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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잔하고 때론 뜨거운… 사랑에 대하여

    찬바람 불고 스산한 기운이 돌면 따듯한 인간 체온이 그리워지면서 “대체 사랑이 무엇이더냐.”라고 읊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그래서인가. 사랑을 다룬 신간이 여럿 눈에 띈다. 이외수 작가의 다섯 번째 에세이 ‘사랑외전’(해냄 출판)이 시선을 잡아 끈다. 작가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쓴 글 710편에 세밀화가 정태련이 그림 50점을 덧댔다. “어떤 분께서 제게 물으셨습니다. 화천에서 부산까지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계십니까. 저는 모르니 가르쳐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분께서 흔쾌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25쪽) “단어 하나가 그대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대는 어떤 경우에 어떤 단어 때문에 눈시울을 적셔 보셨나요. 저는 할머니라는 단어만 보면 눈시울이 젖어 옵니다.”(30쪽) 고개가 끄덕여지는 잔잔한 글들을 펼쳐 보이는가 싶더니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도 있었던 시험 지옥,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살아서 젊은 애들 모가지를 옥죄고 있구나. 개떡 같은 세상.”(104쪽), “재래식 똥통에 구더기 들끓는 거야 하나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재래식 똥통은 구시대적 정치 작태를 의미합니다. 구더기는 알아서 해석하시기를.”(137쪽) 같은 풍자와 해학도 있다. 남녀 간 애정뿐만 아니라 사람이든 사회든 교육이든 정치든 상대에 대한 관심이, 이외수식 사랑이다. 1만 4500원. 출판사 책읽는수요일은 사랑에 관한 흥미로운 책 두 권을 나란히 냈다. ‘올 어바웃 러브’(벨 훅스 지음, 이영기 옮김)가 사랑에 대한 경험과 이론을 버무린 것이라면 ‘사랑의 실험실’(김형자 지음)은 제목처럼 사랑에 관한 다양한 실험과 연애 법칙을 모았다. ‘올 어바웃 러브’는 페미니스트이자 문화비평가인 벨 훅스의 대표작으로, 세상이 강요하는 사랑에 대한 편견과 왜곡을 비판한다. 사랑은 한순간에 빠지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자기와 타인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정의한다. 사람의 삶 전체를 변모시키는 혁명으로서 사랑을 어떻게 실행에 옮겨야 하는지 역설한다. ‘사랑의 실험실’은 사랑에 관한 잡학사전 같다. 일테면 한낮에 하는 섹스가 좋은 건 햇빛이 뇌하수체 활동을 촉진해 성적 욕망을 최대한 증대시키기 때문이라거나 키스는 적어도 29개 근육을 동원하고 호르몬 분비가 늘어나는 행동으로 면역력을 높인다는 등 256개 실험을 모았다. 가볍게 읽기 좋다. 각권 1만 5000원, 1만 3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佛각료 38명 성평등교육 불려간다

    佛각료 38명 성평등교육 불려간다

    프랑스 장관들이 줄지어 성평등 교육에 불려 가고 있다. 나라를 구한 여전사 잔다르크, 여성 사상가 시몬 드 보부아르 등 ‘페미니스트 아이콘’들을 배출한 프랑스. 지난 5월 사상 처음으로 남녀 동수의 ‘성평등 내각’을 꾸린 프랑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佛총리 45분 강의 ‘필참’ 엄명 이달 초 스테판 르폴 농업장관의 망언(?)이 장관 성평등 교육의 빌미를 제공했다. 르폴 장관은 프랑스 주간지 렉스프레스와의 인터뷰에서 여성들은 전문적인 일에 적합한 두뇌를 지니지 못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공분을 샀다. 정확한 코멘트는 “우리 업무는 매우 전문적이지만 최대한 많은 여성들을 승진시키려 한다.”였다. 이에 장마르크 에로 총리가 결단을 내렸다. 성평등부에 각료들을 대상으로 한 성차별 방지 교육을 마련하라고 특단의 지시를 내린 것이다. ‘성평등 감수성 기르기’라는 이름으로 회당 45분간 진행되는 이 연속 강좌는 이미 ‘만원’이다. 38명의 장관 모두가 등록을 했거나 등록 절차를 밟고 있다고 AP통신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셸 사팽 노동장관, 크리스티안 토비라 법무장관 등 10여명의 장관들은 벌써 교육을 받았다. 이 강의에서 장관들은 정치적인 의사소통 과정에서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피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성 불평등을 가려내는 훈련을 받게 된다. 프랑스 내 성불평등 실태를 보여주는 통계 등을 동원해 성에 대한 관념이 유년기 때부터 어떻게 고착화하는지도 보여준다. 강의 기획자인 카롤린 드 하스는 프랑스 방송에 등장하는 정치인 80%가 남성이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스스로 경계하지 않으면 불평등은 생겨나게 돼 있다. ‘프랑스가 양성평등을 이뤘다’는 ‘착각’을 깨고 싶다.”고 말했다. 장관들에 대한 성평등 교육은 고위직 남성들이 여성 동료·부하직원을 무시하거나 추근대는 관행과 더불어 프랑스 정계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져온 성차별적 언행을 뿌리 뽑으려는 노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 지난 7월에는 세실 뒤플로 주택장관이 꽃무늬 드레스를 입고 업무보고에 참석하자 남성 의원들이 휘파람을 불며 환호를 보내 언론의 눈총을 받았다. 지난해 갖가지 성추문으로 낙마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전 총재는 여성들을 성희롱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는 비난에 휩싸였다. 결국 지난 8월 새 성희롱방지법 제정으로까지 이어졌다. 프랑스 시민들은 정부의 용단을 반기고 있다. 파리 시민 니콜레트 코스트(33)는 “자랑스럽진 않지만 이런 교육이 이뤄진다는 건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분단국에서 여성리더십은 시기상조” 발언 논란 프랑스의 이번 조치는 지도층 인사들의 성차별·성희롱 언행이 위험 수위에 이른 국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 지난 6월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이 “분단국가에서 여성 리더십은 시기상조”라고 말해 여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수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평등문화정책센터장은 “프랑스의 예는 정치 지도자의 결단으로 성평등 개념에 대한 인식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국내 일부 의원들도 성희롱, 성차별 발언으로 물의를 빚는 등 올바른 성평등 개념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서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여성가족부 산하 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국회의원 등을 교육대상에 포함시키려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서울대 ‘줄담배 성폭력’ 페미니즘으로 불똥

    이별을 통보하는 자리에서의 남자 친구 흡연을 ‘성폭력’으로 규정해 논란을 일으킨 서울대 내 학생단체들이 지난 23일 ‘사과드린다’는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고 나섰지만 학내외 분위기는 여전히 진정되지 않고 있다. 서울대 구성원뿐만 아니라 네티즌들까지 이번 사건을 두고 “과도한 페미니즘이 일으킨 사회문제”라면서 이 사건에 대한 판단 및 성폭력의 범주에 대한 논란을 이어 가고 있다. 이 사건은 지난해 3월 연인 관계에 있던 이모(21·여)와 정모(21)씨가 결별하면서 벌어진 일을 두고 이씨가 정씨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정씨가 이씨에게 “헤어지자.”며 만난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담배를 피워 대며 위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사실상 성폭행을 당했다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이에 서울대 학생행진 등 3개 단체는 “이별을 통보하는 자리에서의 줄담배는 성폭력”이라는 이씨의 말을 받아들여 전 남자 친구 정씨와 이를 ‘성폭력이 아니다’라고 말한 사회대 학생회장 유모(22·여)를 성폭력 가해자로 규정했다. 유씨는 유시민 통합진보당 전 공동대표의 딸이다. 유씨는 성폭력 시비에서 남성 측에 우호적인 판단을 했다는 이유로 이씨와 진보적 성향의 여학생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이런 비난 끝에 유씨는 지난 17일 사회대 학생회장직에서 사퇴했다. 줄담배 성폭행 논란은 유씨가 사퇴문에 “성폭력 2차 가해자로 몰리고, 이를 사과하는 과정에서 겪게 된 우울증과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사퇴 이유를 밝히면서 다시 제기됐다. 24일 학내 커뮤니티에서는 “왜 사건의 당사자인 이씨는 직접 사과를 하지 않고 단체 등의 뒤로 숨느냐.”라는 의견부터 “이씨에게 직접 사과하라고 종용하는 일도 우습다. 이 일을 학생 사회 전체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재검토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식의 글들이 눈에 띄었다. 이씨에 대한 신상이 공개됐다가 홈페이지 관리자에 의해 게시물이 지워지기도 했다. 이에 유씨는 “그녀와 그녀의 주변 사람들이 밉지만 관계 당사자들의 신상 정보를 알려고 하지 마시고 알더라도 다른 이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면서 “비난 국면이 접어들고 이 문제에 대해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이 열렸으면 좋겠다.”는 글을 올렸다. 대부분의 여성단체들도 이 문제에 대한 가치 판단을 유보했다. 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중요한 것은 소통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함께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 분위기인데 성폭행이냐, 아니냐를 따져 성폭행인 경우에만 심각하게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본질을 흐렸다.”고 말했다. 명희진기자 mhj46@seoul.co.kr
  • [씨줄날줄] 007 본드걸 50년사/최광숙 논설위원

    “딩디리딩딩 딩딩딩~” 빠른 기타 선율의 테마곡이 흐르면서 한 남자가 총구의 한가운데서 걸어나와 총을 쏜다. 영화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다. 스파이 영화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의 사나이다. 007 시리즈가 올해로 50년이 됐다. 1962년 영국 런던에서 첫선을 보인 ‘닥터 노’ 이후 이달 말 개봉되는 ‘스카이폴’까지 23편이 제작됐다. 그동안 숀 코너리 등 6명의 제임스 본드가 등장했지만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단연 본드 걸이다. 본드 걸을 보면 여성사(史)가 보인다. 본드 걸에 ‘섹시의 아이콘’ 이미지를 입힌 이는 제1탄 ‘닥터 노’의 우르슬라 안드레스가다. 바닷가에서 비키니 수영복 차림의 젖은 몸으로 걸어나오는 본드 걸을 보고 본드는 물론 남성 관객들이 자지러졌다. 초창기 본드 걸은 본드의 놀이 상대로 국한되었기에 예쁘고 섹시하기만 하면 됐다. 미인대회 출신들과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의 킴 베이싱어처럼 섹시 스타들이 본드 걸을 맡았다. 하지만 “본드 걸이 창녀냐.”는 페미니스트들의 반기에 1990년대 들어 섹시 일변도에서 벗어나 지성을 갖추거나 근육질의 단단한 몸매로 과감한 액션을 마다 않는 여전사로 방향을 틀었다. 본드처럼 공작 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도 보여줬다. 그러면서도 본드 걸의 관능적인 면모는 결코 잃지 않았다. 1997년 ‘투모로 네버 다이즈’에서 중국 특수 정보요원으로 등장한 양자경과 2002년 ‘어나더 데이’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 특수요원 역할을 맡은 핼리 베리가 바로 지적이며 관능적인 신세대 본드 걸로 탄생했다. 백인의 금발미녀에서 흑인과 동양 여성이 본드 걸을 맡으며 인종 차별적 미(美) 인식에서도 벗어났다. 본드 걸의 역할도 본드의 여자친구에서 탈피해 본드의 임무수행에 동기를 부여하거나 파트너십을 발휘하는 등 영역이 한층 넓어졌다. 본드 걸은 단순한 ‘섹스 인형’에서 총칼을 든 여전사로 진화하며 점차 강한 여성의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는 게 사실이다. 가장 큰 변화는 본드 걸은 아니지만 본드의 상관이자 영국정보국(M16)의 수장인 ‘M’이 여성이라는 점이다. ‘본드 영화’에서 여성의 사회적 의미는 한층 고양된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현대의 다양한 여성상을 그려내지는 못하고 있다. ‘골든 아이’에 나오는 본드의 상관 M은 본드에게 이렇게 말한다. “본드 자넨 성차별주의자야, 여자를 혐오하는 괴물. 구시대적 냉전의 유물이기도 하지.” 이 말에 본드의 가슴만 뜨끔한 게 아닐 것 같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詩語로 풀어낸 江과 인간의 비극

    詩語로 풀어낸 江과 인간의 비극

    시인 김선우(42)의 세 번째 장편소설 ‘물의 연인들’(민음사 펴냄)을 다 읽고 내려놓을 때의 느낌은 ‘시인이 쓴 소설답다.’는 것이다. 애써 골라 쓴 단어들이며 과거나 현상을 보여주기 위해 굵은 글씨체로 강조한 문장들은 딱 시인의 감수성 그 자체다. 지루한 대목이 없지는 않지만 이야기의 밀도가 떨어진다는 건 아니다. 아무튼 시인의 냄새가 물씬 난다. 처음에는 이 소설이 유경과 7년 전에 사라져 버린 그녀의 연인, 그리고 그녀의 엄마 한지수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물의 연인’은 15살 수린과 17살 해울에 더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김선우가 “2010년에 쓴 초고를 2011년에 절반쯤 덜어 내며 다시 쓰고 2012년에 또다시 절반쯤 덜어 내며 다시 썼다.”고 했는데 아마도 이런 과정에서 물의 연인이 유경과 그녀의 연인에서, 수린·해울로 옮겨 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무자비한 남자의 폭력을 고발하는 페미니즘 소설에서 문명의 폭력을 고발하는 생명소설로 넘어갔다고나 할까. 이야기의 공간은 와이강이다. 와이강은 유경이 태어나 자란 곳이고 그녀의 엄마 한지숙과 10대의 한지숙을 취한 뒤 그녀를 평생 괴롭히는 남자의 고향이다. 그 고향에는 세습 무당인 당골네와 그녀의 손녀딸 수린, 와이강에 버려져 죽을 뻔했다가 구조된 뒤 수린과 오누이로 자란 해울이 살고 있다. 또 와이강은 그 근처에서 발견된 뒤 스웨덴에 입양돼 자란 ‘유경의 연인’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 유경의 연인 이름은 스스로 책을 읽어 가며 찾아보는 것이 이 소설을 읽는 재미다. 사람들의 먹는 물로, 물가에서 멱을 감을 수 있는 놀이터로, 그 주변에 야생 수국이 피어 관광지로도 아름다운 와이강은 생명의 원천이다. 와이강에 기대어 사는 생명은 인간만이 아니다. 버들치·놋쇠·물고기·모래무지·꺽지·퉁가리·쉬리·다슬기 같은 물 것들, 쑥부쟁이·달맞이꽃·달뿌리풀·패랭이꽃 등 땅의 것들, 꼬마물떼새·노랑할미새·원앙새·물총새·비오리 같은 날것들에게도 삶의 원천이 된다. 모두 와이강에서 퍼져나가 연어처럼 와이강으로 모여든다. 수천 년을 무심하고 조화롭게 잘 살아왔던 와이강에 ‘강 생명 살리기’ ‘홍수 예방’이라며 흙탕물을 일으키는 인간들이 나타나면서 변고가 생긴다. 강바닥의 바위가 다이너마이트에 의해 폭파당하고 물고기들이 허연 배를 드러내며 죽어 떠올랐다. 와이강과 와이산을 모시는 당골네는 강바닥을 뒤집으면 후환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그 첫 희생자가 손녀 수린이다. 수린은 공사가 시작되자 시름시름 앓기 시작해 점점 상태가 나빠진다. 토하고 쓰러지고 발작을 하다가 언제부턴가 피부에서 진물이 나고 딱딱해지는 등 독일의 추상화가 클레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클레는 ‘유경의 연인’이 좋아하는 화가다. 현대의학에서 수린의 병명은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이라고 진단된다. 17살의 해울은 원인불명으로 하루하루 죽어 가는 여동생을 살리려면 공사를 중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울의 생각은 비상식적인 미신으로 치부된다. 해울의 담임교사인 유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골리앗을 향해 든 다윗의 돌팔매지요. (중략) 신은 다윗의 편을 들었지만 지금의 신은 권력의 편인걸요. 정부에서 하는 일을 어쩌겠어요? 안 그래요?”(177쪽) 유 선생의 이런 발언은 ‘4대강 사업’을 대하던 한국 사람들의 복잡하고 뒤틀린 심사를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부의 4대강 사업을 꾸준히 반대해 온 김선우가 이 소설을 쓴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강원도 출신으로 시내와 냇가, 강을 보고 자랐을 김선우는 2009년 12월 4대강 사업 예산안이 통과됐을 때부터 많이 아팠고 눈물이 나서 우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녀는 아마도 ‘강변에서 채소를 기르고 심어 자란 콩으로 두부를 만들고 동화를 쓰고 사랑을 하면서 그 옆에서 강이 흐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런 삶을 꿈꿨을지도 모르겠다. 유경은 자신의 연인을 유혹해 잠자리를 가진 유 선생에게 일종의 화해 편지를 쓴다. 그 편지 말미의 인사말이 독자들에게도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보이는 인연보다 안 보이는 인연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수께끼 같은 인생이고 인연입니다.” 언젠가는 분명 인간을 죽일지도 모를 문명의 무지함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공직열전 2012] 여성가족부

    [공직열전 2012] 여성가족부

    아동과 청소년의 성폭력 문제 해결이 최근 사회적 어젠다로 급부상하면서 여성가족부의 중요성이 주목받고 있다. 여가부는 성매매 방지법과 같이 사회적 파급이 큰 정책을 많이 내놔 ‘강한 부서’로 각인됐다. 하지만 전체 인력이 229명으로 정부 중앙 부처 가운데 가장 작다. 여가부 출범은 곡절이 많았다. 1988년 정무제2장관실에서 시작해 여성특별위원회를 거쳐 2001년 부로 승격됐다. 출범 당시 34개 부, 처, 청에서 공무원 102명이 모여들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의 이름과 업무가 바뀌었기 때문에 차기 정부에서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가부 고위공무원이 “우리는 고정 안티 팬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늘 ‘마초’들의 견제를 받아 왔다. 제대군인 가산점 반대, 호주제 폐지 등이 많은 반발을 샀던 여가부의 대표적인 정책들이다. 결과적으로 이들 정책은 약하고 낮은 곳을 지향하며 가족이 행복한 평등사회를 만들겠다는 여가부 정책 목표의 밑거름이 됐다. 여가부 정책이라면 무턱대고 비판하는 남성들은 ‘여가부는 페미니스트니, 남성의 이익을 위한 부처도 만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가부 직원 가운데 여성학을 전공한 사람은 거의 없으며 공직사회 입문 계기도 다양하다. 권용현 기획조정실장은 행정고시 32회로 공직에 입문, 줄곧 여성관련 정책을 담당했다. 1989년 여가부의 전신인 정무장관실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여가부 경력 최고참이다. 이복실 청소년가족정책실장은 1984년 행시 28회에 여성으로서는 행정고시 역사상 네 번째로 합격했다. 여성 행시 합격자 1호인 전재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공직을 떠났고, 2·3호도 퇴직하는 바람에 이 실장은 행시 출신 현역 최고참 여성 공무원이다. 보육정책국장을 지내면서 영아 기본 보조금을 도입하고,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낮추는 등 현재의 어린이집 체계를 세운 것을 보람 있는 정책으로 꼽는다. 보건복지부에서 여가부로 보육업무가 이관되던 2004년만 해도 4000억원에 불과하던 관련 예산이 4년 만에 복지부로 돌아갈 때는 1조 5000억원으로 확대됐다. 여가부에서 ‘딸을 잘 키워 시집보내는’ 심정으로 보육업무를 복지부에 넘길 수 있었던 배경이다. ‘여가부의 골드마우스’ 손애리 대변인은 1997년 통계청 5급 특채로 공무원이 됐다. 공무원이 된 지 6개월 만에 ‘통계로 본 여성의 삶’이란 보고서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말띠, 용띠, 범띠해에는 낙태로 여아출산율이 떨어지는 현상을 통계로 잡아낸 보고서는 2002년 여가부에서 통계직을 만들어 손 대변인이 자리를 옮기는 계기가 됐다. 이기순 여성정책국장은 정무장관실 시절부터 여성정책을 맡았으며, 여성 일자리 창출 업무에 집중하고 있다. 강월구 권익증진국장은 1991년 민주자유당 사무처 공채 1기로 당료생활을 시작해 지난해 9월 고위공직자 개방형 직위 응모로 여가부에 자리 잡았다. 최근 빈발하는 성폭력 사건 예방과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최관섭 청소년정책관은 행정안전부 출신으로 부처 간 인사교류제도를 통해 여가부로 왔다. 임관식 가족정책관은 9급 공채로 시작해 고위공무원이 된 신화의 주인공이지만 본인은 그저 “운이 좋았다.”며 손을 내저을 뿐이다. 말 수가 적고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경남 스타일’지만 가족들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배려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열등감 괴물’이 거장 우뚝… 인간승리로 한국영화 새 역사

    9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막을 내린 제69회 베니스영화제의 스포트라이트는 오롯이 빛바랜 개량한복에 밑창 터진 신발, 꽁지머리를 한 아시아 감독에게 쏟아졌다. 2000년 ‘섬’으로 처음 베니스영화제(경쟁부문)를 두드릴 때만 해도 철저한 무명이었다. 하층민의 삶에 대한 펄떡거리는 묘사, 인간의 악마성에 대한 탐닉에 일부 유럽평론가들은 매혹됐다. 반면 여성 비하로 페미니스트 진영의 공격을 자초했고, 신체 훼손으로 특징지어지는 폭력성 탓에 혹평도 뒤따랐다. 하지만 스스로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이라고 평한 김기덕(52) 감독은 한국 영화감독 중 가장 먼저 황금사자상 트로피를 품었다. 그만큼 굴곡진 인생의 소유자도 드물다. 1960년 경북 봉화에서 절대군주와도 같던 6·25 상이용사 아버지와 외유내강형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가정형편 탓에 공식 고교학력이 인정되지 않은 농업학교에 진학해 그의 최종학력은 ‘중졸’이다. 졸업 후 구로공단과 청계천 공장에서 일하다 해병대에 입대해 5년 만에 하사관으로 제대했다. 시각장애인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1년쯤 신학을 공부했다. 종교적 배경은 작품에도 투영됐다. 이탈리아 평론가 안드레아 벨라비타는 “기독교와 소통은 그의 지식과 정신적 성장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기독교로부터 어떤 종교적 확신도 얻지 못하지만, 죄와 속죄의 변증법만큼은 흡수한 것처럼 보인다.”고 평했다. 서른 살이 되던 1990년,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유럽 이곳저곳에서 초상화를 그리며 3년간 생계를 유지했다. 그 무렵 난생처음 본 영화 ‘양들의 침묵’, ‘퐁네프의 연인들’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1993년 한국에 돌아온 그는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에 도전했다. 기계나 그림에는 능했지만, 글은 익숙한 표현수단이 아니었다. 떨어졌다. 오기가 생겨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교육원에 등록했다. 그러고는 1996년 3억 5000만원짜리 저예산 영화 ‘악어’로 데뷔했다. 영화를 처음 접한 지 불과 4년 만이다. 1998년 ‘파란 대문’이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개막작으로 상영되면서 유럽에 이름을 알렸다. 2004년에는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각각 받았다. 세계 3대 영화제의 감독상 트로피 2개를 한 해에 받는 이례적인 성취를 거뒀다. 또 장동건과 이나영, 하정우, 오다기리 죠 등 스타들이 출연을 자청할 만큼 위상도 치솟았다. 하지만 ‘콤플렉스를 품은 비주류 감독’, ‘저예산 예술영화 감독’의 이미지도 여전했다. 평단과 관객 모두 ‘지지’ 혹은 ‘안티’로 극명하게 엇갈렸다. 70만명을 동원한 ‘나쁜 남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1만명을 넘기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다. 2008년은 끔찍한 해였다. ‘비몽’ 촬영 중 여배우 이나영이 사고로 죽을 뻔한 데 큰 충격을 받았다. 애제자 장훈 감독이 김기덕필름을 떠나 대기업 계열 투자배급사와 손잡았다. 속세와 인연을 끊은 그는 3년 동안 산속에서 칩거하며 영화감독으로, 인간으로 고민과 번뇌를 담은 다큐멘터리 ‘아리랑’을 찍었다. 영화 속 장 감독과 충무로에 대한 독설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었지만, 지난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받았다. 영화 인생의 바닥까지 떨어졌던 그는 창작에 대한 열정을 회복했다. ‘피에타’는 “그의 최고작은 아니지만 성숙함이 돋보이는 수작”부터 “김기덕 작품 중에서도 평균 이하”란 평까지 여전히 호불호가 엇갈린다. 하지만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김기덕이 ‘특별한 그의 영화경력에서도 새로운 출발’(AFP통신)을 한 것만은 틀림없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5)경북 영양 지훈길·두들마을길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5)경북 영양 지훈길·두들마을길

    면적은 서울의 1.3배이지만, 인구는 1만 8000명. 경북 영양은 중부고속도로 입구에서 차로 1시간 30분을 더 가야 닿을 수 있는 두메산골이다. 흔한 4차선 도로나 신호등조차 이곳에선 사치다. 하지만 영양은 오일도·조지훈·이문열 등 내로라하는 대가들을 연거푸 배출한 넉넉한 ‘문향’(文鄕)이다. 옛 이름 고은(古隱)처럼 수백 년 된 고택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밤이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내리는 별 무리에 없던 감수성도 살포시 샘솟는 곳. 권오승 영양군 부군수는 “영양의 이런 특이점이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문인을 배출하게 한 원인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조지훈의 주실마을과 이문열의 두들마을을 찾았다. 지난 9일 정오 영양 북단 일월면에 있는 주실마을. 노()신사가 발길을 멈추고 울컥, “선생님….” 외마디만 던지고 눈물을 훔쳤다. “고려대에서 문학을 가르친 조동탁(호 지훈) 선생의 흔적을 찾아 1960년대 학번 제자들이 자주 이곳을 찾는다.”고 양희 조지훈문학관 해설사가 말했다. 어디 제자들뿐이랴. 조지훈을 기억하고 그와 같은 시인이 되기를 꿈꿨던 이들에게 이 마을을 다녀간다는 건, 곧 성지순례다. 문학을 좋아하건 그렇지 않건,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승무)’ 한 구절쯤은 읊는다. 시인의 생전 모습과 그가 남긴 작품에 흠뻑 취해 걷는 길. 1017m 지훈길엔 시인이 나고 자란 고택(호은종택·壺隱宗宅)과 문학 공원의 20여개의 시비가 길 따라 놓여 있다. 호은종택은 겹겹이 쌓아올린 담에 口자 모양이다. 폐쇄적인 가옥 형태다. 이에 대해 김민자 문화해설사는 “당시 경상도 양반가는 자신을 꽁꽁 감춰 남을 배려하고 체통을 지켰다.”면서 “삼불차(三不借·빌리지 않는 세 가지)는 조선중기 환란을 피해 주실마을에 온 한양 조씨의 가훈”이라고 말했다. 재(財)불차·문(文)불차·인(人)불차로 재물·문장·양자를 빌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수백 년을 이어져 온 이 원칙 때문에 주실마을 조씨를 ‘칼 같은 남인(南人)’이라 하여 검남(劍南)이라 불렀다. 퇴계학풍을 계승한 남인은 지금으로 치면 수백 년간 정권을 잡은 적이 없는 ‘만년야당’이라고 할 수 있다. 호은종택 뒤로는 시인이 17세까지 지냈던 ‘방우산장’(放牛山莊)이 있다. 시인은 이곳과 서울 성북동 자택은 물론 자신이 기거했던 곳은 모두 방우산장이라고 불렀다. 위치가 산도 아닐뿐더러 소를 키우지도 않아 이런 이름을 지은 까닭이 궁금하다. 그는 1953년 신천지에 기고한 ‘방우산장기’에 “설핏한 저녁 햇살 아래 내가 올라타고 풀피리를 희롱할 한 마리 소만 있으면 그 소가 지금 어디에 가 있든지 내가 아랑곳할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월산 전설이 조지훈의 ‘석문’ 소재 그 옆 지훈 문학관. 시인의 손때 묻은 자필 원고와 담배파이프·안경·모자 등 소품들이 눈에 띈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닥아서다(낙화의 한 부분)”. 생전에 여동생과 함께 육성으로 녹음한 시낭송도 들을 수 있다. 이 시는 창작 의도와 상관없이 한 정치인에 의해 더 널리 알려졌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2003년 구속될 때 자신의 심경을 이 시를 인용해 표현했다. 문인에게 고향이란 창작 소재이기도 하다. 일월산을 배경으로 전승되고 있는 황씨부인당 전설은 첫날밤도 치르지 않고 떠나버린 남편을 기다리다 죽은 한 규수의 안타까운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바로 조지훈의 ‘석문’(石門)의 모티브다. 이문열의 대표 소설인 ‘젊은 날의 초상’에도 영양에서 영덕으로 넘어가는 창수령이 등장한다. 영양군 남단 석보면 두들마을은 이문열이 나고 자란 곳이다. 이 마을을 관통하는 1787m 두들마을길은 석천서당·석계고택·유우당 등 ‘문화재투성이’다. 작가가 집필하고 후학양성을 위해 지은 한옥집 광산문우(匡山文宇) 담 아래에는 백일홍이 심어져 있다. 그의 문중인 재령이씨 사람들이 대대로 좋아하는 꽃이다. “내가 이만큼 글을 쓰는 것도 고향을 잘 만났기 때문”이라는 작가의 고향사랑이 묻어난다. 이르면 올해 말 이문열이 이곳으로 영구이주할 것이라고 군의 한 관계자가 귀띔했다. 지금도 잘 보존되고 있는 재령이씨의 두들마을 전통 중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음식디미방이다. 조선조 대학자 석계 이시명의 정부인 장계향이 380여년 전 지은 동아시아 최초의 조리서다. 종부 조귀분(63)씨가 이 조리서에 담긴 146가지 음식을 재현했다. 꿩·해삼·전복은 물론 곰바닥까지 이용해 화려하다. 특이한 점은 조리법의 51가지가 술 빚는 법이라는 점이다. 이 중 감향주(甘香酒)는 걸쭉해서 숟가락으로 떠먹는 술이다. 찹쌀·멥쌀·누룩·물 등 4가지 재료로만 만드는데, 도수는 13~14도 정도로 적포도주와 비슷하다. 박승길 군 전통음식육성담당은 “당시 재령이씨 문중을 찾아온 손님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그들에게 정성껏 술상을 차려 대접하는 것이 아녀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쩌면 ‘문향’에 술이 발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조지훈도 소문난 애주가였다. 1958년 ‘신태양’에 기고한 ‘삼도주’(三道酒)라는 글에서 그는 “술의 진미를 완미(玩味·음식을 잘 씹어서 맛봄)하는 심경이면 탁주·소주·약주 할 것 없이 가위 도주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재령이씨 음식디미방 술 빚는 법이 30% 장계향은 이문열의 소설 ‘선택’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가부장사회인 조선시대, 시문에 뛰어났던 그가 아녀자로서 자식 양육과 집안일에 충실했던 것이 ‘강요’가 아닌 ‘선택’이었다는 것을 일생을 짚어가며 설명한다. 이 때문에 1997년 연재 당시 ‘반페미니즘 소설’로 낙인 찍혀 공격을 받았다. 작가 자신도 인정하듯 “페미니즘에 저항할 논리는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작가는 “선입견 없이 읽어 보면 거기서 비판되고 있는 것은 저속하게 이해되고 천박하게 추구되는 페미니즘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논쟁에서 단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런 고집스러움은 1960년 4월 혁명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큰일을 위해 죽음을 공부하라.”고 한 조지훈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대학교수였던 시인은 학생들에게 “내가 죽음을 공부하라는 것은 군중 속에 휩싸여서 군중과 함께 여러 사람에 싸여서 죽는 공부가 아니라 혼자서라도 죽을 공부를 하라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오탁번 고려대 명예교수는 “(4월 혁명이) 무질서화되고 소인배들의 명리로 전락할 기미가 보이자 강경한 어조로 그들을 깨우쳤던 것”이라면서 “선생의 위치에서 떳떳이 설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지훈의 이와 같은 꾸짖음은 더욱 빛났다.”고 평가했다. 겹겹이 쌓아올린 경상도 양반가 담벼락 안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대가의 속마음을 정확히 알 순 없다. 하지만 껍질이 두꺼워 고춧가루가 많이 나오는 영양고추처럼 이곳 출신 작가들의 작품이 유난히 실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글 사진 영양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16회는 대전시 대덕구 동춘당로를 소개합니다.
  • Rock, ‘차르’에 물 먹이고 ‘자유’에 불 붙이다

    Rock, ‘차르’에 물 먹이고 ‘자유’에 불 붙이다

    ‘푸틴을 비난한 죄’로 러시아의 여성 5인조 록밴드 ‘푸시 라이엇’ 멤버들에게 징역2년형이 선고됐지만 논란은 그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를 계기로 50여년 만에 서구에서 러시아로 옮겨간 록의 저항정신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암흑시대인 중세에서 해방의 시대인 근대로 넘어간 계기는 ‘교회로부터의 독립’이라고 단언했다. 특히 러셀은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 대해 ‘유럽과 달리 러시아에서는 교회가 국가에 굴복해 버렸다.’며 이처럼 교회 등 견제 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차르’가 무제한의 전제 군주가 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근대 발전사에서 유럽에는 있었지만 러시아에는 없었던 견제장치로 ‘교회’를 꼽은 것이다. 러시아 대선을 3주 앞둔 지난 2월. 러시아 정교회는 3선에 나선 블라디미르 푸틴(60) 총리에 대해 ‘그가 12년간 러시아를 통치하는 것은 신이 주신 기적’이라고 찬사했다. 러시아 인구의 70%가 정교도로서 사실상 국교와 다름없는 정교회의 지지를 얻는 것은 대선 후보로서 당선 확인 도장을 받은 셈이었다. 키릴 대주교는 이전에도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는 혼돈의 상태였으나 신과 현명한 지도자들의 도움으로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며 노골적으로 푸틴을 지지했다. 이때, 이 같은 러시아의 뿌리 깊은 악습인 ‘정교 유착’을 향해 거침없는 독설을 내뱉은 한 무리의 여성들이 나타났다.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펑크록 그룹 ‘푸시 라이엇’은 정규 앨범 하나 내지 못한 무명 그룹이었지만 살아 있는 권력(푸틴)과 자본에 무릎 꿇은 교회를 향해 거침없는 비판의 칼을 빼든 공로로 일약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록밴드로 거듭났다. 러시아 대통령 선거 유세가 한창이던 지난 2월 21일, 푸시 라이엇 멤버 5명은 복면을 한 채 모스크바 크렘린 인근의 정교회 사원 제단에 올라가 ‘성모여, 푸틴을 쫓아내소서’라고 노래했다. 이그재미너 닷컴은 이들의 노래가 ‘성모에게 페미니스트가 되도록 간청하는 기도’라고 해석했다. 또 가사 중 ‘제길, 제길, 망할 신이여’라는 부분은 ‘정교회가 하나님 대신 푸틴을 믿는 현실을 암시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소한 도발을 넘어 러시아 기득권층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게릴라 콘서트는 교회 경비원의 제지로 1분 만에 무산됐지만, 동영상이 유튜브를 타고 전 세계로 퍼지면서 파문이 커졌다. 마돈나와 스팅, 폴 매카트니 등 세계적인 톱 가수들이 이들의 석방을 촉구했고,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반(反)푸틴 시위대가 세계 각지에서 집회를 열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대중음악 비평가인 랜들 로버츠는 러시아 5인조 복면 록밴드의 등장을 ‘1970년대 실업으로 좌절한 영국 청년들에게 음악을 통해 저항의 힘을 불어넣어 준 섹스피스톨스의 재현’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1976년 런던에서 결성된 4인조 밴드 섹스피스톨스는 당시 실업 등 벼랑 끝에 내몰린 젊은이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시기에 혜성처럼 나타나 자본주의, 국가관 등의 기존 가치관에 돌을 던졌다. 이들은 특히 템스강에서 퀸엘리자베스 호를 타고 영국 국가인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God Save the Queen)를 부르며 여왕과 영국의 위선을 마음껏 조롱하고, 의사당 앞에서 광란의 공연을 펼쳤다. 이는 펑크록의 대표적인 저항 사례로 평가된다. 푸시 라이엇에 대한 유죄 선고는 펑크록의 정신이 세계 어디서나 언제든 다시 태어날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펑크록이 독재정부에 대한 분노를 일으키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CNN은 이번 사태를 ‘푸시 라이엇 현상’으로 명명한 뒤 “세계의 관심이 러시아에 대한 반대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어젠다를 더욱 응집시키면서 결국 러시아를 완전한 자유의 나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들을 계기로 러시아 중산층이 그동안 자신들을 대표하지 않았던 푸틴 정권을 향해 억눌려 왔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거리로 더 많이 뛰쳐나올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얼굴없는 여왕, 조선의 멸망을 부르다

    얼굴없는 여왕, 조선의 멸망을 부르다

    ‘순원왕후 독재와 19세기 조선사회의 동요’(변원림 지음, 일지사 펴냄)는 사도세자의 죽음과 영·정조 치세기에 대한 평가, 그 이후 19세기 조선의 멸망사에 관심 있다면 놓치기 아까운 책이다. 이 부분은 지난해 이덕일(‘사도세자가 꿈꾼 나라’·역사의아침 펴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과 정병설(‘권력과 인간’·문학동네 펴냄) 서울대 국문과 교수 간 치열한 논쟁으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독일 유학 때 현지인과 결혼해 쭉 독일에 머문 64세의 역사학자 변원림은 이 논쟁에 한발 담그면서 19세기 조선멸망사에 집중한다. 저자의 주장은 꽤 파격적이다. 일단 19세기 조선 정치사에서 중요한 것은 왕비의 친정 가문 중심의 세도(勢道)가 아니라 대비가 아들인 어린 왕을 대신해 대권을 잡아 통치해 나가는 세도(世道)로 본다. 세(勢)가 외척의 권세라면, 세(世)는 여자의 신분으로 세상일에 나섰다는 의미다. “19세기 권력의 전이를 보면 왕비보다는 대비의 친가가 득세했다. 정치가들이 딸을 매개로 권력을 쥐었다기보다 대비가 아들인 왕을 조종하여 그들의 친정인들에게 권세를 주었던 사실이 보인다.” 이들이 주목받지 못한 이유는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 때문이다. 여자가 정치 전면에 나서는 세도(世道)보다 외척 남자들이 설쳐대는 세도(勢道)가 남성 위주의 지식인 집단에서 더 받아들여지기 쉽다. 저자는 대권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명실상부한 여군(女君)이라 봐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들 아는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라는 두 씨족의 대립과 갈등도 부정한다. 저자는 씨족 간 대립 갈등보다는 안동 김씨 가문 중심의 대규모 외척 네트워크가 작동했다고 본다. 그 핵심인물로 안동 김씨 김조순의 딸이자 정조의 며느리이며, 순조의 부인이자 헌종의 할머니로서 헌종과 철종 때 두 차례에 걸쳐 수렴청정했고 성모(聖母)라고까지 추앙받은 순원왕후를 지목했다. 순원왕후가 대체 왜 그랬을까를 추적하다 보니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생모 혜경궁 홍씨와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에게로 가닿는 역순이다. 저자는 사도세자가 당쟁 때문에 억울하게 희생당했고 정순왕후가 정조를 독살했을지도 모른다는 이덕일의 주장도 부인한다. 정조의 죽음은 독살이 아닐뿐더러, 사도세자의 죽음 역시 사도세자의 개인적인 억울함보다는 영조의 정치적 패배로 해석한다. 동시에 정병설이 주요 사료로 취급한 미친 사도세자가 영조까지 죽이려 들었다는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 대해서도 싸늘한 시선을 보낸다. 또 한 가지는 근대의 맹아라 칭송하는 것들에 대한 비판이다. 영·정조시대인 18세기에 이앙법이 나오고, 상업을 진흥해 근대의 맹아가 싹트지만 19세기 중앙정부의 무능으로 각종 민란으로 번졌다고 흔히 알려져 온 사실을 부정한다. 일단 근대의 맹아라는 것이 영·정조의 치세가 탁월해서 사회가 진보해 나가다 생긴 현상이라기보다 전 세계적으로 소빙기가 오면서 농업 생산력이 극히 낮아져 어쩔 수 없이 생긴 현상이라 본다. 19세기 민란이라는 것도 평민이나 노비가 차별과 억압에 항거한 사건이 아니라 중앙 권력 다툼에서 소외된 지방 양반들이 중앙정부에 도전한 것에 가까웠다고 본다. 민중항쟁이라기보다 “신라 말 각간(왕자·제후)들의 싸움”에 가깝다는 것이다. 19세기는 봉건질서 해체기가 아니라 1000년 전 봉건 질서로 되돌아간 시기라는 것이다. 이메일로 몇 가지 추가 질문을 보냈다. →남성 가부장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여성들의 이중성과 정치적 잘못을 일일이 지적해뒀다.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이 보면 화들짝 놀라지 않을까. -물론 19세기 조선멸망사가 그들만의 탓이라고 보기 어렵다. 조선을 지구 유일의 문명국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고립시킨 조선 지식인 일반의 편협한 사고도 중요한 원인이다. 그럼에도 정순왕후와 순원왕후는 역사 전환기에, 혜경궁 홍씨는 노론의 일당전제를 가능하게 했으니 19세기 조선사의 방향을 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남자들만이 아니라 여자들도 함께 이뤘다는 점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이라서 여성의 행동을 옳은 쪽으로만 보려 한다면 순원왕후나 혜경궁 홍씨가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기준이나 원칙 없이 내 편이면 옳고 내 편이 아니면 그르다고 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나. →책 전반에 왕권 강화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배어 있다. 22살에 요절한 헌종에 대한 높은 평가도 눈에 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헌종이 오래 살아 정상적으로 왕권을 행사했다면 식민지를 면할 수 있었을까. -18세기 초부터 상업을 장려했다면 조선이 소빙기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고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본다. 영·정조를 두고 조선의 중흥을 이끌었다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 나는 그들이 조선을 멸망의 길로 이끌었다고 본다. 영조는 상업을 억눌러 조선을 국제무역시장에서 차단해 버렸고, 정조는 문치에 치중해 국방을 소홀히 했다. 영·정조는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으나 중요한 것은 왕권 자체보다 그 왕권으로 무엇을 하느냐다. 사실 이번 연구 이전엔 헌종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는데 순원왕후 문제를 다루면서 헌종의 명석함에 놀랐다. 기존 특권층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정신적 독립성을 유지했을 뿐 아니라 현실을 파악하는 눈이 날카로웠다. 이 책을 쓰면서 헌종이 일찍 죽지 않고 개혁정책을 성사시켰다면 식민지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 →정조의 인기는 대단하다. 철인정치가의 현신 같은 분위기다. 물론 ‘사기의 제왕’이라 평하는 정병설 같은 이도 있지만. 어떻게 보나. -정조에 대해 많은 의문이 있다. 순원왕후에 대해 쓰면서 그의 문제가 영·정조 때 이미 배태되어 순원왕후에 와서 더 심화됐다는 점을 알게 됐다. 그래서 정조 시대에 대해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정조는 스스로 철인정치가로 알려지길 원했고, 오늘날 정조를 다룬 수많은 책을 보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 같다. 그러나 말과 행동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기존 연구는 주로 사상 연구여서 실제 행한 정치에 대한 연구를 찾기 어렵다. 나 역시 이제 시작 단계라 확답하긴 어렵지만 순원왕후와 마찬가지로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왕이 아니었을까 의심한다. 가령 빈민 구휼 자금이라는 정리곡 문제만 봐도, 정조는 자기가 은혜를 베푼 것처럼 얘기했지만 그것은 새로 만든 화성 경영비를 위한 고리대 강제차관이었다. →다음 연구 주제는 당연히 정조인가. -그렇다. 정조와 정순왕후다. 정순왕후는 정조의 전 생애를 동반했고 정조 사후 섭정을 한 왕후다. 계비라는 위치 때문에 정조 독살설에 연루될 정도로 많은 의심을 받았는데,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앞서 말한 바처럼 정조에 대해서도 의심이 있다. 순원왕후처럼 정조도 말과 행동을 실제 비교해 보겠다. 그 결과는 지금으로선 나도 알 수 없다. 자료를 계속 볼 뿐이다. →책 앞부분에서 기존 시파, 벽파 구분을 비판한 것 등에서 볼 수 있듯 국내 사학자들에 대한 비판도 거침없다. 독일에서 따로 연구한 덕분인가. -한국의 사학자들은 스승이나 선배의 설을 비판 못하기 때문에 한번 잘못된 설이 백 년 지나도 계속된다. 근대 맹아설 같은 것도 유럽에서 20세기 초에 유행하다가 1980년대에 많은 비판을 받아 극복됐는데, 정작 한국에서는 아직도 그걸로 조선의 18~19세기에다 고스란히 적용하고 있다. 시파, 벽파 문제도 그렇다. 최근 정조어찰집이 나와서 심환지가 정조의 주구 노릇을 한 심복임이 명백히 드러났는데, 아직도 심환지는 벽파니까 정조의 반대파라는 설을 고수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 와중이라면 벽파가 무엇이고 그 말이 언제부터 생긴 것인지 조목조목 따져 봐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사람이 없다. →독일에서 그 많은 자료는 어떻게 다 구하나. -인터넷 시대라 괜찮다. 그리고 베를린 국립도서관에 한국 도서가 충분하다. 급할 때면 한국에 있는 지인들 도움도 받고. 다만, 한국학술정보 논문검색서비스(Kiss)를 학술기관 소속 연구자에게만 접근할 수 있도록 해둔 점은 아쉽다. 가을쯤 한국에 들어가 정조 관련 자료를 수집할 예정이고, 그 작업을 위해 필요한 자료 목록을 만들고 있다. 2만 4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여성들이여! 당당하게 살아라

    그리스 신화 속 아탈란타(Atalanta)는 사냥의 여신이었다. 남자들보다 날랬고 미모 또한 ‘여신급’이었다. 당연히 그를 흠모하는 청년들이 많았는데, 아탈란타는 달리기 시합에서 자신을 이기는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제안했다. 질 경우엔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섬뜩한 조건도 내걸었다. 그리스에서 가장 날래고 용맹한 청년 멜라니온이 제안에 응했다. 하지만 승리에 대한 자신이 없었던 그는 아프로디테에게 도움을 청했고, 황금사과 세 개를 선물로 받았다. 경주가 시작되자 멜라니온은 아탈란타가 앞설 때마다 앞에 황금사과를 하나씩 던졌다. 아탈란타는 그때마다 번쩍이는 황금사과의 유혹에 주춤했고, 결국 멜라니온에게 승리를 헌납했다. 일부 여성운동가들은 세 개의 사과가 각각 아름다움과 우아함, 즐거움을 상징한다고 본다. 남성 우월 사회에서 흔히 통용되는 게임의 법칙이자,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여성의 의지를 꺾고 발목을 잡는 대표적인 걸림돌들이다. ‘자유롭게 사랑하고 치열하게 성공하라’(왕카이린 지음, 정유희 옮김, 틔움 펴냄)는 이런 인식 위에서 여성들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저자는 모두 8명의 여성을 등장시킨다. 대표작 ‘제2의 성’을 통해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페미니즘의 기초 명제를 제시한 시몬 드 보부아르, 니체의 청혼을 거부하고 릴케, 프로이트 등 천재들과 사랑을 나눈 자유로운 영혼 루 살로메, 조각의 거장 로뎅을 상대로 격정적 사랑과 애절한 증오를 함께 키웠던 열정의 예술가 카미유 클로델, “여자가 평생 한 명의 남자와 교제한다는 것은 오직 한 명의 작곡가가 만든 음악만을 듣는 것과 같다.”고 외친 맨발의 이사도라 덩컨 등이 먼저 소개된다. 저자는 “이들이 두려움 없는 사랑과 자기 주도적 인생을 통해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어냈다.”며 “여성들이 자신만의 기준으로 당당하게 살 것”을 권하고 있다. 하지만 책의 전체적인 얼개가 자유로운 성, 거리낌 없는 연애 등 주로 남성의 상대자로서의 면만 부각시킨 듯한 아쉬움도 남는다. 본질적인 존재로서의 여성을 그리려 했으나 뜻과 달리 성 역할론에만 묻힌 듯한 느낌이다. 1만 18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서성대다 보니 작품이 나인지 내가 작품인지

    서성대다 보니 작품이 나인지 내가 작품인지

    블랙박스라는 공간과 잘 어울린다. 컴컴한 곳으로 들어서면 편안한 오르골 음악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천들이 나부낀다. 반투명 천이 천장에서 늘어뜨려져 있는데 거기다 영상물을 비춘다. 스위스 출신 작가라 그런지 양떼와 풀밭, 야생화 이미지들이 가득하다. 인간의 눈처럼 생긴 타원형 렌즈가 몸 안을 여행하거나 바깥 풍경을 유람하며 쏟아내는 영상들이다. 실제 사람이 산책하면서 눈으로 일일이 하나하나 들여다보듯 촬영되어 있어서 아련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이다. 가만 서있다 보면 음악, 영상 그 모든 것들이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백색 소음 같다. 서성거리기만 해도 마음이 차분하게 정리되는 기분이다. 9월 16일까지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 전시되는 피필로티 리스트의 작품 ‘하늘을 오르다’다. 리스트는 1980년대부터 비디오작업으로 주목받다 2008년 뉴욕 현대미술관 개인전으로 세계적 작가로 우뚝 섰다. 한국 전시는 처음이다. 리스트가 명성을 쌓아온 것은 신체의 움직임을 독특한 색감과 리듬감을 지닌 영상으로 표현해 내면서다. 이번 작품도 4개의 프로젝터가 36개 천 사이로 비추는 영상물을 잘 들여다보면 모두 부드럽고 관능적인데다 성적인 느낌도 일부 묻어난다. 다소 정적인 작품이라 움직임보다 색감이 더 도드라진다. 양, 풀, 야생화 같은 자연물을 다뤘음에도 색감이 묘해서 희한하게 에로틱한 분위기를 발산한다 작가는 원래 페미니즘적 입장에서 선 작업을 많이 선보여왔다. 생리를 금기시 하는 문화에 도전한다거나, 엄숙한 척 폼을 잡아대는 남성들을 묘하게 비틀어둔 작품들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오히려 페미니즘이 고착화시킨 여성성을 깨고 나오는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작품도 그런 경향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비꼬거나 풍자한다기보다 한껏 편안하고 아늑하다. 우혜수 학예실장은 “작품 방향에 변화가 생긴 이후부터 상처를 치유하고 보듬는 얘기들, 여성적인 무엇에 대한 긍정이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블랙박스라는 공간에 들어가 반투명천으로 둘러쌓인 채 작품을 감상하는 것 자체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궁으로의 회귀를 뜻하는 것 같다. 블랙박스를 뺀 공간에서는 ‘아트스펙트럼 2012’도 함께 열린다. 2001년 시작된 리움미술관의 젊은 작가 양성 프로그램인데 삼성그룹 비자금 사태 때문에 6년 만에 열리게 된 전시다. 배찬효, 김아영, 한경우 등 젊은 작가 8명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다소 묘한 것은 김지은 작가의 ‘어떤 망루’. 하얀 벽면에다 시트지를 오려다 붙이는 방식으로 12m 높이의 망루를 세워뒀는데, 누가 봐도 용산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이 전시도 9월 16일까지. 6000원. (02)2014~690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예술과 관객을 질투한 평론의 그럴듯한 이론

    ‘평론, 예술을 엿먹이다’(로저 킴볼 지음, 이일환 옮김, 베가북스 펴냄)는 제목 그대로다. 알아듣기 힘든 현란한 이론을 동원한 평론가들이 관객과 미술 사이에 다리를 놓아 주기는커녕 오히려 격리시키고 있다는 비판이다. 원제를 보니 한술 더 떴다. ‘The Rape of Masters’(더 레이프 오브 마스터스). 그러니까 미술사가들이 평론을 들이대면서 미술 대가들을 능욕, 더 직설적으로 강간하고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 머리 좋고 책 좀 읽었다는 이들이 예술을 예술 그 자체로 보지 않고 흔히 ‘PC’라 표기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다 예술을 종속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손가락질은 포스트이론, 정신분석이론, 페미니즘이론 같은 것들에 날아가 꽂힌다. 덕분에 후련한 구석도 많다. 파격과 일탈을 강조하다 보니 현대 예술이 “실상은 핏기 잃은 성적 용어들로 채워”지고 있고 그 결과 나타나는 것이 “에로스의 승리가 아니라 과묵과 겸손의 패배”라 지적한다. 외설이냐 예술이냐라는 아주 지겨운 테제를 확 비꼬아 둔 것이다. 예술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술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 평론가들은 멋져 보이는 이론을 억지로 가져다 붙여 작품을 관객들로부터 “약탈”해 가지 말고 “예술 작품의 직접적 파악을 가로막는 덤불 숲을 쳐 주는 것”에 그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비판이 공격적이고 신랄하다 보니 한편으로는 거부감도 든다. 미술뿐 아니라 모든 예술 장르에서 평론이라는 것은 결국 작품을 통해 이 세상을 두껍게 읽고 쓰는 행위라는 점, 그래서 그로 인한 풍부한 해석의 살결 역시 문화적이라는 점에서 너무 가혹하게 일방적으로 깎아내린 것처럼 보인다. 몇몇 대목에서는 우리나라 색깔론자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보수적이다. 구스타브 쿠르베, 마크 로스코, 존 싱어 사전트, 페테르 루벤스, 윈슬로우 호머,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등 대가 7명에 대한 해석 문제를 다뤘다. 관심 가는 작가가 있다면 들여다볼 만하다. 물론 저자의 의도와 독자의 균형감각은 별개다. 1만 3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섹시한 모델’이 가르치는 중국어 교육 사이트 논란

    ‘섹시한 모델’이 가르치는 중국어 교육 사이트 논란

    섹시한 선생님들과 함께 중국어 배워 보실래요? 최근 영어권 외국인을 대상으로 중국어를 교육하는 한 온라인 사이트가 논란에 휩싸였다. 섹시한 모습의 동양계 여성들이 등장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중국어를 교육하기 때문. 이 사이트는 홍콩에 기반을 둔 독일인 사업가가 운영하는 ‘섹시만다린 닷컴’. 지난해 12월 오픈한 이래 언론보도와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넓혀가고 있다. 영상은 내용은 다소 선정적이다. 첫번째 강좌 주제인 ‘웟 타임 이즈 잇?’(What time is it?)을 보면 두명의 란제리를 입은 모델들이 등장해 침대에 누워 대화를 나눈다. 이 강좌는 30만 히트수를 기록하며 네티즌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다. 이 회사의 대표 믹 글라이스니어는 “중국어는 정말 배우기 힘든 언어로 아마 텍스트북만 펼쳐도 기겁을 할 것”이라며 “이 동영상 강좌는 보는 것 만으로도 재미있고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고 밝혔다. 이곳에서 중국어 강사(?)로 일하는 조건도 까다롭다. 여성 지원자들은 교육 경험 뿐만 아니라 모델 관련 일을 한 경력과 전신 사진 제출을 요구받기 때문. 이 회사의 강사로 활동 중인 일본계 카오루 키쿠치는 “우리 교육의 첫번째 목적은 사람들에게 중국어를 친숙하게 만드는 것” 이라며 “중국어가 멜로디 처럼 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만만치 않다. 홍콩의 여성 인권 및 페미니즘 단체들은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이다. 이 사이트는 여성들을 성적인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베이징 중국어 교육학교의 교사 우 위에도 “이같은 교육은 마케팅 측면에서 좋을지 모르겠으나 진지하게 언어를 배우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인터넷뉴스팀 
  • “남자들도 ‘앉아쏴!’”…공공 화장실 서서 볼일 금지 논란

    “남자들도 ‘앉아쏴!’”…공공 화장실 서서 볼일 금지 논란

    스웨덴의 한 도시가 파격적인(?) 법안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남자들도 공공 화장실에서는 앉아서 소변을 봐야한다는 법안 때문이다. 최근 스웨덴의 사회주의자 및 페미니스트로 구성된 좌파정당은 쇤데르만란트주 의회에 일명 ‘앉아쏴’ 법안을 제출했다. 이같은 법안이 제출된 것은 위생과 건강이라는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대표 발의자인 비고 한센은 “남자들이 앉아서 소변을 보게되면 튀지 않아 화장실이 깨끗해지며 소변도 서서 보는 것에 비해 완전히 비울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결국에는 공공 화장실도 성별(性別)없는 화장실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라며 “정치적인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같은 법안이 제출된 사실이 뉴스를 통해 알려지자 거센 논란도 일고 있다. 루이스빌 대학교 존 카멜 교수는 “남자들이 소변을 흘리는 것은 정작 볼 일 보는 도중 보다는 털 때 많이 발생한다.” 면서 “어떤 남자도 변기에 앉아 털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터넷뉴스팀 
  • “시한부 엄마와 딸의 ‘쿨한 사랑’ 이야기, 글 쓰면서 제 자신도 적잖은 치유받아”

    “시한부 엄마와 딸의 ‘쿨한 사랑’ 이야기, 글 쓰면서 제 자신도 적잖은 치유받아”

    컬러링이 양희은의 노래다. 작은 키, 적당한 살집, 수더분한 표정, 답변하다가 눈가에 눈물이 반짝거리지만 절대 쏟아내지는 않는 김이윤(48)은 방송작가로 26년 잔뼈가 굵었다. 1993년부터는 MBC 라디오의 장수 프로인 ‘양희은의 여성시대’ 담당 작가다. 방송작가로 탄탄한 길을 걸어왔던 그가 장편소설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창비 펴냄)으로 소설가로 데뷔했다. 제5회 창비 청소년문학상을 받은 덕분이다. 여성 문인들의 인상이란 게 다소 꿈꾸는 듯한 것이라면 김이윤은 생활인의 느낌이 강하다. 방송국이란 큰 조직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탓이다. 물론 ‘양희은의 여성시대’를 털어 봐도 김이윤은 나오지 않는다. 필명이어서다. 김이윤은 “인정받고 싶어서 응모를 했고, 수상작으로 선정돼 어릴 때부터의 꿈이 실현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했다. 문학 청년이었던 그는 “글쓰기가 좋으면 그저 쓰면 되지 왜 문단을 통해야 하나.”라는 오래된 비웃음을 이번 기회에 대차게 버린 것이다. 그렇다 보니 장편·단편 습작이 적지 않다. 그는 “단편을 써서 맏이인 딸에게 생일 선물이나 입학 선물로 주곤 했는데, 딸은 ‘그런 거 쓸 시간 있으면 놀아 달라’면서 선물 인수를 거부해 곤란했다.”고 했다. 직업인으로 나태해지려는 자신을 밀어붙이고자 글쓰기의 데드라인을 자녀의 생일로 잡은 엄마의 얄팍함을 똑똑한 딸이 간파했다는 것이다. 올해 대학생이 된 똑똑한 딸은 아무래도 소설의 주인공 여여랑 닮은 것 같다.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 ‘여여’. 여여는 나 여(余), 너 여(汝)가 합쳐진 이름으로 ‘나를 먼저 챙기고 남을 돌보라.’는 의미로 페미니스트 사진작가인 엄마가 지어 준 이름이다. 여여는 학교를 ‘정글’이라 부르고, 학원까지 운전해 데려다 주는 전업주부를 엄마로 둔 세미와 단짝인 평범한 여학생이다. 다만 여여에게는 아빠가 없다. 엄마가 미혼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여는 화가 나서 “미혼모 페미니스트라고 나를 팔아서 장사 잘한 것 아니냐.”고 엄마의 가슴을 꼬챙이로 쑤시는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여여는 왜 화가 났을까? 엄마가 암에 걸려 시한부 선언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소설은 미혼모의 딸인 여여가 암으로 죽어 가는 엄마를 지켜보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이야기로 전개될까. 하지만 스토리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픈데, 서술하는 방식이 담담하고 주인공들의 캐릭터들이 이른바 쿨(cool)해서 신파로 흐르지 않는다. 여여는 심지어 자신의 생물학적 아빠를 찾아나서기도 하는데, 아빠를 만나고 헤어지는 방식이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처럼 질척거리지 않는다. 어떻게 마무리를 할까 걱정이 돼 조마조마한데, 역시 쿨하고 이성적인 방식을 잃지 않았다. 김이윤은 “내 나이 34살에 58세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그때의 경험이 이 소설에 많이 녹아 있다.”면서 “마음이 자라지 않아서 엄마가 돌아가신 뒤 ‘억울하다’는 감정, 고아가 됐다는 불안 등이 겹쳐 한동안 아주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어린 마음‘은 이 소설을 책으로 묶어 내려고 여러 차례 교정을 보면서 적잖이 치유가 됐다고 했다. 청소년 소설답게 여여와 시리우스라는 3학년 남학생과의 러브 라인도 있다. 순정만화 같은 느낌의 이 사랑 이야기는 한 여자에게 성실하지 않았던 여여 아버지의 사랑과 오버랩되면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일까 고민할 수 있게 해 주기도 한다. 사랑해서 더 많은 여자와의 사랑을 허락해 줬다는 여여 엄마의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싶기도 하다. 떠나려는 남자를 애를 핑계로 붙들어 결혼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한국에서 말이다. 심사평은 ‘특별한 기교도 없이 소박한 문장’이라고 했는데, 재밌고 감동도 진한 탓에 건방진 심사평이라는 느낌이다. 청소년문학상을 받았지만 데뷔작인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은 청소년 소설이라고 한정할 수 없다. 창비의 1, 2회 청소년문학 수상작인 김려령의 ‘완득이’나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 등은 각각 70만부와 30만부가 팔리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이는 독자층이 청소년에서 전 국민으로 확대돼야 가능하다. 먼저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이 책의 운명도 넓은 바다로 흘러가겠구나 하고 예감하게 된다.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네 번째 심리에세이 ‘만가지 행동’ 펴낸 소설가 김형경

    네 번째 심리에세이 ‘만가지 행동’ 펴낸 소설가 김형경

    “…홀로 면벽한 채 남의 이야기나 읽고, 창백한 글이나 쓰고, 삶을 묘사하는 행위는 진짜 삶을 사는 게 아니지 않을까? 무의식을 비워 낸 후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한다면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때가 되면 진짜 삶을 살아보리라. 진짜 삶이란 봄에 감자 씨를 묻고 여름에 감자 알을 깨내는 일, 파도치는 밤바다에서 집어등을 밝히고 살찐 오징어를 건져 올리는 일 같았다.…(중략) …작가로 살기 위해 가장 필요했던 것이 재능이나 열정이 아니라 용기라는 것도 알게 됐다. 글을 쓸 때 내부 검열자를 침묵시키면서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일부터 불안을 떨쳐 내는 용기, 글쓰기가 공동체의 통념을 넘어서는 곳으로 나아갈 때도 용기가 필요했고, 내가 읽은 세계 명작과 내가 쓰는 글 사이의 간극을 확인하며 좌절할 때도 용기가 필요했다.…(중략)…만 명의 독자로부터 만 가지 평가를 듣더라도 여전히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140~142쪽) 소설가 김형경(52)의 네 번째 심리에세이 ‘만가지행동’(사람풍경 펴냄)에서 글쓰기와 관련해, 변화되는 그의 마음을 이렇게 서술했다. 인용한 글의 첫머리는 30대 언저리일 것이고, 뒤로 갈수록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마치고 훈습(working through)을 거쳐 ‘본령’에 다다른 40대 언저리의 김형경일 것이다. 그가 최근 펴낸 ‘만가지행동’을 손에 들고 소설가가 소설을 써야지 또 심리 에세이이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14일 서울 무교동의 커피집에서 만난 김형경에게도 집요하게 왜 더 열심히 소설을 쓰지 않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김형경은 “심리에세이도 나의 문학의 한 부문이다. 20~30권의 문학전집이 꾸려질 때 에세이집 4~5권은 아름답지 않겠나. 한때 에세이가 소설보다 하위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독자적인 영역을 가진 문학으로 인정한다. 이제 쓸 만큼 썼고, 경험할 만큼 했으니 내 경험을 나누는 소설을 쓸 것이다. 올가을, 늦어도 겨울 전에 장편소설을 낼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원래 ‘사람풍경’이란 책을 쓸 때 심리에세이를 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여행기를 쓰려다 보니 범람하고 있어서 차별성을 위해 심리이야기를 넣은 것인데, 독자들의 반응이 좋고 다음 단계의 책들을 요구해서 네 번째 책까지 쓰게 됐다.”고 말했다. ‘만가지행동’은 두 번째 책인 ‘천개의 공감’의 속편 격 같지만, 사실은 불교의 ‘만행’(萬行)에서 따온 것으로, 스님들이 10년 경전을 읽어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10년 참선해 내면의 깨달음을 얻고 나서 10년간 세상에 나아가 여러 곳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온갖 수행을 한다는 의미다. 즉 이전의 책들이 자신을 깨닫는다면, 이번 책은 깨달음을 실천하라는 의미다. 경희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1983년 이미 시인이었다. 1985년에는 소설가로도 이름을 올려 ‘중고 신인’으로 늙어가고 있었다. 월간지 기자로 20대를 꾸려나가던 그는 30대 초입이던 1993년 국민일보가 파격적으로 1억원을 내건 제1회 문학상에서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라는 장편소설로 문단에 신데렐라 탄생을 알렸다. 시인 출신답게 문장과 표현력이 탄탄했고, 또 전직 기자답게 구성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1980년대의 독재정권을 돌파하며 살아냈던 젊은이들의 고통과 시대상을 잘 반영하기도 했다. 1993년은 공지영(49)이 페미니즘 장편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출간했고, 같은 해 신경숙(49)은 단편소설집 ‘풍금이 있던 자리’를 내놓았을 때다. 여성작가 트로이카 시대의 개막을 알린 것 같았다. 그런데 그후로 20여 년이 지난 지금 소설가 김형경의 자리는 넓지 않고, 심리에세이스트 김형경이 우뚝 서 있다. ‘새들은’을 보면 그는 사회적인 문제를 문학으로 통합시켜 존재론적인 고민을 던져줄 것으로 기대했던 소설가였는데 애석하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김형경은 “최근 우리 문학, 소설이 갈 길을 잃은 것 같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는 모습을 작가가 깊이 녹여서 표현하는 방식으로서 문학이 필요한데, 그 맥락을 잃어버렸다. 세계를 이해하는 코드가 단편화·기계화되니까, 삶의 총체성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싶다.”면서 “연말에 쓸 장편소설은 그 돌파구를 마련해오는 방식으로 돌아오겠다.”고 했다. 그는 “문학 해법이 어디에서 있는지 짐작한 곳이 있다.”면서 “현실의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세계 등은 현실 밖에 있다. 현실로 돌아오기.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기를 조만간 해낼 것”이라고 독자들에게 약속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책꽂이]

    ●선거도 마케팅이다, SNS로 통하라 (강인식·함병권 지음, 아이엠북 펴냄) 지난 1월 1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인터넷 선거운동을 전면 합법화했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른 조치다. 다가온 총·대선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사활이 걸렸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기자와 마케팅 전문가가 머리를 맞댔다. 1만 3500원.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페르낭 브로델 지음, 김홍식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아날학파를 이끌면서 ‘역사학의 교황’이란 말을 들었던 페르낭 브로델이 3부작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1979년 완간하기 전인 1976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서 행했던 세 차례의 강연 내용을 묶었다. 사건이란 역사의 도저한 심층적 흐름 위에 떠다니는 물결일 뿐이라 주장하면서, 기존 정치적 격변 위주의 사건사에 반기를 들었던 브로델의 역사관을 엿볼 수 있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가 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지적하는 대목은 여전히 흥미롭다. 본문 내용은 120여쪽에 불과하지만, 번역자의 상세한 해제가 달려 있어 이해하는 데 부족함은 없다. 두꺼운 3부작이 부담스러웠다면 가볍게 집어들 수 있다. 1만 2000원. ●세치혀 (홍경호 지음, 더블유미디어 펴냄) 국가의 운명이 언제 어떻게 바뀔는지 알 수 없었던 춘추전국시대. 그야말로 혀를 어떻게 놀리는가에 따라 인생이 좌우됐다. 그 시절 있었던 이야기들을 통해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을 유도한다. 1만 3800원. ●기계가 된 몸과 현대건축의 탄생 (임석재 지음, 인물과 사상사 펴냄) 요즘 짓는 건물 가운데 폼 좀 낸다 싶으면 모조리 철골구조에 유리벽을 쓴다. 특히 관공서는 더하다. 일종의 투명성에 대한 은유라서다. 한때 논란이 됐던 공항 엑스레이 투시도에 가깝다. 그런데 이는 반어적이다. 얼마나 제 발 저리길래 애먼 건물에다 그렇게 과시하겠느냐는 것이다. 건축사학자로 이름 높은 저자는 이 욕망이 어디에서 근원하는지, 인문학적으로 추적한다. 2만 2000원. ●철학자의 서재2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알렙 펴냄) 1989년 아카데미즘에 빠지지 않은, 철학의 대중화를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만든 철학사상연구회 회원들이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언급한 책이다. 이번에는 47명의 책이 등장한다. 1만 7000원.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 (한정숙 엮음, 한길사 펴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에서 주디스 버틀러에 이르기까지 10명의 페미니즘 이론가와 그의 저서에 대한 설명을 묶은 책이다. 최근 주목받는 관계론적 여성주의, 포스트페미니즘 담론을 담았다. 2만 2000원.
  • [열린세상] 사랑도 학습이다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열린세상] 사랑도 학습이다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방송작가 김수현의 최근 드라마들은 인간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과 마음을 서서히, 그러나 크게 바꿔놓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 마친 ‘천일의 약속’은 치매에 걸린 수애를 끝까지 헌신적으로 사랑해준 김래원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지만, 진짜 메시지는 고통스러운 사랑을 선택한 아들을 이해하고 또 사랑하려고 애쓰는 엄마 김혜숙의 마음을 통해 말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 정도로 사랑을 이해하고 또 서로 사랑했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와 의식의 흐름 속에서 전혀 강요 없이 자연스럽게 드라마 속에 녹여내고 있다. 바로 이전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우리 사회의 터부와 몰이해의 대상인 동성애 문제를 가족 이야기 속에서 따뜻한 이해와 사랑으로 감쌌다. 또 2008년의 ‘엄마가 뿔났다’에서는 중년 여성의 심리 문제를 그냥 나이든 여자의 히스테리가 아니라, 가족과 사회가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배려해야 하는 중요한 그 무엇이라는 메시지를 굳이 페미니즘을 들먹이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얘기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경쟁과 효율의 가치에 매몰된 우리 사회에서 사랑은 무엇이고,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성찰하고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김수현의 최근 작품과 같은 좋은 드라마 말고는 그리 마땅치 않다. 좋은 책들과 좋은 영화, KBS의 ‘아침마당’과 같은 교양 프로그램 정도랄까. 이해와 헌신의 사랑을 터득하는 법을 생각하고 배울 수 있는 영역은 애당초 많지도 않고 그나마 더욱 줄어들고 있다. 많은 드라마와 영화, 예능 프로, 인터넷 포털의 연예와 연애 기사들은 지치고 권태에 빠진 사람들을 욕망의 대상으로서 사랑을 가지고 놀 수 있게 할 뿐이다. 이상하리만치 우리 사회의 학교에서는 민주주의를 가르치지도 않지만 사랑도 가르치지 않는다. 시험 잘 보는 법과 취업 잘하는 법만을 가르친다. 학교 교육의 붕괴는 근본적으로는 학교에서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와 사랑이 결핍된 채 경쟁과 시험 스트레스에 시달린 어린 학생들은 이제 만연한 폭력과 왕따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 여기다 대고 왕따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사회는 사랑 대신 처벌이라는 또 다른 폭력을 가하려 한다.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대부분 사랑하는 법을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운다. 그래서 남녀 간의 사랑은 이해와 헌신의 단계에 이르기 전에 욕망과 애정의 본능 단계에서 불필요한 갈등과 파열을 겪으며 생채기를 내고, 때로는 불행한 범죄행위로 이어지기도 한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를 하고,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혹 이별을 해야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사전에 학습하는 법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실 영문도 모른 채 나이가 차면 결혼하고 애 낳고 산다. 성장 배경이 다른 남녀가 같이 살면서 가족을 이루는 혼인생활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부부 사랑을 영위해야 하는지, 자식 사랑은 어떻게 지혜롭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학습이나 성찰의 기회를 갖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많은 경우 부부 간에, 부모 자식 간에 티격태격 불협화음을 내면서 살아가고 그 과정에서 받은 상처 더미들을 가슴속에 묻고 살거나, 또는 소중한 사랑의 시간과 기회가 흘러간 뒤 후회를 한다. 최근 일부 종교, 사회단체들이 여는 아버지학교나 부부 사랑 프로그램이 참가자들에게 사랑의 깨달음을 주고 있다. 사랑 프로그램의 핵심은 사랑의 언어 배우기이다. 내가 사랑을 받을 때 느끼는 고유의 언어가 있듯이 내가 사랑하는 상대방도 그만의 고유한 사랑의 언어가 있다는 것이다. 사랑은 결국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의 언어를 이해하려 하고, 그의 언어에 맞춰 내 언행을 실천할 때 이뤄진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자녀에게 용돈 듬뿍 주고 공부하라고 다그친다고 해서 사랑이 이뤄지지 않는다. 인정하고 존경하는 말을 들을 때 사랑을 느끼는 배우자에게 명품 선물을 백날 해봤자 사랑은 물거품이다. 사랑은 그래서 경청과 성찰, 소통의 학습 과정이다.
  •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중학생 일진회에 ‘울고’…한국의 아름다움에 ‘웃고’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중학생 일진회에 ‘울고’…한국의 아름다움에 ‘웃고’

    흑룡의 새해가 밝았는데, 첫 주 네티즌 입에 오르내린 일들은 하나같이 어수선하다. 아름다운 소식은 10위 ‘우주에서 본 한국’이 유일하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우주정거장에서 찍은 영상이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공개됐다. 각국의 풍경이 담겨 있는데 한국이 가장 아름답다는 찬사가 줄을 이었다. 1위는 ‘중학생 일진회 검거’가 올랐다. 집단괴롭힘이 하루이틀된 문제는 아니지만, 요즘엔 도를 넘어선 듯하다. 지난 4일 경기 여주경찰서는 중학교 일진회 22명을 붙잡아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은 후배들을 상습적으로 두들겨 패거나 돈을 빼앗고, 가출 여중생을 성폭행하기도 했다. 보복이 무서워 어느 누구도 입을 떼지 못했다고 한다. 노태우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에 이어 ‘일진회와의 전쟁’이 20여년만에 선포된 셈인데 중학생이 조직폭력배 대우를 받는 세태가 암울하다. 2위는 ‘여성가족부 명칭 가처분’이다. 남녀를 포괄하는 게 가족인데 지금 여가부는 여성만 대변하니 가족이란 이름과 관련 업무를 보건복지부로 넘기라는게 반페미니즘 단체 ‘남성연대’의 주장이다. ‘타진요 활동재개’는 4위를 차지했다. 타진요는 인터넷 카페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의 준말로 가수 타블로의 학력위조 의혹을 제기하며 크게 화제를 모았으나 근거 없는 의혹 제기로 결국 처벌받았다. 이번엔 운영자가 자신의 신상을 완전 공개한 뒤 추가 의혹 제기에 나섰다. 3위는 ‘대전 폭발음’이다. 지난 4일 대전 서구 하늘에서 ‘쾅’하는 소리가 났는데 전투기가 초음속 비행할 때 나는 소리로 밝혀졌다. 공군은 부인하다 뒤늦게 시인했다. 5위는 ‘KTX의 역주행’이다. 부산행 열차가 신도림에서 영등포로 되돌아갔는데, 안전조치를 지켰다고 하지만 승객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6위와 9위는 ‘고승덕 돈봉투 폭로’와 ‘한국판 버핏세’였다. ‘고승덕 돈봉투 폭로’는 친이계 전직 당 대표가 전당대회 때 300만원을 돌렸다는 고승덕 의원의 폭로를 말한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른 정치적 이해득실이 관심이다. ‘한국판 버핏세’는 감세(減稅)정책을 내세웠던 현 정부의 정책이 뒤집혔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그러나 제대로 된 증세(增稅)가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7위와 8위는 ‘북한 군사력’과 ‘북한 경수로 폭발 루머’가 차지했다. ‘북한 군사력’은 북한 군사력이 남한을 압도한다는 한국경제연구원의 보고서 내용이다. 8위는 ‘북한 경수로 폭발 루머’다. 전문가들은 가능성이 없다고 보는 가운데, 금융당국은 주가조작 가능성을 추적하고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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