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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노스 “북 서해 동창리 로켓 발사장 공사 완료”…10월 도발설 뒷받침?

    북한이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 동창리에 있는 로켓 발사장 내부의 증·개축 공사를 완료한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 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는 28일(현지시간) 최근 촬영한 민간 위성사진을 판독한 결과 “올해 봄부터 진행돼온 발사대 주변의 증·개축 공사가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38노스는 로켓 부품을 발사대로 운반하는 이동식 지원 플랫폼이 완공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는 당초 예상했던 길이 24m, 넓이 30m, 높이 33m보다 훨씬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발사대 끝의 새로운 지원건물을 짓는 공사도 마무리됐다고 덧붙였다. 38노스는 외부에서 반입되는 미사일 장비의 존재를 숨기기 위한 은폐시설도 완료한 것으로 보인다 밝혔다. 이에 따라 궤도를 통해 들어오는 미사일 운반 컨테이너 등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발사장의 이 같은 움직임들을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 준비에 들어간 신호로 단정하지는 않았다. 이와 관련, 장일훈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는 이날 뉴욕 북한대표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10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설’에 대한 질문을 받고 10월 10일이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일임을 상기한 뒤 “대규모의 성대한 기념식이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장 차석대사는 “북한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며 “미국의 군사적 억지와 압력에 대해 북한은 현대화되고, 확장되고, 강화된 핵무기로 대응할 것임을 과거에도 밝힌 바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따라서 이런 것들 가운데 하나를 실행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면서도 “그러나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소원한 관계 털고 北·中, 화해무드?

    소원한 관계를 보이던 북한과 중국 사이에 미묘한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년 만에 북한 내에 조성된 중국인민지원군 전사자 묘지에 조화를 보내며 화해 제스처를 취한 데 대해 중국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지린성 방문 9일 만에 다시 선양을 방문해 북한에 화해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조선중앙통신은 28일 김 제1위원장이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열사능원에 조화를 보냈으며 조화 증정식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중국인민지원군 전사자 묘지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공군 전사자의 유해가 안장된 곳으로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도 이곳에 묻혀 있다. 김 제1위원장이 중국인민지원군 전사자 묘지에 헌화한 것은 201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60주년 이후 2년 만으로 당시에는 김 제1위원장이 직접 찾았다. 김 제1위원장은 지난 26일에도 평양에서 열린 제4차 전국노병대회 축하 연설에서 중국인민지원군에 대해 두 차례 경의를 표했다. 이 같은 김 제1위원장의 행보는 냉랭했던 북·중 관계를 풀어 보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정부 관계자는 “관계 정상화의 신호를 북한이 보내는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과 중국 간에 고위급 접촉 없이 소원해진 상태로 1년 6개월이 지났는데 이제 정상 관계로 돌아가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북한 주재 중국 대사가 북한 고위층을 만나고 농촌 봉사활동을 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는 것은 북·중 관계 회복을 위한 중국의 신호라고 해석해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신화통신을 비롯한 중국 언론들도 김 제1위원장이 중국인민지원군 전사자 묘지에 조화를 보낸 사실을 주요 뉴스로 보도하며 관심을 나타냈다. 북한의 유화 제스처에 화답하듯 시 주석도 북한과 국경을 접한 랴오닝성의 성도 선양을 지난 27일 하루 일정으로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의 선양 방문은 2013년 8월 이후 1년 11개월 만으로 2년 전 지시했던 일대일로 관련 잉커우(營口)자유무역시범구 사업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고 당부하기 위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의 한 외교 소식통은 “동북 3성의 경제 활성화는 자연스럽게 북한과의 교역 활성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자연스럽게 북한에도 화해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北, 서해 동창리 기지에 장거리 미사일 발사대

    北, 서해 동창리 기지에 장거리 미사일 발사대

    북한이 2012년 ‘은하3호’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던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 기지에 높이 67m 규모의 대형 발사대를 세운 정황이 포착됐다. 북한이 오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전후해 인공위성 발사를 빙자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실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군 관계자는 22일 “북한이 2013년 말부터 기존 50m 높이 발사대를 증축하기 시작해 최근 17m를 더 높인 증축공사를 거의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발사대 주변에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등 주요 인사(VIP)들이 발사 장면을 지켜볼 수 있는 전망대 등 부속시설도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은 북한이 이번 증축으로 기존에 발사한 30m 높이 로켓보다 큰 로켓을 발사해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음을 과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은 지난 5월 “평화적 위성을 필요한 시기에 정해진 장소에서 계속 발사한다는 것은 불변의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군 당국은 또 북한이 서해 연평도에서 불과 4.5㎞ 떨어진 무인도 갈도에 군사시설을 완공하고 122㎜ 방사포(다연장로켓)를 배치했다고 밝혔다. 122㎜ 방사포는 북한이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사용한 무기로 사거리가 20㎞에 달한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데스크 시각] 그래도… 애국을 강요할 순 없다/송한수 정책뉴스부 차장

    [데스크 시각] 그래도… 애국을 강요할 순 없다/송한수 정책뉴스부 차장

    Y선생님, 편지 잘 받았습니다. ‘태극기 게양, 애국심을 강요할 순 없다’는 글을 나무랐지요. 정부가 펼친 태극기 달기 캠페인과 맞닿았습니다. 먼저 서울신문에 주신 눈길엔 고맙습니다. 그러나 잘못 이해하는데 마냥 지나쳐선 곤란하기에 이렇게 답장을 보냅니다. 선생님께선 제게 “애국심에 무관심한 듯해 걱정”이라고 첫머리에 적었습니다. “애국심은 가져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그만인가”라고 덧붙였습니다. 칼럼 요지는 ‘마음으로 우러나야 애국심’이란 것이었습니다. 인도 격언에 ‘잠든 사람을 깨울 순 있어도, 잠든 척하는 사람을 깨울 순 없다’고 했지요. 태극기를 흔든다고 애국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현실과 어긋나 짜증을 부르는 국기법이라면 정부가 불신을 받을 테고, 태극기 달기 운동의 취지와는 달리 자칫 기피 현상을 키울 것이란 우려를 담았습니다. ‘얼, 말, 글’이라고 합니다. 셋 중 글은 맨 나중이지만 설익은 제 표현력 탓으로 돌립니다. 다음달 15일이면 광복 70돌입니다. 즈음하여 독도 문제로 또 얼마나 일본(우리로선 전향적인 자세를 희망하지만)에선 비바람이 몰아칠 터입니까. 이제껏 그랬듯이 말입니다. 독도 가까운 바다엔 사나흘에 한 번씩 일본 순시선이 나타난답니다. 해마다 100차례 안팎으로 출현하는 것입니다. 2003년 34회, 2004년 50회였다가 2009년 이후 크게 늘었습니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57차례나 됩니다. 보통 4~5시간씩 머물곤 합니다. 그러면 우리 해경은 함정을 보내 주시하게 됩니다. 두 나라 관계가 참 껄끄러울 땐 언제 맞부딪칠지 모를 일입니다. 머잖은 과거가 팽팽한 위기감을 잘 말합니다. 2006년 7월 국립해양조사원 소속 ‘해양2000호’가 동해안 해류 조사를 벌이던 중 일본 순시선이 무선통신·확성기로 활동 중지를 요구해 무력충돌 직전까지 치닫기도 했습니다. 독도가 우리에게 어떤 땅입니까. 동경 131도 52분 10.4초, 북위 37도 14분 26.8초, 넓이 18만 7453㎡(5만 6703평). 6세기 이래 우산도(于山島)로 불리다 1883년 울릉도 개척령에 따라 이주한 전라도 주민들이 돌을 사투리로 발음해 ‘독섬’이라고 불렀답니다. 1900년 대한제국 칙령에서 석도(石島)라고 썼지요. 주민들은 다시 ‘독도’라고 했고 1906년 울릉군수의 중앙정부 보고서에서 독도(獨島)라고 기록했다죠. 어엿하게 홀로 섰다는 메시지일까요. 그러나 이미 문제가 터진 뒤였지 뭡니까. 1905년 11월 일본은 을사늑약으로 맨 먼저 독도부터 빼앗고 말았지요. 임자도 없는 땅이라며 시마네(島根) 현보에 고시해 영토로 편입했습니다. 다른 나라에 알려질까 두려워서 짜낸, 한반도 침탈 야욕을 숨기려는 잔꾀였습니다. 이곳 정부서울청사 1층엔 ‘독도는 지금’이란 실시간 모니터 화면이 1년 365일 손님을 반깁니다. 이제 우리나라에 닥칠 태풍이 말썽입니다. 그곳도 걱정이겠죠. 경북 울릉군 독도리로 마음부터 달려갑니다. 2015년 7월 20일 오후 1시 27분 우리네 독도는 하얀 구름을 너울처럼 썼군요. 곧 비가 내린답니다. 이제 독도 문제에서 의연했으면 좋겠습니다. 태극기 게양 문제처럼. 국정 최고책임자가 이미지 메이킹 욕심인지 깜짝 방문해 하릴없이 일본을 자극할 게 아니라고, 우리가 멀쩡한 우리 땅 독도를 놓고 도발한 것처럼 국제적 이슈로 악용될 따름이라고 더러 고개를 내젓습니다. 일본의 도발엔 따끔하게 맞서야지요. 그래서 때로는 ‘정부=국가’인 것입니다. 독도 문제에서도 애국심을 강요할 순 없습니다. 선생님, 오늘 독도처럼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onekor@seoul.co.kr
  • [부고] 영화 ‘만추’ 각본 쓴 김지헌 작가

    [부고] 영화 ‘만추’ 각본 쓴 김지헌 작가

    영화 ‘만추’의 각본을 쓴 시나리오 작가 김지헌(본명 김최연)씨가 1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87세. 1928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난 김씨는 1956년 시인 서정주의 추천을 받아 시인으로 등단했고, 1958년 한 일간지 신춘문예에 ‘종점에 피는 미소’가 당선되면서 시나리오 작가의 첫발을 디뎠다. ‘자유결혼’(1958) 등 80편에 달하는 각본·각색 작업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희나씨와 아들 정상(씨그널엔터테인먼트그룹 회장)씨, 딸 정아(전 CJ엔터테인먼트 대표)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장례식장 12호실, 발인은 18일 오전 7시.(02)2258-5940.
  • 오늘부터 말기암 환자 호스피스 건보 적용

    말기암 환자에 대한 호스피스·완화 의료에 15일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보건복지부는 14일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말기암 환자에게 건강보험을 우선 적용하고 연내에 의료진이 가정을 방문해 호스피스를 제공하는 ‘가정 호스피스’에도 건강보험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호스피스는 말기 환자가 고통스러운 연명치료를 받는 대신 평안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환자에게 통증 완화와 상담치료 등을 제공하는 의료 활동을 말한다. 그동안에는 환자 부담이 커 완치가 어려운 말기암 환자 가운데 12.7%(2013년)만이 호스피스 의료를 이용했다. 해외 말기암 환자의 호스피스 이용률은 미국 43%, 대만 30%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완화 의료 병동에 23일간 입원하다 임종한 환자는 총진료비 681만 8596원 가운데 43만 7035원만 부담하면 된다. 전문 간병 서비스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만 이는 병원의 선택 사항이다. 따라서 간병인 서비스에 대한 급여를 받지 않는 의료기관을 이용하면 사적 간병비(일당 7만원)가 포함돼 환자 부담금이 195만 9035원으로 뛴다. 호스피스 의료 서비스를 받고 싶은 말기암 환자는 이용 동의서를 작성하면 된다. 호스피스·완화 의료 전문기관은 전국에 60곳(1009병상)이 있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인사]

    ■서울신문 △논설위원 주병철 ■행정자치부 ◇정부청사관리소△관리총괄과장 이경태△시설운영과장 오정호△청사이전사업과장 심홍근△세종청사관리소 시설1과장 황동훈△대구청사관리소장 백승만◇이북5도위원회△황해도 사무국장 윤항곤△평안북도 사무국장 구익서△함경남도 사무국장 허남식 ■산업통상자원부 ◇실장급 승진△기획조정실장 박원주△무역투자실장 이인호◇국장급 전보△대변인 성윤모△정책기획관 김정환 ■보건복지부 △기초연금과장 신욱수△질병관리본부 생명과학연구관리과장 김우기△연금급여팀장 정재욱 ■국토교통부 △공항정책과장 나웅진 ■국민권익위원회 ◇부이사관 승진△창조기획재정담당관 임진홍△복지·보조금 부정 신고센터장 김안태 ■식품의약품안전처 △소비자위해예방정책과장 장민수△통합식품안전정보망구축추진단 통합식품정보정책팀장 최숙자△첨가물기준과장 김미혜△의약품안전평가과장 이수정◇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연구기획조정과장 남봉현△첨가물포장과장 강태석△영양기능연구팀장 구용의◇서울식품의약품안전청△운영지원과장 김경환△식품안전관리과장 강철호◇부산식품의약품안전청△운영지원과장 송인환△유해물질분석과장 김우성 ■무역보험공사 ◇승진 <1급>△프로젝트금융총괄부장 김양규△국외보상채권부장 이은근△해양금융부장 안병철<부서장급>△경영평가부장 장만익△충북지사장 김준호△부산지사장 노태근△광주전남지사장 방종열△제주지사장 김필준◇전보 <부장>△정보화사업 최광식△발전금융 윤종배<실장>△심사 김기만△감리 이경철△현장경영추진 강신호<지사장>△중앙 안혜성△강남 김석희△경기 임필상△울산 김종성 ■브릿지경제 △경제연구소 대외협력국장(편집국 기획위원 겸임) 성대영
  • 행자부 내부 공모제 과장급까지 확대

    행정자치부는 지난 1월부터 시행 중인 주요 팀장 직위의 내부 공모를 과장급까지 확대하고 성과와 능력 중심의 인사 혁신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8일 밝혔다. 내부 직위공모제는 직원들이 선호하는 핵심 직위에 대해 누구나 응모·선정할 수 있도록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한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공모 절차에서 상사와 동료들이 평가에 참여하는 등 공정한 심사 과정을 거쳐 연공서열보다는 열정과 능력을 갖춘 직원이 발탁되는 길을 열어 줬다고 행자부 인사기획관실은 설명했다. 행자부가 이날 단행한 과장급 인사에는 윤항곤 이북5도위원회 황해도 사무국장, 구익서 평안북도 사무국장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지난달부터 이뤄진 서류접수와 서류전형, 면접 등을 거쳐 임명됐다. 통상 소속기관 서기관은 4년차 이상이지만 이북5도위원회 사무국장 3명 중 1명은 공모를 통해 지난해 서기관으로 승진한 직원이 발탁됐다. 내부 공모를 통해 임명되는 공무원은 공모 준비를 위해 개인별로 해당 직위의 업무를 충분히 파악하고 발전 방안까지 연구해 업무수행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새로운 정책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것은 물론 업무 파악도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행자부의 설명이다. 정종섭 장관은 “앞으로 내부 직위공모를 소속기관 과장뿐 아니라 본부 과장 직위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한민구 국방 “北, 10월 전략적 도발 가능성”

    한민구 국방 “北, 10월 전략적 도발 가능성”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28일 “북한이 오는 10월 노동당 창건 기념일을 전후해 전략적 수준의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이 올해 당 창건 70주년(10월 10일)에 맞춰 ‘인공위성’을 빙자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 준비를 지시했다는 외신 보도를 군 당국이 신빙성 있게 판단, 예의주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 장관은 취임 1주년을 이틀 앞둔 이날 기자들과 오찬 간담회를 갖고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장거리 미사일 발사장의 발사대 증축 공사가 10월 전까지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한 장관은 특히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북한 함정이 중국 어선을 몰아내고 있고 해상에 부표를 설치한 것은 불편한 북·중 관계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 문제에 대해 한 장관은 “아직 미국 측에서 결정되지 않았고 요청도 없다”며 “요청이 없으니 우리는 아직 검토하지 않는다”고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한 장관은 “미국이 사드 배치를 결정하더라도 실제 이를 배치하려면 2년 넘게 걸린다”면서 “미국의 요청이 온 뒤 검토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우리가 서둘러야 할 이유는 없다”고 덧붙였다. 한 장관은 지난 5월 30일 한·일 국방장관 회담 이후 연내 추가로 장관급 회담이 열릴 가능성에 대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대비 등으로 회담할 필요성은 인정한다”며 “총론적 측면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어 이를 봐 가면서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일 국방협력은 과거사 문제 등에 대한 일본의 태도 변화가 전제돼야 하고 전체적인 한·일 관계 진전 속도에 맞게 진행해 나가겠다는 소극적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한편 정부가 지난 26일 사상 처음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대상 외에 북한과 무기 거래 혐의가 있는 대만과 시리아의 개인과 기관을 금융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자 북한은 이를 맹비난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27일 서기국 보도를 통해 “박근혜 패당이 지금과 같이 동족 대결을 계속 추구한다면 전쟁밖에 초래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5부)업종별 기업&기업인 남양유업] 장남 경영기획상무, 차남 생산전략부문장 실무

    남양가는 창업주 고 홍두영 남양유업 명예회장을 비롯해 오너 일가의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회사다. 남양가의 혼맥은 대체로 단출하고 평범하다. 홍 명예회장은 1925년 11월 평안북도 영변군 영변면 서부동에서 부친 홍재영(작고)씨와 모친 최점숙(작고)씨 사이에 맏아들로 태어났다. 영변 지주였던 부친 덕분에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홍 명예회장은 해방 전인 1944년 일본 와세다 제1고등학교와 와세다대 불어불문과를 나온 뒤 귀국했다. 1947년 5월 같은 영변 출신의 네 살 어린 지송죽(86)씨와 혼례를 치렀다. 2010년 홍 명예회장이 세상을 뜨기까지 63년을 함께한 지씨는 남양유업에서 감사를 맡으며 남편의 경영을 도왔다. 홍 명예회장과 지씨는 원식, 우식, 영서, 명식, 영혜 등 3남 2녀를 뒀다. 가업을 물려받은 장남 홍원식(65) 남양유업 회장은 1976년 고려해운 창업주 이학철(작고) 회장의 장녀 이운경(63)씨와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인 진석(39), 범석(36)씨가 있다. 오너 3세인 이들은 둘다 유학파로 경영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경영학과를 나온 장남 진석씨는 남양유업 경영기획본부 상무로, 차남 범석씨는 생산전략부문장으로 실무를 익히고 있다. 현재 홍 회장의 유일한 손주이자 홍진석 상무의 아들인 4세 홍승의(8)군은 남양유업의 주요 주주(0.06%)에 올라 있다. 홍군은 만 한 살이던 2008년 홍 명예회장 등으로부터 주식을 증여받아 보유 주식 가치가 20억원에 달했다. 홍 회장은 남양유업 지분의 절반이 넘는 51.68%의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이며 부인 이씨가 0.89%를 보유하고 있다. 차남 홍우식(62) 서울광고 대표는 1981년 평범한 집안의 최수진(58)씨와 화촉을 밝혔다. 둘 사이에는 인석(33), 서현(32)씨 등 1남 1녀가 있다. 3세인 두 사람은 홍 대표와 더불어 서울광고의 주요 주주(10%)로 세 사람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서울고,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홍 대표는 한국 IBM을 거쳐 1980년 남양유업 과장을 지내다 5년 뒤 남양유업 내 광고 부문을 들고 나와 독립했다. 1985년 서울광고기획 상무에서 전무, 부사장을 거쳐 1993년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3남 홍명식(55) 사까나야 사장은 2005년 인터넷 의류쇼핑몰인 블루피치를 운영하는 김현정(49)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둘 사이에는 일란성 쌍둥이 딸인 효정·희정(28)씨와 아들 동근(22)씨가 있다. 장녀 홍영서(61)씨는 미국에서 개인사업을 벌이고 있는 이교현(66)씨와 결혼해 쌍둥이 자매인 수경·수영(34)씨와 정호(26)씨를 두고 있다. 경희대 작곡과를 나온 차녀 홍영혜(53)씨는 1987년 올케의 소개로 만난 동갑내기 연인 황재필(53) 영국 웨일스개발청 한국사무소장과 결혼해 하나(26), 승현(20)씨 남매를 낳았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5부)업종별 기업&기업인 남양유업] ‘낙농업 대부’ 홍두영, 46년 유제품 한우물…매출 1조 신화

    [재계 인맥 대해부 (5부)업종별 기업&기업인 남양유업] ‘낙농업 대부’ 홍두영, 46년 유제품 한우물…매출 1조 신화

    ‘불가리스, 이오, 프렌치카페, 몸이 가벼워지는 17차, 맛있는 우유 GT, 남양분유, 임페리얼 드림XO, 아인슈타인 우유’ 웬만한 한국 사람이라면 한번쯤 먹어봤음 직한 낯익은 유가공 식음료 제품들은 모두 한 기업에서 탄생했다. 남양유업을 창업한 고 홍두영 명예회장은 한국 낙농업의 대부로 불린다. 라이벌인 매일유업 고 김복용 창업주와 같은 이북 출신으로 평안북도 영변에서 태어나 1951년 1·4 후퇴 때 월남해 1964년 지금의 남양유업을 세웠다. 2010년 영면하기까지 46년을 불모지 같았던 한국 낙농산업을 개척하고 좋은 유제품을 만들기 위한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우리 기술로 직접 분유와 우유를 생산해야 한다”는 홍 창업주의 생각은 우유, 조제분유, 발효유, 치즈, 커피, 음료 등 200여가지 제품 속에 시장점유율 60% 이상의 분유, 이유식 히트 상품들을 쏟아냈다. 한눈 팔지 않는 실속 경영 속에 승승장구하며 연매출 1조원대를 달성했던 남양유업은 2013년 ‘갑질’ 파문을 겪으면서 혹독한 시련을 겪기도 했다. 홍 명예회장은 1954년 부산에서 비료를 수입하는 남양상사를 창업했지만 8년 만에 화폐개혁으로 전 재산을 날려버렸다. 첫 사업에 실패한 홍 회장은 이후 깐깐한 짠돌이라고 불릴 정도로 보수적인 경영을 펼쳤다. 분유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1963년 선진국 출장길에서였다. 분유를 마음껏 먹고 있는 외국 아기의 모습을 본 그는 한국전쟁 직후 먹을 게 없던 고국의 아이들을 떠올렸고 이듬해 남양유업을 설립했다. 1965년 충남 천안에 첫 공장을 짓고 자가 생산 체제에 들어간 홍 창업주는 1967년 유아용 제조분유인 남양분유를 출시, 대박을 터뜨렸다. 10년 뒤인 1977년에는 유산균 발효유 남양 요구르트를 개발해 히트시켰고 이듬해 유업계 최초로 주식을 상장했다. 홍 창업주는 한국 낙농산업의 기반을 닦는 데 평생을 바친 공로를 인정받아 철탑산업훈장과 대통령표창 등을 받기도 했다. 가업의 바통을 넘겨받은 이는 장남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다. 홍 회장은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 때인 1973년부터 틈나는 대로 회사에 나와 입출금 전표를 정리하면서 30년 가까이 남양유업의 업무를 살펴왔다. 1990년 4월 홍 창업주가 회사 사장 자리를 홍 회장에게 물려준 건 업무 외에도 약속이 없으면 늘 점심을 같이해 주는 아들의 극진한 효심도 한몫했다. 1977년 기획실 부장으로 정식 입사한 홍 회장은 상무, 전무를 거쳐 10년 만에 부사장에 오른 뒤 1990년대 사장을 거쳐 2003년 회장이 됐다. 기업들이 줄도산하던 1997년 외환위기 때도 20% 이상 성장을 이뤘고 1998년에는 은행차입금을 전액 갚으며 무차입 경영의 원조가 됐다. 사장 재임 당시 불가리스, 아인슈타인 우유, 아기사랑수 분유, 이오 등 히트작을 내놓으며 입사 당시 200억원 수준이었던 매출 규모를 1조원대로 키워 놨다. 현재 계열사는 부동산임대업인 금양흥업과 음료제조업인 남양F&B가 있으며 지분 100%를 남양유업이 갖고 있다. 그러나 좌절이 없을 것 같았던 남양유업은 2013년 초 ‘대리점 밀어내기’와 ‘욕설 우유’ 등 갑질 파동을 겪으며 일부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을 전개, 영업이익이 2012년 474억원에서 2013년 -220억원, 2014년 -261억원으로 적자로 떨어졌다. 매출액도 3년 연속 하락해 지난해 1조 1263억원으로 2012년(1조 3403억원)보다 2000억원 이상 급감했다. 여기에 홍 회장이 동생 홍우식 대표가 운영하는 서울광고에 남양유업 광고를 99% 몰아주면서 논란이 일었고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담합 과징금 폭탄, 지난해 탈세 혐의로 홍 회장이 검찰에 기소되는 등 악재가 겹쳤다. 황제주로 불렸던 주가도 2013년 4월 114만 9000원(종가 기준)에서 현재 70만 8000원(23일 종가 기준)으로 40%가량 하락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배우님, 편하게” “레이더 잘할게요”… 피싱조직 메신저로 작전

    “배우님, 편하게” “레이더 잘할게요”… 피싱조직 메신저로 작전

    “팀원 전부 도착하면 바로 작업 들어가겠습니다.” “넵, 레이더 잘할게요.” 지난 2일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wechat)에 만들어진 ‘공희발재(恭喜發財·부자가 되라는 중국 인사) 안전제일’이라는 제목의 단체 채팅방에서 이뤄진 보이스피싱 조직원 간의 대화 내용이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11일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의 위챗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중국에 본거지를 둔 것으로 추정되는 이 조직원들은 각자 역할을 세분화해 사기 피해금을 어떻게 빼낼지를 수시로 협의했다. ‘평안365’란 아이디를 쓰는 총책은 “내일부터 같이할 제 동생입니다”라며 ‘배우’ 역할인 박모(30)씨를 동료에게 소개했다. ‘배우’는 급전이 필요한 서민을 속여 은행에서 사기 피해금을 인출하도록 하는 현금인출책을 뜻하는 은어다. 박씨는 지난 2일 오전 10시께 송파구 가락동의 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경남 창원에서 올라온 통장주 이모(32)씨와 접촉했다. 이씨는 처음에는 대출을 해주는 줄 알고 상경했으나 나중에는 보이스피싱 사기란 사실을 알고서도 돈을 받을 속셈에 같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들의 ‘영업’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통장주 이씨가 개인 볼일을 본다며 인근 우체국에 무단으로 가버렸다. 그러던 중 사기 피해금 3700여만원이 입금될 것이란 소식은 낮 12시 50분께 전달됐다. 커피숍 안팎에서 대기하던 조직원들은 일제히 활동에 나섰다. 그러나 처음부터 삐걱댔던 범행은 결국 파탄으로 귀결됐다. 통장주인 이씨의 계좌가 정지된 상태여서 총책이 피해자의 예금을 이체할 수가 없었던 것. 알고 보니 이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포통장을 넘겼다가 열흘 전 금융거래 제한 조치가 내려진 상태였다. 격분한 이씨는 “항의하러 간다”며 은행으로 향했다. 하지만 박씨의 불운은 끝나지 않았다. 이틀째 죽치고 앉아 이상한 언동을 보이던 조직원들을 수상히 여긴 커피숍 직원들이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레이더’들은 도주했지만 박씨와 이씨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총책은 박씨를 단체 채팅방에서 추방하고 자취를 감췄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세계 3대 작물 ‘밀’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세계 3대 작물 ‘밀’

    밀은 벼, 옥수수와 더불어 세계 3대 작물 중 하나다. 인류가 농업을 시작한 1만 5000년 전부터 재배된 곡식이다. 원산지는 코카서스 남부인 아르메니아로 추정된다. 밀은 비교적 건조하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아 세계 126개국에서 재배가 되고 있다. 밀은 세계 곡물 생산량의 30% 수준이다. 밀의 최대 생산국은 중국으로 인도, 러시아, 미국, 프랑스 등이 주요 생산국이다. 서양의 주식인 밀은 기원전 100년쯤 중국에서 한반도로 전해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밀 유적지는 평안남도 대동군 미림지다. 그 후 경북 경주시의 반월성지에서 개화된 밀알이, 충남 부여읍의 백제 군량고에서는 불에 탄 밀이 발견됐다. 과거에는 밀 생산량이 많지 않아 밀가루 음식은 궁중에서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았다. 고려도경에는 ‘고려엔 밀이 적어 화북지방에서 수입하고 밀가루 값이 매우 비싸 잔치 때 먹는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국수가 서민 음식으로 바뀌었고, 희고 긴 모양 때문에 결혼식 등에서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통했다. ●식생활 서구화… 국민 1인당 연간 34㎏ 소비 밀은 가공을 통해 빵과 국수, 과자, 케이크 등의 주 재료로 활용된다. 국내에서는 식생활의 서구화로 국민 1인당 연간 34㎏을 소비한다. 쌀 다음으로 많은 소비가 이뤄지는 곡식이다. 국내에서도 1970년대 15%의 자급률을 유지하다가 그 후 값싼 밀 수입정책으로 국내 밀 생산 기반이 무너졌다. 1990년대에는 1% 이하까지 하락해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통밀가루는 밀알 전체를 갈아서 만든 것으로 식이섬유와 미네랄, 비타민 등이 다량 함유돼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인정한 건강기능성 식품의 10대 트렌드에 통곡류가 들어간다. 실제 미국과 유럽에서는 최근 백밀가루 대신 통밀가루 제품이 대세 식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동의보감에는 밀과 밀가루를 각각 소맥(小麥)과 면(麵)으로 적고 있다. 소맥은 발열, 이뇨작용, 간 기능 개선 등에 효능이 있고, 면은 소화, 위장, 원기 회복 등에 도움을 준다. 최근에는 밀의 추출물이 알츠하이머병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고 기억력 증진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다. 통밀에는 항산화작용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토코페놀’ 함량이 백밀가루보다 3∼5배 높다. 포만감을 줘 다이어트 효과가 있는 식이섬유도 12∼15% 함유돼 있다. 그 외에 폴리페놀, 옥타코사놀, 아라비노자일란 등과 같은 유용 성분이 들어 있어 의약품 소재로도 활용되고 있다. 밀은 주로 가루를 만들어 이용됐다. 다른 곡물에 비해 가공 능력이 뛰어나 다양한 식품 제조가 가능하다. 밀에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등이 84%를 차지하고 있지만 밀가루에 함유된 단백질 중 글루텐의 양과 질에 의해 가공성이 결정된다. 빵, 국수, 과자, 케이크 등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엔 식량 이외에 주정용과 사료로도 사용되고 있다. 빵은 서양에서 식량 전체를 의미할 만큼 일반적인 음식이다. 빵은 밀가루를 반죽할 때 효모를 첨가해 오븐에 구운 것으로, 음식을 부패하지 않게 장기간 보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기원전 3000년쯤 바빌로니아에서 술을 만들다가 제빵법을 발견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2000년쯤에는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효모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빵으로는 영국의 머핀, 프랑스의 바게트, 오스트리아의 베이글, 이집트의 피타, 인도의 난, 중국의 꽃빵 등이 있다. 밀이 부족한 북유럽과 러시아에서는 호밀가루를 이용해 흑빵을 제조하기도 한다. ●국내 빵·면 시장규모 20조원대 달해 우리나라에서 빵은 이제 간식거리에서 한 끼의 식사용으로 대접받고 있다. 초창기에는 제과점 등 자영업 형태로 유지되던 경영 형태가 최근엔 대기업이 참여하는 프랜차이즈로 바뀌고 있다. 국내 빵 시장 규모는 10조원대를 웃돌고 있다. 국수는 중국이 기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이 저렴하고 조리하기 편리해 급속히 보급된 가공 식품이다. 동양에서는 희고 긴 모양 때문에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례 음식으로 사용됐다. 송나라 때 이슬람을 거쳐 유럽으로 전파된 국수는 이탈리아의 대표 음식인 파스타 요리로 바뀌었다. 일본에서는 1958년 ‘치킨라멘’이라는 인스턴트 라면이 개발되면서 여전히 서민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국내에서도 면 요리의 인기가 높아 국수 시장이 커지고 있다. 국내 식용 밀 소비량의 70%를 차지하며 10조원대의 시장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국내 라면은 1963년 ‘치킨라면’으로 시작해 지금은 4개의 대형 가공업체에서 250여종을 생산하고 있다. 국민 1인당 연간 70여개를 먹어 총 24억개를 소비하고 있다. 과자는 비스킷, 쿠키, 크래커 등 다양하다. 빵보다 역사가 오래됐다. 우리 식생활에서는 주로 간식 형태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기원전 6000∼4000년쯤 중동의 이란 평원에서 야생 밀을 물로 반죽했던 음식이 과자의 기원으로 알려졌다. 비스킷은 주로 밀가루, 설탕, 지방을 이용해 구운 제품이다. 수분 함량이 4% 미만으로 유통 기한이 긴 특징이 있다. 쿠키의 수분 함량은 5% 이하로 과자 크기가 작고 장기간 보존이 가능하다. 또 여러 모양으로 만들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와플은 틀에 구운 다음 버터를 바르고 시럽을 뿌려 먹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케이크는 기념일이나 즐거운 일에는 꼭 준비해야 할 만큼 우리 문화와도 친숙해진 서양 음식이다. 케이크는 밀가루 반죽과 꿀, 계란, 기름, 버터, 치즈 등을 첨가해 만든다. 이집트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로마 시대에 빵과 케이크로 나뉘었다. 우리나라의 전통주는 술을 빚을 때 밀누룩을 발효제로 사용해 독특한 맛과 향을 낸다. 밀 껍질째 빻아 물로 반죽하고, 메주처럼 덩어리를 지어 띄운 ‘막누룩’을 이용해 술을 빚는다. 조선시대 농서인 ‘사시찬요초’에는 “보리 10되, 밀가루 2되를 녹두즙, 여뀌와 반죽해 떡처럼 만들어 바람이 통하는 곳에 걸어 말려 누룩을 만든다”고 기록돼 있다. 밀을 주 원료로 사용해 맥주, 보드카, 위스키 등도 만들어진다. 러시아의 대표주 보드카는 밀을 원료로 하며, 맥주를 증류해 만드는 위스키 중 그레인 위스키(Grain whisky)는 밀이나 옥수수로 제조된다. 밀로 만든 맥주에는 벨기에산 밀맥주가 있다. 국내에서는 제주도에서 생산된 밀과 청정수를 이용해 만든 밀맥주가 깔끔하고 단맛이 난다. 벼농사가 끝난 겨울철 들녘에 밀을 재배하면 환경 보전, 경관 개선과 함께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다. 우선 겨울철에 밀을 재배하면 공기 정화와 경관 개선 등의 효과가 있다. 산비탈 등 경사지에 밀을 재배하면 토양 유실과 하류의 흙탕물 발생을 막을 수 있다. 국산 밀은 재배할 때 겨울철을 지나가기 때문에 병해충 발생이 적어 친환경 재배가 가능하다. ●먹거리 넘어 체험관광자원으로 활용 밀은 최근 먹거리뿐 아니라 볼거리와 체험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해마다 2월 말 들뜬 뿌리를 밟아줘 밀 생육을 좋게 해주는 ‘밀밭 밟기’와 5월 말 아직 익지 않은 밀을 베어 구워 먹는 ‘밀사리’ 전통이 이제는 재배단지를 중심으로 축제와 체험행사로 바뀌고 있다. 농촌 경제와 로컬 푸드 활성화 등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토종 밀인 ‘앉은뱅이밀’은 세계의 기아를 구제한 녹색 혁명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앉은뱅이밀은 멕시코 재래종과 교잡돼 많은 수확이 가능한 ‘소노라64’ 품종을 탄생시켰다. 소노라 64는 멕시코의 밀 생산을 3배 증가시켰고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는 기아 문제를 해결했다. 강천식 농촌진흥청 작물육종과 농학박사 ■문의 golders@seoul.co.kr
  • 송하진 전북지사, 가고시마현에 위로 서한문 보내

    송하진 전북지사가 화산 분화로 큰 피해를 입은 일본 가고시마현지사에게 지난달 29일 위로 서한문을 보냈다. 송 지사는 서한문을 통해 “가고시마현민들의 무사와 평안을 빌며, 부디 분화 활동이 속히 진정되어 모두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200만 전라북도민과 함께 기원한다”고 전했다. 가고시마현 구치노에라부지마섬에서 일어난 이번 화산 분화의 경계단계는 ‘주민 피난’ 수준인 ‘레벨 5’까지 격상됐다. 현재 섬주민 130여명은 모두 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는 가고시마현과 1989년 우호 증진을 위한 협약을 체결해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가고시마현은 아시아청소년예술제에 매년 전북도 청소년 예술단체를 초청하고 있다. 또 건축가, 변호사, 사진가 등 민간인 교류도 수시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가고시마공항은 1998년부터 현재까지 총 7명의 전북도 출신 인재를 채용하기도 했다. 이미경 기자 btfseoul@seoul.co.kr
  • [뉴스 플러스] “北, 동창리 로켓 발사장 개축 중”

    북한이 2012년 ‘은하 3호’를 발사한 평안북도 철산군의 서해 동창리 로켓 발사장을 개축 중이라고 북한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가 28일 밝혔다. 38노스는 “발사대의 동쪽 끝에 지원건물을 신축하고, 이 건물과 발사탑을 잇는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며 “북한이 10월 노동당 창당 70주년 기념일에 맞춰 장거리 로켓을 발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건축을 중단하고, 로켓 준비작업을 할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았다.
  • 3000t급 차기 기뢰부설함 ‘남포함’ 진수

    3000t급 차기 기뢰부설함 ‘남포함’ 진수

    해군이 27일 차기 기뢰부설함인 3000t급 ‘남포함’의 진수식이 백승주 국방부 차관, 김진형 해군 군수사령관,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열렸다고 밝혔다. 남포함은 해군이 1996년 진수한 2500t급 원산함에 이어 두 번째로 국내에서 건조된 기뢰부설함이다. 남포함 함명은 6·25전쟁 중 해군이 참가해 기뢰 제거 작전을 벌인 평안남도 남포의 지명에서 비롯됐다. 해군은 6·25전쟁 동안 총 3462차례 기뢰 제거 작전에 출동해 1012개의 기뢰를 제거했다. 남포함은 길이 114m, 폭 17m, 높이 28m 규모로 120명의 승조원이 탑승해 최대 시속 23노트로 순항할 수 있다. 남포함은 평시에 장병 교육 훈련을 지원하며 전시에는 핵심 해역을 보호하는 보호 기뢰를 부설하고 기뢰전 전대의 기함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특히 자동 기뢰부설체계와 선체 고정 음탐기, 레이더 등 주요 장비의 90%를 국산화했다. 해군은 6·25전쟁에 참전했던 연합국의 무관 10명을 초청해 진수식의 의미를 더했다. 이날 진수된 남포함은 내년 10월쯤 해군에 인도돼 5개월간 전력화 과정을 거친 후 2017년 4월쯤 작전 배치된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쓰레기도 자원” 홍보 나선 양천

    ‘마당레기 투어단에 참여해 보세요~.’ 양천구는 쓰레기 줄이기 실천 운동을 정착시키고 주민들의 현장체험을 통해 자원 절약, 재활용 등 녹색생활 실천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다음달부터 10월까지 총 25회에 걸쳐 주민 환경 체험교실 ‘마당레기 사랑 홍보 투어단’을 운영한다. ‘마당레기’는 쓰레기의 평안북도 방언이다. 투어단은 ‘폐기물은 쓰레기가 아니고 자원이다’라는 주제로 통반장, 직능단체회원, 일반주민 1000여명으로 구성됐다. 구 관계자는 “양천 자원회수시설과 양천구 자원순환 홍보교육관 견학을 통해 자원순환의 중요성을 알리고 재활용 분리수거 실천을 홍보할 계획”이라면서 “견학은 40명씩 1개조로 운영되고 양천 자원회수시설에서는 쓰레기 반입, 소각, 열 공급 등 여러 공정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실제로 가정에서 나오는 폐기물 봉투가 소각되는 시설을 방문해 배출된 쓰레기가 소각되면서 열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이 밖에 자원순환 홍보 교육관을 통해 청소 관련 시설을 견학하고, 품목별 재활용 배출방법 설명 및 홍보 동영상 시청과 재활용을 이용한 창작물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재활용 선별장에선 일반쓰레기로 버려진 쓰레기 봉투를 해체하는 과정을 통해 활용이 가능한 종이·비닐·캔 등이 얼마나 많은 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구는 오는 28일에 주민 300여명이 참가하는 ‘쓰레기 함께 줄이기 구민운동본부 발대식’도 진행한다. 김수영 구청장은 “이번 체험을 통해 쓰레기 분리배출 및 쓰레기 줄이기의 중요성을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생활폐기물 감량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태영그룹] 13세에 월남… 의원 보좌관 시절 인맥이 큰 자산으로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태영그룹] 13세에 월남… 의원 보좌관 시절 인맥이 큰 자산으로

    태영그룹을 설립한 윤세영(82) 회장은 해방 전인 1933년 강원 철원군 동송면 오지리에서 고 윤현구씨와 고 임복희씨의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오지리는 10대째를 이어 오며 해평(海平) 윤씨 집안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작은 동네였다. 선대로 올라가면 참판과 부사, 현감이 흔할 정도로 뼈대 있는 가문이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벼슬길에서 멀어지면서 오지리 사람들은 한학과 농사일에만 전념했다. 윤 회장이 관인초등학교를 졸업하던 1946년 38선 이북에 위치한 오지리는 조선인민공화국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해 윤씨 가족은 정든 고향을 빠져나와 월남했고 경기 포천 등을 거쳐 1948년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터를 잡았다. 새 터전에 정착하기도 전에 터져 버린 전쟁은 윤씨 가족에게 평안한 삶을 허락하지 않았다. 서울이 인민군에게 점령되자 당시 경기 상업중학교를 다니던 윤 회장은 의용군으로 끌려갈 위기에 처했다가 다행히 남보다 작은 체구로 강제징집을 면할 수 있었다. 윤씨 가족은 1951년 1·4 후퇴를 맞아 남쪽으로 피란을 결정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전쟁이 끝나 후 윤 회장은 아버지가 전쟁통에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했다. 어떤 과정으로 유명을 달리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어머니를 비롯한 나머지 가족과 다시 상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어머니 임씨의 교육열은 대단했다. 다시 서울로 올라온 윤 회장은 서울고를 거쳐 1년간의 재수 생활을 통해 1956년 서울대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대학교 2학년 때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그는 어려운 집안 형편 등을 고려해 통역장교에 지원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는 춘천에서 군 복무를 하면서 서울대생으로 학업을 이어 갔다. 꿈에 그리던 학교였지만 출석은 불가능했다. 당시는 교실에 비치된 출석부에 학생이 직접 도장을 찍는 식이어서 친구들에게 아예 도장을 맡겼다. 직접 이름을 불러 확인하는 수업은 친구들이 대신 대답을 해 주는 식이었다. 이수성(전 국무총리), 정해창(전 대통령 비서실장), 고 최동규(전 서울산업대 총장) 등 쟁쟁한 인물들이 어렵게 학업을 이어 가는 친구를 도와줬다. 하지만 시험은 봐야 했다. 특별 휴가를 내고 서울에 올라와 친구들의 노트를 빌려 벼락치기를 했다.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전국에서도 수재들만 모인 학교에서 수업도 듣지 못한 그가 벼락치기만으로 좋은 성적을 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윤 회장은 남들보다 1년 6개월 늦은 1961년 9월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5·16 군사혁명이 일어난 1961년에 아내 변금옥(80)씨를 만났다. 아내와 서울대 치과대 동기 동창인 외사촌 형수가 “좋은 처자가 있다”며 종로5가에 치과를 개업한 변씨의 병원 주소 등을 일러 줬다. 몰래 병원을 찾은 윤 회장은 곱게 한복을 입고 진료를 보는 변씨에게 푹 빠졌다. 결국 두 사람은 1년여간 사귀다 결혼했다. 변씨의 집안도 고향을 떠나 월남한 아픈 기억이 있었다. 금옥씨의 아버지 고 변원규씨는 일본에서 익힌 날염 기술로 평양에 원일방직을 세운 사업가였지만 분단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남한으로 내려왔다.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기전 사망한 아버지를 대신해 변씨는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훗날 처남들 중 일부는 태영그룹에서 매형의 사업을 도왔다. 전 대한스키협회 회장을 지낸 변탁씨는 전 태영건설 대표이사, 변건씨는 전 SBS 임원, 변용씨는 원도시건축 대표, 변철씨는 태영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로 근무했다. 모두가 힘든 시기였지만 가정은 단란했다. 윤 회장과 변씨는 1남 2녀(수연, 석민, 재연)를 뒀다. 윤 회장은 봉명그룹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공화당 3선 의원이자 사업가인 고 이동녕 봉명그룹 회장을 8년간 모셨다. 몸은 봉명 소속이었지만 업무는 의원 보좌관이 주였다. 4대 민의원을 거쳐 6대 국회에 진출해 국방위원을 하던 이 의원은 자신을 보좌할 사람을 물색하던 중이었다. 이 의원의 부인과 윤 회장의 장모가 막역한 사이였고, 양가가 동향이었다는 점도 두 사람을 이어 준 계기가 됐다. 윤 회장은 지금까지 이 의원을 ‘어르신’이라고 부르며 마음으로 존경한다. 사실 의원 보좌관은 사업가로 알려진 윤 회장에게는 다소 엉뚱한 경력이다. 하지만 윤 회장은 의원 보좌관으로서 8년간 쌓은 정계와 재계의 인연이 훗날 자신에게 큰 자산으로 남았다고 회고한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수십번 담금질마다 서린 장인 손끝 ‘세월의 온기’

    [명인·명물을 찾아서] 수십번 담금질마다 서린 장인 손끝 ‘세월의 온기’

    우리 선조들의 ‘삶’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대장간이 겨우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읍·면마다 한곳 이상 있었으나 1980년대 들어 기계화 영농이 보편화되면서 하나둘 사라져 가고 있다. 한강·임진강·한탄강 등이 흘러 비옥한 농토가 산재한 한수 이북(경기 북부)에도 풀무질을 해가며 직접 손으로 두드려 낫·호미를 만드는 대장간이 고을마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근수(70)씨의 ‘파주대장간’이 유일하다. 파주 광탄시장 부근에 있다. 대장간 안은 매우 좁다. 겨우 38㎡(약 12평) 한쪽에 화덕이 있고 그 옆으로 모루와 각종 집게 등 작업도구들이 걸려 있다. 호미·낫·쇠스랑 등도 시렁에 쭉 걸려 있다. 마치 옛 농기구 박물관 같은 느낌이다. 한씨는 평생 해온 대장장이 일을 천직으로 생각한다. 대장장이 길로 들어서게 한 ‘곽산대장간’ 시절을 잊지 못한다. 요즘 만드는 물건에도 곽산대장간을 의미하는 ‘山’(산)자를 새겨 그 정신과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옛날 대장간의 모습과 지금 대장간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예전에는 낫 한 자루를 만들려면 철근을 잘라 화덕에 수십 번 담금질하고 모루에 대고 망치로 두들겨 모양을 잡아가는 과정을 거쳤지만, 지금은 기계가 두들김질을 대신하죠.” 이로 인해 낫 한 자루를 만드는 데 30분 정도가 걸린다. 화덕에 담금질을 12번 정도 하고 마지막에 물에 담가 강도를 높이면 완성된다. 한수 이북 마지막 대장간의 문을 차마 닫지 못하고 야장(冶匠)의 맥을 지키는 한씨는 1945년 파주 장단의 진동면 초리에서 태어났다. 6세 때 한국전쟁이 일어나 폭격으로 부모를 잃고 1·4 후퇴 때 누이, 남동생, 여동생 등 4남매와 정든 고향을 떠나 금촌 수용소 마을(현 금촌초등학교 근처)에 정착했다. 그러나 젖먹이였던 남동생이 죽고 뒤를 이어 여동생마저 굶주림으로 숨지고 말았다. 그는 금촌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서울 문래동에 사는 큰 아버지 댁으로 들어가게 된다. 큰아버지의 소개로 인근 영일동 곽산대장간에서 일을 배우게 됐다. 당시 14살의 어린 나이었지만 평생을 ‘업’으로 여기며 살게 된 대장장이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건축자재를 전문으로 생산하던 곽산대장간은 주로 건축에 필요한 꺾쇠 등을 만들었다. 20여명의 직원들 속에서 가장 어렸던 한씨에게 주어진 일은 풍구질. 화덕에 불을 지피며 눈치껏 다른 일들을 배워 나갔다. “한 10년 하니까, 대장장이가 갖춰야 할 웬만한 기술은 다 할 수 있겠더라고요.” 당시 곽산대장간 주인 김지명씨는 고향인 평안도 곽산을 대장간 이름으로 썼다. 곽산대장간에서 만든 물건에는 모두 ‘山’을 새겼는데 당시 서울에서는 꽤 소문나 있었다. 한씨의 대장장이 기술은 김지명씨로부터 전수받았다. 이 때문에 한씨는 지금도 ‘山’이란 로고를 쓰고 있다. 한씨는 유일한 피붙이인 누이가 혼인해 파주 용주골에 정착하자 1970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파주 법원리에 있는 ‘법원리대장간’으로 일터를 옮겼다. 당시 25살 청년의 눈에 비친 법원리대장간은 서울의 곽산대장간 분위기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시골이라 농기구 만드는 일이 주된 일이었다. 손에 익숙지 않은 일들이었으나 눈치껏 일을 배워 나갔다. 첫 월급은 22㎏짜리 밀가루 4포를 살 수 있는 3000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씨의 눈에 동료들이 낫자루 끝을 마무리하는 낫 당개미(나무로 된 낫 손잡이가 쪼개지지 않도록 자루 끝에 끼우는 고리 모양의 쇠붙이)를 몹시 어렵게 많은 시간을 허비해가며 만드는 것을 보게 됐다. 한씨는 당개미의 재료인 두꺼운 쇠판을 오릴 수 있는 가위를 만들면 작업 속도가 매우 빨라질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주인의 허락을 받아 낫 당개미 전용 가위를 만들자 작업이 한결 수월해지고 낫을 생산하는 속도 역시 매우 빨라졌다. 대장간 주인은 월급을 1만 5000원으로 5배 올려줬다. 그로부터 5년 후 한씨는 인접 마을인 광탄면 신산리 ‘파주대장간’으로 자리를 옮겼고, 3년이 지나자 이곳의 주인이 됐다. 1970년대 중반 당시 파주에도 새마을운동 바람이 거셌다. 농사일에 필요한 농기구 수요 역시 급증했다. 닷새마다 열리는 광탄 장날은 대목 중 대목이었다. 장날 하루에만 호미를 2만개나 팔았다. 혼자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직원 5명을 두고 일을 했지만 물량을 맞출 수 없어 다른 곳에서 구입하다 팔기까지 했다. 낫도 연간 1만개가량 팔려나갔으며 당시 인근 군부대에 도끼를 비롯한 여러 도구를 납품하기도 했다. “그때가 가장 호황을 누렸지요. 자녀 다섯을 대장간에서 번 돈으로 공부시켰으니까.” 그러나 호황도 잠시. 1980년대 들어서면서 기계화 영농이 시작되고 농약(제초제)이 보급되면서 호미·낫을 비롯한 농기구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더욱이 큰 기업들이 기계로 찍어 내더니 5년여 전부터는 값싼 중국산까지 밀려들어 오면서 8000원짜리 호미는 연간 20개, 1만 5000원 하는 낫은 200개 정도만이 팔리고 있다. “중국산 호미가 3000원, 낫이 5000~7000원 합니다. 어쩌다 한 번 사용하는 호미와 낫을 5배, 2배씩 더 주고 사겠어요? 그렇다고 가격을 내릴 수도 없죠.” 요즘도 대장간을 찾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예전에 문전성시를 이뤘던 30~40년 전과 달리 한가롭기만 하다. 워낙 수입이 없어 기계로 만든 다른 철물들도 구색을 갖춰놓고 팔고는 있으나 한 달 수입이 고작 100만원도 안된다. 현실은 이래도 한씨는 한 번도 대장간 문을 닫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매일 같이 불을 지폈던 화덕은 이제 주문이 있거나 광탄 장날에만 가끔 불을 지피곤 한다. “나까지 돈 안된다고 문을 닫으면 한수 이북에 대장간은 아예 씨가 마르게 되는 거예요.” 글 사진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서울&평양 경제 리포트] 북한에 부는 농업 개혁 바람

    [서울&평양 경제 리포트] 북한에 부는 농업 개혁 바람

    북한은 지난해 2월부터 한 농가가 몇년간 같은 밭에서 농사를 짓도록 허용하고 농민이 수확한 식량 중 상당 부분을 자신이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국제학부 초빙교수는 지난해 10월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보낸 칼럼에서 이 같은 북한의 조치에 대해 뒤늦게라도 농업개혁을 시작한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일정 부분 자기 몫의 일부를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도록 한 조치로 1970년대 말 중국에서 실시한 농업 개혁과 유사하다고 란코프 교수는 분석했다. 북한은 지난해 정권 수립 후 처음으로 ‘전국 농업부문 분조장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농업 생산의 책임제를 분명하게 하고 협동 농장의 자력 경영을 강조했다.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최근 북한 농업에 조용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의 비료 지원 없이도 식량 생산이 꾸준히 늘어나는 등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말들이 많다. 도대체 북한 농업에 무슨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2014년 5월30일 새로운 경제개선대책을 지시했다고 도쿄신문이 지난해 11월 보도했다. 5·30조치로도 불리는 김 제1위원장의 개혁조치는 공장, 기업, 농업부문의 생산·분배 독립채산제의 확대와 실적 향상을 겨냥한 것이다. 당시에도 실행을 위한 세칙이 마련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올부터 협동농장·기업소 자율경영제… 中개혁과 유사 중국의 북한 전문가에 따르면 김 제1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올해부터 북한 내 협동농장과 기업소에 자율경영제가 도입되고 협동농장의 작업분조를 폐지해 가족 단위의 영농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농장 노동력 1인당 농지 1000평을 할당해주고 여기서 발생한 생산물은 국가와 개인이 각각 40%와 60%씩 나눠 갖도록 했다. 이는 2012년 발표한 ‘6·28조치’보다 더 개인의 소유를 강화한 것이다. 당시에는 기업과 농장은 이익의 70%를 국가에 내고 나머지 30%는 자유롭게 사용했다. 이 같은 북한의 조치는 1978년부터 시작돼 1980년대 중국에서 추진됐던 ‘생산책임제’ 개혁에 비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78년 ‘포산도호(包産到戶)’로 시작된 중국 농업의 개혁은 개별 농가에 책임 농지를 배분하고 목표치를 초과하는 생산에 대해서는 농가에 추가로 배분하는 형태였다. 이 체제는 4년 만인 1982년 포간도호(包幹到戶) 형태로 발전했다. 즉 목표치를 초과하는 생산량만큼 농가가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었다. 중국의 농업은 이후 2년 만에 사실상 완전한 개인농으로 전환돼 1980~1985년 농업생산액이 무려 48.2%나 증가했다. ●“제도 정착 땐 GDP 성장률 지금의 7배 육박할 것”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북한의 5·30조치가 현실화될 경우 농업생산이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현대경제연구원도 지난해 9월 ‘북한 농업개혁이 북한 GDP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에서 북한이 농업개혁을 통해 1차 산업 부문의 부가가치 증가만으로도 국내총생산(GDP)을 7% 이상 높일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한국은행이 최근 북한의 실질 GDP 성장률이 지난해 1.1%에 불과하다고 분석한 점을 감안하면 북한이 농업개혁을 통해 성장률을 엄청나게 끌어올리는 게 되는 셈이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의 농업개혁이 북한 내 시장경제화를 촉진시키는 등 북한 경제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농업개혁이 이뤄지면서 자연스럽게 유기농에도 관심을 돌리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3년 11월 조선신보는 북한에서 유기농업이 적극 추진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신보는 북한 농업과학원 시험장에서 독일 유기농업연구소와 연계해 2010년부터 유기농 작물을 재배하고 면적도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유기농에도 관심… 알곡작물 화학비료 50% 줄여 또 조선유기농업개발협회, 농업과학원, 국토환경보호성과 평양원예지도국 등 전국의 여러 기관이 협동농장과 협력해 유기농업생산과 관련한 과학기술적 문제 해결에서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논벼와 강냉이를 비롯한 알곡작물에서 화학비료를 50% 이상, 감자 및 과일에서 30% 이상 사용량을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잎채소 등에서는 화학 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생산량을 10% 이상 늘렸다. 북한은 지난 2003년 10월 조선유기농업개발협회가 창설된 데 이어 2005년 11월에는 북한유기산업법이 채택됐다. 이를 바탕으로 2004~2010년 유기농업발전 7개년 계획을 수립해 유기생산체계와 기술개발을 위한 시범단위가 설정됐다. 북한은 국제유기농업운동연맹(IFOAM)과 해마다 유기농 강습을 진행하고 있다. 평안도 숙천군 쌍운유기농업시험장에서 진행되는 실습에서 유기농업의 세계적 추세와 원칙 등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IFOAM은 지난해 5월 처음으로 북한에서 국제유기농강습을 진행한 바 있다. IFOAM은 세계 116개국의 750여개 가입단체로 구성된 세계 최대 규모의 유기농업운동단체로 1972년 프랑스에서 설립돼 현재 독일 본에 본부를 두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북한의 농업전문가 6명이 독일에서 유기농업 등 농업생산성 증대 관련 기술을 교육받았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보도하기도 했다. 이들 농업전문가는 유기농 연구로 유명한 카셀대학과 유기농 농장, 기업 등을 방문해 독일 농업 현황을 살펴봤다. 또 독일 비정부기구(NGO)인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사회’(GNE)는 유럽연합(EU)의 지원을 받아 2018년까지 북한 농업과학원과 함께 북한의 영농기술 개선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농업전문가 초청은 이 사업의 첫 단계로 이뤄졌다. GNE와 북한 농업과학원은 평양, 황해남도, 평안북도, 강원도 등에 유기농법을 이용한 농장을 시범 운영하고 평양에 농업증산센터와 농업현장연구센터를 설립해 관련 연구·교육도 병행할 예정이다. 이 사업으로 북한 4개 협동농장의 농민, 농업지도원 1000여명이 혜택을 받게 될 것이라고 VOA는 전했다. 하지만 이 같은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 김영훈 농촌경제연구원 글로벌 협력연구부장은 8일 “유기농은 식품안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환경보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국내 식량 수급이 완전히 안정되지 않은 북한에서 유기농을 육성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올해 북한 식량 사정 11만t 정도 부족 예상 최근 북한의 농업과 관련해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FAO)는 2010년 450만t에 불과하던 식량생산이 2014년에는 503만t까지 늘어났다고 밝혔다. 최근 4년간 11.8%나 증가한 수치로 특히 2012년에서 2014년 사이에는 무려 14%가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년간 봄과 초여름에 가뭄 현상이 발생해 작황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에도 이 같은 수치가 나온 것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북한의 올해 식량 생산량은 대략 508만t 정도로 예상되며 수요량은 549만t 정도로 추정된다. 여기에 해마다 북한이 30만t가량을 상업적 방식으로 수입하는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11만t 정도가 부족하다. 그런 상황에서 꾸준하게 식량 생산이 늘어난 원인에 대해 여러 분석이 있지만 농업 개혁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즉 5·30조치에 따른 동기유발이 생산량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다만 이 같은 식량생산 증가가 꾸준히 이어지기 위해서는 식량생산의 늘어난 몫의 일부 또는 전부를 꾸준히 농업생산자가 소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여전히 식량이 부족한 북한으로서는 일부 농민에게만 식량 소유를 인정하게 하는 것은 상당한 과제임이 틀림없다. 김영훈 부장은 “북한 농업개혁의 성패 여부는 얼마나 개인 생산분의 소유권을 인정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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