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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창극 조부 알고보니 독립유공자…일제시대 일본군과 교전 중 전사

    문창극 조부 알고보니 독립유공자…일제시대 일본군과 교전 중 전사

    각종 ‘망언’으로 자격 논란을 일으킨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할아버지가 일제시대 독립활동으로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은 독립유공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조선일보는 23일 국가보훈처 관계자의 말을 빌어 “대한독립단 대원으로 활동한 애국지사 문남규(文南奎) 선생과 문창극 후보자의 조부가 동일 인물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문남규 선생이 활동한 대한독립단은 3.1운동 이후 효과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의병운동 계열의 인사들이 1919년 3월 결성한 단체다. 대한독립단은 국내진입작전과 남만주 동포사회의 자치를 목표로 했다. 문남규 선생은 1921년 평안북도 삭주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전사했다. 보훈처는 2010년 11월 순국선열의 날에 문남규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하지만 보훈처는 문남규 선생의 유족 확인이 안 돼 훈장을 임시로 보관했다고 전했다. 보훈처에 따르면, 문남규 선생은 문창극 후보자 조부와 원적지(평북 삭주)가 같고, 한자 이름도 동일하다. 또 1989년 사망한 문창극 후보자의 아버지인 문기석씨는 생전에 “7살(1921년) 때 (독립운동을 했던) 아버지가 숨졌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기석씨는 1914년 생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문창극 후보자는 총리 지명 이후 보훈처에 조부의 독립운동 사실을 문의해 왔다”면서 “한자 이름이 동일하고, 원적지가 같은 점, 문창극 후보자의 부친 증언 등을 미뤄 문 후보자의 조부를 애국지사 문남규 선생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말기암 환자의 생존기간 예측엔 주관적 삶의 질이 중요”

    말기암 환자가 스스로 느끼고 평가하는 주관적인 삶의 질이 향후 생존기간(기대여명)을 예측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최근 들어 암 환자의 경우 치료 뿐 아니라 삶의 질에 대한 중요성도 커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말기암 환자의 경우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지양하는 대신 삶의 마지막 순간을 평안하게 맞도록 준비하려는 욕구가 증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환자의 남은 여생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점차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완화의료센터 이용주·동국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서상연 교수팀은 2006~2007년 서울·경기지역 6개 종합병원과 대학병원에 입원한 말기암환자 중에서 현실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해 기대여명이 수개월 이내로 예상되는 환자 162명을 대상으로 이들이 스스로 느끼는 삶의 질을 점수화해 환자의 생존기간과 비교한 결과, 신체기능 상태와 삶의 질 평가가 생존기간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고 19일 밝혔다. 연구팀에 따르면 삶의 질 평가 항목 중 특히 건강상태와 감정기능의 점수가 높을수록 환자의 생존위험도가 낮았으며, 피로·구토·식욕부진·변비 등은 점수가 높을수록 생존위험도 역시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즉, 환자가 느끼는 건강과 감정 상태가 양호하면 생존기간이 길어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말기암에서 나타날 수 있는 4가지 신체증상이 심하면 그만큼 사망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기존에도 다양한 설문조사법을 이용하여 암환자가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삶의 질이 환자의 예후를 예측하는 도구로 활용된다는 연구는 많았으나, 여기에는 ‘EORTC QLQ-C30’이 주로 이용되었다. 이에 비해 말기암 환자를 대상으로 EORTC QLQ-C30의 축약판인 ‘EORTC QLQ-C15-PAL’를 이용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EORTC QLQ-C15-PAL은 유럽 암연구 및 치료기구 위원회(EORTC)에서 개발한 암환자 삶의 질 평가도구로, 기존의 설문조사보다 설문 내용이 간결해 환자가 비교적 쉽고 빠르게 응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용주 교수는 “말기암으로 진단 받은 환자나 보호자는 이후 생존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무척 궁금해 한다”면서 “일반적으로 의료진은 환자가 살 수 있는 시간을 길게 예측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국가로부터 말기암 환자의 완화의료 전문기관으로 인정받은 기관에서 호스피스시설을 이용하는 환자의 일반적인 생존기간은 18일로 매우 짧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이번 연구 결과, 삶의 질에 해당하는 환자 본인이 느끼는 주관적인 신체상태도 환자의 생존기간을 예측하는 데 중요한 인자임이 확인 되었다”면서 “말기암환자를 돌보는 의료진들이 환자 스스로가 느끼는 주관적인 증상의 변화를 주의깊게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 결과는 완화의학 관련 학술지(Support Care in Cancer) 3월호에 게재됐다.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6월, 초여름밤을 수놓을 아름다운 팝 피아노의 선율

    가슴으로 느끼는대로 표현되는 선율, 가식없는 있는 그대로를 연주하는 국내 독보적인 팝피아니스트 임학성이 26일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최고의 뮤지션들과 함께 ‘2014년 임학성 팝스 콘서트’를 연다. 임학성은 국내 연주자 최초로 줄리아드대 초청 “Bowdoin Music Festival”에서 한국 음악을 피아노 솔로로 선보이기도 하였으며, 매년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 초청 공연 등으로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번 콘서트에는 매혹적인 중 저음으로 관객에게 벅찬 감동을 선사하는 뮤지션 JK김동욱, 맑은 음색과 뜨거운 열창으로 청중의 마음을 평화롭게 울리는 팝페라 한가영, 버클리대학 출신 소울 가득한 목소리의 보컬 최홍서, 소통과 공감의 하모니 100명의 연합합창단, 항상 임학성의 공연과 함께 하는 팝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출연한다. 클래식과 재즈, 팝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관객들에게 자유로움과 평안을 전달해 줄 이번 콘서트는 캄보디아 프놈펜 무지개학교를 후원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한양도성(중)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한양도성(중)

    ●왕권의 존엄성을 성곽에 세우다 조선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이자 최고의 풍수지리서인 ‘택리지’를 지은 청화산인 이중환은 한양도성을 보고 “온 나라 산수의 정기가 모인 곳”(一國山水聚會精神之處)이라고 평가했다. 한양도성은 한양을 둘러싼 백악~낙타산~목멱산~인왕산 등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흐른다. 성곽은 암벽을 만나면 멈춘다. 자연이 인공을 대리하는 절묘한 경관이 펼쳐진다. 성곽을 따라 걷노라면 내가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잊게 된다. 평지에 세워진 성곽이 안팎을 차단하는 데 반해 한양도성 성곽은 안과 밖을 분리하고 있지만, 시각적으로는 열려 있다. 성곽이 산수(山水)와 한 몸을 이루는 세계 유일의 역사도시경관이다. 평지에 네모 반듯하게 구획된 중국식 성과는 뚜렷하게 다른 조선만의 것이다. 조선 개국의 기획자이자 서울의 설계자였던 정도전은 ‘한양팔경’에서 “성은 높아 철옹인데 천 길이요/구름은 봉래산 둘렀는데 오색일세/해마다 상원(上苑)에는 꾀꼬리와 꽃인데/해마다 서울사람들 놀며 즐기네”라고 도성의 풍광을 맘껏 읊었다. 성종 때 온 명나라 사신 동월은 ‘조선부’에서 “높고 높은 삼각산으로 자리를 정했고/푸르고 푸른 수많은 소나무로 덮였다/산들이 성벽을 둘러싸며 훨훨 나는 봉황이 환히 빛나고/모래가 소나무 뿌리에 쌓여 있어 흰 눈이 갓 갠 듯하다”고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한양도성 성곽은 도성 출입자를 통제하거나, 침입자를 막는 단순 용도에 머물지 않았다. 성 밖을 파서 연못으로 만든 해자(垓子)가 없다는 것은 방어개념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도성 밖에서 도성 안으로 드나드는 8개의 크고 작은 문 중 숭례문 밖 남지(南池), 흥인지문 밖 동지(연지), 돈의문 밖 서지(반송지) 같은 연못을 조성한 것은 물의 부족과 화기를 막으려는 풍수기법이었다. 성문은 도성 중심에 있는 보신각 종루에서 울리는 인경(밤 10시)과 파루(새벽 4시)의 종소리에 맞춰 열고 닫았다. 성문의 개폐가 곧 통행금지와 해제를 뜻했다. 한양도성 내 일상생활의 시작과 끝이 한양도성 성곽에서 비롯되고 맺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란으로 무너진 도성 성곽을 숙종이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탕춘대성을 지어 허술한 방어체계를 보완한 숙종의 속마음이 ‘비변사등록’에 드러나 있다. 숙종은 “처음부터 도성은 넓고 커서 지키기 어렵다고 여겼다. 도성의 축조가 당초에 성을 지킬 계책에서 나온 것이 아니므로 원래 견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왜 조선 왕들은 도성 축조에 매달렸을까 그렇다면 조선의 역대 왕들이 그토록 한양도성 성곽의 축조와 개·보수에 매달린 까닭은 무엇일까.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 사이의 통치질서를 확인하고, 외적 방어와 내부 적대세력을 물리칠 수 있다는 국력을 표현하면서, 왕권의 존엄성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도이다. 무릇 성(城)이란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지배이데올로기의 경관적 표출이기 때문이다. 서울에 남아 있는 한양도성 성곽은 조선 태조가 18㎞의 울타리를 처음 정한 이후 역대 왕이 개·보수를 거듭한 육백 년의 역사 층위가 오롯이 살아 있는 희귀한 문화유산이다. 이렇듯 큰 수도성곽이 유지돼 남은 것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고고학적 조사와 문헌기록, 성벽에 새겨진 축조 당시의 기록을 통해 살펴보면 태조, 세종, 숙종, 순조 등 네 임금이 주로 쌓았는데 시대에 따라 각각 다른 석축기법이 성곽에 남아 있다. 개국조 이성계는 내사산을 따라 도읍의 윤곽을 정한 자리에 성을 쌓았다. 고구려 때부터 전해 오던 산성 축조기법을 주로 썼고 성곽의 3분의2는 흙으로 쌓았다. 이성계는 석재를 구하려고 문무 양반 관료들에게 의무적으로 돌을 바치도록 독려했으나 쉽지 않았다. 왕권을 강화한 세종은 흙 성을 메주 크기의 돌로 바꿨다. 현재의 한양도성 성곽을 사실상 재축조했다고 볼 수 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도성은 무용지물이었다. 선조는 싸울 의지도, 겨를도 없이 몽진 길에 올랐다. 파죽지세로 올라온 왜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카가 흥인지문 옹성의 위세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평양성 전투가 60일을 끈 것을 참작하면 조선관군이 한양도성에서 버텼다면 호락호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40여년 후 병자호란에 휘말렸다. 청은 항복 조건에 ‘성벽을 수리하거나 신축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었다. 인조가 남한산성에 들어가 45일간 결사항전하자 함락에 실패한 분풀이였다. 이후 축성 행위가 공식적으로 금지됐지만, 조선 국왕들은 청의 감시를 틈타 도성과 산성의 개·보수를 암암리에 진행했다. 숙종과 순조 때는 무너진 곳을 보수하면서 장정 4명이 들 정도의 크고 반듯반듯한 돌을 사용하는 등 성석(城石)의 대형화와 규격화를 꾀했다. 조선왕들은 태조에게서 성곽 쌓기라는 유전인자를 물려받은 것처럼 보인다. 성곽 돌에 새겨진 이름과 지명 등을 ‘각자성석’(刻字城石)이라고 하는데 서울시 한양도성도감에 따르면 2013년12월 현재 한양도성에는 모두 252개의 각자성석이 존재한다. 각자성석에 나타난 시대를 분석한 결과 14명의 임금 이름이 등장하는데 확인이 불가능한 44개(17%)는 제외됐다. 이 중 세종 때 것이 113개로 44%를 차지했고 순조 40개(15%), 태조 23개(9%). 숙종이 19개(7%)의 순서였다. 그래서 어느 임금 때, 어느 지역에서 동원된 인력이 성곽을 쌓았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태조 대의 토성은 남산 일대에 일부 남아 있고 세종대에 쌓은 돌 성이 현재 남아 있는 성곽 12km 중 메주돌 부분이다. 이성계는 1, 2차에 걸쳐 98일 만에 공사를 마무리했다. 4대문(숭례문·흥인지문·숙정문·돈의문)과 4소문(소의문·광희문·혜화문·창의문)의 이름을 지었다. 토성이 칠할, 석성이 삼할을 차지했다. 토성이 장마에 무너지자 세종은 43만명의 병력을 동원해서 견고한 돌 성으로 개축한다는 어마어마한 계획을 세웠다. 당시 호구자료에 따르면 조선의 인구는 672만명이었고 도성 인구는 10만명이었다. 일부 신하들을 중심으로 인력동원의 문제와 석재난 등을 들어 중국사신이 드나드는 무악재~남산 부분만 돌로 쌓자고 건의했으나 상왕인 태종의 의지가 워낙 강했다. 세종은 반대 의견이 빗발치자 10만명을 줄여 32만 2400명의 동원을 결정했다. 석공 등 장인 2211명은 별도였다. 태조 때 봄·가을 2차례에 걸쳐 19만 7000명을, 고려 현종 때 개경 나성 축조에 23만명을 동원한 것과 비교해 볼 때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대역사였다. 도성 인구의 3배를 넘는 인력이 전국 팔도에서 몰려들었다. 세종은 엄격했다. 병력을 늦게 보낸 경상도 관찰사에게 죄를 묻고, 수령은 봉고파직시켰다. 태종과 세종은 수시로 술을 내려 격려했다. 공사는 38일 만에 끝났지만 872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다친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도성에 쌀이 동나고 전염병이 돌아 희생자가 더 늘어났다. ●조선 최대 역사(役事)가 최고 역사(歷史)로 남다 한양도성 축조는 막무가내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지역사정과 인구에 따라 인력과 담당구역을 균등하게 분배했다. 부역은 고달프지만 불평하지 않도록 과학적으로 안배됐다. 태조 1차 축조 때 동원된 인력은 평안도의 안주 이남과 함길도의 함주(함흥)이남,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등에서 11만 8049여 명이 동원됐다. 청천강 이북과 함경도 국경지역은 국방상의 이유로 제외했다. 황해도, 경기, 충청도 등 도성 가까운 지역 인력은 차후 보완 및 보수를 위한 예비인력으로 남겼다. 농번기를 피했고 도성에서 먼 곳과 가까운 곳이 서로 겹치지 않게 했다. 성터 전체가 영조척(營造尺·약 30㎝)으로 5만 9500자이므로 백악에서 시계방향으로 600자(약 180m)씩 97개 구간이다. 97개 구간을 천자문 순서에 따라 하늘 천(天)~조상 조(吊)까지 차례로 순서를 정하고 담당 구간을 균등 배분했다. 예를 들면 동북면 함주 이남에서 동원된 1만 953명은 백악마루에서 숙정문까지 구간을 맡았는데 천(天), 지(地), 현(玄), 황(黃), 우(宇), 주(宙), 홍(洪), 황(荒), 일(日)까지 9개 구간이며 맡은 길이는 5400자였다. 4만 9897명으로 팔도에서 가장 많은 인력이 동원된 경상도는 혜화문에서 숭례문까지 41개 구간을 맡았다. 어느 구간을 맡든 1인당 평균은 0.493자로 같았다. ●조선의 국혼 깃든 도성 축조… 항일의병 촉발 원동력 공사의 감독체계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치밀했다. 총감독으로부터 아래로 점차 구역별 책임자가 늘어나는 피라미드식 그림이 나온다. 하나의 자호(字號) 구간은 600자 구간을 다시 6개의 작은 구역으로 나눠 100자(약 30m)를 가장 작은 구역 단위로 삼았다. 판사, 부판사, 사, 부사, 판관이라는 감독관을 두었다. 성곽을 담당한 지역의 이름과 감독자, 석공의 이름을 돌에 새겨 무너지거나 부실이 발생했을 때 책임을 물었다. 요즘 서울시내 보도블록에 시공자의 이름을 새기는 ‘공사 실명제’가 이때 이미 실행된 셈이다. 도성 축조의 대역사는 신생국 조선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팔도에서 몰려든 장정들은 한양에 모여 공동작업을 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그 과정에서 타지방의 정보를 얻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다. 도성을 오가는 과정에서 생전 처음 이웃 고을과 먼 고을을 보고 물산을 터득했다. 도성 축조는 단순한 부역동원이라기보다 당시 백성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넓힌 일대 사건이었을 것이다. 태조와 정도전, 무학대사의 이야기와 세종과 한양의 풍광에 대한 얘깃거리가 방방곡곡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조선 초 한양도성 성곽 축조로 말미암아 조선이라는 나라의 건국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그때 처음 본 한양에 대한 인상이 내 자식은 한양으로 벼슬살이를 보내겠다는 서울중심주의를 형성했을 것이다. 한양도성과 성곽의 축조는 ‘역사’(役事)가 아니라 ‘역사’(歷史)가 되었다. 조선이 오백 년이라는 긴 수명을 유지한 원천이 됐다. 내 손으로 지은 도성의 위용을 경험한 백성의 마음속에 조선이라는 나라의 국혼이 깃들었다. 이것이 의병과 위정척사, 항일의병을 촉발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선임 기자 joo@seoul.co.kr
  • [6·13 개각] 김명수 사회부총리 후보자, 교사로 첫발… 40년 교육 외길

    [6·13 개각] 김명수 사회부총리 후보자, 교사로 첫발… 40년 교육 외길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는 13일 “낮은 자세로 대화와 소통을 통해 교육을 바로 세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 후보자는 전국교직원노조, 진보 교육감 당선인과도 대화하는 등 사회부총리로서 통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후보자는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중인 1951년 부모와 함께 월남해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고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학비를 벌어가며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교육경제학을 공부했다. 1975년 서울 강서중 교사로 시작해 서울대 교육학과 조교, 사범대 부설 교육행정연수원 전임감사와 특별연구원 등을 거쳐 1993년부터 한국교원대 교육학과 교수, 명예교수로 재직했다. 지난해부터 한국교육학회장을 맡았고 교육부의 교육과정개편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뉴라이트 성향인 박효종 전 서울대 교수 등과 함께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잇따른 교수들의 시국선언 발표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2010년에는 ‘무상급식 확대보다 안보교육이 우선’이라는 글을 발표했고 “전교조 법외노조화는 당연하다”고 언론과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의 보수 성향 행보 때문에 진보 진영과 갈등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특히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구상 중인 진보 교육감들과 대립각을 세울 가능성이 높다. 그는 지난해 서울, 대전, 부산에서 자사고 선발방식을 바꾸자는 내용의 공청회 진행을 맡아 자사고 학부모의 반발을 직접 봤다. 그는 “일괄적인 폐지, 존속이 아니라 학부모 등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야 할 것”이라며 진보 교육감 당선인들과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이번에 초선 교육감님도 많고, 저 역시 장관이 처음이니 서로 합의하고 이해하면서 같이 가면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인 신효종씨와 1남 1녀를 두고 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동학군 장수 지휘도 첫 발견

    동학군 장수 지휘도 첫 발견

    120년 전 동학농민운동 당시 동학군 장수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지휘도가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양반 출신의 의병장이 아닌 동학군 장수의 칼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 칼이 1894년 봉기 이후 동학군을 이끌던 전봉준(1855~1895) 장군의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10일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과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에 따르면 이 칼은 2009년 박물관이 한 민간 수집상에게 350만원을 주고 구입한 유물이다. 통상 오래된 도검이 한 점당 1억원 안팎에 거래되는 반면 이 칼은 보존 상태가 양호하지 않아 큰 값을 받지 못했다. 단도처럼 짧거나 환도처럼 길지 않은 46㎝ 안팎의 이 칼은 동학군이 일본군의 칼을 빼앗아 재조합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로 만든 칼집의 전면에는 ‘북두칠성 여래 법전 벌악양선 이안천하 발원’(北斗七星 如來 法展 罰惡良善 而安天下 發源)으로 시작하는 동학군 구호가 새겨져 있다. 이 문구는 1894년 1월 봉기한 동학군이 그해 5월 ‘호남제일성’인 전주성을 함락시킬 무렵부터 사용했던 구호로 ‘북두칠성께 악을 징벌하고 선함을 떨치고자 발원한다’는 뜻이다. 지난해 12월 박물관이 전시를 열 당시에는 이를 동학군의 칼로만 소개했다. 그러나 최근 칼집의 뒷면에 새겨진 ‘서원 광제창생 보국안민’(誓願 廣濟蒼生 輔國安民)이란 작은 명문이 확인되면서 칼이 동학군 최고 지휘부의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인 혜문 스님은 “‘널리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지켜 사람들을 평안히 하기를 맹세한다’는 일종의 서약으로 전봉준을 위시한 동학 최고 지휘부가 칼집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학예사인 김성혜 육군박물관 부관장도 “서약은 나무칼집에 얇은 한지를 붙이는 방식으로 새겨진 데다 사용된 먹의 재질이 요즘과 달라 19세기 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뒷면의 서약이 금입사처럼 미세하게 입혀져 지휘부가 사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정일우 신부 선종 “평생 이웃 위해..” 아일랜드계 미국인, 한국 온 이유가

    정일우 신부 선종 “평생 이웃 위해..” 아일랜드계 미국인, 한국 온 이유가

    ‘정일우 신부 선종’ 정일우 신부가 지난 2일 오후 7시 40분 향년 79세로 선종했다. 아일랜드계 미국인 정일우 신부는 지난 1960년 9월 예수회 신학생 신분으로 처음 한국을 찾았다. 이후 1963년 실습이 끝난 뒤 미국으로 돌아갔으나 4년 뒤 고등학교 은사인 故 바실 프라이스 신부(2004년 선종)의 영향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정일우 신부는 한국의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빈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빈민 운동에 직접 뛰어 들었다. 1980년대 철거작업이 진행되자 상계동과 목동 등지에서 철거민을 도왔고 이들의 자립을 위해 ‘복음자리 딸기쨈’을 만들어 판매했다. 이에 정일우 신부는 1986년에는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동지 故 제정구 전 의원과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정일우 신부 선종 소식에 그가 속한 예수회 한국관구는 “평생을 통해 이웃을 위한 봉사와 사랑을 실천하시고 하느님의 품에 안긴 정일우 신부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네티즌들은 “정일우 신부 선종 소식 안타깝다”, “정일우 신부 선종, 이런 귀한 분이 돌아가시다니”, “정일우 신부 선종 소식 슬프다”, “정일우 신부 선종, 천국에서 평안하시길 기도드리겠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길섶에서] 공짜 버스/문소영 논설위원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서울 광화문으로 향한 출근버스에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육군 장병 열두어 명이 우르르 탔다. 외박이나 휴가를 나온 모양이다. 관용적으로 ‘군인 아저씨’라 부르지만, 얼굴에 솜털이 보송보송하다. 그중 한 사람이 1만원을 들고 거슬러줄 돈이 부족하다는 버스 운전사와 옥신각신했다. 동료가 100원 동전을 모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지갑을 꺼낼까 말까 망설이는데, 맨 앞 좌석에 타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60대 여성 승객이 부스럭거리며 핸드백을 열어 1000원권을 먼저 내밀었다. 20대 군인 아저씨가 예의 바르게 머뭇거리자, 그녀는 어머니의 표정으로 “괜찮다”고 거듭 권유했다. 겨우 1000원 한 장이 만들어낸 가치는 컸다. 모두 환하게 웃었고, 우리가 생판 남은 아니라는 신뢰도 생겼다. 불교에서 유래했을 적선(積善)은 남을 돕는다는 의미로 굳어졌지만,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착한 일을 쌓는 것이다. 정월 대보름 개울에 돌다리를 놓거나 길에 돈을 놓아두고 낯선 누군가의 노자를 보태는 일도 적선이라 불렀다. 적선은 대가가 없어도 ‘우리’의 즐거움과 평안을 위한 것임을 또 깨닫는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이순신 필체 뚜렷한 ‘친필 편지 원본’ 발견

    이순신 필체 뚜렷한 ‘친필 편지 원본’ 발견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이순신이 평안북도 의주의 의병장 강응황에게 보낸 편지의 친필 원본이 발견됐다. 이 편지는 그간 영인본으로만 전해 왔으나 최근 편지 본문에 언급된 의병장 최균의 후손이 소장하던 것을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이 찾아내 확인했다. 26일 노 소장에 따르면 30여년 전 만들어진 영인본은 글자가 상당히 퍼진 탓에 친필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문건은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의 전문가들도 “원본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원본 편지는 한때 화재를 당해 아래쪽 일부가 소실됐으나 나머지 부분은 민간에서 400여년간 보관한 문건치고는 상태가 매우 양호한 편이다. 노 소장은 “그간 발굴한 이순신의 문건 가운데 필체가 가장 잘 드러난 것”이라며 “본분과 책임을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이순신의 충정이 담긴 글”이라고 설명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한국 유기농의 아버지’ 故 원경선 기념관 오픈

    ‘한국 유기농의 아버지’ 故 원경선 기념관 오픈

    ‘한국 유기농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 원경선 원장을 기리는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풀무원은 창사 30주년을 맞은 12일 충북 괴산군 청천면 평단리에 있는 연수원 ‘로하스 아카데미’에서 회사의 모태인 풀무원 농장 설립자를 기리는 기념관 개관식을 열었다. 기념관은 원 원장이 농장을 경기 양주에서 옮겨 와 지난해 1월 100세를 일기로 타계하기 전까지 8년여간 말년을 지냈던 자택을 개축해 조성했다. 233㎡ 면적에 전시실 4개와 야외 전시실 1개로 구성됐다. 풀무원은 전시실을 유기농, 환경·생명보호 운동에 헌신한 원 원장의 자서전적 공간으로 구성, 생전에 사용했던 각종 유물과 자료, 책자를 전시하고, 교육과 체험장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원 원장은 1914년 평안남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6세부터 농사를 시작했으며, 6·25 전쟁 직후인 1955년 경기 부천에 ‘풀무원 농장’을 마련했다. 1976년에는 경기 양주로 농장을 옮겨 우리나라 최초로 유기농업을 시작했고 유기농민단체 ‘정농회’를 설립했다. 이후 유기농운동과 함께 환경운동과 생명보호운동, 평화운동을 전개해 1989년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를 창립하는 초석을 놓았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김정은 전용기의 비밀…리설주와 전용기에서 함께

    김정은 전용기의 비밀…리설주와 전용기에서 함께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전용기를 이용한 장면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북한 노동신문은 10일 김정은이 부인 리설주 등과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비행지휘관들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2014’를 관람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김정은 부부가 전용기에서 내리는 사진을 1면에 게재했다. 관계당국에 따르면 노동신문에 게재된 전용기는 러시아에서 제작된 일류신(Ilyushin) IL-62로, 북한이 보유한 고려항공 여객기 중에서도 제작연도가 가장 오래된 기종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4발 장거리용 제트 여객기인 IL-62는 최초 취항이 1962년이었고 1993년에 생산이 종료되었다. 북한 외에 소련, 중국, 동독,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쿠바, 베트남 등 주로 옛 공산권 국가에서 널리 쓰였다. 이날 공개된 기체는 전체가 흰색으로 도색된 가운데 동체 앞부분 상단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글자와 함께 인공기를 새긴 모습이었다.또 꼬리 날개 쪽에는 붉은색 원 속에 붉은색 왕별을 그린 마크를 새겨 ‘1호기’임을 상징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전용기에서 내린 김정은 부부는 비행장 트랩 앞에 늘어선 인민군 의장대를 사열하기도 했다. 김정은 부부가 의장대를 사열한 장면이 공개된 것도 처음이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북한이 김정은이 전용기에서 내리는 장면을 공개한 것은 김정은을 중심으로 북한 권력체제가 공고하다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지난달 1일에도 김정은이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답사 행군에 참가한 연합부대 지휘관들을 격려하기 위해 삼지연 비행장에 도착한 뒤 비행기에서 내리는 장면을 공개했으나 당시 비행기는 전용기가 아닌 고려항공이라는 항공사명을 새긴 여객기였다. 앞서 김정은은 지난 3월15일 ‘세스나’로 추정되는 경비행기를 이용해 원산을 방문하기도 했다. 북한은 다음 날 프로그(FROG)-7로 추정되는 단거리 로켓 25발을 발사했다. 김정은은 지난 9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이 전용기를 타고 평안남도로 이동해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비행지휘관들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2014’를 관람한 것으로 정보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이번 대회는 김정은의 지시로 평안남도 온천비행장에서 개최됐으며 대령급 장교들이 참가한 일종의 ‘탑건(Top Gun·최고조종사)’ 선발 대회로 당국은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의 한 관계자는 “이번 대회에 참가한 북한 공군의 ‘비행지휘관’들은 우리의 항공작전(비행) 전대장들로 대령 계급에 해당한다”고 전했다. 우리 공군은 ‘소령’을 탑건으로 선발하고 있다. 북한이 이번 대회에 동원한 작전기는 미그-21·29, 수호이-25 전투기, AN-2 저공침투기 등으로 파악됐다. 특히 북한은 특수부대를 태우고 저공으로 기습침투하는 데 동원되는 AN-2기가 공중에서 소형 공대공 로켓을 발사하는 사진도 공개했다. 김정은은 대회 우승자들(탑건)에게 직접 시상하고 비행지휘관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북한 매체는 전했다. 이 대회는 김정은이 지난달 15일 평양에서 전군의 모든 조종사가 참가한 ‘제1차 비행사대회’를 주관한 것에 대한 후속 행사로 분석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최근 김정은이 군종별로 기량을 겨루는 대회를 열거나 지휘관 결의대회를 열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면서 “일종의 군기 잡기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김정은이 최근 공개 행사의 50% 이상을 군부대 방문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연설에서도 과격한 발언을 하는 등 통치자로서의 위상과 존재감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고 평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고] 한독 창업 김신권 명예회장

    [부고] 한독 창업 김신권 명예회장

    국내 제약업계 1세대로 업계의 선진화를 이끌어온 한독 창업주 김신권 명예회장이 지난달 30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92세. 고인은 1922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나 1941년 중국 안둥시에 금원당 약방을 개업한 이래 70여년 동안 제약업 외길을 걸어왔다. 1954년 한독을 설립하고 1957년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독일 제약사인 훽스트와 기술제휴를 시작해 한국 제약기술의 선진화를 도모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영진(한독 회장)·석진(와이앤에스인터내셔날 대표이사)씨와 딸 금희(전 서울신학대 교수)씨, 사위 채영세(공신진흥 대표이사)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은 3일 오전 6시 30분, 영결식은 오후 1시 30분 충북 음성군 대소면 한독의약박물관에서 회사장으로 치러진다. (02)2227-7550.
  • 세월호 구명조끼, 끈으로 묶인 남녀 학생의 시신 ‘얼마나 무서웠으면..’

    세월호 구명조끼, 끈으로 묶인 남녀 학생의 시신 ‘얼마나 무서웠으면..’

    ‘세월호 구명조끼’ 침몰한 세월호에서 구명조끼 끈으로 서로 묶고 있는 남녀 학생의 시신이 발견돼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24일 한 매체는 “지난 22일 세월호 수색작업 중이던 잠수부가 구명조끼 끈으로 묶여진 남녀 고교생 시신 2구를 발견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발견 당시 뒤집힌 세월호 우현 통로 계단을 올려다보는 형태로 잠겨 있었으며, 위 아래로 각각 1개씩 달린 구명조끼 끈 가운데 위쪽 끈은 각자 허리에 묶었지만 아래쪽 끈은 서로 연결돼 있었다. 이들을 물속에서 처음 발견한 잠수부는 인터뷰를 통해 “어린 학생들이 얼마나 무섭고 힘들고 괴로웠겠느냐”며 “나름대로 함께 공포에 맞서려고, 살려고 서로의 몸을 끈으로 묶지 않았겠느냐”고 추정했다. 이어 잠수부는 “잠수 시간이 10여분밖에 남지 않았고 혼자서 희생자 두 명을 함께 수습할 수 없어 두 손을 모아 예의를 표한 뒤, 끈을 풀어 남학생을 먼저 수습하려 했지만, 웬일인지 수면위로 떠오르지 않았다”면서 “‘이 아이들이 떨어지기 싫어서 그러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다. 후배 잠수사를 불러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두 희생자를 함께 수습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두 학생들이 평안한 마음으로 떠났으면 좋겠다”고 전하기도 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세월호 구명조끼) 온라인뉴스부 seoulen@seoul.co.kr
  • 北 풍계리 핵실험 징후 포착

    한·미 정보 당국이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차량 증가와 자재 반입 등의 특이 징후를 포착한 것으로 21일 알려졌다. 북한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핵실험 준비에 나선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이날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 일대에서 차량이 증가하는 등 움직임이 활발해졌다”며 “이전과 다른 수준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풍계리 핵실험장의 특정 갱도에 가림막으로 보이는 물체가 설치되고 평소보다 많은 인력이 오가는 징후도 함께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지난해 2월 풍계리 서쪽 갱도에서 3차 핵실험을 실시한 데 이어 남쪽 갱도 굴착도 완료한 상태다. 지하 핵실험은 갱도 굴착 이후에도 지진파 탐지 등 계측장비 설치 및 계측장비와 지상통제소 간 통신케이블 연결, 경도 되메우기 등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정부는 오는 25~26일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과 인민군 창건일(25일)에 맞춰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할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핵실험장에 고급 승용차의 왕래도 포착된 것으로 전해져 북한 당국 인사들이 방문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정부는 일단 핵실험장 일대에 계측장비 설치 등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만큼 4차 핵실험이 진행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평안북도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도 현재까지 특이 동향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오바마 대통령 방한에 맞춰 자신들이 결단만 하면 얼마든지 4차 핵실험에 나설 수 있고 북한 핵 문제가 임박한 위험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일종의 ‘핵 시위’의 성격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북한 외무성은 앞서 지난달 30일 “핵 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부 소식통은 “아직 북한 핵실험이 임박한 단계는 아니다”라면서 “차량 움직임이 증가하는 것도 위장 전술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모닝 브리핑] 日 “北 정치범 수용소 대거 확장 중”

    [모닝 브리핑] 日 “北 정치범 수용소 대거 확장 중”

    북한이 지난해 12월 처형한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관련된 정치범을 대거 처벌하기 위해 정치범 수용소를 확장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산케이신문이 7일 보도했다. 신문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가운데 16호(함경북도 화성), 25호(함경북도 청진), 18호(평안남도 북창)에서 부지 확장이나 건물 증설 공사 등의 움직임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신문은 북한 국가안전보장부가 대규모 내부 조사를 벌여 장성택이 주동한 군사 쿠데타에 관여했다는 혐의로 조선노동당과 조선인민군 간부 약 200명과 이를 추종했다는 이유로 약 1000명을 선별해 구속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현재 14호 수용소(평안남도 개천)와 15호 수용소(함경남도 요덕) 등 5곳에 수용돼 있으며, 오는 9일 예정된 최고인민회의 이후 주도자 대부분이 처형당하고 나머지는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질 가능성이 크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태안 지진, 관측 사상 4번째 규모…여진 계속 된다는데

    태안 지진, 관측 사상 4번째 규모…여진 계속 된다는데

    태안 지진 충남 태안에서 1일 규모 5.1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번 지진은 한반도 기상관측사상 역대 네 번째 규모의 지진으로 대전과 충청지역은 물론 서울과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지역에까지 진동이 전해졌다. 대전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4시48분께 태안군 서격렬비도 서북서쪽 100㎞ 해역에서 규모 5.1의 지진이 발생했다. 진앙은 북위 36.95도, 동경 124.50도 지점이다. 오전 9시25분쯤도 서북서쪽 100㎞ 해역에서 규모 2.3의 지진이 잇따라 발생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앞서 지진 규모가 컸기 때문에 추가로 여진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본 지진보다 큰 규모는 아닌 만큼 염려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사람이 느끼는 지진의 규모를 나타내는 진도는 태안 4, 인천 3, 서울 2 정도라고 기상청은 전했다. 진도 규모가 5를 넘으면 부실하게 지어진 건물의 경우 심한 손상을 줄 수 있다. 육지에서라면 실내에 있어도 감지할 수 있다. 실제 이번 지진으로 태안과 서산 지역은 물론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 지역에서도 건물이 흔들리는 것이 감지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는 진동을 감지했다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고 기상청에도 각종 신고가 접수되고 있다. 기상청 이지민 연구관은 “지진이 먼바다 쪽에서 발생해 큰 피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현재까지 접수된 신고는 건물이 흔들렸다는 것 정도”라고 말했다. 이 연구관은 “국내에는 지질 구조를 연구할 수 있는 장비나 자료가 부족해 구체적인 원인을 분석하기는 어렵다”면서 “앞으로 해저지질 조사 등 정밀 연구를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지진은 1978년 기상대 관측 이후 역대 4번째로 큰 규모다. 기상청 관측 사상 한국에서는 1978년 9월 16일 오전 2시7분쯤 충북 속리산 부근과 2004년 5월 29일 오후 7시 14분께 경북 울진 동쪽 약 80㎞ 해역에서 발생했던 규모 5.2의 지진이 가장 큰 지진이었다. 울진 지진으로 당시 경상도 일원에서 건물이 흔들렸고 전국에서 진동이 감지됐다. 북한에서도 1980년 평안북도 의주 일대에서 리히터 규모 5.3의 지진이 발생한 적이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태안 5.1 지진, 서울·인천에서도 느꼈다…깜짝

    태안 5.1 지진, 서울·인천에서도 느꼈다…깜짝

    태안 5.1 지진, 서울·인천에서도 느꼈다…깜짝 충남 태안지역에서 국내 기상관측사상 역대 세 번째 규모의 지진이 발생해 대전과 충청지역은 물론 서울과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지역에까지 진동이 전해졌다. 1일 대전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4시 48분쯤 태안군 서격렬비도 서북서쪽 100㎞ 해역에서 규모 5.1의 지진이 발생했다. 진앙은 북위 36.95도, 동경 124.50도 지점이다. 이번 지진은 1978년 기상대 관측 이후 역대 3번째로 큰 규모다. 실제 사람이 느끼는 지진의 규모를 나타내는 진도는 태안 4, 인천 3, 서울 2 정도라고 기상청은 전했다. 진도 규모가 5를 넘으면 부실하게 지어진 건물의 경우 심한 손상을 줄 수 있는 정도이다. 육지에서라면 실내에 있어도 감지할 수 있다. 실제 이번 지진으로 태안과 서산 지역은 물론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 지역에서도 건물이 흔들리는 것이 감지됐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상에는 자다가 흔들림을 느꼈다는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으며, 기상청에도 수백 건의 지진을 감지했다는 시민의 신고가 접수됐다. 인천 작전동에 거주하는 A씨는 “자다가 침대가 심하게 흔들려 무서워서 잠이 깼다”고 말했다. 기상청 이지민 연구관은 “지진이 먼바다 쪽에서 발생해 큰 피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재까지 접수된 신고는 건물이 흔들렸다는 것 정도”라고 말했다. 지진의 원인에 대해서는 “국내에는 지질 구조를 연구할 수 있는 장비나 자료가 부족해 구체적인 원인을 분석하기는 어렵다”며 “앞으로 해저지질 조사 등 정밀 연구를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상청 관측 사상 남한에서는 1978년 9월 16일 오전 2시 7분쯤 충북 속리산 부근과 2004년 5월 29일 오후 7시 14분쯤 경북 울진 동쪽 약 80㎞ 해역에서 발생했던 규모 5.2의 지진이 가장 큰 지진이었다. 울진 지진으로 당시 경상도 일원에서 건물이 흔들렸고 전국에서 진동이 감지됐다. 비공식 기록을 포함하면 1980년 북한 평안북도 의주 일대에서 리히터 규모 5.3의 지진이 발생한 적이 있다. 네티즌들은 “태안 5.1 지진, 서울에서도 느끼다니 대단하네”, “태안 5.1 지진, 무슨 일이 있었길래”, “태안 5.1 지진, 서울에 있었는데 아무렇지 않던데?”, “태안 5.1지진, 앞으로 지진이 더 자주 일어나는 것 아냐?”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태안 5.1 지진, 서울·인천 흔들려 “건물에 심각한 영향 줄 정도” 강도 수준이

    태안 5.1 지진, 서울·인천 흔들려 “건물에 심각한 영향 줄 정도” 강도 수준이

    태안 5.1 지진, 서울·인천 흔들려 “건물에 심각한 영향 줄 정도” 강도 수준이 충남 태안지역에서 국내 기상관측사상 역대 세 번째 규모의 지진이 발생해 대전과 충청지역은 물론 서울과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지역에까지 진동이 전해졌다. 1일 대전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4시 48분쯤 태안군 서격렬비도 서북서쪽 100㎞ 해역에서 규모 5.1의 지진이 발생했다. 진앙은 북위 36.95도, 동경 124.50도 지점이다. 이번 지진은 1978년 기상대 관측 이후 역대 3번째로 큰 규모다. 실제 사람이 느끼는 지진의 규모를 나타내는 진도는 태안 4, 인천 3, 서울 2 정도라고 기상청은 전했다. 진도 규모가 5를 넘으면 부실하게 지어진 건물의 경우 심한 손상을 줄 수 있는 정도이다. 육지에서라면 실내에 있어도 감지할 수 있다. 실제 이번 지진으로 태안과 서산 지역은 물론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 지역에서도 건물이 흔들리는 것이 감지됐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상에는 자다가 흔들림을 느꼈다는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으며, 기상청에도 수백 건의 지진을 감지했다는 시민의 신고가 접수됐다. 인천 작전동에 거주하는 A씨는 “자다가 침대가 심하게 흔들려 무서워서 잠이 깼다”고 말했다. 기상청 이지민 연구관은 “지진이 먼바다 쪽에서 발생해 큰 피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재까지 접수된 신고는 건물이 흔들렸다는 것 정도”라고 말했다. 지진의 원인에 대해서는 “국내에는 지질 구조를 연구할 수 있는 장비나 자료가 부족해 구체적인 원인을 분석하기는 어렵다”며 “앞으로 해저지질 조사 등 정밀 연구를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상청 관측 사상 남한에서는 1978년 9월 16일 오전 2시 7분쯤 충북 속리산 부근과 2004년 5월 29일 오후 7시 14분쯤 경북 울진 동쪽 약 80㎞ 해역에서 발생했던 규모 5.2의 지진이 가장 큰 지진이었다. 울진 지진으로 당시 경상도 일원에서 건물이 흔들렸고 전국에서 진동이 감지됐다. 비공식 기록을 포함하면 1980년 북한 평안북도 의주 일대에서 리히터 규모 5.3의 지진이 발생한 적이 있다. 네티즌들은 “태안 5.1 지진, 진도 5 이상이면 심각하다는데, “태안 5.1 지진, 큰 피해는 없었으면 하네요”, “태안 5.1 지진, 지진 문제 심각하네”, “태안 5.1지진, 일본처럼 대지진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태안 5.1 지진, 역대 3번째…울림 어느 정도인 지 측정해보니

    태안 5.1 지진, 역대 3번째…울림 어느 정도인 지 측정해보니

    태안 5.1 지진, 역대 3번째…울림 어느 정도인 지 측정해보니 충남 태안지역에서 국내 기상관측사상 역대 세 번째 규모의 지진이 발생해 대전과 충청지역은 물론 서울과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지역에까지 진동이 전해졌다. 1일 대전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4시 48분쯤 태안군 서격렬비도 서북서쪽 100㎞ 해역에서 규모 5.1의 지진이 발생했다. 진앙은 북위 36.95도, 동경 124.50도 지점이다. 이번 지진은 1978년 기상대 관측 이후 역대 3번째로 큰 규모다. 실제 사람이 느끼는 지진의 규모를 나타내는 진도는 태안 4, 인천 3, 서울 2 정도라고 기상청은 전했다. 진도 규모가 5를 넘으면 부실하게 지어진 건물의 경우 심한 손상을 줄 수 있는 정도이다. 육지에서라면 실내에 있어도 감지할 수 있다. 실제 이번 지진으로 태안과 서산 지역은 물론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 지역에서도 건물이 흔들리는 것이 감지됐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상에는 자다가 흔들림을 느꼈다는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으며, 기상청에도 수백 건의 지진을 감지했다는 시민의 신고가 접수됐다. 인천 작전동에 거주하는 A씨는 “자다가 침대가 심하게 흔들려 무서워서 잠이 깼다”고 말했다. 기상청 이지민 연구관은 “지진이 먼바다 쪽에서 발생해 큰 피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재까지 접수된 신고는 건물이 흔들렸다는 것 정도”라고 말했다. 지진의 원인에 대해서는 “국내에는 지질 구조를 연구할 수 있는 장비나 자료가 부족해 구체적인 원인을 분석하기는 어렵다”며 “앞으로 해저지질 조사 등 정밀 연구를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상청 관측 사상 남한에서는 1978년 9월 16일 오전 2시 7분쯤 충북 속리산 부근과 2004년 5월 29일 오후 7시 14분쯤 경북 울진 동쪽 약 80㎞ 해역에서 발생했던 규모 5.2의 지진이 가장 큰 지진이었다. 울진 지진으로 당시 경상도 일원에서 건물이 흔들렸고 전국에서 진동이 감지됐다. 비공식 기록을 포함하면 1980년 북한 평안북도 의주 일대에서 리히터 규모 5.3의 지진이 발생한 적이 있다. 네티즌들은 “태안 5.1 지진, 큰 지진 나는 것 아냐?”, “태안 5.1 지진, 무섭다”, “태안 5.1 지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태안 5.1지진, 앞으로 지진이 더 일어나는 것 아닌 지 모르겠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태안 5.1 지진, 서울·인천에서도 느꼈다 “도대체 누구?”

    태안 5.1 지진, 서울·인천에서도 느꼈다 “도대체 누구?”

    태안 5.1 지진, 서울·인천에서도 느꼈다 “도대체 누구?” 충남 태안지역에서 국내 기상관측사상 역대 세 번째 규모의 지진이 발생해 대전과 충청지역은 물론 서울과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지역에까지 진동이 전해졌다. 1일 대전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4시 48분쯤 태안군 서격렬비도 서북서쪽 100㎞ 해역에서 규모 5.1의 지진이 발생했다. 진앙은 북위 36.95도, 동경 124.50도 지점이다. 이번 지진은 1978년 기상대 관측 이후 역대 3번째로 큰 규모다. 실제 사람이 느끼는 지진의 규모를 나타내는 진도는 태안 4, 인천 3, 서울 2 정도라고 기상청은 전했다. 진도 규모가 5를 넘으면 부실하게 지어진 건물의 경우 심한 손상을 줄 수 있는 정도이다. 육지에서라면 실내에 있어도 감지할 수 있다. 실제 이번 지진으로 태안과 서산 지역은 물론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 지역에서도 건물이 흔들리는 것이 감지됐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상에는 자다가 흔들림을 느꼈다는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으며, 기상청에도 수백 건의 지진을 감지했다는 시민의 신고가 접수됐다. 인천 작전동에 거주하는 A씨는 “자다가 침대가 심하게 흔들려 무서워서 잠이 깼다”고 말했다. 기상청 이지민 연구관은 “지진이 먼바다 쪽에서 발생해 큰 피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재까지 접수된 신고는 건물이 흔들렸다는 것 정도”라고 말했다. 지진의 원인에 대해서는 “국내에는 지질 구조를 연구할 수 있는 장비나 자료가 부족해 구체적인 원인을 분석하기는 어렵다”며 “앞으로 해저지질 조사 등 정밀 연구를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상청 관측 사상 남한에서는 1978년 9월 16일 오전 2시 7분쯤 충북 속리산 부근과 2004년 5월 29일 오후 7시 14분쯤 경북 울진 동쪽 약 80㎞ 해역에서 발생했던 규모 5.2의 지진이 가장 큰 지진이었다. 울진 지진으로 당시 경상도 일원에서 건물이 흔들렸고 전국에서 진동이 감지됐다. 비공식 기록을 포함하면 1980년 북한 평안북도 의주 일대에서 리히터 규모 5.3의 지진이 발생한 적이 있다. 네티즌들은 “태안 5.1 지진, 서울 인천에서 느꼈다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지”, “태안 5.1 지진, 이러다 지진 많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태안 5.1 지진, 지진 제발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데”, “태안 5.1지진, 그래도 일본보다 상황은 좀 낫지 않나”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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