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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이수근 구세군 자선냄비 본부 사무총장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이수근 구세군 자선냄비 본부 사무총장

    연말이면 서울 명동 등 전국 곳곳에서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린다. 이웃과 희망을 나누려는 구세군 자선냄비 소리다. 거리에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은 이달 초 시작해 31일이면 종료된다. 우리나라 기부문화의 효시가 된 자선냄비 모금운동을 펴고 있는 구세군 자선냄비 본부의 이수근(60) 사무총장에게 올해 자선냄비 모금 상황과 나눔의 의미에 대해 들어 봤다. 이 총장은 지난해 구세군에서 발족한 자선냄비 본부 사무총장으로서 2년째 모금 및 배분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1982년 구세군 사관학교 신학과를 졸업, 사관에 임명돼 33년째 사관의 길을 걷고 있다. 인터뷰는 지난 23일 종로구 새문안로 구세군 자선냄비 사무총장실에서 진행됐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유래부터 소개해 주시죠. -1891년 12월 성탄이 가까워 오던 어느 날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해안에서 자선냄비가 첫 종소리를 울렸습니다. 도시 빈민들과 배가 좌초돼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조지프 맥피라는 한 여사관이 오클랜드 부두로 나가 큰 쇠솥을 내걸었고 그 위에 “이 솥을 끓게 합시다”라고 써 붙였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성탄절에 불우한 이웃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기에 충분한 기금을 마련했고 그 후부터 매년 성탄이 가까워지면 구세군 자선냄비가 실시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126개국에서 불우한 이웃과 함께하는 자선냄비 행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 자선냄비가 처음 나왔나요. -우리나라 구세군은 1908년에 조직됐으며 자선냄비는 1928년에 나왔습니다. 홍수와 가뭄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았던 한 해의 끝자락에 얼어 죽은 변사체가 발견되는 일이 잇따르면서 가난한 이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당시 박준섭 구세군 사령관이 정부에 공식 모금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해서 시작했습니다. 그해 12월 15일 서울 명동 등 20여곳에서 처음으로 자선냄비가 나왔죠. 반응이 좋아서 그때 돈으로 848원 67전이 모였고 이 돈은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식사와 땔감을 제공하는 데 쓰였습니다. 우리나라 구세군의 자선냄비는 한국 사회 모금사업의 효시이자 1928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전쟁 기간을 제외하고는 매해 겨울 한 번도 쉼 없이 86년간 지속돼 온 한국 나눔문화의 유산이자 상징이 되었습니다. →모금 및 배분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모금은 서울시내 100곳을 포함해 전국 360곳에서 합니다. 모금이 되면 161개의 전문사회복지시설을 포함한 640곳 나눔처소를 통해 배분합니다. 배분은 지역에서 모금한 것은 해당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소득층, 결식아동, 노인을 위해 쓰인다고 보면 됩니다. 서울의 경우 홈리스나 독거노인을 위해 쓰고 에이즈 예방사업, 미혼모를 위해서도 씁니다. 각 지역에서는 배분 이후 본부에 그 집행 상황을 보고합니다. 그리고 모금액의 10% 정도는 구세군 국제대표부가 나가 있는 몽골, 캄보디아를 비롯해 구세군 활동이 없는 필리핀, 중국 등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데 쓰고 있습니다. →기부금의 투명성은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요. -자선냄비 본부는 외부 회계감사, 행정자치부 감사, 자체 감사, 그리고 국제 감사까지 네 번의 감사를 받고 있습니다. 자선냄비 본부로서는 이처럼 다 감사를 받는데 구세군 종교법인으로서는 감사 대상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 자선냄비 본부가 투명하지 못하다고 오해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죠. 구세군 자선냄비의 모금 및 배부 내역은 연간 사업보고서에서도 볼 수 있고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다 공개하고 있습니다. →모금 실적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습니다. 한국 구세군은 모금 기간을 11월에서 그다음 해 10월 말까지로 잡고 있습니다. 12월 모금을 겨냥해 11월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2012년에 49억원, 13년 64억원, 올해 98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기업체 후원과 일반 시민들의 십시일반이 모여 모금 실적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모금에 동참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올 11월부터 새해 10월 말까지는 120억원 모금이 목표입니다. →전체 모금 중 순수한 거리모금 비중은 얼마나 되나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0월 말까지 100억원 모금 목표에 98억원을 모금했는데 11, 12월 두 달간 모금액이 63억원입니다. 이 중 순수 거리모금액은 30억원 정도 됩니다. 올해 11월부터 내년 10월 말까지 모금 목표액 120억원 가운데 11, 12월 두 달간 65억원을 모금할 계획입니다.(30일 현재 구세군은 66억 2000여만원이 들어왔다고 밝혔다.) →거리모금을 통해 기부하는 사람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다면. -올해까지 4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해마다 1억여원을 익명으로 기부해 주시는 고마운 분이 있습니다. 저희들이 이름을 알려고 해도 거절합니다. 편지 봉투 겉면에 ‘신월동 주민’이라고만 자기소개를 한 분입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자기앞수표와 함께 편지가 들어 있었어요. 올해에는 “나의 기부 뜻을 이해해 주고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위, 딸들에게 칭찬을 아낌없이 해 주고 싶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편지글로 미뤄 어렵게 자수성가한 분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지난해 후순위채권 5000만원을 압구정 자선냄비에 넣어 주신 중년 신사가 있는데 올해에도 같은 금액을 넣고 갔습니다. 후순위채권은 소지자가 은행에 가면 바로 환전이 가능한데 암시장에서는 7000만원에 거래된다고 하더군요. 이 밖에 아기 돌반지, 금으로 된 교정치아, 헌혈증서 20여장을 내주신 분도 있습니다. 아기 돌반지는 아기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어머니가 기부한 것이었습니다. 헌혈증서 같은 경우 병원에서 구세군 자선냄비 본부에 수혈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해 오면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근 손연재 선수도 1000만원을 냈습니다. →자선냄비에 편지 봉투가 들어오면 봉사자들 가슴이 두근두근하겠습니다.(웃음) -지난해와 달리 올해에는 봉투 기부자가 많은데 이는 미리 기부를 준비한 사람이 많다는 것으로 저희로서는 참 고마운 일이죠. 붉은 옷을 입고 자원봉사하는 사람들로선 “내가 봉사 활동을 했는데 이렇게 많이 들어왔다” 하는 기쁜 마음을 가지리라 생각합니다. →자선냄비 모금 장소를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아무래도 왕래객이 있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모금은 장소를 포함해 모금 일정을 정부에 신고하고 승인을 받아서 합니다. 올해는 360곳에서 모금 중입니다. →자선냄비엔 신용카드 단말기도 장착돼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맞습니다. 요즈음 현금보다는 카드를 많이 사용하는 세태를 감안해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신용카드를 통한 모금액은 많지 않습니다. 카드는 2000원, 5000원, 1만원, 2만원 단위로 결제가 가능합니다. →기업 등 기부자가 지정 기탁하면 본부에서는 그냥 따르나요. -그렇습니다. 다만 그냥 (임의로) 기부해 주시면 필요한 곳에 쓰는데 지정 기탁하면 중복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대통령도 자선냄비에 기부를 하시나요. -그렇습니다. 올해는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만 옛날부터 대통령들은 우리가 이야기 안 해도 빠짐없이 기부를 했습니다. 우리가 모금하는 장소에 얘기하지 않고 반드시 옵니다. 오시기 몇 시간 전에 연락이 와요.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모금 시작을 격려하는 동영상 메시지를 보내오셨습니다. →대통령 기부액은 얼마나 되나요. -금액은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현금으로 낸 것으로 기억합니다. →모금액은 어떻게 관리하는지요. -그날 모금한 것은 우체국이나 은행에 바로 집어넣습니다. 거리모금은 12월 한 달만 하는데 20일까지는 오후 6, 7시까지 하며 그 이후는 8시까지 합니다. 서울의 경우 각 거리의 자선냄비 모금통을 자루에 넣고 봉인해서 구세군 본부로 가져오면 자선냄비 본부에서 다시 대형 자루에 넣어 우체국으로 보냅니다. →자선냄비 모양은 세계적으로 같나요. -거의 비슷합니다. 약간씩 다르나 방패 모양은 똑같습니다. 지금 사용하는 우리나라 자선냄비는 8년 전 주방기기업체인 휘슬러에서 만들어 준 것입니다. 사용하다 깨지거나 끊어지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무료로 다 제공해 주고 있어요. 그전에는 양철로 만든 것을 사용했는데 지금은 구세군 역사박물관에 보관돼 있습니다. →자선냄비 본부 발족 계기가 있었나요. -지난해 5월 10일에 본부로 출범했습니다. 본부 출범 전에는 구세군 홍보부에서 모금을, 사회복지부가 배분을, 재무부에서 기금 입출금을 각각 담당했는데 보다 체계적으로 모금 및 배분 업무를 하기 위해 나눔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조직이 필요했죠. 본부가 생기면서 연중 모금으로 전환됐고요. →우리나라 기부 수준은 어떤가요. -10년 전에 비해서는 많이 높아졌습니다만 선진국에 비해서는 여전히 낮습니다. →기부 수준이 낮다면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시민들이 여유가 없어 기부를 못하는 측면과 여유는 있으나 기부 의사가 없는 점, 그리고 모금단체에 대한 신뢰도 저하 등이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의 모금 방식을 본받아 모금 및 배분 활동을 하고 있는데 기부처 개발, 사업 유형, 배분 기술이 10년 정도 뒤진다고 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신뢰도 제고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구세군 자선냄비 활동에 대해 일반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하시죠. -새해 10월 말까지 목표액 120억원 모금을 다 달성하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우리는 86년 역사가 말해 주듯 가장 낮은 곳을 향한 나눔의 단체입니다. 정부에서 복지국가를 지향한다지만 정부가 가난 구제를 다 할 순 없지 않습니까. 민간도 나서야죠. 사회적 안전망이 느슨해지면 안 되는 만큼 우리가 촘촘하게 이 안전망을 기워 주는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세군 자선냄비는 가장 오래된 나눔단체로서, 국민기부금을 전달하는 심부름꾼으로서, 더 많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청렴한 단체로 활동하겠습니다. 박현갑 부국장 eagleduo@seoul.co.kr ■구세군은 구세군(The Salvation Army)은 기독교의 한 교파로 1865년 영국 감리교 목사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가 런던에서 만들었다. 우리나라에는 1908년 개신교의 한 교단으로 도입됐다. 자선냄비와 같은 사회봉사 활동으로 선교 활동을 대신한다.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군대’로서 구세군이라는 군대식 조직으로 운영된다. 구세군 사관학교를 졸업하면 사관으로 임명된다. 신도는 협력자를 포함해 12만명이며 사관은 이수근 사무총장을 비롯해 현재 670명이 활동하고 있다. 정년은 만 65세다. 사관은 종교법인인 대한구세군유지재단법인 산하의 300개 교회에서 담임 목회자를 맡거나 사회복지법인 구세군복지재단 산하 161개 전문 사회복지시설에 원장이나 사무국장으로 파견된다. 구세군대학원대학교와 기술고등학교라는 구세군 학교법인에서 교원으로 일하기도 한다. 사관은 일반 직장인의 월급에 해당하는 생활비로 가계를 꾸린다. 생활비는 4인 가족 최저 생계비 수준인 160만원 정도로 교회재정(헌금)에서 충당되고 있다. 사회복지시설의 경우 정부 위탁시설이 많아 정부 보조를 받는 경우도 있는데 목회자 생활비보다 많이 받으면 차액을 재단에 반납하게 돼 있다.
  • 피자알볼로의 특별한 프로포즈 이벤트, 훈훈한 분위기 속 마무리

    피자알볼로의 특별한 프로포즈 이벤트, 훈훈한 분위기 속 마무리

    수제피자 프랜차이즈 전문점 ‘피자알볼로’에서 진행한 프로포즈 이벤트가 지난 29일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나랑 피자 먹을래, 나랑 결혼할래?‘ 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이벤트는 경제적, 시간적 제약 등의 문제로 특별한 프로포즈를 하기 어려운 사람, 결혼을 했지만 아직 특별한 프로포즈를 해주지 못한 사람 등을 대상으로 접수를 받았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백정훈&정하나 커플이 선정되어 지난 29일 양천구 신정동 소재 알볼로 마을에서 프로포즈 이벤트가 열렸다. 특히 잊지 못할 감동적인 프로포즈를 위해 피자알볼로의 본사 직원들뿐만 아니라 신청자의 지인까지 참여해 프로포즈 음악에 맞춰 플래시몹을 펼치고, 피자알볼로 ‘알카’를 이용한 카(car)퍼레이드를 진행했다. 또한 둘만의 공간을 마련, 스테이크와 샐러드 그리고 와인을 곁들인 식사로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 했다. 알볼로마을 내 ‘카페정류장‘에서 깜짝 영상편지로 고백을 받은 정하나씨는 감동의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피자알볼로는 이번 프로포즈 이벤트의 준비과정 등을 담은 스토리 영상을 피자알볼로 공식 페이스북(www.facebook.com/alvolo8495)과 블로그(http://blog.naver.com/yori4jw) 등을 통해 12월 31일부터 시리즈로 연재한다. 피자알볼로 관계자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프로포즈를 선물하고 싶은 연인들을 위해 이번 이벤트를 기획했는데 성공적인 분위기에 마무리가 됐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이벤트와 따뜻한 소식을 전하는 피자알볼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4년짜리 미생 만든 최경환 학생, F학점”

    “4년짜리 미생 만든 최경환 학생, F학점”

    “최경환 학생, F학점 답안지 받아 가세요.” 지난 16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중앙도서관 게시판과 노천극장 등에는 ‘최경환 학생, 답안지 받아 가세요’라는 대자보가 나붙었다. 앞서 이달 초 연세대와 고려대 등에 ‘최씨 아저씨께 보내는 협박편지’라는 제목으로 학비 문제와 취업난, 청년 자살 문제 등을 거론한 대자보가 붙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시험 답안지 형식을 빌린 대자보에는 ‘오늘날 한국 경제 위기의 해결 방법에 대해 쓰시오’라는 시험문제와 마치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작성한 것처럼 꾸민 답안들이 쓰여 있다. 대자보는 답안에 적힌 경제정책에 모두 감점을 주고 낙제를 뜻하는 ‘F’를 부여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대자보를 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최휘엽(21)씨는 30일 “고려대와 연세대에 최경환 부총리에게 보내는 대자보가 붙었던 것에 공감해 대자보를 붙이게 됐다”며 “최 부총리가 내놓은 경제정책들은 20대의 평범한 대학생이 보기에도 걱정될 정도”라고 밝혔다. 이어 “지금껏 노동자는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고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쉬웠다”며 “(정부가) ‘노동유연화’라는 칼날로 비정규직과 간접고용 노동자, 청년들과 여성 노동자들을 베어 버리고 정규직마저도 베려 한다”고 꼬집었다. 시험 답안지 형식을 빌린 대자보는 학내는 물론이고 온라인상에서도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기말고사 기간에 대자보를 붙이다 보니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많이 학생들이 (대자보를) 읽게 할까 고민하다가 시험지 형태로 붙이게 됐다”며 “페이스북에도 웹자보 형태로 글을 올렸지만 대자보 형태가 아직 대학 내에서는 가장 유의미한 소통의 수단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대자보를 붙인 이후 최씨에게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최씨는 “정부가 비정규직 종합 대책에서 비정규직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릴 수 있도록 한 것은 2년짜리 ‘미생’이 4년짜리 ‘미생’이 되는 것과 다름없다”며 “젊은 세대가 관심을 가지고 머리를 맞대면 좋겠는데 (이번 대자보에 이어) 어떤 형식으로 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최경환 학생에게 > 안녕하세요. 최경환 학생, 아니 한국의 경제 부총리 아저씨. 한국 경기가 한 겨울처럼 꽁꽁 얼어있어서 요즘 걱정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세계경제는 계속 어렵기만 하고, 일본은 돈을 풀어서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하고, 미국은 금리인상 시기를 점치고 있는 와중에 한국은 적절한 경제성장을 위한 출구전략이 안보여서 막막한 것 같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최경환 아저씨가 제시하는 한국경제 위기의 대안을 보고 있노라면, 20대의 평범한 대학생으로써 걱정이 많이 됩니다. 첫 번째 부동산 규제가 한 겨울에 여름옷을 입고 있다며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해 주택 담보대출 등의 규제를 완화하시겠다고 하셨죠. 이미 침체되어 있는 부동산 시장에 집값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말하며, 소비를 활성화 시키겠다는 대책은 빚져서 빚 갚기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이미 가계부채가 천조라는데, 더 부채를 조장해서 어떻게 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대출부담 완화로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6억이 넘는 비싼 집을 가진 사람들만 혜택을 보고 투기로 이어지고 있다는데, 우리 같은 학생들, 서민들에게는 실효성이 없어 보입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대책은 더욱 걱정이 많이 됩니다. 한국은 이제 절반 이상의 노동자가 비정규직인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이중적인 노동구조 맞습니다. 그래서 불안정한 일자리가 너무나 많습니다. 고용이 경직되어 있어서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뙨 안정적인 일자리도 부족하고, 생계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생활임금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쓸 돈도 없습니다. 가계가 돈을 많이 써야지, 내수 활성화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쓸 돈도, 쓸 만한 돈을 벌만한 일자리도 없는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먹고사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일자리에 투자가 가능하겠습니까?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격차, 근로환경 격차를 줄이면서 이중구조 자체를 없애고, 청년, 여성, 중장년층, 노년층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여성들이 결혼, 출산, 임신 등으로 경력단절 문제를 겪는 것, 비정규직 시간제 일자리를 전전하게 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대로 된 여성 노동정책을 내지 않는다면 출산율 저하, 고령화, 정부부채 압박, 생산인구 감소 등의 문제 앞에서 한국은 밑바닥 경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정규직 과보호를 해결하기 위해 해고 요건을 간소화하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최경환 아저씨는 2009년을 기억하시나요? 2009년 쌍용자동차에서는 경영난을 이유로 2646명의 정규직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경영난은 회계조작으로 부풀려진 거짓 경영난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얼마 전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는 적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났습니다. 그리고 쌍용자동차 해고자였던 한 노동자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26번째 죽음입니다. 2009년부터 이어진 죽음의 행렬이 26번째에 죽음까지 도달했습니다. 정규직 과보호가 심하다고요? 이 논란이 있기 전에도 노동자는 언제든지 해고되고, 가난의 끝자락으로 떨어지기 쉬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노동유연화라는 칼날로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 청년들과 여성 노동자들을 베어버리고 정규직마저도 베려고 하시는군요. 600만 명의 장그래가 칼날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서울 중심부의 한 전광판 위에는 씨앤앰 간접고용노동자 2명이 추위에 떨고, 쌍용자동차 노동자 2명은 70m 높이의 굴뚝 위로 올랐습니다. 얼마나 궁핍해지고, 얼마나 아프고, 포기해야만 한국 경제는 살아난단 말입니까? 진짜 살아나기는 하는 겁니까?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가족도, 좋은 집도 다 포기해가며 살아왔지만, 사회에서 요구하는 스펙이란 스펙은 다 쌓고, 할 수 있는 언어란 언어는 다 배워보려 하지만 괜찮은 세상은 더 멀어지기만 합니다. 대자보 읽고 나서 청년들의 좌절이 얼마나 깊은지 알겠다고 하셨죠? 그리고 대화와 소통을 하시겠다고 하셨죠? 청년들만의 좌절과 불안이 아닙니다. 언제까지 대화와 소통하겠다는 말을 인터넷으로만 들어야하는지 지켜보겠습니다. 26번째 쌍용자동차 희생자를 추모합니다. ▶◀ 추운 날씨에 힘겨운 고공농성을 하고 계신 노동자들을 지지합니다. 정치외교학과 12학번 최휘엽
  • 새롭게 만나는 ‘허무와 방황의 아이콘’ 다자이 오사무

    새롭게 만나는 ‘허무와 방황의 아이콘’ 다자이 오사무

    20세기 일본 근대문학의 대표 작가 다자이 오사무(1909~1948) 전집이 사후 60여년 만에 완간됐다. 도서출판 b는 최근 소설 ‘사양’ ‘인간 실격’과 수필집 ‘생각하는 갈대’를 출간하면서 10권에 달하는 전집 번역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2011년 발간 기획 뒤 이듬해 1권 ‘만년’을 시작으로 ‘사랑과 미에 대하여’ ‘유다의 고백’ ‘동경 팔경’ ‘정의와 미소’ ‘쓰가루’ ‘판도라의 상자’ 등 작가의 모든 작품을 발표 순서대로 완역했다. 다자이의 대표작들은 국내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 소개됐지만 전집이 완간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소설은 500쪽 내외로 1~9권으로 묶고, 10권에는 에세이를 모았다. 출판사 측은 “사상적 혼돈에 빠졌던 20세기 다자이라는 아이콘이 2000년대 들어 경제 불황과 높은 실업률,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등으로 방황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다시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번역은 와세다 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연구한 30대 문학도 김재원·정수윤·최혜수 등 3명이 맡았다. 이들은 각권 권말에 저자의 편지, 대화록, 평전, 전기, 부인·딸·선후배의 진술, 작품을 썼을 당시 저자의 심경, 저자가 영향을 받은 사람들과의 일화 등 다자이의 전모를 집대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 출판사 측은 “20~30대 저자의 감성에 어울리는 젊고 감각적인 문체로 번역하는 데 역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다자이는 1909년 아오모리현 북쓰가루에서 태어나 1936년 창작집 ‘만년’으로 등단했다. 1948년 다자이 문학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인간 실격’을 집필한 뒤 서른아홉 나이에 연인과 함께 강에 투신, 생을 마감했다. ‘사양’ ‘인간실격’ 등은 패전 후 실의와 허무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김쌤 안내견’ 미담이의 마지막 등교

    ‘김쌤 안내견’ 미담이의 마지막 등교

    ‘미담이쌤’ 김경민(26·여·서울 인왕중 교사) 씨는 1년 동안 ‘오늘’을 준비했다. 웃으면서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밤새 뒤척이다가 눈을 뜬 순간, 깨달았다. 이별은 준비한다고 해서 쉬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26일 아침, 매일 오가던 길인데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김씨가 8년 동안 동고동락한 안내견 ‘미담이’(10·암컷·래브라도 리트리버종)와 함께 하는 마지막 등굣길이기 때문이다. 생후 1개월 때 녹내장 판정을 받은 김씨는 26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시력을 잃었다. 서울맹학교를 거쳐 2007년 숙명여대 교육학과에 입학했다. 낯선 세계에 들어선 그때,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의 도움으로 미담이와 인연을 맺었다. 강아지를 키워 본 적이 없던 김씨는 미담이가 무섭고 못 미더웠다. 하지만, 1년 8개월간 맹인안내견 훈련을 받은 미담이는 단박에 김씨의 믿음직한 눈과 든든한 발이 됐다. 김씨 곁에는 늘 미담이가 있었다. 맨홀 뚜껑이 열린 보도나 공사장을 지날 때, 승강장과 열차 간 거리가 먼 지하철에서 늘 반걸음 앞서 김씨를 지켰다. ‘개는 안된다’는 식당에서 쫓겨났을 때도, 5주간의 미국 연수 때도 함께 였다. 덕분에 김씨는 2010년 8월, 7학기 만에 문과대 수석졸업을 했고, 같은 해 임용고시에 합격했다. 홍제역에서 인왕중을 오가는 마을버스 7번 기사들에게 김씨는 ‘미담이쌤’으로 통한다. 김씨와 미담이가 매일 같은 시각 버스에 올라타는 걸 아는 기사들은 무전으로 탑승 여부를 확인하고 늘 타던 시간에 김씨가 도착하지 못한 날에는 일부러 기다렸다. 늘 혼자가 익숙했던 김씨는 미담이 덕에 아이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래도 세월을 거스를 순 없었다. 사람 나이로 60~70세에 해당하는 10살이 되면서 짙고 검던 속눈썹은 하얗게 변했고 윤기가 흐르던 털은 푸석해졌다. 언제부턴가 여기저기에 혹이 생기고 그렇게 좋아하던 산책도 힘들어했다. 김씨는 “미담이에게 8년은 평생이라고 할 수 있다”며 “내가 실수로 발을 밟았을 때도 ‘컹’ 한번 짖는 게 전부였다. 실내에서는 짖거나 배변을 하는 법도 없었다”고 말했다. 오전 8시 50분. 첫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김씨는 미담이와 연결된 하네스(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이 움직임을 전달할 수 있도록 설계된 가죽 장구)를 꼭 쥐었다. 평소에는 수업시간에 교무실 책상 아래에서 기다리던 미담이가 이날은 함께 교실로 들어갔다. 김씨가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미담이는 묵묵하게 주인을 지켰다.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하나, 둘 준비한 편지를 들고 나왔다. 미담이를 정성스럽게 그린 그림과 미담이와 마주했던 추억들이 담겨 있었다. 1학년 김지영(13)양은 “마을버스에서 주민들이 미담이를 만지려고 하면 우리들이 나서서 막았다”며 “안내견에게 먹이를 주거나 쓰다듬어 집중력이 떨어지면 시각장애인이 위험해 질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미담이와의 스킨십을 꾹 참았던 아이들은 처음으로 “수고했다”며 머리와 등을 쓰다듬었다. 김씨는 “가족 도움 없이는 집에서 꼼짝도 할 수 없던 내게 미담이는 세상을 선물했다”며 “평생 날 위해 헌신해준 미담이가 정말 고맙다”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미담이는 은퇴와 함께 자원봉사 가정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노후를 보낼 예정이다. 김씨는 새로운 안내견과 ‘인생 2막’을 시작하게 된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18. Q여사에게 (6)야속한 아내, 얄미운 남편 I. 편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18. Q여사에게 (6)야속한 아내, 얄미운 남편 I. 편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인생살이에는 고민이 있습니다. 인터넷 세상이 열리기 한참 전, 활자 매체도 그리 풍부하지 않던 시절, 많은 사람들은 대중 미디어를 통해 고민을 상담하곤 했습니다. 과거 선데이서울도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라는 고정 코너를 운영하며 많은 이의 고민을 들어주었습니다. 저마다 아픈 사연들이 하얀 편지지에 적혀 선데이서울 편집국으로 속속 배달됐고, 기자들은 전문가의 자문을 얻어 일일이 답을 해주었습니다. 40여년 전 그 시절의 고민들은 주로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코너의 주요 내용을 발췌, 몇회로 나눠 전달합니다. (답변 중에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부적절하게 보여지는 것도 있습니다. 내용 자체보다는 당시의 사회상을 가늠하는 데 초점을 맞춰서 보시기 바랍니다.) ▒▒▒▒▒▒▒▒▒▒▒▒▒▒▒▒▒▒▒▒▒▒▒▒▒▒▒▒▒▒ 18. Q여사에게 (6)야속한 아내, 얄미운 남편 I. <남편→아내>편 [Q여사에게] 아내의 무지, 미신에 실망 결혼 3주년이 가까워 오는 요즘 저는 아내의 무지에 점점 더 실망을 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일류 여자고등학교, 일류 대학을 나왔습니다. 대학에서는 전공이 약학입니다. 그런데도 하는 일은 국민학교(초등학교) 졸업생과 다름이 없습니다. 첫딸의 이름을 작명소에서 지어 온 것은 물론 매사에 점쟁이, 관상쟁이의 지시를 받는 것입니다. 아침이면 어젯밤 꿈을 쳐들면서 남편인 저의 행동까지 제한하려 듭니다. “이빨 빠지는 꿈을 꾸었으니 당신 오늘 자동차 조심하고, 밤에는 술마시지 말고 곧장 오세요” 등등…. 요즘은 점쟁이가 직장을 서쪽으로 옮기라고 했다며 법석을 떱니다. 현재 직장은 동쪽에 있다는 거예요. 다른 점에서는 아주 사랑스러운 아내입니다. 고민의 해결법은 뭘까요? <서울 답십리에서 박> 선의의 거짓말을 슬쩍 해보세요 “그 점쟁이가 왜 그렇게 용하지? 우리 회사가 올해 안으로 사옥을 옮기는데 서대문 쪽이란 말야!”라는 선의의 거짓말 한 마디로 당신의 지금 난관은 해결됩니다. 미신적인 것 빼놓고는 아주 사랑스러운 여인이라는 것이지요. 여자가 사랑스러운 것과 미신적인 것은 쌍둥이처럼 붙어 다니는 매력 아닐까요. 대학에서 딱딱한 과학을 했어도 여성다움을 잃지 않은 당신의 아내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군요. 세상살이를, 그리고 가정을 신비스럽게 보지 않는다면 누가 점을 치고 관상을 보고 꿈을 믿겠어요. 남편네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바가지를 긁히지 않기 위해서도 희한하고 재미있는 미신의 세계를 아내에게서 빼앗지 마십시오. <Q> -선데이서울 1969년 3월 16일자 ▒▒▒▒▒▒▒▒▒▒▒▒▒▒▒▒▒▒▒▒▒▒▒▒▒▒▒▒▒▒ [Q여사에게] 아기에게 뺏긴 아내 결혼 2년차샐러리맨입니다. 아내는 알뜰한 데다 미인이고 생후 5개월의 아들 녀석이 있습니다.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입니다. 그런데 최근 저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가정에서 소외당하고 있다는 기분 말입니다. 신혼 초, 아니 어린애가 태어날 당시만 해도 아내는 저에게 온갖 정성을 다 들였어요. 손수건, 넥타이, 양말, 좋아하는 음식 등 쑥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시중을 들었죠. 그러던 것이 최근 2, 3개월간 아내는 사느니 아기옷 뿐인가 하면 아기를 얼르느라고 집안 정돈도 별로 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는 책의 간수나 부탁한 신문스크랩 같은 일도 내동댕이치고 있거든요. 가장인 나에게 아내가 다시 관심을 갖게끔 할 방법은 없을까요. 아내는 마음이 변한 걸까요. <서울 태평로에서 김> 행복한 푸념 마세요 미스터김! 행복한 푸념, 듣기에도 즐겁군요. 부인의 마음은 여전히 당신과 당신들 두 분의 아드님에게만 집중되어 있음에 틀림없어요. 지금 한창 방긋거리는 아기가 얼마나 귀여울까요. 당신은 직장에 나오기 때문에 하루종일 재롱을 떠는 꼬마에게 엄마가 얼마나 정이 들어 버렸는지 모를 겁니다. 게다가 첫 아이 시중은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랍니다. 첫 엄마는 아직 솜씨가 서투르기 때문이죠. 당신의 시중을 전처럼 살뜰하게 들지 못하는 것은 아기 시중에 손이 빌 틈이 없어설 거라고 한다면 제가 너무 여자 편만 드는 걸까요? 혹시 당신은 그동안 극진한 가장 대우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닙니까. 퇴근 후라든지 휴일에 아기 시중을 분담해 보셔요. 틀림없이 부인은 그 짧은 빈 시간을 아빠를 위해서 쓸 것입니다. <Q> -선데이서울 1968년 10월 20일자 ▒▒▒▒▒▒▒▒▒▒▒▒▒▒▒▒▒▒▒▒▒▒▒▒▒▒▒▒▒▒ [Q여사에게] 갈수록 살쾡이 닮아가는 아내… 결혼 3년에 아기가 둘 생기니까 아내는 더 이상 신혼 무렵의 상냥한 아내가 아닙니다. 어떤 때는 집없는 들고양이 같고 때로는 표독한 살쾡이 같습니다. 밤에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늦는 날도 있는 것이 젊은 샐러리맨 아니겠습니까? 10시 넘어 집에 들어가면 바가지와 표독한 눈길에 기가 죽어 스위트홈은커녕 “내가 여기 왜 들어왔나” 싶을 정도예요. 때로는 이혼조차 생각합니다. 게다가 맹랑한 것은 말씨까지 타락해버린 것입니다. 저의 말에 대답은 ‘네’가 아니라 ‘응’, 때로는 ‘뭐라구?’입니다. 이 한심한 가정생활을 차라리 정리해 버리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서울 정릉에서 김만식> 남편이 이리 같아서예요 표독한 살쾡이에 심술궂은 이리의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아내의 눈에 보이는 당신 역시 신혼 초의 당신이 아닐 것입니다. 신혼 초에는 당신도 아마 상냥하고 착한 남편이었겠죠. 아이 둘 낳고 난 아내를 당신은 여성 축에 안 끼워주고 애 기르고 밥 짓는 부엌데기라고 단정지어 버렸을 거예요. 그러니 지금 당신이 아내의 눈에 어떻게 보이고 있을까요. 영락없는 이리입니다. 그것도 귀한 남의 딸의 일생을 버려놓은. 사나운 짐승은 사납게 다루어야 한다는 쉬운 진리를 당신의 아내는 터득한 모양이죠? 그래서 바가지와 눈총으로 당신을 다루려 드는 것이 아닐까요. 당신이 양처럼 착해져 보세요. 아내는 곧 목장의 상냥한 처녀가 될 것입니다. <Q> -선데이서울 1969년 2월 2일자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19. Q여사에게 (7)야속한 아내, 얄미운 남편 II. 편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19. Q여사에게 (7)야속한 아내, 얄미운 남편 II. 편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철야로 술을 마시고 전화 연락조차 없습니다. 그렇다고 바가지를 긁어댈 수는 없고. 효과도 별로 없을 것 같아요. 저의 양처(良妻)로서 관록을 유지하면서 남편의 나쁜 습관을 고치는 법은 없을까요?” 인생살이에는 고민이 있습니다. 인터넷 세상이 열리기 한참 전, 활자 매체도 그리 풍부하지 않던 시절, 많은 사람들은 대중 미디어를 통해 고민을 상담하곤 했습니다. 과거 선데이서울도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라는 고정 코너를 운영하며 많은 이의 고민을 들어주었습니다. 저마다 아픈 사연들이 하얀 편지지에 적혀 선데이서울 편집국으로 속속 배달됐고, 기자들은 전문가의 자문을 얻어 일일이 답을 해주었습니다. 40여년 전 그 시절의 고민들은 주로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코너의 주요 내용을 발췌, 몇회로 나눠 전달합니다. (답변 중에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부적절하게 보여지는 것도 있습니다. 내용 자체보다는 당시의 사회상을 가늠하는 데 초점을 맞춰서 보시기 바랍니다.) ▒▒▒▒▒▒▒▒▒▒▒▒▒▒▒▒▒▒▒▒▒▒▒▒▒▒▒▒▒▒ 19. Q여사에게 (7)야속한 아내, 얄미운 남편 II. <아내→남편>편 [Q여사에게] 남편과 얘기할 틈 없는데 결혼한 지 6년 된 가정주부입니다. 남편은 술을 좋아하고 직장 성격상 매일 밤 12시가 되어야 집에 돌아옵니다. 남편은 퍽 양순하고 가정에도 관심을 갖는 성격이지만 집안일에 대해 얘기할 겨를이 없습니다. “오늘 저녁엔 자세한 얘기를 해줘야지” 하고 날마다 벼르지만 1주일이 지나도 그 기회가 안옵니다. 도대체 맑은 정신으로 대화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술이 덜 취했을 땐 그 분은 주로 자기 얘기만 합니다. 기분이 좋아서 하는 얘기에 그냥 나도 말려들어 정작 해야 할 얘기는 못하고 맙니다. 그분에게 금주를 시키거나 직장을 옮기게 할 자신은 없습니다. 이제 아이까지 생겼는데 그분의 관심은 가정적인 면에서 점점 멀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서울 성북동에서 길정자> 마음의 고향이란 증거예요 당신의 남편은 서울의 전형적인 월급쟁이인 것 같군요. 말은 하지 않지만 샐러리맨으로서의 좌절감, 압박감을 수시로 느껴야 하는 가여운 분인 것 같습니다. 그런 분이 마침 술을 하실 줄 안다는 것은 당신에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밖에서의 여러 불쾌한 일을 술로 풀지 못하면 심하면 성격 파탄자 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 일이 흔히 있다고 합니다. 술이 덜 취했을 때 그분이 주로 자기 얘기를 한다고요? 그것이 바로 그분이 당신을 ‘마음의 고향’으로 알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남편의 사회적 지위가 안정될 때까지 해야 할 가정적 얘기는 혼자서 삭이세요. 그리고 열심히 그분의 얘기를 들어주세요.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기만 한다면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 <Q> -선데이서울 1969년 3월9일자 ▒▒▒▒▒▒▒▒▒▒▒▒▒▒▒▒▒▒▒▒▒▒▒▒▒▒▒▒▒▒ [Q여사에게] 왜 결혼반지를 안 낄까? 결혼 1주년이 며칠 안 지난 25세의 아내입니다. 지금 느낌으로는 제 남편은 저를 무척 사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집 남편들처럼 밤 늦게 들어오는 일도 별로 없고 매사에 저를 기쁘게 하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남편은 제가 해준 결혼반지를 여지껏 한 번도 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끼기 싫을 뿐”이라는 것이 그이의 핑계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서울 정릉동에서 이영신> 결혼의 부담감을 주지 않도록 반지 끼기 강요하지 마셔요 결혼한 남성의 결혼관에는 두 가지 타입이 있다고 합니다. 한 가지는 결혼을 당연하고 즐거운 생활조건으로 받아들여 자신이 기혼자임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 타입. 또 한 가지는 결혼을 진지한 부담으로 의식하여 기혼자로서의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타입입니다. 이영신씨, 당신의 남편이 어느 편이기를 바라세요? 아마도 아내의 입장에서는 후자인 편이 행복하지 않을까요? 그분은 이 후자에 속하는 남편인 듯 하군요. 무의식 중이긴 하지만 그분은 결혼이라는 소중하고 힘겨운 부담이 결혼반지로서 어떤 무서운 굴레가 되지 않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충실한 남편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많다는 통계가 심리학 조사에 나와 있거든요. 반지를 억지로 끼고 나면 사랑스럽던 당신도 가끔 힘든 멍에로 상기되는 수가 있을 거에요. 아내이면서 줄곧 애인이기를 바라거든 반지 끼기를 강요하지 마셔요. 그이에게 당신은 조금도 부담스런 아내가 되지 않겠다는 투지를 지금부터 보여주는 것이 행복의 조건입니다. <Q> -선데이서울 1969년 1월 19일자 ▒▒▒▒▒▒▒▒▒▒▒▒▒▒▒▒▒▒▒▒▒▒▒▒▒▒▒▒▒▒ [Q여사에게] 매일 술 마시는 남편의 연락도 없는 외박 친애하는 Q여사, 이런 말씀 물으면 어리석은 여인이라고 하실까요? 그렇지만 바가지 긁는 여편네가 되기보다 Q여사의 현답을 듣고 싶어 하는 어리석은 여인이 되겠습니다. 저는 세 살, 한 살의 남매를 키우는 30세 주부입니다. 남편은 한 반관반민 업체의 주사입니다. 아마 세간에서 말하는 ‘물 좋은 자리’인 모양인데, 술 산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중 반만 응해도 매일 밤 음주가 된다는 거예요. 술 마시는 것까지는 저도 이해해요(물론 건강은 걱정되지만). 그러나 철야로 술을 마시고 게다가 전화 연락조차 없습니다. 걱정이 돼서 못 살겠습니다. 그렇다고 바가지를 긁어댈 수는 없고. 효과도 별로 없을 것 같아요. 저의 양처(良妻)로서 관록을 유지하면서 연락도 없이 외박하는 남편의 나쁜 습관을 고치는 법은 없을까요? <서울 제동에서 준이 엄마> 꾀병 공세와 시위를, 애교 있는 보복책도 이제 갓 서른인데 그렇게 현명한 처신을 하시는 것을 보면 준이 아빠가 얼마나 행복한 남편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너무 착하디 착한 아내에게는 가끔 싫증을 느끼는 것이 일반적인 남편들의 고약한 버릇이랍니다. 아내가 애교 있는 바가지도 긁고 떼도 써서 자신이 가부장적인 권위로 군림할 수 있었으면 하는 심리가 준이 아빠에게 없을까요? 다음 번에 외박을 하시거든 한 번 시위를 해 보세요. 밤새도록 걱정이 되어 잠을 못잤더니 병이 났다고 링거라도 맞는 시늉을 하는 ‘꾀병’ 작전. 외박한 다음다음날쯤 이쪽도 아무 말 없이 친정으로 가버리는 ‘보복’ 작전 등. 그러나 물론 남편이 굴복하고 마는 형식이 되게끔 일을 끌어가지는 말고 단지 “나도 화낼 줄 아는 사람인 줄 아시죠?” 정도의 상냥한 정책이어야 된다는 것은 아시겠죠?<Q>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점자도서관서 봉사활동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점자도서관서 봉사활동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은 26일 오전 여가부 직원 20여명과 함께 서울 강서구 강서 점자도서관(관장 박정근)을 방문,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 낭독 녹음과 타자 입력, 프로그램 교실에 참여하며 따뜻한 봉사활동을 펼쳤다. 김 장관과 여가부 직원들은 이날 시각장애 ‘청소년’과 ‘어린이’들을 위해 에세이집 ‘길을 묻는 청소년’(윤문원 지음) 중 편지글 일부와 그림 동화책 ‘구름빵’(백희나 지음), ‘꽃들에게 희망을’(트리나 폴러스 지음), ‘지각대장 존’(존 버닝햄 지음)을 녹음 제작했다.  이날 이후에도 여가부 모든 직원이 입력 봉사에 동참해 ‘칸트의 집’ ‘십대를 위한 인성 콘서트’ 등 ‘청소년 도서 시리즈집’을 제작, 점자도서관에 비치토록 할 예정이다.  김 장관은 봉사활동을 마치며 “특별한 재능이라 생각되지 않는 것들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게 특별한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며 나눔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는 뜻 깊은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매년 연말, 사회복지시설 등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해 온 여가부 직원들은 연말 일회성 봉사로 그치지 않고 보다 많은 직원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안으로 강서 점자도서관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펼치기로 했다.  김 장관은 봉사활동과 아울러 여성가족부가 시각장애인여성연합회에 위탁해 제공하는 여성장애인어울림센터 장애인 역량강화 프로그램들을 소개하며 장애인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할 계획이다. 김주혁 기자 happyhome@seoul.co.kr
  • 한국 현대시의 ‘레전드’, 한데 뭉친다…세밑 ‘詩공연 축제’서 정호승, 김용택, 강은교 등

    한국 현대시의 ‘레전드’, 한데 뭉친다…세밑 ‘詩공연 축제’서 정호승, 김용택, 강은교 등

    세밑 정호승, 김용택, 강은교, 최영미, 김명인, 김경미, 윤석산 등 국내 대표 현대시인들이 함께하는 제 1회 세계 시공연 축제가 오는 28일 오후 7시, 29일 오후 8시 서강대 메리홀 소극장에서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의 후원으로 국제시문화협회(www.facebook.com/poetryfest)가 주최하는 제 1회 세계 시공연 축제는 ‘시의 현대적 생환’을 모토로 기획한 시 중심 복합 문화 공연이다. 주제시를 중심으로 노래와 춤, 현대 음악과 전통 음악 등이 한데 어우러져 시의 현대적 생환을 맞는다. 이번 시공연 축제에는 건대 유승공 교수가 성악 부문에서 호흡을 함께하고 박소정 콜렉티브콜라보가 춤으로 함께 한다. 이와 함께 가야금 장원희, 기타 정준영, 피아노 전혜경, 바이올린 조아라, 클라리넷 김민규, 아코디언 류지원, 밴드 We.d 등이 함께 시를 만난다. 정호승 시인은 이번 축제에서 수선화에게, 여행, 내가 사랑하는 사람, 고래를 위하여 등으로 독자들과 호흡한다. 그는 “시의 축제는 가난한 내 영혼의 축제”라면서 “이 축제를 통해 내 영혼이 아름다워지기 바란다”고 말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시인은 “우리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우리가 이대로 살아도 되는가. 우리의 여기 지금을 시로 묻는다”면서 ‘섬진강3’, ‘섬진강15’, ‘사람들은 왜 모를까’ 등으로 찾아온다. “오늘, 시가 품고 있는 말과 소리의 향기가 여러분의 살 속으로, 피 속으로 스며들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이 시대에 우리 모두 꿈의 스위치가 되기를….”(강은교, ‘사랑법’ ‘너무 멀리’ ‘섬-어떤 사랑의 비밀 노래’) “시가 죽어가는 시대에 오로지 시를 가운데로 끌어올려 사람들과 그 숨결을 나누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여기에 한 호흡을 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와 행복과 위안을 느낀다.”(류근,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상처적 체질’, ‘가족의 힘’) “시를 사랑하는 사람은 늙지 않습니다. 시를 읽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최영미, ‘선운사에서’ ‘이미’ ‘뒷맛이 씁쓸하지 않은’ ‘서른 잔치는 끝났다’) “시를 품은 뭇 별들로 밤하늘이 반짝이며 솟아오른다.”(김명인, ‘너와집 한 채’ ‘침묵’ ’독창’) “인류가 언어를 사용하고, 세상에 꽃이 피고 흰눈이 쏟아지는 한 시는 죽지않는다. 괜찮다.”(김경미, ‘겨울 강가에서’ ‘쓸쓸함에 대하여-비망록’ ‘흉터’)  197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동시’편지’가 당선되고 1974년에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바다 속의 램프’가 당선돼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한 윤석산 시인은 ‘바다 속의 램프’, ‘견딤에 대하여’, ‘욕망’, ‘미안하구나 내 추억아’로 독자들과 호흡한다. 이번 시공연 축제의 집행위원장은 윤석산(한양대 명예교수), 예술감독은 이종호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 회장), 총연출 이대영 교수(중앙대 연극과), 기획총괄은 최병호(국제시문화협회), 연출은 허남성 등이 맡았다. 윤석산 집행위원장은 “시는 인문학적 상상력의 출발이자 완성”이라면서 “이 뜻깊은 무대가 시를 우리들의 가슴에 핏줄에 꿈틀거리게 할 것이라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이번 시공연 축제의 기획을 맡은 최병호 기획위원장은 “오랫동안 시를 사랑해온 독자의 입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고 싶은 시인들을 만난다는 심정으로 이 행사를 기획 했다”면서 “세밑에 현대 대표 시인들을 만나 추억도 쌓고, 시와 공연 예술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문화코드를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시공연의 특성상 선택 받은 80명의 관객만 관람할 수 있는 이 공연의 관람료는 좌석에 관계없이 전좌석 2만원이고 인터파크에서 ‘세계 시공연 축제’를 검색하면 예매할 수 있다. 28일에는 공연이 끝난 뒤 정호승 시인, 김용택 시인, 강은교 시인, 김명인 시인, 김경미 시인 등의 팬 사인회가 예정돼 있다. 29일에는 김용택 시인, 김명인 시인, 김경미 시인, 윤석산 시인의 팬 사인회가 열린다. 현장에서 시인들의 자필 사인 시집을 구입할 수도 있다. 문의 (02)706-3300, 티켓 예매문의 (02)3216-1185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러셀 크로우 연출·주연 영화 ‘워터 디바이너’ 메인 예고편

    러셀 크로우 연출·주연 영화 ‘워터 디바이너’ 메인 예고편

    배우 러셀 크로우의 첫 연출작이자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 ‘워터 디바이너’의 메인 예고편이 공개됐다. ‘워터 디바이너’는 제1차 세계대전 갈리폴리 전투 이후 전쟁으로 세 아들을 잃은 주인공 ‘코너’(러셀 크로우)가 아들의 행방을 찾아 낯선 땅 이스탄불로 향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특히 실화를 소재로 한 이 이야기는 당시 전투에 참가했던 한 중령의 묘지에 “한 남자가 아들이 묻힌 곳을 찾아 호주에서 터키까지 왔다”라는 편지 한 장이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이번에 공개된 메인 예고편에는 제1차 세계대전 실화를 바탕으로 탄생한 감동 스토리임을 명시하고 있다. 동시에 러셀 크로우가 아버지로서 담아내는 묵직하고 깊은 연기를 엿볼 수 있다. 특히 거대한 모래 폭풍 속에서 어린 세 아들을 지키기 위한 아버지의 모습과 성인이 된 세 아들이 전쟁을 겪는 모습을 교차해 보여주며 이들의 상처와 아픔을 예상케 한다. 예고편에서 드러나듯 이 작품은 주인공의 여정 안에 전쟁의 이면을 심도 있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이미 평단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호주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등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한편 러셀 크로우는 자신의 첫 연출작 ‘워터 디바이너’ 개봉을 앞두고 오는 1월 18일 처음으로 방한, 국내 팬들과 만날 예정이다. 2015년 1월 29일 개봉. 사진·영상=롯데엔터테인먼트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추억으로 돌아온 ‘마왕’ 음악인생

    추억으로 돌아온 ‘마왕’ 음악인생

    “나는야 나는야 / 핑키핑키 땡땡이 몬스터 / 잡아먹겠다….” 펑키한 기타와 드럼 사운드 위에 고 신해철(1968~2014)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 으르렁거린다.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포효하던 ‘마왕’의 카리스마와, 두 아이에게 장난치며 달려드는 다정한 아빠 신해철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지난 24일 공개된 신해철의 신곡 ‘핑크 몬스터’는 고인이 어느 날 녹음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 아이들이 자는 방문을 열었다가 아이들 옆에 있던 ‘핑크 몬스터’라는 인형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노래로 알려져 있다. 고인의 애석한 죽음을 떠올리기 힘든 강렬하고 재기 넘치는 곡이다. 신해철이 생전 발표했던 곡들을 모은 베스트 앨범 ‘리부트 유어셀프’(Reboot Yourself)가 지난 24일 발표됐다. 그가 1988년 대학가요제를 통해 혜성처럼 가요계에 나타난 12월 24일을 기념한 것이다. 베스트 앨범에는 ‘국민 응원가’로 사랑받고 있는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부터 ‘재즈카페’ ‘안녕’ ‘날아라 병아리’ ‘일상으로의 초대’ ‘민물장어의 꿈’ 등 50곡이 4장의 CD에 담겼다. 신곡인 ‘핑크 몬스터’는 최근 재결합해 앨범 작업을 진행 중이었던 넥스트 유나이티드와 함께한 곡으로, 고인과 함께 보컬을 맡은 이현섭과 신해철의 목소리가 함께 담겼다. 앨범 패키지에는 고인의 성장 과정과 가수로서의 활동 모습 등 미공개 사진들과 고인의 어머니가 직접 쓴 편지 등도 수록됐다. 2500장 한정판으로 제작된 베스트 앨범은 이미 선주문만으로 동이 나 추가 제작 요청이 빗발치고 있다. 지난 24일에는 신해철의 미발표된 글들을 묶은 유고집 ‘마왕 신해철’(문학동네)도 동시에 출간됐다. 아내 윤원희 씨가 유품을 정리하던 중 고인의 컴퓨터에서 글 뭉치를 찾아낸 것이 시작이었다. 고인은 마치 생전에 출판을 준비라도 한 것처럼 ‘북’(Book)이라는 폴더 안에 자신의 인생과 가치관을 글로 정리해 놓고 있었다. 책은 3부로 나뉘어 1부에는 성장 과정과 음악 활동 과정, 2부에서는 뮤지션으로서, 문화계 인사로서 그가 우리 사회에 던졌던 메시지들이 담겼다. 3부에는 고인의 삶을 함께했던 이들의 추모의 글이 담겼다. 그의 진솔한 고백 속에 예술가로서의 비타협적 정신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27일에는 서울 성북구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넥스트 유나이티드의 콘서트 ‘민물장어의 꿈’이 열린다. 넥스트를 거쳤던 역대 멤버들과 그와 절친했던 뮤지션들이 모여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갖는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10살 소녀가 100년 전 산타에게 보낸 편지 기숙학교 굴뚝서 발견

    10살 소녀가 100년 전 산타에게 보낸 편지 기숙학교 굴뚝서 발견

    예나 지금이나 산타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은 변치 않나 보다. 2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 외신들은 웨일스 남부의 몬머스 여자 기숙학교 굴뚝에서 약 100년 전 산타에게 보낸 편지로 보이는 크리스마스 편지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편지는 벽난로를 청소하던 관리인이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편지는 수십 년간 연기에 노출되면서 처음 발견 당시만 해도 다소 읽기 어려운 상태였지만 복구 후에 글자를 분별할 수 있게 됐다. 해당 편지의 발신인은 ‘할리 H’라 적혀 있으며 수신인은 산타클로스(Father Christmas)였다. 할리는 산타클로스에게 편지를 통해 ‘텔 잉글랜드(Tell England)’라는 이름의 소설책과 ‘야회복(evening dress)’, 그리고 예쁜 구두를 원한다는 말을 엄마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할리 H’라는 여학생은 10살 정도로 편지의 작성 시점은 1922년 이후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학교 측은 약 100년 전 산타에게 보낸 편지로 보이는 이 편지를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할 계획이다. 사진·영상=Cascade News, 5 News/유튜브 김형우 인턴기자 hwkim@seoul.co.kr
  • 100년 전 크리스마스에 열린 ‘영국-독일군 축구’ 진실을 찾아서

    100년 전 크리스마스에 열린 ‘영국-독일군 축구’ 진실을 찾아서

    “오늘로부터 딱 100년 전인 1914년 크리스마스, 당시 전쟁중이던 영국군과 독일군의 병사들이 스스로 무기를 내려놓고 중립지대에서 축구 시합을 벌였습니다. 그날 경기의 승자는 3-2로 승리를 거둔 독일.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2014년 두 나라의 군인들은 다시 만나 기념경기를 가졌고 사이좋게도, 이번에는 영국군이 1-0 승리를 거뒀습니다.” 위에 적은 문구는 기자가 꼭 '2014년 크리스마스’에 축구팬 분들께 보여드리고자 고이 간직하고 있던 이야기의 큰 줄거리였습니다. 참혹했던 1차 세계대전 중의 아름다운 한 줄기 빛과 같이 전승되는 ‘1914년 크리스마스의 축구경기’를 99년도, 101년도 아닌 정확히 100년이 되는 크리스마스에 소개해드리는 일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자세한 내용을 찾아보기 위해서 취재를 하는 동안 아주 큰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어쩌면 이 축구경기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의혹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1. '크리스마스 휴전’ 축구의 신화 영국, 미국 등 영어권 국가를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이미 영화와 책 등으로도 소개된 바가 있는 1914년 크리스마스의 영국군과 독일군의 '크리스마스 휴전'(Christmas Truce)과 그 기간 중에 있었던 축구경기에 대한 이야기는 기록하는 매체마다 약간씩의 차이가 있지만 그 전반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914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영국군과 독일군의 병사들이 중립지역에서 만나 '고요한 밤’(Silent Night)과 같은 캐롤을 부르며 함께 전사한 병사들의 시체를 묻어주고 식량 등을 선물로 교환하기도 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당일에 서부전선에서 대치하고 있던 양 국가 병사들 사이에 축구경기가 열렸다. 이 경기는 영국군의 한 병사가 참호에서 축구공을 차 올리며 시작되었고, 독일군 병사들도 곧 경기에 참가했다. 독일군이 3-2로 승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날의 경기에 대해 최초로 보도했던 더 타임스(The Times)는 당시 한 1차 세계대전 관계자의 편지를 인용해 1915년 1월 1일 “양국가 병사들 사이에서 축구경기가 열렸다”라고 보도했고 축구팬들에게도 익숙한 매체인 데일리미러(The Daily Mirror)는 1915년 1월 8일자 표지에 양 국가 병사들이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은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2. 100주년 맞아 펼쳐진 다양한 기념행사들 “100년 전의 병사들이 함께 축구를 하면서 보여준 휴머니즘에 박수를 보낸다. 이는 유럽 공동체를 여는 중요한 한 챕터였고 젊은이들에게 오래 지속되는 영감을 주고 있다.”(미셸 플라티니 UEFA 회장) 하나의 아름다운 ‘신화’처럼 이어져 내려온 이야기는 특히 올해 마치 정점을 찍기라도 하듯이 여러가지 형태로 전파되고 있는데 이는 이 일이 정확히 100년 전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최근(12월 초)에 EPL 경기를 본 팬들께서 목격하신 장면, 양팀 선수들이 경기 전에 서로 섞여서 사진을 찍은 행사 역시 이 크리스마스 휴전 중의 축구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였으며 영국의 최대 체인마켓인 세인즈베리(Sainsbury)에서는 이 경기를 모티브로 CF를 만들어 방송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현지 언론사에서 ‘1차 세계대전 100주년’ 특집을 다룬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지난 17일에는 현재의 영국군과 독일군 병사들 사이의 기념경기가 열리기까지 했는데 이 시합에서는 영국군이 독일군에 1-0 승리를 거뒀습니다. UEFA의 플라티니 회장은 이 행사를 앞두고 “100년 전의 병사들이 함께 축구를 하면서 보여준 휴머니즘에 박수를 보낸다”며 “이는 유럽 공동체를 여는 중요한 한 챕터였고 젊은이들에게 오래 지속되는 영감을 주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100주년을 맞아 100년 전의 일이 폭발적으로 재해석되자 ‘그 일에 대해 제대로 보자’는 시각이 반대급부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3. “’휴전’은 있었지만, ‘축구경기’는 없었다”는 주장의 등장 BBC와 영국 축구협회(FA), UEFA 등 저명한 기관들에서 ‘크리스마스 휴전’ 축구경기에 대해 기념하고 나서는 동안 그에 대한 반론 및 의문을 제기하고 나선 매체들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영국의 정론지 가디언은 최근 보도를 통해 "’휴전’은 실제로 있었지만, 축구경기에 대한 이야기에는 거의 아무런 증거가 없다”라고 지적했고 미국의 CNN은 23일(현지시간) 보도를 통해 “1차 세계대전 크리스마스 휴전 축구경기 : 사실인가 픽션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소개하며 그 경기의 실존 여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특히, 이번에 CNN에서 보도한 기사 중에는 타 언론사를 통해서도 소개된 바 있는 그 경기에 본인이 직접 참가했다고 주장하는 한 영국군 병사의 1983년 BBC 인터뷰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디선가 공이 나타났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독일군 쪽에서였던 걸로 생각된다. 우리군 진영에서 공이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건 그저 비공식적인 축구였다. 내 기억에 당시 현장에는 수백명이 그 놀이에 참가했고 주심도 없었고, 스코어도 없었다. 그건 많은 병사들이 한데 모여들어 혼란 속에 즐긴 것이었지 여러분이 TV를 통해서 보는 축구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군화를 신고 있었고 당시의 축구공은 가죽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금방 젖기 마련이었다.” 가디언과 CNN에서 제기한 이런 일종의 의혹 외에도 이 축구경기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위키피디아 영문판에도 이 경기의 진위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는 “현재까지 이 경기가 존재했다는 근거가 될만한 자료는 영국군 측을 통한 2건의 자료만이 존재하고 독일군 측으로부터는 어떤 증거도 없다. 만일, 훗날에 당시 현장에 있던 독일군 병사의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러면 이 경기에 대한 신빙성이 생길 것이다”라는 지적도 존재합니다. 4. ‘크리스마스 휴전’ 축구경기의 의의와 열린 결말 논쟁보다는 파티가 어울리는, 전쟁을 멈추고 병사들 스스로 휴전상태를 만들어내 크리스마스에 열렸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이 축구경기를 둘러싼 상황은 참으로 묘하고 의아합니다. 한편에서는 그 경기를 기정사실로 보고 다양한 행사를 지금 이 시간에도 진행하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그 시합은 신빙성이 없다’는 '아주 신빙성 있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 전쟁에 '참가했다고 주장하는’ 한 병사가 BBC 인터뷰에서 “스코어도 없었고 주심도 없는 하나의 비공식적인 축구였다”고 말한 인터뷰 내용까지 포함해서 말이지요. 이렇듯 확실한 결론이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결론이 없다’는 것 자체가 가장 적절한 결론이 아닐까요. 가디언의 기사 제목처럼 “’휴전’은 있었지만, 축구경기에 대한 증거는 거의 없다”는 것이 현재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래에, 그 경기가 존재했다는 증거가 발견될 수도 있고, 그 경기는 허구였던 것으로 밝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 경기에 대한 결론은 ‘열린 결말’인 상태인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1914년의 ‘크리스마스 휴전’이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며 100년 전 오늘, 1914년 크리스마스에 양국가 병사들간에 자발적으로 형성된 휴전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들은 “쏘지 마라, 우리도 쏘지 않겠다”는 말로 조심스럽게 서로 참호를 빠져 나와서 중립지대에서 만나 함께 캐롤을 부르고 선물을 교환하며 전사자의 시체를 묻어주었습니다. 서로 총구를 겨누고 실제로 서로를 죽이기도 했던 병사들간에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은 영화와 책을 비롯한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소개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선한 면을 보여주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 날의 ‘축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시합이 독일군의 3대 2 승리로 끝난 ‘축구경기’였든 일부 언론에서 제기하는 일종의 ‘공놀이’였든, 전쟁중인 양팀 병사가 한 데 어울려 화합의 시간을 보냈다는 것 그 자체에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의 축구경기를 단순히 아름답게 미화하고 나서기에 앞서 그 일이 정확히 어떤 성격의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 더 많은 검증이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위키피디아에 적혀 있는 말처럼 미래에 언젠가 독일군 병사들의 편지 또는 또 다른 확실한 증거가 등장한다면, 우리는 그 때 이 100년 전에 열린 아주 ‘특별한 축구’를 사실에 기반해 더 아름답게 재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설명 1. 1차 세계대전 중 축구를 하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 (출처 가디언)사진설명 2. 1915년 1월 8일 데일리미러의 표지사진설명 3. 1914년 크리스마스에 열린 축구경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가디언 이성모 객원기자 London_2015@naver.com
  • 교황에게 위로받은 한국인… 그들의 특별한 선물

    교황에게 위로받은 한국인… 그들의 특별한 선물

    소탈하면서도 파격적인 행보로 세계인의 이목을 끌고 있는 교황 프란치스코는 지난 8월 한국을 방문해 위로와 용기를 안겼다.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프란치스코 교황과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 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25일 밤 10시 KBS 1TV에서 방송되는 성탄절 특별기획 ‘교황 프란치스코의 선물’은 교황이 우리에게 준 선물과 우리가 교황에게 준 선물의 의미를 조명한다. 교황은 한국 방문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손수 세례를 하고 편지를 건넸다. 평화미사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위로의 악수를 건넸고, 꽃동네의 장애 아동에게 입맞춤을 했다. 이들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교황을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황수경 아나운서가 메신저가 돼 바티칸을 찾아 선물을 전달했고, 교황이 선물에 감동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미혼모 세례, 동성결혼 지지, 타 종교 포용 등 교황 프란치스코는 파격적인 행보로 세계적인 인기와 관심을 받고 있다.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은 청빈의 상징인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딴 것으로,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사람을 돌보고 청빈의 미덕을 실천했다. 제작진은 이탈리아의 아시시를 직접 찾아 프란치스코 교황이 실천하고 있는 청빈과 평화, 위로의 정신을 되짚어 본다. 한국을 사랑한다고 말했던 교황 프란치스코는 방한 전 한국 방문에 대한 기대를 담아 영상 메시지를 보내온 바 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또 한번 KBS에 축하 영상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교황 프란치스코의 선물’에서 공개된다. 교황 방한 당시 홍보대사로 활약한 배우 채시라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상상할 수 없던 그곳, 할머니들은 몰랐어요”

    “상상할 수 없던 그곳, 할머니들은 몰랐어요”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들뜬 분위기 속의 크리스마스 전날인 24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초등학생들이 부르는 ‘거위의 꿈’이 울려 퍼졌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1158번째 ‘수요집회’를 찾은 경기 부천동초등학교 6학년 학생 90여명은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89), 길원옥(87), 이용수(86) 할머니에게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사죄하길 바라는 소망을 담아 노래를 선물했다. 부천동초교 학생들이 수요집회를 주관한 것은 두 번째다. 박용준 교사는 “지난해 ‘전쟁과 평화인권’이라는 주제로 수업한 뒤 학생들과 함께 수요집회에 참석했었는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제안으로 아이들이 사회까지 맡게 됐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편지도 낭송했다. “증조할머니가 17살이 됐을 때 정신대로 가게 돼 주변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곳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몰랐습니다. 다행히 증조할머니는 해방으로 정신대에 가지 않으셨습니다. 여기 할머니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견디기 힘든 일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할머니들이 사과를 받아 몸과 마음의 상처가 치유됐으면 좋겠습니다.” 김윤아(12)양의 편지에 세 할머니는 흐뭇한 미소와 박수로 화답했다. 이다인(12)양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일본은 저희와 비슷한 (일본) 또래 아이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며 “더 늦기 전에 할머니들께 공식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100년 전 산타에게 보낸 편지 “OO 받고 싶다” 간절한 염원

    100년 전 산타에게 보낸 편지 “OO 받고 싶다” 간절한 염원

    100년 전 산타에게 보낸 편지, 내용 보니 “OO 받고 싶다” ‘100년 전 산타에게 보낸 편지’ 약 100년 전 산타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가 발견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국 미러 등 외신에 따르면 23일(현지시간) 웨일스 남부의 한 여자 기숙학교 굴뚝에서 100년 전 산타에게 보낸 편지로 추정되는 크리스마스 편지가 발견됐다. 이 편지는 굴뚝 청소 작업 중에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편지는 수십 년이 지났지만 굴뚝 내부에서 튀어나온 벽돌 덕분에 별다른 손상 없이 잘 보존된 상태였다. 해당 편지의 수신인은 ‘산타클로스’, 발신인은 ‘할리 H’라고 적혀 있다. 할리 H라는 사람이 산타클로스에게 보낸 크리스마스 편지인 것. 편지의 작성 시점은 1920년대로 추정된다. 할리 H가 이 학교 여학생이 아니겠냐는 추측도 가능하다. 해당 편지에는 소설책과 옷, 구두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 싶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학교 측은 굴뚝에서 발견한 이 편지를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할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5. Q여사에게 (5)사랑하니까 더 걱정스러운 우리 가족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15. Q여사에게 (5)사랑하니까 더 걱정스러운 우리 가족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아무 때나 벌컥 방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것은 물론 제 속옷 갈아입는 것까지 참견을 하십니다. 우리 두 내외를 너무 갓난애 다루듯 하셔요. 매일 화를 낼 수도 없고 가끔 우울하고 불행한 기분에 빠져버립니다.” 인생살이에는 고민이 있습니다. 인터넷 세상이 열리기 한참 전, 활자 매체도 그리 풍부하지 않던 시절, 많은 사람들은 대중 미디어를 통해 고민을 상담하곤 했습니다. 과거 선데이서울도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라는 고정 코너를 운영하며 많은 이의 고민을 들어주었습니다. 저마다 아픈 사연들이 하얀 편지지에 적혀 선데이서울 편집국으로 속속 배달됐고, 기자들은 전문가의 자문을 얻어 일일이 답을 해주었습니다. 40여년 전 그 시절의 고민들은 주로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코너의 주요 내용을 발췌, 몇회로 나눠 전달합니다. (답변 중에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부적절하게 보여지는 것도 있습니다. 내용 자체보다는 당시의 사회상을 가늠하는 데 초점을 맞춰서 보시기 바랍니다.)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5)사랑하니까 더 걱정스러운 우리 가족 [Q여사에게] 지나친 어머니의 간섭 세상의 어머니들은 왜 그리 눈치가 없을까요. 저는 결혼 9개월의 새색시입니다. 저는 무남독녀 외딸이고 남편은 7남매의 넷째. 저의 부모님이 외로우실까봐 저희는 살림을 친정에서 차리기로 했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순조롭게 되어 나가고 있습니다만 어머니의 너무 자상한 관심이 요즘은 귀찮은 간섭으로 변해가는 것이 탈이에요. 밤이면 불 끄고 일찍 자라고 성화이시고, 아침에는 사위가 식사를 많이 안 한다고 꾸중이십니다. 아무 때나 벌컥 방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것은 물론 제 속옷 갈아입는 것까지 참견을 하십니다. 우리 두 내외를 너무 갓난애 다루듯 하셔요. 매일 화를 낼 수도 없고 가끔 우울하고 불행한 기분에 빠져버립니다. 무슨 묘안이 없을까요. <서울 성북동에서 이경아> 어서 아기를 낳아드리세요 하루빨리 아기를 낳아 드리세요. 그것이 최선의 해결책이 될 거예요. 부모의 눈에는 육순의 자식도 어린애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속담도 있잖아요. 따님을 시집 보낸 지 벌써 9개월이 지났지만 어머니께서는 그 따님을 어른으로 인정하기가 싫으신 거예요. 살림을 따로 났더라도 그럴 텐데 같은 집안에 그대로 살고 있으니 더더욱 그럴 수 밖에요. 아기를 얼른 낳아 드리면 싫더라도 현실을 인정하시게 될 거예요. 그러고 나면 어머니의 관심은 모두 손주에게로만 쏠리게 될 것입니다. 그때 가서는 오히려 따님과 사위에게 무관심한 어머니를 서운하게 생각할 걸요. 당신은 귀염둥이 아기를 서로 차지하려고 어머니와 다투지 않을 마음의 준비나 해두시죠. <Q> -선데이서울 1969년 3월 2일자 ▒▒▒▒▒▒▒▒▒▒▒▒▒▒▒▒▒▒▒▒▒▒▒▒▒▒▒▒▒▒ [Q여사에게] 누드 보는 고교생 아들, 불량해진 게 아닐까요 저의 외아들은 올해 16세의 고등학생입니다. 지금 같아서는 성격이 쾌활하고 공부는 보통보다 상(上),스포츠도 몇 가지 취미로 하고 있는 데다 어른들에게 사근사근한 모범소년입니다. 누이도 없이 자란 외아들이어서 어떨까 싶어 가끔 교회의 학생회(남녀)를 집에 초대하는 정도로 여학생 교제를 허락하고 있어요.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저에게는 심각한 고민이 생겼습니다. 얘가 글쎄 누드가 실린 잡지나 책을 탐독하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그 애가 훔쳐다 보는 명화집을 열어보니 맨 나체화예요. 요즘은 또 아버지가 보시는 어른 잡지(물론 그 중에는 선데이서울도 끼어 있음)를 열심히 보는군요. 아이가 갑자기 불량소년으로 변신한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서울 정릉에서 김> 강압적으로 막지 말고 자꾸 사주는 것이 좋아 애지중지 곱게 키운 외아드님에 대한 그런 걱정은 어머니로서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어느 틈에 여자의 나체사진을 보고 싶어 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싶어서 아마 퍽 놀라셨겠죠. 그러나 벌써 열 여섯 살이라니 자기 일은 자기가 하고 싶어할 나이입니다. 강압적으로 금서(禁書) 목록을 제시하거나 책을 압수해 버리려 들지는 마셔요. 아드님 같은 모범소년이 반항적인 소위 불량소년으로 변하는 첩경은 바로 어른의 강압적인 명령이니까요. 아무 힌트도 주지 말고 당신이 원하시는 양서를 자꾸 사주시는 길 밖에는 없을 것 같군요. 그리고 한 가지 김부인, 성범죄나 폭력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춘화도 같은 것을 즐기는 계층이 아닙니다. 오히려 외설물을 즐기는 사람들은 건전한 상식인이라고 미국의 심리학자 데오도어 루빈 박사가 말하고 있으니 이 일 한 가지 때문에 아드님의 불량성을 걱정하는 것은 기우가 아닐까요. <Q> -선데이서울 1968년 11월 3일자 ▒▒▒▒▒▒▒▒▒▒▒▒▒▒▒▒▒▒▒▒▒▒▒▒▒▒▒▒▒▒ [Q여사에게] 구식 엄마가 싫어요 18세 밖에 안된 고등학교 3년생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18세란 몸차림을 단정하게 꾸미는 것이 이상할 만큼 어린 나이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도 어머니는 어린 것이 모양만 낸다고 늘 꾸중을 하세요. 이제 마흔 밖에 되지 않은 어머니가 왜 그렇게 구식인지 모르겠어요. 저는 집에서도 항상 깨끗한 옷을 입고싶고 지저분한 차림으로 밖에 나가는 것은 질색이에요. 며칠 전에는 어머니께서 동생의 생일떡을 돌리라고 심부름을 시키시기에 머리를 빗고 거울을 들여다본 뒤 블라우스로 갈아 입었거든요. 그랬더니 펄펄 뛰시면서 불같이 화를 내시잖아요. 꼭 저희 친할머니를 닮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머니의 시어머님을 말예요. 2, 3년 전까지도 우리는 정말 의좋은 모녀였어요. 그런데 요즘은 의가 좋기는커녕 서로 미워하는 사이라고 해야 할 정도입니다. 슬퍼서 못 견디겠어요. <서울 수유리에서 이현자> 마음이 풀어질 때까지 참으세요 정말 얼마나 슬플까요. 10대 때의 그런 슬픈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랍니다. 나도 어른이기 때문일까요. 일을 감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어머니와 따님이 마찬가지 아닌가 싶군요. 어머니 편에서 보면 따님이 다 커서 심부름 같은 것도 잘 해주지 않고 어쩐지 자기 품에서 떠나 버리는 것 같은 데다가 몸차림에 마음을 쓰는 것도 어른이 되어 버리는 듯 해서 싫다는 느낌이 드셨던 거죠, 아마. 어머니께서 따님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납득하실 때까지 참고 기다리기를 권하고 싶군요. 지금 새 사실에 당황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자꾸 대항하면 어머니는 아마 현자양이 어머니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 걸로 오해하실까 겁나는군요. <Q> -선데이서울 1968년 10월 6일자 ▒▒▒▒▒▒▒▒▒▒▒▒▒▒▒▒▒▒▒▒▒▒▒▒▒▒▒▒▒▒ [Q여사에게] 자식에 무관심한 부모 저는 국민학교(초등학교) 5학년입니다. 엄마 아빠에게는 외딸이면서 맏이입니다. 국민학교 2학년과 유치원에 다니는 남자동생 둘이 있어요. 엄마는 학교 선생님, 아빠는 회사원인데 두 분 모두 바쁘게 나돌아 다니기만 합니다. 엄마는 주간과 야간 학교 선생님이기 때문이고 아빠는 일이 끝나면 술을 마시게 되기 때문이래요. 저는 가끔 우리는 ‘사는 것 같지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엄마에게 한번 그렇게 말했더니 깔깔 웃기만 하시잖아요. 일하는 아줌마가 있지만 동생들을 구박하니까 물 떠다 주고 사과주스 갈아주는 것은 제가 해요. 남의 엄마들은 집에서 전병도 부쳐주시고 카레 라이스도 해주지요. 저는 그런 점이 제일 부러워요. 일요일에도 아빠는 회사 나가시고 엄마는 엄마방에서 쿨쿨 주무십니다. 이런 엄마 아빠가 세상에 또 있을까요? <서울 전농동에서 이정연> 불평만 늘어놓기보다 예의를 지키도록 정연양! 착하고 예쁜 정연양의 모습이 눈에 선하군요. 엄마 아빠를 대신해서 동생들에게 물 떠주고 사과주스를 만들어 준다니 정연양의 동생들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리고 엄마 아빠는 정연양이 동생들을 그렇게 잘 보살펴 주니까 더욱 행복하시겠죠? 정연양은 국민학교 5학년이면서 벌써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 있군요. 얼마나 흐뭇하고 기쁜 일이에요? 엄마 아빠도 남들처럼 정연양에게 카레 라이스도 해주고 함께 즐기고 싶으시겠죠. 그런데 보통 때는 바쁘시고 일요일이면 피곤해서 주무시겠죠? 어른들, 특히 밖에서 일하는 어른들은 그렇게 피곤하답니다. 그런 엄마를 위해 일요일에 정연양의 손으로 사과주스를 만들어 드려보세요. 얼마나 기뻐하시겠어요?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는 기쁨이 더 클 것입니다. <Q> -선데이서울 1969년 3월 30일자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100년 전 산타에게 보낸 편지 “OO 받고 싶다” 내용 대박

    100년 전 산타에게 보낸 편지 “OO 받고 싶다” 내용 대박

    100년 전 산타에게 보낸 편지, 내용 보니 “OO 받고 싶다” ‘100년 전 산타에게 보낸 편지’ 약 100년 전 산타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가 발견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국 미러 등 외신에 따르면 23일(현지시간) 웨일스 남부의 한 여자 기숙학교 굴뚝에서 100년 전 산타에게 보낸 편지로 추정되는 크리스마스 편지가 발견됐다. 이 편지는 굴뚝 청소 작업 중에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편지는 수십 년이 지났지만 굴뚝 내부에서 튀어나온 벽돌 덕분에 별다른 손상 없이 잘 보존된 상태였다. 해당 편지의 수신인은 ‘산타클로스’, 발신인은 ‘할리 H’라고 적혀 있다. 할리 H라는 사람이 산타클로스에게 보낸 크리스마스 편지인 것. 편지의 작성 시점은 1920년대로 추정된다. 할리 H가 이 학교 여학생이 아니겠냐는 추측도 가능하다. 해당 편지에는 소설책과 옷, 구두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 싶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학교 측은 굴뚝에서 발견한 이 편지를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할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미라 윤종신 ‘키스’ 그 장면! “관리 안되는 남편 만나 8년 고생” 왜?

    전미라 윤종신 ‘키스’ 그 장면! “관리 안되는 남편 만나 8년 고생” 왜?

    전미라 윤종신 전미라 윤종신 ‘키스’ 그 장면! “관리 안되는 남편 만나 8년 고생” 왜? KBS2 ‘우리동네 예체능’ 윤종신·전미라 부부가 달콤한 입맞춤을 나눠 화제다. 지난 23일 방송된 KBS 2TV ‘우리동네 예체능’에는 특별 게스트로 전미라의 남편 윤종신이 출연했다. 이날 윤종신은 출연 결심 이유에 대해 아들 라익의 경기를 거론했다. 그는 지난 테니스 경기에서 아들 라익이가 패해 우는 장면을 TV로 보고 “아이가 돈 뺏기고 온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윤종신은 이날 아내 전미라에게 즉석 영상편지를 보냈다. 윤종신은 “미라는 완벽한 여자인데 관리 안 되는 남편을 만나 한 8년 고생했다”면서 “말 안 듣고 컨트롤 안 되는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했다. 이제 잘할게. 다시 멋있는 남편으로 거듭날게. 사랑해”라고 애정을 과시했다. 이후 ‘예체능’ 멤버들은 윤종신-전미라 부부를 향해 ‘뽀뽀’를 외쳤고, 두 사람은 달콤한 입맞춤을 나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룸메이트 잭슨 눈물, 깜짝 어머니 등장에 “10분동안 울기만 했다” 눈물바다

    룸메이트 잭슨 눈물, 깜짝 어머니 등장에 “10분동안 울기만 했다” 눈물바다

    갓세븐 멤버 잭슨은 23일 방송된 SBS ‘룸메이트 시즌2’에서 홍콩에 살고 있는 어머니와 상봉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날 잭슨은 어머니께 영상 편지를 보내며 눈물을 보였고 이때 박진영은 “내가 선물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때 현관문에서 잭슨의 어머니가 등장했다. 잭슨은 어머니 얼굴을 확인하고 곧바로 달려가 와락 껴안았다. 잭슨의 아버지도 아들과 아내를 껴안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룸메이트’ 한 관계자는 “잭슨의 어머니를 한 번 모시자는 이야기를 제작진끼리 평소에 많이 했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 과정을 거쳐 만남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잭슨의 어머니가 그 자리에 오실 줄 상상도 못했다. 잭슨은 10분 동안 울기만 했다. 그 모습에 출연진과 제작진 모두 울었다”고 당시 녹화 현장 분위기를 설명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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