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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공직자의 임기

    강금식 공적자금관리위원장이 선임된 지 2개월이 채 안돼 얼마 전 사표를 제출했다.13대 평민당 국회의원을 지내고 지난해 정당추천 몫으로 공자위원에 위촉됐던 강 위원장은 지난 5월 초 우여곡절 끝에 선임됐다.그는 박승 전 위원장이 한국은행 총재로 자리를 옮긴 뒤 정부가 강력히 추천한 이진설 산업대 총장을 ‘쿠데타’로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공적자금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임을 들어 공자위원장에는 정당 추천인사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제기됐지만 ‘민간인이 돼야 한다.’는 논리로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 그는 위원장을 맡을 때부터 정계 진출설이 나돌았으나 “위원들이 추천한 이상 하루를 맡더라도 직을 수행하겠다.”며 정계 진출 여부에 대해서는 얼버무렸다.‘설’은 2개월이 못돼 ‘사실’로 입증됐다.강현욱 의원의 전북지사 당선으로 공석이 된 지역구에 출마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내년 2월까지인 공자위원장보다는 2004년 4월까지 신분이 보장되는 국회의원이 낫다고 판단한 것일까? 강씨는 위원장직을 사퇴하기 하루 전156조원의 공적자금 중 69조원은 회수불능으로 국민들이 부담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초에도 강봉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8·8 재보선에 출마하기 위해 취임 1년여만에 도중하차했다.‘강봉균 봐주기’라는 논란 속에 경제정책의 싱크탱크라는 KDI 원장에 선임된 그는 지난 2000년 4·13총선에 차출됐다가 원내 진출에 실패했다.그는 ‘부탁도 많이 해야 하고 체질에도 맞지 않는’강요된 선택으로 표현했다.취직을 위한 첫 면접시험(강원장의 말),결선투표까지 가는 격전 끝에 경제수장에서 국책연구원장으로 변신한 그는 ‘꾀돌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아이디어 주머니를 풀어헤쳤다.하지만 그도 지역구 출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옛 선비들은 벼슬에 나아갈 때 안분(安分)과 시중(時中)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았다.‘편안한 마음으로 제자리를 지키고 때에 맞게 처신하라.’는 뜻이다.또 공익을 앞세우고 사익을 뒤로 돌렸다.강금식씨와 강봉균씨의 처신에 대해 막중한 공복의 자리를 정계 진츨을 위한 디딤돌로 이용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언제쯤 이같은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질까. 우득정 논설위원
  • 민주 당직개편 안팎-노무현 중심 체제로/민주 새 당직자 프로필

    민주당이 24일 단행한 당직 개편의 특징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후보쪽으로 당의 무게중심이 이동한 점과 주류측이 ‘비주류 껴안기’를 시도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노 후보는 재보선특위 위원장에 김근태(金槿泰) 상임고문을,정책위의장에 임채정(林采正) 의원을 추천,이를 관철시켰다. 당의 사활이 걸린 이번 재보선에서 김 위원장의 ‘클린 이미지’를 활용,한나라당의 ‘부패정권 심판론’에 대응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재야 출신의 임 정책위 의장은 당 정책에 노 후보 색채를 입히는 일을 진두지휘할 전망이다. 비주류의 선두주자격인 박 최고위원이 한화갑(韓和甲) 대표 대신 당발전·개혁특위 위원장이 된 것은 한 대표에게 집중되는 권한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무계보인 유용태(劉容泰) 의원이 최고위원 경선에서 한 대표가 당선되는 데 큰 역할을 한 김원길(金元吉) 의원 대신 사무총장 자리에 오른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한 대표는 이낙연(李洛淵) 대변인과 배기선(裵基善) 기조위원장을 ‘투톱’으로 삼아 당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정책위의장에 거명됐던 홍재형(洪在馨) 의원 등 이인제(李仁濟) 의원쪽의 인사 포용에 실패하고,쇄신파 의원들이 당무 일선에서 배제됨으로써 내분의 불씨는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전영우기자 anselmus@ ***민주 새 당직자 프로필 ◇유용태 사무총장= 중앙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4·19세대다.노동관료로 잔뼈가 굵은 재선의원으로 대인관계가 원만하다.부인 송안옥(宋安玉)씨와 1남2녀.▲경기 여주(63)▲중앙대 법대 ▲노동청 공보담당관·근로기준관 ▲월간 ‘노동’발행인 ▲한국산업연수원장 ▲15·16대 의원 ▲노동부장관 ◇ 임채정 정책위의장=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의 3선 의원.해직 후 민통련 사무처장을 맡아 재야운동에 매진하다 87년 대선때 평민당에 입당했다.기획력과 추진력이 탁월하다는 평이다.부인 기영남(奇永男)씨와 2남.▲전남 나주(61) ▲고려대 법대 ▲국민회의 정세분석위원장 ▲국민회의 정책위의장 ▲14·15·16대 의원 ◇ 이낙연 대변인= 동아일보 정치부기자 출신의 초선의원.지난 4월30일 대변인직에서 물러난 지 두달도 안돼 재발탁됐다.두주불사형에 사교성이 좋다.부인 김숙희(金淑姬)씨와 1남.▲전남 영광(50) ▲광주일고,서울대 법대 ▲동아일보 도쿄특파원,국제부장,논설위원 ▲민주당 제1정조위원장,기획조정위원장
  • 민주 후보사퇴론 대두

    6·13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민주당 일각에서 14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의 사퇴론을 직접적으로 제기하는 등 선거 후유증에 따른 내분이 본격화하고 있다. 한화갑(韓和甲) 대표 등 당 지도부는 선거패배에 대한 청와대의 책임론을 공식 거론하고 나서 당·청간 갈등까지 불거지는 양상이다.일부 의원들은 박지원(朴智元) 청와대 비서실장의 사퇴 요구와 함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 대한 ‘차별화’를 주문했다. 자민련도 L의원을 비롯한 일부 의원의 탈당설이 나도는 가운데 부총재단 10명 전원이 사퇴를 결의하는 등 극심한 선거 후유증을 겪고 있다.이에 따라 정치권이 정계개편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 대구시지부장인 박상희(朴相熙) 의원은 이날 “자기 고향에서도 지지를 못받은 노무현 후보는 재신임을 묻는 수준으로는 부족한 만큼 후보직을 깨끗이 사퇴해야 한다.”면서 “이같은 뜻을 노 후보측에 전달했다.”고 말했다.박 의원은 “한화갑 대표도 사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교동계 조재환(趙在煥) 의원도 “이번에 부산·경남에서 보잘 것 없는 결과가 나와 당이 과거 평민당처럼 전락한 만큼 대통령후보가 당연히 사퇴해야 한다.”고 가세했다. 반면 문희상(文喜相)·신기남(辛基南) 최고위원 등 주류측은 “사퇴가 능사는 아니다.”고 반론을 폈다. 이에 앞서 노 후보는 아침 여의도 당사에 나와 “약속대로 대통령후보직에 대해 재신임을 받겠으며,절차와 방식은 당에 일임하겠다.”는 내용의 대(對) 국민성명을 발표했다. 민주당은 오전 최고위원·상임고문 연석회의를 열어 노무현 후보와 한화갑 대표등 당 지도부의 재신임을 일괄 묻기로 결의하고,구체적인 재신임 방안은 오는 17일 최고위원·상임고문·당무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마련하기로 했다.당 발전과 쇄신을 위한 대책위원회도 구성하기로 했다. 특히 추미애(秋美愛) 최고위원은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이 민심을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하는지 의문이다.당에서 박 실장의 사퇴를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정대철(鄭大哲) 최고위원도 “책임이 있다면 김 대통령부터 있다.”며“아들 문제에 대한 특검과 인사청문회 실시는 물론 중립내각을 구성하고 총리도 갈아서 분위기를 쇄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김근태(金槿泰)·정동영(鄭東泳) 의원 등 개혁파 의원 20여명도 오후 국회에서 긴급모임을 갖고 대통령 장남 김홍일(金弘一) 의원의 탈당과 김방림(金芳林) 의원 검찰 출두,아태재단 해산 등 ‘DJ와의 차별화’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김상연 홍원상기자 carlos@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비사] (9)고종-니콜라이2세 특별한 관계

    ■두帝國 ‘마지막 황제' 친서외교 10여년 고종과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는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침탈외교사에서 다소 의외라고 여겨질 만큼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고종(1852∼1919)은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으로 강제로 대한제국의 황제자리를 아들 순종에게 양위했지만 조선왕조의 마지막 군주였다.니콜라이 2세(1868∼1918) 또한 1917년 2월 혁명에 의해 퇴위당한 뒤 유배지에서 처형당한 러시아 로마노프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다.두 사람이 조선과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다는 점에서 동병상련의 정서가 통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물론 두 사람의 관계가 황제 대 황제의 동격 관계는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꺼져가는 국운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쏟은 고종이 일본을 밀어내기 위해 러시아에 매달리는 입장이었다면 니콜라이 2세는 만주에서의 이익 등 국익에 반하지 않는 수준에서 ‘외교적’으로 고종을 대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밀월관계의 출발은 아관파천(1896년 2월11일∼1897년 2월25일)이었다.초대 서울주재 대리공사로 10년 넘게 서울에 주재하면서 고종과 두터운 친분을 쌓은 베베르가다리를 놓았다.대(大) 러시아제국의 ‘차르’였던 니콜라이 2세에게는 저 멀리 극동에 위치한 작은 나라의 왕이 자국 공사관에 1년이상 몸을 의탁한 채 도움을 요청하자 애처로움과 동시에 흥미를 느꼈을 수도 있다. 이같은 관계의 성립은 니콜라이 2세의 자상한 성격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해 보인다.니콜라이 2세는 전제군주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잔정이 많았다.해외 각국에 파견돼 있는 외교관들의 상주서에 일일이 답하는 것은 물론 건강까지 체크했다. 이번에 발굴된 문서중에는 고종과 니콜라이 2세가 친서를 주고 받은 사실이 30차례 가까이 등장한다.대부분은 고종이 보내고 니콜라이 2세가 받는 형식이었지만 니콜라이 2세도 여러 통의 친서를 보냈다.비공식 친서로는 1895년 7월 고종이 조선군 병참관 권동수(權東壽)를 연해주 지사 운테르베르게르 장군에게 보내 러시아 황제의 후원을 요청한 것이 있다.그러나 고종은 이후 문제가 야기되자 파견사실을 부인했다. 고종이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첫 공식친서는 1896년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민영환(閔泳煥) 특사를 통해 전한 다음 친서이다. 짐의 나라는 관습은 물론 언어와 문자도 고유해 외국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불행하게도 짐 나라의 동쪽 이웃나라가 일본이다.일본은 섬나라이며 관습은 짐의 나라에서 유래됐고 문자와 제도도 짐의 나라에서 가르쳐주었다.…그 때문에 일본은 짐의 나라를 자기의 조상과 주인의 나라로서 섬겼다.…최근에 일본이 서양의 제도를 흉내내고 배워 동양의 맹주가 되려한다.…짐은 폐하가 짐의 나라의 실정을 동정하고 정의를 토대로 세계 열강제국이 짐의 나라에 대한 일본의 불법적인 행위를 꾸짖고 나라의 독립을 침해하지 못하게 모든 조약규정 위반을 즉시 중지하도록 권고하여 주시길 바라고 바란다.끝으로 짐은 눈물로 폐하께 호소하며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고종의 ‘눈물의 편지’를 읽은 니콜라이 2세의 마음이 움직였는지 러시아는 1896년 10월 군사교관단과 재정고문을 파견했다.그리고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으로의 국호변경과 황제 즉위 등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선언하자 열강 중 가장 먼저 이를 승인하고 축하전문을 보내왔다.눈치를 보던 일본,미국,프랑스,영국이 줄줄이 뒤를 따랐다.고종은 혹시 러시아가 거부할 지 몰라 노심초사했으며 “승인을 하지 않더라도 곧바로 거부하지 말고 현재의 호칭(대군주 폐하)으로 대해주기를 바란다.”고 연막을 쳤던 터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두 사람간의 밀착관계는 1898년 조선이 러시아 군사교관단 및 재정고문 알렉세예프의 본국소환을 요청하자 금이 가는 것처럼 보였다.고종은 “재정고문과 군사교관단의 소환으로 야기된 일련의 사태가 그동안 베푼 황제의 호의에 아무 영향이 없기를 바란다.”고 조심스러워했으나 니콜라이 2세는 “고종황제 개인에게 변함없이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안심하도록 진정시키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일단 무마됐다. 니콜라이 2세는 내심 불쾌했지만 복심(腹心)은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에도 니콜라이 2세는 “고종황제 개인이나 대한제국 정부가 앞으로도 러시아의 지지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지 문의하라.”는 칙령을 내리는 등 고종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하지만 고종을 공사관으로 피신시키겠다는 제2,제3의 아관파천 공작을 서울주재 공사관에서 보고하자 “그런 일은 현재의 정치여건 아래서는 지극히 위험한 사태를 몰고올 수도 있다.”면서 발을 빼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1902년 고종의 즉위 40주년 기념식에 니콜라이 2세가 베베르를 특사로 파견키로 하면서 절정에 올랐다.니콜라이는 고종에게 축하친서와 함께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성 안드레이 사도 1급훈장 등 러시아 최고 훈장을 선물로 보냈다.이에 앞서 고종은 대한제국 최고 훈장인 금척대훈장을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바있다.안드레이 1급훈장은 정교회 국가인 러시아 최고의 훈장으로 명예는 물론 당시 가격으로 5000루블을 호가하는 최고의 선물이었다.그러나 기념식이 콜레라 창궐로 연기되는 바람에 수여되지 않았다. 고종이 “기념식은 연기됐지만 베베르를 서울에 체류토록 해달라.”고 요청하자니 콜라이 2세는 “폐하의 요청을 받고 짐은 만약 뜻밖의 어려움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폐하의 재위 경축식이 다시 열리는 내년 4월17일까지 베베르의 서울체류에 동의한다.”는 친서를 보내는 등 서로의 돈독함을 공개적으로 내비췄다. 이후 1903년부터 1904년 사이 두 사람은 명헌태후 서거애도 친서,니콜라이 2세의 황태자 득남축하 친서 등을 주고 받았다.고종은 “황제께서 황태자를 생산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고자 한다.이 기쁜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 축전을 치는 것이 도리였으나 외부의 방해 때문에 할 수 없이 이제 서한으로 축하를 드리게 됐다.”고 기술했다.니콜라이 2세는 “감사함을 전하라.”고 공사관에 지시했다. 러·일전쟁(1904∼1905)이 일어나자 고종은 “러시아의 승리를 확신하며 대한제국의 독립을 수호해 주기를 바란다.”는 친서를 띄웠고 “러·일전쟁 발발시 중립준수를 요청한다.”는 니콜라이 2세의 친서를 전달받자 곧바로 중립선언문을 작성,일본을 비롯한 열강에 보내 화답했다. 하지만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자 일본은 보란 듯이 강제적으로 을사늑약을 체결했다.이로써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으로부터 벗어나려던 고종의 전략은 한계에 부딪힌다. 러시아는 모든 열강이 대한제국을 독립국으로 승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무력으로 독립과 불가침권을 침탈한 데 대해 견해를 밝힌 바 있다.러시아 외무부는 일본정부가 고종을 일본으로 이송,미리 준비한 비밀장소에 연금시킨다는 계획을 믿을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입수했다.러시아는 천인공노할 일본의 계획에 항의하지 않을 수 없다.(1905년 5월10일 외무부가 해외 러시아 공관에 보낸 회람전문) 니콜라이 2세도 이 전문상단에 “일본의 그런 행위는 어떻게든 예방돼야 한다.”고 지시하는 등 고종의 안위를 지켜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덕분에 고종의 일본강제 이송 및 연금계획은 무산됐다. 고종 개인에 대해서는 우정을 유지했지만 기울어진 대세는 니콜라이 2세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을사늑약체결 직후 고종이 “일본은 미리 작성해 온 조약문에 국새를 강탈해 날인하고 짐의 서명을 강요하였으나 단호히 거절했다.황제께서는 유럽 문명국에 일본의 만행을 알려 대한제국의 독립을 수호해 주시길 거듭 앙망한다.”고호소했으나 니콜라이 2세는 “국내문제로 더 이상 대한제국을 도와줄 수 없다.”고 냉정하게 거절한 것이다. 이후 헤이그밀사파견(1907) 등 고종의 거듭되는 친서와 러시아에로의 정치망명 요청 등에 대해 러시아는 포츠머스강화조약(1905) 준수와 극동질서를 강조하는 등 계속 딴전을 피웠다.1905년 ‘피의 일요일’사건으로 러시아혁명이라는 폭풍앞에 선 니콜라이 2세로서도 동방의 소국에 더이상의 잔정을 줄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고종황제는 병이 들어 나약하고 병력이 없는 군부대신은 허수아비처럼 서 있고 다른 각부 대신은 일본인에 복종하고 있다.노쇠한 황제는 고통스러운 감금의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대궐안팎은 일본인의 감시와 경비가 삼엄하다. 알현이 제한된 것은 물론 제3자를 통한 연락도 제한을 받고 있다.”는 1908년 12월8일자 소모프 총영사의 고종 및 대한제국에 대한 근황보고서는 두 마지막 황제의 관계가 대한제국의 몰락과 함께 종극(終劇)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주석기자 joo@ ■러시아가 본 조선王家 서울에 주재한 제정 러시아의 외교관들은 대한제국의 왕가(王家)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을까. 이번에 새로 발굴된 제정 러시아시대의 외교문서를 보면 러시아 외교관들은 고종과 주위의 대신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순종을 비롯해 엄비와 대원군,다음 왕위를 노리는 왕자들을 못마땅해 하는 기색도 역력했다. 오래전에 자주적인 통치력을 상실한 고종은 측근에게조차 권위가 없다.또 우유부단한 상태에서 대한제국 지배계급의 어느 한 집단이나 혹은 끊임없이 교체되는 명칭만 요란한 독립협회,황국협회,만민공동회,친러파,친일파,친미파,친영파 그리고 친독파로 구성되는 대신들에 의지하고 있다.(1901년 파블로프 대리공사) 고종황제 자신은 아주 호감을 주는 인물이나 많이 쇠약해져 있다.황실에서는 고위직과 하위직을 막론하고 음모,뇌물수수,매수가 만연돼 공적과 능력에 따라 관직에 임용되지 않고 뇌물의 액수에 의해서 임용이 결정된다.(1903년 베베르 초대 대리공사) 명성황후의 시해이후 10여년동안 사실상 왕비의 역할을 한 엄비(嚴妃)가 서거하자 “엄비는 평민출신으로 양반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자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당의 굿에 의존했다.(1903년 베베르).”고 힐난한 대목도 나온다. 대원군에 대해서는 실제 이상으로 부정적이다.틈만 나면 고종 암살기도설 등을 정보보고하고 있다.1896년 베베르는 “고종은 부친 대원군을 숙청할 생각을 갖고 있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 같다.러시아가 대원군을 아무르주 혹은 사할린으로 이주시켜 주기를 바라는 고종의 소망을 실현시키는 것이 바람직스러운 일이다.”라고 적고 있다.대원군의 부인이자 고종황제의 친모인 여흥부대부인(驪興府大夫人)민씨가 80세를 일기로 서거하자 “고종은 모친을 몹시 사랑했다.고종은 성품이 선량하고 동정심이 많고 나약한 점이 모친을 닮았다.(1898년 쉬테인)”고 애도하기도 했다. 1898년 대원군이 아무르 동부지역 총독 그로데코프에게 보낸 편지도 흥미롭다.처음으로 공개되는 이 편지에서 대원군은 “세상 어느 곳에서나 부모와 자식간에는 화목하게 산다.그런데 수십년전 4명의 신하가 고종 임금앞에서 늙은 아비를 비방한 일이 있었다.하늘에 맹세코 말하지만 우둔한 자들이 음모를 꾸며 부자지간을 이간시켜 놓음으로써 나는 지금도 아비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종은 천성은 선량하나 나쁜 신하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 러시아에 원한을 풀어달라고 요청하고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에 대한 러시아 외교관들의 차가운 시선에는 애처로움이 느껴질 정도다. 순종의 즉위식이 8월27일 거행됐으나 고종과 세자는 참석하지 않았다.순종은 카키색의 군복을 입고 눈치를 살피면서 말을 꺼렸다.황제의 인상은 침울하고 창백하며 놀란 듯한 두 눈에 얼굴은 병으로 부어 환자처럼 보였다.(1908년 소모프 총영사). 고종황제의 왕위를 이을 후계자에 대해 주목하면서 일일이 인물평을 늘어놓았다. 의화군 이강(李堈·후의 의친왕)을 유럽파견 공사로 임명했다고 조선정부가 통보해왔다.이강은 왕비가 낳은 아들이 아니라 궁인(귀인 장씨)에게서 얻은 왕자로 젊고 유능하며 쾌할한 성격이다.일부 사람들은 그가 앞으로 세자로 책봉될 것이며 좀 우둔한 세자(순종)보다는 덕망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하지만 고종은 세자를 더 사랑한다.(1895년 베베르) 또 1906년 1월1일 고종황제와 황실가족과의 신년 경축 알현식에 참석한 플란손 총영사는 “장자인 황태자는 30세로 명성황후의 적자이며 법통 후계자다.의친왕(李堈))은 17세이며 명성황후 생존시 상궁소생으로 미국과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다.삼자 영친왕(李垠)은 9세이며 엄비 소생으로 영특하고 야심만만하다.”라고 평가했다. 노주석기자
  • 전북 진안 경선 후유증속 3파전 치열

    전북 진안군수는 민주당 후보 경선에 따른 잡음의 불씨가 꺼지지 않은 상황에서 3파전으로 압축됐다. 민주당 공천을 받은 임수진(56)현 군수와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으나 무소속으로 나선 송영선(51)전 민주당 무주·진안·장수지구당 부위원장,역시 무소속 정인철(49)도의원이 각각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지난 91년 전북지역 도의원 52명 중 유일하게 무소속으로 당선돼 돌풍을 일으켰던 임 군수는 95년 평민당 공천을받아 민선 1기 군수에 당선됐다. 98년에는 민주당 경선에서 2표차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도전,재선에 성공하는 등 단단한 지지기반을 과시했다.지난 2기 때 공천을 따낸 송 후보를 제치고 다시 민주당 공천을 받아 3선에 도전하고 있다. 임 군수는 크고 작은 지역 현안사업들을 적극 추진했고,지난 7년 동안 대과 없이 군정을 투명하게 펼쳐 왔다며 이번에도 군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특히 과거 농민운동을 함께했던 농민회 회원들이 열성적인 성원을 보내고 있는 데다 당조직도 가동되기 때문에3선 달성은무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송 전 부위원장은 선거인단에 비당원이 대거 들어가 있는 등 경선에 많은 문제가 있다며 경선무효 기자회견을 갖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임 군수와 30여년간 농민회 운동을 함께한 사이지만 지난 2기 선거 때부터 경쟁관계가 됐다. 송 전 부위원장은 “농민운동을 함께했으나 임 군수는 이론적 농민운동가였고,나는 현장에서 땀을 흘린 실질적인농사꾼이었다.”고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지난 7년여 동안 민주당 무주·진안·장수지구당 사무국장과 상근 부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자신이 관리해 온당조직을 중심으로 도덕성,청렴성과 정치력을 앞세워 표밭을 갈고 있다. 정 도의원은 진안군의회 부의장과 도의원 등을 지내며 지역발전에 헌신해 왔다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새마을조직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다른 후보들과 달리 사무실을 내지 않은 채 점조직 형태의 세 규합에 나서고 있다. 진안읍 출신이 군수를 한 번은 해야하지 않느냐는 지역여론과 경선문제로 내분을 겪고 있는 민주당에 식상한 계층의 표를 흡수한다는 전략이다. 진안 임송학기자 shlim@
  • 정부·공자위 갈등 일단 봉합

    위원장 선출을 놓고 정부와 공적자금관리위원회(공자위)위원간 20여일 동안 지속되어 온 첨예한 갈등국면이 24일일단락됐다. 공자위는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정부측 공동위원장인 전윤철(田允喆) 경제부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체회의를 열고 강금식(姜金植·성균관대 교수) 위원을 새 민간위원장으로 추대했다.민간위원들의 ‘반란’을 정부가현실로 인정한 셈이다. 강 신임 위원장과 정부측도 서로 “앞으로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강 위원장은 평화방송에 출연해 “정부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이제 더 이상 거론하고 싶지 않다.”면서 “정부가 나 개인에 대한반대보다는 당초 내정했던 사람이 탈락한 데 대해 불만을표시했던 것이기 때문에 위원장에 공식 취임하면 과거처럼 둘 사이에 원만한 관계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정부 관계자도 “강 위원장이 오늘 회의를 아주 잘 진행했다.”며 치켜세웠다.정부측에서 위원장으로 내정했던 이진설(李鎭卨) 서울산업대 총장은 이미 위원직을 사퇴한 상태다.하지만 강 위원장 체제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미지수다.그는 강현욱(姜賢旭) 의원이 전북도지사 후보로 선출되면서치러질 군산 보궐선거에 출마할 의사를 감추지 않고 있기때문이다. 13대 국회에서 평민당 소속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던 강 위원장은 자신의 출마설과 관련해 “아무 것도 결정된것은 없다.”고 말했다.그가 보선에 출마하면 ‘1개월 위원장’에 그치는 셈이고,공자위는 위원장을 또다시 뽑아야 할 판이다. 김태균기자 windsea@
  • ‘與실세 동원 복표로비’ 수사

    ‘최규선 게이트’를 수사중인 서울지검 특수2부(부장 車東旻)는 23일 타이거풀스인터내셔널(TPI)의 정·관계 로비 창구 의혹이 제기된 생보부동산신탁 전 상무 조모(48·구속)씨가 TPI에 정·관계 인사 영입 등을 주선하고 TPI 주식 수만주를 받은 정황을 포착,수사중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이날 파크뷰 특혜분양 사건으로 구속돼 수원구치소에 수감중인 조씨를 불러 98년 이후 체육복표사업자 선정 때까지 TPI측에 소개한 정·관계 인사들의 신원과 로비 여부를 집중 추궁했다. 전북 고창 출신인 조씨는 87년 옛 평민당 대선캠프에 합류한 것을 계기로 현 여권 실세 등 정치권 인사들과 교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99년 초 TPI 부사장 송재빈(宋在斌·33·구속)씨에게 대통령 2남 김홍업(金弘業·52)씨의 친구인 온모씨를 소개해 사장으로 영입케 한 인물이다. 검찰은 조씨가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여권 실세를 동원,국민체육진흥공단 고위 간부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첩보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송씨가 지난해 10월을 전후해 문화관광부 고위간부 L씨와 국민체육진흥공단 임원 L,S씨에게 500만∼1000만원을 건넨 단서를 포착,수사중이다. 송씨는 지난해 10월쯤 제3자를 통해 문화부 L씨에게 1000만원을 건넸고,공단 임원 L,S씨 등에게도 ‘떡값’ 명목으로 돈을 건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S씨 등은 “송씨로부터 한푼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또 이날 포스코 계열사인 포스데이터 김광호 사장을 참고인으로 불러 2000년 9월 TPI의 경쟁업체였던 한국전자복권 컨소시엄 참여 의사를 보였다가 갑자기 포기한배경을 조사했다. 검찰은 이날 밤 지난해 경찰청의 약품리베이트 수사무마대가로 서울 C병원장으로부터 현금 1억 5000만원과 계열사인 C사 주식 14만주를 받아 1억원과 6만주를 챙긴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김희완(金熙完·46)씨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홍환 안동환기자stinger@
  • 홍업씨 친구 온씨·생보신탁 前상무 조씨 복표 정·관계 ‘로비창구’ 의혹

    ■누가 어떤 역할 했나 타이거풀스인터내셔널(TPI) 부사장 송재빈씨의 국민체육진흥법 개정 및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로비 의혹과 관련,생보부동산신탁 전 상무 조모씨와 대통령 2남 홍업씨 친구인 온모씨가 송씨와 함께 TPI의 정·관계 로비를 주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조씨는 송씨의 D대학 선배이고 온씨는 송씨가 조씨를 통해 영입한 인물로 각각 정계와 관계쪽 접촉창구 역할을 한 것으로 수사 결과 밝혀지고 있다. 송씨는 체육복표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들의 인맥을 적극적으로 활용,로비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이에 따라 98∼99년의 관련법 개정 시기와 2000년 말 사업자 선정 당시의 정·관계 로비 전모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전북 고창 출신인 조씨는 지난 87년 평민당 대선 캠프에들어가 현 여권 실세들과 친분을 쌓아온 인물로,송씨가 체육복표 사업을 구상하던 98년초 모 언론사 전 편집국장을통해 송씨를 소개받은 뒤 송씨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인사를 소개해준 것으로 알려졌다.주변에서는 조씨가 자신의 정치권 인맥을 바탕으로 송씨의 정치권 로비를 대리해주고 TPI 주식 수만주를 받았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TPI 사업설명회를 주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민주당 J의원에게 사업설명회 관련 청탁을 한 당사자가 조씨라는의혹도 제기됐다. 조씨의 한 측근인사는 “조씨가 주로 호남 출신 정치권인사들을 송씨에게 소개해주는 등 TPI에 많은 도움을 준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 98년 말 조씨를 통해 TPI 사장에 영입된 온모씨는송씨와 관계 인사들을 연결시켜준 인물로 지목받고 있다. 모 체육부장관의 비서 출신으로 알려진 온씨는 98년 말 조씨의 추천으로 TPI에 영입돼 부회장까지 지낸 뒤 올초 그만뒀다. 온씨는 특히 스포츠 분야에 발이 넓어 사업 초기 및 사업자 선정 이후까지 송씨에게 체육계 인사들을 소개해주는역할과 함께 직접 이들에 대한 로비를 담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온씨의 행적과 관련,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사업자 선정이후 체육복표 감독기관인 국민체육진흥공단 고위 간부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이다.실제 온씨는 민주평통자문회의의 통일분과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다 지난해 6월 자청해서 체육청소년분과 상임위원이 됐다.공교롭게도 국민체육진흥공단 고위 간부인 C씨와 L씨가 같은 분과의 상임위원으로 이미 활동 중이었다. 민주평통 사무처 관계자는 “온씨는 지난 99년 통일관련단체의 추천을 받아 통일분과 자문위원으로 활동했고 지난해 6월 재추천을 받으면서 체육청소년분과위원회로 스스로 변경을 요청했었다.”고 말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
  • 이용희·문희상 최고위원 임명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는 17일 지명직 최고위원에 충북 출신 이용희(李龍熙) 전 의원과 경기 출신 문희상(文喜相) 의원을 임명했다. 한 대표는 이와 함께 “대구·경북지역을 대표할 지명직최고위원의 추가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밝혔다고 정범구(鄭範九) 대변인이 전했다. [이 최고위원] ▲충북 옥천(71) ▲건국대 ▲9,10,12대 의원 ▲신민당 사무총장 ▲평민당 부총재 ▲민주당 보은·옥천·영동지구당 위원장 [문 최고위원] ▲경기 의정부(57) ▲서울대법대 ▲도서출판 숭문당 대표 ▲한국JC중앙회장 ▲14,16대 의원 ▲국민회의 기획조정실장 ▲민주당 경기도지부장 이춘규기자 taein@
  • 홍업씨도 체육복표 연루 의혹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비리 의혹과 관련,김대중 대통령의 3남 홍걸씨와 최규선씨의 연루 여부에 대한 수사가 진행중인 가운데 또 다른 인물이 타이거풀스인터내셔널(TPI)의 정·관계 로비를 맡았었다는 의혹이 16일 제기됐다. 최씨의 한 측근 인사는 이날 “지난해 타이거풀스가 체육복표 사업자로 선정된 직후 최씨가 강남의 한 술자리에서‘그건(사업자 선정 로비를 지칭) 홍업씨가 한 거야.’라면서 홍업씨의 역할이 있었음을 언급했었다.”고 밝혔다.이 인사는 또 “타이거풀스 송재빈 부사장의 정·관계 로비가 홍걸씨와 최규선씨뿐만 아니라 여러 채널을 통해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분당 파크뷰 특혜분양에 연루돼 구속영장이 청구된 생보부동산신탁의 조모 전 상무가 TPI의 정·관계 인사 영입을 주도한 것으로 드러나 ‘제3의 로비스트’ 의혹을 받고 있다.조씨는 특히 대통령의 2남 홍업(弘業·52)씨와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비리 의혹에 홍업씨와 홍걸씨가 동시 연루됐는지 여부가 주목된다.조씨는 99년1월 송재빈씨에게 홍업씨의 친구 온모씨를 TPI 사장(부회장까지 역임)으로 영입토록 주선한 것으로 밝혀졌다. 온씨의 측근 인사는 “송씨의 대학 선배인 조씨는 송씨를친아들처럼 여기며 송씨에게 정치권 인사를 소개해주고,TPI 주식 상당량을 받은 것으로 안다.”면서 “온씨도 조씨의 소개로 98년 말 송씨를 처음 만나 99년 1월 사장에 영입됐다.”고 밝혔다. 전북 고창 출신인 조씨는 지난 87년 평민당 대선캠프에처음 합류한 이후 여권 인사들과 친분을 나눠왔고 고위층인사의 파크뷰 분양을 권유해 특혜분양을 주도한 혐의를받고 있다. 이에 대해 조씨는 “지난 98년 모 언론사 편집국장 출신인사의 소개로 대학 후배인 송씨를 처음 만난 뒤 몇차례자리를 같이 했으나 친분이 없으며 TPI 주식을 보유한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
  • 김대통령 탈당/ 평민당에서 민주당까지-88년 황색돌풍… 97년 첫 정권교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민주당 탈당을 결심함에 따라정치권과의 인연을 완전히 끊게 됐다. 지난 87년 11월 김 대통령이 처음 독자적으로 창당한 평화민주당.13대 대선에서 3등을 기록한 김 대통령은 88년총선에서 원내 제2당으로 화려하게 재기했다.그러다 91년 4월 일부 재야세력을 흡수,두 번째 당인 신민주연합당을창당한 데 이어 9월에는 이기택(李基澤)씨의 ‘꼬마 민주당'까지 받아들여 세 번째 당인 통합민주당을 창당,92년 총선에서 97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14대 대선에서 패배한 김 대통령은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로 건너갔다.93년 귀국한 뒤 95년 7월 정계복귀를 선언했고,9월 네 번째 정당인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97년 15대 대선에서 ‘DJP 후보단일화'를 성사시킨 김 대통령은 무소속의 박태준(朴泰俊) 의원과 김원기(金元基)의원이 이끌던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까지 합류시켜 네번째 대권도전에 나서 ‘50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룩했다.이어 ‘소수정권의 한계 극복’을 이유로 2000년 1월 신진세력을 영입,다섯 번째 당인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했다. 홍원상기자
  • 공자금위 민간위원들 ‘반란’

    박승(朴昇)전 위원장이 한국은행 총재로 옮겨간뒤 한달여동안 비어있던 민간위원장을 뽑기 위해 3일 소집된 공적자금관리위원회(공자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정부가 이진설(李鎭卨) 서울산업대총장을 민간위원장으로 내정한 데 반발해 오던 민간위원들이 강금식(姜金植)위원을 새 위원장으로 선출한 것이다.‘설마’하던 정부가 ‘기습’을 당한 셈이다. 이날 오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공자위 전체회의에는 정부측 위원 3명,민간위원 5명이 전원 참석했다.정부측 위원장인 전윤철(田允喆)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장승우(張丞玗) 기획예산처장관,이근영(李瑾榮) 금융감독위원장등 정부 위원들이 예산처 업무보고때문에 먼저 자리를 뜨자 민간위원들이 위원장 선출에 들어갔다.민간위원장은 민간위원끼리 호선한뒤 전체 위원회에 보고하게 돼 있다. 위원들이 자신을 위원장으로 선출하지 않고 강금식 위원을 위원장으로 선출하려는 낌새를 보이자 이진설 위원은도중에 회의장을 나가 버렸다.이어 이 위원은 “위원직을맡기 어려운 것 아니냐.”면서사퇴의사를 밝혔다. 민간위원 중 13대 국회의원(평민당)을 지낸 강 위원은 여당 추천 케이스, 유재훈(여의도연구소 초빙연구위원) 위원은 야당 몫, 어윤대(魚允大·고려대 교수)·이진설 위원은 정부 추천,김승진(金承鎭·법무법인 삼한 대표)위원은 대법원장 추천이다.정부 추천위원과 여야, 법조계 추천 위원들이 일제히 정부 방침에 반기를 든 것이다. 강 위원은 “위원들이 지난달 16일 간담회를 갖고 나를 위원장으로 뽑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계획된 반란’임을 밝혔다. 이진설 위원장 내정설에 “우리를 거수기로 아느냐.”는 불만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강금식 위원장 체제’는 이날 정식으로 출범하지는 못했다.당황한 정부측 위원(차관들이 대행)들이 새위원장을 추인하는 전체회의를 연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정부 관계자는 “정부 추천 인사를 민간위원장에 선임하는 것이 원활한 공적자금 관리·감독에 필요하다는 생각에변함이 없다.”며 “하지만 위원장 선출에 법적인 문제가없다면 조만간 (강금식 위원장을)받아들일 수 밖에없지않느냐.”고 말했다.위원장 선출을 둘러싼 정부과 민간위원간 파워게임은 앞으로 공자위 운영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박정현기자 jhpark@
  • 공자금관리 민간위원장 강금식씨

    공적자금관리위원회(공자위) 민간위원장에 강금식(姜金植·61·성균관대 교수) 공자위 위원이 선출됐다. 강 위원은 13대 평민당 국회의원(서울 성동갑)·민주당 정책위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 민주 지도부 프로필

    ■정대철 최고위원 33세에 부친인 고(故) 정일형 박사의 지역구인 서울 중구를 물려받아 9대 국회에 첫 등원한 5선 의원. 부인 김덕신씨와 2남1녀. ▲서울(58) ▲경기고 ▲서울법대 ▲평민당 정책위의장 ▲국회 문교공보위원장 ▲민주당 상임고문 ■박상천 최고위원 프로필 여야의 원내총무 3차례, 국민의 정부 초대 법무장관 등의경력에서 보듯 정국의 고비 때마다 큰 역할을 했다. 검찰에몸담고 있다가 순천지청장을 끝으로 정계에 진출,13대 총선때 전남 고흥에서 당선됐다.직선적인 어투에 호불호(好不好)가 분명하다.부인 김금자(金琴子·52)씨와 1남2녀. ▲전남 고흥(64) ▲광주고 ▲서울법대 ▲순천지청장 ▲13·14·15·16대 의원 ▲법무장관 ▲민주당 원내총무 ▲민주당 상임고문 ■한광옥 최고위원 프로필 97년 대선을 앞두고 ‘DJP후보단일화’를 성사시킨 국민의정부 출범 주역.98년 초대 노사정위원장으로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냈다. 평소 입이 무거워 ‘이중 지퍼’라는 말을 들을 정도지만,부드러운 성품으로 ‘화합형 정치인’으로꼽힌다.부인 정영자(鄭榮子)씨와 1남1녀. ▲전북 전주(60) ▲서울대 영문과 ▲11·13·14·15대 의원 ▲국회 노동위원장 ▲국민회의 부총재 ▲대통령 비서실장 ▲민주당 대표 ■이협 최고위원 프로필 청렴과 의리가 강점인 기자출신의 4선 의원. 10·26 이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때 구속돼 1년8개월동안 수감생활을 하는 등 많은 고초를 겪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연탄 난방을 사용하는 13평 아파트에살 정도로 청빈하다는 평이지만 지도부에 ‘노(NO)’라고말해온 곧은 성격.부인 우태경씨와 2남. ▲황해도 서흥(61) ▲이리 남성고 ▲서울대 법대 ▲중앙일보 기자 ▲국회 문화관광위원장 ▲민주당 사무총장 ■추미애 최고위원 프로필 화사한 외모지만 직설적이고 당찬 성품이라는 평을 듣는 자타 공인의 민주당 차세대 여성 지도자. 지난해 언론사 세무조사 당시 모 일간지를 신랄하게 비난했던 ‘술자리 사건’으로 작가 이문열(李文烈)씨와 ‘곡학아세’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세탁소집 둘째 딸로, 전북 출신의 변호사인 남편 서성환(徐盛煥)씨와 1남2녀. ▲대구(44) ▲경북여고 ▲한양대 법대 ▲전주지법,광주고법 판사 ▲15·16대 의원 ▲민주당 지방자치위원장 ■신기남 최고위원 프로필 지난 15대 총선에서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사건을 폭로한 박계동(朴啓東) 전 의원을 누르고 당선돼 화제를 모았다. 국민회의 시절 초선 의원들의 모임인 ‘푸른정치모임’과 민주당 재선의원들의 모임인 ‘바른정치모임’의 간사를 맡아 활동했다. 정치인으로선 사교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 부인 김은주(金恩珠·45)씨와 2남1녀. ▲전북 남원(50) ▲경기고 ▲서울법대,영국 런던대 ▲변호사 ▲15·16대 의원 ▲국민회의 대변인 ■김태랑 최고위원 프로필 영남 출신으로는 드물게 지난 71년부터 김대중 대통령 곁을 지켜온 ‘동교동계’ 1세대.권노갑 전 고문의 승용차를물려받을 정도로 측근으로 통한다. 99년 천용택 의원의 국정원장 임명으로 전국구 의원직을승계,금배지를 단 적이 있다.지난 2월 자전적 에세이 ‘우리는 산을 옮기려 했다’에서 쇄신파 의원들을 정면으로 비판했다.부인 김진숙(金眞淑)씨와 1남1녀. ▲ 경남 창녕(61) ▲대구 대건고 ▲부산수산대 ▲15대의원
  • 임정엽씨,아태재단 근무때 홍업씨 보좌역 ‘5억거래’ 홍업씨 연루 의혹

    아태재단 전 기획실장 임정엽(林呈燁)씨가 건설업자로부터 1억 50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다시 아태재단 부이사장 김홍업(金弘業)씨와 아태재단에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임씨는 지난달까지 청와대 정무비서관실 행정관(3급)을지내다 민주당 완주군수 후보로 공천을 받은 인물로,김홍업씨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전주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며 88년 평민당 전주을 부위원장으로 현 여권과 인연을 맺었다.이후 전북 도의회 의원과 유종근(柳鍾根·수감 중) 전북지사의 비서실장을 지낸 뒤 99년 8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아태재단 기획실장으로 일한 뒤 바로 청와대로 들어가 근무했다. 임씨는 아태재단에서 구체적인 직무를 맡기보다는 김홍업씨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전해졌다.청와대에입성하게 된 것도 김홍업씨 측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태재단 관계자는 “임씨가 대외적인 직함만 기획실장이었지 실제로 아태재단 일은 별로 한 것이 없다.”면서 “김홍업씨와는 가까운 사이”라고 밝혔다.기획실장 자리는임씨가 떠난 뒤 공석으로 남아 있다. 검찰은 일단 임씨가 친구인 박모씨를 통해 알고 지내던 D건설 대표 김희정씨로부터 청탁과 함께 돈을 받았다고 설명하고 있다.그러나 검찰 주변에서는 임씨와 김홍업씨의관계로 볼 때 임씨가 건설업자로부터 돈을 받게 된 과정이 김홍업씨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있다. 임씨는 김홍업씨에게 최소 6억원을 제공한 것으로 확인된 홍업씨의 고교 동기 김성환(金盛煥)씨와도 여러 차례에걸쳐 5억원 이상을 거래한 것으로 밝혀져 ‘김홍업씨 연루설’에 힘이 실리고 있다.검찰은 김성환씨를 조사하면 임씨와 자금을 거래한 경위,김홍업씨·아태재단과의 관련 여부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수사정보 유출 의혹 사건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바로 김씨를 소환할 예정이다. 장택동기자 taecks@
  • 외신기자가 본 평양/ “”악의 축은 중상모략”” 反美 여전

    [평양 AFP 연합] 북한을 방문 중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북·미 대화 재개 촉구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북한은 여전히 뿌리 깊은 반미(反美)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메가와티 대통령은 한국 및 미국과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는 한국의 요청을 북한측에 전달할 예정이라는 것이 관리들의 전언이지만,미국과의 진정한 관계개선은 북한 이데올로기의 기저에 뿌리를 둔 ‘미국은 적’이라는 반미 감정에 부닥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 기자들은 메가와티의 북한방문을 취재하기 위해 동행했으나 정작 메가와티의 방문지에는 접근하지 못한 채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악의 축’ 발언은 가혹한 중상모략이라는 현지인들의 주장을 되풀이해 들어야만 했다. 평양 전승기념관 안내원인 박광숙씨는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북한)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은 미국 당국에 달려 있다.”면서 “미국이 최근 우리나라를 ‘악의 축’으로규정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양국의 우호관계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다.”고말했다. 물론 박씨의 주장이 그의 직업으로 볼 때 이해할 만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런 견해는 북한 사회의 거의 모든 평민층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자들이 28일 밤 평양의 한 한방병원을 방문하자 안내원들은 반짝이는 장비들이 갖춰진 치료실 몇 곳을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그러나 병원 복도의 한 벽면에는 목이 잘리고 불탄 시체들의 모습을 담은 전쟁사진들이 을씨년스럽게 걸려 있었고 그 옆에 이같은 잔학상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선전문구들이 붙어 있었다.
  • 유종근 지사 “경제 살릴 후보 뽑아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출마를 선언한 유종근(柳鍾根) 전북지사는 “다음 대통령은 반드시 경제를 살려야 한다”면서‘경제대통령론’을 강조했다. [다른 후보들보다 지지도가 낮은데.] 지난해 12월5일 대선출마를 선언한 뒤 일부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4%대로 상승했다.이인제(李仁濟)씨는 5년전 이맘때 나보다 지지율이낮았는 데 급상승했다. [주요 전략은.] TV토론회가 열리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것이다. [당내 기반이 열악한데.] 평민당 창당 때부터 일해왔고 당원으로서 꾸준히 당내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당내 기반이없다고 할 수 없다. 이춘규기자
  • [공무원 Life & Culture] 신창현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장

    *** “직접 보고 들어봐야 판결 내리죠”. 환경에 대한 관심이 지금같지 않았던 지난 95년,경기 의왕시장에 출마한 한 후보가 ‘환경 전문가’를 자임,이색후보로 주목받았다.주변에서는 “길거리에서 ‘환경’이라는 말한마디 할 때마다 10표는 떨어져 나간다”고 말렸지만 그의의지를 꺾지는 못했다.결국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다. 그 사람이 신창현(申昌賢·49)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장이다. 신 위원장이 환경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90년 야당(당시 평민당) 전문위원 시절 터진 팔당호 상수원 골재 채취 사건때.‘사회부 기자처럼’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했고 당시 이 사건은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이후 강원도 고성 잼버리대회장 환경 파괴 사건,서울시 정수장 중금속 오염사건이 이어졌고,91년에는 전국민의 환경 의식을 드높인 낙동강 페놀사건이 터졌다. 신 위원장은 지역주민들을 만나러 다니고,환경파괴 현장을발로 누비며 환경전문가로 거듭났다.야당 전문위원 명함이일하기 불편하다고 판단,환경정책연구소를 설립해 환경운동가로 나섰다.99년에는‘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회장에 선출되었다.올 한해에만 147건을 접수해 117건의 환경분쟁 사건에 대해 알선·조정·재정 절차를 밟은 분쟁조정위원장 자리는 어쩌면 그때 예약돼 있었는지도 모른다. 농약공장의 악취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거나 인근 개 사육장의 개 짖는 소리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겠다는 주민들의 원성은 직접 현장을 찾지 않고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신 위원장은 “주민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개연성만 인정되면 피해배상 결정을 내린다”고 말했다.환경오염피해분쟁조정법이 가해자에게 과실이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할 책임을 지우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피해자가 농민인데 이들이 무슨 수로 건설 현장의 소음,진동이 자신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입증하겠습니까?” 조정위 심사관과 의사,엔지니어,교수 등 전문가들이 꼼꼼히 현장 조사를 마치고 나면 애매한 태도를 보이던업체(가해자)들도 두손을 들고 만다. 주로 약자의 손을 들어주다 보니 포도,딸기,배,단감 등 철마다 나는 과일들이 과천청사에 배달되기도 한다.농민들의땀과 정성이 밴 선물을 받고 나면 “내가 바른 일을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신 위원장은 95년 의왕시장에 당선된 뒤 환경시장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전국 최초로 음식물 퇴비화 사업을 실시하고 왕성저수지 인근에 하수종말처리장을 세운 것.그때나지금이나 쓰레기 매립,소각장 등 이른바 혐오시설에 대한 주민 반대는 똑같았다.시장 공관을 하수처리장 부지로 옮기겠다는 공언을 하고서야 정책을 실현할 수 있었다.그가 시장직을 물러난 뒤 이 공약은 ‘공약(空約)’이 돼버렸다. 99년부터 청와대 환경비서관으로 근무하다 지난 3월 분쟁조정위원장으로 부임했다.맨 처음 시작한 일은 환경분쟁 소식지 발행.분쟁위가 탄생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무슨일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많은 민원인들이절차를 몰라 시·군-시·도-건설교통부-청와대-국민고충처리위원회를 돌고 돌아 분쟁위를 찾아온다.그달의 주요 판결과기고문을 담은 소식지는 시·군·구,언론기관은 물론 각 경찰서 정보과,환경 시민단체에 골고루 뿌려진다. 신 위원장은 “내년부터는 중앙으로만 찾아오는 민원을 지자체에 분산시키기 위해 지자체 환경민원 담당 공무원에게분쟁위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데 주력할 생각”이라고 밝혔다.민원인들의 서울 발걸음이 쉽지 않을 뿐더러 규제에만의존하다 보니 협상과 조정에 유독 약한 공무원들에게 ‘맞춤형 행정’을 가르쳐주고 싶기 때문이다. 판결을 내릴 때는 냉철함을 유지해야 하는 조정위원장이지만 자신보다 퇴근이 늦는 부인을 위해 저녁도 짓고 아이들바라지도 곧잘 한다.부인 조성은(趙晟恩·38)씨는 야간근무를 밥먹듯이 하는 여성부 공보관이다. 류길상기자 ukelvin@.
  • 대우 돈 수수說 정치권 반응

    민주당 박정훈(朴正勳)전 의원의 부인 김재옥(金在玉)씨가 “민주당 김홍일(金弘一)의원이 김우중(金宇中)전 대우그룹 회장으로부터 거액을 돈을 받았다”고 주장한 데 대해 당사자인 박 전의원이 “사실보다 엄청나게 과장됐다”고 해명,사실의 진위와 배경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박 전의원은 “야당의 어려운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던 제가 김우중 회장에게 두번이나 요청해 이뤄진 것”이라며 “88년의 정치자금은 언론보도와는 달리 김대중 대통령이 대우측에 요청한 것이 아니었다”고 전했다.또 “88년 이후에는 일체의 정치자금을 조성하거나 이와 관련된어떤 심부름도 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여야는 우선 김씨의 발언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진상규명을 촉구했다.특히 민주당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김 전회장의 귀국 및 동정여론 조성을 위해 기획된 정지작업으로보인다”며 “또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 대한 경고용사인”이라고 해석했다. 이에 일단 한나라당은 김씨의 발언을 계기로 현 정부의도덕성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보고,김 대통령의 해명을 주장했다.그러면서도 88년 평민당 때의 일이라는 점에서당시 여당이었던 민자당을 흡수,재편한 한나라당 역시 이문제에 자유로울 수 없다고 판단,대여(對與) 압박 속에서도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홍원상기자 wshong@
  • 여 경선후보 선거본부 신경전/ 캠프 옹기종기 “”껄끄럽네””

    민주당 대선 예비주자들이 ‘당 발전과 쇄신을 위한 특별대책위원회’(특대위)의 활동이 마무리 국면으로 치닫자 여의도에 선거대책본부로 사용할 ‘베이스 캠프’를 속속 차리는 등 사실상 경선채비에 들어갔다.대선주자들의 경선 캠프 사무실은 기동성을 감안해 국회 앞에 위치한 민주당사로부터반경 300m내에 위치한 게 특이점으로 꼽힌다. 특히 내년 경선시기와 관련,이해가 대립된 이인제(李仁濟)·한화갑(韓和甲) 상임고문측은 사무실 대여를 놓고서도 경쟁관계임을 드러냈다.한 고문측은 KBS 별관 부근의 연구조직인 한미정책포럼 사무실 외에 최근 민주당 전신인 평민당 당사가 있던 대하빌딩 4층에 150평 규모의 사무실을 임대,선금까지 치렀다.이 고문도 정우빌딩에 마련된 개인 집무실외에후보경선에 대비해 또 다른 사무실을 물색하던 중 같은 대하빌딩 2층에 사무실을 빌리기 위해 계약금을 냈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안 한 고문측에서 건물소유주인 김 모전의원에게 강력 항의를 했다.결국 입장이 난처해진 건물주는 이 고문측에 전화를 걸어 “나중에계약했으니 양보해 달라”고 요청한 끝에 가계약금 50만원을 돌려줬다는 후문이다. 이종락기자 jr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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