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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北에 비료 20만t 지원… 식량원조 재개할 듯”

    “中, 北에 비료 20만t 지원… 식량원조 재개할 듯”

    중국이 최근 북한에 대량의 비료를 지원한 데 이어 식량 원조도 곧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유엔 대북 제재에 따른 북한 계좌 폐쇄 등 금융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채찍과 당근’ 정책을 병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15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복수의 북한 내부 소식통은 중국 당국이 이미 지난달 말쯤 북한에 20만t 이상으로 추산되는 비료를 무상으로 지원했으며, 조만간 많은 양의 식량 지원도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함경북도 농업부문 관계자는 “협동농장들에 분배되는 비료량으로 추산해 보면 중국 정부가 대략 20만t 이상 지원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양강도 농업부문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6월 10일쯤 중국산 비료가 공급됐고 초기 물량도 각 협동농장에 10t씩 분배될 정도로 적었다”며 “올해는 4월 26일부터 비료 공급이 시작돼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비료 지원은 신의주 세관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평안북도 무역부문 관계자는 “중국이 곧 많은 양의 식량을 지원할 것으로 알고 있다”며 “평양 당국이 ‘2호 창고’의 식량을 풀어 주민들에게 공급하고 있는 것도 중국의 식량 지원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양강도 소식통은 중국의 대북 제재 결의 동참에도 불구하고 “삼지연군 쌍두봉에 새롭게 세관이 개설되는 등 북·중 간 무역이 크게 늘었다”며 “압록강을 통한 양국 간 밀수도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글린 데이비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이날 중국에서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한반도사무 특별대표와 회담한 뒤 기자들과 만나 “미국과 중국은 북한에 관해 외교적 진전이 있으려면 한반도 비핵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의 비핵화를 압박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 계획에 대한 의견 접근을 이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北 긴장완화 모색?… 김정은, 軍활동 줄이고 경제 주력

    지난 3월 최전방 군 부대를 잇달아 시찰하며 한반도 긴장을 한껏 고조시켰던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최근 군 관련 활동을 대폭 줄이고 경제분야에 주력하는 등 달라진 행보를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본격적인 영농철을 맞아 올해 신년사에서도 밝혔던 농업·경공업 중심의 경제건설을 위해 냉각기를 갖는 모습이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 기류를 감안해 대결국면에서 긴장완화 국면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북한의 달라진 기류는 김 제1위원장의 현지 시찰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남북 간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지난 3월 군 관련 활동 횟수는 모두 11회에 달했으나 4월에는 인민군 창건 81주년 기념행사(25일) 참석밖에 없었다. 한·미 연합 독수리 연습 종료에 즈음해서는 지난달 27일 부인 리설주와 군 간부를 대동하고 개업을 앞둔 주민종합편의시설 해당화관을 방문하는가 하면 29일에는 축구경기를 관람하기도 했다. 한동안 활동이 뜸했던 북한의 ‘경제·중국통’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도 김 제1위원장의 옆자리를 지켰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군 간부들이 인민군복을 입고 경제시찰에까지 동행한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라며 “북한 지도부가 앞으로 인민생활 향상에 더 큰 힘을 기울이겠다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북한 노동신문 등 관영매체들의 경제 관련 기사량도 지난달 26일부터 현저하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경제에 집중하면서 긴장 국면에 다소 숨통이 트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일로 정확히 취임 한 달을 맞은 북한의 대표적인 ‘경제통’ 박봉주 내각총리의 경제관련 행보도 부쩍 늘었다. 그는 지난달 23일 중앙과학기술축전에 참석한 데 이어 29일에는 평안남도 순천 청년탄광연합기업소를 찾아 생산 실태를 점검했다. 또 조선중앙통신은 23일자로 박 총리가 황해남도 해주시의 협동농장 등을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중앙과학기술축전 관련 기사에서 “올해 축전 개막식에 박 총리가 참석한 사실은 조선이 경제강국 건설에서 과학기술발전을 특별히 중시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본격적인 영농철이 시작되면 아직 시작단계인 박 총리의 경제개혁 조치들이 서서히 표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노동신문이 1일 노동절을 맞아 ‘정밀화, 소형화된 핵무기’를 언급하며 군수공업부문 근로자들의 분발을 독려했다는 점에서 대외적으로 긴장 수위를 유지하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희망 나누는 기업] 신한금융그룹 - 벽화그리기 대표적 봉사프로그램

    [희망 나누는 기업] 신한금융그룹 - 벽화그리기 대표적 봉사프로그램

    신한금융그룹은 ‘벽화 그리기’를 통해 사회공헌활동에 나서고 있다. 한동우 회장을 비롯한 12개 그룹사 대표들은 지난 17일 정신질환 장애우들에게 심리 재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서울 은평구 구산동의 서울시립 은혜로운 집에서 벽화 그리기 봉사활동을 했다. 이날의 주제는 ‘평안과 따뜻함’. 나무와 풀로 가득찬 벽화가 완성되자 장애우 생활시설은 따뜻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신한금융은 장애우들이 일하는 작업장의 환경 개선을 위해 책상 등 물품 구입에 사용될 후원금도 전달했다. ‘따뜻한 금융’을 표방하는 신한금융그룹의 봉사활동은 올해로 6년째다. 특히 벽화 그리기는 2만 2000여명의 임직원과 직원 가족이 참여하는 그룹의 대표적 봉사활동이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전쟁 겪은 노인 위해” 88세 재일교포, 29억 기부

    “젊은 시절 어쩔 수 없이 일본인으로 귀화했지만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일제와 6·25전쟁 등 동시대 아픔을 겪은 또래 노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재일교포 학자인 A(88)씨가 지난 22일 한국의 저소득층 독거노인을 위해 써 달라며 245만 호주달러(약 29억원)의 기부금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A씨가 평생 연구를 통해 모은 돈 중 일부인 이 돈은 지금까지 개인이 익명으로 공동모금회에 낸 기부금 중 최대 액수다. 그는 기부금을 내며 익명을 요구했다고 모금회 측은 전했다. 1925년 평안북도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A씨는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던 중 해방으로 남북이 갈라지면서 북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끊겼다. A씨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제국대학 의학부에 입학했고 이후 오사카 대학병원에서 정형외과 전문의로 5년간 근무한 뒤 의학을 연구하는 학자로 평생을 살아왔다. 세계적 권위의 과학학술지인 ‘네이처’에 3건의 논문을 싣고 연구로 얻은 특허권을 팔아 재산도 상당히 모았다. 공동모금회는 A씨의 기부금을 3년간 저소득층 독거노인의 식사를 지원하는 데 사용할 계획이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부잣집 똥을 훔치면 부자 된다는 말 듣고 칠석이와 팔석이는 정말 똥을 훔치는데…

    부잣집 똥을 훔치면 부자 된다는 말 듣고 칠석이와 팔석이는 정말 똥을 훔치는데…

    어수룩하지만 마음만은 순수한 칠석이와 팔석이. “얼마 전 산골짜기의 논을 산 아랫마을 삼돌이가 최 부자네 똥을 훔쳐 부자가 됐다”는 말에 귀가 솔깃한다. 두 아이는 최 부자네 담을 기웃거린다. 칠석이는 팔석이의 목말을 타고 순식간에 담을 넘는다. 최 부자네 마당에는 똥이 산처럼 쌓여 있다. 똥을 훔친 칠석이와 팔석이는 마주 보며 헤벌쭉 웃는다.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똥 항아리를 보듬고 달리기 시작한다. 똥 항아리를 안방 아랫목에 고이 모셔 둔다. 하지만 부자가 되기는커녕 점점 구려지는 냄새 때문에 죽을 지경이다. 급기야 똥은 삭아 걸쭉해져 부글거리기까지 한다. 고약한 똥 냄새는 널리 퍼지고, 두 아이는 망신만 당한다. 그제야 칠석이와 팔석이는 ‘똥 도둑질’의 진짜 의미를 깨닫게 된다. 똥은 가만히 모셔 두는 게 아니라 밭에 거름으로 뿌려 주어야 비로소 구실을 한다는 사실이다. ‘똥 도둑질’(휴먼어린이 펴냄)은 정월 초하룻날 첫 닭이 울 때 부잣집의 똥을 훔치는 평안북도 강계 지방의 옛 풍속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부잣집 똥을 훔치면 한 해 운수가 잘 풀리고 부자가 된다는 의미였다. 순박하기만 한 칠석이와 팔석이는 왜 조상이 설날 꼭두새벽부터, 하필이면 더럽고 냄새 나는 똥을 훔치는지 잘 알지 못했다. 농사를 지어 먹고살던 조상에게 똥은 돈만큼이나 꼭 필요한 자산이었다. 똥 한 덩어리도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가짐이 그 사람을 부자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른 새벽에 도둑질해야 한다는 데는 일찍 일어나는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가르침이 담겨 있었다. 이 책은 두 아이가 똥 도둑질에 얽힌 조상의 지혜를 깨우치는 과정을 정란희 작가의 맛깔스러운 문장과 홍영우 화백의 익살스러운 그림으로 잘 표현했다. 공부나 운동, 그림 그리기를 잘하기 위해서도 성실하고 근면한 삶의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았다. 책 속의 마을 어른들은 도둑질을 하다 어처구니없이 들켜버린 칠석이와 팔석이를 야단치지 않는다. 아이들도 땅에 거름을 뿌리며 들판을 즐거운 노랫소리로 채운다. 그 순간만큼은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된 듯하다. 작가는 “‘똥 도둑질’은 일종의 놀이였다”며 “아이들이 흥미롭게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만 2000원.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사설] 한반도 비핵화 새로운 틀과 접근 필요하다

    북한이 어제 원자력총국 대변인 발표를 통해 평안북도 영변을 비롯해 북한 전역에 산재한 원자로를 재가동한다고 선언했다. 2007년 10월 3일 북핵 6자회담에서 합의된 북의 핵 시설 동결조치를 파기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제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핵 무력 증강을 당의 새로운 노선으로 채택해 고 김일성 주석의 유훈인 한반도 비핵화를 공식적으로 폐기한 데 이어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조치를 내놓은 셈이다. 흑연감속로 재가동은 곧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추출을 의미한다. 물론 그동안 북한이 10·3 6자 합의를 올곧이 준수해 온 것은 아니다. 북한은 이미 10·3 합의에 따른 국제사회의 에너지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며 2008년 9월 원자로 폐쇄 봉인을 해제하고는 두 달 뒤 사용후 연료봉 8000개를 재처리했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6자회담 참가국을 비롯해 국제사회 누구도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일방적 주장’으로 간주돼 왔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원자로 재가동을 천명한 것은 비밀리에 진행해 오던 핵 개발을 이제 더 이상 국제사회의 눈치를 볼 것 없이 하겠다는 선언이다. 핵 전력을 공개리에 증강시키겠다는 선언이자 북핵 6자회담의 틀을 실질적으로 파기한다는 선언이다. 1993년 북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이후 지난 2월 3차 핵실험까지 20년 간 위협-지원-합의-파기가 순환돼 온 북핵의 궤적을 보면 그들의 핵 개발이 대미 협상용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며 이제 목표 달성에 거의 다가섰다고 보는 것이 실체에 부합하는 인식일 것이다. 앞으로 더욱 위협 수위가 고조될 것이 뻔한 북핵 앞에서 이제 한반도 비핵화 구상의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정비를 생각할 때가 됐다고 본다. 한반도 비핵화 자체는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겠으나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과 전술은 새롭게 짜야 한다. 무엇보다 현실이 된 북핵을 어떻게 간주하고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대내외, 특히 미국·중국과의 공감대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을 움직이려면 결국 중국이 움직여야 하고, 그러려면 무엇보다 아시아 패권을 다투는 미국과 중국이 적어도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만은 남북 통일 이후까지를 겨냥한 지속가능한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이미 껍데기만 남은 6자회담을 대체할 새로운 북핵 논의 틀도 이런 바탕 위에서만이 가능할 것이다. 쉽지 않은 과제이나, 박근혜 정부로서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두 나라에 대한 치밀한 외교적 접근이 요구된다. 우리의 핵 안보 태세도 원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핵 공격에 대한 선제타격 전력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나 핵우산 전력 강화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안보전략을 강구해야 한다.
  • [씨줄날줄] 푸에블로호 신경전/임태순 논설위원

    미국과 북한이 푸에블로호 반환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콜로라도 주 하원은 최근 푸에블로호가 나포된 1월 23일을 ‘푸에블로호의 날’로 지정하고 결의안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존 베이너 연방하원 의장에게 전달했다. 콜로라도 주 의회가 푸에블로호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배의 이름을 주 내에 있는 도시 ‘푸에블로’에서 따왔기 때문이다.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는 1968년 일본을 출항, 원산항 공해상을 항해하다 영해 침범혐의로 북한군에 의해 나포됐다. 이른바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이다. 무장공비들이 청와대를 습격하려 한 ‘1·21사태’ 이틀 뒤 발생했으니 당시 북한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을 것이다. 미국은 28차례 비밀협상 끝에 그해 12월 23일 판문점을 통해 80여명의 선원들을 돌려받았으나 영해 침범사실을 인정하고 사과까지 했으니 국제적으로 톡톡히 망신을 당한 셈이다. 푸에블로호 사건은 북한에서 구한말 발생한 제너럴 셔먼호 사건과 함께 반미항쟁의 기념비적 사건으로 대대적으로 선전되고 있다. 미국 상선 셔먼호가 1866년 대동강에 나타나 통상을 요구하며 관군과 주민들에게 횡포를 부리다 격침된 게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다. 한국사에서는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가 주민들과 함께 셔먼호를 공격했다고 되어 있지만 북한 역사책에는 김일성 주석의 증조할아버지 김응우가 셔먼호를 불태웠다고 기록돼 있다. 사건 발생 100주년인 1966년에는 역사의 현장인 대동강변 쑥섬에 격침비를 세우기까지 했다. 아버지 김일성이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푸에블로호까지 나포했으니 김정일로선 가문을 빛내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선전 소재도 없었을 것이다. 김정일은 지시를 내려 1999년 원산에 있던 푸에블로호를 대동강으로 옮겨 주민들이 관람케 했다. 큰 함정을 어떻게 옮겼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해상으로 운송하려면 남해로 우회해야 해 미국의 감시 눈길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해해서 육로로 수송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지만 정보함이어서 분해, 조립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콜로라도 주 의회는 지난해에는 북한 측에 푸에블로호의 반환을 촉구했다. 북한은 이에 대해 “우리는 백만년이 지나도 반환하지 않을 것이며 돌려받고 싶으면 직접 와서 가져가라”는 답신을 보냈다. 핵 개발로 남북은 물론 북·미 관계도 점점 경색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북한이 대미 투쟁의 전리품인 푸에블로호를 쉽게 돌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푸에블로호의 반환은 북한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힘 커진 軍 강경파 독주 차단… 강력한 ‘1인 리더십’ 구축 의도”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22일부터 사흘째 군부대를 시찰하는 등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배경이 주목된다. 김 제1위원장은 지난 22~23일 유사시 서울 침투 등 후방 교란 임무를 맡은 평안남도 지역의 11군단 산하 특수부대를 방문한 데 이어 24일 인민군 제1501군부대를 찾는 등 왕성한 군사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군사 도발 위협을 고조시키는 것이 군 현지시찰의 첫 번째 목표라고 입을 모으면서도 군을 보다 확고하게 장악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려는 의도도 크다는 데 주목했다. 군에 자신의 능력을 보여줘 충성심을 강화하는 한편 3차 핵실험 이후 힘이 커진 강경파의 군부 내 독주 가능성을 차단해 실질적 권력 계승을 마무리하려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김 제1위원장이 현지 지도 때마다 2인자로 자리매김한 대표적 강경파인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을 늘 대동하는 것도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지 살피고 견제하기 위한 의도일 수 있다는 분석을 제기한다. 군 강경파는 지난해 4월 노동당대표자회를 통해 당 정치가 부활하고 7월 리영호 군 총참모장이 전격 해임되면서 눈에 띄게 약화됐지만지금은 주도권을 틀어쥐고 있다. 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의 고모 김경희 유고 시 체제 안정에 있어 군부가 큰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군부에 확실한 충성심을 심어 줘야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며 “군의 입장을 지지해 줘서 배짱도 있고 신뢰할 만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북한이 군을 우선시하는 ‘선군(先軍)노선’으로 다시 돌아갈 조짐도 감지되고 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군의 운영상태와 대비 태세를 점검하는 것은 파행적으로 운영돼 왔던 선군정치를 바로잡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한반도의 인간·숲 상호작용 설득력 있게 조망

    많은 사람에게 숲은 그저 휴식과 평안을 선사하는 울창한 산림쯤으로 인식된다. 각박한 현실을 떠나 안길 수 있는 생태와 자연. 그러나 숲은 인류의 존재 이후로 사람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어왔다. 그 관계성의 중요함에 대한 천착은 갈수록 더해진다. 한국에서도 숲을 자연과 생태의 차원으로만 남겨두지 않으려는 생각과 몸짓은 눈에 띄게 늘어가는 추세다. ‘한국인과 숲의 문화적 어울림’(이정호 지음, 소명출판 펴냄)은 그런 흐름에서 숲과 한국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연결해낸 흥미로운 책이다. 주로 선사시대나 고대사회 만주와 한반도에 살았던 한국인의 선조격인 사람들이 어떻게 숲과 상호작용을 해왔는지를 자연-인간 시스템의 관점에서 풀어낸 구성이 독특하다. 인간분자유전학 박사인 저자가 숲을 보는 시각은 그저 생태와 인간유전학의 관계에 머물지 않는다. 고고학, 역사학, 민족전통생물학 같은 초학제적 조망이 설득력과 깊이를 더한다. 저자가 가장 관심을 갖고 천착한 부분은 한국인의 원류와 한국인들만이 가진 문화적 정체성이다. 단군신화 속 숲, 예맥 조선이나 후 조선기에 해당하는 비파형 동검문화에 감춰진 숲의 의미, 주몽과 유리의 고구려 건국설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나무의 역할, 단군신화의 수목 숭배 전통에서 이어진 근세조선의 사직(社稷) 등이 모두 숲과 연관지어 한국인의 특이한 정체성을 들춰낸 흥미로운 사례들이다. 기원전이나 기원 무렵부터 만주·한반도의 현생인류가 나무며 숲과 문화적 어울림을 본격적으로 해왔다고 할 때 그 상호작용은 여전히 진행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근대화 과정에서 크게 변화된 현대 한국인에게서도 그 숲과의 문화적 어울림은 어김없이 발견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중세 사회에선 농경문화와 겹치면서도 다른 곳과는 차별성을 보이는 독특한 산림문화를 형성했고 특히 연료림과 관련 있는 온돌문화는 중원이나 일본열도와는 차별되는 만주-한반도 계열의 정체성을 확연히 보여준다고 말한다. 광릉 숲에서 하늘을 찌를 듯이 곧게 선 소나무 무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저자가 책에서 거듭 강조하는 대목은 보존 차원에 머물지 않는 전통과 현대의 소통이다. 책 말미에 명명한 ‘호모 실바누스’(Homo Sylvanus), 즉 ‘환경을 조성하는 인간’이란 명칭은 숲과 인간의 현대적 소통의 상징이다. 2만 1000원. 김성호 기자 kimus@seoul.co.kr
  • 결핵약 6억7800만원어치 北 간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민간 단체의 대북 인도적 지원이 승인됐다. 새 정부의 남북 간 ‘신뢰 프로세스’ 추진의 신호탄이 될지 주목된다.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22일 “대북 지원단체인 유진벨재단의 결핵약품 대북 반출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결핵약은 총 6억 7800만원 상당으로 평양과 남포, 평안도지역 8개 결핵센터의 환자 500여명의 치료에 사용될 예정이다. 유진벨재단은 다음 달 중국 대련항을 통해 북측에 결핵약을 전달할 계획이다. 이명박 정부가 지난해 12월 11일 대북 인도적 지원을 승인한 후 102일 만이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 민간물품 반출 승인은 북측에 먼저 손을 내미는 능동성을 보여준 것으로, 남북 간 팽팽한 긴장 정세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처럼 남측의 선의에 북측이 어떻게 호응할 지에 따라 신뢰 프로세스의 안착 여부가 달렸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부고] ‘일제 식민교육 저항’ 애국지사 이봉양 선생

    일제강점기 식민교육에 저항했던 애국지사 이봉양 선생이 18일 오전 6시 별세했다. 89세. 평안북도 용천 출생인 고인은 1938년 7월 김원구, 전약용 등 친구들과 함께 태극기 알리기 운동을 비롯해 역사 연구에 매진했다. 1939년 9월 지우개에 태극기를 새겨 친구들에게 나눠 주는가 하면, 신의주 중학교에 다니던 1940년 9월에는 하숙집에서 일본의 황국식민교육정책에 항거하기로 뜻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1942년 3월 이러한 활동이 일본 경찰에 적발됐고, 고인은 태극기와 역사책을 압수당한 뒤 체포됐다. 이 선생은 이듬해 4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 2남 2녀가 있다. 발인은 20일 오전 7시,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4묘역이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영안실 1호실. (02)2258-5940.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중국통신] 음력 2월 2일은 이발하는 날?

    지난 13일 중국 이발소들은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음력 2월 2일, 이른바 ‘춘룽제’(春龍節)를 맞아 머리를 자르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기 때문. 첸장완바오(錢江晩報) 등 현지 언론의 14일 보도에 따르면 13일 하루 동안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는 머리를 자른 사람들의 ‘인증샷’이 봇물을 이뤘다. 정월 초하루부터 기른 머리를 음력 2월 2일에 자르는 것은 예부터 전해져 온 풍습 때문이다. 항저우(杭州)에 사는 역사학자 딩윈촨(丁云川)은 “2월 2일은 ‘용이 머리를 드는 날’(龍擡頭)로, 북방지역에서 전해진 문화다.”며 “이 날은 하늘에서 구름과 비를 주관하는 용왕이 고개를 드는 날로, 이 날 이후 비 오는 날이 많아져 춘룽제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또한 춘룽제 전에 머리를 깎으면 한 해의 복이 날아가지만 춘룽제에 맞춰 머리를 자르면 액과 불운이 함께 떨어져나가 일년 동안 평안하다고 믿는다고 딩 선생은 소개했다. 중국통신원 홍진형 agtha_hong@aol.com
  • 대선 때 직접 녹음한 ‘행복을 주는 사람’에 맞춰 행진

    대선 때 직접 녹음한 ‘행복을 주는 사람’에 맞춰 행진

    박근혜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은 국민이 참여하고 공감하며 즐기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국민대통합’ 축제의 한마당으로 치러졌다. 7만여명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을 가득 메운 가운데 시작된 취임식은 국민을 중심에 둔, ‘국민 행복, 희망의 새 시대’라는 박 대통령의 국정 비전에 맞춰 진행됐다. 이날 취임식엔 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와 김영삼·전두환 전 대통령,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참석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건강 상태가 크게 좋지 않아 불참했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도 건강상의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야권의 경우 민주통합당에서는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과 박기춘 원내대표 등 지도부 대부분이 참석했다. 문재인 전 대선 후보는 불참했다. 문 전 후보는 초청장은 받았지만 부산에 있어서 참석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진보정의당에서는 노회찬·조준호 공동대표와 강동원 원내대표, 이정미 대변인이, 통합진보당에서는 오병윤 원내대표와 소속 의원 전원이 참석했다. 하지만 이정희 대표는 불참했다. 가족석에는 박 대통령의 동생 내외인 박지만 EG회장, 변호사 서향희씨와 5촌 조카인 방송인 은지원씨 등이 앉았다. 취임식에는 다양한 사연을 지닌 국민들이 참석해 박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했다. 평안남도 출신인 김석진(75)씨는 1951년 ‘1·4후퇴’ 때 경기 용인으로 내려왔다. 김씨는 “전쟁 중에 가족을 모두 잃었다”면서 “박 대통령 임기 중에 어서 빨리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취임식에 초청받았다가 참석하지 못한 일도 있었다. 서울 도봉구에 사는 지체 1급 장애인인 서보민(23·여)씨는 첫 여성 대통령 취임식을 보려고 인터넷으로 일반 국민 참여 신청을 해서 취임식에 초대됐다. 아침 일찍부터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갔지만, 취임식이 끝날 때까지 행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취임식장 밖에서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서씨는 “오전 9시쯤 왔지만, 식전 공연 리허설을 한다고 기다리게 하더니 시간이 더 흐르니까 이젠 남은 좌석이 없다며 못 들어가게 한다”고 울상을 지었다. 서씨는 “새 정부는 장애인도 차별 없는 국민대통합의 세상을 만들어 줄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는데 취임식 첫날부터 그런 기대가 무너졌다”고 아쉬워했다. 취임식이 아니라 연예인의 식전 행사를 보러 온 ‘잿밥에만 관심을 보인’ 유형도 있었다. 인터넷으로 신청해 초대받은 여고생인 김예지(16)양 등은 그룹 JYJ를 보러 취임식장을 찾았다. 김양은 “저 말고도 팬클럽 회원 상당수가 취임식장을 찾았다”면서 JYJ의 공연이 끝나자 함께 온 친구와 식장을 빠져나갔다. 취임식장 입구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행사 진행요원들이 참석자들에게 기념품으로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이라고 적힌 무릎 담요와 손난로를 나눠 줬다. 중앙무대 뒤편에 설치된 반원형의 대형 그림은 신흥우 화백의 ‘희망아리랑’.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다양한 악기로 아리랑을 연주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그림 속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첫 여성 대통령인 박 대통령을 상징하는 여성이다. 취임식 한쪽에 마련된 ‘희망꽂이’도 시민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국민 여러분의 희망의 메시지를 받습니다’라고 적혀 있는 희망꽂이에는 취임 축하 메시지와 박 대통령에게 바라는 희망을 적은 분홍, 초록, 연두색 등의 색종이가 가득 찼다. 식전 행사의 마지막 순서로 가수 싸이가 등장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강남스타일을 부르자 7만여명의 참석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말춤을 따라 하며 취임식장 분위기를 달궜다. 싸이는 강남스타일을 부르기 전 “이 노래처럼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원한다”고 말했다. 취임식이 끝나고 박 대통령이 국회 앞마당을 걸어갈 때 대선 기간 박 대통령이 직접 부른 노래 ‘행복을 주는 사람’이 흘러나왔다.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녹음실에서 헤드폰을 쓰고 녹음을 하는 장면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 나오자 참석자 사이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낯선 터키의 중심 ①콘야 Konya, 베이쉐히르

    낯선 터키의 중심 ①콘야 Konya, 베이쉐히르

    식민지를 찾는 나라들의 교차로에 자리해 왕조의 흥망성쇠와 함께한 중앙 아나톨리아는 여행자들에게 카파도키아로 대표되는 땅이다. 영화 <스타워즈>의 루크가 자란 그 땅은 영화映畵보다 영화榮華스럽고 경이롭다. 중앙 아나톨리아에는 카파도키아와 더불어 콘야, 카라만 등 금은 낯설고 생소한 도시가 존재한다. 초라한 유명세에 가려졌지만 그 이면에 화려한 역사를 품고 있는 이들 도시는 미지의 여행을 꿈꾸는 여행자를 자극한다. 메블라나의 흔적을 쫓아 콘야 Konya “오라! 오거라! 네가 누구든지 오라.” 1200년경, 이슬람 수피즘을 기반으로 탄생한 메블라나교는 이교도도 무신론자도 거짓을 행한 자도 차별 없이 받아들이는 크고 너그러운 마음을 바탕으로 교리를 펼쳤다. 그리고 지금, 메블라나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도시 콘야에서는 여행자들에게 메블라나의 가르침을 이야기한다. 콘야의 역사와 정을 느끼고 싶은 이라면 누구든 오라고. 이 계절, 터키의 해거름은 한국보다 이른 시간에 시작된다. 더욱이 콘야의 하루 해는 이스탄불보다 짧아 콘야의 밤은 길고 지루하기만 하다. 낯선 곳에서의 저녁 나들이가 조금은 긴장되지만 콘야의 거리를 걷기에 이보다 좋은 때는 없다. 이국적인 풍경에 이끌려 발걸음을 멈출 때마다 “어디에서 왔냐?” “어디를 여행할 거냐?”로 출발하는 과도한 관심을 받게 되니 말이다. 열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라 했지만 이방인에게 특별히 각별해 보이는 콘야 사람들의 친절은 묘하게도 한국인들의 정과 닮아 있다. 수백년 전 메블라나의 가르침이 콘야 사람들의 정서와 닿아 있는 듯 콘야는 ‘메블라나의 철학과 함께 평화, 평안 그리고 관용의 도시가 됐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메블라나는 콘야의 긍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콘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메블라나 젤라레띤 루미(1207~1271). 여전히 많은 이들의 정신적 지주로 칭송을 받는 그는 그의 아버지와 함께 ‘메블라나 박물관’에 묻혀 있다. 메블라나 박물관은 셀주크제국의 장미 정원을 하사 받아 조성된 메블라나교의 수행장을 개조해 1926년 문을 연 곳이다. 여러 이슬람 지도자들의 묘 가운데 메블레비들메블라나교의 수행자이 쓰는 긴 모자를 쓴 메블라나와 그의 아버지의 묘는 가장 크고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메블라나가 생전에 입던 의복, 용품과 더불어 이슬람의 예언자인 무함마드의 턱수염을 보관한 유리 상자도 흥미롭다. 일부러 향을 입힌 것도 아닌데 상자의 작은 구멍으로 향 냄새가 끊임없이 새어 나온다. 메블라나 박물관은 물과 나무가 존재하는 이슬람의 천국을 지향하여 조성됐다. 잘 꾸며진 정원의 한 켠에서는 실물 크기의 인형들을 전시해 메블레비의 생활을 재현해 놓았다. 메블레비들은 생활이 곧 수행이었다. 심지어 밥을 먹을 때에도 메블라나교의 평등의 원칙에 맞춘 순서와 법도를 따라야 했다. 메블레비는 1,001일 동안의 혹독한 수행을 거쳐야 했는데 수행에는 세마 의식 또한 포함됐다. 세마 의식은 터키 여행의 개인적인 로망이었다. 빙글빙글 하얀 치마가 만들어 내는 어지러운 원圓은 블루 모스크나 지중해의 따뜻한 햇살, 고등어 케밥을 순위에서 밀어낼 정도로 신비로워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운이 좋다. 메블라나교 종교의식의 한 형태이며 수행의 방법이자 명상의 한 종류인 세마를 접하기에 콘야보다 적합한 곳을 찾기는 힘들 테니 말이다. 매주 토요일 저녁 8시30분, 콘야의 메블라나 컬처 센터에서는 세마 공연이 무료로 진행된다. 이곳에서 진행되는 세마는 공연이자 일종의 의식이라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 터키어로 1시간여 의식에 관한 설명이 지속돼 이슬람교도가 아닌 여행자들은 이내 지치곤 한다. 본격적인 의식은 세마젠세마 의식을 행하는 사람이 쉐이흐세마젠을 이끄는 사람의 손에 입을 맞추고 크게 원을 따라 나아가며 시작된다. 아주 느린, 세 번의 인사를 마치고 세마젠이 입고 있던 망토를 떨어트리면 비로소 회전하는 행위가 시작된다. 지루함을 떨치고 절정을 향해 내달리는 시간,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한 관객이 눈물을 터트린다. 뜨거운 덩어리가 목까지 차오르고 그들의 절실함을 지루하다 비웃은 무지를 반성하니 의식이 더욱 성스럽게 다가온다. 세마 의식에서 도는 행위는 신과의 합일점을 향해 가는 길이며, 가슴에 손을 얹는 것은 유일신에게 다가가 하나가 된다는 의미다. 점차 빠르게 돌기 시작하는 세마젠은 하늘의 축복을 받기 위해 오른손 손바닥을 위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왼손 손바닥을 아래로 향한다. 세마젠은 돌고 또 돈다. 치마를 휘날리며, 크게 원을 그리며. 그렇게 정신없이 돌다가 신호에 맞춰 순간 정지를 하는데 모든 세마젠이 흐트러짐 없이 꼿꼿이 몸을 가눈다. 세마 의식이 보여주는 수행의 길은 코끼리코 몇 바퀴도 이겨내지 못 하는 중생에게는 멀고도 먼 길임에 틀림없다. 세마 의식 외에 콘야에서는 종교적인 수행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코란, 수학, 물리학 등을 가르치던 ‘카라타이 신학교’와 하디스를 읽기 위해 세워진 ‘인제 미나레 신학교’가 대표적인 예. 두 신학교 모두 옛 교실을 활용해 박물관을 조성했는데 카라타이 신학교의 타일 장식과 인제 미나레 신학교의 해시계, 아랍어로 쓰여진 1200년대의 경전 등이 볼 만하다. ▶travie info 메블라나 박물관┃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4시40분 입장료 3TL 카라타이 신학교┃관람시간 오전 9시~정오, 오후 1시~오후 5시 입장료 3TL 인제 미나레 신학교┃관람시간 오전 9시~정오, 오후 1시~오후 5시 입장료 3TL 작은 도시, 크게 품다 베이쉐히르와 콘야 주변 Beyşehir & Around Konya 콘야에 며칠 머물면 인근의 작은 도시들이 눈에 들어온다. 유명세를 타지 않아 여행자들의 발길이 뜸한 도시들이지만 그들만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품어 안고 있다. 콘야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베이쉐히르도 그런 도시다. 베이쉐히르에 닿기 전, 라벤더샘이라 불리는 ‘에프라툰프나르’로 향한다. 기원전 12세기인 히타이트 시대, 바람의 신, 태양의 신 등 히타이트 신을 부조해 연못 위에 세운 기념비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정갈하다. 땅에서 샘솟아 맑디 맑은 연못의 물은 기념비를 포함한 사위를 그대로 투영한다. 에프라툰 프나르의 샘물은 그 옛날, 플라톤이 찾아와 마셨다고 한다. 작은 도시 베이쉐히르는 베이쉐히르 호수가 감싸안고 있다. 베이쉐히르 어디에서나 눈에 들어오는 호수는 낭만과 일상이 공존하는 시민들의 공간이다. 셀주크제국 당시 부족장의 이름을 딴 ‘에쉬레포울루 자미’는 단아하면서도 화려한 모습으로 베이쉐히르 호숫가에 자리하고 있다. 장대한 규모는 아니지만 전세계 사원 중 나무로 만들어진 최초의, 유일한 사원이다. 베이쉐히르 사람들은 그래서 애석해 한다. 베이쉐히르를 모르는 사람들이 에쉬레포울루를 알 리가 없다는 것이다. 베이쉐히르라는 이름을 어떻게든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에쉬레포울루 자미를 유네스코 세계유산 후보로 등록한 지금, 사람들은 베이쉐히르라는 이름을 함께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에쉬레포울루는 겉보다 안이 아름다운 사원이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400여 개의 서까래는 거의 원형 그대로 중후한 나뭇결을 뽐내고 쭉 뻗은 나무 기둥은 위용을 머금었다. 호두나무로 만든 민바르이슬람교단는 못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아랍어를 미로처럼 조각해 놓았다. 가운데에는 알라, 밑에는 무함마드, 옆에는 모함마드 제자의 이름을 비롯해 코란 경전을 적었으며, 민바르 옆면은 해와 별 등 천체를 조각했다. 사원 내부의 가운데에는 우물이 자리했다. 뚫린 지붕에서 떨어진 물이 우물에 고이면 여름에는 천연 에어컨이 되고 겨울에는 냉동고가 된다고 했다. 강수량을 확인하는 데에도 우물은 유용했다. 콘야 인근에는 그밖에도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수많은 유적지가 자리한다. 콘야의 남동쪽 춤라의 작은 시골에 자리한 ‘차탈회육’은 요르단강 서안의 예리코에 이어 전세계에서 두 번째로 손꼽히는 인류의 집단 거주 지역이다. 신석기 시대인 기원전 7,000년경부터 공동 생활을 한 흔적과 농경 사회를 그린 벽화 등 가치 있는 유물들이 이곳에서 발견됐다. 차탈회육 공동 거주지의 집들은 야생동물의 침입을 막기 위해 문을 만들지 않았으며, 집과 집이 서로 연결돼 있었다고 한다. 차탈회육은 2012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작은 카파도키아라 불리는 ‘클리스트라’는 콘야 남서쪽에서 멀지 않은 곡유트르에 자리하고 있다. 바위를 파 만든 수도원의 모습과 흡사해 작은 카파도키아라 불리는 곳이다. 성경에는 사도 바울이 콘야와 얄바츠 사이(비시디아 안디옥), 클리스트라(루스드라)를 방문했다고 적고 있다. 사도 바울이 제자 디모데를 만난 곳도 이곳이라고 한다. 콘야에서 멀지 않은 실레의 ‘성 헬레나 기념 교회’도 볼거리다. 크리스트교를 공인한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의 방문을 기념해 327년에 지은 교회로 터키의 현존하는 교회 건물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이진경 취재협조 터키항공 www.turkishairlines.com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北, ICBM급 신형 미사일 3차핵실험 전날 엔진시험

    北, ICBM급 신형 미사일 3차핵실험 전날 엔진시험

    북한이 지난 12일 3차 핵실험 하루 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신형 장거리 미사일의 엔진 성능개량 시험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지난 11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로켓발사장(서해위성발사장)에서 ‘KN08’ 장거리 미사일의 엔진 성능개량 시험을 했다고 복수의 정부 소식통이 17일 밝혔다. 한 정부 소식통은 “북한은 시험발사한 적이 없는 KN08의 사거리를 ICBM급인 5000㎞ 이상으로 확실히 늘리려고 엔진시험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면서 “엔진 성능개량 시험이 성공했다고 판단하면 본격적으로 실전 배치에 들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15일 김일성 100회 생일(태양절)을 기념해 열린 군사 퍼레이드에서 6기가 공개된 이 미사일은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규모로 추정됐지만 아직 한 번도 시험발사된 적이 없다. 군 당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 결의안이 나오면 북한이 추가 도발의 하나로 KN08 미사일을 이동식 발사차량(TEL)을 이용해 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TEL은 첩보위성이나 레이더 탐지 사각지역에 숨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위협적인 무기체계로 인식되고 있다. 현재까지 6기의 KN08 미사일만 공개됐으며 몇 기를 개발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는 상태다. 다른 소식통은 “미국의 위성감시망에 노출되는 시간에 KN08의 엔진시험을 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면서 “한·미가 주시하는 KN08에 대한 엔진시험을 핵실험 전날 했다는 것은 대미 위협 강도를 한껏 끌어올리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밝혔다. KN08 장거리 미사일은 지름 2m, 길이 18m로 지난해 퍼레이드 당시 중국군 산하 업체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 TEL에 탑재돼 모습을 드러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3. 한국 경제의 산증인, 박승 前 한국은행 총재(하)

    [명사가 걸어온 길] 3. 한국 경제의 산증인, 박승 前 한국은행 총재(하)

    하나, 남과 사회공동체를 위해서 살라. 사회 전체를 위해 살면 남이 나를 신뢰하고 존경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잘되고 행복해진다. 내가 나를 진심으로 위하려거든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 둘, 고난과 실패를 자산으로 만들라. 누구에게나 고난과 실패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더 큰 배울 점이 있다. 그걸 부채로 만들지 말고 자산으로 만들면 더 큰 깨달음이 있다. 이를 얻어야 큰 사람이 된다 셋,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부모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듯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특별히 행복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복이다. 건설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등을 지낸 박승 중앙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의 호는 푸른 벼를 뜻하는 청도(靑稻)다. 직접 지었다. 여기에는 고향에 대한 추억과 일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 박 교수는 초등학교 시절 여름이면 논에서 일했다. 농부들이 논에서 호미로 김을 매면서 지나가면 모가 넘어졌다. 박 교수는 이 뒤를 따라가면서 모를 일으켜 세웠다. 그 뒤를 따라가다 보면 농부들의 땀 냄새, 그리고 모 냄새와 흙 냄새가 어우려져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특이한 냄새가 났다. “지금도 그 냄새를 잊을 수가 없어 그 냄새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을 찾은 것이 푸른 벼, 청도였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1988년 2월 노태우 정부의 초대 경제수석에 임명됐다. 노 전 대통령과는 그때 처음 만났다. 청와대에서의 활동에 대해 박 교수는 “내가 나 스스로를 이끌어 가는 삶이 아니라 떠밀려서 사는 삶이었다”며 “야생마처럼 자유분방하게 살아온 내게는 생소한 환경”이라고 회고했다. 경제수석으로 있으면서 박 교수는 청와대 비서실과 내각의 관계를 재정립했다. 경제 정책은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한 경제팀이 하고, 수석실은 대통령과 경제팀의 중간에서 보고·조정하고 경제팀이 잘 움직이도록 도와주는 역할로 한정한 것이다. “정책을 책임지는 장관은 대통령을 만나 진지하게 정책을 협의할 기회가 적어 경제수석이 하기에 따라 행정부를 무력화하고 지나치게 정책에 관여할 소지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단, 노 전 대통령의 선거공약인 주택 200만호 건설은 예외였다. “국민의 수요가 밥과 옷에서 집으로 옮겨 가는 시기라 집 부족 문제와 집값 폭등 현상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경제수석실에서 일단 택지를 물색했다. 서울 시내에는 후보지가 없어 그린벨트를 넘어서 광화문 기점으로 25㎞ 지점, 지하철로는 약 1시간 거리가 신도시 후보였다. 경기 평촌·산본, 그리고 부천 중동이 나왔다. 당시 경기 분당은 유보됐다. 박 교수는 1988년 12월 건설부 장관이 됐다. 200만호 건설을 현장에서 책임지라는 대통령의 뜻이었다. 1989년 초 분당이 후보지로 확정됐고 여기에 박 교수는 경기 일산을 추가했다. 냉전 시대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고, 서울 강남·북의 균형발전을 꾀하자는 논리였다. 당연히 국방부 반대가 심했다. 현지 주민들과 국회의원들의 반대도 심했다. 주민들에 대한 설득과 가장 쾌적한 도시로 짓겠다는 약속에서 일산 신도시 개발이 확정됐다. 그래서 “일산은 박승이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박 교수는 “지금 5대 신도시를 보면 상전벽해라 감회가 크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1989년 7월 18일 공직을 떠났다. 앞서 두달 전 신도시 개발계획은 확정됐지만 분양가 현실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미리 사의를 표명하기는 했다. 그날 아침 노 전 대통령과의 조찬을 통해 물러나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이로써 1년 5개월의 관직을 끝냈다. 박 교수는 “관직은 참 허무하더라”고 말했다. 분양가 현실화는 그해 11월 단행됐다. 정부에서 물러나 쉬다가 1990년 다시 강단에 섰다. 평안한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예전처럼 주택공사 이사장, 자영업자 소득파악 위원 등 다양한 외부활동도 했다. 총 26년간의 대학교수를 마치고 2001년 정년 퇴임을 했다. 그가 가르친 제자로는 백용호 청와대 정책특보, 김덕중 중부지방국세청장 등이 있다. 정년 퇴임 이후에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으로 바쁜 외부 활동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2002년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한은 총재로 임명됐다.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경제적 안정을 주고 박사학위를 얻어 교수가 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한은에 마지막 봉사를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더할 수 없는 영광이었다. 한은에 대한 애정이 강해 “직원 뒤꼭지만 봐도 예쁘다”고 해 아내의 시샘을 사기도 했다. 한은의 독립성을 지켜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항상 경제성장과 경기부양 쪽으로 기울어 입으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주장하지만 실제 돈을 풀고 금리를 내리도록 중앙은행에 간섭해 왔기 때문”이다. 2002년 재정경제부에서 일부 금융통화위원에게 금리 결정에 대해 전화를 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박 교수는 당시 장관에게 항의 전화를 해 같은 사례가 일어나지 않도록 했다. 한은법 개정도 추진했다. 금융통화위원에 증권업협회의 추천을 없애고 한은 부총재를 당연직 위원으로 하며, 한은이 금융결제제도의 총괄감시권을 갖고, 인건비를 제외한 모든 한은 예산에 대한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의 승인권을 삭제하는 내용이었다. 이 법안은 2003년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와 싸우기도 했지만 설득과 타협도 하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하려고 애썼다”고 회고했다. 박 교수는 한은 총재 내정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세 가지 화폐개혁을 구상했다. 첫째, 우리나라 지폐가 너무 크고 위조가 쉬우니 새 화폐로 바꾸는 것이다. 둘째, 수표 발행과 보관에 드는 비용 등을 줄이기 위해 5만원과 10만원권 등 고액권을 발행하는 일이다. 셋째, 우리나라 돈의 가치가 떨어져 10원짜리 동전은 거의 쓰지 않으니 화폐 액면 단위를 1000대1, 즉 천원을 일환으로 바꾸는 화폐단위 변경(리디노미네이션)이다. 총재 취임 후 한은 내에 구성한 화폐제도 개혁 추진팀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첫째는 쉬웠지만 고액권 발행이나 화폐단위 변경에 대해 당시 정부는 부정적이었다. 물가상승을 자극할 수 있고 뇌물을 주기가 편해져 부패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박 교수는 총재 임기 동안 5000원권의 신권 발행만 보고 물러났다. 1000원권과 1만원 신권은 박 교수가 총재에서 물러난 뒤 발행됐다. 고액권 발행 논의의 물꼬를 텄지만 5만원권 발행은 한참 뒤인 2009년에야 이뤄졌다. 화폐단위 변경의 필요성 논란은 지금 다시 불거지고 있다. 화폐 단위 변경이 1962년 실행된 뒤 50여년이 지나 지폐 최고액이 500원권에서 5만원권으로 100배 커지는 등 경제상황이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지금도 세 가지를 다 하지 못한 걸 생각하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4년의 한은 총재 임기를 마치고 2006년 3월 은퇴했다. 이 기간이 생애에서 가장 큰 보람과 성취를 이룬 시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은퇴사에서 “한은을 가장 사랑한 총재, 한은의 독립성과 위상을 높인 총재, 경제와 민생을 위해 고뇌한 총재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현직에서 떠난 뒤에도 박 교수는 강연이나 저술 등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박 교수의 조언을 찾는 경우가 더욱 많아졌다. 지난해 ‘쫄지마, 청춘!’, ‘다가오는 경제지진’에서 경제 원로로서 조언도 했다. 매일 맨손 체조를 하고 운동기구를 이용한 운동을 거르지 않으며 체력을 관리한 것이 깨어 있는 정신의 밑거름이 됐다. 박 교수는 지금 40대인 5남매 중 4남매의 결혼식을 간소하게 치렀다. 청첩장도 없고, 축의금은 받지 않았고 예단이나 함도 없었다. 하지만 이를 사돈 측에도 강요할 수는 없었다. 결혼식 당일 사돈 쪽은 하례객이 많은데 박 교수 측은 한가한 상황도 나왔다. “곤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건 하루면 될 일”이라고 가볍게 넘겼다. 우리나라 혼례의 사회적 낭비가 너무 심하므로 이를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청첩장을 보내면 세금처럼 느껴지고, 결혼식장에 와서는 돈 내고 얼굴도장 찍은 뒤 자리를 뜨는데 서울의 교통사정상 한나절이 걸리고, 함과 예단 등으로 인한 부모의 갈등과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고.” 그가 꼽은 이유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불거졌다. “나는 친구들 자녀 결혼식에 가서 축의금을 내면서 안 받겠다고 하니 친구들을 미안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라는 고민에 세 번째 자녀 결혼식 때 다른 사람들처럼 했다. 그런데 해보니 진짜 할 일이 아니었다. “청첩장 보낼 때부터 보낼까 말까 고민하지, 누가 왔는지 알아야지, 돈을 받았으니 정리하다가 얼마 냈는지를 보게 되지, 행여 많이 낸 사람이라도 있으면 이걸 갚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머리에 남지….” 그래서 네번째 결혼식부터 다시 원하던 대로 했다. 막내 결혼식에는 평소 입던 양복을 세탁해서 입었다. 자식 결혼식도 간소하게 치른 박 교수는 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사후 장기기증도 약속했다. 이 같은 생각을 30여년 전부터 자식들에게 이야기해 왔다. “자식은 교육시켜서 자립하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외국에서는 교육을 시키면 나머지는 사회가 알아서 뒷받침하는 구조인데 우리나라는 부모 협조가 없이는 집 마련도, 자식 교육도 쉽지 않은 상황이 돼버렸다”고 아쉬워했다. 집 마련이나 자식 교육에 일정 부분 도움을 주는 것은 괜찮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는 것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박 교수는 한은 총재 재임 시절에는 월급의 20%를 가난한 사람이나 소외된 사람을 위해 썼다. 모교인 백석초등학교에 도서관도 만들었다. 그는 “공공재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오늘에는 나 혼자만 잘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만 잘살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잘사는 좋은 사회를 이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 지자체들 “남북협력사업 어쩌나”

    북한의 3차 핵실험 강행으로 자치단체 차원에서 추진해 오던 남북교류사업이 앞을 내다보기 힘든 난기류에 휩싸이게 됐다. 14일 전국 자치단체에 따르면 새 정부가 출범하면 남북교류사업이 재개될 것으로 예상, 각종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예산을 확보했지만 남북관계가 경색돼 인도적인 사업마저도 접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남북화해의 전초기지가 되겠다고 공언해 온 인천시는 북한의 3차 핵실험 강행으로 대북사업을 사실상 펼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인천은 강화군 교동도에 남북한이 함께하는 평화산업단지 조성을 추진하는 등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에 힘써 왔으나 계속되는 남북관계 경색에다 핵실험까지 겹쳐 더 이상 추진동력을 얻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인천시가 추진하는 남북 스포츠 교류사업과 인도적 차원에서 실시해 온 북한 어린이와 임산부, 노인을 위한 식료품·옷·의약품 등 생활필수품과 방역물품 지원도 더 이상 명맥을 이어가기 어렵게 됐다. 강원도는 최대 현안사업인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개최’와 ‘동해안권 경제자유구역 순항’에 먹구름이 예상된다. 더구나 어려운 강원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도가 구상하고 있는 금강산관광 재개, 철원 평화산업단지 조성 사업도 당분간 어려워질 전망이어서 걱정이 태산이다. 서울시는 올해 경평축구, 시향 교환공연 등에 남북교류협력기금 49억원을 배정했으나 남북관계 경색 탓에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서울시 관계자는 “인적 왕래나 물자 반출 때 건별로 일일이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하는 지자체 입장에서는 3차 핵실험으로 대북사업이 더욱 꼬이게 됐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이명박 정부 들어 중단됐던 제주감귤 북한 보내기 사업이 박근혜 새 정부에서 재개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북한의 이번 핵실험으로 물 건너갔다는 분위기다. 하지만 자치단체들은 대북지원사업의 물꼬가 다시 트이게 될 것에 대비해 관련 예산을 꾸준히 적립하고 있다. 서울시는 2004년부터 조성한 남북협력기금이 현재 185억 4400여만원이나 쌓여 있다. 2007년 평안남도에 돼지농장을 지어주는 등 2008년까지 34억원 상당을 지원했던 전북도는 14개 시·군과 함께 남북교류협력기금 40억원을 확보한 상태다. 전남도는 2016년까지 50억원을 확보할 계획이다. 현재 10억 6000만원을 적립했다. 충남도는 지난해 추경에 3억원을 처음 세운 데 이어 올해 본예산에 5억원을 추가 확보했다. 도는 20억원만 모이면 북한과 농작물 교류 및 원조, 문화예술 등의 교류를 트기 시작한다는 구상이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인천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김병일 사람과 향기] 정조가 도산서원에서 과거를 보게 한 까닭

    [김병일 사람과 향기] 정조가 도산서원에서 과거를 보게 한 까닭

    요즘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어 필자도 수련원 숙소에서 자는 날이 잦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새벽에 숙소를 나와 퇴계 선생이 거니셨던 뒷산을 넘어 도산서원까지 갔다 돌아오곤 한다. 1시간 반쯤 걸리는 아침운동이다. 이때 어둠이 점점 밝아 오면서 시시각각으로 연출되는 풍광은 이곳이 선경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사방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하늘색과 대비를 이룬 산들이 가장 먼저 윤곽을 드러낸다. 이어 그 산 그림자 밑에 칠흑으로 포개져 있던 온갖 사물들이 여명의 흐름에 따라 하나둘 자신을 내보인다. 시계열에 따라 펼쳐지는 도산서원의 새벽 풍광 가운데 가장 아끼는 것은 서원 건너편 낙동강변 백사장에 솟은 시사단(試士壇)이다. 특히 요즘처럼 강 안개가 잦은 날 희뿌연 새벽 안개 사이로 드러나는 시사단의 모습은 경외감까지 들게 한다. 이름 그대로 ‘선비를 뽑은 장소’라는 뜻을 지닌 시사단의 역사는 1792년까지 올라간다. 그해 재위 16년째를 맞은 정조는 3월 25일 도산서원에서 과거시험(도산별과)을 치르도록 명하였다. 한양을 벗어난 장소에서 처음 치러진 이날 과거에 응시한 사람은 무려 7228명이었고, 답안지를 제출한 사람만도 3632명이었다. 그 가운데 강세백(姜世白, 1748~1824)과 김희락(金熙洛, 1761~1803) 두 사람이 급제하여 왕 앞에서 보는 최종 면접시험인 전시(殿試)에 나아갈 자격을 부여받았다. 시사단은 이때 치러진 별과를 기념하여 4년 뒤인 1796년 과거가 거행된 곳에 세워진 비와 비각이 있는 장소이다. 처음에는 도산서원과 마주 보는 강변 솔밭 안에 세워졌으나, 1970년대 중반 안동댐 건설로 물에 잠기게 되자 단을 10m 높이로 쌓아 올려 옮긴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시사단을 보면 의문이 하나 생긴다. 정조는 왜 하고많은 장소 가운데 도산서원에서 과거를 치르게 했을까? 표면적인 이유는 250여년을 먼저 산 퇴계 선생의 학덕을 기리게 위해서였다고 전한다. 그렇더라도 의문은 계속된다. 학덕을 기릴 선현이 어디 퇴계 선생뿐이었겠는가? 그럼에도 퇴계와 도산서원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극심하던 당쟁으로 나라가 분열되자 조정에 영남의 남인을 등용하여 보완함으로써 탕평 효과를 거두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견해보다 퇴계 선생이 후세에 남긴 학덕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 퇴계 선생은 평생을 낮춤과 배려로 일관했다. 자신에겐 엄격하고 남에겐 후한 ‘박기후인’(薄己厚人)의 삶을 몸소 실천한 분이다. 까닭에 퇴계 선생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떠나지 않았다. 정조는 퇴계 선생이 남긴 학덕에서 바로 이 부분, 즉 낮춤으로써 갈등을 해소하고 배려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포용하는 치유의 코드를 읽어내고 마음으로 심복한 것은 아닐까? 정조는 재위 중 도산서원에 여러 번 제관(祭官)을 보내 제사를 지내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퇴계 종손이 평안도 영유현령으로 부임하는 길에 선생의 위패를 서울로 모시고 들어오자 예관에게 명하여 한강 부근 교외에 나가 맞이하게 하고, 그가 근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도 한강 교외까지 호송하게 했다. 위패가 지나는 길목에는 백성들이 “우리 선생님 지나가신다”며 엎드려 절을 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이를 감안할 때, 정조는 평생 낮춤과 배려를 실천하여 역사적으로 존경받는 퇴계 선생으로부터 자기 시대가 직면한 탕평과 통합이라는 과제의 해결책을 읽어냈을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거창한 담론이나 주의주장이 아니라 솔선수범의 실천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는 사례이다. 우리시대가 풀어야 하는 치유와 해결의 실마리도 앞서 사신 분들의 이 같은 선험(先驗)으로부터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새벽 안개 속에서 자태를 드러내는 시사단을 볼 때마다 드는 단상이다.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 [DB를 열다] 은막의 女優 노름꾼 전락

    [DB를 열다] 은막의 女優 노름꾼 전락

    사진 가운데 안경을 쓴 여성은 복혜숙(1904~1982)과 쌍벽을 이루며 초창기 신극계를 주름잡았던 여배우 석금성(1907~1995)이다. 평안남도에서 태어난 그녀는 일찍 서울로 와 진명여학교를 다니다 기생이 되었다가 극단 토월회 전무였던 이서구의 눈에 띄어 거금을 받고 연극계에 투신했다. 1925년 첫 작품 ‘추풍감별곡’에서 주역을 맡아 무대를 밟자마자 연극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빼어난 외모의 그녀는 충청도 갑부와 결혼했지만 3년 만에 파경을 맞아 다시 복귀했다. 1932년에 토월회의 후신인 태양극장에서 신민요를 부르며 배우 겸 가수로 활동했다. 1937년에는 무성영화 ‘심청전’에서 뺑덕어멈 역으로 영화배우로도 데뷔한 그녀는 광복 후 ‘춘향전’에서 월매로 나오는 등 주로 개성 있는 조연을 맡았다. 무용가 최승희의 오빠인 한국 최초의 라디오방송국 PD 최승일과 재혼했지만, 남편과 4남매가 1948년 월북해 석금성은 외로운 말년을 보냈다. 1990년대 초까지 영화와 TV 드라마에 출연했으며, 1990년 신상옥 감독의 ‘마유미’가 마지막 작품이다. 그녀는 재혼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북한의 자녀들과 만나기를 원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사진은 1965년 1월 28일 유명 배우 K·L 씨와 거액의 상습도박을 벌인 혐의로 경찰에 조사를 받으러 출두한 모습이다. 세 사람은 다음 날 구속됐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종교인구 줄고 기복성향 심화

    지난해 종교인구가 8년 전에 비해 1.9%포인트 줄었으며 비종교인은 절반에 가까운 44.9%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만 19세이상 성인 남녀 51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31일 발표한 ‘한국인의 종교 생활과 의식조사’ 결과 확인됐다. 조사에 따르면 종교 인구는 전체 응답자의 55.1%를 차지해, 57%였던 2004년 조사 때보다 1.9%포인트 줄었다. 특히 20대의 경우 남자는 39.8%, 여자는 39.5%만 종교인이라고 답해 전체 평균보다 15%포인트가량 낮았다. 종교별로는 개신교 22.5%, 불교 22.1%, 천주교 10.1%, 기타종교 0.5% 순으로 많았으며 비종교인이 44.9%나 됐다. 목회 세습에 대해선 개신교인의 75.4%, 목회자의 71%가 해서는 안 된다고 응답해 성직자 신자 모두 압도적으로 교회·목회 세습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는 것으로 확인됐다. 목회자 개인 소득 납세 의무화와 관련해선 개신교인의 48.3%, 목회자의 49%가 각각 찬성했다. 이와 관련해 전국 목회자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월평균 사례비는 대도시 243만원, 중소도시 202만원, 읍·면 지역 163만원이었다. 한목협에 따르면 대도시를 기준으로 목회자의 월평균 사례비에 기타 소득을 합한 금액은 287만원으로, 일반 국민(337만원) 소득의 85.1% 수준이다. 한편 개신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신앙생활의 이유를 물은 결과 마음의 평안을 위해(38.8%), 구원·영생을 위해(31.6%), 건강·재물·성공 등 축복을 받기 위해(18.5%) 등의 순으로 답했다. 이는 2004년 조사에 비해 ‘구원·영생을 위해서’라는 응답이 15%포인트 줄어든 대신 ‘건강·재물 등 축복을 받기 위해서’라는 답변이 10%포인트 상승해 기복적 양상이 확대된 것으로 풀이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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