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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 새 출범 전교조』’합법 노조’ 준비 어떻게

    교원노조법의 국회 통과로 ‘10년 숙원’이었던 합법 노조의 출범을 눈 앞에 둔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의 움직임이 분주하다.오는 7월1일 출범 예정인 전교조는 조직 개편과 함께 비합법 시절의 과격한이미지를 벗기 위한 노력을 다각적으로 펼칠 계획이다.구체적 방안은 새달말쯤 열릴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전교조는 우선 강성이미지로 인한 국민과의 거리감을 그대로 두고는 원활한 활동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이에 따라 선전물을 제작·배포하는 등 ‘달라진 전교조’를 적극 홍보한다는 구상이다.정부의 이해를 돕기 위해선 교육부·노동부등 관련 부처와의 대화채널을 활성화한다는 복안이다. 동료교사들의 편견을 씻는 것도 전교조 성패를 가름할 초미의 과제다.오는4월 치를 전교조위원장 선거와 5월28일 전교조 창립 10주년 기념일을 대대적인 홍보 마당으로 활용,비조합원 교사들에게 전교조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가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조직개편의 요점은 투쟁 중심의 조직에서 교섭파트너로서 단체교섭안 개발및교육개혁 정책대안를 제시하는 ‘일하는 조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이를 위해 정책대안 개발을 맡은 기존 정책위원회를 확대하고 별도의 연구소를설립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전교조 李京喜대변인은 “교육부가 전교조와는 교원의 사회·경제적 지위를,교총과는 교육정책을 논의하겠다고 밝혔지만 교원의 지위와 교육개혁은 분리할 수 없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전교조가 출범 전까지 목표로 잡고 있는 조합원수는 10만명.현재 정식조합원은 1만5,000여명이며 후원회원까지 합치면 4만명을 웃돈다.이들이 각자 한사람씩만 회원가입을 유도하면 어렵지않다는 계산이다.이 구상대로라면 회원 26만명인 한국교총에 버금가는 대형 조직으로 탄생하는 셈이다.金貴植위원장은 “전교조는 그동안 활동가 중심,중앙본부 중심으로 운영돼왔다”면서“이제는 학교 중심,교사 중심의 아래로부터의 체질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 공직탐험-여성 경찰관

    ‘거리의 판사’라고 불리우는 경찰직에도 여성의 파워가 조금씩이나마 늘어나고 있다. 올해 여자순경공채 경쟁률은 72대 1을 기록하며 높은 인기도를 나타냈다.여경이라면 특수한 여성이 한다고 여기던 과거와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현재 여성경찰의 수는 1,674명으로 전체의 1.8%에 지나지 않는다.다른 분야와 달리 여성순경의 채용규모가 매년 125명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간부 여성경찰은 더욱 빈약하다.현재 여성 총경은 1명,경정은 5명,경감은 14명이다. 洪泰玉 서울시경 민원실장(경정)은 “여경 채용규모를 확대해 여성이 숫적으로 절대 열세인 현실부터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93년부터 경찰대학 출신 여경이 현장에 투입되면서부터 일하는 분야는 제한없이 확대되고 있다.경찰업무 중 고되다고 여겨지는 수사와 파출소 근무,외사,정보 등에도 여경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사실 과거에는 여경이 스스로 내근부서만 원해 내부에서 비난받기도 했다.특히 결혼한 여경의 경우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었다. 한 고참 여경은 “사회적편견 극복이 가장 힘들었다.특히 남성 상사와 부하 모두가 여성을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팽배,민원실이나 소년계만 다니는여경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고위직 승진과 보직확보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여경창설 52주년인 지난해 경찰 역사상 처음으로 金康子옥천경찰서장이 탄생했다.이전에는 여경이 경정으로 승진해도 내근인 서울시경 민원실장에 배치시키는 것이 고작이었다. 金서장은 여경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최근 충청북도 내 11개 경찰서를대상으로 한 민생치안활동 평가에서 1위를 차지,기염을 토했다.金서장은 91년 경정으로 승진한 뒤에도 4년 동안이나 시경 민원실장에서 빼주지 않자 청장에게 독대를 요청,노원경찰서 방범과장으로 처음 나가기도 했다.여경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인지 2개월간 방범과장의 근무를 감시하는(?) 팀도 있었다고.그후로 여성이 경정으로 승진해 일선서로 나갈 때는 방범과로 가는 관례도 생겼다. 金서장은 여성후배들에게 남성과 똑같은 일을 시킴으로써 여성의 입지를 확보해 나가고 있다고 귀띔한다. 이처럼 여경 스스로의 제몫찾기 못지 않게 기혼 여경을 위한 탁아시설 등행정적 지원도 여성 활동의 지평을 넓혀 나가는데 꼭 필요한 실정이다.여경들도 경찰인 만큼 야간 근무 등 격무가 불가피한데다 우리나라에서는 육아의 책임이 여성에게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徐晶娥 seoa@
  • [특별기고] 동서화합과 민족적 에너지

    새해는 경제위기의 극복에 못지않게 지역화합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시기이다.세계가 하나의 삶의 터전으로 움직이는 열려 있는 세계화시대에 지구상에서 아직도 유일하게 남북으로 분단돼있고,다시 동서로 갈라져 대립과 갈등을보이고 있는 양상은 한심스런 국민적 수치이다. 한 국가내에 반목과 대립,갈등의 정도가 심한 사회는 국민적 의지와 동력을 집약할 수 있는 구심력이 약화되어 있기 때문에 전체사회의 발전이 정체되고,그 사회는 항상 불안하게 마련이다.인종적·언어적·종교적 이유 등 그사회가 내포하고 있는 고질적 이질성 때문에 지구상의 몇 나라에서는 갈등과분쟁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이러한 이질성과는 무관하다.정치인들이 정권창출과 장기집권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지역연고성을 앞세워 지역의식의 부정적 속성인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유발해 영호남 두 지역을 동서의 대립구도로치닫게 했으며 지금도 반목과 갈등의 골은 메워지지 못한 상태다.우리들 자신과 후대들을 위해서도 지역화합은 시급하고도 중요한 국민적 과제이다. 지역화합의 본질은 지역주민들이 전향적 발상과 의식전환을 통해 마음을 열고 더불어 다정하게 함께 살아간다는 열린 마음의 공동체의식을 갖도록 하는 데 있다.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몇 가지 조건의 우선적 충족과 환경조성이 필수적이다. 첫째,지역분할과 갈등의 씨를 뿌린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화합을 위해 솔선수범해야 한다.다시 말해서 정치인들은 지역화합을 위해서 모름지기 막스 베버가 갈파한 ‘책임윤리’의 실천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지역민에 대한 부정적 편견의식은 반드시 불식돼야 한다.현재 동·서양 지역민에 대한 대부분의 편견의식은 가상과 허위가 실상이나 사실로 고정관념화돼 버린 왜곡된 사회화의 결과이다.사회화는 곧 인성의 형성과정이기때문에 인간주기의 단계별로 편견을 시정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더욱이 부정적 편견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불신이 따르게마련이기 때문에,이를 불식하는 문제는 대단히 시급하다. 셋째,지역개념을 초월한 공동의 발전과 협력을 유도하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공동의 사업을 통해서 지역민간에 공생공영의 의식을 폭넓게 불러일으키는 일은 화합의 장을 열어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사업분야뿐만 아니라 문화,스포츠,노사관계 등에서도 공동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과제는 얼마든지 개발될 수 있다.그리고정부는 지역민의 창의적 공동사업에 재정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넷째,지금껏 지역편견의 폐습 때문에 성사의 확률이 극히 저조했지만,앞으로는 열린 마음으로 통혼을 장려하는 것이 지역화합의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부부간의 사랑이야말로 용광로와 같은 기능을 할 수 있고,그 사이에서 태어난 2세는 지역화합을 가장 모범적으로 상징하는 실례라고 볼 수있기 때문이다. 의식의 전환과 공동사업이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명실상부한 시작은 테이프를 끊는다는 데 있다.이런맥락에서 새해는 지역화합의 진정한 테이프를 끊는 원년이 되기를 국민과 함께 간절히 소망한다.
  • 뉴스 인사이드-美 애리조나주 ‘여성만세’

    │워싱턴 崔哲昊 특파원│미국 애리조나주에서는 99년이 여성들에게 특별한한해로 기억될 것이다. 그 이유는 인류역사 이래 처음으로 행정과 사법을 모두 여성이 담당하는 정부를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선거에서 공화당의 제인 헐이 여성 주지사로 당선된 데 이어 베시 베이리스 국무장관,캐롤 스프링어 재무장관,리사 그래엄 키건 공보담당관등이 모두 여성으로 임명됐다. 게다가 주검찰총장에 선출된 민주당의 제닛 나폴리타노 역시 여성이어서 전통적으로 카우보이의 주인 애리조나가 이제 ‘카우 걸’에 의해 다스려지게된 것이다.애리조나주는 사상 처음 산드라 데이오코너 연방 여성대법관을 배출한 적도 있어 여걸 배출의 본고장으로 명성을 드높이게 됐다. 남자들의 보수성이 타주보다 강한 애리조나에서 이처럼 여성들이 맹위를 떨치는 것은 그만큼 개방화가 추진됐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여성정치연구소의 헤이디 하트만은 “선거에서나 임명동의절차에서 성(性)에대한 언급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면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조용한 혁명은 이제 미 전역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반색했다. 이들 5인방 여성은 면면이나 경력도 해당분야의 남성들보다 월등한 것으로나타나 흠잡을 곳이 전혀 없다는 평가.단지 주변에서는 “그들이 남자들보다 덜 호전적이고 좀더 문명화됐다는 것이 흠 아닌 흠”이라며 낙관론이 만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 제24회 한국소설 문학상 兪金浩·郭義珍씨 선정

    한국소설가협회(회장 洪性裕)는 한국소설문학상 제24회 수상자로 兪金浩 목포대 교수와 郭義珍씨를 선정했다.兪교수는 소설집 ‘여자에 관한 몇가지 이설,혹은 편견’으로 郭義珍씨는 구한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남종문인화의 대가 소치(小癡) 許維의 일대기를 그린 ‘꿈이로다 화연일세’로 상을 받게 됐다.시상식은 오는 21일 문예진흥원 강당에서 열린다.
  • 東亞를 껴안고 통일로 가자(1회)-망국병 지역감정

    지역감정은 망국병(亡國病)이라 불릴 정도로 우리 사회의 통합과 발전을 가 로 막아온 대표적인 장애물이다. 이성에 따른 객관적 판단이 아닌 편견이나 고정관념의 산물이지만 이로 인 한 반목과 갈등은 엄청난 국력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우리 정치가 전근대성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것도 지역감정 때문이라는 지적 이다.투표 때 지연(地緣)이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작용하는 것도 부인하 기 어려운 현실이다.때문에 정당의 구도도 보수와 진보 등 이념이나 정책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지역기반에 따라 극명하게 나누어져 있다. 공직은 물론 사기업에서까지 인사에 특정지역 출신을 선호하거나 기피하는 가 하면 정부가 지역에 따라 개발우선순위에 차별을 둠으로써 지역감정은 사 회전반에 엄청난 부작용을 낳고 있다.특히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지도층이 지 역감정을 부추기는 언행을 서슴지 않음으로써 공정한 경쟁의 룰은 뒷전으로 밀린 채 우리 사회는 저급한 수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지역간 대결구도는 朴正熙 군사정권 때 촉발됐다는 게 정설이다. 지난 71년 대선 때 당시 金大中후보와의 박빙의 승부에서 朴정권이 지역감 정을 선거전략에 악용하면서 영·호남의 ‘대결 정서’를 일반 국민에게까지 확산시켰다. 朴정권 이후 40년 가까이 영남을 지역기반으로 한 정치세력이 권력을 승계 하면서 지역감정은 권력 유지 및 재창출 수단으로 정치적 고비 때마다 등장 했다. 문민정부를 표방하며 출범했던 金泳三정권도 정권창출과정부터 지역감정으 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부산 초원복집사건’이나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로 대변되는 지역감정의 선거활용은 군사정권 때의 수법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지역감정은 일반 서민들에게는 출신지역에 따른 인사 편중이나 지역간 성장 불균형으로 다가왔다. 얼마전 부산대 사회조사연구소가 영·호남지역 주민 822명을 대상으로 실시 한 설문조사(복수응답) 결과 응답자의 55%가 지역불균등 발전정책을,46%가 정부고위직 인사정책을 지역감정 유발요인으로 꼽았다. 영·호남 지역감정의 속내를 들여다 보면 내용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영남의지역감정은 지역패권주의에 입각한 우월감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논리적·과학적이라기보다는 근거없는 속설에 의존하는 경 향을 꼬집은 해석이다.반면 호남이 갖는 지역감정은 지역개발의 지체,인사의 소외,군부독재파워그룹에 대한 저항과 자신들의 피해의식에 의한 단합의 태 도라는 분석이다. 50년만의 여야 정권교체는 지역구도라는 시각에서 보면 정권의 지역기반이 영남에서 호남으로 교체된 것을 의미한다. 다행스럽게도 국민의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보복정치 근절’과 ‘지역차 별 없는 국민대통합’을 천명했다.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민족통일이라 는 지상과업을 완수하려면 동서화합이 선결과제라는 게 현 정부의 인식이다. 영·호남 화합노력도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영·호남 8개 시도에서 동서 화합을 위한 공동기금을 마련키로 했다.특별교부세 형태로 조성하는 이 기금 으로 지역화합에 앞장서는 민간단체나 우수한 프로그램 등에 지원한다는 구 상이다. 남해안 일주도로 개설과 진주·광양만권 개발 등 영·호남을 잇는 지역개발 사업을 비롯,남해안 적조 예방,섬진강·지리산 생태계 보호 등 환경보전사업 등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그런가 하면 전남 담양군과 대구시 달성군,광양시와 포항시 등이 자매결연 했다.전남 순천시와 경남 진주시,전남 구례군과 경남 하동군,여수시와 울산 광역시 등 도시 성격이 비슷한 지역간 연대 움직임도 가속화되고 있다. 민간차원의 화합노력도 다양하다.사회단체나 학교간 결연이 잇따르는가 하 면 영·호남 사돈맺기,문인교류,헌혈교환운동 등이 펼쳐지고 있다. 결국 지역감정을 극복하고 국민대통합을 이루려면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지 도층의 철저한 자기반성도 중요하지만,지역감정의 본질이 무엇인지 꿰뚫어 볼 수 있는 국민의 혜안과 각성이 절실하다고 볼 수 있다. 金煥龍 dragonk@ [金煥龍 dragonk@]
  • 지역감정 해소 이렇게

    [각계 의견] ●徐聖喆 공동체의식개혁 국민운동협의회 사무총장우리 국민들은 정쟁(政爭) 의 지역 분할에 의해 간접적인 피해를 입어왔다.지역감정은 사회 모든 분야 에 영향을 미쳐 개인의 상대평가 기준으로 지연·학연·혈연을 따질 정도가 됐다.꾸준한 해소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역감정은 일부 정치인들의 정략수단 으로 이용되면서 지역간 골은 더욱 깊어졌다. 우리는 지역감정을 이용하고자 하는 어떤 세력들의 시도도 더이상 용납해서 는 안된다.이런 점에서 시민단체들에 의한 의식개혁운동이 필요하다. ●李漢龜 성균관대 교학처장(철학과 교수)지역감정에 얽힌 근본적인 문제점 은 사적인 차원의 일을 공적인 차원의 일로 착각하는데 있다.특히 정치인들 이 정치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지역감정을 은근히 조장해왔기 때문에 지역간 갈등의 골이 심화되었다.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두가지 방안을 제시한다.첫째 공적인 차원에서 지역 감정을 조장하는 모든 발언에 대해서는 중벌을 내릴 수 있는 법을 제정,엄격 히 시행한다.둘째 정부나 여당 등 권력기관이 지역감정을 토대로 권력을 행 사하는지 여부를 감시하는 특별기구를 만들어 운영한다. ●金正翰 전 여수수산대 총장지역감정의 원천은 애향심이다.태어나고 자란 지역에 대한 지나친 애향심이 상대 지역에 대한 편견으로 발전했다.지역감정 은 좋은 방향으로 승화되면 진정한 애국심으로 바뀔 수 있다.진정한 의미의 민주화와 공동체 의식개혁이 이뤄지면 망국병인 지역감정도 자연히 치유된다 .지역간 균형된 발전,공정한 인사,공평한 예산배분을 시행하는 진정한 민주 정부만이 지역간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 ●崔暻集 한맥인 대표이사(대구·경북 심신장애자 자활후원회 회장)지금 세 계인은 국경과 이념을 뛰어 넘는 무한경쟁의 시대를 살고 있다.민족 내부로 부터 화합을 이뤄내지 못하고는 남북통일도, 선진국으로의 도약도 해낼 수 없다. 지역민들간에 진정한 마음으로 일체감을 발휘,한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해야 한다.지역·계층·세대를 초월하여 모두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생각으로 불신 의 벽을 허물고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피노체트 면책특권 부정은 무효”/英 최고법원,재심 명령

    【런던 AFP AP 연합】 영국 최고법원인 상원은 17일 칠레 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인권침해 범죄에 대한 면책특권을 부정한 앞서의 판결을 기각하고 가능한 한 빠른 시일안에 재심을 열도록 명령했다. 상원은 지난달 25일 판결 당시 재판부 5명중 1명이 국제사면위원회(엠네스티 인터내셔널)와 관련돼 있어 편견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피노체트 변호진의 청원을 만장일치로 받아들이고 이런 판결을 내렸다. 상원은 이에 따라 영국 법률에 의해 면책특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피노체트의 주장을 놓고 다음달 재심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며,국제사면위와 관련된 호프만 판사는 재심 재판부 참여자격을 박탈당할 것으로 보인다.
  • 19일 이슬람 최대 절기 라마단 시작

    ◎메카 향해 예배·코란 가르침 실천/한달간 동틀때부터 해질녘까지 금식·금연/국내 10만여 신도 전국 5개 성원 등서 모임/어기면 중죄… 미성년자·임산부·환자는 제외 19일은 이슬람 최대 절기인 라마단이 시작되는 날이다.전세계 16억 모슬렘들과 함께 10만여명의 국내 이슬람신도(외국인 노동자 7만명 가량포함)들도 한달동안 동틀 때부터 해질 녘까지 금식에 들어간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서울 성원(聖院:모스크)을 비롯,부산·전북 전주·경기도 안양 및 광주 등 5개 성원,그리고 제주와 서울 마천동 임시성원 등에선 라마단 성월동안 저녁을 맞아 단식을 중단하는 아프타르모임을 매일 갖는 한편 남서서쪽 메카를 향해 타라위흐 예배를 올리며 형제애를 나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등 이슬람국가 대사 등도 한남동의 모스크를 자주 찾아 코란의 가르침을 실천한다.모슬렘들이 해가 떠있는 동안 먹고 마시는 것은 물론 성교와 흡연 등을 완전히 삼가는 것은 인내심과 하느님에 대한 복종심을 고취시키고 심신단련과 함께 건강한 생존의 기초를 닦아주는 한편 투명한 영혼으로 초월의 경지에 들수 있기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 모슬렘들은 1년이 354일인 태음력을 따르는데 이슬람력으로 아홉번째 달이 ‘라마단’이다.올해는 19일에 시작해 내년 17일께 끝나고 12월8일께 또다시 라마단이 시작된다. 라마단은 육안으로 초승달이 보일 때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나라마다 기간이 다르며 우리나라에서도 음력 초하루인 19일에 달을 보지 못하면 20일부터 시작된다.끝나는 날 역시 29일째 달이 안 보이면 하루를 더 하도록 돼 있다. 라마단 금식은 이슬람의 지주이기 때문에 이를 어기는 것은 중죄이나 미성년자와 환자,임산부,수유중인 산모,50마일(약 80㎞)이상 여행하는 사람은 면제된다.그러나 면제사유가 해제되면 빠진 날만큼 금식기간을 채워야 하며,이를 고의로 어기면 벌로 60일동안 금식하거나 무효된 날짜만큼 금식하는 동시에 가난한 사람 60명을 흡족하게 먹여야 한다. 라마단이 끝나는 이슬람력 10월1일에는 ‘이둘피트르’(破斷祭)란 이름의 축제를 대대적으로 벌이고 불우이웃을 위해 특별자선을베푼다. 개신교인들은 92년부터 라마단 기간에 맞춰 이슬람 복음화를 기원하는 ‘역라마단 운동’을 펼치고 있다.창교 이래 이슬람이 기독교에 가장 큰 위협이 돼온데다가 아랍족이 유태인의 형제자손(아브라함의 서자인 이스마엘이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의 조상이라고 전함)이라고 믿기때문에 이들의 개종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이슬람교 중앙회 이주화 사무차장은 “기독교인의 금식기도나 불교신자들의 참선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라마단금식에 대해선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면서도 “해를 거듭할수록 이슬람교에 대한 인식이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기 때문에 국내 선교는 희망적”이라고 낙관했다.
  • MBC ‘2580’에 대한 反論(사설)

    문화방송(MBC TV)이 6일 밤 ‘시사매거진 2580’이란 프로그램을통해 “아직도 계도지(啓導紙)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일부 신문의 보급 행태를 비판했다. 우리는 같은 언론기관이라 해도 타사의 제작내용,또는 판매방식에 이르기까지 필요하다면 시비를 가리는 것이 옳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선입견이나 전문성 등을 무시한 어떤 편견에 치우친 것이라면 비판 이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MBC 프로그램의 경우 상당부분 오해에서 비롯된 내용이 없지 않았고 그로 인해 본보가 적지아니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일이어서 여기 몇가지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먼저 MBC의 보도는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구시대적으로 정치권력이 특정 신문들을 일괄 구입해 배포하는 것 같은 인상을 풍긴다.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지방자치제가 전면 실시된 이래 계도지는 전적으로 각 자치단체의 소관사항으로 자치체가 자체의 판단에 따라 결정하고 해당 지방의회의 예산심의를 거쳐 확정되고 있다. 그것은 계도지 예산액수가 자치단체 별로 천차만별인 것만 봐도 확연하다.또 각 의회에는 여야가 있어서 사안별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권위주의 정권때의 홍보지 배포와는 성격이 판이하다. 그 프로가 주로 다룬 대상은 지방지들의 문제였지만 중앙지중 유독 대한매일의 이름을 적시한 것도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예컨대 서울 금천구의 경우 중앙 10개지가 모두 계도지 예산으로 구입,배포되고 있다. 대한매일은 신문광고 수입의 대종을 이루는 신문의 마지막 페이지인 속칭 ‘백면광고’를 스스로 포기하고 그 중요한 지면에 행정뉴스를 싣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본지는 매일 4페이지 이상의 행정뉴스 면을 고정적으로 확보하고 있다.이 나라의 어느 신문도 대한매일처럼 행정뉴스로 특화된 신문은 없다.본지는 행정뉴스에 관한한 양에서나 질에서 공히 어느 경쟁지도 추종을 불허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대한매일이 관가나 관청 주변에서 많이 읽히고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전적으로 선택의 문제일뿐이다. 대한매일은 행정뉴스를 가장 정확하고 깊이 있게 다루는 신문,그래서 정부와 국가기관의 움직임을 알고자하여 찾는 신문이다.MBC는 보다 사실확인과 진실보도에 충실할 것을 촉구한다.
  • 쟁점과 제2건국위측 해명

    ◎최근 언론에 유출된 문건은 순수한 내부자료/정부부처 관련 개혁문제 직접 추진뜻 아니다/제2건국운동은 자발적 참여 바탕 민간이 주도 제2건국위원회는 4일 최근 야당과 일부 언론에서 위원회가 관 주도로 과도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한 데 대해 공식 입장을 밝혔다. 다음은 제2건국위가 쟁점사항에 대해 밝힌 입장이다. ●제2건국위의 법적 근거와 위상 제2건국위는 정부조직법 제4조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설치된 대통령 자문기구로 법적 기구다.일반적으로 자문기구의 경우 정부조직법에 의거,대통령령에 따라 설치하는 것이 통상적인 예로서 노사정위원회,새교육공동체위원회도 그 설치 근거를 대통령령에 두고 있다. 또 위원회는 국정개혁과 범국민운동의 효율적 추진에 관한 사항에 대해 대통령에게 건의함으로써 국정수행을 보좌하는 순수 자문기구다.기존 정부 부처와 역할이 중복되거나 ‘옥상옥’의 기구가 아니다. ●제2건국위가 정부 부처 개혁문제에 관해 논의했는지와 그의 위헌적 발상 여부 최근 언론에 유출된 문건은 11월27일 기획단 제1분과의 첫 회의에서 참석자가 아무런 제한없이 발언한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순수한 내부 자료다. 정부 부처의 개혁문제에 관한 사항을 직접 추진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현재 공공 부문에 대한 개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나치게 비대해진 정부부문에서 비효율적 부분들을 제거함으로써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만드는 일이다.위원회가 하고자 하는 것은 그동안 미진했던 개혁 관련 사항을 검토하고 개선 방안을 논의해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일이다.위원회에서 논의된 사항을 대통령이 받아들여 추진될 경우에는 행정자치부나 기획예산위원회 같은 집행기구를 통하게 된다. 참고로 행정자치부나 기획예산위원회의 관계 공무원이 제2건국위 또는 태스크 포스의 일원으로 참여해 사전에 의견조율을 거치고 있다. ●제2건국운동이 순수한 민간운동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제2건국운동은 총체적 개혁을 통해 21세기 민족 재도약을 이룩하려는 범국민운동이다.민간의 자발적 지지와 참여를 바탕으로 민간이 주도하는 운동으로 추진할 계획이다.다만 공공 부문 개혁은 관이 참여하여 실천하지 않으면 개혁의 실효성이 없다는 측면에서 관이 참여하도록 한 것이다.또 운동의 조기 정착과 범국민적 확산을 위해 관의 지원과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일부 공무원이 참여토록 한 것이다.제2건국위 위원 대부분(80%)이 민간 인사들로 구성돼 있으며 모든 의사결정은 위원들의 논의를 통해 형성된다는 점을 보더라도 청와대와 공무원이 주도하고 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제2건국운동의 정치성 논란 제2건국운동은 국난극복을 위한 순수 국민운동이다.일부에서 이 운동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으나 이는 과거의 잘못된 정치관행에서 비롯된 편견으로 국민운동은 순수성이 생명으로 누구든지 이 운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든다면 국민이 용납지 않을 것이다.
  • ‘총풍 재판’ 조용히 지켜보자(사설)

    ‘판문점 총격공작사건’으로 구속기소된 韓成基 피고인이 지난해 12월 북한쪽 인사를 만나러 베이징에 가기 직전과 갔다온 직후 이 사건 관련사항을 李會昌 후보측에게 서면으로 보고한 사실이 지난 30일 재판정에서 밝혀져,‘총풍사건’이 또다시 정국을 흔들지 않을까 우려된다.검찰은 李會昌 총재와 동생 會晟씨의 관련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나서고 있고,한나라당은 韓씨의 증언을 전혀 근거없는 사실무근의 낭설로 규정하고 “검찰이 날조된 사실로 또다시 李총재 죽이기를 시도하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국회는 법정처리 시한이 임박한 예산안과 경제청문회를 놓고 여야간에 첨예한 대결을 벌이고 있다.그런 판국에 뜻밖의 뇌관 하나가 불거져 나온 것이다.韓씨의 증언이 한나라당에 주었을 충격은 충분히 짐작이 간다.한나라당은 李총재에 대한 검찰의 조사방침에 항의해서 어제 있을 예정이던 총무회담을 거부했다.사태가 자칫 잘못 굴러가면 예산안이나 경제청문회가 여권 단독으로 처리될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그래서 우리는‘총풍재판’과 국정현안을 한데 뒤섞지 말것을 정치권에 당부한다.‘판문점 총격유도사건’은 집권을 위해서라면 ‘적과의 내통’도 서슴지 않는 반국가적 범죄행위다.북한이 韓씨등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기 망정이지,만에 하나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어 대선을 앞두고 판문점에서 불측(不測)의 사태가 벌어졌으면 어떻게 했겠는가.게다가 남한의 대통령선거판이 오죽 저질이면 그따위 조무래기들이 감히 그런 엄청난 일을 꾸몄겠는가.그러므로 ‘총풍재판’은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서 책임을 묻는 사법적절차다.따라서 정치적 시각이나 판단이 끼어들어서는 안된다. ‘韓씨의 증언’에 대해 국민회의는 “재판결과를 예의 주시하겠다”는 태도이며 자민련은 李총재의 직접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그러나 李총재가 韓씨로부터 총격요청 사실을 직접 보고받았는지 여부도 당장은 명확치 않다.앞으로 조사결과에 따라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검찰은 李총재에 대한 조사에 있어 야당 총재의 명예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임했으면 한다.그런 방식이라면 李총재도 조사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그 스스로가 법의 정의 구현에 평생을 바쳐온 법조인이기 때문이다.한가지 덧붙일 것은 언론도 이 사건 보도에 있어 앞으로는 주관적인 해석을 달지말고 진전되는 상황만 객관적으로 보도했으면 한다.국민들이 아무런 편견없이 이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기다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정치권은 이제 ‘총풍’은 법원에 맡겨두고 국정현안에 전념하기 바란다.
  • 발행 10돌 맞는 여성신문 이계경 사장

    ◎“가부장문화속 편견깨기 어려웠어요”/여성문제 여론화에 한몫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을 깨기가 어려웠습니다” 지난 25일로 발행 10주년을 맞은 이계경(48) 여성신문 사장은 정치 사회문제에 가려 소홀히 취급됐던 여성문제를 전면으로 끌어내고 ‘남녀고용평등법’‘영유아보호법’‘성폭력 특별법’‘가정폭력방지법’ 등을 제정토록 여론화시킨 것을 성과로 꼽았다. 이사장은 “광고 독자 우수인력확보가 어려웠다”는 한마디로 주간신문인 여성신문이 걸어온 과정을 설명했다.그러나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신문이 있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지금까지 이끌어왔다고 했다. “여성들의 정치 경제 참여는 점차 증가해왔으나 IMF영향으로 주춤한 상태”라며 앞으로 여성들의 정치참여기반을 늘리고 취업률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는데 여성계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여성신문은 좋은문화가꾸기 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95년부터 평등부부상을 제정하여 매년 시상하고 있다.
  • 열악한 봉급·불안한 지위(全敎組 교사 복직이후:中)

    ◎변두리·실업계 발령… 차별대우 불쾌/경력공백 보상 못받아/해직기간만큼 승진 족쇄/색안경낀 근무평가 우려 서울 B고에 복직한 전교조 L교사(52·국어 담당)는 지난달 복직 이후 첫 봉급명세서를 받고 난감해 했다. 명세서에 찍힌 수령액은 120여만원.해직기간을 전혀 인정받지 못한 채 해직 전 15년간의 교직 경력만 반영한 액수였다. 그나마 해직 전 연금을 복직 뒤 합산토록 신청한 L교사는 해직 때 탄 연금마저 반납해야 한다. 게다가 파면을 당했던 L교사는 규정에 따라 일반 해직교사들이 받는 연금의 50%인 1,200만원만 받고 학교를 떠났지만 반납할 땐 정상연금인 2,400만원을 물어야 한다. 여기에 해직기간 9년 동안의 이자까지 합쳐 L교사가 내야 할 돈은 모두 6,500만원. 4년동안 분할상환키로 했지만 매달 170여만원을 내야 한다. 월급보다 훨씬 많은 액수다. 지난 9월 복직한 전교조 교사들은 70여명. 이들 가운데 교직기간이 3년 이하인 교사들은 신규채용방식으로,3년 이상인 교사들은 특별채용방식으로 복직했다. 이는 형식상의 차이일 뿐 해직기간을 인정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남은 교직기간 중에도 봉급과 승진 등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형편이다. N중학에 복직한 S교사(44·국어담당)의 경우엔 지난달 월급으로 104만원을 받았다. 해직기간 동안 어렵사리 생계를 이어간 그로서는 연금 합산신청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 S교사는 “일부 후배교사들은 물론 교장선생님조차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면서 “돈 때문에 전교조 활동을 한 게 아닌데도 이런 분위기 때문에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전교조 복직교사들의 불안한 지위는 돈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임지 배정,수업시간 배분 등에서도 기존 교사들과 차별대우를 받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해직 전 4년간 교단에 섰다가 S여중에 복직한 L교사(38)는 주당 24시간의 수업을 맡았다. 통상 초임교사들이 부담하는 수업량이어서 불쾌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는 “복직교사들 대부분이 변두리 학교나 실업계 고교에 발령을 받았다”며 “차별대우를 받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마음 한구석에 있다”고 말했다. 공백기간으로 돼 있는 해직기간 9년이 승진에도 두고두고 족쇄가 될 판이다. L교사는 특히 능력중심으로 교원인사정책을 개혁하겠다는 교육부의 의지가 복직 교사들에겐 자칫 피해를 가중시킬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기준 없이 실적주의라는 미명 아래 직급을 세분화할 경우 경력상 공백이 있는 복직 교사들이 유리할 게 없다”면서 “특히 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편견이 가시지 않은 교장들이 평가주체가 된다면 교사 길들이기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전교조 관계자는 “해직기간을 인정받기 위해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는 금전이나 승진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교조 활동의 역사적 평가를 제대로 받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 아이와 함께 영어동화 읽자/에브리클럽‘매주 수요일 무료교실’운영

    “아이와 함께 영어동화책을 읽자” 대부분의 부모들은 외국어 교육이 유아기부터 모국어를 배우듯 자연스럽게 접하고 사용하면서 익히는 것이 가장 좋은 학습법이란 사실에 동의하면서도 ‘발음이 시원잖아서’‘영어에 자신없어서’라며 말끝을 흐리거나 아예 외면해 버리기 일쑤다. 국내최대 북클럽인 국제 영어책읽기 한국모임(에브리클럽,대표 정책)은 영어와 영어동화책에 대한 부모들의 이러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어머니 영어동화읽기 교실’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이 모임의 강사인 김은경씨는 “영어로 된 책이란 이유로 두려워하면 안된다”며 “아이들은 처음에는 그림을 보고 내용을 이해하므로 엄마와 함께 책을 즐긴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이어 그는 “동화읽어주기는 적어도 2년 정도 꾸준히 지속했을 때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에브리클럽은 지난 88년 설립됐으며 영어동화책을 10만여권 보유하고 있다. 이 동화책들은 나이·수준별로 12단계로 나눠지며 무료강좌 프로그램은 기초부터 3단계까지 실시한다. 더 높은 단계의 강의를 원하면 회원으로 가입하면 된다. 이밖에도 이 클럽은 영어독서지도사 과정도 운영,1,000여명의 영어독서지도사를 배출했다. (02)529­0519
  • 한국 언론에 바란다­駐韓 특파원의 충고

    ◎“속보지양­정치중립 지켜야” 대한매일은 재창간을 계기로 한국언론을 잠시 뒤돌아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한국에 상주하면서 취재 활동을 하고 있는 외국 언론사 특파원들이 보는 우리 언론의 현주소를 들어 봤다.같은 언론인이면서 한편으론 우리 언론 풍토로부터는 한발치 떨어져 있는 그들.상업성을 탈피해 속보 경쟁보다는 정확성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는가 하면 매체 경영자들에게는 정치적 중립성을 주문하기도 했다. ◎고스게 코이치 조일신문 서울지국장/어려울수록 원점을 소중히 한국의 고귀한 언론투쟁의 역사는 일본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그리고 이제 한국은 세계에서도 가장 자유롭게 언론을 전개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이런 축적은 소중하게 여겨져야 할 것이다.어려운 상황일수록 원점을 짚어보는 것이 유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신문사’ 간판만으로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조직의 일원이기 이전에 적어도 정신적으로는 ‘독립한 저널리스트’이어야 하지 않은가.출입처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이는 물론 이는 필자의 자계(自戒)다. 취재대상에 파고들면서도 권력과의 거리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무엇보다 인간이고 싶다.그리고 겸허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편견’과는 차원이 다른 좋은 의미의 내셔널리즘에 바탕한 인터내셔널리즘을 추구하고 싶다.신문에서 우선 요구되는 것은 정확한 정보의 제공이다.무엇이 사실인가를 독자에게 제시하고,거기에 감춰진 진실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그런 원점을 소중히 하고 싶다. ◎키시 토시로 NHK 서울지국장/공익에 목적둔 정치견제를 외국인 기자로서 한국 사회를 오랜 기간 관찰하며 느끼는 것은 준(準) 선진국중에서 한국만큼 정치적,사회적으로 갈등이 많은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전직 대통령이 체포되고,정권에 협력했다 또는 적대했다라는 이유로 재벌 총수가 구속된다.그리고 안기부를 비롯한 국가기관과 언론기관이 그러한 ‘마녀 사냥’에 앞장 서온 것이 한국의 역사이다.그래서 한국 미디어의 경영자들은 항시 권력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는가라는 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워왔다.그 결과 권력에 영합하건적대하건 간에 한국의 미디어의 입장은 항상 어떠한 당파성을 띠게 돼 미국이나 일본의 미디어와 같이 취재와 보도에 있어서 정치로부터 독립한 국익과 시민의 이익이 고려되는 기회를 잃어 왔다. 하지만 미디어에 의한 정치의 견제는 바야흐로 국익과 시민의 이익획득에 목적이 있다.한국의 미디어가 이러한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정치가 보다 성숙해지고 안정을 찾는 것이 요구되지만 동시에 기자 한사람 한사람에게 독립된 가치기준으로 정치를 냉정하게 비판하는 능력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케다 야스히로 東京新聞 서울지국장/미래 지향적 영향력 기대 한국 신문은 ‘정보의 보고(寶庫)’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일본인 기자의 눈으로 보면 한국 신문의 영향력도 부러울 정도다.한국 정부 당국자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것은 신문이 반대하기 때문에 어렵다”는 말이 종종 튀어나온다.“우리나라의 신문은 힘이 세기 때문”이라는 말을 덧붙인다.정계재계에 신문사 출신이 많이 활약하고 있을 정도다. 金大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한 뒤 새로운 한일우호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은 한국 신문의 전향적인 평가가 여론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이번에 거듭 태어난 대한매일을 선두로,한국 각 신문이 풍부한 영향력을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 구축을 위해 써주었으면 한다. ◎존 버튼 파이낸셜 타임스 서울지국장/추측·루머 의존경향 버리길 한국의 언론 보도는 신문사의 숫자가 많고 경쟁이 치열한 탓인지 추측과 과장,루머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요즘 언론사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이념논쟁이나 휴전선 무력시위 요청사건 보도가 좋은 사례다.기자들의 경우 수동적인 경향이 있어 보인다.경제나 기업 관련 기사를 쓸 때 주는 자료를 받아 쓸 뿐 사실 확인이나 추가 취재에 ‘소극적’이다.비판적이지 못하다는 얘기다. 또 의도적으로 정치인이나 관료를 화나게 하거나 당혹하게 하는 기사를 쓰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느끼고 있다.이는 언론과 정치권력이 지나치게 밀착된 관계를 유지한 데서 비롯된다는 생각이다.따라서 한국 언론은 먼저 그것이어떤 것이든 먼저 ‘권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게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리드 G.밀러 AP통신 서울지국장/공정 등 보편원칙 충실해야 한글을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 사람으로서 한국 언론의 공정보도를 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언론은 정확한 사실을 보도해야 한다는 점이다.AP통신의 경우 보도의 신속성보다는 정확성을 강조한다.때문에 취재 기자든 기고자이든 AP통신은 정확할 것을 주문한다.오보를 낸 기자라면 AP에 오래 일하기 힘들다.정확한 보도는 한국 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 어떤 회사의 기자든 간에 지켜야 할 의무다.공정하고 정확한 보도는 보편적 원칙인 셈이다. 특정인을 둘러싼 논쟁이 진행된다면 언론은 그가 쓴 글이나 발표,과거 행적을 철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그런검토는 자연스럽게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밝혀줄 것이기 때문이다.재차 강조하거니와 언론은 취재원이 요청한 엠바고도 존중하하고 사실을 정확하게 보도할 의무를 지켜야 한다.
  • 진정한 영·호남 화합을 위해/崔弘運 논설의원(대한포럼)

    우리 시대의 화두(話頭)는 단연 개혁과 민족화합이다.오늘의 국난(國難)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선진국 대열에 들어 21세기를 주도할 수 있기 위해서는 분명히 이 과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이는 바로 우리 민족의 사활(死活)이 걸린 문제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각 분야에서 더디지만 개혁과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고 화합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본다.이 가운데서도 민족화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최우선과제가 아닐 수 없다.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져 통한(痛恨)의 반세기를 보낸 것만 해도 억울한데 동·서로 일컬어지는 영남과 호남이 대립하고 충청지방까지 지역색을 드러내고 있어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지배계층 권력 다툼의 산물 지역갈등의 뿌리를 찾자면 그 옛날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신라가 백제와 동맹을 맺어 고구려를 쳤음에도 백제의 옛 땅인 한강지역을 차지했고 심지어 당(唐)나라와 연합,백제를 점령해 준식민지 정책을 펴면서 오늘의 영·호남 갈등은 시작된다.고려시대에도 호남지역에 대한 지배자들의 압박이 극심했다. 조선시대 역시 영남사림(嶺南士林)들은 권력집단에 속해 있었으나 호남은 유배지로 이용됐다.그러나 이런 불균형과 편견은 지배계층인 양반들의 권력다툼이었을 뿐 피지배층인 평민들에게는 전혀 지역감정이 없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일제시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은 식민통치수단의 하나로 조선시대 양반들이 유포한 일방적인 편견과 감정을 일반화하고 더욱 조장하며 심화시켰다.이 편견과 감정이 지역패권주의로 발전하고 이토록 풀리지 않는 적대감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60년대 이후다.朴正熙 전 대통령은 군사쿠데타에 의한 집권이라는 콤플렉스를 딛고 장기집권으로 가기 위해 특정지역을 기반으로 한 국가경영을 꾀하기 시작했다.이는 곧바로 편중인사로 나타났다.1공화국때는 장·차관 244명 가운데 서울과 경기,경상도,전라도 출신이 각각 25.6%,18.8%,6.6%였으나 3·4공화국때는 각각 14%,30.3%,13.2%로 바뀐 사실이 이를 극명하게 말해주고 있다.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짓밟고 집권한 5공화국때의 편중인사는 더욱 심화돼 18%와 43.6%,9.6%가 되고 6공화국 들어서는 20%,41%,12.7%가 된다.문민정부가 들어서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죄·용서하는 마음 가져야 건국이후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의 정권교체가 이뤄졌다.이번에는 반대로 호남편중인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이번 국정감사를 앞두고 한나라당 李海鳳 의원이 바로 그 점을 지적해 국민회의측의 반박이 이어졌고 이에 앞서 야당 총재권한대행을 지낸 李基澤씨도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을 해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무책임한 발언이라는 비난을 받았다.두 지역의 골이 이렇게 깊게 팬 이유는 바로 정치권력의 야욕 때문이었는데 그들은 아직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정치권의 다툼과는 달리 최근 두 지역의 자치단체나 민간인,학생 등의 교류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것은 다행이며 반갑다.그러나 그 많은 행사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화합을 위해서는 사죄하고 용서하는 자세가 앞서야 한다.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청할 때 화해는 시작된다.미래는 그렇게 함께 손잡고 나아가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시대다.
  • 방송인 서유석­가수 안혜경(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말한다:11)

    ◎현실비판·운동권 노래… 고난의 ‘언더’ 인생/가수·방송인 서유석/유신반대 ‘맷돌’ 공연중단 시련/심의 묶인 금지곡만 10여편/방송에서도 강한 정치풍자/‘윗분’에 밉보여 도중하차 가시밭길 “가는세월 그 누구가/잡을 수가 있나요/흘러가는 시냇물을/막을 수가 있나요/…/이내몸이 흙이돼도/내마음은 영원하리”(가는 세월). 70년대 텁텁한 목소리로 사회성짙은 노래를 부르던 청년문화의 기수 徐酉錫씨(53)의 대표곡이다. 가수와 방송인으로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낸 徐씨의 체념한듯 하면서 굽히지 않는 의지가 담겨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徐씨가 부른 노래는 ‘가는 세월’ 말고도 창작곡만 70곡. 1985년 마지막 레코드 ‘뚝잘라 말해’를 발표할 때까지 낸 음반도 11집이나 된다. ‘타박네’‘파란많은 세상’‘세상은 요지경’‘대답은 없어라’ 등 심의에서 묶인 금지곡도 10여곡. 이가운데 녹음을 끝내놓고도 가사내용 때문에 레코드를 수거당했던 ‘마지막 노래’는 2년뒤 다른 가수가 불러 심의를 통과한 기막힌 사연을 담고 있다. 교통관련방송 프로그램 진행을 20년째 맡아 이젠 가수보다 방송인과 교통 전문가로 더 알려진 徐씨. 세월은 흘렀지만 사회성 짙은 ‘운동권 가수’로 찍힌뒤 극적으로 시작한 방송인 생활의 기억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성균관대 졸업무렵 학교앞 카페 ‘카사노바’에서 지배인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통금직전 具鳳書씨가 徐永春씨(86년 작고)등 연예인들과 함께 들러 徐씨의 노래를 청해 듣고 다음날 다시 TBC 쇼프로듀서와 함께 들러 徐씨를 소개했다. 그 다음날 곧바로 쇼쇼쇼에 출연한게 가수 생활의 시작이다. 그러다가 대학시절 핸드볼선수 경력을 살려 한동안 직장 핸드볼선수로 활약하며 안양예술인학교에서 묵고 있던 70년도 봄이었다. 신세계레코드사 작사가가 찾아왔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같이 본뒤 주제가 ‘어타임포어스(A time for us)’를 번안해 레코드를 취입하자고 했다. 쟁쟁한 가수들을 제치고 옴니버스 레코드 타이틀사진으로 실렸다. 노래가 히트하면서 방송국 프로듀서들이 ‘徐씨 모시기’ 경쟁에 나섰다. 이때는 매일 YWCA강당에서 ‘청개구리모임’을 갖던 시절. ‘청개구리’가 알려지면서 통기타 언더그라운드 계열 가수들이 모인게 바로 ‘맷돌’이다. 매주 수요일 명동 코리아나백화점 강당에서 자작곡 공연을 가졌는데 ‘군사독재반대’‘유신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결국 14회 공연도중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들이닥쳐 끝이 났다. 그리고 73년 4월 TBC 심야 라디오프로 ‘밤을 잊은 그대에게’ 진행을 맡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해 가을 러스크 미국 국무장관이 제2차 한국군 월남파병 압력차 방한했을 때다. 방송도중 UPI 종군기자의 월남전 참전미군의 만행을 기록한 ‘추악한 미국인’을 죽죽 읽어내렸다. 즉각 중앙정보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잡으러 온다”는 말을 듣고 방송국 앞 목욕탕으로 도망,4일간 숨어 지냈다. 그리고 3년간 모든 활동이 철저하게 금지됐다. 그때 당국이 대마초사건을 핑계로 대중가수들을 줄줄이 묶어 들여 빈사상태에 빠진 연예계의 대안을 찾던중 徐씨를 대상으로 삼았다.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대전까지 내려와서 상경을 권유해 일단 서울로 올라왔다.그리고 당국의 통제를 시험해보기 위해 취입한 노래가 ‘가는 세월’이다. 그때 MBC 라디오에서 ‘정오의 희망곡’ 진행 제의가 들어왔다. 물론 당국의 입김이었다. 같은 방송 라디오프로 ‘안녕하십니까 서유석입니다’와 TV프로 ‘여의도1번지’를 맡아 인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77년 ‘푸른 신호등’을 맡아 진행한지 1년쯤 됐을 무렵 청와대로부터 진행자 교체지시가 떨어졌다. 프로 시작전 항상 정치판과 사회비리를 강도높게 비판한게 문제였다. 그후 동아방송으로 옮겨 ‘명랑 교차로’를 맡았다가 시사풍자 코너 ‘형님 이래도 됩니까’로 인해 79년 단명으로 끝났다. 81년 ‘푸른 신호등’을 맡았고 이후 지난 15대 총선에서 무소속 출마때까지 이 프로를 진행했다. 15대 총선이 끝난뒤 지금까지 줄곧 교통방송 ‘출발서울대행진’을 맡고 있다. 교통관련 논문도 2편을 발표하고 (주)다물대표로 교통관련 기기를 2건이나 상품화하는 벤처사업가로 변신했다. “지난 70·80년대의 언더그라운드 통기타 가수들은 현실과 벗어난 노래를 부르기가 어색했습니다. 사회적으로 만연한 부조리 부도덕을 보고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니 당연 제약이 많았고 음악계로서도 퇴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가수 안혜경/반체제로 옥고 아버지에 영향/성악도서 운동권 가수 변신/계엄령 속에서도 민중가요 배포/여성밴드 결성 ‘저항 노래’ 1970년대말부터 지금까지 대학가에서 변함없이 불리는 ‘민주’란 노래가 있다. 운동권 노래의 고전중 하나지만 정작 이 노래를 만든 이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5인조 여성 록밴드 ‘마고’를 이끌고 있는 安惠敬씨(41). 이화여대 성악과 재학시절 노래운동에 뛰어든뒤 노동·여성·환경과 관련한 메시지 강한 노래들을 쉼 없이 발표해오고 있는 개성파다. ‘까치길’‘민주’‘황혼’ 등 초기의 노래에서 우리 역사와 사회의 모순들을 담았다면 ‘커피카피 아가씨’‘일이 필요해’에선 여성 노동문제의 심각성을 부각시켰다. 또 ‘침묵의 봄’‘검은 민들레’ 등은 환경오염을 다룬 것이고 ‘평화공원’‘너희나라를 위해’등은 반전평화의 메시지가 강렬하다. 모두 현실비판과 역사의식이 흠씬 밴 자작곡이다. “70년대 사회 부조리와 부패에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던 아버님의 영향이 컸지요. 반체제적인 발언으로 옥고를 반복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당부는 제삶을 지탱하는 기둥입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수감중이던 아버지에게 음악대 진학의 꿈을 알렸고 “대중을 위한 진정한 예술인이 돼라”는 아버지의 편지글을 가슴에 깊이 새겼다. 성악과에 진학해 현실과 동떨어진 귀족적인 음악에 반발했고 자신이 할 일에 대해 고민하던중 金敏基씨의 노래극 ‘공장의 불빛’에 참여한 게 노래운동의 시초. 1학년때 사전 정보누출로 불발에 그친 집회때문에 줄곧 정보과 형사들의 감시를 받아야만 했다. 레슨을 받으러 교수 집에 갈때도 항상 검은 색 짚차에 태워져 갈 정도였다. 졸업음악회 대신 혼자 작업한 노래 16곡을 담은 불법테이프를 만들어 선후배 동료들에게 돌렸다. ‘민주’도 여기에 실려 있다. 이 노래들이 자신도 모르게 대학 노래패들을 통해 퍼졌다. 80년도 대학 졸업후 바로 교사생활을시작했지만 노래 만들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계엄령이 내려진 가운데 TBC 방송국에서 ‘횃불’‘해방가’‘농민의 노래’ 등 민중가요 20곡을 숨죽이며 녹음해 배포했는데 이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청계천 복사가계에서 복사한 테이프 20여개를 돌렸고 임진각에 가서 통일을 생각하며 이 테이프 1개를 던졌다. 온산 여천공단의 오염실태를 고발한 마당극 ‘청산리 벽폐수야’ 금지도 잊지못할 일. 공연윤리위원회에 심의를 냈는데 전면 공연금지 지시가 떨어졌다. 결국 워크샵 형식을 가장해 서울 아현동 애오개소극장에서 4회공연을 어렵게 가졌다. 87년부터는 여성 환경 시민단체와 연계해 대학 교회무대와 소극장 운동을 벌였다. 92년 첫 공식 음반 ‘여성 환경 노래’를 출반했는데 이때도 노래 ‘평화공원에서’가 탈락됐다. 그리고 95년 2집 음반부터는 비교적 편한 음악을 택해 실었다고 한다. 지난해 여성5인조 록밴드 ‘마고’를 조직해 전국을 다니고 있고 지난 91년 결성된 ‘여성문화예술’에도 기획위원을 맡아 문화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물론솔로로 전국의 공연장을 다니며 공연을 병행한다. 성악과 출신이면서 운동권 가수로 방향을 잡았고 일부러 고전악기를 배웠다는 安씨. 1남1녀의 자녀를 둔 주부 가수지만 남자들만의 영역이란 편견을 깨기 위해 베이스 기타를 배워 그룹 마고에서 베이스를 맡고 있는 고집센 여성이다. 앞으로 계획이 무엇이냐는 질문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원하는 것에 달려들 것”이란 말로 대신했다.
  • 親日의 군상:7­2/尹致暎家의 빛과 그림자(정직한 역사 되찾기)

    ◎독립협회 회장 尹致昊/현실 비관… ‘대세 순응주의’ 빠져 민족 외면/日·中·美 유학한 대표적 선각자의 한사람/105인사건 연루뒤 ‘친일전향’ 조건 출옥/日 귀족원 의원까지 역임… 끝내 반성 안해 좌옹(佐翁) 尹致昊(1865∼1945년·창씨명 伊東致昊)는 개화기의 대표적 지식인 중 한 사람이다.그는 조선인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자 중국·미국에서 유학한,당시로선 드문 식견가였다.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그는 조선(한국)의 잠재역량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데다 식민지라는 ‘상황논리’에 빠진 나머지 결국 일제와 타협하고 말았다.그의 친일은 갑작스런 변신이 아니라 해외유학 경험을 통한 자기확신에서 비롯한 것이다.그의 친일 행적보다도 친일 논리에 눈길이 쏠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尹致昊는 신식군대 별기군(別技軍) 창설의 주역 尹雄烈(1840∼1911년)의 장남으로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본관은 해평(海平).부친은 무관이었지만 일찍 개화에 눈뜬 사람으로 그의 진로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尹致昊의 첫 유학지는 일본.1881년 일본의 신문물 견학차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의 일원으로 파견된 것이 계기였다.그는 조사(朝士) 魚允中의 수행원으로 따라갔는데 당시 나이는 17세로 일행 62명 중 막내였다.3개월간의 시찰을 마친 후 그는 귀국치 않고 兪吉濬 등과 함께 일본에 남아 신학문을 공부하였는데 이들이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 된다. ○신사유람단 따라 日 시찰 그는 일본 외무경 이노우에(井上馨)의 소개로 중등 과정의 사립학교인 동인사(同人社)에 입학하였다.그는 여기서 일본어와 영어를 공부하였다.이 시절 金玉均 등 국내 개화파 인사는 물론 일본인 개화파 인사,재일 외국인 외교관들과도 교류하며 국제 정세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2년간의 일본생활은 그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아! 슬프다.조선의 현상이여,남의 노예보다 더 심한 처지에 있으면서 어찌 진작(振作)하려 하지 않는가” 당시 그의 눈에 비친 조국의 현실은 이러했다. 1883년 5월 그는 초대 주한 미국 공사(公使)로 부임하는 푸트의 통역관으로 귀국하였다.그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주사(主事)로 임용돼 통역과 공문서 번역 일을 보면서 개화파 인사들과 친분을 쌓아갔다.하지만 개화파 인사들의 급진적 개혁론에는 찬동치 않는 입장이었다.그러나 이들과의 친분 때문에 갑신정변 실패 후 공모자로 몰려 상하이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1885년 상하이로 간 그는 현지 미국 총영사의 알선으로 중서서원(中西書院)에 입학하였다.이 학교는 미국 감리교 선교사 알렌이 설립한 미션 스쿨로 그는 여기서 3년반 동안 수학했다.그러나 원치 않았던 상하이생활 초창기 그는 한동안 술과 여자로 방황의 세월을 보냈다.망명객의 울분과 20대 초반 객지생활의 외로움이 겹친 것이었으리라.그의 방탕한 생활은 기독교를 수용하면서 막을 내렸다.상하이에서 3년반을 보낸 후 그는 청나라를 ‘더러운 물로 가득 채워진 연못’으로 비유했다.반면 일본은 그에게 ‘동양의 한 도원(桃 園)’이었다. 미국 유학은 그에게 또 하나의 자극이었다.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미국의 ‘위대함’을 목격하고는 미국은 일본보다도 한수 위의 나라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이같은 생각은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로 깨지고 말았다.그가 강대국 미국·러시아를 제치고 친일로 나선 데는 미국에서 경험한 인종적 편견이 작용한 면이 없지 않다.러일전쟁 무렵 그는 ‘황인종단합론’을 들고 나오는데 이는 당시 일본의 대륙침략자들이 주창한 ‘아시아주의’‘동양평화론’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민족패배주의에 빠져 尹致昊가 친일로 나선 것은 ‘105인사건’(소위 ‘데라우치 총독 암살미수사건’)이 계기다.한일병합 2년 뒤인 1912년 일제는 식민통치의 걸림돌인 민족운동세력과 기독교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이 사건을 조작했었다.그는 이 사건에 연루돼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15년 2월13일 친일 전향을 조건으로 출감했다.출감 후 첫 기자회견에서 그는 ‘일선동화(日鮮同化)’를 부르짖었다.“…이후부터는 일본 여러 유지 신사와 교제하여서 일선(日鮮)민족의 행복되는 일이든지 일선 양민족의 동화(同化)에 대한 계획에는 참여하여 힘이 미치는 대로 몸을 아끼지 않고 힘써볼 생각이다”(‘매일신보’,1915년 3월14일) 그가 변절한 직접적 요인은 가혹한 고문과 일제의 강요였다.그러나 그 내면에는 오랜 사상적 기반이 모태가 됐다고 볼 수 있다.‘개화기의 尹致昊 연구’의 저자 柳永烈(숭실대 사학과) 교수는 “개화기 이후 그의 의식 속에 잠재돼 있던 ‘민족패배주의’와 현실적으로 일본의 조선 통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대세순응주의’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충량한’ 황국신민(皇國臣民)으로 변신한 尹致昊의 친일 행보를 따라가보자. 1919년 ‘3·1만세의거’ 직전 그는 민족대표로 참여할 것을 제의받았으나 거절했다.그리고는 의거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강자와 서로 화합하고 서로 아껴가는 데에는 약자가 항상 순종해야만 강자에게 애호심을 불러일으키게 해서 평화의 기틀이 마련되는 것입니다”(‘경성일보’,1919년 3월7일)라며 약자인 조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제에 순종하는 길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일제가 선전하던 ‘조선독립불능론’‘투쟁무용론(無用論)’ 등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그의 친일논리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이다. 1920년대 들어 그는 일제의 ‘문화정치’ 선전과 청년층의 반일 동향을 억제하는 데 이용된 교풍회(矯風會)의 회장을 맡는 등 각종 친일단체에서 일제의 식민정책 선전에 주력했다.당시 그는 민족개량·애국계몽운동을 펼치고 있었는데 이는 근본적으로는 일제 통치를 수용하는 범위 내에서의 타협적 민족운동이었다. ○학병 참가 전국 순회 강연 그의 친일은 중일전쟁 발발(1937년 7월7일)을 계기로 강도를 더해갔다.총독부 주최 시국강연반의 연사로 전국을 돌며 순회강연을 하는가 하면 이듬해 1938년 육군특별지원병제가 실시되자 이는 ‘내선일체(內鮮一體)에 합당한 조치’라며 환영하였다.또 그해 7월 ‘황국신민화’의 실천단체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상무이사로 선정돼 창립총회에서 ‘천황폐하 만세’를 삼창(三唱)하기도 했다. 1941년 ‘대동아전쟁’ 때는 전시결전단체인 임전대책협의회에 참가하여 ‘우리는 황국신민으로 일사보국(一死報國)의 성(誠)을 맹서하여 협력할 것을 결의함’이라는 결의문을 낭독하였다.징병제에 이어 1943년 학병 동원이 시작되자 ‘조선 학도들에게도내지(內地·일본)동포들과 어깨를 겨누어 싸움터로 나설 수 있는 영광스런 길이 열렸다’(‘매일신보’,1943년 11월18일)며 학도들의 출진을 촉구하였다.이같은 공로로 45년 2월 그는 일본 귀족원의원에 선출돼 부친에 이어 2대에 걸쳐 ‘일본 귀족’ 반열에 올랐다. “…(일제하)조선인은 좋든지 싫든지 일본인이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일본 속국의 상태에서 그가 한 일로 누군가를 비난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질 않습니다….”사망(1945년 12월16일) 2개월 전 그가 남긴 글의 한 구절이다.지식인으로서의 ‘반성’은 차치하고 기독교인으로서의 ‘참회’ 한마디도 없다.독립협회 회장과 ‘독립신문’ 사장을 지낸 그가 해방 후 남긴 ‘자기 고백’은 겨우 이런 모습이다. ‘일본의 스코틀랜드화(化)’가 조선이 살 길이라며 일제의 ‘우호적인 식민통치’를 기대했던 그의 나약한 역사관이 결국 그를 친일의 길로 안내하고만 것이다. ◎尹致昊 일기/60년간 쓴 일기 시대상 상세히 담아/사생활도 솔직히 기록 ‘윤치호 일기(尹致昊 日記)’는 한말의 선각자 尹致昊가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60여년간에 걸쳐 기록한 개인적 메모.초창기 일기는 한문·국문으로,1889년 12월 이후부터는 영문으로 기록돼 있다. 일본·청국·미국 등 해외유학 시기의 ‘일기’에는 당시 그 나라의 발전상과 시국 상황,그리고 그곳에 체류중이던 한국인들의 동정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국내 체류기인 1883∼84년 당시의 ‘일기’에는 자신이 목격한 갑신정변과 개화당의 활동이 소상히 기록돼 있다.특히 일제 강점기 그가 국내에서 활동할 당시의 ‘일기’에는 자신의 입장과 국내 지식인들의 동향 등도 담고 있다. 이‘일기’는 개화기와 일제강점기,특히 尹致昊 인물연구에서는 필수불가결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한 사람의 ‘일기’치고는 방대한 분량도 놀랍지만 자신의 행적도 비교적 솔직하게 기록했다. ◎‘尹致昊 일기’에 나타난 親日 어록 “만일 내가 살 곳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면 일본이 바로 그 나라일 것이다.…오,축복받은 일본이여!동양의 파라다이스여!세계의 정원이여!”(1893년 11월1일) “나는 국경일에 일장기의 게양을 반대하지 않는다.왜냐하면 우리가 일본의 통치하에 있는 한 우리는 그 통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다”(1919년 10월1일) “일본은 동양에 있어서 백인 지배의 마력(魔力)을 깬 데 대하여 모든 황인종의 영원한 감사를 받을 만하다” (1941년 12월26일) “우리는 조선의 청년을 영광스런 일본 해군의 자랑스런 대열에 받아들인데 대해 감사하지 않으면 안된다” (1943년 5월12일)
  • 제2건국 범국민운동­특별대담

    ◎“시민사회 협력­결집 가장 중요”/자발적 동참유도로 개혁역량 극대화/‘비리 있는곳 사정있다’ 원칙 확고히 金大中 대통령이 주창한 ‘제2건국운동’은 우리 사회 전분야에 걸친 총체적 개혁선언이다.이 범국민 캠페인이 성공하기 위해선 국민과 민간단체의 적극적 동참이 절실하다.제2건국운동의 바람직한 추진방향과 예상되는 문제점을 韓相震 서울대 교수(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 간사)와 朴元淳 변호사(참여연대 사무처장)의 특별대담을 통해 짚어 본다. ▷추진상의 문제점◁ ▲韓교수=제2건국은 정부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국민적 합의와 지원에 따라 성패가 갈라지는 것입니다.밑으로부터 국민적 비판과 감시 등 개혁운동이 없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개혁의 힘은 소진되기 쉽습니다.처음부터 끝까지 정부 중심의 개혁은 우리 현실에서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개혁 집단들이 어떻게 결집하느냐가 중요한 과제입니다. ○정부중심 개혁 어려워 ▲朴변호사=지금까지 여러 정권이 역사적으로 너무 제역할을 못했습니다.오늘의 경제위기도단순한 정책실수가 아니라 해방 50년,경제개발 30년의 최종 종착점으로서의 현 체제가 전반적으로 잘못됐기 때문에 발생했습니다.나라를 새로 세우는 기분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정치적인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있습니다.구체적인 방법이 도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시민사회운동에 관한 종합적 이해와 설계가 없지 않은가 하는 의문도 듭니다.그렇지 않고서는 시민사회단체를 정부가 네트워킹하겠다는 발상이 나올 수 없습니다.시민사회단체 중 개혁과 관련 없는 관변단체도 있지만 공익적 단체 대부분은 정부가 요구하지 않아도 개혁의 동반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억지로 끌어들이면 국민의 오해를 살 수 있고 부작용도 생겨나게 됩니다. ▷구체적인 방법론◁ ▲韓교수=국민들의 참여 욕구와 불만을 왕성한 창조적 에너지로 유도해야 시민사회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이런 맥락에서 자유·정의·효율이라는 세가지 원리를 바탕으로 국민운동의 큰 틀을 짜야 합니다.국민들이 호흡하면서 자발적 협력을 유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발상의전환 시급 관료집단과 재벌 등 경제세력이 너무 일방적인 힘을 행사해 왔습니다.하지만 우리 시민사회의 잠재력은 생각보다 상당합니다.이러한 시민들의 힘을 제2건국의 원동력으로 육성해야 합니다.시민단체들도 개별이익 등 협소한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제2건국이라는 큰 틀에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국민 개개인이나 시민단체들 역시 발상의 전환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朴변호사=시민사회가 과거 군사독재 하에서는 강력한 힘을 소유했지만 절차적 민주주의가 보장된 사회로 이행하면서 오히려 그 힘을 잃어가는 느낌입니다.사회개혁적 인사들이 장외투쟁을 접고 제도내의 방식과 목표를 세워서 사회개혁에 동참하고 있습니다.그러나 그 제도는 허약하고 비빌 언덕이 없습니다.당장의 무기가 없어진 셈입니다.경제구조와 정치의 개혁에도 정부만큼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대표소송제나 주민표결제 등이 그런 예입니다.하지만 그러려면 시민단체나 개인이 개혁에 참여할 수 있는 도구를 먼저 마련해야 합니다.그러나 현재 어느 부처도이를 연구하는 곳이 없습니다.아래로부터의 개혁을 위한 도구를 마련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유기적인 협조체제 구축◁ ▲韓교수=시민들의 참여를 촉진하려면 다양한 방향의 제도개선이 필요합니다.시민단체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은 솔직히 힘든 작업입니다.아마도 운동단체들의 자발적 협력이 이뤄지면서 자연스런 과정을 통해 조직운동이 태동해야 할 것입니다. 참여는 제도가 허용하는 절차와 방법에 따라 이뤄져야 합니다.이러한 모델 속에서 구석구석 활용할 공간이 많아지고 (시민운동은)더욱 열릴 것입니다.우리 사회는 이런 방식으로 기업 재벌 등의 ‘전제적 권력’을 고쳐야 하며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고 있습니다.제도안으로 들어가는 끊임없는 운동들은 많은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金大中 대통령도 이런 모델을 통해 지평을 열라고 하는 것입니다. ○관료조직 개편 미흡 ▲朴변호사=위로부터의 개혁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일반국민의 자발적인 동원이 가능한가에 따라 개혁의 성패는 갈립니다.정부가 나서서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정부조직의 10% 감축으로 할 일이 다 끝났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하지만 뉴질랜드와 비교해 보면 그리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정부는 지금 개혁의 책임을 가계나 사기업에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먼저 개혁의 동기와 전략을 수립해 기초를 마련해야 합니다. ▷정치·사회개혁의 방향◁ ▲韓교수=많은 국민들은 개발 독재과정에서 만연된 부정부패의 핵심을 정치권에서 찾고 있습니다.일단 개혁을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면 정파와 상관없이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야 합니다.강력한 개혁을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에서 개인과 사회집단을 자발적인 구조운동 개혁에 동참시켜야 합니다.정부의 개혁운동과 함께 각종 그릇된 사고방식과 관행을 고쳐가는 국민운동을 병행해야 합니다.따라서 현재의 정치개혁은 자연스레 사회의식 개혁운동으로 옮아가야 합니다.‘부패척결을 하자’‘바르게 살자’ 등이 국민운동으로 점화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朴변호사=‘개혁은 타이밍’이란 말도 있습니다.지금까지 새 정부가 너무 신중해서 개혁대상까지 아우르고 그 의견을 들어보는 민주적 절차를 중시했습니다.개혁은 어차피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의 저항이 있게 마련이고 그것은 단호히 제압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집권세력 내의 개혁이 선행돼야 합니다.사정(司正)도 하지만 타협의 기운도 있는 게 현상황입니다.이런 상황에서 개혁이 실패할 경우 국민들의 실망은 더욱 커집니다.오해와 편견,저항이 있어도 정치개혁과 사정은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그러면 국민 모두 결국은 공감하게 됩니다.‘비리 있는 곳에 사정 있다’는 원칙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확립해야 합니다. ▷제3섹트의 중요성◁ ▲韓교수=넓은 시각에서 정부와 재벌의 영향력에서 독립해 시민사회라는 제3섹트의 역할을 늘리는 것이 개혁 성공의 관건입니다.우선 국민적 합의로 극복돼야 할 관행과 인습에 대해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예컨대 반 인류적인 행동과 부정부패 척결,촌지 거부 운동 등 절대 부패나 부정의 행동을 하지말자는 공감대를 국민적 힘으로 형성해야 합니다.앞으로 비정부기구(NGO)의 역할이 중요해집니다.정부 못지않게 많은 권한을 시민사회에 주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릇된 관행 고쳐야 ▲朴변호사=정부와 시장에 비견되는 제3섹트로서의 민간운동이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합니다.우리의 경제위기는 외국처럼 상호견제와 균형의 체계가 없기 때문에 초래된 것입니다.우리의 경우 정부는 대통령,기업은 총수 한 사람만 존재합니다.정부가 시민사회단체를 일렬로 세우려고 하는데 이러면 시민단체는 도덕성에 해를 입으면서 바로 힘을 잃게 됩니다.이런 의미에서 민간단체 지원법도 반대합니다.본의 아니게 통제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종교단체 같이 후원비에 대한 세금감면이나 우편료 감면을 하거나 미국처럼 방송총시간의 일정부분을 공익광고 명목으로 시민단체에 할애해 주는 간접 지원제도가 더 필요합니다. ▷시민단체의 참여 패러다임◁ ▲韓교수=국민적 에너지를 결집해서 동기 부여와 목표설정을 통해 자발적인 협력으로 발전된다면 제2건국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반면 참여를 빙자해 지나치게 갈등을 증폭시키거나 불신이 심화되면 국가적으로 불행한 사태를 초래하게 됩니다.무엇보다 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운동이 자발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자발성이 훼손되는 일이 생기면 안됩니다. ○민간단체 지원법 반대 ▲朴변호사=우리는 일제와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참여는 손해다’라는 인식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참여연대의 경우도 몇년간 정말 열심히 시민운동을 했지만 아직도 회원이 늘지 않고 재정적 어려움이 많습니다.정부차원에서 국민의 참여의식을 고취하는 데 필요한 제도적 절차를 마련해 줘야 합니다. ▷관료·제도개선의 시급성◁ ▲韓교수=공익운동 단체들이 현재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이는 각 부문에서 실권을 행사하는 관료의식이 구태의연하기 때문입니다.대통령의 개혁 청사진과 관료들의 체질 사이에 큰 균열이 있습니다.관료들에겐 수십년간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습득된 관행과 타성의 문화가 있습니다.이것은 근본적으로 민의 참여 촉진보다 억제하는 데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관료문화 개선 과제 따라서 관료 문화의 ‘품질개선’이 주요한 과제입니다.체계적인 노력없이,개혁주제의 설정 없이는 시행착오와 자기 한계에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미래를 바라보는 정확한 그림이 아직 관료들에게 없기 때문입니다.관료들의 대대적 교육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朴변호사=의식개혁과 교육의 힘이 중요하다는 데 동의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전환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힘이 필요합니다.예를 들어 고속도로의 오물투기가 심했지만 헬리콥터를 동원,공중에서 감시하는 등 철저한 단속을 하자 최근 들어 상당히 줄어든 것이 그 예입니다. 일본은 사회발전 시스템이 상당한 수준에 와 있습니다.그러나 일본의 사회운동가들은 많이 절망하고 또 우리를 오히려 부러워합니다.그처럼 강력한 우리사회의 활력이 참여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참여를 견인하는 제도가 미비하고 채널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결론◁ ▲韓교수=우리사회는 분기점에 와 있습니다.국민적 지혜와 협력의 발전모델을 세우느냐,‘우물안 개구리’처럼 분열 갈등의 유산 속에서 쇠퇴의 길로 가느냐는 기로에 서 있는 것입니다.하지만 희망찬 미래로 끌어가는 궁극적 힘의 원동력은 도덕성과 전문성·비판성을 갖춘 시민사회 집단에 있습니다.정부는 시민단체를 지원하면 되지 정부가 나서서 통제하거나 지도하면 안됩니다.사회의 양식 있는 사회운동단체들이 큰 눈으로 생각하고 헌신하는 역할을 간절히 기대합니다. ▲朴변호사=시민사회단체는 정부를 비판할 때 곧 돕는 것이며 개혁 저항세력을 견제하는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정부와 시민사회단체의 올바른 역할 분담이라고 생각합니다. 개혁의 성공도 마찬가지입니다.정부가 먼저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줄 때 국민들의 참여의식과 개혁이 더 빨리 진전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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