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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道의원 전용 예산’ 묻지마 편성

    전북도가 2007년부터 올해까지 5년간 용처가 불분명한 ‘도의원 전용 예산’으로 790억원을 뿌려온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감사원은 지난 6월 실시한 전북도 기관운영 감사 결과, 전북도가 지난 5년간 구체적인 기준도 없이 도의원 1인당 3억 5000만원에서 5억원까지 모두 790억원의 세출예산을 편성해 왔다고 24일 밝혔다. 전북도가 도의원 전용 예산으로 배정한 790억원의 명목은 ‘주민편익증진사업비’였다. 그러나 감사원은 “지방재정법에 따라 주민편익증진사업비 예산을 편성할 때에는 재정 건전성을 위해 구체적인 지원기준을 마련하고 해당사업의 수요조사가 선행돼야 하는데도 전북도가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도의원 전용 예산은 선심성 ‘쌈짓돈’으로 흘러나갔다. 비례대표 도의원 A씨는 자신과 도의원 B씨의 몫으로 주어진 주민편익증진사업비 1억 6900만원을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협회의 인테리어 비용으로 돌려썼다. 도의원 C씨도 군산시 전통사찰에 세 차례에 걸쳐 주민편익증진사업비 1억 8000만원을 밀어넣는 선심을 썼다. 지방자치단체가 각종 명목으로 편법 예산을 책정해 마구잡이로 쓰는 행태는 전북도뿐만이 아니었다. 경남도 역시 2009년과 2010년 2년에 걸쳐 약 1000억원이 도의원들의 지역구 관리용 ‘포괄사업비’로 책정된 사실이 최근 감사원에 적발됐다. 감사원 관계자는 이와 관련, “지난 5~6월 실시한 ‘지방재정 건전성 진단 및 점검’에서 이런 사실을 일부 확인하고 현재 감사결과를 정리 중”이라면서 “도의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포괄사업비가 방만하게 편성돼 재정을 악화시키고 있어 경남도에 주의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FTA 부수법안 14개도 통과됐지만 23개 하위법령 제·개정 ‘빠듯’

    FTA 부수법안 14개도 통과됐지만 23개 하위법령 제·개정 ‘빠듯’

    2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부수법안은 14개다. 앞으로 관련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고시 등 하위 법령을 제·개정하는 작업이 남아 있다. 보통 법령 개정에는 이해 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20일 이상의 입법예고와 차관회의·국무회의·공표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빠듯하지만 내년 1월 1일 발효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미국과 양국의 FTA 절차가 마무리됐다는 확인서한을 교환하기 위해서는 한·미 FTA 관련 23개 국내법을 제정 또는 개정해야 한다. 공인회계사법, 세무사법 등 9개 법률은 이미 개정이 끝난 상태다. 이날 통과된 14개 법률 중 개별소비세는 승용차의 배기량별 차등세율을 단일화하는 내용이다. 현재 5단계의 세율 구간이 3단계로 줄어드는데 이에 따라 지방재정인 취득세가 줄어든다. 정부는 이 부분에 대한 재정지원을 약속한 상태다. 이 부분이 지방세법에 포함돼 있다. 수입농산품으로 인한 피해를 일정 부분 막기 위해 특정 농산물에 대한 특별 긴급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FTA이행을 위한 관세특례법도 통과됐다. 가장 많은 법률은 지식경제부 소관 법률이다. 우편법, 우체국예금보험법, 디자인보호법, 부정경쟁방지법, 상표법, 실용신안법, 특허법 등 7개 법률이다. 우편법은 국가가 독점하는 우편사업의 범위를 축소하는 내용으로 우체국 택배사업의 일정 부분 축소가 예상된다. 우체국예금보험법 개정으로 우체국 보험에 대한 규제감독권한이 금융감독위원회로 이관돼 민영보험과 같은 관리감독을 받게 된다. 특허법은 특허심사 지연 등의 이유로 특허 결정이 지연됐을 경우 심사가 지연된 만큼 특허권 존속기간을 연장해 특허권자의 권리행사 기간을 보장하는 내용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저작권법 개정에 따라 저작권 보호기간이 저작자 사후 또는 저작물 발행 이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됐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예술의전당·세종문화회관, 공짜표 남발 여전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이 공연 무료초대권을 기준 없이 마구 뿌려온 사실이 적발됐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6월 공공 문화예술기관의 무료초대권 배부 의혹 신고를 접수해 조사한 결과, 이같이 드러났다고 15일 밝혔다. 지난해 6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초대권 남발을 막아 예술기관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한편 국내 공연산업의 장기적인 자생력 향상을 위해 국공립 문화예술기관의 무료 티켓을 없애기로 방침을 정하고 해당 기관에 이를 통보했다. 권익위에 따르면 국내 대표적 공공 예술기관인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은 문화부의 통보를 받고서도 계속 공짜 초대권을 뿌렸다. 예술의전당은 지난해 8월부터 올 3월까지 8개월간 한 장에 2만~9만원인 공연관람권을 업무추진비와 수수료 예산 486만여원으로 한 장에 1000~2000원에 편법 구입해 사실상 공짜 초대권 용도로 2924장(1억 4000만원 상당)을 돌렸다. 세종문화회관도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5개월 동안 내부 직원 등에게 5900여만원 상당의 공짜 초대권 1110장을, 직무 관련 기관에 1100만원 상당의 무료 초대권 184장을 각각 사용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항공사 성수기 내년 13~18일 축소

    국내선을 운용하는 항공사들의 법정 성수기가 내년부터 13~18일씩 줄어든다. 예년 수준으로 돌아간 것으로, 성수기를 늘려 운임을 편법 인상하려던 항공사들의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 성수기로 지정되면 통상 기본 운임의 10%가 가산된다. 14일 국토해양부는 국적 항공사들과 협의해 내년 성수기 기간을 올해보다 열흘 이상 줄어든 60일 안팎으로 하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항공사들은 그동안 징검다리 연휴 사이의 평일까지 모두 성수기에 포함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높은 운임을 요구해 왔다.”면서 “이번 조정으로 성수기 기간이 예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고 전했다. 국토부는 국적 항공사들과 지난 5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 간담회를 열었고, 최근 항공사들이 동의했다. 항공사들은 당초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수준인 77일가량을 성수기로 운영할 방침이었다. 고객이 몰려 소폭 요금인상이 허용되던 성수기는 원래 50일 안팎이었으나 한 대형 항공사의 경우 올해에는 76일로 늘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의 내년 국내선 성수기는 64일, 아시아나항공과 제주항공·에어부산은 63일, 티웨이항공은 62일, 진에어와 이스타항공은 59일로 조정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대체 교통 수단의 발달과 저가항공사의 시장 진입 등으로 국내선 수익 구조가 악화되자 항공사들이 국내선 성수기를 늘린 것으로 보인다.”면서 “국내선 이용객의 부담을 가중시킬 뿐 아니라 정당하지 못한 운임 인상이라는 여론에 따라 조치를 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인화학교 법인 ‘자진해체’…市청문불참 후 “재산증여”

    장애인 성폭력으로 물의를 빚은 인화학교 사회복지법인 ‘우석’이 11일 광주시의 설립허가 취소 청문회에 불참한 가운데 제3의 사회복지법인에 재산을 증여하겠다는 뜻을 밝혀 시의 판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석은 이날 시에 보낸 ‘청문회 개최에 따른 출석요구 회신’ 공문을 통해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힌 뒤 돌연 기본재산 처분 허가신청서를 추가 제출했다. 우석은 이를 통해 “법인의 모든 재산을 가톨릭 광주사회복지회에 증여하겠다.”고 밝혀 시와 인화학교성폭력 대책위 등이 진의 파악에 나섰다. 시는 “14일 예정된 법인 설립허가 취소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시민사회단체는 “우석이 법인의 회계부정과 보조금 편법 지출, 이사권한 남용, 가족 중심 이사 운영 등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사법처리를 피하기 위한 술수로 보인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대기업 내부거래 88%가 수의계약

    대기업 내부거래 88%가 수의계약

    대기업에 소속된 광고·SI(시스템 통합)·물류 관련 업체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 내부거래의 88%가 수의계약으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업체의 경우 계열사로부터 받은 업무를 직접 처리하지 않고 중소기업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이른바 ‘통행세’만 챙겨온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55개 상호출자제한 기업 집단 중 총수가 있는 집단에 소속된 광고·SI·물류 업체 20곳의 거래 현황과 사업자 선정 방식 등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9일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20개 업체와 계열사 간의 지난해 거래액 9조 1620억원 가운데 88%에 해당하는 8조 846억원은 수의계약 방식으로 체결됐다. 반면 비계열사와의 거래에서 수의계약이 차지하는 비중은 41%에 그쳤으며 내부·외부 거래를 합친 전체 거래 중 수의계약은 75%였다. 업종별로는 물류 분야의 내부거래에서 수의계약이 차지하는 비중이 99%로 가장 높았으며 광고와 SI 분야는 각각 96%, 78%였다. 광고와 SI 분야의 경우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추이를 보면 내부거래 비중에 따라 전체 거래 중 수의계약이 차지하는 비중이 달라졌다. 광고는 이 기간 동안 내부거래 비중이 73%에서 69%로 떨어지자 외부와 내부를 합친 총거래에서의 수의계약 비중도 93%에서 85%로 낮아졌다. SI의 경우 내부거래 비중이 62%에서 64%로 올라가자 수의계약 비중도 56%에서 57%로 높아졌다. 대기업의 편법적인 일감몰아주기 행태로 지적되고 있는 통행세 징수 사례도 구체적으로 조사됐다. 대기업에 소속된 광고·SI·물류 업체의 경우 전체 기획과 총괄 업무를 수행하고 세부 업무는 중소기업에 위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 실태조사 결과 단순히 거래 단계만 추가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도 있었다고 공정위는 전했다. A사의 경우 지난해 계열사 B로부터 수의계약으로 3억 1000만원짜리 홍보영상을 수주한 뒤 이를 중소기업 C사에 2억 7000만원에 위탁했다. B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통행세만 4000만원을 챙긴 것이다. SI 분야의 D사의 경우 같은 해 계열사 E사로부터 130억원짜리 업무를 수주한 뒤 F사에 108억원짜리 하도급을 줬다. 대기업에 소속됐다는 이유만으로 가만히 앉아서 22억원을 벌어들인 것이다. 공정위는 “대기업에 소속된 기업들이 광고·SI·물류 분야 등에서 관행적으로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 방식으로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 확인됐다.”면서 “역량 있는 비계열 독립기업의 사업 참여와 성장 기회가 제약되는 문제점이 있는 만큼 이 같은 관행이 개선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모범거래 관행을 제시해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경쟁입찰을 확대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경쟁입찰·수의계약 여부를 공시하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할 계획이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중앙부처 국정현안 중간점검] (11)법무부

    [중앙부처 국정현안 중간점검] (11)법무부

    2008년 조두순 사건, 2010년 김길태, 김수철 사건, 2011년 영화 도가니로 촉발된 광주 인화학교 사건까지.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긴 아동·청소년 성범죄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흉악한 성범죄자를 막는 대응 체계와 법망이 허술하다는 여론의 질타가 거셌다. ●성폭력 대응체계 日서 견학와 이 때문에 성폭력 범죄 대응이 법무부의 현안이었다. 일부의 반발에도 올해 인터넷 성범죄자 신상공개 시스템(아동 대상 성범죄자 알림e제도), 화학적 거세로 불리는 ‘성충동 약물치료제도’ 같은 성범죄 재발방지 대책을 전격적으로 시행했다. 앞서 2009년 시작된 전자발찌(성범죄자에 대한 전자장치 부착)제도와 2010년 시행된 ‘범죄자 DNA 신원확인 정보 이용 및 보호법’까지 포함하면 대응 체계상으로는 적어도 세계적인 수준의 성범죄 방지 체계를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조만간 성폭력사범을 대상으로 한 심리치료센터도 개설될 예정이다. 특히 서울중앙지검의 여성아동범죄조사부 설치나 성범죄 피해자를 위한 영상녹화 원스톱지원시스템과 여성아동 전문보호시설 확충 같은 대책들은 성범죄 예방과 보호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계기로 손꼽힌다. 실제 지난 4일에는 일본의 법학교수, 변호사, 검사 등으로 구성된 정신의료법연구회 회원들이 국내 성폭력범죄의 대응 체계를 벤치마킹하려고 견학을 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 성범죄 관련 사범은 2010년 2만 1116명으로 4년 전(1만 5819명)에 비해 33.5%나 늘었고, 처벌이 대폭 강화된 지난해 증가율은 15.6%로 오히려 평균치의 2배 가까운 증가세를 나타냈다. 특히 미성년자와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폭력 범죄는 최근 5년간 30% 가까이 늘어나 피해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국민의 법 감정과 성범죄에 대한 심각성에도 사법당국은 여전히 성범죄에 관대한 편이라는 지적이 많고, 수사 당국의 허술한 범죄자 관리도 도마에 올랐다. 대법원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전자발찌 착용 명령 기각률은 2009년 12.4%, 2010년 24.5%, 2011년 상반기 43.8%로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다. 13세 미만 대상 성범죄 사건의 경우 1심 판결의 절반 가까이가 집행유예로 결론났고, 장애인 대상 성폭력 사범의 기소율은 39.6%로 일반 사범(42.4%)에 비해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범죄예방교육 선행돼야 또 조건부 교육으로 성매수 사범을 기소유예 처분해주는 존스쿨제도를 미성년 성범죄자나 재범자가 편법으로 이수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성범죄 근절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제도 도입과 강력한 처벌 같은 외형적인 체계뿐만 아니라 범죄를 예방하는 교육이나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변화 같은 내실 있는 계기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다미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관은 “성범죄 처벌이 강화돼도 실제 처벌받는 비율이 낮은 데다, 여전히 가부장적 인식을 바탕으로 법정에서 아동이나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사법부의 보수적 태도도 개선돼야 한다.”면서 “전자발찌나 신상공개, 화학적 거세 같은 강력한 제도가 도입됐지만 사후약방문식 성격이 강한 만큼 성폭력 수감자에 대한 형기 중 교정교육 강화와 사회 전반의 성폭력 예방 인식을 높일 수 있는 장기적인 문화 개선도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사설] 썩은 내 진동하는 농어촌공사 부패관행

    한국농어촌공사의 부패사슬이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에 적발됐다. 임직원이 상습적으로 국민의 혈세를 횡령해 상부에 상납하고 룸살롱 술값과 골프비용으로 흥청망청 썼다고 한다. 김포지사의 한 직원은 룸살롱비를 기부금으로 편법처리해 연말에 수백만원의 세액공제까지 받았다고 하니 그 뻔뻔함에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총리실에 적발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올 들어 세번째라는 사실이다. 배짱이 좋은 건지 공직자이기를 포기한 건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다. 박재순 사장은 농어촌공사 홈페이지 CEO 인사말에서 공사는 한 세기 동안 농어촌 지역 발전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수행해 왔으며, 오늘도 농어촌의 경쟁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고 자화자찬했다. 농어민의 행복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고 고객감동경영으로 사랑과 신뢰를 받는 국민 공기업이 되겠다고 다짐도 했다. 얼굴이 두꺼워도 정도 문제지 이런 짓을 하고도 어찌 농어민한테 낯을 들 수 있겠는가. 아랫사람도 아랫사람이지만 썩어빠진 고위층의 행태는 모럴 해저드의 극치를 보여준다. 부하직원의 부패를 준엄하게 꾸짖고 법대로 처리해도 모자랄 판에 부하들에게서 상납받고, 거기에 더하여 법인카드깡까지 해서 돈을 빼돌렸다니 정말이지 부패의 끝을 모르겠다. 옛날 같으면 거열형(裂刑)에 처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하겠다. 우리는 농어촌공사의 부패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본다. 이런 공직자들이 어디 농어촌공사뿐이겠는가. 그동안에도 공기업 및 정부 산하기관의 부정과 부패가 심심치 않게 노출됐다. 혈세를 빨아먹는 흡혈귀 같은 공직자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 산하기관에 대한 철저하고 대대적인 감사를 통해 비리의 싹을 뿌리 뽑아야 한다. 이번에 적발된 농어촌공사 임직원도 일벌백계로 엄히 다스려야 한다.
  • [사설] 자동차업체 과잉근로-고임금 사슬 끊어라

    우리나라 자동차업계 근로자들은 주당 평균 55시간을 일한다. 법정 기준 근로시간(주 40시간)보다 15시간, 전체 상용근로자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41.7시간)보다 13.3시간 더 많다. 고용노동부가 엊그제 현대, 기아차, 르노삼성, 한국GM, 쌍용자동차 등 완성차 5사의 노동시간 실태를 점검해 발표한 결과다. 이에 따르면 완성차업계 근로자들은 휴일특근과 초과근무 등 을 포함한 연간 근로시간이 2400시간에 이른다. 이는 독일·프랑스 등 선진국에 비해 700~800시간 많은 것이다. 연간 근로일 수(하루 8시간 기준)로 따지면 80~90일 더 많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장시간 근로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연간 근로시간이 2000시간을 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하지만 완성차업계는 근로기준법을 어겨가며 연장근로를 지속하고 있어 글로벌 기업이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한다. 주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 근로시간을 밥먹듯이 초과한 것은 물론 토·일요일 연속으로 주 2회 휴일근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주·야 12시간 맞교대도 일상화됐으며 24시간 철야근무하는 곳도 있다. 자동차업계의 장시간 근로는 노사가 담합한 합작품이다. 근로자는 휴일근로 등 연장근무를 통해 정상보다 최대 300%의 임금을 더 받았다. 기업은 작업물량이 늘어나도 근로자를 추가로 고용하지 않고, 생산성 향상을 위한 시설투자를 하지 않아 이득을 봤다. 이채필 고용부 장관은 이를 두고 “자동차업계는 노사담합에 의한 장시간 근로관행을 만들면서 단기적·근시안적 경영을 해왔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 자동차업계의 노동생산성은 미국, 일본의 글로벌 자동차기업에 비해 높지 않다. 현대차의 자동차조립생산성(HVP)은 대당 31.3시간으로 혼다(23.4시간), 도요타(27.1시간), 포드(21.7시간) 등 자동차 선진국에 비해 낮다. 근로시간 변형 등의 편법으로 생산성 격차를 메울 것이 아니라 연구개발(R&D), 시설투자 등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노동조건에 대한 선진국의 규제가 심해지는 만큼 자동차업계도 전근대적인 주·야 2교대 근무형태를 주 2, 3교대로 개편하는 등 글로벌 스탠더드로 전환, 고용 확대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노조도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 [사설] 건보이사장 후보 추천과정 문제 있다

    손건익 보건복지부 차관이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에 공모한 김종대 전 복지부 기획관리실장의 공모서류 대리접수를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누가 봐도 명백한 특혜이자 노골적인 압력이다. 파문이 일자 손 차관은 기자실에 찾아가 “사무관 시절 모셨던 상사가 특송으로 서류를 접수시키겠다고 해 수고를 덜어 주려고 대신 제출한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영향력을 행사할 입장도 아니고 그럴 의사도 없다.”고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손 차관의 이런 해명은 구차한 변명이라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다른 자리도 아니고 복지부 산하 기관장 인사다. 손 차관은 억울해할지 모르지만 옛 상사의 서류를 대리접수시켰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 사람을 밀고 있다.’는 뜻이 된다. 투명성에 결정적인 하자가 있다. 손 차관의 처신은 깨끗하고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적법하고 공정하게 진행돼야 할 기관장 인사에 꼼수와 편법이 동원됐다는 비난을 자초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사에 대한 불신만 키웠다. 우리 사회는 올 들어 전관예우 문제로 큰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전관예우 타파에 앞장서야 할 정부 고위인사가 전관예우 실천에 앞장선 꼴이 아닌가. 이런 식의 인사로 무슨 개혁이 가능하겠으며,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겠는가. 더구나 김 전 실장은 건강보험 통합을 끝까지 반대했던 건강보험 조합주의자다. 옛 상사의 전력을 모를 리 없는 손 차관이 그를 위해 응모서류를 들고 뛰었다는 사실은 황당하다 못해 공직자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 김 전 실장은 최종 두 명의 후보군에 들었으며 대통령의 재가만 남았다고 한다. 하지만 후보 추천과정은 물론 후보자의 자격까지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진행 중인 임용절차를 취소하고 재공모를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이유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자리가 그렇게 허술하게 결정돼선 안 된다.
  • [두 금융권의 꼼수] 카드사는 체크·캐시백에 ‘화풀이’

    [두 금융권의 꼼수] 카드사는 체크·캐시백에 ‘화풀이’

    금융회사가 운영하는 각종 서비스에서 서민들이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에 비해 금융지식과 협상력이 부족한 가계에 높은 대출금리를 물리는 상황이 계속되고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로 인한 손실분을 개인 고객의 서비스를 줄여 보전하는 전략을 짜고 있다. 특히 카드사들은 최근 가맹점 수수료 인하 대상이 아니었던 체크카드의 부대 서비스를 대폭 축소, 일방적으로 약관을 바꾸는 편법적인 행태도 보이고 있다. 얼마전 금융권의 탐욕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졌을 때도 금융회사들은 “비 올 때 고객의 우산을 빼앗지 않겠다.”며 앞다퉈 공익성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금융권은 자신들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교묘한 수법을 동원해 이익극대화 전략을 실현하고 있다. 신용카드사들이 카드 수수료 인하에 따른 수익 유지를 위해 체크카드 서비스를 대폭 축소한다. 카드사들은 신용카드 서비스도 줄일 예정이어서 수수료 인하에 따른 손실을 소비자에게만 떠넘긴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카드 수수료 문제를 체크카드 활성화로 해결하려던 정부의 계획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체크카드 활성화 정부계획 차질 전망 6일 여신금융업계에 따르면 카드사들은 내년 초부터 체크카드의 놀이공원, 커피전문점, 영화관 할인 서비스를 중단하는 등 부가서비스를 대폭 줄일 방침이다. 현대카드는 내년 2월부터 ‘H 체크카드’의 롯데월드 자유이용권 50% 현장 할인 서비스와 경주월드, 통도환타지아 캐시백 서비스를 중단한다.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체크카드 서비스도 대거 없앤다. 현대카드가 발급한 ‘한국투자증권 CMA 현대체크카드’ 등에서 캐시백 등의 서비스가 줄어든다. 신한카드도 체크카드 포인트와 캐시백 서비스를 대폭 줄인다. 신협, 우체국 등 은행별 체크카드와 와이드패스 체크카드는 내년 3월부터 캐시백 적립이 줄어들며, 학생증과 택시 등 특수목적 체크카드는 캐시백 서비스를 중단한다. 삼성카드는 개인 및 법인 체크카드에 대해 승인금액의 1%를 적립하고 있으나, 내년 5월부터는 1회 승인금액이 100만원을 초과해야 캐시백을 지급하고 지급률도 0.5%로 낮추기로 했다. 카드사가 체크카드의 서비스 축소에 나선 것은 지난 3월 체크카드 수수료를 대거 인하한 데 따른 수익 보전 차원이다. 당시 카드사는 중소가맹점의 체크카드 수수료율을 2%에서 1%로 낮췄고, 일반가맹점은 1.7%(겸영은행은 1.5%) 이하로 인하했다. 이에 카드사는 체크카드 서비스 축소를 공지했고,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문제는 카드사가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에 따른 손실을 소비자에게 교묘히 전가해 수익을 보충한다는 것이다. 카드사는 최근 여론에 떠밀려 중소가맹점의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를 결정한 뒤에도 신용카드 서비스를 대거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체크카드 서비스 축소 8월 결정” 카드사의 체크카드 서비스 축소는 체크카드 활성화로 카드 수수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부 방침과도 어긋난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최근 체크카드 활성화를 언급했고, 금융위는 전업 카드사가 은행에 지급해야 할 수수료 체제에 대한 검토 작업을 벌이고 있다. 전업 카드사들은 체크카드가 사용될 때마다 결제액의 최대 0.5%를 고객 계좌의 은행에 지불하고 있는데, 이를 낮출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체크카드 서비스 축소는 지난 8월부터 결정된 것”이라며 “현재 수수료율로는 수익이 나지 않아 서비스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사설] 꼼수와 비리로 올린 등록금 이참에 낮춰라

    감사원이 그제 전국 113개 대학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학 등록금 산정과 재정 운용 실태’ 감사 결과를 보면 그저 말문이 막힌다. 대학이 진정 학생을 위한 상아탑인지, 학생들의 등록금을 사금고로 활용하는 몰염치한 영리단체인지 헷갈릴 뿐이다. 예산편성 때 지출은 실제보다 부풀리고, 기부금 등 등록금 외 수입은 축소해 그를 근거로 등록금을 인상하는 수법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뻥튀기 예·결산 관행으로 등록금 거품을 조장해 온 것이다. 법인이나 산학협력단에서 부담하는 운영경비는 물론 학교시설 건설비도 교비 회계에서 썼다. 엉터리 회계처리를 했다. 이사장과 총장, 교수 등은 교비를 횡령했다. 이사장 일가가 부동산매입을 위해 교비 160억원을 횡령하고 시설비나 장학금으로 받은 기부금을 다른 곳에 전용하기도 했다. 대학 운영을 감독해야 할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의 고위관리는 직원 승진 청탁으로 뒷돈을 챙기고 상습 도박판까지 벌였다. 그동안 자식을 둔 학부모들은 대학등록금이 비싸 대학 보내기가 겁난다는 얘기를 밥먹듯 해 왔다. 최근 10년간 대학 등록금은 국·공립대 2배, 사립대는 1.7배가량 올랐다. 지난해 서울시내 10개 주요 사립대 등록금은 827만원으로 도시 근로자가구 월평균 소득(400만 7671원)의 2배를 웃돈다. 그만큼 학부모들은 등록금을 대느라 허리가 휘어지고 있다. 대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공부보다는 아르바이트에 더 몰두하고, 사채를 쓰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있다. 이제 대학이 답할 차례다. 온갖 꼼수와 탈법·편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등록금을 올린 것으로 드러난 만큼 스스로 이를 되돌려 놓아야 한다. 감사원이 이번 감사를 통해 등록금 원가산정의 기준을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대학이 진정성을 갖고 임한다면 원가산정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감사원은 지금까지의 편법 등만 바로잡아도 15%가량 인하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등록금 인하는 예산 편성과 회계 운영의 투명성이 전제돼야 한다. 횡령 등을 일삼은 대학 수뇌부들에 대한 형사 처벌도 뒤따라야 한다. 아울러 대학을 감독해야 할 교과부의 역할도 재검토해야 한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꼴이 돼서야 어떻게 교과부를 믿겠는가. 대학과 교육당국의 철저한 자기반성과 납득할 만한 대안 제시가 있기를 기대하며, 지켜볼 것이다.
  • [대학등록금 감사] “이지경 되도록 교과부 뭐했나”

    [대학등록금 감사] “이지경 되도록 교과부 뭐했나”

    대학 재정운용 감독기관인 교육과학부의 역할 부재와 비위 행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감사원은 “대학 구조조정의 주요 평가지표인 ‘학생충원율’ ‘교원확보율’ 등 각종 교육여건 지표들이 미흡한 22개 대학의 학사운영 및 회계관리 실태 점검 결과, 신입생 부당 선발이나 무자격 교원 채용 등 위법 사례가 적발됐다.”면서 부실 대학에 대한 교과부의 관리가 허술했음을 지적했다. 조사 대상의 절반인 11개 대학은 학생 충원율을 높이기 위해 입학전형 기준에 미달하거나 학업 의지가 없는 교직원 가족 등 800여명을 신입생으로 부당 선발한 사실이 있었는데도 교과부는 이를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10개 대학은 주말이나 야간에 편법으로 단축수업을 하거나 결석학생을 출석처리하는 등 1700여명의 학생들에게 학점을 부당하게 부여했다. 심지어 이들 중 900여명에게는 학위까지 수여됐다. 무자격 교원 채용도 빈발했다. 전임교원 확보율 기준 미달에 따른 교과부의 학자금 대출 제한 등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교육·연구 경력이 없는 외국인, 무자격자를 강단에 세운 대학도 5곳이나 됐다. 기본재산을 교과부 허가 없이 무단 처분한 대학도 2곳 적발됐다. 감사 담당자는 “운영자금이 부족하다는 사유로 수익용 기본재산인 예금과 등록금 선수금 등 17억여원을 임의로 처분해 법인 운영비로 돌려 썼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지시를 내린 대학의 허위 보고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사실도 확인됐다. 모 대학은 교직원의 고임금 체계를 개선하라는 교과부의 구조조정 과제를 받았으나, 교직원 급여를 20% 삭감한 뒤 이듬해 다시 삭감액을 성과급 명목으로 지급하고도 지시사항을 이행한 것처럼 교과부에 허위 보고했다. 하지만 교과부는 이를 적발하지 못했다. 대학 편법 인수를 눈감아 주기도 했다. 교과부는 설립자가 교비 100억원을 횡령해 임시이사가 맡고 있던 A대학의 경영권을 B학교법인의 이사장 일가가 법인의 수익용 기본재산(부동산)을 증여해 인수하도록 2008년 승인한 사실이 지적됐다. 교과부 직원들의 비위행위도 여럿 적발됐다. 한 교과부 국장은 지방 국립대 사무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직원들로부터 승진 청탁과 함께 돈을 받았고, 직원들과 해외 골프여행을 가면서 비용을 직원들에게 떠넘기기까지 했다. 직원들과 상습 도박판을 벌여 1년간 1500만원을 따기도 했다. 모 사무관(현 서기관)은 국가보조금으로 보조사업을 진행한 C대학의 담당교수로부터 골프장 이용료, 부인 골프채 구입비, 유흥비 조로 수백만원의 접대를 받았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국제거래 편법 富 대물림 ‘세금철퇴’

    국제거래 편법 富 대물림 ‘세금철퇴’

    국제거래를 이용해 편법으로 부를 대물림한 중견기업 대표 등이 무더기로 국세청에 적발됐다. 국세청은 조세피난처를 활용해 자녀에게 경영권을 승계한 기업가 등 11명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해 올해 들어 지금까지 2783억원을 추징했고 혐의자 4명에 대해 강도 높은 세무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3일 밝혔다. ●10개업체 추가 세무조사 착수 창업 1세대에서 2세대로 경영권 승계가 진행 중인 연매출 1000억~5000억원대의 전자,의류 등 중견업체와 고액 부동산, 금융자산을 보유한 대재산가 가운데 편법적인 부의 대물림 혐의가 높은 10개 업체에 대해서도 추가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이 변칙적인 국제거래를 통한 세금 없는 부의 세습을 집중적으로 조사해 대거 적발한 것은 처음이다. 임환수 조사국장은 “최근 계열기업 간 일감 몰아주기 과세가 추진되고 편법 상속·증여 등에 대한 사회적 감시가 강화되자 조세피난처 활용 등 부의 대물림 형태가 점차 국제화되고 수법도 지능화·다양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향후 세무조사 과정에서 외국 과세당국과의 조세정보교환, 동시 및 파견조사 등 국제공조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해외금융계좌를 통한 자금 흐름은 물론 실질 귀속자를 추적해 과세할 예정이다. 부자들이 해외로 눈을 돌려 편법으로 부를 대물림하는 수법은 갈수록 교묘화되고 지능화되는 추세다. 전자부품 중견업체인 A사의 대표 김모씨는 A사를 비롯해 국내외에 여러 공장을 운영하면서 경영권을 자녀에게 물려주기 위해 버진아일랜드에 X펀드를 만들었다. A사 등이 보유한 해외지주회사의 지분을 X펀드에 싼값에 양도하고 펀드의 출자자 명의를 아들로 바꿔 경영권을 넘겨준 사례였다. 국세청은 김씨와 A사에 대해 법인세 및 증여세 800억원을 추징하고 조세범처벌법에 따라 고발조치했다. ●페이퍼컴퍼니에 지분 이전 배당 챙겨 자원개발업체인 B사의 사주 정모씨의 경우 버진아일랜드에 본인 명의의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B사로부터 자원개발 투자비 명목으로 투자자금을 끌어들였다. 개발투자는 막대한 투자이익을 냈으나 정씨는 원금만 국내 회사에 보내고 수백억원의 투자소득은 해외예금계좌에 은닉하거나 아내 명의로 미국의 고급 아파트를 구입하는 데 썼다. 정씨에게는 소득세 및 증여세 등 250억원이 추징됐다. 전자공구업체를 하는 C사의 사주 박씨는 더욱 교묘했다. 박씨는 마찬가지로 버진아일랜드에 가족 이름으로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C사의 해외현지법인 지분을 넘겼다. 현지법인에서 발생한 소득은 홍콩 예금계좌에 예치해 관리하면서 국내에서 신고를 누락했다. 아들 이름으로 된 위장계열사에는 일감을 몰아주고 회사지분 80%를 페이퍼컴퍼니로 이전해 배당소득까지 해외에서 챙겼다. 이동신 국세청 국제조사과장은 “대재산가들이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고 국제거래를 이용하고 있을 정도로 정교화되고 있지만 해외정보 수집이 쉽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광주시장 ‘공기업 측근인사’ 논란

    강운태 광주시장의 사조직 출신 인사들이 광주시 공기업·공단 요직 인사에 관여하면서 ‘시정의 사유화’ 논란이 일고 있다. 강 시장의 선거를 지원해 온 ‘빛나는 대한민국 연대’(빛대련)의 고문인 이정희 변호사와 자문위원인 정광훈 광주컨벤션뷰로 대표이사 등 2명은 최근 공사·공단 사장 선임 과정에서 해당 공기업 추천 몫의 임원 추천위원으로 활동했다. 지방공기업법상 7명의 위원 중 해당 공사·공단이 2명을 추천하도록 돼 있다. 추천위원은 이들 2명을 포함해 시 추천 2명, 시의회 추천 3명 등 모두 7명이다. 그런데 이들 2명처럼 시장의 사조직 출신과 시 추천 위원을 더하면 과반수를 넘는 4명이 된다. 시장의 의도대로 낙점한 인사를 공기업 수장이나 간부에 앉힐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 1일 열린 환경시설공단 상임이사 후보 면접에서 의회 추천위원 3명이 돌연 사퇴하는 등 파행을 겪었다. 이들은 “이미 내정된 인사를 뽑는 과정에서 거수기 노릇을 하기 싫다.”는 이유를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공단은 그러나 “이사장이 전날 임원추천위원회 면접을 통과한 정모(58)씨 등 2명 가운데 상임이사를 조만간 임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광주시청 안팎에서는 그동안 정씨가 상임이사로 낙점될 것이란 소문이 일찍부터 파다했다. 이들 2명은 3일 오후 예정된 광주도시철도공사 경영본부장을 뽑는 위원회에 앞서 이호준 사장에게 사퇴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 관계자는 “이들이 최근 언론 등에 자주 부정적으로 거론된 데 심적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안다.”며 “이들이 자진 사퇴할 경우 새 추천위원 2명을 선정해 임원을 뽑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 등은 광주시 공기업·공단 4곳의 임추위원직을 도맡으면서 6월 도시공사 사장, 9월 도시철도공사 사장 추천에 이어 이번 2곳의 공기업 임원 선임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한편 이날 열린 도시철도공사 경영본부장 후보 면접 심사에는 ‘빛대련’ 운영위원인 정모(51)씨 등 3명이 참여했으며, 정씨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시 관계자는 “빛대련 출신 2명의 위원을 교체하지 못한 것은 이미 해당 기관의 임원선임 절차가 상당히 진행됐기 때문”이라며 “이들에 대한 위원 위촉이나 사퇴 등은 해당 공기업이 주도한 만큼 시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시의회, 시공무원 노조, 시민단체 등이 한목소리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홍인화 시의원은 “공기업 등의 인사가 진행될 때마다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은 시장의 사조직 출신 인사들이 시나브로 채워지고 있다.”며 “인사청문회 제도를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강 시장이 공기업 임원을 편법 임명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대학등록금 감사] 관리운영비·연구비 명목… 6552억 빼돌리고 뻥튀기고

    [대학등록금 감사] 관리운영비·연구비 명목… 6552억 빼돌리고 뻥튀기고

    감사원의 대학 등록금 감사는 ‘절반의 성공’이라 할 수 있다. 감사 착수 시 밝힌 약속과 달리 등록금 원가 등 적정한 대학등록금 수준은 제시하지 않았다. 감사에서 사실상 제외된 사립대학의 회계 투명성 확보 필요성을 제시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김정하 제2사무차장은 감사결과 브리핑에서 “대학별로 재정운용의 특성상 편차가 크기 때문에 등록금이 얼마만큼 인하될 여지가 있는지 액수를 제시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면서도 “편법 예산운용을 비롯해 각종 비리 등 대학재정에 누수가 발생한 부분이 결국 등록금 인상으로 연결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평가했다. 35개 대학의 지난 5년간 예·결산 분석결과, 예산편성 시 보수, 관리운영비, 고정자산 매입비 등 5개 항목에서 실제 지출(결산액)에 비해 많이 잡거나 등록금 외 수입을 실제 수입보다 적게 잡는 편법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도 A대학의 경우, 설계용역 실시 등 구체적 계획도 없이 2006~2008년 공과대학, 본관 신·증축비로 227억원을 계상했다가 미집행하는 등 실제 집행이 불가능한 시설사업비 예산 계상을 되풀이했다. 이런 방식으로 이 대학들은 대학별로 연평균 187억원에 이르는 예·결산 차액을 만들어 등록금 인상요인으로 활용했다. 수입을 줄이기 위해 특강이나 계절학기 수강료, 기부금, 전기 이월자금 등 항목에서 실제 수입보다 연평균 1648억원(대학별 47억원)가량 줄여 계상한 사례도 많았다. B대학의 경우 2006년부터 2010년까지 해마다 직전 회계연도의 집행잔액이 94억~345억원(연평균 188억원)이나 되는데도 한번도 이를 수입예산에 편입시키지 않았다. 학교발전기금과 학교시설 사용료 등 학교수입을 회계장부에 기록되지 않는 별도 계좌로 관리하며 업무추진비 명목으로 교직원이 나눠 갖거나 직원 회식비로 집행한 사례도 적발됐다. 법인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교비로 부담하거나 과도하게 집행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서울 유명 사립대 등 14곳에서는 법인이 부담해야 할 학교시설 건설비를 대부분 교비에서 부담해 최근 5년간 법인에서 받은 자산 전입금이 건설비의 1%도 되지 않았다. 국공립대 교직원에게 기성회계에서 급여 보조성 인건비를 지급한 사례도 있었다. 교비 횡령 등 교육현장의 비리는 재단 이사장에서부터 총장, 말단 교직원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만연했다. 지방의 A대 이사장 일가는 3개 법인을 설립해 대학 2개와 고교 2개를 운영하면서 모두 160억여원의 교비를 횡령했다. 1996∼1997년 4년제 대학 설립자금으로 사용한 2년제 대학의 교비 횡령액을 반환한다는 명목으로 지난해 7월 4년제 대학의 교비 65억 7000만원을 다시 빼돌린 뒤 22억 5000만원만 변제금으로 쓰고 나머지는 이사장 일가의 아파트 구입 등에 돌려썼다. 또 이사장은 2년제 대학과 고등학교의 교비 15억 5000만원을 빼돌려 부인의 건물 매입 대출금을 상환한 뒤 4년제 대학 자금으로 이 돈을 갚기도 했다. D대, E대 등 국립대 총장들은 자신의 공약을 이행하는 데 공금을 마구 썼다. 인건비 동결이라는 정부지침을 위반하고 2009~2010년 교직원에게 지급하는 수당 120억여원을 부당 인상했다. 강단에 선 일선 교수들의 파렴치한 행태도 비일비재했다. D대 교수는 연구원 15명의 인건비와 장학금 수령 통장을 관리하면서 2008년부터 연구원들에게 지급된 인건비와 장학금 등 10억원 가운데 일부만 연구원에게 돌려주고 3억 4000만원을 개인 연금으로 납부하거나 자신 명의의 증권계좌 등에 이체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대학등록금 감사] 꼬리잡힌 편법예산… 대학 구조조정 추동력 얻었다

    정부의 대학구조조정이 한층 추동력을 얻었다. 감사원의 대대적인 감사결과, 대학들의 편법 예산편성 및 부실 경영의 실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교육과학기술부로서는 국가장학금과 대학 자체 장학금 확충을 통한 ‘등록금 완화’ 정책 및 퇴출 대학 선정 등의 실현을 위한 든든한 지렛대를 확보한 것이다. 감사원은 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대학의 재정·회계 관리시스템 보강 ▲등록금 산정 관리·감독 체계 개선 ▲사립대 법인의 책임성·재정부담 의무 담보 ▲국·공립대의 급여보조성 인건비 지급 관행 개선 등의 제도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다만 정부나 국회 차원에서 이미 대학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있는 상황인 탓에 다소 신선감은 덜하지만 법안 처리에 큰 보탬이 될 전망이다. 대학의 외부회계감사와 관련,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이 현재 학생 1000명 이상 4년제 대학과 2000명 이상의 전문대만 받게 되어 있는 것을 전체 대학으로 확대한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등록금심의위원회에 대해서는 위원의 30% 이상 학생이 참여토록 규정한 동시에 학교 측에 자료제출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고등교육법이 지난 9월 개정됐다. 교과부는 조만간 관련 시행령을 입법예고할 계획이다. 교과부 측은 “재단이 법정부담금을 교비로 낼 때 교과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한 내용의 법안도 변재일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이 대표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라고 말했다. 대학들은 등록금 인상에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됐다. 감사원이 최근 5년 동안 대학들에 대해 “지출은 실제보다 부풀리고 등록금을 제외한 다른 수입은 적게 계산했다.”며 등록금 상승 요인을 콕 집었다. 대학들의 예산 주무르기를 비판한 동시에 예산 투명성과 등록금 인상 요인에 대한 보다 자세한 분석을 요구한 것이다. 교과부는 감사원이 지적한 대학의 문제점 가운데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회계부정·횡령·금품수수 등 비리·비위 문제에 대한 제도적 개선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 관리·감독을 포함, 행·재정적 제재도 강화할 태세다. 감사원이 대학들로부터 대학의 약점만 찾아다녔다는 불만을 사는 대목이기는 하다. 서울 시내 한 사립대 관계자는 “시작은 등록금 문제였지만 내용은 각 대학의 비리나 비위 문제가 더 많은 것 같다.”면서 “정부가 등록금보다 구조조정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의미”라고 반문했다. 교과부는 감사원이 적발한 대학과 교과부 자체의 비위와 관련, 감사원으로부터 정식 감사결과를 받은 뒤 경중을 따져 처분 수위를 검토하기로 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사설] 외국어 능력 떨어지는 외교관이 무슨 외교를 하겠나

    어제 공개된 외교통상부 5~7급 직원의 영어능력 평가 결과를 보면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최하 등급인 5등급을 받거나, 아예 시험을 치르지 않은 등급 미취득자가 절반이 넘는 54%에 이른다. 외교관 평가의 5등급은 같은 난이도의 일반인 평가와 비교하면 2등급에 해당한다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또 이번 평가가 상대국과 협상하는 외교관들이 아니라 실무를 뒷받침하는 직원들 일부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글본에서 300건이 넘는 오류가 발견된 데서도 나타나듯이 실무진의 영어 실력 저하는 외교 활동의 큰 걸림돌 내지는 경쟁력 저하 요인이 될 수 있다. 또 5~7급이 아니라 5급 이상 외교관을 상대로 영어 성적을 평가하더라도 국민이 기대하는 수준의 점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그동안 여러 차례의 조사에서 나타난 바 있다.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익을 위한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협상을 통해 이를 현실화하는 것이겠지만, 그런 과정에서 언어가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외교관의 영어 실력이 실망스러운 수준이라면 기타 외국어 실력은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것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영어권과 일본을 제외한 대한민국 해외 공관의 외교관 및 주재원 가운데 현지 언어로 자유롭게 외교 활동을 벌일 수 있는 인적 자원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일부 국가에서는 외교관의 외국어 능력이 국정원 직원보다 못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외교부는 이번 조사를 계기로 외교관들의 외국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외교부는 그동안 외국어 능통자를 뽑기 위해 외시 2부나 특채 제도 등을 도입해 왔지만 정부 고위층 등과 가까운 사람들을 위한 편법 충원의 도구가 됐다는 논란 등 때문에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 외교관 충원 제도가 외무고시에서 국립외교원으로 전환되는 상황에서 외국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이 충분히 고려돼야 할 것이다. 영어는 물론이고 중국어와 프랑어, 스페인어, 아랍어 등 국제사회에서 통용되고 우리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걸린 국가나 지역들의 언어도 집중적으로 교육하기 바란다.
  • [WHO&WHAT] 장원급제지사 - 조선 최고 ‘과거 전문가’를 만나다

    [WHO&WHAT] 장원급제지사 - 조선 최고 ‘과거 전문가’를 만나다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이 늦춰지고 비행기도 잠시 쉬어 간다.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과 주변 친지들까지 신경이 곤두선다. 전국의 교회와 사찰에는 하루 종일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왜 아들딸이 시험을 보는데, 그 엄마가 백일기도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 매년 늦가을이면 어김없이 ‘교육공화국’ 대한민국을 요동치게 하는 입시철이 돌아왔다. 아무리 그래서는 안 된다고 입에 거품을 물어도 여전히 한국에서 입시는 곧 교육의 목표이자 모든 것이다.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는 학원가와 수많은 경시대회, 각종 콩쿠르가 순수하게 학문이나 재능을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수십년간 교육정책의 수장이 되는 사람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지양’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이나 시장, 도지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과연 얼마나 나아졌을까. 나아지고 있기는 한 것일까. 아니 과연 나아지는 게 어떤 것이란 말인가.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도대체 언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인지 찾아보기로 했다. 조선시대는 좀 다르지 않았겠느냐는 기대를 안고, 자식을 위해 조선 최고의 시험 전문가를 찾아간 남산골 김씨 부인의 뒤를 따라가 봤다. 미리 밝혀 두지만 오늘은 역사의 결과물이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낭랑하게 글 읽는 소리가 마을의 자랑이라고 했다. 김씨 부인은 그게 마냥 좋았다. 옆집 누구네 아들은 기생집에 드나든다고 하는데,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공부에만 관심을 쏟는 아들이 대견했다. 어렸을 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책만 읽는 아들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벌써 스무 살이다. 책을 백날 읽어 봐야 쌀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자나 깨나 서책만 붙들고 있다. 장가를 보내려 해도 초시(初試)라도 붙은 양반과 그렇지 않은 양반은 자리부터 달라지는데 말이다. 김씨 부인이 아들에게 물었다. “결국 책을 읽는 것은 과거를 보고 관직을 얻기 위함이 아니냐. 이제 한번 과장(科場)에 나서 가문의 이름을 떨쳐야 할 때가 아니냐.” 아들이 정색하며 대답했다. “학문의 목적이 어찌 개인의 출사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전 아직까지 나라의 그릇이 될 정도로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한숨이 늘어 가는 김씨 부인에게 어느 날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앞집 박씨 부인이 좋은 수가 있다며 찾아왔다. 각종 서적의 필사본을 파는 아랫마을 책방 주인이 바뀌었는데, 과거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는 장안 제일의 전문가란다. 10대에 초시에 붙었는데, 돈 버는 일이 좋아서 관직 대신 이 길로 나섰다는 것이다. 박씨 부인이 말한다. “지난 과거에서 장원급제한 판서댁 자제도 한사코 과거가 이르다며 만류하다가 이 사람을 만난 후 불과 반나절 만에 마음을 바꿔 과장에 나갔다니까요. 일단 한번 만나나 봐요. 상담하는 건 돈도 안 받는다던데. 그 댁 아들도 초시는 붙어야 한숨 돌릴 것 아니에요.” 그냥 만나 보기만 해도 된다는데 손해 볼 것 없는 일 아닌가. 다음 날 김씨 부인의 발걸음이 책방으로 향한 것은 당연한 일. 입구에서 ‘이생’을 찾으면 된다고 했는데···. 안내를 받고 서가 사이에 앉자 잠시 후 책장 너머로 한 남성이 나타나 돌아앉아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생 마주 뵙고 말씀을 드려야겠지만 제 처지가 밖으로 대놓고 얼굴을 드러낼 만하지 못합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나라에서 금하는 것들과 연결이 될 수밖에 없어서요. 김씨 괜찮습니다. 저야 그냥 몇 가지 여쭤 보려고 찾아온 걸요. 제 아들이 올해 스물인데 책만 읽고 과장에 나가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과거를 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아녀자인지라 과거의 힘을 잘 모르기도 하고?. 이생 유학을 하다 보면 욕심 없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요. 수신제가에 만족하는 사람도 많고요. 분명한 건 과거에 급제하면, 그것도 장원을 하면 본인과 가문의 격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지요. (조선시대 전체의) 경쟁률로 따지면 744번 열린 문과시험에서 급제자는 1만 4620명 정도입니다. 많은 것 같지만 자격시험에 불과한 초시인 생원시와 진사시 합격자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해야죠. 정기 시험인 식년시는 500여년 동안 고작 163회에 불과하고 시험마다 전국 각지에서 2000~3000명씩 몰려들어요. 그중 장원급제자는 1명. 조선 전체를 통틀어도 연간 장원급제자는 1.4명에 불과하지요. 안정적으로 관직이 보장되는 대과 합격자까지 넓힌다고 해도 회당 고작 33명뿐입니다. 김씨 (한숨을 내쉬며) 걷기도 전부터 책을 읽는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최소한 33명 안에는 들어야 한다는 얘기군요. 순수하게 학문이 전부도 아니겠죠? 이생 흠. 명문세가는 대를 물리려면 문과에 급제하는 것이 필수니까, 기를 쓰고 덤벼듭니다. 어렸을 때부터 좋은 선생을 모셔 영재교육도 받으니까 진사나 생원이 차린 서당에서 수학한 선비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지요. 부인할 수 없는 건 입신양명하려면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겁니다. 김씨 그런데 선생께서 유명해지신 건 과거를 보는 요령을 알려 주시기 때문이라고 들었는데요. 정말 선생께 배우면 과거에 급제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가요. 이생 허허. 물론 공부도 안 한 사람을 그냥 합격시켜 주는 방법은 거의 없습니다. ‘절대’가 아니라 ‘거의’인 이유는 조금 있다가 설명드리죠. 확실한 것은 요령 없는 시험은 없다는 겁니다. 사실 저와 동문수학한 사람들 중에는 시험관도 있고, 시험장을 감시하는 입문관도 있고, 답안을 고쳐 줄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김씨 답안을 고쳐요? 그런 일이 가능한가요. 나라님께서 지켜보는 시험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이생 그러니까 제가 먹고사는 것 아닙니까. 찾고자 하면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당연히 위험한 길이니 비용이 들지요. 초시를 예로 들어 볼까요. 초시는 과장 사수(寫手), 거벽(巨壁), 선접꾼 이렇게 세 가지만 있으면 거의 완벽하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김씨 시험을 보러 가는데 사람이 필요하다고요? 이생 요즘 어머니답지 않게 이쪽으로는 전혀 걸음도 안 하신 분이 분명하군요. 혹시 글씨가 예뻐야 모든 게 예뻐 보인다는 말 아시나요. 과장 사수는 악필들이 주로 쓰는데, 응시자를 대신해 글씨를 써주는 사람입니다. 가장 많고 가장 저렴하죠. 그 다음이 거벽인데 이건 과거 문제를 풀어 주고, 시문도 지어 주는 사람이지요.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책을 펼쳐 놓고 몰래 베끼는 게 더 나아요. 어차피 사람도 많은 데다 시험관들이 별로 감독도 안 하거든요. 선접꾼은 말 그대로 주먹을 사는 겁니다. 과장에 햇볕이 내리쬐거나 하면 시험 보는 데 방해가 되잖아요. 과장에 몇 군데 나무 그늘 같은 명당이 있는데, 공부만 하던 선비들이 뛰기는 힘드니까 선접꾼을 사서 미리 자리를 잡아 놓는 것이 유리하죠. 더 확실한 건 시험장 서리를 매수하는 건데 요새는 서체로 응시자를 알 수 없도록 서리들이 답안을 베껴서 그걸로 채점하거든요. 그때 서리가 답안을 고치면 되죠. 김씨 나라에서 금하는 일을 참 많이들 하나 보군요. 비용도 많이 들겠어요. 이생 투자 없이 얻어지는 결과물이 어디 있습니까. 진사나 생원만 돼도 호칭이 바뀐다는 점을 생각해 보세요. 운이 좋아서 지방수령 자리라도 하나 받으면 집 한 채 값이 아깝겠어요. 김씨 그런 편법이나 부정행위 말고 진짜 요령도 있나요. 예를 들어 시권(試券·답안지)은 언제 내는 것이 좋다니 하는 것들요. 이생 상담받으러 오셔서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시는군요. 뭐 제 직감상 또 오실 것 같아서 몇 가지 더 말씀드리죠. 시권은 빨리 낼수록 유리합니다. 어차피 같은 문제를 푸는데, 먼저 푸는 사람이 잘한다는 인상을 줄뿐더러 채점도 하다 보면 지치거든요. 특히 사서삼경의 암기와 해석을 쓰는 생원시 같은 경우에는 일단 한번 작성하면 고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장고 끝에 악수라고들 하잖습니까. 아. 가끔 이름을 빼먹는 사람도 있는데, 꼭 시권에 조상 이름과 자기 이름을 써야 한다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우스워 보이지만 매년 수십 명이 이것 때문에 떨어져요. 마지막으로 종이, 종이가 중요합니다. 시험지를 각자 사가야 하는데, 이왕이면 두껍고 질 좋은 종이를 사야 합니다. 시험관들 마음이라는 것이 좋은 종이를 보면 좋은 가문으로 생각하기 쉽거든요. 김씨 선생님 말씀을 듣다 보니 착하고 바르게 살라는 학문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 출세를 위해 못하는 짓이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걸 아들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아들이 이 얘기를 들으면 과장 근처에도 안 가려고 할 텐데요. 이생 과연 그럴까요. 아드님은 분명 이 길을 따라 과거를 보든가 아니면 이 같은 일을 바로잡기 위해 과거를 보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하게 될 겁니다. 낭충지추. 이런 부정과 편법이 판치는 과장에서도 탁월한 인재는 분명히 드러나게 돼 있거든요. 절 믿으세요. 제가 조선 제일의 시험 전문가로 불리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요.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조선의 출세길, 장원급제(정구선·팬덤북스) -조선 양반의 일생(규장각한국학연구원·글항아리) -조선과거실록(지두환·동연) -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백승종·푸른역사)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정은궐·파란미디어)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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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O&WHAT] 조선 최고의 과거 전문가를 만나다

    [WHO&WHAT] 조선 최고의 과거 전문가를 만나다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이 늦춰지고 비행기도 잠시 쉬어 간다.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과 주변 친지들까지 신경이 곤두선다. 전국의 교회와 사찰에는 하루 종일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왜 아들딸이 시험을 보는데, 그 엄마가 백일기도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 매년 늦가을이면 어김없이 ‘교육공화국’ 대한민국을 요동치게 하는 입시철이 돌아왔다.  아무리 그래서는 안 된다고 입에 거품을 물어도 여전히 한국에서 입시는 곧 교육의 목표이자 모든 것이다.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는 학원가와 수많은 경시대회, 각종 콩쿠르가 순수하게 학문이나 재능을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수십년간 교육정책의 수장이 되는 사람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지양’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이나 시장, 도지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과연 얼마나 나아졌을까. 나아지고 있기는 한 것일까. 아니 과연 나아지는 게 어떤 것이란 말인가.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도대체 언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인지 찾아보기로 했다. 조선시대는 좀 다르지 않았겠느냐는 기대를 안고, 자식을 위해 조선 최고의 시험 전문가를 찾아간 남산골 김씨 부인의 뒤를 따라가 봤다. 미리 밝혀 두지만 오늘은 역사의 결과물이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낭랑하게 글 읽는 소리가 마을의 자랑이라고 했다. 김씨 부인은 그게 마냥 좋았다. 옆집 누구네 아들은 기생집에 드나든다고 하는데,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공부에만 관심을 쏟는 아들이 대견했다. 어렸을 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책만 읽는 아들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벌써 스무 살이다. 책을 백날 읽어 봐야 쌀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자나 깨나 서책만 붙들고 있다. 장가를 보내려 해도 초시(初試)라도 붙은 양반과 그렇지 않은 양반은 자리부터 달라지는데 말이다.  김씨 부인이 아들에게 물었다. “결국 책을 읽는 것은 과거를 보고 관직을 얻기 위함이 아니냐. 이제 한번 과장(科場)에 나서 가문의 이름을 떨쳐야 할 때가 아니냐.” 아들이 정색하며 대답했다. “학문의 목적이 어찌 개인의 출사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전 아직까지 나라의 그릇이 될 정도로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한숨이 늘어 가는 김씨 부인에게 어느 날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앞집 박씨 부인이 좋은 수가 있다며 찾아왔다. 각종 서적의 필사본을 파는 아랫마을 책방 주인이 바뀌었는데, 과거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는 장안 제일의 전문가란다. 10대에 초시에 붙었는데, 돈 버는 일이 좋아서 관직 대신 이 길로 나섰다는 것이다. 박씨 부인이 말한다. “지난 과거에서 장원급제한 판서댁 자제도 한사코 과거가 이르다며 만류하다가 이 사람을 만난 후 불과 반나절 만에 마음을 바꿔 과장에 나갔다니까요. 일단 한번 만나나 봐요. 상담하는 건 돈도 안 받는다던데. 그 댁 아들도 초시는 붙어야 한숨 돌릴 것 아니에요.”  그냥 만나 보기만 해도 된다는데 손해 볼 것 없는 일 아닌가. 다음 날 김씨 부인의 발걸음이 책방으로 향한 것은 당연한 일. 입구에서 ‘이생’을 찾으면 된다고 했는데···. 안내를 받고 서가 사이에 앉자 잠시 후 책장 너머로 한 남성이 나타나 돌아앉아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생 마주 뵙고 말씀을 드려야겠지만 제 처지가 밖으로 대놓고 얼굴을 드러낼 만하지 못합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나라에서 금하는 것들과 연결이 될 수밖에 없어서요.  김씨 괜찮습니다. 저야 그냥 몇 가지 여쭤 보려고 찾아온 걸요. 제 아들이 올해 스물인데 책만 읽고 과장에 나가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과거를 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아녀자인지라 과거의 힘을 잘 모르기도 하고?.  이생 유학을 하다 보면 욕심 없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요. 수신제가에 만족하는 사람도 많고요. 분명한 건 과거에 급제하면, 그것도 장원을 하면 본인과 가문의 격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지요. (조선시대 전체의) 경쟁률로 따지면 744번 열린 문과시험에서 급제자는 1만 4620명 정도입니다. 많은 것 같지만 자격시험에 불과한 초시인 생원시와 진사시 합격자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해야죠. 정기 시험인 식년시는 500여년 동안 고작 163회에 불과하고 시험마다 전국 각지에서 2000~3000명씩 몰려들어요. 그중 장원급제자는 1명. 조선 전체를 통틀어도 연간 장원급제자는 1.4명에 불과하지요. 안정적으로 관직이 보장되는 대과 합격자까지 넓힌다고 해도 회당 고작 33명뿐입니다.  김씨 (한숨을 내쉬며) 걷기도 전부터 책을 읽는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최소한 33명 안에는 들어야 한다는 얘기군요. 순수하게 학문이 전부도 아니겠죠?  이생 흠. 명문세가는 대를 물리려면 문과에 급제하는 것이 필수니까, 기를 쓰고 덤벼듭니다. 어렸을 때부터 좋은 선생을 모셔 영재교육도 받으니까 진사나 생원이 차린 서당에서 수학한 선비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지요. 부인할 수 없는 건 입신양명하려면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겁니다.  김씨 그런데 선생께서 유명해지신 건 과거를 보는 요령을 알려 주시기 때문이라고 들었는데요. 정말 선생께 배우면 과거에 급제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가요.  이생 허허. 물론 공부도 안 한 사람을 그냥 합격시켜 주는 방법은 거의 없습니다. ‘절대’가 아니라 ‘거의’인 이유는 조금 있다가 설명드리죠. 확실한 것은 요령 없는 시험은 없다는 겁니다. 사실 저와 동문수학한 사람들 중에는 시험관도 있고, 시험장을 감시하는 입문관도 있고, 답안을 고쳐 줄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김씨 답안을 고쳐요? 그런 일이 가능한가요. 나라님께서 지켜보는 시험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이생 그러니까 제가 먹고사는 것 아닙니까. 찾고자 하면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당연히 위험한 길이니 비용이 들지요. 초시를 예로 들어 볼까요. 초시는 과장 사수(寫手), 거벽(巨壁), 선접꾼 이렇게 세 가지만 있으면 거의 완벽하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김씨 시험을 보러 가는데 사람이 필요하다고요?  이생 요즘 어머니답지 않게 이쪽으로는 전혀 걸음도 안 하신 분이 분명하군요. 혹시 글씨가 예뻐야 모든 게 예뻐 보인다는 말 아시나요. 과장 사수는 악필들이 주로 쓰는데, 응시자를 대신해 글씨를 써주는 사람입니다. 가장 많고 가장 저렴하죠. 그 다음이 거벽인데 이건 과거 문제를 풀어 주고, 시문도 지어 주는 사람이지요.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책을 펼쳐 놓고 몰래 베끼는 게 더 나아요. 어차피 사람도 많은 데다 시험관들이 별로 감독도 안 하거든요. 선접꾼은 말 그대로 주먹을 사는 겁니다. 과장에 햇볕이 내리쬐거나 하면 시험 보는 데 방해가 되잖아요. 과장에 몇 군데 나무 그늘 같은 명당이 있는데, 공부만 하던 선비들이 뛰기는 힘드니까 선접꾼을 사서 미리 자리를 잡아 놓는 것이 유리하죠. 더 확실한 건 시험장 서리를 매수하는 건데 요새는 서체로 응시자를 알 수 없도록 서리들이 답안을 베껴서 그걸로 채점하거든요. 그때 서리가 답안을 고치면 되죠.  김씨 나라에서 금하는 일을 참 많이들 하나 보군요. 비용도 많이 들겠어요.  이생 투자 없이 얻어지는 결과물이 어디 있습니까. 진사나 생원만 돼도 호칭이 바뀐다는 점을 생각해 보세요. 운이 좋아서 지방수령 자리라도 하나 받으면 집 한 채 값이 아깝겠어요.  김씨 그런 편법이나 부정행위 말고 진짜 요령도 있나요. 예를 들어 시권(試券·답안지)은 언제 내는 것이 좋다니 하는 것들요.  이생 상담받으러 오셔서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시는군요. 뭐 제 직감상 또 오실 것 같아서 몇 가지 더 말씀드리죠. 시권은 빨리 낼수록 유리합니다. 어차피 같은 문제를 푸는데, 먼저 푸는 사람이 잘한다는 인상을 줄뿐더러 채점도 하다 보면 지치거든요. 특히 사서삼경의 암기와 해석을 쓰는 생원시 같은 경우에는 일단 한번 작성하면 고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장고 끝에 악수라고들 하잖습니까. 아. 가끔 이름을 빼먹는 사람도 있는데, 꼭 시권에 조상 이름과 자기 이름을 써야 한다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우스워 보이지만 매년 수십 명이 이것 때문에 떨어져요. 마지막으로 종이, 종이가 중요합니다. 시험지를 각자 사가야 하는데, 이왕이면 두껍고 질 좋은 종이를 사야 합니다. 시험관들 마음이라는 것이 좋은 종이를 보면 좋은 가문으로 생각하기 쉽거든요.  김씨 선생님 말씀을 듣다 보니 착하고 바르게 살라는 학문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 출세를 위해 못하는 짓이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걸 아들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아들이 이 얘기를 들으면 과장 근처에도 안 가려고 할 텐데요.  이생 과연 그럴까요. 아드님은 분명 이 길을 따라 과거를 보든가 아니면 이 같은 일을 바로잡기 위해 과거를 보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하게 될 겁니다. 낭충지추. 이런 부정과 편법이 판치는 과장에서도 탁월한 인재는 분명히 드러나게 돼 있거든요. 절 믿으세요. 제가 조선 제일의 시험 전문가로 불리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요.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조선의 출세길, 장원급제(정구선·팬덤북스)  -조선 양반의 일생(규장각한국학연구원·글항아리)  -조선과거실록(지두환·동연)  -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백승종·푸른역사)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정은궐·파란미디어)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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