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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친 삶 어루만진 따뜻한 시선/이혜경씨 첫 소설집 ‘그 집 앞’

    지난 95년 장편소설 ‘길 위의 집’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소설가 이혜경씨(39)가 첫 창작집 ‘그 집 앞’(민음사)을 내놓았다.82년 ‘세계의 문학’에 중편 ‘우리들의 떨켜’를 발표하며 등단한 이씨의 작품은 세상살이에 치인 사람들의 상처받은 내면을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 특징. 모두 9편의 중단편이 실린 이번 소설집에서도 작가는 오래 묵은술과 같이 깊은 맛이 느껴지는 문체와 세상읽기를 보여준다. 그의 소설에는 극적인 사건도 화려한 주인공도 없다.소설의 화자는 하나같이 주변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시장에서 닭을 팔며 오빠에게 돈을 대는 노처녀(그늘바람꽃),소실의 딸로 역시 소실 딸인 시어머니의 냉대에 시달리는 가정주부(그 집 앞),목욕탕에서 때밀이를 하는 이혼녀(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의류회사 상무에서 명예퇴직한 뒤 미8군에서 잡역부로 일하는 중년 남자(젖은 골짜기),혼자된 딸 집에서 치매 사돈을 돌보며 사는 여성(어스름녘)….이들의 신산하고 남루한 삶을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주는작가는 그래도 삶은 살아볼만한 것이라는 암시를 던진다.문학평론가 우찬제씨는 작가 이혜경을 “마음의 무늬를 말로 어루더듬어 충분히 전할 줄 아는 드문 작가”라고 평한다.
  • 高大 김화영 교수 ‘문학 상상력의 연구’ 재출간

    ◎시인으로 거듭 난 카뮈/문학 상상력으로 작품세계 고찰/‘이방인’ 분석통해 낭만성 재발견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작품세계를 문학 상상력이라는 방법론에 입각해 고찰한 김화영 교수(고려대 불문과)의 저서 ‘문학 상상력의 연구­알베르 카뮈의 문학세계’가 (주)문학동네에서 나왔다.김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이기도 한 이 책은 지난 82년 문학사상사에서 첫 선을 보인 뒤 한동안 절판됐다가 이번에 새롭게 고쳐 재출간된 것이다.‘카뮈를 시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문학 상상력 연구의 결정판’이란 평가를 받은 역작이다.이 책은 단순한 개별 작가론에 그치지 않는다.무엇보다 문학 상상력 이론과 미학을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카뮈의 작품세계에 접근하는 김교수의 방법론은 색다른 데가 있다.그는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상상력 이론을 원용한다.그 이론을 토대로 금세기의 대표적인 고전주의 작가로 인정받는 카뮈에게서 온갖 색깔의 상상력을 지닌 낭만적인 ‘시인(詩人) 카뮈’를 발견해낸다.카뮈는 실존주의 철학의 지주이자 장식없는 문체의 소유자였다.이 책은 그러한 카뮈에게 놀랍도록 아름다운 시적 세계가 숨겨져 있음을 그의 문제작 ‘이방인’에대한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문학 상상력이란 무엇인가.그것은 프랑스의 가스통 바슐라르와 질베르 뒤랑에 의해 그 이론적 골격이 완성되고 롤랑 바르트와 장 피에르 리샤르가 미슐레·말라르메 등의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가능성의 문을 연 문학연구의 한분야다.문학 상상력은 정적이거나 형태적인 상상력이 아니다.그것은 세계라는 질료를 자신의 욕망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내는 물질적이며 역동적인 상상력이다.그 상상력은 작품이라는 총체적 세계를 매개로 작가의 상상력과 독자의 상상력이 마주쳐 울림으로써 깊이를 획득한다.문학 상상력 연구는 흔히 주제비평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상상력의 혼융에 의해 작품의 주제로 향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김교수는 카뮈의 모든 글을 하나의 닫혀진 총체로서 바라보며 그 중심적 주제를 찾아내는 데 몰두한다.그 작업의 중심동력이 되는 것은 이미지다.카뮈의작품을 분석해 추출된 주제는 동적 이미지로 확대된다.이렇게 확장된 이미지들이 나타나는 모든 문단을 모으고 그것을 포갠 뒤 그 이미지의 의미상을 밝혀내는 게 김교수의 문학 상상력 연구론의 핵심이다. 문학평론가 고(故) 김현은 김교수의 카뮈론과 관련,“카뮈의 작품을 지배하고 있는 주제는 태양과 바다이다.태양과 바다를 원초적 질료로 확대해 빛과 물로 확산시킨 뒤,그것을 포함한 모든 문단을 포개본 결과,그 이전의 연구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돌의 주제가 나타난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그 돌이야말로 카뮈 상상력의 중심이다.요컨대 김교수는 물과 빛과 돌의 이미지를 분석,카뮈의 문학적 상상력을 설명함으로써 카뮈를 소설가의 자리에서 시인으로 다시금 태어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 抗日 민족시인 이상화 전집 발간

    ◎미발표 유고 등 시·산문 80여편 묶어 올해는 항일 민족시인 상화(尙火) 이상화(1901∼1943)가 타계한지 55주년이 되는 해.대구문인협회가 그의 업적을 기려 이상화 전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그루)를 펴냈다. 상화는 1921년 동향의 글벗이던 현진건의 권유로 ‘백조’ 동인이 돼 시작활동을 시작했다.상화의 시는 그가 일본 관동 대지진 현장에서 동족들이 무참하게 학살당한 참극을 목격하고 1924년 귀국한 뒤 크게 바뀐다.이전의 도피적이고 소극적이던 시풍이 저항적이고 적극적인 항일시 내지 민중시로 탈바꿈한 것이다.그가 소년시절의 ‘무량(無量)’과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에 사용하던 낭만취향의 ‘상화(想華)’라는 아호를 혁명지향의 ‘상화(尙火)’로 고쳐 쓴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박영희·김팔봉과 함께 카프 조직에 참여한 상화는 1926년 식민지 조국의 현실을 고발한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했다. 상화 시의 특징으로는 육화(肉化)된 항일 문학성과 직정적(直情的)인 서정성, 선명한 상징성,휴머니즘적인 민중성 등을 들수 있다.한 예로 데카당스적인 요소가 짙은 그의 데뷔작 ‘말세의 희탄(희嘆)’과 ‘나의 침실로’에서의 ‘동굴’은 가스통 바슐라르가 지칭한 요나 컴플렉스로서의 아늑한 도피 공간으로서 식민통치하의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또 산문시 형식의 ‘금강송가’에서의‘금강’은 민족정기를,붉은 피울음소리를 뜻하는 ‘비음(緋音)’에서의 ‘핏물’은 식민지 백성의 고단한 처지를 상징한다. 이번에 나온 이상화 전집에는 ‘백조’ 창간호에 발표한 ‘말세의희탄’에서부터 미발표 유고 ‘만주벌’에 이르기까지 60여편의 시와 20여편의 산문,이상화 연구논문 등이 실렸다.문학평론가인 중앙대 이명재 교수는 상화의 시를‘나의 침실로’와 같은 초기의 감상적인 낭만주의 시,‘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같은 중기의 민족·민중적 성향의 항일시,‘곡자사(哭子詞)’와 같은 후기의 민족적 비애를담은 우국시로 나눈다.상화는 그 문학 역정면에서 볼 때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 민족문학 본연의 길로 되돌아온 변증법적인 항일 민족문학의 실현자”라는 게 이교수의 설명이다.
  • 강남大 방송국 장애인 PD 이경헌군

    ◎“인생에 대한 도전으로 방송 지원”/‘3D동아리’ 자원… ‘방송따라잡기’ 프로 가장 인기 ‘레디 큐’ 28일 상오 10시 경기 용인시 기흥읍 강남대 방송국(KUB) 스튜디오. 언어 및 지체 장애자인 이경헌군(21·사회복지학부 2년)이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방송제작에 몰두하고 있다.이군의 직책은 방송 프로그램을 총지휘하는 PD(프로듀서). 지난 20일 개교기념일 교내방송을 준비하며 바쁜 나날을 보낸 이군은 오늘도 방송준비에 여념이 없다.이군은 “몸이 불편해 일반학생들보다 일의 속도가 늦기 때문에 미리 방송을 준비하곤 한다”고 말한다. 이군은 서울방송(SBS)제작관리국 부국장으로 근무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지나해 3월 입학하자 마자 방송국에 지원했다. 장래희망은 정작 목사이지만 방송일을 의지의 실험대이자 인생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하고 지원했다. 요즘에는 학보사와 방송국 등이 3D동아리로 분류돼 일반학생들이 지원을 꺼린다.또 방송의 매력 때문에 찾아온 대부분의 학생들도 힘이 들어 중도에 포기하기 일쑤란다. 하지만 이군은 오히려 가장 힘들다는 PD를 지원했다.그래선지 20여명의 회원 가운데 PD는 단 2명. 그가 담당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모두 3종류.월요일 점심 시사프로그램인 ‘다이얼 629’와 금요일 아침을 시작하는 음악프로그램인 ‘해피데이’와 점심 방송평론 ‘방송따라잡기’. 프로그램 하나의 방송시간은 불과 20여분이지만 기획에서 제작,연출 등의 전과정을 준비하려면 3∼5시간이 걸린다. 이 때문에 이군은 3개의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수업시간을 빼고는 모든 시간을 방송국 일에 매달려야 한다.작업이 밀릴 때는 밤샘작업을 하기 일쑤다. 이군은 “아버지로부터 전해들은 방송계의 뒷이야기 등을 곁들인 ‘방송따라잡기’가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코너”라며 “가끔 재학생들에게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군은 “장애인도 일반인들 못지 않게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방송일에 도전했다”며 “일반 학생들이 내가 만든 방송을 들으며 활기찬 대학생활을 한다는 보람으로 일한다”고 덧붙였다.
  • 음악평론가 韓相宇(이세기의 인물탐구:169)

    ◎‘올곧은 비평’ 음악계 정의의 사제/방송·강연 통해 고전음악 정신 전하는데 전력/음악만 생각하고 음악속에 살아가는 ‘노신사’ 누군가 음악평론가 韓相宇를 향해 ‘신비로운 음악의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라고 했다.그의 해박한 음악지식은 단순히 평론가의 차원이 아니라 몸속에서 음악이 넘쳐서 흘러나오는 식이다.그가 음악을 감상하는 태도는 한음한음을 주의깊게 들으면서 악보의 쉼표와 점하나까지도 놓치지 않는 실력이다. ○논리정연한 이론가 음악을 통해 정신적 위로와 감동을 맛보기 위해서는 옷깃을 여미고 기도하듯이 콘체르토와 심포니에 접근해 나간다.거짓이 없는 순결한 마음을 지키면서도 예술가의 고뇌나 센티멘탈리즘대신 이론가답게 논리정연하고 글귀마다에 번뜩이는 경구가 도사린다. 악곡뿐만 아니라 그 곡에 관련된 예술가 자신의 삶과 죽음,연주에 얽힌 작은 에피소드 하나까지도 철저하게 궁구(窮究)하여 절중(節中)을 기하는 주의다. 그러나 미소망상(微小妄想)이 없고 자신을 포장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원로 박용구씨의 말대로 ‘어떤 경우에도 결백하고 청담(淸淡)한 인품을 지닌 신사가 한상우’인 것이다. 이른바 ‘작곡가나 작품명을 줄줄이 외우고 디스크 진열을 자랑삼는 것’은 천열(賤劣)하다고 지적하고 전통을 중시하지만 완강하게 자기고집만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자연스럽게 자유하는 마음가짐이 그의 인간됨이며 옳지 못한 일을 지적할 때도 날카로운 송곳을 드러내기보다 상대방의 실수를 부드러운 유머와 재치로 감싼다. 그의 생활방식도 음악을 대하는 진지함과 상통한다.집안은 조선왕조 후기에 총융사(總戎使) 어영대장 공조판서를 지내고 갑신정변때 나이 사십에 순절한 충숙공(忠肅公) 韓圭稷이 그의 증조부이고 포대장 장위사(壯衛使) 찬정(贊政)을 지낸 韓圭卨이 작은 증조부,부친은 충북 제천중을 설립하고 제2대국회의원을 지낸 韓弼洙씨다.그러나 부친은 ‘계파’를 따지는 것을 지극히 자제하여 ‘앞으로의 삶이 더 중요한만큼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고 자녀들에게 일러왔다.‘과거집착에서 벗어난 해방감’과 ‘자유로움 속에서 떳떳한 자세’는 바로 부친이물려준 가르침 덕분이다. ○세계적 명반 대량 소장 부친은 37년 서울을 등지고 조부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있는 제천으로 낙향했고 그는 다음해 그곳에서 태어났다.형제는 4남2녀중 막내,다섯살을 전후해서 유성기옆에서 붙어살다시피 하면서 교회나 동네모임에서 하모니카 독주,한때는 부친이 광산에 손대는 바람에 모진 파란을 겪기도 했으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언제나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강한 생활력’을 터득할 수 있었다.노래부르기를 좋아하고 세계명곡집을 비롯한 갖가지 음악책과 음악사전문학작품집에 몰두하여 음악이론을 향한 탄탄한 지식을 쌓아왔다. 그가 방송에서 음악해설을 시작한 것은 문화방송제작위원으로 있던 72년부터다.그때도 방송 첫머리에서 ‘안녕하세요’라든가 ‘오늘 날씨가 좋다’는 식의 형식적인 멘트를 하지않았다.‘물론 안녕하니까 나의 방송을 듣고있다’는 생각에서 청취자를 음악의 숲으로 인도해주었고 이런 결곡한 매너가 ‘나의 음악실’을 14년이상 장기프로로 성공시킨 비결일 것이다.음악평에 손댄지도 30년이가깝다.서대문구 대신동 그의 집 음악실에는 낡은 유성기에서 레이저 디스크등 최신 오디오시스템을 고루 설치하여 그는 새벽에 일어나서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고 저녁에는 음악회에 간다. 그의 음악평중에서 지난 75년,한 일간지에 시리즈로 실었던 ‘해방 30주년을 맞아 살펴본 현실과 그 반성’은 음악계의 병폐를 신랄하게 비판한 일대사건으로 기록된다. ‘음악계 이대로 좋은가’제하로 ‘연주회는 돈많은 자랑이거나 교수진급을 위한 것,교향악단은 연주회보다 개인레슨같은 부업에만 치중하고 교수는 특기자 입학을 미끼로 한 밑천 잡자는 식,오페라는 나눠먹기 배역에다 해외유학생들은 귀국하자마자 대학전강부터 따고나서 자리를 고수하기에만 급급하다’고 꼬집었다.이어서 ‘작곡도 탈낭만(脫浪漫) 탈정서(脫情緖)운동으로 지나치게 난해하고 애매모호할뿐 아니라 음악성이 결여되어있고 평론가 자신도 색종이를 오려붙이듯이 미사여구나 동원해서 주문식 잡문이나 쓴다’고 몰아붙였다. 이로 인해 음악계는 발칵 뒤집혔으나 평론계의 원로 유한철씨는 ‘한국음악계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인 관점에서 시정해야 할 점을 끌어내어 격려한 사항은 바람직하다’고 공감해 주었다.최근에도 그는 ‘신인발굴의 허구성’이란 글에서 ‘교향악단들이 예술적 양심으로 되돌아가 청소년연주회에 최선을 다하는 모범을 보이라’고 전제하고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청소년협연자를 내세우는 연주를 하지말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음악 조기영재교육 장려 그는 대학강단과 서울예고에 몸담고 있는 동안 비평활동과 음악의 조기영재교육을 장려하고 방송과 강연을 통해 차원높은 고전음악 정신을 전하는데 전력해온 공로자다.가족은 핵물리학을 전공한 辛承愛 교수(이화여대)와의 사이에 남매,그들 부부는 ‘인간으로서 또는 전문직을 가진 사회인으로서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민주적인 가정’으로 소문나 있다.좋아하는 음악가는 브람스와 슈베르트,카루소가 1910년대 취입한 SP를 LP화시킨 RCA 50주년기념판과 빈필하모닉 150주년 기념음반등 세계적 명반들을 소장하고 있다. 지난 70년대부터 살고있는 그의 집마당에는요즘 살구나무 감나무등 유실수와 회양목 향나무등 수목이 우거지고 집안은 봄꽃들이 만개하여 꽃향기가 범람한다.‘부자는 부(富)로 괴롭고 빈자는 빈(貧)으로 괴롭다지만 나는 부하지도 빈하지도 않으니 괴로울 이유가 없다’는 그는 때마침 취미와 전공과 직업이 모두 ‘음악’이기 때문에 ‘음악만 생각하고 음악속에서 살고있는,참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에 틀림없다.물질의 허욕에서 벗어나 오로지 음악계의 ‘정의의 사제’ 로서 그는 오늘도 자신을 위한 보보행진(步步行進)을 멈추지 않는다. □연보 ▲1938년 충북 제천출생 ▲1958년 제천고 졸업 ▲1962년 서울대 음대 작곡과졸업 ▲1962­69년 무학·경기중교사 ▲1969­84년 문화방송제작위원 ▲1980­86년 문화공보부 자문위원 1980­93년 국립극장 자문위원 ▲1987년 대한민국음악제 집행위원 ▲1984년 단국대대학원 졸업 ▲1982­85년 公倫 영화심의위원, 아세아청소년음악연맹 한국지부회장 ▲1985­88년 公倫 음악심의위원 ▲1984­96년 서울예고 음악과장▲1987­89년 서울올림픽 문화예술 자문위원, 국제음악제 운영위원 ▲1989­93년 한국음악협회부이사장 ▲1990년 문화부 기획위원 ▲1991년 남북문화예술교류정책자문 ▲1996년 KBS교향악단 자문위원 ▲1996­97년 월간음악춘추편집인 ▲1997­현재 KBSFM음악회 실황중계진행자,성균관대 출강 한국음악협회이사,세계청소년음악연맹 한국위원회이사, 예술의 전당이사, 한국페스티벌앙상블이사 ‘선율,온 영혼의 불꽃’ ‘삶과 죽음의 음악’(청한출판사) ‘북한음악의 실상과 허상’(신원문화사) ‘한국오페라 50년사’등 출간 예술평론가상(80년) 국음악상(94년)
  • 유니버설 발레단/북미대륙 성공적 데뷔

    ◎지난달부터 ‘심청’ ‘백조의 호수’ 순회공연/관객·언론들 찬사… 메카 진출에 디딤돌 마련 지난달부터 창작발레 ‘심청’과 고전발레 ‘백조의 호수’를 들고 미국과 캐나다를 순회공연중인 유니버설발레단이 북미대륙에 한국발레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양대 권위지인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는 최근 한국 유니버설발레단의 워싱턴과 뉴욕 현지 공연내용을 대대적으로 소개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발레단의 워싱턴공연(11,12일 조지 메이슨대 콘서트홀)이 끝난 다음날인 13일자에서 ‘유니버설발레단­부러움을 살만한 자산’이라는 제목아래 사진을 곁들여 공연면 톱기사로 다루었다.워싱턴 포스트는 평론가 조지 잭슨의 평을 통해 “58명의 무용수와 55명의 전속 연주가,화려한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는 유니버설발레단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세계적 단체들도 부러워하는 수준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 단체”라 소개하면서 “응집력과 절제된 힘으로 뛰어난 하모니를 이루는 남성군무는 다른 발레단에서는 찾기 힘든 이례적인 인상을 주었다”고 전했다.워싱턴 포스트는 또 ‘심청’ 작품과 관련,“줄리아 문(문훈숙 단장)에게서는 최근 세상을 뜬 전설적 발레리나 갈리나 울라노바의 이미지가 떠오른다”고 평했다. 뉴욕 타임스도 공연(14∼19일 뉴욕시티센터) 3일째인 16일자에서 평론가 안나 키셀고프의 평으로 역시 공연비평면의 톱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키셀고프는 ‘한국인의 데뷔­전통과 현대의 화려한 조화’라는 제목의 이글에서 “심청은 복잡한 구성을 가진 대다수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난해하지 않고 의미 전달이 확실한 투명성을 작품의 본질로 한 특이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그는 이어 ‘심청’ 2막의 수궁장면에 대해 “다양한 수궁장면들 속에서 창출된 솔로들의 화려함과 절제된 동작들이 대비를 이루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칭찬했다. 앞서 유니버설발레단은 3월14일 첫방문지인 로스앤젤레스 공연에서 관객의 높은 호응과 언론의 호평으로 앙코르공연을 갖는 등 미국무대에의 성공적 데뷔식을 가진 바 있는데 이같은 양대 언론의 찬사로 마침내 공연예술의 메카에 확실한 디딤판을 마련한 셈이다. 한국 발레단으로서는 최초로 공연무대의 본산 북미대륙 순회에 나선 유니버설발레단은 미국과 캐나다 12개 도시에 걸친 50일간의 발레 장정(長征)을 마치고 오는 29일 귀국할 예정이다.
  • 지는 ‘볼쇼이’ 뜨는 ‘마린스키’

    ◎볼쇼이­오랜 내분에 외국후원자 발돌려/마린스키­참신한 기획·세련된 공연 호평 【모스크바=柳敏 특파원】 볼쇼이와 마린스키 가운데 어디가 최고인가.상트페테르부르그의 마린스키 극단이 풍부한 재정지원과 다채로운 기획으로 러시아발레와 오페라의 대명사인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단을 넘어서고 있다. 실험성보다는 정통성을,작품해석에서 작가의 의도를 충실히 따르는 엄격성을 특징으로 하는 마린스키 극단과 대중주의와 실험성을 우선하는 볼쇼이 극단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힘들다.그러나 올초부터 진행중인 이들 두 극장의 교환공연 결론이 나오고 있다.평론가들은 “마린스키극장이 볼쇼이 극장보다 우세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2월.발레작품으로 마린스키극장 발레단이 모스크바에서,볼쇼이극장발레단이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일주일간 교환공연을 가졌다.이 공연에 대한 전문가들의 지적은 호각지세(互角之勢)였다.“마린스키가 다소 우세하다”는 평은 지난 4일부터 2주간에 걸쳐 진행중인 오페라공연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마린스키극장이무대 스케일이나 주인공의 자질,작품선택의 폭넒음,실험성 등의 항목에서 모두 볼쇼이 극장을 앞지르고 있다는 평이다.마린스키극장에 결정적인 우세를 안겨준 것은 바그너의 오페라 ‘네델란드 사람들’.이 작품에서 러시아 ‘바그너전문가’인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바그너작품의 특징인 열정처리를 일관되고도 매우 세련되게 처리했다는 평이다. 또 다른 바그너의 작품인 ‘파시교도(敎徒)’에서도 연출자이 배우들과 한몸을 이루며 종교라는 철학적 애매모호함과 신비성을 현실과 접목시키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바그너의 작품 말고도 마린스키극장은 30년대 최고의 흥행작품이었지만 스탈린에 의해 강제 ‘도중하차’했던 쇼스타코비치의 ‘카테리나 이스마일로바(혹은 므트센스크의 맥베드부인)’의 공연을 8일 성공적으로 끝낸데 이어 프로코피에프의 ‘무서운 천사’로 모스크바 시민들의 심판을 받을 예정이다. 반면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같은 시기에 시작된 볼쇼이극장의 오페라공연은 무소르그스키의 ‘하반쉬나’와 ‘이골대공(大公)’,미하일글린카의 작품 ‘이반 수사닌’,등 주로 러시아작품에 치중했으며 약간의 각색을 거쳐 ‘최신작’을 내놓았을 뿐이다.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진행되고 있는 볼쇼이작품들은 대부분 ‘예년수준’이라는 전문가의 지적이 주조다.볼쇼이가 자랑하는 대중성과 실험성,관객동원에도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마린스키극장이 볼쇼이극장을 ‘누르며’ 차별성이 드러나고 있는 이유는 재정상태 때문이다.이 극장이 ‘튀고’있는 이유는 외국기업의 재정후원이 비교적 탄탄하고 감독등 스탭들이 질높은 해외공연을 왕성하게 추진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상대적으로 국가예산에 재정의 상당부분을 의존해 온 모스크바의 볼쇼이는 지도체제를 둘러싼 오랜내분에 식상한 외국의 재정후원자들이 발길을 피하고 있다는 소식이다.그만큼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어 과거처럼 왕성한 기획력과 우수배우의 유치에도 어려움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이제 러시아 예술을 말할때 ‘볼쇼이’보다는 ‘마린스키극장’이 먼저 떠오를 날도 머지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 심청/李世基 社賓 논설위원(외언내언)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가는 효녀 ‘심청(沈淸)’의 이야기는 우리의 효(孝)의 상징이자 대명사다.그동안 국악과 오페라,연극과 한국무용 등으로 수없이 공연되었고 각 예술장르가 갖는 특색 때문에 그때마다 색다른 감동을 안겨주었다.그 ‘심청’이 발레로 만들어진 것은 86년 아시안게임 때이며 88서울올림픽 축전무대에서도 서구의 명작발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동양적 발레로 평가되었다.무용평론가들은 ‘해방이후 50년간 공연된 한국무용을 포함한 베스트 10’에 유일하게 ‘심청’을 선정했고 ‘보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명제아래 2002년 월드컵에서도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공연을 권장하고 있다. 한국적인 발레의상과 한국의 산야가 수채화같은 배경을 이루는 가운데 그동안 수십차례에 걸친 국내공연과 세계 30여개 도시에서 100회이상 공연, 지난 3월11일부터는 50일 예정으로 전미순회 공연중이다.이번 미국 첫공연에서 LA타임스는 ‘완전무결한 테크닉과 가볍고 섬세한 춤’으로 호평한데이어 워싱턴 포스트는 ‘응집력이 절제된 뛰어난 하모니’로 평했다.뉴욕타임스의 수석무용평론가 안나 키셀고프는 지난 16일자 신문에서 심청의 뉴욕 데뷔를 성공적으로 특필하여 시선을 끌고 있다.‘매년 뉴욕을 찾아오는 세계의 어느 발레단보다 확연히 구분되는 국제력을 지닌 이 단체는 한국고유의 전통에 바탕을 두면서 전체적으로 고전적 무용의 혼합형태,즉 동서양의 만남을 보여준 예술’이며 ‘특히 심청을 춤춘 줄리아 문(文薰淑)은 전설적인 발레리나 갈리나 울라로바를 연상케 하는 미감(美感)의 소유자’로 호평했다. 지난해 국내 뮤지컬 사상 처음으로 뉴욕에 진출하여 대성공을 거둔 ‘명성황후’도 그 전체적인 극의 흐름이 한국적이라는 데 있었다.‘심청’도 마찬가지다.IMF 한파로 국내에선 문화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위축된 반면 미국의 ‘심청’은 관객의 호평을 받고 달러를 벌어들인다니 우리의 ‘심청’은 과연 효녀라는 생각이다.경쟁력이 있다면 국제무대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것이 우리의 예술이라는 자부심마저 생긴다.
  • 소설가 金周榮(이세기의 인물탐구:168)

    ◎날로 확대­심화해온 소설세계/봇짐장수 삶 그린 ‘객주’ 5년간 본지에 연재 호평/대작 ‘임꺽쩡’ 등에 비견되는 역사소설 주로 집필 180센티의 큰키에 언제나 말이 없고 진실한 이미지가 작가 金周榮의 모습이다. 그와 절친한 소설가 이문구에 의하면 그는 ‘어진 사람’‘법없이도 사는 사람’이며 ‘교통순경과 방범대원을 구별하지 못할만큼’ 아는 것은 알지만 모르는 분야는 깜깜하다. 그는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작품세계의 확대(擴大)와 심화(深化)를 끊임없이 이룩해왔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분단소설의 지평을 개척하는가하면 성장소설의 아름다움과 민중적 역사소설의 높은 봉우리를 역력(歷歷)하게 정복’해 왔다. 그리고 지금도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 소리가 메아리져 돌아오는 생의(生意)의 소설’을 쓰고 있다. ○분단소설 지평 개척 그의 초기소설은 주로 ‘상경한 촌놈이 겪는 도시의 세상물정’이 주류를 이룬다. ‘멀쩡하던 사람들이 타관의 물을 먹고나면 진솔하고 소박한 모습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이해타산과 세파에 시달려 속된 인간으로 변모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이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시각을 지켰다. 이러한 풍자는 단편소설에서는 ‘경쾌한 속도감, 재치의 반전으로 소설적 재미를 가속화시키는 반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구성의 묘(妙)로써 문학적 향기’를 뿜어내고 장편소설에서는 ‘걸쭉한 입담과 해박한 풍물묘사에 의존한 특유의 지구력으로 수준높은 세태풍속’을 그려나간다.그중에서도 그가 유년의 시골장터에서 목격한 봇짐장수들의 고달프고 강인한 삶을 그린 ‘객주(客主)’는 79년부터 5년간 서울신문에 연재되어 근현대 역사소설의 빛나는 업적들인 ‘임꺽정’과 ‘장길산’ 등에 비견되기도 한다. 그 무렵의 그는 녹음기와 카메라를 갖춘 취재가방을 둘러메고 장이 서는곳마다 찾아다니면서 현장에서 채집한 언어들로 문학적 생동감을 소설속에 되살려내고 있다. 그와 한평생을 어울려 지낸 소설가 이문구는 김주영이 소설을 쓰기 위해 깨알같이 메모해둔 노트를 보고 ‘이것은 피다.이것은 피를 흘리는 김주영의 모세혈관(毛細血管)’이라고 쓴적이 있다.그의 문학생활에서 가장 센세이셔널한 사건은 89년의 ‘절필선언’을 들수 있다. 정상을 달리던 한 중견작가가 갑자기 ‘절필’을 선언하고 일간신문연재를 중단해버리자 문단은 온통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때 평론가 정현기와의 한 대담에서 그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소설을 돌아볼때 ‘동어반복(同語反復)이 너무 심하다는 것’, 근 10년동안 줄기차게 신문연재에 매달리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상업적 측면에 침식되어가고 있다’는 경각심과 신문소설이 요구하는 반문학적 요소들이 ‘자신의 문학적 성채(城砦)를 집요하게 공격하여’ 마침내 절박감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고백하고 있다. ○상업성 우려 89년 절필 ‘나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내자신에게 가하는 나의 검증’이며 ‘비평가들의 비판이나 상찬이나 독자의 갈채도 나는 두렵지 않았다’고 했다. ‘오랜 글쓰기의 경험으로 독자를 교묘하게 속일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러나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원고료와 인세가 나의 생활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아야한다. 그럴수는 없다’는 절규가 그것이다. 그의 이러한 선언은 문학하는 이들의 양심에 칼날이 되어 타성적인 문학행위에 충격을 가하는 계기가 되었고 ‘껑충한 허우대와 맑고 박(撲)한 성정, 씩씩한 소년티를 벗지못한 소탈한 모습’에서 ‘눈크고 키큰 용량만큼이나 외로운 자기자신을 가누기 힘들어하는 천부적 질박함이 그의 문학적 원형질’임을 실감할수 있게 했다. 그는 경북 청송군 진보면의 배고프고 외진 마을에서 태어났다. 군청에 다니던 金海允씨의 2남1녀중 장남. 가난과 더불어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혹독한 굶주림에 시달려왔고 ‘이틀돌이’로 품앗이를 다니는 어머니를 동구밖에서 기다리는 핍색(逼塞)의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의 청소년기는 ‘길가의 잡초’였고 ‘시’를 쓰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간직한채 16살때 대구로 와서 ‘풍찬노숙(風餐露宿)’을 일삼으며 대구 농림고를 졸업, 다시 서울에 올라와 친구집에 기식한채 서라벌예대에 입학하자 서정주 박목월등 기라성같은 스승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문학의 앞길에 서조(瑞兆)가 비치는 듯했다.그러나 박목월씨로부터 ‘시보다는 소설’을 쓸것을 권유받았고 이후10년간은 연고지가 아닌 안동에 내려가 엽연초생산조합에 취직하고 있었다.가족은 고향에서 유년기를 함께 보낸 부인 金震得씨와의 사이에 3남2녀. ○단편 ‘휴면기’로 등단 조직이란 사회에 일단 자신을 내던지게 되면 ‘그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서 그는 ‘중뿔나게 아는체도 고독한체도 하지 않았고 무사하게 살아남기 위해 대세를 따르는 가운데 날이 갈수록 가슴에 응어리가 쌓이는 바람에 자기자신을 술자리로 데리고 갈수밖에 없었다’고 술회한다. 이 시기에 겪었던 정신적 고통과 자기학대는 결국 ‘문학에 대한 끊이지않는 욕구’때문이며 회사를 그만두고 71년, 단편 ‘휴면기(休眠期)’로 문단에 등단하자 ‘숨결이 야무지게 살아있는 언어’‘호흡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일정한 밀도를 유지하는 문장력’으로 주변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취미는 낚시에다 절륜의 술실력. 노래판이 벌어지면 ‘개화창가에서 신구잡가, 신체유행가’를 거침없이 노래부르고 재담 농담에도 능하다. 그는 전9권에서 5권의 역사소설전집만을 주로 내다가 최근 한 10년만에 한권짜리 장편소설인 ‘홍어’를 출간했다. 이 소설은 ‘중견작가의 빛나는 감수성으로 눈이 시릴 정도의 박꽃같은 순백한 사랑을 순정미학(純正美學)의 진수(眞髓)로 그려낸다’고 평가된다. 인생의 긴 도정을 지나 그는 그의 삶의 결핍된 부분들을 인간적 정서와 무르익은 인간미로 채우는 시기다. 결국 그의 문학은 우여곡절을 지나 정상에 오르게 되었고 문학에 대한 심한 갈등과 의혹과 고뇌를 되풀이하는 어쩔수없는 작가의 자세를 지킨다. 그는 처음에도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더니 오늘도 여일하게 진실한, 이 시대 ‘대기거영(大器巨影)’의 얼굴이다. □연보 ▲1972년 소설 ‘휴면기(休眠期)’(월간문학)로 등단 ▲1976년 경향신문에 첫장편소설 ‘목마위의 여자’ 연재 ▲1979년부터 서울신문에 ‘객주(客主)’연재 ▲1983년부터 중앙일보에 ‘활빈도(活貧盜)’ 연재 ▲1988년 한국일보에 ‘화척(禾尺) 7년 계약, ‘중국기행’연재 ▲1991년 동아일보에 ‘야정(野丁)’ 연재 ▲1995년 서울신문에 아프리카기행 연재 장편소설 ‘객주’ 전9권 (81년 창작과 비평사) ‘아들의 겨울’(82년 전예원) ‘천둥소리’(86년 민음사) ‘활빈도’ 전3권(87년 중앙일보사)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88년 민음사) ‘외설 춘향전’(94년민음사) ‘화척’ 전5권 (95년 문이당) ‘야정’ 전5권(96년 문학과 지성사) ‘홍어’(98년 문이당)출간, 단편집 ‘겨울새’(83년 민음사) ‘새를 찾아서’(87년 도서출판 나남)등 소설문학상(82년) 유주현문학상(84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93년) 이산문학상(96년)
  • 황동규 시인 40년 詩인생 세권책에 담아

    지난 58년 스물 한 살에 미당 서정주 시인의 추천으로 ‘즐거운 편지’를 발표하며 등단한 황동규 시인의 40년 시력(詩歷)이 세 권의 책에 담겨져 나왔다. 문학과지성사는 그의 회갑 기념으로 ‘황동규 시전집’(전2권)과 작가론집 ‘황동규 깊이 읽기’(하응백 엮음)를 펴냈다.첫 시집 ‘어떤 개인 날’에서부터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풍장’을 거쳐 최근 내놓은 ‘외계인’에 이르기까지 10권의 시집에 실린 시들을 재수록했다. 시인 황동규는 평단에서‘변화와 반역의 시인’으로 일컬어진다.삶에 대한 열망에서 시작해 그것에 대한 쉼없는 회의와 절망,그리고 그것을 딛고 일어서려는 투쟁,급기야는 죽음과 맞서 대면하는 자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그의시는 ‘변화를 통한 거듭남’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시세계는 ‘황동규 깊이 읽기’ 1부에 실린 시인의 자전적 에세이에서 다시금 확인된다.시인은 이 글에서 “내 몸의 감각과 마음의 눈은 늘 삶을 살아 숨쉬는 극(劇)으로 바꿀 새로운 장치들을 찾고 있다”는 말로‘현재 진행형으로서의 나’를 강조한다. 이 책에는 황 시인과 절친한 문우였던 문학평론가 고(故)김현씨가 서로 상대를 평한 인물데생‘싫은 놈이다’(황동규)·‘루오의 광대(김현)가 실려 있어 눈길을 끈다.
  • 록그룹의 대중성 확보 多面 지원/언더음악 전문잡지 ‘팬지공’

    ◎언더그룹 공연장소·특성·연락처 등 상세히 소개 “언더그라운드 문화는 우리의 사회를 투영하는 또 하나의 프리즘입니다.서구의 자유 정신에도 이들 ‘땅끝 문화’가 미친 영향은 지대합니다.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돼서는 안됩니다” 언더그라운드 음악 전문잡지 ‘팬진공’의 편집인 김종휘씨(32).독립음반사를 운영하랴,잡지의 편집을 맡으랴 눈코 뜰새 없지만 이 땅의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지킨다는 자부심만은 누구보다 대단하다. ‘팬진공’을 창간한 것은 지난해 3월 우연히 록그룹 ‘허벅지’의 리더 안이영로씨(32)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이들은 언더그라운드 음악만을 소개하는 전문잡지를 만들자는데 의기가 투합했다.안이영로씨는 아버지 안씨와 어머니 이씨의 성을 동시에 딴 이색 인물. 김씨는 3개월의 노력 끝에 지난해 6월 3백여만원을 들여 ‘팬을 위한 매거진,공’이란 뜻의 ‘팬진공’을 냈다.‘공’은 아무것도 없는 새로 채울 그릇이라는 뜻(空)과 즉시 반응이 튕겨져 온다는 뜻의 공(球)의 뜻을 동시에 담았다.창간호의 명칭은 ‘폐간호’.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저항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창간호가 신촌과 홍대 부근에서 배포되자 함께 제작해 보고 싶다는 제의가 쏟아져 들어와 2호부터는 음악평론가 사진작가 만화가 비디오작가 디자이너 등의 전문인력 30여명이 참여했다.지금까지 격월간으로 5권이 나왔다.정기독자도 현재 2천명을 넘어섰다.언더그라운드 무대에서 활동하는 록그룹과 이들의 공연장소와 특성 및 연락처 등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김씨는 최근 ‘웹진공’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www.ch0.co.kr) 사이트도 열었다. 그는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해 사라져 가는 언더그라운드 음악인들을 보면서 남다른 소명의식을 느껴왔다”면서 “팬진공이 록그룹들의 대중성 확보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 8인의 젊은 춤꾼 한무대에

    ◎월간 ‘춤’·LG화재 올 7월부터 연례행사로/안무가 발굴 역점… 평론가들이 대상자 선정 요즘의 공연예술계,그중에서도 특히 무용쪽은 판을 벌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기업의 후원이 썰물처럼 급속히 자취를 감추는 데다 일반 관객을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하물며 새 판을,그것도 커다란 무대로 펼친다는 것은 시대감각이 없거나 아니면 일종의 객기에서 비롯되는 무모한 행위로 비쳐지는게 현실이다. 이런 면에서 무용전문지 월간 ‘춤’과 LG화재(주)가 올 7월부터 연례행사로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의 새 판을 차리기로 한 것은 무용계의 일대 ‘사건’으로 받아들여질 만하다.월간 ‘춤’이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젊은 춤꾼들의 열정을 살릴 수 있는 춤판이 더욱 절실하다는 뜻에서 행사를 대담하게 기획했고 LG화재가 이 취지에 선뜻 동참,6천만원을 후원하기로 해 마련된 가뭄속의 단비같은 무대다.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의 기본 골격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매년 30대 무용가중 가장 우수한 안무가 겸 춤꾼 8명을 뽑아 한 무대에 세우는 것.이전에도 신예와 유망주 등 젊은 춤꾼들을 대상으로 한 기획공연들이 없지 않았지만 대부분 춤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안무가 발굴에 역점을 둔 점이 이번에 행사의 차별적 특징이다.게다가 무용계의 고질인 계파와 파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초청대상자 선정을 객관적 입장의 평론가들에게 완전 일임하고 있는 것도 신선한 시도로 받아들여진다.물론 △30대 이하로서 △대학교수가 아니며 △2회이상 공연경력을 갖추고 △안무와 함께 자신이 직접 무대에 설 것 등 기본 자격은 주최측으로부터 제시되지만 이 범위 내에서 실제 선정작업은 무용계 전체의 흐름이나 현상을 꿰뚫어 관찰하는 무용평론가들이 맡는다.올해는 김경애·김영태·김채현·김태원·이순열·이종호·정병호·조동화·채희완씨 등 9명이 심사를 했다. 오는 7월 8∼10일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질 첫 공연에는 발레의 김나영(29)과 한국무용의 김은희(36)·은혜진(28)·이명진(37),현대무용 박호빈(32)·송미경(35)·신용숙(37)·최일규(29) 등 8명이 올해의 첫 ‘젊은무용가’들로 뽑혀 꿈의 도약무대를 밟는다.762­3595.
  • 꽹쇠 李光壽(이세기의 인물탐구:167)

    ◎북 장구 징 달통한 최고의 꽹쇠/농악 사물놀이 현대음악 장르로 세계화 시킨 주역/100개국 700회 순회 공연… ‘한국의 원음’ 전파 북이 구름이고 장구가 비라면 징은 바람소리다. 사물 중에서 꽹과리는 뇌성벽력(雷聲霹靂)에 비유된다. 혼신을 다해 신바람나게 두들겨야만 산맥 하나가 태어나고 바다가 숨을 멈춘다. 이시대 최고의 깽쇠는 두말의 여지없이 굿패 ‘노름마치’ 李光壽라 할수 있다. 그의 꽹과리는 어느때는 흐르는 계류와도 같고 어느때는 성난 굽이굽이로 사납게 울부짖는다. 숨막히게 몰아가는 장단속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는 그만의 타법으로 인간의 고통과 환희, 고뇌와 한(恨)을 능란하게 다스린다. ○인간의 고통·恨 다스려 이광수는 김덕수 사물놀이에서는 주로 북을 쳤으나 깽쇠인 김용배 타계후 쇠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릴때부터 북에서 장구, 징과 꽹과리 등 모든 연희를 답습했다. 그중에서도 구음과 덕담으로 이어지는 ‘비나리’는 명창 박동진 옹에 의하면 ‘꽹과리 못지않은 일품의 경지’다. ‘비나리’는 인간을 끼고 도는 횡액(橫厄)을 막아주고 수명과 명복을 기원하는 노래로 지난 90년 광복 45주년 범민족음악회때는 이 ‘비나리’로 남북 공통의 정서인 민족의 통일염원을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비나리’를 통해 그가 독특하게 창출해내는 심오한 가락의 의미는 이미 오래전부터 ‘비장미(悲壯美)의 극치’로 평가되고 있다. 연극연출가 김우옥씨는 “그의 비나리는 모든 예술의 정수(精髓)이며 그의 꽹과리소리는 인생의 무상(無常)을 부드럽게 어르고 달랜다”고 말한다. 벌써 그 이전인 78년에 김덕수와 공간사랑소극장에서 앉은반 형태를 처음 선보인후 그들은 서양 타악기의 선두주자이자 작곡가인 박동욱씨의 추천으로 82년 미국 댈러스에서 열린 ‘월드 쇼케이스 페스티벌’에 참가, 세계에서 가장 잘한다는 음악의 귀재들로부터 6차례의 커튼콜을 받았고 80년대 중반아직 이데올로기 장벽이 헐리지 않았던때 폴란드 유고 등 공산권국가에 들어가 ‘한국의 원음’을 전하는 민간외교사절의 몫을 당당히 해냈다. 그리고 세계적인 재즈축제인 뉴올리언스페스티벌에서는 사물놀이가 ‘한국의 독창적인 재즈’로 소개되기도 했다. 지난 86년 뉴욕 퀸스 페스티벌에 이어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월드 드럼 페스티벌’에서도 뉴스위크지는 “그들이 한복을 입고 상모를 돌리기 시작하자 어떤 악기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생생한 생명성으로 세계인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쓰고 있다. 그의 쇠가락은 어느 자리에서나 신기와 광기를 발휘하고 살풀이 액풀이 축원 덕담 등 각종 소리에도 눈부신 솜씨를 구사한다. 판굿에서 펼치는 상쇠놀음은 부포놀음이며 상채발이, 까치놀음에서 관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의 몸짓과 흥에 합일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남인지 남이 나인지 모를 무아지경에서 객석도 미치고 그도 미친다. ○6살때 남사당패 입문 그는 충남 예산에서 9남매중 6째로 태어났다. 무성영화를 제작하다가 북만주 일대까지 전문연희패를 몰고 다니던 이름난 ‘뜬쇠’인 李點植씨가 그의 부친이다. 집안은 일찍이 내로라하는 ‘뜬쇠’들의 음악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고 그는 여섯살때부터 남사당패의 무동(舞童)이 되어 상모돌리기와 던질사위에서 탁월한 기량을 보였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깡통을 두들겨 만든 꽹과리로 리듬을 익혀나 갔고 온양 온천초등학교 졸업후 전국 방방곡곡으로 연희여행에 따라 나섰다. 그런 가운데서 연화당 스님 김대관 김복섭으로 이어지는 안택경(安宅經) 옥추경(玉樞經) 천지팔양경(天地八陽經)과 꽃만드는 법에서 부적, 꽹과리 북 상모만드는 법을 배웠고 당대 최고의 뜬쇠들에게 살판, 줄타기, 온갖 풍물굿과 남사당놀이를 두루 섭렵했다. 그의 붓가락은 대마디 대장단으로 사치가락을 쓰면서도 붙임새가 분명하고 맺음새가 깔끔한 것이 인상적이다. 10살되던 해 대전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전국농악경연대회에 충남대표로 출전하여 대통령상을 수상, 66년 서울 구로동에서 열린 무역박람회에 왔다가 성장과정이 비슷한 김덕수 김용배 최종실과 의기투합하여 농악 사물놀이를 현대음악의 한 장르로 세계화시킨 주역중의 한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지난 86년 가장 절친했던 김용배의 자살로 그는 ‘내몸의 털이 다 서는것 같은 충격’을 받고김덕수 패와도 헤어져 나왔다. ○지휘자 정명훈과 협연 91년 사물놀이패가 발전적 해산을 하기까지 100여개국에서 600회 이상을 공연했고 혼자 독립한 후에도 100회 이상을 공연, 뉴욕 타임스에 예술평론을 기고하는 제니퍼 더닝은 “꽹과리소리는 지구의 생명을 부활시키는 소리, 블랙홀이 따로 없다. 그의 가락에 무한하게 빠져든다”고 평할 정도다. 이후 ‘놀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뜬쇠중의 뜬쇠’라는 뜻으로 그만의 굿패인 ‘노름마치’를 구성하게 되었고 그가 만든 민족음악원의 바쁜 연주일정속에서 상반기만도 정명훈이 지휘한 ‘조국을 위하여’연주, 미국 내슈빌에서 열린 아프리카 아티스트 페스티벌 참가일정이 잡혀있다. 이른바 인위적으로는 결코 자아낼수 없는 음악의 감흥인 버슴새가 안정되고 광기와 신기를 안으로 다지는 기질이 그의 특징이다. 가족은 전에 여성농악단에서 장구를 치던 鄭美淑씨와의 사이에 남매. 평소의 그는 목화밭에서 갓딴 무명처럼 청수하고 일상사에 어둡지만 한번꽹과리를 두들기면 ‘잘하면 살판, 못하면 죽을 판’으로 매달려 꽹과리만의 운우(雲雨)풍뢰의 조화를 성취시킨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중에도 그 소리속에는 누주(淚珠)가 얼룩져있고 천변만화(千變萬化)의 황홀한 순간에도 우징(雨徵)을 품고 있는 것도 어쩔수 없는 그만의 운명일 것이다. 다만 한군데 머무르지 않는 타고난 광대기질은 날이 갈수록 빛을 더하고 기세가 꺾이지 않아 인간이 범할수 없는 신적 영역까지 넘나들면서 그의 혼(魂)과 성(誠)은아마도 그 끝이 보이지않는 신명을 언제까지나 멈추지 못하게 될것 같다. □연보 ▲1952년 충남 예산출생 ▲1958년 남사당패 입문, 최성구 차기준 황금만 사사 ▲1962년 전국농악경연대회 대통령상 수상 ▲1978년 김용배 김덕수 최종실과 ‘사물놀이’창단(공간소극장) ▲1982년 세계타악인협회 월드 쇼케이스 페스티벌참가(美플로리다·댈러스) ▲1985­88년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초청 미주지역 순회,영국·일본공연 ▲1987년 88 서울올림픽유치를 위한 영국순회공연, 일본 ‘라이브 언더 스카이 재즈’ 페스티벌참가 공연 ▲1990년 범민족통일음악회(평양) ▲1993년 민족음악원 개원, 굿패 노름마치 대표 ▲1997년 예인40년 기념공연 ‘알이랑 얼이랑’ KBS국악대상 단체상 ▲1998년 ‘조국을 위하여’ 아시아필하모닉 협연(지휘 정명훈) 민족음악원장, 사단법인 국악협회 대의원, 서울예전출강 사물놀이 창단음반(83년) 일본 산토리홀 사물놀이(87년)외 ‘신명(神命)’‘난장’‘아라리오’‘이광수 예인 40년’특집음반 등 다수
  • 李祭夏 가수/李世基 社賓 논설위원(외언내언)

    ‘빈들판으로 바람이 가네,아하/ 빈하늘로 별이 지네/ 빈가슴으로 우는사람 거기서서/ 소리없이 나를 부르네’로 시작되는 ‘빈들판’은 李祭夏가 시를 쓰고 곡을 붙인 노래다.87년 그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에서도 그는 영화주제가를 불렀다.노래·작곡·연주솜씨가 일찍이 문단에 회자(膾炙)되어 10년전에는 그가 직접 녹음한 테이프 ‘나그네 노래집’을 가까운 이들끼리 나누어 갖기도 했다. 그는 시뿐만 아니라 소설·동화·영화평론에 손대면서 지난해엔 회갑(回甲)기념문집인 ‘뻐꾹아씨,뻐꾹귀신’이라는 자작 그림소설집을 냈다.실제로그의 그림솜씨는 수차례의 개인전을 통해 ‘환상적 리얼리즘’이란 평을 들었고 현재 중견화가로도 활동중이다.그런 그가 이번엔 CD음반을 낸다는 것이다.음반제작에 앞서 며칠전 명륜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그는 그 옛날의 ‘청솔그늘에 앉아’ 등 자신의 시에다 직접 곡을 붙이고 기타를 치면서 노래불러 청중의 심금을 울렸다. 물론 문단에 노래 잘부르는 사람은 얼마든지있다.곡목을 많이 알고 3절까지 부르는 실력으로는 소설가 김승옥을 따를 사람이 없다.연전에 타계한 시인 박재삼은 주로 일본의 엔카를 잘 부른다.수첩에다 가사를 꼼꼼히 써가지고 다니다가 술한잔 걸치면 양복 안주머니에서 수첩부터 꺼낸다.그러나 문단에서 ‘노래를 잘 부르는 4인’은 이제하를 포함하여 시인 김지하,소설가 송영,평론가 정현기가 손꼽힌다.다방면의 재주꾼들이지만 어느 하나도 허술하지 않은 전문가 수준이다. 평소 이제하의 음성은 갑자기 괴성이 튀어나오거나 나른한 데가 있어서 그가 노래를 잘 부르리라곤 상상하기 힘들다.그러나 소설가 김채원에 따르면 그의 노래는 ‘사람 마음에 정서(情緖)의 비’를 뿌려준다.이른바 노래란 미성(美聲)이나 입술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연륜이 메아리치는 감동임을 실감시킨다.그의 노래는 곡과 가사를 알고 부르는 시인의 노래이자 화가의 노래이고 인간의 노래이다.어쨌든 나이 60에 콘서트를 열고 음반을 제작한다는 것은 ‘인생은 60부터’라는 시작과 출발의 의미라서 더욱 값져 보인다.
  • 정계개편은 여당 통합부터(金好俊 정치평론)

    ○거론되는 두 방안의 문제점 4월로 접어들면서 정계개편의 흐름이 빨라지는 느낌이다.15대 국회 후반기 원(院)구성과 지방선거가 두달 앞으로 다가선 데다 정계개편의 풍향계가 될 4·2재·보선과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계개편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여론도 점점 두터워지는 것 같다.현재의 여소야대(與小野大)구도로는 효율적인 국정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마침 ‘거야(巨野)’한나라당이 자체하중을 못이겨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으니,차제에 ‘여대(與大)’를 겨냥한 정계개편을 시도할 만하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정계개편 방안은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하나는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한나라당 의원을 상대로 한 ‘곶감빼먹기’와 ‘이삭줍기’를 통해 여소야대를 반전(反轉)시키려는 구상이다.현재의 국회 의석분포로 볼 때 한나라당은 소속의원 10여명만 떨어져 나가면 의석이 과반 미만으로 줄어든다. 다른 하나는 ‘4당체제’에 대한 기대다.지금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이 전당대회 후 두 쪽으로 갈라질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견해가 적지않다.당권경쟁에서 패배한 세력이 당에서 떨어져 나가 딴 살림을 차리면 현재의 3당체제는 4당체제로 바뀌게 된다.이 경우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3당연립을 통해 자연스럽게 여소야대를 반전시키며 정치적 안정기반을 확보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방안은 한나라당의 ‘빅뱅’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맹점이있다.다시 말해 한나라당을 등지는 탈당의원의 숫자가 한자릿 수에 그치거나 한나라당의 분당사태가 가시화되지 않을 경우 이 여소야대 반전 시나리오는 성립되지 않는다.또 탈당·분당이 무리하게 이루어질 경우 여야대립을 격화시켜 ‘여대’가 의도하는 정국안정보다는 오히려 정국혼란만 가중시킬 우려가 크다는 점도 이 두 방안의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가 있을 것이다. 정계개편은 DJT로 상징되는 복수(複數)여당의 단일화,즉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합당(合黨)으로 시동을 거는 것이 바람직한 수순이라고 본다.오늘의 이 난국을 극복하자면 국정운영의 주체부터 강력해야 한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는 당위론이다.둘로 갈라진 리더십과 하나로 통합된 리더십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강력한지는 자명하다.프랑스에서는 ‘좌우동거(左右同居)정부’가 잘 운영되고 있는지 몰라도 우리네 정서로는 아무래도 ‘하늘의 해는 하나’라야 나라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생각이다. ○상호보완의 묘를 살린 결단 만일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합당이 이루어진다면 지난 12·18 대선(大選)때의 그들 주장처럼 상호보완의 묘(妙)를 살린 결단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아마 우리 정치사상 개혁과 보수를 그처럼 폭넓고 두텁게 망라한 국민정당도 일찍이 없을 것이다.또 ‘호남당’ ‘충청당’으로 매도되던 두 당의 지역성 탈피에도 큰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합당은 양당 사무처 조직의 통폐합을 뜻한다는 점에서 경제회생을 위한 기업 구조조정이나 정부기구 축소노력과도 일치한다.그렇지 않아도 국민들 사이에 “정치권은 왜 고통분담을 외면하느냐”는 비난의 소리가 적지않은 판에 두 당의 합당이 정치권의 군살빼기로 비쳐진다면그것도 다행일 것이다. 지금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세(勢)불리기를 둘러싸고 치열한 물밑경쟁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특히 자민련측이 한나라당에 내재한 반(反)DJ정서를 이용하여 제1당 부상을 노리고 있다는 소문 때문에 국민회의는 잔뜩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두 당의 합당은 이런 독자적인 세력확대경쟁이 가져올 집권세력 내의 마찰과 불협화를 근원적으로 배제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합당은 한나라당을 포함한 정계개편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것이다.단일여당에 대한 기대와 통합여당이 지닌 강력한 흡인력이 정계개편의 원동력이 되어 야당의원들의 자발적인 입당사태와 야당의 재편을 촉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두 여당의 통합은 국민회의와 자민련 사이의 갈림길에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방황하는 사람들의 고민도 일거에 해결해 줄 것이다. ○자연스런 야당재편 촉매제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합당 가능성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의문을 표시하는 견해가 많다.두 당이 비록 집권의 방편으로 연대는 했지만 추구하는 이념과 지지층이 다르고구성원들 사이의 반감이 적지않은 데 통합이 되겠느냐는 것이다.특히 내각제 개헌추진 여부가 똑 부러지게 재합의되지 않는 이상 합당은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들이다. 그러나 지난 40여일간의 공동집권을 지켜본 일반국민들의 시각은 좀 다르다.한마디로 국민회의와 자민련간의 색깔 차이를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진보성향의 金大中 대통령이 ‘보수우익’을 통일부장관에 기용한 처사나 보수세력의 집결체로 자처하는 자민련의 朴泰俊 총재가 재벌개혁을 압박하고다니는 것을 보면 오히려 진보와 보수가 뒤바뀐 듯한 인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공산권 붕괴후 보수와 개혁간의 경계가 급격히 퇴색하고 있는 세계사조와 우리의 남북대치 상황을 고려할 때 국민회의와 자민련 사이의 이념차이 정도는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 아닌가 싶다.지난번 대선에서의 DJP연합처럼 양당통합도 DJP가 결단하면 그만일 것이다.
  • 현대무용가 安信姬(이세기의 인물탐구:166)

    ◎섬광 폭죽인듯 폭발하는 춤사위/대한민국무용제서 대상·개인연기상 등 휩쓸어/‘지열’로 일 국제페스티벌 딛고 아시아 스타 浮上 스포트라이트속에 정지된 安信姬의 포즈는 ‘그 자체가 춤의 시(詩)’라고 할 수 있다.신체의 사선(斜線)을 축(軸)으로 삼아 아이키도 돌기며 바운징으로 그가 돌아가야할 ‘길’에서 배회하고 ‘섬과 섬사이’를 떠돌면서 고뇌하는 현대인의 이미지를 불꽃같은 감성으로 춤추어 낸다.‘춤은 춤으로 보여주고 들려준다’는 그는 공연때마다 ‘무진장의 에너지를 폭죽처럼 터뜨리고’‘내쏘듯 날카로운 섬광’을 무대중앙에 흩뿌리기도 한다.안신희란 존재는 이미 ‘춤과 사색,행위의 철학’을 빼고는 말할 수 없는 무용가이다.어느때는 ‘조롱에 갇힌 새’,어느때는 ‘이 세상의 모든 자유를 지닌 해방감’에서 단순한 극과 극이 아닌,중용의 조화를 얻기 위한 내심의 춤을 구축하기 때문이다.‘춤’은 그의 ‘숙명’이자 잠시도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천부의 인연으로 그는 언제부턴가 ‘춤의 심연’에 깊이 빠져버렸다. ○“춤은춤으로 보여준다” 그가 만든 춤중에서 특히 관객의 시선을 끈 것은 지난 83년 일본 현대무용협회와 코파나스회가 공동주최한 제1회 국제 현대무용페스티벌에서 춤춘 ‘지열(地熱)’을 들 수 있다.‘지열’은 서구적인 차별성과 한국적인 특성을강조한 작품으로 춤추고 났을 때의 무용수는 한바탕 굿판을 끝낸 신들린 무녀(巫女) 모습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긴 박수소리와 함께 그가 도취에서 깨어나자 일본 매스컴들은 그를 일약 ‘아시아의 신데렐라’로 부상시켰고 아사히신문과 주간‘아사히 저널’은 ‘자신에게 집중하는 신비로운 무대’제하로 ‘이번 축제에서 오늘의 춤을 보여준 것은 객석에 시종 싸늘한 긴장을던진 안신희의 지열이 단연 압권’이라는 평을 보냈다. ‘지열’을 전환점으로 그는 다시 대한민국 무용제에 ‘섬’으로 도전했고 시인 정현종의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는 구절과 ‘그 섬에 가고 싶다’는 테마로써 ‘섬은 다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다’는 섬의 이상향을 역동적으로 풀어나갔다.그리고 그는 더이상 여러그룹속의 안신희가 아닌 대한민국 무용가로 떠올랐다.무용인 최대의 영예인 대상·개인연기상·미술상을 한꺼번에 수상하는 과정에서 평론가 박용구 조동화 김영태씨는 ‘뛰어난 리듬감각과 문학적 작품성은 올해 무용계가 얻은 최대의 수확’임을 전제,‘스타성이 있는 현대무용가’로서 ‘박력과 자기춤에 몰입하는집중력이 탁월하다’는 것이며 ‘자기 욕심을 포기할줄 모르는 안무가’로평했다. ○활화산­불생의 무용 안신희는 전남 구례에서 양조장과 정미소,과수원을 경영하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어릴때는 부친 安基浩씨를 따라 풍광이 수려한 지리산에 오르거나 섬진강 지류에서 물장구를 치면서 춤의 흐름을 몸속에 싹 틔울수 있었다.초등학교 5학년때 집안이 서울로 이사,그때까지는 ‘장래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가 없었으나 배화여중때부터 춤추기 시작하여 ‘악바리’‘연습벌레’라는 별명을 들을만큼 춤에 대한 강한 집념을 불태웠다.그때도 거울속에 비친 자신의 포즈에 한치의 흔들림을 용납하지 않아 이완과 수축,스피드와지속이라는 범위속에서 반드시 명확성과 평정성 민감성을 끌어냈고 ‘완벽’이라는 해답을 얻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 첫무대는 74년 스승인 육완순교수가 안무한 ‘슈퍼스타’다.‘늘씬한 키에 쭉뻗은 몸매,아름다운 외모가 풍기는 이지적인 분위기’로 그는 다음해엔 1개월간 미국공연,83년까지 유럽순회공연에 합류했다.그는 크거나 작은 어떤무대도 겁내지 않는 무대체질이 천성이기도 하다.한때는 알렉산더 고두노프의 예술성과 테크닉,극적인 춤의 특성에 매료되었고 마사 그레이엄의 무용적 카리스마,마곳 폰테인의 지고지순한 삶을 선망하면서 직관적인 선택과 엄격한 훈련으로 불균형과 비대칭,현대생활에서의 불확실성과 다양성을 은유적으로 부합시키는 무용구조를 성립해 나갔다. 그의 무용의 길은 한동안 탄탄대로 였으나 대학 3학년때 부친의 사업실패로 대학원진학을 앞두고 고향인 구례에 칩거한 적이 있다.그러나 ‘무용의 길은 너무 멀다’는 것과 ‘예술가는 어려움을 이길줄 알아야만 거듭난다’는뼈아픈 경험끝에 무용없이는 ‘공기없이 사는 것처럼’ 무의미하다는 결론아래 한때는 밤낮없이 기도에 매달려야 했다.끝내 ‘하나님이 대로(大路)를 열어주실 것같은 강한 암시’를 받았고 그 시절에는 적선동에 방한칸을 얻어 신촌까지 걸어다니면서도 다시 ‘춤출수 있다’는 기쁨과 샘솟는 창작의지로 창작무용들을 얼마든지 만들어냈다.‘교감’‘13월의 여행’‘청동무늬’‘전설’등은 그때의 산물이다. ○미­유럽순회 공연도 원로 평론가 박용구씨는 ‘안신희는 마치 불을 보면 뛰어드는 나비처럼 그의 춤은 자신의 몸을 사르는 활화산의 무용이자 불새의 무용이며 그의 춤에접하면 고압선에 감전된듯 강한 전율을 느낀다’고 평한다.최근의 그의 춤은 무르익은 성숙을 보이면서 아무런 틀에도 얽매이지 않는 지상 최대의 자유를 춤으로 구조화하는 시기다.객석의 애증의 그림자마저 읽게된 그는 자연과 문화와의 경계선을 추구하면서 리처드 버크의 ‘갈매기’처럼 더높이 더멀리 날기 위한 모든 과정을 뛰어넘고 있다.실제로 그의 무용언어는 연극적 대사가 느껴지는 절규와 경악과 유기적인 삶의 풍경을 흐르는 강물처럼 표현해 낸다.가족은 그의 무용적 삶을 이해하는 부군 韓基天씨와 아들 누리(12살)가 있다.오늘의 한국무용을 수놓고 있는 수많은 별들 중에서 안신희가 이룬 성좌는 누구보다 밝고 극명하다.한때는 ‘너무나 기쁘고 너무나 슬픈’ 희비애락에 침몰되기도 했으나 이제는 몸속으로부터 솟구치는 득의의 춤을 추게 되었고 쏘는듯 날카로운 춤의 빛줄기는 관객의 가슴에 언제라도 진한 감동을 던져준다.그는 자기 세대에서 만인의 시선을 받는 춤꾼으로서 지금부터가 ‘안신희 무용’을 위한 비상(飛翔)직전의 출발선상에서 고고하게 서있다. ◇연보 ▲1957년 전남 구례출생 ▲1974년 육완순무용단 ‘슈퍼스타’출연 및 미국지역순회 공연 ▲1983년 안신희 무용발표회,육완순무용단 ‘슈퍼스타’유럽순회 공연 ▲1984년 이대 교육대학원졸업,프랑스 소르본대학 무용과수업 ▲1992년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과 레닌그라드국립발레단 합동공연 ‘만가’출연(소련 모스크바·레닌그라드) ▲1993년 대전 EXPO개막축제안무 ▲1996년 서머아트페스티벌 및 빛고을창작무용제 ‘꾼들’안무·출연 ▲1998년 5월 국제현대무용페스티벌 ‘존재’’고향에 대한 보고서’ 안무·출연 한국현대무용협회 및 한국현대무용진흥회이사,21C선교무용위원 현대무용분과위원장,한국예술종합학교강사 대한민국무용제 신인상(81년) 대한민국무용제·대상 및 개인연기상(83년) 코파나스상(84년) ‘2천년대를 달리는 한국의 예술가’(92년)선정,‘부상하는 한국의 아티스트’ 선정
  • 재벌도 살고 나라도 사는길(崔澤滿 경제평론)

    ○‘빚 먹고 사는…’ 비판 직면 20여년전 ‘외채망국론(外債亡國論)’이 나돌더니 최근에는 ‘재벌망국론’이 시중의 화두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당시는 정부가 외자(外資)를 많이 빌렸다가 빚을 갚지 못해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요즘 망국론은 재벌들이 국내외 금융기관에서 빚을 많이 빌렸다가 빚을 갚지 못하고 잇따라 도산하면 자칫 국민경제가 파국에 이를 수 있다는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근 잇따라 발표되고 있는 재벌그룹의 재무(財務)상태를 보면 그런 걱정이 나올만도 하다.재벌은 ‘빚먹고 사는 기업’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지난해 30대그룹 계열상장사의 부채비율이 다른 상장사보다 2배나 높은 무려 449%로 나타났다.재벌그룹의 부채비율이 96년말보다 오히려 117% 포인트나 높아져 부채의존형 경영체질이 더욱 심화되었다.30대 재벌 가운데 21개그룹계열사가 자본잠식상태에 있고 부채비율이 2천%를 넘는 기업이 15개에 달할 정도다. 국내재벌이 해외에 투자를 하면서도 자금을 과다하게 빌리는 바람에 해외투자기업의 부채비율도 1천%선에 육박하고 있다.재벌들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경쟁적으로 자금을 빌리는 데만 열중하고 빚갚기는 소홀히해 외환위기가 발생했고 그로인해 ‘재벌망국론’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과거 ‘외채망국론’이 나왔을 때는 정부와 기업이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구호아래 총력전을 편 결과 ‘외채망국’을 면할 수 있었다.현재의 ‘재벌망국론’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재벌개혁이다.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로 들어가면서 재벌이 개혁을 하지 않으면 한국경제는 회생이 어렵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그러나 IMF관리체제가 3개월이상 지났는데도 재벌개혁은 진전되지 않고 있다.재벌그룹은 감량경영을 명목으로 근로자 정리해고(解雇)에 나서는 바람에 대량 해고사태가 사회문제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인력감축에 의존한 감량(減量)경영을 통해서 재무구조를 개선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인건비를 줄여 재무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면 ‘재벌망국론’까지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감원은 이미 늦은 개선책 재벌총수가자기그룹을 살리려면 진정으로 뼈를 깎는 개혁작업에 착수해야 한다.먼저 국내 재벌그룹끼리 핵심기업(우량기업)은 물론 제품생산라인을 맞바꾸는 이른바 ‘빅딜’이라는 비상자구(自救)수단을 자율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한계계열사를 정리하겠다는 것은 재벌이 개혁을 하지 않고 시간을 끌겠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한계기업을 누가 사갈 것인가.또 한계계열사를 파산시키려면 먼저 상호지급보증을 해소시켜야 하는데 재벌들은 상호지보(支保)를 은행출자로 돌려달라고 주장하고 있다.재벌들에게 과연 개혁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과거처럼 시간을 끌다가 경기(景氣)가 호전되면 구조조정이 흐지부지된 것을 상기하면서 이번에도 ‘시간끌기’작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IMF관리체제 아래서 그것은 큰 오산이다. 재벌그룹이 진정으로 자구노력을 하려면 실현가능성이 있는 것부터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국내기업간 빅딜은 물론 현재 재벌그룹이 해외기업과 합작하고 있는 경우 재벌지분(持分)을 합작사에 매각,그 돈으로은행 등 금융기관 빚을 갚는다면 재무구조가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빅딜’이라는 비상책 필요 또 부채를 제외한 자산을 매각(賣却)하는 방법이 있다.대상그룹이 지난달 20일 독일 바스프사에 라이신사업을 6억달러에 매각한 것이 그 예다.대상그룹은 이익이 나는 기업을 먼저 팖으로써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이 당시 재계 일각에서는 부정적인 여론이 있었던 것으로 보도되었다.재벌개혁을 한다고 하면서 다른 기업이 단행한 대개혁을 사시적(斜視的)으로 보는 것은 현재 재벌의 사고가 달라진 것이 없다는 하나의 예증이 아닐까. 대기업부도→금융기관 부실화→외채위기→기업부도로 연결되는 악순환(惡循環)의 고리를 단절하자면 해외투자사업 가운데 재기가능성이 없거나 사업성이 없는 사업은 하루빨리 정리,철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국내기업들은 해외투자 때 현지 금융기관에서 막대한 달러를 빌려 쓴 것(역외금융)으로 알려졌다.이 빚을 빌릴 때 본국의 모(母)기업이 보증을 섰기 때문에 시간을 끌면 끌수록 빚이 늘어날 것이기때문이다. ○한국회생 관건은 재벌개혁 현재 재벌그룹의 역외금융(域外金融)은 그 수치조차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역외금융의 상환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제2의 외환위기가 올지도 모른다는 풍문이 나도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재벌개혁은 역외금융으로 인한 외환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절실한 과제다. 한국경제의 회생여부는 재벌개혁의 성공여부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재벌은 이점을 절감하고 더 늦기전에 과감한 구조개혁을 단행,그룹을 살리고 국민경제도 살릴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재벌이 앞장서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을 포함한 총체적 기업개혁(기술개발협력·공동물류(物流)·공동판매)을 선도할 것을 당부한다.
  • “재능·열정 있다면 IMF도 극복”/프리랜서 이종현씨

    ◎끊임없는 자기계발만이 생명력 유지/수입의 상당부분 자료수집 등 재투자 방송작가,작사가,음악평론가,팝 칼럼니스트,라디오 DJ,카페사장. 그래도 자신의 직업을 ‘무직’이라고 밝히는 이종현씨(25). 그는 이도 모자라 더 많은 일을 하려고 한다. 오는 6월 창간되는 한 음악잡지의 편집장을 맡았으며 공연기획에도 손을 대고 싶어한다.내년에는 일본의 DJ스쿨로 유학을 갈 까 생각중이다.그가 하는 모든 일에 걸맞는 직업명은 없다.그래서 남들은 그를 ‘프리랜서’라고 부른다. 이씨는 지난 92년 한국외국어대 포르투갈어과에 입학했으나 1주일여만에 학교를 그만둔 뒤 이듬해 서울예전 광고창작학과에 들어갔다.초등학교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하고 관심을 가져왔던 이씨는 2학년에 재학중이던 95년,음반해설지를 쓰게 되는 기회를 얻으면서 음악 잡지에 기고를 하기 시작했다.글을 잘 쓰기 위해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 좋은 정보를 얻으려 했던 노력 덕분에 음악 기고가로서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전문 필자가 많지 않은 테크노 음악과 힙합,일본음악 등에 유달리 해박했던 것도 큰 힘이 됐다. “프리랜서는 특화된 한 분야에 정통해야 하고 열정도 있어야 해요.또 다른 여러 방면에도 재능을 갖추어 다양한 변신을 하지 않으면 안되지요” 이씨의 연간 수입은 큰 기업체의 과장 수준을 넘어선다.대학에 다닐 때도 등록금과 용돈은 스스로 마련했다. 그러나 수입의 상당 부분은 자료수집 등으로 재투자를 했다.자기 계발을 위해서다.계발 없이는 프리랜서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이씨의 지론이다. 이씨는 “어떤 한 분야에 대한 재능과 열정이 있다면 IMF시대에도 일과 성취감 모두를 얻을 수 있는 분야가 프리랜서의 세계”라고 소개한 뒤 “끊임없는 자기관리와 변신을 해야하는 고독한 직업인 만큼 자신의 능력과 성격 등을 꼼꼼히 따져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美 정치편론가 조지 멜로언 AWSJ 기고(해외논단)

    ◎朱鎔基와 고르비의 개혁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은 24일 젊은 개혁가인 중국의 새총리 주룽지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과 비교분석한 정치평론가 조지 멜로언의 글을 실어 눈길을 끌었다.다음은 기사요지다. 얼마전 언론인들의 모임에서 천수이비엔 타이베이 시장은 주룽지 중국 국무원 총리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면서 그를 ‘이상주의자라기보다는 실용주의자’로 묘사했다.천은 (주룽지의) 이같은 점이 양안관계 개선에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천의 발언은 놀라운 것이다.그는 타이완 야당인 민진당(DPP)의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감이다.DPP는 지금껏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독립된 국가라고 주장해왔다.그러나 지난 전인대에서 주룽지가 총리로 임명된데 대한 국제적인 환영을 감안하면 그에 대한 천의 찬양이 부자연스러운 것만은 아니다.주룽지는 장쩌민(江澤民) 주석,리펑(李鵬) 전인대 상무위원장에 이은 중국내 서열 3위의 인물일 뿐이지만 분명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참신함으로 서방 환영 그런데 주룽지는왜 85년 소련 지도자로 부상한 미하일 고르바초프를 연상시키는 것일까.아마도 그것은 주룽지 역시 고르바초프가 그랬던 것처럼 참신한 인물로서 서방의 환영을 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공산당과 그 권력을 담보한 권좌로부터의 혁명을 시도했다.혁명은 올바르게 시작됐으나 결국 권좌와 당,그리고 고르바초프 자신에게 영향을 미쳤다.서방은 그를 진정한 개혁가로 생각했다.그러나 일부 소련인들은 고르바초프를 단지 술수에 능한 공산주의자로 치부했다. 중국에 있어서 덩샤오핑(鄧小平)은 이전의 진로를 바꾸면서 경제기적을 일궈냈다.이제 덩의 추종자였던 주룽지는 그가 설정해 놓은 자유시장 정책을 보다 확고히 다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朱의 경제 처방은 정확 그가 기획한 프로그램은 아주 놀랄만한 것이다.그는 정부 각료수를 40명에서 29명으로 줄이고 관료를 4백만명 줄이자고 제안했다.그는 또 국영은행 개혁과 국부를 낭비하는 국영기업의 매각·사유화·구조조정 및 주택 사유화 등을 약속했다. 주룽지의 대담한 계획은 경제성장이 흔들릴 조짐이 보이는 것에 때맞춰 나왔다.중국은 이전에도 일부 산업분야의 과잉설비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지금 아시아국가들은 중국에 비해 낮은 생산비용으로 경쟁력을 키울 수 있게 됐다.그러나 중국은 젊은 새 노동력을 흡수하기 위해 최소한 7%의 성장률을 필요로 한다. 주룽지는 분명히 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그는 누구보다도 현상유지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한때 중국의 경제기적을 촉진했던 대중(對中) 외국투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외국투자는 효용과 성장을 위한 메커니즘을 개발하는데 필수적이다.금융개혁,더 큰 활력,자원의 효율적 운영,기업가 정신 등은 정치·사회적 격변 없이 중국이 다음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 어느 정도 고양돼야 한다. 주룽지는 이밖에도 더 많은 자유와 권력 분산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권력 분산을 위해서는 더 많은 민주주의와 당 및 국가로부터의 자유가 필요하다.통제는 개개인의 기업가 정신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中의 개혁행로 어디로 고르바초프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변혁을 단행했고그 결과 탄력을 얻은 변화는 자신과 당을 흔들었다.그러나 주룽지는 고르바초프가 아니며 중국 또한 러시아가 아니다.고르바초프가 흐루시초프 이후 거의 바뀌지 않았던 당을 개혁하려고 성과 없는 노력을 편 것과 달리 중국 공산당은 덩샤오핑이 권좌에 오른 이래 20년 동안 눈에 띄게 발전해왔다.또한 고르바초프가 의무에 충실한 공산당 비밀정보요원으로서 권좌에 오른 것과 달리 주룽지는 막강한 상해시장 자리를 스스로 포기했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주룽지가 설정한 행로가 어디로 이어질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 성석제 새 장편소설 ‘궁전의 새’ 펴내

    ◎권력에의 야유 담은 질펀한 농담/경쾌한 화법·재기넘친 문장 매력 물씬 “성석제의 소설은 마치 ‘농담’처럼 진행된다.농담이란 억압적인 권위와 권력에 대한 조롱이다.그것은 엄숙하고 진지한 척하는 담론들에 대한 야유이며 ‘진담’을 자부하는 권력지향형 담론들에 대한 야유이다… 성석제 소설의 발랄한 구연성과 탈리얼리즘적인 화자의 전략은 새로운 소설의 영토로 독자를 안내한다” 문학평론가 이광호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소설가 성석제(38)의 소설의 매력은 경쾌한 화법과 이야기꾼다운 입심으로 풀어내는 기지 넘치는 독특한 문장에 있다.특유의 재재한 재담과 유려한 문체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그가 새 장편소설 ‘궁전의 새’(하늘연못)를 내놓았다.‘궁전의 새’는 1부‘어린 도둑과 40마리의 염소’,2부 ‘궁전의새’로 구성된 연작형태의 장편.주인공 소년‘원두’의 성장사를 훑어 내려가며 인간적인 것의 가치와 그에 대응하는 삶의 다양한 풍경들을 그린다.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매개체는 가난한 바보 ‘진용’.어리숙하기만한 ‘진용’이 자신의 행로를 개척해가는 부단한 몸짓을 통해 작가는 현실세계의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단면을 보여준다.삶이란 결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것,가벼울 때는 한없이 가볍고 진지할때는 더없이 진지한 것이라는 게 이 소설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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