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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위병 발언’ 명예훼손 아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부장 김상균)는 14일 박모(36)씨 등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 2870여명이 “악의적 발언으로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한나라당과 박원홍 의원을 상대로 낸 28억 7000여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적으로 대립되는 상대방에 대해 비유적·풍자적 표현을 사용,상호비판하는 것은 일반적”이라면서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피고의 발언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벗어났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이어 “노사모도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기 위한 공적 단체이기에 대립되는 정치세력이 퍼붓는 비판은 상당히 감수해야 한다.”면서 “국민도 ‘홍위병’‘정치룸펜’ 등의 발언을 특정정당 소속 국회의원이 상대방 정당 지지자를 정치적으로 비판하는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재판부는 또 “노사모의 단체적 특징이나 구성원 수에 비춰볼 때 피고의 발언으로 노사모 자체에 대한 명예훼손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개별 구성원인 원고들에 대한 사회적 평가까지 함께 저하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박 의원은 2002년 5월 당직자 회의 등에서 ‘노사모는 권력을 등에 업은 ‘정치룸펜’이며 ‘사이비 종교와 비슷하다.’는 말을 해 노사모 회원인 박씨 등은 1인당 100만원씩 손배소를 제기했다. 정은주기자 ejung@˝
  • “천안아산역 명칭 정당”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 백춘기)는 6일 충남 아산시 주민 전모(71)씨 등 17명이 “경부고속철 역사 이름을 ‘천안아산역(온양온천)’이라고 붙여 아산시 주민들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며 건설교통부를 상대로 낸 역사 명칭 결정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는 역 이름 결정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등 필요한 절차를 거쳤고,합리적으로 결정했다고 인정된다.”고 밝혔다. 정은주기자˝
  • 대법 “車급발진사고 제조사 책임없다”

    자동차 회사는 차량 급발진사고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내려졌다. 대법원 3부(주심 강신욱 대법관)는 28일 S산업 주차관리원 박모씨가 차량 급발진사고로 피해를 봤다며 대우자동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이번 판결은 법원에 계류중인 유사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재판부는 “자동차공학상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밟지 않은 상태에서 급발진이 일어나기는 어렵고,이는 교통안전 관련 기관의 연구조사에서도 인정됐다.”며 “이 사고는 원고가 비정상적으로 가속 페달을 밟은 탓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박홍환기자 stinger@˝
  • 새만금 ‘대화 해결’ 모색

    새만금 간척사업 무효 소송의 담당 재판부인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 강영호)는 판결을 내리기 전에 환경단체와 농림부가 합의점을 찾도록 조정을 유도할 방침이라고 25일 밝혔다. 재판부는 “소송법상 선고는 ‘무효’ 또는 ‘기각’이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어 장기적인 국론분열이 불가피하다.”면서 “화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1심이 끝나더라도,패소한 측은 항소심,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갈 가능성이 높고,결국 사회적 혼란도 장기화될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서다.양측이 합의를 통해 재판부의 조정권고안을 받아들이면,새만금 문제는 의외로 빨리 종결될 수 있다. 강 부장판사는 “3년 가까이 재판을 진행하면서 원고와 피고 양측은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고,이제 대화를 통한 해결 가능성이 생겼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사실심리가 완료되는 오는 9월쯤부터 환경단체와 농림부,전라북도가 모여 ‘허심탄회하게’ 새만금 문제를 논의하도록 자리를 마련하고,이후 법원의 입장을 담은 조정권고안을 내놓을 계획이다.그러나 원고·피고 한쪽이라도 권고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재판부는 선고해야 한다. 정은주기자 ejung@˝
  • [공기업 특집] 송전설비 증설 차질… 속타는 한전

    한국전력은 해마다 늘어나는 전력수요에 맞추기 위해 매년 변전소와 송전선로를 늘려야 할 처지다.그러나 전국 곳곳에서 주민들의 공사반대로 길게는 10년 이상 공사가 지체되고 있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건설예정지 주민들은 변전소 등의 주변에서 전자파가 발생해 집값 하락이 우려된다며 송전 시설공사를 반대하고 있다.그러나 한전은 공사지연이 계속될 경우 올 여름에는 일부 지역에서 제한송전마저 불가피하다며 주민들의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 ●“내집 앞은 안된다”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김포시 감정동의 김포변전소가 들어설 야산 입구.김포에서 인천으로 넘어가는 왕복 2차선 도로 옆과 야산 입구에 ‘전자파에 주민 다 죽는다’‘변전소 결사반대’ 등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 5∼6개가 내걸려 있다.변전소가 들어설 야산 3000여평은 파헤쳐진 흙더미 위에 포대가 흉물스럽게 덮여 있다. 공사장 입구는 주민들이 쳐놓은 쇠사슬로 가로막혀 있었다.한전 직원이 나타나자 공사장 입구 컨테이너에서 10여명의 주민들이 나와 “물러가라.”고 소리치며 접근을 막았다. 김포변전소는 오는 6월 완공 예정으로 1997년 건설입지가 선정됐다.김포시청은 절차에 따라 건설허가를 내주었으나 주민반대에 부딪히자 서둘러 공사명령을 취소했다.이에 한전이 부당하다고 행정소송을 제기했고,이 소송에서 패소하자 지금은 뒤로 물러나 버렸다.한전은 지난해 7월 다시 공사를 시작하려 했으나 주민들의 반대시위가 격해져 착공 3일 만에 공사를 중단해야 했다.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출동한 경찰과 충돌,주민 3명이 구속됐고 이후 양측의 감정이 극도로 악화됐다. 감정동 일대에는 신도시 아파트 2000여 가구가 들어섰고,지금도 아파트 부지로 개발이 기대되는 곳이다.이 때문에 원주민들은 “변전소를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 산지로 옮기라.”고 요구하고 있다.한전은 “지금의 위치가 전력부하의 중심지로 최적격이고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이전하면 또 다른 곳에서 민원이 발생할 뿐”이라며 옮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전자파 우려에 대해선 “고압 송전선로가 지하에 매립되고,변전소도 외부에서 전기시설이 노출되지 않는 무인 변전소”라고 설득하고 있으나 먹혀 들지 않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 1400여평 규모로 건설이 예정돼 있는 정자변전소도 5년째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특히 23기의 송전철탑 중에서 11기는 이미 선로 연결공사까지 마쳤다.9기는 철탑만 완성한 상태에서 공사가 중단됐다.주민들은 “송전선로가 구미동 등의 주택단지와 인접해 전자파와 재산상의 피해가 크다.”면서 다른 지역으로 이전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성남시는 전자파 문제를 들어 송전선로의 지하매립을 주장했다.반면 한전은 “다른 지역을 찾기란 불가능하고,지중화 공사도 기존 공사 구간과의 연결문제 등으로 엄청난 비용(120억원)과 시간(16개월)이 추가로 든다.”면서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한전은 당초 송전선로와 관련된 민원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한국토지공사,전자파 피해를 이유로 건축허가를 반려한 성남시청,토지형질 변경신청을 거부했다가 행정소송에서 패소한 분당구청에 대해 매우 섭섭해하고 있다. ●“헤어드라이어 전자파보다 약하다” 한전이 주민반대를 무릅쓰고 김포변전소를 건설하려는 것은 감정동 일대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계양변전소 등 인근 3곳의 변전소로부터 전력을 임시로 공급받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지난해 전력수요가 이미 시간당 최대 공급량인 330㎿를 12%나 초과했다.올해에는 초과량이 35%를 넘을 것으로 한전은 보고 있다. 또 분당의 경우 오는 4월 준공목표인 정자변전소 건설이 차질을 빚으면 다음달부터 입주가 시작되는 백궁·정자지구 주상복합아파트와 오피스텔에 전력을 공급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이곳은 김포와 달리 임시 전력공급도 여의치 못하다.파크뷰아파트 등 4개 아파트 단지에 동시 입주가 시작되면 전력수요가 최대 공급량의 99%(484㎿)에 육박하고 내년에는 7%(523㎿)를 초과한다. 전자파 문제와 관련해서도 한전은 답답하다는 입장이다.대한전기학회가 내놓은 조사자료에 따르면 지상 1m 높이의 송전선로에서 발생한 전자계(파)는 0.3∼125mG(밀리가우스:세기 단위)에 불과해 15㎝ 밖의 헤어드라이어에서 발생하는 전자파(1∼700mG)보다 약하다.한전의 실제 측정결과에서는 우리나라 송전선로의 전자파 세기는 2.5∼125mG으로 미국(22.4∼62.7mG)이나 일본(10∼200mG)보다 낮았다고 한다.전국 574개 변전소중 주택가에 위치한 202개 변전소 가운데 전자파 피해가 발생한 곳은 단 한곳도 없다는 것.한전은 전자파에 대한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옥외의 화양변전소를 내년 12월까지 지하로 옮기고 그 위에 5층짜리 사원주택을 짓기로 했다. ●전국 22곳에서 대책없는 반대 전력수요는 연평균 3.4%씩 늘고 있다.이에 따라 최대 전력수요는 지난해(4만 7385㎿)와 비교해 오는 2015년(6만 7745㎿)엔 43%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변전소도 574개에서 769개로 늘어야 한다. 그러나 송·변전 시설과 관련된 민원은 갈수록 ‘님비’ 양상을 보이고 있다.이 때문에 99년부터 지난해까지 발생한 민원 442건 가운데 22건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특히 단순한 피해보상 차원을 넘어 건설위치를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요구가 대부분(21건)이어서 사실상 해결점을 찾기 어려운 지경이다. 한국전기연구원 윤재영 책임연구원은 “전력공급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변전소 시설을 늘리기보다는 전력수요지 근처에 소규모의 발전소를 지어 전력을 공급하는 분산전원 시스템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4)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하)

    혜소 스님은 금산사의 진표,화엄사의 연기 스님처럼 옛 백제 땅이 고향이다. 전주에서 최씨(崔氏) 가문의 자식으로 태어났는데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출가하였다.진표나 연기 스님 같이 백제 유민들의 뿌리 깊은 슬픔과 분노의 그림자를 밟으며 성장했기 때문에 그의 중생 구원 소망은 목숨을 건 구도행위로 실천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통의 바다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쳐 본 자만이 그곳을 건너는 법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혜소 스님의 짚신삼기는 곧 그의 독특한 수행법이 되었다.저녁만 되면 염불을 외우면서 짚신을 삼았다.한밤중이 되면 앉은 채로 잠깐 눈을 붙이고 새벽부터 다시 일을 계속 했다.밤을 새워 삼은 짚신을 짊어지고 길거리로 나간다. 사람들의 통행이 빈번한 삼거리나 장터 들머리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을 살폈다. 맨발이거나 짚신이 닳아서 너덜거리는 사람을 불러 세우고는 새 짚신을 신겨주었다.뜻밖에 짚신을 얻어 신게 된 사람들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혜소 스님은 도리어 자신에게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깨우쳐 주어서 고맙다며 절을 했다.짚신을 삼아 맨발로 다니는 사람에게 신겨주는 수행이 계속되자 이를 헐뜯는 사람도 생겼지만 격려하며 고마워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함께 짚신을 삼아서 길거리로 나와 신발 보시를 하는 이들도 있었고,다른 일로 스님을 도와주는 승려도 있었다. ●“수행 깨우쳐 줘 고맙다.” 되레 행인에 인사 큰 비가 오거나 눈보라 때문에 행인이 없는 날을 빼고는 거의 쉬는 날 없이 항상 그 자리에 앉아서 짚신을 신겨주는 스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는 평상심의 기쁨과 힘을 보다 선명하게 깨달아 갔다.평상심이 민중의 마음이며 부처의 마음임을 알아갔다. 기껏해야 짚신 몇 짝 삼아서 발 벗은 이에게 신겨주었다는 것이 아니라 발 벗고 사는 민중이 출가 승려를 가르치고 일깨워주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꾸밈없는 평상심이야말로 부처가 되는 길이며 민중은 평상심의 바다라는 것을 덤으로 얻었으니 수지맞은 것은 민중이 아니라 자신이라고 믿었다.참으로 신통한 수행법이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혜소 스님은 840년에 지금의 쌍계사 터에다 옥천사(玉泉寺)를 짓고 그만의 특유한 수행법을 다시 시작했다.그곳은 이미 의상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당나라에서 선종 불교를 이끌었던 혜능의 머리뼈를 가져다 묻은 터였다. 옥천사는 뒤에 정강왕이 쌍계사라고 바꿔 부르도록 했다.아무튼 혜소 스님의 수행처는 항상 민중들이 많이 모여서 사는 곳이었다.이는 마치 원효가 절이라는 곳에서 세속 한가운데로 수행처를 옮긴 것과도 유사했다. 소박하고 조촐한 성품이어서 언제나 대중 속에서 수행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는데,이것 또한 원효가 근엄하고 조용한 절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생로병사가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세속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글자를 모르는 이들에게 ‘나무아미타불’이라는 간단한 염불을 가르쳐 함께 소리치며 노래했던 모습을 닮아 있었다. 혜소는 쌍계사를 처소로 삼은 뒤부터 새로운 수행법으로 민중들을 만나기 시작했다.그가 새로 개발한 것은 범패라는 음악을 통하여 민중들의 고통을 덜어주자는 것이었다. 범패(梵唄)는 불교의 의식 음악이다.범음(梵音),어산(魚山),인도소리라고도 한다. 절에서 주로 재(齋)를 올릴 때 부르는 소리인데,가곡,판소리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3대 성악곡의 하나로 꼽힌다. 범패는 신라풍인 향풍(鄕風),중국의 당풍(唐風),당나라 이전 신라에서 일본으로 전해진 고풍(古風:일본풍) 세 종류가 있는데,불교의식에 수반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설 내용을 표현하지 않는다.심산유곡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같아서 은은한 파도소리를 그리듯이 들린다.의젓하고 그윽한 맛이 있는가 하면 유장하고 심오한 맛도 느껴지는 소리다.사설이나 가사 내용보다는 몸 안에서 울려나오는 소리 그 자체를 더 중시하기 때문에,소리하는 사람의 심정이나 환경에 따라 다양하고 특이한 맛을 내게 된다.혜소는 가사 내용이 전혀 없는 범패를 흥얼거리면서 저잣거리를 거닐었다. 대개의 민중들은 가난의 고통에 빠져 신음했다. 한 번 가난에 빠지면 평생토록 좀체 그 늪을 빠져나오기 어려웠다.혜소는 그 민중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야만 진정한 수행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저자를 돌아다니면서 보고,듣고,느끼는 것 대부분이 민중들의 빈곤한 삶에서 찢겨나오는 고통에 짓눌린 신음소리와 세상을 향한 울분과 불평,원망과 저주가 서린 악담,신세타령,자학으로 뒤엉킨 비탄이었다. ●“욕설·원망대신 소리질러라.” 범패소리 전파 혜소는 그 신음소리가 사라지도록 발원했다.민중들의 깊고 무거운 가난과 차별의 슬픔과 병고의 두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방법을 찾았다. 토지를 넉넉히 장만해 주어서 가난을 벗어나도록 해줄 수도 없었다.집을 지어 주고,약을 짓고 치료를 도와 병마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도 없었다. 불안과 불만,원한과 저주에 찬 가슴 가슴들을 모두 씻어내기도 불가능한 일이었다.가난은 나라도 구제할 수 없는 인간 그 자체의 문제였다. 혜소는 범패 소리를 이용하여 마음의 번뇌를 가라앉히고,맑고 큰 우주 기운을 받아들여 정신세계를 비우는 불교 수행 방법을 세속인들에게 응용해보기로 했다.범패가 사설이나 가사 내용을 표현하는 노래가 아니라는 데 착안한 것이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온갖 움직임과 감정을 호흡으로 내뿜고 빨아들이는 운동을 통하여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임을 이용해보자는 것이었다. 혜소는 민중들에게 범패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었다.범패 형식을 빌려서 마음 속의 온갖 감정들을 쏟아내고,녹여내고,태워서 자신의 감정에 짓눌리고 억압되어 고통받지 않게 해주자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우선 마음껏 큰소리를 외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민중들은 슬퍼도 큰소리로 울지 못했고,기쁜 일이 있어서 큰소리내어 웃기도 쉽지 않았다. 세상이 온통 억압 구조로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농사짓는 민중의 입에서는 곧잘 세상을 향한 저주와 신세타령이 터져 나온다.농사일을 하다가 허리를 펴면서도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했다.논이며 밭이랑에서는 물론 땔감을 장만하거나 길을 걸으면서도 입에서는 욕설과 원망이 떨어지지 않는다.길쌈하는 자리거나 빨래터 아낙들도 다르지 않았다. 혜소는 그런 민중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욕설과 원망 대신 크게 소리를 지르도록 가르쳤다.큰소리,작은 소리 가리지 말고 내키는 대로 소리를 질러보라고 시켰다.내 소중한 육신 수고롭게 움직여서 먹이 장만하고,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인데 왜 남을 욕하고 원망하며 저주하느냐고 타일렀다. 욕설과 원망과 저주는 결국 나 자신의 정신을 병들게 하고,업장이 되며,삶을 추악하게 만드는 어리석음일 뿐이라며 쓸어 안고 울며 함께 소리를 질렀다.욕하는 대신 염불하고,노동의 고통 때문에 신음소리를 내기보다는 그냥 아무렇게나 소리를 내지르면 고통이 훨씬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진다는 것을 느껴보도록 이끌었다.농민들은 혜소의 말이 맞다는 것을 금방 느꼈다.실제로 욕설을 지껄이거나 신음소리로 끙끙 앓기보다는 큰소리 몇 번 내지르고 나니까 훨씬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을 느꼈다.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제 몸뚱아리 수고롭게 움직여서 일하는 것도 억울한데,남 원망하고 저주하여 마음에 병 만들어 시달리면 나 자신만 손해라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처럼 보이는 이 새로운 존재방식이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것이다. 그때부터 농민들의 입에서는 욕설과 원망 대신 듣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다소 기이하고 높고 낮은 소리,길고 짧은 소리들이 울려나오기 시작했다. 한 사람 입에서 시작된 그 소리는 한 집을 즐겁게 하고,한 집안의 소리는 이웃과 동네의 기쁨으로 커져갔다. ●쌍계사서 찻잎으로 약 만드는 법도 가르쳐 참으로 끝없는 사랑이었다.아무런 가사나 내용도 없이 앉고,일어서고,허리를 굽히고 펼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터져나오는 기이한 소리,노래도 아니고 울음도 아니면서 듣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움직이는 신이한 소리였다. 그런 다음 혜소는 쌍계사 주위에다 차나무를 심어 가꾸면서 찻잎으로 차약(茶藥)을 만들어 먹는 법을 가르쳤다.병들어도 약 한 첩 먹을 수 없는 민중들에게 차나무를 심어 그 잎으로 약을 만들어 먹는 법을 가르친 것이다.그래서 하동 쌍계사가 우리나라 차문화의 고향이 된 것이다. 이렇듯 민중에게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을 가르치던 혜소스님은 850년 76세로 입적했다.헌강왕이 진감(眞鑑)이라 시호를 내리고,그 뒤를 이은 진성여왕이 대공탑을 준공하였다.아,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은 고통받는 이와 함께 사는 것임을 온몸으로 실천해 보인 혜소 진감선사여.˝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4)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하)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4)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하)

    혜소 스님은 금산사의 진표,화엄사의 연기 스님처럼 옛 백제 땅이 고향이다. 전주에서 최씨(崔氏) 가문의 자식으로 태어났는데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출가하였다.진표나 연기 스님 같이 백제 유민들의 뿌리 깊은 슬픔과 분노의 그림자를 밟으며 성장했기 때문에 그의 중생 구원 소망은 목숨을 건 구도행위로 실천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통의 바다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쳐 본 자만이 그곳을 건너는 법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혜소 스님의 짚신삼기는 곧 그의 독특한 수행법이 되었다.저녁만 되면 염불을 외우면서 짚신을 삼았다.한밤중이 되면 앉은 채로 잠깐 눈을 붙이고 새벽부터 다시 일을 계속 했다.밤을 새워 삼은 짚신을 짊어지고 길거리로 나간다. 사람들의 통행이 빈번한 삼거리나 장터 들머리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을 살폈다. 맨발이거나 짚신이 닳아서 너덜거리는 사람을 불러 세우고는 새 짚신을 신겨주었다.뜻밖에 짚신을 얻어 신게 된 사람들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혜소 스님은 도리어 자신에게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깨우쳐 주어서 고맙다며 절을 했다.짚신을 삼아 맨발로 다니는 사람에게 신겨주는 수행이 계속되자 이를 헐뜯는 사람도 생겼지만 격려하며 고마워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함께 짚신을 삼아서 길거리로 나와 신발 보시를 하는 이들도 있었고,다른 일로 스님을 도와주는 승려도 있었다. ●“수행 깨우쳐 줘 고맙다.” 되레 행인에 인사 큰 비가 오거나 눈보라 때문에 행인이 없는 날을 빼고는 거의 쉬는 날 없이 항상 그 자리에 앉아서 짚신을 신겨주는 스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는 평상심의 기쁨과 힘을 보다 선명하게 깨달아 갔다.평상심이 민중의 마음이며 부처의 마음임을 알아갔다. 기껏해야 짚신 몇 짝 삼아서 발 벗은 이에게 신겨주었다는 것이 아니라 발 벗고 사는 민중이 출가 승려를 가르치고 일깨워주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꾸밈없는 평상심이야말로 부처가 되는 길이며 민중은 평상심의 바다라는 것을 덤으로 얻었으니 수지맞은 것은 민중이 아니라 자신이라고 믿었다.참으로 신통한 수행법이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혜소 스님은 840년에 지금의 쌍계사 터에다 옥천사(玉泉寺)를 짓고 그만의 특유한 수행법을 다시 시작했다.그곳은 이미 의상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당나라에서 선종 불교를 이끌었던 혜능의 머리뼈를 가져다 묻은 터였다. 옥천사는 뒤에 정강왕이 쌍계사라고 바꿔 부르도록 했다.아무튼 혜소 스님의 수행처는 항상 민중들이 많이 모여서 사는 곳이었다.이는 마치 원효가 절이라는 곳에서 세속 한가운데로 수행처를 옮긴 것과도 유사했다. 소박하고 조촐한 성품이어서 언제나 대중 속에서 수행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는데,이것 또한 원효가 근엄하고 조용한 절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생로병사가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세속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글자를 모르는 이들에게 ‘나무아미타불’이라는 간단한 염불을 가르쳐 함께 소리치며 노래했던 모습을 닮아 있었다. 혜소는 쌍계사를 처소로 삼은 뒤부터 새로운 수행법으로 민중들을 만나기 시작했다.그가 새로 개발한 것은 범패라는 음악을 통하여 민중들의 고통을 덜어주자는 것이었다. 범패(梵唄)는 불교의 의식 음악이다.범음(梵音),어산(魚山),인도소리라고도 한다. 절에서 주로 재(齋)를 올릴 때 부르는 소리인데,가곡,판소리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3대 성악곡의 하나로 꼽힌다. 범패는 신라풍인 향풍(鄕風),중국의 당풍(唐風),당나라 이전 신라에서 일본으로 전해진 고풍(古風:일본풍) 세 종류가 있는데,불교의식에 수반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설 내용을 표현하지 않는다.심산유곡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같아서 은은한 파도소리를 그리듯이 들린다.의젓하고 그윽한 맛이 있는가 하면 유장하고 심오한 맛도 느껴지는 소리다.사설이나 가사 내용보다는 몸 안에서 울려나오는 소리 그 자체를 더 중시하기 때문에,소리하는 사람의 심정이나 환경에 따라 다양하고 특이한 맛을 내게 된다.혜소는 가사 내용이 전혀 없는 범패를 흥얼거리면서 저잣거리를 거닐었다. 대개의 민중들은 가난의 고통에 빠져 신음했다. 한 번 가난에 빠지면 평생토록 좀체 그 늪을 빠져나오기 어려웠다.혜소는 그 민중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야만 진정한 수행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저자를 돌아다니면서 보고,듣고,느끼는 것 대부분이 민중들의 빈곤한 삶에서 찢겨나오는 고통에 짓눌린 신음소리와 세상을 향한 울분과 불평,원망과 저주가 서린 악담,신세타령,자학으로 뒤엉킨 비탄이었다. ●“욕설·원망대신 소리질러라.” 범패소리 전파 혜소는 그 신음소리가 사라지도록 발원했다.민중들의 깊고 무거운 가난과 차별의 슬픔과 병고의 두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방법을 찾았다. 토지를 넉넉히 장만해 주어서 가난을 벗어나도록 해줄 수도 없었다.집을 지어 주고,약을 짓고 치료를 도와 병마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도 없었다. 불안과 불만,원한과 저주에 찬 가슴 가슴들을 모두 씻어내기도 불가능한 일이었다.가난은 나라도 구제할 수 없는 인간 그 자체의 문제였다. 혜소는 범패 소리를 이용하여 마음의 번뇌를 가라앉히고,맑고 큰 우주 기운을 받아들여 정신세계를 비우는 불교 수행 방법을 세속인들에게 응용해보기로 했다.범패가 사설이나 가사 내용을 표현하는 노래가 아니라는 데 착안한 것이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온갖 움직임과 감정을 호흡으로 내뿜고 빨아들이는 운동을 통하여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임을 이용해보자는 것이었다. 혜소는 민중들에게 범패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었다.범패 형식을 빌려서 마음 속의 온갖 감정들을 쏟아내고,녹여내고,태워서 자신의 감정에 짓눌리고 억압되어 고통받지 않게 해주자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우선 마음껏 큰소리를 외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민중들은 슬퍼도 큰소리로 울지 못했고,기쁜 일이 있어서 큰소리내어 웃기도 쉽지 않았다. 세상이 온통 억압 구조로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농사짓는 민중의 입에서는 곧잘 세상을 향한 저주와 신세타령이 터져 나온다.농사일을 하다가 허리를 펴면서도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했다.논이며 밭이랑에서는 물론 땔감을 장만하거나 길을 걸으면서도 입에서는 욕설과 원망이 떨어지지 않는다.길쌈하는 자리거나 빨래터 아낙들도 다르지 않았다. 혜소는 그런 민중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욕설과 원망 대신 크게 소리를 지르도록 가르쳤다.큰소리,작은 소리 가리지 말고 내키는 대로 소리를 질러보라고 시켰다.내 소중한 육신 수고롭게 움직여서 먹이 장만하고,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인데 왜 남을 욕하고 원망하며 저주하느냐고 타일렀다. 욕설과 원망과 저주는 결국 나 자신의 정신을 병들게 하고,업장이 되며,삶을 추악하게 만드는 어리석음일 뿐이라며 쓸어 안고 울며 함께 소리를 질렀다.욕하는 대신 염불하고,노동의 고통 때문에 신음소리를 내기보다는 그냥 아무렇게나 소리를 내지르면 고통이 훨씬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진다는 것을 느껴보도록 이끌었다.농민들은 혜소의 말이 맞다는 것을 금방 느꼈다.실제로 욕설을 지껄이거나 신음소리로 끙끙 앓기보다는 큰소리 몇 번 내지르고 나니까 훨씬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을 느꼈다.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제 몸뚱아리 수고롭게 움직여서 일하는 것도 억울한데,남 원망하고 저주하여 마음에 병 만들어 시달리면 나 자신만 손해라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처럼 보이는 이 새로운 존재방식이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것이다. 그때부터 농민들의 입에서는 욕설과 원망 대신 듣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다소 기이하고 높고 낮은 소리,길고 짧은 소리들이 울려나오기 시작했다. 한 사람 입에서 시작된 그 소리는 한 집을 즐겁게 하고,한 집안의 소리는 이웃과 동네의 기쁨으로 커져갔다. ●쌍계사서 찻잎으로 약 만드는 법도 가르쳐 참으로 끝없는 사랑이었다.아무런 가사나 내용도 없이 앉고,일어서고,허리를 굽히고 펼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터져나오는 기이한 소리,노래도 아니고 울음도 아니면서 듣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움직이는 신이한 소리였다. 그런 다음 혜소는 쌍계사 주위에다 차나무를 심어 가꾸면서 찻잎으로 차약(茶藥)을 만들어 먹는 법을 가르쳤다.병들어도 약 한 첩 먹을 수 없는 민중들에게 차나무를 심어 그 잎으로 약을 만들어 먹는 법을 가르친 것이다.그래서 하동 쌍계사가 우리나라 차문화의 고향이 된 것이다. 이렇듯 민중에게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을 가르치던 혜소스님은 850년 76세로 입적했다.헌강왕이 진감(眞鑑)이라 시호를 내리고,그 뒤를 이은 진성여왕이 대공탑을 준공하였다.아,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은 고통받는 이와 함께 사는 것임을 온몸으로 실천해 보인 혜소 진감선사여.
  • 일제 강제징용 배상 가능성 열어

    한일 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되면 일제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배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청구권 협정을 둘러싼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65년 청구권협정을 체결하면서 우리 정부는 일제시대 관련 손해배상청구권을 포기했다.일본은 우리나라에 10년간 3억 달러를 무상으로,2억 달러의 차관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이를 근거로 일본 사법부는 일본 정부의 보상의무는 모두 소멸됐고,법적 미비로 보상받지 못한 것은 사법부의 판단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이에 일본,일본기업을 상대로 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은 대부분은 1심에서 패소했다.‘우키시마호 소송’처럼 1심에서 일부 승소했다가 여론에 밀려 항소심에서 뒤집힌 경우도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청구권 협정으로 일본에 대한 피해자 개인의 손배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며 일본에 소송을 제기하라고 맞섰다.지난 74년 대일민간청구권보상에관한법률을 제정,징용사망자 8552명과 재산 7만4967건에 대해 보상금을 지급했다며 우리 정부의 보상책임은 회피했다.그러나 당시엔 부상자,위안부,원자폭탄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없었다.한일양국은 ‘핑퐁게임’을 하면서도 40년간 한 목소리로 청구권협정 체결과정 등을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혀왔다. 법원은 이런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유일한 방법은 청구권협정 관련 문서를 공개하는 일이라 판단했다.재판부는 “무기도 없이 싸움에 나가라고 할 수 없지 않느냐.”면서 “원고들이 일본 정부나 일본 기업들의 주장이 옳은지 판단하도록 협의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밝혔다. 공개될 자료가 일본의 손배청구권이 소멸됐는지 알 수 있는 결정적 증거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어업에 관한 협정,재일교포의 법적 지위 및 대우에 관한 협정,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 등에 대해선 “한일 양국의 긴밀한 외교관계를 고려할 때 공개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설명했다. 정은주기자 ejung@˝
  • “사람답지 못한 사람…” 운운 지나친 앵커멘트 배상판결

    방송보도가 진실하고 공익성이 있더라도 앵커의 설명이 당사자에게 공개적으로 모욕을 줬다면 정신적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9부(부장 박국수)는 25일 변호사 신모씨가 “허위보도로 명예를 훼손했다.”며 MBC와 권재홍 전 앵커 등을 상대로 낸 1억 5000만원 손해배상청구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앵커가 모멸적인 표현을 사용한 데 대해 방송사와 앵커는 3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허위보도로 단정할 수 없고 공익성도 있지만 앵커가 원고인 신씨에 대해 ‘사람답지 못한 사람’‘한심하다 못해 분통이 터진다.’는 등의 표현을 사용한 것은 원고의 과실에 비해 지나치게 모멸적인 표현으로 인신공격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신씨가 정정보도를 요청한 데 대해서는 “신씨가 불성실하게 변론한 것은 아니지만 방송보도도 진실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는 만큼 공익성과 진실성은 모두 인정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MBC는 지난 99년 9월 법조계의 미담과 고발성 기사를 함께 보도하면서 신씨가 수임받은 사건을 불성실하게 준비해 의뢰인이 패소했다고 소개하고 신씨의 이름이 찍힌 간판을 방영했다.전 앵커인 권씨는 당시 “사람답게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대비된 얘기를 들어보겠다.”며 보도내용을 소개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
  • [사설] 임원 배상 경영투명화 계기로

    삼성그룹 전·현직 5명의 임원들이 최근 200억원을 삼성전자에 배상한 것으로 알려졌다.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남겨두고 있지만 1,2심 패소에 이어 임원들이 배상한 것이다.국내에서는 처음인 이런 배상은 임원들이 경영행위의 책임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앞으로 기업윤리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한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6년 전 삼성전자 임원진을 대상으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이후 경영 책임의 한계가 논란대상이 되어왔다.무엇보다 삼성전자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줌으로써 회사 측에 입힌 손실 가운데 임원들의 책임을 어느 정도까지 물을 것인가가 쟁점이 되었다. 기업이 정치권에 뇌물을 제공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그러나 과거 이 땅의 혼탁한 정치 풍토에서 정치인의 직·간접적인 정치자금과 뇌물 요구를 기업들이 거부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정황론을 감안할 수밖에 없다.정치권에 밉보여 공중분해된 기업도 있어 기업들의 정치권 ‘보험들기’가 성행했기 때문이다.최근 잇따라 밝혀진 기업들의 불법 정치자금 제공사건을 볼 때 정치권과 기업 쌍방의 죄이며 기업 경영자들 역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계열사에 지나친 특혜를 주는 임원들의 불공정 거래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다만 기업 인수 등 일상적인 경영 결정에 대해 일일이 책임을 묻는 것은 문제다.재계의 우려대로 자칫 임원진의 무사안일과 경영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주주대표소송은 이같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삼성전자 임원에 불리한 쪽으로 판결이 내려졌다.새로운 기업윤리가 필요한 시대 요구에 부응한 것이다.삼성 임원들의 배상 결정도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재계는 이를 경영투명화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삼성전자 경영진 200억 배상

    지난 1997년 주주대표소송이 처음 제기된 뒤 삼성전자 경영진이 배상금을 처음으로 지급,앞으로 경영책임을 둘러싼 파장이 예상된다. 18일 참여연대와 삼성전자에 따르면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의 항소심 원고 승소 판결에 따라 최근 이건희 삼성 회장이 80억원,최도석 삼성전자 사장과 진대제 전 사장 등 5명의 전·현직 이사들이 120억원을 스톡옵션 정리 등을 통해 삼성전자에 배상했다. 삼성 관계자는 “만약 최종심에서 패소할 경우 2심 판결일 다음날부터 확정판결후 배상금 지급일까지 배상금에 대해 연 20%에 달하는 고율의 이자가 붙기 때문에 미리 배상한 것”이라고 밝혔다.그는 “단순히 이자지급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2심 패소판결에 승복한 것은 아니며 대법원에서 승소하면 배상금은 모두 돌려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거액의 재산을 보유한 이 회장 등이 단순히 이자부담(1년 기준 40억원) 때문에 배상금을 지급했다고 보기는 어려워,대법원에서도 원심 파기 가능성이 크지 않은 만큼 ‘자발적인 배상’을 통해 삼성의 대외 이미지를개선하려는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은 ‘삼성전자 전·현직 이사들이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부실기업인 이천전기 인수,삼성종합화학 부당지원 등으로 회사에 끼친 손해를 배상하라.’며 참여연대가 삼성전자 주주 22명을 원고로 해 1998년 10월20일에 제기한 소송이다. 재판부는 2001년 말 1심에서 “이 회장은 75억원,나머지 이사들은 902억원을 삼성전자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지난해 11월20일 종료된 항소심에서는 삼성종합화학에 대한 이사들의 책임을 20%만 물어 120억원을,이 회장에게는 7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
  • 강금실 수임 6000억 소송 패소

    강금실 법무장관이 법무법인 지평 대표일 때 맡았던 초대형 소송이 패소로 끝났다.원고는 기업은행과 하나은행이며 피고는 예금보험공사.지평은 피고측을 변론했다.소송액은 6000억원으로 국내 최대 규모여서 화제를 모았었다. 대한투신증권은 지난 99년 여신한도에 걸려 대우그룹을 지원하기 어렵게 되자 수탁회사인 서울은행(현 하나은행)과 중소기업은행에 5390억원을 빌려줘 나라종금의 어음을 사들이도록 했다. 나라종금은 어음대금으로 대우채를 매입했다.그러나 나라종금이 파산하면서,자금회수가 불가능해지자 두 은행이 나라종금 어음에 보증을 선 예보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이다. 법원은 1심에서 원고측 손을 들어줬다.항소심을 준비하던 예보는 2002년 11월 공개입찰을 열어 새로운 법적 대리인을 물색했다.태평양,광장,화백 등 8곳이 응찰한 가운데 예보는 강 장관이 직접 참석한 지평을 선택했다.자료검토 및 의견서 작성이 탁월했다는 평가에 따른 것이었다. 강 장관은 지난해 2월 항소심을 준비하다 장관에 임명됐다.장관 임명 이틀 전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변호사로서 법원을 찾기도 했다. 그러나 1년 동안 치열한 법적공방을 벌인 소송에서 서울고법 민사18부(부장 김황식)는 “예보는 두 은행에 원금 5390억원과 지연이자 981억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대투증권이 예금보험금을 지급받을 경우 대투증권의 부실경영과 대우그룹에 대한 탈법적인 자금지원에 의해 발생한 손실을 국민의 세금으로 조달한 공적자금으로 부담하게 되는 부당한 결과가 예상되나 예금자보호제도를 마련하면서 사회·경제적 필요에 의해 이번 사건의 어음거래와 같은 경우도 보호하기로 한 이상 대투증권에 보험금을 돌려줘야 한다.”고 밝혔다. 지평 관계자는 “예보와 함께 기록검토를 면밀히 한 뒤 상고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강 장관은 장관 취임 직후 지평의 대표에서 물러났으며 재판에도 간여하지 않고 있다. 정은주기자 ejung@
  • “삼청교육 보상 약속 파기시점은 93년2월 현행법으론 보상 못받아”대법, 원고승소 원심 파기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소멸시효의 시작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보상약속을 한 뒤 후속조치 없이 퇴임한 93년 2월24일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내려졌다.대법원 2부(주심 裵淇源 대법관)는 “노 전 대통령이 보상 약속을 지키지 않아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삼청교육대 피해자 강모(46)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한 원심을 뒤집고 원고패소 취지로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예산회계법상 국가배상 소멸시효가 5년임을 고려할 때 98년 2월 이후 소송을 제기한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는 한 보상을 받을 수 없게 됐다.이 때문에 89년 이후 미온적인 자세로 4차례나 보상입법을 무산시킨 국회가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이번 회기에도 ‘삼청교육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에 관한 법안’이 국회국방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하고 전체회의에 계류하고 있지만 이 역시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고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지난 88년 11월 노 전 대통령의 담화는 그 경위 등으로 미뤄 당시 대통령의 시정방침일 뿐 후임 대통령이 승계할 법적 의무는 없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담화에 따른 후속조치 없이 퇴임한 시점에 약속이 깨졌다고 보고 그때부터 소멸시효를 계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씨는 80년 11월 대구 중부경찰서에 삼청교육 대상자로 연행돼 삼청교육을 수료한 뒤 청송감호소에서 복역하다가 82년 11월 출소했으며 2001년 9월 소송을 제기,1심에서 패소했으나 2심에서 일부승소했다. 홍지민기자 icarus@
  •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커지는 압박 버티는 住公

    공기업인 대한주택공사가 전방위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압박을 받고 있다. 주택공사는 이명박 서울시장이 최근 마포구 상암동 서울도시개발공사 아파트의 분양원가를 공개하겠다고 밝힌 이후 분양원가 공개 ‘불똥’이 주공 아파트로 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국민들의 관심도 쏠려있다.도개공이나 주공 등 공공기관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가 폭리를 취하고 있는 민간 아파트의 분양가 인하에 ‘도화선’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주공은 그러나 분양가 원가를 공개할 경우 새로운 민원이 야기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영업 비밀까지 의무적으로 공개하는 것 역시 무리라면서 당장 공개할 계획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건설교통부도 부작용을 우려,당장 분양원가 공개를 의무화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등 전방위 압박 주공이 분양원가 공개 공격을 받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국정감사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해 의원들로부터 공개 다그침을 당했다.하지만 임대주택건립재원 마련,영업상의 비밀을 이유로들어 공개하지 않고 버텨왔다. 시민단체들은 “도개공과 같은 공공기관인 주공이 아파트 분양가 내역을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분양원가 공개의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김자혜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사무총장은 “아파트 분양가 원가 공개는 소비자의 중요한 알 권리”라면서 “원가공개 제도와 분양가 규제 및 분양가 평가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의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포항 환호아파트 재건축 단지에서는 일부 조합원들이 법원에 주공과 시공업체(대림산업)사이의 정산 내역 및 무상보상 평수 산출에 대한 공개 요구 소송을 벌여 승소했다.신림동 재개발지구에서도 주공은 조합원들과 원가공개 내역 요구 소송에서 패소,조합에 원가 내역서를 제출했다. 도개공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는 주공아파트 뿐만 아니라 민간 아파트 원가 공개의 도화선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또 국정감사,시민단체,입주민들의 아파트 원가공개 요구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주공,“당장 공개 못한다” 주공이나 건설사는 유독아파트만 분양원가를 공개하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홍인의 주공 부사장은 “분양원가 공개는 새로운 민원 발생의 불씨가 된다.”면서 “현재로서 분양원가 공개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같은 블록이라도 아파트 분양가격을 차등 책정해야 하는 어려움,이익을 많이 남긴 지역 입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질 것이라는 게 이유다.임대주택 건립 재원 마련과 재투자를 위해선 분양성이 좋은 지역에서 이윤을 남길 수 밖에 없는데,이럴 경우 이익을 많이 남긴 단지에서는 입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일률적인 원가공개가 어렵다는 것이다. 단순히 땅값과 건축비만으로 분양가를 산정하기 어려운 것도 원가 공개의 어려움이라고 주장한다.즉,택지개발비용·도시기반시설 투자 등에 따른 부담을 분양가에 얹어 공개할 경우 입주민들의 불만이 팽배해질 터인데 이를 감내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주택사업의 투명성 확보가 관건 전문가들은 의원입법으로 추진하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의무화 법률제정이 무산됐다고 업체의 폭리를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차선책으로 개발이익을 적극적으로 환수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분양원가 공개는 개발이익금의 귀속 주체를 가려내고 적정한 환수조치를 통해 사회적 형평을 이루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택지지구 아파트의 경우 건축비를 빼고는 땅값 등 대부분의 원가가 어느 정도 드러나기 때문에 건축비만 투명하게 밝혀내도 원가에 근접한 가격을 산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장희순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표준품셈을 현실화하고 전문가를 동원,투입된 자재 비용을 뽑은 뒤 적정 분양가를 추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면서 “개발이익이 돌아가는 업체나 당첨자로부터 정부가 개발이익을 적극 환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류찬희기자 chani@
  • 大法 ‘딸들의 반란’ 첫 공개변론

    대법원은 18일 오후 2시 여성을 종중회원으로 인정하느냐를 둘러싼 이른바 ‘딸들의 반란’ 소송에 대한 변론을 들었다.대법원이 변론을 공개로 들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용인이씨 사맹공파 여성 이모(62)씨 등 5명이 “여성도 종중원으로 인정해 달라.”고 종회를 상대로 낸 종회회원확인 소송이다.원·피고측 변호인과 대법원이 선정한 이덕승 안동대 교수,이진기 숙명여대 교수,이승관 성균관 전례위원장 등 참고인 3명도 각각 다른 의견을 개진했다.전원합의체로 열린 이날 변론에서 대법관 13명도 다양한 질문을 하며 3시간 동안 심리했다. 원고측 대리인인 황덕남 변호사는 “법원은 관습 판례에서 헌법정신과 현재 사회적 여건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며 종중원과 종회원을 구별할 것을 주장했다.종중원이란 공동선조의 자손으로 남녀노소 구별없이 인정해야 한다는 것.반면 종중원 협의 모임인 종회는 회원자격을 성인으로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또 “족보 편찬에서 미성년자나 딸이라고 제외하는 경우가 없기에 대법원이 종중원을 성인남성으로제한한 것은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이덕승 교수는 “제사를 지낼 때 수입이 있는 딸이나 출가한 딸들도 부모·조부모의 제사비용을 부담한다.”며 원고 주장에 동의했다. 고현철 대법관이 ‘시집간 딸을 종중원으로 인정하면 성이 다른 외손이 종중에 참여,혼란을 야기한다.’고 지적하자 황 변호사는 “종중원을 동성동본에 제한하면 된다.”면서 “성이 다른 외손에게까지 종중 지위를 확대할 필요가 없다.”고 응답했다.반면 이진기 교수는 “여성은 혼인으로 친가와 상이한 제사공동체에 편입되므로 출가와 동시에 친가의 종중원의 자격을 상실한다.”고 주장했다. 피고측 대리인 민경식 변호사는 “종중제도의 핵심은 먼 조상을 이어가며 추모하는 것인데 원고의 주장처럼 딸을 종중원으로 인정하면,외손이 제사를 모시지 않아 조상 추모가 단절된다.”고 반박했다.이승관 성균관 전례연구위원장은 “성년남성이 선조의 제사를 모신 것은 아름다운 전통”이라면서 “시집간 딸들은 시집에서 의무를 다하고,권리를 찾으라.”고 주장했다.이진강변호사는 “시집간 딸에게 종중재산을 나눠준 것도 시집에서 당당하게 살라는 뜻이었다.”고 강조했다. 원고들은 종중이 99년 3월 임야를 건설업체에 매각하면서 생긴 현금 350억원을 남녀 차별을 둬 분배하자 소송을 냈다가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대법원은 지난 66년 “종중은 성년 이상의 남성을 종원으로 구성한 자연발생적 종종집단”이라고 판시한 이래 37년간 이 입장을 고수해 왔다.대법원이 이번에 판례를 바꿔 여성을 종중원으로 인정할지 여부가 주목된다.이날 방청석에는 취재진 50여명 등 방청객 200여명이 참석,높은 관심을 보였다.앞서 최종영 대법원장은 “일반 국민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칠 사건에 대해 앞으로 공개변론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은주기자 ejung@
  • 딸들의 반란 / 대법, 18일 사상 첫 공개변론 -여성 宗員 배제 관습? 차별?

    “출가한 여성을 포함해 남녀노소 누구나 종원(宗員)이다.” “출가 여성은 종원이 아니다.” “성인 남성만 종원이다.” 대법원은 오는 18일 여성도 종원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민사사건을 심리하며 사상 처음으로 공개변론을 듣는다.공개변론에서는 원·피고측 변호인이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이는 데 이어 대법원이 선정한 이덕승 안동대 교수,이진기 숙대 교수,이승관 전 성균관 전례연구위원장 등 참고인 3명도 각각 다른 견해를 발표할 예정이다.호주제 변화에 이어 부계혈족주의 제도에 대한 또 하나의 논란을 대법원이 연구한 결과를 중심으로 정리한다. ●종원과 종회 구별않아 문제 이번 심리의 최대 쟁점은 여성이 종원에서 배제되는 관습이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에 위배되는지 여부다.합헌론자들은 종중은 수백년 동안 내려온 전통관습이라 주장한다.이승관 전 전례연구위원장은 “종중이란 성과 본을 중심으로 부계 조직으로 성인 남성만이 구성원”이라고 주장했다. 위헌론자는 “헌법은 물론 현행 민법도 지난 90년 개정된 뒤 가족 내에서 딸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민법상 딸은 호적을 시가로 옮기지만,신분상 단절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특히 상속권이나 친정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도 아들과 같으며,제사도 주제할 수 있다. 이덕승 교수는 “대법원 판례는 종원과 종회 구성원을 구별하지 않아 문제”라고 지적했다.종원이란 공동선조의 자손으로 남녀노소 구별없이 인정해야 한다는 것.반면 종원 협의 모임인 종회는 구성원 자격을 성년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이 교수는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혼인 여부에 상관없이 성년여성에게 종회 참석권을 부여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했다. ●딸 허용하면 ‘외가 친입’ 우려 시집간 딸이 친가의 제사에 참석하지 않는 것이 보편적인 관습이란 점을 합헌 근거로 내세우기도 한다.일부에선 남녀노소 모두 종원으로 인정하되 시집간 딸들은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이진기 교수는 “시집간 딸에게 종중원 자격을 부여하면,성이 다른 외손이 제사에 참여하게 돼 공동선조에 봉사하는 종중의 고유의무가 훼손된다.”고 지적했다.또 시집간 딸에게 재산을 분배할 경우 다른 집안에 종중재산이 넘어가게 돼 종중의 본질에 반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위헌론자들은 “종중재산을 배분할 때 이미 종중재산의 고유 목적에서 벗어난 것이기에 시집간 딸을 배제할 이유가 없다.”고 맞섰다.또 시집간 딸을 종중으로 인정해도 부계혈족집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어서 외손까지 종중 지위가 확대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이 여성을 종원으로 인정하면 앞으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우리나라 3349개 본관별 종중 가운데 종중재산을 차등 지급한 곳 대부분이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손배소멸시효(3년)가 지나지 않았다면 종중은 재산을 재분배해야 한다. ●종중재산 불평등 분배에 ‘반란’ 용인이씨 사맹공파는 99년 3월 용인시 수지읍 성복리 일대 종중소유 임야를 매각했다.현금 350억원을 아들·딸들에게 불평등하게 배분하면서 소송에 휘말렸다. 성년 남성은 1억 5000만원,미성년 남성은 연령에 따라 1650만∼5500만원,미혼여성은 3300만원,시집간 여성은 2200만원을 받았다.시집간 딸인 이모(62)씨 등 5명은 “종중규약에 회원을 남성으로 제한하지 않았다.”며 2000년 종회회원 확인 소송을 냈다.그러나 1심,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대법원 방청객 130명 선정 대법원 홈페이지 등을 통해 방청권을 접수한 결과 475명이 방청을 신청했고 전자추첨을 통해 130명을 선정했다.대법원은 촬영을 위해 언론에 5∼10분간 법정을 공개한다. 대법원은 지난 10월부터 40일 동안 대법정을 공개변론에 적합하도록 개·보수했다.법정 내 소리울림을 줄이기 위해 흡음벽을 마련하고,원고·피고·참고인 발언대를 새로 설치했다. 또 사방 벽에 부착된 카메라 4대로 법정 모습을 생생히 촬영,기록으로 남길 계획이다.비상사태에 대비해 대법관 자리엔 비상벨을 설치했다. 정은주 기자 ejung@ ■원고측 / 황덕남 변호사 법원에서 선언한 종중원에 관한 관습은 전통적인 관습과 일치하지 않으며 사회 변화에 따라 현재의 관행 및 법질서에도 부합하지 않는다.종원의 범위를 명백히 하기 위한 족보에서 미성년자 또는 딸을 제외하는 경우는 없다.가족관계의민주화와 민법 개정을 통해 개개인의 인격이 중시되고 성 차별은 사라지게 됐다. 이제 여자들이 성묘와 제례에 참여하는 것이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그럼에도 여성에게 종중원의 자격이 없다는 판례가 유지돼,여성이 증조부 이상 선조의 성묘와 제례에 참여하는 것이 제한되고 있다.과거에는 매장이 일반적이었으나 화장률이 2000년에는 33.7%가 됐고,더욱 증가할 것이다.그만큼 분묘 수호에 관한 종중의 역할은 축소될 것이다. 종중원들 사이에서 종중재산의 관리 및 처분,수혜의 범위가 법적으로 문제되면 이는 상속재산의 다툼이다.이런 경제적 이해관계는 전통적인 개념 또는 법원이 최초로 종중에 관한 관습을 선언하던 당시의 종중에서는 예정된 것이 아니다. 여성도 각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이들이 시가의 혈연으로 거론되지 않는 점,성과 본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점 등 제도 및 관행의 변경을 감안하면 피고들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피고측 / 민경식 변호사 종중에 관한 이번 사건은 여성의 지위향상이나 양성평등 문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종중은 고유의 전통 관습으로 선조의 분묘 수호와 제사,종원 상호간의 친목에 목적이 있다.종중제도의 전통은 논어(論語)에서 효(孝)와 예(禮)의 중요성을 천명한 신종추원(愼終追遠·돌아가신 부모를 신중하게 모시고,먼 조상을 이어가며 추모한다)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국민적 추앙을 받으며 한 시대를 풍미한 걸출한 여성(또는 남성)을 기리기 위하여 남편(또는 아내)과 아들,딸,손자,외손자들이 모여서 ○○○기념회라는 단체를 만든다면 종중이라고 할 수 없다.분묘를 수호하고 제사를 이어간다는 본질적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호적법 제15조 4호에는 “호적에는 호주 및 가족의 성명,본,성별,출생연월일 및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현행법상 처는 결혼하면 원칙적으로 남편의 호적에 입적하고 자녀들도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도록 되어 있다.호주제를 폐지하는 민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됐지만 통과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설령 호주제를 폐지하는 법령이 공포되더라도 종중제도 관습이 쉽게 변할 리 없고,종중제도는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변화하며 존속할 것으로 생각한다. ■종중 관련 대법판례 종중(宗中)은 고려 말,조선 초부터 부계혈족 중심의 가족제도와 조상숭배사상을 중심으로 발생한 개념이다.종중 개념이나 구성원 자격 등은 성문법에 없어 대법원 판례로 정해진다. 종중에 대한 첫 판례는 일제시대인 194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조선고등법원은 당시 한국의 관습을 판례로 정리했다.“한국 종중은 공동선조의 제사를 목적으로 한 종족단체”라면서 “종회 참석자는 호주”라고 명시했다. 해방 후 대법원은 비슷한 맥락의 판결을 내놓았다.66년에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 이상의 남성을 종원으로 구성하는 자연발생적인 종족집단이라고 판시한 것이다.다만 “호주뿐 아니라 가정을 이룬 성인남자가 종회에 참석하는 것이 관습”이라고 범위를 다소 확대했다.또 선조의 사망과 동시에 자연발생적으로 발생하기에 성인 남성이면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종원이 되고,탈퇴나 축출이 불가능하다고 규정했다. 대법원은 지난 92년 “여자나 다른 집안에 출가한 자,그 자손은 종중 구성원이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게다가 여성 참여를 보장한 종중규약에 대해서도 “종중의 본질에 반한다.”며 무효를 선언했다. 종중의 전통적인 역할인 조상의 제사를 모시고,묘소를 관리하는 것이 성인 남성이란 이유다.거주지역에 따라 의결권을 부여하는 규약도 무효로 간주했다.따라서 한국국적을 포기하더라도 성인 남성이라면 종원으로서 자격은 유효하다.종중은 ‘자연발생적 단체’이기에 조직화 과정에서 종원 자격을 제한하거나 확대한 것은 위법하다는 해석이다. 한편 대법원은 고유 의미의 종중이 아닌 종중 유사단체의 경우 구성원 자격이나 가입·탈퇴를 특별히 제한하지 않고 있다.유사종중은 단체규약에 따라 회원자격이 결정되는 것이다. 유사단체로 판단될 경우 규약에 따라 여성에게도 회원자격을 부여한다.지금까지 대법원이 유사단체로 인정한 사례는 4건.이러한 대법원 판례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도 높다. 이재성 전 대법관은 “대법원이 우리 관습을 직접 조사하지 않고,일본사람들의 잣대를 그대로 수용했다.”고 지적했다.정귀호 전 대법관은 “출가하지 않은 성년 여성에겐 종원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은주기자 ■1994년 40곳 종중 조사 안동지역 종중(宗中) 40곳 가운데 19곳이 여성을 종중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공개변론에 참고인으로 나올 이덕승 안동대 교수가 지난 94년에 이같은 결과를 논문집 법사학연구에 발표했다. 특히 안동권씨 대종회의 경우 20세 이상의 남녀뿐 아니라 안동권씨에 입적한 며느리도 종원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공개변론할 용인이씨 사맹공파도 종중규약 제3조에 “회원자격은 용인이씨 사맹공의 후손 가운데 성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미성년자도 나이가 어리다고 종중사업에서 제외시키는 일은 없었다.안동지방의 한 종중은 족보 편찬·대종회 회관 건축 등을 위해 돈을 모으면서 결혼한 사람에겐 6만원,결혼하지 않은 사람에겐 3만원을 받았다.차별을 두지만,종원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 교수는 “아무리 어려도 종손으로 인정하는 관습에 따르면,성년 남성만을 종원이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종중의 장래성에 관한 물음에 종중 19곳이 “쇠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반면 11곳은 “지속될 것”,6곳은 “발전할 것”이라고 응답했다.“모르겠다.”는 답변은 4곳이었다. 정은주기자
  • 자동차 이야기/도요타 “중국선 자꾸 꼬이네”

    중국은 전세계 자동차 회사들이 가장 눈독을 들이고 있는 시장이긴 하지만 결코 만만한 곳은 아닙니다. 렉서스를 자랑으로 삼는 일본 도요타의 예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도요타는 지난달 초순 중국에서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에 대한 광고를 했다가 사과 광고를 다시 하는 등 곤욕을 치러야 했습니다. 반일(反日)감정이 뿌리깊은 중국인들은 도요타의 광고가 중국인을 모욕했다며 거세게 항의를 한 것이지요.광고의 내용은 돌다리 난간에 서 있는 사자(獅子)상이 도요타 차를 향해 경례를 하는 것으로 ‘당신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는 문구가 나옵니다.사자상이 있는 이 다리는 중·일전쟁의 발단이 된 노구교(蘆溝橋)를 중국인들에게 연상시켰다고 합니다. 1937년 7월7일 베이징의 노구교에서 일본군은 실탄사격 소리를 듣고 병사 한명이 행방불명되자 중국군을 공격,20만명 이상이 사망하는 난징대학살로 이어집니다.행방불명됐던 병사는 소변을 보려고 부대를 잠시 이탈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고 하네요.현재 7월 7일은 중국의 국치일(國恥日)입니다. 또 다른 광고는 도요타의 랜드크루저가 트럭을 끌고 눈 덮인 비탈길을 오르는 사진인데 국방색의 이 트럭 또한 중국 인민해방군의 트럭처럼 비쳐져 자존심 강한 중국인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도요타는 2001년 중국에 본격 진출,현지 생산을 시작했지만 70년대에도 중국 시장을 노린 적이 있습니다. 1970년 도요타는 현 GM대우의 전신격인 신진자동차와 함께 엔진공장을 세우기로 했다가 중국시장 진출을 위해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합니다.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한국과 타이완을 돕는 자나 상사(商社)와는 교역치 않는다.’는 이른바 ‘주사원칙’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하지만 당시 도요타의 중국 진출은 중국의 자동차 시장이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던 데다 해외자본을 끌어들일 여건도 안되는 등의 여러가지 난관 때문에 실패하고 맙니다.최근에는 도요타가 중국 민영자동차업체 지리그룹을 상대로 상표권 침해 소송을 냈다가 패소한 적도 있지요. 현재 도요타는 중국 시장 점유율 10%를 노리고 있고,한국에서 렉서스는 가장 많이 팔리는 수입차입니다.중국인들은 도요타를 보며 역사를 기억하지만 한국인은 렉서스라는 상표 이면의 역사는 모두 잊은 것 같습니다. 윤창수기자
  • 현대전자 주가조작 3억배상 판결/ 소액주주 원심 깨고 승소

    지난 98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 반도체)주가조작 사건과 관련,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형사처벌에 이어 소액주주들에게 손해배상금을 물어주게 됐다.그러나 손배소멸시효인 3년이 지난 상태라서 피해를 입었으나 소송을 내지 않은 1만 3000여명의 소액주주들은 구제받을 수 없다. 서울고법 민사12부(부장 이주흥)는 소액주주 54명이 “주가조작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현대증권과 이 전 회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3억원을 배상하라.”고 원심을 깨고 원고 일부승고 판결을 내렸다고 10일 밝혔다. 원심 재판부는 “원고들의 불법행위는 인정되지만,원고들이 주가조작 때문에 손해를 입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패소 판결했다.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주가조작 전 정상적인 종합주가지수와 전기기계 업종지수 등을 토대로 주가 함수를 계산한 뒤 주가조작 기간의 주가흐름과 비교한 결과,원고들의 손해가 대부분 인정된다.”고 밝혔다.또 원심과 달리 주가조작 중단 후에도 현대증권 주가가 고평가 상태였다고 판단,시세조정 이후에매입한 투자자들의 피해도 보상하라고 덧붙였다.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이란 지난 98년 4∼11월 ‘바이코리아’ 열풍을 몰고온 이익치 회장이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을 동원해 현대전자의 주식을 비싼 가격으로 매입하는 방법으로 현대전자 주가를 1만 4000원대에서 3만 4000원대로 끌어올린 것을 말한다.지난 99년 4월 금융감독원이 이같은 사실을 발표하면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참여연대는 주가조작 기간에 주식을 샀던 소액투자자들을 모아 지난 99년 10월 민사소송을 냈고,현대증권과 이익치 회장은 형사재판에서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정은주기자 ejung@
  • 재산만 챙긴 불효자 법이 심판

    부모 봉양을 조건으로 땅을 물려받았던 아들이 봉양 약속을 지키지 못해 상속받은 땅을 부모에게 반환하게 됐다.효(孝)는 팽개친 채 상속 재산만 밝힌 아들에게 법원이 경종을 울린 것이다. 서울고법 민사15부(부장 이진성)는 23일 아버지 이모(84)씨가 ‘부모 봉양 약속을 지키지 않은 아들과의 증여계약은 무효’라며 큰아들(65)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말소청구 소송에서 원고패소한 원심을 깨고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민법상 증여계약 당시 부담키로 한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면 증여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면서 “피고가 아버지와 중풍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자신의 집에서 모시기로 약속하고도 땅을 넘겨받은 후 어머니를 노인전문병원에 입원시킨 후 치료비도 제대로 내지 않은 것은 의무 불이행”이라고 밝혔다. 큰아들 이씨는 지난 91년 경기도 화성시 소재 5500여평의 전답과 임야를 증여받기로 했으나 같은해 겨울 아버지가 남동생의 결혼비용을 마련키 위해 땅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다툼이 생겨 증여 약속은 무위로돌아갔다.이후 이씨는 지난해 4월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져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봉양하는 조건으로 땅을 물려받았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자 아버지가 소송을 냈다. 안동환기자
  • 삼성전자 이사5명 유가증권 헐값매각 손실/ 회사에 120억 배상판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뇌물로 건넨 75억원과 관련,삼성전자에 7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최근 검찰이 대기업의 대선자금에 대해 전면 수사하는 가운데 나온 판결이어서 주목된다. 서울고법 민사21부(부장 김진권)는 20일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등 삼성전자 소액주주 22명이 주주대표로서 이건희 회장과 김모(61)씨 등 삼성전자 전·현직 이사 10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이씨는 70억원을,김씨 등 이사 5명은 연대해 1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88년 3월∼92년 8월 삼성전자에서 조성된 자금 75억원을 이건희 회장이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뇌물로 제공해 회사에 손해를 입힌 사실이 인정된다.”면서 “손배 소멸시효가 지난 5억원을 제외한 7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삼성전자가 이천전기를 인수한 것은 합리적인 경영 판단이라면서 276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이천전기가 2년 만에 퇴출기업이 된 것도 97년 외환위기 등 예측할 수 없는 악재가 겹친 탓으로 경영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이다.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경영인이 합리적으로 판단하고,성실히 업무를 이행했다면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 해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재판부는 “삼성전자가 액면가 1만원에 취득한 삼성종합화학 주식 2000만주를 1주당 5733원 이상에 팔 수 있었는데도 2600원에 삼성항공과 삼성건설에 매각,회사에 626억원의 손해를 입힌 사실이 인정된다.”면서도 “회사와 경영진이 손실책임을 함께 져야 하기에 임원들의 책임을 20%로 제한한다.”고 밝혔다.1심에선 경영진의 책임을 100%로 판단했다.그러나 법원이 비상장주식의 평가방법으로 순자산가치를 이용,검찰의 삼성그룹 편법증여에 대한 수사와 공정거래위원회의 재벌 부당내부거래 조사에 기준을 제시했다. 참여연대는 “법원이 기업의 불법비자금 조성에 대해 책임을 물은 것을 당연하다.”면서 “다만 회사가 보유한 주식을 저가 매각,손해를 끼친 것에 대해 손배 책임을 20%로 제한한 것은 지나치게 친재벌적인 판결”이라고 논평했다. 박씨 등 소액 주주들은 98년 10월 20일 삼성전자의 부당 내부거래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모두 3500여억원의 손배소송을 제기했다. 한편 이건희 회장의 장남 재용씨에 대한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과 관련,이 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한 조승현 방송통신대 교수 등 법학교수 43명은 이날 검찰에 엄정수사를 촉구했다. 정은주기자 e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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