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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응팔 박보검, 혜리 향한 류준열 마음 눈치챘다… 평균 시청률 16.3% ‘최고 기록 경신’

    응팔 박보검, 혜리 향한 류준열 마음 눈치챘다… 평균 시청률 16.3% ‘최고 기록 경신’

    응팔 박보검 응팔 박보검, 혜리 향한 류준열 마음 눈치챘다… 최고 시청률 18.3% ‘응팔’ 박보검이 혜리를 향한 류준열의 마음을 눈치챘다. 혜리를 둘러싼 박보검, 류준열의 러브라인이 본격화 되면서 ‘응답하라 1988’ 15화 ‘사랑과 우정 사이’ 편은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유료플랫폼 가구) 평균 시청률 16.3%,를 기록해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이날 최고 시청률은 18.3%를 찍었다. 이날 방송에서는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정환(류준열)과 택(박보검)의 모습이 그려졌다. 지난주 덕선(혜리)과 오해를 풀지 못한 채 차가운 덕선 주위에서 맴도는 정환과 달리, 택은 힘들면 덕선의 어깨에 기대고 본격적으로 그녀에게 고백할 날을 준비하고 있다. 덕선을 마음에 둔 박보검과 류준열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하지만 갑작스런 정환의 부친 성균의 부상은 두 남자의 여전한 우정을 확인케 했다. 성균의 허리 수술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택이 자신의 팬인 병원 부원장에게 부탁 전화를 하면서 조기에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된 것. 그러나 이날 방송에서 덕선과 동룡(이동휘)이 나미의 춤을 따라 추는 장면에서 택은 정환의 심상찮은 눈빛을 감지했다. 전에 선우가 ‘사람의 눈을 보면 마음을 알 수 있다’고 조언했던 것을 떠올리게 된 것. 택은 정환이 덕선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며 극의 긴장감을 예고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응답하라 1988’ 박보검, 혜리 향한 류준열 마음 눈치챘다… ‘최고 시청률 경신’

    ‘응답하라 1988’ 박보검, 혜리 향한 류준열 마음 눈치챘다… ‘최고 시청률 경신’

    응답하라 1988 혜리 ‘응답하라 1988’ 박보검, 혜리 향한 류준열 마음 눈치챘다… ‘최고 시청률 경신’ ‘응팔’ 박보검이 혜리를 향한 류준열의 마음을 눈치챘다. 혜리를 둘러싼 박보검, 류준열의 러브라인이 본격화 되면서 ‘응답하라 1988’ 15화 ‘사랑과 우정 사이’ 편은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유료플랫폼 가구) 평균 시청률 16.3%,를 기록해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이날 최고 시청률은 18.3%를 찍었다. 이날 방송에서는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정환(류준열)과 택(박보검)의 모습이 그려졌다. 지난주 덕선(혜리)과 오해를 풀지 못한 채 차가운 덕선 주위에서 맴도는 정환과 달리, 택은 힘들면 덕선의 어깨에 기대고 본격적으로 그녀에게 고백할 날을 준비하고 있다. 덕선을 마음에 둔 박보검과 류준열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하지만 갑작스런 정환의 부친 성균의 부상은 두 남자의 여전한 우정을 확인케 했다. 성균의 허리 수술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택이 자신의 팬인 병원 부원장에게 부탁 전화를 하면서 조기에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된 것. 그러나 이날 방송에서 덕선과 동룡(이동휘)이 나미의 춤을 따라 추는 장면에서 택은 정환의 심상찮은 눈빛을 감지했다. 전에 선우가 ‘사람의 눈을 보면 마음을 알 수 있다’고 조언했던 것을 떠올리게 된 것. 택은 정환이 덕선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며 극의 긴장감을 예고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스크린 위 연극, 무대에 선 영화

    스크린 위 연극, 무대에 선 영화

    연극이 스크린에 걸리고, 영화가 무대에 오른다. 장르로 치면 이웃사촌이라 이러한 전이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양방향 교류가 두드러지고 있다. 대중문화 팬 입장에선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개봉해 잔잔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극적인 하룻밤’은 2009년 초연 이후 누적 관객 22만명을 자랑하는 연극이 원작이다. 몸이 먼저 만난 커플이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지난달 개봉한 ‘늙은 자전거’는 2010년 초연한 우리나라 대표 극작가 이만희의 연극이 원작. 괴짜 장돌뱅이 할배와 손자의 우연한 동거를 그렸다. 현실에 있을 법한 다채로운 사랑 이야기를 감성적으로 담은 ‘춘천 거기’(2005년 초연)와 1990년대 인기 대중가요에 스포츠 성장 이야기를 접목시킨 ‘유도소년’(2014년 초연)도 각각 ‘관상’을 연출한 한재림 감독의 우주필름과 ‘국제시장’ 윤제균 감독의 JK필름에서 영화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극으로 먼저 상연된 인기 웹툰 ‘신과 함께’는 내년 상반기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다. 연극이 스크린으로 옮아가 작품성은 물론, 흥행 대박까지 일군 전례가 수두룩하다. ‘이’(爾)를 원작으로 한 ‘왕의 남자’는 한국 영화 역대 두 번째로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날 보러 와요’를 영화로 만든 ‘살인의 추억’은 봉준호 감독을 일찌감치 거장 반열에 올려 놨다. ‘웰컴 투 동막골’과 ‘약속’도 연극에서 출발한 영화다. 이전에는 연극의 영화 진출이 수동적이었다면 최근에는 능동적인 흐름도 생겨나고 있다. 극단이 영화 제작에 뛰어든 경우가 나온 것. 지난해 ‘해무’에 이어 올해 ‘극적인 하룻밤’의 영화 제작에 참여한 연우무대가 주인공이다. 1977년 창립 이후 창작극의 외길을 걸어온 이 극단은 이미 ‘칠수와 만수’, ‘날 보러 와요’, ‘이’ 등을 통해 한국 영화에 큰 기여를 해 왔다. 유인수 대표는 “‘해무’는 원래 영화를 먼저 생각하다가 무대에 올린 작품”이라며 “최근 개봉한 ‘극적인 하룻밤’ 외에도 우리 극단이 선보였던 창작극 중 서 너개 정도가 영화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의 연극화는 연극의 본산인 대학로의 상업화 경향과 맞물리며 수년째 로맨틱 코미디가 주도하고 있다. 대학로에서 데이트를 하는 커플들을 겨냥해 인기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연극화가 활발하게 진행된 것. 2000년대 이후 인기를 모았던 로맨틱 코미디 영화 상당수가 연극으로 상연되고 있다. 올겨울에도 ‘작업의 정석’, ‘연애의 목적’, ‘엽기적인 그녀’ 등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 물론, 사극 ‘광해, 왕이 된 남자’, 멜로 ‘만추’ 등 궤를 달리하는 연극의 영화화가 진행되기도 했다. 최근엔 영화로 익숙한 해외 작품들이 무대에 오르고 있어 눈길을 끈다. 현재 상연 중인 ‘엘리펀트 송’과 내년 1월 초연되는 ‘렛미인’이다. 실종사건을 둘러싼 두뇌 게임을 담은 ‘엘리펀트 송’은 프랑스 연극이 원작이지만 캐나다 천재 감독 그자비에 돌란이 출연한 영화가 유명하다. 뱀파이어 소녀와 외톨이 소년의 사랑을 다룬 ‘렛미인’은 스웨덴 소설이 원작이지만 2008년, 2010년 만들어진 스웨덴, 미국 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2013년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이 초연한 연극을 이번에 그대로 가져왔다.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열연한 박소담이 주연을 맡았다. 한 연극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제작자 입장에선 관객들에게 익숙해 실패할 확률이 적은 작품을 선택하기 마련”이라면서 “관객들이 지속적으로 연극을 관람하고, 창작자도 키울 수 있는 흐름이 생겨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들것에 누워서도 축구는 빼먹을 수 없어 열혈 삼바축구팬 화제

    들것에 누워서도 축구는 빼먹을 수 없어 열혈 삼바축구팬 화제

    들것에 실려 축구장을 찾는 열렬 삼바축구팬이 언론에 소개돼 화제다. 브라질에 사는 하이톤 다론차(48)는 불치성 유전질환인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다. 하반신을 쓸 수 없는 그는 스스로 이동이 불가능하지만 쿠리치바 FC의 경기가 있는 날 관중석을 둘러보면 그의 모습이 보인다. 들것에 누워있지만 경기에 몰두하는 건 다른 팬들과 다를 게 없다. 쿠리치바 FC는 최근 바스쿠 다 가마와 1군 잔류 여부가 걸린 운명의 경기를 치렀다. 주룩 주룩 비가 내리는 가운데 선수들은 비장한 각오로 그라운드에 들어섰다. 궂은 날씨였지만 경기장을 찾은 다론차는 목이 터져라 쿠리치바를 응원했다. 다론차는 들것에 누운 채 우산을 받치고 경기를 지켜봤다. 주변에 있던 쿠리치바 팬들은 그의 열정에 쿠리치바FC에 못지 않은 박수를 보냈다.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 덕분이었을까? 경기를 0대0 무승부로 마친 쿠리치바는 소중한 승점 1점을 챙기면서 1군 잔류를 확정했다. 쿠리치바의 숙명적 팬을 자처하는 다론차는 "축구와 쿠리치바가 있어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쿠리치바가 없었다면 하반신이 마비된 뒤 축구장을 찾을 생각은 못했을 것"이라면서 "쿠리치바가 한계에 도전하는 동기가 됐다."고 말했다. 물론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다. 가족이 없었더라면 꿈도 꾸기 힘든 일이었다. 다론차를 들것에 실어 축구장까지 데려가는 건 부인과 아들들이다. 가족들은 다론차의 의견을 언제나 존중하고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비가 내린 쿠리치바의 마지막 경기 때 가족들은 축구장에 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다론차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가족들은 그런 그를 기꺼히 경기장으로 데려갔다. 중남미 언론은 "세계에서 가장 의리 있는 축구팬을 꼽으라면 단연 다론차가 1위에 오를 것"이라며 축구와 쿠리치바에 대한 그의 무한 사랑을 소개했다. ​사진=ABC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걸그룹 포켓걸스, 대한민국나눔대상 특별대상

    걸그룹 포켓걸스, 대한민국나눔대상 특별대상

    걸그룹 포켓걸스가 ‘제10회 대한민국 나눔 대상’ 특별대상을 받는다. 대한민국 나눔 대상 조직위원회는 ‘제10회 대한민국 나눔 대상 시상식’에 걸그룹 포켓걸스를 특별대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시상은 오는 11일 오후 1시 30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진행된다. 걸그룹 포켓걸스는 그동안 혈액암 아동환자를 위한 일대일 자선 나눔 봉사, 아동병원 돕기 모금 자선바자, 변정수와 함께하는 ‘러브 플리마켓’ 자원봉사, 해외동포 책 보내기 봉사에 앞장서는 등 데뷔 후 나눔 행보를 이어간 공로를 조직원회로부터 인정받았다. 포켓걸스 멤버들은 “데뷔 후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돌려 드리려고 한 것인데 상을 주신다니 감사하다”며 “앞으로 더 소외된 이웃을 위해 봉사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나눔 행보에 더욱 앞장서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대한민국 나눔 대상은 평소 어려운 이웃과 소외계층을 위해 봉사와 기부, 기증 등에 이바지한 모범시민이나 기관단체, 기업 등을 추천받아 매년 수상자로 선정하고 있다. 그동안 대한민국 나눔 대상을 받은 연예인으로는 하희라, 박은혜, 2AM 조권, 공현주, 이순재, 문근영, 김장훈, 현영, 주영훈 이윤미 부부, 박상민, 윙크, 박정아, 장나라, 변정수, 정애리, 정가은, 최란, 이광기 등이 있다. 사진 영상=미스디카 엔터테인먼트, 포켓걸스 ‘빵빵’ 뮤직비디오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아이스하키 경기중 쏟아진 ‘28815개’ 사랑의 테디베어 (영상)

    지난 6일(현지시간) 북미 아이스하키 웨스턴 하키리그(WHL) 경기가 열리던 캐나다 캘거리 스코티아뱅크 새들돔 경기장. 홈팀 캘거리 히트맨의 한 선수가 상대팀 골문에 퍽을 멋지게 넣는 순간 관중들이 일제히 링크 안으로 수많은 테디베어 인형을 던졌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1만 9000명의 관중은 총 2만 8815개의 테디베어 인형을 링크 위에 던져 순식간에 경기장은 테디베어로 가득찼다. 경기보다 더 큰 감동을 자아내는 이 행사는 WHL 소속 캘거리 히트맨과 팬들이 벌이는 전통적 이벤트다. 올해로 21회째를 맞이하는 이 행사의 이름은 '테디베어 토스'(Teddy bear toss). 매년 12월 관중들은 팀의 첫 골이 터지는 순간 가지고 온 인형을 경기장에 던진다. 이렇게 모인 인형은 모두 지역 어린이 자선단체에 기부돼 차가운 빙상장이 따뜻한 사랑을 전하는 공간이 된 셈. 현지언론은 "이번 행사에서 총 2만 8815개의 인형이 모여 2002년에 세워진 종전기록(2만 5214개)을 넘어섰다" 면서 "지금까지 50여곳 자선단체에 총 29만 8000개의 인형이 기부됐다"고 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점점 똑똑해지는 냄비, 87년간 사랑을 끓이다

    점점 똑똑해지는 냄비, 87년간 사랑을 끓이다

    빨간 냄비와 종소리는 12월을 생각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시내 곳곳에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보인다. 긁힌 곳 하나 없이 새것처럼 반짝인다. 선명한 빨강이다. 자세히 보면 가스불 위에 올려 쓰는 진짜 냄비와 닮았다. 손잡이까지 말이다. 뚜껑이 몸체와 붙어서 실제 뭘 넣고 끓이긴 어렵겠지만…. 음식 대신 사랑을 끓이는 이 냄비는 어디서 왔을까. 세계 최초의 자선냄비는 1891년 등장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조셉 맥피 구세군 사관은 가난한 사람에게 공짜 크리스마스 저녁을 대접하고자 모금을 시작했다. 맥핀은 선원으로 일했을 때 영국 리버풀 항구에서 본 장면을 떠올렸다. 부둣가에 ‘심슨의 솥’이라는 커다란 솥단지가 있었고 행인들이 불우이웃을 도우려고 돈을 넣었다. 힌트를 얻은 맥피는 샌프란시스코 시의 허가를 받아 오클랜드 부두에 게를 삶는 큰 솥을 걸었다. 그는 “이 솥을 끓게 합시다”라고 외치며 행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식사 봉사를 할 수 있었다. 자선냄비는 전 세계 구세군으로 뻗어나가 현재 한국, 일본, 칠레, 유럽 등 124개국에서 모금활동에 쓰이고 있다. ●1997년 원통형 냄비, 13억 모금 기적을 부르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선냄비는 1928년 12월 15일 서울 도심에 나타났다. 스웨덴 선교사 조셉 바(박준섭) 사관이 한국 구세군을 이끌며 불우이웃을 돕고자 들여온 것이 시작이었다. 나무 막대 지지대에 매달린 자선냄비는 가마솥에 빨간 양철 뚜껑을 씌운 모습이었다. 20여개의 냄비가 서울 명동, 충정로, 종로와 인천 등에 설치됐다. 첫해에 당시 돈으로 812원이 모금됐다. 6·25전쟁으로 온 나라가 폐허가 된 1951년에도 자선냄비는 끓었다. 피란지였던 부산 남포동과 부민관 옆 우체국에 12월 21일부터 6일간 자선냄비가 설치됐다. 3000환이 모였다. 휴전 후인 1953년에는 서울 도심 5곳에 설치된 자선냄비에 모두 6만 6887환이 기부됐다. 1965년부터 가마솥이 아닌 원통형의 자선냄비가 나왔다. 2003년까지 같은 모습이 유지됐다. 지금의 자선냄비보다 지름이 크고 바닥과 윗면의 크기가 같다. 현금을 넣는 구멍 외에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구멍이 없었으나 기부액이 얼마나 모였는지 확인하고 기부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1980년대부터 격자 모양의 창을 냈다. 외환위기(IMF사태)가 닥친 1997년 자선냄비는 기적을 보여줬다. 구세군은 경제 사정이 어려운 점을 고려해 12억원 모금에 나섰으나 목표치를 넘는 13억원이 모였다. 자선냄비는 2004년 대대적인 변신에 성공한다. 독일 주방기업 휘슬러가 40년간 사용돼 낡은 자선냄비를 ‘명품 냄비’로 탈바꿈시켰다. ●주방기업 휘슬러코리아, 명품냄비를 만들다 2003년 12월, 서울 강남역 앞을 지나던 휘슬러코리아 직원들은 구세군의 자선냄비에 시선을 빼앗겼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녹슬고 찌그러진 냄비는 ‘냄비 전문가’의 마음을 내내 불편하게 했다. 이진실 휘슬러코리아 매니저는 “주방용품 브랜드의 정체성과 개성을 살릴 수 있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사회 환원을 고민하다 구세군에 자선냄비를 기증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듬해 4월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 휘슬러코리아 사무실에 자선냄비 개발팀이 꾸려졌다. 당시 전 직원 20명이 모두 참여했다. 이들은 자선냄비에 독일 본사에서 제작한 휘슬러 냄비 손잡이를 붙였다. 주부들이 좋아하는 인기 제품인 ‘프로’ 스튜 냄비에 쓰는 실제 손잡이였다. 눈과 비, 찬바람에 부식되기 쉬운 양철 대신 강철(전기아연도금강판)로 냄비를 제작했다. 안정감을 주도록 아랫면(지름·35㎝)이 윗면(30.7㎝)보다 크고, 높이가 24㎝인 ‘황금비율’을 찾아냈다. 확실한 보안을 위해 뚜껑과 본체를 연결하고 자물쇠를 달 수 있도록 제작했다. 이렇게 만든 300개의 자선냄비는 그해 구세군에 전달됐다. 이 매니저는 “자선냄비를 만드는 데 꼬박 6개월이 걸렸다”면서 “동전의 하중을 견딜 수 있고, 삼각대에 안정적으로 매달려고 냄비의 각도, 지름, 깊이, 내구성, 무게, 디자인 등을 모두 고려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구세군은 자선냄비를 바꿔준 휘슬러코리아 측에 감사의 표시로 냄비의 성금 투입구에 휘슬러 로고를 넣도록 했다. ●올해 450곳서 모금… 냄비 100개 더 생기다 휘슬러코리아는 매년 모든 자선냄비를 거둬들여 새로 색을 칠하고 움푹 팬 부분을 펴는 등 사후관리를 한다. 해마다 100개는 새것으로 교체한다. 올해는 모금장소가 450곳으로 100군데 늘어나 새로 100개를 제작해 기증했다. 기부 문화를 활성화하고자 자선냄비는 매년 진화하고 있다. 2005년에는 관공서와 은행, 학교, 음식점에서 기부할 수 있도록 소형으로 제작한 미니 자선냄비가 등장했다. 365 사랑의 모금함은 1년 내내 상시 기부할 수 있도록 저금통형태로 만들었다. 2007년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기업형 자선냄비가 전달됐다. 오피스 건물의 자판기, 휴게 공간에 설치해 모금을 유도했다. 한국 구세군 100주년이었던 2008년에는 유치원과 학교에 놓을 수 있는 어린이 전용 모금함이 특별 제작됐다. 구세군 마스코트 모양으로 만들어 기부 교육에 쓰도록 했다. 이듬해에는 1t 트럭에 커다란 자선냄비를 탑재한 ‘찾아가는 자선냄비’가 등장했다. ●현장에서 기부 인증샷… 진화를 거듭하다 2010년 들어서는 서울시청 광장 앞에 재미를 강조한 자선냄비 체험관이 등장했다. 거대한 스노볼, 회전목마, 관람차 등을 설치했다. 체험관에서 찍은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도록 해 기부 문화 확산을 꾀했다. 올해 나온 자선냄비는 똑똑해졌다. 자선냄비 모습의 설치물에 터치스크린을 적용했다. 몇 번만 터치하면 아동·청소년, 여성·다문화, 노인·장애인 가운데 후원 대상과 후원 방식을 직접 고를 수 있다. 현금과 함께 신용카드 기부도 가능하다. 기부를 마치면 자선냄비에 설치된 카메라가 자동으로 작동해 ‘기부 인증샷’을 찍는다. 사진은 문자메시지로 받아 SNS에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스마트 자선냄비는 이달 말까지 서울광장에 전시된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윤계상 “자존심 탓에 놓친 사랑… 제 20대 모습 같았죠”

    윤계상 “자존심 탓에 놓친 사랑… 제 20대 모습 같았죠”

    배우 윤계상(37)에게 영화 ‘극적인 하룻밤’의 언론 홍보물 마지막 페이지를 들이밀었다. ‘연애 갑/을 체크리스트’가 실려 있었다. 그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열 가지 항목을 들여다보더니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용기 내어 고백 못한 적 있다’, ‘고백은 맨 정신보다 술 먹고 난 다음이 편하다’, ‘상처받을까 두려워 사랑을 포기한 적 있다’에 브이 표시를 했다. 2~3개 체크는 ‘밀당도 필요해요. 연애 을 초기 증상 의심’으로 분류된다고 설명을 했더니 파안대소했다. “에이~좀 안 맞는 것 같은데요?” 3일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 ‘극적인 하룻밤’은 육체적 관계로 시작했다가 ‘진짜 사랑’에 빠지게 되는 두 남녀의 이야기다. 윤계상은 평소에 알고 지내던 의사 형에게 여자 친구를 빼앗기고 그 형에게 차인 시후(한예리)와 엮이게 되는 특수학교 기간제 체육교사 정훈 역을 맡았다. 호기롭게 전 여자친구의 결혼식장을 찾기도 하지만 속으로는 정말 마음 아파하는 소심한 캐릭터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을 정도로 수위가 높은 베드신도 등장한다. 윤계상은 자신의 20대 초반이 정훈이와 닮은 점이 많아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 걱정하느라, 또 자존심을 세우느라 사랑을 놓치고 나서 후회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그는 로맨틱 코미디를 찍는 게 생각보다 고통스럽다는 예상 밖의 말을 하기도 했다. “연애라는 감정 자체가 힘든 거잖아요. 좋아하고, 싫어하고, 썸 타고, 사랑하게 되고, 자게 되고…. 그러한 과정을 진짜처럼 믿게 만들어야 하죠. 철저하게 연기라고 생각은 하지만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갈수록 이게 맞는 건지 생각에 빠져들어요. 사람의 감정을 조절하며 표현해야 하는 배우라는 직업이 정말 보통 직업은 아닌 것 같아요.” ‘극적인 하룻밤’은 2009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도 인기가 식지 않고 있는 연극(2인극)이 원작이다. 윤계상은 원작을 직접 관람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연극에서 남자 주연을 맡았던 (유)정호와 절친이에요. 원작을 봐야 하는지 물어봤죠. 그랬더니 연극도 배우에 따라 애드리브를 비롯한 작품 분위기가 바뀌기 때문에 메시지만 갖고 가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만의 정훈을 만들기로 했죠.” 배우의 길을 걷게 된 지 만 10년. 이번 작품까지 모두 열 편의 영화를 찍었다. 국민그룹 지오디의 윤계상이었던 시간보다 배우 윤계상이었던 시간이 어느새 더 길어졌다. 배우가 됐다는 사실을 자각했던 것은 언제 쯤이었을까. 그는 용산 참사를 소재로 한 ‘소수의견’이 지난 6월 개봉했을 때를 꼽았다. VIP 시사회에서 기라성 같은 영화 감독들, 선배 배우들에게 좋았다, 괜찮았다, 흠잡을 곳이 없었다, 에너지가 잘 전달됐다는 칭찬을 받은 날이다. 그저 인사치레가 아닌 진심이 담긴 반응에 감격해 잘 못 마시는 술을 그날 엄청 먹었다고 한다. 같이 연기해보고 싶은 배우를 물었더니 정재영과 공효진을 꼽았다. “정재영 선배님이 나오는 작품은 모두 봤을 정도로 팬이에요. 선배의 연기에는 특유의 에너지가 있어 정말 좋아요. 효진이하고는 드라마 ‘최고의 사랑’을 함께했는데 영화도 같이해보고 싶어요. 제가 연기를 하면 할수록 정말 빼어난 배우라는 사실을 곱씹게 되는 친구죠.” 그동안 현실과 맞닿아 있는 캐릭터를 자주 연기했는데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충격적인 캐릭터도 맡아보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 악역이든, 외계인이든. 존재하지 않을 법한 캐릭터를 갖고 나와 관객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면 정말 짜릿하고 통쾌할 것 같다며 눈을 빛내는 윤계상이다. “이제야 연기를 조금 알 것 같아요. 음악에 비유하자면 도레미파솔라시도 정도를 안 보고 칠 수 있는 수준이랄까요. 악보를 보고 얼마나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느냐가 다음 순서일 것 같아요. 배우 윤계상은 이제 시작입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배우 10년 윤계상 “이제야 연기의 맛을 알 것 같아요”

    배우 10년 윤계상 “이제야 연기의 맛을 알 것 같아요”

    배우 윤계상(37)에게 영화 ‘극적인 하룻밤’의 언론 홍보물 마지막 페이지를 들이밀었다. ‘연애 갑/을 체크리스트’가 실려 있었다. 그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열 가지 항목을 들여다보더니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용기 내어 고백 못한 적 있다’, ‘고백은 맨 정신보다 술 먹고 난 다음이 편하다’, ‘상처받을까 두려워 사랑을 포기한 적 있다’에 브이 표시를 했다. 2~3개 체크는 ‘밀당도 필요해요. 연애 을 초기 증상 의심’으로 분류된다고 설명을 했더니 파안대소했다. “에이~좀 안 맞는 것 같은데요?” 3일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 ‘극적인 하룻밤’은 육체적 관계로 시작했다가 ‘진짜 사랑’에 빠지게 되는 두 남녀의 이야기다. 윤계상은 평소에 알고 지내던 의사 형에게 여자 친구를 빼앗기고 그 형에게 차인 시후(한예리)와 엮이게 되는 특수학교 기간제 체육교사 정훈 역을 맡았다. 호기롭게 전 여자친구의 결혼식장을 찾기도 하지만 속으로는 정말 마음 아파하는 소심한 캐릭터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을 정도로 수위가 높은 베드신도 등장한다. 윤계상은 자신의 20대 초반이 정훈이와 닮은 점이 많아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 걱정하느라, 또 자존심을 세우느라 사랑을 놓치고 나서 후회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그는 로맨틱 코미디를 찍는 게 생각보다 고통스럽다는 예상 밖의 말을 하기도 했다. “연애라는 감정 자체가 힘든 거잖아요. 좋아하고, 싫어하고, 썸 타고, 사랑하게 되고, 자게 되고?. 그러한 과정을 진짜처럼 믿게 만들어야 하죠. 철저하게 연기라고 생각은 하지만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갈수록 이게 맞는 건지 생각에 빠져들어요. 사람의 감정을 조절하며 표현해야 하는 배우라는 직업이 정말 보통 직업은 아닌 것 같아요.” ‘극적인 하룻밤’은 2009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도 인기가 식지 않고 있는 연극(2인극)이 원작이다. 윤계상은 원작을 직접 관람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연극에서 남자 주연을 맡았던 (유)정호와 절친이에요. 원작을 봐야 하는지 물어봤죠. 그랬더니 연극도 배우에 따라 애드리브를 비롯한 작품 분위기가 바뀌기 때문에 메시지만 갖고 가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라구요. 그래서 저만의 정훈을 만들기로 했죠.” 배우의 길을 걷게 된 지 만 10년. 이번 작품까지 모두 열 편의 영화를 찍었다. 국민그룹 지오디의 윤계상이었던 시간보다 배우 윤계상이었던 시간이 어느새 더 길어졌다. 배우가 됐다는 사실을 자각했던 것은 언제 쯤이었을까. 그는 용산 참사를 소재로 한 ‘소수의견’이 지난 6월 개봉했을 때를 꼽았다. VIP 시사회에서 기라성 같은 영화 감독들, 선배 배우들에게 좋았다, 괜찮았다, 흠잡을 곳이 없었다, 에너지가 잘 전달됐다는 칭찬을 받은 날이다. 그저 인사치레가 아닌 진심이 담긴 반응에 감격해 잘 못 마시는 술을 그날 엄청 먹었다고 한다. 같이 연기해보고 싶은 배우를 물었더니 정재영과 공효진을 꼽았다. “정재영 선배님이 나오는 작품은 모두 봤을 정도로 팬이에요. 선배의 연기에는 특유의 에너지가 있어 정말 좋아요. 효진이하고는 드라마 ‘최고의 사랑’을 함께했는데 영화도 같이해보고 싶어요. 제가 연기를 하면 할수록 정말 빼어난 배우라는 사실을 곱씹게 되는 친구죠.” 그동안 현실과 맞닿아 있는 캐릭터를 자주 연기했는데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충격적인 캐릭터도 맡아보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 악역이든, 외계인이든. 존재하지 않을 법한 캐릭터를 갖고 나와 관객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면 정말 짜릿하고 통쾌할 것 같다며 눈을 빛내는 윤계상이다. “이제야 연기를 조금 알 것 같아요. 음악에 비유하자면 도레미파솔라시도 정도를 안 보고 칠 수 있는 수준이랄까요. 악보를 보고 얼마나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느냐가 다음 순서일 것 같아요. 배우 윤계상은 이제 시작입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비틀스 따라하기’ 293명 참가 기네스 기록 경신

    기네스 강국 멕시코가 또 이색적인 도전에 성공했다. 멕시코가 도전장을 내민 부문은 비틀스 복장으로 최다 인원 모이기. 수도 멕시코시티의 차풀테펙 숲에서 최근 열린 행사에는 293명이 참가해 가볍게 기네스기록을 경신했다. 종전의 최고 기록은 250명이었다. 기네스 도전에 나이나 성별의 제한은 없었다. 비틀스로 분장하기가 유일한 조건이었다. 특히 복장에는 까다로운 조건을 달진 않았다. 비틀스의 상징적 복장을 입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했다. 하지만 비틀스 마니아들의 열성을 대단했다. 가발을 쓰고 콧수염까지 붙인 '짝퉁 비틀스'가 다수 행사에 참여했다. 대를 이어 가족과 함께 행사에 참여한 사람이 많은 것도 이번 행사의 특징. 세대를 뛰어넘는 비틀스의 인기가 행사에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엄마, 오빠, 조카 등과 함께 행사에 참여한 다니엘라 카스트로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할머니부터 조카에 이르기까지 전 가족이 비틀스의 열렬한 팬"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틀스와 관련된 기네스기록에 참여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면서 "개인적으로는 비틀스에게 존경을 표시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엄마와 함께 행사에 왔다는 마누엘라(20.여)는 "엄마 때문에 비틀스의 음악을 듣기 시작해 이젠 마니아가 됐다"면서 "비틀스에 대한 사랑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았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은 "이번 행사에는 유독 청년들이 많아 주최 측이 깜짝 놀랐다"면서 "어린아이까지 비틀스로 분장하고 온 가족이 참여한 경우도 많았다."고 보도했다. 한편 행사를 개최한 멕시코시티 관광국은 가볍게 기록을 갱신하자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행사를 개최한 멕시코시티 관광국은 "비틀스의 인기가 40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됐다"며 행사에 참여한 마니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멕시코시티는 참가자 수를 집계한 공증문서를 기네스에 제출해 정식으로 기네스 등재를 요청할 예정이다. 사진=멕시코유니비젼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월드스타 아델의 완벽한 ‘보디가드’ 연일 화제

    월드스타 아델의 완벽한 ‘보디가드’ 연일 화제

    ‘아델의 기적’, ‘현대의 팝뮤직 업계의 기적’ 등의 평가를 받고 있는 영국 싱어송라이터 아델이 3집 앨범 ‘25’를 발매한 뒤 그야말로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는 보디가드에게도 엄청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허핑턴포스트, 영국 데일리메일 등 해외 언론에 따르면 최근 아델의 공식‧비공식 일정을 빠짐없이 함께 소화하고 있는 새 보디가드는 피터 반 데어 빈(Peter Van der Veen)으로, 나이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그의 ‘화려한’ 이력이 속속 공개되면서, 아델 팬들 사이에서는 ‘아델이 보디가드를 지켜야 할 판’ 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인기가 급증하고 있다. 우선 그는 네덜란드에서 보디빌더로 활동했으며, 2005년에는 ‘미스터 유럽’에 선정됐을 정도로 탄탄한 몸매의 소유자다. 아델의 ‘호위무사’가 되기 전에는 팝계의 악동이라 불리는 레이디 가가의 보디가드로 5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짧게 자른 머리와 수트가 잘 어울리는 몸매, 남성미가 넘치는 외모 때문에 피터 반 데어 빈은 아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아델의 한 팬은 트위터에 “아델의 새 앨범을 매우 사랑하지만 그녀의 보디가드가 더 눈길을 사로잡는다”고, 또 다른 팬은 “내가 크리스마스에 원하는건 오로지 아델의 보디가드가 트리 아래에서 날 기다리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이와 비슷한 고백은 SNS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편 보디가드까지 인기선상에 올려놓은 아델의 신드롬은 식을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그녀의 3집 앨범 ‘25’는 지난 11월 20일 미국에서 발매된 지 일주일만에 미국 내 판매량만 338만 장을 넘어섰다. 미국의 인기 가수인 테일러 스위프트의 ‘1989’ 음반 판매량(180만 장)의 2배에 달하는 기록이다. 특히 이번 앨범이 스트리밍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음반판매 및 음원 다운로드로만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팝뮤직 업계는 이번 앨범의 성공을 더욱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EXID, ‘2016 시즌 그리팅’ 통해 5人 5色 매력발산

    EXID, ‘2016 시즌 그리팅’ 통해 5人 5色 매력발산

    걸그룹 EXID가 ‘2016 시즌 그리팅’ 패키지를 선보인다. 1일 예당 엔터테인먼트 측은 “ EXID의 공식 팬카페 및 페이스북 등 공식 SNS를 통해 ‘EXID 2016 시즌 그리팅 패키지’를 출시한다”고 밝혔다. 이번 ‘EXID 2016 시즌 그리팅’에는 EXID의 청순한 모습부터 남심을 흔드는 치명적인 모습까지, 각 계절에 따라 팔색조로 변하는 다섯 멤버들의 다양한 매력이 가득 담겨있다. 이에 대해 소속사 관계자는 “EXID의 2016 시즌 그리팅은 각각 탁상용 달력과 아이디어 노트, 엽서 세트로 구성되어 있고 특히 엽서 세트에는 팬들을 위한 멤버들의 미공개 사진도 포함돼 있어 더욱 특별한 선물이 될 것”이라며 "데뷔 이후 첫 발매되는 EXID의 시즌 그리팅이기 때문에 멤버들의 참여도가 높았고 곧 팬 사인회를 통해서도 팬들과 만날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이번 ‘EXID 2016 시즌 그리팅’은 1일 오후 3시부터 신나라, 교보문고, 핫트랙스, 카카오톡, 티스토어, 11번가, 위드드라마 에서 예약판매를 시작한다. 한편 최근 새 디지털 싱글 ‘HOT PINK’로 발매와 동시에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EXID는 지난달 21일 깜짝 게릴라 팬미팅을 개최, 팬들을 향한 남다른 사랑을 전하며 바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사진 = 예당 엔터테인먼트 제공]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동국도 최강희 감독도 4회째 수상 ´대박´

    프로축구 전북이 우승하면 감독상과 최우수선수(MVP)을 받는 공식을 재현했다. 여기에다 영플레이어상까지 주요 3개 부문을 모두 휩쓸어 잔칫상을 독식했다.     2015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을 2연패한 전북은 1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공격수 이동국(36)이 2009년과 2011년, 지난해에 이어 네 번째 MVP를 수상했다. 2009년 이동국을 영입해 호흡을 맞춘 최강희 감독도 이동국과 똑같은 해에 이어 올해 네 번째 감독상을 품에 안았다.     이동국은 신태용 올림픽대표팀 감독(1995년, 2001년)과의 격차를 2회로 늘렸고, 최 감독은 세 차례 수상한 박종환 전 성남 감독(1993∼95년)과 고(故) 차경복 전 성남 감독(2001∼03년)을 따돌리고 최다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동국은 팬들이 직접 뽑은 최고의 K리거, 2015 아디다스 팬(FAN)타스틱 플레이어로도 선정됐다. 역시 앞의 해와 똑같은 해에 이어 4회째 수상이다.     베스트 일레븐은 ▲골키퍼 권순태(전북) ▲수비수 홍철(수원) 요니치(인천) 김기희(전북) 차두리(서울) ▲미드필더 염기훈 권창훈(이상 수원) 이재성(전북) 송진형(제주) ▲공격수 이동국 아드리아노(서울)로 짜여졌다.   조성환 제주 감독은 베스트 일레븐 수비수 명단을 발표하며 “올해 모든 경기에 귤색 팬티를 입고 임했다. 내년에 우승하면 벗겠다”고 공약해 눈길을 끌었다. 차두리는 베스트 일레븐 수비수로 선정된 뒤 최용수 서울 감독에게 “용수형 이제 편안하게 봐요”라고 인사를 건네 좌중에 웃음을 안겼고, 슈틸리케 감독에게는 독일어로 “대표팀에서 다시 뛰게 하고 멋진 은퇴를 할 수 있게 해줬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동국은 베스트 일레븐 공격수를 수상하며 “득점왕인 김신욱(울산) 대신 이 상을 받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최강희 감독은 "이동국이 애가 다섯이고 국가에 충성했으니 MVP가 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며 “지방 구단의 한계를 뚫고 시즌 최다 관중을 동원한 것도 크게 기쁜 일이며 앞으로 더 발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사회자가 별명이 봉동이장인데 군수도 되고 자꾸 승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농을 건네자 “이장직에 만족한다. 한마디만 남길 수 있다면 ‘봉동이장 출세했다’라고 외치겠다”고 화답했다.     K리그 최초로 MVP를 2연패한 이동국은 “감독님의 예측이 빗나갈까봐 조마조마했다”고 진반농반으로 얘기한 뒤 “(가족이 출연하는 TV 예능 프로인) 슈퍼맨처럼 가족을 돌보고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이 모든 영광을 누리겠다”고 밝혔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레드벨벳, 팬사인회에서 실감한 대세 걸그룹 인기

    레드벨벳, 팬사인회에서 실감한 대세 걸그룹 인기

    프렌치 감성의 패션 브랜드 ‘블랙마틴싯봉(Black Martine Sitbon)’이 대세 걸그룹 레드벨벳과 함께 특별한 이벤트를 개최했다. 11월 28일(토) 잠실 롯데백화점 블랙마틴싯봉 매장에서 팬들과의 소중하고 뜻 깊은 만남인 팬사인회를 진행한 것. 지난 9월 레드벨벳은 블랙마틴싯봉의 뮤즈 발탁 후 세련되고 사랑스러운 화보를 공개하면서 팬들의 마음을 녹이며 폭발적인 사랑을 받아온 바 있다. 블랙마틴싯봉이 팬들과 고객들의 성원에 보답하고자 레드벨벳과 함께 특별히 마련한 이번 팬사인회는 주말을 맞아 매장을 찾은 고객들과 레드벨벳을 보기 위해 모인 많은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레드벨벳의 인기를 몸소 실감케 했다. 이날 블랙마틴싯봉 매장에 모습을 드러낸 레드벨벳은 입장과 동시에 팬들을 향해 연신 손을 흔드는가 하면, 사인회 틈틈히 팬들에게 환한 미소와 사랑스러운 팬서비스로 팬들을 감동시켰다. 특히, 이 날 진행된 팬 사인회는 레드벨벳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라는 것 뿐만 아니라, 당일 현장에서 추첨을 통해 레드벨벳의 친필 사인이 담긴 ‘DumbDumb(덤덤)’ 앨범 및 레드벨벳 화보 속 블랙마틴싯봉의 제품을 경품으로 증정해 팬들에게 전달해 더욱 특별했다. 한편, 레드벨벳이 뮤즈로 활약 중인 블랙마틴싯봉은 공식 홈페이지(www.blackmartinesitbon.com)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블랙마틴싯봉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소녀시대-태티서 팬사인회, 수많은 국내외 팬 사인회 현장 메워 인기 실감케 해

    소녀시대-태티서 팬사인회, 수많은 국내외 팬 사인회 현장 메워 인기 실감케 해

    프랑스 패션 브랜드 루이까또즈(회장 전용준, www.louisquatorze.com)가 브랜드 탄생 35주년 기념으로 개최한 브랜드 모델 소녀시태-태티서(태연, 티파니, 서현)의 팬사인회를 성황리에 마쳤다고 30일 밝혔다. 루이까또즈는 지난 27일 소녀시대-태티서와 함께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에서 팬사인회를 진행했다. 이날 행사는 오랜 기간 루이까또즈 브랜드를 사랑해준 고객들과 태티서의 팬들을 위해 진행됐다. 약 1시간 가량 진행된 이날 팬사인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태티서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특히 한류스타 입지를 증명하듯 많은 외국인 관광객까지 태티서를 보기 위해 현장을 메웠다. 루이까또즈는 지난 23일부터 27일까지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루이까또즈 매장 구매 고객을 대상으로 선착순 100명에게 팬사인회 초대권을 증정했다. 또한 행사 당일 구매 고객 대상으로 추첨으로 3명에게 ‘메탈릭 벌룬백’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이날 태티서는 팬사인회를 찾은 많은 팬들에게 밝은 미소와 함께, 정성스럽게 사인을 진행했다. 또한 소녀시대-태티서는 각자 다른 스타일의 루이까또즈 핸드백을 매치한 스타일링을 선보이며, 패셔니스타로서의 면모를 뽐냈다. 한편 루이까또즈는 브랜드 탄생 35주년을 맞아 지난 10월 중국 상하이와 프랑스 파리에서 각각 기념 행사를 진행했으며, 고객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다양한 쇼핑 혜택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조선조 500년 ‘최고의 사랑’ - ‘묏버들 시인’ 홍랑의 사랑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조선조 500년 ‘최고의 사랑’ - ‘묏버들 시인’ 홍랑의 사랑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위의 시는 우리의 가난한 시인 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의 첫 연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때, 위의 시처럼 ‘서러운 사랑’ 이야기 하나를 따라가보기로 하자. 하지만 마냥 서럽기만 한 사랑은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조선조 500년 ‘최고의 사랑’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역사상 가장 긴 배웅길 주인공은 좀 상투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벼슬아치와 기생이다. 선조 6년(1573년) 가을 어느 날, 저 함경도 땅 홍원에서 처음 만난 순간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엮여지게 되었는데, 남자는 문관 출신 시인인 최경창(崔慶昌), 여자는 홍원 관아 기생인 홍랑(洪娘)이다. 그때 홍랑은 나이 열 예닐곱의 갓 피어나는 처녀 몸이었지만, 고죽(孤竹) 최경창은 그보다 17, 8살이나 많은 34살의 중년이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나이차를 가볍게 뛰어넘게 해주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시(詩)와 음악이었다. 29살인 선조 원년(1568년)에 문과에 급제한 최경창은 당대의 문인 이율곡, 정철, 이산해, 양사언 등과 어깨를 나란히 교유하며 시와 문장으로 문명을 떨치고 있었다. 그의 청절하고 담백한 시풍은 멀리 중국에까지 알려졌을 정도였다. 또 고죽은 피리의 고수였고, 홍랑 또한 거문고 연주가 최고수준의 기량이어서, 둘이 음률을 즐기며 시와 술잔을 주거니받거니 하다 보니, 고죽은 이래저래 홍랑에게 대책없이 빠져들고 말았다. 그럼 과연 홍랑은 어떤 기녀였던가, 그 내력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자. 야사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홍랑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마저 열두어 살 무렵에 잃었다. 말하자면 고아가 된 것이다. 그녀를 거두어준 것은 어머니의 병을 돌봐준 마을의 의원으로, 홍랑은 그로부터 글을 배웠다. 나이가 들면서 홍랑은 시와 음률을 가까이하게 되었고, 타고난 미모와 영특함으로 꽃다운 규수로 성장했다. 그러나 가난을 떨칠 수가 없어 기적에 몸을 올리고 홍원 관아에서 지냈다. 최경창이 홍랑을 만난 곳은 임지인 경성으로 가던 중 하룻밤 묵었던 함경도 홍원 관아였다. 당시 경성은 함경도 북부에 웅거하던 여진족들이 자주 출몰하던 곳으로, 말하자면 최전방 지역이었다. 병마절도사가 주재하는 경성도호부에 고죽 같은 문신을 북평사(北評事)로 보내는 것은 무관 출신인 병마절도사를 보좌하기 위함이었다. 홍원 객사에서 하룻밤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은 고죽과 홍랑은 경성으로 가는 길에는 동행하지 못한다. 부임지에 가면서 댓바람에 관기를 데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후 두 사람은 경성의 군막에서 다시 만난다. 우리는 여기서 홍랑의 다릿심을 처음으로 보게 된다. 홍원과 경성은 굽이굽이 험한 산길로 이어지는 천릿길이다. 서울-부산 간 거리와 맞먹는 셈이다. 오로지 사랑하는 낭군을 만나기 위해 홍랑은 남장을 한 몸으로 이 멀고도 험한 길을 주파했던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막중(幕中)에서 두 사람이 마주 섰을 때, 그 감동과 애틋함이 어땠을 것인가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 꿈은 반년을 넘기지 못했다. 선조 7년(1574년)인 이듬해 봄, 고죽이 경성에 부임한 지 6개월 만에 조정의 부름을 받아 한양으로 돌아가야 했다. 경성에서 한양까지는 경흥대로를 따라가는 2천릿길이다. 홍랑은 차마 헤어지기 싫어서 배웅을 나선다. 문 밖 배웅 정도가 아니라,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고 따라 나선 길이 천릿길 홍원을 지나고, 함관령(함흥-홍원 간 고개) 넘어 쌍성(영흥)에까지 이르렀는데, 출발지인 경성에서 무려 1,300리 길이었다. 역사상 최장의 배웅길이 아닐까 싶다. (기네스북에 알려야 한다.) 하지만 다릿심 좋은 홍랑도 여기서는 더이상 갈 수가 없다. 가고 싶어도 못 간다. 나라에서 법으로 금지해놓은 것이다. 이른바 양계(兩界/평안도·함경도)의 금(禁)으로, 두 도의 백성들은 도계를 넘어 남쪽으로 올 수 없었다. 오랑캐의 침입이 잦아 빠져나가는 인구를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관북이 무인지경이 될 것을 염려한 때문이다. 최고의 걸작 시조 ‘묏버들’ 두 사람은 쌍성 고갯마루에서 작별을 고했다. 때는 봄절이어서 골짜기마다 빛 고운 진달래가 무리지어 피어 있다. (이 길은 한 40년 후 백사 이항복이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를 읊으며 귀양간 길이기도 하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하염없이 걷다 보니 함관령 고갯마루다. 날이 저물고 차가운 빗발까지 뿌린다. 홍랑은 발길을 멈추고 길가의 산버들을 몇 가지 꺾었다. 그리고 지필묵을 펼쳐 시조 한 수를 적어내려갔다. 고죽은 자신의 일기에다 함관령의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나와 이별한 뒤, 홍랑이 함관령에 이르렀을 때 날이 저물고 비가 내렸다. 이곳에서 홍랑이 내게 시를 한 수 지어 보냈다”. 이 시조가 바로 유명한 ‘묏버들’ 시조다. 한국문학사상 이보다 아름다운 연시는 없을 것이다. 묏버들 갈해^ 꺾어 보내노라 님의손대^자시는 창 밖에 심거두고 보소서밤비에 새잎곳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갈해/가려 ^님의손대/님에게로) 예전엔 이 시조 역시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국문학자 양주동 박사는 이 시조를 두고 우리 시조사상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했고, 작가 이태준은 “그 뜻의 그윽함과 소리의 매끄럽고도 사각거림이 묘미”라고 극찬했다. 여기에 ‘사각거림’이라고 표현한 것은 시 전편에 ‘ㄱ‘ 음이 반복적으로 나타나 읽는 맛을 더해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버들가지는 옛사람들이 친구나 정인과 이별할 때 꺾어주던 정표이다. 봄에 가장 잎이 빨리 피는 버들가지처럼 빨리 돌아오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홍랑은 묏버들 몇 가지와 이 시조를 보자기에 정성껏 여며 인편으로 고죽에게 보냈다. 고죽은 이것을 받아들고 위와 같은 일기 기록을 남긴 외에도 이 시조의 한역가 ‘번방곡(飜方曲)’을 지었는데, ‘번방’이란 즉석 번역이란 뜻이다. 가람 이병기 시인은 두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다. “이는 그 원가(原歌)가 ‘번방곡’이란 한시보다도 낫게 되었다. 간곡하고 심절한 그 석별의 뜻이 언사에 넘친다. 종래 시가에도 증절류(贈折柳)와 같은 것이 없지 않으나, 이것은 그런 걸 그대로 답습한 것이 아니고, 새로운 한 작품이다. 우수한 것이다. 한 보배이다.” 두 사람은 그후 한 3년간은 서로 만나지 못한 듯하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고 하지만, 그건 요샛말이고, 당시에는 국법으로 도계(道界)도 넘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홍랑의 사랑은 그것마저 넘었다. 한성으로 간 뒤 시름시름 앓던 고죽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자 홍랑은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길을 나섰다. 홍원에서 한성까지는 함관령을 넘고 나서도 천릿길이다. 이 먼 길을 홍랑은 놀라운 다릿심으로 이레 동안 밤낮으로 걸어 마침내 한양에 들어왔다(이것도 기네스북에 오를 기록감이다). 그리고 그리운 고죽을 만났다. 실로 3년 만의 재회였다. 그러나 뼈밖에 남지 않은 고죽은 홍랑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이때부터 홍랑의 눈물겨운 병수발이 시작되었다. 거의 식음을 전폐하고 잠도 자지 않는 필사의 간병이었다. 옆에서 보는 고죽의 본부인도 그 부모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눈물겨운 정성이었다. 그 정성이 통했는지 고죽은 이윽고 건강을 회복하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나 최경창이 건강을 되찾은 기쁨도 오래 가지 못했다. 선조 9년 봄, 사헌부는 최경창의 파직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 홍랑이 관기의 신분으로 지역을 이탈하여 양계의 금을 어겼다는 것이다. 더욱이 홍랑이 최경창을 찾아온 때는 명종의 비 인순왕후가 죽은 지 1년이 안된 국상기간이었다. 선조는 사실 고죽의 팬이었다. 그의 시를 무척 사랑했던 것이다. 그러나 명분을 버리면서 고죽을 감쌀 수는 없었다. 결국 최경창은 파직을 당했고, 홍랑도 다시 고죽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홍랑이 떠나던 날 고죽은 이별의 시 두 편과 ’번방곡‘을 홍랑 손에 건네주었다. 시로 맺어졌던 두 사람이 아니었던가. 고죽이 이별 선물로 건넨 ’송별‘이란 제목의 칠언절구는 다음과 같다. 고운 두 뺨에 눈물지으며 봉성을 나서네새벽 꾀꼬리도 이별이 서러워 그리 우는가비단옷에 말 타고 강 건너 떠나갈 제풀빛만 아득히 외로운 나그네 전송하리  홍랑의 ’묏버들‘ 시조 육필 서첩 발견​ 최경창은 파직당한 얼마 후 복직되어 함경도 종성 부사 등 변방의 한직으로 오래 떠돌았다. 홍랑을 한성으로 불러들일 수 없는 고죽으로서 외직을 자청한 측면도 있었다고 한다. 둘 사이에는 그 동안 연면한 교류가 이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선조 16년(1583년) 봄, 고죽은 경성절도사로 근무하다가 성균관 직강으로 발령받아 한양으로 돌아오던 중 지금의 왕십리 부근에서 객사하고 말았다. 그때 나이 겨우 마흔 다섯이었다. 멀리 함경도 홍원 땅에서 고죽의 부음을 들은 홍랑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다시 길을 나섰다. 객사를 한 만큼 무덤 돌볼 사람이 마땅히 없어 고죽이 홀로 외로이 있을 것을 생각하니 잠시도 지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원래 시묘살이는 움집에서 생활하며 조석으로 상식 올리기를 3년 동안 하는 것이지만, 너무나 힘들어 기한을 지키는 예가 많지 않았다. 대개는 석 달 정도 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파주 한강 옆 고죽의 무덤 곁에 움집을 짓고 시작한 홍랑의 시묘살이는 한강의 매운 바람 속에서 장장 9년이나 계속되었다. 그것은 시묘살이라기보다 숫제 고인과의 동거였다. 세상 무엇으로부터도, 누구로부터도 방해받지 않는. 홍랑은 시묘살이를 하는 중에 혹시 불측한 일이 일어날까 하여 스스로 ’용모를 흐트렸다‘고 한다. 어떤 자료에는 인두로 얼굴을 지졌다고도 하는데, 실상은 잘 알 수 없다. 기나긴 홍랑의 시묘살이를 마감시킨 것은 다름아닌 임진왜란이었다. 최경창이 남긴 시 원고와 유품을 챙겨든 홍랑은 다시 함경도 홍원 땅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전쟁이 끝나기까지의 7년 동안 그녀의 행적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고죽의 시와 문장이 담긴 '고죽집'(孤竹集)이 전해지게 된 것은 오로지 남편의 유고를 생명처럼 아낀 홍랑 덕분인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홍랑은 해주 최씨 문중을 찾아와 최경창의 유작을 전했다. 그리고 자신의 소임을 다한 듯, 고죽의 무덤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멀고 먼 고행으로 이어졌던 고단한 삶을 마감했다. 그녀의 마지막 유언은 자기를 남편 곁에다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임진왜란이 1598년 11월에 끝났으니, 홍랑의 기질로 보아 아마 그 이듬해 봄을 맞아 고죽에게로 떠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그때 홍랑의 나이 마흔 두셋 정도로, 고죽이 떠난 지 16년째의 봄이다. 자신의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 고난과 고행으로 점철되었던 홍랑의 삶은 그렇게 마침표가 찍어졌으리라. 홍랑이 죽자 해주 최씨 문중은 그녀를 집안 사람으로 받아들여 장례를 지냈다. 최씨 문중에서는 홍랑을 작은마님이라고 불렀다 한다. 홍랑의 무덤은 최경창 부부의 합장묘 바로 아래 자리잡게 되었다. 현재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해주 최씨의 문중 산에 고죽의 묘소와 홍랑의 무덤이 있다. 홍랑과 고죽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있어 그 후손이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음이 얼마 전에 밝혀졌다. 그리고 또 지난 2000년에는 홍랑과 고죽의 연시가 수록된 11쪽짜리 서첩이 발견됐다. 이 서첩엔 홍랑의 ‘묏버들’ 원본과, 고죽이 홍랑과 헤어지면서 써준 고죽 육필의 ‘송별’ 등 한시 두 편이 실려 있다. 단아한 글씨의 ‘묏버들’은 홍랑의 친필로 밝혀졌다. 이 서첩을 보고 가람 이병기 시인이 감상기를 적어넣은 발문도 함께 공개됐다. 그 멀고 먼 길을 걸었던 홍랑의 고단한 여정은 그녀가 10년 세월을 보냈던 파주 다율리 산자락에서 마침표를 찍었지만, 그녀의 무덤자리를 찾는 후세인들의 발걸음은 아직까지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모양이다. 홍랑시비도 지난 1981년 무덤을 찾아온 시인들의 손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어느 해 여름이던가, 홍랑 묘를 찾았을 때, 보라색 무릇꽃으로 둘러싸인 그녀의 무덤 앞에 ‘시인 홍랑지묘’라고 새겨진 오석 빗돌이 서 있고, 앞쪽의 아담한 시비에는 홍랑의 ‘묏버들’과 고죽의 번방곡’이 앞뒤로 새겨져 있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400년도 더 지난 지금에까지, 묏버들 피는 봄을 지나 무릇꽃 흔들리는 산자락에서 하나의 아름다운 완결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흥행 역주행 넘보는 ‘이터널 선샤인’

    흥행 역주행 넘보는 ‘이터널 선샤인’

    판타지 멜로 ‘이터널 선샤인’이 국내 재개봉 영화사를 다시 쓸 채비를 하고 있다. 재개봉 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관객 10만명을 돌파하며 상영관을 늘리고 있는 것이다. 15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지난 5일 재개봉한 이 영화를 본 관객은 전날까지 12만 2497명이다. 지난 13일 10만명을 넘어선 데 이어 주말인 14일 하루에만 1만 8609명이 관람하는 등 관객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재개봉 당일 신작 틈을 비집고 일일 박스오피스에서 8위를 차지했던 ‘이터널 선샤인’은 뒷심을 발휘하며 13일에는 3위까지 치솟기도 했다. 다양성 영화 박스오피스에서는 줄곧 1위다. 개봉 2주차에 접어들며 상영관도 58개에서 67개로 늘어났다. 2005년 국내 첫 개봉 당시 기록했던 17만명을 뛰어넘는 ‘역주행’도 기정사실이 돼 가고 있다. ‘이터널 선샤인’은 지난 5월 재개봉해 5만 6000여명의 관객을 모은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따돌리고 재개봉 흥행 역대 2위를 꿰찼으며 1위인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쫓고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올해 2월 신작 못지않은 수준인 300여개 스크린을 통해 재개봉해 15만여명을 끌어모았다. ‘이터널 선샤인’의 홍보를 맡은 올댓시네마 김태주 실장은 “10년 전 개봉 당시에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이후 인생의 영화로 꼽는 관객들이 많았고, 그러한 입소문이 쌓여 온 작품”이라며 “요즘 작품과 견줘도 뒤지지 않는 완성도와 현재 개봉작 중 이렇다 할 감성적인 영화가 없다는 점도 흥행에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터널 선샤인’은 헤어진 연인의 기억을 지워 갈수록 더욱 깊어지는 사랑을 느끼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마니아 팬층을 거느린 미셸 공드리 감독의 대표작이다. 사랑에 대한 통찰과 유려한 영상, 아름다운 음악이 돋보인다. 짐 캐리, 케이트 윈즐릿, 커스틴 던스트, 마크 러팔로, 일라이저 우드의 연기도 매력적이다. 영국 가디언지가 선정한 ‘역사상 최고의 로맨스’에 선정되기도 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김동률 교수의 1980’s 청춘의 재발견] (3) 한국영화와 극장가

    [김동률 교수의 1980’s 청춘의 재발견] (3) 한국영화와 극장가

    “안인숙 예쁜 젖꼭지 본 사람, 손들어 봐.” 까까머리 십대 시절 국어 시간, 선생님이 느닷없이 던진 질문이었다. 순간 교실안은 와 웃음이 터졌다. 잠시 후 선생님이 “아니 ‘별들의 고향’ 정도는 형님 옷이라도 입고 봐야지” 하고 넘어갔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랬다.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를 보러 갔다가 학생 주임 선생에게 귓바퀴를 잡힌 채 끌려 나오던 그 시절 선생님의 충격적인 말씀에 여주인공 안인숙의 중요 부위는 보질 못했지만 어쨌든 그 영화가 대단한 영화라는 것은 확실하게 알았다. 그러나 정작 영화는 극장에선 보지 못하고 스무 살이 넘어 어찌어찌해서 비디오로 본 기억만 남아 있다. 1970~80년대 비록 초라했지만 한국 영화가 우리 곁에 있었다. 그때는 한국 영화를 방화라고 했다. 할리우드에 비해 변방에 있다는 의미로 유추된다. 한국 영화에 대해 자존감이 없음을 상징하는 말쯤으로 보면 되겠다. 그래서 영화인들은 언제쯤 한국 영화도 방화가 아닌 영화가 되는 날이 올까 하는 자괴감 속에 살았다. 하지만 그런 방화도 80년대 청춘에게는 단연 인기였다. 컴퓨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해외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던 곤고했던 시절, 영화는 당연히 그 시절 청춘들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우리는 극장에 입장하려고 일부러 부모님의 옷을 입거나 세탁소에서 빌려 입은 옷으로 극장을 찾았다. 그 시절 선생님은 시도 때도 없이 하필이면 애꿎은 귓바퀴를 잡고 끌어당겼을까. 지금도 의문이다. 70년대를 상징하는 영화가 앞서 예를 든 ‘별들의 고향’이라면 80년대를 관통하는 영화로는 ‘겨울 나그네’가 있다. 슈베르트 연가곡 ‘겨울 나그네’를 연상케 하는 이 영화는 대중작가 최인호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아직은 젊었던 안성기, 풋사과 같았던 강석우, 이미숙이 주인공이다. 자학하던 80년대 청춘들은 영화에 열광했으며 시국 상황을 잊고 잠시나마 달콤한 연애를 꿈꾸기도 한다. 그렇고 그런 주제이지만 잘 버무려진 영화였다. 개봉 당시 ‘겨울 나그네’는 시대를 반영하는 아이콘으로 일약 부상했고, 80년대 서울 거리에는 ‘겨울 나그네’와 ‘보리수’란 이름의 다방과 빵집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다. ‘겨울 나그네’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보리수’ 같은 독일 리트(가곡)들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그뿐인가. 영화 속에서 첼로를 들고 가던 이미숙이 강석우와 부딪쳤던 연세대 교정과 강석우가 바래다주고 쓸쓸하게 돌아가던 세브란스병원 언덕 위의 하얀 대리석 돌집은 그 시절 청춘들이 한 번쯤 찾아보던 명소가 된다. 70, 80년대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끈 영화는 대개 신문 연재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문이 배달되면 연재소설부터 일단 읽은 뒤 1면, 사회면을 펼쳐 보곤 했다. ‘겨울 나그네’ 역시 신문 연재소설이 바탕이다. 이십대 내가 가장 떨리는 가슴으로 읽은 소설이었다. 1984년 어느 일간지에 연재된 소설은 당시 대학에 다니던 나와 주인공들의 세대가 맞물리면서 묘한 동질감을 안겨 주었다. 우울했던 80년대 중반 늦은 밤 하숙집 길목 가판에 있던 신문을 사들고 읽노라면 나의 고통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아 흠뻑 빠져들었다. 살벌했던 시대 휘둘린 청춘 남녀의 사랑을 그린 소설은 보도블록을 깨어 던지거나, 겁에 질린 눈빛으로 주위을 둘러보던 그 시대와는 정말 무관한 얘기들이었다. 사회면을 장식했던 핏빛 활자들을 보란 듯이 무시한 소설은 나를 현실과 전혀 다른 달콤한 세계로 밀어 넣었다. ‘오직 한 가닥 타는 가슴 속 / 목마름의 기억으로 / 남몰래 고민하던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함’도 소설을 읽는 순간만큼은 잊었다. 실제로 최인호의 소설에서 시대정신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험악했던 80년대 현실의 모순을 문학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점도 이해가 가지만 시대의 아픔을 찾아보기 어려운 그의 글들이 몹시 서운했다. 그의 글을 열정적으로 읽으면서도 그 시절 청년이었던 나는 점차 불편해져 갔다. 그럼에도 그는 80년대 청춘의 상징이 됐고 소설로, 영화로, 우리 기쁜 젊은 날을 사로잡았던 작가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처럼 80년대의 가난했던 청춘들은 가장 싸게 치이는 극장 데이트와 함께했다. 종로 3가 단성사와 피카디리, 광화문 네거리의 국제극장, 명동 입구의 중앙극장과 충무로 명보극장, 스카라극장, 퇴계로의 대한극장, 낙원상가 허리우드 극장, 을지로의 국도극장은 그 시절 젊음들이 순례하듯 찾던 공간이었다. 그 공간에서 닥터 지바고를, 벤허를,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며 저마다의 사랑을 꿈꿨다. 소피 마르소, 브룩 실즈, 피비 케이츠 책받침이 등장하는 시기도 이때쯤이다. 이제는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재개봉관이 도심 구석구석에 있었고, 낡은 필름이 돌아가는 스크린에는 맑은 날에도 늘 비가 내리곤 했다. 강의 없는 날을 이용해 단골로 들락거렸던, 시인 기형도가 숨진 종로의 파고다극장, YMCA 뒤편의 우미관 등등이 그 주인공이다.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단단한 조가비’란 의미심장한 영화 제목이 내걸린 이대 입구 인근 대흥극장도 단골이었다. 지금은 상상조차 어렵지만 80년대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담배 연기가 자욱한 극장은 낯설지 않았다. 비까지 내리는 스크린은 뿌연 담배 연기로 인해 더욱 흐릿하게 보였다. 지금은 역사가 돼 버렸지만 본영화 상영 전에 꼭 봐야만 했던 대한뉴스도 빼놓을 수 없다. 재개봉관의 경우 술을 마신 관객들 덕분에 코고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추운 겨울날 난방이 잘 되지 않은 극장에서 시린 발을 동동 구르며 영화를 보고 또 옆자리의 여자 친구 손을 가만히 훔쳐 잡았다. 난방과 냉방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극장. 그런데도 영화 팬들은 그러려니 하고 극장을 찾았다. 요즘에는 복합 영화관이 대세다. 한 극장에서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상영된다. 그러나 80년대만 해도 한 극장에서 딱 한 영화만 상영됐다. 유명 영화는 긴 줄이 기본이다. 대박 난 극장에서는 먼저 온 남학생들이 긴 줄 속에서 구운 땅콩 봉지를 들고 여자 친구를 기다리는 풍경도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대한뉴스도, 그 많던 정들었던 극장들도 더이상 우리 곁에 없다. 80년대 젊음은 극장과 함께 사라졌다. 그런 80년대의 풍경이 지금의 윤제균, 박찬욱, 봉준호와 같은 세계 정상급의 작가가 탄생하는 자양분이 되지 않았을까. 80년대 청춘의 표상이었던 영화 ‘겨울 나그네’의 곽지균 감독은 4년 전 연탄불을 피워 놓고 자살했다. 영화를 보고 열광했던 80년대 젊음을 보낸 지금의 중년들은 그의 자살로 한 시대가 완전히 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특히 생활고로 인해 저세상으로 떠났다는 소식에 우리는 동병상련의 망연자실한 심정이 된다. 그는 “자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구절을 유서에 남겼다고 한다. 힘들고 지친 나머지 아름답고 아늑한 숲에서 쉬고 싶어도 지켜야 할 약속과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고 강조한 프로스트의 시, 풍운의 정치인 김종필(JP)이 자주 인용해 널리 알려진 구절이다. 그가 지켜야 할 약속은 무엇이고 아직 남아 있는 길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11월 여기저기에서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김동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
  • [월드피플+] “울퉁불퉁 내 뱃살을 사랑해” 거식증 극복 여성의 SNS ‘자랑’ 사연

    [월드피플+] “울퉁불퉁 내 뱃살을 사랑해” 거식증 극복 여성의 SNS ‘자랑’ 사연

    심각한 거식증으로 인해 몸무게가 겨우 28㎏에 불과할 정도로 말랐었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통통한 몸매를 끊임없이 ‘자랑’하고 있는 한 영국 여성의 이야기가 대중의 귀감이 되고 있다. 올해 22세인 메건 제인은 무려 5살 때부터 신체상(身體像, 자기 신체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에 관련된 정신적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즉 자기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추하게 인식했던 것. 이 때문에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제인은 의자에 앉을 때면 그녀의 접힌 뱃살을 누군가 볼까 두려워했고, 자신의 몸매를 끊임없이 다른 여자아이들과 비교하곤 했다. 이러한 증세는 성장하며 더욱 심해졌고 14세에는 결국 ‘신경성 식욕부진증’을 진단받기에 이른다.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섭식장애의 일종으로 지속적인 체중감량 시도, 음식·체중에 대한 부적절한 집착, 살이 찌는 것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 등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섭식장애 치료를 위해 그녀는 청소년 정신 치료소에 들어갔으나 차도를 보지 못했고 결국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의사들은 그녀가 죽을 위기에 처했다며 튜브를 통해 영양분을 섭취하고 침대에 누워 쉬면서 지낼 것을 지시했다. 이즈음 그녀의 몸무게는 28㎏에 불과했다. 이렇게 약 2년에 걸쳐서 더디게 회복되던 그녀는 16세가 된 어느 날 갑작스러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녀는 “갑자기 이 질병에 내 삶을 너무 많이 빼앗겼다는 생각과 동시에 순수한 분노가 찾아왔다”며 “인생을 되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당시를 설명한다. 그렇게 제인은 전에 하지 않던 폭식을 시작했고 겨우 1년 만에 기존의 세 배에 이르는 몸무게를 가지게 됐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행복하지 않았다. 굶던 습관을 간헐적인 폭식 습관으로 대체했을 뿐,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는 이후로 5년 동안 단식과 폭식을 반복하고 과도한 운동을 하며 자신의 몸매에 집착하며 살았다. 그런 그녀에게 두 번째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온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당시 SNS에서 ‘다이어트 의욕 생기는 사진’(Fitspiration)을 찾고 있던 그녀는 우연히 자신이 찾던 것과 정 반대되는 이미지들을 발견한 것. 문제의 사진을 올린 여성은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ity)를 실천하고 있었다. 여기에 큰 감명을 받은 제인은 유사한 사진을 SNS에 업로드하며 스스로도 ‘자기 몸 사랑’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온라인상에서 그런 그녀를 따르는 ‘팬’은 현재 약 4만 명에 이른다. 제인은 이러한 여성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것을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녀는 “내게 비록 가끔 조롱의 말을 남기는 네티즌들도 있지만, 자기 긍정의 정신을 전파해서 누군가를 돕고 있다는 기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고 전한다. 그녀는 이어 “영화나 잡지 속에 드러나는 말도 안되는 미적 기준을 충족하는 것은 행복의 필수요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거식증 등) 많은 문제를 겪은 나 같은 사람도 자기 몸을 사랑할 수 있다면 누구든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거식증 극복女의 SNS ‘뱃살 자랑’ 화제

    거식증 극복女의 SNS ‘뱃살 자랑’ 화제

    심각한 거식증으로 인해 몸무게가 겨우 28㎏에 불과할 정도로 말랐었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통통한 몸매를 끊임없이 ‘자랑’하고 있는 한 영국 여성의 이야기가 대중의 귀감이 되고 있다. 올해 22세인 메건 제인은 무려 5살 때부터 신체상(身體像, 자기 신체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에 관련된 정신적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즉 자기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추하게 인식했던 것. 이 때문에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제인은 의자에 앉을 때면 그녀의 접힌 뱃살을 누군가 볼까 두려워했고, 자신의 몸매를 끊임없이 다른 여자아이들과 비교하곤 했다. 이러한 증세는 성장하며 더욱 심해졌고 14세에는 결국 ‘신경성 식욕부진증’을 진단받기에 이른다.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섭식장애의 일종으로 지속적인 체중감량 시도, 음식·체중에 대한 부적절한 집착, 살이 찌는 것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 등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섭식장애 치료를 위해 그녀는 청소년 정신 치료소에 들어갔으나 차도를 보지 못했고 결국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의사들은 그녀가 죽을 위기에 처했다며 튜브를 통해 영양분을 섭취하고 침대에 누워 쉬면서 지낼 것을 지시했다. 이즈음 그녀의 몸무게는 28㎏에 불과했다. 이렇게 약 2년에 걸쳐서 더디게 회복되던 그녀는 16세가 된 어느 날 갑작스러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녀는 “갑자기 이 질병에 내 삶을 너무 많이 빼앗겼다는 생각과 동시에 순수한 분노가 찾아왔다”며 “인생을 되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당시를 설명한다. 그렇게 제인은 전에 하지 않던 폭식을 시작했고 겨우 1년 만에 기존의 세 배에 이르는 몸무게를 가지게 됐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행복하지 않았다. 굶던 습관을 간헐적인 폭식 습관으로 대체했을 뿐,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는 이후로 5년 동안 단식과 폭식을 반복하고 과도한 운동을 하며 자신의 몸매에 집착하며 살았다. 그런 그녀에게 두 번째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온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당시 SNS에서 ‘다이어트 의욕 생기는 사진’(Fitspiration)을 찾고 있던 그녀는 우연히 자신이 찾던 것과 정 반대되는 이미지들을 발견한 것. 문제의 사진을 올린 여성은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ity)를 실천하고 있었다. 여기에 큰 감명을 받은 제인은 유사한 사진을 SNS에 업로드하며 스스로도 ‘자기 몸 사랑’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온라인상에서 그런 그녀를 따르는 ‘팬’은 현재 약 4만 명에 이른다. 제인은 이러한 여성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것을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녀는 “내게 비록 가끔 조롱의 말을 남기는 네티즌들도 있지만, 자기 긍정의 정신을 전파해서 누군가를 돕고 있다는 기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고 전한다. 그녀는 이어 “영화나 잡지 속에 드러나는 말도 안되는 미적 기준을 충족하는 것은 행복의 필수요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거식증 등) 많은 문제를 겪은 나 같은 사람도 자기 몸을 사랑할 수 있다면 누구든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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