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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성호의 문학의 길목] 근대 저편의 문학, 이란의 현대시

    [유성호의 문학의 길목] 근대 저편의 문학, 이란의 현대시

    한국문학번역원 산하 외국문학 전문 출판사인 ‘마음이음’에서 이란 시선집을 출간했다. 이는 한국 현대시와 이란 현대시가 상호 교차 출간 사업을 통해 서로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제법 큰 의의를 가진다. 사업의 첫 성과로 한국과 이란에서 동시에 상대국 시선집을 출간하게 돼 한국에서는 이란 시선집 ‘미친 듯 푸른 하늘을 보았다’가, 이란에서는 이란이슬람예술센터와의 업무 협약 결과로 한국 시선집 ‘도화 아래 잠들다’가 나왔다. 이란 시선집에는 이란 시편들 가운데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다양한 세대의 시인 84명의 작품 93편이 실렸다. 시선집 번역자인 신견식은 “페르시아어가 특히 흥미로운 것은 역사적으로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에 두루 걸쳐 문화어로서 큰 영향력을 끼치고 여러 언어에 수많은 차용어를 건네주어 딴 언어와 연결 고리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비록 번역어로 읽을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이번 시선집을 통해 우리는 페르시아어와 그곳 문학이 가지는 이러한 고유하고도 스케일 큰 특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서문에서 고은 선생도 “페르시아는 유라시아 대륙의 연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명확한 사실을 알 겨를 없는 근대의 한쪽 골짝에 갇혀 있다”라고 적었는데, 이는 서구 중심의 세계문학 지도에 ‘근대 저편’의 가능성으로 남아 있는 페르시아 문학의 세계문학적 가능성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물론 그동안 그곳 문학이 우리에게 전혀 소개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연전에 13세기 초 페르시아 영토였던 아프가니스탄 발크에서 태어난 이슬람 신비주의 시인 루미의 잠언 모음집 ‘사랑 안에서 길을 잃어라’(2005)가 국내에서 출간된 적이 있다. 이슬람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그것을 가장 보편적인 인류 정신과 상상력으로 승화해 간 루미의 언어는 페르시아 전통의 시가 어떤 것인지를 실감 있게 전해 주었다. 그리고 근자에 출간된 ‘백 년의 시간 천 개의 꽃송이’(2015)에는 20세기 초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란의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작품이 수록됐다. 2014년 한국시인협회가 이란을 방문했을 때 당시 김종철 회장이 이란시인협회와 양국 시인선의 상호 번역 출간을 약정했고, 그는 암 투병 중이었음에도 이 시집 발간을 위해 끝까지 노력한 바 있다. 이러한 소개와 교류의 흐름이 토대가 돼 이번에 양국 대표 시선집이 의젓하고도 충실하게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부대 행사로 이란 시인 알리레자 가즈베가 입국해 장석남 시인과 대담을 나누는 자리도 마련됐다. 가즈베는 페르시아 문학의 위대함과 보편성에 대해 이야기했고, 장석남은 이란 현대시에 나타난 사랑과 평화의 정신이 인상적이었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이처럼 이번 시선집은 그동안 우리에게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이란 문학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실물적 사례를 제공해 주었다. 그 안에는 읽는 이의 영혼을 편안하게 해 주는 절제된 잠언시, 사랑의 언어를 통해 독자들의 함축적 공감을 끌어올리는 페르시아 전통 서정시, 모성적 감성으로 인간의 근본 문제를 노래한 여성시, 전쟁의 비극을 바라보는 사회시까지 망라돼 그쪽 현대시의 역사가 한국 현대시의 역사와 퍽 닮았다는 인상을 준다. 최근 한국문학번역원은 제16회 한국문학 번역출판 국제워크숍을 개최했다. 이 워크숍은 한국 문학의 수준 높은 번역과 해외 출판시장 진출 강화 방안을 토론하기 위해 열렸는데, 여기서 해외 문학 관련 유관 기관과의 협력 및 교류 방안이 심도 있게 논의됐다. 이번 시선집이 이러한 과정에서 얻은 노력의 첫 결실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이 시선집을 기점으로 삼아 이란을 비롯한 ‘근대 저편’의 제3세계 문학들을 심층적으로 접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그 첫 단추로, 우리는 저 페르시아의 광활한 세계문학적 가능성과 만나게 된 것이다.
  • 뒤집힌 ‘사우디 왕좌’

    ‘조카보다는 아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그의 아들 모하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31) 제2 왕위계승자 겸 국방장관을 제1 왕위계승자로 책봉한다는 칙령을 내렸다고 사우디 국영 SPA통신이 보도했다. SPA통신은 이날 열린 왕위계승위원회에서 위원 43명중 31명이 제1 왕위계승자 교체에 찬성했다고 전했다. 살만 국왕이 즉위 2년 반 동안 제1 왕위계승자를 바꾼 것은 무끄린 빈 압둘아지즈 왕세자(2015년 4월)를 폐위한 데 이어 두 번째다. 살만 국왕은 이날 칙령 발표와 함께 왕실과 국민에게 빈 살만 제1 왕위계승자에게 충성 서약을 요청함으로써 왕위계승 서열 교체를 공식화했다. 살만 국왕이 82세의 고령인 점을 감안하면, 빈 살만 왕세자는 30대에 중동의 맹주이자 세계 최대 ‘석유 왕국’의 최고 지도자가 된 셈이다. 살만 국왕의 이번 조치는 카타르와 단교 등으로 페르시아만에서 높아지는 정치적 위기와 맞물려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빈 살만 왕세자는 살만 국왕의 친아들로 왕위 계승서열 2위였지만 사우디 왕정을 지탱하는 군과 에너지 산업을 관장해 ‘실세 왕자’로 불렸다. 현재 사우디의 경제·사회 정책을 주도하는 왕실 직속 경제·개발위원회의 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다. 왕위 계승 1순위였던 빈 나예프 전 왕세자는 살만 국왕의 조카이자 빈 살만 왕세자의 사촌형이다. 살만 국왕은 그동안 미국과 러시아 등 주요국 정상 면담에도 빈 살만 왕세자를 보내 힘을 실었다. 빈 살만 왕세자가 빈 나예프 전 왕세자를 제치고 차기 국왕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이번 왕세자 책봉과 함께 내무장관을 맡고 있던 빈 나예프 전 왕세자는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열려라 참깨’ 자동문 처음 본 아이

    ‘열려라 참깨’ 자동문 처음 본 아이

    페르시아의 구전 동화인 아라비안나이트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는 알리바바가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도적떼가 보물을 숨긴 어느 동굴을 발견합니다. 이때 동굴을 여는 주문은 전 세계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요. 바로 “열려라 참깨”입니다. 최근 동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아이의 귀여운 모습이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이 아이가 자동문 가까이 다가가 양팔을 펼치면 마법처럼 문이 열립니다. 어른들에게는 익숙하지만, 자동문을 처음 접한 아이에게는 마냥 신기한 모양입니다. 아마 아이는 특별한 힘을 가진 마술사가 된 기분이겠지요. 아이의 귀여운 반응이 담긴 이 영상은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동물원’에서 촬영된 것으로, 지난 13일 유튜브를 통해 공유되면서 누리꾼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아이의 귀여운 반응, 영상으로 확인해 보시죠. 사진 영상=Caters Clips 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이란 ‘걸프 왕따’ 카타르에 식량 지원… 페르시아만 패권 수싸움 치열

    이란 ‘걸프 왕따’ 카타르에 식량 지원… 페르시아만 패권 수싸움 치열

    미국, 사우디에 봉쇄 완화 촉구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수니파 이슬람권 9개국이 ‘공적’인 이란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카타르와의 국교를 단절한 가운데 시아파 맹주인 이란이 지난 5일 단교 사태 이후 카타르에 식량을 지원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왕따’ 카타르를 차제에 이란의 영향권으로 편입시키려는 시도가 시작되자 이를 우려한 미국이 사우디 등에 카타르에 대한 ‘응징’을 완화해 줄 것을 요구하는 등 페르시아만의 패권을 둘러싼 수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란 국영 이란항공의 샤코로 누샤바디 대변인은 11일(현지시간) “(카타르와 주변국들이 단교한 이후) 지금까지 식료품을 실은 비행기 5대를 카타르로 보냈다”면서 “비행기 한 대당 90t의 과일과 채소를 실어 보냈고, 카타르가 필요로 할 때까지 식료품 수송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350t 상당의 식료품을 실은 화물선 3척도 카타르 도하와 285㎞ 떨어진 이란 다예르항에서 카타르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카타르는 사우디가 식량 수입의 40%를 담당하던 남쪽 육로 국경을 지난 5일 폐쇄하면서 식량난을 겪고 있다. 이란은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등이 영공 사용을 차단하자 카타르 국적 항공기에 영공을 개방하기도 했다. 정치 컨설팅회사 유라시아그룹의 클리프 투프찬 회장은 “이란은 지금이 적극적으로 카타르에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라고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셰이크 무함마드 알타니 카타르 외무장관은 지난 10일 “걸프 지역에서 (이란에 대한) 우려와 논란이 있는데 이란과 대화를 유지하는 게 모든 나라에 전략적인 선택이 될 것”이라고 이란과 단교하라는 사우디 등의 요구를 거듭 거절했다. 카타르와 이란이 밀착할 가능성이 커지자 카타르에 중동 최대의 군사 기지를 보유한 미국은 다급해졌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부 장관은 지난 9일 성명을 통해 사우디 등에 대카타르 봉쇄 조치 완화를 촉구했다. 미국의 한마디에 사우디와 UAE, 바레인 등 3개국은 11일 자국민과 결혼한 카타르인에 대한 추방을 보류하는 등 즉각 일부 예외 조치를 취했다. 다만, 이들 3개국은 항공, 해상 왕래 금지 조치 등은 그대로 유지했다. 이들 나라는 앞서 자국 내 카타르 국적자와 카타르 내 자국민에게 14일 이내로 출국 및 귀국하라고 명령한 바 있다. 이에 카타르 정부 소유의 위성 뉴스채널 알자지라 방송은 ‘걸프-카타르 위기의 가장 기이한 5가지 결정’이란 보도를 통해 “카타르 국적자 추방 조치로 이산가족이 생기는 가슴 아픈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단교 선언국의 자국민 추방 조치에도 카타르 정부는 상대국 국적자에 대해 추방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고전으로 여는 아침] 음악 교육은 필수의 교양/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고전으로 여는 아침] 음악 교육은 필수의 교양/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고대 그리스 교육의 3대 필수 과목은 읽기와 쓰기, 음악, 체육이었다. 글을 깨치는 일은 교양인에게 기본이다. 신체를 단련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리스인들이 음악을 필수적으로 가르쳤던 일은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낯설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음악과 춤을 열정적으로 좋아했다. 그래서 노래와 악기를 배우는 것을 자유 교육의 기초로 여겼다. 물론 음악은 유약한 이미지가 있어 영웅들과는 영 거리가 멀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더없이 거친 사나이였던 기원전 13세기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조차 켄타우로스족의 현인 케이론에게서 키타라(그리스 현악기)를 배웠다. 그만큼 음악 교육의 뿌리는 깊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테네의 명장 테미스토클레스가 하프를 치지 못했다고 해서 훗날 키케로(BC 106~43)는 그를 ‘무교양한 사람’으로 치부했다. ‘교양 없는 자는 무사(Mousa·詩神)와 기품의 여신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그리스 속담도 있다. 그리스인들은 왜 그토록 음악을 중시했을까. 로마의 수사학자 쿠인틸리아누스(35?~95?)는 ‘연설가 교육’에서 그리스의 음악 교육을 소개하고 이를 계승하여 로마 음악 교육의 모범으로 삼았다. 음악은 리트모스(rhythmos·리듬)와 멜로스(melos·멜로디)로 이뤄진다. 음악은 사람의 몸짓과 말의 배열, 소리의 억양에 관계되어 연설가에게 잘 사용되므로 음악적 학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음악에서 소리와 박자, 노랫말에 의해 인간의 희로애락의 감정이 잘 조화되도록 하는 고유한 원리를 연설가가 잘 응용하면 청중과 재판관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음악은 인간의 감성을 격동시키기도 하고 때로 진정시키기도 한다. 피리와 리라 연주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암송할 때 함께 연주되어 분위기를 높였고, 스파르타 전사들은 전투에서 음악의 가락에 고무되었다. 로마군이 뿔피리와 나팔의 협주로 전투의 진퇴와 완급을 조절하며 승리를 낚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듯 여러 요소가 있지만, 음악의 최고 효능은 역시 인간 정서에 영향을 미치고 풍속을 순화시킨다는 점이다. 그리스인들이 음악을 문명화의 첫째 조건으로 본 이유다. 플라톤(BC 427~347)은 ‘국가’에서 “새로운 형식의 시가로 바꾸는 것을 나라 전반에 걸쳐 위험을 초래하는 것으로서 여기고 조심해야 한다”고 경계하기도 했다. 격조 없는 음악이 시민들을 타락시킬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우리의 청소년기 음악 교육은 지나치게 경시되고 있지 않은가. 한류를 만들어 낸 대중음악은 풍성한데 품격 있는 음악 교육은 없다. 음악은 문화의 근본이자 상징이라고 여긴 그리스인들의 음악 교육의 지혜를 되살려 보자.
  • 사우디·이란 싸움에 등 터진 카타르… 육·해·공 막혀

    사우디·이란 싸움에 등 터진 카타르… 육·해·공 막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수니파 이슬람권 7개국이 5일(현지시간) 카타르와의 단교를 선언한 데 이어 육로, 항공, 해상 왕래도 차단했다.중동의 부국 카타르가 순식간에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이란 적대 정책을 계기로 수년 전부터 ‘눈엣가시’였던 카타르를 희생양 삼아 시아파 맹주 이란을 견제하고자 하는 수니파 맹주 사우디의 패권 경쟁 탓으로 풀이된다.카타르와의 단교를 선언한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바레인, 리비아, 예멘, 몰디브 등 7개 국가는 이날 카타르와 육·해·공 통행을 전면 차단하고 항공편과 선박 왕래도 불허했다고 가디언 등이 전했다. 사우디와 UAE는 단교 발표 직후 카타르로 향하는 설탕 수출을 보류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식량의 99%를 수입에 의존하는 카타르가 주변국의 국경 폐쇄 조치로 식량난에 처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인구 225만여명의 소국인 카타르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북쪽 페르시아만(걸프)으로 난 반도국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육상으로는 사우디와만 접해 있다. 천연가스(LNG)가 주 수입원인 카타르는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만 6400만 달러로 세계 6위지만 농축산업, 제조업은 부진하다. 특히 식량의 30~40%를 사우디와 접한 육로로 수입하기 때문에 사우디의 국경 폐쇄 조치가 뼈아프다. 도하뉴스는 “주민들이 아침부터 마트에서 물, 달걀, 쌀, 우유, 고기 등을 카트에 한가득 싣는 등 식품을 사재기하기에 바빴다”고 전했다. 단교 사태가 장기화되면 각종 건설 사업도 차질을 빚게 돼 2022년 카타르월드컵 개최 여부도 불분명해졌다. 주요 산유국들의 감산 합의에 균열이 생기며 국제 유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사우디 등 7개국은 카타르가 시아파 맹주인 이란을 지지하고 극단주의 무장단체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단교했지만 수니파 주변국들과 카타르의 ‘위태로운 동거’는 뿌리가 깊다. 카타르는 사우디를 ‘큰형님’으로 모신 다른 수니파 국가들과 달리 이란과도 교류 채널을 유지하는 등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고집해 왔다. 2011년 이집트의 ‘아랍의 봄’ 시민혁명 당시 혁명을 주도한 무슬림형제단에 대해 사우디 등은 테러 조직이라고 경계했지만 카타르는 이들을 옹호했다. 지난달 23일 카타르 국영통신사 QNA가 셰이크 타밈 카타르 국왕이 이란에 대한 적대 정책을 비판했다는 보도를 내면서 그동안 잠재돼 있던 불씨가 재점화됐다. 이번 집단 단교 사태는 사우디를 중심으로 하는 UAE, 바레인 등 주류 수니파 국가들이 이란과 대화 채널을 유지하는 카타르를 고리로 시아파 맹주 이란을 향해 패권 경쟁을 선언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란 핵협상을 추진했던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부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사우디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이란에 대한 적대 정책을 선명하게 드러내자 이를 기화로 이란에 치우쳤던 중동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본보기를 보여 줄 ‘희생양’으로 카타르를 선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 트위터에 “최근 중동 방문 당시 나는 ‘급진 이데올로기에 대한 재정 지원은 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지도자들은 카타르를 가리켰다. 보라!”고 적었다. 자신이 테러세력 지원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전달하자 아랍권 지도자들이 카타르를 테러 지원 국가로 지목했으며, 결국은 자발적으로 단교한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한편 온건 수니파 국가인 쿠웨이트는 이날 이들 7개국과 카타르의 단교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중재에 나서겠다고 밝혀 귀추가 주목된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사우디 등 중동국가, 카타르와 단교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바레인,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국가들이 동시에 카타르와 단교를 선언했다. 카타르가 이란을 지지하고 극단주의 무장단체를 지원했다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5일 국영 SPA통신 보도를 통해 “국가 안보를 위해 카타르와의 단교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바레인도 카타르가 테러 단체를 지원하고 내정 간섭을 한다는 이유로 단교를 선언했고 이집트와 UAE도 뒤따랐다. 이에 따라 페르시아만 인접 국가인 사우디와 UAE, 바레인은 카타르 국민에게 2주 내 출국을 명령했다. 사우디와 이집트, 바레인은 해상과 항공교통을 잠정 단절했고 UAE 국적기 이티하드항공은 6일 오전부터 카타르를 오가는 모든 항공편을 취소하기로 했다. 카타르군은 후티 반군과 싸우기 위해 예멘 내전에 파견된 다국적군에서도 축출됐다. 사우디 등이 카타르와의 단교를 선언한 것은 지난달 23일 발생한 국영 카타르뉴스통신(QNA) 해킹 사건이 기폭제가 됐다. 당시 QNA에는 셰이크 타밈 빈하마드 알타밈 카타르 국왕이 군사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이란을 강대국으로 인정한다. 이란에 대한 적대정책을 정당화할 구실이 없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올라왔다. 이 기사가 보도되자 카타르 정부는 해당 기사가 QNA 해킹으로 인한 ‘가짜 뉴스’라고 주장했지만, 사우디와 UAE 등은 카타르를 비난하며 카타르 주요 언론사 사이트에 대한 접속을 차단했다. 카타르와 여타 아랍 국가의 분쟁은 뿌리가 깊다. 카타르는 걸프협력회의(GCC)의 일원으로서 미국의 중동 주요 동맹국 중 하나로 활동했지만 재력과 카타르 왕가가 지원하는 위성방송 알자지라의 매체 영향력을 활용해 사우디와 이란 사이에서 사실상 중립 외교 노선을 펼치는 바람에 걸프 동맹의 결속을 해칠 수 있는 잠재적인 불안 요소로 취급받았다. ‘중동판 CNN’으로 불리는 알자지라는 종파와 국가의 입장을 가리지 않고 중동 독재정권의 치부를 드러내는 보도 성향 때문에 사우디 등의 눈엣가시 중 하나였다. 이에 대해 카타르 외교부는 아랍 국가들의 단교 결정이 “근거 없는 주장과 의혹을 바탕으로 진행됐다”며 “정당화할 수 없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그러면서 “4개국은 단교하려고 근거 없는 거짓말과 추정(테러리즘 지원)을 완전히 조작했다”며 “이들은 카타르의 후견인 역할을 하려고 주권을 침해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고전으로 여는 아침] 외교 실패가 뿌린 적대의 씨앗/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고전으로 여는 아침] 외교 실패가 뿌린 적대의 씨앗/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국가 안보가 위기에 처했을 때 동맹국의 흔쾌한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동맹국과의 외교에서 상호 존중과 신뢰를 가꾸어야 하는 이유다. 플루타르코스(46?~120?)의 ‘비교열전’은 이런 철칙에서 벗어난 그릇된 외교로 인해 동맹국에서 증오를 받고 급기야 전쟁의 씨앗을 뿌린 사례를 전한다.때는 기원전 462년이다. 스파르타에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다. 땅이 갈라지고 타이게토스 산의 바윗돌이 굴러 떨어지는 강진이었다. 온 시민들이 인명과 재물을 구하느라 아수라장이 되자, 스파르타의 지배를 받던 메세니아의 농노인 헤일로타이(heilotai)들이 반란을 일으켜 스파르타를 공격했다. 반란군의 힘이 거세져 자신들의 군대만으로는 진압할 수 없게 되자, 스파르타는 인근 펠로폰네소스 동맹국뿐만 아니라 멀리 있는 아테네에까지 지원군을 요청했다. 기원전 481년 페르시아에 대항하기 위해 체결한 ‘그리스 동맹’이 그 근거였다. 스파르타의 구원 요청을 받은 아테네는 파병 여부를 둘러싸고 의견이 갈렸다. 하지만 평소 스파르타의 강건한 기풍과 검약의 풍습을 자주 칭찬할 만큼 스파르타에 우호적이었던 아테네 최고의 장군 키몬(BC 510?~449)의 강력한 호소에 설득되어 아테네는 중무장 보병 4000명을 파병했다. 스파르타인들은 막상 키몬이 통솔하는 용맹스럽고 질서 정연한 아테네군을 보자 그만 겁을 집어먹었다. 혹 자유민으로 구성된 아테네군이 스파르타가 노예로 삼은 헤일로타이들이 같은 그리스인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을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리스 국가들은 그리스인을 노예로 삼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으니. 또 아테네인들의 자유로운 기풍이 헤일로타이들에게 자유의 열망을 더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무슨 이유였는지 스파르타인들은 자세한 해명도 없이 아테네군이 정변을 일으키려 한다는 누명을 씌워 그들이 성에 들어오지 못하게 가로막았다. 이는 외교 관례에 어긋난 파렴치한 행위였다. 스파르타인들이 원군을 불러놓고 나서 터무니없는 이유로 도로 쫓아내자 아테네인들은 그들을 증오하게 되었다. 이에 분노한 아테네 민중에 의해 키몬은 10년간 도편 추방까지 당했다. 페르시아를 물리친 혈맹이던 양국은 이 일로 신뢰가 깨졌고 적대적이 되었다. 훗날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에서 맞싸우게 만든 씨앗인지도 모른다. 핵무기 개발로 한반도를 전쟁 위기로 몰아가는 북한에 대적하고 자유통일을 이루는 도정에 한·미 공조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미국 조야의 견제 목소리는 우리 정부의 섣부른 대북 유화 정책을 경계하는 신호다. 혈맹의 신뢰를 잃지 않는 신중한 외교가 필요하다. 신뢰를 저버린 스파르타의 외교적 실패를 거울삼을 일이다.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 1500년 전 신라, 제물 흔적 인골… ‘에밀레종 설화’ 우연은 아니었네!

    1500년 전 신라, 제물 흔적 인골… ‘에밀레종 설화’ 우연은 아니었네!

    시신 머리·성문 방향 일치…인신공양 흔적 국내 첫 발견 해자서는 터번 쓴 토우 나와…‘병오년’ 적힌 목간도 발견돼신라의 천년 왕궁, 월성 성벽에서 1500여년 전 제물로 바쳐진 사람의 뼈가 발견됐다. 경주 월성 서쪽 성벽 기초층에 박힌 인골 두 구는 국내에서 처음 구체적으로 발견된 ‘인신공양’의 흔적이다. 건물을 짓거나 제방을 쌓을 때 무너지지 말라고 사람을 묻는 인주(人柱) 설화가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셈이다. 16일 월성 발굴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이종훈 소장은 “이전까지는 무덤에서 인골이 나오는 사례가 대부분이었으나 시설물을 만들면서 사람을 제물로 제의에 쓴 흔적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며 “설화로만 전해지던 이야기가 실제로 이뤄졌음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현재 인골을 조사 중인 김재현 동아대 교수는 “2000년 경주국립박물관 내 신라 우물 안에서 발견된 어린아이 유골이나 이번 성벽 바닥 면에서 출토된 유골의 특징을 볼 때 신라시대 때 인신공양의 풍습이 의례행위로 존속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아이를 쇳물에 넣어 만들었다는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 설화가 우연히 만들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성벽은 5세기 전후 지어진 것으로, 인골 역시 같은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하늘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누워 있는 인골 한 구는 신장 166㎝의 성인 남성으로 확인됐다. 다른 한 구는 반대편 인골을 바라보는 형태로 얼굴과 한쪽 팔이 돌려진 상태로 묻혀 있었다. 159㎝ 키의 성인으로 성별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인숙 학예연구사는 “인골들은 성벽을 본격적으로 쌓기 직전인 기초층에서 발견됐고 별도의 매장 시설이 없는 데다, 머리가 (현재는 유실된) 성문의 방향, 석렬 진행 방향과 일치하게 놓여져 있어 제물로 바쳐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저항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미뤄 숨진 채 묻혔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인골은 자연 퇴적층에 1.5m 높이로 쌓인 흙에 묻혔고 그 위로 9m 높이의 성벽이 지어졌다. 인골의 얼굴과 몸 군데군데에는 나무껍질과 풀이 덮여 있었다. 인골의 발치에는 단경호, 연질소옹 등 토기 넉 점이 함께 묻혀 있었다. 발굴된 인골들은 DNA 분석, 대퇴부 콜라겐 분석에 들어가 식생활, 건강상태 등 당시 신라인들의 생활상을 밝혀 줄 전망이다. 주거지나 성벽을 짓는 과정에서 사람을 제물로 바친 풍속은 고대 중국 상나라(기원전 1000~1600년) 때 유행했다. ‘고려사’ 충혜왕 4년(1343년)에는 ‘왕이 민가의 어린아이를 잡아다 새로 짓는 궁궐의 주춧돌 아래 묻는다’는 유언비어가 돌았다고 전한다.월성 북쪽으로 길게 늘어선 해자에서는 터번을 쓴 토우가 출토됐다. 눈이 깊고 코가 큰 얼굴에 오른쪽 팔뚝까지 자락이 내려오는 터번을 두른 토우는 신라와 페르시아 간의 교역을 보여 준다. 박윤정 학예연구실장은 “6세기 것으로 현재까지 나온 소그드인(이란계) 토우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함께 발굴된 7점의 목간은 신라시대 문자 활동이 활발했음을 증명한다. 병오년이라고 적힌 목간은 월성 해자에서 나온 목간 가운데 정확한 연대가 처음 확인된 것으로, 법흥왕 13년(526년)이나 진평왕 8년(586년)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법흥왕 때 목간이라면 지금까지 나온 삼국시대 목간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왕경 정비 작업에 지방민을 동원하고 지방 유력자가 이들을 감독했음을 보여주는 목간, ‘아뢰고’라는 뜻으로 쓰인 백견(白遣) 등 신라 왕경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이두가 새겨진 목간도 함께 나왔다. 신라시대 유물로는 처음으로 곰의 뼈가 발견된 것도 눈길을 끈다. 경주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경주 월성은 제5대 파사왕 22년(101년)에 축성을 시작했고 신라가 패망한 935년까지 궁성으로 쓰였다. 1961년 사적 16호로 지정됐으며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문화재청은 2014년 12월 월성에서 시굴 조사에 나선 뒤 2015년 3월부터 본격 발굴에 들어갔다.
  • [新전원일기] 바리스타 농부, 사람 향기 좇는 커피 마을의 꿈

    [新전원일기] 바리스타 농부, 사람 향기 좇는 커피 마을의 꿈

    봄꽃이 절정을 지나가고 있다.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벚꽃 등이 전 국토를 형형색색으로 물들였다가 서서히 지고 있다. 졸졸졸 물 흐르는 계곡 옆 경기 ‘가평하늘커피 농장’에도 진한 커피 꽃 향기가 아직 가시지 않았다. 모양도 향도 색깔도 재스민 꽃과 비슷하다. 농장주 엄기용(61)씨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우리나라에서도 커피나무가 되나요”란다. 물론 된단다. 온도만 잘 맞춰 주면….# 보고 듣고 체험하는 커피 농장의 재미 커피는 흔히 6~7세기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칼디’라는 염소 치는 목동이 처음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염소들이 유난히 활기차고 밤에도 잠을 잘 자지 않아 살펴보니 빨간 열매를 먹고 있더란다. 그 열매를 부근의 수도원으로 가져가 보고했다. 수도원장은 ‘신의 저주’라 여겨 불 속으로 던져버렸다. 열매 안에 들어 있는 콩이 타는 냄새가 온 수도원 안으로 향긋하게 퍼졌다. 수거해 뜨겁고 검은 음료를 추출해 냈다. 그 후로 밤샘 기도를 하는 수도사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가 됐다.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터키 등으로 퍼지며 11세기 페르시아에서는 약재로 처방되기도 했다. 십자군 전쟁 때 유럽 전역으로 퍼지면서 무슬림이 즐기는 음료라 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그 맛과 향과 효능을 높이 산 교황이 커피에 세례를 주고서야 일반 대중도 마음 놓고 즐길 수 있게 됐다. 한쪽에서는 묘목이 자라고, 한쪽에서는 커피 꽃이 피고, 한쪽에서는 열매가 맺어 빨갛게 익어 가는 온실의 입구 벽에 붙은 칼디상 앞에서 엄씨가 일사천리로 설명하는 커피의 역사가 귀에 쏙쏙 들어온다. 세계 3대 커피의 특징과 원산지, 재배법, 향과 맛을 비롯해 씨앗을 뿌리고 싹이 돋고 묘목이 되어 3~4년이 지난 뒤 열매를 수확하기까지의 과정, 열매 채취 방법, 가공 방법에 따른 분류에 대해서도 눈으로 직접 확인하며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故박완서 선생님 만남과 이유 있는 퇴임 엄씨가 농장을 조성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3년 전, 개장한 지는 이제 만 1년밖에 되지 않았다. 1981년 양평군에서 7급 공채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엄씨는 34년이 되던 해인 2014년 여름, 구리시 안전도시국장이라는 직함의 3급 부이사관으로 인생의 제1막을 마감했다. 그가 2년 이른 퇴직을 결심하게 된 데에는 ‘계획했던 사업 추진과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라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계획했던 사업이라는 것이 바로 지금의 커피 테마 농장이었다. 아침에, 식후에, 일하다가, 손님을 만나, 휴식을 취하며 습관처럼 마시던 커피를 좀더 특별하게 만난 것은 그로부터 4년여를 더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기획한 아차산 고구려 대장간 마을 조성을 위해 인근을 수시로 드나들 때였다. 아치울 마을의 주민인 고 박완서 선생을 댁 앞에서 우연히 만나 집 안으로까지 들어가게 됐다. “집 안에 진한 커피 향이 가득 차 있더라고요. 한창 바쁠 때였는데,그 집에 들어서는 순간 왠지 모르게 편안해졌습니다. 선생님은 당시 하얀 모시 적삼을 입고 계셨는데 집안의 분위기며, 새로 내려주시는 커피 향과 어우러져 뭔가 다른 격조가 느껴졌지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일에만 급급하며 살아왔는지.” 이후 화분에 심긴 커피 묘목 한 그루를 구입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웠는데 한 해가 지나니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수확해 다시 심어봤다. 신기하게도 싹이 나고 떡잎이 자라 나무가 되었다. 그렇게 4년이 지나니 34평 아파트 베란다가 온통 커피나무 숲이 되었다. “커피는 늘 마시는데 한 잔에 5000~6000원씩이나 하고. 이왕 마실 거 좀 알고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할수록 더욱 빠져들게 됐고 테마 농원 같은 걸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 거죠.” 그러나 사실 베란다에서 조금씩 키울 때부터 바쁜 엄씨 대신 물을 주고 순을 따 주는 등 가꾸는 일은 주로 아내 장경순(58)씨의 몫이었다. 그런데 커피로 귀농을 한다니, 취미로 즐겁게 하는 것과는 분명 다를 터였다. 게다가 장씨는 정든 도시를 떠나 도통 시골살이를 할 자신이 없었다. “처음에는 엄청 반대했어요. 남편만 내려가게 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죠. 하지만 ‘저렇게 좋아하는데, 34년 동안 가족을 위해 일만 해 온 사람인데,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게 해 줘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당신은 귀농, 나는 귀촌이라고 못을 박고 들어왔죠. 그런데 농사일이라는 게 어디 또 그런가요. 막상 닥치니 네 일, 내 일이 없게 되더라고요.” 그 대신 엄씨는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새로 구입하는 땅이며 집 등을 모두 아내 장씨의 몫으로 돌렸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모든 것들을 자신의 이름으로만 하고 살아왔더란다. 아내에게도 아내의 이름을 돌려주고 싶었다. “지금 농장 대표도 실은 저 사람이에요. 저는 그냥 여기 일하는 사람이죠. 바리스타 농부 엄기용, 저는 이제 그거면 되거든요.”# 경험의 힘, 실수가 선생이다 2013년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고 2014년 농지를 매입했다. 그전부터 목공이며 작물 선택 및 관리 등의 귀농 교육도 꾸준히 받았다. 그해 6월에 퇴직하고 인근 마을로 세를 들어 이사했다. 다음해에 농가주택 건축 허가를 받아 집을 지었다. 농장을 조성할 때에도 집을 지을 때에도 마을 주민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그들이 추천하는 업체에 의뢰했다. 새로운 곳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주민들은 서로 내 일처럼 도와주었다. 그런데 자금 계획을 착실하게 세운다고 세웠는데도 2년여간 예상 외의 비용이 많이 들어갔다.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엄청 좋다’라는 지인들의 칭찬에 취해 생활비 부담만 가중시켰다. 관상용 커피 외에 보조 작물로 친환경 논농사도 시작하고 각종 과수도 심었지만, 경험 부족으로 큰 나무를 이식했다가 고목으로 사라지게 하고, 일 없는 포도원이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안이하게 대처했다가 70%를 동사시키기도 했다. 커피나무를 시험재배했던 비가림 천막이 날아가 막 모내기를 마친 인근의 논바닥을 헤집고 포도 꽃이 잔뜩 피어 있는 남의 포도나무에 가 걸려 있기도 했다. “구리시에 있는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있었는데 마을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그땐 정말 거기서 여기까지가 얼마나 멀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포도 꽃이 떨어지면 열매를 맺을 수 없잖아요. 대체 얼마나 배상을 하게 될지 가늠도 되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다행히 넝쿨 유인줄을 고정시키는 철사에 딱 걸려서는 꽃이 거의 다치지 않은 거예요. 정말 하나님이 도우셨구나 싶었죠.” 하루에도 열두 번씩 희망과 절망이 교차했다. 커피나무는 품종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대체로 23~25도를 유지해 줘야 한다. 온실관리 비용 등 운영비는 계속 들어가는데 입소문만으로 교육생과 체험객을 늘리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희망은 점점 더 절망 쪽으로 치우쳐 갔다. 그때 찾아낸 것이 ‘가평군 농촌교육농장 시범사업 공모’였다. 처음 구상 단계부터 그린 설계도와 마인드맵을 바탕으로 열심히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어 심사받고 실무자의 현장 실사도 받았다. 11개 농가 중 최종 2개 농가 안에 들어 보조금을 받게 됐다. 엄씨는 공직 생활로 선정하던 입장에서 막상 받는 입장이 돼 보니, 보조금이라는 것이 왜 필요하며 어떤 곳에 쓰여야 하는지 새삼 절감하게 됐단다. 전반적으로 갖춰져 있는데 약간 부족한 상태, 교육장 및 시설 확충을 위해 1500만원, 스스로 교육자가 되기 위한 공부 및 컨설팅 비용으로 1000만원, 도합 2500만원의 지원금이 당시로서는 2억 5000만원보다도 더 큰 의미로 다가오더란다. 절망 끝에 끌어올린 희망이었다.# 커피 꽃의 꽃말 ‘언제나 당신과 함께합니다’ 직접 흙바닥을 고르고 나무 탁자와 의자 등을 짜서 한 달 만에 바리스타 교육장을 온실로부터 분리시켰다. 로스팅만 하는 장소와 시설을 따로 마련하고 화장실을 비롯한 각종 편의시설도 새로 꾸몄다. 농장을 조성하고 집을 짓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그 과정을 한 달 내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생중계했다. “퇴직하면서 ‘네이버 밴드’(꿈이 열리는 커피나무)를 열었습니다. 공직 사회에서는 퇴직 후 뭐든 하면 망한다는 속설이 있는데 처음부터 커피 농장을 하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퇴직을 했던 터라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죠. 그런 속설을 깨고 후배들에게도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 이후 그것이 거꾸로 농장의 자산이 됐다. 후배들이 타지에서 교육생을 보내고, 지인들의 입소문을 통해 학교와 학원 및 각종 단체, 개인 체험객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휴양단지인 지역 특성을 활용해 인근의 펜션과 연수원과도 협약을 맺었다. 2016년 4월 정식 개장 이후 12월 말까지 1600여명의 교육생과 체험객이 다녀갔다. 8개월 동안 2000여만원의 매출을 올려 운영비를 확보하고 올봄에는 관상용 묘목을 500그루 이상 판매했다. 현재까지의 예약 상황만으로도 올해 5000만원 이상의 매출이 예상되고 있다. 농장의 규모는 전체적으로 1700평 정도란다. “가장 보람 있을 때는 3, 4대가 함께 와서 즐거워할 때죠.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녀, 손자와 공유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많지 않잖아요. 마지못해 억지로 체험 학습 온 학생들이 바리스타뿐 아니라 커피와 관련된 여러 직업군에 대해 알게 되고 그 꿈을 갖게 되었다는 편지를 보내올 때도 보람을 느낍니다. 최종 목표이자 꿈은 조선 숙종 때부터 신숙이라는 분을 중심으로 100여년간 유토피아였다는 이 지역을 커피 테마 마을로 조성하는 것입니다.” 부부는 내내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여유 있고 격조 있는’ ‘휴식’ 같은 말들을 반복했다. 커피 꽃의 꽃말이 ‘언제나 당신과 함께합니다’인 것처럼, 그들이 택한 인생의 제2막은 결국 사람인가 보다. 사람이 사람과 함께할 때 삶의 격조는 저절로 깊어질 터이다. 그들의 바람은 곧 우리의 바람. 흙 냄새, 물 냄새, 바람 냄새, 갓 볶아 내린 진한 커피 냄새 속에 내가 있고, 또 당신이 있다.글쓴이 소설가 서진연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2013년 ‘괴산’으로 EBS 라디오 문학상 수상. 저서로는 소설집 ‘붉은 나무젓가락’, 장편소설 ‘수목원’ 등이 있다.
  •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죽은 자의 매장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죽은 자의 매장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지.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슈타른베르크 호수 너머로 소나기를 뿌리더니 갑자기 여름이 왔지요, 우리는 주랑(柱廊)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 동안 얘기했어요. 저는 러시아 사람이 아닙니다.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났지만 진짜 독일인입니다. 어려서 사촌인 대공(大公)의 집에 머물렀을 때 사촌이 썰매를 태워줬는데 겁이 났어요. 그는 말했지요, 마리, 마리, 꼭 잡아. 그리곤 아래로 내려갔어요. 산에 오면 자유로움을 느끼지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으로 가지요. (…)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Summer surprised us coming over the Starnbergersee With a shower of rain; We stopped in the colonnade, And went on in sunlight, into the Hofgarten, We drank coffee, and talked for an hour. Bin gar keine Russin, stamm‘aus Litauen, echt deutsch. And when we were children, staying at the archduke’s, My cousin‘s, he took me out on a sled, And I was frightened. He said, Marie, Marie, hold on tight. And down we went. In the mountains, there you feel free. I read, much of the night, and go south in the winter. -T S 엘리엇의 ‘황무지’중에서 *등단할 무렵에 시인이 되려는 자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T S 엘리엇(1888~1965)의 시를 찾아 읽었다. 황동규 선생님의 훌륭한 번역 덕분에 ‘황무지’가 그리 낯설지 않았다. 434행까지 이어지는 긴 시도 시작은 간단하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여기까지 읽고 나는 시인의 의도를 알아챘다) 아, 맞아. 바로 그거야. 해마다 봄이 되면 내가 느끼던 더러운 기분, 사람들은 봄이 왔다고 좋아하고 꽃구경한다고 호들갑을 떠는데, 나는 가슴이 아팠다. 처음 18행만으로도 ‘황무지’를 맛보기에 충분했다. 황무지라는 제목, 그리고 독자를 사로잡는 첫마디에서 오마르 하이얌의 사행시가 연상됐다. ‘새해가 되니 옛 욕망이 되살아나’ ‘황야도 천국이 되리’라고 노래했던 페르시아의 시인을 엘리엇도 알고 있었으리라. 슈타른베르크는 독일에 있는 호수의 이름이다. 호프가르텐은 뮌헨의 공원이다. 11행에 불쑥 튀어나오는 독일어 “저는…진짜 독일인입니다”라는 표현은 여행객의 입에서 나온 대화다. 시의 화자가 바뀌면 보통 집어넣는 연결어를 엘리엇은 생략했다. 그 결과 시는 난해해졌지만 긴장감은 높아졌다. 이런 해골복잡한 현대시도 외워지려나. 처음 몇 행을 외워봤는데 의외로 잘 외워졌다. ‘breeding’ ‘mixing’ ‘stirring’ 그리고 한 줄 건너 ‘covering’ ‘feeding’으로 끝나는 각운이 있기 때문이다. 8행부터 어조가 바뀌고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8행부터 18행까지는 휴가지에서 사교계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무의미한 말들이다. 시인의 고도로 절제된 시어를 음미하다가, 8행부터 앞뒤 맥락 없이 대화체의 확 풀어진 산문이 나오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시의 중간에 아무 관계없는 말들을 삽입하는 것은, 운문에서 산문으로의 이행만큼이나 신선한 놀라움이었으리. 지금은 이보다 난해한 시들이 수두룩해 별 놀랄 일도 아니나, 1920년대에는 세련된 독자들도 익숙하지 않은 짜깁기였다. 다양한 시점에서 형태를 분석한 입체파의 그림처럼, 엘리엇은 시에 콜라주 수법을 도입했다. 시간과 공간도 다르고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이는 말들, 다른 언어, 다른 목소리들을 짜 맞추어 한 편의 시를 구성한다는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왔을까. 1888년 미국의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나 18살 때까지 촌구석 미주리주에서 보내고, 하버드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유럽으로 건너간 엘리엇. 파리에서 피카소 일당의 아리송한 현대미술을 목격하고 그가 받은 충격이 ‘황무지’에 녹아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런던에 정착해 영국 여자와 결혼하고 로이드 은행에서 근무하며 시를 썼던 건실한 미국 청년이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시인이 됐다. 다른 목소리가 등장하는 8행을 ‘summe’로 시작하고, 전체의 통일성을 위해 (그리고 리듬을 살리기 위해) 바로 뒤에 ‘ing’로 끝나는 ‘coming’을 배치한 시적 전략에 나는 감탄했다. 1922년 영국에서 출판된 시집 ‘황무지’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보다 나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For Ezra Pound il miglior fabbro) 원래 시의 초고는 더 길었는데, 에즈라 파운드가 절반 정도의 분량을 잘라내어 ‘황무지’가 탄생했다니. 자신의 야심작을 파운드에게 바칠 만하다.
  • [고전으로 여는 아침] 복종을 얻는 법/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고전으로 여는 아침] 복종을 얻는 법/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고대 아테네는 기원전 5세기 초에 페르시아 전쟁에서 기사회생한 이후 50여년 동안 황금기를 누렸다. 아테네는 200여개의 그리스 도시국가 가운데 제국으로 불릴 만큼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리더 국가였다. 이 시대 통치자들의 리더십은 훌륭했고 시민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구가하며 그들의 지도에 흔쾌히 따랐다. 자연히 시민 사이에 상호 협력과 우애도 높았다. 그런데 황금기를 지나면서 스파르타는 욱일승천했지만 아테네는 왕년의 미덕을 잃고 쇠퇴하기 시작했다. 크세노폰(BC 430?~355?)의 ‘회상’(Memorabilia)은 소크라테스(BC 470~399)와 대(大) 페리클레스(BC 495?~429)의 아들 소(小) 페리클레스의 대담을 통해 5세기 말의 영락해 가는 아테네의 모습을 보여준다. 페리클레스의 한탄이다. “아테네인들은 자신의 부친을 비롯하여 노인을 멸시합니다. 아테네인들은 언제쯤 스파르타인처럼 통치자에게 잘 복종할까요. 아테네인들은 통치자를 멸시하는 데 자만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테네인들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협조하기는커녕 외부 사람을 대하는 것보다도 더 거만하게 모욕하고 질투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사적인 혹은 공적인 집회에서는 이의만을 제기합니다.” 그는 고발이 남발되고 서로에게 해를 입힘으로써 이익을 취하려는 풍조가 만연한 것도 개탄한다. “허다한 폐해와 화근이 국가에 뿌리를 박고 적의와 증오는 국민 상호 간에 심하게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항상 견딜 수 없는 큰 재액이 곧 국가에 닥치지나 않을까 몹시 우려하고 있습니다.” 어쩐지 당시 아테네 풍조가 지금 총체적 난국에 빠진 우리 상황과 빼닮아 보여 걱정이다. 페리클레스는 스파르타 군대의 엄격한 규율과 훈련, 그리고 통치자에 복종하는 문화를 부러워하며 어떻게 하면 아테네도 그와 같은 아름다운 복종의 미덕을 부활시킬 수 있을 것인가 소크라테스에게 자문을 구했다. 소크라테스는 우선 아테네인들을 훌륭한 전사로 훈련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훈육과 복종을 바로 세우는 일은 병사보다 유능한 지휘관에 달려 있다고 조언했다. 장군학을 폭넓게 연구하고 익혀 능숙하게 지휘한다면 능히 부하들의 복종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후 아테네인들의 노력은 신통치 않았던 모양이다. 페리클레스의 근심은 곧 현실이 되었다. 그는 기원전 406년 아르기누사이 해전에서 승전을 거둔 장군이었지만 억울한 누명을 쓴 채 민회의 불법적 결정에 따라 처형당했다. 또 아테네는 2년 후 스파르타에 항복했고 공황에 빠졌다. 국가적 위기와 혼돈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자발적 복종을 얻는 게 리더의 역량에 달려 있다는 소크라테스의 평범한 말이 와 닿는 때다.
  • 현대엔지니어링, 이란 대규모 석유플랜트 수주 ‘잭팟’

    현대엔지니어링, 이란 대규모 석유플랜트 수주 ‘잭팟’

    2015년 먼저 의사 타진 해와 발빠른 사무소 개소 등 주효현대엔지니어링과 대림산업이 이란에서 초대형 석유화학 플랜트 공사를 따내며 6조원이 넘는 잭팟을 터트렸다. 업계에서는 올해와 내년에 걸쳐 이란발 해외건설 훈풍이 계속 불어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건설과 함께 12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이란국영정유회사(NIOC) 계열사인 아흐다프(AHDAF)가 발주한 30억 9800만 유로(약 3조 8000억원) 규모의 ‘이란 사우스파12 2단계 확장공사’ 본계약을 체결했다고 13일 밝혔다. 3조 8000억원은 국내 건설사가 이란서 수주한 공사 금액 중 가장 큰 액수다. 공사 지분은 현대엔지니어링 3조 2000억원, 현대건설 6000억원이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2015년 이란에서 참여 의사를 먼저 타진해 왔고, 경제제재가 풀리지 않았지만 공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그해 8월 현지사무소를 개소하고 네트워크를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이란 쪽에서 먼저 러브콜이 온 만큼 사업 속도도 빨랐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5월 양해각서 체결(MOU), 12월 낙찰통지서(LOA), 올해 3월 본계약을 체결하며 사업 시작 10개월 만에 계약을 마무리했다. 공사는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1100㎞ 떨어진 페르시아만 톤박 지역에 있는 세계 최대 가스전인 사우스파에 에틸렌(연산 100만t), 모노 에틸렌글리콜(50만t), 고밀도 폴리에틸렌(35만t), 선형저밀도 폴리에틸렌(35만t) 등의 생산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로 기간은 48개월이다. 계약식에는 성상록 현대엔지니어링 사장과 김창학 부사장, 아시가르 아레피 AHDAF 사장 등이 참석했다. 대림산업도 지난해 12월 낙찰 통보를 받은 2조 2334억원 규모의 이란 이스파한 정유공장 개선 공사 본계약을 12일 체결했다. 이 사업은 테헤란 남쪽 400㎞에 정유시설을 추가로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이번 계약으로 현대엔지니어링과 대림산업은 이란에서만 6조원의 해외 수주를 확정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고대 페르시아부터 김정남까지 끝나지 않는 화학무기 잔혹사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고대 페르시아부터 김정남까지 끝나지 않는 화학무기 잔혹사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치명적인 살인 무기 VX로 암살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학무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VX를 포함한 화학무기는 일반적으로 대량살상을 목적으로 한다. ‘독가스’라고 통칭하기도 하는 화학무기는 맹독성 물질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역사는 2000년 전 페르시아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레스터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BC 492~448년 동안 지속된 페르시아 제국의 그리스 원정 전쟁인 페르시아 전쟁에서는 소금 결정과 역청(천연산의 탄화수소 화합물 통칭) 등을 섞어 만든 독가스를 살포하는 기술이 이용됐다. 여기에는 이산화물과 석유화학제품 등 강력한 화학약품들도 상당수 사용됐다.●독화약 담은 ‘비몽포’ 임진왜란 때 사용 당시 페르시아인들은 적군을 포위한 채 구덩이에 가둔 뒤 화학무기 공격을 퍼부었다. 페르시아 전쟁에 참전한 로마 군인들의 시신 20구를 조사한 결과 이들의 사인이 창이나 칼에 의한 자상이 아닌 질식사라는 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지면서 이 같은 주장은 신빙성을 더했다. 맹독성의 치명적인 화학무기는 조선시대에도 존재했다. 임진왜란 당시 사용된 화학무기인 ‘비몽포’(飛礞砲)가 그중 하나다. 비몽포는 독화약을 장전한 작은 포탄을 큰 총을 이용해 발사시켜 터뜨리는 살상용 무기로, 여기에는 28가지의 ‘지독한’ 성분이 포함돼 있다. 이와 유사한 화학무기인 ‘찬혈비사신무통’(鑽穴飛砂神務筒)은 균의 일종인 누룩과 약초 16가지를 졸여 만든 것으로, 바람에 실어 적군에 날려 보내는 방식으로 사용됐다. 가루 형태의 찬혈비사신무통을 흡입하면 눈과 코, 입에서 다량의 출혈이 발생하고 곧 사망에 이르렀다. 이 밖에도 고대 중동에서는 유황으로 화학무기를 만든 뒤 이를 연기로 날려 적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있다. 화학무기의 사용이 금지된 것은 당연하게도 그 ‘성능’ 때문이었다. 19세기 이후 화공학의 발전과 함께 세계 여러 국가가 맹독성 물질 개발에 열을 올렸고 이는 곧 무기 개발로 이어졌다. 대량살상이 가능한 이 무기는 ‘한 방에’ 승리로 이끌 수 있었지만 실전에서 함부로 사용되지는 못했다. 같은 방식으로 적에게 복수를 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살상 목적의 화학무기가 국제사회에서 국제법에 의해 금지된 것은 1899년의 일이다. 화학제 또는 생물(세균)제를 이용한 무기는 1899년 헤이그 평화회의의 ‘독가스사용금지선언’을 통해 금지됐고, 이후 1922년에는 ‘잠수함과 독가스에 관한 5국 조약’, 1925년 ‘독가스 기타사용금지에 관한 의정서’ 등으로 이어졌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대게릴라용으로 최루가스와 고엽제 등을 사용하면서 독가스 사용에 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고, 이후 24년간 협상을 거쳐 1993년 화학무기금지협약이 체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상용 화학무기는 여전히 ‘애용’되고 있다. 유엔 안보리 및 화학무기금지기구(OPCW)는 지난해 공동 조사를 통해 시리아 정부군이 내전 중에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시리아군은 2014년과 2015년 반군 장악 지역 3곳에 염소폭탄을 투하했다. 시리아는 2013년 우방인 러시아의 압박에 못 이겨 화학무기금지조약에 가입한 뒤 화학무기를 전량 폐기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후 내전에서 결국 협약을 어기고 염소가스를 무기로 이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정남 VX 암살로 화학무기 사용을 금지하는 국제협약을 어긴 것이 시리아군 하나뿐이 아니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제사회는 시리아에 이어 북한의 화학무기사용 금지를 위해 힘을 쏟아도 모자랄 판국에 최근 유엔 안보리의 시리아 화학무기 사용 관련 제재 결의안이 또 부결됐다. ●사용금지협약에도 세계 곳곳서 ‘애용’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 안보리회의장에서 진행된 표결에서는 찬성 9표, 반대 3표, 기권 3표가 나왔다.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볼리비아가 반대했다. 안보리 결의안은 상임이사국(중국·러시아·미국·영국·프랑스)의 반대 없이 9표를 얻어야 통과된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이래 러시아는 7번째, 중국은 6번째로 시리아 제재를 거부했다. 중국 측은 “화학무기 사용에 반대하는 것은 맞지만, 아직 조사가 진행중인 가운데 제재 조치를 내리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혔다. 러시아와 중국의 ‘시리아 화학무기 사용 눈감아주기’의 배경에는 복잡한 속내가 숨어 있지만, 그 속내가 무엇인지는 사실 크게 중요치 않다. 2.33초의 접촉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위험한 물질을 사용하지 말자는 것에 거창한 이유가 필요할까. 화학무기는 유구한 역사를 가졌지만, 훌륭한 역사라고 평하긴 어렵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를 죽이고 죽임당하는 지구상의 대다수 전쟁이 그러하듯 말이다. huimin0217@seoul.co.kr
  • “아카데미 봉투게이트는 회계사 때문” 그 밖에 알게 된 여섯 가지 사실

    “아카데미 봉투게이트는 회계사 때문” 그 밖에 알게 된 여섯 가지 사실

     ´아카데미 봉투게이트(Envelopegate)´의 원인 제공자가 드러났다.  지난 26일(이하 현지시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작품상 수상자 명단 봉투가 엉뚱하게도 ´라라랜드´에서 열연한 엠마 스톤의 여우주연상 명단 봉투로 잘못 전달되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작품상 시상자인 워런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가 잘못 전달받은 봉투는 아카데미의 회계자문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회계사 브라이언 컬리넌이 건넨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영국 BBC가 28일 전했다.  PwC도 성명을 내 컬리넌이 “여우주연상 예비용 봉투를 잘못 전달했다”고 인정했다. 컬리넌은 불과 몇분 전 무대 뒤에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든 스톤의 사진을 찍어 트위터에 올리는 데 정신이 팔려 파쇄했어야 할 봉투를 비티 등에게 전달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컬리넌은 문제의 트위터 사진을 얼마 안 있어 삭제했지만 여러 웹사이트와 구글 등에는 갈무리한 사진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컬리넌과 그의 동료 회계사가 각각 무대 뒤에서 봉투를 하나씩 보관하고 있었다. 스톤과 비티 둘 다 여우주연상 봉투를 들고 있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비티가 봉투를 열고 명단을 확인하며 1967년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함께 열연한 더너웨이에게 넘겼고 그녀가 스톤 이름 아래 작은 글씨로 적힌 ´라라랜드´를 발견해 작품상 수상자로 발표하는 실수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BBC는 한발 나아가 최근 아카데미 시상식 가운데 가장 극적인 해프닝으로 얼룩진 이날의 소동을 통해 다음의 여섯 가지를 알게 됐다고 짚어 눈길을 끌고 있다. 첫째는 아카데미위원회가 정말, 정말로 미안해 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모두가 트럼프 반대에 한 몸이 됐다는 것이다.(둘은 뻔한 얘기라 줄인다.)  셋째 아주 특별하게 시상식이 마무리됐지만 시청률은 10년 가까이 만에 최저로 나타났다. ABC 중계는 미국 내 3290만명이 시청한 것으로 집계돼 지난해보다 4% 감소했다. 3200만명이 시청한 2008년 이후로 가장 적인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 물론 그렇게 하락했다고 해도 아카데미 시상식은 올해도 스포츠가 아닌 프로그램으로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시청자 수를 기록한 프로그램의 지위를 지킬 가능성이 높다.  넷째 지미 키멜은 맷 데이먼과 시상식을 마치고 싶어했다. 둘은 지난해 에미상 시상식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다. 키멜은 28일 자신의 쇼 ´지미 키멜 라이브´에서 원래는 데이먼과 함께 시상식을 마치고 싶어 했지만 수상자 명단이 잘못 발표되면서 모든 게 뒤엉켜버렸다고 털어놓았다. “그와 나란히 앉아 있다가 소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맷이 ´무대 매니저가 수상자 발표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라고 말하더군요”라고 “사회자는 무대에 올라가 상황을 정리해야 해요. 그래서 내가 사회자란 사실을 기억해냈어요. 마무리만 빼면 아주 재미있었지요. 미국드라마 ´로스트´ 이후 가장 괴이한 TV 프로그램이 됐어요”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다섯째 더너웨이의 힐 때문일 수도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 메일´의 28일 기사에 따르면 비티와 더너웨이는 작품상 발표를 위해 무대를 나올 때 계단을 걸어내려올 작정이었다. 하지만 더너웨이가 힐 때문에 계단을 오를 수 없어 층계참으로 걸어나와 수상자 봉투를 열었다. 그러나 신문은 “이 때문에 잘못된 명단임을 알아채지 못하고 잘못 발표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고 발을 뺐다.  여섯째 미국 국무부도 트위터 문제가 있었다. 국무부의 페르시아어 공식 트위터 계정은 아스가르 파하디가 연출한 세일즈맨이 최우수 외국영화상을 수상하자 이란 국민들에게 축하한다는 글을 올렸다. 파하디를 대신해 이란계 미국인 과학자 피루즈 나데리와 아누셰흐 안사리가 수상하며 파하디의 수상 소감을 대신 읽었는데 그는 트럼프의 여행 금지 조치가 “비인간적”이라고 규탄했다.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정부가 수상 소감에서의 언급을 용인한다는 오해를 주지 않기 위해” 글을 삭제했다고 설명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송혜민의 월드why] 고대부터 이어진 화학무기의 잔혹 역사

    [송혜민의 월드why] 고대부터 이어진 화학무기의 잔혹 역사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치명적인 살인무기로 꼽히는 VX로 암살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학무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VX를 포함한 화학무기는 일반적으로 대량살상을 목적으로 한다. ‘독가스’라고 통칭하기도 하는 화학무기는 맹독성 물질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역사는 2000년 전 페르시아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레스터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BC 492~448년 동안 지속된 페르시아 제국의 그리스 원정 전쟁인 페르시아 전쟁에서는 소금결정과 역청(천연산의 탄화수소 화합물 통칭) 등을 섞어 만든 독가스를 살포하는 기술이 이용됐다. 여기에는 이산화물과 석유화학제품 등 강력한 화학약품들도 상당수 사용됐다. 당시 페르시아인들은 적군을 포위한 채 구덩이를 가둔 뒤 화학무기 공격을 퍼부었다. 페르시아 전쟁에 참전한 로마 군인들의 시신 20구를 조사한 결과, 이들의 사인이 창이나 칼에 의한 자상이 아닌 질식사라는 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지면서, 이 같은 주장은 신빙성을 더했다. 맹독성의 치명적인 화학무기는 조선시대에도 존재했다. 임진왜란 당시 사용된 화학무기인 ‘비몽포’(飛礞砲)가 그중 하나다. 비몽포는 독화약을 장전한 작은 포탄을 큰 총을 이용해 발사시켜 터뜨리는 살상용 무기로, 여기에는 28가지의 ‘지독한’ 성분이 포함돼 있다. 이와 유사한 화학무기인 ‘찬혈비사신무통’(鑽穴飛砂神務筒)은 균의 일종인 누룩과 약초 16가지를 졸여 만든 것으로, 바람에 실어 적군에 날려 보내는 방식으로 사용됐다. 가루 형태의 찬혈비사신무통을 흡입하면 눈과 코, 입에서 다량의 출혈이 발생하고 곧 사망에 이르렀다. 이밖에도 고대 중동에서는 유황으로 화학무기를 만든 뒤 이를 연기로 날려 적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있다. ◆화학무기 금지의 역사 화학무기의 사용이 금지된 것은 당연하게도 그 ‘성능’ 때문이었다. 19세기 이후 화공학의 발전과 함께 세계 여러 국가가 맹독성 물질 개발에 열을 올렸고 이는 곧 무기 개발로 이어졌다. 대량살상이 가능한 이 무기는 전쟁은 ‘한방에’ 승리로 이끌 수 있었지만 전쟁에서 함부로 사용되지는 못했다. 같은 방식으로 적에게 복수를 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살상 목적의 화학무기가 국제사회에서 국제법에 의해 금지된 것은 1899년의 일이다. 화학제 또는 생물(세균)제를 이용한 무기는 1899년 헤이그 평화회의의 ‘독가스사용금지선언’을 통해 금지됐고, 이후 1922년에는 ‘잠수함과 독가스에 관한 5국 조약’, 1925년 ‘독가스 기타사용금지에 관한 의정서’ 등으로 이어졌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대 게릴라용으로 최루가스와 고엽제 등을 사용하면서 독가스 사용에 관한 논란이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고, 이후 24년간 협상을 거쳐 1993년 화학무기금지협약이 체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상용 화학무기는 여전히 '애용'되고 있다. 유엔 안보리 및 화학무기금지기구(OPCW)는 지난해 공동 조사를 통해 시리아 정부군이 내전 중에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시리아군은 2014년과 2015년 반군의 장악지역 3곳에 염소폭탄을 투하했다. 시리아는 2013년 우방인 러시아의 압박에 못 이겨 화학무기금지조역에 가입한 뒤 화학무기를 전량 폐기한 것으로 알려졌었지만, 이후 내전에서 결국 협약을 어기고 염소가스를 무기로 이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정남 VX 암살로 화학무기 사용을 금지하는 국제협약을 어긴 것이 시리아군 하나 뿐은 아니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제사회는 시리아에 이어 북한의 화학무기사용 금지를 위해 힘을 쏟아도 모자랄 판국에, 최근 유엔 안보리의 시리아화학무기 사용 관련 제재 결의안이 또 부결됐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 안보리회의장에서 진행된 표결에서는 찬성 9표, 반대 3표, 기권 3표가 나왔다.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볼리비아가 반대했다. 안보리 결의안은 상임이사국(중국·러시아·미국·영국·프랑스)의 반대없이 9표를 얻어야 통과된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이래 러시아는 7번째, 중국은 6번째로 시리아 제재를 거부했다. 중국 측은 “화학무기 사용에 반대하는 것은 맞지만, 아직 조사가 진행중인 가운데 제재조치를 내리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혔다. 러시아와 중국의 ‘시리아 화학무기 사용 눈감아주기’의 배경에는 복잡한 속내가 숨어있지만, 그 속내가 무엇인지는 사실 크게 중요치 않다. 2.33초의 접촉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위험한 물질을 사용하지 말자는 것에 거창한 이유가 필요할까. 화학무기는 유구한 역사를 가졌지만, 훌륭한 역사라고 평하긴 어렵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를 죽이고 죽임 당하는 지구상의 대다수 전쟁이 그러하듯 말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황야도 천국이 되리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황야도 천국이 되리

    황야도 천국이 되리 -오마르 하이얌 새해가 되니 옛 욕망이 되살아나, 생각에 잠긴 영혼은 고독을 찾아 숨어드네, 거기는 모세의 하얀 손이 나뭇가지에서 뻗어 나오고 예수가 땅속에서 한숨 쉬는 곳. Now the New Year reviving old Desires, The thoughtful Soul to Solitude retires, Where the WHITE HAND OF MOSES on the Bough Puts out, and Jesus from the Ground suspires. *설을 앞두고 페르시아의 시인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아랍어로 ‘4행시들’을 뜻한다)를 읽고 있다. 새해가 되어 옛 욕망이 되살아난다니. 얼마나 절묘한 표현인가 감탄하면서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 나오는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mixing Memory and desire)라는 구절이 연상되었다. 엘리엇도 오마르 하이얌의 시를 읽었음이 틀림없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꽃잎을 보며 모세의 하얀 손을 생각하고, 대지에서 예수의 숨결을 느끼며 들판을 거니는 시인. 페르시아에서는 새해가 춘분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꽃이 피기 시작하는 계절, 대기에 충만한 봄기운을 받으며 욕망이 다시 꿈틀댔으리. 왜 인류는 새해를 기념했을까. 우리의 몸과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마음은 새순처럼 젊어지기를 소망해서가 아닌지. ‘모세의 하얀 손’은 구약의 출애굽기 4장 6절에 나오는 기적을 일컫는다. “여호와께서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외투에 넣으라 하여 그가 손을 품에 넣었다 꺼내 보니 그의 손에 나병이 생겨 피부가 눈같이 하얗게 된지라.” 내가 페르시아어를 배웠다면 원문을 더 깊이 이해하련만. 저 훌륭한 영국인 에드워드 피츠제럴드(1809~1883)가 영어로 옮긴 것을 다시 한글로 번역하려니 정말 힘들다. 루바이야트에는 제목이 달려 있지 않다. 번역본마다 엮인 순서대로 번호를 붙여 놓았다. 앞에 소개한 시는 ‘루바이 4’다. 피츠제럴드가 번역한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를 뒤적이다가 압운을 발견하고 놀라 기절할 뻔했다. Desires, retires, 그리고 한 행 건너 suspires. ‘-ires’로 끝나는 AABA의 각운을 만들려 얼마나 머리가 아팠을까. 피츠제럴드를 만나 오마르 하이얌은 다시 태어났다. 구글에서 ‘Omar Khayyam’을 치면 위키피디아에 아주 기다란 글이 딸려 있다. 시인을 소개하는 글에 웬 포물선과 원이 나오나 의아해하면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이며 철학가인, 그리고 어쩌다 시도 썼던 오마르 하이얌의 생애를 따라가 보았다. (세계의 명시를 소개하며 내가 그 골치 아픈 3차 방정식을 다시 공부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다재다능했던 하이얌은 이슬람의 셰익스피어이며 또한 아이작 뉴턴이었다. 오마르 하이얌(1048~1131)은 페르시아의 북동부 지역 거점도시인 니샤푸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직업에서 따온 하이얌이라는 성은 ‘천막 제조업자’를 뜻한다. 어린 오마르는 사마르칸트의 학교를 거쳐 부하라로 옮겨 이슬람 문화의 황금기를 이끄는 학자가 되었다. 그는 당시로서는 굉장히 새로운 발견을 담은 수학 논문들을 썼고 그중 일부가 서양에 전래돼 근대과학을 낳는 토대가 되었다. 셀주크의 술탄 말리크샤 1세의 요청으로 1079년에 그가 만든 새로운 달력은 16세기에 나온 그레고리 달력보다 더 정확했다. 지금도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하이얌의 달력에 기초한 ‘이란 달력’을 사용한다. 그는 원과 포물선을 교차시켜 3차 방정식을 푸는 기하학적 방법을 연구한 최초의 수학자였다. 그리고 그는 천 편의 시를 쓴 시인이었다. 한 사람이 어떻게 그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길 수 있는지. 그의 시를 읽으며 게으른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 여기 나뭇가지 아래 빵 한 덩이, 포도주 한 병, 시집 한 권- 그리고 당신이 내 옆에서 노래 부르니- 황야도 천국이 되네. Here with a Loaf of Bread beneath the Bough, A Flask of Wine, a Book of Verse - and Thou Beside me singing in the Wilderness - And Wilderness is Paradise enow. * 빵과 치즈, 포도주 한잔, 그리고 재미난 읽을거리가 있으면 당신이 내 옆에 없어도 천국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나. 하이얌의 4행시에 보이는 현실주의. 어디까지나 여기 이곳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라는 현세주의는 고대 수메르인의 길가메시 서사시와 일맥상통하지 않나. * 황금의 알갱이를 아껴 썼던 사람이나, 비처럼 바람에 날리게 마구 뿌렸던 사람이나, 황금빛 대지로 돌아오지는 못하지 죽어 묻히면, 누가 다시 파 보기나 할까. And those who husbanded the Golden Grain, And those who flung it to the Winds like Rain, Alike to no such aureate Earth are turn‘d As, buried once, Men want dug up again. * 조금의 감상도 허용하지 않는, 번뜩이는 허무에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이런 시가 있는데 내가 뭘 더 보태나, 참담한 마음에 그만 은퇴하고픈 충동이 일어난다. 새해에 절대로 읽어선 안 되는 시를 괜히 집적거렸다.
  • 백마 탄 ‘산타’ 한여름 ‘이브’

    백마 탄 ‘산타’ 한여름 ‘이브’

    350년 교황 ‘그리스도 탄생일’ 선언 … 동방정교 국가는 13일 늦은 1월 7일러시아는 순록 대신 미녀 파트너…아르헨티나는 찬 사과주스 마시며 파티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전 세계가 성탄절 분위기 내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는 빨간 옷을 입은 산타가 트리 등에 걸린 양말에 몰래 선물을 넣어 두고 가는 날로 생각하지만 모든 나라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크리스마스는 2000년 가까이 전 세계로 퍼지며 각 지역의 전통을 흡수해 다양한 형태로 발전돼 왔다. 지구촌이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비기독교 문화권 亞·아프리카서도 성대히 치러 크리스마스는 라틴어 ‘그리스도’(Christus)와 ‘모임’(massa)을 합친 말로 ‘구세주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모임’이라는 뜻의 종교 예식이다. 12월 25일이 예수의 실제 탄생일인지는 알 수 없다. 기독교와 로마제국 간 정치적 타협 과정에서 태양신 축일인 동지(冬至)를 성탄절로 받아들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로마 연감 기록 등에 따르면 기원 전부터 로마와 이집트에서는 페르시아의 영향으로 매년 12월 25일을 ‘무적의 태양신’ 축일로 기념했다. 동지를 지나면 해가 조금씩 길어지는 것에 착안해 ‘빛이 어둠을 이기고 만물을 소생시키는’ 날로 본 것이다. 3세기 초만 해도 로마 일부 기독교도는 크리스마스를 예수 세례일로 알려진 1월 6일에 치렀다. 사람인 예수가 이날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서기 336년에 아기 예수 탄생일인 12월 25일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 행사가 처음 열렸다. 350년 교황 율리우스 1세는 12월 25일이 그리스도 탄생일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이때부터 로마에 ‘태양=예수’ 개념이 생겨났다. 자연스레 태양신 축일이 크리스마스에 통합됐다. 예수 탄생을 기리는 크리스마스가 예수보다 더 오래전에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아는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이지만 러시아와 그리스 등 10여개 나라에선 이듬해 ‘1월 7일’을 크리스마스로 기린다. 기독교계는 기원전 45년 만들어진 율리우스력(태양력)을 써 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역법과 실제 시간이 맞지 않자 1582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그레고리력(신태양력)을 제정했다. 로마 교회와 반목하던 동방정교계는 새 역법을 쓰지 않고 율리우스력을 고수했다. 그레고리력은 기존 역법보다 매년 11분이 빠르다. 새 역법이 제정된 지 400여년이 지난 현재 두 역법 간 시차는 13일로 벌어졌다. 동방정교 국가들은 지금도 율리우스력을 써 크리스마스 행사를 서구보다 13일 늦게 연다. ●北·中·日 등 40여개 국가 공휴일로 지정 안 해 크리스마스는 기독교 문화권인 미주와 유럽, 오세아니아는 물론이고 비(非)기독교 지역인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도 성대히 치러진다. 중동 지역으로 이슬람 국가인 레바논과 요르단, 인도네시아는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다. 이집트(콥트교)나 이라크(아시리아 교회)도 토종 기독교도가 크리스마스 행사에 참석할 수 있게 배려한다. 세속국가 터키와 국제도시 두바이에서는 외국인을 위한 성대한 크리스마스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기독교인의 크리스마스 행사 참여를 허용한다. 다만 십자가 등 상징물을 외부에 보여선 안 된다. 중동 국가가 크리스마스에 비교적 관대한 것은 예수가 이슬람교에서도 주요 성인(聖人)으로 인정받아 무슬림이 이날을 길일로 여기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은 나라는 북한과 중국, 일본 등 40여곳이다. 대부분 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에 몰려 있다. 중국에선 홍콩과 마카오에서만 공휴일이다. 대만은 12월 25일이 공휴일이지만 이는 제헌절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태어난 이스라엘에서도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는다. 예수를 ‘선지자’로 보지 않아서다. ●가까운 지인에게 카드 보내는 풍습 영국서 시작 크리스마스는 오랜 기간 지역 전통과 결합해 다채롭게 발전됐다. 17세기 초 명나라 쉬자후이(상하이)에서도 행사가 열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영어권 국가에선 크리스마스 전날인 12월 24일을 ‘크리스마스이브’(성탄 전야제)로,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26일을 ‘박싱데이’(이웃과 선물을 주고받는 날)로 부르며 연말 분위기를 이어 간다. 영국에선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며 가까운 친지에게 카드를 보낸다. 이 풍습은 전 세계로 퍼져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됐다. 성탄 아침에는 치즈를 발라 요리한 공작새 고기를 먹는다. 축구의 나라답게 크리스마스 연휴에도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가 진행된다. 아일랜드인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집안 창문을 조금 열고 촛불을 켜 둔다.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를 낳기 위해 숙소를 찾아 헤매던 어려움을 다시 겪지 않게 하겠다는 의미다. 네덜란드에서는 천사가 백마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전설에 따라 산타가 흰말을 타고 마을 곳곳을 찾는다. 한여름에 크리스마스를 맞는 남미국가에서는 시원한 음료를 즐기며 각종 축제를 진행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가족이 모여 차가운 사과주스를 마시며 음악이 동반된 축하연을 연다. 당일 자정에는 축포를 쏘며 소원도 빈다. 칠레에선 무용수가 다양한 종류의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와 춤을 춘다. 멕시코에서는 집안 한 곳을 마구간처럼 꾸며 아기 예수 인형을 눕힌다. 러시아에는 ‘데드 모로자’(얼음 할아버지)라는 현지식 산타가 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아닌 12월 31일에 오는데, 순록 대신 ‘스네구르카’(눈의 아가씨)로 불리는 미녀 파트너와 함께 다닌다. 최근 크리스마스는 문화 간 갈등에 휩싸이며 상업화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인사법을 두고 의견이 양분돼 있다. 비영리단체 공공종교연구소에 따르면 소매업자들이 성탄 및 새해 인사로 어떤 표현을 사용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메리 크리스마스’와 ‘해피 홀리데이스’(행복한 연휴)가 비슷하게 갈려 있다. 미국에선 유대인 등 비기독교인을 고려해 ‘해피 홀리데이스’를 많이 쓰는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성탄에는 ‘메리 크리스마스’를 써야 한다”고 주장해 기독교인의 지지를 받고 있다. ●석가탄신일 등과 달리 소비 지향적 분위기 우려 부처의 탄생일인 석가탄신일이나 유대교 축일 하누카 등이 차분하고 엄숙하게 진행되는 데 비해 유독 크리스마스만 시끄럽고 소비 지향적으로 치러지는 것에 대한 비난도 크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11년 성탄 전야 미사에서 “성탄절이 한낱 상업적 기념일로 전락한 것 같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사도 “정교분리를 규정한 헌법 제20조 2항에 위배된다”며 크리스마스와 석가탄신일을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국가의 근간인 헌법 제정을 기념하는 제헌절이 2008년 법정 공휴일에서 빠지면서 이 주장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한국에서는 1949년 기독교 신자인 이승만 대통령이 법정 공휴일로 지정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 기독교 신자가 많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대통령 개인의 종교가 공휴일 지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사람 중심’ 역사 ‘변화무쌍’ 역사

    ‘사람 중심’ 역사 ‘변화무쌍’ 역사

    최초 역사가 헤로도토스 가감 없이 들은 대로 기록 인간 행적 탐구해 기억될 유산으로 만든 첫 공로자 국내 전공 학자 첫 번역… 7년간 원고 4300장 작업 ‘인간 운명은 변한다’는 사유 그대로 전달하려 노력 “그들은 자신들이 쓰러진 바로 그 자리에 묻혔다.” 인류사 최초의 역사가인 그리스인 헤로도토스(BC 484년 추정~BC 425년 추정)는 저서 ‘역사’(희랍어 제목은 ‘히스토리아이’)에서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의 300만 대군과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전투를 벌이다 전사한 스파르타 용사 300명의 최후를 이렇게 기록했다. 헤로도토스는 크세르크세스가 전투를 바라보다 왕좌에서 세 번이나 벌떡 일어났다는 생생한 묘사를 더한다. 그의 ‘역사’는 시공을 초월해 영화 ‘300’(2006)의 원작이 됐다. 국내에 번역된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지금까지 두 권뿐이었다. 여기에 고대 그리스사 전공 학자인 김봉철(59) 아주대 사학과 교수가 한 권을 더했다. 국내에서는 전공 학자가 그리스어 원전을 번역한 첫 책으로 기록된다. 중세 시대 그리스어 필사본을 복원한 가장 대표적 판본인 독일 슈타인 텍스트를 원전으로 했다. 2009년 초벌 번역을 시작한 후 방대한 역주 작업을 거쳐 출간까지 꼬박 7년이 걸렸다. 200자 원고지로 4300장 분량이다. 김 교수는 7일 “헤로도토스의 서술이 갖는 ‘역사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가급적 의역을 하지 않았다”며 “그의 문장과 자구 하나하나를 독자에게 충실하게 전달하겠다는 게 번역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고대 그리스사 전공자는 희소하다. 이는 그동안 전공자들이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번역할 인적·물적 토대가 부족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헤로도토스의 인간사에 대한 사유는 현대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역사를 인간의 기록으로 만들려고 했던 헤로도토스의 꿈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그는 저서 곳곳에서 ‘인간의 운명은 확정적이거나 불변의 것이 아니며 변화무쌍하다’고 강조한다”고 말한다. 이 같은 ‘인간 중심’의 시각은 헤로도토스가 처음으로 신(神)이나 반신(半神)적 영웅의 신화적 이야기를 다루지 않고, 인간들의 실제 사건을 기록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는 기원전 558년부터 기원전 479년까지 약 80년의 기록. 그는 동서양 문명의 ‘최초의 충돌’인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을 다뤘다. 인류의 역사라는 학문의 원형을 헤로도토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헤로도토스가 ‘역사’를 저술한 목적에 대해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의 일이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을 막고 이것이 널리 알려지기를 원했다”며 “헤로도토스는 과거 인간들의 위대한 행적을 탐구하고 밝혀내 기억될 유산으로 만든 최초의 공로자”라고 말한다. 헤로도토스 역시 특정 구전 내용에 대해서는 허황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가감 없이 들은 대로’ 기록한다. 네우리스인들이 일 년에 한 번 며칠 동안 이리로 변한다거나 외눈박이 인간들의 존재, 염소 발을 가진 인간들이 6달 동안 잠만 잔다는 얘기 등의 기록에는 “나는 그들의 이런 말을 믿지 않지만”, “나는 이들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등 자료의 신빙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확실히 밝힌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후세 역사가인 투키디데스나 키케로가 헤로도토스의 역사 서술의 신뢰성을 비판하는 논점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가 들은 대로 기록한 내용들이 종교와 신화, 풍습, 지리, 동식물 등 미지의 고대 세계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의 보물 창고가 됐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낯설고 기발한 상상력 포르투갈 영화의 진수

    우리는 포르투갈 영화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로 대표되는 포르투갈 축구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지 않을까.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가 아직까지는 낯선 포르투갈 영화와 국내 관객의 만남을 주선한다. 22일부터 9일간 독특한 이미지와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포르투갈 영화 9편을 선정해 상영한다. ‘2016 포르투갈 영화제- 새로운 영화들’이다. 포르투갈의 떠오르는 별로 평가받는 미겔 고메스의 ‘천일야화’ 3부작이 우선 눈에 띈다. 페르시아 설화의 형식을 빌려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여러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 주는, 실험적인 서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3부는 올해 포르투갈 골든글로브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지난해 골든글로브 최우수작품 수상작인 주앙 보텔료의 ‘마이아: 한 포르투갈 가족의 이야기’도 소설과 연극, 회화, 오페라를 넘나드는 독특한 작품이다. 오랜 기간 동성애자로, 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로 살아온 조아킹 핀투의 자전적 다큐멘터리 ‘왓 나우? 리마인드 미’도 흥미로울 것으로 보인다. 올해 로카르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주앙 페드로 호드리게스의 ‘조류학자의 은밀한 모험’도 주목된다. 지난해 107세로 타계한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 감독의 사적인 다큐멘터리 ‘방문 혹은 기억과 고백’도 상영 목록에 올랐다. 1982년에 찍은 작품이지만 감독의 사후에 공개됐다. 올리베이라 감독은 105세 때 연출한 ‘디 올드 맨 오브 벨렘’으로 베니스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다. 관람료 8000원.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www.cinematheque.seoul.kr) 참조.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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