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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계종 3일 방북…정부 5·24제재 조치후 사회문화 교류 첫 허용

    정부가 지난해 천안함 사건 뒤 단행한 5·24 대북 제재조치 이후 처음으로 종교인의 방북을 허용했다. 남북 관계 개선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팔만대장경 1000년 기념 법회 통일부는 2일 “자승 스님과 영담 스님 등 대한불교조계종 관계자 37명이 3일부터 오는 7일까지 방북한다.”며 “방북단은 평안북도 묘향산 보현사에서 ‘팔만대장경 판각 1000년 기념 고불(古佛) 법회를 연다.”고 밝혔다. 이들 불교계 인사들은 3일 인천공항을 떠나 중국 베이징을 경유, 평양에 도착할 예정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순수 종교적 목적의 방북이고 올해가 팔만대장경 판각 1000년이라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방북을 승인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천안함 사건 이후 5·24 제재조치를 통해 대북 수해 지원이나 영유아 등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 외에는 방북을 엄격히 제한해 왔다. 5·24 조치 이후 종교활동 등 사회문화 교류 목적의 방북은 물론 남측 관계자의 평양 방문은 처음이다. ●일각 “대북정책 유연성 강화” 일각에서는 정부의 이번 방북 승인이 류우익 통일부 장관 후보자 내정에 따른 유연성 강화 차원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종교활동을 시작으로 사회문화 교류를 포함해 대북 인도적 지원 등을 확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편 이번 방북단이 법회를 열 예정인 보현사는 평양에서 북쪽으로 1~2시간 거리에 있는 사찰로, 일제강점기인 지난 1938년 일본의 대장경 약탈을 우려해 제작한 합천 해인사 대장경의 인쇄본 전질이 보관돼 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北 군대·경찰·보위부도 식량난 허덕 국제사회 원조 취약계층 전달 안 돼”

    “北 군대·경찰·보위부도 식량난 허덕 국제사회 원조 취약계층 전달 안 돼”

    #1 김정일 총서기나 요직에 있는 사람들의 경호 전문부대인 호위사령부의 장교를 만나 물어보니, 하루 식량공급량은 옥수수 300g, 즉 한 끼에 100g이라고 한다. 이 정도의 양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영양실조가 걸리는 양이다.…어린 병사가 집에 와서 “얼마라도 좋으니 식량을 좀 달라.”고 빌어먹으러 와 놀랐다. “상관의 명령으로 집들을 돌고 있다. 먹을 것을 가지고 가지 않으면 맞는다.”고 했다. 이 10년 동안 1월에 이렇게까지 군대에 식량이 없었던 해는 없었다. (올 1월 평안북도) #2 병사들의 한 끼는 옥수수쌀 160g에 반찬이라고는 고체형 간장을 물에 푼 ‘말린 간장’뿐이라고 한다. 일반 부대에서는 한 끼에 옥수수쌀 130~140g과 소금물만 나온다고 한다. (2월 말 양강도 여단 지휘부 장교) #3 올 들어 배급이 한꺼번에 감소해 지난 3~4월에는 본인분 배급만 한 달에 10~15일분밖에 나오지 않았다. 탄광 노동자의 평균 식사는 한 끼는 옥수수밥, 나머지는 옥수수가루로 만든 국수나 죽이 전부다. 빈곤층은 하루 두 끼를 옥수수 죽으로 때우고 있다. (평안남도 순천지구 탄광) 군대, 경찰, 보위부, 우량탄광 종사자 등 북한의 이른바 ‘우선배급대상’도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어 국제사회가 식량을 지원해도 취약계층에까지 혜택이 돌아가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왔다. 북한 잠입취재로 유명한 일본 언론사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 공동대표가 최근 세종연구소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이시마루 대표에 따르면 ‘우선배급대상’은 김정일·김정은 체제 유지를 위한 최중요 조직으로 군대, 경찰, 보위부, 당·행정기관의 간부, 지식인, 탄광·군수산업 등의 부양가족과 평양시민 일부로 북한 인구의 20% 정도를 차지한다. ‘우선배급대상’은 공동농장이나 기관에서 경작하는 농지 등을 통해 식량을 충족해 왔으나, 여기에서 식량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고 이시마루는 지적했다. 또 식량배급이나 급료도 거의 지급받지 못하고 있는 도시주민들, 즉 ‘배급두절그룹’도 전체 인구의 40~5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국제사회에 식량원조를 호소하는 것은 우선배급대상 계층에 줄 식량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국제사회가 식량을 지원하면 북한은 우선배급대상에게부터 나눠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정일 정권이 주민들에게 배급해야 할 국가보유 식량을 확보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 뒤 “실제 시장에 가면 쌀, 옥수수, 밀가루, 돼지고기, 술 등 식량이 팔리고 있는데, 이는 민간소유 식량이 팔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마루는 이어 “식량지원이 취약계층에까지 전달되게 하려면 북한이 국제사회가 생각하는 ‘우선지원대상’을 수용하고, 한정된 식량이 약속대로 분배되고 있는지 감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씨줄날줄] 평안도 날라리/임태순 논설위원

    조선시대 때 평안도는 함경도와 함께 지역차별의 설움을 많이 받았던 곳이다. 평안도는 고구려의 발상지이자 당시 조선이 사대(事大)하던 선진국 명(明)나라와 통하는 길목이었지만 그리 대접을 받지 못했다. 조선시대의 법전인 속대전과 대전후실록 등에는 평안도를 포함해 함경도, 황해도 사람들을 등용하지 말도록 해 관직 진출의 길을 제한했다.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은 평안도를 4자성어로 산림맹호(山林猛虎), 즉 ‘산속에 사는 사나운 호랑이’로 품평했다. 용맹스럽다는 세간의 인식에 1800년대 홍경래의 난까지 일어났으니 평안도를 경계하는 풍조는 더욱 심해졌다. 구한말 평안도는 기독교 보급의 메카가 된다. 1890년대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들은 평양을 중심으로 기독교 복음을 전파한다. 신분차별로 기존질서에 대한 불만이 많았고, 중국과 가까워 신문명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던 서북인들은 자연스레 기독교에 빠져든다. 흥사단운동을 일으킨 안창호 선생,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 등이 이 시기 평안도 출신 기독교인이다. 평안도는 벽촌에도 서당이 있어 문맹이 없을 정도로 교육열이 높은 지역이다. 향학열 높은 평안도 기독교인들은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대거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1925년 159명의 미국 유학생 중 43%가 평안도 출신일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미국에서 신교육으로 무장한 이들이 지배 엘리트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해방 후 미 군정시절 오늘날 장관에 해당하는 19개의 부·처장 중 9명이, 차관에 해당하는 차장 중 6명이 평안도 사람일 정도로 파워엘리트로 급부상한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최근 신의주를 시찰한 자리에서 현지 주민의 옷차림과 무질서 등을 지적하며 “평안북도가 자본주의의 날라리판이 됐다.”며 개탄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문물교류의 관문이자 통로인 신의주가 자본주의 문화 보급의 첨병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북한이 아무리 폐쇄사회라고 해도 디지털 기기가 하루가 다르게 확산 보급되는 요즘 자본주의 문화의 세례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얼마 전 ‘압구정 날라리’란 노래를 우연히 들었다. “어서 와요, 이쁜 그대/ 몇 명이서 놀러왔나요…” 젊은 시절 압구정동 나이트클럽에서 ‘작업’(?)의 추억을 담은 노래라고 하는데, 경쾌한 리듬과 실감나는 가사로 인기라는 것이다. 평양 한복판에서는 ‘소녀시대’ 등 아이돌그룹의 춤 열기가 뜨겁다고 한다. 혹시 신의주에도 압구정 날라리가 10대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김정일 “평안도는 자본주의 날라리판”

    김정일 “평안도는 자본주의 날라리판”

    북한이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지시로 주민 통제를 대폭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자 증가와 외부사조 유입에 따른 체제 이완을 막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서는 일관성 없는 검열과 지시로 주민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달 1~6일 신의주를 시찰한 자리에서 현지 주민의 옷차림과 무질서 등을 지적하며 “평안북도가 자본주의의 날라리판이 됐다.”면서 검열을 지시했다. 김정은도 지난 2월 “주민들을 달래던 때는 지났으니 일탈행위는 무조건 법으로 처벌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부자가 직접 나서 체제 감시를 강화하라고 지시한 것은 올 초 중동에서 불고 있는 민주화 열풍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 공안기관과 중앙당은 ‘남한풍’, ‘황색바람’(자본주의 사조) 등 외부사조 유입을 김정은 후계구도의 위해요소로 지목한 바 있다. 이 같은 외부사조가 중국 접경지역이나 해외 파견 근로자를 통해 유입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등 공안기관들은 신의주, 양강도 혜산 등 접경지역에서 탈북자, 행방불명자 가족에 대한 정밀 조사를 벌이고, 가족들을 오지로 추방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국경경비대나 공안요원들의 비리 혐의에 대해서도 별도 검열을 시행하고 ‘내부 간첩’ 색출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평북 삭주 등에는 탈북자 감시를 위한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는 한편 철조망도 보강했다. 한편 일부 지역에서는 서로 ‘김정은의 지시를 받았다’는 검열기관들이 충성경쟁을 벌여 혼란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함경도에 새로 조직된 검열기관인 ‘폭풍군단’과 지난해 말 조직된 국가보위부 산하 검열조직 ‘1118상무’가 서로 경쟁하다가 마약사범 1명이 공개처형되고 주민 16명이 징역형에 처해지는 등 주민들이 무더기로 처벌받는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소식통은 “김정은의 지시로 만들어진 검열조직들이 서로 경쟁하다 마찰을 빚으며 사법기관들 간의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고 전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北, 유엔에 수해지원 요청

    북한이 평양주재 유엔 기구에 수해 지원을 공식 요청해 유엔이 합동조사단을 급파할 예정이라고 미국의 소리 방송(VOA)과 자유아시아방송(RFA)이 26일 전했다. 유엔아동기금(UNICEF) 아시아 사무소의 제프리 킬리 대변인은 이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당국이 25일 유엔 기구들에 북한에 미리 비치해 둔 응급 구호물품을 방출해 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유엔 기구와 영국의 세이브 더 칠드런 등 비정부 기구들이 합동대책단을 구성, 황해남도 해주시 등에 긴급조사단을 파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북한은 지난해 평안북도 신의주 지역의 대규모 홍수 때에도 평양 주재 유엔 기구들에 서한을 보내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이와 별도로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100억원어치 지원 물자(쌀 1000t, 비상식량, 의약품)를 전달했으나 이후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나면서 물자 지원을 중단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수해지원 요청이 확인되면 우리 정부도 지원 여부를 검토해 볼 것”이라면서 “그러나 올해는 사진 조작 논란 등 지난해보다 지원 필요성에 대한 정부의 전반적인 인식이 낮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열린세상] 강한 훈련으로 무적해병의 명성을/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열린세상] 강한 훈련으로 무적해병의 명성을/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지난 한주 해병2사단 총기사건으로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의 낭보가 아니었더라면 며칠 더 뉴스의 앞머리를 장식했을지 모른다. 동료 전우 4명의 목숨을 앗아간 김모 상병의 범행은 여타의 총기사건처럼 불특정 다수에 대한 난사(射)가 아니라 한 명 한 명 조준하여 사격했다는 부분에서 더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더욱이 범행을 공모한 공범도 있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이 주는 파장은 더욱 컸다. 그렇다면 무엇이 전우들에게 조준사격을 할 정도의 분노를 주었나. 바로 해병대가 자랑하던 그 전우애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내무생활 때문이었다. 통상 인터넷에서 ‘특전사가 세냐? 해병대가 세냐?’라는 설전이 벌어질 때마다 결국 특전사는 훈련은 힘든데 내무생활은 편하고, 해병대는 상대적으로 훈련은 쉬운데 내무생활이 어렵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내무생활이 어렵다는 것은 바로 구타나 기합 등이 많다는 말이 되는데, 거의 대부분 집안의 외아들로 곱게 자란 젊은이들이 해병대의 전통을 위해 아직도 구타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전통계승 방식이다. 또 기수 열외라는 것이 충격을 주었는데 이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 악습은 아니고 2005~2006년쯤에 생겼다. 2000년대 이후 사회 전체에 광범위하게 생겨난 왕따문화 세대가 군에 입대하며 생긴 현상이다. 과거처럼 구타를 자유롭게 하기 어렵게 되자 해병대문화에 따라오지 못하는 정신적·육체적 능력을 가진 이들에게 때리기보다는 아예 제쳐놓는 것이다. 이를 투명인간화한다고 하는데, 심지어 식사 중에 식판을 엎어버린다든지, 빨래를 떨어뜨려 밟거나 버린다든지 하는 인간적으로 참기 힘든 일까지도 행한다고 한다. 이것은 분명 해병대의 빛나는 전통과는 상반된 비겁한 행위다. 그리고 최근에 발생한 해병대의 여러 사고가 유독 해병2사단에만 집중된 것도 눈여겨 볼 일이다. 해병2사단은 훈련만을 중점으로 하는 해병1사단과는 달리 육군의 철책경계부대와 다름없이 주로 해안경계임무에 투입된다. 문제는 그들의 경계범위가 일반 육군 사단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데 있다. 많은 부대가 소대단위별로 각각의 소초에 흩어져 생활하다 보니 지휘관의 방침이나 감독이 일선에까지 잘 전달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포항에 있는 해병1사단은 전문 상륙군으로 육성되며 그 어떤 부대 이상으로 강도 높은 훈련을 한다. 그럼에도 해병2사단에 비해 사고가 적은 것은 바로 흩어져 있는 부대가 아니라 모여 있는 부대이기 때문이다. 군은 이 기회에 그동안 수차례 지적되어 온 해병2사단의 경계지역을 재조정하여 과도한 피로도를 줄여주거나 해병대 본연의 임무에 맞는 기동군으로의 전환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포항에 있는 해병1사단의 상륙을 막기 위해 북한군은 동해안인 함경남북도 전역에 약 14만명 이상의 병력을 산개해 놓고 있다. 만약 해병2사단을 서해 후방으로 이전하여 전문 상륙군으로 육성한다면, 상륙작전으로 인해 6·25의 승리를 놓친 북한의 노이로제는 서해안에서도 평안북도까지 병력을 더욱 분산 배치할 것이다. 강한 군대인 해병대를 철책경계로만 쓰기에는 아까운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이는 해병대의 사고 예방과 함께 북한군 병력의 휴전선 집중도 약화를 초래하여 전쟁을 억제하는 여러 가지 효과가 있다. 해병대는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군대 중 하나인 해병대. 연평도 포격 도발에서 철모에 불이 붙었음에도 대응사격을 했던 그 강한 정신력의 해병대. 해병대는 그들의 악과 깡이라는 전통을 가혹한 내무생활에서가 아니라 더욱 강한 훈련에서 세워주기 바란다. 국민 모두가 자랑스러워하는 멋진 해병대가 기수 열외나 치졸한 가혹행위 등 사나이답지 못한 행위들로 그 명예를 더럽히지 말았으면 한다. 훈련은 한층 더 힘들게, 내무생활은 즐겁게 하여 더욱 돈독한 전우애로 무장된 군대를 만들어 다시 한번 무적 해병의 빛나는 전통을 세워주기 바란다.
  • [식량난에 허덕이는 北] 노숙아동 ‘꽃제비’ 급증… “군인 50%가 영양실조”

    지난 2009년 화폐개혁 이후 ‘꽃제비’로 불리는 노숙아동이 급증하는 등 북한의 경제 혼란이 한층 가중되고 있다고 일본 산케이신문이 24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일본의 프리랜서 기자들로 구성된 단체인 ‘아시아프레스’의 북한 내부 취재 협력자가 올 1~4월 평양 등지에서 몰래 찍은 영상에서 이런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북한 체제를 떠받치는 핵심계층인 군대에서조차 음식이 충분히 배급되지 않고 있다. 영상 속에 등장한 평안북도의 남자 군인(26)은 “장교에게만은 식량이 배급되고 있지만 식량의 질이 한심할 정도”라면서 “(음식이 고갈되는) 봄철에는 100명의 부대원 중 50%가 영양부족 상태가 된다.”고 증언했다고 전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북한, ‘꽃제비’ 급증…軍식량난에 절반이 영양실조

    북한, ‘꽃제비’ 급증…軍식량난에 절반이 영양실조

    북한에서 재작년 화폐개혁 이후 ‘꽃제비’로 불리는 노숙아동이 급증하는 등 경제혼란이 한층 심화되고 있다고 일본 산케이신문이 24일 보도했다. 산케이는 아시아프레스의 북한 내부 취재 협력자가 올 1~4월 평양 등지에서 몰래 찍은 영상에서 이런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현 체제를 떠받치는 핵심계층인 군대에조차 음식이 충분히 돌아가지 않고 있으며, 영상 속에 등장한 평안북도의 남자군인(26)은 “(음식이 고갈되는) 봄철에는 100명이 있는 부대의 50%가 영양부족 상태가 된다.”고 증언했다. 또 북한의 석탄산업은 국영으로는 계속 존속할 수가 없고 ‘자토(自土)’로 불리는 개인경영 탄광이 증가하고 있다고 산케이는 보도했다. 특히 당국의 통제가 먹히지 않고 있는 실태도 드러났다.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는 “화폐개혁 후 체제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평, 불만을 토로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김정일 족벌체제에 대한 반발도 한층 거세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6·25전쟁 당시 1사단장 백선엽 장군

    [김문이 만난사람] 6·25전쟁 당시 1사단장 백선엽 장군

    톨스토이가 쓴 명작 ‘전쟁과 평화’를 잠시 기억해본다. 마지막 부분이다. 주인공 안드레이 청년이 죽어가면서 ‘시베리아의 하늘도 파랗구나’라고 읊었다. 평화로운 파란 하늘을 진작 봤으면 전쟁을 할 일도 없을 텐데 죽어갈 때 누워서 하늘을 보니 ‘왜 피 흘리면서 전쟁을 했을까’라는 물음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6·25전쟁은 왜 했을까. 평화를 위해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했고, 세월이 지난 지금도 눈물겹도록 아프게 하는 역사를 왜 만들어야 했을까. 참으로 비통하고 영원히 기억을 할 수밖에 없는 우리 민족의 큰 상처이기에 해마다 6월이면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1950년 6월 25일 아침 7시였다. 젊은 장교의 일성은 이랬다. “사단장 각하, 전방에서 적이 전면적으로 침공해 왔습니다. 개성이 대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개성은 벌써 점령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서울과 개성 등 전방을 지키는 보병 제1사단 작전참모 김덕준 소령의 숨가쁜 목소리를 들은 것은 당시 백선엽 1사단장이다. 우리 역사에서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을 알리는 제1보였다. 백선엽 장군은 시흥에 있던 육군보병학교에서 10일 전부터 3개월 과정의 고급간부교육을 받고 있던 중 급거 귀대하여 1사단을 지휘했다. 이후 낙동강까지 후퇴한 1사단은 한국군 부대 중에서 유일하게 미1군단에 배속돼 지원 나온 미군 2개 연대와 함께 경북 칠곡의 다부동 전투를 치렀다. 전투 중 한국군 병력의 후퇴와 무단이탈이 심해지자 함께 다부동을 지키던 미군 27연대장 마이켈리스(Michaelis) 대령이 “전선 좌측의 한국군 부대가 무단 이탈하고 있다.”며 다급하게 전황을 알려왔다. 백선엽 장군은 후퇴하는 국군을 막으며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다. 저 사람들(미군)이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이럴 순 없다. 내가 앞장설 테니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며 싸울 것을 호소했다. 이후 1사단은 평양 입성을 가장 먼저 했다. 백선엽 장군은 최근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라는 제목으로 6·25 전쟁 당시 1128일의 기억을 책으로 펴냈다. 6·25전쟁 얘기만 나오면 누구보다 또렷이 기억하는 살아 있는 역사로 여긴다. 6·25전쟁 61주년을 앞두고 지난 20일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에서 백선엽 장군을 만났다. 6월이어서 그런지 강의를 해 달라는 손님들이 분주히 드나들었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뒤에야 자리에 마주 앉았다. 1920년생이면 우리 나이로 92살. 그런데도 전쟁의 기억은 분명했다.. 차 한 잔을 마시더니 백 장군이 “고향이 어디요.”라고 물었다. 제주도라고 답을 드렸다. 그러자마자 나오는 얘기는 이러했다. “제주도 무척 많이 갔지. 6·25때 모슬포에 보충대가 있었어. 16주 동안 교육을 시키고 전쟁터에 보냈거든, 그래 육군 제1 훈련소야. 20살 전후의 청년들 10만명 정도가 훈련을 받았어, 내 동생(백인엽 장군)이 훈련소장도 했고. 태풍도 많이 왔어. 미군부대에서 지원 받은 천막을 치고 훈련했지. 하루에 상륙함정(LST) 두 척이 오고 가면서 훈련병들을 실어 날랐어. 그 병사들이 전쟁터에 많이 죽었어.” 백 장군의 눈이 잠시 감긴다.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전쟁상황에서 지금의 5~6주 교육보다 더 긴 16주 교육을 했던 이유에 대해 물었다 . “미군의 2차대전 방식을 그대로 따랐거든. 미군은 100개 사단이 있었는데 대부분 16주 동안 훈련을 받고 전쟁터에 보내졌어. 2차대전때…. 제주도 훈련소는 일제때 썼던 비행장이야, 그러니까 일본군들이 중국의 난징(南京) 폭격을 위한 중간 기지였지. 훈련소에는 미군 고문관들이 많았어.” 백 장군은 왜 제주에 자주 갔을까. “내가 육군참모총장을 했었거든. 훈련소에 물이 부족했어. 그걸 해결하기 위해 LST나 미군 비행기를 이용해서 여러 번 갔어. 아마 수십 차례 될걸. 또 동생이 1년동안 훈련소장으로 있었거든. 장도영 장군도 훈련소장을 했었지.” 백 장군은 잠시 4·3사건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1948년 4월 3일이야. 내가 부산 3여단 참모장을 했어. 제주 관할이니까 부대 시찰차 갔었지. 그때는 제주읍이야. 4월3일 아침에 비행기를 타려고 하는데 김익열 연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어. 김달삼(金達三)이 이끄는 폭도들이 제주지역 11군데 지서를 습격했다고 말야.” 잠시 관련 자료을 들여다본다. 김달삼은 사회주의 혁명가로 제주 4·3 사건을 주도한 남조선로동당원이다. 그의 본명은 이승진이며, 고향은 대구. 일본에서 중학교와 대학을 나왔다. 1945년 1월 일본에서 강문석의 딸 강영애와 결혼했으며 김달삼이란 이름은 원래 강문석이 쓰던 가명이다. 1946년 말 제주도 대정중학교 사회과 교사로 재직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르쳤다. 그는 교사로 재직 중에 남로당 대정면 조직부장을 맡았으며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책이자 군사부 책임자가 됐다. 화제를 다시 돌려 6·25 전쟁때 제1보를 보고한 김덕준 소령에 대해 물었다. “그날 아침 7시였어. 지금도 그 목소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 전화를 받는 순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북한이 탱크와 전투기를 갖고 있는거 알았거든.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도 수차례 얘기했고…” 백 장군은 이 대목에서 “이승만 대통령도 미군에게 북한의 남침 예상을 얘기했고 나도 미군 고문단과 만날 때마다 전투기와 탱크, 대포를 달라고 수차례 말했다.”고 술회했다. “우리야 그때 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 미군에게 그렇게 여러번 얘기해도 귀담아 듣지 않았어. 희생을 줄일 수도 있었는데 말야. 북한군은, 나중에 노획문서를 보니 깨소금까지 준비할 정도로 매우 치밀하게 전쟁을 계획했어.” 백 장군이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북한군이 왜 6월 25일을 택했는지 알 수 있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북한군은 남한에서 먹을 것이 많은 계절인 6월부터 9월까지를 정했지. 3개월이면 부산까지 싹 쓸어버릴 작정이었어. 이 시기는 들판에 가면 먹을 것들이 많거든. 전쟁에서 먹거리는 매우 중요해. 북한은 추수때까지 전쟁을 끝낼 계획을 짰어.” 그렇다면 우리 군사들은 무엇을 먹고 싸웠을까. “낙동강까지 후퇴하면서 농협창고에서 쌀을 얻었고 밭에 가면 파와 배추가 있었지. 그걸 먹었어. 또 우리 선량한 아주머니들, 국민들이 갖다주는 음식도 먹었어. 아주 훌륭한 분들이야. 다부동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우리 주민들이 갖다주는 음식이 있었기 때문이지.”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북진할 때는 어땠을까. “김일성 군대는 낙동강에서 완전히 녹았어. 북진을 하면서는 시장에서 먹을 것을 사 왔고 군에서 나오는 건빵을 먹었지. 고지 전투에서는 배가 고파 이탈하는 군인들도 더러 있었어. 북진할 때는 하복을 입었는데 나중에 동복으로 갈아 입었고…. 북한 주민들이 우리를 보더니 많이 환영했어. 먹을 것도 주고….” 백 장군은 평북 운산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과 맞닥뜨린다. “중공군은 장개석 군대 출신들의 최정예 부대야. 일본군과 10년을 싸운 군사들이었지. 전쟁경험이 아주 많아. 그런 군사 100만명이 압록강을 넘어와 매복을 하고 있었으니 우리 군이 당할 수밖에 없지. 그래도 우리 1사단을 덜 당했어. 운산 일대에 중공군 30만명이 매복하고 있다는 것을 하루 전에 알 수 있었지. 하루 밤새 싸우다가 도저히 안 되더라구. 결국 후퇴하고 말았지만….” 그러면서 백 장군은 북한군의 변화상에 대해 여러 번 강조했다. “남북한은 여전히 휴전 상태이며 두 세대가 지나는 동안 북한은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120만명의 지상군과 20만명의 특공대를 갖고 있다.”면서 “지난 61년 동안 북한은 청와대도 습격하고 천안함을 폭침하고 연평도를 포격하는 등 별 장난을 다했다.”고 말했다. “우리 젊은이들이 경계를 잘해야 돼. 대부분 고등학교 이상 출신들이 군대를 가잖아. 자원이 아주 훌륭해요” 백 장군은 군사영어학교 출신이다. 전체 110명이었는데 지금 만나는 동기들은 겨우 15명 내외에 불과하다. 건강이 어떠냐고 했다. “아픈 데 없어. 병원도 안 가. 동기들과 만나 옛날 얘기하는 재미로 살고 있어.” 맥아더 장군이 얘기했다.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 백 장군은 “너무 오래 살았어.”하면서 껄껄 웃는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백선엽 그는 누구인가 1920년 평안북도 강서군 덕흥리에서 태어났다. 1940년 3월 평양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교사로 재직하다가 만주 봉천(奉天) 군관학교에 진학하면서 군인의 길을 걸었다. 1942년 12월 제9기로 졸업하고 견습군관을 거쳐 1943년 4월 만주군 소위로 임관했다. 해방 직후에는 잠시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45년 2월 월남했다. 이후 1945년 12월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학했고, 1946년 2월에 임관했다. 그해 1월 창설된 국방경비대에서 제5연대장을 맡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방경비대가 정식으로 국군으로 재편되면서 제5연대장과 육본 정보국장을 거쳐 1950년 4월에 개성을 관할하는 국군 1 보병사단 사단장(당시 계급 대령)으로 부임했다. 1951년 겨울에는 지리산의 빨치산 소탕을 위한 ‘백(白) 야전사령부’를 구성했으며 이 사령부를 모태로 이듬해 4월에는 한국군 최초로 근대화된 2군단을 창설했다. 1952년 7월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된 후 군 훈련체계의 개혁, 보급체계 개편, 상이군인들에 대한 복지 향상 등에 힘썼다. 이때 10개 상비사단 창설(11~20사단), 10개 예비사단 창설 등을 추진했다. 퇴역 후에는 외교관 생활을 한 뒤 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대한민국 최초의 원수계급에 해당하는 예우를 받고 있다.
  • “황금평 다음은 나선”

    압록강 섬 황금평에 이어 북한 나선특구에 대한 북한과 중국의 공동 개발이 본격화됐다. 전날 황금평특구 착공식에 참석했던 양국 대표단이 9일 북한 나선으로 이동, 나선특구 공동 개발 및 중국 훈춘(琿春)~북한 나진항 도로 보수공사 착공식에도 참석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북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노동당 행정부장과 중국 천더밍(陳德銘) 상무부장 등 양측 대표단이 두 경제구(특구) 착공행사에 모두 참석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통신은 또 장 부위원장과 천 부장이 7일부터 이날까지 ‘중·조(중·북) 나선경제무역구 및 황금평, 위화도경제구 개발협력 연합지도위원회’ 2차회의를 공동주재했다고 전해 양측이 본격적으로 나선과 황금평·위화도 특구 공동개발에 나섰음을 강조했다. 1차회의는 지난해 11월 평양에서 열렸다고 통신은 전했다. 지도위원회 참여 부처가 양국의 당과 중앙 및 지방정부를 망라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북한 측에서는 노동당 중앙국제부, 외무성, 합영투자위원회, 나선시 인민위원회, 평안북도 인민위원회가 참여했고, 중국에서는 외교부와 공산당 중앙대외연락부,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랴오닝성 및 지린성 정부가 나섰다. 연합지도위원회는 중국 측에서 천 부장이, 북한 측에서는 장 부위원장이 대표를 맡았다. 양측은 이번 회의에서 두 개의 경제구를 북·중 경제협력의 시범구이자 세계 각국과의 경제협력 플랫폼으로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북한과 중국은 착공식이 열린 나선특구에 원자재와 첨단 기술, 장비 공업, 경공업, 서비스업, 현대 고효율 농업 등 6대 산업을 집중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인프라도 대대적으로 확충된다. 중국 훈춘·투먼, 러시아 하산, 북한 청진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통로를 구축하는 한편 입주 기업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100만㎾의 발전 능력도 갖출 계획이다. 한편 북한이 황금평 개발에 참여하는 홍콩기업 신헝지(新恒基)그룹의 이사회 주석 가오징더(高敬德)를 신의주특구 행정장관으로 임명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부고]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별세

    [부고]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별세

    일제 강점기 광복군에 참가했던 중국 전문가 김준엽(사회과학원 이사장) 전 고려대 총장이 7일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90세. ●학병으로 징집… 장준하 선생과 탈출 1920년 평안북도 강계에서 태어난 김 전 총장은 40년 신의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44년 일본 게이오대에서 유학하던 중 학병으로 징집됐다. 그해 장준하 선생과 함께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 광복군에 합류해 항일전사가 됐다. 해방 이후에는 고려대에서 학자의 길을 걸으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중국과 타이완에서 중국사를 연구한 그는 58∼82년 고려대 문과대 교수로 중국 근대사를 가르쳤으며, 58년 미국 하버드대에 이어 68년 프린스턴대의 교환교수를 지냈다. 한·중 수교 이듬해인 93년 베이징대를 시작으로 2002년까지 산둥, 난징, 옌볜대 등 중국 내 9개 대학의 객원교수직을 맡았고, 60∼70년대에는 3차례 한국대표로 유엔총회에 참석했다. 한국현대사에서 김 전 총장은 드물게 큰 결점 없이 지성인으로 존경받은 인물이었다. 80년대 신군부 집권 이후에는 비타협적인 자세로 제자들을 보호하다 총장직에서 물러나는 아픔을 겪었다. 83년 가을에는 연·고전이 치러지지 못했다. 당시 연·고전이 끝나면 수만명의 학생들이 거리에 나서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때문에 전두환 정권은 행사를 취소시켰고, 고대생들은 학생회관에서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당시 고려대 총장이던 김준엽 총장은 경찰의 진입을 막았다. 김 총장은 교내 방송을 통해 “학생 제군들, 몸을 다치지 마라.”고 말했고, 학생들은 다음 날 무사히 학교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총리 후보 올랐지만 교단 떠나지 않아 전두환 정권은 84년 각 대학에서 총학생회가 부활되자 문교부(현 교육부)를 통해 각 대학 학생회장을 물러나도록 압력을 가했다. 다른 대학에서는 이 지시를 따랐지만 김 총장은 이를 거부해 총장직을 내놓게 됐다. 이런 강직한 성품의 그는 박정희 군사정권부터 항상 총리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교단을 떠나지 않고 참교육의 길을 걸었다. ●중국 내 한국학 연구 싹 틔워 그는 중국과 수교하기 전부터 중국과 가깝게 교류를 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고 중국 곳곳에 한국학 연구소를 세우는 등 중국 내 한국학 연구의 싹을 틔웠다. 한국공산권연구협의회장과 중국학회장 등을 지낸 그는 ‘중국공산당사’, ‘중국 최근세사’, ‘한국공산주의운동연구사’, ‘나와 중국’, ‘회고록 장정(長征)’ 등 저서를 남겼다.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 독립운동유공표창, 건국포장, 건국훈장 등을 받았으며 2009년에는 중국 주요 대학에 한국학연구소를 세우는 등 한국학 진흥에 이바지한 공로로 한국국제교류재단 특별공로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민영주씨와 아들 홍규씨가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301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0일 오전 9시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광복군 출신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별세

    광복군 출신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별세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였던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이 7일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91세.  1920년 평안북도 강계에서 태어난 김 전 총장은 1940년 신의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4년 일본 게이오대에서 유학하던 중 학도병으로 징집됐다가 탈출, 광복군에 참가했다.  그는 해방 후 중국과 대만에서 중국사를 연구했고 1958∼82년 고려대 문과대 교수로 중국 근대사를 가르쳤다. 미국 하버드대(1958년)와 프린스턴대(1968년) 교환교수를 지냈다.  한·중 수교 이듬 해인 1993년 중국 베이징대를 시작으로 2002년까지 산둥, 난징, 옌볜대 등 중국내 9개 대학의 객원 교수직을 맡았다. 1960∼70년대에는 3차례 한국 대표로 유엔총회에 참석했다.  ’중국공산당사’ ‘중국 최근세사’ ‘한국공산주의운동연구사’ ‘나와 중국’ ‘회고록 장정(長征)’ 등의 저서를 남겼고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 독립운동유공표창, 건국포장, 건국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임영주씨와 아들 홍규씨가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장지는 국립 대전현충원에 마련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6월 독립운동가’ 조병준 선생 ‘6월의 호국인물’ 송태호 하사

    ‘6월 독립운동가’ 조병준 선생 ‘6월의 호국인물’ 송태호 하사

    국가보훈처는 31일 서간도와 내몽골 등에서 독립운동을 이끈 조병준 선생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평안북도 의주군에서 출생한 선생은 1895년 10월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의병장 유인석의 의거에 호응해 평북 창성에서 의병활동을 하다 체포돼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10년 경술국치 후 다시 의병을 일으켜 창성의 일본 헌병대를 습격했으나 일제의 병력이 증강되는 바람에 국내에서 활동이 어렵게 되자 중국 만주로 망명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주 유하현 삼원보에서 대한독립단을 조직하고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내 지방행정 조직인 연통제 평북독판부 독판에 선임됐으며, 이듬해 임정 직할기관인 광복군 참리부장을 거쳐 1923년에는 통의부 통의부장이 됐으나 곧 사임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마련해 지원한 이주 자금과 중국 국민당 정부의 주선으로 내몽골에 농지 60만평을 임차해 배달농장과 배달학교, 대종교 수광시교당을 설립했다. 의민부를 설립해 배달농장의 수익금으로 임시정부에 독립 자금을 제공했다. 선생은 1931년 10월 2일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와 함께 전쟁기념관은 6·25전쟁 당시 경기도 연천의 ‘니키고지’ 전투에서 공을 세운 송태호 육군 하사를 ‘6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송 하사는 1951년 6월 육군에 자원 입대해 1사단 15연대 수색중대 1소대에서 복무했다. 1952년 10월 6일 새벽 중공군이 북쪽 임진강 지류의 요충지인 니키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포격을 시작하자 송 하사가 소속된 15연대는 전진 거점인 니키고지 방어에 나섰다. 인해전술로 공격하는 중공군을 막기 위해 결사대를 편성했다. 결사대에 자원한 송 하사는 3명의 결사대원과 함께 수류탄을 던지며 동굴 입구로 돌진했으나 중공군이 설치한 다이너마이트가 폭파하며 흙더미에 파묻혔다. 기적적으로 의식을 차린 송 하사는 흙더미를 파헤치고 나와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곧이어 아군 중대가 역습을 가해 적을 격퇴했다. 이후 송 하사는 휴전협정을 불과 한 달여 앞둔 1953년 6월 12일 서부전선의 이름 없는 고지에서 전사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김정일 전격 訪中] 때맞춰 北·中 경협 강화…황금평 공동개발 28일 첫 삽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에 맞춰 북·중 경제 협력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북한과의 교역을 중단한 우리 정부의 지난해 5·24 조치 이후 북측이 북·중 경협 확대를 통해 그 성과를 후계자인 김정은의 업적으로 포장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는 30일 열리는 북한 원정리~나선(나진·선봉) 도로공사 착공식에 김정은이 직접 참석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최근 북·중 경협의 대표적 사례는 황금평 일대 공동 개발 건이다. 이달 28일 착공식을 가질 예정인 황금평은 압록강에서 두 번째로 큰 섬(11.45㎢·여의도 면적 4배)으로 퇴적물이 쌓이면서 섬 서쪽이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와 연결된 곳이다. 북한은 중국 자본 유치를 위해 2009년부터 이곳을 자유무역지대로 지정하고 개발을 서둘러 왔다. 북한 평안북도와 중국 랴오닝성이 교환한 11개 항목의 양해각서에는 섬 개발권을 중국에 50년 양도하고 50년을 추가 연장하는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30일 착공식을 갖는 북한 원정리~나선(53㎞) 구간 도로공사도 북한이 중국과 손잡고 개발에 나선 곳이다. 이는 중국 지린(吉林)성 훈춘(琿春)의 취안허(圈河)와 맞닿아 있는 북한 원정리와 나선을 잇는 공사로, 나선 지역 개방과 북·중 대규모 경제 협력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이 도로는 두 나라를 경제적으로 잇는 대통로로서 나진항 개발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북 소식통은 “중국으로서도 한반도를 돌아가지 않고 곧바로 태평양에 진출할 수 있어 물류 요충지로 보고 있다.”면서 “최근 나진항에서 석탄을 실은 배가 중국으로 떠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굵직한 북·중 경제 협력 프로젝트가 김정일의 방중 시기와 맞물려 결실을 맺고 있어 북·중 경협의 성과를 김정은의 업적으로 돌리려는 북한의 의도가 읽힌다. 2012년 강성대국 선포를 앞두고 대외 투자 유치,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과 관련해 좋은 명목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중앙정부에 나선특별시를 직할 관리하는 부서를 만들고, 임경만 나선특별시 책임비서 등 젊은 간부들을 중앙에서 직접 파견하면서 프로젝트 추진에 속도를 내 왔다. 이번 방중단에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동행해 방중 기간에 이 두 프로젝트를 마무리 지을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대북 소식통은 “원정리~나선 도로 착공식에 김정은과 중국 시진핑이 참석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5·24 조치 이후 남한과의 교류가 중단됐지만 중국과의 협력을 확대하면서 충분한 수확을 얻고 있다.”면서 “단둥 지역에서 본 최근 북한 모습은 과거 1~2년 사이 부쩍 발전한 듯했다.”고 말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대북제재보고서에 어떤 내용 있길래

    지난 17일 중국의 반대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채택이 무산된 연례 대북제재보고서에는 북한 핵시설의 안전과 탄도미사일 불법 수출, 제2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기지 건설 문제 등이 언급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들에 따르면 우선 보고서는 북한의 영변 핵시설이 매우 열악한 상황으로, 국제 안전기준에도 맞지 않아 사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를 감안할 때 국제적으로 북한 핵시설의 안전 문제를 시급하게 논의해야 한다는 제안도 담고 있다. 보고서는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이 ‘전력 생산 등 평화적 이용을 위한 것’이라는 북한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또 중동과 남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에 북한이 탄도미사일 관련 부품과 기술을 불법으로 수출하고 있다는 내용도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제기된 북한과 이란의 금수 무기 거래 의혹도 언급돼 있다. 북한이 유엔 제재를 위반하며 고려항공과 이란항공 편을 통해 이란과 정기적으로 무기들을 거래하고 있으며, ‘이웃한 제3국’을 통해 탄도미사일 부품들이 불법으로 선적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유엔 주변에서는 ‘이웃한 제3국’이 중국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고서는 특히 북한이 중국 국경에서 30마일(약 49㎞) 떨어진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두 번째 장거리 미사일 발사기지 건설을 완료했거나 거의 완료한 단계라고 지적했다. 이 발사기지는 기존의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기지보다 5배쯤 규모가 크고 정교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성명을 내고 연례보고서를 이른바 ‘유엔 내부 자료’로 일컬으며, “이는 안보리와 안보리 대북제재위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란 외교부는 북한과의 탄도미사일 등 무기 거래 의혹에 대해 “날조된 것”이라고 비난했다. 연례보고서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및 한국·일본 전문가가 참여하는 대북제재위 산하 전문가 패널이 작성한 것이다. 안보리는 2009년 북한의 두 번째 핵실험 이후 핵이나 탄도미사일 관련 물품을 거래하지 못하도록 제재 조치를 취했으며, 이 같은 제재를 북한이 제대로 이행하는지 감독하고 평가하기 위해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을 가동하고 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20년 만에 방송 진행… OBS ‘명불허전’ MC 차인태 아나운서

    [김문이 만난사람] 20년 만에 방송 진행… OBS ‘명불허전’ MC 차인태 아나운서

    #문: ‘벽창호’라는 말을 아시나요. #답: 물론이죠. 앞이 꽉 막힌 사람을 비유하는 것 아닌가요. #문: 그럼 ‘벽창호’의 어원에 대해서는? #답: ? 잘 모르겠다? 그럼 여기서 잠깐, 강영훈 전 국무총리의 말을 빌려 보자. 강 전 총리는 평소 강연이나 공개 석상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스스로 “저는 벽창호 출신입니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약간 의아하게 여긴다. ‘벽창호’라는 말이 썩 좋은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 전 총리는 다시 “사실은 평북 창성군에서 태어났습니다. 바로 옆에 벽동군이 있는데 벽동(碧潼)과 창성(昌城)의 소가 어찌나 억세고 우직했던지…”라고 하면서 지금의 ‘벽창호’가 북한 지역의 소 ‘벽창우’에서 유래되었음을 설명한다. 그제야 좌중들은 ‘아!’ 하고 감탄하며 박수를 보낸다. 원래 ‘벽창우’는 주인에게 충직하면서도 무뚝뚝하게 일만 해 오다가 배알이 뒤틀리면 일도 안 하고 주인도 몰라본다는 소를 가리키는 말로 현재 북한 지방에서 사용되고 있다. 앞이 꽉 막혔다는 벽(壁)과 그런 속성을 가진 사람을 연상할 때 쓰는 ‘벽창호’라는 말은 이렇게 벽동과 창성의 소 벽창우(碧昌牛)에서 비롯된 것이다. 평안북도 벽동과 창성은 압록강변에 있으며 백두산과 수풍댐 중간쯤에 있는 산골마을이다. 우리나라 아나운서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하는 차인태(67)씨. ‘벽창우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1969년부터 1992년 MBC 임원으로 승진할 때까지 23년 동안 일선에서 아나운서와 방송 진행자의 길을 소처럼 우직하게 걸었다. 이후 1998년 제주 MBC 사장을 거쳐 경기대 교수로 자리를 옮겨 후학 양성에 매진할 때도 그러했다. 그가 요즘 화제에 올라 있다. 암을 극복하고 20년 만에 다시 일선으로 돌아와 방송 진행을 맡고 있어서다. 그는 지난 5일부터 매주 화요일 밤 10시 OBS 경인TV의 ‘명불허전’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전화를 걸어 인터뷰 요청을 했다. 그는 “내가 언제 방송계를 떠났나요. 은퇴한다고 얘기도 안 했는데 언론에서는 ‘20년 만에 복귀’라고 합디다. 그건 맞지가 않고요.”라고 했다. 또 그는 “사람이 살면서 아플 수도 있는 건데 못 밝힐 것도 없고 또 드러내 놓고 얘기할 것도 없고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차나 한잔 하자며 지난 11일 오후 그를 ‘잠시’ 만났다. 6년 전 차씨가 평안북도지사로 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인사를 했다. 활짝 웃는 모습이 여전히 천진한 아이 같다고 하자 파안대소했다. 암투병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 다시 방송 진행을 하게 됐을까. 그는 김종오 OBS 경인TV 사장과의 인연을 먼저 꺼냈다. 김 사장은 MBC 보도본부장 출신으로 대구 MBC 사장 등을 지냈다. “MBC 입사 후배인 김 사장과는 자연스럽게 가끔 만나지요. 최근에는 지난 3월 초에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김 사장이 ‘차 선배의 격에 맞는 거 하나 생각하고 있다’는 식으로 제게 의견을 물어 왔습니다. 2, 3일 동안 생각하면서 다른 방송이면 부담이 되겠지만 이번 일은 순수한 마음에서 (후배를) 도와주자고 결론을 냈지요. 그러면서 아무런 조건 없이 응하게 됐습니다.” 그가 후배의 제의를 수락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모든 것이 아날로그가 아닌 요즘, 특히 밤 10시쯤 되면 대부분의 방송 프로그램이 ‘시끄럽거나’ 신변잡기를 늘어놓는 것 일색인 데 반해 ‘명불허전’은 편안히 즐길 수 있는 내용이어서 선택했단다. 그 시간이면 하루를 정리하면서 조용히 잠을 잘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지론을 편다. 인생 성공담을 얘기하는 프로그램은 시청률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명불허전’은 사회 각계 인사들을 초청해 그들이 살아온 길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으로 배우 정한용, 박재동 화백 등이 진행한 OBS의 간판이다. “시끄러운 것들이 아닌, 한 박자 물러서서 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비록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아도 말입니다. 인기인과 정치인은 빼고 한 분야에서 고집스럽게 살아온 사람들을 만나는 그런 부담 없는 프로그램이지요.” 20년 만에 돌아온 소감은 어떨까. “다시 말하지만 복귀가 아닙니다. 타던 자전거를 오랫동안 세워 놨다가 다시 꺼내 페달을 밟는 것입니다. 그때와 다른 점은 대부분 디지털화됐다는 것입니다. 방송 기자재도 그렇고 카메라도 그렇고, 그 앞에 다시 섰을 뿐이지요.” 그의 이력을 보면 1966년에 데뷔한 것으로 돼 있다. 이 부분에 대해 그는 “그해 1월 KBS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했다. 그런데 지방 발령을 하기에 그만두고 군대에 갔다.”면서 군 복무 이후인 1969년 MBC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해 그 길로 줄곧 MBC에서 아나운서의 길을 걷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18년 동안 ‘장학퀴즈’를 진행해 40대 이상에게는 여전히 반가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오죽하면 ‘장학퀴즈 세대’라는 말도 있을까. “저 역시 가장 기억에 남지요. 단일 프로그램을 18년 동안 했다는 것도 기록이고, 전철을 타면 ‘장학퀴즈의 차인태’가 아니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간혹 저한테 ‘차인표’가 아니냐고 인사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면 ‘제 동생입니다.’ 하면서 웃어넘깁니다.” 차씨는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그런 에피소드를 추억했다. 그는 제주 MBC 사장 이후 경기대 다매체영상학부 책임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치열하게 살아온 인생의 1막을 정리하려고 잠시 쉬고 있었지요. 그동안 소홀했던 가정에 악센트를 주는 방향으로 설정한 상황이었죠. 그런데 하루는 경기대 손종국 전 총장에게서 식사하자는 연락이 왔어요. 손 전 총장은 학군(ROTC) 13기로 제 후배이기도 했습니다. 다매체영상학부를 만들려고 하니 좀 맡아 달라고 간곡히 얘기하더군요. 그래서 예정에 없던 교수 자리로 가게 됐습니다.” 이에 대해 그는 “당시는 처음이어서 모든 것이 열악했지만 지금은 학부 안에 다섯개의 학과가 있고 교수만 해도 15명이 있으며 경기대에서 가장 커트라인이 높은 인기 학부가 됐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11년 동안 헌신한 결과다. 화제를 건강 얘기로 돌렸다. 그는 2009년 말 악성 림프종 진단을 받으면서 1년 6개월여간 투병 생활을 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아플 수도 있고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림프종은 혈액암이나 마찬가지지요. 지금 저의 상태를 말하면 항암 표적 치료는 끝냈습니다. 모든 것이 건강해졌고요. 저와 의료진이 서로 잘 어우러져 다행스럽게도 좋은 상황이 됐습니다. 하지만 한번 암에 걸리면 재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암을 친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떠나보낼 수는 없으며, 또 그렇게 같이 가면서 서로가 서로한테 이기려고 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합니다.” 그는 또 “암 환자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나 주변에서 편안하게 대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너무 침소봉대해서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숨길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투병 중에 얻은 또 하나의 교훈을 얘기한다. “주치의가 몇 가지 얘기를 하더군요. 첫째 암 환자들은 귀가 얇아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리산 채식이다, 알래스카산 뭐다 하는 식의 얘기에 현혹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감기를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지요. 셋째는 넘어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회복력이 젊은 사람에 비해 더뎌지거든요.” 그는 이런 얘기를 하면서 “병상에 누워 진정 얻은 것은 ‘내가 살아오면서 과분하게 대접받았구나. 남은 인생은 참으로 겸손하고 매사에 고맙게 살아가자’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 압구정동에서 90살이 넘은 노부모를 모시고 산다. 아침마다 부인과 부모 등 네 식구가 식탁에 앉아 함께 식사를 한다. 이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우리 네 식구는 314살입니다. 내년에는 318살입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그의 집에는 중국 쪽에서 벽동마을을 바라보면서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비록 어린 나이에 월남했지만 차씨가 태어날 때 태를 묻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차인태 아나운서는… 1944년 평북 벽동에서 태어났다. 다섯살 때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월남했다. 1963년 휘문고를 나와 1966년 연세대 성악과를 졸업했다. 그해 KBS 아나운서 공채시험에 합격했으나 군 복무를 위해 그만두고 1969년 MBC 아나운서 시험을 통해 입사했다. 이후 ‘뉴스데스크’ ‘장학퀴즈’ ‘출발 새아침’ ‘별이 빛나는 밤에’ 등 100여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MBC의 역사를 만든 ‘아나운서계의 전설’로 불린다. 특히 ‘장학퀴즈’의 경우 1973년 2월부터 1990년 4월까지 18년간 진행을 도맡아 MBC 대표 프로그램으로 각인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 권투와 축구 등 각종 스포츠 경기를 생생하게 중계해 40대 이상에게는 추억의 목소리로 남아 있다. 1992년 MBC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방송 일선을 떠났고, 이후 제주 MBC 사장과 경기대 다중매체영상학부 교수, 평북도지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언어특별위원장 등 다양한 직함으로 활약했다. 최근 OBS 경인TV의 ‘명불허전’으로 20년 만에 방송 현업으로 돌아왔다. 경원대 교수인 부인과 슬하에 딸 둘을 두었다. 서울 압구정동에서 구순의 노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다.
  • “北, 탈북자 적대계급 규정 가족들 산골로 강제 이주” 美 RFA 보도

    북한이 외부소식의 통로 역할을 하는 탈북자를 ‘적대계급’으로 규정하고 그 가족을 산골로 강제이주시키고 있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5일 전했다. RFA는 북한 당국이 탈북자들을 적대계급으로 분류하고 행방불명자로 처리된 탈북자들의 가족까지 재조사해 강제 이주시키고 있다며 탈북자 김모(32)씨의 사례를 들었다. 평안북도 국경지역에 거주하는 김씨의 어머니가 최근 국가안전보위부에 6차례나 불려가 딸의 실종 경위와 탈북 여부에 대해 조사받았다는 것이다. RFA는 조사에서 탈북자의 가족으로 드러나면 산골로 추방되고 있으며, 후계자 김정은이 등장한 이후 탈북자 가족에 대한 박해가 한층 심해졌다고 전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애국지사 등 176명 3·1절 포상

     국가보훈처는 3·1절을 맞아 미주지역에서 활동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후원한 고(故) 강영소 선생을 비롯한 176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포상한다고 24일 밝혔다.  보훈처에 따르면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120명(독립장 2명, 애국장 55명, 애족장 63명), 건국포장 27명, 대통령표창 29명으로, 이중 여성은 1명이며 생존자는 없다. 2005년 발족한 전문사료발굴·분석단이 수형인명부와 범죄인명부, 형사사건부, 판결문 등 다양한 자료를 수집, 분석해 국내는 물론 만주, 일본, 미주 등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를 다수 발굴했다.  발굴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는 미주지역 독립운동의 대표적 지도자인 강영소 선생. 그는 1909년 1월 미주지역의 통일된 독립운동 단체로 국민회를 결성하고, 1913년 안창호 선생과 함께 흥사단을 조직했다. 1922년부터 1931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지속적으로 독립운동 의연금을 제공했다. 역시 독립장을 받는 유상돈 선생은 1909년 평안북도 철산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면서 일본인 관리를 처단했다가 체포돼 투옥 중 탈옥, 러시아령으로 건너가 1910∼1920년대 중반까지 중국과 러시아 등에서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포상 대상자가 된 김안순 선생은 간호사로 1919년 3월 10일 전남 광주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체포돼 징역 4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김 선생은 그동안 관련 자료에서 ‘김안순’과 ‘김유운’이라는 서로 다른 이름으로 존재해 포상이 보류됐다가 두 차례에 걸친 현지조사와 경찰청에 지문 확인 의뢰를 통해 동일인임을 확인, 대통령표창을 받게 됐다고 보훈처는 설명했다.  이 밖에 1920년대 강원도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돼 옥중 순국한 진홍거 선생과 중국 서간도에서 부민단·한족회 지방 책임자로 활동하면서 1919년 안도현 내도산에서 독립군 병영지를 물색한 강호석 선생 등이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다. 특히 강 선생은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인 석주(石洲) 이상룡 선생의 사위로 석주 선생 가문에서 독립유공자로 훈장을 받은 10번째 인물로 기록돼 눈길을 끈다.  이들을 포함해 정부 수립 이후 포상받은 독립유공자는 대한민국장 30명, 대통령장 93명, 독립장 809명, 애국장 3742명, 애족장 4627명, 건국포장 896명, 대통령표창 2246명 등 모두 1만 2443명에 이른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北관리원, 주민 돌 맞아 즉사”

    이집트, 리비아에서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에서도 생계에 불만을 가진 주민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이달 초 함경북도 청진시 수남구역에서 보안서장을 지낸 관리원이 괴한들에게 피살됐다고 23일 보도했다. 이 관리원은 퇴근길에 주민 여러명이 던진 돌에 맞아 숨졌다는 것이다. 그는 14년 동안 청진시의 감찰과장, 수사과장, 예심과 등을 거친 인물로 주민 수십명을 적발해 교화소로 보낼 만큼 악명이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RFA는 전했다. 올 초에는 함경북도 연사군에서 땔감을 회수한 삼림감독대 감독원 3명이 살해당한 사건도 있었다. 극심한 생활난에 시달리던 북한 주민이 이들에 불만을 품고 살해한 것으로 파악된다. 김정일 생일을 이틀 앞둔 지난 14일에는 평안북도 정주와 용천 등에서 주민들이 “불과 쌀을 달라.”면서 시위를 벌인 일도 포착됐다. 이런 사건들은 대규모 폭동이나 시위 수준은 아니며 동네에서 삼삼오오 벌어지는 생계형 저항 수준으로 보인다.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거나 체제를 위협할 만큼의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 탈북자는 “북한의 전력사정을 보면 밤에는 전기가 거의 들어오지 않아 소리를 치거나 하더라도 누군지 색출하기 어렵다. 때문에 밤 사이에 이런 일들을 벌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다른 탈북자는 “생계형 저항은 이미 1990년대부터 있었고 오래된 상황이다.”면서 “여기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은 최근 중동의 민주화 시위와 연관지은 희망 섞인 관측이 아닌가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튀니지, 이집트 반정부 시위의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북한 주민들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고 현재까지 북한 내부에서 이집트, 리비아 반정부시위에 대해 공식 보도를 하거나 알린 것은 없다. 그러나 북한 지도부는 반정부 시위 소식이 북한 내부로 전파되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탈북자 출신의 한 소식통은 “최근 국가안전보위부를 통해 주민들 입단속을 철저히 하고 보안을 강화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면서 “남한에 살고 있는 탈북자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라는 등 이집트 발 민주화 바람에 긴장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권력의 핵심부는 이러한 사실들이 북한체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쪽으로 노력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北 前보안서장 피살…곳곳서 공권력에 저항”

     북한에서 공권력에 저항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고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이 23일 보도했다. 이달 초에 는 함경북도 청진에서 전직 보안서장이 피살됐다.  RFA는 청진시 주민의 말을 인용, “이달 초 밤에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던 청진시 수남구역의 전 보안서장이 괴한들이 던진 돌에 맞아 숨졌으며,이는 악명 높았던 전직 보안서장에 대한 복수극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피살자는 14년간 청진시 보안서 감찰과장과 수사과장으로 재직하면서 수십명의 주민을 적발해 교화소로 보내 원성이 자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살 사건을 조사한 청진시 보안서는 교화소 출소자들을 사건 배후로 보고 내사를 진행 중이며,보안서 직원들은 같은 봉변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분위기라고 이 주민은 전했다.  북한에서는 최근 공권력 약화 조짐 속에 생계형 범죄나 저항 사례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고 RFA는 전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2월16일)을 앞둔 지난 14일쯤 평안북도 정주·용천·선천 등에서 주민 수십명이 전기와 쌀을 달라고 외치며 동시다발적으로 소동을 벌여 국가안전보위부가 주모자 색출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함경북도 연사군에서도 극심한 생활난에 시달리던 주민이 땔감을 모두 회수한 산림감독대의 감독원 3명을 살해했고,양강도 혜산시에서는 지구사령부로 출근하던 군관이 자전거를 빼앗기는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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