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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만 서강대교수 ‘담론과 해방’ 한·미 동시출간

    김경만 서강대교수 ‘담론과 해방’ 한·미 동시출간

    최근 비판적 지식인이 상종가다. 고정관념이 뒷받침한다. 비판적 지식인은 다른 사람이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고,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얘기를 경청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세상의 때가 묻었다고 하면서, 홀로 저 높은 곳에서 세상을 굽어보는 지식인이라는게 가능하기나 할까.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낸 서강대 김경만 교수의 ‘담론과 해방’(궁리 펴냄)은 이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김 교수는 이들이 비판적 지식인임을 내세워 세계에 개입하려 들지만, 세계가 이들 때문에 바뀌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내건다. 비판이론이 해방에 기여했다고?한마디로 착각하지 마시라는 것. 어디 가서 잘난 체나 안하면 다행이라는 얘기다. 마르크시즘과 페미니즘 같은 것이 그 증거로 제출된다. 그럼에도 접근법은 센세이셔널하다기보다 정밀한 논증이고, 비판 대상은 가핑클, 부르디외, 기든스, 하버마스, 리처드 로티 같은 서구 거장들이다. 이 때문에 미국판 서문에 “동양의 학자에게 한수 배웠다.”는 평이 실리고, 벌써 반론하겠다는 얘기도 나왔다. 어찌 보면 지식인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격인 책을 왜 냈을까. 김 교수는 인터뷰에서 한국의 지식사회를 겨냥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지식인의 특권이란 무엇인가. -부르디외는 상징자본을 얻으려 투쟁하는 사람들을 지식인이라 한다. 그런데 거기서 자신만은 뺀다. 시인보다 못한 지식인이라던 로티 역시 슬쩍 말을 흐린다.‘우연성’ 개념으로 지식인의 사회 기여를 언급하는데 이는 뒷문으로 지식인을 다시 복권시키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대화를 제안하지만 대화의 주도권은 자신에게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로티에 대한 그런 지적은 이색적이다. -안 그래도 로티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다. 조금 더 보완해 해외학술지에 정식으로 발표할 계획이다. ▶책에 따르자면 결국 지식인은 무엇을 할 수 있나. -‘안다는 것’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크게 두 개의 입장이 있다. 하나는 ‘아는 게 힘’이라는, 실용성을 강조하는 베이컨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는 것 자체가 기쁨이라는, 심미적 측면을 강조하는 아퀴나스적인 것이다. 하버마스와 로티의 주장이 바로 그런 구도다.‘어느 쪽이다.’라고 규정짓기는 굉장히 어렵다. ▶김 교수의 주장 자체가 이미 하나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 아닌가. 하버마스 역시 대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공정한 관찰자를 전제했는데. -사실 나도 그런 대화와 논쟁을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 학자들은 서로 관심이 없고 논쟁이 없다. 사회과학 시스템 자체가 문제다. 서평이라는 리뷰에세이, 석좌교수 선발, 학술지 평가 등 제대로 갖춰진 것이 없다. 이는 학문의 장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는 얘기고, 이는 곧 교수들의 직무유기다. 이런 상황에서 하버마스적 프로세스란 불가능하다. ▶이번 책은 결국 한국 지식사회를 겨냥한 것인가. -제발 “상아탑에 안주하자.”고 말하고 싶다. 왜 대학생은 강의에서 배울 게 없다하고 대학원생은 유학길에 오르나. 개념적으로 기초부터 다지는 작업이 없어서다. 흔히 ‘학문의 대중화’니 ‘토착학문의 육성’이니 하는 말에도 반대다. 우리 학계는 이미 지나치게 대중화됐다. 동시에 서구에서 시작된 근대학문을 하면서 왜 그들과 직접 대결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실천적 지식인에 대한 비판은 정치적 보수주의라는 비판을 곧잘 듣는다. -그것과 다른 차원이다. 지식인들은 지식으로 명예와 지위를 얻는다. 서구에서는 학문세계에 그치지만 우리는 그외 프리미엄이 너무 많다. 내 주장은 지식인이 겸손함과 겸허감을 가지자는 것이다.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제대로 된 논쟁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마광수의 섹스토리] (14) 하느님은 야한 휴머니스트다

    [마광수의 섹스토리] (14) 하느님은 야한 휴머니스트다

    나는 젊은 여자이다. 나는 어느날 대낮에 문득 정신이 혼미해지는가 싶었다. 그러다가 한참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있는 곳은 우리 집이 아니었다. 원색의 물방울이 통통 튀어오르는 이곳이 어딘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저 멀리서 까만 피부의 육감적인 여자가 나에게 다가온다. 키가 한 175㎝ 되어 보이는, 카펫처럼 뒤로 축 늘어진 여자의 머리카락은 투명한 것 같기도 하고 금빛 같기도 하고 은빛 같기도 해서,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햇빛에 비추어 뭔가 자꾸 반짝반짝거려서 얼굴은 통 알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대비되는 스판덱스 하얀색 탱크톱을 가슴 언저리에 걸친 그 여자는, 호피 무늬의 일본식 부르마를 입고 있어 귀여운 고등학교 학생의 이미지가 연상되었다. 저 호피무늬로 봐서는 정글의 왕자 타잔의 애인인 제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탱크톱과 부르마 안에 있는 가슴과 엉덩이는 바늘로 콕 찌르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가슴에서 배꼽으로, 배꼽에서 등 뒤로 연결된 ‘도롱뇽 문신’이 그녀의 피부를 더 탄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배꼽과 골반은 피어싱을 하여 직경 8㎝의 여러 고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배꼽과 짧은 옷들에 비해 신발은 무릎까지 올라오는 길이의 굽 높은 빨간색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부츠가 타이트하게 다리를 감싸쥐고 있어서 그녀가 내 앞으로 걸어올 때마다 다리 근육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감지될 정도였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그녀를 보니, 반짝거리는 것이 목걸이와 귀걸이였음을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백 개의 총천연색 비즈로 연결된 목걸이는 그 하나하나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과 옆에 있는 비즈로 인한 빛이 충돌되어, 새로운 빛깔의 아름다운 색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귀걸이는 크리스털로 만들어져, 그녀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맞부딪치며 짜르르 하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보인다. 비즈 목걸이로 인해 얼굴에서 광채가 나고 있다. 완벽한 몸매만큼이나 얼굴도 그 자체가 예술이다. 그녀의 형광톤 연두색 속눈썹은 뜨거운 태양빛을 차단할 수 있는 차양 효과를 지닐 만큼 길고 풍성하다. 당장이라도 빨려들어갈 만한 커다란 눈은 한 쪽은 연보라색, 다른 한 쪽은 오렌지색인 ‘오드 아이’다. 눈 바로 아래에는 눈물점 같이 다이아몬드를 박아 놓아 청순한 매력까지 느껴진다. 높진 않지만 꽤 오똑한 코, 아무 것도 바르지 않은 크고 도톰한 입술이 관능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도대체 이 여자가 누구일까? 그녀가, 누워 있는 나에게 왼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끼워진 가지각색의 반지에는 금줄이 길게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서 일어났다. “오우, 젊은 여인이여, 네가 바로 야한 여자로구나!” 나는 이 여자가 나를 ‘야한 야자’로 인정해줬다는 사실에 놀랐다. “당신이 어떻게 나를 알고 있죠?” “난 다름아닌 ‘하느님’이니라. 너는 나를 그저 보통 여자로만 생각하고 있었지?” 맙소사! 이렇게 관능적으로 생긴 여자가 하느님이라니! 지난 22년간 살면서, 그리고 19년간의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는 하느님이 여자일 것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더군다나 마릴린 먼로보다 더 멋진 몸매와 얼굴을 가진 여자라니! 나는 그녀의 손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관능의 군침’을 삼켰다. 길디 긴 손톱들이 나의 레즈비어니즘을 부추기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어디인지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지간에, 일단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모두 천상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러고는 다시 환생을 할 것인지 아니면 천국 또는 지옥으로 갈 것인지 점수를 책정하는 적격심사를 받게 된다고 한다. 내가 있는 곳은 적격심사를 받으러 가기 전에 쉴 수 있는 쉼터 비슷한 곳인데, 여기서 최대한 이틀을 쉴 수 있다고 했다. 말을 듣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쓰러져 있던 풀밭은 이 평원에서 아득히 먼 곳까지 이어져 있었고, 주변에는 풀과 나무, 꽃들이 산재해 있었다. 공기도 어찌나 맑은지 지상세계에서 안구건조증으로 안약을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던 나였지만 여기서는 안약은커녕 눈에 핏줄 하나 서지 않았다. 나는 하느님의 이야기가 끝난 후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러면 이곳에는 오고 가는 사람만 있겠네요? 저는 이렇게 푸른 나무와 꽃들이 있는 곳이 너무나 좋아요. 여기서 더 머물 수는 없을까요?” 그러자 ‘하느님’은 이렇게 대답했다.“얼마든지…. 이곳의 공식 명칭은 사실 ‘야하디야하라’일세. 그리고 이곳에는 잠시 휴식을 취하는 영혼들을 달래주고 적격심사장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 두 명 있지. 그들의 이름은 지구상에서는 ‘아담’과 ‘이브’로 알려져 있지. 지구상에서 제일 많이 팔린다는 ‘성경’이란 책을 보면,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나와의 신뢰관계가 무너지고 내가 곧바로 응징을 내리는 것으로 쓰여 있지만 그것은 다 억측일 뿐일세. 자 나를 보게. 내 요염한 모습을…. 내가 그렇게 매몰차게 보이는가? 사람들은 날 존경하는 듯한 입에 발린 말을 할 대로 다 해놓고서, 아담과 이브에게 바로 죄값을 치르게 하는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내고 말았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성경’이라는 책에는 내가 이브에게 아이를 낳는 고통을 주고, 아담에게는 땀을 흘리고 일을 해야만 하는 고통을 주었다고 나와 있더군. 사실 그건 내가 준 벌이 아니라네. 특히 성욕은 다만 자연적인 욕구일 뿐이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욕구가 무엇인지 아는가?대부분 ‘식욕’이라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식욕 이전에 ‘성욕’이라는 강한 욕구가 잠재해 있다네. 그럼 ‘배가 고파 죽겠는데 어떻게 성욕이 생길 수 있느냐.’는 반문이 곧 튀어나오겠지.…물론 인간의 생명활동을 일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식욕이네. 하지만 식욕의 대상, 즉 음식물은 어디서 오는가? 잘 생각해 보게. 우리가 먹는 음식물들은 육식이건 채식이건 모두 성욕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들이야. 즉, 생식욕구로 인해 동식물들이 생산해 놓은 씨앗, 열매, 고기들이 바로 우리가 먹는 음식물들인 걸세. 결국 우리의 생명활동에 일차적으로 중요한 식욕 역시 성욕의 도움을 받아야만 충족될 수 있다는 것이지. 그러니 이브가 아이를 낳는 고통을 갖게 된 것은 죄값으로 받게 된 것이 아니야. 그건 섹스에 부수되는 또 하나의 ‘즐거운 고통’일 뿐이지. 그리고 아담이 땀 흘리고 일을 한다는 의미는 지상 인간들이 해석한 직업적 개념의 ‘일’이 아니야. 아담의 진짜 ‘일’은, 여자와의 인터코스로 인해 땀을 흘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네.” 나는 하느님의 색다른 논리에 순간 당황했다. 아담과 이브의 잘못으로 우리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는데,‘원초적 본능’으로 인한 즐거움이 그들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그러나 대체로 수긍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하느님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생겨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할 땐 어쩌죠? 저는 혼자 있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요.” “내가 필요할 때는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큰 소리로 외치게. 내가 굳이 변명할 필요는 없지만, 이 말 역시 ‘주여, 왜 날 버리시나이까?’란 뜻이 아니라네. 진짜 뜻은 ‘주여, 감사함에 몸서리칩니다.’라는 의미일세. 내 원 참, 지상세계 인간들은 뭐든지 자기 스스로에게 편한 대로 해석을 해서 문제야. 내가 예수를 꼭 낳고 싶어서 지상에 내려가 예수를 낳았지. 어쨌든 예수는 나의 아이네. 아이 낳고 몸이 망가질까봐 천사에게 섹스하는 일을 대신 시켰지만 말이야. 이 세상 사람들을 모두 구원해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서…. 하느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지금까지 내가 속고 살아온 기분이 들었다.‘종교’라는 것을 만들어가지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기술한 사람들이 가증스럽고 우스워졌다. 무엇보다도 나는 하느님이 여성이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유쾌하였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외쳤다. “페미니즘 만세!…여자 하느님 만세!” ■마광수는1951년 경기 수원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 ▲저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장편소설 ‘권태´ ‘즐거운 사라´ ‘불안´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랑의 슬픔´
  • 강숙자씨 ‘한국여성해방이론’ 책 내

    강숙자씨 ‘한국여성해방이론’ 책 내

    “중세 암흑시대를 끝냈다는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의 인문주의 덕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유교라 하면 케케묵었다고 합니까?”페미니즘. 이거 위험하다. 조금만 삐끗하면 남자는 ‘고추나 덜렁대는 마초’이기 십상이고, 여자가 ‘싸가지 없는 년’ 소리 듣는 건 시간문제다. 그런데 과감하게 ‘유교의 음양론’으로 페미니즘을 재구성하자는 주장을 내놓은 사람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강숙자 연구원.‘한국여성해방이론-유토피아에서 헤테로피아로’(지식산업사 펴냄)를 통해 자신의 논리를 집대성했다. 여성해방이론을 총정리한 책은 시종 차분한 톤이지만, 강 연구원은 인터뷰 내내 격정적이었다. 이유를 미뤄 짐작할 만도 했다. 책 서문에 스스로 밝혔듯 강 연구원의 자료집을 폐기하고 한국여성학회 정기간행물 논문집에도 싣지 말라는 게 ‘전투적 페미니스트’들의 요구사항이기 때문이다. ●‘여성성’ 부정은 자가당착 우선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성을 사회적으로 학습된, 사회적 구성물로 여기는 태도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논리적으로 자가당착입니다. 원래 여성성이 없는데 어떻게 ‘여성’해방이라고 합니까. 차라리 ‘인간’해방이라 해야죠. 여성성이 없으면 여성의 연대도 불가능합니다. 아무 공통점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뭉칩니까.” 실제 역사도 들었다.“법적·제도적 양성 평등에서 서구사회는 30여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여성 직업의 대부분은 ‘전통적 여성역할’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예외도 있지만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즉, 한 세대가 지났는데도 여성성은 없다는 결과가 안 나온 겁니다.” ●왜 ‘잘난’ 여성들만 해방돼야 하나 그렇기에 남·여 대립·갈등구조를 만든 뒤 여성들끼리 잘해보자는 ‘분리주의’가 못마땅하다. 이 분리주의는 곧 레즈비언에 대한 찬양, 레즈비어니즘이다. 애킨슨 같은 미국 페미니스트는 “페미니즘은 이론이고, 레즈비어니즘은 실천이다.”라고 공언했다. 레즈비언이 아닐지라도 정치적으로 레즈비언을 지향하자는 주장이다. 이 같은 급진 페미니즘은 이중의 폭력을 행사한다.“자신들 선택이 중요하면 전업주부와 이성애를 선택한 여성들도 인정해야 합니다. 가부장제에 기생하는 존재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안 그래도 여성으로서 벽을 느끼는 사람들을 왜 또 ‘의식 없는’ 여성으로 만듭니까.” 진짜 레즈비언들도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레즈비언도 남성, 여성 역할 구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은 이것 자체를 부정하거든요. 그러니 서로 불편한 거죠.” ●이분법에서 벗어나라 문제의 핵심은 이런 논의 자체가 서양의 문제틀이라는 데 있다.‘여성=자연’,‘남성=문명’이라는 이분법에 기초해 여성을 ‘결핍된 존재, 그래서 남근을 선망하는 존재’로 묘사해온 서양의 전통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이다.“미국식 교육이 판치다 보니 그런 문제틀을 여과없이 받아들인 게 문제입니다.”여기서 유교의 음양론이 나왔다.“‘음양’ 하면 서구인들은 대뜸 strong과 weakness로 번역합니다. 그게 바로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이죠.” 음양론은 음과 양의 성질에 대한 설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동시에 조선시대와 유교를 지나치게 비하하는 태도도 버리라고 지적했다.“전근대시대 생산양식은 가내수공업입니다. 가내수공업, 그건 페미니스트들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생산노동’ 아닙니까.” 다른 예도 들었다.“18세기 박석무가 쓴 글에 보면 아내들이 남편을 업수이 여겨 때리고 욕한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여성의 발언권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죠.” 우리가 흔히 조선·유교 하면 떠올리는 모습은 일부 양반, 그것도 벼슬 자리에나 오른 양반의 모습이 전부라는 것. 물론 이들 문화가 지배적이었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해석이다. ●열린 페미니즘을 위해 결국 해법은 여성성과 그로 인한 차이를 인정하되, 가치는 똑같다고 인정하자는 것이다. 여성성을 약함이 아니라 개방성과 수용성으로 규정하고 자매애를 통해 연대하는 것. 즉, 전업주부끼리, 아가씨들끼리, 직장여성들끼리의 연대와 이를 포괄할 수 있는 페미니즘. 이게 바로 강 연구원의 희망이다.“남성·여성 대립짓기는 남성이 여성을 비하하기 위해 만든 틀입니다. 페미니즘은 그 틀 속에서 놀지 말고, 그 틀 자체를 깨야죠.”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문학! 아시아를 말하다] (하)인도네시아

    [문학! 아시아를 말하다] (하)인도네시아

    “포스트 포스트-식민주의를 꿈꾼다.”식민지배를 경험한 국가들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는 식민유산의 청산이다.‘청산’이라 해서 무조건 쓸어내는 것만은 아니다. 어찌보면 어떤 시대든 한 시대가 지나면 그 시대에 대해 평가하고 정리하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그 작업 가운데 하나가 바로 포스트-식민주의다. 이 작업은 프랑스 식민지배 경험이 남긴 알제리의 혼란을 형상화한 프란츠 파농의 작업에서 시작됐다. 나이지리아의 치누아 아체베,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에드워드 사이드, 인도계 미국인 가야트리 스피박과 호미 바바의 작업들이 대표적인 포스트식민주의론으로 꼽힌다. ■ 김재용 원광대 교수 제시 |자카르타(인도네시아) 조태성특파원|식민지배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끌다 90년대 초반 페미니즘이 활성화되면서 급격하게 유입됐다. 그러나 이들의 포스트식민주의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들 이론가들이 서양중심적인 시선 대신 스스로의 시각을 되찾자며 내세운 동양은 바로 서양제국주의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 놓였던 아프리카와 아랍·인도 등 서아시아다. 같은 동양인인 일본에 침략과 지배를 받았던 동아시아국가들과 경험이 비슷할 수 있을까. 포스트-식민주의의 ‘뒤에 오면서, 동시에 뛰어넘는’ 포스트(post)가 하나 더 붙어야 하지 않을까. 문학평론가인 김재용 원광대 교수의 문제의식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인도네시아 국립대 심포지엄에서 발제에 나선 김 교수는 한국문학의 과제로 두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중심주의를 피한다며 만들어진 아시아주의의 함정에서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1940년대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라는 일제의 대동아공영권 구호는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호소력을 발휘했습니다. 아쉽게도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도 여기에 적극적으로 호응했습니다. 유럽중심의 근대라는 것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동아공영권에서 보듯 이들의 아시아주의는 순수하지 못한 아시아주의다. 김 교수는 ‘본질주의적 아시아주의’와 ‘역사적 아시아주의’를 구분하자고 제안했다. “아시아인이기에 아시아는 하나여야 한다는 본질주의적 아시아주의는 기본적으로 폭력성을 안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모습을 놓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아시아의 개별성을 인정해주는,‘역사적 아시아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동·서양을 동시에 안고 또 넘어서야 합니다.” 이를 위해 김 교수는 시민사회단체와 예술인들의 자발적인 연대를 강조했다. 일본식 국가주의 연대를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인도네시아의 역할에 기대감을 표시했다.“인도네시아는 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연결해주는 거점입니다. 역사적 아시아주의를 가꾸어 나가는 데 인도네시아가 지적 교류의 다리가 되어 줬으면 합니다.” 김 교수는 이런 관점에서 8월말쯤 인도네시아에서 국제학술회의를 열 예정이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주변국과 함께 식민지배의 경험과 청산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다. 한국에는 ‘인도네시아와 타이완 등은 한국과 역사적인 경험이 달라 식민지가 근대화에 이바지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이 널리 퍼져 있다.’고 알려져 있다. 김 교수는 학술대회를 통해 그런 한국의 통념도 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cho1904@seoul.co.kr ■ 이다 국립대 인문대학장 |자카르타(인도네시아) 조태성특파원|인도네시아 국립대 구내에는 ‘태극기 휘날리며’‘올드보이’‘연애소설’ 등 한국영화 상영을 알리는 포스터가 꽤 눈에 띈다. 약하긴 하지만 한류가 있다는 것이다. 아직 화교 중심이지만 서서히 번질 조짐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학과가 설치된 대학은 없다. 인도네시아 국립대가 설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박사급 연구자가 부족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심포지엄 뒤 열린 국립대와 ACN 관계자간 미팅에서 국립대는 이 문제를 강하게 거론했다. 이다 순다리 후센 인문대학장은 한국측의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불문학을 전공했다는 이다 학장은 “이번 심포지엄은 지금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시기적으로 대단히 적절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학과를 만드는데 양국의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박사급 인력 5∼6명이 필요하다.”면서 “이들 인력의 양성·배치 방안과 한국측의 지원방안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면 초기에는 한국에 의존하겠지만 몇년 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한국학을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다 학장은 또 양국 대사관을 통해 양쪽 언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는 인력풀 체계를 확립하는 것도 교류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cho1904@seoul.co.kr ■고영훈교수가 말하는 한·인니 |자카르타(인도네시아) 조태성특파원|인도네시아 말은 매우 간단하다. 그래서 아주 문학적인 표현이나 고도의 전문용어가 아니라면 1년 살았거나 30년 살았거나 언어능력에서는 별 차이가 없을 정도다. 과거·현재·미래 시제도, 동사 변화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순한 언어가 있을 수 있을까. 비밀은 다양한 인종, 민족, 언어 구성에도 불구하고 2억 4000만 인구의 거대한 근대국가를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19세기 말까지 인도네시아어 구어는 카스트에 따라 9단계의 존비법이 있는 대단히 복잡한 말이었다 한다. 그러나 근대국가건설과 국가통합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옛 구어는 폐지됐다. 대신 가장 간략한 말레이어 계통을 이어 받으며 문자는 알파벳을 차용했다. 단일민족국가인 한국과 공통점이 있을까. 인도네시아 또한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나라다. 중국보다 1년 앞선 1920년 아시아 최초의 공산당이 창당됐고, 저 유명한 ‘반둥회의’를 통해 제3세계 비동맹중립외교를 주창했다. 노무현-김정일을 연결해줄 수 있는 인물로 꼽혀 화제를 모았던 메가와티는 인도네시아의 국부 수카르노의 딸이다. 수카르노와 김일성은 제3세계 동지였다. 수카르노의 모나스타워와 김일성의 주체탑이 닮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반공국가 한국과 공통점이 있을까. 동시에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국가이기도 하다. 미국·일본 대사관에 장갑차가 진주해있고, 한국의 까다로워진 입국절차에 맞서 한국관광객에 대한 무비자 대우를 철회하는 등 9·11 테러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 있는 나라다. 미국 중심 세계관에 젖어 있는 한국과 공통점이 있을까. 한국외대 고영훈 교수는 그럼에도 식민지 경험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봤다.250여년간의 네덜란드 통치 경험에 이은 3년반 정도에 걸친 일본의 식민통치. 일제는 백인에 맞서 황인의 이익을 지키자고 외쳤고, 네덜란드에 저항하던 인도네시아인들은 온 몸으로 일제를 환영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250년간 통치보다 3년반의 통치가 훨씬 더 가혹했던 것. 일제의 통치기법은 단순했다. 바로 한국을 36년간 통치한 기술을 그대로 옮겨와 적용하는 것. 이 때문에 인도네시아에는 ‘Koreanlization’(한국화하다)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여기에다 66년 수하르토 장군을 중심으로 한 반공우익 군부집단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일본에 경제 성장을 의존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민족주의자들을 억압한 것도 비슷하다. cho1904@seoul.co.kr ■노벨문학상 후보 거론 ‘파프람’ |자카르타(인도네시아) 조태성특파원|프라무디아 아난다 토르.‘파(Pak·선생님)프람’이라는 존칭으로 불리는 인도네시아 문학의 거장이다.‘식민지배와 독립’이라는 민족주의 주제를 파고든 그의 소설은 외국에서 높게 평가받았다. 그 때문에 80년대 중반 이래 끊임없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한국에도 대표작 ‘밍케’ 등 몇몇 중·단편소설 등이 번역·출간됐다. 그러나 반공우익 독재정권에게 강력한 민족자주노선은 어디서나 거북스러웠던 모양이다. 수하르토 독재정권은 80년대 초반 그의 책 모두를 금서로 지정했다. 금서로 지정되기 직전까지 수하르토 정권의 부통령은 ‘젊은이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추천사를 쓰고 있었다는 재미있는 일화도 전해진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독재정권이 붙인 금서딱지는 외려 품질보증서였던 셈이다. 지금은 18년간의 수감생활과 고문에 지친 80세의 노인이 됐다. 하지만 ACN과의 심포지엄이 있다는 소식에 억지로 참석해 심포지엄 내용을 꼼꼼히 챙겨 듣고 있었다. 여유도 잃지 않았다.“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나는 이제 치매에 걸릴 나이”라더니 “기억력도 예전만 못해서 받을 빚 외에는 자꾸 잊는다.”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한국과의 만남에 대한 느낌은. -먼 나라인데다 어찌보면 역사적으로 크게 관계가 없는데도 이렇게 찾아와줘서 놀랍기도 하고 너무도 반갑다. ▶최근에 쓰고 있는 작품은 있나. -나는 이제껏 충분히 썼다. 더 이상 작업하는 것은 노욕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이제껏 모아뒀던 모든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60년대 이후 인도네시아 문학과 역사에 대한 문제를 정리해둬야겠다는 생각이다. ▶자신만의 문학적 모티프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국가를 통합하고 근대를 이룩해낸 작업에 대해 관심이 많다. 물론 이는 긍정적인 의미만은 아니고 외려 부정적인 의미에 가깝다. 근대국가를 이룩한다는, 그 진취성이 남긴 폐해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래서 나는 참여문학에 대해 고민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런 고민은 인류의 행복을 위한 고민이고 동시에 인류 공통의 고민이라고 본다. cho1904@seoul.co.kr
  • [주말에 뭘 보러갈까]

    [콘서트] ■ 김장훈 스런 콘서트 1일부터 31일까지 목·금 오후 7시45분 토 오후 5시·9시 일 오후 6시 대학로 질러홀 1544-1555. ■ ‘자전거 타고 동물원에 여행가자!’콘서트 2일 오후 4시·8시 3일 오후 3시·7시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 1588-9088. ■ 마이클 W 스미스 내한공연 3일 오후 7시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02)2650-7482. [뮤지컬] ■ 더씽어바웃맨 무기한 대학로 신시뮤지컬극장진정한 사랑과 결혼의 의미를 둘러싼 아찔한 삼각관계. 뮤지컬 ‘아이 러브 유’의 작가 조 디피트로와 지미 로버츠 콤비의 빛나는 감성과 위트를 재확인할 수 있는 무대. 한진섭 연출, 성기윤 이정열 김경선 출연.1544-1555. ■ 오페라의 유령 9월1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19년간 한결같은 사랑을 받아온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흥행 뮤지컬.1588-7890. ■ 갓스펠 7월3일까지 한전아트센터. 김학민 연출, 류정한 소냐 출연.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 7일간의 이야기를 다룬 록뮤지컬.(02)3446-9820. ■ 리틀 샵 오브 호러스 7월31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이항나 연출, 김학준 양소민 박지일 출연. 식인식물을 내세워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풍자하는 코믹호러극.(02)556-8556. ■ 그리스 8월7일까지 충무아트홀. 이지나 연출, 로큰롤 선율에 실린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의 꿈과 사랑.(02)556-8556. [클래식] ■ 체코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 첫 내한공연 7월6일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동유럽 최고의 문화강국 체코가 자랑하는 프라하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인 페트로 알트리히터와 110명의 단원이 체코가 낳은 작곡가 스메타나의 ‘팔려간 신부 서곡’과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을 연주하며 슬라브 음악의 진수를 들려줄 예정.(02)599-5743. ■ 이희승 피아노 독주회 7월4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 (02)3436-5929 ■ 남수아 첼로 독주회 7월6일 오후 8시 (02)3436-5929. ■ 앙상블 모데른 내한공연 7월2일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02)-580-1135. [무용/어린이] ■ 로열발레단 ‘신데렐라’ 30일·7월1일 오후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02)399-1114. ■ 로열발레단 ‘마농’ 7월2일 오후7시30분,7월3일 오후3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02)399-1114. ■ 김순정 창작발레 ‘바람이 분다, 간다’ 7월1일 오후8시 서강대 메리홀(02)2263-4680. ■ 가족뮤지컬 어린왕자 7월5∼23일 세종문화회관. 생텍쥐페리의 동화를 각색한 서울시뮤지컬단의 작품.(02)399-1772. ■ 국악뮤지컬 솟아라 도깨비 7월2∼31일 충무아트홀소극장. 환경오염때문에 더이상 땅위에 살 수 없게 된 도깨비들의 이야기.(02)2235-5730. ■ 완희와 털복숭이괴물 7월14일까지 사다리아트센터 세모극장. 주인공 완희가 털복숭이괴물을 만나 두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을 그린 성장드라마.(02)382-5477. ■ 돌아온 리틀 드래곤 7월3일까지 라트어린이극장. 어린이 영어연극으로 처음 선보였던 ‘리틀 드래곤’의 업그레이드 버전.(02)560-0999. [미술] ■ 장정웅 작품전 7월5일까지 인사아트센터전통 기와집 지붕마루 끝을 장식하는 기와의 한 종류인 ‘망화’를 그리는 화가 장정웅. 그는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았던 망와의 조형미를 발견, 오랜 연구끝에 지난 1990년대 이후 전통적인 채색화 방식으로 표현해왔다. 그의 작품은 전통문화속에서 현대화의 또다른 가능성을 찾아낸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02)736-1020. ■ 제임스 브라운전 7월20일까지. 청담동 쥴리아나 갤러리(02)514-4266. 점, 형태, 색, 구성이라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환상적인 우주와 행성들의 관계를 표현하고 있는 미국작가 브라운. 두번째로 갖는 이번 국내전에서 그는 ‘행성’시리즈 등 독특한 유화 25점을 선보인다. ■ 선상의 미디어전 30일까지. 이화여대.(011)9095-1847. 세계여성학대회의 개막에 맞추어 개막되는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이마트의 전시회. 이대가 주관하는 이 미디어아트전은 페미니즘 주제의 작품들로 구성된다. 아시아, 유럽, 미주지역의 여성작가들이 대거 참여, 페미니즘과 미디어아트의 절묘한 조화를 이뤄내고 있다. ■ 유럽 인기작가 작품전 7월30일까지.(02)738-3639 견지동 예성화랑.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유럽화단의 작품을 볼 수있다. 프랑스출신 조르주 루오, 베르날드 뷔페, 베르날드 카트랑과 스페인 작가인 조안 미로 등의 판화와 유화 20여점이 선보인다. [연극] ■ 떼도적 7월 1·2일 고양어울림누리극장 최근 독일 만하임 세계쉴러축제 폐막작으로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 국립극단의 귀국 공연. 빠른 극적 전개로 초연보다 상영시간을 1시간 줄였다. 이윤택 연출, 김재건 주진모 이상직 출연.(031)969-4141. ■ 코리아 환타지 7월3일까지 연우소극장. 최치언 작·최용훈 연출, 홍성경 최현숙 출연. 시대별 인간유형에 대한 보고서.(02)764-3380. ■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7월17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손기호 작·연출, 김학선 염혜란 장정애 출연.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 없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심성을 지닌 선호네 가족의 가슴시린 사랑이야기.(02)762-9190. ■ 벽속의 요정 7월24일까지 우림청담시어터. 배삼식 극본, 손진책 연출. 벽속에 숨어살게 된 아버지와 그의 아내, 딸이 그려내는 가슴따뜻한 가족이야기. 마당놀이 스타 김성녀의 첫 모노드라마.(02)569-0696. ■ 셜리 발렌타인 7월17일까지 산울림소극장. 윌리 러셀 작·글렌 월포드 연출, 손숙 출연. 홀로서기를 꿈꾸는 40대 중년여성의 유쾌한 일탈.(02)334-5915.
  • [세계여성학대회] ‘아프리카의 딸’ 몽겔라 가장 주목

    머리와 가슴에 히잡(hijab)을 두르고 캠퍼스를 활보하는 이슬람 여성, 부드럽게 하늘거리는 전통의상 사리(Sari)를 걸치고 발제에 나선 인도 여성, 초록과 노랑을 조화시킨 원피스로 흑인의 피부 개성을 살려낸 아프리카 여성. 제9차 세계여성학대회는 지구촌 여성들의 축제를 방불케 했다. 페미니즘을 ‘가진 여성들’이나 부르짖는 깐깐하고 피곤한 소리쯤으로 여긴다면 큰 오산이다. 피부색과 종교,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어 진정한 인간권리를 찾으려는 학자와 운동가들의 진솔한 ‘대화’가 곳곳에서 펼쳐졌다. 이번 대회를 통해서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각국 여성학자와 여성운동가들이 대거 한국을 찾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국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거트루드 몽겔라(사진 왼쪽·50) 범아프리카의회 의장.‘아프리카의 딸’이라고 불리는 그는 지난해 여성 최초로 범아프리카의회 의장직을 맡은 인물이다. 아프리카 동부 탄자니아의 작은 섬에서 태어나 여성장관, 토지장관, 천연자원·관광장관, 대통령실 정무장관을 두루 거치며 아프리카의 거물 정치인으로 우뚝 섰다. 지난해 6월 서울에서 열린 ‘2004 세계여성지도자회의’에서 제1회 세계여성지도자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화여대는 여성학대회 첫날 몽겔라 의장에게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그는 대회 기조 연설자로 나서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운전석에 앉아 방향을 직접 설정해야 한다.”며 여성 지도자들의 강력한 리더십을 촉구했다. 미국 원주민 출신 큐레이터 조애너 빅페더(사진 오른쪽·52) 역시 시선을 끄는 참가자였다. 그는 미국 남서부의 인디언 종족인 아파치족 출신이다. 현재 미국 원주민은 550여개족으로 자기 정부와 언어를 가지고 공동체를 구성해 살고 있다. 그는 “미국 원주민들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여성이 추장에게 지시를 내리기도 하고 투표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기도 한다.”면서 “많은 원주민 여성들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당당하게 의견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대회 둘째날 ‘원주민 여성과 예술을 통한 사회적 변화’라는 주제로 발표를 한 그는 앞으로도 예술 작품의 배치로 원주민의 삶을 표현하는 미술 작업을 계속할 예정이다.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세계여성학대회] ‘페미니즘 비디오’ 70여편 상영

    길거리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배를 피우는 젊은 여자들.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 생소하다거나 볼썽사납다는 시선을 이들에게 꽂는다. 길거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남자들보다는 이상하니까.“왜?”라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냥 여자들이니까.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이 마련한 아카이브 기획전 ‘페미니즘 비디오 액티비스트Ⅱ’에서 상영될 ‘흡년’의 한 장면이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비논리적이고 명확하지 않은 기준으로 여성들의 생각과 행동을 제한하는 ‘남근(男根)중심 문화’에 일침을 놓는 작품 70여편이 상영된다. 기획전은 서강대 메리홀에서 24일까지 계속된다. 제9차 세계여성학대회 기간에는 ‘페미니즘 비디오 액티비스트Ⅱ’와 같이 전 세계 여성들의 공통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문화 행사가 열린다. 여성학대회가 이성을 자극하는 학술대회라면 문화 행사는 감성을 울리는 축제인 셈이다. 아시아 7개 나라 작가 19명이 참가한 제3회 여성미술제 ‘판타스틱 아시아’ 역시 눈길을 끄는 행사다. 여성문화예술기획 주최로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서는 아시아 여성의 몸과 성이 어떻게 억압받고 왜곡됐는지를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표현한 사진과 비디오, 설치 및 회화 작품들이 선보인다. 대회 둘째날인 21일 이화여대 포스코관에서 열린 ‘가정 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한 추모제’(한국여성의전화연합 주최)도 눈길을 사로잡는 퍼포먼스였다. 이 행사에서는 남편의 폭력으로 사망한 억울한 여성들의 넋을 달래는 위령제와 시낭송 등이 진행됐다. 세계 각국의 여성 정책 입안자들이 참여한 현장에서 열린 퍼포먼스였기 때문에 행사장 즉석에서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가정폭력을 추방하자.”는 메시지를 자필로 써서 남기기도 했다.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공연리뷰] ‘인형의 집-노라’

    [공연리뷰] ‘인형의 집-노라’

    노라가 쏜 총알이 관통한 건 남편 토어발트의 심장만이 아니었다. 느긋한 자세로 무대를 응시하던 관객의 뇌리에도 똑같은 강도의 충격으로 날아와 박혔다. 지난 8∼10일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독일 샤우뷔네극단의 ‘인형의 집-노라’(헨리크 입센 작,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연출). 예정된 결말에도 불구하고 노라가 남편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객석은 소리없이 전율했다.120년 전, 남편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지탄을 받았던 노라의 급진적인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남편을 죽이고 주저없이 문밖으로 나왔지만 결국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문앞에 주저앉아 흐느끼는 노라처럼 관객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오직 한 사람, 유럽 연극계의 떠오르는 샛별인 독일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만이 과감하고, 단호했다. 현대 중산층 가정으로 무대를 옮긴 노라는 일견 자유롭고, 강한 여성처럼 보인다.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자신의 아름다운 육체를 의도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그녀에게선 ‘요부’의 느낌마저 풍긴다. 은행 지점장인 토어발트는 퇴근 후 디지털카메라로 세 자녀를 찍어주는 자상한 아빠이자 아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는 근사한 남편이다. 외견상 완벽해보이는 이 단란한 가정은 그러나 사소한 외부의 충격에도 쉽게 균열을 일으키며 깨져나가는 유리성에 불과하다. 노라는 남편을 위해 과거 자신이 저질렀던 불법 때문에 협박을 당하면서도 끝내 남편에게 사실을 털어놓지 않고, 남편은 아내의 잘못을 감싸안는 대신 혹독하게 비난하고, 모욕을 준다. 전통적인 페미니즘적 시각과 함께 첨단 현대 사회에서의 가족간 의사소통 부재에 대한 경각심으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자칫 무겁고, 고리타분할 수 있는 주제에도 불구하고, 감각적이고 재치 있는 연출 덕에 객석에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모던하고 세련된 무대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배경으로 여러 각도로 회전하면서 효과적인 장면 전환을 이끌어냈다.‘탕’하는 발사음은 권태로운 일상에 파묻힌 관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듯 했다.“당신의 가정은 안녕하신가요?”. 공연 직후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에게 관객들은 힘찬 박수로 화답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스피박 넘기/스티브 모튼 지음

    ‘등 따습고 배부른 부르주아 아주머니들의 투덜거림’. 고차원적 이론 비판에서든 저급한 인상비평 수준이든 페미니즘 비판에서 끊이지 않는 단골 메뉴다. 그런데 이런 비판은 정작 페미니스트들이 스스로 불러들인 측면이 크다. 9·11테러 뒤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미국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부르카’를 벗어던진 여성 아나운서가 방송을 진행토록 한 것이다. 우리에게도 사례는 있다. 몇해 전 논란이 됐던 여성계의 ‘박근혜 지지’ 문제도 있었고, 공창제와 같은 현실적 접근은 아예 무시한 채 추진한 집창촌 일제단속도 있다. 이것의 문제점은 질문을 조금만 진전시키면 금방 드러난다.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은 여성해방인가?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여성’이면 다 오케이인가? 고마워해야 할 성매매 여성들은 왜 페미니스트들을 ‘현실은 쥐뿔도 모르는 것들’이라 부르나? 현실의 정치·경제적 맥락을 무시한 채 시선을 오직 여성에게만 고정시킬 경우 빠질 수 있는 위험에 대한 경고들이다. 이런 맥락에서 페미니스트 가야트리 챠크라보르티 스피박을 본격적으로 다룬 ‘스피박 넘기’(스티브 모튼 지음, 이운경 옮김, 앨피 펴냄)가 출간된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스피박은 흔히 ‘포스트 식민주의 페미니스트’로 불리는데 인도 출신 여성으로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는 배경이 작용했다. 동시에 스스로의 표현대로 ‘사회주의 이상과 식민유산 사이에’ 갇힌 인도의 역사적 경험 탓도 있다. 이런 부분에서 공유할 대목이 많아 국내 학자들의 이런저런 글에 곧잘 인용되지만 정작 스피박 관련 책은 거의 없다.2년여전 나온 ‘다른 세상에서’가 전부다. 마르크스적인 접근법에다 데리다의 해체이론, 페미니즘 이론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어렵기 때문이다.‘스피박 넘기’는 이를 쉽게 풀어주고 있다. 스피박 이론에서 가장 재미있는 점은 스피박 스스로 자신에게 붙은 ‘포스트 식민주의’ 딱지를 거부한다는데 있다. 서구 백인 중심의 포스트 식민주의란 식민주의의 또 다른 변형일 수 있다는 반전이다. 이는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쌓아올린 여성들의 울타리도 부정한다. 지난해 모 일간지를 통해 진행된 스피박과 한국의 한 여성학자간 대담이 초점에서 어긋난 듯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시에 원서와 달리 출판사가 스피박 ‘넘기’라고 제목을 붙인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마침 제9차 세계여성학대회가 오는 19일부터 24일까지 이화여대에서 열린다.90여개국에서 2500여명이 참가해 2100여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매머드 행사다. 우리 여성학은 혹시 서구 백인의 이론에 매몰돼 지금 이 땅의 현실은 외면하는 지적 태만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피박의 시선으로 지켜보는 것도 포인트가 될 듯하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책꽂이]

    ●샤먼(피어스 비텝스키 지음, 김성례·홍석준 옮김, 창해 펴냄) 산 자와 영들의 세계를 매개하는 치유자로서 존재해온 샤먼에 대한 입문서. 시베리아 설경에서 아마존 정글에 이르기까지 과거와 현존하는 샤먼과 샤머니즘의 세계로 안내한다.2만 5000원. ●여성철학자(마리트 룰만 등 지음, 이한우 옮김, 푸른숲 펴냄) 고대 그리스에서 현재까지 철학사의 뒤편에 머물러 있던 여성 철학자들 이야기를 담았다. 그들이 철학사에서 갖는 의미와 가치를 페미니즘적 시각을 견지하며 소개한 철학 인문서.3만 2000원. ●제국의 태양 엘리자베스 1세(앤 서머싯 지음, 남경태 옮김, 들녘 펴냄) 1588년 영국이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퇴하고 유럽의 변방에서 중심부로 격상되는 격동의 시대 한 가운데 서서 ‘대영제국’의 깃발을 올렸던 엘리자베스 1세의 삶과 정치 이야기를 담았다.2만 7000원. ●바다에 오르다(김웅서 지음, 지성사 펴냄) 프랑스 국립해양개발연구소의 탐사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지은이의 선상일기이자 항해일지를 담았다.42일간 태평양 심해저를 탐사하며 겪은 하루하루의 일과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1만 6000원. ●왕부지, 대학을 논하다(왕부지 지음, 왕부지사상연구회 옮김, 소나무 펴냄) 중국 명말 청초 격변의 시기에 주체적으로 살아가면서 구체적 현실을 중시하는 입장을 견지했던 왕부지의 ‘대학’ 해설서. 주자 등 선유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던 왕부지의 독창적 단면을 볼 수 있다.1만 8000원. ●글쓰기의 힘(김용석 등 지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 디지털시대에도 여전히 그 중요성이 강조되는 글쓰기의 가치와 다양한 글쓰기 노하우를 실전적으로 살핀다. 독후감이나 자기소개서 등 실용적 글쓰기에서부터 평전이나 칼럼, 동화쓰기 같은 전문적이면서 시도해봄직한 글쓰기 작업을 소개한다.1만 5000원. ●권력과 광기(비비안 그린 지음, 채은진 옮김) 로마제국의 네로, 칼리굴라부터 영국의 헨리 6세, 프랑스 샤를 6세, 스웨덴 에릭 14세, 히틀러와 스탈린에 이르기까지 통치자들의 비정상적 성격과 행동이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다.2만 3000원. ●세계 패션사(J. 앤더슨 블랙ㆍ매쥐 가랜드 지음, 윤길순 옮김, 간디서원 펴냄) 인류 생활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의복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를 살펴본다. 메소포타미아 시대에서 20세기 후반에 이르는 4000여년 동안 서양의 남녀 복식과 장신구 등이 정치·경제적 변화와 문화예술의 유행속에서 변해온 과정을 풍부한 그림을 곁들여 설명해 놓았다.4만 7000원.
  • “노화는 죽음의 전단계가 아니다”

    현대과학발달이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나. 이와 관련. 이번 주에 눈길을 끄는 학술대회가 잇따라 열린다. ●‘노화=죽음?’ 18∼20일 열리는 가톨릭대 개교 15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는 의학기술 발달과 생명윤리에 대한 논의가 펼쳐진다.19일에는 서울대 의대 박상철 교수가 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더 이상 노화는 죽음의 전단계가 아니라는 것이다.‘노화=죽음’은 세포가 외부자극에 무력하고 더 이상의 증식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데 최근 연구결과는 외부자극에 노화세포가 더 잘 버티고, 일정 조건 아래서는 증식도 이뤄진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즉 노화세포일수록 생존을 위한 환경 적응력이 훨씬 뛰어나고, 이런 생존력에 일정한 조건이 뒷받침되면 다시 증식까지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 교수는 노화를 어쩔 수 없는 현상이 아니라 바꿀 수 있는 것으로 개념화해 노화대책을 새롭게 짜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를테면 유전자·줄기세포요법이나 장기이식법 같은 ‘바꾸기(replace)원칙’이 아니라 원래의 활력을 유지·발전시킬 수 있는 ‘고치기(restore)원칙’이 확립돼야 한다는 것이다. ●비아그라의 명과 암 20∼21일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열리는 한국문화인류학회 학술대회의 주제는 ‘남성성’이다. 페미니즘에 포함돼야 하지만 여성성을 강조하다 보니 밀려 버린 남성성을 재조명해보자는 자리다. 이 가운데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채수홍 교수의 ‘비아그라가 한국의 남성성과 남성문화에 끼친 영향’이 주목된다. 환자와 의사에 대한 심층면접이라는 문화인류학적 접근법으로 ‘고개숙인 남자’를 구원했다는 비아그라의 명암을 비춰본 글이다. 채 교수는 비아그라가 성기와 삽입 중심의 기존 성관념에서 출발했지만 그 효과는 다양하다고 분석한다. 상업논리 때문에 예전에는 나이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인 발기부전이 병이 됐지만 동시에 억눌려 있던 성에 대한 권리가 회복되고 있다는 측면도 있는 것이다. 이는 성의 공론화에도 기여한 바가 크다는 게 채 교수의 주장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둘째 아이 가질 확률 높다

    둘째 아이 가질 확률 높다

    “일이냐 아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햄릿의 한 장면이 아니다. 이분법적 선택을 놓고 고민을 하고 있는 우리 기혼 직장여성들의 현실이다. 게다가 저출산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일부에서는 ‘저출산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원인’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직장에 간 엄마들이 모두 가정으로 돌아와 살림만 한다면 출산율이 높아질까. 최근 여성계에서는 육아와 가사노동의 분담 등 가족 내 성평등(Gender Equality)이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는 학설이 발표됐다. 한국여성개발원 박수미 연구위원은 최근 보건복지포럼을 통해 가정내 성평등이 출산율을 높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을 밝혔다. 쉽게 말해 남편이 가사를 도와주는 집일수록 출산율이 높다는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개도국에서는 성평등 수준이 낮을수록 출산율이 높게 나타나지만 경제성장을 이룬 선진국에서는 성평등 수준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높게 나타난다.”면서 “여성의 경제활동이 전반적인 출산율을 낮추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일부만 보는 단편적인 사고”라고 말했다. 박 위원이 설명한 학설은 소위 ‘페미니스트 역설(feminist paradox)’이란 이론이다.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확산되면 일정기간 동안 출산율이 떨어지지만, 이 단계를 넘어서면 다시 출산율이 상승하는 U자형 곡선을 그린다는 것이다. ●한국 저출산 성평등의 과도기가 원인 성평등과 출산율의 상관관계는 아직 우리에게 생소한 개념이지만 외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연구 대상이 돼 왔다. 이론상으로 우리나라는 성평등 수준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어중간한 단계로 일시적으로 출산율이 극히 낮아진 과도기로 해석할 수 있다. 비슷한 결과는 다른 연구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2004년 발표된 미국의 한 논문(Torr&Short 2004)에 따르면 부부의 가사노동 분담과 둘째 아이의 출산율은 앞서 말한 페미니스트 역설과 같은 U자 곡선을 그렸다. 미국에 거주하는 맞벌이 부부의 가정을 조사해 발표한 이 논문은 부부의 가사분담률에 따라 가정을 ‘전통적 가정’‘중간 가정’‘현대 가정’으로 구분했다. 이중 가장 높은 출산율을 보인 가정은 여성 가사 부담이 54% 이하인 ‘현대 가정’으로 81%가 둘째 아이를 가졌다. 여성의 가사 부담이 84% 이상인 ‘전통적 가정’도 74%의 출산율을 보였지만 현대 가정 보다는 출산율이 낮았다.‘중간 가정’은 55%만이 둘째 아이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의 인식변화 사회보다 늦어 이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사회적 변화에 가족 제도의 변화가 따라가지 못하는 지체 현상에서 기인한다고 학자들은 분석한다. 사회적 변화로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지만 가정 내의 인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가사 분담은 고스란히 여성에게 남게 돼 여성들이 출산을 부담스러워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실제 남성의 가사 참여율이 높은 프랑스, 스웨덴, 영국 등의 출산율이 1.5∼1.9를 유지하는 반면 남성의 가사 참여가 극히 저조한 스페인, 이탈리아, 한국, 일본 등의 출산율은 1.35미만으로 극저출산국으로 분류된다. 박 위원은 “이상적인 출산은 부부가 원하는 만큼 자녀를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우리나라 부부의 현실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면서 “출산과 양육에 대해 부부와 사회가 함께 고민할 때 저출산도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책꽂이]

    ●천개의 바람이 되어(신현림 지음, 글로세움 펴냄) ‘내 무덤앞에서 울지 마세요/나는 거기에 없습니다’로 시작되는 유명한 영시(A thousand winds)에서 세상살이의 희망과 아름다움을 읽어내는 시인의 포토 에세이집.‘굿모닝 레터’‘아!인생찬란 유구무언’ 등 다수의 포토 에세이를 펴낸 바 있는 작가는 이번 작품집에서도 시어와 사진의 절묘한 조화를 선사한다.8500원. ●삼천갑자 복사빛(정끝별 지음, 민음사 펴냄) ‘흰 책’이후 5년 만에 낸 세 번째 시집. 시인은 자서(自序)에서 ‘삼천갑자, 그러니까 육 삼 십팔, 십팔만년이, 금세 스러질 내 삶에, 내 몸에, 내 사랑에 슬어 있다고 믿는다.’고 고백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일상의 상처들과 이를 웃음으로 넘기는 농담으로 가득하다.7000원. ●굶주린 여자(홍잉 지음, 한길사 펴냄) 2000년 ‘베이징 만보’의 10대 인기작가,2001년 ‘중국도서상보’가 정한 최고의 여성작가에 뽑히는 등 중국 페미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장편소설. 문화대혁명 시기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다.1930년대 중국을 무대로 삼은 연애소설 ‘영국 연인’도 함께 나왔다. 작가는 현재 영국 런던에서 작품 활동 중이다. 각권 9000∼9800원. ●어느날, 크로마뇽인으로부터(이평재 지음, 민음사 펴냄) 도발적 상상력으로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 내면에 깃든 추악성과 공격성을 집요하게 파헤쳐온 작가가 두 번째 소설집을 냈다. 표제작을 비롯해 총 8편의 단편을 묶었다. 작품마다 작가가 직접 그린 삽화 24컷이 작가의 독특한 소설세계에 환상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매력을 더한다.1만원. ●어머니, 우리 어머니(김종해 김종철 지음, 문학수첩 펴냄) 신춘문예를 통해 나란히 등단했고, 출판사를 운영하는 두 형제시인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을 향한 마음을 시로 노래했다.‘…아아 엄마하면/그 부름이 세상에서 가장 짧고/아름다운 기도인 것을!’(김종철, 엄마엄마엄마)이란 시구에서 삶의 위안이자 시의 생명으로서의 어머니가 오롯이 전해진다.8000원. ●풍경의 탄생(장석주 지음, 인디북 펴냄) 시인이자 평론가인 저자의 6번째 평론집. 지난 7년간 써온 평론을 엮은 것으로 ‘이미지’라는 프리즘으로 바라본 한국시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했다. 세기말을 넘어 새로운 시대로 달려가는 젊은 소설가들의 작품에 대한 분석, 제도권에 갇혀 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문학비평의 현주소를 살핀 글들이 실려있다.2만 5000원.
  • [교황 베네딕토 16세 시대] ‘하느님의 충복’ 별명 보수주의자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78)는 일생 동안 보수주의적 입장을 견지해왔다.‘요한 바오로 3세’,‘하느님의 충복’이라는 별명이 그의 노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콘클라베가 시작된 뒤 그는 보수적 추기경들의 지지를 모으면서 일찌감치 강력한 교황 후보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여든에 가까운 고령인데다 지역적 지지기반이 약한 것이 약점으로 꼽힌다.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 그는 “교황이 된다면 단기간만 재위하고 물러나겠다.”며 스스로 ‘과도기적 관리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평범한 유년기, 나치 전력으로 얼룩 베네딕토 16세는 1927년 4월16일 독일 바이에른주의 마르크트 암 인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전통적인 독일 농가의 분위기를 이어받았으며 아버지는 경찰관이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열심히 배웠던 명민한 소년이었던 그는 청소년기에 접어들며 나치와 2차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게 된다.14살이었던 1941년 히틀러 소년단(유겐트)에 가입했던 것이 두고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 소년단 가입을 거부할 수도 있었는데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어 1944년 입대, 방공포 부대 소속으로 복무하던 중 탈영했다가 붙잡혔다. 전범수용소에 갇혀있다 2차대전 종전과 함께 석방됐다. ●왕성한 연구활동으로 명성얻어 이후 베네딕토 16세는 형 게오르그 라칭거와 함께 가톨릭 신학교에 입학, 본격적으로 신학 수업을 받기 시작한다.1951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2년 뒤 뮌헨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프라이징과 본, 튀빙겐, 레겐스부르크 등지의 여러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며 가톨릭 교리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했다.1962년 그는 35세의 나이로 쾰른대주교의 고문에 임명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1977년 2월 베네딕토 16세는 뮌헨대주교가 됐으며 석달 뒤 추기경에 봉임됐다.1981년 요한 바오로 2세는 베네딕토 16세를 교황청 신앙교리성성(聖省) 수장으로 임명, 이후 24년 동안 두 사람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1998년에는 추기경단 부단장,2002년에는 단장이 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베네딕토 16세가 실질적으로 교황청을 이끌어왔다는 데에 이견이 없다. ●평생 보수주의 유지 베네딕토 16세가 보수주의적 입장으로 돌아선 데에는 1968년 독일 대학가를 휩쓴 ‘68운동’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그는 동성애, 낙태, 피임, 여성 사제 서품 등에 대해 일관되게 보수적 입장을 유지해왔다. 베네딕토 16세는 종교적 자유·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강조한 ‘2차 바티칸공의회(1962∼65년)’에 대해 “교회의 타락 과정이며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불길하고 파멸적인 것”이라며 분명하게 반대했다.2001년 6월 발표된 동성애와 자위행위 금지를 포함한 엄격한 교황청의 성윤리 지침과 지난해 7월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교회와 세계에서 남성과 여성의 협력에 관하여’라는 교황청의 문건을 작성한 사람도 바로 베네딕토 16세였다. 또 미국 주교들에게 낙태를 옹호하는 정치인에게 영성체를 베풀지 말라는 편지를 보냈고, 이슬람국가인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에 반대했다. 지난 13일에는 이혼, 동성결혼, 인간복제 등에 반대하는 교리를 담은 저서 ‘격변의 시대의 가치’를 출간했다. ●엇갈리는 평가 베네딕토 16세에 대해서는 상반된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지자들은 대표적인 지적 성직자인 베네딕토 16세가 뚜렷하고 명쾌한 교리를 제시, 가톨릭 내부의 단합을 이끌 것이라며 환영한다. 베네딕토 16세는 10개 언어를 구사하며 7개 분야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베토벤 음악을 좋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진보주의자들은 그를 ‘강요자’로 부른다. 이들은 ‘해방 신학’의 주창자인 브라질의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를 징계했던 것처럼 새 교황이 진보적 성직자들을 처벌하고 가톨릭을 중세시대로 돌려놓을 것으로 우려한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영혼을 깁는 바느질 한땀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 여자들은 모두 바늘을 사용했다. 나는 항상 바늘의 매력과 마술적인 힘에 끌려 있었다. 바늘은 손상을 치유하는 데 쓰인다. 그것은 관대하다. 결코 호전적이지 않다. 그것은 핀이 아니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여성작가 루이즈 부르주아(94). 그에게 바늘이나 드로잉 펜은 손에 익은 작업도구다. 그는 조각난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바늘을 들었고 드로잉 펜을 잡았다. 그렇다면 그의 아픔의 정체는? 그것은 바로 어린 시절 아버지의 외도로 인한 배신감과 무기력한 어머니에 대한 연민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부르주아 예술의 지속적인 동력이 됐다. 부르주아는 이같은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성과 남성성의 갈등, 나아가 인간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조각작품에 담아냈다. 신체와 성이 미술의 주요 담론으로 자리잡으면서 그는 마침내 60대의 나이에 최고의 인기 페미니즘 작가가 됐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전시중인 작품들은 이같은 그의 정신적 배경을 알아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엔 ‘그는 침묵했지만 내가 그를 세상으로 불러냈다’ 등의 제목이 붙은 드로잉과 ‘사팔뜨기 여인 Ⅲ(메두사)’ 등 드라이포인트 작품, 천조각에 석판으로 이미지를 찍고 손바느질을 곁들여 만든 책 형식의 작품 ‘용서’,‘사제관’을 비롯한 조각 등이 나와 있다. 삶의 끝자락에서 부르는 영혼의 자서전 같은 작품들이다.1938년 미국인 미술사학자 로버트 골드워터와 결혼한 뒤 뉴욕에 정착한 부르주아는 미국과 유럽, 남미와 일본 등지에서 수차례 회고전을 가졌으며 한국에서도 2000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억의 공간’이란 제목으로 전시를 연 적이 있다.5월13일까지.(02)735-8449.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책꽂이]

    ●천국과 지옥에 관한 보고서(실비나 오캄포 지음, 김현균 옮김, 열림원 펴냄) 라틴 환상문학 계보의 선두에 선 아르헨티나 여성작가 실비나 오캄포의 대표단편선집. 아직 국내엔 잘 소개되지 않았지만 문학적 엄숙주의를 거부하고 여성과 어린이 등을 중심에 내세워 독특한 서사형식을 구축한 작가로 평가된다. 라틴 페미니즘 문학의 전형을 확인해볼 수 있다.1만원. ●춘향전(조경남 지음, 설성경 옮김, 책세상 펴냄) 남원부사의 아들인 실존인물 성이성을 주인공 이몽룡의 모델로 삼은 ‘원춘향전’. 지은이 조경남은유학자이자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가상인터뷰를 통해 원작자 조경남이 직접 ‘춘향전’의 집필배경과 성이성이란 인물에 대해 밝히고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성이성이란 인물을 모델로 ‘원춘향전’을 창작했다는 것은 연세대 설성경 교수의 학설이다.5900원. ●어디서나 보이는 집(이동순 외 지음, 선 펴냄) 체제경쟁이 치열했던 1970년대 북한문학의 좌표를 추적한 책. 시와 소설, 관련 논문, 낱말풀이 등이 실렸다. 영남대 북한문학연구팀이 엮었다.1만 8000원. ●꽃인 듯 눈물인 듯(김춘수 지음, 예담 펴냄) 지난해 타계한 김춘수 시인이 생전에 직접 가려뽑은 대표시 53편에 화가 최용대의 그림들이 나란히 실렸다. 초기작부터 타계 직전에 쓴 미발표작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시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시화집.1만 1000원. ●은빛낚시(이순원 지음, 이룸 펴냄) 소설가 이순원의 첫 수필집.2003년부터 한 일간지에 연재했던 짧은 글들을 주제별로 ‘손바닥 소설’처럼 간추려 묶었다. 가족, 추억, 이웃, 세태 등 4개 주제 아래 엮인 글들에서 작가의 소박한 생활철학이 읽힌다.1만 1700원. ●한국현대작가의 시야(조남현 지음, 문학수첩 펴냄) 개화기 이후 지금까지 국내 소설가들의 모습을 ‘글을 써서 생업을 도모하는 직업인’‘특정 이데올로기를 지니거나 알리는 이데올로그’‘사상가를 지향하는 지식인’ 등 5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저자는 서울대 국문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1만 5000원.
  • 역사소설 왜 뜨나?

    한국소설이 ‘역사’쪽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작가들이 내놓는 신작 가운데는 역사 소재의 작품들이 부쩍 많아졌다. 물론 그 자체를 커다란 트렌드라고 흥분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침체된 문학시장의 활로를 뚫는 기제로 역할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심장한 흐름이라는 게 출판가의 중론이다. ●꾸준히 ‘발언’하는 역사소재 소설들 역사는 지금까지 변함없이 인기있는 소설 소재였다. 하지만 근년들어 이른바 ‘역사소설’들이 문학시장에서 차지하는 가치는 사뭇 달라졌다.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군이 몇몇으로 한정됐던 예전과는 달리 젊은 인기작가들의 참여가 두드러지는 추세다. 이순신 장군의 내면세계를 새로운 각도로 그려낸 김훈의 베스트셀러 ‘칼의 노래’ 이후만 봐도 그 분위기는 감지된다. 예술을 위해 조국을 등지고 신라로 망명한 우륵의 예술혼을 다룬 김훈의 또 다른 역사소설 ‘현의 노래’에 명기 황진이를 주인공으로 불러낸 전경린의 ‘황진이’가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8권으로 완간된 김탁환의 ‘불멸의 이순신’, 여성화가 나혜석의 실제 삶에서 모티프를 따온 함정임의 ‘춘하추동’, 신라왕실을 주름잡은 요부 미실의 삶을 그린 김별아의 ‘미실’이 최근작들. 베스트셀러 ‘풍수’의 작가 김종록도 이번주 조선시대 천문학자 장영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장영실은 하늘을 보았다’(전2권)를 내놓았다. 특정인물을 벗어나 역사 자체를 글감으로 잡은 작품들로 눈을 돌리면 사례는 더 많아진다. 장정일이 여성적 시각에서 썼다는 ‘소설 삼국지’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는 작품이다. ●한승원도 ‘정약전 주인공’ 곧 출간 출간 ‘예약’된 작품들도 눈에 띈다. 이달 말엔 중진작가 한승원이 정약전을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 ‘흑산도 하늘길’(문이당)을 내놓는다. 정약전은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천주교 선교사로 다산 정약용의 형이다.“주인공을 가상인터뷰 형식으로 정약전의 잘 알려지지 않은 삶을 복원해낼 것”이라는 게 출판사측의 설명이다. 또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덕무가 주인공인 김탁환의 추리소설 ‘열녀문의 비밀’(황금가지)이 여름에 출간된다. 황금가지는 미 군정기에 암약했던 여간첩 김수임을 그린 김탁환의 또 다른 소설(제목 미정)도 겨울쯤 내놓을 계획이다. 김별아도 내친김에 조선시대가 배경인 역사소설을 잇따라 쓰고 있는 중이다. 역사소설 특히 인물을 소재로 한 역사소설 쓰기의 경향은 크게 두가지 배경에서 출발한다. 먼저 이전의 역사소설들과는 달리 최근엔 개인주의적인 서술방식으로 씌어지고 있는 추세다. 문학평론가 장은수씨는 “영웅담에 의존하는 국가주의적 서술태도나 성적 흥미를 추구하는 야사 중심에서 벗어나 요즘 작가들은 개인주의와 페미니즘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집단 속에서 개인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개별인물을 통해 거꾸로 집단을 발견하는 방식으로 시각이 변하고 있다는 얘기다.‘칼의 노래’,‘황진이’,‘미실’, 장정일의 ‘삼국지’ 등이 모두 그런 유형에 든다. ●일부 작가들 “아이디어 빈곤 극복 대안” 일부 작가들은 아이디어 빈곤을 극복하는 하나의 대안으로 역사소설 장르를 택하기도 한다. 김별아는 “현실의 변화속도가 너무 빨라 그 속에서 문학적 가치를 짚어내기가 너무 어려워졌다.”고 고백한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독자들의 관심 또한 역사소재 소설 쪽으로 쉽게 쏠리는 게 사실. 전경린의 ‘황진이’는 15만부나 팔렸고 ‘미실’도 출간 보름여 만에 4쇄(5만부)를 찍었다. 초쇄 3000부를 소화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국내 소설시장의 현실에서 놀라운 성적이다. 민음사 이수은 문학팀장은 “역사소재 소설은 픽션이면서 동시에 실재의 이미지를 가미할 수 있어 상업적으로 봐도 불리할 게 없다.”며 “그들의 선전은 하향 문학시장에 대한 경고이자 반동으로 읽혀야 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지금, 여기의 유학/김성기·최영진등 지음

    사회·경제적 위기론이 불거질 때마다 유학은 뭇매를 맞기 일쑤다.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혈연, 지연에 의한 유착의 뿌리라느니, 성차별적 폐단의 주범으로서 타파되어야 한다느니, 자본주의적 경쟁원리에 맞지 않는 구시대적 유물이라느니 등등. 조선 왕조 500년간 사회질서 유지의 근간이자 구성원들의 정신과 일상을 지배했던 유학의 위상은 이제 ‘호주제 철폐 반대’ 피켓을 든 갓 쓴 유림만큼이나 초라하다. 유학은 진정 폐기처분돼야 할까? 막스 베버의 주장처럼 유교적 관습은 동양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기만 한 것일까?‘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며 이미 반쯤 죽은 유학을 확인사살할 정도로 유학은 반사회적, 반진보적인 것인가? ‘지금, 여기의 유학’(김성기·최영진 등 지음, 성균관대출판부 펴냄)은 이처럼 팽배해 있는 유학에 대한 일방적 불신을 넘어 보다 객관적 시선으로 유교의 긍정과 부정의 이중성을 모색한 책이다. 경제위기의 주범이면서 경제발전의 동인이고, 비민주적 봉건윤리인 동시에 민권·정의 등 현대 민주주의와 양립 가능한 정치학이며, 여성을 억압하는 질곡인 동시에 양성 동반자적 윤리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해 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폐기처분을 넘어 유학의 태생적 본질을 이해하고,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한다면, 오히려 한계를 노출하고 있는 서구자본주의를 보완할 이론적 단초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이는 이 책을 쓴,11명의 동양사상 연구자들이 이 시대에 ‘아직도 유학을 탐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로 비판받는 유교에서 이들은 공자·맹자의 민본사상을 끄집어내고, 민본사상과 도덕성이 없는 군주를 추방하거나 베어도 무방하다는 맹자를 통해 시민의식과 민주주의의 본질을 본다. 나아가 무한질주중인 자본주의가 천민자본주의로 내려앉지 않도록 경계하는 도덕성을 추출해낸다. 이들은 또 현대신학에서 초월적 존재가 퇴색되고 있는 시대를 맞아 유교에서 대안적 종교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유일신으로서의 초월적 존재 대신 자아수양을 통한 초월적 삶을 가꾸며 종교적 성찰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이는 과학과 기독교란 두 기둥을 버팀목 삼아 발전해온 서구문명이 20세기 이후 과학의 일방독주속에 비틀거리는 현실 진단에서 온 것이다. 이들은 또 여성 비하 사상으로만 일축되어온 유교사상 내에서 한가닥 페미니즘적 요소를 보고자 하며, 동아시아 예술 속에 담긴 유가사상, 서양의 근대지식인들이 이해한 유교의 모습도 꼼꼼히 뜯어본다. 무엇보다 주목하는 것은 지배·흡수논리로 비판받는 신자유주의의 병리현상 치유를 위해 꼭 필요한 공존의 논리를 유학이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에 기초한 공자의 인(仁)사상, 개체적 존재론에 바탕을 두어 항상 갈등의 여지를 품고 있는 서양철학과 달리 인간 관계론에 중심을 둔 동양적 패러다임이 그것이다. 유학은 기술발달이나 정보화의 속도를 증폭시킬 수는 없지만, 기술개발과 정보와의 물결에서 표류할 수 있는 개인과 그러한 개인들이 만들어낸 사회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지침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내다보고 있다.1만 4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이성아 첫 소설집 ‘절정’

    이혼율 55% 시대. 현실에 눈밝은 이 땅의 작가라면 결혼제도의 모순은 어떤 시각으로든 한번쯤 깊이 고민했을 법한 글감이다.1998년 ‘작가’지에 단편 ‘미오의 나라’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성아(45)는 그런 점에서 볼 때 누구보다 시대의 현실에 민감한 작가다. 첫 단편을 발표하고 6년의 침묵을 거친 그가 창작집 ‘절정’(이룸 펴냄)을 내놓았다. 사회적 존재로서 여성의 좌표와 결혼제도를 탐색하는 펜끝이 더없이 날렵하다. 모두 9편의 단편으로 엮인 책은 여자들의 이야기로 넘쳐난다. 그 이야기들은 언제나 사회적 문제로 치환돼 소설 이상의 의미를 남긴다. 결혼제도의 모순을 고민한 많은 소설들이 가정의 울타리 언저리에서 얘기를 접었다 폈다 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번번이 결혼을 사회적 문제와 병치시키기 때문이다. 80년대 운동권의 기억이 여전히 소설의 주요소재가 되는 대목은 특히 흥미롭다. 여자는 대학시절 운동권에서 만난 남자를 잊지 못하다 결국 남편의 외도를 계기로 이혼하고(‘삿포로 공산당’), 머리깎고 절로 들어간 여자에게도 운동권에 함께 몸담았던 남자에게 버림받은 상처가 있다(‘눈꽃’). 일상과 내면으로 침잠하는 여성적 글쓰기 경향과는 저만치 거리가 있다. 화석화된 결혼제도에 대한 의문을 푸는 사이사이로 한국(인)과 일본(인)의 관계가 의미심장한 소재로 끼어들기도 한다. 한국인 여자와 일본 남자 기자와의 모호한 만남을 그린 ‘가릉빈가 우는 저녁’, 정부나 법률의 개입이 싫어 남자와의 동거를 택한 일본인 여자가 나오는 ‘미오의 나라’ 등에서다. 다분히 직설화법의 페미니즘 소설로도 읽힐 만하다. 소설가 송기원은 “작가가 필생으로 추구하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여성적 조건으로부터의 자유인지도 모른다.”고 이성아의 작품세계를 평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아시아적 가치’ 다양한 쟁점보기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평가는 시계추다.20세기 초반에는 자본주의 발달의 걸림돌이더니 80년대 고성장 시기에는 원동력으로 칭송받았다.IMF위기를 기점으로 다시 연고주의로 인한 부패·비효율·낭비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냉전 이후 이념 대신 인권을 내세운 미국의 공격이 이어지면서 다시 아시아적 가치는 부상하고 있다. 아시아 시민사회 연구에 주력해온 성공회대 아시아NGO정보센터는 ‘한국, 아시아 시민사회를 말하다’(아르케 펴냄)를 통해 아시아적 가치를 둘러싼 쟁점을 다양하게 짚어보고 있다. 지난해 3∼6월 국내외 학자들간에 진행된 대담을 묶은 이 책은 북한, 페미니즘, 환경운동, 시민운동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초점은 아시아적 가치가 편협함을 넘어 어떻게 세계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주제는 역시 ‘성공한 독재자 박정희와 실패한 독재자 마르코스’에 대한 필리핀 국립대 미리언 페러 교수의 비교사회분석과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의 반론이다. 페러 교수는 비슷한 통치스타일이었는데도 박정희의 경제만 성공한 것을 ‘박정희의 리더십과 사회적 저항의 부재’로 해석했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한국은 성공했고 필리핀은 실패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면 소극적 해석밖에 나올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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