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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혜리 잠실여신, “남학생들이 나 때문에 패싸움까지..” 어땠길래?

    혜리 잠실여신, “남학생들이 나 때문에 패싸움까지..” 어땠길래?

    혜리 잠실여신 사진이 화제다. 걸그룹 걸스데이 혜리가 MBC 뮤직 ‘피크닉라이브 소풍’에 출연해 “학창시절 잠실 여신이었다. 남학생들이 나 때문에 패싸움까지 했다”고 밝혔다. 함께 출연한 걸스데이 멤버 소진은 “혜리가 학창시절 자칭 타칭 ‘잠실여신’으로 불리웠다고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혜리는 “지금도 동창들이 모이면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학창시절 나 때문에 학교 대 학교 남학생들의 패싸움이 벌어졌다”며 “바로 영화 ‘늑대의 유혹’의 한 장면이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혜리의 졸업 앨범 사진이 공개되며 ‘잠실 여신’ 시절 모습이 공개됐다. 졸업앨범 속 혜리는 긴 머리를 늘어트리고 커다란 눈망울을 자랑했다. 청순한 외모에 뽀얀 피부, 청초한 모습이 여신 자태를 인증했다. 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 (혜리 잠실여신)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머리에 20cm 화살 박히고도 생존한 ‘럭키男’ 화제

    머리에 20cm 화살 박히고도 생존한 ‘럭키男’ 화제

    석궁으로 쏜 화살을 머리에 맞고도 기적적으로 생존한 20대 남성의 사연이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24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화제의 주인공은 그림즈비에 거주하는 27세 남성 롤렌다 게드미나스로, 동네 공원에서 벌어진 집단패싸움에 휘말렸다가 변을 당했다. 당시 공원에서는 그림즈비 지역 거주민들과 해외 이민자들이 각각 무기를 들고 험악하게 대치중이었고 리투아니아 출신인 게드미나스는 이민자들 쪽에 서있었다.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게드미나스는 지역 거주민들에게 잡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뒤 구타당했는데, 그때 거주민 중 한명이 석궁으로 그의 머리를 쐈다. 20cm에 달하는 석궁용 화살 일부분이 게드미나스의 관자놀이 부근에 박혔지만 다행히 급소를 빗겨나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게드미나스의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는 “만일 화살이 1mm만 깊었으면 뇌 줄기나 경동맥이 절단돼 사망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게드미나스를 쏜 범인은 지역 거주민인 로드 울리스(22)로 밝혀졌으며 살인미수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사진=데일리메일 캡처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패싸움 난 산타들”… 누가 좀 말려줘요

    “패싸움 난 산타들”… 누가 좀 말려줘요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14일(현지시각) 뉴욕시에서 올해 펼쳐진 이른바 ‘산타콘(SantaCon)’ 행사에서도 예전과 같이 술에 취한 산타들의 추태가 벌어졌다. ‘산타콘’ 행사란 지난 1997년부터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산타클로스와 사슴, 꼬마 요정 등의 복장을 차려입고 뉴욕시의 술집 등에 모여서 서로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며 음주와 함께 파티를 즐기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행사는 그동안 젊은이들이 대낮부터 과도하게 술을 마셔 길바닥에 쓰려지거나 구토를 하는 등 부작용을 불려 왔으며 절도, 폭행 사건 등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 뉴욕경찰(NYPD) 당국을 곤혹에 처하게 했다. 따라서 올해도 경찰 당국과 뉴욕시 관계자들은 술집에 협조 공문을 보내는 등 부작용을 축소하려고 노력했으나 추태는 여전했다. 특히 14일 밤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술에 취한 일단의 젊은이들이 맨해튼 대로변에서 집단 패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그대로 잡혀 유튜브에 올라왔다고 허핑턴포스트가 보도했다. ☞ 동영상으로 보기 “2013년 뉴욕시 산타종말(Santapocalypse, NYC 2013)”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이 패싸움 동영상은 10명가량의 젊은이들이 서로 뒤엉켜 주먹다짐을 하고 있는 장면이 그대로 담겨 있어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사진: 집단 패싸움을 벌이고 있는 산타 복장 젊은이들 (유튜브 캡처)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왜 차별하냐” 中농민공들 파출소 습격·시위

    중국 광둥(廣東)성에서 외지 농민공과 현지 주민 간 갈등으로 농민공들이 현지 파출소를 습격하는 등 군중 시위 사건이 발생해 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8일 홍콩 명보에 따르면 지난 7일 광둥성 마오밍(茂名)시 정부청사 앞으로 허난(河南)성 출신 농민공 100여명이 화물차 30대를 몰고 와 건물 입구를 봉쇄한 채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현지인과 외지인을 차별한 경찰의 사건 처리 태도에 불만을 터뜨리며 지난 6일 체포된 같은 고향 출신의 동료 노동자 2인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이번 사건은 작은 다툼에서 비롯됐다. 지난 6일 마오밍시 인근에서 허난 농민공이 운전하던 경운기에 현지 주민이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치료비 문제를 둘러싼 언쟁이 현지 주민들과 노동자 간의 집단 패싸움으로 번졌다. 당시 인근 샹산(祥山) 파출소 경찰들이 신고를 받고 출동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날 오후 이 일대 허난성 출신 농민공 40여명이 떼지어 샹산 파출소를 습격했다. 이들은 쇠몽둥이로 파출소 내 각종 집기를 때려 부수고 경찰 2명을 납치했다. 명보는 경찰들이 분쟁을 조정하면서 현지인들이 농민공의 경운기 4대를 파손한 것을 방치하는 등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하지 못해 시위를 촉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농민공들의 시위는 인근 마오밍 경찰서가 인력을 투입하면서 제압됐고 이 과정에서 사건을 주도했던 농민공 2인이 체포됐다. 7일 시위는 당시 체포된 농민공들에 대한 석방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내 개발 지역에는 돈벌이를 하러 온 외지인이 많은데 이들에 대한 차별이 심해 이따끔씩 군중 시위가 일어나는 등 사회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김문이 만난 사람] 가출 소녀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꿈 전도사로 거듭난 32세 스타 강사 김수영

    [김문이 만난 사람] 가출 소녀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꿈 전도사로 거듭난 32세 스타 강사 김수영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그렇게 자랐나 보다. 어린 시절 무척 가난했다. 사람들은 철부지, 말썽쟁이라고 했지만 나름대로 세상을 알고 있었다. 주변의 시선이 따가워, 또 너무나 외로워 가출을 했다. 싸움도 하고 죽도록 매를 맞아 깊은 상처도 입었다. 우여곡절 끝에 암울했던 과거와 이별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꿈 많은 소녀로 변신해 보란 듯이 당당하게 살아갔다. 인생의 먹구름을 스스로 걷어내고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을 적었다. 그러다 보니 83개가 됐다. 그중 48개는 이미 이뤘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작가, 배우, 요가 강사, 블로거, 기업인, 꿈쟁이 등이다. 올해 나이 32살의 김수영씨. 스타 강사로도 소문나 있다. 지난해 6월 이후 200여 차례의 강연에서 10만명을 만났다.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라는 책으로 30만명의 독자들과 만났고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라는 책으로 20만명을 만났다. 그의 블로거에 찾아온 손님은 무려 150만명이다. 가출소녀였지만 지금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꿈 멘토’, ‘꿈쟁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길지 않은 인생에, 남달랐던 그의 인생 이력을 간단히 짚어보자. 중학교를 중퇴한 가출 소녀였다. 집은 가난했다. 폭주족과 어울렸고, 싸움에 휘말려 칼을 맞기도 했다. 그러다 ‘아직 우린 젊기에, 미래가 있기에’라는 서태지의 노래 ‘컴백홈’을 듣고 ‘나도 열심히 살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갔다. 검정고시로 친구들보다 1년 늦게 여수정보과학고에 입학했다. 1999년 학교에서 진행된 ‘도전 골든벨’ 방송 프로그램에서 골든벨을 울렸고 2000년 연세대에 합격했다. 졸업 후 골드만삭스에 입사했지만 8개월 만에 암세포가 발견돼 회사를 그만뒀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어내려 갔다. 73개의 꿈 리스트. 첫 출발은 한국을 떠나는 것이었다. 2005년 무작정 영국으로 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런던대에서 석사를 마쳤다. 2007년 로열더치셸에 입사해 연 800만 달러의 매출을 책임지는 카테고리 매니저로 일했다. 2010년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를 냈다. 30만부가 팔렸다. ‘사람들에게 영감 주기’도 73개 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 사이 암이 완치됐다. 2011년 6월부터 1년 동안 휴가를 내고 유럽·아시아 여행길에 올랐다. 지구 반 바퀴를 돌며 365명의 꿈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지난해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를 펴냈다. 20만부나 팔렸다. ‘드림 파노라마’라는 회사를 만들어 꿈과 관련된 각종 이벤트를 열었다. 지난 2월엔 꿈을 이루도록 돕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버키 노트’도 출시했다. 오는 9월 다시 지구의 나머지 반 바퀴를 돌기 위해 떠난다. 이번엔 335명을 만나 꿈에 관해 인터뷰를 할 예정이다. 지난해 인터뷰한 이들까지 합하면 700명이 된다. 70억 지구의 0.0000001%다. 나름의 인류학적 보고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짧은 인생에서 이러한 이력들이 정말 가능했을까. 궁금해진다. 지난 27일 저녁 서울 홍대 앞 가톨릭청년회관에서 김씨를 만났다. 그는 이 회관에서 젊은이들을 상대로 ‘미친(me-親) 꿈에 도전하라’는 주제로 강연이 예정돼 있었다. 강연 내용이 뭔지 먼저 물어봤다. “오늘날 청년들, 대학생들은 너무 따지다 보니 결론을 잘 못내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까지 모든 일을 엄마가 결정해 주다 보니 대학생이 되고 나면 멘토를 찾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나 저는 멘토링 자체를 반대합니다. 멘토링 또한 그 연장선상이 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젊은 친구들을 상대로 강연할 때는 소크라테스적인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그는 강연할 때 가끔 인도춤과 요가를 선보이기도 한다. 하여, 요가강사라는 이름이 따라다닌다. 여러 가지 수식어 중 어느 것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즉각 ‘꿈쟁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다른 것은 세월이 지나면 변하겠지만 꿈쟁이만큼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게 이유다. 스타강사가 된 까닭을 물었다. “저는 연구를 많이 한 학자도 아닙니다. 더군다가 자기계발을 말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오로지 제가 걸어왔던 ‘실천’만을 얘기할 뿐이지요. 다른 분들은 강의할 때 훌륭한 사람들을 예로 들지만 저는 제가 직접 겪은 얘기만 합니다. 거기에서 다들 진정성을 느끼는 것 같아요. 꿈에다 영감과 씨앗을 불어넣어 주는 그런 차별성도 있고요.” 그가 꿈쟁이, 꿈 전도사로 나선 계기는 무엇일까. 2005년 입사를 앞두고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 암세포가 발견됐다. 평생 건강하게 살 것만 같았던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큰 충격에 빠졌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정신적 후유증이 너무 컸다. 방황했던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이젠 잃을 것도, 두려울 것도 없었다. 앞으로 새로운 인생을 펼쳐야겠다고 다짐했다. 살면서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적어 보았더니 73가지(지금은 83개)였다. 중매쟁이 같은 엉뚱한 꿈도 있었지만 모두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73가지 목표 중 중요도와 긴급한 정도를 점수로 매겼고 이 두 가지 조건을 기준으로 정렬을 했다. 목록의 첫 번째는 한국을 떠나 세계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한번뿐인 인생, 태어난 곳에서 평생 살아야만 할까. 인생의 3분의1 가까이를 한국에서 살았으니 다음 3분의1은 세계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 3분의1은 가장 사랑하는 곳에서 살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꿈쟁이’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지구 반 바퀴를 돌며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꿈에 관해 인터뷰를 했던 얘기는 그때부터 이어진다. “이스라엘에서 63세 할머니를 만났어요. 네 살 때부터 노래를 했는데 10년 전 후두암 판정을 받았대요. 그래도 무대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꿈이란 그런 것이구나 새삼 느꼈지요. 팔레스타인에서 만난 한 독립운동가는 ‘그동안 죽을 고비를 일곱 번이나 넘겼다. 독립이 되고 나면 반드시 의사의 꿈을 이룰 것이다’라는 얘기를 했는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70여개국을 다녀 보니 우리나라처럼 꿈을 꾸면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 좋은 나라는 별로 없었어요.” 그는 탈레반 사람들과도 꿈을 주제로 인터뷰했고 레바논에 가서는 TV에 출연해 아랍어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자신의 꿈 리스트 가운데 48개를 이뤄냈다. 여자의 몸으로 혼자 20㎏짜리 배낭을 짊어지고 다니기가 불안하지 않으냐고 했더니 “다 사람 사는 곳이다. 사고가 나려면 우리 집 앞에서도 날 수 있다. 문제가 생기면 그걸 탓하지 말고 해결하려고 생각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그는 광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직업을 따라 여수에서 10세 때부터 지냈다. 초등학교 5학년 소풍 가는 날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당시 TV에서 유행하던 ‘민지의 일기’를 패러디해 큰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갈 때 덩치 큰 학생한테 ‘잘난 척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이후 그는 ‘왕따’를 당했다. 학교생활이 싫어졌다. 때마침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마저 매일 술을 마시고 툭하면 신경질을 부렸다. 학교와 가정,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자살할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렇게 외롭고 괴롭던 시절, 그나마 위안을 준 것은 바스콘셀레스가 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였다.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세상의 시선은 더욱 따가웠다. 소풍날 장기자랑 시간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를 불렀지만 ‘까진 아이’라는 말만 들었다. 성질이 나서 담배도 피워 보고 술도 마시며 어설프게 호기를 부렸다. 선생님한테 찍혔다. 그래서 맞섰고, 돌아온 것은 매뿐이었다. 주먹으로, 발길질로, 몽둥이로 만신창이가 됐다. 학교 다니는 것이 점점 싫어졌다. 결국 가출을 하고 말았다. 친구집, 주유소 등을 전전했다. 패싸움을 하면서 여러 번 죽을 고비도 넘겼다. 중학교를 자퇴한 지 1년 반 만에 검정고시를 거쳐 여수정보과학고에 진학했다. 그의 인생이 바뀐 것은 수능을 며칠 앞두고 ‘KBS 도전 골든벨’에서 실업계 고등학생 최초로 골든벨을 울리면서부터였다. 얼마 뒤 여수 진입 도로에 ‘여수정보과학고 골든벨 김수영, 연세대 인문계열 합격’이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미운 오리새끼가 어느 날 갑자기 백조로 둔갑한 느낌이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50여개 회사로부터 불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세계 최고 기업 중 하나인 골드만삭스에 입사했다. 그가 적어놓은 꿈 중에 부모에게 집을 사주고 해외여행을 시켜 준다는 약속도 지켰다. 가출 당시 함께 지냈던 친구들도 지금은 장사를 하면서 잘 살고 있단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에게 지금보다 나이가 더 들었을 때 어떤 모습이고 싶냐고 물었다. “지금은 개인적인 꿈을 이루기 위해 이리저리 다니고 있어요. 하지만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보람된 일을 하고 싶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 뭔가 나눠 주는 사람이고 싶어요.” 또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같은 소설도 쓰고 싶다며 웃는다. 앞으로 1년간은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지로 떠나 또 다른 꿈의 여정을 펼칠 예정이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꿈쟁이’ 김수영은 광주에서 태어나 여수에서 자랐다. 여수정보과학고 3학년 때 KBS 도전 골든벨에서 실업계 고교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골든벨을 울렸다. 연세대에 진학해 영어영문학과 경영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2005~2006년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학교(SOAS) 중국국제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로열더치셸 카테고리 매니저, 골드만 삭스 애널리스트 등을 거쳤다. 현재는 여행가, 작가, 사업가, 마케터, 강연가, 블로거, 번역가, 사진작가, 다큐멘터리 제작자, 요가 강사, 인도 발리우드 영화배우, 예술가, 기획자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꿈의 파노라마’ 대표 꿈쟁이다. 위촉사항으로는 여수시 명예홍보대사, 서울시 드림멘토, 한국장학재단&어린이재단 명예홍보대사 등이 있다. 저서로는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2010년),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2012년), ‘드림레시피’(2013년 6월 예정) 등이다. 국내 언론뿐만 아니라 아르메니아, 아랍에미리트연합, 인도, 싱가포르, 네팔, 레바논, 중국, 타이완 등 25개국 해외 매체에서 그의 활약상이 보도됐다.
  • 맨유 ‘신성’ 윌프레드 자하 형은 유명 조폭?

    맨유 ‘신성’ 윌프레드 자하 형은 유명 조폭?

    영국 리버풀의 루이스 수아레즈(26)가 이 선수를 물어 뜯다가는 ‘핵이빨’이 ‘강냉이’가 될지도 모르겠다. ’챔피언십 루니’로 불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신성 윌프레드 자하(21)의 큰 형이 유명 조폭 두목인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현지매체 데일리미러는 “자하의 큰 형 허브 자하(24)가 런던을 무대로 한 유명 갱 조직 DSN의 리더”라고 단독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허브는 젤터(Zeltor)라는 이름으로 조직에서 활동 중이며 여러 폭행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DSN은 지난 2007년 런던 남부 클로이돈에 위치한 한 쇼핑센터에서 대낮에 라이벌 조직과 칼과 방망이를 들고 패싸움을 벌여 유명세를 얻었다. 이후 이 조직은 시내에서 벌어진 총격, 강도, 폭행 사건들과 연관돼 현지 경찰의 조사를 받아왔다. 허브는 특히 지난해 7월 자동차에 앉아있던 한 여성을 폭행한 죄로 구속된 후 조건부 가석방 된 바 있다. 자하 측 에이전트는 그러나 기사의 사실 여부와 관련된 모든 질문에 응답하지 않았다. 한편 코트디부아르 태생인 자하는 천재적인 실력으로 올해 1월 맨유와 5년 6개월의 입단 계약을 체결했다. 맨유의 신성이자 잉글랜드 대표팀의 ‘미래’로 평가받는 자하는 그러나 지난 3월 상대팀 서포터스에게 손가락 욕설을 해 징계를 받기도 했다. 사진=왼쪽부터 윌프레드 자하, 허브 자하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술집서 난동… 주인에 얻어맞은 특전사들

    술집서 난동… 주인에 얻어맞은 특전사들

    대테러 작전을 수행하도록 고도의 훈련을 받은 특수부대원들이 술집에서 패싸움을 벌이다 흠씬 두들겨 맞고 병원에 실려가는 굴욕을 당했다. 지난 15일 휴일을 맞아 외출을 나온 육군 특수전사령부 소속 한모(22) 중사 등 부사관 4명은 서울 광진구 화양동의 한 술집에서 같은 부대 소속 여군 2명과 술을 마셨다. 취기가 오른 한씨 등은 새벽 4시쯤 바로 옆 테이블에 앉은 같은 부대 소속 부사관 3명을 우연히 보게 됐고, 이내 계급 문제로 말다툼을 시작했다. 건장한 군인들끼리 시비가 붙자 술집주인 김모(28)씨는 연말 특수를 놓칠까봐 맘을 졸였다. 김씨는 “계속 이러면 다 영창에 넣어버린다.”고 말한 뒤 윗옷을 벗어 용 문신을 보여줬고, 권투선수·체대생 등 업소 종업원 9명도 가세해 위력 시위를 했다. 그러나 술 취한 군인들은 통제 불능이었다. 군인들과 술집 측과의 패싸움이 시작됐다. 서로 주먹을 휘둘렀지만 특수부대원들은 술에 취한 탓인지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 김모(20) 하사는 코가 부러지고 눈 주위 뼈에 금이 갔다. 가모(21) 하사는 전신에 타박상을 입어 119구급대에 실려갔다. 술집주인 김씨는 맞은 군인들에게 합의금을 전달했지만 사법처벌은 면치 못했다. 경찰은 군인 2명에게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힌 술집주인 김씨를 공동상해 혐의로 구속하고, 종업원 2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28일 밝혔다. 두들겨맞은 한 중사 등 부사관 4명 역시 폭행 등 혐의로 체포돼 헌병대에 인계됐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간장게장 간판 때문에…맛 간 전쟁

    간장게장 간판 때문에…맛 간 전쟁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경쟁을 벌이던 서울 강남의 유명 간장게장 음식점 사장과 종업원들이 노상에서 패싸움도 모자라 흉기까지 휘두르다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21일 폭력을 행사한 간장게장 P음식점 사장 김모(43)씨와 D음식점 종업원 김모(43)씨 등 5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15일 저녁식사 시간인 오후 7시15분쯤 서초구 잠원동에 있는 두 업소 사이 골목길에서 시비가 붙어 20여분간 서로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D음식점 종업원 이모(53)씨는 노상에서 P음식점 사장 김씨와 종업원 등 2명을 뒤쫓으며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조사됐다. P음식점 측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D음식점이 내건 일본어 간판이 상호를 도용한 것은 물론 자신의 가게를 찾아온 외국 관광객 손님까지 가로채 오랫동안 불만을 품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P음식점 사장은 “우리는 이곳에서 32년동안 영업활동을 해왔다. 1년전부터 인근 가게가 저희 가게 상호를 도용해 사용하더니 내국인·외국인 관광객 손님을 뺏어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D음식점 측은 “사실상 P음식점이 손님을 독점하는 상태라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면서 “일본어 간판은 우리가 먼저 상표권 등록을 신청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EURO 2012] 축구전쟁 국경폐쇄

    네덜란드와 독일의 유럽축구선수권(EURO) 2012 B조 두 번째 경기가 열리는 14일 오전 3시 45분(이하 한국시간) 두 나라 국경도시에 통행금지 조치가 내려진다. 11일 네덜란드 공영 NOS방송 등에 따르면 두 나라 당국은 네덜란드 동남부 케르크라더시(市)의 번화가이자 두 나라 국경인 니우스트라트(독일 이름 노이슈트라센)에서 일시적인 차량 통행금지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경기 종료 15분 전부터 종료 30분 뒤까지 45분 동안 이 거리에서의 차량 통행이 일절 금지된다. 아울러 두 나라 경찰은 케르크라더시에서 특별 순찰을 돌며 필요하면 도보 통행도 통제하기로 했다. 두 나라의 국가 대항전이 열릴 때마다 열혈 팬들이 이 거리에서 패싸움 등을 벌여 온 것을 막기 위해 이런 비상조치가 취해진다. 히틀러 나치의 침공에 따른 감정적 앙금이 여전한 데다 둘 모두 유럽 최정상의 축구팀이어서 우승 가도에서 서로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아 자주 충돌해 왔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보도방 사장, 소속 女도우미 뺨 맞고 오자…

    보도방 사장, 소속 女도우미 뺨 맞고 오자…

     보도방을 운영하는 중국 동포 출신 업주 등이 이권을 두고 패싸움을 벌이다 경찰에 불잡혔다. 보도방은 노래방이나 유흥주점 등에 여성 도우미를 공급하는 업체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20일 이권 다툼 끝에 패싸움을 벌인 유흥업소 종업원 하모(28)씨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보도방 업주 류모(28)씨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중국 동포 출신인 하씨 등은 지난해 8월 서울 광진구 화양동의 한 노래방 앞에서 야구방망이와 벽돌, 유리병 등 흉기를 이용해 4대4로 패싸움을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류씨와 하씨는 지난해 5월 자신들이 소속된 보도방에서 일하던 여성 도우미들이 서로 뺨을 때리며 다툰 뒤 지속적으로 서로 영업을 그만둘 것을 요구하며 대립해 왔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지속적으로 충돌을 빚던 류씨와 하씨는 지난해 8월 우연히 길가에서 마주쳐 시비가 붙었는데 결국 패싸움으로 이어졌다.  경찰은 패싸움 과정에서 류씨가 운영하는 보도방 직원을 야구방망이로 때려 전치 7주의 골절상을 입힌 하씨 측 보도방 직원 2명을 추적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조직화된 형태는 아니지만 중국 동포들이 늘어나면서 이권을 놓고 다툼을 벌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면서 “보도방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 같은 조직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한국바둑 농심배 4연패 좌절

    한국의 농심배 4연패가 아쉽게 좌절됐다. 이창호(37) 9단은 24일 중국 상하이 화팅호텔에서 열린 국가대항 연승전인 제13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우승 상금 2억원) 최종국(14국)에서 중국의 셰허(28) 7단에게 321수 만에 백 3집 반으로 졌다. 2009년 대회부터 4회 연속 우승에 도전한 한국은 이로써 중국에 우승컵을 내줬다. 중국은 대회 두 번째 정상에 올랐다. 지난 대회까지 12차례 모두 대표로 나선 이 9단은 최종 주자로만 9번 나서 8차례 우승을 직접 결정지어 ‘농심배 영웅’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번 대회 마지막 주자로 나선 셰허 7단의 무서운 기세를 꺾지 못했다. 이날 최종국은 이창호의 관록과 셰허의 상승세가 맞부딪쳤다. 전적에서 이창호가 앞서지만 최근 연승 뒤 단 1승을 남기고 연패를 당해 한국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백돌을 쥔 이창호는 싸움을 피하면서 안정적으로 대국을 풀어갔다. 중앙 하단에 백 세력이 생겨나자 셰허는 좌변쪽에서 세력을 깨고 나왔고 이창호가 진행을 끊으면서 전투로 번졌다. 전투는 후반 흑의 우상귀 침투로 극에 달했으나 백의 침착한 대응으로 집바둑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막바지 중앙 혼전에서 이창호가 셰허의 기세에 밀리고 패싸움도 여의치 않아 승기를 빼앗겼다. 상하이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한국바둑 4연패 23일 재도전

    한국바둑의 4연패 ‘축배’가 뒤로 미뤄졌다. 김지석(23) 7단은 22일 중국 상하이 화팅호텔에서 열린 국가대항 연승전인 제13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우승 상금 2억원) 최종 3라운드 두 번째 경기(12국)에서 중국의 마지막 주자 셰허(28) 7단에게 272수 만에 아쉽게 흑 1집 반 패했다. 이로써 한국은 원성진 9단 또는 이창호 9단이 23일 13국에 나서 대회 4연패와 통산 11번째 우승에 다시 도전한다. 4연승을 질주하던 김 7단은 후야오위(2002년·중국), 이창호(2004년), 펑첸(2006년·중국), 강동윤(2008년), 셰허(2010년) 등이 일군 개인 최다 5연승 합류에 실패했다. 중국 1위 셰허 7단은 2010년 5연승, 2011년 4연승 등 농심배에서 유독 강한 면모를 과시하며 김지석의 돌풍을 잠재웠다. 김지석은 2009년에도 4연승을 달리다 셰허에게 졌다. 셰허와의 상대 전적은 2전 2패. 흑돌을 쥔 김지석은 전날 구리와의 대국처럼 삼귀에서 착실히 실리를 챙기며 두꺼운 바둑으로 출발했다. 냉철한 계산형 타입으로 ‘한국 킬러’로 유명한 셰허는 침착하게 응수해 대국은 극히 밋밋하게 흘렀다. 하지만 우변에서 김지석이 백의 진행을 끊고 나오면서 중앙 싸움으로 번졌다. 김지석은 잇단 강수로 우하 쪽에 거대한 집을 형성했지만 셰허도 우상귀를 파고들어 팽팽한 승부가 이어졌다. 대국은 셰허의 하변 붙임수에 김지석이 끊는 초강수로 맞서면서 승부처를 맞았다. 중앙 백 대마를 두고 패싸움으로 번졌지만 김지석은 사냥에 실패했고 조급해졌다. 좌변과 하변을 맞바꾸는 승부수를 던졌으나 손실이 더 커 두고두고 아쉽게 됐다. 원성진 9단, 이창호 9단이 남은 한국은 앞으로 1승만 추가하면 2009년 대회부터 4연패를 달성한다. 3라운드 제3국은 23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셰허에 맞설 한국 주자는 당일 결정된다. 상하이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농심배 세계바둑최강전] 김지석 7단, 中 구리 9단에 불계승

    [농심배 세계바둑최강전] 김지석 7단, 中 구리 9단에 불계승

    김지석(23) 7단이 중국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김 7단은 21일 중국 상하이 화팅호텔에서 열린 국가대항 연승전인 제13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우승상금 2억원) 최종 3라운드 첫판(11국)에서 중국의 구리(29) 9단을 203수 만에 흑 불계승으로 제압, 파죽의 4연승을 내달렸다. 김 7단이 이 대회에서 4연승을 거둔 것은 처음이며, 역대 4전 전패의 구리를 상대로 승리한 것도 처음이다. 이로써 한국은 1승만 보태면 대회 4연패와 함께 통산 11번째 우승을 차지한다. 김 7단은 22일 같은 장소에서 중국의 마지막 선수인 셰허(28) 7단과 외나무 대결을 펼친다. 한국은 원성진 9단과 이창호 9단이 뒤를 받쳐 우승이 유력하다. 이날 중국은 예상을 깨고 셰허 대신 구리를 4번째 주자로 먼저 내세웠다. 구리가 3연승 돌풍의 주인공인 김지석의 천적이나 다름없어서다. 싸움바둑에 능한 구리가 나서자 김지석은 철저히 실리 작전으로 맞섰다. 삼귀를 장악하며 초반 주도권을 잡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구리가 우변 패싸움 실패로 무거워진 백돌을 살리면서 중앙에 세력이 쌓이자 승부는 예측불허의 중앙 혼전으로 치달았다. 김지석이 초읽기에 몰리면서 구리가 흐름을 주도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승부는 일순간 김지석 쪽으로 기울었다. 김지석은 우상귀에서 패를 만들었고 구리가 어이없이 사활을 착각하는 바람에 사실상 승부가 갈렸다. 구리는 우상귀의 큰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분전했지만 결국 돌을 거두고 말았다. 김 7단은 “초반 흐름이 좋았는데 중반 초읽기에 몰리면서 흔들렸다. 승리하기 어렵다고 봤는데 구리가 우상귀에서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2라운드부터 4연승을 달린 김 7단은 연승 상금으로 2000만원을 받았다. 상하이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심판항의·승부조작·성대결 여자농구 올스타전에선 OK

    심판항의·승부조작·성대결 여자농구 올스타전에선 OK

    3쿼터 종료를 5분 남기고 동부선발의 이호근(삼성생명) 감독이 판정에 격하게 항의했다. 인텐셔널 파울을 납득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작전타임을 부른 뒤 코트로 뛰어들어 최윤형 심판에게 다가갔다. 설명을 요구하며 목청을 높였다. 최 심판은 노코멘트 액션을 취했다.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이 감독이 먼저 심판의 가슴팍을 밀쳤다. 최 심판도 이에 질세라 똑같이 이 감독을 밀쳤다. 관중석이 웅성거렸다. 대기석에 있던 심판들이 우르르 코트로 뛰어들었다. 벤치에 있던 선수들도 모두 일어나 다가갔다. 경호원도 뛰어들었다. 코트는 아수라장이 됐다. 15일 부천체육관에서 열린 여자농구 올스타전 도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격렬한 패싸움으로 번지려는 찰나 사이렌이 울려 퍼지고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경호원을 시작으로 킴벌리 로벌슨(삼성생명), 김정은(신세계), 이호근 감독까지 신나게 셔플댄스를 췄다. 깜찍한 팬서비스였다. 유니폼도 특별제작했다. 허리라인이 잘록하게 들어갔고, 바지도 20㎝ 짧아져 한결 여성스러웠다. 선수들은 노출이 심한 새 옷이 어색한 듯 쭈뼛거리며 연신 바지를 내렸지만 이내 플레이에 몰입했다. 동부 선발(KB국민은행·삼성생명·우리은행)과 서부선발(신한은행·신세계·KDB생명)이 116-116으로 사이 좋게 비겼다. 한 점을 뒤지던 동부선발의 박정은이 경기종료 0.5초를 남기고 자유투 2개를 얻어 역전승 기회를 잡았지만, 이호근 감독이 ‘흑기사’를 자처한 뒤 의도적인(?) 노골로 무승부를 연출했다. 최우수선수(MVP)는 김정은(37점)과 박정은(삼성생명·23점)이 공동 수상했다. 킴벌리 로벌슨은 트리플 더블(19점 14리바운드 10어시스트)을 기록했다. 하프타임 때는 ‘W밴드’가 자우림의 ‘헤이헤이헤이’를 부르며 색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정선화(KB국민은행)·이선화(삼성생명)·이령(신세계)이 보컬로 가창력을 뽐냈고, 이경은(KDB생명)이 기타, 김단비(신한은행)가 베이스를 맡았다. 3점슛 콘테스트에서는 이연화(신한은행)가 18점(총 30점)을 넣어 우승을 차지했다. 사랑의 하프라인 슛, 감독과 선수가 함께 한 ‘미션 임파서블’ 등 볼거리도 풍성했다. 전주원·유영주·차양숙 등이 손발을 맞춘 ‘추억의 올스타’는 연예인 농구단 레인보우(감독 우지원)와 성대결을 펼치며 과거 기억을 되살렸다. 결과는 44-45, 한 점차 아쉬운 패배였지만 표정만은 해맑았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사설] 포털이 학교폭력 부추기는 공간 되다니…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학교 폭력을 담은 만화 등을 무분별하게 싣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친구들을 심한 욕설과 함께 이유 없이 발길질하고, 심지어 죽이라고 소리치는 장면들이 여과 없이 인터넷상에 떠돌아 다니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학교 폭력을 공공연하게 부추기고, 어떤 의미에서는 순진한 학생들에게 폭력을 학습시켜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상이 이러한데 어디 한 군데에서도 이를 규제하는 곳이 없다. 어린 학생들의 인성을 파괴하는 이런 폭력 만화에는 반드시 제재가 필요하다. 인터넷상에서의 이런 잔인한 폭력 장면은 자칫 학생들에게 폭력의 일상화를 조장하고, 마치 폭력이 사회적으로 묵인되는 것처럼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야후코리아, 네이버, 다음 등 주요 포털사이트에 연재되는 웹툰(연재 만화) 340여개 중 학교 폭력을 주제로 한 웹툰은 11개에 이른다. 한 포털사이트의 인기 만화 ‘열혈초등학교’에 실린 장면은 어른들이 봐도 섬뜩하다. 초등학교 2학년 ‘대장’인 한 학생이 ‘통합’을 한다며 자신의 ‘부하’로 하여금 다른 반의 ‘짱’을 찾아가 흠씬 패주도록 시킨다. 친구가 맞고 있는데도 아이들은 박수를 친다. 이를 바라보는 대장은 “죽여라.”라고 소리친다. 대장의 티셔츠에는 영어로 ‘KILL YOU’(너를 죽일 테야)라고 씌어 있다. 조폭의 패싸움 같은 이런 끔찍한 장면들을 나이 제한 없이 볼 수 있다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유치원생들도 인터넷 게임 등을 즐기는 등 인터넷은 누구나 접근이 가능한 열린 공간이다. 그런데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는 웹툰의 폭력성에 대해 한번도 심의한 적이 없다고 한다. 폭력 웹툰의 경우 19세 이상 관람가로 전환하는 등 규제가 필요하다. 규제에 앞서 포털사이트 스스로 폭력 추방을 위한 자정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도리다. 사회적 영향력은 행사하면서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일이다.
  • 올드펌 더비行 노리는 기차

    지구상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또 가장 치열한 축구 더비는 뭘까. 바로 차두리와 기성용이 뛰는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셀틱과 레인저스의 ‘올드펌 더비’다. 무려 12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더비가 29일 글래스고의 셀틱 파크에서 열린다. 더비란 스포츠에서 같은 지역을 연고로 하는 두 팀의 라이벌전을 뜻한다. 그래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엘 클라시코’는 더비가 아니라 라이벌전이다.  세계 3대 더비는 글래스고의 올드펌 더비, 이탈리아 밀라노의 AC밀란-인테르밀란의 ‘밀라노 더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카주니어스-리버플레이트의 ‘수페르클라시코’다. 셋 다 전쟁과 다름없다. 선수들은 거친 플레이를 서슴지 않고, 대체로 계급적 동질성으로 똘똘 뭉친 각각의 팬들은 그라운드 밖에서 패싸움을 벌인다. 사망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면 다행으로 여길 정도다.  이 3대 더비 가운데 올드펌 더비는 계급뿐만 아니라 민족, 종교 문제까지 얽혀 있어 그 치열함이 상상을 초월한다. 셀틱은 아일랜드 빈민층 이주민을 위해 가톨릭 수도승들이 창단한 클럽이다. 자연스레 아일랜드 팬들이 몰려들었고,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독립운동과도 연결됐다. 최근에도 셀틱 팬들이 IRA 찬가를 응원가로 불러, 경기장에서 정치적 의사표현을 금지한 유럽축구연맹(UEFA)이 셀틱 구단에 벌금을 물리는 일이 있었다. 반면 레인저스는 아일랜드 이민자에게 반감을 갖고 있으며, 북아일랜드의 영국 귀속을 지지하는 신교도들이 주요 팬층이다. 한때 두 팀은 자신들과 종교가 다른 선수는 아예 영입조차 하지 않았다.  성적도 막상막하다. 레인저스는 리그 54회, FA컵 33회, 리그컵 27회 우승을 차지했고, 셀틱은 리그 42회, FA컵 35회, 리그컵 14회 우승했다.  게다가 최근 8연승을 거두며 선두 레인저스(승점 48)를 승점 1점차로 추격한 셀틱엔 이번 올드펌 더비가 선두에 등극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이런 최고의 더비에 ‘기-차 듀오’가 출격을 준비한다. 특히 올드펌 더비에서 뛰고 싶어 지난해 7월 셀틱에 입단했다던 차두리는 부상 등으로 7번의 출전 기회를 놓쳤다. 그가 생애 첫 올드펌 더비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사설] 국회 점거하는 보좌진 강제 철수시켜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을 둘러싸고 야당 보좌진들이 국회를 점거하는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그들은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장을 봉쇄한 채 국회의원이 출입하는 것조차 막고 의사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 불법 점거사태는 어제로 열흘째다. 보좌진들이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보조역할이 본분임을 망각하고 국회의 주인공인 양 불법 점거와 집단 활극을 일삼는 게 버릇이 됐다. 민의의 전당이 보좌진들에 의해 난장판이 되고 무법천지가 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여야 의원들 간에 물리력 충돌이 빚어지거나 대치하는 과정에서 보좌진들이 동원된 건 이번만은 아니다. 그들은 해머로 회의장 문을 부수고, 국회의원에게 막말을 하고 심지어 목을 조르기도 한다. 폭력 선봉대처럼 날뛰는 게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모든 책임은 그들의 고용주 격인 국회의원들에게 있다. 국회의원들이 보좌진들을 이런 일에 동원하는 건 불법 사주이자 폭력 청부나 다름없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수십명, 수백명이 한데 엉겨붙어 집단 패싸움을 벌이는 건 대한민국 국회의 치욕이다. 정 쌈박질을 하려면 의원들끼리 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국민들의 시선이 두려워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회에서 폭력을 저지른 의원들이 총선에서 당선될 확률이 지극히 낮다는 사실은 자신들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보좌진 동원을 차단하면 국회에서 몸싸움을 막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여야는 지난 6월 국회 선진화 방안에 합의해 놓고도 다섯달째 손을 놓고 있다. 그 방안에는 보좌진 동원과 관련된 내용이 없다. 동원 금지를 명시하고, 처벌 조항도 담아야 한다. 민주당 의원 45명이 FTA 비준문제와 관련해 절충안을 제시했다. 한나라당이 오늘을 ‘D데이’로 삼은 가운데 극적 합의 도출이냐, 강행 처리냐의 갈림길에 섰다. 전자라면 불법 점거사태는 자연히 풀릴 것이다. 후자라면 여야 간에 정면 충돌이 우려된다. 일단은 패싸움의 규모라도 줄여야 한다.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 보좌진들의 불법 점거사태부터 해소할 필요가 있다.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즉각 철수를 지시하기를 바란다. 그들이 응하지 않으면 강제 철수시켜도 무방할 것이다.
  • [사설] 이래서야 국민이 경찰 신뢰할 수 있겠나

    경찰청이 인천 길병원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이 지역 조폭 간의 집단 난투극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인천지방경찰청장과 차장, 본청 수사국장 등 고위간부들에 대해서도 감찰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전날 관할 경찰서장 등을 직위해제했으나 국민적 비난여론이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강하게 채찍을 든 인상이다. 그러나 채찍 한방으로 경찰 내부의 고질이 고쳐질 것으로 보는 국민은 많지 않을 듯하다. 우선 이번 일을 처리하는 경찰의 행태를 보면 한심하다 못해 연민을 느끼게 한다. 경찰은 조현오 청장이 사건의 내막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았다고 했다. 이면에는 인천지방경찰청의 축소·허위보고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대적인 감찰을 한다는 얘기다. 100명이 넘는 조폭들의 패싸움으로 장례식장을 찾은 시민들이 공포에 떨었는데 정작 경찰 총수인 조 청장은 책임이 없다는 투로 들린다. 과연 그런가. 전쟁이 났는데 군 참모총장이 언론보도를 보고 알았다고 한다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말이다. 누가 봐도 현재 경찰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하루가 멀다하고 비리와 불법행위가 터져나오고 있고, 심지어 시신장사까지 하는 추악한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그럴 때마다 경찰 수뇌부의 대처는 감찰과 관련자 징계다. ‘네 탓’만 있을 뿐 윗사람의 ‘내 탓’은 없다. 상황이 이러니 아무리 강한 채찍을 들이대도 그때뿐인 것이다. 수뇌부가 책임지지 않는 채찍은 면역력만 길러줄 뿐이다. 이래서는 국민이 경찰을 신뢰할 수 없다. 믿음을 주지 못하는 한 현재 검찰과의 수사권 갈등도 밥그릇 싸움으로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꼬리자르기 식의 해법으로는 국민이나 경찰 누구한테도 감동을 줄 수 없다. 네 탓이 아닌 내 탓 문화를 조속히 정착시키는 것만이 땅에 떨어진 기강을 바로 세우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8) ‘자본론’ 칼 마르크스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8) ‘자본론’ 칼 마르크스

    “지배계급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 전율케 하라. 프롤레타리아들은 공산주의 혁명 속에서 족쇄 이외에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 그들에게는 얻어야 할 세계가 있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공산당선언)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말대로 “탁월하고 폭발적인 창의력이 써내려 간, 정치적 입장을 초월해 마치 스스로 불후의 명언이 되어버린 것 같은 간결한” 저 문장을 읽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전율했던 적이 있었다. 두려움 또는 희망의 이름,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마르크스가 살았던 당시는 산업혁명과 기술의 발전으로 사람들이 진보를 체감하던 시기였다. 철로가 놓이고 교역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대도시가 생겨났으며, 프랑스에서는 노동자와 산업자본가가 새로운 사회세력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1848년 2월, 노동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은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제2공화정을 무너뜨리는 혁명을 일으킨다. 새로운 사회관계가 형성되는 역사의 한복판에서 탄생한 것이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이다. 마르크스가 분석한 부르주아들은 혁명적인 존재였다. 그들은 “처음으로 인간의 활동이 무엇을 이룩할 수 있는가를 증명”했다. 이전의 모든 봉건적 관계를 끊어내고 현금관계 외에는 어떤 끈도 남기지 않은 계급과 부를 축적하기 위해 새로운 욕구를 창출해내고, 생산과 소비를 범세계적으로 확장시켰던 그들은 ‘자신의 모습대로’ 세계를 창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봉건제 안에서 부르주아의 태동을 보았고 부르주아의 성립에서 프롤레타리아의 싹을 본다. 그가 보기에 프롤레타리아의 도래는 ‘필연적’이었다. 마르크스는 그 무렵 신문에 “부르주아 지배가 무너질 것”이라고 예견했고, 아버지가 물려주신 유산 6000 프랑을 기꺼이 체제 전복을 위해 써버린다. ●“철학은 세계 해석이 아니라 변혁” 마르크스는 부르주아지의 소멸을 확신했지만, 정작 그 자신은 부르주아 출신이었다. 그는 1818년 프로이센 라인란트 지방의 트리어 시에서 존경받는 유대인 변호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마르크스는 논쟁을 즐기고 명석했지만, 쉽게 흥분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공격적이고 거만한 이미지에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를 가진 청년 마르크스. 술에 취해 패싸움도 불사하는 문제적 아들에게 아버지 하인리히 마르크스는 “너의 광기를 잠재우라.”고 애원하며 제발 부모의 희망을 저버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마르크스도 처음에는 가족의 바람대로 법학을 공부하고자 했다. 그러나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대해 법은 아무 설명을 하지 못했다. 사회 변화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이것에 대한 답을 찾아 지적 탐구를 하던 와중에 마르크스는 청년헤겔주의자들을 만나 헤겔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헤겔의 변증법은 역사 발전의 법칙을, 부르주아의 필연적 몰락과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를 설명해줄 수 있는 무기로 보였다.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모두 헤겔을 ‘죽은 개’ 취급할 때 공개적으로 헤겔의 사상적 제자임을 공언했다. 이때를 그는 “인생의 한 시기를 완성하고 새로운 방향을 가리키는 변경의 초소와 같은 순간”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내 헤겔을 떠나게 된다. 헤겔은 역사의 추동력을 변증법적 ‘이성’에서 찾았고, 19세기 당대 유럽의 놀라운 진보는 모두 이성의 힘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검열과 비밀 경찰의 힘으로 유지되는 절대 왕정을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르크스는 스승 헤겔의 논리를 뒤집는다. 절대이성이 현실을 만들어 낸 게 아니라 현실 사회의 생산력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변증법의 운동은 바로 현실세계에 내재해 있었던 것이다. 철학을 통해 현실을 이해해서는 안 되고, 현실을 통해 철학이 새롭게 정초되어야 한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철학은 지금까지 세계를 설명하고 해석하기만 해왔다. 하지만 이제 철학은 현실 속에서, 현실을 변혁할 수 있는 무기가 되어야 한다. ●대영박물관 열람실의 혁명가 세계를 바꾸기를 원했던 혁명가 마르크스를 사람들은 ‘요람에 누운 아기를 잡아먹는 신사’ 쯤으로 생각했다. 죄 없는 부르주아들을 잡아먹는, 말끔한 지적 테러리스트. 그러나 마르크스는 비밀주의와 음모를 싫어했다. 그는 공공연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자신의 목적과 자신의 지향을 표명했다. 공산주의는 충동과 정열만으로는 불가능하며, 냉철하게 현실을 분석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마르크스의 말과 글을 통해 새롭게 개념화되었다. 2월 혁명이 실패한 후, 마르크스는 파리에서 추방당한다. 영국으로 이주한 그는 대영박물관 열람실에서 정치경제학 공부에 매진한다. 그가 처음으로 계급, 개인소유, 국가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842년 ‘라인신문’ 편집장 시절 ‘농민들의 목재 절도 사건’ 이다. 이때 그는 공산주의에 대해서도, 정치경제학도 잘 몰랐기 때문에 보수적인 귀족이 쓴 글에 대해 재치 있는 답변을 했을 뿐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마르크스는 현실을 변혁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더 치밀하게,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사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기반성에 이른다. 그리고 유럽을 휩쓴 혁명의 분위기가 가라앉은 후에, 세상의 함성에서 동떨어진 도서관에서 마르크스는 계급과 소유, 국가의 문제를 파고들기 시작한다. 그 결과 탄생한 역작이 ‘자본론’이다. 마르크스의 혁명은 도서관에서 시작됐다. 마르크스에게 혁명은 꿈이 아니었다. 빈부 격차가 극심해지고 불황이 반복되는 현실을 타개할 방법은 근검을 외치는 것도 아니고 부르주아의 동정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부르주아를 증오하는 것은 더더군다나 아니었다. 마르크스는 상품경제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현실을 분석해냈다. 그는 그로부터 거대한 자본주의 기계 안에 왜소해진 인간의 모습을, 소외된 노동을 이끌어 냈으며, ‘자본’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작동을 보았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경제학 저술이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존재론을 탐구한 철학서였다. ●마르크스의 또 다른 이름 엥겔스 “어떻게 천재를 질투할 수 있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 천재란 아주 특별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재주가 없는 우리는 처음부터 그것이 얻을 수 없는 권리임을 알 수 있지. 그런 것을 질투하는 사람은 자신이 엄청나게 속 좁은 사람임을 보여주는 꼴밖에 안되네.”(엥겔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생리는 정확하게 간파했지만, 정작 자기 가계를 꾸리는 능력은 ‘제로’였다. 귀족과 결혼한 것을 자랑스러워했던 마르크스였지만 아내의 집안에서 물려받은 가보는 늘 전당포에 맡겨야 했고, 대문 앞에는 청구서를 든 사람들이 떠나지 않았다. 이런 마르크스의 생활을 구원한 사람은 그의 영원한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였다. 마르크스의 ‘도서관에서의 혁명’에 엥겔스가 끼친 영향력은 간단히 말하기 어렵다. 물질적 지원도 지원이거니와 아버지의 공장에서 직접 경영을 체험한 엥겔스는 마르크스에게 부족한 실물경제의 원리를 알려줄 수 있었다. ‘자본론’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저라고 봐도 좋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1권만 저술하고 세상을 뜨자, 마르크스의 악필을 독해하고 단편적 메모들을 모아 하나의 이론으로 완성해 2권, 3권을 출판한 사람도 엥겔스였다. 그 자신은 아버지 회사에서 “비굴한 장사, 증오스러운 장사”를 한다고 자신을 혐오했지만 그 덕에 마르크스는 생계난 속에서도 비굴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마르크스가 가장 좋아했던 경구는 ‘인간적인 것 가운데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였다. 그는 부인 예니와 딸들을 무척 사랑했지만 결혼하지 않은 엥겔스를 부러워했고, 저속한 농담을 주고 받았지만 매우 세련된 신사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속되면서 귀족적이었고, 차가우면서도 감상적이었다. 이런 마르크스의 모습은 종종 적들에게 비난의 표적이 되곤 했다. 그의 저서도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부분들이 많다. 그는 자신의 삶 자체도 일관성 있게 포장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이론에 대해서도 개방적이었다. 그는 자기 이론을 이상화하지도, 완성이라 하지도 않았다. 언제나 자기가 보지 못한 부분이 있음을, 자기 분석이 틀렸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며, 그의 이론을 영원한 ‘과정’ 속에 던져 놓았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한때 마르크시즘은 오류로 단언되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예언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살아가는 그때 필요한 것들을 해나갔을 뿐이다. 현실 분석이 철학을 바꾸고 철학이 현실을 변혁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 혁명가이자 철학자. 은행이 파산하고, 정리해고를 당하고, 물가가 폭등할 때마다, 이른바 ‘자본주의의 경제시스템’에 대한 환멸을 느낄 때마다 우리는 마르크스의 이름을 기억한다. 자본주의를 살고 있는 자들은 모두가, 얼마간은 ‘마르크시스트’가 아닐까. 홍숙연 남산강학원 연구원
  • 미국 - 중국 농구팀 코트장서 패싸움

    미국과 중국 농구팀 친선경기에서 ‘쿵푸경기’를 연상케 하는 볼썽사나운 패싸움이 벌어졌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지난 18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 올림픽 농구경기장(Beijing Olympic Basketball Arena)에서 벌어진 미국 조지타운 대학 농구팀과 중국 프로팀 베이 로케츠와의 친선경기가 펼쳐졌다. 이날 경기는 양 팀 선수들의 격렬한 몸싸움으로 초반부터 과열 양상을 보였다. 조지타운 대학과 베이 로케츠는 각각 파울 28개와 11개를 범하는 등 격렬한 몸싸움을 벌여 양 팀 선수들은 극히 예민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치열한 승부욕이 극단적인 패싸움으로 치닫게 된 건 경기종료 9분을 앞둔 마지막 쿼터였다. 역전을 거듭하며 68점의 동점 상황에서 조지타운 대학의 가드 제이슨 크라크가 파울을 범하자 베이 로케츠의 포워드 센터 후 케가 크라크를 세게 민 것. 중국 선수들이 몰려들어 크라크를 발로 차면서 양팀 간 싸움이 시작됐다. 양 팀 벤츠에 앉아있던 후보 선수들까지 몰려나와 코트에서 주먹을 휘둘렀고, 넘어진 선수가 있으면 상대편 선수들이 몰려들어 집단 폭행을 가하는 충격적인 모습도 포착됐다. 이 과정에서 상대팀 선수에 의자를 던진 선수도 여럿 있었다. 흥분한 관객들은 플라스틱 병을 코트로 던지며 항의했다. 막장으로 치닫던 싸움은 심판들과 코치진이 흥분한 선수들을 달려들어 떼어놓은 끝에 간신히 멈췄다. 이 과정에서 선수 여럿이 가벼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자세한 내용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나 양 팀은 징계를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조지타운 대학의 존 톰슨 감독은 “두 팀이 매우 경쟁적인 경기를 펼쳤으나 너무 과열된 탓에 불행하게 싸움으로 끝이 났다.”면서 이번 일이 발생한 데 대해 유감의 뜻을 전했다. 한편 중국을 방문 중인 미국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은 경기 바로 전날 양국의 또 다른 농구팀 경기를 관전하며 “스포츠로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공고히 하고 교류를 확장하자.”고 말한 바 있지만, 이번 마찰로 부통령의 당부가 머쓱해지게 됐다. 중국 농구팀이 코트 패싸움을 벌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중국 농구 대표팀은 브라질 대표팀과 한 친선 농구경기에서 3000여 중국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집단 난투극을 벌여, 양 팀의 선수들 10여 명이 부상을 당해 병원에 이송된 바 있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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