방한다. ●가는길 지하철 4호선 수유역 3번출구로 나와 마을버스 9번이나 11번을 타고 10분 정도 가다 집결지인 강북구민운동장에 내린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강북구청 공원녹지과(901-2386). ■ 수락산 북쪽으로 불암산과 연결되고, 노원구 상계동과 경기도 의정부시, 남양주시 별내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해발 637m로 높은 편이다. 수락산 능선의 암봉이 서울을 향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어 태조 이성계는 서울의 수호산이라 불렀다. ●탐방코스 임간휴게소에서 출발해 냇가와 향토꽃 전시장, 아까시나무숲, 명상의 숲, 숲속 길을 거쳐 바위 밑 샘터에 도착한다. 총 연장 3㎞로 다소 길다. 소요시간은 약 3시간. 향토꽃 전시장에서 야생화를 관찰하고, 꽃과 곤충의 관계를 살펴본다. 아까시나무 숲에선 흙 나무냄새 산림욕 보물찾기 등 숲속 체험거리가 가득하다. 숲속길이 나오면 청진기로 나무 소리를 듣고, 샘터에선 약수를 마신다. 대부분 돌산으로 화강암 암벽이 노출돼 있지만, 산세가 험하지 않다. 수락계곡과 노원골 일대 11㎞ 산책로는 산림욕하기에 좋은 곳이다. 둘째·넷째 일요일에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변 볼거리 수락산 유원지는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에 있는 계곡 일대로 웅장한 석벽과 기암괴석이 많고 계곡이 수려하다. 예로부터 시인, 묵객이 즐겨 찾았다. 노원구 상계동에서 남양주시 별내면으로 넘어가는 덕릉고개에는 경기도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된 선조의 생부 덕흥부원군의 묘, 일명 덕릉이 자리한다. 수락산 중턱 남쪽 기슭에는 박세당이 김시습의 명복을 빌기 위해 중창한 석림사가 있다. 그 옆에는 박세당의 묘소와 영정각이 있다. 김시습은 1455년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 수락산에 숨어들었다. 박세당은 숙종 때 정쟁에 혐오를 느껴 관직을 포기하고 이곳에 은둔해 농사를 지으며 제자를 길렀다. ●가는길 지하철 7호선 수락산역 2번출구로 나와 도보로 10분 걸어 집결지인 수락산 입구에 도착한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노원구청 공원녹지과(950-3896).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우리나라 최초·최고령 프로 마술사 이흥선 옹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우리나라 최초·최고령 프로 마술사 이흥선 옹

    올리버 스톤이 감독한 영화 ‘알렉산더’가 생각난다.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등 3개 대륙을 정복하고 최초로 동·서양 화합을 꿈꾸는 가장 위대한 정복자, 역사적 ‘대왕’의 위용을 그렸다.‘알렉산더’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25년 전 어느날.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극장식 레스토랑 ‘무랑루즈’. 동안(童顔)의 한 50대 남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 위에 올랐다. 주위는 순간 침묵으로 변했다. 잠시 후 그가 쓴 모자에서 비둘기가 튀어나오더니 하늘로 계속 날아오른다. 이어 입안에서 하얀 종이를 내뱉더니 곧 국수가락으로 변해버린다. 또 객석으로 내던져진 낚싯줄마다 금붕어가 연이어 딸려나온다. 기립박수는 그칠 줄 몰랐다. 이를 지켜보던 ‘눈물젖은 두만강’의 김정구씨는 놀라 벌어진 입을 억지로 다물며 “당신은 대왕이오, 대왕.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처럼 말이오.”라고 했다. 이후 이 남자는 ‘알렉산더 리’로 통했다. 그랬다. 마술계의 대왕, 살아있는 마술의 전설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 마술사이며 현역 최고령 마술가이기도 하다.‘알렉산더 리’, 대중들에겐 이흥선(83)씨로 잘 알려져 있다.26세에 마술계에 입문했으니 말 그대로 60년 성상을 ‘마술 인생’이라는 파란만장하고 독특한 삶을 살아왔다. 더욱 흥미있는 것은 원래 선수급 수준의 기계체조를 했다는 사실. 서울 용산에서 출생한 그는 어릴 적부터 철봉에 매달리고 있어야 더 행복해질 정도였다. 이후 체조, 물구나무서기, 고난도의 텀블링 등을 척척 해냈다. 나중에는 차력까지 배웠다.‘근육짱’으로 소문났음은 당연했다. ●새달 부산 국제매직페스티벌 심사위원 그래서 일제 때 유명했던 신광·동양·대륙서커스단에서 앞다투어 데려가 청년시절부터 전국을 돌며 유랑생활을 하게 된다. 가설극장에서 고 서영춘씨와 배삼룡씨 등 여러 희극인들과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감동의 공연도 자주 펼쳤다. 서커스와 마술, 만담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이씨는 가는 곳마다 ‘인기짱’이었다. 춥고 배고팠던 암울했던 시절의 온갖 시름을 잊게 해줬다. 세월이 지난 요즘, 어느 정도 쉴 법도 한데 아니다. 팔순 중반의 나이를 무색케 할 정도로 여전히 정열을 쏟아낸다. 노인들과 불우이웃이 있는 곳, 어디든 달려가 흥미진진한 마술로 즐거움을 선사한다. 또 해마다 어린이날이면 마술공연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전해준다. 지난해에는 일본에 초청돼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은 기발한 마술연기로 기립박수를 받았다. 어디 이뿐이랴. 김정우와 최현우 등 차세대 마술사들을 키워내는 것도 중요하게 여긴다.‘앉으나 서나 마술생각’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작은 성냥갑 하나라도 그의 손이 닿는 순간 척척 마술도구로 변해버려 ‘요술손’이라는 별명 또한 여전하다. 오는 8월에는 특별한 무대를 갖는다.10일부터 5일 동안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매직페스티벌에서 심사위원을 맡은 것. 아울러 여기에서 신인 마술가들을 위한 무대, 즉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새로운 마술로 한 수 지도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그의 손에서 개발된 마술만 어림잡아 2000가지가 넘는다. 이래저래 응용된 것까지 합하면 1만여가지나 된다. 이같은 마술인생의 흔적은 그의 집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비둘기 15마리가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온갖 마술도구가 구석구석 널려 있어 흡사 ‘매직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지금까지 1만여가지 개발… 김정우·최현우씨 등 조련 지난주 서울 홍익대 근처의 ‘알렉산더 매직바’에서 이씨를 만났다.‘알렉선더 리’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지었다. 이씨는 이곳에 자주 들러 팬들에게 서비스차원에서 간단한 마술을 선보이곤 한다. 먼저 근황을 물었다.“가만히 있을 수 있나. 이것저것 마술기계를 만드느라 끝이 없지 뭐.”라고 했다. 옆에 있던 마술감독이자 이씨의 매니저인 김준오씨는 “제자들이 사용하다 망가진 마술도구를 고쳐주기도 해요.”라고 거들었다. 80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게 보인다고 하자 “근심 걱정 없어요. 밤낮 그저 웃고 명랑하게 지내지 뭐. 그게 건강비결이요.”라고 하며 연신 웃는다. 이씨는 26세에 마술을 처음 접했다. 서커스단 일로 평소 알고 지내던 타이완의 마술사 ‘미스터 엑스’가 하루는 다급하게 찾아왔다. 숙소에서 잠을 자던 중 누가 돈을 훔쳐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는 것. 딱하게 여긴 이씨는 미스터 엑스를 자신의 집에서 잠시 동안 지내게 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미스터 엑스가 이씨에게 “차력이나 체조는 나이가 들면 못합니다. 그러니 나이 먹고도 할 수 있는 마술을 배우십시오.”라고 하면서 마술을 가르쳐준다. 비둘기 날리는 것 등 몇 가지 기술을 전수받은 이씨는 자료 등을 열심히 뒤져가며 여러 가지 응용기술을 터득했다. “당시 마술을 가끔씩 하는 사람이 있긴 했어요. 간단한 소품정도였지요. 하지만 비둘기가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입에서 불이 뿜어나오고, 또 사람이 공중에 붕붕 뜨니까 무척 좋아했어요. 또 깡통에서 담배 꺼내기, 종이를 찢어 국수가락 만들기 등을 막 했지요.” 6·25전쟁 때에는 마술 덕분에 생명을 건지기도 했다. 피란길 무주경찰서에서 잠시 지낼 때 갑자기 인민군의 공격을 받게 됐다. 그런데 경찰관은 불과 5∼6명밖에 없었다. 이씨는 경찰서에 있는 모자랑 옷가지를 다 모아놓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마술을 부리며 수십명이 있는 것처럼 위장했다. 그랬더니 인민군들은 경찰관 숫자가 많은 것으로 착각해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씨는 해방 전 유랑극단과 함께 평안도와 함경도까지 공연을 한 경험이 있어 인민군들과 맞닥뜨리면 이를 내세워 죽을 고비에서 살아남곤 했다. ●“한번 사용한 마술은 두번 다시 안해” 전쟁이 끝나면서 이씨는 본격적인 마술사의 인생을 걷는다. 때마침 가수 김정구씨, 한복남씨 등과 극단이나 호텔에서 공연을 자주 하게 된다. 그때마다 연예인들은 이씨의 마술솜씨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는 방송 출연을 자주하는 데 도움이 됐고 유일한 프로 마술사로 독주하게 된다. 하룻밤 사이에 많게는 열군데씩 밤무대를 누볐고 일주일에 1∼2회 고정 출연하는 TV마술쇼를 맡기도 했다. 빈손에서 비둘기 10여마리가 나오고 네모난 도구속에 사람을 집어넣어 부분절단하는 아찔한 장면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씨는 특히 80년대초 외손자 김정우와 함께 변웅전씨가 진행하는 ‘TV 묘기 대행진’에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현재 김정우는 최현우와 함께 이씨의 뒤를 잇는 대표적 수제자로서 활약하고 있다. 이씨의 마술철학은 한번 사용한 마술은 두번 이상 하지 않는다는 것. 항상 새로운 것을 선보여야 한다는 고집으로 일관했다. 롯데월드에서 7,8년 동안 최장수 고정 출연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덕분이다. 늘 웃음을 잃지 않는 노(老) 마술사에게 즉석 묘기를 주문했다. 사진촬영을 위해 흔쾌히 의상까지 갈아입는다. 잠시 손으로 뭔가 만지작 하더니 눈깜짝할 사이에 모자 속에서 비둘기 한마리가 푸드득 날아간다. 방안을 한바퀴 휘 돌더니 이내 이씨의 어깨에 사뿐이 앉는 비둘기. 그에게 있어서 마술은 인생의 전부였음이 느껴진다. 평생을 거의 마술에 바쳤고 전쟁통에는 마술로 목숨을 건졌다. 요즘에는 우리나라 마술발전을 위해 잠시도 쉬지 않는다. 문득 마술이란 무엇인지 물었다.“뭐니뭐니 해도 잡념을 없애주지요. 사람이 잡념이 없으면 즐겁잖아요. 마술은 아이디어와 노력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에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선사해요.IQ도 높여주고….” 또 마술기계를 만드는 데 중요한 것은 재료가 아니라 창의력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이씨는 “벙어리학교나, 눈감은 맹인 앞에서도 마술공연을 여러번 했는데 그때마다 박수소리가 요란했다.”며 크게 웃는다. 주말매거진 We팀장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4년 서울 용산 출생. ▲40년 근민체육단 결성. 이후 신광·천마·금강·대륙·동양·동춘서커스단 공연. ▲49년 마술계 입문. 비둘기 마술을 국내 처음 선보임. 이후 기계체조와 마술, 만담 등으로 매년 전국 순회공연. ▲64년 TBC방송 개국기념 마술쇼 출연. 이후 ‘묘기 대행진’ ‘희한한 세상’ 등 TV 마술프로그램 단골출연. ▲80년 ‘알렉산더 리’라는 별명을 얻음. ▲96년 서울에 최초의 마술 상설공연장 ‘알렉산더 매직바’ 개설. ▲2001∼05년 대한민국 매직페스티벌 심사위원 및 특별출연. ▲04년 한국마술협회 공로상 수상 ▲05년 서울랜드마술대회 심사위원, 일본 특별 초청공연 참가. ▲06년 5월 서울국제매직페스티벌 초청공연 참가. ▲기타 지금까지 주특기만 2000여가지 개발.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7) 택일적 사고와 이중적 사고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7) 택일적 사고와 이중적 사고

    사회생활을 통하지 않고서는 인간되는 길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사회생활에서 인간은 온갖 괴로움을 경험한다. 그래서 옛날부터 철학사상은 이 사회생활을 큰 화두로서 취급했다. 예컨대 순자 사상은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군서생활을 하듯이 생존을 위한 사회적 규칙준수의 법을 지능적으로 잘 본받으면, 사회생활의 악인 혼란을 방지할 수 있다고 여겼다. 순자는 사회성원에게 생물학적 생존을 가능케 하는 것이 최우선적 정치의 목적이라 여겼다. 그러나 맹자 사상은 이와 전혀 다르다. 사회생활에서 이기심이 모든 악의 진원지이므로 저 이기심을 도덕심으로 바꾸면, 인간은 양질의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순자의 철학은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홉스의 현실주의 사상과 유사하고, 맹자의 철학은 18세기 프랑스의 루소의 이상주의 사상과 이웃하고 있다. 이기심을 다소 인정하는 현실주의든 이기심을 부정하는 이상주의든 다 행복한 사회생활의 창조방식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좋은 사회생활의 창조를 위한 철학사상은 역사 속에서 구체화된다. 로마사에 정통한 20세기 프랑스의 역사가인 폴 벤은 그의 저술 ‘역사를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에서 현실주의적 사회철학의 경향을 ‘백성을 양떼로서’(people as flock) 생각하는 사고와 연계시키고, 이상주의적 사회철학의 경향을 ‘백성을 어린이로서’(people as child) 생각하는 사고와 유관하다고 분류했다.‘백성을 양떼로서’ 생각하는 현실주의적 정치의 유형은 백성을 배불리 먹이며 포식자로부터 양떼를 잘 지켜주는 것을 으뜸의 사명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거기에 반하여 ‘백성을 어린이로서’ 생각하는 이상주의의 정치는 아버지의 심정처럼 자식이 부도덕한 일에 탐닉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건전하게 키우는 것에 일차적 관심을 집중시킨다는 것이다. 로마정치가 원로원 중심일 때에 전자가, 황제 중심일 때에 후자가 각각 유행했다는 것이다. 물론 저 두 정치이념의 성향은 강조점의 상대적 비교우위를 말하는 것이지, 흑백 논리처럼 단순한 유무의 문제가 아니겠다. 나는 로마사에 근거한 저 두 유형의 정치 스타일이 모든 역사에 거의 다 적용될 수 있는 이념형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저 두 유형의 어느 쪽이 실질적 사회생활의 질적 향상에 기여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 위함이 아니다. 이 글은 저 두 유형이 공통적으로 하나의 큰 한계에 직면해 있음을 말하고, 제삼의 길이 무엇인가를 모색하기 위함이다. 그 공통의 한계가 택일적 사고방식을 사회철학의 기본논리로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주의는 늘 이/해(利/害)의 대립에서 전자를, 이상주의는 늘 선/악(善/惡)의 대결에서 역시 전자를 선택하도록 종용하고 있다. 현실주의는 경제주의고, 이상주의는 도덕주의다. 이기적인 경제와 반이기적 도덕은 서로 궁합이 잘 맞지 않아 상충적이지만, 다 지성(지능의 철학적 표현)의 분별력 위에 공통적으로 서 있다. 경제적 이익은 나에게 좋은 것이고, 도덕적 선은 내가 속한 사회에 좋은 것이다. 칸트가 밝힌 사회생활의 본질로서의 ‘비사교적 사교성’(26회 글)에서 비사교성은 경제적 이익과 연관되고, 사교성은 도덕적 선과 직결된다. 인간의 사회생활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경제와 도덕의 양자간 우선택일의 문제의식으로 일관되어 왔었다. 순자의 철학은 경제우선의 사상이고 벤이 본 ‘양떼로서의 백성’을 생각하는 정치이념과 상통하고, 맹자의 철학은 도덕우선의 사상이고 벤이 본 ‘어린이로서의 백성’의 이념을 연상시킨다. 전자는 나에게 좋은 것이고, 후자는 사회에 좋은 것이다. 다 좋은 것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맹자의 사상은 좀 애매한 데가 있다. 그는 이기적 이(利)와 도덕적 선(善)을 각각 다른 것처럼 분리시키기도 하였고, 그 둘을 다 좋은 것(好)으로 수렴시키기도 하였다. 이런 맹자의 모호한 입장은 이유가 있다. 분리의 이유는 이기심과 사회성의 차이를 강조하는 뜻이고, 둘 다 좋은 것으로 수렴되는 것은 이익이든 선이든 다 인간에게 ‘좋은 것’이라는 점에서 상통하기 때문이다.‘좋다’(好=good)라는 말은 경제적 실용이나 도덕적 선에 다 적용된다. 경제적이든 도덕적이든 좋은 것은 분별심의 작용에 기인한다. 나의 지성이 분별하고 판단하여 좋은 것을 선택하고 나쁜 것을 배제하는 택일의 논리를 다 공통으로 지닌다. 지성은 분별과 택일의 논리다. 그런데 인류역사가 그동안 몸바쳐 왔던 이 분별과 택일의 논리가 세상을 다 평안하게 하고 구원해 주는 희망의 사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적 이익의 분별이 사회생활에 갈등을 빚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얼음장수와 우산장수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익세계의 본질이다. 도덕적 선은 이와 달리 사회적 일치의 화음을 낳는 것으로 그동안 인류는 착각해 왔다. 늘 이상주의가 그 공상적 경향에도 불구하고 현실주의에 비하여 명분적 우위를 뽐내면서 잘난 체해 왔다. 그러나 도덕적 인(仁)의 가치는 보통 좋으나, 전쟁과 같은 비상상황에서는 어리석음으로 바뀌어 작전의 패배를 낳고, 의(義)의 가치는 원칙으로 좋으나, 깡패집단의 의리로 변하고, 직(直)의 가치도 정직하다는 점에서 옳으나, 너무 예리한 칼날처럼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주위를 숨막히게 하며, 용기의 가치는 위험을 무릅쓰고 선을 집행하는 가치나, 그 이면에 늘 거칠고 난폭한 폭력을 안고 있다. 이차대전시 중죄인의 집단으로 구성된 미 육군특공대의 혁혁한 전공의 실화는 용기의 이중성을 잘 그려준다. 사회를 떠나서 인간의 존재방식은 불가능하고, 사회생활 안에서 늘 무수한 이해관계와 도덕가치관의 갈등으로 인간은 괴롭다. 또 인간은 경제가 망가지고 도덕이 타락하면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도 없다. 어떻게 경제와 도덕이 다 건강하면서 인간이 사회적으로 괴로움을 덜 받고 살 수 있겠는가? 나는 여기서 원효가 사유한 길을 다시 음미한다. 그의 사유는 철학적으로 이중부정과 이중긍정의 길을 현시한다. 이것은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택일의 사유가 지니는 분별적 지성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택일적 경제주의는 이기적 아집을 낳고, 택일적 도덕주의는 위선적 법집을 낳는다. 위선적 법집은 순수선이 사회적으로 불가능한데, 도덕주의가 순수선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 위선적이라는 것이다. 그 주장이 사회를 행복하게 하는 절대적 진리라고 우기는 고집이 결국 법집을 낳고, 그 법집은 아집보다 훨씬 더 고약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의와 진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기심과 다른 대의명분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아집과 법집을 탈출하는 길로서 이중긍정의 사유를 원효가 제시한다. 얼음장수와 우산장수의 손익을 아주 다른 별개의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익과 손해는 좋고 흐린 날씨처럼 교대한다는 것이다. 영원히 지속되는 이익과 손해는 없으므로 이중긍정의 차원에서 내가 웃을 때에 늘 우는 사람이 동시에 이웃에 있다는 것을 배려하는 마음의 여유를 원효는 설파한다. 이익의 이면에 손해가 엎드리고 있고, 손해가 이익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이중긍정의 사고가 세상의 사실임을 자각케 한다. 도덕도 마찬가지다. 노자가 언명한 바와 같이 ‘선은 불선의 스승이고, 불선도 선의 자산’이라는 말을 원효는 동의한다. 선이 불선의 스승이라는 말은 쉽게 알 수 있는데, 불선이 어떻게 선의 자산이 되나? 그것은 불선이 선을 증장(增長)시킨다는 의미겠다. 불선이 선의 바깥에 별개의 독립적 실체로 실존하는 것이 아니고, 선의 이면에 은닉되어 있기에 불선은 선의 배설물과 같은 셈이다. 모든 선이 불선을 머금고 있으므로 선은 오만 방자해지거나 독선의 아만을 띠지 않게 된다. 자기의 선행이 절대적이 아니라 불선의 역기능을 이미 세상에 뿌렸는데, 절대선을 사회에 심어놓은 것처럼 위선자들이 설친다. 그래서 노자는 불선이 선의 자산이라고 언급했겠다. 원효는 노자처럼 선/악으로 명칭을 대립화하는 것이 아니라, 선/불선, 악/불악의 이중성처럼 상관적으로 세상보기를 종용한다. 그 양면성이 곧 상관적 차이(pertinent difference)로서 차연(差延=differance)(26회 글)이다. 차연은 차이(差異)와 연기(延期)의 인조적 합성어인데, 차이가 변증법적 모순의 관계가 아니고 상보적으로 상대방의 것이 자기에게 연기되어서 서로 이중적 잡종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는 현대 해체철학의 용어다. 이런 이중긍정이 사실상 성립되기 위하여 원효는 먼저 이중부정의 사고방식이 선결적으로 요구된다고 말한다. 이중긍정은 세상의 사실을 보는 방식이고, 이중부정은 그 이중긍정이 이원성(duality)으로 빠지지 않고 이중성(duplicity)으로 인식되게 한다. 선/불선, 악/불악의 이중성은 각 변이 자기 동일성을 지니는 고정적 실체가 아니라, 서로 상대방이 있기에 자기도 성립하므로 각각은 다 상대방의 흔적에 불과한 셈이다. 도장의 양각과 음각의 양면성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되리라.(26회 글) 그러므로 양각과 음각은 다 그 자체 자기 것이 없는 공(空)이다. 모든 색(色=물질)의 이중긍정적 구조(善/不善)는 자기 것이 없는 이중부정(非善/非不善)의 공과 같다.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생활이 괴로움의 연속이므로 그 괴로움의 연속에서 탈피하면서 경제와 도덕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길은 세상사를 이중긍정적인 포괄법으로 읽는 길이라고 원효가 갈파했다. 포괄법은 세상사를 호/오와 선/악의 택일법으로 보지 말기를 종용한다. 그래야만 인간이 시건방지게 세상을 보면서 자기 것은 절대적으로 옳고 다른 것은 절대적으로 악마적이라고 여기지 않게 된다. 그런 이중성의 긍정이 가능하기 위하여 원효는 이중부정의 초탈법을 또한 익힐 것을 종용한다. 초탈법은 세상사의 일체가 다 인연법에서 생긴 환영(幻影)이므로 이익과 선 앞에서 좋아 흥분하지 말고, 손해와 불선 앞에서 좌절하지 말 것을 제의한다. 초탈법은 허무주의나 염세주의의 사상이 아니다. 사회생활의 기준이 지성이면, 인간은 호/오의 선택에 갇힌다. 철학의 종말은 지성의 종말과 같다. 과학에 지성을 맡기고, 철학은 세상사가 다 환영임을 깨닫게 하면서 영성의 길을 떠나려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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