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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이 영화] 단지 세상의 끝

    [지금, 이 영화] 단지 세상의 끝

    루이(가스파르 울리엘)는 12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어머니(나탈리 베이)와 여동생 쉬잔(레아 세이두)이 그를 반갑게 맞는다. 반면 형 앙투안(뱅상 카셀)은 루이에게 이상하리만치 쌀쌀맞다. 형수 카트린(마리옹 코티야르)이 그들의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 보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만나지 못한 만큼 벌어진 관계의 틈은 그리 쉽게 메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나누는 많은 대화 안에는 그것에 비례해 많은 침묵이 녹아 있다. 사실 루이의 갑작스러운 귀향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가족에게 알리려는 방문이었다. 프롤로그에서 그는 독백한다. “인생엔 누가 뭐라건, 뒤를 돌아보지 않고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수없이 존재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 또한 수없이 존재한다. 그래서 그 오랜 시간 끝에 내 발자취를 되짚어가기로 했다. 나의 죽음을 알리기 위한 여정을,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환상을, 보여 주기 위해.” 영화 ‘단지 세상의 끝’에서 그자비에 돌란 감독은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환상’을 재현하는 동시에 깨부수려 한다. 그의 말대로 이 작품의 성패는 “이미 발화된 것과 발화되지 않은 것,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데 달려 있다. 그렇지만 ‘어떤 것을 안다’와 ‘어떤 것으로 만든다’는 엄연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지난해 칸영화제 상영 당시 ‘단지 세상의 끝’에 대한 평은 좋지 않았다. “그자비에 돌란의 놀라운 성숙”이라는 호평보다 “감독의 과도한 자의식이 영화를 망쳤다”는 혹평이 많았다. 당연히 수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런데 세간의 예상을 뒤엎고 이 영화는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돌란은 눈물을 흘렸고 객석에서는 탄식과 야유가 터져 나왔다. 논란이 일 수밖에 없는 칸영화제의 결정이었다. 스무 살에 만든 데뷔작 ‘아이 킬드 마이 마더’(2009)부터 돌란은 유독 칸영화제의 주목을 받았다. 분명 돌란이 가진 영화적 재능은 비범하다. 그러나 그 이유만으로 칸영화제가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안다. 돌란의 국적은 캐나다지만 프랑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퀘벡주 출신이다. 그래서 그는 주로 프랑스어 영화를 찍는다. ‘단지 세상의 끝’도 프랑스 극작가 장뤼크 라가르스가 1990년에 쓴 동명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카이에 뒤 시네마를 비롯한 프랑스 평론계는 돌란의 이번 영화를 옹호하지만, 거기에는 자국 문화 편애―언어 내셔널리즘의 석연치 않은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이미 발화된 것과 발화되지 않은 것,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데 성공한 듯 보이지 않는다. 원작에서 돌란이 전유한 루이는 지나치게 과묵한 데 비해, 영화에서 돌란이 구사한 화법은 과도하게 현란했다. 권위 있는 상이 꼭 뛰어난 작품에 수여되는 것은 아니다. 18일 개봉. 15세 관람가.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 잘 나가던 ‘도깨비’·‘푸른바다’ 결방, 왜?

    잘 나가던 ‘도깨비’·‘푸른바다’ 결방, 왜?

    최근 잘나가던 인기 드라마들의 결방이 잇따르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드롬급 인기를 얻고 있는 tvN 금토 드라마 ‘도깨비’와 전국 시청률 20%에 육박하는 SBS 수목 드라마 ‘푸른바다의 전설’이 그 주인공이다. tvN은 ‘도깨비’의 14일 방송분을 결방하고 스페셜 방송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당일 방송 예정이던 14화는 오는 20일에 방송되고 21일에는 15, 16화가 연속 방송될 예정이다. 앞서 SBS ‘푸른 바다의 전설’ 역시 지난달 29일 14회를 결방하고 1~13회를 버무린 스페셜 방송을 내보냈다. 두 드라마 모두 그 주 방송분을 해당 주에 촬영해 내보내는 ‘생방송 드라마’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견됐던 상황이긴 하지만 방송사에서 결방을 결정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편성은 시청자들과의 약속인 데다 예정된 광고 물량 취소로 막심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깨비’의 경우 결방 소식이 알려지자 주연배우 공유의 건강 이상설까지 나돌기도 했다. 이에 대해 소속사 관계자는 “촬영 현장에 중국 팬이 많이 몰려오는데 이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주연배우가 아파서 쓰러졌다는 잘못된 정보를 올린 것이 중국 언론에 보도됐고 이것이 와전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방송사에서 밝힌 결방의 이유는 완성도다. ‘도깨비’ 제작진은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다 보니 고난도 촬영과 컴퓨터그래픽(CG) 등 후반 작업에 시간적 어려움이 있었다. 최상의 퀄리티와 완성도로 시청자들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남은 회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SBS 측은 “타 방송사에서 동시간대에 시상식을 방송했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내놓았으나 뚜렷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 드라마의 한 관계자는 “처음부터 3회 분량만 촬영된 채 방송을 시작하다 보니 대본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촬영 지연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인기 드라마 tvN ‘응답하라 1988’도 “더 높은 퀄리티를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며 2회분을 휴방하기도 했다. 방송 사고보다는 차라리 결방이 낫다는 일부 의견도 있지만 인기 드라마의 결방이 이어지는 데 대한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한 지상파 방송사 드라마기획팀장은 “결방을 결정하기 쉽지 않지만 스타 작가나 외주 제작사의 입김이 세지면서 벌어진 현상”이라며 “일부 작가는 사전 제작보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고 작업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대본이 늦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도깨비’는 김은숙 작가가 소속된 화앤담픽쳐스가 제작을 맡고 있고 ‘푸른 바다의 전설’은 박지은 작가가 소속된 문화창고가 공동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드라마 평론가 공희정씨는 “결방도 넓은 범주의 방송 사고이며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결방을 한다는 것은 기업이 미완의 상품을 시장에 내놓는 것과 같다”면서 “편성은 시청자와의 약속이고 작가, 배우, 감독 등이 모든 제작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유발 하라리부터 황석영까지… 기대작이 쏟아진다

    유발 하라리부터 황석영까지… 기대작이 쏟아진다

    올해 출판계는 독자들의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 벼러 온 기대작이 적지 않다. ‘브랜드 파워’를 가진 국내외 스타 작가들의 신작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 ‘사피엔스’ 열풍 이을 ‘호모데우스’ 지난해 인류의 역사를 조망한 ‘사피엔스’ 열풍을 일으킨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히브리대 교수의 후속작 ‘호모데우스’(김영사)가 출간될 예정이다. 전작이 인류의 탄생과 진보를 다뤘다면 호모데우스는 생태학적 관점에서 인류의 미래를 풀어낸다. 국내에 초역되는 미국 인류학자인 애슐리 몬터규의 ‘터칭’(글항아리)은 1971년 초판이 나온 대작이다. 피부 접촉이 인간의 감각적 성장과 정신세계, 인간관계와 사회관습에 미친 영향과 상호작용을 문학, 인류학, 의학 등 온갖 텍스트를 통해 통합적으로 살피고 있다. 출판사는 “인류사에 남을 걸작 중 하나”로 자신한다. # 日 대표 지성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 저술가로 꼽히는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의 에세이 작품도 예정돼 있다. 오는 21일에는 서울 한남동 북파크 카오스홀에서 도킨스의 첫 방한 특별 강연이 열린다. 올해 출간작 가운데는 전 지구적 정치·사회·문화 지형 변화를 탐구한 책들도 적지 않다. 마르크스주의 지식인인 데이비드 하비의 신작 ‘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창비)은 독창적 시선으로 세계의 작동 원리를 날카롭게 분석한 그의 지적 이력을 드러낼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관계 전문가 파라그 카나가 급변하는 지정학적 역학 관계와 그에 따른 인식 구조의 변화를 전망한 ‘커넥토그래피’(사회평론)와 일본의 대표 지성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약 20만권에 달하는 장서로 웅장한 자신의 서재를 소개하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문학동네)도 이목을 끈다. 한길사는 레비스트로스의 ‘신화학 3’를 9년 만에 선보인다. 총 네 권으로 이뤄진 방대한 저서 중 3편으로 큰 주제는 ‘식사예절의 기원’이다. 지난해에 이어 페미니즘 열풍을 이어갈 책도 기대된다.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인 낸시 프레이저의 역작인 ‘페미니즘의 역습’(가제·돌베개)은 페미니즘 운동의 맹점과 딜레마, 21세기의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 편’ 국내 저자로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서울의 5대 궁궐과 종묘, 숨은 이야기를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전 2권·창비)을 펴낸다. 서양사학자인 주경철 교수가 15~18세기 유럽의 다양한 인물을 통해 역사의 이면을 탐색한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전 3권·휴머니스트)도 출간된다. 실학자이자 한글학자인 유희가 쓴 ‘물명고’(物名攷·한길사)는 표제어만 1600여개인 일종의 어휘 사전으로, 우리 조상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 김주영 “마지막 장편 같다”… ‘뜻밖의 생’ 문단에서는 지난해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시집의 인기가 불러일으킨 ‘한국문학 붐’이 올해도 이어질지가 관심사다. 황석영, 김주영 등 굵직한 서사에 능한 노장들부터 구효서, 공지영, 김영하, 공선옥, 이기호, 편혜영, 김애란, 황정은, 윤고은, 정지돈 등 중견 및 젊은 소설가들의 신작이 출간된다. 황석영 작가는 민주화운동, 방북과 수감 등 자전적 이야기를 오는 4월 장편 ‘수인’으로 펴낸다. 김주영 작가는 스스로 “마지막 장편 소설이 될 것 같다”고 말한 ‘뜻밖의 생’을 3월 출간한다. 천진한 소년이 지혜로운 노인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 오랜만에 소설집 내는 김영하·김애란 이외수 작가는 2005년 ‘장외인간’ 이후 12년 만에 장편 ‘보복전문대행주식회사’(가제)를 상반기에 발표한다. 김영하 작가는 2012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옥수수와 나’, 2015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인 ‘아이를 찾습니다’가 포함된 소설집을 7년 만에 낸다. 김애란 작가는 2013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침묵의 미래’를 수록한 신작 소설집을 5년 만에 발표한다. 시단에서는 정호승, 나희덕, 심보선, 이병률, 이원, 신용목, 김언, 박준, 유희경 등 중장년층부터 젊은층까지 폭넓은 팬덤을 가진 시인들이 문학과지성사, 창비 시선집 등을 통해 새 시집을 낸다. 움베르토 에코, 오르한 파무크, 베르나르 베르베르 등 해외 인기 작가들의 신작들도 포진해 있다. 지난해 2월 84세로 세상을 떠난 움베르토 에코의 유작 소설 ‘창간준비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새 장편 ‘잠’과 첫 희곡 ‘웰컴 투 파라다이스’가 선보인다. 7월 여름시장을 겨냥해 나오는 오르한 파무크의 새 장편 ‘빨간 머리카락의 여인’은 국내에서 3년 만에 선보인 소설인 데다, 터키에서 3개월 만에 2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라 기대를 모은다. 이 밖에도 우리말로 처음 옮겨지는 보르헤스 논픽션 전집(4권) 출간도 보르헤스 팬들에겐 반가울 소식이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윤여정이 사랑한 ‘커다란 희망’…최동훈이 콕 찍은 ‘케이프 피어’

    윤여정이 사랑한 ‘커다란 희망’…최동훈이 콕 찍은 ‘케이프 피어’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서울 지역에서 비영리 민간 단체가 운영하는 유일한 시네마테크 전용관이다. 영화를 애정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방이나 마찬가지다. 영화를 공부하고 즐기고 교류하는 공간이다. 돈이 되는 일은 아니어서 유지가 빠듯하다. 영화감독, 배우, 평론가 등 영화인을 포함한 문화예술인들이 서울시네마테크의 후원자로 발 벗고 나서 함께 꾸리는 영화제가 있다. 2006년 시작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열린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다. 오는 19일부터 다음달 22일까지다. 문화예술계 ‘친구들’이 추천한 작품을 함께 관람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올해도 14명이 친구들로 나섰다. 형형색색 구미를 당기는 작품들이 많다. 배우 김의성과 최동훈 감독은 스릴러의 고전 ‘케이프 피어’(1962)를 함께 골랐다. 윤여정과 김주혁은 리얼리즘 영화의 거장 마이클 리 감독의 ‘커다란 희망’과 오스카 감독상을 2연패한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출세작 ‘21그램’을 각각 추천했다. 지난해 여성 영화 바람을 일으킨 이경미 감독과 윤가은 감독은 영국 공포 영화의 고전 ‘쳐다보지 마라’, 삶의 부조리와 모순을 다룬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매그놀리아’를 선택했다. 탁월한 미장센으로 정평이 난 조성희 감독의 선택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 승무원들을 인간적으로 그려낸 ‘특전U보트’.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누벨바그의 대모 아녜스 바르다의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를 추천했다. 10년 만에 영화제를 찾는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케이블 호그의 노래’, ‘무슈 클라인’, ‘보스턴 교살자’ 등으로 마스터클래스를 연다. 온·오프라인 투표로 결정된 ‘관객들의 선택’ 작품은 무성영화 ‘쇼 피플’과 20세기 문제적 거장 루이스 부누엘의 ‘절멸의 선택’이다. 이 중 개막작 ‘쇼 피플’은 피아니스트 강현주가 참여하는 라이브 연주 상영이 이뤄진다. 이 밖에 ‘에디터 선택’, ‘시네마테크의 선택’까지 더해 모두 22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연상호, 이경미 감독이 자신들의 작품 ‘부산행’과 ‘비밀은 없다’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영화학교도 열린다. 8000원. 문의 (02)741-9782.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문화계 블랙리스트’, 세월호 참사 때문에 시작됐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세월호 참사 때문에 시작됐다?

    박근혜 정부가 만든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문화예술인들의 활동을 막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세월호 관련 각종 문화 행사부터 불이익을 주는 데 활용된 것이다. 11일 경향일보에 따르면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세월호 참사 한 달 뒤인 2014년 5월 블랙리스트 작성 논의가 시작됐다는 문화체육관광부 직원들의 진술과 정황을 확인했다. 블랙리스트 작업이 1차적으로 문화예술인들의 세월호 활동과 행사를 억제하고, 불이익을 주는 일부터 겨냥했다는 것이다. 특검은 블랙리스트는 조윤선 문체부 장관(51)의 청와대 정무수석 재임 시절(2014년 6월~2015년 5월) 정무수석실이 국가정보원장의 도움을 받아 완성하고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문체부에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검은 문체부가 이후 우수도서를 선정·보급하는 ‘세종도서 선정 심사’에 세월호 관련 서적을 일제히 배제한 것도 블랙리스트와 관계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검은 문제도서가 선정되지 않도록 세종도서 선정 기준이 바뀌었다는 문체부 관계자의 진술도 확보했다. 세종도서는 문체부 산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학자·출판평론가 등 전문가로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3단계 평가를 거쳐 선정한다. 출판계 핵심 관계자는 경향신문에 “2015년 세종도서 추천 작품 가운데 세월호 참사를 모티브로 만든 문학 서적이 최종 심사단계에서 제외됐다”면서 “심사위원들이 ‘이 책은 꼭 넣어야 한다’며 선정에 합의한 도서가 특별한 이유 없이 최종 배제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치적인 잣대를 들이대 해당 도서 선정을 막으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외상값/최용규 논설위원

    [씨줄날줄] 외상값/최용규 논설위원

    몇 년 전 1960년대 서울 광화문 음식점의 풍속도를 엿볼 수 있는 외상 장부가 발견돼 관심을 끌었다. 막걸리와 소주, 이와 곁들이면 좋을 두부찌개, 생선찌개, 묵 무침…. 주로 소박한 음식을 손님상에 냈던 종로구 ‘사직동 대머리집’의 외상 장부에는 이름깨나 날리던 명사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작곡가 장일남, 영화평론가 정영일, 탤런트 최불암과 이순재, 작가 조지훈과 최일남, 공직자 진념…. 넉넉한 인심, 손님과 주인의 신뢰의 증표인 외상 거래로 대머리집은 새벽녘까지 손님들로 북적댔다. 도시적 보헤미안 기질이 절절히 넘치는 박인환의 대표시 ‘세월이 가면’도 다름 아닌 외상값 덕분에 세상에 나오게 됐다. 당대 예술인들의 아지트였던 명동 술집 ‘은성’을 찾은 박인환 일행은 마신 술로 취기가 오르자 추가 술을 주문했고, 밀린 술값부터 갚으라는 주인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무엇인가를 써 내려 갔다. 작업이 끝나자 옆에 있던 작곡가 이진섭에게 넘겼고, 근처에서 술을 마시던 어느 가수에게 줘 노래를 부르게 했다고 한다.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으나/그의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네’로 시작되는 샹송과도 같은 시 ‘세월이 가면’은 이렇게 탄생했다. 은성의 여주인 최불암의 모친도 외상 장부를 남겼다. 최씨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은성의 외상 장부를 손에 넣었고 외상값만 다 받으면 큰 부자가 될 거란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장부를 펼쳐 보니 장부의 내역은 모두 암호로 돼 있었고 그것으로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최씨는 뒷날 털어놓았다. “달아 놓으세요” 한마디면 거래가 성사됐던 것은 손님과 주인 사이에 신뢰가 끈끈하게 쌓였기 때문이다. 요즘은 외상을 긋지 않고 카드를 긁는 편리한 세상이 됐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신용카드는 1950년대 다이너스 클럽에서 최초로 발급하면서 미국 전역에 퍼졌다. 국내에선 1969년 신세계백화점카드가 처음 등장했다. 편리해졌지만 외상 장부 하나로 신용사회를 만들어 갔던 아날로그 시대를 그리워하는 이가 적지 않다. 하지만 외상 장부는 훈훈한 것만도 아니다. 관가에 사정 바람이 불면 살생부가 되기도 한다. 밀린 외상값을 받아 주겠다며 룸살롱 마담에게 접근, 외상 장부를 손에 넣은 뒤 요리하는 폭력배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다. 학교 앞 문방구점들이 어린이들에게 외상 장부를 만들어 지탄을 사기도 했다. 외상은 ‘값은 나중에 치르기로 하고 물건을 사거나 파는 일’이다. 신뢰가 생명이다. 정부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설 민생 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외상으로 판매한 매출대금을 설 명절까지 회수하지 못할 경우 신보가 보험금을 지급하는 외상매출금채권보험(8000억원)으로 우선 지원하게 된다는 소식이다. 체불도 외상이다. 설 전에 체불 임금도 깨끗이 청산해야 한다.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 ‘캠퍼스 커플’ 부부, 신춘문예를 품다

    ‘캠퍼스 커플’ 부부, 신춘문예를 품다

    신춘문예를 둘러싼 뒷얘기는 늘 풍성하지만 올해는 ‘부부 당선자’가 탄생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서울신문 희곡 부문 당선자인 조현주(왼쪽·39)씨와 경향신문 평론 부문 당선자인 염승숙(오른쪽·35)씨 부부다. 이들 부부는 동국대에서 조씨가 국어국문, 염씨가 문예창작을 전공하며 캠퍼스커플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 9년의 연애를 거쳐 결혼한 인연이 문단 동료로까지 깊게 이어진 셈이다. 조씨는 이번에 처음으로 신춘문예의 영광을 안았고, 염씨는 이미 등단한 소설가로 남편 이름으로 평론 부문에 도전했다 당선 소식을 받아들었다. 두 사람 모두 각자 당선된 부문에서 글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아 당선됐다는 것도 눈길을 끈다. 대학 때부터 소설가를 꿈꿨던 조씨는 졸업 이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습작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다가 연극에 흥미를 느껴 2014년 겨울부터 퇴근 뒤 창작에 몰두했다. 염씨는 대학 졸업반 시절인 2005년에 단편소설로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소설집 세 권과 장편소설 한 권을 낸 소설가다. 하지만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평론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조씨는 “아내가 조심스러운 마음에 내게도 (내 이름으로) 신춘문예에 작품을 냈다는 얘기를 안 해 처음엔 신문사에서 당선 전화를 받고 보이스피싱인 줄 알고 끊었다”며 “서로 웃으며 자축하긴 했는데 우리 얘기가 뉴스가 될 줄은 몰랐다”며 얼떨떨한 기쁨을 전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라라랜드’ 골든글로브 사상 첫 7관왕

    ‘라라랜드’ 골든글로브 사상 첫 7관왕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전초전 격인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역대 최다인 7관왕에 올랐다. ‘라라랜드’는 이날 로스앤젤레스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74회 시상식에서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과 남녀 주연상(라이언 고슬링·에마 스톤)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이상 데이미언 셔젤), 음악상(저스틴 허위츠), 주제가상(‘시티 오브 스타스’)을 받았다. 골든글로브 74년 역사에서 7관왕은 처음이다. ‘라라랜드’는 로스앤젤레스를 무대로 무명 재즈 피아니스트와 배우 지망생의 열정과 사랑을 뮤지컬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가 주관하는 영화·방송 시상식인 골든글로브는 영화의 경우 작품상, 남녀 주연상만 드라마와 뮤지컬·코미디로 부문을 나눠 시상하고 나머지 감독상, 남녀조연상 등은 통합 시상한다. 드라마 부문 작품상은 흑인 소년의 성장기를 다룬 베리 젠킨스 감독의 ‘문라이트’, 남우주연상은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은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케이시 에플렉, 여우주연상은 폴 버호벤 감독의 스릴러 ‘엘르’에서 열연한 이자벨 위페르에게 돌아갔다. 남우조연상은 톰 포드 감독의 스릴러 ‘녹터널 애니멀스’의 애런 존슨, 여우조연상은 덴젤 워싱턴이 연출한 ‘펜스’의 비올라 데이비스가 각각 받았다. 장편애니메이션상은 ‘주토피아’가, 외국어영화상은 ‘엘르’가 수상했다. 한편 ‘라라랜드’는 지난달 7일 국내 개봉해 약 한 달 만에 270여만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명단공개’ 최자♥설리, 김희철 공익근무해제 파티서 첫 만남

    ‘명단공개’ 최자♥설리, 김희철 공익근무해제 파티서 첫 만남

    연예계 대표 커플인 최자(36) 설리(22) 커플의 첫 만남 에피소드가 공개됐다. 9일 tvN ‘명단공개 2017’에서는 ‘연예계 최강 나이 파괴 스타 커플들’ 특집이 방송됐다. 이날 5위에는 14살 나이차를 극복한 최자 설리 커플이 꼽혔다. 두 사람은 지난 2013년 손을 잡고 산책하는 모습과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포착돼 열애설에 휩싸였다. 당시 열애를 부인하던 두 사람은 최자의 잃어버린 지갑에서 발견된 커플사진이 공개되면서 열애 사실을 인정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에 대해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김희철 씨가 2013년 공익근무해제파티를 했는데, 그 파티장에서 최자 씨가 설리 씨에게 연락처를 물어봤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최자와 설리가 연락을 주고 받던 어느 날 만나 맥주 데이트를 했는데 바로 그 날이 두 사람의 1일이 됐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사진=tvN ‘명단공개 2017’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인기작 귀환·신작의 도전…뮤지컬, 지루할 틈 없네

    인기작 귀환·신작의 도전…뮤지컬, 지루할 틈 없네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 청탁금지법 시행,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 등 한파로 얼어붙은 공연계가 새해를 맞아 다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예년에 비해 눈에 띄는 블록버스터급 규모의 대형 작품은 줄었지만 대신 국내 관객들에게 친숙한 작품들이 무대를 채울 예정이다. 첫선을 보이는 신작도 기대를 모은다. 신진 예술가들의 신선한 시도가 엿보이는 창작 뮤지컬도 풍성하다. 꽁꽁 닫힌 당신의 지갑과 마음을 절로 열게 할 뮤지컬들을 모아 봤다. 믿고 보는 인기 작품이 대거 귀환한다. 놓쳐서 아쉬워하고 있던 팬이라면 주목할 만하다. 2000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빌리 엘리어트’가 7년 만에 국내 팬들을 다시 만난다. 전 연령층의 고른 사랑을 받은 이 작품은 미국 토니상, 영국 올리비에상, 한국 뮤지컬대상 등 전 세계적으로 80여개의 상을 휩쓸었다. 영국 북부 탄광촌에서 발레리노를 꿈꾸는 11세 소년 빌리의 성장 과정을 그렸다. 말이 필요 없는 스테디셀러 ‘캣츠’도 3년 만에 돌아온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젤리클 고양이들의 축제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2007년 공연 당시 매회 100% 가까운 예매율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한 국립극장 무대에 10년 만에 다시 오른다.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자존심 ‘시카고’ 오리지널팀도 2년 만에 앙코르 무대를 갖는다. 쏟아지는 ‘흥행 보증수표’ 사이에서 처음 소개되는 작품도 적지 않다. 오는 4월 공연되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가장 눈길을 끈다. 무미건조한 일상에 빠져 있던 사진작가와 평범한 주부의 나흘간의 사랑을 그린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박병성 더뮤지컬 편집장은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포스트 스티븐 손드하임’으로 꼽힐 만큼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토니상 수상 작곡가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이 맡은 작품으로, 젊은 관객층 위주인 우리나라에서 중년층을 타깃으로 새로운 관객몰이를 할지 주목된다”고 설명했다. 셰익스피어의 불멸의 걸작 ‘햄릿’도 초연된다. 인간의 본질적인 고뇌를 묵직한 선율을 통해 전할 예정이다. 2012년 창작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로 국내 팬들의 호평을 받은 에이드리언 오즈먼드가 연출을 맡았다. ‘나폴레옹’도 오는 7월 국내 관객과 처음 마주한다. 1994년 캐나다, 영국 등에서 공연된 이 작품은 위대한 황제 나폴레옹과 그를 조종하는 탈레랑의 질투와 배신을 담았다. 뮤지컬 배우 류정한의 프로듀서 데뷔작으로 화제를 모은 ‘시라노’도 기대작이다. ‘지킬앤하이드’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과 작가 레슬리 브리커스의 작품으로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시라노 드베르주라크’를 원작으로 했다. 영국의 전설적인 왕 아더왕의 전설을 소재로 한 ‘엑스칼리버’와 1960년대 미국의 전설적인 흑인 R&B 여성그룹 ‘슈프림스’의 이야기를 그린 ‘드림걸즈’도 국내에 첫선을 보인다. 뮤지컬계에 신바람을 불러일으킬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창작극도 눈에 띈다. 조선시대 서자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던 7명의 젊은이의 활극 ‘칠서’(가제)가 11월 무대에 오른다. ‘잃어버린 얼굴 1895’의 장성희 작가, 민찬홍 작곡가 콤비가 의기투합한 두 번째 작업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꾼 젊은이들의 신명 넘치는 활극이다. 2015년 초연 당시 화제작으로 꼽힌 ‘신과 함께’는 관객의 호응에 힘입어 재공연한다.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저승 최고의 변호사와 평범한 소시민의 저승 재판기를 다룬다. 그 밖에 한국의 대표적 시인들의 시처럼 극적인 생애를 다룬 신작들도 무대에 오른다. 천재 시인 이상 서거 80주년을 기념한 ‘꾿빠이 이상’, 시인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동주, 달을 쏘다’도 재공연된다. 경기 침체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은 공연계가 흥행이 안정적인 인기작 위주로 라인업을 꾸린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주기마다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하면서 진화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브로드웨이에서 대형 작품이 흥행에 실패하면 갑자기 소극장 뮤지컬이 등장하는 것처럼 대형 흥행작에 피로해진 뮤지컬 시장에 중소형 작품이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으며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면서 “젊은 연출진과 배우들이 마음껏 상상력을 펼치면서 담금질을 하고, 소극장에서 훈련된 인력이 다시 대극장으로 옮겨가는 유기적인 구조를 구축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정치 뒷담화] 대세론보다 양자대결

    [정치 뒷담화] 대세론보다 양자대결

    ① 절대적 시간부족 ② 潘, 제3지대 흡수 ‘빅텐트’ 가능성 ③ 이재명·김종인의 위협 사이다 입담에 억대 연봉… 회당 출연료 20만~30만원… 기자·시인 등 경력 다채 정치 평론가들이 시쳇말로 ‘대세’다. 각종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과 보도전문채널 등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펼치고 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정국’, 그에 이은 ‘조기 대선 정국’ 등 정치 평론가들의 ‘먹잇감’이 도처에 깔렸다. 시청률도 어느 정치 평론가를 기용하느냐에 따라 춤을 춘다. 유명 정치 평론가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는 유력 정치인들조차 출연을 위해 ‘줄대기’를 하기도 한다. 때문에 ‘잘나가는’ 정치 평론가는 ‘입심’ 하나만으로 억대 연봉을 받는다. 연예인급 대우나 다름없다. 평론가들의 주요 활동 무대인 종편 등에 패널로 출연하면 50분짜리 프로그램 기준 회당 20만~30만원의 출연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론가가 자신의 이름을 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회당 50만~100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이들의 출연료는 실력과 인지도보다는 출연 횟수와 분량에 따라 달라진다. 이름값 높은 평론가는 하루에 2~4편씩 ‘겹치기 출연’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당 100만원’, ‘억대 연봉’도 그림의 떡은 아니다. 종편에 패널 등으로 출연하는 한 전직 국회의원은 “수입만 놓고 보면 의원 때보다 더 낫다”고 귀띔했다. 출연 횟수를 기준으로 ‘정치 평론계의 빅5’로 평가받는 이들이 있다. 민영삼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와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황태순 정치평론가, 최병묵 전 월간조선 편집장,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 등이 꼽힌다. 그런가 하면 이른바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 평론가도 있다. 한 평론가는 “평론가는 자신의 세계관과 역사관을 갖고 언행해야 하는데 막무가내로 우기고 근거 없는 주장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등 정치 혐오감을 조장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그런 경우 나도 ‘A하고는 못 한다’고 말하며, 방송국에서도 모니터링을 하면서 ‘저 사람은 다음에 부르면 안 되겠다’고 내부적으로 ‘물관리’를 하기도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평론가들의 경력은 각양각색이다. 먼저 이론적 토대를 바탕으로 현실 정치의 맥을 짚는 정치 전공 교수들이 있다. 의원 보좌관이나 선거 전략 담당자, 당 정책 연구위원 등 현장 경험이 있는 인사들은 실제 경험을 녹여 시청자들의 구미를 당기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정치부 기자 경험을 살려 활동하는 평론가가 있는가 하면, 시인 등 작가도 있다. 낙선한 전직 국회의원들이 직접 종편 패널로 나서기도 한다. 반대로 새누리당 이양수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 등은 종편 패널로 출연하다가 높아진 인지도를 바탕으로 국회에 입성한 대표적인 사례다. 출신 직업은 다르지만 입담과 정치전망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이들이 내다보는 대선 판도는 어떨까. ‘원조 평론가’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과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패널의 대명사’ 황태순 정치평론가와 민영삼·박상병 교수, 안철수 캠프 출신의 서양호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윤태곤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등 유명 정치 평론가 7명을 통해 차기 대선 전망을 내다봤다. 평론가들은 대부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는 데다 ‘탄핵 정국’ 등을 거치면서 유권자 지형이 진보 진영에 다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바뀌는 상황임에도 아직 ‘대세론’으로 단정 짓기에는 이르다고 평가했다. 대선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다자 구도보다는 양자 대결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도 분석했다. 문 전 대표의 대세론이 시기상조라는 주장에 대해 윤 실장은 “문 전 대표의 20% 안팎 지지율이 높긴 하지만 대세론으로 볼 만큼 절대적인 수치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면서 “어느 한 지역이나 특정 세대를 꽉 잡았다고 보기 힘든 수치”라고 평가했다. 김 원장은 문 전 대표에게 남은 지지율 변동 요인 중에 부정적인 것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민주연구소 개헌 보고서’ 논란에서도 드러났듯 문 전 대표 측이 겉으로는 촛불 민심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상 탄핵 국면에 정치 전략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게 노출되고 있으며 2012년 대선에 비해 지지기반이 오히려 축소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황 평론가는 문 전 대표의 당선이 여당 지지층에 달렸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투표를 안 한 것으로 판단되는 2007년 대선을 보면 약 800만명의 표심이 투표를 포기했다”면서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던 사람들이 투표장에 나오지 않으면 문 전 대표가 싱겁게 이길 것”이라는 설명이다. 대권을 누가 거머쥐느냐는 경쟁 구도에 달렸다는 의견도 주를 이뤘다. 현재 다자 구도 위주의 여론조사에서는 문 전 대표가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정작 차기 대선은 양자 대결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실제 대선이 현재의 ‘4당 구도’로 치러질 것으로 전망하는 평론가는 거의 없었다. 신 교수는 “조기 대선이라는 비상 상황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여러 후보가 뜰 기회가 없다”면서 “차분하게 정책과 참신성 혹은 경륜 등을 보여 주고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 평론가도 “50일 안팎의 짧은 시간에 각 진영은 다 결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선이 양자 구도로 흐른다면 문 전 대표의 ‘카운터 파트너’는 누가 될까.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첫손에 꼽힌다. 반 전 총장이 여권과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등 제3지대를 끌어당겨 ‘빅텐트’를 만들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신 교수는 ‘반기문 자석 현상’이 정계 개편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기문이라는 자석이 오면 쇠붙이들이 막 달라붙는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면서 “이번 대선은 정계 개편까지도 동시에 일어나는 아주 특이한 대선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 실장은 “새누리당에 남아 있는 정진석 전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충청 세력이 반 전 총장과 제3지대의 텐트를 치게 되면 이미 탈당해 있는 30명의 개혁보수신당과 국민의당의 후보들이 빅텐트로 올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데 이렇게 될 경우 문 전 대표가 상당히 위협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누가 되든 반·안 연대에서 문 전 대표를 위협할 후보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제3지대에서 반기문과 안철수가 손을 잡고 둘 중 하나가 후보로 나오면 이 그룹에 개헌론자들이 합류할 것”이라면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같은 사람이 나와 분위기를 띄우면 이 그룹에서 대통령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윤 실장은 “반기문의 지지율엔 자기 능력과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섞여 있는데 현재로서는 얼마큼이 본인의 것이고 얼마큼이 여당 표인지 나눠서 보기가 어렵다. 반 전 총장이 국내에 들어와서 움직여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러운 분석을 내놨다. 서 소장은 “문 전 대표를 제외한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김부겸 의원 등 나머지 민주당 후보군의 지지율을 모두 합치면 45% 정도가 된다”면서 “새누리당, 민주당, 국민의당, 개혁보수신당의 4당 체제에서 문 전 대표가 경선만 잘 치러 이들의 지지율을 끌어안는다면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대선 판을 흔들 또 다른 변수로는 이 시장과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거론됐다. 민 실장은 “친노 색깔이 없는 이 시장이 수도권에서 어느 정도 가능성만 보여 주면 경선에서 호남 당원들이 쏠릴 확률이 있어서 민주당 내 이변으로 이 시장의 ‘대역전 반란극’이 있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김 원장은 “김 전 대표가 민주당의 틀을 벗어난다면 (문 전 대표가) 엄청 휘청거리는 상황이 될 수 있다”면서 “그는 세력을 엮는 데 파괴력을 가지고 있으며 본인이 직접 개헌을 수행할 과도대통령의 구심점으로 부상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사이먼 래틀의 아듀, 바통 잇는 페트렌코, 세계 1위 명성 RCO…성찬, 귀의 포식

    사이먼 래틀의 아듀, 바통 잇는 페트렌코, 세계 1위 명성 RCO…성찬, 귀의 포식

    새해 국내 클래식 무대는 말 그대로 ‘성찬’이다. 독일, 네덜란드, 영국, 미국 등 각국을 대표하는 대형 오케스트라, 거장부터 차세대 마에스트로, 스타 독주자에 명망 높은 실내악단까지…. 고정된 수요에 비해 공급 과잉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로 빼곡한 새해 클래식 무대의 주인공들이다. 2~3년 앞서 스케줄을 잡는 클래식 공연의 특성상 ‘청탁금지법’ 여파로 올해가 마지막 잔치일 거란 우려도 번진다. 세계 클래식 음악의 현재를 만들어 가는 이들을 만날 기회가 더 기다려지는 이유다. #9·11월, 베를린필의 내일과 오늘을 듣다 올해 클래식 팬들의 눈길은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두고 바통 터치를 하는 두 지휘자에게 집중될 것 같다. 2018년을 끝으로 베를린필하모닉을 떠나는 명장 사이먼 래틀과 이후 지휘봉을 넘겨받는 키릴 페트렌코가 두 달 간격으로 한국을 찾기 때문이다.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필의 마지막 내한 공연은 오는 11월 19~2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진다. 베를린필은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시카’,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3번, 진은숙의 현대 작품(미정) 등을 관객에게 들려준다. 송현민 음악평론가는 “기존 베를린필 공연이 악단의 특성을 볼 수 있는 레퍼토리였다면 이번 프로그램은 20세기 음악에 강세를 보이는 지휘자인 사이먼 래틀이 자신의 진가를 보여 주는 레퍼토리들로 꾸린, 말 그대로 ‘아듀’ 성격의 무대”라고 소개했다. 해외 공연에서 외부 협연자를 잘 들이지 않았던 베를린필은 클래식계의 슈퍼스타인 피아니스트 랑랑과 함께하며 래틀과의 마지막 무대에 확실한 인상을 남길 예정이다. 랑랑은 난기교로 악명 높은 버르토크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선보인다. 2018년부터 베를린필 역사상 첫 러시아 지휘자로 활약하게 될 키릴 페트렌코는 9월 1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처음 국내 관객과 마주한다.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하는 그는 정교하면서도 드라마틱한 지휘로 세계가 주목하는 지휘자다. #美 빅5 ‘필라델피아’… 젊은 사운드를 듣다 그라모폰에서 세계 1위 오케스트라로 꼽힌 로열콘세르트헤바우(RCO)는 11월 15~16일 롯데콘서트홀을 찾아 같은 달 내한하는 래틀의 베를린필과 ‘최고의 사운드’를 겨룬다. 상임지휘자 다니엘레 가티의 지휘로 브람스 교향곡 1번과 말러 교향곡 4번을 연주한다. ‘클래식계의 차르’로 불리는 발레리 게르기예프도 마린스키오케스트라와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등으로 러시아의 서정을 전한다. 12월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다. 올해는 키릴 페트렌코를 비롯해 야닉 네제 세갱, 대니얼 하딩 등 40대 젊은 지휘자들의 잇단 내한도 눈에 띈다. 파리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대니얼 하딩은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를 이끌고 2월 2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말러 교향곡 4번을 들려준다.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의 차기 음악감독으로 낙점된 야닉 네제 세갱은 미국 ‘빅5 오케스트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와 6월 7~8일 롯데콘서트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다. 노승림 음악칼럼니스트는 “페트렌코는 도를 넘지 않는 수준에서 정확하게 지휘하면서도 극단적인 역동성을 연출하는 경우가 많고 하딩은 디테일에 강하면서도 온건한 스타일”이라며 “이들 젊은 지휘자는 연주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조정자 역할을 하면서 악단을 이끄는 방식이 민주적이라는 것도 특징”이라고 말했다. 조성진, 김선욱, 백건우, 카티아 부니아티슈빌리 등 유명 독주자들과 내공 있는 앙상블들의 무대도 올해 기대작으로 꼽힌다. 3월 7일 LG아트센터에서 예정된 이자벨 파우스트, 알렉산드르 멜니코프, 장기엔 케라스의 트리오 공연은 세 연주자의 돋보이는 개성이 얼마나 균형 있게 어울리는지 볼 수 있는 조합으로 평가받는다. 소프라노 임선혜가 데스피나 역으로 합류하는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여자는 다 그래’(4월 28일 롯데콘서트홀)는 다가가기 쉬우면서도 다채로운 오페라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무대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신년 인터뷰] “국가 혁신은 내 삶이자 꿈… 2020년 총·대선 동시 실시하자”

    [신년 인터뷰] “국가 혁신은 내 삶이자 꿈… 2020년 총·대선 동시 실시하자”

    “2019년 개헌… 19대 임기 3년만”… 지지율 질문엔 “오를 일만” 낙관 “제3지대 출마 생각해본 적 없다”… ‘불평등 문제 해소’ 대선공약 강조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신문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온 국민이 대한민국의 총체적 개혁을 요구하는 시점에 시대적 요구에 따르기로 결심했다”면서 “평생을 혁신과 공공의 삶을 살아온 저는 낡은 질서를 청산하고 새로운 세상을 누구보다 잘 만들 수 있다”고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박 시장은 2일 오전 페이스북에 올린 “결심이 섰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에서 “대한민국이 거듭나려면 유능한 혁신가가 필요하다”고 대선 출마 선언을 했다. 박 시장은 세밑인 지난달 2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시장직을 유지하며 대선 경선을 뛰겠다”고 밝혔다.<서울신문 2016년 12월 30일자> 박 시장은 “사회의 혁신, 국가의 혁신은 박원순의 삶이었고 꿈이었다”면서 “도탄에 빠진 절박한 국민의 삶을 가장 잘 일으켜 세울 수 있고 대한민국의 거대한 전환, 대혁신을 기필코 이루겠다”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3%대 낮은 지지율’에 대해서는 “나는 저평가 우량주”라며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뜻을 지지율이 급상승한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도 얘기했다”고 했다. 그는 “대권 의지를 밝히는 것 자체가 (지지율의) 중요한 변수”라면서 “더 떨어질 것 없이 오를 일만 남았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탈당 후 제3지대 출마설’에 대해 “민주당은 내가 선택한 정당이고 민주당 외연이 확장하는 데 제 역량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제3지대는 생각해 본 적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 시장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출마설은 “정치 평론가의 영역”이라면서 “대선 후보로 경쟁력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최종적으로 국민이 평가하고 선택할 것”이라고 했다. 개헌 시기는 2019년을 제시했다. 박 시장은 “탄핵과 60일 대선 기간 중 다 정리되기 어렵지 않을까”라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인 2019년까지 정치권과 국민 여론을 수렴해서 헌법 개정안을 만들고 다음해인 2020년 총·대선을 동시 실시해 구체제를 청산하자”고 제안했다. 차기 19대 대통령의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자는 주장이다. 그는 “제7공화국은 3·1운동 임시정부 이후 100년 만에 새로운 대한민국 100년을 구상, 설계하는 어마어마한 역할을 할 것이다. 소시민의 삶을 제약하는 수많은 악법이 있다. 검찰·재벌개혁도 (현) 법령에 문제가 많다. 법제처를 ‘악법 개폐청’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박 시장은 “제가 이를(악법들을) 총체적으로 바꾸자고 죽어라고 일해 왔는데, 혁신가적 마인드가 있는 사람, 국민 합의를 모으는 소통·협치의 달인이 (다음 대권 후보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주요 대선 공약으로 “구태여 말한다면 불평등 문제의 해소”라고 강조했다. 이어 “99대1의 사회가 너무나 심각해서 개인의 삶이 고통에 빠진 것은 물론 시장실패가 경제성장의 가능성을 삭감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서울시가 2011년 이래 추진해 온 중소기업·경제민주화, 노동·복지·일자리 창출이 다 같은 맥락”이라고 내세웠다. 차기 대통령의 자질로 박 시장은 “첫째는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통찰력, 둘째는 한 사람의 영웅이 필요한 게 아니고 국민이 위대한 시대라는 점에서 의견일치를 만드는 협력·협치의 힘, 셋째는 이를 실용적으로 실천해 낼 추진력”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박 시장은 “차기 대선은 고질적인 지역구도, 색깔 논쟁, 진영 대결이 아니라 새 시대의 비전을 경쟁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면서 “말과 구호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실천하며 살아왔는가, 혁신적인 삶을 살아왔는가, 어떤 성취를 보여 주었는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걸어온 길을 보면 그 사람이 걸어갈 길을 알 수 있다”면서 인권 변호사 활동과 참여연대에서 인권수호, 정경유착 근절과 경제 민주화를 추구해 온 자신이 ‘불통과 적폐를 극복하는’ 최적의 대통령 후보라고 강조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당선 소감] 어느덧 길이 된 글…성근 글을 깊은 사유로 채워 나갈 것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당선 소감] 어느덧 길이 된 글…성근 글을 깊은 사유로 채워 나갈 것

    글과 함께 오랜 시간 걸어왔습니다. 모르는 사이 글은 길이 되어 있었습니다. 글 속에서 또 다른 길들인 시·소설·평론이 태어났습니다. 서로 침투하고 기대고 나눠 주면서 글에 혈색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자리에 대해 말해 주는 이 글들을 껴안아 줍니다. 비평과 창작으로 경계 없는 글을 쓰겠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제는 평론으로 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문과 기호에 의해 한쪽으로 쏠려 버린 문학을 위해, 세공을 기다리는 원석들을 위해 성근 글을 깊은 사유로 채우며 문학을 자랑스러워하겠습니다. 아직 여지가 많은 글을 뽑아주신 이광호, 김미현 선생님 고맙습니다. 접었다 펴며 공간을 지워나가는 새의 날갯짓처럼 분발하여 그 여백을 메우겠습니다. 비평은 당당한 자아의 나타남이라고 하신 전영태 선생님, 시와 비평은 자신과 타자와의 혹독한 투쟁이라고 늦깎이를 격려해주신 이승하 선생님, 현실을 직시하고 대면하면서 소설을 쓰도록 하신 방현석 선생님, 너그러운 받아들임이 곧 글을 쓰는 마음임을 이제는 알겠습니다. 글에 빠져 찬란한 코발트블루 코로나를 꿈꾸는 아내를 가만히 바라봐 준 상천씨, 동희, 송희 사랑합니다. ‘젊은 소설’(계간 문학나무)에서 정용준 작가를 찾아내게 해 주신 황충상 선생님, 생기 넘치는 학우들,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는 질문을 척척 받아 준 책들과, 머릿속 소란을 가라앉혀 준 도서관에게도 머리를 조아립니다. ▲1961년 제주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졸업 ▲중앙대 대학원 문학예술컨텐츠학과 박사 과정
  •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해부된 육체:부분이 발설하는 단서들 - 김효숙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해부된 육체:부분이 발설하는 단서들 - 김효숙

    인간의 몸이 고깃덩어리와 무엇이 다른가. 이러한 질문은 인간에 대한 전일적 관점을 위반하는 데서 시작한다.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도발적 상상력을 끌어와 보면 이러한 점은 더 명백해진다. 인간을 꿈틀거리는 생명덩어리, 즉 고기로 표현한 그의 이미지에 기대면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새로이 증명할 방법을 탐구한다. 이때 우리는, 완벽한 몸이라는 정형을 벗어나 감각과 존재를 해방하고 자유를 부여하기 위해 본능의 심연까지 가 닿으려 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인간의 살과 고기의 살점을 저울에 달 때와 정용준의 관점은 다음 같은 문장에서 겹친다. “모든 고기는 저울 위에서 평등하기 때문이다”(‘개들’,105쪽). 함량과 수치만을 기준으로 따지면 인간은 고기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무게가 고기와 동급으로 처리된다는 사실이 어리둥절하다. 베이컨의 고기-인간들은 2) 육체라는 전체성으로부터 해방되면서 정형과 규격을 위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뇨·혈액·타액·정액 같은 체액들, 한쪽이 지나치게 비대하거나 홀쭉해진 형체들을 그의 그림은 보여 준다. 여기에 정용준의 소설은 해부하고 해체한 육체의 일부분들과 조각들, 먹다 버린 음식물 찌꺼기처럼 넘치는 비만한 살들, 지문, 주민등록번호, 냄새 같은 기호들을 추가한다. 육체라는 전체로부터 일부분이 끊임없이 탈주하는 그곳에서 인간은 재정의된다. 흘러나온 육체의 일부분들이 스스로 의미를 발설하면서 전체성으로서 육체의 허위가 무너지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존재자가 이 지구 상에 있는 한 완결할 수 없는 질문, 그래서 우리는 반복하여 묻는다. 그 물음이 단지 존재의 물질성을 해명하려는 것이 아닌 한 실존 그 자체로서 무수한 질문을 품는다. 해부된 육체의 일그러지고 녹아내린 듯한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라고 누군가가 주문한다면 공포를 주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갈가리 찢어지거나 분해된 육체 3)의 성분들, 일부분이 지나치게 비대한 육체는 미학적이지 않으므로. 그래서 우리는 물질과 물질이 부딪쳐 상처 나고 찢어진 것을 원상태로 되돌리려 애쓴다. 완결된 육체, 곧 육체의 전체성으로부터 이탈하는 현상을 죽음으로 보기 때문이다. 온전한 형태를 갖춘 몸이 와해될 때 인간은 이른바 고기가 되고 말 테니까. 살점 일부와 한 컵의 피, 한 바가지의 오줌으로 존재가 정의된다면 그것은 과연 한 점 얼룩일 뿐일까. 이러한 의문을 품고서 정용준의 소설로 들어가보면 우리는 거기서 육체의 질곡과 해방을 동시에 경험한다. 정용준의 소설은 세계를 이루는 존재자들을 되도록 부분적으로 보여 준다. 완전체로서 육체가 아니라 그것을 쪼갬으로써 개별성과 존재다움을 드러낸다. 쪼개진 그 조각에 장식이란 없으며 당연히 아름답지도 않다. 자연 상태 그대로 인간들은 거칠고 낯설고 섬뜩하기까지 하다. 몸의 조직에 정신을 심으면서 정용준의 소설은 국부로 전체를 드러낸다. 그것은 전체성으로서보다 피 한 방울, 지문, 살점 일부분들에 압착되어 있다. 몸은 해체되면서 전체를 말하고, 부분은 전체로 나아간다. 정용준의 소설은 가족공동체로부터 발화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유사한 소재를 다루는 동시대 작가들과 구별된다. 그는 존재를 말하기 위해 우리 삶의 작은 조직들에 주목하고, 몸을 해체하듯 관계를 해체한다. 롤랑 바르트 식으로 말하면, 우리는 그러한 조직들에 대해 말할 수 없지만 정용준은 ‘말한다’. 사진만이 인간의 육체를 죽임으로써 전체를 보여 준다는 바르트의 사유방식으로 말하면 정용준은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우리 몸을 죽이지 않음으로써 일부분으로 접근한다. 미소한 부분으로부터 존재의미를 캐면서 가장 생생한 육감을 재현해 내려 한다. 심지어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까지도 정용준의 육감은 벋는다. 존재가 어느 한 부분의 신체조각으로 증명될 때 우리는 이 세계의 존재자들에 대한 또 다른 이해방식을 얻게 된다. 보이지만 ‘없는’ 쁘리즈락 우리 몸은 ‘근대’라는 개념이 만들어 낸 하나의 물질이다. 시간은 몸의 물기를 쥐어짜면서 흐르고, 우리의 몸은 점점 건조해지고 단단해져 간다. 시간에 휩쓸려 가는 물질로서의 육체는 점점 추악해지고, 위선 속에서만 순결성을 띤다. 이 세계는 온통 ‘금지’ 구역이자 그것을 무너뜨리려는 육체들이 에너지를 발산하는 곳이기도 하다. 육체를 무너뜨리고 분해하고서야 위선의 고리는 끊어진다. 개인을 넘어선 인류 전체의 육체에 대한 이야기가 그때 탄생한다. 그것은 어느 개인의 몸에 관한 담론이 아니며, 불멸하는 육체를 이미지화한 비개인적인 것이다. 금지에 결박된 덩어리로서 몸이 아니라, 타고난 본성을 그 몸의 일부로 자유롭게 구가하는 생명성이다. 사회의 습속을 배반하고서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몸, 자연의 일부를 떼어다 놓은 듯 거칠고 기이한 몸들은 그때 허위에서 해방된다. 자연의 법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지 않는 상태로 존재한다는 사실. 이때 우리 몸은 사회라는 인위적이고 완강한 간섭보다 자연이라는 거칠고 전체적인 범주 안에서 더 자유롭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소설이란 바로 그러한 지점에 구겨 박힌 육체를 불러내는 장르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 세계가 우리에게 존재란 무엇인지를 다시 물어온다면 위와 같은 단언만으로는 그 답이 불충분하다. 여기에 정용준 소설의 고민이 자리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말할 필요 없는 사회적 기호를 우리는 두 개 갖고 있다. 지문과 주민등록번호다. 전자가 개별 신체의 주소지라면 후자는 개인의 번지수다. 두 개 코드는 인간 개체에게 한편의 안정과 다른 편의 위험을 동시에 안겨 준다. 존재를 나타낸다는 것은 안전을 보호받는다는 의미와 그것이 위협당하는 현상을 동시에 내포한다. 인간의 나타남이 사회의 가시적 존재임을 증명해 준다면, 존재의 숨김에 대한 탐문은 비가시적 공간의 인간에 대한 것이 아닐까. 가시적이라는 분명한 현상 가운데서도 모든 타자는 불가사의할 수밖에 없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비가시적 존재와 가시적 존재 간 차별성은 없다. 가시적인 존재자에 대한 탐문도 결국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474번’에서 우리는 이런 존재를 만난다. “그의 지문은 등록되어 있지 않았고 실제로 그에게는 주민등록번호 자체가 없었다.” 가시적이지만 증명이 불가능한 존재를 어떻게 명명해야 할까. ‘그’라는 3인칭만이, 열다섯 명을 살해한 흉악범이라는 오명만이 그를 말해 준다. 살인을 한 이유도 ‘그냥’이다. 지문과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무존재자가 그것이 있는 존재자를 살해했으므로 사건은 실종된다. 법이 작동하는 곳은 물리적 공간인데 그것을 적용할 존재가 없다. 죄를 물어야 하지만 죄인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사건은 애당초 일어나지 않았다며 종결지으면 될 일이 아닌가. 정용준은 여기서 ‘사건 있음’과 실존재의 부재라는 현상을 넘어 하나의 알레고리를 던져 준다. ‘가해자 없음’과, 분명히 누군가가 죽어 없어진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을. 여기에 이 소설의 발화의지가 있다. 가해자 없음으로부터 정용준은 오히려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지문’ 부재현상으로부터 소설로 접근해 가자. 지문은 인간의 몸에 새겨진, 인간의 개별성을 나타내는 유일한 기호이므로. 정용준은 이 소설에서 지문 없는 존재 곧 몸이 없는 존재와, 살인자의 ‘의도’를 추적하기보다 살인 ‘현상’을 보여줌으로써 그 존재의 ‘없음’에 대해 말한다. 살인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무심코” “거리낌 없이” 몹시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러한 살인자에게 우리는 정신병력이 있는지,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지, 금품이 필요했는지 등을 물을 수가 없다. 작가가 살인동기부터 이렇게 밝혀 놓고 있어서이다. 그렇다면 살인동기의 자연스러움을 그 존재의 어떤 특성과 연계해야 하는가. 살인이란 타자가 가지고 있는 모든 가능성을 절멸하는 것이기에 범죄임이 분명한데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가해자 없음’과 ‘무심코’라는 두 가지 단서를 얻었다. 이에 대한 단정은 잠시 유보하고 또 다른 단서를 위해 조금 더 앞으로 나가 보자. 그 살인현상에 대해 정용준은 이렇게 해명한다. “사자가 사슴의 숨통을 끊고서 자신을 만든 창조자에게 용서를 빌지 않”고 “자신의 용맹함을 자랑하며 포효하”듯 그가 살인을 했다고. 그는 “잔인한 성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스스로도 정신이상에 대해 부정”한다고. 그는 죄책감이 없으며 살인을 해놓고도 용맹을 자랑하는 존재다. 이쯤에서 우리의 사고에 진전이 있어야 한다. 무성無性, 이렇게 존재를 확정하고서 정용준이 보여 준 살인자의 특성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손에 잡혀 오는 것이 있다. 그의 본성의 그러함과, 보이지 않는 현상으로부터 확보한 ‘그’라는 존재. 존재를 감추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그는 탁월한 킬러다. 존재가 은닉하는 문제를 감추는 식으로 존재하는 자를 신으로 명명한 하이데거 방식대로라면 그는 최상의 존재자 4)다. 자연 이후 문명 이전의 존재자, 인간의 죄를 물으며 공격적으로 성장한 종교현상을 빗대는 존재다. 그가 누구인지 증명할 수 없으므로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니 ‘무성’이다. 이렇게 단정하고 보면 생각의 가지는 다시 갈라진다. 정용준은 ‘그’로부터 신의 존재를 환유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원적 사고를 넘어서려 한다는 것을, 그의 소설은 이것일 수도 저것일 수도 있는 열린 지층이라는 것을. 단정은 그의 소설의 지층을 단면화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하나의 지층을 거기에 더 얹어 놓자. 그는 아버지와 누나 사이에 태어났지만 이 부부는 혼인신고를 할 수 없는 근친이다. 그래서 현실공간으로 부상할 수 없는 존재, 정용준의 표현대로 ‘쁘리즈락’이다. 가시적이므로 분명한 존재자이지만 사회의 법망에 등록할 수 없으므로 ‘없는 사람’이다. 법의 그물망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존재들과 달리, 정화할 수 없는 원죄의 피가 흐르는 몸, 주소지도 번지수도 없으므로 무성의 캐릭터다. 이 ‘없음’ 현상에 ‘신’이라는 비가시적 존재가 자꾸만 얹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뭔가가 자꾸 겹쳐지는데도 명징하지 않은 그 존재가. 도스토옙스키가 ‘백치’에서 미쉬낀 공작에게 신의 속성을 심어놓았듯 정용준은 ‘474번’의 그에게 신의 속성을 이식하지 않았을까. 극단적으로 말하면,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으나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소재지에 신도 ‘그’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 작가의 질문은 이어진다. 자연에서 벌어지는 살해에 과연 의도가 있는가? 의도된 살해가 증오나 이해관계의 결과물이라면, 의도 없는 살해는 자연현상처럼 일상적인 것이 아닐까라는. 살해 후의 정서와 애도 행위가 죽음과 나를 관계 맺게 하지만 이때 살해에는 아무런 정감도 없으므로 죽음에 대해 내가 떠안을 책무란 없다. 살해는 일상처럼 이뤄진다. 충동·쾌락·분노 같은 격동이 없으므로 그에게는 괴로움도 없다. ‘도깨비감투’를 쓰면 자신이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동화에서처럼, 존재의 사라짐과 비밀의 완전 봉인은 동시에 진행된다. 그런 점을 알게 된 아이가 악행에 빠지듯 그는 ‘순수’하게 살인을 한다. 지능 높은 어린이들을 훈련시켜 체제에 반대하는 양민을 죽이게 한 폴포트 정권도 이러한 순진무구함이 더 악랄하다는 것을 입증하지 않았던가. 순수함과 죄책감 없음은 동류의 정서임을, 그러므로 순수하다는 것은 오히려 나쁜 것이며, ‘순수한 죄인’은 더 극악함을 일깨운다. 도깨비감투를 쓴 아이, 지능 높은 순수한 아이, ‘474번’의 그는 이때 최상의 존재자가 된다. 정용준의 소설은 이러한 방식으로 이 세계에 널린 ‘현상’들을 증명한다. 그의 소설의 두께는 그렇게 형성된다. 그러니 앞서 우리가 본 ‘그’가 ‘지문’ 곧 육체가 없는 존재임을 확인한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소설의 또 다른 문면으로 접근하기 위해 ‘그’의 주민등록번호 부재 현상을 보자. 번호가 부여되면서 존재를 인정받는 사회에서 번호 부재는 곧 존재 부재를 일컫는다. 정용준은 이 존재를 쁘리즈락이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이를 요즘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유령현상과는 구별하고 싶다. 번호가 존재를 증명하지만 그 번호가 사실은 존재를 희미하게 지워 나가는 기호임을 우리는 ‘벽’의 염전 일꾼들에서 본 바 있다. 가혹한 구타, 죽음 같은 침묵의 공간, 감정은 일체 거세된 채 오직 복종하고, 죽음에 이르러 물질이 되어 가는 그들의 몸을 보면서 우리는 21, 23, 9 같은 숫자일 뿐인 그들이 누구였는지 알 수 없어진다. 존재를 지워 존재를 드러내는 이러한 화법으로부터 우리의 생각은 다시 갈라진다. 그러면서, 번호는 우리의 육체를 알기 위해 매겨진 하나의 기호이며, 육체를 아는 것으로부터 모든 지식은 출발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언제나 타자일 수밖에 없는 육체, 거울로서의 육체, 이 육체로부터 우리의 모든 ‘앎’은 출발한다. ‘그’의 몸이 없으므로 우리가 그를 알 수 없는 것은 그러므로 당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사건 수사관들이 ‘유령’이라며 고개를 젓고, 지문도 주민등록번호도 없어서 존재증명이 불가능한 그. 상대는 나를 볼 수 없으나 나는 상대를 꿰뚫어보는 일방향의 시선이 목적성을 가질 때 악의든 호의든 가장 완벽한 존재자가 되는 지점을 이 소설은 놓치지 않는다. 상처 충돌의 흔적-체액들 다시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는 일에서부터 사유가 탄생한 그리스 철학과, 그리스로의 회귀를 꿈꾼 셰익스피어가 ‘리어왕’(1막 4장)에서 물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맥락 안에서 인류가 존재를 증명해 온 것이 사실이다. 정의는 다르지만 결국 하나의 맥락으로 수렴되는 존재증명, 그것은 결국 인간의 ‘몸’이 ‘운동’할 때부터 물질로 전락하는 때까지를 이르는 것이 아닐까. 존재에 대한 탐색은 그 무엇보다 꾸준히 정치하게 진행되어 왔고, 정용준의 소설은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이른바 ‘겹치는’ 존재자들로부터 인식의 깊이를 수립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타자의 시선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하에 우리는 언제나 바라보는 ‘시선’이었으며 동시에 ‘응시’당하는 존재이지 않은가. 이는 하이데거가 타자를 ‘함께 있음’ 즉 서로 관계하는 방식으로 본 것으로, 정용준 소설의 타자들 중에는 냉혈한의 정서로 관계망을 형성한 인물들이 제법 있다. 이를테면, 한 점 살이나 오줌 얼룩으로 존재를 말하고, 각기 다른 피들이 혼종된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음습하게 그리면서 존재를 증명하는 ‘개들’, 혈액 투석으로 빠져나가는 단백질을 채워 넣는 일에 골몰하며 계란을 먹어치우는 아버지를 보여 주면서, 새 피를 보충하고 허약해진 ‘근육’을 회복하려는 남성의 고투를 그린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가 그러하다. 한 점 살과 피·눈물·오줌 같은 체액들로 그가 누군지를 말하기 위해 정용준은 미소한 부분을 응시한다. 피는 수치數値라는 정확성으로 우리를 근원의 비밀로 이끌지만 정용준의 소설은 이러한 과학적 접근을 위해 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거부함으로써 ‘수치’를 따지려드는 우리를 긴장시킨다. 이 소설에서 피는 부패의 습격을 막으려는 살에 대한 메타포가 아닐까. 살과 몸은 제 안에서 피를 단속할 때는 부패하지 않지만 피가 쏟아져 살만 남을 때 몸은 썩는 것. 그러므로 살아 있는 살과 몸에는 피가 방부제다. 존재는 보여 준다, 인간의 체액 중 피가 가장 원초적인 진실이라는 것을. 존재의 근원을 은폐하는 것과, 진실을 은폐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가장 깊은 속성에 관계된 것임을 작가는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리라. 여기, ‘피’라는 물질만이 개별자와 가족을 묶는 준거가 될 수 있는지를 묻는 작품이 있다. 타자의 피와 내 피의 원소가 겹쳐 하나의 혈맥을 이루는 양태를 생물학적으로는 가족으로 정의할 수 있으나,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도 정용준의 소설에는 등장한다. ‘개들’에서 ‘곰’은 동물세계의 지배자와 동격이다. ‘모란’은 그의 하인이자 아내·종업원·딸이다. 모란이 곰의 하인이자 종업원이라는 데에는 의미 부여가 달리 필요 없다. 그러나 아내이자 딸이라는 자격은 보편을 위반하는 강한 금지를 동반한다. 성생활과 혼인관계의 교차로가 가족이라면, 아내이자 딸이라는 모란의 자격은 근친상간이라는 강한 장치를 내포한다. 성생활의 특권을 합법적으로 누릴 수 있는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근친상간이 꽃피는 두려운 비밀의 세계, “불가결의 접합부로서 끊임없이 환기되고 거부” 5) 되면서 관계의 틀 안으로 수렴되는 욕망이 곰의 아내이자 딸인 모란에게서 발산된다. 그러나 모란이 손님들로부터 ‘연변아가씨’라고 불리는 데에 이르면 또 다른 소격현상에 우리의 의식이 밀린다. 모란이 곰과 혈연관계가 아니며, 원시공간 속 여성 대명사로서 문명 이전 세계에서 가족이 형성되는 양상을 보여 주는, 아직 자연으로부터 미분화한 존재라는 점 때문이다. 이러한 진단은 우리가 앞서 본 ‘474번’의 그가 실정법에 매이지 않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순간과 같은 정서를 몰아온다. 곰과 모란을 이해하기 위해, 이 부부와 동거하는 고아인 ‘나’를 보자. ‘나’에게서 풍기는 다소 불쾌한 징후들, 이를테면 ‘나’는 곰의 아들이라는 자격으로 한 집에 살지만 곰의 아내인 모란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다. 지금이야. 비가 오면 여자들은 마음이 부드러워지거든. 모란의 방에 찾아가. 마음을 고백하고 결혼하자고 말해. 모란도 원하고 있을 거야. 병구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정말?” “정말.”(‘개들’, 120쪽) ‘나’는 욕망의 자연스러운 발현에 충실하다. 노련한 ‘나’가 병구를 꼬드기지만 그것은 불가능을 주문하는 것이고, ‘나’도 그 점을 잘 알기에 모란을 두고 병구와 경쟁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경쟁 상대가 아니기에 사실은 어떤 주문도 가능할지 모른다. 지능이 모자란 병구가 사랑을 위해 고투하는 어수룩한 형태의 결말은 빤하고, 모란을 향한 병구 마음의 경사도와 실패 가능성 또한 비례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니까 모란에게 자신의 존재를 나타낼 날을 기다리며 묵묵히 ‘근육’을 단련하는 냉혈한이다. 이렇게, “이두박근, 승모근, 상박근, 하박근 등 근육”을 키우며 “내 근력은 곰에 비해 어느 정도”인지를 은밀하게 확인해 나간다. ‘곰’은 원시자연의 지배자이므로 나는 곰이라는 법을 뛰어넘기 위해, 즉 모란을 얻기 위해 근육을 단련한다. 곰의 근력에 근접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강화해 가야 할 욕망의 저장고, 그곳은 근육을 단련함으로써만 채워질 것이다. 어머니이자 누나인 모란의 육체와의 연속성과 경계 없음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곰처럼 완력을 갖춰야 한다. 어머니-누나의 경계가 없는, 있다 할지라도 나와 비혈연인 모란과는 피차 내재적 질서가 없는 관계이므로, 우연과 외면성으로 정해진 관계이므로 ‘곰’과 ‘나’에게 모란은 혈연이라는 필연에 묶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성의 욕망을 대변하는 두 인물은 이 세계에 유일한 하와, 곧 자연의 속성을 그대로 간직한 모란에게 똑같이 집중하는 것이다. ‘개들’의 인물 중 우리는 ‘병구’를 지나칠 수 없다. 곰과 ‘나’가 근육으로 자신의 존재를 표명한다면, 병구는 근육들의 세계로부터 일찍이 소외된 자로서 또 다른 신체의 일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것도 죽음으로써. 모란의 방문이 열리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곰”을 보았고, 그 뜻을 알았고, 아는 순간 세계가 열리는 그 지점으로부터 병구를 들여다 보자. 그리고 그 순간 침묵하는 병구의 심정을 헤아려 보자. 모호함이 순간적으로 벗겨지면서 충격을 가하는 인식세계, 병구는 곰의 건장한 몸을 보고 있었고, 성을 인식했고, 그 순간의 눈뜸은 새로운 세계로 입문하는 입사식과 같다. 새로운 세계의 도래는 ‘앎’이라는 충격파가 이전세계의 인식을 부수는 것이다. 곰과 모란이 아프로디지아(aphrodisia, 어떤 형태의 쾌락을 제공해 주는 행위·몸짓·접촉 ; 푸코, 같은 책, 55쪽)를 누리고 있는 그때 수다쟁이인 그가 말이 없어지고, 울보가 울지 않고, 칭얼거리지도 않고, 화도 내지 않고, “멍하니 어둠의 한 지점을 응시”하면서 “무엇인가 깨닫”는 그곳이 ‘앎’의 정곡이다. 그의 시각을 충격하는 것은 미학적인 감정이기보다 본능에 대한 자극이며, 지식에 대한 충동이 그 대상과 맞닥뜨린 순간이다. 병구가 본 곰은 나체였고, 곰의 몸 중 일부분이었으며, 그 조각만으로도 세계의 비밀은 누설되었을 터, 곰의 벗은 몸으로부터 흘러나온 비밀이 그를 충격한다. 일부분이 세계 전체의 환유일 때 그 조각은 본래 체적을 초과하여 팽창하는 게 아닐까. 좁은 문틈으로 바라볼 때도 바깥세계의 면적은 팽창하는 이치대로. 벌거벗은 ‘곰’처럼 ‘개들’은 고깃덩어리 같은 육질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어떤 덩어리가 툭, 이 세계를 흔드는 것을 감지한다. 병구가 곰의 나체를 응시하는 한 몸에 대한 의미생산은 이어진다. 남녀 상호 간 본능적으로 생산되는 몸의 기호들이 상대의 감각을 지배할 때 거기서 비밀이 탄생하고, 그것에 휘어잡히고, 사로잡힌 자는 몸이 부단하게 발설하는 비밀의 노예가 된다. 그러나 비밀은 ‘복종’하지 않는다. 주인인 몸을 언제나 벗어난다. 탈주를 노릴 때만 비밀은 자신의 신분을 확정한다. 그러니 절대성을 갖는 비밀은 없다. 모란의 몸이 생산하는 기호들이 병구에게 와 닿자 세계의 비밀은 열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누설된 비밀 때문에 병구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세계의 비밀을 알아버린 죄인으로서 스스로 그 비밀이 선고한 사형수가 된 셈이다. 성에 대해 발설하는 순간 언어는 세속화라는 폭발력을 갖게 된다. 그 과정은 수습 불가능한 자기 증식력을 동반한다. 그러니 침묵할 수밖에 없다. 그것에 대한 노골적 담론화는 죽음으로 가는 직행통로다. 나타나는 순간 폭발하는 속성 때문에 성은 자신을 숨기는 대가로서만 유지된다. 병구의 죽음은 이렇게 그것의 나타남을 몸소 덮어버린 철저한 제의다. 성을 버리는 것, 그것은 죽음처럼 깊고 캄캄하지만 가장 분명한 가시성이다. “이십 년을 살다 죽은 병구의 사체는 십 개월을 산 도사견보다 작아 보였다”는 지점에는 세계의 비밀을 보게 된 자신을 폐기해 버린 왜소한 몸과, 삶의 마지막 기표인 “오줌으로 변색된 면바지가 까”맣게 남는다. 경련이 일고, 감각이 빠져나가고, 몸은 굳어간다. 이때 흘러나온 오줌은 산 자를 해체하는 마지막 운동의 징표다. 죽음 직전 감각이 마지막으로 운동한 흔적이며, 인간이 물질화되는 바로 직전 현상이다. 병구는 오줌 얼룩을 남기며 이 세계의 비밀로부터 도망쳤고, 그 얼룩은 성이라는 불경스럽고 속된 것으로부터 병구 자신의 욕망을 확인한 육체의 기호일 것이다. 욕망하면서도 수치스럽게 여겨질 수밖에 없는. 안타깝게도, 병구가 스무 살 성년의 문턱을 막 넘어서다 직면한 세계는 그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세계인식의 빛은 병구가 눈을 뜨는 순간 번쩍임과 사그라짐이 동시에 진행되고 만다. 병구는 발설되어서는 안 될 것을 싸안고 캄캄한 죽음 속으로 투신한다. 억압되었으므로 알 수 없었으나 억압을 통해서만 검토되는 성에 대해 허용된 그 시각, 병구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고, 동시에 죽었다. “나를 죽여 주세요”라고 자신의 서투른 삶 같은 글씨를 써놓고서. 베이컨의 그림 한 컷처럼, 그의 가장 강렬한 경험과 인식, ‘지식애’(피터 브룩스)의 흔적은 오줌 얼룩으로 남는다. 그의 몸에서 마지막으로 빠져나온 액체인 오줌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일어난 격렬한 경련의 징표다. 그가 죽음으로써 성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염려도 무화되었다. 부재하고 비표명되도록 숨겨야만 성은 생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성의 본성은 오래도록 은밀하게 유지되어 왔을까. 죽음처럼 절대적인 침묵은 없으므로 차라리 죽음으로써 입을 다물어 버린 병구, 자신에게는 허용되지 않은 저 세계의 문을 죽음으로써 영원히 닫아 버린 것이다. 그럼으로써, 말해져서는 안 될 세계는 폐기되고, 병구의 목숨도 그 비밀처럼 폐기된다. 변하는 살 냄새에 존재 묻기 정용준 소설의 인물들에게서는 눅눅한 냄새가 난다. 이 또한 ‘존재’에 접근하기 위한 후각의 발현으로 보인다. 죽은 것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으므로. 시각에 의존하는 문명인과 달리 정용준의 캐릭터들은 원시 인간처럼 퇴화하지 않은 후각으로 존재의 진실에 접근한다. 원시공간에서 막 생성된 존재가 바닷물로부터 비릿함을 감아올릴 때처럼 개 냄새, ‘모란’ 냄새, 곰팡이 냄새, 비린내, 게 냄새 등으로. 하층계급과 중간계급의 관심사에서 보이는 중요한 차이가 냄새에 대한 태도에 있다는 지적 6)대로라면, 정용준 소설에서는 소외계층의 냄새가 불유쾌한 조짐들을 몰고 온다. 하층민일수록 그들의 습관은 냄새에 더 잘 실려 있다. 이웃은 그들의 습속을 냄새로 타자에게 실어 나르고, 냄새는 이웃에게 번지면서 생명에서 비생명으로 진행한다. 이때 ‘썩음’이라는 현상을 동반하는데, 냄새를 맡는 일은 사멸할 것에 대한 불쾌한 감각의 마지막 쏠림이다. 부패 현상의 끝과 죽음은 같은 지점에 있으며, 죽음이 가까울수록 냄새도 강렬하다. ‘개들’에서의 냄새는 어디에서 오는가. 비와 오물과 진흙으로 뒤범벅된 곳은 개가 도륙당하는 도축장이다. 죽음 냄새가 음습하게 번지면서 불쾌함이 주조를 이룬다. 오래 맡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냄새, 기분을 바꾸려고 다른 데로 신경을 써도 여전히 붙들리는 냄새. 악취도 오래 맡다 보면 휘발되기 마련이나, 그렇지 않다면 어디선가 지속적으로 살이 썩고 있다는 증거다. 오래 씻지 않은 하층민의 삶처럼 눌어붙은 냄새, 고질화된 고통, 그것은 썩어가는 살의 증표다. 생명체는 예외 없이 부패하고, 부패선상에서의 피 흘림과 절규는 살이 단단해지고 건조해질 때까지 진행된다. 그때까지만 우리의 몸은 냄새를 풍긴다. 살 냄새, 즉 우리가 살아 있다는 냄새를. 비가 싫다. 마당은 오물과 진흙으로 뒤범벅되고 냄새는 진해진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개 냄새. 주변을 장악하고 오염시키는 우울한 기운들. 마르지 않은 오줌 위에 누워 철창 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수십 개의 노랗고 빨간 눈들. 플라스틱 바구니를 무겁게 채워 팔이 끊어지도록 들었다 놨다를 반복해도 불쾌한 기분은 가시지 않는다.(‘개들’, 100쪽) 우울하고 물기 마를 날 없고 갈망으로 충혈된 “노랗고 빨간 (개의) 눈들”. 개들처럼 인물들도 습도 높은 공간의 음습함에 지배당한다. 찌든 ‘개 냄새’가 어두운 기운에 섞인 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이질감, 그것은 곧 도축될 짐승의 살 냄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우울한 정서가 깔린 공간에 떠 있는 개들의 처절한 눈빛에서 예정된 죽음을 본다. 질척한 죽음의 세계를 눈에 핏발이 서도록 바라보는 개들. 전망 없이 하강하는 비, 그 빗금들을. 소설 읽기는 해석학의 유혹 7)을 동반한다. 표층 의미가 견인해 내는 숨은 의미를 찾아 들어갈 때 느끼는 쾌락이 없다면 독서행위를 지속하기란 어렵다. 비평은 독서행위의 연장인 만큼, 소설 읽는 즐거움의 다른 표현임을 부정할 수 없다. 정용준 소설의 존재들은 눅진한 그림자처럼 천천히 몸집을 불렸다가 작아지며 이렇게 소설 공간으로 편입된다. 어둠의 한쪽을 잠시 떼어낸 듯한 그 그림자들은 인간의 살이 흘러나온 것처럼 자유롭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를 그것으로부터 격리시킨다. 아래 예문의 ‘비린내’는 핍진한 생명의 냄새를 풍긴다. 나는 수도꼭지를 꽉 잠그고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겨 있는 삶은 계란 두 개를 꺼내들었다. 열려 있는 창문에서 습한 바람이 들어왔고 어디에선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린내가 났다. 나는 창문을 닫고 탁자에 걸터앉아 계란껍데기를 깠다. 갑자기 견딜 수 없이 배가 고팠고 현기증이 났다. 하얗고 부드러운 계란을 반으로 나누고 한쪽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65쪽)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린내”. 그것은 생명의 발원지로부터 확산하는 냄새다. 투석 환자인 아버지가 과도하게 식탐을 부려 다른 환자들보다 계란과 치즈를 더 많이 먹고, 다시 혈액에 독이 쌓여 삶과 죽음이 동시에 진행되지만 생명의지는 죽음을 거부한다. 예문에서 보듯 이러한 생명의지가 ‘나’ 또한 존속게 한다. 인류가 출현하던 그때, 바다에서 시작된 생명이 비린내를 몸에 내장하고 나온 후 우리들 세포에 그대로 삼투된 냄새, 체액을 품은 살이 비린내를 풍기고, 땀을 많이 쏟을수록 생명체는 냄새를 더 짙게 풍긴다. 살아 있으므로 우리의 살은 냄새의 진원지가 되는 것,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썩어가면서 살고 있고, 냄새를 풍기고 살면서 동시에 죽어간다. 살이 내장한 액체들이 다 마르기 전까지만 우리는 생명체인 것이다. 정용준의 소설은 이렇게 인간의 살 냄새와 피 냄새를 그리워하며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 또는 ‘사이’의 문학이다. 다시 ‘474번’으로 돌아가 누나가 사갖고 들어온 꽃게에서 풍기는 ‘진짜’ 냄새를 맡아 보자. 그 냄새는 이제까지 먹어 온 가짜 게맛살과 달리 생경하다. 지금까지 ‘나’는 게맛살이 가공식품이라는 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고, 누나는 누나로서 존재했으므로. 그러나 누나가 꽃게를 사들고 와 ‘진짜’ 모성을 풍김으로써 비극이 불거진다. 몰라도 상관없을 세계를 ‘나’가 알아버린 것이다. “누나가 어머니라는 사실”처럼 가짜 냄새와 진짜 냄새가 겹치고, 이제 진짜가 출현함으로써 자아 탐문이 다른 방향성을 갖는다. ‘나’가 누구인지는 ‘가짜’가 규정해 왔지만 진짜를 아는 순간 나를 충격하는 세계, 끝까지 누나여야 할 존재가 ‘진짜’ 어머니가 된 이때부터 게는 썩은 냄새를 풍긴다. ‘나’가 누나의 존재를 아는 순간부터 진행되는 게의 부패현상, 이는 정용준이 ‘개들’에서 병구를 통해 보여 준 인식의 자국을 따라간다. 앎으로써 세계는 열리지만, 앎이 죽음을 몰고 와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어머니/누나, 진짜 냄새/가짜 냄새로 나뉘는 세계, ‘나’의 존재는 진짜 꽃게 냄새와 게맛살 냄새처럼 섞인다. 어느 쪽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모를 겹침 현상이다. 꽃게는 점점 썩어가고, 냄새는 확산되고, 존재는 죽어간다. 죽음 뒤에는 냄새를 풍기지 않을 존재, 그러므로 모든 존재는 살아 있는 한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를. 존재를 규정하는 데 완벽한 준거가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정용준은, 육체의 일부분들을 열어놓고 그 조각들을 비개인적 욕망의 역사라는 맥락에서 풀어나간다. 피와 눈물과 오줌의 물기가 번들거리는 살은 아름답지 않지만 그것으로도 존재는 증명되고 해방된다. 정용준 소설에서의 ‘부분’들은 비천함의 육체적 표지이기보다 욕망의 현실적 드러남이다. 근대의 합리와 원칙과 정형을 따르지 않고 결합·분해·해체하여 인류의 근원적 욕망을 그 조각에 실어낸 표식이며 현상이며 증상이다. 그곳에 근접해 보면 고귀하다고 할 수 없는 이 작은 조직들에 박힌 ‘존재’가 보인다. “정육점에 들어가서 고깃덩어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살피” 8)는 화가의 역설적 심미안에 정용준의 소설은 다시 중첩된다. ‘나’가 ‘곰’을 죽인 후 “손목을 타고 피와 내장이 그리고 그의 생명이 바닥으로 쏟아지”(‘개들’, 128쪽)는 여기, ‘나’는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모란을 포함하여 모든 부권을 계승하게 될 것이다. 아버지의 몸에서 빠져나온 몸의 일부분이 ‘개의 간식’으로 먹히는 현장에서 벌이는 아들의 저항과 투쟁이 보이는가. 과연 지금, 모든 고기는 저울 위에서 평등하다. 그것은 ‘중량’의 문제가 아니며, 존재가 거부되거나 수용되는 경계에서 육체의 일부분들이 뭉치거나 녹아내리거나 해체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장에 다다른 생명체들에서 오히려 인류의 영속적인 생명의지를 반어법으로 만나면서 ‘존재’를 재확인한다. 소설이 반드시 미의식을 표방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품고 정용준 소설 속 원시의 육체를 바라볼 때 우리는 의도 없는 듯 냉담한 그곳으로부터 낮게 울려나오는 목소리를 듣는다. 남성들조차도 중성 코드를 띠는 곱다란 사회에서 정용준의 소설은 다소 거칠게 인간 육체의 일부를 들어낸다. 전체성에 대한 해체와 저항, 부분으로 해석되는 육체들은 그때도 욕망한다. 전체로부터 흘러나온 조각과 살 냄새로부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자 한다. 그래서 그 물질들의 전일적 주체인 인간은 끊임없이 재정의되고 재증명된다. 나.는.누.구.인.가. ■각주 1)정용준 창작집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문학동네, 2015), ‘가나’(문학과지성사, 2012)를 참조하였다. 이 글은 이 작품집에 실린 ‘개들’, ‘474번’, ‘벽’,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에 대한 고찰이다. 2)프랜시스 베이컨의 회화에서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만들어 내는 고독·공포·절규가 가득하며, 흘러넘치는 비가시적인 힘들이 잔뜩 뒤틀린 채 표현된다. 프랑크 모베르, 박선주 옮김, ‘인간의 피 냄새가 내 눈을 떠나지 않는다’, 그린비, 2015, 117쪽. 3)노태훈은 “인간 근원의 존재론적 탐색을 지속하는 여러 작가들과 (정용준이) 변별되는 중요한 지점이 바로 ‘몸’이라는 실체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라고 말한다. 이는 정용준 소설의 지향을 적시한 것으로 보인다. 노태훈, ‘문학성을 회복하는 방법-정용준,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문학의 오늘’, 2015, 겨울호, 216쪽. 4)엠마뉘엘 레비나스, 김도형 외 옮김, ‘신, 죽음, 그리고 시간’, 그린비, 2013, 9쪽. 5)미셸 푸코, 이규현 옮김, ‘성의 역사 1’, 나남, 2015, 126쪽. 6)슬라보이 지제크, 이현우 외 옮김, ‘폭력이란 무엇인가’, 난장이, 2014, 232쪽. 지제크는 이웃을 “냄새 풍기는 자”로 정의한다 7)위의 책, 118쪽. 지제크는 이를 보다 깊은 의미나 숨겨진 메시지를 찾고자 하는 유혹이라고 말한다. 8)데이비드 실베스터, 주은정 옮김,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디자인하우스, 2016, 161쪽. 저자와 베이컨의 대담 부분.
  •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심사평] 생활에 발붙인 대사·살아 있는 캐릭터… 위트로 완성된 가족극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심사평] 생활에 발붙인 대사·살아 있는 캐릭터… 위트로 완성된 가족극

    올해 희곡 부문 응모작 편수는 모두 161편이다. N포 세대가 처한 현실, 지진과 싱크홀 등 재난 상황 설정, 뷔히너·브레히트·체호프·베케트 등 기존 작품에서 모티프를 가져오거나 신화의 재창작물, 팩션 사극 스토리들, 십대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야기 등 다양함으로 치자면 으뜸이었다. 이 가운데 마지막까지 견주어 읽은 작품은 두 편이다. ‘동물원’은 신춘문예에 맞춤한 내용과 형식을 갖추고 있다. 병원 진료실을 극중 공간으로 두고 4인 등장인물을 통해 대한민국 현실을 진단한다. ‘저항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동물이 되어 간다는 우화적 상황을 점입가경 희극 구조로 담아내고 있으며 담긴 메시지는 간명하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 어떻게 표현될지, 그 의미와 해석은 어떻게 증폭될지를 기대하기보다는 읽는 것만으로도 말끔히 충족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당선작 ‘오늘만 같지 않기를’은 대학로 소극장에서 간간이 볼 수 있는 가족 서사의 반복일지도 모르겠다. 새롭지 않은 전형적인 가족 드라마? 그러나 인물 간의 갈등과 충돌이 살아 있고, 해학적인 관점과 대사에 담긴 위트가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이즈음의 탄핵 정국 속에서 목격하는 많은 파행과 인간성에 대한 회의 때문인지 일상을 유지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윤리 감각과 인정, 삶을 지켜 내는 온기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생활에 발붙인 대사와 살아 있는 캐릭터 창조는 극작가가 되려는 이의 소중한 자산이다. 글 쓰는 삶의 정처로 연극 동네에 들어선 것을, 무대라는 터전의 새 입주민이 된 것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장성희 연극평론가, 고연옥 극작가
  •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심사평] 새로운 에너지로 가득 찬 시편… 독창성·몰입도 탁월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심사평] 새로운 에너지로 가득 찬 시편… 독창성·몰입도 탁월

    ‘신예(新銳)’란 새롭게 등장해 만만찮은 실력이나 기세를 떨치는 대상을 향해 쓰는 말이다. 신예가 될 신인시인에게 기대하는 우선적 요건을 ‘얼마나 오래 쓸 것인가’에서 찾고자 했다. 오래 쓰기 위해서는 문장이 힘차고, 쓰고 싶고 쓸 수밖에 없는 운명적 열정이 배어나고, 개성적인 스타일을 담보해야 한다. 자신감에서 비롯되는 독창성, 몰입에서 비롯되는 에너지야말로 신인의 요건일 것이다. 본심에 오른 열 분의 작품들은 언어 구사력과 시적 완성도가 돋보였으나 문화적 지표에 기댄 채 포즈화되곤 했다. 시의 세련된 문화화는 모험을 포기한 대가일 것이다. 그럼에도 ‘상상 수프’와 ‘10월 삽화’의 시적 가능성은 녹록지 않았다. 전자의 경우 어휘와 문장은 화려하고 세련되었으나 그 강점이 약점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에 대해 응답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일상에 대한 섬세한 천착이 믿음직했으나 자기가 감각한 것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되는 설명적 묘사가 나르시시즘으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었다. 타자화된 세계를 감각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신동혁의 ‘진단’을 당선작으로 내보낸다. 보들레르에서 이상에 이르기까지, 세계에 대한 병리학적 ‘진단’은 현대시의 오랜 자세다. 지도와 처방전을, 모래와 모국어를, 침대와 바다에 대한 추문을 연결시키는 감각은 풍부하고 그 이미지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이 젊은 시인은 “혼잣말을 엿들을 때 두 귀가 가장 뜨거워지는” 부재의 역설을, “모르는 햇빛만을 받아 적는” 시의 비의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막 탄생하려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으며 독자로 하여금 의문의 창문들을 열게끔 설계된 그의 시편들이, 끊임없는 자기갱신으로 시간의 수압을 잘 견뎌내기 바란다. 심사위원 정끝별 시인, 황현산 문학평론가
  •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자들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자들

    문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환한 웃음으로 문학 인생의 첫 발걸음을 자축하고 있다. 1992년생 20대부터 1943년생 70대까지 그 어느 해보다 폭넓은 당선자들의 연령대는 경계와 장벽 없이 모든 이들을 껴안는 문학의 깊고 너른 품을 새삼 깨닫게 한다. 오른쪽부터 문은강(단편소설), 신동혁(시), 임민영(동화), 조현주(희곡), 김효숙(평론), 송정자(시조) 당선자.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심사평] 치밀한 설득력에 개성 있는 관점…안정적 시각까지 더해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심사평] 치밀한 설득력에 개성 있는 관점…안정적 시각까지 더해

    ‘지금 이곳’의 문제를 중시하는 시의성과 ‘결론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문제제기 능력을 기준으로 총 21편 투고작 중에서 4편을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신춘문예의 미덕인 새로운 시각과 도전적인 패기를 확인하려는 심사이기도 했다. ‘사소한 것들의 공동, 우리가 기억하는 시간의 곁’(이병국)은 윤성희와 김금희의 최근 소설을 중심으로 사소한 것이나 작은 것들의 연대를 통한 부드러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차분하게 탐색하고 있으나 결론이 당위론적이었다. ‘어리석은 자들의 발걸음’(문종필)은 김남주, 백무산, 송경동의 시들이 전해 주는 전사(戰士)적 문학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활력이 매력적이었지만 논의가 다소 산만했다. ‘아직 모르는 몸과 그 적(敵)들’(정기석)은 김언 시에 나타난 몸의 불구성을 근대적 사유의 지배에 저항하는 담론으로 부각시키는 과정에서 개성적 시각이 좀더 보완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당선작으로 결정된 ‘해부된 육체:부분이 발설하는 단서들’(김효숙)은 정용준의 소설을 대상으로 육체라는 전체성을 쪼갬으로써 얻어진 ‘부분’의 개별성이 어떻게 정형과 규칙을 위반하는지 치밀하게 설득시킨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회화와 연관시키는 지점에서 논리적 비약이 엿보이지만, 이론이나 관념의 과잉을 자제하면서 얼룩, 냄새, 피 등의 구체적 이미지와 연결시킴으로써 개성을 확보하고 있다. 정용준 소설의 원시성이나 섬뜩함, 강렬함과 연결시키는 작가론의 시각도 안정적이고 논리적이다. 무엇보다도 현실에 부재하는 욕망이나 비정상적 가족 관계를 육체적 반란의 흔적으로 체화시켜 분석하는 점이 한계에 직면한 현재의 인간 실존을 되돌아보게 한다. 지나치게 보편적인 분석은 공허하고, 안전하지만 간접화된 해석은 개성을 상실하기 쉽다. 그 당연한 위험 ‘사이’에서 고민하고 성찰하는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해 본다. 심사위원 이광호 문학평론가, 김미현 문학평론가
  • [책꽂이]

    [책꽂이]

    19대 대통령(박시영·이상일·김지연 지음, 토크쇼 펴냄) 2017년 대선을 바라보는 민심, 화두, 그리고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의 집권 전략을 분석하고 대선 결과를 예측한다. 대선 주자들에 대한 평가와 인식도 담았다. 564쪽. 2만원. 결정의 리더십(오연천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서울대 총장을 지낸 저자가 다양한 의사결정의 구체적인 사례와 혁신의 메커니즘을 분석해 최종 결정의 핵심 동력원을 탐구한다. 340쪽. 2만원. 대통령을 완성하는 사람(이강래 지음, 형설라이프 펴냄) 대통령 의전관을 지낸 저자가 우리 역대 대통령들과 세계 정상들의 의전 스타일을 서술하며 그에 얽힌 뒷얘기를 풀어냈다. 304쪽. 1만 4000원. 독일을 이야기하다 1·2(한독경제인회 지음, 새녘출판사 펴냄) 독일에서 살며 독일을 체험해 온 기업·금융·외교·언론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쓴 독일의 역사, 경제, 정치 사회, 문화 이야기. 각 권 330쪽 내외. 각 권 1만 8000원. 나를 도발한다(김장훈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 올해 데뷔 25년차 가수인 김장훈의 첫 에세이집. 방황했던 성장기, 가수의 길에 들어선 사연, 음악관과 공연 철학 등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80쪽. 1만 5000원. 작업 인문학(김갑수 지음, 살림 펴냄) 시인이자 문화평론가인 저자가 ‘구라발’을 앞세워 이성을 꼬시는 작업의 도구로서 인문학을 이야기한다. 자칭 원조 ‘뇌섹남’의 연애에 써먹기 좋은 교양들이 설파돼 있다. 300쪽. 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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