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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한테 태어난 게 잘못된 것 같아 미안하다”… 편지 남기고 아들 떠난 중국인 아버지

    “아빠한테 태어난 게 잘못된 것 같아 미안하다”… 편지 남기고 아들 떠난 중국인 아버지

    “아들아 ,네가 잘못 태어난 것 같다. 나한테서 태어난 게 잘못된 거 같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해줘야 하는데 그렇게 못해 미안하게 생각한다. 나쁜 아빠가.” 8일 제주경찰청 등에 따르면 관광목적으로 제주에 입도해 ‘좋은 곳에서 자라달라’는 영문편지를 남기고 아들(8)을 유기한 중국 국적 남성 A(37)씨가 지난 1일 구속 기소해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지난 7일 A씨를 구속 기소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앞서 지난달 14일 상하이를 통해 관광 목적으로 아들과 제주에 무사증으로 입국했다. 며칠간 제주시내 숙박업소에서 지내다가 경비가 떨어지자 같은 달 17일부터 서귀포 혁신도시 인근 공원에서 약 일주일여 노숙생활을 해 온 것 같다”면서 “아이를 한국보육원에 맡기려고 몇번 시도했으나 보육원 측에서 자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아 결국 편지와 함께 아들을 두고 사라졌다”고 말했다. 신고한 서귀포시청 관계자는 공원 화장실 인근에서 아이가 아빠를 찾는 모습을 보고 112에 신고했다.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아들은 아빠와 공원에서 밤을 보내고 일어나보니 아빠가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아들에게 남긴 편지에는 영어로 ‘아이에게 미안하다. 중국보다 환경이 나은 한국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좋은 시설에서 생활하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내용이 적힌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아내 없이 양육하며 아들을 잘 키울 자신이 없었다. 중국보다 더 나은 환경의 한국 아동보호시설에서 자라길 바라고 그랬다. 한국에 가면 좋은 환경 속에서 아이가 교육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진술했다. A씨는 아들을 놔두고 자신은 시내로 나와 있다가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추적한 경찰에 의해 서귀포시의 한 도로에서 긴급체포했다. A씨는 한달짜리 무사증을 발급받아 와서 이달 13일 출국해야 할 상황이다. 제주의 한 아동보호시설에 머물던 아들은 현재 영사관을 통해 중국에 있는 친척인 고모와 연결돼 지난 7일 출국했다. 경찰 관계자는 “두장의 편지를 보니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아빠의 심정은 충분히 공감은 가지만 방법과 선택이 잘못됐다”면서 “아이를 버릴 생각보다 같이 잘 살아보려고 노력했어야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 무슨 사연인가요?…헤밍웨이 편지 한 통 3억원

    무슨 사연인가요?…헤밍웨이 편지 한 통 3억원

    미국의 세계적인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는 1935년 ‘아프리카 푸른 언덕’이라는 제목으로 논픽션 에세이 시리즈를 펴냈다. 1933년 12월 두 번째 부인 폴린 파이퍼(1895~1951)와 함께 떠난 동부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에서 한달씩이나 겪은 일들을 오롯이 엮었다. 그는 탄자니아, 콩고, 케냐, 르완다 등 동부 아프리카를 돌며 사냥을 즐기기도 했다. 네 번째 배우자인 메리 웰시(1908~1986)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시간을 보내던 1954년 1월엔 다신 곱씹고 싶지 않을 사건을 만난다. 두 차례 잇달아 비행기 추락사고를 당한다. 23일 그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관광용 경비행기를 빌려 벨기에령 콩고 상공을 날아다니는 선물을 건넨다. 그러나 머치슨 폭포를 관람하고 돌아오다가 새떼를 피해 비상착륙을 시도하던 비행기가 버려진 전신주에 부딪혀 추락하고 만다. 헤밍웨이는 머리를 다쳤으며, 메리는 갈비뼈 두 개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악어 천국인 정글에서 힘겹게 하룻밤을 보낸 부부는 이튿날인 24일 관광객을 태운 보트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돼 시름을 달래는 듯했다. 이후 우간다 남부도시 엔테베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다른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이번엔 비행기가 이륙 직후 갑작스러운 화재로 폭발했다. 헤밍웨이는 중증 화상과 뇌진탕을 입는다. 뇌척수액이 흘러나올 정도로 심각한 사고였다. 첫 번째 사고 소식만을 들은 언론사 기자들은 헤밍웨이의 부고를 게재했다. 그런데 헤밍웨이는 무사히 엔테베에 도착해 부고 기사를 읽으며 몇 주간 회복하게 된다. 이러한 처지에도 헤밍웨이는 이듬해 2월 둘째아들 패트릭(당시 25세)과 아내 메리를 동행해 낚시 여행을 떠났다. 그렇지만 극심한 통증으로 인해 일그러진 성격 탓에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마음과 달리 자꾸 엇나갔고,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 뒤로 술에 의지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온갖 병환에 찌들었다. 헤밍웨이는 4월 17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한 호텔에서 자신의 변호사 알프레드 라이스에게 편지를 썼다. 그는 “오른쪽 신장이 파열되고 간과 비장이 손상됐다”며 나빠진 건강 상태를 밝혔다. 이어 “오른팔은 뼈까지 3도 화상을 입었고 왼손 또한 화상을 입어 타이핑을 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케냐에서 경험한 사자 사냥을 두고도 “빌린 총이 너무 낡아 부품들을 테이프로 붙여서 사용했다. 회사의 부주의한 배송이 내 목숨을 위협했다”고 적었다. 4장 분량에 사고 내용을 담은 편지 한 통이 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네이트 샌더스 경매에서 23만 7055달러(약 3억 1602만원)에 팔렸다. 헤밍웨이는 엘리자베스 해들리 리처드슨(1891~1979)과 1921년 첫 결혼식을 올렸으나 6년 만에 헤어졌고, 1927년 폴린 파이퍼와 재혼해 1940년까지 13년을 함께 보냈다. 곧이어 마사 겔혼(1908–1998)을 만나 세 번째 연분을 맺었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1945년까지 5년을 겨우 버텼다. 비행기 추락 때 나란히 ‘천당’과 ‘지옥’을 들락날락했던 메리 웰시가 1961년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을 선택한 남편 장례식을 치르며 마지막 15년간 곁을 지켰다. 메리는 1946년 영국 런던에서 ‘타임’ 특파원으로 일하다 헤밍웨이를 만났다.
  • “한번만 도와주세요…” ‘일진 의혹’ 김히어라→기자에 쓴 편지 내용

    “한번만 도와주세요…” ‘일진 의혹’ 김히어라→기자에 쓴 편지 내용

    배우 김히어라가 중학교 시절 ‘일진’으로 활동하며 학교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한 가운데, 김히어라의 일진설을 최초 보도한 매체가 그의 손편지를 공개했다. 7일 디스패치는 4개월 전인 지난 5월 17일 김히어라에게 받은 손편지를 공개했다. 디스패치는 “3개월 이상의 보도 유예 기간을 둔 이유는 김히어라의 인정과 반성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제보 중 검증할 수 없는 피해 사례는 배제한 채 김히어라가 직접 ‘방관자’라고 밝힌 부분들에 대해 보도했다”고 말했다. 공개된 손편지에서 김히어라는 “미성숙했던 청소년 때의 방황을 인정하고 그런 삶을 많이 부끄러워하기도, 그런 저를 자학하기도, 기억 못 하는 저를 의심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적었다. 이어 “놀림과 따보다는 주목을 받고 관심을 받는 것이 낫다고 미성숙한 시선으로 판단하여 살았던 것 같다”면서도 “제 양심을 걸고서 어떤 약자를, 소외된 계층을 악의적으로, 지속적으로 즐기며 괴롭히고 때리는 가해를 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내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위협 또는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이번 일로 하여 깨닫고 인지하고 반성하게 됐지만, 고등학교 때부터는 제가 잘하는 것을 찾고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았다”고 했다. 이른바 ‘일진 모임’으로 지목된 ‘빅○○’의 우두머리라는 제보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 후배들이 저를 공포의 대상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머리가 멍했고, 제가 친구들을 때리고 억지로 혹은 강압적으로 주동자의 역할을 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전혀 상상 못 했던 일”이라며 “과거의 제 행동과 방황의 시간을 이번 계기로 곱씹게 되면서 많은 반성과 자책과 안일하게 넘겼던, 침묵했던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됐다”고 반성했다. 김히어라는 “미성숙했을 때를 인정하나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를 가해한 적이 정말 없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면서 “이런 일들이 없던 일로 될 수 없다는 것, 내 과거를 되돌릴 수 없지만 저는 학창 시절 방황 끝에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 또 간절히 원하는 연기를 위해서 치열하게 그동안 애쓰며 열심히 살았고 사람들을 품으며, 많이 나누며 살려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게 조금만 기회를 주신다면 더 좋은 작품으로 혹은 제가 작품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면 더 성장하는 모습들을 오랫동안 끊임없이 보여드리고 싶다. 한 번만 도와달라. 많은 빚을 다 갚으며 살도록 하겠다”고 호소했다. 앞서 디스패치는 지난 6일 김히어라가 중학생 시절 금품 갈취, 폭언, 폭행 등을 저지르던 일진 모임의 멤버였다고 주장했다. 김히어라의 친한 동생이 그를 위해 금품을 갈취했다가 함께 처벌받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히어라는 해당 보도를 통해 일진 모임에 속해 있던 것은 인정했으나 폭행, 폭언 등에 가담했다는 의혹은 부인했다. 친한 동생의 금품 갈취에 대해서는 “내가 시킨 일이 아니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후 김히어라 소속사 그램엔터테인먼트는 공식입장을 내 “김히어라 배우가 중학교 재학 시절 친구들끼리 만든 ‘빅○○’라는 카페에 가입해 그 일원들과 어울렸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외에 제기된 의혹 내용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며 일진설을 전면 부인했다. 아울러 “김히어라는 일진 활동을 한 일이 없고 일진으로 활동했다고 인정한 일도, 학교폭력에 가담한 일도 없다”면서 “배우의 명예를 훼손하는 악의적 행위에 강력하게 법정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생활비 아꼈다” 현금 5000만원 두고 사라진 기부천사

    “생활비 아꼈다” 현금 5000만원 두고 사라진 기부천사

    경기 수원시는 익명의 기부자가 5000만원을 기부했다고 지난 6일 밝혔다. 수원시장은 기부자를 수소문하고 나섰다. 수원시에 따르면 오전 9시 30분쯤 모자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중년 여성이 광교2동행정복지센터 복지행정팀 민원대에 종이봉투를 올려놓고 말없이 센터를 떠났다. 봉투에는 고무줄로 묶은 5만원권 뭉치와 손 편지가 들어있었다. 이 여성은 편지에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며 광교에 살고 있다. 생활비에서 아껴 여러 해 동안 적금을 들어 5000만원을 만들었다”며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은 여러 가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적었다. 수원시는 이 여성이 두고 간 성금을 수원시사회복지협의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광교2동 정숙미 행정민원팀장은 “간식을 두고 가는 분들이 종종 있어서 이번에도 그런 줄 알았는데 큰돈이 들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며 “기부자의 뜻대로 어려운 분들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이재준 수원시장도 소셜미디어(SNS)에 “생활비를 아껴 여러 해 동안 모은 돈으로 어려운 가정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기부자님의 편지에 가슴이 따뜻해져 온다. 5000만원을 두고 가신 시민을 찾는다”는 글을 게시했다. 그러면서 이 시장은 “(익명 기부자)뜻에 따라 (성금이)정말 좋은 곳에 쓰일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 佛, 아바야 입고 등교한 여학생 귀가 조치

    佛, 아바야 입고 등교한 여학생 귀가 조치

    프랑스에서 교복 의무화 조치가 시행된 첫날 여학생 67명에게 이슬람 전통 의상인 아바야를 바꿔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귀가 조치가 내려졌다. AFP통신에 따르면 가브리엘 아탈 교육부 장관은 5일(현지시간) 프랑스 방송 BFM에서 “개학 첫날 아바야를 입고 등교한 약 300명의 여학생 중 대다수가 아바야를 벗는 데 동의했다”며 “귀가 조치된 여학생 가족에게는 ‘세속주의는 제약이 아니라 자유’라는 내용의 편지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프랑스는 2004년부터 세속주의법에 따라 정치나 교육 등 공적 영역에서 특정 종교를 드러내는 복장이나 표식 착용을 금지했다. 대형 기독교 십자가, 유대인 키파, 이슬람 히잡을 명시했다. 회색지대에 있던 아바야는 지난 4일 포함됐다. 종교단체인 ‘무슬림의 권리를 위한 행동’(ADM)은 최고법원인 국가평의회에 아바야와 남성 복장인 카미스에 대한 금지명령 조치를 취소해달라고 요청했다. 국가평의회는 이날 교육부 조치의 위헌성 여부를 심의할 예정이다. 프랑스는 1802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황제가 국가 공교육을 통해 교복 의무화를 도입한 이래 1968년 문화혁명 전까지 제도를 실행했다. 이는 우파 진영에선 평등의 상징이자 사회적 지위의 평준화를 의미하지만, 좌파 진영에선 문화 다양성을 해치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위주의적 조처로 비친다. 최근에는 마린 르펜을 비롯해 극우 정당 국민연합(RN) 의원들이 교복 의무화를 정책 의제로 꺼내 논쟁을 불렀다. 하지만 급물살을 탄 건 고교 문학교사 출신인 영부인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가 지난 1월 르 파리지앵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교복을 입으며 괜찮다고 생각했다. 교복은 학생들 간 차이를 지우고, 아침에 옷을 고르는 데 쓰는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말하면서부터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사회,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브리지트 여사의 조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어려운 이웃 도와달라”…익명의 기부자 수원시 광교2동행정복지센터에 5000만원 두고 떠나

    “어려운 이웃 도와달라”…익명의 기부자 수원시 광교2동행정복지센터에 5000만원 두고 떠나

    익명의 기부자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해달라’며 수원시 광교2동행정복지센터에 5000만원과 편지를 놓고 가 주변을 훈훈하게 하고 있다. 6일 수원시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30분쯤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낀 중년 여성이 수원시 광교2동행정복지센터로 들어왔다. 이 여성은 복지행정팀 민원대 위에 종이봉투를 올려놓고,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봉투를 열어 본 직원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봉투 안에는 고무줄로 꽁꽁 싸맨 5만원권 뭉치와 손 편지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기부자는 편지에서 “생활비에서 아껴 여러 해 동안 적금을 들어 5000만원을 만들었다”며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은 여러 가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광교2동 직원들은 익명의 기부자를 찾아 나섰지만 이미 떠난 뒤였다. 차도 가져오지 않아 차량 번호를 확인할 수도 없었다. 정숙미 광교2동 행정민원팀장은 “간식을 두고 가는 주민들이 종종 있어 이번에도 그런 줄 알았는데, 큰돈이 들어 있었다”며 “선글라스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셔서 기부자가 누구인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수원시는 익명의 기부자가 두고 간 성금을 수원시사회복지협의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 佛 아바야 입고 등교한 여학생 67명 귀가조치

    佛 아바야 입고 등교한 여학생 67명 귀가조치

    프랑스에서 교복 의무화 조치가 시행된 첫 날 67명의 여학생이 이슬람 전통 의상인 아바야를 입고 등교했다는 이유로 귀가 조치를 당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가브리엘 아탈 교육부 장관은 5일(현지시간) 프랑스 방송 BFM에서 “개학 첫날 약 300명의 여학생이 아바야를 입고 등교했고, 이중 67명은 아바야 갈아입기를 거부해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아바야를 입고 등교한 대다수의 여학생이 아바야를 벗는 데 동의했다”며 “귀가 조치를 당한 여학생들에게는 ‘세속주의는 제약이 아니라 자유’라는 내용의 편지를 가족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2004년부터 세속주의법에 따라 정치나 교육 등 공적인 영역에서 특정 종교를 드러내는 복장이나 표식을 착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때 대형 기독교 십자가, 유대인 키파, 이슬람 히잡 착용을 명시적으로 금지했다. 회색지대에 있던 아바야는 지난 4일부터 금지됐다. 무슬림 단체인 ‘무슬림의 권리를 위한 행동’(ADM)은 프랑스 정부 당국을 상대로 프랑스 최고 법원인 국가평의회에 아바야 금지와 남성 복장에 해당하는 카미스에 대한 금지 명령 조치를 취소해달라고 요청했다. 국가평의회는 이날 프랑스 교육부의 착용 금지 조치가 위헌성이 있는지 심의할 예정이다. 프랑스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황제가 1802년 국가 공교육을 만들며 교복 의무화를 도입한 이래로 1968년 문화혁명 전까지 교복을 의무 착용했다. 이렇듯 교복 의무화는 우파 진영에서는 평등의 상징이자 사회적 지위의 평준화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좌파 진영에서는 문화 다양성을 해치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위주의적 조처로 여겨진다. 최근에는 마린 르펜을 비롯해 극우 정당 국민연합(RN) 소속 의원들이 교복 의무화를 정책 의제로 꺼내들면서 논쟁이 됐다. 하지만 교복 의무화 조치가 급물살을 탄 건 고등학교 문학교사 출신인 영부인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가 지난 1월 르 파리지앵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교복을 입으며 생활했고, 괜찮다고 생각했다”며 “교복은 학생들 간 차이를 지우고, 아침에 옷을 고르는 데 쓰는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말하면서부터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사회,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브리지트 여사의 조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드라큘라, 알고보니 피눈물 흘리는 채식주의자? [핵잼 사이언스]

    드라큘라, 알고보니 피눈물 흘리는 채식주의자? [핵잼 사이언스]

    지금까지도 숱한 영화의 소재로 등장하고 있는 드라큘라가 사실은 '채식주의자'라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최근 최근 이탈리아 카타니아 대학 등 공동연구팀은 드라큘라의 실존 모델인 ‘블라드 3세 드라쿨레아‘가 실제로는 채식을 위주로 한 식단을 가졌을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드라큘라는 실제 역사 속 인물이다. 블라드 3세는 지난 1431년 루마니아의 원류인 왈라키아(발라히아) 공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그는 왕위에 오른 후 강력한 군주로 거듭나면서 오스만 제국의 군대를 물리친 용장(勇將)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무려 8만명에 달하는 오스만인들을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했는데 대표적으로 죄인을 산 채로 꼬챙이에 꿰여 서서히 죽이는 것을 즐겼다. 이 때문에 그의 별칭은 블라드 체페슈로, 체페슈는 루마니아어로 가시 혹은 꼬챙이라는 뜻이다. 이번 연구는 최근 보도된 블라드 3세가 헤모라크리아(haemolacria)라는 희소병으로 피가 섞인 눈물을 흘렸다는 연구결과에 이어진 것이다. 이같은 결과의 근거가 된 것은 지난 1475년 블라드 3세가 직접 쓴 편지 등 세가지 문서에 기반한다.카타니아 대학 연구팀은 지난 5월 이 편지에서 생전 그가 남긴 피와 땀, 지문, 타액을 추출하는데 성공했다. 사람이 종이에 글을 쓰는 과정에서 피부와의 접촉을 통해 다양한 물질과 단백질이 남는 것에 착안해 이를 화학적으로 분석한 것. 그 결과 연구팀은 이 편지에서 동물성 식품 단백질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논문의 공동저자인 글렙 질베르스타인 박사는 영국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편지 속의) 식품 단백질은 식물성 식품에서만 발견된다"면서 "블라드 3세가 실제로는 채식주의자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다만 질베르스타인 박사는 "생전 그가 채식을 한 것은 스스로의 욕구라기보다는 필요에 의한 것일 수 있다"면서 "15세기 유럽은 매우 추워 식량이 별로 없었으며 유럽 귀족들도 매우 빈약한 식단으로 고기를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카타니아 대학 연구팀은 같은 편지를 분석한 결과 블라드 3세가 헤모라크리아라는 매우 희소한 질환을 앓았을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연구를 이끈 빈센조 쿤솔로 교수는 “우리의 데이터가 완벽하다고 할 수 없지만 블라드 3세는 말년에 헤모라크리아라는 희소병을 앓아 피가 섞인 눈물을 흘렸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그는 아마도 호흡기 질환과 피부 염증 등을 앓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연구결과를 토대로 추측한다면 생전의 진짜 드라큘라는 피눈물을 흘리는 채식주의자인 셈.    한편 그가 드라큘라라는 이름을 얻게된 사연은 아버지 블라드 2세가 드라큘(Dracul)로 불렸기 때문인데, 드라큘라는 그의 아들을 의미한다. 특히 드라큘은 라틴어로 드래곤이라는 뜻도 있지만 악마라는 의미도 갖고있다. 이후 블라드 3세의 악명은 영국작가 브람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의 모티브가 되면서 그는 사람을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의 대명사가 됐다. 
  • “동기들 다 승진…나만 못해” KBS 아나운서 퇴사 이유

    “동기들 다 승진…나만 못해” KBS 아나운서 퇴사 이유

    아나운서 출신 정다은이 퇴사 이유를 고백했다. 4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에서는 정다은이 KBS에서 퇴사한 이유를 털어놓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정다은은 프리랜서 선배 이정민, 박은영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정민, 박은영은 KBS 간판 아나운서였던 정다은의 퇴사 이유를 궁금해했다. 이에 정다은은 “선배님들도 아침 생방송 하지 않았나. 하다 보면 진이 빠지고 긴장도가 높아지니까 자는 동안 이를 꽉 깨물더라”라면서 “내가 막판에 승진도 못 했다. 나만 꼴찌긴 했다. 동기들은 다 승진했는데”라고 고백했다. 정다은은 이어진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남편(조우종)이 저에게 큰 힘을 실어줬다”면서 “‘나 회사 나갈까’ 했더니 긍정적으로 대답하면서 저한테 편지를 써주더라”라고 전했다. 정다은의 남편이자 KBS 아나운서 출신인 조우종은 “너무 걱정할 것 같아서 편지를 써줬다”고 덧붙였다. 다만 조우종은 “이렇게 충동적으로 결정할 줄 몰랐다. 생각할 시간을 좀 가질 줄 알았다”면서 “나는 퇴사할 때 1년 반 전에 계획을 세워서 고민해보고 나왔는데, 아내는 그냥 나왔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 다이어리에 ‘귀한’ 꼬부기 붙인 한동훈… 사연 있는 스티커였다

    다이어리에 ‘귀한’ 꼬부기 붙인 한동훈… 사연 있는 스티커였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개인 다이어리에 붙어 있는 ‘꼬부기’. 한 장관이 자신의 다이어리에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인기 캐릭터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모습이 최근 포착돼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가운데 여기엔 한 초등학생과 관련한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4일 MBN은 한 장관에게 꼬부기 스티커를 선물한 초등생의 편지 내용을 공개했다. 지난달 7일 쓰인 것으로 알려진 이 편지에는 “TV에 나오는 모습을 많이 봤다”며 “우리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해당 초등생은 이어 “장관님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 장관님은 너무 바빠서 이 편지를 못 볼 수도 있죠?”라며 “만약에 편지를 보신다면 사인을 보내달라. 나중에 만나면 꼭 사진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편지지 모서리에 클립으로 꼬부기 스티커를 고정해 동봉하며 “제가 좋아하는 꼬부기 스티커를 드리겠다”고 덧붙였다. 한 장관은 편지를 받고 초등생에게 바로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 한 장관은 답장에 “보내주신 편지와 꼬부기 스티커를 잘 받았다”며 “구하기 어려운 귀한 거 아니냐. 잘 간직하겠다. 고맙다”고 적었다. 이어 “저도 4학년 무렵부터 있었던 일들이 대부분 기억난다. 지나고 보면 그 이후에 사는 게 크게 달라지지도 않은 것 같다”며 “좋은 책, 좋은 음악, 좋은 영화를 많이 보고 생각도 많이 하면 어떨까 싶다. 살면서 취향이라는 게 중요한 데 그런 게 다 그렇게 만들어진다”고 조언했다. 한 장관은 초등생에게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선물했다. 그러면서 편지에 “이 책은 제가 좋아하는 책인데, 지금 읽으면 틀림없이 지루할 것”이라며 “1851년에 나온 책이고, 172년을 살아남은 책이니 서두르지 말고 나중에 손에 잡힐 때 한번 읽어 보라”고 권했다. 한 장관은 끝으로 “좀 지루한 게 인생의 본질인 것 같기도 하고, 그게 재미이기도 하다. 잘 지내라”고 인사했다. 앞서 한 장관은 지난 7월에도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는 한 고등학생의 손편지를 받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구입해 손편지와 함께 보내준 것으로 알려졌다.
  • [이명옥의 창조성과 사랑] 클로드 모네, 정원의 여인/사비나미술관장

    [이명옥의 창조성과 사랑] 클로드 모네, 정원의 여인/사비나미술관장

    1892년 7월 16일 인상주의 거장 클로드 모네는 14년 동안 동거한 알리스 오슈데와 재혼했다. 두 사람이 간절히 기다려 온 결혼식인데도 모네는 평상복을 입었고 참석자도 네 명의 증인뿐이었다. 모네의 두 아들과 알리스의 여섯 자녀, 친척들은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했다. 모네의 두 번째 결혼식이 비밀리에 진행된 것에는 사연이 있었다. 모네는 1876년 부유한 후원자인 에르네스트 오슈데의 저택을 장식할 그림을 주문받은 것을 계기로 그의 가족과 친분을 쌓았다. 그런데 에르네스트의 재정 상황이 악화되면서 그는 1878년에 파산했다. 자신의 미술수집품과 성을 비롯한 모든 재산이 강제 경매로 매각되는 것에 충격을 받은 에르네스트는 아내 알리스와 자녀들을 모네 가족에게 떠넘기고 벨기에로 도망치듯 떠났다. 졸지에 대가족의 가장이 된 모네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극심한 경제적 고통을 겪었다. 1878년 모네가 후원자인 조르주 드 벨리오에게 “올해를 마감하면서 내가 얼마나 불행한지 알 것 같군요”라고 쓴 편지는 그의 경제 상황이 절망적이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게다가 더 큰 불행이 닥쳐왔다.모네의 아내 카미유가 남편과 두 아들을 남기고 병에 걸려 1879년 32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모네와 알리스는 1891년 에르네스트의 사망으로 결혼할 수 있게 될 때까지 한 지붕 두 가족을 책임지는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다. 두 사람의 동거는 당시 사회적 관습을 위반하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했다. 이는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당신을 더 사랑합니다”라는 모네의 편지가 말해 준다. 화목한 가정과 원예는 모네의 예술세계를 창조하게 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알리스가 정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림에서도 나타나듯 모네는 그녀의 헌신적 내조로 이 두 가지 기쁨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알리스는 모네가 자신의 재능을 의심할 때마다 그에게 예술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위대한 화가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그가 작업에 몰두해 있는 기간에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림자처럼 존재했고 매일 그에게 긴 편지를 썼다. 모네는 센 강변에 있는 지베르니 시골집에서 알리스의 자녀들과 함께 살았던 약 28년 동안 수련연작을 비롯한 인상주의 최고 걸작들을 창조했다.
  • 서툰 한글로 “딸이 신세 졌다”…日잼버리 어머니가 보낸 편지

    서툰 한글로 “딸이 신세 졌다”…日잼버리 어머니가 보낸 편지

    “여러분에게 몹시 신세를 졌습니다. 언젠가 딸과 단양을 관광하고 싶습니다.” 4일 단양군에 따르면 시노츠카 유이코라는 이름의 일본인은 지난달 28일 단양군에 편지를 보내 단양군과 구인사에 고마움을 전했다. 시노츠카는 한 일본 잼버리 참가자의 어머니다. 그는 서툰 한글로 작성한 자필 편지에서 “이번에 나의 딸을 포함한 일본 파견단이 단양군 여러분에게 몹시 신세를 졌다. 구인사 여러분은 물론 이웃분들도 과일과 옥수수를 주셨다고 들었다”고 적었다. 이어 “내 딸도 복숭아와 옥수수를 받았다. 매우 맛있었다(고 한다)”면서 “와이파이와 따뜻한 샤워 등도 준비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단양군과 구인사가 제공한 숙식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언젠가 딸과 (함께) 단양을 관광하고 싶다”며 “여러분의 발전과 행복을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에 참가한 일본 대원 1600여명은 태풍 ‘카눈’의 북상 여파로 조기 퇴영한 뒤 지난달 8일부터 11일까지 구인사에 머물렀다. 이들은 충주·제천·단양의 대표 관광지 등을 둘러보고 구인사 영산재 의식·만종리 대학로극장 공연 등을 관람하는 문화체험 시간을 가졌다. 당시 단양군은 밤샘 작업으로 구인사 경내에 임시 화장실과 샤워실을 긴급 설치하고, KT의 지원을 얻어 휴대전화와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주민과 여러 단체의 도움을 받아 옥수수와 사과, 복숭아, 생수를 제공하기도 했다. 김문근 단양군수도 배식 봉사에 직접 참여했다.
  • 공교육 멈춤의 날 제주 추모제… 김광수 교육감 참석 결정

    공교육 멈춤의 날 제주 추모제… 김광수 교육감 참석 결정

    전국 곳곳에서 고 서이초 교사의 49재인 4일 공교육 멈춤의 날로 정하고 서이초 교사를 애도하는 가운데 제주도교육청 앞마당에서 열리는 추모문화제에 김광수 교육감이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은 이날 오후 오후 6시 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열리는 공교육 멈춤의날, 제주 추모 문화제에 원칙적으로 참석한다고 이날 밝혔다. 앞서 지난 1일 제주교사노조 등 제주지역 6개 교육단체는 “교육감의 참여는 큰 의미를 갖는다”며 “교육감의 목소리와 의견은 선생님들이 힘을 얻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편지를 김 교육감에 전달해 귀추가 주목됐다. 결국 6개 교육단체의 편지가 사실상 참석하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이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추모제는 제주교원일동이 여는 애도의 자리로 더 이상 교육활동 침해로 인한 교사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들리지 않도록 교사들의 바람을 전하고 실천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에 도교육청은 서이초 교사 추모집회 관련 안정적 교육과정 운영을 위한 도교육청 차원의 지원체계를 구축해 수업 결손 최소화를 위해 지원 인력 지원을 통한 학교 현장에 실질적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46명(유4, 초 42명)의 교육전문직원으로 구성된 인력풀을 구성해 시스템을 통한 학교별 모니터링을 통해 긴급 수업지원 인력 수요을 파악했다. 초중고 교사 7096명 가운데 병가 110명, 연차 84명이 내 평상시와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내 190여개 학교를 감안하면 한 학교당 1명꼴인 셈이다. 학교 현장에서는 관리자를 비롯한 수업지원교사, 교과전담교사 수업 지원, 단축수업, 스포츠 프로그램 운영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학교 현장의 수업 결손 최소화,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을 통한 교육의 지속성을 확보함으로써 안정적 교육과정 운영을 위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도교육청 주차장에서 교원 6개단체 주관으로 진행되는 추모 문화행사에도 도교육청 70명, 주최측 요원 37명의 안전관리요원이 배치되고 자치경찰단의 지원을 받아 행사 종료시까지 안전에 만전을 기해 나가기로 했다. 한편, 도교육청은 지난 3일 오후 1시부터 교육부차관 주재 제8차 시도부교육감회의를 열고 9·4추모제에 따른 상황대응반구성 및 운영, 학교현장 수업지원 계획 수립 등 대책을 마련했다.
  •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최전선 영남 방어 수훈… ‘조선의 양장’ 꼽아[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최전선 영남 방어 수훈… ‘조선의 양장’ 꼽아[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정기룡(1562~1622)은 1592년 왜란 발발 당시 만 30세의 초급 무관이었다. 1586년 별시 무과에 급제하고 병법 훈련을 관장하는 훈련원의 종8품 봉사(奉事)로 있었다. 이후 7년에 걸친 전쟁은 국가에는 위기였지만 담력과 용력, 병법 지식을 두루 갖춘 젊은 장수에게는 입지를 빠르게 다지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 명나라 원병의 제독 마귀(麻貴)는 ‘조선의 양장’(良長·뛰어난 장수)으로 이순신·한명련·권율과 함께 정기룡을 들기도 했다. 정기룡은 정유재란 이후에도 왜적의 재침(再侵) 우려가 높아질 때마다 경상좌·우도병마절도사와 경상도방어사로 최전선인 영남 지역 방어의 책임을 우선적으로 맡았던 대표적 무장이다. 그는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직책이었던 삼도수군통제사로 통영의 진중에서 생을 마쳤다.매헌(梅軒) 정기룡(鄭起龍)은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 땅 곤양 출신이다. 그가 무과에 급제하는 과정에는 흥미로운 설화가 전해진다. 처음 이름은 무수(茂壽)였는데 선조가 신룡(神龍)이 종루(鐘樓)에서 일어나 하늘로 날아가는 꿈을 꾸었다. 내관을 보내 살펴보게 하니 무과 시험을 보러 온 정기룡이 종루 기둥에 기대어 있었다. 그를 불러들인 선조가 그의 됨됨이를 보고는 기룡이라는 이름을 내렸다는 줄거리다. 영조시대 문인 황경원이 지은 정기룡 묘지명에도 등장하는데 사실처럼 회자되곤 한다. 그런데 그의 두 형 이름이 몽룡(夢龍)와 인룡(仁龍)인 것을 보면 기룡 역시 원래 이름인 듯하다. 설화는 그가 무인으로 출발할 때부터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음을 강조한다. 정기룡의 전투 기록은 남원 의병장 출신 조경남의 ‘난중잡록’에 처음 보인다. 부산포에 상륙한 왜군이 파죽지세로 북상하고 있던 4월 30일자다. 앞서 조정은 이일을 순변사로 임명해 영남 방어의 책임을 맡기는데, 성응길과 조경을 각각 경상도좌우방어사로 삼았다. 훈련원 봉사 정기룡은 이때 조경 우방어사 휘하에 편입된 듯하다. ‘전라도방어사 곽영이 김산(김천) 추풍역에서 접전할 때 한 왜적이 긴 칼을 가지고 마구 들어와 경상도우방어사 조경을 치려 했는데, 조경이 맨손으로 껴안고 오랫동안 버티고 있을 무렵 정기룡이 돌진해 그 왜적을 베니 조경이 살아날 수 있었다.’ 조경의 상처는 심각해 결국 방어사 직책을 수행하지 못하고 병력을 해산해야 했다.경상도 순찰사 휘하에 배속된 정기룡은 이탁영이 남긴 ‘정만록’(征蠻錄)에 다시 등장한다. 경상감영 아전 이탁영이 순찰사 김수를 수행하면서 쓴 종군일기다. 정기룡은 충청·전라·경상 3도 근왕군이 왜군에 어이없이 패한 용인전투에 참전한다. 5월 4일자다. ‘멀리 연기와 불꽃이 곳곳에 치솟는다. 사상(使相·순찰사)은 경상도 장사 50명 남짓에게 돌격을 명령했다. 유곡찰방 김충민이 적진으로 돌격해 왜적의 머리 하나를 베고 봉사 정기룡과 강만남, 군수 김경로도 각각 하나씩을 베어 왔다. 동향인 박태고도 왜병 둘을 쏘아죽이고 돌아왔다. 그 반가움을 어찌 말로 다 하랴.’ 경상감영 아전의 영남 군사 중심 서술은 불가피했다. 왜란 발발 당시 만30세 초급 무관선조가 ‘기룡’ 이름 내렸다는 설화개전 당시 종8품→정3품 목사로영조, 그의 공 기려 ‘충의’ 시호 내려잇단 전과에 고향 곤양 수성장에용화산 전투 승전 후 상주성 수복왜적 주요 보급로 확보 ‘숨통’ 죄어묘지에 ‘100차례 전투 패한 적 없어’ 정기룡에 대한 설명은 조금 더 이어진다. ‘정기룡은 진산(진주)의 동풍(同風) 강세정의 사위인데 경상도 김산 접전에서 머리 두 개를 베었고, 지금 다시 베어 이미 세 개가 되어 당상관이 될 만하니 축하할 일이다.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적의 머리 한 개를 베어 오면 공사천을 가리지 않고 등과한 것으로 하며, 두 개를 얻으면 6품관으로 올리며, 세 개는 당상관에 올리고 왜적 장수의 머리를 베면 가선대부로 올린다고 했다’는 것이다. 가선대부는 종2품에 해당하는 품계다. ‘동풍’이란 자신과 같은 아전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정기룡을 더욱 강조해서 서술한 이유일 것이다. 잇따라 눈에 띄는 전과를 올린 정기룡은 고향 곤양의 수성장(守城將)이 됐다. 곤양군수 이광악이 진주성으로 차출되면서 그에게 역할이 맡겨진 것이다. 그런데 초유사 김성일은 정기룡마저 진주성으로 불러들여 유병장(游兵將)으로 삼는다. 김성일은 9월 경상우도관찰사에 오르자 정기룡을 다시 상주 가(假)판관, 곧 임시판관에 임명했다. 상주는 순변사 이일이 가토 기요마사 선발대에 참패한 고을이다. 상주판관 권길도 북천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 순국했다. 상주가 지닌 상징성은 컸다. 정기룡은 김산 남쪽 금오산에 진을 쳤다. 상주목사 김해는 고을 백성을 이끌고 일월산 용화동에 머물고 있었다. 왜적이 용화동을 포위한 상황에서 정기룡의 공격이 시작됐다. 묘지명은 당시를 이렇게 적었다. ‘공이 골짜기 입구에 이르러 왜노들이 산을 뒤덮고 있는 것을 보았지만 지세가 험했다. 이에 우인(優人·배우)이 된 듯 말 위로 올라 “휘익” 하고 길게 휘파람을 불며 서기도 하고 눕기도 했다가 숨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하니, 왜노들이 생포하려 공의 뒤를 매우 급하게 쫓았다. 공이 왜노를 유인해 평원으로 나오게 한 뒤 재빨리 공격하자 왜노들이 크게 패하여 달아났다.’정기룡은 용화동전투 이후 본격적으로 상주성을 공략한다. 왜적이 상주성에 은거하며 나오지 않자 백성들과 함께 서정(西亭)에 진을 치고 횃불을 묶어 공격했다. 왜적의 방비가 취약한 동문 밖 밤나무 숲에 군사를 숨겨두고 한밤중에 호각 신호로 서문으로 쳐들어가 막사에 불을 붙였다. 왜적이 놀라 동문으로 달아났는데 밤나무 숲 병사들이 400명 남짓한 적의 목을 베고 마침내 성을 수복했다. 1592년 11월이다. 왜적의 부산포 상륙 직후 속절없이 내주었던 경상도지만, 7월 영천성과 9월 경주성에 이어 상주성마저 되찾은 것이다. 왜적은 뜻하지 않게 보급선이 평안도까지 한없이 늘어진 마당이었다. 여기에 길목의 주요 거점마저 조선군에 내주어 교통로 확보가 쉽지 않았으니 군량을 약탈에 의지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조선군은 명나라 군사의 도움이 없는 상황에서도 바다와 육지 모두에서 분전하고 있었다. 정기룡의 후손인 정구정이 1746년(영조22) 펴낸 ‘매헌실기’에는 상주 판관 시절을 언급하고 있다. 1593년 봄 굶주린 백성들을 먹여살리는 한편 관가의 곡식을 농민들에게 종자로 나눠 주었으며 파괴된 제방을 다시 쌓고 둔전을 경영해 군량미를 확보하는 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명나라 장수 유정, 사대수, 조승훈을 맞아 응접했고, 5월에는 상주 가판관에서 상주 판관으로 승진했다. 6월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는 부인 진주 강씨가 치마를 잘라 공에게 편지를 남기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정기룡은 8월 상주 가목사에, 이듬해 11월 상주 목사에 잇따라 임명됐다. 1593년 11월 5일 선조실록에는 임금과 대신들의 대화 내용이 실려 있다. 동지중추부사 박진이 “기룡은 접전할 때 말에서 내려 적을 베고는 다시 말을 타는데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조경이 적에게 살해될 뻔했다가 기룡 때문에 죽음을 면했다”고 하자 선조는 “옛적에는 항오(行伍) 가운데에서 발탁하여 등용하기도 했다. 정기룡 같은 사람을 판관에 머물게 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항오란 군사를 줄세운 것을 뜻하는데 병졸에서 입신한 무장을 언급할 때 쓰는 표현이다. 개전 당시 종8품 봉사가 만 2년도 되기 전에 정3품 목사로 뛰어올랐으니 그야말로 수직 상승이었다.그러자 영의정 류성룡이 “기룡은 젊고 재략이 있는가 하면 목민(牧民)에도 능하다. 중국 장수를 접대할 적에도 성의를 다한다. 상주 사람들이 모두 하는 말이 ‘판관을 목사로 올리면 다시 판관을 낼 필요가 없다’고 했으니, 이만한 사람은 요사이 보기 드물다”고 거들었다. 상주 목사는 문관이 맡는 자리여서 군사보좌관인 판관이 있어야 했지만, 정기룡이 목사가 되면 판관을 별도로 임명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도 영의정 겸 도체찰사 이원익이 도원수 권율·방어사 곽재우와 상주에서 계책을 논의했는데 “기룡이 아니면 불가하다”고 입을 모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후 정기룡은 경상도 지역에 머물며 토왜대장(討倭大將)으로 활약했다. 왜란이 마무리된 다음에도 경상좌·우도병마절도사로 왜적 침입에 대비했다. 묘지명은 상징적 표현을 담아 다음과 같이 정기룡을 기렸다. ‘공은 사람됨이 걸출하고 용맹스러운 위엄이 있었으며 말 타고 활 쏘는 것을 잘했다. 신장 7척에 눈이 밝아 밤에도 터럭까지 볼 수 있었고, 소리는 큰 종과 같아서 길게 휘파람을 불면 10리 밖까지 들렸다. 어렸을 때부터 강개했고 100차례 전투에서 한 차례도 패한 적이 없었다. 죽인 적군이 1만명을 헤아리니 왜노들이 지금까지도 그 위엄을 두려워해 어린아이가 울 때 문득 공의 이름을 불러 그치게 하곤 한다.’ 영조가 추증한 시호는 충의(忠毅)다.
  • 경기소방, 잼버리 스카우트 대원들과의 추억 전시회

    경기소방, 잼버리 스카우트 대원들과의 추억 전시회

    경기도소방재난본부가 1일부터 8일까지 8일 동안 오산시에 위치한 경기도국민안전체험관에서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 참가 대원들과의 추억을 되돌아볼 수 있는 전시회를 연다고 2일 밝혔다. 이번 추억 전시회는 지난 8월 8일부터 16일까지 스카우트 대원들이 경기도소방학교에 입영해 한국의 소방과 문화체험을 하고 나서 남기고 간 감사 편지, 기념품 등을 함께 보며 추억하기 위해 마련됐다. 스카우트 대원 중 유일하게 소방기관에 입영한 네덜란드와 카메룬 등 6개국 365명은 소방 훈련, 응급처치, 산악구조 등 다양한 체험을 하고 전통 풍물 공연, 태권도 시범, 비보이 공연 등을 관람하며 추억을 쌓았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잼버리 대원이 수도권을 찾은 기간 방문하는 모든 행사장에 안전관리 인력을 배치하고 구급대를 운영했다. 각 소방서와 안전체험관에서 다양한 프로그램도 지원하는 등 잼버리 대원이 대회를 끝까지 안전히 마치도록 도왔다. 소방기관 가운데 잼버리 대원에게 문을 연 곳은 경기소방학교가 유일하다. 이들은 소방학교 입영 생활을 하며 소방대원들에게 자신들이 착용하고 있던 스카우트 스카프와 티셔츠 등을 기념품으로 전달했다. 특히 대원들이 귀국한 뒤 소방학교 생활실 곳곳에서는 감사의 마음을 전한 편지와 네덜란드의 작은 전통 기념품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들은 편지를 통해 ‘소방 관계자 도움으로 너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큰 재미와 성취감을 느꼈다’, ‘잊지 못할 것 같다’, ‘한국에서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도록 도와줘 고맙다’ 등 마음을 전했다. 이번 전시회는 함께 나눴던 즐거웠던 추억과 그들이 남긴 따뜻한 마음을 모두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제안으로 마련됐다. 전시회 개회에 앞서 지난 31일 안전교육을 위해 체험관을 찾은 수원 효천초등학교 학생 70여 명은 전시 물품을 관람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전시회가 끝나고 난 뒤 모든 기념품을 타임캡슐에 넣어 영구 보관할 계획이다.
  • 4일 서이초 교사 ‘추모 문화제’… 김광수 “이미 허용했지만, 참석은…”

    4일 서이초 교사 ‘추모 문화제’… 김광수 “이미 허용했지만, 참석은…”

    故 서이초 교사의 49재인 오는 4일 제주에서 추모 문화제가 열릴 예정이어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제주교원일동은 오는 4일 오후 6시 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제주도교육청 앞마당에서 ‘공교육 멈춤의 날, 9·4 추모문화제’를 연다고 1일 밝혔다. 이번 추모 문화제는 故 서이초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기리고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 개선하는 것을 촉구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제주교원일동 측은 “신규 교사인 서이초 교사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교사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주게 하는 교육 현실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교사가 탈진하고, 공교육이 마비될 만큼 심각한 상황들이 학교 안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교사와 공교육이 제대로 펼쳐질 수 있는 제도적인 안전망과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교사들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듣을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지난 7월 22일부터 매주 교사들의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26일 국회앞 추모집회에는 6만명의 교사들이 모였다. 교사들의 생존권과 공교육을 지키겠다는 교사들의 마음이 절박하다는 방증이다.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김광수 제주도교육감의 참석여부도 주목받고 있다. 추모제를 여는 주최측 입장에선 만약 김 교육감이 참석한다면 천군만마를 얻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김광수 교육감은 지난달 31일 도교육청 기자실에서 가진 교육활동 보호 지원방안 기자회견문을 발표하며 “추모와 관련 엄정대처 방침을 밝힌 교육부 공문을 각급 학교에 보내긴 했지만 이미 제주도교육청 앞마당(주차장) 추모문화제를 수용한 상황에서 추모문화제 당일 연가·병가 등 교원의 복무점검에 나설 생각은 없다”고 발혔다. 이어 “추모문화제 참여가 도움이 될 거 같지 않다”며 참석 여부에는 말을 아꼈다. 앞서 도교육청은 지난달 28일 ‘9·4 관련 정상적인 학사운영 및 교원 복무관리 철저’라는 공문을 통해 교육부의 방침의 전달하며 ‘아이들의 학습권을 외면한 채 수업을 중단하고 집단행동을 하는 등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여 학생의 학습권이 보장되고, 학부모가 불편하지 않도록 적극 협조하여 주시기 바란다’는 내용을 각 학교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제주교사노조 등 제주지역 6개 교육단체는 1일 편지 형식을 통해 “교육감의 참여는 큰 의미를 갖는다”며 “교육감의 목소리와 의견은 선생님들이 힘을 얻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선생님들을 위로하고 지원하는 교육감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참석을 요청했다.
  • “게임 그만해” “잔소리”, 고교생 손자는 할머니를 살해했다[전국부 사건창고]

    “게임 그만해” “잔소리”, 고교생 손자는 할머니를 살해했다[전국부 사건창고]

    손자 형제 9년 보살핀 조손가정의 비극형은 할머니 살해, 동생은 창문 닫았다 지난해 1월 대구지법 서부지원 제1형사부 김정일 재판장은 존속살해, 존속살해방조 혐의로 구속된 고등학교 3년생 A(범행 당시 18세)군과 동생 B군(범행시 16세·고교 1년 자퇴) 형제의 1심을 선고한 뒤 손수 쓴 편지와 함께 작가 고 박완서의 동화책 ‘자전거 도둑’을 선물했다. 김 재판장은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는 이들 형제에게 “이 책을 꼭 읽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해 봤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자전거 도둑은 박 작가가 6개 단편을 모은 동화책으로 물질만능주의에 젖은 어른들 속에서 양심을 지키려고 애쓰는 소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A군과 B군은 이혼한 부모를 대신해 9년 동안 보살핀 할머니를 ‘잔소리한다’고 흉기로 살해하고, 할아버지를 살해하려다 중단한 범죄를 저질러 세상을 놀라게 했다. 2일 서울신문이 입수한 1심 판결문과 취재에 따르면 A군은 2021년 8월 30일 오전 0시 40분쯤 대구시 서구 비산동 주거지에서 샤워를 끝낸 할머니 성모(당시 77세)씨가 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흉기를 들이댔다. 성씨는 “칼 들고 뭐하냐. 찔러봐라”며 휴대전화가 놓인 쪽으로 다가가자 흉기를 휘둘렀다. A군은 동생 B군에게 “할머니가 소리를 치니 창문을 닫으라”고 했다. 성씨는 머리, 옆구리, 다리 등에 61차례 찔려 피를 흘린 채 쓰러졌다. 이 모습을 할아버지 이모(당시 93세)씨가 지켜봤지만 거동이 불편해 대응을 못했다. A군은 이어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이씨가 “할머니, 병원에 보내자”고 말했으나 A군은 거부했다. 이씨는 두 손을 빌며 “내가 잘못했다”고 했다. 이때 B군이 “할아버지는 죽이지 말자”고 만류하면서 A군의 살인 행각은 멈췄다. 손자의 흉기에 찔린 할머니 성씨는 이씨의 신고로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이날 오전 1시 25분쯤 숨졌다.A군의 부모가 이혼한 것은 A군이 초등학교 2학년인 2011년 7월이었다. A군의 아버지는 집을 나가 연락이 끊겼다. 친모가 A군 형제와 살았으나 이듬해 “(A군이) 게임에 빠져 밥도 제대로 안 먹는다”고 야구방망이로 때려 조부모가 A군 형제를 돌봤다. 이들 형제는 도중에 친모와 거주한 1년을 제외하고 내내 조부모와 함께 생활했다. 조부모 모두 건강하지 않은 이 조손가정은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했다. 해당 과정에서 할머니 성씨와 A군 형제는 자주 부딪혔다. A군이 밤늦게까지 휴대전화 게임을 하자 할머니 성씨는 “게임 만큼 공부도 열심히 해라”고 꾸짖었다. 또 급식카드를 건넸는데도 A군 형제가 말을 듣지 않자 “너희들 먹을 거 아니냐. 밤중에 왜 커피를 마시느냐”라며 욕설 섞인 꾸지람도 했다. 특히 A군 형제는 “20살이 되면 집에서 나가라”는 할머니의 말에 불안감이 컸다고 한다. A군은 범행 하루 전날 밤 동생 B군에게 “할머니 죽일래?”라고 카카오톡을 보냈다. 동생은 “맘대로”라고 답했다. A군은 “어차피 우리처럼 머리 나쁘고 배운 거 없는 사람들은 20살이 돼도 굶어 죽어. 알바도 안 뽑아주고. 가망이 없다”는 메시지도 보냈다. 그는 인터넷에서 ‘사람 한 번에 죽이는 법’도 검색했다. “게임 그만해라”, 손자는 ‘잔소리’문자로 맘 전하고, 고모 통해 용돈할머니의 무뚝뚝한 ‘내리사랑’ A군은 검경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감옥에서 살기로 작정했다”며 “만약 할머니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이전과 똑같은 삶을 살았을 텐데, 웹툰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진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할머니 성씨는 잔소리를 많이 하고 성격이 무뚝뚝해도 손자 사랑이 극진했던 것으로 나온다. 비가 오면 아픈 몸을 이끌면서 우산을 들고 손자들을 데리러 가고, 손자들 먹이려고 밤늦게 편의점에 가고, 고모를 통해 용돈을 건넸다. 성씨는 또 손자에게 직접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지만 카톡으로 그 마음을 전달했다. 범행 후에도 A군 집 옥상에는 할머니가 빤 흰 교복이 빨랫줄에 널려 있었다.편지와 동화책을 전달한 1심 재판부는 A군에게 징역 장기 12년~단기 7년을 선고하고 전자발찌 10년 부착·폭력치료 및 정신치료 프로그램 80시간씩 이수를 명령했다. B군에게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선고와 함께 폭력치료 및 정신치료 각각 40시간을 명령하고 석방했다. A군만 항소했으나 2심을 진행한 대구고법 형사1부는 지난해 5월 기각했다. 검찰이 A군에게 무기징역, B군에게 징역 장기 12년~단기 6년을 구형한 것과 비교해 한참 낮은 형량이 선고되자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1심 재판부는 “A군은 범죄를 저지른 뒤 동생과 함께 거실의 할머니 피를 닦고 (피 냄새를 없애기 위해) 향수를 뿌린 뒤 샤워를 했다”고 잔혹성을 비판한 뒤 “(두 형제는) 불투명한 미래, 낮은 포부가 연합된 심리 상태에서 할머니의 언행을 일순간 공격으로 받아들인 우발적 범행의 성격이 강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부모의 이혼, 잦은 양육권자 교체, 어머니의 폭행, 경제적 어려움 등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어 균형 잡힌 인격이 형성되지 않았을 뿐 A군의 타고난 반사회적이고 악성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원만하게 학교 생활을 한 점으로 미뤄 교화·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판시했다. “급식카드로 음식 사 창피했다”재판부 형 징역 12~6년, 동생 석방‘교화·개선의 여지 있다’ A군은 재판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급식카드로 음식 등을 사는 게 창피했고 할머니가 ‘성인이 되면 독립해라’고 줄곧 말하는 게 큰 스트레스였다”며 “할머니를 정말 죽이려고 마음먹은 건 아니지만 할머니가 ‘찔러보라’고 고함을 질러 놀라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울먹였다. 동생 B군은 “범행 때 형의 눈빛이 무서워 적극적으로 만류하지 못한 게 후회된다”며 “나도 할머니 잔소리가 너무 싫어 죽이는 상상을 한 적은 있었다. 형도 말로만 그런 줄 알았는데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A군은 지난해 4월 항소심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동생은 아무 죄가 없으니 선처해 달라”고 말했다. B군도 “형의 형량을 높이지 말아달라”고 했다. 친모는 증인신문에서 “몇 년간 아이들과 연락을 하지 않았지만 현재 둘째(B군)와 같이 살고 있다. 큰 아들과도 서신과 전화, 면회 등을 통해 연락하고 있다”며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 일원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 시부모에게도 죄송스러운 마음이다”고 말했다.흉악 범죄가 급증합니다. 우리 사회와 공동체가 그만큼 병들어 있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직시하고 아우성치지 않으면 나아지지 않습니다. 사건이 단순 소비되지 않고 인간성 회복을 위한 노력과 더 안전한 사회 구축에 힘이 되길 희망합니다.조손가정 전국 11만 가구 넘어“학교는 물론 다중적 관리 필요” 통계청에 따르면 부모의 이혼 등 가정해체로 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 사는 전국의 조손가정은 2015년 11만 3111가구, 2019년 11만 4211가구, 지난해 11만 7912가구 등으로 전혀 줄지 않고 있는 상태다. 남미애 대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조부모는 ‘부모 없는 불쌍한 손주를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잔소리를 하지만 본인도 돌봄을 받아야 하는 조손가정이 많다. 더욱이 손주와의 세대차는 부모보다 더 커 의사소통이 잘 안되고 쌍방에 답답함은 커진다”며 “조손가정은 정부, 지자체, 사회단체 등 다중적 관리가 필요한데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가정 내 문제를 제일 먼저 발견할 수 있는 학교부터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이런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를 배치하면 더욱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 폐우체통에 그림 그렸더니 관광객들이 몰려왔다…‘군산우체통 거리’의 성공 스토리

    폐우체통에 그림 그렸더니 관광객들이 몰려왔다…‘군산우체통 거리’의 성공 스토리

    지난 2016년 군산지역 상인들은 쓰임을 다한 폐우체통을 손질하고 그림을 그려 상가 앞에 세워뒀다. 도시재생사업으로 추진된 주민공모사업에서 우체국 주변 주민들로 구성된‘도란도란 공동체’가 참여하면서 우체통 꾸미기는 더 확대됐다. 이듬해 주민들은 ‘군산우체통거리 경관협정운영회’도 결성해 시와 경관협정을 체결하고 ‘제1회 손편지 축제’를 열었다. 평범했던 이곳은 ‘우체통거리’라는 도로명주소까지 얻으면 활기를 되찾았다. 쓰임을 다한 폐우체통의 새로운 변신이 시작된 것이다. 지역 주민이 중심이 돼 전국 도시재생사업 성공사례로 손꼽히고 있는 ‘군산우체통거리’의 성공 스토리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19년 소규모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특색있는 경관조명, 아트월 등 조형물과 우체통거리 홍보관까지 조성되면서 ‘우리동네 살리기’의 모범 사례로 자리매김했다.2일 군산시에 따르면 지난 2014년에 상가 공실률이 75%에 육박했던 중앙로 거리는 우체통거리 조성 이후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지역 상인들의 아이디어를 시작으로 우체통거리를 만들고, 손편지 축제까지 여는 관광명소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거리에 활력이 생기며 창업 점포가 늘었다. 공실률도 5% 미만으로 감소했다. 우체통거리의 성공 노하우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지난 5월 경남 진주시의회 의장단이 군산을 방문했다. 또 대전광역시, 광주광역시, 천안, 평택, 서산, 전주, 구례시에서도 우체통 거리를 찾는 등 다른 지자체와 기관에서 최근 3년간 112회가 넘는 견학이 이어져 오고 있다.올해 열리는 ‘제6회 군산우체통거리 손편지 축제’는 오는 8일부터 9일까지 이틀간 진행된다. 우체통거리 매직 버블쇼, 길거리 풍선아트 이벤트, 군산부설초등학교 어린이합창단 공연 등 각종 공연프로그램과 말하는 우체통·캐리커처 그리기 등 10여개의 무료 체험행사 부스가 운영된다. 이번 행사는 1970년대 자전거를 타고 우편을 배달했던 우체부의 모습을 그대로 거리에 재현했다. 실제 우체복을 입은 배우들이 상시로 거리를 거닐며, 관광객에게 응원엽서·꽃송이를 선물하며 기념 촬영을 진행하는 등 레트로 감성을 선사할 예정이다. 시는 그동안 당일로 치러졌던 축제 기간을 2일간으로 연장했다. 행사 구간도 일부 확장해 볼거리·체험거리를 대폭 늘리고, 방문객들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안전관리 대책도 강화했다.이에 앞서 시는 지난달 8일 롯데몰 군산점 1층 로비에 군산우체통거리 홍보관을 조성하고, 지역주민과 롯데몰이 우체통거리 홍보에 나섰다. 새롭게 조성된 홍보관에서는 제6회 군산우체통거리 손편지 축제 홍보와 캐릭터 우체통 작품이 상설 전시됐으며 우체통거리 축제 붐업을 위해 롯데몰 로비에서 진행된 응원엽서 쓰기 이벤트에는 15일간 1100명이 참가하는 등 기대 이상의 관심을 받았다. 김봉곤 문화관광국장은 “우체통거리는 월명동 도시재생사업으로 군산시와 지역주민이 경관협정을 맺고 주민 주도형으로 추진해 결실을 맺은 전국적 수범사례”라며 “전북 대표축제로 성장한 손편지 축제의 철저한 준비와 함께 향후 우정사업본부 및 한국우편사업진흥원 등 연계 기관과 협업사업도 발굴해 거리 브랜딩을 지속적으로 키워 나가겠다”고 말했다.
  • “수년 전 부정 승차 죄송”… 시민의 사과 편지

    “수년 전 부정 승차 죄송”… 시민의 사과 편지

    “수년 전 서울시 지하철·버스 요금을 정직하게 내지 않고 이용했습니다.” 과거 지하철과 버스 요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다며 사과하는 편지와 함께 현금이 든 봉투가 서울교통공사와 서울시에 각각 도착한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31일 공사에 따르면 지난 9일 재무처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에는 “잘못을 만회하고 싶고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으며, 현금 25만원도 들어 있었다. 보내는 사람은 쓰여 있지 않았다. 과거 제대로 내지 않은 지하철 요금과 부정 승차에 따른 부가금으로 추정된다. 앞서 서울시 버스정책과로도 같은 내용의 손편지와 현금 25만원이 들어 있는 봉투가 전달됐다. 이 편지에도 “수년 전 서울시 버스 요금을 정직하게 내지 않고 이용했다”며 “잘못을 만회하고자 한다. 정말 죄송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현금 25만원은 버스조합 수공협(운송수입금공동관리업체협의회)에 전달됐다. 지하철 및 버스 부정 승차 적발 시에는 승차 구간 운임과 그 운임의 30배를 물어야 한다. 공사에 따르면 지하철 부정 승차 건수는 지난 7월까지 2만 6613건으로 지난해 4만 1112건 대비 35% 감소했다. 공사는 단속 강화보다 승객 인식 전환에 초점을 맞추고 부정 승차 예방 캠페인 등을 벌이고 있다. 백호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효율적 단속 시스템 고도화로 부정 승차 행위를 근절할 것”이라며 “올바른 지하철 이용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교육부, ‘왕의 DNA’ 교사 갑질 의혹 직원 중징계 요구

    교육부, ‘왕의 DNA’ 교사 갑질 의혹 직원 중징계 요구

    교육부가 자녀의 담임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고 ‘왕의 DNA’로 알려진 편지를 보내는 등 교육활동에 간섭한 의혹을 받은 직원의 중징계 절차를 밟는다. 교육부는 교사 갑질 의혹이 제기된 사무관 A씨에 대한 교권침해 의혹 조사 결과 중앙징계위원회에 중징계 의결을 요구하기로 했다고 31일 밝혔다. 중징계는 파면, 해임, 강등, 정직을 말한다. 교육부는 A씨가 교육활동 보호에 앞장서야 하는 소속 공무원임에도 학교에 과도한 요구를 제기, 정당한 교육활동에 부당히 간섭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A씨가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이를 언론에 유포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점에 대해 “부적절한 언행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정책에 대한 신뢰성을 저하시킨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A씨가 30일간 이의 신청을 하지 않으면 교육부가 징계위에 중징계 의결을 요구하게 된다. 징계위 결정은 2~3개월이 소요된다. 이와 함께 교육부는 소속 공무원의 교권 침해 재발 방지를 위해 ‘교육부 공무원 행동강령’을 개정하기로 했다. 행동강령에는 교육부 공무원 자녀를 지도하는 교원 등에 대해 ‘교육활동을 침해하는 행위’와 ‘직무와 관련이 없거나 직무의 범위를 벗어난 부당한 지시·요구를 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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