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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이네… 예술·문학 담긴 ‘책 한모금’

    가을이네… 예술·문학 담긴 ‘책 한모금’

    애정 어린 시선으로 예술과 문학을 다룬 번역서와 평론집이 나란히 나왔다. 원로 문학평론가 황현산(70)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가 번역한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의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문학동네)과 문학평론가 김종회(60) 경희대 국문과 교수의 문학담론 ‘문학에서 세상을 만나다’(문학수첩)다. ‘파리의 우울’에는 보들레르의 산문시 50편이 실렸다. 예술가가 세상에 대처하는 태도, 예술의 주제 표현에 대한 고민 그리고 예술의 오랜 이상과 그 현대적 실천에 대한 고뇌를 담았다. 예술의 사회적 타락이 뿌리내리는 과정을 고발하고 예술의 악마성도 성찰했다. 보들레르는 1862년 ‘라 프레스’지 주간인 아르센 우세에게 보내는 편지글로 서문을 대신했다. 그는 편지글에서 자신의 산문시를 “리듬도 각운도 없이 음악적이며 혼의 서정적 약동에, 몽상의 파동에, 의식의 소스라침에 적응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유연하고 충분히 거친, 어떤 시적인 산문”이라고 정의했다. 보들레르의 말처럼 산문시들은 시적 선율이나 박자를 염두에 두지 않은 거친 산문으로 쓰였다. 시의 전개도 기승전결 같은 전통적인 구성을 따르지 않고 수사법도 은유보다는 환유와 알레고리를 주로 사용했다. 황 교수는 “‘시적 산문’은 보들레르 이전에도 많았지만 산문시를 쓴 것은 보들레르가 처음”이라며 “보들레르는 산문으로 시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산문적인 현실에서 시적인 것을 찾아내 그것을 산문으로 기술했다. 그는 자기 시대의 산문적 현실에서 건져 올린 산문적인 언어를 시의 높이로 끌어올리는 시인”이라고 평했다. 기존 번역본들과는 달리 시마다 면밀하고 충실한 주해가 달렸다. 출판사는 “보들레르 문장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묻어나는 주해는 수많은 보들레르 연구서를 아우르는 정수이며 독자적으로 아름다운 또 한 편의 산문”이라고 소개했다. ‘문학에서 세상을 만나다’는 김 교수가 3년 넘게 한국 문학에 대해 연구한 성과물이다. ‘인본주의’ 관점에서 우리 시대 문학을 우호적이고 성의 있게 들여다보며 한국문학의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다. 김 교수는 “문학은 근본적으로 인본주의 토양에서 개화하는 예술 장르”라고 규정했다. “인본주의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소중히 여기고 인간이 지닌 품성과 역량, 꿈과 행복을 귀하게 여기는 주의주장이다. 지금까지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문인 모두 인간에 대한 탐구와 구원에의 의지를 바탕으로 글을 썼다.” 5장으로 구성됐다. 1장은 한국 근현대문학의 전개 과정에서 새롭게 성찰해 봐야 할 주제들을 다뤘다. 2장은 작가들이 동시대 삶의 환경을 어떻게 소설의 서사로 바꾸는지, 3장은 시인들이 자신이 당착한 삶의 비의를 어떻게 감성적 언어로 치환하는지를 살폈다. 4장은 아동·청소년 문학과 유명 해외 서사 작품들을 통해 문학에서 세상을 만나는 방식을, 5장은 미국에서 모국어로 글을 쓴 문인들의 작품을 탐색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바에즈, 콜린스, NWA... 영화로 보는 노래 그리고 추억

    바에즈, 콜린스, NWA... 영화로 보는 노래 그리고 추억

    음악은 영화를 기억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찰나처럼 흘러가는 장면을 강렬한 이미지로 붙잡아 두는 것이 음악이다. 흥얼거림의 여운 속에 장면의 잔상 또한 길고도 깊게 남는다. 특히 그 영화 속 음악이 젊은 시절 익숙하게 듣고 따라 불렀던 실제 인물과 노래가 담겨 있는, 청춘의 큼지막한 조각과도 같은 것이라면 감흥의 결은 한층 달라질 수밖에 없다. 비치보이스의 삶과 음악을 다룬 지난달 개봉 영화 ‘러브 앤 머시’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음악을 소재 혹은 주제로 다루는 작품들이 잇따라 찾아온다. 1970년대 존 레넌의 음악을 스크린에서 들을 수 있고 존 바에즈의 청일한 음색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또한 힙합그룹의 전설 ‘N.W.A’의 삶과 음악도 만날 수 있다. 랩을 들으며 펑퍼짐한 옷을 입고 1990년대를 지냈던, 이제는 서서히 중년이 돼 가는 이들이 겪었던 청년 시절의 반항기를 소환해 낸다. ‘행복과 상처’를 모두 껴안고 있는 추억은 이렇듯 음악 속에서 더욱 풍성해진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포크의 여왕 존 바에즈’는 1970년대를 풍미했던 존 바에즈(74)의 삶과 음악을 다룬 다큐영화다. 10대 소녀 시절부터 최근까지도 계속됐던 바에즈의 투어 장면까지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이제는 전설이 돼 버린 1969년 우드스톡페스티벌을 비롯해 바에즈와 밥 딜런, 당시 포크 가수들의 라이브 공연 실황 등이 담겨 있다. 그는 세기의 명곡 ‘다이아몬드 앤드 러스트’와 더불어 국내에서는 특히 양희은이 번안해서 부른 노래(‘아름다운 것들’)로 더 잘 알려진 ‘메리 해밀턴’ 등을 불렀다. 하지만 바에즈가 단순히 아름다운 음성으로 노래를 예쁘게 부른 가수만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1970년에 포크와 록이 산업의 영역으로 접어들며 음악에 대한 기준도 점점 상업적으로 바뀌어 갔다. 그러나 바에즈는 한결같았다. 마틴 루터 킹과 함께 평화와 인권, 자유의 메시지를 노래로 전파했던 인권운동가이자 반전평화운동가였다. 그뿐만 아니다. 그리스, 베트남, 북아일랜드, 튀니지, 아르헨티나, 레바논, 러시아, 캄보디아, 유고슬라비아 등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자유와 인권, 평화가 필요한 세계 곳곳을 다니며 노래로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였다. 영화 ‘대니 콜린스’는 실화를 더욱 극적으로 재구성했다. 존 레넌이 보낸 친필 편지가 40년 늦게 도착해 돈과 명예를 모두 거머쥐어 오만해진 팝가수 대니 콜린스(알 파치노)의 가치관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는 내용이다. 성공과 부가 음악적 재능을 해치지 않을까 걱정한다는 젊은 싱어송라이터의 인터뷰 기사를 본 존 레넌이 잡지사를 통해 그에게 보낸 편지에는 “부유해지는 것이 당신의 우려하는 것처럼 당신의 경험까지 바꾸진 않는답니다. 유일한 변화는 돈, 먹을거리, 집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일 뿐 감정이나 인간관계 등 다른 모든 경험들은 똑같지요. 나와 요코도 풍요와 가난을 모두 맛보았는데, 어떤가요? 사랑을 담아, 존과 요코”라고 썼다. 1970년대를 휩쓸었던 존 레넌의 음악이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으로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특히 존 레넌의 ‘인스턴트 카르마’는 영화의 주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10월 1일 개봉. 10일 개봉하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은 힙합계의 전설적인 그룹으로 꼽히는 ‘N.W.A(사진)’의 결성 과정부터 비극적인 해체까지의 드라마틱한 일대기를 담고 있다. 그들의 삶 자체가 이미 ‘영화적’이었기에 특별한 서사적 가공조차 필요없을 정도다. 먼저 개봉했던 북미에서는 2시간 27분의 러닝타임조차 짧게 느껴질 정도라는 평이 줄을 이었다. 영화는 게토 흑인들에 대한 경찰의 무차별적인 검문과 체포, 학교 안팎을 가리지 않는 갱들, 마약 거래 등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흑인들이 미국 주류 사회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확인시켜 준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스눕독, 켄드릭 라마, 에미넴, 50센트 등 ‘N.W.A’의 영향 아래 랩을 듣고 배웠던 현재의 힙합 스타들이 자신들의 롤모델의 지엄함에 대해 얘기를 풀어 가는 장면은 헌정 작품의 의미를 돋보이게 만든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보들레르가 산문시로 건져올린 예술의 타락

    보들레르가 산문시로 건져올린 예술의 타락

    애정 어린 시선으로 예술과 문학을 다룬 번역서와 평론집이 나란히 나왔다. 원로 문학평론가 황현산(70)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가 번역한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의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문학동네)과 문학평론가 김종회(60) 경희대 국문과 교수의 문학담론 ‘문학에서 세상을 만나다’(문학수첩)다. ‘파리의 우울’에는 보들레르의 산문시 50편이 실렸다. 예술가가 세상에 대처하는 태도, 예술의 주제 표현에 대한 고민 그리고 예술의 오랜 이상과 그 현대적 실천에 대한 고뇌를 담았다. 예술의 사회적 타락이 뿌리내리는 과정을 고발하고 예술의 악마성도 성찰했다. 보들레르는 1862년 ‘라 프레스’지 주간인 아르센 우세에게 보내는 편지글로 서문을 대신했다. 그는 편지글에서 자신의 산문시를 “리듬도 각운도 없이 음악적이며 혼의 서정적 약동에, 몽상의 파동에, 의식의 소스라침에 적응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유연하고 충분히 거친, 어떤 시적인 산문”이라고 정의했다. 보들레르의 말처럼 산문시들은 시적 선율이나 박자를 염두에 두지 않은 거친 산문으로 쓰였다. 시의 전개도 기승전결 같은 전통적인 구성을 따르지 않고 수사법도 은유보다는 환유와 알레고리를 주로 사용했다. 황 교수는 “‘시적 산문’은 보들레르 이전에도 많았지만 산문시를 쓴 것은 보들레르가 처음”이라며 “보들레르는 산문으로 시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산문적인 현실에서 시적인 것을 찾아내 그것을 산문으로 기술했다. 그는 자기 시대의 산문적 현실에서 건져 올린 산문적인 언어를 시의 높이로 끌어올리는 시인”이라고 평했다. 기존 번역본들과는 달리 시마다 면밀하고 충실한 주해가 달렸다. 출판사는 “보들레르 문장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묻어나는 주해는 수많은 보들레르 연구서를 아우르는 정수이며 독자적으로 아름다운 또 한 편의 산문”이라고 소개했다. ‘문학에서 세상을 만나다’는 김 교수가 3년 넘게 한국 문학에 대해 연구한 성과물이다. ‘인본주의’ 관점에서 우리 시대 문학을 우호적이고 성의 있게 들여다보며 한국문학의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다. 김 교수는 “문학은 근본적으로 인본주의 토양에서 개화하는 예술 장르”라고 규정했다. “인본주의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소중히 여기고 인간이 지닌 품성과 역량, 꿈과 행복을 귀하게 여기는 주의주장이다. 지금까지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문인 모두 인간에 대한 탐구와 구원에의 의지를 바탕으로 글을 썼다.” 5장으로 구성됐다. 1장은 한국 근현대문학의 전개 과정에서 새롭게 성찰해 봐야 할 주제들을 다뤘다. 2장은 작가들이 동시대 삶의 환경을 어떻게 소설의 서사로 바꾸는지, 3장은 시인들이 자신이 당착한 삶의 비의를 어떻게 감성적 언어로 치환하는지를 살폈다. 4장은 아동·청소년 문학과 유명 해외 서사 작품들을 통해 문학에서 세상을 만나는 방식을, 5장은 미국에서 모국어로 글을 쓴 문인들의 작품을 탐색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안철수 “낡은 진보·패권주의 버려야 ‘육참골단’ 혁신”

    안철수 “낡은 진보·패권주의 버려야 ‘육참골단’ 혁신”

    내년 총선 공천의 경선 규칙 등을 제안할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의 7일 마지막 혁신안 발표를 앞두고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무소속 천정배 의원의 신당 창당 선언이 맞물리며 새정치연합은 말 그대로 설상가상인 상황이다. 최근 “국민의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며 혁신위를 정면 비판한 안철수 의원은 혁신안 발표 하루 전인 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자신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안 의원은 “그동안 당 내부의 부조리와 윤리 의식 고갈, 폐쇄적 문화, 패권주의 리더십이 당을 지배해 왔다”며 문재인 대표 체제를 더욱 직접적으로 겨냥했다. 또 “당 위기의 본질은 변화된 환경과 낡은 시스템의 충돌”이라며 “그동안 당내 기득권에 막혀 금기시했던 이러한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이 당 혁신의 첫걸음이고 ‘육참골단’(肉斬骨斷)의 혁신”이라고 지적했다. ‘육참골단’은 ‘자신의 살을 베어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는 뜻으로 혁신위원인 조국 서울대 교수와 문 대표 등이 당 혁신을 강조하며 썼던 사자성어다. 안 의원은 이를 ‘되돌려주듯이’ 인용한 것이다. 최인호 혁신위원은 페이스북에 안 의원에게 회동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안 의원은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안 의원은 자신의 발언을 계파 간 갈등으로 해석하는 시각에 선을 긋고 있지만 비주류 측은 그를 중심으로 다시 힘을 얻는 모습이다. “싸워도 안에서 싸우자”는 비주류 측의 설득 끝에 복귀한 주승용 최고위원도 혁신안 발표 등과 맞물려 발언 수위를 높일 것으로 관측된다. 4·29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혁신위 발족으로 한숨을 돌렸던 당 지도부가 또다시 사분오열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비주류인 강창일 의원도 ‘조기 선대위를 구성하고 문 대표는 당무만 맡자’는 내용의 편지를 조만간 의원들에게 돌릴 예정이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혁신위 활동에 대해 안 의원이 이전부터 갖고 있었던 생각을 풀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시기적으로 맞물린 천 의원의 신당 창당 선언도 새정치연합의 머리를 아프게 한다. 당초 새정치연합은 다소 멀어진 여론의 관심을 다시 받기 위한 움직임 정도로 천 의원 측의 창당 선언을 바라봤지만 당의 상황이 지지부진할수록 신당 움직임은 반비례해 더욱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천 의원은 안 의원이 언급한 ‘정풍운동’의 원조 격인 인물이기도 하다. 한편 7일 발표될 혁신위의 10차 혁신안에는 총선 경선에서 당원 참여 비율을 낮추고 국민 참여 비율을 높이는 방안이나 비례대표가 지역구에 출마하려는 경우 상대적으로 쉬운 지역에는 출마하지 못하도록 제한을 두는 안 등이 포함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혁신안 의결을 위한 중앙위원회 소집은 오는 16일로 예정돼 있지만 그사이 비주류 측에서 혁신위 활동을 평가하는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는 등 당 상황은 더욱 어수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골드바흐의 추측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골드바흐의 추측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 위 명제는 얼핏 보면 단순하고 명확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270여년 동안 많은 수학자들을 도전하게 하고 절망에 빠뜨린 수학계의 풀리지 않는 난제, 이름하여 ‘골드바흐의 추측’이다. 1742년 독일 출신의 수학자 크리스티안 골드바흐는 당시 최고의 수학자였던 레온하르트 오일러에게 ‘2보다 큰 모든 정수는 세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내용이 적힌 편지를 보낸다. 당시 골드바흐는 1을 소수로 간주했기 때문에 3=1+1+1, 4=1+1+2, 5=1+1+3, 6=1+2+3, 7=2+2+3과 같이 2보다 큰 모든 정수를 세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편지를 받은 오일러는 이 내용을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와 ‘5보다 큰 모든 홀수는 세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의 두 가지로 나눠 정리했는데 이 중 전자를 가리켜 ‘골드바흐의 추측’이라고 한다. 오일러는 골드바흐의 추측이 옳다고 생각했으나 안타깝게도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실제 이 명제에서 어긋나는 짝수를 현재까지는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커다란 수를 대입해 가며 확인한다고 해도 이는 수학적 증명은 될 수 없다. 하나라도 예외가 나타나면 이 명제는 거짓이 되고 마는데, 무한한 수를 두고 언제까지나 대입만 하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가 미친 단 하나의 문제, 골드바흐의 추측’은 이러한 골드바흐의 추측을 소재로 한 소설로서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한 천재 수학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지은이는 그리스 태생의 수학 천재 소설가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62)다. 작품 속 화자인 ‘나’는 집안의 골칫거리라 여겨지는 페트로스 삼촌이 사실은 뛰어난 수학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삼촌이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는 데 매달려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과 인생을 탕진해 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오히려 삼촌이 자랑스럽게 느껴지고 자신도 수학자가 돼야겠다는 꿈을 갖게 된다. 여기까지 보면 이 작품은 삼촌의 뒤를 이은 ‘나’의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기 위한 도전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이 작품의 주인공은 페트로스 삼촌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나’는 수학에 별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수학자의 꿈을 접게 되는데, 대신 삼촌이 어떠한 인생을 살아왔기에 세상에서 잊히고 실패한 인생의 대변자처럼 돼 버렸는지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일찍이 수학적 천재성을 인정받은, 아테네 출신의 페트로스는 24세에 독일 뮌헨대의 정교수가 된다. 그에게는 사랑하던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가 자신을 떠나 다른 사람과 결혼한 것 때문에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갖게 된다. 결국 그는 그녀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너에게 끌린 건 네가 소문난 천재이기 때문이야’라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지금까지 그 누구도 풀지 못했던 수학 문제를 풀어 자신의 천재성을 입증해 보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선택한 것이 바로 골드바흐의 추측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 대신 이 문제에 집착하면서 본의 아니게 은둔자가 되어 혼자만의 연구실에 틀어박히게 되고 결국 친구도 가족도 수학자로서 촉망받던 장밋빛 미래도 다 잃게 된다. 수학자와 수학 문제를 다룬 소설답게 이 작품 속에는 수학사를 수놓은 천재 수학자들이 대거 등장한다. 물론 페트로스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그 또한 모델이 된 인물이 있다. 바로 그리스 출신의 수학자, 흐리스토스 파파키리아코풀로스. 이름이 너무 길어 파파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그는 골드바흐의 추측과 더불어 수학계의 난제라고 꼽혔던 ‘푸앵카레 추측’을 풀기 위해 수도승이란 별명까지 얻으며 연구에 매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젊은 날에는 부모의 반대로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졌던 경험이 있고 미국에 온 뒤 빨리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하고 고국으로 돌아가 자기에게 어울리는 여성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사람, 그가 바로 페트로스의 모델이다. 그 밖에도 정수론의 대가라 불리는 영국의 G H 하디와 J E 리틀우드, 그리고 32세의 젊은 나이에 숨졌으나 ‘분할 이론’으로 초끈 이론의 기반을 마련한 인도의 천재 수학자 라마누잔이 페트로스의 절친한 동료 수학자로서 지면을 장식한다. 또한 ‘참명제라고 항상 증명 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는 불완전성 원리의 괴델과 ‘어떠한 명제가 선험적으로 증명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증명해 보기까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을 밝혀낸 앨런 튜링까지, 이 작품은 페트로스가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는 데 매달렸다가 결국 이를 포기하기까지의 과정 속에 적절하게 실존 수학자들을 등장시켜 작품의 허구성을 빛바래게 만드는 효과를 낳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의 매력은 수학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도 수학적 흥미를 불러일으키며 순수 수학에 대한 감탄과 호의를 이끌어 낸다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작품 여기저기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수학자들의 모습과 그들이 추구하는 수학의 세계는 분명 순수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페트로스의 삶은 그 자체로 인생의 여러 단면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실연당한 여인에게 보란 듯이 내세우고 싶은 성공에 대한 열망, 절친한 동료였지만 라이벌이기도 했던 라마누잔의 죽음에 남모르게 느꼈던 안도감, 생각처럼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를 움켜쥐고 있는 데 대한 초조함과 불안감, 잠깐 동안이었지만 문제를 해결했다고 확신한 데서 오는 성취감과 희열감 등 우리가 희로애락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면면을 치밀한 구성과 유머러스한 문체로 그려 내고 있다는 데 이 작품의 또 다른 진가가 숨어 있다. 작품 속에서 페트로스는 누가 뭐라든 자신의 인생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나는 실패한 게 아니야.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지’라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어쩌다 보니 운 나쁘게도 참이란 것을 증명할 수 없는 문제에 매달리게 된 것뿐이다. 어쩌면 생각하기에 따라 그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일 수도 있다. 자신의 모든 재능과 열정 그리고 젊음을 한 가지 목표만을 향해 바칠 수 있는 삶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는 것이 삶의 목표였던 페트로스처럼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산다. 증명하기 전까지는 그것이 증명 가능한 명제인지 불가능한 명제인지 알 수 없다는 튜링의 확인처럼 그 꿈을 이루는 것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일단 최선을 다해 그 꿈을 향해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전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는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 절망할 권리가 있다. 권경주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 ‘내 친구집’ 제임스 아내, 호주 신혼집+미모의 아내 공개 ‘어디서 만났나?’

    ‘내 친구집’ 제임스 아내, 호주 신혼집+미모의 아내 공개 ‘어디서 만났나?’

    ‘제임스 아내 공개’ 제임스 후퍼의 신혼집과 아내가 최초로 공개됏다. 5일 방송되는 JTBC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는 유세윤, 블레어 윌리엄스, 장위안, 알베르토 몬디, 다니엘 린데만, 테라다 타쿠야가 제임스의 아내와 첫 만남을 가지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번 녹화에서 제임스는 친구들과 함께 호주 신혼집을 방문했다. 집에 도착한 친구들은 제임스의 아내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집을 둘러보다 제임스의 사진으로 가득한 신혼집에 깜짝 놀랐다. 일명 ‘제임스 신전’으로 불리는 제임스의 사진 가득한 벽을 본 친구들은 “제임스가 잘해주는지”라고 질문했고, 제임스의 아내는 “변함없이 잘 해준다”라고 답했다. 이에 제임스는 “아내와 나는 대학교 등산 동아리에서 만났다”라고 운을 띄우며 아내와의 운명적인 러브스토리를 공개했다. 제임스는 또한 연애 시절 사진, 결혼식 사진 등을 보여주며 행복한 모습을 보였다. 아내에게 쓴 애정 듬뿍 담긴 손 편지까지 보여주며 아내에 대한 사랑을 과시했다. 한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5일 오후 9시 50분에 방송된다. 사진 = 서울신문DB (제임스 아내 공개)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아하! 우주] 38년 간 항해 중인 ‘우주 척후병’ 보이저 1호 이야기

    [아하! 우주] 38년 간 항해 중인 ‘우주 척후병’ 보이저 1호 이야기

    -태양에서 약 200억km 인류가 우주로 띄워보낸 '병 속 편지' 보이저 1호가 2015년 9월 현재 지구로부터 약 200억km 떨어진 우주 공간을 날고 있는 중이다. 미국의 무인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가 지구를 떠난 것이 지난 1977년 9월 5일이니까 오늘로 꼬박 만 38년을 날아가고 있는 셈이다. 총알 속도의 17배인 초속 17km의 속도로 날아가고 있는 보이저 1호는 인간이 만든 물건으로는 가장 우주 멀리 날아간 기록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이 거리는 초속 30만km인 빛이 달리더라도 18시간이 넘게 걸리며, 지구-태양 간 거리의 130배(130AU)가 넘는 거리다.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 공간으로 진입한 것은 2012년 8월로, 탐사선을 스치는 태양풍 입자들의 움직임으로 확인되었다. 태양계 최외각의 행성들을 지나온 보이저는 최초로 성간 공간으로 진입한 우주선으로서 각종 데이터를 지구로 보내오고 있는 중이다. 데이터로부터 최근 확인된 상황은 ​태양으로부터 온 '거품(Bubbles)' 효과의 관측으로, 이것이 바로 보이저 1호가 성간 공간으로 들어섰다는 사실을 확인해준 것이다. 그리고 미 항공우주국(NASA)은 지난 2014년 7월 보이저 1호가 성간 공간을 날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인간의 모든 신화와 문명에서 절대적 중심이었던 태양, 그 영향권으로부터 최초로 벗어난 722㎏짜리 인간의 피조물이 지금 호수와도 같이 고요한 성간 공간을 주행하고 있다. 인류의 우주탐사 꿈을 싣고 한 세대를 지나는 세월 동안 고장 한번 나지 않은 기적의 항해를 이어가고 있는 보이저 1호는 목성, 토성을 지나며 보석 같은 과학 정보들을 지구로 보낸 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태양계를 벗어나 미지의 영역인 '검은 우주' 속으로 돌진하고 있는 것이다. 보이저 1호는 그간 수많은 탐사 신기록을 세웠다. 1979년 목성에 약 35만km까지 다가가 아름다운 목성의 모습을 촬영했다. 당시만 해도 미지의 행성이었던 목성의 대적반(거대 폭풍)과 대기가 보이저 1호에 처음 포착되면서 목성의 비밀이 하나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토성에서 12만km 지점에 접근해 토성의 고리가 1000개 이상의 선으로 이뤄졌고 고리 사이에는 틈새기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파이어니어 10호, 200만 년 후 알데바란에 도착 보이저 1호 다음으로 먼 곳을 달리는 것은 태양으로부터 157억km 떨어져 있는 파이어니어 10호다. 방향은 보이저 1호의 정반대편이다. 하지만 파이어니어 10호는 2003년 1월 23일 마지막으로 희미한 신호를 보내온 후 교신이 끊어졌다. 지구에서 100AU나 떨어진 깜깜한 우주공간에서 영원히 우주의 미아가 되어버린 것이다. 1972년 3월 지구를 떠난 지 꼭 31년 만이다. 미국 아이오와 대 반알렌 교수는 “탐사선은 아직도 태양의 온기를 쬐고 있을 것”이라며 파이어니어 10호가 태양계 언저리 어디쯤에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시속 4만 5000km의 맹렬한 속도로 우주공간을 주파하고 있는 파이어니어 10호는 3만 년쯤 후에는 황소자리 붉은 별 로스(Ross) 248별을 스쳐 지나고, 그후 100만 년 동안 10개의 별들 옆을 더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또 200만 년 후에는 지구로부터 65광년 떨어진 황소자리 1등성 알데바란 옆퉁이에 다다를 것이다. 겨울철 남쪽 하늘 오리온자리 옆구리에서 밝게 반짝이는 별이다. (겨울 밤하늘에서 알데바란을 볼 때 주의하기 바란다. 지구-알데바란 간 우주공간을 날고 있는 보이저 1호가 운좋으면 혹 눈에 띌지도 모르니까.^^ ) 한편, 보이저 2호와 파이어니어 11호는 둘 다 명왕성 궤도 바깥을 날고 있고, 또 다른 탐사선 뉴호라이즌 호는 지난 7월 14일 명왕성을 최근접 비행을 성공한 후 외부 태양계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다음 목표물은 카이퍼 벨트에 있는 소행성 2014 MU69로, 2019년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주의 한 변방, 모래알만한 지구에 거주하는 인류라는 지성체가 바야흐로 그의 광막한 고향, 대우주를 탐색하기 위해 용약 분투하고 있는 중이다. -우주의 당구공 치기, 스윙바이 본래 태양계 바깥쪽의 거대 행성들인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을 탐사하기 위해 발사된 보이저 1호는 당시 최신 기술이던 중력 보조를 사용하도록 설계된 탐사선이다. 중력 보조란 탐사선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중력을 이용한 슬링 숏 기법(새총쏘기)을 말하는 것으로, 행성의 중력을 이용해 우주선의 가속을 얻는 기법이다. 스윙바이(swingby) 또는 플라이바이라고도 하는 이것은 말하자면 우주의 당구공 치기쯤 되는 기술이다. 탐사선이 행성의 중력을 받아 미끄러지듯 가속을 얻으며 낙하하다가 어느 지점에서 진행각도를 바꾸면 그 가속을 보유한 채 튕기듯이 탈출하게 된다. 보이저는 이 기법을 이용해 목성 중력에서 시속 6만km의 속도 증가를 공짜로 얻었다. 보이저가 목성의 중력을 이용해 추진력을 얻을 때, 목성은 그만큼 에너지를 빼앗기는 셈이지만, 그것은 50억 년에 공전 속도가 1mm 정도 뒤처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까지 인류가 개발한 추진 로켓의 힘은 겨우 목성까지 날아가는 게 한계이지만, 이 스윙바이 항법으로 우리는 전 태양계를 탐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명 ‘행성간 대여행’이라 불리는 행성의 배치가 행성간 탐사선의 개발에 영향을 주었는데, 이 행성간 대여행은 연속적인 중력 보조를 활용함으로써, 한 탐사선이 궤도 수정을 위한 최소한의 연료만으로 화성 바깥쪽의 모든 행성(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을 탐사할 수 있는 여행이다. 이 항법을 활용하기 위해 보이저는 행성들이 직선상 배열을 이루는 드문 기회(몇백 년에 한 번꼴)를 이용했는데, 목성의 중력이 보이저를 토성으로 내던지고, 토성은 천왕성으로, 천왕성은 해왕성으로, 그 다음은 태양계 밖으로 차례로 내던지게 되는 것이다. 하늘의 당구치기를 하면서 날아갈 보이저 1호와 2호는 이 여행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으며, 발사 시점도 대여행이 가능하도록 맞춰졌다. -보이저 2호, 30만 년 후 시리우스에 도착 쌍둥이 탐사선 보이저 2호는 1호보다 16일 먼저 지구를 떠났지만 1호와는 다른 경로를 택했다. 목성과 토성까지는 비슷한 경로로 날아갔지만, 그 뒤 보이저 1호는 태양계 밖으로 향했고, 2호는 천왕성과 해왕성을 차례로 관측하는 경로를 택했다. ​2015년 9월 현재 보이저 2호는 지구로부터 110AU(천문단위), 164억km 떨어진 태양권덮개(헬리오시스)에 있으며, 성간 가스의 압력에 의해 태양풍이 있는 태양권의 가장 바깥자리에서 항해 중이다. 빛의 속도로 15시간 걸리는 거리다. 이는 인류가 만든 확인된 물체 중 지구로부터 두 번째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보이저 2호도 이미 태양권 덮개 영역으로 들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29만 6천 년 후 보이저 2호는 지구로부터 8.6광년 떨어진,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인 큰개자리의 시리우스에 도착할 예정이다. 태양계를 완전히 벗어난 뒤 외계의 지적 생명체와 조우할 경우를 대비해 보이저 1호에는 외계인들에게 보내는 지구인의 메시지를 담은 금제 음반도 싣고 있다. 이 음반의 내용은 칼 세이건이 의장으로 있던 위원회에서 결정되었는데, 115개의 그림과 파도, 바람, 천둥, 새와 고래의 노래와 같은 자연적인 소리와 함께 수록된 55개 언어로 된 지구인의 인삿말에는 한국어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보이저가 가장 가까운 별인 켄타우루스 프록시마 별까지 가는 데만도 4만 년 정도가 걸리고, 탐사선의 크기도 너무 작기 때문에 발견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따라서 이 음반을 정말 누군가가 받는다고 해도 영원처럼 먼 미래의 일일 것이다. 따라서 정말로 외계인과 교신하기 위한 시도라기보다는 상징적인 뜻이 더 많다. -인류가 보낸 ‘우주 척후병' 보이저 1호의 최후는? 태양계를 벗어난 보이저 1호는 어느 천체의 중력권에 붙잡힐 때까지 관성에 의해 계속 어둡고 차가운 우주로 나아갈 운명이다. 연료인 플로토늄 238이 바닥나는 2020년께까지 보이저 1호는 아무도 가보지 못한 태양계 바깥의 모습을 지구로 타전할 것이다. 지난 30여 년간 보이저 1호가 보내온 각종 영상과 데이터는 태양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넓혀주었다. 1980년엔 최초로 완벽한 태양계의 모습을 촬영했다. 지구에서 60억km쯤 떨어진 명왕성 궤도 부근에서 찍어보낸 그 유명한 지구 사진, 흑암의 무한 공간 속에 한낱 먼지처럼 부유하는 '창백한 푸른 점'도 보이저 1호의 작품이다. 또한 목성에도 토성과 비슷한 고리가 있다는 사실, 토성의 고리가 1,000개 이상의 가는 선으로 이뤄졌다는 사실, 목성의 위성 유로파가 얼어붙은 바다로 덮여 있다는 사실 등이 모두 보이저 1호가 밝혀낸 것들이다. 보이저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에드 스톤 박사는 “지금까지 보이저 1, 2호가 우주에서 발견한 것들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을 변하게 했다”면서 보이저 1호 대장정의 의미를 규정했다. 3개의 원자력 전지가 전력을 공급받고 있는 보이저 1호는 2020년경까지는 지구와의 통신을 유지하는 데 충분한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2025년 이후에는 전력 부족으로 더 이상 어떤 장비도 구동할 수 없게 되고, 지구와의 연결선이 완전 끊어지게 된다. 그러나 보이저의 항해는 그후로도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태양계를 벗어난 보이저 1호가 먼저 만나게 될 천체는 혜성들의 고향 오르트 구름이다. 하지만 300년 후의 일이다. 이 오르트 구름 지역을 빠져나가는 데만도 약 30,000년이 걸린다. 그 다음부터 40,000년 동안에는 그 진로상에 어떤 별도 없다. 약 70,000년을 날아간 후 보이저 1호는 18광년 떨어진 기린자리의 글리제 445 별을 1.6광년 거리에서 지날 것이며, 그 다음부터는 적어도 10억 년 이상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우리은하의 중심을 돌 것이다. 인류가 우주로 띄워보낸 '병 속의 편지' 보이저 1호는 어쩌면 50억 년쯤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누구의 손에 의해서도 회수되는 일 없이 항진을 계속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인류의 메시지를 담은 음반이 재생되는 일도 영원히 없을 것이다. 50억 년이란 인류에겐 긴 세월이다. 장엄하게 빛나던 태양도 종말을 맞을 것이며, 이미 지구는 바짝 구워져 염열지옥이 되어버렸을 시간이다. 인류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른 행성으로 떠나갔거나 지구에서 멸종되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때면 보이저 1호만이 사라져버린 지구 문명의 희미한 잔영을 지닌 채 우리은하를 벗어나 심우주로 몇조 년을 그대로 항행할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태양계 바깥의 성간 공간에서 '검은 우주'를 향해 맹렬히 내달리고 있을 인류의 '병 속 편지' 보이저 1호는 과연 우주의 어느 언저리에서, 언제쯤 그 오랜 항해를 멈추고 영원한 잠에 빠져들 것인가 궁금하다. 동영상 넣기 https://www.youtube.com/embed/BXUAiKkfJtA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나우! 지구촌] “늘 너만을...” 지폐 편지로 재회한 연인

    [나우! 지구촌] “늘 너만을...” 지폐 편지로 재회한 연인

    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여성 더니즈 오라일리는 어느 날 지갑 속에서 한 여성의 ‘편지’를 발견했다. 지갑에 들어 있던 20유로짜리 지폐에 “크리스티, 내게는 항상 너뿐이었어. 와서 부디 나를 찾아줘 – 메건”(Christy, it’s always been you! Come and find me – Megan)라는 짤막한 메모가 적혀있던 것이다. 짧은 편지에 담긴 여성의 애타는 심정에 마음이 동한 오라일리는 결국 이 지폐를 사진으로 찍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고 “오늘 지갑 속에서 이걸 찾았다. 크리스티, 그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으니 어서 그녀를 찾아가길 바란다”고 적었다. 사진을 본 네티즌의 반응은 뜨거웠다. 6055명의 페이스북 사용자가 ‘좋아요’를 눌렀고 곧 1만 6000여 사용자가 해당 포스트를 공유했다. 이들은 같은 이름을 지닌 지인들에게 사진에 대해 알리기도 하며 편지 속 두 사람의 재회를 기원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노력을 통해 결국 해당 편지의 진짜 수신인이 온라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크리스티 리치’라는 이름의 이 남성은 더니즈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메건과 연락이 닿은 상황이고. 이야기도 잘 풀렸습니다. 이 사진을 업로드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 사연은 아일랜드 지역에서 유명해졌고 크리스티는 결국 라디오 방송에까지 출연해 편지의 내막을 보다 상세히 밝혔다. 그는 “사실 메건은 그녀의 본명이 아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녀의 이름을 잘못 들어 일주일동안 ‘메건’인 줄 알고 지냈는데 그 호칭이 그대로 굳어졌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나는 음악가이고 그녀와 사귀던 당시 ‘내게는 항상 너뿐이었어’(It’s always been you)라는 제목의 자작곡을 지어줬었다”며 편지 속 문구에 담긴 속사정을 설명했다. 메건은 6개월 전 크리스티의 공연에 말없이 찾아가 이 지폐를 입장료로 지불했다. 그녀는 메모가 크리스티에게 직접 전달될 줄로 알았지만 크리스티는 지폐를 건네받지 못한 것은 물론 메건이 공연장에 찾아온 것조차 몰라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메건은 크리스티의 침묵을 거절의 의사로 받아들이고 그와의 재결합을 포기했다. 그런데 반년이 지나서야 놀랍게도 편지 사진이 온라인에 올라왔고 두 사람은 극적으로 다시 연락하게 된 것. 그렇게 두 사람이 다시 연인관계로 발전했다면 영화 같은 이야기의 영화 같은 결말이 되었겠지만, 현실은 역시 녹록치 않은 모양이다. 크리스티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서로 연락은 하고 있지만 모든 것이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며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한 모호한 전망을 내비쳐 사람들의 아쉬움을 자아낸 것으로 전한다. 사진=ⓒ더니즈 오라일리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뚝심 일꾼’ 찾아낸 ‘뚝심 구청장’

    ‘뚝심 일꾼’ 찾아낸 ‘뚝심 구청장’

    원칙을 지킨 김성환 노원구청장의 ‘방문간호사 정규직(무기계약직) 전환 일화’가 지역사회에서 작지만 큰 변화로 회자되고 있다. 비정규직이 고착화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선도적으로 노력하는 김 구청장이지만 질 좋은 정규직을 뽑기 위한 한시적 계약직 기간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실제 정규직 방문간호사를 선발하라는 서울시의 요청에 김 구청장은 옥석을 가리기 위해 계약직 기간 3개월을 둬야 한다고 맞섰고, 그 결과 정예조직을 꾸릴 수 있었다. 서울시는 지난 5월 노원구를 포함해 4개구를 서울형 어르신 건강증진 대상지로 선정했다. 노원구에는 6억 3000만원을 지원해 각 동마다 방문간호사를 정규직으로 뽑게 했다. 건강증진사업은 방문간호사가 만 65세 이상 노인들의 집으로 찾아가 건강검진 및 건강설계를 해 주는 것이다. 정규직이라는 점에서 간호사들의 관심이 높았지만 김 구청장은 다른 구와 달리 3개월간의 계약직 기간을 두었다. 지난 5월 선발된 19명은 한 달간의 교육을 받고 6~8월에 계약직 신분으로 일했다. 그리고 이 중 5명이 일을 그만두었다. 구 관계자는 “표면적으로 육아, 건강 이상 등이 이유였지만 예상하지 못한 고된 업무가 속사정”이라면서 “사명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옥석을 가리겠다던 김 구청장의 의도가 적중한 셈이다. 이들의 월급은 200만원 정도다. 오는 환자를 돌보는 병원의 간호사와 달리 65세 이상의 노인을 일일이 찾아다녀야 한다. 보이스피싱으로 오인받기 일쑤여서 설득이 필수다. 실제 만 66세 노인 중에 88%가 방문을 거절했다. 정미영(45·여) 방문간호사는 “16년간 경력에, 중환자실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버틸만 하지만 개인병원에서 일을 했다면 동네 곳곳을 찾아다니는 게 쉽지 않다”면서 “내 부모를 돕는다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는 그만둔 5명을 제외하고 3개월간 근무한 14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7일 ‘동마을 간호사 자치구 공무직 전환 심사위원회’를 열었다. 담당 업무의 달성도, 성실성, 노력도, 추진력 등을 평가해 14명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이들의 활약은 금방 회자됐고 지난달 7일 주민 황모씨는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김 구청장은 “한번 비정규직이 평생 비정규직이 되는 현실은 바꾸어야 하지만 질 높은 인재를 채용하기 위한 통로로서 비정규직은 의미가 있다”면서 “탈락한 5명은 올해 내에 충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힐러리 측근 “캐머런 총리 속물”… 또다시 ‘이메일 스캔들’에 휘청

    힐러리 측근 “캐머런 총리 속물”… 또다시 ‘이메일 스캔들’에 휘청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속물이다!” 미국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68) 전 국무장관이 또다시 ‘이메일 스캔들’에 휩싸였다. 일간 가디언 등은 과거 힐러리의 최측근이 힐러리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캐머런 총리와 닉 클레그 부총리를 싸잡아 ‘속물적이며 오만한’ 사람으로 폄훼했다고 지난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또 “(편지에서) 영국은 더이상 신뢰할 수 없는 동반자요, 유럽에서 미국의 가교 역할조차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로 묘사됐다”고 덧붙였다. 캐머런 폄훼의 주인공은 힐러리 국무장관의 비선인 시드니 블루멘탈 전 백악관 보좌관이다. 그는 2010년 고든 브라운 총리의 노동당 정부와 데이비드 캐머런의 보수당 정부 교체 당시 힐러리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신임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의 인기가 초긴축 예산안 통과로 날로 높아지고 있다”면서도 “가혹한 경제정책을 꺼내든 보수당 연정을 신뢰할 수 없다”고 평했다. 혹평은 보수당 연정 수뇌부에 대한 언급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블루멘탈은 “닉 클레그 당시 신임 부총리가 타고난 오만함이 있지만 캐머런보다는 덜 속물적”이라며 “명문사립고인 이튼스쿨을 나온 캐머런과 달리 클레그가 웨스트민스터스쿨을 나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취임을 앞둔 윌리엄 헤이그 전 외무장관에 대해선 “뼛속까지 반유럽주의자로, 앞으로 (힐러리를) 사사건건 속이려 들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영국의 관계에 대해선 2차 대전 이후 이렇게까지 나빴던 적은 없었다고 푸념했다. 힐러리는 “정말 냉철한 판단”이라며 “남편인 빌과 내용을 공유했다. 계속 이메일을 보내달라”고 답장했다. 이날 공개된 또 다른 편지에선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부인인 셰리 블레어가 카타르 왕가를 위해 힐러리에게 로비했다는 정황이 포착돼 논란이 일고 있다. 셰리 블레어는 2010년 6월 힐러리 전 장관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카타르 왕세자가 당신과 만나 식량 안보나 양국의 협력증진에 대해 논의하고 싶어한다”며 직통번호를 알려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블레어 전 총리 부부는 클린턴 내외와 절친한 사이다. 또 카타르 왕세자 부부와도 자선기금 모금 활동에서 만나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카타르 왕가는 영국 런던의 해로즈 백화점과 초고층 빌딩 샤드 등을 소유하고 있다. 이 편지들은 미 국무부가 지난달 31일 추가로 공개한 힐러리의 2009~2010년 개인 메일 4368건 중 일부다. 앞서 법원은 힐러리가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관용 이메일 대신 개인 이메일만 사용한 것과 관련해 내년 1월까지 순차적으로 전체 메일을 공개하도록 명령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알 파치노 주연 ‘대니 콜린스’ 메인 예고편

    알 파치노 주연 ‘대니 콜린스’ 메인 예고편

    알 파치노 주연작 ‘대니 콜린스’ 메인 예고편이 공개됐다. 영화 ‘대니 콜린스’는 이 시대 최고의 슈퍼스타 ‘대니 콜린스’(알 파치노)가 40년 만에 도착한 ‘존 레논’의 편지로 인해 일생일대의 변화를 맞는 과정을 그린 감동 뮤직 드라마다. 이번에 공개된 메인 예고편에서는 존 레논과 대니 콜린스의 만남이 이루어진 벅찬 순간을 담았다. 예고편은 객석을 가득 채운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무대 위로 오르는 대니 콜린스의 매력적인 모습이 시선을 압도한다. 40살 연하 여자 친구를 비롯해 요일별 슈퍼카로 일상을 즐기는 대니 콜린스는 최고의 부와 명예를 누리는 슈퍼스타다. 그러나 이 슈퍼스타에게 40년 만에 도착한 존 레논의 편지 한 통은 그의 삶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그때 편지를 받았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됐을까?”라며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게 된 대니 콜린스가 이후 자신의 삶에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면서 앞으로 펼쳐질 사건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동안 매 작품 독보적인 연기로 세대를 초월해 높은 지지를 받은 알 파치노가 삶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캐릭터 ‘대니 콜린스’ 역을 맡아 그와 완벽한 싱크로율을 선보여 기대를 높인다. ‘대니 콜린스’의 연출자인 댄 포겔맨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할 때부터 ‘대니 콜린스’ 역은 오직 알 파치노뿐이었다. 알 파치노가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는 캐릭터”라며 알 파치노에 대한 남다른 존경과 애정을 표했다. 이에 알 파치노는 “진심이 가득 담긴 시나리오와 캐릭터 모두 마음에 들었다”고 화답했다. 세계 최고의 배우 알 파치노와 전설의 뮤지션 존 레논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완성한 위대한 하모니를 담은 ‘대니 콜린스’는 오는 10월 1일 국내 개봉 예정이다. 15세 관람가. 사진 영상=지어소프트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라디오스타 전진, 무한도전 광희에게 영상편지 “형처럼 되지 마라” 무슨 뜻?

    라디오스타 전진, 무한도전 광희에게 영상편지 “형처럼 되지 마라” 무슨 뜻?

    라디오스타 전진, 무한도전 광희에게 영상편지 “형처럼 되지 마라” 무슨 뜻? ‘라디오스타 전진’ 그룹 신화 멤버 전진이 MBC 무한도전 새멤버 황광희에게 영상편지를 보냈다. 지난 2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는 ‘남자다잉’ 특집으로 꾸며져 가수 임창정, 전진, 자이언티, 황치열 등이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MC들은 전진에게 “요즘 황광희를 보면 어떤가?”라고 물었다. 이에 전진은 “얼마 전에 한 번 마주쳤다”라면서 “황광희에게 ‘힘들지?’ 라고 물었더니 ‘힘들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어 전진은 “형들이 베테랑이라 막내로서 눈치가 보일 때가 있는 거다. 지금처럼 하면 잘 할 거다”라고 조언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전진은 영상편지를 통해 “지금 잘하고 있다. 주눅 들지 말고 할 말 다하길 바란다. 형처럼 되지 말고”라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사진=MBC 라디오스타 방송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다운증후군 딸이 결혼합니다”…아빠의 감동 손편지

    “다운증후군 딸이 결혼합니다”…아빠의 감동 손편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25살 딸의 결혼식에 감동스러운 손편지와 성대한 결혼식을 선물한 아버지의 사연이 알려져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2일자 보도에 따르면 미국 오하이오에 사는 폴 도어티(57)의 딸 질리언(25)은 10년 간 연애해 온 남자친구 리안과 지난 6월 야외 결혼식을 올렸다. 질리언과 리안은 모두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지만 오랜 시간 서로에 대한 애정이 변치 않았고 결국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다. 드디어 사랑의 결실이 맺어지던 날, 질리언의 아버지는 진심을 담은 편지를 썼다. 이 편지 안에는 그간 딸 질리언을 키우면서 흘렸던 눈물, 다운증후군이라는 이유로 딸이 반려자를 찾지 못할까봐 두려워했던 마음 등이 절절하게 녹아 있었다. 그는 편지에 “두 시간 후면 너(질리언)는 인생의 새로운 걸음을 시작하게 된단다. 다운증후군 여성으로 태어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가정을 꾸린다는 것이 얼마나 드물고 흔치 않은 일인지 안다. 네가 그러한 것(편견)들을 잘 이겨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적었다. 스포츠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폴이 과거 발간한 자서전에서도 딸 질리언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책에서 “나와 아내는 질리언의 지적 수준이 높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다만 친구를 사귀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면서 “질리언이 12살 무렵일 때 친구가 한명도 없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폴은 결혼식 직전 편지를 썼고, 딸이 백색 드레스를 입고 하객들을 향해 걸어나가는 순간까지 생생하게 기록했다. 이후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질리언은 내게 감사하다고 말했고, 나는 질리언에게 ‘너는 언제나 나의 작은 소녀’라고 말해줬다”며 그날의 감동을 되새겼다. 노던켄터키대학교에서 일하는 질리언과 신랑 리안의 결혼식에는 160여 명의 하객이 참석해 두 사람의 앞날을 위해 박수를 보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늘 너뿐이었어’…지폐 낙서로 영화처럼 재회한 옛 연인, 결말은?

    ‘늘 너뿐이었어’…지폐 낙서로 영화처럼 재회한 옛 연인, 결말은?

    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여성 더니즈 오라일리는 어느 날 지갑 속에서 한 여성의 ‘편지’를 발견했다. 지갑에 들어 있던 20유로짜리 지폐에 “크리스티, 내게는 항상 너뿐이었어. 와서 부디 나를 찾아줘 – 메건”(Christy, it’s always been you! Come and find me – Megan)라는 짤막한 메모가 적혀있던 것이다. 짧은 편지에 담긴 여성의 애타는 심정에 마음이 동한 오라일리는 결국 이 지폐를 사진으로 찍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고 “오늘 지갑 속에서 이걸 찾았다. 크리스티, 그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으니 어서 그녀를 찾아가길 바란다”고 적었다. 사진을 본 네티즌의 반응은 뜨거웠다. 6055명의 페이스북 사용자가 ‘좋아요’를 눌렀고 곧 1만 6000여 사용자가 해당 포스트를 공유했다. 이들은 같은 이름을 지닌 지인들에게 사진에 대해 알리기도 하며 편지 속 두 사람의 재회를 기원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노력을 통해 결국 해당 편지의 진짜 수신인이 온라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크리스티 리치’라는 이름의 이 남성은 더니즈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메건과 연락이 닿은 상황이고. 이야기도 잘 풀렸습니다. 이 사진을 업로드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 사연은 아일랜드 지역에서 유명해졌고 크리스티는 결국 라디오 방송에까지 출연해 편지의 내막을 보다 상세히 밝혔다. 그렇게 드러난 이야기는 더욱 로맨틱하면서도 한편 씁쓸하기도 하다. 그는 “사실 메건은 그녀의 본명이 아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녀의 이름을 잘못 들어 일주일동안 ‘메건’인 줄 알고 지냈는데 그 호칭이 그대로 굳어졌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나는 음악가이고 그녀와 사귀던 당시 ‘내게는 항상 너뿐이었어’(It’s always been you)라는 제목의 자작곡을 지어줬었다”며 편지 속 문구에 담긴 속사정을 설명했다. 메건은 6개월 전 크리스티의 공연에 말없이 찾아가 이 지폐를 입장료로 지불했다. 그녀는 메모가 크리스티에게 직접 전달될 줄로 알았지만 크리스티는 지폐를 건네받지 못한 것은 물론 메건이 공연장에 찾아온 것조차 몰라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메건은 크리스티의 침묵을 거절의 의사로 받아들이고 그와의 재결합을 포기했다. 그런데 반년이 지나서야 놀랍게도 편지 사진이 온라인에 올라왔고 두 사람은 극적으로 다시 연락하게 된 것. 그렇게 두 사람이 다시 연인관계로 발전했다면 영화 같은 이야기의 영화 같은 결말이 되었겠지만, 현실은 역시 녹록치 않은 모양이다. 크리스티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서로 연락은 하고 있지만 모든 것이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며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한 모호한 전망을 내비쳐 사람들의 아쉬움을 자아낸 것으로 전한다. 사진=ⓒ더니즈 오라일리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인천상륙작전 D-1 ‘장사상륙작전’ 아시나요

    [밀리터리 인사이드] 인천상륙작전 D-1 ‘장사상륙작전’ 아시나요

    9월 15일. 디데이(D-day)라는 암호명으로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더불어 역사적으로 가장 성공한 상륙작전으로 꼽히는 ‘인천상륙작전’이 이뤄진 날입니다. 더글라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 스스로도 ‘5000대 1의 도박’이라고 말했을 만큼 성패를 예측하기 쉽지 않은 작전이었죠. 북한 인민군은 38선에서 낙동강 방어선까지 진격하는데 81일이 걸렸지만, 인천상륙작전 이후 우리 군이 38선까지 돌아오는데 15일 밖에 걸리지 않았을 만큼 전세는 급변하게 됩니다. 허리가 잘린 인민군은 보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급격히 세력이 약화됐고 곧 패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을 실행하기 전 난관이 많았습니다. 당시 인천의 항만은 대규모 함정이 입항하기에는 수로가 매우 좁았고, 조수간만의 차가 7~10m나 돼 안정적인 상륙작전을 벌이기에는 부적합한 곳이었습니다. 특히 작전 당일 인천항의 만조시간은 2시간 밖에 되지 않아 위험부담이 컸습니다. 인민군이 진지를 구축하고 강력하게 저항한다면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죠. 그래서 유엔군사령부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연합군 수뇌부와 마찬가지로 기만전술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양동작전 준비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6개월 전부터 스웨덴, 노르웨이가 있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프랑스 칼레에서 상륙작전이 이뤄질 것이라는 허위정보를 꾸준히 흘렸습니다. 그래서 독일은 1944년 전세를 뒤집기 위한 연합군의 대규모 상륙작전이 이뤄질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고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6·25전쟁 초기 유엔군사령부도 7만명이 넘는 병력과 260여척의 함정이 참여하는 역사적인 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두 가지 묘안을 짜냈습니다. 우선 유엔군이 남쪽인 전북 군산으로 상륙한다는 거짓 소문을 내는 한편 실제로 군산을 포격해 인민군의 주의를 돌렸습니다. 또 상륙이 한반도 동쪽에서도 동시에 이뤄질 것으로 오인하도록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 낙동강 전투가 치열했던 경북에서 상륙작전도 벌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장사상륙작전’입니다. 경북 영덕에서 남쪽으로 15km, 포항 북쪽 26km에 위치한 동해안의 작은 어촌 장사동(현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인천상륙작전 불과 한 달 전인 8월 16일 국군 3사단이 북한군 12사단에 의해 퇴로를 차단당하자 해상으로 철수했던 독석동과 인접한 지역입니다. 3사단 지휘부는 포항여중 전투에서 71명의 학도병이 분전한 덕분에 인민군의 공격을 피해 무사히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이 전투는 330만명의 관객을 모은 영화 ‘포화 속으로’에서 재연돼 국민들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장사상륙작전도 포항여중 전투와 마찬가지로 학도병들의 희생에 모든 것을 맡긴 슬픈 역사였지만 인천상륙작전에 가려 지난 65년 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극비로 수립된 작전명 174호. 9월 13일 오후 부산항 제4부두에는 2700t급 상륙함(LST) ‘문산호’에 탑승할 학도병들이 모였습니다. 육군본부는 상륙작전을 위해 이명흠 대위를 지휘관으로 하는 독립유격대 1개 대대를 차출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보름 훈련받은 10대 학도병, 비밀 작전을 맡다 이름만 ‘유격대’였을 뿐 편성된 이들의 대부분은 경남 밀양에서 불과 보름 동안의 훈련받은 앳된 10대 학도병이었습니다. 실탄을 채 10발도 채 쏴보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었죠. 군에서 보급받은 것이라곤 소련제 장총과 배낭, 인민군 군복, 물 약간, 건빵 한 봉지, 미숫가루 세 봉지가 전부였습니다. 낙동강 전선 후방을 교란하고 보급로를 끊는 작전에 투입된다는 설명이 곁들여졌습니다. 원래 이 작전은 위험한 임무 특성상 미 8군이 수행해야 했지만 미군은 “실패할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우리 군에 떠넘겼습니다.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기 어려웠던 육군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학도병들에게 작전을 배정했습니다. 그렇게 모인 학도병 772명은 전란의 회오리 속에서 오로지 애국심 만으로 군에 자진입대한 이들이었습니다. 수개월째 이어진 전쟁으로 마음마저 피폐해진 그들이었지만 사기만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14일 새벽 상륙함은 드디어 장사해안에 도착했습니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상륙작전은 시작부터 운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태풍 ‘케지아’의 영향으로 거센 파도가 일면서 문산호는 해변에서 30m 가량 떨어진 지역에 좌초되고 말았죠. 바다에 뛰어든 학도병의 60여명이 제대로 전투도 해보지 못하고 물에 빠져 숨졌습니다. 무사히 헤엄쳐 해변에 도달한 이들이 밧줄을 소나무에 연결해 다른 많은 대원이 해안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이날 오전 문산호는 심한 파도에 떠밀려 바다 속에 가라앉았습니다. 고난은 이어졌습니다. 상륙 직후부터 1개 대대 규모의 인민군이 해안 앞 200m 고지에서 공격해왔습니다. 오후 2시 30분 미 해군 구축함 함포지원을 받아 간신히 적을 물리친 학도병들은 빠르게 동해안의 7번 국도를 차단하고 다수의 적 진지를 파괴했습니다. 상륙, 전투 과정에 ‘유격전의 귀재’로 불렸던 군사고문 전성호 대령, 민간인 황재중 선장 등 29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살아남은 이들은 다음날 오전 6시 인천상륙작전이 이뤄진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인민군 5사단 등 적 정예병력을 만나 악착같이 싸웠습니다. 인민군은 대규모 상륙부대가 들이닥친 것으로 판단해 전차 4대를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학도병들이 사용해야 할 탄약 대부분은 배와 함께 물에 가라앉았고, 배낭에 든 보급품은 불과 3일치였지만 전투는 계속됐습니다. ●악착같이 7번 국도를 끊고 임무를 수행한 그들 해군본부는 인천상륙작전 뒤인 16일 해난구조선을 보냈지만 문산호가 너무 깊이 침몰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대로 철수했습니다. 우리 해군의 304정도 출동했다가 극심한 풍랑으로 포항 구룡포로 귀항하고 말았습니다. 해군은 “상륙부대를 구출하려면 증원부대를 보내거나 철수하는 수 밖에 없다”고 육군본부에 연락한 뒤 상륙함 조치원호를 현장에 다시 급파하게 됩니다. 또 상륙 5일째인 18일 수송기를 보내 약간의 탄약과 의료품을 투하했습니다. 상륙 6일째인 19일 드디어 조치원호가 장사해안 인근에 도착했습니다. 민간인 선장은 인민군의 공격이 두려워 침몰한 문산호와 멀리 떨어진 곳에 배를 대려고 했습니다. 미군 고문관으로 참가한 프랭크 스피어 소령이 다그쳐 겨우 문산호 동북쪽 약 400m, 육지에서 300m 떨어진 지점에 닻을 내리고 구조작업에 착수했습니다. 학도병 39명은 적의 공격과 구명대가 유실되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배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이 복귀하지 못하고 적의 포로가 되거나 죽음을 맞았습니다. 일부는 우리 군이 북진하는 과정에 합류하기도 했습니다. 배에 타지 못한 인원 외에도 작전 중 전사한 인원이 총 139명이나 됐고, 90여명이 부상했습니다. 나머지 인원들은 다행히 7시간에 걸친 결사적인 구조작업으로 조치원호를 통해 부산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상륙작전은 군사기밀이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작전 상황이 제대로 명시된 공식문서조차 없었습니다. 생존 대원들의 입을 통해서만 일부 내용이 알려졌죠. 하지만 작전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당시 평양방송은 아군 2개 연대가 동해안에 상륙했다고 보도했을 정도로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죠. 특히 우리 1군단은 인천상륙작전 뒤 교착상태였던 낭동강 전선을 돌파해 북상할 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교란작전 때문에 인민군 5사단과 2군단이 주력부대를 전선에서 이탈시켜 동해안에 집중적으로 배치했기 때문입니다. ●맥아더도 경의를 표한 학도병들의 활약 1997년 3월 해병대원들이 갯벌에 묻힌 문산호를 발견하면서 역사는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역사 재조명 필요성을 느낀 영덕군은 지난해부터 1년 4개월 동안 부산의 한 조선소에서 문산호 복원 작업을 진행해 길이 90m, 폭 30m, 높이 26m의 배를 건조했습니다. 원래 배보다는 길이 10m, 너비 5m 가량을 줄인 축소 모형입니다. 지난 5월 복원된 문산호는 바지선으로 옮겨져 장사해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상륙작전 65년 만의 일입니다. 내달 문산호는 스토리 전시관으로 개관할 예정입니다. 문산호 1, 2층에는 장사상륙작전의 역사적 배경과 200고지를 점령한 학도병 영웅 이야기를 영상물과 디오라마로 만들어 설치하는 등 다양한 콘텐츠로 채워집니다. 4층에는 PX와 군번줄 걸기 등 군 체험코너, 5층엔 조타실과 전망대를 마련할 계획입니다. 역사는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인천상륙작전의 그늘에 가려져 있습니다. 맥아더 장군도 잊지 않은 역사, 우리가 되돌아 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래는 맥아더 장군이 사망하기 4년 전 772 유격동지회에 전한 서한입니다. 이종훈 회장 귀하. 최근에 보내주신 귀하의 편지를 통해 772 유격동지회가 결성된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귀하의 동지들이 수행한 전투는 혁혁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최고의 찬사를 받을만한 것이었습니다. 772 유격대 동지들이 보여준 용맹과 희생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영원히 빛나는 귀감이 될 것입니다. 귀하의 동지들에게 제 진심어린 안부를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들을 충성스럽고 헌신적인 전우로서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1960. 10. 31 더글라스 맥아더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밀리터리 인사이드는 핫한 아이템을 가지고 매주 화요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더 많은 기사를 보시려면 아래 리스트를 보세요. (17)국산 ‘명품 복합소총’ 왜 애물단지가 됐나 (18)“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19)“남침 땅굴, 있다니까요!” 끝나지 않는 전쟁 (20)北 목함지뢰 도발, 과연 이번이 처음일까 (21)당황하셨어요? ‘서울 불바다’ 통하지 않는 이유
  • “햄버거 전쟁 멈추고 ‘맥와퍼’ 함께 만들자”

    “햄버거 전쟁 멈추고 ‘맥와퍼’ 함께 만들자”

    미국 ‘빅3’ 패스트푸드 업체 버거킹이 선두 맥도날드에 두 회사의 주력 상품인 와퍼(버거킹)와 빅맥(맥도날드)을 합친 ‘맥와퍼’를 만들자고 깜짝 제안했다. 맥도날드는 버거킹이 한 일종의 ‘휴전’ 제안에 확답을 피했다. 버거킹은 2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와 시카고트리뷴에 ‘버거킹이 맥도날드에게’라는 편지 형식의 광고를 실었다. 유엔이 정한 세계 평화의 날(9월 21일) 하루 동안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임시 점포를 세워 양사 직원이 공동으로 ‘평화의 버거’인 맥와퍼를 만들어 팔자고 제안한 것이다. 수익금 전액은 기부하자는 의견까지 덧붙였다. 버거킹은 ‘맥와퍼닷컴’이란 홈페이지를 개설, 와퍼와 빅맥 재료 6개씩을 섞은 맥와퍼 제조법도 공개했다. 휴전 장소인 애틀랜타는 버거킹의 본사가 있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와 맥도날드 본사가 위치한 일리노이주 시카고와의 중간에 자리한 도시다. 이곳에서 “‘햄버거 전쟁’을 잠시 멈추고 화합하자”는 메시지를 전한 셈이다. 그러나 맥도날드는 역제안으로 비껴갔다. 스티브 이스터브룩 최고경영자(CEO)는 페이스북에 “두 업체가 좀 더 큰일을 도모해야 한다”며 “다음 번에는 전화로 얘기하자”고 못박았다. 버거킹은 이에 침묵했다. 이에 대해 토론토 요크대 경영대학원의 알란 미들턴 교수는 “버거킹이 손해 볼 것이 없는 ‘꽃놀이패’”라며 “맥도날드가 수용하면 두 회사는 영원한 경쟁자로 각인됐을 터이고, 거부해도 버거킹에 적잖은 광고효과를 줬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맥도날드는 지난해 미국에서 버거킹의 6배에 이르는 66억 달러(약 7조 82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웬디스에 밀려 업계 3위로 떨어진 버거킹과 굳이 경쟁자로 인식될 이유가 없다. 버거킹은 1998년과 2007년에도 ‘왼손잡이 버거’나 ‘와퍼 중독’ 같은 도발적 광고를 게재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맥도날드마저 분기별 매출이 10% 감소한 상황도 버거킹의 도발을 부채질한 원인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분석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들] ‘한국 최고의 중국통’ 이세기 한·중 친선협회장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들] ‘한국 최고의 중국통’ 이세기 한·중 친선협회장

    “한국전쟁은 소련의 철권 통치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회주의 중국을 건설해 ‘작은 사자’로 등장한 마오쩌둥(毛澤東)을 제압하기 위한 ‘이이제이(以夷制夷·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압하다) 전략’으로 일으킨 동란이라고 할 수 있죠. 6·25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스탈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선 의원과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세기 한·중친선협회장(79)이 최근 펴낸 신간 ‘6·25전쟁과 중국’에서 한국전쟁의 원인과 관련해 ‘발칙한’ 주장을 내놓았다. 평생 통일과 중국 문제를 천착해 온 이세기 회장의 이 같은 주장의 근거를 듣기 위해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중친선협회 사무실을 찾았다. 그의 사무실 한쪽 벽에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붙여준 ‘한국 최고의 중국통’답게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시진핑(習近平) 등 중국 전·현직 최고 지도자와 나란히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팔순를 바라보지만 활기찬 모습으로 기자를 맞은 그는 2시간 30여분 진행된 인터뷰에서 열정적인 목소리로 한반도를 둘러싼 현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며 ‘통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한국전쟁의 원인을 ‘스탈린 계략’이라고 주장했다. 특별히 이렇게 본 이유는 무엇인가. -6·25전쟁을 단순히 국내 좌·우익, 미국과 소련 간의 갈등으로만 좁게 보면 큰 오산이다. 스탈린은 한반도에서 중국과 미국을 직접 맞붙게 함으로써 두 나라가 우호관계를 맺을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한편,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 신경을 쓰는 동안 유럽 내 소련의 영향력을 높이려고 했다. 때문에 김일성의 남침 계획을 계속 묵살했다가 1950년 4월 승인하고, 그해 6월 27일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소련 대표를 불참시켜 미군 주도의 유엔군이 참전하도록 길을 터 준 게 그의 계략이다. 유엔군이 참전하고 중국 인민지원군이 개입해 결국 미·중 간에 전쟁이 벌어졌다. 중국군은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입었다. 스탈린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개시해 미국의 참전이 쉽도록 카펫을 깔았고, 중국을 전쟁에 떠밀어 미국의 막강한 화력에 희생시켰다. 더군다나 한국전을 통해 미·중 양국 간의 적대감을 증폭시켜 중국을 ‘죽의 장막’에 가둬 미국 등과 격리시킴으로써 중국이 더욱 소련 쪽으로 기울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는. -우선 한국전쟁 계획은 스탈린과 마오쩌둥이 중·소조약 개정 문제를 협상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에서 비롯된 까닭에 사실상 1950년 1월 말에 결정됐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스탈린은 이를 5월 초까지 중국에는 비밀로 부쳤다. 여기에다 그해 6월 유엔군의 한국전 참전을 결의한 안보리 회의에 소련 대표가 불참한 것이 그동안 미스터리였다. 하지만 스탈린이 소련 대표를 고의로 불참시킨 비밀 전문이 공개됨으로써 미군의 참전을 보다 쉽게 해 한국전을 미·중 전쟁으로 만들려는 그의 책략이 확인됐다. 스탈린이 중국에 약속한 소련 공군의 중국군 공중 엄호를 거부해 많은 중국군이 피해를 입도록 방치했다는 점 등도 들 수 있다. →6·25전쟁 원인 연구에 파고든 동기는. -고향이 이북이다. 전쟁 발발 이후 부산에서 피난민 생활을 하며 전쟁이 낳은 가난의 슬픔을 겪었다. 한국전쟁의 쓰라린 경험과 중국군에 대한 기억은 학문적 관심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의 관심 주제는 한국전과 중국·소련 등 공산권 문제였다. 대학원 때부터 누가, 왜 한국전쟁을 일으켰고 어떻게 진행됐으며, 남북한 전쟁이 왜 미·중 간의 전쟁으로 비화했는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일본 유학을 떠나 도쿄대 도서관에서 한국전과 관련된 미국·중국·소련의 자료를 많이 접한 뒤 박사 논문 ‘중·소 대립의 맥락 속에서 한국전쟁 발발의 일원인(一原因)에 관한 연구’를 완성했다. →중국통인 만큼 중국 관련 문제로 화제를 돌리겠다. 한·중 수교를 위한 씨앗을 뿌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985년 4월 국토통일원 장관으로 있을 때이다.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비동맹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 그곳에서 우쉐첸(吳學謙) 당시 중국 외교부장을 만났다. “우리는 앞으로 중국과의 소통과 협력을 위해 30만 단어의 세계 최대 중국어사전을 만들고 있다”고 하자, 우 부장이 “완성되면 나도 볼 수 있게 한 권 보내달라”며 관심을 표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삼국지가 있느냐”고 물었다. “대개 중·고등학교 때 읽는다”고 대답하니, 그는 정색을 하고 “한국에서 한자를 쓰고 학교에서 가르칩니까”라고 재차 물었다. “한자를 많이 쓰고 거리의 간판에도 많다”고 했더니 매우 흥미 있어 했다. 우 부장은 ‘어뢰정’ 사건(1985년 3월 영해를 침범한 중국 해군 어뢰정이 우리 해군에 의해 나포됐는데, 어뢰정과 승무원을 중국에 인도했다)을 신속하게 처리한데 대해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그 일은 두 나라 미래 관계에 좋은 기초가 될 것”이라고 말해 한·중 관계에 대한 좋은 징조를 엿보았다. →중국의 유력자들과 두터운 인맥을 쌓게 된 계기가 있다던데. -반둥회의 이후에도 우쉐첸 부장과 편지로 대화를 이어갔다. 편지 전달자는 당시 미주리대 교수로 있던 대학 동기와 그곳에 유학 중이던 우 부장의 아들이었다. 이들을 통해 그와의 친분을 지속했다. 우 부장을 통해 여러 중국 지도자들을 만났다. 장쩌민 전 주석은 두 번 만났고, 후진타오 전 주석은 여러 번 만났다. 리펑(李鵬)· 주룽지(朱鎔基)·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 웨이젠싱(尉健行)·리란칭(李淸) 전 정치국 상무위원 등과도 만나 한·중 간의 여러 이야기들을 나눴다. 현직인 위정성(兪正聲)·류윈산(劉雲山)·장가오리(張高麗) 등 정치국 상무위원과 리잔수(栗戰書) 당중앙 판공청 주임, 왕자루이(王家瑞) 당중앙 대외연락부장, 장다밍(姜大明) 국토건설부장, 차이우(蔡武) 전 문화부장 등과도 교분이 깊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도 보통 인연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시 주석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저장(浙江)성 당서기로 있을 때다. 2005년 4월 저장성 닝보(寧波)에서 열린 소비품 박람회에 참석했다가 시 주석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해 7월 그가 서울에 왔을 때 제주도 서귀포의 ‘서복공원’을 안내해 급격히 가까워졌다(이 회장은 1997년 국회 문화공보위원장 시절 공원 조성을 주도했다). 특히 닝보가 서복이 진시황의 명을 받아 불로초를 찾기 위해 떠난 출항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시 주석은 이 공원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보였다. 더욱이 제주 감귤이 저장성 원저우(溫州)가 고향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매우 기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과 열병식 참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오래전부터 박 대통령이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는 만큼 중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박 대통령은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중국이 간곡히 초청하는데 안 갈 수 없다. 중국 전승절은 러시아 전승절과는 다르다. 독일을 이긴 러시아의 전승절과는 달리 중국 전승절은 일본의 침략에 싸워 이긴 만큼 우리의 8·15 해방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에 이어 중국 전승절에 참석해 미국의 심기가 아주 불편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싫더라도 한국에 ‘가라 마라’ 하지 못한다. 70년 전의 한국이 아니다. 아무것도 없던 당시에는 미국에 줄을 설 수밖에 없었다. 이제 한국도 많이 컸다. 미국 눈치를 보고 외교도 줄을 서서 따라가던 그런 나약한 나라가 아니다.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에 진입한, 강한 중진국으로서 역할이 있다. 물론 한·미동맹도 중요하고 손상돼서도 안 된다. 그렇지만 통일을 위해 중요한 중국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북·중 고위급 인사 교류가 사실상 끊어지는 등 시진핑 체제 들어 양국 관계가 나쁘다는 견해가 지배적인데. -북·중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 나쁜 것이 사실이다. 옛날과는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악화돼 있다. →그렇다면 북·중 관계가 나빠진 이유는. -북핵 때문이다. 북핵을 용인하면 아시아에 핵개발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시 주석은 북한의 핵 실험이 결국 중국의 국익에 해를 끼친다고 본다. 중국 지도층만이 아니라 중국인들도 북한에 대해 비판적이다. 중국이 공산당 독재국가라고 하지만 민심을 외면하기 어렵다. 그런 만큼 북·중 양국의 친밀도가 떨어지고 사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은 지난 세기의 혈맹 북한이 ‘얌전한 완충역’에 머물기를 원한다. →중국의 대북정책이 변화했다고 보는가. -중국이 이전의 한국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 보가위국(保家衛國)’ 전쟁, 즉 미국의 침략에 대항해 가족과 국가를 지켜낸 전쟁이라는 구태의연한 인식에서 벗어나고 있다. 대체로 전쟁 이름을 ‘조선전쟁’으로 보다 객관화해 사실상 김일성의 남침으로 지칭하고 있다. 시 주석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북핵 해결에 강력한 합의를 내놨다. 과거 후진타오 주석 당시에는 북한 때문에 얼마나 속 썩은 일이 많았나. 북핵을 비롯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등. 그래도 중국은 애매하게 북한 편을 들어줬다. 후진타오는 시진핑보다 더 이념지향적이지만 시진핑은 후진타오보다 더 시장친화적인, 실용적인 사람이다. 북핵도 미국과 함께 상의할 수 있고 공감을 쌓을 수 있다. →북핵 해결을 위해 중국을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은 불의(不義)를 못 참고 중국은 불리(不利)를 못 참는다”는 말이 있다. 중국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통일 한국의 미래가 중국에 해롭지 않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일이다. 통일 한국은 북핵을 해결한 통일이 아니라, 통일과 북핵을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통일 한국 미래가 중국 발전을 위해서 절대로 해롭지 않다는 것을 이제부터 설득해야 한다. 중국에 대한 외교에 그것이 기본이 돼야 한다. →시진핑 주석이 다음달 워싱턴을 방문한다. 현재의 미·중 관계를 평가하면. -미·중 관계는 과거의 미·소 관계와 다르다. 미국과 소련은 이데올로기-군사안보 대결로 끝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소련이 망했다. 반면 미·중 관계는 경제협력이 바탕에 깔려 있다. G2는 채권국과 채무국, 생산국과 소비국의 관계이다. 둘 중에 하나가 망하면 같이 망한다는 얘기다. 중·미는 경쟁은 하지만, ‘판은 깨지 말자’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시진핑은 미국에 ‘신형대국관계’를 얘기했다. 신형대국관계는 중국이 미국의 힘과 영역을 인정하는 대신, 미국도 중국의 핵심적 이익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이세기 협회장은 1936년 경기도 개풍군(현 황해북도 개성시)에서 태어났다. 4선(11, 12, 14, 15대) 국회의원과 국토통일원 장관 등을 지낸 이 회장은 중국 전·현직 최고 지도자들을 비롯해 핵심 권력 엘리트들과 인맥을 두루 쌓은 중국통이다. 1985년 남북 막후대화 창구를 개설했으며 한·중 수교의 기틀을 마련했다. 2001년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덩샤오핑(鄧小平) 지도노선을 연구했다. 정계 은퇴 후에는 한·중친선협회장을 맡아 중국과의 민간 외교관으로 활약하고 있다. ▲1956년 고려대 졸업 ▲1961년 고려대 정치학 박사 ▲1965년 일본 도쿄대 대학원 수료 ▲1979년 고려대 교수 ▲1981년 국회 올림픽 특별위원회 위원장 ▲1985년 국토통일원 장관 ▲1986년 체육부 장관 ▲1993년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의장 ▲1996년 국회 문화공보위원회 위원장 ▲2002년~ 한·중친선협회 회장, 새누리당 상임고문
  • 선덜랜드 저메인 데포 ‘24시간 대기 비서 채용...연봉 1억 넘어’

    선덜랜드 저메인 데포 ‘24시간 대기 비서 채용...연봉 1억 넘어’

    선덜랜드의 공격수 저메인 데포(32)가 자신의 가족을 위해 일주일 내내 24시간 항시 대기 가능한 개인 비서를 채용 중이다. 그의 개인 비서 연봉 액수는 무려 5만 파운드(9,400만 원)에서 6만 파운드(1억 1,500만 원) 사이다. 고액의 연봉(?)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개인 비서의 요구조건을 보면 만만한 직업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우선 개인 비서의 조건으로 ‘매우 융통 적이며 적극적이고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사람’이라고 광고에 적혀있다. 주요 업무를 살펴보면 얼마나 다양한 업무를 한꺼번에 소화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저메인 데포 개인 비서의 주요 업무 1. 저메인 데포와 산드라(데포의 어머니)의 일정 관리2. 데이터 및 행정 업무 관리 3. 수신된 이메일, 팩스 그리고 편지 관리4. 관리자를 대표해 이메일 초안 작성5. 전화 응대 및 문의 사항 접수6. 모든 업무 연락처의 데이터 동기화7. 이메일을 통한 주간 일정 발신 8. 노트 작성 및 받아적기9. 프레젠테이션 발표10. 저메인 데포를 위한 여행 및 숙박 일정 관리11. 프로젝트 참여 및 연구기획 수행12. 저메인 데포의 개인 스폰서 관리(아디다스 등)13. 가족들을 만나기 전 간단한 일정 보고 수행14. 저메인 그리고 산드라와 함께하는 국내 출장 참여(필요시, 해외 출장도 가능해야 함)15. 저메인의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들기 위한 단독 출장 가능해야 함16. 매일 식사 준비17. 정원사 감독 관리 18. 극장, 콘서트, 영화관, 뮤지컬 등 모든 이벤트 관련 예약 업무 관리19. 레스토랑 예약 및 추천20. 보안 업무 이외에도 오직 데포를 위한 아이폰 앱 만들기, 데포를 위한 패션 브랜드 및 향수 브랜드 만들기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데포의 구직 광고를 본 많은 현지 네티즌은 개인 비서가 아닌 노예를 뽑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하고 있다. 과연 팬들의 비판 속에도 데포가 원하는 개인 비서를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주목된다. 최용석 유럽축구통신원 fcpoint@hotmail.com
  • [나우! 지구촌] 연쇄살인마와 결혼한 여성 국선변호사의 사연

    [나우! 지구촌] 연쇄살인마와 결혼한 여성 국선변호사의 사연

    연쇄살인마를 변호하던 여성 국선변호사가 남편과 자식도 버리고 감옥에 있는 사형수와 결혼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마치 할리우드의 영화 소재로나 어울릴 법한 실화가 방송으로 공개된다. 최근 미국 ABC방송은 탐사보도 프로그램 '20/20'을 통해 방송 예정인 연쇄살인마와 변호사의 기막힌 사랑을 일부 공개했다. 믿기힘든 사연의 시작은 지난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트럭 운전사 출신인 오스카 레이 볼린 주니어는 플로리다 템파에서 3명의 젊은 여성을 강간, 살해한 혐의로 체포돼 이듬해 첫 피해자 재판에서부터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판결 이후에도 줄기차게 무죄를 주장해 온 그는 10년이 지난 1995년 국선 여성 변호사인 로잘리 마르티네즈를 만나게 된다. 본격적인 사연은 여기서부터다. 운명적 만남인지 잘못된 만남인지 모를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졌다. 특히 당시 마르티네즈는 남편은 물론 슬하에 네 명의 딸도 있었던 상황.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듬해 결국 마르티네즈가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언제 죽을지 모를 사형수인 볼린과 옥중 결혼했다는 사실이다. 마르티네즈는 "처음 그를 봤을 때 외로움과 고독을 느꼈으며 무죄라고 확신했다" 면서 "지금까지 단 1초도 그가 3명을 살해한 살인마라고 생각한 적 없다" 고 주장했다. 이후 세간의 관심이 차츰 시들어지면서 두 사람의 사연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근 20년이 지난 최근, ABC의 취재결과 놀랍게도 두 사람은 계속 부부로 사랑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결혼 이후 마르티네즈는 변호사 생활도 작파하고 탐정 면허까지 취득해 남편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지금까지 고군분투하고 있다. 또한 남편 역시 매일 그녀에게 편지를 쓰며 둘 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전하고 있다.   마르티네즈는 "남편이 자동차 오일을 갈아주고 쓰레기를 버려주고 함께 영화를 보러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면서 "남편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자유를 주기 위해 끝까지 싸워나갈 것" 이라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북 유엔대표부 “오늘 오후 5시까지 대북방송 중단 안 하면 강력한 군사행동”

    북 유엔대표부 “오늘 오후 5시까지 대북방송 중단 안 하면 강력한 군사행동”

    북 유엔대표부 “오늘 오후 5시까지 대북방송 중단 안 하면 강력한 군사행동” ‘북 유엔대표부’ 북 유엔대표부가 최후통첩 시한까지 적절한 조치가 없으면 강력한 군사행동이 있을 것이라고 엄포했다.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의 안명훈 차석대사는 21일(현지시간) 남북 간 대치 국면과 관련해 “한국이 최후통첩 시한까지 적절한 조치가 없으면 강력한 군사행동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 유엔대표부 안 차석대사는 이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현재 한반도에서 조성된 긴장은 한국 정부와 한국군이 만든 것이다. 대북 선전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강한 대응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 유엔대표부 안 차석대사는 ‘강력한 대응’의 내용에 대한 질문에 “강력한 군사 행동”이라고만 답했다. 이는 북한이 한국시간 22일 오후 5시까지 대북 심리전 방송을 중지하고 모든 심리전 수단들을 전면 철거하지 않으면 강력한 군사적 행동을 할 것이라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북 유엔대표부 안 차석대사는 시종일관 현재의 긴장을 조성한 책임은 한국에 있다면서 “목함지뢰 폭발과 북한의 선제 포격은 사실이 아니며, 한국이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 유엔대표부 안 차석대사는 남한의 도발과 심리전 재개, 그리고 을지 합동훈련을 다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 개최를 요구했다고 공개했다. 북한은 안보리 의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뢰 폭발은 남한이 조작한 것이며 ▲남한의 심리전 방송 재개는 기존 합의를 위반한 전쟁행위에 해당하며 ▲남한이 북한으로 포사격을 한 것은 전쟁도발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북한 외무성도 성명을 내고 북한이 먼저 포탄을 발사했다는 합동참모본부의 발표는 거짓이라면서 한국이 북한으로 포격한 것은 치밀하게 계산된 도발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다. 성명은 이어 한국 정부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상투적으로 써 온 수법이라면서 전면전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성명은 또 미국이 배후에 있다고 주장했으며, 남북 간 긴장상황에 대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기대하는 것도 어렵다고 주장했다. 앞서 조선중앙통신은 21일 ”불의작전 진입이 가능한 완전무장한 전시상태로 일제히 이전한 조선 인민군 전선대연합부대들은 군사적 행동준비를 완료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만단의 전투태세를 갖춘 인민군 군인들은 반공화국 모략책동에 미쳐날뛰는 가증스러운 전쟁광신자들에게 보복의 불벼락을 안길 일념을 안고 최후의 공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또 “역사의 교훈을 망각하고 분별없이 날치는 적들의 반공화국 심리전 방송거점들과 수단들은 현재 우리의 주체포와 방사포, 로켓들의 조준경안에 들어있다”고 강조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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