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편지
    2026-08-10
    검색기록 지우기
  • 충남
    2026-08-10
    검색기록 지우기
  • 재검
    2026-08-10
    검색기록 지우기
  • 수영
    2026-08-10
    검색기록 지우기
  • 승진
    2026-08-1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7,238
  • ‘우리가 남이가’ 박나래 “권진영, 무명시절 유일하게 손 내밀어준 선배”

    ‘우리가 남이가’ 박나래 “권진영, 무명시절 유일하게 손 내밀어준 선배”

    ‘우리가 남이가’ 박나래가 선배 코미디언 권진영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26일 방송된 tvN ‘우리가 남이가’에는 코미디언 박나래가 출연했다. 이날 박나래는 무명시절, 힘들었던 자신을 챙겨준 선배 권진영에게 직접 도시락을 선물하기 위해 집밥 요리를 준비했다. 박나래는 “내가 무명이 길었다. (도시락을 드릴 분은)도움을 많이 주셨던 분”이라며 “잘 되고 나서 보답을 했어야 했는데 못 했다. 나래바에 초대 한 번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할머니가 직접 담가주신 묵은지와 벌교에서 공수한 꼬막, 한우, 장어 등 재료들을 준비, 전라도 밥상을 뚝딱 차렸다. 정성을 담아 만든 음식은 코미디언 권진영에게 전해졌다.박나래는 “(권진영은) 고마운 분이다. 당시 일이 있어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하다. 선배님 사랑에 보답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어 “어린 나이에 코미디언이 돼 들어왔을 때, 너무 힘들고 외롭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모두가 나와 코너를 하지 않으려고 했을 때, 선배님이 함께 코너를 짜보자고 먼저 손 내밀어 주고 힘이 돼주셨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에 권진영은 영상편지를 통해“우리 만나면 폭식 한 번 하자”라며 “두번째 이야기 한다. 이번에 안 만나면 삼진아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요즘 네가 제일 웃기다”며 후배 박나래에 대한 응원도 잊지 않았다. 한편 ‘우리가 남이가’는 특정 인물에게 도시락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배달하고, 이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사진=tvN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淸, 국경 획정에 조선 대표 배제해 역관이 참석… 백두산에 정계비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淸, 국경 획정에 조선 대표 배제해 역관이 참석… 백두산에 정계비

    300여년 전인 숙종 38년(1712) 조선과 청 사이에 국경 분쟁이 발생했다. 압록강변 위원군에서 조선인과 청인 사이에 살인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청나라 건륭제(乾隆帝)는 오라총관(烏喇總管) 목극등(穆克登)을 보내 두 나라의 경계를 확정 짓게 했다. 숙종은 조상들의 산소 이장 문제로 원주에 가 있던 박권(朴權·1658~1715)을 접반사(接伴使)로 삼아 함경감사 이선부(李善溥)와 함께 국경을 획정하게 했다. 그러나 박권, 이선부 등은 목극등이 늙었다면서 따라오지 말라고 하자 주저앉았고 중인 역관 김경문(金慶門) 등만 따라갔다. 조선의 공식대표 없이 역관만 참석해 세운 것이 ‘백두산정계비’(이하 정계비)다.사헌부 장령 구만리(具萬里)가 “경계를 정하는 막중한 일”을 소홀히 했다면서 박권, 이선부의 파직을 요청한 것은 당연했다. 정계비는 “서쪽은 압록이 되고, 동쪽은 토문(土門)이 되니 강이 나뉘는 고개 위(分水嶺上)의 돌에 새겨 기록한다”는 내용인데, 토문이 어느 강인가를 두고 지금껏 논쟁 중이다. 중국의 주장대로 토문이 두만강이면 간도땅이 중국령이 되는 반면, 한국의 오랜 주장대로 토문강이 만주를 흐르는 송화강 지류라면 간도가 한국령이 되기 때문이다. ●경기도 교육청 자료집 사건 2012년 6월 경기도교육청 소속 교사 17명이 ‘동북아 평화를 꿈꾸다’라는 자료집(이하 ‘자료집’)을 발간했다. 그러자 같은 해 9월 6일 동북아역사재단이 ‘경기도 교육청 발간 자료집 검토 내용 송부’라는 공문을 교육부에 보냈다. 공문으로 보냈다는 것은 동북아역사재단(이하 동북아재단)의 공식 견해라는 뜻이다. 재단은 “(‘자료집’의) 고조선과 간도문제에 대한 서술 내용 중 일방적 주장이나 사실적 오류가 상당수 발견돼 이에 대한 보완 또는 수정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고 주장했다. ‘자료집’의 어떤 내용이 ‘사실적 오류’라는 것일까? “(‘자료집’은) 백두산정계비의 토문강을 중국 측에서는 두만강으로, 조선 측에서는 송화강의 지류로 인식했다고 서술하고 있음. 그러나 백두산정계비 건립 당시 청 측과 조선 측 모두 토문강과 두만강이 같은 강이라고 인식하였으며, 토문강과 두만강이 다른 강이라는 인식은 18세기 후반에 제기됨. 따라서 백두산정계비의 토문강이 송화강이라는 인식에 근거하여 한·중 영토 문제를 제기하는 ‘자료집’의 간도문제 서술은 전반적으로 수정될 필요가 있음.”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 평화를 꿈꾸다’에 대한 분석)‘자료집’에서 토문강이 만주를 흐르는 송화강의 지류라고 말했는데, 두만강이 맞다는 것이다. 흡사 중국 동북공정 소조에서 보낸 항의문 같지만 중요한 것은 동북아재단이 중국의 항의를 받고 보낸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보낸 공문이라는 점이다. 그럼 비를 세울 당시 청나라와 조선이 모두 토문강을 두만강으로 인식했다는 동북아재단의 주장은 사실일까? ●왜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웠나? 정계비 건립 소식이 전해지자 조선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비판론이 고조됐다. 조선과 명 사이에 맺은 공식 국경선, 즉 윤관이 ‘고려지경’(高麗之境)이라는 비석을 세운 두만강 북쪽 700리 공험진 선춘령에 세웠어야지 왜 백두산에 세웠느냐는 비판이다. 정계비를 세울 때 생존했던 성호 이익(李瀷·1681~1763)은 ‘윤관비’(尹瓘碑)에서 ‘목극등이 와서 정계비를 정할 때 왜 서희가 소손녕에게 윤관의 비를 가지고 따진 것처럼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역사학자였던 순암 안정복(安鼎福·1712~1791)은 ‘이가환에게 보낸 편지’에서, 정계비는 “분계강(分界江)을 한계로 삼아서…두 나라의 국경을 삼았습니다…그 강은 두만강 북쪽 300여리에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두만강 북쪽 300리만 국경으로 삼아 그 북쪽 400리 땅을 버렸다는 비판이다. 규장각 검서관이었던 성해응(成海應·1760~1849)은 ‘목극등 정계비 발(跋)’에서 “토문강은 두만강이 아니다. 강 북쪽의 여러 강을 왕왕 토문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토문과 두만이 다르다는 것이다. 성해응은 또, ‘공험진 변(辨)’에서 “‘금사’(金史) 및 청나라 사람들이 그린 지도를 보니 두만강 북쪽과 수빈강(현 수분하) 남쪽을 토문강이라고 통칭했다”고 말했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조 때부터 줄곧 두만강으로만 표기하다가 숙종 18년(1692)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찬선 이현일(李玄逸)의 상소문에 토문(土門)이 처음 등장하는데, 두만과 토문을 달리 표기하고 있다. 순조 8년(1808)에 편찬한 ‘만기요람’(萬機要覽)은 ‘백두산정계’조에서 “‘여지도’(輿地圖)에 분계강(分界江)이 토문강의 북쪽에 있다 했으니 정계비는 당연히 여기에 세웠어야 한다. 또 비문에 이미 동쪽은 토문강이 된다고 했으면 토문강의 발원지에 세워야 했다.”라고 비판했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백두산정계비를 두만강 북쪽 700리 선춘령에 세우지 않은 것을 비판하고 토문강은 두만강 북쪽이라고 생각했다. ●간도는 무조건 중국 것이라는 재단 어느 나라 국가기관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동북아재단의 주장은 이뿐만이 아니다. “(‘자료집’은) 간도협약이 사실상 무효이고 간도는 한국의 영토임을 증명하기 위해 백두산정계비를 국제법상 유효한 국경조약으로 서술하고 있음. 그러나 백두산정계비가 건립된 시기는 국제법적 인식이 등장하기 이전이기 때문에 국제법적 기준을 바로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함.”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 평화를 꿈꾸다’에 대한 분석) 일제가 청과 맺은 간도협약과 조선이 청과 맺은 백두산정계비 중 간도협약만 국제법상 유효라는 주장이다. 일제는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은 후 간도파출소를 설치해 간도를 관할하다가 1909년 9월 남만주 철도 부설권과 무순(撫順)탄광 채굴권을 얻는 대가로 간도협약을 맺어 간도를 청나라에 넘겨줬다. 청나라가 철도부설권 등을 주고 간도영유권을 샀다는 것은 청나라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제가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후 맺은 불법조약이니 당연히 무효다. 그런데도 동북아재단은 거꾸로 정계비는 무효이고 간도협약이 국제법상 유효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송화강의 여러 지류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일도백하, 이도백하… 식으로 분류하는데, 오도백하가 토문강이다. 이 사실은 일제 간도파출소에서 작성한 지도에서도 명백하다. 그러나 동북아재단은 일제가 청과 맺은 간도협약만 국제법적으로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데 대한민국 국민들의 피 같은 세금을 쓴다. ●대한제국에서 파견한 북간도관리사 고종 20년(1883) 서북경략사(西北經略使) 어윤중(魚允中)은 함경도 종성 사람 김우식(金禹軾)과 백두산정계비를 조사하고 청나라 돈화(敦化)현에 ‘토문강과 분계강 이남 강토에 대한 옛 지도 모사본과 새 지도’ 등을 보내면서 간도가 누구 소유인지 공동조사하자고 요청했다. 청나라는 꼬리를 내리고 회피했다. 토문강이 송화강의 지류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고종 22년(1885)에는 외교를 총괄하는 독판교섭통상사무(督辦交涉通商事務) 김윤식(金允植)이 청나라 총리 원세개(袁世凱)에게 공문서를 보내, ‘토문강은 두만강 이북의 강’이라고 주장했다. 이때는 청나라가 대원군을 납치해 간 임오군란(1882) 이후로서 청나라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때였는데도 이런 주장을 한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광무(光武) 7년(1903·고종 40)에는 의정부 참정 김규홍(金奎弘)이 고종에게 ‘백두산정계비’를 세운 이후 “토문강 이남 구역은 우리나라 경계로 확정됐다”면서 간도시찰관 이범윤(李範允)을 북간도 관리에 임명하자고 주청했다. 대한제국은 이범윤을 북간도 관리(管理)로 임명해 간도에 상주시켰고, 간도 백성들은 대한제국에 세금을 납부했다. 그로부터 6년 후인 1909년에 일제가 간도협약으로 몰래 팔아먹은 것이다. 남북이 분단된 지금 중국에 간도를 돌려달라고 공식 제기할 상황은 아니지만 간도에 대한 역사주권만은 확고하게 정립해서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 설립 이후 지금까지 늘 중국과 일본의 입장만 대변해 온 동북아역사재단을 국민들의 상식적인 역사관에 맞게 처리하는 일이 그 첫 단추가 될 것이다.
  • 박범계 “BBK 방어팀장 자처한 홍준표, 중대 범죄일 수 있다”

    박범계 “BBK 방어팀장 자처한 홍준표, 중대 범죄일 수 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이 과거 ‘BBK 방어팀장을 맡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게 했다’라고 말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발언을 지적했다.박범계 수석대변인은 26일 오전 YTN 라디오 ‘출발 새아침’을 통해 “저렇게 자신만만할 게 아니다. 정치공작에 가까운 사안이어서 중대 범죄일 수 있다”면서 “홍준표 대표가 공소시효가 끝났으니 처벌 못 할 것이란 자신감에 자신만만하지만 처벌해야 할 중대한 공익이 있으면 공소시효 이론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홍 대표는 지난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2007년 12월 대선 때 BBK사건 방어팀장을 맡아 대통령이 되게 했다. 이 전 대통령은 정치도 사업처럼 생각한 사람으로 트럼프 같은 사람”이라는 글을 썼다. 박 수석대변인은 “홍 대표는 2007년 대선 일주일 전, 소위 가짜편지를 흔들었다. 일부러. 그것은 민주당이 김경준을 기획 입국시켰다는 거짓말이 들어 있는 편지다. 2011년 김경준이 아니라 신명이라는 사람이 쓴 가짜편지로 밝혀졌다”고 설명했다.이어 “홍준표 대표가 공소시효가 다 지난 것 아니냐는 자신만만함으로 ‘내가 방어했다”고 하는데 우리 국민은 역린을 건드려서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소권을 행사할 수 없는 법적ㆍ제도적 장애가 있었다거나, 또는 처벌해야 할 중대한 공익이 있는 경우에는 소위 공소시효 이론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이론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해외에서 온 편지] 일상이 된 유니버설 디자인…장애도 국적도 품었다

    [해외에서 온 편지] 일상이 된 유니버설 디자인…장애도 국적도 품었다

    필자가 머물고 있는 샌디에이고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서해안 남쪽 끝에 있다. 기후가 일년 내내 따뜻하고 쾌적해 은퇴한 노령층이 선호하는 곳이다. 수십년 전에는 해군 기지가 있는 시골 도시였으나, 지금은 퀄컴, 소크연구소,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캠퍼스(UCSD) 등 정보통신과 생명과학 분야 선두 기업, 연구소, 대학을 갖춰 세계 각지에서 인재들이 모이고 있다.# 스타트업 중심이자 배려의 도시 美샌디에이고 2014년 경제지 포브스는 스타트업을 창업하기에 가장 좋은 도시로 샌디에이고를 선정했다. 2017년 미국상공회의소는 혁신을 선도하는 중심지로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필리델피아에 이어 네 번째로 꼽았다. 필자는 지난해 12월부터 이곳의 한 스타트업에서 우리 정부의 연구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항상 느낀다. 공공도서관, 대형 매장, 놀이동산 등 어디를 가든 휠체어를 타고 온 사람들이 많다. 노약자가 느리게 행동해도 독촉하지 않고, 영어에 서투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며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하는 것을 자주 본다.보행 장애를 예로 들면, 어느 주차장이든 가장 편한 곳에 장애인 주차 공간이 있고, 거기서 매장 입구까지 휠체어를 위한 파란색 횡단보도가 그려져 있다. 대형 할인점이 준비한 전동 카트를 빌려 매장 안을 다니며 물건을 살 수 있다. 필자가 사는 동네의 시립도서관에서는 출입문 가까운 벽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문이 천천히 열려 휠체어를 타고도 쉽게 들어갈 수 있다. 외국인 이주자가 사회보장카드를 신청하러 사회보장국을 방문하면, 입구에서 통역 안내 포스터를 볼 수 있다. 미리 전화로 요청하면 통역 요원이 대기해 도와준다는 내용을 아랍어, 한국어, 베트남어 등 19개 언어로 안내하고 있다. 20번째 언어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 통역 서비스로 음성통화 대신 문자메시지로 신청하는 방법(TTY)이 적혀 있다. 집을 며칠 비워서 받지 못한 소포를 받으러 우편 물류센터에 가보니, 그곳에도 청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차량국(DMV)에 전화로 문의할 때 담당자에게 한국어 서비스를 요청하면, 통역 요원과 3자 통화로 편하게 상담할 수 있다고 한다. 운전면허 필기시험은 이제 종이 시험지 대신 터치 스크린 방식이다. 시험장 모니터 화면에서 신청자가 영어, 스페인어, 한국어 등 10개가 넘는 언어 중 원하는 것을 고르면, 시험문제가 그 언어로 나온다. 시립도서관에서는 외국인 방문자의 문의에 대해 직원이 모니터에 구글 번역기를 띄우고 필담을 나누는 것도 봤다.# 고령화·다문화 제도 개선, 결국은 경쟁력 될 것 우리는 누구나 나이가 든다. 이미 장애가 있거나,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가질지도 모른다. 여행을 하며 언어 장벽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노약자거나 장애인이거나 현지 언어에 서투르기 때문에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되면 어쩌나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축복이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형평을 기하자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 그만한 비용을 들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마도 서로 다른 의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회안전망을 갖추려는 노력이 미국에서는 1964년 민권법, 1990년 장애인법 등의 제정을 통해 강제성을 확보했다. 문턱, 통로의 폭, 계산대 높이 등에 대한 구체적인 세부 기준도 마련했다. 이를 어긴 곳은 소송에 휘말렸고, 상당한 비용을 들여 많은 시설과 서비스가 빠른 속도로 개선됐다. 우리나라는 지난해에 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외국인이 176만명인 다문화 사회가 됐다. 장애인이 251만명이고,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 하지만 일상에서 접하는 환경과 서비스 곳곳에서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만약 노약자, 장애인, 외국인 등을 위해 각종 시설과 서비스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우리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진다면, 그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이 새롭게 성장하고, 양질의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질 것이다.
  • [김응교 교수-작가의 탄생] 한 명의 독자 위한 성찰의 편지… 고흐의 ‘뿌리 깊은 고뇌’ 담겼네

    [김응교 교수-작가의 탄생] 한 명의 독자 위한 성찰의 편지… 고흐의 ‘뿌리 깊은 고뇌’ 담겼네

    알다 이전에 ‘본다’가 있다. 쓰다 이전에 ‘본다’가 있다. 세상을 바로 보는 시선은 너무도 중요하다. 김수영은 “이제 나는 바로 보마”(공자의 생활난)라며 ‘보다’라는 행동을 강조했다. 작가란 대상의 본질을 보는 사람이다. 보는 시선에 따라 표현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본다’라는 동사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낸 작가를 떠올리면 단연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떠올릴 수 있다.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거나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야. 사람들이 내 그림에 대해, 화가가 깊이 날카롭게 느끼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어. (1882년 7월 21일 / 반 고흐, 신성림 옮김,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예담, 2005) 고흐는 자신이 본 풍경을 ‘뿌리 깊은 고뇌’로 새롭게 표현하고 싶어 했다. 그의 고뇌는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써 있다. 그의 편지에는 자연과 종교를 대하는 태도, 안부를 묻는 내용이 가득하다. 에밀 졸라, 도스토옙스키 등 소설가에 대한 평과 렘브란트, 밀레 등 화가에 대한 간단한 인상주의 비평문도 들어 있다. 그는 화가이지만 ‘편지문학 작가’로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일기는 자기만 읽는 글이지만, 편지는 한 명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독특한 문학 장르다. 한 명을 독자로 삼는 편지는 일기 못지않게 속내를 드러내는 솔직한 글이다. “그래,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그로 인해 내 이성은 반쯤 망가져버렸지. 그런 건 좋다.”(1890년 7월) 당찬 다짐이 들어 있는 편지글은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열정을 느끼게 한다. 그림에 “생명을 걸었다”는 속내는 일기처럼 편지글에서도 드러난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맘대로 써도 되는 일기와 달리, 편지는 한 명의 독자를 위해 성찰하며 이야기를 정리해 보내야 한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 ‘가난한 사람들’(1946) 등은 편지문학의 대표작이랄 수 있겠다. 편지작가인 고흐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뿌리 깊은 고뇌’였다. 영어로는 6권, 일본어로는 3권짜리 고흐 서간문 전집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말로 고흐 편지 전체가 번역된 적은 없다.●고흐가 본 시엔 한 통계를 보면 미술관에 걸린 누드화의 85%가 여성 누드라고 한다. 누드를 주문하는 자도 남자요, 그림을 그리고 만든 이도 남자였다. 천사처럼 성스러운 존재만을 누드로 그렸던 미술사를 에두아르 마네가 ‘풀밭 위의 점심식사’(1863)를 그려 흔들어 놓았다. 벌거벗은 여성 곁에서 넥타이에 정장을 갖춘 두 사내가 편안히 정담을 나누는 상황은 황당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누드의 여성은 그림 밖의 관람자를 태연하게 응시한다. 마네의 ‘올랭피아’(1865)는 더 도발적이다. 흑인 여성을 배경으로 하는 백인 여성의 흰 살은 조금은 외설적이다. 슬리퍼, 보석, 머리의 꽃 장식을 보자. 흑인 하녀가 든 향기로운 꽃다발은 누가 선물로 보냈을까. 고흐도 누드를 그렸다. 다만 고민 없이 혹은 그림을 팔려는 의도에서 그린 누드와 다르다. 고흐는 여성의 성적인 육체보다는 여성이 견딘 ‘뿌리 깊은 고뇌’를 그리려 했다. 고흐의 편지를 읽으면, 여성을 대하는 그를 화가로서뿐만 아니라 작가로서도 충분히 평가할 수밖에 없다. “지난겨울, 임신한 여인을 알게 되었어. 남자에게 버림받은 데다 그 남자의 아이를 배고 있었지. 겨울에 길을 헤매는 임신한 여자가 빵을 얻으려면 어떻게 했을지 너는 알겠지. 나는 그녀를 모델로 삼아 겨울 내내 그녀와 함께 일했어. 나는 그녀에게 모델료를 충분히 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방세는 내 주었어. 그리고 다행히도 빵을 그녀에게 나누어 주어 그녀와 아기를 굶주림과 추위로부터 지켜주었어. … 그녀와 결혼하는 것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 결혼은 그녀를 구제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다시 가난해지고, 과거의 구렁텅이로 내몰리는 생활로 돌아가야 해.”(1882년 5월 3~12일)매독에 걸린 채 임신해 있고, 딸까지 데리고 있는 세 살 연상 매춘부 시엔과 고흐는 1년 넘게 함께 살았다. 그녀 때문에 목사인 아버지는 고흐에게 다시는 오지 말라고 야단쳤다. 친척이자 존경하던 스승이었던 안톤 모베도 인연을 끊었다. 시엔을 모델로 그린 ‘슬픔’(1882)에서 고흐의 ‘뿌리 깊은 고뇌’를 만날 수 있다. 우키요에(일본 에도시대 화풍)의 영향을 받았으나 외설적이거나 에로틱한 면이 없다. 오히려 힘없이 헝클어진 머리카락, 볼품없이 나온 뱃살이 지저분하고 추한 느낌마저 든다. 앞서 본 마네의 여인들은 팽팽한 곡선, 탐스러운 머리칼, 풍요한 젖가슴을 갖고 있지만, ‘슬픔’에 앉아 있는 시엔은 전혀 반대다. 모든 것을 잃었다는 박탈감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고흐는 37년을 살면서 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슬픔’은 고흐 개인사를 넘어 여성의 누드를 ‘슬픔’으로 보는 전복적인 작품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그린 것 중 최고”라고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말했다. “나 같은 사람은 정말이지 아파서는 안 된다. …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싶으니까. ‘슬픔’은 그 작은 시작이다.”(1882년 7월 21일) 그가 편지에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바람을 뚜렷하게 나타낸다. 시엔은 60여점의 데생과 수채화를 위한 모델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르나, 시엔을 그린 ‘슬픔’은 여성을 보는 전혀 다른 세계를 제시했다.●감자 먹는 사람들… 빈자의 성찬식 솔직히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어두컴컴하고 지저분한 느낌 외에 달리 감흥은 없었다. 이상하게도 보면 볼수록 그 분위기에 점점 빠져들어 갔다. 집안은 온통 어둡고 감자가 놓인 테이블에만 빛이 모여 있다. 초라한 식탁에 등만 보이는 소녀 앞에 찐 감자의 김이 금빛으로 오르고 있다. 당시 유럽에서 감자는 가난한 사람들의 주식이었다. 왼편에 그려진 광대뼈가 나온 사내는 거칠게 살아온 황소를 닮았다. 고흐는 왼쪽 사내의 손을 가장 공들여 그렸다고 편지에 썼다.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 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 언젠가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진정한 농촌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1885년 4월 30일 편지) 이 작품을 위해 고흐는 고향 누에넨에서 겨울을 보내며 농부들의 초상화 40여점을 그렸다. 고흐는 이 작품을 오랜 친구인 반 라파르트에게도 석판화로 보냈다. 걸작을 제작했다는 확신 때문에 고흐는 라파르트의 부정적인 반응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라파르트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예술의 규범을 모두 훼손했다고 생각했다. 굴하지 않고 고흐는 이 작품을 자신이 그린 그림 중에 가장 독창적이고 뛰어난 작품이라고 테오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아주 좋은 작품이 되리라 믿는다. … 너도 이 그림이 독창적이라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다.”(1885년 4월 30일) 인도 콜카타에서 태어난 가야트리 스피박 교수는 돈도 없고 배운 것이 없어 자신들의 아픔을 표현할 줄 모르는 이들을 하위주체, 즉 서벌턴(Subaltern)이라고 명명했다. 이들은 왜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까. 스피박 교수는 구조적 문제에 주목하라고 요구한다. 고흐의 그림은 스피박의 서벌턴 이론에 호응한다. 고흐의 ‘슬픔’에 나오는 창녀 시엔이나 ‘감자 먹는 사람들’에 나오는 가난한 가족은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서벌턴들이다. 탄광 지역 보리나주에서 썼던 그의 편지를 읽으면 빈자에 대한 심려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예수 그리스도는 괴로운 생활을 보내는 노동자에게 힘을 주고 위로하며 계몽할 수 있는 주님이기 때문이라고. 왜냐하면 그 자신이야말로 우리의 병을 안 위대한 슬픔의 사람이고, 그가 신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목수의 아들로 불린 존재이며, 병든 영혼을 치료하는 주님이기 때문이라고.”(1878년 12월 26일) 고흐의 편지를 읽는 독자나 그림을 보는 관객은 잠시라도 그가 제시한 슬픔과 가난을 만드는 메커니즘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의 편지와 그림이 따스한 이유는 낮고 천하고 볼품없고 쓸데없는 것들을 ‘보는’ 그의 시선이 우리를 따뜻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쓸쓸하고 낮은 것과 같이하려는 시선에서 ‘편지작가’ 고흐는 탄생했다. 시인·숙명여대 교수
  • ‘완전 채식주의’ 거부한 직원, 해고한 레스토랑 주인

    ‘완전 채식주의’ 거부한 직원, 해고한 레스토랑 주인

    한 레스토랑 주인이 완전 채식주의자가 되길 거부한 근로자를 해고해 논란이 일고있다. 21일(현지시간) 아이슬란드 영자 일간지 레이캬비크 그레이프바인은 수도 레이캬비크에 있는 글로 레스토랑(Gló restaurant)이 부당한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했다고 보도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글로 레스토랑은 전국에서 이름난 식당 중 하나로 유기농 음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또한 치킨과 유제품이 메뉴에 있긴 하지만 채식주의자용 식사에 주력해왔다. 레스토랑은 이달 초 완전한 채식 식당으로 거듭나려 준비중이었고, 그 변화에 따라 주방 직원 한 명을 해고했다. 직원이 받은 해직 통보에는 “레스토랑이 완전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당이 되는 과정에 있다. 따라서 주방 직원들도 완전 채식주의자가 될 것을 요구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에 대해 글로 레스토랑 주인 솔베이그는 “꽤 오랫동안 변화를 생각해왔고, 우리가 직원들에게 유일하게 당부한 점이 바로 완전 채식주의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었다”며 “편지가 오해의 소지가 있는 글귀로 쓰여진 것 같다”고 주장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아이슬란드는 직장에서 노동자들의 권리와 차별을 엄격하게 단속해왔다. 이번 경우는 개인의 식이 선택에 기반을 둔 잠재적인 차별을 강조한 첫 사례라 주목할만하다. 한편 완전 채식주의는 고기는 물론 우유, 달걀도 먹지 않는 식단을 말하는데, 세계적으로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영국 BBC는 자국의 완전 채식주의자 수가 2006년 15만명에서 2016년에는 54만 2000명으로 급격히 증가했다고 보도했고, 호주 시장조사기관 로이 모건 리서치(Roy Morgan research)는 지난 4년 만에 채식주의 식단을 먹는 국민 수가 23%까지 치솟았다고 전했다. 사진=레이캬비크 그레이프바인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입대한 아들에게 쓴 아빠의 ‘지혜’

    입대한 아들에게 쓴 아빠의 ‘지혜’

    아버지에게서 받은 100개의 편지/김상민 지음/틔움출판/368쪽/1만 5000원‘당신이 가는 길에 언제나 길이 나타나기를/바람은 언제나 당신의 등 뒤에서 불고/당신의 얼굴에는 따스한 햇빛이 비치기를.’ 아일랜드 켈트족의 기도문 가운데 한 구절이다. 이는 모든 부모가 자식을 위해 되뇌는 기도이기도 할 것이다. 입대한 아들을 둔 아버지가 이런 간절함을 품고 격랑의 세상을 통과해 나갈 지혜를 100통의 편지글로 건넨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부끄럽고, 부끄럽다

    부끄럽고, 부끄럽다

    23년 만에 두 전직 대통령 동시 수감 비극 되풀이 MB “모든 것은 내 탓… 자책감” SNS에 친필 편지 이명박(77) 전 대통령이 구속 수감됐다. 1995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동시에 구속 수감된 지 23년 만에 또다시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구치소에 갇히는 부끄러운 역사가 되풀이됐다.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2일 오후 11시쯤 이 전 대통령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횡령,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 전 대통령은 110억원대 뇌물수수 혐의와 340억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를 받고 있다. 박 부장판사는 “범죄의 많은 부분에 대해 소명이 있고 피의자의 지위, 범죄의 중대성 및 이 사건 수사 과정에 나타난 정황에 비추어 볼 때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으므로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며 구속을 결정했다. 이 전 대통령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불출석하면서 법원은 검찰이 제출한 자료와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이 낸 의견서를 토대로 서류 심리를 진행했다. 영장 발부 소식이 전해지자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자필로 작성한 3장짜리 입장문을 공식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 전 대통령은 “지금 이 시간 누굴 원망하기보다는 이 모든 것은 내 탓이라는 심정이고 자책감을 느낀다”면서 “내가 구속됨으로써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가족의 고통이 좀 덜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영장이 발부되자 검찰은 곧바로 이 전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을 찾아 영장을 집행했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14일 검찰에 출두해 20시간 넘게 조사를 받고 귀가한 뒤부터 외출을 삼간 채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이날 이 전 대통령 자택 근처에선 지지자를 찾기 어려웠고, 취재진과 이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시민단체 시위대만 영장이 집행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법원 결정이 임박한 오후 8시쯤부터 자택에 집결했던 친이명박계 측근들은 서울동부구치소로 향하는 이 전 대통령을 배웅했다. 검찰은 향후 이 전 대통령을 상대로 추가 소환 조사나 구치소 방문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차명재산·개인비리 혐의에 비해 수사 속도가 더뎠던 이 전 대통령 재임 시절 국가기관을 동원한 정치개입 의혹 수사도 활기를 띨 전망이다. 나상현 기자 greantea@seoul.co.kr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해피투게더3’ 황민현, 아이유 ‘밤편지’ 커버..감미로운 목소리

    ‘해피투게더3’ 황민현, 아이유 ‘밤편지’ 커버..감미로운 목소리

    워너원 황민현이 ‘해피투게더3’에 출연해 아이유의 곡 ‘밤편지’를 부르는 모습이 포착됐다.22일 KBS2 예능프로그램 ‘해피투게더3’ 측은 “황민현이 부르는 감미로운 ‘밤편지’ (+ 재환이 카메라 무빙)”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황민현이 노래방에서 아이유의 ‘밤편지’를 부르는 모습이 담겼다. 황민현은 특유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를 완벽 소화했다. 황민현의 노래에 김재환과 강다니엘은 화음을 넣으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편, KBS2 예능프로그램 ‘해피투게더3’은 22일 오후 11시 10분에 방송된다. 사진=네이버TV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홍명희 자필편지… 108년 만에 고향으로

    홍명희 자필편지… 108년 만에 고향으로

    대하소설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1888~1968)의 자필 한문편지가 108년 만에 고향인 충북 괴산에 온다. 아쉽지만 복제본이다. 21일 괴산군에 따르면 벽초가 붓으로 쓴 편지 4통이 지난 2월 경북 안동에서 발견돼 한국국학진흥원이 보관하고 있다. 벽초의 자필 편지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군은 복제본을 다음달 중순쯤 받아 괴산읍 벽초의 생가와 조성 중인 수산테마파크 등에 전시한다.이 편지는 벽초가 아버지 홍범식 상을 치를 때 도움을 준 김지섭에게 감사 표시로 1910년 8~11월 사이에 쓴 것이다. 금산군수였던 홍범식은 경술국치 때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라’는 유서를 남기고 1910년 8월 29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안동 출신인 김지섭은 일제강점기 의열단 단원으로 1924년 1월 5일 일본 황궁에 폭탄을 투척한 독립운동가다. 홍범식이 자결하기 직전 금산재판소에서 통역 겸 서기로 일하던 김지섭은 홍범식의 유서를 벽초에게 전달했다. 이 편지는 벽초가 성년이 돼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평등 세상 이념을 담은 ‘임꺽정’을 쓰게 된 배경을 추정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군은 원본 전시도 추진한다. 벽초는 해방 직후인 1948년 북으로 가 초대 부수상을 지냈다. 괴산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마마무 솔라, 데뷔 후 첫 솔로 콘서트 개최 ‘자작곡 무대 최초 공개’

    마마무 솔라, 데뷔 후 첫 솔로 콘서트 개최 ‘자작곡 무대 최초 공개’

    마마무 솔라가 데뷔 이후 첫 솔로 콘서트를 개최한다.솔라는 오는 4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삼성홀에서 첫 솔로 콘서트 ‘솔라감성 콘서트 Blossom’를 열고 팬들과 만난다. ‘솔라감성 콘서트’는 2015년 10월부터 진행해온 솔라의 프로젝트 앨범 ‘솔라감성’을 기반으로, 솔라의 음악적 색깔과 감성을 담은 무대로 꾸밀 예정이다. 또한, ‘솔라감성’의 신곡과 솔라의 또 다른 자작곡 무대도 최초 공개된다. 더욱이 마마무 멤버 중 가장 먼저 첫 솔로 콘서트를 개최하는 만큼 그룹 활동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은 물론, 매력적인 음색과 탄탄한 가창력을 갖춘 보컬리스트로서의 진가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가 모아진다. 그간 솔라는 김도향의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시작으로 여진의 ‘그리움만 쌓이네’, 조덕배의 ‘꿈에’, 해바라기의 ‘행복을 주는 사람’, 이정선의 ‘외로운 사람들’, 김민기의 ‘가을편지’ 등을 솔라만의 스타일로 새롭게 리메이크하며 진솔하고 따뜻한 힐링을 선사하는 음악으로 리스너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특히, ‘솔라감성’을 통해 잊혀간 명곡들을 자신만의 독보적인 음악 색깔과 감성으로 표현, 부모님 세대에게는 추억을 젊은 세대들에게는 새로운 곡을 선사하며 전 세대를 아우르는 보컬리스트로서 역량을 인정받았다. 솔라의 첫 단독 콘서트 외에도 마마무는 2018년 ‘포시즌 포컬러 프로젝트’을 예고한 만큼 계절마다 네 가지 컬러의 앨범은 물론, 각 멤버들의 숨겨진 매력과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개별 활동도 순차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한편, 마마무는 ‘포시즌 포컬러 프로젝트’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여섯 번째 미니앨범 ‘옐로우 플라워(Yellow Flower)’의 타이틀곡 ‘별이 빛나는 밤’으로 음원차트 1위를 비롯해 음악방송 6관왕을 차지하는 등 연간 프로젝트의 청신호를 밝혔다. 사진=RBW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솔직한 아이가 아버지에게 쓴 ‘감사의 편지’ 화제

    솔직한 아이가 아버지에게 쓴 ‘감사의 편지’ 화제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신 아버지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는 아이. 왠지 기특하고 흐뭇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 역시 편지를 보면 일에 지친 피로감이 단번에 날아갈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 사는 한 어린이가 쓴 감사의 편지는 아이의 속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아버지는 물론 보는 모든 이들을 웃기고 말았다. 18일(현지시간) 미국 소셜사이트 래딧닷컴에는 한 사용자가 자신의 사촌 동생이 자신의 삼촌이자 그의 아버지에게 쓴 편지 내용을 촬영한 사진 한 장을 공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빠는 근면 성실한 분이세요.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실 거에요. 그리고 만일 더 열심히 일하신다면 제가 원하는 그 게임을 사주실 수도 있어요” 아이의 편지는 아버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도 게임을 사달라고 말하고 있지만, 게임을 사달라고 조르기 위해 감사의 편지를 쓴 듯싶다. 해당 게시물은 지금까지 2만 5000점 이상을 받았고 이미 여러 외신에 소개될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다. 네티즌들은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당근과 채찍 전략이다”, “아버지는 힘들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물론 해당 편지를 받았다는 실제 남성도 그 내용에 크게 웃고 가족뿐만 아니라 회사 동료들에게도 보여준 것으로 전해졌다. 참고로 아이가 말한 게임은 휴대용 게임기에 들어가는 한 종류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래딧닷컴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해외에서 온 편지] 인도 아름다움 품은 한국공관… 이범석 前대사의 선견지명

    [해외에서 온 편지] 인도 아름다움 품은 한국공관… 이범석 前대사의 선견지명

    외교관 이범석은 인도 뉴델리에 인상적인 건축물을 남겼다. 바로 외교단지에 위치한 한국대사관저이다. 인도산 붉은 사암(沙岩)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뉴델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사관저 중 하나로 꼽힌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인도 건축의 아름다운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현한 대저택을 발견하고 감탄한다. 건축물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인도산 붉은사암… 가장 아름다운 공관으로 1960~70년대 비동맹 운동을 주도하던 인도의 네루 정부는 뉴델리를 세계 외교 중심지로 만들고자 수도 한쪽에 비어 있던 큰 땅을 외교단지로 개발했다. 외교공관을 짓는 국가에는 영구임대 형식으로 땅을 사실상 무상 제공하면서 공관을 짓도록 했다. 국가 예산이 넉넉지 않을 때여서 반대가 많았다. 이범석은 정부를 설득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쓰기도 했다. 홍콩은행으로부터 어렵게 돈을 빌렸다. 1만 6000여㎡가 넘는 땅을 대여(매년 임차료 5루피 지급, 100원도 되지 않는 돈이다) 받아 그곳에 대사관과 관저를 지었다. 한국 제1의 건축가 김수근을 초대했다. # 대통령 설득해 돈 빌려… 김수근 설계로 탄생 3개월여 인도를 여행한 김수근은 고대 무굴제국의 수도 아고라의 고성 레트포트의 이미지를 살렸다. 설계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1978년 5월 착공 1년여 만에 대사관 건물과 관저가 완공됐다. 지금의 건축 속도로 생각해도 엄청난 스피드다. 건축 기간 중 이 대사는 현장 감독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완공되었을 때 대사는 울었다고 한다. 정부를 설득하고 어렵게 재원을 확보하고 공사를 직접 챙기면서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두 건물 중 관저가 압권이다. 1만 3000여㎡ 규모 대지 위에 면적 1650㎡가 넘는 대저택이다. 붉은 벽돌이 물 흐르듯이 연결되어 성채를 이룬다. 그 안에는 큰 규모의 홀, 식당, 주방 등 파티공간과 대사의 생활공간이 있다. 이곳에는 지금 거의 이틀에 한번 정도로 크고 작은 각종 행사가 열린다. 이 대사는 새로 지어진 공관에서 1년 반 정도 지내다 귀국했다. 통일부 장관, 대통령비서실장을 거쳐 외무부 장관으로 재직 중 1983년 버마 아웅산 폭발사태 때 순국했다. 뉴델리 외교단지에는 한국보다 더 큰 규모의 외교공관을 가진 나라들이 많다. 또 각자 특징 있는 건축들을 했다. 그렇지만 한국공관만큼 전통적 인도 이미지를 재현한 건축물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인도 사람들이 감탄하는 이유다. # 1만여㎡ 대지 위 물결치듯 노른자땅에 우뚝 인도 정부가 부지를 무상 제공할 당시 공관을 짓지 못했던 많은 나라들은 지금은 부동산 가격이 올라 땅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임차료도 엄청 비싸다. 외교공관은 그 나라의 위상과 국력을 나타낸다. 인도가 강국으로 떠오르는 지금 40여년 전 한 외교관의 선견이 더욱 돋보인다.
  • [나태주의 풀꽃 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태주의 풀꽃 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사고를 크게 치면서 봄이 왔다. 이미 알고 있었던 일들이 드러나기도 했고 전혀 뜻밖의 일들이 터지기도 해서 평범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정신이 어찔어찔할 정도다. 이게 다 우리들의 과거 삶의 찌꺼기들이다. 굳이 양성평등이라든지 여성인권까지 들먹일 일도 없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좀더 충분했으면 이 지경까지는 가지 않는다. ‘나’만 극대화하고 ‘너’를 극소화한 탓이다. 애당초 생명에 대한 소중성이 전제돼야 했다. 실로 모든 생명체는 귀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런 존재. 인간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우리가 그것을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했다. 남녀 관계도 그러하고 세대 관계도 그러하고 상하 관계도 마찬가지다. 모든 인간관계는 상호 신뢰와 상호 존중의 바탕 위에서 피어나는 향기로운 꽃이어야만 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거대 담론 속에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광복 이후 국가 건설이라는 급선무가 있었고, 6·25 전쟁 이후엔 전쟁 복구란 대명제가 있었고, 절대 빈곤 아래서 산업화와 근대화 문제가 시급했다. 거기다가 민주화 과제, 남북 분단의 문제까지 풀어야 할 지상명제였다. 그렇다 보니 개개인의 인권이나 개성은 자주 무시되거나 말살돼야만 했다. 모든 삶의 기초는 개인에게 있는데도 거대 담론이 세력을 발휘하는 상황 아래서는 개인의 욕구와 특성을 제대로 발현시키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굴절돼 온 개인의 삶을 되찾고 싶은 강한 욕구가 요즘 사람들에게서 분출되고 있음을 본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이 똑똑해진 것이다. 단독자를 찾아가는 과정에 들어선 것이다. 지금껏 우리는 어떤 집단의 일원으로 살면서 그 소속감에서 위로를 받으려 했고 안전을 보장 받으려 했다. 인맥이라든지 이념이나 단체 같은 사회적 연결구조 안에서 만족감을 얻으며 살았다. 그러나 최근 그러한 그물망들이 많이 느슨해진 것이다. 그래서 인생이 더욱 외로워지고 불안해지고 소외감, 박탈감이 높아진 것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SNS의 발달이 한몫 거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2017년 촛불집회 이후 더욱 그러하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어떤 집단이나 특수 이념을 지닌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보통의 생활인들이다. 누군가의 권유로 모인 사람들이 아닌 자발적 참여자들이다. 이 점이 놀라운 것이다. 모래알처럼 분리돼 있지만 뜻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힘을 갖는다는 것. 내면의 눈을 뜬 한 사람 한 사람. 이들은 외부적 힘이나 작용에 의해서 통제되지 않는 개개인이다. 오직 스스로의 의지나 느낌에 의해서만 행동하고 방향을 정하는 그들은 개개인이면서 집단이다.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최근의 현상을 살필 때 그런 변화의 조짐은 가히 혁명적이다. 쓰나미를 보는 듯 어지럽고 두렵기조차 하다. 한국인들의 정신적 특성이 이성적이기보다 감성적이라는 것은 하나의 정설. 여기서 독창성도 나오고 예술적 성과도 기대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작금 우리는 지나치게 성급한 경향이 있고 지나치게 정서적인 경향이 있어 보인다. 조금은 이성적 접근이 필요하고 신중하게 대처해야 하지 않나 싶다. 다수의 사람들이 흥분 상태이고 분노에 차 있는 느낌이다. 어쩌면 다른 쪽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하나의 단서에 투사하여 반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것은 성장통인지도 모르고 더 좋은 세상을 향하는 고갯마루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래야 한다. 우리가 넘어진 사람이라면 넘어진 땅을 짚고 다시 일어나야 하고 우리 옆에 힘들어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를 부축해서 함께 먼 길을 떠나야 한다. 와, 봄이 왔다. 모진 겨울을 이기고 올해도 기어이 봄이 왔다. 봄은 우리더러 상처를 이겨 꽃을 피우라 하고 다시 한번 새롭게 눈을 뜨고 길을 가라고 속삭여 준다.
  • ‘동메달 결승골 어시스트’ 정승환 “여자친구에게 프로포즈 하겠다”

    ‘동메달 결승골 어시스트’ 정승환 “여자친구에게 프로포즈 하겠다”

    “금메달은 아니지만 동메달을 땄기 때문에 프로포즈를 해야할 거 같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께 메달을 걸어 드리고 싶고, 지금 고인이시지만 아버지께 먼저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그다음에 여자친구에게 프로포즈 하고 싶습니다.” ‘ 빙판 위의 메시’ 정승환(32)이 17일 강원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이탈리아와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승리한 뒤 기자회견에서 프로포즈 계획을 밝혔다. 정승환은 6년 전 장애인체육회 직원이었던 송현정(29)씨와 처음 만나 지금까지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한국은 정승환의 어시스트와 장동신의 결승골로 이탈리아를 1-0으로 꺾었다. 경기 직후 열린 기자회견은 선수와 감독, 코치 모두 부담감을 털어버리고 동메달의 기쁨을 마음껏 즐기는 자리였다. 서광석 감독은 “많은 기자와 관중, 국민이 파라 아이스하키를 많이 응원해주셨기에 좋은 결과가 있었다”면서 “17명 선수 정말 멋있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저를 믿고 잘 따라와 줘 좋은 결과가 있었다”며 소감을 밝혔다. 주장 한민수(48)는 “감격스러운 순간에 기자회견을 하는 게 무한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며 “국민들이 (첫 경기인) 한일전부터 동메달 결정전까지 승패와 관계없이 아낌없는 응원과 관심, 격려를 보내주셨기에 이 자리에 섰다. 모든 영광을 국민 여러분께 바치겠다”고 말했다. 이날 결승골의 주인공인 장동신(42)은 “승리를 이끈 행운의 골이었다”라며 “정승환 선수가 잘 맞춰서 줬다. 한일전 끝나고 라커룸에서 정승환에게 농담삼아 ‘내가 한 번 어시스트 했으니 갚아’라고 했는데 진짜 갚았다”고 말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어 “다들 열심히 뛰어줬고, 많은 스태프분 힘드셨을 텐데 마지막 한 골이 보답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기자회견 일문일답. →오늘의 경기 결과가 한국 파라 아이스하키 미래와 장애인 및 장애인 스포츠 인식 개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김정호 코치 일단 동메달 딴 선수들 자랑스럽습니다. 저희 선수들이 벤쿠버와 소치 거쳐서 평창까지 왔습니다. 여기까지 결코 쉽지 않았는데 오늘의 결과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베이징까지의 미래 밝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 스포츠 하시는 분들이 용기 내 파라 아이스하키 접하셔서 더 많은 선수가 생기고 인프라가 확보된다면, 베이징 전망도 밝다고 생각합니다. →서 감독님 한일전 전에 선수들에게 편지 읽어주셨다고 하던데. -서광석 감독 편지는 아니고요. 제가 말주변이 없고 해서 밤에 생각하며 썼습니다. 일본전 들어가기 전에 선수들한테 작은 메시지 보냈고요. 오늘 동메달 결정전에서도 또 한 번 편지를 읽다가 제가 울었습니다. 제 글에 제가 감동 받아서요. (일동 웃음) 눈물 안 보이려고 마음 많이 먹었는데. 제가 흔들리면 선수들 흔들릴까봐 읽고 나와서 (눈물이 나) 물 마시고 다시 들어왔습니다. →오늘 경기 전에 선수들에게 어떤 말씀하셨는지. -서광석 감독 경기 전에 선수들과 라커룸에서 미팅을 해야 하는데 메시지를 전달하다가 우는 바람에 메시지 전달 못 했고요. 선수들이 반복적으로 어려운 훈련을 많이 했기 때문에 모든 훈련을 소화했다고 믿고서 경기에 임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이런 큰 대회에서 전술, 전략을 짠다고 하더라도 선수들이 너무 긴장을 했기 때문에 그런 거 없이 격려를 계속 했습니다. 17명 선수가 하나가 됐기에 믿고 하라고 격려를 했습니다. →경기 끝나고 경기장 중앙에 둘러서서 애국가 제창하셨는데. -서광석 감독 어제 글을 쓰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쓰다 지우다 했는데 대한민국에서 하는 동계패럴림픽에서 우리의 무대를 어떻게 마무리할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선수들과 국민들, 관객분들에게 저희가 보답하기 위해 금메달은 아니지만 금메달보다 몇 배 가치 있는 동메달 땄기 때문에 애국가를 부르자고 말했습니다. 선수들과 국민들이 함께 어울리는 축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한민수 선수 고별전이어서 다른 선수들은 좀 더 각별했을 거 같은데 어떤 마음으로 형님들의 고별전 준비하셨는지. -이주승 아시다시피 저희 고참 베테랑 선수분들이 이번 패럴림픽이 마지막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팀에서 많지 않은 20대 선수인데 고참 선수들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 것들이 하키 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아쉽게도 이번 패럴림픽을 마지막으로 많은 베테랑 선수들이 은퇴하신다고 해서 굉장히 마음이 아픕니다. 그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젊은 선수들이 형 몫만큼 더 열심히 해서 앞으로 패럴림픽 파라 아이스하키 팀을 잘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유만균 선수 경기 끝나고 눈물 많이 흘리셨습니다. 안 울겠다고 얘기하셨는데 왜 우셨는지. -유만균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저도 선수다 보니까 시합도 뛰고 싶었고, (골리) 재용이가 걱정도 됐었고. 그러다 보니까 많이 울었던 거 같습니다. 지금도 좀 울 거 같은데. 제가 대표팀에서 골리로 앉아있으면서 이탈리아와 되게 악연이 많아요. 감독님께서 잘 선택해주신 거 같아요. 저도 후배가 제 악연을 멋지게 끊어줘서 좋은 결과를 얻었고요. 선수들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두 시간 동안 땀을 흘리게 하는 경기였습니다. 뛰는 입장에서는 엄청 긴장되고 그랬을 텐데 인생에서 이렇게 힘든 경기, 땀을 쥐게 하는 경기가 몇 번이나 있었는지. -정승환 오늘 특별한 날이죠. 17명 선수에게 평생 기억될 좋은 날이었고.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이 기쁨을 함께 나눠주시고 많은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여기 선수들에게 감사드리고 싶고 서 감독님, 코치님 등 너무나도 많은 분께서 고생하셨습니다. 많은 분이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번 패럴림픽을 끝으로 은퇴하시는 한민수 선수는 세대교체, 후진양성을 생각하실 거 같은데, 장애인분들에게 파라아이스하키 매력과 도전의 메시지를 주신다면. -한민수 하키를 18년째 하고 있는데 마지막 은퇴 무대에서 금메달은 아니지만 선수들이 힘들게 훈련해서 값진 결과물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떠날 때 마음 편히 떠나게 해줄 수 있게 해준 우리 동생들에게 너무 감사드립니다. 또 나이 많은 선수들 뒷바라지 해주시고 이해해주신 서광석 감독님께 감사합니다. 뒤에서 보이지 않지만 고생한 스태프분들 감사드립니다. 은퇴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 선수 출신 지도자 없기에 제가 많은 공부를 해서 장애인분들에게 스포츠를 통해서 성취감과 살아가는데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보다 더 준비해서 쓰임 받는 삶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서광석 감독님 오늘처럼 눈물 흘리신 적 있으신지. 그리고 김영성 선수가 패널티로 2분간 퇴장했을 때 어떤 느낌이셨는지. -서광석 감독 저희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렸습니다. 그런데 저희 선수들과 훈련을 했던 시간과 과정이 머리에 스치면서 너무 감격을 했기 때문에 울었습니다. 맨 처음에 편지를 쓰면서 선수들과 강릉하키센터에서 부둥켜안고 울고 싶다는 메시지 보냈는데 그게 꿈이 아닌 현실이 됐기에 그 감격은 몇 배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김영성 선수가 패널티 받았는데 패널티가 아니었었으면 이탈리아 선수가 더 좋은 득점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패널티었다고 생각합니다. 강릉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단독] “대통령님, 발암물질 없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어요”

    [단독] “대통령님, 발암물질 없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어요”

    “동생이 건강한 모습으로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경기 안양시 연현마을에 사는 이희진(왼쪽·연현초 5)양은 4년 전부터 어지럼증을 호소해 왔다. 피곤할 때면 턱밑에 좁쌀 같은 ‘혹’이 올라왔다. 만지면 통증이 심했다. 이양의 동생은 증상이 더 심해 병원을 더 자주 드나들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쯤부터 동생의 상태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집 근처에 있는 ‘아스콘’(도로포장 등에 쓰는 건설 자재) 공장이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가동을 멈춘 것과 관련이 깊어 보였다. 이양은 16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지금은 공기가 좋아졌다”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소를 하려고 문을 열면 쓰레기 냄새와 자동차 기름 냄새 같은 게 났다”고 말했다. 또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사물함 위를 올려다보면 까만 가루와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면서 “반 친구 대부분 비염이 생겨 수업 시간에 자주 킁킁대고 아토피가 심한 친구는 만졌을 때 피부가 까칠까칠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경기도가 이 공장에 대해 대기정밀조사를 진행한 결과 1급 발암물질인 벤조피렌 등이 검출됐다. 주변 지역보다 수십배가 많은 일산화탄소(210.3)도 배출됐다. 이양의 어머니를 비롯한 학부모들은 모임을 만들어 마을 주민 1만 2000명에게 설문지를 돌렸다. 조사 결과 천식, 아토피 등 환경성 질환을 앓고 있다는 주민이 전체 응답자 618명 중 353명(67.1%)에 달했다. 암 진단을 받았다고 한 비율도 8.2%를 차지했다. 공장에서 50m 거리에 있었던 의왕경찰서에서도 2010년 이후 암 진단을 받고 사망한 경찰관이 3명 나왔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아스콘 공장 측이 “유해물질 방지 설비를 갖췄다”며 경기도에 재가동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고, 도는 재가동을 승인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이양은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쓰려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급한 마음에 지난 14일 국회로 달려갔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의 도움으로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에 선 이양은 미리 준비한 손편지를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이양은 “사람들이 우리 마을 환경의 심각성을 알아주면 좋겠다”고 힘줘 말했다. 하지만 이양의 ‘목소리’는 널리 주목받지 못했다. 이양은 “발암물질 없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호소를 하는데도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아쉬웠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 말을 꼭 전해 달라고 했다. “국회의원, 시의원들이 관심을 갖도록 도와주세요. 저는 산도 있고, 안양천도 있고, 친구들도 많은 이 동네에서 계속 살고 싶어요. 공장만 빼면 다 좋아요”라고.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단독]“대통령님, 발암물질 없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어요”

    [단독]“대통령님, 발암물질 없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어요”

    연현초 이희진양, 국회서 손편지 낭독“학교 옆 아스콘공장 반드시 이전하라” “동생이 건강한 모습으로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경기 안양시 연현마을에 사는 이희진(11)양은 4년 전부터 어지럼증을 호소해 왔다. 피곤할 때면 턱밑에 좁쌀 같은 ‘혹’이 올라왔다. 만지면 통증이 심했다. 이양의 동생은 증상이 더 심해 병원을 더 자주 드나들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쯤부터 동생의 상태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집 근처에 있는 ‘아스콘’(도로포장 등에 쓰는 건설 자재) 공장이 지난해 11월부터 가동을 멈춘 것과 관련이 깊어 보였다. 연현초등학교에 다니는 이양은 16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지금은 공기가 좋아졌다”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소를 하려고 문을 열면 쓰레기 냄새와 자동차 기름 냄새 같은 게 났다”고 말했다. 또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사물함 위를 올려다보면 까만 가루와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면서 “반 친구 대부분 비염이 생겨 수업 시간에 자주 킁킁대고 아토피가 심한 친구는 만졌을 때 피부가 까칠까칠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경기도가 이 공장에 대해 대기정밀조사를 진행한 결과 1급 발암물질인 벤조피렌 등이 검출됐다. 주변 지역보다 수십배가 많은 일산화탄소(210.3?)도 배출됐다. 이양의 어머니를 비롯한 학부모들은 모임을 만들어 마을 주민 1만 2000명에게 설문지를 돌렸다. 조사 결과 천식, 아토피 등 환경성 질환을 앓고 있다는 주민이 전체 응답자 618명 중 353명(67.1%)에 달했다. 암 진단을 받았다고 한 비율도 8.2%를 차지했다. 공장에서 50m 거리에 있었던 의왕경찰서에서도 2010년 이후 암 진단을 받고 사망한 경찰관이 3명 나왔다. 경찰서는 지난해 5월 이전했다.그러나 지난해 12월 아스콘 공장 측이 “유해물질 방지 설비를 갖췄다”며 경기도에 재가동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고, 도는 재가동을 승인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이양은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쓰려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급한 마음에 지난 14일 국회로 달려갔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의 도움으로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에 선 이양은 미리 준비한 손편지를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이양은 “사람들이 우리 마을 환경의 심각성을 알아주고 주변 사람들이 좀더 깨끗한 환경에서 살면 좋겠다”고 힘줘 말했다. 하지만 이양의 ‘목소리’는 널리 주목받지 못했다. 이양은 “발암물질 없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호소를 하는데도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아쉬웠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 말을 꼭 전해 달라고 했다. “국회의원, 시의원들이 관심을 갖도록 도와주세요. 저는 산도 있고, 천도 있고, 친구들도 많은 이 동네에서 계속 살고 싶어요. 공장만 빼면 다 좋아요”라고.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인터뷰 플러스] “감사 나눔으로 행복한 공동체 만들기…그게 진정한 사회변혁”

    [인터뷰 플러스] “감사 나눔으로 행복한 공동체 만들기…그게 진정한 사회변혁”

    2010년부터 전국의 기업, 병원, 학교, 부대, 지자체 등을 돌면서 900회 이상 감사 강연과 워크숍을 진행해온 남자가 있다, 그는 2013년부터 짧지만 강렬한 감사 메시지를 작성해 출근 시간에 SNS로 세상 사람들과 공유했다. 이 감사 메시지가 아들의 군 입대를 계기로 2015년부터 60만 장병이 보는 국방일보에도 연재되고 있다. 올해부터는 고령자 어르신들의 짤막한 자서전을 지역신문에 게재하고 후손들이 감사편지로 화답하는 ‘은빛자서전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정지환 감사경영연구소 소장(53)이 ‘감사운동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정 소장은 10년 전만 해도 언론계에서 ‘싸움꾼 기자’의 1세대로 불리며 필명을 날렸던 인물이다. 그는 1990년대 월간 말, 오마이뉴스 등에서 활동하며 우리 사회에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논쟁적 기사를 남겼다. 1998년부터 조선일보 사주일가의 비리 의혹을 추적하며 ‘안티조선 전문기자’라는 명성을 얻었으며, 2004년에는 ‘한국판 롤콜’을 표방하며 국회·입법전문지 여의도통신 창간을 주도해 정치권과 언론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저널리스트로서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정 소장이 감사에 주목한 계기는 사회적 좌절 때문이었다. 너무 앞서나간 선택이었는지 2009년 여의도통신은 재정난으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좌절은 이 싸움꾼 기자로 하여금 ‘감사’라는 새로운 희망에 눈뜨게 해주었다. 2009년 12월 당시 손욱 농심 회장과 김용환 감사나눔신문 대표를 만나면서 사단법인 행복나눔125(1주1선행, 1월2독서, 1일5감사) 창립과 감사나눔신문 창간 작업에 참여했다. 그때부터 정 소장은 스스로 감사를 실천하기로 마음먹고 감사일기와 함께 감사 메시지를 써왔다. 감사 나눔을 통해 공동체가 행복해질 수 있고 그것이 진정한 사회변혁이라고 말하는 그는 현재 감사경영연구소 소장과 경희대학교 객원교수로 일하고 있다.→‘싸움꾼 기자’가 ‘감사 아이콘’으로 변신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젊은 시절 시사지 기자로 일하면서 논쟁적인 기사를 많이 썼습니다. 그때 붙었던 별명이 ‘싸움꾼 기자’였지요. 당시 나름대로 치열한 삶을 살았는지 모르지만 정작 내면의 풍요와 가족의 행복은 돌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아들이 당시 저를 ‘잠만 자고 가는 하숙생’ 같다고 했을까요. 준비 기간을 포함해 10년 동안 열정을 불태웠던 여의도통신의 폐간이 저에게 안겨준 정신적 충격도 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가족마저 제게 냉랭하게 대했지요. 그런 절망의 벼랑 끝에서 만난 것이 바로 ‘감사’였습니다. →감사와 만나면서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무엇이었나요? -감사일기를 쓰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기자로 20년 가까이 살아오다 보니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것마저 못 하면 아예 그만두자’는 심정으로 마지막 도전에 나섰지요. 우선 작은 노트를 마련하고 100일 동안 무조건 하루 100번씩 “감사합니다”라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감사’ 두 글자만 대충 쓰는 등 요령을 피웠지만 나중에는 “감사합니다”라고 다섯 글자를 또박또박 온전하게 썼습니다. 며칠 후부터는 그 밑에다 ‘그 날의 감사한 일’ 세 가지도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세 가지가 나중에는 다섯 가지로 자연스럽게 늘어났지요. 이 훈련은 작은 노트 세 권을 채우고서야 100일 만에 끝났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100일 동안 중요한 변화를 체험했습니다.→어떤 변화였습니까? -23일째 어머니에게 문자메시지로 문안인사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51일째 중학교 3학년 아들에게 잠언을 읽어주기 시작했고, 64일째 평생 금연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84일째 되던 날 저만 보면 복수 하고 싶다던 아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채소 샐러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98일째 되던 날에는 저를 피하기만 하던 아들에게서 “행복해요”라는 고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변화가 참 신기했습니다. 그저 노트에 두 글자, 다섯 글자, 세 가지 감사, 다섯 가지 감사를 적었을 뿐인데, 제2의 인생과 관련된 중요한 사건들이 모두 이 기간에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감사일기 쓰기를 일상적 습관으로 만드는 일에 성공하면서 제 삶은 완전히 뒤집어졌지요. 저의 심경 변화는 주변 사람들이 저에게 대하는 태도마저 변하게 했습니다. →SERICEO 동영상 강연 ‘아빠의 감사가 아들의 얼굴을 바꾼다’를 계기로 유명 강사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어떤 내용인지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의 켈트너와 하커 교수는 밀스여대의 1960년도 졸업생 141명을 대상으로 독특한 연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졸업 앨범에서 환한 미소를 지은 사람을 가려낸 다음 30년 동안 이들의 결혼이나 생활 만족도를 추적 조사한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졸업사진에서 환한 미소를 지은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더 건강하고, 더 성공하고, 더 행복한 인생을 살았던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 연구 결과를 보고 저는 군 입대를 위해 휴학을 신청한 아들의 졸업앨범을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숙생 아빠’였던 시절 아들은 중학교 앨범에서 ‘우수에 젖은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었지만 제가 감사생활을 시작하고 3년이 흐른 뒤에 찍은 고교 앨범에선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대조적인 두 장의 사진을 목격한 순간, 저는 감격 또 감격했습니다. 매일 아침 머리맡에서 잠언을 읽어주고 잠들기 전에 감사일기 쓰는 뒷모습을 보여줬을 뿐인데 엄청난 선물을 받은 셈이었죠. 이 사연이 SERICEO를 통해 알려진 후 여기저기서 저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감사 나눔은 결국 가정의 변화에서 시작된다고 봐야겠군요.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감사 나눔을 조직문화로 도입한 기업의 직원들과 만날 때마다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밥상이 달라졌어요.” “닭살 부부가 됐어요.” “결혼 16년 차 아내와 손잡고 거리를 다녀요.” “아이가 현관까지 나와서 인사를 해요.” “아이가 먼저 공부하고 싶다며 독서실 티켓을 끊어달라고 하네요.” 이런 말도 자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출근할 때 콧노래가 절로 나와요.” “일터에서 반원들과 사이가 좋아졌고 갈등이 해소되었어요.” 실제로 감사 나눔은 가족에게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가정에서 감사 나눔으로 충전된 행복 에너지가 기업의 소통과 성과 창출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가정의 변화가 회사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면, 사회에도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겠군요? -실제로 회식문화에도 신선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포스코ICT의 한 직원은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추진하던 발주업체, 하도급업체 직원들과 함께 하는 회식 자리에서 건배 제의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습니다. ‘먹고 죽자!’ ‘위하여!’ 그동안 회식 자리에서 흔히 해왔던 건배사였죠. 회사에서 감사경영을 실행하던 분위기에 힘입어 그 직원은 용기를 냈습니다. “한 사람씩 일어나 나머지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서 한 명을 선정해 그에게 감사한 일 3가지 이상 말하고 앉는 것은 어떨까요?” 처음에는 분위기가 갑자기 썰렁해졌지요. 하지만 굴하지 않고 자신이 먼저 한 사람에게 감사와 칭찬을 다섯 가지를 말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쭈뼛거리며 일어나 감사와 칭찬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과 사뭇 다른 회식 분위기에 사람들은 어색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다음 날 아침 다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이 다른 때와 전혀 달랐습니다. 서로에게 커피를 권하며 다시 감사를 표시했던 겁니다. 물론 당시 함께 추진하던 프로젝트는 매우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합니다. →충북의 옥천신문과 손잡고 추진하는 ‘은빛자서전 프로젝트’의 취지는 무엇입니까? -한 사람의 일생은 그 자체가 역사이고 작은 박물관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80세 이상 어르신들의 구술(口述)을 풀어낸 자서전을 신문에 게재하고, 자녀와 손주 등 후손들이 감사편지로 화답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콘텐츠는 해당 어르신이 별세하면 ‘조문보(弔問報)’로 변신해 장례식장에 비치할 예정입니다. ‘풀뿌리 언론개혁의 성지’로 불렸던 옥천에서 ‘감사가 넘치는 건강한 장례문화 조성’이라는 또 하나의 작은 실험이 시작됐습니다. 지금까지 모두 7명을 인터뷰했는데, 인생스토리 하나하나가 다큐영화 ‘워낭소리’를 연상케 했습니다. 후손들이 감사편지를 빠짐없이 보내와 삶의 지혜를 전수하는 세대 간 대화로서의 감사나눔운동 가능성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날 선 비난과 냉소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이지만 그 저변에선 감사와 사랑의 마음도 용암처럼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더 꿈꾸고 있는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주시죠. -어느 정도 분위기가 조성되면 지역 내 어르신은 물론이고 출향한 자녀까지 참여하는 ‘자서전 글쓰기 교실’과 ‘부모님께 감사편지 쓰기운동’도 추진할 구상도 가지고 있습니다. 지역의 청소년들과 함께 어르신을 찾아뵙는 ´구술 생애사´ 동아리를 만들어볼 수도 있을 겁니다. 기업사회공헌(CSR) 예산이나 독지가의 기부가 이런 곳에 쓰인다면 참 좋겠습니다. 인구 5만의 옥천에서 이 실험이 성공하면 5천만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 250여개 지자체로도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서원호 객원기자 guil@seoul.co.kr ■정지환 감사경영연구소 소장은 1965년 경기 여주 출생 현 감사경영연구소 소장 현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및 동대학원 국문학과 석사과정 졸업 / 1987년 서울시립대 총학생회장, 전대협(1기) 의장권한대행 / 1994년 월간 말 기자(2000년 한국잡지협회 ‘올해의 기자상’ 수상), 오마이뉴스 기자 / 2003년 시민의신문 취재부장, 여의도통신 편집국장 / 2010년 감사나눔신문 편집국장, 사단법인 행복나눔125 홍보실장 / 기업, 병원, 학교, 부대, 지자체 등에서 900회 이상 감사 강연, 워크숍 진행 / 삼성경제연구소 SERICEO 동영상 강연 5회 출연(‘아빠의 감사’편 주간베스트 1위) / 한전인재개발원, 새마을금고연수원,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 사외강사 / 시사인 ‘싸움꾼 기자, 감사와 나눔의 마력에 빠지다’ 보도 / 월간 아버지 ‘감사를 말하다 삶이 바뀐 가족 이야기’ 보도 / CBS 변상욱의 이야기쇼 ‘이 사람이 사는 법’ 출연 / 국방TV ‘여러분이 대한민국의 자랑입니다’ 출연 / 2015년 7월 1일부터 국방일보에 미니칼럼 ‘30초 감사’ 연재 / 인간개발연구원 편집위원, 허임기념사업회 이사,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 / ‘내 인생을 바꾸는 감사 레시피’, ‘30초 감사’, ‘감사 365’ 등 저서 10권
  • [나눔 플러스] 프랜차이즈 역량 살려 장학·문화사업 등 ‘사랑경영’ 활발

    [나눔 플러스] 프랜차이즈 역량 살려 장학·문화사업 등 ‘사랑경영’ 활발

    지난달 22일 (재)본월드미션(이사장 최복이) 사무실에는 감격의 눈물이 넘쳐흘렀다. 최 이사장의 저서 ‘우리들의 영업비밀, 섬김경영’이 본격 출간되자마자 그동안의 인생 노정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일까? 본죽에서 시작해 (사)본사랑재단과 (재)본월드미션까지 걸어왔던, 그리고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에 몸소 실천해왔던 최 이사장의 스토리를 담아보았다.→신간 발행 축하드립니다. -아직은 시집 몇 권과 ‘7전 8기 무릎경영’, 그리고 최근에 출판한 섬김경영에 대한 책 밖에 안 나왔는데 앞으로 더 많은 책을 쓰고 싶습니다. 책 자체도 섬김이 될 수 있도록 책 섬김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지방의 미자립 교회에도 같이 보내드렸고 방송을 통해서 원하는 분들에게도 선물했습니다. 직원과 가맹점, 그리고 선교사님들께도 보내드렸는데 많은 분이 제 부족한 책을 보고 위로를 받으셨다 하니 너무나 기쁘고 뿌듯합니다. 일일이 여러 곳에 찾아가서 강의할 수는 없다 보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책들이 대신 곳곳에서 밀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사장님의 모습을 보니 뭔가 모를 맑음이 느껴집니다. 마치 순수한 마음 가득 담은 시인처럼 말이죠. -13년 전 ‘고독한 날의 사색’으로 첫 시집을 냈을 때가 떠오르는군요. 아팠던 마음을 그 시집에 한껏 녹였던 것 같습니다. 고난을 통과하며 눈물 없이 갈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죠. 당시 사업이 너무도 안 풀려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야 했습니다. 호떡 장사도 해보고 이것저것 다 해봤지만, 그래도 돈이 부족해 여기저기 눈치 봐가면서 돈 끌어다 쓰고 그렇게 버텨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면서 ‘고난’이라는 주제에 대해 묵상하며 ‘시’라는 형태로 마음을 조금씩 차분히 정리해나갔죠. 특히 앞으로 살아야 할 남은 인생의 방향에 대해서. →하지만 순수하게 시로서만 고난을 이겨내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사장님께서 최근 성공의 요소로 7전 8기 무릎경영을 꼽으셨는데. -무릎은 크게 2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기도할 때 무릎을 꿇고 하잖아요.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낮은 자세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릎을 꿇음으로써 하나님과 사람에게 덕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죠. 7전 8기는 말 그대로 수많은 실패에 굴하지 않고 계속 일어났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가치경영’을 천명하셨는데, 이것은 또 어떤 의미인지요. -저의 경영철학을 묻는 분들에게 저는 가치경영이라고 합니다. 가치경영은 아까 말씀드렸던 섬김경영, 나눔경영, 무릎경영의 다른 말이기도 하죠. 이 세 가지 경영철학을 하나로 요약한다면 ‘사랑경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과 성경이 가르쳐준 사랑의 가치는 경영에서도 반드시 적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의 나눔은 제 정신적 가치이자 핵심입니다. 기업의 설립 이념 또한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성경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에서 뽑았죠. →그렇다면 사랑을 중심으로 한 가치경영의 구체적인 내용은. -우리 본월드미션에는 6대 핵심가치가 있습니다, 바로 ▲경쟁보다 협력 ▲성공보다 사명 ▲나보다 우리 ▲계약보다 약속 ▲이윤보다 가치 ▲빨리보다 멀리입니다. 저는 이러한 가치를 실현해내는 것을 경영모델로 삼고 사명 포트폴리오를 그리면서 매일 조금씩 실행하고 있습니다. 본월드미션을 통해서 전 세계 2만 7000여 선교사님들과 함께 생명을 살리는 사명이 땅 끝까지 전파될 수 있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명과 가치를 이루는 일이 우리 기업과 저의 존재 이유입니다.→방금 선교사들을 언급하셨는데, 본월드미션이 선교사들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하다 우리나라에 오셨던 선교사님이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전쟁고아 사진전을 하고 있었어요. 만나서 이야기 나눠보니 돈도 없고 잘 곳도 갈 곳도 없이 사진하고 비행기 티켓만 가지고 온 거예요. 선교사님 임시 숙소로 제 어머니의 방 한 칸을 내드리고 사진전 후원도 해줬습니다. 한 달여 일정을 마치고 여전히 아픈 허리를 움켜쥐며 다시 선교지로 향하는 선교사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이 펑펑 쏟아졌어요. 이분들을 도와야겠다고 다짐하고 2013년 9월 본월드미션을 정식으로 발족시켰습니다. →본격적으로 선교의 디딤돌을 놓은 셈이군요.-이 땅의 크리스천들은 누구나 ‘선교의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대한민국은 복음의 은혜에 빚진 나라죠. 일제 강점기와 6·25 등 고난으로 점철된 시대를 겪었으면서도 이렇게 잘살게 된 것은 당시 선진국의 선교사들이 우리의 교육, 의료, 경제 등 많은 부분에서 발판이 돼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마땅히 우리도 소외된 나라에 가서 교육과 선한 영향력을 미쳐 복된 나라로 바뀌어 갈 수 있도록 돕고 이끌어줘야 은혜를 갚고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기업의 의무를 수행하고 훈련되고 준비된 책임을 다하는 거룩한 부담을 항상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월드미션이 선교사님들의 발을 닦고 필요를 채워주며 협력하는 일을 맡고 있는 것이죠.→그렇다면 본월드미션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복음과 사랑의 통로가 되기를 희망하며 복음 전파와 영혼 구원사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안식년을 맞거나 한국에 잠깐 귀국한 선교사님들의 숙소와 치유 상담을 제공합니다. 매 학기 선교사 자녀 50~60명을 선발해 장학금 지원도 하고 있죠. 또한 선교사가 꿈이라면 선교사 자녀들은 꿈 너머 꿈, 즉 또 하나의 미래 소망이기에 다니엘 MK 장학금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사역자들과 차세대 영적 리더들을 위한 캠프, 로뎀나무 캠프, 다니엘 MK 캠프, 사모동행 캠프를 통해 선교활동을 돕고 있죠. 더불어 공항과 전철역에서 되도록 가까운 화곡동(20칸), 염창동(10칸), 신촌(6칸)에 선교사 전용 게스트하우스를 마련해 300분 가까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해외 사업으로는 원더풀 스토리(어린이 그림성경 보급) 사업과 신학교 지원 및 본웨이브 공연(문화선교사업) 등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해외 관련 부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선교매장에 대한 이야기를 문득 들었는데, 해외매장 진출은 한류입니까. 아니면 비즈니스 선교가 목적입니까. -‘비즈니스 선교’입니다. 저희 기업이 가지고 있는 핵심 역량이 프랜차이즈 역량이잖아요. 시스템, 브랜드, 운영 노하우, 물질, 사람들을 종합한 버전으로 선교사님들에게 선교매장을 내어 드리는 것이에요. 그 매장이 그 지역의 1등 교회가 되는 거죠. 작은 미션센터처럼 돼서 비자문제, 생계문제, 일자리문제를 동시에 해결합니다. 또한 선교사님들이 찾아가지 않아도 사람들이 오게 되잖아요. 그렇게 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선교 모델’을 만들어 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정말 독특하고 누가 하기도 어려운데 집중적으로 속 깊은 편지를 또 펼쳐주세요. 어려운 점도 이야기해주시고요. -선교사님들에게 가장 따뜻한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대한민국 땅에서 멀리 떠나있다 오랜만에 도착하면 먼저 가족 친척들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찾아가는 것도 하루 이틀이죠. 눈치가 보여 그분들은 결국 찜질방을 전전하시는 거예요. 그런 분들이 저희 본월드미션에 미리 예약하고 오면 그래도 내 집만큼은 아닐지라도 일단 거할 집이 있는 것이잖아요. 집에 들어가면 라면 한 개, 쌀 한 봉지, 단무지, 그리고 물이 비치돼있어요. 들어오는 순간 배고픔을 바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 너무 감동이라고 눈물을 철철 쏟는데요. 그걸 보는 순간 가슴이 미어지면서 한편으로는 이렇게라도 선교사들을 도울 수 있으니 너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교사님들의 마음을 제가 알죠. 오지에서 도착해 오갈 데도 없는 상황에서 방 하나 겨우 구해서 왔는데, 기진맥진한 상태서 막 물 사러 가고 그러려면 힘들잖아요. 들어가자마자 기본적인 것들만 준비해놓았을 뿐인데, 이에 감동한 선교사님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선교사들의 대모역할을 하실 것인지요. 여성으로서 꿈도 있을 것 같은데요. 또한 재단을 어떻게든 키워서 후대로 이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의 구상을 해보신다면. -이 본월드미션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이 재단을 이끌 것이라고 봅니다. 제가 하는 것은 맡겨준 사명인 섬김을 잘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땅에 살고 있을 때 나그네와도 같은 삶을 살잖아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저를 보낼 때 분명히 원하는 것이 있을 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거든요,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분별해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살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저를 이 땅에 보낸 목적대로 사는 것이 섬김이고 사랑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제게 원하셨기 때문에 특히 사랑의 대상을 선교사라고 하셨으니 그분들의 발을 닦고 힘닿는 대로 돕고 협력하고 그렇게 하다가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는 날 “하나님 시킨 일, 제가 잘했습니다. 부족했지만 열심히 했어요, 아버지”라 당당히 고하며 본향인 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저의 꿈이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처음 신앙 가졌을 때를 회상해봅니다. 무엇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갚을까? 수많은 어려움에 자살까지 시도하려고 했던 저를 구해준 그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 이 물음에 저는 처음에 신학 공부를 할까 생각해봤지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밀알’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목회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저의 모든 것을 다 드려서 선한 가치를 맺기를 하나님께서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섬기고 희생하는 과정을 통해 많은 열매가 열리고 그 열매가 사람들을 살리고 세우시기를 원했던 하나님의 에너지 공급통로로 쓰이는 것이 제 밀알사명이 됐죠. 남의 발을 닦아주는 사명, 여전히 어렵지만 제 인생 전부를 걸 만한 사명이기에 이 세상 떠날 때 가장 값진 인생으로 마무리할 수 있겠다고 믿습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 그리고 영혼을 다해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명이 기업을 통해 꾸준히 흘러가고 있습니다. 최고의 경제학자이자 능력자이신 진정한 CEO 하나님께서는 제 꿈 이상으로 부족한 저를 넘치도록 채워줬습니다. 저도 나눠주고 베풀고 유익을 주는 선한 부자의 사명, 밀알이 되는 사명을 잘 해내고 싶습니다. 노승선 객원기자 nss@seoul.co.kr
  • 김미경 강사, 자퇴 아들 이야기 고백에 눈물

    김미경 강사, 자퇴 아들 이야기 고백에 눈물

    김미경 강사가 ‘어쩌다 어른’에 출연해 자신의 아들 이야기를 하며 감동을 안겼다.지난 14일 방송한 OtvN ‘어쩌다 어른’에서 김미경이 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김미경 강사는 “예고에 들어간 둘째 아들이 학교에 적응을 못 했다. 사실 자퇴가 아니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연락이 와서 수업 일수가 모자라 퇴학을 당할 것 같으니 차라리 자퇴를 하라고 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김미경은 이후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 늦은 시간에도 아들을 위해 제대로 된 식사를 차려줬다. 이러한 김미경의 태도에 아들은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일본 여행을 다녀온 후 아들은 김미경에게 일본에서 혼자 힘으로 살아보고 싶다고 했고, 그곳 음악 대학에 합격했다. 김미경은 “만약 제가 자퇴한 아들에게 엄마가 강사인데 너 때문에 창피하다고 했으면 아이의 자존감은 한없이 떨어졌을 것”이라 말했다.아들을 끝까지 믿어준 김미경의 일화에 청중들은 박수를 보냈다. 김미경은 아들이 자신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보였다. 사진=OtvN ‘어쩌다 어른’ 방송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