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평론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641
  • 미국영화 성 표현 갈수록 노골화

    ◎“벗기기 논란” 빚은 「쇼걸」 흥행에 자극/“X급 판정도 좋다” 포르노 처럼 제작 「쇼걸」이란 매우 섹시한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미국영화가 성적으로 더 한층 노골화될 전망이다. 과도하고 무책임한 폭력과 성장면이 판친다고 미국영화를 비판하는 소리가 미국내·외에서 거센데 이를 돌려 생각하면 미국영화는 성표현에서 무제한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판단이 뒷받침된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나라보다도 헌법의 「표현의 자유」 권리가 실제적인 힘을 발휘하는 미국에선 무슨무슨 내용의 영화는 안된다는 검열이 있을 수 없다.아무 영화나 만들 수는 있겠으나 국내 극장매표수입이 연 60억달러(4조5천억원)에 달하는 미국이지만 모든 영화가 팔리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상식과는 달리 미국에서 지나치게 성적인 영화는 관객 이전에 극장에 잘 「팔리지」 않는다. 「쇼걸」이란 영화와 이의 「성공」을 둘러싼 과정을 살펴보면 미국영화의 성적 현주소가 좀더 정확히 드러난다. 뒷골목 스트립댄서가 라스베이거스 특급호텔의 「스타」댄서로 출세하는 과정을 그린 쇼걸은 어느 평론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이 이처럼 두껍게 옷을 껴입고 있는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고 느낄 만큼 누드장면이 항다반사로 나온다.이 누드과다는 미국수준을 훨씬 넘어선 것으로 쇼걸이 상영이전부터 문제와 화제가 된 이유였다. 미국엔 검열이나 공연윤리위의 가위질은 없으나 현수준에서 다소라도 벗어난 영화를 만든 감독·제작자를 초조하게 만드는 영화계 자체판정인 등급심사가 있다.전미영화협회(MPAA)가 매기는 등급중 관객제한정도가 가장 심한 등급을 맞으면 영화내용이 아무리 신선하고 화끈하더라도 「장사」는 다 해버린 것으로 여겨져왔다. 많은 감독이 위험수준에 육박하는 「멋진」 내용과 장면을 막판에 스스로 서둘러 삭제하고 순화시키는 까닭이 바로 이 장사를 망치는 NC­17등급을 피하기 위해서다.그런데 쇼걸은 용감하게도 이 등급판정을 두려워하지 않고 누드장면을 원하는대로 다 집어넣었다.당연히 이 판정이 내려졌다. 17세이하 절대입장불가판정인 NC­17은 예전의 X급 판정으로 정식 포르노냄새가막 나려고 한다는 이런 등급 영화는 긴 안목에서 장사를 생각하는 극장이 받아주길 꺼려하며 언론매체도 광고를 잘 실어주지 않아 처음부터 돈댈 제작자나 스튜디오를 찾기가 어렵다. 그런 가운데 음침한 골방에서 제작한 포르노성 영화이기는커녕 무려 4천만달러를 들여 미국 7대메이저 스튜디오중의 하나인 MGM이 만든 쇼걸은 지난달말 누드신과 「할리우드 본격영화로서 NC­17급을 피하지 않은 최초영화」라는 선전과 함께 전국상영에 들어갔고 예상외의 성공을 거뒀다. 폴 베호벤감독과 각본을 쓴 조 에스터하스는 「원초적 본능」 팀으로 누드 외에는 별내용이 있을 수 없는 쇼걸의 마케팅전략으로 기발한 NC­17등급작전을 짰다는 사후평가를 받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이나 보브 돌 대통령출마자나 모두 미국영화의 저질성을 우려하는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쇼걸은 미 전극장의 70%에 가까운 1천4백개 극장이 상영을 허락했고 3대 텔레비전 전국네트워크도 이 X급 영화선전을 받아줬다.상영 첫 주말(금·토·일) 매표수입은 8백만달러를 넘어서 2위를 기록했다(1위 1천4백만,3위 4백만달러). 누드 외엔 하품만 나온다는 평론가가 수두룩하지만 용감한 쇼걸의 본을 받아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NC­17,X급판정을 기피하지 않고 영화를 만들 가능성이 짙어 미국영화의 성표현은 지금보다 노골화될 것이 틀림없다.
  • 극작가 차범석(이세기의 인물탐구:83)

    ◎리얼리즘 바탕 「정통극 파수꾼」 40년/대표작 「산불」 전쟁의 인간파괴 신랄하게 묘파/부당한 것 거부하는 「연극계 면도칼」로 한평생/최승희 무용보고 「무대 인생」 예감… 이해랑·유치진 문하서 엄격한 수련 희곡작가 차범석은 연극계의 로맨티시스트다.동숭동 마롱카페에 나가보면 젊은 연극인들에게 둘러싸여 그는 맥주를 마시며 연극과 인생을 논하고 있다.「주역만 있고 조연 없는 연극은 있을 수 없다.우리의 삶은 큰 배역만 탐내는 한편의 연극 같이 보이지만 작은 배역 없이 큰연극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파우스트보다 메피스토 텔레스가 진짜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역이듯이 무대 구석구석에 세워둔 단역조역들의 몫에서 극중 희열과 비감,완미가 성취된다.무릇 물이 얕으면 큰배를 띄울 수 없는 것과 같이 깊고 다양한 여러 경험이 크고 광활한 연기력을 키운다」고 후배들을 가르친다. 한배우가 무대에 등장했다가 맡은바 임무를 다하고 퇴장하기까지 그것은 하나의 삶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일이다.그런만큼 배우는 등장도 중요하지만 퇴장도 중요하다.막을 내리기가 무섭게 분장을 지우고 무대를 떠나는 사람을 보면 「자기포기와 무책임」이 느껴지지만 연기의 온기를 오래도록 가슴에 담는 배우의 모습에선 「비장미가 넘친다」고 찬양해 마지않는다. 그가 63년부터 20년이나 이끌던 극단산하를 해체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연극을 지상목표로 삼으려는 의지는 눈비비고도 찾아볼 수 없이 연기를 가르쳐 무대에 설만하면 그들은 철새처럼 돈을 따라 텔레비전으로 가버린다」고 했다.「연극은 집단예술인만큼 인간적인 결합 없이는 아무런 작업도 가능하지 않다.그럼에도 정신적인 반항이 없는 정지된 예술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껍질을 깨는 아픔을 모르는 젊은이들이 환멸스럽다」고 그는 한 글에서 개탄하고 있다.이어서 「기대할 수 없는 것에 얽매어 질척대는 것은 자기비하이자 존재를 흩트리는 추일 수 밖에 없으며」「부나비처럼 떠도는 인간불신풍조속에서 나만이 홀로 절개와 의리를 지키는 것은 명분 없다」고 절규했다. 적자를 면치못하는 극단의 영세한 상황속에서도 「산불」「밀주」「대리인」「손탁호텔」등 알찬 창작극으로 꾸준히 「좋은 무대」를 이끌던 산하는 「연기자의 연극정신부재」「저질공연우려」등을 내세워 83년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련과 아쉬움을 남긴채 이렇게 무대에서 사라져갔다. 칠순의 나이와는 상관 없이 언제나 만년청년 같은 그는 옛 예술가의 낭만과 니힐과 반항과 순수를 지금도 면면히 지니고 있다.그가 「한달이면 29일」을 술을 마시는 이유는 사람들과의 따사로운 온정에 굶주려 「정을 마시기 위해 술잔을 든다」는 것이며 인생의 어둡고 뒤틀린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긍정에의 동경이 너무 강한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40년간 「연극계의 면도칼」로 불리면서 그는 과연 부당한 것을 굳이 옳다고 양비론을 펼치거나 불가능한 것을 가능할 수 있다고 과장한 적이 없다.연극상을 심사하는 과정에서도 무의미한 공연기록과 긴 연륜을 앞세우기보다 작품의 질과 연기력을 따져 날카롭게 자격여부를 가려낸다.또한 스스로의 조로를 경멸하여 연극의 모든 일에 은근히 참여하고 옳바른 소리를 주저 없이 하면서도 「번뜩이는 재기나 교변」 사물에 대한 심정의 움직임에서 세말적인 기미대신 싱그러운 미소로 만사를 감싸기 때문에,각층의 폭넓은 호감을 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극단산하를 잃은후 그는 한국연극협회 이사장,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사,대한민국예술원회원과 청주대 예술대학장등 여러 역할을 전전했다.86년에는 88올림픽을 앞둔 88서울예술단 초대단장에 임명되었으나 이번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창단기념 시연회에서 공연을 관람하던 관련장관이 코를 골고 잔 것에 자존심을 심하게 상한 나머지 사표를 내던진 씁쓸한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 시간과 함께 그의 까다로운 일면은 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졌고 반항과 증오와 충동에서 시작한 초기의 경험을 버리고 「삶이란 양파를 벗겨내듯 아무리 벗겨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는 서서히 깨닫게 되었나보다.그 때부터 톡쏘는 옳은 소리를 줄이고 자신을 스스로 경계하는 계신공구의 자세로 전환했다. 그의 지나온 인생은 평온한 중에 끝 없는 파고가 잔물결처럼 파동치는 것이 남과 다르다. 목포의 개화되고 풍족한 집안에서 일본 메이지대(명치대) 법학과를 나온 차남진씨의 3남3녀중 차남. 남부러울 것 없는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내면서 집안의 서고에 파묻혀 아리시마 다케오(유도무낭) 무샤노코지 사네아쓰(무자소로 실독)의 소설에 탐닉하고 일본 히메지(희로)고교에 시험을 보러갔다가 낙방하고 돌아오는 길에도 후지자와 다케오(등택)의 「신설」을 가슴에 품을 만큼 열렬한 문학지망생의 시기를 보냈다.어릴 때의 아명은 평균.광주고보시절 목포 평화극장에서 열린 최승희무용공연을 보고 「정중동의 미세한 움직임과 끊어질듯 이어지고 멈춘듯 움직이는 유현미와 고담미」에 반해 그는 훗날 「무대」와 관련을 갖게 되리라는 예감을 굳혔다. 그는 철저한 리얼리스트이기도 하다. 뒤늦게 23세에 대학에 진학해서 문자그대로 「경마장의 말처럼 정해진 코스를 필사적으로 달리면서」 엄격한 스승인 이해랑 유치진문하에서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정통극」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연극계는 언제부턴가 「리얼리즘의 희곡작가」 또는 「리얼리즘의 파수꾼」으로 그를 부르게 되었다. 「나름대로 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치열하게 몸부림쳐왔다.나라는 인간은 일관성도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온 모순덩어리라는 생각 때문이다.그 증거로 나의 인생행로에는 투쟁이나 저항의 흔적이 없다.적극적인 동참이나 협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그렇다면 나는 뭐란 말인가」.그러나 평론가 유민영은 「그의 작품은 투철한 역사의식으로 구시대의 붕괴와 전후의 사회변화,변천하는 사회속에 갈등하는 개인의 삶을 끈질기게 묘파」하고 있고 특히 대표작 「산불」은 「전쟁이 얼마나 철저하게 인간을 파멸시키는 가를 미사여구나 기교 없이 신랄하게 파고든 리얼리즘 희곡의 최고봉」으로 손꼽고 있다. 지난해 출판한 고희기념문집 「목포행 완행열차의 추억」에서 그는 「지금까지 나는 대과 없이 살았고 욕심부리지 않았고 하고싶은 일과 가고싶은 길을 지칠줄 모르고 살았으니 행복하다」고 고백하고 있다.영원한 동반자인 박옥순여사와의 사이엔 3남2녀.자녀는 모두 출가하고 송파구 가락극동아파트에서 부부가 노후를 함께 하고 있다. 언제나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소시민」을 자처하고 있지만 실은 서릿발 같은 차가운 이성을 정으로 융해시킨 처절한 삶의 애가와 뜨거운 인간애의 정수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는 참으로 「큰배우」의 역할이 아닐 수 없다.이제 그의 퇴장은 「한편의 좋은 작품」을 남기는 일이며 연극계가 그를 두고 「이시대 마지막 휴머니스트」라고 한 말대로 그는 지금도 동숭동 마롱카페에 앉아 「배우가 되기전 먼저 인간이 될 것」을 젊은 연극인들에게 당부하며 그의 「정」을 높이 치켜들고 있다. □연보 ▲1924년 전남 목포 출생 ▲1942년 광주고보 졸업후 도일 ▲1946년 연희전문 문과 입학 ▲1949년 제1회 전국대학연극경연대회 희랍극 「오이디푸스왕」연 출 수상 ▲1951년 처녀작 「별은 밤마다」 공연(목포문화협회 주최)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밀주」당선,제작극회 창단 ▲1961∼71년 문화방송 제작부장·편성부국장 역임 ▲1962년 「산불」 초연(국립극단) ▲1963∼83년 극단 「산하」대표 ▲1965년 이대·연대 출강 ▲1966년 연세대 영문과졸업,국제PEN대회 뉴욕회의 참가 ▲1968∼74년 한국연극협회이사장 ▲1969년 신연극 60주년기념 「그래도 막은 오른다」 공연 ▲1972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사 ▲1973년 예총부회장 ▲1975년 ITI베를린회의 참가 ▲1978년 ITI한국본부 부위원장,대한민국연극제 심사위원 ▲1981년 대한민국예술원 정회원 ▲1983년 서울극작가그룹 발족,회장 ▲1984∼86년 청주예술대학장 ▲1986년 서울88예술단장 ▲1988년 청주대 교수협의회회장 ▲1991년 「연극의 해」집행위원장 대한민국 예술원회원·한국연극협회이사·공연윤리위 심의이원 희곡집 「껍질이 째지는 아픔없이는」「대리인」「산불」「학이여 사랑일레라」「식민지의 아침」,수필집 「거부하는 몸짓으로 사랑했노라」,고희기념문집 「목포행 완행열차의 추억」,차범석문학전집(12권·융성출판)등 대한민국 문화예술상(70)·대한민국 예술원상(82)·동랑연극상(83)·대한민국 문학상(91)·이해랑연극상(93)
  • “지구촌 민족분쟁 비관할때 아니다”/메이네즈(해외논단)

    ◎냉전때보다 잔인성 덜하고 열강 패권의도 없어 냉전 종식과 더불어 고개를 내밀던 지구촌의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가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민족분쟁등으로 어느새 많이 퇴색해지고 있는게 사실이다.하지만 미국의 계간 외교정책전문지 「포린 팔리시」의 총편집인인 찰스 윌리엄 메이네즈씨는 이 잡지 최근호에서 「비관할 때가 아니다」라는 글을 통해 이같은 비관적 태도와 분위기에 제동을 걸었다.그의 글을 소개한다. 많은 머리좋은 학자들이 미래에 대한 비관적 견해를 강력 표명하고 있다.로버트 카플란은 평화도 법도 없는 무정부의 세계를 전망하고 있고 매슈 코넬리와 폴 케네디는 이민과 인구동태를 바탕으로 이같은 무정부상태를 미국에 국한해 전개하는가 하면 새무엘 헌팅턴은 중국·동양의 황화와 회교과격주의에 대한 서양의 내재된 공포를 증대시켰다.존 미어스하이머에 따르면 냉전이후 국제관계가 한층 불안해져 유럽 주요국들이 모두 핵무기를 개발하는 등 냉전이 더 낫다는 생각이 강해진다는 것이다.그들의 생각이 옳은가. 물론 이런 사상가들은 시대를 이끈다기 보다는 세태를 반영한다.미국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보수적인 시대를 거치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비관주의는 잘 살거나 정치적 현상유지를 바라는 계층이 선택하는 정조이다.비관주의는 자포자기할 수 밖에 없는 못 사는 사람들의 곤궁에 대한 상류계급들의 수동성을 정당화해준다.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대신 식량증가는 산술적으로 밖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맬더스나 자기외에는 만인이 모두 적이라는 홉스 등이 가장 고전적인 예라 할 수 있다.여기에다 어떤 것을 덧붙일까. 94년 유엔개발계획은 인간개발보고서에서 89년부터 92년까지 모두 82건의 분쟁이 터졌다고 밝히고있다.세계1,2차대전이나 베트남전에 비하면 소규모이긴 하지만 이중 79건이 내전 성격의 분쟁으로 수천명이 죽었다.비슷한 분쟁이 발발할 소지는 수없이 많은데 이를 방지할 대책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현재의 국제상황이 심난한 사고덩이로 보이는 것은 우리들의 기대치가 높은 탓도 무시 못한다.지나간 냉전을 너무 좋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탈냉전과함께 갈등을 억누를 수 있었던 두 동맹체제가 사라진 연유로 새 민족분쟁들이 속출한다고 설명하는 정치학자들이 많다.그러나 실은 냉전은 지금 시기보다 훨씬 폭력적이었다.냉전기간 동안 두 초강국은 세계 이곳저곳에서 참혹한 대리전을 벌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편리하게도 망각해버린다.3백만 이상이 한국전에서 죽었으며 베트남전에서는 2백만명 이상이,아프가니스탄에선 1백만명이 죽었다. 이 숫자에 중국내전으로 죽은 수천만명,지난 65년 인도네시아 정부의 공산주의 소탕작전 희생자 30만명,중앙아메리카 여러나라의 내전과 중동지역 국가간 전쟁으로 죽은 수십만명,전쟁과 정부의 고의적 방치로 남부아프리카에서 이름없이 죽어간 수십만명 등이 보태져야 한다. 이들 숫자들을 배경으로 하면 지금의 세계는 참으로 평화스러워 보인다.보스니아 같은 곳에서 잔인한 분쟁이 계속되고 르완다에서 말 그대로의 종족대학살이 일어났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같은 종족갈등은 냉전의 대리전이 보여준 조직적인 잔인성에는 못 미친다. 냉전의 종식으로 잠재한 종족갈등을 가리고있던 담요짝이 들춰내졌지만 또 모든 인류의 머리 위를 감싸고 있던 공포의 먹구름도 걷혀졌다.더 이상 인간을 흔적없이 휩쓸어갈 청천벽력의 원자 천둥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예전의 백만명대 희생자 시대에 비해 현재의 숫자는 수만,수십만명에 그친다. 물론 쓸데없는 헛된 죽음은 우리를 화나게 하지만 최근래에 우리들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대가 겪어야만 했던 끈질긴 살육전을 보지 않아도 된다.보스니아전은 처절한 비극이나 희생자 수는 중앙아메리카나 레바논에서 보다 적은 것으로 여겨진다.또 앙골라와 수단 전쟁은 공포스러운 것이지만 현대전쟁의 사나움과 사정없음은 결여되어 있다. 우리에게 또 다행스러운 점은 전쟁승리의 과실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전쟁은 잘하면 이문이 남는다는 것을 역사는 가르쳐왔다.그러나 아프가니스탄,캄보디아,이스라엘 점령지역 등이 예시하듯 요즘 전쟁은 이겨도 별로 큰 이득이 없다.이해다툼 전쟁이 최근 아주 드물어진 이유를 알수 있다. 패권주의 강국의 시대는 지났다.과거의 헤게모니 다툼은 이데올로기와 세력숭배에서 기인되었지만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설파했듯 적어도 예측가능한 미래에는 이데올로기는 죽은 신세다.세계를 휘어잡으려는 헤게모니 추진력을 주는 이데올로기를 찾기가 어렵다.한창 맹위를 떨치는 이슬람은 공격보다는 방어의 신조다.세력 숭배도 한물 갔다.특히 아시아에서 힘은 내부적 발전에서 오지 외부적 팽창에서 오지 않는다는 점을 여러 성공적 정권이 증명했다.예를 들어 중국은 베트남 필리핀 등과 함께 스프래틀리군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데 중국이 이 섬들을 힘으로 차지한다고 해서 중국의 아시아대정벌 시대가 도래했다고 볼 사람은 소수다. 많은 시사평론가들은 세르비아를 영토확장에 혈안이 된 히틀러 제3제국의 현대판으로 저주한다.분명 세르비아의 여러 행위들은 발칸반도의 평화를 산산조각 내버렸지만 그렇다고 세르비아가 한때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유럽 전체의 안보를 뒤흔들고 있는것은 아니다.독일의 침략행위는 단지 모든 독일인을 제3제국이란 한 국가에다 결집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력숭배의염을 안고 이 강력한 제국을 이용해 유럽전체의 헤게모니를 잡고자 한 것이었다. 오늘날 표면적으론 더 많은 동란이 불거져 나오고 있지만 강대국중 어느 한 나라도 헤게모니를 움켜쥔 패자가 되고자 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서 국제간 시스템은 구조적으로 아주 건전하다고 할수 있다.
  • 소설가·요절시인/동화·동시집 나란히 출간

    ◎이청준 동화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고 권태응 동시집 「감자꽃」/「할미꽃…」­다섯살 은지 눈으로 본 삶과 죽음/「감자꽃」­일제시대 저항시인의 동시모음 우리 문단에서 가장 지적인 소설가중 한명이 쓴 동화와 40년대말 시골정경을 그림처럼 보여주는 유고 시인의 동시집이 나란히 나온다. 작가 이청준씨(56)의 동화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열림원)와 고 권태응 시인의 동시집 「감자꽃」(창작과 비평사)이 그것. 독자들을 모처럼 동심으로 돌려놓는 이 책들은 티없이 단순한 아이들의 세계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문학의 본질이 이미 다 들어있음을 깨우쳐준다. 「할미꽃…」은 은지라는 어린 소녀의 눈을 빌려 늙음과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이야기.다섯살 은지의 열네갑절이나 연세가 드신 할머니는 「내살을 베어 먹여도 아프지 않을 만큼」 은지를 끔찍이 아끼신다.그런 할머니가 해가 갈수록 키가 작아지고 기억이 지워져가자 은지는 안타깝기만 하다. 수심에 잠긴 은지에게 엄마와 아빠는 말한다.할머니의 키가줄어드는건 은지에게 나이를 나눠주기 때문이고 기억이 엷어지는건 은지에게 삶의 지혜를 되돌려주기 위해서라고.할머니의 에끼스를 받아먹고 새세대가 풍요롭게 피어난다는 요지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엔 관념적인 문체로 줄곧 실존의 문제를 다뤄온 이씨의 소설세계가 밑그림으로 깔려있다.생명받은 자끼리 서로 부대끼며 한을 품게 되는 삶의 고리를 끊을 해답으로 이씨는 조건없이 흘러넘치는 사랑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 실제로 노모를 잃은 이씨는 현재 이 동화를 모티브로 소설 「축제」를 쓰고 있다.작가는 치매현상을 보이는 어머니를 둔 임권택 감독과 손잡고 이 소설을 영화화할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동시작가 권태응을 모르는 사람도 다음의 동요는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감자꽃」 지난 18년 충주에서 난 시인은 37년 일본 와세다대학 재학중 「독서회사건」으로 1년간 옥살이를 했다.이때 얻은 폐결핵이 악화되면서 33세로 요절했다.일제치하에서 「사람의 근본을 속일수는 없다」는 저항의 의미로 읽힌 「감자꽃」을 비롯,시인은 쉬운 우리말로 평범한 자연현상이나 삶의 이치와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노래를 썼다. 「청개구리」 「등심 머릿심」 「틀리는 걱정」 문학평론가 유종호씨는 해설을 통해 「하늘에는 별이 있고 땅에는 꽃이 있다고 옛날부터 말해왔습니다…노래와 얘기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 세상의 별이요 꽃입니다」라면서 시인의 시를 재미있고 유익하고 외기 쉽고 진솔하고 공감이 간다고 평가했다.
  • 유종호 교수「인문주의 평론」40년 결산/회갑맞아 비평집 5권펴내

    ◎“품위·스타일 감춰야 참된 작가”/「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뒤늦게 시인으로 데뷔 『문학이란 언어로 된 예술입니다.아무나 쉽게 흉내낼순 없어요』 회갑을 맞아 자신의 비평세계를 아우르는 전집을 민음사에서 펴낸 중진문학평론가 유종호씨(60·이화여대 영문과 교수).자타가 공인하는 인문주의자답게 그는 문학은 「품위」있어야 한다는 돈독한 믿음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우리 평단에서 그의 이름이 일으키는 공명은 크다.지난 57년 첫 평론을 선보인 이후 약 40년간 그는 무게있으면서도 매끄러운 문장으로 한국 평론계의 전범이 돼왔다.그 평론의 너비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친절하면서도 따끔한 개론강의에서부터 작가의 속에 들어갔다 나온듯 자유자재한 작품론,그리고 인문주의 입장을 정연한 논리로 강화하는 문학론 등에 이른다. 전집은 이같은 평론가의 정통비평집 다섯권으로 돼있다.1권「비순수의 선언」,2권「동시대의 시와 진실」,3권「사회역사적 상상력」,4권「문학이란 무엇인가」,5권「문학의 즐거움」등.이중 1∼4권은 나왔던책을 다시 묶은 것이다.이번에 새로 묶은 「문학의 즐거움」은 그의 천의무봉한 붓끝을 엿보는 「즐거움」을 안겨준다.이 책에는 우선 미당,정지용,이태준,신경림,정현종,김지하,김승옥,이문구,이문열 등의 작품론이 실려있다.『스타일이 있는 작가를 좋아합니다.스타일없이 얘기만 있는 작가는 매력이 없어요』라는게 이들 작가를 선호하는 이유다. 이밖에 즐김으로서의 문학을 옹호하고 고전과 언어에 대한 신뢰를 드러내는 「문학의 즐거움」「우리에게 고전은 무엇인가」「인문주의의 허와 실」 등의 문학론,전쟁·산과 산촌 등의 소재가 한국문학속에서 어떻게 변모돼 왔는지에 대한 정리,브레히트·하우저 등 좌파 문인에게서 오히려 사고의 탄력과 균형감각회복을 주창할 예를 찾아내는 문명비평 등이 실렸다. 하지만 비평가의 매력은 견고한 입장이나 박학이 아니라 그의 글 자체에 가장 잘 드러난다.담시로 유명한 김지하에게서 탁월한 서정시를 더 사주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많이 살아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삶의 상처에 대한 너그러운 이해가 문학의 효험에 대한 확신과 맞물려 문장에 힘을 싣고 있다.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열편의 시를 발표하며 시인으로도 데뷔한 그는 『내가 본 6·25를 객관적으로 그려낼 장편소설도 이미 구상이 끝난 상태』라고 말했다.
  • 국립 국악원,국악 중흥50년 주제 학술대회

    ◎“중요 무형문화재 연중 무휴 공연을”/남북 음악교류때 이념 배제/초중등교 국악교육 강화를 국립국악원이 광복50주년을 맞이하여 27일부터 28일까지 국악원 소극장에서 우리 민족음악의 현대사와 전망을 조명하는 대규모 학술대회를 마련한다. 공연,해외·남북교류,교육,학술,창작,정책·제도등 7개부문의 논제를 놓고 열리는 이 학술대회는 「광복50년 국악중흥 50년」이라는 주제아래 국악의 현대사를 총정리한다. 이 학술대회는 첫날인 27일 상오10시부터 이성천 국립국악원장의 개회사와 기조발표 「갖춘 음악을 위하여」에 이어 음악평론가 이상만씨가 「국악공연 50년」을 시대별로 정리한다. 이날 「전통연희 50년사」에 대해 주제발표를 할 서연호 고려대교수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를 연중무휴로 공연할 수 있는 제도적,운영적 체계를 재정비할 것』을 주장하면서 『우리문화의 온당한 계승과 창조를 위해 제도권 교육의 연희교육 확보가 매우 중시된다』고 강조한다. 황병기 이화여대교수는 「해외교류및 남북교류의 성과와 문제점」에 대해10년단위로 해외교류의 성과를 비교하면서 『홍보차원의 종합구성에 의한 연주곡목이 해외공연내용,장소등과 맞지 않거나 예술성 전달에 부합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한다. 특히 남북교류에 관해 황교수는 『지난 85년 제8차 남북적십자 본회담에서 있었던 최초의 남북예술단 상호교환은 서로 혹평과 비난을 일삼아 민족적 화합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라며 『90년대 교류는 남북 상호간에 상당히 우호적인 반응을 보인 점이 주목된다』고.아울러 『남북간의 음악교류는 무엇보다 통일을 향한 문화적 이벤트라는 목적의식을 확실히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28일엔 최종민 전 정신문화연구원교수가 「국악교육의 현황과 문제점」을 통해 전문인 양성,음악교육,사회교육의 차원에서 국악교육의 문제점을 열거해 보일 예정이다.최씨는 『국악이 아직도 한국음악으로서 제자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초·중·고등학교에서 서양음악 위주의 음악교육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또 송방송 영남대교수는 「한국음악학의 연구성과와 검토」에서 지난48년 한국국악학회의 창립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음악사를 정리하고,이상규 한양대교수는 「창작활동및 악기개량의 성과와 문제점」에서 최근 논란을 빚었던 국악기 개량에 관한 평가와 전망을 밝힌다.
  • 미국 「정치 잡지」열풍/국내 정치평론 주로 게재… 10여종 인기

    ◎케네디 주니어 발행 「조지」 창간호 흑자/보수성향 「내셔널 리뷰」 22만부 팔려 미국에서 정치전문 잡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상업성이 하도 철두철미해 출판되는 잡지 종류가 아무리 많아도 시사·연예·취미잡지와 대별되는 순전한 정치 잡지만은 찾아보기 어려울 성 싶은 미국이지만 실상은 꾸준히 발행되는 정치잡지가 상당수에 달한다.그중에 몇몇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판매부수를 자랑하고 있다. 일반뉴스가 아닌 정치논의에 있어서도 라디오와 TV의 토크쇼한테 할 말과 일거리를 거의 다 잠식당한 것은 사실이나 십만부 이상씩 팔리는 정치 주·월간지가 여럿 상존해 미국의 정치와 문화를 심도있고 다채롭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널리 홍보된 끝에 최근 첫 시판된 옛 대통령아들 존 F 케네디 주니어 발행의 「조지」란 월간지 표지에서는 슈퍼 모델 신디 크로포드가 배꼽을 드러내놓고 조지 워싱턴 대통령으로 분장하고 있긴 하지만 케네디 주니어가 누누이 강조하듯 「롤링스톤」이나 「배니티페어」 외형을 갖춘 엄연한 정치잡지다.2백80페이지 중 1백75페이지가 광고이며 50만부를 찍었다.다음호는 몰라도 이번 창간호는 수지가 맞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보다 일주일 앞서 보수파 정치주간지로서는 30여년만에 처음이라는 「스탠다드」가 선을 보였다.미 보수파의 귀족적 원로 자제들이 공화당 압승과 보수화 시류에 고무돼 만들어낸 이 잡지는 10만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미 보수파 정치잡지의 큰형격은 「내셔널 리뷰」로 격주간지인 이 잡지는 평균 22만부의 판매부수를 과시한다.보수성을 띤 월간 정치잡지 「어메리컨 스펙테이터」는 25만부가 팔린다. 진보적 색채로 독설이 심한 「워싱턴 먼슬리」는 28만부의 판매부수를 자랑하며 미 정치잡지 중에서 탁월한 젊은 정치평론가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또 길러내는 전통으로 유명한 「뉴리퍼블릭」은 10만부.철저한 진보성향에서 약간 비켜선 진보적 보수파로 해석될 수 있는 「네오콘」(신보수)조류를 주도하고 있다. 이밖에 「네이션」이 9만부,「프로그레시브」가 4만부가 팔리는데 모두 진보적 색채다. 「타임」 「뉴스위크」지가 세계적으로 매주 3백만∼4백만부씩 팔린다지만 기삿거리가 숱한 세계 뉴스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미국 국내정치에 대한 평론만을 다루는 정치잡지들이 10만부 이상 팔린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무용가 육완순(이세기의 인물탐구:82)

    ◎「슈퍼스타…」 22년간 180회 공연한 “슈퍼스타”/미 유학중 마사 그레이엄 만나 「정신의 춤」 눈떠/낡은 것으로 부터의 탈출… 이땅에 현대 춤 심어/어린시절 성탄절 교회에서 「그 어리신 예수」 춤추며 무용가 꿈키워 「육체속의 모든 격정 모든 애환이 못견디는/울음과 탄원의 전류에 휘감겨/헤일수 없는 선회로 돌아가는것,/참으로 어쩔도리 없는 충격,/춤이며 예술이라기엔 너무나 연소이며 기도인 것」 이는 73년9월 「한장면 한장면이 피와 땀과 눈물의 얼룩으로 수인」현대무용 「수퍼스타 예수그리스도」를 보고 시인 김남조씨가 무용가 육완순을 위해 쓴 축시다.막달라 마리아의 신을 향한 절대적인 사랑을 비창미로 그려낸 이 공연은 지난 22년동안 1백80회의 공연기록을 세우면서 「낡은 것으로부터의 탈출」과 이 땅에 현대춤을 정착시키는데 기여했다. 그의 출발은 처음부터 활기찬 기대로 장안의 시선을 집중시켰다.63년 미국에서 돌아와 국립극장 무대에서 토슈스와 쭈쭈대신 타이츠와 맨발,또는 하이힐에 스커트 차림으로 분주한 「미국인의일상」과 베이직 무브먼트를 춤추었을 때 그의 스타카토와 레가토는 감정의 노도와 간조,속도의 탄성을 눈부시게 구사하며 무대를 누벼나갔다.그의 퍼포먼스는 「모든 위대한 예술가는 낡은 파괴와 더불어 새로운 것의 기초를 기른다」는 하이네시론의 실천이기도 했다.이른바 콘라드 랭그의 「신체들의 유희에 의해서만 환희의 미를 발견한다」는 이 무용미학은 조택원과 최승희 등 신무용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에게 경이의 충격을 안겨주었으나 「승무」의 인간문화재 한영숙씨 같은 이는 「미친 짓」으로까지 통박해 마지않았다.다만 새로운 물결흡수에 거침이 없던 예술평론가 박용구씨는 「육완순 파격예술은 우리나라 무용사에 한 획을 그을만한 신세대출현」으로 크게 환영했었다. ○거침없는 “파격예술” 사람이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 어렵지 않은 일이란 없을 것이다.어느 땐 늦추고 어느 땐 감행해야 한다.그러나 몸이 예술이어야 하는 춤이란 한순간의 해이함도 용납하지 않는다.그래서 그의 평생은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본적이 없다.더구나 안무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고행같은 진통을 혼자서 감내한다. 그대신 로이 풀러의 개방적 동작,머스 커닝햄의 불균형과 비대칭,생활의 불확실성과 다양성을 은유적으로 부합시켜 민첩하고 날카로운 다이내믹스로 「자유는 개성」이라는 독특한 동작을 탄생시킨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는 아직 어릴 때 교회 크리스마스 행사에서 「그 어리신 예수」를 춤추면서 스스로에게 「세계적인 무용가」가 될 것을 명령했다고 말한다.아마도 발로 서는 걸 배우는 순간부터 「춤을 향한 집념」에 불타고 있었을 것이다.가난과 부모의 완강한 반대로 어쩌면 무용을 포기할뻔도 했으나 그는 자연과의 하모니로 춤추던 이사도라 던컨을 동경하여 미국유학을 꿈꾸게 되었고 문교부시험에 번번이 실패하자 미국의 70여개 대학에 일일이 편지를 보낸 일화를 지니고 있다.드디어 일리노이주립대와 코네티컷 대학원과정에서 그의 영원한 스승이며 무용의 혁신자인 마사 그레이엄을 만나 「자유와 삶의 기쁨과 독립정신」을 키우면서 그는 이탈리아 출신의시몬 포르티와 저드슨 댄스디어터의 이본 레이너와 함께 마사 그레이엄의 위대한 애제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때 스승으로부터 「무용은 유기적인 삶의 이데올로기속에서 또하나의 도구」인 것과 「우리안에 갇혀 있는 동물의 걸음걸이는 초원을 걸어다니는 동물의 걸음걸이와는 다르다.아니,다르지 않다」는 이론에 공감하면서 춤을 만들어내는 마음의 동기와 원인,춤추지 않고는 배길수 없는 내심의 충동속에서 그는 「정신의 춤」에 눈떠갔다.그리고 「감정의 마임이 자연스러운 움직임속에서 제거되거나 축소·치환되는 춤의 분방한 구현을 위해서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배웠다. ○미 70개 대학에 편지 마사 그레이엄이 미국의 개척정신을 즐겨 소재로 다룬 것처럼 그는 「살푸리」「무녀도」「논개」「단군기원」과 「유관순」같은 한국적 정서가 깃든 테마에 집착하여 「바람같은 흔들림」을 춤속에 구축해 내었고 인간의 희비애락을 표현한 예술정신에 대해 「춤」지의 조동화씨는 「이 시대 문화운동」으로 평가하고 있다. 우리 무용사의흐름을 정리하는데 있어 육완순을 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그는 60년대 미국현대무용을 도입한이래 이대 무용과교수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오늘날 전국 20여개 대학에 포진한 현대무용교수는 김복희(한양대) 박명숙(경희대) 이정희(중앙대) 하정애(부산여대) 김옥규 김기인(서울예전) 황문숙 박인숙(이대)등 그의 제자들이다.또 70년대 이후 「춤의 소극장운동」을 통해 「무용의 대중화」에 앞장서면서 그의 공연들은 「수없이 많은 현대무용가를 배출한 보고」라는 공로를 남기고 있다. 아무리 좋은 땅이 있어도 대목수가 재목을 골라 집을 짓지 않으면 모든 것은 무가치할 수 밖에 없다.공연이 있을 때마다 제자들을 무대에 세워 「무용계의 주목」을 받게 했다는 점에서 그는 간혹 「목수」로 불리기도 한다. ○무용계의 「대목수」로 한사람의 예술가가 탄생하기까지 그에 얽힌 노력과 투자와 정열은 정해진 분량으로 잴수는 없다.그러나 그의 묵고적 기질은 어떤 고통과 시련도 「육체의 아름다움과 풍부한 표정, 깃털같은 가벼움과 역동적강인함, 도약과 비상을 그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분출」시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그가 온몸으로 무대에서 춤을 추기엔 무리일 수도 있다.그러나 책을 읽을 때의 호기심과 탐구정신으로 그는 자신의 나날들을 지켜보면서「무용은 나에게 가장 굳센 감옥이요 온정신을 잡고 있는 질긴 굴레이긴 하지만 무용속에 있을 때만 무한한 자유를 느낀다」고 감연히 다짐한다. 요즘은 신촌 창전동자택에 있는 한국현대무용진흥회에서 외국강사를 초빙하여 일반과 학생에게 춤을 지도하고 밤에는 한국인의 5천년 역사를 학의 일생에 비유한 「학」의 장편 작업에 시간가는줄 모른다.「천년이 되면 푸른빛이 되고 또다시 천년이 지나면 검은학(현학)이 되는,짓밟혀도 짓밟혀도 영원히 죽지 않는 학」이 그의 앞으로의 생존의 테마가 될 것이다.가족은 그를 감싸주는 부군 이상만(전서울대 지질학 교수·시인)씨와 연구소 위층에 살고 있다. 「말하는 것은 말하는 것,춤추는 것은 춤추는 것/춤추지 않는 것은 춤추지 않는 것,말하지 않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 더글러스 던의 시가 아니더라도 이제 그의 춤은 우주의 한 끝을 장식하는 손짓, 「정지」조차도 「환희의 미」가 되는 것을 그는 기도의 연소로 이룩해 내고 있다. □연보 ▲1933년 전주 출생 ▲56년 이화여대및 대학원졸업 ▲61∼63년 일리노이주립대­코네티컷대학원­마사 그레이엄무용학교 수학.호세리몬,엘빈에일리 사사 ▲64∼91년 이대무용과교수 ▲73∼95년 4월까지 「수퍼스타 예수그리스도」 1백80회공연 ▲75년부터 해마다 AAHPERD(미국무용총연합회 전국대회)및 국제여성체육학회 참가 ▲85년 사단법인 한국현대무용 진흥회발족,한국현대무용단 창단 ▲86년 한양대 대학원서 이학박사(무용),86아시안게임 무용분과위원장 ▲93년 한국현대무용 30년기념 육완순작품전(문예회관 대극장),「슈퍼스타」 20주년 기념공연(국립극장 대극장),대전EXPO 93 개회식 축하공연 「문명의 사계」총괄안무 ▲95년 광복50주년기념축전 「통일환타지」총괄안무,해외공연 40여회 한국현대무용진흥회 이사장,ADF(아메리칸 댄스페스티벌)서울대표 「흑인영가」(63년)를 비롯 「살푸리」「가락의 슬픔」「만남」「실크로드」등 1백 50여편 서울시문화상(81년) 대한민국 사회교육 문화상(82년)대한민국 문화예술상(89년) 「현대무용」「현대무용 실기」「서양무용 인물사」「이사도라와 에세에닌」(번역)등 13권
  • EBS­R 「사랑의 한가족」 진행/이영호씨(인터뷰)

    ◎영화배우 출신 후천성 시각장애인/“장애인에 대한 편견 없애는 계기됐으면” 『저자신 뿐만아니라 많은 장애인들에게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고 싶습니다.비장애인들에게는 편견을 버렸으면 하는 바람이구요』 영화배우 출신의 후천성 시각장애인 이영호씨(44).지난 3일부터 EBS라디오의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 「사랑의 한가족」(매주 일 상오 10∼11시)진행을 맡으면서 방송가의 화제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영화감독 이장호씨의 친동생이기도 한 이씨는 「낮은데로 임하소서」「어제 내린 비」「바람불어 좋은날」등의 영화에 출연,대중들에게 어느정도 낯익은 인물.어려서부터 앓아온 망막색소변성증이 악화돼 5년전부터는 거의 사물을 식별할 수없을 정도가 됐다. 『처음 맡은 라디오진행이라 여러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아요.점차 요령을 터득해 나가겠지만 되도록 같은 입장에서 따뜻한 목소리를 전하는데 중점을 두고 싶습니다』 진행대본을 일반인들처럼 볼 수없어 한충희PD가 하루전 건네주는 원고를 거의 암기한뒤 방송에 들어가는 그는 녹화 스투디오에서 시각장애인용 확대CC­TV의 도움을 받는 등 몇배의 노력을 기울인다. 「영화 낮은데로 임하소서」이후 악화되는 시력에도 불구,미국 유학을 떠나 뉴욕 영상예술학교(SBA)와 뉴욕대학에서 6년간 영화학을 공부(석사)한 그는 영화평론분야에서 꾸준히 일 해 오고 있다.또 시각장애인극단 「소리」와 복지단체 「한울타리 교육문화원」대표이기도 하다. 『현재 교통사고로 중도실명한 한 중년남자의 인생 이야기를 다룬 코믹 터치 사회고발 영화를 준비하고 있으나 제작자가 나서지 않아 고민스럽습니다』 일반인들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일을 맡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라디오 진행에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 신도시건설 타당성 검증돼야(최택만 경제평론)

    최근 건설교통부가 잇따라 발표한 세계자유도시건설과 신도시건설계획의 파문이 가라않지 않고 있다.건교부는 지난달 24일 영종도배후인 용유도에 오는 2020년까지 3조6천억원을 들여 인구 40만의 세계자유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이달 12일에는 서울도심반경 40∼50㎞ 떨어진 4곳에 신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이 발표가 있은 뒤 해당지역에 땅투기가 일 조짐을 보이자 19일에는 관계부처가 대책회의를 열고 투기억제대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분당과 일산 등 신도시주민은 기존신도시부터 자족도시로 만들라고 촉구하고 있다고 한다.신도시주민은 정부가 지난 89년 신도시건설에 착수하면서 정보·통신·국제업무시설 등 대규모 첨단·지식산업기능을 갖춘 자족도시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고 주장하면서 이의 이행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신도시건설의 파문이 예상외로 확대되자 건교부는 기존도시를 축으로 해서 주변지역을 확장하거나 개발하면서 자연스레 도시간을 벨트로 묶어 각 생활권의 거점으로 삼는다는 것이 계획의 골격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에 대비하여 일본과 말레이시아 등이 국제도시 내지는 정보와 금융의 중심도시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시점에서 건교부가 그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일은 아니다.또 기업의 경쟁력강화와 수도권지역의 택지난해결을 위해 신도시추가건설을 검토하는 것도 탓만 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문제가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은 건교부내에서조차 이 계획의 청사진이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았고 관계부처간에 논의된 바도 없는 「설익은 계획」이 발표된 데 있다.국토공간의 대변혁을 수반하는 정책을 구상단계에서 발표하는 성급함을 보인 데 있는 것이다.계획이 완전히 익은 다음에도 관계부처와 환경 및 재원조달문제 등을 충분히 논의하고 국민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해야 하는 절차가 있다. 건교부가 발표한 세계자유도시 하나만 건설하려 해도 3조6천억원이라는 막대한 재원이 소요된다.더구나 4개 신도시를 건설하려면 무려 20조원이상이 들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건교부의 세계자유도시건설계획안은 민간자본과 외국업체의 입주금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그러나 한국이 정부재정의 뒷받침 없이 현재 국제도시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다른 나라와 경쟁할 수 있는 세계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현재 말레이시아는 건교부안보다 3배이상 큰 국제역외금융도시건설을 추진하고 있고 일본과 싱가포르도 국제금융도시건설을 추진하고 있다.여기에 한국이 세계자유도시를 건설할 경우 공급에 비해 수요가 부족해서 「도시의 유휴화」가 초래될 우려마저 있다. 또 세계자유도시의 현재 입지가 적합한지 생각해볼 문제다.각종 용수확보와 영종도국제공항과 인접하므로 생기는 소음공해 등 문제가 적지 않다.동시에 자유도시와 서울 및 인천 등 기존도시와의 역할분담 및 상호연계관계도 간단히 집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영종도를 포함한 수도권 외각에 자족기능을 갖춘 「4대지역생활권」을 적극 육성키로 한 것도 마찬가지다.건교부의 구상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수도권 신도시추가건설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따른다.20년이상 추진해온 국토균형개발정책과 수도권인구집중억제시책을 변경하려면 국민이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그런데 건교부가 내세운 경쟁력강화와 수도권 택지난해소 등은 충분한 논거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비록 신도시건설계획의 타당성이 어느 정도 인정된다 하더라도 건설에 앞서 유의해야 할 점도 많다.우선 서울도심반경 40∼50㎞이내에 도시건설은 서울의 유동인구와 수도권인구 증가를 유발하고 특히 서울의 교통과 환경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갈 것이다.서울에 근접한 신도시건설은 결국 베드타운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4개 신도시 가운데 동부권은 수도권지역 주민의 상수원지역으로 개발보다는 보호가 더 시급한 실정이다.서울과 수도권주민의 식수원인 한강물의 경우 현재 2급수이나 앞으로 더 나빠지면 식수로 사용이 어려워질 우려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밖에 15년동안 신도시 또는 자족도시를 건설한다면 부동산투기는 물론 건축자재난과 부실시공 등 그 부작용을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다.과거 5공 때 건설부의 한 장관이 그린벨트(개발제한지역)를 녹지지역으로 잘못 알고 그린벨트를 풀겠다고 했다가 큰 소란이 난 일이 있고 6공 때는 다른 장관이 아파트가격을 자유화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아파트가격폭등이 일어난 일이 있다.국토관련 시책은 그처럼 민감한 반응을 일으킨다.따라서 도시건설은 충분한 타당성 검토와 국민의견수렴을 거친 뒤 장기간에 걸쳐 건설하는 것이 좋다.
  • “현대문학 반세기… 분단의 아픔 관통”

    ◎대산재단 21∼22일 「해방 50주년 기념 한국문학 50년」 심포지엄/시·소설·희곡·비평 부문별로 진단/북한문학·해외 한국문학도 점검/국내외의 문인·학자 등 35명 참석 「해방 50주년 기념­한국 현대문학 50년」 심포지엄이 21.2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다.대산재단 주최의 이 심포지엄은 지난 반세기동안 우리 문학의 성과를 한국의 ▲시 ▲소설 ▲희곡(21일) ▲비평(22일) ▲북한의 문학(시·소설과 문예비평·22일) ▲세계문학과 한국문학(한국문학의 해외소개·해외의 한국문학·21일) ▲통일시대 한국문학의 전망(제1,2발제·22일)등 7개 주제로 나누어 종합진단하는 것으로 국내외 문인,학자 35명이 주제발표자와 토론자로 참석한다. 미리 발표된 주제논문들에 나타난 한국 문학 50년의 가장 큰 원체험은 분단이다.현대문학의 시원에 깊게 팬 이 민족사적 상처는 우리 문학을 시대의 갈등과 모순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데 유리한 리얼리즘으로 자연 기울게 했다는 것이다. 최동호교수(고려대 국문과)는 「한국의 시」 발제에서 해방이후 한국시사를 ▲분단체제 성립기(19 45∼59) ▲심화기(19 60∼79) ▲전환기(19 80∼95)라는 틀을 사용해 시대구분한다.이같은 시대구분을 바탕으로 그는 60∼70년대에는 「시의 효용은 무엇인가」가 쟁점이었으나 80년대 이후는 우리시의 다양한 경향과 가능성을 보인 시기라고 정리한다.최교수는 우리 시의 80년대를 이성복에서 기형도에 이르는 모더니즘 흐름과 김정환,백무산의 리얼리즘 지향이 맞서온 역사로 파악하기도 한다. 「한국의 소설」 발제자인 조남현교수(서울대 국문과)역시 지난 50년간 우리 작가들을 사로 잡은 최대 소재를 한국전쟁으로 본다. 조교수는 우리 소설이 그간 도덕주의,세태소설,종교소설,중간소설 등 다양한 갈래를 낳았지만 혼란과 갈등상황에서는 항상 리얼리즘을 전면에 내세워 왔다고 진단한다. 그는 90년대 소설계의 특징을 ▲거대서사의 퇴조 ▲대하소설의 증가 ▲베스트셀러의 급증과 규모확대 ▲평론의무력증 ▲전업작가의 증가등으로 정리하기도 한다. 「한국의 희곡」 주제발표자 유민영교수(단국대 국문과)는 우리 희곡사를 견고한 리얼리즘의 원심력에 부조리극,초현실주의극,서사극 등이 일탈을 꾀해온 역사로 정리한다.그에 의하면 한국희곡 50년중 전기 25년은 리얼리즘 일변도였고 후기 25년은 리얼리즘 극복이 최대과제였다. 「한국의 비평」 주제발표에서 유종호 교수(이대 영문과)는 해방이후 한국의 비평이 마주친 문제들을 중심으로 살피면서 60년대 후반 이후 주요 비평가들의 비평입장을 검토하고 우리 비평의 앞날을 전망하여 눈길을 끈다.유교수에 의하면 민족문학론을 주도해 온 백낙청은 이론비평이나 실제비평(기술비평)을 벗어나 시인 작가에게 글쓰기의 주제와 방법을 교시하는 입법비평의 입장에 서 있다.『김윤식과 함께 비평 생산 최다수확왕의 영예를 지녔고 김문집 이어령 이후 통념화된 험담과 독설로서의 비평을 덕담으로 변모시키는데 기여한』 김현의 경우는 기술비평의 입장이고 김우창은 자기충족적 비평(고전적 에세이),김윤식과 김용직은 국문학 지향의 비평,정명환 이상옥 곽광수 도정일등은 외국문학의 소양을 바탕으로 한 타자참조비평의 범주에 각각 속한다.유교수는 또 『앞으로 문화비속화 현상의 일환으로 비평의 중간화 잡담화 가십화가 가속화 되고 비평이 논문쪽으로 기울면서 비평의 주변화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진단한다. 이 심포지엄의 주제발표논문과 토론요지는 오는 10월말 민음사를 통해 책으로 묶일 예정이다.
  • 길소뜸/분단의 비극적 현실 영상화(영화탄생 100년/감동의 명화)

    ◎이산가족 찾기서 착안… 국제영화제서 수상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85년 화천공사 제작)은 한국 현대사의 농축이다.필자는 북(함경남도)의 아버지,남(제주도)의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부산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자랐다.그래서 곧잘 나의 탄생은 분단의 산물이라고 말하곤 한다.성장기 나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은 명절이면 술타령과 꺼이꺼이 우시는 것이 우선적으로 떠오른다.그것이 한의 삭힘이라는 것을….북에 두고온 아내와 자식과의 재회는 물론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라는 자책감과 좌절감을 이기기 위해 쓰디쓴 소주에만 의지했을 뿐이다.끝내 아버지는 간경화로 돌아가시며 단 한말씀,할아버지를 부르는게 아닌가. 평론가의 문턱에 들어설 즈음,그러니까 꼭 10년전 여름 대한극장 개봉때 관람한 「길소뜸」은 직업상의 이유로 반복해서 볼적마다 이러한 것들이 나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특히 변변치 못한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생면부지의 아들을 자신의 장남으로 입적시키기 위해 가족들과 회의를 하는 김동진(신성일 분)의 모습은분단후 모든 아버지 세대들에게 헤어나올 수 없는 운명의 고리로 짓누르는 아픔을 더해준다. 추억과 현실,역사와 오늘의 모습이란 무엇일까.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아무리 퍼내어도 풋풋한 추억이지만 세월이 훨씬 지나 변화된 모습으로 마주한 현실에서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33년만의 해후와 애타게 찾던 그 아들(한지일 분)이 눈앞에 있건만 본능의 직감을 거부하고 법의학에 의한 친자확인 결정도 애써 부인하고 돌아설 수 밖에 없는 민화영(김지미 분)의 현실이 야속한 드라마 작법같지만 이것이 곧 사실주의 미학에 입각한 객관적인 서술의 정직한 태도이다. 대체로 인간은 경우는 다르지만 하나의 인생 안에 두개의 세계를 간직하게 마련이다.동진은 1남2녀와 사려깊은 남편을 둔 화영의 다복한 형편에 비교할때 초라한 모습이다.그는 두개의 가정을 잊어본 적이 없다.현재의 가족인 아내와 다섯아들을 거느리고 달동네에 살면서 마음속에 간직한 또하나의 가정,즉 추억의 가정을 한번도 기억 밖으로 내몬적이 없다. 이처럼 분단이후 우리사회 내부에 내재하는 또 한번의 비극적 현실을 임권택 감독은 끔찍하리만치 엄격하게 통제된 카메라(정일성)의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다.영화 「길소뜸」의 원인은 TV이며 결과는 필름이다.83년 KBS­TV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에서 착안한 것이지만 TV보다 한층 더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였다.제36회 베를린영화제 본선에 진출했으며 제22회 시카고영화제 「게츠 세계평화상」도 수상한 작품이다.
  • 무역적자 방관할때 아니다/최택만(경제평론)

    95년 우리나라 무역적자가 사상 처음으로 1백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올들어 지난 7월말까지 무역적자가 77억달러를 기록,이미 지난 한햇동안 적자규모를 넘어섰고 연말에는 1백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한마디로 1백억달러 적자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올들어 무역적자가 크게 늘고 있는 것은 미국 등 선진국으로 부터의 수입이 급증하고 있는데 비롯되고 있다.7월말까지 선진국과의 무역에서 발생한 적자가 무려 1백79억5천만달러에 달한다.이같은 선진국 무역수지 적자규모는 올들어 7월말까지 전체 무역수지 적자 77억달러의 2배를 넘고 있다. 무역적자가 7개월만에 77억달러에 달하고 대선진국 무역적자가 전체 적자의 배를 넘는다는 것은 우리의 수출입구조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미국 등 선진국과의 무역에서 적자가 누증되고 있는 것은 선진국시장에서 저가상품의 경우 중국 등 후발개도국에 밀리고 고부가가치상품은 일본 등 선진국 제품에 눌리는 등 우리상품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데 기인한다. 우리나라는 해가 갈수록 적자폭이 확대되고 있는데다 대선진국 무역에서 적자가 누증되고 있다.통상당국과 기업이 힘을 모아 종합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될 시점에 있으나 자본재 산업육성대책이외는 별다른 대책이 없고 그동안 우리수출의 견인역할을 했던 엔강세가 퇴조하고 있어 문제가 더 복잡해지고 있다. 무역협회가 한달전 무역적자확대를 걱정하면서 대책을 촉구했으나 별로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몇년전만 해도 상상할수 없는 적자가 발생했는데도 당국이나 기업이 별문제가 아닌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 같다. 더욱이 최근 엔고마저 퇴조하고 있어 무역적자문제를 그대로 방관할 때가 아니다.물론 우리의 수출입구조로 미루어 단기간내에 적자해소는 어렵다고 본다.그러나 비록 장기간이 소요된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적자를 흑자로 전환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수출산업의 기술혁신과 수출상품의 고부가가치화이다.이 방법을 택하지 않고 지름길로 가려한다면 그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국제학술지에 기고된 논문편수를 기준으로 할 때 우리의 기술수준은 세계 38위에 머물고 있다.지난해 우리의 수출순위는 세계 13위다.기술수준과 무역순위간의 격차가 너무 심하다.한마디로 우리는 선진국의 기술을 빌려서 제품을 만들어 힘겹게 수출하고 있는 것이다.힘겨운 수출에서 벗어나려면 기술인력의 확충과 기술투자의 획기적 제고가 최선의 방법이다.기업들이 설계도면을 해외에서 들여와 제품을 만드는 조립식 생산방식보다는 다소 어려움이 있더라도 연속적인 기술혁신을 가능케하는 자체기술 개발에 의한 상품개발에 주력해야 할 때가 아닌가. 또 국제분업구조의 동태적 변화·토지·인구 등 우리의 기본적인 자원부존여건을 감안하여 수출전략산업을 발굴하는 일이 시급하다.기술과 자본 등 비교우위의 결정요소를 선진국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향상시킨다는 전제아래 전자·기계·자동차 등 산업을 수출전략산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본다. 한편 섬유·신발 등 과거 수출주종품목은 구조적인 혁신,즉 고부가가치화를 통해서 후진국의 추격을 막아내는전략이 요구된다고 하겠다.지금까지 우리가 쌓아 올린 기술과 경험을 최대한 살려 신제품을 개발하고 제품의 고부가가치화를 추구한다면 경쟁력을 다시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수출제품이 대기업 제품위주로 되어있는 점도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이다.대량생산위주의 수출전략은 국제경기와 정보화시대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취약점을 갖고 있다.정보화시대가 진전되면 될수록 소비자는 제품의 고품위와 개성화를 추구하게 된다.이런 수요에 부응할 수 있는 기업은 중소기업이다.또 날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는 상품의 라이프사이클에 맞춰 제품을 신속하게 생산할 수 있는 기업도 중소기업이다.약자를 보호한다는 차원의 중소기업육성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부응할 수 있는 중소기업시책을 발굴하여 육성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이러한 장기대책과 병행해서 현안의 무역수지 불균형 심화를 방지할 수 있는 단기대책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정책당국은 엔고의 진정을 계기로 원화절상을 지양,업계에 수출의지를 붙돋워 주고 소비자들의 외제선호현상과 고가선호심리를 차단하는 방안을 모색하여 사치품과 대형내구소비재 수입을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특히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피하기 위해 예금을 인출해 고가외제품을 구입하는 신과소비를 차단해야 한다.
  • 남아공 발레리나의 명성 수십년만에 부활

    ◎「검은 진주」 스카우트 열풍/민주화 바람… 인종차별 “족쇄” 풀려/수준높은 재능 인정… 영등서 군침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발레리나를 스카우트하기 위한 외국 유명발레단 관계자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발레리나의 나라란 옛 명성이 인종차별 때문에 끊긴지 수십년만에 민주화 덕택에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수십년전만 해도 딘 버그즈마,멀 팍스,존 크랜코,헨드릭 다벨,해롤드 킹 등 해외 유명발레단에 발탁돼 활동한 남아공 출신의 무용수들은 부지기수였다.그러나 백인우월주의적 인종차별정책은 남아공의 문화·정치·경제적 고립을 자초했고 그 결과 외국발레단 관계자들의 방문이 단절됨으로써 남아공 무용수들은 세계무대에서 수십년간 잊혀져왔다. 무용평론가 아드리엔 시첼은 『무용에 관한 한 우리의 재능은 엄청나지만 인종차별정책과 그에 따른 국제고립 때문에 큰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흑인지도자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선출되면서부터 상황은 바뀌어 안무가,제작자,무용수 등의 남아공 방문이 줄을 이으면서 남아공 무용의 높은 수준은 다시 한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가을 남아공의 프리토리아를 방문한 영국 버밍엄 로열 발레단의 데이비드 빈틀리 예술감독은 팩트발레단의 레티샤 뮐러(25)가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여태까지 내가 본 가장 강력한 공연중의 하나였으며 (로열발레단 스타였던)린 세이무어같은 마력을 그녀에게서 느꼈다』고 빈틀리는 말한다. 연말쯤 빈틀리에게서 공식초청장이 날아왔고 뮐러는 그때부터 기나긴 고민에 빠졌다.빈틀리는 뮐러를 위한 역할을 만들기 위해 「카르미나 부라나」란 작품을 공연하기로 했고 뮐러는 수개월간의 고민끝에 영국행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뮐러는 8월초부터 버밍엄발레단에 합류,오는 9월27일 공연개막을 앞두고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뮐러도 개인적으로 인종차별정책의 피해자.독일인 아버지와 중국계 남아공인인 어머니와의 결혼은 인종간 결혼을 금지하는 남아공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결국 독일로 이주했고 거기서 뮐러가 태어났다.어머니는 고향을 그리워했고 마침내 85년에야 귀국할 수 있었다. 근래들어 첫번째로 해외무대에 서게된 영광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부담스러운 듯 뮐러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겸손한 반응을 보인다.
  •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이 세기의 인물탐구:81)

    ◎박진감 넘치는 심혼의 선율… 청중 사로잡아/5세에 입문… 미 줄리아드서 혹독한 레슨 거쳐/연 100회 이상 공연 스케줄 잡힌 세계10대 연주자/67년 레벤트리트경연서 주커만과의 공동우승은 세계음악사에 기록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영국 선데이 타임스는 83년 「최근 20년간 가장 위대한 기악연주자」로 정경화를 선정한 적이 있다.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다이내믹과 이모션은 한번 활을 잡기만하면 폭풍같은 절조로 청중을 일시에 혼도시키고야 만다.흡사 「마야의 박사가 조각조각 찢어져 신비에 가득찬 근원자의 무릎앞에 펄럭이 듯이 그의 몸속에선 마혹과 초자연이 흘러나온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더구나 자기비판에 엄격하여 「열광적 도취를 알지 못하는 정관(정관)은 참으로 조용히 바라보는 정관이 되지 못한다」는 차원에서 최근에는 진주빛 화염을 가라앉힌 「진한 포도주의 바다같은 심혼의 선율을 빚어낸다」는 평을 듣는다. 정경화의 일사불란하게 화려한 연주경력을 일일이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그는 데뷔이래 「톱」의 자리에 우뚝 선 채 자신의 위상을 도도하게 지켜왔고 지금도 그렇다.그중에서도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지난 70년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한 런던심포니와의 차이코프스키 협연을 들지 않을 수 없다.이 한번의 연주로 그는 미국의 9대 교향악단을 비롯하여 영국에서 30회를 연주할 수 있는 계약을 맺었고 연 1백회이상의 연주스케줄을 갖는 가장 위대한 연주가의 한사람이 되었다. ○데뷔이래 정상에 우뚝 이보다 앞서 67년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레벤트리트 경연대회에서 핀커스 주커만과 공동우승을 차지한 일은 세계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기도 한다.평론가 위데 콤베는 이날 정경화연주에 대해 「하이페츠나 오이스트라흐나 스턴이 이보다 더 출중한 연주를 했다할지라도 그것은 다 지나간 일이며 그녀만이 갖는 강한 호소력은 최고의 경지에 이른 최상의 연주」라고 호평한바있다. 음악평론가 한상우씨도 『실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잭 스턴을 대부로 하는 막강한 유태계 세력이 주커만을 에워싼 가운데 고독한 싸움에서 이긴 정경화는 지금 주커만 펄만과 어깨를나란히 하면서 명실공히 세계10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돌아본다.70년대와 80년대 일본에서 여신처럼 떠받들려진 그는 75년 샤를르 뒤트와 시벨리우스를 연주했을 때는 일본의 평론가 우노 호이모로부터 「예리한 칼로 살을 베었을 때 푹 솟아오르는 선혈처럼 신선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는 등의 극찬 등 황홀한 찬사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일찍이 레코드 재킷에서나 볼 수 있는 로린마젤 게오르그 솔티 리카르토 무티 앙드레 프레빈 루돌프 켐페 등이 지휘하는 세계적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물론 영국의 데카를 통해 20여장의 레코드를 내놨고 언제부턴가 한국의 정경화만이 아닌 세계적 「대가」로 군림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그는 천재이며 타고난 재능으로 자연스럽게 오늘에 이른 것일까.이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단호하게 「노!」다. 「정상에 이르는 길은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한다」는 그는 「음악에서 기적은 일어날 수 없으며 연주할때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연주에 임하고 있고 단 한번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생각해본적이 없다」고 말한다.지난번 광복 50주년 기념연주차 귀국했을 때도 그가 묵고있는 신라호텔 미팅룸에서 하루종일 바이올린을 어깨에 메고 연습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머리가 숙여지게 했다. 청중을 사로잡는 마력 때문에 만사에 적극적이고 어딘지 여걸스러우리라고 짐작되지만 정경화의 진짜 성격은 낯가림이 심하고 「말도 못하게 내성적」이며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려서 친구도 별반 없는 편이다.다만 첼리스트인 언니 명화씨와 지휘자인 동생 명훈씨와의 트리오는 혈육다운 최상의 절창을 이루고 그리고 그를 생명처럼 키워낸 어머니 이원숙여사에 대한 효성이 지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용모 또한 화사하고 순수하여 무대에서의 관록이나 권위따윈 찾아볼 수 없다.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 널리 알려지다시피 그는 5살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해서 9세때 서울시향과 협연,61년 가족이 미국에 이주하면서 줄리아드음악원에서 일류 바이올리니스트만을 키워낸 이반 갈라미언교수와 조지프 시게티의혹독한 레슨을 거쳐 「자기만의 표현능력과 음악적 언어로써 감정을 총괄하고 통제」하는 연주자로 성장했다.이는 「정말 바이올린이 없으면 죽을 것 같은 열정이 몸속에서 꿈틀거린 때문」이며 「수많은 장애를 극복한 일은 경이롭다고 밖에 표현할길이 없다」는 음악계의 평은 옳다.그런 점에서 「때로는 강력한 힘으로 밀어붙이듯 때로는 귀기가 서린 박진감으로 인해 그의 연주를 듣고난 다음 다른 연주를 들으면 어딘지 채워지지 않는 구석이 남아있는 듯 성에 차지 않는다」는 이순열씨(음악평론가)의 말은 음악애호가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위대한 음악가들은 자연과 함께 살면서 그 속에서 작품을 썼기 때문에 그들의 음악속에는 자연의 모든 색깔들이 칠해져 있다는 걸 나는 일찍이 스승들로부터 배웠어요』 따라서 「지금까지의 연주활동은 앞으로 10년을 위한 준비과정에 불과」하며 「음악이 지닌 색채감과 이디엄에 집중하여 자신감을 성취한 지예에 다다르고 싶다」는게 그의 꿈이다. 바이올린의 화신인듯 그래서 음악과 결혼한 것처럼 보이던 그가지난 84년 케임브리지대 출신의 영국인 사업가 제프리 리게티씨와의 결혼을 발표했을 때 이로인해 그의 들끓는 정열과 현란한 선율이 한치라도 사그라들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다.그러나 결혼후 피아니스트 필립 몰과 레코딩한 「정경화 콘 아모레」는 『살바도르 달리가 「피는 꿀보다 달다」는 그림을 그렸지만 이젠 「정경화의 바이올린은 꿀보다도 달다」란 그림을 그려야 할때』라는 평을 받을 만큼 신기의 솜씨로 청중을 도취시켰다.영국의 평론가 에드워드 그린필드는 「정경화가 온세계를 향해 바이올린의 활로 쏜 화살은 에로스의 황금화살보다 더 감미로운 사랑의 기쁨을 느끼게 할뿐 아니라 우리들을 음악의 유토피아로 이끌어가고 있다」고 쓸 정도였다.지난 봄 그의 귀국 연주에 대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이강숙교장도 「음악을 끝까지 지킨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가 활을 긋는 그 순간부터 정경화는 아직도 우리의 희망임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고 일깨운다.부군인 리게티씨(49)는 「성격이 온화한 정경화 음악팬」으로서 그의 음악생활에 대한 모든 것을 협조하고 외조한다고 전한다.두아들은 엄마를 따라 재곤(프레데릭·10)은 첼로와 피아노,유진(7)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우고 방학을 이용해 광복50년기념행사에 다녀갔다. ○두 아들도 음악공부 실제로 결혼후 정경화만큼 눈에 띄는 변모를 보인 예술가는 별로 흔치 않다.한국에서 태어나 무수한 장애를 넘어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끈질긴 집념과 강한 개성 때문에 「때때로 발톱을 세운 고양이처럼 앙칼져 보이기도 했던」 오기는 이젠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패기와 자존심과 싱싱함과 날카롭게 찔러오는 그 전율」은 한층 침후해지고 그의 손과 머리와 마음은 움직일 때마다 아름다움을 캐면서 달빛이 녹아 강물을 이루듯 흘러넘치는 광채로 청중의 온몸을 적신다. 지금 「세계가 기억하는 연주가 정경화」는 「자연의 심장인 명작의 숲」속에 서서 인간의 심장이 아닌 영혼을 깨우고 흔드는 절기의 선율로 하늘을 꿰뚫고 싶을지도 모른다. □연보 ▲1948년 서울에서 출생.정준채씨와 이원숙여사의 4남3녀중 넷째 ▲53년서울시향과 협연 ▲61년 이화여중 재학중 도미­줄리아드음대서 갈라미언및 시게티사사 ▲64년 카네기홀 독주 ▲66년 메리웨더 포스트청소년 국제 콩쿠르 수상 ▲67년 레벤트리트 국제바이올린콩쿠르에서 주커만과 공동1위­줄리아드 음악원 졸업­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입상 ▲70∼84년 런던심포니(지휘 앙드레 프레빈)뉴욕필(지휘 레너드 번스타인)을 비롯,필라델피아·클리블랜드오케스트라,몬트리올·보스턴심포니,로스앤젤레스·이스라엘·로열필,암스테르담 콘체르트헤보·빈·프랑스 국립교향악단 등과 연 1백회연주,데카 EMI전속 ▲73년 「스트라빈스키 왈튼협주곡」레코드로 에디슨상,독일평론가들이 선정한 「올해의 스타상」수상 ▲80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 심사위원 ▲84년 결혼이후 런던필(지휘 리카르도 무티)·프랑스국립교향악단(피아노 필립 몰)·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오케스트라·프랑스국립관현악단·베를린필협연등 연 70회연주,유럽 캐나다 일본 오스트레일리아지역 순회연주 ▲92년 미국의 92 엑설런스 20 00상 수상 ▲94년바르토크 협주곡으로 그라모폰상,차이코프스키 협주곡 「빈티지 레코드」선정 ▲95년 정트리오 시향협연및 부산 청주 마산 독주회,광복50주년 축전음악회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대향연(잠실주경기장) 피아노 필립 몰·라두루프 등과 데카·EMI에서 레코드 20여장및 CD LD출반
  • “일본경제는 결코 취약하지 않다”(해외논단)

    ◎“슬럼프 빠져 허우적” 미 언론서 실상 왜곡보도/일 경제 「무서운 성장」 계속… 멀지않아 미 능가할것 「한때」 호적수였던 일본의 경제가 슬럼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아주 취약해져 이제 미국을 걱정스럽게 하고 있다는 최신 뉴스도 있지만 일본경제의 「무서운」 실상이 서방·미국 언론의 왜곡보도로 가려져왔다는 주장 또한 강하게 제기된다.「맹점:일본은 20 00년에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다」의 저자이며 경제평론가인 이먼 핑글턴이 시사월간지 「워싱턴 먼스리」에 기고한 「일본경제는 결코 취약하지않다」라는 글을 소개한다. 지난번 미·일 무역마찰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미국 유수언론의 사설란마다 「오른쪽 핸들」 얘기가 빠짐없이 등장했다.일본이 자동차시장을 좀 더 개방하지 않으면 일본 고급수입차에다 60억달러의 보복관세를 매기겠다는 미국의 정책은 세상 물정을 잘못 알고서 세웠다고 이 사설들은 꾸짖었는데 이유는 문제가 일본이 아니라 미국 자동차 제조업자에게 있기 때문이란 것이었다.오만한 미국의 빅스리 자동차사는 미국과 반대인 일본식 오른쪽 핸들형 자동차제작을 등한시해 일본 판매량이 저조할 수 밖에 없다면서 미국무역대표부는 문제도 안되는 걸 가지고 문제삼고 있다는 비난 논조를 편 것이다. ○사설마다 미 정책 비난 그러나 미국 자동차회사들은 유럽 현지공장을 통해 유럽식인 오른쪽 핸들 자동차를 고품질로 잘 만들어 내고 있었다.핸들이 어디에 붙었든 미국산이 일본에서 잘 팔리지 않은 것은 일본 자동차판매업소들이 꼼짝없이 국내 제작회사에게 장악된 탓이다. 그럼에도 미국 미디어를 통해서는 이같이 간단하고 즉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을 알기가 매우 어렵다.앞의 비근한 예는 다소 과장되어있다 하더라도 일본 경제보도에 관한 미국언론의 시각은 이상하게 일본을 역성드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의 제조업 수입량이 소규모에 그치는 걸 지적하면서도 『보호주의가 그 이유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친절한 설명을 붙이거나(89년 에코노미스트),미국의 대일 무역적자와 관련해 『이 문제의 해결책은 이에 대한 보도를 중지하는 것』이라는 사설(94년 월스트리트저널)을 실었다. ○「일본 봐주기」 노골화 6백60억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대일무역적자에 대한 책임의 상당부분을 일본에게 면제시켜준 유수언론의 이같은 논조는 곧 다른 언론매체에서 원숭이같이 곧이곧대로 되읊어지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그 결과 일반 미국독자들은 일본의 경제적 확장이 얼마나 서방에 위협적인 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언론이 퍼뜨린 가장 해로운 일반상식은 『일본의 보호주의 관행은 미련한 사람만이 저지르는 자충수』라고 할 수 있다. 그대로 가만 놔둬도 시간이 흐르면 일본은 현재의 어리석은 대외배척 성향을 버리고 대문을 활짝 열고서 미국 제품을 맞아들일 것이란 얘기다.그러나 경제전문가들이 지적하다시피 영리한 보호주의 조치를 통해 저축률을 극대화한 일본은 불경기를 견뎌내는 강한 체질을 길러왔다. ○일 GDP 미국의 85% 일본경제가 깊은 「슬럼프」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른다고 일반인들도 믿게 되면서 언론의 일본봐주기는 보다 노골화되고 있다.90년대들어 일본 경제가 눈에 확 띌 정도로 끈질긴역경에 처해있다는 얘기를 줄곧 듣다보니 미국인들은 이제 다시 일어선 미국이 진창에서 허우적거리는 일본을 눌러버렸다고 은연중 생각하는 버릇이 들었다.이 생각은 착각도 보통 큰 착각이 아니다. 다음 몇가지 통계수치를 살펴보면 일본이 슬럼프에 빠졌다는 기간동안 미국의 손해를 디딤돌로 해서 얼마만큼 경제력을 키웠는지 금방 알수 있다.이런 수치들은 묘하게 미국언론에는 잘 먹히지 않았다. ▲현재 환율로 계산해서 일본의 경제력(국내총생산)은 미국의 85%이상에 이른다.80년대 말에는 55%였다.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현 환율로 세계최고다. ▲93년 기준으로 일본의 순저축액은 8천1백90억달러인데 그해 24개 선진국그룹인 OECD의 총 저축증가액 중 56%를 차지했다.미국은 5%점유에 그쳤다. ▲일본의 대외원조는 세계최대이며 중요한 동아시아 지역의 경우 미국보다 20배나 더 많이 원조한다. ▲인구가 미국의 절반인 일본은 미국보다 제조업 상품을 더 많이 수출하고 있다. ▲일본의 실업률은 세계최저 기록을 계속하고 있으며 「슬럼프」에도 불구 90년이후 총 3백20만개의 일자리가 순수하게 늘어났다. 이같은 엄연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미국 언론은 「미국이 일본을 쳐부쉈다」는 식의 얘기와 논조를 줄창 지속한다. 지난 90년4월의 저점을 기준으로 해서 엔화의 달러시세는 그간 배로 올랐는데 이만한 규모의 환율변동은 일본산업에 엄청난 압력이었음이 틀림없겠지만 이것은 건강한 압력이었다.이 기간동안 일본의 주요 제조업체 가운데 망해 나자빠진 기업은 단 한개도 없다. ○실업률 증가 거의 없어 서방 언론 특히 미국은 예전부터 일본을 과소평가하는 버릇이 역력했다.지난 30년대말 일본경제력을 얕잡아 보는 바람에 중국에서 일본황군의 의도를 캐치하는데 실패했고 50년대초에는 독일한텐 전쟁배상금 8백억달러를 물리면서도 같은 전범국 일본에겐 10억달러 배정에 그쳤다.70년대 중반 오일쇼크 때 서방언론들은 일본이 최대의 희생자라면서 동정을 아끼지 않았는데 개중엔 전체적으로 매출이 55%까지 격감될 것이라면서 이대로 가다간 자칫 군국주의자나 공산주의자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고 호들갑을 떤 매체(이코노미스트)도 있었다.말할 것도 없이 일본경제는 무너지지 않았고 그러기는 커녕 실업률증가가 거의 기록되지 않은 채 더 강해졌다. 90년대의 슬럼프 이야기도 비슷하다.멀지않아 일본 경제력은 미국보다 광년만큼 앞서있을 것이다.그때 미국언론과 독자들은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나 하고 머리만 절레절레 흔들고 있을 따름일 터이다.
  • 한국에선…/범람하는 왜색가요(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10)

    ◎안방까지 침투한 「일본노래」 바람/대학가 음반·뮤직비디오 복제품 “불티”/「신토불이」 모르는 10대에 유행병처럼 번져/위성방송 타고 확산… 표절가요도 한계수위 서울 동숭동 대학로 바탕골소극장 앞마당.현란한 옷차림의 젊은이 10여명이 무언가를 빙 둘러싸고 있다.가까이 가보니 일명 「길보드 차트」 또는 「손수레 기획」이라고 불리는 불법복제 음악테이프를 판매하는 노점상.몇백개의 테이프가 좌판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가운데 쓰요시 나가부치,야스이 이노우에,구와다 밴드 등 기성세대에겐 낯선 이름들이 눈길을 끈다.모두 일본가수나 그룹의 이름.국내 수입이 금지되고 있는 일본가요를 테이프 한개당 2천5백원씩의 헐값에 드러내놓고 팔고 있는 것이다.이 「길보드 차트」「손수레 기획」의 주요고객은 이곳에 놀러나온 학생이다. ○주요 고객은 학생 서울 세운상가의 종로4가쪽 육교상가에도 슬레이트로 상자처럼 지은 레코드가게 여러 개가 있다.외양은 허름하지만 복제레코드 5천원,CD원판 3만원,복각판 1만5천원을 비롯,5만∼10만원에 이르는 레이저디스크까지 일본가요음반 수백종을 갖추고 손님을 끌고 있다.주인은 『일본서 나온 유행가요는 거의 다 갖추고 있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는다. 일본가요의 국내 침투는 이처럼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상설단속반을 자체운영,지속적인 단속을 펴고 있기 때문에 불법복제돼 팔리는 소위 「빽판」은 발붙일 데가 없을 것』이라고 문체부 영상음반과 관계자는 말하지만 『지난 2∼3년간 이곳의 노점상은 두배 가까이 늘었다』는 게 대학로에서 카페를 열고 있는 김기환(29)씨의 얘기다. 일본가요의 국내 침투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점은 이밖에도 곳곳에서 확인된다.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휴학생 김대현(22)군은 『예전엔 일본음반을 사려면 세운상가까지 나가야 했지만 요즘엔 집앞 레코드가게 중에도 음반을 구해주는 곳이 생겼다』면서 『웬만한 나이트클럽이나 앞구정동,홍대앞의 록카페 등에서 일본가요 몇곡쯤 트는 것은 기본』이라고 전했다. 명목상 수입금지되고 있는 일본 대중가요가 이미 우리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뼈아픈 일제 36년간 일본의 엔카에 무력하게 노출됐던 우리 대중가요는 해방후에도 늘 왜색시비에 휘말려왔지만 지금의 상황은 과거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트로트의 뿌리가 엔카라는 주장 아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문주란의 「동숙의 노래」 등 1백50여곡이 왜색으로 몰려 무더기 금지된 것이 지난 65년.이때만 해도 금지조치 하나로 무자르듯 왜색을 몰아낼 수 있으리라 믿을 만큼 일본가요는 단지 정서의 문제였다. 하지만 일본 가요음반의 수요가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음지에서 꾸준히 커져가고 있는 현재,문제는 산업적 차원으로 확대된다.서울음반 홍보과장 박영민씨는 『불법 일본음반이 우리 가요팬의 입맛을 길들일대로 길들이고 난 뒤 개방이 될 경우 일본 음반회사들은 그 수요층을 손 하나 까딱 않고 흡수할 수 있게 된다.자본력에서 취약한 우리 음반산업이 첫판부터 치명타를 맞고 비틀거릴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라고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음반산업 치명타 최근 7∼8년 사이 일본가요가 이처럼급속히 국내에 파고 든 배경은 매체의 발달,해외여행자유화 등이라는 것이 현대방송 음악프로 구성작가 최재민씨의 말.그는 『80년대말 위성방송을 타고 흘러든 일본가요를 접한 강남 일부층이 해외여행자유화와 함께 일본에서 직접 음반을 들여오면서 불법복제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면서 『개방과 자유화가 진행될수록 단속보다 국민의 성숙한 의식만이 일본색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일본가요가 난무하자 나타난 또 다른 부작용이 국내 작곡가들의 일본노래 표절이다.MBC 라디오국의 조정선 PD는 『우리 가요의 일본노래 베끼기는 이제 한계수위에 이르렀다는 게 일선 PD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전했다.PC통신 가요동호회방에 가입자들이 올려놓은 사례는 우리의 가요표절이 얼마나 중증인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모가수의 3집앨범에 실린 모곡은 일본 모그룹의 곡 처음 16소절을 리듬진행부터 코러스,바이브레이션까지 그대로 베꼈다」 「언제 엠티가 다 들은 곡이 있는데 일본 그룹 몇번째 앨범 몇번째 트랙에 있는 곡과 똑같더라」며 전문가에 가까운 지식으로 표절을 성토하던 가입자 사이에선 「이젠 표절도 실력」이라는 자조적인 말까지 나돌고 있다. 지난 93년 공윤 가요심의위원회(이하 가심위)는 각각 일본 구와다 밴드,사카이 노리코의 곡을 베낀 이상은의 「사랑할 거야」,신성우의 「내일을 향해」 등을 포함,18곡의 가요를 무더기 표절판정했다.바로 그 가심위가 지금은 휴면상태다.가심위의 홍창기 부장은 『표절은 법적으로 표절당한 당사자만이 고소할 수 있는 신고제인데다 6명의 심의위원이 하루 몇백곡씩의 신곡을 일일이 연구할 수도 없는 형편』이라며 『지난해부터 표절심의는 일체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남의 것 베끼기를 통해 손쉽게 인기를 끌어보려는 작곡가들이 이를 걸러낼 인력이나 제도의 미비를 틈타 아무 의식 없이 표절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가수들 베끼기 앞장 개방을 눈앞에 두고 이처럼 갈수록 득세하는 일본가요가 우려스러운 또 하나의 이유는 가요에 가장 쉽게 노출되는 계층이 비판능력 없는 청소년이라는 데 있다.일제를 체험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일본에 대한 민족감정의 골이 엷은 청소년에게 일본가요는 「그냥 노래」일 뿐이다.가요평론가 강헌씨는 『미국이나 유럽 것과 달리 일본가요는 자극적인 멜로디로 철저히 틴에이저를 겨냥하고 있다.청소년이 솜에 물젖듯이 받아들이게끔 돼 있다』면서 『민족적 주체성을 아랑곳하지 않고 돈벌이에 급급한 어른의 의식이 먼저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다시 한번 일본의 문화식민지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 음악평론가 박용구(이세기의 인물탐구:80)

    ◎「열린 시각」으로 「평론 외길」 50년/음악·무용 비롯,모든 문화분야 탁발한 이론 전개/「음악 교육론」… 일제가 말살한 우리 정서 부활 노력/저서 「교양의 음악」은 클래식 음악감상 지침서로 유명 「미를 위해서는 깨뜨릴수 없는 규칙이란 없다」.이는 베토벤의 말이다.또 입사 박용구의 좌우명이기도 하다.「미를 창조하기 위해 무엇을 파괴해도 아깝지 않을만큼」그의 의식과 사상은 줄기차게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있었고 언제나 「열린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음악계는 말한다.「그것은 예술가 특유의 삶에 대한 위기의식과 긴장 탓」이며 「긴장이 자유를 향한 끈질긴 집념이라면 그에게 있어 자유란 예술자체이자 삶자체」일 것이다. 「박용구는 해방공간으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50여년동안 계속해서 활발한 평론활동을 벌여온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이는 작곡가 이건용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가 92년 「낭만음악」(여름호)특집 「작가연구」에서 밝힌 말이다. 같은 글에서 이교수는 「50년에 이르는 평론활동은 우리나라 음악사에서 유례가 없는 것」이며 「잡지나 신문들이 일정한 평론가에게 그 긴기간동안 계속적으로 원고청탁을 하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라고 짚고 있다.또 「음악과 무용정도의 범위가 아니라 그는 예술문화를 제한없이 드나들며」『논리전개도 상당히 분방하고 자유로운 필치,때로는 대담한 직관과 상상력에 따라 논조와 사안별로 관심의 소재가 변하는 「논리에 입각한 비평가라기 보다 감각에 의한 비평가」』라고 결론짓는다. ○예술계의 팔방미인 실제로 그가 우리 문화예술에서 점하고 있는 영역은 넓고 깊고 다양하다.그래서 예술에 관한 한 그를 「팔방미인」이라고 부르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음악펜클럽 예술평론가협의회 유니세프문화예술인클럽을 비롯하여 최근의 국제적인 세계무용연맹(WDA)도 그가 주관하는 단체이고 그가 쓴 「춘향가」「줄리아」「님의 침묵」등 수많은 작품들은 교향시·오페라로 작곡되어 호평받은바 있다. 과연 그의 평문은 어느 지면에서나 탁발한 이론을 유창하게 전개하면서 도저한 주관을 꿋꿋하게 지키는 것이 특징이다.해방직후 발표한 「아동음악 교육론」은 「일제의 문화정책 말살로 불식된 우리 고유의 민족적 음악감수성을 아동음악 교육으로부터 키워야 한다」는 제언이었고 전5권으로 펴낸 「교양의 음악」의 경우는 클래식음악팬의 음악감상을 위한 지침서일 뿐만 아니라 음악지망생과 음악관계 전문가들에게 「풍부한 정보」와 「해박한 지식」을 섭취시킨 교과서이기도 했다. 「예술가란 어느 시대에서나 환경의 도전자요,권위의 파괴자로서 선구자적 역할을 해야한다」고 역설해온 그는 60년대말 12음기법의 창시자인 쉔베르크 도형악보의 존 케이지·베베른·베르크와 슈톡하우젠에 이르는 실험적인 현대음악을 우호적으로 수용하는가 하면 당시 새로운 사조에 편승한 윤이상·백병동·강석희·황병기 등의 전위작업을 「선구자적 도전 정신」으로 평가하여 작가들의 시대정신을 크게 북돋워주었다.「공간」지에 발표한 일련의 「작가론」에서 특히 백병동을 향해 「음악으로 말할줄 아는 소중한 사람」 또는 「그 노여움이 화염이 되어 역사의 밤을 밝히도록 기대한다」고 감싼 것도그런 맥락에서다. ○한약방집 네째 아들 그의 녹슬지 않는 사회정의감은 87년 6월항쟁과 88올림픽이 끝난후 「예총」에 대한 역할회의론이 일어났을때도 「예총도 뉘우쳐야 한다」는 글에서 심장한 어조를 멈추지 않는다.그는 「예총이 해야할 일은 하지 않고 정권의 시녀노릇만 하고 있다」고 감연히 지적했고 「예총은 절대로 순수하지 않고 결코 지성인의 모임도 아니며 그 체질은 다만 편견과 독선에 차있다.예총이 이념공동체라면 우선 문화예술인들의 정신적인 삶의 조건인 「자유」를 수호하는 일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집단체여야 하지 않는가」라고 안일에 빠져있던 문화예술계의 분발을 촉구했다. 그가 어릴때 소망한 것은 「독립투사」가 되는 일이었다.그러나 독립투사의 조건은 「강인한 인내력과 행동력」이었으나 그는 「불행하게도 이 두가지 강점을 하나도 지니지 못하여」 그때부터 자유롭게 예술을 논하는 사람이 되었고 「무엇이 되고자 하기보다 많이 알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일본체류 기간동안은 주로 「단사들과 더불어 담예논도에 심취」하는 세월을 만들어 나갔다. 도쿄시절의 입사에 대해 건축가 김수근의 회상은 이런 흔적을 진하게 뒷받침해준다.「그는 예술순례를 주도하는가 하면 예술과 문화전반에 걸쳐 밤을 새워가며 격론을 벌이던 모임에서 항상 중심적 위치에 있었다」 더구나 「누구보다 철저한 자유주의자로서 한치도 후회함이 없는 그의 사회정의감과 예술분야에 임하는 지성인의 자세는 당시 유학생들의 귀감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인생항로는 남보다 파고가 거세고 파란이 심한 편이었다. 경북 풍기에서 한약방을 경영하던 박은식씨의 7남매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보통학교 졸업후 조부의 고향이던 평양으로 가서 평양고보에 진학,5학년이 되던해 독서회를 조직한 일로 왜경에 검거되었고 농촌운동에 관심이 컸으나 부친이 부농인 것과 상반되어 이 마저 포기한채 일본에 밀항했다.일본고등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다가 이 역시 체질에 맞지않아 일본의 「음악평론」사에 입사한 것이 음악·무용가가된 계기가 된다. 광복후 조국에 돌아와 첫 평론집 「음악과현실」을 출간,초판이 보름만에 팔려나가는 이변을 보였으나 월북 음악가를 거론했다는 이유로 재판부터 판금조치를 당했고 이와 관련하여 그는 다시 50년대를 일본에서 보내지 않으면 안될 수난의 역사를 되풀이 할 수 밖에 없었다.정처없이 떠돌던 자신의 「끝없는 파란」과 「방랑」을 「방랑시인 김삿갓」에 비유하여 스스로 삿갓 입자를 쓴 「입사」란 호를 지어 가진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창작희곡 집필 몰두 창작희곡집 「흙비」 후기는 그의 솟구치는 앙양과 침정을 요연하게 드러내는 고백성사와도 같다.「나는 성깔부터가 적을 사랑하라는 박애주의자가 되지 못함을 알고 있다.사랑해야만 할 것이 있기 때문에 미워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있었다.여기의 작품들은 사랑에서 보다는 미움으로 해서 쓰여졌는지도 모른다.그만큼 내 생애는 미움에 찬 세월이었다.마음의 눈은 항상 핏발이 서 있었다」고 처연한 심정을 글귀마다 담고 있다. 그는 82세의 나이와는 걸맞지 않게 모든 사고방식은 활짝 열려있고 목소리는 낭랑하며 행동은 반듯하다.그가 살고있는 세검정 세이장은 20여년전 건축가 김수근씨가 설계한 트롬본처럼 말려올라간 예술주택으로 요즘은 지난해 가을 문예중앙에 발표한 「바리데기」후속으로 우리 「무가」의 원천사를 집대성한 방대한 창작희곡 집필에 들어가 있다.그만이 남길수 있는 단테의 「신곡」 못지않은 명작에의 도전이라는 각오다.가족은 남매는 모두 출가하고 부인 정덕미 여사와 둘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기를 원한다.그의 주장대로 「자유롭게 생각하며 살고자하는 염원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면 예술미의 창조는 요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그러나 어떤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가 원한대로 언제나 「멋대로」 흘러왔으며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처럼 「우리 모두가 별이 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지금도 굳게 믿고 있는것 같다. 「예술자체이자 삶자체인 자유가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한」그는 「가장 선한 장엄미 건축을 위해」 그의 멋과 자유를 파괴하는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그런 순간을 위해 예술관조의 형안도 끝내 그 빛을 잃지 않을것이다. □박용구 연보 ▲1914년 경북 풍기출생 ▲33년 평양고보졸업,도일,일본대 예술과 입학 ▲37년 일본고등음악학교 졸업,일본 「음악평론」사 입사 ▲49년 첫 평론집「음악과 현실」(민교사)출간,도일 ▲50∼60년 일본 도쿄 고마키(소목)발레단 문예부장 ▲52년 일본 「배우좌」연출공부 ▲62년 서울음악평론동인회대표간사 ▲66∼68년 예그린악단단장 ▲70∼76년 공간사주간·운영위원 ▲76년∼현재 음악펜클럽 회장 ▲81년∼현재 예술평론가협의회회장 ▲83년∼현재 채동선기념사업회장 ▲86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기획단장 ▲88∼94년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93년∼현재 세계무용연맹 발족(WDA),한국본부 회장,은관문화훈장 ▲94년 창작희곡 「바리데기」(문예중앙 가을호)발표 ▲95년 세계무용연맹 창립총회및 아시아 태평양센터주최 국제무용페스티벌(KIDE)개최 「음악의 별들」(어문각 48년) 「음악입문」(박문출판사) 「음악과 현실」(일지사 49년) 「교양의 음악」전5권(창조사 69년) 「음악의 주변」(창조사 70년) 「음악의 광장」(일지사 75년) 「불멸의 음악가들」(일지사) 「음악의 세계」(계몽사) 「음악이 만나는 자리」(일지사 77년) 「음악의 문」(청한문화사 81년) 창작집 「흙비」(해보라 기획 85년) 「오늘의 초상」(일지사 89년) 「명곡과 명인들」(세광음악출판사) 「어깨동무라야 살아남는다」(지식산업사 95년)출간외 논문 무용극본「님의 침묵」 「바리공주」 오페라극본「춘향가」 「줄리아」등 다수
  • 한중민영화 「단계적 방식」 설득력 있다(경제평론)

    한국중공업의 민영화방안이 다시 논의되고 있다.한중은 지난 89년 11월 공개입찰에 붙여졌다가 유찰된 후 민영화가 보류되어 오다 산업연구원(KIET)이 지난 7일 민영화방안을 발표함으로써 그 논의가 재연되고 있다. KIET는 한중의 민영화방안으로 8가지의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그중에서 기업공개를 통해 어느 정도 소유권을 분산시킨 뒤 경영권확보에 필요한 20∼30% 주식을 공개입찰을 통해 단일기업에 공개매각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KIET는 또 발전설비 일원화조치는 수력 및 화력발전설비는 당초 예정대로 내년부터 일원화를 해제하되 기술축적기간이 길고 안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원자력설비는 민영화이후에도 계속해서 한중으로 일원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정부가 오는 연말까지 KIET가 마련한 한중민영화방안을 토대로 민영화방식과 시기를 확정할 예정으로 있어 이번 발표는 업계의 커다란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KIET가 밝힌 기업공개후 공개입찰 방식은 한중의 민영화로 인해 특정재벌의 경제력이 한층더 집중되는 것을 억제하면서 단일기업에 넘겨 「주인 있는 민영화」를 하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기업공개를 통해 주식분산을 시킨다는 것은 경제력집중을 완화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고 공개입찰을 통해서 단일기업에 넘긴다는 것은 「주인있는 민영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방안으로 한중이 민영화될 경우 시기는 대략 98년초가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왜냐하면 현재 한중이 사옥 및 정산금 등을 놓고 현대중공업 및 현대산업개발과 벌이고 있는 소송이 내년에야 끝나는데다 기업공개절차를 거치자면 1년 2개월∼1년 3개월이 걸리고 공개경쟁 입찰을 통해 기업에 넘기는 것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연구원의 민영화방안은 직접적으로 민영화시기를 표현하지 않고 있지만 소요되는 시간을 감안하면 시기도 제시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KIET안은 정부가 시간적 여유를 갖고 한중을 단계적으로 민영화하여 특혜시비 등의 문제를 최소화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다. 한중민영화에 있어 우려되고 있는 문제는 특정재벌에 대한 특혜의혹이다.과거 6공화국시절한중을 민영화하려다 중단된 것도 특혜의혹 때문이다.한중은 작년말 현재 총자산 2조7백67억원에 매출액이 1조8천억원에 달하며 1천8백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낸 바 있다.이 금액은 재벌랭킹 5위그룹이 지난해 올린 이익금보다 많은 것이다. 한중 민영화는 우리나라 중공업의 판도는 물론 재벌의 순위를 바꾸어 놓을 것이기 때문에 상위 재벌들간에 인수를 둘러싸고 오래전부터 신경전이 대단한 실정이다.그러므로 한중을 일반에 공개하여 주식을 분산시킨 뒤 공개입찰을 통해 매각하는 KIET의 단계적 민영화방식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민영화방안에는 한가지 반문이 따른다.이 방식대로라면 한중의 완전민영화는 다음 정권에 가서나 가능하지 않느냐는 점이다.6공화국이 특혜의혹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현정권에 넘겼다고 해서 또다시 다음으로 미룬다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과거 정권은 특혜시비를 불러 일으켰으나 현정부는 그렇지 않다.정부가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절하고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국민여론을 수렴한 뒤 적법절차에의해서 한중을 민영화한다면 특혜시비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한중 민영화를 97년말까지 끝내도록 시기를 기술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경쟁력강화를 위한 한중의 민영화가 또다시 지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다만 정부가 특혜문제를 최소화하는 노력은 필요하다.특혜요인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단일기업에 공개매각을 할 것이 아니라 중견기업 및 협력업체들과 컨소시엄을 형성해서 입찰에 응하도록 하는 것이 고려될 수 있다. 재계도 단일기업 입찰이 불가능할 것에 대비하여 컨소시엄 구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협력업체 등과의 컨소시엄구성이 경영의 안정성을 해치지는 않을 것이다.또하나 원자력발전설비를 일원화하는 것도 커다란 특혜에 속함으로 특정기업이 한중을 인수한 후 일정기간 동안만 일원화를 인정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 여성소설가 인기/사회환경변화가 주인

    ◎평론가 박혜경씨 「문학동네」가을호서 분석/80년대 「광장 문학」서 90년대 「밀실 문학」으로/「사랑타령」 탈피… 여성문제 사회문제적 접근 문단에 여성 소설가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요즘 소설가들 가운데 공지영·신경숙·김형경 등은 남성보다 먼저 꼽히는 여성작가.마땅히 떠오르는 남성 신예작가는 없는데 한강·송경아·배수아·김미진·강규·김운비·김이소 등 여성 소설가들의 작품은 봇물을 이룬다.여성소설가 바람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이 여성소설가들의 작품이 듣기좋은 사랑타령에 그치지 않고 나름의 진지한 문제의식으로 뿌리깊은 남성위주의 문단체제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소설가들이 이처럼 문단에 「또하나의」 흐름을 이룰 정도가 되자 여성 비평가인 박혜경씨가 이같은 현상의 문학적 의미를 밝히는 평론을 내놨다.계간 「문학동네」 가을호의 「90년대 여성소설가」 특집에 실릴 「사인화된 세계속에서 여성의 자기 정체성 찾기」가 그것.평론가 황종연·우찬제·신수정씨의 작품론과 한데 묶일 이 글은 최근의 30대 여성소설가들을 여러 층위에 걸쳐 분석하면서 여성작가 붐의 의미를 따져보고 있다. 여성소설가 약진의 가장 큰 배경으로 박씨가 꼽는 것은 80년대와 90년대를 뚜렷이 가르는 사회환경의 변화.두개의 힘이 서로 다른 이념으로 맞섰던 80년대 곪은 사회를 껴안고 함께 쓰라려 해야 하는 것을 당위로 여겼던 문학은 역사·사회·정치 등 거시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끌여들였다.여성이 훨씬 민감하게 포착하는 개인적 욕망이나 실존의 문제는 자연히 스스로 잦아들 수 밖에 없었다.하지만 높기만 하던 명분이 어느 순간 물거품으로 변하자 문학도 존재의 내밀한 욕망,심리적 갈등 같은 사인의 문제에 자리를 내주게 됐다.80년대 「광장의 문학」이 90년대 「밀실의 문학」으로 바뀐 것을 계기로 여성작가들이 「비온 뒤의 죽순처럼 솟아 올라오기 시작」한 것.박씨는 80년대 중반부터 줄곧 내면의 미묘한 흔들림을 다뤄온 소설가 신경숙이 90년대 와서야 스타로 떠오른 이유를 이같은 정황에서 찾는다. 이런 배경하에 우선 가족사를 매개로 한 자전적 성장소설들이 쏟아졌다.신경숙의 「외딴방」,김형경의 「세월」,공선옥의 「떠도는 나무」,이혜경의 「길위의 집」 등이 모두 그같은 범주에 드는 것.이들은 「개인에게 주어진 작은 실존적 삶」으로 소설이 공간이동하는 사정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면서 사회문제조차 가족이라는 용광로속에 끌어들여 녹여버린다. 한편 「이념」이 무너지고 난 자리에 페미니즘이 부상하면서 여성작가 소설의 주요한 전략으로 여성의 자기정체성 탐구가 대두됐다고 박씨는 분석한다.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이같은 전략이 전면에 드러난 예.같은 작가의 「고등어」나 김형경의 「새들은 제이름을 부르며 운다」 등 운동권 뒷얘기를 다루는 후일담소설도 80년대 이념의 외피에 실은 남녀간 사랑문제를 담고 있다. 남성들과 관계맺고 상처받는 과정을 내밀한 목소리로 그려낸 작품들을 통해 여성작가들은 사적인 차원이라고 홀대받아온 이런 문제들을 어느덧 「사회문제의 범주」로 끌어냈다고 박씨는 평가한다.권력지향적 남성중심주의가 치명타를 입은 90년대보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삶을말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그 갈라진 틈을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