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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태지’ 왜 대중은 그를 잊지 못할까?

    ‘서태지’ 왜 대중은 그를 잊지 못할까?

    ‘문화 대통령’ 서태지가 돌아왔다. 실로 ‘왕의 귀환’이다. 서태지는 8집 앨범의 첫번째 싱글 ‘SEOTAIJI 8TH ATOMOS PART MOAI’(이하 모아이)를 29일 공개했다. 그의 이번 싱글은 7집 정규앨범 이후 4년 6개월 만에 나온 신작으로 초도 물량 10만장이 매진되는 쾌거를 기록했다. 불황의 한국 음반 시장에서 정규앨범이 아닌 싱글이 10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것은 실로 기록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서태지의 음반 발매일 풍경 또한 각별했다. 그의 음반을 기다린 팬들은 발매일 아침 음반 매장 앞을 지켰으며 오후까지 그 행렬은 계속 됐다. 일본 등 해외에서 유명 아티스트의 음반 구입을 위해 줄을 서는 사례는 있었지만 디지털 음원으로 재편된 한국 음반시장에서 음반을 사기 위해 줄을 선다는 것은 실로 고무적인 일이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1992년 데뷔,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요계의 아이콘 서태지’, 왜 팬들은 이토록 그에게 환호를 보내는 것일까? # 진정한 트랜드 세터 21세기 한국 가요계에서 시대를 이끌어가는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일부 여성 가수들이 ‘패션 아이콘’ 등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 평가를 받고 있을 뿐, 음악으로 평가 받는 아티스트는 사라진 실정이다. 서태지는 데뷔곡 ‘난 알아요’로 당시 발라드, 댄스, 전통가요 일색이던 한국 가요계에 일대 광풍을 불러일으켰다. 언더그라운드에 머물던 메탈을 수면위로 올렸으며 국내에 생소했던 랩 또한 그랬다. 갱스터랩, 뉴메탈, 핌프락, 하드코어 등 서태지가 부르면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장르로 부상했으며 수 많은 가수들이 그의 음악과 방향을 같이 했다. 서태지는 ‘컴백홈’과 ‘발해를 꿈꾸며’를 통해 당시 대중가수들이 감히 할 수 없었던 시대비판을 시도 했으며, 그 파급효과는 실로 거대 했다. 심지어 수많은 후배가수들이 서태지를 시초로 시대 비판적인 가사를 담은 음악을 만들어 낼 만큼 한국 가요계에서 서태지는 ‘트랜드 세터’적인 존재였다. # ‘음악인’ 서태지 서태지의 등장은 ‘음반 기획자’ 중심으로 움직이던 한국 가요계를 ‘음악인’ 중심으로 재구성 시켰다. 서태지는 전곡을 직접 작사, 작곡, 프로듀싱 하는 작업 체계를 갖추었으며 솔로 활동으로 전향 후에는 일체의 방송활동을 배제한 체 음반 제작과 라이브 공연 만으로 자신의 음악을 알리고 있다. 이번 8집 첫 번째 싱글인 ‘모아이’ 수록곡 4곡 모두 서태지가 직접 전곡을 작사, 작곡하고 프로듀싱했다. 유명 아티스트와 작곡가, 프로듀서가 분업환경을 이루고 있는 한국 가요계에서 보기 드문 형식의 음반이다. 서태지의 8집 활동 또한 MBC 컴백스페셜 ‘북공고 1학년 1반 25번 서태지’이후 ‘ETPFEST 2008’등 라이브 공연을 통해서만 팬들을 만날 계획이다. 일체 음반 홍보를 위한 방송 활동은 배제한 서태지만이 할 수 있는 음반 활동인 것이다. # 서태지만의 적절한 ‘신비주의’ ‘신비주의’를 표방한 수 많은 가수들이 서태지 이후에도 등장했지만 ‘홍보’ 차원에서 신비주의 일뿐 음악만을 위한 신비주의인 서태지의 그것과는 맥락이 달랐다. 이번 8집 이전 4년 6개월간 서태지는 외부와의 접촉을 극도로 삼간 채 앨범 작업을 해 왔으며 팬들은 서태지의 행보에 목말라 했으며 그의 음악에 대한 관심은 극도로 커져갔다. 실제로 이번 8집 활동 전 ‘강원도 흉가 동영상’과 ‘미스터리 서클’은 서태지 소속사인 서태지 컴퍼니의 홍보전략의 일환으로 드러났다. 그 전까지 언론을 통해서만 컴백 소문이 무성했던 서태지가 직접 나서서 ‘눈으로 보여준’ 첫 홍보 전략으로 대중들에게 서태지의 컴백을 확신케 했으며 그 효과는 엄청났다. 대중문화는 소모된다. 빠르게 변하는 21세기에 수 많은 대중문화는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그 소모시기 또한 더욱 빨라지고 있다. 서태지는 그 자신만의 적절한 ‘신비주의’로 대중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으며 그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2008년 초 만해도 소문만 무성하던 서태지의 컴백은 29일 8집 첫 싱글 ‘모아이’의 발매로 현실로 다가왔다. 선 주문량 10만장 달성의 반가운 소식은 가요계에 새로운 성공모델을 제시하고 있으며 침체일로를 걷던 가요계에 ‘진정한 뮤지션’은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서태지는 돌아왔다. 대중들이 기다리던 ‘왕의 귀환’은 현실로 이루어졌으며, 그 귀환이 어떤 결과를 남길지 기대해 보자. 사진제공=서태지컴퍼니 서울신문NTN 김경민 기자 star@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한국=경제·문화 선진국 이미지 새겼다”

    “한국=경제·문화 선진국 이미지 새겼다”

    |아스타나(카자흐스탄) 글 사진 이세영특파원|“어느 분야에서나 ‘최고’가 되려는 욕심은 한국인의 공통점 같다. 카자흐스탄에 사는 고려인 여성들의 억척스러운 근면성이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알게 해준 영화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관람한 대학교수 아넬 아지만(46)은 한국 여성의 승부욕과 근성이 부럽다고 했다. 변호사 사비엘례바 옐레나(42)는 ‘서편제’를 통해 현지 고려인들이 말하는 ‘한’이란 정서가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고 했다. 서울신문과 서울시가 카자흐스탄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2008 코리아 필름 페스티벌’이 19일 저녁(현지시간) 수도 아스타나의 콩그레스홀에서 막을 내렸다. 카자흐스탄 경제·문화 중심도시인 알마티에서 시작해 수도 아스타나에서 마무리된 이번 영화제에는 닷새간 4000여명의 관객이 몰려 한국 문화에 대한 현지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실감케 했다. 특히 아스타나가 고려인 밀집지역이 아님에도 폐막일인 19일 우리의 ‘국립극장’격인 콩그레스홀 대극장의 1400석을 가득 메워 영화제 관계자들을 흥분시켰다. 영화제 진행을 총괄한 기획사 아트카오스의 김재훈 대표는 “대부분의 한국 영화가 CD로 불법복제돼 유통된다는 얘기에 과연 관객이 올까 걱정했지만 기우에 그쳤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실제 알마티나 아스타나 중심가의 노점상에서는 ‘괴물’이나 ‘올드보이’ 같은 흥행작들이 러시아어로 더빙돼 판매되는 것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중국에서 불법으로 복제된 뒤 보따리상을 통해 현지로 유입된 것들이다. 대사관 관계자는 “한국이 영화 강국이라는 사실은 카자흐인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면서 “불법 CD가 유통되는 것도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뜨겁다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영화제에서 만난 관객 가운데에는 이미 한국영화에 대한 식견이 상당한 경우도 있었다. 아스타나의 통신회사에 근무하는 드미트리(29)는 김기덕 감독의 팬이다. 그는 “김 감독의 영화는 깊이있고 철학적인 데다 영상미까지 뛰어나다.”면서 “영화를 좋아하는 카자흐 젊은이들 가운데는 ‘김기덕 마니아’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교민들은 이번 영화제가 최근 카자흐스탄에서 싹트기 시작한 ‘한류’의 본격적인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는 점에 이견을 달지 않았다. 현지에서 ‘한인일보’를 발행하는 김상욱 대표는 “가전제품과 2002년 월드컵을 통해 한국이 잘 살고 기술이 뛰어난 나라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면서 “영화제는 ‘한국=경제·문화선진국’이란 이미지를 각인시켜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자원외교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sylee@seoul.co.kr
  • 서태지ㆍ엄정화, 스케일ㆍ마케팅도 왕이다

    서태지ㆍ엄정화, 스케일ㆍ마케팅도 왕이다

    서태지, 그리고 엄정화. 2008년 여름, 한국 가요계의 ‘킹’ 과 ‘퀸’으로 불리던 그들이 귀환했다. ’한국의 마돈나’로 불리는 엄정화는 지난 1일 새 미니 앨범 ‘D.I.S.C.O(디스코)’를 발매하며 2년여 만에 무대에 복귀했다. 이어 오는 29일에는 ‘가요계 왕’이 귀환한다. 바로 서태지가 4년간의 공백을 깨고 8집 첫 번째 싱글음반 발매하며 복귀하는 것. 서태지와 엄정화는 명실공히 가요계 ‘킹·퀸’다운 가치를 자랑한다. 이들의 네임 밸류(name value)는 투자 가치로 이어져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 우선 스케일과 마케팅부터 다르다. 엄정화, 무대 의상비만 1000만원 ‘댄싱 퀸’ 엄정화의 지난 5일 컴백 무대에 한동안 섹시 여가수들이 넘쳤던 가요계가 바짝 긴장했다. 독특한 안무와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 매너는 “역시 엄정화!”라는 찬사를 이끌어 냈지만 그의 컴백 무대의 또 다른 화두로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의상비. YG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엄정화가 MBC와 SBS의 컴백 무대에서 선보인 의상 5벌과 앞으로 의상 다섯 여벌을 더하면 의상비만 총 1천만원+알파가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엄정화는 직접적인 노출은 피하되 과장된 어깨선과 굵은 허리띠가 인상적인 퓨처리즘 풍 하이브리드 의상이 인상적이다. 서태지, 세계 정상급 대형 오케스트라 협연 오는 29일에는 4년 6개월만에 서태지가 복귀한다. 새 앨범에 대한 아웃라인은 새달 6일 MBC 서태지 컴백 스페셜 방송을 통해 그려질 예정이지만 8월 15일 열리는 ETP페스트를 시작으로 9월 27일 영국 로열필하모닉 협연 등 두 차례 공연이 확정돼 있는 상태라 팬들의 기대가 크다. 특히 전설적인 록 그룹 ‘퀸(Queen)의 명곡을 클래식과 성공적으로 접목시켰다는 호평을 받은 영국 지휘자 겸 작곡가 톨가 카시프(Tolga Kashif)가 이끄는 영국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Royal Philharmonic Orchestra)와 협연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가수로는 ‘넥스트’에 이어 두번째로 시도되는 이번 협연은 세계적 관현악단과 한국 가요계 변혁을 주도해온 트렌드 메이커 서태지의 첫 만남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엄정화+빅뱅 탑, ‘마돈나+팀버레이크 마케팅’ 엄정화는 데뷔 15년 이래 어느 때보다도 화려한 컴백 신고를 했다. YG 수장 양현석은 YG 둥지 밖에 있는 외부 가수로는 처음 엄정화 10집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았고 그의 컴백무대에는 든든한 YG사단이 총출동했다. 뿐만 아니다. 타이틀 곡 ‘디스코’ 뮤직 비디오에는 인기 절정 그룹 ‘빅뱅’의 탑이 카리스마 넘치는 랩 피처링 영상을 더해 엄정화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팬은 물론 10대 팬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대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는 ‘마돈나’의 마케팅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마돈나는 최근 새 앨범 ‘하드 캔디’(Hard Candy)를 발표하며 ‘4 Minutes’의 피쳐링에 섹시 팝스타 저스틴 팀버레이크를 영입, 뮤직비디오에서 아슬아슬한 커플 댄스를 선보이며 큰 화제를 불러 모은 바 있다. 대중들은 당대 최고의 섹시 디바와 매력 넘치는 연하 가수의 아찔한 영상에 매료됐고 ‘최고의 마케팅 효과’로 직결됐음은 당연하다. ‘신비주의’ 마케팅 서태지, U.F.O + 미스테리적 메시지 전략 서태지는 매번 유례없는 각종 마케팅 전략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최대치로 끌어 올린다. 그의 이번 컴백 마케팅 전략은 크게 티저 영상과 특집 스페셜 다큐 방영을 통한 메시지 전달과 UFO 출현 동영상을 비롯해 최근 발견된 미스터리 서클을 통한 암호 제시, 그리고 서울 코엑스 피라미드 광장에 설치한 직경 12m짜리 대형 UFO 모형 전시 등으로 압축된다. 서태지를 일컬어 ‘마케팅의 천재’라 극찬하는 언론이 있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음악성이 아닌 다소 소란스러운 마케팅이 이슈가 되고 있음에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서태지는 마케팅을 통해 8집의 메시지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홈페이지에 인류의 태동기인 ‘태초의 소리를 담겼다’는 의지를 밝힌데 견주어 대중들은 U.F.O나 미스터리 서클 등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제 3세계에서 보는 시각을 논하려 하는 그의 시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의 노력은 다르다 1992년 ‘난 알아요’와 1993년 ‘눈동자’로 대중 앞에 섰던 서태지와 엄정화에 대한 평은 냉혹했다. 당시 음악 판도를 뒤엎을 만한 시도였음에도 불구, 대중 음악 전문가들 조차 그들이 훗날 일으킬 반향을 예상치 못했다. 서태지는 과거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대스타가 되어있더라’고 웃음 지었지만 이 말을 진담으로 받아들인 대중은 없었다. 그의 음악적 도전은 젊은 세대의 음악적 감성을 흔들어 놓았고 ‘문화 대통령’이란 칭송까지 받게 되었다. 엄정화 역시 최근 예전 히트곡인 ‘몰라’를 얻기 위해 음반 프로듀서 김창환을 1년간 조른 사연과 자신의 10집 복귀를 성공적으로 치루기 위해 직접 YG 프로듀싱을 계획, 수락을 이끌어 낸 점 등은 서태지와 엄정화가 ‘킹·퀸’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대동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장예모 ‘대장금’ 연출설에 中네티즌 “버럭”

    장예모 ‘대장금’ 연출설에 中네티즌 “버럭”

    최근 세계적인 감독이자 베이징올림픽 개·폐막식 총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장이머우(張藝謀·장예모)감독이 ‘매국노 논란’에 휩싸였다. 장이머우 감독은 지난 1월 영화 ‘황후화’ 홍보를 위해 내한한 자리에서 “드라마 ‘대장금’의 팬”이라면서 “대장금을 매우 재미있게 봤다. 잘 만든 드라마”라고 애정을 밝힌 바 있다. 최근에는 드라마 ‘대장금’ 판권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의 ‘스튜디오999’측이 장예모 감독에게 영화 연출을 제의, 현재 장예모 감독 측에서는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스튜디오999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 23일 “장이머우 감독측에 시나리오를 보낸 상태이며 본격적인 교섭을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총연출 임무가 끝나는 대로 자세한 사항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지난 88년 ‘붉은 수수밭’을 시작으로 국제영화제에서 이름을 알리며 중국 영화의 선구자 역할을 한 장이머우 감독이 한국 드라마의 영화판 감독을 맡을수도 있다는 소식을 접한 중국 네티즌들은 “자존심도 없냐”며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 유명 포털사이트 ‘163.com’의 한 네티즌(61.54.*.*)은 “장이머우처럼 유명한 중국 감독이 왜 한국 드라마를 본 따 영화를 찍어야 하냐”고 반문했고 또 다른 네티즌(221.223.*.*)은 “중국 문화와 관련해서도 찍을 영화는 많다. 한국 대장금이 별거냐”며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또 “왜 하필 한국의 역사와 관련된 영화를 제작하는지 그 의도를 모르겠다.”(219.136.*.*), “장이머우 감독은 바보 같은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할 것”(221.201.*.*), “한국인이 중국 문화를 빼앗고 있는 이 시점에 말도 안되는 발언이다. 매국노와 차이가 없다.”(220.231.*.*)등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편 이 같은 네티즌들의 반응에 장이머우 감독 측 관계자는 “장이머우 감독이 영화 ‘대장금’을 연출할 계획은 당분간 없다.”면서 “현재로서는 올림픽 개회식에 주력하고 있다. 올림픽이 끝나야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을 발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해명했다. 사진=aoyunchina.com(장이머우 감독)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아시아인의 지혜·기개 보여 주고파”

    “아시아인들의 지혜와 용기를 보여 주고 싶었죠.” 새 영화 ‘적벽대전-위대한 전쟁의 시작’(새달 10일 개봉) 홍보차 방한한 우위썬(吳宇森·62) 감독이 24일 서울 광진구 W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났다.‘적벽대전’은 소설 ‘삼국지’ 중 가장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는 전투 적벽대전을 영화화한 전쟁서사극. 영화 ‘윈드토커’ 이후 6년여 만에 한국을 찾은 감독은 “열살 때 유리창에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들을 그리고 반대편에서 손전등으로 이를 비추는 놀이를 할 정도로 ‘삼국지’의 열혈 팬이었다.”면서 “‘영웅본색’ 시리즈의 제작을 마친 뒤 18년 동안 이 영화를 만드는 꿈을 꿨지만, 당시엔 자본과 기술 등 제작 환경이 여의치 않았었다.”고 털어놨다. 그동안 ‘삼국지’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들에서 주요 소재로 활용돼 왔다. 그런 만큼 감독은 인물 캐릭터와 메시지에서 기존 작품들과의 차별성을 두는 데 중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기존 ‘삼국지’의 인물들이 신격화되었다면, 저는 인간적인 영웅을 표현해내고 싶었어요. 단지 역사속 먼 인물들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도록 했죠. 더러 대규모 전쟁 장면은 잔인하기도 하지만, 반전의 메시지도 함께 전하고 싶었어요.” 그는 이 작품에서 각각 손권군 명장 ‘주유’역의 량차오웨이(梁朝偉)와 유비군 책사 ‘제갈량’ 역의 진청우(金城武) 등 톱스타들을 주연배우로 내세워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영웅들을 그려냈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중국, 한국, 일본 등이 투자한 800억원 규모의 범아시아 프로젝트로도 주목받아 왔다. “그동안 할리우드에서 수많은 영화를 찍었지만, 서양인들이 아시아인들의 문화와 정신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중국 당대의 전쟁서사극이지만, 인물들을 통해 아시아인들의 지혜와 기개를 서양에 보여 주고 싶었어요.” 영화의 절반가량을 찍고 나서 이미 예산을 초과해 자신의 연출료까지 제작비에 털어 넣었다. 하지만 그는 “꿈을 위한 도전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주말탐방] 미술관을 움직이는 ‘그녀’들…오해와 진실

    [주말탐방] 미술관을 움직이는 ‘그녀’들…오해와 진실

    대한민국에서 ‘오해’와 ‘진실’이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직업 하나를 꼽아보자. 힌트. 누가 뭐래도 그들은 ‘미술관의 꽃’이다. 어지간히 눈치없는 사람도 이쯤하면 무릎을 치겠다. 그들의 이름인 즉 큐레이터(curator)이다. 큐레이터가 전시장의 마스코트라는 사실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까만 정장 차림으로 우아하게 눈인사를 보내오는 그들의 자태는 오가는 관람객들에겐 더러 ‘로망’으로 꽂힌다. 덮어놓고 환상부터 불러일으키는 주체란 대목에서 많은 이들에게 ‘미술’과 ‘큐레이터’는 동의어로 다가간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해가 많다. 무엇보다 그들 세계의 실상은 화려한 이미지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는 사실! 여차하면 (미술관)벽에 못질까지 해야 하는 게 그들의 역할이다. ●밥먹듯 밤샘… 기획력 못지않게 체력도 갖춰야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박윤정씨. 지난 17일 ‘프랑스 디자인의 오늘’전을 개막하기까지 근 열흘동안 그는 거의 초주검 상태로 살았다. 전시가 개막되고서도 며칠동안은 연일 야근을 했으니 제시간에 끼니를 챙겨먹는 건 사치. 이번 전시를 오픈하기까지는 첫 기획에서부터 꼬박 1년이 걸렸다. 전시에 참여한 프랑스 대표 디자이너 4인을 섭외하고 그들의 어떤 작품을 들여와야 하는지 선정하는 등의 업무가 모두 그의 책임 아래 진행됐음은 말할 것도 없다.“전시가 임박하면 밥먹듯 밤샘작업을 해야 하고, 급할 땐 벽에 못도 박아야 한다는 말이 빈소리가 아니다.”는 그는 “큐레이터가 기획력 못지 않게 갖춰야 할 덕목이 체력”이라고 말했다. 소소하게 오프닝 손님맞이에 필요한 음식을 준비하는 것까지 그의 몫일 때가 많다. 작품의 위치를 일일이 정하는 건 물론이고 작품 손상을 막기 위해 전시장의 조명과 온도, 습도까지도 신경써야 한다. 말 그대로 1인 10역.“백조 가면을 쓴 ‘노가다’”라는 우스갯말이 나올 만도 하다. 큐레이터란 미술관과 박물관의 소장품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는 물론, 전시를 기획하는 전문인력을 일컫는다. 국공립미술관에서 이들은 ‘학예사’라고도 불린다. 여기서 바로 짚고 넘어가야 할 일반적인 오류. 작품판매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상업화랑에는 큐레이터가 없다. 미술관이 아닌 상업화랑에서 작품 및 전시를 관리하는 이들은 엄밀히 ‘갤러리스트’라고 구분해서 불러야 맞다. 지금의 국내 상황에서 큐레이터에게 주어진 업무는 딱히 선을 긋기가 어려울 만큼 잡다하다. 전시의 전체 얼개를 잡는 기획업무는 기본. 도록 만들기, 작가 섭외, 작품 선정, 작품을 어디에 어떻게 거는지 전시장 세팅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떠맡아야 한다. ●미술관에는 큐레이터만 산다?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의 열에 아홉이 갖고 있는 ‘중대한’ 편견. 미술관에 큐레이터 말고 또 다른 명함을 가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미술이 소수계층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빠른 속도로 보통사람들의 관심권 안으로 들어온 최근 몇년새 미술관 사람들의 업무영역도 발빠르게 다양화, 세분화하고 있는 추세”라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말이다. 전시장을 움직이는 손은 알고보면 여럿이다. 우선, 에듀케이터. 전시의 교육적 기능을 전담하는, 미술관의 빼놓을 수 없는 전문인력이다. 전시의 전체 컨셉트를 잡아 기획하는 일이 큐레이터 몫이라면, 관람객들에게 전시 작품에 대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짜는 역할몫은 에듀케이터에게 있다. 미술관을 움직이는 손은 또 있다. 관람객 편에서 보자면 누구보다 살뜰히 피부에 와닿는 도움을 주는 현장가이드.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동행하며 작품정보를 자세히 들려주는 주인공은 큐레이터가 아닌, 이름하여 ‘미술품 전문해설사’다. 이들이 국내 미술관에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다. 한국사립미술관협회 박선민 사무장은 “기존의 ‘도슨트’가 무보수 자원봉사 개념이어서 전문성 확보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사립미술관들이 이들을 채용키로 했다.”면서 “일반 관람객들이 거부감없이 미술관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하는 데는 이들의 역할이 결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자칭 미술팬이라면 한번쯤 도전해볼 만한 자리이기도 하다.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사업의 하나로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주는 제도라는 사실. 특별한 자격증이 필요하진 않으므로 은퇴 교사나 예술학을 전공한 미술애호가라면 미술관 채용정보를 꼬박꼬박 챙겨볼 필요가 있다. ●왜 ‘그녀’들만? 까만 정장이 유니폼? 그래도 물음표가 찍히는 몇가지. 미술관을 지키는 사람들은 어째서 열에 아홉은 여자일까. 해답은 간단하다. 홍익대 예술학과,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대구 가톨릭대 예술학과 등 큐레이터의 주요 산실들에 남자 예술학도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큐레이터 하면 떠오르는 빼놓을 수 없는 이미지가 또 까만 정장이다. 정장, 그것도 검은 색을 챙겨입어야 하는 규칙은 물론 없다.“전시를 ‘문화 서비스’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는데다 무엇보다 전시장의 작품들을 돋보이게 하려면 근무자의 복장이 튀지 않아야 하는 데 암묵적 동의가 이뤄지기 때문”이라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세상을 통째로 미술에 감염시켜라” ‘갤러리 앤 더 시티’ 도시를 통째로 ‘미술관 블랙홀’ 속으로 풍덩 빠뜨리는 게 일상의 목표인 사람들.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는 세상을 미술에 감염(?)시키는 즐거움으로 사는 여자 넷이 날마다 뭉친다. 스물아홉 살 동갑내기인 황정인 수석 큐레이터와 우선미 큐레이터, 미술품 전문해설사 조영은씨. 그리고 한살아래인 에듀케이터 윤희은씨다. “전시 시작하기 보름 전쯤이면 몸이 열이라도 모자라요. 전시 인쇄물을 만들고, 편집 디자인도 최종 점검하고, 또 디스플레이할 작품도 들여와야 하거든요.” 황 큐레이터가 홍익대 예술학과와 대학원을 거쳐 지금의 미술관에 들어온 건 2003년.‘큐레이터 밥’을 먹은 지는 햇수로 5년째다. 서울시립미술관 교양강의를 나갈 정도로 야무진 그는 “조금씩 변화하는 작가들의 세계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감지할 수 있는 즐거움, 잠재력 큰 무명작가들을 발굴해내는 재미가 큐레이터라는 직업의 최고 매력”이라며 웃는다. 미술관의 자체 전시를 기획하는 그와 호흡을 맞추는 건 동갑내기인 우선미 큐레이터. 미술경영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예술학을 공부한 우씨는 외부 기관과 연계하는 공동전시 기획을 맡는다. 이처럼 사비나미술관은 국·공립 못지 않게 체계적 인력을 구성하고 있는 곳으로 몇손가락 안에 든다. 지난해 11월 국내 사립미술관으로는 처음으로 미술품 전문 해설사를 채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전문해설사 1호가 된 조영은씨. 영국 버밍엄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디자인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미술디자인 역사를 더 공부했다.“국립현대미술관에서 도슨트로 몇달 일하면서 일반 관람객들의 미술 궁금증을 현장에서 풀어주는 작업이 기대 이상으로 매력있었다.”는 그는 자원봉사 개념의 도슨트가 꾸준히 재교육되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이 내심 안타까웠다. 그런 차에 문제를 보완한 전문해설사를 뽑는다는 공고에 반색하며 지원서를 냈다. 하지만 현장의 그녀들 눈에 미술관으로 걸음한 관객들은 다 고울까. 솔직히 꼴불견도 있다. 국사 선생님이 되려 박물관 강좌를 듣다 미술관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는 에듀케이터 윤희은씨.“미술에 대한 관심을 다양한 방식으로 끌어내기 위해 영어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전시장을 그저 영어학원쯤으로 인식하는 젊은 엄마들은 보기 딱하다.”고 털어놓는다. 예술의 향취를 발견하게 하는 공간이 아니라 미술관을 아이의 체험학습장 삼는 부모들의 태도는 달라져야 한다는 데 모두가 입을 모은다. 업무 영역은 제각각이지만 이들의 희망사항은 신기하게도 닮은꼴이다. 예산부족으로 지금의 미술관들이 엄두도 못내는 작업들을 10년쯤 뒤에는 꼭 해보는 거다.“지금으로선 큐레이터들에겐 전시 목록 말고는 남는 게 없어요. 땀흘려 기획한 전시를 국내용으로 그치지 않고 해외 교류전으로도 활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또 국내 작가들과 작품자료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연구소도 운영했으면 좋겠고….” 황 큐레이터의 욕심이 끝날 것 같지가 않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컨테이너 박스의 가치 재발견

    컨테이너 박스의 가치 재발견

    1956년 4월26일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 항구에서는 트럭에서 분리된 강철 적재함이 기중기로 유조선을 개조한 화물선 아이디얼X호로 옮겨지고 있었다. 팬애틀란틱의 말콤 맥린 사장은 58개의 컨테이너가 실린 아이디얼X호가 부두를 빠져나가자 비행기를 타고 휴스턴으로 날아가 부두에서 ‘최초의 컨테이너선’의 입항을 기다렸다. 맥린은 이 새로운 운송방식으로 1t에 5.83달러였던 중간 크기 비포장 화물의 선적비용을 15.8센트로 줄일 수 있었다. 이 해 4월에서 12월 사이 팬아틀란틱의 화물선은 컨테이너를 싣고 미국 동부해안을 모두 44차례 운항했다. 맥린은 컨테이너의 대명사로 한동안 군림한 시랜드(Sea Land)를 이듬해 창업했다. ●물류수송 시스템 바꿔 경비 절감 사실 당시에도 화물용 강철박스는 모양과 크기만 달라졌을 뿐 수십년 동안 사용되고 있었다. 미국 증기선 회사인 시트레인도 1929년부터 이미 부두에 거대한 기중기를 두고 유개화차를 특별히 제작한 배로 수송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맥린의 성취를 얕잡아보는 역사가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맥린이 컨테이너를 화물 수송에 적용시키려고 노력한 수많은 기업과 달랐던 것은 화물이 움직임는 전 과정에 승부를 걸었다는 데 있다. 그는 운송산업의 경비절감은 전체 시스템, 다시 말해 항구와 선박, 기중기, 창고 시설, 트럭, 기차 등 수송과정의 모든 것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더 박스-컨테이너 역사를 통해 본 세계경제학’(마크 레빈슨 지음, 김동미 옮김,21세기북스 펴냄)은 화물을 운송하는 수단으로 컨테이너가 어떻게 고안되어 세계 경제를 변화시켰는지를 보여준다. 이제는 너무나도 당연한 운송 방식이 되어버려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컨테이너의 경제적·사회적 영향을 밝혀낸 최초의 분석서이다. 컨테이너가 도입되기 전 샌프란시스코와 몬트리올, 함부르크, 런던, 부에노스아이레스 같은 세계 주요 도시들은 부두를 몇 개씩 가지고 있었다. 화물운송은 도로와 부두 사이에 수많은 사람이 필요한 산업이었다. 부두의 이웃에는 창고가 즐비했고, 창고가 아니라면 어김없이 공장이 들어서 있었다. 제조업체들은 원자재를 쉽게 가져다 완성된 제품을 내보낼 수 있도록 부두 근처에 본거지를 둘 수밖에 없었다. ●완제품·부품 이동 쉬워 국제교역 급증 이런 상황에서 컨테이너 체제를 도입한 데 따른 효과는 물류혁명에 머물지 않았다. 완제품뿐 아니라, 부품 또는 원료가 활발하게 이동할 수 있었고, 국경을 넘나드는 교역도 증가했다. 운송비가 대폭 줄어들면서 생산자는 소비자와 가깝지만 땅값과 인건비가 비싼 대도시를 고집하지 않아도 되었다. 교외나 해외에서 훨씬 낮은 비용으로 상품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 또한 전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사서 쓸 수 있었다. 컨테이너는 운송 거점이 되는 항구도 재편시켰다. 컨테이너 운송에 부정적이던 뉴욕이나 런던은 위상이 낮아진 반면, 이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부산이나 시애틀은 물류 허브의 신흥 강자로 부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부산 물류 허브 강자로 급부상 지은이는 ‘뉴스위크’와 ‘이코노미스트’의 선임기자와 경제학 담당 편집자를 역임한 저널리스트이자 경제학자. 그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만큼 컨테이너의 덕을 본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조선산업을 국가과제로 추진하던 한국이 1973년 석유파동에 따른 유조선 시장이 움츠러들어 어려움을 겪을 때 컨테이너선 수요의 폭증은 난감한 상황을 오히려 엄청난 호황으로 반전시켰고, 보잘 것 없던 부산항 또한 1974년 처음으로 컨테이너 부두가 생긴 뒤 급성장하여 1995년 세계 5대 컨테이너 항구로 당당히 올라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반세기 전만 해도 컨테이너가 그처럼 커다란 변화를 낳을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면서 “한국이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적인 무역국가로 거듭난 것도 이 ‘단순하고 멋대가리 없이 생긴 직육면체 상자’가 예기치 않게 낳은 수많은 결과의 하나”라고 주장했다.2만 5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연주회 같은 오페라에 빠져볼까요

    연주회 같은 오페라에 빠져볼까요

    오페라 팬들에게 꼭 보여 주고 싶은 작품이지만, 아직은 3∼4일 공연의 객석을 채울 만큼 대중화되지 않아 도저히 ‘본전’의 일부조차 뽑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국립오페라단이 새달 9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하는 차이코프스키의 ‘에프게니 오네긴’이 그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에프게니 오네긴’은 국립오페라단이 기획한 ‘내일을 여는 오페라 콘체르탄테’의 첫번째 프로그램. 오페라 콘체르탄테는 쉽게 말해 연주회 형식으로 공연하는 오페라를 말한다. 함께 모여서 연습하는 기간도 짧고 거액을 들여야 하는 무대장치도 필요없이 기본적인 의상 정도만 갖추니 제작비는 정식 오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게 든다. 반면 오케스트라 피트가 ‘지하’로 들어가야 하는 오페라와 달리 콘체르탄테는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오르는 만큼 관객에게는 음악적 측면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장점도 있다. ●무대에 오른 오케스트라·차이코프스키의 선율… 흔히 러시아 국민문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알렉산드로 푸슈킨의 사실주의적 운문소설을 바탕으로 한 ‘에프게니 오네긴’은 차이코프스키가 남긴 11편의 오페라 가운데 가장 수준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원작의 문학적 정취가 높고 음악성 서정성이 뛰어날수록 이탈리아 오페라 같은 자극적인 갈등구조와 극적인 아리아에 익숙한 팬들을 설득하기에는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름답고 낭만적인 선율이 가득하고 관현악이 성악파트를 압박하는 일 없이 순수하게 성악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이런 작품을 계속 외면한다면 한국 오페라는 앞으로도 빈곤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국립오페라단의 문제의식이었을 것이다. ●학생 40% 할인 등 오페라 대중화 노력 나서 국립오페라단은 장기적으로 ‘에프게니 오네긴’을 정식 오페라 공연의 레퍼토리에 포함시키기 위해서는 ‘팬의 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번 공연의 티켓값을 대학까지의 학생에게는 모든 좌석의 40%를 깎아 주기로 한 것도 이 때문.‘에프게니 오네긴’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하여 앞으로 있을 정식 오페라 공연에 다시 찾아 오게 만들겠다는 포석이다. 오페라 콘체르탄테가 ‘에프게니 오네긴’ 같은 목적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립오페라단은 오는 8월31일부터는 푸치니의 오페라 ‘마농레스코’와 ‘토스카’, 나비부인’을 잇따라 연주회 형식으로 공연한다는 계획이다. 올해는 푸치니 탄생 150주년을 맞는 해로 기념하는 행사가 필요하지만,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화재에 따른 개수공사로 공연장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이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판단했다고 한다. ●국립오페라단 ‘콘체르탄데´ 프로그램 활성화 국립오페라단은 앞으로도 ▲‘에프게니 오네긴’처럼 뛰어난 음악성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아 공연하기 어려운 작품 ▲푸치니처럼 유명 작곡가의 탄생이나 서거를 기념하는 작품 ▲지역적으로 이탈리아나 독일 등이 아니어서 공연되기 어려웠던 작품을 선정하여 ‘내일을 여는 오페라 콘체르탄테’무대에 적극 올리기로 했다. 이번 공연은 오네긴에 바리톤 김승철, 타티아나에 소프라노 이현정, 렌스키에 테너 나승서, 올가에 메조소프라노 김선정, 그레민 공작에 베이스 함석헌, 라리나와 필리프에브나에 메조소프라노 강희영, 자레츠키에 베이스 김진추가 나선다. 노다르 찬바가 지휘하는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나영수·고성진이 지휘하는 국립오페라합창단이 출연한다.1만∼7만원.(02)586-5282.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국내 교향악단 ‘지휘자 면접중’

    국내 교향악단 ‘지휘자 면접중’

    ‘차세대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캐나다의 젊은 지휘자 야닉 네제 세겐(33)이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해 새달 25일 오후 8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연주회를 갖는다. 2000년 14회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18세의 나이로 사상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이후 ‘슈퍼스타’로 대접받고 있는 중국 피아니스트 리윈디(Yundi Li)가 동행하는 만큼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상임지휘자 자리가 비어 있는 국내 교향악단 관계자들은 또 다른 차원에서 이번 연주회를 기다리고 있다. 젊은 지휘자의 내한공연을 음악성을 테스트하고, 단원들을 이끌 카리스마를 갖추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물론 음악시장에서의 ‘상품성’도 따져보는 기회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2004년 말 러시아의 거장 드리트리 키타옌코가 떠난 뒤 상임지휘자 자리가 비어 있는 KBS교향악단은 특히 ‘차기 상임지휘자 후보’의 한 사람으로 네제 세겐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젊은 거장 지휘자의 내한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 올해는 어느 때보다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37)가 자신이 수석 지휘자로 임명되어 화제를 부른 영국의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한국에 왔고, 이탈리아 태생의 잔 안드레아 노세다(43)도 영국의 BBC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내한공연을 가졌다.KBS교향악단 쪽에서 보면 아무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면접시험을 치르고, 실력을 점검해 본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에 스웨덴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에 오른 영국의 다니엘 하딩(33)은 앞서 2006년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내한했고, 미국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차기 지휘자로 선임된 베네수엘라의 구스타보 두다멜(27)도 내한이 추진되고 있다. 사실상 국제 음악계에서 집중조명을 받는 젊은 지휘자를 대부분 ‘테스트’했거나, 할 수 있는 셈이다. KBS교향악단이 당장 쓸 수 있는 ‘상임 지휘자급’에 골몰하고 있다면, 서울시립교향악단은 ‘미래의 거장’을 찾아내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서울시향은 올해 임기가 끝나는 정명훈 음악감독이 재계약 의사를 분명히 한 만큼 적어도 2011년까지는 안정적으로 지휘체제가 운영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서울시향은 특히 최근에 한국인으로 국제 음악계에서 주목받는 신진 지휘자가 대거 배출되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독일 하노버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인 구자범(38)과 독일 작센 국립오페라의 지휘자 최희준(35), 미국 보스턴 심포니와 유타 심포니에서 각각 부지휘자를 맡고 있는 성시연(33)과 데이비드 조(조인제·34)를 잇따라 연주회 무대에 세우며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오병권 서울시향 공연기획팀장은 “최근 국내외를 막론하고 40∼50대 지휘자가 많지 않은 반면 20∼30대는 대거 배출되고 있다.”면서 “한국 음악계와 외국 음악계의 상황은 분명 다르므로, 내한 연주회나 교향악단 초청 연주회 등의 과정을 거쳐 지휘자가 국내 음악계에서 통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과정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20&30] 5월, 대학축제 추억 속으로

    [20&30] 5월, 대학축제 추억 속으로

    서울대 축제에 소녀그룹 ‘원더걸스´가 오는 바람에 하마터면 사람이 깔릴 뻔했다는 뉴스가 눈을 간지럽힌다. 수년 전부터 대학에 유명 연예인들이 등장하면서 대학 축제도 상업화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지만, 그래도 축제에 대한 기억은 설렘이 대부분. 캠퍼스에 진동하는, 파전에 두른 기름 냄새와 물풍선에 흠뻑 젖은 채 까르르 웃는 학생들. 드럼과 베이스기타 소리를 등에 업고 어설픈 고음만 고래고래 질러대는 학내 ‘최고´의 밴드와 이에 맞장구치는 꽹과리와 장구소리 요란한 풍물패.5월만 되면 아련하게 떠오르는 2030들의 대학 축제에 대한 추억을 되짚어 봤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90학번 윤모(37)씨는 대학 축제라면 이내 밤새도록 이어졌던 주점을 떠올린다. 동아리 풍물패에서 장구를 담당했던 윤씨는 축제 때마다 주점에서 파전 요리를 맡았다. 매년 ‘파가 동이나 잔디를 넣어 부쳤다.´는 억측이 돌았지만, 인기는 늘 최고였다. 윤씨는 새벽 2∼3시까지 이어지는 학교 주점에서 선·후배들과 어울려 한잔 두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직장인이 된 선배들이 찾아와 음식을 맛있게 먹어 주던 당시를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하도 파전을 굽다 보니 팔이 아프기도 하고 식용유가 몸에 튀어 찌뿌듯하긴 했지만 선·후배들, 친구들과 함께 젊은 날을 보내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요즘은 유명한 가수들이 공연하는 게 축제의 백미라던데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잔디밭에 누워 밤새 술을 마시며 축제를 즐기던 그때에 비견될 바가 아니지요.” 회사원 유모(34)씨에게도 축제는 곧 학과 주점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축제 때 갖가지 이벤트가 펼쳐지지만, 정작 유씨는 주점을 준비하느라 축제를 즐기지 못했다.‘하늘 같은´ 선배들이 오면 이리뛰고 저리뛰며 술 나르고 음식 차리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배들이 사회 문제와 관련해 토론의 장을 벌이면 옆에 앉아 이것저것 주워 들으며 ‘지식´을 넓혀 갔던 기억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주점을 열면 막걸리가 동이 날 때까지 마시며 여기저기서 열변을 토하는 선배들도 많았다.“선·후배가 어울려 동이 틀 때까지 막걸리를 마시며,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던 추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대학 시절의 낭만이죠.” 공군 학사장교로 복무 중인 김모(25)씨는 축제 때 일일찻집을 열었던 기억이 생생하다.2000년대에 입학한 김씨에겐 사실 대학의 ‘낭만´은 과거 선배들의 얘기였다. 입학하자마자 취업 걱정에 토익과 자격증 시험에 매진하느라 도서관에 틀어 박혀 살았다. 하지만 축제기간에는 모처럼 학과 동기들과 뭉쳐 일일찻집을 열었다. 제대로 돈을 벌어 친구들과 맘껏 써보자는 욕심도 생겼다. 하루 종일 고생해 8만원을 벌었다. 하지만 그 돈은 요구르트 30개를 1분에 다 마시는 게임에서 2명이나 성공하는 바람에 상금으로 다 나가고 말았다.“친구들과 맘껏 한잔하려 했더니 순식간에 물거품이 됐죠, 뭐. 그래도 그때만큼 즐거웠던 대학 시절의 기억도 없는 것 같아요.” ●축제 때 만났던 ‘잊지 못할 그 사람´ 회사원 김모(28·여)씨는 대학 축제 때 밴드 공연에서 한 눈에 반한 그 남자가 기억에 생생하다. 키가 크고 깔끔한 외모에 단정한 단발머리를 했던 그 남자는 공연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정열적으로 드럼을 쳤다. 땀이 흘러내리지 않게 머리띠를 맨 그 남자가 열정적인 공연 끝에 윗도리를 훌쩍 벗어던지면 김씨는 벅차오르는 가슴에 두손으로 입을 막아야했다. 다음 학기 때 김씨는 그 남자가 어떤 수업을 신청하는지 눈여겨본 뒤에 같은 수업을 들었다.“그런데 글쎄, 수업 중에 결국 환상이 깨지고 말았어요. 늘 무표정한 얼굴로 우수에 잠긴 듯하던 그 남자가 친구랑 대화하는 걸 우연히 들었는데, 정말 심한 사투리를 쓰더군요. 이미지와 연결되지 않는 사투리에 그만 확 깨서 하루 종일 하숙집 안방에 껌처럼 눌러 붙어 식음을 전폐했던 기억이 나네요.” 신촌의 한 대학을 나온 윤모(32)씨는 축제 때 만났던 ‘그녀´를 잊지 못한다. 윤씨는 대학 3학년 때 축제에서 체크무늬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대생을 만났다. 응원 공연을 보다가 한 눈에 박힌 그녀에게 다가가 추파(?)를 던졌고, 둘은 그 후로 3년이나 같이 응원 공연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그녀는 취직을 못한 윤씨를 뒤로 한 채 결별을 선언했다. 아픔을 담아 두고 살아가고 있지만 요즘 윤씨는 학원강사 일을 하면서 축제 덕에 인기가 올라가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고 있다.“5월이면 학원 녀석들이 함께 대학 축제에 가자면서 난리가 나죠. 요즘에 가보면 고등학생도 즐길 정도로 대학 축제가 많이 젊어졌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대학 시간강사 백모(37)씨는 대학 1학년 때인 1991년 축제를 잊지 못한다. 그 해 축제는 ‘강경대 열사 정국´으로 음울한 분위기 속에 열렸다. 대부분 학생들이 학내에 머물지 않고 거리투쟁에 나섰다. 시위 참여를 주저했던 백씨는 축제를 빙자로 접근해 온 ‘열혈 운동권´ 선배와 밤새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시국토론을 벌였고 결국 선배에게 설득돼 거리로 뛰쳐 나갔다.‘노태우 정권 퇴진´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던 집회대오는 경찰이 쏜 최루탄에 흩어지기 시작했다. 처음 집회에 참여한 백씨는 매운 최루탄 연기에 당황해 그만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마음에서 나오는 건지, 최루탄 때문인지 모를 눈물을 흘리던 백씨에게 같은 신세의 동갑내기 여학생이 손수건을 내밀었다. “영락없이 경찰에 잡혀갈 줄만 알았는데 오히려 대어를 낚았죠. 때문에 1학년 대동제와 첫 거리집회는 제게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연예인 불러서 즐기는 요즘 대학 축제에서 저 같은 행운을 누릴 기회가 있을까요.” 서울 S대를 졸업한 이모(39·여)씨는 ‘대학 축제´하면 아쉬움부터 밀려 온다. 이씨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대학 시절 남자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매년 봄과 가을 축제가 다가오면 ‘이번에는 꼭 남자친구를 사귀어서 다른 친구들처럼 멋진 추억을 만들겠다.´고 다짐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남자 앞에만 서면 얼굴이 붉어지며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했기 때문이다. 축제 때면 이씨는 늘 주변인으로, 다른 커플들이 즐겁게 지내는 것을 지켜 봐야만 했다. 남자친구 얼굴에 물풍선을 던지거나 밤에 열리는 커플 댄스파티에 참가하는 친구들을 볼 때면 부러움에 마음만 졸였다. 친구들이 축제 때만 개방하는 남자 기숙사를 구경하러 간다고 할 때면 그들 틈에 끼어서라도 가보고 싶었다. “나이가 들수록 그 시절 해보지 못했던 게 너무 안타까워요. 요즘은 대학축제에서 낭만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연인끼리 게임을 즐기거나 춤을 추는 이벤트 같은 건 보기 드물고요. 저녁에 모여 술 마시는 축제로 전락한 것 같아 가끔은 서글퍼져요.” ●축제가 남긴 얼굴 빨개진 기억들 서울 K대를 졸업한 박모(33)씨는 대학축제 하면 ‘빨간 고무장갑´이 먼저 떠오른다.1995년 모 여대 축제 때다. 박씨는 학과 친구들과 그곳을 찾았다. 여대생들이 학교 안에 차린 주점에서 친구들과 함께 막걸리를 마셨다. 오후 10시쯤부터 친구들과 서로의 허리를 양팔로 잡은 뒤 길게 한줄로 늘어서 행진하는 ‘기차놀이´를 시작했다. 친구 중 한 명은 빨간 고무장갑을 머리에 쓰고 호각을 불며 흥을 돋웠다. 문제는 놀이의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발생했다. 일부 친구가 과격한 행동을 했던 것이다. 주차장에 세워둔 승용차 위에 올라가거나 여대생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행사를 방해했다. 여대 쪽에서 말려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시 모습이 생생하게 뉴스에 나왔죠. 저도 당시 노래 부르며 함께 놀았습니다.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우리 행동이 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학과 친구들 모두가 함께 어울려 잊지 못할 축제의 추억을 만들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죠. 그런데 요즘 축제 때 대학에 가보면 썰렁하더군요. 여행을 가거나 취업 준비 때문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다들 뿔뿔이 흩어져 지내더군요.” 직장인 황모(29)씨는 해마다 5월 축제철이면 앞니가 시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1998년 대학입학과 함께 맞은 축제에서 황씨는 묘한 긴장과 흥분에 과음을 했다. 황씨와 함께 한 학과 선배와 동기들은 잔뜩 취한 상태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캠퍼스를 누볐다. 황씨가 ‘아, 이게 내가 생각했던 대학 생활이야.´라며 행복에 젖어든 그 순간, 사단이 나고 말았다. 주체할 수 없는 젊음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같이 놀던 선배·동기들이 교내의 연못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고민할 것 없이 연못에 몸을 던졌던 황씨는 정체모를 뭔가에 부딪히면서 두 앞니가 부러져 버렸다. 연못인 줄 알고 뛰어 들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한 것. 황씨는 선배·동기들의 보살핌 속에 신속한 응급조치를 받을 수 있었다. 황씨는 이 날의 아픈 기억을 잊지 못하고 졸업할 때까지 축제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친구들아, 우린 왜 그 때 연못에 뛰어 들었을까.” ●축제 무관심, 지금은 후회돼요.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최모(23)씨는 대학 축제엔 사실 큰 관심이 없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광고 공모전에 더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 생활의 마지막 축제인 만큼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를 가요제와 공연을 챙겨 봤다. 가요제는 최씨가 다니는 대학의 축제 가운데 하이라이트라 불릴 만큼 학생들의 숨은 끼를 맘껏 감상할 수 있는 행사인 데다 올해 공연엔 몇년 전부터 팬이었던 가수가 찾아 왔기 때문이다.“사실 4학년이기도 하고 축제에 큰 관심은 없었어요. 그렇다 보니 가요제나 가수들 공연 정도만 관심을 갖게 되더라고요. 공짜로 공연을 즐길 수 있잖아요. 돈주고 그들의 공연을 보는 건 솔직히 아깝고 이럴 때 학교 축제를 이용하는 거죠.”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김모(29)씨는 학교 축제에 단 한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학업과 취직공부 때문이기도 했지만 밤이면 흥청거리는 술문화가 싫었다. 축제기간이 다가오면 강의실은 텅텅 비었고, 심지어 휴강하는 교수까지 있었다. 하지만 회사원이 되고 보니 당시 축제를 제대로 즐겨 보지 못한 것이 후회되곤 한다. 상관들은 잘 노는 직원이 일도 잘 한다고 치켜세운다. 그는 회식자리나 5월 회사 야유회만 가면 조용히 앉아 있기 일쑤다.“예전에는 노력만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세상은 여러가지를 잘 하는 사람을 원하더군요. 무언가를 즐길 줄 아는 능력도 사회 생활에서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사건팀 nomad@seoul.co.kr
  • 박용하, ‘온에어’ 종방 기념 국내 팬 미팅

    박용하, ‘온에어’ 종방 기념 국내 팬 미팅

    한류스타 박용하가 국내팬들과 뜻깊은 만남의 자리를 갖는다. SBS 수목드라마 ‘온에어’의 이경민 역을 맡아 열연 중인 박용하는 오는 18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충정로에 위치한 문화일보 홀에서 정식 팬 미팅을 개최한다. 당초 박용하의 팬들은 오는 15일 21회를 끝으로 막을 내리는 ‘온에어’ 종방을 기념한 조촐한 자체 팬 모임을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박용하가 “직접 참석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면서 정식 팬 미팅이 열리게 됐다는 후문이다. 특히 이번 팬 미팅은 그 동안 함께 하지 못했던 순수 국내 팬들만을 위한 자리로 신청접수가 시작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예상 인원을 훨씬 초과해 팬 미팅 장소를 3번이나 옮기는 상황이 벌어졌다. 박용하의 팬클럽 측은 “처음에는 ‘온에어’ 종영을 앞두고 아쉬워하는 팬들이 모여 방송을 함께 보는 조촐한 종방 이벤트를 하려 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박용하씨가 흔쾌히 참석하고 싶다고 해 팬 미팅으로 진행하게 됐다.”며 기뻐했다. 이번 박용하 팬 미팅은 박용하와의 토크를 비롯해 ‘온에어’의 베스트 영상, 신우철 감독 인터뷰와 배우들의 인사 영상이 상영된다. 사진=SBS 서울신문NTN 서미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제2회 베트남 한국영화 축제

    제2회 베트남 한국영화 축제

    ■ “효리씨와 같은 무대 서는게 꿈” 한국영화축제 무대 오른 ‘베트남 이효리’ 호 퀴인 흐엉 |하노이(베트남) 정서린특파원|“이효리의 한 부분만 닮았다 해도 영광이죠. 그와 같은 무대에 서는 게 제 꿈이에요.” 리듬에 맞춰 흩날리는 긴 생머리. 섹시함을 강조한 가죽바지와 부츠.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유연한 몸동작. 돌발적으로 객석에 뛰어드는 과감함까지….8일 ‘2008한국영화축제’ 무대에 선 호 퀴인 흐엉(28)은 ‘베트남의 이효리’로 불린다. 그는 2008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공연에 나설 베트남 대표가수이기도 하다. 현지에서는 ‘국민가수’급인 그의 목표는 한국 진출이다. 국내의 음악시장과 가수들의 가창력과 무대에서의 표현력을 연구하기까지 한다는 흐엉.“한국 음악시장에 뛰어들겠다는 건 아직 제 꿈에 불과하지만, 언젠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의 전통 북소리와 로큰롤을 배합해 베트남 가수만의 열정과 인상을 보여주고 싶어요.” 흐엉은 2004년에는 북한의 평양 봄국제음악페스티벌에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 29개국 800여명이 참가한 이 축제에서 그는 금메달을 받았다. 흐엉은 올 8월 발매하는 새 음반의 12곡 가운데 절반인 6곡은 잘 알려진 팝송으로, 절반은 한국어 노래로 채울 생각이다. 이번에는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와 함께 앨범을 만들었지만 다음 음반은 한국 작곡가와 작업하고 싶다고 한다.“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잘 부른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이번 앨범에도 넣을 생각입니다. 한국 팬들께서 직접 듣고 평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rin@seoul.co.kr 사진 도준석특파원 pado@seoul.co.kr ■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 심었다” 후앙 트완 아잉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하노이(베트남) 정서린특파원|“올해 제2회 한국영화축제는 베트남 관객들에게 한국의 발전된 영화산업의 총체를 보여줬습니다.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베트남 국민의 이해를 높이고 좋은 인상을 심어줬지요.” 후앙 트완 아잉(56)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9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2008한국영화축제’에 대한 각별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 영화국은 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와 공동 프로젝트도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베트남 정부는 4억 5000만달러 예산의 대규모 스튜디오 건설사업을 추진 중이다. 실외 세트장과 실내 스튜디오, 녹음실 등 영화제작 전반을 진행할 수 있는 콜로아 스튜디오는 올해 시공에 들어가 2012년 완공할 예정이다. 규모는 국내 남양주 촬영소의 6∼7배에 이른다. 현재 영진위가 참여하는 국내 민간 컨소시엄에서 계약을 추진 중이다. “콜로아 스튜디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영진위와 우리 사업관리위원회가 함께 관련 사업을 논의했습니다. 영진위의 창의적인 개발안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협력관계가 더욱 강화되길 바랍니다.” 후앙 트완 아잉 장관은 베트남 젊은이들의 ‘한류 열풍’에 대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그는 “역사와 문화, 생활방식에서 많은 공통점을 지닌 두 나라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한국인들의 의식에 늘 동감하고 있는 만큼 한류에 대한 비판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rin@seoul.co.kr 사진 도준석특파원 pado@seoul.co.kr
  • [주말탐방] 스포츠 서포터스의 세계

    [주말탐방] 스포츠 서포터스의 세계

    박찬호(35·LA다저스)가 지난달 26일 거의 2년 만에 승수를 쌓았다. 승리 뒤 박찬호는 “팬들이 보내준 메일을 읽다가 ‘시범경기 잘 던질 때 투구폼보다 팔이 옆으로 처진다. 팔을 높여보라.’는 지적을 받고 팔을 높이 든다는 생각으로 던지니 좋은 투구가 됐다.”고 말했다. 한 팬의 날카로운 지적이 쇠락하는 듯한 메이저리거에게 통산 113번째, 부활을 예고하는 승리를 안겨준 셈이다. 프로축구 전북 조재진(27)은 5일 동점골을 터뜨린 뒤 상대팀인 수원 서포터스 600여명 앞에 가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펼쳤다. 조재진은 “수원 서동현(23)이 선제골을 넣은 뒤 전북 서포터스 앞에서 춤을 추며 서포터스를 모독한 점을 되갚아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터넷상 뜨거운 논란을 기꺼이 떠안으면서까지 뜨거운 팬 사랑을 과시했다. 바야흐로 ‘팬들의 시대’다. 개방과 소통, 공유를 통해 각계각층에서 특정인 특정세력만이 아닌,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스포츠에도 예외가 없다. 비단 박찬호뿐 아니다. 스타가 팬들에게 인기몰이를 하기도 하지만, 팬들이 감독을 갈아치우기도 하고 선수의 스타일을 바꾸기도 한다. 축구장 한 쪽에 집단으로 자리를 잡고 경기 내내 한 번도 엉덩이를 붙이지 않은 채 목청껏 응원하는 축구마니아들이 있다. 또 야구장의 수많은 ‘재야 감독’들은 통계와 기록표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다. 농구코트에는 십 수년째 선수들을 쫓아다닌 덕분에 그들의 신상과 개인사, 컨디션을 훤히 꿰뚫는 열성팬들이 존재한다. 이런 이들이 축구, 농구, 야구 동네에 바글바글하다. 생업 탓에 미처 경기장으로 달려가지 못한 이들은 TV중계를 보며 탄성과 환희를 나눈다. 서포터스다. 이들을 따라가본다. 부산·창원 박록삼 임일영기자 youngtan@seoul.co.kr ■ ‘롯데 서포터스 연합회’-“야구장은 거대한 놀이터이자 삶의 활력소” 프로야구 롯데 팬들에게 야구장은 ‘거대한 어른 놀이터´다. LG와의 롯데 홈경기가 열린 지난달 29일도 마찬가지. 직전 27일 삼성에 3-17의 기록적인 대패를 당한 직후이고 평일이었지만 오후 5시 남짓부터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가 두 손에 치킨, 피자, 족발 등 먹거리를 잔뜩 싸들고 부산 사직구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경기 내내 ‘신문지 갈기´를 흔들었고 경기 막판 즈음에는 주황색 ‘롯데의 봉∼다리´를 머리에 뒤집어 쓴 채 목청껏 소리지르고 맥주를 곁들이며 유쾌하게 흥청거렸다. 직장인들은 아예 부서회식 장소를 사직구장으로 잡는다. 보험영업을 하는 오경석(40)씨는 팀 동료 8명과 함께 야구장을 찾았다. 오씨는 “단합과 스트레스 해소라는 부서 회식 취지에 가장 부합되는 장소라고 생각한다.”면서 “다들 야구를 미치듯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당히 술 먹고 노래 부르고, 춤도 추며 응원할 수 있는 야구장이 딱 좋다.”고 말했다. 일찍이 정수근은 제리 로이스터 롯데 감독에게 “사직구장은 빅 비어룸”이라고 익살스레 말한 바 있다. 김정환(38)씨는 ‘롯데 서포터스연합회´ 간사다. 자동차 딜러가 본업이지만 홈경기 때는 11개 모임의 300여명에 이르는 회원들과 ‘정모 준비´에 여념이 없다. 김씨는 “사직구장에는 꾸며진 것이 아닌 자발적인 응원 문화가 있고 이는 삶의 활력소다.”면서 “가끔 지나친 음주와 흡연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마니아부터 그냥 즐기는 팬까지 편안하게 공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롯데 광팬 손정빈(45)씨는 지난 1월 아예 사직구장 바로 앞에 호프집을 차렸다. 가게 안은 온통 롯데와 선수들 관련 사진 등으로 장식했다. 이곳이 롯데 팬들의 아지트가 됐음은 물론이다. 시내 중심가에서 사직구장 앞으로 옮겨 비시즌 때 손해가 있음에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단다. 팬들이 이 정도니 구단이 이들과 교류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992년부터 꼬박 만 17년 동안 롯데 연간회원이었던 지임용씨는 지난달 22일 76세 나이에 지병으로 숨졌다. 롯데는 2000년 준플레이오프 1차전 시구를 맡기기도 했다. 시즌중이었지만 구단 관계자들이 지씨의 빈소를 대거 찾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손씨와 김씨, 오씨, 지씨 할아버지는 부산에서 그리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이날 롯데는 LG를 8-0으로 이겼다. 경기가 끝난 뒤 롯데팬들은 손씨의 호프집으로, 야구장 광장 주변에 모여 잔치의 마지막을 만끽했다. 이날 밤 사직구장 앞 광장과 술집 골목길 사이에서는 자정이 넘어가도록 ‘부산 갈매기´와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가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롯데가 있어서, 프로야구가 있어서 행복하다. 롯데는 이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 ‘그랑블루’-“우리는 팀의 승리를 위해 모인 지지자들” 프로축구 수원의 홈경기가 열리면 ‘빅버드(수원월드컵경기장의 별칭)´는 온통 푸른색 물결이다. 서포터스의 자리인 N석은 통로, 복도까지 빼곡하게 들어찬다. 얼추 4000∼5000명이다. 몽땅 ‘그랑블루´다. 프로축구판 최고 극성, 최대 인원을 자랑하는 수원 서포터스다. 사정이 이러하니 N석은 아무에게나 돌아오지 않는다. 이 자리를 차지하려면 경기 시작 최소 한 시간 반 전에는 와야 한다. 늦으면 어쩔 수 없이 W석 등 다른 자리에 앉아야 한다. 물론, 어린 아들, 딸과 함께라 불가피하게 W석을 찾는 열혈 서포터도 있다. 이렇게 모인 이들은 아무도 강요하지 않지만 꼬박 두 시간 동안 한목소리로 고함 지르고, 노래 부른다. 이런 사람들이 매번 1만 5000명 이상 모인다. 무서운 곳이다. 수원의 성적이 좋지 않을 수가 없다. 수원은 8일 현재 컵대회 포함, 12경기 연속무패(10승2무)다. 지난달 30일. 평일 오후임에도 경남 창원까지 버스를 타고 원정응원을 온 수원 서포터스 ‘그랑블루´ 44명은 마치 페르시아 수만 대군에 맞서는 최정예 전사들 같았다. 이들은 놀랍게도 거의 대부분 휴가를 내고 온 직장인들이다. 보통 주말 원정경기에는 400명 정도가 함께 움직이지만 평일이라 적은 수준이라고. 아니나 다를까. 지난 5일 전북과의 원정경기에는 13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600여명이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 어느 원정경기든 일단 규모면에서 어지간한 홈팀 서포터스를 압도하는 것은 기본이다. 실제 골대 맞은편 스탠드에 자리잡은 경남FC의 서포터스 ‘단디´,‘뉴클리어´ 등은 홈경기임에도 안타깝게 20여명으로 더욱 미미했다. 물론 20대 전후로 구성된 이들의 열정만큼은 ‘×100´을 해도 모자랄 정도로 대단했다. 열정적이고 배타적으로 수원을 응원하는 ‘그랑블루´지만 궁극적으로는 K-리그의 발전과 서포터스 문화의 확대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50여개 서포터스모임의 연합체인 그랑블루를 이끌고 있는 박정혁(33) 회장은 “우리는 모두가 철저히 자발적으로 수원의 승리를 위해 모인 지지자들”이라면서 “다른 구단에도 우리같은 서포터스 문화가 많이 만들어져 프로축구가 질적으로 발전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수원 공격수 김대의(34)를 좋아한다는 한재준(43)씨는 일본계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한씨는 “원정 응원을 오려면 최소 3만∼4만원은 들어가는데 학생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박하성(35)씨 역시 조퇴하고 원정응원을 왔다. 박씨는 “연간 회원권이 매진된 구장이 수원 한 곳 뿐일 정도로 프로축구 서포터스 문화가 아직 열악하다.”며 미약한 축구팬 저변을 안타까워했다. 밤 10시30분쯤 버스에 올라탄 뒤 자정을 훌쩍 넘겨 수원에 도착한 이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고스란히 새벽 술자리까지 이어졌다. ■ ‘이상민을 응원하는 사람들’-“십시일반 정성 모아 응원광고 선물했죠” ‘그곳이 어디든… 이상민! 당신이 가는 길이 정답입니다.´ 지난해 7월14일 한 스포츠신문에 실린 전면광고는 스포츠팬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겼다.10년 동안 몸 담았던 프로농구 KCC를 본의 아니게 떠나 삼성으로 옮긴 ‘영원한 오빠´ 이상민(36)을 격려하기 위해 팬클럽인 ‘이상민을 응원하는 사람들(이응사)´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거둬 광고를 낸 것. 특정 스타를 응원하는 팬들이 신문에 광고를 낸 것은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 2004년 ‘농구대통령´ 허재(43·현 KCC 감독)의 ‘하야(下野)´에 즈음해 그를 아끼던 팬들이 ‘안녕, 나의 영웅´이란 카피의 전면광고를 실은 것. 이 광고에 감동을 받은 허재는 한 농구잡지에 ‘답 광고´를 싣기도 했다. 한국스포츠 사상 가장 아름다운 스토리로 남을 이 두 사건은 농구의 팬 문화가 다른 종목과는 다르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선수보단 팀에 대한 서포팅이 주를 이루는 야구나 축구와는 달리 농구는 개별 스타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것. 현역 선수 가운데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는 주인공은 단연 이상민이다.1999년 포털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이응사´는 1만 9000여명의 회원을 유지하고 있다. 스포츠 선수 한 사람의 팬클럽으로는 국내 최다. 회원 연령대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이 가장 많지만 초등생이나 60대 할머니도 찾아볼 수 있을 만큼 다양하다. 남자 회원비율도 예상을 뛰어넘는 30% 안팎. 가입하려면 클럽장에게 거주지역과 신상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이상민에게 전하고 싶은 응원 메시지를 남겨야 한다. 합격률이 70%에 그칠 만큼,‘아무나´ 가입할 수 없는 곳인 셈. 비시즌에 따로 정모(정기모임)는 없지만 시즌 중에는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뭉친다. 6년 전 이응사에 가입한 뒤 현재 클럽 운영을 맡고 있는 이선영(32·여·회사원)씨는 07∼08시즌 정규리그 54경기 가운데 무려 40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잠실에서 열린 27경기는 기본이고,‘반차´를 내고 부산이나 전주 등 지방원정에 나서는 일도 허다했다. 이씨는 “다른 종목과 달리 농구의 팬 문화가 팀보다 선수에 집중되는 현상은 프로농구팀들이 프랜차이즈 스타를 키우고 지키는 데 인색하기 때문”이라면서 “10년 넘게 농구를 지켜본 나같은 사람들, 그리고 그 가족들까지 어차피 오빠가 은퇴하면 자연스럽게 KCC팬으로 남게 된다. 구단 운영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이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구단의 마케팅 전략 부재를 꼬집었다.
  • 2008 돌아온 댄스뮤지컬 ‘사랑하면 춤을 춰라’

    2008 돌아온 댄스뮤지컬 ‘사랑하면 춤을 춰라’

    댄스컬 ‘사랑하면 춤을 춰라’(최광일 연출)가 24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다시 팬들을 맞는다. ‘사랑하면’는 2003년 12월 정동 팝콘하우스에서 공연되었던 ‘댄서에디슨’이 모태. 극중 말(대사)을 크게 줄이고 대신 춤을 전면에 내세워 주목받았던 그 실험무대의 폭을 넓힌 작품이다. 2004년 10월 메사 팝콘홀에서 초연된 뒤 ‘2006년 외신홍보상 문화부문 수상’,‘2007년 일본 도쿄 신주쿠 페이스극장 공연 전회 매진’,‘2007년 상반기 창작공연 초유 최단기간 22개 도시 투어’의 기록을 만들어냈다. 공연 자체는 배우들의 춤과 연기, 노래로 구성된 퍼포먼스 형태의 무언극이지만 ‘바라고 원하는 것은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주제를 ‘춤’에 담아 흥겹게 표현한다. 준, 선, 빈 등 세 사람의 탄생부터 성장기에 얽힌 에피소드들을 힙합, 재즈, 현대무용, 비보이, 팝댄스, 디스코 등 다양한 춤들에 녹여 풀어나가는 흐름. 춤꾼들의 개인기격 춤뿐만 아니라 흥겨운 랩, 독무와 군무가 조화를 이룬다. 남녀의 사랑을 커플댄스로 드러내고 생명의 탄생을 유쾌한 영상과 동작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랜턴이 날아다니는 착각을 만들어내는 ‘랜턴춤’도 등장한다. 창작뮤지컬의 흔한 소재인 멜로를 축으로 삼지 않은 채 관객과 무대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열정과 힘을 똑같이 나눌 수 있도록 꾸민 게 특징.“산다는 게 진지하고 철학적이지만은 않은 것같이, 펄펄 뛰는 젊은 춤의 힘이, 그리고 그 속의 단순한 진실이 관객에게 자극적인 행복을 선사하길 기대한다.”는 게 연출자의 변이다. 관객들은 여러 가지를 덤으로 챙길 수 있다. 공연 전 무대와 조명·음향·분장실을 둘러보는가 하면 배우들의 사인도 받고 사진촬영까지 할 수 있다. 화∼금 오후 7시30분, 토 오후 3시·7시30분, 일·공휴일 오후 3시.(02)580-1443.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불혹의 음악인생이라지만 난 아직 어린아이”

    “불혹의 음악인생이라지만 난 아직 어린아이”

    “손바닥도 마주쳤을 때 소리가 나는 것처럼 팬이 없었다면 나는 20년도 버티기 힘들었을 거예요.40년 세월이 빨리도 흘렀네요. 내 노래를 사랑해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음악인생 40주년을 맞은 조용필(58)의 소회는 비교적 담담했다.16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40주년 기념콘서트 ‘더 히스토리 킬리만자로의 표범’ 제작발표회에 나온 그는 ‘40’이라는 숫자가 부담스러운 듯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장 아끼는 곡 ‘킬리만자로의 표범´ ‘꿈´ “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숫자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아요. 얼마전 데뷔 반세기를 맞은 패티김 선배에 비하면 아직 어린아이지요.” 1968년 록그룹 ‘애트킨즈’를 결성해 가수의 길로 접어든 조용필은 1980년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등이 수록된 1집 앨범이 국내 최초로 100만장이 팔리며 가요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지난 40년 동안 18장의 앨범에 수록된 숱한 히트곡은 그에게 ‘국민가수’라는 수식어를 안겨줬다. “가장 아끼는 곡이요?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꿈’을 빼놓을 수 없을것 같아요. 가수 생활을 하다 보니 멜로디보다 가사에 더 의미를 두게 되더군요. 많은 분들이 이 두 곡의 가사에 공감한다고 생각해 이번 공연의 오프닝에 넣었어요. 노래는 제가 부르는 것이지만, 그 순간 이후는 대중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때 너무 미성인 목소리가 콤플렉스로 느껴져 일부러 탁성을 내기 위해 고민을 했다는 가왕(歌王). 지난 40년간 그에게는 어려운 시간들도 많았다. “연습을 하지 않으면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강박관념’에 늘 시달렸어요. 제가 좀 내성적인 편인데, 슬럼프가 닥칠 땐 ‘숨지 말고 앞으로 나가자.’는 생각으로 버텼고, 고비도 잘 넘길 수 있었지요.” ●“잠실경기장 공연 때마다 폭우 쏟아져” 지난 2003년 비가 오는 가운데 35주년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이번에는 5월24일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을 시작으로 대구 월드컵경기장(6월14일), 포항 실내체육관(7월19일), 미국 뉴욕 라디오시티홀(8월16일) 등 연말까지 국내외 24개 도시를 돌며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제가 잠실 주경기장에서 공연할 땐 꼭 비가 온다는 웃지 못할 속설도 생겼어요. 하지만 이번엔 무대와 장비에 6시간 동안 지속되는 방수처리를 했기 때문에 태풍이 와도 끄떡없을 거예요. 또 스탠드석에도 스피커를 따로 설치해 내 목소리와 시차가 없기 때문에 티켓의 구분은 있어도 소리의 구분은 없을 겁니다.” 조용필은 무대 인원만 1200명, 총스태프 5200명이 투입되는 이번 공연에서 모두 6개의 소장르로 나눠 40곡의 히트곡을 부른다. 또 무대 뒷면과 좌우에 국내 공연사상 최대 규모의 LEC(칩방식의 특수영상장비) 영상판을 설치해 화려한 이미지의 입체적인 무대를 꾸밀 예정이다. ●“공연문화 활성화에 도움 주고파” “미국에서도 야외 경기장(스타디움) 공연이 축소되고 실내로 들어가는 추세라고 들었어요. 아무래도 국내 공연문화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여러모로 열악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의미를 과소평가하기엔 이르다고 봐요. 기회가 된다면 제 고향인 경기 화성시를 비롯해 지방자치단체들이 문화예술타운을 조성하거나 축제를 개최하는 등 공연문화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한편 조용필은 이날 올해 선보일 예정이었던 19집 앨범을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중단했다고 밝혔다.“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건강 때문에 새 음반 작업을 60% 정도 진행하다 중단해 안타까워요. 여러 연령의 팬층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담을 예정입니다. 내년 초부터 나머지 작업을 시작해야죠.” 끝으로 그에게 있어 인생과 음악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사람이 살다 보면 다 똑같은 것 같아요. 열번 일하면 아홉번은 후회하고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하고 반성하죠. 그게 인생인 것 같아요. 다른 일은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제게 음악은 인생 그 자체예요.”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재용이의 순결한 19’ 한밤의 촬영현장을 가다

    ‘재용이의 순결한 19’ 한밤의 촬영현장을 가다

    케이블 채널 M.net에서 매주 수요일 밤 11시에 방송되는 ‘재용이의 더 순결한 19’(이하 순결19)가 다양한 호평과 비평을 받아가며 100회를 훌쩍 뛰어넘는 방송 횟수를 기록하고 있다. ’2류 문화의 대표주자’를 표방하는 ‘순결 19’는 M.net는 물론 한국 케이블 방송계에서도 최장수 프로그램으로 손꼽히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이런 인기는 프로그램의 MC를 맡고 있는 DJ.DOC 정재용 외에도 개장호, 개철민, 은석작가, 털피디 등 제작진까지 스타덤에 오르는 반향을 얻고 있다. 서울신문 NTN에서는 ‘순결 19’ 촬영이 한창 진행 중인 서울 논현동 CJ미디어 사옥을 찾아가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이날 인터뷰에는 송상엽 PD, 권기수AD, 김현서AD, 김장호AD, 김종민 작가, 정은정 작가, 추정흔 작가가 참석해 상호 비방을 벌이는 등 뜨거운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어느덧 100회를 훌쩍 넘었다 송상엽 PD: 예전 다른 방송국에서 비슷한 일을 한적 있는데 당시 한 인기 여자그룹을 조금 심하게 묘사한 적이 있었다. 당시 기획사 사장이 우리 팀을 수배령까지 내린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요즘 항의는 가끔 들어오지만 다들 재미 있게 봐주고 있다고 한다. 살기 좋은 세상이 된 것 같다.(웃음) ‘순결19’때문에 MKMF(엠넷 케이엠 뮤직 페스티벌)에 출연 섭외가 힘들었다고 한 적이 있는데 사실인가? 송상엽 PD: 사실이다. 실명을 거론할 수는 없지만 톱스타 A양 등 몇몇 연예인들이 ’순결 19’에 거론 되면서 출연 거부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외로 가장 많이 거론됐던 슈퍼주니어와는 무척 친한 사이다. 슈퍼주니어 멤버들도 평소에 우리 프로를 즐겨 본다고 하니 너무 고맙다. 개인적으로 미안한 연예인이 있다면? 정은정 작가: 나 역시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는데 왜 미안하지 않겠나? 사실 ‘순결 19’출연 비중이 높을수록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들이다. 왜곡된 사랑으로 빅뱅 출연 비중이 높은 편인데 빅뱅이 직접 따지러 와 주면 좋겠다.(웃음) 송상엽 PD: (김)장호AD의 경우 아이비 팬이다. 실제로 아이비가 한창 활동 할 때 편집하는데 진도가 안 나가더라. 김장호 AD: 아이비 무대를 재현하기 위한 안무 연습 때문이었다. (웃음) 지금까지 방송을 만들며 가장 힘든점이 있다면? 송상엽 PD: 소재고갈이다. 재탕을 할 때 마음이 아프다. 정은정 작가: 나 역시 소재고갈이다. 소스만 나오면 대본이야 워낙 잘 쓰니…(웃음) 김장호 AD: 편집이다. 사실 출연 같은 건 부담되지 않는다. 아! (정)재용이 형이 늦게 오거나 늦어지는 것도 고충이다. (이날도 역시 정재용은 당초 약속시간인 밤 10시를 훌쩍 넘은 11시에 도착했다) 송상엽 PD: 초심을 잃은 거다. (김)장호나 (김)철민이나 억지로 연기를 하는 그 자체가 웃겼던 건데 이제는 연기를 즐기는 단계에 도달했다. 전업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김장호 AD: (불편한 표정으로)의상이 없으면 싫을 때도 있다. 나는 2년 동안 빨지도 않은 옷을 돌려 입게 하고 있다. 송상엽 PD: 암암리에 개철민, 개장호의 이름으로 행사도 뛰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웃음) 가장 기억에 남는 방송분이 있다면? 송상엽 PD: 100회 특집 ‘이제는 말할 수 있다’편이다. 인터뷰 식의 진지한 프로그램은 처음 시도하는 것이었는데 색다르고 좋았다. 지금 인터뷰처럼 진지했다. 정은정 작가: 푸켓에서 촬영한 해외특집 편이다. 뒷이야기가 있는데, 원래 문어공주 역할은 내가 아니라 김장호 AD였다. 그런데 (김)장호가 호텔에서 술 먹고 아침 촬영에 나타나지 않아서 나로 대체됐다. 송상엽 PD: 다른 방송국이었다면 바로 징계를 받거나… 김장호 AD: 술이 죄다. 그 놈의 데킬라가 너무 좋아서… ‘순결19’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은? 송상엽 PD: 보통 대본이라고들 하는데 사실은 (정)재용이 형이다. 재용이 형의 컨디션에 따라 그날 녹화 시간이 결정된다. 뒷얘기지만 행사가 많은 연말이나 대학축제가 많은 시기에는 촬영이 힘들다. 요즘 같을 때야 수월한 편이다. 이렇게 촬영 하는 날은 즐거운 날이다. 일주일에 한번 와서 놀다가는 기분으로 하고 있다. 재용이 형이야 힘들지 모르지만…… (김장호 AD에게)방송 이미지가 좋은 편은 아닌데, 주변 반응은? 김장호 AD: 친구들이 창피하니깐 떨어져서 걸으라고 한다. 가끔 친구들과 술집을 갔을 때 ‘순결19’재방송을 할 경우가 있는데 손님들이 나를 알아보고 “이 XX 개장호다!”라고 한 적도 있다. 송상엽 PD: (김)철민이나 (김)장호나 부모님들 초청해서 대접을 해야 하는데 여의치가 않다. 꼭 모셔서 사죄를 하고 싶다. 앞으로 출연 해줬으면 하는 연예인이 있다면? 송상엽 PD: 장동건과 서태지다. 그들이 출연해 준다면 최고의 꽁트로 대한민국을 예능계를 뒤흔들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서태지의 경우 CF를 패러디 해 뽀글이 파마 가발과 함께 멜로디언 연주를 한다는 구상까지 잡아놨다. ‘순결 19’가 종영되면 어떤 작품을 할 것인가? 송상엽 PD: 아프리카 초원에 가서 다큐멘터리를 찍던가 정말 순결한…사죄하는 마음으로 보는 사람도 뿌듯하고 모든 사람이 좋아할 방송을 하고 싶다. 김현서 AD: 많은 연예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프로? 일부 신인들의 경우 우리프로에 출연 시켜달라는 분들도 있는데 우리 방식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좋다. 끝으로 ‘순결19’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송상엽 PD: 정말 순결하고 고결한 프로그램이다. 역설적인가? 최홍만과 밥샵이 언약식을 하는 그런 느낌이다. (웃음) 김종민 작가: 전에 잡지에 칼럼을 기고한 적이 있는데 ‘순결 19’에 대한 부분이 있었다. 거기에 말한대로 “하고 싶은대로 해서 성공한 프로”다. 한창 제작에 열중할 때 정말 즐거웠다. 이렇게 재미있는 프로는 없었다. 김장호 AD: 연예인 극성팬을 위한 프로? 자기들이 보고 화내고 좋아하는 그런 프로인 것 같다. 서울신문 NTN 김경민 기자 / 사진= 한윤종 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코미디계 이효리’에서 사회운동가 변신 권귀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코미디계 이효리’에서 사회운동가 변신 권귀옥

    과거시절 “배고파 죽겠네.”라고 했다면 요즘에는 “바빠 죽겠네.”라고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심심해 죽겠네.”가 아닐까. 40대 이상의 장년층에게 가장 잊지 못할 추억의 ‘외화’를 꼽으라면 아마 ‘왈가닥 루시’나 ‘홀쭉이와 뚱뚱이 대소동’ 등이겠다.1970년대 중반 국내 방영된 ‘왈가닥 루시’는 쿠바 음악밴드를 지휘하는 리카르도와 그의 아내 루시의 일상생활을 다룬 미국의 전설적 시트콤으로 회자된다. 이 무렵 우리 안방극장에는 코미디계의 1세대로 일컫는 인물, 즉 배삼룡, 구봉서, 서영춘 등을 비롯해 배일집, 권귀옥, 배연정, 남철·남성남, 그리고 뚱뚱이와 홀쭉이의 양훈·양석천 콤비 등이 당시 간판 코미디프로인 ‘웃으면 복이와요’를 통해 등장했다. 이들은 말 그대로 “배고파 죽겠네.”라고 했던 시절, 온갖 시름에 지친 국민들에게 많은 웃음을 선사했다. 이 가운데 권귀옥은 한국의 ‘왈가닥 루시’로 통하며 지금의 이효리처럼 많은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특히 ‘늘씬한 미녀 미스 권과 땅딸이 이기동’은 단연 압권이었다. 인기 절정이던 그럴 즈음,1980년 나이 서른에 미국으로 훌쩍 떠나버려 아쉬움을 더했다. 그간 한국에 들어와 간간이 방송활동을 하기도 했다. 세월이 지난 1997년, 미국 생활을 완전히 정리한 이후 봉사활동을 하며 지점토와 도예가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1970년 MBC탤런트 공채2기로 연예계에 데뷔했지만 본래 문학도를 지망할 만큼 그는 예술과 문학에 조예가 깊다. 하여, 귀국하자마자 한양여대 도예과 한홍곤 교수한테 찾아가 도예를 배웠다. 10년 세월이 지난 지금, 나름대로 ‘흙의 이치’를 터득했고 얼마전에는 ‘권귀옥의 흙장난’이란 개인전까지 열었다. 이때 정·재계 인사들이 많이 찾아와 평소의 인간관계를 입증했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대부분 인간 시리즈. 전시 도록의 인사말을 빌리면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못된 인간 빼고 다, 어린이들은 몽땅 예쁘다.”란다. 전시 수익금은 전부 어린이들을 위해 사용했다. 요즘에는 ‘청계천’을 주제로 한 ‘흙장난’에 여념이 없다. 왜 흙에 파묻혔을까. 알고 보니 깊은 뜻이 있다. 한국수양부모협회(회장 박영숙)의 후원회장을 맡아 뜻에 동참하는 전국의 순수 ‘개미회원’들에게 보답 차원에서 도예작품을 하고 있는 것. 즉 ‘사회운동가=도예가’로 제2의 삶을 사는 셈이다. 서울 정릉동의 전시실에서 권씨를 만났다. 분명 1950년생인데 40대의 얼굴로 보였다. 여전히 아름답다고 했더니 “철이 없어 그렇다. 어린이하고 자주 지내니 도로 젊어진 것 같다.”며 웃는다. 또 한 달 전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이젠 고아가 됐다는 심정도 내비쳤다. 먼저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우리나라는 현재 2명당 1명꼴로 아이를 낳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저출산국가이죠. 이대로 간다면 2305년이면 한국소멸을 알리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막내아이가 태어납니다. 국가는 물론이요, 민족과 문화가 통째로 없어진다는 것이지요. 요즘 미래국가로 떠오르는 인도를 보십시오.1명당 6.8명을 낳고 있습니다. 미래는 ‘쪽수’에 달려 있지요.” ▶수양부모협회는 어떤 일을 하는 단체인가요.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제는 그 도움과 사랑을 돌려줘야 할 때입니다. 저는 결혼은 안했지만 아이를 낳아 키워 미혼모나 해체가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이서 한 아이를 키우기도 힘든데 혼자서 아이를 키울 때 국가에서 지원은 못해줄망정 손가락질 하면 안 되거든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이를 고아원 보낼 때 어떤 경우에는 친권을 포기하게 됩니다. 이렇게 어려움에 처해 있는 분의 자녀를 보통 가정에서 잠시 키우다가 낳은 부모가 정상적인 생활을 찾았을 때 다시 돌려주는 운동에 앞장서기로 했습니다. 협회는 해체가정에 대한 대안모색에서 출발했지요. 또한 2010년이면 고아원이 대부분 없어지게 돼 있어 앞으로는 수양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습니까. “협회는 외환위기(IMF)때 생겼습니다. 미국에서 귀국하면서 알고 지내던 유엔미래포럼 한국대표 박영숙씨를 만난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힘을 모아보기로 했지요.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최저 출산국가이면서도 고아 수출국가이기도 해요. 이젠 우리 땅에서 낳아진 아이들을 우리가 키워야 합니다. 외국에 입양된 아이들이 잘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비운의 삶을 사는 경우도 많거든요.” ▶유명 코미디언에서 이젠 사회운동가로 나선 셈입니다. “사회운동이라기보다…, 미국에 살면서도 사회단체 등에서 식사와 청소 도우미 등 자원봉사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거기서 우리나라가 ‘고아수출국이다’ ‘아동학대가 많다.’ 등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솔직히 창피했습니다. 아무리 고아라도 동물처럼 집단생활을 하면서 키운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또 고아원에서 가끔 버려지는 아이들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매우 아팠습니다. 내 아이가 소중하면 이웃 아이도 당연히 소중한 것이 아닙니까.” ▶원래부터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나요. “부산 동래여고 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부산시립병원에 버려진 아이들이 많았지요. 그때 아이들은 사회 저명인사 등 아무 이름이나 붙여졌는데 어느날 ‘신성일’‘엄앵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재미삼아 찾아갔어요. 그런데 먹을 것, 기저귀, 옷가지 등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을 보고 너무 불쌍해 그 자리에서 막 울었습니다. 그래서 걸스카우트에 가입했고 매주 일요일마다 그 아이들과 만났지요. 한번 안아주면 제 목을 꼭 껴안았던 그때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도예는 언제부터 하셨나요. “저는 도예라는 말을 안쓰고 ‘흙장난’이라고 합니다. 한 10년정도 됐어요. 원래는 지점토를 했어요(‘종이 흙 입문’의 공동저자). 그런데 오래 못가고 잘 바스러지더라구요. 그래서 흙으로 전환했어요. 저는 철들고 나서 손톱을 길러본 적이 없어요. 뭔가 자꾸 만지는 버릇이 있습니다. 어릴 때 놀이터에서도 흙장난하는 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요새는 ‘고통시리즈’와 ‘청계천시리즈’를 하고 있습니다. 청계천에 맑은 물이 흐를 때 너무 기뻐서 ‘도심속의 청계천’을 하게 됐지요. 제가 만든 작품은 협회 후원에 참여하는 분들에게만 선물로 주기 때문에 작품가치가 매우 높지요.(웃음)” ▶어떤 도예기법인가요. “저는 형식과 기법을 다 무시해요. 제맘대로 흙을 주무르지요. 또 절대 그릇을 안만들어요. 물레도 쓰지 않고요. 흙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선물을 만든다고 생각하시면 돼요.‘고통시리즈’를 하면서 못 하나 박아줄 남자도 없이 혼자 흙과 씨름하며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남들한테는 항상 웃습니다. 제 DNA는 아버님을 200% 닮았거든요.” 권씨는 어릴 적부터 부산 서대신동 부잣집 딸로 통했다. 부친은 부산일보 기자 출신으로 글과 그림에 능했다고 한다. 만화가였던 오빠 권성국은 ‘허어선생’으로 한국일보 등을 통해 필명을 날렸다. 언니와 동생도 미대와 음대를 각각 나와 예술가 집안이나 다름없다고 권씨는 말한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 용도폐기가 안됐으면 합니다. 흔히 세가지 부류가 있지요. 사회에 필요한 사람, 있으나마나 한 사람, 또 있어서는 안될 사람 등이지요. 이제는 우리 사회에 대해 밥값을 하고 싶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아낌없이 (마음을)퍼줄 생각입니다. 하루에 50번씩 웃는 것도 그런 마음에서이지요.” 그의 도예작품은 얼마전 동래여고 교지에 표지그림으로 실렸다. 코미디언 권귀옥이 아닌 도예가로 모교가 공식 인정(?)했다. 그는 수양부모를 기다리는 아이들과 늘 함께 지낸다. 아울러 이들을 보면서 소중한 도예작품(선물)을 만든다. 그는 “요즘에는 다들 ‘바빠 죽겠네.’라고 하지만 곧 ‘심심해 죽겠네.’라고 할 텐데 심심하지 않도록 열심히 친구들과 더불어 살겠다.”고 했다.“다음달 남산에 ‘흙장난’이라는 사랑방을 오픈하거든요. 심심하거든 그리 놀러오세요.”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0년 부산 출생 ▲68년 동래여고 졸업 ▲70년 MBC공채2기 탤런트 ▲74년 코미디언으로 전향 ▲76년 MBC 최우수연기상(코미디부문) ▲77∼85년 MBC라디오 ‘가요열차’‘싱글벙글쇼’‘라디오가요퀴즈’ ▲86년 KBS라디오 ‘저녁의 가로수를 누비며’ 진행 ▲98년 ‘사람 주제’의 도예활동과 출산장려운동 참여 시작 ▲2006년 도예 첫 개인전(경향갤러리) ▲현재 사단법인 한국수양부모협회 후원회 회장. 도예작품 활동 # 주요 코미디프로 출연작 MBC-TV 웃으면 복이와요·부부만세·코미디극장·쇼반세기 등 # 주요 도예전 권귀옥의 흙장난(개인전)외 그룹전 3회 # 저서 ‘종이 흙 입문’ 공동저자
  • 라오스에는 태국서 유입된 ‘한류’ 흐른다

    라오스에는 태국서 유입된 ‘한류’ 흐른다

    5일 밤(현지시간) 그룹 파란의 라오스 쇼케이스가 끝나자 현지 여성팬 수백 명이 차량을 두드리며 에워쌌다. 경찰의 도움으로 공연장을 빠져나왔지만 파란의 차량과 라오스인들의 주요 교통수단인 오토바이의 추격전은 비엔티안 도심에서 수백 미터 가량 계속됐다. 파란의 라오스 방문은 이번이 처음. 해외 가수 중 두 번째(지난해 12월 여성그룹 베이비복스 리브가 최초), 해외 남자가수 중 최초 공연이다. 그렇기에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들이 “파란~”을 연호하며 적극적인 ‘팬 십’을 보이는 것은 쉽게 보기 힘든 장면. 북한대사관이 있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라오스는 한국인에게 다소 생소한 나라다. 지난달 탈북자 12명이 라오스 주재 한국대사관으로 진입해 망명을 요청했다는 뉴스가 화제의 중심에 섰을 뿐이다. 교민은 대략 400여 명에 불과하지만 거리에는 값싼 한국 중고차의 인기로 유명 브랜드 차량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라오스에서 만난 현지인과 교민들은 “한류(韓流)가 이곳에도 진입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류는 이미 흐르고 있으며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배경에는 태국의 영향이 자리하고 있다. 태국어와 70% 가량 유사한 라오스어를 쓰는 이곳 사람들은 주로 태국 TV를 시청한다. 라오스에는 두개의 국영 방송국만 있어 태국 방송의 점유율이 높은데다, 프로그램의 재미가 태국보다 떨어지는 탓이라는 게 현지인들의 설명이다. 드라마 ‘풀하우스’가 태국에서 방송된 후 라오스에서 주인공 비는 유명 한국 스타로 자리매김 했고, 이 드라마에서 흘러나온 동요 ‘곰 세마리’는 젊은층이라면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됐다. 3일 라오스 입국 당시 공항에서 본 태국 방송에서도 드라마 ‘파리의 연인’이 방송되고 있었다. 태국어로 음반을 내는 등 태국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파란이 라오스에서 인지도가 높은 이유가 설명되는 대목이다. 라오스에 진출한 파란의 쇼케이스 후원사인 스웨덴 이동통신회사 티고(Tigo)의 마이클 클루젤(Michale Cluzel) 제너럴 매니저는 “리서치를 벌인 결과 라오스 내 파란의 인지도가 높아 초청했다”며 “요즘 한국 드라마와 음악이 인기로 다운로드 시장이 급성장한 이곳에서 한국 콘텐츠는 무척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지 여행가이드 김봉태(26) 씨는 “태국은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받아들이고 라오스는 태국의 것을 흡수한다”며 “태국에서 드라마 ‘주몽’이 방송됐을 때 라오스 거리가 한산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이 나라는 비디오 없이 DVD, 공중전화 없이 휴대전화가 도입된 독특한 나라”라며 “한동안 이곳에 도로 등을 건설해주며 아낌없이 투자한 일본 음악이 대세였다. 주로 음반 시장은 태국, 일본, 중국 가수들이 차지했는데 현재 휴대전화 다운로드 시장에선 태국과 한국 음악이 인기”라고 덧붙였다. 5년 전 이곳으로 이민 온 라오아메리카컬리지 경영학과 4학년의 최진경(24) 씨 역시 국영방송인 라오 스타 TV에서 ‘프로포즈’ 등 과거 한국 드라마를 방송해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크게 느낀다고 했다. 최씨는 “친구들은 ‘풀하우스’ 등 한국 드라마, 비와 동방신기 등의 가수에 대해 묻는다”며 “4~5년 전만 해도 내게 ‘사요나라’(일본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던 사람들이 ‘안녕하세요, 사랑해요, 감사합니다’ 등의 한국어도 대부분 안다”고 말했다. 현지인과 교민들은 대부분 “라오스에도 한류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그 이유로 드라마, 음악 등이 인기를 끌며 한국인에 대한 친근함이 바탕에 깔린 덕택이라고 분석했다. 연합뉴스@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햄릿의 매력은 다면성… 당대의 거울”

    “햄릿의 매력은 다면성… 당대의 거울”

    60년 넘게 셰익스피어 연구에 몰두해온 원로 영문학자가 다시 ‘햄릿’에 주목했다. 국제교류진흥회 이사장인 여석기(86) 고려대 명예교수. 최근 펴낸 저서 ‘나의 햄릿 강의’(생각의나무)를 통해 여 교수는 영문학 전공 학생에서 일반 독자로 강의 대상을 넓혔다. 1일 서울 대치동 자택에서 만난 여 교수는 “햄릿은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사, 캐릭터, 극 전개 등 상당히 수수께끼가 많은 작품”이라고 말했다.‘햄릿’은 16세기에 쓰여진 작품이지만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영화나 연극으로 옮겨져 오고 있다.“속된 말로 얘기하면 참 맷집이 좋은 작가에 작품이야. 두들겨 팬다고….”(웃음) 이렇듯 ‘햄릿’이라는 캐릭터가 전세계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작용하는 이유는 뭘까. 여 교수는 캐릭터의 다면성, 당대 지성인들의 자기 동일시에서 그 답을 찾아낸다.“사색적이고 결단력이 부족한 낭만적인 햄릿상이 기존의 고정관념이라 할 수 있는데, 학자들은 계속 그걸 깨고 있습니다. 햄릿을 행동적·염세적으로 보는 거죠. 저는 그런 다면성이 햄릿의 매력이라고 봅니다. 또 18∼20세기 당대 지식인들은 햄릿에 늘 자신을 투영해 왔어요.2차대전 후 폴란드 학자 얀 코트는 ‘가장 우리 동시대적인 면모를 띠는 인물이 햄릿’이라고 했죠.19세기 러시아의 투르게네프는 인간을 햄릿형과 돈키호테형 두 유형으로 나눴지요. 당시 러시아인들은 여러 억압 속에서 우리는 햄릿 같은 존재라고 믿었습니다. 말하자면 햄릿은 당대의 거울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지요.” 여 교수는 셰익스피어 작품은 영미권 밖에서 더 자유롭게 ‘칼질’이 이뤄진다고 지적한다. 문화권의 영향도 크다. 그러나 지금껏 국내의 셰익스피어 작품은 ‘자기화의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했다는 게 여 교수의 주장이다. “‘햄릿’은 1922년 처음 번역돼 나왔고, 신극으로 공연된 것은 1951년입니다. 그때도 단순히 서양의 고전이라고 해서 올린 거지,‘자기 것’으로 소화해 올렸다고는 할 수 없지요. 우리나라는 개화기 이후 서양문학의 영향을 받으며 신극운동을 해왔지만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헨리크 입센, 안톤 체호프 같은 작가로부터 출발했지요. 서양문화의 세례를 셰익스피어에게서 받은 흔적은 없어요.” 여 교수는 1965년 극작가들을 위한 극작워크숍을 처음 개설했다.1970년부터 10년간 사재를 털어 계간지 ‘연극평론’을 발간하기도 했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여석기 연극평론가상도 올해로 11회를 넘겼다.“비평가는 남을 납득시켜야 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비평가는 바람직하지 못하지요. 자신의 주장이 있으면, 내가 왜 이런 입장을 취하느냐는 알맹이를 보여 주는 게 중요해요.” 신극 100년을 바라보는 소감을 묻자 여 교수는 “현장에서 떠난 지 오래”라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들려줄 말은 많은 듯했다. 노학자는 국가를 대표하는 극장으로서 국립극장의 권위를 확고히 세우는 일과 해외에서 인정받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만들기 위한 연출가들의 노력을 주문했다. 글 사진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장국영 사망 5주기…중화권 전역 추모물결

    장국영 사망 5주기…중화권 전역 추모물결

    “그가 떠난 지 1828일…” 홍콩 영화계 최고 스타였던 장궈룽(張國榮·장국영)의 사망 5주기를 맞아 중화권 전역에서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장궈룽은 지난 2003년 4월 1일 갑작스럽게 투신자살 해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중화권 전역에서 사망 5주기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특히 홍콩에서는 유명 연예인들이 참석한 대규모 추모 콘서트가 눈길을 끌었다. 홍콩 문화중심광장에서 열린 이번 추모 행사에는 1977년 장궈룽이 참가했던 가요제 영상을 비롯해 콘서트 장면을 상영하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됐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장궈룽의 죽음을 애도했다. 추모 행사에 참석한 한 팬은 “비가 내리는 걸 보니 하늘도 슬퍼하는 것 같다.”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추모 콘서트는 지난 31일에 이어 4월 1일 홍콩 홍칸(紅磡)체육관에서 열린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장쉐유(張學友·장학우), 량차오웨이(梁朝偉·양조위)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장궈룽이 생전에 자주 애용하던 식당과 술집에서는 그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과 뮤직비디오를 특별 전시·상영하는 등 애도의 물결이 끊이지 않았다. 중국 각 포털사이트도 장궈룽 사망 5주기 특별 페이지를 제작하고 뮤직비디오와 출연작, 사진 등을 게시했다. 한편 국내에서도 장궈룽의 사망 5주기를 맞아 출연작인 ‘아비정전’ ‘해피투게더’등이 재개봉 되는 등 추모 행사가 열려 식지 않은 그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사진=cnsphoto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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