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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대 총장 “사퇴는 없다” 대자보 편지

    학생들의 본관 점거 농성이 한 달여 동안 지속되고 있는 이화여대가 지난 26일 2015학년도 후기 학위수여식을 열었으나 학생들의 총장 퇴진 요구로 최경희 총장이 축사를 하지 못하는 등 파행을 겪었다. 이 가운데 최 총장은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사퇴 요구에 불응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졸업 예정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 등 19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학위수여식에서 본관 농성 중인 학생 30여명은 강당 2층 좌석에서 최 총장이 축사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자 ‘해방 이화, 총장 사퇴’ 등의 구호를 외치며 야유를 퍼부었다. 최 총장은 그대로 축사를 이어 나가려고 했으나 소란이 가라앉지 않자 결국 축사를 마치지 못한 채 단상에서 내려왔다. 최 총장은 28일 ‘이화인에게 드리는 두 번째 편지’를 대자보 형태로 교내에 게시하고 “총장으로서의 임무를 흔들림 없이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화여대 교수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지난 25일 장명수 이화학당 이사장에게 공개 질의서를 보내 현 사태에 대한 이사회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해피투게더3 딘딘, 방송 직후 지드래곤에 공식 사과 “불편하게 해서 죄송”

    해피투게더3 딘딘, 방송 직후 지드래곤에 공식 사과 “불편하게 해서 죄송”

    ‘해피투게더3’에 출연한 힙합 뮤지션 딘딘이 화제다. 딘딘은 25일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3’의 ‘히트다 히트’ 특집에 백지영, 이지혜, 크러쉬, 로꼬와 출연해 거침없는 속사포 입담으로 스튜디오를 초토화시켰다. “예능 강세다. 입담이 정말 좋다”라는 박명수의 칭찬을 한 몸에 받으며 첫 등장부터 주목을 받은 딘딘은 이날 ‘흥미딘딘’한 그만의 논리로 어느덧 모두를 설득시키고 빠져들게 만들며 신흥 프로 입담러다운 맹활약을 펼쳤다. 특히 힙합계 정보통, 딘스패치라는 닉네임으로 불릴 만큼 어마어마한 정보량에 치밀한 분석까지 더한 딘딘의 특유의 솔직 당당한 예능적 화법은 국민 MC 유재석마저 놀라게 했고 방송 내내 분위기를 들었다 놨다 하며 미워할 수 없는 꿀잼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금수저’라는 이미지에 대한 오해와 달리 “이제는 내 체크카드를 쓰고 어머니께 용돈도 드리고 있다”라고 달라진 면모를 보이는 가 하면, 웃음을 주고 장난스런 모습을 보이다가도 “어디에 있든 내가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자신만의 가치관과 진지한 모습도 드러내며 반전 매력을 더했다. 또 방송 말미 지드래곤의 무대와 춤, 손인사 제스처 등 일거수일투족을 따라하며 웃음바다를 만든 딘딘은 ”지디 SNS에 내 영상이 올라오는 게 꿈이다“, ”형과 인사 한 번 하고 싶다“라고 직접 영상 편지까지 남기며 그를 향한 순수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 모습에 시청자들은 실제 지드래곤의 인스타그램을 도배하며 ‘딘딘 영상 청원’을 요청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해피투게더3 방송 직후 딘딘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지용이형 저 때문에 죄송해요... 불편하게 해서 죄송해요... 정말 사랑해요…”라고 공식 사과글을 남기며 또한번 웃음을 선사했다. 사진=KBS 2TV ‘해피투게더3’ 방송화면 캡처, 딘딘 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연기 향한 욕망엔 끝이 없다 ‘칠순의 누아르’…나의 다른 모습을 찾고 있다 ‘엄마의 스릴러’

    연기 향한 욕망엔 끝이 없다 ‘칠순의 누아르’…나의 다른 모습을 찾고 있다 ‘엄마의 스릴러’

    이런 영화를 만나게 될 줄 몰랐다. 70대 중반 할아버지와 40대 후반 아줌마 배우의 용기와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저예산 누아르, 스릴러 영화다. 한국 영화가 조금은 더 풍성하고 다양해진 느낌이다. ‘그랜드 파더’ 박근형과 ‘범죄의 여왕’ 박지영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배우 박근형 ‘그랜드 파더’에서 생애 첫 액션 “백 가지 역할이 있으면 다 해 보고 싶은 게 배우에요. 다른 사람이 빚어 놓은 캐릭터라 해도 자기만의 반론이 생기는 게 배우지요. 그래서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거지. 성공했다, 실패했다, 혹독하게 평가받지만 연기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지요.” ●평생 잊지 못할 배역…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죠 나이 들어 행복해지려면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는데 배우는 그렇지 않나 보다. 적어도 연기에 관해서는 말이다. 배우 박근형(76)이 그렇다. 1959년 데뷔 이후 육십갑자의 내공을 쌓아 오며 200편이 넘는 연극, 영화, TV 드라마에 출연한 연기의 절대 고수는 오는 31일 개봉하는 ‘그랜드 파더’에서 생애 처음으로 액션 누아르에 도전했다. 그가 연기한 베트남 참전 용사 출신 기광은 고엽제 후유증을 앓으며 홀로 외롭게 소멸되어 가는 인간이다. 아들의 자살 소식에 달려간 장례식장에서 손녀를 만나고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아들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점을 알게 된 기광은 무자비한 응징에 나선다. “범죄 조직에 복수하는 상투적인 내용이 아니라 경쟁 사회의 이웃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 마음에 들었죠. 메시지도 있고, 상업적인 부분도 있고, 새로운 스타일이라는 생각에 도전하게 됐어요. 이처럼 극적으로 변화하는 삶을 표현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에요. 정말 수많은 역할을 했는데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죠. 평생 기억에 남을 겁니다.”●대형면허 따고 근육 키우고 응급실 신세까지 주인공 직업이 버스 기사라 6주 걸려 대형 면허까지 땄다. 몸에 근육을 붙이기 위해 한 달간 트레이너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한여름에 진행된 50회차 촬영 과정은 쉽지 않았다. 불볕더위에 폐쇄된 공간에서 촬영하다가 어지럼증을 느껴 두 차례나 응급실 신세를 지기도 했다. 죽을 지경이었는데 말도 못 하고 어떻게 용케 살아남았는데 결과물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고 활짝 웃는 박근형은 배우에게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불안함이 느는 것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배우가 제일 섭섭할 때는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불러 주지 않을 때죠. 나이가 들면 쓰임새가 적어지고, 역할이 축소되니까 아무래도 불안하죠. 또래 배우들도 네다섯 정도만 남았어요. 다양한 역할이 개발되어서 계속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 연기가 필요 없어질 때까지 계속 현장에 후배들을 위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현장에서 제일 꼴 보기 싫은 게 극본을 뒤꽁무니에 찌르고 다니는 모습이에요. 자기 직업을 귀하게 여긴다면 귀하게 들고 다녀야죠. 책을 읽고 연극도 하고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해야 하는데 감나무 밑에서 입만 벌리고 있는 경우도 많이 봐요. 감이 저절로 떨어지더라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 그에게 은퇴란, 쓰임새가 없어서 더이상 불려지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제 연기가 필요 없어졌다고 생각될 때까지는 계속할 거예요. 불려질 때를 위해 언제나 준비하고 있습니다. 감나무 밑의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잖아요. 하지만 다음 생에도 배우를 하라고 하면 절대 안 할 것 같아요. 너무 고생스럽고 외롭기 한이 없으니까.”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배우 박지영 ‘범죄의 여왕’에서 상큼한 아줌마 대변신 “책을 받아들고 너무 좋아 소리를 지른 건 처음이었어요. 그냥 딱 제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말 선물 같은 작품이었죠.” ●세련된 기존 이미지 벗고 털털한 친구처럼 배우 박지영(48)은 ‘범죄의 여왕’(25일 개봉)과의 만남을 이렇게 돌이켰다. 28년째 연기 인생에서 영화로는 처음 맛보는 주인공이라서가 아니다. 배역 크기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은 지 이미 오래다. ‘사랑스러운 오지랖 대마왕’인 아줌마 캐릭터가 너무나 상큼했다. 시골 미용실 원장 양미경이다. 서울 신림동 고시원에서 사시 2차를 준비하는 아들에게 한 달 수도요금으로 120만원이 부과되자 해결사로 나섰다가 수상한 사건과 맞닥뜨린다. 그간 익숙하던 화려하고 세련된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다. 강하지만 털털하고, 친구 같고, 귀엽다. 여기에 섹시함까지 얹으며 영화를 유쾌한 스릴러로 이끈다. “한 역할이 좋았다 싶으면 계속 그렇게 소진되기 쉽잖아요. 드라마가 특히 심한데, ‘범죄의 여왕’은 그간 보일 기회가 없었던 표정들을 끄집어내 준 작품이에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하지 않고 술술술 그려졌어요. 그만큼 캐릭터에 제 모습이 많이 들어 있었죠. 너무 편안하게 노는 것처럼 연기해 저도 모르는 제 얼굴까지 담겨 있죠.” ●결혼 이후 작아진 포지션… 다시 신인의 자세로 20대 중반 결혼을 한 뒤에도 ‘장녹수’(1995), ‘꼭지’(2000) 등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미시 파워를 뽐냈지만, 의외로 작품 수가 많지는 않다. PD 출신 남편의 사업 때문에 베트남에서 지내며 촬영 때만 한국에 오는 탓도 있다. 한편으론 스스로 이미지가 정체되지 않게 하려고 다작을 피하는 지점도 있다. 그리고 가족까지. “연기자는 평생의 직업이지만 제 인생도 살고 싶죠. 애들 때문에 연기를 놓치고 싶지도, 연기 때문에 애들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렇게 욕심쟁이라 더디게 갈 수밖에 없네요.” 영화도 2007년 ‘우아한 세계’가 데뷔작일 정도로 늦깎이. 이후 ‘하녀’, ‘후궁’, ‘성난 변호사’에서 조연으로 나왔다. “연기를 시작했을 땐 영화 쪽으론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지 않았고 드라마에서 좋은 위치에 있다 보니 눈 돌릴 틈이 없었어요. 결혼 10년차쯤 드라마에서 포지션이 작아지더라고요. 신인의 자세로 영화에 도전하게 됐죠.” ●나이 들어도 자연스러워 보이는 배우가 될래요 이번 시사회 때 처음으로 가족과 지인을 초대해 가슴이 울컥했다고 한다. “실제 제 모습을 아는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각별했죠. 뒤풀이를 하고 집에 갔더니 두 딸이 장문의 편지를 써 놓고 자고 있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엄마를 자랑스럽게 바라보더라, 자기들도 (엄마에게) 그런 자식이 되겠다, 엄마 너무 멋졌다고.” 박지영은 나이 들어서도 자연스러워 보이는 배우이길 바랐다. “배우가 되어 가는 과정에 있을 땐 제 화보 사진을 보고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낯설어졌어요. 집에 사진도 안 붙여 놔요. 불편하고 어색하다면 가짜니까요. 앞으로도 저의 다른 모습을 찾아주는 연출자들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영화와 여성 캐릭터가 많아지면 더 바랄 게 없겠죠.”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편지가 전달한 희망

    편지가 전달한 희망

    서울 동작구 상도4동 곳곳에 지난달 우체통 모양의 벽걸이형 편지함 15개가 설치됐다. 상도4동 주민센터가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함께 어려운 이웃을 찾기 위해 만든 ‘희망우체통’이다. 삶이 힘들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주민이 편지에 사연을 담아 이 우체통에 넣으면 주민센터의 복지 담당자에게 전달된다. 동 관계자는 “공무원들이 어려운 구민을 직접 찾기도 하지만 대면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다”면서 “자신이나 이웃의 어려운 사연을 글로 받으면 효과적일 것 같아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동작구는 지난달 시작한 희망우체통 사업이 소외계층으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고 24일 밝혔다. 주민센터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우체통의 편지를 거둬 가 사연을 확인하고 어려운 가정을 찾아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 일용직으로 일하다 팔을 다쳐 걱정하던 김연훈(47·가명)씨도 희망우체통을 통해 도움을 얻었다. 김씨는 “병원 입구에 우체통이 걸려 있기에 하소연하려는 심정으로 편지를 넣었다”면서 “얼마 뒤 사연을 읽은 동주민센터에서 긴급지원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연락이 왔고 생계비를 지원받게 됐다”고 말했다. 희망우체통은 주민센터와 은행 등 금융기관, 의료기관, 종교시설, 복지시설 등에 설치됐다. 주민이 자신의 사연이나 이웃의 사연을 그 자리에서 간단히 적어 함에 넣을 수 있도록 메모지와 볼펜도 함께 놓아뒀다. 이상성 상도4동장은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시행에 맞춰 ‘희망우체통’을 설치했다”면서 “동네 주민이 지역사회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마을공동체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윗선 눈치보고 식구는 면죄부… 공정성 의구심

    윗선 눈치보고 식구는 면죄부… 공정성 의구심

    24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석수 특별감찰관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윤갑근(대구고검장) 특별수사팀장은 과거 ‘서울시 공무원 간첩의혹 사건’과 같은 세간의 관심을 모은 몇 가지 사건을 수사한 전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가 대체로 ‘윗선’의 입맛에 맞는 쪽으로 귀결됐다는 점에서 이번 우 수석 수사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시선도 제기되고 있다. ●공무원 간첩의혹 조작사건 무혐의 윤 팀장은 대검 강력부장으로 있던 2014년 2월 서울시 공무원 간첩의혹 사건의 증거조작 여부를 밝히기 위한 진상조사팀을 지휘했다. 당시 진상조사팀은 이 사건을 담당한 검사들이 국가정보원이 내놓은 증거가 조작된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보고 전원 무혐의 처분하고 국정원 직원과 협조자들만 기소해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해 4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과 윤 검사장 등 8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 서초경찰서에 고발했다. 윤 검사장의 경우 검사들과 국정원이 국가보안법상 무고·날조의 죄를 저지른 것을 알고도 직무를 유기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고발 건은 정식 재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정윤회 문건’ 때 우병우와 호흡 윤 팀장은 같은 해 11월 ‘정윤회 문건 파동’ 수사를 대검 강력부장 겸 반부패부장 직무대리의 자격으로 지휘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문건 유출을 ‘국기 문란’이라고 규정했고, 검찰은 결국 해당 문건이 근거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문건을 유출한 박관천 전 경정과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만 재판에 넘기며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그는 당시 청와대 민정 비서관이자 사법연수원 동기(19기)인 우 수석과 호흡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우 수석은 이듬해 초 민정수석으로 승진했고 윤 팀장도 같은 해 12월 고검장으로 영전했다. 이에 앞서 2012년 서울중앙지검 3차장 재직 땐 460억원대 회삿돈 횡령 혐의를 받았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불구속 기소해 ‘재벌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아울러 ‘BBK 김경준 의혹 사건’에서도 편지의 배후를 밝히지 못한 채 관련자들을 불기소 처분해 ‘부실·면죄부 수사’ 지적을 받았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김광석 다시부르기 아트 콜렉터스 에디션 ‘김광석 X 이창우 LP판’ 발매

    김광석 다시부르기 아트 콜렉터스 에디션 ‘김광석 X 이창우 LP판’ 발매

    ‘영원한 가객’ 김광석이 서른셋 짧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 20년 째가 된 올해 대중문화계는 공연, 뮤지컬, 전시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그의 삶을 재조명하고 있다. 23일 발매된 김광석 다시부르기 Ⅰ&Ⅱ LP 헌정판 아트 콜렉터스 에디션의 두 번째 시리즈 ‘김광석 X 이창우 LP판’ 역시 추억 속의 그를 팬들 곁으로 친근하게 소환한다. 김광석이 소탈하게 웃고 있는 표정, 주름진 얼굴에 유쾌함이 담긴 오리지널 김광석 다시 부르기 1집의 캐리커처는 김광석의 친구이자 당시 소극장 학전에서 아트디렉터를 담당했던 이창우 교수의 작품이다. 다시 부르기 1집의 음반 디자인을 위해 만들어진 이 김광석의 유쾌한 표정은 이제 그를 형상화한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창우 교수는 1988년부터 수많은 음악인 및 연극인과의 교류를 통해 당시 대학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진보적 대중문화의 확장과 발전에 동행해 왔다. 김광석 다시부르기 I, 김광석 4집 등의 음반 작업과 다수의 공연에 아트디렉터로 참여, 일러스트레이션과 디자인을 담당하기도 했다. 김광석 다시부르기 I 트랙에는 ‘이등병의 편지’ ‘사랑이라는 이유로’ ‘사랑했지만’ ‘거리에서’ ‘기다려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등이, 김광석 다시부르기 II 트랙에는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잊혀지는 것’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변해가네’ ‘나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등이 수록돼 있다. 김광석 다시부르기 Ⅰ&Ⅱ LP 헌정판 ‘김광석 X 이창우 LP판’은 23일부터 CJ E&M을 통해 예약 판매중이며 25일 이후에는 대형 음반매장 및 온라인 음반사이트를 통해서도 구매할 수 있다. 음반 판매 수익금의 일부는 신인 창작자들을 위한 지원금으로 사용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 대통령 中 팬 “한·중 관계 나아질 것”

    박 대통령 中 팬 “한·중 관계 나아질 것”

    박근혜 대통령의 한 중국인 팬이 박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비록 한·중 양국 관계가 잠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양국 국민의 우호 합작 관계는 나날이 좋아질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고 청와대가 23일 밝혔다. 이날 청와대 페이스북에 따르면 중국 상하이 출신으로 현재 충칭에서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는 판린은 “양국의 우호를 위해 작은 힘을 보태고 싶다”며 이 같은 내용의 손편지를 보냈다. 청와대 페이스북
  • [현장 블로그] 고맙습니다, 고된 살림에 힘이 된 ‘수녀님 도시락’

    최근 본지 독자 투고 담당자 앞으로 편지 하나가 왔습니다. 부산 남구에 사는 이동만(82)씨가 보낸 손편지였습니다. 오랜 시간을 머금은 듯 노르께한 편지지에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쓴 글씨로 사연을 풀어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지난 6월 10일부터 수영구 광안1동에 있는 사랑의성모 수녀회에서 ‘무지개 도시락’을 배달받는데, 진수성찬을 대접받으니 ‘벼락부자’가 된 것 같다는 겁니다. 첫날부터 시래깃국과 멸치볶음, 나물무침으로 포식했는데, 시래깃국은 옛날 어머니가 해 주시던 맛과 똑같다고 했습니다. 이후 카레라이스와 소고깃국, 추어탕, 북어를 넣은 계란국 등 한결같이 맛있고 푸진 도시락이었다고 합니다.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한 삼계탕도 수녀님 덕에 세 번이나 드셨답니다. 이씨는 7년 전 콩팥 수술을 받은 아내를 수발하며 살림하느라 매일 반찬 걱정을 했는데 도시락 덕에 한시름 덜었다고 합니다. 식비도 줄었습니다. 매달 기초수급자 지원금으로 62만원을 받는데, 이 중 식비가 30만원 정도였답니다. 이씨는 “나라님도 마음대로 인상 못 해 주는 생계비를 수녀님이 대폭 인상해 주셨다”며 희망이 생겼다고 합니다.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어 수녀회에 연락했습니다. 그러나 수녀님들은 한사코 취재를 마다했습니다. 수녀회는 ‘사조직’이라 언론에 공개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입니다. 얘기를 들려줄 사람을 수소문해 이 수녀회에서 7년간 봉사 활동을 했다는 한 의류업체 직원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2008년 수녀회가 설립된 이후부터 줄곧 수녀님 4분과 자원봉사자들이 음식을 손수 만들어 소외된 이웃에게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독거노인 등 80여 가구를 지원하고, 알코올중독자들을 위한 치유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자기 홍보’의 시대라고 합니다. 자신의 장점을 적극 알려야 남들이 알아준다는 것이죠. 그러나 선행을 알리든 알리지 않든, 선행의 의미 자체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받는 이에겐 행복을 주고, 다른 이들에겐 깊은 울림을 주는 것도 분명합니다. 신앙이나 종교의 힘을 초월해서 말이죠.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관가 블로그] “김재수 스타일은…” 족집게 과외 받는 농식품부 직원들

    [관가 블로그] “김재수 스타일은…” 족집게 과외 받는 농식품부 직원들

    2001년 개봉한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명장면을 기억하십니까. 남자 주인공 차태현이 여자 주인공 전지현을 다른 남자에게 부탁하며 건넨 편지 내용이 공개되는 대목입니다. 배경음악으로 신승훈의 ‘아이 빌리브’가 깔리는 가운데 차태현이 읊어 내려갑니다. “여자다운 걸 요구하지 마세요. 술은 절대로 3잔 이상 먹이면 안 돼요. 아무나 패거든요….”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비슷한 상황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어서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 직원들이 최근 산하기관인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족집게 과외’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 16일 김재수 당시 aT 사장이 농식품부 장관에 내정되면서입니다. 김 장관 후보자는 1977년 행정고시 21회에 합격하고 농식품부에서 30여년간 공직 생활을 했습니다. 제1차관도 지냈습니다. 하지만 2011년 이후 줄곧 aT에만 있었기 때문에 그의 업무 스타일을 기억하는 공무원이 많지 않습니다. 사무관은 물론이고 과장들도 비슷합니다. 국장급 간부들도 선배인 김 후보자와 함께 일했던 시절을 힘겹게 기억에서 끄집어내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 aT 직원들은 누구보다 ‘김재수 스타일’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걸어 ‘업무보고 노하우’를 묻는 농식품부 공무원들에게 aT 직원들이 주는 팁은 이러합니다. “성격이 급하세요. 지시가 떨어지면 당일 보고하세요. 검토가 오래 걸려도 절대로 일주일은 넘기지 마세요.” “아이디어가 많아서 수시로 지시가 내려와요.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해요.” “보고서는 핵심만 담아 한 장으로 만드세요. 보고 형식은 중요하지 않아요. 급하면 문자메시지나 전화 보고를 해도 괜찮아요.” 김 후보자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 4층에 인사청문 준비단을 꾸리고 현안을 보고받고 있습니다. 이르면 이달 말 인사청문회가 열립니다. 개각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매너리즘에 빠진 공직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농식품부 직원들의 ‘김재수 학습’도 그런 취지이길 바랍니다. 세종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경찰 ‘이대 교수 감금’ 재학생 3명 소환 통보

    경찰 ‘이대 교수 감금’ 재학생 3명 소환 통보

    26일째 본관 점거 농성을 이어 가고 있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교수 감금 혐의를 수사 중인 경찰이 주동자로 보이는 재학생들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지난달 28일 있었던 교직원 감금 사건과 관련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 총학생회장과 재학생 2명을 피혐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들이 소환에 응해 주모자로 확인될 경우 피혐의자 신분은 피의자로 전환된다. 지난달 28일 이대 학생들은 학교의 미래라이프대 설립 계획을 폐기할 것을 요구하면서 평의원회의에 참석한 교수와 교직원 등 5명을 약 46시간 동안 본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당시 학교 측의 요청으로 경찰 병력이 투입됐고 경찰은 이때 채증한 자료로 감금 혐의에 대해 수사를 진행해 왔다. 자료 분석 결과 경찰은 이들이 이런 단체 행동을 주동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농성 학생 측은 이날 입장문을 발표하고 “경찰은 감금·주모자·처벌 등의 자극적인 표현으로 학생과 학교 사이의 평화적인 대화를 방해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해 달라”고 주장했다. 또 학생에게 불이익이 없이 강의실로 돌아가게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던 최경희 총장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최 총장은 학생들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경찰에 제출했지만, 경찰은 범죄 혐의가 인지됐기 때문에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최 총장은 전날 학생들에게 편지를 보내 “학생들이 학내 구성원들과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총장과의 열린 대화’를 정례화하고, 학생·교직원·동문 대표들로 구성된 ‘함께하는 이화정책포럼’을 제안한다”며 재차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여전히 ‘서면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나태주 풀꽃 편지] 마이너 시대

    [나태주 풀꽃 편지] 마이너 시대

    요즘은 너나없이 사는 일이 힘들다고 하고 지쳤다고 한다. 옷이나 밥이나 집이 없어 힘들고 지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힘들고 지쳤다고 그런다. 번아웃(burnout)이란 생소한 말이 젊은이들 사이에 오가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극도의 피로에 달했다는 얘기이고 각자가 지닌 삶의 에너지를 바닥냈다는 얘기다. 왜 이 지경이 되었나. 그것은 우리가 지나치게 외곬으로 살아서 그렇고 지나치게 올인하며 살아서 그렇다. 여기 1.5볼트짜리 건전지 두 개가 있다고 치다. 두 개를 직렬로 연결하면 3볼트짜리 불이 켜지고 병렬로 연결하면 1.5볼트짜리 불이 켜질 것이다. 때로는 3볼트짜리 불을 밝혀야 하기도 하겠지만 더 많게는 1.5볼트짜리 불을 밝히며 살아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자신이 메이저라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개는 마이너 인생이라 생각할 것이다. 인생에 대해서도 그렇다. 마이너가 없는 메이저가 어디 있겠는가. 한 사람의 생애를 두고 볼 때도 메이저 시대보다는 마이너 시대가 더 길다고 보아야 한다. 어쩌면 마이너 없는 메이저는 무의미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부디 자기네 인생이 마이너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있다면 언젠가는 분명히 찾아올 메이저 인생을 꿈꾸며 열심히 살아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것이 소망이다. 그것이 진정 인생에 있어서 행복과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이고 값진 인생, 아름다운 인생을 만나는 첩경이다. 정말로 우리네 인생에는 메이저만 있는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마이너 다음의 메이저다. 그것은 하루의 일과를 두고 볼 때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우리가 기분 좋고 유쾌한 시간만 사는 건 아니다. 때로는 힘들고 지겨운 시간을 견디고 건너서 저녁 시간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 그러면서 하루의 일과가 깜냥대로 좋았다고 말하고 더러는 앞으로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들 삶에서 고난이나 고통, 실패, 시련, 절망과 같은 이름들은 마이너의 항목들이다. 그러나 그런 항목들을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진정한 성공과 소망과 행복이 열리도록 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한 묘미요 비밀이다. 오히려 마이너의 시기가 혹독할수록 더욱 빛나는 성공과 소망과 행복이 약속된다. 이런 말이 있다. ‘살아난다는 보장만 있다면 젊어서 죽을병에 한 번 걸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일단 죽을병에 걸렸다가 거기서 빠져나오게 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그 이전의 인생과는 전혀 다른 인생, 새롭게 태어난 인생이 된다. 이를 나는 ‘결핍의 축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결핍은 궁핍과는 다르다. 궁핍은 애초부터 없던 상태를 말하고 결핍은 있던 것이 없어진 상태를 말한다. 그러므로 결핍은 결핍으로 끝나지 않는다. 결핍을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 따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점점 좋아지게 될 것이고 끝내는 완전히 좋아지는 상태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사는 일에 지쳤다는 것은 고난이든 결핍이든 마이너 상태를 못 견뎌서 그런 것이다. 고생하며 살아온 부모들이 자식들에게는 자신들이 겪은 고생을 대물림하지 않고 싶어서 지나치게 애지중지 키워서 그렇다. 어려서부터 고난 없이, 시련 없이 키워서 그렇다. 그렇다고 억지로 고난이나 결핍을 주자는 애기는 아니다. 우리가 지금 충분히 좋은 조건인데도 마음이 그래서 그렇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 하는 얘기일 뿐이다. 지금 당신은 당신의 인생이 마이너 시대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분명 그다음에 열린 메이저 시대를 꿈꾸며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야 할 일이다.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이너의 시대가 끝나고 메이저의 시대가 찾아올 것이다. 인생의 실패는 절대로 실패 그것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실패하면서 인간은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까지 배우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더욱 큰 성공과 더욱 밝은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마이너 시대, 그것은 미구에 찾아올 메이저 시대에 대한 찬란한 약속이고 예고이다. 그것이 진정한 인생의 성장이다.
  • “태영호, 두 달 전 英정보기관 첫 접촉…英 군용기 타고 독일 거쳐 한국 입국”

    한국에 망명한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탈출 두 달 전 영국 정보기관과 접촉했으며 탈출 당시 영국 군용기를 타고 독일을 거쳐 한국에 입국했다고 선데이익스프레스가 21일 보도했다. 신문은 태 공사가 망명 두 달 전 런던 북서부 왓퍼드의 한 골프장에서 영국 정보기관 관계자들을 처음 만났으며 부인 오혜선씨가 평양 복귀에 불안감을 토로한 뒤부터 진지하게 망명을 고려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2주 뒤 태 공사의 심경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영국 외무부는 곧바로 미국 정보 당국에 알렸다. 서울에서도 ‘유럽 어느 곳에서 북한 외교관의 망명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도는 등 선택의 순간이 임박하자 태 공사는 망명지를 택할 수 있는 ‘백지수표’가 주어졌음에도 최종 망명지로 한국을 택했다. 태 공사 부부와 두 아들은 지난달 말 평일 오전 일찍 영국과 미국의 외교 당국, 정보기관 관계자 등 7명과 함께 옥스퍼드셔 브라이즈 노턴 공군 기지에서 30명 정원인 영국 공군 BAe 146기를 타고 출발했다. 관계자들은 군용기에 실린 짐에 태 공사의 테니스 라켓이 있었고 태 공사가 골프 클럽을 실어 달라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태 공사의 부인 오씨가 공항으로 가는 길에 대형 마트인 ‘막스 앤드 스펜서’에 들러 달라고 요구했다고도 전했다. 영국에서 독일까지 2시간의 비행 동안 태 공사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에게 감사 편지를 썼다. 태 공사는 이 편지를 메이 총리에게 직접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BBC 방송은 태 공사가 올여름 임기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고 보도했다. 한국에 간 태 공사는 한국 정보 당국으로부터 이중 간첩인지를 조사받으며 몇 주일간 ‘편안한 감금’ 생활을 할 것이라고 매체는 전했다. 런던 소재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아시아 전문가 존 닐슨 라이트는 “북한 외교관들은 탈북을 막기 위해 가족을 북한에 남겨두는 게 일반적이나 태 공사는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허용됐다”면서 “다른 직원과 동행하지 않고 어디든 혼자 다니는 게 허용된 것도 매우 드문 경우다. 태 공사가 이를 활용해 망명을 해냈다”고 말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백종원의 3대천왕’ 하니, 제작진에 ‘손편지+선물’ 증정 “건강 조심하세요!”

    ‘백종원의 3대천왕’ 하니, 제작진에 ‘손편지+선물’ 증정 “건강 조심하세요!”

    ‘백종원의 3대천왕’의 먹요정 하니가 프로그램 제작진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과 손편지가 공개됐다. 지난 19일 ‘백종원의 3대천왕’ 공식 인스타그램에는 하니의 사진과 함께 손편지가 붙어 있는 선물 꾸러미가 공개됐다. 프로그램을 하차하며 제작진들에게 건넨 선물인 것. 앞서 하니는 “EXID 해외 공연과 국내 음반 활동에 매진할 것”이라며 ‘백종원의 3대천왕’ 하차 소식을 전한 바 있다. 사진 옆에는 “마지막 방송 뒤에. 좀 더 천천히 보내주고 싶었지만, 이제는 훨훨 날아가야 할 우리 먹요정을 위해 조금 빠른 배웅을 하려 합니다”라고 시작하는 글이 함께 올라왔다. 이어 “7개월 동안 정말 고생했어요. 먹방 때문에 예쁜 얼굴이 구겨져도, 배가 불러서 숨쉬기 버거워도, 늘 씩씩하게 신나게 방송을 채워줘서 고마웠어요”라며 하니를 향한 제작진의 고마운 마음도 드러나 있었다. 글의 마지막에는 “먹요정~ 언제 어디서든 항상 응원할게요 진심으로 사랑합니다”라는 문장과 함께 EXID 활동을 응원하는 내용도 있었다. 한편, 하니의 마지막 방송은 20일 오후 6시 10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인턴기자 3a5a7a6a@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임진강 아래 율곡과 우계의 깊고 치열했던 학문과 우정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임진강 아래 율곡과 우계의 깊고 치열했던 학문과 우정

    임진강 하류에서 상류의 적성 방면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낯익은 땅이름이 나타난다. 임진강이 남쪽으로 한바탕 돌아드는 곳에 임진나루가 있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출발해 북상하는 의주대로는 임진나루에서 잠간 뱃길로 이어졌다. 나루터 남쪽 임진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율곡(栗谷)리 언덕에 화석정이 있다. 대학자 율곡 이이(1536~1584)의 아호는 이 마을 이름에서 비롯됐다. 화석정 아래로는 37번 국도가 지닌다. 연천 쪽으로 3㎞ 남짓 달리면 오른쪽으로 파평면 사무소 쪽으로 언덕을 넘어가는 옛길이 나타난다. 2~3㎞ 달리면 오른쪽으로 파평 윤씨 연못이 보이는데, 그 앞에 나타나는 동네가 눌로리다. 동네 초입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눌로천 다리를 건너면 파산서원이다. 파평산을 휘감아 흐르다 임진강에 합류하는 눌로천 변을 예전에는 우계(牛溪)라고 불렀다고 한다. 율곡과 쌍벽을 이루었던 대학자 우계 성혼(1535~1598)의 아호 또한 고향 마을의 땅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성리학 두 거물… 한 해 9차례 대논쟁 펼치기도 안동 사람들은 흔히 자기 고장을 ‘한국 정신 문화의 고향’이라고 높인다. 안동에 퇴계가 있다면 파주에는 율곡과 우계가 있다. 분단의 역사가 임진각과 통일동산을 낳으면서 이른바 ‘안보관광지’로 인상지워진 파주지만 ‘한국 정신 문화의 또 다른 고향’으로 아무런 손색이 없다. 실제로 이이는 잘 알려진 대로 강릉 외갓집에서 태어났지만, 한양에서 벼슬살이하던 시기를 제외하고 노년기를 대부분 율곡에서 보냈다. 벼슬을 물리치기에 바빴던 우계는 파주 땅을 떠난 적이 거의 없다. 율곡과 우계는 이웃해 살았던 것은 물론 학문으로 이어진 친구 사이였다. 두 사람은 조선 성리학을 정립하는 데 기여한 일대 논쟁을 펼친다. 우율논변(牛栗辯)이라고도 하고 우율 왕복문답서(牛栗 往復問答書)라고도 하는데, 1572년 한 해 동안 모두 아홉 차례 글을 주고받았다. 앞서 13년 동안 110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 받은 퇴계와 고봉 기대승의 이른바 사칠논변(四七辯)에 이은 대논쟁이었다. ●절친의 학문적 견해차가 훗날 정치적 계파 비극으로 두 사람은 편지에 그치지 않고 서로의 집을 찾아가 한이불을 덮고 밤을 함께 보낸 사이였다. ‘올해도 저물어 온 산에 눈 내리는데/들길은 가느다랗게 숲 사이를 가른다/소를 타고 어깨 들썩이며 어디로 가나/우계에 그리운 벗을 찾아간다네’ 율곡의 시는 그 우정의 깊이를 짐작하게 한다. 우계 또한 율곡과 시냇가를 걸었던 기억을 ‘한가로운 사람 손에 책을 펴고 마주하여 돌아갈 줄 모르네’라고 화답했다. 이렇듯 절친했던 두 사람이지만 당신들의 뜻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훗날 율곡학파와 우계학파의 시조(始祖)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정치적으로도 율곡은 서인과 노론의 종장(宗匠), 우계는 서인에서 분파한 소론의 영수(領袖)로 파당을 달리하게 된다. 학문적 견해차가 학맥(學脈)을 가르고, 갈라진 학맥이 다시 정치적 색채를 구별하는 결과를 빚었으니 두 사람이 이런 것을 원했을 리 만무하다. 화석정은 율곡의 5대조인 이명신이 1443년 세운 것이라 한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의주로 피란 갈때 폭우가 쏟아지는 밤 화석정에 불을 붙여 강을 건널 수 있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미 세상을 떠난 율곡이 이런 날을 대비해 화석정에 기름칠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설명이 더해진다. 당연히 과장이지만 ‘임금이 곤경에 처했는데도 지척에 살면서 나와 보지도 않았다’는 우계에 대한 비난이 더해지면 정치적 의미는 매우 각별해진다. 파산서원은 1568년 우계의 아버지인 성수침을 제향하고자 세워졌다. 조광조의 문인인 성수침은 기호사림의 대표적 존재로 추앙받고 있었다. 우계는 인조 시대 추가로 제향됐다. 대를 이어 살았을 옛집은 남아 있지 않다. 파산서원 역시 교육 공간은 사라지고 사당만 남았다. 우계가 제자들을 가르치고자 세웠던 우계서실(書室)의 옛터를 알리는 비석도 보인다. ●임금 피란 전설 화석정… 파산서원은 사당만 남아 수도권에 살고 있다면 파주는 주말 가벼운 마음으로 드라이브하기에 좋은 거리다. 그렇게 화석정을 찾는다면 파산서원도 함께 둘러볼 일이다. 파산서원을 목적지로 했더라도 화석정까지 방문하기를 권한다. 여유가 있다면 법원리의 율곡 무덤과 자운서원, 율곡기념관, 향양리의 우계 무덤과 우계기념관도 돌아보면 좋을 것이다. 우리 정신 문화의 상당 부분이 파주에서 정리됐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dcsuh@seoul.co.kr
  • [칭찬합니다~ 자치구의 효심] 살맛 나는 용산 어르신

    [칭찬합니다~ 자치구의 효심] 살맛 나는 용산 어르신

    명절이 다가오면 더 쓸쓸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도시에 혼자 사는 노인들이 대표적이다. 서울 용산구가 지역 주민들의 온정을 독거 노인들에게 전달, 헛헛한 마음을 달래주기로 했다. 구는 20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지역 내 홀몸 어르신을 찾아 생필품과 효도편지를 전달하는 ‘기가팍팍, 효 나눔 봉사활동’을 벌인다고 18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기업(기)과 가족(가)이 지역 독거 노인들에게 사랑과 나눔을 ‘팍팍’ 전한다는 의미로 기획됐다. 용산에 기반을 둔 기업(단체) 또는 2인 이상 가족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샴푸와 보디워시, 참치캔, 치약 등 생필품을 가지고 용산구자원봉사센터를 방문하면 된다. 참여자들은 자원봉사를 위한 기본 교육을 받고 생필품을 상자에 담은 뒤 효도편지를 써 함께 넣는다. 모두 150개의 효 상자를 만들 예정이다. 오는 추석 연휴(9월 14~16일)를 앞두고 자원봉사센터에서 홀몸 어르신들을 직접 찾아뵙고 상자를 전달한다. 참여를 원하는 구민은 1365자원봉사포털(www.1365.go.kr)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일정 등 문의사항은 용산구자원봉사센터(전화 02-718-1365)에서 안내받으면 된다. 구 자원봉사센터는 참여자들이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가족봉사단 늘해랑, 용산굿핸즈, LH, 에뛰드하우스, HDC현대산업개발, 하나은행, 코레일네트웍스 등이 지속적으로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직지의 고장 청주서 싹틔운 ‘금빛 씨앗’ 세상을 깨우다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직지의 고장 청주서 싹틔운 ‘금빛 씨앗’ 세상을 깨우다

    11년 전 ‘서울디지털포럼 2005’에 참석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기조연설에서 “한국의 디지털혁명은 혁신적인 기술발전에 기여하는 두 번째 사례”라며 “한국의 첫 번째 혁신적 기술은 금속활자 발명”이라고 말했다. 그가 금속활자를 거론한 것은 충북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된 직지 때문이다. 직지는 현존하는 금속활자로 찍은 책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책이다.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구텐베르크의 ‘42행 성경’(1455년 인쇄)보다 78년 앞서 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 가치가 인정돼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직지의 정식 명칭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고려 말 승려 백운 화상이 부처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살다 간 이름난 승려들의 말씀이나 편지 등에서 뽑은 내용을 수록해 놓은 책이다. 직지심체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에서 나온 말로 ‘참선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보면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1377년 인쇄된 직지 상하 두 권 중 한 권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남아 있다. ‘직지의 고장’ 청주시가 직지의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다음달 1일부터 8일까지 8일간 청주예술의전당과 직지문화특구 일원에서 ‘직지 세상을 깨우다’를 주제로 직지코리아 국제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올해 처음 열리는 직지코리아는 2003년과 2005년부터 번갈아 열리는 직지축제와 유네스코 직지상 시상식을 통합했다. 시는 두 행사를 합쳐 국제행사로 승인받은 뒤 국비 14억 5000만원을 지원받았다. 총사업비는 40억원이다. 이번 행사는 직지의 창조 가치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메인 전시의 주제를 ‘직지 금빛 씨앗’으로 잡았다. 직지코리아조직위원회 문희창 홍보팀장은 “금속활자가 문명을 발전시키는 기폭제가 됐을 것”이라며 “직지를 인쇄한 금속활자가 인류의 황금시대를 가져온 씨앗과 같은 역할을 해 주제를 이렇게 잡았다”고 설명했다. 주제전시에는 11개국 35개 팀이 직지를 창조적으로 해석한 회화, 미디어아트, 사진, 설치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57점을 선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 타이포그라퍼 안상수, 사진작가 배병우 등이 참여한다. 세계 3대 산업디자이너 론 아라드는 직지 파빌리온을 선보인다. 옛 책을 엎어 놓은 형태의 건축물인 직지 파빌리온은 높이 12m, 넓이 64㎡ 규모로 청주예술의전당 광장에 설치된다. 주제전시 공간연출은 영국의 세계적 인테리어 디자이너 설치작가인 에이브 로저스가 맡았다. ‘색상의 마법사’로 불리는 그는 한국의 전통혼례복에서 영감을 받아 붉은색으로 꾸민다. 직지의 창조적 가치를 조명하기 위해 글로벌 명사들의 릴레이특강 프로그램인 ‘골든씨드 라이브쇼’도 3·4일 펼쳐진다. 유명 연사들의 독특한 강연과 다양한 퍼포먼스를 곁들이는 형식으로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접목된다. 루이스 다트넬 영국 우주국 과학자,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의 전자책 단말기를 개발한 제이슨 머코스키, 바이올린 연주가 박지혜, 화가이자 가수인 솔비, 식물세밀화가 신혜우, 마술사 이은결 등이 강연에 나선다. 행사장을 찾으면 이색적인 조형물도 만날 수 있다. 조직위는 직지를 활용해 메인게이트를 꾸몄다. ‘직지월’로 불리는 이 게이트는 직지 하권 활자 1만 6021자를 새긴 격자형 박스를 쌓아 만들었다. 이 벽은 박스 안에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설치돼 밤이 되면 거대한 유등으로 변신한다. 조직위는 예술의전당 입구 광장에 ‘책의 정원’도 만든다. 책의 정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거대한 책 조형물이다. 나무를 형상화한 다양한 크기의 책꽂이를 배치해 관람객이 직접 책을 꺼내 읽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책꽂이는 지난 4월 11일부터 6월 30일까지 진행된 시민 헌책모으기를 통해 기증받은 2만 9138권으로 채워진다. ‘29138’은 직지 상하권에 쓰인 활자 수다.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도 있다. 예술의전당 광장에는 직지놀이터가 꾸며진다. 활자가 인쇄된 스카프 숲을 통과하면서 활자를 찾아 문장을 완성하는 게임 등 놀이를 통해 직지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책 모음, 아동도서 벼룩시장, 도서 상품판매 등도 진행된다. 청주고인쇄박물관 주차장 일대에는 시민추진단이 기획한 1377 고려 저잣거리가 들어선다, 직지가 탄생한 고려의 시대성과 역사성을 반영해 옛 생활상을 재현한 저잣거리에서는 고려시대 특산물인 한지, 도자기, 철물, 인삼 등을 접할 수 있다. 환복소에 들려 고려시대 옷을 입고 거리를 걸어볼 수도 있다. 직지코리아 입장료는 일반 5000원, 청소년·어린이 4000원이다. ‘골든씨드 라이브쇼’는 일반 2만원의 입장료를 따로 받는다. 다음달 1일 청주예술의전당에서는 유네스코 직지상 시상식이 열린다. 직지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하기 위해 2004년 제정한 상이다. 수상자에게는 상장과 상금 3만 달러를 준다. 이번에는 30여개국 40여개 기관이 후보로 추천돼 이베르 아카이브·아다이 프로그램이 수상자로 확정됐다. 이베르 아카이브는 중남미 국가 정상들과 정부 간 협력 기구 간에 구성된 공동 프로젝트팀이다. 기록유산에 대한 접근, 보존, 확산을 위해 1999년 설립됐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스페인 등 15개 국가의 국가기록원이 참여한다. 행사 기간 세계인쇄박물관협의회 창립총회와 직지국제콘퍼런스도 열린다. 사전 예매로 현재 입장권 3만여장이 판매됐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미술자료전문가 김달진 관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미술자료전문가 김달진 관장

    “국립현대미술관 첫 출근일은 1981년 9월 23일, 결혼 날짜는 1982년 12월 20일입니다. 아직 기사 마감 전이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인터뷰 다음날 그가 이런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인터뷰 때 정확한 날짜를 얘기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 도움 될 만한 정보와 자료들을 문자와 이메일로 알려 왔다. 참 꼼꼼하고 철두철미하다 싶었다. 김달진미술연구소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이끌고 있는 김달진(61) 관장은 그런 사람이다. 아마도 이런 섬세함과 집요함이 한국 근현대 미술자료 수집과 연구 분야의 독보적 존재로 지금의 그를 있게 했으리라. -“신문 쪼가리 모아서 밥은 어떻게 먹고살려는지…쯧쯧.” 어른들은 하나같이 혀를 찼다. 그럴 만도 했다. 한창 공부에 집중해야 할 고등학생이 신문이건 잡지건 서양 명화가 실린 자료라면 닥치는 대로 오려서 스크랩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으니 나중에 밥벌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을 게다. 나도 앞날이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당장은 좋아하는 취미가 우선이었다. 비록 인쇄물이긴 해도 르누아르, 피카소, 천경자, 박수근의 그림을 모으는 기쁨은 컸다. 고교를 졸업할 때 내가 모은 미술자료는 스크랩북으로 10권이나 됐다. 결과적으로 이 자료들이 내 밥벌이의 든든한 밑천이 됐다. -충북 옥천에서 5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초등 4학년 때 어머니를 여읜 뒤 셋째 형님을 따라 대전의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수집에 관심을 갖게 됐다. 시작은 껌종이, 담뱃갑, 우표 등이었다. 기념우표가 나오면 가장 먼저 우체국 창구로 달려가곤 했다. 그러다 ‘주부생활’ ‘여원’ 등 잡지에 실린 세계 명화를 접하며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됐다. 서울로 올라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본격적인 수집에 나섰다. 틈만 나면 헌책방이 많았던 청계천 6, 7, 8가를 돌며 미술전집 등을 샀다. 서점 주인에게 그림 한 장을 뜯어서 팔라고 조르기도 했다. 1972년 고 3 여름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본 ‘한국근대미술 60년전’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인쇄물로 된 서양의 명화만 보다가 우리 근대미술의 주옥같은 작품을 실물로 보니 그 감동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걸 네가 직접 다 모은 거냐? 참으로 기특하구나.” 고 3때 당시 홍익대박물관장이던 이경성 교수님을 만나 뵈었다. 막연하나마 미술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미술계와 학계, 출판계에 계신 분들에게 무작정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뜻밖에도 이 교수님이 한번 보자고 하셔서 한달음에 달려갔다. 떨리는 가슴을 애써 누르며 큰절을 한 뒤 가방에 싸 간 스크랩북 10권을 보여 드렸다. 교수님은 깜짝 놀라시며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말씀과 함께 등을 두드려 주셨다.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이때의 만남이 나중에 큰 인연으로 이어졌다.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 인사동 전시장을 돌며 자료를 수집하던 시절 동대문도서관에서 월간 ‘전시계’라는 잡지를 알게 됐다. 잡지사에 편지를 보내 일하고 싶다고 했더니 최학천 사장이 전화해서 만나자고 하더라. 지금의 남대문경찰서 인근 초원다방에서 만났는데 대뜸 “잡지 일은 어렵다. 사환으로 심부름도 하면서 취재하러 다녀야 한다. 월급은 따로 없고 교통비 정도만 줄 수 있는데 그래도 하겠느냐”고 물었다. 두말없이 하겠다고 했다. 그때가 1978년이다. 취재해서 기사 쓰고, 미술자료 기획물도 연재하고, 편집일도 배우며 신나게 일했다. 하지만 1980년 언론사 통폐합 바람으로 잡지가 폐간되면서 일자리를 잃게 됐다. -“청소부라도 좋습니다. 미술관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전시계’가 폐간된 뒤 청주에서 누님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도우며 지내던 1981년 이경성 교수님이 정년퇴임하고 민간인으로는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취임하셨다는 기사를 봤다. 당장 편지를 썼다. 관장님은 흔쾌히 나를 받아 주셨다. 당시 미술관 직원은 30명에 불과했다. 전시과, 서무과 2개만 있었고 큐레이터란 직제는 아예 없었다. 나중에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오광수 선생이 그때 전문위원으로 큐레이터 역할을 했는데 전문위원실에 책상 하나를 얻어 자료 수집을 담당했다. 하루 4500원 일당의 임시 일용직이었지만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다. -매주 금요일마다 출근부에 사인한 뒤 인사동, 사간동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모았다. 그전까지 미술관은 보내오는 자료만 수집했는데 그렇게 해선 안 될 것 같았다. 그때 얻은 별명이 ‘금요일의 사나이’다. 한쪽 어깨엔 가방을 메고, 다른 손엔 쇼핑백을 든 채 신문사와 전시장을 쏘다녔다. 화랑 관계자들은 “뭐하러 이걸 가지고 가느냐. 다 보내줄 텐데”라고 의아해했지만 내 눈으로 직접 전시장에 걸린 그림과 도록에 실린 작품을 하나하나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다. 하도 집요하게 파고들다 보니 모 신문사 기자로부터 “편집광적이다”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그런 사소한 오류들이 자꾸 눈에 띄는 걸 어쩌겠나. 한 번 잘못 기록되면 계속 확대재생산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내 신념이었다. 그때 하도 몸을 혹사한 탓인지 2011년 척추에 종양이 생겨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 -정년퇴직 때까지 미술관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1996년 1월 미술관을 그만뒀다. 일한 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응어리가 지더라. 처음 별정직 7급 계약직으로 들어가 8년을 일했는데 그다음에 기능직 10급으로 강등됐다. 미술 잡지에 내가 쓴 미술자료 관련 글이 여럿 소개되고, 신문에도 인용 보도되면서 미술자료 전문가로 인정받았지만 승진은커녕 월급도 오르지 않았다. 당시 아들이 몸이 약해 큰돈이 들어가야 하는 처지였던 데다 좌절감까지 더해져 결국 미술관을 떠나게 됐다. 마침 가나화랑 이호재 사장과 인연이 닿아 자료실장으로 발탁됐다. 5년 10개월 근무하는 동안 ‘가나아트’ 잡지 편집회의에 참석했고, 기획물과 인터뷰 기사를 썼다. 이 사장이 프랑스에서 가져온 미술 정보지 ‘파리스코프’를 견본으로 포켓용 전시회 가이드를 만들기도 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가나에서 독립한 뒤 월간 ‘서울아트가이드’를 내게 됐다. -2001년 12월 직장 생활을 끝내고 마침내 내 이름을 건 ‘김달진미술연구소’를 열었다. 이듬해 1월에는 월간 ‘서울아트가이드’를 창간했고, 그해 9월 미술정보 포털 사이트 ‘달진닷컴’도 오픈했다. 그리고 2008년 40여년 가까이 수집한 자료들을 한곳에 모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개관했다. 각종 희귀 자료와 기증 자료, 단행본, 정기간행물, 학회 자료 등이 하루가 다르게 쌓이면서 공간은 점점 부족해졌다. 평창동, 통의동, 창성동, 창전동 등지를 옮겨 다니며 전월세 생활을 한 끝에 지난해 3월 상명대 입구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오래된 건물을 매입해 박물관 겸 사옥을 마련했다. 건물 사느라 은행에 빚을 많이 졌는데 건축가 김원이 재능 기부로 리모델링을 맡아 준 덕에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미술자료를 수집·정리하면서 기록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잡지 미술 연재물 기록을 시작으로, 미술단체카드, 미술인명카드, 주제별 미술기사 색인 카드 등을 정리했다. 1980~90년대 중반까지 내가 발표한 글이 신문에 자주 인용 보도되면서 ‘자료 하면 김달진’이란 인식이 서서히 자리잡았다. 평론가를 비롯해 이런 글을 쓴 사람이 없었다. 특히 미술자료 기록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선미술’ 1985년 겨울호에 쓴 ‘관람객은 속고 있다-정확한 기록과 자료 보존을 위한 제언’이란 글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자료의 힘이랄까, 자료의 활용도와 중요성을 널리 알린 게 나의 공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미술인 하면 창작 활동을 하는 작가만을 생각하지만 나는 비창작 미술인인 미술평론가, 미술사가, 큐레이터, 미술행정가, 작품 보존 및 수복전문가 등에 대한 기록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울아트가이드’ 미술계 인명록에 이런 인물에 관한 내용을 수집해 꾸준히 연재했다. 그리고 이를 보완해 2010년 ‘대한민국미술인 인명록 1’을 발간했다. 조선시대 초상화가 채용신부터 1850년 이후 태어난 4900명을 실었다. 정부 예산을 지원받아 1000부를 비매품으로 찍었는데 이 책을 보고 “우리 할아버지가 화가였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이 책에 약력이 실려 있어 깜짝 놀랐다. 가보로 삼겠다”는 반응을 들었을 때 가장 뿌듯했다. 밤하늘 별 중에 왜 일등별만 기억해야 하느냐. 이등별, 삼등별 자료도 남겨야 우리 미술계가 풍부해진다. 인명록에 숫자 1을 붙인 건 언젠가 2권을 꼭 만들겠다는 나의 다짐이다. 현재 달진닷컴에서 7800명의 미술인이 검색되니 곧 나오지 않을까 싶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 왔으니 후회는 없다.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크다. 아내(최명자씨)는 전시계에서 일할 때 같이 근무한 동료였는데 책을 좋아하고, 서예가 취미인 점 등이 나와 잘 맞았다. 박봉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할 때 아내가 아침마다 신문 배달하고, 우유 배달해서 살림에 보탰다. 직장이든 집이든 자료에만 매달려 있다 보니 아이들과 놀아 준 기억이 별로 없다. 아이들이 어릴 때 관악구 남현동의 오래된 예술인 마을에 살았는데 자료를 놓아 둘 데가 없어서 라면 박스와 사과 박스에 담아서 안방에 침대 매트리스처럼 깔아 놓고 그 위에서 잤다. 어느 날 무게를 못 이겨 마룻바닥이 휜 것을 본 주인이 방을 빼라고 하더라. 할 수 없이 앞집의 빈 지하실을 얻어서 자료를 옮겼는데 여름 장마철에 습기가 차서 자료를 몽땅 버려야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라 기억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언젠가 그때 얘기를 하는 걸 듣고 마음이 아팠다. 딸 영나(32)와 아들 정현(29)은 지금 나와 함께 일하고 있다. 딸은 대학에서 만화창작을 전공했고, 아들은 미술경영학을 공부했다. 일부러 시킨 건 아닌데 자기들이 스스로 아빠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고 대를 잇겠다고 하더라. 미술계 지인들이 다 부러워한다. 아내도 서울아트가이드 발행인을 맡고 있다. -2013년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를 창립했다. 전시, 학술, 뮤지엄 분과로 나뉘어 있고 3권의 자료집을 발간했다. 라키비움(라이브러리+아카이브+뮤지엄) 강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우환, 천경자 화백의 위작 논란 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작품 이력과 같은 객관적 정보들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가 비엔날레 같은 대형 전시 등 눈에 보이는 지원에만 신경쓰지 말고 자료 수집과 보존, 디지털화, 공공 수장고 확보 등 미술계 토양을 튼튼히 하는 인프라에 좀더 지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신 일도 많으시지만 하실 일도 많으십니다.” 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2005년 11월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국내 미술계가 직면한 한국 미술의 정체성 문제, 미술계 위작 시비, 미술시장 활성화, 한국 미술의 해외 진출 등 많은 문제들의 단초가 오늘 내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작은 전시 리플릿 한 장, 메모 한 줄에 담겨 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30년 전 ‘관람객은 속고 있다’에 쓴 글 “오늘의 정확한 기록이 내일의 정확한 역사로 남는다”는 신념은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순녀 문화부장 coral@seoul.co.kr ■미술자료전문가 김달진 관장 46년간 한국 근현대 미술자료 수집과 보존, 연구에 매진해 온 자타공인 국내 미술자료 전문가 1호다. 미술계 안팎에선 오래전부터 ‘걸어다니는 미술사전’, ‘미술계 인간 자료실’로 통했다. 취미를 직업으로 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전문 분야를 개척해 온 그는 스스로를 “한국 근현대 미술의 기록과 공유를 지향하는 아키비스트(기록관리자)”라고 부른다. 2013년부터 라키비움 프로젝트를 통해 아키비스트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1955년 충북 옥천 출생 ▲서울과학기술대 금속공예과 졸업(1993),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화예술학과 졸업(1999) ▲월간 전시계(1978~1981),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1981~1996), 가나아트센터 자료실장(1996~2001) ▲2001년 김달진미술연구소 개관 ▲2002년 월간 서울아트가이드 창간 ▲2008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개관 ▲2013년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 창립 및 협회장, 한국박물관협회 홍보위원장, 서울시박물관협의회 이사, 종로구사립박물관협의회 회장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대통령상(2010), 한국미술저작출판상(2014), 홍진기창조인상(2016)
  • 의학계 계관시인 올리버 색스 1주기…헌시와 사진으로 그를 추모하다

    의학계 계관시인 올리버 색스 1주기…헌시와 사진으로 그를 추모하다

    ‘완전하지 않은 것들이 질주하는 고속도로에서/누군가 기다린다면/절뚝이는 사람 곁에서 함께/절뚝이고 있다면/당신은 인생을 다 사용하고 책 속으로/사라진 사람//고맙습니다’(박연준 ‘완전하지 않은 것들이 달리는 고속도로’ 중) 올리버 색스는 안구 흑색종으로 지난해 8월 30일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저술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정신질환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깨는 다양한 저서를 남긴 신경의학자이자 의학계의 계관시인으로 불린다. 색스의 1주기를 앞두고 그의 대표작인 ‘편두통’(1970), ‘깨어남’(1973), ‘뮤지코필리아’(2007) 등 3편이 특별한정판으로 나왔다. 박연준·유진목·황인찬 등 국내 시인 3명이 책 첫머리에 헌시를 썼고, 사진작가 김중만이 표지 사진을 보탰다. 책은 각각 300부만 찍었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영화·연극·문학에 큰 영감을 줬지만 유독 국내에서는 과학 서적의 베스트셀러 자리에만 머물렀다. 특별한정판은 그의 진가를 재평가하고, 책을 통해 그를 되살려 내는 작업으로 읽힌다. 3명의 시인이 그의 타계 1주년에 맞춰 헌시를 바친 이유는 무엇일까. 시는 색스에게 특별한 존재다. 공감과 경청이라는 휴머니티가 바로 시에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인생 최고의 시로 선택한 게 톰 건의 ‘온 더 무브’였고, 이는 색스가 죽기 직전 남긴 마지막 자서전 제목이기도 하다. 책을 펴낸 출판공동체 알마는 “수십년간 1000권이 넘는 공책에 일지와 단상, 에세이를 쓴 색스가 평생 가슴에 품었던 예술은 시였다”고 그를 기렸다. 그의 삶은 시집 제목처럼 ‘멈추지 않는 삶’이었다. 알마는 17일부터 19일까지 서울 마포구 서교동 땡스북스에서 ‘올리버 색스:나의 생애’라는 이름으로 추모 전시회를 연다. 소설가 손보미, 번역가 김명남, 영화평론가 심영섭 등이 색스에게 보내는 편지를 담은 소책자도 발간됐다. 30일에는 같은 곳에서 헌시와 그의 에세이 ‘고맙습니다’를 낭독하는 추모의 밤 행사가 열린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의학계의 계관시인’ 올리버 색스 타계 1주기 추모전

    ‘의학계의 계관시인’ 올리버 색스 타계 1주기 추모전

     ‘완전하지 않은 것들이 질주하는 고속도로에서/누군가 기다린다면/절뚝이는 사람 곁에서 함께/절뚝이고 있다면/당신은 인생을 다 사용하고 책 속으로/사라진 사람//고맙습니다’(박연준 ‘완전하지 않은 것들이 달리는 고속도로’ 중)  올리버 색스는 안구 흑색종으로 지난해 8월 30일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저술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정신질환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깨는 다양한 저서를 남긴 신경의학자이자 의학계의 계관시인으로 불린다.  색스의 1주기를 앞두고 그의 대표작인 ‘편두통’(1970), ‘깨어남’(1973), ‘뮤지코필리아’(2007) 등 3편이 특별한정판으로 나왔다. 박연준·유진목·황인찬 등 국내 시인 3명이 책 첫머리에 헌시를 썼고, 사진작가 김중만이 표지 사진을 보탰다. 책은 각각 300부만 찍었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영화·연극·문학에 큰 영감을 줬지만 유독 국내에서는 과학 서적의 베스트셀러 자리에만 머물렀다. 특별한정판은 그의 진가를 재평가하고, 책을 통해 그를 되살려 내는 작업으로 읽힌다. 3명의 시인이 그의 타계 1주년에 맞춰 헌시를 바친 이유는 무엇일까. 시는 색스에게 특별한 존재다. 공감과 경청이라는 휴머니티가 바로 시에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인생 최고의 시로 선택한 게 톰 건의 ‘온 더 무브’였고, 이는 색스가 죽기 직전 남긴 마지막 자서전 제목이기도 하다. 책을 펴낸 출판공동체 알마는 “수십년간 1000권이 넘는 공책에 일지와 단상, 에세이를 쓴 색스가 평생 가슴에 품었던 예술은 시였다”고 그를 기렸다. 그의 삶은 시집 제목처럼 ‘멈추지 않는 삶’이었다.  알마는 17일부터 19일까지 서울 마포구 서교동 땡스북스에서 ‘올리버 색스:나의 생애’라는 이름으로 추모 전시회를 연다. 소설가 손보미, 번역가 김명남, 영화평론가 심영섭 등이 색스에게 보내는 편지를 담은 소책자도 발간됐다. 오는 30일에는 같은 곳에서 헌시와 그의 에세이 ‘고맙습니다’를 낭독하는 추모의 밤 행사가 열린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내마음의 꽃비’ 나해령, 친모 임채원과 극적 재회 “바로 눈앞에 두고..”

    ‘내마음의 꽃비’ 나해령, 친모 임채원과 극적 재회 “바로 눈앞에 두고..”

    ‘내마음의 꽃비’ 나해령이 미국으로 떠나려는 친모 임채원과 극적으로 재회했다. 17일 방송된 KBS2 ‘TV소설 내 마음의 꽃비’ 117회에서는 정꽃님(나해령 분)이 서연희(임채원 분)와 다시 만나 모녀 관계임을 확인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서 오춘심(백현주 분)은 꽃님에게 “아줌마가 네 친엄마”라고 고백했다. 당황하는 꽃님에게 오춘심은 “너 주워온 것을 벌써 알고 있었다면서”라면서 “네 엄마 떠나기 전에얼른 가서 잡으라”고 말했다. 이에 꽃님은 눈물을 글썽이며 떠난 연희를 찾아나섰다. 이때 버스정류장에서 꽃님이 선물한 편지를 읽던 연희는 “저도 주워왔대요”라면서 자신을 헛간에서 주워왔다고 하는 대목을 읽고 꽃님이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연희는 버스정류장에서 급하게 돌아갔고, 정류장 쪽으로 달려가던 꽃님과 마주쳤다. 꽃님을 발견하게 된 연희는 “꽃님아”라며 눈물을 흘렸고, 꽃님은 “아줌마”라며 역시 눈물을 흘렸다. 이에 연희는 “너 혹시”라고 말했고, 꽃님은 맞다고 말했다. 이에 연희는 “선아야”라며 꽃님을 불렀고, 꽃님 역시 “엄마”라면서 감격을 숨기지 못했다. 연희는 “왜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못알아보고. 그동안 그렇게 찾았는데도. 바로 눈 앞에 두고”라면서 “그래 내 딸, 얼굴 좀 보자”라며 깜짝 놀랐다. 꽃님은 “엄마”만 불렀고, 연희는 “선아야, 내새끼. 이렇게 살아있어줘서 고마워.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줘서”라며 감격을 숨기지 못했다. 이후 꽃님, 연희는 버려진 꽃님을 키워온 춘심을 찾아갔다. 춘심은 “꽃님이를 놓기 싫어 사실을 늦게 알렸다”고 자책하며 둘에게 진심어린 축하를 건넸다. 사진=‘내마음의 꽃비’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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