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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與소장파 “이제 못할 말 없다… 정부와 직접 각 세우겠다”

    與소장파 “이제 못할 말 없다… 정부와 직접 각 세우겠다”

    “더 이상 청와대에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겠다. 이제 우리가 직접 나서겠다.” 4·27 재·보선 패배 이후 구성된 한나라당의 소장파 쇄신 모임 ‘새로운 한나라’의 공동간사를 정태근(친이) 의원과 함께 맡고 있는 구상찬(친박) 의원은 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모임의 활동 방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구 의원은 “그동안 여당이어서 할 말 못한 것도 많지만, 이제 여야의 개념이 없어졌다.”면서 “정부와 직접 각을 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금 수도권, 특히 서울 지역 의원들은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는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직접 변화를 위해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을 역설한 것이다. 항상 ‘용두사미’로 별 성과 없이 끝났던 소장파의 결의가 지난 6일 원내대표 경선에서 저력을 발휘한 것도 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비대위 구성 고심한 흔적 없어 그런 맥락에서 7일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소장파에게는 탐탁지 않은 결과다. 구 의원은 “고심한 흔적이 전혀 안 보인다.”면서 “비대위 구성 과정과 결과를 보니 쇄신과는 거리가 멀다.”고 비판했다. 그는 “비대위는 단순히 전당대회를 관리하는 차원이 아니고 당헌·당규에 구애받지 말고 당이 변화와 개혁에 앞장서도록 구체적인 역할을 하길 바란다.”면서 “당 대표 선출에서도 총선과 대선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가진 훌륭한 후보를 찾아서 내세우는 것이 비대위의 역할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식에 대해서는 “쇄신을 한다고 했으면 의원들의 총의를 들어 봐야 하는데 몇몇 구지도부가 예전 방식으로 결정해 버리면 누가 우리 당이 바뀌었다고 보겠느냐.”고도 지적했다. ‘새로운 한나라’ 소속 의원 7명은 8일 오후 국회에서 모임을 갖고 비대위 구성의 절차적 문제를 지적하며 “황우여 원내대표가 중심이 돼 의원총회를 소집해 비대위 구성을 다시 논의하고 추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난 6일 비주류인 황 원내대표를 선출한 경선 결과에는 소장파 스스로도 놀랐다고 한다. 구 의원은 “그만큼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얼마나 절망감을 느끼고 있는지 보여 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경선을 통해 친박계와 소장파가 유리해졌다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면서 “특정 계파가 유리해진 것이 아니고 한나라당 전체가 불리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솥판 전체가 엎어지는데 그 안에 있는 게 누룽지면 어떻고 차진 밥이면 어떠냐.”면서 “의원들이 친이·친박을 막론하고 박근혜 전 대표가 나와서 천막당사 정신으로 당을 이끌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어려움에 빠져 있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젊고 능력있는 대표 뽑을 것” 그러나 누룽지 같은 비주류 원내지도부를 뽑았지만 중량감이 약하다는 점은 공통의 고민이자 과제다. 구 의원은 “원내대표 경선 결과에 대한 책임을 공감하고 있다.”면서 “원내대표단에 참여 의식을 갖고 지도부가 능력을 잘 발휘하도록 도울 예정이고 정책위도 각자의 전문 분야를 살려 적극적으로 돕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소장파는 전당대회에서도 독자 후보를 내는 등 본격적인 움직임을 이어 갈 계획이다. 그는 다만 “우리 모임이 개인의 당 대표 경선을 위해 이용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소속 의원들이 모두 합의해 당이 변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구태의연하지 않은, 젊고 변화를 선도하는 능력 있는 의원을 대표로 선발할 것”이라는 것이다. 구 의원은 인터뷰 내내 “나는 모임의 연락책일 뿐”이라면서 “내가 소장파의 대표인 것처럼 적지는 말아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SK핸드볼코리아 리그] 핸드볼 최강 ‘인천 남매’ 무승부 충격

    핸드볼판을 주름잡던 ‘인천남매’가 나란히 일격을 당했다. 무승부였지만 패배만큼 충격이 컸다. 여자부 최강 인천체육회는 8일 인천도원체육관에서 열린 SK핸드볼코리아 리그 1라운드 2차대회에서 부산BISCO와 28-28로 비겼다. 연승행진을 벌이던 인천체육회의 대회 첫 무승부다. 승점 1를 얻었지만 뼈아프다. 전반을 5점 차(13-18)로 뒤진 채 마친 인천체육회는 후반 맹공을 퍼부었지만 끝내 점수 차를 좁히지 못했다. 류은희와 김선화가 5골씩 넣었지만, 부산의 원미나(8골)와 윤아름·심인영(이상 6골)의 불붙은 공격본능을 막지 못했다. 여기에 부산 골키퍼 박소리는 상대슈팅 50개 중 23개를 막아내며 팽팽한 시소게임을 끌고나갔다. 무승부였지만 최우수선수(MVP)도 방어율 46%를 기록한 박소리 몫이었다. 이어진 남자부 2라운드 경기에서는 인천도시개발공사가 웰컴론코로사와 22-22로 비겼다. 인천은 강일구 골키퍼의 선방을 앞세워 리드했지만 경기종료 3초 전, 웰컴론코로사에 통한의 동점골을 내주며 무승부에 만족해야 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프로야구] KIA 연장 첫 굿바이 삼중살쇼

    [프로야구] KIA 연장 첫 굿바이 삼중살쇼

    연장전에서 사상 처음으로 굿바이 ‘트리플 플레이’(삼중살)가 나왔다. KIA는 8일 문학에서 열린 프로야구에서 2-1로 앞서던 연장 11회 굿바이 트리플 플레이로 SK를 옭아매며 2연승을 챙겼다. 선두 SK는 올 시즌 처음으로 2연패에 빠졌다. 트리플 플레이는 직선타를 수비수가 잡아 아웃카운트 1개를 낚은 뒤 병살까지 처리한 것을 말한다. 수비수가 땅볼로 잡은 뒤 아웃카운트 3개를 내리 잡는 삼중살과는 약간 다르다. 정규 이닝까지 통틀어 굿바이 트리플 플레이가 나온 것은 이번이 네 번째로, 1993년 4월 10일 삼성-쌍방울전이 마지막이었다. 이날 상황은 이랬다. 10회까지 1-1로 팽팽히 맞서던 두 팀은 11회 초 KIA가 이현곤과 김주형의 연속 안타로 1점을 따내며 균형이 무너졌다. 그러나 SK는 11회 말 선두 이호준이 우중간 2루타를 때려내며 곧바로 동점 찬스로 이어졌다. 정상호는 KIA 구원투수 유동훈의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를 우전 안타로 만들었고 SK는 무사 1, 3루 끝내기 찬스를 잡았다. SK 조동화와 유동훈의 운명의 승부. 풀카운트 끝에 조동화가 때린 타구는 유동훈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갔고 이미 스타트를 끊은 주자들은 귀루하려 했지만 때가 늦었다. 유동훈은 공을 3루로 던져 대주자 김연훈을 낚았고 KIA 3루수 이범호가 다시 1루에 공을 뿌려 정상호까지 잡아내며 혈전에 마침표를 찍었다. 대구에서는 LG의 토종 에이스로 급부상한 사이드암 박현준이 5승째를 거두고 다승 단독 선두로 뛰어올랐다. 박현준은 2회 채상병과 김상수에게 연타석 홈런을 맞고 3점을 내줬지만 흔들리지 않고 7이닝을 추가 실점 없이 막아냈다. 그 사이 타선이 힘을 내 4-3이던 8회 대거 4점을 벌어 주면서 닷새 만에 승리를 보탰다. 지난달 14일 올해 유일한 패배를 안겼던 삼성에 설욕하며 올린 승리라 더욱 값졌다. LG가 삼성을 8-4로 이겨 단독 2위를 지켰다. 삼성은 이날 진갑용의 홈런까지 총 3개를 보태 프로야구 처음으로 팀 3500홈런을 달성했지만 패배로 빛이 바랬다. 대전에서는 한화가 4년 만에 홈런을 친 한상훈의 활약에 힘입어 넥센을 11-7로 꺾었다. 올 시즌 한화가 기록한 한 경기 최다 득점. 한상훈은 4회말 3점포를 포함, 5타점을 기록했고 2루타 하나가 모자라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하지 못했다. 이날 한상훈이 친 홈런은 2007년 4월 29일 광주 KIA전 이후 1471일 만에 쳐보는 홈런이었다. 선발로 나선 류현진도 7이닝 동안 삼진 8개를 솎아내며 1실점으로 역투, 시즌 3승(4패)째를 따내고 다승 경쟁에 합류했다. 잠실에서는 두산 김선우가 시즌 3승째를 프로 데뷔 후 첫 완봉승으로 장식했다. 김선우는 9이닝 동안 단 94개의 공으로 롯데 타선을 산발 7안타 무실점으로 꽁꽁 묶었다. 두산이 5-0으로 승리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비대위 다시 구성하라” 與 소장파 ‘위원장 정의화’에 반발

    4·27 재·보선 패배로 가동된 한나라당의 비상대책위 체제가 시작부터 계파 간의 주도권 경쟁으로 파행하고 있다. 기존의 비주류 의원들은 8일 안상수 대표가 전날 제안한 비대위 구성에 대해 반발을 표면화했다. 일부 비대위원들도 반발에 동참했다. 또 안 대표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지도부의 총사퇴를 기정사실화했으나 일부 최고위원은 이를 거부했다. 소장파 의원 모임인 ‘새로운 한나라’는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긴급 회동을 가진 뒤 “새로 선출된 원내대표가 중심이 돼 의원총회를 열어 비대위 구성을 논의하고 추인해야 한다.”며 안 대표의 비대위 구성안을 반대했다. 소장파 의원들은 당헌 제30조에 의거해 새 원내대표가 당 대표의 권한을 대행해야 하고, 기존 최고위원들은 안 대표와 동반 사퇴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동에 참석했던 정두언 최고위원은 “비대위원 13명 가운데 새로운 한나라 모임 소속인 황우여 신임 원내대표와 이주영 정책위의장, 박순자·차명진·김성식·김선동 의원뿐 아니라 김성조·김학송 의원 등 8명으로부터 비대위 불참 의사를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9일 예정됐던 비대위 첫 회의도 무산됐다. 이는 전날 비대위원장으로 선임된 정의화 국회의장이 친이계에 속해 있고, 비대위 역할도 전당대회 준비기구로 제한된 걸 문제 삼은 반발이다. 정 최고위원은 “대표가 사퇴한 만큼 황 원내대표가 대표 권한대행 자격으로 7월 초로 예정된 전당대회까지 당을 운영해야 한다.”면서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대 관리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비대위 체제가 유지되더라도 권한을 대폭 축소시켜 사실상 새 원내사령탑이 ‘원톱’ 역할을 하게끔 힘을 실어 줘야 한다는 논리다. 황 원내대표 측도 “당헌·당규상 당 대표가 유고된 때는 차순위인 원내대표가 전권을 갖게 돼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황 원내대표는 오는 11일 의총을 열고 비대위 구성과 역할 등에 대한 문제를 공론화하기로 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사설] 개각 이후 黨政 국민신뢰 회복에 주력하라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장고(長考) 끝에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장관 5명을 바꾸는 개각을 단행했다. 5·6 개각은 비교적 장수 장관을 교체한 측면도 있지만 4·27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것에 따른 민심수습용의 성격이 짙다. 당초 통일부 장관과 법무부 장관도 바꿀 것으로 예상됐지만 막판에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류우익 전 주중대사와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을 각각 통일부 장관과 법무부 장관에 발탁하지 않아 개각 폭이 줄었다. 이 대통령이 측근인 류 전 대사와 권 수석을 일단 장관에 기용하지 않은 것은 여론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번 개각은 국정 분위기를 전면적으로 쇄신하는 데는 다소 미흡해 보이지만 대체로 무난해 보인다. 경제팀 수장인 재정부 장관에 경제와는 별로 인연이 깊지 않은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을 내정한 것은 의외라는 평가가 많다. 참신한 인사는 별로 없지만 전반적으로는 내부 발탁을 통해 관료조직에 활기를 불어넣어 집권 후반기를 잘 마무리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단 개각은 마무리됐다. 중요한 것은 개각 이후다. 한나라당은 어제 비주류로 분류되는 황우여 의원을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황 원내대표는 재·보선 패배에 따라 비상이 걸린 당을 바로잡아야 한다. 한나라당은 내년 4월의 총선, 12월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한가하게 계파싸움이나 할 때가 아니다.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동안 한나라당은 의원 숫자만 많은 거대 여당일 뿐 친이, 친박으로 나뉘어 여당다운 모습을 제대로 국민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네탓만 하는, 지리멸렬하는 여당을 국민이 좋아할 리 없다. 정부와 여당은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저축은행 사태는 정부의 신뢰를 갉아먹은 대표적인 사례다. 서민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오르기만 하는 물가에 지쳐 있다. 서민과 중산층을 보듬을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한숨만 쉬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수출 실적은 좋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에게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서민과 중소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당·정·청 간 소통이 보다 원활해져야 한다. 또 정부와 여당은 국민과의 소통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 “당과 협의없는 정책발표 막겠다”

    “당과 사전 협의 없는 정부의 정책발표와 청부 입법을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 한나라당의 새 정책위의장으로 당선된 이주영 의원은 6일 “당·정·청 정책시스템을 뜯어고치겠다.”면서 “건전한 정책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정부의 도덕적 해이와 정책실패에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법인세 추가 감세를 반드시 철회하는 등 서민과 함께하는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해 청와대·정부와 대립각을 예고했다. 애초 이 정책위의장은 원내대표 경선을 준비했으나, 소장파의 요구로 황우여 의원에게 원내대표 후보를 양보하고 정책위의장 후보로 돌아섰다. 온건한 이 의원의 성향과 무관하게 소장파의 개혁적인 정책이 당 정책위에 상당 부분 흡수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실제로 “4·27 재·보선 패배로 당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면서 “창당에 버금가는 혁신을 이루지 못하면 우리는 함께 죽는다.”며 쇄신을 강조했다. 판사 출신인 이 신임 정책위의장은 15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창원을에 출마했지만 당시 신한국당 황낙주 후보에게 패했다. 신한국당과 민주당이 통합되면서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창원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러나 17대 총선에서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에게 패했다. 이후 경남 정무부지사로 재직하다가 2006년 7월 재·보선에서 고향인 마산갑으로 지역구를 옮겨 당선된 뒤 18대 총선에서 3선에 성공했다. ▲59세 ▲경남 마산 ▲경기고, 서울대 법대 ▲서울지법 판사 ▲부산지법 부장판사 ▲경남 정무부지사 ▲16·17·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장 ▲부인 허영(58)씨와 1남 2녀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비주류 뜨고 친이계 입지 약화… 쇄신·변화 바람 몰아칠듯

    비주류 뜨고 친이계 입지 약화… 쇄신·변화 바람 몰아칠듯

    한나라당이 ‘이재오’를 버리고 변화를 택했다. 6일 한나라당의 새 원내대표 경선결과는 ‘황우여-이주영’ 후보의 승리보다는 친이(친이명박)계 주류를 이끌어 온 이재오 특임장관의 패배에 방점이 찍힌다. 이 장관은 이번 경선에서 ‘안경률-진영’후보를 후원하며 주류의 결집을 다독였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소장파가 주도한 ‘주류 2선 퇴진론’도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당내 역학관계뿐 아니라 당·청관계에도 상당한 파장이 예고됐다. ●소장·중진·친박, 승리 견인 당초 약체로 분류됐던 ‘황·이’ 후보는 1, 2차 경선에서 각각 64표, 90표를 끌어모으며 경선 내내 수위를 지켰다. 예상치 못했던 승리는 소장파와 수도권 초·재선 의원들이 이끌고, 친박(친박근혜)계의 암묵적인 지지가 떠받쳤다. 무엇보다 ‘반(反) 이재오’ 기류가 황 후보의 당선을 견인했다. 당내에선 이 장관이 지난 재·보선기간 동안 친이계 모임을 주도하는 등 선거에 개입하는 듯한 인상을 내비쳐 민심의 반감을 샀다는 책임론이 거셌다. 개혁성향 초선 의원 모임인 ‘민본21’ 소속 한 의원은 “재·보선 참패 뒤 주류의 전횡을 막지 못하면 더 이상의 미래는 없다는 위기감이 쇄신에 대한 공감대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 장관이 전날 밤 의원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안 후보에 대한 지지를 당부했다는 소문도 부작용을 낳았다. 이 장관은 측근인 진수희 보건복지부장관과 함께 이날 투표에도 참여했다. 한 소장파 의원은 “(이 장관이)끝까지 당권을 틀어쥐려다가 된서리를 맞은 격”이라고 말했다. 경선전 막판에 친이계 주류에서 제기된 ‘박근혜-이재오’ 공동대표론이 친박계를 자극한 것도 친이계의 패인으로 분석된다. 친박계 한 중진 의원은 “지난 주말부터 황 후보 쪽으로 여론이 기울었다. 1차에선 지역별로 투표하더라도 결선에선 표를 모으기로 했다.”고 귀띔했다. 황·이 후보는 중립 진영 중에선 친박 성향으로 분류된다. 1차 투표에서 3위로 탈락한 ‘이병석-박진’ 후보가 얻은 33표 가운데 26표가 결선 투표에서 황 후보 쪽으로 쏠린 것도 이런 기류를 방증한다. 결과적으로 ‘이재오계’ 입장에선 비주류는 물론 결선에 돌입할 경우 전략적 연대를 기대했던 ‘이상득계’에게마저 버림받은 격이다. 당내 역학구도의 재편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친이 주류의 입지 약화가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친이계는 상당한 충격에 빠졌다. 이 장관 역시 결선 투표 직후 제주 평상포럼 특강을 위해 투표장을 나서며 내내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그의 한 측근은 “이제는 친이 주류가 위기에 내몰렸다.”며 당혹스러워했다. 이상득 의원도 고향 후배인 이병석 후보의 탈락으로 예전만 못한 입지를 드러냈다. 이 의원은 다만 경선 직후 “(결과는) 괜찮다. 나는 당내 현안에 대해선 일체 관여하지 않기로 한 사람이다.”라며 애써 의연한 반응을 보였다. 반면 친박계와 소장파 등 비주류는 운신의 폭을 넓힐 기회를 얻었다. 당장 민본21과 재선급 모임인 ‘통합과 실용’ 등 소장파 의원 33명은 경선 직후 여세를 몰아 연합 결사체인 ‘새로운 한나라’의 출범을 선언했다. 앞으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과 오는 7월 초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도 쇄신 바람을 이어가겠다는 각오도 내비쳤다. 친이계의 위축으로 ‘박근혜 역할론’이 연착륙할 공간도 넓어졌다. 내년 총선에 대한 당내 위기감은 박 전 대표 쪽으로의 기울기를 가속시킬 수 있다. 당·청 관계의 변화도 예고된다. 황 신임 원내대표는 경선 내내 ‘수평적 당·청관계 설정’을 약속해 왔다. 이창구·홍성규·허백윤기자 cool@seoul.co.kr
  • 靑비서진 개편폭 크지 않을 듯

    靑비서진 개편폭 크지 않을 듯

    이명박 대통령이 6일 개각을 마무리하면서 청와대 개편의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4·27 재·보선 패배 이후 당·정·청 인적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동안 컸지만, 당초 전망과 달리 실제 청와대 개편 폭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5·6 개각’을 ‘일하는 내각’에 초점을 맞추고, 남은 집권 후반기를 친서민 정책과 공정사회 추진 등 국정운영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큰 방향을 정한 만큼 정치적인 이유에서 청와대 인적쇄신을 크게 할 필요는 없어졌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임태희 대통령 실장의 거취도 재·보선 직후의 분위기와는 크게 달라져 변화가 예상된다. 개각 전까지는 ‘경질’ 쪽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면, 현재는 ‘유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여권 고위관계자는 “청와대 개편 폭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며, 임 실장도 현재로서는 유임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임 실장이 이번 개각과 관련한 인선을 홍보수석이나 대변인 등 참모들을 배제하고 인사비서관의 보고만 받으며 사실상 혼자 다 조율한 것도 이 대통령의 신임이 여전히 두텁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 대통령이 사람을 쉽게 바꾸지 않는 데다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임 실장에게 묻지 않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점도 ‘유임’ 쪽에 무게를 실어준다. 이 대통령이 최근 “정치하는 사람들은 남의 탓을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자주 하는 것도 재·보선 패배를 청와대 탓으로 돌리려는 한나라당 쪽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당내 소장파와 비주류 쪽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황우여 의원이 이날 한나라당의 새 원내대표가 된 것도 새로운 변수다. 당내에서 변화와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커지면서 주류 쪽을 향해 압박을 가할 것으로 보이는데 굳이 청와대까지 크게 손을 댈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여권 핵심관계자는 “대통령도 이해하면서 정부와 정치를 동시에 잘 아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겠느냐.”면서 “임 실장의 거취는 대표 등 당의 새 지도부가 어떤 컨셉트를 갖출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또 재정부 장관 후보로 검토됐던 것으로 알려진 백용호 정책실장은 이미 유임 쪽으로 결론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수석 비서관 중에서는 총선 출마 예정인 정진석 정무수석이 바뀔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시기는 불분명하다. 또 청와대에 온 지 2년 가까이 된 진영곤 고용복지수석도 바뀔 가능성이 높다. 이번 개각에선 빠졌지만 권재진 민정수석도 오는 7월쯤 검찰 인사 때 법무부 장관으로 이동하면서 청와대를 떠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비서관급에서는 총선에 나갈 김희정 대변인, 이성권 시민사회비서관, 박명환 국민소통비서관, 김연광 정무1비서관 등이 ‘출마조’로 분류돼 청와대를 떠날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반면 김상협 녹색성장환경비서관, 김명식 인사비서관,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 장다사로 민정1비서관, 장석명 공직기강비서관 등은 ‘순장조’로 청와대에 끝까지 남을 것으로 보인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與원내대표 황우여·정책위의장 이주영

    한나라당의 4기 원내대표로 황우여(4선·인천 연수구) 의원이 선출됐다. 황 의원과 ‘러닝 메이트’를 이룬 이주영(3선·경남 마산시갑) 의원은 정책위의장에 올랐다. 비주류·중립 후보들이 원내사령탑에 오르면서 4·27 재·보선 패배 이후 논의돼 온 한나라당의 쇄신은 탄력을 받게 됐다. 황우여·이주영 후보는 6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 결선 투표에서 90표를 얻어 64표에 그친 안경률·진영 후보를 눌렀다. 투표에는 157명이 참여했다. 앞서 열린 1차 투표에선 황·이 후보가 64표, 안·진 후보가 58표, 이병석·박진 후보가 33표를 얻었다. 1차에서 떨어진 이·박 후보의 표가 결선에서 대거 황·이 후보로 몰린 셈이다. 당 개혁을 외치는 수도권 소장파 의원들의 집중적인 지지를 받은 황 의원이 원내대표가 되면서 여권은 큰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주류인 친이계 중에서도 다수파였던 친이재오계의 지원을 받은 안경률 의원이 탈락하면서 구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더욱이 친이상득계인 이병석 의원에게 우호적이었던 대구·경북(TK) 출신의 친박계가 결선에서 황 후보를 선택해 소장파와 친박계의 ‘비주류 연합’이 가시화됐다. 황 신임 원내대표는 인사말에서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 의원들의 쇄신 의지를 국민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이창구 허백윤기자 window2@seoul.co.kr
  • [일본통신] 오릭스 ‘변비타선’ 박찬호 짓누르다

    [일본통신] 오릭스 ‘변비타선’ 박찬호 짓누르다

    박찬호(38. 오릭스)가 시즌 네번째 등판에서 일본진출 후 최소이닝과 최다실점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5일 오사카 쿄세라돔에서 열린 니혼햄 파이터스전에 선발로 출격한 박찬호는 5이닝 동안 5실점(피안타 7개, 탈삼진4개, 볼넷3개)하며 패전투수가 됐다. 총 투구수는 99개. 박찬호는 이날 패배로 시즌 3패(1승)째, 평균자책점은 2.49에서 3.71로 껑충 뛰었다. 오릭스 타선은 이날도 변함없이(?) 물방망이 타선을 자랑이라도 하듯 단 한점도 얻지 못하며 7-0 영봉패를 당했다. 1회말 무사 1, 2루 찬스와 3회말 1사 2, 3루 찬스, 특히 5회말 2사 만루상황에서 2루 주자 시모야마 신지가 투수 견제사를 당하는 어이없는 상황까지 연출하며 박찬호의 어깨를 더욱 짓눌렀던 것. 1회초 박찬호는 1사 2, 3루 위기에서 4번타자 코야노 에이치를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며 첫 고비를 넘기는가 싶었다. 코야노의 땅볼때 3루주자 요 히로노리가 홈으로 파고 들다 아웃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찬호는 다음타자 이나바 아츠노리에게 우전 적시타를 허용하며 아쉽게 첫 실점을 하고 만다. 이후 2회와 3회를 잘 넘긴 박찬호는 4회에 홈런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1사후 나카타 쇼의 중전안타에 이은 외국인 타자 호프파워에게 우월 투런 홈런을 얻어 맞고 순식간에 점수차가 3-0까지 벌어진 것. 오릭스의 변비타선을 감안하면 3점차는 너무나 커보였다. 박찬호는 5회에도 1사 후 이토이 요시오에게 내야안타, 이나바에겐 볼넷을 허용하며 2사 1, 2루 위기를 스스로 자초하더니 다음타자 나카타에게 좌중간 가르는 2타점 2루타를 맞고 5실점째를 헌납, 결국 퀄리티 스타트를 이어가지 못했다. 이날 박찬호가 점수를 허용하는 장면들을 보면 제구력, 특히 체인지업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아 난타 당한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1회 이나바를 상대로 8구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지만 마지막으로 던진 체인지업이 한가운데로 몰리는 바람에 첫 실점을 내줬다. 4회 호프파워에게 투런 홈런을 맞을때도 마찬가지였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더 아래로 떨어졌어야 할 체인지업이 타자가 치기 좋은 한복판에 몰렸고 힘 좋은 호프파워가 이걸 놓칠리가 없었다. 호프파워는 이전 타석까지 15타수 무안타를 기록 할 정도로 극심한 타격부진에 빠져 있던 선수였다. 하지만 11개의 안타중 4개의 홈런이 말해주듯 걸리면 넘길수 있는 힘을 갖춘 선수라는 점에서 매우 아쉬운 장면이었다. 이날 호프파워는 8회에도 홈런을 추가하며 타격부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니혼햄전에서 박찬호의 포심패스트볼은 130km 중반에서 140km 초반에 불과했다. 위력적인 속구가 동반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변화구를 가지고 있더라도 통하지 않는다걸 확인해준 경기이기도 했다. 당초 오릭스의 투수 로테이션을 감안하면 박찬호의 선발 등판 예정일은 5일이 아닌 6일(금)이었다. 하지만 6일엔 오릭스의 경기가 없어 이전과는 달리 하루 빨리 출격했는데 이 부분도 박찬호의 컨디션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6일 쉬고 일주일만에 등판했던 이전 경기들과는 달리 포심패스트볼의 위력이 눈에 띠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오늘 부진이 일시적인 것인지는 다음번 선발 등판때까지 지켜봐야 할듯 싶다. 박찬호의 다음 선발 등판 예정일은 12일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방문경기(야후돔)가 될것으로 예상된다. 소프트뱅크의 투수 로테이션을 감안하면 상대투수는 이와사키 쇼(22)가 될 가능성이 크다. 소프트뱅크는 리그 최강의 타선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팀이다. 어쩌면 다음번 박찬호의 경기 결과 여부가 올 시즌 그의 성적여부를 유추할수 있는 기준점이 될수도 있다. 한편 이틀연속 니혼햄의 좌완 선발(5일-타케다 마사루,6일-야기 토모야)이 등판하는 바람에 선발 라인업에서 빠졌던 이승엽은 이날 경기에서 9회말에 대타로 나와 삼진으로 물러났다. 26개의 삼진으로 이 부문 공동 1위에 올라 있는 이승엽 역시 답답한 오릭스 타선만큼이나 실망스런 모습이었다. 타율은 종전 .150에서 .148로 떨어졌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맨유, 샬케에 4-1 대승…2년만에 챔스리그 결승행, 바르샤와 격돌

    잉글랜드 프로축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2년 만에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랐다. 맨유는 오는 29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스페인의 FC바르셀로나와 우승을 다툰다. 맨유는 5일(이하 한국시간) 잉글랜드 맨체스터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2010~2011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2차전 독일 샬케04와의 홈 경기에서 안토니오 발렌시아와 대런 깁슨, 안데르손(2골)의 연속골에 힘입어 4-1로 크게 이겼다. 맨유는 원정 1차전에서는 2-0으로 이겼다. 바르셀로나와 맨유는 2008~2009 시즌 결승에서 만나 바르셀로나가 2-0으로 이겨 우승했다. 맨유는 2년 전 패배 설욕과 함께 2007~2008시즌 우승 이후 3년 만에 정상 탈환에 도전한다. 맨유는 이날 웨인 루니, 파트리스 에브라, 네마냐 비디치, 대런 플레처, 박지성 등 주전 선수들을 선발로 내보내지 않았다. 루니와 박지성은 출전 선수 명단에서도 아예 제외됐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승점 3점 차로 쫓아온 첼시와의 주말 경기를 대비한 포석으로 보인다. 첫골은 발렌시아가 터트렸다. 전반 26분 깁슨의 패스를 이어받은 발렌시아는 샬케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와 맞선 기회에서 침착하게 밀어 넣었다. 후반 31분에는 깁슨이 발렌시아가 밀어준 공을 오른발 슛으로 연결해 2-0을 만들었다. 어려워진 샬케04는 4분 후 만회 골을 뽑으며 희망을 되살리는 듯했다. 샬케의 일본인 수비수 우치다 아쓰토가 오른쪽 측면을 파고들다 올린 크로스가 페널티지역 안에서 혼전을 벌이던 중 흘러나왔고 호세 후라도가 중거리슛을 마무리, 2-1로 따라붙었다. 그러나 맨유는 후반 27분 브라질 출신 미드필더 안데르손이 나니의 패스를 받아 골을 터뜨렸고, 안데르손은 4분 뒤에도 추가 골을 넣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프로야구] LG 이병규 “광수야 괜찮아”

    [프로야구] LG 이병규 “광수야 괜찮아”

    경기가 끝났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더그아웃으로 향하던 김광수(LG)의 어깨를 이병규(LG)가 툭 쳤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이병규의 말을 김광수는 알아들었다. “야구는 내일도 계속되잖아.” 알아듣긴 했지만 차마 고개를 끄덕일 순 없었다. 이병규가 통산 6번째로 연타석 투런 홈런을 치며 다 잡은 경기를 놓친 게 바로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LG가 4일 잠실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서 4-5로 졌다. 전날 연장전 승리에 이어 이날도 이기면 2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승리가 바로 눈앞에 와 있었다. 9회 초까지도 LG는 4-3으로 앞서 있었다. 아웃카운트 세 개만 잡으면 역전승이었다. 하지만 얄궂게도 드라마는 9회 말부터 시작됐다. 김선규가 불펜으로 물러나고 김광수가 마운드에 섰다. 상대방 선두타자로 나선 대타 김재환이 우익수 앞 1루타를 쳤다. 정수빈이 번트안타로, 김현수가 고의사구로 출루하면서 1사 만루가 됐다. 김동주가 타석에 섰을 때, 김광수는 볼넷을 허용했다. 밀어내기 득점. 동점이 됐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김광수는 주저앉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역전은 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음 타석에 선 최준석이 중견수 쪽으로 희생플라이를 치면서 끝내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두산은 이종욱의 부상으로 2연패 늪에 빠져 있다 간신히 탈출했다. 김경문 두산 감독은 “LG전에서 2연패를 당하면 분위기가 무거워졌을 텐데 선수들이 1승 1패를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했다. 대전에서는 SK가 한화를 7-4로 꺾고 선두를 고수했다. 이날 김성근 감독은 1200승 달성(2258경기)이라는 대기록을 썼다. 김응룡 전 삼성 감독(1476승)에 이은 통산 두 번째 기록이다. 한화의 4번타자 최진행은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연타석 홈런을 쳤지만 팀의 패배로 빛이 바랬다. 목동에서는 KIA가 넥센을 맞아 6-1로 이기고 넥센과 함께 공동 5위로 올라섰다. 최근 부진에 허덕이던 ‘김상사 ’김상현이 3점 홈런을 쳐 승리를 빛냈다. 선발투수 윤석민도 8이닝 동안 삼진 8개를 곁들이며 넥센 타선을 단 2안타 1점(비자책점)으로 꽁꽁 묶고 14일 만에 2승을 건져올렸다. 사직에서는 롯데가 삼성을 6-4로 꺾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박근혜, 원내대표 경선 전날 어떤 얘기…

    대통령 특사로 유럽을 방문 중인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5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 현지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질 예정이어서 현안에 대해 어떤 언급을 할지 주목된다. 마침 당내 역학구도의 향배를 가를 원내대표 경선 전날이어서 결과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박 전 대표가 특정한 주제 없이 여러 현안을 놓고 기자간담회를 갖는 것은 2009년 7월 몽골 방문 이후 대략 2년 만이다. 특사 대표단으로 동행한 이정현 의원은 4일 기자들과 만나 “박 전 대표가 동행 취재 중인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기로 했다.”면서 “다만 정치적 현안에 대해 언급을 자제해 온 지금까지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을 걸로 본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5일이라는 시점이 공식적인 특사활동이 마무리되는 때여서 그렇게 정한 것일 뿐, 다른 고려는 없었다.”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간담회에서는 지난달 28일부터 진행 중인 특사 활동에 대한 언급이 주를 이루겠지만, 4·27 재·보선 이후 여권을 강타한 국정 쇄신책 등 현안에 대한 언급도 어떤 수준으로든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일 한나라당 연찬회에서는 4·27 재·보선 패배와 관련한 여권 주류의 ‘2선 퇴진론’, ‘박근혜 역할론’, 정부·청와대 쇄신 등을 두고 격론이 펼쳐졌었다. 나아가 박 전 대표는 대권 행보를 내다보게 할 큰 틀의 구상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박 전 대표는 이날 아테네에 있는 한국전 참전기념비 헌화를 시작으로 카롤로스 파풀리아스 대통령과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 등을 차례로 예방하고 수교 50주년을 맞은 양국 간 우의 증진 방안을 논의했다. 아테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쇄신 원동력? 찻잔 속 태풍?

    한나라당 초·재선 의원들이 당 쇄신을 위해 한데 뭉쳤다. 쇄신의 원동력이 될지 ‘찻잔 속 태풍’에 그칠지 주목된다. 한나라당 초선 의원 40여 명은 4일 당 쇄신 방향을 논의하기로 뜻을 모았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패배 이후 결성됐던 ‘초선 쇄신모임’ 의원들이 주축이 됐다. 여기에는 소장파 모임인 ‘민본21’ 소속 의원들은 물론 수도권 의원들도 포함됐다. 앞서 3일에는 정두언·나경원 최고위원과 남경필·김정권 의원 등이 회동을 갖고 당 쇄신을 위한 연석회의를 정례화하기로 했다. 이들은 재선 이상 중도·개혁 성향 의원 모임인 ‘통합과 실용’의 주축 멤버들이다. 재선의 차명진 의원과 초선인 김태호 의원 등도 참여하기로 했다. 정 최고위원은 “초선 의원과도 연대해 쇄신 모임을 확장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초선 의원 모임을 주도한 정태근 의원도 “민본21, 통합과 실용 같은 소모임을 쇄신이라는 공감대 아래 모을 필요가 있다.”고 화답했다. 소장·개혁파 의원들이 사실상 ‘연대 투쟁’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행보에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찮다. 계파의 틀을 깨지 못할 경우 쇄신 요구는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쇄신론은 2009년 4·29 재·보선 참패, 지난해 6·2 지방선거 완패 이후 번번이 제기됐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사그라졌다. 시험대는 6일 원내대표 선거와 전당대회가 될 전망이다. 한목소리를 내면 쇄신은 급물살을 탈 수 있다. 그러나 원내대표 선거에서 계파 간 시각차를 재확인한다면 쇄신 동력은 약화될 수 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화해의 팔레스타인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칼레드 마샤알 하마스 최고지도자가 3일(현지시간) 4년 가까운 정파 간 반목을 청산하고 단일 정부를 출범시키겠다는 역사적인 합의를 도출했다. 중동을 휩쓰는 민주화혁명의 여파가 팔레스타인에서 자유롭고 독립된 단일정부 요구로 수렴되는 양상이다. 이에 대해 하마스 고립정책을 펴온 이스라엘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을 양분한 두 정파는 200 6년 1월 총선에서 하마스가 압승을 거둔 이후 갈등을 거듭해 왔다.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에 따라 이듬해 출범한 자치정부 권력을 독점한 파타는 총선 패배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재로 2007년 3월 통합내각에 합류했지만 가자지구 치안 통제권을 둘러싼 양측의 다툼과 아바스 수반을 하마스가 암살하려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2007년 6월부터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양분하며 분열의 길을 걸어왔다. 영국을 방문 중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런던에서 “금일 카이로에서 벌어진 일은 평화에 대한 일격이며, 테러리즘의 승리”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아바스 수반은 네타냐후 총리에게 평화와 유대인 정착촌 건설 중 하나를 택하라고 반박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지난해 9월 초 미국의 중재로 평화협상을 시작했지만 같은 달 말 이스라엘이 서안 지역에서 일종의 식민마을인 정착촌 건설을 일방적으로 재개하면서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주류 vs 비주류’ 한나라당 원내대표·정책위의장 후보 출사표

    ‘주류 vs 비주류’ 한나라당 원내대표·정책위의장 후보 출사표

    한나라당의 새 원내대표-정책위의장에 도전하는 안경률-진영, 이병석-박진, 황우여-이주영(가나다순) 의원이 3일 일제히 출마 선언을 했다. 이번 원내대표 경선 결과는 4·27 재·보선 패배 이후 불거진 여권 쇄신 방향을 가늠할 수 있어 주목된다. 특히 당 주류와 비주류 간 경쟁 구도가 형성돼 향후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및 대표 선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안경률·이병석 의원은 모두 친이(친이명박)계이지만, 안 의원은 친이재오계로 분류되고, 이 의원은 친이상득계에 속한다. 주류가 분열돼 나온 셈이다. 안 의원은 탄탄한 ‘조직 표’가 강점이고, 이 의원은 대구·경북 의원 및 영남권 친박(친박근혜)계의 지지를 기대하고 있다. 비주류 중립 후보인 황 의원은 소장·중립파 및 일부 친박계가 우호적이다. ■ 안경률·진영 安 “그릇 많이 깨봤다… 정책 주도 자신있다” “고위 당·정·청 9인 회동은 물론 실무 당정회의의 논의 구조를 뜯어고치겠다.”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에 나선 안경률 의원은 3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폭탄 선언식 정책 발표로는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데 한계가 있고, 정부보다는 집권 여당이 중심에 서야 할 정책도 적지 않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인 안 의원은 친이(친이명박)계 최대 모임인 ‘함께 내일로’ 대표도 맡고 있다. 원내 수석부대표와 사무총장 등을 역임한 주류 핵심 인물이다. 안 의원은 “대통령과 가깝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대통령에게) 세게 해도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는다.”면서 “설거지도 그릇을 많이 깨 본 사람이 잘하듯 주류로서 정치 1선에 선 경험을 살려 정책을 주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18대 국회 마지막 원내대표다. 공부하고 눈치보는 데 시간을 다 보낼 수는 없지 않으냐.”면서 다른 비주류 후보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는 점을 내비쳤다.4·27 재·보선 패배에 따른 당 쇄신 방안은 조만간 꾸려질 비상대책위원회가 주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 의원은 “비대위에서 당헌·당규 개정, 공천 개혁 등 당 쇄신을 주도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면서 “비대위에 세대·계파별 대표의 참여를 보장하고, 지역을 순회하며 여론을 수렴하는 모습도 보여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당내 소장파를 중심으로 한 ‘주류 퇴진론’과 관련해서는 “이명박 정부가 성공할 수 있도록 끌고가야 하는데, 그럼 누가 일하느냐.”며 부정적 입장을, ‘박근혜 역할론’에 대해서는 “당의 소중한 자산들이 도와야 한다. 다만 어떤 형태로 참여할지는 당사자와 논의해야 한다.”고 긍정적 입장을 각각 나타냈다. 안 의원의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 후보는 진영 의원이다. 안 의원은 “친이·친박(친박근혜) 간 계파 대립을 더 이상 도외시할 수 없다.”면서 “저는 친이계 핵심인데 친박계 핵심이었던 진 의원을 파트너로 삼아 통합의 가교가 되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표의 비서실장 출신인 진 의원은 복수의 원내대표 경선 후보들에게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진 의원은 “(정책위의장으로서) 청와대 눈치를 보는 것은 정치 본질에 대한 훼손이자 모독”이라면서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이병석·박진 李 “재보선은 정책 실패 … 靑과 대립 부적절” “여당 지도부가 청와대에 몸을 곧추세우고 대립각을 세우는 게 진정한 지도자처럼 비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3선의 이병석 의원이 3일 원내대표 경선에 출사표를 던지며 “이명박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 징검다리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4·27 재·보선 패배 뒤 거세게 몰아치는 당내 쇄신 바람몰이에 대해선 확고한 소신과 방향점을 제시했다. 그가 내놓은 진단은 ‘정책 실패’, 처방은 ‘정책 개발’이다. 이 의원은 “정부와 한나라당이 서민들의 꿈, 중산층의 꿈을 현실화하는 적절한 정책을 내놓지 못한 것이 참패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그가 이번 경선에서 ‘당 정책위의 위상 재정립’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는 “서민과 중산층의 꿈을 이뤄주는 정책, 그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관철시키는 당·정·청 구도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당내 일각에선 이 의원을 두고 ‘영포 라인’ ‘이상득 의원의 아바타’라며 힐난하기도 한다. 화를 낼 만도 한데 이내 차분히 해명하는 그의 태도는 얼핏 ‘달관’한 듯했다. “동향이고 중·고교 선후배 사이이니 이상득 의원과 친한 것은 천륜”이라면서도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 당의 쇄신과 변화를 이끌어가겠다는 원내대표 후보의 충정을 계파·계보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박근혜 역할론’에 대해서도 신중했다. 그는 “우리가 함부로 개입해서 얘기할 여지가 없다. 박 전 대표가 판단할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며 “인위적인 틀에 끼워 맞추는 것에는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그러나 ‘이재오 책임론’을 두고는 준엄한 태도를 보였다. “(이 장관이 선거 기간에 의원들과 회동하며 선거에 개입하는 듯한 모습을 비친 것은) 국무위원으로서 신중치 못한 행동이었다. 오해를 살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친이재오계 대표 주자 격으로 출마한 안경률 후보와 중립 진영의 지지를 받는 황우여 후보에 대해선 “물이 깊지 않은데 배를 띄울 수 있겠느냐.”면서 “당내 여러 인프라 자원과 네트워킹이 되어야 대야 협상, 청와대와의 공조 등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며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 의원의 러닝메이트로 나선 박진 정책위의장 후보는 “서로 소통·화합할 수 있는 당을 만들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 콘텐츠 개발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말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황우여·이주영 黃 “3년간 실패한 지도부… 읍참마속 쇄신을” “계파 대리인들이, 3년 동안 실패한 세력이 다시 지도부에 선출된다면, 국민들은 한나라당이 변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4선의 황우여(인천 연수구) 의원은 늘 온건파로 분류됐다. 그러나 원내대표에 도전하면서 ‘날 선’ 언어를 쏟아냈다. 그는 “총선·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읍참마속’의 쇄신이 필요하다.”면서 “비정상적인 줄 세우기와 소통 단절의 장막을 쳐 왔던 주류 세력의 2선 후퇴는 국민의 명령”이라고 단언했다. 이재오 특임장관이 최근 강조한 ‘주류 역할론’에 대해서는 “낯 두꺼운 변명”이라면서 “국민의 준엄한 심판 앞에 우리 당은 또다시 맷집 자랑을 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이는 이 장관이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안경률 의원을 겨냥한 공격이다. 황 의원은 또 다른 경쟁자인 포항 출신의 이병석 의원을 향해서도 “영포 라인이 더 이상 정권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의 최대 원군은 수도권 중심의 소장파이다. 친박(친박근혜)계도 우호적이다. 초·재선 소장파 모임인 ‘민본 21’은 이미 “안경률, 이병석은 안 된다.”고 성명을 낸 바 있다. 따라서 황 의원은 이들의 요구를 적극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는 “소장파들이 64세인 나를 지지하는 이유는 공천권을 볼모로 한 계파 싸움을 끝내 달라는 것”이라면서 “‘청와대 거수기’라는 오명을 씻어 달라는 소장파의 요구는 합당하고, 그 속에 당의 미래가 있다.”고 강조했다. 친박계로 보는 시각도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친박계가 나를 친박으로 안 본다.”며 선을 그었다. 소장파들이 그에게 정말로 표를 몰아 줄까? 황 의원은 “알 수 없다.”면서 “친이(친이명박)계 중에서도 나를 찍는 분이 있을 것이고, 소장파 중에서도 안 찍는 분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중립지대의 중앙광장을 형성하지 않으면 우린 망한다.”고 덧붙였다.원내대표 출마를 포기하고 황 의원과 짝을 이뤄 정책위의장에 도전하는 이주영(3선·경남 마산갑) 의원은 확실한 정책 전환을 강조했다. 이 의원은 “부자 정당, 웰빙 정당 이미지를 벗기 위해 과감한 민생 정책을 펼치겠다.”면서 “부자 감세 철회를 통해 보육정책과 생애·맞춤형 서민 정책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 정부 정책은 당이 앞장서서 막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이재오 “분노·배신 웃어넘겨라” 트위터 글

    이재오 “분노·배신 웃어넘겨라” 트위터 글

    4·27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침묵을 지켜 왔던 이재오(얼굴) 특임장관이 당내에서 제기되는 책임론에 대해 우회적으로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 장관은 3일 트위터에 “아들아, 가슴 깊이 분노가 치밀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하늘을 보고 허허 웃어 보아라.”,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 ‘허참 그게 아닌데’ 하고 웃어 넘겨라.”는 글을 올렸다. 아들에게 충고하는 식의 글이지만, ‘분노’와 ‘배신’ 등 예사롭지 않은 표현을 쓴 것은 주류 퇴진론 등 자신을 겨냥한 움직임이 나오는 데 대한 불쾌감을 표출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이 장관은 재·보선 이후 현안과 관련된 언급을 피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여 왔던 터라 분노와 배신의 주체가 누구인지 등을 두고 이 글이 더욱 시선을 끌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사설] 한나라당 끝장토론 이후가 더 중요하다

    4·27 재·보선 패배의 충격에 휩싸인 한나라당이 어제 국회에서 의원 연찬회를 열고 당의 진로와 정국 현안 등을 둘러싸고 끝장토론을 벌였다. 비공개로 이뤄진 만큼 당 쇄신을 놓고 친이(친이명박)계의 주류와 친박(친박근혜)계, 소장·중립파 등 비주류 간에 날 선 공방이 오갔다고 한다. 당 리더십 교체 방안에 대해 주류 측은 당력을 모아야 한다는 데 목소리를 높였고, 비주류 측은 ‘주류의 백의종군’에 초점을 맞춰 입장차를 확연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의원들의 격한 발언 속에는 한나라당이 가야 할 방향과 해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당내 친이-친박 갈등은 대국민 약속으로 해결해야 한다.” “당·정·청 쇄신을 위해 개혁적인 인사로 비대위를 구성하자.” “당헌·당규를 개정해 내년 총선 전에 대선후보 선출을 위해 대대적으로 프라이머리를 개최해 당력을 극대화하자.” “박근혜 전 대표를 찾을 게 아니라 박근혜의 천막정신으로 가야 한다.” 등은 뼈저린 반성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당·정·청의 틀 속에 당이 중심이 돼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 친이-친박 간의 갈등을 우선적으로 해소해야 한다. 여기에는 진정성 있는 대화와 희생정신이 전제돼야 한다. 그래서 당론으로 결정된 사안은 계파 구분 없이 뭉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국회의원 스스로도 제대로 변해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시대가치를 재정립해야 당도, 본인도 살아남을 수 있다. 따라서 여당은 연찬회 논의를 당·정·청 관계를 새롭게 다져 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재·보선 패배에 따른 충격과 혼란에서도 빨리 빠져 나와야 한다. 여당이 흐느적거리면 대통령의 국정 추진력은 급속도로 약화된다. 그건 여당과 정부 모두에게 치명적이다.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또다시 국민의 혹독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해 보인다.
  • 친이계 “朴·李 공동대표 체제로” vs 친박·소장파 “계파 해체·주류 퇴진을”

    친이계 “朴·李 공동대표 체제로” vs 친박·소장파 “계파 해체·주류 퇴진을”

    ‘봇물이 터졌다.’ 한나라당은 2일 국회에서 의원 연찬회를 열어 4·27 재·보궐 선거 패배에 따른 당 쇄신 방안에 대한 ‘끝장 토론’을 벌였다. 안상수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총사퇴를 선언한 가운데 열린 이날 연찬회에서는 위기의 원인과 해법 등을 놓고 주류와 비주류가 확연한 입장차도 드러냈다. ●주류 “당력 결집” 비주류 “주류 퇴진” 위기 극복 해법으로 주류인 친이명박(친이)계는 ‘당력 결집’을 내세웠다. 반면 친박근혜(친박)계와 소장파 등 비주류는 ‘주류 퇴진’에 초점을 맞췄다. 당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 간사인 김성태 의원은 “주류 독식에 의해 국정이 운영되다 보니 오만불손해졌다.”면서 “계파를 해체하고, 주류는 2선으로 퇴진해야 하며, 개혁적 인사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장파 김성식 의원도 “2선 후퇴하라는 소리는 안하지만 공간을 열어 달라.”면서 “예컨대 이재오 특임장관이 교육부장관으로 옮기면서 인사권을 놓아주는 방향이 어떻겠느냐.”며 주류 핵심인 이 장관을 우회적으로 공격했다. ●“MB에 NO라 말하는 사람 없다” 이에 대해 친이계 이군현 의원은 “당력을 모으는 게 우선”이라면서 “공동 대표 체제도 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또 연찬회장 밖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력을 모으려면 계파가 없어져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친이계 좌장인 이 장관과 친박계 대표인 박근혜 전 대표가 공동 대표를 맡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는 ‘주류 배제론’에 대한 반발로 해석된다. 친이계 안경률 의원도 “친이가 뭘 잘못했느냐. 집단지도체제인 만큼 모두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연찬회에서는 당·정·청에 대한 가감 없는 비판도 쏟아졌다. 차명진 의원은 “이번 재·보선 참패에서 드러난 민심은 정권에 대한 심판인데, 아직도 대통령이 옹고집을 부리고 있으니 문제”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조진형 의원은 “청와대 정무수석이나 장관에게 전화를 걸면 콜백이 없다.”면서 당·정·청 소통 부재를 꼬집었다. 임동규 의원은 “당이 청와대만 쳐다보고, 대통령 정책에 노(No)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고 지적했다. 남경필 의원도 “분위기가 이대로 진행되면 내년 총선에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보다 더 심한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백가쟁명식 당 쇄신론 ‘봇물’ 당의 체질 개선을 위한 ‘새판짜기’ 아이디어도 봇물을 이뤘다. 초점은 우선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방식에 모아졌다. 대의원이 아닌 전체 당원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줄서기 관행 등을 근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 의원은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전(全) 당원 투표제, 대표·최고위원 분리 선출 등을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소장파 김용태 의원은 “당헌·당규를 개정, 내년 총선 전에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프라이머리를 개최하자.”면서 “국회의원 공천도 현역 의원의 경우 당 지지도에 비해 후보 지지도가 낮을 경우 자동 탈락시키고, 기초단체장·기초의원 정당공천권도 포기하는 자기 희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친박계 이성헌 의원은 “세대별 대표를 구성원으로 하는 ‘국민쇄신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요청했다. 강석호·안효대 의원 등은 “보수 대연합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래 권력’인 차기 대선주자들의 역할론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신지호 의원은 “당 지도부와 최고위원회의에 실질적인 힘을 가진 분들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아바타 정치를 끝내야 한다. 대선 후보로 나올 분들이 당 중심에 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반면 김성식 의원은 “대선주자를 끌어들이자는 논리는 내년 총선 판을 모면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고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친박계 서병수 최고위원도 “박 전 대표가 나서면 당·청 관계에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면서 “내년 총선에 앞서 자연스럽게 나설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전체 의원 171명 중 140여명 참석 날 선 공방은 연찬회 시작 전부터 이뤄졌다. 민본21은 회동을 갖고 주류 퇴진을 촉구했다. 정태근 의원은 회동 후 “청와대가 중심이 된 정책이 민심 이반 상황을 가져온 것이니 이를 수정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연찬회 도중에는 홍준표 최고위원과 정몽준 전 대표가 각각 기자들과 만나 ‘대권·당권 분리’ 규정 개정 여부를 놓고 장외 공방을 벌였다. 대선후보 경선출마자는 선거일 1년 6개월 전에 당 대표 등 선출직 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홍 최고위원은 “당권·대권을 분리한 이유는 공정한 경선을 위한 것”이라면서 “이를 합치자는 주장은 경선이 필요없다는 것이며, 조급함에서 비롯된 함진아비 정치”라고 비판했다. 정 전 대표는 “‘여당은 계속 여당 한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라면서 “선출직 당직을 맡은 분이 대선 후보가 돼야 좋다고 국민들이 결정했을 때 당 내부 규정 때문에 못한다면 그런 모순이 어디 있느냐.”고 반박했다. 당 원외위원장협의회도 이날 성명을 통해 “쇄신 논의가 의원 중심으로 이뤄져 국민과 당원들의 요구를 제대로 수렴할지 우려된다.”면서 “논의는 의원총회가 아닌 당원협의회에서 진행돼야 한다.”면서 장외 공방전에 가세했다. 그러나 이날 연찬회는 저조한 참석률 등으로 김이 빠진 모양새도 연출했다. 연찬회 시작 당시만 해도 전체 의원 172명 중 140여명이 출석했으나, 발언이 이어질 때는 100명 안팎의 의원들만 자리를 지켰다. 게다가 주류 핵심인 이 장관과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등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때문에 연찬회장을 빠져나오는 의원들 상당수는 “이래서야 당이 바뀌겠는가.” 또는 “실천력이 있을지 회의적이다.”라는 등 자조적인 반응이었다. 연찬회 내용 중 일부 민감한 표현은 브리핑에서 빠지는 등 ‘각색 의혹’을 낳기도 했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연찬회에 앞서 “비공개로 하는 대신 여과 없이 브리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의원들이 자신의 발언을 기자들에게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전달한 내용과 브리핑 내용이 차이가 나는 등 혼선을 빚기도 했다. 홍성규·장세훈 허백윤기자 shjang@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7) ‘삼민주의’ 쑨원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7) ‘삼민주의’ 쑨원

    중국 혁명의 아버지 쑨원(孫文·1866~1925). 그가 내세웠던 ‘삼민주의’ 곧 민족주의, 민권주의, 민생주의는 한마디로 말하면 ‘구국주의’이다. 삼민주의는 청 왕조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건국할 수 있게 만든 혁명 정신이었고, 외세로부터 중국의 통일을 지켜낼 수 있게 하는 이념적 모토였다. 쑨원의 유훈을 받든 장제스나 마오쩌둥 등에 의해서 삼민주의는 재해석되고 계승되었다. 그리고 지금 쑨원은 중국과 타이완 양쪽에서 국부(國父)로 추앙받고 있다. 성공한 혁명가 쑨원. 이상이 우리가 보통 상식으로 알고 있는 쑨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실제 쑨원의 삶은 이와 달랐다. 현실의 쑨원은 혁명가로 이름을 내건 이래로 단 한번도 혁명 봉기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신해혁명을 알리는 1911년의 우창 봉기까지도. 한마디로 쑨원의 삶은 수많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 무엇이 혁명 봉기에 계속 실패한 그를 성공한 혁명가의 아이콘으로 기억하게 만드는가. 쑨원에게 혁명이란 과연 무엇이었고,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쑨원은, 혁명은 또 어떤 의미인가. ●직업 혁명가 쑨원의 탄생 1800년대 청나라가 외국에 문을 열어 놓고 있었던 유일한 곳 광둥성 광저우. 근처 농촌의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쑨원은 외국인과 그들의 생활 및 문화에 대해서 낯을 가리지 않았다. 이 지역 출신자가 으레 그러했듯 그의 집안에도 해외에 나가서 돈을 버는 친척들이 있었던 까닭이다. 쑨원은 하와이에서 일하는 형 덕분에 근대적 교육과 기독교에 접할 수 있었고, 이후 의학 공부를 마치고 의사가 되었다. 하지만 전근대적인 청나라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고, 중국은 점차 서구 열강들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었다. “대체로 중국과 조약을 맺은 나라는 모두 중국의 주인이다. 따라서 중국은 한 나라의 식민지가 아니라 여러 나라의 식민지가 되어 있고, 우리는 한 나라의 노예가 아니라 여러 나라의 노예가 되어 있다. … 이것을 보아도 중국이 안남이나 조선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래서 중국을 반(半)식민지라고 한 것은 잘못이다. 내가 만든 명칭에 따르자면 ‘차(次) 식민지’라고 불러야 한다.”(‘민족주의’ 제2강, 1924년 2월) 1895년 전근대시기 세계 최대 제국의 하나였던 청나라는 일본과의 전쟁에서 무참히 패배했다. 서구 열강도 아닌,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했다는 사실에 중국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중국의 멸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위기감은 강력한 민족주의적 신념과 혁명적인 방법을 통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쪽으로 쑨원을 몰고 갔다. ‘만주족을 몰아내고 공화국을 건설하자.’ 혁명이 그의 답이었다. 쑨원은 요동치는 정국을 틈타 혁명 봉기를 도모했다. 하지만 쑨원의 봉기는 시작도 하기 전에 청 정부의 감시와 단속에 발각됐다. 함께 거사를 도모한 동지들 중 일부는 정부군에 잡혀 처형을 당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한 이 거사로 쑨원은 반체제의 길로, 직업적 혁명가의 길로 들었다. 이후 혁명은 그의 삶이 되었다. 한번은 쑨원이 해외의 지원자를 모으기 위해 영국 런던에 갔다가 런던 주재 중국 공사관 관헌에게 잡힌 일이 있었다. 쑨원의 자칭 ‘피랍’ 사건은 그의 이름을 중국보다도 해외에서 먼저 반체제 혁명가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쑨원은 하와이를 필두로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가는 곳마다 중국혁명을 역설했다. 그들로부터 한두 푼 피땀이 가득 밴 후원금을 모금했다. 그리고 그는 혁명의 불길을 살리고, 청 왕조를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수립하기 위해 항상 봉기를 일으켰다. 그것의 성공과 실패는 상관없이 그는 항상 격동하는 중국의 근현대사와 온몸으로 부딪쳤다. ●혁명, 다시 한번 더 1905년 쑨원은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는 보황회와 힘겨운 각축을 벌였다. 그는 혁명과 공화를 기치로 내건 단체들이 연합해 만든 중국동맹회의 지도자로 선출되었다. 당시 쑨원만큼 서구 열강을 다루는 교섭에 뛰어나다고, 해외 화교 사회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평가를 받은 자가 드물었던 덕분이다. 쑨원은 중국혁명에 열강들이 개입할까 항상 우려했다. 쑨원에게는 열강들의 이권다툼 속에서 중국의 운명을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는 냉철함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쑨원이 도모했던 봉기들, 가령 광둥, 광시, 윈난 등 남서부 변방의 봉기들은 모두 실패했다. 1911년에 일으키려고 했던 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쑨원에게는 중국 국내에 어떠한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기반도 없었다. 이 때문에 쑨원을 대하는 서구 열강의 시선도 냉담해졌다. 열강들은 중국에서 자신들의 이권을 지켜낼 수 있느냐, 쑨원에게 그럴 만한 힘이 있느냐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쑨원이 기댈 것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민중의 불만과 혁명적 열기뿐이었다. 쑨원은 자신을 대하는 서구 열강의 시선이 냉담해질수록 민중의 혁명적 열기에 의지했고, 그것을 혁명 이상으로 녹여 내는 작업에 매진했다. 삶이 계속되듯 쑨원의 혁명은 계속되었다. ●1911년, 혁명정신을 갖고 온 사나이 쑨원은 우창 봉기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미국에서 신문을 통해 접했다. ‘열 번째 패배’에서 잠시 낙담한 뒤, 다시 활동을 재개하려고 움직이고 있던 찰나였다. 우창 봉기가 성공했다는 소식이었지만, 쑨원은 서둘러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워싱턴, 런던, 파리를 경유해서 귀국하는 긴 행로를 선택했다. 긴 항해를 마치고 1911년 말 상하이에 도착한 쑨원. 사람들은 그에게 무엇을 갖고 왔느냐고 물었다. 쑨원의 답은 간단했다. ‘혁명 정신’을 갖고 왔노라. 쑨원이 세계를 돌고 돌아 귀국한 까닭은 바로 열강들에게 중국 혁명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기 위해서였다. 열강의 이권 다툼으로 중국이 사분오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쑨원에게 중국 혁명의 성공은 외세의 중국 분할 없이 전 영토를 온전하게 보존하는 형태로 공화제 혁명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중국 혁명의 과정에서 보여 줬던 통일된 중국에의 염원, 이것이야말로 쑨원을 중국을 낳은 아버지로 추앙받게 만든 힘이었다. 혁명이 성공한 후에 쑨원이 보여준 행적도 중국의 통일이라는 궤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공화정에 맞춰 비밀결사의 구태를 벗은 동맹회는 국민당으로 거듭났다. 국민당의 대표로 선출된 쑨원은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군사적인 기반이 약했던 그는 초대 대총통의 자리를, 당시 베이징을 중심으로 기반을 잡고 있던 위안스카이(袁世凱·1859~1916)에게 양보했다. 쑨원에게서 혁명은 공화정의 수립으로 완성됐기도 했지만, 외세에 흔들리지 않는 강하고 하나 된 중국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1912년 마침내 중화민국이 수립됐다. 그러나 혁명 정신의 완성태로 보였던 공화정은 잘 굴러가지 않았다. 선거를 통해서 만들어진 임시약법은 믿었던 위안스카이 등 정치가들에게 유린당했다. 아첨, 뇌물, 협박과 살인이 횡행했다. 설상가상으로 1915년 위안스카이의 칭제(稱帝)와 군벌의 난립으로 중화민국의 기반은 흔들렸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쑨원의 방식 “또 다른 거사를 분주히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 나는 모든 일을 직접 지휘하겠다.”라고 쑨원은 미국인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말했다. 중화민국의 성립과 더불어 역사에서 사라진 듯 보이는 쑨원. 그는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국민당을 재정비하고, 혁명 세력을 결집시키고, 그들을 훈련시켰다. 삼민주의로 혁명 정신을 다잡았다. 1923년 쑨원은 마침내 광둥을 진원지로 한 통일을 위해 북벌을 선언한다. 하지만 그는 혁명의 시작점에서 그 결과를 보지 못한 채 1925년에 병으로 사망했다. 쑨원은 단 한번 성공한 1911년의 혁명에서 무참한 실패를 맛봐야 했다. 쑨원은 결과물로 주어진 현실을 견주고, 재고, 제도화하는 정치에 서툴렀으므로 새로 만들어진 공화정에서는 힘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쑨원은 그 실패에서 혁명이 결코 공화제라는 정치체제의 수립만으로 이뤄질 수 없음을 알았다. 쑨원은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전히 혁명 정신은 유효하고, 중국은 통일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쑨원은 중국의 통일을 향한 외침, 북벌을 선언한 채 죽었다. 그는 혁명의 결과를 보지 못하고 그 길 위에서 생을 마감했다. 혁명이란 오로지 길 위에서 끝나지 않는 과정으로만 말해지지 않던가. 그래서 쑨원에게 혁명은 언제나 현재형이다. 그렇기에 언제나 지금 여기 혁명의 이름으로 그는 항상 살아 있다. 이것이 바로 ‘혁명가’ 쑨원이 갖는 의미다. 최정옥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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