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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꽂이]

    ●장재구 사진집(장재구 사진, 한국일보사 펴냄)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의 첫번째 사진집. 장 회장은 열다섯살 때 부친(장기영 한국일보 창간 사주)에게 카메라를 선물받은 이래 지금까지 수천 장의 사진을 찍어 모았다. 히말라야 설산, 티베트 여행길에서 만난 촌부, 네팔 타망족 여인 등 이국의 풍경들이 75장의 사진에 담겼다.4만 5000원.●나 자신의 노래(월트 휘트먼 지음, 김욱 옮김, 바움 펴냄) 에드거 앨런 포, 에밀리 디킨슨과 함께 19세기 미국문학사를 대표하는 혁명시인 월트 휘트먼이 생전에 손수 정리한 자선(自選)일기. 작자의 사후에 출간되는 보통의 일기문학과 달리 시인 스스로가 보여주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솔직담백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생전에 늘 손에 들고다닌 수첩에 기록한 단상들도 포함됐다.1만 8000원.●히스토리카 세계사-로마와 고대의 서양세계(J M 로버츠 지음, 윤미연 옮김, 이끌리오 펴냄) 사건을 평면적으로 나열하는 게 아니라 역사적 사건들 사이의 연관관계를 에세이 형식으로 설명하는 점이 돋보이는 역사교양서. 고대 로마의 출현과 몰락, 발전과정이 풍부한 컬러사진들과 함께 펼쳐진다.‘선사시대와 최초의 문명’‘동아시아와 고대 그리스´ 등 전10권으로 완간됐다. 각권 2만 8000원.●부자 나라, 가난한 시민(데루오카 이쓰코 지음, 홍성태 옮김, 궁리 펴냄) 경제가 발전할수록 왜 더 쫓기며 살아가게 되는지, 원로 생활경제학자가 그 이유를 분석한 일본의 베스트셀러.1%의 땅부자가 50%가 넘는 땅을,5%의 돈부자가 50%가 넘는 돈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의 양극화 양상은 일본과 다를 게 없다. 시민이 가난한 부자나라의 기형구도를 짚어보고 진정한 풍요에 대해 고민했다.1만원.●마케팅은 짧고 서비스는 길다(구니토모 류이치 지음, 이철우·백인수 옮김, 중앙북스 펴냄) 역발상은 종종 예측하지 못한 힘을 발휘한다. 백화점 매장의 개념을,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고객이 물건을 사는 곳’으로 바꾸면 어떨까. 철저히 고객 위주로 매장 서비스 개념을 바꾼 일본 이세탄(伊勢丹)백화점의 성공사례를 살펴봤다.1만 2000원.●제대로 된 통역번역의 이해(정호정 지음, 한국문화사 펴냄) 통역·번역학 박사가 통역 및 번역의 이론과 실제를 연계해 풀어쓴 이론서. 적절한 우리말 입문서가 없어 난해하고 추상적인 원서와 씨름해야 하는 예비 통역·번역가들에게 유용할 책이다. 통역·번역의 개념, 이론, 실제 등으로 분야를 나눠 체계적인 이해를 도왔다.1만 2000원.
  • [Local] 전남, 21세기형 한옥마을 조성

    실용성과 전통성을 겸비한 ‘21세기형 한옥 마을’이 조성된다. 전남도는 17일 현대인의 주거생활에 맞고 남도인의 삶이 깃든 한옥을 저렴하고 빠른 시일 내에 건축할 수 있는 ‘맞춤형 한옥’ 건립에 나섰다고 밝혔다. 도는 이를 위해 18일 ‘한옥위원회’를 열어 맞춤형 한옥 평면개발업체 및 자재(목재분야) 생산업체를 심의·선정한다. 도는 앞서 지난 9월 ‘맞춤형 한옥’ 업체를 공모했다. 이번 공모에는 전국에서 모두 7개 업체가 응모했다. 도는 이 가운데 2∼4개 업체를 선정,‘한옥 건립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토록 할 방침이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Metro] 서울시, 소규모 건물 무료 설계

    서울시는 시민들이 소규모 건축물을 증·개축할 때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설계도면을 무료로 작성해 주기로 했다. 서울시는 13일 내년 1월부터 대한건축사협회 서울시건축사회의 협조를 얻어 연면적 2000㎡ 이하의 건축물을 소유자가 85㎡ 이하 규모의 건물로 증·개축 또는 용도변경을 위해 건축신고를 할 경우 설계도면을 무료로 작성해 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소규모 건축물을 소유한 시민들은 건축물 증·개축이나 용도변경을 할 경우 200∼300만원에 이르는 설계비 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지원되는 설계도면은 건축물의 배치도와 평면도, 입면도, 단면도 등이며 전기와 설비, 소방, 토목 분야의 설계 도면은 포함되지 않는다.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Zoom in 서울] 은평뉴타운 건축비 2.9% 더 내려

    [Zoom in 서울] 은평뉴타운 건축비 2.9% 더 내려

    서울 은평뉴타운의 건축비가 평형별로 평균 2.9% 추가 인하됐다. SH공사는 4일 은평뉴타운 1지구의 최종 건축비를 지난달 5일 발표한 건축비보다 평형별로 최저 0.64%에서 최고 5.08% 추가 인하했다고 밝혔다. 건축비 추가 인하는 개정된 분양가상한제 산출기준 적용 결과, 은평뉴타운 1지구 총 13개 단지 가운데 5개 단지의 건축비가 분양가상한제 기준을 초과한데 따른 것이다. 분양물량은 1643가구로,5일 입주자 모집공고를 내고 10∼20일 일반분양 신청을 받아, 내년 1월11일 당첨자를 발표한다. ●리조트형 전원도시로 조성 은평뉴타운은 주변의 북한산과 서오릉자연공원, 갈현근린공원 등이 있어 전체 대상면적의 약 30.4%를 녹지로 조성한다. 여기에 진관근린공원을 포함하면 전체 녹지비율은 42.4%로, 서울 목동(18%)보다 높은 대신 인구밀도는 ha당 129명으로, 목동(229명), 분당(199명)보다 낮다. 또 뉴타운 창릉천으로 흐르는 실개천 4.7㎞ 가운데 1979년 복개된 폭 4.2㎞ 구간을 복원해 그 주변에 산책로와 습지공원 등을 조성한다. 주택유형의 다양화를 위해 중정형(단지 중앙에 정원이 둔 형태), 연도형, 타워형, 테라스형 등을 도입하고, 아파트 평면도 국내 최초로 300여개 타입으로 늘렸다. 쓰레기 투입에서 저장, 소각, 재활용 등을 차례로 연계한 쓰레기 이송·소각 일괄처리시스템도 구축되고, 태양광 발전설비와 지열 공급 설비, 태양광 가로등 등도 설치된다. 건물 에너지효율 인증(2등급) 등을 취득해 에너지 사용량이 다른 단지에 비해 23.5∼33.5% 정도 줄어든다. 초등학교 5곳, 중학교 2곳, 고등학교 4곳(자립형 1곳), 유치원 7곳 등이 들어선다. ●서울 거주자에 우선청약자격 부여 1순위 청약자격은 공급공고일 현재 서울시 거주자로 제한됐다. 당초 1년 이상 거주자로 제한하는 방안을 고려했으나 전매제한 강화 등으로 청약과열 현상이 사라질 것으로 보고, 이를 완화했다. 이에 따라 12일부터 14일까지 실시되는 1순위 청약에서는 서울시 거주자만 청약을 할 수 있게 됐다. 인천과 경기도 거주자 가운데 1순위 청약통장 소지자는 17일 청약을 받는다. 하지만 앞서 실시되는 서울 거주자 분양에서 미분양이 나지 않으면 청약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어 2순위는 18일 서울과 수도권 거주자가 같이 청약할 수 있지만 서울 청약자에게 우선권을 준 뒤 남는 물량을 수도권 청약자에게 배정한다. 3순위는 서울·수도권 거주자가 같이 청약해 무작위로 컴퓨터 추첨을 한다. 하지만 은평뉴타운 청약이 3순위까지 갈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인다. 한편 은평뉴타운 당첨자의 경우 84㎡ 이하는 7년,84㎡ 초과는 5년동안 전매가 제한된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9) 떠돌이 고아 출신 역관 (曆官) 김영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9) 떠돌이 고아 출신 역관 (曆官) 김영

    관상감은 천문과 지리를 비롯해 달력, 날씨, 시간 등을 맡아보는 관청인데, 영의정이 최고 책임자인 영사(領事)를 겸임할 정도로 중요한 관청이었지만 실제 업무는 중인들이 담당했다. 세조 때에는 관원 65명에 생도 45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영조 때에는 관원 150여명에 생도 60명으로 늘어났다. 경복궁 안과 북부 광화방에 관아가 있었는데, 청사와 함께 관천대(觀天臺)를 비롯한 관측시설이 있었다. 간의(簡儀)를 올려놓고 하늘을 관측하던 관천대는 첨성대(瞻星臺)라고도 불렸는데, 지금도 서울 계동 현대건설 앞에 남아 있는 관천대는 사적 제222호로 지정되었다. 경복궁이 불타버린 조선후기에는 창경궁에 다시 관천대를 만들어 보물 제851호로 지정되었다. ●이상한 별이 나타나면 관측해 기록하다 관상감의 관측제도는 ‘서운관지(書雲觀志)’ 권2 ‘측후(測候)’에 규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밤마다 5명이 숙직하며 관측해 기록했다. 지금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성변등록(星變謄錄)’에도 날마다 5명 관측자의 서명이 남아 있다. 성변(星變)은 별자리에 변화가 생겼다는 뜻. 혜성(彗星)이나 객성(客星)이 나타나면 천문학 관원들이 협의해 영사(領事)에게 알리고 관측을 시작했다. 혜성이 나타날 때부터 사라질 때까지의 움직임과 그 위치를 하루하루 관측하고 기록한 보고서를 성변측후단자(星變測候單子)라고 했으며 이 보고서들을 책으로 묶은 것이 등록(謄錄)이다. 이 보고서는 왕에게 보고되어 국정에 반영되었으므로, 관측자의 이름만 빼고 ‘승정원일기’에 거의 전문을 실었다. 현재 제대로 남아 있는 자료는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성변등록’뿐이다.1723년 9월21일 밤 1경에 여숙(女宿)에 나타난 혜성을 54명이 27일 동안 관측하였고,1759년 3월5일 밤 5경에 위숙(危宿)에 나타난 혜성을 35명이 25일 동안 관측하였으며,1759년 12월23일 밤 1경에 헌원(軒轅)자리에 나타난 객성을 21명이 11일 동안 관측하였다. 중인 출신의 천문학교수만으로는 부족해서 문관들도 많이 참여하였다. 이 가운데 1759년에 출현한 헬리 혜성에 대한 관측 기록은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사료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서울특별시에서 2007년 3월22일자로 ‘성변등록’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2호로 지정하였다. ●중인 역관(曆官)들의 계산에 의해 만들어진 역서 관상감은 천문학·지리학·명과학(命課學)의 3학으로 구성되었다. 이 가운데 천문학이 본학으로 가장 중요시되었다. 정성희 선생은 ‘조선후기 역서의 간행과 반포’라는 논문에서 “천문이나 역법에 대한 중요성이 높은 만큼, 그리고 전문성이 강조되었던 직책이던 관계로 관상감 관원의 실무(失務)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따랐다고 하였다.“전통시대 천문학은 농사 절기에 대한 예보 기능 외에도 천인합일적(天人合一的) 성격도 아울러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일식이나 월식, 오위(五緯 또는 5행성) 등 천문현상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예보가 중요했다.” “1710년에 관상감 관원이 월식 예보를 잘하지 못해 이를 감추려고 천변(天變)이라고 말했다가, 다시 월식으로 정정한 일이 있었다. 이 사실이 발각되자 숙종은 월식을 천변으로 보고한 자와 추산(推算)을 담당한 관원을 처벌하도록 했다.” 역서(曆書)도 관상감에서 만들었는데, 일반 백성들은 천문학보다 역서를 통해 관상감의 존재를 실감했다. 조선초기에 4000여건에 지나지 않던 역서(曆書)가 조선후기에는 1만5000축이 넘게 간행 보급되었다. 일부 계층이 사용하던 역서가 보다 생활 깊숙이 대중적으로 사용되었음을 뜻한다. 물론 관상감 관원들이 종이를 사서 개인적으로 인쇄하여 판매하는 숫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역서를 위조하거나 제멋대로 인쇄한 자는 사형에 처했는데, 실제로 정조 1년(1777)에 책력을 사조(私造)한 죄로 이동이(李同伊)가 사형을 언도받았다. 역서 간행을 주도한 관원은 성력(星曆)을 계산한 삼역관(三曆官)인데, 삼역관 선발시험에 1등하는 사람을 부연관(赴燕官)으로 임명해, 수시로 북경에 가서 천문기계나 천문서적을 구입하는 특전을 주었다. 관상감 중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천문학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삼역관을 거쳐야 했다. 다른 관상감 기술직은 음양과에 합격하지 않아도 능력이 있으면 선발했는데, 삼역관만은 음양과 출신만 선발할 정도로 전문성이 강조되었다. 정조가 천재 과학자 김영을 삼역관으로 승진시키려 하자, 우의정 윤시동과 여러 역관들이 반대한 이유도 그가 음양과에 합격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사도세자 현륭원을 옮기기 위해 김영이 발탁되다 김영(金泳·1749∼1817)은 농사꾼 출신인데, 어려서 고아가 되어 이리저리 떠돌다 서울에 올라왔다. 중인 신분도 못되는 데다, 말도 어눌하고 용모까지 꾀죄죄했다. 산술(算術)에 타고난 재주가 있어 스승도 없이 혼자 공부했다. 너무 골돌하다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산가지를 늘어놓고 계산하다가 ‘기하원본(幾何原本)’을 구해 읽고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 그의 제자 홍길주(洪吉周·1786∼1841)는 스승의 전기를 쓰면서 “혼자 ‘기하원본(幾何原本)’이라는 책 한 권을 가져다 읽은 뒤 그 이치를 모두 터득하여 산수에 있어서는 더 이상 익힐 것이 없게 되었다.”고 했다. 당대에 가장 이름 높았던 산학자 서호수가 관상감 제거(提擧·3품)로 있었는데, 김영의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몇 가지를 물어본 뒤에 자신의 실력보다 나음을 알았다. 그는 관상감의 책임자였던 영의정 홍낙성에게 김영을 추천해 관원으로 채용하였다. 김영은 그러한 인연으로 뒷날 홍길주의 집에도 드나들게 되었다. 홍길주는 김영이 관상감에 임용된 것은 “정조가 인재 등용하기를 좋아해, 남다른 재주로 이름난 자가 있으면 비록 지극히 미천한 자라도 남김없이 등용하던 시대 분위기 덕분”이라고 했다. 1789년에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현륭원을 수원 화산으로 이장하는데 길일을 잡고 시각을 정하는 데에 문제가 생겼다. 중성(中星)의 위치를 측정한 지 50년이 지나 별자리의 위치가 1도 가까이 어긋나 있었고, 해시계와 물시계의 시간도 실제와 차이가 났다. 관상감사 김익이 8월31일 정조에게 아뢰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근본적으로 중성의 위치를 추산하여 그 궤도와 도수를 정해야 하는데, 만약 관측기구가 없으면 측정할 근거가 없습니다. 먼저 지평의(地平儀)와 상한의(象限儀) 및 새로운 해시계를 만들어 제대로 측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관상감의 감생 가운데는 제대로 추산할 수 있는 자가 매우 드무니, 역법(曆法)에 정통하다고 알려진 김영을 본감에 소속시켜 이 일에 참여하도록 한다면 실효가 있을 것입니다.” ●음양과를 거치지 않았다고 관상감 관원들이 반대하다 세종대왕이 1434년에 만든 해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는 이름 그대로 솥 모양을 오목하게 파내고 영침(影針)을 세워 그림자가 변화하는 정도를 살펴 시각을 측정했다. 그런데 김영이 새로 만든 보물 제840호 지평일구(地平日晷)는 이름 그대로 해그림자를 받는 면을 평면으로 고쳐 만들었다. 중국의 지평일구(보물 제839호)가 수입되자, 그 원리를 이용하여 만든 것이다. 그래프 용지에 1㎝ 간격으로 동심원과 10도 간격의 방사선을 그어놓고, 그 중심에 막대를 세워 시간에 따른 그림자의 변화를 보는 형태인데, 반구형 모습의 해시계 앙부일구를 전개하여 평면에 옮겨놓은 것과 똑같다. 김영이 처음 만들어내자 그 이후에도 여러 개가 제작되었는데, 재료는 보통 대리석이나 오석(烏石)을 썼으며, 놋쇠로 휴대용도 만들었다. 정조가 김영을 특채하려고 하자 관상감 관원들이 심하게 반대했는데, 홍길주가 그 사연을 기록했다.“관상감은 천문학과를 두어 사람을 뽑기 때문에 천문학과를 통해 조정에 들어온 자가 아니면 역법(曆法)을 제정하는 역관(曆官)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임금께서 특명을 내려 김영에게 역법을 제정하게 하시면서 ‘김영같이 남다른 재주를 지닌 자가 아니면 이런 예에 해당될 수 없다.’고 말씀하시니, 김영이 크게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당시 관상감 사람들이 모두 김영을 질시했으며,‘이는 우리 관직의 규율을 무너뜨리는 일이다.’라고 따졌다. 그러나 임금의 명이 있었으므로 끝내 그 누구도 크게 떠들지는 못했다.” ●정조 승하하자 벼슬에서 쫓겨나 굶어 죽다 중인들은 혼인은 물론, 교육과 관직도 몇몇 집안이 주고받았는데, 중인 출신도 아닌 김영이 중인의 전유물인 역관이 되었으므로 반대가 심했다. 서호수가 죽고 정조도 승하하자, 김영은 다른 관직으로 좌천되었다가 벼슬에서 쫓겨났다. 1807년과 1811년에 혜성이 나타나자 조정에서 관상감에 명해 혜성의 운행 도수를 계산해 올리라고 했는데, 아무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김영을 다시 불러들였다. 계산이 끝나자 그는 다시 쫓겨났는데, 그의 전기를 쓴 서유본은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면전에 욕하고, 주먹으로 때리기까지 했다.”고 기록했다. 그가 남의 집 어린아이에게 글을 가르치다 굶어 죽자, 관상감 생도가 그의 원고 상자를 훔쳐갔다. 미처 간행되지 못한 몇 권의 책은 다 없어지고,‘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나 ‘칠정보법(七政步法)’ 같은 책 끝머리에 그의 이름이 붙어 있을 뿐이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음모론’에 묶인 프리즌 브레이크 시리즈

    ‘음모론’에 묶인 프리즌 브레이크 시리즈

    “프리즌 브레이크, 스스로의 굴레에 묶였다.”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현재 세 번째 시즌이 방송되고 있는 ‘프리즌 브레이크’가 ‘음모론에 얽매여 스토리 붙이기에 급급한 드라마’라는 호된 비판을 받고있다. 방송 저널리스트 앤디 데나트(Andy Dehnart)는 ‘MSNBC’ 홈페이지에 기고한 ‘프리즌 브레이크는 음모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Prison Break’ can’t escape conspiracy theory)는 제목의 글을 통해 프리즌 브레이크의 한계를 지적해 네티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데나트는 “우스운 음모론으로 시리즈를 이어갔던 시즌2에서 거의 자유를 얻었던 주인공이 ‘시즌3을 위해’ 다시 감옥으로 돌아갔다.”며 시즌을 억지로 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재편된 감옥 안 인물들의 관계는 시즌1 만큼 미묘하지 않다.”며 “작가의 실수로 긴장감이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제임스 휘슬러에 대한 과도한 집중과 사라의 죽음 등을 예로 들어 설정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라의 죽음에 대해서 “죽음 자체도 놀랍지 않았고 그 사건이 등장인물들에게 특별한 동기를 부여하지도 못했다.”고 평가하면서 “퍼즐 안에 한 조각이 아니라 얹혀 있는 사건”이라고 비유했다. 그는 이같은 캐릭터 설정과 변화에 대해 “기존 캐릭터들은 시리즈 연장에 억지로 맞춰졌을 뿐 거의 발전이 없었다.”며 새로운 인물의 등장이 캐릭터들을 오히려 평면적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혹평을 쏟아낸 앤디 데나트도 극 전체의 구성에 대해서는 평가를 유보했다. 그는 “프리즌 브레이크의 ‘음모’란 맥거핀(관객의 눈길을 끌지만 결정적인 역할은 하지 않는 단서)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면서도 “프리즌 브레이크는 아직 진행중”이라고 글을 맺으며 남은 분량에 대한 기대를 표현했다. 한편 프리즌브레이크 시즌3 9화는 작가노조의 파업관계로 내년 1월 14일부터 방영된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 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하재봉의 영화읽기] 만덜레이

    [하재봉의 영화읽기] 만덜레이

    치열한 실험정신을 잃지 않고 영화미학의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대해가는 덴마크 출신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미국 3부작을 기획한 의도는, Pax Americana라고 부를 정도로 세계 정치 문화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의 역사를 영화적으로 접근해보자는 것이었다. 그 계기는 911 테러였다. 미국의 영향력이 증대될수록 미국의 오만함도 커지고 적대적인 시선도 늘어난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영화를 통해서 오늘날 미국사회의 문제점을 해부해 보고 싶어했다. 매우 정치적인 의도로 미국 3부작이 기획된 셈이다. 그 첫번째 시도가 <도그빌>이다. 그레이스라는 여자가 도그빌이라는 마을에 도망치듯 들어와 겪는 폭력적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충격적인 영화 언어와 날카로운 실험정신으로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영화언어를 만들어냈다. 연극적 무대 양식과 영화적 실험기법이 충돌하면서 절묘한 하모니를 빚어내는 이 작품은, 이른바 구동독작가인 브레히트류의 서사극에서 영향을 받았다. 무대와 객석 사이에 존재하는 제4의 벽을 무너뜨리고 감정이입에 의한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내는 아리스토텔레스식의 동화효과가 아니라, 무대 위의 사건과 인물에 의문점을 갖고 관객들로 하여금 비판적 이성으로 분석하고 탐구하게 만드는 이화효과를 창안한 브레히트의 극작술과 연출방법은 현대연극의 새로운 영역을 창조했었다. 가까스로 도그빌을 벗어난 그레이스가 도착한 곳이 미국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만덜레이>다.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은, 미국 정치의 심장부를 소재로 한 <워싱턴>이다. 개들의 마을을 뜻하는 도그빌이나, 흑인 노예 농장을 소재로 한 만덜레이 등의 제목이나 소재에서도 드러나듯이, 라스폰 트리에 감독은 역사가 일천한 미국의 천박한 문화를 비판하고 있다. 청교도 정신으로 건설한 나라가 아니라 그 이면에는 잔혹한 폭력과 상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라스폰 트리에의 미국 3부작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는, 실제 공간이 아니라 마치 연극 작품처럼 무대 위의 셋트에서 촬영된 이질감에서 비롯된다. 그것도 사실주의 양식의 무대가 아니라, 표현주의 스타일의 상징적이며 압축적 이미지를 담은 무대다. 따라서 한 마을이나 농장은 무대 위에 조밀하게 구성되어 있고, 벽이나 울타리 등은 의미적으로는 설정되어 있지만 시각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물들이 공간을 이동하면서 문을 열고 닫는 행위를 마임으로 연기하면, 음향으로 가상의 벽이나 문이 존재하는 것을 알려준다. 그곳이 어떤 공간인지는 바닥에 글자로 쓰여 있다. 카메라는 가끔 버즈 아이샷으로 공중 높이 올라가면서 마치 건축 설계도의 평면도처럼 관객들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게 한다. 도그빌을 떠나 남부 알래바마주의 한 오지 마을 만덜레이에 도착한 그레이스(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분)와 갱단 두목인 그녀의 아버지(윌리엄 데포우 분)는 폐지된지 70년이 넘은 노예제도가 아직도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농장주인 백인 마님은, 농장의 흑인 노예들에 관한 모든 비밀이 적힌 자신의 침대 밑 노트를 불태워 달라는 유언을 마지막으로 그레이스에게 하고 숨진다. 그레이스는 흑인들에게 그들이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자유의 몸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농장이 정상화될 때까지 머무르기로 결심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레이스를 비웃으며 갱단의 부하 몇 명에게 그레이스를 경호하도록 하고 떠난다. 흑인 노예들은 갑자기 찾아온 자유에 당황해 한다. 자유와 방종의 차이를 모르고 무질서한 행동들이 나타난다. 죽은 백인 마님 대신 농장에 질서가 집힐 때까지 그레이스에게 마님 역할을 해달라는 요청을 그레이스는 받아들인다. 그리고 침대 밑에 숨겨진 비밀노트를 본다. 그 속에는 모든 흑인 노예들이 7등급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자존심 강한 1등급부터, 아첨 잘하고 상황에 따라 자신을 바꾸며 생존해 나가는 카멜레온같은 7등급까지 상세하게 분류된 그 노트의 분석은 정확했다. 그레이스는 그들이 자율적으로 일하고 목화 수확을 거둘 수 있게 노력한다. 라스폰 트리에 감독은 일차적으로 미국의 노예제도를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오늘날의 미국은 아프리카에서 강제적으로 끌고 온 흑인 노예들의 노동력이 없었다면 성장 불가능했다는 비판적 시각이 그 속에는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흑인 문제와 노예제도가 일차적 소재라면,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는 자유에 대한 것이다. 억압이 사라졌다고 저절로 자유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농장의 흑인 노예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유인가? 그들 중에는 오랫동안 몸에 익은 속박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강요된 자유가 아니라, 자유의지로 선택한 속박에 길들여진 그들 곁에서 그레이스는 혼란을 느낀다. 또 그녀는 흑인 노예들의 벌거벗은 강인한 몸을 보면서 욕망을 느낀다. 흑백의 섹스는 미국 영화에서 오랫동안 금기에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백인 남자와 흑인 여자의 섹스는 문제될 것이 없다. 백인이 우월자이고 지배자였으니까. 그러나 백인 여자와 흑인 남자의 섹스는 미국 영화 속에서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만약 그 부분이 내러티브 전개상 꼭 필요하다고 해도, 침대로 갔다가 다음 날 해가 뜨는 식으로 간단하게 묘사하는 게 전부였다. 웨슬리 스나입스가 흑인 인텔리로 등장해서 나스타샤 킨스키와 섹스를 하는 장면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원 나잇 스탠드>는 그런 점에서 충격을 준 영화다. <만덜레이>에도 그레이스와 흑인 노예 티모시(이삭 드 번콜 분)의 사실적인 섹스씬이 등장한다. 흑인 남자들의 벗은 몸을 보고 자위를 하는 그레이스의 모습에 이어, 후반부에는 음부까지 드러낸 그레이스와 검은 성기까지 노출한 티모시의 격렬한 섹스씬이 삽입되어 있다. 이것은 의도적인 것이다. 흑백의 터부를 라스폰 트리에 감독은 깨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섹스가 아니다. 자유와 속박의 문제다. 농장 노예들을 분석한 비밀노트도 사실은 농장 집사인 흑인 윌햄(대니 글로버 분)이 작성한 것이었고, 흑인들이 농장을 떠나지 않는 것도 속박에 의해사 아니라 갑자기 찾아온 자유의 세상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까 봐 의도적으로 노예제도의 틀을 유지시켰다는 것을 알게 된 그레이스는 만덜레이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또 자존심 강한 1등급 먼시족 남자로 생각하고 이끌렸던 티모시는 사실은 기회주의적인 7등급 만시족이었다는 게 드러난다. 더구나 티모시는 목화로 수확한 마을의 공금을 술과 노름으로 탕진해 버린다. 분노한 그레이스가 티모시를 결박해 놓고 채찍으로 후려치는 모습에서 우리는 기회적이고 이중적인 인간의 본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레이스뿐만이 아니다. 농장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그레이스를 마님 대용으로 이용한 흑인들의 대부 윌햄도 그렇고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다른 흑인들도 마찬가지다. 자유와 속박의 경계, 인간의 본성에 대해 대담한 방식으로 접근한 라스폰 트리에의 용기와 실험정신은 <만덜레이>라는 걸작을 만들었다. 영화 양식의 무대적 차용이라는 독특한 외형적 방식뿐만 아니라, 내적인 주제적 측면에서도 저울추의 균형감각을 유지한다. 위장된 휴머니즘을 신랄하게 파고 들어가는 감독의 예리한 연출력이 <만덜레이>를 보는 동안 우리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니콜 키드만에 이어 그레이스 역을 맡은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식스 센스>의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만든 <빌리지>에서 여주인공으로 발탁돼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신인이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론 하워드 감독으로서 <분노의 역류> <뷰티풀 마인드> <다빈치 코드> 등을 만든 명장이다.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아버지의 명성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인 노력으로 주목받는 연기자로서 발돋움하고 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유로파>로 데뷔한 후, 병원을 소재로 한 장편 시리즈 <킹덤>,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브레이킹 더 웨이브>, 가수 비욕이 참여했던 뮤지컬 영화 <어둠 속의 댄서> 등을 만들었던 문제 감독이다. 그는 인위적인 시선을 배제하고 자연광 등으로 순수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도그마 선언을 주도했고, 이에 동조하는 젊은 영화감독들과 함께 새로운 영화운동을 일으키기도 했었다. 들고 찍기를 자주 사용하고 카메라와 편집 테크닉에도 능란한 그는, 깊이 있는 주제의식으로 항상 문제 영화를 만들어왔다. <만덜레이>는, 미학적으로는 브레히트의 서사적 방법론을 영화언어에 접목함으로써 사건과 인물에 집중하는 힘을 높이고 있고, 정치적으로는 관객들의 비판정신을 불러일으키면서 미국 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글 하재봉 시인, 영화평론가, 동서대 교수     월간 <삶과꿈> 2007.09 구독문의:02-319-3791
  • 뉴욕 흔드는 한국 작가 그들을 주목하라

    뉴욕 흔드는 한국 작가 그들을 주목하라

    ‘현대미술의 메카’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는 어림잡아 2000명쯤 된다. 그들 중에는 소더비·크리스티 경매에서 나날이 주가를 올리는 스타도 있고, 인정받는 그날까지 ‘청년작가’를 고집하며 붓을 놓지 못하는 환갑 가까운 무명작가도 있다. 무엇이 그들을 ‘무한 열정’으로 이끄는 것일까. 서울 예술의전당이 의미 깊은 전시를 기획했다.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한국 작가 19명을 선정해 16일부터 다음달 21일까지 한가람미술관에서 ‘세계 속의 한국미술-뉴욕’전을 연다. 세계미술의 중심에서 당당히 경쟁하고 있는 작가들의 평면회화·설치작품 등 모두 33점을 초대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19명에는 국제비엔날레에 초청되고 소더비·크리스티 등의 경매에서 성과를 올렸거나 권위있는 기금을 수상한 중진 9명과 한창 주목받는 신인 10명이 포함됐다. 강익중 김옥지 김웅 민병옥 배소현 변종곤 임충섭 조숙진 최성호 등 역경을 뚫고 뉴욕무대에 뿌리내린 1세대 작가들의 근작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이다. 1997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을 수상한 강익중의 신작이 눈에 띈다.4400개 패널 조각으로 이뤄진 가로 8m 크기의 신작 ‘산, 바람’이 이번에 첫선을 보인다. 지난해 1월 국제갤러리에서 전시를 연 임충섭은 한국 전통악기를 변형한 설치작품을, 올해 아르코미술관에서 버려진 폐품으로 만든 설치작품을 선보인 조숙진도 70개의 금속통을 5줄로 쌓아올린 설치작품 등 다수의 근작을 낸다. 미국 다문화주의에 천착해온 최성호는 다양한 뉴스기사들을 이어붙인 작품을 내놨다. 신진 작가들이 선보이는 일련의 작품을 통해서도 동시대 미술계 한국 작가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고상우 김민 김신일 김주연 김진수 미키리 박처럼 윤희섭 조소연 한경우 등 10명의 작품들이 현대미술의 이슈를 생동감 있게 전달한다. 모두 뉴욕 미술계 평론가들의 추천을 받은 이들이다. 종이 위에 뾰족한 도구를 이용해 눌러 그린 드로잉과 영상작품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작품들에선 주류 진입을 넘보는 신예들의 혈기가 그대로 읽힌다. 2000여명의 작가군에서 최종명단을 선정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는 게 예술의전당측의 설명. 김미진 전시감독은 “서도호나 김수자 등도 뉴욕에서 활동하지만 일정이 맞지 않았고, 한국인의 피를 이어받았지만 미국 국적인 이민 1.5세대 작가 등도 제외했다.”면서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등의 진부한 주제가 아니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적 이야기로 국제무대에서 과감히 정면승부를 거는 신진들의 작품을 특히 눈여겨보라는 주문이다. 예술의전당은 앞으로 파리, 런던, 로마 등 유럽지역과 일본에서 활동하는 작가들도 해마다 한차례씩 기획전을 통해 소개할 계획이다.(02)580-1276.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하숙생 좋다보니…2남2녀 엄마 덜컥

    20일 경기도 가평(加平)경찰서는 가평면읍내리 이영자여인(41)을 간통혐의로 구속. 이(李)여인은 2남2녀를 둔 엄마로서 지난해 2월부터 자기집에 하숙하고 있는 최(崔)모씨(35)와 눈이 맞아 정을 통하고, 인천(仁川) 안양(安養)등지를 돌아 다니며 신나게 놀아났다고. 동네 주민들 가로되, 『하숙은 국민학교 아동만 상대로 해야겠군』 [선데이서울 71년 3월 7일호 제4권 9호 통권 제 126호]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2) 정선의 ‘박연폭’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2) 정선의 ‘박연폭’

    진경산수는 우리 산천에 어울리는 필법으로 경관의 정취를 회화적으로 재구성했다는데 특징이 있습니다. 겸재 정선(1676∼1759)이 위대한 화가로 대접받고 있는 것은 이런 진경산수의 시조이자 완성자이기 때문이지요. 겸재의 진경산수는 실제의 현장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 보통입니다. 현장에서 사생한 초본을 토대로 그린 것이 아니라, 현장을 다녀간 뒤 기억을 되살렸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의 그림을 보면 진경(眞景)이라는 개념이 실경(實景)과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미술사학자인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풍의 화가들이 얼마나 실제의 경치와 닮게 그렸는지를 수치로 제시하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는데, 겸재의 ‘현장충실도’는 30∼50% 수준에 그쳤지요. 다만 비에 젖은 바위의 강렬한 인상을 강조한 걸작 ‘인왕제색도’에 겸재의 작품으로는 예외적으로 70%를 주었습니다. 최근 개성에서 시범 관광이 이루어지면서 송도삼절(松都三絶)의 하나이자, 조선삼대명폭(朝鮮三大名瀑)의 하나인 박연폭포를 찾은 사람들은 “겸재가 그린 박연폭포와는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닮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겸재의 ‘박연폭(朴淵瀑)’은 까마득한 곳에서 쏟아지는 폭포수의 장쾌한 기운이 생동감있게 묘사되어 있습니다.‘소리의 리얼리티를 평면에 구현해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요. 마치 화면에서 폭포수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는 찬사일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바라보는 박연폭포는 그림 속의 그것만큼 높지 않습니다. 그림에서와 같은 기운을 느끼려면 폭포 바로 아래서 올려다볼 때만 가능하지요. 하지만 겸재의 그림은 폭포에서 얼마간 떨어져, 그것도 약간 높은 위치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폭포의 전모를 보여주면서, 폭포수의 강렬한 이미지도 화폭에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화면 오른쪽 아래엔 박연폭포에 감탄하고 있는 두 사람의 선비와, 이들을 이곳으로 안내한 듯한 동자승의 모습이 작게 보입니다. 실제로는 오른쪽으로 조금 올라가야 하는 언덕에 지어져 있는 범사정(泛斯亭)도 폭포가 떨어지는 고모담에 바짝 붙여놓았지요. 미술사학자 유홍준은 이를 두고 ‘현장감과 스케일을 동시에 느끼게하는 조형적 배려’라고 했는데, 실제로 이 부분이 없었다면 화면 속의 박연폭포는 그리 장쾌하게 보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실제의 박연폭포는 펑퍼짐한 바위 위로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는 모습이지만, 겸재는 좌우 암벽 사이를 좁혀 긴장감을 더했습니다. 겸재는 진경산수에 이렇듯 특유의 변형방식을 적용했습니다. 다른 그림도 마찬가지여서, 대표작의 하나인 ‘금강전도’(1734년, 삼성미술관 소장)는 마치 새처럼 하늘을 날며 금강산 전체를 굽어본 듯한 풍경이지요.‘금강팔경도첩’(1730∼1740년, 간송미술관 소장)의 ‘정양사’는 천일대에서 내려다 본 정양사와 정양사에서 올려다 본 비로봉 일대를 합성한 시점입니다. 이렇게 실경을 재해석하여 조형적으로 변형시키는 과정을 거쳤으니 겸재의 진경산수는 실제 경치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만년의 걸작인 ‘박연폭’에서 보여주는 과감한 변형은 당연히 예술적 완성도에 대한 겸재의 자신감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dcsuh@seoul.co.kr
  • 서울대병원 3차원 CT 대장암 진단법 개발

    기존 내시경이나 평면(2차원) CT(컴퓨터 단층촬영)영상 대신 3차원 CT영상을 이용해 대장암을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진단법이 국내 의료진에 의해 처음 제시됐다. 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김세형·최병인 교수팀은 최근 96명의 환자를 ‘가상 대장내시경’이라 불리는 ‘3차원 CT 대장조영술’로 진단한 뒤 2명의 영상의학과 전문의에게 각각 2차원 및 3차원 판독을 하도록 했다. 그 결과, 크기가 6㎜ 이상인 대장 용종 진단율의 경우 2차원 판독에서는 63∼69%이던 것이 3차원 판독에서 69∼77%로 6∼8%포인트 높게 나타났다고 29일 밝혔다.1㎝ 이상인 용종(물혹)은 두 판독법이 모두 100% 확인할 수 있었다. 의료진은 “판독시간 비교에서는 2차원 판독이 환자 1명당 평균 14.2분이 소요된 데 비해 3차원 판독은 이보다 4.7분이 빠른 9.5분이 소요됐으며, 기존 내시경검사와 비교해 성과는 비슷하면서도 환자의 고통이나 시간·경제적 측면에서 뚜렷한 이점이 있었다.”며 “3차원 CT 대장조영술은 내시경의 불편이 없고,2차원 CT조영술에 비해 판독이 빨라 집단 선별검사 등에 매우 효과적인 검사법”이라고 설명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Local & Metro] 강원도 “송전탑 건설 이제 그만” 도의회 특위구성 대책 마련키로

    강원도의회는 송전탑피해대책특별위원회(이하 송전탑특위)를 구성, 고압 송전선로 공사에 따른 주민 피해대책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21일 강원도의회에 따르면 오는 25일까지 열리는 제179회 임시회기에 상임위별로 추천받은 9명의 위원으로 송전탑특위를 구성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기로 했다. 이는 도내에 전국의 40%를 차지하는 송전탑 및 송전선로가 건설돼 있는 가운데 250여㎞의 고압 송전선로와 8곳의 변전소,450여기의 송전탑이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이어서 각종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압 송전선로와 변전소가 인체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의학계의 보고가 나오고 있는데다 건설과정에서 해당지역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까지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평창군 용평면 재산리 주민들은 철새 도래지가 파괴된다며 송전선로 경과지 변경과 지중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양양∼동해간 송전선로 공사는 사전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협의된 식생 등에 관한 사항이 대부분 반영되지 않아 논란을 빚고 있다. 이에 따라 도의회는 이번 회기 중 송전탑특위가 구성되면 공사 관계자와 주민대표, 도 관계자 등과 함께 곧바로 송전선로 건설 현장을 중심으로 현지답사에 나서 주민피해 상황과 환경훼손 여부 등을 면밀히 살필 예정이다.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박완서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

    위악·유머·슬픔이 하나로 엉켜든 이야기를 읽을 때, 독자들은 위악·유머·슬픔 중 무엇을 먼저 느끼게 될까. 서로 다른 감성들이 한 작품 한 문장 내에 섞이는 게 가능할까 싶지만, 소설가 박완서(77)의 문장에선 가능해 보인다. 박완서 신작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문학과지성사)의 표제작 ‘친절한 복희씨’에서 남편은 중풍 환자다. 그는 변을 본 자신의 뒤처리를 돕는 복희씨 손길에서 성적 흥분을 느끼곤 하루 한 번 보던 변을 두 번씩 보기 시작한다. 박완서는 복희씨의 반응을 이렇게 썼다. “나는 그의 아랫도리에서 단호하게 내 손길을 떼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둘러 화장실에 비데를 설치했다.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세상에 그런 편리한 장치가 있다는 걸 당신은 아마 상상도 못했을걸. 용용 죽겠지 놀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친절한 복희씨’).” ●문인 100명이 선정한 가장 좋은 소설 위악·유머·슬픔을 한 데 녹여낸 그의 문장을 독자들이 읽을 때, 아마 가장 먼저 느끼는 건 ‘리얼한 인생의 단면’이 아닐까 싶다. 위악·유머·슬픔을 한꺼번에 드러내는 박완서 소설의 주인공은 스테레오 타입으로 굳어진 ‘가상의 평면적 인물’이 아니라, 피 돌고 살 붙은 ‘현실의 입체적 인물’이다. ‘친절한 복희씨’는 ‘너무도 쓸쓸한 당신’(1988) 이후 작가가 9년 만에 낸 소설집이다. 소설집에 실린 ‘그리움을 위하여’는 2001년 황순원 문학상을 받았고,‘친절한 복희씨’는 지난해 ‘문인 100명이 선정한 가장 좋은 소설’로 뽑혔다. 박완서는 “그 사이 장편 ‘아주 오래된 농담’(2000)과 ‘그 남자네 집’(2004)을 냈으니, 내 체력에 알맞게 일한 것 같다.”며 지난 9년의 시간을 아쉬워하지만은 않았다. 올해로 일흔일곱 구비 인생 고개를 넘은 작가. 소설집에 실린 9편의 단편은 그 고갯길 이곳저곳을 꼼꼼하게 밟아온 박완서만이 쓸 수 있는 문장들로 채워져 있다.“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다. 그릴 것 없이 살았으므로 내 마음이 얼마나 메말랐는지도 느끼지 못했다(‘그리움을 위하여’).” “실컷 젊음을 낭비하려무나. 낭비하지 못하고 아껴둔다고 그게 영원히 네 소유가 되는 건 아니란다(‘그 남자네 집’).” “남의 무관심에 익숙해 왔기 때문에 남이 나를 부러워하기를 바라는 이렇게도 강력한 욕망이 자기 안에 숨어 있는 줄을 미처 몰랐다(‘후남아, 밥 먹어라’)….” ●“위선, 일종의 보호막 걷어냈다” 이번 소설집 역시 가부장제와 중산층의 속물성 비판이란 박완서의 기존 주제의식을 빠뜨리지 않는다. 작가는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위선, 일종의 보호막 같은 게 있다.”고 했고,“그 보호막을 걷어내 실체를 보여주고 싶은 게 작가로서의 욕망”이라고 했다. 다만 전보다 ‘신랄함’대신 ‘관대함’의 품이 더 넓어졌다. 박완서의 관대함은 인생을 마무리해 가는 작가 자신과 인생의 황혼에 선 주인공들 사이의 자연스러운 동질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동질감은 때론 욕심 없어지는 그들 나이처럼 순하고 편안하게 읽히고, 때론 종잇장에 베인 손가락처럼 아리고 싸하다. 등장인물 대부분은 한 생을 살아내며 몸에 병을 얻었거나(중풍-‘친절한 복희씨’, 치매-‘후남아 밥 먹어라’ ‘그 남자네 집’, 관절염-‘그리움을 위하여’, 건망증-‘거저나 마찬가지’), 아예 암으로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는다(‘대범한 밥상’). 암 선고를 받은 날부터 남은 석 달이 주체할 수 없이 길게 느껴진 ‘대범한 밥상´의 주인공은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오고, 영화 ‘데미지’의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가 허술한 골목을 휘적휘적 걸어가는 장면을 끝없이 리와인드시키면서 짠하게 울고 싶어진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 패러디 단편 ‘친절한 복희씨’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패러디했다. 열아홉 나이에 사랑 없이 애 딸린 서른살 홀아비와 결혼한 복희씨는 영화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소소한 복수(?)를 하며 고소해하지만, 어떤 ‘환(幻)’도 느껴보지 못한 삶으로부터 끝내 탈출하지 못한다. 짠함을 치유하는 박완서의 손길은 ‘밥’의 이미지로 가 닿는다. 밥은 친구에 대한 오해를 푸는 매개물(‘대범한 밥상’)이자, 몇 생을 찾아 헤매다 마침내 발견한 편안함(‘후남아, 밥 먹어라’)으로 해석된다. 밥은 ‘그리움을 위하여’의 주인공이 십여년을 파출부 부리듯 한 사촌동생에게 느끼는 자매애와도 같고, 박완서가 독자에게 건네는 가장 소박한 위로와도 같다. 박완서는 작가의 말에서 “나도 사는 일에 어지간히 진력이 난 것 같다.”면서 “웃을 일이 없어서 내가 나를 웃기려고 쓴 것들이 독자들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9) 불암산 학도암 마애관음보살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9) 불암산 학도암 마애관음보살

    마애불(磨崖佛)이란 벼랑바위에 새겨놓은 부처이지요.‘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 마애삼존불처럼 바위 속에서 부처가 걸어나오고 있는 듯 높게 돋을새김해놓은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통일신라 말기부터는 갈수록 평면화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아예 선각(線刻)에 가까워지지요. 이런 현상을 두고 조각기법이 퇴화한 결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시대가 떨어지는 마애불은 이렇듯 세상의 평가가 후하지 않으니, 기대를 갖지 않게 마련이지만 뜻밖에 조선 후기 것이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이 그렇습니다. 학도암(鶴到庵)은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불암산(佛巖山) 남서쪽 기슭에 있는 작은 암자입니다. 관음보살상은 절 바로 뒤에 우뚝 솟은 높이 22m의 거대한 바위에 새겨졌지요. 학도암에 오르면 왼쪽으로는 멀리 삼성동 무역센터 너머로 청계산이 산세를 자랑하고, 가운데로 눈길을 옮기면 관악산과 남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관이 펼쳐집니다. 산 아래 마들에서 시작된 건물 숲은 끝간 곳이 없는데, 군데군데 솟은 산은 회색 바다 위에 떠있는 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불경에 관음보살은 작고 흰꽃이 피어 있는 바닷가 봉우리에 살고 있다고 했으니, 이곳에 관음보살좌상을 새긴 사람도 분명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학도암 마애불은 1872년 명성황후의 시주로 조성된 것으로 사지(寺誌)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학도암은 1624년(인조 2년) 창건된 이후 줄곧 작은 암자였다고 하지요. 절터가 가파른 경사지여서 앞으로도 큰 규모의 중창불사는 그리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이곳에 왕실의 발원으로 거대한 마애불이 조성되었다는 것은, 관음보살의 상주처로 꼭 맞는 환경조건을 가졌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학도암 마애불이 예기치 않은 감동을 주는 것도 이처럼 현장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상징성이 더해졌기 때문이겠지요. 높이가 13.4m에 이르는 학도암 관음보살은 일단 크기로 참배객을 압도합니다. 그러면서도 자비의 화신인 관음보살의 성격에 걸맞게 부드럽고 넉넉해 보이지요. 전체적으로는 조각이라기보다 그림처럼 느껴집니다.‘화폭’으로 쓰여진 바위는 자연석으로는 보기 드물게 희고 판판합니다. 좋은 ‘그림’의 바탕에 좋은 재료가 뒷받침되었습니다. 실제로 학도암 마애불은 화승이 그린 밑그림을 바탕으로 새긴 것입니다. 마애불에는 명문(銘文)도 남겨놓았는데, 화승을 뜻하는 금어(金魚) 장엽의 이름이 보입니다. 명문에는 또 김흥연 이운철 원승천 박천 황원석 등 석수(石手) 5명의 이름도 올려놓았지요. 마애불전문가인 이경화는 법명(法名)을 쓰지 않는 석수들을 1865년 시작되어 1872년 마무리된 경복궁 중건과 연결지었습니다. 선의 강약과 리듬을 살려내는 솜씨로 보면 궁중에서 실력을 쌓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장엽의 작품인 삼척 신흥사 아미후불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균형감각과 유려한 필선을 장기로 하는 그가 비계에 매달려 초본대로 바위 표면에 관음보살상을 그려놓으면 궁중 석수들이 선을 따라 새겨나갔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이쯤되면 마애불 전통의 퇴화가 아닌 회화와 조각이 만나는 새로운 전통을 창조한 것으로 보아도 좋지 않을까요. 불암산이 뒷동산이나 다름없는 중계동 주민이라면 우리 동네에 정말 훌륭한 문화유산이 있다는 자부심을 한껏 가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dcsuh@seoul.co.kr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김연수 지음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김연수 지음

    1991년 5월은 87년 6월과 달랐다. 둘 다 뜨거웠으나, 둘 다 영예로운 경험으로 남은 건 아니다. 둘 다 민주화 투쟁으로 시작됐으나, 둘 다 ‘항쟁’의 이름을 얻은 건 아니다. 후자는 ‘민주화 원년’으로 기록됐으나, 전자는 상처와 오욕의 시대로 남았다. 후자는 일부 지도부에게 정치권력을 안겨주며 거듭 호명되고 있으나, 전자는 떠올리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과거로 잊히고 있다. 명지대 신입생 강경대의 사망으로 시작된 ‘분신정국’ 91년 5월은, 김지하의 신문기고문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가 모멸적 자기성찰을 강제한 91년 5월은,‘유서대필사건’과 박홍의 기자회견을 매개로 ‘죽음 선동 세력’ 색출에 광분하던 91년 5월은, 그때를 통과한 세대에겐 여전히 치유되지 않는 ‘트라우마’다. ●놓여나고 싶은 91년 5월 배경 1970년생 소설가 김연수도 그랬다. 그래서 자신에게 상흔으로 남은 91년 5월을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 김연수는 “소설 작업을 통해 그때로부터 놓여나고 싶었다.”고 했다. 신작 장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문학동네)에서 김연수는 당시를 기억하고, 재평가하고, 극복하려는 의지를 녹여냈다. 김연수의 극복 방식은 ‘집단의 시대’가 아닌 ‘개인의 시대’로 당시를 복원하는 것이다. 그는 91년 5월을 재구성하려 최루가스 매캐한 초여름 거리 한복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김연수가 포착하는 91년 5월은 헬리콥터 타고 하늘에서 촬영한 ‘얼굴 없는 시위군중´이 아니라, 군중 주변에서 혼자 맴돌지라도 ‘각각의 표정을 지닌 개인들´이다. 역사는 기억의 기록이다. 어떤 기억을 선택하고 버리느냐에 따라 역사는 다른 옷을 입는다. 선택돼 기록으로 남는 역사는 곧 집단의 ‘공식 역사’가 되고, 선택되지 않아 기록되지 못한 역사는 개인의 ‘비공식 기억’으로 빛이 바랜다. “모든 가치를 회의한다.”는 김연수에게 진짜 역사는 일관성 있게 꿰어진 역사책의 논리적 서술이 아니라, 비논리적이고 비선형적인 삶을 산, 그래서 더 리얼한 개인들의 삶이다. 개인의 기억을 재생하기 위해 김연수가 선택한 것은 ‘꼬리를 무는 이야기의 창출’이다. 소설 캐릭터들이 이야기와 사연으로 가득찬 인물로 창조된 데는 작가의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 김연수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역사에 편입되지 못한 개인의 가치를 생생하게 살려낸다.“거대담론은 없고 개인만 있다.”고 주장해온 작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전투적인 방식인 셈이다. 주인공 ‘나’의 할아버지와 애인 정민, 주인공이 독일로 넘어가서 만나는 강시우(본명 이길용)는 모두 각자의 트라우마(할아버지-간첩조작사건 연루, 정민-삼촌의 자살, 강시우-막노동꾼에서 민주투사로, 다시 안기부 프락치로 ‘만들어져 가는’ 인생역정)를 가졌고, 트라우마의 실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는 얼기설기 엉키며 확장된다. 역사를 바라보는 김연수의 시각은 할아버지가 남긴 203행의 장편 서사시와 불태워 버린 또 다른 산문을 비교하는 장면에서 집약적으로 드러난다. 김연수는 한국 현대사를 중심에 놓고 할아버지 자신의 삶을 기록한 서사시를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내용들”이라며 개인이 빠진 역사책의 몰인격성에 빗대는 반면, 할아버지 개인의 내밀한 삶을 기록한 불타 없어진 산문에 대해서는 “할아버지의 인생은 거기 있었다.”며 진정한 가치를 부여한다. 거대한 사건에 관한 기억은 남기고 소소한 개인의 기억은 간과했던 한국 현대사 기록 방식을 비판하는 문학적 비유다. ●한국 현대사 기록방식 비판 소설의 모티프가 되는 소재는 할아버지가 남긴 서양 여성의 입체누드사진 한 장이다. 아직 이길용이란 이름을 쓰던 당시 술에 취한 강시우가 세 번 반복해서 되뇌는 말이 있다.“나는 행복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요.”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추상명사 ‘행복’이 강시우에겐 입체누드사진의 형태로 시각화됐다. 역사책의 평면적 기록 몇 글자에 스스로가 묻혀 버리지 않는 것, 각자의 ‘입체적인’ 삶을 고스란히 살아내고 기억하는 것, 그것이 진짜 행복이라 강시우는, 김연수는 말하려는 것인지 모른다.‘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당신이 누구든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든’….1만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소니, 12월 OLED TV 세계 첫 출시

    일본 소니가 ‘삼성 타도’에 나섰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이용한 초박형 평면 TV를 세계 최초로 오는 12월 출시한다. 세계 TV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을 차세대 제품으로 꼽힌다. 반도체 시장에서의 삼성 독주를 막기 위해 독일 인피니온과 합작사 설립도 추진 중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주바치 료지 소니 사장은 전날 도쿄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화면 두께가 3㎜인 OLED TV를 곧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신용카드 석장 두께다.OLED는 두께가 얇고 화질이 매우 선명해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꼽힌다. 삼성전자도 휴대전화용 화면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경제성(수명 등) 측면에서 아직 대형화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소니가 내놓을 TV는 11인치. 가격은 20만엔(약 160만원)이다. 반도체 부문에서는 인피니온 계열의 유럽 2위 반도체 회사 ‘키몬다’와 디지털 카메라 및 휴대전화용 D램을 공동 생산할 것으로 전해졌다. 합작 발표가 임박했다는 관측이다. 지분율은 5대5로 알려졌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사설] 에이즈 환자 장애인 지정, 방법이 나쁘다

    서울시가 후천성 면역결핍증(에이즈) 환자를 장애인으로 지정해 의료·복지 혜택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사회에서 에이즈 환자는 직장을 잃고 가족과도 단절돼 극빈층으로 전락하기 일쑤이다. 이같은 현실을 감안하면 에이즈 환자에 대한 의료·복지 혜택을 확대하려는 서울시 방침은 분명 환영할 만하다. 다만 에이즈 환자를 장애인으로 지정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방법이 잘못됐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사회에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 때문에 장애인들의 삶은 팍팍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장애인들의 생활여건을 개선해 주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에이즈 환자까지 장애인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장애인 가운데 에이즈 환자가 끼어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더욱 심해질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서울시는 일본 등 몇몇 선진국에서 에이즈 환자를 장애인에 포함시켜 각종 복지 혜택을 준다는 사실을 정책 추진의 근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장애인과 에이즈 환자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이 그 나라들과는 다른 만큼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자체가 무리이다. 국내 에이즈 환자는 6월말 현재 4051명이라고 한다. 그 정도 인원에게 의료·복지 혜택을 주는 방법은 얼마든지 따로 있을 것이다. 그들을 섣불리 장애인으로 지정해 기존 장애인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정책은 있어서는 안 된다.
  • ( ) 이/가 제일 많은 동네는?

    전국에서 학원이 가장 많이 몰린 곳은 서울 대치1동으로 나타났다. 복덕방은 역삼1동,PC방은 신림9동에 가장 많았다. 사업체 대표 5명 중 2명은 ‘여(女)사장님’인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청이 19일 발표한 ‘사업체 기초 통계조사 잠정결과’에 따르면 일반입시학원과 언어학원은 서울 대치1동에 364개가 몰려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이어 경남 김해시 내외동에 1개 적은 182개 학원이 몰렸다. 고양시 일산3동(145개), 울산시 옥동(144개), 성남시 정자1동(142개)이 뒤를 이었다. 부동산중개업은 역삼1동이 364개로 가장 많았다. 이어 파주시 교하읍(212개)과 논현1동(193개) 순이었다. PC방의 경우 ‘신림 고시촌’으로 불리는 서울 관악구 신림9동이 80여개로 1위를 차지했다. 숙박시설이 가장 많은 곳은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인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으로 무려 312개가 성업중이었다. 병·의원은 서울 역삼1동이 221개로 가장 많았으며, 일반음식점은 서울 종로1·2·3·4가동이 1132개로 1위를 차지했다. 금융업체는 전통적 은행가인 서울 명동이 204개로 가장 많았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7) 정읍 태인~전주시 원동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7) 정읍 태인~전주시 원동

    호남대로는 한양과 충청·전라도를 수직으로 가깝게 연결하는 옛길이다. 선조들이 걸었던 옛길이 후손들에 의해 건설된 국도 1호선이나 호남고속도로와 겹치는 부분이 많은 것을 볼 때 길과 도시 발달의 역사는 결코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호남대로는 때로는 험한 산을 넘고 물살 거센 강을 건너기도 하지만 드넓은 평야지대를 지나는 곳이 많다. 들녘을 걷는 것이 산을 넘는 것보다 힘이 덜 든다고 하지만 발품을 팔아 먼길을 가는 것은 역시 고단한 일이다. 호남평야에는 겨울이면 살을 에는 듯한 모진 북서풍이 몰아친다. 서해안에 가까운 지역은 눈보라도 많아 자칫 길을 잃기 십상이다. 여름에는 뜨거운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숲도 드물다. 그러나 넉넉한 들판 만큼이나 인심 후한 전라도 길은 나름대로 풍류와 멋이 넘쳤던 것으로 전해 내려온다. ●민초들의 애환 서린 호남평야 호남평야는 한반도에서 가장 넓은 들판이다. 전북 전주, 군산, 익산, 정읍, 김제, 완주, 부안, 고창 등 8개 시·군에 넓게 펼쳐져 있다. 남북으로 80㎞, 동서로 40㎞이며 면적은 약 3500㎢에 이른다. 제주도와 비슷한 넓이고 서울시의 3배 정도이다.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이 넓은 들은 예부터 기름지고 농사가 잘돼 “조선 팔도가 흉년이 들어도 호남이 있어 굶어죽지 않는다.”는 말이 내려오고 있다. 호남(湖南)이라는 말은 우리나라 수자원개발의 효시인 김제 벽골제, 익산 황등제, 정읍 눌제 등 3개 호수의 남쪽이란 뜻이다. 벽골제는 백제 비루왕 27년(330년)에 쌓았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둑의 길이가 3.3㎞, 물을 대주는 몽리면적이 1만㏊이며 수문도 5개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1700여년이 지난 오늘 날에도 ‘장생거’와 ‘경장거’ 두 수문의 돌기둥이 고색창연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묵묵히 펼쳐진 이 들판은 수많은 민초들이 한을 움켜쥐고 살아온 땅이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에 시달렸고 일제시대에는 뼈아픈 수탈의 현장이었다. 허리 휘도록 고생한 보람 없이 자식처럼 애지중지 가꾼 쌀을 빼앗기고 억울함과 배고픔에 서럽게 울부짖었던 애환 서린 곳이다. 오늘 날에는 KTX가 시원스럽게 질주하는 황금 벌판이지만 역시 지역개발에서는 소외된 슬픔을 겪고 있다. 길은 호남평야의 동쪽 부분을 구슬 꿰듯 뚫고 지나간다. 호남평야 동남쪽 초입인 정읍시 입암면에서 정읍시내, 태인면을 거쳐 김제시 원평면과 금구면을 향한다. ●동학군·관군 최후 결전장 원평 역사와 문화의 고장 정읍 태인을 뒤로 하고 솟튼재를 넘으면 김제시에 들어선다. 솟튼재는 평야부에서는 제법 높은 산길이다. 김제시는 도작(稻作)문화의 발상지요 우리나라 제1의 곡창인 호남평야의 중심지이다. 옛길은 태인부터 김제 원평까지 국도 1호선과 거의 일치한다. 이 때문에 2차선 포장도로로 변했던 옛길에 4차선 확장 공사가 한창이다. 다만 태인 독양마을에서 용호교 부근까지는 국도 1호선 서쪽으로 약간 벗어난다. 솟튼재를 넘는 길도 국도 1호선은 산길 구배를 따라 구부러지지만 옛길은 직선이다. 태인∼원평간 옛길은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치기 위해 달려간 진격로이자 보급로이다. 왼쪽으로는 호남평야이고 오른쪽은 모악산 자락이다. 김제 초입 신장마을을 지나면 원평시장이 보이고 이어 원평초등학교 앞을 통과한다. 원평면은 호남평야에서 가운데 토막인 금만평야의 동쪽 끝부분이다. 예전에는 원평이 금구현에 속한 작은 교통 취락이었으나 현재는 금구보다 훨씬 크다. 행정 구역도 금산면 원평리이다. 원평은 전략적 요충지여서 관군과 동학 혁명군이 가장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동학군의 주된 근거지도 원평이었다. 전봉준을 비롯한 혁명군의 수뇌부가 이곳에서 머물면서 집강소를 호령했다.2차 봉기했던 동학군이 일본군에 패퇴하면서 최후의 결전을 치른 곳도 이곳이다. 동학군을 이끌었던 김덕명 장군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김 장군은 금구의 동학 대접주로 1894년 교도 2000명을 이끌고 전봉준 장군과 함께 선봉장 역할을 했다. 김 장군은 공주 전투에서 관군에 패한 뒤 원평 전투를 마지막으로 농민군 지도자들과 함께 몸을 숨겼다가 주민들의 밀고로 체포됐다. 원평에는 그의 넋을 기린 학수제가 있다. 원평초등학교 앞에서 오른쪽으로 지방도 712호선을 타고 가면 모악산과 금산사가 나온다. 모악산은 노령산맥의 중봉으로 해발 793m이다. 김제시 금산면과 완주군 구이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호남평야의 전망대로 불린다. 정상에서 내려다 보면 호남평야가 발 아래 아스라히 펼쳐진다. 증산교와 단학을 비롯한 수많은 신흥종교 교조와 교주들이 이 산에서 득도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모악산 남쪽 자락에는 대가람 금산사(金山寺)가 자리잡고 있다. 1400여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금산사는 599년 백제 법왕의 자복 사찰로 창건됐다. 국보 1점(미륵전·국보62호), 보물 9점, 지방유형문화재 1점 등 11점의 지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전라좌도와 우도 사찰을 관할하는 규정소로 지정된 미륵신앙의 성지다. 진표율사는 금산사를 근본도장으로 해 법상종을 5교9산 중의 한 종파로 발전시켰다. 원평을 빠져나온 옛길은 원평천을 건너면서 다시 1번 국도와 합쳐진다. 왼쪽으로는 호남고속도로가 달린다. ●사금의 고장 금구 금산면과 금구면 경계 부근에서 1번 국도는 우회도로로 변하지만 옛길은 곧장 금구면 소재지를 향한다. 금구는 사금(砂金)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모래를 걸러 금을 찾는 ‘골드 러시’가 이어졌다. 지금도 농사철이 끝나면 대형 중장비들이 논을 파헤쳐 사금을 캐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원평에서 4㎞ 떨어진 금구 소재지 역시 동학군과 관군의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다. 원평보다는 적지만 관군과 동학군 모두 많은 희생자를 냈다. 옛길은 금구 소재지 금구향교 앞에서 급하게 왼쪽으로 꺾이면서 국도 1호선, 호남고속도로와 교차해 우산마을 옆을 지난다. 금구향교 앞에는 온갖 풍상을 지켜본 40여개의 공덕비가 늘어서 있다. 이곳에서부터 완주군 이서면을 거쳐 삼례읍에 이를 때까지 국도 1호선과는 완전히 멀어진다. 호남고속도로를 왼쪽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나란히 북진한다. 두월천을 건너면 왼쪽에 거북이 바위가 나온다. 바위 맞은 편 마을이 구암마을이다. 이 마을을 경계로 김제시 금구면이 끝나고 완주군 이서면이 시작된다. 이서면 소재지까지 이어지는 길은 조용한 2차선 도로다. 옛길은 약간 높은 구릉지대여서 왼쪽으로는 드넓게 펼쳐진 호남평야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옛길은 이서면 소재지에서 국도1호선과 교차해 면사무소, 삼우중학교 옆을 지난다. 호남고속도로 전주 인터체인지까지 평야부와 야트막한 구릉지대가 번갈아 이어진다. 교통량이 적어 매우 한적한 전원적인 분위기의 2차선 도로다. 이서면 반교리 일대에는 국내 최대의 관상어단지가 조성돼 있다. 물고기 마을에서는 1만 6000㎡에서 80여종 200만마리의 관상어를 관람할 수 있다. 물고기 마을부터 전주시 원동까지는 구릉지대다. 황토밭에는 배과수원들이 몰려 있다. 원동을 지난 옛길은 지방도 25호선인 전주∼군산간 도로를 가로질러 호남고속로와 나란히 완주 삼례를 향해 나아간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사라진 옛길 너무 많아 하루빨리 복원해야” “옛길을 되찾아 복원하고 보호하는 사업은 지금 하지 않으면 못합니다. 하루가 시급한 일 입니다.” 김병학(전 김제문화원장·77)씨는 “도시개발과 사회간접시설 확충 사업이 급속히 추진되면서 온데 간데 없어진 옛길이 너무 많다.”면서 “옛길에 대한 고증을 해 줄 수 있는 세대가 아직 살아있는 시기에 서둘러 복원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이가 지긋한 마을 원로들에게도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옛길을 청·장년들은 전혀 알 수 없고 관심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90년대 중반 김제지역 지명과 마을 이름의 유래를 파악하기 위해 시 전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우리의 역사와 옛길이 일제에 의해 너무 많이 파괴됐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 아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평생을 농촌운동과 향토문화창달에 헌신해온 김씨는 “옛길과 옛 지명에 얽힌 사연과 유래만 알아도 우리 역사의 반은 파악될 것”이라며 사라진 옛길을 아쉬워 했다. 일제가 옛 지명과 길 이름들을 나름대로 재해석해 개명하는 바람에 엉뚱한 이름이 진짜인 것인 양 사용되고 있다는 것. “김제시는 도작문화의 발상지요 호남평야의 중심지입니다. 이 때문에 문화·예술이 발달한 문화의 고장이고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 인재의 고장입니다.” 그는 호남평야를 관통해 한양으로 향하던 김제지역 옛길만이라도 제대로 복원해 마라톤 코스나 자전거 여행 답사길로 만들면 조상의 얼을 오늘에 되살릴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옛길 복원사업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옛길을 복원하면 자동차가 다닐 수 없어 도보여행이나 자전거여행을 해도 매우 안전하고 뜻깊은 도로가 될 것이라는 것. “옛길은 목적지를 향해 최단 시간에 도달할 수 있는 지름길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지금 새로 나는 도로들은 도시와 마을을 피해 우회하는 경향이 있지요.” 그는 “고문헌과 서적을 뒤져보면 옛 지명과 길에 대한 자료를 어렵게 구할수 있지만 실제로 찾아보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면서 “옛길은 아직도 이용되는 곳이 많기 때문에 적은 사업비로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믿을 수 있는 국내산이잖아요”

    “믿을 수 있는 국내산이잖아요”

    우체국 쇼핑이 날개를 달았다.3500여개 우체국망을 통해 6400여개의 상품이 전국으로 팔려 나가면서 올 초 누적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무엇보다도 믿을 수 있는 ‘국내산’ 전문 판매망이라는 신뢰가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지난 7일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청평리의 가평농산. 추석을 앞두고 비좁은 공장에서 2대의 잣 가공기계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 장문호(51) 사장이 팔을 걷어붙이고 잰 손놀림으로 잣을 포장한다. 이 상품은 우체국 쇼핑을 통해 전국 각지의 소비자들에게 전달된다. 우체국 쇼핑은 장 사장이 지난해 12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데 톡톡히 효자 노릇을 했다. 가장 큰 어려움이었던 판로 개척의 문제를 해결해 줬다. 우체국 쇼핑 사업자라는 점 때문에 신인도가 높아지면서 대기업 등에도 납품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지금까지 누적매출이 100억원을 넘는다. 우체국 쇼핑의 상품 선정 과정은 매우 까다롭다. 서류 심사를 한 뒤 생산현장을 직접 방문해 위생 상태와 원산지를 확인한다. 전문가와 소비자단체 관계자들이 직접 맛을 보고 성분 표기까지 꼼꼼히 살핀다. 이런 3단계 검증과정을 거쳐 문제가 없어야 정식 판매목록에 오른다. 판매개시 이후에는 소비자 이름으로 몰래 상품을 주문해 점검하는 ‘암행감찰’이 수시로 이뤄진다. 가평군 김옥경씨는 우체국 쇼핑을 통해서만 9000상자의 잣한과를 판다.3억원어치다. 한해 매출이 거의 모두 추석 2주 전부터 10일동안 발생한다. 추석을 앞두고 주문이 밀리다 보니 주민 30명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해 대목 일손을 충당하고 있다. 가평우체국에도 비상이 걸린다. 특별·임시편까지 투입해 배달에 나서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이삿짐센터 차를 빌려 배달할 정도다. 가평우체국 한해 소포·택배량의 60%인 3만여건이 잣과 잣한과 우체국 쇼핑에서 발생한다. 정세훈 가평우체국 우편주임은 “우체국 쇼핑은 지역특산물을 알리는 데도 1등 공신”이라고 말했다. 우체국 쇼핑은 1986년 12월 농수산물의 판로개척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시작됐다. 초기에는 순창고추장, 완도김 등 8개 상품이 전부였다. 사업시작 이듬해 매출이 7억 4400만원에 불과했지만 이후 성장을 거듭하면서 최근 5년간은 해마다 1000억원이 넘었다. 한편 우정사업본부는 추석을 맞아 17일까지 4500여종의 국산 농수산물을 우체국 쇼핑을 통해 최고 20% 싸게 판매한다. 우체국을 직접 방문하거나 온라인 우체국 쇼핑몰(www.epost.kr), 우체국 콜센터를 통해 살 수 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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