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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카라 사태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시론] 카라 사태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최근 일본의 한 지방에 다녀온 한 선배가 불쑥 걸그룹 카라 얘기를 꺼냈다. 카라 사태에 대해 국내에서는 심지어 제2의 한류 자체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며 위기 운운하는데 과연 일본 내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는 것이다. 동행한 시골 가이드에게 카라 위기에 대해 묻자, 의외로 시큰둥하더라는 것이다. “그런 건 연예 관계자들이나 기획사들 얘기고, 우리는 그저 카라가 보고 싶을 뿐”이라고 하더란다. 사실 언론이 호들갑을 떨며 당장이라도 카라가 해체될 것처럼 떠벌리고, 또 그것이 마치 이제 가까스로 새로 지펴놓은 제2의 한류에 찬물이라도 끼얹을 것처럼 겁을 잔뜩 주었지만, 실제 일본에서 대중들이 느끼는 체감은 사뭇 다르다는 얘기다. 카라 사태가 처음 불거져 나왔을 때만 해도 이거 또 ‘동방신기’ 사태의 재판인가 했을 것이다. 물론 계약 부분이 핵심적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차츰 진행되는 상황은 카라 멤버 본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부모들이나 기획사들, 심지어 협회들이 더 목소리를 높이는 등 이권 다툼이 사실상의 쟁점으로 부상했다. 카라 멤버들도 물론 허탈감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각종 예능을 포함한 살인적인 방송일정에 일본 활동을 더불어 하고, 각종 행사까지 뛰는 건 엄청난 강도의 노동이었을 테니까.그런 고강도 노동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돈이 몇 푼 안 된다는 현실은 누구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인지상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라 멤버 본인들은 함께하고 싶다는 게 공통된 뜻이었다. 카라 본인들이 원하고, 대중들도 원하고, 한류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일본 대중들까지 원하는 이 온전한 5인 체제의 카라는 애초부터 갈라서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운명이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카라는 대중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대중가수들이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원치 않는 선택은 카라의 자멸을 의미한다. 그 누가 그걸 선택할 것인가. 물론 카라 사태가 내놓은 문제 제기는 의미 있는 것들이다. 즉, 한 아이돌 그룹의 성패가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한류, 나아가 국가 브랜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잘 키워놓고도 잘못하면 남 좋은 일만 시켜줄 수 있는 국내 연예계의 매니지먼트 시스템도 법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어떤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가수를 키우기까지의 투자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에 막상 가수가 성공하고 나면 기획사 입장과 가수의 입장이 충돌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노래로 얻는 수익이 가수 본인에게 돌아갈 수 있는 유통구조다. 카라 사태는 여러모로 혼돈을 준 게 사실이지만, 국내 연예계의 체질 개선을 위해서도 이런 혼돈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고통이 있어야 고쳐질 가능성도 생기는 것이다. 문제 제기를 했던 카라 3인은 현재 소속사와 ‘5명의 카라가 함께한다.’는 원칙에 합의하고 다시 활동에 들어간 상태다. 다행스러운 일이고 올바른 결정이다. 물론 해결된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여전히 그녀들 앞에는 살인적인 스케줄이 놓여져 있을 것이고, 체감할 수 있는 수익은 충분하다고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연예 산업 시스템에 문제 제기를 했다고 해서 그들 자신이 그 열매를 얻기는 쉽지 않다는 게 현실이다. 다만 이런 문제 제기들이 숨겨지지 않고 자꾸 밖으로 드러나고 공론화되면서 가까운 미래에 훨씬 나은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따라서 이런 문제 제기를 좀 더 정확하고 발전적으로 공론화시킬 언론의 기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추측성 기사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언론의 의제 기능은 발휘되기 어렵다. 이것은 문제 제기가 아무 소용없다는 절망감을 안겨 연예계를 무력감에 빠뜨릴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사태 이후 카라에 대한 일본 대중들의 열광은 더 깊어졌다고 한다. 자칫 그 열광 속에 카라가 제기했던 문제 제기가 그저 묻혀지지 않기를 바란다. 숙제는 여전히 우리 손에 남아 있다.
  • 안방극장 女人天下 여왕타이틀은 하나

    안방극장 女人天下 여왕타이틀은 하나

    아이돌 스타들의 어설픈 연기 연습은 끝났다. 이제 안방극장에는 관록 있는 여배우들의 진검 승부가 펼쳐진다. 약속이나 한 듯 방송3사는 여주인공을 앞세운 대작 드라마를 준비 중이다. 여배우들의 격전장이 될 상반기 드라마 시장에서 ‘여왕’의 자리에는 누가 오를 것인가. 김희애·염정아 재계거물 카리스마 격돌 우선 김희애(44)와 염정아(39)의 카리스마 대결이 눈에 띈다. 요즘 방송가에서는 ‘선덕여왕’(MBC)과 ‘대물’(SBS)에서 녹슬지 않은 연기력을 선보인 ‘고현정 효과’로 인해 30~40대 여배우에 대한 기대심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 김희애와 염정아 모두 공교롭게도 극 중 재계 거물로 나와 경쟁 구도를 더 달군다. 김희애는 ‘아테나:전쟁의 여신’ 후속으로 오는 28일 첫 방송되는 SBS 월화 드라마 ‘마이더스’로 4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다. 증권가를 배경으로 기업 간 인수, 합병을 다룬 드라마다. 김희애는 재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통하는 유인혜 역을 맡았다. ‘내 남자의 여자’, ‘완전한 사랑’, ‘눈꽃’ 등 주로 통속극에 출연했던 김희애는 이번 드라마에서 경영학 석사(MBA) 출신으로 미국 월스트리트를 거친 전문사업가로 나온다. 돈과 야망을 좇는 캐릭터다. 김희애의 연기 변신과 더불어 영화 ‘타짜’의 강신효 감독이 드라마 연출을 맡은 점도 화제다. 염정아는 새달 2일 첫 방송되는 MBC 수목 드라마 ‘로열패밀리’에서 재벌 총수로 출연한다. 재벌가에서 그림자처럼 살다가 역경 끝에 결국 총수 자리에 오르는 김인숙 역할이다. ‘장화, 홍련’, ‘범죄의 재구성’, ‘소년, 천국에 가다’ 등 영화에서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선보인 염정아는 “드라마는 ‘워킹맘’ 이후 3년 만”이라면서 “그동안 충전된 에너지와 열정을 김인숙 캐릭터에 아낌 없이 쏟아붓겠다.”고 공언했다. 작가 대결도 흥미진진하다. ‘마이더스’는 ‘올인’의 최완규 작가가, ‘로열패밀리’는 미실 캐릭터를 탄생시킨 ‘선덕여왕’의 김영현·박상연 작가와 ‘종합병원2’의 권음미 작가가 각각 극본을 맡았다. ‘마이더스’의 김영섭 SBS 책임 프로듀서는 “과거 정·재계를 다룬 드라마의 주인공이 대부분 남성이었지만, 최근 전문직 여성들의 사회 진출 영역이 늘어나는 시류를 반영했다.”면서 “특히 30~40대 여배우들은 연기 신뢰도가 높고, 작품 해석력도 뛰어나 (드라마를) 믿고 맡길 만하다.”고 말했다. 김민정·한혜진 차세대 연기파 女優 탄생 예고 20~30대 젊은 여배우들도 가세했다. ‘프레지던트’ 후속으로 오는 23일 첫 방송되는 KBS 수목 드라마 ‘가시나무새’는 한혜진(29)과 김민정(29)의 연기 대결이 관심을 모으는 작품. 성공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다른 선택을 한 두 여자의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제중원’ 이후 1년 만에 안방극장에 모습을 비추는 한혜진이 운명에 맞서 싸우는 여주인공 서정은 역을 맡았다. 지금은 보육원 출신의 단역배우이지만 언젠가 스타가 돼 생모를 찾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바람에 흔들려도 꺼지지 않는 등불 같은 여자다. 김민정은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지만 출생의 비밀을 알고 난 뒤 세상을 향해 복수심을 불태우는 팜므파탈 한유경 역을 맡았다. ‘장밋빛 인생’, ‘미워도 다시 한번’을 흥행시킨 김종창 PD가 연출을 맡았다. 김 PD는 “두 캐릭터의 선악 대비가 워낙 뚜렷한 데다 두 배우가 역할에 100% 몰입해 차세대 연기파 여배우 탄생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요원·남규리 상큼발랄 매력 대결 ‘싸인’ 후속으로 3월 방송 예정인 SBS 수목 드라마 ‘49일’은 이요원이 여주인공으로 나선다. ‘선덕여왕’ 이후 1년 4개월 만에 복귀하는 이요원은 최근 첫 촬영에 돌입했다.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한 여인의 영혼이 가족을 제외하고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세 사람의 눈물이 있으면 회생할 수 있다는 조건을 제시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송이경(이요원)이 혼수 상태에 빠진 예비신부 신지현(남규리)의 영혼에 빙의되면서 겪는 일화가 중심 축이다. 전작에서와 달리 이요원은 밝고 명랑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김수현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로 연기자 신고식을 치른 아이돌 가수 출신 남규리도 미니시리즈에 첫 도전해 눈길을 끈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끊임없이 연기력 논란을 일으키는 아이돌 스타들의 미흡한 연기에 지친 시청자들이 확실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을 갈구하고 있다.”면서 “모처럼 (안방극장에) 전진 배치된 여배우들의 활약이 충무로에도 자극을 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최근 몇 년새 영화계는 ‘여배우 수난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남자배우 중심의 작품이 주를 이뤘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평발로 우뚝 선 ‘아시아의 최고’

    2000년 4월 5일. 지금은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에서 벌어진 라오스와의 아시안컵 1차 예선에서 등번호 2번을 달고 나온 박지성을 주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소하고 여드름 많은 얼굴에 실수 투성이인 어린 선수일 뿐이었다. 당시 대표팀 감독이던 허정무 인천 감독은 바둑 애호가라는 이유로 “명지대 김희태 감독과 바둑 두다가 뽑은 것 아니냐.”는 근거 없는 비난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평발’ 박지성은 자신에게 던져진 수많은 물음표를 모두 느낌표로 만들었다. 지난 11년 동안 그가 걸어온 길은 곧 한국 축구의 새 역사였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 한국 선수 첫 득점, 한국 선수 첫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진출, 아시아 선수 첫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 박지성의 존재로 인해 한국 축구는 물론 아시아 축구가 세계 축구의 중심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됐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따라 네덜란드 명문팀인 PSV에인트호벤에 진출했던 박지성은 짧지 않은 적응기를 보낸 뒤 2003~04, 2004~05 시즌 각각 6골, 7골을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로 거듭났다. 그는 2005년 여름 드디어 유럽 최고의 명문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 입성했고, 지난 6시즌 동안 맹활약을 펼치며 ‘유니폼 판매원’이라는 비뚤어진 시각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특히 지능적인 공간 플레이에 ‘산소탱크’,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사나이’ 등의 별명이 붙을 정도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활동량으로 박지성은 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됐다. 또 측면 공격수임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수비 능력으로 ‘수비형 윙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유럽 평론가들로부터 ‘현대 축구의 필수적인 전략적 윙어’라는 찬사까지 받았다. 동시에 유럽 빅리그 팀들의 한국 및 아시아 선수에 대한 재인식이 이뤄졌다. 국가대표 박지성의 업적도 화려했다. 비록 주요대회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리진 못했지만, 이번 아시안컵을 통해 센추리클럽에 가입했다. 또 세 차례의 월드컵에서 모두 득점을 이뤄낸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됐다. 잉글랜드, 프랑스, 포르투갈 등 유럽의 강팀을 상대로 모두 득점에 성공, 한국 축구가 ‘유럽 공포증’을 떨쳐내는 선봉장 역할을 했다. 이제 더 이상 대표팀의 경기에서 박지성의 플레이를 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세계 최정상의 프로축구 선수로의 그의 도전은 계속된다. 특히 올 시즌 맨유 이적 뒤 최다 골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3~4년 뒤 은퇴하겠다는 ‘살아 있는 전설’ 박지성이 앞으로 어떤 것들을 더 이뤄낼지 지켜봐야 할 이유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127시간’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127시간’

    2003년 4월의 어느 금요일 밤, 에런(제임스 프랭코)은 여느 때처럼 단독 등반을 준비했다. 결혼식과 관련해 여동생이 전화를 걸었지만, 그 정도는 가볍게 무시한 채 밤길을 떠났다. 이윽고 계곡 입구의 캠프장에 도착해선 차를 세우고 잠을 잤으며, 날이 밝기가 무섭게 길을 재촉했다. 황야가 흥겨운 놀이터라도 되는 양 자전거를 몰고 사진을 찍으며 유쾌한 시간을 즐겼다. 그뿐인가. 도중에 만난 두 여자를 비경으로 초대해 신나는 추억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날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미국 유타주 ‘블루 존 캐니언’의 절벽 사이를 가볍게 오르내리던 에런 위로 바위가 굴러 떨어졌고, 오른팔이 깔려 꼼짝달싹도 못하게 된다. 대니 보일 감독은 그 즈음에야 영화의 타이틀을 스크린 위에 적어둔다. 빠져나가려면 127시간이 흘러야 한다는 이야기다. ‘127시간’은 27살 청년 에런 랠스턴이 실제로 겪은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죽음의 공포로부터 탈출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실화는 수많은 독자를 감동시켰고, 몇년 전 한국에서도 ‘6일간의 깨달음’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최근 재출간되면서 영화와 같은 제목으로 바뀌었다). 유명 원작이 영화화되는 건 흔한 일이지만, 이번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127시간’의 대부분 장면은 좁고 한정된 공간에서 단 한 사람이 투쟁하는 모습을 담아야 한다. 게다가 대다수 관객은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클라이맥스에서 벌어질 상황을 이미 알고 있다. 관객을 결말까지 이끌어 가야 하는 감독으로선 막아내기 괴로운 도전이며, 배우 또한 영화 내내 클로즈업된 얼굴 때문에 연기의 극한을 시험받을 수밖에 없다. ‘127시간’은 움직이지 못하는 인물을 빌린 한편의 액션영화다. 플래시백이라는 쉬운 장치를 사용하는 대신, 대니 보일 감독은 인물의 처지를 도리어 극대화함으로써 섬세한 액션을 창조했다. 예를 들어 공중에 매달린 상태에서 잠자리와 휴식을 구하는 장면을 보자. 에런은 온몸의 근육과 아이디어를 동원해 여러 차례 등산 장비를 바위로 던지고 몸에 휘감고 얼굴에 뒤집어쓴다. 또 계곡 아래로 하루에 단 15분 동안 허용되는 햇살을 몸으로 느끼고자 애쓸 때, 갑자기 불어 닥친 폭우 속에서 살아보려고 버둥거릴 때, 에런의 손과 발은 어떤 액션배우의 그것보다 위대해 보인다. 여기에 더해 감독 특유의 몽환적 기법을 적극 활용했다. 보일은 에런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환각과 마지막 결정의 순간을 대비시킴으로써 영화의 감동을 극대화했다. 실화 ‘127시간’이 쉬운 방식으로 소중한 주제, 예를 들어 불굴의 의지와 정신력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 삶의 가치를 인식하고 지키는 사람이 바로 영웅이라는 사실, 작은 것에서 기쁨과 희망을 느낄 때 찾아오는 기적 등을 전한다면, 영화 ‘127시간’의 인트로와 아웃트로는 또 다른 주제를 설파한다. 영화는 축제, 마라톤, 출근시간의 거리 등에서 군중이 몰려드는 장면으로 시작해 한 남자의 고독한 6일을 경유한 다음 다시 엄청난 군중의 물결을 보여주면서 끝난다. 결국 보일이 가장 소중하게 여긴 주제는 다름 아닌 ‘함께 사는 것의 기쁨’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평범한 것에서 진리를 얻는다고 한다. 보일의 영화는 어느덧 그러한 경지에 도착해 있다. 10일 개봉. 영화평론가
  • 동방신기·카라 사태… 흔들리는 K-POP 진단

    동방신기·카라 사태… 흔들리는 K-POP 진단

    갈등을 빚었던 걸 그룹 카라 3인(한승연, 정니콜, 강지영)과 소속사 DSP미디어가 당분간 5인 체제를 유지하기로 지난 27일 극적 합의하면서 우려했던 해체 위기는 한 고비 넘겼다. 이에 따라 카라가 주연을 맡은 일본 드라마 ‘우라카라’도 예정대로 촬영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남은 상처와 후유증은 상당하다. 니혼·아사히·후지 TV 등 일본 언론은 카라가 일본의 케이-팝(K-POP) 열풍을 이끈 주역이라는 점 등을 들어 ‘한류 영향력 시들해지나’ ‘한국 연예기획사 무슨 문제 있나’ 등의 부정적인 기사를 잇따라 내보내고 있다. 남성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에 이어 카라까지 계약 분쟁을 겪자 사업 파트너로서 한국 연예기획사에 대한 일본 내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일본뿐 아니라 K-POP 열풍이 불고 있는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도 동방신기, 카라 사태가 쟁점화되면서 한국 연예인의 전속계약 자체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점차 팽배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동방신기·카라 사태가 당장 K-POP 열풍 및 수입에 큰 타격을 주진 않을지 몰라도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K-POP 활로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는 동방신기와 카라 사태로 향후 한국 가수들의 외국 진출이 더 까다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동방신기와 카라 사태가 연이어 터지면서 아시아권 미디어 관계자 및 투자자들에게 한국 가수 및 연예기획사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면서 “특히 일본처럼 연예 사업 역사가 길고 틀이 잘 잡혀 있는 나라에서 볼 때 한국 가요계에 대한 불신감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단순히 가수 그룹 팀 하나가 해체되는 문제를 떠나 K-POP 열풍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카라와 동방신기 사태가 장기적으로 K-POP 공급 및 투자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고, 이로 인해 자연적으로 K-POP 위상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성우진 대중음악평론가는 “외국에서는 한국 가요 비즈니스를 주먹구구식으로 본다.”면서 “K-POP 열풍 자체가 거품이 많고, 체계화됐다기보다 이미지 위주로 선도됐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 가수들에 대한 투자를 더욱 꺼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K-POP의 해외 투자 활로가 좁아지면서 자연적으로 K-POP 위상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해외 진출을 모색하던 다른 국내 가수까지도 이번 카라 사태로 극심한 피해와 곤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이다. 카라·동방신기 사태를 한국 가요사업에 대한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씨는 “아시아 한류를 선도하는 아이돌 사업이라는 게 얼마나 이전투구판인지를 이번 사태를 통해 그대로 보여줬다.”면서 “한국 가요 수출 사업의 내부가 음악, 문화, 콘텐츠에 대한 고민보다 머니게임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기회에 한류니 K-POP이니 하는 엄청난 문구들의 본질적인 측면을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연예기획사와 소속 가수들 간에 뿌리 깊은 노예계약과 불신의 고리를 끊는 것이 원론적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은식 평론가는 “계약사항과 관련해 연예기획사와 소속가수 간 갈등은 고질적”이라면서 “1차적으로 소속사가 가수와의 계약을 보다 합리적으로 맺는 등 개선해야 할 점이 있고, 가수들도 속칭 뜨기 전과 뜨고난 뒤 입장을 달리할 게 아니라 애초부터 불합리한 계약을 하지 않는 대범함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카라 사태 이후 일본 네티즌들은 각종 포털 게시판에 “한국 연예인들은 인기가 조금 있으면 바로 분쟁이 시작된다.”, “한국 소속사는 도대체 어떻게 하기에 매번 트러블만 생기는지 모르겠다.”는 등 한국 연예시스템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콩가루 가족’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콩가루 가족’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가족은 늘 든든한 버팀목이다. 세상에서 내쳐지더라도 넉넉히 품어주리라 기대할 수 있는 곳이고, 남들이 다 손가락질하더라도 내 편에 서서 그들과 대거리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지쳐 무너져 가는 어깨를 따뜻하게 붙잡아 줄 수 있는 마지막 이들이 있는 곳이다. 문학 속 가족도, 현실 속 가족도 그렇다. 그러나 ‘여울이네’ 가족은 다르다. 채권 추심업을 하는 아버지 ‘불곰’과 주식투자로 망한 뒤 뇌경색에 걸린 삼촌, 서로 배 다른 3남매, 그리고 여든셋의 할매가 함께 산다. 세 명의 ‘엄마’는 부재하는 존재며, 가족 사이에서 금기어로 굳어 있다. 맞다. 구성 자체가 이미 위태롭다. 1학년 여고생 여울이는 호시탐탐 가출을 노리지만, 정작 그에 앞서서 집을 뛰쳐나간 것은 고3 언니였고, 그 다음이 뇌경색 삼촌, 그리고 ‘다발경화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린 오빠였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마저 구속돼 감옥소 생활을 하며 집을 빠져나간다. 집을 나가 양로원에 들어가서 남이 지어 주는 밥 먹고 싶었던 할매는 결국 여울이 곁에 주저앉고 만다. 모든 구성원들이 가족 바깥에서 살 길을 찾고파 하는 전형적인 콩가루 집안이다. ‘나이트클럽 댄서의 딸’ 여울이는 코스튬 플레이(만화나 게임 주인공과 똑같은 의상을 입고 흉내내는 행위)를 통해 학교와 집안에서 겪는 숨막히는 현실로부터의 탈출구로 삼고, 또 다른 존재로 변신하고 싶은 욕망을 분출하며 엄마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채운다. ‘불량가족 레시피’(손현주 지음, 문학동네 펴냄)는 불온하다. 세대의 경계에서 늘 불안한 오르내림을 거듭해야 하는 청소년의 속내를 비치는 것도 모자라 경제적인 이유로 가족의 파괴를 겪어야 하는 세상의 속살을 여과 없이 보여 준다. 심드렁한 말투로 때로는 비장하게, 때로는 낄낄대게 만드는 문체로 서사(敍事)의 흡입력까지 높이니 그 불온성은 절정에 이른다. 지난해 만들어진 제1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200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손현주(48)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늦깎이로 등단한 손현주지만 2009년 문학사상 신인상, 지난해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대상을 받는 등 창작 활동의 보폭이 넓다. 문학평론가 유영진은 “가족 해체 과정을 통해 새롭게 가족이 탄생하는 모습을 보여 준 것은 한 작가의 성취를 뛰어넘어 우리 청소년 문학의 성취라고 할 만하다.”고 상찬을 보냈다. 소설은 톨스토이가 인류에 던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화두를 2011년 한국 사회에 착근시키며 풀어낸다. 천상에서 인간세상으로 온 ‘천사 미하일’이 구두수선공 부부의 사랑과 연민으로 함께 지냈듯, 여울이는 여든 넘은 할매의 거친 욕설 뒤에 숨겨진 사랑과 서로 무관심하지만 보이지 않는 줄로 얽혀 있는 가족들의 관계 속에 큰다. 오로지 코스튬 플레이를 위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어 낸 여울이는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한 명도 없다.’고 단언하며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족들이 모두 떠난 상황이 닥치자 ‘마음에 썩 들지 않는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장이 되어서 아빠, 언니, 오빠, 삼촌, 그리고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엄마까지, ‘불량한 가족’을 기다리는 시간을 기꺼이 맞는다. 천사 미하일이 사람은 사랑의 힘으로 살아감을 깨달은 뒤 다시 하늘로 올라가듯 말이다. 가족의 진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얼굴없는 작가’ 듀나의 상상력 종합소설세트

    ‘얼굴없는 작가’ 듀나는 1994년부터 컴퓨터 통신을 통해 흡인력 있는 문화 평론과 소설을 선보였다. 블로그와 트위터에 익숙한 20대 초반이라면 전화로 PC를 연결했던 컴퓨터 통신은 감을 잡기 어려울 터. 하지만 듀나뿐 아니라 ‘젊은 감성을 대변하는 작가’ 김영하의 시작도 컴퓨터 통신에 연재했던 무협 소설이었고, 한류의 대표작인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원작도 컴퓨터 통신에 연재됐던 글이었다. 듀나는 이메일로만 소통하며 누구도 그 정체를 알지 못하는 특이한 작가다. 실명과 나이는 물론 남자인지 여자인지, 한명이 듀나라는 필명을 쓰는지 아니면 2명 이상의 작가 집단인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듀나란 아이디는 이제 그 독특한 상상력으로 마니아층과 신뢰를 확보했다.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자음과모음)는 듀나가 2007년 말 펴낸 ‘용의 이’ 이후 3년여 만에 출간하는 소설집이다. 출판사 측은 공상과학(SF), 공포 등 듀나 소설의 매력을 모두 맛볼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소설집이라고 소개했다. 총 13편의 단편 소설이 실렸다. 첫 번째로 수록된 ‘동전 마술’은 선으로 딱 한번 만난 남녀의 기묘한 인연을 그리고 있다. 여자는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 역에서 공중에 던진 동전이 사라지는 마술을 선보인다. 결혼하고도 7년 동안 여자를 잊지 못했던 남자는 ‘다른 세계로 가는 틈새’가 열려 동전이 사라진다는 여자의 마법을 직접 확인하게 된다. ‘물음표를 머리에 인 남자’는 남자친구 또는 남편의 머리 위에서 물음표가 동동 떠다니는 현상을 본 여성들이 인터넷을 통해 만나면서 시작되는 소설이다. 물음표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목격됐고 처음 인터넷에 질문한 여자는 전 세계 기자들이 찾아오는 바람에 인터뷰로 상당한 돈을 벌게 된다. 하지만 여자가 처음으로 머리 위에서 물음표를 발견했던 남자친구는 스튜어디스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고 고백하는데…. 한편 듀나를 포함한 10명의 SF 작가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사이언티카)도 출간됐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3월 새앨범 내는 ‘찔레꽃’ 소리꾼 장사익

    [김문이 만난사람] 3월 새앨범 내는 ‘찔레꽃’ 소리꾼 장사익

    산 너머 저쪽이다. 어머니는 배추를 팔러 나갔다. 돌아오는 언덕 길이 꼬불꼬불 멀었다. 오늘도 늦으시려나….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그렇게 기다렸다. 어느 날엔가 막차의 기적소리가 들려왔다. 어쩔 거나, 어머니가 걱정된다. 그래서 읊었다. ‘열무 삼십단을 이고/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해는 시든지 오래/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아무리 숙제를 천천히 해도 엄마 안 오시네/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아주 먼옛날~’ 1989년 요절한 기형도의 시 ‘엄마 걱정’에 나오는 대목이다. ‘엄마 걱정’은 지난 해 10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시작해 연말 제주 무대에 이르기까지 노래로 불려져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장사익 소리판 역(驛)’이란 제목으로 전국 투어에서 선보였던 것. 공연 도중 기형도씨의 어머니를 초청해 아들의 ‘엄마 걱정’을 눈물 나도록 불러 관객들과 함께 감루(感淚)의 바다로 빠지게 했다. 장씨 자신도 참외장사를 했던 어머니의 추억을 토해냈다. 그런 ‘엄마 생각’에서 장사익(62)씨는 오는 3월 새 앨범을 낸다. 원래 노래풍도 그렇고 소재를 선정하는 스타일도 ‘한 많은 우리 것’을 찾고 있지만 이번 새 앨범에는 특유의 ‘토장’(土醬)을 더욱 진득하게 담아낸다. ‘산너머 저쪽’ ‘엄마 걱정’ 등의 신곡에다 ‘삼식이’ ‘아버지’ ‘여행’ ‘섬’ 등 11곡을 맛깔스럽게 버무린다. 2008년 ‘꽃구경’ 이후 3년 만으로 7번째 앨범이다. 타이틀곡은 ‘역’이다. 장씨는 다른 가수와 달리 신곡이 나오면 먼저 무대공연을 통해 선보인 다음 녹음 과정을 거친다. 장씨의 노래는 요즘 들어 더욱 중장년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국내 양대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유료 관객 점유율을 집계한 결과 장씨의 ‘역’ 공연이 전체 좌석 중 유료 관객 점유율 97%로 1위에 올라 인기도를 입증했다. 그는 ‘찔레꽃’으로 많은 팬들의 애간장을 충분히 녹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노래 제목처럼 여전히 ‘이게 아닌데’라고 하면서 차원을 높인다. 그럴 것이 북악산을 바라보는 집 창가에 찾아오는 새들과 그 산 기슭에 드러누운 부처와도 대화를 나눈다. 또한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 ‘묵향’과 함께 튼튼 60대 세월로 ‘독공’(獨功)의 길을 걷고 있다. ●풍경이 모여드는 마당 서울 종로구 홍지동에 위치한 장씨의 집. 10여개의 풍경이 앞마당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각자 불어오는 찬바람에 의지해 겨울소리를 내고 있었다. 녹차를 마시면서 한 시간여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장씨의 오랜 친구들이 계속 찾아온다. 비둘기와 까마귀, 참새들이 나뭇가지에 와서 교대로 떠들고 재잘거리고 뭐라고 지껄인다. 뒷산 언덕 높이에서는 이를 시샘하듯 매 한 마리가 크게 날갯짓을 한다. 뿐만 아니다. 연못에서 동면하는 개구리 10여 마리도 아직 기척은 없지만 목청을 가다듬으며 때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장씨 집에는 계절별로 번갈아 가며 노래를 부르는, 그런 자연의 오케스트라가 있다. 겨울에는 새들이 저마다 고운 목소리로 멋을 내고 4, 5월이 되면 개구리가 뒤질세라 울어댄다. 개구리들은 영특하게도 여름에 매미 소리가 나와야 비로소 입을 다문다. 또 그 매미들은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풀벌레한테 인계를 한다. 다시 겨울이 오면 참새들이 울면서 자연의 크리마스 카드를 연출한다. 하여 장씨는 이들에게 노래할 수 있는 공간과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클래식과 국악이 함께 나오는 FM 라디오 음악을 잔잔하게 하루 종일 틀어준다. 새들이 얼마나 음악을 좋아하고 잘 듣는지 장씨 스스로 깨닫는다. 때문에 굳이 창문 열고 사람소리를 내지 않는다. 혹 사람의 소리가 나면 그들은 얼른 도망가버린다. 장씨는 새들에게 곰팡이 생긴 쌀을 먹이로 준다. 이런 평화로움에 지나가던 고양이도 잠시 낮잠을 즐기고 간다. 전원 교향악이 따로 없다. 올봄에는 닭 몇 마리를 새 식구로 불러들일 생각이다. “(그들이) 울다가 지치면 딴 놈이 와서 울어줍니다. 아주 자연스러워요. 일년 사계절이 그럴진데 요즘 세상에서는 한꺼번에 뛰려는 사람들이 많아요. 자가용 타는 것이 왠지 슬퍼져서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그러다가 지하철에서 여러 사람이 휴대전화에 의존하는 모습을 볼 때 소름이 끼친다는 생각도 듭니다. 올해에는 주변을 살피면서 느리게 가 보면 어떨까요. 휠체어를 탄 장애우들은 이것저것 살피면서 아주 천천히 움직이잖아요.” 문득 그의 노래가 대부분 느리면서 호소력 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곡 중 하나인 ‘봄날은 간다’가 떠올랐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가~안다.’ ●개발한 글씨체로 일필휘지 요즘 그는 서예에 푹 빠져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여지없이 먹을 갈고 한 시간여 동안 붓을 잡아 화선지에 자신이 개발한 독특한 글씨체를 일필휘지로 써내려 간다. ‘동백아가씨’ ‘찔레꽃’ 등의 노래가사는 기본이고 마음에 드는 시구절 등 주로 한글로 쓴다. ‘느림의 미학’과 ‘위안과 희망’이 장사익류의 소리라면 또 다른 ‘장사익류의 서체’를 개발해낸 셈이다. 지인들에게 안부편지를 쓸 때도 꼭 붓글씨를 고집한다. 주위에서는 전시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한 작품수준의 경지라고 평가한다. 그는 조선후기 3대 명필 중 한 사람이었던 창암 이삼만(李三晩)의 글씨체를 무척 좋아한다. 장씨는 “창암의 서예전이 다음 달 27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다.”면서 글씨의 근본을 오로지 자연에서 구했기에 물처럼 흐르는 멋이 물씬 풍긴다고 말했다. 또한 평론가들도 “먹이 농담하듯 곡선과 직선, 음양의 요소를 조화로움의 극치로 풀어낸다. 자연의 소리가 글씨에 스며들어 붓이 춤추듯 노래하는 것 같다.”고 평한다. “한글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00년 정도입니다. 한자인 경우에는 추사 김정희 서체니 중국의 아무개 서체니 하고 있지만, 한글은 쓰는 사람이 임자입니다. 계속 쓰다 보면 아름다운 글씨가 나오고 그게 곧 자신의 글씨체가 되겠지요. 노래가 몸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서예는 노래를 집중하게 하는 정신력의 소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2004년 작고한 음악인 김대환씨를 예로 든다. 평생 아리랑과 반야심경구절만 쓰다 보니(앞으로 썼다가 뒤로 썼다가 반복하면서) 왕희지 서법보다 더 자유분방해졌다는 것이다. 김씨는 1990년에 쌀 한톨에 283자의 반야심경을 모두 써 넣어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장사익 소리판 역’ 완결무대 이어져 이런 얘기를 하고 있을 때 부인 고완선씨가 떡과 과일을 가져왔다. 고씨는 남편에게 “사진촬영도 하는데 기왕이면 옷을 갈아입고 하시지.”라고 했다. 그러자 장씨는 “어때 뭐, 원래 노숙자차림이 내 모양인데 뭐.”라고 웃어넘긴다. 알콩과 달콩으로 미소를 주고받는다. 마루바닥 한쪽에 오래전에 부부가 함께 만든 병풍이 눈에 들어온다. 제목은 ‘백년가약서’이다. ‘하늘 고완선과 땅 장사익은 금후 100년 동안 항상 사랑하고 존경하고 늘 행복함을 유지시킨다는 약서(約書)를 씁니다. 단, 100년 후에는 영원으로 계약조건을 변경합니다.’ 올 한해는 얼마나 많은 공연이 기다리고 있을까. 높아가는 인기도만큼 여기저기에서 오라는 데가 더욱 많다. 이달 대구와 부산, 일본 후쿠오카 등에서 협연을 끝낸 데 이어 2월에는 경북 안동(11일), 서울 노원(17일), 경기 군포(19일) 등에서 협연이 예정돼 있다. 3월 1일에는 김대환 추모공연에 참가한다. 또 이달에는 단독공연이 있는데 울산(15일)과 창원(19일)에서 이어지며 4월에는 전주, 과천, 춘천 등에서 단독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지난해 10월에 시작된 ‘장사익 소리판 역’의 완결편을 마무리짓는 무대가 5월까지 10여 차례 이어진다. 전직 카센터 직원, 독서실 운영, 가구점 총무, 전자회사 직원, 보험회사 직원…. 장씨는 마치 죽장에 삿갓 쓰고 그러하듯, 일찍부터 방랑과 고난의 길을 걸었다. 인생살이의 산전수전을 겪은 다음 40대 중반에 소리꾼으로 데뷔했다. 다른 사람보다 늦었지만 삶의 내공이 쌓여서인지 무대 위에서 넘어지고 깨진 것을 얘기할 수 있어 오히려 음원이 시원했다. 일찍 ‘국민 소리꾼’이 된 것도 여기에 있겠다. “노래는 진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노래는 맑아야 하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희망도 있고 위안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관객들과 같아지겠지요. 지금 생각하면 노래를 참 잘 택했구나 하고 있습니다.” 장씨는 가수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냥 소리꾼일 뿐이라고 한다. 애정을 얻어도 고통이요, 또 애정을 버려도 고통이라는 말이 있다. 소리를 얻었을 때도 많은 고통이 있었을 테고, 또 언제가 버려야 하니 더 많은 고통을 생각하고 있을 터. 그래서 요즘도 ‘이게 아닌데’로 스스로 채찍을 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장사익은… 1949년 충남 홍성군 광천읍 광천리 삼봉마을에서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당시 부친은 소문난 장구잡이였다. 소리의 기질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았다. 장씨는 초등학교 때 웅변을 잘했다. 어릴 때는 장차 정치가를 생각했다. 하지만 먹고사는 것이 시급해 1965년 서울 선린상고에 진학했다. 전 프로야구 선수 김우열씨와 동기동창. 고 3 때 종로에 있는 생명보험회사에 취직했다. 이때 인근 낙원동 음악학원에 다니며 노래연습을 틈틈이 했다. 직장생활 3년 후 공병으로 군입대를 했지만 소리솜씨가 좋아 31사단 문선대에서 근무했다. 1972년 제대 후에는 무역회사, 전자회사 영업사원, 노점상, 카센터 등을 전전했다. 그러면서 정악피리와 태평소 등을 스스로 익혔다. 1993년에는 김덕수 사물놀이패 등을 따라 전국을 돌아다녔다. 때마침 그해 전주대사습놀이에서 ‘공주농악’으로 장원에 뽑혔다. 또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결성농요’로 대통령상을 탔다. 이듬해 전주대사습놀이에서도 ‘금산농악’으로 장원에 올랐다. 그러던 1994년 11월 주위의 권유로 서울 신촌에서 첫 공연을 했다.100석 규모의 극장에 300여명이 몰려 대성황을 이루었다. 내친김에 1집앨범 ‘하늘가는 길’을 발표하면서 정식 가수로 데뷔해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 지금까지 ‘기침’(1999) ‘허허바다’(200) ‘사람이 그리워서’(2006)‘ ‘꽃구경’(2008) 등 6집 앨범을 냈다.
  • [열린세상] 예술적 허구의 힘/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열린세상] 예술적 허구의 힘/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1980년대 초반, 정정하던 60대 후반 황순원 선생 댁에 제자와 문인들이 신정 세배를 드리러 모인 자리였다. 대학원에서 문예이론과 문학비평을 공부하던 필자가 동석한 어느 선배 문인에게 매우 무례한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 출간된 신문 연재 장편은 단편을 확장했으며 다른 작품에 비해 문학성이 뒤떨어지니 차라리 쓰지 않는 것이 낫지 않았겠느냐고. 기실 모임의 분위기를 밝게 해 보자는, 또 매우 가까운 분이라 어리광도 겸한 어투였으나, 지금 생각하면 뒷덜미가 서늘할 만큼 철없는 발설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과연 동석한 다른 선배 한분이 정색하고 반박했다. 책임 있는 한 작가가 작품을 쓰면 어떤 경우라도 그 나라의 문학적 성과에 기여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필자는 다른 사람의 작품에 대한 비판에는 칭찬보다 더 신중을 기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익혔다. 이 해묵은 삽화를 다시 들추어낸 이유는, 근자에 여러 논쟁을 유발한 심형래 영화 ‘라스트 갓 파더’를 변호하기 위해서이다. 이 작품이 영화사에 기록될 정도로 뛰어난 수준을 갖추었다고는 평가하지 않지만, 여기에 불량식품 파는 가게의 상품이라고까지 매도하는 것은 온당해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가볍지만 따뜻한 코미디를 지향했고, 그러한 의도는 상영관의 관객 숫자가 말해주듯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다. 심형래 영화에 대한 부정적 시각의 발원은 앞선 작품 ‘디워’에 있다. 많은 제작비와 화려한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동원하고도 소기의 수확에 이르지 못한 것은, 그리고 국내외의 냉담한 반응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미성숙한 스토리텔링 때문이었다. 황당해 보이는 이야기일수록 그 형성 기반이 단단해야 한다는, 예술적 허구의 기본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그러나 한번의 미비나 실패를 다음번의 사례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자칫 비판을 위한 비판이기 쉽다. 이 불을 보듯 밝은 이치를 각성하고 바라보면 두 영화를 한 솥에 함께 삶을 수는 없다. 독설이 그 나름의 의미를 지니려면 상황을 압도할 만한 논거나 기지, 또는 표현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지금껏 많은 이들이 버나드 쇼를 희대의 독설가라 부르면서도 그의 언사들을 뜻깊게 반추하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까닭에서이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건강한 비판정신에 근거한 합리적 비난에 귀 기울일 준비를 하는 것이 옳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연말 윤복희의 ‘여러분’ 콘서트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처음부터 가스펠 무대임을 강력하게 천명하든지, 아니면 예수의 십자가 고난을 제대로 된 스토리텔링으로 표현해야 했다. 명성과 가창력을 다시 만나려는 관객들에게 잘 준비되지 않은 무대로 신앙적 감동을 요구하는 방식은, 마치 심형래의 앞 영화가 단순한 애국심에 호소한 것처럼 생경하게 보였다. 역사소설이 역사가 아니라 소설인 것처럼, 종교예술도 종교가 아닌 예술이어야 한다. 종교가 맨얼굴을 내밀고 있으면 예술이 설 빈 곳이 없다. 반면 예술적 형식이 충일하면 종교는 곳곳에 그 입지를 얻는다. 윌리엄 와일러의 ‘벤허’는 한번도 예수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그로 인해 오히려 사랑과 은혜의 감각을 한층 증폭시킬 수 있었다. 이 사례가 말하는 바는 곧 진정한 예술적 허구가 무엇이며 그것을 현현하는 스토리텔링의 의미와 기능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어쩌면 잘 만들어진 허구 속에, 현실보다 더 박진감 있는 감응이 살아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작가 복거일은 ‘비명을 찾아서’란 제목의 오래 기억할 만한 장편에서, 설득력 있는 가상의 세계를 축조하기 위해 그 밑바탕을 모두 핍진한 현실의 자료로 채웠다. 일제강점기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대체역사의 새로운 형식 실험은, 그렇게 허구와 현실을 절묘하게 조합하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충분한 힘을 얻었다. 윤복희와 심형래의 미비는 바로 이 대목에 문제가 있었다. 글 서두에 적은 필자의 설익고 치기 어린 비판을 조용히 웃으며 바라보던 황순원 선생은 소설적 허구의 장인이었다. 말없이 말을 전하던 그 깊은 눈빛은 두고두고 내 삶에 경종이 되었다.
  • [부고] ‘책의 수호천사’ 이중한 전 문화복지협의회장

    [부고] ‘책의 수호천사’ 이중한 전 문화복지협의회장

    ‘책의 수호천사’ 이중한 전 한국문화복지협의회장이 27일 오전 11시 55분 세상을 떠났다. 73세. 고인은 2004년 11월 뇌동맥파열로 쓰러진 뒤 의식을 잃은 채 6년 3개월 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다. 그는 1960~70년대 한국 출판의 밑그림을 그린 기획자이자 우직하게 실무를 맡은 편집인으로 통한다. 1960년대 월간 ‘자유공론’, ‘세대’ 등 잡지 편집장을 거쳐 1970년대에는 ‘독서신문’과 서울신문이 발간한 ‘서울평론’의 편집장을 지냈다. 그 뒤 언론계로 눈을 돌려 서울신문 문화부장,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출판 문화 행정 안팎으로도 참여하며 예술행정연구회장, 서울YMCA영상문화위원장, 사단법인 한국문화복지협의회장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고인은 5만권이 넘는 책을 보유한 장서가이자 애서가로도 통한다. 이기웅 파주출판문화재단 이사장은 그를 ‘책의 수호천사’라고 불렀다. 이렇듯 출판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 한국출판문화상 등을 받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무대의상 디자이너인 부인 최보경(74)씨, 큰딸 주희(46)·둘째딸 주은(40)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강북삼성병원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29일 오전 6시 30분이다. (02)2001-1096.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그림이 된 詩

    그림이 된 詩

    옛 선비들은 시와 그림을 하나로 보았다. 그림이란 붓으로 쓴 시이고, 시는 글로 그린 그림이라고 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고은, 강은교, 김지하 등 시인 74명의 시를 두고 화가 43명이 그림을 덧붙인 ‘시화일률’(詩畵一律)전이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재홍과 미술평론가 윤범모,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정지용문학상 등을 받은 작품을 엄선해 뽑은 뒤 작가들에게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라 미술로 표현해보라고 주문했다. 시와 그림이 함께 있다고 하니 언뜻 수묵화가 연상될 법도 한데, 극사실주의에서 추상화, 비디오 아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향의 작가들을 섭외한 덕분에 이채로운 작품이 눈에 많이 띈다. 가령 ‘긴 강을 헤엄쳐 온 내 안의 상처들은/ 어느덧 하늘의 가슴에 밀물지는데/ 길게 꼬리 진 노을 속에 젖은 외로움 하나/ 아직도 솟대처럼 우두커니 서있다.’고 읊은 ‘강변에서’(백수인 시인)를 맡아 그린 이는 한국 팝아트의 기수로 꼽히는 권기수다. 시는 전반적으로 우수에 찬 느낌인데 그림은 권기수의 특징으로 꼽히는 강렬한 빨간색과 ‘동구리’ 캐릭터가 등장해 묘한 느낌을 낳는다. 김남조 시인의 ‘면류관’은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이 표현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화려한 4계절 동영상 버전의 ‘신인왕제색도’로 제작해 화제를 모았던 이이남답게, 알프레드 뒤러의 ‘자화상’ 그림을 동영상으로 처리했다. 자화상에 면류관이 얹어지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다음 달 6일까지. (02)720-1020. 2월 23일부터는 부산 중동 가나아트로 자리를 옮겨 전시될 예정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문화계 블로그] 한국대중음악상 ‘본연의 色’ 잃지 말아야

    [문화계 블로그] 한국대중음악상 ‘본연의 色’ 잃지 말아야

    언제부터인가 방송사의 연말 가요 시상식은 아이돌을 위한 무대로 변질됐다. 발라드나 록, 트로트 가수는 구색 맞추기로 일부 포함될 뿐이다. 거대 기획사들은 소속 가수의 출연 여부를 놓고 방송사와 힘겨루기를 벌였다. 이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질 무렵, 정반대 지형에서 2004년 출범한 것이 한국대중음악상이다. 이후 대중음악상은 이적·이한철·조PD 등 기존 뮤지션에 대한 평단의 지지를 확인하는 한편, 장기하·브로콜리너마저·검정치마·언니네이발관·국카스텐 등 실력파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을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데 한몫했다. 논란은 늘 있었다. 수상자 대부분을 대중이 잘 모른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선정위원회는 “인기 스타를 뽑는 게 아니라 음악성 있는 뮤지션을 발굴하는 게 이 상의 목적”이라고 반박한다. 올해도 김창남(성공회대 교수) 선정위원장은 “음악으로 사고하는 뮤지션을 발굴하는 촉매제가 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는 “일부에서 대중음악과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을 혼동하고 있다.”며 김 위원장의 말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선정위원회가 최근 몇 년 새 음악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비친 것은 사실이다. 2008년에는 걸 그룹 원더걸스(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부문)와 빅뱅(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음악인)이, 2009년에는 태양(R&B·소울 음악 및 노래)과 원더걸스(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음악인)가 각각 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올해의 음반’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본상인 ‘올해의 노래’에 걸 그룹 소녀시대의 ‘지’(GEE)가 뽑혔다. 가요계의 대세로 자리 잡은 아이돌을 억지로 배제할 필요는 없다. 음악성이 있는데도 인기가 있다고 역차별을 당해서는 곤란하다. 장르 및 선정 방법 속성상 댄스·일렉트로닉 음악 부문과 네티즌 부문은 아이돌이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해도 명확한 기준은 필요하다. 지난 25일 발표된 올해(8회) 수상 후보에서는 소녀시대와 카라가 탈락한 반면, miss A(올해의 노래)와 에프엑스·2NE1(최우수댄스&일렉트로닉)은 포함됐다. 선정위 측은 “소녀시대와 카라가 막판까지 경합했지만 음악적 성취도에서 (미스A 등에) 상대적으로 밀렸다.”면서 “지난해 소녀시대의 ‘지’가 ‘올해의 노래’로 뽑혔던 것처럼 주류 혹은 비주류 음악에 대한 차별은 없다.”고 해명했다. 명암이 엇갈린 걸 그룹들의 음악적 성취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대중음악상이 이른 시간 안에 대안적 음악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독특한 색깔과 함께 확고한 선정 기준 등 정공법을 택한 덕분이란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장르별 구색을 맞추는 시상식은 이미 차고도 넘친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한국 드라마 이대로 좋은가 (하) 외국 사례와 해법]드라마 ‘다이어트’…부분 사전제작 확산돼야

    [한국 드라마 이대로 좋은가 (하) 외국 사례와 해법]드라마 ‘다이어트’…부분 사전제작 확산돼야

    국내 드라마 제작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외국처럼 ‘사전 제작제’ 정착이 모범 답안이지만 유난히 시청자들의 개입이 센 한국적 특성을 감안한다면 전체 방영분의 절반 가량을 미리 만드는 ‘부분 사전 제작제’가 바람직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시장 규모에 비해 과도하게 많은 드라마의 횟수나 방영 시간도 줄이는 등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제시됐다. 아울러 드라마에 대해 시청자들이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을 자제하고, 드라마를 단순 오락거리가 아닌 예술 산업으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 전환도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전 제작제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편성의 확실성이 가장 시급한 것으로 꼽힌다. 주로 외주 제작사들이 드라마를 생산하는 현재의 체제하에서는 사전에 드라마를 제작한다고 해도 편성이 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반기 제작 발표회까지 열었던 유이 주연의 드라마 ‘버디버디’처럼 편성이 예정됐다가 취소되는 경우도 있고, 여러 방송사를 떠돌다가 드라마의 분위기가 ‘올드’하다는 느낌을 주어 흥행에 실패하기도 한다. 2005년 화제작 ‘내 이름은 김삼순’을 연출했던 김윤철 성신여대 미디어영상연기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사전 제작을 용인하지 않는 편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 전 교수는 “현재 1~2년 전 편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심지어 3~4개월 전에 편성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같은 방송사의 편성 전략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외주 제작사의 경우 수익을 올릴 수 없으니 역설적이게도 자국 시청자가 아닌 일본 시장을 염두에 두어 기획과 캐스팅을 하는 기형적인 제작 방식도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어떻게든 사전 편성이 가능할 수 있게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며, 1년 전에 드라마 편성을 완료하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사전제작제의 정착은 매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시간과 자본의 문제에 대한 공동 책임 의식이다. 사전에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최소 6개월~1년간 배우들의 스케줄을 빼야 하고, 늘어나는 촬영 시간만큼의 제작비가 보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배우들은 작품에 매달릴 준비가 돼 있어야 하고 이에 따르는 제작 비용도 담보돼야 한다. 한 지상파 드라마국장은 “사전 제작제로 인해 추가되는 시간과 자본에 대해 배우, 작가, 제작진이 함께 부담한다는 공통 인식이 전제된 뒤에야 비로소 사전 제작제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 번째는 드라마에 대한 인식 변화다. 지금처럼 작품성보다 흥행성만을 염두에 둔다면 사전 제작제는 정착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대해 간섭하기를 좋아하고, 드라마가 방영된 뒤 시청자들의 반응에 따라 제작진이 드라마의 내용이나 구성 등을 수정하는 경우가 있다. 사전 제작제 드라마의 경우, 완성도는 상대적으로 낫지만 ‘쌍방향 소통’ 제약 때문에 시청률에서 참패한 사례가 적지 않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전량 사전 제작할 경우 드라마에 대한 탄력적인 구성이 어려워질 수도 있겠지만, 제작진은 드라마가 일회성 오락물이 아닌 영상 예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화제성보다는 완성도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드라마 파일럿(시험방송) 제도가 정착돼 있다. 철저하게 사전 제작 시스템이 정착된 미국의 경우는 1~2회의 드라마를 먼저 제작해 방송사에서 검토한 뒤 구매 여부를 결정한다. 방송사 자체 제작이 아예 없고, 네트워크 기능만 있는 것. 모든 것이 외주 체제로 움직인다. 이 같은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은 국내 상황에서는 이에 대한 손실을 외주 제작사가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서병문 단국대 멀티미디어공학과 교수는 “손실을 보면서도 파일럿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국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드라마 편수와 1회당 60분씩 내보내는 획일화된 형태도 개선 대상으로 꼽힌다. 김윤철 교수는 “광고시장 규모에 맞게 드라마 편수와 편성 시간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본은 미니시리즈라고 해도 일주일에 한편씩 방영되는 경우가 많고, 방영 시간도 45분을 넘지 않는다. 서병문 교수는 “앞으로 미디어 빅뱅이 본격화되면 시장경쟁 원칙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드라마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은주·김정은기자 erin@seoul.co.kr
  • ‘영원한 불혹의 작가’ 남편·아들 곁에 잠들다

    ‘영원한 불혹의 작가’ 남편·아들 곁에 잠들다

    지난 22일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씨가 멀리 떠나는 날은 매서운 한파도 잠시 멈칫하며 아득한 먼길을 애도했다. 25일 오전 10시 경기 구리시 토평동 성당에서 치러진 장례미사는 신정순 주임신부의 집전으로 열렸다. ●각계 인사 500여명 마지막 길 지켜봐 큰딸인 작가 호원숙씨 등 유가족과 고인에게 세례를 줬던 김자문 신부를 비롯해 김화태 신부, 조광호 신부 등 고인과 인연이 있었던 성직자들이 참석했다. 또한 소설가 박범신, 문학평론가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 이근배 시인, 이해인 수녀 등을 비롯해 정과리, 강영숙, 조선희, 정종현, 민병일, 이경자, 심윤경, 임철우, 은희경, 공지영 등 여러 문인들과 양숙진 현대문학 대표, 강태형 문학동네 대표, 김영현 실천문학사 대표와 같은 문학계 인사,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정·관계 인사, 독자 등 500여명이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김성길 신부는 “수많은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셨지만 늘 한 송이 수선화처럼 다소곳하고 겸손의 향기를 풍기신 분”이라면서 “영정 사진 속 웃는 모습 역시 시골장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낙네 같은 소박한 모습”이라고 돌이켰다. 또 “참으로 큰 분이셨음에도 모든 요란하고 화려한 장례를 마다하시고 신앙의 여정을 걸었던 성당에 소박한 영결미사를 맡기셨다.”면서 “책 읽는 즐거움과 독서를 통해 삶을 껴안을 수 있는 용기를 주신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소박하고도 단아했던 고인의 삶과 죽음을 기렸다. ●“쓰셔야 할 소설이 동백처럼 있는데…” 정호승 시인은 조시에서 “선생님께서는 영원히 불혹의 작가이십니다/ 아직도 쓰셔야 할 소설이 흰 눈 속에 피어날 동백처럼 숨죽이고 있습니다/ 못 가본 길이 그토록 아름다우십니까/ 좀 늦게 가보시면 아니 되옵니까.”라고 안타까워했다. 고인과 각별함을 유지했던 문학평론가 유종호 연세대 교수는 조사에서 “선생님이 계셔서 그나마 따뜻했던 겨울이 오늘 이렇게 모질고 춥다.”면서 “이 시대의 어둠과 아픔을 누구보다 간절하게 표현하셨으며 비상한 재능에도 전혀 거부감을 촉발하지 않는 인품에서 늘 참다운 재능의 깊이를 실감했다.”고 고인의 부재에 대한 공허함을 절감했다. 이어 “사나운 시대의 험한 꼴을 많이 보셨지만 그 아픔과 쓰림이 국민문학이 됐으니 결코 헛되지 않았다.”면서 “이제 하늘에서 부디 편히 쉬십시오.”라고 조사를 끝맺어 마지막 길을 지켜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게 했다. 장례미사를 마친 고인의 운구 행렬은 환한 미소의 영정 사진과 전날 이명박 대통령이 추서한 금관문화훈장을 앞세워 길게 이어졌다. 시신은 경기 용인 천주교 공원 묘지의 남편과 아들 곁에 묻혔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소시·카라 없는 ‘대중음악상’, 브로콜리 너마저·가리온이 접수?

    소시·카라 없는 ‘대중음악상’, 브로콜리 너마저·가리온이 접수?

    인디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와 힙합그룹 ‘가리온’이 제8회 한국대중음악상 최다 부문 후보에 올랐다.  26일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위원회에 따르면 브로콜리 너마저는 2집 ‘졸업’으로 ‘올해의 음반’과 ‘올해의 노래’, 그리고 ‘올해의 음악인’ 부문 후보에 올랐고, 장르별로도 ‘최우수 모던록 음반’과 ‘최우수 모던록 노래’ 부문에 이름을 올려 모두 5개 부문 후보로 선정됐다.  한국 힙합 1세대로 유명한 가리온도 7년 만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 ‘가리온 2(Garion 2)’로 ‘올해의 음반’과 ‘올해의 노래’, ‘올해의 음악인’, ‘최우수 랩&힙합 음반’, ‘최우수 랩&힙합 노래’ 등 5개 부문 후보로 선정돼 브로콜리 너마저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외에 걸그룹 ‘미쓰에이’는 ‘배드 걸 굿 걸’로 ‘올해의 노래’와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 후보가 됐다. ‘투애니원’은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음반’,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에프엑스’는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그룹 ‘빅뱅’의 멤버 태양과 R&B그룹 ‘브라운아이드소울’은 ‘최우수 R&B·솔 음반’, ‘최우수 R&B·솔 노래’ 후보에 선정됐다. 공로상의 주인공은 ‘노란샤쓰의 사나이’를 작곡한 손석우씨가 확정됐다.  후보 선정 작업은 대중음악평론가와 언론사 음악담당기자, 방송사 프로듀서 등으로 구성된 총 64명의 선정위원들이 두 차례의 분과별 투표와 종합분야 후보 투표 및 회의를 열어 이뤄졌다. 이어 25일부터 다음달 20일 사이 네티즌 투표가 진행된 뒤 선정위원회의 수상자 회의와 최종 투표를 통해 수상자가 확정된다.  ‘네티즌이 뽑는 올해의 음악인’은 종합·장르분야 후보로 선정된 모든 54명의 아티스트(64개 음반) 가운데 남자가수·여자가수·그룹 부문으로 나눠 선정한다. 남자부문은 김광석, 더콰이엇, 데미캣, 루시드폴, 태양 등 14명이고 여자는 김윤아, 나윤선, 보니, 이아립, 정민아 등 7명이 후보에 올랐다. 그룹 후보는 브로콜리 너마저, 가리온, 갤럭시 익스프레스, 브라운아이드소울, 미쓰에이, 투애니원 등 33개팀이다.  앞서 선정위는 현재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걸그룹 ‘소녀시대’와 ‘카라’를 후보에서 제외시켜 역차별 논란을 일으켰다. 선정위 관계자는 “아이돌 그룹을 의식적으로 고려하거나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음악성만으로 후보작들을 선별했다.”면서 “올해 아이돌 그룹이 이룬 (음악적) 성과가 지난해보다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북 울렸다, 가자” vs “갈 테면 가라”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수뇌부가 지난 23일 만찬 회동에서 개헌을 논의한 사실이 알려진 25일 한나라당은 출렁거렸다. 청와대가 개헌에 힘을 실은 만큼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해석과 친이계의 ‘비밀 작전’이 탄로 나 당내 분란만 야기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수차례 “개헌 논의는 없었다.”고 밝혔던 김무성 원내대표는 이날 “대통령은 슬쩍 지나가는 말로 개헌을 말씀했다.”고 해명했다. 발설자에 대한 극한 불만도 표출했다. 하지만 만찬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세상이 많이 바뀐 만큼 (개헌을) 잘 준비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확실하게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친이직계와 개헌론을 주도한 이재오 특임장관의 측근 의원들은 “여기까지 온 만큼 최선을 다 하자.”는 반응이다. 이 장관은 이날 “개헌은 국운융성의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상수 대표가 갑자기 “(개헌) 당론 결정을 위해선 소속 의원 3분의2 찬성이 필요하다.”며 의원총회 연기를 주도한 것도 세력 결집용이라는 해석이 많다. 한 친이직계 의원은 “청와대가 입장을 표명한 만큼 탄력을 받을 것”이라면서 “개헌을 고민해온 당내 중진이 많고, 야권에도 찬성론자가 많아 논의가 궤도에 오르면 개헌이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대권주자들이 개헌을 반대하고 있는데, 각 당과 계파의 2인자들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면서 “박근혜 전 대표 등이 계속 반대하면 집권 욕심으로 정치 선진화를 가로막는 것처럼 비춰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친이계 최대 모임인 ‘함께 내일로’의 대표인 안경률 의원은 “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적극 도와 논의를 주도하겠다.”고 말했다. 이 모임 소속 의원 20여명은 26일 조찬 회동을 갖고, 개헌논의 확산을 꾀한다. 반면 친박계 의원들은 ‘무시’ 또는 ‘반발’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개헌 논의가 ‘박근혜 흔들기’라고 보는 것이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헌법은 국가 근간이기 때문에 이를 고치려면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최우선”이라면서 “정략적 개헌이 통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다른 친박 의원은 “의도를 갖고 밀어붙인다면 갈등이 대폭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평론가인 고성국 박사는 “개헌에 대한 대통령의 역사적 소명의식이 아무리 강해도 개헌특위 구성조차 어려울 것”이라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여권의 개헌 논의는 레임덕(권력누수 현상) 방지, 이슈 주도 및 분산, 친이계 결집 카드로 해석될 여지가 커진다.”고 말했다. 이창구·허백윤기자 window2@seoul.co.kr
  • “中, 향후 20년내 美 못 따라잡아”

    중국이 적어도 앞으로 20년 동안은 미국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진단이 중국 외교부 고위 당국자에게서 나왔다. 중국 외교부의 러위청(玉成) 정책규획사 사장(정책기획국 국장)은 지난 24일 발간된 ‘외교평론’ 최근호에서 “앞으로 20~30년간 미국의 우월적 지위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외교평론은 중국 외교부가 두달에 한번씩 발간하는 잡지로 이번 글은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방미 전에 작성됐다. 후 주석이 이번 방미에서 미국과의 대결보다는 협력을 강조한 것은 이 같은 중국 외교의 현실 인식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러 국장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여전히 선진국에 미치고 있고, 국제적인 세력균형 측면에서 ‘역사적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의 세력이 쇠퇴하거나 양국의 힘이 매우 빨리 대등해질 것이라고 생각해선 절대로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결국 미국”이라면서 “미국의 경제총량은 전 세계의 4분의1을 차지하고 군사력과 과학기술, 창의력 등에서 필적할 대상이 없다.”고 덧붙였다. 러 국장은 특히 미국의 자기조절과 회복 능력을 절대로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중국과 인도 등) 신흥대국이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우월적 힘은 어느 정도 축소됐다.”면서도 “하지만 앞으로 20~30년간은 누구도 미국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진단했다. 러 국장은 “중국은 앞으로도 패권을 부르짖지 말고 ‘로키’(low key·낮은 자세)로 일관해야 한다.”면서 “중국의 굴기(우뚝섬)가 미국 등 서방 선진국들로 하여금 중국을 호적수로 인식하는 요인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죽이러 갑니다’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죽이러 갑니다’

    엄 사장 가족이 교외의 별장으로 피크닉을 떠난다. 수다 떠는 아내, 매형 돈으로 영화를 제작하려는 처남, 철딱서니 없는 딸과 아들을 이끌고 다니면서도 엄 사장은 골목대장인 양 신이 났다. 백숙을 시켜 놓고 한참 휴식을 즐기려던 그때, 정체불명의 사내가 나타나 그들의 신체에 폭력을 가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해고노동자 김씨라고 밝힌 사내는 엄 사장의 사과를 요구하는데, 엄 사장은 도리어 정말로 열심히 살았는지 묻는다. 이에 격분한 김씨는 그들을 지독한 곤경으로 내몰며 “열심히 해도 안 되지 않느냐.”고 따진다. 살아 보려 발버둥치다 허약한 실체만 낱낱이 드러내는 가족 앞에서 김씨는 의도했던 바를 거의 이루기 직전이다. 그러나 백숙 배달부가 도착하면서부터 상황은 반전을 맞는다. 박수영은 독특한 단편영화를 만들어 온 감독이다. 적의 핵 공격을 소재로 삼았으나 중산층 가족의 해체로 결말 짓는 ‘핵분열 가족’, 중산층에 진입하려는 가족의 열망을 동물 학대의 공포와 연결한 ‘가족 같은 개, 개 같은 가족’에서 그랬듯이, 지난 20일 개봉한 ‘죽이러 갑니다’도 전면에 배치했던 주제를 주변으로 슬쩍 밀어두는 기이한 작전을 되풀이한다. 노동자가 꾀한 복수의 드라마가 극 중반에 도달하기도 전에 어처구니없이 주변화되고, 영화는 액션·무협·게임·코미디·스릴러가 뒤섞인 세계로 새롭게 뛰어든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앞뒤 전개 사이에서 관객은 (혹시 있을까 싶은) 논리적 연결을 구하느라 진땀을 빼야 한다. 그러므로 기가 막힌 지경에 빠진 엄 사장 일가족과 갈피를 못 잡는 관객은 마찬가지 입장에 놓인 셈이다. 박수영의 영화들은 넓게 보아 ‘소프트한 아나키즘’의 영향 아래 있다. 권력 시스템에 도전하거나 혁명적 노선을 취하는 대신, 그의 영화는 현대를 사는 개인들이 삶을 지탱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그런 이유에서인지 극 중 인물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공권력에 기대지 않는다). 박수영의 눈에 현대인의 생활과 자유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가장 거대한 권력은 국가가 아니라 ‘부르주아의 삶을 획득하고 지키려는 욕망’이다. 그 욕망에 사로잡힌 인물들이 괴물의 형상으로 변하면서 만들어내는 끔찍한 풍경화가 바로 박수영의 영화이며, 박수영은 익숙해야 할 풍경을 낯설게 보여줌으로써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할) 신선한 공포에 도전한다. 또한 형식에 있어서도 지배적이고 관습적인 스타일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기를 시도해 영화의 형식과 내용이 어긋나지 않도록 배려했다. 박수영은 두 번째 장편영화인 ‘돌이킬 수 없는’이 데뷔작 ‘죽이러 갑니다’에 앞서 개봉되기를 원했다 한다. ‘죽이러 갑니다’가 자칫 막가파 영화로 낙인 찍히지 않으려면 좀 더 웰메이드한 ‘돌이킬 수 없는’을 먼저 선보이는 게 낫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어쨌든 아직까지 박수영의 영화에 대해 드는 생각은 ‘작은 머리와 과다한 몸짓에 가깝다’는 것이다. 무정부주의자의 한낱 부질없고 난폭한 상상에 그치지 않으려면, 박수영은 자기 영화를 좀 더 갈고 닦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거친 만듦새를 지적한 비판보다 치기어린 장난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존재들이 억압과 분절과 소외에 허덕이는 지금, 나는 박수영의 영화가 언젠가 진정한 아나키스트의 아름답고 조화다운 영역에 닻을 내리길 바란다. 영화평론가
  • 중국풍 피날레 18분 격이 다른 ‘투란도트’

    중국풍 피날레 18분 격이 다른 ‘투란도트’

    ‘어두운 밤에 유령처럼 날아다니며 사람들 마음을 들쑤셔 놓고는, 새벽이면 사라졌다가 밤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얼음공주’ 투란도트는 청혼하는 모든 남자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맞히지 못하면 참수시킨다. 과거 황궁을 침략해 선조인 로링 공주를 겁탈했던 타타르 왕자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다. 투란도트는 자신을 로링 공주의 환생이라 여긴다. 하지만 참수현장을 지켜보던 타타르 왕자 칼라프는 공주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칼라프의 입에서 나온 정답은 ‘희망’. 하지만 공주는 약속을 깨고 결혼을 거부한다. 그러자 칼라프는 날이 밝기 전까지 자신의 이름을 맞히면 기꺼이 죽겠노라고 약속한다. 대신 그러지 않으면 결혼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다. 공주는 칼라프의 여자노예 류를 잡아들여 고문하지만, 왕자를 사랑하는 류는 입을 다문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中 하오웨이야 작곡 ‘세번째 버전’ ‘라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등 숱한 걸작 오페라들을 쏟아낸 이탈리아의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1858~1924)의 유작 ‘투란도트’다. 오페라 팬이 아니라도 제목은 들어봤음직한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나 ‘얼음장 같은 공주의 마음도’(Tu che di gel sei cinta) 등의 아리아로 사랑받는 작품이다. 문제는 푸치니가 3막 전반부에 해당하는 류가 죽는 대목까지 곡을 써 놓고는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됐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처럼 미완성 작품을 다른 이의 손으로 마무리 지을 때는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류의 죽음으로 사랑의 참뜻을 깨달은 투란도트가 칼라프와 부르는 이중창(첫 눈물·Del primo pianto), 피날레 부분 등 18분가량에 대해 조금씩 다른 3가지 버전이 존재하는 까닭이다. 25~28일 국립오페라단이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올리는 투란도트는 2008년 중국의 작곡가 하오웨이야(베이징 중앙음악원 교수)가 중국 국가대극원 개관작으로 올린 투란도트의 3번째 버전이다. 한·중 수교 20주년(2012년)을 앞두고 국립오페라단과 중국 국가대극원이 벌이는 교류사업의 일환으로 국내 팬에게 첫선을 보인다. 이를 위해 국가대극원의 연출자와 지휘자·무대 미술을 비롯해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포함한 제작진 190명이 베이징에서 날아온다. 푸치니의 사망 이후 그가 남겨 놓은 스케치와 대본에 따라 친구 프랑코 알파노가 완성해 1926년 밀라노 스칼라극장에서 초연한 버전(오리지널)이나 2002년 루치아노 베리오가 현대적인 선율로 재해석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공개한 것과는 또다른 즐거움을 안겨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순열 음악평론가는 “알파노의 작업에 대해 베리오를 비롯한 몇몇 음악가들이 개작을 시도해 왔지만 그 중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이번에 선보일 하오웨이야의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국립오페라단 관계자도 “푸치니는 오리엔탈(동양)을 동경했지만 한번도 가본 적은 없었다.”면서 “그가 상상했던 중국이 실제 중국인의 연출과 작곡, 프로덕션에 의해 구체화됐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中제작진 190명 참가 ‘합작’ 이 작품의 근간인 푸치니의 정서는 고스란히 살아 있다. 하오웨이야는 “유일한 바람이 있다면 청중들이 보고 내가 작곡한 부분을 느끼지 못한 채 작품 전체를 하나로 받아들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물론 하오웨이야만의 개성도 분명하다. 얼음공주 투란도트가 칼라프에게 마음을 여는 과정이 너무 급작스럽다고 생각한 하오웨이야는 원본에서 투란도트의 아리아(먼 옛날) 가사로만 등장하던 로링 공주를 무용수로 등장시켰다. 단순한 이국적 리듬 정도로만 쓰인 중국 민요 모리화(Jasmine flower)를 피날레에 배치하는 등 마지막 18분에 중국 색깔을 한껏 드러냈다. 투란도트(이화영·쑨슈웨이)와 칼라프(박지응·모화룬) 등 주요 배역은 한·중 배우가 더블캐스팅됐다. 오케스트라는 국가대극원 관현악단이, 무용은 서울발레시어터가 맡았다. 합창은 국가대극원 합창단과 한국의 모스트보이시스·과천시립 소년소녀 합창단이 힘을 합쳤다. 2시간 42분. 1만~15만원. (02)586-5282.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미·중 정상회담 이후] (상) 한반도 정책 어디로

    [미·중 정상회담 이후] (상) 한반도 정책 어디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4일간의 미국 국빈방문을 마치고 지난 22일 귀국했다. 후 주석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이번 정상회담은 중국이 본격적으로 주요 2개국(G2)로서 미국과 함께 세계를 운영하는 한 축을 형성했다는 사실을 증명한 ‘세기의 이벤트’였다. 소련 붕괴 이후 20여년간 유일 강대국으로 군림하며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임해온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의 종언이기도 하다. 달라진 지구촌의 역학구도는 우리에게 위기이면서 기회이다. 힘의 이동을 똑똑하게 분석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G2시대를 확정한 이번 미·중 정상회담 이후의 풍향계를 짚어본다. 후 주석과 오바마 대통령간의 8번째 만남이기도 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무엇보다도 한반도 문제가 비중 있게 거론됐고, 몇 가지 의미 있는 결과가 도출됐다. 미·중 양국 정상이 남북대화가 필수적이라는 데 합의하자 북한은 기다렸다는 듯 고위급 군사회담을 제의했고, 우리 측이 이를 수용했다. 2009년 11월 오바마 대통령 방중 당시 채택한 공동성명에는 한반도 문제가 141자에 불과했지만 이번엔 302자로 배 이상 늘었다. 홍콩 봉황위성TV의 정치평론가 정하오(鄭浩)는 “한반도 문제가 동북아 및 글로벌 안보이익은 물론 양국의 공동이익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방증”이라면서 “이번엔 특히 북한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에 대한 우려 등 비교적 자세하고도 분명한 어법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양국의 자세 변화가 읽힌다.”고 분석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 공동성명의 표현을 분석해 보면 외견상 중국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정상회담 전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해 “명확하지 않다.”며 판단을 유보했던 중국은 며칠 만에 ‘북한이 주장하는’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우려 표명’에 동참했다. 북한의 추가도발 억제와 관련해선 공동성명에 명기되진 않았지만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추가도발은 안 된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주장에 후 주석이 의견을 같이했다고 오바마 대통령이 기자회견장에서 공개했다. 6자회담 일변도에서 벗어나 남북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미국 역시 지금까지와는 달리 6자회담과 9·19성명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등 중국의 변화에 화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바야흐로 한반도 문제와 관련, 미·중의 협력이 본격화된 듯한 양상이다. 이번 회담이 G2시대 양국관계의 정립이라는 큰 틀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실제 미국은 중국의 굴기(우뚝 일어섬)를 인정했고, 중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역할을 긍정했다. 중국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진징이(金景一) 베이징대 조선문화연구소장은 “이번 정상회담은 동북아에서 적어도 향후 10년간 중국과 미국의 관계를 설정하는 중요한 자리였다.”면서 “아·태지역에서 양국이 협력적 질서를 구축한 것은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 훈풍”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중은 더 이상 불안정한 변수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와 안정에 상수(常數)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일시적 봉합에 불과할 뿐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정권교체기에 안정적 대미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필요에 의해 중국이 한반도 문제 등에서 일시적으로 양보했을 뿐 중국의 힘이 커질수록 한반도 해법 등을 둘러싼 양 강대국의 충돌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보다 적극적인 역할과 협력을 주문하고, 중국은 북한 쪽에 기울며 한반도 안정을 강조하는 본래의 그림이 재연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부시 행정부 시절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을 지낸 마이클 그린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지난 1년간 매우 거칠었던 군사적 사안이나 북한, 인권 등의 문제를 안정화시켰지만 적어도 향후 수년간 양국 관계를 복잡하게 할 구조적인 문제는 풀지 못했다.”면서 “환율 문제 등이 계속 돌출될 수 있고 한반도 문제를 포함한 다른 사안들도 언제 또다시 충돌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한반도 안정에 방점을 찍는 중국의 대 한반도 정책 골간이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G2시대에도 여전히 한반도 문제가 양국 간 갈등의 변수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미·중 간 협력의 건강성이 관건이 될 듯싶다. 이와 관련,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 류장융(劉江永) 교수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상호 존중의 원칙을 바탕으로 양측이 아·태지역에서의 건설적 역할을 서로 인정한 것은 정치적 신뢰를 쌓는 데 있어 필수적인 한 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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