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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바 파파’ 외침 속 세월호 유족 손 꼭 잡은 ‘감동 드라마’

    ‘비바 파파’ 외침 속 세월호 유족 손 꼭 잡은 ‘감동 드라마’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역사적인 초기 순교자 124위의 시복식에 앞서 광화문 일대에서 30분간 펼쳐진 프란치스코 교황의 카퍼레이드는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서소문 순교성지를 참배한 교황이 국산 준중형차에 몸을 싣고 서울광장 끝자락에 도착한 오전 8시 42분, 새벽부터 자리 잡고 앉아 교황을 기다리던 천주교 신자 17만여명과 방호벽 밖의 시민들은 일제히 환호하며 교황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9시 8분, 덮개 없는 흰색 차로 갈아타고 광화문 바로 앞 시복식 제단 쪽으로 차가 움직이자 여기저기서 ‘비바 파파’라는 외침이 퍼져 나갔다. “교황님 고맙습니다.” “환영합니다.” “사랑합니다.” 하얀 손수건을 흔들며 신자들이 건네는 간절한 인사에 교황은 환한 표정으로 일일이 손을 들어 화답했다. 지척에서 교황의 모습을 담기 위해 사진을 찍어대는 휴대전화 물결들 사이로 중간중간 차를 멈춰 교황이 어린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쓰다듬기를 십여 차례 거듭하며 광화문 앞 제단을 지나쳐 세월호 참사 유가족 400명이 모여 있는 광화문광장 끝 자락에 다다랐을 무렵이었다. 무거운 표정으로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린 교황이 차에서 내려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고 34일째 단식 중인 김영오(47)씨의 손을 꼭 잡았다. “교황님,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교황의 손등에 입을 맞춘 김씨가 “저희가 쓴 편지를 드려도 되겠느냐”며 노란색 봉투에 담긴 편지를 보이자 교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편지를 받아 주머니에 넣는 교황의 왼쪽 가슴에 보이는 노란 리본 배지. 전날 대전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직전 세월호 참사 유족과 생존 학생들이 잠깐 만나 선물한 그 리본이다. 살짝 비뚤어진 노란 리본을 바로잡으며 건네는 진심 어린 인사에 여기저기의 흐느낌이 얹혀진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뒤로한 채 다시 차에 올라탄 교황. 차에 올라서도 유족들을 한참 쳐다보며 퍼레이드를 이어 간 교황이 제단 앞에 도착해 사제단의 영접을 받은 시간은 9시 38분. 교황은 이날 시복식 내내 그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있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신답니다… 우리 정치권도 바뀔까요”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신답니다… 우리 정치권도 바뀔까요”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방한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연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 주고 있다. 방한 첫날인 지난 14일 서울공항에 마중 나온 유족들에게 “기억하고 있다”며 위로한 그는 이후 나흘 내내 가슴 한편에 ‘노란 리본’을 달고 참사를 점차 잊어가는 우리 사회에 울림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7일 오전 서울 종로의 주한 교황청대사관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56)씨에게 세례성사(천주교 신자가 되는 의식)를 베풀었다. 이씨의 세례명은 교황과 같은 프란치스코로 정해졌고 교황으로부터 단독 세례를 받은 첫 번째 한국인이 됐다. 1989년 방한한 요한 바오로 2세는 청년 12명의 세례를 집전했었다. 교황은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복식’(가톨릭 순교자를 성인 전단계인 복자로 추대하는 예식) 때도 세월호 유족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넸다. 참사로 딸을 잃고 광화문광장에서 34일째 단식 중이던 김영오(47)씨는 이날 교황의 차량이 광장 끝에 다다르자 연방 “파파”(‘교황’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를 외쳤고 교황은 차에서 내려 김씨의 앙상해진 손을 잡았다. 시복식 현장에는 다른 세월호 유족 400명도 자리했다. 김씨는 17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참사 100일이 넘도록 특별법 하나 만들지 못하는 정부를 믿을 수 없어 교황님만 기다렸다”면서 “직접 만나서 위로받고 ‘세월호를 잊지 말아 달라’는 말씀을 전하니 내 할 일을 다 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시복식에서 교황에게 ‘세월호 유가족은 가장 가난하고 보잘것없으니 보살펴 주시고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도와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건넸다. 김씨는 “교황님 덕에 전 세계에 유족들의 이야기를 알릴 수 있게 됐다”면서 “교황의 진심 어린 메시지에 정부가 압박받겠지만 그래도 변화가 없을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시복식에 참가해 교황을 만난 고 최윤민양의 아버지 최성룡(62)씨는 “멀리서 온 교황님도 마음을 열고 우리 얘기를 들어주시는데 정작 같은 나라의 높으신 분들은 그렇지 않다”면서 “우리 문제가 내부적으로 해결 안 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며 한숨지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교황 손가락 축복’ 무관심한 아기에 교황이 손가락 대자…세월호 실종자 가족에 위로 편지·묵주 전달

    ‘교황 손가락 축복’ 무관심한 아기에 교황이 손가락 대자…세월호 실종자 가족에 위로 편지·묵주 전달

    ‘교황 손가락’ ‘교황 출국’ 교황 손가락 장면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충북 음성 꽃동네 희망의 집을 방문해 장애인들과 만남을 가졌다. 교황은 장애인 한명 한명의 머리를 쓰다듬고 입을 맞췄다. 강당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으라는 꽃동네 측의 거듭된 권유에도 의자에 앉지 않은 교황은 장애아동이 건넨 화환을 목에 건 채 따뜻한 눈길로 이들을 둘러봤다. 노래와 율동을 선물한 아이들의 공연을 끝까지 서서 관람한 뒤 “교황님 사랑합니다”라는 아이들의 외침에 엄지손가락을 들어 화답했다. 뒤이어 입양을 기다리는 아기들을 축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황은 아기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한 명 한 명 이마에 축복의 키스를 하던 도중에 한 아기가 눈앞에 교황이 얼굴을 들이대도 딴 곳을 응시한 채 조그만 자신의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 아기의 무뚝뚝한 반응에 주변 사람들이 살짝 당황하고 있던 가운데 교황이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재치를 발휘했다. 자신의 손가락을 아기의 입에 갖다 댄 것. 그러자 아기는 그제야 교황을 의식한 듯 교황을 바라보며 교황의 손가락을 마치 엄마의 손가락인 양 빨았다. 교황 손가락을 잡고 입으로 빨려고 놓지 않는 아기를 흐뭇한 미소와 함께 잠시 그대로 지켜보던 교황은 손가락을 뺀 뒤에도 침 묻은 손가락을 닦지도 않은 채 한동안 아기를 바라봤다. 이 같은 교황의 돌발 행동은 엄마 없이 자란 아기를 위로하고 축복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풀이되며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그 밖에도 교황은 장애아동들의 공연에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 모양을 그려 보이기도 했다. 두 손을 전혀 쓰지 못하는 김인자(74)씨가 발가락으로 접은 종이학과 하반신을 전혀 쓰지 못하는 여성 장애인이 한땀 한땀 떠서 만든 자수 초상화를 선물 받고는 얼굴을 쓰다듬으며 깊은 감사의 뜻을 전했다. 교황은 앞서 희망의 집 안내를 맡은 수녀와 수사 신부가 건물 입구에서 무릎을 꿇자 일어나라고 손짓을 한 뒤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교황은 앞서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된 카퍼레이드 도중 세월호 유가족 400여명이 모인 곳에 도착하자 차에서 내려 김유민양을 잃고 34일째 단식 중인 김영오(47)씨의 두 손을 맞잡고 아픔을 달랬다. 또 가족 시신을 찾지 못해 진도 팽목항에 머물고 있는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들에게 위로 편지와 묵주를 선물했다. 교황은 17일 세월호 희생자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 세례식에 배석한 천주교 수원교구 안산대리구장 김건태 신부에게 “실종자 가족에게 전해달라”며 ‘프란치스코’라는 자필 서명이 담긴 한글 편지와 묵주 10개를 전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8일 오후 12시 50분쯤 4박 5일간의 한국 방한 일정을 모두 마치고 성남 서울공항에서 대한항공 편으로 출국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교황 손가락 축복’ 무관심한 아기 눈빛 돌린 진심…세월호 실종자 가족에 위로 편지·묵주 전달

    ‘교황 손가락 축복’ 무관심한 아기 눈빛 돌린 진심…세월호 실종자 가족에 위로 편지·묵주 전달

    ‘교황 손가락’ ‘교황 출국’ 교황 손가락 장면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충북 음성 꽃동네 희망의 집을 방문해 장애인들과 만남을 가졌다. 교황은 장애인 한명 한명의 머리를 쓰다듬고 입을 맞췄다. 강당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으라는 꽃동네 측의 거듭된 권유에도 의자에 앉지 않은 교황은 장애아동이 건넨 화환을 목에 건 채 따뜻한 눈길로 이들을 둘러봤다. 노래와 율동을 선물한 아이들의 공연을 끝까지 서서 관람한 뒤 “교황님 사랑합니다”라는 아이들의 외침에 엄지손가락을 들어 화답했다. 뒤이어 입양을 기다리는 아기들을 축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황은 아기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한 명 한 명 이마에 축복의 키스를 하던 도중에 한 아기가 눈앞에 교황이 얼굴을 들이대도 딴 곳을 응시한 채 조그만 자신의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 아기의 무뚝뚝한 반응에 주변 사람들이 살짝 당황하고 있던 가운데 교황이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재치를 발휘했다. 자신의 손가락을 아기의 입에 갖다 댄 것. 그러자 아기는 그제야 교황을 의식한 듯 교황을 바라보며 교황의 손가락을 마치 엄마의 손가락인 양 빨았다. 교황 손가락을 잡고 입으로 빨려고 놓지 않는 아기를 흐뭇한 미소와 함께 잠시 그대로 지켜보던 교황은 손가락을 뺀 뒤에도 침 묻은 손가락을 닦지도 않은 채 한동안 아기를 바라봤다. 이 같은 교황의 돌발 행동은 엄마 없이 자란 아기를 위로하고 축복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풀이되며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그 밖에도 교황은 장애아동들의 공연에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 모양을 그려 보이기도 했다. 두 손을 전혀 쓰지 못하는 김인자(74)씨가 발가락으로 접은 종이학과 하반신을 전혀 쓰지 못하는 여성 장애인이 한땀 한땀 떠서 만든 자수 초상화를 선물 받고는 얼굴을 쓰다듬으며 깊은 감사의 뜻을 전했다. 교황은 앞서 희망의 집 안내를 맡은 수녀와 수사 신부가 건물 입구에서 무릎을 꿇자 일어나라고 손짓을 한 뒤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교황은 앞서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된 카퍼레이드 도중 세월호 유가족 400여명이 모인 곳에 도착하자 차에서 내려 김유민양을 잃고 34일째 단식 중인 김영오(47)씨의 두 손을 맞잡고 아픔을 달랬다. 또 가족 시신을 찾지 못해 진도 팽목항에 머물고 있는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들에게 위로 편지와 묵주를 선물했다. 교황은 17일 세월호 희생자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 세례식에 배석한 천주교 수원교구 안산대리구장 김건태 신부에게 “실종자 가족에게 전해달라”며 ‘프란치스코’라는 자필 서명이 담긴 한글 편지와 묵주 10개를 전달했다. 교황은 편지에서 10명의 실종자 이름을 한 명씩 모두 열거하고 이들이 부모와 가족 품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8일 오후 12시 50분쯤 4박 5일간의 한국 방한 일정을 모두 마치고 성남 서울공항에서 대한항공 편으로 출국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교황 손가락 축복’ 무관심한 아기에 교황이 손가락 대자…세월호 실종자 가족에 위로 편지

    ‘교황 손가락 축복’ 무관심한 아기에 교황이 손가락 대자…세월호 실종자 가족에 위로 편지

    ‘교황 손가락’ ‘교황 출국’ 교황 손가락 장면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충북 음성 꽃동네 희망의 집을 방문해 장애인들과 만남을 가졌다. 교황은 장애인 한명 한명의 머리를 쓰다듬고 입을 맞췄다. 강당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으라는 꽃동네 측의 거듭된 권유에도 의자에 앉지 않은 교황은 장애아동이 건넨 화환을 목에 건 채 따뜻한 눈길로 이들을 둘러봤다. 노래와 율동을 선물한 아이들의 공연을 끝까지 서서 관람한 뒤 “교황님 사랑합니다”라는 아이들의 외침에 엄지손가락을 들어 화답했다. 뒤이어 입양을 기다리는 아기들을 축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황은 아기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한 명 한 명 이마에 축복의 키스를 하던 도중에 한 아기가 눈앞에 교황이 얼굴을 들이대도 딴 곳을 응시한 채 조그만 자신의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 아기의 무뚝뚝한 반응에 주변 사람들이 살짝 당황하고 있던 가운데 교황이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재치를 발휘했다. 자신의 손가락을 아기의 입에 갖다 댄 것. 그러자 아기는 그제야 교황을 의식한 듯 교황을 바라보며 교황의 손가락을 마치 엄마의 손가락인 양 빨았다. 교황 손가락을 잡고 입으로 빨려고 놓지 않는 아기를 흐뭇한 미소와 함께 잠시 그대로 지켜보던 교황은 손가락을 뺀 뒤에도 침 묻은 손가락을 닦지도 않은 채 한동안 아기를 바라봤다. 이 같은 교황의 돌발 행동은 엄마 없이 자란 아기를 위로하고 축복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풀이되며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그 밖에도 교황은 장애아동들의 공연에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 모양을 그려 보이기도 했다. 두 손을 전혀 쓰지 못하는 김인자(74)씨가 발가락으로 접은 종이학과 하반신을 전혀 쓰지 못하는 여성 장애인이 한땀 한땀 떠서 만든 자수 초상화를 선물 받고는 얼굴을 쓰다듬으며 깊은 감사의 뜻을 전했다. 교황은 앞서 희망의 집 안내를 맡은 수녀와 수사 신부가 건물 입구에서 무릎을 꿇자 일어나라고 손짓을 한 뒤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교황은 앞서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된 카퍼레이드 도중 세월호 유가족 400여명이 모인 곳에 도착하자 차에서 내려 김유민양을 잃고 34일째 단식 중인 김영오(47)씨의 두 손을 맞잡고 아픔을 달랬다. 또 가족 시신을 찾지 못해 진도 팽목항에 머물고 있는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들에게 위로 편지와 묵주를 선물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8일 오후 12시 50분쯤 4박 5일간의 한국 방한 일정을 모두 마치고 성남 서울공항에서 대한항공 편으로 출국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프란치스코 교황 시복미사 전 세월호 유족 위로…“세월호를 잊지 말아주세요”

    프란치스코 교황 시복미사 전 세월호 유족 위로…“세월호를 잊지 말아주세요”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복미사를 하기 전 세월호 유족을 만나 위로를 건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6일 오전 시복미사 집적 직전 서울시청에서 광화문 앞까지 카퍼레이드 행사를 진행하던 중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했다. 이날 오전 9시 8분쯤 서소문 순교성지 방문을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은 광화문 바로 앞 제단까지 카퍼레이드가 진행되는 동안 시종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교황이 탄 차는 제단을 돌아 오전 9시 31분쯤 세월호 유족 400여명이 모여 있던 광화문광장 끝에 멈췄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족들을 향해 손을 모아 짧은 기도를 올린 뒤 차에서 내려 ‘유민 아빠’ 김영오 씨와 손을 맞잡았다. 김영오 씨는 교황의 손등에 입을 맞춘 뒤 “특별법 제정을 도와달라. (저희가 쓴) 편지를 드려도 되겠느냐”고 했고, 교황이 고개를 끄덕이자 노란색 봉투에 담긴 편지를 건넸다. 그는 “(교황이 대답을 하셨지만) 너무 시끄러워서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계속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고, (왼쪽 가슴의 노란리본) 배지를 바로잡아 드리니 껄껄 웃으셨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은 교황에게 “감사합니다”란 말을 연발했고, 교황은 다시 차에 올라 카퍼레이드를 이어갔다. 프란치스코 교황 시복미사 전 세월호 유족 위로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프란치스코 교황 시복미사, 세월호 유족 위로 큰 힘이 됐으면”, “프란치스코 교황 시복미사, 세월호 유족 위로, 세월호 잊지 말아주세요”, “프란치스코 교황 시복미사, 세월호 유족 위로, 프란치스코 교황님 존경합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교황 “세월호 십자가 로마로 가져가겠다”… 감동의 스킨십

    교황 “세월호 십자가 로마로 가져가겠다”… 감동의 스킨십

    ‘짧은 만남, 깊은 위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만나 위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5일 오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성모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기 직전 제의실 앞에서 세월호 참사 생존자인 단원고 학생 대표와 유가족 10명을 만나 일일이 손을 잡고 위로의 뜻을 전했다. 교황이 외국 방문을 하면서 관례상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지만 이번 세월호 유족들 면담과 같은 만남은 이례적이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만남은 비록 5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방한 첫날인 지난 14일 서울공항에서 영접 나온 세월호 유족에게 “아픔을 깊이 새기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교황의 각별한 관심을 보여줬다. 유가족들은 교황 면담 뒤 기자들과 만나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특별법 제정에 정부와 의회가 나서도록 해 달라고 말씀드렸다”면서 단식 중인 세월호 희생 학생의 아버지를 광화문 미사 때 안아 달라는 요청에 교황이 고개를 끄떡였다고 전했다. 경기 안산에서 대전까지 십자가를 메고 걸어온 희생자 아버지 김학일씨는 “제의실에 300명의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 십자가와 함께 있으니 억울하게 죽은 영혼과 함께 미사를 집전해 달라”는 부탁에 교황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방한준비위원회 측은 “교황은 십자가를 로마로 가져가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에 교황이 십자가를 가져가는 데 필요한 절차는 주한 교황청대사관에서 담당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이와 함께 교황에게 안산 단원고 학생과 교사, 유가족의 사진이 들어 있는 앨범과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해 줄 것을 부탁하는 영문 편지를 전달했고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 2명도 영어와 스페인어로 쓴 편지를 전했다. 교황은 미사를 집전하면서 유가족들이 선물한 노란 리본을 왼쪽 가슴에 줄곧 달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들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교황의 의지에 부합해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있을 천주교 순교자 124위 시복식에도 세월호 참사 유족 600여명의 참석이 확정됐다. 한국천주교는 현재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부근에서 농성 중인 유족들을 시복식 때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교황을 볼 수 있도록 좌석을 제단 근처로 옮기도록 배려할 방침이다. 이 같은 교황의 각별한 관심에 세월호 유가족들은 시복 행사가 열리는 광화문광장의 농성장을 줄이기로 합의했다. 세월호 유족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례하는 시복식에 앞서 세월호 희생자인 고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가 단식하는 텐트 등 2개동만 남기고 일단 철수하기로 했다고 이날 밝혔다. 유족들은 16일 오후 시복식이 끝나면 다른 천막들을 원래 위치에 복귀시키기로 했다. 한편 세월호 범국민대책위원회도 15일 오후 광화문에서 집회를 열고 밤에는 시청광장에서 문화제를 열 계획이었으나, 유족들의 의사를 존중해 문화제를 취소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사설] 여야 역지사지로 세월호 치유해 민생 돌보길

    세월호 특별법으로 꽉 막힌 정국이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이완구 새누리당·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어제 취임 100일을 맞았으나 이후 처리된 법안은 단 한 건도 없다. 지난 7일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 등 11개항이 물거품이 되면서 민생법안은 물론 국정감사 일정까지 ‘올스톱’될 위기에 놓였다. 여야 지도부는 정치력을 발휘, 대화와 소통을 통해 세월호 특별법 해법을 찾아 경제회생 법안을 처리하는 등 민생을 돌보기 바란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은 참사 122일째인 어제 대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10명의 실종자를 찾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제 성남공항에 나온 유족들에게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위로했다. 유가족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세월호 참사가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히고 있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제 교황청대사관에서 집전한 첫 미사에서 역지사지의 마음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한다. 정치권은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세월호 특별법안을 하루속히 처리해야 한다. 새누리당은 여야 원내대표 간 세월호법 합의를 야당이 먼저 깬 점을 내세우며 재협상은 없다는 입장인 반면 새정치연합은 공은 새누리당에 넘어가 있다고 주장한다. 새정치연합이 특별검사추천위원회의 국회 몫 4인 구성과 관련해 ‘여야 각 2명씩’이 아닌 ‘여당 1명, 야당 3명’을 제안한 것을 두고서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특검추천권이나 세월호 국정조사 청문회 증인과 관련해 융통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이완구 대표는 의원들에게 문자를 보내 오는 18일 본회의를 예고했다. 본회의가 무산돼 ‘세월호 침몰사고 피해학생의 대학입학지원 특별법’을 처리하지 못하면 안산 단원고 3학년생들은 오는 9월 수시모집 중에 특례법 적용을 받지 못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처음 실시할 예정인 ‘분리 국정감사’가 이뤄지려면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 국감 시작일인 오는 26일 이전 마지막 국무회의가 19일로 예정돼 있어서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15개월 만에 낮추는 등 정부와 정책 공조를 하고 있다. 이젠 국회가 민생법안들을 처리해 화답해야 한다. 여야는 세월호 특별법과 민생법안들을 더 이상 방치해선 결코 안 된다. 여당이 세월호 특별법 쟁점인 특별검사 추천위원회의 국회 몫 4인 구성이나 세월호 국정조사 청문회 증인 문제에서 먼저 탄력적인 입장을 제시하는 등 대승적 결단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 프란치스코 교황 시복미사 전 세월호 유족 위로 감동…세월호 유족 “세월호를 잊지 말아주세요”

    프란치스코 교황 시복미사 전 세월호 유족 위로 감동…세월호 유족 “세월호를 잊지 말아주세요”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복미사를 하기 전 세월호 유족을 만나 위로를 건넸다. 세월호 유족들은 교황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며 편지를 전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6일 오전 시복미사 집적 직전 서울시청에서 광화문 앞까지 카퍼레이드 행사를 진행하던 중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했다. 이날 오전 9시 8분쯤 서소문 순교성지 방문을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은 광화문 바로 앞 제단까지 카퍼레이드가 진행되는 동안 시종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교황이 탄 차는 제단을 돌아 오전 9시 31분쯤 세월호 유족 400여명이 모여 있던 광화문광장 끝에 멈췄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족들을 향해 손을 모아 짧은 기도를 올린 뒤 차에서 내려 ‘유민 아빠’ 김영오 씨와 손을 맞잡았다. 김영오 씨는 교황의 손등에 입을 맞춘 뒤 “특별법 제정을 도와달라. (저희가 쓴) 편지를 드려도 되겠느냐”고 했고, 교황이 고개를 끄덕이자 노란색 봉투에 담긴 편지를 건넸다. 그는 “(교황이 대답을 하셨지만) 너무 시끄러워서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계속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고, (왼쪽 가슴의 노란리본) 배지를 바로잡아 드리니 껄껄 웃으셨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은 교황에게 “감사합니다”란 말을 연발했고, 교황은 다시 차에 올라 카퍼레이드를 이어갔다. 프란치스코 교황 시복미사 전 세월호 유족 위로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프란치스코 교황 시복미사, 세월호 유족 위로 감동적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 시복미사, 세월호 유족 위로, 정부는 뭐하나”, “프란치스코 교황 시복미사, 세월호 유족 위로, 정치권이 부끄럽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광장] “가만히 있으라” vs “잊지 않겠다”/문소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가만히 있으라” vs “잊지 않겠다”/문소영 논설위원

    서울 광화문에는 앙상하게 뼈와 가죽만 남은 김영오씨가 광복절인 8·15까지 33일째 단식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난 4월 16일 여객선 세월호를 타고 학교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살아 돌아오지 못한 유민 학생의 아빠다. 그의 가슴에는 ‘세월호 유가족 특별법 제정 단식 33일’이, 등에는 ‘대통령님! 힘없는 아빠 쓰러져 죽거든 사랑하는 유민이 곁에 묻어주세요’라는 글귀가 달렸다. 그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4개월이 되는 “8월 16일까지 세월호특별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관을 짜놓고 여기서 쓰러져 죽을 때까지 단식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런 소식에 미국 학자 놈 촘스키는 지난 14일 그에게 편지를 보내 “당신의 고귀한 행동이 당연히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수사권·기소권을 가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그가 목숨 걸고 단식하지만, 주요 뉴스로 다뤄지지 않는다. 왜일까. 여야 간 이견도 있지만,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결정적 역할을 할 여당 의원들이 7·30 재·보선 이후 민심 반영에 관심이 없는 탓으로 본다. 광화문에서 농성과 단식을 하는 유가족에게 “노숙자 같다”거나 “제대로 단식했으면 벌써 탈이 났을 것”이라며 모욕을 줬다. 유족들에게 “당신들 가만히 있으라”고 호통치고,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규정하며 “국가유공자보다 더 많이 보상받으려 한다”는 말도 퍼뜨렸다. 유가족의 단식농성에 박근혜 대통령도 무심해 보였다. “유병언을 잡으라”고 3차례나 검경합동수사본부를 압박했던 박 대통령은 세월호특별법 제정은 지난 5월 19일 대국민 담화에서 언급한 이후 침묵했다. 3개월 지난 11일에서야 “정치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이냐”고 호통쳤지만, 유가족의 반발로 여야 간 세월호 특별법 합의가 무산돼 질타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비난도 받는 한국 대통령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유병언 수사 헛발질과 윤 일병 폭행살인치사와 관련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호통친 지 7시간 만에 경찰청장과 육참총장이 사표를 제출하지 않았나 말이다. 만약 박 대통령이 유가족이 환호할 만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신호를 여당에 보냈더라면, 입법권이 국회의 일이지만 여당은 결코 그 신호를 무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후 지난 4월 말 방한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그의 관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검은색 양복을 입어 세월호 참사를 위로한다는 인상을 한국인에게 주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화사한 하늘색 상의를 입어 대조를 이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4일 방한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희생자를 기억하고 있다”고 위로했고, 15일 대전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서는 왼쪽 가슴에 세월호를 추모하는 노란 배지를 달았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광화문 천막 농성장 강제철거가 거론됐을 때 강우일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은 “눈물 흘리는 사람을 내쫓고 사랑의 시복식을 열 수 없다”고 옹호했고, 농성장 고수를 외치던 강경한 세월호 가족은 2개동을 제외하고 나머지 천막을 모두 철거하겠다고 화답했다. 권력 있는 자가 고통받는 자를 관용하면 그 관용은 소통의 시작이 된다는 것을 알리는 화답이었다. 어제는 69회째 광복절이었다. 일제 때 고통받았던 한국인 위안부와 강제징용자들은 69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사과와 배상은 끝났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한국의 발전에 큰 도움을 줬다고 주장한다. 피해자인 우리는 그 태도가 몰염치하고 뻔뻔하다고 느낀다. 때문에 정부는 미국의 압력에도 아베 정부와의 정상회담도 거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역시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측면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정부를 돌아보면, 피해자가 충분히 납득하고 용서할 때까지 정부가 최선을 다해야 ‘화답’이 가능하다. 유가족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윽박지를 게 아니라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세월호 유가족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그것이 세월호 참사가 교통사고라고 치더라도, 사고 이후 정부가 잘못 대처해 304명의 대형 인명피해로 키운 데 대한 속죄가 될 것이다. symun@seoul.co.kr
  • 교황 카퍼레이드 도중 차 멈추고 세월호 유족 위로…“세월호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교황 카퍼레이드 도중 차 멈추고 세월호 유족 위로…“세월호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교황 카퍼레이드’ 교황 카퍼레이드 도중 프란치스코 교황이 차에서 내려 세월호 유족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16일 오전 9시 8분쯤 서소문 순교성지 방문을 마치고 서울광장에서 덮개 없는 흰색 차량에 올라탄 교황은 광화문 바로 앞 제단까지 카퍼레이드가 진행되는 동안 시종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는 때때로 차를 멈춘 뒤 부모와 함께 미사에 참석한 어린이 10여명을 들어 안고 머리에 입을 맞추거나 머리를 쓰다듬었다. 교황이 탄 차는 제단을 돌아 오전 9시 31분쯤 세월호 유족 400여명이 모여 있던 광화문광장 끝에 멈췄다. 교황은 유족들을 향해 손을 모아 짧은 기도를 올린 뒤 차에서 내려 딸 김유민양을 잃고 34일째 단식 중인 김영오(47)씨의 두 손을 붙잡았다. 김씨는 교황의 손등에 입을 맞춘 뒤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 세월호를 절대 잊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교황이 대답을 하셨지만) 너무 시끄러워서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계속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고, (왼쪽 가슴의 노란리본) 배지를 바로잡아 드리니 껄껄 웃으셨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교황에게 미리 준비한 노란색 봉투에 담긴 편지를 건네기도 했다. 편지에는 “당신께선 가난하고 미약하고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을 끌어안는 것이 교황이 할 일이라고 하셨다”면서 “세월호 유가족은 가장 가난하고 보잘 것 없으니 도와주시고 보살펴 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도와주시라”는 내용이 담겼다. 유족들은 교황에게 “감사합니다”란 말을 연발했고, 교황은 다시 차에 올라선 뒤에도 유족에게서 잠시 눈을 떼지 못하다가 인사를 하고 카퍼레이드를 재개했다. 유족 400여명은 이날 ‘세월호 진상 규명’ 등이 적힌 노란색 종이를 들고 교황을 맞았다. 유족들이 단식농성 장소에 서 있는 천막 지붕에는 노란색으로 ‘We want the truth’(우리는 진실을 원한다)라는 글귀가 나붙었다. 교황 세월호 유족 위로에 네티즌들은 “교황 세월호 유족 위로, 감사합니다”, “교황 세월호 유족 위로, 정치권 부끄럽다”, “교황 세월호 유족 위로, 감동이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교황, 하늘길 열어준 中에 “축복” 단절됐던 中·바티칸 화해 무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 중국 영공을 통과하면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 국민을 향해 축복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인민망이 14일 보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시 주석에게 보낸 전보에서 “중국의 영공에 들어서면서 각하와 중국 국민에게 축복을 드린다. 중국의 평화와 행복을 위한 신의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시 주석이 답신을 보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는 자국이 전과 달리 교황을 위해 하늘길을 열어준 것을 계기로 양측 간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다는 외신들의 보도를 비중 있게 다루는 등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를 내비치고 있다. 양측은 1951년 바티칸이 타이완 정부와 수교했다는 이유로 관계를 단절했다. 이후 1957년 중국이 관제 단체인 ‘천주교 애국회’를 만들어 자체적으로 주교를 서품하는 식으로 교황의 권위를 무시하고 천주교 애국회 이외의 사제와 신도를 탄압하면서 갈등을 겪어 왔다.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9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방문에 나섰을 때 중국이 영공 통과를 거부해 러시아 영공을 우회해야 했다. 환구시보는 이날 자체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계정에서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를 인용해 “바티칸은 오랫동안 중국 정부와의 관계 개선을 희망해 왔으며, 타이완과 단교할 의사도 표명했다”고 전했다. 중국은 바티칸이 타이완과 단교해야 수교한다는 방침이지만 바티칸이 주도적으로 기존 외교 관계를 단절한 사례는 거의 없다. 그러나 지난 3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언론 인터뷰에서 “시 주석 선출 뒤 (축하)편지를 보냈고 시 주석으로부터 답신도 받았다”고 말하는 등 양측 간 관계 개선 신호가 이어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신보를 영생케 하여 한국 민족을 구하라”

    “신보를 영생케 하여 한국 민족을 구하라”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민족을 구하라.” 제69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베델 선생(1872~1909) 공훈 선양 학술강연회’에서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베델 선생은 한영수호조약이 체결된 1883년 이후 오늘날까지 130여년간 한국인들에게 가장 깊은 신뢰와 존경을 받은 영국인”이라고 소개했다.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 한국 이름으로 ‘배설’인 선생은 37살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면서도 “신보를 영생케 하라”는 유언을 남기며 마지막까지 한국의 독립을 염려했다. 신보는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를 일컫는다. 국가보훈처는 지난달 31일 ‘8월의 독립운동가’로 베델 선생을 선정했다. 강연회에 참석한 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은 축사에서 “내한 11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헌신한 베델 선생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헌을 기리는 것은 매우 뜻깊다”면서 “선생의 마지막 유언은 우리나라를 향한 사랑과 간절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강연회는 광복회가 주최하고 국가보훈처, 서울신문사가 후원했다. 국가보훈처는 8월 한 달간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선생의 생애와 독립운동 활동을 담은 기획전시회를 연다. 러·일전쟁 취재를 위해 1904년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 특파원으로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베델 선생은 반일 감정이 고조되던 당시 ‘대한매일신보’와 영문판 ‘코리아 데일리 뉴스’를 발행해 항일 언론 활동을 벌였다. 정 교수는 “40년 전부터 대한매일신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한국, 영국, 일본 세 나라를 돌며 베델 선생을 연구했다”면서 “대한매일신보는 항일 논조로 한국에서 항일 민족운동을 크게 고취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베델 선생의 후손으로부터 받은 선생의 젊은 시절 사진들을 공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축하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박 시장은 영상을 통해 “베델 선생은 외국인이지만 한국 독립운동에 가장 큰 역할을 하신 분”이라면서 “8월의 독립운동가 선정과 학술강연회가 베델 선생의 뜻이 다시 우리 국민들 가슴에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전했다. 강연회에 참석한 서울 은로초등학교 학생 대표 윤지섭(10)군은 “베델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정의사상과 박애정신을 가지신 훌륭한 분이셨다고 배웠습니다. 앞으로 선진 국가의 큰 일꾼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낭독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16일 광화문 시복식에 세월호 유가족 600명 참석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16일 광화문 시복식에 세월호 유가족 600명 참석

    “(희생자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약속이 방한 행사를 통해 하나씩 실천에 옮겨지고 있다. 교황방한위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집전하는 ‘순교자 124위’ 시복 미사에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600명이 참석할 예정이라고 14일 밝혔다. 미사 참석은 광화문에서 단식 농성을 이어가는 유가족들이 교황방한위원회에 요청함에 따라 이뤄졌다. 위원회 대변인인 허영엽 신부는 이날 서울 중구 소동공 롯데호텔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전날 세월호 유족 측에서 600명이 시복식에 참석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허 대변인은 이어 “이미 (시복식의) 자리 배치가 끝났지만 신도들이 불편을 감수하고 조금씩 좁혀서 앉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유가족들은 시복식 미사 전날인 15일 밤 행사 준비를 위해 잠시 광화문 밖으로 거처를 옮겨야 한다. 방한위원회 위원장인 강우일 주교가 ‘농성장 철거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힘에 따라 강제 철거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12일 강 주교는 담화문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을 내쫓고 예수님께 미사를 거행할 수 없다”며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배려를 약속했다. 교황은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집전에 앞서서도 세월호 유가족들을 비공개로 만난다. 위원회에 따르면 세월호 유가족과 교황의 만남은 지난 5월 말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이 유가족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처음 요청받았다. 이후 바티칸의 교황청으로부터 긍정적 답변을 얻어 방한 일정에 맞춰 추진돼 왔다. 세월호 실종자 10명에 대한 수색작업이 진행 중인 진도의 실종자 가족들이 교황에게 보낸 편지도 전달된다. 편지에서 실종자 가족들은 “침몰한 세월호 안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 젖은 잠자리 밑에서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며 울고 있는 것 같다”며 “아직 진도의 참사 현장은 진행형임에도 남은 실종자가 10명이라는 이유로 실종자와 가족들은 잊혀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 편지는 15일 교황과 세월호 유가족 및 생존 학생들과의 비공개 만남 자리에서 전달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는 전국을 도보순례 중인 세월호 희생자 가족 3명이 지고 다니는 십자가도 교황에게 전해진다. 유가족들은 16일 광화문 시복 미사 직후에도 일부가 교황을 만나며, 17일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 미사 때는 세월호 생존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참석한다. 서울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진도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식사 전 기도하면 15% 깎아주는 식당, 논란 속 할인제도 폐지

    식사 전 기도하면 15% 깎아주는 식당, 논란 속 할인제도 폐지

    신앙이 돈독한(?) 고객에게 특별할인혜택을 주던 식당이 논란에 휘말리면서 황급히 할인제도를 폐지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윈스턴세일럼에 있는 식당 ‘마리아’. 식사 전 감사기도를 하는 고객에게 ‘마리아’는 그간 최고의 식당이었다. 식당은 음식을 앞에 두고 기도를 올리는 고객에게 주던 특별할인 때문이다. 식당은 이런 고객에게 가격의 15%를 깎아줬다. 식당의 할인정책은 우연히 가격할인을 받은 한 고객이 라디오에 제보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그는 “(평소처럼) 기도를 하고 식사를 하자 계산할 때 식당이 15% 할인을 해줬다”며 “그런 할인제도가 있는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식당의 할인정책이 소개되자 인터넷은 찬반론으로 들끓기 시작했다. 종교의 자유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재단은 식당에 편지를 보내 “할인을 즉각 중단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재단은 “식당의 할인정책이 종교와 인종을 이유로 차별을 금하고 있는 법률에 위배될 수 있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식당의 할인정책이 비종교인을 차별했다는 것이다. 논란이 일자 식당주인은 바로 할인정책을 폐지했다. 사진=해당 식당 홈페이지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경찰간부 음독사망 전 유서 남겨 “일 잘해서 심사승진 1명도 없다…돈 거래 당연”

    경찰간부 음독사망 전 유서 남겨 “일 잘해서 심사승진 1명도 없다…돈 거래 당연”

    ‘경찰간부 음독사망’ 경찰간부 음독사망 사건의 파문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자살한 A경감의 유서가 공개됐다. 불공정 수사를 했다는 의혹을 받아오다 14일 오후 음독자살한 광주지방 경찰청 소속 A경감은 본인은 떳떳하다는 내용과 함께 경찰 조직 내부에 대한 비리를 암시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담당 검사에게 보내는 서한 형태로 된 편지는 “수사과정에 저를 출석해 주시면…”이라는 문장에서 엿볼 수 있듯이 죽음을 결심하기 이전에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A경감은 해당 서한을 농약을 마시기 1~2시간 전 만난 지인에게 봉투에 담아 전달하며 광주경찰청 출입기자들에게 보내 줄 것을 부탁했다. A경감은 “화물불법증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외부의 유혹과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공정하게 수사해 왔다”며 자신이 결백하다는 증빙내용과 정황증거를 설명하는 내용을 빼곡히 적었다. A경감은 “(검찰에게)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재판을 받으면 무혐의가 입증될 것”이라면서도 “그때는 내가 이미 갈기갈기 살점이 찢겨버린 이후일 것이다. 시선들을 감당할 자신과 건강이 뒤받쳐주지 않는다”고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특히 경찰 내부 인사에 대한 불신을 쏟아낸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A경감은 “고졸인 탓에 시험승진은 어려워 특진을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며 그 이유로 “특진은 열심히 하면 진급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지만 심사승진은 그렇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경찰 심사승진에) 빽은 필수요 돈은 당연한 거래가 된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며 “각 심사 승진을 확인해보면 사실로 드러날 것이다. 일 잘해서 심사승진하는 직원은 단 한 명도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일은 잘해도 돈은 필수 지참금이다”고까지 말했다. A경감은 자신을 음해하거나 무고한 경찰 동료, 사건관계자, 일부 언론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 줄 것을 사건 담당 검사에게 요청하며 “저 같은 희생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유서를 마무리지었다. 유서내용을 뒤늦게 전해들은 광주지방경찰청 측은 “A경감은 이미 내부 수사에서 무혐의 결론 받았다”며 “(경찰 비위를 언급한) 문서를 확인해보겠다”고 밝혔다. A경감가 유서에 남긴 경찰내부 인사 비위에 대한 내용은 경찰 조직 내외로 파문을 확산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십자가, 로마로 가져가겠다” 프란치스코 교황, 노란리본 달고 미사 집전

    “세월호 십자가, 로마로 가져가겠다” 프란치스코 교황, 노란리본 달고 미사 집전

    ‘세월호 십자가’ “세월호 십자가, 로마로 가져가겠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5일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게 받은 십자가를 로마로 가져가겠다고 밝혔다고 천주교 교황방한위원회가 전했다. 방한위에 따르면 ‘세월호 십자가’로 알려진 도보 순례단의 십자가는 사전에 천주교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에게 전달됐다. 유 주교는 십자가를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가 열리는 대전월드컵경기장 내 제의실(祭衣室)에 미리 가져다 놨다고 한다. 방한위 측은 “교황이 십자가를 가져가는데 필요한 절차는 주한 교황대사관에서 담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순례단이 진도 팽목항에서 ‘아이들의 눈물’이라며 떠 온 바닷물은 경기장에 반입이 금지된 물품이어서 유족 스스로 교황에게 전달하는 것을 취소했다. 앞서 안산 단원고 학생인 고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와 고 김웅기 군의 아버지 김학일 씨 등으로 구성된 도보 순례단은 지난달 8일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십자가를 멘 채 단원고를 출발했고 지난 13일 대전에 도착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를 집전하기에 앞서 제의실 앞에서 세월호 생존 학생 2명, 유가족 8명 등 10명과 만나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졌다. 교황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들이 차례로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김학일 씨가 “300명의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 십자가와 함께 있다”며 “억울하게 죽은 영혼과 같이 미사를 집전해달라”고 말하자 교황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이들은 교황에게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뜻이 담긴 노란 리본과 팔찌를 건넸고, 교황은 노란 리본을 달고 미사를 집전했다. 이밖에 유가족은 안산 단원고 학생과 교사, 유가족의 사진이 든 앨범과 함께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해 달라고 부탁하는 영문 편지를 전달했고, 생존 학생 2명은 영어와 스페인어로 쓴 편지를 건넸다. 한편 이날 미사에는 모두 36명의 세월호 사고 생존 학생과 유가족이 참석했다. 교황 미사 집전 소식에 “교황 미사 집전, 세월호 십자가 그런 의미가”, “교황 미사 집전, 세월호 십자가 슬프다”, “교황 미사 집전, 세월호 십자가 가슴 아프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유족, 꼭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 손 맞잡고 위로…방한 일정 시작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유족, 꼭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 손 맞잡고 위로…방한 일정 시작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유족’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유족 위로가 화제가 되고 있다.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14일 공항에 영접 나온 세월호 유족을 만나 “꼭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등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오전 10시 16분쯤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 영접 나온 세월호 유족들과 인사하면서 손을 맞잡고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위로했다. 공항 환영행사에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故) 남윤철 안산 단원고 교사의 아버지 남수현 씨와 부인 송경옥 씨, 사제를 꿈꿨던 예비신학생 고 박성호(단원고 2학년) 군의 아버지 박윤오 씨, 일반인 희생자 고 정원재 씨의 부인 김봉희 씨 등 세월호 유족 4명이 참여했다. 교황 입국과 비슷한 시각 청운동사무소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한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교황이 전한 메시지를 듣고 눈물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대책위는 전날 광화문광장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어 ‘교황에게 드리는 편지’를 전하면서 “세월호 가족들의 소망을 항상 약자와 고통받는 자의 편에 서는 전 세계인과 나눠달라”고 당부했다. 편지에는 참사 당시 교황이 가족들을 위해 기도한 것에 감사를 표하고 “우리의 억울한 눈물을 닦아주고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청하는 내용이 담겼다. 세월호 가족 10명은 15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미사 직후 교황과 비공개로 면담할 예정이다. 특히 대전 미사에서는 전국을 도보순례 중인 세월호 가족 3명이 지고 다니는 십자가를 교황이 직접 받도록 할 계획이라고 가족대책위는 전했다. 광화문 시복미사가 열리는 16일에도 일부 가족들이 교황을 만나고, 17일 폐막미사에는 생존 학생과 부모들이 참석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소식에 네티즌들은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감사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낮은 데로 임하소서”,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정부가 느끼는 바가 있기를”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軍 병영문화 혁신] “인권위, 윤 일병 사건 간부 위주의 형식적 조사”

    [軍 병영문화 혁신] “인권위, 윤 일병 사건 간부 위주의 형식적 조사”

    국가인권위원회가 육군 28사단 윤모(21) 일병 사건에 대해 부대 간부 위주의 형식적인 조사만 한 뒤 ‘군이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각하 결정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위는 당시 ‘윤 일병이 한 달여 동안 지속적으로 폭행당했다’는 목격자 진술을 확보하고도 추가 목격자를 확보하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서울신문이 13일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인권위의 ‘제28사단 현장조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인권위는 윤 일병 사망 1주일 뒤인 지난 4월 14~15일 조사관 3명을 경기 연천 28사단 포병연대에 보내 5명을 조사했다. 본부포대장인 김모 대위 등 윤 일병 사망과 관련, 지휘·관리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부대 간부 3명과 사망 사건을 조사했던 헌병대장, 의무대에 입실해 윤 일병 구타 장면을 수시로 목격한 김모 일병이다. 간부들은 인권위 조사에서 “윤 일병과 수시로 대화했지만 폭행 징후가 없었다”는 식의 면피성 발언으로 일관했다. 김 대위는 “윤 일병이 2월에 전입 온 뒤 네 차례 면담했지만 선임들이 괴롭혔다는 얘기는 없었다”면서 “윤 일병 외에 최근 1~2년간 우리 부대에서 폭행이나 가혹행위가 포착된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장병들은 전화나 편지로 고충 등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사건 당시 당직사령도 “맥박이 뛰지 않는 급한 환자가 발생해 후송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조치했으며 대대장 및 연대에 보고했다”고 말했다. 보고 체계에 문제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인권위는 가해자 조사는 헌병대가 조사중이라는 이유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권위가 목격자 등에 대한 조사를 꼼꼼히 했다면 초기 수사가 지금처럼 부실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인권위 조사에서 김 일병은 “윤 일병 사인 중 하나가 신장 파열이라고 들었고 가해자들은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그랬다’고 한다는데 말도 안 된다”면서 “가해자가 윤 일병의 복부를 지근지근 밟는 등 심하게 폭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음식물로 인한 기도폐쇄’를 직접 사인으로 본 군 검찰 측에 인권위가 이견을 제기할 만한 진술을 확보하고도 적극 나서지 않은 것이다. 한편 육군본부 법무실장인 김흥석 준장이 군 내부 수사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취지의 글을 올려 논란이 예상된다. 김 준장은 육군 내부 전산망에 “여론에 밀려 예하 검찰관의 법적 양심에 기초한 법적 판단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점에 대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밝혀 최근 부실 수사 지적 등에 우회적으로 불만을 제기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문화마당] 황사영 백서/계승범서강대 사학과 교수

    [문화마당] 황사영 백서/계승범서강대 사학과 교수

    조선 후기에 탄압받던 천주교도들이 보인 대응 중에서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된 사례로는 ‘황사영 백서’ 사건을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다. 순조 원년인 1801년에 발생한 대규모 박해로 천주교도들은 체포되거나 흩어져 피신했다. 시골에 잠시 몸을 숨긴 젊은 선비 황사영(1775~1801)은 빛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북경에 주재한 프랑스인 주교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비단에 썼으므로 흔히 백서로 불린다. 그러나 도중에 발각되었고, 자신도 체포돼 처형당함으로써 황사영의 의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백서의 대부분은 황사영이 그동안 보고 들은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개인별로 상세히 적어 보고하는 내용인데, 백서의 말미에서 주교에게 제시한 난국의 타개 방안이 문제가 됐다. 그 핵심은 무고한 백성(천주교도)을 잡아 처형하는 조선 정부를 제어하도록 청나라 황제에게 청원해 달라는 것과 신부들을 태운 서양 군함을 조선에 파견해 시위함으로써 조선 정부가 탄압을 중지하도록 압력을 가해달라는 것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조선왕조가 망한 후에도 황사영은 외세를 끌어들이려 한 매국노 내지는 민족반역자로 두고두고 비난받았다. 이는 황사영의 절박한 호소를 ‘민족국가’라는 근대 이념의 잣대로 재단한 결과다. 민족이 거의 절대적 가치로 군림하던 20세기 한국사회에서는 황사영에 대한 재평가 시도조차 쉽지 않았다. 그런 일방적인 낙인찍기를 지양하고 백서의 내용을 다양하게 분석하려는 움직임이 최근에 활발하지만, 황사영에 대한 부정적 인식 또한 여전하다. 그러나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잠시 내려놓고 인간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생각해 보면, 황사영의 행위는 지극히 일반적인 인지상정(人之常情)의 한 사례일 수도 있다. 국가의 일방적인 폭력 앞에 무방비로 내던져진 상황이라면 굳이 황사영이 아니더라도 보통 사람들은 국가 권력보다 위에 존재하는 보편적 권위에 호소할 것이다. 황사영이 청나라 황제에게 부탁해 달라고 건의한 것은 바로 당시 조선의 종주국으로 존재하던 청나라의 위상을 정확히 꿰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의 세계를 교황이 주도하는 ‘지구촌’으로 이해한 황사영이었기에 군함 파견을 제안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은 대한민국에서도 적지 않았다. 반독재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국가의 폭력(탄압)에 내몰린 이들은 종종 미국을 비롯한 외부세계에 한국의 암담한 현실을 호소하곤 했다. 인권을 유린하는 독재정권에 제재를 가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번주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해 닷새 동안 머문다. 약하고 소외된 자들을 즐겨 만나는 교황이기에, 벌써부터 눈물 어린 각종 호소가 줄지어 기다린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로부터 세월호 유가족에 이르기까지 숱한 억울한 사연들이 교황에게 전달될 것이다. 한국 내에서는 말(상식)이 제대로 통하지 않으니,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어 더 상위의 ‘보편적 존재’에게 호소하려는 것이다. 누군가 정치의 본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지체없이 나는 억울한 사람들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요즘 한국사회에는 억울한 사람들이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만 가는데, 호소할 길은 오히려 좁아져만 간다. 그러니 교황에게 호소하며 눈물짓는다. 이번 교황의 방한을 맞아 우리 한국사회의 상식 문제를 진지하게 되짚어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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