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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수하겠다” 부모 협박에 신고 교사는 벌벌

    유치원 및 초등학교 교사 등 신고 의무자가 아이의 학대 사실을 신고하고도 되레 학대를 한 부모의 보복을 우려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신고자를 위한 신변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동학대특례법에 따라 초·중·고교 교직원, 유치원 강사를 포함한 24개 직군이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교사 A씨는 19일 “B양의 허벅지에 피멍이 든 것을 보고 물었더니 어머니 폭행 때문에 손가락 인대가 끊어진 적도 있다고 해서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다”며 “하지만 B양 어머니가 전화해 ‘XX야, 네가 신고했냐. 복수하겠다’며 욕설 섞인 항의와 협박을 했다”고 밝혔다. A 교사는 “부모가 직접 찾아와 보복할까 봐 한동안 상담실 문을 닫았다”고 덧붙였다. B양은 지난해 전국 중학교 정서행동특성검사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관심군’으로 분류됐다. 또 B양은 A 교사에게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학습지 문제를 틀릴 때마다 어머니가 폭언과 체벌을 했다고 진술했다. 아버지는 출장이 잦고 아이 교육을 부인에게 믿고 맡긴 터라 학대 사실을 전혀 몰랐다. 경북도의 한 중학교 교사 C씨는 “아동학대 신고자의 신상이 보호된다고 들었지만 실제로는 학대를 한 부모가 마음만 먹으면 아이를 통하거나 수사 과정을 통해 신고자를 알 수 있었다”고 전했다. C 교사는 초등학교 때부터 방 안에 딸을 가두거나 폭행한 어머니를 신고했고 어머니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C 교사가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하면서 신고자였음이 모두에게 탄로 났다. 그는 “딸을 학대한 어머니는 감옥에서 ‘나가면 맨 처음 널 찾아갈 것이다’ 등의 문구를 적은 협박 편지를 학교에 보내면서 계속 위협했다”며 “지금도 떨리고 무섭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성나경 전국전문상담교육자협회 대표는 “학대를 신고한 후 학부모의 항의를 받은 교사는 불안함과 무력감을 크게 느낀다”며 “학대 부모의 보복에 떠는 교사가 늘어나면 용기를 갖고 신고하는 분위기가 사라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박윤조 성균관대 아동청소년발달증진센터 연구원은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을 대상으로 신고자 보호 교육을 강화하고 수사기관은 신고자와 학대 부모 간 대질신문을 피하는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영상) ‘나만의 슬픔’ 김돈규가 돌연 활동 중단한 이유

    (영상) ‘나만의 슬픔’ 김돈규가 돌연 활동 중단한 이유

    90년대 발라드 가수 김돈규가 가수 활동을 돌연 중단한 이유를 밝혔다. 19일 밤 방송된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이하 슈가맨)’에서는 김돈규와 모세가 슈가맨으로 출연했다. 이날 유희열 팀의 슈가맨으로 등장한 김돈규는 약 20년 만에 ‘나만의 슬픔’을 이전보다 더 거칠어진 목소리로 열창했다. ‘나만의 슬픔’은 그룹 015B에서 객원 보컬로 활동한 김돈규가 2006년 솔로로 낸 1집 세파레이션(Separation)에 수록된 곡으로, 어느 사형수의 편지가 노래의 모티프가 됐다. 김돈규는 무대를 마치고 내려와 “원래 늘 노래를 부를 때 술 먹고 밤에 불렀었다. 맨정신에 부르는 것도 20년 만이다”라며 “성대 결절은 2번 정도 걸렸었고, 지금 목젖이 없는 상태다”라고 털어놔 놀라움을 안겼다. 그는 성대 결절에 걸린 이유에 대해 “3집 ‘단’으로 활동할 때 앵무새를 어깨 위에 올리고 노래하던 얀의 프로듀싱을 맡았다. 높은 음역대를 자랑하는 가수 얀의 곡에 코러스를 넣고 가이드를 부르다 보니 목에 무리가 많이 갔다“고 설명했다. 한편 ‘2016 나만의 슬픔’은 오케스트라 편곡의 웅장한 록발라드로 재해석돼 옴므의 폭발적인 가창력과 만나 청중단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애절한 무대로 꾸며졌다. ‘슈가맨’은 대한민국 가요계에 한 시대를 풍미했다가 사라진 가수, 일명 ‘슈가맨’을 찾아 나서는 프로그램. 매주 화요일 오후 JTBC에서 방송한다. 사진·영상=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김돈규_나만의 슬픔)/네이버tv캐스트 영상팀 seoultv@seoul.co.kr
  • 홀몸노인 ‘氣’ 살려요

    홀로 사는 노인들은 겨울철마다 난방비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우울감 등 심리적 고통을 크게 겪는다. 용산구가 노인들의 이러한 어려움을 달래주기 위해 주민의 온정을 전달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용산구는 18일 독거노인에게 생필품과 효도편지를 전달하는 ‘기가팍팍!’ 프로젝트 벌인다고 밝혔다. ‘기(기업)가(가정)팍팍!’ 프로젝트는 기업 또는 2인 이상 가족이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샴푸, 참치캔, 치약 등 생필품을 주민센터에 전달하면 이를 ‘효 상자’에 담아 독거노인에게 전달하는 사업이다. 구는 복지 혜택을 받는 가구 외에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을 새롭게 찾아 모두 100개의 효 상자를 전달할 계획이다. 생필품 전달을 원하는 주민은 오는 21일까지 1365자원봉사포털(www.1365.go.kr) 또는 용산구자원봉사센터 전화(02-718-1365)로 참가 신청을 할 수 있다. 성장현 구청장은 “지역 내 기업과 가족들이 나눔과 봉사를 실천할 기회가 될 것”이라면서 “외로운 홀몸 어르신들에게 기가 가득 실릴 수 있도록 행사에 많이 참여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국민에게 봉급받는 공무원 초심 끝까지”

    “국민에게 봉급받는 공무원 초심 끝까지”

    “부족한 아들이 어엿한 공무원으로 새 출발합니다. 그동안 믿고 보살펴주신 부모님, 정말 감사합니다.”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청 5층 대회의실에선 가슴 따뜻한 감동의 임용식이 열렸다. 공직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새내기 직원들이 자신의 부모님에게 가슴에 묻었던 감사의 마음을 전한 것이다. 이날 열린 ‘2016 새내기 공무원 임용식’에 참가한 서초구의 신규 직원 39명은 부모님에게 장미꽃과 임용장을 전달하고 각자 준비한 감사편지를 읽었다. 새내기 신인섭 주무관은 “어머니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아니었다면 치열한 경쟁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감사를 전해 주위를 훈훈하게 했다. 이어진 조은희 서초구청장과 선배 공무원과의 소통의 시간에서는 저마다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이주희 주무관은 “공무원은 국민에게 ‘봉급’을 받는 만큼 초심을 잃지 않는 봉사자가 되겠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들은 임용장 수여식에 앞서 내곡동 다니엘복지원을 방문했다. 장애인들의 자활활동을 돕는 봉사활동을 하며 공무원으로서의 희생정신과 각오를 다졌다. 아울러 청소종합시설과 양재 연구개발(R&D)센터 등 지역 주요시설을 찾아 구정 현장을 체험하며 공직 입문을 실감하기도 했다. 조 구청장은 신규 직원들에게 “주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마음을 다잡고, 항상 서로 질문하며 협업하는 정신으로 서초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씨줄날줄] ‘처음처럼’/강동형 논설위원

    [씨줄날줄] ‘처음처럼’/강동형 논설위원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이 만들어 가는 끊임이 없는 시작입니다.’ 쇠귀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지난 15일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그는 20년 20일을 옥살이하는 동안 깊은 사색과 성찰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지성으로 승화시켰다. 처음 세상에 나온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가족과 주고받은 편지와 엽서를 모은 것이지만 그의 통찰은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줬다. 그가 만든 서체를 ‘쇠귀체’라고 한다. 글씨가 조화롭고 단아하며 서민적이라는 평이다. 여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그 글이 가지고 있는 사색의 깊이에 있다. 우리는 소주의 브랜드 이름으로 ‘처음처럼’을 기억하지만 ‘처음처럼’에는 그가 겪은 모진 풍상과 삶에 대한 사색이 담겨 있다. 그는 소주 회사 관계자가 찾아와 ‘처음처럼’을 사용하겠다고 했을 때 흔쾌히 허락했다고 한다. 호사가들은 선생이 많은 돈을 받았을 것이라는 뒷담화를 하곤 했는데 후에 안 사실이지만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소주 회사는 매출이 크게 늘자 보답으로 선생이 재직하고 있던 대학에 1억원을 기부했다고 한다. 선생은 쇠귀체의 모태는 어머니의 편지였다고 고백했다. 서예 연습을 하다 감옥에 보내는 어머니의 편지, 단아하면서도 사랑이 가득 담긴 서툰 글씨를 모티브로 쇠귀체를 완성했다고 한다. 유명세를 탄 그의 글과 서체는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가장 먼저 반기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글씨도 선생의 작품이다. ‘더불어 숲’이나 조정래의 장편소설 ‘한강’의 표지글도 쇠귀체다. 최근에는 영화나 드라마 제목으로도 쇠귀체가 인기다. 선생의 지성은 글에서도 번득인다. 국내 여행기를 모은 ‘나무야 나무야’에서 황희 정승이 노년을 보낸 반구대와 한명회가 세운 압구정을 비교하면서 ‘역사는 우리가 맡기지 않더라도 어김없이 심판한다’고 담담하게 얘기한다. 그는 옥살이를 하던 목수가 집을 지붕이 아닌 주춧돌부터 그리는 모습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치기도 한다. 그의 사상을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더불어 사상’ ‘함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선생은 정치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굳이 하나를 소개한다면 “정치는 국민들이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어야 한다. 정권 창출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글이다. 정치의 계절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선생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선생의 병마가 햇볕을 쬐지 못해 생긴 피부암이라는 게 안타깝다. 선생의 명복을 빈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 하늘로 사색 떠난 시대의 지성인…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별세

    하늘로 사색 떠난 시대의 지성인…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별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으로 유명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15일 오후 10시 10분쯤 별세했다. 75세.  고인은 2014년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었으며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면서 끝내 숨졌다. 1968년 7월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후 1988년 8월 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한 고인은 20년간 수감생활을 하며 느낀 한과 고뇌를 230여장의 편지와 글로 풀어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출간해 큰 주목을 받았다. 소주 ‘처음처럼’의 글씨체로도 유명하다.  1941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을 마친 뒤 육군 중위로 임관해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던 중 1968년 당시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1970년 5월 사형수에서 무기수가 됐다.  교도소는 문필가 신영복을 성장시킨 또 다른 학교였다. 고인은 20년 수형 생활을 ‘나의 대학 시절’이라 부르며, 옥(獄)은 “사회학 교실이자 역사학 교실이었고, 최종적으로 인간학 교실”이라고 말했다. 출소 후 칩거 7년 만에 내놓은 ‘나무야 나무야’(1996), 1997년 세계 22개국을 여행하며 펴낸 ‘더불어 숲’(1998)을 비롯해 성공회대 재직 중 고전강독 강의를 책으로 묶어낸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2004)은 오랜 감옥 체험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담으며 시대의 고전이 됐다. 고인은 2006년 정년 퇴임한 이후에도 석좌교수로 강의를 계속했으나 2014년 암 진단을 받으면서 겨울학기를 끝으로 강단에서 내려왔다. 강의 녹취록을 재구성해 ‘담론(談論)-신영복의 마지막 강의’(2015)를 발간했다.  고인의 장례는 성공회대 학교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16일 오후 2시 이 학교 대학성당에 차려져 매일 오후 10시까지 조문을 받을 예정이다. 영결식은 18일 오전 11시 엄수된다. 유족으로는 부인 유영순(68)씨와 아들 지용(26)씨가 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주말 영화]

    ■한 번 더 해피엔딩(씨네프 일요일 오전 8시 5분)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돈다고 믿었던 키스 마이클스는 과거 ‘잃어버린 낙원’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으며 한때 이름을 날리던 시나리오 작가다. 하지만 이후 15년째 공들여 쓴 작품들은 할리우드에서 외면받고, 이젠 한물간 작가가 되어 버렸다. 잔고는 바닥을 치고, 전기까지 끊겨버린 최악의 상황. 그는 자존심이 상한 채 어쩔 수 없이 지방도시의 교수직을 수락한다. 대충 시간 보내러 시골 대학에 뛰어든 마이클스는 예전의 끼를 주체 못해 뜻밖의 사고를 치게 되고 이후의 일들은 자꾸 꼬여만 간다. 과연 마이클스는 볼수록 그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싱글맘 홀리와 종잡을 수 없는 학생들과의 생활에 잘 적응해 나갈 수 있을까. ■러브 레터(EBS1 일요일 오후 2시 15분) 2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연인을 잊지 못한 채 사는 고베의 와타나베 히로코. 연인 후지이 이쓰키의 추모식 날, 와타나베는 후지이의 집에서 그의 졸업앨범을 보던 중 우연히 그의 옛 집 주소를 본다. 와타나베는 당연히 수신인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낸다. 며칠 뒤 놀랍게도 후지이에게서 답장이 온다. 놀라움과 반가움이 뒤섞인 마음으로 두 번째 편지를 쓰는 와타나베. 한편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고 있는 오타루의 후지이 이쓰키. 어느 날 그녀 앞에 정체불명의 편지가 한 통 도착한다. 장난처럼 보낸 답장들이 몇 통의 편지로 오가는 중 후지이와 와타나베는 현재 상황을 파악하게 되는데….
  • [속보]‘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교수 별세

    [속보]‘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교수 별세

    신영복 교수 별세 신영복 교수 별세 향년 75세…‘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저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으로 잘 알려진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15일 별세했다. 향년 75세. 출판업계에 따르면 신 교수는 2014년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었으며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면서 끝내 숨졌다. 경제학자인 신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육사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교관으로 일하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20년 20일을 복역하다가 1988년 광복절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강의한 그는 20년간 수감생활을 하며 느낀 한과 고뇌를 230여장의 편지와 글로 풀어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1998년 출간했다. 이 책은 큰 인기를 얻으며 그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켰으며 이후 출간한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1·2’,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 ‘처음처럼’, ‘변방을 찾아서’ 등도 베스트셀러 명단에 올랐다. 신 교수는 2006년 성공회대에서 정년퇴직한 이후에도 석좌교수로 강의를 계속했으나 2014년 암 진단을 받으면서 그 해 겨울학기를 마지막으로 강단에서 내려왔다. 장례는 성공회대 학교장으로 치러지며 유족으로는 부인 유영순(68)씨와 아들 지용(26)씨가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러시아 육상 도핑, 선수들 목숨 위협할 정도”

    러시아 육상 선수들의 금지약물 복용 실태가 선수들의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했던 것으로 국제육상연맹(IAAF)과 세계반도핑기구(WADA) 조사 결과 드러났다. 또 IAAF가 이번 사태를 6년 전부터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러시아 육상계는 지난해 말 조직적인 금지약물 복용을 이유로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포함한 모든 국제대회에 당분간 출전할 수 없다는 중징계를 받았다. AP통신은 13일 IAAF 관계자로부터 제공받은 내부 문서를 인용해 IAAF가 새로운 혈액 검사 프로그램을 도입한 2009년에 러시아 선수들의 약물 복용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인지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선수들이 복용한 약물은 적혈구의 산소 운반 능력을 끌어올려 운동신경을 향상시키지만 과다 복용하면 혈액이 응고돼 심장마비로 사망할 수도 있었다고 밝혔다. 피에르 바이스 당시 IAAF 사무총장은 2009년 10월 14일에 발렌틴 발라크니체프 러시아육상경기연맹 회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혈액 검사 결과가 충격적이다. 즉각적이고 철저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적었다. 그는 “부당하게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은 물론 (약물을 복용한) 선수들의 목숨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면서 “IAAF가 혈액 검사를 시작한 이래 이렇게 (약물 관련) 수치가 높게 나온 적이 없다”고 적었다. 검사 결과를 통보받은 뒤에도 러시아 육상계는 도핑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을 뿐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IAAF 역시 러시아 육상계한테서 일정한 대가를 받고 광범위한 금지약물 복용 실태를 눈감아준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발라크니체프 전 회장은 지난 8일 국제 육상계에서 영구 추방됐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너 고소!” 佛정치인 ‘잠자는 셀카’ 이유로 거액 소송

    “너 고소!” 佛정치인 ‘잠자는 셀카’ 이유로 거액 소송

    프랑스의 유명 정치인이 팝스타 마돈나의 전 남자친구를 고소했다. 최근 유럽언론들은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초대 당수인 장마리 르 펜(87)이 유명 댄서인 브라힘 자이밧(29)를 상대로 소송장을 냈다고 보도했다. 한편으로는 웃음을 자아내는 이번 사건은 지난달 13일(이하 현지시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여객기에 탑승했던 자이밧은 우연히 곤히 잠들어있던 르 펜을 발견하고는 익살맞은 '셀카'(사진)를 찍었다. 문제는 자이밧이 이 셀카를 자신의 페이스북 등 SNS에 올리면서 시작됐다. 사진에 그는 "내일 투표 잘해서 그들에게 결정타를 날려라. 우리의 형제 프랑스를 위해"라고 적었으며 무려 19만 5000건의 '좋아요'(like)를 기록할 만큼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자이밧이 언급한 '그들은' 바로 국민전선이다. 현재는 르 펜의 딸이 대표인 국민전선은 1972년 르 펜이 창당한 극우주의 정당이다. 특히 국민전선은 창당 이후 지속적으로 반 유로화, 반 이민 정서를 부추겨왔으며 최근의 이슬람 테러, 시리아 난민 유입등과 맞물려 큰 호응을 얻으며 주류 정치권에 합류했다. 자이밧이 이같은 글을 남긴 배경에는 아버지가 아프리카 이민자 출신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7일 지역선거 1차 투표에서 12개 지역 중 6곳에서 1위를 차지하며 바람을 일으킨 국민전선은 그러나 자이밧의 바람처럼 결선투표에서는 모두 패배해 쓴 맛을 봤다. 프랑스 언론은 "르 펜이 초상권 침해는 물론 선거 패배에 이 사진이 영향을 미쳤다는 이유로 자이밧을 고소했다"면서 "장문의 사과 편지와 5만 유로(약 6500만원)의 배상금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반기문, JP에 구순 축하 서신… 대권 행보?

    반기문, JP에 구순 축하 서신… 대권 행보?

    반기문(오른쪽) 유엔 사무총장이 최근 구순을 맞은 김종필(JP·왼쪽) 전 국무총리에게 축하 서신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반 총장이 사무총장 재임 중 김 전 총리의 생일에 축하 서신을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2일 김 전 총리 측에 따르면 반 총장은 전날 서신을 통해 “구순 생신을 맞으신 것을 감축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건안하시길 기원한다”면서 “총리님께서 대한민국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 평생 남기신 족적은 후세에 길이 남으리라 사료된다”고 밝혔다. 반 총장은 또 “유엔 사무총장으로 근무한 지 어느덧 9년이 지나 마지막 1년의 임기를 남겨 놓고 있다”며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계속 아낌없는 지도 편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새해에도 늘 건강하신 가운데 큰 발전 이루시기를 기원한다”면서 “훗날 찾아뵙고 인사 올리겠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지난 1일자 서울신문 신년 여론조사를 비롯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반 총장이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 1위에 오르는 등 ‘반기문 대망론’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그가 충청권 맹주 역할을 해 온 김 전 총리에게 생일 축하 서신을 보낸 데 대해 단순한 예우 차원을 넘어 정치적 함의가 담긴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충북 음성 출신인 반 총장이 충청권 대표 주자로서 입지를 다지기 위한 사전 행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김 전 총리 측은 “반 총장의 편지는 지난 11일 외교부 외교행낭을 통해 전달받았다”면서 “김 전 총리가 ‘답장을 준비하라’고 해서 조만간 외교부를 통해 반 총장에게 답장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반 총장은 외교부에서 오랜 공직 생활을 하는 동안 정치권과 관가의 핵심에 있었던 김 전 총리와도 교분을 쌓았다는 게 김 전 총리 측의 설명이다. 반 총장은 또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김 전 총리와 개인적으로 상의하고 조언을 들었으며, 김 전 총리도 반 총장에 대한 신뢰감을 표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기문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언급했다는 후문이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그리움에 잠긴 단원고 졸업식

    그리움에 잠긴 단원고 졸업식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12일 세월호 사고 당시 생존자인 3학년 학생 75명을 포함해 86명에 대한 졸업식이 열렸다. 졸업생들은 희생·실종 학생 250명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250송이의 장미를 들고 졸업식에 참석했다. 단원고 명예 3학년 교실을 찾은 한 유가족이 아들의 자리에 앉아 편지를 쓰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오늘의 포토영상] “아들아! 오늘이 졸업식이야…” 단원고생 아빠의 편지

    [오늘의 포토영상] “아들아! 오늘이 졸업식이야…” 단원고생 아빠의 편지

    세월호 참사를 겪은 생존학생과 수학여행을 가지 않은 학생 등 86명의 졸업식이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에서 비공개로 열렸습니다. 이날 단원고등학교 명예 3학년 교실을 찾은 한 유가족이 아들의 자리에 앉아 편지를 쓰는 모습입니다. 이날 함께 열릴 계획이었던 희생 학생 250명에 대한 명예졸업식은 실종자들이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세월호 인양 때까지 잠정 연기됐습니다.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응답하라 1988…28년 전 바다에 띄운 편지 주인 찾아요

    병 속에 넣어 바다에 던진 편지가 28년 후 300여 km 떨어진 해변에서 발견돼 화제에 올랐다. 최근 미국 ABC뉴스 등 현지언론은 캘리포니아 멘도시노 해변에서 28년 전 쓴 편지를 담은 병이 우연히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영화처럼 28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전해진 편지를 받은 사람은 5살 소년인 라이더 고긴. 최근 생일을 맞아 엄마와 함께 해변을 걷던 라이더는 우연히 발에 채인 병 하나를 발견했다. 이 병 속에는 놀랍게도 어린이가 쓴 편지 한 장이 다음과 같은 사연으로 담겨있었다. "안녕. 내 이름은 크리스야. 올해 10살, 5학년으로 새크라멘토에 살고있어. 어디에선가 이 편지를 발견하면 나에게 전화줘. 1988년 9월 5일."(Hi my name is Chris. I am 10 years old and in the 5th grade. I live in Sacramento. Call me when you find this to let me know where it washed ashore. September 5th, 1988)    편지 글을 확인한 라이더의 엄마는 곧바로 편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되지 않는 번호였다. 그러나 라이더 모자(母子)는 편지 주인 찾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워싱턴 DC 의회도서관에서 일하는 친척을 통해 1988년 이 전화번호를 가졌던 사람을 확인했으나 이미 사망한 뒤였다. 이어 지역 방송사와 함께 새크라멘토에 거주하는 크리스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36~39세 사람을 찾아나섰으나 이 또한 허사였다. 라이더의 엄마는 "아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생일선물이 된 것 같다"면서 "28년 세월을 간직한 편지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왔을지 무척 궁금하다"고 밝혔다. 이어 "편지의 주인을 반드시 찾아 그의 추억을 돌려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김동률 교수의 1980’s 청춘의 재발견] (6) 봄날의 문무대, 그 겨울의 병영

    [김동률 교수의 1980’s 청춘의 재발견] (6) 봄날의 문무대, 그 겨울의 병영

    중대 막사 지붕에 흰 눈이 쌓였다. 달빛이 하얀 눈에 반사되어 눈이 시릴 정도로 밝은 밤이었다. 멀건 육개장으로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침상에 쪼그려 TV를 보던 중 어디선가 탁한 목소리가 들렸다. 화장실 뒤편에 집합하라는 고참의 명령. 다섯 명의 입대 동기들은 부리나케 맨발로 뛰어나가 부동자세로 정렬했다. 시린 발을 동동 구르며 5분쯤 지났을까? 술에 불콰해진 고참병 둘이 나타나 “솔직히 말하라, 고향 생각이 나느냐”고 엉뚱하게 물었다. 고향 생각, 나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 간절한 긴긴 겨울밤이었다. 이구동성 “네”라고 대답했다. 순간 여기저기서 무섭게 주먹이 날아들었다. “이등병들이 군기가 빠져 군대 와서 집 생각하고 있다니, 고향 생각 나지 않게 해 주겠다”는 고함과 함께 발길질이 계속되었다.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고, 어디서 들은 대로 다치지 않게 요령껏 맞는답시고 모두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기에 바빴다. 잠시 뒤 다른 선임병이 부드럽게 물었다. “고향 생각이 나느냐“는 똑같은 질문이다. 어, 누구를 바보로 아나. “아닙니다”고 악에 받쳐 대답하자 다시 주먹이 날아들었다. ‘군기가 빠져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등병이 벌써부터 군기가 빠져 거짓말을 하면 이 나라 이 강산은 누가 지키느냐’는 훈계와 함께 구타는 한 시간가량 계속되다 끝났다. 세면장에 가서 터진 입술을 씻고 침상에 누우니 어머니의 얼굴이 눈앞에 어린다. “나팔소리 고요하게 밤하늘에 퍼지면 / 이등병의 편지 한 장 고이 접어 보내오.”(김광석 ‘이등병의 편지’)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기 시작했다. 입대 동기의 어깨가 들썩이는 것을 보니 그 또한 울고 있음이 분명하다.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지금의 군대가 아니다. 80년대 어느 겨울밤 내가 경험한 군대 풍경이다. 80년대는 군인의 시대였다. 1979년 12·12로 권력을 틀어쥔 군사 정권의 영향으로 군인들의 힘은 하늘 높은 줄 몰랐다. 불만을 갖거나 반발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던 험악했던 시절, 군대는 이 땅의 청춘들에게 가혹한 통과의례였다. 휴머니즘을 포기한 지긋지긋한 내무반 생활,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친절한 구타 등등…. 군 시절을 되새기면 떠오르는 우울한 기억들이다. 그래서 군은 이 땅의 중년에게 젊은 날의 상처쯤으로 존재한다. 군대 이전의 군대도 있었다. 문무대다. 봄은 문무대와 함께 왔다. 입학한 지 한 달, 라일락 향기에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이면 신입생들은 성남에 있는 학생중앙군사학교, 즉 문무대로 5박 6일 병영집체 훈련을 가야 했다. 우리는 그저 간단하게 남한산성 간다고들 했다. 그리고 남한산성이란 말이 육군형무소를 상징하는 무서운 의미가 있다는 것은 훗날 입대해서 알았다. “남한산성 한 번 가면 그뿐이야.” 걸핏하면 야전삽 자루로 우리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고참병을 통해 그 말의 무시무시한 의미를 알게 된 것이다. 서슬이 퍼렇던 시대였지만 젊은 문무대는 늘 시끄러웠다. 군사훈련을 거부하며 시위하는 일이 발생하면 주동 학생에게는 어김없이 강제 조기징집의 보복이 따랐다. 문무대 입소가 남학생에게는 무서움과 혐오의 대상이지만 여학생들에게는 일주일 휴강이라는 큰 떡을 안기게 된다. 문무대 입소에는 사연도 많다. 같은 과 여학생들은 저마다 맘에 드는 남학생에게 선물을 안기기도 하고 입소 중간에 하루 있는 면회를 이용해 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입소 전 여학생에게 받은 초콜릿과 담배의 양으로 인기를 가늠하던 시절이었다. 어떤 과는 아예 추첨을 통해 남학생과 여학생 간에 파트너를 정해 위문품을 들고 면회를 가게 하기도 했다. 남학생들만 득실대는 공대생들이 가장 서럽다는 때가 바로 문무대 입소 시절이었다. 단순 면회 목적의 짝짓기도 때로는 연인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른바 문무대 커플이란 말까지 등장한 시절이 80년대다. 군 생활은 힘들었다. 1990년 보안사 윤석양 이병과 보병 제9사단 이지문 중위의 양심선언에서 드러나듯 80년대 군대는 암흑의 시기였다. 인권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중대장 앞에서 여당 표를 찍었다. 지금의 민주화 시대에는 감히 상상조차 힘든 풍경쯤 된다. 그 시절 군대의 또 하나의 특징은 ‘신의 아들 대 어둠의 자식들’ 논쟁이다. 백 있고 돈 있는 집의 아들들은 군을 빠지거나 면제받았다는 소문이 흉흉하던 시절이었다. 실제로 결혼 초 아내에게 많이 들은 말 중의 하나는 “왜 자기만 현역이냐”는 것이었다. 아내 친구의 잘난(?) 남편들은 현역 출신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대장 위에 병장이다’고 열심히 설명했지만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래서 지금도 청문회나 하마평에 등장하는 권력자들의 병역 편법을 들을라치면 화가 뻗치게 된다. 큰 국제경기가 있을 때마다 정부가 앞장서 부자 프로스포츠 선수에게까지 병역혜택을 남발하고 엄청난 포상금을 안긴다.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줬으므로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힘들게 군대생활을 한 지금의 중년들이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이 된다. 군대가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만 가는 곳처럼 인식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이런 나를 두고 아내는 병장 콤플렉스가 아니냐고 놀린다. 백사(白蛇)를 뽀얗게 고와 중대장에게 상납한 덕에 GP(감시초소)에서도 매달 휴가를 나왔다는 선배가 실은 동사무소 방위병을 일컫는 ‘똥방위’ 출신임을 알았을 때의 배신감. 주말마다 외출증 끊어 이대 앞을 주름잡았다는, 부모를 잘 둔 신의 아들이 들려주는 허풍에 기죽었던 기억들이 여전히 긍정적인 군대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시절 병영 풍경은 중년에게는 씁쓸달콤한 기억으로 살아 있는 생물이다. 여친이 왔다는 전갈에 속눈썹이 휘날리도록 위병소로 뛰었던 기억, 들기름에 잰 고추장에 찍어 먹던 양파의 매서운 맛 등등은 갈수록 새록새록하다. 가끔 술자리에서 들려지는 선후배들의 신산했던 군대 얘기는 일순간 좌중을 숙연케 한다. 그런 밤 귀갓길 생각나는 옛 노래가 있다.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 젊은 넋 숨져간 그때 그 자리 / 상처입은 노송은 말을 잊었나….” ‘전선을 간다’라는 애창 군가다. 논산훈련소 30연대 훈련병 시절엔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지만’의 ‘진짜 사나이’를 줄곧 불렀지만 너무 직설적어서 세련미가 떨어진다.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우리는 이제 군 내무반이 등장하는 TV광고를 바라보며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소주잔을 들이켜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기성세대가 됐다. 그리고 그때의 군번은 아내 몰래 꼬불쳐 둔 통장의 비밀번호로 사랑받는다. 많이 힘들었고, 그래서 결혼해도 아들만은 절대로 낳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시절, 그래도 가끔 돌이켜 보면 소중한 추억으로 살아 있다. 그래서 처절하고 쓰라렸던 그 시절도 문득문득 토첼리의 세레나데처럼 ‘우리 기쁜 젊은 날’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새해다. 그 겨울 폭설 속에 행군하며 부르던 군가가 문득 생각난다. ‘피와 땀이 서려 있는 이 고지 저 능선에 / 쏟아지는 별빛은 어머님의 고운 눈길.’ ‘사나이 한목숨’이다. 둥근 보름달이 터질 듯이 환하던 그 밤 ‘어머님의 고운 눈길’을 부르면서 우리 모두는 목이 메었다. 그리고 그날의 꽃다운 청춘들도 이제는 늙었다.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yule21@empal.com
  • [서울광장] 루비콘 앞에 선 김정은 비서에게/박홍환 논설위원

    [서울광장] 루비콘 앞에 선 김정은 비서에게/박홍환 논설위원

    김정은 제1비서, 이 공개 편지가 제대로 전달될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입길로라도 김 비서의 귓가에 닿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노트북PC를 켰습니다. 모쪼록 거슬리는 표현이나 듣고 싶지 않은 충고가 있어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루비콘강 앞에 서 있는 위태로운 모습이 안타까워 몇 글자 두서없이 적어 봅니다. 이번 4차 핵실험, 그쪽 주장으로 수소탄 시험을 승인하는 최종 명령서의 오른쪽으로 45도 정도 기운 글씨는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의 서체를 쏙 빼닮았더군요. 이쪽의 한 필적 전문가는 도전적 성향이 강해 보인다고도 분석했습니다. 김 주석의 모든 것을 닮고 싶어 하는 김 비서의 무한 욕망이 느껴졌습니다. 하긴 어릴 때부터 얼마나 많이 김 주석의 영웅적 무용담을 듣고 무소불위의 통치 기록을 봐 왔겠습니까. 외모조차 흡사하니 스스로 김 주석의 최고 권위가 자신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합니다. 그럼으로써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이은 3대 세습의 당위성도 부여하겠지요. 그러고 보니 베이징 특파원으로 근무할 때인 2010년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해 8월 아버지와 함께 중국을 방문하지 않았습니까.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김 비서의 방중은 없었던 것으로 돼 있지만 당시 김 위원장이 후계 수업을 받던 김 비서를 대동했을 것이라는 확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천안함 폭침이 있었던 그해 김 위원장은 두 차례 방중했는데 베이징이 아닌 동북 지방에서만 맴돈 8월의 두 번째 방중이 특이했지요. 특별열차의 첫 기착지인 지린(吉林)성 지린에서는 위원(毓文)중학과 베이산(北山)공원의 약왕(藥王)묘를 찾았습니다. 김 주석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위원중학 재학 당시인 10대 청소년기에 약왕묘에서 비밀리에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 결성을 주도했다고 적었지요. 김 위원장이 후진타오 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지린성 창춘(長春)에는 20대 청년 김 주석이 주체사상을 처음으로 설파했다는 카룬마을이 있는데 지린에서 창춘으로 이동하면서 할아버지가 주재했던 ‘카룬회의’ 현장을 차창 너머로 유심히 살펴보지 않았는지요. 헤이룽장(黑龍江)성의 하얼빈(哈爾濱)이나 무단장(牡丹江)에서도 동북항일연군 관련 시설물을 참배하는 등 김 주석 흔적 찾기에 여념이 없지 않았습니까. 그때 방중을 통해 후계체제를 인정받는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혁명혈통 계승의 정당성을 각인시키는 효과를 노렸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번 핵 도발로 국제사회는 더욱 견고하고도 엄혹한 제재에 나설 것입니다. 초등학교 건물에 금이 가는 등의 직접적 피해에 화들짝 놀란 중국도 격앙하고 있어 속도를 내던 양국 경협이 중단될 가능성도 크다고 합니다. 제7차 당대회를 앞둔 수소폭탄 실적 과시, 미국을 상대로 한 대화압박 등 대내외 ‘노림수’의 대가는 상상 이상으로 혹독할 것입니다. 과연 무슨 생각으로 루비콘강 앞에 서 있는지 김 비서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린과 창춘, 하얼빈 등의 할아버지 유적을 순례하며 배운 게 고작 장난처럼 핵실험 버튼을 누르는 것이었습니까. 그토록 사랑한다는 북한 인민의 운명을 이렇게 한순간 내동댕이칠 수 있는 것인가요. 진실 여부를 떠나 김 주석은 그래도 혁명과 항일에 대한 열의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좌충우돌하는 김 비서에게서는 한 조각 진지함조차 엿보이지 않는군요. 핵무기 개발과 경제발전,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요? 그만 혹세무민하기 바랍니다. 그동안 핵과 미사일 개발에 쏟아부은 30억 달러 넘는 돈을 식량 구입에 사용했다면 적어도 북한 인민들이 3년 동안은 굶주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김 비서의 잘못된 주사위 선택은 곧 북한 인민들에게 쓰나미 같은 재앙으로 닥칠 것입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인민들을 속여 가며 ‘고난의 행군’을 독려할 생각인가요. 하지만 인간의 인내심은 화수분 같은 게 아닙니다. 언젠가는 인내심이 바닥을 칠 수밖에 없고, 분노는 끓어오르게 마련입니다. 경제봉쇄로 또다시 수백만명의 아사자, 수만명의 탈북자가 속출한다면 안팎으로 레짐체인지의 욕구가 임계점에 이르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또 다른 도발로 루비콘강을 건널 생각은 이쯤에서 접기 바랍니다. stinger@seoul.co.kr
  • “평화가 안보에 종속돼선 안 된다…北에도 국제사회 역할 줘야”

    “평화가 안보에 종속돼선 안 된다…北에도 국제사회 역할 줘야”

     1990년부터 해마다 거르지 않고 평양을 방문하는 노학자가 있다. 국내는 물론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북한 전문가인 박한식(76) 조지아대 명예교수는 “평화가 안보에 종속되면 안 된다”며 남북 관계, 북·미 관계에서 발상의 전환을 강조했다. 지난달 17일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세 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 내내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 통일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그는 “민족동질성 회복이란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현실대로 인정해야 한다”면서 “언젠가 서울과 평양 젊은이들을 가르치며 내 경험과 고민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국 오바마 정부 대북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나 자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열정적으로 지지한 사람이지만 한반도 정책에 대해서는 완전히 빵점이다. 쿠바와 수교한 것처럼 북미관계를 해결해야 하는데 미국을 알려면 군산복합체를 알아야 한다. 군산복합체가 미국을 지배한다. 돈이 미국을 움직이고 그 돈은 총칼에서 나온다. 그런데 미국이 20세기 들어 처음으로 이기지 못한 전쟁이 바로 한국전쟁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Korean conflict’라고 할 뿐 ‘War’란 표현 자체를 금기시했다. 북한은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거기다 군산복합체로서는 북한이 무기 팔아먹기에 딱 좋은 알리바이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게 쉽지 않다. 다만 변수가 있다면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기 전에 역사에 남는 외교적 업적을 남기기에 가장 좋은 대상이 바로 북미관계개선이라는 점이다. 나로서는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맺고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대신 북한이 국제사회가 원하는 비핵화를 하기를 바란다. 다행히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 차원의 비핵화를 주창한다. 그걸 위해서는 인도, 파키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스라엘, 북한 등이 동참해야 한다. 북한 협력을 이끌어내려면 북한이 자존심을 세우면서 국제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역할을 줘야 한다. 그걸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하게 해야 한다.  →북한이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 어느 정도 양보를 할 수 있다고 보나. -내가 보기에 북한은 북미 평화협정을 이루기 위한 상당한 준비가 돼 있다. 상당한 댓가를 치를 준비가 돼 있다. 핵포기까지도 할 수 있을 정도다. 핵포기라는 건 말 그대로 모든 ‘핵’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사실 북한으로서는 최악의 경우 다시 핵을 시작하면 몇 달만에 지금 수준으로 도달할 수 있다. 과학자들 기술자들도 다 있고 원료도 있다. 핵 무기를 만들겠다는 정신무장도 철저하다. 최근 수소 폭탄 얘기가 나왔다. 내가 그 분야 전공자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북한을 관찰한 걸로 보자면 빈말은 빈말은 아닌 것 같다. 결국 ‘전략적 인내’는 완벽한 실패작인 셈이다.  →지금도 많은 이들은 북한이 조만간 붕괴할 걸로 본다. -북한 붕괴론이라는 생각틀에서 나온게 ‘전략적 인내’다. 북한은 내가 보기엔 ‘절대’ 망하지 않는다. 어떤 정치체제도 단순히 경제적으로 어렵고 굶어서 망하는게 아니다. 정통성이 없어야 망한다. 북한 정권의 정통성은 경제성장에 있지 않다. 그런 면에서 종교적 성격도 있다. 김일성 주체종교가 지배하는 국가이고 끊임없이 찬송가를 만들어내는 체제다. 끊임없이 환상을 만들어낸다. 그 환상이 공고하다. 환상 속에서 살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국가라고 믿지 않나. 그렇다곤 하더라도, 북한도 현재 경제성장에 목매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이념적으로 투철해도 배고프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어떻게 하든지 국민들의 의식주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투철하다. 평양을 가보면 시장이 갈수록 활성화되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면 안된다. 평양을 갈 때마다 모란봉을 자주 찾는데 몇 년전에 처음으로 입장료를 내라고 하더라. 시에서 공원 관리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입장료를 내라고 하는 것이다. 돈을 내야 한다고 단순하게 시장경제 활성화라고 속단하면 안된다. 현재 북한의 변화 흐름은 국가정책 속에서 나타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은 어떻게 보나. -통일을 하겠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목적이 좋으니까. 문제는 목표를 위한 수단과 방법이다. 그게 정책이다. 박근혜 정부는 그게 부족하다. 목표설정은 있는데 방법론이 없다. 통일을 원한다면, 북한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한다. 김씨 왕정을 하고 있다는게 북한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다. 현실을 현실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있는 그대로 평가해야 한다. 그런 태도가 없으면 평화통일이 안된다. 전제왕정인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UAE)와도 잘 지내지 않나.  →8월 남북 당국간 판문점 합의가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전쟁이 일어날 뻔한 엄중한 상황이었다. 평양은 끝까지 사과할 생각이 없었다. 서울에서 유감을 사과로 인정하는걸로 방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전쟁이 날 수도 있었다. 북한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북에서 절대 사과하지 않을 거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북한에 판정패했다. 북한은 과거 미국 시민권자 2명 밀입국 문제에 대해 미국에 사과를 요구했다. 내가 북한 요구를 힐러리 클린던 당시 미 국무장관에게 전달했다. 결국 클린턴 장관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이른바 ‘햇볕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미국식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노련한 정치인이었다. 그 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다르다. 북한에선 햇볕정책이 북한식 사회주의 옷을 스스로 벗게 만들게 하려는 것이라고 보는데 그건 일리가 있다. 햇볕을 쬔다고 북한이 자본주의 민주주의 국가가 될 거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북중관계가 예전같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중국에게 북한은 사회주의 혈맹이다. 중국은 결코 북한을 버리지 않는다.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한 핵국가로 군림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북한이 핵을 가지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북한이 핵국가가 된다고 해서 중국에 안보위협이 될 리는 없다. 중국은 한국 정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북한을 비핵화하겠다는 의지가 크지 않다. 중국이 내세우는 ‘중국식 사회주의’는 시대에 따라 맥락이 차이가 있다. 덩샤오핑은 사회주의에 방점이 있었다면 시진핑 체제에서는 사실상 ‘유교식 사회주의’다. 유교식이란 걸 북중관계에서 대입해보면 외교정책에서 맥락을 읽을 수 있다.  →평화학자로서 생각하는 통일의 원칙은 무엇인가. -많은 분들이 민족동질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얘길 한다. 내 경험상 민족동질성 회복은 불가능한 목표다. 그런 식으로는 통일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무엇보다도, 회복해야 할 동질성이란게 도대체 무엇인가. 남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현실은 현실대로 인정해야 한다. 두번째로, 평화를 안보라는 문법으로 접근하면 안된다. 평화정책이 안보정책에 종속되면 안된다. 평화는 지배가 아니라 조화다. 지배하려고 하면 분쟁과 갈등이 생긴다. 지배를 통해 평화를 이룬다는 건 불가능한 목표다. 더 시급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우리는 어떤 나라를 원하는가’이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남북은 과연 반드시 통일해야 할까? 통일을 하지 않더라도 갈등과 대립없이 ‘이웃’으로서 각자 잘 살면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까? 지금 남북관계는 바둑으로 치면 정석이 아니라 줄바둑이라고 할 수 있다. 포석이 없다. 그나마 북한은 수십년간 남북관계만 다루는 전문가 집단을 보유하고 있다. 유단자다. 그에 비해 한국은 바둑 두는 선수가 해마다 바뀐다. 실력이 늘 수가 없다.  →김정은은 만나 봤나. 북한을 방문하면 누구를 주로 만나나. -김일성과 김정일은 같은 자리에서 얼굴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김정은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다음 방문에는 김정은을 만나 보길 희망한다. 김양건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는 북한을 찾을 때마다 많은 대화를 나눈다.(김양건 비서는 최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최근 은퇴식을 했다. -올해는 내게 특별한 해다. 미국에 온지 50년이 됐다. 올해 4월엔 금혼식을 했다. 며칠 전에는 은퇴식도 했다. 이번 학기 마지막 강의가 평화학이었다. 강의 내용을 책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사람으로서 한반도 문제를 집념을 갖고 연구해왔다. 1990년부터 올해까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방문을 해서 계속 북한을 관찰했다. 통계로는 눈에 안보이는게 눈에 보인다. 언젠가 내 경험과 고민을 한반도 청년들과 나누고 싶다. 서울과 평양에 평화대학을 만들고 싶다는 희망이 있다. 조지아주 애선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박한식 명예교수는 황장엽 초청으로 첫 방북…북한 50차례 넘게 다녀와 박한식 미국 조지아대 명예교수는 미국 내 손꼽히는 북한 학자로 미국 정부에 대북정책을 조언하는 등 북·미 간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수십년간 북한을 오가며 신뢰를 쌓은 덕분에 북한을 50여 차례 다녀올 수 있었다. 박 교수의 북한과의 인연은 그의 강의를 듣던 학생에게서 시작됐다. 박 교수는 1971년 조지아대 국제관계학 교수로 임용됐는데 그가 가르친 학생 한 명이 알고 보니 당시 지미 카터 조지아 주지사와 해군사관학교 시절 같은 방을 썼던 절친한 친구였다. 박 교수는 그 즈음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다룬 논문을 썼고 마침 그 문제를 고민하던 카터 주지사와 만나게 됐다. 카터 주지사가 미국 대통령이 된 뒤에는 카터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1979년 미국을 방문한 덩샤오핑(鄧小平)을 만날 수 있었다. 박 교수는 덩샤오핑에게 자신이 하얼빈에서 태어났으며 지금도 그곳에 친척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 덩샤오핑이 박 교수를 초청해 1981년 고향을 방문할 수 있었다. “베이징에서 스무 시간도 넘게 기차를 타고 하얼빈에 도착했습니다. 기차역에 내렸더니 큰 현수막이 걸려 있고 군악대가 연주를 해 줘요. 덩샤오핑 초청이라고 칙사 대접을 해 준 겁니다.” 주체사상을 연구해야 북한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는 황장엽에게 편지를 썼고 중국이 다리를 놔 줬다. 중국 방문길에 황장엽의 초청으로 북한도 방문해서 2주간 체류했다. 이후 1990년부터 1996년까지는 황장엽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1997년 황장엽이 탈북한 이후로도 북한과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50차례도 넘게 북한을 방문하며 쌓은 현장 경험과 인맥을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 관계, 북·미 관계 개선에 노력해 왔다. 박 교수는 1946년부터 1948년까지는 평양에서 살다가 이후 서울로 넘어왔다. 그는 “어린 시절 국공내전을 겪었다. 총알이 모자라 낫이나 칼로 사람을 죽이는 걸 목격했다”면서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정치철학과 평화학을 연구해 온 박 교수는 2015년을 끝으로 44년간 재직한 학교에서 퇴임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서울여대, 불합격자에도 “합격 축하” 메시지 발송…공식 사과

    서울여대, 불합격자에도 “합격 축하” 메시지 발송…공식 사과

    서울여자대학교가 2016학년도 신입생 정시모집 불합격자들에게까지 합격 축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가 이를 번복해 논란이 일었다. 8일 서울여대에 따르면 이 학교 입학처는 이날 오전 11시쯤 정시 지원자 전원에게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하단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총장님의 축하 메시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단체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메시지에 첨부된 링크를 누르면 서울여대 전혜정 총장이 합격생들에게 입학을 축하하는 내용의 편지가 담겼다. 그러나 이 메시지는 학교가 전날 발표했던 정시모집 비실기전형 최종합격자 598명 뿐 아니라 비실기전형 최종 불합격 학생과 예비번호 학생, 실기전형을 앞둔 예체능 계열 학생 등 4400여명에게 모두 발송됐다. 서울여대 측은 곧바로 “조금 전 발송한 메시지는 발송 대행업체가 실수로 보낸 것”이라고 해명하고 사과하는 문자메시지를 다시 발송했다. 그러나 지원자들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고, SNS상에 불만을 토로했다. 일부 지원자들은 URL 링크가 첨부된 것을 두고 해당 문자메시지가 스미싱일 가능성도 제기하며 “조심하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서울여대 관계자는 “일전에 정시모집 지원자들에게 학교에 지원해줘서 감사하다는 내용의 모바일 카드를 보냈는데 오늘 합격 축하 카드를 보내는 과정에서 대행업체가 지난번 명단을 그대로 사용한 듯 하다”고 해명했다. 서울여대는 입학처장 명의로 “모든 이유를 떠나, 수험생에게 문자가 잘못 발송되어 큰 혼란과 불편함을 드린 점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라며 공식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예견된 北 수소폭탄, 손 놓고 있었던 정부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예견된 北 수소폭탄, 손 놓고 있었던 정부

    북한이 새해 벽두를 기습적인 핵실험으로 장식하면서 남북 관계가 또다시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은 6일 오전 10시 30분경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기습적인 핵실험을 강행하고 당일 정오에 조선중앙TV 특별 중대발표를 통해 수소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급작스런 ‘수소탄 실험 성공’ 소식에 정부 당국은 패닉에 빠졌다.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등 유관기관은 핵실험 징후를 파악하지 못했고, 세계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한다는 미국조차도 불과 수 시간 전에야 감청을 통해 이상 징후를 파악하고 확인을 위해 급하게 정찰기를 띄웠지만 결국 사전 첩보 입수와 경보에는 실패했다. 북한의 핵실험 사실을 가장 빠르게 파악한 곳은 안보 관련 기관이 아닌 ‘기상청’이었다. 정부는 핵실험 직후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하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지만, 예상치 못했던 북한의 기습적인 ‘수소탄 실험’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정부가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을 정말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을까? 北, 핵탄두 보유는 90년대에 달성 북한이 이번에 ‘완전 성공’했다고 발표한 실험은 수소탄, 즉 일반적으로 수소폭탄(Hydrogen bomb)으로 불리는 폭탄이다. 보통 원자폭탄으로 불리는 핵무기가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의 핵분열을 통해 파괴력을 얻는 것과 대조적으로 수소폭탄은 핵분열-핵융합 다단계 과정을 통해 파괴력을 얻기 때문에 원자폭탄과 비교할 수 없는 가공할만한 폭발력을 갖는다. 핵분열 방식의 원자폭탄이 작게는 1kt(TNT 1000톤) 안팎의 위력부터 크게는 100~200kt(TNT 10만~20만톤) 정도의 폭발력을 발휘하는 것과 달리 핵융합 방식의 수소폭탄은 작게는 200~300kt 수준의 위력부터 크게는 50Mt, 즉 TNT로 환산하면 5000만 톤에 달하는 위력을 갖는다. TNT 5000만 톤이면 미국이 6.25 전쟁 당시 3년여 간 한반도 전역에 퍼부었던 폭탄의 83배에 달하는 폭탄이 동시에 터지는 위력이다. 이처럼 강력한 위력 때문에 강대국들은 경쟁적으로 수소폭탄을 개발했다. 현재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 이른바 ‘핵클럽’ 국가들은 모두 수소폭탄 개발에 일찌감치 성공해 실전에 배치했고, 관련 기술의 확산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다. 그러나 만들지 말라고 해서 말을 들을 북한이 아니다. 북한은 1950년대 핵 관련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시작하고, 1970년대 중반 본격적인 핵무기 개발을 위한 전문가와 기술자들을 영입하면서 본격적인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의 핵개발은 플루토늄(Pu-239)과 고농축우라늄(HEU : High-Enriched Uranium)을 이용한 핵분열 무기, 즉 원자폭탄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북한은 핵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지 20여 년 만에 플루토늄을 이용한 내폭형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고, 1994년 제네바 합의를 통해 우리나라와 미국을 기만한 뒤 곧바로 파키스탄과 접촉해 우라늄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파키스탄 핵의 아버지라 불리는 압둘 아디르 칸(Abdul Qadeer Khan) 박사는 이른바 ‘칸 네트워크’를 통해 파키스탄이 1982년 중국으로부터 넘겨받은 우라늄 핵탄두인 CHIC-4의 설계도와 관련 부품을 각국에 팔았고, 이 설계도는 지난 2003년 리비아 핵 사찰 당시 발견된 바 있었다. 북한도 이 설계도와 관련 부품 확보를 시도했는데, 이러한 사실은 얼마 전 사망한 전병호 前 노동당 군수담당비서가 1998년 칸 박사에게 보낸 편지와 칸 박사의 증언에서 드러난다. 플루토늄 핵무기 개발에 이어 칸 박사의 도움으로 손쉽게 우라늄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 북한의 다음 수순은 핵융합 반응을 이용한 궁극의 핵무기, 바로 수소폭탄 개발이었다. 수소폭탄은 그 자체로도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지만, 이 기술을 응용할 경우 증폭핵분열탄(Boosted fission weapons)을 개발해 핵분열 무기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반드시 개발해야 할 기술이었다. 문제는 북한이 핵융합 무기 개발을 위한 관련 기술 개발에 착수한 것이 10년이 훨씬 넘었고,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고 공식 발표한 것이 6년 전이지만, 관계 당국은 “그럴 리 없다”며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심지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기까지 하면서 대응책 마련에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소폭탄 개발 징후는 6년 전 이미 포착 북한이 수소폭탄 개발에 나섰으며, 멀지 않은 장래에 실제로 수소폭탄 실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은 이미 국내외 전문가들이 오래 전부터 제기해 왔다. 오랫동안 북핵 문제를 연구해 이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손꼽히는 김태우 前 통일연구원장이 2012년 처음 이 문제를 제기했고, 북한에서 핵 시설을 직접 둘러보고 온 세계적 핵물리학자 지그프리드 헤커(Siegfried S. Hecker) 박사 역시 2013년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 가능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 가능성은 이미 2010년에 북한 스스로 대내외에 대대적으로 선전한 바 있었다. 북한은 지난 2010년 5월 12일자 노동신문에서 ‘방안온도에서 핵융합 반응을 실현시키는데 성공’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핵융합 기술을 연구하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사실 북한이 발표한 ‘방안온도에서의 핵융합 반응’ 즉, 상온핵융합은 미국조차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2005년에서야 성공한 기술이다. 관련 기술 개발에 뒤늦게 뛰어든 북한이 그 많은 핵물리학 선진국을 제치고 2010년에 실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러나 북한이 실제로 핵융합과 관련된 모종의 실험을 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두 가지 결정적인 증거가 과학계로부터 쏟아지고 있다. 우선, 방사성 원소인 제논(Xenon)이 포집됐다. 북한이 핵융합 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힌 2010년 5월 12일에서 불과 이틀 뒤인 5월 14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운영하는 강원도 고성군 소재 거진측정소에서 측정소 설치 이후 사상 최대치의 방사성 원소를 발견한 것이다. 2010년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김선동(서울 도봉을) 의원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자료를 근거로 “거진측정소의 핵종탐지장비가 제논-135를 2007년 측정소 설치 이후 최대치인 10.01mBq/㎥을 탐지했고, 제논-133 역시 2.45mBq/㎥를 탐지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방사성 원소는 거진관측소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일본에서도 탐지됐는데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 : Comprehensive Nuclear-Test-Ban Treaty Organization) 역시 이 같은 사실을 보고 받은 것이 스웨덴 국방연구소 대기과학자 라스 에릭 데예르(Lars-Erik De Geer) 박사가 세계적 군사과학저널인 과학과 세계안보(Science & Global Security)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확인됐다. 대기 중에서 이 같은 수치의 제논 원소가 발견되려면 측정소 근처에 제논을 사용하는 방사성 의료기기를 운용하는 병원을 설치해 운영하거나 인접 국가에서 핵실험을 해야만 한다. 거진 측정소 인근에는 방사성 의료기기를 운용하는 병원이 없기 때문에 당시 인접 국가에서 모종의 핵실험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방사성 원소 검출 외에도 지진파도 감지됐다. 중국과학기술대학 연구팀은 2014년 11월 지구물리학 국제학술지인 지진학연구소식(Seismological Research Letters)에 게재한 논문에서 2010년 5월 12일 풍계리에서 소규모 핵폭발이 있었다고 보고했고, 미국 프린스턴대 마이클 쇼프너(Michael Schoeppner) 연구원과 독일 함부르크대 율리히 쿤(Ulrich Kühn) 연구원 역시 미국 핵과학자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에 게재한 논문에서 지진파 분석결과를 토대로 2010년 5월 소규모 핵실험 가능성을 언급했다. 즉, 북한은 2010년부터 자기 입으로 핵융합 기술을 연구하고 있고, 이를 응용한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한 과학적 근거들도 국내외 과학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제시되어 왔었다. 그러나 북한의 발표와 과학계의 이러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정부당국은 “그럴 리 없다”는 반응을 일관되게 취해왔다. 안보에서의 ‘아전인수’는 곤란 정부가 북한의 핵 능력을 지속적으로 평가절하하면서 쉬쉬하는 이유는 시쳇말로 ‘아전인수(我田引水)’ 한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현 정부 들어 계속된 대북정책의 성격을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다. 상황을 입맛대로 해석하고, 입맛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지난해 가을, DMZ 지뢰 도발 사건으로 긴장 국면이 조성되었을 때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장관은 북한의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와의 협상에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청와대에 돌아와서는 “북한으로부터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았다”고 발표했다가 북한으로부터 “사과와 유감의 뜻도 구분 못하는 남조선 당국은 조선말 공부부터 다시 하라”는 모욕적인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다. 물론 황병서와 김양건은 협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김정은으로부터 공화국 영웅칭호를 받았다. 이 같은 정책 실패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편할 대로 해석한 결과였다. 북한 핵문제도 마찬가지다. 남한이 대북 강경 정책을 펴든 햇볕정책을 펴든 북한의 국가정책은 핵무기 개발과 실전배치라는 일관된 것이었고 지난 40여 년간 단 한 순간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북한 정권의 핵은 체제 유지를 위한 필요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보수 그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역대 대통령들은 북한 핵무기 보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경우 정치·경제적으로 몰아칠 후폭풍을 감당하지 않으려 했고 “그럴 리 없다”면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폭탄 돌리기를 계속 해왔다. 소련 붕괴 이후 공개된 구소련 KGB 문서가 북한의 핵무기 보유 사실을 언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미국의 영변 폭격을 가로 막았고,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북한이 파키스탄의 칸 박사와 접촉해 우라늄 핵무기 관련 기술을 거래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 세계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던 그 시기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은 핵을 만들 의지도 능력도 없다‘며 북한에 핵개발 자금으로 쓰일 수도 있는 달러 지원을 계속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북한의 1차 핵실험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 공론화되었음에도 ”북한 핵실험 징후나 단서를 갖고 있지 않다“며 북한의 핵개발 지속 사실을 애써 외면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연속된 핵실험을 지켜보면서도 ”북한이 핵무기를 실전배치할 단계는 아니며, 실전배치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면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았다. 중동에서 리비아, 이집트, 시리아, 이란 등 여러 국가가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지만 일찌감치 좌절된 것은 이들 국가가 핵무기를 가졌을 경우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받는 당사국인 이스라엘이 외교적 압박과 공습, 심지어 테러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북핵 위협의 직접 당사국인 대한민국은 북한 핵시설에 대한 공습이나 전방위적인 제재와 압박을 주도하기는커녕 핵개발 자금으로 쓰일 수도 있는 현금을 지원하거나 국제 제재를 반대하고 북핵 위협을 외면하는 등 북한의 핵개발을 오히려 돕고 있는 정책 오류를 이어가고 있다. 역대 모든 정권이 북한의 핵개발을 돕거나 방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어느 한 국가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서는 정치·외교·경제적 제재와 더불어 군사적 압박이라는 카드를 함께 쓰는 투-트랙 전략을 취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여러 국가의 사례를 통해 입증되었다. 그러나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하자니 진보 성향의 야당이 반발하고 있고, 군사적 압박을 취하자니 그러한 능력을 갖추는데 막대한 국방예산 추가 투자가 부담되니 제재와 압박은 미지근한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군사적 압박은 아예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사국이 이런데 북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국가들이 북핵 제재에 관심을 갖고 적극 동참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까? 실제로 UN 안보리에서 그동안 3차례 대북제재 결의안을 채택하고 193개 회원국에게 이행 제재 실행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193개의 UN 회원국 가운데 보고서를 제출하는 나라는 전체 회원국의 19%인 35개국에 불과하며, 중국은 원유부터 식량, 군용차량, 심지어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차량까지 북한에 제공하며 안보리 결의를 비웃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의 핵무기는 북한 스스로 개발한 것이지만, 그들의 핵 능력이 수소폭탄을 운운할 수준까지 고도화될 수 있도록 온실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은 대한민국 정부와 정치권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무책임한 폭탄 돌리기 덕분에 국민들은 이제 터지기 직전의 북핵이라는 폭탄을 손에 받아들게 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과연 이 폭탄 돌리기를 끝낼 수 있을까? 이일우 군사 전문 통신원 finmil@nate.com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길섶에서] 단짝의 선물/강동형 논설위원

    퇴근길이었다.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문자 하나가 떴다. 한 지인이 보낸 새해 인사말일 것이라 여기며 아무 생각 없이 문자를 열었다. 거래 은행에서 보낸 ‘웹문자’였다. 문자에는 통장에 입금된 돈의 액수와 ‘단짝’이라는 입금자의 정보가 간단하게 적혀 있었다. 이런 게 ‘문자피싱’인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러나 통장에 돈이 입금됐으니 그럴 리는 없었다. 아내가 보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밑도 끝도 없이 “선물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예측은 맞았다. 아내에게서 돌아온 답은 “잠시 맡겨 놓은 것이니 김칫국 마시지 말라”는 경고장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없진 않았으나 성급하게 문자를 보낸 게 부끄러웠다. 민망함을 한 아름 안고 현관문을 열었다. 아내가 꽃다발과 함께 ‘졸업 선물’이라며 빨간색 봉투를 내민다. 졸업 선물이라니? 그것은 나의 정년퇴직에 대한 아내의 선물이었다. 정년은 채웠지만 회사는 계속 다니기로 해 나는 퇴직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은 터였다. 봉투 안에는 정성 들여 쓴 편지 한 통과 ‘입금증’이 들어 있었다. ‘서프라이즈!’ ‘평생 단짝’의 아름다운 선물이었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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