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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라하서 마주친 그녀의 행적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프랑스 여성작가 실비 제르맹의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문학동네)는 독특하다 못해 기이한 소설이다. 아니, 이걸 소설이라고 불러야 할지조차 가늠하기 힘들다. 책을 우리말로 옮긴 김화영 고려대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이야기를 가진 긴 산문시’쯤 되겠다.어쨌든 상관없다. 무엇이 됐든 이 책이 지닌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다 설명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 여자가 책 속으로 들어왔다. 그 여자는 떠돌이가 빈집으로, 버려진 정원으로 들어서듯 책의 페이지 속으로 들어왔다.…그녀의 발자국마다 잉크 맛이 솟아났다.’(13쪽) 책의 서두는 이렇듯 수수께끼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뒤이어 어느 가을 날, 프라하 구시가에서 불현듯 마주친 ‘그 여자’의 행적을 차근차근 기록해 나간다.여자는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크고, 눈에 띄게 다리를 전다. 하지만 투명인간처럼 어느 곳이든 자유자재로 통과한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엔 바람이 일고, 아주 나직한 수런거림이 들린다. 그녀의 울음소리다. 실비 제르맹은 소르본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1981년부터 콩트와 중편들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때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선정위원이자 저명한 소설가인 로제 그르니에의 눈에 띄었다.1984년 발표한 처녀작 ‘밤의 책’은 독자와 평단의 호평을 얻었고,1989년 ‘분노의 나날들’로 페미나상을 수상했다. 수년간 프라하에 거주하며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던 실비 제르맹의 이력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여자는 살과 피로 만들어진 실제 인물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눈물과 기억으로 만들어진 철학적 존재다. 여자는 어두운 역사의 자취가 찍힌 프라하의 거리와 모퉁이들을 돌며 역사에 짓밟힌 사람들을 대신해 울어준다. 책속으로 들어온 여자는 책밖으로 사라진다.‘그 여자는 책에서 밖으로 나갔다. 이제 그녀를 위한 페이지는 없다.잉크는 지워져 투명해진다. 그러나 그 여자, 프라하의 거리에서, 이 세상의 모든 길에서 울고다니는 여자가 여기 있다. 그 여자가 여기 있다.’(149쪽) 8500원.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여담여담] 女자를 떼어내자!/김미경 문화부 기자

    여기자·여변호사·여의사·여배우…. 여러 직업 앞에 여성을 뜻하는 ‘녀(女)’자가 붙은 것 뿐인데 고정관념은 별 수 없나 보다. 여기자는 용감무쌍하고 여변호사·여의사는 기가 세며 여배우는 예쁘고 섹시하다는 고정관념들. 여기자로 살아온 지 8년째이지만 주변의 이같은 고정관념을 별로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나를 발견한다. ‘여성’이라는 타이틀은 언론의 가장 좋은 이야깃거리다. 남성도 견디기 힘들다는 육사와 해사, 공사에 이어 경찰대까지 여성이 수석졸업했다는 기사가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사법고시 등에서 여성이 수석을 차지한 것은 벌써 꽤 된 얘기이지만 아직도 뉴스가 된다. 여성들만 모여 회사나 사무소를 차린 것도 여전히 흥미롭다. 그들에게는 ‘겁 없는 여성’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최근 만난 경찰대 졸업생 친구에게 물었다.“너희 학교도 여성이 수석졸업하는 시대가 왔구나?”그랬더니 돌아오는 답이 이랬다.“남학생들은 공부 말고도 할 것이 많은데 여학생들은 공부 외에는 할 일이 없거든.”너무나 당연한 현상을 언론에서 대서특필한다며, 기자인 친구를 나무라기까지 했다. 경찰대를 수석졸업한 여학생은 우락부락한 슈퍼우먼이 아니라, 남보다 공부를 열심히 한 보통학생일 뿐이라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된 ‘여기자 성추행 사건’ 이후 언론계 안팎이 시끄럽다. 같은 여자, 그리고 기자 입장에서 볼 때 당연히 밝힐 것을 밝힌 것인데도 “주변에서 말렸다는데 여기자가 너무 드세서 일을 크게 만들었다.”는 말까지 들린다. 당연한 인권이 드센 여기자라는 고정관념에 묻혀야 한단 말인가. 지난해 영어연수에서 만났던 대기업 과장과 벌였던 논쟁을 아직도 기억한다.20여가지 직업을 늘어놓고 남성성과 여성성이 강한 직업을 분류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이들 직업 중 ‘간호사’는 당연히 여성성이 강한 직업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과장은 중성적인 직업으로 분류했다. 특정 병동에서는 남성 간호사가 필요하고 남성 간호사도 늘어나고 있는데 여성적인 직업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때는 궤변이라고 생각했지만 간호사는 여성이어야 한다는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됐다. 페미니스트저널 ‘이프’가 9년만에 독자 감소 등에 따른 경영난으로 최근 종간했다. 다소 과격하지만 여성의 목소리를 내왔던 잡지의 최종호를 보면서, 아쉬움보다는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여성을 대변해온 잡지의 종말을 통해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녀(女)’의 꼬리표를 과감히 떼어내자. 김미경 문화부 기자 chaplin7@seoul.co.kr
  • “잘나가는 여성이 페미니즘 죽인다”

    젊고, 성공한, 돈 잘 버는 엘리트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파괴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일요판 신문인 옵서버는 런던 대학 킹스 칼리지의 알리슨 울프 교수가 쓴 ‘자매애의 종말’이란 논문이 여성계의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울프 교수는 “고학력·고소득 여성들이 교육, 자원봉사처럼 남을 돌보는 직업을 거부하면서 ‘여성적 이타주의’가 사라지고, 결국 페미니즘을 죽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여성의 소득 수준이 아이를 갖지 않으면 남성과 비슷해지면서 가정을 포기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밝혔다. 그녀의 주장은 공감과 반감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는데, 많은 여성들은 경력을 쌓거나 모성애에 집중하는 것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호소한다. 전형적인 엘리트 여성인 카이아라 카르넬(26)은 런던의 한 투자 은행에서 주 70시간 이상 일하며, 연봉 8만파운드(1억 3600만원)를 받는다. 그녀는 “엘리트 여성은 자식을 희생하거나 경력을 희생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강요당한다.”고 말했다. 카르넬은 “여성은 1년, 남성은 2주의 출산 휴가를 받는데 이는 여성이 집안에 1년 내내 머물러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실제로 4개월 출산 휴가가 가능한 미국 여성이 관리직까지 진출한 비율은 45%인 반면, 출산 휴가를 1년 가는 유럽 여성은 32%에 그쳤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노벨상 골딩·옐리네크 화제작 나란히 출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두 작가의 화제작이 나란히 번역돼 나왔다.‘파리대왕’으로 1983년 세계 문학 최고의 권위를 안은 영국 작가 윌리엄 골딩(1911∼1993)의 ‘첨탑’(신창용 옮김, 삼우반 펴냄)과 2004년 급진적 페미니즘으로 찬반 양론을 불러일으킨 오스트리아 여성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60)의 ‘욕망’(정민영 옮김, 문학사상사). 특히 이 두 소설은 명성에 비해 국내에 덜 알려진 작가의 대표작들이란 점에서 그들의 작품세계를 폭넓게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첨탑’ ‘파리대왕’이후 국내 처음 소개되는 윌리엄 골딩의 작품이다.‘파리대왕’에서 무인도에 고립돼 야만적인 상태로 되돌아가는 소년들을 통해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우화적으로 묘사한 작가는 이 작품에서도 인간 내면의 다양한 모습들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키는 독특한 구성과 문체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1963년 발표된 ‘첨탑’은 중세 시대 영국 솔즈베리 대성당의 주임신부 조슬린이 첨탑을 세우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조슬린은 주위의 반대와 재정적, 기술적 난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첨탑의 건설을 지휘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첨탑의 건설 과정을 통해 작가는 이성과 비이성, 과학과 종교적 세계의 대립과 갈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줄거리 자체는 간단하지만 인물 캐릭터와 서술 구조 곳곳에 복잡한 상징체계가 숨어 있어 단번에 사실 관계와 의미를 간파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소설의 재미를 충분히 만끽하려면 재독, 삼독의 수고를 기울여야 하는 까다로운 작품이다.9000원.●‘욕망’ 2004년 스웨덴 한림원의 결정은 이변이었다.‘좌파 포르노 작가’라는 비난과 ‘탁월한 언어유희’라는 찬사를 동시에 받고 있는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었다. 영화 ‘피아노 치는 여자’의 원작자로 널리 알려진 그녀가 1989년 발표한 ‘욕망’은 노골적인 성 묘사로 발간되자마자 외설시비에 휘말린 화제작이다. 소설은 오스트리아 알프스 계곡의 종이공장을 무대로 공장장 헤르만의 가정에서 6일간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 에이즈에 대한 불안으로 창녀촌에 발길을 끊고 아내를 성적으로 학대하는 헤르만, 그런 남편이 싫어 집을 떠나지만 호감을 품었던 금발의 미청년 미하엘에게 겁탈당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게르티는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일그러진 권력구조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병애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일견 포르노를 방불케 할 정도로 난잡한 성관계를 묘사하고 있는 듯 보이나 사실은 반어적으로 ‘사랑과 성’에 대한 순수한 상태에 대한 향수를 일깨우는 작품”이라고 평했다.9500원.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여성들이 본 세상 ‘스크린’ 에 펼친다

    여성의 시력으로 바라본 세상이 스크린에서 푸지게 펼쳐진다. 새달 6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신촌 아트레온에서 막오르는 제8회 서울여성영화제. 올해는 세계 33개국 97편의 영화를 선보인다. 개막작은 다큐멘터리 ‘법조계의 자매들’(감독 킴 론지노트).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피해 여성들과 법조계 여성의 연대를 그린 드라마이다. 올해 행사는 크게 7개 부문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메인섹션은 ‘새로운 물결’. 아시아 특별전을 올해 따로 열지 않는 대신 이 부문에서 아시아계 영화를 많이 소개한다.‘잠복’(박찬옥),‘육다골대녀’(이애림) 등 국내 여성감독의 신작들을 비롯해 ‘파니 핑크’로 알려진 도리스 되리 감독의 ‘내 남자의 유통기한’, 샹탈 애커만의 ‘저 아래’ 등 해외신작이 준비됐다. ‘아프리카 특별전’에는 국내에선 거의 접할 수 없는 아프리카 여성의 삶이 담긴 영화들이 나온다.1960년대 후반 이후 세네갈, 부르키나파소, 나이지리아, 가나, 남아프리카공화국, 튀니지 등에서 제작된 영화를 볼 수 있는 아주 드문 기회이다. 여성영화의 미래를 점칠 수 있는 경쟁섹션은 ‘아시아 단편 경선’.7개국 20여편의 단편을 만날 수 있다.229편의 지원작들 가운데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이다. 여성의 시각으로 정치·사회적 현안을 성찰해보는 작품은 ‘여성영상공동체’ 섹션에서 만날 수 있다. 이밖에 ‘안토니아스 라인’으로 알려진 마를린 호리스의 대표작 4편이 상영되는 ‘감독특별전’,1960년부터 80년대 초반까지 해외 페미니스트 운동사의 단면을 다큐멘터리로 만나는 ‘페미니즘 다큐멘터리의 선구자들’ 등의 부문도 챙겨봄직하다.www.wffis.or.kr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독신의 탄생/엘리자베스 애보트 글

    “난 독신주의자”라는 말은 여전히 부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지 모른다. 독신에 대해 8년간 연구한 끝에 ‘독신의 탄생’(이희재 옮김, 해냄 펴냄)이라는 책을 펴낸 작가 엘리자베스 애보트에게도 독신은 자연스럽지 못했다. 그렇게 ‘독신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한’ 저자는 연구를 하면서 독신에 대한 선입견과 단순한 정의가 얼마나 협소한 것인지 절감했다고 고백한다. 유구한 역사 동안 세계 어느 곳에서나 독신은 인간생활의 핵심적 요소였으며, 문화와 종교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독신이라는 현실을 이끌어간 집단과 개인을 끈질기게 추적, 독신이 종교적 필요에 의해 지속됐다는 지금까지의 통념을 산산조각 낸다. 세계 곳곳에 존재했던 남녀 독신자들을 탐구함으로써 종교적 관습은 물론, 성욕과 성역할, 보건의식의 변화에 대한 깊은 통찰을 시도한다.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3000년의 역사를 내려오는 동안 성적 절제를 의미하는 금욕현상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제단의 불을 지켰던 로마의 처녀들은 독신의 서약을 어기면 산 채로 땅에 묻혀야 했다. 감옥에 갇힌 죄수나 궁전의 내시는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독신으로 살아갔다. 또 오페라의 명가수가 되기 위해 거세한 카스트라토 소년이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그리면서 금욕을 선택한 수녀들도 있었다. 강제로 음핵 절제수술을 받았던 아프리카 여성들, 사회운동을 위해 독신을 주장한 페미니스트들, 경기에서의 승리를 위해 정액을 아끼는 운동선수들까지 독신자의 삶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역사적 위인 중에도 독신의 길을 택한 사람이 적지 않다. 잔다르크, 엘리자베스 1세, 나이팅게일 등은 모두 독신이었다. 마하트마 간디는 자신의 절제력을 실험하기 위해 처녀들과 알몸으로 한방에서 잤다. 또 독신과 금욕이 조금이라도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개인의 욕망과 맞닿은 인물들도 있다. 레프 톨스토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이작 뉴턴, 루이스 캐럴 등은 동성애와 배신, 사회제도의 극복 등을 위해 자발적으로 독신을 택했다. 이와 함께 중세 수녀들 중에는 속세와 달리 교육을 받고 여행도 다니며 평등한 권리를 누리는 생활에 끌려 수녀원에 들어간 사람도 적지 않았다.19세기 후반 영국사회에서도 중산층 젊은 여성들은 재산권에서 투표권에 이르기까지 여성을 옥죄는 남성 중심의 사회 규범에 반감을 느끼고 대거 독신을 선택했다. 저자는 각자의 필요와 동기에 따라 독신과 금욕을 선호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스스로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아득히 먼 과거에서부터 현재, 미래에 이르기까지 인류에 큰 영향을 미칠 성 정체성을 뒤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책.3만원.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책꽂이]

    ●햇빛 찬란한 나날(조선희 지음, 실천문학사 펴냄) 오랜 기자 생활을 접고 6년 전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저자가 장편소설 ‘열정과 불안’, 에세이집에 이어 내놓은 첫번째 소설집. 묵직한 주제의식을 날렵한 문체로 풀어낸 단편 11편이 실렸다.9800원. ●문학의 목소리(김치수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문학과지성’을 창단한 이른바 ‘4K’의 멤버로 지난달 이화여대 불문과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한 저자의 평론집.19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학의 흐름을 꼼꼼하게 진단했다.1만 5000원.●지옥처럼 낯선(하종오 지음, 랜덤하우스중앙 펴냄)2004년 출간한 ‘반대쪽 천국’과 짝을 이루는 시집으로 지옥처럼 낯설지만 때론 천국처럼 익숙한 우리네 삶을 담담한 목소리로 진솔하게 그려냈다. 자본주의적인 삶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마케팅 에피소드’연작이 눈길을 끈다.6000원.●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정호승 지음, 비채 펴냄)저자가 시작노트에 적어놓은 67개의 보약같은 말들을 책으로 묶었다.‘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신은 우리가 견딜 수 있을 정도의 고통만 허락하신다’ 등 개인적 체험에서 우러난 짧은 글들을 통해 삶의 희망을 전한다.1만 500원.●아쿠아마린(캐럴 앤셔 지음, 양은주 옮김, 민음in펴냄)올림픽에 출전한 동성 라이벌선수 마티에게 사랑을 느낀 17세 소녀 제시.20년 후 순종적인 가정주부,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 가난한 이혼녀라는 세가지 길을 걷는 제시의 모습을 통해 동성애 문제와 페미니즘을 동시에 보여준다.1만원.●도선비기(박혜강 지음, 이룸 펴냄)의상, 원효와 더불어 3대 고승으로 꼽히는 선승이자 풍수지리학의 대가인 도선국사의 일대기. 저자는 5년 전 운주사 천불천탑의 전설과 신비를 그린 대하소설 ‘운주’를 펴낸 바 있다.9000원.
  • [Form나게 Beauty나게] 올봄 여성패션트렌드 ‘레이스·시폰’

    [Form나게 Beauty나게] 올봄 여성패션트렌드 ‘레이스·시폰’

    흔히 여자를 세 분류로 나눈다. 예쁜 여자, 귀여운 여자, 그리고 착한 여자. 최고의 여인상 이라면 이쁘고 깜찍한 애교에 착하기까지 한 여자였다. 그런 여자가 되고 싶어 ‘착한 여자 신드롬’의 추종자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어떤 여자일까. 이미 사회에서 한 몫 하는 여성들은 ‘나쁜 여자’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회 악이 아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목소리를 높일 줄 아는 당당한 여자인 것이다. 끓는 속을 부여잡고 ‘예스(yes)’라고 외치는 순종형 여자보다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 중심에 ‘자신’을 두었기 때문이다. 난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가장 이기적인 단어인 ‘쿨(cool)한’ 여자이기보다는 나를 사랑하는 ‘나쁜 여자’가 되고 싶을 뿐이다. 사진:봄바람이 불 즈음 거리의 쇼윈도는 레이스와 시폰 소재가 채울 것이다. 올 봄의 패션 트렌드는 살랑 부는 바람에 나풀거리는 초원 위의 여인이라고 한다. 자연스럽고 단정하게 떨어지는 스타일이 올 봄을 메울 전망이다. 봄의 유행색상인 화이트와 열대의 오렌지 색상으로 코디해보자. 레이스 블라우스와 상큼한 시폰 스커트로 여성스럽게 연출한다. 구슬, 리본 벨트 등으로 마무리하면 귀여움을 더한다. 트렌치코트는 환절기에 딱 좋은 패션 아이템이다. 도시의 커리어우먼 스타일과 귀여운 스타일로 크게 나뉜다. 모두 살 수 없다면 자신의 옷장을 한번 열어보고 어떤 스타일이 많은지 생각한 뒤 트렌치코트를 선택한다. 진주나 나비를 모티브로 한 귀고리, 풍성한 목걸이로 포인트를 주면 더욱 멋스럽다. ■ 도움말:스타일컨설턴트 이혜숙(elvira85@naver.com) <의상 및 액세서리 협찬:명동 코즈니 3층 파라디소·셀바폰테>
  • 스페인 남녀 임금차별 금지 추진

    스페인 남녀 임금차별 금지 추진

    스페인 사회당 정부가 임금, 승진, 복지 등에 있어 직장내 성차별을 금지한 ‘평등법´을 4일(현지시간) 발의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5일 250명 이상 사업장에서 성차별을 금지한 이 법이 스페인의 남성 특권을 해체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남성보다 많은 숫자의 스페인 여성이 대학을 졸업하지만, 여성이 직장에서 받는 임금은 남성보다 20% 적다. 여성 실업률은 11.6%로 남성보다 2배 높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저임금과 단기 고용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는 스페인어로 ‘콘트라토스 바수라(쓰레기 계약)´라고 불린다.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는 남성이지만 2004년 정권을 장악한 이후 8명의 남성장관과 8명의 여성장관을 임명했다. 새로 발의된 ‘평등법´에 따르면 정부 기관과 정당도 성평등을 준수해야 하며,4년뒤 개선 결과를 확인하게 된다. 만약 결과가 목표를 미달하면 제재를 받게된다. 유럽연합(EU)은 스페인 정부의 ‘평등법´을 환영하며, 내년 1월부터 EU내에 성평등기구를 발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U의 블라디미르 스피들라 고용감독관은 “유럽여성 3분의 1이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페인의 기업 연맹은 정부의 결정에 대해 “여성 고용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며 비판했다. 스페인의 35대 대기업 가운데 3분의 2 이상에는 여성 이사가 없다. 상장기업중 단지 6%가 여성 이사를 두고 있는데, 이도 대부분 가족간 주식분배에 의한 것이다. 스페인 주식 시장 감독관은 지난달 새로운 기업 경영 지침을 발표했는데, 이는 기업이 왜 이사진에 여성 숫자가 적은지 설명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 상장기업은 여성 중역의 숫자와 비율을 공개해야만 한다. 새로운 기업 경영 지침을 만든 아나 요피스는 “기업들은 자질을 갖춘 여성 숫자가 부족하다고 항의하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여담여담] 여성시대 과연 왔나/박정경 국제부 기자

    얼마 전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베르나데트(72) 여사가 “여성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해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의 속을 끓게 만든 일이 있다. 야당인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52·여) 의원이 대권을 향해 맹렬히 질주하는 판국에 이를 거드는 듯한 발언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과연 여풍(女風)이 당파를 초월해 대세가 될 것인지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여성 지도자가 우리 사회에 우뚝 서기 위해선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먼저 여성 정치인의 ‘무임 승차’ 논란이다. 프랑스의 퍼스트레이디도 사회당 지지자들이 루아얄에게 ‘편승(easy ride)’을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젊고 매력적인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정치권에서 열렬한 구애를 받는 경우를 종종 본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총선에서 여성들이 넓어진 비례대표 문호 덕에, 또 참신함을 무기로 대거 국회에 입성했다. 선거에서의 경쟁력을 이유로 선뜻 나서길 원치 않는 여성까지 끌어들이려고 안간힘이다. 물론 이것도 여성 투쟁의 결과물이자 여권 향상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밑바닥부터 실력으로 다져 승부하지 않고서 얼마나 오래 갈까. 모래성 같은 이미지 정치로 명망만 부채질하다 버리는 전철을 밟지는 않을까. 일부 대기업도 ‘유리 천장’ 비난을 의식해, 턱없이 부족한 인재 풀에서 억지로 여성 임원을 뽑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자신이 줄곧 실력을 키워온 분야와 무관한 이사직에 발령내 결국 낭패를 보게 하는 경우가 많다. 사다리의 정점에 만족하고 내려오게 되고 마는 것이다. 또 여성의 정책과 비전을 보지 않고 ‘성(性)’에만 매달리는 것이 옳은 건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일찍이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계급과 성 정체성은 큰 딜레마였다. 다행히 오늘날 굳이 ‘여성당’이 필요 없을 정도로 페미니즘은 보편적 가치가 되었다. 당파성과 성 정체성을 놓고 고민하는 유권자가 있다면 기자는 당파성을 권하고 싶다. 어느 당에 있건 여성은 똘똘 뭉쳐야 할 때 그럴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또 훌륭한 여성에게 이미 시대는 활짝 열려 있기도 하다. 여성이여 희망을 갖자. 박정경 국제부 기자 olive@seoul.co.kr
  • 여성과 미술/주디 시카고 등 지음

    여성과 미술/주디 시카고 등 지음

    미국의 페미니스트 작가 그룹 ‘게릴라 걸스’에 의하면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현대미술실에 전시된 작가 중 여성은 5%도 안 되지만, 걸려 있는 누드 작품의 85%는 여자라고 한다. 이렇듯 오늘날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는 남성 화가들의 단골 소재는 단연 여성, 그 중에서도 벌거벗은 여성이다. 그러나 정작 여성을 다룬 여성 화가들의 작품은 제대로 볼 수가 없으니, 우리는 남성의 그림에 의존해 여성을 읽고 이해하고 있는 셈이다.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진정 없는 것일까. ‘여성과 미술’(박상미 옮김, 아트북스 펴냄)은 이같은 미술계의 남성패권주의에 단호히 반기를 든다. 저자는 여성미술교육 분야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미국의 페미니스트 미술가 주디 시카고와 ‘남자를 보는 시선의 역사’ 등의 저서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자메이카 태생 미술사가 에드워드 루시­스미스. 이들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위대한 여성 미술가들은 많다. 아무도 그들을 위대하다고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불후의 고전으로 읽히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도 여성 미술가의 이름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미술사 책들은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미술을 다뤄왔다. 이 책은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주변부로 밀려난 위대한 여성 미술가들의 성취를 재조명함으로써 미술사의 온전한 복원을 꾀한다. 구석기 시대의 빌렌도르프 비너스부터 신디 셔먼의 분장 사진에 이르기까지 3000년 서양미술 속에 감춰진 여성의 실체를 밝힌다. 먼저 남성 미술가들이 여성을 어떻게 왜곡해왔는가를 짚어보고 그들이 갖는 위상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를 따진다. 롤리타를 연상시키는 조숙한 소녀, 지나치게 이상화한 미의 상징, 무시무시한 노파…. 이처럼 남성의 시선에 잡힌 여성상만 난무할 뿐, 여성화가의 눈으로 그린 참다운 여성의 삶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미술작품 속 여성을 분석하기 위해 여신, 여성 영웅, 누드 등 다양한 코드를 동원한다. 여성운동이 거둔 가장 큰 결실 가운데 하나는 여성의 신성과 여신숭배 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여신은 저자인 주디 시카고의 말대로 “여성의 힘과 강인함을 증명하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역사 그 자체”다. 이 책에서는 고대 미노스의 뱀 여신과 빌렌도르프 비너스, 그리고 퍼포먼스 예술가 캐롤리 쉬니만 같은 현대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여신이 갖는 다양한 의미와 상징을 살펴본다. 미술 작품 속 여성 영웅의 이미지는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서양미술에서 여성은 은유적이거나 추상적인 개념으로 처리될 뿐, 강한 개성을 지닌 영웅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성녀 테레사, 잔 다르크, 유디트 등 뛰어난 여성 영웅들도 남성 화가들의 작품에선 진정한 인간성을 상실한 채 단순한 사물로 전락하고 만다. 성녀의 이미지로 우리에게 익숙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황홀경’에 빠져 있는 모습이다. 책에는 로마의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에 있는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의 작품 ‘성녀 테레사의 황홀경’ 이야기가 나온다. 천사가 성녀의 심장에 성령의 사랑의 화살을 꽂는 장면을 묘사한 이 조각상은 사뭇 충격적이다. 조각 자체가 강한 성적 뉘앙스를 풍길 뿐 아니라 작품 속 성녀는 마치 오르가슴에 빠진 듯한 모습의 성적 존재로 묘사된다. 교회 개혁자로서의 성 테레사의 면모나 금욕적인 삶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다. 서양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용사 잔 다르크 또한 그리 이상화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앵그르의 작품 ‘잔 다르크’(1854)를 보면 주인공은 어쩐지 수동적인 모습이다. 어떤 행동을 보여주기 보다는 상징적인 역할을 드러내는 데 그친다. 책은 거울 속 여성 이미지에 대해서도 비중있게 다룬다. 거울은 흔히 여성의 자기애(自己愛)를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남성 화가들은 왜 그토록 ‘거울 보는 여자’ 이미지에 집착할까. 여자는 누구를 위해 거울을 보고 있는 것일까. 거울이 등장하는 루벤스의 ‘화장하는 비너스’와 쇠라의 ‘화장하는 젊은 여인’ 같은 작품은 여성이 수동적인 소유의 대상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남성미술가들의 작품과 달리 여성작가들의 작품에서 거울은 능동적인 의미를 띤다. 연극적인 포즈의 자화상을 담은 신디 셔먼의 ‘무제’(1997)가 그 생생한 예다. 책은 유색인종과 레즈비언 미술가들의 자기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마지막 장에서는 재미 한인 작가 민용순의 사진 작업 ‘나를 만들어봐’도 소개돼 눈길을 끈다. 잃어버린 미술사의 반쪽을 균형잡힌 시각으로 복원해놓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적극적으로 평가할 만하다.3만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여성(女性) 도와 천당가겠네

    여성(女性) 도와 천당가겠네

    성하(盛夏)를 맞은 한 남성이 내건「캐치·프레이즈」가『찌는 여름입니다. 피곤하시죠, 여성 여러분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이「수퍼·페미니스트」는 무엇을 어떻게 도와준다는 것일까. 궁금하다. 알고보니 7월 1일부터 시작한「허니문·센터」의 신종(新種)사업「캐치·프레이즈」. 그리고 그 남성은 대표 김현(金炫)씨. 『저는 애처가로 자처하지만 워낙 우리 집안은 공처가 3代를 지내 오고 있읍니다』 소박하게 웃는 안경 너머의 안광(眼光)이 아니었던들 둥글한 동안(童顔)은 나이를 가름하기 힘든 생김이다. 31세-작달만한 키의 젊은 사장이다. 지리한 여름 하오 탁자위에 벌여놓은 낙서지를 흘끗보니『대한민국 제일의 부자(富者)가 되어…』『돈은 벌면서도 만인에게「서비스」하게 되니 돈벌고 천당 가고…』. 7월1일부터 여성을 위한 본격적인「서비스」에 나설 완전 채비를 끝내 놓고 잠깐 한가한 틈을타 낙서를 끄적이던 참이다. 『여성을 지치게 하는 것은 남성들의 책임입니다. 그들을 늘 아름다운 채 두기 위해 그들의 힘든 일을 대행하려는거죠』 어느집 맏며느리는 시부모 회갑연(回甲宴)을 맞아 장소 물색에서 헌주(獻酒)를 하고 놀아줄 기생을 부르는 일까지 도맡아 동분서주하다가 잔치가 끝나면 며칠 앓아누울 마련까지 해가며 애를 쓴다. 잔치가 끝나면 뭐가 빠졌다느니 뭐는 결례(缺禮)였다느니 타박을 받는 것도 며느리다. 이때 며느리는 잠깐 이「센터」에 들러 상담을 하면 그뿐. 일체를 대행해 준단다. 사회자, 국창(國唱), 가수,「밴드」를 지정하는 대로 불러주는 일에서 자가용을 빌려주고 촬영을 해주고, 녹음을 해주는 잔일까지 어떤「파티」건 도맡아 그 분위기까지를 책임지고 이끌어 주는 일에 자신을 갖게 됐고『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다』는 이 기발한「서비스」업의 착상은 우연한 연줄로 모 국영기업체의 이사회를 속리산에서 개최해준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닉슨」각료회의만큼은 호화롭지 않더라도 부부동반으로 명승지 찾아 벌인 이사회의「레벨」은「세단」은 전원 소유하고 있을 정도. 번저 최고의「딜럭스」한「버스」를 빌어 각자앞에 일체의 사무도구와 수건, 머리빗, 거울등을 세밀히 갖춘 간단한 사무용「백」을 놓아두었다. 「팀웍」조성을 위해 전원을 태우고「세단」은 빈차로 뒤따르는 여행에서부터 전원을「위밍·업」시켜 나갔다. 이사회가 진행되는 동안 조명,「백·뮤직」등을 적절하게 조절해오다 끝날때는「핑크·무드」를 조성하는 일까지「성공적인 연출」이었다고 흐뭇해한다. 『사실 5년동안 TV방송국 PD로 있으면서 배운 연출 솜씨 발휘였죠』 분위기에 약한 현대인의 약점을 파고든 연출법이 성공한 셈. 침실로 돌아 가기 직전에「핑크·무드」를 조성했다는 비결을 물었다. 『어느 노신사에게「선생님이 제일 처음 여성을 느낀 나이는 몇살때였읍니까」하고 묻습니다. 앞뒷집 단발머리 소녀, 같은 국민학교 여학생의 기억을 안가진 사람은 드물죠. 금방 노신사는 몇십년을 치올라가 소년인듯 얼굴이 붉어지죠. 그때「옆에 계신 부인을 돌아봐 주십시오」라고 얘기할 뿐이죠』 남성을 위한 모임이었더라도 끝에 가서는 여성 편에 서서 여성을 위하는 모임이 되게 하도록 매사를 매듭짓는다고 했다. 어느 회사의「파티」건 주최자는 집으로가서 그 부인과 한번쯤 의논하게 될 것은 뻔하다. 그렇다면 기막힌 상혼(商魂)에 안놀랄 수가 없다. 『그렇죠, 「서비스」를 파는 장중심으로 벌이는 장사가 잘된다는 것은 뻔하죠. 누구 만큼 돈을 벌 작정입니다』 이「바캉스」철을 맞아 내건 또다른「캐치·프레이즈」가 『여름휴가는 가족과 함께』. 남자들 끼리 가는 여행에 「가이드」를 하거나 「서비스」를 절대 하지 않겠다고 장담도한다. 직원은 전부가 애처가여야 한다는 남다른 경영 방침도 쓰고있다. 전 직원이 도시락을 지참할 것도 솔선 수범하고 있는 사장이다. 도시락을 먹는 한낮의 한때 멀리서 아내의 정성을 음미하도록 하기 위함이란다. 연애 1년만에 결혼한지 1년이 지났지만 김(金)사장은 맞벌이 부인(조동현(趙東賢)·27)을 서울여상 영어교사로 내보내는 것도 경제적 뒷받침을 위해서가 아니라 흐트러지고 「루즈」해지기 쉬운 부인들의 행동에 미리 요(要)경계하기 위해서란다. 이 철저한「페미니스트」가 벌인 여성을 위한 사업이란 신부로서 신경을 써야 할 결혼준비 일체. 부인으로서 남편의 상담에 응할 수 있도록 직장 야유회「가이드」및 주관. 며느리나 부인이 주관할 각종「파티」대행. 그리고「패션·쇼」기획 및 진행이 그것. 여자가 준비해야할 일체를 자신이 애를쓰고 다녀도 못할 정도의 염가알선이 가능한 것은 직매처와 직접 손을 잡고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 외에 부정기적인 비상직원으로 「카메라·맨」, 녹음기술자들을 세사람씩 채용해놓았고 유명한 사회자, 일류 연예인 들과의 쉬운 「컨텍트」가 방송국 출신인 김(金)씨로서는 어렵지 않은일이라는 것. 2만원 짜리 옷한벌 보다는 20원어치 콩나물 값에 애착을 보이는 부인들의 심리를 이용해서 계산서에는 몇십원까지 정확하게 거스름을 붙이고 또 정확하게 거스름하는 계산방법도 쓰고있다. 고대(高大) 국문과 재학시에는 현역 연극인들과 연극을 했고 졸업후에는 KBS-TV, TBC-TV에서 사회교양「프로」PD로 일해오면서 익혀온 기막힌 연출 솜씨가「파티·디렉터」라는 국내 신종 직업에 눈을 돌리게 만든 것. 『한여름 큰일을 치러야하는 여성은 (75)3135로 전화「다이얼」을 돌리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거죠』 [ 선데이서울 69년 7/6 제2권 27호 통권 제41호 ]
  • [문화마당] 미술속의 자화상/신정아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누군가 예술의 역사는 자화상(초상화)의 연속이라고 했다. 예컨대 음악에 있어 바흐의 ‘무반주 첼로소나타’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음악의 성서’로 변함없듯 자화상 또는 초상화 역시 시대가 지나더라도 변치않을 것이다. 얼굴은 영원한 미지수다. 마치 모나리자의 신비의 미소를 알 수 없는 것과도 같다. 거울 덕분에 우리는 다른 사람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날마다 거울을 들여다 보지만 그 안에는 육안으로서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깃들어 있다. 때문에 마음의 눈에 비친 나의 또 다른 얼굴을 찾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르시스처럼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날마다 들여다 보면서도 자기 행위는 비추어 보지 못하고 일생을 마치기도 한다. 물론 자연스럽게 과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미 고칠 수 있는 시효가 지난 다음일 때가 많다. 자신에 대한 궁금증을 자화상으로 잘 표현한 작가로 반 고흐를 들 수 있다. 그의 자화상들을 보면 고흐는 심지어 고갱과 싸우고 홧김에 귀를 자른 뒤에도 그 아픔을 잊어버리고 스스로의 모습을 그렸음을 알 수 있다. 고흐의 초상화 윤곽선에서 볼 수 있는 히스테리와 불안을 보고 심리분석자들은 ‘고흐는 끊임없이 자신의 표정을 분석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렘브란트는 기쁨과 슬픔이 가득한 자화상으로 그의 주변에서 변화하는 것들을 이야기했고, 리처드 와그너는 자신의 사진을 보고 ‘나의 얼굴 표정은 너무나 변화한다.’라며 누군가가 자신이 초상화를 그려주기를 기대했다고 한다, 조각가 로댕, 루소, 그리고 자코메티 등은 모두 어떻게 사람의 표정이 변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흥미를 느끼며 작업을 했다. 표정이 풍부한 초상화의 예로는 20세기 화가 페르디낭 호들러가 사랑하는 발렌티노 고데 다렐의 죽음을 기록한 스케치와 회화를 들 수 있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의 얼굴 표정이 점차 사라져가는 것을 거의 영화와 같은 시퀸스로 남기며 자신의 여인을 떠나 보냈다. 신디 셔먼은 자신을 모델로 미국 여성들의 꿈과 페미니즘을 작품에 구현했으며 척 클로스는 캔버스 위에 자신의 얼굴 사진을 비롯해 친구와 가족의 사진을 점과 선의 격자 모양으로 표현한 거대한 규격의 초상화를 만들었다. 브루스 나우만은 예술가란 자신을 극단적인 나르시시즘적 내러티브로 보여줬고, 빌 비올라는 거울을 사용해 관객을 작품에 참여시킴으로써 관객 스스로 정체성을 느끼게 했다. 게리 힐은 삶의 실존을 사람과 얼굴에 대한 암시로 나타내기 위해 인체를 이용한 조각작업을 했다. 이제 초상화는 더 이상 단순한 초상에 머물지 않는다. 얼굴은 저마다의 경험과 도덕적 스펙트럼, 그리고 경제적인 것에 의해 음영이 바뀐다. 얼굴이 말하는 진정한 ‘뜻’은 얼굴 표정을 만드는 내적·외적인 것들이 용해돼 나타나게 마련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왕관이 쓰여진 인간의 목적없는 얼굴 속에서도 우리는 그들의 허상을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노력으로 과연 진정한 ‘나’의 참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오늘 고민하는 나의 모습을 봤다. 스스로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니 나 아닌 무수한 얼굴들이 마치 퍼져가는 파문처럼 오버랩돼 있음을 느낀다. 나는 나의 모습에서 방황과 자기고민의 모습을 본다. 나는 오늘의 시대극, 그 무대 위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때로는 눈물짓고 때로는 기도하기도 한다. 나의 모습을 저만치 떨어진 거리에서 뭇관객들과 함께 발견하기도 한다. 나의 왜소한 몸뚱어리는 혹시 이들과 함께 시대극을 관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정아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이라크엔 총성만 가득한 것일까

    이라크엔 총성만 가득한 것일까

    #이라크에는 귀를 찢을 듯한 총성과 포성만 가득한 것일까? 사담 후세인 독재가 끝난 이후 2004년 봄 150여개의 디지털 비디오카메라가 이라크 사람들에게 배포됐다. 그들은 길거리에서, 집에서, 사무실에서 24년 동안 굳게 닫혔던 입을 열어 자신들의 목소리를 카메라에 담았다. 후세인에서부터 다국적군의 침략, 미군 주둔, 여성의 권리, 미래에 대한 희망 등에 이르기까지 솔직한 이야기가 하나의 다큐멘터리로 모였다. 이라크 국민들이 출연하고 감독한 ‘이라크의 목소리’(2004·80분)이다. #미국엔 이미 70년 대에 여성 대통령 후보가 있었다. 게다가 흑인이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의원이자 페미니스트, 민권 운동가였던 셜리 치솜이 197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도전했다. 주류 역사에 반기를 든 셈이다. 치솜은 당시 “흑인인 것이, 여성인 것이 자랑스럽지만 흑인과 여성의 후보로 이 자리에 선 것은 아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외쳤다.12명의 백인 남성들과 맞붙은 경선 결과는 리처드 닉슨의 승리였다. 숄라 린치가 감독한 ‘72년 미 대통령 후보, 흑인 여성 치솜’(2004·77분)이다. EBS가 새해를 맞아 다큐멘터리 마니아들에게 좋은 선물을 마련했다. 지난해 ‘제2회 EBS 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 출품된 94편의 작품 가운데 8편을 엄선, 앙코르 방송한다.4일부터 8주 동안 매주 수요일 밤 12시에 안방을 찾는다. 가상의 하이퍼마켓 광고로 체코의 소비주의를 신랄하게 꼬집은 ‘체코드림’(2003·87분)이 4일 첫 테이프를 끊는다.‘이라크의 목소리’(11일)와 ‘72년 미대통령후보, 흑인여성 치솜’(18일)이 바통을 잇는다. 이브라임 페레, 콤파이 세군도, 루벤 곤잘레스, 오마라 포르투온도 등 쿠바 최고의 연주자로 군림했던 노장 멤버들이 모여 음반을 만드는 과정을 담은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1999·105분)이 25일 전파를 탄다. 새달 1일에는 데뷔작 ‘400번의 구타’ 등으로 프랑스 누벨바그 대표가 된 ‘프랑수아 트뤼포의 삶’(2004·78분)이 방송된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놓여진 장벽을 조명하는 ‘벽’(2004·95분·8일)과 뇌졸중을 일으킨 남편이 회복되가는 과정을 아내가 카메라에 담은 ‘끝나지 않는 선율’(2004·111분·15일)이 뒤를 잇는다. 1976년 밥 딜런, 에릭 클랩튼, 닐 다이아몬드 등 세계적인 뮤지션이 함께 했던 록그룹 ‘더 밴드’의 마지막 공연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영상으로 옮긴 ‘마지막 왈츠’(1978·115분)가 22일 방영된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중심잃은 신문’ 주장·설 따라 오락가락

    ‘중심잃은 신문’ 주장·설 따라 오락가락

    신문사가 PD저널리즘과 인터넷 언론에 패했다? 황우석 파문에 대해서만은 이런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 같다.‘체계적인 취재 훈련 없이 선정성에 물들었다.’고 무시당해온 PD저널리즘과 인터넷 언론이 신문을 눌러버린 셈. 왜 그랬을까? 지난 15일 MBC가 전격 편성·방영한 ‘PD수첩은 왜 재검증을 요구했는가’엔 이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이 들어 있다. 황우석팀 연구성과의 진위여부는 아직도 불명확하다. 그러나 ‘PD수첩’은 ‘혈세가 들어가는데 그 실체는 왜 아무도 모르나?’라는 가장 기본적 질문에서 출발했다. 황우석팀 연구가 진실이라 해도 PD수첩으로서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난자에 관심 없다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웠다. 바로 난자문제다. 함께 생각해볼 문제는 입양이다. 난자와 입양은 무관해 보이지만 ‘여성’에 관심있는 사람은 금방 연결고리를 찾는다. 바로 ‘한국적 가족문화’다. 황우석팀의 연구는 ‘불임시술의 왕국’으로 임자없는(?) 난자가 풍부한 한국이었기에 가능했다.‘불임시술의 왕국’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 아이가 없으면 우리 가족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한국 여성에게 결혼은 곧 임신이다. 그래서 한국에선 임신이 어려울 경우 입양 대신 난자관련 시술에 매달리다 보니 시술법이 그 어느 곳보다 발달했다. 탤런트 신애라의 입양 소식을 미담으로 소개하고, 입양이 왜 활성화되지 않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도(문화일보 15일자 기사·조선일보 16일자 사설), 정작 입양과 난자의 연관성에는 무관심하다. 또 연구원 난자와 불법매매 난자를 썼다는 사실이 확인돼도 난자 관련 규정을 넣은 올 1월 ‘생명윤리법’ 시행 이전이니까 문제없다는,‘대단히 법치주의적 태도’를 보인다. 황우석팀에 난자를 공급해온 노성일 미즈메디 이사장이 ‘지난해 말부터 ‘팽(烹)당했다.’고 말한 점도 시사적이다. 그럼에도 난자 얘기만 나오면 ‘동양적 문화’라거나 ‘극렬 페미니스트들의 진부한 주장’이라고 말하기 일쑤다. 일부 철없는 네티즌들의 주장과 다를 바 없는 ‘어차피 버릴 난자, 좋은 데 쓰는데 뭐 어때.’라는 투의 기사까지 등장한다.(중앙일보 11월22일자 기사) 이런 와중에 한국여성민우회는 난자를 보호할 수 있는 ‘인공생식법안’을 준비 중이다. 난자시술을 여성의 ‘재생산권(reproductive right)’으로 접근해 여성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는 법안이다. 여성민우회 정은지 여성건강팀장은 “생명윤리법이 부족하다는 점보다 남성은 물론 여성 스스로조차 이 문제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모든 신문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익, 국익, 국익… 도대체 어떻게? 신문들이 황우석팀에게 그렇게 맹목적일 수 있었던 까닭은 원천기술로 인한 막대한 수입, 바로 그 꿈에 있었다. 그게 정말 가능할까. 애초 PD수첩에 제보했던 사람은 ‘배아줄기세포의 무한증식을 통제 못하면 치료용으로 쓸 수 없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유전학자 악셀 칸 박사 역시 인터넷 언론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수많은 난자가 필요하고, 줄기세포를 추출해야 하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체질에 맞춰야 하고, 끊임없는 검증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치료용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기술적 어려움에, 난자의 지속적 공급이라는 현실적 어려움도 겹쳐 있는 것. 이와 관련해 초록정치연대 우석훈 정책실장이 월간 ‘말’지 12월호에 기고한 글이 눈길을 끈다. 우 실장은 그토록 시장과 국익에 열광하는 사람들처럼 황우석팀 연구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는지 한번 따져 보자고 제안한다. 상업화에 30년의 세월이 들고 치료비가 5000만원이라 감안한다면 투자비는 2000억원, 수익은 250억원에 불과하다고 추산했다. 그는 치료용 배아줄기세포가 그렇게 전망 밝은 사업이라면 왜 민간기업들이 비행기의 1등석 제공과 같은 상징적인 행동 말고,‘직접 투자’와 같은 의미있는 행동에 나서지 않는지 되묻는다. 그 이유는 역시 상업화 자체가 불명확하고, 난자 문제에 발목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술 개발 속도는 함부로 예측하기 어렵고, 난치병 환자 치료라는 꿈이 실현된다면야 꼭 ‘투자 대비 수익’으로만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익에 대해 이런 고민을 보여준 신문은 없다. ●2005년 논문의 ‘의미’마저 잊었나? 지난 16일 황우석과 노성일은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고 서로의 주장을 반박했다.‘노성일의 미즈메디에서 뭔가가 일어났고 검증해 보면 알 것’(황우석)이라는 반격에,‘나도 검증할 카드가 있다.’(노성일)고 맞받아친 내용이다. 양측 모두 자신이 옳다고 하고 있는 만큼 그 결과는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결과와 무관하게 “(줄기세포가)1개면 어떻고 3개면 어떻겠느냐.1년 뒤에 논문이 나오면 또 어떻겠느냐.”는 식으로 발언하는 황우석 교수에 대한 문제제기가 눈에 띄지 않는다. 2004년 논문과 다른 2005년 논문의 성과는 배아줄기세포를 뽑아내는 성공률을 높였다는 데 있다.2004년에는 242개 난자에서 1개의 줄기세포를,2005년에는 185개 난자에서 11개의 줄기세포를 만들어냈다.0.413%에서 5.945%로 성공률을 크게 끌어올린 것. 이는 노성일 이사장의 말처럼 임상과 상업화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의미이자, 동시에 황우석팀의 연구가 ‘우연’이 아니라 ‘실력’임을 증거하는 대목이다. 즉 2004년 논문은 ‘그 정도 난자만 있으면 나도 할 수 있다.’는 비아냥을 받을 수 있다면,2005년 논문은 ‘황우석팀이 정말 핵심기술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정작 황 교수는 ‘줄기세포가 1개면,3개면, 논문이 1년 뒤에 나오면’ 어떠냐면서 2005년 논문 취소 이유를 ‘이미 너무 많은 상처를 입어서’라고 설명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수사법’일 수도 있지만, 제발 연구성과가 허구가 아님을 바라는 일반인들의 기대에 편승하는 ‘물타기’로 비춰질 수 있다.19일자에서부터 이 점을 문제삼는 기사들이 엿보인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쟁점이 원천기술 보유 여부보다 그 성공률이라고 명확하게 지적하는 기사는 찾기 어렵다. ●여전한 남 탓… 어느 정도 쟁점이 정리된 상황에서도 신문들의 보도태도는 문제 있어 보인다. 중앙일보는 황우석팀의 거짓논문이 어떻게 통할 수 있었는지 17일자 4면에서 다뤘다. 여기서 과학자 집단의 몸사리기를 지적했지만, 사실 몸을 사렸다기보다 신문들이 눈 감았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한국의 젊은 과학도들은 뉴욕타임스가 칭찬할 정도로 활약했지만, 여기에 주목한 곳은 인터넷신문 프레시안뿐이었다는 점을 외면한 것이다. 중앙일보에 ‘황우석 우상화’에 관한 대목은 단 한줄도 없다. 기사 옆에 배치된 표에는 이 문제를 지적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뒤늦은 ‘정부 책임론’ 역시 중심 없기는 매한가지다.PD수첩의 취재윤리 문제가 불거지자 조선일보는 ‘황우석 옆에 정부는 없었다’(12월7일자 2면)며 돈만 집어주고 나 몰라라하는 정부를 질타했다. 그러나 황우석팀의 신뢰도가 떨어지자 ‘국정원이 24시간 밀착체크, 청와대는 정보 없었다’,‘청와대, 초기부터 황 교수 전폭 지원’(16일자 5면)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성공회대 김서중 교수는 “문제제기가 될 때마다 핵심이 아니라 곁가지만 보도하는 데 치중했다는 점에서 신문들의 보도태도는 PD수첩보다 더한 취재윤리 위반을 저질렀다.”면서 “독자들에게 ‘사과’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들의 보도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밝혀주는 것이 혼란을 느끼고 있을 독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만 17일자 통사설을 통해 황우석 보도에 대해 사과했을 뿐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여자의 탄생/ 나임윤경 지음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또 페미니즘 책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여성교육 전문가인 나임윤경 연세대 조교수가 쓴 ‘여자의 탄생’(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은 기존의 페미니즘 책들과 궤를 달리한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남성중심주의를 비꼬면서도 여성으로서의 ‘나’를 긍정한다. 딸로 태어나 아줌마가 된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여성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것이다. 저자는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들이 하지 않는 수많은 고민과 질문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와, 그렇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본다. 다양한 심리학 실험과 개인적 체험을 통해 생물학적 측면을 제외한 여자와 남자의 차이는 ‘만들어진 내용’에 불과하며, 이같은 후천적 차이가 성차별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또 그 차별에 맞게 남아와 여아를 다르게 교육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수학과 공간지각능력, 성욕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남녀의 차이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길러진 능력이라는 것. ‘아줌마’를 바라보는 해석도 새롭다. 남자들이 아줌마를 통제할 수 없어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오히려 폄하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결혼식의 관습과 예단·예물·혼수의 ‘삼각관계’도 흥미롭게 짚어낸다. 저자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여성의 삶을 뒤집어 봄으로써 긍정적인 자아를 찾고, 당당하고 자유롭게 사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나를 긍정하는 테두리’안에서 수정하자고 제안한다.1만 1000원.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과학혁명의 사상가 토머스 쿤/웨슬리 샤록·루퍼트 리드 지음

    사전에서 ‘패러다임’을 찾으면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 정도로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이 개념이 어떻게 등장했는지에 대한 학문적 맥락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패러다임 개념을 제시한 토머스 새뮤얼 쿤(1922∼1996)의 인생과 학문적 성취에 대해서도 국내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토머스 쿤의 그림자는 현대 지적 세계의 모든 영역에 드리워져 있으며, 그가 1962년 쓴 ‘과학 혁명의 구조’는 세계 지성사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한 현대의 고전으로 평가된다. 그가 이 책에서 제시한 ‘패러다임 이동’과 ‘과학혁명’이라는 개념은 철학, 사회과학, 역사학, 페미니즘, 신학, 자연과학 등 학문세계 전 영역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러나 동시에 쿤 자신과 그의 사상에 대한 수많은 오해도 낳았다. ‘과학혁명의 사상가 토머스 쿤’(웨슬리 샤록·루퍼트 리드 지음, 김해진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은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를 중심으로 알아내고자 했던 것을 재현해 내고, 쿤의 적대자들과 지지자들이 생산해온 오독과 오해를 교정하고자 한 책이다. 동시에 사회과학 등을 자연과학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다고 믿었던 쿤의 과학주의적 입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책은 쿤과 카를 포퍼, 그리고 파이어아벤트와의 논쟁 등을 조명하고, 쿤의 공약 불가능성 개념을 중심으로 쿤이 상대주의자였는지, 쿤의 과학철학 방법론을 다른 학문에 적용할 수 있는지 등도 다룬다. 토머스 쿤은 미국에서 유대인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나 하버드 대학 물리학과를 수석 졸업했다. 처음엔 과학사학자로 출발했다가 나중에는 과학 철학자로 전향했다.1만 8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김경만 서강대교수 ‘담론과 해방’ 한·미 동시출간

    김경만 서강대교수 ‘담론과 해방’ 한·미 동시출간

    최근 비판적 지식인이 상종가다. 고정관념이 뒷받침한다. 비판적 지식인은 다른 사람이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고,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얘기를 경청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세상의 때가 묻었다고 하면서, 홀로 저 높은 곳에서 세상을 굽어보는 지식인이라는게 가능하기나 할까.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낸 서강대 김경만 교수의 ‘담론과 해방’(궁리 펴냄)은 이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김 교수는 이들이 비판적 지식인임을 내세워 세계에 개입하려 들지만, 세계가 이들 때문에 바뀌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내건다. 비판이론이 해방에 기여했다고?한마디로 착각하지 마시라는 것. 어디 가서 잘난 체나 안하면 다행이라는 얘기다. 마르크시즘과 페미니즘 같은 것이 그 증거로 제출된다. 그럼에도 접근법은 센세이셔널하다기보다 정밀한 논증이고, 비판 대상은 가핑클, 부르디외, 기든스, 하버마스, 리처드 로티 같은 서구 거장들이다. 이 때문에 미국판 서문에 “동양의 학자에게 한수 배웠다.”는 평이 실리고, 벌써 반론하겠다는 얘기도 나왔다. 어찌 보면 지식인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격인 책을 왜 냈을까. 김 교수는 인터뷰에서 한국의 지식사회를 겨냥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지식인의 특권이란 무엇인가. -부르디외는 상징자본을 얻으려 투쟁하는 사람들을 지식인이라 한다. 그런데 거기서 자신만은 뺀다. 시인보다 못한 지식인이라던 로티 역시 슬쩍 말을 흐린다.‘우연성’ 개념으로 지식인의 사회 기여를 언급하는데 이는 뒷문으로 지식인을 다시 복권시키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대화를 제안하지만 대화의 주도권은 자신에게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로티에 대한 그런 지적은 이색적이다. -안 그래도 로티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다. 조금 더 보완해 해외학술지에 정식으로 발표할 계획이다. ▶책에 따르자면 결국 지식인은 무엇을 할 수 있나. -‘안다는 것’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크게 두 개의 입장이 있다. 하나는 ‘아는 게 힘’이라는, 실용성을 강조하는 베이컨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는 것 자체가 기쁨이라는, 심미적 측면을 강조하는 아퀴나스적인 것이다. 하버마스와 로티의 주장이 바로 그런 구도다.‘어느 쪽이다.’라고 규정짓기는 굉장히 어렵다. ▶김 교수의 주장 자체가 이미 하나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 아닌가. 하버마스 역시 대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공정한 관찰자를 전제했는데. -사실 나도 그런 대화와 논쟁을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 학자들은 서로 관심이 없고 논쟁이 없다. 사회과학 시스템 자체가 문제다. 서평이라는 리뷰에세이, 석좌교수 선발, 학술지 평가 등 제대로 갖춰진 것이 없다. 이는 학문의 장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는 얘기고, 이는 곧 교수들의 직무유기다. 이런 상황에서 하버마스적 프로세스란 불가능하다. ▶이번 책은 결국 한국 지식사회를 겨냥한 것인가. -제발 “상아탑에 안주하자.”고 말하고 싶다. 왜 대학생은 강의에서 배울 게 없다하고 대학원생은 유학길에 오르나. 개념적으로 기초부터 다지는 작업이 없어서다. 흔히 ‘학문의 대중화’니 ‘토착학문의 육성’이니 하는 말에도 반대다. 우리 학계는 이미 지나치게 대중화됐다. 동시에 서구에서 시작된 근대학문을 하면서 왜 그들과 직접 대결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실천적 지식인에 대한 비판은 정치적 보수주의라는 비판을 곧잘 듣는다. -그것과 다른 차원이다. 지식인들은 지식으로 명예와 지위를 얻는다. 서구에서는 학문세계에 그치지만 우리는 그외 프리미엄이 너무 많다. 내 주장은 지식인이 겸손함과 겸허감을 가지자는 것이다.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제대로 된 논쟁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피도 눈물도 없는 밤’ 기획한 이프 엄을순 대표

    ‘피도 눈물도 없는 밤’ 기획한 이프 엄을순 대표

    그러기에 왜 여자가 밤늦게 야한 옷 입고 돌아다녀서 그런 분란을 만드느냐! 라는 말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여인들만의 밤의 축제가 열린다. 공중파 방송국에서 미스코리아대회를 중계하지 못하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안티 미스코리아대회에 이어 안티 성폭력페스티벌 ‘포르노 포르나(porNO porNA)’를 성공적으로 끝낸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가 이번엔 여성 전용파티 ‘피도 눈물도 없는 밤(No blood No tears Night)’을 준비했다. 이프 엄을순(48·여) 대표는 “한밤중에 머리에 꽃을 달고 미친 척 춤을 추고 싶다는 발칙한 상상에서부터 이 행사는 출발한다.”고 말한다. 엄 대표는 유영철 사건을 계기로 밤에 활동하는 것을 더욱 무서워하게 된 여성들을 위해 처음 시작한 여성전용파티를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열기로 했다. 오는 30일 금요일 오후 7시부터 늦은 밤까지 서울 한강변 선유도 공원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는 밤을 즐기고 싶은 여성은 모두 참여할 수 있다. “왜 여성들만 밤을 무서워해야 하는가요? 밤에 이루어진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여성 스스로가 처신을 제대로 못한 탓으로 돌려지기도 합니다.” 엄 대표는 “여자는 일찍일찍 다녀야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남성과 여성 모두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밤이 돼야한다고 말한다. 이번 행사에는 지금까지 여성들이 밤에 하면 ‘미친X’으로 취급받아왔던 모든 행사가 펼쳐진다. 한밤중에 여자들끼리만 모여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본다. 술도 마시고 성에 대한 이야기도 서슴지 않고 말한다. 남의 시선은 철저하게 무시하고 머리에 꽃을 꽂고 춤을 추는 파티도 준비돼 있다. 참여자 모두가 배우가 돼서 밤거리에 낮선 남자가 뒤를 쫓아 올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고민해본다. 밤이 왜 여성들에게만 공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해결점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마광수의 섹스토리] (14) 하느님은 야한 휴머니스트다

    [마광수의 섹스토리] (14) 하느님은 야한 휴머니스트다

    나는 젊은 여자이다. 나는 어느날 대낮에 문득 정신이 혼미해지는가 싶었다. 그러다가 한참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있는 곳은 우리 집이 아니었다. 원색의 물방울이 통통 튀어오르는 이곳이 어딘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저 멀리서 까만 피부의 육감적인 여자가 나에게 다가온다. 키가 한 175㎝ 되어 보이는, 카펫처럼 뒤로 축 늘어진 여자의 머리카락은 투명한 것 같기도 하고 금빛 같기도 하고 은빛 같기도 해서,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햇빛에 비추어 뭔가 자꾸 반짝반짝거려서 얼굴은 통 알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대비되는 스판덱스 하얀색 탱크톱을 가슴 언저리에 걸친 그 여자는, 호피 무늬의 일본식 부르마를 입고 있어 귀여운 고등학교 학생의 이미지가 연상되었다. 저 호피무늬로 봐서는 정글의 왕자 타잔의 애인인 제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탱크톱과 부르마 안에 있는 가슴과 엉덩이는 바늘로 콕 찌르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가슴에서 배꼽으로, 배꼽에서 등 뒤로 연결된 ‘도롱뇽 문신’이 그녀의 피부를 더 탄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배꼽과 골반은 피어싱을 하여 직경 8㎝의 여러 고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배꼽과 짧은 옷들에 비해 신발은 무릎까지 올라오는 길이의 굽 높은 빨간색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부츠가 타이트하게 다리를 감싸쥐고 있어서 그녀가 내 앞으로 걸어올 때마다 다리 근육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감지될 정도였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그녀를 보니, 반짝거리는 것이 목걸이와 귀걸이였음을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백 개의 총천연색 비즈로 연결된 목걸이는 그 하나하나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과 옆에 있는 비즈로 인한 빛이 충돌되어, 새로운 빛깔의 아름다운 색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귀걸이는 크리스털로 만들어져, 그녀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맞부딪치며 짜르르 하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보인다. 비즈 목걸이로 인해 얼굴에서 광채가 나고 있다. 완벽한 몸매만큼이나 얼굴도 그 자체가 예술이다. 그녀의 형광톤 연두색 속눈썹은 뜨거운 태양빛을 차단할 수 있는 차양 효과를 지닐 만큼 길고 풍성하다. 당장이라도 빨려들어갈 만한 커다란 눈은 한 쪽은 연보라색, 다른 한 쪽은 오렌지색인 ‘오드 아이’다. 눈 바로 아래에는 눈물점 같이 다이아몬드를 박아 놓아 청순한 매력까지 느껴진다. 높진 않지만 꽤 오똑한 코, 아무 것도 바르지 않은 크고 도톰한 입술이 관능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도대체 이 여자가 누구일까? 그녀가, 누워 있는 나에게 왼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끼워진 가지각색의 반지에는 금줄이 길게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서 일어났다. “오우, 젊은 여인이여, 네가 바로 야한 여자로구나!” 나는 이 여자가 나를 ‘야한 야자’로 인정해줬다는 사실에 놀랐다. “당신이 어떻게 나를 알고 있죠?” “난 다름아닌 ‘하느님’이니라. 너는 나를 그저 보통 여자로만 생각하고 있었지?” 맙소사! 이렇게 관능적으로 생긴 여자가 하느님이라니! 지난 22년간 살면서, 그리고 19년간의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는 하느님이 여자일 것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더군다나 마릴린 먼로보다 더 멋진 몸매와 얼굴을 가진 여자라니! 나는 그녀의 손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관능의 군침’을 삼켰다. 길디 긴 손톱들이 나의 레즈비어니즘을 부추기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어디인지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지간에, 일단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모두 천상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러고는 다시 환생을 할 것인지 아니면 천국 또는 지옥으로 갈 것인지 점수를 책정하는 적격심사를 받게 된다고 한다. 내가 있는 곳은 적격심사를 받으러 가기 전에 쉴 수 있는 쉼터 비슷한 곳인데, 여기서 최대한 이틀을 쉴 수 있다고 했다. 말을 듣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쓰러져 있던 풀밭은 이 평원에서 아득히 먼 곳까지 이어져 있었고, 주변에는 풀과 나무, 꽃들이 산재해 있었다. 공기도 어찌나 맑은지 지상세계에서 안구건조증으로 안약을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던 나였지만 여기서는 안약은커녕 눈에 핏줄 하나 서지 않았다. 나는 하느님의 이야기가 끝난 후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러면 이곳에는 오고 가는 사람만 있겠네요? 저는 이렇게 푸른 나무와 꽃들이 있는 곳이 너무나 좋아요. 여기서 더 머물 수는 없을까요?” 그러자 ‘하느님’은 이렇게 대답했다.“얼마든지…. 이곳의 공식 명칭은 사실 ‘야하디야하라’일세. 그리고 이곳에는 잠시 휴식을 취하는 영혼들을 달래주고 적격심사장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 두 명 있지. 그들의 이름은 지구상에서는 ‘아담’과 ‘이브’로 알려져 있지. 지구상에서 제일 많이 팔린다는 ‘성경’이란 책을 보면,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나와의 신뢰관계가 무너지고 내가 곧바로 응징을 내리는 것으로 쓰여 있지만 그것은 다 억측일 뿐일세. 자 나를 보게. 내 요염한 모습을…. 내가 그렇게 매몰차게 보이는가? 사람들은 날 존경하는 듯한 입에 발린 말을 할 대로 다 해놓고서, 아담과 이브에게 바로 죄값을 치르게 하는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내고 말았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성경’이라는 책에는 내가 이브에게 아이를 낳는 고통을 주고, 아담에게는 땀을 흘리고 일을 해야만 하는 고통을 주었다고 나와 있더군. 사실 그건 내가 준 벌이 아니라네. 특히 성욕은 다만 자연적인 욕구일 뿐이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욕구가 무엇인지 아는가?대부분 ‘식욕’이라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식욕 이전에 ‘성욕’이라는 강한 욕구가 잠재해 있다네. 그럼 ‘배가 고파 죽겠는데 어떻게 성욕이 생길 수 있느냐.’는 반문이 곧 튀어나오겠지.…물론 인간의 생명활동을 일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식욕이네. 하지만 식욕의 대상, 즉 음식물은 어디서 오는가? 잘 생각해 보게. 우리가 먹는 음식물들은 육식이건 채식이건 모두 성욕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들이야. 즉, 생식욕구로 인해 동식물들이 생산해 놓은 씨앗, 열매, 고기들이 바로 우리가 먹는 음식물들인 걸세. 결국 우리의 생명활동에 일차적으로 중요한 식욕 역시 성욕의 도움을 받아야만 충족될 수 있다는 것이지. 그러니 이브가 아이를 낳는 고통을 갖게 된 것은 죄값으로 받게 된 것이 아니야. 그건 섹스에 부수되는 또 하나의 ‘즐거운 고통’일 뿐이지. 그리고 아담이 땀 흘리고 일을 한다는 의미는 지상 인간들이 해석한 직업적 개념의 ‘일’이 아니야. 아담의 진짜 ‘일’은, 여자와의 인터코스로 인해 땀을 흘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네.” 나는 하느님의 색다른 논리에 순간 당황했다. 아담과 이브의 잘못으로 우리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는데,‘원초적 본능’으로 인한 즐거움이 그들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그러나 대체로 수긍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하느님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생겨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할 땐 어쩌죠? 저는 혼자 있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요.” “내가 필요할 때는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큰 소리로 외치게. 내가 굳이 변명할 필요는 없지만, 이 말 역시 ‘주여, 왜 날 버리시나이까?’란 뜻이 아니라네. 진짜 뜻은 ‘주여, 감사함에 몸서리칩니다.’라는 의미일세. 내 원 참, 지상세계 인간들은 뭐든지 자기 스스로에게 편한 대로 해석을 해서 문제야. 내가 예수를 꼭 낳고 싶어서 지상에 내려가 예수를 낳았지. 어쨌든 예수는 나의 아이네. 아이 낳고 몸이 망가질까봐 천사에게 섹스하는 일을 대신 시켰지만 말이야. 이 세상 사람들을 모두 구원해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서…. 하느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지금까지 내가 속고 살아온 기분이 들었다.‘종교’라는 것을 만들어가지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기술한 사람들이 가증스럽고 우스워졌다. 무엇보다도 나는 하느님이 여성이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유쾌하였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외쳤다. “페미니즘 만세!…여자 하느님 만세!” ■마광수는1951년 경기 수원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 ▲저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장편소설 ‘권태´ ‘즐거운 사라´ ‘불안´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랑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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