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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준어 복원처럼 문학도 다양성 인정해야

    표준어 복원처럼 문학도 다양성 인정해야

    지난해 8월 31일은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제안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무산돼 그가 사퇴한 날이다. 이후 안철수 서울대 교수, 박원순 아름다운 재단 이사장 등이 시장 후보로 등장하는 등 정국이 시끄러워졌다. 그러나 사실 이날은 국가 언어정책상 아주 특별한 날이기도 했다. ‘짜장면’을 비롯해 ‘개발새발’ ‘맨날’ ‘복숭아뼈’ 등 국민이 일상적으로 쓰던 39개의 단어가 ‘표준어’로 인정된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짜장면을 자장면이라고 발음하며 검은색 짜장이 희멀건 자장이 되는 것 같이 어감이 이상하다고 입맛을 짭짭 다실 일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국립국어원은 지난해 8월 31일 이전까지 일상 단어를 오랫동안 ‘비표준어’로 묶어두고 국민들의 언어생활을 억압해 왔다고 보면 되겠다. 평론가 겸 시인인 방민호(47)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는 역사적으로 뜻깊은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짜장면이 맞다’라는 단편소설을 써 문학계간지 ‘문학의 오늘’에 발표했다. 그는 소설 안에서 8월 31일 표준어로 인정된 단어를 모두 굵은 명조체로 표현하며 사랑스럽게 쓰다듬어 주고 있다. 이전부터 표준어로 군림하던 어색한 단어는 굵은 고딕체로 명기해 사람들이 그 언어에 대해 느끼는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잘 표현해줬다. 방 교수는 3월부터 서울대 학보 ‘대학신문’에 단편소설 연재도 한다. 시인에서 소설가로 전업하는 것일까? ‘문학의 오늘’ 봄호가 인쇄돼 나온 지난 2월 29일, 4년에 한번만 돌아오는 독특한 날에 홍익대 앞에서 만나 까칠하고 따뜻하게 우리 시대 문학의 모습에 대해 수다를 늘어놓았다. →이 시대의 문학이 무엇인가. -나를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근거다. 교수는 경계 지워진 세상에서 사는데, 그 세상에서 사는 나는 본모습이 아니다. 그 경계 밖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삶, 부분 안에 놓여있지 않고 부분과 부분을 이어주고 좀 더 본질적인 것을 찾아나가는 것이 문학이다. 정치, 도덕 등은 인간을 재는 척도인데 이런 척도들이 인간을 다 말해줄 수 없다. 문학만이 우리 사회를, 인간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유일무이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문학이 ‘사적(私的)인 문학’으로 환원되지 않았나. -지난 15년 동안 문학이 공공적, 사회적 영역을 버리고 사적인 영역을 타고 들어간 것처럼 보였지만 그마저도 달성하지 못했다. 가장 사적인 인간은 자기 자아가 풍부한 인간인데 자아의 모습을 풍부하고 깊게 그려준 작품이 없고 표층적으로만 다뤘다. 공공성을 회복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개인의 풍부한 자아가 섬세하고 깊이 있게 그려지는 다양한 층위의 문학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소설 ‘도가니’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에는 어떤 평가를 내리나.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문학이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야 한다, 사형제도가 폐지돼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 문학이 반응한 것이다. 정치적 과제, 도덕적 요구에 부응했다. 사회가 변화하길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각광받을 수 있었다. 다만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사악한 노파를 죽인 뒤 풍부한 자책과 정신적 고뇌를 보여주는데 (그런 면에서 ‘도가니’ 등은) 좀 약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공지영씨 좋아한다. 우리 사회에 최근 10여년 동안 그런 말을 하는 작가가 없었다. 시인으로는 최영미 선배가 있다. →시인인데 왜 소설을 썼나. -평론으로 데뷔했는데 시를 쓰니까 너는 왜 평론가가 시를 쓰느냐고 했다. 이번에 소설을 쓰니까 왜 시인이 소설을 쓰느냐고 한다. 시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쭉 써 왔다. 1990~93년에 시, 소설 등 습작을 많이 했다. 대학교 때 학생운동 쪼금 했고 사회운동 하려다가 방황을 거쳐 대학원에 들어와 논리를 공부해서 평론으로 먼저 등단했다. 꼭 소설을 쓰고 싶은 것이 아니라 꼭 쓰고 싶은 주제가 있어서 소설을 쓴다. 광릉에 세조가 묻혀있는데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는데 얼마나 재위했는지 아느냐. 겨우 13년을 했다. 그거 하려고 온갖 짓을 다 한 것이다. 자기가 좋은 일을 해야 하는데 내게는 문학이 소중하다. →주목할 만한 젊은 작가들은 누구인가? -박형서의 상상력, 김혜란의 세상에 보내는 따뜻한 시선, 김사과의 자아의 문제에 몰두하는 모습 등에 주목하고 있다. 문학하는 사람들이 잘나가는 출판사나 비평가에게 줄 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학은 자신과 싸우는 것이고 권력은 덧없다. 아무리 작은 사람도 권력이 있고 아무리 큰 권력도 덧없는 것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유대근기자 현지르포-막 오르는 ‘차르 푸틴’ 3막] 反푸틴 리더 ‘안드레이 피온트코프스키’

    [유대근기자 현지르포-막 오르는 ‘차르 푸틴’ 3막] 反푸틴 리더 ‘안드레이 피온트코프스키’

    “푸틴은 올리가르히(신흥재벌)와 손잡은 사업가일 뿐이다.” 반(反)푸틴 운동의 핵심 세력인 ‘솔리다르노시치 운동’(야권연대조직)의 리더 가운데 한 명이자 정치평론가인 안드레이 피온트코프스키(72)는 “이번 대선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당선되겠지만, 분노한 여론 탓에 ‘모스크바의 봄’이 곧 올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일흔이 넘은 고령임에도 푸틴의 과오를 지적할 때는 사자후를 토하듯 언성을 높였고,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재벌의 정경유착 등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능수능란하게 인용하며 자국 정치에 대해 설명했다. 수학자 출신인 그는 왜 반푸틴 운동가가 됐을까. 크렘린(대통령궁)에서 멀지 않은 그의 아파트에서 2일(현지시간) 인터뷰했다. →솔리다르노시치 운동은 왜 조직됐나. -푸틴에 맞서는 자유주의 운동가, 공산주의자, 애국주의자 그룹이 모여 2008년에 만들었다. 야권의 세 그룹은 푸틴 집권기에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이 분열 탓에 푸틴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자유주의자는 민주화와 자유를, 공산주의자는 모든 사람의 평등을, 애국주의자는 위대한 러시아를 강조했기 때문에 갈라졌지만 어느 순간 ‘푸틴 체제하에서는 어느 누구의 가치관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연대했다. →푸틴에 대해 평가한다면. -푸틴은 애국주의자가 아닌 단순한 사업가다. (올리가르히인) 로만 아브라모비치, 겐나디 팀첸코 등과 가까운데 특히 (석유 유통업체 ‘군보르’(Gunvor) 소유자인) 팀첸코는 러시아 석유의 60%를 수출한다. 이 3명(푸틴, 아브라모비치, 팀첸코)이 상부상조하며 이득을 챙기는 구조가 돼 있다. 한국에도 재벌이 있기는 하지만 러시아는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한국의 대기업가도 정경유착한 경우가 있지만 자동차나 정보기술(IT) 등 기술 발전에 기여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재벌들이) 기술 발전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석유·가스 등 천연자원을 내다 파는 역할만 한다. →푸틴을 반대하는 핵심 계층은 엘리트와 중산층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초기 한두 번의 시위에서는 그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후 다른 집단도 참여했다. 자유주의자 그룹에서는 지식인과 중산층이 중심이지만 공산주의나 애국주의자 집단에서는 블루칼라(생산직 근로자)들도 많이 속해 있다. →푸틴 지지율이 60%를 넘었다. 반푸틴 운동이 국민 다수의 생각은 아니라는 주장이 있는데. -권위주의적인 나라에서 (수치로 표시되는) 지지율은 별 의미가 없다. 푸틴의 인기를 확인하는 데는 지난해 12월 러시아 두마(하원) 선거 결과를 보는 게 낫다.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은 당시 49%의 득표율을 거뒀는데 이 가운데 15%가 부정에 의해 얻은 수치라고 본다. 여러 상황을 감안할 때 푸틴의 지지율은 30%를 밑돈다는 판단이다. →야권에 찍을 만한 대선 후보가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푸틴이 힘 있는 경쟁자의 출마를 모두 불허하고, 자신이 선택한 (경쟁력 약한) 4명의 야권 후보 출마만 허용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유주의 성향의 정치인) 그리고리 야블린스키의 경우 대선 입후보에 필요한 200만명의 서명을 받았지만 오류가 있다며 입후보를 불허했다. 결함을 지적하는 사람(관료)들은 푸틴의 사람들이다. 이 때문에 이번 러시아 대선은 ‘복서’(푸틴) 대 ‘복서’(경쟁력 있는 야권 후보)의 대결이 아니라 ‘복서’ 대 ‘소년’의 대결이 됐다. →현 상황에 회의적인데 선거를 통해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다고 보나. -이번 대선이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 →대선 이후 야권의 투쟁 방향은. -대선이 끝나면 푸틴이 며칠 내 야권 인사들을 체포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겠지만 곧 ‘모스크바의 봄’(러시아의 대규모 민주화 운동)이 올 것이다. 이번에 반푸틴 시위에 15만명이 나왔는데 이 규모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100만명은 (거리로) 나와야 하는데 언제쯤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푸틴의 다음 대통령 임기 6년 안에는 일어날 것이다. →수학을 전공한 학자인데 어떻게 정치평론을 시작했나. -응용수학 전공자로 군사·전쟁과 관련한 계산 업무를 봤다. 점점 정치·외교에 관심을 뒀고 이 방면의 전문가들도 많이 만나며 정치평론을 시작했다. →푸틴 이전의 지도자인 고르바초프와 옐친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고르바초프는 평화적 방법으로 이 나라의 체제를 이양했고, 옐친은 민주주의를 시행했다. 나는 한때 옐친의 지지자였지만 체첸전쟁 등을 두고 의견을 달리했다. 옐친의 가장 큰 실수를 푸틴을 후계자로 삼은 것이다. dynamic@seoul.co.kr
  • [시론] 꽃과 정치/김대우 시사평론가

    [시론] 꽃과 정치/김대우 시사평론가

    당당하게 선 화환들에 달린 이름표. 이를 보며 흐뭇해하는 표정들은 예식장 앞이나 출마 후보자의 선거사무실 개소식이나 다를 바 없다. 어전에서 머리 조아린 중신들처럼 서열 따라 세우는 줄. 그 순서가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곧 한국 정치다. 주인도, 객도 후일을 위해서 대리 참석한 화환의 직책과 성명을 꼭 입력해 둘 필요가 있다. 당사자는 모르는데 제 돈으로 주문해 앞줄로 모신 실세의 화환이 있는가 하면, 이름 띠를 일일이 풀어서 별실에다 전시해 두는 정성도 보인다. 그런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뿌듯함으로 중독된 정치. 그것도 부족해서 주머니에 꽂아주는 꽃 한 송이. 알량한 그 꽃이 곧 귀하신 신분의 비표(秘標)다. 단상의 정치인들 가슴에 꽃이 안 보이면 그는 그 행사장에 굳이 가지 않았어도 될 존재였다. 박수와 꽃다발에 유독 약한 군상들. 호명 순서가 밀리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기에 사회자는 긴장되고 행사는 지루하다. 한정된 시간만 개화하고 어김없이 고개 숙이는 꽃. 뻣뻣한 목에 힘이 빠질 때쯤 퇴장해야 하는 정치판. 계절 따라 꽃이 지듯이 세월 따라 명성도 지나니. 그렇게 꽃과 정치인은 지는 사이클이 같다. ‘살아서 돌아오라’고 주는 출정 길의 꽃다발과 생환을 축하한다고 가슴에 안기는 결전 후의 꽃다발. 조상의 이름과 선산을 팔고, 학력과 경력을 세탁하여 가족을 거리로 내몰고 치른 승전식의 인증 샷, 그 필수 액세서리의 대미가 바로 중앙당 현황판의 ‘당선 확정’ 꽃 한 송이다. 선거는 입문에서 퇴장까지 꽃으로 시작하고 꽃으로 끝나는 셈이다. 알고 보면 꽃이나 정치나 다 바람이 키운 산물로, 꽃이 영원히 사랑받는 것은 긴 시간 숨었다가 잠시 얼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한 줄기 바람에 흩날리며 사라지는 꽃의 일생이 무상한 정치 인생과 닮았다. 늘 피어 있는 꽃이 눈길을 끌 수 없듯이 정치도 일상이 되면 관객들이 외면하는 지친 굿판이나 다름없다. 웅크림이 오랠수록 도약은 높고 침묵은 웅변보다 강하고 잠적이 노출보다 심각한 뉴스감인데, 정작 그걸 제대로 알고 활용하는 정치인은 드물다. 소수가 선택되고 다수가 물갈이되며 받는 상처. 검증받으면서 덧나는 숨기고 싶었던 흔적들. 이 모든 것들이 한바탕 바람으로 딱지가 되어 아무는 날까지 생소한 애송이와 노회한 원로들이 벌일 숙명의 땅따먹기. 다들 정치에 발목 잡힌 인연으로 인해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영혼들이다. 한 정당의 환골탈태 과정은 결국 오래 기여해 왔던 낯익은 동지들에 대한 구조조정이니 무대를 내려오면서 어찌 회한과 상처가 없으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도종환의 시처럼 흔들리지 않고 하는 정치는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몸을 담은 배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기세등등하게 앞자리에 진열됐던 간판 상품도 어느 순간 재고로 전락하여 뱃전으로 추락한다. 그나마 온전하게 성명을 보전하고 스스로 물러나는 것도 영광이다. 포토라인에서 ‘기억에 없다’거나 ‘할 말이 없다’로 마무리되는 실세정치의 공식. 언제나 ‘어느 선까지 불 것인가’란 문제만 남는다. “오늘 이후 나는 당신을 알지 못한다. 우린 일면식도 없는 사이다. 그러니 당신도 나를 모른 체하라.”는 비정의 정치. 공천이 칼자루였던 구시대는 가고 그걸 쇄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당위성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이만큼 진행되는 변화도 실은 놀라운데 더 큰 개혁을 요구하는 여론에 눈치 보며 끌려가야 하는 수동의 정치. 그래서 권력은 시장에 넘어간 지 오래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강제로 꽃을 피우려 든다면 결국엔…. 갈수록 여의도는 뜨거워지고 상처받은 영혼은 늘어날 것이다. 불판처럼 달아 오르다가 이내 식을 그 혼돈의 현장으로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용감한 신인들. 상처받지 않고 정치하겠다는 것은 가랑이 젖지 않고 맨발로 강을 건너겠다는 것. 시인 엘리엇이 말한 ‘가장 잔인한 달 4월’은 이미 강 건너 언덕에서 기다리고 있다.
  • [문화마당] 영상시대의 문화잡지 ‘쿨투라’/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문화마당] 영상시대의 문화잡지 ‘쿨투라’/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지난 2005년 여름이었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친구가 급히 연락해 서울 남산의 한 작은 찻집에서 만났다. 문학 소녀였던 그 친구는 20년 넘게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여전히 문학 관련 책을 출간하는 데 매진하고 있었다. 베스트셀러는 언제 낼 거냐는 말을 심심찮게 듣곤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뚝심 있게 한길을 걸어온 든든한 친구였다. 만나자마자 이 친구는 “문화 계간 잡지를 만들자.”며 진중하게 말을 끄집어냈다. 작심을 한 듯이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생각해 온 것을 도마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슨 황당한 이야기를 하냐며 손사래를 쳤다. 요즘 같은 영상시대에 문화 잡지를 누가 읽느냐며 만류했다. 이미 문학평론가이자 영화평론가인 강유정, 김서영을 비롯해 미술평론가 강수미를 끌어들여 놓고 나에게 찾아온 터였다. 그는 대중문화와 음악만 들어오면 다양한 문화 장르에 대한 담론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나는 1년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문화 잡지가 발행되지 않았고, 누구도 해서는 안 되는 무모한 짓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듬해 2006년 문화계간지 ‘쿨투라’ 봄호가 출간되었다. 그리고 6년이 흘렀다. 2012년 ‘쿨투라’ 봄호가 지난달 27일 발간되었다. 벌써 통권 25호다. 계절을 맞을 때마다 토해 낸 문화 전령의 활자는 25권의 책으로 독자들과 만남을 거듭했다. 거짓말 같은 현실이었다. 문화 관련 단체 등의 어떤 도움도 없이, 책 광고 한 번 없이 이어 온 국내 유일의 문화 전문 계간지의 발자취였다. 이 기적 같은 일은 책을 낼 때마다 적자를 감수한 출판사와 편집위원들의 사명감과 자긍심, 또 소수 독자들의 격려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고독과 사투하는 마라토너의 길을 뛰어온 세월이었다. 그간 쿨투라의 편집위원은 문학평론가 이재복, 홍용희, 영화평론가 전찬일로 바뀌어 명맥을 이어 왔다. 문화의 의미를 담고 있는 ‘쿨투라’는 그간 문학, 영화, 미술, 대중문화 등 서로 다른 문화의 영역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글쓰기를 지향해 왔다. 거창한 담론을 내세우기보다는 현재의 살아 움직이는 문화적 역동성을 읽어 내고 전망을 모색함과 동시에 대중의 문화적 기호를 이끌 수 있는 문화 전문지로서의 자세를 견지해 왔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한류와 관련한 김지하 특집 좌담과 각 방면의 전문가들이 대한민국 문화축제 지형도를 그려 낸 기획은 큰 관심을 받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여름 ‘쿨투라’가 뉴욕에서 개최한 한류 좌담과 시네토크, 박제동 화백 전시회 등은 해외에 우리 문화를 알리는 의미 있는 일로 평가받았다. 지난달 27일 저녁 남산 문학의 집에서 출판 기념회가 있었다. ‘쿨투라’ 봄호와 ‘오늘의 시’, ‘오늘의 소설’, ‘오늘의 영화’ 단행본이 함께 출판된 자리에는 김승옥, 윤후명, 안도현 등 문학인들과 이장호 감독, 영화 ‘완득이’의 이한 감독, 영화평론가 유지나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인들이 참석했다. ‘쿨투라’가 여러 문화 장르를 넘나든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었다. 이날 이장호 감독은 “영화 시상식을 많이 다녀봤지만 전 장르에 걸쳐 문화예술인이 함께 모여서 하는 행사는 드물다.”면서 “20년 전 영화를 만들 때 만났던 김승옥, 윤후명 등 작가들을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니 옛날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라며 감회에 젖었다. 그는 또 “돈도 되지 않는 문화 잡지를 만들고 시, 소설, 문학뿐만 아니라 영화에까지 걸쳐 한 해의 결과를 집계하고 작가와 감독에게 상 주는 것을 작은 출판사가 6년 이상 해 왔다는 것은 여간 의미가 깊지 않은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회성과 급변성이 대세인 영상시대의 광풍 속에 활자의 힘으로 문화를 끌어안고 가는 이 작은 책의 의미는 우리가 걸어온, 우리 문화의 지형도를 기록하고, 그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데 있다. 그 본연의 모습으로 힘든 6년을 버텨 왔고 또 그렇게 걸어갈 것이다.
  • [종교플러스]

    씨알순례길 새달 3일 당산역 출발 씨알재단은 3월 3일 네 번째 ‘씨알 순례길’ 행사를 연다. 순례는 당일 오전 10시 서울 당산역에서 출발해 양화대교~양화나루(망원지구)~마포나루(마포대교)~원효로 나들목~함석헌 자택지~효창공원역에 이르는 약 6㎞(3시간 소요) 구간에서 진행한다. 4월에 열리는 ‘씨알 순례길’ 행사는 서울 정릉에서부터 4·19 국립묘지까지의 구간에서 마련될 예정이다. (02)2279-5157. ‘화쟁 아카데미’ 새달 5일 개강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 화쟁위원회와 불교사회연구소는 제3기 ‘화쟁 리더십 아카데미’를 3월 5일부터 5월 14일까지 매주 월요일 오후 7시에 개최한다. 아카데미는 강의와 토론으로 진행하며 도법·현응·흥선 스님과 이시형 신경정신과 의사,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김종철 녹색평론 대표, 김형효(서강대)·윤성식(고려대)·성태용(건국대) 교수 등이 강사로 참여한다. 입학식은 5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한다. (02)730-0884. 한국기독교 역사강좌 매주 월요일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는 3월 5일부터 4월 30일까지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역사연구소 세미나실에서 ‘제16회 한국기독교 역사강좌’를 연다. 강좌는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의 강의로 ▲천주교의 전래와 박해 ▲개신교의 수용 ▲한국 기독교의 ‘성경기독교’적 성격 ▲교회의 설립과 교단 조직 ▲신학과 신앙운동 ▲기독교와 민족운동 ▲신사 참배 문제와 훼절 등을 다룬다. (02)2226-0850.
  • 국내외 언론이 보도한 3·1운동 조명

    국내외 언론이 보도한 3·1운동 조명

    EBS는 1일 오후 1시 40분부터 기획특강 ‘세계언론이 주목한 3·1운동’을 방영한다. 3·1운동은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 만방에 떨친 사건이었다. 그 사건을 국내외 언론들이 어떻게 다뤘는지를 집중조명한다. EBS가 고등학교 국사 과목의 대표강사로 내세우는 최경석(배문고)·류성완(동화고) 교사가 연합으로 강의한다. 특강 요청이 있으면 해당 학교에 가서 강의를 진행한다. 우선 분석 대상에 오르는 것은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보도 내용이다. 이 신문은 1919년 3월 1일 당시에는 사건을 다루지 않다가 며칠 뒤부터 일종의 소요사태로 규정한 뒤 일본 본토처럼 조선에서도 재산보호와 교육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 교사는 “처음에는 외면했다가 운동이 크게 확산되자 총독부가 기관지를 동원해 왜곡보도에 나선 것”이라 설명한다. 그렇다고 매일신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에도 광범위한 ‘지하신문’이 활동했다. ‘조선독립신문’, 진민보’, ‘국민회보’, ‘경고문’ 등 국내에서 발간된 지하신문만도 29종이 넘는다. 이들은 독립선언서 내용을 소개하고 비폭력 운동의 원칙, 당일 상황 등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했다. 서울역사박물관에 보관된 이들 지하신문의 면면을 직접 확인한다. 해외언론들의 보도 태도도 들여다본다. 뉴욕타임스는 1919년 3월 13일자에서 “알려진 것 이상으로 3·1운동이 널리 퍼져나갔고, 수천명의 시위자가 체포됐다.”고 보도하고 있다. AP통신도 “독립선언문에 ‘정의와 인류애의 이름으로 2000만 동포의 목소리를 대표하고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고 보도한다. 이외에도 이그재미너(미국 샌프란시스코), 앙탕트(프랑스 파리), 모닝포스트(영국 런던), 민국일보(중국 상하이) 등에서도 보도가 잇따랐다. 해외언론의 이런 보도는 3·1운동이 해외 민족운동에 영향력을 끼치게 된 계기로 작용한다. 중국 5·4운동의 사상적 지주였던 천두슈는 주간지 ‘매주평론’(每周評論)에서 “3·1운동은 세계 혁명 사상 신기원(新紀元)”이라면서 “이에 비해 중국 국민이 위축되고 있고 부진해 부끄럽다.”고 개탄했다. 5·4운동 학생대표로 활약하게 될 푸쓰넨 역시 잡지 ‘신조’ 1919년 4월 1일자에서 3·1운동을 격찬하면서 “중국 국민과 학생들은 3·1운동에서 새 교훈을 얻어 총궐기하자.”고 외쳤다. 인도의 간디 역시 3·1운동 보도를 읽고 인도로 급히 돌아가 영국에 대한 비폭력독립운동을 시작한 사례, 필리핀 마닐라대 학생들이 1919년 6월 독립운동을 일으킨 사례, 이집트 카이로대 학생들이 1919년 6월 독립운동을 일으킨 사례 등을 소개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佛 무성영화 ‘아티스트’ 오스카 휩쓴 까닭은

    佛 무성영화 ‘아티스트’ 오스카 휩쓴 까닭은

    2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하이랜드센터에서 열린 제84회 아카데미시상식의 주인공은 흑백 무성영화 ‘아티스트’였다. 아카데미의 ‘빅5’(작품·감독·남우주연·여우주연·각본상) 중 알짜배기에 해당하는 작품상과 감독상(미셸 하자나비시우스), 남우주연상(장 뒤자르댕)을 거머쥐었다. 음악상, 의상상까지 더하면 5개 부문을 석권한 것. 지난해 11월 말 미국 개봉 당시 고작 4개 극장에 걸렸던 제작비 1500만 달러짜리 영화는 전 세계에서 7654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깜짝 흥행을 기록했다. 뒷심의 정체는 뭘까. 무성영화가 종언을 고하고 유성영화가 등장하는 1920년대 후반 무성영화 톱스타가 겪는 박탈과 새 희망을 그린 ‘아티스트’에는, 배우의 목소리도 없고 스타도 나오지 않는다. 컴퓨터그래픽(CG)과 3차원(3D) 영화에 익숙해진 지금의 관객에겐 낯설고 불편할 것이란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최근 할리우드에 불고 있는 ‘복고’, ‘향수’란 2대 코드와도 맞아떨어진 ‘아티스트’는 올 아카데미 11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도 촬영상 등 기술 분야 5개 부문 수상에 그친 마틴 스코세이지의 ‘휴고’를 압도했다. 허를 찌른 ‘아티스트’의 습격이 생뚱맞을 건 없다. 선정에 참가하는 5765명 중 94%가 백인, 77%가 남성이며 평균 연령이 62세에 이를 만큼 아카데미 회원들은 편파적이고 보수적인 집단이다. 흑인,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게 보이는 배타성에 대해 비난받자 근래 들어 색깔을 감췄다.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와 의식적으로 거리를 뒀다. 최근 작품상 수상작 중 ‘킹스 스피치’(2010),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는 영국 영화다. ‘허트 로커’(2008)는 미국의 이라크 파병을 건드린 여성감독의 독립영화다. ‘아티스트’는 배급만 미국 회사(와인스타인컴퍼니)가 했을 뿐 감독과 주요 배우, 스태프 등은 대부분 프랑스 국적이다. 아카데미의 탈(脫)할리우드 행보를 보여 주는 데 안성맞춤인 셈이다. ‘아티스트’는 아카데미의 입맛에 들어맞는 주제의식까지 있다. 이 작품의 매력은 1세기 동안 ‘영화’라는 매체가 왜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를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데 있다. 첨단기술과 거대자본의 효과는 ‘양념’에 해당한다. 결국 이야기의 즐거움과 그 안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과정이야말로 영화관을 찾는 목적일 텐데 이런 주제의식을 ‘아티스트’는 되새김질해 낸다. 아카데미와 무성영화의 인연도 흥미롭다. 유성영화가 등장한 2년 뒤인 1929년 출범한 아카데미시상식은 초기에 무성영화를 수상작에서 배제한 탓에 찰리 채플린 등 무성 영화인들의 반발을 샀다. 뒤늦게 흑백 무성영화 ‘아티스트’의 손을 들어 준 셈이다. 이용철 영화평론가는 “사실상 외국영화인 ‘아티스트’에 주요 부문 수상을 안긴 건 작품 자체의 가치도 있겠지만 유럽영화이면서도 미국영화를 가장 영화답게 보여 줬다는 측면을 노회한 아카데미 회원들이 높게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영화들이 놓치고 있던, 영화가 가장 순수했던 순간을 ‘아티스트’는 짚어냈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한국에서 개봉한 ‘아티스트’는 27일까지 4만 9000여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와이드릴리즈(대규모 개봉)의 승산이 없을 것으로 보고 예술영화관을 중심으로 소규모 개봉했기 때문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민주, 정봉주 지역구 노원갑 등 6곳 전략 공천

    ●정봉주, 임수경·천정배에 부정적 민주통합당이 27일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의 패널인 정봉주 전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갑 등 총 6개 지역을 전략 공천 지역으로 선정했다. 4월 총선에서 신설이 확실시되는 경기 파주을, 강원 원주을, 세종시 등 3개 지역과 부산 수영구와 해운대·기장을 등 6개 지역도 전략 공천 대상 지역에 포함했다. 민주당은 정 전 의원이 사실상 총선 이전에 사면되기는 어렵다고 보고 전략 공천 지역으로 분류했다. 정 전 의원은 이날 충남 홍성교도소에서 노원갑 지구당 핵심 간부들과 면회한 자리에서 후임자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의원은 민주당 지도부와 자신의 팬클럽인 ‘미권스’(정봉주와 미래권력) 회원들에게 ‘나꼼수’를 함께 진행한 시사평론가 김용민씨를 공천 대상자로 추천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김씨의 잇단 말실수와 돌려막기식 ‘꼼수 정치’를 한다는 지적이 일면서 고심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신설 3곳·수영·해운대·기장 포함 지난 23일 임종석 민주당 사무총장이 정 전 의원을 면회하며 추천했던, 1989년 방북사건의 주인공 임수경(44·여)씨와 천정배 의원에 대해서는 정 전 의원이 부정적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 전 의원이 다시 복귀했을 때 자리를 비워 줄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현재 지역에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비서실 차장이었던 고용진씨 등이 예비후보로 등록한 상태다. 민주당 부산 수영구에는 최근 영입한 허진호 전 대한법률공단 이사장, 부산 해운대구·기장군을에는 류창열 부산YMCA 부이사장을 후보로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동영 상임고문과 전현희 의원이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서울 강남을과 이학영 전 YMCA 사무처장이 후보로 거론되는 경기 군포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도심서 문화예술 즐겨요”

    “도심서 문화예술 즐겨요”

    따스한 봄날,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문화예술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세종문화회관은 다음 달 6일부터 시민들이 쉽고 재미있게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예술아카데미 강좌’를 개강한다고 24일 밝혔다. ‘샌드위치와 함께하는 정오의 문화예술 강좌’는 서울 광화문 주변 직장인들에게 적합한 프로그램이다. 별도 시간을 낼 필요 없이 점심 시간을 활용해 클래식, 오페라, 미술을 배울 수 있다. 음악칼럼니스트 정준호가 베토벤 교향곡 전곡 시리즈를 소개하는 ‘정오의 클래식’(매주 화요일), 시대별 오페라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오페라 평론가 이용숙의 ‘정오의 오페라’(수), 팝아트에서부터 현대미술 전반을 살펴보는 미술가 강홍구의 ‘정오의 미술산책’(금) 등이 열린다. 보다 심층적인 강의를 원한다면 저녁 시간에 열리는 ‘저녁의 문화예술 강좌’가 있다. 음악 칼럼니스트 조희창이 강사로 나서 클래식 용어를 짚어 보는 ‘클래식 플러스’(수), 피아니스트 김주영이 클래식 명곡과 명인을 소개하는 ‘클래식 인터뷰’(목) 등이 있다. 각 강의는 5월 말까지 12회 동안 진행된다. 점심 강좌에는 샌드위치가, 저녁 강좌에는 다과가 제공된다. 27일부터 다음 달 9일까지는 이해를 돕는 ‘무료 프리뷰 강좌’가 미리 열린다. 모든 강좌는 선착순 마감. 신청은 세종예술아카데미로 하면 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철의 여인’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철의 여인’

    실존 인물의 영화를 만드는 데 공식 같은 건 없다. 인물을 성실하게 탐구해 정전을 만들 수도 있고, 창작자로서 논평을 가해 다른 면모를 드러내는 것도 가능하다. 그 밖에 허구의 상상력을 입혀 실존 인물과 별개의 모델을 만든다 해서 탓할 사람은 없다. 단, 어떤 인물은 함부로 다룰 때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역사적 판단이 아직 끝나지 않은 인물 혹은 대중의 논란이 여전히 진행 중인 인물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마거릿 대처는 그런 인물 중 하나다. 영화 주인공으로서 그녀가 매력적인 인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녀는 단순한 정치지도자를 넘어선다. 서방세계 여성 최초로 정치지도자가 된 인물이고, 자국에서 극단의 반응을 불러일으킨 총리이며, 레이건과 함께 1980년대를 보수 색채로 물들인 장본인이다. ‘철의 여인’은 대처라는 인물에 안일하게 접근한다. 특정 시기를 비중 있게 다루기도 힘겨운 판에, 영화는 인생 전체를 엿보려 한다. 식료품 가게의 딸이 옥스퍼드에 입학하는 순간, 당돌했던 정치 초년병 시절, 총리로 재임한 11년, 치매에 걸린 노인의 현재를 모두 담으려 한다. 관객은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처럼 발자취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 외에 따로 할 일이 없다. ‘철의 여인’의 줄거리를 쓴다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대처라는 인물의 연대기를 100분짜리 영상으로 다이제스트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영화적 장면이나 사건이 없다는 것, 그것이 ‘철의 여인’의 가장 큰 문제다. 문제의 원인은 부실한 각본에 있다. 각본을 쓴 에비 모건은 흥미진진한 인물과 시대를 백과사전에 나온 항목 이상으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연출을 맡은 필리다 로이드가 죄를 면할 수는 없다. 모건의 각본이 대처를 무채색의 인물로 만든 것도 나쁘지만, 그만큼 나쁜 건 대처의 현재를 빌려 과거를 흐릿하게 지워버리려는 시도다. ‘철의 여인’은 죽은 남편의 망령에 시달리는 노쇠한 대처가 과거를 회고하는 형식을 띤다. 심신이 불편한 노인이 회고의 무대에서 힘겹게 서성이는 내내, 과거는 비정치적이고 낭만적인 대상으로 탈바꿈하면서 어떤 논란거리로도 기능하지 못한다. 현실에 책임을 느껴야 하는 인물을 추억의 여주인공으로 묘사하는 행위는 전혀 옳지 않다. 영국을 계급적, 지역적으로 양분시킨 인물을 다루면서도 영화는 한 번도 민중 쪽으로 시선을 옮기는 법이 없으며, 대처와 죽은 남편의 허망한 관계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한다. 현실이 엄연한데 유령에 연연하는 꼴이다. 재미라도 있으면 참으려 했다. ‘철의 여인’은 구식 다큐멘터리보다 더 재미없다. 뻣뻣하고 심심한 이야기는 곧 견뎌야 할 고통이 된다. 영국 영화의 즐거움인 ‘냉소적인 유머’조차 전혀 없어 지루함만 꼬리를 문다. 20세기 영국을 살았던 인물을 다룬, 그리고 근래 가장 성공한 인물영화라 할 ‘더 퀸’(2007년·스티븐 프리어스 감독), ‘킹스 스피치’(2010년·토드 후퍼 감독)의 쌉쌀한 맛은 ‘철의 여인’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신임 영국 총리가 영국 여왕을 알현하는 짧은 장면 속에 수만 가지 이야기를 농축시킨 ‘더 퀸’의 힘이 ‘철의 여인’에는 없다. 뮤지컬로 재미 좀 본 연출가(로이드는 뮤지컬 ‘맘마미아’와 동명영화를 연출)가 겁 없이 달려들기엔 힘겨운 소재였다. 각별한 분장까지 해가며 열연한 메릴 스트립의 노력도 나쁜 영화를 구제하진 못했다. 23일 개봉. 영화평론가
  • 조선문학 250호 발간기념 ‘풍시조의 밤’

    박진환 문학평론가는 계간지 ‘조선문학’ 250호 발간을 기념해 24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사간동 출판문화회관 대강당에서 ‘풍시조(諷詩調)의 밤’ 행사를 갖는다.
  • 한국영화는 지금 ‘4050 배우’ 전성시대

    한국영화는 지금 ‘4050 배우’ 전성시대

    4050 중견 배우들이 충무로의 지형도를 바꿔 놓고 있다. 최근 이들이 한국 영화계의 흥행 주역으로 떠오르며 핵심 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 몇 년 전만 해도 20대 젊은 배우들에게 주연 자리를 내어주고 점차 조연급으로 밀려났다가 다시 그 자리를 되찾는 모양새다. 지난 연말 할리우드의 맹공에 기세를 펴지 못하던 한국 영화는 4050 배우들의 열연으로 오랜만에 전성기를 되찾았다. 올해 최단 기간 300만명을 돌파하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는 코미디와 누아르를 오가는 최민식(50)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주말 350만명을 돌파하며 장기 흥행에 돌입한 ‘댄싱퀸’도 주연 황정민(42)과 엄정화(41)의 연기 내공이 흥행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환갑을 넘긴 ‘부러진 화살’의 안성기(60)까지 흥행 배우 대열에 합류하면서 충무로는 상당히 고무된 분위기다. 여기에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한국 영화의 상승세를 이어 가고 있는 ‘하울링’의 주인공 송강호(45) 역시 대표적인 40대 연기파 배우다. 상반기에는 4050 배우들의 활약이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다 설경구(44)는 올여름 개봉을 앞둔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 ‘타워’의 주연으로 나서며, 이명세 감독의 첩보 액션 영화로 100억원대 규모의 ‘미스터 K’의 주연으로 캐스팅돼 다음 달부터 촬영에 들어간다. 지난해 500만명을 동원한 ‘완득이’의 주인공 김윤석(44)도 상반기 기대작인 ‘도둑들’의 주연으로 돌아온다. 지난해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로 중년배우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한석규(48)도 차기작인 영화 ‘베를린’을 통해 스크린으로 컴백할 예정. 40대 진입을 눈앞에 둔 30대 후반 배우들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특히 이들은 10~20대 배우들의 전유물이던 멜로물의 주연까지 꿰차며 요즘 충무로에서 가장 ‘귀하신 몸’이다. 지난 1월 로맨틱 코미디 ‘네버엔딩 스토리’에서 주연을 맡았던 엄태웅(38)은 두 달 만에 다시 멜로 영화 ‘건축학개론’으로 컴백한다. 이선균(37)도 상반기에만 ‘화차’와 ‘내 아내의 모든 것’ 등 두 편의 주인공을 맡았다. 김주혁(40)도 지난해에만 영화 ‘적과의 동침’, ‘투혼’, ‘커플즈’ 등 3편 연속 주연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이처럼 한국 영화계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중년배우들의 활약을 영화계는 두 손 들어 반기고 있다. 할리우드의 조지 클루니(51)나 톰 크루즈(50)처럼 한국 영화계도 연기 잘하는 중견 배우들이 활약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는 분석. 한 중견 영화 제작사 대표는 “요즘 영화판에 젊은 배우나 감독들이 득세해 나이가 들면 현역에서 물러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영화계 선배들이 성공을 거두고 있어 용기를 얻고 있다.”고 전했다. 영화 관계자들은 4050 배우들이 전성시대를 맞은 이유를 문화적 세대 통합 등 달라진 관객들의 관람 성향에서 찾고 있다. 영화 제작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10대부터 40대 사이의 관심사나 정보의 격차가 줄어들면서 세대 통합이 이뤄지는 것 같다.”면서 “대중문화계도 나이로 편을 가르기보다는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지는 문화적 세대 통합이 이뤄지면서 젊은 관객들도 4050 배우들에 대해 특별히 거리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배우 안성기는 “요즘 내 예전 출연작들을 다시 찾아보고 놀라면서 친근감을 표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다.”면서 “위에서부터 배우층이 두꺼워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말했다. ‘부러진 화살’에서 안성기와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박원상도 “영화 촬영장에 대선배가 계시면 후배들이 현장에서 배우는 것이 갑절로 늘어난다.”고 말했다. 영화가 드라마에 비해 진입 장벽이 높고, 흥행과 투자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검증된 배우를 선호하는 것도 4050 배우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또 다른 이유다. 한 영화 홍보사 대표는 “드라마는 진행을 해 가면서 연기력을 쌓아 갈 수 있기 때문에 모험적인 캐스팅도 가능하지만, 두 시간 동안 압축적으로 연기를 보여 줘야 하는 영화에서 연기력은 필수”라면서 “요즘 관객들은 SNS를 통해 워낙 입소문이 빠르기 때문에 안정된 흥행과 투자를 위해서도 연기력이 검증된 4050 배우들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 평론가 정지욱씨는 “최근 ‘나는 가수다’의 열풍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력 위주의 풍토가 문화계 전반에 퍼지고 있는 것 같다.”면서 “요즘처럼 매체가 다양화되고 SNS가 발달된 상황에서 극장에서만큼은 검증된 배우의 연기력을 바탕으로 한 완성도 높은 영화를 즐기려는 관객이 더욱 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얼룩진 승부의 세계] 대회 입상·진학 위해… 학창시절부터 ‘져주기’에 익숙

    [얼룩진 승부의 세계] 대회 입상·진학 위해… 학창시절부터 ‘져주기’에 익숙

    승부조작 파문에 휘청이는 스포츠계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괘씸하다고 여긴다. 누리꾼들은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그깟 돈 몇 백만원 때문에 팬들을 저버리고 승부를 조작했다.”며 흥분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10억원을 받고 같은 잘못을 저질렀다면 분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누그러질까. 한 판에 얼마를 받고 장난을 쳤느냐는 본질을 호도한다. 문제는 돈이 아니다. 승부조작은 죄의식 문제다. 최태욱(FC서울)이 “최성국 파이팅이다. 나도 그 상황이었다면 실수하지 않았다고 장담 못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어렸을 때부터 대회 입상이나 진학을 위한 담합, 져주기에 익숙한 선수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승부조작은 스포츠판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가 폭발한 사건으로 규정해야 한다. 은퇴한 한 농구선수는 “지금 생각해 보니 학창시절 했던 게 승부조작이었다.”고 고백했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 상급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장난을 쳤단다. 어차피 운동으로 ‘먹고살’ 결심을 했다면 명문학교 진학이 필수고, 그러기 위해선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 지금은 전국대회 16강 등으로 완화된 편이지만, 과거는 무조건 4강에 올라야 명문대에 명함을 내밀 수 있었다. 그는 “감독님이 살살 하라고 하면 선수들도 대충 눈치를 챈다. 상대도 우리가 져줄 걸 알고 있었다.”고 돌아봤다. 일단 4강에 들었거나 조별리그 통과나 탈락이 결정된 팀의 코치는 ‘좋은 게 좋은 식’으로 친한 선·후배가 이끄는 팀을 밀어준다고 했다. 성적이나 진학에 따라 매년 재계약을 하는 지도자들도 이런 짬짜미로 일자리를 보전한다. 이 선수가 고백한 행위는 지금도 비일비재한데 큰 틀에서 이런 것도 모두 승부조작이다. 실제로 프로 무대보다 먼저 고교축구·소년체전·고교야구 등에서 승부조작 사실이 밝혀졌다. 2010년 고교클럽 챌린지리그축구에서는 포철공고가 광양제철고를 상대로 후반 34분부터 9분간 무려 5골을 넣어 골득실에서 앞서 왕중왕전 티켓을 따냈다. 짜여진 각본대로였다. 스포츠평론가 정윤수씨는 “중·고교 때부터 이런 관행에 익숙해진 선수들이 프로에 와서 갑자기 경각심을 갖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더군다나 지난해 프로축구와 달리 현재 배구나 야구에서의 파문은 엄밀히 말하면 경기조작, 상황조작에 가깝다. 서브득점·속공 및 후위득점수(배구), 첫 이닝 고의사구(야구) 등은 쉽게 할 수 있고 승패에 큰 영향을 끼치지도 않는다. 짭짤한 용돈까지 버는데 고민할 이유가 없다. 정씨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선수들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승부조작 유혹에 빠진 선수들을 비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낙후된 스포츠 환경을 개선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실험작 한자리에… 23~25일 화랑 미술제

    실험작 한자리에… 23~25일 화랑 미술제

    ‘2012화랑미술제’가 오는 23~2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D홀에서 열린다.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협회 소속 화랑들만 참여하는 행사다. 올해 참여 화랑 수는 지난해 66개보다 24개 늘어난 90개다. 참여작가는 모두 500여명, 내놓는 작품은 3000여점에 이른다. 장르는 회화에서부터 설치, 사진, 조각, 도예 등 모든 부문에 걸쳐 있다. 올해의 특징은 젊고 실험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대거 선보인다는 데 있다. 미술시장이 어렵다는 말들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처음 열리는 아트페어라 어깨가 무거워서다. 학고재갤러리는 20~30대 젊은 작가 유현경과 이영빈에다 ‘붉은 산수’로 유명한 이세현과 지난해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작가인 이용백을 내세웠다. 국제갤러리는 30~40대 작가 강임윤과 센정의 작품을 내놨다. 선화랑은 ‘오로라 작가’ 전명자의 작품 15점을 선보인다. 아트사이드갤러리도 신수혁, 이승희, 변선영 3인전을 연다. 여러 작가들의 여러 작품들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신있게 내세울 수 있는 작가 몇몇에게 힘을 실어주는 방식이다. 인기 작가들의 작품도 끊이지 않는다. 갤러리현대는 강익중·김덕용·김종학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가나아트갤러리도 고영훈, 두민 등 인기 작가를 내세웠다. 청작화랑은 김흥수·박돈·이두식을, PKM갤러리는 이강소·김지원·함진을 각각 내세웠다. 또 미술제 출범 30주년을 맞아 부대행사도 마련했다. 정신과 의사이자 오페라 평론가인 박종호 풍월당 대표가 23, 25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전시장 내 VIP 라운지에서 유럽음악페스티벌과 세계공연 현장에 대해 특강을 한다. 온라인에서 출품작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17~18일, 22~23일 나흘에 걸쳐 ‘네이버 온라인 미술전시’를 통해 작품을 공개한다. 작가과 작품에 대한 간단한 설명도 함께 넣어뒀다. 협회 관계자는 “직접 코엑스까지 나와보기 전까지 미리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공부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말했다. 다만 네이버를 통해 볼 수 있는 작품 수는 120여개 작품에 그친다. 1만원. (02)733-3706.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도랑

    [이용철의 영화만화경]도랑

    지난 7일부터 한국영상자료원에선 신도 가네토와 야마모토 사쓰오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26일까지 계속되는 회고전은 한국영상자료원과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가 공동 주최하는 ‘일본영화 거장 시리즈’의 네 번째 프로그램이다. 두 사람은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감독은 아니다. 그들의 영화를 보아야 하는 이유는 ‘일본 독립영화의 힘’을 목격하는 데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본 감독들, 즉 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등의 발자취는 대개 도호, 쇼치쿠 같은 스튜디오의 성쇠와 연결된다. 그들에 비해, 독립영화의 리더로 활약한 신도와 야마모토의 영화는 일본 영화의 또 다른 역사를 발견하도록 돕는다. 특히 신도는 일본 독립영화의 역사를 쓴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튜디오 작업을 병행한 야마모토와 달리, 신도는 독립 제작사 ‘근대영화협회’를 세우고 지금껏 이끌어 왔다. 대표작들은 물론, 지난해 99살의 나이에 발표한 ‘한 장의 엽서’도 같은 제작사의 작품이다. 더욱이 1912년생으로 현역 최고령 감독인 신도가 발표한 영화들이 하나같이 수준 이상을 유지하고 있어 놀랍다. 1990년대 이후 작품들인 ‘오후의 유언장’, ‘한 장의 엽서’는 저명한 영화지인 ‘키네마준보’가 그해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선정한 바 있다. 독립영화라고 해서 지루하고 딱딱한 영화를 상상했다면 오산이다. 생명력이 넘치는 신도의 영화는 여느 장르의 영화 못지않게 재미있다. 신도의 대표작은 1960년대 발표된 ‘오니바바’와 ‘벌거벗은 섬’이다. ‘오니바바’는 1960년대 일본 영화에 기대하는 모든 것을 집대성해 놓은 작품이다. 시대극과 괴기 드라마의 외피 아래로 사회정치적인 메시지를 전하며, 인간의 욕망이 초래한 끔찍한 상황이 잊지 못할 충격을 안겨준다. 모스크바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인 ‘벌거벗은 섬’에서 신도는 실험적인 양식과 사실주의를 결합한다. 외딴 불모의 섬을 일구는 일가족의 이야기인데, 영화는 몇 마디 자막 외에 어떤 대사도 없이 진행된다. 단순한 일상을 미적 차원으로 승화시킨 걸작이다. 두 영화만큼 유명하진 않으나 ‘도랑’(원제:どぶ)은 한국관객의 기호에 더 맞을 작품이다. 신도의 초기작으로 전후 궁핍한 일본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더러운 개천 옆에 형성된 판자촌으로 한 백치 여인이 흘러들어온다. 일본의 패전 후 만주에서 귀국한 그녀는 가는 곳마다 착취당한 끝에 굶어 죽기 직전이다. 끔찍한 건, 밑바닥 삶을 사는 판자촌 사람들조차 그녀의 희생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당장 현실이 아쉬운 그들은 그녀에게 손을 벌리고, 그때마다 그녀는 몸을 팔아 번 돈을 아끼지 않고 나눈다. 온갖 험한 꼴을 당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백치 여인을 보면 당장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에서 젤소미나라는 여인도 비슷한 삶을 살다 죽는다. 여인을 착취한 인물이 오열한다는 설정도 같다. 흥미롭게도 두 영화는 1954년에 대륙의 양끝에서 나란히 공개됐다. 어수룩한 얼굴의 천사가 패전한 두 나라의 하층민 앞으로 도착했던 셈이다. 비록 두 나라가 전쟁을 일으키긴 했지만, 삶을 모조리 빼앗긴 민중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는 일. 신도와 펠리니는 영화를 통해 자기 나라의 민중이 선한 모습으로 살아남기를 기도했다. 지금으로부터 58년 전, 그런 감독들이 사는 세상이 있었다. 영화평론가
  • 이수근 ‘바꿔드립니다’ 시청자들에게 사과

    이수근 ‘바꿔드립니다’ 시청자들에게 사과

     지나친 선정성과 간접광고 등이 문제로 지적돼 온 채널A에 대해 종합편성 채널 가운데 처음으로 ‘시청자에 대한 사과’ 결정이 내려졌다. 이는 가장 강도 높은 제재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16일 전체회의를 열고 채널A의 예능프로그램 ‘이수근의 바꿔드립니다’에 대해 방송심의규정 46조(광고 효과의 제한)를 어긴 정도가 중하다고 판단해 이렇게 결정했다.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와 제작진이 퀴즈 대결을 펼쳐 시청자가 이기면 낡은 집기를 새 제품으로 바꿔 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특히 방통심의위원들은 노트북, 디지털카메라, 슬레이트PC, 전자레인지, 소파, 식탁 등 상품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일부 제품에 대해서는 상품명을 직접 언급한 부분을 질타했다.  박만 방통심의위원장은 “비슷한 위반 수준의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위반 정도가 중하다.”면서 “채널A가 신생 채널이지만 그동안 빈번히 심의 규정을 어긴 점을 고려해 중징계를 내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청자에 대한 사과 결정은 방통심의위의 제재 가운데 가장 강도가 높은 제재다.  이와 함께 방통심의위는 채널A의 ‘생방송 연예정보 인사이드’에 대해서는 청소년이 시청할 수 있는 저녁 시간대에 ‘19금 연극’을 소개했다며 주의 조치를 결정했다. 심의위는 또 다른 종편 채널인 JTBC의 ‘이수근, 김병만 상류사회’에 대해서도 출연자가 몸에 전류가 흐르는 벌칙을 받는 장면을 지적하며 주의 조치를 결정했다.  한편 심의위는 시사평론가 김용민씨가 출연한 S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김소원의 SBS 전망대’에 대해 방송심의규정 9조(공정성)와 15조(출처명시)를 위반했다며 주의를 결정했다. 이 프로그램은 ‘김용민 시사평론가의 뉴스 브리핑’ 코너에서 제약사 리베이트, 의료 수가 인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나라당 단독 처리 등의 이슈를 다루며 출처 명시 없이 특정 신문사의 기사를 집중적으로 다뤘다는 지적을 받았다. 심의위는 아울러 명진 스님이 출연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직설적으로 비판한 CBS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대해서도 방송심의규정 14조(객관성)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해 주의를 결정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사건 Inside] (1) 믿었던 ‘모델급’ 여친이 회사 사장과…수상한 삼각관계가 만든 살인미수 [사건 Inside] (2) 소개팅女와의 하룻밤이 끔찍한 지옥으로…인천 ‘미성년자 꽃뱀 사건’ [사건 Inside] (3) 생면부지 여중생에게 몹쓸 짓을…‘전주 여중생 성추행 동영상 사건’ [사건 Inside] (4) 밀폐공간에 속 시신 3구, 누가? 왜?…‘울산 아파트 살인사건’의 전말 [사건 Inside] (5) “입양한 딸, 남편이 바람핀 뒤 나 몰래?”…‘구로 영아 폭행치사 사건’ [사건 Inside] (6) 조강지처 베란다서 밀어 살해해 놓고 태연히 음료수 마신 ‘엽기 남편’ [사건 Inside] (7) 범인 “시신은 상상할 수 없는 곳에 있다”…‘거창 40대 여성 실종사건’ [사건 Inside] (8) “내 애인이 ‘꽃뱀 예림이’라니”… 70대 재력가의 비극적 순정 [사건 Inside] (9) 군대에서 발견된 성병, 범인은 ‘그 아저씨’…‘전주 무속인 추행 사건’ [사건 Inside] (10) 이웃사촌들이 최악의 ‘집단 성폭행’…전남 장흥 시골마을의 비밀 [사건 Inside] (11) 명문 여대생, 남친 잘못 만나 마약에 성매매까지… [사건 Inside] (12) 부인 시신에 모자씌워 저수지로…사기 결혼이 부른 엽기 살인 [사건 Inside] (13) “나만 믿으면 100만원이 3억원으로”…‘인터넷 교주’ 믿었다 패가망신 [사건 Inside] (14) 독극물 마신 살인범 주유소로 난입해…‘강릉 30대女 살인사건’ [사건 Inside] (15) 글러브 끼고 주먹질에 ‘쵸크’로 반격…엽기 커플의 사랑싸움 [사건 Inside] (16) “감히 나를 모함해?”…가양동 ‘일진 할머니’의 기막힌 복수 [사건 Inside] (17) “실종된 여고생 3명, 장기가 적출된 채…”…순천 괴소문의 진실 [사건 Inside] (18) 남자 720명 울린 부천 꽃뱀 알바의 정체…수상한 레스토랑의 비밀 [사건 Inside] (19) 40대女, 동거남이 준 술 마셨다가 깨어나보니…나쁜 남자의 진실
  • 인포테인먼트 “우리가 대세다”

    언제부터인가 TV속 프로그램 가운데 예능과 교양 등 서로 다른 장르가 접목된 크로스오버 프로그램들이 대세가 됐다. 특히 인포테인먼트(infortainment·‘정보’(information)와 ‘오락’(entertainment)을 합성해 만든 신조어)는 지상파는 물론 케이블 방송에서도 프로그램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지상파·케이블TV 구분없이 ‘주류’로 개국 초창기 일명 막장 채널이라 불릴 만큼 불륜 등 자극적인 소재로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았던 케이블 채널tvN은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다. 보통 사회적으로 저명한 교수, 사회적 성공 기업가들이 아닌 방송계 스타를 멘토로 출연시켜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스타특강쇼’는 tvN의 대표적인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 영화배우 박신양, 김영철, 이순재, 개그우먼 조혜련, 개그맨 정찬우, 정준하 등 문화인들이 매회 멘토로 나서 공개특강을 한다. 프로그램은 ‘등록금 1000만원 시대, 청년 백수 100만, 88만원 세대’를 내세워 조금이라도 스펙을 더 쌓고자 고군분투하는 20대 젊은 청춘들이 인생의 선배로부터 성공에 대한 조언을 받고 싶어하는 감성을 건드려 호평을 받고 있다. 매회 방송이 나갈 때마다 시청자 게시판에선 스타 멘토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담은 글이 다수 올라온다. 녹화에 참여하는 방법도 독특하다. 방청 참여를 ‘수강신청’이라 부른다. 방청을 원하는 20대들이 많아 일정한 기준에 의해 선정된 사람만이 참여할 수 있다. ●문화인사 특강… 관광지소개·입담 과시 20대 청춘들의 취업난, 멘토 부재 등의 상황을 가장 먼저 건드려 뜨거운 사랑을 받은 프로그램으로는 같은 방송사의 ‘백지연의 피플INSIDE’가 있다. 안철수 열풍이 불기 전,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20대 청춘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며 젊은이들의 멘토로 자리매김했고, 박원순 서울시장도 지난해 초 희망제작소 소장 자격으로 출연해 20대의 멘토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외에도 광고인 박웅현, CNN 메인 앵커 앤더슨쿠퍼, 하버드 법대 최초의 아시아 여성 종신교수 석지영, 미국 아이비리그 다트머스 대학 총장 김용 등 글로벌 인재 등이 출연했다. 젊은 세대가 인생 선배들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를 수 있게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채널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이 같은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의 역할이 컸다. 지상파에서도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은 대세다. 대표적으로, 안방극장의 강자로 평가받는 KBS 2TV의 ‘1박 2일’도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이자 국내 여행지 관광 소개와 출연진들의 입담이 시너지 효과를 내는 대표적인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 방송에서 소개된 촬영지는 금세 입소문을 타 관광지로서 각광을 받는다. 심지어 시청자들은 방송에서 출연진들이 방문해 방송 전파를 탄 전국의 음식점까지 찾아내 인터넷 블로그 등에 올리며 정보를 공유할 정도로 ‘1박 2일’은 시청자들에게 국내 관광지에 대한 정보와 전국의 먹거리 등의 정보를 전달하며 인기 가도를 걷고 있다. ●“취업난 탓 젊은층 멘토링 강의 트렌드화” 이러한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의 강세에 대해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시청자들이 단순한 재미와 딱딱한 정보 전달만이 아닌 교양과 예능이 섞인 퓨전화된 방송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들이 부상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경제가 어렵고 취업난 등의 문제가 커지면서 젊은이들을 상대로 한 멘토링 강의가 인기를 끌었고, 대중문화에 민감한 방송에서 이 같은 프로그램 형식을 취하며 다양한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들이 트렌드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글쓰기 새 네트워크 서울신문이 기여했다”

    “글쓰기 새 네트워크 서울신문이 기여했다”

    인문과 역사 강의를 하고 그 수강생들로 하여금 글도 쓰게 하여 대중지식의 확산을 꾀하는 남산강학원의 ‘수괴’ 고미숙 고전평론가. 2010년부터 시작된 서울신문과의 ‘고전톡톡’ 2년 연재로 “유명 저자를 중심으로 하는 지식의 일방적인 유통을 거스르면서 독자나 수강생이 스스로 지식 생산자가 되는 과정을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고 원장은 “과거에는 이름 있는 작가가 그 명성을 이용해 신문에 기고하는 단일한 라인의 글쓰기였다면, 우리는 문예지 등에 무명의 노동자나 학생들이 등단하고자 애썼던 힘을 실제로 실험해 봤다.”면서 “서울신문이 글쓰기의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신진 저자를 발굴하는 데 엄청난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서울신문과 강학원이 함께 기획한 ‘고전톡톡’ 집필자들은 모두 무명의 저자였다. 이들 중에는 생애 처음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있었고, 신문사의 마감 시간 앞에서 수십 번씩 글을 고쳐 쓰라는 멘토의 압박을 받으면서 천당과 지옥을 수차례 오가기도 했다. 무명의 집필자로서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전문적인 내용의 글을 쓰고자 스스로 읽고 이해한 내용을 수십 차례 되새김질한 것이다. 고 원장은 “그들은 책도 별로 많이 안 읽고 학벌도 없고 글재주도 없다. 시쳇말로 무지렁이들이 글을 썼다.”면서 “그러나 글을 쓰면서 인생의 나침판도 얻게 되고, 나중에는 자신이 관심 뒀던 인물들에 대해 한 권의 평전을 쓸 수 있게 돼 아주 만족했을 것”이라고 했다. ‘고전톡톡’을 통해 키운 집필자들은 이후 출판사들로부터 섭외를 받아 명실상부한 저자가 됐다. 그냥 저자가 아니라 자신의 책을 가지고 강의에 투입돼 다시 유통하는 힘을 가진 저자가 된 것이다. “강학원에는 청소년, 장년, 노년 등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강좌가 마련돼 있는데 우리는 저자의 처지에서 ‘고전을 읽으세요’라고 위압적으로 굴지 않고, 이 책을 어떻게 쓰게 됐나를 알려주면서 강의를 듣는 당신도 글쓰기의 주체가 돼라고, 될 수 있다고 설득한다. 저자가 재생산이 안 되면 대중지성이 아니라 대중 소외 지성이 된다. 우리는 ‘고전톡톡’ 연재가 끝나고서도 여전히 대중지성, 저자의 확대 재생산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열린세상] 윤동주 시집을 읽는 펭귄/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열린세상] 윤동주 시집을 읽는 펭귄/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월 16일은 시인 윤동주가 광복 6개월 전 28세의 나이로 옥사한 날이다. 시인은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라고 했다. 시인은 짧은 생을 그렇게 살다 갔다. 시인은 가고 없지만 그의 시는 지금까지도 살아 우리들의 메마른 영혼을 정화시켜 주고 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윤동주 시집을 선물 받았다. 그의 시에 매료돼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는 표현처럼 그 시집이 너덜너덜할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 그러면서 시인이 시 속에서 이야기한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 보길도에 다녀왔다. 15년 전 땅끝 마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 하룻밤을 지냈는데, 그때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빛을 보면서 윤후명 소설 ‘모든 별들은 음악 소리를 낸다’에 나오는 ‘별들의 교향곡’을 떠올린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보길도로 가는 도중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노화도와 보길도를 잇는 다리가 생겼고, 배는 더 이상 보길도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 최첨단의 다리 앞에서 내 기억 속에 있던 별빛 쏟아지는 보길도의 이미지는 희미해져 갔다. 보길도의 육체는 화려해졌지만 그 영혼은 사라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앞으로 보길도는 저 다리로 인해 급속도로 번창하면서 그 본연의 모습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보길도에서 올라와 하루를 쉬고 대구로 갔다. 대구의 모 백화점에서 인문학 강의를 주최했고, 그 일환으로 내가 문학 강연을 하게 되었다. 평소 나는 백화점을 거의 가지 않는다. 온갖 상품이 즐비한 실내에 들어서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은 백화점에서 무척 편안함을 느꼈다. 문학 강연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은 문명의 이기에 휘둘리면서도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에게는 문학의 향기가, 그리고 인간다운 내음이 짙게 스며들어 있었다. 충격 체험이라는 말이 있다. 물질문명이 가져다 주는 체험이 하도 충격적이어서 현대인들은 인간다운 삶과 관련된 서정적 기억을 잊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가끔 지하철을 타면 거의 모든 이들이 스마트폰 삼매경에 푹 빠져 있는 것을 보곤 한다. 그들을 보노라면 고속으로 달리는 지하철에 외롭게 떠 있는 섬 같다는 생각을 한다. 고독한 섬과 섬으로 단절된 이들. 그들 사이를 잇는 유일한 다리가 바로 스마트폰인 듯하다. 마치 보길도의 다리처럼. 이상의 수필 ‘산촌여정’에는 “축음기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북극 펭귄”이라는 구절이 있다. 스마트폰으로 상징되는 정보화 기기 없이는 단 하루, 아니 단 일분도 살아갈 수 없는 시대임이 분명하다. 그런 기기가 주는 충격 체험이야말로 가히 혁명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시대에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에 열중하기보다는 시집을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내가 꼭 펭귄 같다. 하지만 모든 것은 균형을 갖추어야 한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열(熱)이 있으면 냉()이 있다. 물질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 육체적 가치와 영혼의 가치가 균형을 이루는 사회야말로 행복한 사회다. 스마트폰으로 소통하는 세상에는 즉흥적이고 찰나적이며 비인간적인 만남이 난무하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따뜻한 온기가 깃들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이 주는 충격 체험에 압도돼 인간다운 서정적 기억을 망각하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영혼의 불구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문학은 우리가 잊고 있는 인간다운 삶과 관련된 소중한 기억의 보고다. 학창 시절 한 편의 시, 한 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 편의 시가 섬과 섬 사이를 따뜻하게 이어 주는 소중한 다리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책장에 꽂아 둔 윤동주의 시집을 다시 읽어 본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교감하는 아름다운 영혼의 시를 읽으면서 이번 기회에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윤동주 시집을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펭귄이 될지라도 지하철에서 시집을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디센던트’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디센던트’

    하와이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남자.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두 딸. 물려받은 거대한 땅을 관리하는 중산층. 매트 킹은 누구나 부러워할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디센던트’는 지상 낙원으로 불리는 하와이를 부정하는 매트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하긴 거기도 사람이 사는 곳인데 그림엽서 같은 풍경만 펼쳐지진 않았으리라. 사실 얼마 전부터 매트의 삶은 난관에 부닥쳤다. 아내가 보트 사고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면서 아직 10대인 두 딸과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한다. 그뿐 아니다. 큰딸이 던진 폭탄 같은 말은 그를 공황상태로 만들어버린다. “엄마가 바람을 피운 걸 정말 모른단 말이에요?” 아내와 놀아난 녀석의 이름을 알고 싶고 얼굴을 보고 싶고 무슨 말인가 내뱉고 싶은 매트는 두 딸과 큰딸의 멍청한 친구를 대동하고 길을 나선다. 매트는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전작에서 익히 보아온 중년 남자와 다를 바 없는 인물이다. 주변인과 어긋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삐걱거리는 삶을 내버려둔 채 걸어가던 ‘일렉션’의 짐과 ‘어바웃 슈미트’의 워렌과 ‘사이드웨이’의 마일스는 매트의 다른 이름들이다. 풀지 않고 묵혀둔 숙제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때 그들은 비로소 고통스러운 진실과 대면한다. 검소를 미덕으로 삼아 항상 일에 매달려 사는 매트는 아내의 외로움과 두 딸의 고민거리를 모르고 지냈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두 딸이 골칫거리로 자란 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페인은 언제나 그랬듯이 인물이 지혜를 찾도록 짧으면서도 긴 여정 위에 세운다. 그는, 가만히 앉아 머릿속으로 풀 수 있는 문제는 현실에 없다고 생각한다. 현대인은 타인과의 관계를 너무나 골똘히 고민한 나머지 병에 이른다. 그들은 도덕이나 선이 아닌 이해득실에 따라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니 관계의 정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행여 해를 입을까 소심증에 빠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그런 인물들이 영화에도 등장하는데, 보통의 영화가 일삼는 실수는 상처를 쉬 치유하려는 데서 비롯된다. ‘디센던트’는 다르다. 영화는 못난 남자의 못난 감정에 충실하게 접근하고, 주인공은 복잡한 문제들과 정면으로 부딪친다. 가족 내부의 갈등과 가문의 영지 처분이라는 안팎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매트는 선조의 역사를 되새긴다. 그리고 선조와 후손이라는 거대한 흐름의 가운데 선 자신의 위치를 자각한다. 설령 그의 행동과 판단이 옳지 않다 하더라도 설득력을 구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최소한 얄팍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페인의 코미디를 보며 마냥 웃을 수는 없다. 인물들이 행하는 엉뚱한 짓거리에 연민을 느끼게 되고, 실없는 소동에 웃다 문득 관조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코마에 빠진 아내 앞에서 매트가 숨겨둔 감정을 폭발하는 장면을 보자. 듣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혼자 흥분한 모습이 우스꽝스럽지만, 다른 한편으로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자의 슬픔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페인의 코미디가 매번 각별하게 다가오는 건 그런 까닭에서다. 쉽게 만든 인물을 허투루 사용하는 현대영화와 달리, 페인은 인물 하나하나에 진심을 부여한다. 영화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반대로 현장을 잘 통솔하기를 원하는 페인은 배우에게 최선의 연기를 끌어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디센던트’의 조지 클루니도 리스트에 오를 만하다. 스타가 연기까지 잘할 때, 감탄은 몇 배 커진다. 16일개봉.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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