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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지성 “워너원 중 솔로 앨범 첫 주자, 부담 컸다”

    윤지성 “워너원 중 솔로 앨범 첫 주자, 부담 컸다”

    윤지성이 워너원 멤버 가운데 처음으로 솔로 앨범을 발매하게 된 소감을 전했다. 20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는 워너원 출신 가수 윤지성의 첫 솔로 앨범 ‘Aside’ 쇼케이스가 진행됐다. 이날 윤지성은 워너원 멤버 가운데 솔로 앨범 발매 첫 주자로 나서게 된 것에 대해 “부담이 된다”고 말문을 열었다. 윤지성은 “처음으로 나오는 만큼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 모습이 동생들에게도 좋은 영향으로 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부담감을 갖고 더 열심히 준비했다”고 말했다. 윤지성은 이어 “혼자 작업을 하니까 멤버들 생각이 많이 났다. 지금도 매일 연락하고 있다. 항상 응원해줘서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워너원 멤버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에 MC 딩동은 윤지성에게 워너원 멤버들을 향한 영상편지를 부탁했다. 윤지성은 “얘들아 내가 정말 열심히 할게. 노래 계속 듣고 싶다고, 언제 나오냐고 물어봐줘서 너무 고맙고. 멤버들 다 잘돼서 행복하게 만났으면 좋겠다. 고마워 사랑해”라고 웃으며 인사를 전했다. 한편, 이날 오후 6시 발매되는 윤지성의 첫 솔로 앨범 ’Aside‘는 그룹 워너원으로 활동하며 항상 곁에서 믿고 응원해준 팬들을 향한 고마운 마음을 담은 앨범이다. 타이틀곡 ’In the Rain(인 더 레인)‘은 감성적인 멜로디에 오케스트라 선율이 더해진 팝 발라드 장르로, 사랑하는 이와의 준비 없는 이별을 맞이한 진솔한 마음을 담은 곡이다. 사진=뉴스1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행복해지고 싶어서”…숙제 안 낸 14세 소년의 ‘진지한 변명’

    “행복해지고 싶어서”…숙제 안 낸 14세 소년의 ‘진지한 변명’

    숙제를 안 해서 낸 반성문에 적힌 14세 소년의 ‘진지한’ 변명이 SNS에서 화젯거리로 떠올랐다. 영국 미러 등 해외 언론의 16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14세 소년 에드워드 코르테즈는 담임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제때 하지 않아 해명을 담은 편지를 제출해야 했다. 에드워드는 이 편지에서 “나는 주말에 학교 공부가 하기 싫었다. 왜냐하면 주말은 친구들과 나가 놀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게임을 할 수 있는, 스트레스가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라고 운을 뗀 뒤, “또 숙제는 나를 미치게 만들고 행복하지 않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는 내가 행복한 일을 하고 싶다. 왜냐하면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이라면서 “숙제는 진짜 세상에서 진정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학교에서 숙제를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숙제는 쓸모가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내용의 편지는 에드워드의 담임 선생님이 해당 편지를 에드워드의 부모에게 전달한 뒤, 함께 편지를 읽은 에드워드 아버지의 사촌이 SNS에 올리면서 화제가 됐다. 대부분의 네티즌은 “적어도 이 소년은 숙제에 대해 매우 현명한 태도를 취했다”라고 칭찬했고, 자신을 교사라고 밝힌 또 다른 네티즌은 “이 아이의 말에 100% 동의한다. 주말에는 아이들에게 숙제를 내주지 말아야 한다. 숙제는 주중에만 할 수 있도록 제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이 학교를 싫어하고 배우는 것을 거부하는 현상을 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드워드의 친척이 올린 게시물은 35만 1000건의 ‘좋아요’를 받았고, 약 10만 회 리트윗됐으며, 3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는 등 화제를 모았으며 각종 패러디가 등장하기도 했다. 사진=123rf.com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10만명 찾은 봉화 산타마을…경제 효과도 7억원

    10만명 찾은 봉화 산타마을…경제 효과도 7억원

    경북 봉화 분천역 산타마을에 관광객이 몰려 대박을 터트렸다. 19일 봉화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2일부터 지난 17일까지 58일 동안 운영된 분천역 산타마을에는 관광객 10만 6700명이 찾아 지난해 같은 기간 10만 1030명보다 5.3%인 5400명이 늘어났다. 특히 크리스마스 기간에는 2만여명이 찾아 인기몰이를 했다. 이로 인해 7억원의 경제파급 효과도 거뒀다. 이번 겨울 처음 설치한 산타우체국 노란 우체통(느리게 가는 편지)과 빨간 우체통(빠르게 가는 편지)에는 관광객이 사랑과 소망을 담은 편지 수천통을 남겼다. 구덩이를 파고 감자, 고구마를 익혀 먹는 삼굿구이 체험장, 풍차놀이터 등은 어린이에게 인기를 끌었다. 백두대간 탐방 열차가 출발하는 분천역 인근에 조성한 산타마을은 2014년 12월부터 해마다 여름과 겨울에 개장한다. 지금까지 겨울 5차례와 여름 4차례 문을 열어 관광객 74만 700여명을 유치했다. 엄태항 봉화군수는 “분천 산타마을을 겨울 관광 중심지로 바꿔 나가기 위해 겨울왕국 체험랜드 등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봉화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유림 137人의 평화투쟁… 산청군서 ‘파리장서’ 기린다

    유림 137人의 평화투쟁… 산청군서 ‘파리장서’ 기린다

    곽종석 선생 주도 유교계 대표 독립운동 전국 유림 대표, 파리강화회의에 청원서지역 독립유공자 후손 등 500여명 초청 파리장서 서문 독창 판소리 공연도 열려 ‘한국은 삼천리 강토와 2000만 인구와 4000년 역사를 지닌 문명의 나라이며 우리 자신의 정치원리와 능력이 있으므로 일본의 간섭은 배제되어야 한다. 일본은 한국의 자주독립을 약속했지만 사기와 포악한 수법으로 독립을 보호로, 보호를 병합으로 바꾸었고 교활한 술책으로 한국 사람이 일본에 붙어살기를 원한다는 허위선전을 일삼고 있다. 일본의 포악무도한 통치에 참을 수 없어 한국인들은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만국평화회의와 폴란드 등의 독립 소식을 듣고 만국평화회의에서 죽음으로 투쟁하는 우리 2000만의 처지를 통찰해 줄 것으로 믿는다.’ 일제강점기 지식인인 유림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만국공법(현 국제법)에 호소한 특별한 독립운동으로 불리는 ‘파리장서운동’ 100돌 기념식이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다음달 1일 오전 10시 유림의 고장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예담촌 유림독립운동기념관에서 열린다. 지역 독립운동 유공자 후손 등 500여명을 초청한다. 행사에선 독립운동의 결연함을 표현하는 취타대 공연, 파리장서 서문을 독창하는 판소리 명창 행사도 열린다. 18일 산청군에 따르면 파리장서운동은 면우 곽종석 선생(1841∼1919) 주도로 전국 137인의 유림 대표가 1919년 전문 2674자(長書)에 이르는 장문의 한국독립청원서를 편지로 작성해 파리강화회의에 보낸 유교계 대표적인 독립운동이다. 김창숙 등 10명은 중국 상하이에서 편지를 3개 국어로 번역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파리평화회의장으로 보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한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움직임에 따른 것이다. 파리장서운동 당시 곽종석 선생은 영남 유림 대표로서 파리장서 전문을 완성하고 김복한, 고석진, 류필영, 이만규, 하용제, 김황 등 전국의 유림과 연합해 파리장서운동을 이끌었다. 곽 선생은 이 운동으로 투옥돼 2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겪은 뒤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74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1963년 곽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남사담 예담촌에는 곽 선생의 후학들이 면우 선생을 기리기 위해 1920년 지은 이동서당 등 ‘면우 곽종석 유적’(경남 문화재자료 제196호)이 자리했다. 군은 2013년 10월 남사예담촌에 유림독립운동기념관을 지었다. 아울러 2018년 파리장서 기념탑도 남사예담촌에 건립됐다. 파리장서비는 1972년 10월 서울 장충단공원에 처음 세워져 1977년 경남 거창, 1997년 대구, 2006년 충남 홍성, 2007년 경남 합천, 2014년 경북 봉화, 2017년 3월 경남 김해 등의 지역에 건립됐다. 산청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5000억 넘는 다빈치의 세계서 가장 비싼 그림은 위작”

    “5000억 넘는 다빈치의 세계서 가장 비싼 그림은 위작”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자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으로 알려진 ‘살바토르 문디’(구세주)가 위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살바토르 문디는 2017년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억 5030만 달러, 한화로 약 5040억 원에 낙찰돼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예술사학자이자 루브르박물관의 자문위원인 자크 프랭크는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와 한 인터뷰에서 “살바토르 문디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 아닌 그의 제자가 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작품이 위작이라는 주장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8월 옥스퍼드대학의 레오나르도 연구자인 매슈 랜드루스 교수는 다빈치가 해당 그림 작업에 20~30%만 참여했을 뿐 나머지 상당수는 그의 제자 베르나르디노 루이니가 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CNN과 한 인터뷰에서 ”살바토르 문디는 화실 조수들의 도움으로 완성된 레오나르도의 작품이다. 베르나르디노 루이니의 도움이 특히 눈에 띈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주장을 펼치고 있는 자크 프랭크는 엠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루브르박물관이 진행하려는 다빈치 기념전시에 위작이 포함돼 있다면 반드시 이를 재고해야 한다”는 충고성 편지까지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프랭크는 "루브르박물관 측은 살바토르 문디가 다빈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물관 측은 오는 10월 다빈치 전시에 살바토르 문디를 전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다빈치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모나리자’를 소장하고 있는 루브르박물관은 올해 다빈치 서거 500주년을 기념해 하반기에 다빈치의 회화 걸작들을 한 자리에 모은 특별전을 기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박물관 측은 다빈치의 주요 그림 다수를 소장하고 있는 이탈리아와 2017년 협약을 맺고 특별전을 위한 회화 작품들을 공수받기로 합의했다. 여기에 2017년 전 세계의 이목을 한 몸에 받은 살바토르 문디도 포함시키기 위해 현재 이 작품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사우디 아라비아의 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 측과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살바토르 문디가 위작이라는 주장과 관련해 루브르 측은 ”그의 개인적인 견해에 불과하다“며 일축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박유천 근황 “신곡 연습 중..팬들 빨리 만나고파”

    박유천 근황 “신곡 연습 중..팬들 빨리 만나고파”

    가수 박유천의 근황이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15일 소속사 씨제스 공식 인스타그램에는 “안무연습실에서 보내는 깜짝 편지. Slow Dance 스포까지”라는 글과 함께 동영상 한 개가 공개됐다. 영상에는 박유천이 컴백을 앞두고 팬들에게 영상편지를 보내는 모습이 담겼다. 박유천은 “저는 연습실에서 신곡 ‘Slow Dance’ 안무를 연습하는 중”이라며 “여러분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박유천은 이어 “하루 빨리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고 만나는 날까지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박유천은 오는 27일 정규 1집 ‘Slow Dance’로 컴백한다. 사진=인스타그램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북한 전쟁고아 기록정리가 남은 일…더 늦기 전에 끝내야”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북한 전쟁고아 기록정리가 남은 일…더 늦기 전에 끝내야”

    ‘독일서 韓문화재 발굴’ 김영자 박사가 말하는 ‘북한 전쟁고아’“한반도 현대사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아픔, 잊혀진 이들이 있다. 바로 북한의 전쟁고아야. 남편이 먼저 시작한 일인데 요즘은 그게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6·25 한국전쟁에서 남한뿐 아니라 북한에서도 전쟁고아가 많이 발생했지. 이들이 동유럽에서 위탁교육을 받다가 어느 날 하룻밤 새 갑자기 싹 사라졌거든. 이들에 대한 기록 정리가 여생의 일이 됐어.” 독일에 반출된 한국 문화재 발굴과 보존의 중심에 섰던 베커스 김영자(80) 박사가 한국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뷰를 청했더니 경복궁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만나자고 했다. 김 박사는 “서울 지리를 잘 몰라 다른 곳은 잘 찾아갈 수 없어. 그런데 민속박물관은 찾아갈 수 있어.”라며 “1층 안쪽 커피숍에서 만나자.”라고 했다. 독일에서 50년째 사는 그가 박물관 1층에 커피숍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의 이력대로 문화재에 조예가 깊어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민속박물관을 찾나 생각하고 설날 연휴인 지난 2일 약속 장소로 갔다.(※독일로 먼저 돌아간 남편이 북한 전쟁고아 사진을 보내주기까지 기사 발행이 미뤄졌다.) “체코의 北전쟁고아, 남편이 먼저 발굴60여명 작은 궁전서 5년간 위탁교육한국 모르는 남편 탓에 이 일에 빠져”‘요즘 어떻게 지내시느냐.’라고 인사를 건넸더니 김 박사는 “나이가 이제 80인데 쉬어야지.”라며 잠시 뜸을 들였다. “남편(베커스 크리스토퍼·76)이 2015년 봄 어느 날 신문을 보다가 체코의 어느 제후 궁전에서 북한 고아들이 1953~1958년까지 살았다는 기사를 읽은 거야. 아내의 조국 ‘코리아’라는 단어가 등장하니 솔깃했던 가봐. 남편이 당장에 차를 몰고 달려가 그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봤대. 60년이 훌쩍 지났으니 동네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는데, 어렵사리 수소문해서 기숙사 사감을 지냈다는 여성을 만났다고 해. 요양병원에 있는 그 여성이 나이가 많아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기도 힘들 정도였고, 정신이 오락가락했는데, 남편이 그 여성이 돌보고 교육했던 북한 고아들의 사진과 앨범, 이들이 돌아가서 그녀에게 보낸 엽서 등을 전달받았거든. 이 여성이 돌아가신다면 북한 전쟁고아들에 대한 귀중한 자료도 그냥 재로 사라질뻔한 것이지. 그런데 남편이 한국말과 한국 사정을 잘 몰라 한계가 있으니, 내가 이 일에 끌려들어 간 거지.” “北전쟁고아 1958년 하룻밤에 귀국가서 ‘보고싶어’ ‘그곳이 천국’ 편지도1962년 이후엔 서신 왕래도 뚝 끊겨” 팔순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발음은 또랑또랑했고, 말은 박력이 있었고 빨랐다. 기억은 엊그제 한 일처럼 생생했다. 그러더니 대뜸 김 박사가 “남한에선 북한 전쟁고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었다. “한국에선 북한 전쟁고아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고, 잘 모르고 있다.”라고 답했다. 사실 기자도 수년 전 여자배우 추상미가 감독한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북한 전쟁고아들을 다뤘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한국 기자들이 우리 집에 많이 왔었어. 그때마다 남편이 북한 고아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명하면 기자들이 ‘네, 네.’라고 대답했지. 그런데 기사는 한 줄도 나오지 않아 남편도 거의 포기했어. 북한과의 적대적 관계도 있고 해서인지 한국에선 도통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웠지. 북한 고아 문제는 외국에서 더 관심이 있었어. 폴란드에서 북한 전쟁고아를 다룬 다큐 영화 ‘김귀덕(Kim Ki Dok)’이 2006년도에 먼저 제작됐거든.” 영화 ‘김귀덕’은 폴란드에서 무덤이 하나 있는데 이걸 파버릴까 하다 동양인 무덤이 여기에 왜 있지 하고 조사를 하다 보니 북한 전쟁고아였다는 이야기다. ‘김귀덕’은 유튜브로 검색하니 나왔지만, 한글이나 영어 자막이 달려있지 않아 보기가 쉽지 않았다.체코에 있던 북한 전쟁고아 이야기를 더 들려달라고 했다. “체코의 작고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궁전인 발리치(Valec Valech)에 북한 고아 60여명이 위탁 교육을 받았어. 이 궁전이 사회주의 체제에서 공공건물로, 보육원으로 쓰였거든. 전쟁고아를 남쪽 한국에선 나쁘게 말하면 선진국에 팔았지만, 북한에선 우방인 동유럽 국가에 위탁교육을 했던 거야. 최근에 한국 PD 한 사람이 취재차 왔었어. 이 궁전에 전쟁고아들이 있었다는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어. 궁전 정원 한쪽 구석에 세워진 오벨리스크에 전쟁고아들이 위험하게도 올라가 영문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새긴 게 있거든. 글자가 많이 부식되고 상하고 있어 언제 없어질지 모르니 빨리 보존 조치를 취해야 해.” “北전쟁고아, 내 또래여서 더 동질감이들 북한서 어떻게 됐는지 문득 생각위탁 부모도 고령, 구술 정리도 시급” 김 박사의 설명은 계속됐다. 전쟁 직후 여력이 없던 북한은 1951년부터 전쟁고아들은 체코를 비롯해 구동독,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으로 위탁교육 명목으로 보냈다. 정확한 조사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런 북한 전쟁고아는 몇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1958년 어느 날 김일성의 명령에 의해 북한 고아들이 어느 날 싹 귀국했어. 주위 사람들도 모르게 밤새 다 데려갔다고 해. 정성 들여 애들을 교육하고 돌본 엄마들은 ‘지금도 보고 싶어서 운다.’라고 해. 그리고 그 아이들이 북한으로 돌아가서 ‘엄마, 보고 싶어요.’, ‘그곳이 천국이었어요.’라는 내용의 엽서를 보냈지. 1962년 이후 편지 왕래마저 끊겼고, 그리곤 사라진 거지. 북한 전쟁고아들을 돌봤던 이들이 아주 고령이지. 더 늦기 전에 이들로부터 구술받지 않으면 전쟁고아의 기록은 사라질 수 있어.”북한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들이 대개 6~12살쯤 되어 동유럽에 와서 몇 년 살았어. 돌아갈 때 나이가 많은 아이는 스무 살가량 됐고, 유럽 문화를 알고, 한창 정이 들 무렵이었지. 그때 동유럽이 사회주의 체제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북한보다는 자유스럽고, 풍족했지. 북한으로 돌아간 아이들이 수용소로 끌려가서 자유스럽지도 못하고 혹사를 당한 것으로 추정돼. 북한에서 적응을 잘한 아이들은 동유럽 언어가 되니 고급 인력으로, 외교관으로 살아남았을 거야. 북한 전쟁고아들의 나이가 내 또래여서 더 동질감이랄까 연민이 느껴져.” “발리치 궁박물관장이 전시실 한 두 개를 내줄 테니 한국관 전시실로 꾸미라고 우리한테 제안했어. 이 궁전이 1976년 화재로 불탔는데, 문화유산이어서 EU가 겉모습은 복원해 줬거든. 내부는 아직 텅텅 비어 있어서 주로 콘서트나 미술관으로 이용해. 여기에 ‘당시 아이들이 입었던 옷, 당시 영상물, 동요 등을 전시하면 좋겠다.’라고 나랑 남편이 이야기하지. 전시관 기획 잘해서 신청하면 (발리치궁이) 자국 문화재청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도 하더라.” 김 박사 부부의 집에서 발리치까지는 차로 3~4시간 거리여서 체코 문화와 맥주를 좋아하는 남편이 종종 놀러 간다고 했다.“1968년 장학금 받는다는 말에 獨유학레겐스부르크大 한국어문화 강좌 맡아직접 쓴 문법책 기초한국어 인기 여전” 베커스 김영자 박사는 어떻게 독일과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1939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난 그는 꽃다운 25살 때인 1965년 독일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1년 장학금을 받게 해주겠다는 신부님의 말에 “아무것도 모르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땐 외국 나간다는 말에 무조건 좋았거든. 처음 수녀원에 도착해서 어학연수를 받는 동안 말이 안 통하니 많이 울었지. 뮌헨대학에 서양사와 독문학을 전공하고, 레겐스부르크대학에 입학해 서양사를 전공했지. 건축사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애를 키우다 1975년에 이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지. 1979년부터 레겐스부르크 시립박물관의 학예사로 근무하면서 인맥이 넓어졌고, 그때부터 한국과의 인연이 깊어졌지. 그러다 모교에 한국어문화 강좌가 개설되면서 교수가 된 거야. 1987년부터 정년퇴직한 2005년 9월까지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쳤지. 자매결연을 한 동국대에 독일 학생들을 보내 문화교류도 시키고 했어. 동국대가 독일 대학과 자매결연을 한 첫 한국의 대학일 거야.” 그가 사는 레겐스부르크는 뭔헨에서 동북쪽으로 자동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를 맡을 사람으로 내가 뽑힐 때 독일어와 한국어가 되니, 한국사람이 한국어 가르치는 것을 처음엔 아주 쉽게 생각했어. 그런데 말은 잘해도 한국 문법을 모르니, 독일 학생들은 문법적으로 명확하게 설명이 안 되면 이해는커녕 공부하려고도 하지 않아. 얼마나 깐깐하고, 황당한 질문이 많이 날아들었는지. 한국에 들어와 시중의 문법책을 다 보고, 한국어학당을 다 가봤지만, 마음에 드는 게 없었어. 오죽 답답했으면 교육부에 들어가 ‘제대로 된 문법책 하나 내 놓으라.’라고 닦달했을까. 나중에 고등학교 국어 문법책을 하나 구해, 문법을 연구하면서 ‘기초한국어’를 썼어. 여전히 인기 좋아 지금도 잘 팔리고 있어. 한국으로 발령나서 가는 독일 외교관들이 ‘이 책을 들고가면 걱정이 없다.’라고 할 정도야. 한국어의 심화 과정과 한국 문화까지 소개하는 ‘한국어 플러스’도 냈어.” ‘삼국유사’ 독일어 번역…도서전서 호평“韓정체성 보여주는 역사책 내고파 번역” ‘삼국유사(국보 306호)를 독일어로 번역한 계기가 무엇이냐?’고 묻자 김 박사는 그 뒷이야기부터 꺼냈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이 ‘한국의 해’여서 삼국유사를 번역해 내겠다고 했더니 한국문학번역원이 글쎄, ‘삼국유사는 문학이 아닌 역사’여서 지원금 지원이 안 된다고 했거든요. 이런 소식을 들었던 당시 경북 군위군의 인각사 주지가 백방으로 뛰고 해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통하니 지원금이 나왔지. 당시 문학 100선이었는데 삼국유사가 더 들어가는 바람에 101선이 됐지. 출판기념회를 도서전에서 했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문학번역원조차도 ‘선생님 번역 책이 최고.’라고 했지. 유럽에선 한국이 일본이나 중국보다 덜 알려진 게 아쉬웠는데, 한국 고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역사책을 유럽에 내보이고 싶었거든. 그게 번역에 나서게 된 계기였어.” 국립민속박물관이 약속 장소로 정한 이유도 나왔다. 김 박사가 한국에서 가장 자신 있게 잘 아는 곳이기에 그렇다. 1906년 한국을 방문해 기록 사진을 남긴 독일군 장교 헤르만 구스타프 테오도르 산더 대위의 사진 기증전시회가 2006년 4월 여기서 열렸다. 당시 김 박사가 사진과 함께 전시된 문서와 관련 자료를 한국어로 번역해 줬다. 또 2008년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의 선교박물관이 소장한 유물 전시회가 민속박물관에서 열릴 때도 김 박사가 깊이 관여했다. 그가 유럽에서 수십년간 수집한 근대조선 사료를 고스란히 민속박물관에 기증했고, 베를린 등 유럽 골동품 가게나 벼룩시장 등에서 취미로 사모았던 인형 600여점을 2009년 기탁하기도 했다. 물론 그가 독일 문화재를 발굴해 정리할 때 민속박물관 학예사들의 도움도 컸다. “겸재 금강산 화첩 발견도 드라마틱수도원 ‘한국에 귀한 것…팔 수 없어’왜관수도원에 영구임대 형식 반환돼”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그녀가 1999년 번역한 ‘수도사와 금강산’(노르베르트 베버 지음)을 꼽았다. “이 책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 조선시대 미술사를 다시 쓰게 했거든.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장을 지낸 노르베르트 베버(1870~1956년)는 1925년부터 4개월간 선교차 방한해 금강산을 돌아보고 가면서 ‘금강산을 잘 그린 그림을 하나 사고 싶은데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금강산 등정에 동행한 독일인 헹켈이 나한테 선물을 했다. 수도원 박물관에 두었다.’라는 기록만 남겼지. 어디에서 어떻게 샀다는 말은 남기지 않았어. 어쩌면 이 선물이 금강산 화첩이었는지도 몰라. 그리곤 아프리카 선교를 가서, 그곳에서 선종하셨거든. 그러면서 그림이 책에 실렸어. 원서에 실린 이 그림을 본 한국의 한 미술사학자가 수도원에 편지를 써서 ‘이 책에 나와 있는 그림이 있느냐.’라고 하니 당시 수도원장은 ‘모른다.’라고 딱 잡아뗐다는 이야기 전해. 수년이 흘러, 그런데도 아주 이상하니 국립박물관 학예관 한 명이 직접 가서 보겠다며 수도원을 방문한 거야. 그리고 갔더니 직사광선을 받는 곳에서 그림이 빛바랜 채 다 죽어가고 있는 걸 본거야. 이 학예관이 깜짝 놀라는 것을 본 박물관 신부님이 ‘우리 이런 것 또 있어’하면서 두 폭의 그림을 더 갖고 나왔던 거야. 또다시 놀라자 이번에는 소장한 그림을 모두 갖고 보여준 거야. 이게 모두 21첩, 겸재 정선의 금강산 화첩이 된 거지. 발견 과정이 드라마틱해.” “이 그림들이 우여곡절을 겪다가 2005년 한국으로 돌아와. 국보급 문화재 반환의 모범 사례지. 이 그림의 존재와 가치가 알려지면서 소더비 등 영국과 미국의 경매 회사들이 수도원에 그림을 팔라고, 그 비용으로 선교사업에 쓰라고 했어. 그렇지만, 예레미아스 슈뢰더 수도원 대원장이 ‘한국에 그렇게 귀한 것이라면 팔 수 없어. 돌려줄 거야.’라고 결심하고 자매관계인 경북 칠곡군에 있는 왜관수도원에 ‘국가에는 주지 마라.’는 단서로 영구임대하지. 난 반환된 겸재 화첩을 한국에서 보려고 겨우 날짜를 잡고 방문하기 1주일 전, 왜관수도원에 큰 불이 났어. 그 소식에 가슴이 철렁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지. 수도원이 거의 몽땅 다 불타버렸지. 다행히도 화첩은 다른 곳에 보관해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었던 거야. 이런 보관의 이유로 반환된 겸재 정선의 금강산 화첩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거지.” “韓근대복식 300벌 한꺼번에 나와불상·곤여전도 등 1200여점 보관유럽 최대 한국 유물 소장 박물관”김 박사는 한국과 인연이 깊은 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에는 대학을 정년한 2005년부터 10년간 자원봉사직 학예사로 근무했다. “오틸리엔 수도원장이 한국 유물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합디다. 박물관에 가보니 조선시대 갑옷에 일본 사무라이 투구를 씌워 전시해 일본 유물로 착각하게 된 게 많았어. 설명도 엉터리가 부지기수였고. 동양관에는 한국·일본·중국 유물이 뒤섞여 있었던 거지. 선교박물관의 전시품 80%는 아프리카 것이었고, 나머지는 동양 3국의 유물로 먼지를 뒤집어쓰고 뒤섞여 있는 거야. 나 혼자 어찌할 수도 없고 해서 민속박물관에 요청하니 학예사 4명이 3주간 파견 나왔지. 우리 다섯이 먼지 속에서 정리했지. 전시실을 정리하니 한국 유물 540점이 나왔지. 다음해에는 지하실 창고를 뒤지니 먼지가 두텁게 쌓이고 거미줄이 쳐진 곳에서 한국 유물이 수두룩하게 나왔어. 17세기 불상과 1869년의 곤여전도(坤輿全圖·세계지도) 등 모두 1200여 점이나 됐지.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2016년 한국관을 별도로 재개관한 거야.” “하루는 수사님이 불러서 수도원에 갔더니 함을 하나 보여주는 거야. 열어보니 좀벌레가 휙 하고 지나가. 신랑 저고리, 신부 치마를 비롯한 근대 복식 300여벌이 나왔어. 전문가도 아니고, 정리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가 알고 지내던 조우현 교수(성균관대 복식과)에 연락해 사정을 설명했어. ‘비행기 비용도, 작업비도 못 준다. 그래도 숙식은 제공해 줄 테니 와서 도와다오.’라고 부탁했지. 그가 조교 두 명을 데리고 와서 2주 동안 수도원에서 먹고 자면서 정리해 주고 갔지. 이게 1920년대 복식인데 보기보다 귀한 거야. 우리 한국에선 사람이 죽으면 옷을 불태우는 관습이 있어서 근대 복식이 예상외로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거야. 문화재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진 국립민속박물관·서울시립역사박물관의 학예사들과 국외소재문화재단, 문화유산회복재단, 재정 지원을 해준 문화재청 등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야. 감사할 따름이죠.”“내 나이 팔순, 사명감 있는 후배 나서야” “무보수로 선교박물관에서 일할 때 힘들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사명감이 있었어. 훼손되는 귀중한 한국 유물을 복원하려고 독일과 한국의 정부 지원금을 받아내기 위해 정말 동분서주했거든. 이젠 후배들이 나서서 해야 하는데…. 한독 문화교류의 지식과 기반이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자기 분야가 아니면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어서….” 김 박사의 백발이 더욱 선명해 보였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김기중 기자의 책 골라주는 남자] 미니멀 라이프 권하는 책들… 비워 볼까요

    설 연휴를 지나고서 3000통이 넘는 이메일을 모두 비웠습니다. 받은 편지함에 적힌 숫자 ‘0’을 보니, 어찌나 시원하던지요. 이메일을 비운 계기가 된 건 요새 읽은 미니멀리즘 책이었습니다. 연초와 설 연휴 전후에 관련 분야 책이 많이 나왔습니다. 책은 묵은 것을 정리하고, 가볍게 출발하기를 권합니다. 최근 재밌게 본 미니멀리즘 관련 책은 ‘나는 미니멀리스트, 이기주의자입니다’(홍시커뮤니케이션)입니다. 저자 시부야 나오토는 부유하게 살다가 부모가 이혼한 뒤 집안 형편이 나빠지며 최소한의 삶을 살겠다 결심합니다. 현재 그는 2평짜리 집에서 삽니다. 옷은 열 벌이 채 안 되고, 집에 냉장고도 없습니다. 대신 직접 장을 보고 고구마, 현미, 연어 등으로 꾸린 식사를 하루 한 끼만 합니다. 그의 삶을 보자니 예전에 인상 깊게 읽었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비즈니스북스)가 떠올랐습니다. 두 책 모두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만 남기고 모두 버리라는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을 강조합니다. 저자의 삶을 보여주는 사진을 보면 ‘이런 삶이 가능할까’ 싶은 생각마저도 듭니다. 미니멀 라이프를 위한 정리 관련 책들도 눈에 띕니다. 정리 컨설턴트인 윤선현씨가 낸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순간 정리를 시작했다’(인플루엔셜)가 읽어봄직 합니다. 정리를 하면서 삶이 반듯해지고, 인생도 바뀌었다는 내용입니다. 비슷한 책으로 곤도 마리에의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더난출판사)도 유명합니다. 책 읽기가 귀찮을 때에는 온라인 카페에 들르며 미니멀하게 살아보길 다잡습니다. 회원들이 올린 집안 곳곳을 비운 사진을 보면 ´나도 정리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너무 많은 물건에 치이지 말고, 물건을 줄이고 자신에게 집중하자는 미니멀리즘. 연초를 맞아 나온 책을 읽어보고 우선 실천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며 책을 산다는 일 자체가 사실 이에 반대되는 일이긴 하지만요. gjkim@seoul.co.kr
  • 강다니엘, 발렌타인데이 초콜릿 주고 싶은 스타 1위 “첫사랑 판타지”

    강다니엘, 발렌타인데이 초콜릿 주고 싶은 스타 1위 “첫사랑 판타지”

    최근 그룹 워너원으로 1년 6개월의 공식 활동을 마무리하고, 2019년 솔로 아티스트로 새로운 출발을 앞둔 강다니엘이 ‘발렌타인데이’ 초콜릿 주고 싶은 스타 1위로 선정됐다. 지난 1월 21일부터 2월 11일까지 중고등 인터넷 수학교육업체 세븐에듀가 10,67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발렌타인데이’ 초콜릿 주고 싶은 스타 1위로 강다니엘(5,484명, 51.4%)이 선정됐다. 강다니엘은 2017년 8월 엠넷(Mnet) ‘프로듀스 101-시즌2’가 배출한 프로젝트 그룹 ‘워너원’의 멤버로 데뷔 지난해 12월 31일까지 활동하며 5장의 음반이 35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고, MBC 방송연예대상 버라이어티부문 남자 신인상을 비롯해 각종 시상식을 휩쓸며 대한민국 최고 아이돌 반열에 올랐다. 방송으로는 SBS ‘런닝맨’, KBS2 ‘해피투게더4’, MBC ‘발칙한 동거 빈방있음’ 등과 같은 예능에서도 예능감을 발산하며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강다니엘에 이어 방탄소년단 지민(4,285명, 40.2%)이 2위를 차지했으며 그 외 육성재(582명, 5.5%), 박보검(166명, 1.6%), 정해인(102명, 1%)가 3~5위를 차지했다. ‘발렌타인데이’의 유래에 대해서는 연예결혼을 엄격히 금지했던 로마시대의 사제 성 발렌타인의 순교일인 서기 270년 2월 14일에 기원한다고 전해진다. 사랑하는 남녀를 도와주다가 이교도의 박해로 순교했던 그를 기리기 위한 것. 그 뒤 1477년 2월 14일 영국의 마거리 부르스라는 여자가 짝사랑하는 존 패스턴이란 남자에게 구애의 편지를 보냈고 결혼까지 성사되어 이날이 젊은이의 축제로 자리 잡게 됐다. 즉 현대식 ‘발렌타인데이’의 시초는 영국에서 시작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같은 결과에 수학인강 스타강사 세븐에듀&차수학 차길영 강사는 “강다니엘이 가지고 있는 소년의 이미지가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에게 첫사랑의 판타지를 자극시킨다”이라며 “무대 위에서 대중을 압도하는 강한 모습과 예능에서 보여주는 소탈하고 멍뭉미 넘치는 상반된 모습이 대중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강다니엘은 워너원 해체 후 LM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솔로앨범 작업 중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30년 기다려… 국경 뛰어넘은 베트남男·북한女 부부

    30년 기다려… 국경 뛰어넘은 베트남男·북한女 부부

    北정부 만남 방해 이기고 2002년 결혼식사회주의 국가의 방해로 헤어졌던 30여년의 세월을 극복한 베트남 남성과 북한 여성의 사랑이 오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재조명됐다. 로이터통신은 13일 팜녹칸(69)과 이영희(70) 부부의 사연을 소개했다. 둘은 48년 전 처음 만났다. 1971년 23세였던 칸은 화학 기술을 배우고자 베트남이 북한에 파견한 유학생 200여명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한 비료공장에서 이씨를 처음 만났다. 칸은 “나는 그녀와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이씨와의 첫 만남을 반추했다. 이씨도 칸에게 매료됐다. 이씨는 “칸은 너무 매력적이었다. 처음 봤을 때 칸이 바로 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북한과 베트남은 국제결혼을 금지했다. 둘은 북한인들의 눈을 피해 비밀교제를 했다. 그러나 1973년 칸의 임무가 끝나면서 연인은 주소만 주고받은 채 헤어졌다. 칸과 이씨는 편지로 사랑을 키워 갔다. 칸은 1978년 베트남 화학공학연구소 북한 방문단에 들어가 잠시나마 이씨와 함께 지냈다. 칸은 북한 정부에 편지를 보내 이씨와 결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북한은 이에 답하지 않았다. 칸은 1992년 베트남대표단 방북에 통역으로 함께했으나 이씨를 만나지 못했다. 칸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2001년 베트남 정치권 대표들이 평양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대통령과 외무부 장관에게 편지로 자신의 사정을 알렸다. 마침내 북한은 베트남의 요청을 받아들여 둘의 결혼을 허락했다. 두 사람은 만난 지 31년 만인 2002년 12월 양국 하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다. 칸과 이씨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만남으로 북한의 적대 행위가 끝나기를 바랐다. 칸은 “결국 사랑은 사회주의를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130년 전 조선·미국 철도 부설 논의한 외교 문서 나왔다

    130년 전 조선·미국 철도 부설 논의한 외교 문서 나왔다

    미국공사왕복수록·미국서간 등 8건 증손 이상구씨 국립고궁박물관 기증 19세기 조선왕조 대미 외교 생생히 주미공사관 서기관으로 활동 기록도“우리가 철로를 조선 경성 제물포 사이에 설치하는데, 무릇 해당 개설 도로와 역사 건축 부지의 토지는 특별히 정부에서 면세를 허용할 일.”(1888년 ‘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私往復隨錄) 중 당시 미국이 조선에 철로·양수기·가스등을 설치하기 위해 제안한 규약 중 제1조)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개통된 길이 31㎞의 철도인 경인선(제물포~노량진)은 1899년 완공됐다. 그간 경인선은 미국인 모스가 1896년 조선 정부로부터 철도 부설권을 얻어 공사를 시작했지만 자금이 부족한 까닭에 1897년 일본에 철도 부설권을 넘겼고, 결국 1899년 일본이 완공한 것으로만 알려져 왔다. 최근 공개된 당시 조선과 미국 정부 간 외교 문서를 통해 1888년 조선이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통해 미국 측과 철도 부설 논의를 진행한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주미공사관 서기관으로 임명돼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1841~1904)과 함께 1888년 미국에 갔던 월남 이상재(1850∼1927)가 보관한 외교 문서 ‘미국공사왕복수록’을 통해서다.문화재청은 ‘미국공사왕복수록’을 비롯해 이상재의 증손인 이상구(74)씨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간직해 온 이상재의 외교 자료 8건을 국립고궁박물관에 기증했다고 13일 밝혔다. 이상재가 쓴 편지 모음인 ‘미국서간’(美國書簡)과 박정양이 공사 일정 등을 기록한 ‘미행일기’의 초록으로 추정되는 문헌, 워싱턴에서 촬영한 이상재 사진 등이다. 이상재는 1887년 주미공사관 서기관으로 임명되어 박정양 공사와 함께 1888년 1월 미국 워싱턴으로 건너갔다. 같은 해 11월 박정양 공사와 함께 다시 귀국할 때까지 현지에서 주미공사관을 개설하는 등 공관원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했는데, 이 자료들은 이 시기에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공관원들의 업무편람에 해당하는 ‘미국공사왕복수록’ 중 주목할 만한 부분은 미국 뉴욕 법관 ‘딸능돈’ 등이 조선기계주식회사를 설립해 철로, 양수기, 가스등 설치를 추진하기 위해 조선 정부에 제안한 규약과 약정서 초안이 수록돼 있다는 점이다.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팀장은 “당시 조선 정부가 주미공사관을 통해 자주독립 외교를 펼친 것뿐만 아니라 서구 문물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창구로 활용해왔음을 알 수 있는 자료”라고 설명했다.또 이상재가 주미공사관 서기관으로 임명된 1887년 8월부터 1889년 1월까지 작성한 편지 38통을 묶은 ‘미국서간도 주목할 만한 자료다. 주로 부모의 안부를 묻거나 집안일과 관련된 것이지만 주미공사관 운영 사정과 일정, 미국에서 보고 느낀 점에 대한 기록도 담겼다. 예컨대 “공관은 매년 임대료를 780원씩으로 정하고 입주하였다. 관내의 일용 집기는 1천 5백여원으로 구입해두었다. 조·석반은 쌀과 고기를 사서 관내에서 밥을 지어 먹는다”(1888년 2월 12일)라거나 “중국 공사는 매번 우리나라 공사의 위에 서고자 하고, 우리 공사 역시 그 밑에 있지 않으려고 한다.(…) 이때에 만약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꺾이면, 이는 국가의 수치이고 사명을 욕보이는 것이다.”(1888년 5월 23일)와 같은 내용을 엿볼 수 있다. 당시 이상재의 활동상과 당시 공사관의 실상 등을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다.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이상재 선생 유품 자료는 19세기 조선왕조의 생생한 대미 외교활동을 보여주는 자료로,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관련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공사관원이 직접 기록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영등포, 위기가구 구할 ‘빨간 우체통’ 확대 운영

    서울 영등포구는 소외된 이웃의 복지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빨간 우체통’ 사업을 확대 운영한다고 밝혔다. 서면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수취인부담 우편제도로 영등포구가 2017년 처음 시작했다. 지하·옥탑방·고시원 등 취약 가구에 회송용 우편봉투와 편지형 안내문을 전달하면 필요한 도움을 적어 가까운 빨간 우체통에 넣거나 우체국에 접수하는 방식이다. 영등포구는 동별 복지거점 34곳에 추가 설치하기로 했다. 빨간 우체통은 영구임대아파트, 다세대·다가구주택 등 주거 취약 가구가 밀집된 지역에 우선 설치한다. 영등포구는 지난 2년간 이 사업을 통해 위기상황에 처해 있는 116가구를 발굴하고 긴급복지 등 150건의 공공·민간 복지서비스를 연계했다. 도움을 청한 상당수는 50~60대 1인 가구로 장기간 방치돼 왔던 복지 사각지대의 주민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채현일 구청장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빨간 우체통을 통해 속마음을 털어놓길 바란다”면서 “사회적으로 고립된 1인 가구와 은둔형 가정을 살리기 위해 주민과 함께 복지공동체를 강화하고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해 가겠다”고 말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정식 교육과정서 체계적 노동교육 ‘의미’… 교사 선택에 달린 자료활용 여부는 ‘한계’

    정식 교육과정서 체계적 노동교육 ‘의미’… 교사 선택에 달린 자료활용 여부는 ‘한계’

    13일 서울교육청이 발표한 ‘고등학교 교육과정 연계 노동인권 지도자료’는 정식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이 노동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한 첫 번째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이 2013년 경기교육감 재임 시절 개발한 인정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에 노동 부문의 사례가 있지만, 이를 채택한 학교가 많지 않아 보급에 한계가 있었다. 서울교육청의 이번 지도자료는 교육과정 내에서 교사들이 자유롭게 자료를 활용해 노동교육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 가능성이 크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인정교과서보다 기존 교과목에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지도자료의 활용도가 더 높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노동자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 깨는데 초점 서울교육청은 지난해 1월 ‘노동인권교육 활성화 조례’를 제정하면서 지도자료 개발에 착수했다. 지난해 7월부터 최윤정 이화여대 교수, 이예지 한가람고 교사 등 전문가 7명이 집필해 완성했다. 하종강 성공회대 교수는 “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이 월급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가 됨에도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부정적 측면이 더 강하다”면서 “이는 학교에서 노동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토론 통해 노조·파업 필요성 등 고민 자료는 노동자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깨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를 들어 그림책 ‘탁탁 톡톡 음매 젖소가 편지를 쓴대요’를 활용한 토론 등을 통해 노조와 파업이 왜 필요한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미국의 변호사 도린 크로닌이 쓴 이 책은 소들이 농장 주인에게 편지를 써 자신들의 권리를 찾는 내용으로 미국 도서관협회 상을 받았다. 대형마트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송곳’을 활용해 노조의 의미를 찾도록 하는 내용도 있다. 다만, 일선 수업에서 이번 자료의 활용 여부는 교사의 선택에 달렸다는 점에서 한계는 있다. 하 교수는 “프랑스는 90년 전에 노동교육을 정규 교육에 넣었고, 미국이나 일본도 노동교육이 모두 교육과정에 포함됐다”면서 “우리나라도 노동교육이 정규 교육과정에서 의무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호철 서울교총 대변인은 “노동교육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편향적 교육’으로 혼란이 있을 수도 있다”면서 “서울교육청에서 민원 대처 방안이나 실질적인 수업시수 확보 계획 등을 함께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눈이 부시게’ 한지민 사라지고 70대 김혜자 남았다 “2회 만에 입증한 감성 포텐”

    ‘눈이 부시게’ 한지민 사라지고 70대 김혜자 남았다 “2회 만에 입증한 감성 포텐”

    단 2회 만에 명품 드라마의 품격을 입증한 ‘눈이 부시게’를 향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12일 방송된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연출 김석윤, 극본 이남규·김수진, 제작 드라마하우스) 2회 시청률은 전국 기준 3.2%, 수도권 기준 3.7%(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를 기록하며 상승했다. 이날 아버지(안내상 분)를 살리기 위해 운명을 걸고 시계를 거꾸로 돌린 혜자(김혜자/한지민 분)의 시간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지극히 평범한 혜자의 일상을 유쾌하고 따뜻한 웃음으로 그려냈던 ‘눈이 부시게’가 예측 불가한 시간 이탈 로맨스를 본격화하며 시청자들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특히, 설레는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 혜자와 준하(남주혁 분)에게 예기치 못한 시련이 닥치며 앞으로의 이야기에 궁금증을 증폭했다. 이날 방송에서 혜자는 준하의 시간을 돌려주겠다던 호언장담과 달리 숙취에 시달리며 눈을 떴다. 시간을 채 돌리지 못하고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쓰러진 혜자. 준하의 등에 업혀 머리채 운전까지 감행한 혜자의 흑역사였지만, 준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인 줄 알면서도 자신을 위해 시간을 돌려준다고 한 혜자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는 설레는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한편 아나운서의 꿈을 접었다는 사실을 부모님께 들킨 혜자. 자신보다 더 실망할 거라는 사실을 알기에 마음이 아팠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믿어주는 부모님 덕분에 금세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불행은 한순간에 찾아왔다. 혜자의 아버지(안내상 분)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 혜자는 대가를 알면서도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시계를 거꾸로 돌린다. 하지만 혜자의 노력에도 사고는 막을 수 없었다. “꼭 구해야 하는 사람인데, 구할 수가 없다. 너라면 어떻게 하겠냐”라는 혜자의 절망에 “몇 억 번을 시도해서라도 구할 거다”라는 진심 어린 준하의 위로에 마음을 잡고 시간을 다시 돌리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된 운명의 날, 몇 번이나 같은 차에 부딪혔지만 혜자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운명을 바꿔 아버지를 구하는 데 성공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혜자는 아버지가 살아있는 평범한 일상에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가족들의 눈빛은 낯설었다. 스물다섯 혜자는 사라지고 한순간에 늙어 버린 혜자만 남은 것. 시계를 돌린 대가로 혜자의 시간은 뒤엉켜버렸다. 소중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대가를 치렀지만, 변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절망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혜자가 사라지고 준하에게도 시련이 닥쳤다. 집을 찾아와 할머니에게 돈을 요구하는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준하는 자해를 하고 폭행으로 아버지를 신고했다. 하지만 불행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만 것. 장례식장에 찾아온 아버지는 할머니의 죽음이 준하의 탓이라고 비난하며 그를 더욱 고통 속으로 밀어 넣었다. 스물다섯 청춘이었던 혜자가 한순간에 70대로 늙어버리면서 ‘눈이 부시게’의 본격적인 이야기도 시작됐다. 평범하지만 소소한 행복을 누리던 혜자와 준하에게 닥친 시련들은 애틋하고 가슴 아프게 시청자들의 감성을 두드렸다. 한순간 늙어버린 자신의 낯선 모습에 혼란스러워하는 김혜자의 연기는 묵직한 여운과 함께 시청자들을 울렸다. 아버지를 구하려는 혜자의 절절함을 한지민이 풀어내고 그 위에 김혜자가 감정을 폭발시켰다.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가 되어주던 혜자와 준하에게 닥친 시련은 풋풋했던 감성을 단번에 애틋하게 바꿔놓았다. 한순간 늙어버린 혜자는 가족들에게 편지를 남기고 준하와 함께 야경을 봤던 옥상에 올랐다. 그 시간 상복 차림의 준하는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더 이상 희망도, 미래도 사라진 혜자와 준하의 시간은 그렇게 아프게 흐르고 있었다. 예측이 불가능한 먹먹한 엔딩은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시간에 놓여있는 듯, 변화를 예고하며 궁금증을 자극했다. ‘눈이 부시게’는 매주 월, 화요일 밤 9시 30분 JTBC에서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한용운 북향집 ‘심우장’ 사적된다…이봉창 항일유물 3건도 문화재로

    한용운 북향집 ‘심우장’ 사적된다…이봉창 항일유물 3건도 문화재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생이 1933년 직접 지어 여생을 보낸 서울 성북구 ‘심우장’(尋牛莊)이 사적이 된다. 문화재청은 항일독립 문화유산인 서울시 기념물 제7호 ‘만해 한용운 심우장’을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12일 밝혔다. ‘심우’란 소를 사람의 마음에 비유하여 ‘잃어버린 나를 찾자’는 뜻을 갖고 있다. 근대 도시 한옥인 심우장은 남향이 아닌 동북향으로 지은 점이 특징이다. 남향으로 터를 잡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 보게 되는 까닭에 한용운이 일부러 동북향으로 지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심우장은 한용운의 독립의지를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으며 애국지사들과의 교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더불어 문화재청은 독립운동가 이봉창(1900~1932) 의사의 항일투쟁 유물 3건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이봉창 의사가 일왕을 저격하고자 하는 결의를 기록한 ‘이봉창 의사 선서문’을 비롯해 1931년 12월 24일 이봉창 의사가 김구 선생에게 의거자금을 요청한 서신인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와 봉투’, 1931년 12월 28일 김구 선생이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 도쿄에 있는 이봉창 의사에게 의거자금 100엔을 보낸 증서인 ‘이봉창 의사 의거자금 송금증서’ 등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 유물들은 이봉창 의사가 실행한 의거의 전개 과정과 항일독립 의지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봉창 의사의 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희소 가치가 높다”고 강조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느지막이 ‘가갸거겨’ 배웠더니 덧없는 삶이 온통 시가 되었네

    느지막이 ‘가갸거겨’ 배웠더니 덧없는 삶이 온통 시가 되었네

    시인 새뮤얼 울만은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고 했다. 청춘은 “장밋빛 뺨, 붉은 입술, 그리고 유연한 무릎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 풍부한 상상력, 열정을 말한다”고. 울만의 청춘론에 따르면 삶에서 환희를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한 우린 언제까지나 젊다. 그래서일까. 평생 까막눈으로 살다가 자신의 삶을 시로 옮기기 시작한 할머니들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시인 할매’(5일 개봉)와 ‘칠곡 가시나들’(27일 개봉) 속 할머니들은 파릇파릇한 청춘 같다. 칠순, 팔순이 넘어 배우기 시작한 글자에 삶의 이야기를 담는 ‘청춘들’ 얼굴엔 호기심이 그득하다.이종은 감독이 연출한 ‘시인 할매’는 전남 곡성의 작은 도서관에 모여 한글을 배우고 자신의 삶과 가족에 대한 애정을 시로 써내려간 김막동(84), 김점순(80), 박점례(72), 안기임(83), 윤금순(82), 양양금(72) 할머니의 사계절을 담았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태어나서 가장 약한 자로 살았던 어머니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는 이 감독은 “오히려 관객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어머니가 해 준 한 공기의 밥 같은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녹음이 우거진 마을의 정겨운 풍경과 마을에 두런두런 모여 사는 할머니들의 일상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절로 편안해진다. 땡볕에도 자식들에게 줄 농작물을 거두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쓴 편지를 소리 내 읽고, 아들이 묻혀 있는 무덤 앞에서 속상해하는 모습은 할머니들의 세월이 어떻게 시가 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할머니들에게 글을 가르쳐 준 김선자 길작은도서관장 말에 따르면 “처음엔 다른 사람이 아는 게 두려워 자신의 개인사를 글로 풀어내지 않으려던” 할머니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의 문을 열었다. ‘사박사박/장독에도/지붕에도/대나무에도/걸어가는 내 머리 위에도/잘 살았다/잘 견뎠다/사박사박’(윤금순 할머니의 시 ‘눈’)‘해당화 싹이 졌다가/봄이 오면 새싹이 다시 펴서/꽃이 피건만/한번 가신 부모님은/다시 돌아오지 않네’(양양금 할머니의 시 ‘해당화’) 길가에 핀 예쁜 해당화를 보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해당화’를 썼다는 양양금 할머니는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매는 언제까지 생각해도 눈물이 나더라고. 하늘에서 ‘우리 딸이 이렇게 시를 썼구나’ 생각하시겠지”라고 소회를 전했다. “선생님이 시를 써오라고 하면 뭘 또 써가지고 가야 할꼬 생각이 안 나서 가슴이 두근두근하다”(김점순 할머니)고는 했지만, 할머니들은 앞서 2016년 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와 2017년 그림책 ‘눈이 사뿐사뿐 오네’를 펴낸 ‘곡성 대표 작가’다. 김 관장은 “새벽부터 일어나서 일하시고 오후 7~9시에 부랴부랴 도서관에 와서 수업을 들으시는 할머니들을 보면 삶이 힘들다고 투정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트루맛쇼’, ‘미스 프레지던트’를 연출한 김재환 감독의 ‘칠곡 가시나들’은 난생처음 한글을 배워서 더없이 즐거운 인생을 즐기는 경북 칠곡 ‘일곱 시(詩)스타’의 일상을 조명한다. “‘쉘 위 댄스’의 칠곡 버전”이라고 작품을 소개한 김 감독은 2016년부터 3년 동안 할머니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재밌게 나이듦’이라는 키워드를 작품에 담았다. “과거를 바라보는 회고적 존재, 죽음을 묵상하는 존재 등 미디어에서 노년층을 바라보는 편견을 깨고 노년의 건강한 욕망과 설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것. 그래서인지 유난히 까르르 웃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화면에 자주 잡힌다. 주인공은 경북 칠곡군 약목면 복성2리 배움학교에서 한글을 배우는 박금분(89), 곽두조(88), 강금연(85), 박월선(89), 안윤선(83), 이원순(82), 김두선(86) 할머니다. 칠곡 할머니들 역시 앞서 시집 ‘시가 뭐고?’(2015)와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2016)를 출간한 어엿한 시인이다. ‘유쾌한 시인’들이 길가에 나란히 선 채 상점 간판을 더듬더듬 읽고, 자식에게 처음으로 손 편지를 쓰고, 받아쓰기 시험을 보다가 커닝을 하며 웃음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절로 흐뭇해진다. 한글을 공부하는 시간만큼 하루를 팔팔하게 보내는 할머니들의 얼굴에는 찌든 기색이라고는 없다. 빨래터에서 방망이질하다가 막걸리 한잔 기울이고, 평생 품었던 가수의 꿈을 이루려고 동네 노래자랑대회에 나가며 재미있게 사는 덕분에 할머니들의 문장에선 삶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가마이 보니까 시가 참 많다. 시가 천지삐까리다”(박금분 할머니), “지금 이래 하마 한자라도 늘고 조치 원투쓰리포 영어도 배우고 한번 해보자”(안윤선 할머니)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꽃망울 터지듯 피어난 가슴 속 이야기… ‘순천 소녀시대’의 인생 그림일기

    꽃망울 터지듯 피어난 가슴 속 이야기… ‘순천 소녀시대’의 인생 그림일기

    3년째 평생학습관서 한글 공부 삼매경 거침없는 리얼리즘… 伊·美 등서 전시회“내 친한 친구 백명자는 학교를 다녔지만 배운 티를 안 내고 나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친구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오빠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 오빠는 나와 사귀자고 연애편지를 줬습니다. 나는 친구를 배신할 수 없어 거절했습니다. (중략) 그런데 그 친구는 내 남편을 좋아했습니다.” (안안심 할머니·78) 핍진한 묘사에 거리낌이 없다. 50대 후반부터 내일모레면 아흔에 이르기까지, 늦은 나이에 글과 그림을 배운 전남 순천 할머니들의 그림일기를 엮은 책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남해의봄날)가 출간됐다. 2016년부터 3년째 순천시 평생학습관 한글작문교실 초등반에서 공부한 할머니들이 저자다. ‘순천 소녀시대’로 불리는 할머니들은 글공부와 함께 그림책 작가에게서 동그라미, 네모를 그리는 것부터 배워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탄생한 그림일기로 순천과 서울 등에서 원화 전시를 열었다. 곧 졸업을 앞둔 할머니들은 이제야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됐다.할머니들은 자기소개서부터 처절하게 가난했던 친정 살림, 시댁과 남편에게서 구박받았던 세월, 아들을 낳지 못해 겪은 설움, 글을 몰라 무시당했던 기억 등을 거침없는 리얼리즘으로 그렸다. 자신을 배신한 친구의 이름도 실명으로 등장할 정도다. 짧게는 50년, 길게는 80년 이상 참았던 표현 욕구가 터져 나온 탓이다. 그 와중에도 엄마만 쳐다보는 금쪽같은 자식들, 시아버지에게 “그러려고 남의 집 딸을 데려왔냐”며 한마디했던 남편 덕에 거의 모든 일기는 ‘지금은 다 잘살고 있습니다’로 끝맺음한다. 할머니들의 인생 일기는 한국을 넘어 외국으로 진출한다. 올해 이탈리아 볼로냐 북페어, 미국 뉴욕, 워싱턴DC, 필라델피아 등에서 전시회가 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베네수엘라 지킨다던 마두로 쿠바·러 등 비밀 망명계획설

    국내외의 퇴진 압박에 맞서 고국에 남아 끝까지 싸우겠다고 공언했던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비밀리에 망명 계획을 짜고 있다는 폭로가 나왔다. 블룸버그통신은 11일(현지시간) 익명의 소식통 4명을 인용해 “마두로 대통령 측이 갑작스럽게 실각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부인 실리아 플로레스의 권유에 따라 비상계획(플랜B)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망명 후보지로는 쿠바, 러시아, 터키, 멕시코 등이 거론된다. 이는 실각하더라도 베트남의 게릴라처럼 베네수엘라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자신의 발언과 정면 배치된다. 마두로 대통령은 그간 “미국이 배후 조종한 쿠데타를 통해 나를 축출하려고 하지만 아무곳에도 가지 않을 것”이라며 망명 가능성을 일축해 왔다. 한편 로이터통신은 이날 마두로 대통령이 미국의 석유 거래 금지 등 제재를 피하기 위해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퇴짜를 맞았다고 보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모하메드 바르킨도 OPEC 사무총장에게 편지를 보내 지지를 요청했다. 그러나 OPEC은 어떤 공식 성명도 내놓지 않았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하늘로 부친 슬픈 졸업장… 250명 이름 부르자 눈물이 대답했다

    하늘로 부친 슬픈 졸업장… 250명 이름 부르자 눈물이 대답했다

    이름표 붙은 빈자리, 가족들이 대신 채워“세월호 참사 없었다면 대학 졸업반인데…”미수습자·제적처리 논란에 3년 늦게 열려“언젠가 다시 만나자” 후배 편지에 울컥유은혜 부총리 “남은 일들 해결에 최선”“2학년 1반 고해인, 김민지, 김민희, 김수경….” 12일 경기 안산 단원고교 4층의 소강당. 이 학교 양동영 교장은 출석 부르듯 아이들 이름을 호명했다. 약 15분 동안 250명의 이름을 불렀지만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2014년 4월 16일 제주도 수학여행을 떠나려 세월호에 몸을 실었다가 침몰 참사로 세상을 떠난 단원고 2학년생들이었다. 연단 아래 좌석에서는 희생자 부모들의 꽉 깨문 입술 사이로 애끊는 오열만 새어 나왔다. 단원고는 이날 숨진 2학년생 250명(미수습자 2명 포함)의 명예졸업식을 진행했다. 사고 발생 1763일 만이다. 사고가 없었더라면 2016년 1월 졸업했어야 했다. 3년이 더 흘러 뒤늦은 졸업장을 하늘에서 받았다. 단원고는 “유족들이 올해 명예 졸업식을 해 달라고 의견을 전달해 와 행사를 열었다”고 했다. 전명선 4·16세월호가족협의회 전 운영위원장은 “3년 전엔 (시신) 미수습자 가족들이 수습 활동을 하던 때라 졸업식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평범한 졸업식처럼 해방감에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축하의 박수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졸업식장을 채운 파란 의자 200여개의 등받이에는 희생자의 이름과 학년, 반, 번호 등이 적혀 있었고 꽃다발이 놓였다. 아이 대신 가족들이 자리를 채웠다. 부모들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시간을 견뎠다. 자리마다 놓인 졸업장과 졸업 앨범을 넘겨보다가 눈시울이 붉어져 덮는 이도 있었다. 먼저 떠난 아이의 빨지 못한 교복을 입고 참석한 부모도 보였다. 졸업식에는 유가족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희생자인 전찬호군의 아빠이기도 한 전명선 전 위원장은 회고사에서 “참사가 없었더라면 대학 졸업반이 됐을 아들, 딸들이다. 학생복 입고 친구들과 함께 자리했어야 할 졸업식장에 엄마, 아빠들이 공허한 마음으로 있다”고 말했다. 희생 학생들의 후배인 10회 졸업생 이희운씨는 직접 써 온 ‘졸업생의 편지’를 울먹이며 읽었다. 그는 “미소 지으며 다가와 준 선배들에게 감사했다. 그리운 마음은 해가 지날수록 커지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겠다”고 전했다. 인사말을 하려고 연단에 선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감정이 복받친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유 부총리는 “부모님들 뵙고 손도 잡고 인사드리겠다고 생각하고 왔는데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이제서야 명예졸업식을 갖게 된 것도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5년 전 다짐했던 일 중) 해결해야 할 많은 일이 남았다는 점을 안다. 교육부 장관이자 부총리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아이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5년간 부단히 싸웠다. 단원고와 경기교육청이 2016년 생존 학생들을 졸업시키면서 관행적으로 희생 학생 전원을 제적 처리하자 가족들이 문제를 제기했고 희생 학생의 학적이 복원됐다. 단원고 안에 추모조형물과 기억공간도 만들었다. 유경근 4·16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졸업식이지만) 마음이 좋지 않다.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 외에 위안이 될 수 있는 건 없다”면서 “그럼에도 명예졸업식을 하는 건 피해 학생을 일방적으로 제적 처리해 유가족의 명예를 더럽히는 관행을 끝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현장]세월호 참사 1763일만…하늘에 부친 슬픈 졸업장

    [현장]세월호 참사 1763일만…하늘에 부친 슬픈 졸업장

    단원고, 참사 희생 학생 250명 명예졸업식학교 측, “유족 측 의견 따라 행사 진행”유족 노력으로 사고 희생자 일방적 제적 관행 사라져 “2학년 1반 고해인, 김민지, 김민희, 김수경…” 12일 경기 안산 단원고교 4층의 소강당. 이 학교 양동영 교장은 출석 부르듯 아이들 이름을 호명했다. 약 15분동안 250명의 이름을 불렀지만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2014년 4월 16일 제주도 수학여행을 떠나려 세월호에 몸을 실었다가 침몰 참사로 먼저 세상을 떠난 단원고 2학년 아이들이었다. 연단 아래 좌석에서는 부모의 꽉 깨문 입술 사이로 애끊는 오열만 새어나왔다. 단원고는 이날 세월호 참사 탓에 숨진 2학년 학생 250명(미수습자 2명 포함)의 명예졸업식을 진행했다. 참사 발생 1763일 만이다. 사고가 없었더라면 2016년 1월 졸업했어야할 아이들은 3년이 더 흘러 뒤늦은 졸업장을 하늘에서 받았다. 단원고 측은 “그동안 미수습 학생들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명예 졸업식을 미뤄달라는 유족들의 요청이 있었다”라며 “유족 측에서 올해 명예 졸업식을 해달라고 의견을 전달해와 행사를 진행했다”라고 설명했다. 졸업식장에 마련된 의자 200여개의 등받이에는 희생 학생들의 이름과 학년, 반, 번호 등이 적히 스티커가 붙었고, 꽃다발이 놓였다. 아이들 대신 가족들이 자리를 채웠다. 40개 남짓한 의자는 빈 채로 남아 있었다. 평범한 졸업식처럼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축하의 박수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부모 등 희생 학생의 가족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거나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면 시간을 견뎠다. 학교가 자리마다 놓아둔 졸업 앨범을 넘겨보다가 눈시울을 붉힌 가족도 있었다. 졸업식 진행한 이 학교 교감은 “오늘은 기억하고 다짐하고 약속하는 날이다. 더이상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이 없도록 다짐하는 날”이라며 행사를 시작했다. 졸업식은 합창 및 추모 동영상 상영, 명예 졸업장 수여, 졸업생 편지낭독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유가족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세월호 희생자인 고 전찬호군의 아버지 전명선 전 4·16가족협의회 위원장은 가족을 대표해 양 교장으로부터 아들의 명예 졸업장을 건네 받았다. 교장은 졸업장을 전달한 뒤 아버지를 꼭 끌어안았다.희생 학생들이 명예 졸업장을 받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단원고와 경기도교육청이 2016년 생존 학생들을 졸업시키면서 희생 학생 전원을 제적 처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유족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당시 학적처리 시스템상 희생 학생들의 학적이 남아 있는 한 생존 학생들의 졸업처리가 되지 않자 제적처리 해버린 것이다. 문제가 불거지자 도교육청은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인 나이스(NEIS)를 운영하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과 협조해 ‘제적’ 상태에서 ‘재학’ 상태로 학적 복원 작업을 진행했으며 2016년 11월 교육부 훈령인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이 개정되면서 희생 학생들의 학적이 완전히 회복됐다. 유경근 4·16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졸업식이지만) 마음이 좋지 않다.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 외에 위안이 될 수 있는 건 없다”면서 “그럼에도 명예졸업식을 하는 건 엄마, 아빠가 위로받으려는 게 아니라 사고 피해 학생을 일방적으로 제적처리해 유가족 명예를 더럽히는 관행을 끝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는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를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병풍도 앞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탑승자 304명이 희생한 비극적 사건이다. 당시 수학여행을 떠나기위해 배에 올라탄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 중 250명이 희생했다. 대부분 학생의 시신은 수습됐지만 2학년 6반 남현철 군과 박영인 군, 교사 양승진 씨 등 단원고 학생과 교사 3명의 시신은 끝내 찾지 못했다. 안산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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