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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실TALK] 신동, ‘부쩍 자란’ 그를 만나다 ①

    [진실TALK] 신동, ‘부쩍 자란’ 그를 만나다 ①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이하 슈주)의 멤버 신동. 첫 데뷔 당시 그의 존재는 소위 말해 ‘이질감’이었다. ‘꽃 미남’과는 거리가 먼 외모와 크지도 않은 키와 살집이 있는 몸매의 그는 다소 동떨어진 존재 그 자체였다. 2005년 데뷔 당시 한 버라이어티 쇼에서 “저는 때려도 괜찮아요. 멤버들 중 가장 팬이 없거든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데뷔 3년차 신동은 슈주 활동 외에도 MBC ‘뽀뽀뽀 아이조아’, 케이블 채널 M.net ‘DJ 풋사과 사운드’, MBC FM ‘신동 김신영의 심심타파’ 등 MC는 물론 지난 4월 종영된 KBS 2TV 드라마 ‘싱글파파는 열애 중’에도 출연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진실 톡’ 첫 회에서는 슈주의 멤버 신동이 아닌 인간 신동희를 만나 보았다. 최근 슈주 활동이 뜸한데 어떻게 지냈죠? 밤에는 라디오 DJ를 하고 낮에는 잠만 자고 있어요. 많이 잘 때는 하루 12시간도 잤으니…많이 자면 좋아질 줄 알았던 피부가 안 좋아졌어요. (웃음) 아! 얼마 전에 멤버들과 릴레이 마라톤을 했는데 그때까진 살이 빠졌는데 지금은 또 찌고 있죠. 친구들과 밤에 치킨 먹고 아침에 삼겹살 먹고 그래요. 하하. 슈주를 떠나 이렇게 만난 건 처음인데. 그렇네요. 사실 개인 활동할 때는 편한 게 미용실 부분이에요. 13명이 할 때는 멤버 전체가 2시간이 걸렸어요. 저는 빨리 끝나는 편이라 30분 만에 메이크업과 헤어를 끝내고 줄창 기다렸거든요. 단점이라면 참 외로워요 혼자 다해야 하는 것이 힘들죠. ‘뽀뽀뽀’를 오랜 기간 진행하고 있는데 어때요? (뽀뽀뽀를 맡을 당시)처음엔 무척 부담됐어요. 내가 어려서 보고 자라던 건데 “잘 할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해를 주지는 않을까?”는 생각이 들었죠. 벌써 1년 2개월을 하고 있는데 점점 애정이 생겨요. 편해지고. 라디오 DJ도 하던데? 좋아요. 개인적인 이야긴데, 우리 어머니 꿈이 제가 라디오 DJ를 하는 거였어요. 어머니가 평소 청소하실 때나 밥하실 때 라디오를 틀고 하시거든요. 제가 라디오를 하는 시간이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진데 하루도 안 빼놓고 들으세요. 또 다른 좋은 점은 많은 분들의 사연을 직접 들을 수 있어서에요. 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소통한다는 것 그게 매력 아닐까요? 어떻게 춤과 노래를 하게 됐어요? 초등학교 때 친구들을 사귀려고 시작했어요. 전학을 갔는데 당시 H.O.T가 유행했거든요. 그래서 저도 같이 동아리를 하려고 했고 나름 오디션도 봤죠. 중학교 때는 제 방에 전신 거울이 있었는데 거울을 볼 때마다 웨이브를 연습했어요. 그러다 절 가르쳐 준 친구들보다 더 잘하게 됐죠. 나름 자신도 있었어요. 경기도에서 댄스 경연 대회 우승도 하고 그랬거든요. 하지만 고등학교 때 전국 대회에 가서 예선 탈락했죠. 그래도 포기한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춤을 정복해보자’는 생각에 발레, 댄스 스포츠를 배우다 지금의 기획사에 들어가게 됐죠. 참 많은 가수가 데뷔하고 경쟁이 심한데, 어떻게 생각해요? 무섭죠. 모든 무대, 방송이 긴장 되요. 많은 분들이 제 외모만 보고 “넌 버라이어티 잘 할거다”고 하시는데 제가 의외로 소심하고 낯을 가려요. 실제로 데뷔 초에 버라이어티를 나가면 “한마디라도 더 해야지”, “더 주목 받아야지”하는 강박관념에 시달렸어요. 지금도 모든 무대가 무서워요. 라디오도 경쟁이고 제가 진행을 못해서 “청취율이 떨어지면 어떡하나.” 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어요. 극복해 나가야죠. 데뷔 3년째인데 지금까지 가장 어려웠던 시기가 있다면? 데뷔 음반 나오기 전이죠. 많은 가수들이 겪는 것이지만 데뷔 날짜가 취소되는 일이 많았어요. 친구들에게 “나 음반 나온다”고 자랑 많이 했거든요. 그럴 때 마다 욕 좀 먹었어요. 하하. 2편에 계속 서울신문NTN 김경민 기자 star@seoul.co.kr / 사진=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주말탐방] 스포츠 서포터스의 세계

    [주말탐방] 스포츠 서포터스의 세계

    박찬호(35·LA다저스)가 지난달 26일 거의 2년 만에 승수를 쌓았다. 승리 뒤 박찬호는 “팬들이 보내준 메일을 읽다가 ‘시범경기 잘 던질 때 투구폼보다 팔이 옆으로 처진다. 팔을 높여보라.’는 지적을 받고 팔을 높이 든다는 생각으로 던지니 좋은 투구가 됐다.”고 말했다. 한 팬의 날카로운 지적이 쇠락하는 듯한 메이저리거에게 통산 113번째, 부활을 예고하는 승리를 안겨준 셈이다. 프로축구 전북 조재진(27)은 5일 동점골을 터뜨린 뒤 상대팀인 수원 서포터스 600여명 앞에 가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펼쳤다. 조재진은 “수원 서동현(23)이 선제골을 넣은 뒤 전북 서포터스 앞에서 춤을 추며 서포터스를 모독한 점을 되갚아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터넷상 뜨거운 논란을 기꺼이 떠안으면서까지 뜨거운 팬 사랑을 과시했다. 바야흐로 ‘팬들의 시대’다. 개방과 소통, 공유를 통해 각계각층에서 특정인 특정세력만이 아닌,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스포츠에도 예외가 없다. 비단 박찬호뿐 아니다. 스타가 팬들에게 인기몰이를 하기도 하지만, 팬들이 감독을 갈아치우기도 하고 선수의 스타일을 바꾸기도 한다. 축구장 한 쪽에 집단으로 자리를 잡고 경기 내내 한 번도 엉덩이를 붙이지 않은 채 목청껏 응원하는 축구마니아들이 있다. 또 야구장의 수많은 ‘재야 감독’들은 통계와 기록표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다. 농구코트에는 십 수년째 선수들을 쫓아다닌 덕분에 그들의 신상과 개인사, 컨디션을 훤히 꿰뚫는 열성팬들이 존재한다. 이런 이들이 축구, 농구, 야구 동네에 바글바글하다. 생업 탓에 미처 경기장으로 달려가지 못한 이들은 TV중계를 보며 탄성과 환희를 나눈다. 서포터스다. 이들을 따라가본다. 부산·창원 박록삼 임일영기자 youngtan@seoul.co.kr ■ ‘롯데 서포터스 연합회’-“야구장은 거대한 놀이터이자 삶의 활력소” 프로야구 롯데 팬들에게 야구장은 ‘거대한 어른 놀이터´다. LG와의 롯데 홈경기가 열린 지난달 29일도 마찬가지. 직전 27일 삼성에 3-17의 기록적인 대패를 당한 직후이고 평일이었지만 오후 5시 남짓부터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가 두 손에 치킨, 피자, 족발 등 먹거리를 잔뜩 싸들고 부산 사직구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경기 내내 ‘신문지 갈기´를 흔들었고 경기 막판 즈음에는 주황색 ‘롯데의 봉∼다리´를 머리에 뒤집어 쓴 채 목청껏 소리지르고 맥주를 곁들이며 유쾌하게 흥청거렸다. 직장인들은 아예 부서회식 장소를 사직구장으로 잡는다. 보험영업을 하는 오경석(40)씨는 팀 동료 8명과 함께 야구장을 찾았다. 오씨는 “단합과 스트레스 해소라는 부서 회식 취지에 가장 부합되는 장소라고 생각한다.”면서 “다들 야구를 미치듯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당히 술 먹고 노래 부르고, 춤도 추며 응원할 수 있는 야구장이 딱 좋다.”고 말했다. 일찍이 정수근은 제리 로이스터 롯데 감독에게 “사직구장은 빅 비어룸”이라고 익살스레 말한 바 있다. 김정환(38)씨는 ‘롯데 서포터스연합회´ 간사다. 자동차 딜러가 본업이지만 홈경기 때는 11개 모임의 300여명에 이르는 회원들과 ‘정모 준비´에 여념이 없다. 김씨는 “사직구장에는 꾸며진 것이 아닌 자발적인 응원 문화가 있고 이는 삶의 활력소다.”면서 “가끔 지나친 음주와 흡연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마니아부터 그냥 즐기는 팬까지 편안하게 공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롯데 광팬 손정빈(45)씨는 지난 1월 아예 사직구장 바로 앞에 호프집을 차렸다. 가게 안은 온통 롯데와 선수들 관련 사진 등으로 장식했다. 이곳이 롯데 팬들의 아지트가 됐음은 물론이다. 시내 중심가에서 사직구장 앞으로 옮겨 비시즌 때 손해가 있음에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단다. 팬들이 이 정도니 구단이 이들과 교류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992년부터 꼬박 만 17년 동안 롯데 연간회원이었던 지임용씨는 지난달 22일 76세 나이에 지병으로 숨졌다. 롯데는 2000년 준플레이오프 1차전 시구를 맡기기도 했다. 시즌중이었지만 구단 관계자들이 지씨의 빈소를 대거 찾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손씨와 김씨, 오씨, 지씨 할아버지는 부산에서 그리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이날 롯데는 LG를 8-0으로 이겼다. 경기가 끝난 뒤 롯데팬들은 손씨의 호프집으로, 야구장 광장 주변에 모여 잔치의 마지막을 만끽했다. 이날 밤 사직구장 앞 광장과 술집 골목길 사이에서는 자정이 넘어가도록 ‘부산 갈매기´와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가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롯데가 있어서, 프로야구가 있어서 행복하다. 롯데는 이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 ‘그랑블루’-“우리는 팀의 승리를 위해 모인 지지자들” 프로축구 수원의 홈경기가 열리면 ‘빅버드(수원월드컵경기장의 별칭)´는 온통 푸른색 물결이다. 서포터스의 자리인 N석은 통로, 복도까지 빼곡하게 들어찬다. 얼추 4000∼5000명이다. 몽땅 ‘그랑블루´다. 프로축구판 최고 극성, 최대 인원을 자랑하는 수원 서포터스다. 사정이 이러하니 N석은 아무에게나 돌아오지 않는다. 이 자리를 차지하려면 경기 시작 최소 한 시간 반 전에는 와야 한다. 늦으면 어쩔 수 없이 W석 등 다른 자리에 앉아야 한다. 물론, 어린 아들, 딸과 함께라 불가피하게 W석을 찾는 열혈 서포터도 있다. 이렇게 모인 이들은 아무도 강요하지 않지만 꼬박 두 시간 동안 한목소리로 고함 지르고, 노래 부른다. 이런 사람들이 매번 1만 5000명 이상 모인다. 무서운 곳이다. 수원의 성적이 좋지 않을 수가 없다. 수원은 8일 현재 컵대회 포함, 12경기 연속무패(10승2무)다. 지난달 30일. 평일 오후임에도 경남 창원까지 버스를 타고 원정응원을 온 수원 서포터스 ‘그랑블루´ 44명은 마치 페르시아 수만 대군에 맞서는 최정예 전사들 같았다. 이들은 놀랍게도 거의 대부분 휴가를 내고 온 직장인들이다. 보통 주말 원정경기에는 400명 정도가 함께 움직이지만 평일이라 적은 수준이라고. 아니나 다를까. 지난 5일 전북과의 원정경기에는 13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600여명이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 어느 원정경기든 일단 규모면에서 어지간한 홈팀 서포터스를 압도하는 것은 기본이다. 실제 골대 맞은편 스탠드에 자리잡은 경남FC의 서포터스 ‘단디´,‘뉴클리어´ 등은 홈경기임에도 안타깝게 20여명으로 더욱 미미했다. 물론 20대 전후로 구성된 이들의 열정만큼은 ‘×100´을 해도 모자랄 정도로 대단했다. 열정적이고 배타적으로 수원을 응원하는 ‘그랑블루´지만 궁극적으로는 K-리그의 발전과 서포터스 문화의 확대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50여개 서포터스모임의 연합체인 그랑블루를 이끌고 있는 박정혁(33) 회장은 “우리는 모두가 철저히 자발적으로 수원의 승리를 위해 모인 지지자들”이라면서 “다른 구단에도 우리같은 서포터스 문화가 많이 만들어져 프로축구가 질적으로 발전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수원 공격수 김대의(34)를 좋아한다는 한재준(43)씨는 일본계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한씨는 “원정 응원을 오려면 최소 3만∼4만원은 들어가는데 학생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박하성(35)씨 역시 조퇴하고 원정응원을 왔다. 박씨는 “연간 회원권이 매진된 구장이 수원 한 곳 뿐일 정도로 프로축구 서포터스 문화가 아직 열악하다.”며 미약한 축구팬 저변을 안타까워했다. 밤 10시30분쯤 버스에 올라탄 뒤 자정을 훌쩍 넘겨 수원에 도착한 이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고스란히 새벽 술자리까지 이어졌다. ■ ‘이상민을 응원하는 사람들’-“십시일반 정성 모아 응원광고 선물했죠” ‘그곳이 어디든… 이상민! 당신이 가는 길이 정답입니다.´ 지난해 7월14일 한 스포츠신문에 실린 전면광고는 스포츠팬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겼다.10년 동안 몸 담았던 프로농구 KCC를 본의 아니게 떠나 삼성으로 옮긴 ‘영원한 오빠´ 이상민(36)을 격려하기 위해 팬클럽인 ‘이상민을 응원하는 사람들(이응사)´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거둬 광고를 낸 것. 특정 스타를 응원하는 팬들이 신문에 광고를 낸 것은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 2004년 ‘농구대통령´ 허재(43·현 KCC 감독)의 ‘하야(下野)´에 즈음해 그를 아끼던 팬들이 ‘안녕, 나의 영웅´이란 카피의 전면광고를 실은 것. 이 광고에 감동을 받은 허재는 한 농구잡지에 ‘답 광고´를 싣기도 했다. 한국스포츠 사상 가장 아름다운 스토리로 남을 이 두 사건은 농구의 팬 문화가 다른 종목과는 다르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선수보단 팀에 대한 서포팅이 주를 이루는 야구나 축구와는 달리 농구는 개별 스타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것. 현역 선수 가운데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는 주인공은 단연 이상민이다.1999년 포털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이응사´는 1만 9000여명의 회원을 유지하고 있다. 스포츠 선수 한 사람의 팬클럽으로는 국내 최다. 회원 연령대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이 가장 많지만 초등생이나 60대 할머니도 찾아볼 수 있을 만큼 다양하다. 남자 회원비율도 예상을 뛰어넘는 30% 안팎. 가입하려면 클럽장에게 거주지역과 신상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이상민에게 전하고 싶은 응원 메시지를 남겨야 한다. 합격률이 70%에 그칠 만큼,‘아무나´ 가입할 수 없는 곳인 셈. 비시즌에 따로 정모(정기모임)는 없지만 시즌 중에는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뭉친다. 6년 전 이응사에 가입한 뒤 현재 클럽 운영을 맡고 있는 이선영(32·여·회사원)씨는 07∼08시즌 정규리그 54경기 가운데 무려 40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잠실에서 열린 27경기는 기본이고,‘반차´를 내고 부산이나 전주 등 지방원정에 나서는 일도 허다했다. 이씨는 “다른 종목과 달리 농구의 팬 문화가 팀보다 선수에 집중되는 현상은 프로농구팀들이 프랜차이즈 스타를 키우고 지키는 데 인색하기 때문”이라면서 “10년 넘게 농구를 지켜본 나같은 사람들, 그리고 그 가족들까지 어차피 오빠가 은퇴하면 자연스럽게 KCC팬으로 남게 된다. 구단 운영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이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구단의 마케팅 전략 부재를 꼬집었다.
  • 현대선수들 전훈참가 사실상 결정

    프로야구 제8구단 창단 작업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현대 선수단이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사에 고용 승계 등을 요구하며 거부해온 전지훈련에 참가하기로 사실상 결정했기 때문이다. 현대 선수단은 12일 오전 11시 경기도 일산 원당구장에서 박노준 센테니얼 단장 내정자를 만나 세부 사항을 조율한 뒤 전훈 참가를 최종 확정하겠다고 11일 밝혔다. 중재자로 나선 하일성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이 이틀 연속 선수단과 접촉해 벌인 설득 작업이 먹힌 데다 이날 박 단장 내정자와의 전화 통화 주선이 양측의 오해를 푸는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큰 걸림돌은 모두 치워진 것으로 보인다. 선수단은 11일 원당구장에서 4시간30분간 전체 회의를 갖고 센테니얼측과 큰 줄기에서 합의에 도달했다. 하 총장은 선수단 전원과 만남을 가진 데 이어 김동수, 전준호, 정민태, 이숭용 등 고참 4명과 다시 의견을 나눴다. 가장 첨예하게 맞섰던 고용 승계 문제에 대해 센테니얼측이 선수단에 믿음을 심어주며 상황이 긍정적으로 변했다.하 총장은 “선수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코치 가운데 8명은 구제하는 등 성의를 보였다.”고 말했다. 선수단 대표 이숭용은 “그동안 저희 때문에 야구팬과 센테니얼 구단 관계자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 의사 소통이 원활치 않아 센테니얼쪽과 오해가 많았던 게 사실이나 오늘 하 총장, 박 단장과 많은 이야기를 통해 오해를 풀었다.”고 말했다. 정민태도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오해가 있었던 사안은 내일 모두 밝히겠다.”고 말했다. 하 총장은 “선수들은 운동을 해야 하고 많은 팬을 위해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는 게 제일이다. 그런 면에서 선수단이 센테니얼 창단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내 할 일은 이제 다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날 센테니얼이 “15일 가입금 120억원 가운데 일부를 입금하고 나머지 금액의 입금 날짜를 통보하겠다.”는 뜻을 KBO에 전달한 것도 사태 해결에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최종 타결되면 현대 선수단은 이르면 13일 제주도 전훈에 참가하게 된다.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마이클 셔머 지음

    미국 성인의 52%가 점성술을,42%는 죽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고 믿는다.35%는 유령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실제로 심령 현상을 겪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67%에 이른다. 과학의 권위를 빌리려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공립학교에서 이른바 ‘창조과학’과 진화과학을 똑같이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은 유대인의 주된 사망 원인이 질병과 굶주림 탓이라고 강변한다. 백인이 흑인보다 IQ가 15점이나 높다고 생각하는 인종주의 학자들과 함께 이런 주장들은 사회에 해악을 가져왔다.‘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마이클 셔머 지음, 류운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는 과학과 사이비 과학, 역사와 사이비 역사를 구분한다. 미국의 과학저널 ‘스켑틱’ 편집장인 저자는 ‘이상한 것들’을 믿는 심령술사·창조론자·사이비 역사학자·컬트 집단들을 고발한다. 행동주의자이기도 한 저자는 10년 동안 미대륙을 횡단하는 등 초장거리 프로 사이클 선수 생활을 한다. 그 사이 동료들의 조언으로 특별 채식 식단, 비타민 대량 투여 요법, 단식, 결장 세척, 진흙 목욕, 홍채 진단법, 세포 독성 혈액 검사, 지압과 침술, 음이온, 피라미드 등 이상한 것들을 모조리 시험한다.10년간의 실험끝에 훈련과 균형잡힌 식단만이 경기력을 향상시킨다는 결론을 얻은 저자는 이내 회의주의자가 된다. 회의주의의 기원은 기원전 2500년전 고대 그리스 플라톤의 아카데미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크라테스는 “내가 아는 것이라곤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뿐”이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현대의 회의주의는 과학에 기반을 둔 운동으로 발전했으며,1952년 수학퍼즐 전문가로 알려진 마틴 가드너는 이제 고전이 된 ‘과학의 이름을 내건 도락과 궤변’을 출판했다. 저자는 1996년 방송 프로그램 ‘빌 아저씨의 과학 이야기’에 출연해 불타는 석탄 위를 맨발로 걷는다. 아이들에게 사이비 과학과 초자연 현상의 실체를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케이크를 구울 때 오븐 속의 공기, 케이크, 오븐 팬 모두 205℃에 이르지만 오븐 팬만 만지지 않으면 화상을 입진 않는다. 불타는 석탄의 온도는 427℃이지만 몇십㎝ 위를 걸었던 저자의 맨발은 물집조차 잡히지 않았다. 인간이 이상한 것을 믿는 이유는 우연하고 불확실한 것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패턴을 추적하고, 인과관계를 찾도록 진화한 까닭이란 게 저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의 뇌가 항상 의미있는 패턴만을 찾아내진 않아 기우제를 지내면 가뭄이 물러간다는 식의 잘못된 믿음도 생겨났다. 잠에서 깰 때 본 환각이 유령이나 외계인이 되고, 빈집에 울리는 소리가 정령과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 시끄럽게 떠드는 유령)의 존재가 되며, 나무의 음영이 성모마리아 얼굴처럼 보이는 마술적 사고도 인과적 사고가 진화하면서 생겨난 부산물이란 것이다. 과학의 세기에도 UFO, 외계인 납치, 심령현상과 같은 수렵·채집 시대의 마술적 사고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과학적 사고방식의 역사가 아직 일천한 까닭이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피눈물을 흘리는 마리아상과 같은 사이비 종교의 위력은 여전하다. 이 책을 통해 ‘내 눈에 들보가 있지는 않은가’. 회의를 하다 보면 이상한 믿음에 빠지는 일은 없을 듯하다.1만8000원. 윤창수기자 geo@ seoul.co.kr
  • [대선주자 25시] 한명숙 前총리

    [대선주자 25시] 한명숙 前총리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린다. 오후 9시 광주 무등극장.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말이 없다. 체구가 작은 그는 숫제 의자에 파묻혀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충격적인 장면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한 전 총리는 옆자리에 앉은 남편의 손을 살짝 잡아본다. 남편 박성준 교수도 문득 부인의 존재를 깨닫는다. 서로 잠시 눈을 맞춘다. 둘 다 영화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둘은 지난달 27일 ‘5월 어머니회’ 회원들과 함께 5·18을 그린 영화 ‘화려한 휴가’를 관람했다.‘5월 어머니회’는 5·18 당시 가족을 잃은 여성들의 모임이다. 이날은 이 영화의 광주 개봉일이었다. “꼭 5·18 현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역사를 가졌나 가슴에 새기고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한 전 총리는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광주 금남로에 왔다고 했다. 영화가 끝난 뒤 그는 목놓아 우는 ‘5월 어머니회’ 회원들과 손을 맞잡았다.“이런 좋은 날이 와서 영화까지 만들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래도 아직은 억울하고 원통해서….”반백이 다된 여성들이 말을 잇질 못한다. 한 전 총리도 금세 얼굴이 붉어졌다. 한 전 총리는 대선 출마 선언 후 벌써 세 번째 호남을 찾았다. 범여권 대선 주자들에게 호남은 특별한 의미일 수밖에 없다. 호남 지지가 없으면 대권도 없다. 이번 방문에서 그는 광주와의 특별한 인연을 새삼 강조했다. “저는 광주교도소에서 5·18을 맞았습니다. 감옥 안에선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알려주질 않았어요.”한 전 총리는 광주 지역 원로 윤공희 대주교를 만난 자리에서 옛 일을 회상했다.27년 전, 두려웠다고 했다. 당시 그는 총소리가 들리고 헬리콥터가 드나들어 전쟁이 난 줄 알았다.“전쟁이 나면 정치범부터 죽이잖아요. 그 현장에서 저는 하루 24시간 감시받으며 목숨건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그 열흘을 버텼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한 측근은 “5·18 광주를 생각하면 왜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범여권 후보가 될 수 없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 전 총리 삶의 궤적은 역사 앞에서 부끄럼 없이 당당하다.”고 덧붙였다. “손 전 지사는 80년 5·18 당시 어디에 있었나요. 그리고 93년 정치 입문은 어떤 당 간판을 달고 했나요.”범여권 주자들이 두고두고 손 전 지사를 공격하는 대목이다.“최근까지의 행적·발언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우리 범여권이 반성해야 합니다.” 한 전 총리는 ‘여성 리더십’과 ‘새로운 가치’에 대해서도 역설했다.“지금까지의 남성중심적 문화와 국정운영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새로운 여성적 가치, 부드러운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를 겨냥하기도 했다.“아버지의 후광을 입은 박근혜씨나 남편의 후광을 입은 여성 리더십이 아닌 자기 손으로 운명을 개척한 여성 리더십을 보여주겠다.”고 호언했다. 자신만만 했다. “세계가 여성지도자를 원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아일랜드의 메리 로빈슨과 독일 메르켈 총리, 그리고 이제는 인도에서도 여성대통령이 탄생했습니다. 우리도 여성대통령, 나올 때 되지 않았을까요.”외유내강형인 한 전 총리의 권력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의 바람이 쉽사리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지지율은 낮고 역전의 기미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 전 총리측 반응은 간단했다.“흔들림 없이 우리 갈 길을 갈 뿐입니다. 처음 출마 선언 때 누구나 우리가 곧 포기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명숙처럼 좌고우면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온 사람이 있습니까.”아직 시간은 남아있고 변수는 많다는 이야기다. 그는 “안정된 모습을 강조하다보면 경선판이 흔들릴 때 유력한 제 3의 대안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안정되고 편안한 이미지로 뚜벅뚜벅 가는 게 필승전략”이라고 소개했다. 과연 그 의도가 적중할지 아직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광주에서의 밤.‘한명숙 팬클럽 회원’들이 금남로 근처 한 호프집에 모였다. 한 전 총리와의 팬 미팅이다. “바깥양반이 저를 위해 13년 반을 고생했습니다. 이제 바깥양반을 위해 안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한 전 총리의 남편 박성준 교수가 인사말을 한다. 남편이 아내를 ‘바깥양반´이라 부른다.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웃음을 머금었다. 한 전 총리는 혼인신고도 못한 채 끌려간 남편을 13년 반 동안 옥바라지했다. 결혼 6개월 만이었다. 그러나 박 교수 표정이 진지하다. 허튼 소리가 아니다.“부정한 힘으로 쓴 역사는 정의로 지켜온 역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저희 바깥양반은 꼭 승리할 겁니다.”박수가 쏟아진다. 광주 일정 마지막 날. 통합신당 광주시당 창당대회에서 한 전 총리는 외로워 보였다. 행사 초반 대선주자 소개 때 다른 이들에게 쏟아지던 연호·함성은 그에게 없었다. 인지도가 아직 낮다.‘가나다’ 연설순서에 따라 한 전 총리의 연설은 항상 마지막이다. 그가 연설할 때쯤 청중의 3분의1은 이미 행사장을 떠난다. 그러나 그의 대중연설은 의외로 설득력 있었다. 분위기가 고조된다. 연설 말미 “본선 경쟁력에 한사람 한사람 대입해 보십시오. 한명숙 괜찮지 않겠습니까?”란 마무리에 생각지 못한 함성이 터져나왔다. 광주 시민은 마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한 걸까. 연단을 내려오는 한 전 총리가 살짝 웃는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한총리의 약점은 ‘단점 없는 게 장점, 장점 없는 게 단점’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다. 특별히 흠 잡을 데도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내세울 것도 없다는 얘기다. ‘여성 후보 무임승차론’은 여기서 나온다. 콘텐츠가 부족하고 특별한 정책과 비전을 내세우지도 못하면서 단지 여성후보라는 점만을 부각시키는 데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무총리 재임 기간 동안 국민들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부분도 한계다. 캠프쪽에서는 안정되고 편안한 이미지를 장점으로 꼽고 있지만 지지율을 높이는 것과 연결시키지 못하는 원인도 여기에 있다.‘비호감’은 아니지만 확실한 호감도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안티는 별로 없지만 팬도 별로 없다는 얘기다. 한 전 총리는 “나는 돈도 조직도 계파도 없는 ‘3무(無)’ 후보다. 오직 국민의 바다에 뛰어들어 당당히 승부하겠다.”고 말한다. 선거전에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없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호남이나 충청, 수도권 그 어느 지역에서도 우위를 보이지 못하는 등 지역적 기반이 취약한 것도 한 전 총리가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친노와 비노 후보 이미지가 겹치는 것도 한 전 총리에게는 약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확실한 친노 대선 주자들에 밀려 친노 지지층에서도 확실한 지지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비노 지지층에서 한 전 총리를 친노로 분류할 경우 그쪽에서도 표를 얻기가 쉽지 않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누가 돕나 한명숙 전 총리의 캠프는 현직 국회의원과 여성계 인사, 총리 시절 참모그룹 등 40여명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1970년대 ‘크리스챤 아카데미’ 출신 인사들과 신인령 전 이대 총장 등 모교 이화여대 출신 인맥, 후원회장인 한승헌 변호사를 비롯,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 및 시민사회 인사들이 주요 지원그룹이다. 현역 의원으로 김형주(대변인)의원을 비롯, 백원우(조직)·이미경(여성 총괄)·이경숙(서울지역)·장향숙(장애인 담당)·신명(직능)의원이 결합했다. 실무진에는 청와대와 총리실 출신 참모들이 대거 포진돼 있다. 황창화 전 총리실 정무수석(총괄기획)과 김형욱 전 민정수석(조직), 김승호 전 정무비서관과 양상현 전 청와대 행정관(정책)이 힘을 보태고 있다. 신상엽 총리실 전 정무비서관이 공보를, 조한기 전 의전비서관은 의전과 일정을 맡았다. 지원그룹 면면에는 한 전 총리가 재야활동 시절부터 관계를 맺었던 지인들이 많다. 후원회장인 한 변호사를 비롯해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지은희 덕성여대 총장, 박영숙 전 의원 등이 한 전 총리를 돕고 있다. 이 밖에도 홍보 및 연설기획, 메시지를 담당하는 선거 전문가와 방송작가 등도 참여하고 있다. 특히 오프라인 팬클럽 ‘행복한(韓) 사람들’ 회원 3000여명도 한 전 총리의 든든한 후원자다. 신상엽 공보팀장은 “캠프는 한 전 총리가 내세우는 ‘소통과 화합’을 중시하는 분위기”라면서 “후보가 수시로 참모들과 대화하며 자유롭게 토론하는 열린 캠프”라고 자랑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내 책을 말한다] ‘문자문학에서 전자문화로’

    전에 근무하던 학교는 이공계 중심이었다. 다른 전공 교수님들과의 대화에서 정말 이상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전산과 교수님은 학생들이 컴퓨터 게임회사에 취직하는데 시나리오를 모른다고 한탄하고 경영정보학과 교수님은 경험 마케팅, 감성 마케팅이 유행이라고 했다. 디자인과 교수님은 요즈음 트렌드가 시나리오 기반 디자인이란다. 모두 이야기였다. 정작 나는 문학의 위기라며 우울해 하고 있었다. 왜 위기일까?인쇄 매체 시대의 총아였던 문학 속의 이야기가 이제 전자공간으로, 일상생활로 뛰어나가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중요한 원인으로 전자 시대가 존재한다. 인쇄 매체의 스토리텔링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던 문학도가 디지털 매체를 접하면서 느꼈던 이질감, 그런데 이물질 같았던 디지털 매체가 곧 생활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본 경악감이 나의 탐색의 시작을 이룬다. 문학도에게 단순히 글쓰기의 도구로만 인정받았던 ‘컴퓨터’가 인간 소통의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에 따라 문학도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사이버 공동체에서 수많은 시, 소설 애호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게시판에 올리고 있고 수많은 누리꾼들에게 주목받는 작품이 다시 오프라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거나 영화, 드라마 등으로 상영된다. 어느 사이에 문학은 인터넷과 영상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멀티미디어로서의 디지털 매체의 속성상 문학은 이제 이야기로서의 속성을 원천 소스로 하여 여러 매체를 넘나들며 상호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이 책은 디지털 매체의 등장으로 문자가 단순한 문자가 아니게 된 상황을 기반으로 문학이 어떤 식으로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는가, 인터넷 속에서 이야기는 어떤 방식으로 몸바꾸기를 하고 있는가 살펴 보고 있다. 팬픽과 인터넷 문학, 하이퍼텍스트 문학, 넷 아트, 그리고 컴퓨터 게임의 이야기성을 살펴 보았다.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술로 이제 이야기는 언제 어디서나 접속되는 그 무엇, 누구나 만들고 누구나 즐기는 과정에서 다시 태어나는 새로운 면모를 띠게 되었다. UCC의 스토리텔링은 생산자와 수용자의 상호작용, 문화콘텐츠와 문화예술의 교섭과 통합,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소통 방식의 종합 세트이다. 문자문학의 이야기적 특성은 이제 전자문화 시대에 어떻게 살고 있으며 살아갈 것인가? 최혜실 경희대 국문과 교수
  • [서울신문 창간103주년] 블로거를 다시 본다

    “블로그의 탄생은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 발명과 비슷하다.”(휴 휴잇 미 채프먼대 법학과 교수) “언론의 힘은 너무 강하기 때문에 힘의 중요성을 모르는 자들에게 맡길 수 없다.”(조지 심슨 커뮤니케이션스 대표) 신문, 방송 등 기존 미디어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엄청난 움직임이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이 지구 밑에서 움직이는 용암의 힘을 느끼지 못하듯 말이다. 엄청난 변화의 주역은 다름아닌 블로거들이다. 단순히 인터넷 상에서 끄적거리며 ‘끼리 문화’를 형성했던 블로거들의 영향력이 활동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기존 언론을 위협할 정도로 커졌다. 마니아적 성향의 이들은 새로운 ‘팩트(사실)’를 찾아내지 못하지만 ‘씹어서’ 새로운 팩트를 만들어내며 이슈화 시킨다. 블로거들은 그들의 세계인 블로고스피어를 형성, 서로 소통하고 이슈를 공유하며 힘을 키운다. ■‘Hot 뉴스’가 궁금해?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외국에선 정부 부처는 물론 전문분야 등에서 블로거들이 언론인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 2월 위증 혐의로 기소된 루이스 리비 전 미국 부통령 비서실장 재판에 사상 처음으로 블로거 2명에게 취재를 허용했다. 앞서 미 백악관은 2005년 5월 블로거 가렛 그라프에게 출입기자증을 발급한 바 있다. 우리나라도 정보기술(IT) 분야에서는 블로거들을 기자간담회에 초청하기 시작했다. 미디어의 한 축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프로슈머가 경제체제를 바꾼다.”고 언급한 것처럼 블로거가 언론체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기존 언론의 대체인가, 대안인가 기존 언론에선 블로거의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기존 언론에서 할 수 없었던 쌍방향 뉴스서비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 미디어가 지나치기 쉬운 개인적이고 사소한 정보와 전문적인 정보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대안에 무게를 둔다. 심상렬 광운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언론의 틈새 시장을 채워주는 협력자로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자문단 등으로 활용, 피드백을 통해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이슈를 선점, 깊이 있고 유용한 기사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 IT 전문 온라인 뉴스 사이트인 미국의 ZDNet의 경우 기자가 없고, 블로거의 글들을 편집해 서비스한다.“10년 후면 뉴욕 타임스는 거대한 블로거의 연합이 된다.”는 말이 현실화되고 있다. 에델만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주요 언론에 인용된 블로그는 2004년 1분기 100개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에 766개로 급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43%가 블로거가 쓴 글을 읽고 이 가운데 63%가 신뢰를 표시한다. ●권력의 분산화 같은 맥락에서 블로그는 언론에 집중됐던 권력을 분산시키는 순기능도 있다. 블로그의 등장으로 1인 미디어의 시대가 오고 있다. 중앙집권적이고 폐쇄적·일방적인 뉴스 전달에서 “모두 말하고 모두 듣는다.”는 집단적인 뉴스 전달 체제로 바뀌고 있다.“미디어는 곧 권력”이라고 했던 마셜 맥루한의 금언은 이제 옛말이 됐다.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뉴스를 소비하는 양상이 다변화되고 있다. 블로그는 뉴스를 매개하기도 하고 자기 의견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일방에 의한 여론 형성에서 벗어나게 한다.”고 말했다. 다변화의 하나라는 것. 실례를 들어보자.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04년 8월 진보적인 블로그 데일리코스(DailyKos) 방문자는 700만명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폭스(Fox News) 사이트 방문자 570만명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다. 그달 ‘톱10’ 정치 블로그 방문자는 모두 2800만명으로 추산되는 데 24시간 운영하는 온라인 케이블 뉴스 방송의 트래픽과 비슷했다. ●단순함이 미덕 블로거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힘의 원천은 단순함이다. 불로그는 웹(web)과 자료나 일지의 뜻을 지닌 로그(log)를 합성한 것처럼 자기가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개인 웹사이트이기 때문이다. 신문, 방송 등 기존 미디어들은 뉴스를 생산하고 배포하기 위해 복잡한 과정과 엄청난 비용, 많은 시간이 걸리는 점과 차별화되는 대목이다. 블로거는 확산성도 기존 매체보다 훨씬 뛰어나다. 만들기도 쉬운데다 쓰기만 하면 순식간에 퍼져나간다.‘트랙백’과 ‘댓글’,‘펌질’을 통해서다. 디지털 특성상 복사와 전달은 너무 쉽다. 신문사 사이트 등 기존의 웹페이지는 HTML 기반이라 제작 시간도 많이 걸리고, 전문가가 아니면 만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블로그는 가입하거나 자신의 웹 계정에 설치하면 누구나 쉽게 ‘1인 미디어’를 시작할 수 있다. ●대선에도 영향력 미칠까 블로거의 영향력이 특히 관심을 받는 것은 올해 대선 때문이다.2002년 대선 때 인터넷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사실을 상기하면, 올해도 인터넷 여론 형성의 중요성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블로그는 이미 기존 미디어에 편입되다시피한 인터넷 언론보다 더 개인적이지만 자유롭고 신선하고 파격적인 내용을 담을 수 있다. 그만큼 관심을 끌고 여론을 형성하는 데 유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도 블로거의 폭발적인 잠재력에 주목한다. 인터넷 신문 ‘이슈아이’ 박종근 대표는 “지난 대선에선 우리가 여론을 주도했다. 올해 대선에선 진화된 형태인 블로거가 주도권을 잡을 것이다. 이들은 우리가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이슈를 광속으로 퍼뜨린다.”고 말했다. 특정 이슈에 폭발적인 영향력을 행사, 대선에서 또 모종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심상렬 광운대 교수는 “사람들은 기존 언론들이 누구 편을 든다고 여긴다. 블로거들은 이런 점에서 자유로워 생각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블로거의 글을 검색할 수 있는 올블로그의 최근 집계에 따르면 시사, 라이프, 연예·스포츠,IT·과학, 리뷰, 재미 등으로 구성된 ‘이슈’ 코너에 등록된 2만 758개의 글 중 시사는 4739개(22.8%)에 이른다. 에델만코리아 이중대 부장은 “우리나라 35∼54세 중년층 블로거의 사용 비율은 다른 연령층보다 낮은 편이나, 실제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적극적인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올해 말 대선 관련 온라인 여론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그룹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순기능만 있을까 블로거는 게이트키핑을 받지 않기 때문에 유언비어 공장장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명예훼손이나 잘못된 내용을 올리면 걷잡을 수 없는 부작용이 일어난다. 지난 대선 때도 문제가 됐던 ‘댓글 알바’가 이번 대선에선 ‘블로그 알바’로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파워 블로거가 여론을 이끄는 반면 우리나라는 신문 기사를 능가할 파워 블로거가 거의 없다. 블로거의 취재 여건도 갖춰지지 않아 ‘쑥덕공론’에 그치는 수준 이하의 블로거를 양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승윤 부산대 법학과 교수는 “악의적인 정보를 조직적으로 퍼뜨리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우려했다. 노종천 사이버소비자협의회 사무국장은 “대립 의견의 갈등에 따른 이전투구 양상을 나타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중태 마이엔진 이사는 “양적인 팽창에 따라 쓰레기 정보도 양산되고 있는 만큼 양질의 정보를 가려낼 수 있는 이용자의 판단력과 사회적인 보완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용어클릭] ●블로그(blog) Web(웹)과 Log(로그)를 합친 말로 일기(로그)처럼 차곡 차곡 적어 올려 다른 사람도 읽을 수 있게 만든 글모음이다. ●블로고스피어 블로그의 공간이란 뜻으로 서로 댓글, 링크 등으로 연결돼 상호작용하며 특유의 문화를 만들어 간다. ●프로슈머 제품 개발할 때 소비자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방식. 생산자와 소비자의 합성어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저서 ‘제3의 물결’에서 처음으로 쓴 용어. ●게이트키핑(gate keeping) 기자나 편집자 등 뉴스 결정권자가 뉴스를 취사선택하는 일. 또는 그런 과정. ●html(Hyper Text Markup Language) 하이퍼 링크를 사용하는 컴퓨터 언어로 홈페이지 제작에 주로 사용하며 표시가 있는 글을 선택하면 그것과 연결되어 있는 내용을 보여주거나 연결돼 있는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트랙백 댓글 기능의 확장으로 자신의 블로그에 적은 글을 상대방의 글에 달아 놓는 것. 트랙백을 클릭하면 바로 이 글의 원문이 담긴 블로그로 이동한다. 무수한 트랙백이 계속 엮이면 특정 이슈에 대한 의견과 토론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웹2.0 누구나 주어진 데이터를 활용, 다양한 신규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사용자 중심의 인터넷 환경. 블로그와 집단 지성으로 꾸미는 위키피디아가 대표적이다. ■ ‘cool 블로그’서 놀아봐! 블로거들은 24시간 내내 밤잠을 설쳐가며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전문성 있는 정보는 물론, 번뜩이고 개성있는 아이디어와 톡톡 튀는 글솜씨로 ‘팬’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거대한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이런 색다른 재미를 만끽해보자. 네이버, 다음 등 포털의 블로그 코너와 올블로그(www.allblog.net)와 이올린(www.eolin.com) 등에서는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글을 보고 클릭하면 된다. 아래 소개하는 블로거들은 신문 기사 등 ‘펌글’이 아니라 직접 자판을 두들겨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이다. ●IT와 과학 전문 블로거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정보기술(IT) 관련 새 소식을 신속하게 업데이트하고, 설명도 곁들여 많은 도움이 된다. ‘떡이떡이’로 불리는 서명덕(30) 세계일보 기자가 2004년에 문을 연 ‘人터넷세상(itviewpoint.com)’이 대표적이다. 그는 “비슷한 정보를 쓰는 것보다 새로운 정보를 찾는 데 더 시간을 투자한다.”며 다른 사이트나 블로거보다 빨리 인터넷 세상 소식을 전해 이름을 날린다.‘컴퓨터·디지털카메라·검색엔진 이야기, 블로깅 알짜배기 팁, 직접 번역한 중국 네티즌은 지금´ 등의 글이 2900여건이나 쌓여 있다. ‘웹2.0의 전도사’ 김태우씨가 2004년 시작한 “태우’s log(twlog.net)”는 웹을 둘러싼 경제·사회·법적인 견해를 드러낸다. 웹2.0의 개념을 한국에 처음 소개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정열적으로 활동하는 파워 블로거. 취재 계획서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끝에 미국 현지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정균씨의 ‘라디오키즈@LifeLog(www.neoearly.net/entry)’,‘이지님’의 ‘HYPERCORTEX(hypercortex.net/ver2/’,‘나루터’의 ‘파드캐스트 코리아(www.podcast.co.kr) 등도 이름을 날리고 있다. 블로그칵테일 김진중 부사장의 ‘hacker.golbin.net/wp’와 ‘그만’의 ‘www.ringblog.net’ 등도 가볼 만하다. ●정치와 사회 정치 분야는 인터넷 신문 등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탓인지 아직 여론을 이끄는 파워 블로거가 눈에 띄지 않는다. 수십만명의 독자를 확보하며 특정 후보에게 수십만달러는 가볍게 모금해 주는 미국과는 대조적이다. 민주노동당 심상정(blog.daum.net/simsangjung) 의원, 박정호(blog.ohmynews.com/gkfnzl)씨, 제프리(epolitics.or.kr/tt), 가는 이(blog.hani.co.kr/gksrn/) 등의 블로거가 나름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사회 관련 블로거들은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한글로’가 운영하는 ‘따따다 쩜 한글로-세상을 향해 소리쳐(blog.daum.net/wwwhangulo)’는 세상의 모든 일에 관심을 기울인다. 끊임없이 실종 아동 찾기의 문제점과 새로운 방식들을 주장, 다음의 애드클릭스에 실종아동찾기 공익광고를 실현시켰다. 집에서는 거의 누워서 지내는 전신마비 장애인 ‘코난’의 ‘세상속으로…(blog.daum.net/21konan)’는 소수자가 겪는 사회적 차별을 심층 보도하고 있다. ●요리와 생활 직접 요리를 하면서 얻은 경험을 공유, 가장 두터운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꾸준하게 글을 올리다 보면 독자들이 많이 생기고, 이 글을 모아 책을 출간, 오프라인으로 인기를 이어가기도 한다. ‘베비로즈’의 요리 블로거(blog.naver.com/jheui13)는 누적 방문자 수가 1000만명을 넘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요리 비책을 비롯해 여자라면 꼭 만들고 싶은 각종 요리 비법을 올리고 있다. 곽인아씨의 ‘뽀로롱꼬마마녀의 생각노트(blog.daum.net/inalove)’는 빵, 케이크, 쿠키 요리 레시피와 관련 정보가 가득하며 특별식과 간식, 평범한 일상 식단까지 다양한 요리 방법을 초보자의 눈높이에서 소개한다. 쌍둥이를 키우는 문성실씨의 블로그(blog.naver.com/shriya)는 자신이 직접 만든 개성있는 요리 방법을 소개, 눈길을 끈다. 벌써 책도 4권을 쓸 정도로 전문가가 다 됐다. 음식을 예쁘게 만들고 싶다면 푸드스타일리스트 김현학씨의 블로그(blog.naver.com/travis38)를 둘러보면 된다. 도시락 하나라도 이렇게 멋지게 꾸밀 수 있는지 눈으로 볼 수 있다. 강미현씨의 ‘올리버언니(blog.daum.net/oriber)’에서는 20년 된 집을 직접 화이트 로맨틱 하우스로 변화시켜 나가는 과정과 노하우가 담겨 있다. ●영화와 연예 수많은 블로거들이 이 분야를 다루기 때문에 너무 많아 선별하기가 어렵다. 이 가운데 ‘이규영 연예영화 블로그(leegy.egloos.com)’가 인기가 높다. 영화잡지 기자 허지웅씨의 ‘ozzys review(ozzyz.egloos.com)’ 등도 독자가 많다. 공포영화의 매력에 빠져들고 싶다면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블로그(arborday.egloos.com)’ 등이 있다.8명의 블로거가 모여 만드는 ‘익스트림무비(extmovie.com)’는 콘텐츠가 풍부하다. ●사는 이야기 고양이를 좋아하면 고경원씨의 ‘길고양이 이야기(blog.daum.net/forestcat)’가 볼 만하다. 사람을 보면 피하는 길고양이를 끈기있게 카메라에 담아 감탄사가 튀어나오게 한다. 여행 분야도 블로거들이 필력을 자랑하는 놀이터.‘당그니의 일본 표류기(www.dangunee.com)’는 일본에서 7년 가까이 애니메이터로 일하면서 얻은 경험, 에피소드 등을 늘어놔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오영욱씨의 ‘행복한 오기사(blog.naver.com/nifilwag.do)’는 펜으로 그려낸 가벼운 터치의 그림을 통해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한다. 웹디자이너 유석현씨의 블로그(blog.naver.com/pants77)는 자신이 찍은 사진과 에세이를 올려놨다. 번역에 관심있는 이들은 ‘즐거운 번역가 몽-삶, 생명, 그리고 행복(blog.naver.com/ieol)’을 클릭하면 많은 정보가 있다. 배진수씨의 블로그(www.sexydi no.com·blog.naver.com/nla_sexydino)는 게임 관련 정보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해외파 생생한 해외 삶의 현장을 간접 경험하는 ‘해외파’ 블로거를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SSamba의 브라질아리랑(bloggernews.media.daum.net/news/186796)’은 정열의 나라,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 15년째 사는 ‘SSamba’가 브라질 소식과 한인 교민사회 소식 등을 올리고 있다.‘SEPIAL.NET(blog.daum.net/gniang)’을 운영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심샛별씨는 ‘성북정’이란 한국식 정자가 붕괴될 위험에 처하자 자신의 블로그에 소개, 네티즌 청원 운동을 펼쳐 살려낸 블로거다.‘tvbodaga’의 ‘호주 미디어 속의 한국(blog.daum.net/koreainaustralia)’에는 TV, 신문, 잡지, 영화, 인터넷을 소스로 한국 관련 소식을 소개한다.20년 동안 타국에서 사는 ‘doggy’의 ‘미국 조이랑 가볍게 떠나요(blog.daum.net/2006jk)’는 그동안 다녔던 곳의 여행일지가 순서대로 올라온다. 미국 여행을 하면서 올린 포토에세이에 가까운 여행기의 인기가 높다.‘중국 중국에서 살아가기(blog.daum.net/freedom6)’의 ‘cass’는 베이징 사람들의 일상을 담아 인기를 끈다.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1인 미디어’ 블로거가 되자 시대의 흐름인 뉴미디어의 세계에 뛰어들기 위해 블로거가 되보자. 누구나 ‘1인 미디어’인 블로그를 만들 수 있다. 블로그는 ‘가입형’과 ‘설치형’으로 크게 나뉜다. 설치형은 소프트웨어를 자신의 웹계정에 설치, 사용하는 블로그다. 태터툴스(www.tattertools.com)가 대표적으로 ‘자유롭다.’는 게 특징이자 장점. 홈페이지처럼 ‘www. 내 아이디.com’ 같은 내 주소를 갖는다. 디자인도 자유롭다. 가입형은 네이버, 다음, 파란 등의 포털과 이글루스 등의 블로그 전문 사이트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일부 언론사와 쇼핑몰 등에서도 가능하다. 장점은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회원 가입만 하면 자신의 블로그가 생기고, 객관식 시험처럼 찍으면 된다. 별도의 비용도 없다. 자신만의 블로그 주소가 없고, 디자인도 주어진 것 가운데 골라야 한다는 게 단점. 자신이 올린 글과 사진도 백업이 안 된다. 설치형과 가입형이 절충된 2세대 서비스도 있다. 다음과 태터앤컴퍼니가 공동으로 내놓은 티스토리(www.tistory.com)가 있다. 네이버는 ‘블로그 시즌2’를,SK커뮤니케이션즈는 ‘C2’를 곧 발표했다.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K리그 심판 머리를 보세요

    프로축구 K-리그가 간만에 기지개를 켜는 16일, 운동장을 찾는 팬들은 심판들의 머리에 주목해야 할 것 같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지난해 독일월드컵때 첫 선을 보인 심판용 헤드세트를 도입, 이날 정규리그 13라운드 6경기부터 사용한다고 15일 밝혔다.프랑스에서 개발된 이 시스템은 4인(주심 1명, 부심 2명, 대기심 1명) 1조로 운영되며 최대 반경 1㎞에서 심판들끼리 자유롭고도 정확한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 크기는 12×6×2.2㎝로 무게는 150g밖에 되지 않아 심판은 복대에 이 세트를 꽂고 운동장을 뛰어다니게 된다. 이 시스템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프랑스 리그(르 상피오나) 등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아시아에서는 K-리그가 처음이다. 독일월드컵에서 실제로 이 헤드세트를 착용했던 김대영 내셔널리그 심판위원장은 ”운동장 소음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어 수신호보다 정확한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며 “사각지대에서의 반칙을 심판들끼리 알려 판정의 공정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열린세상] UCC선거의 명과 암/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통령선거가 아직 10개월여 남았고 각 정당의 후보도 결정되지 않았지만,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대선정국은 이미 뜨겁다. 유력후보들의 경우 예닐곱 개의 팬클럽이 활동하고 있고, 회원 수도 수천에서 수만에 이른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사모보다도 훨씬 빠르고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정치인 팬클럽 활동을 관전하는 포인트는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무엇보다 과연 제2의 노사모가 가능할 것인가 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핵심적 선거운동 방법으로 자리잡은 정치인 팬클럽이 선거문화와 우리정치에 미칠 영향이다. 전자가 선거결과에 미치는 정치인 팬클럽의 영향이라면, 후자는 선거과정의 변화와 발전에 대한 문제이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승리의 일등공신이 노사모였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그러나 2007년 대선에서 제2의 노사모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누가 당선되든지 정치인 팬클럽을 대선 승리의 첫 번째 공로자로 꼽지는 않을 것이란 의미에서다. 그 이유는 온라인 여론의 동원이 더 이상 특정후보의 차별화된 선거전략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서너 개의 노사모급 팬클럽이 경쟁하고 있는 형국이어서 어느 누구도 온라인 공간에서의 일방적 우세를 자신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번 대선에서 인터넷의 영향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마도 2002년 대선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할 것이며, 모든 후보들이 온라인 선거운동을 위해 막대한 자원을 투입할 것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2006년 올해의 인물로 특정인사가 아닌 ‘당신(YOU)’을 선정할 만큼 네티즌 개인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해졌다. 지난해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공화당 우세지역인 버지니아주에서 공화당 소속 조지 앨런 상원의원이 민주당후보에게 패배했다. 앨런 상원의원이 민주당 지지 청년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장면이 동영상으로 인터넷 사이트에 퍼진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올해 한국 대선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이 ‘사용자 제작 콘텐츠(UCC) 선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UCC 영향력이 지난 대선에서 보여진 인터넷 선거 파괴력의 4∼5배는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인 팬클럽 사이트에서도 UCC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미 꼭짓점 댄스와 마빡이를 패러디한 동영상이 네티즌 사이에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의 텍스트나 사진에 비해 동영상을 이용한 메시지 전달이 갖는 파급효과는 훨씬 크다. 많은 정치인 팬클럽들이 UCC 제작에 몰두하는 것도 네티즌들을 유입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흥미위주의 UCC가 네티즌의 관심을 유발하고 지지자를 동원하는 데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선거가 가져야 할 본연의 기능 측면에서 볼 때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대선 후 노사모 활동에 대한 평가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노사모는 분명 새로운 정치참여의 모델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과거 고리타분하고 딱딱하게만 여겨졌던 정치에 흥미와 재미를 곁들임으로써 정치참여의 문턱을 낮추는 데 기여하였다. 한편에서는 노사모의 그러한 활동양식이 정치를 오락화하고 희화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였다. 노사모에 대한 이러한 우려가 이번 UCC 대선에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노사모는 텍스트 중심의 소통양식이 지배적이었으며, 게시판을 통해 지역주의타파와 정치개혁에 대한 진지한 토론도 펼쳤다. 이에 비해 UCC가 의사소통 양식을 지배하면서 재미와 흥미에 매몰되어 선거가 갖는 본질적 목적을 망각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인기몰이가 주목적인 연예인 팬클럽과 달리 정치인 팬클럽의 활동은 공공성에 기반하여야 할 것이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정윤수의 오버 헤드킥] 이동국에 바라는 세가지

    ‘라이언 킹’ 이동국이 드디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거가 됐다. 비운의 스타, 부상 악재, 못 다 핀 꽃, 최고의 실력과 최악의 운. 그게 이동국이었다. 그는 대한민국 축구 스타라면 누구나 꿈을 꾸는 월드컵 무대를 제대로 밟지 못했다.2002년의 영광은 선배들의 몫이었고,2006년의 무대 또한 동료들의 몫이었다. 이제 벌써 나이 서른을 바라보는 이동국이다. 이동국 자신 못지않게 팬 모두가 함께 기뻐할 일이다. 갖가지 고초를 이겨낸 뒤 자신의 꿈을 맘껏 펼칠 무대를 찾아낸다는 건 우리의 일상에도 대단한 교훈을 주는 것이다. 단순히 ‘인간지사 새옹지마’라고 운명론적으로 말할 게 아니라 시련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은 한 젊은이가 꿈꿨던 무대에서 훨훨 난다는 건 틀림없이 축복받을 일이다. 이동국에게 축복하고 격려하는 마음으로 세 가지를 주문하고 싶다. 먼저 이번 이적은 리그 초반에 감독과 구단이 팀을 원점에서 정비하는 과정에서 원활하게 수급하는 과정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잉글랜드 리그는 8월에 시작해서 5월에 끝이 난다. 대개는 여름 두세 달 동안 팀 전체를 정비하는 ‘그랜드 플랜’이 전개되지만 1월 한달 동안 긴급히 수혈하는 과정 또한 갖추고 있다. 이동국의 새 팀인 미들즈브러는 지금 중위권에서 자칫하면 2부 리그로 강등당할 처지다. 이 대목에서 단 한 방을 제대로 날릴 수 있는 슈터를 찾고 있었던 것이고, 이동국은 바로 그런 차원에서 부름을 받은 것이다. 남은 3개월여 동안 감독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실천해야 한다. 따라서 골게터의 소명을 안고 대륙을 건너갈 그의 골은 옵션이 아니라 필수 사항이다. 다음으로 이동국이 진정한 프리미어리거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기존의 활동 반경보다는 그 폭을 넓혀야 한다. 기존의 활동 반경을 유지하다가는 오프사이드를 범하기 일쑤일 것이다. 골문을 지향하되 상대 진영의 벌칙지역 대각선 방향으로 집요하게 움직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동국은 경기장 안팎에서 동료들과 끝없이 소통해야 한다. 영어는 필수다. 국적을 불문하고 우선 영어라면 경기장 안팎에서 최소한의 소통은 가능하다. 소통 없이 ‘고독한 킬러’가 되는 건 선수 자신이나 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입천수’로 통하던 천하의 이천수도 스페인리그에 적응하지 못한 채 짐을 쌌다. 스페인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했던 그의 소통 부재가 큰 원인이었다. 사실 이동국은 지난 2001년 독일 브레멘에서 뛰면서 동료들과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은 채 외톨이로 지냈다. 두 번 다시 반복되어서는 곤란하다.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30년 만에 재결합 남성듀오 ‘사월과 오월’(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30년 만에 재결합 남성듀오 ‘사월과 오월’(2)

    2005년 말,‘잃어가는 우리의 꿈을 위하여’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1970년대 포크음악사이트,‘바람새홈(windbird.pe.kr)’ 게시판에는 사월과 오월의 ‘사월’ 백순진씨가 새롭게 만들 곡의 가사를 공모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지난날에 대한 추억, 혹은 회상’, 또는 ‘중년이 느끼는 인생’ 같은 것을 테마로 한 노랫말을 7080세대들에게 직접 의뢰한 것. 이 작업에 참여한 노랫말 가운데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이정미)’,‘잠시라도 숨 고르고(둘숨날숨, 박석)’ ‘기약 없는 노래(최은영)’ 등은 어느덧 노래로 완성되어 소모임을 통해 발표회를 가졌고 또한 음반 제작이 이미 결정된 노래도 있다. 이렇듯 7080 가수 백순진씨와 김태풍씨는 무대에서뿐 아니라 창작 작업에까지 ‘7080’ 세대들과 직접 ‘소통’하고 있다. 마치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들 듯’, 이른바 ‘잃어가는 꿈의 세대들’인 중년들에게 추억과 향수, 그리고 그동안 잠시 접어두었던 열정을 새삼 일깨워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1975년, 이른바 ‘대마초 파동’과 함께 사월과 오월 역시 기타와 마이크를 접은 채 무대를 떠났다. 음악활동이 묶이면서 ‘오월’ 김태풍은 평소 꿈꾸던 오스트리아 유학길에 오른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경영학을 전공한 뒤 시티은행에 입사, 다시 국내에 파견될 정도로 정통 은행가이자 경제통으로 변신했다.3년 전 귀국한 그는 현재 투자자문회사인 영창파트너스 대표로 M&A 컨설팅을 하고 있다. ‘사월’ 백순진 역시 이 참에 잠시 호흡을 고른 뒤 ‘오토(OTTO)프로덕션’을 설립, 본격적으로 신인발굴과 음반기획에 나섰다. 처음엔 작곡에 뜻을 두었으나 본격적으로 CM송 작업에 착수, 당시 유명 브랜드였던 콘티찐빵(노래 정수라), 반디캔디(노래 윤석화), 빙그레 밤초코(전영), 환타 등 100여 편의 CM송을 작곡했고 아울러 영주와 은주, 오정선, 박형철, 정용원 등을 발굴한 것을 비롯, 듀엣 ‘하야로비’에게 ‘사월과 오월’의 대를 잇게 했다. 사월과 오월의 4기인 ‘하야로비(김영민, 이지민)’에게 만들어준 ‘장미’ 등의 빅 히트로 프로덕션은 성공했지만 예기치 않은 부도를 맞아 ‘흑자도산’한 뒤 사업을 접고 뉴욕으로 건너가 부친 사업에 참여한다. 현재는 (주)노스웨스트항공 한국총대리점인 (주)샤프의 부회장으로 재임 중. 이렇듯 사업가로 제각각 성공한 이들이지만 수시로 ‘사월과 오월’이 되어 무대에 오른다. 여전히 캐주얼 차림에 통기타를 멘 채. 공식적으로 해체한 적이 없었던 만큼 재결합이라는 말 자체도 어색하다고 강조하며. 어느덧 창립 1주년을 맞는 팬 카페 ‘사오모(사월과 오월을 사랑하는 모임,http:/cafe.daum.net//4m5m)’는 어느덧 회원수가 457명에 이른다. 카페지기인 박훈종(49)씨 역시 1970년대 사월과 오월에 열광했던 팬으로 ‘사오모 팬클럽은 우리들의 젊은 시절이 그저 흘러간 시절만이 아닌 것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공간’임을 강조한다. 또한 ‘사월과 오월’ 공연장에서 만난 임윤경(50)씨는 10대 때부터 이들의 공연장에 거의 빠짐없이 찾았던 열성 포크팬.‘7080세대는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정체성을 위협받으며 위기를 맞는 세대’라며 ‘특히 우울증이 쉽게 잦아들 나이인 만큼 적극적으로 자아 찾기에 나서 삶의 의미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월과 오월 역시 이러한 팬들의 반응에 한껏 자극을 받았다. 그 감동은 새로운 창작에의 욕구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스스로 열악한 환경에서 음악을 하던 시절, 그 ‘미완의 작업’에의 완성을 이제금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사월과 오월’의 대를 이을 젊은이들을 찾아 자신들의 꿈과 음악을 물려주고 싶다고 밝히는 이들의 얼굴에선 4월과 5월의 싱그러운 햇살만큼이나 생기가 가득했다. sachilo@empal.com
  • ‘칩거’푸는 박근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15일 고(故) 육영수 여사의 32주기 추도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사실상 ‘여름 칩거’를 푼다.그동안은 지난 7·11전당대회 이후 이렇다 할 외부 활동은 자제하고 심신 회복에 매진하며 경제 서적을 탐독하는 등 휴식을 취해 왔다. 추도식을 하루 앞둔 14일 박 전 대표는 미니홈피에 사모곡을 올렸다.칩거 중에도 오래되어 보이는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양산을 든 채 어디선가 나들이를 즐기는 모습, 어렸을 때 탁구를 치던 사진 등을 미니홈피에 올려 팬클럽과의 소통은 놓지 않았던 그다. 이날 홈피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힘든 삶에 고생하는 분들과 이웃으로부터 소외돼 고통스러워하는 분들을 볼 때마다 더욱 어머니가 생각난다.”고 심경을 토로한 뒤 “어머니의 모습을 따라 주변을 돌아보고, 소외된 이웃이 고통받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았다.박 전 대표는 육 여사의 기일인 15일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리는 추도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박 전 대표는 15일 추도식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정치활동을 재개할 것으로 관측된다.오는 21일부터 열리는 8월 임시국회에 참석, 의정활동도 펴기로 했다.20일을 전후해서는 5·31지방선거 때 피습당해 생긴 얼굴 상처의 압박붕대를 제거할 계획이다. 또 새달 초에는 각계의 인사를 편하게 만날 수 있게 여의도 인근에 사무실을 낸다는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절대음’의 하모니 이시스터즈(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절대음’의 하모니 이시스터즈(2)

    림보록, 트위스트, 보사노바, 차차차 등,1960년대를 장식한 이 리듬을 국내 무대에서 한껏 펼쳐 보이며 번안곡 전성시대를 열었던 이시스터즈. 이들의 음악성은 국내 가요의 폭을 한층 넓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Eb(이플렛)’ 음까지 구사했던 이들의 자극적인 하이 톤의 매력은 국내 작곡가들에게도 매우 구미 당기는 목소리였다. 위로는 높은 음, 아래로는 낮은 음까지 매우 폭넓게 표현되기 때문에 고음, 저음의 제약 없이 어떠한 곡이라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작곡가들의 창작의욕을 자극시켰다. “특히 당시 신세대 작곡가였던 정민섭, 황우루씨의 프러포즈는 대단했지요. 특히 황 선생은 우리가 청파동 택시를 타는 곳까지 일부러 나와 매번 기다렸다가 본인의 곡을 불러달라는 주문을 해오기도 했지요.” 초기멤버 이정자(65)씨의 회고다. 결국 미8군 무대를 통해 번안곡 위주의 레퍼토리로 출발했지만 곧 이들은 국내 창작곡 위주의 레퍼토리로 탈바꿈한다.‘서울의 아가씨(박선길)´ ´목석같은 사나이(정민섭)’ ‘뻐꾸기(정민섭)’ ‘남성금지구역(최창권)’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황우루)’ ‘별들에게 물어봐(길옥윤)’ 등, 특히 고음이 매력적인 노래들로 무장한 이들의 레퍼토리는 스테레오가 아닌 모노시대였지만 사뭇 생동감이 넘쳤다. 그리고 20대 중심의 가요 팬 층을 골목 안 개구쟁이들로까지 끌어내린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호박엿’의 ‘울릉도 트위스트(황우루)’까지, 이들의 하모니는 절정을 구가했다. 그러나 67년 1월에 발표된 이 ‘울릉도 트위스트’를 끝으로 멜로디 이정자씨가 솔로로 전향하며 탈퇴한다. 이어 이정자씨는 ‘평화의 나팔소리’ ‘모래 위를 맨발로’ 등을 발표하며 여전히 빼어난 고음의 기량을 뽐냈다. 잠시 해체 위기를 맞은 이시스터즈는 서둘러 65년 KBS 톱싱어대회에서 1등으로 입상한 김상미(본명 김군자)씨를 영입, 제2의 이시스터즈로 재탄생한다. “1년간의 방송국 전속기간을 끝내고 독립하려 할 때쯤 작곡가 이희목 선생의 추천으로 이시스터즈 멤버에 합류했지요. 물론 방송국 측 일부에서는 반대하기도 했지만….” 최근 뒤늦게 솔로활동을 준비하고 있다는 막내 김상미(63)씨의 회고다. ‘목석같은 사내’들의 무딘 감성까지 자극했던 초기 멤버의 섹시한 목소리의 ‘관능코드’는 후기 멤버로 교체되자마자 ‘날씬한 아가씨끼리’라는 노래를 발표, 섹시한 외모로 새로운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승부수를 띄웠다. 이어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의 원조 격으로 불리는 군대 애창곡 ‘여군 미스리’를 비롯해 70년대 새마을 운동의 주제가처럼 불리는 ‘좋아졌네’ 등이 이들의 후기 히트곡들이다. 이들은 밝고 건강한 이미지, 깨끗하고 탄력 있는 목소리로 정책 캠페인 노래 등을 도맡으며 70년대 초를 장식했다. 그러나 기혼이었던 이들 멤버 셋은 번갈아가며 배가 불렀던 탓에 임신복을 개조한 펑퍼짐한 의상으로 종종 무대에 나서기도 해 ‘날씬한 아가씨끼리’라는 이미지를 무색케 했다. 그렇게 출산 하루 전까지 스케줄이 잡혔을 정도로 이들은 10년을 하루같이 바쁘게 무대에 올랐다. 71년, 마지막 신곡 ‘병아리 데이트’를 취입할 당시 각자 1남1녀를 둔 이들은 73년 ‘이시스터즈 10년 결산’ 독집음반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중단한다. 이 무렵 멤버 김명자씨의 세 살 난 딸, 유선양이 뇌성마비 판정을 받아 활동 중단을 선언했던 것. 이후 맏언니 김천숙씨는 새로운 멤버 정숙자씨와 듀엣을 이뤄 워커힐 무대 등을 통해 이시스터즈의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자녀 교육을 위해 미국 동부 버지니아로 이주,81년 미국으로 건너간다. 무대보다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무대를 떠났던 멤버 김명자씨는 최근 ‘뇌성마비 딸을 박사로 키워낸 어머니’라는 감동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2004년 김명자씨의 딸, 정유선양이 뇌성마비장애인으로는 국내 최초로 ‘장애인의 언어소통 보조기구에 대한 사용자들의 시각’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 미국 조지메이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 이 ‘장애극복 감동스토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현재 재미교포 남편과 두 아이의 어머니로 미국 조지 메이슨대 대학원 교육학과 연구교수로 일하고 있는 정유선(36) 박사는 얼마 전 독일학회에서 수여하는 에세이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아울러 오는 8월, 독일 ISAAC(국제 의사소통 보조기기학회) 시상식장에 선다. 그녀가 쓴 에세이 제목은 ‘부모님과 나, 그리고 내 아이들 간의 사랑에 관한 모든 것’. 이들 이시스터즈의 멤버들은 각각 연예인가(家)를 이루고 있다. 인기그룹 ‘히화이브(He 5)’의 드러머로 활동했던 김용호(61)씨가 김천숙-명자 자매의 남동생, 김상미씨의 올케가 가수 현미씨다. 그리고 해외공연 위주로 활동하며 ‘안젤라현’이라고도 불리던 가수 현란(본명 이명자)씨가 바로 이정자씨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sachilo@empal.com
  • 김창완 산울림 데뷔 ‘아니 벌써’ 30년… 연기경력도 20년

    김창완 산울림 데뷔 ‘아니 벌써’ 30년… 연기경력도 20년

    “음악을 아는 데는 10년, 연기를 알기까지는 20년이 꼬박 걸렸죠.”의외였다. 국내 최장수 록밴드인 ‘산울림’의 보컬이자 드라마·영화·CF를 누비며 감초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김창완(52)씨의 고백(?)이다. 관록의 그에게도 음악과 연기는 수십년간 끊임없는 화두이자 도전이었다.1977년 ‘아니 벌써’라는 파격적인 곡으로 데뷔, 올해로 음악활동 30년째인 그는 요즘 MBC 주말드라마 ‘진짜진짜 좋아해’에서 청와대 요리사를 맡아 맛깔스러운 연기를 보이고 있다. 서울 목동 SBS 옆 공원에서 그를 만나 ‘요리사’로서의 생활과, 산울림 30주년 기념공연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청와대 속이 궁금했다” 드라마에서 그는 대통령의 요리사로, 주인공을 가르치는 스승 역할이다. 그동안 보여준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함과 서민적인 면모가 오롯이 담겨 있다.“개인적으로 역할이 너무 좋아요. 평소 비빔국수나 볶음밥, 미역국 등을 잘 만들죠.” 청와대 주방장 역할이 들어왔을 때 그는 “정치중심지인 청와대를, 내부에 일하는 주변인물을 통해 어떻게 묘사할지 흥미가 생겨서” 주저없이 받아들였다고. 청와대도 사람 사는 곳인데 그 안에 부는 훈훈한 인정에 대한 궁금증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음식이라는 게, 먹고 초대하고 그러다 보면 식사 이상의 커뮤니케이션, 소통의 채널이 돼요. 청와대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차원에서 역할의 비중을 떠나 자부심을 느낍니다.” ●영화서 조만간 악역 맡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그동안 드라마·영화 등에서 감초 조연만 맡았던 것 같다.‘만년 조연’이라는 말에 뜻밖에 손사래를 쳤다.“1985년부터 10년간 드라마 음악을 맡다보니 같이 일했던 감독들이 자연스럽게 출연 제의를 했어요.‘바다의 노래’ 2부작 등 그 당시에는 주인공도 몇차례 했어요. 홀아비나 노총각역 등 주연도 많았는데 다들 조연만 한 줄 안다니까요(웃음).” 그러나 연기에 대한 자기 확신이 생길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당시 10년간 계속 출연하면서 ‘이게 맞나?’하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감독들이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해줬고, 동료 연기자들로부터 많이 배웠어요.”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보는 눈이 생겨 연기를 조금 알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동안 편안하고 서민적인 아버지나 아저씨 역할을 주로 맡았다고 했더니 “변함이 없다는 것 자체로 안심이 될 수는 있지만 원래 성격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했다. 평상심을 유지하기보다는 기분이 들쭉날쭉하고 예민한 편이라고.“예민하지 않으면 세상을 어떻게 보겠느냐.”며 되레 묻는다. 비밀도 털어놨다. 충무로에서 몇년째 계속 악역 캐스팅 순위에 올라간다는 것. 도시적인 악역 연기도 해보고 싶다는 게 그의 원대한(?) 바람이다. ●산울림, 새달 5일 30돌 기념공연 최근 불고 있는 ‘7080’ 복고바람이나 중년들의 활약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았다.“다른 예술장르에 비해 배우나 가수는 소모적으로 이용된다는 느낌입니다. 복고바람도 언제 썰물처럼 빠져나갈지 몰라요. 한 시대의 경향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꾸준히 이어졌으면 합니다.” 산울림은 그런 의미에서 복고가 아닌,‘살아 있는 밴드’로 평가받는다.1997년 13집을 낸 뒤 매년 1∼2회 기획공연으로 팬들과 함께 숨쉬고 노래해왔다. 산울림 멤버인 동생 창훈·창익씨가 각각 미국·캐나다에 살고 있어 자주 모이지 못하지만 ‘개구장이’‘산울림 매니아’ 등 오래된 열성 팬클럽들이 산울림 생명력의 원동력이다. 팬클럽뿐 아니라 산울림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희소식이 있다. 바로 다음달 5∼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산울림 30주년 기념공연’이다. 이달 말 귀국하는 동생들과 함께 첫 앨범과 첫 콘서트의 감동을 팬들이 다시 느끼고 기억하도록 하고 싶단다. 그러나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통해 미래를 계획하는 공연으로 만들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그러나 30주년 기념앨범이나 새 앨범은 당분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그동안 곡을 쓰면 당연히 음반이 나오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책을 써보니 다 그런 것은 아니더라고요. 음반도 언제 발표할지, 가치가 있는지, 경제적인 이유 또는 홀대받는 중견가수에 대한 반감 등 주저하는 이유가 뭔지 혼란스러워요. 앨범을 낼 수 있는 주위 환경이 중요하죠.” ●“주변 행복하게 하는 게 천직” 2시간쯤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공원에 내리쬐는 햇볕을 즐기는 듯했다. 뜻밖에 “사춘기 때보다 더 마음의 격랑이 일고 있다.”고 털어놨다. 주변의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면서 이제는 신록이 더 아름답고, 예전에 퍼부었던 독이 다 차서 이제는 다른 빈 그릇을 찾아 채우려 한다고 말했다. 그가 더 철학적이 된 건, 최근 신부님이 건네준 책 2권을 읽은 덕분이라고 했다. 매일 빽빽한 스케줄에 쫓기는데도 여유로움을 잃지 않는 그의 모습이 부러웠다. 어렸을 때부터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는 그. 그 방법이 연기든, 노래든, 만나서 술을 한잔 하든 그 모든 것이 천직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글 사진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예쁜 한국인… 그들을 공부하고파”

    “한·일 만화 애니메이션 산업이 함께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옷 입는 취향이 다르고, 듣는 음악도 다르다. 오카와 아게하, 이가라시 사쓰키, 모코나, 네코이 쓰바키(사진 왼쪽부터) 등 공통점이 없어 뵈는 일본 여성 4명이 함께 내놓는 작품마다 큰 인기를 끌고 있다.1989년 ‘성전-리그베다’를 시작으로 ‘도쿄 바빌론’,‘엑스’,‘마법기사 레이어스’,‘카드캡터 체리’ 등 현재 21개 작품 단행본이 팔려나간 게 일본에서만 8800만부.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일본 만화창작 그룹 ‘클램프(CLAMP)’가 한국을 찾았다. 제10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이들의 대표작 전시회와 함께 팬 미팅, 사인회(27일) 등 ‘클램프 데이즈 코리아 2006’을 마련했기 때문. 데뷔 이후 외국에서 공식 행사를 갖는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클램프는 2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16년 동안 계속 연재하다 보니 쉴 기회가 없어 해외를 자주 찾지 못했다.”면서 “오래전부터 한국에 오고 싶었는데 꿈이 실현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에 예쁜 여성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와보니 정말 그렇다며 많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한국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고 전했다. 스스로 진단하는 인기 비결은 무국적 스타일.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 어느 독자가 읽어도 공감할 수 있는 판타스틱한 부분이 있다는 것. 한국에선 보기 드문 공동작업에 대해 “일본은 네 명까지는 아니어도 두 명이 짝을 이뤄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작품을 내놓기 전까지 체크 단계가 많고 많은 아이디어를 공유한다는 점이 좋지만 의사소통이 확실하지 않으면 실수가 생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클램프는 또 지진을 모티브로 삼았으나 관서지방 지진 등의 이유로 연재가 중단됐던 ‘엑스’의 재개 의사를 밝혀 팬들의 기대감을 높였다.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가요와 클래식 ‘웅장한 소통’

    가요와 클래식 ‘웅장한 소통’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크로스오버 공연은 대중 음악인이라면 한 번쯤은 꿈꾸는 무대다. 음악 팬들도 색다른 하모니를 맛볼 수 있어 끌리기는 마찬가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 로열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로열필)가 10년 만에 한국을 찾아 국내 대중음악 뮤지션과 음악으로 대화를 나눈다. 영국 왕립 오케스트라로 60년 동안 영국 왕실의 권위를 상징해온 로열필은 그동안 클래식 공연 외에도 퀸, 딥퍼플,U2 등 세계적인 록밴드와 협연하며 클래식과 대중음악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해왔다. 한국에서는 넥스트, 이수영,SG워너비, 바이브, 빅마마와 만난다.24일 첫 무대는 클래식 공연이다.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첼리스트 최영철과 협연하며 생상의 첼로 협주곡 1번,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5번 등을 연주한다. 이어 크로스오버 공연의 첫 무대는 25일 잠실주경기장에서 넥스트와 함께 시작한다.26일에는 대구 전시컨벤션센터로 무대를 옮겨 넥스트, 이수영,SG워너비, 바이브, 빅마마와 협연을 한다.27일은 넥스트, 이수영, 바이브, 빅마마와 부산 벡스코를 찾는다. 마지막 28일에는 서울 잠실주경기장으로 돌아와 SG워너비, 이수영, 바이브, 빅마마와 호흡을 맞춘다. 빼어난 가창력으로 사랑받고 있는 이수영,SG워너비, 바이브, 빅마마와의 앙상블에도 관심이 쏠리지만 가장 주목되는 무대는 역시 록밴드 넥스트와 꾸리는 음악의 향연이다. 전성기 멤버들이 합류하며 6인조로 재편된 넥스트는 최근 내놓은 5.5집을 통해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바 있다. 넥스트는 또 클래식 관현악 못지 않은 웅장한 스케일의 음악 세계를 갖고 있어 강렬한 전자음과 관현악이 빚어낼 새로운 음악 빛깔이 기대된다. 넥스트의 리더 신해철은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부담감이 큰 만큼 밤을 새우며 연습 중”이라면서 “이번 콘서트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한국 음악에 대한 마인드와 기술력의 집결이라는 점에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1544-4341,1544-1555,1588-7890.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전주국제영화제 27일 개막

    전주의 봄은 올해도 스크린에서 무르익는다. 제7회 전주국제영화제(JIFF)가 27일부터 새달 5일까지 9일 동안 전주시 한국소리문화의 전당과 고사동 영화의 거리 일대에서 푸짐한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자유·독립·소통’을 주제로 한 축제에서 선보일 작품은 세계 42개국의 장·단편 194편.‘시네마 키드’를 자처하는 부지런한 관객들을 마구 유혹한다. 개·폐막작이 모두 젊은 관객들의 코드에 아주 맞춤한 소재들이다. #젊은 관객 껴안는 개·폐막작 개막작은 ‘하얀풍선’‘써클’ 등으로 국내 팬층을 확보한 이란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오프사이드’. 남장까지 하며 출입이 금지된 축구경기장을 들어가는 열혈 소녀 축구팬 이야기를 통해 이란의 남녀 차별정책을 고발했다. 올해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화제작이다. 폐막작으로는 ‘나는 날아가고…너는 마법에 걸려 있으니까’ 등 단편영화쪽에서 주목받아온 김영남 감독의 첫 장편데뷔작 ‘내 청춘에게 고함’이 선정됐다. 김태우·김혜나 주연인 영화는 불안한 일상에 던져진 스물한살의 여대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우리시대 청춘의 군상을 담담하게 그렸다. #비경쟁 부문 11개 섹션 멀리 다리품을 파는 마니아들이 군침 삼킬 섹션은 세계 거장들의 신작과 신인감독들의 화제작들이 나오는 ‘시네마 스케이프’. 프랑스 68혁명 시대를 겪은 청춘들의 이야기 ‘평범한 여인들’(감독 필립 가렐) 등 36편이 준비됐다. 신인감독들의 활약상을 볼 수 있는 올해 ‘인디비전’ 섹션에는 해외 신작들이 부쩍 늘었다. 세피데 파르시 감독의 ‘시선’, 라민 바흐라니의 ‘카트 끄는 남자’, 보단 슬라마의 ‘행복’ 등을 챙겨봄직하다는 게 영화제측의 귀띔이다. 회고전에는 사후 30주년을 맞은 인도 출신의 뉴시네마 감독 리트윅 가탁의 대표작들이 선보인다. #푸짐한 부속행사들 딸린 행사들이 푸짐하다.‘관객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영화소비자들의 흥미를 십분 고려했다. 무성영화가 상영될 때는 배경음악이 연주되기도 하고, 작품 상영 이후 관객들은 감독·배우와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www.jiff.or.kr (063)288-5433.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녹색공간] 환경과 문화의 물결/박은경 환경과문화 소장

    요사이 문화계가 요란하다. 정부의 스크린 쿼터 축소 결정에 반기를 들고 영화인들이 ‘한·미투자협정 저지와 스크린 쿼터 지키기 영화인 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한국에서 사랑받는 젊은 가수 ‘비’가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단독 콘서트를 가졌다. 뉴욕타임스는 “그는 벽을 무너뜨리고 문화적 다리를 구축하여 미국에서 성공하는 최초의 아시아 팝가수가 되려고 한다.”고 극찬한 보도가 그대로 적중하는 성공적 공연이었다고 한다. 또한 음식평가의 귀재,‘식신(食神)’이라는 홍콩의 차이란씨가 자신의 팬 클럽 회원 120명과 서울에 왔다. 홍콩을 한차례 휩쓸고 간 대장금의 위력은 음식평론가 차이란씨를 서울로 움직이게 하였다. 한국의 음식문화를 맛보려는 물결이다. 모두 지난주에 일어난 일들이다. 위에 언급한 사건들이 영화, 노래, 또는 음식이건 간에 모두 한국문화에 속한다. 한국 드라마에 녹아 있는 전통 유교적 삶에 중국인들이 놀라면서 자신들의 과거를 회상한단다. 한국가요의 가사와 리듬에서 한국인들의 삶을 알 수 있다는 외국 친구들의 정겨운 덕담은 한류의 위력을 실감나게 한다. 문화는 무엇인가? 문화라는 개념을 확실하고 포괄적인 개념으로 정의한 사람은 1871년 영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타일러가 처음이다. 그는 문화를 “지식, 믿음, 예술, 법, 도덕, 습관을 포함한,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얻은 모든 능력과 관습”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렇게 형성된 문화는 그 사회 구성원들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인정하는 범주 안에 들어오는 행위이다. 물론 이 행위를 나오게 하는 데는 사회 구성원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법칙이나 기준이 밑에 깔려 있을 것이다. 문화는 사회속에서 살면서 배운 것이고, 그래서 공유되어 진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토머스 프리드먼의 ‘세계는 평평하다’라는 책이 요사이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끈다. 세계가 둥근데도 불구하고 평평하다는 소리를 하는 까닭은 세계 속으로 퍼져 나가는 문화 및 경제적 물결 때문이다. 축구장이 평평하듯이 이제 그 넓고 평평한 세계에서 누구나 공평하게 뛸 수 있다는 이야기다. 프리드먼이 어렸을 때 그의 부모는 중국과 인도의 어린이들이 굶고 있으니 절대로 음식을 남기지 말고 다 먹도록 다그쳤는데, 이제 프리드먼은 그의 딸에게 자신의 몫을 해내지 못하면 중국과 인도 청년들이 네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라고 다그치고 있다는 대목이 실감난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국경이 사라졌고 세계 기업들이 그들이 안주할 수 있는 지역으로 이동해 다니는 세상에 우리는 살게 되었다. 환경은 이들 문화와 경제의 주체인 인간이 사는데 기본이 되는 땅, 물, 공기와 함께 생물계를 포함한다. 그런데 환경도 문화처럼 경계가 없어지고 있다.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한국인들을 괴롭히는 황사는 중국의 고비사막에서 온다. 이 황사가 태평양을 넘어서 미국 서부는 물론 동부지역까지 간다는 과학자들의 보도는 우리들을 소스라치게 한다. 파리 상공이 사하라 사막의 먼지로 가득 덮이고 한국 상공 오염 황산화물의 30%정도가 중국의 뒤늦은 산업화로 인한 공장 굴뚝에서 도래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누가 환경에서 경계를 논할 수 있겠는가? 환경과 문화의 물결이 출렁이며 전 세계를 뒤덮고 있다. 그러기에 세계인들은 점차 수없이 많은 문화와 환경 물결에 휩싸여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세계가 변화하는 방향이 한국인들에게는 어쩌면 불리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한국인들은 단일민족으로 국가와 민족에 경계를 그으려는 속성이 크다. 세계국가의 95%이상이 다민족국가이므로 대부분의 세계인들은 어릴 때부터 다른 종족과 살면서 언어가 달라서 서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는 데도 불구하고 한 국가국민으로 살아간다. 다른 모양새와 언어를 가진 사람들과 공존하는 세계인 대부분에 비하여 한국인들은 외부인들과 공존하는 삶을 살아 본 경험이 없다. 그러한 공존의식이 없이 유라시아 대륙의 맨 끝 쪽에 있는 작은 단일민족, 획일문화의 나라에 태어났어도 인터넷의 선진 능력과 한류의 옷을 덧입고 한국의 젊은이들이 새로워진 환경과 문화의 국경 없는 큰 물결에서 익사하지 않고 살아남기를 기원해 본다. 박은경 환경과문화 소장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데뷔 20년 맞는 성악가 조수미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데뷔 20년 맞는 성악가 조수미씨

    전설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표현을 썼다. 주빈 메타는 “한 세기에 한 두 명 나올까 말까 하는 목소리를 가진 가수”라고 극찬했다. 프랑스 유력지 르 몽드는 “요정들도 그의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라고 했다. 에구, 이 정도면 더 이상 무슨 수식어가 필요할까. 성악가 조수미(43). 분명 음악적으로 이 시대 세계 최고의 벨칸토 소프라노로 인정받는다. 우리들에겐 언제나 큰 감동과 희망을 안겨주는 국보급 스타로 자랑스럽기만 하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인간의 영혼을 더욱 뒤흔들며 한 차원 높은 경지를 창조해내 명성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더불어 바빠지는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신들린 듯 세계무대를 사뿐사뿐 넘나든다. 이런 조씨가 요즘 국내에서 송년 콘서트를 하느라 분주하다. 지난 13일 일시 귀국해 이튿날 수원 경기도 문화의 전당을 시작으로 서울 예술의 전당(17일), 김해 문화의 전당(22일), 의정부 예술의 전당(24일), 대구 경북대 대강당(27일)에서 공연을 했다. 이어 제주 국제컨벤션센터(29일), 일산 킨텍스(31일) 등 모두 7개 도시를 순회한 뒤 한국을 떠난다. 무엇보다 올해의 마무리를 고국에서, 모처럼 지방 시민들과 가까이했다는 여운을 남긴 채…. 하지만 조씨에게 있어 내년 한 해는 더욱 각별한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데뷔한 지 꼭 20년이 되기 때문.1986년 이탈리아 트리스테 베르디 극장에서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역으로 데뷔무대를 가졌다. 내년에는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국내외적으로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조씨와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장소는 서울 강남의 모 호텔 스카이라운지. 화면을 통해 무대의상만 쭉 접해서 그런지 평상복을 입은 모습이 무척 편안해 보인다고 하자 “괜찮겠어요?(사진이)컬러로 나온다면 갈아입을까요.”라고 하면서 반갑게 맞이한다. 올 한 해를 뒤돌아 본다면 어떤 의미로 정리되느냐는 질문에 “러시아 공연과 라스베이거스 탄생 100주년 기념공연 등 굵직굵직한 해외공연이 많았어요. 또 개인적으로 바로크앨범을 출반했고 예전보다 고국에서의 행사가 많았어요.”라고 했다. 예를 들어 광복 60주년 기념공연과 청계천 복원공사 기념공연, 또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성공개최 공연 등이 그렇다. 이어 “문화가 서울에 집중돼 있어 그동안 좋은 공연에 목말라하는 지방팬들과 자주 만나려 했지요. 무대시설이 비록 미약했지만 지방 시민들이 너무 좋아해 많은 긍지와 보람을 느꼈어요.”라고 의미부여를 했다.(자신의)예술활동으로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풀게 해줘 마음이 뿌듯하단다. 그러면서 “내년이면 데뷔 20년이 되거든요.”라고 말을 꺼낸 뒤,“우선 미국과 유럽투어를 준비하고 있어요. 국내공연의 경우 내년 9월 한달 동안만 10개도시를 순회하는 예술가곡 투어가 예정돼 있어요.”라고 말했다. 아울러 지방공연에 앞서 수도권내의 중등학교 음악선생을 무료로 초청, 특별한 음악 콘서트를 연다고 했다. 자라나는 새싹들을 가르치는 음악선생을 대상으로 음악적 영감을 생생하게 심어주기 위해서 아이디어를 짜냈다. 앞으로는 고국에 대한 애정을 더욱 쏟겠다는 다짐도 곁들여진다. 조씨는 해외 공연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그래서 올 한 해만 하더라도 비행기 타는 시간이 어느정도인지 궁금해진다.“비행기를 가장 무서워해요. 하지만 제겐 가장 큰 교통수단이거든요. 올해 집에 있던 시간이 아마 60일도 안돼요.”라고 했다. 하지만 고국행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 상공에 이르면 옛날 애인을 만나는 것처럼 무척 가슴이 설레고 기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혹시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느냐고 하자 “작고 큰 것(공연) 안 따져요. 중요성은 다 똑같지요. 공연 하나하나가 마지막 공연이라는 생각으로 무대에 오르거든요.”라는 즉답이 돌아온다. 그래도 힘든 공연이 있다면 고국무대라고 했다. 오랜만에 고국팬들과 만나면 무척 떨리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저절로 긴장하게 된다는 것. 앞으로는 고국팬들에게 성악 레퍼토리가 아닌 뮤지컬이나 영화음악, 러시아 음악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라는 계획도 밝힌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기에, 외국어 실력을 슬쩍 물었다. 그러자 최근에 러시아어를 배운 것까지 합하면 영어를 비롯해 적어도 유럽에서 통용될 수 있는 언어는 대부분 소통이 가능하다고 했다. 아울러 언어란 하나하나 성취하고 그러다 보니 만족도 또한 크고 재미 역시 쏠쏠하단다. 화제를 바꿔 어릴 적 깡패였느냐고 하자 “맞아요. 불의를 보면 못 참았어요. 또 워낙 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미예요. 와일드하진 않지만 불같은 성격이지요. 정의의 사도처럼 말입니다.”라며 웃는다. 원래부터 정신력이나 체력이 타고났다는 것. 오늘날 세계적 성악가가 된 것도 이같은 원초적 힘에서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그렇담, 좋아하는 운동이 무얼까. 고국에 머무를 땐 헬스클럽에서 러닝머신을 하고 이탈리아 자택에 있을 땐 킥복싱으로 몸을 단련한다고 했다. 아니, 킥복싱? 의외였다.“킥복싱을 수련한 지 3년정도 됐어요. 스트레스 풀기에도 그만이고요.”라며 또 한번 웃는다. 이탈리아 현지 사범이 감탄할 정도라고 살짝 귀띔까지 한다. 웬만한 남자들도 한방 맞으면 KO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랬더니 웃으면서 사범이 샌드백을 세게 치려면 “미워하는 사람의 얼굴을 연상하라.”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그만큼 인생을 살면서 미워할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아울러 뭐든지 온몸이 튼튼하고 근육이 있어야 노래도 잘하는 것이라고 했다. 팬들을 위해 이탈리아에 있는 자택의 분위기를 전해달라고 주문했다. 로마 시내에서 승용차로 30분가량 떨어진 근교에 있으며 밤이면 로마시내의 야경이 보이는 곳이라고 했다. 노래를 마음껏 불러도 주위에서 시비를 걸지 않을 만큼 안전거리까지 확보했단다. 동거하는 식구는 24년 동안 쭉 뒷바라지 해준 아주머니와 신디 밀디 토미 등 애완견 3마리가 졸졸 따른다. 이 가운데 신디(요크셔테리아)는 조씨의 해외공연때 동반된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부쩍 멍멍 하며 노래를 곧잘 부른다. 조씨는 또 집에 있을 때 시장을 직접 보기도 하며 와인 컬렉션을 취미로 하고 있다. 해외공연에서 돌아올 때 와인은 꼭 1∼2병씩을 사온다. 식사때마다 이태리산 와인 한잔씩을 반주로 곁들인다. 자택 주위에는 배추를 심을 정도로 텃밭이 있는 전원적인 분위기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불쑥, 팬들이 결혼여부에 궁금해 한다고 하자 “결혼은 안했고요. 한 남자의 여자로 지내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아요.”라고 반문하면서 세계 곳곳에 많은 친구들이 있고 또 만인의 애인이 아니냐고 했다. 아울러 “어머니께서는 항상 대한민국의 딸임을 명심하라고 하셨지요.”라고 했다. 결혼할 생각은 없다고 강하게 암시했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연말연시를 맞아 팬들에게 덕담 한마디 해달라고 했다. “제가 어느새 40대 중반 나이가 됐네요. 살아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라고 생각해요. 이는 자신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분들에 대한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 좋은 선물이지요. 또 요즘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힘든 상황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서로 존중하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히 극복되지 않을까요.” WE팀장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63년 서울 출생 ▲81년 선화 예술고 졸업 ▲83년 서울대 음대 2년 수료 ▲86년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졸업 ▲86년 이탈리아에서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역으로 데뷔 ▲87년 프랑스의 파리오페라 극장에서 공연 ▲89년 미국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리골레토’ 공연 ▲91년 영국 런던 코번트가든 극장에서 ‘호프만이야기’의 올림피아역으로 공연 ▲93년 ‘그림자 없는 여인’ 오페라 부문 최고 음반으로 선정. 한국 가곡집 ‘새야 새야’ 출반 ▲95년 런던 필하모니와 한국에서 협연. 광복 50돌 ‘세계를 빛낸 한국 음악인 대향연’ 공연 ▲96년 일본 후쿠오카·도쿄·고베에서 독창회, 수원성 건립 200주년 기념 음악회,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오페라 ‘마술피리’ 공연 ▲이후 매년 수십차례 국내외 공연 및 연주회 ■ 저서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 상훈 2002년 올해의 여성상(월드컵 해외홍보) 등 20여회 수상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재혼뒤 제2 반상인생 ‘토종바둑’ 서봉수 9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재혼뒤 제2 반상인생 ‘토종바둑’ 서봉수 9단

    삼라만상의 우주와 희로애락의 인간세계를 한곳에 축소시킨다면 어느 정도의 크기일까. 가로·세로 42×45㎝에 불과한 나무판이 있다. 그 위에는 가로·세로 19×19줄이 교차되면서 361개의 점이 그어진다. 가운데 점은 천원(天元)이다. 지구 공전 주기가 365.25일이고 보면 절묘한 맞춤형이 바로 바둑판이다. # 1972년 최저단·최연소 명인전 타이틀 바둑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가장 보편적인 취미였다. 지난해 한 여론조사에서 성인 남성 5명 중 2명이 바둑을 즐긴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성동격서(聲東擊西)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 소탐대실(小貪大失) 등 생존경쟁에서 보약처럼 응용되는 수많은 격언들을 만날 수 있는 것 또한 반상이다. 공자도 바둑을 좋아했던지라 ‘논어’에서 ‘바둑 두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 어진 일이다(以奕爲爲之猶賢乎己).’라고 했다. 서봉수(53) 9단. 요즘에는 이세돌 이창호 최철한 등 젊은피에 한발 밀려나 있지만 ‘서봉수류(類)’는 여전히 바둑팬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왜일까. 야전사령관, 야생마, 매운 고추장, 토종바둑, 오뚝이 등으로 불려온 그는 순수 ‘국산품’이기 때문이다. 서 9단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한국 바둑계의 정상은 일본 ‘유학파’들의 차지였다. 그러던 어느날 순수 국내파인 서봉수가 혜성같이 등장하면서 매운 고추장 맛을 보여줬다. 특히 ‘조훈현 서봉수 백년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바둑계를 주거니 받거니 평정했다. 특히 반상 위를 마구 헤집는 전투 지향적인 기풍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팬들에겐 아직도 생생하다. 지난 1972년 ‘명인’ 타이틀을 땄을 때 최저단(2단), 최연소(19세)라는 기록을 세웠다. 명인전을 주최한 신문사는 1면 머리기사로 다룰 정도였다. # 29살 연하 베트남 여성과 지난해 재혼 서 9단은 올해로 입신의 경지(9단)에 이른 지 20년째. 아울러 70년에 프로입문했으니 바둑인생 35년이 된다. 휴전협정이 한창이던 53년에 태어난 그는 개인적으로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난해 12월 29세 연하의 베트남 여인과 재혼해 새 삶을 살고 있다. 결혼 당시 일부에서는 곱지 않은 오해의 시선도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극복하고 제2의 바둑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경기도 안양시 평촌동 자택 인근의 커피숍에서 서씨를 만났다. 먼저 근황을 물었더니 “프로기사가 달리 할 것이 뭐 있겠느냐.”면서 “6개월 전부터 일주일에 3일은 서울 반포에 있는 ‘권갑용 바둑도장’엘 나간다.”고 했다. 권갑용씨는 프로 7단으로 이세돌과 최철한 등을 배출해 바둑 스타의 제조기로 알려져 있다. 서씨는 이 바둑도장에서 예비프로들과 대국을 하면서 장차 한국 바둑계를 이끌어갈 후배들을 지도해주고 있다. 아울러 잡지와 컴퓨터 바둑코너 등에 기보해설을 해주고 가끔 지방 초청강연을 다녀오기도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시합이 우선이기 때문에 하루종일 잠 자는 시간만 빼놓고 늘 바둑과 함께 지낸다. 바둑 외에 다른 취미는 없느냐고 하자 “학창시절 탁구 당구 등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을 무척 즐겼다.”면서 지금은 관전하는 정도로 멀어졌다고 대답했다. 다만 3년 전 골프를 배워 지인들이 불러주면 같이 라운드한다고 말했다. 부인의 안부를 물었다. 약간 주저하더니 “평범한 가정주부로 빨리 적응해 잘 살고 있다.”면서 “(부인은)사고방식이 건전하고 착하다. 명랑한 성격이지만 자기 주관이 뚜렷하다.”고 자랑했다. 어울러 “(베트남에서)고생을 하며 자라서 그런지 참을성이 많고 어려움도 잘 견딘다.”고 부연했다. # “먹고자는 시간 외엔 오로지 바둑만” 서로의 언어소통에 문제가 없느냐고 하자 “집을 나설 때 아내에게 ‘굿바이’ 하면서 손을 흔들고 집에 돌아오면 웃으며 손을 잡는다. 또 시장하면 ‘배고프다.’는 눈짓을 한다.”면서 “같이 지내다 보니 굳이 많은 얘기가 필요하지 않다.”고 웃었다. 가끔 주말에 함께 나들이도 한다. 인근 관악산 주변을 산책하고 기분 내키면 산 중간까지 오른다. 늦은 밤 집앞 24시간 할인매장에서 시장을 같이 보는 것도 재미란다. 최근에는 부인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 컴퓨터 한대를 사주었다고 귀띔했다. 서 9단의 각오가 사뭇 비장해 보인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베트남 신부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겠다고 몇 차례 다짐했다. 아울러 재혼 이후 물욕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졌기 때문에 서로 의지해 사는 게 가장 행복하다는 평범한 진리도 깨달았단다. 서 9단이 베트남 신부를 맞게 된 것은 지난해 여름 지인으로부터 소개받고 몇 차례 베트남을 오고가면서였다. 결혼식 때에도 “신부는 비록 배운 건 없지만 순수하고 진실한 여자”이며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든 나는 그를 사랑하며, 함께 행복하게 살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지난해 서씨의 성적은 37전 23승 14패로 여전히 부진한 편이다. 그러나 자신 하나를 믿고 머나먼 이국 땅에 온 신부를 위해서라도 앞으로 돈도 벌고 더욱 열심히 살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제 자신이 틀에 박힌 ‘기풍’이란 말을 쓰고 싶지 않아요. 이젠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져야 합니다. 또 공부하고 변하지 않으면 안 돼요. 요즘에는 승부가 너무 치열합니다. 갈수록 수준이 높아지고 강해져요. 이 때문에 보는 사람들은 더욱 재미가 있지요. 엣날에는 고수들끼리 타협도 가끔 했는데…. 제 인생에서 살아남는 길은 오직 바둑밖에 없어요, 밥먹고 자는 시간 외엔 오로지 바둑 공부만 하지요.” 세상살이가 아무리 치열하다고 해도 바둑처럼 극명한 인생살이는 없다고 했다. 프로기사들은 한미디로 피말리는 토너먼트라고 했다. 지면 인생에서 탈락이란다. 조치훈씨의 경우 울면서 밤길을 걷다가 몇번이고 자살 직전까지 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 친구들도 한번 패할 때마다 견디기 힘들 만큼 큰 충격 속에서 방황하고 헤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이같은 아픔을 이기는 방법은 그저 즐기는 것밖에 없다고 했다. 예를 들어 춘향이가 이도령 생각하듯이 늘 그리워하고 ‘올인’의 각오로 무장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대국에서 질 때마다 괴로워하다 보면 병이 생겨 인생끝장은 금방이란다. 또 바둑은 결국 체력싸움이라고 강조한다. 복서도 라운드가 계속될수록 펀치가 약해지듯이 바둑 고수도 초읽기에 몰리면 쉬운 수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 반상의 행마가 곧 인생이듯 늘 상대의 괴롭힘을 견뎌내야 하는 전쟁이라고 역설한다. “욕심없이 살아가려고 합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타이틀 하나 정도 따면 좋겠지요.” 서 9단은 오뚝이라는 별명답게 여전히 역동성을 간직하고 있다.80년대 후반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93년 제2회 응창기(應昌期)배 우승,97년 진로배에서 바둑사상 9연승 싹쓸이 신화,2000년 시즌 국내 최대 타이틀 LG정유배 우승 등 3∼4년 주기로 일을 내고 있다. # “나이 먹어도 새로운 바둑수는 생겨” 바둑계에서 50대는 분명 노장이다. 하지만 준비된 자의 미소는 늘 아름다운 법. 일본의 구토 9단은 나이 60에 천원전 타이틀을 차지했고, 후지사와는 66세에 왕좌전을 제패했다. 사카다는 80세에 은퇴했다. 또 얼마 전에 별세한 김수영 7단은 췌장암 판정을 받고서도 ‘아직 인생의 대마는 살아 있다.’며 공식대국을 7판이나 두었다. 원로 조남철씨는 60세에 9단 승단을 했고,82세에 ‘세번의 눈물’이라는 회고록을 펴내 바둑팬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무덤덤한 성격의 서 9단은 “바둑에서 똑같은 판은 하나도 없다.”면서 “승부란 늘 새로 시작하는 것이고 또 나이를 먹어서도 새로운 바둑 수는 생겨나는 법”이라고 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3년 대전 출생 ▲71년 배문고 졸업 ▲70년 프로입단 ▲71년 명인전 우승 ▲74년 제1기 국기전 우승 ▲75년 제10기 왕위전 우승 ▲76년 명인전 우승 ▲80년 국기전, 왕위전, 최고위전 우승▲83년 바둑왕전, 제왕전, 명인전, 기왕전 우승 ▲86년 제30기 국수전 우승 ▲87년 명인전, 제왕전, 국수전 우승 ▲86년 9단 승단 ▲88년 국기전, 기왕전 우승 ▲91년 동양증권배 우승 ▲92년 국기전 우승 ▲93년 제2회 응창기배 우승 ▲95년 제1회 신사배 우승 ▲97년 제5기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전 9연승 기록 ▲99년 LG정유배 프로기전 우승, 제1회 프로시니어기전 우승 ▲2003년 제3회 돌씨앗배 프로시니어기전 우승 ▲2005년 제6회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4강. ■ 상훈 바둑문화상 수훈상 수상 4회(80,81,82,93년). 통산 1000승 달성(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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