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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녀새’ 이신바예바 다시 날다

    ‘장대 미녀’ 옐레나 이신바예바(27·러시아)가 건재를 알렸다. 이신바예바는 29일 스위스 취리히 레치그룬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골든리그 5차 시리즈 ‘벨트클라세 취리히’ 여자 장대높이뛰기에서 5m06을 넘어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에서 세운 자신의 세계기록(5m05)을 1㎝ 끌어올렸다. 지난 18일 독일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m75와 4m80에 걸린 바를 한차례도 넘지 못해 아예 순위에서도 빠졌던 이신바예바는 11일 만에 개인통산 27번째 세계기록을 작성함으로써 악몽을 말끔히 털어냈다. 이신바예바는 이날 4m71과 4m81을 가볍게 넘은 뒤 5m06에 도전해 1차 시기에서 성공했다. 지난달 25일 런던 아비바 그랑프리에서 이신바예바에 6년여 만의 패배를 안긴 뒤 베를린에서도 금메달을 땄던 안나 로고프스카(28·폴란드)는 4m76으로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이신바예바는 “참패 뒤 세계기록을 깨다니 믿을 수 없다.”면서 “베를린 패배의 원인이 자만심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비탈리 페트로프 코치 등 ‘누구나 질 수 있다.’고 격려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K-리그] 이동국 44일만에 15호골 ‘포효’

    [K-리그] 이동국 44일만에 15호골 ‘포효’

    바닥에서 헤매던 울산이 단독 선두를 달리는 FC 서울을 따돌렸다. ‘라이언킹’ 이동국(30·전북)은 리그 15호 골을 터뜨리며 팀의 2위 탈환을 이끌었다. 울산은 3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K-리그 21라운드 원정경기에서 후반 18분 이원재, 후반 24분 염기훈의 골로 서울을 2-0으로 눌렀다. 울산은 최근 정규리그 5연속 무승(3무2패)을 끝내며 5승7무8패(승점 22), 11위로 올라서 중위권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부상 공백을 딛고 국가대표로 돌아온 ‘왼발 달인’ 염기훈은 리그 1호 골이자 40일 만에 시즌 2호 골을 터뜨리며 부활을 예고했다. 반면 지난달 19일부터 단독 1위를 질주한 서울은 정규리그 2연승 뒤에 첫 패배를 안으며 주춤했다. 서울은 비록 패했지만 12승3무5패(승점 39)로 선두 자리를 지켰다. 서울은 리그 2연승 뒤 첫 패배를 안으며 전북에 턱밑 추격을 당했다. 울산 이원재는 0-0으로 줄다리기를 벌이던 후반 18분 프리킥으로 올라온 현영민의 크로스를 받아 골 지역 오른쪽에서 헤딩 슛으로 연결해 서울의 골망을 흔들었다. 6분 뒤엔 염기훈이 골 지역 왼쪽에서 김신욱의 패스를 받아 강력한 왼발 슛으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염기훈은 지난달 22일 제주와의 피스컵코리아에서 시즌 첫 골을 뽑은 데 이어 40일 만에 맛본 골이었다. 이동국도 44일 만에 골을 터뜨리며 부활을 알렸다. 이동국은 이날 대전과의 원정경기에서 후반 26분 선제 결승골을 넣어 2-0 완승을 이끌었다. 지난달 18일 대구FC와의 원정경기에서 2골을 넣었던 이동국은 리그 15호이자 시즌 16호 골로 K-리그 득점 선두를 달렸다. 이동국이 후반 26분 에닝요의 패스를 받아 골 지역 왼쪽에서 왼발 슈팅으로 첫 골을 뽑았다. 전북은 14분 뒤 브라질리아의 추가 골로 완승을 거뒀다. 전북은 10승(5무4패) 고지를 밟으면서 이날 경기가 없던 포항(8승9무2패·승점 33점)을 밀어내고 단숨에 2위로 올라섰다. 한편 울산 김호곤 감독은 서울과의 경기를 앞두고 취재진과 만나 “야구 관중은 500만명을 돌파했다. 프로연맹은 관중 유치에 도움을 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창피한 얘기다. 프로연맹이 대한축구협회 주도권 싸움을 하는 모양새”라고 말해 파문을 예고했다. 협회 전무이사 출신인 김 감독은 “세계에서 (다음달) 5일 A매치를 치르고 이튿날인 6일에 경기를 치르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면서 “A매치 날짜가 5일로 정해졌으면 6일에는 경기를 하지 않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54년만의 선거혁명… 新일본 열다

    54년만의 선거혁명… 新일본 열다

    │도쿄 박홍기특파원│30일 새로운 일본이 열렸다. 이날 실시된 중의원선거(총선거)에서 제1야당인 민주당은 54년간 장기 집권해온 자민당에 완벽하게 압승했다. 이로써 민주당은 역사적인 정권교체를 달성,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체제를 출범시키게 됐다. 반면 자민당의 ‘1955년체제’는 막을 내렸다. 선거구별 개표 집계에 따르면 31일 0시20분 현재, 총의석 480석 가운데 민주당은 301석을 획득, 단독 과반수 241석을 훨씬 넘어섰다. 자민당은 112석, 공명당은 20석에 그쳤다. 또 공산당 8석, 모두의 당과 사민당이 각각 5석을 얻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로써 민주당은 절대안정의석을 얻어 중의원의 상임위원회 위원장도 독점할 전망이다. 투표율은 69%를 넘어 지난 2005년 총선거의 67.5%보다 높았다. 차기 총리에 오를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는 이날 밤 선거결과와 관련, “국민의 뜻이 마침내 결실을 보아 정권교체를 이루게 됐다.”며 국민의 성원에 감사했다. 정권교체를 선택하는 총선거에는 모두 1374명이 출마했다. 소선거구제로 300명, 전국을 11개 권역으로 나눈 비례대표제로 180명 등 모두 480명을 뽑았다. 지난 20 05년 총선거에서 자민당은 296석, 민주당은 113석을 얻었다. 창당 이래 최대 참패를 당한 자민당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아소 다로 총리는 “자민당에 대한 불만을 씻어내지 못했다.”면서 패배를 선언한 뒤 사퇴의 뜻을 밝혔다. 호소다 히로유키 간사장을 비롯, 당료들도 책임을 지고 당직을 내놓기로 했다. 가이후 도시키 전 총리를 포함, 자민당 최대 파벌의 수장인 마치무라 노부타카 전 관방장관, 나카가와 쇼이치 전 재무상 등 정치 원로 및 중진들도 줄줄이 낙마했다. 연립정권의 한축이었던 공명당의 오오타 아키히로 대표도 낙선했다. 하토야마 대표는 31일 곧바로 ‘정권인수팀’을 구성, 정권 인수 작업에 공식 돌입하기로 했다. 하토야마 대표는 새달 15일쯤 열리는 특별국회에서 차기 총리로 선출된다. 정권이행팀은 하토야마 대표가 31일 발표할 관방장관, 국가전략국 담당상, 재무상, 외무상 등 주요 각료 내정자와 간사장 등 당 중역들로 구성된다. 특히 하토야마 대표는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반대하는 등 한국의 중요성을 강조, 한·일관계도 새로운 전기를 맞을 전망이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에서는 ‘긴밀하고 대등한 외교’를 천명, 미·일 관계의 조정이 주목되고 있다. hkpark@seoul.co.kr
  • [新일본 열다] 오자와 창당 13년만에 정권창출 총지휘

    [新일본 열다] 오자와 창당 13년만에 정권창출 총지휘

    │도쿄 박홍기특파원│30일 중의원선거에서 일본의 정치판을 뒤엎은 민주당은 고작 13년의 역사를 가졌다. 54년된 자민당과는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에 비유될 정도다. 민주당은 지난 1996년 9월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가 정치개혁을 내걸며 신당 사키가케를 탈당한 뒤 창당했다. 현 민주당과 구분하기 위해 흔히 구 민주당으로 부른다. 민주당의 현 체제는 1998년 4월 민정당·신당우애·민주개혁연합 등이 합류하면서 갖춰졌다. 창당 때만 해도 민주당이 정권 교체를 이룰 것이란 관측은 사실 불가능했다. 게다가 민주당은 ‘잡당’으로 불릴 만큼 보수에서 좌파까지 이념의 스펙트럼이 워낙 넓은 데다 6개의 당이 뭉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계파·이념을 떠나 목표는 확실했다. 정권교체다. 특히 핵심인물들이 만만찮았다. 당의 얼굴인 하토야마 대표를 비롯해 오자와 이치로, 간 나오토 대표대행, 오카다 가쓰야 간사장이 포진했다. 모두 당대표 출신이다. 오자와 대표대행은 지난 5월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선거운동을 총연출했다. 하토야마 대표를 후임으로 선택한 것도 오자와의 작품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킹 메이커, 선거의 귀재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정책공약, 선거전략, 후보공천, 후보자금지원에 이르기까지 선거 전반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실질적인 일등 공신이다. 오자와 대표대행은 또 당내에서 120명의 의원을 거느린 최대계파의 수장이다. 게다가 정치신인들이 이번 선거에서 대거 당선, 새로운 ‘오자와 칠드런’이 생겼다. 하토야마 대표가 당 밖의 간판이라면 오자와 대표대행은 당 안에서의 최대 실세다. 때문에 자칫 하토야마 내각과 오자와 정국이라는 이중권력체제가 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간 대표대행과 오카다 간사장의 역할도 컸다. 당 내에서 일정 지분을 갖고 있다. 간 대표대행은 변리사 출신으로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다 1980년 사회민주연합 후보로 중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진출했다. 1998년 민주당의 당권을 잡았지만 다음해 당내 선거에서 패배, 하토야마에게 대표직을 내줬다. 2002년 12월 다시 당 대표에 올랐지만 2004년 5월 국민연금 보험료 미납 사건이 터져 물러났다. 도쿄대 법대 출신의 오카다 간사장은 깨끗한 이미지 때문에 당내 소장파 의원의 지지를 받는 차세대 주자다. hkpark@seoul.co.kr
  • 지성은 분주·두리는 골맛

    빅리그에서 태극전사들의 활약이 이어졌다. ‘산소탱크’ 박지성(28·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30일 영국 맨체스터의 올드트래퍼드에서 열린 아스널과의 경기에 후반 18분 안토니오 발렌시아와 교체 출전, 추가시간까지 32분간 활발한 몸놀림으로 2-1 승리에 기여했다. 맨유는 전반 39분 아스널의 안드레이 아르샤빈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후반 14분 웨인 루니의 페널티킥 골로 동점을 만들었다. 박지성이 그라운드로 뛰어드는 순간 아스널 수비수 아부 디아비가 라이언 긱스의 프리킥을 걷어낸다는 게 자책골이 되면서 맨유는 역전승을 거뒀다. 박지성은 후반 25분 파트리스 에브라에게 예리한 패스를 날렸지만 골로 연결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스포츠 채널 스카이스포츠는 박지성에게 ‘분주했다.’는 평가와 함께 평점 6을 줬다. 선발출격한 루이스 나니는 평점 8점으로 루니, 대런 플래처와 함께 팀 최고점을 받았다. 분데스리가 차두리(29·프라이부르크)는 켈젠키르헨의 벨틴스아레나에서 열린 샬케04와의 원정경기에 오른쪽 풀백으로 선발 출전, 전반 40분 골을 뽑아 1-0 승리의 주인공이 됐다. 팔꿈치 탈골로 벤치를 지켰던 박주영(24·AS모나코)은 몽벨리아르 스타드보날에서 치러진 프랑스 리그1의 FC소쇼전에 보호대를 하고 출전, 여러 차례 골문을 위협하며 후반 18분까지 뛰었으나 팀의 0-1 패배를 지켜봐야 했다. 한편 ‘특급 윙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4·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 베르나베우구장에서 열린 프리메라리가 홈 개막전에서 데포르티보를 상대로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3-2 승리에 일조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1993년 10개월여 ‘깜짝 야당’… 고이즈미 시절 민심이반 심화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을 54년간 통치해온 이른바 ‘1955년 체제’의 자민당이 사실상 궤멸된 상태다. 중의원선거에서 처음으로 제1당도 빼앗겼다.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탄생한 자민당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권력을 장기 독점해 왔다. 하지만 2007년 7월 참의원선거 패배에 이어 이날 중의원선거도 완패했다. ●1955년 자유당+민주당으로 탄생 자민당은 창당 이래 10개월간을 빼고는 사실상 집권당의 위치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던 터다. 1990년 중의원선거 때 리쿠르트 사건, 우노 소스케 전 총리의 여성스캔들 등 최악의 상황에서도 버텼다. 1993년 중의원선거에서는 과반수에 실패했지만 제1당을 지켰다. 물론 당시 자민당 장기 집권에 반발한 야당들이 비(非)자민, 비공산 연립정권에 합의해 호소카와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한때 처음 야당으로 전락했다. 총리도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이치 의원이 맡았다. 하지만 호소카와 내각의 자중지란에 따라 자민당은 1995년 6월 일본사회당 등과 연립, 다시 여당으로 복귀했다. 10개월 만이었다. 이후 자민당은 한층 쇠퇴의 길에 빠져들었다. 중의원·참의원선거에서 잇따라 기존의 표를 잃어갔다. 자유당, 공명당과의 연립을 통해 정권을 겨우 유지했다.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우정(郵政·우체국) 선거’는 예외다. 우정 민영화로 대표되는 대대적인 개혁 표방에 유권자들은 열광했다. 자민당은 296석을 획득했다. 언론들은 ‘진통제 효과’로 평가했다. 실제 고이즈미 총리의 재임 5년 5개월 동안 도시와 지방간의 격차 심화, 농촌의 피폐화 등 개혁의 피로증에 민심 이반은 심화됐다. 세습 정치인의 전형인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중도 퇴진, 아소 다로 총리의 좌충우돌 행동과 발언은 자민당에 대한 반감과 불신을 한층 키웠다. ●16선 가이후 전총리도 첫 고배 반자민당 정서는 정치 원로와 중진들에게도 직격탄이었다. 16선의 가이후 도시키 전 총리는 정치인생 49년 만에 처음 고배를 마셨다. 자민당내 최대 파벌의 수장인 마치무라 노부타카 전 관방장관, 야마자키 다쿠 전 부총재, 아소 총리의 친구인 나카가와 쇼이치 전 재무상, 9선의 요사노 가오루 재무상 등도 힘을 쓰지 못했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케네디家 구심점 지다

    케네디家 구심점 지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미국 정치의 ‘큰 별’이 졌다. 악성 뇌종양으로 1년 넘게 투병해온 에드워드 케네디 미국 상원의원(민주·매사추세츠주)이 25일(현지시간) 밤 사망했다. ●뇌종양 투병중 사망… 77세 케네디가(家)는 26일 새벽 성명을 통해 “케네디 의원이 25일 밤 하이니스포트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케네디 가족 명의의 성명에서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가족의 구심점이자 삶의 빛을 잃었지만 그의 신념과 낙관주의, 인내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케네디 의원의 별세로 1960년대 이래 반세기 가까이 미국 정치에 막강한 영향을 미쳐온 케네디 가문의 역사도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테드’, ‘테디’로 불려온 케네디 상원의원은 1932년 2월22일 보스턴에서 아일랜드계 이민 3세 백만장자인 조지프·로즈 케네디 부부의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형들과 마찬가지로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으나 친구에게 대리시험을 부탁했다 적발돼 퇴학당한 뒤 재입학해 졸업했다. 둘째 형인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과 셋째 형인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의 그늘에 가려 있던 케네디 상원의원은 1962년 존 F 케네디의 대통령 당선으로 공석이 된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보궐선거에 나서 30세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발을 내디뎠다. 이어 1964년 6년 임기의 상원의원에 재선된 뒤 47년간 상원의원으로 활동해온 미 현대 의회 역사의 산 증인이다. 건강과 교육, 노동, 인권, 외교 등에서 괄목할 만한 족적을 남겼으며 ‘상원의 사자’로 불리며 진보 진영의 거목으로 미 정계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암살된 뒤 미 최고의 정치명문인 케네디가의 최고 어른으로 고비 때마다 집안을 이끌어왔다. ●민주당 거목… 오바마 당선 일등공신 지난 1980년 지미 카터 대통령에 맞서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섰으나 1969년 여비서의 익사사고와 관련된 사실이 불거지면서 패배했다. 4년 뒤 대선에 재도전할 계획을 세우다 결국 여비서 익사사고에 발목이 잡혀 대통령의 꿈을 접고 상원의원 활동에 전념하며 형들보다 더 큰 족적을 미 현대 정치사에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일찌감치 버락 오바마 후보를 지지,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케네디 의원의 개인사는 비극으로 점철돼 있다. 맏형인 조지프는 스물아홉의 나이에 2차대전 중 전사했고, 둘째와 셋째 형은 모두 40대에 암살됐다. 누나들 중에는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지거나 정신지체로 특수시설에서 평생을 보낸 이도 했다. 조카 세 명을 사고로 앞세우는 아픔도 겪었다. 케네디 의원도 1964년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음 문턱까지 갔다 기사회생했다. 아들이 골수암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했고, 1981년 첫 부인과 이혼한 뒤 1992년 현재의 부인과 재혼했다. 지난해 5월 뇌종양 판정을 받은 뒤 수술을 받고 투병생활을 해왔으나 결국 15개월만에 운명을 달리했다. 케네디 의원은 얼마 전 타계한 김대중 전 대통령 등 한국의 민주화 인사들과 친분을 쌓으며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문제에 높은 관심을 보여왔다. kmkim@seoul.co.kr
  • 새달 이집트 U-20월드컵 개막… 홍명보 감독 인터뷰

    새달 이집트 U-20월드컵 개막… 홍명보 감독 인터뷰

    “U-20월드컵 목표는 16강 진출.” 26일 오후 파주 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만난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의 홍명보(40) 감독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카리스마를 뿜고 있었다. 오전 훈련이 조금 길어졌지만 선수들 역시 지친 기색 없이 밝은 표정이다. 최근 수원컵에서 3전 3승으로 우승했고 지금까지 국제경기 7경기 무패(6승1무)를 달리는 상승세. 선수들은 “패하는 느낌을 까먹었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에 차 있다. 새달 24일 개막하는 이집트 U-20월드컵을 앞둔 홍 감독을 만나 봤다. ●“기성용급 만들어 낼 것” 한국은 꼭 한달 후 ‘열사의 땅’ 이집트에서 카메룬과 조별예선 첫 경기를 치른다. 한국은 카메룬·독일·미국과 ‘죽음의 C조’에 편성돼 있는 터. 대륙별 최강팀들이 모여 홍 감독의 고민도 깊어져 간다. 하지만 홍 감독은 당당한 목소리로 “차근차근 준비가 잘되고 있다. 완벽하진 않지만 생각대로 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미 카메룬은 비디오 분석이 끝났고 독일은 홍 감독이, 미국은 서정원 코치가 직접 다녀와 맞춤작전을 구상하고 있다. 어떤 팀이 만만하냐는 물음에 홍 감독은 “세 팀 다 모든 측면에서 우리보다 낫다. 다만 그들도 아직 완성된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어려움이 분명히 있을 테고 우린 그때 찬스를 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선수들이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자신의 몫이라고 했다. 이어 “목표는 조별예선 통과”라면서 “결과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후회 없이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05년 박주영·백지훈, 2007년 이청용·기성용처럼 스타선수가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그는 “어린 선수이다 보니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팀에 스타플레이어는 필요없다.”고 잘라 말했다. 얼마 전 합류문제로 논란이 됐던 기성용(FC서울)에 대한 미련도 접었다. “감독을 맡았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게 성용이었지만 (합류를) 긍정적으로 생각한 적은 없기 때문에 괜찮다.”고 태연히 말했다. 하지만 큰 눈을 번뜩이며 “아직 기성용만큼 되는 선수는 없지만 곧 그렇게 만들어 내겠다.”고 말했다. ●“4주면 충분하다” 선수들이 패배를 잊으며 고공행진을 하는 만큼 감독의 마음은 내심 불안하다. 홍 감독은 “강팀과 연습경기를 해보지 않은 게 가장 걱정이다. 혹시라도 실전에서 주눅들까봐 연습 때마다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원래 홍 감독이 선수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건 ‘생각하며 축구’. 그는 “미리 정해진 전술 안에서 생각하며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어릴 때 이런 기본기를 닦아 놓으면 더 큰 선수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현재는 시일이 촉박한 만큼 ‘수비 의지’를 들고 나섰다. 그는 “기본 수비가 무너지면 공격도 원활히 안 된다. 공격수부터 수비 의지를 갖고 달려들어야 한다.”고 다그친다. 그는 국가대표팀 코치를 3년간 맡으며 선수 기량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배웠다. A매치 데이에 맞춰 전술은 물론 훈련 날짜와 시간 등을 꼼꼼히 챙기는 지도자를 보며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진 것. 때문에 “시간이 얼마 안 남았지만 선수들의 조직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고 말한다. 프로팀 감독도 마다하고 U-20대표팀 감독생활을 즐기는 이유도 명확하다. 그의 말대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선수’들을 데리고 후회없이 한번 해보고 싶기 때문. 거스 히딩크 감독처럼 “세계를 놀라게 하겠다.”는 거창한 출사표는 아니었지만 특유의 진중함이 느껴져 오히려 승리의 간절함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세계육상선수권 폐막] 우물안 한국육상 기록시계 멈췄다

    [세계육상선수권 폐막] 우물안 한국육상 기록시계 멈췄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24일 독일 베를린에서 막을 내렸다. 우사인 볼트(23·자메이카) 등 월드스타들은 더욱 빛났고 새 스타들도 탄생했다. 2011년 차기 대회는 대한민국 대구에서 치러진다. 대구대회 조직위원회 김범일 공동위원장과 오동진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은 이날 폐막식에서 클레멘스 프로코프 베를린 대회조직위원장으로부터 대회기를 넘겨 받고 성공적인 개최를 다짐했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우리에게 경기력 향상 등 적지 않은 숙제를 안겼다. 길지 않은 2년 간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짚어 본다. 남자 100m 10초34 한국기록 30년, 여자 100m 11초49 15년 묵고…. 또 “뒤로 뛴다.”는 한탄을 늘어놓기엔 총체적 실패에 대한 체감은 크다. 2011년 8월27일 개막, 9월4일까지 열릴 대구 대회를 2년 남기고 ‘남의 잔치’가 될 것이라는 걱정은 커졌다. 따지고 보면 차기 개최국으로 강렬한 인상을 전 세계에 남겨야 한다는 바람은 욕심이었다. 거꾸로 마음가짐이 더 문제라는 지적이 흘러 나온다. 1983년 첫 대회부터 선수를 보낸 한국은 이번에 남녀 19명으로 역대 최대 선수단을 꾸렸다. 그러나 트랙과 필드에서 단 1명도 결선에 진출하지 못했고 기대를 걸었던 마라톤과 경보에서도 모두 중하위권에 그쳤다. 한국 기록도 나오지 않았다. 100m에선 남녀 통틀어 아예 출전하지도 못했다. 기준기록(남 10초28, 여 11초40)을 낸 재목이 없었던 탓이다. 2007년 일본 오사카 대회에서는 김덕현(24·광주시청)이 세단뛰기에서 결선에 올라 1999년 스페인 세비야 대회 때 남자 높이뛰기에서 6위에 오른 이진택 이후 8년 만에 결선 진출자를 배출했다. 남자 마라톤은 상위 3명의 성적을 따지는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따내는 적지 않은 성과를 일궜다.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에서는 남자 110m 허들의 이정준(25·안양시청)이 사상 처음으로 1회전을 통과하는 등 상승세를 이어갔으나 올해에는 전 부문에서 실망만 안겼다. 2005년 이후 각종 국제대회에서 단 한 차례도 바를 넘지 못했던 남자 장대높이뛰기에서 김유석(27·대구시청)이 차례로 5m25와 5m40, 5m55를 넘어 징크스를 깼고, 랜들 헌팅턴 코치의 집중지도를 받은 여자 멀리뛰기 정순옥(26·안동시청)이 4㎝ 차로 아깝게 탈락하는 등 작은 성과도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우선 선수 스스로 관리에 소홀한 면이 있다. 선수들은 이런저런 부상과 컨디션 조율 실패로 소중한 기회를 날려 버렸다. 남자 세단뛰기에 이어 멀리뛰기에서 3㎝가 부족해 예선에서 탈락한 김덕현은 “무릎이 아파 한 달 이상 훈련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미국 유학 중인 남자 110m 허들의 이정준(25·안양시청)과 박태경(29·경찰대)도 허벅지 근육통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여자 장대높이뛰기 임은지(20·부산 연제구청)는 발목이 퉁퉁 부을 정도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남자 경보 20㎞에 나선 김현섭(24·삼성전자)은 “지난달 유니버시아드에 출전한 뒤 몸이 피곤했다.”고 밝혔다. ‘포스트 이봉주’로 불리는 지영준(28·경찰대)은 발바닥 물집으로 기권해 체면을 구겼다. 연맹의 안일한 태도도 퇴보를 부채질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지적에 따라 오동진 회장은 지도자 자질을 끌어 올리고 만연한 패배주의를 척결하겠다는 개혁을 선언했다. 수준급 외국인 지도자를 계속 늘려 ‘히딩크 프로젝트’로 단기 성과를 노리고 장기적으로는 젊고 유능한 국내 코치들을 미국으로 보내는 지도자 양성 시스템을 새로 구축할 예정이다. 전략 종목도 새판을 짜야 한다. 대구 대회에서 결선에 진출할 만한 종목으로 경보, 도약 종목, 장대높이뛰기, 허들을 찍고 투자해 왔다. 그러나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다른 종목으로 급선회할 필요성이 있다. 무엇보다 선수들이 소속 팀의 성과를 위해 뛰는 전국체전에 초점을 맞춰 훈련하다 보니 성적과 기록이 좋을 리가 없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서말구(54) 해군사관학교 교수는 “어릴 적 몸에 밴 잘못된 버릇을 체계적인 훈련으로 고쳐야 하지만, 대부분 직장을 보장받다 보니 굳이 땀을 흘리려 하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안이한 자세를 꼬집었다. 남은 2년 동안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바꿔 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연맹과 선수들이 특단의 조치와 각오로 준비해야 하는 절실한 상황이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글로벌 시대] 부패지수와 국가이미지/고형식 국제변호사

    [글로벌 시대] 부패지수와 국가이미지/고형식 국제변호사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미국 대통령선거를 승리로 이끌기 위하여 국민들의 시선을 주목할 수 있는 선거 슬로건을 잘 사용하였다. 다름 아닌 ‘변하자(change)’와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 이 슬로건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미국 민주당은 집권당 공화당을 백악관과 국회서 퇴출시키기 위해 2008년 선거에 앞서 수년 전부터 더 강력한 정치 슬로건을 역이용했다. 바로 공화당의 ‘부패문화(Culture of Corruption)’라 불리는 것이다. 공화당의 부패문화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제2차 임기에 이루어진 일련의 정치와 로비스트 부패 사건을 말한다. 부시 미 대통령 정권시절 집권당인 공화당 지도부가 만들어낸 워싱턴의 게임의 법칙은 다음과 같다.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고자 하는 모든 이들은 정지 헌금을 오직 공화당에만 내야 하고, 로비스트는 오직 공화당 출신들만 사용하여야 한다. 로비스트들은 공화당 지도부에 의해 법 제정이 이루어지도록 권력을 집중시키는 데 지원을 아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로비스트와 정치헌금자들이 원하는 대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하여 공화당 지도부는 비밀리에 법안을 작성하게 하고, 개정안은 절대 허락하지 않으며, 투표 전에 국회의원들이 그 법안을 검토하지 못하도록 시간을 주지 않으며, 중요한 법안은 늦은 밤에 통과시키며, 민주당과의 화합을 금하였다. 이러한 정치법칙하에 부패가 만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 후 워싱턴의 주요 로비스트 회사들이 부시정권 때 홀대받았던 민주당 출신의 로비스트를 채용하려고 혈안이 됐다는 것을 볼 때 공화당 지도부가 정치권력을 얼마나 편향적으로 이용했는지 잘 알 수 있다. 물론 공화당이 선거에서 패배한 이유는 이라크전쟁에서의 실정과 경제의 침체, 빈부격차를 들 수 있겠다. 하지만 제일 근본적인 패배원인은 민주당이 들고나왔던 공화당의 부패문화라는 슬로건이 사실로 확인되었고 이로 인해 공화당을 향한 국민들의 정치적 신뢰가 산산조각났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시정권 임기 기간에 일어났던 실책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나라의 지위를 유지하는 까닭은 아마도 정치적 문제가 자유롭게 언론매체를 통하여 부각되게 하고, 이를 정치권에서 솔직히 인정하게 함으로써 문제의 해결 대안을 국민앞에 경쟁적으로 내놓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국을 가장 부러워하는 이유는 이 자기정화 시스템인 것이다. 우리는 해마다 자존심이 상하는 한 사실을 모든 언론매체를 통해 알게 된다. 바로 세계 각국의 부패지수가 어느 국제기관을 통하여 발표되는 날인 것이다. 신기한 것은 이러한 국가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부패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반복해서 망신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아시아경제를 이끌어 가는 주요 국가 중 하나다. 인적자원이 풍부하여 굴지의 기업뿐만 아니라 뛰어난 운동선수며 한류 스타들이 세계무대에서 성공해 각광받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자랑스러운 사실이 세계부패지수 때문에 제대로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못 받는다는 게 상당히 안타깝다. 한국은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타고난 재능이 풍부한 사람들의 나라로 세계가 인식하기 시작했다. 부상하는 이러한 긍정적인 이미지와 부패국가의 이미지가 어색하게 상존하는 것에 대해 문제인식을 가지고 좀더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제도적 해결책을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 오랫동안 지녀온 한국문화의 요소나 전통 자체가 부패 이미지를 개선시키는 데 문제가 된다면 새로운 문화와 전통을 만들어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세계 이미지를 더욱 각인시켜야 할 것이다. 고형식 국제변호사
  • ‘위건 학살’…맨유의 고민은 해결된 것일까?

    ‘위건 학살’…맨유의 고민은 해결된 것일까?

    ‘디펜딩 챔피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위건을 상대로 골 폭풍을 몰아치며 대승을 거뒀다. 맨유는 지난 22일(한국시간) DW 스타디움에서 열린 2009/10시즌 프리미어리그 3라운드에서 위건에 5-0으로 승리했다. 전반을 득점 없이 마친 맨유는 후반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하며 위건의 골문을 초토화시켰다. 지난 2라운드에서 ‘승격팀’ 번리에 충격적인 0-1 패배를 당했던 맨유는 웨인 루니,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투톱을 내세우며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를 엿보였다. 중원은 ‘노장’ 폴 스콜스와 대런 플래쳐가 배치됐고 나니와 안토니오 발렌시아가 좌우 측면을 담당했다. 수비는 부상에서 돌아온 네만야 비디치와 조니 에반스가 짝을 이뤘고 파트리스 에브라와 게리 네빌이 이들을 보좌했다. 한편, 번리전에 90분 풀타임 출전했던 ‘산소탱크’ 박지성은 체력 안배 차원에서 이날 제외됐다. 번리전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인지, 맨유의 전반전은 무거워보였다. 루니의 슈팅은 계속해서 골문을 벗어났고, 베르바토프의 우아한 몸놀림은 위건의 강한 압박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또한 나니와 발렌시아의 측면 돌파 역시 활로를 개척하지 못하며 맨유 공격에 이렇다 할 도움이 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레알 마드리드로 떠난 크리스티아노 호날두의 공백이 크게 느껴졌다. 비록 후반 5골이 터지며 이 같은 비판은 사라졌지만, 전반전만 놓고 봤을 때 맨유의 올 시즌 고민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듯 보였다. 승리는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점을 극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맨유의 전반전은 답답함 그 자체였다. 지지부진한 측면 돌파는 전방에 위치한 루니와 베르바토프의 움직임을 제한시켰다. 특히 나니와 발렌시아는 상대에게 자주 볼을 빼앗기며 역습의 빌미를 제공했고, 이는 맨유의 밸런스를 자주 무너지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창의력이 부족한 중원도 맨유가 풀어야할 숙제 중 하나다. 현재 맨유에는 이날 선발 출전한 플래쳐, 스콜스를 비롯해 마이클 캐릭, 대런 깁슨, 안데르손 등 다수의 중앙 미드필더들이 포진해 있지만 전방과 좌우 측면에 정확한 패스를 넣어줄 플레이메이커가 부족한 상태다. 또한 과거 로이 킨과 같은 파이팅 넘치는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을 수행해줄 선수의 부재도 맨유가 첼시, 아스날, 리버풀 등과 같은 강팀들과 상대할 때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유리몸’ 오웬 하그리브스의 복귀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맨유가 위건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긴 했지만 호날두의 공백이 완벽히 메워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나니와 발렌시아는 고립된 상태에서 돌파를 시도하고 있으며, 팀플레이 보다는 선수의 능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이는 호날두 없는 맨유가 아직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퍼거슨 감독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계획을 세웠고, 확신을 가지고 있다. 지금의 선수 구성에 만족한다.”며 “올 여름 더 이상의 선수 영입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퍼거슨 감독의 발언과는 달리 맨유는 현재 문제점을 해결해줄 선수의 영입이 절실한 상태다. 최근 레알 마드리드의 윙어 아르옌 로벤의 영입설이 보도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루니의 득점포가 부활하고 베르바토프와 마이클 오웬이 골 맛을 보며 공격진에 살아나긴 했지만 그 과정이 매끄럽지 못한 탓에 호날두와 같이 경기 자체를 흔들어줄 새로운 선수의 영입이 요구되고 있다. 과연, 퍼거슨 감독의 말처럼 맨유의 스쿼드는 ‘EPL 4연패’를 달성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일까? 이적 시장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맨유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유럽축구통신원 안경남 pitchactio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6일걸려 서울 왔는데… 30분만에 패배

    ‘6일 만에 서울에 도착했는데….’ 2009대한항공배 코리아 오픈탁구대회에 참가한 콩고민주공화국 남자 선수 3명의 눈물겨운 출전기가 화제다. 콩고의 베니 루카티키수와 조너선 비자쿠, 조조 은쿤다 등 3명은 지난 14일 한국으로 출발, 대회 개막일인 19일 이전 한국에 도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출발 당일부터 험난한 여정이 이어질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경유지인 케냐 공항에 도착했지만 케냐의 국적 항공사가 14일 파업에 들어가면서 발이 묶였다. 이들은 16일 파업이 풀리면서 나흘 만에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두 번째 경유지 태국 방콕에서 다시 발목이 잡혔다. 비자 문제로 입국을 거부당한 것. 결국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데는 이틀이 더 걸렸다. 이들이 인천공항에 도착한 날은 콩고에서 출발한 지 무려 6일 만인 20일 오전.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탄 이들은 코리아오픈이 열리는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예선 라운드 마지막 경기가 열리기 불과 15분 전. 여장을 풀지도 못한 채 우유와 바나나로 겨우 허기를 달랜 뒤 황급히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남은 경기에 참가했다. 19일 열린 예선 두 경기에 참가하지 못해 기권패를 당한 루카티키수와 비자쿠는 남은 20일 경기에서마저 프랑스 선수들에게 각 0-4로 패해 3전 전패를 기록했다. 은쿤다는 20일 경기에서 부전승을 거뒀으나 1승2패로 예선통과에 실패했다. 결국 3명 모두 천신만고 끝에 출전한 경기에서 30여분만에 패배의 아픔만 경험한 채 짐을 싸야 했다. 딱한 사연을 전해 들은 탁구협회는 ‘콩고 삼총사’가 한국에서 특별한 추억을 새길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했다. 이유성 협회 부회장은 경기담당관과 협의해 경기장 테이블이 남는 저녁 시간대를 활용, 탈락한 한국 대표 상비군 선수들과 번외 경기를 하도록 주선했다. 협회 관계자는 “국제탁구연맹 경기담당관도 콩고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나와 경기를 하는 걸 근래 처음 봤다고 했다. 게다가 이들은 코리아오픈에 참가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때문에 번외 경기를 허락받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대회가 끝난 뒤 탁구협회의 도움으로 서울 관광에 나선 뒤 26일 고향으로 돌아간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玄통일 오늘 北조문단과 면담 고급임대 ‘한남 더힐’ 20대 당첨자 쏟아져 신종플루 우리 동네 거점 병원 어디? 한국에서 학부모가 된다는 것 서울 ‘당일치기’ 여행가기 좋은 곳 중·노년들 ‘백수탈출’ 캐머런 신작 ‘아바타’ 끝내줬다
  • [프리미어리그] 호날두 없는 맨유, 험난한 우승 해법찾기

    ‘산소탱크’ 박지성(28·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시즌 첫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팀은 0-1의 충격패를 당했다. 박지성은 20일 영국 랭커셔주 번리의 터프무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리미어리그 번리FC와의 원정경기에 선발출전, 90분간 그라운드를 누비며 시즌 데뷔전을 치렀다. 16일 있었던 버밍엄 시티와의 시즌 개막전 때 엔트리에서 제외돼 주전경쟁에서 밀린 게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냈던 박지성은 이날 안데르손과 좌우 미드필더로 호흡을 맞췄다. 오른쪽 윙으로 나선 박지성은 드리블 돌파는 물론 동료들과 예리한 패스를 주고받으며 여러 차례 위협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다양한 공격루트를 만들려는 부지런한 움직임 역시 빛났다. ‘수비형 윙어’의 창시자답게 수비가담에도 적극적이었다. 후반 안토니오 발렌시아가 교체 투입된 후에는 왼쪽으로 자리를 옮겨 전반보다 더 날카로운 움직임을 선보였다. 하지만 골 결정력은 여전히 박지성의 ‘아킬레스건’이었다. 공격에 가담하려고 애썼지만 공격과 미드필드 라인의 간격이 벌어지면서 밋밋한 공격이 이어졌다.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파괴력은 부족했다. 현재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미드필드 자원의 최적 조합을 찾는 중이다. 기존 멤버인 박지성과 루이스 나니, 라이언 긱스, 조란 토시치 등에 새로 가세한 안토니오 발렌시아와 가브리엘 오베르탕 등이 경기마다 테스트 받고 있다. 때문에 박지성이 우위에 서기 위해선 하루 빨리 공격포인트를 올려 강한 인상을 남길 필요가 있다. 결국 맨유는 전반 19분 로비 블레이크에게 내준 선제골을 만회하지 못한 채 번리에 0-1로 무릎을 꿇었다. 전반 43분 파트리스 에브라가 얻은 천금 같은 페널티킥을 마이클 캐릭이 실축한 것이 뼈아팠다. 투톱으로 기용된 마이클 오언과 웨인 루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의 공백을 메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디펜딩 챔피언’ 맨유는 슈팅수와 볼 점유율 등에서 일방적인 우위에 섰지만 결국 득점으로 연결하지 못해 2부리그(챔피언십)에서 승격한 번리에 망신을 당했다. 1968년 9월 이후 41년 만의 첫 패배. 퍼거슨 감독은 “실망스럽다. 훌륭하지 못했다.”면서 “문전에서 많은 찬스가 있었는데 왜 득점을 못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상황들을 보면 당연히 이겼어야 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현지 언론들의 혹평도 이어졌다. 영국 스카이스포츠는 “박지성은 실수투성이(error-prone)였다.”면서 평점 5점을 매겼다. 오언이 4점을 받아 팀내 최저평점은 피했지만 경쟁자인 안데르손, 발렌시아(평점6)보다 낮았다. 지역지 맨체스터이브닝뉴스도 “볼터치가 눈에 띄게 나빴고, 임팩트가 없었다.”며 박지성에게 팀내 최하점인 평점 5점을 부여했다. ●박지성 맨유와 재계약 협상 돌입 한편 박지성이 마침내 소속 팀과 재계약 협상에 돌입했다. 박지성의 에이전트사인 JS리미티드는 20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박지성 재계약을 놓고 맨유 구단과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JS리미티드는 그러나 재계약 예상 시점에 대해 “조건이 잘 맞으면 일찍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얘기가 나오기 전까지 지금으로서는 뭐라고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DJ와 애증의 20여년 광주·전남 추모위원장 지선스님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DJ와 애증의 20여년 광주·전남 추모위원장 지선스님

    “그 분을 영원히 떠나 보내야 하니 마음이 아프고, 만감이 교차합니다.”‘김대중 전 대통령 광주·전남추모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된 지선 스님(백양사 주지)은 20일 “그가 평생 추구해온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화해 등의 정신을 이어 받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며 “장례일까지 매일 저녁 그를 기리는 추모문화제를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열겠다.”고 밝혔다. 5·18민주화운동 이후 ’산승(山僧)’에서 ‘투사’로 변신해 20여년 동안 광주지역 재야운동을 이끈 지선 스님은 DJ와 불가에서 말하는 ‘억겁의 세월’을 거친 ‘인연’을 맺는다. 지선 스님은 1980년대 이후 ‘반독재 투쟁’이란 기치 아래 대학생들과 섞여 매일 거리 최루탄 공방전의 선봉에 섰고, 이는 19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졌다.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았던 그는 이 과정에서 국가보안법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됐으나 6·29 선언 다음달인 7월 초 석방된다. “석방되던 날 DJ와 YS가 교도소 앞에 찾아와 처음으로 두 거물 정치인을 동시에 만났다.”며 “이후 두 분 사이를 오가며 후보 단일화를 강력히 촉구했으나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두 분으로부터 선거 전까지는 꼭 단일화될 거란 말을 들은 뒤 각 대학에서 강연이 있을 때마다 ‘민주진영의 후보 단일화는 반드시 이뤄진다.’고 역설했으나 그 것이 거짓으로 드러났을 때 가장 가슴 아팠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광주에서 재야활동에 열중이던 지선 스님은 DJ가 1987년 대선 패배 이후 평민당을 이끌던 때도 여러번 부딪쳤다. “DJ는 당시 ‘비 폭력, 비 반미, 비 용공’이란 3대 원칙을 끝까지 강조하며 우리 재야운동가와는 일정 거리를 두려 했던 현실 정치가였다.”며 “이런 점 때문에 고성이 오가는 상황이 자주 빚어졌다.”고 말했다. 지선 스님은 1989년 ‘조선대생 이철규 변사 사건’을 한 예로 들었다. 그는 지역 재야인사인 고 조아라 선생 등과 함께 동교동을 방문했다. 보기에도 흉측한 모습이었던 이철규씨 사진의 일간지 게재를 건의하기 위해서였다. DJ는 당시 “공안 당국에 탄압의 빌미만 제공할 뿐”이라며 일거에 거절했다. 지선 스님은 “5·18 이후 수많은 대학생과 열사들의 죽음을 외면하려면 정치를 그만 두라.”고 맞섰다. DJ역시 “법복을 입고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든 대학생을 선동하면 되느냐.”며 질책했다. DJ와 지선 스님은 이 때부터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DJ가 집권한 이후부터 그는 10여년 동안 ‘산방’에서 지냈고, 최근 3개월 간 하안거를 마친 뒤 DJ추모행사를 진두지휘하게 됐다. “어른은 가셨지만 우리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아 계실 그 분을 되새기고, 그의 정신을 계승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지요.” 지선 스님에겐 애증의 20여년이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김 전대통령 서거] 내란음모 연루 정동년씨 술회

    “DJ는 올바른 역사관을 지닌 정치 지도자였습니다.” 1980년 이른바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에 연루돼 모진 고초속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겪었던 정동년(66·당시 전남대 복학생 대표)씨는 “국민의 정신적 지주로서 더 오래 살아 주시길 바랐는데 안타깝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정씨는 이 사건 이후 DJ와 광주 재야·시민단체의 가교역할을 했다. 정씨는 1980년 5월18일 자정무렵 집으로 들이닥친 5~6명의 남자에 의해 보안사 지하실로 끌려갔다. 시내에서는 시위 군중과 계엄군이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는 군인들의 발길질과 각목 세례를 받고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500만원을 받은 사실과 사용처를 추궁받았다. 합수부의 계속되는 고문에 상무대 영창 화장실로 들어가 군용 숟가락으로 자해까지 했다. 1주일째 이어진 고문으로 그해 5월 말쯤 DJ로부터 500만원을 받아 박관현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 등에게 나눠 줬다고 ‘진술’하면서 고문은 끝났다. 서울의 봄 기간인 1980년 4월 전남대 복학생 대표 자격으로 정씨는 DJ의 강의 초청을 위해 동교동을 방문했다가 방명록에 이름을 남긴 것이 화근이었다. 이 사건으로 DJ와 함께 내란음모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런 인연으로 정씨는 재야활동을 하면서 DJ와 광주 지역사회의 가교역할을 했다. 정씨는 “1987년 대선에서 야당후보 단일화 실패로 노태우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평민당과 DJ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며 “이 때 광주지역 재야도 이탈 조짐을 보였다.”고 회고했다. 정씨는 “돌이켜 보면 우리가 그분의 큰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많은 쓴소리와 비판을 가했다.”며 “15대 대통령에 취임한 뒤 남북문제와 대미 외교 등을 지켜 보면서 그가 정말 위대한 지도자란 걸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박지성 풀타임 활약했지만 번리에 0-1 패배

    ’산소탱크’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풀타임 활약을 펼쳤지만 팀 패배로 빛이 바랬다. 박지성은 20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터프 무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09~10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번리 FC와의 2라운드에 당당히 선발 출전했다.하지만 팀은 전반 18분 내준 선제골을 만회하지 못하고 0-1로 시즌 첫 패배를 당했다. 개막전인 버밍엄 시티 전에 결장했다 이날 베스트 11에 포함된 박지성은 2분쯤 시즌 첫 슛을 작렬했지만 상대 선수 클라크 카리슬의 몸에 맞아 골문을 향하지 못했다.번리는 18분 로비 블레이크가 골라인 쪽에서 동료가 떨궈준 공을 그대로 득달같이 달려들어 슛을 날려 골망을 갈랐다. 박지성은 37분 상대 수비수로부터 볼을 가로채 페널티지역 바로 앞에 서있던 동료에게 차단당했다. 맨유는 전반 43분 파트리스 에브라가 상대 수비수 로비 블레이크로부터 페널티킥을 얻어냈지만 마이클 캐릭이 날린 슛을 상대 골키퍼 브라이언 젠센이 선방하는 바람에 전세를 만회하지 못했다. 박지성은 후반 4분 상대 골문 왼쪽 앞에서 또다시 회심의 슛을 날렸으나 클라크 카리슬이 또 몸을 던져 막아내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13분에도 상대 골문 오른쪽 깊숙이에서 중앙 쪽으로 크로스를 넘겼으나 또 클라크 카리슬에 막혔다.21분에 날린 회심의 슛도 상대 골키퍼 브라이언 젠센의 세이브에 막혔다. 맨유는 웨인 루니와 마이클 오언을 투톱으로 세우고 박지성과 마이클 캐릭, 안데르손, 라이언 긱스를 중원에 위치시키는 4-4-2 포메이션으로 나섰지만 몸을 날리는 번리의 투혼에 막혀 이렇다할 결정적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후반 17분 오언 대신 디미타르 베르바토프,후반 30분 무렵 웨스 브라운 대신 게리 네빌을 투입하는 등 총력전을 펼쳤지만 역부족이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열린세상] ‘트랜스 DJ’의 시대를 열어야/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열린세상] ‘트랜스 DJ’의 시대를 열어야/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해 국민이 비통에 잠겼다. 운명적으로 비슷한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을 한꺼번에 떠나보내게 된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빨갱이’ ‘좌익 용공분자’ ‘후광’(後廣) ‘인동초’(忍冬草) ‘토머스 모어’ ‘동교동’ ‘행동하는 양심’ ‘아시아의 만델라’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햇볕정책’ ‘대한민국의 위대한 지도자’ 등은 김 전 대통령을 지칭하는 수사(修辭)들이다. ‘빨갱이’와 ‘좌익 용공분자’는 여운형 선생이 구성한 ‘건국준비위원회’에 일시 몸담았던 인연으로 평생의 꼬리표가 되었다. 그러나 6·25 전쟁 중 오히려 그는 우파 반동세력으로 몰려 복역한 바 있다. 1957년 가톨릭 교회의 영세를 받았으며, 세례명은 토머스 모어였다. 15세기말 영국의 대법관과 하원의장으로 활약했고, ‘유토피아’(1516)의 저자이기도 한 토머스 모어는 헨리 8세가 이혼 문제로 로마 교황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데 불응, 반역죄로 처형된 인물이다. 토머스 모어는 1935년에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諡聖)됐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정치가의 수호성인으로 선언했다. 우리 역시 김 전 대통령이 한국 민주주의의 수호성인으로 시성되기를 희망한다. ‘빨갱이’에서 ‘제15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김 전 대통령의 인생역정은 파란만장했다. 1971년 선거 지원유세서 그는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다리에 부상을 입었으며, 1973년 유신독재 치하 정보요원들에게 납치되어 두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군사정권이 사형선고를 내릴 때마다 그는 불굴의 투지로 일어섰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인동초’(忍冬草)였고, ‘행동하는 양심’과 ‘아시아의 만델라’가 덧붙여졌다. 그리고 5·18 내란 음모사건으로 전두환 정권에 의하여 또 한 번 사형선고를 받았다. 1987년 ‘서울의 봄’과 6월 민중항쟁으로 얻어낸 민주정권의 수립 기회를 야권의 단일화 실패로 지연시킨 책임은 작다고 할 수 없다. 5년 후 노태우 정권 후계자로 지명된 김영삼 후보에게 패배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한 그를 영국으로 떠나보내면서 지지자들 역시 오열하고 세상을 등졌다. 우여곡절 끝,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후락과 전두환은 죽은 목숨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뇌리에 사무친 정적(政敵)의 이름들을 지우기 시작했다. 그 같은 용서와 화해의 노력은 서거 직전 병상에까지 계속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 역사상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었다. 1998년의 외환 위기사태를 3년 만에 극복했으며, 우리나라를 인터넷 강국으로 육성하고 각종 인권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2000년 6월, 분단 55년만에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였으며, 햇볕정책으로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이름을 세계에 빛나게 했다. 그러나 햇볕정책에 정권의 명운을 걸었으면서도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지 못했던 것은 실책에 속한다. 자신의 햇볕정책을 전방위로 수행했던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을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것도 실책이었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이념적으로만 해석하여 민주당을 거리투쟁으로 내몰았던 것도 구시대의 이념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탓이었다. 독도문제를 지나치게 양보하고, 오는 9월3일로 100년이 만료되는 청·일 간도협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던 것도 한계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제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그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트랜스 DJ’, 그것은 바로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를 통하여 그의 유지를 존중하되 그의 실책과 한계를 지양하면서, 내일의 삶에 필수적인 새로운 지혜를 창조하는 ‘희망의 변증법’을 펼치는 일이다. 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사선 다섯번 넘어… 민주주의 유토피아 꿈꿨다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사선 다섯번 넘어… 민주주의 유토피아 꿈꿨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동초’,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리며 반세기 한국 정치사를 풍미했다. 한국 정치사에서 ‘3김(金)시대’의 한 축이었던 고인(故人)은 1997년 겨울, 반세기만에 ‘선거혁명’을 통한 정권교체를 이뤘다. 3전4기로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한반도 정세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5차례의 죽을 고비와 5년여의 감옥생활, 6년여의 가택연금, 3년의 망명생활 등 고인의 삶은 견디기 어려운 시련으로 점철됐다. 가톨릭 세례명인 ‘토마스 모어’처럼 고행하는 구도자의 삶을 이어온 셈이다. “정이 많은 분이다.” 영원한 비서실장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을 이같이 묘사했다. 말년에도 거의 매일 서울 동교동 자택을 드나든 박 의원은 “지난 1월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방문해 용산참사에 대해 말을 꺼내자 이내 김 전 대통령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면서 “평소에도 드라마 속 (비참한) 사람들을 보며 눈시울을 붉힐 만큼 평소 인정도 많으셨다.”고 전했다. 말년에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등장과 맞물려 케네디 전 대통령과 관련된 책을 탐독하고 여론주도층을 만나 서민과 비정규직을 위한 사회 안전망, 생산적 복지를 강조했다고 한다. 전남 목포에서 뱃길로 150리. 김 전 대통령은 1924년 매서운 바닷바람을 등진 하의도라는 작은 섬에서 3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에는 지금도 생가터가 남아 있다. ‘후광’(後廣)이라는 호(號)도 여기서 따왔다. 중농의 아들이었던 그는 목포상고(현 전남제일고)에 수석 입학한 수재였지만 반일운동으로 학적부에 ‘시찰계요’라고 적힐 만큼 반골기질을 드러냈다. 1945년 약관의 나이에 ‘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 신민당에 입당했지만 8개월 만에 탈당한다. 이어 3단계 통일방안(1972년)과 광주 민주화운동(1980년) 등을 거치면서 색깔론에 휘말렸다. 고인은 1946년 첫 부인 차용애 여사와 가정을 꾸리고 해운회사를 경영, 큰돈을 모은다. 뛰어난 상술로 목포일보를 인수한 뒤 주필을 겸하기도 했다. 자금을 끌어대고 경쟁상대를 꺾으며 사람의 마음을 낚는 장사와 정치는 닮은꼴이다. 1950년 한국전쟁 때는 우익단체 참여를 빌미로 인민군에게 처형될 위기에 몰렸지만 이송 중 극적으로 탈출, 첫 죽음의 고비를 넘긴다.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서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며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3대를 포함, 4차례 낙선의 쓴잔을 연거푸 마셨다. 1958년 강원도 인제군 민의원 선거 때는 후보등록이 취소됐고, 1959년 보궐선거에선 색깔론에 휘말렸다. 4·19혁명이 일어난 1960년 선거에서도 낙선했다. 1961년 인제군 보궐선거에서 당선의 첫 기쁨을 누린 김 전 대통령. 하지만 사흘 만에 5·16을 맞아 반혁명사건에 연루돼 교도소로 직행한다. 토머스 모어의 교훈은 오히려 고난 극복의 힘이 됐다. “늦어도 100년 뒤면 (토머스 모어처럼) 역사에서 재평가받을 것”이라며 고통을 이겨냈다. 1962년 이희호 여사와 재혼한 고인은 이듬해 목포에서 민주당 후보로 공화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1964년 5시간20분간 행한 ‘필리버스터’ 발언과 6개월간 13차례 본회의 발언 등은 지금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71년 7대 대선은 기회이자 시련의 계기였다. 1970년 45세의 나이에 ‘40대 기수론’의 라이벌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물리치고 신민당 후보로 나섰지만 이듬해 선거에선 94만표 차로 패배했다. 이후 20년간 혹독한 시련이 밀려왔다. 일본 망명 중인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을 시작으로 전두환 군사정권까지 55차례의 연금생활, 5년반 동안의 감옥생활, 2차례의 망명생활을 겪었다. 1976년 명동 3·1구국선언으로 구속(긴급조치 9호 위반)됐고, 1981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훗날 고인은 “솔직히 죽는 것이 두려웠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다.”고 회고했다. 가톨릭계의 구명운동 덕에 목숨을 건진 고인은 1982년 도미, 두 번째 망명길에 오른다. 한국인권문제연구소와 민주화추진협의회를 이끌며 민주화 운동의 외로운 무게중심이 됐고, ‘인동초’란 별칭도 얻게 된다. 1985년 12대 총선을 앞두고 전격 귀국한 고인은 김포공항에서 연행돼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만든 신한민주당이 2·12총선에서 109석을 확보, 1987년 6월 항쟁의 기틀을 마련한다. 사면복권 뒤 1987년 13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3위에 머무르며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후보 단일화 실패에 따른 비난에 휩싸였다. 1988년 총선의 평민당 ‘황색 돌풍’으로 일선에 복귀했지만 1992년 12월 대선에서 패배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고인은 “40여 년의 파란 많았던 정치생활에 사실상 종막을 고한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며 대선 낙선의 소회를 곱씹었다. 막을 내릴 것 같던 정치인생은 영국으로 건너간 지 6개월만에 다시 불꽃을 살렸다. 1993년 귀국해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했고, 빗발치는 비판 여론을 무릅쓰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듬해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올라서자 대선 4번째 출마를 선언한다. ‘대통령병 환자’라는 비난이 일었지만 단 1.6%포인트의 표차이로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색깔론과 지역감정의 벽을 넘었다. 보수세력인 자민련과의 DJP연합이 힘이 됐지만, 역설적으로 색깔과 지역의 부조화스러운 조합이기도 했다. 고인의 대표 브랜드는 ‘햇볕정책’이다. 반세기 동안 닫혔던 북쪽의 문을 열게 하는 열쇠로,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뤄진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가 ‘레드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고 탈냉전체제로 진입하는 촉매제가 됐다. 고인을 한반도 유일의 노벨상 수상자로 만든 일대 사건이었고, 퇴임 뒤에도 논쟁이 있는 사안에 대해 비중있게 언급할 수 있는 유일한 지위를 부여했다. 고인은 대통령 임기말 측근들의 비리가 뒤늦게 터진 데다 아들들이 구속되는 등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6·15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북한과 밀거래한 사실은 안타까운 기록으로 남게 됐다. 또 완벽주의와 제왕학적 리더십은 권위주의적 통치라는 오명도 남겼다. 오상도 허백윤기자 sdoh@seoul.co.kr
  •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미녀새 추락

    ‘장대 미녀’가 울고 말았다. 러시아의 옐레나 이신바예바(27)가 18일 독일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장대높이뛰기 결승에서 단 한 차례도 바를 넘지 못해 메달은커녕 순위에서도 빠지는 망신을 샀다. 반면 남자 100m에서 9초58로 신기록을 세운 우사인 볼트(23·자메이카)는 200m 제패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 이신바예바는 이날 2004년부터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대회 44연승,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등 메이저 9회 연속 우승, 세계기록 26차례(실외 14회, 실내 12회) 작성이라는 위업을 일구며 그 누구도 넘보지 못했던 1인자 자리를 무색케 했다. 자신의 세계기록에 30㎝나 모자라는 4m75를 넘지 못했고 5㎝를 높여 4m80에 나섰지만 잇달아 바를 떨어뜨렸다. 대회를 앞두고도 이신바예바의 우승을 의심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올 시즌 출발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 지난 2월 도네츠크에서 열린 실내대회에서 5m를 넘어 26번째 세계기록을 썼고 이후 버밍엄, 베를린, 파리 대회를 휩쓸었다. 지난달 25일 런던 아비바 그랑프리대회에서 4m68밖에 넘지 못해 아나 로고프스카(28·폴란드)에 6년 만에 처음 패배를 당했을 때도 “잠시 컨디션이 나빴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이 종목 금메달은 결국 마지막 시기에서 4m75를 넘은 로고프스카에게 돌아갔다. 볼트의 3관왕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라이벌 타이슨 가이(27·미국)가 심각한 사타구니 통증에 시달리고 있어서다. 그는 전날 100m 결승에서 9초71로 미국 신기록을 세웠으나 2위에 그친 뒤 “의사와 상의해 200m 출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고 결국 출전을 포기했다. 가이는 대회 후 수술대에 오를 전망. 한편 여자 100m에서 셸리 안 프레이저(23)가 10초73으로 자메이카에 남녀 동반 금메달을 안겼다. 10초75를 찍은 케런 스튜어트(25·자에이카)가 2위, 미국의 희망 카멜리타 지터(30)는 10초90으로 3위에 그쳤다. 남자 1만m에서는 케네니사 베켈레(27·에티오피아)가 26분46초31로 우승, 대회 4연패를 일궜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美언론 “양용은, 골프 역사 새로 썼다”

    美언론 “양용은, 골프 역사 새로 썼다”

    “골프 역사상 최대 이변” 한국 골퍼 양용은(37·테일러메이드)의 PGA 메이저 대회 첫 우승에 미국도 놀랐다. 특히 ‘황제’ 타이거 우즈와 접전 끝에 거둔 승리라는 점이 현지 스포츠 매체들을 흥분케 했다. 양용은은 17일(한국시간) 미국 미네소타 주 채스카 헤이즐틴 내셔널 골프장에서 열린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 ‘PGA 챔피언십’ 4라운드에서 2언더파 70타를 기록해 최종합계 8언더파 280타로 챔피언에 등극했다. 아시아인 최초의 메이저 대회 우승이다. 최종 라운드를 양용은에 2타 앞선 선두로 시작한 우즈는 역전을 허용하며 메이저 대회 우승 없이 올 시즌을 마치게 됐다. 미국 포털 사이트 야후(Yahoo.com)는 양용은의 우승을 “골프 역사상 최대 이변”(Yang‘s victory over Tiger is the greatest upset in golf history)이라고 표현하며 17일 오전 현재 메인 페이지에 올려 현지 스포츠팬들의 관심을 반영했다. 야후는 스포츠 섹션에서도 대회 결과를 톱기사로 다루며 “우즈가 아닌 양용은이 역사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스포츠 전문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 인터넷판 역시 양용은의 우승 소식을 톱기사로 보도했다. SI는 ‘사상 최대 이변’(An all-time upset)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타이거 우즈의 충격적인 패배”라고 표현했다. 뉴욕타임스(NYT)와 USA투데이 등 유력 종합지들의 인터넷판 스포츠 톱기사 자리도 대부분 양용은의 우승 관련 기사가 차지했다. 이들 외신은 이번 대회 뿐 아니라 이전 2006년 유럽프로골프투어 HSBC 챔피언십에서 양용은이 우즈의 7연승을 저지했던 것을 상기시키며 ‘호랑이(tiger) 사냥꾼’이라고 쓰기도 했다. 한편 우승을 놓친 우즈는 “퍼팅이 말을 듣지 않았다.”고 자평하며 “양용은은 완벽한 플레이를 펼쳤다. 침착한 플레이와 정교한 샷으로 우승을 일궈냈다.”고 접전을 펼친 상대를 치켜세웠다. 사진=야후 스포츠, NYT, ESPN 보도화면 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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