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호 틈새로 녹차향 솔솔/ 전주 한옥마을 전통생활체험
7:00 포근한 솜이불 걷고 아침맞이
갑자기 환한 느낌이 들어 눈을 뜨니 살짝 벌어진 문틈새로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눈부시다.이 얼마만인가.아침 일찍 따끈한 햇살 기운에 잠을 깨본 것이.
모처럼 전통 한옥에서의 아침 기상은 상쾌하고 여유롭다.보송보송한 솜이불을 걷고 창호지를 바른 여닫이 창문을 양쪽으로 열어젖히니 봄을 가득 담은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이곳은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한옥마을에 자리잡은 한옥생활체험관.700여채의 한옥이 모여 있는 마을의 특성을 살려 관광객들이 전통 생활양식을 경험할 수 있도록 조성한 공간이다.
7:30 대청마루위 가부좌 명상 30분
체험관에서의 하루는 조반(朝飯)을 먹기 앞서 대청에서 명상으로 시작된다.
원래 명상의 기본자세는 양쪽 발을 각각 반대편 허벅지 위로 올리는 결가부좌다.그러나 일반인들이 따라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곳에선 한 쪽 발만 올리는 반가부좌로 대체했다.
반가부좌 상태에서 허리를 곧게 편 다음 눈을 살짝 내리깔면 일단 기본자세 완성.여기에 양 손바닥을 살며시 포개 배꼽 밑단전에 대고 호흡을 시작한다.숨은 입을 다문 채 코로,들숨과 날숨 모두 70% 정도로만 쉰다.
“눈을 감지 마세요.오히려 졸리고 잡념만 생깁니다.”
강사인 전주전통술박물관 관장 김창덕(38)씨의 목소리가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다.그는 집중을 돕기 위해 놋그릇을 나무막대기로 천천히 치면서 숫자를 세라고 한다.밥주발에서 나는 소리가 참으로 청아하기도 하다.
30분간의 명상은 ‘퉁첸’이라는 티베트 목관악기의 맑은 연주 속에 마무리된다.
8:30 5첩 조식반상 “꿀맛이네”
명상후 조반은 5첩 반상.전통적으로 가장 기본이 되는 아침밥상이다.고사리,호박나물 등 숙채와 생채,생선 구이와 장아찌,마른 반찬 등 5가지 반찬에 밥과 국,장류 등을 놓는다.
명상 때문인지,아니면 아침 메뉴가 단촐하면서도 깔끔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밥숫가락이 가볍다.특히 노르스름하게 구워져 살이 뚝뚝 떼어지는 굴비,약간 싱거운 듯하면서도 씹을수록 단맛을 내는 애호박과 숙주나물이 입에 맞는다.
10:00 덖은 첫물차 혀끝이 훈훈
식사 후엔 차 마시기 순서다.차는 이른봄 손으로 직접 잎을 따낸 첫물차,즉 작설(雀舌)차가 제격.작설차는 이름 그대로 참새 혓바닥처럼 생겼다.작설차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쪄서 말리는 일본식 녹차와 달리 가마솥에 불을 때면서 찻잎을 문질러서,즉 덖어서 만든다.차를 제대로 덖으려면 불 때는 작업만 3년 배워야 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차 만드는 일은 어렵고 민감하다.
반면 마시는 법은 단순하다.물을 끓여 알맞게 식혀 찻잎과 함께 찻주전자에 부은 다음 찻잔에 따라 마시면 되기 때문.단 찻주전자에서 처음 따른 것보다는 나중에 따른 것이 제대로 우러나 맛이 좋다.그래서 여러 사람이 마실 때는 한번에 찻잔을 가득 채우지 않고 돌아가며 수차례에 나누어 차를 따라 마셔야 ‘공평’하게 차맛을 즐길 수 있다.
‘다도’(茶道)라고 복잡한 격식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대부분 일본식으로 차를 마시는 법이라는 것이 전통차 애호가들의 지적이다.
14:00 전통명주 모은 술박물관 구경
한옥생활체험관 앞엔 전주전통술박물관이 있다.이곳에선 이강주나 송화백일주 등 전주의 명주를 비롯한 우리의 전통주들과,술을 만드는 도구,담는 그릇과 잔 등 술에 관에 모든 것을 접할 수 있다.시음도 가능하다.
이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계영배’(戒盈杯)란 술잔.술을 3분의2 이상 따르면 술이 밑으로 모두 새어나가도록 독특하게 만들었다.가득차 넘치게 되면 건강도 해치고 남에게 실수도 하므로 경계하도록 고안한 잔이다.과도한 음주를 경계하고 모자람의 미덕을 강조한 선조들의 지혜가 놀랍다.
완산구 교동 전통문화센터에서는 전통 다례와 풍물,혼례,음식 등을 체험하는 코너를 진행한다.그 가운데 전주비빔밥 만들기,민요와 우리 가락을 배우는 풍물체험,공연 관람이 인기상품.특히 센터 전속 풍물단과 전북도립국악원이 펼치는 사물놀이와 창작 타악 연주,판소리,살풀이춤 등은 전주가 자랑하는 상설 ‘전통예술여행’ 상품(관람료 5000원)이다.
글·사진 전주 임창용기자 sdargon@
그래픽 강미란기자 mrkang@
■식후경
전주비빔밥(사진)과 콩나물국밥은 전주 음식의 대명사.비빔밥은 덕진공원 옆 ‘고궁’(063-251-3211)의 음식이 유명하다.돌솥비빔밥도 팔지만 전주비빔밥의 진수는 놋쇠그릇에 담는 비빔밥에서 맛볼 수 있다.
뜨거운 밥을 담아 무채,시금치,버섯,오이 등의 나물과 배,밤,잣,쇠고기 육회무침,계란 등을 넣고 비빈다.비빌 때 숫가락은 절대 금물.젓가락을 사용해야 밥알이 뭉개지지 않는다.비빔밥용 밥은 사골을 우려낸 뒤 기름을 뺀 국물로 짓는다.9000원.
콩나물국밥은 동문사거리 인근의 ‘왱이콩나물국밥집’(063-287-6979)이 맛있다.멸치 맛국물과 물을 반씩 섞어 계약재배한 무공해 콩나물,묵은 김치,약간의 해물 등을 넣고 끓여낸다.
입맛을 돋우기 위해 날계란을 두개 깨서 국그릇 옆 작은 그릇에 따로 담아준다.여기에 콩나물 국물 몇 숫갈을 떠 넣고 구운 김을 부수어 뿌린 뒤 숫가락으로 저은 다음 마시는데,약간 고소하면서도 독특한 맛이 난다.3500원.
저녁 때는 한옥마을 인근의 막걸리집 ‘한울’(063-287-2787)에 한번 가보자.허름하면서도 푸짐한 인심이 예전의 시골 선술집 그대로다.막걸리(한통 3000원)를 시키면 김치와 각종 나물,찌개 등 안주를 공짜로 무한정 서비스한다.
■가이드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전주 나들목에서 빠져 26번 도로를 타야 한다.남동쪽으로 시내를 가로질러 달리다가 시청을 지나면 풍남동 리베라호텔이 나오고,그 뒤편에 한옥생활체험관 및 전주전통술박물관이 있다.고속버스는 서울에서 전주까지 10분 간격으로,기차는 1일 18회 운행된다.
●숙박 및 체험 프로그램
전통한옥생활체험관은 사랑채와 안채로 나뉘어 있다.이중 안채 및 사랑채의 2인용 방은 아침 조식(5첩반상) 포함 5만원,특실인 선비방·규수방은 10만원이다.화장실이 따로 달린 3인용 사랑채 별실은 8만원이다.주말엔 요금이 10% 가산된다.단체손님에겐 사랑채나 안채 전체를 대관해준다.문의 한옥생활체험관(063-287-6300),전주전통문화센터(063-280-7000),전주전통술박물관(063-287-6305).
●인근 가볼 만한 곳
팬아시아 페이퍼코리아(전 한솔제지)가 운영하고 있는 덕진구 팔복동 팬아시아종이박물관에 들러보자.파피루스,점토판 등 종이가 발명되기 전의 다양한 기록재료 샘플과 기록물,종이 발명 이후의 기록재료 발전 과정을 연대순으로 전시해 놓았다.전통 한지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관람 및 한지 만들기 체험 모두 무료.(063)810-2103.한옥마을에서 남원 방향으로 15분 거리에 있는 유황온천 ‘죽림쿠어하우스’도 가볼 만하다.비누칠을 하지 않아도 온몸을 미끄럽게 하는 알칼리성 유황온천수를 자랑한다.최근 개보수를 통해 온천탕과 사우나 시설,찜질방 등을 새롭게 꾸몄다.(063)232-8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