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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뉴스 테이크아웃] ‘딩동~’ 아침에 집 찾아오고 새벽 지방일정 배웅까지… 의장 후보에 난감한 초선들

    제20대 국회의 원 구성이 난항을 겪는 가운데에도 국회의장을 노리는 더불어민주당 중진들의 물밑 움직임이 분주하다. 특히 6선 이석현 의원의 선거 운동이 초선 의원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 의원은 아침부터 초선 의원 집을 일일이 방문해 지지를 호소한다는 후문이다. 한 초선 의원은 “아침에 세수하는 데 나가봤더니 이 의원이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면서 “집안 식구들은 아직 잠옷 바람인 상태에서 들어오시라고 할 수도 없고…”라고 했다. 다른 초선 의원은 “휴일 아침에 누가 초인종을 눌러 아내가 문을 열었더니 이 의원이 꽃을 들고 서 있었다”고 전했다. 이 의원은 집에 아무도 없을 때에는 장문의 손편지를 남겨 두기도 했다. 더민주의 한 의원은 “원내대표 선거 때는 집 앞에 찾아와서 사람이 없으면 인증샷을 보낸 후보도 있었다”면서 “이번에도 이전 못지않게 치열하다”고 말했다. 촌각을 다퉈 뛰는 건 다른 후보도 마찬가지다. 정세균 의원과 박병석 의원은 지난달 29일 새벽 진도 팽목항으로 출발하는 초선 의원들이 탄 버스를 국회에서 배웅했다. 문희상 의원은 카카오톡 초선 대화방을 통해 의원실로 초선들을 초대하고, 당선자 전원에게 편지와 붓글씨를 선물하기도 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씨줄날줄] 포스트잇 메시지 현상/박홍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포스트잇 메시지 현상/박홍기 논설위원

    작은 종이 한 장의 힘은 엄청났다. 노랗거나 파란, 형형색색의 종이들이 붙은 게시판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종이 속에 적힌 짧은 글, ‘손편지’는 목이 터져라 외치는 구호나 선동적인 연설과는 또 다른 큰 울림이 있다. 꾸밈이 없고 진솔한 까닭에 읽는 이가 누구든 가슴에 닿았다. 말 그대로 감정의 공유, 공감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출구에 세워진 게시판에 작은 종이들이 빼곡했다. 역내 9-4 승강장의 스크린도어(안전문)에도 촘촘히 붙어 있다. 지난달 28일 19세의 정비 용역업체 직원이 작업을 하다 지하철에 변을 당한 곳이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가 더 안전하고 나은 세상을 만들게요’, ‘그곳에서는 부디 컵라면 말고 따뜻한 밥 챙겨 드세요’라는 등의 글귀들이다. 추모의 글이자 분노의 글이다. 집단행동이나 말이 아닌 글을 통한 묵언의 시위다. 앞서 강남역 화장실 여성 살인사건 때 처음 나타난 사회 현상이다. 작은 종이는 일상에서 흔히 쓰는 ‘포스트잇(Post-it)’이다. 접착식 쪽지다. 포스트잇은 다국적 기업 3M의 연구원 스펜서 실버가 1968년 만든 제품이다. 실패의 산물이다. 실버는 애초 강력 접착제를 개발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접착력이 떨어지고 끈적거리지 않은 ‘이상한’ 접착제를 만들었다. 포스트잇과 반대로 게시판에 접착제를 뿌린 뒤 종이를 붙이고 떼는 식으로 사용했다. 상품성이 떨어졌다. 5년이 지난 1974년 동료인 아서 프라이가 발상을 전환했다. 쪽지 뒤편 일부에다 접착제를 바른 뒤 다른 종이에 붙였다 뗐다. 그 결과 다른 종이는 찢어지지도, 자국도 남지 않았다. 3M은 1980년 책갈피와 메모용 ‘포스트잇 노트’라는 상표로 출시해 사무용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포스트잇 ‘손편지’는 디지털 세상 밖으로 나온 댓글이나 다름없다. 한두 줄 문장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담았다. 애도, 슬픔, 아픔, 분노, 저항 등의 감정을 ‘그대가 곧 나’라는 전제 아래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자발적인 집단 메시지다. 대학가의 소통 수단인 대자보와는 기능이 다르다. 대자보는 보고 읽었지만 스스로 의견을 밝히는 데 한계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작은 쪽지 한 장 한 장은 곧 참여다.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어서다. 특히 위험하고 불안한 사회를 향한 젊은이들의 소리 없는 함성이자 연대와 같다. 작은 쪽지의 전파력은 대단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소통력에 견줄 만하다. 쪽지에 적힌 문구를 찍은 사진이 인터넷이나 SNS를 타고 돌고 돌아서다. 포스트잇 추모 물결은 새로운 사회 현상이다. 개개인의 의견 표출이 집단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6월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효순·미순 때의 촛불,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때의 노란 리본과도 같은 추모 도구이지만 의미가 다르다. 메시지의 전달이 분명해서다. 포스트잇에 담긴 소망들을 이뤄나가야 한다, 우리의 과제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지금, 이 영화] ‘우리들’

    [지금, 이 영화] ‘우리들’

    학교는 학생들의 전쟁터다. 초등학생도 예외가 아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티 없이 맑은 아이들을 괜히 매도하지 말라는 비난을 듣게 될 것 같다. 여기서 잠깐, 옛날 그때를 떠올려 보자. 과연 초등학교 시절은 장밋빛이었을까. 이문열의 중편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초등학생들의 이야기였다. 동심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깨진다. 세상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자신이 태어난 줄 알았던 순진한 믿음을 더는 지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경험한 대로, 학교는 학생들에게 골고루 사랑을 나눠 주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 ‘우리들’의 제목은 평범하지만 역설적이다. 열한 살 소녀들이 나오는 이 작품은 ‘우리들-되기의 (불)가능성’을 심문하기 때문이다. 윤가은 감독은 우리들 되기의 가능성 쪽에 무게를 싣는다. 연출의 변에도 그렇게 썼다. “이 영화는, 이렇듯 현재의 나처럼 무기력과 자포자기 뒤에 숨어 버린 어른들과, 과거의 나처럼 가슴을 쥐고 아파하면서도 용기 내어 전진하는 아이들 모두를 위한 위로와 응원의 편지다.” 그녀의 의지와 낙관은 영화 곳곳에 섬세하게 스며들어 있다. 예컨대 이러한 장면을 보고 나면 “다시 진심을 전하는 것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전언에 동감하게 된다. 동생 윤의 눈이 멍들어 있다. 친구 연호에게 맞은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윤은 연호와 재미있게 놀았다고 헤헤거린다. 누나 선은 화가 나 윤에게 따진다. “너 바보야? 그러고 같이 놀면 어떡해? 다시 때렸어야지!” 그러자 윤이 선에게 반문한다. “그럼 언제 놀아? 친구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친구가 때리고, 나 그냥 놀고 싶은데….” ‘우리들’이 관객에게 전하려는 핵심 메시지는 윤의 이 말이다. 계속되는 폭력의 순환을 멈추는 결단이야말로, 홀로 존재하는 개체를 우리들이라는 함께 어우러진 공동체로 거듭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진리가 그들의 전쟁터, 초등학교에서는 통용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오랫동안 선은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당하고 있다. 그 사실을 부모와 교사만 모른다. 영화에서도 실제에서도, 어른은 어린이의 조력자이기보다 방관자로서 말하고 행동한다. 아이들은 각자 알아서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한다. 학교의 배틀로열적 면모는 ‘우리들’의 체육 시간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아이들은 상대팀을 공으로 맞혀 한명씩 ‘죽이는’ 피구 경기만 한다. 누가 뽑았는지도 모르는 리더가 팀원을 고르는 방식, 그리하여 소외되는 아이가 생긴다는 점에 대해서도 아무 불만을 내비치지 않는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선이 실천할 수 있는 진리의 범위는 제한된다. 친구 지아가 피구 경기장의 금을 밟지 않았다고 증언하는 것 정도다. 물론 이것도 대단한 사건이다. 한데 그것만으로는 너와 내가 우리들이 될 수 없게 만드는 현실의 벽을 넘거나 부수지 못한다. 관계는 체제의 산물이다. 체제를 바꿔야 관계도 바뀐다. 그러니까 관건은 우리들이 아니라 우리들의 세계(The world of us·‘우리들’의 영어 제목)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오는 16일 개봉. 전체 관람가.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 이중섭의 소 모두 모았소

    화가 이중섭(1916~1956)의 탄생 100년, 작고 60년을 기념한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이 3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다. 이중섭은 ‘국민 작가’로 1970년대 이후 폭발적인 대중의 사랑을 받아 왔지만 오랫동안 가치평가는 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작품의 시장 거래가 반복되면서 작품가는 천문학적으로 오르고 작품은 곳곳에 흩어진 상황이다. 미술관 측은 “산발적으로 보존되고 있는 이중섭의 원작을 최대한 한자리에 모아 대중이 감상하고 연구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전시회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이중섭의 은지화 3점을 비롯해 삼성미술관 리움, 부암동 서울미술관 등 국내외 60개 소장처로부터 200여 점의 작품, 100여 점의 자료를 대여해 덕수궁관 4개의 전시장에서 선보인다. 전시는 식민, 해방, 전쟁을 관통해 정처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중섭이 거쳐 간 공간을 따라 전개된다. 1부(1916~50)에서는 일본 유학기 야마모토에게 보낸 엽서화, 해방 직후 원산 시기에 제작된 연필화 등이 전시된다. 2부(1950~53)는 가난했지만 가족들과 비교적 행복하게 보내면서 남긴 작품들로 구성된다. 3부는 은지화로 꾸며졌다. 이중섭은 양담배를 싸는 종이에 입혀진 은박을 새기거나 긁고 그 위에 물감을 바른 후 닦아 내는 방식으로 일종의 드로잉을 완성했다. 그는 300점 정도의 은지화를 제작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번에 40점이 진열됐다. 4부(1953~54)는 이중섭이 통영 나전칠기전습소에서 강사로 재직하며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에서 의욕적으로 활동을 펼친 시기의 작품들이다. 이중섭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화, 서울 시절 그린 ‘길 떠나는 가족’(1954년)과 ‘투계’(1955년) 등이 5, 6부에 이어지고 7부에선 대구 시절 시인 구상의 집에 머무르며 요양 생활을 하던 때의 작품들이 선보인다. 전시는 10월 3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김명민 “명감독·A급 배급 다 갖춘 건 안 해요…제가 할 게 없잖아요”

    김명민 “명감독·A급 배급 다 갖춘 건 안 해요…제가 할 게 없잖아요”

    흥행보다 캐릭터·내용 좋은 작품 선택… “한계 부딪힐 때 연기神 되길 기도한 적도” 김명민(44)은 공인받은 연기 ‘본좌’ 가운데 한 명이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부터 ‘하얀 거탑’, ‘베토벤 바이러스’, ‘조선명탐정’ 시리즈, ‘육룡이 나르샤’까지 그가 빚어낸 캐릭터를 보면 새 작품에 대한 믿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감독, 투자, 배급도 중요하긴 한데 저는 약간 다른 시각입니다. 흥행이 어느 정도는 보장돼 있고 감독님도 괜찮고 모든 게 완벽해도 제가 딱히 할 게 없는 시나리오가 있어요. 제가 셰프라면 요리 재료가 세 가지 정도밖에 안 되는 셈이죠. 반면 입봉 감독님에 투자, 배급이 불투명하고 흥행 공식에 딱 맞춘 것은 아니지만 내용은 그리 나쁘지 않고 캐릭터를 보면 해야 할 게 있고 과연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시나리오도 있죠. 저는 후자를 선택해요.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누가 하든 상관없는 작품들은 크게 와 닿지 않는다는, 자신이 흐드러지게 놀 수 있는 작품이 좋다는 김명민은 오는 16일 개봉하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에서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게 없다고 여기는 법조계 브로커 최필재를 연기한다. ‘새드무비’ 권종관 감독의 10년 만의 복귀작이다. 필재는 몇 년 전까지는 형사였다. 딱히 정의를 세우려 하기보다는 전과자 아들이라는 낙인을 지우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모범 경찰까지 됐다. 그런데 파트너(박혁권)의 배신으로 옷을 벗는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 판수(성동일)에게 사건을 물어다 주는 ‘신이 내린 사무장’으로 이름을 날리던 어느 날, 재벌가 며느리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순태(김상호)의 편지가 날아든다. 은혜는 잊어도 원수는 꼭 갚아야 직성이 풀린다는 필재는 사형수의 편지에서 복수 기회를 귀신같이 포착해 낸다. 한편으로는 재벌가의 숨겨진 범죄와 마주한다. 김명민이 필재라는 캐릭터를 걸치기로 결정한 것은 속물 근성에 찌든 인물이 변해 가는 포인트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 그는 영화에는 드러나지 않은 필재의 전사(前史)를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려고 고민을 거듭했다. 지난해 여름과 하반기를 달군 ‘베테랑’ ‘내부자들’도 그렇고 최근 드라마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부와 권력의 갑질을 다룬 작품이 잇따르고 있다. 큰 범주에서는 ‘특별수사’도 그 한 갈래다. 차별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대놓고 선과 악, 강자와 약자의 대결 구도는 아니에요. 시나리오의 앞뒤가 잘 짜여 있고, 서로 유기적으로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발생하는 드라마적인 요소가 많아요. 그런 부분이 이 영화의 강점이죠.” 아슬아슬해 보이는 시장 뒷골목과 목욕탕 액션 신에서는 꽤나 고생했다며 웃기도 했다. “목욕탕 장면은 물속 액션이라 나름대로 각오는 했는데 물 좀 먹었죠. 목 졸리는 장면도 나오는데, 감독님이 좋은 장면을 뽑아내기 위해서 그랬겠지만 컷을 잘 안 하더라고요. (김)상호형이랑 저는 정말 죽을 지경이었어요.” 정통 액션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없을까. “간간이 섞어서 해 보고 싶기는 한데, 일단 그쪽으로 가면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아서…. 이미지라는 게 그렇잖아요. 현재로선 액션이 주가 되는 작품보다는 액션이 꼭 필요한 작품을 하고 싶어요.” 1996년 SBS 탤런트 공채 6기를 기준으로 하면 만 20년을 걸어온 연기자의 삶. 더이상 이룰 것이 없어 보이는 그는 연기의 길, 그 어디쯤에 서 있는 것일까. “처음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연기는 평생 풀어야 할 과제예요. 중간중간 한계를 극복하는 재미가 있기는 해요. 그런데 그 성취감보다는 한계에 부딪힐 때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고민이 커요. 연기와 연륜은 비례한다는 말이 있는데 연기는 정말 오리무중이에요. 연기를 연기처럼 하지 않는 것도 어렵지만 연기는 또 연기처럼 해야 할 때도 있지요. 그런 고민이 없어진다면 그야말로 연기의 신이 되는 거 아니겠어요? 너무 안 풀릴 때 연기의 신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어요, 이뤄지지 않았지만. 하하하.”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자막의 마술사’ 외화 번역가 이미도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자막의 마술사’ 외화 번역가 이미도

    “해운대에서 이제 막 올라왔습니다. 영국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인간의 본성을 ‘부끄럼을 타는 동물’(샤이 애니멀)이라고 표현했는데, 그게 이상하게도 저는 해운대에 가야 나오거든요.” 1일 서울 광화문의 한 건물 1층 커피숍에 흰 뿔테 안경을 쓰고 캐주얼 복장을 한 ‘청년’이 들어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20년 넘게 국내 최고의 외화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미도(55)씨였다. 그는 외모뿐 아니라 내면도 여전히 20대에 머물러 있었다. 번역과 자기 책에 대한 애정을 표현할 때도, 본인의 어두웠던 유년기를 말할 때도 초롱초롱한 눈빛은 여전했다. -나는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출생의 비밀’ 같은 걸 갖고 태어났다. 부모가 아닌 친할머니 손에서 컸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개되는 자리나 지면에서 나의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을 이야기한 적이 없는 이유다. 어린 시절은 기억 속에서 싹 지워 버렸다. 고2 때 집을 뛰쳐나온 뒤 아직까지 안 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남자는 가정을 못 지킬 수는 있지만 가족을 못 지키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다. 아마도 그 원천은 아버지에 대한 반감일 것이다. 아버지는 외국어가 자유롭게 되니 지금도 혈혈단신 어디선가 잘 살고 계실 거라고 생각한다. 집을 나온 뒤에는 어머님께 많이 의지했다. 젊은 시절 방황할 때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었다. 십수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그런 아버지가 나에게 물려준 건 있었다. 미군 부대에서 통역관과 도서관 사서 등으로 일했던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영어 공부를 강조했다. 말하자면 내 첫 영어 선생님이었다. 억지로 영어 고전 등 독서를 시켰다. -방황하던 고교 시절 여러 스승을 만났다. 그중 한 분이 소설가 이병주 선생이다.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읽으면서 이렇게 재미있는 글을 쓰는 분들이 있고 이런 세계가 있는 걸 왜 모르고 그저 방황만 했나 싶었다. 박람강기(博覽强記)의 세계를 까까머리 시절에 만난 건 행운이었다. 당시 동경하는 마음에 선생님께 팬레터도 보냈다. 그분의 책은 모두 다 읽었다. 그러다 대학 시절 학교 강연에서 뵙게 됐다. 강연 뒤에 “어린 시절에 편지를 보냈다”고 인사드렸더니 “그때 그 학생이 너냐”며 반가워하셨다. -남들보다 1년 늦은 1981년 대학에 들어갔다. 전공으로 스웨덴어를 택한 것은 나중에 영화를 공부하고 싶어서였다. 당시 가장 좋아하던 감독은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예술영화 하면 유럽, 그중에서도 스웨덴 영화를 첫손에 꼽았다. 나중에 스웨덴에서 영화를 공부하면 도움이 될까 싶었다. 대학 시절은 황금기였다. 오전엔 학교 근처 카페에서 소설과 시를 읽고, 오후에 강의를 마친 뒤에는 선후배들과 술집을 순회했다. 영어 공부도 열심히 했다. 난 혼자 있을 땐 내성적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땐 외향적이다. 축구 같은 운동도 많이 했다. 당시 별명이 ‘가미카제’였다. 한번 뜨면 누군가는 꼭 쓰러뜨린다는 뜻이었다. 종종 골대로 공이 아닌 내가 빨려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당시 인연을 맺은 선배들과는 지금도 자주 만난다. -대학 졸업 뒤에는 디자인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갔다. 하지만 군 복무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중간에 그만두고 귀국해 공군 학사장교로 입대했다. 원래는 레이더기지에서 근무해야 했지만 운 좋게 영어 교육 담당으로 차출됐다. 입대 전 치렀던 영어 시험에서 고득점을 한 덕이었다. 당시 공군전자통신학교 영어교육대대에서 미국에 파견되는 장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맡게 됐다. 교육을 하는데 교본이 구식인 데다 딱딱해서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미국 영화를 보여주며 교육했다. 그 과정에서 할리우드 영화의 판권을 사서 한국 시장에 되파는 한국계 미국인 사업가를 만났다. 영화로 영어를 가르친다고 말하니 “내 일을 도와 달라”고 했다. 영화 판권을 사서 우리나라에 소개하려면 각종 자료들을 번역해야 하는데, 그 일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1991년 제대한 뒤 자막 번역을 시작하려니 막막했다. 당시에는 번역가를 주변에서 찾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영화 자막을 입히는 회사를 찾아가 국문 대본과 영문 대본을 빌린 뒤 이 둘을 비교하면서 공부했다. 보조 번역가로 활동하다 1993년에 함께 일하던 사업가가 폴란드의 거장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 ‘블루’ ‘화이트’ ‘레드’ 3부작의 판권을 사서 번역을 맡겼다. 당시 처음으로 자막 번역가 실명제를 관철시켰다. 종로에 있던 예술영화 전문관 ‘코아아트홀’에서 ‘블루’가 상영됐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데 엔딩 크레디트에 내 이름이 뜨는 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훌륭한 영화 작업에 참여했다는 자부심도 컸지만 자막 실명제를 하다 보니 당시 막 진출했던 외국 직배사들에도 이름을 알리는 효과가 있었고, 이후 전문 번역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초기에는 생업으로서의 자막 번역 여건이 매우 열악했다. ‘블루’의 번역료가 회사원 한달치 월급에도 못 미치는 60만원에 불과했다. 비디오용 영화 자막 번역에는 10만원, 20만원밖에 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열배 넘게 올랐다. 번역 실명제를 처음 정착시키고 번역가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지 않았나 싶다. -지금까지 번역 작업을 한 영화가 400편 정도다. ‘굿 윌 헌팅’ ‘식스 센스’ ‘인생은 아름다워’ ‘뷰티풀 마인드’ ‘글래디에이터’ ‘시카고’ ‘진주만’ ‘반지의 제왕’ 등은 나름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1997년에 자막 번역을 한 ‘굿 윌 헌팅’은 ‘스탠드 바이 미’와 더불어 나에게 운명의 영화다. 주인공인 윌 헌팅(맷 데이먼)은 고아 출신의 청소부다. 고통에 허우적대는 그를 심리학 교수인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품어 준다. 나는 고아가 아니지만 윌 헌팅이 마치 내 모습 같았다. ‘스탠드 바이 미’가 내 소년기를 보듬어 줬다면 ‘굿 윌 헌팅’은 청년기의 날 감싸안았다. 많은 영화들이 날 구원해 주는구나, 영화는 내 친구이자 부모구나, 이 분야에 몸담길 잘했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애니메이션 영화도 80여편을 번역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개봉한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이 내 손을 거쳤다. 애니메이션은 특정 작품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모두 애착이 간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라”고 했다. 단순히 보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눈으로 대상을 포착하고 가슴으로 느끼라는 뜻이다. 들여다보는 건 아이들이 잘한다.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표현한 ‘내 안에 있던 아이가 어디에 갔을까’라는 문장의 ‘아이’는 바로 아이의 호기심을 뜻한다. 이 호기심을 잃지 않는 건 창의성을 계속 지키는 일이다. 나에게 애니메이션 번역은 호기심과 창의성의 마르지 않는 우물이다. -자막 번역의 가장 큰 매력은 일을 하며 공부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다룬 소재를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번역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다. 20년 전쯤에는 ‘틴 컵’이라는 골프 영화의 자막을 번역했다. 당시엔 골프를 전혀 몰랐다. 프로 수준의 아마추어 골퍼 선배를 데려다 같이 영화와 대본을 보고 번역 작업을 했다. 예를 들어 ‘비축하다, 꼼짝 못 하게 하다’라는 뜻의 ‘Lay up’은 골프에서는 ‘끊어 가기’라는 뜻이다. 영화가 개봉한 뒤 골프 전문가들로부터 “재미있게 봤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영화 번역 작가들의 기본적인 원칙은 원래 대사의 의미와 표현의 맛을 가장 정확하게 살리는 것이다. 여기엔 각국의 문화적 배경이 반영돼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영화 ‘타짜’에 나오는 대사인 “나 이대 나온 여자야”를 미국 관객들에게 “I graduated Ewha university”라고 직역해서 보여주면 사람들은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여기에서 적절한 번역은 “You know who I am?” 정도가 될 것이다. 의미를 전달하는 원칙을 고수하되 언어에 담겨 있는 문화나 정서가 반영돼야 한다. 번역가이자 소설가인 이윤기 선생은 “번역은 ‘밴 아이’를 낳는 거고, 소설 쓰기는 ‘안 밴 아이’를 낳는 것이지만 번역 역시 안 밴 아이를 낳는 것에 견줄 수 있다”고 하셨다. 나 역시 안 밴 아이를 낳는다는 자세로 번역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번역은 외줄타기다. 두 개의 기둥은 직역과 의역이다. 보는 사람들은 편안하지만 외줄을 타는 광대는 첫 번째 공연이건 백 번째 공연이건 피를 말리기 마련이다. -영화 번역을 시작하고 딱 10년이 되니까 갈증이 왔다. 나만의 고유한 것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마침 ‘책을 한번 써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옳다구나 싶어 저술 작업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가 제일 잘 아는 걸 쓰자’고 마음먹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화와 영어가 떠올랐다. 영화의 인문학적 내용을 배경으로 영어 학습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실제로 영화 대사에는 영어 학습에 유익한 내용이 차고 넘친다. ‘똑똑한 식스팩’(2013년 미래창조과학부 인증 우수 과학도서)이라는 이름의 자기계발서도 냈다. 말은 자기계발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걸 발견하는 게 능력을 개발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평소 내 지론을 담았다. 이 책 역시 영화와 영어, 책 등을 사례로 넣었다. -내 이름은 아름다울 미(美)에 길 도(道) 자를 쓴다. 본명이다. 부친이 모친과의 사랑은 아름다웠을지라도 아름답지 않은 방식으로 나를 낳았으니 내가 아름다운 길을 걸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것 같다. 그래서 영화 자막 번역과 글쓰기라는 일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배우 이미도씨와 동명이인이다. 이미도씨가 결혼할 때 축하 문자를 많이 받았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에서 배우 강혜정씨가 맡은 역할의 이름 ‘미도’는 내 이름에서 따왔다. 영화 제작 당시 박 감독이 “미도라는 이름을 쓰고 싶다”고 요청했고, 제작 발표회 때 무대에 함께 올라가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이런 이유로 많은 분들이 날 여자라고 생각한다. 기업 강연에 가서 미리 준비를 하고 있으면 임원들이 처음에는 보조요원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 내 소개를 하면 뜨악한 반응을 보인다. ‘오랜만에 여자 강사가 온다’는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은 재미있는 삶이다. 행복의 반대는 재미없게 사는 것이다. 삶의 세 가지 틀을 재미와 가치, 기여 등으로 정의한다면 여기의 시작은 재미다. 심지어 다른 이들에 대한 봉사도 재미가 없으면 못 한다. 보람 역시 궁극적으로는 의미를 찾아야 하고, 그것은 재미의 또 다른 모습이다. 어떻게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계속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요즘은 소설가 한강씨의 ‘채식주의자’를 꼼꼼히 읽고 있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건 한국 영화가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탄 것과 마찬가지로 대단한 일이다. 특히 번역에 참여한 영국 아가씨가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다. 다만 늦은 감이 있다는 게 아쉬웠다. 국내에서 도끼날을 가는 준비를 계속했다면 한씨보다 앞선 작가들도 해외 유수의 상을 받을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이미도씨 1993년 영화 ‘세 가지 색-블루’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400여편의 외화를 번역했다. 최근에는 작가로, 출판인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서 개봉된 유명 외화 상당수가 그의 손을 거쳐 한국 관객들과 만났다. 공군 영어교육 장교로 복무하면서 해외 파견 요원에게 영어를 지도한 것이 번역가의 길로 접어든 계기가 됐다. ▲1961년 서울 출생 ▲한국외대 스웨덴어학과,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광고커뮤니케이션학(중퇴) ▲‘나인’, ‘눈먼 자들의 도시’, ‘쿵푸 팬더’, ‘클로버필드’, ‘슈렉’ 시리즈, ‘반지의 제왕’ 3부작, ‘진주만’, ‘킬빌’, ‘캐리비안의 해적’, ‘뷰티풀 마인드’, ‘아메리칸 뷰티’, ‘글래디에이터’, ‘노트북’, ‘식스센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제리 맥과이어’, ‘더록’, ‘피스메이커’, ‘인디펜던스 데이’ 등 번역 ▲‘이미도의 영어선물’, ‘이미도의 영어 상영관’, ‘나의 영어는 영화관에서 시작됐다’, ‘이미도의 등 푸른 활어영어’, ‘이미도의 아이스크림 천재 영문법’ 등 지음.
  • ‘특별수사’ 김상호, 편지쓰는 사형수..조세호 이어 ‘억울함의 대명사’ 될까

    ‘특별수사’ 김상호, 편지쓰는 사형수..조세호 이어 ‘억울함의 대명사’ 될까

    배우 김상호가 ‘특별수사’ 촬영에 임한 소감을 전했다. 31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CGV에서 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감독 권종관)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권종관 감독과 배우 김명민, 김상호, 김영애, 김향기가 참석했다.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에서 김상호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경찰도 검사도 아닌, 브로커에게 특별한 편지를 쓰는 사형수 순태를 연기한다. 이날 김상호는 “촬영 들어가기 전에 했던 각오가 ‘맞아죽지 말자’였다. 다행히 살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내가 맡은 사형수 역할의 상황이 밝혀지면서 관객들이 ‘저런 게 어딨어’라고 이해를 얻지 못하면 안 되기 때문에 의문점을 계속 유지하면서 촬영을 해나갔다”고 전했다.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는 경찰도 검찰도 두 손 두 발 다 든 브로커 필재(김명민)가 사형수로부터 의문의 편지를 받은 뒤 세상을 흔들었던 ‘대해제철 며느리 살인사건’ 배후를 추적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김명민이 변호사 사무실 브로커로 연기변신에 나섰으며 김상호 성동일 김영애 김향기 등이 출연한다. 6월 16일 개봉.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씨줄날줄] 문 닫는 파주 영어마을/구본영 논설고문

    [씨줄날줄] 문 닫는 파주 영어마을/구본영 논설고문

    얼마 전 한강이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반갑고도 경이로웠던 기억이 새롭다. ‘채식주의자’라는 소설의 작품성이 수상의 원동력일진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이 뿌듯했을 게다. 다만 한국 유학 경험이라곤 없는 젊은 영국 여성이 미려한 번역으로 수상에 큰 기여를 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비영어권 작가들이 권위 있는 국제 문학상을 받는 데 가장 큰 애로 요인이 뭐겠나. 모국어에 깃들인 미묘한 감성을 영어로 제대로 옮기기 쉽지 않다는 점일 게다.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영국 여성 데버러 스미스는 런던대에서 한국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기 전엔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21세 이전에는 영어만 할 줄 아는 ‘모노 링구얼’이었지만, 대신 이 ‘늦깎이’ 한국어 번역가는 상당한 문학적 감수성을 길렀던 모양이다. 한강이 이런 뛰어난 번역가를 만난 건 행운일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아직 인공지능(AI)이 예술과 감성의 영역을 넘볼 단계는 아닌 까닭이다. 구글의 AI 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었지만, ‘구글 번역기’는 여전히 얼치기 번역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이 말이 의심스럽다면 번역기 자판에 “그녀의 눈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라는 문구를 쳐 보라. “Her eyes had records from Dr Dew”라는, 황당한 답안이 나오지 않나. ‘이슬 박사의 (진료)기록’이란 생뚱맞은 번역 자체가 구글의 알고리즘이 인간의 감수성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라는 방증이다. 경기도 파주의 영어마을이 12년 만에 사실상 문을 닫는다. 이용자가 줄면서 운영난이 가중되면서다. 운영 주체인 경기도는 경기영어마을 파주 캠프와 양평 캠프를 영어 교육에서 벗어나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기관으로 전환하기로 했단다. 경기영어마을은 2002년 손학규 지사 시절 추진해 전국적 영어마을 붐에 불을 댕겼다. 한때 50개 안팎까지 난립했던 영어마을이 학습효과에 대한 회의론과 함께 하나둘 문을 닫더니 드디어 990억원을 들인 ‘원조 마을’마저…. 영어마을의 부침을 보면서 미국 서부의 ‘골드러시’ 시대에 명멸했던 포니 익스프레스라는 회사가 생각난다. 18세 아이 3000명에게 교대로 말을 몰게 해 10일 만에 동부로 편지를 전해 떼돈을 버는가 했으나 3일 만에 문을 닫았다. 전보가 생길 거라곤 상상하지 못한 탓이다. 지자체장들은 물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 여기에서 값비싼 교훈을 얻을 때다. 4차 산업혁명기를 맞아 영어라는 도구 못잖게 창의력을 기르는 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또 뭔가 된다 싶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휩쓸리는 세태도 경계해야 한다. 맨부커상을 공동 수상한 스미스의 조국 영국에 ‘한국어 마을’이 있었을 리는 만무하다. 백번 양보해 세계화 시대에 영어 구사력의 중요함을 인정하더라도 모든 국민이 다 영어를 잘해야 할 이유는 없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천년의 사랑 ‘세모시’…씨줄날줄 패션을 입다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천년의 사랑 ‘세모시’…씨줄날줄 패션을 입다

    여름이 채 오기도 전에 무더위가 찾아오면서 이를 극복할 입을거리에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기술 발달로 시원하고 좋은 옷감이 많아졌지만 여름철 최고의 옷감 하면 여전히 모시를 먼저 떠올린다. 그중에서도 ‘한산모시’는 모시의 대명사로 불린다. 임금의 진상품이었고, 춘향전 등에 이름이 나올 정도로 오래전부터 한산모시는 명품으로 인정받았다. 1500년이 넘는 전통을 이어 온 천연 섬유 한산모시는 통풍성이 좋고 빨아 입을수록 윤기가 흐른다. 고급스러운 맵시가 나고, 가장 가느다란 세모시는 ‘잠자리 날개’에 비유된다. 그만큼 가볍다. 한산모시 짜기가 2011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에 등재되면서 축제의 의미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겨우 명맥을 잇는 모시산업을 뒷받침하는 국내 유일의 모시 축제 현장은 그래서 특별하다. 24일 충남 서천군에 따르면 다음달 3일부터 6일까지 한산모시문화제가 열린다. 장소는 한산모시관 일대다. 27회째를 맞는 축제는 ‘백일간의 기도 천오백년의 사랑’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옷뿐 아니라 모시를 활용한 음식 등 모시의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다. 모시산업의 전통을 알리는 행사에는 저산팔읍(苧山八邑) 길쌈놀이가 있다. 지금은 한산면을 중심으로 서천 지역에만 남았지만 예전의 모시 주산지인 8개 지역에서 부녀자들이 모시 일의 어려움과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부른 노래를 재구성한 민속놀이다. 팔읍은 한산, 서천, 비인, 남포, 주포, 임천, 홍산, 정산을 일컫는 것으로 서천 말고도 보령, 부여, 청양도 모시 주산지였음을 알 수 있다. 축제 이름도 초기에는 ‘저산문화제’로 불리다 중간에 지금처럼 바뀌었다. 이 길쌈놀이는 충남도 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돼 있다. 놀이는 부녀자들이 각 지역 깃발을 들고 긴 행렬을 이뤄 행진하면서 진행된다. 풍물 소리에 맞춰 부녀자들이 긴 모시 천을 이어 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하고 그 옛날 모시를 짜면서 부르던 노래를 하기도 한다. ‘무릎 비벼 삼은 모시 서울님을 줄 것인가, 오동잎이 울어 댈 때 감골 낭군 줄 것인가, 편지 왔네 편지 왔네 강남 낭군 편지 왔네….’ 이 길쌈놀이는 축제 기간 내내 매일 공연된다. 모시 경매도 있다. 지금도 한산모시는 값이 꽤 높다. 경매 대상은 아니지만 옷 한 벌을 만들 길이 21.6m, 폭 60㎝짜리 필모시 한 필이 중급 55만~65만원, 특급은 100만원이 넘는다. 경매에 나오는 상품은 완제품 옷과 양말 등 다양하다. 여자 상의가 20만~25만원에 거래되지만 경매에서 이보다 싸게 살 수 있다. 부담이 덜한 모시 양말 등도 경매에서 구입할 수 있다. 모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한산모시짜기 기능보유자 방연옥(69)씨가 모시풀 껍질을 벗겨 원료인 태모시를 만드는 것부터 천 형태의 필모시를 짜는 과정까지 가르친다. 방씨는 “모시옷은 땀을 빨리 흡수 발산해 건강에 좋다. 깔깔한 느낌이 시원하고 질겨서 한 벌만으로 평생 입을 수 있다”고 자랑했다. 주민들이 직접 모시를 짜는 시연도 펼친다. 모시옷을 입어 볼 수 있어 관광객이 직접 그 느낌을 알 수 있도록 했다. 임은순(64) 한산모시조합장은 “요즘 옷 한 벌에 수백만원 하는데 모시의 질과 옷을 만드는 과정을 생각하면 결코 비싼 게 아니다. 부녀자들이 사지육신 다 망가지도록 만들어 한이 서린 옷”이라며 “그런데도 옛날 보부상들이 거래할 때와 달리 20~30년 전부터 중간 상인들이 가격 횡포를 부려 모시 짜는 주민이 줄었다”고 귀띔했다. 임 조합장은 “주민 100명 정도가 매년 700~800필의 필모시를 짠다”면서 “요즘은 필모시가 아니라 옷으로 만들어 팔고 유네스코 등재와 축제 덕에 인기가 좀 살아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축제에서는 현대적 감각이 풍부한 모시옷을 선보이는 패션쇼가 열린다. 서울 호서예술대 모델학과 학생들이 전문 패션쇼를 펼친다. 주민과 외국인은 물론 올해 처음 도입한 관광객 패션쇼도 있다. 현장에서 관광객에게 워킹 등을 가르쳐 패션쇼를 할 수 있게 했다. 관광객이 모시에 천연 염색을 해 보는 체험행사가 있고 모시 관련 퀴즈대회도 열린다. 모시 빨리 짜기 등의 대회도 열어 쏠쏠한 재미를 준다. 입상자에게 모시 양말 등 경품을 준다. 모시로 만든 차와 떡 등을 맛볼 수 있다. 한지·칠보 공예도 체험할 수 있다. 축제의 흥을 돋우는 공연도 많다. 국내 서커스단의 명맥을 간신히 잇는 동춘서커스단 공연이 1일 오후 1시부터 벌어져 아련한 옛 추억을 되살린다. 코미디 유랑극단도 마지막 날 오후 1시부터 공연을 벌인다. 전통 농촌문화를 형상화한 들풍장공연이 펼쳐지고 풍물공연 등도 즐거움을 준다. 모시관 옆에 캠핑장이 있어 잠잘 곳 걱정 없이 머물면서 축제를 즐길 수 있다. 또 행사장 옆에 명품 민속주 ‘한산소곡주’ 공장이 있다. 행사 때 주막을 짓고 소곡주를 판다. 소곡주는 한산모시와 함께 역사성과 전통을 자랑하는 한산면의 대표 명품이다. 관광지도 지천으로 널렸다. 생태학의 권위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원장으로 있는 국립생태원이 있고, 국립해양생물자원관도 있다. 노박래 서천군수는 “한산소곡주도 그렇지만 한산모시는 우리 민족과 같이해 온 생활수단이고 피복의 역사다. 즐기는 것보다 역사성에 가치를 두고 느껴야 하는 축제”라며 “독창성이 높아 관광객들에게 자신 있게 권하고 싶은 축제로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서천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北 유엔대표 “대북제재 법률적 모순” 반 총장에 편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한을 앞두고 북한 매체가 지난달 집단 탈북한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3명의 송환을 위해 반 총장이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요구했다. 북한 인터넷 선전매체인 ‘메아리’는 24일 “생이별을 당한 부모와 자식들이 하루빨리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보편적인 국제 관례”라며 “반기문에게는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이 인권유린 행위를 문제시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집단 탈북한 종업원들이 납치됐다며 줄기차게 송환을 요구해 오고 있다. 또 조선중앙통신은 유엔 주재 북한 상임대표가 지난 23일 반 총장 앞으로 편지를 보내 “(북한에 대한) ‘제재결의’들에 심중한 법률적 모순이 있다고 까밝혔다”며 “이와 관련해 유엔 사무총장의 견해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어느 10년 차 은행원의 편지

    어느 10년 차 은행원의 편지

    저는 기업은행에 다니는 10년 차 과장입니다. 고맙게도 ‘일 잘한다’는 평판 속에 동기들보다 승진이 1년 빨랐습니다. 그런데 입사 때 자부심이던 국책은행 배지가 지금처럼 무겁게 느껴진 적도 없었습니다. ●20년 차 만년 대리가 연봉 1억 분통 지난 23일도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습니다. 의자에 앉기 무섭게 지점장께서 면담을 하자고 하더군요. 지점장 책상 위엔 ‘성과연봉제 동의서’가 있었습니다. “오전 중에 마무리해야 하니 빨리 사인을 하라”고 채근하시더군요. 그 전날엔 노조에서 저를 찾아왔습니다. 똑같은 성과연봉제 서류를 들이밀며 ‘반대’에 서명하라고 했습니다. 순간, 입행 20년 차가 다 되도록 여전히 ‘대리’ 직급을 달고 있는 선배가 떠올랐습니다. 번번이 승진에서 ‘물’을 먹지만 쌓이는 연차 덕에 연봉은 꼬박꼬박 1억원이나 받아 가는 그 선배를 보면 부아가 치밉니다. 일을 많이 하면 월급을 많이 받고 적게 하면 덜 받아 가는 게 공평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하지만 노조가 들이민 서류에 저는 서명했습니다. 제 생각을 자신 있게 말할 용기도, 노조가 몰아가는 분위기에 반기를 들 배짱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반대 서명을 한 지 하루 만에 찬성에 동그라미를 치기는 양심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자 지점장은 표정을 구기며 말하더군요. “사인을 하지 않으면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그래도 망설이자 “직원들이 모두 동의하지 않으면 지점이 감점을 받게 된다”고 읍소했습니다.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 결국 사인을 하고 나왔습니다. 지점장실을 나오는데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게 치밀어 오르더군요. 은행원들은 결국 성과연봉제가 도입될 것이라고 봅니다. 정부가 워낙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노조는 ‘결사 반대’만 외칩니다. 차라리 노조가 성과연봉제 개인평가시스템에 문제는 없는지 따져보고, 현장의 현실에 맞게 평가항목을 세분화하는 작업을 해 줬으면 합니다. ●은행원들이 불안한 이유 알아야 정부와 회사도 은행원들이 왜 불안해하는지, 왜 반발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해 줬으면 합니다. 정부가 아무리 부인해도 은행원들은 성과연봉제가 결국엔 ‘저성과자를 솎아 내는 손쉬운 수단’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생계를 위협하는 생존의 문제인 셈이죠. 저성과자는 어떻게 재교육할 것인지, 저성과자를 내보내더라도 이들의 재취업을 도울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은 무엇인지 금융공기업 종사자들에게 설명하고 믿게 하는 게 먼저 아닐까요.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기업은행 직원이 성과연봉제 찬·반 서명을 모두 한 뒤 기자에게 털어놓은 자괴감을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 성과연봉제 때문에 너무 괴롭습니다…어느 10년 차 은행원의 편지

    성과연봉제 때문에 너무 괴롭습니다…어느 10년 차 은행원의 편지

    저는 기업은행에 다니는 10년차 과장입니다. 고맙게도 ‘일 잘한다’는 평판 속에 동기들보다 승진이 1년 빨랐습니다. 길지 않은 은행원 생활이지만 크고 작은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처럼 ‘수치심’에 얼굴이 화끈거렸던 적은 없었습니다. ●20년차 만년 대리가 연봉 1억 분통 지난 23일도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습니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기가 무섭게 지점장께서 면담을 하자고 하더군요. 지점장 책상 위엔 ‘성과연봉제 동의서’가 있었습니다. “오전 중에 마무리해야 하니 빨리 사인을 하라”고 채근하시더군요. 그 전날엔 노조에서 저를 찾아왔습니다. 똑같은 성과연봉제 서류를 들이밀며 ‘반대’에 서명하라고 했습니다. 순간, 입행 20년차가 다 되도록 여전히 ‘대리’ 직급을 달고 있는 선배가 떠올랐습니다. 번번이 승진에서 ‘물’을 먹지만 쌓이는 연차 덕에 연봉은 꼬박꼬박 1억원이나 받아 가는 그 선배를 보면 부아가 치밉니다. 일을 많이 하면 월급을 많이 받고 적게 하면 덜 받아 가는 게 공평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하지만 노조가 들이민 서류에 저는 서명했습니다. 제 생각을 자신 있게 말할 용기도, 노조가 몰아가는 분위기에 반기를 들 배짱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반대’ 서명을 한 지 하루 만에 ‘찬성’에 동그라미를 치기는 양심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자 지점장은 표정을 구기며 말하더군요. “사인을 하지 않으면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그래도 망설이자 이번에는 “직원들이 모두 동의하지 않으면 지점이 감점을 받게 된다”고 읍소했습니다.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 결국 사인을 하고 나왔습니다. 지점장실을 나오는데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게 치밀어 오르더군요. 은행원들은 결국 성과연봉제가 도입될 것이라고 봅니다. 정부가 워낙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노조는 ‘결사 반대’만 외칩니다. 그래서 더 불안합니다. 차라리 노조가 성과연봉제 개인평가시스템에 문제는 없는지 따져보고, 현장의 현실에 맞게 평가항목을 세분화하는 작업을 해 줬으면 합니다. 은행원들에겐 이게 더 피부에 와 닿는 문제이니까요. ●은행원들이 불안한 이유 알아야 정부와 회사도 은행원들이 왜 불안해하는지, 왜 반발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해 줬으면 합니다. 정부가 아무리 부인해도 은행원들은 성과연봉제가 결국엔 ‘저성과자를 솎아 내는 손쉬운 수단’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생계를 위협하는 생존의 문제인 셈이죠. 저성과자는 어떻게 재교육할 것인지, 저성과자를 내보내더라도 이들의 재취업을 도울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은 무엇인지 금융공기업 종사자들에게 설명하고 믿게 하는 게 먼저 아닐까요.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특별기고] 파독 간호사 50주년,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며/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

    [특별기고] 파독 간호사 50주년,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며/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한 채 독일로 떠난 덕수. 그곳에서 한국 간호사 영자를 만나 서로 의지하고 사랑을 키운다. 머나먼 타국에서 오직 가족만을 생각하며 고된 일을 참아 낸다. 2014년 말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의 줄거리이자 평생 가족만을 생각하며 단 한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 본 적 없는 우리 부모님들의 이야기다. 우리나라가 독일에 간호사를 파견한 지 올해로 50년을 맞는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극심한 실업난을 겪었다. 경제개발 정책에 따라 막대한 외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1966년 정부는 실업 문제를 해소하고 외화를 벌고자 해외에 인력을 파견했다. 10여년간 우리나라가 독일로 파견한 간호사만 1만여명에 이른다. 이분들이 낯선 땅 독일로 건너간 1966년은 우리나라 수출액이 2억 5000만 달러에 불과한 때였다. 파독 간호사가 10년간 국내로 송금한 돈은 1억 달러로 1966년 수출액의 약 40%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우리 간호사들이 독일에서 흘린 땀과 눈물은 한국 경제 발전과 희망의 밑거름이 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지난 21일 독일의 작은 도시 에센에서 간호사 파독 50주년을 기념하는 ‘재독 한인 간호협회의 파독 간호사 50주년 행사’가 열렸다. 필자는 이 뜻깊은 행사에 우리나라 정부를 대표해 참석했다. 이번 50주년 행사는 1966년 우리 간호사들이 낯선 독일에 도착한 이래 지금까지 역사를 돌아보고 미래를 다짐하는 소중하고 감동적인 자리였다. 꽃다운 나이에 독일로 가셨던 분들은 이제 연로한 할머니가 됐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이분들은 여전히 조국을 사랑하고 계셨다. 비록 삶은 고단했으나 한국의 가족들에게 월급을 보내며 외롭고 힘든 생활을 이겨 냈다고 했다. 독일에서의 봉사활동 경험을 살려 노인을 위한 복지사업을 하고 싶다는 분도 있었다. 이분들에게서 ‘우리도 다시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와 격려를 얻었다. 동시에 낯선 타국에서 힘겨운 세월을 보낸 간호사들에게 이제 우리가 따뜻한 손을 내밀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흔히 독일은 선진국으로 복지정책이 잘 갖추어져 있어 살기에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아직도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이 많다. 파독 근로자 출신인 한인 동포의 평균 연령은 60~70대이다. 20대 중후반에 독일로 건너가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연금 납부 기간이 짧아 독일의 빈곤계층에 해당하는 800유로 이하의 연금을 받으며 빈곤하게 생활하고 있다. 특히 파독 광부 중에는 직업 특성상 진폐증 등 중증 환자가 많지만 언어적 문제로 독일 정부가 운영하는 수발보험서비스와 현지 의료인의 도움을 받는 데 제약이 있어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젊었을 때는 지하 깊숙한 곳에서 육체노동만 했고, 주로 한인 교민 간 집단생활을 해 현지어를 습득할 기회도 적었다. 파독 간호사보다 재취업률과 은퇴 연령이 낮아 미혼으로 홀로 사는 노인이 대다수다. 정부는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공헌에 걸맞게 예우하고 지원하고자 다양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분들의 노고와 희생을 기념하기 위한 역사적 재평가 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독일에서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만나 간담회를 하고 헌신과 희생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재외 교포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생활밀착형 영사서비스 제공과 차세대 동포들의 교육환경 개선을 약속했다. 보건복지부도 파독 근로자 출신 교민의 건강 증진을 위해 2013년부터 재독 한인 간호협회를 통해 방문 수발 간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업 첫해인 2013년에는 71명에게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올해는 150명으로 지원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앞으로 사업이 더욱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일 방침이다. 영화에서 덕수는 아내 영자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낸다. “내는 그래 생각한다. 힘든 세월에 태어나가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기 참 다행이라꼬….” 이제 우리가 소박하게나마 이분들의 수고에 보답해야 할 때다. 이번 파독 간호사 50주년이 이분들의 헌신과 희생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엔소닉 잠적 알려진 날 SNS 보니 “울게 만들어줘서 고맙습니다” 뭉클

    엔소닉 잠적 알려진 날 SNS 보니 “울게 만들어줘서 고맙습니다” 뭉클

    6인조 보이그룹 엔소닉(제이하트, 최별, 봉준, 시후, 민기, 시온) 멤버 전원이 잠적한 사실이 23일 알려진 가운데 잠적 기간 중 멤버 제이하트가 SNS에 올린 게시물이 눈길을 끈다. 엔소닉 제이하트는 23일 새벽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울게 만들어줘서 고맙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동영상을 게재했다. 해당 영상에는 군입대를 앞둔 제이하트에게 멤버들이 쓴 손편지와 함께 멤버들의 활동시절 모습이 담겨 있다. 엔소닉 최별은 “재환이 형은 내게 친형 같은 존재이다. 동생만 있는 나에게 형으로서 잘 이끌어주고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게 이끌어 주는 인물이다”라고 적었다. 봉준은 “우리형”, 시후는 “든든한 리더”, 민기는 “늘 친형처럼 자주 다투지만 금방 풀어지는 고마운 형”, 시온은 “영원한 리더”라는 글을 남겼다. 해당 게시물은 엔소닉 잠적이 알려진 날 게재돼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이날 엔소닉 소속사 C2K엔터테인먼트 측은 “지난 5월 7~8일 양일간 일본 콘서트를 마치고 9일 한국으로 귀국한 뒤 멤버 전원이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이에 현재 추후 모든 스케줄이 취소된 상태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후 멤버들은 일방적으로 지난 17일 법무법인을 통해서 소속사 측에 전속 계약 해지를 통보, 계약 취소에 대한 사항을 전했다. 엔소닉의 전속 계약은 지난 2013년 5월께 발효, 7년 계약으로 현재 4년 남짓 남은 상황“이라며 “향후 상황을 파악 후 소속사 측에서도 공식적인 법정 대응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사진=제이하트 인스타그램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윤종신 작사·작곡, 손호영 ‘나의 약점’ 티저

    윤종신 작사·작곡, 손호영 ‘나의 약점’ 티저

    가수 손호영이 솔로 컴백을 하루 앞두고 신곡 ‘나의 약점’의 티저 영상을 공개했다. 손호영은 22일 자정 공식 SNS와 CJ E&M 뮤직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두 번째 미니앨범 ‘May, I’(메이 아이)의 타이틀곡 ‘나의 약점’ 뮤직비디오 티저 영상을 올렸다. 공개된 30초 남짓의 영상에서 손호영은 연인과 잠시 떨어져 지내는 남자를 연기했다. 쓸쓸한 모습으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 손호영은 현관문에 꽂힌 편지를 발견, 내용을 읽다 미소를 띤다. 영상 말미에 공개된 ‘너의 소중함은 내게 약점이야’라는 음원 일부도 기대감을 높인다. 손호영의 신곡 ‘나의 약점’은 내 사람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곁을 지켜주는 사람에게 소중함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노래다. 윤종신이 작사와 작곡, 프로듀싱에 참여했다. 손호영이 5년 만에 발표하는 솔로 앨범 ‘May, I’(메이 아이)는 23일 자정 각종 음원 사이트를 통해 공개 예정이다. 사진·영상=손호영 (Son Ho Young) - 나의 약점 (My Weak Point) (Teaser)/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굿바이 미스터 블랙 종영까지 심장 ‘쫄깃’ 이진욱 문채원 ‘미소유발 엔딩’

    굿바이 미스터 블랙 종영까지 심장 ‘쫄깃’ 이진욱 문채원 ‘미소유발 엔딩’

    ‘굿바이 미스터 블랙’ 이진욱 문채원의 로맨스가 기적 같은 해피엔딩으로 종영했다. MBC 수목미니시리즈 ‘굿바이 미스터 블랙’이 지난 19일 방송을 끝으로 종영했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은 마지막 방송에서 블랙 차지원(이진욱 분)과 김스완(문채원 분)의 생사를 두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를 펼쳤다. 결국 두 사람은 모두 살았고, 결혼에 골인하며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 이날 시한부였던 차지원은 의식을 잃은 채 수술실로 옮겨졌다. 김스완은 차지원이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를 읽으며 눈물 흘렸다. 그리고 차지원을 이렇게 만든 백은도(전국환 분)를 찾아가 분노를 터뜨렸다. 백은도는 마지막까지 악랄한 모습으로 시청자의 분노를 샀다. 자신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는 김스완을 제거하고자 총으로 쏜 것. 총을 맞은 김스완은 쓰러졌고, 수술을 받던 중 사망했다. 3개월 뒤, 차지원은 성공적인 수술 결과로 눈을 떴다. 가장 먼저 김스완을 찾았지만, 김스완은 이미 죽고 없는 상황. 이에 차지원은 백은도에 대한 최종 복수에 박차를 가했다.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백은도는 중국으로 도주 계획을 짜고 있던 중이었다. 배 위에서 대치하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총을 쐈고, 차지원은 정당방위로 풀려날 수 있었다. 이후 차지원은 김스완과 떠나기로 했던 섬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곳이자, 가장 행복한 추억이 있는 장소다. 그리고 그 곳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김스완이 살아 돌아온 것이다. 김스완은 백은도를 완벽히 단죄하고자, 죽음으로 상황을 조작했었다. 두 사람은 추억이 깃든 해변에서 아름다운 재회의 키스를 나눴다. 한국으로 돌아 온 차지원과 김스완은 결혼을 약속했다. 슬프고 아팠던 과거와는 달리, 행복한 미소가 가득한 두 사람의 모습은 감동의 여운을 남겼다. 차지원과 처절한 복수극을 펼쳤던 민선재(김강우 분)의 최후는 연민을 자아냈다. 민선재는 뒤늦게 차회장의 유서를 읽고, 그의 진심을 알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민선재의 곁에는 윤마리(유인영 분)가 남았다. 윤마리는 자신을 속인 민선재가 미웠지만, 그의 진실된 사랑을 믿고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은 20회 동안 강렬한 복수극과 애틋한 멜로를 동시에 풀어내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전개는 쫄깃함을 자아냈고, 오랜 아픔 끝에 행복하게 웃는 블랙스완 커플의 모습은 해피엔딩 그 이상의 기쁨을 선사했다. 특히 슬프도록 아름다운 멜로를 완성시킨 이진욱, 문채원의 감성연기는 안방극장에 가슴 설레는 두근거림과 애틋한 눈물을 안겼다. 또 인간의 욕망과 그림자를 선 굵은 연기로 그려낸 김강우는 강렬한 존재감을 남겼다. 처연한 여인을 연기한 유인영, 이타적 사랑을 순수하게 표현한 송재림 등 극을 풍성하게 채운 배우들의 연기는 빛을 발했다는 반응이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 후속으로는 황정음, 류준열 주연의 ‘운빨로맨스’가 25일 첫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공포영화 ‘잔예-살아서는 안되는 방’ 티저 예고편

    공포영화 ‘잔예-살아서는 안되는 방’ 티저 예고편

    일본 공포영화 ‘잔예-살아서는 안되는 방’ 티저 예고편이 공개됐다. 극중 주인공 ‘나’는 괴담 잡지에 단편 글을 기고하는 소설가다. 어느 날, 그녀는 여대생 ‘쿠보’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의문의 소리가 들린다는 것. ‘나’는 과거에도 같은 아파트에서 비슷한 사연을 제보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흥미를 느낀다. 이후 ‘나’와 ‘쿠보’가 함께 아파트를 둘러싼 괴담을 하나씩 추적하자, 석연찮은 사건들이 연결되어 있다. 그렇게 괴담의 근원을 파헤칠수록 그녀들의 일상은 점점 더 섬뜩한 공포로 변해간다. 이번에 공개된 예고편은 ‘원한이나 저주가 터에 남아 시간이 흘러도 불행한 사건이 계속해서 벌어지는 현상’을 뜻하는 ‘잔예’의 의미 설명으로 시작된다. 특히 방에서 들리는 바닥을 쓰는 듯한 기묘한 소리는 일본 특유의 ‘청각 공포’를 기대케 한다. 이 작품은 일본 공포 소설의 대가 오노 후유미의 ‘잔예’를 영화화했다. 이 소설은 제26회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받으며 미스터리 공포 소설로서 그 완성도를 입증한 가운데, 발간 당시 일본 독자들이 ‘너무 무서워서 끝까지 읽을 수 없다’라는 리뷰를 남기기도 했다. 소설을 스크린 위로 옮겨온 건 ‘검은 물밑에서’(2002년)의 각본을 썼던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이다. 그는 ‘골든 슬럼버’(2010), ‘백설공주 살인사건’(2015) 등을 통해 서스펜스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왔다. 이번 작품 ‘잔예-살아서는 안되는 방’은 오는 7월 개봉된다. 15세 관람가. 100분. 사진 영상=NEW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60년 전 첫 ‘공중 결혼식’ 아시나요

    60년 전 첫 ‘공중 결혼식’ 아시나요

    1958년 7월 3일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대한국민항공(KNA·대한항공 전신) 여객기 안에선 국내 첫 ‘공중 결혼식’이 열려 눈길을 사로잡았다. 항공사 사장이 주례를 맡았다. 신랑 신부는 비행기 출발을 알리는 힘찬 프로펠러 소리를 신호탄으로 승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한다. 두 사람의 이름을 쓴 리본 사이에 세로로 길게 늘어뜨린 태극기가 이채롭다. 이런 소식은 당시 영화관에서 상영됐던 대한뉴스를 통해 국민들에게 전해졌다. 아나운서는 “끝없이 푸른 창공을 동경하며 백년가약을 맺은 한 쌍의 원앙”이라고 소개했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18일 ‘가정의 달’ 관련 기록물 42건을 홈페이지(www.archives.go.kr)에 공개했다. 동영상 8건, 사진 25건, 우표 4건, 편지 2건 등이다. 문서 3건은 모두 당시 보건사회부가 국무회의에 안건으로 올린 것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 시절인 1955년 어머니날과 1957년 어린이 헌장 제정안, 전두환 전 대통령 때인 1982년 경로헌장 제정안이다. 소파 방정환(1899~1931) 선생이 이끈 색동회에서 1923년 5월 1일 기념행사를 열면서 출발한 어린이날은 1928년 5월 첫째 주 일요일로 바뀌었고 1937년부터는 일제의 강압으로 사라졌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5월 5일 재개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73년 정부가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마련해 기념일로 지정된 뒤 1975년 법정 공휴일로 바뀌었다. 어머니날은 1973년 조상과 어버이 전체에 감사하는 날로 승화시키기 위해 어버이날로 변경했다. 또한 부부의 날(5월 21일)은 1995년 민간단체에서 ‘가정의 달(5)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행사를 개최하면서 시작돼 2007년 법정 기념일로 지정됐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언어 번역까지… AI의 무한 도전

    언어 번역까지… AI의 무한 도전

    구글엔 이세돌을 꺾은 ‘알파고 사범’만 있는 게 아니었다. 1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의 구글 본사를 찾아갔다. 구글은 인공지능(AI)을 모든 사업에 적용하고 있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설립자의 편지’에 적은 말 그대로였다. “우리는 모바일 퍼스트 시대에서 AI 퍼스트 시대로 움직이고 있다.” 인류의 장벽 없는 소통을 꿈꾸는 구글은 번역서비스에 머신러닝(기계학습)을 접목했다. 컴퓨터에 방대한 자료를 공부시켜 스스로 법칙을 터득하게 하는 것으로 AI의 근간이 되는 기술이다. 오타비오 굿 구글번역팀 엔지니어는 “문법, 단어 등 언어 규칙을 컴퓨터에 주입하는 대신 다양한 번역 예시문을 학습하게 함으로써 번역 정확도를 향상시켰다”고 말했다. 머신러닝을 통해 구글은 스마트폰 카메라만 들이대면 외국어를 즉시 번역해주는 ‘워드렌즈’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등 29개 언어를 지원하며 “한국어 버전도 실험 중”이라고 굿은 전했다. 구글은 비영리사업에 AI를 활용한다.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를 효율적으로 퇴치하는 방안이나 지표면의 수량 변화를 예측하는 일, 남태평양에서 벌어지는 불법 조업을 감시하는 일 등이다. 마운틴뷰 글 사진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생활정책 Q&A] “컴퓨터 배경화면 음란물 지속 노출도 성희롱”

    [생활정책 Q&A] “컴퓨터 배경화면 음란물 지속 노출도 성희롱”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직장 내 성희롱 진정 사건 접수 건수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854건에 달한다. 성희롱 진정 건수는 2010년 105건이었지만 2014년에는 267건으로 크게 늘었다. 남녀고용평등법 제2조 제2항은 사업주나 상급자, 동료가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해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행으로 성적 굴욕감 및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 요구에 불응했을 때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행위 등을 직장 내 성희롱으로 규정하고 있다. 16일 고용부에서 직장 내 성희롱의 구체적인 기준에 대해 알아봤다. Q. 직장 내 성희롱 행위는. A. 일반적으로 성희롱이라 하면 ‘육체적 성희롱’만 생각하지만 ‘언어적 성희롱’과 ‘시각적 성희롱’도 성희롱의 큰 범주에 해당합니다. 육체적 성희롱은 ▲입맞춤이나 포옹, 뒤에서 껴안기 등의 신체적 접촉 행위 ▲엉덩이 등 특정 신체 부위를 만지는 행위 ▲애무를 강요하는 행위가 일반적입니다. 언어적 성희롱은 ▲옷차림·신체·외모에 대한 성적인 비유나 평가 ▲성적 사실관계를 집요하게 묻는 행위 ▲성적인 내용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행위 ▲음란한 내용의 전화통화 등이 있습니다. ▲외설 사진과 그림, 낙서 등을 보여 주는 행위 ▲음란한 편지나 그림을 보내는 행위는 시각적 성희롱에 해당합니다. 컴퓨터 배경화면에 음란물을 지속적으로 노출하는 간접적인 행위도 동료가 계속 불쾌한 감정을 표현한다면 직장 내 성희롱이 될 수 있습니다. Q. 커피 타기를 강요하는 것은. A. 업무와 관계없이 성 역할에 기반한 언어나 행위를 강요하는 것은 남녀고용평등법상 반드시 시정돼야 할 성차별 행위이지만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하지는 않습니다. ‘아줌마’, ‘할머니’ 등으로 부르는 행위, 청소나 잔심부름을 강요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호 간의 우정을 기반으로 한 교제도 성희롱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Q. 직장 내 성희롱은 직장 안에서만 성립하나. A. 직장 내 성희롱이 반드시 직장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회식 자리, 차량 안 등 모든 자리에서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성이 있으면 성립합니다. 주로 여성 근로자가 대상이지만 남성도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정규직이 아닌 아르바이트, 파트타임, 협력업체 직원은 물론 모집·채용 과정에서의 성희롱도 포함됩니다. 특정인을 염두에 두지 않았거나 친밀감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도 상대방이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면 성희롱이 적용됩니다. Q. 성희롱 행위자를 징계하지 않는다면. A. 고용부는 성희롱 가해자에 대해 징계 등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으면 사업주에게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합니다. 또 피해자의 고소나 진정을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고객의 성적 요구에 불응한 것을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받을 수 있습니다. 세종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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