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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만사 온갖 시름 여기 물안개 품속에 살포시 놓고 가세요

    세상만사 온갖 시름 여기 물안개 품속에 살포시 놓고 가세요

    전남 나주(羅州)의 옛 이름은 금성(錦城)이다. 이게 고려 왕건 때 나주로 바뀐다. 이름은 바뀌었으되 뜻은 변한 게 없다. 금(錦)이든 나(羅)든 비단을 이르는 건 똑같으니 말이다. 대체 뭐가 그리 곱길래 비단 같다는 고을 이름을 늘 달고 다닐까. 나주는 어향(御鄕)이라 불린다. 임금을 낳은 고을이란 뜻이다. 여기엔 버들잎 전설이 깔려 있다. 목마른 남정네에게 버들잎 동동 띄운 물을 건넨 지혜로운 규수 이야기 말이다. 나주시청의 김종순 학예연구사가 전한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렇다. 나라 안 몇몇 곳에 비슷한 내용의 버들잎 고사가 전하는데, ‘나주 버전’의 주인공은 고려 태조 왕건과 나주 호족 오다린의 딸이다. 무대는 현 나주시청 앞 완사천이다. 내용은 익히 알고 있으니 건너뛰자. 중요한 건 만남 이후다. 두 남녀는 필경 ‘선수’였던 게다. 만난 첫날밤에 오씨 처녀(훗날 장화왕후)와 왕건은 서둘러 ‘원인’을 만든다. 그로부터 열 달 뒤 ‘결과’를 얻는데, 그가 바로 고려 2대왕 혜종이다. 당시 왕건은 군사 3000여명을 이끌고 후백제의 후방 지역인 금성(나주)을 공략하러 온 참이었다. 주변 다른 지역과 달리 나주는 왕건의 편에 섰고, 이 공로로 고려 성종 때 목(牧)으로 승격된 뒤 일제강점기 전까지 1000여년간 전라도 지역의 핵심 도시로 번성할 수 있었다. 나주시가 내건 슬로건 ‘천년 목사(牧使) 고을’도 이 같은 역사에 기댄 표현이다. 나주의 풍경을 가르는 건 영산강과 금성산이다. 나주를 대표하는 명소들이 대부분 이 강과 산에 깃들여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도시 뒤엔 금성산이 우뚝하고, 가운데로 흐르는 영산강이 남북을 가르는 모습,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한양의 모습을 빼닮았다. 나주를 작은 서울 소경(小京)이라 부르는 이유다. 나주를 가르는 영산강은 전남 담양에서 발원해 광주와 함평, 무안 등을 두루 적신 뒤 목포에서 바다와 만난다. 길이는 136㎞. 한강(515㎞) 낙동강(522㎞) 등에 견주자면 보잘것없는 크기지만 교통로로서의 비중은 결코 뒤지지 않았다. 1970년대 말 강줄기 끝자락에 영산강 하구둑이 세워지기 전까지만 해도 뱃길은 목포항에서 강물을 따라 73㎞나 거슬러 올라갔다. 강줄기를 따라 수많은 나루터가 세워졌는데, 그중 하나가 영산포다. 흑산도 옆 영산도 주민들이 고려 조정의 공도정책에 따라 이주해 살면서 홍어 산지로 이름을 알렸던 바로 그 포구다. 영산포는 일제강점기 무렵 번성했다. 비옥한 나주평야의 쌀을 일본으로 내가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영산포 일대에는 대지주 구로즈미 이타로(黑住猪太郞)가 살던 집과 동양척식회사 문서고 등 일본풍의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구로즈미의 집은 나주시에서 인수해 최근 보수를 마쳤다. 올해 말부터 숙소로 사용될 예정이다. 동양척식회사 문서고는 찻집으로 쓰인다. 아름드리 팽나무 아래서 커피 마시는 재미가 쏠쏠하다. ‘S라인’을 그리며 유장하게 흘러가는 영산강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특급 포인트가 있다. 신곡리 봉곡마을 인근의 정자 금강정이다. 예서 샛길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사방이 툭 트인 강 언덕이 나온다. 물안개가 자주 끼는 이맘때면 발 아래로 영산강과 물안개가 함께 흐르는 ‘비단결 같은’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너른 들녘을 하얗게 칠한 물안개는 희롱하듯 강변 산자락을 품었다가 떨쳐 내길 반복하는데, 단언컨대 이 풍경 앞에서 탄성을 내뱉지 않을 사람은 없다. 이 언덕은 가급적 이른 아침에 오르길 권한다. 물안개의 두께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선경은 대개 오전 9시를 전후해 홀연히 사라지고 만다. 이제 금성산을 밟을 차례다. 451m로 높지는 않으나 나주의 진산 대접을 받는 산이다. 제가 품은 고을은 진작 나주로 이름을 바꿨지만 스스로는 여태 옛 이름을 잃지 않고 있다. 금성산에 들면 먼저 다보사를 찾을 일이다. 산비탈을 따라 세워진 소담한 절집이다. 김종순 학예사는 “일제가 대처승 제도를 도입하는 등 조선 불교를 흠집 내고 탄압할 때 꿋꿋하게 이를 거부하며 한국 불교의 법맥을 이어 온 사찰”이라고 소개했다. 다보사에서 잊지 말고 봐야 할 게 대웅전과 명부전의 불단을 장식하는 조각품이다. 꽃병 등을 조각해 뒀는데 이게 한국식 꺾꽂이의 원형이라는 것. 이는 꽃꽂이가 일본에서 시작돼 전파됐다는 주장을 뒤집는 증거라고 한다. 수수하면서도 정교한 대웅전 꽃문살도 빼어나다. 보물(제1343호)로 지정된 괘불탱도 아름답다던데 아쉽게도 이를 직접 볼 기회는 없었다. 다보사 앞쪽의 금성산 둘레길을 따라 휴양림 방향으로 15분쯤 걸어가면 난데없이 초록빛 세상이 펼쳐진다. 야생 차밭이다. 사방이 단풍으로 불붙고, 흰 눈에 덮여도 늘 푸른 빛을 잃지 않는 공간이다. 고려시대 임금께 진상했던 뇌원차도 이곳에서 비롯됐다. 흰빛의 녹차꽃은 10월부터 피기 시작해 12월이면 대부분 진다. 면적은 8㏊에 이른다. 자박자박 걸으며 푸른 빛을 완상하기 좋다. 이맘때 볼거리 딱 세 가지만 더 얘기하자. 메타세쿼이아길, 쌍계정, 노안천주교회다. 메타세쿼이아길은 전남산림환경연구소 진입로에 조성됐다. 전남 담양 메타세쿼이아 숲길에 견줘 짧지만 폭이 좁고 안온해 ‘사진발’을 잘 받는다. 쌍계정은 영암의 구림, 정읍의 태인 등과 더불어 조선시대 호남의 3대 명촌으로 꼽혔던 노안면 금안 마을에 있다. 세월의 흔적 더께로 쌓인 정자도 좋지만, 건물 앞뒤를 지키고선 아름드리 푸조나무와 느티나무의 자태가 더없이 빼어나다. 노안천주교회는 쌍계정과 이웃했다. 나주 최초의 성당으로, 근대문화유산 제44호로 지정된 붉은 벽돌의 단층 건물이 인상적이다. 교회가 깃든 마을 이름은 ‘이슬촌’이다. 주민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인 마을이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 이색 마을 축제를 연다. 글 사진 나주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천안논산고속도로를 이용해 호남고속도로 광주요금소를 지난 뒤 광산이나 산월 나들목으로 나와 광주 제2순환도로를 탄다. 순환도로 요금소를 빠져나와 13번 국도를 타고 들어가면 나주에 닿는다. 서해안고속도로 함평나들목을 이용할 수도 있다. KTX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용산역에서 나주역까지 3시간 걸린다. →맛집:영산포 홍어의 거리에 홍어집들이 늘어서 있다. 영산포 홍어(337-5000) 등이 이름 났다. 나주곰탕은 시내 목사내아 일대에 몰려 있다. 하얀집(333-4292), 노안집(333-2052), 남평식당(334-4682)이 유명하다. 구진포 쪽엔 장어거리도 조성돼 있다. 영산나루(332-2131)는 동양척식회사 문서고와 한 울타리에 있는 찻집이다. 영산포 등대 바로 뒤에 있다. →잘 곳:단연 ‘목사내아’다. 옛 나주목사가 기거하던 한옥집인데 리모델링을 마치고 곧 문을 열 예정이다. 330-8831. 나주시청 부근과 동신대 일대에도 깔끔한 모텔들이 몰려 있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80)부산 나루공원 팽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80)부산 나루공원 팽나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 떠나간 사람이 그리워질 때면 옛사람들이 꺼내 들던 오래된 말이다. 함께 지내던 때에는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편하게 지내지만, 떠난 뒤에야 비로소 그의 빈자리가 아쉽다는 생각으로 하는 말이다. 사람만 그런 건 아니다. 떠난 뒤에 허전함을 느끼게 되는 대상으로 나무만 한 것이 없다. 나무만큼 흔한 것도 없기에 평소에는 일쑤 나무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스쳐 지난다. 꽃 피울 때나 단풍 물이 짙게 올라 도드라지게 화려한 자태를 보여 줄 때에만 겨우 한 번씩 바라보는 게 전부다. 그러나 그가 사라진 뒤에 찾아오는 끝 모를 공허함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이른바 ‘뒤늦은 존재감’이다. ●2010년 작별인사… 이주비 2억 5000만원 “봄에 노란 꽃을 아롱아롱 피우고, 여름 지나면 검붉은 열매를 맺는 팽나무는 마을 살림의 중심이었죠. 놀거리도 먹거리도 많지 않던 어린 시절의 모든 생활은 바로 이 나무 곁에서 이뤄졌어요. 나무 주위를 뛰어다니고, 기어오르다 떨어진 일이 다반사였죠. 여름 지나면 나무 한 가득 맺히는 조그만 열매의 맛은 잊지 못합니다.” 부산 강서구 가덕도 율리 마을 지킴이 김성진(41) 통장은 마을의 수호목인 두 그루의 팽나무가 2년 전 대형 바지선에 실려 뱃길 50㎞의 먼 길을 따라 이사 가던 날을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한다. 12가구만 남은 작은 마을에서 가장 젊은 축에 속하지만 나무에 대한 추억은 누구보다 많이 기억한다. 그러나 나무는 속절없이 그의 곁을 떠났다. 할배나무, 할매나무라는 이름을 얻고 500년 동안 수굿이 마을의 살림살이를 지켜 주던 나무가 율리 마을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건 2010년 3월이다. 키 10m, 줄기둘레 7m의 큰 나무를 옮겨 심는 공사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침내 두 달 넘는 준비를 거쳐 이사를 완료한 공사에는 2억 5000만원이 소요됐다. 나무가 원치 않는 이사를 채비한 건 가덕도 일주도로 개설 계획이 나오면서부터였다.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도로를 설계하고 보니 도로 곁에 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나무 곁으로는 35가구의 살림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살림집은 적당한 보상과 함께 이주할 수 있었다. 마을의 생명줄 가운데 하나였던 마르지 않는 샘을 갈아 엎는 것까지도 사람들은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삶을 지켜 주던 늙은 한 쌍의 팽나무가 그냥 쓰러지는 것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나무만큼은 살리고 싶었어요. 마을을 처음 일으킨 선조가 심고 대대로 의지하며 살아온 우리 살림살이의 기둥이고 삶의 역사거든요. 나무가 쓰러지는 건 우리가 쓰러지는 거라고 말할 수 있죠. 하지만 확정한 도로 설계는 조금도 변경되지 않더군요.” ●율리 마을의 살림살이를 지켜 온 수호목 김성진 통장의 부친 김영수(76) 노인은 나무가 곧 자신의 살아온 역사 그 자체였다고 보탠다. 마을 사람들은 온몸으로 공사를 막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어촌 사람들의 힘으로 현대화의 급속한 물결을 막아 내는 건 역부족이었다. 공사를 주관하는 쪽에서는 효과적인 완공에만 적극적이었다. 하릴없이 나무에 얹혀진 500년 삶의 무게는 산산히 부서져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그때 부산시에서 나무를 살리겠다는 마을 사람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공사 집행자 측의 계획을 절충하고자 했다. 오랜 토론 끝에 한 쌍의 팽나무를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전당’ 앞 수영강변 ‘APEC 나루공원’으로 옮겨가기로 결론지었다. “자리를 옮겨서라도 살 수 있게 됐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하지만 나무가 떠난 뒤로 마을 살림살이는 몰라보게 달라졌어요. 옛날에는 지천으로 널린 피조개·새조개를 잡아서 아주 풍요롭게 살았지만, 갯벌을 갈아엎은 뒤로는 먹고사는 일이 묘연해졌죠. 살림이 힘들어질 때마다 우리를 지켜 주던 나무가 그리워질 수밖에요.” 불과 이태 전의 살림살이를 되돌아보며 한숨짓는 김 통장의 속내는 능히 짐작할 만하다. 김 통장의 손에 이끌려 나무가 서 있던 옛 마을 터를 찾았지만, 나무가 살았던 흔적은 이미 가뭇없이 사라졌다. 오순도순 살던 살림집들의 자취도 마찬가지다. 그는 시내에 나갔다가 돌아올 때면 여전히 마음속으로 나무가 그곳에 있을 것만 같은 환영에 빠진다. 그러나 마을 초입의 고개를 넘으면 나타나는 낯선 도로가 달콤했던 옛 추억을 깨뜨린다고 덧붙였다. 나무가 사라진 자리를 감도는 공허감은 도저히 메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온몸에 감겼던 붕대 풀고 싱그러운 잎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처음 생명의 싹을 틔운 자리에서 말없이 희망의 새싹을 틔우는 이 즈음, 율리 마을 사람들이 보금자리를 떠난 할배·할매 나무를 만나기 위해 해운대 나루공원을 찾았다. 멀리 떠난 나무의 안부가 궁금해 도무지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는 마을 사람들은 나무를 오래 바라보면서 두 손을 모으고 말없이 나무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오로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고마운 마음이었다. 옛 마을에서는 낮은 지붕 위로 삽상한 그늘을 드리우던 나무였거늘 이제 그는 거꾸로 빌딩 숲 그늘에 덮였다. 바로 곁의 넓은 도로를 오가는 자동차들의 소음도, 도시 사람들의 분주한 걸음걸이도 나무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그가 500년을 보낸 율리 마을의 안온함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그래도 나무는 미라처럼 온몸에 칭칭 감겼던 붕대를 벗고, 싱그러운 잎을 틔워 올렸다. 율리 마을 사람들의 실낱같은 안도감이 나무를 감돌자 나무는 오랜 벗을 만난 기쁨에 상큼한 바람을 허공으로 던진다. 낯선 곳에서도 끝내 생명을 내려놓지 않은 건 그동안 그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의 평화와 안녕을 지켜주기 위해서다. 성장과 개발, 그리고 사람과 나무의 더 평화로운 어울림이 간절하게 그리워지는 풍경이다. 글 사진 부산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부산 해운대구 우동 1494 APEC 나루공원. 부산 APEC 나루공원을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주변 주차 사정도 좋으니 자가 운전을 이용하면 편리하고 빠르게 나무를 찾아갈 수 있다. 부산 시내 어디에서 출발하든 광안리 방향으로 길머리를 잡고, 광안대교 못미처에서 부산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 전당이나 신세계백화점을 찾으면 된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신세계백화점 주차장에서 나무까지는 불과 100m 남짓밖에 안 된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79) 양산 신전리 이팝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79) 양산 신전리 이팝나무

    사람의 사유를 키운 건 나무였다. 사람은 길 위에 직립한 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추어야 했고, 비로소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하늘을 바라보며 사람은 사유의 힘을 키웠고, 사람의 마을엔 철학이 태어났다. 잇따라 초록의 언어로 지은 시(詩)가 나무 앞에 내려앉았으며, 그곳에 시인이 있었다. 긴 세월 내내 시인은 나무를 맴도는 침묵의 소용돌이에서 생명의 길을 물었고, 허공으로 흩어지는 사람들의 무심한 언어 사이에서 시어(詩語)를 건져 올렸다. 하늘을 향해 나무가 키를 키우는 만큼 시인은 나무를 따라 시심(詩心)을 키웠다. 나무가 있어 우리 사는 세상은 아름답고, 시인이 그곳에 함께 있기에 사람살이는 언제나 찬란한 빛으로 살아난다. ●이팝나무에서 시를 쓰는 이유를 찾아 “이팝나무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양식인 밥을 닮은 꽃을 풍성하게 피우죠. 우리도 이팝나무가 밥을 짓듯이 영혼의 양식인 아름다운 시를 짓는 마음으로 이팝나무를 찾습니다. 첫 시집 출간을 기념하는 잔치도 그래서 이팝나무 앞에서 하기로 했어요.” 경남 양산 상북면 신전리 조붓한 마을 공원에 이 지역의 젊은 시인들이 모였다. 다섯 명의 여자 시인으로 이뤄진 ‘이팝시 동인’의 첫 시집 ‘12시 5분에 돌아간다’의 출간을 축하하는 모임이다. 나무를 닮고자 한 시 동인의 이름은 아예 ‘이팝’이다. 회장인 김광도 시인은 이팝나무가 곧 자신들이 시를 쓰는 이유라고 이야기한다. 이팝시 동인들은 양산 신전리 이팝나무 꽃이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날을 가슴 졸이며 기다렸다고 한다. 양산을 상징하는 이팝나무의 꽃이 절정을 이룬 때에 맞춰 출판 기념 모임을 하고 싶었던 때문이다. 이팝나무는 비교적 개화기간이 긴 편이지만, 서울을 비롯한 대개의 중부 지방에서는 이미 낙화를 마쳤다. 중부지방에서 이팝나무를 볼 수 있게 된 건 그리 오래지 않다. 따뜻한 날씨를 좋아하는 이팝나무가 견딜 수 있을 만큼 기후가 변화한 결과다. 게다가 토종 이팝나무의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지면서, 도시에서도 이팝나무를 가로수로 많이 심어 키우게 됐고, 이제 우리나라 전역에서 이팝나무의 꽃을 볼 수 있다. 대개의 이팝나무 꽃들은 낙화를 마친 뒤였지만, 양산 신전리 이팝나무는 지난 주말에 비로소 절정의 개화를 이뤘다. 어린 나무에 비해 개화에서부터 낙화와 낙엽 등 모든 생태 활동의 속도가 늦은 늙은 생명체인 까닭이다. 큰 나무 전체에 물을 골고루 끌어 올려 꽃 피울 에너지를 모으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서다. 사람이나 나무나 늙은 생명의 속도가 느린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350년 된 국내서 가장 큰 이팝나무 천연기념물 제234호인 양산 신전리 이팝나무는 전남 순천 평중리 이팝나무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이팝나무다. 350년 동안 마을 앞 논을 지키고 서서 풍년을 불러오는 신전리 이팝나무는 키 16m, 줄기둘레 4.5m의 큰 나무로, 여느 이팝나무의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다. 양산시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양산시는 아예 시목(市木)을 이팝나무로 정했고, 시내 곳곳에도 가로수로 이팝나무를 많이 심어 키운다. 신전리 이팝나무는 특이하게도 비슷한 나이의 팽나무와 바짝 붙어 서있는 흔치 않은 풍경을 가졌다. 서로 다른 종류의 두 나무가 사이좋게 서서 마을을 지키는 풍경은 볼수록 살갑다. 주변으로 넓게 펼쳤던 마을 논은 최근 작은 공원으로 바뀌었다. 큰 변화는 아니지만, 나무에게는 느닷없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변함없이 수백 년을 지켜오던 풍경이 그리웠던지 나무는 그 뒤로 급격히 수세(樹勢)가 나빠졌다. 나무를 잘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이 지어낸 새 풍경이 낯설었던 것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나무가 스쳐온 세월의 풍진을 견디기 힘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팝나무의 수세가 약해지면서, 팽나무와 이팝나무의 사이가 벌어졌다. 시름에 젖은 이팝나무에 아랑곳하지 않고 왕성한 수세로 잎을 피워 올린 팽나무 때문에 이팝나무는 더 애처로워 보인다. 높이 솟아오른 이팝나무의 줄기 곳곳에는 잘라 낸 가지의 흔적이 뚜렷하다. 더 심각한 건 뿌리와 연결된 줄기 부분이다. 오래전부터 부식이 진행된 듯, 썩은 줄기 안쪽에 깊은 허공이 들어찼다. 하릴없이 가늣이 나뉜 줄기가 자신의 거대한 몸뚱어리를 겨우 버티고 있는 안타까운 형상이다. 천연기념물 관리를 담당하는 문화재청 조운연씨는 “지난해 이미 나무의 상태를 확인했다.”며 “충전재로 동공을 메우는 외과수술만으로는 회생이 쉽지 않을 듯해서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보다 효과적인 조치를 찾는 중”이라고 한다. ●시인들의 관심으로 건강 회복 희망 “어릴 땐 무슨 나무인지도 모르고 하얗게 피는 꽃이 좋아 자주 찾아와 놀았어요. 팽나무와 이팝나무가 아주 사이좋은 부부처럼 다정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마치 토라진 부부가 등을 돌리고 서 있는 것처럼 보여서 안타깝네요.” 어린 시절을 이 마을에서 보냈다는 정일근(경남대 교수) 시인도 나무 곁에서 보낸 옛 이야기들을 떠올리면서 급격히 약해진 나무의 건강을 안타까워했다. 동인지 시인들의 스승으로 모임에 참석한 그는 “시인들의 관심과 아름다운 시(詩)에 의해 말라가는 나무가 다시 건강을 회복해서 푸르러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나무가 그런 것처럼 나무 앞에서 길어올린 한 편의 시는 더불어 살아가는 모두를 살리는 생명의 양식이다. 이팝나무 앞에서 이팝나무를 노래하는 시인들의 영롱한 시편들이 마침내 이팝나무의 시름을 거둬내리라 믿게 되는 이유다. 나무가 사람을 키우고, 사람이 다시 나무를 키우는 아름답고 고마운 풍경이다. 글 사진 양산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경남 양산시 상북면 신전리 95. 경부고속국도의 통도사 나들목에서 국도 35호선을 이용해 양산 방면으로 1.2㎞ 남하하면 통도사 입구 삼거리가 나온다. 직진하여 6.7㎞를 가면 오른쪽으로 양산휴게소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600m 남짓 더 가면 신전마을 입구 삼거리가 나온다. 우회전해 신전교를 건너면서 550m쯤 마을로 들어가서 좌회전한다. 250m쯤 가면 왼쪽으로 이팝나무 공원이 나온다. 나무 앞에 주차할 공간이 마련돼 있다.
  • 해운대 나루공원 새명물 할배·할매나무 아시나요

    해운대 나루공원 새명물 할배·할매나무 아시나요

    “해풍이 살랑살랑 부는 요즘에는 내 고향 가덕도가 더욱 그립제.” 수백년 동안 뿌리를 내리고 정겹게 살아온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 새 둥지를 튼 지 2년째를 맞은 500살인 노거수인 팽나무 할배, 할매 부부는 봄바람이 부는 요즘 마음이 심란하다. 다들 봄나들이다 뭐다 다니지만 할배, 할매의 소원은 고향땅을 한번 밟아 보는 것이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그러나 10일 옛 고향 친구들이 찾아온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소풍 가는 어린이처럼 가슴이 ‘ 콩닥콩닥’ 뛰며 설렌다. 강서구 가덕도 율리마을을 떠나 해운대 APEC 나루공원에 둥지를 튼 팽나무 할배, 할매는 지난 2일로 이사한 지 2년이 됐다. 율리마을 노인 10여명과 재회의 시간을 갖는다. 2010년 4월 부산시 보호수로 지정된 팽나무는 이제는 APEC 나루공원의 새 명물로 자리 잡았다. 팽나무의 스토리를 담은 ‘할배나무와 할매나무의 이야기’ 표지판도 설치된다. 시 관계자는 “식재지 주변에 팽나무들의 스토리를 담은 ‘할배나무와 할매나무의 이야기’ 표지판을 설치하고 부산의 새로운 수호목이 된 팽나무들을 널리 알리는 한편, 해당 지역을 지역 명소화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형형색색 튤립 보러 오세요

    형형색색 튤립 보러 오세요

    ‘노랑 빨강 보라 분홍 주황….’ 전남 신안군 임자도에 있는 80여종 600만 송이의 튤립이 형형색색의 화려한 자태로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신안군은 4일 신안튤립공원을 새롭게 단장해 오는 20일부터 29일까지 임자도 대광해변에서 화려한 튤립의 대향연인 제5회 신안튤립축제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12㎞의 백사장 대광해변과 튤립재배단지를 연계한 튤립공원을 조성해 관람객들에게 바다와 모래의 전경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튤립, 수선화, 히야신스, 무스카리 등 초화 구근류와 리빙스턴데이지, 크리산세멈, 비올라 등 초화류를 함께 볼 수 있도록 구상했다. 튤립공원은 총 10㏊로 튤립광장, 튤립원, 구근원(알뿌리), 체험관, 품종전시포(73종), 수변정원, 꽃 유채원, 동물농장, 소나무 숲길 등으로 조성됐으며 팽나무, 후박나무, 아왜나무 등 그늘목을 식재해 관광객 편의에 정성을 들였다. 튤립축제장에는 풍차전망대, 튤립파라솔, 대형전망대 등 각종 조형물과 국제 모래조각 시연에 의한 예술성을 연출해 다양한 볼거리를 마련했다. 신안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72) 경북 예천 금남리 황목근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72) 경북 예천 금남리 황목근

    처음 이 땅에 생명을 낳아 기른 것은 나무였다.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애면글면 잎을 틔운 나무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이뤘다. 사람들이 그 자리에 찾아들어 마을을 이루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사람보다 먼저 이곳에 들어와 사람보다 오래 살아온 나무를 극진히 보호했다. 그것이 사람이 더 아름답게 사는 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은 하늘을 향해 소원을 빌 때마다 사람이 닿을 수 없는 높은 곳, 하늘 가까이 자라는 나무에 기댔다. 당산제가 그것이다. 사람이 나무를 아끼고 보호하면 나무는 그만큼 사람살이를 지켜준다. 베푸는 만큼 되돌려 받는 아름다운 삶이다. 언제까지라도 우리 곁의 나무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다. ●호적에 이름 올리고 세금도 꼬박꼬박 “예천군에는 ‘땅을 소유한 나무’로 유명한 석송령과 함께 또 한 그루의 세금 내는 나무가 있어요. 석송령보다는 좀 늦게 제 이름과 재산을 갖게 된 나무죠. 석송령에 비해 접근성이 낮아 조금 덜 알려지긴 했어도 예천군을 대표하는 명목이지요.”<서울신문 3월 15일 자 19면 ‘석송령’ 참조> 경북 예천군에서 나고 자랐다는 최재수(43) 예천군청 문화재 담당은 어릴 때부터 예천을 대표하는 관광자원으로 석송령과 회룡포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또 하나의 세금 내는 나무의 존재는 비교적 늦게 알았다고 했다. 접근이 불편하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 아니겠냐고 최씨는 덧붙였다. 예천군 용궁면 금남리 금원마을, 평화롭게 펼쳐진 너른 들녘 한가운데에 우뚝 선 나무 한 그루가 바로 그가 이야기하는 예천군의 자랑, 황목근이다. 식물학적으로 팽나무인 이 나무는 봄에 노란색 꽃을 피워서 황(黃)씨 성을, ‘근본이 있는 나무’라는 뜻에서 목근(木根)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황목근은 여느 대한민국 국민과 똑같이 어엿이 호적에 이름을 올렸을 뿐 아니라 1만 3620㎡(4120평)의 토지를 소유한 부자 나무다. “정식으로 등기된 토지는 3700평(1만 2231㎡)이지만 미등기 상태로 황목근이 소유한 땅 420평(1389㎡)이 더 있어요. 땅 임자가 이미 황목근에게 소유를 이전하기로 했지만 등기를 이전하기 전에 돌아가셨거나 지방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분들이어서 등기를 미루고 있는 상태죠.” 황목근의 토지 소유 현황을 설명하는 황목근보존회 엄영우(73) 회장의 이야기에는 나무에 대한 자존감이 넘친다. ●마을 중학생에게 해마다 장학금 지급 금원마을에는 100여년 전부터 성미(誠米)를 모아 공동 재산을 형성했다는 기록이 있다. 1903년의 ‘금원계안회의록’과 1925년의 ‘저축구조계안임원록’이 그것들이다. 성미는 마을 공동체 구성원 중의 누군가에게 어려운 일이 닥칠 때를 대비해 조금씩 아껴 모으는 쌀을 가리킨다. 오래전부터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로운 삶을 실천해 온 마을공동체였다는 증거다. 공 들여 모은 마을 공동 재산을 통째로 황목근에 넘겨준 것은 1939년의 일이다. 세계 최초로 재산을 소유한 나무인 예천 천향리 석송령이 재산권을 행사한 지 11년 뒤의 일이다. “황목근은 오래전부터 마을의 신목(神木)이었죠. 당연히 황목근에 올리는 당산제는 마을의 안녕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었어요. 당산제를 위해 공동 재산을 이용했지요. 당산제와 공동 재산을 잘 지키기 위해서 나무에 재산을 넘긴 겁니다.” 물론 당시의 특별한 상황도 한몫했지 싶다. 1939년 즈음은 일본인들에 의한 재산 변동 상황이 극심했을 뿐 아니라 전쟁 물자를 조달하기 위한 재산 약탈도 종종 벌어지던 때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재산을 지키고 또 마을 고유의 풍습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사람보다 더 듬직하게 재산을 지켜줄 대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마을에서 황목근에 맡긴 재산은 현재 마을회관이 들어선 땅을 비롯해 주변 임야와 마을 논으로 구성된다. 그 가운데 황목근의 논에는 마을 사람이 농사를 짓고 해마다 쌀 80㎏들이 여섯 가마로 이용료를 낸다. 그렇게 늘어가는 황목근의 재산은 꼬박꼬박 예금통장에 들어간다. “1000만원이 든 정기예금통장과 지금 600만원쯤 들어있는 일반통장이 따로 있어요. 그 돈으로 우리 마을 출신의 중학생에게 한해 30만원씩 장학금을 줍니다. 물론 재산세도 꼬박꼬박 내지요. 지난해에는 2만 6000원 정도를 재산세로 냈어요.” ●칠월 백중에는 마을잔치도 벌여 마흔 가구 남짓한 금원마을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해마다 정월대보름 자정에 황목근 앞에 모여 당산제를 지낸다. 나무 주위에 금줄을 치고 신성한 나무임을 표시하고 모두가 진중한 몸가짐으로 한데 모여 제를 올린다. 정월대보름 외에 마을 사람들이 나무 앞에 모두 모이는 날이 하루 더 있다. 칠월 백중이다. 논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농사일로 가장 지쳐있을 때이기도 하고 농번기 중 잠깐 맞이하는 휴지기이기도 한 때다. 백중날 아침 마을 사람들은 황목근 앞에 모여 풀을 뽑고 흐트러진 나뭇가지를 정비하는 등 나무 주변 정화 작업부터 한다. 그리고 점심 나절이 되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잔치를 벌인다. 이때의 비용은 물론 황목근이 부담한다. 처음에 나무가 사람을 키웠다면 이제 사람이 나무를 더 잘 보호하고 지켜야 할 때다. 사람이 애지중지 보호할 때 나무는 사람의 재산까지도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임을 보여주는 특별한 나무가 황목근이다. 글 사진 예천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경북 예천군 용궁면 금남리 696번지. 중부내륙고속국도의 점촌함창나들목으로 나가서 점촌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2.2㎞ 가면 사아매교차로에 이른다. 고가도로에 올라서서 오른쪽으로 난 나들목으로 나가 P턴하여 예천 방면의 함창로에 들어선다. 9㎞쯤 직진하면 오른쪽으로 회룡포 가는 조붓한 길이 나온다. 갈림길에 회룡포를 비롯해 용문사 등의 표지판이 있다. 150m 남짓 지난 곳에서 오른쪽의 마을길로 들어서서 마을을 지나면 너른 들이 나온다. 논길을 따라 600m 남짓 가면 들녘에 홀로 선 황목근이 있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5) 전남 강진 당전마을 푸조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5) 전남 강진 당전마을 푸조나무

    ‘사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고 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존재감은 뒤늦은 상실감과 함께 다가온다는 아쉬움을 드러낸 옛말일 게다. 빈 자리에 남은 상실의 아픔을 메워 주는 건 언제나 나무다. 한번 뿌리내린 뒤로는 제 명을 다할 때까지 제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게 나무의 운명인 까닭이다. 남은 사람들은 떠난 사람이 그리울 때면 그와 함께했던 자리에 서 있는 나무를 찾아가 잊혀가는 기억의 실마리를 떠올리려 애쓰게 마련이다. 또 떠났던 사람이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고향의 푸근함을 느끼게 되는 것도 마을 어귀에 서 있는 큰 나무이기 십상이다. ●고려 최대 규모 가마터에 뿌리 고려 때 신비의 빛을 가진 청자를 굽던 가마터로 유명한 전남 강진 대구면 사당리 당전마을. 내로라하는 전국의 도공들이 모여 저마다의 작품을 빚어 내던 곳이다. 당대 최대 규모였지만, 고려 말에 이르러서는 왜구의 잦은 침범으로 가마터는 차츰 폐쇄되고 도공들은 하나둘 흩어져 떠났다. 그들이 떠난 자리를 한 그루의 나무가 지켰다. 푸조나무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을 가진, 경기도 이남의 바닷가에서 잘 자라는 우리 나무다. 중부지방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남해안 지역을 여행할 때면 느티나무나 팽나무 못지않게 마을 어귀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고려청자 가마터인 당전마을 어귀에 서 있는 강진 사당리 푸조나무는 키 16m, 가슴높이 둘레 8.5m의 큰 나무이지만, 중심 줄기가 없어 조금은 허전한 느낌도 준다. 줄기는 300년 전에 불어온 태풍에 부러졌다고 한다. 그 빈 자리 곁에서 새로 자란 6개의 새 줄기가 굵고 튼튼하게 솟아 올라 웅장한 모습을 이뤘다. 사방으로 가지를 고르게 펼쳤는데, 서쪽의 무성한 나뭇가지는 스스로의 무게가 버거운 듯 땅에 닿을 정도로 늘어져 불균형의 아름다움을 갖췄다. 전체적으로 펼쳐진 넓은 품은 마치 거대한 짐승이 웅크려 있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줄기가 부러져 나간 뒤 생긴 상처를 나무는 스스로 감싸 안았다. 깊은 상처는 살아남은 다른 줄기의 껍질이 부드럽게 덮었고, 곁에서 자란 새 줄기들은 꿈틀거리며 안쪽의 빈 공간으로 파고들었다. 아픔의 세월을 거치며 나무는 오랜 안간힘으로 부러지기 전의 모습 못지않게 근사한 수형을 이뤘다. 부러진 줄기를 바라보면서도 생명을 놓지 않고 새 가지를 틔워 생명력을 회복한 질긴 인내가 볼수록 신비롭다. ●300년 전 태풍에 부러진 가운데 줄기 문화재청 자료에는 천연기념물 제35호인 이 나무는 고려 도공이 살펴 키운 것으로 나이는 300살 정도로 추정된다고 나와 있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다. 일단 고려 도공이 살핀 나무라는 사실과 300년 전에 심은 것이라는 시간의 불일치가 그렇다. 게다가 300살 된 여느 푸조나무에 비해 클 뿐 아니라, 300년 전에 부러졌다는 사실과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처럼 큰 피해 뒤에도 살아남는다는 건 웬만큼 큰 나무가 아니고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남아 있는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 푸조나무는 마을에 태풍이 닥친 300년 전에도 이미 큰 나무였음이 틀림없다. 어쩌면 고려 청자 가마터가 스러지던 즈음인 600여년 전에 도공들이 심고 키웠던 나무일 수 있다. “박물관이 들어오면서 살림이 많이 달라졌어요. 농사 짓던 땅에 박물관을 지으니 농사 규모가 줄었지요. 그 바람에 마을을 떠난 사람도 적지 않아요. 지금은 마흔 가구 남짓 있지만, 농사일도 옛날 같지 않아요. 변하지 않은 건 당산나무뿐입니다.” ●마을 어귀 지키며 귀향객 맞아 수도권에서 공장 일을 하다가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소를 키우는 조규남(54)씨 이야기다. 조씨가 지친 몸을 끌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에는 청자박물관이 세워진 뒤였다. 논과 밭이 풍성하던 고향 풍경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나마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건 당산나무뿐이었다. “우리 당산나무가 대단한 나무야. 옛날에 어떤 가난한 나무꾼이 그 나뭇가지를 꺾은 적이 있었다고 해. 그 사람이 제 명대로 살았겠어? 급살을 맞고 죽었지. 그만큼 우리 나무가 신성한 나무라는 말이야. 아직도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당산제를 올리지.” 조씨의 집 조붓한 앞마당으로 불쑥 찾아든 옆집 박정임(86) 할머니가 나무 이야기를 덧붙인다. 박 할머니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아직까지 마을을 떠나지 않아, 사당리 당산나무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조씨가 거든다.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를 잘 지키려고 날을 잡고 모여서 얘기하곤 했어. 나무에 거름이라도 줘야지 싶으면 마을 사람들이 돈도 십시일반으로 추렴하고, 일도 거들면서 지켜온 나무인걸.” 열아홉 살에 이 마을로 시집 왔다는 조씨의 어머니 하금댁(84)도 한마디 보탠다. 문화재청에서 관리하면서부터 굳이 마을 사람들이 나무 관리를 위해 별다른 일을 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해마다 칠월칠석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나무의 건강을 살폈다고 한다. ●해마다 칠월칠석에 나무의 안부 살펴 극진한 보호 속에 살아온 사당리 푸조나무는 사람들의 들고남을 모두 바라보았다. 처음엔 우리 민족의 자랑 가운데 하나인 고려 청자를 빚어내던 옛 도공을, 다음에는 가마터가 스러진 자리에 깃든 농민을, 이제는 간단없이 찾아오는 관광객의 들고남을 바라보며 나무가 보낸 계절이 1000번을 넘는다. 긴 세월 동안 말없이 사람살이를 지켜보는 나무에게서 사람살이의 모든 추억을 되살리게 되는 까닭이다. 글 사진 강진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gohkh@solsup.com ▶▶가는 길 전남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51-1. 서울에서 강진을 가려면 서해안고속국도의 종점까지 간 뒤 국도를 이용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목포톨게이트에서 3㎞ 쯤 가서 나오는 죽림분기점에서 국도 2호선으로 빠져나가면 강진군청까지 빠르게 갈 수 있다. 강진군청 못 미쳐 강진의료원 앞 남포사거리에서 3.5㎞ 직진하면 목리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국도 23호선으로 우회전하여 15㎞ 정도 남진하면 미산삼거리에 이른다. 좌회전하면 곧바로 고려청자도요지와 청자박물관이다. 나무는 박물관 부지 끝 건너편 도로변에 있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9) 김제 망해사 팽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9) 김제 망해사 팽나무

    ‘침묵의 봄’으로 유명한 지난 세기 최고의 해양생태학자 레이철 카슨(1907~1964)은 유고집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에서 “자연을 ‘아는 것’은 자연을 ‘느끼는 것’의 절반만큼도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자연에 진정으로 다가서기 위해서는 그 어떤 지식보다 자연으로부터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올바른 지식과 지혜는 “자연에 대한 감정과 인상이 튼튼한 바탕을 이루어야 열매 맺게 된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뭇 생명을 만나는 데에 있어서 상대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거니와 길고 깊은 만남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름을 알기 전에 거쳐야 할 다른 과정은 없을까. 꽃도 잎도 열매도 모두 내려놓은 겨울 나무는 그의 이름을 알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떠오르는 생각이다. ●지식보다는 감성으로 지켜온 나무 사람이나 짐승에게 그렇듯이 나무의 이름도 그의 특징을 드러내는 한 표징이다. 그래서 이름을 잘 알아두면 그 나무와 더 빠르고 깊이 친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름을 모르거나 혹은 잘못 아는 나무와의 관계는 어떠할까. 전북 김제의 너른 만경벌 끝자락 바닷가에 자리 잡은 망해사에서 400년을 살아온 한 쌍의 나무 앞에 서면, 이 같은 의문이 구체적인 현실을 만나게 된다. 이 나무는 봄에 노란색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까만색 열매가 조롱조롱 맺히는 팽나무다. 그게 이 나무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정보다. 그러나 절집에서나 마을에서나 이 나무를 팽나무라고 부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비슷하게 가지를 넓게 펼치는 느티나무와 헷갈려 잘못 부르는 것도 아니다. 한 쌍의 나무 가운데 비교적 우뚝 선 큰 나무를 사람들은 ‘할배나무’라고 부르고 조금 작은 옆의 나무를 ‘할매나무’라고 부를 뿐이다. 전라북도 지방기념물 제114호인 이 나무 앞에는 지자체에서 정성들여 세운 입간판이 있다. 거기엔 분명히 ‘망해사 팽나무’라고 씌어 있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입간판 바로 앞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할배나무 할매나무라고 부른다. 사람의 호칭인 ‘할배’, ‘할매’가 어찌 나무의 이름이 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식물학적으로 따지고 들면 이 같은 호칭은 이치에도 맞지 않다. 팽나무는 은행나무나 비자나무처럼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는 암수딴그루가 아니다. 굳이 할배 할매처럼 성(性)을 구별해 부르려면 최소한 암수로 구분되는 나무여야 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이 같은 지식은 소용에 닿지 않았다. 절집 요사채 앞마당에 너그러운 품으로 서 있는 나무를 보고, 사람들은 고향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올린 건지 모른다. 게다가 400년을 살아온 나무이니, 나이로 치면 영원한 할배 할매가 아닐 수 없었다. ●400년 전 진묵 대사가 심어 망해사 팽나무는 400년 전 이 절에 주석한 진묵(震默, 1562~1633) 대사가 심은 나무라고 한다. 망해사는 신라 문무왕 11년(671)에 지은 천년고찰이지만 여러 차례의 부침을 겪은 뒤 조선의 대표적 선승(禪僧) 가운데 한 사람인 진묵이 주석하면서부터 인근에 사세를 널리 떨쳤다. 진묵은 망해사에 주석하면서 한 채의 전각을 짓고, 법당이자 요사채로 사용했다. 소박한 전각이지만 서해 낙조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곳이어서, 낙서전(西殿)이라는 당호를 붙였다. 낙서전을 지은 뒤에 진묵은 그리 넓지 않은 앞뜰에 나무를 심었다. 바닷바람을 막으려는 뜻도 있었겠지만 작은 마당이 허허로운 탓이기도 했다. 그때가 1624년,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이다. 두 그루 가운데 할배나무로 불리는 큰 쪽의 나무는 키가 21m나 되고, 가지는 사방으로 고르게 25m 가까이 펼쳤다. 그 곁에 다소곳이 서 있는 할매나무는 키가 17m, 가지퍼짐은 사방으로 17m쯤 된다. 할배나무보다는 작지만 이 정도면 우리나라의 여느 팽나무에 비해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나무가 전체적으로 순한 동그라미 모습을 갖춘 것도 사람들에게 고향 집 할머니의 너그러운 품을 떠올리게 했을 게다. 한 쌍의 팽나무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그윽한 눈길을 데면데면 나누며 400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왔다. 마치 겉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평생 드러내지 않으면서 마음속으로만 서로를 보듬어 안고 살아가는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성정과 분위기를 영락없이 닮았다. 이 나무가 팽나무인지 느티나무인지 소나무인지를 아는 게 과연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일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의 마을로 닥쳐오는 칼바람을 온몸으로 막으며 우리네 할매와 할배처럼 세상살이에 지친 영혼을 위무하고 지켜온 세월이 400년이다. 더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서해바다 지금은 새만금 방조제로 주지 스님이 출타 중인 오붓한 절집 망해사에 가톨릭 교회의 수녀님 다섯 분이 찾아 들었다. 김제 시내의 성당에 살면서도 멀지 않은 망해사를 찾아오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바다를 바라보아 망해사라고 했지만, 지금은 새만금 방조제에 막혔으니 호수 호(湖)자를 써서 망호사라 해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절집을 이리저리 구경하던 수녀님들 가운데 가장 젊어 보이는 수녀님이 홀로 할배나무 앞의 입간판을 유심히 읽은 뒤, 칼바람에 윙윙거리는 나뭇가지 끝을 바라보며 ‘팽나무’라고 분명하게 소리 내어 나무의 이름을 불렀다. ‘망해사’가 아니라 ‘망호사’라 부르고 싶은 것처럼 그 나무는 ‘팽나무가 아니라, 할배나무예요’라고 고쳐 주려다 그만두었다. 이름보다 더 귀중한 것이 삶의 진정성, 느낌, 인상 그런 감정에서 오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서였다. 세상에 떠도는 모든 이름들이 허공으로 산산이 부서져 흩어지는 겨울 오후다. 글 사진 김제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가는 길 전북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1004. 서해안고속국도의 동군산나들목으로 나가서 전주 방면으로 직진한다. 대야교차로를 지나 5.6㎞ 남쪽으로 가면 다시 신금교차로가 나온다. 우회전하여 지방도로 711호선을 이용해 5㎞ 남짓 간다. 만경여자중학교 앞의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광할 방면으로 지평선을 바라보며 9.5㎞ 간다. 오른편으로 나오는 심창초등학교를 지나면 ‘망해사’ 혹은 ‘곽경렬선생묘소’ 방면을 가리키는 안내판이 나온다. 우회전하여 300m 가면 망해사 입구다. 절집까지는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는 솔숲에서 걸어가야 한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7) 인천 신현동 회화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7) 인천 신현동 회화나무

    왁자하던 대학 캠퍼스가 고요해졌다. 차가운 겨울바람 탓이기도 하지만,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학기말 고사 기간이어서 대개는 도서관을 찾아 든 탓이다. 늦은 밤까지 환한 도서관의 충혈된 불빛이 살갑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교정은 더 깊은 고요에 빠질 것이다. 교정의 나무들도 하나둘 낙엽을 떨구고 겨울방학을 준비하는 중이다. 모두가 휴식의 시간을 준비하는 계절이건만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는 그럴 겨를이 없다. 준비해야 할 게 많다. 우선 코앞에 닥친 기말고사에서 좋은 점수를 얻어야 한다. 취업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취업의 부담에 시달리며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 두고, 겉으로 살려내지 못하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창조력이 더 아쉬운 시절이다. ●공부를 잘하게 하는 신통한 나무 “회화나무 아래 서 있으면 공부를 잘하게 된다는 게 사실이에요? 진작에 알았으면 아침마다 학교 가기 전에 한 번씩 들를 걸 그랬네요.”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의 기말고사 준비로 겨를이 없는 최인경(22·인하대 4)씨를 인천 신현동 회화나무 앞에서 만났다. 어린 시절부터 이 동네에서 살았다는 최씨는 어릴 때 이 나무 그늘에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나무보다는 나무 아래 깔린 자갈돌이 중요했기 때문이란다. “나무 아래에는 예쁜 돌멩이들이 자르르 깔려 있었어요. 공기놀이뿐 아니라 대개의 놀이에 돌멩이는 아주 중요하거든요. 여기에서 모이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하지만 이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무슨 의미를 가졌는지는 몰랐죠.” 콩과에 속하는 회화나무는 예로부터 ‘학자수’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회화나무는 느티나무나 팽나무와 마찬가지로 가지를 넓게 펼치고 잎이 무성한 나무여서 정자나무로 많이 심어 키운다. 이 나무에 학자수라는 별명이 붙은 건 사방으로 고르게 뻗는 나뭇가지가 자유분방하면서도 기개를 잃지 않는 기품이 있어서다. 서양에서도 이 나무를 ‘학자의 나무’ 즉 ‘스콜라 트리’(Scholar Tree)라고 부르는 걸 보면 회화나무에 대한 인상은 동서양이 공통적이다. 천연기념물 제315호인 인천 신현동 회화나무에는 별다른 유래가 없다. 다만 이 나무의 꽃이 위쪽부터 피어나면 풍년이 들고, 아래쪽에서 먼저 피면 흉년이 든다는 이야기만 전할 뿐이다. 7월 지나 여름 햇볕이 따가울 즈음 가지 끝에서 우윳빛으로 아롱아롱 피어나는 작은 꽃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쳤다는 이야기다. 그나마 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지금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기록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청라지구 개발로 숨가쁜 변화 기록으로 남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면 이 동네가 필경 농사를 짓던 마을이었으며, 나무 곁으로 너른 논밭이 펼쳐졌던 게 분명하다고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지역에 지금처럼 5~6층 규모의 연립 주택이 들어선 것은 20년도 채 안 된다. 그때까지 나무 주위는 논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나무 바로 곁으로 주택단지가 형성된 10년 전까지만 해도 낮은 언덕만 돌아서면 멀리 서해 바다가 훤히 보이는 풍요로운 들판이었다. 유난히 염소를 많이 기르는 농촌 마을이었다. 지난 20년 사이에 이 지역을 스쳐간 변화는 놀랄 만큼 컸다. 논과 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초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신주택단지, 이른바 ‘청라지구’가 형성됐다. 8차선의 넓은 도로가 뚫린 건 물론이고 도로 한가운데로 뱃길까지 뚫렸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하지 않을 수 없는 변화였다. 걷잡을 수 없는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는 신현동 회화나무는 이곳에서 500년을 살아 왔다. 키는 평균적인 아파트 7층을 넘는 22m나 되고, 둘레도 6m 가까이 된다. 하지만 주변에 늘어선 주택들에 갇혀 나무는 왜소해 보인다. 뿐만 아니라 사방으로 주택들이 둘러싼 탓에 나무를 찾아오는 바람도 길을 잃었고, 나무가 내뿜는 숨결은 매우 거칠어졌다. 도시의 금싸라기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나무가 어쩔 수 없이 견뎌 내야 하는 운명이다. 그 사이 성장과 개발의 숨 가쁜 흐름에서 나무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도 적지 않았다. 줄기 앞에 이 동네 사람들이 동제를 올릴 때 쓰는 제단을 놓은 것부터 그렇다. 일정한 날을 정해 제사를 올리는 건 아니지만 동네에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동네의 자랑인 나무 앞에서 제사를 올리기 위한 채비다. 주변 환경도 한결 깨끗해졌다. 울타리를 깔끔하게 정비했을 뿐만 아니라 나무 옆으로 자리를 더 내어서 아담한 정자도 세우고, 어린이를 위한 놀이기구와 몇 가지 체육시설을 설치하기도 했다. 작지만 잘 꾸민 근린공원이 됐다. ●고단한 사람살이의 큰 위안으로 “저도 이런 큰 나무가 있는 줄 몰랐죠. 그런데 초등학교 때 ‘회화나무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 낯선 어른들을 종종 만나게 됐어요. 그래서 알게 된 거죠. 우리 동네 사람들보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오지 않았나 싶어요.” 나무 그늘에 쪼그려 앉아 공기놀이를 하던 최씨가 취업을 앞둔 어른으로 바뀌었지만, 나무는 여전히 한자리를 지키며 옛일을 고스란히 기억한다. 특히 신현동 회화나무는 상전벽해의 한가운데를 지키며 변함없는 사람 살이의 알갱이를 500년 동안 수굿이 지켜 왔다. 이제 학기말 고사를 마치면 최씨도 사회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리고 모두가 그렇듯이 세상살이에 지칠 즈음 최씨도 어김없이 어린 시절을 떠올릴 것이다. 그때 불현듯 떠오를 회화나무는 필경 지친 사람 살이의 큰 위안으로 다가설 것이 틀림없다. 사람은 떠나도 나무는 그렇게 그때 그 자리에 치유의 존재로 남을 것이다. 글 사진 인천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가는 길 인천 서구 신현동 131-7. 경인고속국도의 서인천나들목으로 나가면 가정오거리가 나온다. 비교적 복잡한 이 오거리에서 10시 방향으로 들어서서 700m쯤 간다. 언덕 너머의 가정삼거리에서 목재단지 쪽으로 좌회전해 700m쯤에서 나오는 사거리를 지나 오른쪽 두 번째 골목길인 롯데마트 옆길로 들어선다. 길 안쪽의 연립주택 건물 사이로 나무가 보인다. 나무 앞에는 주차장이 없고, 골목은 비좁고 복잡하다. 골목길 가장자리의 노견 주차장에 자동차를 세우고 나무까지 걸어서 찾아가야 한다.
  • 서해안 ‘아水라장’… ‘곤파스 악몽’ 재현?

    서해안 ‘아水라장’… ‘곤파스 악몽’ 재현?

    태풍 무이파가 빠른 속도로 북상하면서 제주도와 전라도에 이어 8일 새벽 수도권 전역에도 태풍경보가 발효됐다. 7일 밤 12시부터 8일 오전까지 서해와 인접한 인천시 등 수도권 전역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 8일 수도권 출근길에 비상이 걸렸다. 인천을 비롯해 서해5도와 경기 시흥·안산·평택 등에는 7일 오후 늦게 폭풍해일주의보가 발령돼 해안지역 피해가 우려된다. ●전남 피해접수 250여건… 인천 해일비상 서해 먼바다를 통해 북상 중인 무이파는 중심기압 970헥토파스칼(hPa)의 중형급 태풍으로, 한반도와 비슷한 위도대를 지나는 8일 새벽부터 낮 사이 순간 최대풍속 초속 10~30m의 강풍과 비를 뿌린 뒤 오후 3시쯤 중국 랴오둥 반도에 상륙할 것으로 기상청은 내다봤다. 무이파가 현재의 최대풍속을 유지한 채 수도권을 지나면 지난해 9월의 ‘곤파스’와 비슷한 수준의 피해가 예상된다. 당시 곤파스는 초속 27m의 최대풍속(서울 북쪽 40㎞ 지점 근접 시 기준)으로 추석을 앞둔 수도권을 강타해 가로수가 쓰러져 도로를 가로막고 전선이 끊겨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는 등 출근대란을 일으켰다. 강한 비바람으로 무장한 무이파는 제주를 휩쓴 뒤 서해안을 스치면서 크고 작은 생채기를 남겼다. 7일 오후 휴가철을 맞아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제주. 그러나 한라산 윗세오름에 최고 620여㎜의 폭우가 쏟아지는 등 제주산간에 시간당 50㎜ 이상의 강한 비가 내려 일부 하천이 범람 위기를 맞는가 하면, 해상에는 6∼9m의 높은 파도가 일어 제주와 부산, 목포, 인천 등을 잇는 6개 항로의 여객선 운항이 전면 통제됐다. 하늘길도 모두 막혔다. 이날 오전 8시 제주공항을 떠나 청주로 갈 예정이었던 대한항공 KE1962편을 비롯한 제주행·발 항공기 244편이 역시 무더기 결항됐다. 이에 따라 제주를 찾은 관광객 3만여명의 발이 묶였다. 오전 5시 45분쯤에는 서귀포시 화순항에 피항 중이던 바지선 거원(1320t)호의 밧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1.6㎞가량 떠내려가 용머리해안 모래밭에 좌초됐다. 배 안에는 박모(43)씨 등 2명이 타고 있었지만 서귀포해양경찰서 122구조대에 의해 무사히 구조됐다. 대정읍 운진항과 안덕면 사계항에서 태풍을 피해 정박 중이던 남군호와 창일호 등의 선박도 높은 파도에 전복됐다. 서귀포시 성읍민속마을에서는 천연기념물 제161호인 수령 600년 된 팽나무가 부러지면서 조선시대 관아인 일관헌(제주도 유형문화재 제7호)을 덮쳤고, 도내 21곳의 27개 교통신호등이 떨어지는 등 강풍 피해도 속출했다. ●충남·대전 태풍특보… 지자체 비상근무 오후 6시를 기해 광주시와 전남 내륙 6개 시·군에 내려졌던 태풍주의보를 경보로 대치 발령, 태풍경보를 도내 전 지역으로 확대한 광주·전남의 뱃길과 하늘길도 막혔다. 오전 7시 김포행을 제외한 12편의 항공기 운항이 취소됐고, 목포발 21개 항로 42척과 여수·완도항 등 전남지역 항·포구의 56개 항로 89척의 뱃길도 끊겼다. 각 항·포구에는 여객선과 어선 등 5만여척이 피항했다. 오후 5시 40분쯤 전남 완도군 고금면 덕동리 선착장에서 김모(75)씨가 1t짜리 배를 정박시키려다 파도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1시간여 만에 숨진 채 발견되는 등 전남지역에서만 250여건의 피해신고가 접수됐다. 또 광주 동구 운림동 증심사 인근 상가 간판이 떨어지면서 이모(61·여)씨가 머리와 팔에 상처를 입는 등 광주지역에서는 90여건의 태풍 피해가 접수됐다. 광주지방기상청은 이날 오후부터 8일 오전 사이에 강한 바람을 동반한 시간당 30㎜ 이상의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보했다. 무이파의 북상으로 충남 서해상에도 태풍특보가 내려지면서 충남도와 관련 기관들이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대전지방기상청은 오후 6시와 8시를 기해 각각 서해중부 먼바다와 앞바다에 내려진 태풍주의보를 태풍경보로 대치했다. 오후 8시에는 대전과 충남 천안, 공주 등 내륙지방에도 태풍주의보를 발령해 대전·충남 전역에 태풍특보가 확대됐다. 충남도는 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 비상근무 인원을 17명에서 46명으로 늘렸다. 7일 전북 전역에 태풍경보가 내려지면서 도내 모든 국립공원의 입산이 전면 통제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이날 오후부터 무주 덕유산과 남원 지리산, 정읍 내장산 등 도내 3개 국립공원의 입산이 금지됐다. 제주 황경근기자·전국종합 kkhwang@seoul.co.kr
  • 평시엔 쉼터·재난땐 방패…지자체 방재림 조성 바람

    평시엔 쉼터·재난땐 방패…지자체 방재림 조성 바람

    부산 등 해안을 끼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해안 방재림(숲) 조성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해안 방재림이 태풍이나 지진해일(쓰나미) 발생 때 피해를 최소화하는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실례로 일본은 대형 쓰나미에도 해안 방재림이 비교적 잘 조성된 미야기현 센다이 공항과 인근 지역은 피해가 적었다. ●60m방재림, 해일속도 70% 낮춰 해안방재 숲은 바다에서 발생하는 모래 날림, 해일, 풍랑 등으로부터 해안 마을과 농경지를 지키기 위해 바다와 인접한 지역에 조성한 숲을 말한다. 평상시에는 시민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재해 때에는 해안지역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역할을 한다. ●부산, 내년까지 ‘숲 벨트’ 구축 부산시는 내년까지 총 260억원을 들여 해안가에 65㏊ 규모의 ‘해안 숲 벨트’ 구축사업을 추진한다. 올해는 기장군 일광면 임랑해수욕장 일원 1㏊와 강서구 송정동 녹산 신호 산업단지 해안가에 각각 1㏊의 방재림을 조성하고 있다. 내년에는 2003년 태풍 ‘매미’ 내습 당시 큰 피해를 보았던 강서구 명지오션시티와 녹산·신호 산단 일대 해안가에 200억원을 투입해 50㏊ 규모의 방재림을 조성한다. 기장군 임랑, 일광, 좌광천, 월전과 해운대구 송정천 등에 10㏊ 정도의 해안 방재림을 구축하기로 했다. 40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해운대 해수욕장과 수영천, 영도구 동삼 혁신지구, 서구 암남공원 등에도 50억원을 들여 5㏊ 규모의 방재림을 만들기로 했다. 부산시는 해안가에 조성될 방재림의 주요 수종은 지역 특성에 맞는 염해에 강한 해송과 분비나무, 팽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등 활엽수를 심기로 했다. ●해안 낀 전남·경북·제주도 추진 전남도는 태풍이나 지진 해일 등 자연재해로부터 해안지역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천연방파제인 해안 방재림 사업을 적극 추진하기로 하고 올해 사업비로 3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올해 대상은 완도, 신안 등 2개 지역의 3㏊이다. 앞서 전남도는 2006년부터 여수와 해남, 완도, 진도, 신안 등 5개 시·군에 60.65㏊의 해안방재림 조성사업을 추진키로 하고 지난해까지 모두 15㏊를 조성했다. 경북도도 올해 포항시 남구 장기면 모포리 일대 해안지역 1㏊와 흥해읍 용안리 일원 2㏊에 각각 방재나무를 심는다. 제주도도 자연재해가 대형화되고 빈발하게 발생하는 점을 고려해 올해 안에 제주시 이호동 이호해수욕장 일원 0.5㏊,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일원 0.5㏊에 각각 해안 방재림을 조성하기로 했다. 각 지자체가 해안 방재림 조성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최근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 등으로 해일과 같은 자연재해가 더욱 대형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너비 60m의 해안방재림 조성 때 지진해일 속도를 70%, 에너지를 90%까지 감소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진 때 30만명이 사망했지만, 방재림이 잘 돼 있는 시메우레우섬의 사망자는 4명에 불과했다. 당시 스리랑카에서도 방재림이 없는 곳은 6000여명의 인명피해를 냈지만, 방재림 지역은 2명만 사망하는 데 그쳤다. 부산 김정한기자·전국종합 jhkim@seoul.co.kr
  • 저도 관리권 道·軍 논쟁

    저도 관리권 道·軍 논쟁

    “대통령별장에서 해제된 저도는 이제 국민 품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경남도) “저도는 진해만 주변 주요 시설 보호를 위한 군사적 요충지로 매우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군에서 관리를 해야 한다.”(국방부) 진해만 길목에 위치한 섬으로 국방부가 소유·관할하고 있는 저도의 관리권 이양에 대한 해묵은 논쟁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경남도는 2일 대통령 별장으로 이용했던 청해대가 있는 저도의 관리권을 국방부로부터 넘겨받기 위해 곧 국방부에 공문을 보내 의견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래전부터 관리권 이양 논란이 있었던 데다 최근 김해연(거제·진보신당) 경남도의원이 도의회에서 5분 발언을 통해 “국방부로부터 저도의 관리권을 이관 받을 수 있도록 경남도가 적극 나서라.”고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저도는 거제도 북쪽 끝에서 1㎞쯤 떨어진 곳에 있는 43만 4181㎡의 아담한 섬이다. 행정구역은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 최근 개통된 거가대교가 이 섬 위를 통과한다. 울창한 해송·동백나무·팽나무 숲이 섬 전체를 덮고 있고, 풍광이 아름답다. 과거 일본군과 연합군이 통신소 및 탄약고로 사용하다가 1954년 이승만 대통령 당시부터 대통령 휴양지로 활용했다. 1972년 대통령 별장으로 지정된 뒤엔 1973년 청해대 건물을 지었다. 그러나 이후 정부는 진해시민과 어민 등의 끈질긴 요청에 따라 1993년 청해대를 대통령 별장시설에서 해제했다. 섬 주변에서의 어로행위 제한도 풀었다. 그러나 행정구역을 환원한 뒤에도 섬은 여전히 국방부 소유로 진해해군기지사령부가 관리를 하며 일반인은 출입을 할 수 없다. 2003년 충북 청남대 개방을 계기로 저도 관리권 이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거제시의회와 경남도의회는 저도반환 성명서와 건의안을 채택해 청와대를 비롯한 관련 부처에 전달하는 등 저도 관리권 이양을 여러 차례 촉구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군사요충지로 섬 곳곳에 군 특수시설이 있어 군에서 계속 관리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해연 도의원은 ”지난해 개통된 거가대교가 저도 위를 통과함에 따라 저도는 더 이상 대통령 휴양지로 활용할 수 없게 된 데다 군사요충지로서도 가치가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진해해군기지사령부 측은 “거가대교가 통과하고 근처에 부산신항이 조성되는 등 주요 시설이 들어섬에 따라 시설 보호를 위해서도 저도의 군사적 중요성은 오히려 더 커졌다.”고 반박했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순박한 시골 할머니들의 ‘물과 풀 같은 투쟁’

    순박한 시골 할머니들의 ‘물과 풀 같은 투쟁’

    ‘문학의 위기’라는 명제는 긴장감을 잃은 지 이미 오래다. 리얼리즘 문학이 구닥다리, 천덕꾸러기 취급받은 것 또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둘은 무관하지 않다. 형식의 파격과 실험이 높게 여겨지고 리얼리즘은 진부한 장르로 치부되는 속에서 대중과 문학은 소통의 방법을 서로 잃어 가고, 문학의 위기는 더욱 부추겨졌다. 문단 내부에서조차 문학이 보통의 사람들이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의 변화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데 누가 한가하게 소설을 읽겠느냐는 자조적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선옥(47)의 새 장편소설 ‘꽃 같은 시절’(창비 펴냄)은 이런 상황 속에서 미련스러울 만치 우직하게 리얼리즘을 틀어쥐고 있다. 게다가 예의 리얼리즘 문학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으면 ‘철 지난 얘기’를 심각한 표정으로 풀어 가기 일쑤인 것과 달리 ‘지금, 여기’의 문제를 진지하면서도 섬세하고 경쾌한 문체로 담아내고 있으니 리얼리즘 문학의 또 다른 성취라 할 만하다. 지난해 계간지 창비에 네 차례에 걸쳐 연재했던 작품이다. ‘꽃 같은’은 공선옥이 요즘 흠뻑 빠져 있는 시골과 시골 사람, 시골 생활 이야기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시골 마을 투쟁 이야기’다. 변변히 하소연할 곳 하나 없어 분통 터지게 억울하지만, 소박하고 정겹기 이를 데 없는 방식으로 투쟁을 벌이는 시골 무지렁이 할머니들이 투쟁의 주역들이다. 소설 속 평화로운 ‘전남 순양군 진평리’에 어느날 불법 쇄석 공장 ‘순양석재’가 들어서고 허구한날 ‘독가루’를 날려대니 ‘깻잎에 돌가루가 박혀 입에서 싸그락싸그락 돌이 씹히는’ 지경이 됐다. 개발업자와 지역 정부는 서로 유착해 있고, 감사원이니 법원이니 등은 그들을 거들떠보거나 귀 기울여주지 않고, 언론은 기업 편에서 일방적 기사만 써댄다. 서울의 환경단체는 작은 시골 사정까지 돌보기에 너무 바쁘시다.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93세 ‘맹순이 언니’를 비롯해 시앙골댁, 해징이댁 등 70~80대 할머니들이 나서서 공장 앞에서 덤프트럭을 막고, 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법원에 소송하고, 감사원에 탄원서를 넣는 등 팔을 걷어붙이고 ‘디모’에 나선다. 그런데 정겹기 그지없다. 군청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할 때는 한쪽에서 솥단지 걸어 놓고 밥 지어 먹다가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불러 밥을 먹이기도 한다. 새벽녘부터 굉음을 울리며 시골길을 질주하는 덤프트럭을 보면서는 “저 사람들 밥은 먹고 나왔을까.”라며 안쓰러워한다. 참 ‘물 같고 풀 같은 투쟁’이다. 결과는? 당연히 실패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패배가 아니다. 고구마 캐다가 호미 끝에 고구마 서너 알 매단 채 이승을 떠난 ‘맹순이 언니’의 혼령은 먼저 떠난 무수굴댁 혼령을 만난다. 그리고 “꽃 같은 시절을 보내다 왔어.”라고 자랑한다.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삶을 살았건만 늘 눈치 보느라 절절매며 제 소리 한번 내지 못했던 이들 아닌가. 한데 순사건, 나라님이건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 마음껏 하다가 왔으니 그 자체가 ‘꽃시절’이란다. 실제로 순양군 도시 철거민, 빈민, 베트남 이주여성, 시인, 노동자 등 거대 담론 바깥에 있는 이들의 느슨하지만 따뜻하게 연대하는 꽃 같은 시절이 작품에 담겨 있다. 공선옥의 소설 속에서는 숱한 소리들이 이어진다. 띠루띠루띠루루루~ 낭랑한 지렁이 울음 소리가 귀에 어른거린다. 팽나무, 대나무, 산죽나무도 우웅우웅 노래하고, 싸락눈은 싸그락싸그락거린다. 공장의 쇄석기 소리에 맞서는 시골 할머니들의 외침에 자연이 거들며 내는 소리들이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면 한껏 귀 기울여도 들리지 않던 온갖 작고 초라한 것들의 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한다. 아무리 눈 부릅뜨고 둘러봐도 보이지 않던 ‘낮은 곳, 못난 것’들의 모습이 눈에 선해진다. 눈과 귀를 밝게 해주는 작품이다. 한데 의아하다. 눈과 귀가 밝아졌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가슴이 절로 데워져 있다. 공선옥 소설의 힘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25) 나주 상방리 호랑가시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25) 나주 상방리 호랑가시나무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는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오래된 과거의 축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재의 삶을 돌아보는 게 곧 역사라는 의미심장한 언술이리라. 대학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해도 우리의 살림살이에는 언제나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가 이어진다. 사람 사는 곳 어디라 해도 옛사람들의 자취는 남아있고, 그 품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선인의 향기를 오래 간직하고자 애쓰기 마련이다. 옛사람이 손수 심고 키운 나무를 세심하게 돌보는 것도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짚어 보는 역사적 상징임에 틀림없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자발적으로 의병을 모아 이순신 장군을 찾아간 우리 조상이 있었어요. 오득린이라는 장군이죠. 지략이 뛰어나서, 이순신 장군이 매우 아끼며 참모로 기용한 명장이에요. 그 할아버지가 왜군의 총탄을 맞고 할 수 없이 물러나서 이곳에 들어와 마을을 일으켰어요.” ●마을을 일으킨 오득린 장군이 심어 나주 오씨 집성촌인 전남 나주 공산면 상방리 상구마을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오영선(54)씨의 이야기다. 오득린(吳得隣, 1564~1637)은 충무공의 참모로 활약하며, 노량해전에서 충무공이 전사한 뒤에도 끝까지 전투를 이끈 명장이다. 조근조근 들려주는 오씨의 이야기에는 마을 선조에 대한 자부심이 한가득 담겼다. “마을 서쪽으로는 숲이 울창한데, 반대쪽으로는 너른 들판이 펼쳐져서 조금 휑하게 보여요. 풍수를 보는 사람들은 좌청룡 우백호의 좌청룡이 빠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을 일구며 오득린 할아버지는 마을의 동쪽 입구에 마을 숲이라 해도 될 만큼 많은 나무를 심으셨어요.” 원래 마을 동쪽 입구는 조릿대와 같은 낮은키 나무들이 덤불을 이루었다고 한다. 서쪽의 울창한 숲과 균형을 이루기 위해 장군은 이곳에 느티나무, 팽나무 등 크고 오래 자라는 나무를 골라서 심었다. 장군은 마을이 평화롭고,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이 숲을 잘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오씨는 덧붙였다. 그때 심은 나무 가운데 10여 그루가 아직 살아 있다. “마을 입구의 나무에서는 해마다 정월 그믐에 당산제를 지내요. 당산제 때는 당산나무 앞인 마을회관 마당에 100명 정도 되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제사를 올리고, 음식을 나눠먹곤 합니다. 먹고 남은 음식은 저 나무 앞에 땅을 파고 잘 묻지요.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잖아요. 나무에도 좋은 거름이 되지 않을까요?” ●천연기념물 지정된 유일한 호랑가시나무 오영선씨가 가리킨 나무는 최근 천연기념물 제516호로 지정된 나주 상방리 호랑가시나무다. 잎 가장자리에 난 날카롭고 억센 가시가 호랑이 발톱을 닮았다고 해서 호랑가시나무라고 이름 붙인 나무다. 딱딱한 잎과 억센 가시가 특징인 상록성 나무로, 호랑이가 등을 긁을 때 쓸 만하다 해서, 호랑이등긁개나무라고도 부른다. 호랑가시나무는 우리나라 남쪽 지방에 자생하는 나무로, 전북의 변산반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군락지도 있다. 오래전부터 우리 가까운 곳에서 자란 나무인데, 홀로 서 있는 독립수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상방리 호랑가시나무가 처음이자 현재로서는 유일한 나무다. 키가 5.5m나 되는 이 나무는 호랑가시나무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나무다. 어른 허리 높이쯤에서 줄기가 둘로 나눠지면서 동그랗게 자란 나무는 사나운 이름과 달리 부드럽고 착한 생김새를 갖췄다. 나무 바로 앞에는 오득린 장군의 기념비를 세워 나무에 담긴 특별한 의미를 새겨볼 수 있게 했다. “겨울이 되면 빨갛게 맺히는 열매가 예뻐요. 꽃은 언제 피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가는데, 열매는 정말 좋아요. 열매를 맺으면 새들이 달려들어서 금세 먹어치우지요. 먹을 게 없는 겨울이라 그런지, 새들이 저 열매를 특히 좋아해서 그런지 모르겠네요.” 연한 황록색의 호랑가시나무 꽃은 모내기로 농부들이 가장 바쁜 5월쯤 피어난다. 또 잎겨드랑이에서 지름 7㎜ 밖에 안 되는 크기로 작게 피어나기 때문에 한창 모내기로 분주한 농부들의 눈에는 잘 뜨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농사일이 줄어들어 한가해지는 겨울에는 상록성의 초록 잎 사이에 맺히는 빨간 열매가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굳이 농부가 아니라 해도 호랑가시나무는 열매가 인상적인 나무로, 흔히 성탄절 장식이나 카드의 그림으로 많이 쓰인다. 호랑가시나무는 은행나무처럼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어서 암나무에만 열매가 맺힌다. 상방리 호랑가시나무는 농한기에 농부들의 눈길을 빼앗는 암나무다. “열매 맺는 나무가 따로 있군요. 아, 그래서 마을회관 뒤에 있는 몇 그루의 호랑가시나무에서는 열매가 달리지 않는 거였군요.” 오영선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택시 운전을 하는 이 마을의 오생교(58)씨가 점심 식사를 하러 들어오다가 다가왔다. 영선씨와 사촌 간이라는 생교씨는 식사를 뒤로 미룬 채, 나무 이야기를 보태려고 영선씨 곁으로 바투 다가섰다. ●상여도 못 나가게 하며 지켜와 “지금도 적은 건 아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을 입구엔 나무가 많았어요. 어르신들이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말도 못 해요. 가지를 꺾으면 몸에 큰 병이 든다고 했죠. 또 초상집에서 나가는 상여도 그랬고, 혼례를 치른 신랑 신부도 이 나무들 사이로는 지나가지 못하게 했다니까요.” 400여년 전에 마을을 일으킨 선조가 심은 호랑가시나무 앞에서 이루어진 봄날 한낮의 나무 이야기는 그러고도 계속 이어졌다. 나무 이야기라고는 했지만, 나무의 생육 정보보다는 나무를 대하는 옛사람들의 마음으로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와 다르지 않았다. 나무를 통해 이어간 사람살이의 작은 역사, E H 카의 이야기처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였다. 글 사진 나주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18) 부산 좌수영성지 푸조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18) 부산 좌수영성지 푸조나무

    니체는 젊은 시절에 생을 마감한 자신의 아버지를 ‘생명 그 자체였다기보다 생명을 친절하고 부드럽게 환기시켜 주는 사람’이라고 걸작 ‘이 사람을 보라’에 썼다. 스스로의 삶을 오래 이어가지 못할 만큼 병약한 생을 살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스쳐 지나는 삶을 통해 생명의 참 의미를 부드럽게 환기시켜 주었다는 절묘한 표현이다. 그건 변화를 드러내지 않으며 직수굿이 살아가는 늙은 생명체, 이를테면 크고 오래된 나무들에게서 바랄 수 있는 일이지 싶다. 사람과 더불어 살면서 생명의 약동을 아주 천천히, 그래서 더 부드럽게 일깨워 주는 건 이 세상 모든 나무들이 사람의 마을에 살아가는 귀한 이유일 게다. ●역사의 흔적으로 남은 거대한 생명 가을까지 내내 짙푸른 녹음을 자랑하고, 겨울 바람 불어오면서 잎을 떨어뜨리면 나무는 잠시 숨을 멈추고 죽은 듯이 보인다. 살아 있는 생명체로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오랜 세월을 지나며 생로병사의 여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늙은 나무의 울퉁불퉁한 줄기는 커다란 바위가 건네주는 무생물의 느낌과 흡사하다. 영하 16도를 넘나들던 혹독한 추위에 적응된 탓인지 반도의 남쪽 부산을 휘감아도는 겨울 바람은 오히려 따스하게 느껴진다. 따뜻한 지방을 골라서 보금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푸조나무를 스쳐가는 겨울 한낮의 바람은 차갑지만 맵지 않다. 삽상하다. 텅빈 가지를 넓게 펼친 푸조나무 곁으로 이어지는 언덕으로 병색이 짙은 마을 노인이 힘겹게 발걸음을 옮긴다. 강추위 속에 반짝 나온 햇살을 맞이하기 위해서 언덕 위에 마련된 쉼터를 찾아가는 길이다. 팔순쯤 돼 보이는 노인의 걸음이 그가 살아온 삶의 무게만큼 무겁다. 푸조나무의 텅빈 나뭇가지가 지어낸 가느다란 실 그늘이 노인의 힘겨운 발걸음을 가만가만 따른다. 부산 수영동 좌수영성지 푸조나무의 겨울 한낮의 풍경이다. 옛 이름인 좌수영성지보다는 수영사적공원이라고 더 많이 알려진 이곳은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부산 시민들이 자주 찾는 편안한 공간이다. 그러나 평일 한낮이어서인지, 여느 공원과 마찬가지로 공원 안에는 해바라기 나온 노인들뿐이다. 좌수영성지는 조선시대 경상도 동쪽 바다를 지킨 경상좌도의 수군절도사가 머무른 좌수영성이 있던 곳으로, 성벽의 흔적과 성문이 남아 있다. 처음 성을 쌓은 때는 알려지지 않았고, 현재의 성곽은 숙종 18년(1692)에 다시 쌓은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사람들은 모두 떠났으나 여전히 성터를 지키며 살아남은 생명이 있다. 500살 된 천연기념물 제311호의 부산 좌수영성지 푸조나무다. ●남부의 해안지방에서 잘 자라는 나무 푸조나무는 중부지방에서는 볼 수 없지만, 남부의 해안지방에서는 느티나무나 팽나무처럼 정자나무로 심어 키우기 때문에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이름에서 이국적인 느낌을 풍기지만, 엄연한 우리 토종 나무다. 바닷바람을 잘 견뎌 바닷가의 방풍림으로도 많이 심어 키운다. 좌수영성지 푸조나무는 그의 나이를 감안할 때, 이 자리에 성을 다시 쌓았던 임진왜란 이후쯤에 심은 나무로 짐작된다. 물론 당시에는 성곽 안팎으로 더 많은 나무를 심었을 것이다. 그들 가운데 어떤 나무는 제 명을 다해 저절로 스러지기도 했고, 또 어떤 나무는 사람의 필요에 의해 베어지기도 했을 것이다. 모진 500년 세월의 풍파를 거뜬히 이겨내고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알이 담고 있는 푸조나무는 이제 키가 15m를 훌쩍 넘었다. 수천개의 나뭇가지는 그 펼침이 사방으로 20m가 넘어 보인다. 여느 생명체가 감히 넘보기 힘든 거대한 규모의 이 푸조나무는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지신목이다. 뿌리 부분에서부터 줄기가 둘로 갈라지며 솟아올라서 마치 두 그루의 나무가 비스듬히 서서 정담을 나누는 듯한 모습이다. “오래된 공원이니, 오래된 나무가 많은 건 당연하죠. 이 푸조나무 말고 언덕 너머에는 천연기념물 곰솔도 하나 더 있어요. 또 천연기념물은 아니지만, 오래된 나무도 아주 많아요. 이 숲에 불어오는 바람이 좋아서, 여름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죠.” 큰 바위처럼 웅크리고 있는 푸조나무에 한창 눈을 맞추는 사이에 마침 운동하러 나온 이 마을 중년 사내가 짐짓 공원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낸다. 유서 깊은 마을임을 증거하는 나무 이야기를 특히 강조한다. 그의 이야기처럼 수영사적공원에는 푸조나무 외에도 팽나무, 소나무, 곰솔 등 오래된 나무가 많이 있다. ●바위처럼 웅크리고 새봄을 기약 “하루하루 살기 바쁜 지금 사람들이 옛날 일이나 나무를 중요하게 돌볼 틈이 있겠어요? 제 살기 바쁜데, 어쩔 수 없죠. 나무랄 수도 없고요. 하지만 이만큼 큰 나무는 사람이 보살펴 주지 않아도 스스로 잘 자라지요.” 살아 있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겨울나무를 바라보는 중년 사내의 눈길에 담긴 건 생명에 대한 믿음이었다. 수천개의 가지들에 달렸을 수백만장의 나뭇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바위처럼 웅크리고 있는 푸조나무는 그렇게 사람에게 생명의 신뢰를 건넸다. 그의 속살 깊은 곳에서 새봄에 다시 돋아날 새잎을 틔워가는 생명력이 생생하게 느껴질 만도 하다. 생명 그 자체로서보다는 생명을 부드럽고 친절하게 환기시키는 생명체로서 한 그루의 늙은 나무가 혹한의 겨울에 사람에게 건네주는 무언의 가르침이다. 글 사진 부산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부산 수영구 수영동 271. 혼잡한 도심에서 한 그루의 나무를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으나 좌수영성지 푸조나무는 부산시청에서 4㎞ 남짓 떨어진 ‘수영사적공원’ 안에 있어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시청 앞 삼거리에서 동쪽으로 난 연제로를 따라 3.2㎞ 가면 부산지하철 망미역 앞 오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여덟시 방향으로 좌회전하고 곧바로 주유소 뒤편으로 우회전하여 500m만 들어가면 수영사적공원 주차장이 나온다. 갈림길마다 나오는 안내판을 따라 가면 된다.
  • 제주 교래휴양림 새달 오픈

    ‘제주의 허파’로 불리는 ‘곶자왈’을 테마로 한 제주시 교래 자연휴양림이 내년 1월 초 문을 연다. 제주도는 제주돌문화공원 남쪽에 인접한 조천읍 교래리 산 119 일대 230만㎡에 숙박 시설과 생태 체험로, 야영장 등을 갖춘 자연휴양림을 조성하는 사업을 이달 말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7일 밝혔다. 해발고도가 430m인 ‘늡서리오름’ 일대에 조성한 교래 자연휴양림은 전형적인 낙엽활엽수 지대로 팽나무·서어나무·산딸나무·졸참나무 등의 낙엽활엽수와 후박나무·꽝꽝나무 등의 상록활엽수, 고사리 등의 양치식물이 자라는 곶자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휴양림에는 탐방객 숙박 시설인 60∼73㎡ 크기의 휴양관 8채와 생태 체험로 1.5㎞, 오름 산책로 3.5㎞, 7000㎡의 잔디광장, 야영장, 풋살경기장, 100여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 등이 갖춰진다. 제주에서 3번째로 개장하는 교래 자연휴양림의 입장료는 성인 1000원, 청소년 600원이다. 휴양관 사용료는 1박 기준으로 4만∼7만원(성수기는 7만∼11만원)이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68) 청주 우암산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68) 청주 우암산

    ●소처럼 착하고 순한 청주의 진산 5월 중순 우암산(353m)은 연초록빛으로 부풀어 올랐다. 청주의 진산 우암산은 도심에 자리 잡은 산치고 뜻밖에 숲이 좋은 산이다. 우점종인 상수리나무는 쭉쭉 하늘을 찌르고 소나무, 전나무, 낙엽송, 산초나무, 팽나무 등이 어울려 풍성한 숲을 이루고 있다. 산 서쪽 벽화 마을로 유명한 수동 수암골과 연결한 코스는 아이들과 함께 숲 공부를 겸한 가벼운 산행으로 좋다. ●전국 명소로 떠오른 수암골 벽화 마을 청주대 입구에서 가까운 우암초등학교 담벼락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서면 남북 방향으로 길게 몸을 누인 우암산이 눈에 들어온다. 부드러운 산세가 도시를 품는 형상이라 포근해 보인다. 우암산을 바라보며 걷다 보면 곧 수암골이다. ‘카인과 아벨 촬영지’를 알리는 간판이 군데군데 붙어 길 안내를 한다. 언덕에 올라서면 수암골의 입구인 삼충상회. 여기서부터 담벼락을 따라 ‘숨바꼭질’, ‘꽃을 사랑하는 호랑이’ 등의 그림들이 나타난다. 골목 앞에 그려진 마을 지도도 예쁘다. 골목길 모퉁이를 돌자 ‘먹보’, ‘감나무집’, ‘울보 영지’ 등이 나타나는데, 꼭 동화 속 마을에 들어선 기분이다. 세 아이가 함박웃음을 짓는 ‘웃는 아이 삼남매’ 앞에 서자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애들이 우리 마을의 유일한 아이들이에요.” 사진 찍는 필자에게 이영순(68) 할머니가 다가와 일러준다. 이 할머니가 수암골에 들어온 것이 벌써 45년여 전이다. 미원에서 이곳으로 시집와 4남매를 낳아 모두 출가시켰다고 한다. “전쟁 후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이 마을이 만들어졌어요. 흙벽돌을 찍어 방 두 칸, 부엌 한 칸을 만들어 살았지요.” 세월이 흐르며 쇠락한 수암골 달동네는 2007년에 획기적인 변화를 맞는다.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이홍원 화백을 비롯한 충북 민예총 회원들과 청주대, 서원대 학생들이 ‘추억의 골목 여행’이라는 주제로 서민들의 생활을 담은 벽화를 그린 것이다. 덕분에 ‘카인과 아벨’ TV 드라마도 이곳에서 촬영해 더욱 유명세를 탔다. ●삼일공원 들머리로 우암산 산행 “우리 마을이 인심 하나는 좋지. 또 놀러 와요.” 할머니의 넉넉한 미소를 뒤로하고 마을을 빠져나오면 우암산 순환도로를 만난다. 그 길을 따르면 청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 여기서 크게 기지개를 켜고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삼일공원이다. 3·1독립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이 지방 출신인 손병희, 신석구, 권병덕 등 5인의 동상에 인사를 올리고, 본격적으로 우암산 산행을 시작한다. 초입의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오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갑자기 울창한 숲이 펼쳐지고 알록달록 철쭉이 피어 화사하다. 온갖 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한동안 상수리나무 터널을 오르면 능선에 올라붙는다. 휘파람이 절로 나는 순한 능선에서는 나무들을 주의 깊게 보자. 팽나무, 상수리나무, 청미래덩굴, 때죽나무…. 나무들의 간단한 특징이 적힌 안내판이 붙어 있어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며 걷기 좋다. 열심히 나무 공부를 하다 보면 어느새 방송국 송신탑에 이르고, 이곳에서 시내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삭막해 보이는 빽빽한 빌딩을 바라보면, 시내 가까이 이렇게 숲이 우거진 산이 있다는 것이 고맙게 느껴진다. 송신탑을 지나면 ‘우암골 자연테마학습 공원’이 나온다. 능선에서 나무들과 눈을 맞췄다면 이곳에서는 풀 공부하기에 좋다. ●나무와 풀 공부하기 좋은 숲 “이게 우산나물이야. 잎이 꼭 우산을 닮았지.” “하하~ 정말 우산 같네. 얘들은 비 와도 우산 필요 없겠다.” 마침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풀 공부에 한창이다. 길섶에는 꿩고비, 비비추, 하늘매발톱, 산비장이, 벌개미취, 돌단풍 등이 가득하다. 학습 공원을 지나면 ‘숲속 교실’이 나오는데, 우암산을 통틀어 가장 숲이 좋은 곳이다. 상수리나무와 낙엽송들이 서로 번갈아 가면서 미끈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천천히 나무와 길을 음미하며 오르면 체육 시설이 들어선 삼거리. 여기서 오른쪽으로 300m쯤 가면 우암산 정상이다. 하산은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 산불감시 초소가 있는 지점에서 청주대 방향을 따른다. 그 길을 30분쯤 내려오면 청주대 예술대학이 나오면서 짧지만 알찬 산행이 마무리된다. 깔깔거리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계절의 여왕 5월과 잘 어울린다. 산길 가이드 수암골을 들머리로 삼일공원, 우암산 정상을 거쳐 청주대 예술대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은 약 6㎞, 2시간 30분쯤 걸린다. 수암골은 우암초등학교 뒤편으로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가는 길과 맛집 서울에서는 동서울터미널과 남부터미널에서 약 30분 간격으로 다니는 북청주행 버스를 탄다. 북부터미널에 내리면 청주대가 지척이고, 5분 거리의 우암초등학교를 찾아 수암골로 들어간다. 청주 시내에서 수암골로 가려면 방아다리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하산 지점인 청주대 후문 쪽은 파전의 명소다. 그중 삼미파전(043-259-9496)은 가격이 저렴하면서 양이 풍부하다. 파전과 오징어볶음 5000원. 북청주터미널 앞의 청주왕호두과자도 별미다. (043)224-5225.
  • 300살 팽나무 한쌍 61㎞ 여행

    부산시 강서구 천가동(가덕도) 율리마을의 수호신으로 불려온 수령 300년의 팽나무 두 그루가 30일 해운대 우동 나루공원에 새 뿌리를 내린다. 25일 부산시 등에 따르면 가덕도 팽나무 이식작업을 26일부터 오는 4월4일까지 시행한다. 애초 지난달 말쯤 신항만 컨테이너 배후부지 조성 및 가덕도 일주도로 개설 예정지에 있는 이들 팽나무를 나루공원으로 이식하기로 했으나 궂은 날씨 등으로 늦어졌다. 이 팽나무들은 높이 10~12m, 밑지름 1.3~1.4m에 이르는 고목으로 이전비용과 식재 후 관리비 등이 2억 5000만원에 달한다. 시 관계자는 “그동안 마을 수호신 노릇을 한 팽나무를 애초 현재 위치에서 보존하려고 일주 도로 노선 일부를 변경하는 등 노력했으나 여의치 않아 나루공원으로 옮기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는 부산의 대표 명품 수목이자 저탄소 녹색성장의 상징물인 팽나무의 새 터전을 물색한 결과 상징적인 의미가 크고 운반과 식재작업이 쉬우며 생존장소로 좋은 입지를 갖춘 나루 공원을 최종 선택했다. 이 팽나무들은 바지선으로 해상운송된다. 29일 오전7시 바지선에 실린 팽나무는 60여㎞를 뱃길로 이동한 뒤 이날 오후 7시쯤 해운대 우동항에 도착하게 된다. 이어 크레인으로 1㎞ 떨어진 나루공원으로 운반한 뒤 30일부터 본격적으로 식재작업에 들어간다. 부산시 관계자는 “팽나무 생존을 위해 최신 기술과 공법을 도입해 철저하게 관리하는 한편 부산시 보호수로 지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부산 천가동 500살 팽나무 이사가요

    부산 천가동 500살 팽나무 이사가요

    부산시 강서구 천가동(가덕도) 율리마을의 수호신인 팽나무(수령 500년이상 추정) 두 그루가 해운대 우동 나루공원에 새 둥지를 튼다. 시는 가덕도 일주도로 개설 예정지에 포함된 수령 500년이 넘은 팽나무 두 그루의 이전이 불가피해 나루공원으로 이식하기로 결정했다고 1일 밝혔다. 시 관계자는 “율리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한 팽나무를 애초 현지의 다른 곳으로 옮길 예정이었으나 해안가에 맞닿은 산지마을이어서 자칫 팽나무의 생존마저 장담할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부득이 나루공원으로 옮기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부산시 보호수 가운데 수령이 500년 이상 된 나무는 통틀어 여섯그루에 불과하며 특히 500년 이상 된 나무 두 그루가 쌍둥이처럼 한곳에 있는 것은 전국적으로도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팽나무의 지름은 2m에 높이가 10m에 이른다. 팽나무 두 그루를 옮겨 심는 것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다. 이 두 나무의 뿌리 밑동을 3~4m가량 파 들어가 뿌리를 둘러싼 흙과 함께 크레인으로 들어 율리항에 정박해 있는 작은 바지선에 한 그루씩 싣는다. 작은 바지선은 두 번에 걸쳐 부산신항에 정박한 큰 바지선으로 옮겨 싣게 된다. 이 큰 바지선은 두 그루의 팽나무를 싣고 해운대 우동항으로 이동하게 된다. 다시 대형 크레인으로 팽나무를 나루공원으로 운반하고 나서 이식하게 된다. 옮겨 심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주일 정도. 오는 20일 작업에 들어가 이달 말쯤 이식 작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이식 비용만 2억 5000만원이 들어간다. 연간 관리비만 300여만원이 소요된다. 2년여가 지나야 나무가 새둥지에 뿌리를 내린다. 시 관계자는 “이들 팽나무를 부산시 보호수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光州 ‘푸른길 공원’ 29일 개방

    도심폐선 부지인 광주역~조선대 정문 2.88㎞가 2년에 걸친 조성공사 끝에 ‘푸른 길 공원’으로 29일 개방된다. 이번에 완공된 구간은 4만 4314㎡ 로, 총사업비 92억원이 투입됐다. 이 길은 ‘과거, 현재, 미래의 숲길’이란 주제로 ‘해돋이 마당’과 ‘태양의 광장’ 등 6개 테마광장과 함께 향토수종인 느티나무, 팽나무 등 79종 7만 465그루가 심어졌다. 시는 2002년부터 모두 278억원을 도심을 가로지르는 경전선 폐선구간 10.8㎞ 가운데 동성중 입구~효천역 2.9㎞를 제외한 7.9㎞를 5개 구간으로 나눠 푸른길공원으로 가꾸고 있다. 마지막 구간인 옛 남광주역사 주변 320m 구간은 올 말까지 완공된다. 시 관계자는 “전체구간이 연결되면 도시의 녹지공간과 광주천이 어우러진 도심 속의 생태·휴식공간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푸른길공원 구간은 80년 넘게 경전선 철로로 이용돼 오다가 2000년 외곽으로 이전됐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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