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大亂 이렇게 풀자공공근로사업 현장 르포
◎“일당 3만원이 금싸라기 같아”/쓰레기처리·간벌현장서 땀범벅 8시간 노역에도 내일의 희망있어 참는다/2차 22만 모집 38만 몰려/그나마 뽑히기도 어려워 보람찾게 문호 더 확대를
“아무런 희망이 없었습니다.눈 뜨면 밥 걱정,해 지면 잠잘 곳만 걱정했지요.폐인 직전에서 살아나왔습니다”
지난 11일 경기도 광주군 직리 ‘孟씨 종중’야산.朴孝眞씨(50)등 인부 20여명이 주황색 유니폼을 흠뻑 적시며 톱질과 나무 나르기에 여념이 없었다.우거진 숲속에서 쓸모없는 나무를 솎아내는 간벌(間伐)작업이다.
하루 8시간 땀흘린 대가는 3만3,000원.페인트공으로 일당 10만원을 받던 호시절에 비춰보면 턱없이 적지만 “금싸라기처럼 느껴진다”는 게 朴씨 말이다.주머니에 한푼 없이 서울역 근처의 무료 급식소만 찾아다니던 지난 3개월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朴씨와 함께 이곳 광주군의 숲 가꾸기 사업에 참가하고 있는 노숙자 출신 실직자들은 모두 43명.정리해고,권고사직,사업 부도 등 가슴속 깊이 찍힌 낙인(烙印)은 엇비슷하지만 전력은 각양각색이다.핸드백공장 사장에서부터 중기운전자,인테리어업자,일용직 건설인부,중소 자동차부품업체의 숙련 기술자 등등.
“노숙이요? 이젠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아요” “나무와 함께 지내니 마음도 푸근해집니다.계속 이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몇명을 빼고는 대부분 같은 대답이다.작업을 하면서 옻이 오르고 벌떼에 쏘이기도 하고….고생은 되지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같은 날 서울 마포구 난지도에 있는 한국자원재생공사 서울 남부사업소 현장.1,000여평 남짓한 공터 여기저기에 쓰레기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다.전날 내린 비로 악취가 코를 찌르는 가운데 70여명의 인부들이 재활용품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런 길을 걷게 될 줄은 몰랐다.그렇지만 당장 아쉬운데 어떻게 하겠어”
건설회사 관리부장으로 있다 올해 초 정리해고된 金모씨(56).S예술대 영화연출학과를 나와 한때는 영화감독을 꿈꾸기고 했다.
그는 “쓰레기를 뒤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면서도 “땀을 흘린 덕분인지 새로운 의욕이 생기니 다행”이라고 했다.실직당한 뒤 도무지 세상살기가 싫었지만 일감이 생기면서 무기력에서 벗어났다는 설명이다.다달이 손에 쥐는 50만∼70여만원의 품삯도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숲 가꾸기,쓰레기 재분류,가로 정비,수해복구 지원 등 공공근로사업 현장에서 만난 실직자들은 최소한의 생존 기반이라도 가진 것에 안도하는 듯했다.
살아남기 위한 실직자들의 절박한 처지는 오는 17일부터 시작되는 2차 공공근로사업 신청 현황에서도 나타난다.1차때의 7만5,000명보다 무려 5배가 넘는 38만6,541명이 몰려들었다.모집인원은 22만여명.이마저도 진입 장벽이 높은 실정이다.
다행히 낙점이 된 이들이지만 마냥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실직의 수렁에서 건져준 것은 고맙지만 손에 익은 일을 하고픈 소망은 더욱 간절하다.
서울 옥수동에 사는 崔모씨(48).20여년을 은행 전산부에서 근무하다 지난 1월 정리해고됐다.
그동안 중소기업청,노동부,리크루트 등 구직 소개하는 곳을 발이 닳도록 돌아다녔다.전공에 맞는 일자리를 찾으려는 일념에서다.
하지만 결과는 허탕.요즘에는 중부노동사무소의 고용보험 보조업무를 돕고있다.관할 구역 내에 있는 고용보험 미가입 사업장을 찾아다니며 가입을 종용하는 일이다.긴요한 밥벌이긴 하지만 “월급은 상관없다.전산 관련 업체에서 언제든 연락이 오기만 하면 달려간다”는 생각이다.
간벌 현장에서 만난 핸드백 공장 사장 출신의 金順喆씨(50)는 가족이 그립지만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한스럽다.한때 직원 135명까지 거느렸던 당당한 수출 역군이었지만 “부도로 인생이 곤두박질쳤다”고 했다.
서울역 노숙 3개월,간벌 현장에서 합숙하느라 또 3개월.집을 떠난 지도 벌써 6개월이 넘었다.간간이 고2짜리 딸아이에게 전화를 하면 “몸만 건강하시라”는 말에 울컥 눈물이 쏟아진다.
金씨는 요즘 5억원 이상이 깔린 채권을 “조금이라도 건질 수 있다면…”하는 실낱같은 바람을 갖고 있다.사업에 다시 뛰어들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가족들을 볼 낯이 조금이라도 선다는 생각 때문이다.이들 실직자들의 마음을 달래줄 날은 언제쯤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