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평민
    2026-06-2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662
  • “상해임정 히로히토 납치 기도”/중 잡지

    ◎당시 왕세자… 합방 항의위해 【상해 연합】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는 지난 1921년 3월 일본의 한반도 식민화에 항의하기 위해 홍콩에서 히로히토(유인) 당시 일본 왕세자를 납치하려 했으나 일본이 이를 사전에 탐지하는 바람에 포기했다고 24일 발간된 중국 역사잡지 「스지(세기)」 최신호가 보도했다. 이 잡지는 임시정부의 자위조직인 「영웅단」은 최루탄과 연막탄으로 히로히토 환영 리셉션장을 공격,히로히토를 납치한 뒤 일본정부에 투옥된 동료 독립투사들의 석방을 요구할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이 히로히토 공격을 위한 무기들이 홍콩으로 반입된 사실을 탐지한 뒤 이를 영국 첩보원을 통해 일본측에 전달했으며 일본은 홍콩총통과의 협의하에 다른 사람을 히로히토로 변장시켜 행사장으로 보내고 히로히토는 평민복을 입혀 다른 장소로 빼돌렸다. 이 잡지는 상해임시정부는 자신들의 계획이 사전에 누출된 것을 깨닫고 암호명 「겨울 진달래」로 불린 이 작전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 DJ 정치역정/정치격랑 43년 헤쳐온 인동초

    ◎92년 대선 패배로 은퇴선언한뒤 번복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대권도전은 이번이 네번째다.지난 71년 첫 도전을 시발로 87년,92년 잇따라 대권을 겨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71년 그는 당시 YS(김영삼)·이철승씨와 경선끝에 막판 뒤집기로 제1야당이던 신민당의 후보로 나섰다.박정희대통령과 맞붙었으나 역부족이었다.이후 6년의 투옥과 10년에 걸친 망명과 연금생활로 그에게는 「인동초」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87년 사면·복권으로 평화민주당을 창당,출마했으나 노태우(민정당)·YS(통일민주당)후보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하지만 88년 총선에서는 「황색바람」으로 제1야당을 만들어 냈다. 지역감정의 피해자이자 지역감정의 수혜자,40대 기수론의 한사람에서 세대교체의 당사자가된 김총재의 정치역정은 야당 정치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세번째 도전에 나선 92년 대선에서는 3당합당으로 여당후보로 나선 김영삼 후보와 국민당의 정주영 후보와 3파전을 벌였으나 김영삼 후보에 고배를 들었다.김총재는 「양김대결」에서 패배하자 정계은퇴를 선언했지만 국민회의 창당(95년9월)으로 정계에 다시 돌아왔다. 김총재의 대권도전은 숙명적인 라이벌 YS와의 끊임없는 대결이었다.4수째인 올해는 YS가 아닌 다른 여야의 후보들과 맞붙는다는 점이 다르다. □DJ 대통령선거 득표 ·7대(71.4.27)­공화당 박정희 52.3% 신민당 김대중 45.3% ·13대(87.12.16)­민정당 노태우 36.3% 통일민주당 김영삼 28% 평민당 김대중 27.1%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8.1% ·14대(92.12.19)­민자당 김영삼 42% 민주당 김대중 33.8% 국민당 정주영 16.5% □김 총재 약력 ▲25년 전남 신안 출생 ▲44년 목포상고 졸업 ▲48년 목포일보 사장 ▲51년 흥국해운 사장 ▲60년 민주당 대변인 ▲61년 5대 민의원 보궐선거 당선(강원도 인제) ▲62년 이희호 여사와 결혼 ▲63년 6대 국회의원(목포) ▲70년 신민당 7대 대통령후보 선출 ▲87년 13대 대통령후보 ▲92년12월 14대 대선후보,정계은퇴선언 ▲94년1월 아태평화재단 설립 ▲95년9월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97년5월 대통령후보 선출
  • 진인숙 교수,「영어단어와 숙어에 숨겨진 이야기」

    ◎대학작품속 영어화된 외래어 뿌리캐기/라티어 「알리바이」·네덜란드어 「이젤」 등/“제대로 알고 쓰려면 낱말의 어원 꿰뚫어야” 『미국의 민중시인 월트 휘트먼은 「영어는 광대하고 낮으며 평민에게 더 가까운 언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영어는 요컨대 평민들의 기쁨과 슬픔,사랑과 고뇌가 점철된 언어예요.예를 들어 영어의 「give and take(타협·협조)」는 영국 서민들이 경마경주에서 말의 경매가를 흥정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말이며,「glove money(뇌물)」는 헨리8세 치하의 영국사회에서 소송인이 법관에게 소송을 맡아준 답례로 한벌의 장갑을 선물했던 관례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원로 영문학자인 진인숙 명예교수(건국대·68)가 영어단어와 숙어의 유래와 어원을 수필식으로 밝힌 영어교양서 「영어단어와 숙어에 숨겨진 이야기」(건국대출판부)를 펴냈다. 한 인간을 깊이 알기 위해서는 그의 지나온 인생역정을 이해해야 하듯이 영어도 제대로 알고 쓰기 위해서는 그 낱말의 연원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게 그의 견해.『영어의 어원 내지 유래에 관한 지식은 결코 「값싼 상식」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그는 이 책에서 무엇보다 풍부한 문학작품의 실례를 들어 영어구절의 연원을 좇고 있어 시선을 모은다.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caviare to the general(속인들은 모르는 진품)」,셰익스피어가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처음 쓴 「kill with kindness(지나친 친절이 도리어 해가 되다)」,바이런이 그의 작품「차일드 해럴드의 편력」에서 창안한 「Roman holiday(남을 희생시키고 얻는 오락)」 등…. 영어에 외래어가 많다는 것은 한편으론 영어의 특성이자 장점이다.그만큼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이 책에서는 라틴어에서 파생된 「알리바이」,네덜란드어에서 비롯된 「이젤」,프랑스어의 망토 혹은 두건에서 유래된 「리무진」 등 영어화된 외래어들의 뿌리를 소상히 밝힌다. 『외국어 특히 영어의 광대무변한 세계에 들어서는 것은 곧바로 우리의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일입니다.이 책이 인문적 교양이 숨쉬는 살아있는 영어교재로 널리 읽혀졌으면 합니다』
  • DJ,「게임의 법칙」에 긴장

    ◎전 평민당원 유시민씨 저서 정가에 파장/DJ한계론 들어 대리전 통해 집권 주장 DJP(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 자민련 김종필 총재)에 대한 「한계론」을 지적한 책이 나와 정가에 미묘한 파장을 가져오고 있다.야권,특히 국민회의는 『검증되지 않는 이론』『외국에서 본 현실성 없는 논리』라며 일축하고 있지만 내심 신경을 쓰는 눈치다.「제2탄」「제3탄」이 나올 가능성에 은근히 신경쓰는 눈치다. 「97대선,게임의 법칙」이라는 제목의 이 책이 DJ측을 자극하는 이유는 몇가지가 있다.먼저 저자는 운동권 출신으로 88년 평민당원으로 활동하다가 독일에서 유학중인 유시민씨다. 또 이 책의 결론은 DJ가 「대리전」을 치뤄야 한다는 충고로 요약된다.이를 「제2후보론」으로 표현한다.흔히들 말하는 「제3후보론」과 같다.DJ에게는 「간접집권」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방안이라며 「선택」을 권유하고 있다. 하지만 DJ로서는 가장 싫어하는 출마불가 주장인 셈이다. 그는 이론적 분석을 통해 이런 주장을 이끌어낸다.무엇보다 우리나라 유권자의 「정치적 선호구조」가 비호남지역 유권자의 비이성적인 「반김대중 정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짚었다.최근 대선 예비주자들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도 변함이 없음을 근거로 들고 있다.「DJP연합」은 도리어 손해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88년 여소야대 청문회제도 첫 도입

    ◎생중계 4번째… 구치소선 「한보」가 처음 헌정 사상 TV로 생중계된 청문회는 13대 국회의 「5공청문회」「광주청문회」「언론청문회」에 이어 이번이 네번째다.그러나 구속 수감중인 증인들을 상대로 열리는 「구치소 청문회」는 이번 한보청문회가 처음이다. 여소야대를 이룬 지난 88년 13대 국회때 여야는 국회법 개정을 통해 처음으로 청문회 제도를 도입했다. 최초의 청문회는 88년 11월3일 열린 「5공청문회」.국회 본관 145호실에서 TV생중계로 일해재단 설립비리 등 5공하에서의 정치권력형 비리를 숨김없이 제기했다.장세동 전 안기부장,정주영 당시 현대그룹회장 등 27명의 증인을 신문한 5공청문회는 89년 3월17일까지 모두 9차례 열렸다.88년 12월14일 제7차 청문회에서는 장씨와 정회장이 대질신문을 받았고 이듬해 3월16일 제8차 청문회에서는 김철호 전 명성그룹회장이 포승줄에 묶인채 증언대에 오르기도 했다. 「광주청문회」는 특위의 명칭 문제로 갈등을 빚다 5공청문회보다 보름 늦은 88년 11월18일 김대중 당시 평민당총재,이희성 전 육참총장의 증언을 시발로 89년 2월24일까지 모두 17차례가 열렸다.증인은 67명.이 청문회는 「밤샘」도 5차례나 했는데 청문회 사상 「최장기록」(88년 11월18일 상오 10시2분부터 11월20일 상오 12시35분까지)도 여기서 나왔다.신한국당의 이신범(서울 강서을) 의원은 광주청문회 당시 증인의 신분에서 이번에는 특위위원으로 「자리바꿈」했다.
  • 인선 직접통보 이 대표 힘실어주기/당직개편 기록·뒷얘기

    ◎맞수 박희태·박상천 여·야 총무로 또 만나/이윤성·정동영 앵커출신 대변인 맞대결 15일 단행된 신한국당 주요 당직개편은 다양한 기연과 화제거리로 막후 묘미를 자아냈다. ○…원내총무에 기용된 박희태 의원은 박상천 국민회의총무와 각각 순발력과 원칙을 주무기로 내세운 「영원한 맞수」다.동갑내기인 이들은 서울대 법대와 고시동기(13회)로 검사생활도 함께 시작했다.13대에 나란히 정계에 진출,박희태 총무는 여당인 민정당을,박상천 총무는 야당인 평민당을 선택했다.이후 양당 대변인으로 맞대결을 벌였다.93년에는 정치개혁특위의 여야협상대표로 정치개혁법 합의를 마무리지었다. ○…이윤성 의원의 대변인 기용으로 같은 앵커출신인 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과의 설전도 벌써부터 화제다.이·정대변인은 정계입문전 각각 한국방송공사(KBS)과 문화방송(MBC)의 하오 9시뉴스를 진행했다.방송계 경력은 이대변인이 7년 앞선다. ○…이회창 대표와 박관용 신임사무총장과의 인연도 흥미롭다.현정부 출범때 감사원장과 청와대비서실장으로 인연을 맺은 두사람은 이대표가 국무총리로 자리를 옮긴뒤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의 사전 승인문제를 둘러싸고 의견 충돌을 빚었다.그러나 박총장이 고위공직자출신 인사들의 모임인 「마포포럼」을 주도하면서 두사람의 관계가 호전되기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이번 당직인선은 청와대에서 해당자에게 미리 알렸던 종전 관례와 달리 이대표가 15일 상오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협의를 거친뒤 의전수석실에서 당사자들에게 전화로 통보하는 모양새를 갖췄다.이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김대통령의 배려탓이었다.인선과정에서는 김대통령이 복수안을 제시,이를 토대로 이대표와 어렵지 않게 의견일치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 “김대중 총재 89년 서경원씨에게 1만달러 받은건 사실”

    ◎검찰 “북한 돈인줄 몰랐던듯” 지난 89년 평민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서경원씨로부터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1만달러를 받았다는 설로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27일 검찰이 당시 김총재가 1만달러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밝혀 관심을 끌고 있다. 검찰은 안기부로부터 서씨를 넘겨 받아 허담으로부터 받은 5만달러의 사용처를 캐는 가운데 이같은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서씨가 89년 검찰 조사에서 『외국에 나간다고 인사차 김총재에게 들리자 1천달러를 여비로 줘 귀국 인사를 드리면서 1만달러를 하얀 종이에 싸 「조그만 성의입니다」라며 놓고 나왔다』는 말을 털어 놓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김총재가 서씨를 다시 만나 『지난번에 놓고간 것이 달러던데 어디서 났느냐고 물어 해외에 있는 후배들에게서 조금씩 얻어온 것』이라고 주장,『김총재는 서씨의 달러가 북한에서 받은 것인줄 몰랐던 것 같았다』고 밝혔다.
  • DJ 전력시비 2라운드 돌입

    ◎신한국­“검찰서 밝혀진 사실” 거듭 공격/국민회의­용공음해 가열 우려 맞대응 태세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전력시비가 2라운드를 맞았다.26일 신한국당이 의원총회를 통해 김총재의 전력문제를 다시 걸고 넘어지자 국민회의측이 강력 반발하는 등 긴장감이 고조됐다. ○…신한국당 지도부는 전날 이용삼 허대범 의원의 원고내용이 『객관적 사실로서 야당측이 대통령이나 그 가족에 대해 무차별 유포하는 유언비어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라며 국민회의측의 삭제 요구를 일축했다. 상오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 비공개 토론에서 89년 「서경원간첩사건」때 안기부 대공수사국장으로 수사를 맡았던 정형근 의원은 『당시 외환관리법과 불고지죄로 불구속 기소된 김총재가 여야협상에 의한 국가보안법 개정을 거쳐 공소가 취소됐다』면서 『특히 불고지죄의 적용항목중 당시 평민당의 정치공세로 서경원사건과 관련,김총재가 걸릴수 있는 항목이 삭제됐다』고 전력시비를 측면 지원했다.그는 『서경원이 방북시 허담에게 받은 5만달러중 1만달러를 김총재에게전달한 것은 검찰조사에서 밝혀진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민회의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여권의 「용공음해」가 가열될 것으로 보고 정면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그러나 국회 운영 거부 등 기존 전략은 수정할 방침을 세웠다. 이는 하루전 국회 대정부 질문을 지연시켰지만 손실만 입었다는 반성에 따른 것이다.언론에 크게 보도됨으로써 신한국당측에 유리한 결과만 빚었다는 판단에서다.이에 따라 신한국당측이 DJ전력 관련원고에 대해 「삭제불가」분위기를 내비쳐도 직접 대응을 자제했다. 대신 『한보게이트를 호도하는 용공조작을 경계한다』는 주제로 언론 설명회를 갖기로 했다.시간과 장소는 곧 결정키로 했다.역대 군사정권의 용공음해 사례,당내 정보기관 근무경험의원,서경원밀입북 및 문익환 목사 방북관련 자료 등을 공개함으로써 우회적으로 반박논리를 부각시킬 방침이다.
  • 한보수사 발표­검찰 발표문 요약

    ◎제철소 건설비 부풀려 비자금 조성/은행 대출·사채발행 통해 5조559억 조성/시설자금 등 정상 경비로 4조8,423억 사용 Ⅰ.수사경위 〈수사착수 배경〉97년 1월23일 한보그룹의 주력기업인 한보철강공업이 발행한 어음과 수표가 부도처리돼 22개 계열사와 850여개 협력업체 등의 연쇄부도가 예상됐다.한보철강공업이 자본금 9백억원이 60배가 넘는 5조7천억원을 당진제철소의 건설에 투자하고 있었다.인·허가과정에서의 특혜의혹이 제기됐다. ○자본금 60배 넘는 투자 또 91년 세칭 「수서사건」의 여파로 한보그룹의 재무구조가 취약해졌는데도 한보철강에 92년 9월부터 97년 1월까지 무려 3조원이 넘는 거액의 대출이 이루어졌다.이는 외부의 압력이나 청탁에 의한 것으로서,한보의 실질적 최고 경영책임자인 정태수가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정치권 인사·관련부처 공직자 및 은행 임직원 등에게 집중 로비를 했을 것이라는 등의 각종 의혹이 제기됐다. 〈수사경과〉대검 중앙수사부는 1월23일 한보철강공업의 부도사실이 언론에 보도돼 각종 의혹이 제기됨에따라 내사에 들어갔다.27일 한보그룹 관계자 등 총 36명을 출국금지,한보그룹본부와 한보철강공업 등 16개 계열사 및 정태수 일가 5명의 주거지 등에 대해 압수 수색을 실시하는 등 전면 수사에 착수했다. 30일 정태수를 소환,정이 한보철강공업 대표이사의 직인을 보관,직접 수표를 발행했고 그룹의 계열사인 한보상호신용금고로부터 불법으로 거액을 대출을 받았으며 자금 악화로 결제 가능성이 없는 어음을 남발한 사실이 드러나 31일 구속했다. 또 2월1일부터 6일까지 정태수로부터 자금대출 및 사업 인·허가과정에서 청탁과 함께 거액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신한국당 홍인길,정재철,황병태·국민회의 권노갑 의원,김우석 전 내무부장관 등 5명을 구속했다. 한보철강공업 등 한보그룹의 회계장부 및 전산자료를 분석,제일은행 등에 개설된 42개 예금계좌를 압수해 자금추적 조사를 병행했다.정태수의 대출금 유용 및 사용,은닉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였다.박재윤 전 통상산업부장관,한이헌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석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윤진식대통령경제비서관,재경원·통산부·해양부·은행감독원 실무담당자 등을 상대로 한보철강공업의 인·허가 및 자금지원,압력 행사 여부 등에 대해 조사했다.검찰은 수사인력 108명을 투입해 300여명의 피의자와 참고인을 조사했다. 〈처리 내용〉검찰은 2월19일 정태수 등 한보그룹 관계자 2명,제일은행장 신광식 등 은행관계자 2명,국회의원 홍인길을 비롯한 공직자 5명 등 9명을 구속기소했다.별건으로 구속수감중인 전 제일은행장 이철수를 불구속기소,한보철강공업 대표이사 홍태선 등 한보 관계자 4명은 기소유예했다. ○모두 3백여명을 조사 Ⅱ.정태수 등 한보그룹 관계자의 범죄사실 1.정태수(73·한보그룹 총회장)=실질적으로 한보그룹의 운영을 총괄한자로서,당진제철소는 대부분 외부차입금에 의존하여 건설하던 중 무리한 계열사 확장,철강경기 부진,과다한 금융비용 지출 등으로 96년 11월말 극도로자금사정이 악화돼 어음을 발행해도 만기에 결제할 수 없는데도 96년 12월3일부터 97년 1월18일까지 86회에 걸쳐 액면 합계금 1천1백15억8천4백31만원의융통어음이 마치 지급기일에 결제될 것처럼 피해자를 속여 할인을 하는 수법으로 1천77억5천5백36만원 상당을 교부받아 편취했다. 94년 1월부터 95년 9월까지 「한보상사 단기대여금」 계정으로 분식한 뒤 현금을 인출,개인명의의 부동산을 구입하는 방법으로 24회에 걸쳐 9백37억5천1백90만원을 횡령했다. 제일은행장 신광식,조흥은행장 우찬목,전 제일은행장 이철수,신한국당 정재철·홍인길·황병태,국민회의 권노갑 의원 등에게 뇌물을 건냈다. ○1천77억여원 편취 2.김종국(52·여광개발 대표이사)=93년 11월1일부터 97년 1월12일까지 한보그룹 재정본부장으로 근무한 자로,정태수와 공모하여 94년 1월부터 96년 12월까지 109회에 걸쳐 합계금 1백51억2천5백60만원 상당의 회사자금을 횡령했다. Ⅲ.은행관계자의 범죄사실 1.신광식(59·제일은행장)=96년 6월부터 제일은행장으로 재직하는 자로,96년 7월 정태수로부터 당진제철소 건설과정에서 자금지원 대가로 2억원을 교부받는 등 같은해 9월까지 4억원을 수수했다. 2.우찬목(60·조흥은행장)=95년 2월부터 조흥은행장으로 재직하는 자로서,96년 7월 정태수로부터 당진제철소 건설과정에서 자금지원 대가로 4억원을 받았다. 3.이철수(60·전 제일은행장)=93년 5월부터 96월 4월까지 제일은행장으로 재직하던 자로서,94년 8월 정태수로부터 당진제철소 건설과정에서의 자금지원 대가로 모두 3억원을 받았다.또 96년 2월 유원건설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제일은행이 2천98억원을 지급보증의 형식으로 지원해주고 2억원을,같은해 4월 2억원을 챙겼다. Ⅳ.대출 등 관련 공직자의 범죄사실 1.홍인길(54·국회의원)=93년 2월부터 95년 12월까지 대통령 총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하다가 96년 5월부터 신한국당 의원으로 있는 자로,95년 1월 정태수로부터 산업은행 총재,제일은행장,외환은행장 등에게 부탁해 당진제철소에 대한 시설자금 대출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2억원을 받는 등 96년 12월까지 모두 10억원을 수수했다. 2.황병태(61·국회의원)=신한국당 의원으로 96년 8월부터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하는 자로,96년 10월 정태수로부터 당진제철소 자금지원 부탁을 받고 산업은행 총재에게 청탁,5백억원의 지급보증을 받게 하고 2억원을 챙겼다. 3.정재철(68·국회의원)=92년 5월부터 민주자유당,신한국당 의원으로 있는 자로,95년 10월 정태수로부터 국민회의 의원들이 국정감사에서 한보그룹의 여신현황 및 담보현황에 대한 질의를 하지 말도록 무마해 줄 것을 국민회의 권노갑의원에게 청탁하여 달라는 부탁과 함께 권의원에게 전달하라는 1억원을 교부받았다.또 96년 10월 정태수로부터 권의원에게 같은 취지로 청탁하여 달라는 부탁과 함께 권의원에게 전달하라는 현금 1억원을 교부받아 전달했다. ○대출대가 4억원 수수 4.권노갑(67·국회의원)=평민당·민주당·국민회의의 제13·14·15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있는 자로,93년 3월 정태수로부터 국정감사 등에서 한보그룹과 관련 질의를 잘 무마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5천만원을 교부받는 등 모두 2억5천만원의 뇌물을 수수했다. 5.김우석(60·전 내무부장관)=93년 12월부터 94년 12월까지 건설부장관으로 재직하다가 95년 12월부터 내무부장관으로 재직하던 자로,94년 9월 정태수로부터 당진제철소와 34번 국도를 연결하는 해안도로에 대한 예산을 조속히 배정함과 아울러 건설부가 발주하는 각종 공사를 한보건설이 수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달라는 청탁과 함께 1억원을 받는 등 2억원의 뇌물을 수수했다. Ⅴ.의혹사항에 대한 수사결과 〈부도 경위〉=한보철강공업이 당진제철소 건설비의 부담 가중 등으로 96년 6월 이후 자금사정이 악화되자 제2금융권에서 일제히 여신회수에 나섰다.같은해 말부터 채권금융기관들은 정태수 등 경영주가 스스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보철강공업을 제3자에게 인수시켜 공장을 완성케하는 것이 국민경제 및 채권보전에 유리하다는 결론에 따라 정태수에게 경영권 포기를 종용하였으나 거절,1월23일 부도처리했다. 부도처리는 제일은행장 신광식의 주도로 31개 금융기관장이 참석한 채권금융기관 대표자회의에서 결정됐다. 일부 은행들이 부도발생 사실을 1∼4일씩 지연신고한 바 있는데 96년 12월 이래 한보철강공업의 자금사정 악화로 은행마감시간 이후에 결제가 된 전례가 있었던 점으로 인정된 만큼 위법행위는 발견되지 않았다. 〈거액 대출배경〉=97년 1월31일현재 제1금융권의 한보철강공업에 대한 여신총액은 3조2천6백48억원이며 이 가운데 산업·제일·외환·조흥·서울 등 5개 은행의 한보철강공업에 대한 여신총액은 2조9천9백9백1억원이며 거의 대부분 94년부터 96년까지 사이에 집중적으로 지원된 것으로 나타났다. 95년 11월 당시 은행측에 제시한 총소요자금 4조1천억원 중 9천5백억원 가량을 한보 소유 부동산 매각 등으로 지체 조달하겠다는 자구계획이 이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보철강공업에 자금지원이 이루어진 것은 정태수의 부탁을 받은 홍인길 등의 대출청탁도 일부 원인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당진제철소 부지조성 및 코렉스 기술도입 과정〉 89년 6월 건설교통부가 한보철강공업이 부산공장 이전부지로 신청한 아산만내 매립대상지가 포함된 공유수면매립 기본계획을 고시했다. 한보철강공업은 89년 1천2백76만8천평에 대한 매립면허를 받아 매립공사를 시행했다.같은해 5월3일 준공인가를 받은 뒤 한국전력에서 인근에 발전소 건설부지로 확보해 두었다가 발전소 건설계획이 취소된 14만9천평에 대해 같은해 9월 추가로 매립신청,매립면허를 받았다.매립 부지위에 제1단계로 연산 3백만톤 규모의 전기로 공장을 건설하고 제2단계 설비확장때 코렉스 공법으로 알려진 용융환원제철기술을 도입하기로 한 뒤 94년 8월 이후 연산 75만톤규모의 코렉스로 2기를 건설하고 있었다. ○김 전 내무 2억원 수뢰 통산부는 제조원가가 저렴하고 공해물질 배출량이 적어 기존의 고로방식보다 유리한 새로운 제철기술인 코렉스 공법을 인증해 주었다. 〈자금유용 및 사용처〉=한보철강공업은 금융기관 대출금 4조8백81억원,회사채 및 사채발행 등 5조5백59억원을 조성하여 이 중 시설자금으로 3조5천9백12억원을 투입,운영자금으로 1조2천5백11억원을 사용했다.나머지 2천1백36억원은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용자금의 사용처는 ▲계열사 및 위장계열사 신설과 인수 4백37억원 ▲해외진출경비 55억원 ▲계열사 임직원 영업활동지원비 2백74억원 ▲정태수 일가 전환사채 인수 8백20억원 ▲개인 세금납부 1백51억원 ▲정태수 전처 이혼위자료 400억원 ▲부동산구입 78억원 등이라고 정태수는 진술하고 있다.현재 사용처가 확인되지 않은 자금은 약 250억원에 이른다.
  • 150㎝ 단구로 버틴 「개혁세월」 73년/등소평이 걸어온 길

    ◎20세 파리유학때 중 공산당 유럽지부 창설 “혁명 1세대”/33년 첫 좌절후 3전4기… 78년 개방기치로 전권장악/사회주의 몰락 국제풍파속 말년엔 체제독려 지방순회 신장 150㎝정도의 땅딸막한 등소평은 외무부터가 오뚝이 같았다.부도옹이라는 그이 별명은 세력다툼의 와중에서 쓰러졌다가도 매번 다시 오뚝 일어섰울 뿐 아니라 마침내는 모택동 사후의 중국을 한손에 틀어쥔 탁월한 정치력에 대한 경탄을 담고 있다. 실용주의노선으로 12억 중국인민을 배고픔에서 해방시키고 최고 지도자이면서도 최고직책을 가져보지 않은채 중국을 15년 넘게 통치해온 등소평.하지만 그 역시 같은 세대의 거의모든 중국지도층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서사시적 삶을 살아왔다. ○맏아들로 본명 등희현 1904년8월22일 사천성 광안현에서 비교적 부유한 불교도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본명은 등희현.광안중학시절 그의 성적은 우수한 편이었고 성격은 온순 참착했다.겉으로는 매우 산박했으나 「마음은 겨자처럼 맵다」는 평을 들을 만큼 결단력에 냉혹성까지 갖추며 자라났다.16세 되던 20년 10월 은등 고학생으로 프랑스에 유학간후 24년에는 주은래·이입삼·조세염 등과 파리에서 주국공산단 유럽지부를 창설함으로써 일찍부터 혁명에 가담했다.이 시절 르노자동차회사의 조립공으로부터 기차화부,식당보이 등 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스런 시절을 보냈다.뒷날 어떠한 환경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이때 길러졌다고 한다.그는 당면에 따라 26년초 파리를 떠나 모스크바로 향했다.여기서 중국인만을 대상으로 공산주의학습을 시키던 중산대학에 들어가 체계적으로 공산주의이론을 학습하고 군사훈련까지 받은뒤 그해 연말 귀국했다. 귀국후 그는 곧바로 서안의 중산군사학교에 배치돼 이 곳에서 정치처장을 맡으면서부터 본격적인 중국혁명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이듬해인 27년 국공합작이 실패로 돌아간뒤 그는 중국공상당본부에서 일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이름을 등소평으로 개명했다.그해 겨울 중공중앙이 상해로 옮겨가자 함게 따라가 당비서장과 비슷한 역할을 맡으면서 최초의 부인 장서원과 결혼한다.하지만이장씨부인은 멀지않아 난산으로 사망하게 된다.등은 28년 당대회에서 당중앙부비서장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부턴 광서지역에 들어가 본격적인 게릴라활동을 벌였다. 31년에 들어서자 주덕이 이끄는 홍군제1군단에서 정치부주임을 맡게 되고 동시에 홍군총정치부부주임을 맡아 활동하던중 두번째 부인 김유영과 결혼한다. 그의 인생에서 최초의 큰 좌절은 33년에 찾아온다.강서성 위원회 서기로 취임하지만 그가 모택동파라는 이유만으로 곧 해임되고 「엄중경고」처분을 받는다.당시까지만해도 모가 전권을 잡지 못하던 시절이다.이것이 그이 첫번째 실각으로 기록되고 있다.설상가상으로 그의 처 김유영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그녀는 당시 중공중앙조직부장이던 이유한과 재혼해서 현재의 경제체제개혁위주임인 이철영을 낳았다. 34년10월 중국공산당은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의 끈질긴 소탕전에 견디다 못해 대장정에 나섰다.물론 등은 참여했다.이 장정도중 모는 준의회의에서 중공당 최고지도자로 부상하게 되고 당시 홍군기관지 「홍성보」 편집장 자격으로이 회의에 참석했던 은등 당중앙비서장(당사무총장격)이라는 중책을 맡게 돼 모파의 유력한 간부지위에 올랐다. 약 1년간의 대장정이후 계속된 붉은 공산혁명과 항일운동을 거치면서 등은 계속 모의 신임을 쌓아 가다가 38년8월에는 팔로군의 제129사단 정치위원으로 임명돼 사단장인 류백승과 함께 유등대군(제2야전군)의 기반을 닦아간다.그후 45년에는 군부내에서 주덕·팽덕회 다음으로 3번째의 지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군부내 기반과 인맥을 형성해나갔다. 그는 이에 앞서 39년9월 세번째이자 마지막 부인인 탁림과 결혼,지금까지 2남3녀를 둔채 반백년도 넘게 해로해왔다. 50년대말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극심한 가뭄등으로 수백만명이 굻어죽는 사태가 발생하자 그는 그 유명한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론」(흑묘백묘론)을 내놓았다.『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사상이야 어떻든)쥐만 잘 잡으면(생산만 많이 하면)좋은 고양이(인민)다』는 의미의 이 주장으로 그는 자본주의 추종자라는 이른바 주자파로 주목받게 된다. 60년대 중반부터문화대혁명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그의 주변에도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한다.홍위병들로부터 주자파라는 비판을 받아온 그는 류소기 국가주석과 함께 67년8월 모든 공직에서 해임,강서성 신건현에 유배돼 강제노동에 동원되어야 했다.2차 실각이었다. 그로부터 7년뒤인 73년3월 그는 국무원 부총리로 임명됨으로써 화려하게 복권,오뚝이의 면모를 과시했다.그러나 그는 이번에는 『남쪽 언덕이든 북쪽 언덕이든 꼭대기에만 오르면 된다』는 의미의 「남파북파논」을 내놓아 골수 공산주의자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결국 76년4월 주은래 추모집회로 시작된 천안문난동사건(일명 4·5사건)때 사인방(모택동을 등에 업은 강청 장춘교 왕홍문 요문원등 강경파)으로부터 「난동의 배후조종자」로 몰려 또다시 실각했다.3차 실각이었다.주추모집회에서 은등 추도사를 읽었었다. 이윽고 모사망과 사인방 실각 이듬해인 77년 그는 다시 부활,실각 당시의 모든 직책을 회복했다.이때 그의 재기용여부를 놓고 중앙공작회의는 격렬한 찬반논쟁을 벌였다.그런데등이 스스로의 과오를 시인,이미 당주석과 중앙군사위주석이었던 화국봉의 지위를 인정하는 편지를 씀으로써 부활하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때 화는 의등 부활에 반대했었다. ○강경책 내며 위기극복 이렇게 되살아난 등은 78년12월 당11기3차중앙위전체회의에서 향후 20년간에 걸친 「4개(농업 공업 국방 과학기술)현대화계획」선포를 주도함으로써 당의 최고 실권자임을 과시했다.이때부터 중국이 야심찬 개혁개방시대로 들어선 것이다.이는 곧 실사구시를 중심으로한 실용주의 「등시대」가 시작된 시점이기도 했다. 그는 이때부터 자신이 최고실권자였음에도 당주석이나 국가주석과 같은 최고 자리에 오르지 않는채 호요방(당)과 조자양(정부)을 앞세워 화에 대한 문책과 강등에 착수,마침내 82년9월 화를 당중앙 위원이외의 일체의 요직에서 제외시킴으로써 권력투쟁에서의 기나긴 「장정」을 매듭지었다. 89년4월 전총서기 호요방 추모집회로 시작된 천안문 민주화시위는 그에게 닥친 마지막 시험이었다.그러나 그는 이 시험문제를 시위대군중에 대한무자비한 발포와 함께 시위대의 추앙을 받던 총서기 조자양을 「폭란의 배후책임자」로 몰아 제거하는 방법으로 풀었다.13년전의 천안문폭동때 자신이 당했던 방법을 이번에는 자신의 심복이었던 조에게 그대로 되풀이한 셈이다.어쨌든 이로써 사회주의체제를 전복시켰을지도 모를 자유화물결을 일단 잠재울 수 있었다. 등은 그동안 자신의 후계자로 호요방과 조자양을 잇따라 내세워 봤지만 「홀로세우기」에 실패했다.그 뒤 가장 적절한 후계자라고 꼽은 인물이 강택민.강은 천안문사태 이후 상해시에서 혼란을 신속히 수습했고 그동안 의등 개혁개방노선을 가장 능숙하게 실천해온 것으로 평가되었다. ○강택민 지목한 뒤 은퇴 강을 후계자로 내세운 그는 89년 11월9일 당중앙위의 허락을 받아 당중앙군사위주석직에서 퇴임함에 따라 공직에서 은퇴,평민으로 돌아왔다.그러나 그가 은퇴한 뒤에도 배후에서 한동안 강체제를 지원하고 후견인역할을 해와서 최근까지도 「최고지도자」또는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라는 칭호를 들어왔다. 특히 그는 동구공산체제가붕괴된데 이어 소련마저 무너져 중국이 망당망국의 위기의식에 휩싸이자 심천 주해 등 남부 개혁개방지역을 돌며 이른바 남순강화를 통해 개혁개방을 보다 적극화할 것으로 주창함으로써 사회주이체제붕괴의 도미노현상이 중국대륙에 밀어닥치지 못하게 했을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모방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당노선으로 채택케함으로써 중국이 21세기 아시아 태평양시대를 이끌어갈수 있도록 새로운 용기와 힘을 불어넣기까지 했다. 중국경제가 이같은 시장경제체제 도입에 힘입어 연10%가 넘는 경이적인 고도성장을 지속하며 전진을 계속하자 그는 『기회를 잃지 말고 성장을 계속하라』는 말을 남기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등소평 연보 ▲1904.8.22=사천성 광안현에서 3남매중 맏아들로 출생 ▲1918=중경에서 프랑스유학을 위한 예비학교 입교 ▲1920=프랑스 유학 떠남 ▲1924=파리에서 주은래와 중국공산당 유럽지부 창설 ▲1926=모스크바의 중산대학으로 옮겨 수학한뒤 연말에 귀국 ▲1927=광서성에서 공산당 게릴라 조직.첫부인 장서원과 결혼 ▲1931=홍군제1군단 정치부주임.두번째부인 김유영과 결혼 ▲1933=강서성위서기로 취임직후 모택동파라는 이유로 해임.1차실각 ▲1934∼35=대장정 참가,준의회의에서 당중앙 비서장으로 선임 ▲1938=국공합작으로 홍군이 팔노군으로 개편될때 129사정치위원이 됨 ▲1939=세번째부인 탁림과 결혼 ▲1945=제7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으로 선출 ▲1952.8=국무원 부총리에 임명 ▲1954=당중앙위원회 비서장,국무원 부총리,국방위원회 부주석에 선출 ▲1956=정치국상무위원겸 당총서기 선임 ▲1966=문화대혁염 시기 홍위병으로 부르주아 반동파로 비판받음 ▲1967.7=모든 당·정 직무에서 해임.2차 실각.남창으로 하양 막노동 ▲1973.3=주은래 천거로 국무원 부총리에 복직 ▲1974=당정치국원 승진.유엔총회 특별회의에 중국대표 단장으로 참석 ▲1975.1=당중앙 부주석,정치국 상무위원,국무원 제1부총리,중공군 총참모장 등에 선임 ▲1976.4=천안문사건이 발생하자 4인방에 의해 배후조종자로 지목,모택동의 제의로 모든 직무에서 물러남.3차실각 ▲1977.7=중공당 10기3중전회에서 당중앙정치국상무위원,당중앙부주석,군총참모자 등으로 복직 ▲1978.12=당11기3중전회에서 당최고영도자 지위 획득,향후 20년간 4개 현대화 추진계획 선포 ▲1979=핑퐁외교로 미국과 국교수립후 공식 방미,개혁·개방정책을 당지도노선으로 정식 출범시킴 ▲1980=경제특구제 시행 결정,호요방·조자양체제 출범토록 지원 ▲1981.6=당중앙군사위우너회 주석으로 권권장악 ▲1987.10=당정치국원,정치국상무위원직 사임 ▲1989.6=천안문사태 유혈진압 지시 ▲1989.11=당중앙군사위 주석자리를 내놓고 정치일선에서 은퇴 ▲1992.1=남부개방지역 순시중 담화(남순강화)로 개혁·개방 가속화와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도입 역설 ▲1992.10=제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당원로들을 은퇴시키고 강택민체제 구축토록 지원 ▲1993.8=막내딸 용등,「나의 아버지 등소평」전기 출간 ▲1993.11=「등소평문선 제3집」 발간 ▲1993.12=북경시 순시중 「기회를 잃지말고 계속 성장추진」역설 ▲1997=92세를 일기로 영면
  • 권노갑 의원·검찰/악연 언제까지

    ◎수서·문서변조·한보관련 3번째 소환 국민회의 권노갑 의원이 검찰과 세번째 「악연」을 맺었다. 지난 91년 수서비리사건과 95년 외무부 문서변조사건에 이어 한보그룹 특혜의혹사건에 연루돼 검찰출두를 앞두고 있다. 권의원의 검찰조사는 한보 정태수 총회장의 돈이 두번이나 빌미가 됐다. 수서사건때 같은 평민당소속이던 이원배 의원을 통해 정총회장의 돈 2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과 첫 대면했었다.하지만 이권이나 청탁대가로 받은 돈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 사법처리는 모면했었다. 두번째 조사는 95년6월29일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난 날이다.전 뉴질랜드주재 한국대사관 통신담당 행정관 최승진씨가 『지방자치단체선거를 연기한다』는 내용으로 변조한 외무부 전문을 공표,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현재 1심재판에 계류중이다. 권의원은 이번에도 정총회장을 직접 만나 세차례에 걸쳐 1억5천여만원을 받았다고 실토하면서도 정치자금과 떡값으로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며 수서사건때와 같은 논리를 폈었다. 그러나 검찰은 신한국당 정재철 의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10월 정총회장의 부탁으로 1억원을 받아 권의원에게 전달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국정조사를 앞두고 야당의원들이 한보철강에 대한 특혜대출을 문제삼으려 하자 무마해달라는 조건이었다. 권의원도 결국 「꼬리」를 내리고 12일 상오 검찰에 출두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검찰은 권의원의 혐의가 확인되는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권의원으로서는 정치생명의 최대 고비를 맞은 셈이다.
  • 정재철 의원·홍인길 의원·권노갑 의원/소환의원은 누구인가

    ◎정재철 의원­당서열 3위인 전당대회의장/홍인길 의원­「청와대 안살림」 총무수석 역임/권노갑 의원­40년 고락 함께한 DJ의 측근 한보사태와 관련,10일 검찰에 소환된 신한국당 정재철(전국구)·홍인길 의원(부산 서구)과 11일 출두할 예정인 국민회의 권노갑 의원(전국구)은 당내에서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 인물들이다. 먼저 정의원은 4선 의원으로 당 서열 3위인 전당대회 의장이다.이홍구대표가 부재중이면 대신 고위당직자회의를 주재하는 자리다.그는 이날 상오 고위당직자회의에 참석한 뒤 검찰에 자진 출두했다.회의석상에서도 아무말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재무부 기획관리실장·한일은행장을 거쳐 11대때 정치에 입문했다.국회 예결위원장·정무장관을 지냈다. 5공 출신으로 당내 동국대 인맥인 정의장은 대학동문인 최형우 상임고문(부산 연제)과 고 김동영 전 정무장관을 각별히 챙겼다.지난 91년 민자당 시절에는 김영삼 대통령 추대위 핵심멤버로 맹활약을 했다. 홍의원은 18년동안 김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일했다.고향도 경남 거제로 김대통령과 같고 인척이기도 하다.부산에서 수산업에 종사하며 김대통령 지역구를 관리하다 79년 10·26사태에 이은 「서울의 봄」 당시 신민당 총재비서로 입문했다. 입이 무겁고 충직해 「상도동 사단」의 자금관리를 맡다 현정부 출범후 청와대 살림을 책임진 총무수석에 임명됐다.그는 지인들에게 『내가 땅을 한평 샀나,아파트를 한채 샀나…』라며 푸념했다는 후문이다.「금고지기」로서 그의 충성심을 읽을수 있는 대목이다. 국민회의 권노갑 의원(66·3선)은 김대중 총재와 40년 고락을 함께한 핵심 측근.김총재의 목포상고 5년 후배로 61년 김총재의 강원도 인제보궐선거때 비서로 합류.이후 김총재의 「분신」으로 불리며 「동교동사단」의 맏형 노릇을 해왔다.조직·자금 관리는 물론 각종 선거공천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91년 수서사건 때도 한보 정태수 총회장에게 2억원을 받아 평민당의원들에게 나눠줬다가 검찰수사를 받기도 했다. 13∼14대 목포에서 당선됐으나 15대는 김총재의 장남 김홍일 의원에게 지역구를 물려주고 전국구로 등원했다.
  • “옷차림은 「인격의 거울」이다”/타이콘 패션연「남자의 옷이야기」

    ◎수트·재킷 등 전체분위기가 멋쟁이 판정/신분상징 구두·모자 등 액세서리도 소개 조끼의 맨 아랫단추는 채우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일까.남성상의의 라펠(Lapel)은 왜 V자 모양이며 사용하지도 않는 단추구멍은 무엇때문에 있을까.남성의 옷차림 문화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실용·교양서 「남자의 옷 이야기」(1·2권,타이콘 패션연구소 엮음)가 도서출판 시공사에서 나왔다. 슈트에서부터 재킷,코트,셔츠와 타이,예복 등 남성 옷차림의 기본 항목을 문화사적인 맥락에서 다루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옷을 잘 입는 것과 유행에 따라 옷을 입는 것은 별개라는 관점에서 볼때,이 책은 전자의 입장에 무게를 둔다.경박한 유행흐름을 타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올바로 드러낼 수 있는 「인격의 거울」로서의 옷을 입으라는 것이다. 역사상 최고의 멋쟁이라고 일컬어지는 영국 윈저공(공)의 경우,멋쟁이라는 칭송을 받았던 데 비해 옷가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중요한 것은 옷 전체의 분위기를 어떻게 풍요롭게 연출하느냐 하는 점이다. 이 책은 먼저 교과서처럼빈틈없는 옷차림은 펭귄이 걸어가듯 부자연스러울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우리나라 남자들은 깃에 심지가 들어간 빳빳한 드레스 셔츠를 즐겨 입는다.또 좋은 넥타이를 제대로 매면 매듭 바로 밑에 홈이 패게 마련인데 이것을 애써 펴 버리려고 한다.넥타이 매듭의 홈이야말로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신사복 분위기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정신적 여유공간」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1권이 「신사복문화」를 다뤘다면 2권은 남성 「액세서리문화」에 초점을 맞춘다.이 책은 특히 구두나 모자가 신분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음을 풍부한 실례를 들어 밝힌다.고대 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나 종려 잎으로 짠 샌들은 고승이나 귀족 등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신었으며,일반평민들은 맨발로 다녔다.우리나라도 조선시대에 가죽신발은 일부 양반계층만 신을수 있었으며 상민들은 짚신을 신고 다녔다.그런만큼 신사라면 옷의 격식에 따라 구두의 종류도 골라 신어야 한다는 것이다.모자 역시 마찬가지.공식적인 자리에서 쓰는 「탑 햇」,중후한 미가 돋보이는 「홈버그」,보통 중절모라고 불리는 「페도라」,비공식적인 옷차림에 어울리는 「트릴비」,비가 올때 쓰는 「아이리시 피셔맨 햇」,스포티한 옷차림에 적합한 「드라이빙 캡」 등 다양한 쓰임새에 따른 자기연출이 필요하다는 얘기다.남성의 옷입기에 관한 불문율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옷을 알고 입는 것이야말로 「자신감의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 러 군주제 부활 움직임/“국민단합에 유리” 왕실후손에 물밑 접촉

    ◎공산당도 인정… 게오르규 로마노프 물망 러시아에 왕가를 부활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모스크바 현지언론들은 『국민통합이 절실한 상황에서 통합의 상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으며 러시아정부는 왕족 후손들을 수소문하며 물밑에서 이들과 조용한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관련,바딤 로프힌 러시아 귀족협회 제1부회장은 『모든 것이 결정된 것은 없으나 협상중』이라고 밝히고 있다.입헌군주제를 채택하면 누구를 로마노프왕가의 주인으로 할 것인가,왕의 지위에 대한 적절한 신분보장 방법은 무엇인가 등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왕손연구가들은 러시아의 마지막 왕가인 로마노프가는 한때 75명에 달했었으나 현재는 5명이 생존해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대부분은 1917년 러시아혁명 당시 예카테린부르그에서 니콜라이2세와 그 가족들이 처형당할때 러시아를 탈출,유럽 여러나라에 흩어져 신분을 속이고 유럽의 평민들과 결혼,평범한 생애를 살다 숨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생존해있는 로마노프 후손가운데 로마노프왕위를 계승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이는 올해 16세의 게오르규 로마노프.왕손연구가들은 게오르규 로마노프가 알렉산더2세의 5대황손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로마노프왕가를 이어나갈 유일한 상속자로 평가하고 있다. 정치권의 반응을 보면 여당은 물론 다수당이며 볼셰비키혁명 계승자로 자처하는 현재의 공산당도 「왕정복고」를 인정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하지만 국민들 사이에서는 혹독한 독재체제,반민주주의로 상징되는 차르(러시아황제)체제를 부활하려는 의도에 고개를 흔들고 있는 층도 적지 않다.
  • 삼성물산 사보 「성공비결」 7가지로 요약

    ◎“로마제국서 경영기업 배우자” 「로마제국의 성공에서 기업경영기법을 배운다」 삼성물산은 최근 사보에서 일본의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를 분석,상사경영에 적용할 수 있는 로마의 성공비결을 7가지로 요약했다. 삼성은 로마인의 투철한 의무감,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신분에 걸맞는 도덕적 의무)를 경영층,임원 및 지원부서의 솔선수범과 희생에 연결시킨다.최고지휘권자가 전쟁에 앞서고 병사들과 동고동락함으로써 백전불패를 가져왔다는 것.요컨대 어려운 일에는 소사장이나 팀장이 앞서야 조직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리더십.부하들에게 항상 이긴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장군들의 지도력이 전쟁승리의 원동력이 됐듯 지도자는 실력과 인간미,정보력에다 사심없는 마음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피정복민의 흡수와 신분상승을 허용한 로마인의 개방적 태도에서는 부하직원에 대한 동기부여와 실력에 따른 공정한 인사를 배울 만하다는게 삼성측의 분석. 중무장 보병과 기병의 혼용,패장을 처벌하지 않는 로마인의 전투전술은 다양한 환경에서의 대책마련,실패에 대한 격려,목표달성 지상주의가 주는 경영실패위험에 대해 교훈을 준다.귀족과 평민의 국가공동경영에서는 상의하달식의 톱다운 경영은 위기시에 적용할 것을 권하고 대신 평소에는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를 통한 스피드경영을 권고한다.이 밖에 패자에 대한 자치권부여 등은 자율경영과 소사장제로 대표되는 권한이양으로 응용된다고 삼성측은 지적했다.〈박희준 기자〉
  • 유럽통일/서병철(화제의 책)

    ◎연방제 단일국 목표·과정 연방제 단일국가를 형성하려는 유럽인들의 목표와 추진과정,성과를 분석한 책.지난 58년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 6개국으로 출발한 유럽경제공동체(EEC)는 94년 유럽연합(EU)으로 명칭을 바꾸고 95년에는 스웨덴 오스트리아 핀란드 등을 포함시켜 회원국을 15개국으로 늘렸다.또 99년까지 「유로」라는 단일화폐를 사용하는 한지붕 생활권으로 묶는다는 마스트리히트조약도 실현단계에 들어섰다. 인구 3억7천만명에 세계 교역량의 48%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최대의 경제블록 유럽연합.이런 추세라면 준 국제연합 규모로까지 성장할 것으로 보이는 유럽연합에 대해 이 책은 면밀히 검토한다.아울러 공산체제 붕괴 이후 중·동유럽의 개혁,새로운 환경에 따른 유럽의 개혁문제 등을 폭넓게 다룬다.지은이는 『정치·경제 협력대상 다변화정책의 가장 효율적인 대상은 유럽연합』이라고 지적한다.평민사 1만원.
  • 정흥진 종로구청장 항소심 선고유예/4언절구 판결문 화제

    ◎“민주발전 노력… 언설 잘못 속죄케 할만” 선거법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서울 종로구청장 정흥진 피고인(52)에 대한 2심 재판부의 판결문이 법조 주변에서 화제다. 서울고법 형사1부 권성 부장판사는 25일 지난해 6·27지방선거때 상대후보를 비방한 정피고인에 대해 이례적으로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1심에서 벌금 3백만원을 선고받았던 정피고인은 당선무효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권부장판사는 선고유예의 변을 4언절구로 남겼다. 「실언가석,전공속죄,해의선겁,선고유예」. 권부장판사의 해석은 이렇다. 『가사를 돌보지 않고 민주주의발전에 행동으로 헌신한 전력이 인정되며 이 사건과 같이 언설만으로 빚은 죄책에 대해서는 능히 이를 속죄케 할만하다.이에 선고유예 판결을 내린다』 경기고와 서울법대를 졸업한 권부장판사는 한학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전해졌다.55세. 재판부의 선처에 따라 정피고인은 구청장직을 계속 유지하게 됐다.정피고인은 지난해 6·27지방선거당시 서울시 의원가운데 유일하게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구청장후보로 출마,당선됐다.그러나 합동연설회 등에서 민자당 배문환 후보(62)를 비방한 혐의로 기소됐었다. 정구청장은 정읍농고와 한양대를 나와 중고교 교사를 지냈으며 평민당 청년국장과 김대중 대통령후보 수행실장 및 서울시의원을 거쳤다.태권도 8단의 무골로 최근 재혼했다.〈박상렬 기자〉
  • 경찰을 바로 알아야 한다/이상안 경찰대 교수(공직자의 소리)

    ◎느닷없는 중립화 요구에 국민 불안 모처럼 국민의 치안심리가 안정되는듯 하더니 느닷없이 불어닥친 정치권의 경찰중립화 회오리로 국민불안이 일기 시작했다. 지난 13대 국회 막바지에 여·야합의로 경찰의 중립화장치가 마련되었고(경찰법:1991.5.31) 이를 근간으로 경찰은 두차례의 공정한 선거지원 및 효율적인 민생치안을 성공적으로 이루어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또 무슨 논쟁인가에 대한 회의와 불안이다. 논쟁의 취지와 논지는 이렇다. 한 주장은 경찰중립화의 제도적 장치를 확대·실험해 보자는 것이고 다른 한 주장은 정치권이 이미 마련해준 중립화 장치를 좀더 안정적으로 유지·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국민을 혼란시키지 않는 길이라는 주장이다. 네가지 기준에서 어느쪽이 적절한지를 밝히기로 한다. 첫째,논쟁의 주체에 대한 차별성의 문제이다. 경찰문제를 주제로 논의할 때 논의의 주체는 공식정책결정 참여자로서 의회와 행정부(경찰)는 물론,비공식 참여자로서의 정당 및 언론 등이 공히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기에 정치권은당연시되고 행정부의 경찰은 안된다는 논리는 그 자체가 비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광범위하게 탐색되어 합리적으로 선택되어야 할 정책대안이 정상화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 둘째,경찰 정책목표와 정책수단간의 적실성 문제이다. 경찰은 「국민보호와 질서유지」를 정책목표로 한다.이의 목표달성을 위해 적실한 정책수단으로는 경찰기관의 지위,관청형태,경찰청장의 인사제도,자치경찰의 도입 등이 거론될 수 있다.확정되기까지는 집행부서의 과학적 검증이 선행되어야 시행오류를 줄일 수 있다. 셋째,정치권에서 제기하고 있는 경찰의 중립화문제는 아주 한정적 개념이다.즉,정치세력집단(정당 등)으로부터의 행정부 간섭배제이다.정치권이 스스로 지켜주면 행정부는 중립성을 보장받는 셈이고 따라서 대통령의 직무명령으로부터의 차단이 중립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넷째,쟁점별 사안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도 조심스럽게 고려돼야 한다.국무총리 직속으로서의 소속변경은 국민으로부터 더욱 멀어진다는 저항감이 있고 국가 경찰위원회와의 합의제 관청으로의 지위변화는 준국방기능과 범죄와의 전쟁에 대응해야 할 기관으로서는 부적절하다.지방자치경찰에 대한 기대도 미국 동북부주 등 많은 주에서 시장재선에 경찰이 악용되는 사례로 나타났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의 지역할거구도로 미루어 이와같은 전례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 89년 2월10일 당시 야권3당(평민,민주,신공화)이 공동주최한 「민생치안확립을 위한 합동공청회」때의 일이다.야권3당 의원들은 민생치안의 요체를 처벌강화에 두고 이를 정책수단으로 확정하려 했다.당시 필자는 발표자로서 처벌강화가 아닌 경찰의 검거확률 제고가 범죄억제의 가장 유효한 정책수단임을 지적,이 방향으로 결론이 내려지도록 했다. 대부분의 야당의원들이 공감한 부분이다.정치인들이 잘못 알고 잘못된 정책결정에 참여하면 국민은 불안해진다.타산지석이 되었으면 한다.
  • 야 상위·특위장 8명 내정

    ◎국민회의­행정 김인곤/농수산 김태식/통산 손세일/복지 신기하/여성특위 신낙균/자민련­교육 김현욱/통신 강창희/환경 이긍규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신한국당에 이어 6일 야당몫 7개 국회상임위원장과 여성특위위원장 후보를 내정함으로써 15대국회 전반기를 이끌 상임위원장단 구성이 사실상 완료됐다. 국회는 8일 개원식에 이어 제1백80회 임시국회 1차본회의를 열어 16개 상임위원장과 특위위원장을 선출하는 한편 여야와 무소속 국회의원 2백99명의 상임위를 배정하고 본격적인 의정활동에 착수할 예정이다. 국민회의는 6일 국민회의몫 4개 국회상임위원장 후보로 행정위원장에 김인곤,농림수산위원장에 김태식,통상산업위원장에 손세일,보건복지위원장에 신기하 의원을 각각 지명했다. 또 국회 여성특위원장에는 신낙균의원이 지명됐다. 자민련도 이날 자민련몫 3개 상임위원장 후보로 교육위원장에 김현욱,통신과학기술위원장에 강창희,환경노동위원장에 이긍규 의원을 각각 지명했다. ◆야 상위·특위장 내정자 프로필/=국민회의 =자민련 ◎김인곤 행정/당적 자주 옮긴 학원 재벌 광주대학교와 인성고교 등을 소유한 「학원재벌」로 한다.13대때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 전국구 1번으로 정계에 입문했으며 90년 3당 통합때에는 민자당에 합류했다가 91년 수서사건후 또다시 평민당으로 적을 옮겼다. 지난해 6·27지방선거 당시 공천헌금 수수혐의로 구속됐다가 풀려나기도 했다. ▲전남 영광·68·3선 ◎김태식 농림수산/대인관계 원만한 재경통 이철승 전 신민당 대표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평민당 시절 대변인과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을 역임한 야당의 재경통.수서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대인관계가 원만해 여야의 막후협상에서 능력을 보였다. ▲전북 완주·57·4선 ▲중앙대 경제과 ▲민주당 사무총장 ▲국민회의 지도위원 ◎손세일 통산/화술 뛰어난 언론인 출신 언론인 출신으로 81년 민한당으로 정계에 입문한 논객.90년 3당합당때 상도동 캠프를 떠난뒤 김대중총재와 정치행로를 같이했다.73년 일본에서 납치됐다 생환한 김대중총재를 인터뷰한 것이 첫 인연.논리정연한 화술과 분석력을 갖춘 국제통. ▲부산·61·3선 ▲서울대 정치학과 ▲동아일보 논설위원 ▲국민회의 정책위의장 ◎신기하 보건복지/치밀한 성격의 원칙론자 판사 출신으로 5공때 김상현 지도위의장의 권유로 민추협에 참여,12대때부터 광주에서 내리 당선한 소신행동파. 치밀한 성격의 원칙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전남 함평·55·4선 ▲전남대 법대 ▲광주지법판사 ▲평민당 광주시지부장 ▲민주당 원내총무 ◎신낙균 여성특위/일처리 깔끔… 여권운동가 소녀같은 수줍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일처리에 있어 깔끔하다는 것이 주위의 평.국민회의 창당때 여성계 대표로 영입된 뒤 부총재에 중용된 전국구 초선. ▲경기 남양주·55·초선 ▲이화여대졸 ▲이화여대·국제대 강사 ▲국민회의 부총재 ◎김현욱 교육/총선때 옥고치른 국제통 매사에 적극적이고 호방한 성격이나 가끔 직설적인 언사로 곤욕을 겪는다는 평.11대 때 고향인 충남 당진에서 민정당 공천으로 정계에 입문한 국제통.지난 총선과정에서는 선거법위반으로 구속,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충남 당진·57세·4선 ◎강창희 통신과학기술/14대때 재기한 군 출신 육사출신이지만 충남대 총장을 지낸 부친의 영향으로 합리적이고 부드러운 성격.육군대 교수로 재직하다 80년 신군부의 실세였던 허화평씨의 권유로 민정당 창당작업에 참여했으며 11대때 전국구 승계로 원내에 진출.진의종국무총리의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13대 총선에서 낙선한뒤 14대때 무소속으로 재기에 성공한 억척의 집념형. ▲대전·50세·4선 ◎이긍규 노동환경/월계수회 참여했던 재사 언론인 출신답게 상황판단력이 빠르다는 평을 듣는 재사형.13대 때 충남 서천에서 민정당 공천으로 원내에 진출.한때 박철언 의원이 주도하는 「월계수회」에 참여했다. ▲충남 서천·55세·3선 ▲동국대 법대 ▲신아일보 정치부차장 ▲한국기자협회장 ▲자민련 총재비서실장
  • 북,군대도 기아상태/중 적십자 간부 밝혀

    【홍콩 연합】 중국적십자사대표로 북한 수해 현지에서 올해 4개월간 기아구조활동을 벌여온 중국적십자사 국제부 왕소화 부부장은 북한에서 기아는 보편적이며 평민은 물론 군대까지 기아상태에 빠져 있다고 밝혔다고 홍콩의 명보가 13일 보도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북한의 평양·평안북도·자강도·강원도·황해남북도 수해 현지에서 기아구조활동을 벌여온 왕소화는 광동성 심천에서 명보와 가진 단독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어 『북한의 너무 많은 논들이 홍수로 인해 진흙으로 뒤덮여 3년에서 5년의 기간이 경과하지 않고는 경작이 불가능하다』고 밝히고 『이때문에 북한의 식량난은 내년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